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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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3
제41과빛
요일 1:5
읽을말씀 : 요일 1:5 | 외울말씀 : 요일 1:5
교육목표 :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나타나 범사에 형통한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빛은 어두움을 밝혀 주고 해로운 세균과 곰팡이를 죽이며 식물의 광합성 작용도 일으킵니다. 빛에는 이러한 육적인 빛도 있지만 영적인 빛도 있으며 그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캄캄한 밤에 빛이 임하면 어두움이 사라지듯이 우리 삶에도 영적인 빛이 임하면 영적인 어두움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영적인 어두움이 있으면 질병, 가족, 일터의 문제 등으로 참된 평안을 얻지 못하지만 영적인 빛이 임하게 되면 사람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이 응답되기 때문입니다.
1. 영적인 빛이란 무엇인가?
요한일서 1:5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하셨으며 요한복음 1:1에는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셨으니 빛은 하나님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물론, 진리요 선이요 사랑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 광활한 우주 공간에 홀로 존재하고 계셨는데 이때는 어떤 형상을 입고 계신 것이 아니라 빛과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진 상태에서 전 우주를 품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빛과 소리로 존재하시던 하나님께서는 참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의 섭리를 계획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되어 하나의 형상을 입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질은 여전히 빛과 소리이시며 지금도 빛과 소리로써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비록 사람과 같은 형상을 입고 계시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긴 빛과 소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빛에는 하나님의 능력뿐만 아니라 사랑과 선을 비롯한 모든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 66권은 영적인 빛에 담긴 진리들을 소리로 발하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란 성경에 기록되어진 "사랑하라, 기도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 등과 같이 선과 의, 사랑에 관한 모든 진리의 말씀들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만나려면 빛 가운데 행해야
빛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므로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 각종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으려면 원수 마귀가 주관하는 어두움의 세계에서 나와 빛의 세계로 들어와야 합니다.
성경에는 사랑하라, 섬기라, 기뻐하라 등 "~을 하라" 하신 말씀과 안식일을 지키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 등 "~을 지키라"는 말씀,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 미워하지 말라, 자기 유익을 구치 말라, 시기하지 말라 등 "~을 하지 말라"는 말씀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탐심을 버리라 등 "~을 버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요,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이며 또한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사귐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우리는 영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있는데 곧 죄를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두움 가운데 행하면서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 이는 거짓말이라는 것이지요(요일 1:6). 여기서 사귐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 편에서 누구를 안다고 해서 그와 사귐이 있다 말할 수는 없는 것이요, 서로가 서로를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 서로가 믿고 신뢰하며 대화할 수 있는 가까운 사이까지 되어야 합니다.
만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이렇게 깊은 사귐이 있다면 병들고 연약할 리가 없으며 가난할 리도 없고 응답받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신명기 28장에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지켜 행하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며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않게 하시고, 머리되고 꼬리되지 않는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항상 좋은 것만 주시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과 진정한 사귐이 있었던 다윗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신 다윗은 하나님과 어떠한 사귐이 있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범사에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울 왕에게 쫓겨 도망 다닐 때나 전쟁에 나가 싸울 때도 "올라가리이까, 어디로 가리이까" 하며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묻듯이 일일이 하나님께 여쭈어 행하였지요. 하나님께서도 이러한 다윗에게 너무나도 자상하게 알려 주시므로 다윗은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할 수 있었습니다(삼하 5:19-25).
이처럼 하나님과 아름다운 사귐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한 예를 들면, 블레셋 군대에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용사가 이스라엘 군대를 조롱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할 때 어린 소년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기에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물맷돌 다섯 개만 들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던진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도록 역사해 주셨고 골리앗이 쓰러지자 전세가 역전되어 이스라엘이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윗은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고 마치 부자간에 대소사를 논하듯이 하나님과 함께 모든 일들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오직 진리를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증거해 주셨지만 어두움을 좇는 사람들은 원수 마귀에 속하므로 빛을 설명해 주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빛을 싫어하고 대적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진리의 빛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또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 감으로 어두움에서 나와 빛 가운데 행하게 되며, 이러한 사람은 설령 지혜가 부족하고 능력이 모자란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빛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고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받아 나감으로 범사에 형통한 길로 인도받을 수 있고 하늘의 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미줄같이 얽히고설킨 문제라 해도 성령께서 친히 갈 길을 알려 주시니 막힐 것이 없고, 혹 장애물이 있더라도 능히 피해 갈 수 있는 것이지요.
고린도전서 3:18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말씀하신 대로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 미련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3:17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성결을 이루고 빛으로 들어가면 하늘로서 지혜와 명철이 오는 것입니다. 더구나 빛 가운데 거하면 없어도 행복하고 부족해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차원에 이르게 되지요.
빌립보서 4:11을 보면 사도 바울이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고백하였는데, 이처럼 빛 가운데 거하면 하나님과 화평함을 이룸으로 늘 마음에 평강이 넘쳐나고 기쁨이 샘솟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어 다투거나 불목할 일이 없고 사랑과 은혜가 넘쳐 항상 감사의 고백이 끊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빛 가운데 행하며 하나님을 닮아 가는 만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말씀하신 대로 만사형통의 축복은 물론 빛이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권능까지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난 후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하니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놀라운 권능을 행하게 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과연 나는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과연 내가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문제는 없다 해도 오랫동안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며 아직도 성령의 음성과 주관도 받지 못하고 있는 분들 역시 자신을 돌아보아 신속히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더구나 어느 정도 악의 모양을 벗어 버렸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자라나 장성하는 것처럼 아비의 신앙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영적으로 깊은 사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결을 향해 달려가는 분들이라면 정녕 자신에게 있는 세세한 악의 모양까지도 철저히 발견하여 뽑아 버려야 합니다. 윗사람이 되고 권세가 생길수록 아랫사람들을 더욱 섬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어야 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말을 들었을 때에 비록 소자의 말이라도 겸손히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의 도리에서 벗어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을 본다 할지라도 마음에 불편함을 갖거나 감정을 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과 덕으로 포용하여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긍휼히 여기며 상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덮어 주며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지요.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스스로의 공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수고한 다른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며 그들이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을 더 기뻐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스스로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편에서 얼마나 인정해 주시는가를 돌아보아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들과 사귐의 증거들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나타나 범사에 형통한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빛은 어두움을 밝혀 주고 해로운 세균과 곰팡이를 죽이며 식물의 광합성 작용도 일으킵니다. 빛에는 이러한 육적인 빛도 있지만 영적인 빛도 있으며 그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캄캄한 밤에 빛이 임하면 어두움이 사라지듯이 우리 삶에도 영적인 빛이 임하면 영적인 어두움이 물러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영적인 어두움이 있으면 질병, 가족, 일터의 문제 등으로 참된 평안을 얻지 못하지만 영적인 빛이 임하게 되면 사람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이 응답되기 때문입니다.
1. 영적인 빛이란 무엇인가?
요한일서 1:5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하셨으며 요한복음 1:1에는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하셨으니 빛은 하나님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물론, 진리요 선이요 사랑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 광활한 우주 공간에 홀로 존재하고 계셨는데 이때는 어떤 형상을 입고 계신 것이 아니라 빛과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진 상태에서 전 우주를 품고 계셨습니다. 이처럼 빛과 소리로 존재하시던 하나님께서는 참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의 섭리를 계획하시고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되어 하나의 형상을 입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질은 여전히 빛과 소리이시며 지금도 빛과 소리로써 역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비록 사람과 같은 형상을 입고 계시지만 그 안에는 무한한 능력이 담긴 빛과 소리가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빛에는 하나님의 능력뿐만 아니라 사랑과 선을 비롯한 모든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 66권은 영적인 빛에 담긴 진리들을 소리로 발하여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빛이란 성경에 기록되어진 "사랑하라, 기도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 등과 같이 선과 의, 사랑에 관한 모든 진리의 말씀들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만나려면 빛 가운데 행해야
빛의 세계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므로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 각종 인생의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으려면 원수 마귀가 주관하는 어두움의 세계에서 나와 빛의 세계로 들어와야 합니다.
성경에는 사랑하라, 섬기라, 기뻐하라 등 "~을 하라" 하신 말씀과 안식일을 지키라,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라 등 "~을 지키라"는 말씀, 그리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 미워하지 말라, 자기 유익을 구치 말라, 시기하지 말라 등 "~을 하지 말라"는 말씀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탐심을 버리라 등 "~을 버리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빛 가운데 거하는 것이요, 주님을 닮아 가는 것이며 또한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7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아버지와 자녀 사이에 사귐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우리는 영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과 사귐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 있는데 곧 죄를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두움 가운데 행하면서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 이는 거짓말이라는 것이지요(요일 1:6). 여기서 사귐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 편에서 누구를 안다고 해서 그와 사귐이 있다 말할 수는 없는 것이요, 서로가 서로를 알아야 하고 더 나아가 서로가 믿고 신뢰하며 대화할 수 있는 가까운 사이까지 되어야 합니다.
만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이렇게 깊은 사귐이 있다면 병들고 연약할 리가 없으며 가난할 리도 없고 응답받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신명기 28장에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듣고 지켜 행하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며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않게 하시고, 머리되고 꼬리되지 않는 복을 주신다고 약속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항상 좋은 것만 주시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과 진정한 사귐이 있었던 다윗
하나님께서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신 다윗은 하나님과 어떠한 사귐이 있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범사에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사울 왕에게 쫓겨 도망 다닐 때나 전쟁에 나가 싸울 때도 "올라가리이까, 어디로 가리이까" 하며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묻듯이 일일이 하나님께 여쭈어 행하였지요. 하나님께서도 이러한 다윗에게 너무나도 자상하게 알려 주시므로 다윗은 가는 곳마다 승승장구할 수 있었습니다(삼하 5:19-25).
이처럼 하나님과 아름다운 사귐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렸기 때문입니다. 한 예를 들면, 블레셋 군대에 골리앗이라는 거대한 용사가 이스라엘 군대를 조롱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모독할 때 어린 소년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믿었기에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은 채 물맷돌 다섯 개만 들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담대히 나아갔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던진 물맷돌이 골리앗의 이마에 박히도록 역사해 주셨고 골리앗이 쓰러지자 전세가 역전되어 이스라엘이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다윗은 확고한 믿음을 지니고 있었기에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았고 마치 부자간에 대소사를 논하듯이 하나님과 함께 모든 일들을 이룰 수 있었던 것입니다.
4.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오직 진리를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증거해 주셨지만 어두움을 좇는 사람들은 원수 마귀에 속하므로 빛을 설명해 주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빛을 싫어하고 대적함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멸망의 길로 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선한 사람들은 진리의 빛을 통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함으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또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 감으로 어두움에서 나와 빛 가운데 행하게 되며, 이러한 사람은 설령 지혜가 부족하고 능력이 모자란다 해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바로 빛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고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받아 나감으로 범사에 형통한 길로 인도받을 수 있고 하늘의 지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미줄같이 얽히고설킨 문제라 해도 성령께서 친히 갈 길을 알려 주시니 막힐 것이 없고, 혹 장애물이 있더라도 능히 피해 갈 수 있는 것이지요.
고린도전서 3:18에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말씀하신 대로 세상의 지혜는 하나님 앞에 미련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3:17에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라고 말씀하셨듯이 우리가 성결을 이루고 빛으로 들어가면 하늘로서 지혜와 명철이 오는 것입니다. 더구나 빛 가운데 거하면 없어도 행복하고 부족해도 부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차원에 이르게 되지요.
빌립보서 4:11을 보면 사도 바울이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라고 고백하였는데, 이처럼 빛 가운데 거하면 하나님과 화평함을 이룸으로 늘 마음에 평강이 넘쳐나고 기쁨이 샘솟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어 다투거나 불목할 일이 없고 사랑과 은혜가 넘쳐 항상 감사의 고백이 끊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더구나 빛 가운데 행하며 하나님을 닮아 가는 만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1:2) 말씀하신 대로 만사형통의 축복은 물론 빛이신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권능까지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난 후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하니 하나님께서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놀라운 권능을 행하게 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과연 나는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 누리기 위해서는 '과연 내가 빛 가운데 살고 있는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구체적인 문제는 없다 해도 오랫동안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며 아직도 성령의 음성과 주관도 받지 못하고 있는 분들 역시 자신을 돌아보아 신속히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더구나 어느 정도 악의 모양을 벗어 버렸다고 해서 그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가 자라나 장성하는 것처럼 아비의 신앙에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영적으로 깊은 사귐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결을 향해 달려가는 분들이라면 정녕 자신에게 있는 세세한 악의 모양까지도 철저히 발견하여 뽑아 버려야 합니다. 윗사람이 되고 권세가 생길수록 아랫사람들을 더욱 섬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어야 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지적하는 말을 들었을 때에 비록 소자의 말이라도 겸손히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사람의 도리에서 벗어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을 본다 할지라도 마음에 불편함을 갖거나 감정을 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랑과 덕으로 포용하여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큰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긍휼히 여기며 상대의 허물을 드러내지 않고 덮어 주며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지요.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스스로의 공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수고한 다른 사람들에게 공을 돌리며 그들이 칭찬받고 인정받는 것을 더 기뻐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스스로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 편에서 얼마나 인정해 주시는가를 돌아보아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들과 사귐의 증거들이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0-06
제40과추석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1. 추석의 유래
추석은 우리 민족이 신라시대부터 지내온 명절로 오늘날에도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에 속합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다른 말로 한가위라고도 부르는데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즉 8월 15일인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길쌈"이란 실을 짜는 일을 말합니다. 신라 유리왕 때 한가위 한 달 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베를 짜서 한 달 뒤인 한가윗날 그동안 베를 짠 양을 가지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와 춤으로 갚은 것에서 "가배"라는 말이 나왔는데 후에 "가위"라는 말로 변했습니다. 또 한문으로는 "배"라고도 하는데 이날은 설과 단오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절의 하나입니다. 추석이 되면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철로 접어드는데 이 무렵에는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우리의 큰 명절로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속담 중에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2. 추석에 대한 성경적 이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절기로서 초실절(맥추감사절)과 수장절(추수감사절)을 주셔서 지키게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이러한 감사의 절기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3. 추석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은혜 가운데 풍성한 수확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시겠습니다.
