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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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9
제3과하나님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잠 8:17
읽을말씀 : 잠 8:17 | 외울말씀 : 렘 29:13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아 항상 응답받는 자가 되게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 함께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만나야 하고, 또 우리를 간절히 만나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참된 행복과 사랑을 공급해 주실 뿐 아니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만나야 하는 이유
흔히 주변 사람으로부터 직접 전도를 받거나 방송, 신문 등 각종 선교 매체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데 자신이 성령을 체험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는 만큼 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해보면 사람들마다 신(神)에 대한 생각도 달라서 간절히 찾고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중에는 마음이 선하여 신(神)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의심하지 않기에 즉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을 직접 보아야 믿겠다는 사람도 있고, 믿으려는 마음도 없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만나기를 원치 아니하며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시고 능력이 있으신 분인가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밝히 안다면 그들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을 체험하고자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만나기를 원하고 사모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과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인류의 시조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영원히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모든 것을 감찰하시며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분이며,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에게 응답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마 7:7).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면 절망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참된 소망을 얻으며, 각종 질병의 문제를 해결받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는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마 4:23-24).
2.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
1) 성경 66권 말씀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 66권 말씀을 양식삼고 행하는 만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시편 19:7-8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하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고 귀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받아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여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이 넘치며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롬 10:17).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한 만큼 말씀을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담은 책으로서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쓰여진 글입니다(딤후 3:16). 그러므로 성경을 단순히 문자적으로나 이성적으로, 혹은 지식적으로 읽는다면 그 뜻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혀 엉뚱한 해석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읽을 때 영적인 의미를 깨우칠 수 있고,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생명력 있는 말씀으로 다가와 하나님과의 교통이 깊어지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2)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식사할 때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국이나 찌개, 그 외 여러 가지 반찬과 함께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듯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말씀과 함께 기도를 병행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 영혼의 호흡과 같아서 사람이 호흡을 해야 육의 생명이 유지되듯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영적인 생명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29:12-13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말씀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 영적인 교통을 이루며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믿음의 선진들도 한결같이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녕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좇아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해야 하며, 이렇게 행할 때 모든 간구와 기도에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3)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계가 큰 부흥을 이루면서 찬양을 감당하는 모임들이 많이 생겨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찬양을 매우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찬양하기를 즐겨하였고, 찬양을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중심을 보시고 후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역대상 16장에는 다윗 왕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역대하 30:21에서는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날마다 여호와를 칭송하며 큰 소리 나는 악기를 울려 여호와를 찬양하였다고 했으며, 다니엘은 지혜와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단 2:23).
하물며 우리를 구원과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시고 참 행복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마음 다해 찬양드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요. 우리가 예배 전이나 기도회를 하기 전에 중심으로 찬양을 드리면 뜨거운 찬양 가운데 마음의 문이 열리고 성령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그분의 권능과 위엄과 인자하심과 구원의 은총을 찬양할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믿어지는 믿음이 생기며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나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로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요, 방법이니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마음 중심을 다해 찬양을 올릴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4) 예배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었지만, 신약 시대에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단을 쌓고 제사 드림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솔로몬 왕도 일천 번의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을 만나 놀라운 축복을 받았지요. 이러한 구약 시대의 제사는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배로 드려지고 있으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 드릴 때 최상의 것으로 제물을 준비하여 드리지 않고 자신들에게 쓸모없는 최하의 것으로 드렸기에 크게 책망하시며, 형식은 같을지라도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지 않은 제사는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말 1:6-10).
그래서 예배는 자기 마음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예배의 원칙에 따라 드리되, 구원의 은혜와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온전한 예물과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신령과 진정으로 중심을 다한 예배를 드리면(요 4:24) 위로부터 은혜가 임하여 소망과 기쁨이 넘치며 생명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5) 선과 의, 빛과 공의, 진리와 사랑 가운데 하나님과 만나고 동행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이스라엘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가 나오는데, 그는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이방인이지만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니 그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랑하는 종 베드로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은 물론 일가 친척, 가까운 친구들까지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아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할 때 만나 주시며, 더 나아가 빛 가운데 온전히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창 5:22,24, 6:9, 막 16:20).
그러므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하심을 분명히 믿기에 간절히 찾고 만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여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아 항상 응답받는 자가 되게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 함께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만나야 하고, 또 우리를 간절히 만나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참된 행복과 사랑을 공급해 주실 뿐 아니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만나야 하는 이유
흔히 주변 사람으로부터 직접 전도를 받거나 방송, 신문 등 각종 선교 매체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데 자신이 성령을 체험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는 만큼 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해보면 사람들마다 신(神)에 대한 생각도 달라서 간절히 찾고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중에는 마음이 선하여 신(神)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의심하지 않기에 즉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을 직접 보아야 믿겠다는 사람도 있고, 믿으려는 마음도 없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만나기를 원치 아니하며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시고 능력이 있으신 분인가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밝히 안다면 그들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을 체험하고자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만나기를 원하고 사모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과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인류의 시조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영원히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모든 것을 감찰하시며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분이며,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에게 응답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마 7:7).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면 절망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참된 소망을 얻으며, 각종 질병의 문제를 해결받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는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마 4:23-24).
2.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
1) 성경 66권 말씀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 66권 말씀을 양식삼고 행하는 만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시편 19:7-8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하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고 귀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받아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여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이 넘치며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롬 10:17).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한 만큼 말씀을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담은 책으로서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쓰여진 글입니다(딤후 3:16). 그러므로 성경을 단순히 문자적으로나 이성적으로, 혹은 지식적으로 읽는다면 그 뜻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혀 엉뚱한 해석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읽을 때 영적인 의미를 깨우칠 수 있고,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생명력 있는 말씀으로 다가와 하나님과의 교통이 깊어지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2)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식사할 때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국이나 찌개, 그 외 여러 가지 반찬과 함께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듯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말씀과 함께 기도를 병행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 영혼의 호흡과 같아서 사람이 호흡을 해야 육의 생명이 유지되듯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영적인 생명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29:12-13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말씀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 영적인 교통을 이루며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믿음의 선진들도 한결같이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녕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좇아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해야 하며, 이렇게 행할 때 모든 간구와 기도에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3)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계가 큰 부흥을 이루면서 찬양을 감당하는 모임들이 많이 생겨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찬양을 매우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찬양하기를 즐겨하였고, 찬양을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중심을 보시고 후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역대상 16장에는 다윗 왕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역대하 30:21에서는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날마다 여호와를 칭송하며 큰 소리 나는 악기를 울려 여호와를 찬양하였다고 했으며, 다니엘은 지혜와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단 2:23).
하물며 우리를 구원과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시고 참 행복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마음 다해 찬양드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요. 우리가 예배 전이나 기도회를 하기 전에 중심으로 찬양을 드리면 뜨거운 찬양 가운데 마음의 문이 열리고 성령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그분의 권능과 위엄과 인자하심과 구원의 은총을 찬양할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믿어지는 믿음이 생기며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나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로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요, 방법이니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마음 중심을 다해 찬양을 올릴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4) 예배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었지만, 신약 시대에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단을 쌓고 제사 드림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솔로몬 왕도 일천 번의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을 만나 놀라운 축복을 받았지요. 이러한 구약 시대의 제사는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배로 드려지고 있으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 드릴 때 최상의 것으로 제물을 준비하여 드리지 않고 자신들에게 쓸모없는 최하의 것으로 드렸기에 크게 책망하시며, 형식은 같을지라도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지 않은 제사는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말 1:6-10).
그래서 예배는 자기 마음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예배의 원칙에 따라 드리되, 구원의 은혜와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온전한 예물과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신령과 진정으로 중심을 다한 예배를 드리면(요 4:24) 위로부터 은혜가 임하여 소망과 기쁨이 넘치며 생명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5) 선과 의, 빛과 공의, 진리와 사랑 가운데 하나님과 만나고 동행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이스라엘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가 나오는데, 그는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이방인이지만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니 그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랑하는 종 베드로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은 물론 일가 친척, 가까운 친구들까지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아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할 때 만나 주시며, 더 나아가 빛 가운데 온전히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창 5:22,24, 6:9, 막 16:20).
그러므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하심을 분명히 믿기에 간절히 찾고 만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여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1-12
제2과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창 1:1, 출 3:14, 창 17:1
읽을말씀 : 창 1:1, 출 3:14, 창 17:1 | 외울말씀 : 히 11:6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물론,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구하여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또한 피조물인 인생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음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며 만나고 체험하는 복된 삶을 영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우주만물이나 여러 가지 기사와 표적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고 계시는데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실까요?
1.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우주만물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인간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생각하며 궁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 1:1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여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래 '창조하다'라는 말은 없는 것에서 있게 한다는 뜻으로서, 이는 히브리서 11:3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하신 대로 무(無)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창조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의 질서나 자연법칙의 오묘함 등을 통하여 인간이 이것만 보더라도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셨는데, 후일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고 핑계댈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몇 가지를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반드시 계시며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원숭이가 진화하여 인류로 발전된 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들은 왜 수천 년 전의 모습과 다름이 없으며 진화되지 못하고 있을까요?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음받은 인간만이 이성이 있고 양심이 있으므로 만물의 영장으로서 문명을 발전시켜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대륙이 다른 땅에서 살고 있어 인종이 달라도 사람은 눈이 두 개이며 귀도 두 개, 콧구멍이 두 개요, 코와 입은 각각 한 개이며 그 위치도 똑같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한 사람의 조상이 나오게 되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기록이 더 과학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공중의 새나 땅 위에 있는 사람과 동물, 바다에 있는 물고기 등 모든 생물의 구조를 살펴보면 일정한 위치에 동일한 생김새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두 개의 눈 밑에 하나의 코, 그 밑에 하나의 입, 양쪽에 있는 두 개의 귀 등을 보더라도 모든 생물이 한 분의 창조주에 의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인류의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인간은 생명을 만들어 내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창조의 역사는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과학과 문명은 창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것을 새롭게 발전시키며 이미 창조된 것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발명하는 것뿐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이 세계를 살펴본다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깨닫게 되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2.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서 나오셨으며 어떠한 분이신지 궁금하게 여깁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으로는 처음과 끝이 명확하게 있어야 한다고 여기므로 처음과 끝을 알고 싶어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관념으로 헤아릴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 처음과 끝이 없으신 분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계시는 분입니다. 더구나 누가 낳은 것도 아니요 만드신 것도 아니며 창조주로서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출애굽기 3:13-14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여쭐 때에 하나님의 답변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2:13).
알파와 오메가는 그리스 문자의 처음과 끝이 되는 문자로서 인간이 문자를 만들어 냄으로써 더하게 된 지식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문자로 인한 과학 문명의 발전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과학 문명의 시작과 끝으로서 알파와 오메가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으로 처음을 이루게 하셨고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의 구원 사업을 완성하게 하셨기에 처음과 나중이 되시며(고전 15:45) 인류 역사를 시작하셔서 끝 날까지 주관하시므로 시작과 끝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며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창 17:1, 28:3). 그래서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심으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요 4:48).
기사(奇事)란 비를 내리게 하거나 내리던 비를 멈추게 하는 등 천기(天氣)를 움직이는 것을 말하며, 표적(表蹟)이란 죽은 자를 살리고 의학의 힘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을 치료하는 등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행할 수 없는 단계의 것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가 갈라지기도 하고 해와 달의 운행이 멈추기도 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도 하고 삼 년 반의 가뭄 속에 큰 비가 내리기도 했지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도 죽은 자를 살리고 모든 질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며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시고 물 위를 걸으시는 등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그대로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은 사도들을 통해서도 계속 나타났는데, 베드로의 경우는 사람들이 병자를 데려와서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일 수 있기를 원했지요. 사도 바울의 경우는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에게 얹어도 질병이 떠나고 악귀가 나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오늘날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나타나는데, 특히 본교회에서는 암은 물론, 중풍, 뇌성마비, 백혈병 등 각종 불치 난치병들이 치료되고 있으며, 교통사고로 골절된 뼈가 기도받고 정상이 되는가 하면, 전신에 화상을 입고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이 깨끗이 치료되고, 연탄가스로 죽어 가던 사람이 기도받고 깨어나 후유증 하나 없이 치료된 경우도 많지요. 이 외에도 시공을 초월하여 음성전화 사서함 환자기도나 기도받은 손수건만 얹고도 치료되는 경우가 무수히 많습니다.
4. 성경의 저자가 되십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 주셨는데, 그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완전하게 하나님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聖經)은 거룩한 책이라는 뜻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34:16에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되어 있으며 주전 1500년부터 주후 100년경까지 약 1600년간 34명의 손길을 통하여 기록된 대전집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에 여러 사람을 통하여 기록되었지만 마치 구슬을 꿰어맨 것처럼 정확하고 질서가 있어 마치 한 사람이 기록한 것과 같은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기록한 것이며(벧후 1:21), 사람들이 임의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임을 증거하는 것이니 우리는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요한복음 20:31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고, 디모데후서 3:15에는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하였으니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말씀은 곧 하나님(요 1:1)이심을 알아 성경을 대할 때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뵙는 마음으로 읽고, 듣고, 보며 영생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요 5:39). 성경을 어떤 교양을 쌓기 위한 교양서적이나 문학서적쯤으로 오인하여 자신의 생각에 맞춰 더하고 빼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우주만물과 인류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삶을 의뢰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소유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물론,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구하여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또한 피조물인 인생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음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며 만나고 체험하는 복된 삶을 영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우주만물이나 여러 가지 기사와 표적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고 계시는데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실까요?
