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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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16
제0과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1. 신앙 안에서의 '설'에 대한 이해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陰曆)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의 나라들에게 있어서 일 년 중에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다. 서양력을 사용하게 된 근래에 이르러서는 양력 1월 1일로 음력 설을 대신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설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큰 명절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설'이란 한 해의 첫날을 지칭하는 말로서 음력 1월 1일을 가리키는데, 이 말 안에는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앙 안에서 이러한 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설이 되면 우리 조상들은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정의 평안과 건강, 그 밖에 마음의 소원을 기원하며 막연히 신에게 복을 빌거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다. 그런데 이러한 축복과 마음의 소원의 응답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명절인 설날을 맞이하여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지난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해를 하나님 앞에 맡겨 드린다는 의미를 담아 주 안에서 행복하게 보낸다면 하나님께서도 기뻐 받으시는 날이 되는 것이다.
2.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도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셨으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 - - - - - - - - - - - - - - 사도신경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원 인도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아 멘 -
찬 송 - - - - - - - - - - - - - - - - 460장-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 아침에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지난날들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새로운 한 해의 출발을 맞아 올 한 해 동안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 시간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 모든 가족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시고,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가족들도 기억하여 주옵시고 늘 주님의 품 안에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 멘 -
성경봉독 - - - - - - - - - - - - - - - - 엡 5:20-21 - - - - - - - - - - - - - - - - 인도자
설 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찬 송 - - - - - - - - - - - - - - - - - 305장 - - - - - - - - - - - - - - - - - 다같이
주기도문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다같이
3. 설교 예문
본 문: 에베소서 5:20-21 ( 제목: 하나님께 감사하라 )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오늘 본문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도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무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세계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두려워하거나 염려, 걱정,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간 먼저 불꽃 같은 눈동자로 자녀된 우리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늘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 중심에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므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설 명절을 맞이하여 한자리에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설날에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씀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에 약속된 대로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장차 우리가 영원히 살아가게 될 천국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모든 것에 부족됨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서 우리는 범사에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목자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해 가시는 분이 바로 목자이시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이 계신다 해도 우리가 그분을 어떻게 해야 만나고 어떻게 그분의 자녀가 되며 어떻게 해야 사랑받고 축복받을 수 있는지, 그 길을 밝히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우리의 것으로 삼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밝히 제시해 주시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축복받는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친히 본이 되어 이끌어 가시는 분이 목자인 것이지요.
더욱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그와 함께했던 조카 롯이 지킴받고 축복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받고 보장받는 목자의 양 떼로 있는 가정이라면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 살아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양 떼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눈물로 간구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목자가 계시기에 양 떼가 지난 한 해도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한걸음 더 다가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목자를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신 말씀대로,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 섬기며 위해 주는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주장, 내 의견, 내 생각만을 고집할 때는 서로 간에 불목이 생길 수 있지만, 이 땅에 우리를 섬기러 오신 주님을 경외함으로 우리 가족 모두도 서로 간에 섬기며 복종해 간다면 주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에 화목하고 우애하며 자녀를 주의 교양으로 양육하는 가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주 안에서 경건하며 화평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되었을 때, 우리 가정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목자의 영의 공간 안에 거하는 가정이 되어 범사에 형통하며 축복받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올 한 해도 이처럼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축복받는 가정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더욱 온전한 신앙생활을 통해 천국 새예루살렘을 침노해 들어가는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1. 신앙 안에서의 '설'에 대한 이해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陰曆)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의 나라들에게 있어서 일 년 중에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다. 서양력을 사용하게 된 근래에 이르러서는 양력 1월 1일로 음력 설을 대신하려는 시도도 있었으나 설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큰 명절로 지켜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설'이란 한 해의 첫날을 지칭하는 말로서 음력 1월 1일을 가리키는데, 이 말 안에는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앙 안에서 이러한 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
설이 되면 우리 조상들은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정의 평안과 건강, 그 밖에 마음의 소원을 기원하며 막연히 신에게 복을 빌거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다. 그런데 이러한 축복과 마음의 소원의 응답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전통적인 명절인 설날을 맞이하여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은 지난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새해를 하나님 앞에 맡겨 드린다는 의미를 담아 주 안에서 행복하게 보낸다면 하나님께서도 기뻐 받으시는 날이 되는 것이다.
2.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도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셨으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 - - - - - - - - - - - - - - 사도신경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원 인도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아 멘 -
찬 송 - - - - - - - - - - - - - - - - 460장-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 아침에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간 지난날들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새로운 한 해의 출발을 맞아 올 한 해 동안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 시간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 모든 가족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시고,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가족들도 기억하여 주옵시고 늘 주님의 품 안에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 아 멘 -
성경봉독 - - - - - - - - - - - - - - - - 엡 5:20-21 - - - - - - - - - - - - - - - - 인도자
설 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찬 송 - - - - - - - - - - - - - - - - - 305장 - - - - - - - - - - - - - - - - - 다같이
주기도문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다같이
3. 설교 예문
본 문: 에베소서 5:20-21 ( 제목: 하나님께 감사하라 )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오늘 본문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도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무한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세계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된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두려워하거나 염려, 걱정,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간 먼저 불꽃 같은 눈동자로 자녀된 우리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늘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 중심에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므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설 명절을 맞이하여 한자리에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설날에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바로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씀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에 약속된 대로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장차 우리가 영원히 살아가게 될 천국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모든 것에 부족됨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서 우리는 범사에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목자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해 가시는 분이 바로 목자이시지요.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이 계신다 해도 우리가 그분을 어떻게 해야 만나고 어떻게 그분의 자녀가 되며 어떻게 해야 사랑받고 축복받을 수 있는지, 그 길을 밝히 알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것이 있어도 우리의 것으로 삼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밝히 제시해 주시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축복받는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친히 본이 되어 이끌어 가시는 분이 목자인 것이지요.
