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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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1-10
제45과기뻐 춤추며 노래하며
막 7:31-37
읽을말씀 : 막 7:31-37 | 외울말씀 : 막 7:37
교육목표 : 믿음을 갖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 주십니다. 그래서 불치의 병에서 놓임 받고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며 듣지 못하던 귀가 들리게 되는 등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체험한 사람들은 샘솟듯 솟아나는 행복 가운데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지요.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통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귀먹고 어눌한 자를 온전케 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두루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을 뿐만 아니라 각색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마 4:23-24). 그래서 전파하신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며 믿음으로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해 주셨지요.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셨을 때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고쳐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눌하다'는 뜻은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고 떠듬떠듬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32:27에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므로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니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고쳐 주시자 귀가 열리고 말이 분명해졌지요.
이 외에도 귀신들림으로 인해 귀먹거나 벙어리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쫓아 주시자 곧바로 듣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9:25을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고통받고 있는 한 아이를 보시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자 귀신이 나가고 아이는 온전케 되었지요.
신체 조직의 일부가 퇴화되었거나 신경 세포가 이미 죽어 버림으로 인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병 고치는 은사(고전 12:9)로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분량이 장성한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권세와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에 맞춰 믿음으로 기도했을 때 온전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본교회를 통해 베푸신 청각장애 치료 사례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믿음의 분량이 장성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면 성경상에서 볼 수 있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엡 4:13, 히 13:8). 지금까지 하나님의 권능으로 난청이 치료되는 것은 물론, 태어날 때부터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듣게 되는 경우도 무수히 보았습니다. 심지어는 50년이 넘도록 들리지 않던 귀가 당회장님의 기도를 통해 열려 듣게 된 사례도 있지요. 몇 가지 사례들을 소개할 때 오늘날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능을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2000년 일본 나고야 성회 시 열세 명의 청각 장애인들이 당회장님의 단 한 번의 기도로 한꺼번에 치료받아 간증을 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역사가 국내의 청각 장애인들에게도 알려져 2001년 5월 본교회의 2주 연속 특별 부흥성회 시에는 국내의 많은 청각 장애인들이 참석하여 치료받음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당시 33세 된 한 여성도님은 여덟 살 때 사고로 농아가 되었는데 전도받아 믿음으로 치료받고자 부흥성회에 정성껏 참석했습니다. 성회 시 당회장님의 안수기도를 받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나 실망하지 않고 다른 분들이 치료받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믿음으로 인정해 주시고 성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해가 갈수록 권능의 역사는 더 크게 나타나 2002년 7월 중미의 온두라스 성회에서도 귀머거리와 벙어리 된 많은 사람들이 듣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성회의 안전 총책임자로서 성회를 적극 도왔던 분의 딸도 태어날 때부터 들리지 않던 귀가 치료되었지요.
2004년 독일 기독교 사상 최대 성회였던 독일 연합대성회 시 비트릭 메헤르만이라는 여자분은 평소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아 고통을 받았는데 성회 첫날 기도 시간에 '뻥' 하는 소리가 나면서 그 후로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찰 결과 얇았던 고막이 두꺼워져 잘 듣게 된 것이라며 담당 의사도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였다고 하지요.
2006년 미국 연합대성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난청을 치료받았는데 그 중에 유니 라디오 음악방송을 진행하는 데이비드 곤잘레스는 20년간 헤드폰을 쓰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대화는 물론 방송을 진행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지요. 그런데 성회에 참석하여 기도를 받을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머리까지 시원한 기운이 돌더니 귀가 잘 들리게 되어 이제는 방송 진행도 더욱 명쾌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응답받으려면
1)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마가복음 7:33-35을 보면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했습니다. '에바다'는 '열리라'는 의미의 아람어인데, 예수님께서 창조의 근본의 소리로 "에바다" 하고 명하시자 그대로 귀가 열려 들을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귀머거리 된 이 사람의 귀에 손가락을 넣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 하였는데, 귀머거리 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니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은 상태였지요. 또한 본인이 스스로 믿음 가운데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친히 귀에 손가락을 넣어 주심으로 느낌을 통해서라도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당사자가 믿음을 소유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게 되지요. 오늘날은 문명이 발달하여 수화를 비롯, 비디오나 책자, 신문 등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매체들이 많이 있으므로 청각 장애인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귀먹고 어눌한 사람의 양 귀에 손가락을 넣어 믿음을 심어 주신 예수님께서는 이어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영적으로 물세례, 곧 죄사함을 베푸시기 위함이었지요.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맑은 물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를 씻어 버린다는 의미가 있지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예수님은 더러움을 씻어 내는 물 대신 침으로써 죄사함의 의미를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59:1-2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응답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진실하게 돌아보아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요?
첫째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았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6:9에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말씀하셨으니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믿지 않은 것이 바로 죄임을 깨우쳐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설령 형제가 나를 미워한다 해서 똑같이 미워해서는 안 되며, 이해하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요일 4:11). 그리하여 모든 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도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치료의 역사를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욕심을 가지고 기도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욕심을 가지고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에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넷째로, 의심하며 기도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6-7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내보이며 기도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히 11:6).
다섯째로, 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성경에 나오는 선한 계명들을 지켜야 합니다(요 14:21). 간혹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가운데서도 교통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가장 기본적인 계명인 주일 성수를 하지 않았거나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로, 하나님 앞에 심지 않고 받으려 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프거나 약한 사람은 우선 모든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강건한 몸이 될 수 있고 또한 물질의 문제가 있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물질을 심을 때 하나님께서 넘치는 축복으로 함께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향해 "에바다" 곧 "열리라"고 명하시자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풀려 말이 분명해진 것처럼 하나님의 권능으로는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믿음을 갖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며 모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믿음을 갖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죄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는 사람에게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 주십니다. 그래서 불치의 병에서 놓임 받고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며 듣지 못하던 귀가 들리게 되는 등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체험한 사람들은 샘솟듯 솟아나는 행복 가운데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지요.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통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귀먹고 어눌한 자를 온전케 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계시는 동안 두루 다니며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을 뿐만 아니라 각색 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을 고쳐 주셨습니다(마 4:23-24). 그래서 전파하신 말씀이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지며 믿음으로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해 주셨지요.
본문을 보면 예수님께서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셨을 때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고쳐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눌하다'는 뜻은 말을 유창하게 하지 못하고 떠듬떠듬하는 면이 있다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32:27에 "나는 여호와요 모든 육체의 하나님이라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므로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니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고쳐 주시자 귀가 열리고 말이 분명해졌지요.
이 외에도 귀신들림으로 인해 귀먹거나 벙어리 되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예수님께서 귀신을 내어쫓아 주시자 곧바로 듣고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9:25을 보면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고통받고 있는 한 아이를 보시고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자 귀신이 나가고 아이는 온전케 되었지요.
신체 조직의 일부가 퇴화되었거나 신경 세포가 이미 죽어 버림으로 인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병 고치는 은사(고전 12:9)로는 고칠 수가 없습니다. 오직 믿음의 분량이 장성한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권세와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의 뜻에 맞춰 믿음으로 기도했을 때 온전케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 본교회를 통해 베푸신 청각장애 치료 사례들
오늘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믿음의 분량이 장성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받으면 성경상에서 볼 수 있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납니다(엡 4:13, 히 13:8). 지금까지 하나님의 권능으로 난청이 치료되는 것은 물론, 태어날 때부터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듣게 되는 경우도 무수히 보았습니다. 심지어는 50년이 넘도록 들리지 않던 귀가 당회장님의 기도를 통해 열려 듣게 된 사례도 있지요. 몇 가지 사례들을 소개할 때 오늘날도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권능을 베푸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온전히 믿으시기 바랍니다.
먼저, 2000년 일본 나고야 성회 시 열세 명의 청각 장애인들이 당회장님의 단 한 번의 기도로 한꺼번에 치료받아 간증을 했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역사가 국내의 청각 장애인들에게도 알려져 2001년 5월 본교회의 2주 연속 특별 부흥성회 시에는 국내의 많은 청각 장애인들이 참석하여 치료받음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당시 33세 된 한 여성도님은 여덟 살 때 사고로 농아가 되었는데 전도받아 믿음으로 치료받고자 부흥성회에 정성껏 참석했습니다. 성회 시 당회장님의 안수기도를 받고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으나 실망하지 않고 다른 분들이 치료받는 것을 보면서 자신도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믿음으로 인정해 주시고 성회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해가 갈수록 권능의 역사는 더 크게 나타나 2002년 7월 중미의 온두라스 성회에서도 귀머거리와 벙어리 된 많은 사람들이 듣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 성회의 안전 총책임자로서 성회를 적극 도왔던 분의 딸도 태어날 때부터 들리지 않던 귀가 치료되었지요.
2004년 독일 기독교 사상 최대 성회였던 독일 연합대성회 시 비트릭 메헤르만이라는 여자분은 평소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아 고통을 받았는데 성회 첫날 기도 시간에 '뻥' 하는 소리가 나면서 그 후로 들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진찰 결과 얇았던 고막이 두꺼워져 잘 듣게 된 것이라며 담당 의사도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였다고 하지요.
2006년 미국 연합대성회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난청을 치료받았는데 그 중에 유니 라디오 음악방송을 진행하는 데이비드 곤잘레스는 20년간 헤드폰을 쓰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아 대화는 물론 방송을 진행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었지요. 그런데 성회에 참석하여 기도를 받을 때 머리부터 발끝까지 머리까지 시원한 기운이 돌더니 귀가 잘 들리게 되어 이제는 방송 진행도 더욱 명쾌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응답받으려면
1)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마가복음 7:33-35을 보면 "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아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더라" 했습니다. '에바다'는 '열리라'는 의미의 아람어인데, 예수님께서 창조의 근본의 소리로 "에바다" 하고 명하시자 그대로 귀가 열려 들을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 귀머거리 된 이 사람의 귀에 손가락을 넣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난다 하였는데, 귀머거리 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니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은 상태였지요. 또한 본인이 스스로 믿음 가운데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한 경우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친히 귀에 손가락을 넣어 주심으로 느낌을 통해서라도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믿음을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작은 믿음이라도 당사자가 믿음을 소유해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게 되지요. 오늘날은 문명이 발달하여 수화를 비롯, 비디오나 책자, 신문 등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매체들이 많이 있으므로 청각 장애인라 할지라도 얼마든지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2)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귀먹고 어눌한 사람의 양 귀에 손가락을 넣어 믿음을 심어 주신 예수님께서는 이어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영적으로 물세례, 곧 죄사함을 베푸시기 위함이었지요.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맑은 물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를 씻어 버린다는 의미가 있지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예수님은 더러움을 씻어 내는 물 대신 침으로써 죄사함의 의미를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이사야 59:1-2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응답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을 진실하게 돌아보아 하나님 앞에 죄를 자백하고 회개해야 하는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회개해야 할까요?
첫째는,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지 않았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6:9에 예수님께서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말씀하셨으니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믿지 않은 것이 바로 죄임을 깨우쳐야 합니다.
둘째는, 믿음의 형제를 사랑하지 못한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설령 형제가 나를 미워한다 해서 똑같이 미워해서는 안 되며, 이해하고 용서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요일 4:11). 그리하여 모든 이를 사랑하는 사람이 될 때에 하나님께서도 긍휼과 자비를 베풀어 주시고 치료의 역사를 나타내 주실 것입니다.
셋째로, 욕심을 가지고 기도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욕심을 가지고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기 때문에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넷째로, 의심하며 기도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6-7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내보이며 기도하는 것을 기쁘게 여기시는 것입니다(히 11:6).
다섯째로, 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성경에 나오는 선한 계명들을 지켜야 합니다(요 14:21). 간혹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가운데서도 교통사고를 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가장 기본적인 계명인 주일 성수를 하지 않았거나 십일조를 드리지 않은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여섯째로, 하나님 앞에 심지 않고 받으려 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몸이 아프거나 약한 사람은 우선 모든 예배에 열심히 참석하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강건한 몸이 될 수 있고 또한 물질의 문제가 있는 사람은 먼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물질을 심을 때 하나님께서 넘치는 축복으로 함께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향해 "에바다" 곧 "열리라"고 명하시자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풀려 말이 분명해진 것처럼 하나님의 권능으로는 능치 못할 것이 없습니다. 믿음을 갖고 빛 가운데 행함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며 모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1-03
제44과일어나 뛰고 걸으며
막 2:5-12
읽을말씀 : 막 2:5-12 | 외울말씀 : 막 2:12
교육목표 :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체험하며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한다.
성경을 보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걷지 못하던 사람들이 일어나 걷고 뛰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베드로, 사도 바울을 통해서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는 표적이 나타났지요(행 3:1-10, 14:8-11).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오늘날도 변함없이 역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를 통해 어떻게 해야 일어나 걷고 뛰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성경상에서 일어나 뛰고 걸은 사건
1)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된 중풍병자
가버나움에 사는 어떤 중풍병자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귀신을 쫓아낼 뿐만 아니라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 주신다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중풍병자는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소문만을 듣고도 그대로 믿고 예수님을 꼭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으니 중풍병자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는 병이 중하여 혼자 움직일 수 없으니 자기를 도와줄 친구를 찾았고 다행히 친구들은 중풍병자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와 보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용신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그들이 믿음이 부족했다면 그냥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2) 끝까지 믿음을 내보인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
그러나 중풍병자와 친구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내보였습니다. 결국 최후의 방법으로 지붕을 뜯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참믿음은 이처럼 행함이 따르며 내가 겸비하게 낮아졌을 때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행함이 나타나게 됩니다. 만일 중풍병자가 집 안에 누워서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제가 여기 누워 있는 것도 아시지요? 중풍병으로 움직일 수 없으니 제가 여기 누워 있어도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했다면 결코 치료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을 불러서 예수님 앞에 찾아갔던 것이며 그의 친구들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중풍병자를 위하여 지붕까지 뜯어 가며 봉사할 수 있었지요.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능력과 권세가 있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믿음과 정성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그 즉시 깨끗하게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3) 믿음의 행함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받고 치료받은 중풍병자
마가복음 2:5을 보면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질병이 죄로 인해 온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신 말씀입니다(출 15:26). 신명기 28장에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지켜 행하면 어떤 질병도 틈타지 못함을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후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질병이 죄로 인해 생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료하실 때에 죄사함을 주신 이유를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나아간다고 해서 무조건 죄사함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통회자복하여 죄를 회개한 다음에는 범죄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한 대로 어두움에서 빛 가운데로, 악에서 선 가운데로 나오면 자연히 주님의 보혈의 피가 죄를 씻어 깨끗한 마음이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의 행함으로 죄사함을 받은 중풍병자는 깨끗이 치료받고 자기가 실려 온 들것을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어떤 서기관들은 마음에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며 의논을 합니다. 중풍병자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료받은 것을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비를 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아신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말씀하셨지요.