묵상기도------------------------------------------------------------------- 다같이
기 원-----------------------------------------------------------------------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아멘 -
찬 송------------------------- 460장 --------------------------------------- 다같이
신앙고백 -------------------- 사도신경 -------------------------------------다같이
기 도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 아침에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지난날들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추석 명절의 의미를 잘 알아서 더욱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시고,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모든 가족들도 기억하여 주옵시고 늘 주님의 품 안에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모든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추석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민 6:24-26 ------------------------------------- 인도자
설 교 ------------------------------------------------------------------------ 설교자
기 도 ------------------------------------------------------------------------ 설교자
찬 송 ------------------------------------------------------------------------ 다같이
주기도문 ---------------------------------------------------------------------다같이
4. 설교 예문
본 문 : 민수기 6 : 24-26 ( 제목 :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오늘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역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1)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지켜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오늘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으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소년이 되어서는 스승님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이들에게는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곧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환난과 재앙 많은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3)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평강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오늘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온 가족들을 평강 가운데 지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추석이면 으레 음식과 과일을 차려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을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간에 화목하고 우애 있게 지내며 부모님 살아생전에 효도를 다하는 자녀가 되며 온 가족이 주 하나님을 잘 섬겨 복받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가족은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1. 추석의 유래
추석은 우리 민족이 신라시대부터 지내온 명절로 오늘날에도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에 속합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다른 말로 한가위라고도 부르는데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즉 8월 15일인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길쌈"이란 실을 짜는 일을 말합니다. 신라 유리왕 때 한가위 한 달 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베를 짜서 한 달 뒤인 한가윗날 그동안 베를 짠 양을 가지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와 춤으로 갚은 것에서 "가배"라는 말이 나왔는데 후에 "가위"라는 말로 변했습니다. 또 한문으로는 "배"라고도 하는데 이날은 설과 단오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절의 하나입니다. 추석이 되면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철로 접어드는데 이 무렵에는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우리의 큰 명절로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속담 중에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도 생겼습니다.
2. 추석에 대한 성경적 이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절기로서 초실절(맥추감사절)과 수장절(추수감사절)을 주셔서 지키게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이러한 감사의 절기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3. 추석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은혜 가운데 풍성한 수확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시겠습니다.
묵상기도------------------------------------------------------------------- 다같이
기 원-----------------------------------------------------------------------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아멘 -
찬 송------------------------- 460장 --------------------------------------- 다같이
신앙고백 -------------------- 사도신경 -------------------------------------다같이
기 도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 아침에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지난날들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추석 명절의 의미를 잘 알아서 더욱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시고,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모든 가족들도 기억하여 주옵시고 늘 주님의 품 안에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모든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추석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민 6:24-26 ------------------------------------- 인도자
설 교 ------------------------------------------------------------------------ 설교자
기 도 ------------------------------------------------------------------------ 설교자
찬 송 ------------------------------------------------------------------------ 다같이
주기도문 ---------------------------------------------------------------------다같이
4. 설교 예문
본 문 : 민수기 6 : 24-26 ( 제목 :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오늘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역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1)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지켜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오늘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으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소년이 되어서는 스승님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이들에게는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곧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환난과 재앙 많은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3)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평강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오늘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온 가족들을 평강 가운데 지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추석이면 으레 음식과 과일을 차려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을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간에 화목하고 우애 있게 지내며 부모님 살아생전에 효도를 다하는 자녀가 되며 온 가족이 주 하나님을 잘 섬겨 복받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가족은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9-29
제39과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
디후 2:20-21
읽을말씀 : 디후 2:20-21 | 외울말씀 : 디후 2:20-21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것을 철저히 벗어 버림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많은 돌무더기 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있다면 금방 눈에 띄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된 사람들도 하나님의 눈에 금방 띄게 됩니다.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을 발견하신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기뻐하시며 그를 지극히 사랑하여 범사에 넘치는 축복과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으로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증거하겠습니다.
1.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란?
디모데후서 2:20-21에 보면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릇에 비유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릇으로 비유한 것은 그 안에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와 하나님의 권능도 담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떠한 그릇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각양 좋은 은사들과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릇에는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등 여러 종류가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라 해도 그 그릇됨은 다 다릅니다. 에베소서 4:24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말씀하신 대로 얼마나 새사람을 입느냐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의 존귀함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참자녀들을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보배로운 산 돌'(벧전 2:4)에 비유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보석보다 아름답기 때문이지요.
2.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1)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깨끗케 하여 성결을 이루어야 합니다
금그릇이 아무리 비싸고 보기 좋아도 만일 더럽고 냄새나는 오물이 묻어 있다면 사용할 수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응답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각양의 은사들, 그리고 물질의 복, 건강의 복 등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17:9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했고, 마태복음 15:18-19에는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씻어내야 하나님 앞에 깨끗한 그릇이 될 수 있는데, 바로 물인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엡 5:26, 히 10:22).
그렇다면 영적인 물인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씻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요? 마음을 씻는 작용을 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곧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 마음에 있는 더러운 죄성들과 악성들이 버려지고, 다시 더러워지지 않으니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이 깨끗이 씻겨진 사람들은 자연히 행실도 진리 안에서 깨끗하게 나옵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하던 사람이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혈기 부리던 사람이 혈기 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등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겨지면 겉도 깨끗한 진리의 행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참으로 깨끗한 그릇이다 인정해 주시며 예비하신 복을 쏟아 부어 주십니다
2) 연단을 잘 받아서 영적인 빛을 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지나 목걸이로 쓰이는 보석들의 경우, 원석에는 불순물들이 섞여 있었지만 기술자의 손에 연마되어 예쁜 빛깔과 형태를 찾게 된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만하면 됐다" 싶을 때도 전문가들은 더 연마해서 정교하게 다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도 그의 자녀들에게 영육간에 축복을 주시기 위해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가 보석처럼 더 아름다운 빛깔과 광택을 갖게 하시고자 단련하시는 과정이지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2:19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했고, 베드로전서 1:7에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그릇이 되었다 할지라도 보석처럼 찬란한 빛을 더해 주시고자 때를 좇아 연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5 후반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는 말씀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도 빛의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해 가십니다. 이를 위해 단계 단계 연단을 허락하시는데, 주어진 연단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고 선과 사랑으로 승리하게 되면 그 이전보다 더욱 밝게 빛나는 영혼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영혼의 빛이 얼마나 밝으냐 하는 것은 영의 세계에서는 권세와 능력의 차이로 나타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두움이니 빛이 임하면 자연히 물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마가복음 9장에는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의 아들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명하시니 귀신은 나가고 귀신들렸던 아이는 온전케 되었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제자들을 먼저 만나 아들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이는 제자들의 영적인 빛과 예수님의 빛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 예수님처럼 밝은 빛의 차원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어떠한 시련이 다가와도 아버지 하나님을 믿음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며,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승리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면서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죄인들을 위해 대신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어떠한 연단 가운데서도 여러분 마음의 믿음과 선과 사랑과 의(義)가 정녕 진실하다는 사실을 영계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뻐하사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십니다.
3.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때 임하는 축복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이 완전한 구세주가 되시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악한 도구로 쓰임 받은 사람들은 자기 악함 속에서 배신이 나왔고, 자기 악 속에서 예수님을 욕하고 비난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열두 제자 중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죄인들의 손에 팔아 넘겼지만,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그리할 것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그를 사랑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 해도 전혀 미운 감정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이것이 바로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시지요. 예수님의 마음도 하나님의 마음처럼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온전한 빛이셨기에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부활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저도 이제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오면서 참으로 수많은 연단과 고통의 시간을 지냈습니다. 특히, 수년 전 모 방송사건을 통해서 목회자로서 죽음과 같은 시련을 겪어야 했지요. 가장 가까이에 있어 제게 은혜를 입었던 사람과 내 가족과 같이 대해 준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심히 큰 죄를 범한 죄인인양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고, 많은 성도들이 애매히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저와 우리 성도님들은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였고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로 용서하시고 안아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교회를 어렵게 만들고 떠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어찌하든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바랬지요. 그래서 일꾼들에게도 악으로 갚지 말 것을 누누이 당부하고 당부했습니다.
이처럼 극심한 연단 속에서도 저는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오해할지라도 아버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어떠한 악을 내게 행한 사람이라도 오직 선과 사랑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습니다. 학업 우수생이라 할지라도 시험 점수를 통해 그 사실이 입증되었을 때 정녕 우수생임을 인정받듯이 제 믿음과 선과 사랑과 의가 연단을 통해 확증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연단을 통과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 전보다 훨씬 크고 놀라운 권능을 행할 수 있도록 세계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신 것입니다. '99년도에 모 방송을 통해 시험이 있었던 후 바로 2000년부터 세계선교의 길을 창대히 열어 주셨지요. 그래서 가는 데마다 특히 회교권이나 힌두교 국가에서도 연인원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넘는 인파가 운집하게 하셨으며, 단에서 제가 '환자를 위한 기도'를 할 때, 시공간을 초월하여 엄청난 권능으로 역사하셔서 치료받은 사람들이 수만, 수십만 명에 이르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저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악을 모양이라도 버리고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된 사람들에게 증거로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흠과 티도 없으며 곱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보석 같은 아름다운 그릇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사랑을 부어 주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것을 철저히 벗어 버림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것을 철저히 벗어 버림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많은 돌무더기 속에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이 있다면 금방 눈에 띄게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된 사람들도 하나님의 눈에 금방 띄게 됩니다.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을 발견하신 하나님께서는 너무도 기뻐하시며 그를 지극히 사랑하여 범사에 넘치는 축복과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하십니다.
그러면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란 무엇이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으로 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증거하겠습니다.
1.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란?
디모데후서 2:20-21에 보면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릇에 비유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을 그릇으로 비유한 것은 그 안에 무엇인가를 담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바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담을 수 있으며,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와 하나님의 권능도 담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떠한 그릇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각양 좋은 은사들과 복을 받아 누릴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릇에는 금그릇, 은그릇, 나무그릇, 질그릇 등 여러 종류가 있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라 해도 그 그릇됨은 다 다릅니다. 에베소서 4:24에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말씀하신 대로 얼마나 새사람을 입느냐에 따라 하나님 앞에서의 존귀함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참자녀들을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도 '보배로운 산 돌'(벧전 2:4)에 비유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참으로 보석보다 아름답기 때문이지요.
2.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려면
1)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을 깨끗케 하여 성결을 이루어야 합니다
금그릇이 아무리 비싸고 보기 좋아도 만일 더럽고 냄새나는 오물이 묻어 있다면 사용할 수가 없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응답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풍성한 은혜와 각양의 은사들, 그리고 물질의 복, 건강의 복 등을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깨끗한 그릇이 되어야 합니다.
예레미야 17:9에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했고, 마태복음 15:18-19에는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의 마음을 씻어내야 하나님 앞에 깨끗한 그릇이 될 수 있는데, 바로 물인 하나님의 말씀으로만 가능합니다(엡 5:26, 히 10:22).
그렇다면 영적인 물인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우리 마음을 씻는 작용을 하는 것일까요? 마음을 씻는 작용을 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곧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대로 행하면 마음에 있는 더러운 죄성들과 악성들이 버려지고, 다시 더러워지지 않으니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이 깨끗이 씻겨진 사람들은 자연히 행실도 진리 안에서 깨끗하게 나옵니다. 예를 들어, 거짓말하던 사람이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으로, 혈기 부리던 사람이 혈기 부리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등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겨지면 겉도 깨끗한 진리의 행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참으로 깨끗한 그릇이다 인정해 주시며 예비하신 복을 쏟아 부어 주십니다
2) 연단을 잘 받아서 영적인 빛을 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반지나 목걸이로 쓰이는 보석들의 경우, 원석에는 불순물들이 섞여 있었지만 기술자의 손에 연마되어 예쁜 빛깔과 형태를 찾게 된 것입니다. 일반인들이 보기에는 "그만하면 됐다" 싶을 때도 전문가들은 더 연마해서 정교하게 다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도 그의 자녀들에게 영육간에 축복을 주시기 위해 연단을 허락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녀가 보석처럼 더 아름다운 빛깔과 광택을 갖게 하시고자 단련하시는 과정이지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2:19에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다우나" 했고, 베드로전서 1:7에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된 그릇이 되었다 할지라도 보석처럼 찬란한 빛을 더해 주시고자 때를 좇아 연단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5 후반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는 말씀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도 빛의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해 가십니다. 이를 위해 단계 단계 연단을 허락하시는데, 주어진 연단을 믿음으로 잘 통과하고 선과 사랑으로 승리하게 되면 그 이전보다 더욱 밝게 빛나는 영혼이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영혼의 빛이 얼마나 밝으냐 하는 것은 영의 세계에서는 권세와 능력의 차이로 나타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두움이니 빛이 임하면 자연히 물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마가복음 9장에는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의 아들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 주는 장면이 나옵니다.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명하시니 귀신은 나가고 귀신들렸던 아이는 온전케 되었지요. 그런데 이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제자들을 먼저 만나 아들에게서 귀신을 내어 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렇게 하지를 못했습니다. 이는 제자들의 영적인 빛과 예수님의 빛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 예수님처럼 밝은 빛의 차원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어떠한 시련이 다가와도 아버지 하나님을 믿음으로 선으로 악을 이기며, 원수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으로 승리하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에 달리셨으면서도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죄인들을 위해 대신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도 어떠한 연단 가운데서도 여러분 마음의 믿음과 선과 사랑과 의(義)가 정녕 진실하다는 사실을 영계에서도 인정을 받게 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뻐하사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십니다.
3.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될 때 임하는 축복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임당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고, 그 길이 바로 예수님이 완전한 구세주가 되시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일에 악한 도구로 쓰임 받은 사람들은 자기 악함 속에서 배신이 나왔고, 자기 악 속에서 예수님을 욕하고 비난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열두 제자 중에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신하고 죄인들의 손에 팔아 넘겼지만,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그리할 것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그를 사랑으로 대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 해도 전혀 미운 감정이 없이 사랑할 수 있는 마음, 이것이 바로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시지요. 예수님의 마음도 하나님의 마음처럼 어두움이 조금도 없는 온전한 빛이셨기에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다시 부활하실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저도 이제까지 믿음의 길을 걸어오면서 참으로 수많은 연단과 고통의 시간을 지냈습니다. 특히, 수년 전 모 방송사건을 통해서 목회자로서 죽음과 같은 시련을 겪어야 했지요. 가장 가까이에 있어 제게 은혜를 입었던 사람과 내 가족과 같이 대해 준 사람들로부터 배신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심히 큰 죄를 범한 죄인인양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고, 많은 성도들이 애매히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저와 우리 성도님들은 이런 일을 겪으면서도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하였고 아버지의 사랑과 긍휼로 용서하시고 안아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교회를 어렵게 만들고 떠난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어찌하든지 회개하고 돌아오기만을 바랬지요. 그래서 일꾼들에게도 악으로 갚지 말 것을 누누이 당부하고 당부했습니다.