더욱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그와 함께했던 조카 롯이 지킴받고 축복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받고 보장받는 목자의 양 떼로 있는 가정이라면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 살아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양 떼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눈물로 간구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목자가 계시기에 양 떼가 지난 한 해도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한걸음 더 다가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목자를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오늘 본문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신 말씀대로,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 섬기며 위해 주는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내 주장, 내 의견, 내 생각만을 고집할 때는 서로 간에 불목이 생길 수 있지만, 이 땅에 우리를 섬기러 오신 주님을 경외함으로 우리 가족 모두도 서로 간에 섬기며 복종해 간다면 주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 간에 화목하고 우애하며 자녀를 주의 교양으로 양육하는 가정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주 안에서 경건하며 화평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되었을 때, 우리 가정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목자의 영의 공간 안에 거하는 가정이 되어 범사에 형통하며 축복받는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올 한 해도 이처럼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축복받는 가정이 될 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더욱 온전한 신앙생활을 통해 천국 새예루살렘을 침노해 들어가는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2-09
제6과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
고전 2:7-8, 갈 3:13-14
읽을말씀 : 고전 2:7-8, 갈 3:13-14 | 외울말씀 : 요 3:16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셨으니 이러한 십자가의 도를 분명히 알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널리 복음을 전파하게 한다.
우리는 가끔 순금이나 보석으로 장식한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데 원래 십자가는 참혹한 사형의 도구요, 영적으로는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후 우리에게는 저주의 의미가 변하여 한량없는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1. 구원의 비밀인 십자가의 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자녀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복을 주시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섭리하셨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위해 좋은 환경과 여러 가지 여건을 갖춘 후에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아담을 위해 에덴 동산을 창설하신 후 그곳에서 항상 동행하시며 친히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가르쳐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무리 자녀를 위해 정성을 쏟아 양육한다 해도 부모의 사랑과 마음을 헤아리는 자녀가 많지 않은 것처럼 사람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우치지 못했지요. 에덴동산에서 불행을 겪어보지 못했으니 행복을 알 수 없었고 가난이나 질병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부요함이나 강건함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느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며 마음껏 자유와 풍요를 누릴 수 있게 해 주셨지만, 단 한 가지만은 엄히 금하셨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것이었지요(창 2:17). 선악과는 하나님의 주권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순종의 척도가 되므로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는다면 영이 죽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영생을 누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셨던 것이지요.
원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자 하는 마음 곧 죄성은 없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함으로 인해 간교한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요한일서 3장 4절에 "죄는 불법"이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그 자체가 죄를 범한 것이 되고 말았지요.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롬 6:23) 결국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녕 죽게 되었습니다.
영과 혼, 육으로 지음받은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게 되었으니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없고, 영생할 수도 없게 되었으며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종신토록 땀 흘려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는 등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사람의 본분을 잃어버린 채 눈물, 슬픔, 고통, 질병, 가난, 사망 가운데 짐승과 다를 바 없이 멸망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창 3:16-24).
이렇게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고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죄인으로서 사망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5:12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될 것을 이미 아셨으므로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죄인된 사람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구원에 이르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간교한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원수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할 것을 영적으로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만일 이러한 십자가의 도가 원수 마귀에게 알려지면 아담으로부터 넘겨받은 모든 권세를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어찌하든 아담의 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도록 훼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 7-8절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가의 도를 완성하심으로 사망에서 영생에 이를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2.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죄가 없으신 분임에도 저주 아래 있는 자가 달려 죽어야 하는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셨는데, 이는 피 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기 때문이며(히 9:22), 나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가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되기 때문입니다(갈 3:13).
그러면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쏟으신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하여
죄인을 죽이는 형벌 중에 가장 가혹한 방법이 십자가의 처형입니다. 나무 십자가에 양손과 양발을 못박은 후 오랜 시간 매달아 놓아 온몸의 피를 쏟으며 죽게 하는 것으로서 고통이 매우 심하므로 저주받은 자만이 당하는 처형법이었습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처형을 예수님께서 받으신 것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어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시키려면 영계의 법칙에 따라 저주를 받은 바 되사 나무에 달려야 했으므로(신 21:23)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나무 십자가에 내어 주실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시고자 대신 저주를 받아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것이며, 이로써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는 길이 모든 사람에게 열리게 된 것입니다(롬 5:17-19).