들것에 누워 있던 중풍병자가 일어나 걸어갔다는 것은 곧 죄사함을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확실한 보장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나온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다만 말씀으로 명하여 그의 병을 고쳐 주신 것을 보았다면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요 14:11).
2. 본교회에서 일어나 뛰고 걸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들
요한복음 14:12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100% 믿었기에 본교회에는 개척 당시부터 세상에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다"고 했던 질병들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치료된 간증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면 본교회를 통해 나타난 수많은 표적 중에서 오늘 말씀과 관련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할 때 참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1) 손수건을 통한 치료의 역사들
사도행전 19:11-12을 보면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했습니다.
이러한 성경상의 일들도 본제단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교회 주의 종들이나 일꾼들이 당회장님께 기도받은 손수건을 가지고 해외에서 대형집회를 인도하면 귀신들린 자가 온전함을 입고 눈 먼 자가 눈을 뜨며 벙어리가 말을 하고 귀머거리가 듣는가 하면 혼자서 걷지 못하던 사람들이 일어나 걷고 뛰는 희한한 권능의 역사들이 무수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케냐, 북방, 필리핀, 인도네시아, 몽골, 네팔, 온두라스, 일본, 영국, 파키스탄, 독일, 벨기에, 네델란드 등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집회가 열려 불같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2) 인도 연합대성회시 가네쉬 소년
2002년 인도 연합대성회에서는 이전과는 권능의 차원이 전혀 달라져 준비된 심령에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가 그대로 꽂혀서 즉시 고쳐지고 창조되는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한 예로, 가네쉬 소년은 1999년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다친 골반 뼈에 종양이 생겨 결국은 우측 골반을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분 남은 골반뼈와 허벅지뼈에 금속판을 대고 아홉 개의 나사못을 박아 고정시켰지요. 현지 의사의 말에 의하면 금속판으로 연결시켰지만 지탱하는 힘이 약해서 목발을 짚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금속판이 부러지거나 나사가 느슨해지며, 받는 통증도 엄청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가네쉬는 인도 연합대성회에 참석하여 환자 기도를 받는데 온몸이 뜨거워지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후 모든 통증이 사라져 이제는 목발을 짚지 않아도 아무 통증이 없으며 자유롭게 걷고 뛸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두바이 선교시 인도 출신의 여인
그 이후 더욱 창조의 권능의 완성을 이루어 두바이 선교 때도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인도 출신의 한 여자 분은 교통사고 후유증과 합병증이 겹쳐 일 년 이상을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기운이 없어 말도 잘 못하였으며 안경이 떨어져도 혼자서 줍지 못했고 걷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만지기만 해도 통증을 호소할 정도로 고통 중에 있었지요. 그러나 당회장님께 기도받고 나서는 즉시 일어나 걷기 시작함으로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4) 미국 연합대성회시 구엘레모 파비오스 소년
구엘레모 파비오스 소년은 생후 이틀 만에 산소 부족으로 인해 소아마비가 되어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고 일어설 수도 없었습니다. 다리 수술을 4번이나 받았으나 치료받지 못하였고 걷기 위해 사용하던 보조기구들이 휠체어를 비롯 6가지 이상이나 되었지요. 병원에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다시 수술 일정을 잡아 놓은 상태였고 시력도 나빠 2살 때부터 13년간 안경을 착용하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뉴욕 성회 소식을 듣고 믿음으로 참석하였는데 기도를 받을 때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면서 누군가 다리를 직접 두들기며 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후 혼자 일어나 걷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력도 좋아져 안경 없이도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회 후 병원 검진을 받아 보았는데 좋아진 결과에 의사 선생님도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큰 권능의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마음껏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크신 권능을 체험하며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한다.
성경을 보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걷지 못하던 사람들이 일어나 걷고 뛰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던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물론 베드로, 사도 바울을 통해서도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는 표적이 나타났지요(행 3:1-10, 14:8-11). 이러한 하나님의 권능은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오늘날도 변함없이 역사되고 있습니다.
그러면 본문에 나오는 중풍병자를 통해 어떻게 해야 일어나 걷고 뛰는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성경상에서 일어나 뛰고 걸은 사건
1)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믿음을 갖게 된 중풍병자
가버나움에 사는 어떤 중풍병자가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귀신을 쫓아낼 뿐만 아니라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해 주신다는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게 되었습니다. 중풍병자는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예수님의 소문만을 듣고도 그대로 믿고 예수님을 꼭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갖게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으니 중풍병자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그는 병이 중하여 혼자 움직일 수 없으니 자기를 도와줄 친구를 찾았고 다행히 친구들은 중풍병자의 요청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정작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 와 보니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용신할 수 없었습니다. 이때 그들이 믿음이 부족했다면 그냥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2) 끝까지 믿음을 내보인 중풍병자와 그의 친구들
그러나 중풍병자와 친구들은 결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내보였습니다. 결국 최후의 방법으로 지붕을 뜯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참믿음은 이처럼 행함이 따르며 내가 겸비하게 낮아졌을 때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행함이 나타나게 됩니다. 만일 중풍병자가 집 안에 누워서 "주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제가 여기 누워 있는 것도 아시지요? 중풍병으로 움직일 수 없으니 제가 여기 누워 있어도 치료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했다면 결코 치료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중풍병자는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들을 불러서 예수님 앞에 찾아갔던 것이며 그의 친구들도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중풍병자를 위하여 지붕까지 뜯어 가며 봉사할 수 있었지요.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나오는 사람들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능력과 권세가 있으신 분입니다. 그래서 이들의 믿음과 정성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자를 그 즉시 깨끗하게 치료해 주신 것입니다.
3) 믿음의 행함으로 죄의 문제를 해결받고 치료받은 중풍병자
마가복음 2:5을 보면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모든 질병이 죄로 인해 온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신 말씀입니다(출 15:26). 신명기 28장에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고 지켜 행하면 어떤 질병도 틈타지 못함을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후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질병이 죄로 인해 생긴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예수님께서 중풍병자를 치료하실 때에 죄사함을 주신 이유를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앞에 나아간다고 해서 무조건 죄사함을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통회자복하여 죄를 회개한 다음에는 범죄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한 대로 어두움에서 빛 가운데로, 악에서 선 가운데로 나오면 자연히 주님의 보혈의 피가 죄를 씻어 깨끗한 마음이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결국 믿음의 행함으로 죄사함을 받은 중풍병자는 깨끗이 치료받고 자기가 실려 온 들것을 들고 집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어떤 서기관들은 마음에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며 의논을 합니다. 중풍병자가 하나님의 권능으로 치료받은 것을 함께 기뻐하지 못하고 오히려 시비를 논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를 아신 예수님께서는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말씀하셨지요.
들것에 누워 있던 중풍병자가 일어나 걸어갔다는 것은 곧 죄사함을 받았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하나님의 확실한 보장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믿음으로 나온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주시고 다만 말씀으로 명하여 그의 병을 고쳐 주신 것을 보았다면 하나님과 예수님이 하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요 14:11).
2. 본교회에서 일어나 뛰고 걸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들
요한복음 14:12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100% 믿었기에 본교회에는 개척 당시부터 세상에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다"고 했던 질병들도 믿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여 치료된 간증들이 넘쳐났습니다. 그러면 본교회를 통해 나타난 수많은 표적 중에서 오늘 말씀과 관련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할 때 참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1) 손수건을 통한 치료의 역사들
사도행전 19:11-12을 보면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희한한 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했습니다.
이러한 성경상의 일들도 본제단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본교회 주의 종들이나 일꾼들이 당회장님께 기도받은 손수건을 가지고 해외에서 대형집회를 인도하면 귀신들린 자가 온전함을 입고 눈 먼 자가 눈을 뜨며 벙어리가 말을 하고 귀머거리가 듣는가 하면 혼자서 걷지 못하던 사람들이 일어나 걷고 뛰는 희한한 권능의 역사들이 무수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케냐, 북방, 필리핀, 인도네시아, 몽골, 네팔, 온두라스, 일본, 영국, 파키스탄, 독일, 벨기에, 네델란드 등 세계 곳곳에서 이러한 집회가 열려 불같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2) 인도 연합대성회시 가네쉬 소년
2002년 인도 연합대성회에서는 이전과는 권능의 차원이 전혀 달라져 준비된 심령에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가 그대로 꽂혀서 즉시 고쳐지고 창조되는 역사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중에 한 예로, 가네쉬 소년은 1999년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져서 다친 골반 뼈에 종양이 생겨 결국은 우측 골반을 절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분 남은 골반뼈와 허벅지뼈에 금속판을 대고 아홉 개의 나사못을 박아 고정시켰지요. 현지 의사의 말에 의하면 금속판으로 연결시켰지만 지탱하는 힘이 약해서 목발을 짚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금속판이 부러지거나 나사가 느슨해지며, 받는 통증도 엄청날 것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가네쉬는 인도 연합대성회에 참석하여 환자 기도를 받는데 온몸이 뜨거워지는 성령의 역사를 체험한 후 모든 통증이 사라져 이제는 목발을 짚지 않아도 아무 통증이 없으며 자유롭게 걷고 뛸 수 있게 되었습니다.
3) 두바이 선교시 인도 출신의 여인
그 이후 더욱 창조의 권능의 완성을 이루어 두바이 선교 때도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인도 출신의 한 여자 분은 교통사고 후유증과 합병증이 겹쳐 일 년 이상을 휠체어에 의지해서 살아오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기운이 없어 말도 잘 못하였으며 안경이 떨어져도 혼자서 줍지 못했고 걷지 못하는 것은 물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만지기만 해도 통증을 호소할 정도로 고통 중에 있었지요. 그러나 당회장님께 기도받고 나서는 즉시 일어나 걷기 시작함으로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4) 미국 연합대성회시 구엘레모 파비오스 소년
구엘레모 파비오스 소년은 생후 이틀 만에 산소 부족으로 인해 소아마비가 되어 혼자서는 걷지도 못하고 일어설 수도 없었습니다. 다리 수술을 4번이나 받았으나 치료받지 못하였고 걷기 위해 사용하던 보조기구들이 휠체어를 비롯 6가지 이상이나 되었지요. 병원에서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수술을 받아야 한다며 다시 수술 일정을 잡아 놓은 상태였고 시력도 나빠 2살 때부터 13년간 안경을 착용하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뉴욕 성회 소식을 듣고 믿음으로 참석하였는데 기도를 받을 때 뜨거운 기운이 느껴지면서 누군가 다리를 직접 두들기며 만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후 혼자 일어나 걷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시력도 좋아져 안경 없이도 생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성회 후 병원 검진을 받아 보았는데 좋아진 결과에 의사 선생님도 놀라워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큰 권능의 역사를 우리에게 보여 주심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더욱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마음껏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0-27
제43과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요 9:32-33
읽을말씀 : 요 9:32-33 | 외울말씀 : 요 9:32-33
교육목표 :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행함을 내보임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며 응답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사도행전 2장에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성령을 받은 후에 유대인들에게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첫 설교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행 2:22)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았던 예수님께서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라는 증거를 갖고 계시는데 바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이라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베드로 자신 역시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후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걷고 뛰게 하는(행 3:8) 등 큰 권능을 베풀었습니다. 이처럼 권능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증표요,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는 확실한 방법이 되므로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자에게 권능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1.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9장을 보면 날 때부터 보지 못했던 소경에 대해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것이 뉘 죄 때문인지를 여쭙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신 후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명하셨습니다. 그 즉시 소경이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밝아져 보게 되었지요.
이 소경은 자신의 눈을 치료해 달라고 간청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와서 만나 주시고 고쳐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첫째로,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라 주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소경은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실로암 물가로 가서 눈을 씻었습니다. 그 결과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눈이 밝아져 볼 수 있게 되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상식과 경험에 맞지 않는다 해도 소경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믿고 순종할 때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며 소경이 눈을 뜨는 것과 같이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둘째로,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치료받은 후 유대인들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 비록 육적인 눈은 닫혀 있었지만 선한 마음 가운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깨닫고 있었지요. 반면에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의 강한 틀로 인한 영적인 소경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자초지종을 물을 때에 치료받은 소경은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담대히 증거했지요.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하고 다시 힐문하기를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하니 소경은 "선지자니이다" 대답합니다. 이는 소경된 자신의 눈을 고쳐 줄 수 있는 분이라면 분명 하나님의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유대인들은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하면서 오히려 소경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 자체가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는 어리석은 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더구나 죄인에게 권능을 주셔서 소경의 눈을 고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지요.
이처럼 유대인들은 진실을 보아도 믿지 못하고 깨달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소경은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진실을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9:31-33에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고백하고 있지요.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너무나 무지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보고도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성경을 보면 소경을 눈 뜨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46:8에는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했고, 이사야 29:18에는 "그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35:5에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했는데, 곧 메시야가 오시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다는 말씀이지요.
이런 말씀들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음에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틀과 악함 속에서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경은 율법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선한 양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알았습니다. 또한 소경의 눈을 고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을 알았던 것이지요.
셋째로, 은혜를 받은 후 주님 앞에 나와 완전히 새로운 삶을 결단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은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선한 중심을 가졌기에 예수님을 만나 눈을 떴을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구원의 축복까지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 했을 때에 소경은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하시자 "주여 내가 믿나이다"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믿는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신앙의 고백이었던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마음으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질병을 치료해 주시고 축복을 주시니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을 진정 구주로 영접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입술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일서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하신 대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어두움의 일을 벗고 날마다 빛 가운데 행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면 어찌 응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7:11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약속하신 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이나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본교회에서도 눈을 뜨는 역사가 나타나
1982년 교회 개척 이후 지금까지 본교회에서도 눈을 뜨는 역사가 나타나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 왔습니다. 날 때부터 보이지 않던 눈이 기도받고 보이는가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아 안경과 콘택트렌즈를 벗고 간증하였지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면 먼저 2002년 7월 온두라스 대성회시 일어났던 역사입니다.