이처럼 극심한 연단 속에서도 저는 세상 사람 모두가 나를 오해할지라도 아버지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어떠한 악을 내게 행한 사람이라도 오직 선과 사랑의 마음으로 대할 수 있었습니다. 학업 우수생이라 할지라도 시험 점수를 통해 그 사실이 입증되었을 때 정녕 우수생임을 인정받듯이 제 믿음과 선과 사랑과 의가 연단을 통해 확증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연단을 통과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그 전보다 훨씬 크고 놀라운 권능을 행할 수 있도록 세계선교의 문을 활짝 열어 주신 것입니다. '99년도에 모 방송을 통해 시험이 있었던 후 바로 2000년부터 세계선교의 길을 창대히 열어 주셨지요. 그래서 가는 데마다 특히 회교권이나 힌두교 국가에서도 연인원 수십만 명, 수백만 명이 넘는 인파가 운집하게 하셨으며, 단에서 제가 '환자를 위한 기도'를 할 때, 시공간을 초월하여 엄청난 권능으로 역사하셔서 치료받은 사람들이 수만, 수십만 명에 이르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역사는 저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여 악을 모양이라도 버리고 선하고 의로우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된 사람들에게 증거로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아무런 흠과 티도 없으며 곱고 아름다운 빛을 발하는 보석 같은 아름다운 그릇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엄청난 사랑을 부어 주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과 위배되는 것을 철저히 벗어 버림으로 보석보다 아름다운 그릇이 되어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9-22
제38과주님을 믿는다는 것
히 12:1-2
읽을말씀 : 히 12:1-2 | 외울말씀 : 히 12:1-2
교육목표 : 예수가 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며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참된 믿음의 증거를 보이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각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 자체가 구원받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이 되며, 모든 응답과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 했으며, 왜 예수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 그리고 왜 주 예수를 믿는다고 구원과 응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 했는가?
오늘날 어떤 이는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 중에 한 분으로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결코 사람과 동격으로 생각할 수 없는 구세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왜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을까요? 그 배경부터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시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원수 마귀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을 받아 그만 그 실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6:16에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 말씀하신 대로 사단의 음성을 듣고 그에 순종한 아담과 하와는 원수 마귀에 속한 자가 되고 말았지요.
이처럼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 후손인 모든 인류가 죄성을 타고 나오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런데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으니 영적인 세계에서도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망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요, 이 죽음은 영원한 형벌, 곧 지옥을 말합니다. 첫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거하게 되었으니 모든 사람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류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화목제물로 드려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혔던 죄의 담이 헐어지고 누구든지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예수가 구세주가 되기 위한 네 가지 조건
사도행전 4:12을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여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를 바로 믿기 위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마음 중심에서 깨우쳐야 하지요. 이 세상에도 법이 있어서 그 법대로 사회 질서가 유지되듯이 영계에도 영계의 법이 있어서 이 법칙을 좇아야만 원수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속한 자녀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토지 무르기 법칙을 근거로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구세주가 되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사람이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21을 보면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했습니다. 즉 사망이 사람인 아담으로 인하여 왔으니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의 몸으로 오셨으니 이 조건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범죄한 후로 아담의 핏줄을 타고난 아담의 후예들도 모두 원죄를 물려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도 돈이 없어서 빚을 진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 줄 수 없듯이, 죄인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해 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남녀의 정자,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심으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시며 구세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으신 것입니다.
셋째로,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곧 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시기 때문에 원죄가 없고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셨으므로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7:26을 보면 주님에 대하여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했습니다.
죄가 없는 것이 영계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성경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명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떠나가고 각색 모든 질병과 연약함이 치료되었으며 심지어 죽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는 죄 없으신 예수님이시기에 어둠의 권세를 굴복시키며 사망까지도 이길 힘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죄를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주는 희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지만 피조물인 사람들에게 온갖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또한 나무 십자가에 손과 발을 못 박히시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셨으며, 온몸은 채찍으로 맞으시고 옆구리는 창으로 찔려 물과 피를 다 쏟으셨지요.
갈라디아서 3:13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했습니다. 곧 사망이라는 이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입니다.
또한 레위기 17:11을 보면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했고, 히브리서 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님께서는 흠도 점도 없는 보배 피를 흘려 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죄사함받아 생명을 얻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3.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구원에 이르는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독생자까지 화목제물로 내어 주시며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의 길로 들어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1:17을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셨지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냥 입술로만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다고 어떻게 구원에 이를 수 있으며 또한 참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전에는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영계의 법을 어김으로 그의 모든 후손이 사망의 길로 가고 모든 권세를 원수 마귀에게 넘겨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수 마귀가 영계의 법을 어기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던 것입니다.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씀하셨으니 영계의 법은 오직 죄를 지은 사람만이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는 악한 자들을 사주해서 원죄도 자범죄도 없는 예수님을 죽게 했으니 이것이 바로 원수 마귀의 큰 실책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원수 마귀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내어 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가난이나 질병, 연약함 등 온갖 저주에서 놓임받게 된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에베소서 5:31-32을 보면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했습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아는 사실인데 그것이 무슨 큰 비밀이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성경에 이것을 기록한 것은 바로 여기에는 영적인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이지요.
요한복음 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죄 중에 있을 때는 마귀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께서는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우리는 주님의 신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증거로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이 내주하시며 성령으로 영을 낳게 됩니다. 따라서 성령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진리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남녀가 한 몸을 이루어 생명을 잉태하게 되듯이, 바로 우리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할 때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을 마음 중심에서 믿으면 삶 속에서 그 증거가 나타나게 됩니다. 즉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정녕히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힘쓰게 됩니다. 요한복음 14:23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정녕히 믿는다면 주님을 닮아 가기 위해 기도하며 날마다 변화되어 나가야 합니다. 즉 죄인을 위해 생명까지 내어 주신 주님을 본받아 형제를 위해 희생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주님을 믿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아 주님을 바로 믿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며 항상 응답과 축복 가운데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예수가 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며 주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참된 믿음의 증거를 보이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각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셨습니다. 주님을 믿는 믿음 자체가 구원받고 천국으로 들어가는 길이 되며, 모든 응답과 축복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 했으며, 왜 예수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 그리고 왜 주 예수를 믿는다고 구원과 응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야 했는가?
오늘날 어떤 이는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 중에 한 분으로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결코 사람과 동격으로 생각할 수 없는 구세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왜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셔야만 했을까요? 그 배경부터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시고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원수 마귀의 사주를 받은 뱀의 유혹을 받아 그만 그 실과를 따 먹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6:16에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된다' 말씀하신 대로 사단의 음성을 듣고 그에 순종한 아담과 하와는 원수 마귀에 속한 자가 되고 말았지요.
이처럼 인류의 시조인 아담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세상에 죄가 들어오게 되었고 그 후손인 모든 인류가 죄성을 타고 나오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런데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했으니 영적인 세계에서도 사람이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사망은 죽음을 뜻하는 것이요, 이 죽음은 영원한 형벌, 곧 지옥을 말합니다. 첫사람 아담이 죄를 지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죄 가운데 거하게 되었으니 모든 사람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게 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인류를 위하여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화목제물로 드려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가로막혔던 죄의 담이 헐어지고 누구든지 구원의 길로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2. 예수가 구세주가 되기 위한 네 가지 조건
사도행전 4:12을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여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 예수를 바로 믿기 위해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이유를 마음 중심에서 깨우쳐야 하지요. 이 세상에도 법이 있어서 그 법대로 사회 질서가 유지되듯이 영계에도 영계의 법이 있어서 이 법칙을 좇아야만 원수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속한 자녀로 회복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토지 무르기 법칙을 근거로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구세주가 되기 위한 네 가지 조건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사람이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21을 보면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했습니다. 즉 사망이 사람인 아담으로 인하여 왔으니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사람으로 말미암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의 몸으로 오셨으니 이 조건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범죄한 후로 아담의 핏줄을 타고난 아담의 후예들도 모두 원죄를 물려받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도 돈이 없어서 빚을 진 사람이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 줄 수 없듯이, 죄인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해 줄 수는 없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남녀의 정자,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어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심으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시며 구세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으신 것입니다.
셋째로,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곧 힘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시기 때문에 원죄가 없고 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셨으므로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7:26을 보면 주님에 대하여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니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시고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라" 했습니다.
죄가 없는 것이 영계에서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성경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명하시니 더러운 귀신이 떠나가고 각색 모든 질병과 연약함이 치료되었으며 심지어 죽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는 죄 없으신 예수님이시기에 어둠의 권세를 굴복시키며 사망까지도 이길 힘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앞서 말한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었다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죄를 대속할 수가 없습니다.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주는 희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독생자이셨지만 피조물인 사람들에게 온갖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또한 나무 십자가에 손과 발을 못 박히시고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을 쓰셨으며, 온몸은 채찍으로 맞으시고 옆구리는 창으로 찔려 물과 피를 다 쏟으셨지요.
갈라디아서 3:13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했습니다. 곧 사망이라는 이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던 것입니다.
또한 레위기 17:11을 보면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했고, 히브리서 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님께서는 흠도 점도 없는 보배 피를 흘려 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죄사함받아 생명을 얻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3.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구원에 이르는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독생자까지 화목제물로 내어 주시며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의 길로 들어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로마서 1:17을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하셨지요.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그냥 입술로만 믿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믿는다고 어떻게 구원에 이를 수 있으며 또한 참믿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분명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전에는 아담이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영계의 법을 어김으로 그의 모든 후손이 사망의 길로 가고 모든 권세를 원수 마귀에게 넘겨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원수 마귀가 영계의 법을 어기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게 하였던 것입니다.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씀하셨으니 영계의 법은 오직 죄를 지은 사람만이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는 악한 자들을 사주해서 원죄도 자범죄도 없는 예수님을 죽게 했으니 이것이 바로 원수 마귀의 큰 실책이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는 죽음에서 부활하셨고 원수 마귀는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다시 하나님의 자녀로 내어 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가난이나 질병, 연약함 등 온갖 저주에서 놓임받게 된 것입니다.
4.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에베소서 5:31-32을 보면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했습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이 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아는 사실인데 그것이 무슨 큰 비밀이 되겠습니까? 그럼에도 성경에 이것을 기록한 것은 바로 여기에는 영적인 뜻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즉, 이 말씀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비유하여 말씀하신 것이지요.
요한복음 8:44에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죄 중에 있을 때는 마귀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주님께서는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우리는 주님의 신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증거로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이 내주하시며 성령으로 영을 낳게 됩니다. 따라서 성령이 원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면서 진리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남녀가 한 몸을 이루어 생명을 잉태하게 되듯이, 바로 우리도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결합할 때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을 마음 중심에서 믿으면 삶 속에서 그 증거가 나타나게 됩니다. 즉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한다고 믿는 것이 아니라 정녕히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고자 힘쓰게 됩니다. 요한복음 14:23을 보면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정녕히 믿는다면 주님을 닮아 가기 위해 기도하며 날마다 변화되어 나가야 합니다. 즉 죄인을 위해 생명까지 내어 주신 주님을 본받아 형제를 위해 희생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치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주님을 믿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아 주님을 바로 믿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감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며 항상 응답과 축복 가운데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9-15
제37과하나님을 믿는다는 것
히 11:3
읽을말씀 : 히 11:3 | 외울말씀 : 히 11:3
교육목표 : 하나님을 믿음으로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며 치료받고 응답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막 9:23).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바로 믿을 수가 없고 바로 믿지 못하면 아무리 기도를 한다 해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거나 응답받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시고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항상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놀라운 권능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먼저 하나님은 성경 66권의 저자이십니다. 성경을 비록 사람이 기록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주관하여 기록하게 하신 것이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사람이 상상으로 지어내거나 손으로 조각한 우상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존재하시는 참 신이시지요. 그 밖에도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시며, 빛 자체이시며 끝 날에 만물을 심판하시는 재판장도 되시는 등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놀라운 권능으로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또한 만물을 창조하신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그 크신 권능을 동일하게 나타내 주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1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했고 본문 히브리서 11:3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맨 처음,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천하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사람 또한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음받았으며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던 것입니다.
2.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까닭은 창조라는 것이 세상에서 배운 지식이나 경험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배운 진화론에서는 우연히 생명체가 발생하고 진화되어 오늘날과 같은 생물들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런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게 되니 성경의 말씀들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진화론의 허구성이 밝혀지며, 오히려 창조가 참이라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우리 주변만 살펴보더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창조의 증거들이 수없이 많지요. 예를 들어, 세상에는 수많은 나라와 족속들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의 눈이 모두 두 개씩이지요. 또한 귀도 두 개, 코는 하나, 입도 하나이며 그 위치도 동일한 것을 봅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육지의 짐승들은 물론이고, 하늘을 나는 새와 바다의 물고기 역시 다 마찬가지입니다. 무리의 특성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그 구조와 위치까지도 거의 동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동물들이 동일한 구조를 가진 것은 바로 모든 것들을 동일하게 창조하신 창조주가 계시며 또한 창조주가 한 분이시라는 증거가 됩니다. 이 밖에도 자연과 우주에는 수많은 창조의 증거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하신 대로 자연 만물을 통해서도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인 권능의 역사들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이 아무리 많아도 여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들을 보여 주시는데 바로 권능의 역사들입니다. 즉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권능의 역사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홍해 바다가 둘로 갈라지는가 하면, 태양이 운행을 멈추거나 오히려 뒤로 물러가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도 하고 쓴물이 단물로 변화되며 반석을 치면 물이 솟아나기도 했습니다. 또한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각종 병들이 치료되며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승리를 얻기도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구하기만 하면,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권능의 역사들을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옛날, 성경시대에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전 세계에 믿음 있는 사람들을 통해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특별히 본교회에서는 개척 이후 끊임없는 권능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해 왔습니다.
4. 본교회에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들
본교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질병이나 연약한 것의 치료입니다. 각종 암을 비롯하여 결핵, 중풍, 뇌성마비, 디스크, 관절염, 백혈병 등 치료받지 못하는 질병이 없지요.