2) 아브라함의 복을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라는 영혼의 축복뿐 아니라 자녀, 건강, 장수, 물질의 복 등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받아 누렸던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러한 축복받은 이유가 나와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였기 때문입니다(창 22:18).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셨을 때도 믿음으로 순종했고(창 12:1),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에도 어떤 이유나 핑계를 대지 않고 그대로 순종했던 것이지요(창 22:2-3).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같은 축복을 받아 복된 삶을 누리기를 원하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하셨는데 이것이 곧 십자가에 의한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갈 3:14). 따라서 우리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브라함의 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고 그 증표로서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요 1:12, 행 2:38).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며(롬 8:15), 그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어(눅 10:20)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천국 백성이 됩니다(빌 3:20).
하나님의 마음이요 능력이신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 내주하시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그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며 위로부터 믿음을 주셔서 영생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할 뿐 아니라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것을 마음에 믿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만세 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한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동일한 영계의 법에 의해 한 번은 사망에 이르렀고, 또 한 번은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어 믿음으로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불순종으로 인해 죄의 종이 되었을 때는 원수 마귀가 가져다 주는 온갖 고통과 사망을 겪어야 했으나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구원과 영생, 부활과 축복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 주신 하나님의 사랑, 또한 아무 흠도 죄도 없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가는 곳마다 복된 소식을 널리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셨으니 이러한 십자가의 도를 분명히 알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널리 복음을 전파하게 한다.
우리는 가끔 순금이나 보석으로 장식한 십자가 목걸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는데 원래 십자가는 참혹한 사형의 도구요, 영적으로는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후 우리에게는 저주의 의미가 변하여 한량없는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상징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1. 구원의 비밀인 십자가의 도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자녀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신 후에 복을 주시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섭리하셨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를 위해 좋은 환경과 여러 가지 여건을 갖춘 후에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고 아담을 위해 에덴 동산을 창설하신 후 그곳에서 항상 동행하시며 친히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가르쳐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을 누리며 살아가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아무리 자녀를 위해 정성을 쏟아 양육한다 해도 부모의 사랑과 마음을 헤아리는 자녀가 많지 않은 것처럼 사람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우치지 못했지요. 에덴동산에서 불행을 겪어보지 못했으니 행복을 알 수 없었고 가난이나 질병을 경험하지 못했으니 부요함이나 강건함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느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권세를 주시며 마음껏 자유와 풍요를 누릴 수 있게 해 주셨지만, 단 한 가지만은 엄히 금하셨습니다.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것이었지요(창 2:17). 선악과는 하나님의 주권을 표시하는 것으로서 순종의 척도가 되므로 만약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는다면 영이 죽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물론, 영생을 누릴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셨던 것이지요.
원래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고자 하는 마음 곧 죄성은 없었지만,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함으로 인해 간교한 뱀의 유혹을 받아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요한일서 3장 4절에 "죄는 불법"이라고 했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한 그 자체가 죄를 범한 것이 되고 말았지요.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롬 6:23) 결국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녕 죽게 되었습니다.
영과 혼, 육으로 지음받은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게 되었으니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없고, 영생할 수도 없게 되었으며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 종신토록 땀 흘려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는 등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사람의 본분을 잃어버린 채 눈물, 슬픔, 고통, 질병, 가난, 사망 가운데 짐승과 다를 바 없이 멸망의 길을 가게 된 것입니다(창 3:16-24).
이렇게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고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죄인으로서 사망의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5:12에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될 것을 이미 아셨으므로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죄인된 사람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구원에 이르는 "십자가의 도"입니다.
창세기 3장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간교한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셨는데,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힘으로 원수 마귀의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할 것을 영적으로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만일 이러한 십자가의 도가 원수 마귀에게 알려지면 아담으로부터 넘겨받은 모든 권세를 빼앗기지 않기 위하여 어찌하든 아담의 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도록 훼방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2장 7-8절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가의 도를 완성하심으로 사망에서 영생에 이를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2.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조금도 죄가 없으신 분임에도 저주 아래 있는 자가 달려 죽어야 하는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셨는데, 이는 피 흘림이 없은즉 죄사함이 없기 때문이며(히 9:22), 나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가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되기 때문입니다(갈 3:13).
그러면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쏟으신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하여
죄인을 죽이는 형벌 중에 가장 가혹한 방법이 십자가의 처형입니다. 나무 십자가에 양손과 양발을 못박은 후 오랜 시간 매달아 놓아 온몸의 피를 쏟으며 죽게 하는 것으로서 고통이 매우 심하므로 저주받은 자만이 당하는 처형법이었습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처형을 예수님께서 받으신 것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은 죄인이 되어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 아래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시키려면 영계의 법칙에 따라 저주를 받은 바 되사 나무에 달려야 했으므로(신 21:23)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나무 십자가에 내어 주실 수밖에 없었지요.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시고자 대신 저주를 받아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것이며, 이로써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는 길이 모든 사람에게 열리게 된 것입니다(롬 5:17-19).
2) 아브라함의 복을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라는 영혼의 축복뿐 아니라 자녀, 건강, 장수, 물질의 복 등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받아 누렸던 사람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러한 축복받은 이유가 나와 있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였기 때문입니다(창 22:18).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셨을 때도 믿음으로 순종했고(창 12:1),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말씀에도 어떤 이유나 핑계를 대지 않고 그대로 순종했던 것이지요(창 22:2-3).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아브라함과 같은 축복을 받아 복된 삶을 누리기를 원하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역사하셨는데 이것이 곧 십자가에 의한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갈 3:14). 따라서 우리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이런 하나님의 사랑에 깊이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브라함의 복을 누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3)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하여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고 그 증표로서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요 1:12, 행 2:38).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며(롬 8:15), 그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어(눅 10:20)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천국 백성이 됩니다(빌 3:20).