1.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우주만물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인간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생각하며 궁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 1:1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여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래 '창조하다'라는 말은 없는 것에서 있게 한다는 뜻으로서, 이는 히브리서 11:3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하신 대로 무(無)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창조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의 질서나 자연법칙의 오묘함 등을 통하여 인간이 이것만 보더라도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셨는데, 후일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고 핑계댈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몇 가지를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반드시 계시며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원숭이가 진화하여 인류로 발전된 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들은 왜 수천 년 전의 모습과 다름이 없으며 진화되지 못하고 있을까요?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음받은 인간만이 이성이 있고 양심이 있으므로 만물의 영장으로서 문명을 발전시켜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대륙이 다른 땅에서 살고 있어 인종이 달라도 사람은 눈이 두 개이며 귀도 두 개, 콧구멍이 두 개요, 코와 입은 각각 한 개이며 그 위치도 똑같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한 사람의 조상이 나오게 되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기록이 더 과학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공중의 새나 땅 위에 있는 사람과 동물, 바다에 있는 물고기 등 모든 생물의 구조를 살펴보면 일정한 위치에 동일한 생김새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두 개의 눈 밑에 하나의 코, 그 밑에 하나의 입, 양쪽에 있는 두 개의 귀 등을 보더라도 모든 생물이 한 분의 창조주에 의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인류의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인간은 생명을 만들어 내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창조의 역사는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과학과 문명은 창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것을 새롭게 발전시키며 이미 창조된 것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발명하는 것뿐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이 세계를 살펴본다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깨닫게 되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2.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서 나오셨으며 어떠한 분이신지 궁금하게 여깁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으로는 처음과 끝이 명확하게 있어야 한다고 여기므로 처음과 끝을 알고 싶어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관념으로 헤아릴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 처음과 끝이 없으신 분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계시는 분입니다. 더구나 누가 낳은 것도 아니요 만드신 것도 아니며 창조주로서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출애굽기 3:13-14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여쭐 때에 하나님의 답변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2:13).
알파와 오메가는 그리스 문자의 처음과 끝이 되는 문자로서 인간이 문자를 만들어 냄으로써 더하게 된 지식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문자로 인한 과학 문명의 발전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과학 문명의 시작과 끝으로서 알파와 오메가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으로 처음을 이루게 하셨고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의 구원 사업을 완성하게 하셨기에 처음과 나중이 되시며(고전 15:45) 인류 역사를 시작하셔서 끝 날까지 주관하시므로 시작과 끝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며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창 17:1, 28:3). 그래서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심으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요 4:48).
기사(奇事)란 비를 내리게 하거나 내리던 비를 멈추게 하는 등 천기(天氣)를 움직이는 것을 말하며, 표적(表蹟)이란 죽은 자를 살리고 의학의 힘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을 치료하는 등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행할 수 없는 단계의 것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가 갈라지기도 하고 해와 달의 운행이 멈추기도 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도 하고 삼 년 반의 가뭄 속에 큰 비가 내리기도 했지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도 죽은 자를 살리고 모든 질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며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시고 물 위를 걸으시는 등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그대로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은 사도들을 통해서도 계속 나타났는데, 베드로의 경우는 사람들이 병자를 데려와서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일 수 있기를 원했지요. 사도 바울의 경우는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에게 얹어도 질병이 떠나고 악귀가 나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오늘날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나타나는데, 특히 본교회에서는 암은 물론, 중풍, 뇌성마비, 백혈병 등 각종 불치 난치병들이 치료되고 있으며, 교통사고로 골절된 뼈가 기도받고 정상이 되는가 하면, 전신에 화상을 입고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이 깨끗이 치료되고, 연탄가스로 죽어 가던 사람이 기도받고 깨어나 후유증 하나 없이 치료된 경우도 많지요. 이 외에도 시공을 초월하여 음성전화 사서함 환자기도나 기도받은 손수건만 얹고도 치료되는 경우가 무수히 많습니다.
4. 성경의 저자가 되십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 주셨는데, 그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완전하게 하나님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聖經)은 거룩한 책이라는 뜻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34:16에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되어 있으며 주전 1500년부터 주후 100년경까지 약 1600년간 34명의 손길을 통하여 기록된 대전집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에 여러 사람을 통하여 기록되었지만 마치 구슬을 꿰어맨 것처럼 정확하고 질서가 있어 마치 한 사람이 기록한 것과 같은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기록한 것이며(벧후 1:21), 사람들이 임의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임을 증거하는 것이니 우리는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요한복음 20:31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고, 디모데후서 3:15에는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하였으니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말씀은 곧 하나님(요 1:1)이심을 알아 성경을 대할 때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뵙는 마음으로 읽고, 듣고, 보며 영생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요 5:39). 성경을 어떤 교양을 쌓기 위한 교양서적이나 문학서적쯤으로 오인하여 자신의 생각에 맞춰 더하고 빼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우주만물과 인류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삶을 의뢰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소유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1-05
제1과마음을 새롭게 하자
롬 12:1-2
읽을말씀 : 롬 12:1-2 | 외울말씀 : 롬 12:2
교육목표 :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 주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아이나 어른을 막론하고 새로 산 옷, 새로 지은 집 등 무엇이든지 새것으로 바꾸면 신선한 기분이 느껴지고 새로운 꿈으로 마음이 부풀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신선한 기분이 사라지고 새로운 꿈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새해를 맞아 새로운 기분으로 한해를 시작하여 많은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지 않으면 여전히 옛것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해야 새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1.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먹고 마시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아왔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좇아 거짓말하고 미워하며 쾌락을 좇아 살면서도 죄인 줄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전도를 받거나 어떤 계기를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마음의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마음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믿음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 즉시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므로 열심히 변화시켜야 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 7:21, 고전 6:9).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밭에 비유하여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옥토밭으로 설명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길가밭은 단단하게 굳어 있는 밭으로서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전혀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 밭을 비유한 것입니다.
돌밭은 싹이 나더라도 돌멩이 때문에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서 지식적으로 말씀을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는 않으니 믿음의 확신이 없고 시험이 오면 넘어지게 됩니다. 가시떨기밭은 가시떨기로 인해 잘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서 말씀을 믿고 행한다고 해도 탐욕과 재리의 유혹, 세상의 염려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지만 옥토밭은 씨를 뿌리면 싹이 잘 나고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밭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이러한 옥토밭으로 우리의 마음밭을 개간하려면 무엇보다 변화되고자 하는 노력 위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농부가 묵은 밭을 옥토로 바꾸어 풍성한 수확을 거두려면 돌을 골라내고 흙을 고르게 하고 거름을 주며 잡초도 뽑고 벌레도 잡아주는 등 많은 수고를 하는 것처럼 우리도 밭을 일구는 농부와 같이 마음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된 자녀가 되기 위한 과정이지요.
우리가 말씀과 성령 안에서 묵은 밭을 개간해 가면 예전의 강퍅한 마음이 변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더러운 마음이 깨끗한 마음으로, 비진리의 마음이 진리의 마음으로, 악한 마음이 선한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설령 누가 섭섭한 말을 해도 서운해 하지 않고,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대어 주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옥토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야
이처럼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선하신 뜻
마음이 새로워지기 전에는 아무리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며 하나님의 뜻은 이러한 것'이라고 알려 주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새로워지면 성령을 통하여 깨닫게 되므로 옥토로 변화된 만큼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게 됩니다.
마가복음 10:17-18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질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은 단지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시지 않고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고 되물으셨습니다. 사람 중에는 선한 이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질문하신 것이지요. 그리고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선'이란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하나님의 뜻과 생각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 안에서 믿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것이지요.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선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이 다르며,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아무리 선한 사람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선하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선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는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니 자신이 악한 사람이고 죄인인 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음을 알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 곧 선을 좇아 살아갈 때 많은 열매를 거두며 풍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히브리서 11:6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고, 시편 37:4에는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중풍병자인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간 백부장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는 백부장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친히 가서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며 크게 칭찬하시고 즉시 하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외에도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고,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워졌습니다(히 11장). 예수님의 제자들도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갔으며,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진리를 좇아 살면서 큰 믿음을 내보이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제가 파키스탄에서 연합성회를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파키스탄은 회교국가로서 기독교 성회를 연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준비를 해 나갔고, 막상 성회 당일이 되자 국민 대다수가 회교도이기 때문에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집회가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지요. 성회 장소의 문은 굳게 닫혔고, 참석하는 사람들을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경찰들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선교팀들은 성회가 무사히 열릴 것을 믿었고, 저는 "낮 12시가 되면 운동장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담대히 선포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오직 믿음으로 행하였더니 이를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그 나라의 권세자의 마음을 주관하여 굳게 닫힌 문이 열렸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있다 해도 행함이 없으면 온전치 못합니다. 왜냐하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약 2:26).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면 야구에 관한 책을 공부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공을 던져보고 쳐 보면서 열심히 연습해야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행함이 동반되어야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5:48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대로 '기도해야지' 하고 마음먹었으면 변개함 없이 기도하고, 기뻐하기로 작정했으면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변함없이 기뻐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행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내보였기에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시며 크게 축복해 주셨지요(창 22:17-18).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번성하였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후손으로 오셔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시고 천하 만민이 복을 받아 영생의 길로 가게 되었지요. 아브라함이 이렇게 많은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였기에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으며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맞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고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새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며, 온전히 행함으로 나타내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육목표 :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 주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아이나 어른을 막론하고 새로 산 옷, 새로 지은 집 등 무엇이든지 새것으로 바꾸면 신선한 기분이 느껴지고 새로운 꿈으로 마음이 부풀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신선한 기분이 사라지고 새로운 꿈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새해를 맞아 새로운 기분으로 한해를 시작하여 많은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지 않으면 여전히 옛것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해야 새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1.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먹고 마시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아왔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좇아 거짓말하고 미워하며 쾌락을 좇아 살면서도 죄인 줄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전도를 받거나 어떤 계기를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마음의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마음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믿음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 즉시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므로 열심히 변화시켜야 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 7:21, 고전 6:9).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밭에 비유하여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옥토밭으로 설명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길가밭은 단단하게 굳어 있는 밭으로서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전혀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 밭을 비유한 것입니다.
돌밭은 싹이 나더라도 돌멩이 때문에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서 지식적으로 말씀을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는 않으니 믿음의 확신이 없고 시험이 오면 넘어지게 됩니다. 가시떨기밭은 가시떨기로 인해 잘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서 말씀을 믿고 행한다고 해도 탐욕과 재리의 유혹, 세상의 염려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지만 옥토밭은 씨를 뿌리면 싹이 잘 나고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밭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이러한 옥토밭으로 우리의 마음밭을 개간하려면 무엇보다 변화되고자 하는 노력 위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농부가 묵은 밭을 옥토로 바꾸어 풍성한 수확을 거두려면 돌을 골라내고 흙을 고르게 하고 거름을 주며 잡초도 뽑고 벌레도 잡아주는 등 많은 수고를 하는 것처럼 우리도 밭을 일구는 농부와 같이 마음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된 자녀가 되기 위한 과정이지요.
우리가 말씀과 성령 안에서 묵은 밭을 개간해 가면 예전의 강퍅한 마음이 변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더러운 마음이 깨끗한 마음으로, 비진리의 마음이 진리의 마음으로, 악한 마음이 선한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설령 누가 섭섭한 말을 해도 서운해 하지 않고,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대어 주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옥토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야
이처럼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선하신 뜻
마음이 새로워지기 전에는 아무리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며 하나님의 뜻은 이러한 것'이라고 알려 주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새로워지면 성령을 통하여 깨닫게 되므로 옥토로 변화된 만큼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게 됩니다.