해외 성회에서는 에이즈를 치료받은 사람이 많이 있고 귀신들린 사람도 수없이 온전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한 교통사고 후유증이나 치명적인 화상도 깨끗이 치료받았으며 뇌출혈이나 유독 가스 중독으로 인해 이미 의식이 없고 몸이 경직되어 가던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깨어나고 회복된 경우도 허다합니다.
더구나 5년, 7년, 10년, 20년 이상 잉태하지 못했던 부부들이 기도받음으로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많으며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분들도 온전함을 입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소아마비나 사고 등으로 한 쪽이 짧았던 다리가 기도 받은 후 4㎝, 5㎝, 혹은 8㎝씩 길어져서 양쪽 다리 길이가 같아진 분들도 많습니다.
치료의 역사만이 아닙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니 즉시 멈추거나 따가운 햇볕이 내리쬘 때 구름이 몰려와 가려 주는 등 천기까지도 움직여지는 것을 본교회 성도님들은 무수히 체험했지요.
더욱 신기한 것은 직접 기도해 주지 않아도 놀라운 권능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단에서 나가는 전체 기도, 혹은 전화나 테이프에 녹음된 기도, 인터넷이나 TV방송의 기도를 통해서도 응답받고 축복받아 영광을 돌렸습니다.
또 사도행전 19:12을 보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것처럼 제게 기도받은 손수건을 얹고 기도할 때도 저를 통해 나타나는 권능의 역사들이 전 세계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지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 누구나 권능을 체험하고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려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행함으로 드러나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도 "네가 나를 믿는구나" 하고 인정하실 때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5. 믿음의 증거를 내보임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한 성경상의 예
먼저, 엘리사 선지자 당시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나아만은 아람 나라의 존귀한 장군이었는데 하나님의 권능을 행하는 엘리사의 소문을 듣고 자기의 문둥병을 치료받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권세 있는 장군이 먼 나라에서 많은 예물까지 들고 왔는데 엘리사는 그저 시종을 보내어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전해 줄 뿐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분이 상했지만 나아만은 워낙 마음이 선했을 뿐 아니라 주변의 종들도 순종하도록 간언하므로 마음을 돌이켜서 순종함으로 문둥병을 깨끗하게 치료받았습니다.
다음으로, 솔로몬 왕은 정성을 다해 응답받을 그릇을 준비하여 믿음을 인정받은 경우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했지요. 구약 시대에 일천 번의 번제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 그리고 막대한 재물이 들어갑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인정하시고 소원대로 큰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영화와 장수의 축복까지도 주셨지요.
또한 귀신들린 딸을 고침받고자 예수님께 나왔던 수로보니게 여인은 겸비함과 변함없는 믿음의 간구를 통해 응답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딸을 고쳐달라 간구하는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심으로 이방인인 여인을 개에다 비유하셨지요. 그러나 여인은 기분 상하거나 낙심하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겸비하게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고백함으로 예수님께 즉시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밖에도 믿음의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령, 응답받을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얼굴에 기쁨과 감사가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1:24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하셨으니 믿음의 고백을 하며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참믿음이 있다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므로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빛이시니 빛 가운데 살고 하나님은 선하시니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믿음으로 여기시고 기뻐하시며 마음의 소원에 응답하시고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행함과 함께 간구하면 응답해 주십니다.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권능으로 축복해 주시는 분이시니 하나님을 오직 믿음의 행함으로 기쁘시게 하심으로 마음껏 응답과 축복을 받아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믿음으로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며 치료받고 응답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막 9:23). 그러나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하면 바로 믿을 수가 없고 바로 믿지 못하면 아무리 기도를 한다 해도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거나 응답받기가 어렵습니다.
따라서 오늘은 하나님께서는 어떤 분이시고 그분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항상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는지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놀라운 권능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먼저 하나님은 성경 66권의 저자이십니다. 성경을 비록 사람이 기록하기는 했지만 하나님께서 사람을 주관하여 기록하게 하신 것이므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계신 분이십니다. 사람이 상상으로 지어내거나 손으로 조각한 우상과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존재하시는 참 신이시지요. 그 밖에도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시며, 빛 자체이시며 끝 날에 만물을 심판하시는 재판장도 되시는 등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하나님은 놀라운 권능으로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십니다. 또한 만물을 창조하신 태초로부터 지금까지 그 크신 권능을 동일하게 나타내 주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창세기 1:1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했고 본문 히브리서 11:3에는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세상의 맨 처음, 아무것도 없는 무의 상태에서 오직 하나님의 권능으로 천하 만물이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사람 또한 하나님의 권능으로 지음받았으며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았던 것입니다.
2.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 까닭은 창조라는 것이 세상에서 배운 지식이나 경험과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배운 진화론에서는 우연히 생명체가 발생하고 진화되어 오늘날과 같은 생물들이 존재하게 되었다고 말하는데, 이런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게 되니 성경의 말씀들을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과학이 발달하면 할수록 진화론의 허구성이 밝혀지며, 오히려 창조가 참이라는 증거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또 우리 주변만 살펴보더라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창조의 증거들이 수없이 많지요. 예를 들어, 세상에는 수많은 나라와 족속들이 있는데 모든 사람들의 눈이 모두 두 개씩이지요. 또한 귀도 두 개, 코는 하나, 입도 하나이며 그 위치도 동일한 것을 봅니다. 사람만이 아니라 육지의 짐승들은 물론이고, 하늘을 나는 새와 바다의 물고기 역시 다 마찬가지입니다. 무리의 특성에 따라 약간씩의 차이는 있지만 그 구조와 위치까지도 거의 동일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수많은 동물들이 동일한 구조를 가진 것은 바로 모든 것들을 동일하게 창조하신 창조주가 계시며 또한 창조주가 한 분이시라는 증거가 됩니다. 이 밖에도 자연과 우주에는 수많은 창조의 증거들이 있습니다. 로마서 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하신 대로 자연 만물을 통해서도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3.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인 권능의 역사들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이 아무리 많아도 여전히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는 확실한 증거들을 보여 주시는데 바로 권능의 역사들입니다. 즉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기적들을 통해 하나님을 믿을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많은 권능의 역사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홍해 바다가 둘로 갈라지는가 하면, 태양이 운행을 멈추거나 오히려 뒤로 물러가기도 합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도 하고 쓴물이 단물로 변화되며 반석을 치면 물이 솟아나기도 했습니다. 또한 죽은 사람이 살아나고 각종 병들이 치료되며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전쟁에 승리를 얻기도 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구하기만 하면, 사람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권능의 역사들을 얼마든지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렇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는 옛날, 성경시대에만 있었던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도 전 세계에 믿음 있는 사람들을 통해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는데, 특별히 본교회에서는 개척 이후 끊임없는 권능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해 왔습니다.
4. 본교회에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들
본교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은 질병이나 연약한 것의 치료입니다. 각종 암을 비롯하여 결핵, 중풍, 뇌성마비, 디스크, 관절염, 백혈병 등 치료받지 못하는 질병이 없지요.
해외 성회에서는 에이즈를 치료받은 사람이 많이 있고 귀신들린 사람도 수없이 온전케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한 교통사고 후유증이나 치명적인 화상도 깨끗이 치료받았으며 뇌출혈이나 유독 가스 중독으로 인해 이미 의식이 없고 몸이 경직되어 가던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깨어나고 회복된 경우도 허다합니다.
더구나 5년, 7년, 10년, 20년 이상 잉태하지 못했던 부부들이 기도받음으로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많으며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분들도 온전함을 입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소아마비나 사고 등으로 한 쪽이 짧았던 다리가 기도 받은 후 4㎝, 5㎝, 혹은 8㎝씩 길어져서 양쪽 다리 길이가 같아진 분들도 많습니다.
치료의 역사만이 아닙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니 즉시 멈추거나 따가운 햇볕이 내리쬘 때 구름이 몰려와 가려 주는 등 천기까지도 움직여지는 것을 본교회 성도님들은 무수히 체험했지요.
더욱 신기한 것은 직접 기도해 주지 않아도 놀라운 권능들이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단에서 나가는 전체 기도, 혹은 전화나 테이프에 녹음된 기도, 인터넷이나 TV방송의 기도를 통해서도 응답받고 축복받아 영광을 돌렸습니다.
또 사도행전 19:12을 보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이런 것처럼 제게 기도받은 손수건을 얹고 기도할 때도 저를 통해 나타나는 권능의 역사들이 전 세계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과 지식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면 누구나 권능을 체험하고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려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행함으로 드러나고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도 "네가 나를 믿는구나" 하고 인정하실 때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5. 믿음의 증거를 내보임으로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한 성경상의 예
먼저, 엘리사 선지자 당시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나아만은 아람 나라의 존귀한 장군이었는데 하나님의 권능을 행하는 엘리사의 소문을 듣고 자기의 문둥병을 치료받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권세 있는 장군이 먼 나라에서 많은 예물까지 들고 왔는데 엘리사는 그저 시종을 보내어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고 전해 줄 뿐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분이 상했지만 나아만은 워낙 마음이 선했을 뿐 아니라 주변의 종들도 순종하도록 간언하므로 마음을 돌이켜서 순종함으로 문둥병을 깨끗하게 치료받았습니다.
다음으로, 솔로몬 왕은 정성을 다해 응답받을 그릇을 준비하여 믿음을 인정받은 경우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했지요. 구약 시대에 일천 번의 번제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것은 엄청난 시간과 노력, 그리고 막대한 재물이 들어갑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인정하시고 소원대로 큰 지혜뿐만 아니라 부귀영화와 장수의 축복까지도 주셨지요.
또한 귀신들린 딸을 고침받고자 예수님께 나왔던 수로보니게 여인은 겸비함과 변함없는 믿음의 간구를 통해 응답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딸을 고쳐달라 간구하는 여인에게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심으로 이방인인 여인을 개에다 비유하셨지요. 그러나 여인은 기분 상하거나 낙심하여 떠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겸비하게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고백함으로 예수님께 즉시 응답을 받았습니다.
이밖에도 믿음의 증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령, 응답받을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얼굴에 기쁨과 감사가 가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1:24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하셨으니 믿음의 고백을 하며 행복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으니 참믿음이 있다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므로 말씀대로 순종하여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빛이시니 빛 가운데 살고 하나님은 선하시니 선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믿음으로 여기시고 기뻐하시며 마음의 소원에 응답하시고 축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행함과 함께 간구하면 응답해 주십니다.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권능으로 축복해 주시는 분이시니 하나님을 오직 믿음의 행함으로 기쁘시게 하심으로 마음껏 응답과 축복을 받아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9-08
제36과사랑하는 자에게 보이지 아니하고서는
요일 4:16
읽을말씀 : 요일 4:16 | 외울말씀 : 요일 4:16
교육목표 : 마음이 성결되고 하나님을 닮아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가는 곳마다 진리의 빛을 비추는 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마음이 성결된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선물이 있는데, 바로 권능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사랑을 주고받고 비밀한 것까지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벗과 같은 참된 자녀를 얻기 원하십니다. 창세기 5:21-24을 보면, 하나님과 이러한 사랑을 주고받았던 에녹에 대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과 300년간 동행하시면서 영의 깊은 세계와 신령한 차원, 그리고 그에 속한 비밀한 것까지라도 알려 주시다가 산 채로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창 5:24).
하나님께서는 에녹뿐만 아니라 마음이 성결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만 있다면 동행해 주시며 사랑하고 교통함으로 비밀한 것들을 알려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인간 경작의 세월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사람들을 택하셔서 그들에게 비밀한 일과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알리셨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당세의 의인 노아에게 물의 심판이 있을 것을 알려 주신 하나님
창세기 6-7장을 보면,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퍼붓는 비가 40일 동안 내리고 땅에서는 큰 샘들이 터져 온 세상이 물에 잠겼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노아의 방주에 들어온 동물들은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들은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예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노아는 어떻게 방주를 미리 준비할 수 있었을까요? 창세기 6:13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앞으로 홍수가 있을 것과 이로 인해 모든 사람과 동물들이 멸절될 것, 그리고 홍수에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되 어떤 재료를 가지고 얼마만한 크기로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까지 상세하게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노아에게 비밀을 미리 알려 주셔서 구원하신 것일까요? 창세기 6:9을 보면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수로 모든 인류를 멸절하셔야 할 만큼 죄악으로 관영했던 세상에서 노아만은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사람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을 입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노아는 사랑의 사람이었기에 대홍수가 임할 것을 알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재앙을 면케 해 주려고 했지만 어느 한 사람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방주에는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들어갔고 이들 외에는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노아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노아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영계의 비밀한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2.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소돔성의 멸망을 알려 주신 하나님
야고보서 2:23을 보면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 받을 만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었던 사람입니다. 우주만물의 창조주요,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피조물인 사람이 벗으로 칭함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영광스럽고도 참으로 가슴벅찬 일이지요. 그러니 이러한 사랑을 받은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임할 엄청난 재앙에 대해서 미리 알려 주시는데, 당시 소돔과 고모라는 죄가 심히 관영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소돔성에 거하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 주셔서 미리 피하도록 하십니다. 이는 롯이 하나님 앞에 비밀한 일을 들을 만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신 하나님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의 그늘 아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롯은 이처럼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이지요.
아브라함은 후일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실 때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백 세에 얻은 독자 이삭까지 주저없이 순종하여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바로 이런 중심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아셨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시며 비밀한 것이라도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3. 시대마다 합한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을 택하여 역사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예레미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 등 여러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에 장차 임할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하나님께로부터 듣고 선포했고, 이 모든 예언들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만세 전에 감취어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성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언해 왔고, 그 예언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알듯이 지금부터 약 2천 년 전에 이루어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예언한 내용들 중에 특히 이사야 5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떠한 모습으로 오실 것과 그가 고난을 받으시는 이유가 우리 사람의 죄악 때문이며 결국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죽임 당하게 될 것까지 말씀하고 있지요.
이 밖에도 성경에 기록된 크고 작은 예언들은 앞으로 일어날 몇 가지 일들만 남기고 다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태복음 5:18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말씀들이 있는데, 바로 주님의 공중재림과 7년 환난과 천년 왕국, 그리고 백보좌 대심판입니다. 이 중에서 주님의 공중재림은 주님께서 부활승천하신 이후 줄곧 하나님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주님의 공중재림과 그때의 징조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통해 이미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다니엘 선지자와 사도 요한을 들 수 있지요.
