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TOTAL : 1537 PAGE : 1/108
2025-05-02
제18과믿음의 씨앗을 심자
갈라디아서 6:7~9
읽을말씀 : 갈라디아서 6:7~9 | 외울말씀 : 갈라디아서 6:9 | 참고 말씀: 요한복음 14:21
교육목표 : 사람의 마음 밭을 개간하여 믿음의 씨앗을 심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방법을 깨닫게 한다.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 럼 하나님께서도 심은 대로 거두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사랑하는 자녀들이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원하십니다.
1. 심은 대로 거두는 영계의 법칙
두 사람이 똑같은 환경 속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추수 때 한 사람 은 풍성한 소출을 거둔 반면, 한 사람은 소출이 아주 미미했다면 무엇이 문제일 까요? 알고 보니 소출이 적은 사람은 농사짓는 법칙대로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 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해야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 같은데 정작 축복받지 못하고, 일이 꼬이며 어려움을 겪습니다.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눈에 띄는 축복이나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 하며 심었는데도 받지 못했다면 이는 하나님 말씀 대로 순 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 앞에 심었으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육을 좇아 육으로 심 은 것은 육의 열매를 맺고, 성령의 역사를 좇아 영으로 심은 것은 영의 열매로 거두게 됩니다. 이것이 영계의 법칙이지요.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핵심은 마음을 변화시켜 옥토로 만드는 것입니다. 즉 마 음의 악을 버리고 빛으로, 선으로, 진리로 채워 하나님 형상을 닮아야 하지요. 이것이 곧 축 복의 비결입니다. 아무리 “주님을 믿습니다.” 해도 마 음 밭을 개간 하지 않고 여전히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의 송사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이 있으니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지요.
2.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1) 마음 밭을 개간해야 합니다
농사를 지을 때 좋은 씨앗을 많이 뿌려도 토질이 나쁘면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단단한 길가에 씨를 뿌리면 싹이 나기 어렵지요. 새가 씨를 먹기도 하고, 햇볕에 타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밭에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 배로 풍성하게 소출을 거둘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밭과 같은 우리 마음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미움, 질투, 교만, 간음 등 더러운 비진리를 버리고 사랑과 덕이 있는 온유한 마 음으로 경작해야지요. 그럴 때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탐스 럽게 맺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 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여 옥토로 만들지 않는다면 심은 것에 비해 열매가 저조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 하시는 것은 “하라, 지키라” 했고, 싫어하시는 것은 “하지 말라, 버리라” 하셨 지요. “버리라, 하지 말라”는 말씀은 마음 밭을 개간하는 작업과도 같습니다. 마음 밭을 개간하여 좋은 땅으로 만드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2) 씨앗을 심듯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 밭을 개간함과 동시에 씨 뿌리는 일을 병행해야 합니다. 옥토로 만든 다음에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같이 진행되어야 하지요.
여기서 ‘씨를 심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성경에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라, 사랑하라, 섬기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십일조 하라, 충성하라” 이런 것에 순종하는 행함이 다 심는 작업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 열심히 믿음의 씨앗을 심어야 풍성한 열매를 맺 고 하늘의 큰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농부는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 철 에 따라 다양한 씨를 뿌립니다. 우리도 천국에 갈 때까지 마음 밭을 개간하는 동시에 씨를 계속 심어야 합니다. “하라, 지키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 복해 주시지요.
3) 인내로 가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만일 심기만 하고 가 꾸지 않으면 추 수 때에 거둘 것이 별로 없습니다. 부지런 히 벌레도 잡아 주고, 비료와 물도 주고 인내하며 가꾸어야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지요. 그러면 인내로 가꾸는 작업이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 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야 심고 거두는 법을 잘 깨우 쳐서 영적인 일류 농부가 될 수 있지요. 또한 성도들과 교제하며 은혜를 나누면 서 믿음이 성장해 나갑니다.
둘째로, 성령 충만하게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찬송과 기도를 통해 성령의 감동함과 충만함을 입고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 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연약하면 농사일을 감당할 수 없지요. 영적으로도 힘이 있어야 열심히 마음 밭을 개간하며 계속 심고 가꿀 수 있습니다.
만일 성령 충만함을 입지 못하면 매사에 피곤하고 힘들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알아도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을 지킬 수도, 세상을 이길 수도 없지 요. 원수 마귀 사단의 미혹을 받고, 시험 환난에 빠지게 됩니다. 반면 종일 일해 서 몸이 곤한 사람이라도 찬송과 기도 속에 성령 충만함을 입으면 위로부터 새 힘이 주어집니다. 이 힘으로 원수 마귀 사단과 싸워 이길 수 있고, 마음 밭을 옥 토로 열심히 개간하고 씨를 심으며 가꿀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마음 밭을 개간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씨를 심는 것마다 천국 에서는 영광과 상급이요, 이 땅에서는 축복의 열매로 거둘 줄을 믿기 때문에 기 쁨과 감사로 수고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추수할 소망이 가득한 농부는 기 쁘고 행복하게 일을 합니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부지런히 벌레를 잡고 잡 초를 뽑아 주지요. 마음이 즐거우니 고된 일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틈타지 못하고 물러갑니다. 그러니 낙심하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일 없이 천국까지 힘차 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4) 꽃이 피고 열매를 거두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꽃이 피면 그 향기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행복해집니다. 우 리 마음도 예수 그리스도로 꽃이 피면 주변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 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교회 다니는 사람이 다 당신 같으면 나도 예수 믿겠다.”는 말을 듣 습니다. 그러니 더 쉽게 전도되고 가정복 음화도 이루어 지지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심은 것이 꽃이 피면 마침내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사랑장의 열매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팔복의 열매, 빛의 열매들 이 갈수록 풍성하게 여물어 갑니다. 이처럼 마음에 영적인 열매들이 맺히는 것 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신 대로이지요(요 14:21).
우리가 마음 밭을 개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고 가꾸는 것은 영육 간에 모든 축복을 거두는 기본 원리입니다. “버리라, 하지 말라” 하신 대로 순종하 여 마음 밭을 개간함과 동시에 “지키라, 하라” 하신 말씀의 씨앗을 열심히 심 고 가꾸어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마음 밭을 ( )해야 한다.
② 씨앗을 심듯이 하나님 말씀에 ( )해야 한다.
③ ( )로 가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④ 꽃이 피고 ( )를 거두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 알고 넘어갑시다!
‘빛의 열매란’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착함’이란 악이 없는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선을 행하는 것이다.
‘의로움’이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다. 마음에 믿어 야 순종의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말씀했 다(롬 10:10).
‘진실함’이란 거짓되지 않고 약속을 지키며, 어떤 상황에도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을 말한다.
교육목표 : 사람의 마음 밭을 개간하여 믿음의 씨앗을 심고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방법을 깨닫게 한다.
우리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처 럼 하나님께서도 심은 대로 거두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사랑하는 자녀들이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원하십니다.
1. 심은 대로 거두는 영계의 법칙
두 사람이 똑같은 환경 속에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런데 추수 때 한 사람 은 풍성한 소출을 거둔 반면, 한 사람은 소출이 아주 미미했다면 무엇이 문제일 까요? 알고 보니 소출이 적은 사람은 농사짓는 법칙대로 하지 않은 것이 문제였 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해야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 것 같은데 정작 축복받지 못하고, 일이 꼬이며 어려움을 겪습니다.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눈에 띄는 축복이나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 하며 심었는데도 받지 못했다면 이는 하나님 말씀 대로 순 종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무엇이든지 하나님 앞에 심었으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육을 좇아 육으로 심 은 것은 육의 열매를 맺고, 성령의 역사를 좇아 영으로 심은 것은 영의 열매로 거두게 됩니다. 이것이 영계의 법칙이지요.
그러므로 신앙생활의 핵심은 마음을 변화시켜 옥토로 만드는 것입니다. 즉 마 음의 악을 버리고 빛으로, 선으로, 진리로 채워 하나님 형상을 닮아야 하지요. 이것이 곧 축 복의 비결입니다. 아무리 “주님을 믿습니다.” 해도 마 음 밭을 개간 하지 않고 여전히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의 송사를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막힌 담이 있으니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지요.
2.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1) 마음 밭을 개간해야 합니다
농사를 지을 때 좋은 씨앗을 많이 뿌려도 토질이 나쁘면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단단한 길가에 씨를 뿌리면 싹이 나기 어렵지요. 새가 씨를 먹기도 하고, 햇볕에 타 버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좋은 밭에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 배로 풍성하게 소출을 거둘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밭과 같은 우리 마음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미움, 질투, 교만, 간음 등 더러운 비진리를 버리고 사랑과 덕이 있는 온유한 마 음으로 경작해야지요. 그럴 때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령의 열매를 탐스 럽게 맺을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 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여 옥토로 만들지 않는다면 심은 것에 비해 열매가 저조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 하시는 것은 “하라, 지키라” 했고, 싫어하시는 것은 “하지 말라, 버리라” 하셨 지요. “버리라, 하지 말라”는 말씀은 마음 밭을 개간하는 작업과도 같습니다. 마음 밭을 개간하여 좋은 땅으로 만드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2) 씨앗을 심듯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마음 밭을 개간함과 동시에 씨 뿌리는 일을 병행해야 합니다. 옥토로 만든 다음에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같이 진행되어야 하지요.
여기서 ‘씨를 심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성경에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전도하라, 사랑하라, 섬기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십일조 하라, 충성하라” 이런 것에 순종하는 행함이 다 심는 작업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 열심히 믿음의 씨앗을 심어야 풍성한 열매를 맺 고 하늘의 큰 상급을 받을 수 있습니다. 농부는 풍성한 열매를 거두기 위해 철 에 따라 다양한 씨를 뿌립니다. 우리도 천국에 갈 때까지 마음 밭을 개간하는 동시에 씨를 계속 심어야 합니다. “하라, 지키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 복해 주시지요.
3) 인내로 가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만일 심기만 하고 가 꾸지 않으면 추 수 때에 거둘 것이 별로 없습니다. 부지런 히 벌레도 잡아 주고, 비료와 물도 주고 인내하며 가꾸어야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지요. 그러면 인내로 가꾸는 작업이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첫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 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래야 심고 거두는 법을 잘 깨우 쳐서 영적인 일류 농부가 될 수 있지요. 또한 성도들과 교제하며 은혜를 나누면 서 믿음이 성장해 나갑니다.
둘째로, 성령 충만하게 찬송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찬송과 기도를 통해 성령의 감동함과 충만함을 입고 영적인 힘을 얻을 수 있 기 때문입니다. 농부가 연약하면 농사일을 감당할 수 없지요. 영적으로도 힘이 있어야 열심히 마음 밭을 개간하며 계속 심고 가꿀 수 있습니다.
만일 성령 충만함을 입지 못하면 매사에 피곤하고 힘들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말씀을 많이 알아도 기도하지 않으면 마음을 지킬 수도, 세상을 이길 수도 없지 요. 원수 마귀 사단의 미혹을 받고, 시험 환난에 빠지게 됩니다. 반면 종일 일해 서 몸이 곤한 사람이라도 찬송과 기도 속에 성령 충만함을 입으면 위로부터 새 힘이 주어집니다. 이 힘으로 원수 마귀 사단과 싸워 이길 수 있고, 마음 밭을 옥 토로 열심히 개간하고 씨를 심으며 가꿀 수 있습니다.
셋째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마음 밭을 개간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또한 씨를 심는 것마다 천국 에서는 영광과 상급이요, 이 땅에서는 축복의 열매로 거둘 줄을 믿기 때문에 기 쁨과 감사로 수고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추수할 소망이 가득한 농부는 기 쁘고 행복하게 일을 합니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부지런히 벌레를 잡고 잡 초를 뽑아 주지요. 마음이 즐거우니 고된 일도 힘들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틈타지 못하고 물러갑니다. 그러니 낙심하거나 세상을 바라보는 일 없이 천국까지 힘차 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4) 꽃이 피고 열매를 거두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아름다운 꽃이 피면 그 향기로 인해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행복해집니다. 우 리 마음도 예수 그리스도로 꽃이 피면 주변에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 요.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교회 다니는 사람이 다 당신 같으면 나도 예수 믿겠다.”는 말을 듣 습니다. 그러니 더 쉽게 전도되고 가정복 음화도 이루어 지지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심은 것이 꽃이 피면 마침내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사랑장의 열매와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팔복의 열매, 빛의 열매들 이 갈수록 풍성하게 여물어 갑니다. 이처럼 마음에 영적인 열매들이 맺히는 것 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신 대로이지요(요 14:21).
우리가 마음 밭을 개간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심고 가꾸는 것은 영육 간에 모든 축복을 거두는 기본 원리입니다. “버리라, 하지 말라” 하신 대로 순종하 여 마음 밭을 개간함과 동시에 “지키라, 하라” 하신 말씀의 씨앗을 열심히 심 고 가꾸어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마음 밭을 ( )해야 한다.
② 씨앗을 심듯이 하나님 말씀에 ( )해야 한다.
③ ( )로 가꾸는 작업이 필요하다.
④ 꽃이 피고 ( )를 거두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
● 알고 넘어갑시다!
‘빛의 열매란’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9)
‘착함’이란 악이 없는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선을 행하는 것이다.
‘의로움’이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다. 마음에 믿어 야 순종의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말씀했 다(롬 10:10).
‘진실함’이란 거짓되지 않고 약속을 지키며, 어떤 상황에도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을 말한다.
2025-04-25
제17과모든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자
로마서 8:6~7
읽을말씀 : 로마서 8:6~7 | 외울말씀 : 고린도후서 10:5 | 참고 말씀: 이사야 55:8~9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반면에 “주여 주여” 하면서도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1. 믿음을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
사람은 태어나 보고 듣고 배운 지식을 머릿속에 입력합니다. 이렇게 머리에 입력된 지식을 재생하여 떠올리는 것이 생각입니다. 생각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입니다.