마가복음 10:17-18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질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은 단지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시지 않고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고 되물으셨습니다. 사람 중에는 선한 이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질문하신 것이지요. 그리고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선'이란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하나님의 뜻과 생각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 안에서 믿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것이지요.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선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이 다르며,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아무리 선한 사람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선하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선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는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니 자신이 악한 사람이고 죄인인 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음을 알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 곧 선을 좇아 살아갈 때 많은 열매를 거두며 풍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히브리서 11:6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고, 시편 37:4에는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중풍병자인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간 백부장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는 백부장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친히 가서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며 크게 칭찬하시고 즉시 하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외에도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고,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워졌습니다(히 11장). 예수님의 제자들도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갔으며,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진리를 좇아 살면서 큰 믿음을 내보이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제가 파키스탄에서 연합성회를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파키스탄은 회교국가로서 기독교 성회를 연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준비를 해 나갔고, 막상 성회 당일이 되자 국민 대다수가 회교도이기 때문에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집회가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지요. 성회 장소의 문은 굳게 닫혔고, 참석하는 사람들을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경찰들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선교팀들은 성회가 무사히 열릴 것을 믿었고, 저는 "낮 12시가 되면 운동장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담대히 선포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오직 믿음으로 행하였더니 이를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그 나라의 권세자의 마음을 주관하여 굳게 닫힌 문이 열렸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있다 해도 행함이 없으면 온전치 못합니다. 왜냐하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약 2:26).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면 야구에 관한 책을 공부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공을 던져보고 쳐 보면서 열심히 연습해야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행함이 동반되어야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5:48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대로 '기도해야지' 하고 마음먹었으면 변개함 없이 기도하고, 기뻐하기로 작정했으면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변함없이 기뻐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행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내보였기에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시며 크게 축복해 주셨지요(창 22:17-18).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번성하였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후손으로 오셔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시고 천하 만민이 복을 받아 영생의 길로 가게 되었지요. 아브라함이 이렇게 많은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였기에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으며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맞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고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새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며, 온전히 행함으로 나타내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12-29
제52과지극히 충성된 자
눅 16:10
읽을말씀 : 눅 16:10 | 외울말씀 : 눅 16:10
교육목표 : 지극히 충성된 자가 되어 주님께 “잘 하였다.” 칭찬받을 뿐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만큼 자금을 주었습니다. 그 중에 한 종은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열심히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의 이윤을 더 남겼고, 또 한 종은 두 달란트를 받아서 두 달란트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며 칭찬을 하였지요.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사명 하나라도 귀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정녕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작은 사명일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사명이라도 소중한 것이지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사명을 잘 감당할 때는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얻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서 당장 맡은 일은 소홀히 하고 있으면서 "더 큰 사명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는 경우도 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사명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받으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인정받기 원하고 사람 앞에 드러나고자 직분을 원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우, 충성하는 자체보다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내기 어렵고 큰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6:10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말씀하신 대로 작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도 큰 사명을 맡기실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창세기 37-4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 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 족속이 한 민족으로 성장하기까지 애굽에 들어가 거할 길을 여십니다. 먼저 요셉이 강대국 애굽에 들어가서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어린 요셉을 총리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애굽의 한 장관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서, 미천한 일부터 시작하게 하셨지요. 점차 주인의 신망을 얻게 되니 모든 살림을 주관하는 자리에 세우시고, 다음에는 왕의 감옥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 감옥은 일반 죄수들이 아니라 고위층 사람들이 왕에게 범죄했을 때 수감되는 감옥으로 요셉은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라 전체를 다스릴 수 있도록 넓은 안목과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13년을 보내고서야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될 수 있었지요. 요셉은 타고난 성실함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통해 그 모든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장관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 자신의 직무를 대충했다면 그는 종으로서 자신의 일생을 마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무리 미천한 일이라도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 이상의 일을 해냄으로 주인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더 높은 직분을 맡게 된 후에도 사심과 들렘이 없었으며, '어찌하면 주인에게 유익을 줄까?' 하는 마음으로 온 집안을 최선을 다해 돌아보았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충성을 다하는 요셉이었기에 결국 나라 전체를 맡아서도 잘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귀히 여기며 '어찌하면 사명을 잘 감당할까?' 마음을 쓰다 보면 자신의 한계를 느끼므로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맡은 영혼들이 시험 환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쳐 주고 싶고, 믿음을 갖지 못하는 영혼들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고 싶지요. 그러나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잘되지 않을 때 심히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서 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때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상대를 섬기는 것 같아도 원하는 열매를 낼 수가 없습니다.
육적인 사랑을 베푼다 해서 영혼들이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관을 좇아 행할 때라야 영혼들이 새 힘을 얻어 충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심방하면 변화되지 않으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심방하면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이, 정확하게 영혼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은혜받고 마음 문을 열게 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자신의 방법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이 생기면 자연히 겸비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매달리게 되지요. 따라서 사명 감당을 잘하는 것은 곧 영혼이 잘되는 축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다 보면 무엇보다 자신이 성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요. 성결되어 능력받고 열매를 내고자 하는 뜨거운 소망이 있으면 오직 진리와 함께 기뻐하면서 짜증이나 감정,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모습 등 작은 악의 모양이라도 민감하게 깨달으며 버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그릇을 만들어 가는 만큼 더 큰 능력을 받게 되고 많은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심장으로,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8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참혹한 고난을 당하시면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심장으로 맡겨진 양 떼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니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피곤함도 개의치 않았고, 험한 파도와 높은 산, 광야의 모든 위험도 무릅쓸 수 있었습니다. 주의 복음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수모와 살과 뼈가 부서지도록 매를 맞는 고통,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희생은 자신을 사랑하사 피 흘리신 주님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모든 영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9:3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할 정도였지요.
이처럼 주어진 사명을 소중히 여겨 온전히 감당하고자 기도하면서 성결되는 만큼 영혼을 위해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신 주님의 마음이 임하게 됩니다. 또한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 만큼, 삶 전체를 영혼들을 위해 내어 주는 목자의 심정을 깨닫게 되지요.
목자의 마음은 육의 부모들이 먼 곳에 간 자녀를 늘 마음에 품고 '내 아들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밥은 잘 챙겨먹고 있을까?' 염려하는 것보다 더하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1:28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백한 것처럼 밤낮 영혼들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들을 갈무리하는 사명을 맡은 일꾼도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품을 때 열심히 심방하게 될 뿐 아니라, 무시로 그들의 형편을 떠올리며 기도하게 됩니다. 혹여 뾰족한 말로 찌르고 부딪혀 오는 양 떼라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지요. 소중한 목자의 양 떼이니 그들 모두 자신의 소중한 기업으로 여겨져 사랑이 갈 뿐입니다.
아기가 짜증을 내어도 어머니는 좋은 것을 주듯이 갈무리하는 영혼을 편케 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섬겨 주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어찌하면 그 영혼이 잘될 수 있을까?' 하여 영육간에 희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영혼들이 범죄하여 시험 환난을 당할 때면 자신이 더 애통하며 부르짖어 기도하게 됩니다. 맡은 양 떼의 문제를 위해 늘 기도해 주고 양 떼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간구하며 내 자녀나 가족 이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으로 열심히 영혼을 갈무리하며 섬기다 보면 진실을 느끼고 감사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부모가 되면 진정한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처럼 자신이 영혼을 갈무리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목자의 마음을 느끼며 더욱 주님께도 아버지께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심장과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을 품고 사랑을 주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더 많은 영혼들을 보내 주시고 부흥에 부흥을 더하여 더 큰 사명을 맡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변함없는 모습으로 지극히 충성된 자가 되어 주님께 칭찬받을 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지극히 충성된 자가 되어 주님께 “잘 하였다.” 칭찬받을 뿐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만큼 자금을 주었습니다. 그 중에 한 종은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열심히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의 이윤을 더 남겼고, 또 한 종은 두 달란트를 받아서 두 달란트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며 칭찬을 하였지요.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사명 하나라도 귀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정녕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작은 사명일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사명이라도 소중한 것이지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사명을 잘 감당할 때는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얻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서 당장 맡은 일은 소홀히 하고 있으면서 "더 큰 사명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는 경우도 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사명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받으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인정받기 원하고 사람 앞에 드러나고자 직분을 원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우, 충성하는 자체보다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내기 어렵고 큰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6:10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말씀하신 대로 작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도 큰 사명을 맡기실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창세기 37-4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 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 족속이 한 민족으로 성장하기까지 애굽에 들어가 거할 길을 여십니다. 먼저 요셉이 강대국 애굽에 들어가서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어린 요셉을 총리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애굽의 한 장관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서, 미천한 일부터 시작하게 하셨지요. 점차 주인의 신망을 얻게 되니 모든 살림을 주관하는 자리에 세우시고, 다음에는 왕의 감옥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 감옥은 일반 죄수들이 아니라 고위층 사람들이 왕에게 범죄했을 때 수감되는 감옥으로 요셉은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라 전체를 다스릴 수 있도록 넓은 안목과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13년을 보내고서야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될 수 있었지요. 요셉은 타고난 성실함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통해 그 모든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장관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 자신의 직무를 대충했다면 그는 종으로서 자신의 일생을 마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무리 미천한 일이라도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 이상의 일을 해냄으로 주인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더 높은 직분을 맡게 된 후에도 사심과 들렘이 없었으며, '어찌하면 주인에게 유익을 줄까?' 하는 마음으로 온 집안을 최선을 다해 돌아보았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충성을 다하는 요셉이었기에 결국 나라 전체를 맡아서도 잘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귀히 여기며 '어찌하면 사명을 잘 감당할까?' 마음을 쓰다 보면 자신의 한계를 느끼므로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맡은 영혼들이 시험 환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쳐 주고 싶고, 믿음을 갖지 못하는 영혼들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고 싶지요. 그러나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잘되지 않을 때 심히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서 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때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상대를 섬기는 것 같아도 원하는 열매를 낼 수가 없습니다.
육적인 사랑을 베푼다 해서 영혼들이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관을 좇아 행할 때라야 영혼들이 새 힘을 얻어 충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심방하면 변화되지 않으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심방하면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이, 정확하게 영혼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은혜받고 마음 문을 열게 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자신의 방법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이 생기면 자연히 겸비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매달리게 되지요. 따라서 사명 감당을 잘하는 것은 곧 영혼이 잘되는 축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다 보면 무엇보다 자신이 성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요. 성결되어 능력받고 열매를 내고자 하는 뜨거운 소망이 있으면 오직 진리와 함께 기뻐하면서 짜증이나 감정,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모습 등 작은 악의 모양이라도 민감하게 깨달으며 버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그릇을 만들어 가는 만큼 더 큰 능력을 받게 되고 많은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심장으로,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8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참혹한 고난을 당하시면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심장으로 맡겨진 양 떼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니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피곤함도 개의치 않았고, 험한 파도와 높은 산, 광야의 모든 위험도 무릅쓸 수 있었습니다. 주의 복음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수모와 살과 뼈가 부서지도록 매를 맞는 고통,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희생은 자신을 사랑하사 피 흘리신 주님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모든 영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9:3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할 정도였지요.
이처럼 주어진 사명을 소중히 여겨 온전히 감당하고자 기도하면서 성결되는 만큼 영혼을 위해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신 주님의 마음이 임하게 됩니다. 또한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 만큼, 삶 전체를 영혼들을 위해 내어 주는 목자의 심정을 깨닫게 되지요.
목자의 마음은 육의 부모들이 먼 곳에 간 자녀를 늘 마음에 품고 '내 아들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밥은 잘 챙겨먹고 있을까?' 염려하는 것보다 더하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1:28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백한 것처럼 밤낮 영혼들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들을 갈무리하는 사명을 맡은 일꾼도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품을 때 열심히 심방하게 될 뿐 아니라, 무시로 그들의 형편을 떠올리며 기도하게 됩니다. 혹여 뾰족한 말로 찌르고 부딪혀 오는 양 떼라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지요. 소중한 목자의 양 떼이니 그들 모두 자신의 소중한 기업으로 여겨져 사랑이 갈 뿐입니다.
아기가 짜증을 내어도 어머니는 좋은 것을 주듯이 갈무리하는 영혼을 편케 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섬겨 주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어찌하면 그 영혼이 잘될 수 있을까?' 하여 영육간에 희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영혼들이 범죄하여 시험 환난을 당할 때면 자신이 더 애통하며 부르짖어 기도하게 됩니다. 맡은 양 떼의 문제를 위해 늘 기도해 주고 양 떼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간구하며 내 자녀나 가족 이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으로 열심히 영혼을 갈무리하며 섬기다 보면 진실을 느끼고 감사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부모가 되면 진정한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처럼 자신이 영혼을 갈무리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목자의 마음을 느끼며 더욱 주님께도 아버지께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심장과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을 품고 사랑을 주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더 많은 영혼들을 보내 주시고 부흥에 부흥을 더하여 더 큰 사명을 맡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변함없는 모습으로 지극히 충성된 자가 되어 주님께 칭찬받을 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2-22
제51과예수 그리스도
행 4:12
읽을말씀 : 행 4:12 | 외울말씀 : 행 4:12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깨달아 그 이름의 능력과 권세를 힘입음으로 삶에 항상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사람의 이름은 단지 몇 음절로 구성된 문자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어떤 한 사람의 이름을 생각하면 단지 그 이름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얼굴과 성품, 언행과 분위기 등 그 사람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함께 떠오르지요. 여러분은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어떠한 마음과 생각이 드시는지요?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세 가지로 말씀드릴 때에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새록새록 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
1)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사도행전 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지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순간부터 성장 과정과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의 모든 것이 인생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인생들의 어려움을 대신 지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시고 구유에 누이신 것도 인류의 구원자로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지요.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짐승과 다름없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흠도 점도 없는 깨끗한 보혈을 흘리셨으며 참혹한 십자가의 형벌을 받고 죽으셨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이 죽임당하셨기 때문에 사망에 매여 계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사망을 이기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완전한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이처럼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고 입술로 시인하는 사람은 누구나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혹 현실의 이런저런 문제들이 발생할 때 힘들고 절망하며 낙심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잊었거나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저주를 풀어 주심으로 영원한 사망의 고통에서 건져내신 구원자이심을 믿는다면 현실의 문제로 인한 어려움에서도 능히 여러분을 건져 주실 수 있음을 믿음으로 다시금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승리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시며 우리에게는 "위로자"가 되십니다
요한일서 2:1-2에 보면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전서 2:5-6에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했지요. 이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로서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려고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죄인들의 죄를 속량하기 위한 속전으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 주셨지요.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의로운 행동을 중심에서 믿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서 간구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빛 가운데 살기 위해 하나님께 능력을 구할 때 주님께서도 이 영혼을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 대신 간구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저 영혼이 중심에서 죄를 회개하오니 보혈의 능력으로 모든 죄를 다 씻었나이다. 저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고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을 내려 주옵소서."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요 중보가 되십니다.