하나님의 마음이요 능력이신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 내주하시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그 안에 거할 수 있도록 인도하시며 위로부터 믿음을 주셔서 영생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할 뿐 아니라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것을 마음에 믿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구원에 이르게 하시려고 만세 전부터 계획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한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동일한 영계의 법에 의해 한 번은 사망에 이르렀고, 또 한 번은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어 믿음으로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불순종으로 인해 죄의 종이 되었을 때는 원수 마귀가 가져다 주는 온갖 고통과 사망을 겪어야 했으나 믿음으로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구원과 영생, 부활과 축복을 얻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영원한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 주신 하나님의 사랑, 또한 아무 흠도 죄도 없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박히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달아 가는 곳마다 복된 소식을 널리 전파해야 하겠습니다.
2007-02-02
제5과예수가 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가
레 25:23-25, 행 4:12
읽을말씀 : 레 25:23-25, 행 4:12 | 외울말씀 : 마 1:21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라고 하시는 이유를 밝히 알아 참 믿음을 갖고 많은 영혼을 전도하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가 되시며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면 의아해하거나 너무 독선적인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왜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는가를 밝히 알아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만세 전에 예비하신 구원의 길
사도행전 4:12에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세주의 자격을 갖춘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불순종하여 사망의 길을 가게 될 것을 미리 아셨으므로 만세 전에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2:7-8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만세 전에 예비하신 구원의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십자가의 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의 주인이시지만 영계의 법칙을 따라 공의 가운데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각 나라마다 법이 있듯이 영의 세계에도 '영계의 법'이 있는데, 그 중에는 토지를 사고 파는 데 적용되는 '토지 무르기'라는 법도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좇아서 인간 구원의 길을 만세 전에 비밀한 가운데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토지 무르기 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것으로 토지는 영영히 팔지 말 것이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할지라도 근족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도록 하되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격을 규정하여 그대로 행하면 토지를 되돌려 받을 수 있는 법이지요(레 25:23-28).
그래서 토지를 매매할 때에 계약서에 어떤 경로로 팔고 사는지에 대한 계약 과정을 기록하고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적어 작성하는 것입니다. 계약서에 사는 자와 파는 자의 도장을 찍고 증인들을 세우며 작성된 계약서 1부는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1부는 인봉하지 않았다가 언제라도 볼 수 있도록 해야 근족이 와서 대신 무를 수 있고 근족 중에 무를 사람이 없으면 자기가 부요케 되어 무를 힘이 있을 때에 다시 사서 무를 수 있으며 그나마 무를 힘이 없으면 50년 후인 희년에 되돌려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토지 무르기 법 안에 죄인된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토지를 팔고 사는 법은 근본 흙으로 창조된 사람에게도 직접 관계되는 법이기 때문이지요. 창세기 3:19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인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권세를(창 1:28) 마귀에게 넘겨 주게 될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4:6-7에 원수 마귀가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원수 마귀가 아담에게 모든 권세를 받았다 해도 장차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나타나면 되돌려 주어야 하는데 그가 바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2.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에 따라 원수 마귀에게 넘겨 준 권세를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만이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하신 구세주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예수님은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5:25에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했으니 아담이 넘겨 준 권세를 되찾아 오려면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21-22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요 1:14).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과 인성을 함께 지닌 채 살과 뼈를 가진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나셨는데 그의 탄생은 역사적인 사실로서 여러 증거들이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기원전(B.C)과 기원후(A.D)로 세계의 역사가 나뉘어지고 있으니 예수님은 아담의 근족인 사람으로서 토지 무르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2)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12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아담의 후손들은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불순종한 아담의 죄를 물려받은 죄인이므로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자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생명의 씨 곧 정자와 난자를 주시고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게 하셨습니다. 정자나 난자 안에는 부모의 기(氣)가 들어 있어서 부모의 성품이나 성질, 본성, 외모, 심지어 습관까지 닮게 되는데, 이러한 기(氣)를 통해 부모와 조상들의 죄성까지 물려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원죄를 가진 죄인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20에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말씀하신 대로 부모의 정자와 난자를 통해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으므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물려받는 원죄가 없으시니 토지 무르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3) 예수님은 토지 무를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가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을 때에 그것을 무르려면 부요하여 무를 만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레 25:26). 남에게 빚이 있을 때 빚을 갚아 줄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만이 그 빚을 대신 갚아 줄 수 있는 것이지 아무리 마음은 있어도 능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토지 무를 힘이란 죄를 대속하는 힘이므로 죄가 없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기에 원죄가 없으시며 이 세상에서 살면서 율법을 모두 지키셨으므로 자범죄도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율법의 저주에 매이지 않으시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며 죄인들을 구원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영적인 권세 앞에 원수 마귀 사단이 굴복하고 질병은 물론, 소경, 벙어리, 앉은뱅이 등 약함도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오직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도 영적인 권세가 주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면 원수 마귀 사단이 떠나고 무수한 하나님의 역사가 따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토지 무르기가 온전히 이루어지려면 위의 세 가지 조건 외에도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토지 무를 힘이 있는 근족이 있다 할지라도 대신 갚아 주지 않을 것이니 되돌려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세주로서의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셨지만 만일 사랑이 없으셨다면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인류의 구세주가 되려면 죄인들을 대신하여 사망의 형벌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당해야 합니다. 더구나 가장 흉악한 죄인처럼 온갖 멸시 천대를 받으면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물과 피를 다 쏟으며 처형당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13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했고, 히브리서 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면 나무에 달려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합니다.