마리아라는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는 두 살 때 심하게 열병을 앓은 후 오른쪽 눈의 시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각막 이식 수술을 받았으나 실패하여 10년 동안 오른쪽 눈으로는 빛조차 볼 수 없었는데 성회에 참석하여 저의 기도를 받고 빛을 보기 시작하였고 곧 시력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죽어 버린 눈의 신경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새롭게 창조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또한 리카르도 목사님은 실명의 위기 속에서 단물을 통해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이분은 7년 전 사고로 인해 망막이 상하고 출혈이 심해서 병원에서는 점점 시력을 잃어 앞을 볼 수 없게 된다고 했는데 온두라스 연합대성회시 열렸던 목회자 세미나 첫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권능의 단물을 눈에 넣었는데 놀랍게도 사물이 점점 또렷이 보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체험한 것입니다.
아프리카 나이로비 지교회의 콤보라는 청년은 가족들에게 전도하면서 본교회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간증하고 저의 기도를 받은 권능의 손수건으로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 달력을 선물로 주었는데 두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가 전도하는 손자의 말을 듣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달력을 받아 펼치는 순간 두 눈이 떠지고 보이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18:25-26을 보면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행함으로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행함을 내보임으로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며 응답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사도행전 2장에는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가 성령을 받은 후에 유대인들에게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여 첫 설교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너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행 2:22)
유대인들이 십자가에 못박았던 예수님께서는 구약에 예언된 메시야라는 증거를 갖고 계시는데 바로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이라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베드로 자신 역시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후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던 사람을 걷고 뛰게 하는(행 3:8) 등 큰 권능을 베풀었습니다. 이처럼 권능은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증표요,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는 확실한 방법이 되므로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자에게 권능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1.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신 예수님
요한복음 9장을 보면 날 때부터 보지 못했던 소경에 대해 제자들이 예수님께 그것이 뉘 죄 때문인지를 여쭙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의 죄 때문이 아니라 다만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려 하심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신 후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명하셨습니다. 그 즉시 소경이 순종하여 실로암 못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밝아져 보게 되었지요.
이 소경은 자신의 눈을 치료해 달라고 간청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예수님께서 친히 찾아와서 만나 주시고 고쳐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입을 수 있었던 것일까요?
첫째로, 순종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발라 주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는데 이 말씀은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소경은 예수님의 말씀에 그대로 순종하여 실로암 물가로 가서 눈을 씻었습니다. 그 결과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볼 수 없었던 눈이 밝아져 볼 수 있게 되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자신의 상식과 경험에 맞지 않는다 해도 소경과 같이 겸손한 마음으로 믿고 순종할 때 바로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며 소경이 눈을 뜨는 것과 같이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둘째로, 진리를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눈이 열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 치료받은 후 유대인들과 대화하는 것을 보면 비록 육적인 눈은 닫혀 있었지만 선한 마음 가운데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깨닫고 있었지요. 반면에 당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율법의 강한 틀로 인한 영적인 소경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자초지종을 물을 때에 치료받은 소경은 "예수라 하는 그 사람이 진흙을 이겨 내 눈에 바르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 하기에 가서 씻었더니 보게 되었노라" 담대히 증거했지요.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말을 믿지 못하고 다시 힐문하기를 "그 사람이 네 눈을 뜨게 하였으니 너는 그를 어떠한 사람이라 하느냐" 하니 소경은 "선지자니이다" 대답합니다. 이는 소경된 자신의 눈을 고쳐 줄 수 있는 분이라면 분명 하나님의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 때 유대인들은 "너는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라 우리는 저 사람이 죄인인 줄 아노라" 하면서 오히려 소경을 책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말 자체가 얼마나 이치에 맞지 않는 어리석은 말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십니다. 더구나 죄인에게 권능을 주셔서 소경의 눈을 고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분이 결코 아니시지요.
이처럼 유대인들은 진실을 보아도 믿지 못하고 깨달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지만 소경은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진실을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9:31-33에 "하나님이 죄인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창세 이후로 소경으로 난 자의 눈을 뜨게 하였다 함을 듣지 못하였으니 이 사람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아니하였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리이다" 고백하고 있지요.
유대인들은 영적으로 너무나 무지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보고도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성경을 보면 소경을 눈 뜨게 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편 146:8에는 "여호와께서 소경의 눈을 여시며" 했고, 이사야 29:18에는 "그날에 귀머거리가 책의 말을 들을 것이며 어둡고 캄캄한 데서 소경의 눈이 볼 것이며"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 35:5에 "그때에 소경의 눈이 밝을 것이며 귀머거리의 귀가 열릴 것이며" 했는데, 곧 메시야가 오시면 소경의 눈을 뜨게 하신다는 말씀이지요.
이런 말씀들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음에도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틀과 악함 속에서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역사를 보아도 믿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죄인으로 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경은 율법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선한 양심 가운데 하나님께서 죄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신다는 진리를 알았습니다. 또한 소경의 눈을 고친다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임을 알았던 것이지요.
셋째로, 은혜를 받은 후 주님 앞에 나와 완전히 새로운 삶을 결단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은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선한 중심을 가졌기에 예수님을 만나 눈을 떴을 뿐 아니라 가장 중요한 구원의 축복까지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인자를 믿느냐" 했을 때에 소경은 "주여 그가 누구시오니이까 내가 믿고자 하나이다" 대답했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네가 그를 보았거니와 지금 너와 말하는 자가 그이니라" 하시자 "주여 내가 믿나이다"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믿는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주님만을 위해 살겠다는 신앙의 고백이었던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이러한 마음으로 나오기를 원하십니다. 질병을 치료해 주시고 축복을 주시니 하나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깨닫고 예수님을 진정 구주로 영접하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입술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요한일서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하신 대로 진정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어두움의 일을 벗고 날마다 빛 가운데 행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면 어찌 응답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마태복음 7:11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약속하신 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이나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본교회에서도 눈을 뜨는 역사가 나타나
1982년 교회 개척 이후 지금까지 본교회에서도 눈을 뜨는 역사가 나타나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려 왔습니다. 날 때부터 보이지 않던 눈이 기도받고 보이는가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시력을 되찾아 안경과 콘택트렌즈를 벗고 간증하였지요.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하면 먼저 2002년 7월 온두라스 대성회시 일어났던 역사입니다.
마리아라는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는 두 살 때 심하게 열병을 앓은 후 오른쪽 눈의 시력을 상실한 상태였습니다. 각막 이식 수술을 받았으나 실패하여 10년 동안 오른쪽 눈으로는 빛조차 볼 수 없었는데 성회에 참석하여 저의 기도를 받고 빛을 보기 시작하였고 곧 시력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죽어 버린 눈의 신경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새롭게 창조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또한 리카르도 목사님은 실명의 위기 속에서 단물을 통해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이분은 7년 전 사고로 인해 망막이 상하고 출혈이 심해서 병원에서는 점점 시력을 잃어 앞을 볼 수 없게 된다고 했는데 온두라스 연합대성회시 열렸던 목회자 세미나 첫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믿음으로 권능의 단물을 눈에 넣었는데 놀랍게도 사물이 점점 또렷이 보이는 하나님의 놀라운 권능을 체험한 것입니다.
아프리카 나이로비 지교회의 콤보라는 청년은 가족들에게 전도하면서 본교회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간증하고 저의 기도를 받은 권능의 손수건으로 간절히 기도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교회 달력을 선물로 주었는데 두 눈이 보이지 않는 할머니가 전도하는 손자의 말을 듣고 사모하는 마음으로 달력을 받아 펼치는 순간 두 눈이 떠지고 보이는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시편 18:25-26을 보면 "자비한 자에게는 주의 자비하심을 나타내시며 완전한 자에게는 주의 완전하심을 보이시며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니"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믿음의 행함으로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0-20
제42과빛의 권능
요일 1:5
읽을말씀 : 요일 1:5 | 외울말씀 : 요일 1:5
교육목표 : 온전한 성결을 이루어 권능의 차원에 이름으로 마음껏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며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 속한 빛 안에는 창조주 하나님만의 권세와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권능의 빛이 임하면 원수 마귀 사단의 어두운 세력들이 떠날 수밖에 없으며 갖가지 인생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질병과 연약함이 치료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권능의 빛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지, 권능의 초입 단계부터 완성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또한 피조물의 차원을 넘어선 권능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피조물로서 행할 수 있는 권능의 4단계
권능을 받은 초입단계에서부터 피조물로서 행할 수 있는 최고의 권능까지는 크게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즉 사람으로서 행할 수 있는 권능은 네 단계의 권능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권능의 빛이 임하면 각 단계별로 어떠한 역사들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1) 권능의 1단계 : 성령의 불로 태우는 단계로서 '붉은 빛'으로 역사되는 단계
성령의 불은 온갖 병균이나 바이러스, 세균 등에 의해 생긴 갖가지 질병들을 태워서 치료하게 되는데 백혈병이나 암, 에이즈와 같은 병들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런데 권능의 1단계와 병 고치는 은사와는 구분해야 합니다. 권능은 일단 주어지면 항상 나타나지만 병 고치는 은사는 항상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하게 쓰이면 거두어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능력 면에 있어서도 병 고치는 은사와 권능과는 전혀 다릅니다. 병 고치는 은사는 아주 중한 병이나 희귀한 병과 같은 경우 쉽게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환자가 믿음이 적은 경우는 더 어렵지요. 그러나 권능의 단계에서는 환자가 조금만 믿음을 내보여도 단번에 역사될 수가 있습니다.
2) 권능의 2단계 : '푸른 빛'을 통해 역사되는 단계로서 영안이 열려 보면 마치 레이저광선과 같은 빛들이 쏟아져 나가 역사되는 단계
권능의 2단계에서는 먼저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쳐 줍니다. 예를 들어, 귀신 들린 사람, 사단의 역사를 받는 사람, 그리고 각종 세력으로 역사받는 사람에게 빛이 임하여 그를 사로잡고 있는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쳐 주지요. 자폐증 중에도 어두움의 세력으로 인한 것이나 그 밖에 정신적인 이상과 신경성 질병들이 치료됩니다.
또한 귀머거리, 소경, 벙어리 중에서도 귀신의 역사로 인해 생긴 경우, 사단의 역사로 인해 신경쇠약에 걸리고 그로 인해 위장과 같은 소화기 계통까지 이상이 생긴 경우,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쳐 줄 때 함께 치료되는 것을 봅니다.
이 밖에도 병원에서 진찰해 보면 아무 이상이 없는데 이곳저곳이 아픈 경우도 귀신이나 악한 영에 의한 것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는 신속히 우상을 버리고 그동안 지었던 우상 숭배의 죄를 철저히 통회자복했을 때 권능의 빛이 임하여 사로잡고 있던 귀신이나 악한 영들을 물리쳐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또 권능의 2단계의 빛이 임하면 가정이나 사업터, 일터에 어두움의 세력이 물러가 축복이 임하지요.
다음으로, 권능의 2단계에서는 몸에서 떠난 영혼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다시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허락하셨을 때만 기도하여 영혼을 불러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잠시 몸을 떠났던 영혼을 불러오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역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장사된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향해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셨을 때,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창조의 최상의 권능이지요. 더욱이 다른 선지자나 사도가 떠난 영혼을 불러온 것은 일회성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권능을 여러 번 행하심으로 피조물과는 권능의 차원이 분명히 달랐음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3) 권능의 3단계 : '무색 또는 흰색'의 빛으로 역사되는 단계
3단계의 권능이 나타나면 모든 종류의 표적이 따르게 되는데 여기서 '표적'이란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며 들리지 않는 귀가 들리는 것, 또한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짧았던 다리가 길어지며 소아마비나 뇌성마비가 온전해지는 등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 외에도 나면서부터 기형이나 불구가 된 신체의 부분이나 완전히 퇴화된 부분이 온전케 되는 것, 그리고 부스러진 뼈가 붙어서 정상이 되거나 없던 뼈가 생겨나고 끊어진 힘줄이 붙는 것 등도 권능의 3단계에서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또한 권능의 3단계에서는 창조의 역사도 나타나므로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며 나쁜 눈이 좋은 눈으로, 잘 안 들리던 귀가 잘 들리는 귀로, 썩었거나 완전히 기능을 잃었던 오장육부가 새롭게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권능의 4단계 : 황금색으로 역사되는 단계로서 권능의 완성 단계
'권능의 완성'이란 피조물로서 행할 수 있는 권능의 완성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권능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창세 이래 지금까지 피조물로서는 권능의 4단계를 이룬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권능만이 권능의 4단계라 할 수 있는데, 사실 예수님께서는 4단계의 권능으로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설명드릴 창조의 최상의 권능, 곧 모든 권능의 완성 단계에서 행하신 것입니다.
권능의 4단계는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단계로서 천기를 움직이는 기사(奇事)가 나타나고 무생물도 명하는 대로 순종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물론 창조의 역사도 나타나는데,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와 말씀으로만 명하셔도 역사가 나타나는 단계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잔잔케 되고(마 8:23-27),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나무가 곧 말라 버렸습니다(마 21:18-19). 이처럼 자연과 만물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되었던 것입니다. 이 밖에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씀으로만 하셔도 환자가 그 시로 치료되는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마 8:8-13).
오늘날에도 본교회에서는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는 순간 멈추는 놀라운 기사가 일어나기도 하고 주변은 억수같이 비가 오는 때라도 본교회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오지 않으며, 짙은 구름이 기도하는 순간에 사라지고 반짝이는 별들이 드러나는 체험을 하지요. 올 하계 수련회시에도 전국이 찜통더위 속에 있는데 본교회 수련회 장소만은 시원한 날씨가 계속되었으며 심지어 춥다고 긴팔옷을 입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비도 야외 행사들을 피하여 내림으로 마치 비구름이 우리 일정에 맞춰서 움직이는 것 같았지요. 이 밖에도 '화기야 물러가라' 명하면 무생물인 화기도 권능 앞에 순종하여 물러가는 것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2. 피조물 차원 이상의 권능
권능의 4단계보다 높은 권능의 단계가 있는데 바로 피조물의 한계 안에서가 아닌 창조주의 입장에서 베풀어지는 권능의 역사입니다. 권능의 4단계 역시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권능이며,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권능이지요. 그런데 권능의 4단계까지는 권능을 행하는 사람 편에서 그릇이 준비된 만큼 하나님의 권능을 끌어내리는 단계입니다. 준비된 그릇의 한계 안에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1) 창조의 근본된 권능
권능의 4단계 이상인 창조의 근본된 권능의 단계부터는 이러한 한계가 없으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역사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외적으로 보기에는 4단계의 권능에서 일어나는 것들과 동일한 역사를 베푼다 해도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똑같이 치료의 역사가 나타난다 해도 창조의 근본된 권능으로는 단에서만 기도해도 동시에 수천, 수만 명에게 치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4단계의 권능으로 일일이 손을 얹고 기도할 때보다 오히려 더 크게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계 여러 연합대성회에서는 단에서 기도한 것만으로도 귀신이 나가고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앉은뱅이, 소아마비 등의 연약함과 에이즈를 비롯한 각종 불치, 난치병들이 치료되었지요.