이에 히브리서 4:15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했지요. 물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으로, 로마서 8:26에 보면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 모두 여러분의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여러분 자신보다 더 간절함으로 하나님 앞에 간구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혹 여러분이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 해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심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1:5을 보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도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멸시받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 열심히 붙좇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하셨고, 오히려 심령이 가난한 자들과 애통하는 자, 핍박받는 자들이 복이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곧 천국이 저희 것이며 위로를 받을 것이고 또한 천국의 상급이 크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자들의 압제로 인해 눌려 있던 사람들과 가난으로 인해 궁핍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한줄기 큰 소망의 빛으로 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기에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의 위로를 바라면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사랑과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말씀으로만 위로하시는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는 참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도록 상황을 바꿔 주시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부요함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위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의 이름이요, 어떤 사람에게는 소망의 이름이며, 부요의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응답자가 되십니다
요한복음 14:13-14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들으심으로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케 해 주십니다.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은 문제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 이름의 권세로 인해 어둠이 물러가고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그 권세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알아야 능력이 나타나고 원수 마귀 사단도 무서워서 물러가지요.
비유를 들자면, 만일 경찰과 도둑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자신이 도둑인 것을 모르는 경찰이라면 도둑은 그 경찰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태연하게 행동하고 도망가려 하지도 않지요. 그러나 자신이 도둑인 것을 알고 있는 경찰이 나타나면 잡힐 것이 무서워 재빨리 도망치겠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칠 때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물리칠 때의 능력이 전혀 다르며 기도의 응답도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란 마태복음 1:21에 나온 대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으로서 '구원한 자'라는 완성형이 아니라, 앞으로 '구원할 자'라는 미래형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자요, 중보자인 구세주의 직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로 구세주의 자격을 획득한 사람을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요,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언제 구세주가 되셨습니까?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 깨뜨리고 부활하셨을 때 우리의 구원자,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예수이고,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말로 하면 '구세주' 또는 줄여서 '주'라 하고 여기에 존칭어를 붙여서 '주님'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사도들도 주님의 부활 승천 후에 기도하거나 말씀을 증거할 때 '예수님'이라 하지 않고 '주'나 '그리스도'를 덧붙였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행 3:6). 그러므로 여러분이 기도할 때도 예수님의 이름과 함께 반드시 '주' 혹은 '그리스도'를 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요 16:23).
그런데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 해도 의심하며 구하거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할 때는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약 1:6, 4:3). 따라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되 온전한 믿음으로 의심 없이 기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구한 모든 것을 응답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원자요, 대언자시며 위로자가 되시고 응답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과 권세로 인해 여러분들의 삶에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풍성하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깨달아 그 이름의 능력과 권세를 힘입음으로 삶에 항상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사람의 이름은 단지 몇 음절로 구성된 문자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어떤 한 사람의 이름을 생각하면 단지 그 이름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얼굴과 성품, 언행과 분위기 등 그 사람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함께 떠오르지요. 여러분은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어떠한 마음과 생각이 드시는지요?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세 가지로 말씀드릴 때에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새록새록 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
1)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사도행전 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지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순간부터 성장 과정과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의 모든 것이 인생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인생들의 어려움을 대신 지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시고 구유에 누이신 것도 인류의 구원자로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지요.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짐승과 다름없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흠도 점도 없는 깨끗한 보혈을 흘리셨으며 참혹한 십자가의 형벌을 받고 죽으셨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이 죽임당하셨기 때문에 사망에 매여 계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사망을 이기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완전한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이처럼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고 입술로 시인하는 사람은 누구나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혹 현실의 이런저런 문제들이 발생할 때 힘들고 절망하며 낙심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잊었거나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저주를 풀어 주심으로 영원한 사망의 고통에서 건져내신 구원자이심을 믿는다면 현실의 문제로 인한 어려움에서도 능히 여러분을 건져 주실 수 있음을 믿음으로 다시금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승리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시며 우리에게는 "위로자"가 되십니다
요한일서 2:1-2에 보면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전서 2:5-6에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했지요. 이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로서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려고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죄인들의 죄를 속량하기 위한 속전으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 주셨지요.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의로운 행동을 중심에서 믿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서 간구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빛 가운데 살기 위해 하나님께 능력을 구할 때 주님께서도 이 영혼을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 대신 간구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저 영혼이 중심에서 죄를 회개하오니 보혈의 능력으로 모든 죄를 다 씻었나이다. 저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고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을 내려 주옵소서."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요 중보가 되십니다.
이에 히브리서 4:15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했지요. 물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으로, 로마서 8:26에 보면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 모두 여러분의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여러분 자신보다 더 간절함으로 하나님 앞에 간구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혹 여러분이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 해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심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1:5을 보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도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멸시받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 열심히 붙좇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하셨고, 오히려 심령이 가난한 자들과 애통하는 자, 핍박받는 자들이 복이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곧 천국이 저희 것이며 위로를 받을 것이고 또한 천국의 상급이 크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자들의 압제로 인해 눌려 있던 사람들과 가난으로 인해 궁핍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한줄기 큰 소망의 빛으로 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기에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의 위로를 바라면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사랑과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말씀으로만 위로하시는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는 참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도록 상황을 바꿔 주시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부요함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위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의 이름이요, 어떤 사람에게는 소망의 이름이며, 부요의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응답자가 되십니다
요한복음 14:13-14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들으심으로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케 해 주십니다.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은 문제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 이름의 권세로 인해 어둠이 물러가고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그 권세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알아야 능력이 나타나고 원수 마귀 사단도 무서워서 물러가지요.
비유를 들자면, 만일 경찰과 도둑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자신이 도둑인 것을 모르는 경찰이라면 도둑은 그 경찰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태연하게 행동하고 도망가려 하지도 않지요. 그러나 자신이 도둑인 것을 알고 있는 경찰이 나타나면 잡힐 것이 무서워 재빨리 도망치겠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칠 때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물리칠 때의 능력이 전혀 다르며 기도의 응답도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란 마태복음 1:21에 나온 대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으로서 '구원한 자'라는 완성형이 아니라, 앞으로 '구원할 자'라는 미래형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자요, 중보자인 구세주의 직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로 구세주의 자격을 획득한 사람을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요,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언제 구세주가 되셨습니까?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 깨뜨리고 부활하셨을 때 우리의 구원자,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예수이고,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말로 하면 '구세주' 또는 줄여서 '주'라 하고 여기에 존칭어를 붙여서 '주님'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사도들도 주님의 부활 승천 후에 기도하거나 말씀을 증거할 때 '예수님'이라 하지 않고 '주'나 '그리스도'를 덧붙였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행 3:6). 그러므로 여러분이 기도할 때도 예수님의 이름과 함께 반드시 '주' 혹은 '그리스도'를 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요 16:23).
그런데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 해도 의심하며 구하거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할 때는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약 1:6, 4:3). 따라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되 온전한 믿음으로 의심 없이 기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구한 모든 것을 응답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원자요, 대언자시며 위로자가 되시고 응답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과 권세로 인해 여러분들의 삶에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풍성하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2-15
제50과믿음으로 바라보자
히 11:1-3
읽을말씀 : 히 11:1-3 | 외울말씀 : 히 11:1-3
교육목표 : 믿음으로 바라보고 행군함으로 신속히 영으로 들어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크신 영광과 축복들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믿음으로 바라보라" 말씀하셨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을 많이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의 힘과 지혜로 불가능한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너무나 쉽고 신속하게 해결되는 것을 무수히 보여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러한 증거들과 권능의 역사들을 통해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길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증거들을 보여 주시며 믿음으로 바라보라고 이끄시기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따라갈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스스로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하시지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지금까지 쌓아온 믿음의 훈련들을 통해 여러분 스스로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의 행군을 할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믿음으로 바라보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힘찬 믿음의 행진을 해야 하겠습니다.
1. 믿음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육적인 믿음이 아닌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육적인 믿음은 유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요,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이지요. 예를 들어, 나무로 책상을 만들었다 하는, 바로 유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 육적인 믿음이요, 내 지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믿는 지식적인 믿음입니다. 이 육적인 믿음으로는 사람의 생각과 틀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릴 수가 없으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역사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믿음은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요,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이지요. 이러한 산 믿음, 영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본 교회에 주신 비전들을 하나하나 성취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2천 년도부터 해외 연합대성회들을 여러 차례 이루었는데 단지 육적인 믿음만 가졌다면 어느 성회도 그처럼 크게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장 넉넉한 재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성회를 개최할 현지 상황도 좋지 않았지요. 성회 개최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어서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사람들을 미혹하는가 하면 테러의 위협도 있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믿음으로 순종하여 발을 내딛으면 방해가 큰 만큼 하나님의 영광도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적인 믿음은 진실 자체이기에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힘이 있으며 어떤 불가능한 일도 가능케 하는 놀라운 능력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여러분들이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현실을 보니 "어렵겠다, 못하겠다." 생각한다면 이는 육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만 알고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 지식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이러한 죽은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의 행함을 내보일 수 있는 산 믿음, 바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 현실적인 사람의 생각으로는 벼랑에서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것처럼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행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벼랑에서 자신의 몸을 내던질지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의 손을 펴서 받아 주실 것을 조금도 의심 없이 믿기 때문에 그처럼 행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앞으로 이루어야 할 많은 일들 앞에서도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민 14:8-9) 출애굽 1세대 중에서는 이처럼 믿음으로 고백했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믿음의 고백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의 주도적인 흐름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반드시 이뤄지지만 육신의 생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루는 데 참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제는 영이 아니고서는 아니 된다 강조했던 말씀대로 영의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온전한 영의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절대로 포기라는 것이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다가 포기하는 이유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에 그것을 뛰어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계가 있는 사람의 생각으로 볼 때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만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장애물이 장애물로 보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한계를 짓지도 않기에 불가능이라는 것도 포기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의 기본자세이지요.
그런데 수년 전 여러분이 가나안 성전을 이루고자 했을 때 왜 그것을 취하지 못했을까요? 애쓰고 힘써서 취해 보고자 하였으나 매번 필요한 만큼 재정이 준비되지 않자 '어렵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왔고 결국은 포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당시 취하려던 곳은 가나안 성전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합한 곳이 아니었지만 그러한 과정을 허락하신 것은 여러분들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목자의 믿음으로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믿음으로 가나안 성전을 취해 보도록 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은 영적인 믿음이 없이는 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셨던 것이지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갈 때에도 장애물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기브온에서는 다섯 나라 연합군과 싸워야 했고 가나안 땅의 동 서편과 북방을 취할 때에도 그곳의 연합한 이방 군대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 적군의 수가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 했지요.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여호수아에게는 두려움이나 낙심이 아니라 오직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만이 있을 뿐이었지요. 그러니 항상 하나님께서 책임지셔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과 권능을 친히 이 제단을 통해서 나타내 행해 보여 주시는 것을 여러분들도 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녕 믿음으로 바라보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순종하여 행하기만 하심으로 우리가 이루게 될 과업을 온전히 이루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3) 자신의 성결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처음 하나님을 만나 믿음의 1단계에서 지금의 믿음으로 성장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믿고 바라봐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영으로 일구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와질 것을 기대하시며 바라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자신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한 자녀로 나와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도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지요. 그리고 마음의 심비에 새겨서 행함으로 나타내 보일 때 어느 순간 깊숙이 영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육의 모습이 발견된다 하여 낙심하며 포기하는 사람이라면 영적인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결도 영적인 믿음으로 바라본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이 변함없으며 흔들림이 없습니다. 성결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비진리와 육의 마음을 발견하면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러한 축복도 성결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에게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영의 흐름을 타고 어찌하든 영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 성령도 도우시고 늘 깨우침을 주시는 것이지요.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능히 성결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들은 영을 사모하여 어찌하든 영으로 들어가기 원하시지요? 그러면 많은 일들이 믿음으로 가능한 것처럼 성결도 능히 이룰 수 있음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변함없이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는 목자가 이끌어서가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가 영의 흐름을 주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가지되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포기라는 것이 없으며 자신의 성결에 대해서도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신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크신 영광과 놀라운 축복들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믿음으로 바라보고 행군함으로 신속히 영으로 들어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크신 영광과 축복들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믿음으로 바라보라" 말씀하셨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을 많이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의 힘과 지혜로 불가능한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너무나 쉽고 신속하게 해결되는 것을 무수히 보여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러한 증거들과 권능의 역사들을 통해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길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증거들을 보여 주시며 믿음으로 바라보라고 이끄시기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따라갈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스스로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하시지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지금까지 쌓아온 믿음의 훈련들을 통해 여러분 스스로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의 행군을 할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믿음으로 바라보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힘찬 믿음의 행진을 해야 하겠습니다.