그러니 죄 없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참혹한 죽임을 당하려고 하겠습니까. 자신의 생명보다 상대를 더 사랑할 때라야 그런 희생을 기꺼이 치를 수 있는데 예수님만이 이런 십자가의 사랑으로 모든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롬 5:7-8).
앞서 살펴본 대로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조건을 온전히 갖추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외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라고 하시는 이유를 밝히 알아 참 믿음을 갖고 많은 영혼을 전도하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세주가 되시며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 하면 의아해하거나 너무 독선적인 것이 아니냐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왜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는가를 밝히 알아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만세 전에 예비하신 구원의 길
사도행전 4:12에 보면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하셨는데,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외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세주의 자격을 갖춘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불순종하여 사망의 길을 가게 될 것을 미리 아셨으므로 만세 전에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2:7-8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만세 전에 예비하신 구원의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십자가의 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만물의 주인이시지만 영계의 법칙을 따라 공의 가운데 다스리는 분이십니다. 각 나라마다 법이 있듯이 영의 세계에도 '영계의 법'이 있는데, 그 중에는 토지를 사고 파는 데 적용되는 '토지 무르기'라는 법도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좇아서 인간 구원의 길을 만세 전에 비밀한 가운데 예비하셨던 것입니다.
토지 무르기 법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명하신 것으로 토지는 영영히 팔지 말 것이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할지라도 근족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도록 하되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격을 규정하여 그대로 행하면 토지를 되돌려 받을 수 있는 법이지요(레 25:23-28).
그래서 토지를 매매할 때에 계약서에 어떤 경로로 팔고 사는지에 대한 계약 과정을 기록하고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적어 작성하는 것입니다. 계약서에 사는 자와 파는 자의 도장을 찍고 증인들을 세우며 작성된 계약서 1부는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1부는 인봉하지 않았다가 언제라도 볼 수 있도록 해야 근족이 와서 대신 무를 수 있고 근족 중에 무를 사람이 없으면 자기가 부요케 되어 무를 힘이 있을 때에 다시 사서 무를 수 있으며 그나마 무를 힘이 없으면 50년 후인 희년에 되돌려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토지 무르기 법 안에 죄인된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토지를 팔고 사는 법은 근본 흙으로 창조된 사람에게도 직접 관계되는 법이기 때문이지요. 창세기 3:19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인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권세를(창 1:28) 마귀에게 넘겨 주게 될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4:6-7에 원수 마귀가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원수 마귀가 아담에게 모든 권세를 받았다 해도 장차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나타나면 되돌려 주어야 하는데 그가 바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2.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에 따라 원수 마귀에게 넘겨 준 권세를 되돌려 받을 수 있도록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만이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하신 구세주가 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예수님은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레위기 25:25에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했으니 아담이 넘겨 준 권세를 되찾아 오려면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5:21-22에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십니다(요 1:14). 하나님의 아들로서 신성과 인성을 함께 지닌 채 살과 뼈를 가진 사람의 몸을 입고 태어나셨는데 그의 탄생은 역사적인 사실로서 여러 증거들이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기원전(B.C)과 기원후(A.D)로 세계의 역사가 나뉘어지고 있으니 예수님은 아담의 근족인 사람으로서 토지 무르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2)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5:12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아담의 후손들은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불순종한 아담의 죄를 물려받은 죄인이므로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자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실 때 생명의 씨 곧 정자와 난자를 주시고 새로운 생명이 잉태되게 하셨습니다. 정자나 난자 안에는 부모의 기(氣)가 들어 있어서 부모의 성품이나 성질, 본성, 외모, 심지어 습관까지 닮게 되는데, 이러한 기(氣)를 통해 부모와 조상들의 죄성까지 물려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모든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원죄를 가진 죄인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1:20에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말씀하신 대로 부모의 정자와 난자를 통해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으므로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물려받는 원죄가 없으시니 토지 무르기에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3) 예수님은 토지 무를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형제가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을 때에 그것을 무르려면 부요하여 무를 만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레 25:26). 남에게 빚이 있을 때 빚을 갚아 줄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만이 그 빚을 대신 갚아 줄 수 있는 것이지 아무리 마음은 있어도 능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토지 무를 힘이란 죄를 대속하는 힘이므로 죄가 없는 것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기에 원죄가 없으시며 이 세상에서 살면서 율법을 모두 지키셨으므로 자범죄도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율법의 저주에 매이지 않으시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며 죄인들을 구원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영적인 권세 앞에 원수 마귀 사단이 굴복하고 질병은 물론, 소경, 벙어리, 앉은뱅이 등 약함도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오직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들도 영적인 권세가 주어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면 원수 마귀 사단이 떠나고 무수한 하나님의 역사가 따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4) 예수님은 십자가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토지 무르기가 온전히 이루어지려면 위의 세 가지 조건 외에도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사랑이 없으면 토지 무를 힘이 있는 근족이 있다 할지라도 대신 갚아 주지 않을 것이니 되돌려 받을 수가 없습니다.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세주로서의 세 가지 조건을 다 갖추셨지만 만일 사랑이 없으셨다면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모든 인류의 구세주가 되려면 죄인들을 대신하여 사망의 형벌이라는 엄청난 희생을 당해야 합니다. 더구나 가장 흉악한 죄인처럼 온갖 멸시 천대를 받으면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히고 물과 피를 다 쏟으며 처형당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3:13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했고, 히브리서 9:22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면 나무에 달려 피를 흘리고 죽어야 합니다.