이뿐 아니라 창조의 근본된 권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많은 기사들이 따르는데, 한 예로 본교회의 각종 행사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태양 주위에 원형 무지개나 이중, 삼중, 사중 원형 무지개 등 기이하고 희한한 무지개들이 계속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심지어는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또한 시공을 초월하여 전남 무안 앞 바다의 짠물이 단물로 변화된 사건과 이 단물을 통한 수많은 치료의 역사들, 사진이나 이름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도 시공을 초월하여 나타나는 치료의 역사들은 셀 수도 없습니다.
2) 창조의 최상의 완성된 권능
창조의 최상의 완성된 권능은 창조의 근본된 권능과는 또 다른 차원이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태초에 빛으로 홀로 계실 때의 바로 그 빛으로부터 나오는 권능입니다. 이것은 모든 권능의 최종 완성을 이루는 단계로서 창조의 최상의 권능을 마음껏 펼쳐 나갈 때가 바로 성령의 역사를 100% 나타내는 때이지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만물을 만드시면서 단지 말씀으로 명하여 이루셨던 것처럼 창조의 최상의 권능의 완성이 이루어지면 그때는 말씀으로만 명하여도 그대로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소경에게 "눈을 떠라" 하면 그 즉시 눈을 떠서 보게 되고 벙어리에게 "말하라" 하면 그 자리에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게 되지요. 어떤 연약함도 그 자리에서 명하는 대로 온전해지고 죽은 자도 "일어나라" 하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걷는 것은 물론이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12에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보다 더 큰 일도 능히 이루어낼 수가 있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깨어 기도하여 온전한 성결을 이룸으로 권능의 차원에까지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증거하여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며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온전한 성결을 이루어 권능의 차원에 이름으로 마음껏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며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 속한 빛 안에는 창조주 하나님만의 권세와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권능의 빛이 임하면 원수 마귀 사단의 어두운 세력들이 떠날 수밖에 없으며 갖가지 인생의 문제들이 해결되고 질병과 연약함이 치료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권능의 빛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분류할 수 있는지, 권능의 초입 단계부터 완성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또한 피조물의 차원을 넘어선 권능에는 어떠한 것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피조물로서 행할 수 있는 권능의 4단계
권능을 받은 초입단계에서부터 피조물로서 행할 수 있는 최고의 권능까지는 크게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즉 사람으로서 행할 수 있는 권능은 네 단계의 권능 안에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권능의 빛이 임하면 각 단계별로 어떠한 역사들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1) 권능의 1단계 : 성령의 불로 태우는 단계로서 '붉은 빛'으로 역사되는 단계
성령의 불은 온갖 병균이나 바이러스, 세균 등에 의해 생긴 갖가지 질병들을 태워서 치료하게 되는데 백혈병이나 암, 에이즈와 같은 병들도 여기에 속합니다.
그런데 권능의 1단계와 병 고치는 은사와는 구분해야 합니다. 권능은 일단 주어지면 항상 나타나지만 병 고치는 은사는 항상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하게 쓰이면 거두어질 수도 있습니다.
또한 능력 면에 있어서도 병 고치는 은사와 권능과는 전혀 다릅니다. 병 고치는 은사는 아주 중한 병이나 희귀한 병과 같은 경우 쉽게 치료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더욱이 환자가 믿음이 적은 경우는 더 어렵지요. 그러나 권능의 단계에서는 환자가 조금만 믿음을 내보여도 단번에 역사될 수가 있습니다.
2) 권능의 2단계 : '푸른 빛'을 통해 역사되는 단계로서 영안이 열려 보면 마치 레이저광선과 같은 빛들이 쏟아져 나가 역사되는 단계
권능의 2단계에서는 먼저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쳐 줍니다. 예를 들어, 귀신 들린 사람, 사단의 역사를 받는 사람, 그리고 각종 세력으로 역사받는 사람에게 빛이 임하여 그를 사로잡고 있는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쳐 주지요. 자폐증 중에도 어두움의 세력으로 인한 것이나 그 밖에 정신적인 이상과 신경성 질병들이 치료됩니다.
또한 귀머거리, 소경, 벙어리 중에서도 귀신의 역사로 인해 생긴 경우, 사단의 역사로 인해 신경쇠약에 걸리고 그로 인해 위장과 같은 소화기 계통까지 이상이 생긴 경우, 어두움의 세력을 물리쳐 줄 때 함께 치료되는 것을 봅니다.
이 밖에도 병원에서 진찰해 보면 아무 이상이 없는데 이곳저곳이 아픈 경우도 귀신이나 악한 영에 의한 것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는 신속히 우상을 버리고 그동안 지었던 우상 숭배의 죄를 철저히 통회자복했을 때 권능의 빛이 임하여 사로잡고 있던 귀신이나 악한 영들을 물리쳐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또 권능의 2단계의 빛이 임하면 가정이나 사업터, 일터에 어두움의 세력이 물러가 축복이 임하지요.
다음으로, 권능의 2단계에서는 몸에서 떠난 영혼을 불러올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나 다시 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허락하셨을 때만 기도하여 영혼을 불러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잠시 몸을 떠났던 영혼을 불러오는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신 역사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장사된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향해 예수님께서 "나사로야, 나오라" 부르셨을 때, 나사로가 살아난 것은 창조의 최상의 권능이지요. 더욱이 다른 선지자나 사도가 떠난 영혼을 불러온 것은 일회성이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권능을 여러 번 행하심으로 피조물과는 권능의 차원이 분명히 달랐음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3) 권능의 3단계 : '무색 또는 흰색'의 빛으로 역사되는 단계
3단계의 권능이 나타나면 모든 종류의 표적이 따르게 되는데 여기서 '표적'이란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며 들리지 않는 귀가 들리는 것, 또한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짧았던 다리가 길어지며 소아마비나 뇌성마비가 온전해지는 등의 역사를 말합니다. 이 외에도 나면서부터 기형이나 불구가 된 신체의 부분이나 완전히 퇴화된 부분이 온전케 되는 것, 그리고 부스러진 뼈가 붙어서 정상이 되거나 없던 뼈가 생겨나고 끊어진 힘줄이 붙는 것 등도 권능의 3단계에서 일어나는 역사입니다.
또한 권능의 3단계에서는 창조의 역사도 나타나므로 보이지 않던 눈이 보이고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며 나쁜 눈이 좋은 눈으로, 잘 안 들리던 귀가 잘 들리는 귀로, 썩었거나 완전히 기능을 잃었던 오장육부가 새롭게 바뀌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권능의 4단계 : 황금색으로 역사되는 단계로서 권능의 완성 단계
'권능의 완성'이란 피조물로서 행할 수 있는 권능의 완성을 말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권능의 완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창세 이래 지금까지 피조물로서는 권능의 4단계를 이룬 사람이 없었습니다. 오직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권능만이 권능의 4단계라 할 수 있는데, 사실 예수님께서는 4단계의 권능으로 역사하신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설명드릴 창조의 최상의 권능, 곧 모든 권능의 완성 단계에서 행하신 것입니다.
권능의 4단계는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단계로서 천기를 움직이는 기사(奇事)가 나타나고 무생물도 명하는 대로 순종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물론 창조의 역사도 나타나는데,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와 말씀으로만 명하셔도 역사가 나타나는 단계입니다.
예수님께서 바람과 바다를 꾸짖으시니 잔잔케 되고(마 8:23-27),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향해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하시니 나무가 곧 말라 버렸습니다(마 21:18-19). 이처럼 자연과 만물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되었던 것입니다. 이 밖에도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씀으로만 하셔도 환자가 그 시로 치료되는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마 8:8-13).
오늘날에도 본교회에서는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는 순간 멈추는 놀라운 기사가 일어나기도 하고 주변은 억수같이 비가 오는 때라도 본교회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오지 않으며, 짙은 구름이 기도하는 순간에 사라지고 반짝이는 별들이 드러나는 체험을 하지요. 올 하계 수련회시에도 전국이 찜통더위 속에 있는데 본교회 수련회 장소만은 시원한 날씨가 계속되었으며 심지어 춥다고 긴팔옷을 입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습니다. 비도 야외 행사들을 피하여 내림으로 마치 비구름이 우리 일정에 맞춰서 움직이는 것 같았지요. 이 밖에도 '화기야 물러가라' 명하면 무생물인 화기도 권능 앞에 순종하여 물러가는 것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2. 피조물 차원 이상의 권능
권능의 4단계보다 높은 권능의 단계가 있는데 바로 피조물의 한계 안에서가 아닌 창조주의 입장에서 베풀어지는 권능의 역사입니다. 권능의 4단계 역시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권능이며,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권능이지요. 그런데 권능의 4단계까지는 권능을 행하는 사람 편에서 그릇이 준비된 만큼 하나님의 권능을 끌어내리는 단계입니다. 준비된 그릇의 한계 안에서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1) 창조의 근본된 권능
권능의 4단계 이상인 창조의 근본된 권능의 단계부터는 이러한 한계가 없으며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역사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외적으로 보기에는 4단계의 권능에서 일어나는 것들과 동일한 역사를 베푼다 해도 근본적으로 차원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똑같이 치료의 역사가 나타난다 해도 창조의 근본된 권능으로는 단에서만 기도해도 동시에 수천, 수만 명에게 치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4단계의 권능으로 일일이 손을 얹고 기도할 때보다 오히려 더 크게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계 여러 연합대성회에서는 단에서 기도한 것만으로도 귀신이 나가고 소경, 귀머거리, 벙어리, 앉은뱅이, 소아마비 등의 연약함과 에이즈를 비롯한 각종 불치, 난치병들이 치료되었지요.
이뿐 아니라 창조의 근본된 권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많은 기사들이 따르는데, 한 예로 본교회의 각종 행사나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마다 태양 주위에 원형 무지개나 이중, 삼중, 사중 원형 무지개 등 기이하고 희한한 무지개들이 계속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심지어는 하늘에 갑자기 구름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지요. 또한 시공을 초월하여 전남 무안 앞 바다의 짠물이 단물로 변화된 사건과 이 단물을 통한 수많은 치료의 역사들, 사진이나 이름 위에 손을 얹고 기도해도 시공을 초월하여 나타나는 치료의 역사들은 셀 수도 없습니다.
2) 창조의 최상의 완성된 권능
창조의 최상의 완성된 권능은 창조의 근본된 권능과는 또 다른 차원이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태초에 빛으로 홀로 계실 때의 바로 그 빛으로부터 나오는 권능입니다. 이것은 모든 권능의 최종 완성을 이루는 단계로서 창조의 최상의 권능을 마음껏 펼쳐 나갈 때가 바로 성령의 역사를 100% 나타내는 때이지요.
창조주 하나님께서 태초에 천지만물을 만드시면서 단지 말씀으로 명하여 이루셨던 것처럼 창조의 최상의 권능의 완성이 이루어지면 그때는 말씀으로만 명하여도 그대로 역사가 나타납니다. 예를 들면, 소경에게 "눈을 떠라" 하면 그 즉시 눈을 떠서 보게 되고 벙어리에게 "말하라" 하면 그 자리에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게 되지요. 어떤 연약함도 그 자리에서 명하는 대로 온전해지고 죽은 자도 "일어나라" 하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처럼 물 위를 걷는 것은 물론이고,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12에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보다 더 큰 일도 능히 이루어낼 수가 있는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깨어 기도하여 온전한 성결을 이룸으로 권능의 차원에까지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증거하여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며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0-13
제41과빛
요일 1:5
읽을말씀 : 요일 1:5 | 외울말씀 : 요일 1:5
교육목표 :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나타나 범사에 형통한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빛은 어두움을 밝혀 주고 해로운 세균과 곰팡이를 죽이며 식물의 광합성 작용도 일으킵니다. 빛에는 이러한 육적인 빛도 있지만 영적인 빛도 있으며 그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캄캄한 밤에 빛이 임하면 어두움이 사라지듯이 우리 삶에도 영적인 빛이 임하면 영적인 어두움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영적인 어두움이 있으면 질병, 가족, 일터의 문제 등으로 참된 평안을 얻지 못하지만 영적인 빛이 임하게 되면 사람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이 응답되기 때문입니다.
1. 영적인 빛이란 무엇인가?
요한일서 1:5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하셨으며 요한복음 1:1에는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셨으니 빛은 하나님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물론, 진리요 선이요 사랑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 광활한 우주 공간에 홀로 존재하고 계셨는데 이때는 어떤 형상을 입고 계신 것이 아니라 빛과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진 상태에서 전 우주를 품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빛과 소리로 존재하시던 하나님께서는 참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의 섭리를 계획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되어 하나의 형상을 입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질은 여전히 빛과 소리이시며 지금도 빛과 소리로써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비록 사람과 같은 형상을 입고 계시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긴 빛과 소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빛에는 하나님의 능력뿐만 아니라 사랑과 선을 비롯한 모든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 66권은 영적인 빛에 담긴 진리들을 소리로 발하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란 성경에 기록되어진 "사랑하라, 기도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 등과 같이 선과 의, 사랑에 관한 모든 진리의 말씀들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만나려면 빛 가운데 행해야
빛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므로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 각종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으려면 원수 마귀가 주관하는 어두움의 세계에서 나와 빛의 세계로 들어와야 합니다.
성경에는 사랑하라, 섬기라, 기뻐하라 등 "~을 하라" 하신 말씀과 안식일을 지키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 등 "~을 지키라"는 말씀,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 미워하지 말라, 자기 유익을 구치 말라, 시기하지 말라 등 "~을 하지 말라"는 말씀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탐심을 버리라 등 "~을 버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요,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이며 또한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사귐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우리는 영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있는데 곧 죄를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두움 가운데 행하면서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 이는 거짓말이라는 것이지요(요일 1:6). 여기서 사귐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 편에서 누구를 안다고 해서 그와 사귐이 있다 말할 수는 없는 것이요, 서로가 서로를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 서로가 믿고 신뢰하며 대화할 수 있는 가까운 사이까지 되어야 합니다.