1. 믿음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육적인 믿음이 아닌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육적인 믿음은 유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요,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이지요. 예를 들어, 나무로 책상을 만들었다 하는, 바로 유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 육적인 믿음이요, 내 지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믿는 지식적인 믿음입니다. 이 육적인 믿음으로는 사람의 생각과 틀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릴 수가 없으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역사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믿음은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요,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이지요. 이러한 산 믿음, 영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본 교회에 주신 비전들을 하나하나 성취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2천 년도부터 해외 연합대성회들을 여러 차례 이루었는데 단지 육적인 믿음만 가졌다면 어느 성회도 그처럼 크게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장 넉넉한 재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성회를 개최할 현지 상황도 좋지 않았지요. 성회 개최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어서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사람들을 미혹하는가 하면 테러의 위협도 있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믿음으로 순종하여 발을 내딛으면 방해가 큰 만큼 하나님의 영광도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적인 믿음은 진실 자체이기에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힘이 있으며 어떤 불가능한 일도 가능케 하는 놀라운 능력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여러분들이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현실을 보니 "어렵겠다, 못하겠다." 생각한다면 이는 육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만 알고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 지식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이러한 죽은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의 행함을 내보일 수 있는 산 믿음, 바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 현실적인 사람의 생각으로는 벼랑에서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것처럼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행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벼랑에서 자신의 몸을 내던질지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의 손을 펴서 받아 주실 것을 조금도 의심 없이 믿기 때문에 그처럼 행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앞으로 이루어야 할 많은 일들 앞에서도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민 14:8-9) 출애굽 1세대 중에서는 이처럼 믿음으로 고백했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믿음의 고백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의 주도적인 흐름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반드시 이뤄지지만 육신의 생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루는 데 참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제는 영이 아니고서는 아니 된다 강조했던 말씀대로 영의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온전한 영의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절대로 포기라는 것이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다가 포기하는 이유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에 그것을 뛰어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계가 있는 사람의 생각으로 볼 때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만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장애물이 장애물로 보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한계를 짓지도 않기에 불가능이라는 것도 포기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의 기본자세이지요.
그런데 수년 전 여러분이 가나안 성전을 이루고자 했을 때 왜 그것을 취하지 못했을까요? 애쓰고 힘써서 취해 보고자 하였으나 매번 필요한 만큼 재정이 준비되지 않자 '어렵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왔고 결국은 포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당시 취하려던 곳은 가나안 성전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합한 곳이 아니었지만 그러한 과정을 허락하신 것은 여러분들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목자의 믿음으로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믿음으로 가나안 성전을 취해 보도록 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은 영적인 믿음이 없이는 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셨던 것이지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갈 때에도 장애물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기브온에서는 다섯 나라 연합군과 싸워야 했고 가나안 땅의 동 서편과 북방을 취할 때에도 그곳의 연합한 이방 군대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 적군의 수가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 했지요.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여호수아에게는 두려움이나 낙심이 아니라 오직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만이 있을 뿐이었지요. 그러니 항상 하나님께서 책임지셔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과 권능을 친히 이 제단을 통해서 나타내 행해 보여 주시는 것을 여러분들도 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녕 믿음으로 바라보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순종하여 행하기만 하심으로 우리가 이루게 될 과업을 온전히 이루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3) 자신의 성결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처음 하나님을 만나 믿음의 1단계에서 지금의 믿음으로 성장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믿고 바라봐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영으로 일구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와질 것을 기대하시며 바라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자신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한 자녀로 나와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도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지요. 그리고 마음의 심비에 새겨서 행함으로 나타내 보일 때 어느 순간 깊숙이 영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육의 모습이 발견된다 하여 낙심하며 포기하는 사람이라면 영적인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결도 영적인 믿음으로 바라본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이 변함없으며 흔들림이 없습니다. 성결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비진리와 육의 마음을 발견하면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러한 축복도 성결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에게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영의 흐름을 타고 어찌하든 영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 성령도 도우시고 늘 깨우침을 주시는 것이지요.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능히 성결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들은 영을 사모하여 어찌하든 영으로 들어가기 원하시지요? 그러면 많은 일들이 믿음으로 가능한 것처럼 성결도 능히 이룰 수 있음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변함없이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는 목자가 이끌어서가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가 영의 흐름을 주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가지되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포기라는 것이 없으며 자신의 성결에 대해서도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신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크신 영광과 놀라운 축복들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2-08
제49과축복
왕상 17:12
읽을말씀 : 왕상 17:12 | 외울말씀 : 왕상 17:12
교육목표 : 사르밧 과부의 믿음과 순종의 행함을 통해 참된 축복의 비결을 알아 영육간에 넘치는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떠한 중심으로 심고 행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도 달라지는데 영혼이 잘되는 만큼 주시는 것이기에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적으로 임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를 통해 축복의 비결을 살펴보면서 진정한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1. 사르밧 과부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
당시 이스라엘은 아합 왕과 온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며 갖가지 죄악을 행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에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을 예언케 하셨지요. 그런데도 아합 왕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엘리야를 미워하며 죽이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까마귀를 통해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해 주시며 마실 수 있는 시냇물도 예비해 두셨지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가뭄이 심하여 그릿 시냇물까지 말라 버리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엘리야에게 명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왕상 17:9)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시돈에 이른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여인을 만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부탁하였지요. 이 여인은 처음 본 나그네의 청이었지만 물리치지 않고 순순히 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또다시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말했습니다. 오랜 가뭄으로 인해 물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 음식까지 구한다는 것은 염치없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 여인은 오히려 도울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민망히 여기며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말했습니다(왕상 17:12).
그러자 엘리야는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답변했습니다. 이에 사르밧 과부는 어떤 이유나 핑계도 대지 않고 엘리야가 부탁한 대로 순종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말한 대로 놀라운 축복이 임하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왕상 17:15-16).
2. 사르밧 과부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비결
1) 하나님의 사람을 신뢰했고 그 입술의 말을 믿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믿었기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는 엘리야의 말에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그것을 그대로 믿고 어떠한 생각도 동원치 않고 아무런 주저함 없이 즉시로 순종했지요.
이처럼 선지자를 신뢰하며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하면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대하 20:20). 여기서 '선지자'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부름을 받은 주의 종으로 하나님 앞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 마음을 옥토로 개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가 나타나는 사람이지요(고후 12:12).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름받은 주의 종을 신뢰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왕을 세워 줄 것을 요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하셨지요(삼상 8:7).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를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2) 마음이 진실하고 거짓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선지자를 신뢰하고 그 입술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면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믿음이므로 온전한 순종이 이뤄지게 됩니다. 거짓이 없고 진실한 사람의 특성 중의 하나는 변명하지 않고 동문서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묻는 것에 대해 진실한 마음으로 대답하고자 한다면 동문서답이 나오지 않으며 바르게 듣고 바르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와 나눈 대화를 통해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실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였을 때, 사르밧 과부는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했습니다. 만일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에게 떡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떡이 없다."라고만 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는 선지자의 말대로 이뤄 드리고 싶지만 당장 떡을 드리지 못함으로 인해 민망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고백하였지요. 이처럼 사르밧 과부는 현재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거짓 없이 사실대로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말했던 것도 '어려운 형편이니 나는 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사르밧 과부와 같은 입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하셨겠는지요? 동문서답이 나오고 할 수 없다는 변명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또는 말로 표현은 안한다 해도 '내 형편이 이렇게 어려우니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하겠다.'라는 생각들이 동원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축복받을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선지자를 신뢰함이 진실이기에 우선 "예, 아멘." 하고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있는 그대로 내놓게 됩니다.
우리가 선지자를 신뢰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도 믿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물질에 있어서 무의 상태라 할지라도 생명을 드리기까지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심고 행할 수 있으니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부요케 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에 먼저는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나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동일하게 하나님을 믿으며 선지자의 말씀을 신뢰한다고 고백해도 마음에 진실을 이룬 만큼 축복의 역사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순종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한계를 뛰어 넘는 큰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생명을 드리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는 자신과 아들이 마지막으로 먹으려 했던 양식을 선지자에게 대접하였습니다. 남은 양식을 먹으면 어떻게 양식을 구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자신과 아들에겐 생명과 같은 양식인데도 엘리야 선지자가 달라고 할 때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드리는 순종을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되 넘치게 갚아 주셨던 것입니다(왕상 17:15-16).
순종은 육신의 생각으로는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로 재듯이 '이것이 내게 유익이 되겠는가?' 따진다면 결코 생명을 드리는 순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생명을 드리는 순종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선지자를 신뢰하기 때문에 어떤 생각도 동원치 않고 자기 형편 그대로 전부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부를 드릴 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드리고 싶으나 너무 적기에 오히려 민망한 마음이지요.
바로 이것이 크고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정녕 내 생명도 드릴 수 있을진대 이것을 드림으로 당장 어떤 곤란한 일을 만난다 해도 아버지께 드릴 수 있음으로 기뻐하나이다!' 이 같은 중심으로 심어야 큰 축복으로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까지 사르밧 과부가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을 받은 비결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축복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르밧 과부의 믿음과 순종을 본받아 영육간에 넘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사르밧 과부의 믿음과 순종의 행함을 통해 참된 축복의 비결을 알아 영육간에 넘치는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반드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어떠한 중심으로 심고 행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도 달라지는데 영혼이 잘되는 만큼 주시는 것이기에 일회적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적으로 임하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사르밧 과부를 통해 축복의 비결을 살펴보면서 진정한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1. 사르밧 과부에게 임한 하나님의 축복
당시 이스라엘은 아합 왕과 온 백성이 우상을 숭배하며 갖가지 죄악을 행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에 수년 동안 비가 오지 않을 것을 예언케 하셨지요. 그런데도 아합 왕은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엘리야를 미워하며 죽이려고 했습니다.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그릿 시냇가에 가서 숨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까마귀를 통해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해 주시며 마실 수 있는 시냇물도 예비해 두셨지요. 그러나 세월이 흐르고 가뭄이 심하여 그릿 시냇물까지 말라 버리게 되자 하나님께서는 다시 엘리야에게 명하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시돈에 속한 사르밧으로 가서 거기 유하라 내가 그곳 과부에게 명하여 너를 공궤하게 하였느니라"(왕상 17:9)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시돈에 이른 엘리야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여인을 만나 "청컨대 그릇에 물을 조금 가져다가 나로 마시게 하라" 부탁하였지요. 이 여인은 처음 본 나그네의 청이었지만 물리치지 않고 순순히 물을 가지러 갔습니다.
이때 엘리야는 또다시 "청컨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말했습니다. 오랜 가뭄으로 인해 물을 구하기 힘든 상황에 음식까지 구한다는 것은 염치없는 행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 여인은 오히려 도울 수 없는 자신의 처지를 민망히 여기며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말했습니다(왕상 17:12).
그러자 엘리야는 "두려워 말고 가서 네 말대로 하려니와 먼저 그것으로 나를 위하여 작은 떡 하나를 만들어 내게로 가져오고 그 후에 너와 네 아들을 위하여 만들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답변했습니다. 이에 사르밧 과부는 어떤 이유나 핑계도 대지 않고 엘리야가 부탁한 대로 순종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말한 대로 놀라운 축복이 임하도록 역사해 주셨습니다(왕상 17:15-16).
2. 사르밧 과부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비결
1) 하나님의 사람을 신뢰했고 그 입술의 말을 믿었습니다
사르밧 과부는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믿었기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는 엘리야의 말에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라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엘리야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자 그것을 그대로 믿고 어떠한 생각도 동원치 않고 아무런 주저함 없이 즉시로 순종했지요.
이처럼 선지자를 신뢰하며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순종하면 축복을 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대하 20:20). 여기서 '선지자'란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부름을 받은 주의 종으로 하나님 앞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 마음을 옥토로 개간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개척해 나가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가 나타나는 사람이지요(고후 12:12).