로마서 8장 8절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신 대로 성경에서는 육신이 사람의 몸이 아닌 영적인 의미로 쓰인 경우가 많습니다. 영적으로 ‘육신’이란 사람의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말합니다. 미움, 혈기, 판단, 정죄, 시기, 교만 등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지요.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비진리의 생각이지요. 이와 반대로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진리의 지식을 되살려 내는 것을 말합니다. 곧 진리의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에게 무례히 행하거나 애매히 비난하는 경우 자존심이 상하고 불쾌한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불편한 마음을 상대에게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러지는 않는다 해도 서운해하거나 마음이 요동하며 고통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섬기라, 낮아지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하셨는데, 손해라고 여겨진다면 이 역시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러한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말씀에 순종할 수 없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이처럼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안에 비진리, 곧 육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지식만 있다면 당연히 영의 생각만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의 생각을 하려 해도 진리와 비진리를 잘 분별하지 못하여 자기도 모르게 비진리의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책에는 원수를 갚는 것이 의롭다고 나옵니다. 그 책을 읽으면 그러한 가치관을 진리로 받아들이기 쉽지요. 그러나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지요(마 18:22). 이러한 진리의 지식이 있으면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을 보아도 ‘용서해야지, 사랑해야지.’ 하면서 영의 생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 비진리의 지식을 지닌 사람은 ‘저 사람은 악하기 때문에 도무지 사랑할 수 없다.’며 자기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지요. 이처럼 육신의 생각을 하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으므로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2.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모든 이론
‘이론’이란 어떤 지식을 바탕으로 사물의 이치나 현상 등에 대해 정립해 놓은 논리 체계입니다. 그중에는 하나님 말씀과 상반되어 영적인 믿음을 갖는 데 방해 요인이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론과 지식은 인류 문명의 발달에 크게 기여했지만 그것이 모두 진리는 아닙니다. 이론은 사람의 인식과 관념으로 세운 논리일 뿐입니다.
그러니 한 가지 현상에 대해 여러 가지 이론이 있기도 하고, 예전에 옳다 하던 이론이 시간이 지나면 그르다 하는 일도 생깁니다. 이처럼 이론은 시대나 문화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며, 진리도 있지만 비진리도 많습니다. 그러한 지식과 이론에 집착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어렵고 말씀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지만 학교에서는 사람이 유인원에서 진화되었다고 가르칩니다. 하나의 가설에 불과한 진화론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창조주 하나님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인간의 사고와 경험을 앞세우는 사람이 어떻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이론에 하나님 말씀을 맞추려 하면 온전한 믿음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창조주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진리와 비진리를 바로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려면 명백한 비진리에 속하는 육신의 생각은 물론, 세상의 잘못된 지식으로 정립된 모든 이론까지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3. 육신의 생각과 모든 이론을 깨뜨리려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39~40). 이런 하나님 말씀은 육신의 생각이나 모든 이론을 깨뜨리지 않으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했고,“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말씀했습니다(고후 10:5).
그렇다면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모든 이론을 파하여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령 ‘싫다, 밉다, 서럽다, 힘들다.’는 육신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때 ‘아니야,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어!’ 하고 우선 멈춰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면 할수록 자신만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지요.
그다음에는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의 뿌리를 파악해야 합니다. 싫다, 밉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내 안에 미움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무시하는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면 자존심이나 교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행동이나 마음을 해부하여 그 뿌리에 해당하는 악을 발견해야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을 비롯해 모든 이론을 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마음에 양식 삼고 행해야 합니다. 마음 안에 있는 ‘미움, 혈기, 시기, 판단, 교만’ 등 비진리인 어둠을 빼내고 ‘사랑, 이해, 용서, 섬김, 화평’ 등 진리인 빛으로 채워 나가야 하지요.
가령 형제를 미워하던 사람이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안다고 해서 ‘미움’이 버려지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원수를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미움이라는 비진리를 빼내기 위해서는 먼저 철저히 회개하고, 나를 용서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상대에게 먼저 웃어 주고 선물을 하는 등 적극적인 사랑의 행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기도하고 금식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으면 미움의 속성이 뽑히고 대신 사랑이 채워집니다. 이런 방법으로 비진리를 하나하나 다 버리고 진리로 채워 나가면 더 이상 육신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자신이 옳다 하는 이론을 깨뜨리면 하나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이론을 깨뜨린다는 것은 세상에서 배운 지식이나 이론이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면 철저히 무(無)로 돌린다는 의미입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진리이기에 그에 맞지 않는 육신의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기 위해 불같이 기도하면 보혜사 성령께서 도와주시니 능히 깨뜨리고 버릴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인 육신의 생각과 모든 이론을 온전히 깨뜨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으며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육신이란 사람의 몸과 ( )이 결합된 것을 말한다. 미움, 혈기, 판단, 교만 등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다.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 )이다.
2.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 알고 넘어갑시다!
‘사단의 역사’와 ‘육신의 생각’
사단은 자신이 권세 잡고 있는 공중에 악한 마음과 어둠의 일을 행하게 하는 능력을 퍼트려 놓는다. 이때 마음에 비진리가 있는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통해 사단의 음성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육신의 생각이 많으면 그만큼 사단의 역사를 받기 쉽다.
사단이 육신의 생각을 부추겨 마음의 비진리를 자극하고 육체의 소욕을 요동케 하면 결국 범죄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는 사단의 역사를 단호히 물리쳐야 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반면에 “주여 주여” 하면서도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1. 믿음을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
사람은 태어나 보고 듣고 배운 지식을 머릿속에 입력합니다. 이렇게 머리에 입력된 지식을 재생하여 떠올리는 것이 생각입니다. 생각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입니다.
로마서 8장 8절에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하신 대로 성경에서는 육신이 사람의 몸이 아닌 영적인 의미로 쓰인 경우가 많습니다. 영적으로 ‘육신’이란 사람의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말합니다. 미움, 혈기, 판단, 정죄, 시기, 교만 등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지요.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다시 말해 비진리의 생각이지요. 이와 반대로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진리의 지식을 되살려 내는 것을 말합니다. 곧 진리의 생각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에게 무례히 행하거나 애매히 비난하는 경우 자존심이 상하고 불쾌한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은 불편한 마음을 상대에게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그러지는 않는다 해도 서운해하거나 마음이 요동하며 고통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섬기라, 낮아지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하셨는데, 손해라고 여겨진다면 이 역시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러한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말씀에 순종할 수 없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이처럼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안에 비진리, 곧 육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지식만 있다면 당연히 영의 생각만 하게 됩니다. 그런데 영의 생각을 하려 해도 진리와 비진리를 잘 분별하지 못하여 자기도 모르게 비진리의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책에는 원수를 갚는 것이 의롭다고 나옵니다. 그 책을 읽으면 그러한 가치관을 진리로 받아들이기 쉽지요. 그러나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셨지요(마 18:22). 이러한 진리의 지식이 있으면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을 보아도 ‘용서해야지, 사랑해야지.’ 하면서 영의 생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 비진리의 지식을 지닌 사람은 ‘저 사람은 악하기 때문에 도무지 사랑할 수 없다.’며 자기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지요. 이처럼 육신의 생각을 하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없으므로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2.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모든 이론
‘이론’이란 어떤 지식을 바탕으로 사물의 이치나 현상 등에 대해 정립해 놓은 논리 체계입니다. 그중에는 하나님 말씀과 상반되어 영적인 믿음을 갖는 데 방해 요인이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론과 지식은 인류 문명의 발달에 크게 기여했지만 그것이 모두 진리는 아닙니다. 이론은 사람의 인식과 관념으로 세운 논리일 뿐입니다.
그러니 한 가지 현상에 대해 여러 가지 이론이 있기도 하고, 예전에 옳다 하던 이론이 시간이 지나면 그르다 하는 일도 생깁니다. 이처럼 이론은 시대나 문화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며, 진리도 있지만 비진리도 많습니다. 그러한 지식과 이론에 집착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어렵고 말씀에 순종하지 못합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지만 학교에서는 사람이 유인원에서 진화되었다고 가르칩니다. 하나의 가설에 불과한 진화론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창조주 하나님을 믿기가 어렵습니다. 인간의 사고와 경험을 앞세우는 사람이 어떻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과 이론에 하나님 말씀을 맞추려 하면 온전한 믿음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무엇보다도 창조주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진리와 비진리를 바로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려면 명백한 비진리에 속하는 육신의 생각은 물론, 세상의 잘못된 지식으로 정립된 모든 이론까지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3. 육신의 생각과 모든 이론을 깨뜨리려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39~40). 이런 하나님 말씀은 육신의 생각이나 모든 이론을 깨뜨리지 않으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했고,“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말씀했습니다(고후 10:5).
그렇다면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모든 이론을 파하여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령 ‘싫다, 밉다, 서럽다, 힘들다.’는 육신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때 ‘아니야,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어!’ 하고 우선 멈춰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면 할수록 자신만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지요.
그다음에는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의 뿌리를 파악해야 합니다. 싫다, 밉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내 안에 미움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무시하는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면 자존심이나 교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행동이나 마음을 해부하여 그 뿌리에 해당하는 악을 발견해야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신의 생각을 비롯해 모든 이론을 버리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마음에 양식 삼고 행해야 합니다. 마음 안에 있는 ‘미움, 혈기, 시기, 판단, 교만’ 등 비진리인 어둠을 빼내고 ‘사랑, 이해, 용서, 섬김, 화평’ 등 진리인 빛으로 채워 나가야 하지요.
가령 형제를 미워하던 사람이 ‘원수도 사랑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안다고 해서 ‘미움’이 버려지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원수를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도 아닙니다. 미움이라는 비진리를 빼내기 위해서는 먼저 철저히 회개하고, 나를 용서하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상대를 사랑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합니다.
상대에게 먼저 웃어 주고 선물을 하는 등 적극적인 사랑의 행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면서 기도하고 금식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으면 미움의 속성이 뽑히고 대신 사랑이 채워집니다. 이런 방법으로 비진리를 하나하나 다 버리고 진리로 채워 나가면 더 이상 육신의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자신이 옳다 하는 이론을 깨뜨리면 하나님 말씀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이론을 깨뜨린다는 것은 세상에서 배운 지식이나 이론이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면 철저히 무(無)로 돌린다는 의미입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진리이기에 그에 맞지 않는 육신의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기 위해 불같이 기도하면 보혜사 성령께서 도와주시니 능히 깨뜨리고 버릴 수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인 육신의 생각과 모든 이론을 온전히 깨뜨려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으며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육신이란 사람의 몸과 ( )이 결합된 것을 말한다. 미움, 혈기, 판단, 교만 등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다.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생각할 때 하나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 )이다.
2.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 알고 넘어갑시다!
‘사단의 역사’와 ‘육신의 생각’
사단은 자신이 권세 잡고 있는 공중에 악한 마음과 어둠의 일을 행하게 하는 능력을 퍼트려 놓는다. 이때 마음에 비진리가 있는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통해 사단의 음성을 받아들인다.
따라서 육신의 생각이 많으면 그만큼 사단의 역사를 받기 쉽다.
사단이 육신의 생각을 부추겨 마음의 비진리를 자극하고 육체의 소욕을 요동케 하면 결국 범죄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는 사단의 역사를 단호히 물리쳐야 한다.
2025-04-18
제16과부활의 영적인 의미
요한복음 11:25~26
읽을말씀 : 요한복음 11:25~2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1:25 | 참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4:16~17
교육목표 :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을 맞아 부활이 갖는 영적인 의미에 대해 알아본다.
부활절은 성도들이 주님의 부활을 서로 축하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참으로 복된 절기입니다.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을 소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부활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활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능’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과학과 의학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사람의 삶과 죽음까지도 주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사람의 호흡이 끊어졌다가 소생될 수는 있지만, 아무리 뛰어난 의술이나 최첨단 장비로도 완전히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명하시자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나왔지요. 이미 부패되어 소생할 수 없는 세포 하나하나를 재생시키셨습니다. 이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지만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이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는 이보다 더 놀라운 부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란 구원받은 성도들 중 수명이 다해 죽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창세 이래 구원받은 성도 중에는 수백,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죽은 지 몇십 년만 지나도 형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부패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에는 마른 뼈도 아니고, 완전히 썩어 분해된 몸이 다시 살아납니다. 몸의 형체가 복원되어 몸의 주인인 영혼과 결합되지요. 더욱 놀라운 것은 이때 소생되는 몸은 공중으로 들려 올라갈 수도 있고, 7년 혼인잔치가 베풀어지는 영의 공간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즉 흙으로 지어진 몸이 영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신령한 몸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권능으로 모든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또한 이 권능으로 살리셨지요.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행적을 성경에 기록하심으로 신령한 부활체의 성질을 알게 하셨습니다. 성도들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날 일임을 확실히 믿도록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권능의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3도 화상으로 완전히 익어버린 피부도 새롭게 만드시며, 완전히 죽어버린 신경도 살려 주셨지요. 수많은 사람이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고, 심지어 호흡이 완전히 끊어지고 몸이 뻣뻣하게 굳은 사람도 살아났습니다. 이 외에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도록 분명한 증거들을 수없이 나타내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광’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의 공간에 거하시며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영광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이 영광을 홀로 누리기보다 자녀들과 함께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고 아름다운 빛의 공간에 거할 수 있도록 인간을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우선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지으시고 영의 공간 곧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온전한 영광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빛의 공간에 아담이 함께 거하며 사랑을 나누기 원하셨지요.
생령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살 동안 상대성을 모르기 때문에 풍요로운 그곳의 삶이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후 이 땅으로 쫓겨나 눈물, 슬픔, 질병, 고통을 겪어본 뒤에야 에덴동산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즉 상대성을 체험한 후에야 하나님 안에서 누리던 자유와 풍요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아담은 이처럼 범죄 후 상대성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녀로 나온 후에는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천국은 에덴동산과는 차원이 다른 곳입니다.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 처소마다 영광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영광은 바로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입니다. 우리를 가장 아름답고 영화로운 곳에 들이기 원하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도 아끼지 않고 보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속량되고 주님을 믿음으로 영원히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설령 수명이 다해 죽어도 다시 사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이런 영광을 어느 정도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빛 곧 진리 안에 거하는 만큼 빛의 공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깨닫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도록 역사하셔서 영광을 받으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자녀들과 함께 나누기 원하십니다(요 13:32).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도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의 자리에 거하기를 우리 자신보다 더 간절히 바라십니다.
3.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아름답고 영원한 천국에서 산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져질 운명이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대신 사망에 내어주심으로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은 육을 입으실 이유도, 죽음을 겪으실 이유도 없었는데,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시려고 모든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처참하게 죽임당하셨지만 죄가 전혀 없기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셨지요.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몸이 죽지 않도록, 죽어도 다시 살도록 대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심으로 장차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들을 그 아들의 피로 깨끗이 씻겨 주시고, 참으로 위대하고 아름다우시며 선하신 하나님을 감히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천국 처소까지 예비하셨습니다.