만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이렇게 깊은 사귐이 있다면 병들고 연약할 리가 없으며 가난할 리도 없고 응답받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신명기 28장에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지켜 행하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며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않게 하시고, 머리되고 꼬리되지 않는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항상 좋은 것만 주시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과 진정한 사귐이 있었던 다윗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신 다윗은 하나님과 어떠한 사귐이 있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범사에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울 왕에게 쫓겨 도망 다닐 때나 전쟁에 나가 싸울 때도 "올라가리이까, 어디로 가리이까" 하며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묻듯이 일일이 하나님께 여쭈어 행하였지요. 하나님께서도 이러한 다윗에게 너무나도 자상하게 알려 주시므로 다윗은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할 수 있었습니다(삼하 5:19-25).
이처럼 하나님과 아름다운 사귐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한 예를 들면, 블레셋 군대에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용사가 이스라엘 군대를 조롱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할 때 어린 소년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기에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물맷돌 다섯 개만 들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던진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도록 역사해 주셨고 골리앗이 쓰러지자 전세가 역전되어 이스라엘이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윗은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고 마치 부자간에 대소사를 논하듯이 하나님과 함께 모든 일들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오직 진리를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증거해 주셨지만 어두움을 좇는 사람들은 원수 마귀에 속하므로 빛을 설명해 주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빛을 싫어하고 대적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진리의 빛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또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 감으로 어두움에서 나와 빛 가운데 행하게 되며, 이러한 사람은 설령 지혜가 부족하고 능력이 모자란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빛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고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받아 나감으로 범사에 형통한 길로 인도받을 수 있고 하늘의 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미줄같이 얽히고설킨 문제라 해도 성령께서 친히 갈 길을 알려 주시니 막힐 것이 없고, 혹 장애물이 있더라도 능히 피해 갈 수 있는 것이지요.
고린도전서 3:18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말씀하신 대로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 미련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3:17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성결을 이루고 빛으로 들어가면 하늘로서 지혜와 명철이 오는 것입니다. 더구나 빛 가운데 거하면 없어도 행복하고 부족해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차원에 이르게 되지요.
빌립보서 4:11을 보면 사도 바울이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고백하였는데, 이처럼 빛 가운데 거하면 하나님과 화평함을 이룸으로 늘 마음에 평강이 넘쳐나고 기쁨이 샘솟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어 다투거나 불목할 일이 없고 사랑과 은혜가 넘쳐 항상 감사의 고백이 끊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빛 가운데 행하며 하나님을 닮아 가는 만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말씀하신 대로 만사형통의 축복은 물론 빛이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권능까지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난 후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하니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놀라운 권능을 행하게 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과연 나는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과연 내가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문제는 없다 해도 오랫동안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며 아직도 성령의 음성과 주관도 받지 못하고 있는 분들 역시 자신을 돌아보아 신속히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더구나 어느 정도 악의 모양을 벗어 버렸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자라나 장성하는 것처럼 아비의 신앙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영적으로 깊은 사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결을 향해 달려가는 분들이라면 정녕 자신에게 있는 세세한 악의 모양까지도 철저히 발견하여 뽑아 버려야 합니다. 윗사람이 되고 권세가 생길수록 아랫사람들을 더욱 섬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어야 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말을 들었을 때에 비록 소자의 말이라도 겸손히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의 도리에서 벗어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을 본다 할지라도 마음에 불편함을 갖거나 감정을 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과 덕으로 포용하여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긍휼히 여기며 상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덮어 주며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지요.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스스로의 공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수고한 다른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며 그들이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을 더 기뻐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스스로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편에서 얼마나 인정해 주시는가를 돌아보아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들과 사귐의 증거들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나타나 범사에 형통한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빛은 어두움을 밝혀 주고 해로운 세균과 곰팡이를 죽이며 식물의 광합성 작용도 일으킵니다. 빛에는 이러한 육적인 빛도 있지만 영적인 빛도 있으며 그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캄캄한 밤에 빛이 임하면 어두움이 사라지듯이 우리 삶에도 영적인 빛이 임하면 영적인 어두움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영적인 어두움이 있으면 질병, 가족, 일터의 문제 등으로 참된 평안을 얻지 못하지만 영적인 빛이 임하게 되면 사람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이 응답되기 때문입니다.
1. 영적인 빛이란 무엇인가?
요한일서 1:5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하셨으며 요한복음 1:1에는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셨으니 빛은 하나님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물론, 진리요 선이요 사랑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 광활한 우주 공간에 홀로 존재하고 계셨는데 이때는 어떤 형상을 입고 계신 것이 아니라 빛과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진 상태에서 전 우주를 품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빛과 소리로 존재하시던 하나님께서는 참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의 섭리를 계획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되어 하나의 형상을 입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질은 여전히 빛과 소리이시며 지금도 빛과 소리로써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비록 사람과 같은 형상을 입고 계시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긴 빛과 소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빛에는 하나님의 능력뿐만 아니라 사랑과 선을 비롯한 모든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 66권은 영적인 빛에 담긴 진리들을 소리로 발하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란 성경에 기록되어진 "사랑하라, 기도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 등과 같이 선과 의, 사랑에 관한 모든 진리의 말씀들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만나려면 빛 가운데 행해야
빛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므로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 각종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으려면 원수 마귀가 주관하는 어두움의 세계에서 나와 빛의 세계로 들어와야 합니다.
성경에는 사랑하라, 섬기라, 기뻐하라 등 "~을 하라" 하신 말씀과 안식일을 지키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 등 "~을 지키라"는 말씀,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 미워하지 말라, 자기 유익을 구치 말라, 시기하지 말라 등 "~을 하지 말라"는 말씀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탐심을 버리라 등 "~을 버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요,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이며 또한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사귐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우리는 영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있는데 곧 죄를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두움 가운데 행하면서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 이는 거짓말이라는 것이지요(요일 1:6). 여기서 사귐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 편에서 누구를 안다고 해서 그와 사귐이 있다 말할 수는 없는 것이요, 서로가 서로를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 서로가 믿고 신뢰하며 대화할 수 있는 가까운 사이까지 되어야 합니다.
만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이렇게 깊은 사귐이 있다면 병들고 연약할 리가 없으며 가난할 리도 없고 응답받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신명기 28장에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지켜 행하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며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않게 하시고, 머리되고 꼬리되지 않는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항상 좋은 것만 주시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과 진정한 사귐이 있었던 다윗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신 다윗은 하나님과 어떠한 사귐이 있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범사에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울 왕에게 쫓겨 도망 다닐 때나 전쟁에 나가 싸울 때도 "올라가리이까, 어디로 가리이까" 하며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묻듯이 일일이 하나님께 여쭈어 행하였지요. 하나님께서도 이러한 다윗에게 너무나도 자상하게 알려 주시므로 다윗은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할 수 있었습니다(삼하 5:19-25).
이처럼 하나님과 아름다운 사귐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한 예를 들면, 블레셋 군대에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용사가 이스라엘 군대를 조롱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할 때 어린 소년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기에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물맷돌 다섯 개만 들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던진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도록 역사해 주셨고 골리앗이 쓰러지자 전세가 역전되어 이스라엘이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윗은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고 마치 부자간에 대소사를 논하듯이 하나님과 함께 모든 일들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오직 진리를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증거해 주셨지만 어두움을 좇는 사람들은 원수 마귀에 속하므로 빛을 설명해 주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빛을 싫어하고 대적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진리의 빛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또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 감으로 어두움에서 나와 빛 가운데 행하게 되며, 이러한 사람은 설령 지혜가 부족하고 능력이 모자란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빛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고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받아 나감으로 범사에 형통한 길로 인도받을 수 있고 하늘의 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미줄같이 얽히고설킨 문제라 해도 성령께서 친히 갈 길을 알려 주시니 막힐 것이 없고, 혹 장애물이 있더라도 능히 피해 갈 수 있는 것이지요.
고린도전서 3:18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말씀하신 대로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 미련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3:17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성결을 이루고 빛으로 들어가면 하늘로서 지혜와 명철이 오는 것입니다. 더구나 빛 가운데 거하면 없어도 행복하고 부족해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차원에 이르게 되지요.
빌립보서 4:11을 보면 사도 바울이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고백하였는데, 이처럼 빛 가운데 거하면 하나님과 화평함을 이룸으로 늘 마음에 평강이 넘쳐나고 기쁨이 샘솟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어 다투거나 불목할 일이 없고 사랑과 은혜가 넘쳐 항상 감사의 고백이 끊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빛 가운데 행하며 하나님을 닮아 가는 만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말씀하신 대로 만사형통의 축복은 물론 빛이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권능까지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난 후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하니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놀라운 권능을 행하게 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과연 나는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과연 내가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문제는 없다 해도 오랫동안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며 아직도 성령의 음성과 주관도 받지 못하고 있는 분들 역시 자신을 돌아보아 신속히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더구나 어느 정도 악의 모양을 벗어 버렸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자라나 장성하는 것처럼 아비의 신앙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영적으로 깊은 사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결을 향해 달려가는 분들이라면 정녕 자신에게 있는 세세한 악의 모양까지도 철저히 발견하여 뽑아 버려야 합니다. 윗사람이 되고 권세가 생길수록 아랫사람들을 더욱 섬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어야 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말을 들었을 때에 비록 소자의 말이라도 겸손히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의 도리에서 벗어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을 본다 할지라도 마음에 불편함을 갖거나 감정을 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과 덕으로 포용하여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긍휼히 여기며 상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덮어 주며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지요.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스스로의 공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수고한 다른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며 그들이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을 더 기뻐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스스로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편에서 얼마나 인정해 주시는가를 돌아보아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들과 사귐의 증거들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0-06
제40과추석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1. 추석의 유래
추석은 우리 민족이 신라시대부터 지내온 명절로 오늘날에도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에 속합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다른 말로 한가위라고도 부르는데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즉 8월 15일인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길쌈"이란 실을 짜는 일을 말합니다. 신라 유리왕 때 한가위 한 달 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베를 짜서 한 달 뒤인 한가윗날 그동안 베를 짠 양을 가지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와 춤으로 갚은 것에서 "가배"라는 말이 나왔는데 후에 "가위"라는 말로 변했습니다. 또 한문으로는 "배"라고도 하는데 이날은 설과 단오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절의 하나입니다. 추석이 되면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철로 접어드는데 이 무렵에는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우리의 큰 명절로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속담 중에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2. 추석에 대한 성경적 이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절기로서 초실절(맥추감사절)과 수장절(추수감사절)을 주셔서 지키게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이러한 감사의 절기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3. 추석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은혜 가운데 풍성한 수확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시겠습니다.
묵상기도------------------------------------------------------------------- 다같이
기 원-----------------------------------------------------------------------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아멘 -
찬 송------------------------- 460장 --------------------------------------- 다같이
신앙고백 -------------------- 사도신경 -------------------------------------다같이
기 도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 아침에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지난날들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추석 명절의 의미를 잘 알아서 더욱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시고,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모든 가족들도 기억하여 주옵시고 늘 주님의 품 안에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모든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추석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민 6:24-26 ------------------------------------- 인도자
설 교 ------------------------------------------------------------------------ 설교자
기 도 ------------------------------------------------------------------------ 설교자
찬 송 ------------------------------------------------------------------------ 다같이
주기도문 ---------------------------------------------------------------------다같이
4. 설교 예문
본 문 : 민수기 6 : 24-26 ( 제목 :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오늘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역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1)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지켜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오늘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으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소년이 되어서는 스승님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이들에게는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곧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환난과 재앙 많은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3)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평강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오늘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온 가족들을 평강 가운데 지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추석이면 으레 음식과 과일을 차려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을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간에 화목하고 우애 있게 지내며 부모님 살아생전에 효도를 다하는 자녀가 되며 온 가족이 주 하나님을 잘 섬겨 복받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가족은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1. 추석의 유래
추석은 우리 민족이 신라시대부터 지내온 명절로 오늘날에도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에 속합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다른 말로 한가위라고도 부르는데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즉 8월 15일인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길쌈"이란 실을 짜는 일을 말합니다. 신라 유리왕 때 한가위 한 달 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베를 짜서 한 달 뒤인 한가윗날 그동안 베를 짠 양을 가지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와 춤으로 갚은 것에서 "가배"라는 말이 나왔는데 후에 "가위"라는 말로 변했습니다. 또 한문으로는 "배"라고도 하는데 이날은 설과 단오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절의 하나입니다. 추석이 되면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철로 접어드는데 이 무렵에는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우리의 큰 명절로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속담 중에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2. 추석에 대한 성경적 이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절기로서 초실절(맥추감사절)과 수장절(추수감사절)을 주셔서 지키게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이러한 감사의 절기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3. 추석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은혜 가운데 풍성한 수확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시겠습니다.
묵상기도------------------------------------------------------------------- 다같이
기 원-----------------------------------------------------------------------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아멘 -
찬 송------------------------- 460장 --------------------------------------- 다같이
신앙고백 -------------------- 사도신경 -------------------------------------다같이
기 도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 아침에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지난날들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추석 명절의 의미를 잘 알아서 더욱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시고,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모든 가족들도 기억하여 주옵시고 늘 주님의 품 안에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모든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추석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민 6:24-26 ------------------------------------- 인도자
설 교 ------------------------------------------------------------------------ 설교자
기 도 ------------------------------------------------------------------------ 설교자
찬 송 ------------------------------------------------------------------------ 다같이
주기도문 ---------------------------------------------------------------------다같이
4. 설교 예문
본 문 : 민수기 6 : 24-26 ( 제목 :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오늘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역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1)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지켜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오늘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으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소년이 되어서는 스승님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이들에게는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곧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환난과 재앙 많은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3)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평강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오늘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온 가족들을 평강 가운데 지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추석이면 으레 음식과 과일을 차려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을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간에 화목하고 우애 있게 지내며 부모님 살아생전에 효도를 다하는 자녀가 되며 온 가족이 주 하나님을 잘 섬겨 복받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가족은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9-29
제39과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
디후 2:20-21
읽을말씀 : 디후 2:20-21 | 외울말씀 : 디후 2:20-21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것을 철저히 벗어 버림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많은 돌무더기 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있다면 금방 눈에 띄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된 사람들도 하나님의 눈에 금방 띄게 됩니다.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을 발견하신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기뻐하시며 그를 지극히 사랑하여 범사에 넘치는 축복과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으로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증거하겠습니다.
1.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란?