하나님의 뜻 가운데 부름받은 주의 종을 신뢰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왕을 세워 줄 것을 요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백성이 네게 한 말을 다 들으라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하셨지요(삼상 8:7). 하나님께서 세우신 선지자를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2) 마음이 진실하고 거짓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선지자를 신뢰하고 그 입술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면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믿음이므로 온전한 순종이 이뤄지게 됩니다. 거짓이 없고 진실한 사람의 특성 중의 하나는 변명하지 않고 동문서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묻는 것에 대해 진실한 마음으로 대답하고자 한다면 동문서답이 나오지 않으며 바르게 듣고 바르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와 나눈 대화를 통해 그 마음이 얼마나 진실한가를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가 "네 손에 떡 한 조각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였을 때, 사르밧 과부는 "나는 떡이 없고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했습니다. 만일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 선지자에게 떡을 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떡이 없다."라고만 답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사르밧 과부는 선지자의 말대로 이뤄 드리고 싶지만 당장 떡을 드리지 못함으로 인해 민망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다만 통에 가루 한 움큼과 병에 기름 조금뿐이라" 고백하였지요. 이처럼 사르밧 과부는 현재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거짓 없이 사실대로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나뭇가지 두엇을 주워다가 나와 내 아들을 위하여 음식을 만들어 먹고 그 후에는 죽으리라" 말했던 것도 '어려운 형편이니 나는 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사르밧 과부와 같은 입장에 있었다면 어떻게 하셨겠는지요? 동문서답이 나오고 할 수 없다는 변명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또는 말로 표현은 안한다 해도 '내 형편이 이렇게 어려우니 이래서 못하고 저래서 못하겠다.'라는 생각들이 동원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축복받을 진실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선지자를 신뢰함이 진실이기에 우선 "예, 아멘." 하고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있는 그대로 내놓게 됩니다.
우리가 선지자를 신뢰하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도 믿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물질에 있어서 무의 상태라 할지라도 생명을 드리기까지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심고 행할 수 있으니 얼마든지 하나님께서 부요케 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기에 먼저는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그로 인해 하나님의 역사나 더 큰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동일하게 하나님을 믿으며 선지자의 말씀을 신뢰한다고 고백해도 마음에 진실을 이룬 만큼 축복의 역사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3)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순종이 있었습니다
사람의 한계를 뛰어 넘는 큰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생명을 드리는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사르밧 과부는 자신과 아들이 마지막으로 먹으려 했던 양식을 선지자에게 대접하였습니다. 남은 양식을 먹으면 어떻게 양식을 구할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자신과 아들에겐 생명과 같은 양식인데도 엘리야 선지자가 달라고 할 때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드리는 순종을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되 넘치게 갚아 주셨던 것입니다(왕상 17:15-16).
순종은 육신의 생각으로는 나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로 재듯이 '이것이 내게 유익이 되겠는가?' 따진다면 결코 생명을 드리는 순종을 할 수가 없습니다. 생명을 드리는 순종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선지자를 신뢰하기 때문에 어떤 생각도 동원치 않고 자기 형편 그대로 전부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전부를 드릴 뿐 아니라 더 많은 것을 드리고 싶으나 너무 적기에 오히려 민망한 마음이지요.
바로 이것이 크고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비결입니다. '정녕 내 생명도 드릴 수 있을진대 이것을 드림으로 당장 어떤 곤란한 일을 만난다 해도 아버지께 드릴 수 있음으로 기뻐하나이다!' 이 같은 중심으로 심어야 큰 축복으로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제까지 사르밧 과부가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을 받은 비결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축복 주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사르밧 과부의 믿음과 순종을 본받아 영육간에 넘치는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2-01
제48과내게 가장 소중한 것
요삼 1:4
읽을말씀 : 요삼 1:4 | 외울말씀 : 요삼 1:4
교육목표 :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김으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를 나타내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잠언 8:17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말씀하신 대로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주어진 삶 속에서 사랑받는 증거를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랑받는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혹여 하나님보다 세상에 속한 어떤 것이 내 안에 가장 소중한 것으로 담겨져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세상에 속한 것도 담겨 있고 하나님께 속한 영의 것도 담겨 있는데 여전히 세상의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자기 자신을 깨우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을 점검해 보아야 할까요?
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했고, 마가복음 12:30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기뻐하며,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듣고 배운 진리대로 행한다 하지만, 정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함이 아니라 자기 보기에 좋은 행함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원래의 뜻에서 벗어나거나 심지어는 역(逆)으로 생각하고 행하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행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자기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지요.
특히 머리된 일꾼들은 어떠한 행사를 이룰 때에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궁극적인 뜻은 모른 채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일을 이룬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여 행사를 진행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릴 만한 열매나 영적으로 유익 되는 좋은 결과 없이 그저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뿐인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작은 모임을 하든, 큰 행사를 하든 그것이 정녕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이 되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지혜와 지식을 동원하여 어떤 일을 했다 해도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과 상관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지식으로 아무리 멋있게 어떤 일을 잘 해낼 수 있다 할지라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아니라면 전부 무(無)로 돌릴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지요.
사도 바울은 당대 최고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뛰어난 지식을 가졌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겼기에 자기의 의를 깨뜨려 나갔습니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기까지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갔지요. 주님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날마다 자신은 죽어지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빌 3:8-9).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고 자신의 마음을 일구며 행함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라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까?'를 궁구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외모를 더 멋있어 보이게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벌어서 부유해질까?' 이런 것을 궁구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길을 궁구하며 그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지요.
여러분의 삶의 목적에 순위를 매긴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이란 항목이 과연 몇 위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두 가지를 말씀드릴 때에 과연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행했는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믿음으로 행하는 것과 자기 생각 속에 막무가내로 행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영적인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정도를 걷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에서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내보인다 하나 위로부터 주어진 영적인 믿음이 아닌 것은 정도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공의를 어기는 경우가 있지요. 이런 경우는 자신은 믿음으로 행한다 했지만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은 받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 현실에서 당장 일이 잘되지 않거나 응답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딜 때에 쉽게 절망하고 낙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 또한 믿음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결코 변개함이 없는 것입니다.
한번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으면 끝까지 믿는 것이 참으로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믿음으로 행했다면 어떤 장애물이 있고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하나님을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진정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이지요. 그래서 마침내 믿음 가운데 승리할 때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영혼들에 대한 전도입니다. 누가복음 15:7에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한 영혼이 전도를 받아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정녕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전도하는 입술이 되어야 하고 영혼들을 사랑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 하지요. 여기에는 많은 사랑의 수고와 섬김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알기에 전혀 수고롭게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기쁨으로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나름대로 중요한 일을 감당하고 있으니까 내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면 될 거야. 전도나 영혼 관리는 그 사명을 가진 일꾼들이 하면 되겠지' 하고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것을 봅니다. 또한 열심히 전도를 하시는 분들도 정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전도의 열매가 얼마나 맺혔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도 믿음으로 하기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전도한다는 것은 영혼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매순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내 입술의 지혜로운 말로 상대를 설득시키려고 하거나 나의 강한 의지로 상대를 꺾으려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아버지를 신뢰함으로 아버지께서 상대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아버지께서 상대의 마음을 녹여 주시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전도할 때에 정녕 실한 열매로 맺혀질 수 있는 것입니다.
3. '목자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목자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저 목자를 사랑함으로 육으로 목자를 바라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믿음에 변개함이 없었고 아버지의 나라를 이룸에 있어서 어떠한 일에도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으며 오직 순종해 왔던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또한 설령 육적으로 부끄러움 당할 일이라 해도 어떤 것도 개의치 않으며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점, 그리고 세상과 타협치 않음은 물론, 세상에서 아무리 값진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귀히 여기거나 취하려 하지 않았던 점을 본받고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 보시기에 온전하며 변개함이 없는 진실된 점들을 바라보고 본받는 것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라봄의 믿음의 법칙에 의해 목자를 닮아 주님의 마음을 이루며 아버지 하나님의 참자녀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진실하게 점검함으로 이제는 "내가 진리를 듣고 행하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이 없고 영혼들이 변화되어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이 없도다."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비의 신앙, 곧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신앙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김으로 삶 속에서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를 나타내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잠언 8:17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말씀하신 대로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주어진 삶 속에서 사랑받는 증거를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사랑받는 증거가 나타나지 않는다면 혹여 하나님보다 세상에 속한 어떤 것이 내 안에 가장 소중한 것으로 담겨져 있지는 않은지, 아니면 세상에 속한 것도 담겨 있고 하나님께 속한 영의 것도 담겨 있는데 여전히 세상의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았는지 자기 자신을 깨우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위해서는 어떠한 것을 점검해 보아야 할까요?
1.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했고, 마가복음 12:30에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신 것이 첫째 되는 계명'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기뻐하며,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듣고 배운 진리대로 행한다 하지만, 정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행함이 아니라 자기 보기에 좋은 행함으로 나오는 경우도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원래의 뜻에서 벗어나거나 심지어는 역(逆)으로 생각하고 행하면서도 자신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행하는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자기적으로 해석하기 때문에 나온 결과이지요.
특히 머리된 일꾼들은 어떠한 행사를 이룰 때에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궁극적인 뜻은 모른 채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일을 이룬다면 하나님을 사랑하여 행사를 진행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릴 만한 열매나 영적으로 유익 되는 좋은 결과 없이 그저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을 했을 뿐인 행사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작은 모임을 하든, 큰 행사를 하든 그것이 정녕 하나님의 나라에 유익이 되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지혜와 지식을 동원하여 어떤 일을 했다 해도 정작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과 상관이 없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을 우선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지혜와 지식으로 아무리 멋있게 어떤 일을 잘 해낼 수 있다 할지라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뜻이 아니라면 전부 무(無)로 돌릴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하지요.
사도 바울은 당대 최고의 문하에서 수학하여 뛰어난 지식을 가졌지만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겼기에 자기의 의를 깨뜨려 나갔습니다. 주님을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과 같이 여기기까지 오직 주님의 뜻을 따라갔지요. 주님을 너무도 사랑하기에 날마다 자신은 죽어지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빌 3:8-9).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은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고 자신의 마음을 일구며 행함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라면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까?'를 궁구하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외모를 더 멋있어 보이게 할까?' '어떻게 하면 좋은 사람을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룰까?' '어떻게 하면 더 많이 벌어서 부유해질까?' 이런 것을 궁구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릴 수 있는 길을 궁구하며 그것이 삶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 되지요.
여러분의 삶의 목적에 순위를 매긴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이란 항목이 과연 몇 위를 차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 두 가지를 말씀드릴 때에 과연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행했는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믿음으로 행하는 것과 자기 생각 속에 막무가내로 행하는 것과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영적인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은 정도를 걷기 때문에 하나님의 공의에서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믿음을 내보인다 하나 위로부터 주어진 영적인 믿음이 아닌 것은 정도에서 벗어나서 하나님의 공의를 어기는 경우가 있지요. 이런 경우는 자신은 믿음으로 행한다 했지만 결국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은 받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 현실에서 당장 일이 잘되지 않거나 응답이 자신의 생각보다 더딜 때에 쉽게 절망하고 낙심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것 또한 믿음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믿음이란 결코 변개함이 없는 것입니다.
한번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으면 끝까지 믿는 것이 참으로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믿음으로 행했다면 어떤 장애물이 있고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하나님을 믿음으로 행하는 것이 진정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이지요. 그래서 마침내 믿음 가운데 승리할 때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영혼들에 대한 전도입니다. 누가복음 15:7에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한 영혼이 전도를 받아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정녕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길 원하는 사람이라면 전도하는 입술이 되어야 하고 영혼들을 사랑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하려 하지요. 여기에는 많은 사랑의 수고와 섬김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한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는가를 알기에 전혀 수고롭게 여기지 않으며 오히려 기쁨으로 감당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나름대로 중요한 일을 감당하고 있으니까 내게 맡겨진 일을 감당하면 될 거야. 전도나 영혼 관리는 그 사명을 가진 일꾼들이 하면 되겠지' 하고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것을 봅니다. 또한 열심히 전도를 하시는 분들도 정녕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전도의 열매가 얼마나 맺혔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도 믿음으로 하기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전도한다는 것은 영혼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매순간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내 입술의 지혜로운 말로 상대를 설득시키려고 하거나 나의 강한 의지로 상대를 꺾으려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아버지를 신뢰함으로 아버지께서 상대의 마음을 열어 주시고 아버지께서 상대의 마음을 녹여 주시도록 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전도할 때에 정녕 실한 열매로 맺혀질 수 있는 것입니다.