장차 공중 강림하신 주님과 7년 혼인잔치가 있을 영의 공간과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천국은 참으로 신비롭고 영화로운 곳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령한 몸으로 변화시켜 세마포를 입히시고 공중에서 7년 동안 혼인잔치를 하실 것입니다.
그 후 우리는 지상 재림하신 주님과 함께 이 땅에서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다가 백보좌 대심판 후 정성껏 예비하신 천국의 처소로 들어가 영원토록 살게 됩니다. 이 사랑에 보답하려면 더 이상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없어야 하며 거룩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에 가장 빛나는 부활체로 변화되어 그 품에 안길 수 있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활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 )을 나타낸다.
②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 )을 나타낸다.
③ 하나님의 크신 ( )을 나타낸다.
2.‘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란 누구를 말할까요?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영광은 무엇일까요?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데 이것을 ‘영적인 부활’이라 한다.
‘육적인 부활’이란 주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사람의 몸이 썩지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교육목표 :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절을 맞아 부활이 갖는 영적인 의미에 대해 알아본다.
부활절은 성도들이 주님의 부활을 서로 축하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참으로 복된 절기입니다. 주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을 소망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부활의 축복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부활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1.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능’을 나타냅니다
오늘날 과학과 의학이 고도로 발달하면서 사람의 삶과 죽음까지도 주관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일시적으로 사람의 호흡이 끊어졌다가 소생될 수는 있지만, 아무리 뛰어난 의술이나 최첨단 장비로도 완전히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셨습니다.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하고 명하시자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나왔지요. 이미 부패되어 소생할 수 없는 세포 하나하나를 재생시키셨습니다. 이는 사람의 능력으로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지만 하나님께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주님이 공중에 강림하실 때에는 이보다 더 놀라운 부활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17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했습니다.
여기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란 구원받은 성도들 중 수명이 다해 죽은 사람들을 말합니다. 창세 이래 구원받은 성도 중에는 수백, 수천 년 전에 죽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사람의 몸은 죽은 지 몇십 년만 지나도 형체가 남지 않을 정도로 부패합니다.
그런데 주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에는 마른 뼈도 아니고, 완전히 썩어 분해된 몸이 다시 살아납니다. 몸의 형체가 복원되어 몸의 주인인 영혼과 결합되지요. 더욱 놀라운 것은 이때 소생되는 몸은 공중으로 들려 올라갈 수도 있고, 7년 혼인잔치가 베풀어지는 영의 공간에 머물 수도 있습니다. 즉 흙으로 지어진 몸이 영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신령한 몸으로 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권능으로 모든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 또한 이 권능으로 살리셨지요.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의 행적을 성경에 기록하심으로 신령한 부활체의 성질을 알게 하셨습니다. 성도들의 부활이 실제로 일어날 일임을 확실히 믿도록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부활을 믿을 수 있도록 권능의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3도 화상으로 완전히 익어버린 피부도 새롭게 만드시며, 완전히 죽어버린 신경도 살려 주셨지요. 수많은 사람이 시력과 청력을 회복하고, 심지어 호흡이 완전히 끊어지고 몸이 뻣뻣하게 굳은 사람도 살아났습니다. 이 외에도 도저히 의심할 수 없도록 분명한 증거들을 수없이 나타내셨습니다.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광’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의 공간에 거하시며 온 우주를 다스리시는, 영광을 받기에 합당한 분이십니다. 이 영광을 홀로 누리기보다 자녀들과 함께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영원히 죽지 않고 아름다운 빛의 공간에 거할 수 있도록 인간을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우선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지으시고 영의 공간 곧 에덴동산에 살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그곳에서의 삶은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온전한 영광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빛의 공간에 아담이 함께 거하며 사랑을 나누기 원하셨지요.
생령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살 동안 상대성을 모르기 때문에 풍요로운 그곳의 삶이 얼마나 값지고, 행복한 것인지를 몰랐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후 이 땅으로 쫓겨나 눈물, 슬픔, 질병, 고통을 겪어본 뒤에야 에덴동산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즉 상대성을 체험한 후에야 하나님 안에서 누리던 자유와 풍요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를 깨달았던 것입니다.
아담은 이처럼 범죄 후 상대성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자녀로 나온 후에는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천국은 에덴동산과는 차원이 다른 곳입니다.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으로 나뉘어 있으며 그 처소마다 영광이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영광은 바로 새 예루살렘 성의 영광입니다. 우리를 가장 아름답고 영화로운 곳에 들이기 원하시기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도 아끼지 않고 보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가 속량되고 주님을 믿음으로 영원히 죽지 않게 되었습니다. 설령 수명이 다해 죽어도 다시 사는 영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이런 영광을 어느 정도 누릴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빛 곧 진리 안에 거하는 만큼 빛의 공간에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을 깨닫게 하시고 체험하게 하십니다. 또한 우리에게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나타내도록 역사하셔서 영광을 받으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영광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자녀들과 함께 나누기 원하십니다(요 13:32). 이 땅에서뿐만 아니라 장차 천국에서도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의 자리에 거하기를 우리 자신보다 더 간절히 바라십니다.
3.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아름답고 영원한 천국에서 산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존재들이었습니다. 죄로 인해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져질 운명이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대신 사망에 내어주심으로 우리가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은 육을 입으실 이유도, 죽음을 겪으실 이유도 없었는데, 우리를 사망에서 건지시려고 모든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처참하게 죽임당하셨지만 죄가 전혀 없기에 하나님의 권능으로 다시 살아나셨지요.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 몸이 죽지 않도록, 죽어도 다시 살도록 대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또한 부활하심으로 장차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것을 소망하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들을 그 아들의 피로 깨끗이 씻겨 주시고, 참으로 위대하고 아름다우시며 선하신 하나님을 감히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도록 허락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능력으로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며 영원히 안식할 수 있는 천국 처소까지 예비하셨습니다.
장차 공중 강림하신 주님과 7년 혼인잔치가 있을 영의 공간과 우리가 영원히 살아갈 천국은 참으로 신비롭고 영화로운 곳입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령한 몸으로 변화시켜 세마포를 입히시고 공중에서 7년 동안 혼인잔치를 하실 것입니다.
그 후 우리는 지상 재림하신 주님과 함께 이 땅에서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다가 백보좌 대심판 후 정성껏 예비하신 천국의 처소로 들어가 영원토록 살게 됩니다. 이 사랑에 보답하려면 더 이상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없어야 하며 거룩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실 때에 가장 빛나는 부활체로 변화되어 그 품에 안길 수 있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활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 )을 나타낸다.
②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 )을 나타낸다.
③ 하나님의 크신 ( )을 나타낸다.
2.‘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란 누구를 말할까요?
3.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주시고자 하는 영광은 무엇일까요?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
주님을 영접하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데 이것을 ‘영적인 부활’이라 한다.
‘육적인 부활’이란 주님이 공중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사람의 몸이 썩지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하는 것을 말한다.
2025-04-11
제15과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
요한일서 3:21~22
읽을말씀 : 요한일서 3:21~22 | 외울말씀 : 요한일서 3:21 | 참고 말씀: 마가복음 16:17~18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란 무엇이며 어떠한 특징이 있는지 믿음의 5단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계명에 순종하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복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5단계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
이 세상의 많은 자녀가 부모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 말씀에 100% 순종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떤 자녀는 부모님 말씀에 아예 반항하거나 빗나가고, 어떤 자녀는 무엇을 하라고 하니까 억지로 행합니다. 그런가 하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은 아니지만 자녀의 도리를 좇아 복종하는 자녀도 있습니다. 진정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는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편하게 해 드립니다. 부모에 대한 사랑이 이보다 더 승하면,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 마음에 꼭 맞게 순종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부모의 마음이 기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성경을 통해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온전히 순종하는 자녀를 지극히 사랑스러워하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까지 헤아려 행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은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보다 넘치도록 순종합니다. 어느 한순간 넘치는 행함을 보이거나 가끔 진한 사랑을 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내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런 모습이 10년이 가도, 100년이 가도 변함이 없으며 오히려 승해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 온 영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니 무엇을 구하든 즉시 응답을 받고, 마음에 품은 것까지도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범사에 명철의 길이 보이고, 어떤 질병 균이나 약한 것이 틈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질병이나 약함도 고치며 귀신도 쫓아냅니다. 영적인 권세가 있기 때문에 어둠의 세력이 해를 입히지 못하며, 원수 마귀가 송사할 만한 죄악이 없으니 시험 환난을 가져다줄 수도 없습니다.
2. 믿음의 5단계 특징
1) 자신의 생명을 버리기까지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단계를 지나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그에 맞게 행하는 차원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명해도 하나님 뜻이라면 오직 예와 아멘뿐이며 자신의 생명을 버리기까지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에서도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드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순종하는 믿음의 5단계와는 차이가 납니다.
가령, 어머니가 출근하면서 자녀들에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청소를 해 놓아라.” 했습니다. 이때 어떤 자녀는 억지로 청소를 하는 반면 착한 자녀는 어머니를 사랑하여 기쁜 마음으로 구석구석 정성껏 청소를 합니다. 이보다 더 선한 자녀는 “어머니가 일하고 오시면 피곤할 텐데 뭐 더 할 것이 없나?” 하고 살핍니다. 즉 청소뿐 아니라, 시키지 않은 일까지 찾아서 해 놓습니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는 사랑스러운 정도를 지나서 자녀가 너무나 대견하고 기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는 죄악이 없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하지만,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헤아려 순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이 말씀을 하셨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넘치게 행하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2) 무수한 기도를 쌓아 기사와 표적을 행합니다
진리가 마음속에 가득하고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살아가고자 무수한 기도를 쌓게 됩니다. 또한 수많은 영혼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할 수 있는 권능을 받기 위해 기도하지요.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불같은 기도를 쌓을 때 기사와 표적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 4:48) 하셨습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놀라운 표적과 기사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셨지요. 우리도 믿음의 5단계에서 불같이 기도하여 권능을 받으면 기사와 표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여러 가지 표적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증거들을 보여 줄 때 사람들의 생각이 깨지고 마음 문이 열리며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3) 온 집에 충성합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했고, 7절에는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고, 온 집에 충성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였습니다.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사명 중에는 중요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명도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명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맡은 모든 분야에 마음 다해 감당하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입니다. 믿음의 5단계, 즉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크든 작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명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최선을 다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명을 갖고 있어도 소홀함 없이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며 열매를 냅니다. 이는 온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3. 가장 영광스러운 새 예루살렘 성
거룩한 성, 영광의 성이라 불리는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 보좌가 있고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계 21:2). 새 예루살렘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동서남북 사면에는 각각 세 개씩 총 열두 개의 진주문이 있고, 문마다 한 천사가 지키고 있지요.
새 예루살렘 성의 집은 복층이며 정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3천층 집도 정금 보석으로 되어 있지만 새 예루살렘과는 차이가 납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보석들이 있으며 각 보석에서 이중, 삼중 빛을 발산합니다. 집주인이 온 영으로 깊이 들어간 정도와 충성한 공로에 따라, 행적과 취향에 따라 특색 있고 다채롭습니다. 집을 두르고 있는 영광의 빛과 장식된 보석만 보아도 집주인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면 주어지는 천국이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 이곳에서는 연못, 정원, 동물원, 골프장, 무도회장 등 자신이 원하는 부대시설이 모두 개인의 소유로 주어집니다. 또한 구름 자가용도 개인 소유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하고 싶고, 갖고 싶지만 주님을 위해 포기한 것을 기억하여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서 넘치는 위로와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기본적으로 금 면류관과 의의 면류관이 주어지고(계 4:4 ; 딤후 4:7∼8) 그 외에 많은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또한 천사들은 주인이 무엇을 하든지 그림자처럼 따르며 수종 들고 주인이 원하는 것을 알아서 섬깁니다. 수종 드는 천사의 수도 온 영으로 깊이 들어간 정도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마음의 성결을 이루며 온 집에 충성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날마다 더 깊은 차원으로 성장해 새 예루살렘 성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 가운데 거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 ) 하는 믿음이다.
2. 믿음의 5단계 특징입니다.
첫째, 자신의 ( )을 버리기까지 온전히 ( )한다.
둘째, 무수한 ( )를 쌓아 기사와 ( )을 행한다.
셋째, ( )에 충성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6~2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온 영’이란?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마음 안에 온전히 진리로 채워진 상태를 말한다. 바로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한 모습이다.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로서 영이 혼을 온전히 지배하고 다스리는 차원이다.
온 영을 이루어 불같이 기도하면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곧 권능이 따른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란 무엇이며 어떠한 특징이 있는지 믿음의 5단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계명에 순종하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복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5단계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
이 세상의 많은 자녀가 부모를 사랑한다고 해도 그 말씀에 100% 순종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떤 자녀는 부모님 말씀에 아예 반항하거나 빗나가고, 어떤 자녀는 무엇을 하라고 하니까 억지로 행합니다. 그런가 하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은 아니지만 자녀의 도리를 좇아 복종하는 자녀도 있습니다. 진정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는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고 편하게 해 드립니다. 부모에 대한 사랑이 이보다 더 승하면,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서 그 마음에 꼭 맞게 순종합니다. 그러니 얼마나 부모의 마음이 기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성경을 통해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온전히 순종하는 자녀를 지극히 사랑스러워하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까지 헤아려 행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은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보다 넘치도록 순종합니다. 어느 한순간 넘치는 행함을 보이거나 가끔 진한 사랑을 전해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내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런 모습이 10년이 가도, 100년이 가도 변함이 없으며 오히려 승해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 온 영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니 무엇을 구하든 즉시 응답을 받고, 마음에 품은 것까지도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범사에 명철의 길이 보이고, 어떤 질병 균이나 약한 것이 틈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질병이나 약함도 고치며 귀신도 쫓아냅니다. 영적인 권세가 있기 때문에 어둠의 세력이 해를 입히지 못하며, 원수 마귀가 송사할 만한 죄악이 없으니 시험 환난을 가져다줄 수도 없습니다.
2. 믿음의 5단계 특징
1) 자신의 생명을 버리기까지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그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단계를 지나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그에 맞게 행하는 차원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명해도 하나님 뜻이라면 오직 예와 아멘뿐이며 자신의 생명을 버리기까지 온전히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에서도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드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순종하는 믿음의 5단계와는 차이가 납니다.