디모데후서 2:20-21에 보면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릇에 비유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릇으로 비유한 것은 그 안에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와 하나님의 권능도 담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떠한 그릇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각양 좋은 은사들과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릇에는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등 여러 종류가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라 해도 그 그릇됨은 다 다릅니다. 에베소서 4:24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말씀하신 대로 얼마나 새사람을 입느냐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의 존귀함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참자녀들을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보배로운 산 돌'(벧전 2:4)에 비유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보석보다 아름답기 때문이지요.
2.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1)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깨끗케 하여 성결을 이루어야 합니다
금그릇이 아무리 비싸고 보기 좋아도 만일 더럽고 냄새나는 오물이 묻어 있다면 사용할 수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응답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각양의 은사들, 그리고 물질의 복, 건강의 복 등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17:9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했고, 마태복음 15:18-19에는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씻어내야 하나님 앞에 깨끗한 그릇이 될 수 있는데, 바로 물인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엡 5:26, 히 10:22).
그렇다면 영적인 물인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씻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요? 마음을 씻는 작용을 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곧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 마음에 있는 더러운 죄성들과 악성들이 버려지고, 다시 더러워지지 않으니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이 깨끗이 씻겨진 사람들은 자연히 행실도 진리 안에서 깨끗하게 나옵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하던 사람이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혈기 부리던 사람이 혈기 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등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겨지면 겉도 깨끗한 진리의 행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참으로 깨끗한 그릇이다 인정해 주시며 예비하신 복을 쏟아 부어 주십니다
2) 연단을 잘 받아서 영적인 빛을 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지나 목걸이로 쓰이는 보석들의 경우, 원석에는 불순물들이 섞여 있었지만 기술자의 손에 연마되어 예쁜 빛깔과 형태를 찾게 된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만하면 됐다" 싶을 때도 전문가들은 더 연마해서 정교하게 다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도 그의 자녀들에게 영육간에 축복을 주시기 위해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가 보석처럼 더 아름다운 빛깔과 광택을 갖게 하시고자 단련하시는 과정이지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2:19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했고, 베드로전서 1:7에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그릇이 되었다 할지라도 보석처럼 찬란한 빛을 더해 주시고자 때를 좇아 연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5 후반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는 말씀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도 빛의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해 가십니다. 이를 위해 단계 단계 연단을 허락하시는데, 주어진 연단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고 선과 사랑으로 승리하게 되면 그 이전보다 더욱 밝게 빛나는 영혼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영혼의 빛이 얼마나 밝으냐 하는 것은 영의 세계에서는 권세와 능력의 차이로 나타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두움이니 빛이 임하면 자연히 물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마가복음 9장에는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의 아들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명하시니 귀신은 나가고 귀신들렸던 아이는 온전케 되었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제자들을 먼저 만나 아들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이는 제자들의 영적인 빛과 예수님의 빛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 예수님처럼 밝은 빛의 차원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어떠한 시련이 다가와도 아버지 하나님을 믿음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며,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승리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면서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죄인들을 위해 대신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어떠한 연단 가운데서도 여러분 마음의 믿음과 선과 사랑과 의(義)가 정녕 진실하다는 사실을 영계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뻐하사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십니다.
3.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때 임하는 축복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이 완전한 구세주가 되시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악한 도구로 쓰임 받은 사람들은 자기 악함 속에서 배신이 나왔고, 자기 악 속에서 예수님을 욕하고 비난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열두 제자 중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죄인들의 손에 팔아 넘겼지만,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그리할 것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그를 사랑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 해도 전혀 미운 감정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이것이 바로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시지요. 예수님의 마음도 하나님의 마음처럼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온전한 빛이셨기에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부활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저도 이제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오면서 참으로 수많은 연단과 고통의 시간을 지냈습니다. 특히, 수년 전 모 방송사건을 통해서 목회자로서 죽음과 같은 시련을 겪어야 했지요. 가장 가까이에 있어 제게 은혜를 입었던 사람과 내 가족과 같이 대해 준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심히 큰 죄를 범한 죄인인양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고, 많은 성도들이 애매히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저와 우리 성도님들은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였고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로 용서하시고 안아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교회를 어렵게 만들고 떠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어찌하든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바랬지요. 그래서 일꾼들에게도 악으로 갚지 말 것을 누누이 당부하고 당부했습니다.
이처럼 극심한 연단 속에서도 저는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오해할지라도 아버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어떠한 악을 내게 행한 사람이라도 오직 선과 사랑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습니다. 학업 우수생이라 할지라도 시험 점수를 통해 그 사실이 입증되었을 때 정녕 우수생임을 인정받듯이 제 믿음과 선과 사랑과 의가 연단을 통해 확증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연단을 통과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 전보다 훨씬 크고 놀라운 권능을 행할 수 있도록 세계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신 것입니다. '99년도에 모 방송을 통해 시험이 있었던 후 바로 2000년부터 세계선교의 길을 창대히 열어 주셨지요. 그래서 가는 데마다 특히 회교권이나 힌두교 국가에서도 연인원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넘는 인파가 운집하게 하셨으며, 단에서 제가 '환자를 위한 기도'를 할 때, 시공간을 초월하여 엄청난 권능으로 역사하셔서 치료받은 사람들이 수만, 수십만 명에 이르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저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악을 모양이라도 버리고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된 사람들에게 증거로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흠과 티도 없으며 곱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보석 같은 아름다운 그릇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사랑을 부어 주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것을 철저히 벗어 버림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것을 철저히 벗어 버림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많은 돌무더기 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있다면 금방 눈에 띄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된 사람들도 하나님의 눈에 금방 띄게 됩니다.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을 발견하신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기뻐하시며 그를 지극히 사랑하여 범사에 넘치는 축복과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으로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증거하겠습니다.
1.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란?
디모데후서 2:20-21에 보면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릇에 비유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릇으로 비유한 것은 그 안에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와 하나님의 권능도 담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떠한 그릇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각양 좋은 은사들과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릇에는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등 여러 종류가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라 해도 그 그릇됨은 다 다릅니다. 에베소서 4:24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말씀하신 대로 얼마나 새사람을 입느냐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의 존귀함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참자녀들을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보배로운 산 돌'(벧전 2:4)에 비유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보석보다 아름답기 때문이지요.
2.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1)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깨끗케 하여 성결을 이루어야 합니다
금그릇이 아무리 비싸고 보기 좋아도 만일 더럽고 냄새나는 오물이 묻어 있다면 사용할 수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응답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각양의 은사들, 그리고 물질의 복, 건강의 복 등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17:9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했고, 마태복음 15:18-19에는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씻어내야 하나님 앞에 깨끗한 그릇이 될 수 있는데, 바로 물인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엡 5:26, 히 10:22).
그렇다면 영적인 물인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씻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요? 마음을 씻는 작용을 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곧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 마음에 있는 더러운 죄성들과 악성들이 버려지고, 다시 더러워지지 않으니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이 깨끗이 씻겨진 사람들은 자연히 행실도 진리 안에서 깨끗하게 나옵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하던 사람이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혈기 부리던 사람이 혈기 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등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겨지면 겉도 깨끗한 진리의 행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참으로 깨끗한 그릇이다 인정해 주시며 예비하신 복을 쏟아 부어 주십니다
2) 연단을 잘 받아서 영적인 빛을 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지나 목걸이로 쓰이는 보석들의 경우, 원석에는 불순물들이 섞여 있었지만 기술자의 손에 연마되어 예쁜 빛깔과 형태를 찾게 된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만하면 됐다" 싶을 때도 전문가들은 더 연마해서 정교하게 다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도 그의 자녀들에게 영육간에 축복을 주시기 위해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가 보석처럼 더 아름다운 빛깔과 광택을 갖게 하시고자 단련하시는 과정이지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2:19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했고, 베드로전서 1:7에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그릇이 되었다 할지라도 보석처럼 찬란한 빛을 더해 주시고자 때를 좇아 연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5 후반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는 말씀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도 빛의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해 가십니다. 이를 위해 단계 단계 연단을 허락하시는데, 주어진 연단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고 선과 사랑으로 승리하게 되면 그 이전보다 더욱 밝게 빛나는 영혼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영혼의 빛이 얼마나 밝으냐 하는 것은 영의 세계에서는 권세와 능력의 차이로 나타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두움이니 빛이 임하면 자연히 물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마가복음 9장에는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의 아들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명하시니 귀신은 나가고 귀신들렸던 아이는 온전케 되었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제자들을 먼저 만나 아들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이는 제자들의 영적인 빛과 예수님의 빛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 예수님처럼 밝은 빛의 차원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어떠한 시련이 다가와도 아버지 하나님을 믿음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며,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승리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면서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죄인들을 위해 대신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어떠한 연단 가운데서도 여러분 마음의 믿음과 선과 사랑과 의(義)가 정녕 진실하다는 사실을 영계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뻐하사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십니다.
3.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때 임하는 축복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이 완전한 구세주가 되시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악한 도구로 쓰임 받은 사람들은 자기 악함 속에서 배신이 나왔고, 자기 악 속에서 예수님을 욕하고 비난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열두 제자 중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죄인들의 손에 팔아 넘겼지만,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그리할 것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그를 사랑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 해도 전혀 미운 감정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이것이 바로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시지요. 예수님의 마음도 하나님의 마음처럼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온전한 빛이셨기에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부활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저도 이제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오면서 참으로 수많은 연단과 고통의 시간을 지냈습니다. 특히, 수년 전 모 방송사건을 통해서 목회자로서 죽음과 같은 시련을 겪어야 했지요. 가장 가까이에 있어 제게 은혜를 입었던 사람과 내 가족과 같이 대해 준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심히 큰 죄를 범한 죄인인양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고, 많은 성도들이 애매히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저와 우리 성도님들은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였고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로 용서하시고 안아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교회를 어렵게 만들고 떠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어찌하든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바랬지요. 그래서 일꾼들에게도 악으로 갚지 말 것을 누누이 당부하고 당부했습니다.
이처럼 극심한 연단 속에서도 저는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오해할지라도 아버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어떠한 악을 내게 행한 사람이라도 오직 선과 사랑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습니다. 학업 우수생이라 할지라도 시험 점수를 통해 그 사실이 입증되었을 때 정녕 우수생임을 인정받듯이 제 믿음과 선과 사랑과 의가 연단을 통해 확증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연단을 통과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 전보다 훨씬 크고 놀라운 권능을 행할 수 있도록 세계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신 것입니다. '99년도에 모 방송을 통해 시험이 있었던 후 바로 2000년부터 세계선교의 길을 창대히 열어 주셨지요. 그래서 가는 데마다 특히 회교권이나 힌두교 국가에서도 연인원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넘는 인파가 운집하게 하셨으며, 단에서 제가 '환자를 위한 기도'를 할 때, 시공간을 초월하여 엄청난 권능으로 역사하셔서 치료받은 사람들이 수만, 수십만 명에 이르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저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악을 모양이라도 버리고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된 사람들에게 증거로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흠과 티도 없으며 곱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보석 같은 아름다운 그릇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사랑을 부어 주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것을 철저히 벗어 버림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9-22
제38과주님을 믿는다는 것
히 12:1-2
읽을말씀 : 히 12:1-2 | 외울말씀 : 히 12:1-2
교육목표 : 예수가 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며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참된 믿음의 증거를 보이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각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 자체가 구원받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이 되며, 모든 응답과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 했으며, 왜 예수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 그리고 왜 주 예수를 믿는다고 구원과 응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 했는가?
오늘날 어떤 이는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 중에 한 분으로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결코 사람과 동격으로 생각할 수 없는 구세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왜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을까요? 그 배경부터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시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원수 마귀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을 받아 그만 그 실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6:16에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 말씀하신 대로 사단의 음성을 듣고 그에 순종한 아담과 하와는 원수 마귀에 속한 자가 되고 말았지요.
이처럼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 후손인 모든 인류가 죄성을 타고 나오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런데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으니 영적인 세계에서도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망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요, 이 죽음은 영원한 형벌, 곧 지옥을 말합니다. 첫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거하게 되었으니 모든 사람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류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화목제물로 드려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혔던 죄의 담이 헐어지고 누구든지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예수가 구세주가 되기 위한 네 가지 조건
사도행전 4:12을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여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를 바로 믿기 위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마음 중심에서 깨우쳐야 하지요. 이 세상에도 법이 있어서 그 법대로 사회 질서가 유지되듯이 영계에도 영계의 법이 있어서 이 법칙을 좇아야만 원수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속한 자녀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토지 무르기 법칙을 근거로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구세주가 되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사람이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21을 보면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했습니다. 즉 사망이 사람인 아담으로 인하여 왔으니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의 몸으로 오셨으니 이 조건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범죄한 후로 아담의 핏줄을 타고난 아담의 후예들도 모두 원죄를 물려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도 돈이 없어서 빚을 진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 줄 수 없듯이, 죄인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해 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남녀의 정자,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심으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시며 구세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으신 것입니다.
셋째로,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곧 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시기 때문에 원죄가 없고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셨으므로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7:26을 보면 주님에 대하여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했습니다.
죄가 없는 것이 영계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성경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명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떠나가고 각색 모든 질병과 연약함이 치료되었으며 심지어 죽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는 죄 없으신 예수님이시기에 어둠의 권세를 굴복시키며 사망까지도 이길 힘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죄를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주는 희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지만 피조물인 사람들에게 온갖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또한 나무 십자가에 손과 발을 못 박히시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셨으며, 온몸은 채찍으로 맞으시고 옆구리는 창으로 찔려 물과 피를 다 쏟으셨지요.
갈라디아서 3:13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했습니다. 곧 사망이라는 이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입니다.
또한 레위기 17:11을 보면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했고, 히브리서 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님께서는 흠도 점도 없는 보배 피를 흘려 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죄사함받아 생명을 얻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3.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구원에 이르는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독생자까지 화목제물로 내어 주시며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의 길로 들어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1:17을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셨지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냥 입술로만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다고 어떻게 구원에 이를 수 있으며 또한 참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전에는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영계의 법을 어김으로 그의 모든 후손이 사망의 길로 가고 모든 권세를 원수 마귀에게 넘겨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수 마귀가 영계의 법을 어기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던 것입니다.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씀하셨으니 영계의 법은 오직 죄를 지은 사람만이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는 악한 자들을 사주해서 원죄도 자범죄도 없는 예수님을 죽게 했으니 이것이 바로 원수 마귀의 큰 실책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원수 마귀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내어 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가난이나 질병, 연약함 등 온갖 저주에서 놓임받게 된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에베소서 5:31-32을 보면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했습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아는 사실인데 그것이 무슨 큰 비밀이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성경에 이것을 기록한 것은 바로 여기에는 영적인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이지요.