다니엘서 9:20-27과 12장에는 마지막 때의 비밀이 담긴 칠십 이레에 관한 내용과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하여 각각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니엘서 12:4에 보면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이 말씀처럼 오늘날에는 다니엘서가 기록되던 당시에는 참으로 상상할 수도 없었던 첨단을 달리는 교통수단과 엄청난 매스미디어의 발달, 그리고 수많은 지식의 발달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사도 요한 역시 요한계시록이라는 성경의 책 한 권을 기록할 만큼 마지막 때에 관해 깊이 알았던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 때에 대해 훨씬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들은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몇 가지 내용들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마지막 때에 대해 그의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통해 알려 주시면서 그 후세의 사람들은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를 원하셨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기록해 놓으신 것은 오히려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말씀에 담긴 내용과 뜻을 알아서 그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베드로후서 1:20-21에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말씀한 대로, 성경의 예언은 성령의 감동함으로 기록된 것이므로 역시 성령의 감동함 속에 풀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이를 성령의 감동함 속에 풀기에 합당한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성경에 기록된 비밀한 말씀들을 낱낱이 풀어 주시고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가 가까운 오늘날에도 역시 그 비밀한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행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암 3:7).
4. 세계선교를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 사람을 경작하시는 근본은 사랑이며,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의 참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 들어옴으로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벧후 3:9).
그러니 오늘날 인간 경작의 마무리 시점에서 대홍수의 심판을 미리 알고 대비했던 노아처럼,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미리 알고 그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렸던 아브라함처럼 세상의 마지막 때를 알고 대비하며 그것을 세계 만방에 외침으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해야 할 하나님의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우리가 그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의 힘으로만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온전한 사랑이 임하고 그 사랑을 행함으로 온전히 이루었을 때 비로소 영원한 천국에서 새예루살렘에 거하는 자격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때에 비밀한 것들을 깨우쳐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설령 상대의 허물이 있을지라도 용서할 줄 알고 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변함없이 상대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소유해야 마땅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리의 마음이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일서 4:16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삼아 그 진리의 빛을 행함으로 온전히 비추는 복된 삶을 영위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마음이 성결되고 하나님을 닮아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가는 곳마다 진리의 빛을 비추는 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마음이 성결된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선물이 있는데, 바로 권능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하나님께서는 진정한 사랑을 주고받고 비밀한 것까지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벗과 같은 참된 자녀를 얻기 원하십니다. 창세기 5:21-24을 보면, 하나님과 이러한 사랑을 주고받았던 에녹에 대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과 300년간 동행하시면서 영의 깊은 세계와 신령한 차원, 그리고 그에 속한 비밀한 것까지라도 알려 주시다가 산 채로 하늘로 올리우셨습니다(창 5:24).
하나님께서는 에녹뿐만 아니라 마음이 성결되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사람만 있다면 동행해 주시며 사랑하고 교통함으로 비밀한 것들을 알려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인간 경작의 세월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사람들을 택하셔서 그들에게 비밀한 일과 앞으로 되어질 일들을 알리셨는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당세의 의인 노아에게 물의 심판이 있을 것을 알려 주신 하나님
창세기 6-7장을 보면,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퍼붓는 비가 40일 동안 내리고 땅에서는 큰 샘들이 터져 온 세상이 물에 잠겼지만,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노아의 방주에 들어온 동물들은 살아남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이들은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예비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노아는 어떻게 방주를 미리 준비할 수 있었을까요? 창세기 6:13 이하를 보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앞으로 홍수가 있을 것과 이로 인해 모든 사람과 동물들이 멸절될 것, 그리고 홍수에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되 어떤 재료를 가지고 얼마만한 크기로 어떻게 만들어야 할 것까지 상세하게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노아에게 비밀을 미리 알려 주셔서 구원하신 것일까요? 창세기 6:9을 보면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홍수로 모든 인류를 멸절하셔야 할 만큼 죄악으로 관영했던 세상에서 노아만은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사람이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었으며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을 입은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노아는 사랑의 사람이었기에 대홍수가 임할 것을 알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서 재앙을 면케 해 주려고 했지만 어느 한 사람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방주에는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들어갔고 이들 외에는 아무도 구원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오직 노아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노아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영계의 비밀한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2.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소돔성의 멸망을 알려 주신 하나님
야고보서 2:23을 보면 "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 받을 만큼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이루었던 사람입니다. 우주만물의 창조주요,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피조물인 사람이 벗으로 칭함을 받는다는 것은 너무나 영광스럽고도 참으로 가슴벅찬 일이지요. 그러니 이러한 사랑을 받은 아브라함이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는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에 임할 엄청난 재앙에 대해서 미리 알려 주시는데, 당시 소돔과 고모라는 죄가 심히 관영하여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소돔성에 거하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 주셔서 미리 피하도록 하십니다. 이는 롯이 하나님 앞에 비밀한 일을 들을 만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사랑하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신 하나님의 배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의 그늘 아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롯은 이처럼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이지요.
아브라함은 후일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명하실 때 자신의 생명보다 더 귀한 백 세에 얻은 독자 이삭까지 주저없이 순종하여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바로 이런 중심을 소유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미 아셨기 때문에 그를 사랑하시며 비밀한 것이라도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3. 시대마다 합한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을 택하여 역사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의 예레미야, 아모스, 호세아, 미가 등 여러 선지자들은 이스라엘에 장차 임할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하나님께로부터 듣고 선포했고, 이 모든 예언들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만세 전에 감취어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도 성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언해 왔고, 그 예언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알듯이 지금부터 약 2천 년 전에 이루어졌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 예언한 내용들 중에 특히 이사야 5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어떠한 모습으로 오실 것과 그가 고난을 받으시는 이유가 우리 사람의 죄악 때문이며 결국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죽임 당하게 될 것까지 말씀하고 있지요.
이 밖에도 성경에 기록된 크고 작은 예언들은 앞으로 일어날 몇 가지 일들만 남기고 다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마태복음 5:18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앞으로 이루어져야 할 말씀들이 있는데, 바로 주님의 공중재림과 7년 환난과 천년 왕국, 그리고 백보좌 대심판입니다. 이 중에서 주님의 공중재림은 주님께서 부활승천하신 이후 줄곧 하나님을 믿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주님의 공중재림과 그때의 징조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통해 이미 성경에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다니엘 선지자와 사도 요한을 들 수 있지요.
다니엘서 9:20-27과 12장에는 마지막 때의 비밀이 담긴 칠십 이레에 관한 내용과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하여 각각 말씀하고 있습니다. 특히, 다니엘서 12:4에 보면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지요. 이 말씀처럼 오늘날에는 다니엘서가 기록되던 당시에는 참으로 상상할 수도 없었던 첨단을 달리는 교통수단과 엄청난 매스미디어의 발달, 그리고 수많은 지식의 발달이 이루어져 왔습니다.
사도 요한 역시 요한계시록이라는 성경의 책 한 권을 기록할 만큼 마지막 때에 관해 깊이 알았던 사람입니다.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 때에 대해 훨씬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 말씀들은 직접적으로 알 수 있는 몇 가지 내용들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그에 대한 의견들이 분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마지막 때에 대해 그의 사랑하시는 사람들을 통해 알려 주시면서 그 후세의 사람들은 그 뜻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를 원하셨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에 기록해 놓으신 것은 오히려 후세 사람들로 하여금 말씀에 담긴 내용과 뜻을 알아서 그 뜻대로 행하기를 원하셨던 것이지요.
그런데 베드로후서 1:20-21에 "먼저 알 것은 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말씀한 대로, 성경의 예언은 성령의 감동함으로 기록된 것이므로 역시 성령의 감동함 속에 풀어야만 합니다. 따라서 이를 성령의 감동함 속에 풀기에 합당한 사람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사람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에게 성경에 기록된 비밀한 말씀들을 낱낱이 풀어 주시고 설명해 주시는 것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가 가까운 오늘날에도 역시 그 비밀한 일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보이지 아니하고서는 결코 행하심이 없기 때문입니다(암 3:7).
4. 세계선교를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 사람을 경작하시는 근본은 사랑이며, 이러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당연히 한 영혼이라도 더 하나님의 참사랑을 깨닫고 그 사랑 안에 들어옴으로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벧후 3:9).
그러니 오늘날 인간 경작의 마무리 시점에서 대홍수의 심판을 미리 알고 대비했던 노아처럼,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을 미리 알고 그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올렸던 아브라함처럼 세상의 마지막 때를 알고 대비하며 그것을 세계 만방에 외침으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해야 할 하나님의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바로 우리가 그 주인공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의 힘으로만이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온전한 사랑이 임하고 그 사랑을 행함으로 온전히 이루었을 때 비로소 영원한 천국에서 새예루살렘에 거하는 자격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때에 비밀한 것들을 깨우쳐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해야 하겠습니다. 설령 상대의 허물이 있을지라도 용서할 줄 알고 포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변함없이 상대를 아끼고 사랑할 수 있는 넓은 마음을 소유해야 마땅합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리의 마음이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한일서 4:16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거하심으로 참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삼아 그 진리의 빛을 행함으로 온전히 비추는 복된 삶을 영위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9-01
제35과권능 위에 권능을
요 14:12
읽을말씀 : 요 14:12 | 외울말씀 : 요 14:12
교육목표 : 마음의 성결을 이루며 신속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권능의 차원에 들어감으로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마음이 성결된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선물이 있는데, 바로 권능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권능은 언제나 그 열매가 선이고 영혼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만듭니다.
따라서 오늘은 권능과 권능 위에 권능이란 무엇이며, 그에 따르는 역사에 대해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받는 차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 하는 것입니다(요 14:21). 구체적으로는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영적인 사랑의 정의에 맞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께서도 그 자녀를 사랑해 주시고 그에게 사랑을 표현해 주시지요.
기도에 응답을 받는 것만 보아도 똑같은 것을 구하는데도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단 한 번 구해도 즉시 응답이 오고 어떤 사람은 일 주일을, 또 어떤 사람은 금식까지 하면서 구해야 비로소 응답받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것은 각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정도와 믿음이 다르다는 사실을 증거해 주는 동시에 응답의 무게가 다르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23에는 예수님께서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사랑의 차원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한일서 3:21-23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함으로 자신의 마음을 진리에 비추어 볼 때 책망할 것이 없다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계명을 지키는 것과 함께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한다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는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히 11:6). 그런데 우리가 진정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능을 받기 원한다면 완전한 영의 믿음, 즉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 완전한 영의 믿음, 그리스도의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화목제물로 드려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처럼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주님을 위해 기꺼이 버릴 수 있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불 같은 기도가 반드시 필요하지요(막 9:29).
2. 권능의 정의와 그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증거
권능은 "권세 있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능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믿음의 힘입니다. 또한 권세란 하나님의 정하신 엄위있고 영광스러운 힘이요,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이기 때문에 성결 그 자체라고도 말할 수 있지요. 따라서 모든 악과 비진리를 버리고 성결된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면 영적인 권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권능은 "권세 있는 능력"이므로 권세와 능력이 함께 나타납니다. 그러면 능력, 권세, 권능은 어떻게 다를까요? 비유를 들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아들이 돈을 벌 능력이 아무리 출중하다 해도 가장으로서의 권세는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질서가 잡힌 가정이라면 아들이 벌어온 돈을 아버지가 요구할 수 있고, 아들 입장에서는 순종해서 드려야 하지요. 그러나 아버지가 돈을 벌 능력도 가지고 있다면 이 아버지에게는 권세 있는 능력, 곧 권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권능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권세를 입는 것이기 때문에 기사와 표적과 희한한 능, 기이한 일이 따르게 되는데 각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표적(表蹟)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는 것은 물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짧았던 다리가 길어지며, 굽었던 허리가 펴지며 소아마비나 뇌성마비가 온전해지는 역사 등이 이에 속하지요.
마태복음 4:23을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하여 병과 약한 것이 구분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한 것이란 가벼운 질병이 아니라 불의의 사고나 부모나 자신의 실수로 신체의 어떤 기관이 마비되거나 퇴화되어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경우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 행함은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병 고치는 은사 즉 신유의 은사를 받으면 성령의 불의 역사로 아픈 부위나 질병의 균을 태워 병을 낫게 할 수는 있으나, 그런 병들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므로 표적에 해당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2) 희한한 능(能)과 기이한 일
성경상에서 들 수 있는 희한한 능의 예로는 사도행전 19:11-12에 기록된 사건을 들 수 있는데,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고 했습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의 경우는 그림자만 스쳐도 치료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행 5:15-16).
또한 기이한 일에 대한 예로는 모세가 애굽에서 행했던 열 재앙과 예수님께서 중풍으로 꼼짝도 못하던 사람을 치료하신 것(눅 5:17-26)을 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것만이 아니라 해도 희한하고 기이한 일은 다양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3) 기사(奇事)
기사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천기를 움직이는 것에 해당하는 일들로 주로 기상현상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름을 움직인다든가 비를 오게 하거나 멎게 하는 것, 천체를 움직이는 것 등이 이에 속하지요.
성경상에 사무엘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우뢰와 비를 보내 주신 일이 있었고(삼상 12:18),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간구하매 해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간 일이 있었습니다(왕하 20:11). 또한 엘리야 선지자는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셨다고 했습니다(약 5:17-18). 이처럼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들의 간절한 믿음의 간구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기사가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3. 권능 위에 권능이란?
권능 위에 권능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을 대기업의 회장으로, 우리들을 그의 자녀들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회장의 자녀 중에는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을 하며 경험을 쌓는 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아들은 능력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아버지의 마음에 쏙 들게 일을 잘 처리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계열사들을 하나씩 물려 주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그룹의 경영권 자체를 물려 주게 될 것입니다. 아들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후와 그 전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전에는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마다 아버지의 결재를 받아야 했지만 이제는 자신이 경영권을 가졌으니 임의대로 일을 추진해 갈 수 있지요.
이처럼 권능 위에 권능 차원은 아버지가 자녀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권능 위에 권능 차원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시는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의 고유한 신성(神性) 자체를 자녀에게 부여해 주시는 것, 즉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능들을 믿을 수 있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4. 권능 위에 권능을 받을 때 따르는 하나님의 역사
첫째로,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입니다.