그러니 죄 없는 사람이 무엇 때문에 다른 사람을 대신해서 참혹한 죽임을 당하려고 하겠습니까. 자신의 생명보다 상대를 더 사랑할 때라야 그런 희생을 기꺼이 치를 수 있는데 예수님만이 이런 십자가의 사랑으로 모든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롬 5:7-8).
앞서 살펴본 대로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조건을 온전히 갖추신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 외에는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천하 인간에게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주신 일이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열심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1-26
제4과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이신가
요 14:8-10, 골 1:15-17
읽을말씀 : 요 14:8-10, 골 1:15-17 | 외울말씀 : 요 14:6, 행 4:12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된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믿고 구원의 확신과 부활의 소망 가운데 신앙생활을 잘하게 한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물론,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대해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그 깊이를 깨달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죄인된 인류를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더욱 마음 깊이 느낄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이십니다. 요한복음 1:1-3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육신을 입고 우리 사람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였고, 요한복음 1:18에는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하셨지요.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간청할 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답변하시면서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말씀하셨습니다(요 14:8-11).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하나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신 분이므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참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가 하면,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의 배에 오르시고, 바람을 그치게 하시며, 병든 자가 옷가에라도 손을 대면 온전케 되는 등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지요(막 6:31-56).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들을 행하심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심을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죄인된 모든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며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베풀 수 없는 사랑을 행하심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심을 인정하도록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2.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고, 사도행전 4:12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하셨지요.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의 범죄로 인해 모든 인류는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말씀대로 결국 영원히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데, 이를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이를 믿는 자마다 구원의 길로 인도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도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며(마 1:21), 그리스도란 직분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메시야라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인데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행 4:27).
하나님께서는 왕이나 제사장 또는 선지자를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으므로(삼상 9:16, 왕상 19:16), 죄인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위에 임명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보내셨고, 기름 부음을 받아 그리스도라는 직분으로 모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한 구세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만일 현실의 문제로 힘들고 낙심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영원한 사망에서 건져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경작받는 동안은 우리를 참자녀로 만드시기 위한 연단의 시간들이 있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구원자의 의미를 되새김으로 승리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증거하겠습니다.
3. 교회의 기초와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를 '불러내심을 받았다'는 의미인 '에클레시아'라고 부르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심을 받은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6:18에 보면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반석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고전 3:11, 10:4).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교회를 세우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기초요 머리가 되시는 것이지요.
이 외에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7-18) 하였고, 에베소서 1:22에는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유일한 기초와 머리가 되신 예수님께서는 몸된 교회인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믿음을 통한 확신을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4.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구약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가서 5:2에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 나타나심이 예언되어 있고, 이사야 9:6에는 그가 아기로서 한 아들로 출현하게 될 것을 예언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마 2:1, 눅 1:31).
또한 이사야 61:1 이하에 말씀하신 예언대로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두루 다니며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지요(마 4:23). 뿐만 아니라 인류 구원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빌 2:6-13).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신 후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의 사역은 완성되었고, 이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에 대하여 승리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3:8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시며, 고린도전서 15:17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성도들의 부활을 확증하는 것이요(고전 15:22), 영생을 예증하는 것입니다(살전 4:17).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마음에 믿고 입술로 시인하는 사람들마다 모든 죄를 사함받고 의인이라는 칭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5.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하시며 부활의 소망을 심어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릴 것과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을 당부하시며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행 1:1-11).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면 하나님께로 다시 갈 것과 때가 이르매 다시 오실 것을 이미 예언하셨지요(요 14:2-3, 16:28).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지상 재림하시기 전에 구원받을 하나님의 자녀들을 공중으로 끌어올리는 공중 강림이 먼저 있습니다(계 1:7). 주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영광의 구름을 타고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천군 천사들과 함께 장엄하고도 화려하게 공중에 강림하시는데, 먼저는 믿고 죽어 무덤에 있는 자들이 부활하여 올라가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그 뒤를 따라 휴거되어 들림받게 됩니다(살전 4:16-17).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인된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구세주가 되십니다. 또한 교회의 유일한 기초와 머리가 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들을 인도하시며 성도들의 부활과 영생을 확증하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 속에 뜨겁게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인된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믿고 구원의 확신과 부활의 소망 가운데 신앙생활을 잘하게 한다.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물론, 믿지 않는 사람이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대해 들어 보지 못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그 깊이를 깨달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죄인된 인류를 위해 독생자를 아끼지 않으신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더욱 마음 깊이 느낄 수 있도록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하나님과 하나이십니다. 요한복음 1:1-3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육신을 입고 우리 사람 가운데 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요한복음 1:14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였고, 요한복음 1:18에는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하셨지요.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 빌립이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라고 간청할 때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답변하시면서 "나는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말씀하셨습니다(요 14:8-11).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하나이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하여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와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신 분이므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참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가 하면,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의 배에 오르시고, 바람을 그치게 하시며, 병든 자가 옷가에라도 손을 대면 온전케 되는 등 놀라운 일들을 행하셨지요(막 6:31-56).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면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룰 수 없는 일들을 행하심으로 하나님과 하나 되심을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죄인된 모든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친히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시며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베풀 수 없는 사랑을 행하심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심을 인정하도록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2.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알려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6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하셨고, 사도행전 4:12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하셨지요.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의 범죄로 인해 모든 인류는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말씀대로 결국 영원히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데, 이를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이를 믿는 자마다 구원의 길로 인도받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도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며(마 1:21), 그리스도란 직분을 나타내는 단어로서 메시야라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인데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행 4:27).