요한복음 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죄 중에 있을 때는 마귀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께서는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우리는 주님의 신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증거로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이 내주하시며 성령으로 영을 낳게 됩니다. 따라서 성령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진리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남녀가 한 몸을 이루어 생명을 잉태하게 되듯이, 바로 우리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할 때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을 마음 중심에서 믿으면 삶 속에서 그 증거가 나타나게 됩니다. 즉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정녕히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힘쓰게 됩니다. 요한복음 14:23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정녕히 믿는다면 주님을 닮아 가기 위해 기도하며 날마다 변화되어 나가야 합니다. 즉 죄인을 위해 생명까지 내어 주신 주님을 본받아 형제를 위해 희생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주님을 믿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아 주님을 바로 믿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며 항상 응답과 축복 가운데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예수가 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며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참된 믿음의 증거를 보이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각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 자체가 구원받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이 되며, 모든 응답과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 했으며, 왜 예수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 그리고 왜 주 예수를 믿는다고 구원과 응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 했는가?
오늘날 어떤 이는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 중에 한 분으로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결코 사람과 동격으로 생각할 수 없는 구세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왜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을까요? 그 배경부터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시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원수 마귀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을 받아 그만 그 실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6:16에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 말씀하신 대로 사단의 음성을 듣고 그에 순종한 아담과 하와는 원수 마귀에 속한 자가 되고 말았지요.
이처럼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 후손인 모든 인류가 죄성을 타고 나오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런데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으니 영적인 세계에서도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망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요, 이 죽음은 영원한 형벌, 곧 지옥을 말합니다. 첫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거하게 되었으니 모든 사람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류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화목제물로 드려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혔던 죄의 담이 헐어지고 누구든지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예수가 구세주가 되기 위한 네 가지 조건
사도행전 4:12을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여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를 바로 믿기 위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마음 중심에서 깨우쳐야 하지요. 이 세상에도 법이 있어서 그 법대로 사회 질서가 유지되듯이 영계에도 영계의 법이 있어서 이 법칙을 좇아야만 원수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속한 자녀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토지 무르기 법칙을 근거로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구세주가 되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사람이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21을 보면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했습니다. 즉 사망이 사람인 아담으로 인하여 왔으니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의 몸으로 오셨으니 이 조건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범죄한 후로 아담의 핏줄을 타고난 아담의 후예들도 모두 원죄를 물려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도 돈이 없어서 빚을 진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 줄 수 없듯이, 죄인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해 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남녀의 정자,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심으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시며 구세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으신 것입니다.
셋째로,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곧 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시기 때문에 원죄가 없고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셨으므로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7:26을 보면 주님에 대하여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했습니다.
죄가 없는 것이 영계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성경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명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떠나가고 각색 모든 질병과 연약함이 치료되었으며 심지어 죽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는 죄 없으신 예수님이시기에 어둠의 권세를 굴복시키며 사망까지도 이길 힘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죄를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주는 희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지만 피조물인 사람들에게 온갖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또한 나무 십자가에 손과 발을 못 박히시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셨으며, 온몸은 채찍으로 맞으시고 옆구리는 창으로 찔려 물과 피를 다 쏟으셨지요.
갈라디아서 3:13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했습니다. 곧 사망이라는 이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입니다.
또한 레위기 17:11을 보면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했고, 히브리서 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님께서는 흠도 점도 없는 보배 피를 흘려 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죄사함받아 생명을 얻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3.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구원에 이르는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독생자까지 화목제물로 내어 주시며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의 길로 들어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1:17을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셨지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냥 입술로만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다고 어떻게 구원에 이를 수 있으며 또한 참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전에는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영계의 법을 어김으로 그의 모든 후손이 사망의 길로 가고 모든 권세를 원수 마귀에게 넘겨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수 마귀가 영계의 법을 어기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던 것입니다.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씀하셨으니 영계의 법은 오직 죄를 지은 사람만이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는 악한 자들을 사주해서 원죄도 자범죄도 없는 예수님을 죽게 했으니 이것이 바로 원수 마귀의 큰 실책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원수 마귀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내어 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가난이나 질병, 연약함 등 온갖 저주에서 놓임받게 된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에베소서 5:31-32을 보면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했습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아는 사실인데 그것이 무슨 큰 비밀이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성경에 이것을 기록한 것은 바로 여기에는 영적인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이지요.
요한복음 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죄 중에 있을 때는 마귀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께서는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우리는 주님의 신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증거로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이 내주하시며 성령으로 영을 낳게 됩니다. 따라서 성령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진리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남녀가 한 몸을 이루어 생명을 잉태하게 되듯이, 바로 우리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할 때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을 마음 중심에서 믿으면 삶 속에서 그 증거가 나타나게 됩니다. 즉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정녕히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힘쓰게 됩니다. 요한복음 14:23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정녕히 믿는다면 주님을 닮아 가기 위해 기도하며 날마다 변화되어 나가야 합니다. 즉 죄인을 위해 생명까지 내어 주신 주님을 본받아 형제를 위해 희생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주님을 믿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아 주님을 바로 믿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며 항상 응답과 축복 가운데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9-15
제37과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히 11:3
읽을말씀 : 히 11:3 | 외울말씀 : 히 11:3
교육목표 : 하나님을 믿음으로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며 치료받고 응답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막 9:23).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바로 믿을 수가 없고 바로 믿지 못하면 아무리 기도를 한다 해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거나 응답받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시고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항상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놀라운 권능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먼저 하나님은 성경 66권의 저자이십니다. 성경을 비록 사람이 기록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주관하여 기록하게 하신 것이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사람이 상상으로 지어내거나 손으로 조각한 우상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존재하시는 참 신이시지요. 그 밖에도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시며, 빛 자체이시며 끝 날에 만물을 심판하시는 재판장도 되시는 등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놀라운 권능으로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또한 만물을 창조하신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그 크신 권능을 동일하게 나타내 주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1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했고 본문 히브리서 11:3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맨 처음,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천하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사람 또한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음받았으며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던 것입니다.
2.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까닭은 창조라는 것이 세상에서 배운 지식이나 경험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배운 진화론에서는 우연히 생명체가 발생하고 진화되어 오늘날과 같은 생물들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런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게 되니 성경의 말씀들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진화론의 허구성이 밝혀지며, 오히려 창조가 참이라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우리 주변만 살펴보더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창조의 증거들이 수없이 많지요. 예를 들어, 세상에는 수많은 나라와 족속들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의 눈이 모두 두 개씩이지요. 또한 귀도 두 개, 코는 하나, 입도 하나이며 그 위치도 동일한 것을 봅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육지의 짐승들은 물론이고, 하늘을 나는 새와 바다의 물고기 역시 다 마찬가지입니다. 무리의 특성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그 구조와 위치까지도 거의 동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동물들이 동일한 구조를 가진 것은 바로 모든 것들을 동일하게 창조하신 창조주가 계시며 또한 창조주가 한 분이시라는 증거가 됩니다. 이 밖에도 자연과 우주에는 수많은 창조의 증거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하신 대로 자연 만물을 통해서도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인 권능의 역사들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이 아무리 많아도 여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들을 보여 주시는데 바로 권능의 역사들입니다. 즉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권능의 역사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홍해 바다가 둘로 갈라지는가 하면, 태양이 운행을 멈추거나 오히려 뒤로 물러가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도 하고 쓴물이 단물로 변화되며 반석을 치면 물이 솟아나기도 했습니다. 또한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각종 병들이 치료되며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승리를 얻기도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구하기만 하면,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권능의 역사들을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옛날, 성경시대에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전 세계에 믿음 있는 사람들을 통해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특별히 본교회에서는 개척 이후 끊임없는 권능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해 왔습니다.
4. 본교회에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들
본교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질병이나 연약한 것의 치료입니다. 각종 암을 비롯하여 결핵, 중풍, 뇌성마비, 디스크, 관절염, 백혈병 등 치료받지 못하는 질병이 없지요.
해외 성회에서는 에이즈를 치료받은 사람이 많이 있고 귀신들린 사람도 수없이 온전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한 교통사고 후유증이나 치명적인 화상도 깨끗이 치료받았으며 뇌출혈이나 유독 가스 중독으로 인해 이미 의식이 없고 몸이 경직되어 가던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깨어나고 회복된 경우도 허다합니다.
더구나 5년, 7년, 10년, 20년 이상 잉태하지 못했던 부부들이 기도받음으로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많으며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분들도 온전함을 입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소아마비나 사고 등으로 한 쪽이 짧았던 다리가 기도 받은 후 4㎝, 5㎝, 혹은 8㎝씩 길어져서 양쪽 다리 길이가 같아진 분들도 많습니다.
치료의 역사만이 아닙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니 즉시 멈추거나 따가운 햇볕이 내리쬘 때 구름이 몰려와 가려 주는 등 천기까지도 움직여지는 것을 본교회 성도님들은 무수히 체험했지요.
더욱 신기한 것은 직접 기도해 주지 않아도 놀라운 권능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단에서 나가는 전체 기도, 혹은 전화나 테이프에 녹음된 기도, 인터넷이나 TV방송의 기도를 통해서도 응답받고 축복받아 영광을 돌렸습니다.
또 사도행전 19:12을 보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것처럼 제게 기도받은 손수건을 얹고 기도할 때도 저를 통해 나타나는 권능의 역사들이 전 세계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지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 누구나 권능을 체험하고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려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행함으로 드러나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도 "네가 나를 믿는구나" 하고 인정하실 때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5. 믿음의 증거를 내보임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한 성경상의 예
먼저, 엘리사 선지자 당시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나아만은 아람 나라의 존귀한 장군이었는데 하나님의 권능을 행하는 엘리사의 소문을 듣고 자기의 문둥병을 치료받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권세 있는 장군이 먼 나라에서 많은 예물까지 들고 왔는데 엘리사는 그저 시종을 보내어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전해 줄 뿐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분이 상했지만 나아만은 워낙 마음이 선했을 뿐 아니라 주변의 종들도 순종하도록 간언하므로 마음을 돌이켜서 순종함으로 문둥병을 깨끗하게 치료받았습니다.
다음으로, 솔로몬 왕은 정성을 다해 응답받을 그릇을 준비하여 믿음을 인정받은 경우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했지요. 구약 시대에 일천 번의 번제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 그리고 막대한 재물이 들어갑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인정하시고 소원대로 큰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영화와 장수의 축복까지도 주셨지요.
또한 귀신들린 딸을 고침받고자 예수님께 나왔던 수로보니게 여인은 겸비함과 변함없는 믿음의 간구를 통해 응답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딸을 고쳐달라 간구하는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심으로 이방인인 여인을 개에다 비유하셨지요. 그러나 여인은 기분 상하거나 낙심하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겸비하게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고백함으로 예수님께 즉시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밖에도 믿음의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령, 응답받을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얼굴에 기쁨과 감사가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1:24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하셨으니 믿음의 고백을 하며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참믿음이 있다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므로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빛이시니 빛 가운데 살고 하나님은 선하시니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믿음으로 여기시고 기뻐하시며 마음의 소원에 응답하시고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행함과 함께 간구하면 응답해 주십니다.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권능으로 축복해 주시는 분이시니 하나님을 오직 믿음의 행함으로 기쁘시게 하심으로 마음껏 응답과 축복을 받아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믿음으로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며 치료받고 응답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막 9:23).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바로 믿을 수가 없고 바로 믿지 못하면 아무리 기도를 한다 해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거나 응답받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시고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항상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놀라운 권능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먼저 하나님은 성경 66권의 저자이십니다. 성경을 비록 사람이 기록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주관하여 기록하게 하신 것이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사람이 상상으로 지어내거나 손으로 조각한 우상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존재하시는 참 신이시지요. 그 밖에도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시며, 빛 자체이시며 끝 날에 만물을 심판하시는 재판장도 되시는 등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놀라운 권능으로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또한 만물을 창조하신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그 크신 권능을 동일하게 나타내 주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1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했고 본문 히브리서 11:3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맨 처음,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천하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사람 또한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음받았으며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던 것입니다.
2.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까닭은 창조라는 것이 세상에서 배운 지식이나 경험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배운 진화론에서는 우연히 생명체가 발생하고 진화되어 오늘날과 같은 생물들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런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게 되니 성경의 말씀들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진화론의 허구성이 밝혀지며, 오히려 창조가 참이라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우리 주변만 살펴보더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창조의 증거들이 수없이 많지요. 예를 들어, 세상에는 수많은 나라와 족속들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의 눈이 모두 두 개씩이지요. 또한 귀도 두 개, 코는 하나, 입도 하나이며 그 위치도 동일한 것을 봅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육지의 짐승들은 물론이고, 하늘을 나는 새와 바다의 물고기 역시 다 마찬가지입니다. 무리의 특성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그 구조와 위치까지도 거의 동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동물들이 동일한 구조를 가진 것은 바로 모든 것들을 동일하게 창조하신 창조주가 계시며 또한 창조주가 한 분이시라는 증거가 됩니다. 이 밖에도 자연과 우주에는 수많은 창조의 증거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하신 대로 자연 만물을 통해서도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인 권능의 역사들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이 아무리 많아도 여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들을 보여 주시는데 바로 권능의 역사들입니다. 즉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권능의 역사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홍해 바다가 둘로 갈라지는가 하면, 태양이 운행을 멈추거나 오히려 뒤로 물러가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도 하고 쓴물이 단물로 변화되며 반석을 치면 물이 솟아나기도 했습니다. 또한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각종 병들이 치료되며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승리를 얻기도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구하기만 하면,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권능의 역사들을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옛날, 성경시대에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전 세계에 믿음 있는 사람들을 통해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특별히 본교회에서는 개척 이후 끊임없는 권능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해 왔습니다.
4. 본교회에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들
본교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질병이나 연약한 것의 치료입니다. 각종 암을 비롯하여 결핵, 중풍, 뇌성마비, 디스크, 관절염, 백혈병 등 치료받지 못하는 질병이 없지요.
해외 성회에서는 에이즈를 치료받은 사람이 많이 있고 귀신들린 사람도 수없이 온전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한 교통사고 후유증이나 치명적인 화상도 깨끗이 치료받았으며 뇌출혈이나 유독 가스 중독으로 인해 이미 의식이 없고 몸이 경직되어 가던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깨어나고 회복된 경우도 허다합니다.
더구나 5년, 7년, 10년, 20년 이상 잉태하지 못했던 부부들이 기도받음으로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많으며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분들도 온전함을 입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소아마비나 사고 등으로 한 쪽이 짧았던 다리가 기도 받은 후 4㎝, 5㎝, 혹은 8㎝씩 길어져서 양쪽 다리 길이가 같아진 분들도 많습니다.