가령, 어머니가 출근하면서 자녀들에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청소를 해 놓아라.” 했습니다. 이때 어떤 자녀는 억지로 청소를 하는 반면 착한 자녀는 어머니를 사랑하여 기쁜 마음으로 구석구석 정성껏 청소를 합니다. 이보다 더 선한 자녀는 “어머니가 일하고 오시면 피곤할 텐데 뭐 더 할 것이 없나?” 하고 살핍니다. 즉 청소뿐 아니라, 시키지 않은 일까지 찾아서 해 놓습니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는 사랑스러운 정도를 지나서 자녀가 너무나 대견하고 기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는 죄악이 없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하지만,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헤아려 순종하기에는 부족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이 말씀을 하셨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넘치게 행하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2) 무수한 기도를 쌓아 기사와 표적을 행합니다
진리가 마음속에 가득하고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살아가고자 무수한 기도를 쌓게 됩니다. 또한 수많은 영혼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할 수 있는 권능을 받기 위해 기도하지요.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불같은 기도를 쌓을 때 기사와 표적이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 4:48) 하셨습니다. 공생애 기간 동안 놀라운 표적과 기사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셨지요. 우리도 믿음의 5단계에서 불같이 기도하여 권능을 받으면 기사와 표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여러 가지 표적이 나타납니다. 이러한 증거들을 보여 줄 때 사람들의 생각이 깨지고 마음 문이 열리며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3) 온 집에 충성합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했고, 7절에는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킨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고, 온 집에 충성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였습니다.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은 ‘자신의 모든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사명 중에는 중요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명도 있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명도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맡은 모든 분야에 마음 다해 감당하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입니다. 믿음의 5단계, 즉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크든 작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명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최선을 다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명을 갖고 있어도 소홀함 없이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며 열매를 냅니다. 이는 온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3. 가장 영광스러운 새 예루살렘 성
거룩한 성, 영광의 성이라 불리는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 보좌가 있고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계 21:2). 새 예루살렘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며져 있습니다. 동서남북 사면에는 각각 세 개씩 총 열두 개의 진주문이 있고, 문마다 한 천사가 지키고 있지요.
새 예루살렘 성의 집은 복층이며 정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3천층 집도 정금 보석으로 되어 있지만 새 예루살렘과는 차이가 납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보석들이 있으며 각 보석에서 이중, 삼중 빛을 발산합니다. 집주인이 온 영으로 깊이 들어간 정도와 충성한 공로에 따라, 행적과 취향에 따라 특색 있고 다채롭습니다. 집을 두르고 있는 영광의 빛과 장식된 보석만 보아도 집주인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면 주어지는 천국이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 이곳에서는 연못, 정원, 동물원, 골프장, 무도회장 등 자신이 원하는 부대시설이 모두 개인의 소유로 주어집니다. 또한 구름 자가용도 개인 소유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하고 싶고, 갖고 싶지만 주님을 위해 포기한 것을 기억하여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서 넘치는 위로와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기본적으로 금 면류관과 의의 면류관이 주어지고(계 4:4 ; 딤후 4:7∼8) 그 외에 많은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또한 천사들은 주인이 무엇을 하든지 그림자처럼 따르며 수종 들고 주인이 원하는 것을 알아서 섬깁니다. 수종 드는 천사의 수도 온 영으로 깊이 들어간 정도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마음의 성결을 이루며 온 집에 충성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고, 날마다 더 깊은 차원으로 성장해 새 예루살렘 성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 가운데 거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 ) 하는 믿음이다.
2. 믿음의 5단계 특징입니다.
첫째, 자신의 ( )을 버리기까지 온전히 ( )한다.
둘째, 무수한 ( )를 쌓아 기사와 ( )을 행한다.
셋째, ( )에 충성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16~2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온 영’이란?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마음 안에 온전히 진리로 채워진 상태를 말한다. 바로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한 모습이다.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로서 영이 혼을 온전히 지배하고 다스리는 차원이다.
온 영을 이루어 불같이 기도하면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곧 권능이 따른다.
2025-04-04
제14과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
요한복음 14:21
읽을말씀 : 요한복음 14:21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21 | 참고 말씀: 요한복음 14:15
교육목표 :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성결된 믿음의 4단계 특징과 천국 처소에 대해 알아본다.
강하고 담대한 청년들의 믿음이라 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서는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지만, 마음의 죄성까지 다 버린 것은 아니기에 “주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것이 조금은 민망합니다.
그러나 아비들의 믿음이라 할 수 있는 믿음의 4단계에 이르게 되면 마음의 죄성을 다 버리고 계명들을 온전히 지키기 때문에 “주님 사랑해요!”라고 담대히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항상 나타납니다. 이 땅에서 영혼이 잘된 만큼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천국에서도 하나님의 참 자녀로서 많은 영광과 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를 지나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면 마음의 죄성까지도 버렸으므로 온전히 진리 안에 거합니다. 즉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영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참 자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4단계와 믿음의 1, 2, 3단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무 잘못도 없는데 모함을 받았다면 어떤 심정이 될까요? 믿음의 1단계나 2단계 초입에서는 당사자를 찾아가 시시비비를 따지고 다투기도 합니다. 믿음의 2단계 중반만 돼도 악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크게 혈기 내거나 악을 발하는 것은 웬만큼 절제하지요.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서 반석에 서기 전까지는 감정이 요동하기도 합니다. 진리를 알기 때문에 ‘감사하자, 기뻐하자.’ 하며 참지만 마음 중심에서 감사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반석에 서면 불평하기보다는 더 기뻐하고 감사하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며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쳐도 이내 바꿉니다.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전혀 요동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고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지 않지요.
원수라도 축복하고 상대가 범죄하지 않도록 긍휼히 여기며 기도해 줍니다. 이처럼 똑같은 상황에서도 믿음의 분량에 따라 반응이 다르고 하나님께 상달되는 마음의 향에 차이가 납니다.
2. 믿음의 4단계 특징
첫째로, 하나님을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하나님 이것을 해 주시면 제가 그것을 하겠습니다.”라고 조건을 달거나,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조건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응답과 축복받기 위해서나 재앙을 당할까 두려워서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에 사무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우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 불에 던지겠다고 왕이 위협하는데도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호하게 말합니다(단 3:17∼18).
다니엘의 세 친구는 불 가운데서도 건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굳게 신뢰했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상관없이 곧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뜻을 행했지요. 이처럼 믿음의 4단계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면 세상 부귀영화는 물론 가족이나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며 주를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 3:7∼8).
예수님께서는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막 10:29∼30).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처음에는 핍박이 올 수 있고 믿음이 적을 때는 그로 인해 힘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거룩하게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아가면 세상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나아가 영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믿음이 되면 핍박이 물러가고, 주변으로부터도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을 받게 되니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합니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했습니다.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죽었던 영이 살아나서 영과 혼과 육의 질서가 바로 잡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영이 주인이 되어 혼과 육이 순종하니 진리대로만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납니다. 이후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이 자라는 만큼 영이 성장하여 혼과 육을 지배하는 주인 역할을 하지요. 그래서 영혼이 잘된 사람은 사단이 아무리 비진리의 생각을 주입시키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마음 안에 악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방송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사단이 그의 마음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영혼이 잘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항상 모든 일을 앞서 해결해 주시기 때문에 만사가 형통합니다. 바로 가정, 일터, 사업터 등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믿음의 4단계에 속한 성도가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성도가 들어가는 2천층과 믿음의 4단계에 속한 성도가 들어가는 3천층에서의 삶은 그 행복과 영광이 천양지차입니다. 믿음의 4단계 성도는 악은 모양이라도 다 버리고 성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성결된 정도에 따라 천국에서의 영광이 차이가 나는데 천사가 수종 드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낙원이나 1, 2천층에는 천사들이 천국을 관리하고 때를 좇아 하나님의 자녀들을 돕는 일을 하지만 개인적으로 수종 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결을 이루어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간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천국 처소인 3천층부터는 개인적으로 수종 드는 천사가 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기쁘시게 했는지에 따라 따르는 천사의 수도 달라집니다. 3천층에서는 수종 드는 천사가 주인의 마음을 읽고 순종합니다. 주인이 과일을 먹고 싶어 하면 그 마음을 읽고 과일을 따다 주지요. 하지만 2천층에서는 천사에게 과일을 가져오라고 명해야 움직입니다.
2천층 이하에 들어간 사람과 3천층 이상에 들어간 성도는 겉모습만 봐도 큰 차이가 납니다. 각 사람의 영광의 빛이 다르고, 옷과 옷의 문양, 장식, 머리 모양 등이 달라서 얼마나 성결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지 알 수 있지요.
2천층의 집은 모두 단층인 반면 3천층부터는 복층 건물입니다. 수영장, 산책길, 호수, 부속시설 등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3천층에서는 소유할 수 있습니다. 2천층 집에는 문패가 있는 반면 3천층에는 문패가 필요없습니다. 집 자체에서 주인의 향이 흘러나와 누가 주인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결을 이루고 죽도록 충성함으로 3천층에 들어온 영혼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여 성장시킴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4단계 특징을 말해 보세요.
① 하나님을 ( ) 없이 사랑한다.
② 하나님을 ( )로 사랑한다.
③ ( )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진다.
2. 믿음의 4단계 성도들에게 주시는 천국 처소와 면류관은 무엇일까요?
3. 영혼이 잘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20~22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죽도록 충성’이란?
단순히 육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열심히 일하고 충성한다는 뜻이 아니라, 성경 66권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루어 드린다는 뜻이다. 즉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 나가는 충성을 말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성결된 믿음의 4단계 특징과 천국 처소에 대해 알아본다.
강하고 담대한 청년들의 믿음이라 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서는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지만, 마음의 죄성까지 다 버린 것은 아니기에 “주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것이 조금은 민망합니다.
그러나 아비들의 믿음이라 할 수 있는 믿음의 4단계에 이르게 되면 마음의 죄성을 다 버리고 계명들을 온전히 지키기 때문에 “주님 사랑해요!”라고 담대히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항상 나타납니다. 이 땅에서 영혼이 잘된 만큼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천국에서도 하나님의 참 자녀로서 많은 영광과 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를 지나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면 마음의 죄성까지도 버렸으므로 온전히 진리 안에 거합니다. 즉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영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참 자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4단계와 믿음의 1, 2, 3단계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말씀하셨으니 이를 통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만일 여러분이 아무 잘못도 없는데 모함을 받았다면 어떤 심정이 될까요? 믿음의 1단계나 2단계 초입에서는 당사자를 찾아가 시시비비를 따지고 다투기도 합니다. 믿음의 2단계 중반만 돼도 악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크게 혈기 내거나 악을 발하는 것은 웬만큼 절제하지요.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서 반석에 서기 전까지는 감정이 요동하기도 합니다. 진리를 알기 때문에 ‘감사하자, 기뻐하자.’ 하며 참지만 마음 중심에서 감사가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반석에 서면 불평하기보다는 더 기뻐하고 감사하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며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쳐도 이내 바꿉니다.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전혀 요동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고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지 않지요.
원수라도 축복하고 상대가 범죄하지 않도록 긍휼히 여기며 기도해 줍니다. 이처럼 똑같은 상황에서도 믿음의 분량에 따라 반응이 다르고 하나님께 상달되는 마음의 향에 차이가 납니다.
2. 믿음의 4단계 특징
첫째로, 하나님을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하나님 이것을 해 주시면 제가 그것을 하겠습니다.”라고 조건을 달거나,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조건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응답과 축복받기 위해서나 재앙을 당할까 두려워서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에 사무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우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 불에 던지겠다고 왕이 위협하는데도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단호하게 말합니다(단 3:17∼18).
다니엘의 세 친구는 불 가운데서도 건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굳게 신뢰했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상관없이 곧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뜻을 행했지요. 이처럼 믿음의 4단계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을 조건 없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면 세상 부귀영화는 물론 가족이나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며 주를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 3:7∼8).
예수님께서는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막 10:29∼30).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처음에는 핍박이 올 수 있고 믿음이 적을 때는 그로 인해 힘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거룩하게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아가면 세상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나아가 영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믿음이 되면 핍박이 물러가고, 주변으로부터도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을 받게 되니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셋째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합니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했습니다.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죽었던 영이 살아나서 영과 혼과 육의 질서가 바로 잡히는 것을 말합니다. 즉 영이 주인이 되어 혼과 육이 순종하니 진리대로만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납니다. 이후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이 자라는 만큼 영이 성장하여 혼과 육을 지배하는 주인 역할을 하지요. 그래서 영혼이 잘된 사람은 사단이 아무리 비진리의 생각을 주입시키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마음 안에 악이 없기 때문입니다.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방송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사단이 그의 마음을 주관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영혼이 잘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항상 모든 일을 앞서 해결해 주시기 때문에 만사가 형통합니다. 바로 가정, 일터, 사업터 등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믿음의 4단계에 속한 성도가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성도가 들어가는 2천층과 믿음의 4단계에 속한 성도가 들어가는 3천층에서의 삶은 그 행복과 영광이 천양지차입니다. 믿음의 4단계 성도는 악은 모양이라도 다 버리고 성결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이 성결된 정도에 따라 천국에서의 영광이 차이가 나는데 천사가 수종 드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낙원이나 1, 2천층에는 천사들이 천국을 관리하고 때를 좇아 하나님의 자녀들을 돕는 일을 하지만 개인적으로 수종 들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성결을 이루어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간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천국 처소인 3천층부터는 개인적으로 수종 드는 천사가 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기쁘시게 했는지에 따라 따르는 천사의 수도 달라집니다. 3천층에서는 수종 드는 천사가 주인의 마음을 읽고 순종합니다. 주인이 과일을 먹고 싶어 하면 그 마음을 읽고 과일을 따다 주지요. 하지만 2천층에서는 천사에게 과일을 가져오라고 명해야 움직입니다.
2천층 이하에 들어간 사람과 3천층 이상에 들어간 성도는 겉모습만 봐도 큰 차이가 납니다. 각 사람의 영광의 빛이 다르고, 옷과 옷의 문양, 장식, 머리 모양 등이 달라서 얼마나 성결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지 알 수 있지요.
2천층의 집은 모두 단층인 반면 3천층부터는 복층 건물입니다. 수영장, 산책길, 호수, 부속시설 등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3천층에서는 소유할 수 있습니다. 2천층 집에는 문패가 있는 반면 3천층에는 문패가 필요없습니다. 집 자체에서 주인의 향이 흘러나와 누가 주인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결을 이루고 죽도록 충성함으로 3천층에 들어온 영혼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여 성장시킴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으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4단계 특징을 말해 보세요.