하나님께서는 왕이나 제사장 또는 선지자를 세울 때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으므로(삼상 9:16, 왕상 19:16), 죄인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위에 임명하여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보내셨고, 기름 부음을 받아 그리스도라는 직분으로 모든 인류를 죄에서 구원한 구세주가 되시는 것입니다.
만일 현실의 문제로 힘들고 낙심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영원한 사망에서 건져내신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 땅에 경작받는 동안은 우리를 참자녀로 만드시기 위한 연단의 시간들이 있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구원자의 의미를 되새김으로 승리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왜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세주가 되시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증거하겠습니다.
3. 교회의 기초와 머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를 '불러내심을 받았다'는 의미인 '에클레시아'라고 부르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으로부터 불러내심을 받은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6:18에 보면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반석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고전 3:11, 10:4).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교회를 세우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의 기초요 머리가 되시는 것이지요.
이 외에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7-18) 하였고, 에베소서 1:22에는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유일한 기초와 머리가 되신 예수님께서는 몸된 교회인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믿음을 통한 확신을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을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4.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구약성경에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가서 5:2에는 유대 땅 베들레헴에 나타나심이 예언되어 있고, 이사야 9:6에는 그가 아기로서 한 아들로 출현하게 될 것을 예언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마 2:1, 눅 1:31).
또한 이사야 61:1 이하에 말씀하신 예언대로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두루 다니며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지요(마 4:23). 뿐만 아니라 인류 구원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에 죽기까지 복종하심으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빌 2:6-13).
십자가에서 피 흘리고 죽으신 후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구속의 사역은 완성되었고, 이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와 죽음에 대하여 승리하게 되었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3:8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시며, 고린도전서 15:17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이루어진 역사적인 사건으로서 성도들의 부활을 확증하는 것이요(고전 15:22), 영생을 예증하는 것입니다(살전 4:17).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마음에 믿고 입술로 시인하는 사람들마다 모든 죄를 사함받고 의인이라는 칭함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5.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하시며 부활의 소망을 심어 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릴 것과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을 당부하시며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행 1:1-11).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시면 하나님께로 다시 갈 것과 때가 이르매 다시 오실 것을 이미 예언하셨지요(요 14:2-3, 16:28).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지상 재림하시기 전에 구원받을 하나님의 자녀들을 공중으로 끌어올리는 공중 강림이 먼저 있습니다(계 1:7). 주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영광의 구름을 타고 천사장의 나팔 소리와 천군 천사들과 함께 장엄하고도 화려하게 공중에 강림하시는데, 먼저는 믿고 죽어 무덤에 있는 자들이 부활하여 올라가고 살아남은 사람들도 그 뒤를 따라 휴거되어 들림받게 됩니다(살전 4:16-17).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본체이시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인된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구세주가 되십니다. 또한 교회의 유일한 기초와 머리가 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들을 인도하시며 성도들의 부활과 영생을 확증하는 부활의 첫 열매가 되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믿음으로 구원의 확신 속에 뜨겁게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1-19
제3과하나님은 어떻게 만날 수 있는가?
잠 8:17
읽을말씀 : 잠 8:17 | 외울말씀 : 렘 29:13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아 항상 응답받는 자가 되게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 함께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만나야 하고, 또 우리를 간절히 만나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참된 행복과 사랑을 공급해 주실 뿐 아니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만나야 하는 이유
흔히 주변 사람으로부터 직접 전도를 받거나 방송, 신문 등 각종 선교 매체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데 자신이 성령을 체험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는 만큼 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해보면 사람들마다 신(神)에 대한 생각도 달라서 간절히 찾고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중에는 마음이 선하여 신(神)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의심하지 않기에 즉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을 직접 보아야 믿겠다는 사람도 있고, 믿으려는 마음도 없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만나기를 원치 아니하며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시고 능력이 있으신 분인가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밝히 안다면 그들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을 체험하고자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만나기를 원하고 사모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과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인류의 시조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영원히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모든 것을 감찰하시며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분이며,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에게 응답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마 7:7).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면 절망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참된 소망을 얻으며, 각종 질병의 문제를 해결받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는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마 4:23-24).
