『왕자와 거지』라는 소설에는 영국의 왕자가 우연히 거지 소년과 옷을 바꿔입고 거지의 신분으로 살아가게 되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왕자는 그 시간을 통해 백성들의 고충과 삶의 무게를 몸소 경험하게 되고 그 경험은 훗날 그가 선정을 베푸는 훌륭한 왕으로 성장하는 밑거름이 되지요. 고단한 거지의 삶이 훌륭한 정치를 가능하게 한 귀한 배웅의 시간이 되었던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도 이와 닮은 인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모세입니다. 그는 왕자의 신분에서 양을 치는 목자로서 살았던 40년의 세월을 통해 위대한 믿음의 사람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히브리 동족이 학대당하는 모습을 보고 분노를 이기지 못해 애굽사람을 죽이게 되었고, 그 일로 미디안 광야로 도망하여 목자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광야의 시간은 단순한 도피의 세월이 아니라, 모세가 자신을 낮추고 또 낮추며 겸손을 배우는 훈련의 시간이었습니다. 그 과정 속에서 그는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느끼고 깨닫게 되었고, 온유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갈 수 있었습니다. 결국 모세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한 자”로 변화되었고, 온 집에 충성된 종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로 쓰임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온유함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가나안 땅으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도 분명히 드러납니다. 홍해 앞에서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자 백성들은 “애굽에 매장지가 없으므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뇨”하며 모세를 향해 불평을 쏟아냈지요. 그러나 모세의 간절한 기도를 통해 홍해가 갈라져 백성들은 마른 땅 같이 홍해를 건너며 구원의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애굽의 군대는 바다에 수장되는 것을 보고 소고치고 춤추며 하나님께 찬양을 올렸지요.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어려움이 닥쳐와도 그들은 “먹을 것이 없다”, “마실 물이 없다”며 번번이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모세를 대적하며 돌로 치려 하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에 대한 모세의 마음은 조금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그는 언제나 백성들을 향해 자비와 긍휼로 이들을 용납하며 어찌하든 한 사람도 낙오되지 않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자 하나님 앞에 간절히 사랑의 간구를 올렸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온유함은 시내산 사건을 통해 그 절정을 보여줍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산에 올라간 사이, 백성들은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방탕하게 먹고 마시며 뛰놀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진노하셔서 그들을 멸하려 하시자, 모세는 간절한 중보의 기도를 올립니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주옵소서”(출 32:32).
여기서 ‘주의 기록하신 책’은 바로 구원받는 자들의 이름이 기록된 생명책을 의미합니다. 그 책에서 자신의 이름을 지워달라는 것은, 이 백성의 죄를 사하지 않으시면 대신 자신이 지옥에라도 가겠다는 고백이었지요. 이처럼 모세는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어서라도 백성들을 살리고자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감동적인 사랑과 온유한 마음은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먼저 우리 마음속의 악을 벗어버릴 때 비로소 가능해집니다. 마음에 악이 없을 때에야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하지 않으며, 선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미움과 시기, 질투가 자리 잡으면 상대의 허물이 먼저 보이고, 판단과 정죄, 더 나아가 수군거림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온유한 마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이러한 소인배의 마음을 벗어버리고, 어떤 영혼이라도 품을 수 있는 넉넉한 사랑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또한 각자의 광야를 지나고 있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분노보다는 긍휼을, 판단보다 사랑을 선택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이끄시며 또 다른 생명의 역사를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온유한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축복의 말씀을 기억하며, 온유함으로 이 땅을 품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 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