① 하나님을 ( ) 없이 사랑한다.
② 하나님을 ( )로 사랑한다.
③ ( )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진다.
2. 믿음의 4단계 성도들에게 주시는 천국 처소와 면류관은 무엇일까요?
3. 영혼이 잘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20~22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죽도록 충성’이란?
단순히 육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열심히 일하고 충성한다는 뜻이 아니라, 성경 66권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루어 드린다는 뜻이다. 즉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 나가는 충성을 말한다.
2025-03-28
제13과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마태복음 7:24~25
읽을말씀 : 마태복음 7:24~25 | 외울말씀 : 마태복음 7:25 | 참고 말씀: 요한일서 2:14
교육목표 :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특징과 이 믿음에 이른 사람들이 들어가는 천국 처소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아이들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행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하든 육체의 일을 버려 나가면 마침내 청년들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능히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이릅니다.
1.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믿음의 2단계에서는 행함으로 짓는 죄 곧 육체의 일을 범할 때도 있지만, 3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육체의 일은 나오지 않습니다.
믿음의 3단계부터는 변화된 모습으로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합니다. 가령, 애매하게 욕을 먹고 책망을 들어도 묵묵히 참으며 어려운 일을 당해도 기뻐하려고 애씁니다. 내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아도 상대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 섬기려 노력하지요. 그러니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니 뭔가 다르다.”는 말을 듣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의무감 속에 억지로 지키지만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행함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드리면 축복받고 지킴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대로 행합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 말씀대로 행한다 해서 무조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가족의 눈치 때문에 주일 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한다거나, 예배 시간 내내 졸고 잡념 가운데 예배를 드린다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없지요. 심고 행한 것에 생각한 만큼 빨리 축복이 오지 않으면 후회하거나 불평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분량이란 한두 가지 외적인 행함이 아니라 마음에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중심에서 믿는지를 통해 분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는 마음의 죄성 즉 육신의 일을 버리기 위한 선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육체의 일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육신의 일을 버려 나가게 됩니다. 죄성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할 수가 없기 때문에 뿌리를 완전히 뽑을 때까지 계속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2.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
믿음의 3단계에서도 사람마다 그 분량이 다릅니다. 믿음의 3단계를 1%에서 100%로 나눌 때 100%에 가까울수록 믿음의 4단계에 가깝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 들어서서 말씀대로 행한다 해도 처음에는 마음에 갈등을 겪습니다. 즉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싸우지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은 하지만 마음에 죄성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대로 행하기는 하되 선을 좇으려는 영의 생각과 악을 좇으려는 육신의 생각이 싸우는 것입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고난을 당할 때 기뻐하고 감사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결국 이기지 못해 불평 불만을 쏟아버립니다. 하지만 믿음의 3단계에서는 고난 중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단계에서 100% 온전한 기쁨과 감사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3단계 초입이라면 어려운 일을 만나는 순간 ‘너무 힘들다.’ 하는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낙심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곧 성령의 음성을 들음으로 ‘아니야, 기뻐하고 감사해야지. 하나님은 살아 계신데 내가 왜 낙심하는가.’ 하고 마음을 진리로 다집니다.
그러다가 믿음의 3단계 60% 이상에 이르면 마음에서 죄성이 많이 버려진 상태이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많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만큼 죄성을 버리고 믿음의 4단계에 가까이 온 증거이지요. 이때는 갑자기 어려운 일을 만난다 해도 낙심하거나 불평하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려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혹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쳐도 이내 감사와 기쁨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4∼25절에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했습니다. 여기서 반석은 곧 그리스도(고전 10:4)를 의미합니다. 시험 환난에 믿음이 요동하지 않고 말씀대로 행하면,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섰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 60%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에 들어선 것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어떤 상대에 대해 순간 불편한 생각이 든다 해도 즉시 영의 생각, 진리의 생각으로 바꿀 수 있고, 평안한 마음으로 상대를 섬깁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이 힘들지 않고 하루하루가 기쁘고 행복합니다.
믿음의 3단계 70∼80%가 되면 믿음의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며, 이때는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마치 몸에 밴 습관처럼 저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믿음의 3단계에 들어서서 육신의 일을 하나하나 버려 나가 4단계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과 더 밝히 교통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더 진하게 느낍니다.
이때는 아무리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를 사랑하지는 못할망정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급히 돈이 필요할 때 길에서 돈지갑을 줍는다 해도 ‘내가 쓸까, 주인을 찾아 줄까.’ 갈등하지 않고 바로 주인을 찾아 줍니다. 더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전혀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지 않고 즉시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한다면 마침내 영의 믿음 곧 믿음의 4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3.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성도가 들어가는 천국 처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겨우 구원받은 성도의 천국 처소는 ‘낙원’이라 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 말씀을 배워 그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성도는 낙원보다는 좋은 ‘1천층’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성도의 천국 처소는 어디일까요? 1천층보다 좋은 ‘2천층’입니다.
2천층에 들어가면 다세대 주택 형태의 집이 주어지는 1천층과는 달리 독립된 주택이 주어집니다.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로운 저택이나 별장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꽃과 나무들로 잘 단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원하는 부속 시설 한 가지를 자신의 소유로 받습니다.
만일 아름다운 호수가 갖고 싶다면 호수를, 수영장을 갖고 싶으면 수영장을 가질 수 있고, 자신에게 없는 부속 시설은 다른 사람의 천국집에서 함께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각 사람의 집에는 문패가 있고 거기에는 천국 글씨로 주인의 이름과 이 땅에서 섬기던 교회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면 그만큼 영광과 자랑이 더합니다.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성도에게 예비하신 면류관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에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벧전 5:4). 가령, 전에는 작은 일에도 혈기를 냈는데 “교회 다니더니 착하게 변했다.”고 가족이나 주변으로부터 칭찬이 자자합니다. 이처럼 언행이 선한 진리로 바뀌면 사람들에게 그 자체가 빛으로 비춰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마 5:16).
2천층에 들어가는 사람은 자신이 행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빛나는 영광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가 넘쳐납니다. 하지만 ‘마음의 죄성까지 버려서 온전히 성결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게 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성결을 이루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으로 가장 영광스러운 천국 새 예루살렘을 향해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 ) 속에 억지로 지키지만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 )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행함이 나온다.
2. 믿음의 3단계에서는 마음의 ( ) 즉 육신의 일을 버리기 위한 선한 싸움이 시작된다. ( )의 일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육신의 일을 버려 나가게 된다.
3. 믿음의 3단계 성도들에게 주시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92~19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육신의 일’이란?
마음속에 있는 미움, 시기, 교만, 판단, 간음 등 아직 행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들을 말한다. 즉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죄성을 하나하나 분류해 놓은 것이다.
교육목표 :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특징과 이 믿음에 이른 사람들이 들어가는 천국 처소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아이들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행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하든 육체의 일을 버려 나가면 마침내 청년들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능히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이릅니다.
1.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믿음의 2단계에서는 행함으로 짓는 죄 곧 육체의 일을 범할 때도 있지만, 3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육체의 일은 나오지 않습니다.
믿음의 3단계부터는 변화된 모습으로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합니다. 가령, 애매하게 욕을 먹고 책망을 들어도 묵묵히 참으며 어려운 일을 당해도 기뻐하려고 애씁니다. 내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아도 상대 입장에 서서 이해하고 섬기려 노력하지요. 그러니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저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니 뭔가 다르다.”는 말을 듣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의무감 속에 억지로 지키지만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행함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드리면 축복받고 지킴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그대로 행합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 말씀대로 행한다 해서 무조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가족의 눈치 때문에 주일 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한다거나, 예배 시간 내내 졸고 잡념 가운데 예배를 드린다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없지요. 심고 행한 것에 생각한 만큼 빨리 축복이 오지 않으면 후회하거나 불평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분량이란 한두 가지 외적인 행함이 아니라 마음에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중심에서 믿는지를 통해 분별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는 마음의 죄성 즉 육신의 일을 버리기 위한 선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육체의 일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육신의 일을 버려 나가게 됩니다. 죄성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할 수가 없기 때문에 뿌리를 완전히 뽑을 때까지 계속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해야 합니다.
2.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
믿음의 3단계에서도 사람마다 그 분량이 다릅니다. 믿음의 3단계를 1%에서 100%로 나눌 때 100%에 가까울수록 믿음의 4단계에 가깝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 들어서서 말씀대로 행한다 해도 처음에는 마음에 갈등을 겪습니다. 즉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싸우지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은 하지만 마음에 죄성들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리대로 행하기는 하되 선을 좇으려는 영의 생각과 악을 좇으려는 육신의 생각이 싸우는 것입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고난을 당할 때 기뻐하고 감사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결국 이기지 못해 불평 불만을 쏟아버립니다. 하지만 믿음의 3단계에서는 고난 중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단계에서 100% 온전한 기쁨과 감사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의 3단계 초입이라면 어려운 일을 만나는 순간 ‘너무 힘들다.’ 하는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낙심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곧 성령의 음성을 들음으로 ‘아니야, 기뻐하고 감사해야지. 하나님은 살아 계신데 내가 왜 낙심하는가.’ 하고 마음을 진리로 다집니다.
그러다가 믿음의 3단계 60% 이상에 이르면 마음에서 죄성이 많이 버려진 상태이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많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만큼 죄성을 버리고 믿음의 4단계에 가까이 온 증거이지요. 이때는 갑자기 어려운 일을 만난다 해도 낙심하거나 불평하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려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혹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쳐도 이내 감사와 기쁨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4∼25절에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했습니다. 여기서 반석은 곧 그리스도(고전 10:4)를 의미합니다. 시험 환난에 믿음이 요동하지 않고 말씀대로 행하면,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섰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 60%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에 들어선 것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어떤 상대에 대해 순간 불편한 생각이 든다 해도 즉시 영의 생각, 진리의 생각으로 바꿀 수 있고, 평안한 마음으로 상대를 섬깁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이 힘들지 않고 하루하루가 기쁘고 행복합니다.
믿음의 3단계 70∼80%가 되면 믿음의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며, 이때는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마치 몸에 밴 습관처럼 저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믿음의 3단계에 들어서서 육신의 일을 하나하나 버려 나가 4단계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과 더 밝히 교통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더 진하게 느낍니다.
이때는 아무리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를 사랑하지는 못할망정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급히 돈이 필요할 때 길에서 돈지갑을 줍는다 해도 ‘내가 쓸까, 주인을 찾아 줄까.’ 갈등하지 않고 바로 주인을 찾아 줍니다. 더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전혀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지 않고 즉시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한다면 마침내 영의 믿음 곧 믿음의 4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3.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성도가 들어가는 천국 처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겨우 구원받은 성도의 천국 처소는 ‘낙원’이라 했습니다. 교회에 다니며 하나님 말씀을 배워 그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성도는 낙원보다는 좋은 ‘1천층’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성도의 천국 처소는 어디일까요? 1천층보다 좋은 ‘2천층’입니다.
2천층에 들어가면 다세대 주택 형태의 집이 주어지는 1천층과는 달리 독립된 주택이 주어집니다.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로운 저택이나 별장과는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꽃과 나무들로 잘 단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원하는 부속 시설 한 가지를 자신의 소유로 받습니다.
만일 아름다운 호수가 갖고 싶다면 호수를, 수영장을 갖고 싶으면 수영장을 가질 수 있고, 자신에게 없는 부속 시설은 다른 사람의 천국집에서 함께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각 사람의 집에는 문패가 있고 거기에는 천국 글씨로 주인의 이름과 이 땅에서 섬기던 교회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면 그만큼 영광과 자랑이 더합니다.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성도에게 예비하신 면류관은 무엇일까요?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사명을 잘 감당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에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벧전 5:4). 가령, 전에는 작은 일에도 혈기를 냈는데 “교회 다니더니 착하게 변했다.”고 가족이나 주변으로부터 칭찬이 자자합니다. 이처럼 언행이 선한 진리로 바뀌면 사람들에게 그 자체가 빛으로 비춰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마 5:16).
2천층에 들어가는 사람은 자신이 행한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빛나는 영광의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가 넘쳐납니다. 하지만 ‘마음의 죄성까지 버려서 온전히 성결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아쉬운 마음이 들게 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성결을 이루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으로 가장 영광스러운 천국 새 예루살렘을 향해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 ) 속에 억지로 지키지만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 )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행함이 나온다.
2. 믿음의 3단계에서는 마음의 ( ) 즉 육신의 일을 버리기 위한 선한 싸움이 시작된다. ( )의 일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육신의 일을 버려 나가게 된다.
3. 믿음의 3단계 성도들에게 주시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92~19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육신의 일’이란?
마음속에 있는 미움, 시기, 교만, 판단, 간음 등 아직 행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들을 말한다. 즉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죄성을 하나하나 분류해 놓은 것이다.
2025-03-21
제12과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
로마서 7:21~25
읽을말씀 : 로마서 7:21~25 | 외울말씀 : 고린도전서 9:25 | 참고 말씀: 로마서 8:26
교육목표 :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팽팽히 싸우므로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믿음의 2단계에 대해 알아본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받습니다. 이때가 바로 믿음의 1단계로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주님을 믿기 전의 모습과 큰 차이는 없습니다. 여기서 더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운 대로 행하려고 노력할 때 믿음의 2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1.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
믿음의 2단계는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입니다. 이때는 진리대로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행할 때도 있고, 행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라” 했는데 집안이나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가끔씩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려고는 하지만 바쁜 일이 생기면 기도를 쉬지요. 시험과 환난을 만나면 기뻐하고 감사하려고 애는 쓰지만 어느 한계점에서 참지 못하고 원망 불평을 쏟아냅니다. 내 생각과 뜻에 맞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처음에는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폭발하여 혈기 내고 싸우기도 합니다.
이처럼 육체의 일을 버리지 못한 모습이 바로 아이들의 믿음(요일 2:14), 곧 믿음의 2단계에 속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연수나 직분의 높낮이로 믿음을 판가름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느냐에 따라 믿음의 유무를 분별하십니다.