3. '목자를 바라보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목자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저 목자를 사랑함으로 육으로 목자를 바라보라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 하나님을 만난 그때부터 지금까지 믿음에 변개함이 없었고 아버지의 나라를 이룸에 있어서 어떠한 일에도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으며 오직 순종해 왔던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또한 설령 육적으로 부끄러움 당할 일이라 해도 어떤 것도 개의치 않으며 날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점, 그리고 세상과 타협치 않음은 물론, 세상에서 아무리 값진 것이라고 해도 그것을 귀히 여기거나 취하려 하지 않았던 점을 본받고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 보시기에 온전하며 변개함이 없는 진실된 점들을 바라보고 본받는 것이 내게 가장 소중한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바라봄의 믿음의 법칙에 의해 목자를 닮아 주님의 마음을 이루며 아버지 하나님의 참자녀로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진실하게 점검함으로 이제는 "내가 진리를 듣고 행하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이 없고 영혼들이 변화되어서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이 없도다."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비의 신앙, 곧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신앙 가운데 거할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1-24
제47과하나님의 섭리는 변함이 없나니
신 26:16-19
읽을말씀 : 신 26:16-19 | 외울말씀 : 신 26:19
교육목표 : 마지막 때에 성령의 권능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고 수많은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셔서 어떤 시험과 환난도 해결해 주기를 원하시며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본교회를 세우시고 크신 권능을 나타내시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온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려 주시고 어찌하든 수많은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통해 마지막 때에 영혼들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섭리를 밝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권능
베드로후서 3:3-4을 보면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때라는 사실을 알려 주어도 잘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날 때가 있으면 반드시 죽음의 때가 오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도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종말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던 사람은 천국으로 가는 반면에, 전도를 받고도 주를 영접하지 않았거나 주를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악 중에 살았던 사람들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신 마지막 날이 이르기 전에 온 세상을 진동시킬 권능을 통해 구원받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듣게 하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 땅에는 아직도 핍박과 고난으로 인해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나라들이 있으며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주를 믿는다 해도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8:8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하신 대로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기독교에 대한 심한 핍박이 있는 곳에서도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기만 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고 복음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믿음을 갖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던 사람들도 큰 권능의 역사를 보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전 세계의 구원받을 영혼들을 거둬들이시고자 놀라운 권능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2. 마지막 때임을 어떻게 알고 믿을 수 있는가?
1)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통하여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끝날이 언제인지 그 날과 시를 알려 주지는 않으셨지만 대략적으로는 알 수 있도록 힌트를 주셨습니다. 마치 하늘이 흐리면 비가 올 것을 알 수 있듯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마지막 때를 예측할 수 있는 징조들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대해 "난리와 소란의 소문"이 있을 것이며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3:1-5에도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오늘날은 많은 징조들이 있으며, 지구촌 곳곳에 온갖 재앙과 재난,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흉악한 범죄와 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사람들이 깨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뎌져서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깨어 있는 사람들은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점점 더 확실히 느끼며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한 목소리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2) 본교회에 주신 예언의 말씀들을 통하여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교회에 향하신 섭리가 있으므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유명 인사들의 죽음이나 대통령 선거 결과, 국회의원 선거 결과 등을 비롯하여 국내외 정세에 관한 것들도 많이 알려 주셨습니다. 대부분 그대로 이뤄졌고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들은 지금 진행되고 있거나 앞으로 나타날 일들인데 그 중에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지요.
우선, 하나님께서는 개척 당시부터 북한에 대한 말씀을 많이 주셨는데 이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 본교회에서 북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1983년 12월에는 마지막 때 남북간에 정상급 회담이 열리게 될 것과 그 후에 되어질 일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곧 일시적으로 북한이 외부 세계에 대해 문을 열 것이며, 이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문을 닫을 것이라 알려 주신 것입니다. 문이 열리면 성결의 복음과 권능을 들고 들어가 북한 선교를 이뤄야 한다 하셨지요.
그런데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는 북한이 폐쇄 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개방을 위한 수순을 밟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북한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해 왔는데 이러한 체제 유지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요. 국내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정치 경제 상황이고 우방이라 믿고 있던 중국이나 러시아는 이미 개방의 물결을 타고 급속한 변화를 체험해 가고 있으며 미국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개방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럼에도 지금 북한이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앞으로의 개방에 대비하여 좀 더 유리한 입지를 다지기 위한 조치인 것이지요. 그러니 북한이 강경하게 나온다는 것은 결국 개방을 위한 수순이 되는 것이고 그만큼 개방의 때가 가까웠다는 의미가 됩니다.
다음으로, 마태복음 24:14을 보면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복음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기 위해 중요한 두 지역이 있는데 하나는 북한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과 그 주변 지역 곧 중동 이슬람 국가들입니다. 이러한 곳에 복음이 확산되는 것이 바로 땅 끝까지 복음이 들어가는 것이며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본교회가 성결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해야 할 것과 특별히 마지막 때가 되면 이스라엘에까지 들어가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이스라엘 성회가 이뤄지면 이 땅에서 우리의 사명은 거의 마무리되고 마지막 날이 바로 눈앞에 이르는 것이라 하셨지요.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주신 말씀들을 하나하나 이뤄 오셨습니다. 특히 지난 2000년부터는 해외 성회를 치를 때마다 수십만 혹은 수백만의 인파가 모이게 하시고 그들 가운데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한번 성회를 치르고 나면 그 인근 지역은 물론 이웃 나라들에까지 소문이 더하여 권능의 역사와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2006년 미국 연합 대성회에서는 성회 실황이 전 세계 200여 개국에 생중계되어 시공을 초월한 놀라운 권능과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 간증이 쇄도하기도 했지요.
또한 두바이 선교를 통해서는 중동 선교가 시작되었고 우리의 마지막 선교지인 이스라엘을 향한 준비 작업이 더욱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말로만 이스라엘 선교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스라엘 성회를 이루기 위한 실질적인 길을 뚫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대성전을 건축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주의 권능을 목도하며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대성전을 지을 때는 하나님의 권능을 사모하는 전 세계 열왕, 곧 부귀와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 도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두바이 선교를 통하여 복음에 대해 단단히 벽을 쌓고 있는 이슬람 세계의 깊은 곳까지도 하나님의 권능이 알려지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과 본교회를 향한 섭리들을 개척 당시부터 알려 주셨습니다. 또한 오늘날까지 해가 다르게 더욱 크신 권능을 보여 주시면서 본교회에 주신 말씀들을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한번 말씀하신 그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본교회를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주님께서 오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명하신 모든 사명들을 다 이루게 하시고 온 세계에 주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본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아름다운 새예루살렘 성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신앙생활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마지막 때에 성령의 권능을 통해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고 수많은 영혼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천국에 이를 수 있도록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을 사랑하셔서 어떤 시험과 환난도 해결해 주기를 원하시며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히 함께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본교회를 세우시고 크신 권능을 나타내시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온 세상에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알려 주시고 어찌하든 수많은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을 통해 마지막 때에 영혼들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섭리를 밝히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1. 온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기 위한 하나님의 권능
베드로후서 3:3-4을 보면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했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때라는 사실을 알려 주어도 잘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태어날 때가 있으면 반드시 죽음의 때가 오는 것처럼 인류의 역사도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종말이 있습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았던 사람은 천국으로 가는 반면에, 전도를 받고도 주를 영접하지 않았거나 주를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악 중에 살았던 사람들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신 마지막 날이 이르기 전에 온 세상을 진동시킬 권능을 통해 구원받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듣게 하시려는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하지만 이 땅에는 아직도 핍박과 고난으로 인해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나라들이 있으며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주를 믿는다 해도 참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8:8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하신 대로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반면에 기독교에 대한 심한 핍박이 있는 곳에서도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기만 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고 복음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참믿음을 갖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던 사람들도 큰 권능의 역사를 보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전 세계의 구원받을 영혼들을 거둬들이시고자 놀라운 권능을 베푸시는 것입니다.
2. 마지막 때임을 어떻게 알고 믿을 수 있는가?
1)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통하여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끝날이 언제인지 그 날과 시를 알려 주지는 않으셨지만 대략적으로는 알 수 있도록 힌트를 주셨습니다. 마치 하늘이 흐리면 비가 올 것을 알 수 있듯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고 마지막 때를 예측할 수 있는 징조들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마지막 때에 대해 "난리와 소란의 소문"이 있을 것이며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디모데후서 3:1-5에도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오늘날은 많은 징조들이 있으며, 지구촌 곳곳에 온갖 재앙과 재난, 예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흉악한 범죄와 악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일들을 너무 많이 접하다 보니 사람들이 깨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무뎌져서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깨어 있는 사람들은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점점 더 확실히 느끼며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한 목소리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2) 본교회에 주신 예언의 말씀들을 통하여 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교회에 향하신 섭리가 있으므로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유명 인사들의 죽음이나 대통령 선거 결과, 국회의원 선거 결과 등을 비롯하여 국내외 정세에 관한 것들도 많이 알려 주셨습니다. 대부분 그대로 이뤄졌고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들은 지금 진행되고 있거나 앞으로 나타날 일들인데 그 중에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지요.
우선, 하나님께서는 개척 당시부터 북한에 대한 말씀을 많이 주셨는데 이는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 본교회에서 북한 선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1983년 12월에는 마지막 때 남북간에 정상급 회담이 열리게 될 것과 그 후에 되어질 일들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곧 일시적으로 북한이 외부 세계에 대해 문을 열 것이며, 이로부터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문을 닫을 것이라 알려 주신 것입니다. 문이 열리면 성결의 복음과 권능을 들고 들어가 북한 선교를 이뤄야 한다 하셨지요.
그런데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 및 핵실험 등으로 인해 현실적으로는 북한이 폐쇄 쪽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개방을 위한 수순을 밟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북한은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해 왔는데 이러한 체제 유지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지요. 국내적으로도 매우 불안정한 정치 경제 상황이고 우방이라 믿고 있던 중국이나 러시아는 이미 개방의 물결을 타고 급속한 변화를 체험해 가고 있으며 미국은 여전히 북한에 대해 강경한 입장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은 체제 유지를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개방의 문을 열게 됩니다. 그럼에도 지금 북한이 강경한 자세를 취하는 것은 앞으로의 개방에 대비하여 좀 더 유리한 입지를 다지기 위한 조치인 것이지요. 그러니 북한이 강경하게 나온다는 것은 결국 개방을 위한 수순이 되는 것이고 그만큼 개방의 때가 가까웠다는 의미가 됩니다.
다음으로, 마태복음 24:14을 보면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복음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기 위해 중요한 두 지역이 있는데 하나는 북한이고 다른 하나는 이스라엘과 그 주변 지역 곧 중동 이슬람 국가들입니다. 이러한 곳에 복음이 확산되는 것이 바로 땅 끝까지 복음이 들어가는 것이며 온 세상 모든 민족에게 전파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본교회가 성결의 복음을 온 세계에 전파해야 할 것과 특별히 마지막 때가 되면 이스라엘에까지 들어가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 이스라엘 성회가 이뤄지면 이 땅에서 우리의 사명은 거의 마무리되고 마지막 날이 바로 눈앞에 이르는 것이라 하셨지요.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주신 말씀들을 하나하나 이뤄 오셨습니다. 특히 지난 2000년부터는 해외 성회를 치를 때마다 수십만 혹은 수백만의 인파가 모이게 하시고 그들 가운데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어느 지역에서 한번 성회를 치르고 나면 그 인근 지역은 물론 이웃 나라들에까지 소문이 더하여 권능의 역사와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2006년 미국 연합 대성회에서는 성회 실황이 전 세계 200여 개국에 생중계되어 시공을 초월한 놀라운 권능과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 간증이 쇄도하기도 했지요.
또한 두바이 선교를 통해서는 중동 선교가 시작되었고 우리의 마지막 선교지인 이스라엘을 향한 준비 작업이 더욱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말로만 이스라엘 선교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스라엘 성회를 이루기 위한 실질적인 길을 뚫어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대성전을 건축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주의 권능을 목도하며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대성전을 지을 때는 하나님의 권능을 사모하는 전 세계 열왕, 곧 부귀와 권세가 있는 사람들이 도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두바이 선교를 통하여 복음에 대해 단단히 벽을 쌓고 있는 이슬람 세계의 깊은 곳까지도 하나님의 권능이 알려지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과 본교회를 향한 섭리들을 개척 당시부터 알려 주셨습니다. 또한 오늘날까지 해가 다르게 더욱 크신 권능을 보여 주시면서 본교회에 주신 말씀들을 이루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는 한번 말씀하신 그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본교회를 친히 인도하셨습니다. 앞으로도 주님께서 오실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게 명하신 모든 사명들을 다 이루게 하시고 온 세계에 주의 영광을 크게 드러내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과 본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며 아름다운 새예루살렘 성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신앙생활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1-17
제46과감사
시 106:1-3
읽을말씀 : 시 106:1-3 | 외울말씀 : 시 106:1
교육목표 : 한 해 동안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조건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감사제를 드리게 한다.
추수 때가 되어 곡식들이 알알이 영글고 들판이 황금빛으로 넘실거리면 농부는 흥에 겨워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그동안 흘린 눈물과 땀방울을 수확의 기쁨과 풍요로움으로 보상받게 됩니다. 이처럼 한 해 동안 믿음으로 심고 행한 것들을 주님 안에서 풍성한 열매로 거두어 감사드리는 절기가 바로 추수감사절이지요.