요한복음 5:20-21을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실 때 아무나 살리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좇아 합당한 사람을 살리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고 나인이라는 성에서는 이미 죽어 장사를 지내기 위해 관에 실려 나가는 어느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으며,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기록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 외에도 구약에 엘리야와 엘리사가,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죽은 사람을 살린 기록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을 받아서 그렇게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상황에서 그만한 축복을 받을 만한 사람에 대하여 일시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하시기만 했던 것과는 다르게 행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가 하면 죽은 아이 위에 자기 몸을 펴서 엎드리는 등 특이한 행동을 취했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여러 번 그렇게 하신 것과는 달리 그들이 죽은 사람을 살린 기록은 한 번씩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기의 원하는 사람들을 항상 살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말씀으로 창조의 역사를 베푸는 권능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던 것처럼, 말씀으로 창조의 역사를 베푸는 권능을 받으면 말씀 자체가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없던 뼈나 신체의 기관이 생겨나거나 짧았던 신체의 부분이 늘어나는 등 무에서 유가 만들어진 경우이지요.
한 백부장이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 예수님 앞에서 담대하게 믿음의 고백을 하자, 예수님께서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았던 것을 볼 수 있지요(마 8:8-13). 예수님께서 입술로 내신 말씀이 공간을 초월하여 그대로 역사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했습니다(막 4:39). 이처럼 말씀 자체가 생명력 있게 역사되는 것은 말씀으로 창조의 역사를 베풀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권능은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창조의 역사를 베푸는 권능 위에도 그 이상의 권능들이 있습니다. 영적인 권능의 역사는 무한하여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권능을 온전히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권능을 행할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마음의 성결을 이루며 신속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권능의 차원에 들어감으로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마음이 성결된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의 선물이 있는데, 바로 권능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권능은 언제나 그 열매가 선이고 영혼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만듭니다.
따라서 오늘은 권능과 권능 위에 권능이란 무엇이며, 그에 따르는 역사에 대해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받는 차원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척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가 하는 것입니다(요 14:21). 구체적으로는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영적인 사랑의 정의에 맞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께서도 그 자녀를 사랑해 주시고 그에게 사랑을 표현해 주시지요.
기도에 응답을 받는 것만 보아도 똑같은 것을 구하는데도 사람마다 차이가 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단 한 번 구해도 즉시 응답이 오고 어떤 사람은 일 주일을, 또 어떤 사람은 금식까지 하면서 구해야 비로소 응답받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것은 각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정도와 믿음이 다르다는 사실을 증거해 주는 동시에 응답의 무게가 다르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23에는 예수님께서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사랑의 차원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요한일서 3:21-23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온전히 거함으로 자신의 마음을 진리에 비추어 볼 때 책망할 것이 없다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계명을 지키는 것과 함께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한다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는다'고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히 11:6). 그런데 우리가 진정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능을 받기 원한다면 완전한 영의 믿음, 즉 그리스도의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기서 완전한 영의 믿음, 그리스도의 믿음이란 예수님께서 자기 몸을 화목제물로 드려 죽기까지 복종하신 것처럼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주님을 위해 기꺼이 버릴 수 있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런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는 불 같은 기도가 반드시 필요하지요(막 9:29).
2. 권능의 정의와 그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증거
권능은 "권세 있는 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능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믿음의 힘입니다. 또한 권세란 하나님의 정하신 엄위있고 영광스러운 힘이요,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이기 때문에 성결 그 자체라고도 말할 수 있지요. 따라서 모든 악과 비진리를 버리고 성결된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면 영적인 권세를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권능은 "권세 있는 능력"이므로 권세와 능력이 함께 나타납니다. 그러면 능력, 권세, 권능은 어떻게 다를까요? 비유를 들면,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아들이 돈을 벌 능력이 아무리 출중하다 해도 가장으로서의 권세는 아버지에게 있습니다. 그래서 질서가 잡힌 가정이라면 아들이 벌어온 돈을 아버지가 요구할 수 있고, 아들 입장에서는 순종해서 드려야 하지요. 그러나 아버지가 돈을 벌 능력도 가지고 있다면 이 아버지에게는 권세 있는 능력, 곧 권능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도 권능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권세를 입는 것이기 때문에 기사와 표적과 희한한 능, 기이한 일이 따르게 되는데 각각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표적(表蹟)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을 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는 것은 물론, 앉은뱅이가 일어나고 짧았던 다리가 길어지며, 굽었던 허리가 펴지며 소아마비나 뇌성마비가 온전해지는 역사 등이 이에 속하지요.
마태복음 4:23을 보면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고 하여 병과 약한 것이 구분되어 기록되어 있습니다. 약한 것이란 가벼운 질병이 아니라 불의의 사고나 부모나 자신의 실수로 신체의 어떤 기관이 마비되거나 퇴화되어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경우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런 약한 것을 고치는 능력 행함은 병 고치는 은사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병 고치는 은사 즉 신유의 은사를 받으면 성령의 불의 역사로 아픈 부위나 질병의 균을 태워 병을 낫게 할 수는 있으나, 그런 병들은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으므로 표적에 해당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2) 희한한 능(能)과 기이한 일
성경상에서 들 수 있는 희한한 능의 예로는 사도행전 19:11-12에 기록된 사건을 들 수 있는데,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다고 했습니다. 또한 베드로 사도의 경우는 그림자만 스쳐도 치료의 역사가 나타났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행 5:15-16).
또한 기이한 일에 대한 예로는 모세가 애굽에서 행했던 열 재앙과 예수님께서 중풍으로 꼼짝도 못하던 사람을 치료하신 것(눅 5:17-26)을 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것만이 아니라 해도 희한하고 기이한 일은 다양하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3) 기사(奇事)
기사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천기를 움직이는 것에 해당하는 일들로 주로 기상현상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름을 움직인다든가 비를 오게 하거나 멎게 하는 것, 천체를 움직이는 것 등이 이에 속하지요.
성경상에 사무엘이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우뢰와 비를 보내 주신 일이 있었고(삼상 12:18), 이사야 선지자가 하나님께 간구하매 해 그림자가 10도 뒤로 물러간 일이 있었습니다(왕하 20:11). 또한 엘리야 선지자는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3년 6개월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셨다고 했습니다(약 5:17-18). 이처럼 하나님 앞에 합당한 사람들의 간절한 믿음의 간구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기사가 나타날 수 있는 것입니다.
3. 권능 위에 권능이란?
권능 위에 권능을 설명하기 위해 하나님을 대기업의 회장으로, 우리들을 그의 자녀들로 비유해 보겠습니다. 회장의 자녀 중에는 아버지의 회사에서 일을 하며 경험을 쌓는 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아들은 능력이 탁월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 아버지의 마음에 쏙 들게 일을 잘 처리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계열사들을 하나씩 물려 주게 될 것이고 나중에는 그룹의 경영권 자체를 물려 주게 될 것입니다. 아들이 경영권을 물려받은 후와 그 전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전에는 무슨 일을 하고자 할 때마다 아버지의 결재를 받아야 했지만 이제는 자신이 경영권을 가졌으니 임의대로 일을 추진해 갈 수 있지요.
이처럼 권능 위에 권능 차원은 아버지가 자녀에게 권한을 위임하는 것과 같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권능 위에 권능 차원은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보장해 주시는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의 고유한 신성(神性) 자체를 자녀에게 부여해 주시는 것, 즉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권능들을 믿을 수 있는 자녀들에게 주시는 것을 말합니다.
4. 권능 위에 권능을 받을 때 따르는 하나님의 역사
첫째로,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입니다.
요한복음 5:20-21을 보면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실 때 아무나 살리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좇아 합당한 사람을 살리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고 나인이라는 성에서는 이미 죽어 장사를 지내기 위해 관에 실려 나가는 어느 과부의 아들을 살리셨으며,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기록도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 외에도 구약에 엘리야와 엘리사가, 신약에서는 사도 바울과 베드로가 죽은 사람을 살린 기록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들은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을 받아서 그렇게 행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상황에서 그만한 축복을 받을 만한 사람에 대하여 일시적으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향하여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하시기만 했던 것과는 다르게 행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는가 하면 죽은 아이 위에 자기 몸을 펴서 엎드리는 등 특이한 행동을 취했던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여러 번 그렇게 하신 것과는 달리 그들이 죽은 사람을 살린 기록은 한 번씩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죽은 자를 살리는 권능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가 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기의 원하는 사람들을 항상 살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말씀으로 창조의 역사를 베푸는 권능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던 것처럼, 말씀으로 창조의 역사를 베푸는 권능을 받으면 말씀 자체가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없던 뼈나 신체의 기관이 생겨나거나 짧았던 신체의 부분이 늘어나는 등 무에서 유가 만들어진 경우이지요.
한 백부장이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 예수님 앞에서 담대하게 믿음의 고백을 하자, 예수님께서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라고 하시니, 그 시로 하인이 나았던 것을 볼 수 있지요(마 8:8-13). 예수님께서 입술로 내신 말씀이 공간을 초월하여 그대로 역사된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더러 잠잠하라 고요하라 하시니 바람이 그치고 아주 잔잔하여지더라 했습니다(막 4:39). 이처럼 말씀 자체가 생명력 있게 역사되는 것은 말씀으로 창조의 역사를 베풀었다는 것이고, 이러한 권능은 시공을 초월하여 역사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뿐만 아니라 말씀으로 창조의 역사를 베푸는 권능 위에도 그 이상의 권능들이 있습니다. 영적인 권능의 역사는 무한하여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도 하나님의 권능이 임하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타내시는 권능을 온전히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권능을 행할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8-25
제34과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잠 17:3
읽을말씀 : 잠 17:3 | 외울말씀 : 잠 17:3
교육목표 : 연단을 기쁨과 감사로 받아 승리하는 믿음을 소유함으로 장차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거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거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듯이 연단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는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5:3-4을 보면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말씀하고 있지요.
오늘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 중에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살펴보면서 신앙 안에서 받는 연단에는 무엇이 있으며, 어떻게 하면 연단을 잘 받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자녀들이 연단을 받는 이유
온전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도 온전하고 거룩하기 원하시므로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자녀들이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되며 믿음이 장성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연단으로 믿음이 장성해지면 영혼이 잘된 만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되므로 참으로 연단은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연단을 받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
야고보서 1:13을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시험 주셨다."고 말하는데 이는 참으로 하나님을 서운케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요, 자녀들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는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시험 환난을 주어 고통을 당하게 하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마 7:11). 그러면 왜 하나님의 자녀들이 환난을 당하는 것일까요?
야고보서 1:14,15을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자기 욕심 때문에 사단에게 미혹을 받아 어려움을 당한다는 말씀이지요.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족할 줄 알아야 하는데 욕심을 내다가 진리를 떠나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하여 남을 속이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지요. 이러한 것은 바로 원수 마귀 사단이 사람의 마음에 있는 욕심을 발동하도록 한 것이며, 그래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가 들어오게 되고 죄가 장성하여서 결국은 사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는 이유에 대해 잘 나와 있습니다. 4절 이하를 보면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닮기 위하여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않고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꾸지람을 내리시고 징계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채찍질하셔도 낙심하거나 넘어지지 말아야 하며, 왜 하나님께서 내게 꾸지람을 하시는지, 왜 징계를 하시는지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녀가 잘못을 범하고 곁길로 나갈 때 그대로 방치하지 아니하고 매를 들어서라도 잘못을 바로잡아 나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범할 때 책망하시며 사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채찍질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징계를 가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깨우침을 주고자 하십니다. 처음에는 마음 안에 계신 성령께서 탄식하심으로 마음에 곤고함을 느끼게 하시다가, 그래도 돌이키지 않으면 그만큼 더 무거운 징계로 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9-11을 보면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그의 거룩하심에 우리를 참예케 하시려고 우리에게 징계를 가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징계를 가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 먹게 한 뱀은 종신토록 흙을 먹고 살라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뱀이란 영적으로 원수 마귀를 말하며, 흙이란 흙으로 지어진 육의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이 말씀은 우리가 진리 안에 살지 못하는 만큼 원수 마귀가 시험과 환난과 질병을 가져다 주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시험 환난을 허락하시는 것이요, 징계를 가하심으로 진리 안에 살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악의 모습을 빼내어 온전케 만드시기 위해 연단을 가하시는데 연단을 통해 악을 버리고 나면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한 믿음의 선진들처럼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따라서 내 잘못으로 인해 연단을 받았을지라도 결국 연단은 축복이요, 감사한 일인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기 위한 경우
만일 어떤 사람이 열심히 공부하여 판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사법시험에 응시해야 합니다. 아무리 실력 있는 사람이라도 그 시험에 합격해서 인정을 받아야 판사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감에 있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이 있는데, 이러한 간구에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시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연단을 받아서 믿음이 성장했으므로 하나님께서 어떠한 축복을 주시고자 할 때 과연 그 축복을 받을 만한 믿음인가에 대한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시험에 통과하면 간구하고 소원했던 것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축복하심으로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는 내가 잘못해서 받는 연단이 아니라, 축복을 받기 위한 시험임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13을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만큼의 시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과 응답을 주시기 위해서 테스트하시는 경우는 시험에 들도록 놔두시지 않고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기도한 것에 대해서 내게 자격이 없으면 못 받는 것뿐이지 그것으로 인해 환난이 임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이 되었다면 당연히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면서 나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베드로전서 1:6,7에도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연단을 통해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한 요셉
우리는 성경에서 불같은 연단을 통하여 정금 같은 믿음으로 나왔던 많은 선진들을 만나 볼 수 있는데, 그 중에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 장차 자신이 매우 존귀케 되는 꿈을 꾸게 됩니다. 요셉은 그 꿈을 소중히 여겼고 하나님께서 정녕 이루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실현되기는커녕 오히려 이방인에게 팔려가서 가장 비천한 노예의 신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셉은 노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일하여 집주인의 인정을 받게 되었지요. 요셉의 주인은 당시 강대국이던 애굽의 시위대장이었고, 요셉은 그 집의 모든 제반 사항을 맡은 가정 총무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 했습니다(창 39:2,3).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예비하신 축복은 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었습니다. 결국 예비하신 축복의 자리로 이끄시기 위해서 허락하신 연단은 집주인의 아내를 통한 시험이었고, 요셉은 하나님 앞에 참으로 정직히 행했는데도 뜻하지 않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비천한 노예에서 죄수라는 더 낮은 자리에 처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도 요셉은 낙심하지 아니하고 성실히 행하여 감옥에서도 인정을 받아 다른 죄수들까지 관리하며 제반 사항을 처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이런 연단의 과정을 잘 밟아 나가자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나이 서른에 일약 애굽의 전역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13년 전에 요셉에게 주셨던 그 꿈이 성취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셉이 받아 온 연단의 길들은 갈수록 더 낮아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그것이 머리되고 높아지는 길이었고 축복된 길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성결케 되기를 원하시므로 마음속에 모든 찌끼와 오물까지라도 발견하여 내어 버릴 수 있도록 연단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어떠한 시험이나 연단도 기쁨과 감사로 승리하는 믿음을 소유함으로 장차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연단을 기쁨과 감사로 받아 승리하는 믿음을 소유함으로 장차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거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거나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말이 있듯이 연단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당연한 진리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이는 신앙 안에서도 마찬가지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5:3-4을 보면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말씀하고 있지요.