그렇다고 믿음이 2단계라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큰 믿음으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당장은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못한다 해도 변화되고자 노력하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불같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해 가면 스스로도 변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에는 열 번 범죄했는데 아홉 번, 여덟 번, 다섯 번, 세 번, 한 번으로 점점 줄어들어 마침내는 범죄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이렇게 변화될수록 점점 믿음의 3단계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 중에서 가장 힘든 믿음의 2단계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성도들은 신앙생활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여전히 세상이 좋고 비진리를 행하고 싶습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과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이 대등하여 신앙생활 하기가 가장 힘든 단계입니다.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행치 못하니 점점 충만함이 떨어지고 곤고해지다가 신앙생활을 등한시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이처럼 연약한 영혼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절히 기도해 주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믿음의 1단계에 있을 때는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죄를 지어도 곤고함이나 성령의 탄식을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1단계를 지나 믿음의 2단계가 되면 죄를 지었을 때 곤고해지고 충만함이 떨어져 괴로워합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성령께서 탄식하는 것을 느낍니다. 믿음의 2단계는 말씀을 행할 때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서 깨달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배웠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송하며 성도와 교제하는 것이 더없이 행복합니다. 설령 누가 주일에 영화 보러 가자고 해도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을 마음으로 깨닫지 못한 사람은 피곤하면 망설여집니다. 집에서 쉬고 싶고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면 안 되나?’ 하고 갈등이 생기지요. 친구들이 주일에 여행을 가자고 하면 ‘주일을 지켜야 된다.’는 마음과 ‘여행을 갈까?’라는 두 마음이 대립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는 성령의 소욕과 세상을 좇으려는 육체의 소욕이 싸웁니다(갈 5:17). 이때 세상을 좇으려는 마음이 강하면 주일을 어길 가능성이 크고, 성령의 소욕을 좇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하면 주일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런 싸움이 가장 치열할 때가 바로 두 마음이 50대 50일 때입니다. 진리의 마음이든 비진리의 마음이든 한쪽 힘이 월등하면 센 쪽으로 기울 텐데 양쪽이 팽팽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로마서 7장 22∼24절에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했습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진리의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거슬러 불의, 불법을 행하기 원하는 비진리의 마음이 싸우므로 곤고하고 힘들다는 뜻입니다. 이때 빨리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쉬지 말고 기도하며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행하는 만큼 비진리를 좇으려는 마음은 점점 약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수월해지면서 신앙생활이 즐겁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성장하여 마침내 말씀대로 행할 수 있으면 믿음의 3단계로 들어갑니다. 믿음의 1, 2단계가 ‘젖 먹는 신자’라면 믿음의 3단계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밥 먹는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3.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성도가 들어가는 천국 처소
하나님께서는 조금이라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 것을 믿음으로 여겨 개인 취향과 기호에 맞춘 천국 집과 면류관을 주십니다.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성도들의 천국 처소는 ‘1천층’이며 개인 소유의 집은 이 땅의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와 같은 형태입니다. 내부에 아름답게 장식된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그냥 올라타기만 하면 원하는 곳에 세워 줍니다.
집 안에는 모든 것이 잘 갖추어졌으므로 생활하는 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악기가 있어서 연주할 수 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책을 읽으며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예쁜 정원이 많고 울창한 숲이 우거진 드넓은 공원과 각종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신기하고 다양한 놀이기구를 갖춘 놀이공원과 수영장, 골프장 등 많은 스포츠 시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설들은 공동으로 이용합니다. 마치 이 땅에서 아파트 내 조성된 공원이나 스포츠 시설 등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의 1단계 성도가 들어가는 낙원에서는 천사들이 모든 시설을 관리만 할 뿐 도와주지는 않지만, 1천층에서는 천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므로 차원이 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비록 개인에게 속하여 시중 드는 천사는 없지만 필요한 장소마다 천사들이 있어서 여러 도움을 주니 행복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했습니다. 비록 비진리가 많이 있어도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 것을 인정하시고, 썩지 아니할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에 참여한 대가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2단계 성도들에게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십니다.
천국은 영이신 하나님이 계신 곳이므로 황홀하고 아름다우며 늘 행복과 기쁨이 넘쳐납니다. 그러니 열심히 믿음의 행군을 하여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2단계는 말씀대로 ( ) 노력하는 믿음이다. 이때는 진리대로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행할 때도 있고, 행치 못할 때도 있다.
2. 다음 중 믿음의 2단계에 해당하는 것을 고르시오.
① 1천층
② 2천층
③ 썩지 아니할 면류관
④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든 단계
⑤ 다세대 주택, 아파트
⑥ 개인적으로 수종 드는 천사
⑦ 아이들의 믿음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84~19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육체’와 ‘육체의 일’이란?
‘육체’란 영적으로 우리 마음에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 행함으로 드러난 것을 총칭한다. 미움, 시기, 간음, 교만 등 잠재된 비진리가 폭력, 욕설, 살인 등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죄를 하나하나 분류해놓은 것을 ‘육체의 일’이라 한다.
교육목표 :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팽팽히 싸우므로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믿음의 2단계에 대해 알아본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받습니다. 이때가 바로 믿음의 1단계로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주님을 믿기 전의 모습과 큰 차이는 없습니다. 여기서 더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운 대로 행하려고 노력할 때 믿음의 2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1.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
믿음의 2단계는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입니다. 이때는 진리대로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행할 때도 있고, 행하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라” 했는데 집안이나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가끔씩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못합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려고는 하지만 바쁜 일이 생기면 기도를 쉬지요. 시험과 환난을 만나면 기뻐하고 감사하려고 애는 쓰지만 어느 한계점에서 참지 못하고 원망 불평을 쏟아냅니다. 내 생각과 뜻에 맞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처음에는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폭발하여 혈기 내고 싸우기도 합니다.
이처럼 육체의 일을 버리지 못한 모습이 바로 아이들의 믿음(요일 2:14), 곧 믿음의 2단계에 속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연수나 직분의 높낮이로 믿음을 판가름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느냐에 따라 믿음의 유무를 분별하십니다.
그렇다고 믿음이 2단계라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큰 믿음으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당장은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못한다 해도 변화되고자 노력하는 그 모습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십니다.
불같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해 가면 스스로도 변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에는 열 번 범죄했는데 아홉 번, 여덟 번, 다섯 번, 세 번, 한 번으로 점점 줄어들어 마침내는 범죄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이렇게 변화될수록 점점 믿음의 3단계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 중에서 가장 힘든 믿음의 2단계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성도들은 신앙생활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여전히 세상이 좋고 비진리를 행하고 싶습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과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이 대등하여 신앙생활 하기가 가장 힘든 단계입니다.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행치 못하니 점점 충만함이 떨어지고 곤고해지다가 신앙생활을 등한시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이처럼 연약한 영혼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절히 기도해 주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믿음의 1단계에 있을 때는 죄가 죄인지도 모르고 죄를 지어도 곤고함이나 성령의 탄식을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1단계를 지나 믿음의 2단계가 되면 죄를 지었을 때 곤고해지고 충만함이 떨어져 괴로워합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성령께서 탄식하는 것을 느낍니다. 믿음의 2단계는 말씀을 행할 때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서 깨달아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배웠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할 뿐입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지키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송하며 성도와 교제하는 것이 더없이 행복합니다. 설령 누가 주일에 영화 보러 가자고 해도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을 마음으로 깨닫지 못한 사람은 피곤하면 망설여집니다. 집에서 쉬고 싶고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면 안 되나?’ 하고 갈등이 생기지요. 친구들이 주일에 여행을 가자고 하면 ‘주일을 지켜야 된다.’는 마음과 ‘여행을 갈까?’라는 두 마음이 대립합니다.
이처럼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는 성령의 소욕과 세상을 좇으려는 육체의 소욕이 싸웁니다(갈 5:17). 이때 세상을 좇으려는 마음이 강하면 주일을 어길 가능성이 크고, 성령의 소욕을 좇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하면 주일을 지킬 수 있습니다.
이런 싸움이 가장 치열할 때가 바로 두 마음이 50대 50일 때입니다. 진리의 마음이든 비진리의 마음이든 한쪽 힘이 월등하면 센 쪽으로 기울 텐데 양쪽이 팽팽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로마서 7장 22∼24절에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했습니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진리의 마음과 하나님의 말씀을 거슬러 불의, 불법을 행하기 원하는 비진리의 마음이 싸우므로 곤고하고 힘들다는 뜻입니다. 이때 빨리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쉬지 말고 기도하며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행하는 만큼 비진리를 좇으려는 마음은 점점 약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수월해지면서 신앙생활이 즐겁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성장하여 마침내 말씀대로 행할 수 있으면 믿음의 3단계로 들어갑니다. 믿음의 1, 2단계가 ‘젖 먹는 신자’라면 믿음의 3단계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밥 먹는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3.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성도가 들어가는 천국 처소
하나님께서는 조금이라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 것을 믿음으로 여겨 개인 취향과 기호에 맞춘 천국 집과 면류관을 주십니다.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성도들의 천국 처소는 ‘1천층’이며 개인 소유의 집은 이 땅의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와 같은 형태입니다. 내부에 아름답게 장식된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그냥 올라타기만 하면 원하는 곳에 세워 줍니다.
집 안에는 모든 것이 잘 갖추어졌으므로 생활하는 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악기가 있어서 연주할 수 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책을 읽으며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예쁜 정원이 많고 울창한 숲이 우거진 드넓은 공원과 각종 편의시설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신기하고 다양한 놀이기구를 갖춘 놀이공원과 수영장, 골프장 등 많은 스포츠 시설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시설들은 공동으로 이용합니다. 마치 이 땅에서 아파트 내 조성된 공원이나 스포츠 시설 등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믿음의 1단계 성도가 들어가는 낙원에서는 천사들이 모든 시설을 관리만 할 뿐 도와주지는 않지만, 1천층에서는 천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므로 차원이 다른 즐거움을 누릴 수 있습니다. 비록 개인에게 속하여 시중 드는 천사는 없지만 필요한 장소마다 천사들이 있어서 여러 도움을 주니 행복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했습니다. 비록 비진리가 많이 있어도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 것을 인정하시고, 썩지 아니할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믿음의 경주에 참여한 대가로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2단계 성도들에게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상급으로 주십니다.
천국은 영이신 하나님이 계신 곳이므로 황홀하고 아름다우며 늘 행복과 기쁨이 넘쳐납니다. 그러니 열심히 믿음의 행군을 하여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2단계는 말씀대로 ( ) 노력하는 믿음이다. 이때는 진리대로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행할 때도 있고, 행치 못할 때도 있다.
2. 다음 중 믿음의 2단계에 해당하는 것을 고르시오.
① 1천층
② 2천층
③ 썩지 아니할 면류관
④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든 단계
⑤ 다세대 주택, 아파트
⑥ 개인적으로 수종 드는 천사
⑦ 아이들의 믿음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84~19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육체’와 ‘육체의 일’이란?
‘육체’란 영적으로 우리 마음에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 행함으로 드러난 것을 총칭한다. 미움, 시기, 간음, 교만 등 잠재된 비진리가 폭력, 욕설, 살인 등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난 것이다. 이러한 죄를 하나하나 분류해놓은 것을 ‘육체의 일’이라 한다.
2025-03-14
제11과구원받기 위한 믿음의 1단계
사도행전 2:38~39
읽을말씀 : 사도행전 2:38~39 | 외울말씀 : 사도행전 2:38 | 참고 말씀: 요한일서 2:12
교육목표 : 믿음의 가장 초보 단계라 할 수 있는 믿음의 1단계와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천국 곧 낙원의 삶에 대해 알아본다.
부모에게 자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그 아이가 자라 유년기를 거쳐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 얼마나 든든하고 대견하겠습니까? 그런데 자녀가 몇 년이 지나도 성장하지 않고 있다면 부모는 근심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일서 2장에 기록된 대로 자녀들의 믿음이 쑥쑥 자라나 아이들의 믿음, 청년들의 믿음, 아비들의 믿음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믿음의 성장 과정 중에서 자녀들의 믿음 곧 구원받기 위한 믿음의 1단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구원받기 위한 믿음의 1단계
믿음의 분량은 각각의 특징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중에 믿음의 1단계는 가장 초보적인 단계의 믿음으로서 ‘성령 받기 위한 믿음’ 또는 ‘구원받기 위한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에 ‘성령 받기 위한 믿음’이라 합니다. 또한 성령을 받으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천국 백성이 되기 때문에 ‘구원받기 위한 믿음’이라고도 하지요.
믿음의 1단계는 아직 말씀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서 말씀대로 행하지 못합니다. 무엇이 죄인지 잘 모르며, 죄를 지어도 성령이 탄식하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성령 받은 지 얼마 안 된 초신자만 1단계에 해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오랫동안 신앙생활 한 사람도 믿음의 1단계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행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설령 믿음이 있다 해도 1단계 믿음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 좋아 보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육체의 일을 행하는 경우 믿음의 1단계가 될 수 있습니다. 육체의 일이란 도적질, 거짓말, 간음 등 행위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후에는 믿음의 1단계인 사람도 성령이 충만하여 가르침 받은 대로 순종하므로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성령 충만함을 잃어버리면 다시 구습을 좇아 세상과 짝하며 죄를 짓기도 합니다. 이것이 지속되면 성령마저 소멸되어 1단계 믿음도 유지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1단계 믿음에 속한다면 그 모습 그대로 있으면 안 됩니다. 각종 예배와 기도회, 모임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고 배우며 열심히 행함으로 믿음의 2단계, 3단계, 4단계로 쑥쑥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2. 십자가에 달려 회개한 강도의 믿음
누가복음 23장 33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두 강도도 예수님의 좌우편에 못 박혔습니다. 그때 한 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편 강도는 그를 꾸짖으며 회개하였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지요. 예수님은 그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으로 구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강도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을 뿐, 죄악을 버리거나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겨우 죽음 직전에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했으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며 깨우쳐 행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했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아무 수고한 것이 없는 사람에게 예비된 천국이 바로 낙원입니다. 그렇다고 ‘죽기 직전에 주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갈 수 있으니 나도 그래야겠구나.’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강도가 죽지 않고 신앙생활을 했다면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변치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구원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누구나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주님을 영접했다고 해도 믿음이 순식간에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회개한 강도와 같이 죽음 직전에 구원받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천국의 가장자리인 낙원에 들어간 사람들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자기 마음대로 세상과 짝하며 살고 죄를 버리지도 않고 주님을 위해 충성한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구원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게 여깁니다.
3. 믿음의 1단계에 속한 성도가 들어가는 낙원
낙원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가운데 마련된 천국의 처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기에는 부끄럽지만 차마 지옥으로 보내기에는 안타까운 영혼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지요. 믿음의 단계로 보면 낙원은 간신히 구원받은 믿음을 가진 영혼들이 들어가는 처소로서 하나님 보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약하며 천국의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합니다.