시편 50:23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올 한 해 동안도 우리의 삶 가운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신 사랑의 하나님께 진한 감사의 향을 올려드리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첫째로,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은혜뿐만 아니라 확실한 믿음을 가진 알곡 성도로서 천국까지 이를 수 있게 하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구원받았다 해도 그것으로 다 이루었다 할 수는 없지요. 육적으로도 어린아이가 성장해서 청년이 되고 장년이 돼야 하는데,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면 병약하거나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믿고 거듭났다 해도 믿음이 성장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한다 할 수 없으며 결국 구원받을 믿음조차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농부가 추수할 때 알곡은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사르는 것처럼, 인간 경작을 마감하는 추수 때도 말씀대로 순종한 참자녀들은 천국에 들이고 속이 채워지지 않은 쭉정이와 같은 신자들은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므로 복음을 들어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믿는다 하면서도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또한 영혼이 잘되고 천국을 침노하는 방법과 마음의 할례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지도 않지요. 이런 사람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영혼이 잘될 수 없으며 믿음의 1, 2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동안 수많은 말씀을 듣고 권능의 역사들을 통해 인간 경작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깨달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참자녀로 변화되고 천국 중에서도 가장 좋은 처소를 침노해야 함을 깨달았기에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1-2에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하신 대로 더 이상 땅엣 것을 바라지 않고 헛된 세상 정욕을 욕심내지 않으며, 오직 위엣 것 곧 천국만을 소망하며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천국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수고와 노력을 말할 수 없는 영광과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처럼 영혼이 잘될 수 있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중심에서부터 감사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이 성장하도록 역사하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구원받고 좋은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밝히 알려 주시며 때를 좇아 연단의 시간을 허락하심으로 믿음을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하며 기도하고 사명을 감당하니 "큰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것이지요.
말씀에 비춰 보면 "내가 믿음의 몇 단계쯤 이르렀구나." 하고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지만 시험이 올 때 믿음의 분량을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연단을 믿음으로 극복함으로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신앙생활 가운데 연단의 때를 맞으면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막상 연단이 시작되니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낱낱이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요. 믿음으로 고백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며 변질되는 모습과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불순종했던 모습들을 깨우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의와 틀 속에서 가리어졌던 것, 육신의 생각을 동원했던 것, 자존심을 세웠던 것들이 떠올려지게 되며, 자기를 버리지 못함으로 고집하고 있던 것,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고 변론하고자 했던 것들도 하나하나 발견되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연단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에는 심히 애통함으로 마음을 찢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해야만 마음 깊이 심겨져 있던 비진리를 벗어 버리고 더 크고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분은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여러 가지 연단의 세월들을 겪어 왔습니다. 이런 연단을 통과한 후에 지난날을 돌아볼 때 연단받기 전의 자신의 모습과 연단받은 이후가 많이 다른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사람을 대하는 마음자세가 달라졌고, 범사에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전에는 품지 못한 사람까지도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대하지요.
또한 세상 정욕이 안개같이 헛된 것을 절절히 느낄 수 있고 천국 소망이 전보다 더욱 간절해집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연단을 거친 후에는 그 감동과 깊이가 달라져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사랑에 중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성숙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자기 발견의 아픔이지만 쉬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지 못함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도 하며 두려운 하나님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밝히 아시며 그 아픔을 함께 느끼십니다. 또한 주님과 성령님께서도 우리가 연단을 믿음으로 잘 통과할 수 있도록 간절한 중보의 기도를 올려 주시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모든 연단을 오직 감사함으로 받으며 믿음, 소망, 사랑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걸음마 연습을 할 때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걷도록 지켜보며 넘어질 때도 스스로 일어나도록 놔둡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관심하게 놔두는 것이 아니라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아이를 늘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연단을 허락하시고 그 안에서도 섬세하게 지키시며 인도하셨기 때문에 오늘날의 여러분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항상 진심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새예루살렘을 소망삼고 달려갈 수 있게 하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는다 하면서도 믿음이 연약하여 범죄하며 곤고함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도 다시 회개하고 노력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시며 다시 힘을 내어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시지요.
어떤 사람은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어 진리를 알고 직분을 감당하면서도 행해서는 안 될 죄를 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의 공의에 따르면 회개의 영이 임하지 않으므로 회개하기도 어렵고 혹시 회개하여 간신히 구원은 받는다 해도 좋은 천국의 영광을 바라기는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깊은 진리의 말씀을 들어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죄 가운데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거듭거듭 특별한 죄사함의 기회들을 주셨습니다. 그동안 막힌 담이 아무리 크다 해도, 구원받기조차 쉽지 않은 처지에 있었다 해도, 겸비하게 하나님 앞에 간구한 사람들에게는 회개할 수 있도록 긍휼의 문을 열어 주셨지요.
뿐만 아니라 다시 예전의 소망을 회복하여 주시고 온 영의 흐름이라는 축복 속에서 낙오되지 않고 새예루살렘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체험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잃어버린 신뢰관계를 다시 회복하며 부지런히 상급을 쌓아 가면서 소망 중에 달려갈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이지요. 이것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은혜가 아니라 정녕 너무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입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귀한 영혼들을 일가친척이나 저 자신보다 더 소중히 돌보면서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밤낮 눈물로 진리를 가르치고 쉼 없이 기도하고 금식한다 해도 여전히 참믿음을 갖지 못하고 범죄하는 양 떼가 있을 때에는 아버지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눈물로 간구했지요.
어찌하든 그들의 생명을 구해야 하겠기에,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새예루살렘에 같이 가야 하겠기에 하나님 앞에 생명을 다해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회개의 기회를 주셨을 때는 제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보다 더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더구나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소망의 문을 다시 한 번 열어 주셨을 때는 그 감격과 감사를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7:47에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많이 사함받은 은혜를 진실로 깨닫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보다 진한 큰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드림으로 반드시 하나님의 마음에 위로와 큰 기쁨의 열매들로 나와지시기를 바랍니다.
교육목표 : 한 해 동안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추수감사주일을 앞두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조건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감사제를 드리게 한다.
추수 때가 되어 곡식들이 알알이 영글고 들판이 황금빛으로 넘실거리면 농부는 흥에 겨워 콧노래가 절로 나오고 그동안 흘린 눈물과 땀방울을 수확의 기쁨과 풍요로움으로 보상받게 됩니다. 이처럼 한 해 동안 믿음으로 심고 행한 것들을 주님 안에서 풍성한 열매로 거두어 감사드리는 절기가 바로 추수감사절이지요.
시편 50:23에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면 올 한 해 동안도 우리의 삶 가운데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신 사랑의 하나님께 진한 감사의 향을 올려드리려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감사해야 할까요?
첫째로,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주심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은 은혜뿐만 아니라 확실한 믿음을 가진 알곡 성도로서 천국까지 이를 수 있게 하신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고 구원받았다 해도 그것으로 다 이루었다 할 수는 없지요. 육적으로도 어린아이가 성장해서 청년이 되고 장년이 돼야 하는데,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면 병약하거나 오래 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믿고 거듭났다 해도 믿음이 성장하지 않으면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한다 할 수 없으며 결국 구원받을 믿음조차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지요. 농부가 추수할 때 알곡은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사르는 것처럼, 인간 경작을 마감하는 추수 때도 말씀대로 순종한 참자녀들은 천국에 들이고 속이 채워지지 않은 쭉정이와 같은 신자들은 지옥 불에 던져지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므로 복음을 들어도 믿지 않을 뿐 아니라 믿는다 하면서도 말씀대로 살지 않습니다. 또한 영혼이 잘되고 천국을 침노하는 방법과 마음의 할례에 대해 알지 못하므로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지도 않지요. 이런 사람은 오랜 세월이 지나도 영혼이 잘될 수 없으며 믿음의 1, 2단계에 머물러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동안 수많은 말씀을 듣고 권능의 역사들을 통해 인간 경작의 목적이 무엇인지 알고 깨달았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참자녀로 변화되고 천국 중에서도 가장 좋은 처소를 침노해야 함을 깨달았기에 명확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골로새서 3:1-2에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하신 대로 더 이상 땅엣 것을 바라지 않고 헛된 세상 정욕을 욕심내지 않으며, 오직 위엣 것 곧 천국만을 소망하며 달려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천국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수고와 노력을 말할 수 없는 영광과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처럼 영혼이 잘될 수 있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양육하시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중심에서부터 감사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믿음이 성장하도록 역사하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구원받고 좋은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밝히 알려 주시며 때를 좇아 연단의 시간을 허락하심으로 믿음을 성장시켜 주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주일을 지키고 십일조를 하며 기도하고 사명을 감당하니 "큰 믿음을 가졌다."고 하는 것이지요.
말씀에 비춰 보면 "내가 믿음의 몇 단계쯤 이르렀구나." 하고 어느 정도 분별할 수 있지만 시험이 올 때 믿음의 분량을 더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또한 연단을 믿음으로 극복함으로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할 수 있으며 신앙생활 가운데 연단의 때를 맞으면 이전에 미처 알지 못했던 자기를 발견하게 됩니다.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막상 연단이 시작되니 자신의 부족한 모습을 낱낱이 발견하게 되는 것이지요. 믿음으로 고백하지 못하고 감사하지 못하며 변질되는 모습과 하나님의 뜻을 알면서도 불순종했던 모습들을 깨우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의와 틀 속에서 가리어졌던 것, 육신의 생각을 동원했던 것, 자존심을 세웠던 것들이 떠올려지게 되며, 자기를 버리지 못함으로 고집하고 있던 것, 자신의 옳음을 주장하고 변론하고자 했던 것들도 하나하나 발견되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연단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에는 심히 애통함으로 마음을 찢는 아픔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자신을 발견해야만 마음 깊이 심겨져 있던 비진리를 벗어 버리고 더 크고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동안 여러분은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여러 가지 연단의 세월들을 겪어 왔습니다. 이런 연단을 통과한 후에 지난날을 돌아볼 때 연단받기 전의 자신의 모습과 연단받은 이후가 많이 다른 것을 깨달을 것입니다. 사물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고 사람을 대하는 마음자세가 달라졌고, 범사에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게 되었을 뿐 아니라 전에는 품지 못한 사람까지도 온유함과 겸손함으로 대하지요.
또한 세상 정욕이 안개같이 헛된 것을 절절히 느낄 수 있고 천국 소망이 전보다 더욱 간절해집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연단을 거친 후에는 그 감동과 깊이가 달라져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 그 사랑에 중심으로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3에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성숙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자기 발견의 아픔이지만 쉬지 않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은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허락하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지 못함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하기도 하며 두려운 하나님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도 우리의 사정과 형편을 밝히 아시며 그 아픔을 함께 느끼십니다. 또한 주님과 성령님께서도 우리가 연단을 믿음으로 잘 통과할 수 있도록 간절한 중보의 기도를 올려 주시지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안다면 모든 연단을 오직 감사함으로 받으며 믿음, 소망, 사랑으로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가 걸음마 연습을 할 때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걷도록 지켜보며 넘어질 때도 스스로 일어나도록 놔둡니다. 그렇다고 해서 무관심하게 놔두는 것이 아니라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아이를 늘 주시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연단을 허락하시고 그 안에서도 섬세하게 지키시며 인도하셨기 때문에 오늘날의 여러분이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항상 진심으로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새예루살렘을 소망삼고 달려갈 수 있게 하신 은혜에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의 하나님,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를 믿는다 하면서도 믿음이 연약하여 범죄하며 곤고함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럴 때도 다시 회개하고 노력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시며 다시 힘을 내어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시지요.
어떤 사람은 신앙의 연륜이 오래되어 진리를 알고 직분을 감당하면서도 행해서는 안 될 죄를 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의 공의에 따르면 회개의 영이 임하지 않으므로 회개하기도 어렵고 혹시 회개하여 간신히 구원은 받는다 해도 좋은 천국의 영광을 바라기는 어려운 것이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어떠합니까? 깊은 진리의 말씀을 들어 구원받았을 뿐 아니라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죄 가운데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는 거듭거듭 특별한 죄사함의 기회들을 주셨습니다. 그동안 막힌 담이 아무리 크다 해도, 구원받기조차 쉽지 않은 처지에 있었다 해도, 겸비하게 하나님 앞에 간구한 사람들에게는 회개할 수 있도록 긍휼의 문을 열어 주셨지요.
뿐만 아니라 다시 예전의 소망을 회복하여 주시고 온 영의 흐름이라는 축복 속에서 낙오되지 않고 새예루살렘을 향해 달려갈 수 있도록 체험케 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잃어버린 신뢰관계를 다시 회복하며 부지런히 상급을 쌓아 가면서 소망 중에 달려갈 수 있는 은혜를 주신 것이지요. 이것은 결코 쉽게 얻을 수 있는 은혜가 아니라 정녕 너무나 특별한 사랑과 은혜를 입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귀한 영혼들을 일가친척이나 저 자신보다 더 소중히 돌보면서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왔습니다. 밤낮 눈물로 진리를 가르치고 쉼 없이 기도하고 금식한다 해도 여전히 참믿음을 갖지 못하고 범죄하는 양 떼가 있을 때에는 아버지 앞에 다시 무릎을 꿇고 눈물로 간구했지요.
어찌하든 그들의 생명을 구해야 하겠기에,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새예루살렘에 같이 가야 하겠기에 하나님 앞에 생명을 다해 부르짖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회개의 기회를 주셨을 때는 제가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는 것보다 더한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더구나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소망의 문을 다시 한 번 열어 주셨을 때는 그 감격과 감사를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습니다.
누가복음 7:47에 "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많이 사함받은 은혜를 진실로 깨닫고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더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보다 진한 큰 사랑을 하나님께 돌려드림으로 반드시 하나님의 마음에 위로와 큰 기쁨의 열매들로 나와지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