오늘은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 중에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을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살펴보면서 신앙 안에서 받는 연단에는 무엇이 있으며, 어떻게 하면 연단을 잘 받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자녀들이 연단을 받는 이유
온전하고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도 온전하고 거룩하기 원하시므로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자녀들이 온전한 모습으로 변화되며 믿음이 장성하도록 인도하십니다. 연단으로 믿음이 장성해지면 영혼이 잘된 만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되므로 참으로 연단은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연단을 받는 이유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경우
야고보서 1:13을 보면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려움을 만나면 "하나님께서 시험 주셨다."고 말하는데 이는 참으로 하나님을 서운케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요, 자녀들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기 원하는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시험 환난을 주어 고통을 당하게 하실 리가 없는 것입니다(마 7:11). 그러면 왜 하나님의 자녀들이 환난을 당하는 것일까요?
야고보서 1:14,15을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자기 욕심 때문에 사단에게 미혹을 받아 어려움을 당한다는 말씀이지요. 우리 주변에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족할 줄 알아야 하는데 욕심을 내다가 진리를 떠나 불의를 행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로지 자신의 유익만을 생각하여 남을 속이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들이지요. 이러한 것은 바로 원수 마귀 사단이 사람의 마음에 있는 욕심을 발동하도록 한 것이며, 그래서 욕심이 잉태한즉 죄가 들어오게 되고 죄가 장성하여서 결국은 사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히브리서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징계하시는 이유에 대해 잘 나와 있습니다. 4절 이하를 보면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 또 아들들에게 권하는 것같이 너희에게 권면하신 말씀을 잊었도다 일렀으되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에게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닮기 위하여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하는데, 버리지 않고 여전히 죄악 가운데 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꾸지람을 내리시고 징계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채찍질하셔도 낙심하거나 넘어지지 말아야 하며, 왜 하나님께서 내게 꾸지람을 하시는지, 왜 징계를 하시는지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참으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라면 자녀가 잘못을 범하고 곁길로 나갈 때 그대로 방치하지 아니하고 매를 들어서라도 잘못을 바로잡아 나가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범할 때 책망하시며 사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채찍질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징계를 가하시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으로 깨우침을 주고자 하십니다. 처음에는 마음 안에 계신 성령께서 탄식하심으로 마음에 곤고함을 느끼게 하시다가, 그래도 돌이키지 않으면 그만큼 더 무거운 징계로 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9-11을 보면 "또 우리 육체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여 살려 하지 않겠느냐 저희는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라고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그의 거룩하심에 우리를 참예케 하시려고 우리에게 징계를 가하신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징계를 가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를 징계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 먹게 한 뱀은 종신토록 흙을 먹고 살라는 저주를 받았습니다. 여기서 뱀이란 영적으로 원수 마귀를 말하며, 흙이란 흙으로 지어진 육의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이 말씀은 우리가 진리 안에 살지 못하는 만큼 원수 마귀가 시험과 환난과 질병을 가져다 주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 시험 환난을 허락하시는 것이요, 징계를 가하심으로 진리 안에 살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악의 모습을 빼내어 온전케 만드시기 위해 연단을 가하시는데 연단을 통해 악을 버리고 나면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한 믿음의 선진들처럼 존귀한 사람이 됩니다. 따라서 내 잘못으로 인해 연단을 받았을지라도 결국 연단은 축복이요, 감사한 일인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기 위한 경우
만일 어떤 사람이 열심히 공부하여 판사가 되기를 원한다면 사법시험에 응시해야 합니다. 아무리 실력 있는 사람이라도 그 시험에 합격해서 인정을 받아야 판사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해 나감에 있어서도 하나님께 기도하고 간구하는 것이 있는데, 이러한 간구에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시험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즉 연단을 받아서 믿음이 성장했으므로 하나님께서 어떠한 축복을 주시고자 할 때 과연 그 축복을 받을 만한 믿음인가에 대한 시험을 허락하십니다. 그래서 시험에 통과하면 간구하고 소원했던 것을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축복하심으로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경우는 내가 잘못해서 받는 연단이 아니라, 축복을 받기 위한 시험임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13을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만큼의 시험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과 응답을 주시기 위해서 테스트하시는 경우는 시험에 들도록 놔두시지 않고 반드시 피할 길을 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왜냐하면 기도한 것에 대해서 내게 자격이 없으면 못 받는 것뿐이지 그것으로 인해 환난이 임해야 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이 되었다면 당연히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면서 나아갈 수 있지 않겠습니까.
베드로전서 1:6,7에도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연단을 통해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한 요셉
우리는 성경에서 불같은 연단을 통하여 정금 같은 믿음으로 나왔던 많은 선진들을 만나 볼 수 있는데, 그 중에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의 경우를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조상인 야곱의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 장차 자신이 매우 존귀케 되는 꿈을 꾸게 됩니다. 요셉은 그 꿈을 소중히 여겼고 하나님께서 정녕 이루어 주시리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꿈이 실현되기는커녕 오히려 이방인에게 팔려가서 가장 비천한 노예의 신분이 되고 말았습니다.
요셉은 노예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실하게 일하여 집주인의 인정을 받게 되었지요. 요셉의 주인은 당시 강대국이던 애굽의 시위대장이었고, 요셉은 그 집의 모든 제반 사항을 맡은 가정 총무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성경은 하나님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다 했습니다(창 39:2,3).
그런데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예비하신 축복은 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이었습니다. 결국 예비하신 축복의 자리로 이끄시기 위해서 허락하신 연단은 집주인의 아내를 통한 시험이었고, 요셉은 하나님 앞에 참으로 정직히 행했는데도 뜻하지 않은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비천한 노예에서 죄수라는 더 낮은 자리에 처하게 된 것이지요. 그래도 요셉은 낙심하지 아니하고 성실히 행하여 감옥에서도 인정을 받아 다른 죄수들까지 관리하며 제반 사항을 처리하는 일을 맡게 되었습니다. 요셉이 이런 연단의 과정을 잘 밟아 나가자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나이 서른에 일약 애굽의 전역을 다스리는 총리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 13년 전에 요셉에게 주셨던 그 꿈이 성취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요셉이 받아 온 연단의 길들은 갈수록 더 낮아지는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그것이 머리되고 높아지는 길이었고 축복된 길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자녀들이 성결케 되기를 원하시므로 마음속에 모든 찌끼와 오물까지라도 발견하여 내어 버릴 수 있도록 연단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모두 어떠한 시험이나 연단도 기쁨과 감사로 승리하는 믿음을 소유함으로 장차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8-18
제33과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약 2:14-26
읽을말씀 : 약 2:14-26 | 외울말씀 : 약 2:26
교육목표 : 믿음의 행함을 나타내 보임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에 이르며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녀들도 참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고 진실하게 사랑을 나누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되 생명도 아끼지 않고 사랑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참사랑은 무엇이며, 믿음과 사랑은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행함이 있는 사랑만이 참사랑
오늘날은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고백을 많이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진실하고 변함이 없는 마음에서 나오는 중심의 고백입니다. 만일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사랑한다고 고백한다면 누가 그 말을 믿어 주겠습니까? 진정 사랑한다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해 주려고 하므로 자연히 행함이 따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입술로 "하나님, 사랑합니다." 고백해도 그것이 진실한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지요. 요한복음 14:15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교훈하시는데,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도 단순히 말씀으로만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나타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5:8을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내어 주심으로 우리에게 향하신 큰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는 것이지요. 또한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응답과 축복, 눈에 보이는 표증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확증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믿음과 사랑의 연관성
야고보서 2:14-17을 보면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참믿음에 대한 원리는 사랑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3:17-18에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과 사랑의 연관성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즉 영적인 사랑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사랑의 근본이 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데,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가 4차원, 곧 영의 세계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바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어야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이 믿음을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것이며, 또한 믿음이 있기에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진리 안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점차 성장할수록 천국에 대한 소망도 커지고 하나님의 마음 역시 더욱 이해하게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우쳐 알게 되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3. 믿음의 성장에 따른 사랑의 깊이
그런데 처음 믿음을 가졌을 때 느끼던 사랑과 점차 믿음이 성장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사랑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을 때는 전혀 모르던 엄청난 사랑을 깨달았기에 그 사랑이 너무도 감사해서 하염없이 울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 느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믿음이 성장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알게 될수록 하나님의 사랑 또한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도 자신이 자녀를 낳아 부모의 마음이 되어 보아야 비로소 자신이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진정 마음 중심에서 느끼게 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주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우리도 어린아이의 믿음에서 점차 믿음이 성장하여 장성한 아비의 믿음의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지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요일 2:12-14). 더 나아가 갈라디아서 4:19에 사도 바울이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말씀한 대로, 성령으로 영을 낳는 해산의 수고를 해 본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온전히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3을 보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믿음이 성장하면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변치 않는 온전한 중심으로 이 세상 어떤 것보다 주님을 가장 사랑하게 됩니다. 즉 믿음이 성장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점점 더 깨달아 사랑의 마음도 더 커지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온전한 사랑에 더 가까이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4. 믿음의 행함은 곧 사랑의 증거
믿음이란 행함을 통해 비로소 온전케 되기 때문에 믿음의 성장과 함께 커지는 사랑도 결국은 행함을 통해 온전케 됩니다. 따라서 현재 어떠한 믿음의 행함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 바로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나타내 주는 척도가 되는 것이며, 믿음의 행함은 곧 사랑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야고보서 2:21-22을 보면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순종하니 하나님께서는 이 행함을 보시고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함이 곧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증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말씀하시며 아브라함의 사랑을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 중에는 이처럼 믿음의 행함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삼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3에는 충성된 증인 안디바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그는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주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증거이지요.
5. 사랑의 증거를 나타내 보이시는 하나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때로는 세상에서 잠시 동안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고, 하나님 앞에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떤 핍박이나 어려움도 불사했던 기억들이 나름대로 있지요. 그런데 만일 이러한 믿음의 행함으로 하나님 앞에 사랑을 나타내 보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아무런 사랑의 증거나 표현도 해 주시지 않는다면 어떠할까요?
물론 우리를 구원해 주신 자체가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어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셔서 화목제물로 내어 주신 것이 가장 큰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영원히 거할 천국에 아름다운 처소를 예비하시고 우리가 행한 만큼 상급과 빛나는 영광으로 갚아 주시는 그 사랑을 과연 어디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만약 이 땅에 사는 동안 순간순간 믿음의 행군을 해 나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이 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도 아무런 축복이 오지 않으며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하다면 '하나님께서 정녕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구원을 주시고 천국을 주신 하나님께 오직 감사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믿음의 행함을 통해 그 사랑의 증거를 나타내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사랑의 증거를 나타내 주시기 때문입니다(잠 8:17).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는 바로 죄로 인해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이에게 구원의 역사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치료의 역사로 함께해 주십니다. 또한 가난으로 궁핍한 이에게 풍요로움으로, 마음의 소원이 있는 이에게 응답의 역사로 나타나지요. 그리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영계의 비밀한 것까지라도 알려 주시고 성령의 깊은 감동함 가운데 말씀들을 풀어 주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도 반드시 사랑을 나타내 주시는데, 거기에는 어떤 형태로든 증거가 함께 따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증거된 말씀을 통해 날마다 믿음의 행함을 나타내 보임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에 이르며,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믿음의 행함을 나타내 보임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에 이르며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자녀들도 참사랑이 무엇인지 깨닫고 진실하게 사랑을 나누는 자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말과 혀로만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되 생명도 아끼지 않고 사랑하는 것을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참사랑은 무엇이며, 믿음과 사랑은 어떠한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행함이 있는 사랑만이 참사랑
오늘날은 사람들이 "사랑한다."는 고백을 많이 하는데, 정작 중요한 것은 입술의 고백이 아니라 진실하고 변함이 없는 마음에서 나오는 중심의 고백입니다. 만일 상대가 싫어하는 일을 하면서 사랑한다고 고백한다면 누가 그 말을 믿어 주겠습니까? 진정 사랑한다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해 주려고 하므로 자연히 행함이 따르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입술로 "하나님, 사랑합니다." 고백해도 그것이 진실한 행함으로 나타나지 않으면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지요. 요한복음 14:15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교훈하시는데,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도 단순히 말씀으로만 우리를 사랑한다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나타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로마서 5:8을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내어 주심으로 우리에게 향하신 큰 사랑을 확증해 주셨다는 것이지요. 또한 하나님께서는 때를 따라 응답과 축복, 눈에 보이는 표증으로 우리에게 사랑을 확증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믿음과 사랑의 연관성
야고보서 2:14-17을 보면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참믿음에 대한 원리는 사랑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3:17-18에 "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과 사랑의 연관성을 잘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 즉 영적인 사랑을 알고자 한다면 먼저 사랑의 근본이 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데, 3차원의 세계에 살고 있는 우리가 4차원, 곧 영의 세계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길은 바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어야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을 수 있고, 이 믿음을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것이며, 또한 믿음이 있기에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진리 안에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 점차 성장할수록 천국에 대한 소망도 커지고 하나님의 마음 역시 더욱 이해하게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깨우쳐 알게 되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3. 믿음의 성장에 따른 사랑의 깊이
그런데 처음 믿음을 가졌을 때 느끼던 사랑과 점차 믿음이 성장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가면서 느끼게 되는 사랑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처음에 하나님의 사랑을 느꼈을 때는 전혀 모르던 엄청난 사랑을 깨달았기에 그 사랑이 너무도 감사해서 하염없이 울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을 온전히 마음 깊은 곳에서 느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믿음이 성장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알게 될수록 하나님의 사랑 또한 더 깊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람도 자신이 자녀를 낳아 부모의 마음이 되어 보아야 비로소 자신이 부모님께 받은 사랑을 진정 마음 중심에서 느끼게 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주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우리도 어린아이의 믿음에서 점차 믿음이 성장하여 장성한 아비의 믿음의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지고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요일 2:12-14). 더 나아가 갈라디아서 4:19에 사도 바울이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말씀한 대로, 성령으로 영을 낳는 해산의 수고를 해 본 사람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온전히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12:3을 보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음을 알 수 있는데, 믿음이 성장하면 어떠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도 변치 않는 온전한 중심으로 이 세상 어떤 것보다 주님을 가장 사랑하게 됩니다. 즉 믿음이 성장할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점점 더 깨달아 사랑의 마음도 더 커지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닮은 온전한 사랑에 더 가까이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4. 믿음의 행함은 곧 사랑의 증거
믿음이란 행함을 통해 비로소 온전케 되기 때문에 믿음의 성장과 함께 커지는 사랑도 결국은 행함을 통해 온전케 됩니다. 따라서 현재 어떠한 믿음의 행함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것이 바로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나타내 주는 척도가 되는 것이며, 믿음의 행함은 곧 사랑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본문 야고보서 2:21-22을 보면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기에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순종하니 하나님께서는 이 행함을 보시고 아브라함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함이 곧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증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말씀하시며 아브라함의 사랑을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 중에는 이처럼 믿음의 행함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삼은 사람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13에는 충성된 증인 안디바에 대한 말씀이 나오는데, 그는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주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고 칭찬을 받았습니다.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했다는 증거이지요.