치료의 역사만이 아닙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니 즉시 멈추거나 따가운 햇볕이 내리쬘 때 구름이 몰려와 가려 주는 등 천기까지도 움직여지는 것을 본교회 성도님들은 무수히 체험했지요.
더욱 신기한 것은 직접 기도해 주지 않아도 놀라운 권능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단에서 나가는 전체 기도, 혹은 전화나 테이프에 녹음된 기도, 인터넷이나 TV방송의 기도를 통해서도 응답받고 축복받아 영광을 돌렸습니다.
또 사도행전 19:12을 보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것처럼 제게 기도받은 손수건을 얹고 기도할 때도 저를 통해 나타나는 권능의 역사들이 전 세계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지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 누구나 권능을 체험하고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려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행함으로 드러나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도 "네가 나를 믿는구나" 하고 인정하실 때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5. 믿음의 증거를 내보임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한 성경상의 예
먼저, 엘리사 선지자 당시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나아만은 아람 나라의 존귀한 장군이었는데 하나님의 권능을 행하는 엘리사의 소문을 듣고 자기의 문둥병을 치료받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권세 있는 장군이 먼 나라에서 많은 예물까지 들고 왔는데 엘리사는 그저 시종을 보내어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전해 줄 뿐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분이 상했지만 나아만은 워낙 마음이 선했을 뿐 아니라 주변의 종들도 순종하도록 간언하므로 마음을 돌이켜서 순종함으로 문둥병을 깨끗하게 치료받았습니다.
다음으로, 솔로몬 왕은 정성을 다해 응답받을 그릇을 준비하여 믿음을 인정받은 경우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했지요. 구약 시대에 일천 번의 번제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 그리고 막대한 재물이 들어갑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인정하시고 소원대로 큰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영화와 장수의 축복까지도 주셨지요.
또한 귀신들린 딸을 고침받고자 예수님께 나왔던 수로보니게 여인은 겸비함과 변함없는 믿음의 간구를 통해 응답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딸을 고쳐달라 간구하는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심으로 이방인인 여인을 개에다 비유하셨지요. 그러나 여인은 기분 상하거나 낙심하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겸비하게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고백함으로 예수님께 즉시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밖에도 믿음의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령, 응답받을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얼굴에 기쁨과 감사가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1:24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하셨으니 믿음의 고백을 하며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참믿음이 있다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므로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빛이시니 빛 가운데 살고 하나님은 선하시니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믿음으로 여기시고 기뻐하시며 마음의 소원에 응답하시고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행함과 함께 간구하면 응답해 주십니다.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권능으로 축복해 주시는 분이시니 하나님을 오직 믿음의 행함으로 기쁘시게 하심으로 마음껏 응답과 축복을 받아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9-08
제36과사랑하는 자에게 보이지 아니하고서는
요일 4:16
읽을말씀 : 요일 4:16 | 외울말씀 : 요일 4:16
교육목표 : 마음이 성결되고 하나님을 닮아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가는 곳마다 진리의 빛을 비추는 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마음이 성결된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선물이 있는데, 바로 권능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사랑을 주고받고 비밀한 것까지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벗과 같은 참된 자녀를 얻기 원하십니다. 창세기 5:21-24을 보면, 하나님과 이러한 사랑을 주고받았던 에녹에 대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과 300년간 동행하시면서 영의 깊은 세계와 신령한 차원, 그리고 그에 속한 비밀한 것까지라도 알려 주시다가 산 채로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창 5:24).
하나님께서는 에녹뿐만 아니라 마음이 성결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만 있다면 동행해 주시며 사랑하고 교통함으로 비밀한 것들을 알려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인간 경작의 세월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사람들을 택하셔서 그들에게 비밀한 일과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알리셨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당세의 의인 노아에게 물의 심판이 있을 것을 알려 주신 하나님
창세기 6-7장을 보면,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퍼붓는 비가 40일 동안 내리고 땅에서는 큰 샘들이 터져 온 세상이 물에 잠겼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노아의 방주에 들어온 동물들은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들은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예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노아는 어떻게 방주를 미리 준비할 수 있었을까요? 창세기 6:13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앞으로 홍수가 있을 것과 이로 인해 모든 사람과 동물들이 멸절될 것, 그리고 홍수에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되 어떤 재료를 가지고 얼마만한 크기로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까지 상세하게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노아에게 비밀을 미리 알려 주셔서 구원하신 것일까요? 창세기 6:9을 보면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수로 모든 인류를 멸절하셔야 할 만큼 죄악으로 관영했던 세상에서 노아만은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사람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을 입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노아는 사랑의 사람이었기에 대홍수가 임할 것을 알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재앙을 면케 해 주려고 했지만 어느 한 사람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방주에는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들어갔고 이들 외에는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노아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노아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영계의 비밀한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2.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소돔성의 멸망을 알려 주신 하나님
야고보서 2:23을 보면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 받을 만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었던 사람입니다. 우주만물의 창조주요,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피조물인 사람이 벗으로 칭함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영광스럽고도 참으로 가슴벅찬 일이지요. 그러니 이러한 사랑을 받은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임할 엄청난 재앙에 대해서 미리 알려 주시는데, 당시 소돔과 고모라는 죄가 심히 관영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소돔성에 거하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 주셔서 미리 피하도록 하십니다. 이는 롯이 하나님 앞에 비밀한 일을 들을 만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신 하나님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의 그늘 아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롯은 이처럼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이지요.
아브라함은 후일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실 때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백 세에 얻은 독자 이삭까지 주저없이 순종하여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바로 이런 중심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아셨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시며 비밀한 것이라도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3. 시대마다 합한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을 택하여 역사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예레미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 등 여러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에 장차 임할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하나님께로부터 듣고 선포했고, 이 모든 예언들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만세 전에 감취어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성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언해 왔고, 그 예언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알듯이 지금부터 약 2천 년 전에 이루어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예언한 내용들 중에 특히 이사야 5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떠한 모습으로 오실 것과 그가 고난을 받으시는 이유가 우리 사람의 죄악 때문이며 결국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죽임 당하게 될 것까지 말씀하고 있지요.
이 밖에도 성경에 기록된 크고 작은 예언들은 앞으로 일어날 몇 가지 일들만 남기고 다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태복음 5:18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말씀들이 있는데, 바로 주님의 공중재림과 7년 환난과 천년 왕국, 그리고 백보좌 대심판입니다. 이 중에서 주님의 공중재림은 주님께서 부활승천하신 이후 줄곧 하나님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주님의 공중재림과 그때의 징조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통해 이미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다니엘 선지자와 사도 요한을 들 수 있지요.
다니엘서 9:20-27과 12장에는 마지막 때의 비밀이 담긴 칠십 이레에 관한 내용과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하여 각각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니엘서 12:4에 보면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이 말씀처럼 오늘날에는 다니엘서가 기록되던 당시에는 참으로 상상할 수도 없었던 첨단을 달리는 교통수단과 엄청난 매스미디어의 발달, 그리고 수많은 지식의 발달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사도 요한 역시 요한계시록이라는 성경의 책 한 권을 기록할 만큼 마지막 때에 관해 깊이 알았던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 때에 대해 훨씬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들은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몇 가지 내용들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마지막 때에 대해 그의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통해 알려 주시면서 그 후세의 사람들은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를 원하셨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기록해 놓으신 것은 오히려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말씀에 담긴 내용과 뜻을 알아서 그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베드로후서 1:20-21에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말씀한 대로, 성경의 예언은 성령의 감동함으로 기록된 것이므로 역시 성령의 감동함 속에 풀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이를 성령의 감동함 속에 풀기에 합당한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성경에 기록된 비밀한 말씀들을 낱낱이 풀어 주시고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가 가까운 오늘날에도 역시 그 비밀한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행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암 3:7).
4. 세계선교를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 사람을 경작하시는 근본은 사랑이며,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의 참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 들어옴으로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벧후 3:9).
그러니 오늘날 인간 경작의 마무리 시점에서 대홍수의 심판을 미리 알고 대비했던 노아처럼,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미리 알고 그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렸던 아브라함처럼 세상의 마지막 때를 알고 대비하며 그것을 세계 만방에 외침으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해야 할 하나님의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우리가 그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의 힘으로만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온전한 사랑이 임하고 그 사랑을 행함으로 온전히 이루었을 때 비로소 영원한 천국에서 새예루살렘에 거하는 자격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때에 비밀한 것들을 깨우쳐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설령 상대의 허물이 있을지라도 용서할 줄 알고 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변함없이 상대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소유해야 마땅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리의 마음이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일서 4:16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삼아 그 진리의 빛을 행함으로 온전히 비추는 복된 삶을 영위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마음이 성결되고 하나님을 닮아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가는 곳마다 진리의 빛을 비추는 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마음이 성결된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선물이 있는데, 바로 권능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사랑을 주고받고 비밀한 것까지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벗과 같은 참된 자녀를 얻기 원하십니다. 창세기 5:21-24을 보면, 하나님과 이러한 사랑을 주고받았던 에녹에 대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과 300년간 동행하시면서 영의 깊은 세계와 신령한 차원, 그리고 그에 속한 비밀한 것까지라도 알려 주시다가 산 채로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창 5:24).
하나님께서는 에녹뿐만 아니라 마음이 성결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만 있다면 동행해 주시며 사랑하고 교통함으로 비밀한 것들을 알려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인간 경작의 세월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사람들을 택하셔서 그들에게 비밀한 일과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알리셨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당세의 의인 노아에게 물의 심판이 있을 것을 알려 주신 하나님
창세기 6-7장을 보면,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퍼붓는 비가 40일 동안 내리고 땅에서는 큰 샘들이 터져 온 세상이 물에 잠겼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노아의 방주에 들어온 동물들은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들은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예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노아는 어떻게 방주를 미리 준비할 수 있었을까요? 창세기 6:13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앞으로 홍수가 있을 것과 이로 인해 모든 사람과 동물들이 멸절될 것, 그리고 홍수에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되 어떤 재료를 가지고 얼마만한 크기로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까지 상세하게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노아에게 비밀을 미리 알려 주셔서 구원하신 것일까요? 창세기 6:9을 보면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수로 모든 인류를 멸절하셔야 할 만큼 죄악으로 관영했던 세상에서 노아만은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사람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을 입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노아는 사랑의 사람이었기에 대홍수가 임할 것을 알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재앙을 면케 해 주려고 했지만 어느 한 사람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방주에는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들어갔고 이들 외에는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노아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노아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영계의 비밀한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2.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소돔성의 멸망을 알려 주신 하나님
야고보서 2:23을 보면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 받을 만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었던 사람입니다. 우주만물의 창조주요,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피조물인 사람이 벗으로 칭함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영광스럽고도 참으로 가슴벅찬 일이지요. 그러니 이러한 사랑을 받은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임할 엄청난 재앙에 대해서 미리 알려 주시는데, 당시 소돔과 고모라는 죄가 심히 관영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소돔성에 거하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 주셔서 미리 피하도록 하십니다. 이는 롯이 하나님 앞에 비밀한 일을 들을 만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신 하나님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의 그늘 아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롯은 이처럼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이지요.
아브라함은 후일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실 때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백 세에 얻은 독자 이삭까지 주저없이 순종하여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바로 이런 중심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아셨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시며 비밀한 것이라도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3. 시대마다 합한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을 택하여 역사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예레미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 등 여러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에 장차 임할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하나님께로부터 듣고 선포했고, 이 모든 예언들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만세 전에 감취어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성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언해 왔고, 그 예언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알듯이 지금부터 약 2천 년 전에 이루어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예언한 내용들 중에 특히 이사야 5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떠한 모습으로 오실 것과 그가 고난을 받으시는 이유가 우리 사람의 죄악 때문이며 결국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죽임 당하게 될 것까지 말씀하고 있지요.
이 밖에도 성경에 기록된 크고 작은 예언들은 앞으로 일어날 몇 가지 일들만 남기고 다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태복음 5:18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말씀들이 있는데, 바로 주님의 공중재림과 7년 환난과 천년 왕국, 그리고 백보좌 대심판입니다. 이 중에서 주님의 공중재림은 주님께서 부활승천하신 이후 줄곧 하나님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주님의 공중재림과 그때의 징조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통해 이미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다니엘 선지자와 사도 요한을 들 수 있지요.
다니엘서 9:20-27과 12장에는 마지막 때의 비밀이 담긴 칠십 이레에 관한 내용과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하여 각각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니엘서 12:4에 보면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이 말씀처럼 오늘날에는 다니엘서가 기록되던 당시에는 참으로 상상할 수도 없었던 첨단을 달리는 교통수단과 엄청난 매스미디어의 발달, 그리고 수많은 지식의 발달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사도 요한 역시 요한계시록이라는 성경의 책 한 권을 기록할 만큼 마지막 때에 관해 깊이 알았던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 때에 대해 훨씬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들은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몇 가지 내용들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마지막 때에 대해 그의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통해 알려 주시면서 그 후세의 사람들은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를 원하셨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기록해 놓으신 것은 오히려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말씀에 담긴 내용과 뜻을 알아서 그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베드로후서 1:20-21에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말씀한 대로, 성경의 예언은 성령의 감동함으로 기록된 것이므로 역시 성령의 감동함 속에 풀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이를 성령의 감동함 속에 풀기에 합당한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성경에 기록된 비밀한 말씀들을 낱낱이 풀어 주시고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가 가까운 오늘날에도 역시 그 비밀한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행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암 3:7).
4. 세계선교를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 사람을 경작하시는 근본은 사랑이며,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의 참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 들어옴으로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벧후 3:9).
그러니 오늘날 인간 경작의 마무리 시점에서 대홍수의 심판을 미리 알고 대비했던 노아처럼,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미리 알고 그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렸던 아브라함처럼 세상의 마지막 때를 알고 대비하며 그것을 세계 만방에 외침으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해야 할 하나님의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우리가 그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의 힘으로만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온전한 사랑이 임하고 그 사랑을 행함으로 온전히 이루었을 때 비로소 영원한 천국에서 새예루살렘에 거하는 자격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때에 비밀한 것들을 깨우쳐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설령 상대의 허물이 있을지라도 용서할 줄 알고 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변함없이 상대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소유해야 마땅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리의 마음이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일서 4:16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삼아 그 진리의 빛을 행함으로 온전히 비추는 복된 삶을 영위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