낙원의 가장자리에는 백보좌 대심판(계 20:11∼12)이 있을 때까지 구원받은 영혼들이 머무는 천국의 대기 장소가 있습니다. 온 영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영혼들을 제외하고는 창세 이래 구원받은 무수한 영혼이 그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처럼 낙원의 일부가 천국의 대기 장소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낙원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크고 넓습니다.
광활한 낙원은 비록 천국의 여러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하지만 이 땅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행복한 곳입니다. 초원과 같이 잘 정비된 잔디밭과 아름답게 꾸민 정원이 많습니다. 이 땅의 나무나 꽃은 시간이 흐르면 시들고 썩지만 낙원의 나무는 항상 잎사귀가 푸르고 꽃도 시들지 않습니다.
사람이 가까이 가면 꽃들은 반갑게 흔들기도 하고 꽃잎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각기 독특하고도 그윽한 향을 발산합니다. 싱그러운 나무에는 탐스러운 과일들이 풍성하게 달려 있지요. 과일들은 반짝반짝 빛이 나며 윤기가 흘러 아주 먹음직스럽고, 먼지나 벌레가 없으니 먹을 때에 껍질을 벗길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에서 남자들은 머리카락이 동일하게 목선까지 내려옵니다. 반면 여자들의 머리카락 길이는 성결의 정도를 나타내기 때문에 각기 다릅니다. 온 영을 이룬 여인의 머리카락은 척추 끝까지 닿습니다. 그러나 낙원에 있는 여인들의 머리카락은 어깨선에 닿을락 말락합니다. 옷은 통으로 된 흰옷을 입으며, 옷에 장식하는 브로치나 머리에 장식하는 핀과 면류관은 없습니다.
이처럼 낙원에 들어간 사람은 상급이 없기 때문에 개인 소유의 집이나, 장식품이 없으며 자신에게 속하여 시중 드는 천사도 없습니다. 다만 함께 쉴 수 있는 공공건물에서 서로 섬기며 삽니다.
마치 이 땅의 복지관 같은 건물로서 그 안에는 한 사람만 들어가서 쉬는 작은 방도 있고, 여러 명이 함께 들어가 쉬는 큰 방도 있습니다. 그곳은 개인 소유가 아니므로 자기 취향에 맞게 꾸밀 수 없고 오랫동안 머무르거나 독차지하지도 못합니다. 일정 시간 동안 쉬었으면 다른 사람을 위해 비워 줘야 하고, 자리가 빌 때까지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서로 섬기고 배려하며 모든 것이 질서 있게 운영되기 때문에 설령 기다린다 해도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으며 대기하는 장소도 안락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비록 낙원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산다 해도 천국에는 악이 없고 서로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렇다고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는 낙원에만 들어가도 족하다.” 해서는 안 됩니다. 낙원보다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을 성장시켜 가장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온전히 갖추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 )단계는 아직 말씀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서 말씀대로 행하지 못한다. 무엇이 죄인지 잘 모르며, 죄를 지어도 ( )이 탄식하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성령 받은 지 얼마 안 된 초신자만 1단계에 해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오랫동안 신앙생활한 사람도 믿음의 1단계일 수 있다.
2.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 )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에 ‘( )받기 위한 믿음’이라 한다. 또 성령을 받으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돼 천국 백성이 되기 때문에 ‘( )받기 위한 믿음’이라고도 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76~18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요한일서 2장 12~14절에 기록된 믿음의 단계
자녀들의 믿음 - 믿음의 1단계
아이들의 믿음 - 믿음의 2단계
청년들의 믿음 - 믿음의 3단계
아비들의 믿음 - 믿음의 4, 5단계
교육목표 : 믿음의 가장 초보 단계라 할 수 있는 믿음의 1단계와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천국 곧 낙원의 삶에 대해 알아본다.
부모에게 자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그 아이가 자라 유년기를 거쳐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 얼마나 든든하고 대견하겠습니까? 그런데 자녀가 몇 년이 지나도 성장하지 않고 있다면 부모는 근심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일서 2장에 기록된 대로 자녀들의 믿음이 쑥쑥 자라나 아이들의 믿음, 청년들의 믿음, 아비들의 믿음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면 지금부터 믿음의 성장 과정 중에서 자녀들의 믿음 곧 구원받기 위한 믿음의 1단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구원받기 위한 믿음의 1단계
믿음의 분량은 각각의 특징에 따라 여러 단계로 나눌 수 있는데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습니다. 그중에 믿음의 1단계는 가장 초보적인 단계의 믿음으로서 ‘성령 받기 위한 믿음’ 또는 ‘구원받기 위한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에 ‘성령 받기 위한 믿음’이라 합니다. 또한 성령을 받으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천국 백성이 되기 때문에 ‘구원받기 위한 믿음’이라고도 하지요.
믿음의 1단계는 아직 말씀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서 말씀대로 행하지 못합니다. 무엇이 죄인지 잘 모르며, 죄를 지어도 성령이 탄식하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일반적으로 성령 받은 지 얼마 안 된 초신자만 1단계에 해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오랫동안 신앙생활 한 사람도 믿음의 1단계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행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설령 믿음이 있다 해도 1단계 믿음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또한 믿음이 좋아 보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육체의 일을 행하는 경우 믿음의 1단계가 될 수 있습니다. 육체의 일이란 도적질, 거짓말, 간음 등 행위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후에는 믿음의 1단계인 사람도 성령이 충만하여 가르침 받은 대로 순종하므로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성령 충만함을 잃어버리면 다시 구습을 좇아 세상과 짝하며 죄를 짓기도 합니다. 이것이 지속되면 성령마저 소멸되어 1단계 믿음도 유지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1단계 믿음에 속한다면 그 모습 그대로 있으면 안 됩니다. 각종 예배와 기도회, 모임에 참석하여 말씀을 듣고 배우며 열심히 행함으로 믿음의 2단계, 3단계, 4단계로 쑥쑥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2. 십자가에 달려 회개한 강도의 믿음
누가복음 23장 33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두 강도도 예수님의 좌우편에 못 박혔습니다. 그때 한 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편 강도는 그를 꾸짖으며 회개하였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지요. 예수님은 그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으로 구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강도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을 뿐, 죄악을 버리거나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겨우 죽음 직전에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했으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며 깨우쳐 행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했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아무 수고한 것이 없는 사람에게 예비된 천국이 바로 낙원입니다. 그렇다고 ‘죽기 직전에 주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갈 수 있으니 나도 그래야겠구나.’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강도가 죽지 않고 신앙생활을 했다면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변치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구원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누구나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주님을 영접했다고 해도 믿음이 순식간에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따라서 회개한 강도와 같이 죽음 직전에 구원받는 경우는 매우 드뭅니다.
천국의 가장자리인 낙원에 들어간 사람들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자기 마음대로 세상과 짝하며 살고 죄를 버리지도 않고 주님을 위해 충성한 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구원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게 여깁니다.
3. 믿음의 1단계에 속한 성도가 들어가는 낙원
낙원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가운데 마련된 천국의 처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기에는 부끄럽지만 차마 지옥으로 보내기에는 안타까운 영혼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지요. 믿음의 단계로 보면 낙원은 간신히 구원받은 믿음을 가진 영혼들이 들어가는 처소로서 하나님 보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약하며 천국의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합니다.
낙원의 가장자리에는 백보좌 대심판(계 20:11∼12)이 있을 때까지 구원받은 영혼들이 머무는 천국의 대기 장소가 있습니다. 온 영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영혼들을 제외하고는 창세 이래 구원받은 무수한 영혼이 그곳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처럼 낙원의 일부가 천국의 대기 장소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낙원은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크고 넓습니다.
광활한 낙원은 비록 천국의 여러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하지만 이 땅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행복한 곳입니다. 초원과 같이 잘 정비된 잔디밭과 아름답게 꾸민 정원이 많습니다. 이 땅의 나무나 꽃은 시간이 흐르면 시들고 썩지만 낙원의 나무는 항상 잎사귀가 푸르고 꽃도 시들지 않습니다.
사람이 가까이 가면 꽃들은 반갑게 흔들기도 하고 꽃잎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각기 독특하고도 그윽한 향을 발산합니다. 싱그러운 나무에는 탐스러운 과일들이 풍성하게 달려 있지요. 과일들은 반짝반짝 빛이 나며 윤기가 흘러 아주 먹음직스럽고, 먼지나 벌레가 없으니 먹을 때에 껍질을 벗길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에서 남자들은 머리카락이 동일하게 목선까지 내려옵니다. 반면 여자들의 머리카락 길이는 성결의 정도를 나타내기 때문에 각기 다릅니다. 온 영을 이룬 여인의 머리카락은 척추 끝까지 닿습니다. 그러나 낙원에 있는 여인들의 머리카락은 어깨선에 닿을락 말락합니다. 옷은 통으로 된 흰옷을 입으며, 옷에 장식하는 브로치나 머리에 장식하는 핀과 면류관은 없습니다.
이처럼 낙원에 들어간 사람은 상급이 없기 때문에 개인 소유의 집이나, 장식품이 없으며 자신에게 속하여 시중 드는 천사도 없습니다. 다만 함께 쉴 수 있는 공공건물에서 서로 섬기며 삽니다.
마치 이 땅의 복지관 같은 건물로서 그 안에는 한 사람만 들어가서 쉬는 작은 방도 있고, 여러 명이 함께 들어가 쉬는 큰 방도 있습니다. 그곳은 개인 소유가 아니므로 자기 취향에 맞게 꾸밀 수 없고 오랫동안 머무르거나 독차지하지도 못합니다. 일정 시간 동안 쉬었으면 다른 사람을 위해 비워 줘야 하고, 자리가 빌 때까지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서로 섬기고 배려하며 모든 것이 질서 있게 운영되기 때문에 설령 기다린다 해도 그 시간이 길게 느껴지지 않으며 대기하는 장소도 안락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비록 낙원에서 공동생활을 하며 산다 해도 천국에는 악이 없고 서로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기쁘고 행복합니다. 그렇다고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는 낙원에만 들어가도 족하다.” 해서는 안 됩니다. 낙원보다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을 성장시켜 가장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온전히 갖추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 )단계는 아직 말씀에 대한 지식이 별로 없어서 말씀대로 행하지 못한다. 무엇이 죄인지 잘 모르며, 죄를 지어도 ( )이 탄식하는 것을 잘 느끼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성령 받은 지 얼마 안 된 초신자만 1단계에 해당한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오랫동안 신앙생활한 사람도 믿음의 1단계일 수 있다.
2.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 )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에 ‘( )받기 위한 믿음’이라 한다. 또 성령을 받으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돼 천국 백성이 되기 때문에 ‘( )받기 위한 믿음’이라고도 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76~18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요한일서 2장 12~14절에 기록된 믿음의 단계
자녀들의 믿음 - 믿음의 1단계
아이들의 믿음 - 믿음의 2단계
청년들의 믿음 - 믿음의 3단계
아비들의 믿음 - 믿음의 4, 5단계
2025-03-07
제10과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
히브리서 11:1~3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1~3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1:1 | 참고 말씀: 야고보서 2:26
교육목표 : 육적인 믿음은 구원받지 못하기에 참 믿음인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요,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와 같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기도에 응답받으며,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언제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는 특권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과 그렇지 않은 육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1. 육적인 믿음
육적인 믿음은 눈으로 보아 확인되고, 내가 아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될 때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지식적인 믿음, 이성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믿음은 유(有)에서 유 창조, 즉 있는 재료를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이므로 누구나 소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뇌의 기억장치에 여러 지식을 입력합니다. 가정, 학교, 직장 등 주변 환경을 통해 보고 들은 지식을 기억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합니다. 이처럼 입력된 지식 중에는 진리가 아닌 비진리가 많습니다. 한때 진리라고 알려졌던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옳지 않다고 밝혀지는 경우가 많지요. 이를 통해서도 세상 지식이 온전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비진리가 진리인 줄 알고 배우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진화론을 비롯해 유에서 유의 창조만 배워 온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눈에 보이지 않는 무 상태에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고 뛰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죽은 지 이미 나흘이나 되어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도 살리셨습니다.
육적인 믿음을 지닌 사람은 무에서 유의 창조가 믿어지지 않으니 이러한 말씀을 들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비록 주님을 영접했다 해도 자신이 옳다 생각하는 의와 하나님 말씀이 상반되는 것이 발견되니 마음에 갈등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세상 사람들은 원수를 갚아야 의롭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시니 의심이 생기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믿습니다.” 고백해도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육적인 믿음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요, 결국 구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2. 영적인 믿음
육적인 믿음과 달리 영적인 믿음은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나의 생각과 지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는 믿음이지요. 또한 하나님이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무 상태에서 말씀으로 창조했다는 것을 믿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생사화복과 세계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2천여 년 전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으며, 다시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는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뢰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도 해결받고 응답을 받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믿음은 자기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분량만큼 가질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아도 스스로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응답과 축복을 받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주여, 대통령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면 대통령이 될 것이고, 미운 사람이 있으면 “주여, 징계해 주옵소서.”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니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워지겠습니까.
따라서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영적인 믿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어둠을 벗고 빛 가운데 행할 때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이처럼 영적인 믿음은 행함이 따르고 반드시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때문에 행함 있는 믿음, 산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3.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계명들을 지켜 행하며 신속히 자신을 진리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입력된 비진리의 지식이 영적인 믿음을 갖는 데에 큰 방해 요소가 됩니다. 세상의 지식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케 하고 의심하게 하므로 비진리의 세상 지식을 뽑아 버리지 않으면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보고 들으며 불같이 기도함으로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를 빼내고 진리로 채워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하셨으니 먼저는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가르침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담아 두지 않으면 진리를 알지 못하니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가르침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담고 있으면 지식적인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는 말씀을 행함으로 옮겨야 합니다. 즉 육적인 믿음에서 영적인 믿음으로 바꾸려면 그만큼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데 피아노 교본을 백 번, 천 번 읽기만 한다면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론은 해박할지 몰라도 실제 행함으로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주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론을 익히고 열심히 연습해야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고 행할 때라야 영적인 믿음이 주어집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 앞에 행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내보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벗이요, 믿음의 조상이라 불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을 때 행함으로 순종하지 않았다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순종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온전히 확증시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으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구원을 받음은 물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까지 침노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믿음은 눈으로 보아 확인되고, 내가 아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될 때 믿는 믿음이다. ( ), 이성적인 믿음이라고도 한다.