5. 사랑의 증거를 나타내 보이시는 하나님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때로는 세상에서 잠시 동안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고, 하나님 앞에 믿음을 지키기 위해 어떤 핍박이나 어려움도 불사했던 기억들이 나름대로 있지요. 그런데 만일 이러한 믿음의 행함으로 하나님 앞에 사랑을 나타내 보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아무런 사랑의 증거나 표현도 해 주시지 않는다면 어떠할까요?
물론 우리를 구원해 주신 자체가 하나님의 가장 큰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어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셔서 화목제물로 내어 주신 것이 가장 큰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영원히 거할 천국에 아름다운 처소를 예비하시고 우리가 행한 만큼 상급과 빛나는 영광으로 갚아 주시는 그 사랑을 과연 어디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만약 이 땅에 사는 동안 순간순간 믿음의 행군을 해 나가면서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이 오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도 아무런 축복이 오지 않으며 여전히 힘들고 어려운 문제들로 가득하다면 '하나님께서 정녕 나를 사랑하시는구나' 하는 것을 마음 깊이 느낄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구원을 주시고 천국을 주신 하나님께 오직 감사만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믿음의 행함을 통해 그 사랑의 증거를 나타내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사랑의 증거를 나타내 주시기 때문입니다(잠 8:17).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는 바로 죄로 인해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이에게 구원의 역사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에게 치료의 역사로 함께해 주십니다. 또한 가난으로 궁핍한 이에게 풍요로움으로, 마음의 소원이 있는 이에게 응답의 역사로 나타나지요. 그리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영계의 비밀한 것까지라도 알려 주시고 성령의 깊은 감동함 가운데 말씀들을 풀어 주시기도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도 반드시 사랑을 나타내 주시는데, 거기에는 어떤 형태로든 증거가 함께 따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증거된 말씀을 통해 날마다 믿음의 행함을 나타내 보임으로 온전한 하나님의 사랑에 이르며,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넘치게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08-11
제32과성결을 향하여
요 14:15
읽을말씀 : 요 14:15 | 외울말씀 : 요 14:15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결을 이루어 흠이 없고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으로 신랑되신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게한다.
사랑스러운 자녀가 무서운 병에 걸려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 가고 있다면 부모는 "차라리 내가 그 고통을 대신할 수만 있다면, 자녀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라도 아깝지 않을 텐데." 하는 심정일 것입니다.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도 사랑 그 자체입니다.
오늘은 이 땅에서의 인간 경작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하며, 하나님께서 왜 성결을 기뻐하시고 원하시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결의 의미와 중요성
성결의 사전적인 의미는 "거룩하고 깨끗함"입니다. 그런데 신앙 안에서의 성결이란 죄로 인해 타락한 우리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총을 받고 믿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어 악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갖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즉 주님을 닮는 것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렇다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성결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우리에게 성결은 마땅히 이루어야 할 사명이요,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레위기 11:45을 보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했고 데살로니가전서 4:3 전반절에도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했으며 데살로니가전서 5:23에는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곧 성결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결은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궁극적인 목적이 됩니다. 로마서 6:6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신 것은 더 이상 범죄하지 않고 온전한 성결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함이지요. 그러므로 정녕 믿음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날마다 성결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 마음의 성결을 이루려면
성결을 이루는 방법은 요한복음 14:15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말씀하신 것이지요. 곧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 성결은 당연히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의 증거가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들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 나갈 것이니 결코 힘들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명, 곧 말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예를 들면 "원수를 사랑하라, 판단 정죄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하라, 하지 말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또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등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들이 있지요. 바로 이와 같은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이라야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죄를 싸워 버리고 말씀대로 행하므로 진리가 마음에 임하게 되지요. 이렇게 구습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 나가는 것이 곧 성결을 향해 나가는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결되는 만큼 우리 안에 천국에 대한 소망이 더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7:21 후반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죄를 버릴수록 그 마음에는 천국이 임하게 되는 것이지요.
더구나 천국이라 해도 다 같은 천국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악을 버리고 얼마나 충성했느냐에 따라 처소와 상급이 달라집니다. 이런 것을 알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천국에 대한 소망이 뜨거워지므로 더욱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고 성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국 성결은 성도의 가장 확실한 믿음의 표현이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성결을 원하시는 이유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면서 성결되라고(히 12:4, 살전 5:23) 말씀하신 것일까요? 이것은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이 왜 사랑인지를 알기에 앞서 죄가 들어오기 전의 마음부터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처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아담은 원래 악이 없는 참으로 선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직 진리와 선만 가르침 받았기에 상대적으로 죄가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요. 이처럼 죄가 없는 상태에서 아담은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리고 아름다운 에덴 동산에서 아무 부족할 것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영생의 복을 누릴 수 있었지요.
그런데 뱀의 유혹에 넘어가 죄가 들어오자 영계의 법칙에 따라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로마서 6:16에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응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가지고 있던 모든 권세가 죄를 지은 그때부터 어두움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에게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생령이었던 아담이 육으로 돌아가니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점차 죄악으로 물들어 가게 되었지요. 그리하여 우리 인생은 원수 마귀의 주관 아래 이 땅에서 온갖 고통을 겪다가 결국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던 모든 권세를 잃어버리고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인생들을 보실 때, 또한 그들이 결국은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고통받을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큰 아픔과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원래 아담이 가지고 있었던 영적인 권세를 다시 찾고 모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모든 죄를 사함받고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는 길이지요. 즉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만큼 곧 힘이 되므로 성결이 곧 유일한 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죄를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만큼 우리는 본래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셨던 권세를 회복하여 원수 마귀를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으므로, 요한일서 5:18을 보면 이러한 사람은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 말씀하고 있지요. 또한 성결된 만큼 성령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고 육의 한계를 넘어 영계를 뚫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결되는 사람은 그만큼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영적인 사랑을 이루어 가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을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한 사람은 천국에서도 하나님 보좌가 있는 새예루살렘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성결을 이루라 하심은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의 표현이요, 아담이 타락함으로 인해 잃어버린 영적인 권세와 능력과 모든 축복을 회복하는 참으로 복된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성결로 이끌어 가시는가?
성경을 읽어가다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온전하고 흠이 없는 성결된 자녀로 만드시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끌어 가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약시대에는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시고 율법을 지키게 하심으로 죄에서 떠나게 하셨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심으로 악에서 돌이켜 회개하도록 만드셨지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친히 보고 따를 수 있는 본을 세워 주심으로 믿는 이들이 더욱 성결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이끌어 가시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많은 선진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예수님을 들 수 있습니다.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진리를 가르치실 뿐 아니라 친히 말씀을 지켜 행하심으로 범사에 본이 되어 주셨지요.
예를 들어,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병들고 연약한 자들을 고치시고 죄인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일흔 번의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를 베푸심으로 그 행함을 좇아 우리도 사랑 가운데 나오게 하셨습니다. 또한 섬기고 낮아지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로서 피조물들의 발을 씻기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에게 스스로 낮아지고 섬기는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3:2-3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주를 향한 우리의 소망이란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원히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눈물, 슬픔, 고통, 사망이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소망이지요. 이와 같이 사랑하는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 소망이 있다면 어찌 주님의 온전하심을 닮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온전히 입어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그날에 진정 흠이 없고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으로 신랑되신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결을 이루어 흠이 없고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으로 신랑되신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게한다.
사랑스러운 자녀가 무서운 병에 걸려 고통에 시달리며 죽어 가고 있다면 부모는 "차라리 내가 그 고통을 대신할 수만 있다면, 자녀를 살릴 수만 있다면 내 목숨이라도 아깝지 않을 텐데." 하는 심정일 것입니다. 그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도 사랑 그 자체입니다.
오늘은 이 땅에서의 인간 경작을 허락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자녀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떠하며, 하나님께서 왜 성결을 기뻐하시고 원하시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성결의 의미와 중요성
성결의 사전적인 의미는 "거룩하고 깨끗함"입니다. 그런데 신앙 안에서의 성결이란 죄로 인해 타락한 우리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의 은총을 받고 믿음과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되어 악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갖게 된 상태를 말합니다. 즉 주님을 닮는 것이요,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이루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렇다면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성결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받은 우리에게 성결은 마땅히 이루어야 할 사명이요, 신앙의 궁극적인 목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레위기 11:45을 보면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했고 데살로니가전서 4:3 전반절에도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했으며 데살로니가전서 5:23에는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곧 성결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결은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려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궁극적인 목적이 됩니다. 로마서 6:6에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의 보혈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신 것은 더 이상 범죄하지 않고 온전한 성결을 이룰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함이지요. 그러므로 정녕 믿음이 있고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사람이라면 날마다 성결을 향해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 마음의 성결을 이루려면
성결을 이루는 방법은 요한복음 14:15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말씀하신 것이지요. 곧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 성결은 당연히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의 증거가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하고 있는 것이지요.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들을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 나갈 것이니 결코 힘들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명, 곧 말씀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예를 들면 "원수를 사랑하라, 판단 정죄하지 말라"는 말씀처럼 하라, 하지 말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또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등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들이 있지요. 바로 이와 같은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이라야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은 죄를 싸워 버리고 말씀대로 행하므로 진리가 마음에 임하게 되지요. 이렇게 구습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어 나가는 것이 곧 성결을 향해 나가는 사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성결되는 만큼 우리 안에 천국에 대한 소망이 더해진다는 사실입니다. 누가복음 17:21 후반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우리가 죄를 버릴수록 그 마음에는 천국이 임하게 되는 것이지요.
더구나 천국이라 해도 다 같은 천국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나 악을 버리고 얼마나 충성했느냐에 따라 처소와 상급이 달라집니다. 이런 것을 알 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만큼 천국에 대한 소망이 뜨거워지므로 더욱 열심히 죄를 싸워 버리고 성결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결국 성결은 성도의 가장 확실한 믿음의 표현이자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성결을 원하시는 이유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에게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면서 성결되라고(히 12:4, 살전 5:23) 말씀하신 것일까요? 이것은 자녀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이 왜 사랑인지를 알기에 앞서 죄가 들어오기 전의 마음부터 한번 살펴보도록 하지요.
처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아담은 원래 악이 없는 참으로 선한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직 진리와 선만 가르침 받았기에 상대적으로 죄가 무엇인지, 악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요. 이처럼 죄가 없는 상태에서 아담은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누리고 아름다운 에덴 동산에서 아무 부족할 것이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영생의 복을 누릴 수 있었지요.
그런데 뱀의 유혹에 넘어가 죄가 들어오자 영계의 법칙에 따라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게 됩니다. 로마서 6:16에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응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가지고 있던 모든 권세가 죄를 지은 그때부터 어두움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에게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또한 생령이었던 아담이 육으로 돌아가니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점차 죄악으로 물들어 가게 되었지요. 그리하여 우리 인생은 원수 마귀의 주관 아래 이 땅에서 온갖 고통을 겪다가 결국은 영원한 사망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던 모든 권세를 잃어버리고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인생들을 보실 때, 또한 그들이 결국은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고통받을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큰 아픔과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상황에서 원래 아담이 가지고 있었던 영적인 권세를 다시 찾고 모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길이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모든 죄를 사함받고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하는 길이지요. 즉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만큼 곧 힘이 되므로 성결이 곧 유일한 길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죄를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만큼 우리는 본래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주셨던 권세를 회복하여 원수 마귀를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으므로, 요한일서 5:18을 보면 이러한 사람은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한다' 말씀하고 있지요. 또한 성결된 만큼 성령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고 육의 한계를 넘어 영계를 뚫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결되는 사람은 그만큼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영적인 사랑을 이루어 가게 됩니다. 그래서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을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한 사람은 천국에서도 하나님 보좌가 있는 새예루살렘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성결을 이루라 하심은 바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의 표현이요, 아담이 타락함으로 인해 잃어버린 영적인 권세와 능력과 모든 축복을 회복하는 참으로 복된 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4.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성결로 이끌어 가시는가?
성경을 읽어가다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온전하고 흠이 없는 성결된 자녀로 만드시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끌어 가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구약시대에는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시고 율법을 지키게 하심으로 죄에서 떠나게 하셨습니다. 또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죄할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어 말씀을 전하게 하심으로 악에서 돌이켜 회개하도록 만드셨지요.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시대마다 친히 보고 따를 수 있는 본을 세워 주심으로 믿는 이들이 더욱 성결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이끌어 가시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많은 선진들이 있지만 무엇보다 우리 예수님을 들 수 있습니다.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진리를 가르치실 뿐 아니라 친히 말씀을 지켜 행하심으로 범사에 본이 되어 주셨지요.
예를 들어, 사랑하라고 가르치신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병들고 연약한 자들을 고치시고 죄인된 자들을 긍휼히 여기시며 일흔 번의 일곱 번까지라도 용서를 베푸심으로 그 행함을 좇아 우리도 사랑 가운데 나오게 하셨습니다. 또한 섬기고 낮아지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로서 피조물들의 발을 씻기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에게 스스로 낮아지고 섬기는 삶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일서 3:2-3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주를 향한 우리의 소망이란 예수 그리스도처럼 영원히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눈물, 슬픔, 고통, 사망이 없는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 소망이지요. 이와 같이 사랑하는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 소망이 있다면 어찌 주님의 온전하심을 닮고자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온전히 입어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우리를 데리러 오시는 그날에 진정 흠이 없고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으로 신랑되신 주님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