2. ( ) 믿음은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는 믿음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나의 생각과 지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는 믿음이다.
3. 어떻게 해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68~17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삭’은 어떤 인물일까?
아브라함이 100세, 아내 사라가 90세에 낳은 아들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약속의 씨인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해 결박하여 죽이려고 했을 때 이삭은 순순히 응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를 대신하여 숫양을 준비해 주셨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의 사이에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교육목표 : 육적인 믿음은 구원받지 못하기에 참 믿음인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요, 모든 문제를 해결하며 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와 같습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기도에 응답받으며,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언제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는 특권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과 그렇지 않은 육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1. 육적인 믿음
육적인 믿음은 눈으로 보아 확인되고, 내가 아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될 때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지식적인 믿음, 이성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런 믿음은 유(有)에서 유 창조, 즉 있는 재료를 가지고 뭔가를 만들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이므로 누구나 소유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뇌의 기억장치에 여러 지식을 입력합니다. 가정, 학교, 직장 등 주변 환경을 통해 보고 들은 지식을 기억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합니다. 이처럼 입력된 지식 중에는 진리가 아닌 비진리가 많습니다. 한때 진리라고 알려졌던 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옳지 않다고 밝혀지는 경우가 많지요. 이를 통해서도 세상 지식이 온전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비진리가 진리인 줄 알고 배우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진화론을 비롯해 유에서 유의 창조만 배워 온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다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눈에 보이지 않는 무 상태에서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고 뛰게 하셨습니다. 심지어 죽은 지 이미 나흘이나 되어 썩어 냄새나는 나사로도 살리셨습니다.
육적인 믿음을 지닌 사람은 무에서 유의 창조가 믿어지지 않으니 이러한 말씀을 들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비록 주님을 영접했다 해도 자신이 옳다 생각하는 의와 하나님 말씀이 상반되는 것이 발견되니 마음에 갈등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세상 사람들은 원수를 갚아야 의롭다고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시니 의심이 생기고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합니다. 이런 사람은 “믿습니다.” 고백해도 기도의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인정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육적인 믿음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요, 결국 구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2. 영적인 믿음
육적인 믿음과 달리 영적인 믿음은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나의 생각과 지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는 믿음이지요. 또한 하나님이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무 상태에서 말씀으로 창조했다는 것을 믿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생사화복과 세계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2천여 년 전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으며, 다시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는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뢰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도 해결받고 응답을 받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믿음은 자기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분량만큼 가질 수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아도 스스로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응답과 축복을 받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주여, 대통령이 되게 해 주옵소서.” 하면 대통령이 될 것이고, 미운 사람이 있으면 “주여, 징계해 주옵소서.”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니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워지겠습니까.
따라서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영적인 믿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어둠을 벗고 빛 가운데 행할 때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이처럼 영적인 믿음은 행함이 따르고 반드시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때문에 행함 있는 믿음, 산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3.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과 하나님을 찾는 사람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계명들을 지켜 행하며 신속히 자신을 진리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에서 입력된 비진리의 지식이 영적인 믿음을 갖는 데에 큰 방해 요소가 됩니다. 세상의 지식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케 하고 의심하게 하므로 비진리의 세상 지식을 뽑아 버리지 않으면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보고 들으며 불같이 기도함으로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를 빼내고 진리로 채워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하셨으니 먼저는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가르침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담아 두지 않으면 진리를 알지 못하니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가르침을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지만 이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담고 있으면 지식적인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는 말씀을 행함으로 옮겨야 합니다. 즉 육적인 믿음에서 영적인 믿음으로 바꾸려면 그만큼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데 피아노 교본을 백 번, 천 번 읽기만 한다면 피아노를 연주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이론은 해박할지 몰라도 실제 행함으로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주를 할 수가 없습니다. 이론을 익히고 열심히 연습해야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고 행할 때라야 영적인 믿음이 주어집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 앞에 행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내보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벗이요, 믿음의 조상이라 불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을 때 행함으로 순종하지 않았다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순종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온전히 확증시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으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구원을 받음은 물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까지 침노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믿음은 눈으로 보아 확인되고, 내가 아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될 때 믿는 믿음이다. ( ), 이성적인 믿음이라고도 한다.
2. ( ) 믿음은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는 믿음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나의 생각과 지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는 믿음이다.
3. 어떻게 해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68~17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삭’은 어떤 인물일까?
아브라함이 100세, 아내 사라가 90세에 낳은 아들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약속의 씨인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해 결박하여 죽이려고 했을 때 이삭은 순순히 응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그를 대신하여 숫양을 준비해 주셨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의 사이에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2025-02-28
제9과빛 가운데 행할 때의 축복
요한일서 1:5~7
읽을말씀 : 요한일서 1:5~7 | 외울말씀 : 요한일서 1:7 | 참고 말씀: 요한일서 5:18
교육목표 : 빛과 어둠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고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아무리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 해도 태양이 떠오르면 순식간에 어둠이 사라지고 밝은 세상이 됩니다. 우리가 태양과 비교할 수 없이 밝은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문제라 할지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 각종 인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1. 빛과 어둠의 영적인 의미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빛이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둠이 전혀 없는 온전하신 하나님을 나타냄과 동시에 진리, 선, 사랑 자체를 뜻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로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으로서 이 진리의 말씀들이 바로 빛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라, 사랑하라, 용서하라, 겸손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는 말씀대로 행할 때 빛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대로 행하는 것도 빛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둠이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빛이 없는 깜깜한 상태를 말하며, 영적으로는 죄에 속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곧 불의, 불법, 악, 비진리가 여기에 속하지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것을 계속 행하고 버리지 않는 것이 어둠입니다.
“도적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미워하지 말라,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시기 질투를 버리라, 탐심을 버리라, 교만을 버리라, 육신의 생각을 버리라” 등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어둠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 지키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지키지 않는 것 역시 어둠에 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빛과 어둠 중 어디에 속하십니까? 하나님은 어둠이 단 1%도 없으신 100% 온전한 빛이시므로 우리도 100% 빛 가운데 행하기 원하십니다. 어둠이 있으면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이 그것을 빌미로 시험과 환난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2.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부모에게 자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 자녀가 장성하여 부모의 마음을 헤아림으로 깊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밀한 사귐을 갖기 원하십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데에는 단서가 있는데 진리 즉 빛 가운데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둠과 짝하며 악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원수 마귀 사단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녀가 나를 욕하고 죽이려고 하는 악한 자들과 함께 어울리며 나쁜 짓을 일삼는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어둠 가운데 죄를 짓는다면 원수 마귀 사단을 붙좇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심히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사귐’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내 편에서만 상대를 안다고 해서 사귐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대통령을 잘 알아도 대통령이 나를 모른다면 서로 사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귐도 그 정도가 다 다릅니다.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가 있는가 하면, 좀 더 가깝게 안부를 묻는 관계도 있고, 아주 친밀하게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사이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진정한 사귐이 되려면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 믿으며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빛 가운데 거할 때 곧 빛이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할 때 믿음이 있다, 내가 너를 안다 인정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했습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 하며 부르짖어 기도한다 해도 하나님 뜻대로 행치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는 너를 모른다.”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 그 증거들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의 지킴과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질병으로 고통 받지도 않고, 시험 환난을 만나거나 재앙을 당하지도 않습니다.
3. 어둠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해야 축복
아무리 짙은 어둠도 빛이 비취면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면 어둠의 권세가 결코 역사하지 못합니다.
빛의 권세는 우리가 얼마나 빛 가운데 행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전등을 열 개 켰을 때의 빛은 한 개 켰을 때보다 훨씬 밝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빛이 강할수록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힘도 세집니다. 따라서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어둠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비록 예전에는 어둠에 있었을지라도 지금부터라도 빛 가운데 거하면 어둠에 있을 때 찾아왔던 질병과 가난 등 온갖 문제가 떠납니다. 축복의 길이 열리며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임합니다. 이처럼 빛 가운데 거하는 만큼 빛의 권세가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며 어둠 가운데 살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합니다. 죄 가운데 살면 그 자체가 어둠이기에 어둠의 세력을 쫓아낼 수가 없습니다. 죄를 벗고 진리를 좇을 때라야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오므로 범죄하여 어둠 가운데 있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빛 가운데 거해야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습니다!” 하고 고백하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줄로 아는데 성경 어디에도 그렇게 쓰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서 빛 가운데 행할 때 서로 사귐이 있고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어둠에 있으면 참 빛이신 주님과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의 권세’가 나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능히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는 것이지요. 주님과 하나 된 증거는 바로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질병아 물러가라, 시험 환난아 물러가라.” 하며 기도할 때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은 빛 가운데 행하므로 범죄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며,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아 만사가 형통합니다(신 28:1∼14 ; 요삼 2).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이란 영적으로 어둠이 전혀 없는 온전하신 하나님을 나타냄과 동시에 진리, 선, 사랑 자체를 뜻한다.
2. ( )이란 일반적으로 빛이 없는 깜깜한 상태를 말하며, 영적으로는 ( )에 속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곧 불의, 불법, 악, 비진리가 여기에 속하며,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것을 계속 행하고 버리지 않는 것이 어둠이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60~16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마귀’란?
악한 영들에 속한 마귀는 루시퍼와 함께 타락한 천사 중 일부로, 검은 형상에 사람처럼 이목구비와 손발이 있다.
사단의 지시를 받아 귀신을 관리하고 지시하며 비진리의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죄를 짓게 한다. 사단이 생각으로 죄를 짓게 한다면, 마귀는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한다.
교육목표 : 빛과 어둠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고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아무리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 해도 태양이 떠오르면 순식간에 어둠이 사라지고 밝은 세상이 됩니다. 우리가 태양과 비교할 수 없이 밝은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문제라 할지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 각종 인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1. 빛과 어둠의 영적인 의미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빛이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어둠이 전혀 없는 온전하신 하나님을 나타냄과 동시에 진리, 선, 사랑 자체를 뜻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바로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으로서 이 진리의 말씀들이 바로 빛에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라, 사랑하라, 용서하라, 겸손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는 말씀대로 행할 때 빛 가운데 거할 수 있습니다. 또한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대로 행하는 것도 빛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둠이란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빛이 없는 깜깜한 상태를 말하며, 영적으로는 죄에 속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곧 불의, 불법, 악, 비진리가 여기에 속하지요.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것을 계속 행하고 버리지 않는 것이 어둠입니다.
“도적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미워하지 말라,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시기 질투를 버리라, 탐심을 버리라, 교만을 버리라, 육신의 생각을 버리라” 등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이 어둠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라, 지키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지키지 않는 것 역시 어둠에 거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빛과 어둠 중 어디에 속하십니까? 하나님은 어둠이 단 1%도 없으신 100% 온전한 빛이시므로 우리도 100% 빛 가운데 행하기 원하십니다. 어둠이 있으면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이 그것을 빌미로 시험과 환난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2.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부모에게 자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 자녀가 장성하여 부모의 마음을 헤아림으로 깊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밀한 사귐을 갖기 원하십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데에는 단서가 있는데 진리 즉 빛 가운데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둠과 짝하며 악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원수 마귀 사단을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녀가 나를 욕하고 죽이려고 하는 악한 자들과 함께 어울리며 나쁜 짓을 일삼는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어둠 가운데 죄를 짓는다면 원수 마귀 사단을 붙좇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심히 마음 아파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까? ‘사귐’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내 편에서만 상대를 안다고 해서 사귐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대통령을 잘 알아도 대통령이 나를 모른다면 서로 사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귐도 그 정도가 다 다릅니다.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가 있는가 하면, 좀 더 가깝게 안부를 묻는 관계도 있고, 아주 친밀하게 비밀을 나눌 수 있는 사이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과 교통하는 진정한 사귐이 되려면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 믿으며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앞서 말한 대로 빛 가운데 거할 때 곧 빛이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행할 때 믿음이 있다, 내가 너를 안다 인정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했습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 하며 부르짖어 기도한다 해도 하나님 뜻대로 행치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는 너를 모른다.”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 그 증거들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하나님의 지킴과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질병으로 고통 받지도 않고, 시험 환난을 만나거나 재앙을 당하지도 않습니다.
3. 어둠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해야 축복
아무리 짙은 어둠도 빛이 비취면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면 어둠의 권세가 결코 역사하지 못합니다.
빛의 권세는 우리가 얼마나 빛 가운데 행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전등을 열 개 켰을 때의 빛은 한 개 켰을 때보다 훨씬 밝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빛이 강할수록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힘도 세집니다. 따라서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어둠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비록 예전에는 어둠에 있었을지라도 지금부터라도 빛 가운데 거하면 어둠에 있을 때 찾아왔던 질병과 가난 등 온갖 문제가 떠납니다. 축복의 길이 열리며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임합니다. 이처럼 빛 가운데 거하는 만큼 빛의 권세가 따르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며 어둠 가운데 살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합니다. 죄 가운데 살면 그 자체가 어둠이기에 어둠의 세력을 쫓아낼 수가 없습니다. 죄를 벗고 진리를 좇을 때라야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오므로 범죄하여 어둠 가운데 있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빛 가운데 거해야 예수님의 보혈이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습니다!” 하고 고백하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줄로 아는데 성경 어디에도 그렇게 쓰여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서 빛 가운데 행할 때 서로 사귐이 있고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어둠에 있으면 참 빛이신 주님과 하나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의 권세’가 나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능히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는 것이지요. 주님과 하나 된 증거는 바로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질병아 물러가라, 시험 환난아 물러가라.” 하며 기도할 때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은 빛 가운데 행하므로 범죄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셔서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며,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아 만사가 형통합니다(신 28:1∼14 ; 요삼 2).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이란 영적으로 어둠이 전혀 없는 온전하신 하나님을 나타냄과 동시에 진리, 선, 사랑 자체를 뜻한다.
2. ( )이란 일반적으로 빛이 없는 깜깜한 상태를 말하며, 영적으로는 ( )에 속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곧 불의, 불법, 악, 비진리가 여기에 속하며,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것을 계속 행하고 버리지 않는 것이 어둠이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60~16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마귀’란?
악한 영들에 속한 마귀는 루시퍼와 함께 타락한 천사 중 일부로, 검은 형상에 사람처럼 이목구비와 손발이 있다.
사단의 지시를 받아 귀신을 관리하고 지시하며 비진리의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죄를 짓게 한다. 사단이 생각으로 죄를 짓게 한다면, 마귀는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