2.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
1) 성경 66권 말씀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 66권 말씀을 양식삼고 행하는 만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시편 19:7-8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하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고 귀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받아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여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이 넘치며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롬 10:17).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한 만큼 말씀을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담은 책으로서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쓰여진 글입니다(딤후 3:16). 그러므로 성경을 단순히 문자적으로나 이성적으로, 혹은 지식적으로 읽는다면 그 뜻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혀 엉뚱한 해석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읽을 때 영적인 의미를 깨우칠 수 있고,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생명력 있는 말씀으로 다가와 하나님과의 교통이 깊어지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2)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식사할 때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국이나 찌개, 그 외 여러 가지 반찬과 함께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듯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말씀과 함께 기도를 병행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 영혼의 호흡과 같아서 사람이 호흡을 해야 육의 생명이 유지되듯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영적인 생명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29:12-13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말씀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 영적인 교통을 이루며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믿음의 선진들도 한결같이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녕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좇아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해야 하며, 이렇게 행할 때 모든 간구와 기도에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3)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계가 큰 부흥을 이루면서 찬양을 감당하는 모임들이 많이 생겨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찬양을 매우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찬양하기를 즐겨하였고, 찬양을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중심을 보시고 후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역대상 16장에는 다윗 왕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역대하 30:21에서는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날마다 여호와를 칭송하며 큰 소리 나는 악기를 울려 여호와를 찬양하였다고 했으며, 다니엘은 지혜와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단 2:23).
하물며 우리를 구원과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시고 참 행복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마음 다해 찬양드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요. 우리가 예배 전이나 기도회를 하기 전에 중심으로 찬양을 드리면 뜨거운 찬양 가운데 마음의 문이 열리고 성령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그분의 권능과 위엄과 인자하심과 구원의 은총을 찬양할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믿어지는 믿음이 생기며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나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로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요, 방법이니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마음 중심을 다해 찬양을 올릴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4) 예배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었지만, 신약 시대에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단을 쌓고 제사 드림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솔로몬 왕도 일천 번의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을 만나 놀라운 축복을 받았지요. 이러한 구약 시대의 제사는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배로 드려지고 있으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 드릴 때 최상의 것으로 제물을 준비하여 드리지 않고 자신들에게 쓸모없는 최하의 것으로 드렸기에 크게 책망하시며, 형식은 같을지라도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지 않은 제사는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말 1:6-10).
그래서 예배는 자기 마음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예배의 원칙에 따라 드리되, 구원의 은혜와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온전한 예물과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신령과 진정으로 중심을 다한 예배를 드리면(요 4:24) 위로부터 은혜가 임하여 소망과 기쁨이 넘치며 생명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5) 선과 의, 빛과 공의, 진리와 사랑 가운데 하나님과 만나고 동행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이스라엘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가 나오는데, 그는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이방인이지만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니 그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랑하는 종 베드로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은 물론 일가 친척, 가까운 친구들까지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아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할 때 만나 주시며, 더 나아가 빛 가운데 온전히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창 5:22,24, 6:9, 막 16:20).
그러므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하심을 분명히 믿기에 간절히 찾고 만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여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알아 항상 응답받는 자가 되게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어떤 사람을 만나 함께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꼭 만나야 하고, 또 우리를 간절히 만나기를 원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분은 참된 행복과 사랑을 공급해 주실 뿐 아니라,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지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1.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만나야 하는 이유
흔히 주변 사람으로부터 직접 전도를 받거나 방송, 신문 등 각종 선교 매체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데 자신이 성령을 체험하고 구원의 확신을 갖는 만큼 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를 해보면 사람들마다 신(神)에 대한 생각도 달라서 간절히 찾고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 중에는 마음이 선하여 신(神)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의심하지 않기에 즉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을 직접 보아야 믿겠다는 사람도 있고, 믿으려는 마음도 없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만나기를 원치 아니하며 찾으려고도 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위대하시고 능력이 있으신 분인가를 전혀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밝히 안다면 그들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능력을 체험하고자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만나기를 원하고 사모할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사람과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시며, 인류의 시조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영원히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모든 것을 감찰하시며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전지전능하신 분이며,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에게 응답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마 7:7).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면 절망과 고통 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참된 소망을 얻으며, 각종 질병의 문제를 해결받을 뿐만 아니라, 죽음의 공포로부터 해방되어 영원하고도 변함이 없는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마 4:23-24).
2.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방법
1) 성경 66권 말씀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 66권 말씀을 양식삼고 행하는 만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 수 있고,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시편 19:7-8에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여호와의 증거는 확실하여 우둔한 자로 지혜롭게 하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하셨으니 하나님의 말씀을 많은 정금보다 더 사모하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고 귀한 것으로 여겨야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려면 무엇보다 먼저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침받아야 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여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이 넘치며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롬 10:17).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한 만큼 말씀을 보는 것도 중요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담은 책으로서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쓰여진 글입니다(딤후 3:16). 그러므로 성경을 단순히 문자적으로나 이성적으로, 혹은 지식적으로 읽는다면 그 뜻을 온전히 깨달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전혀 엉뚱한 해석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읽을 때 영적인 의미를 깨우칠 수 있고,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는 생명력 있는 말씀으로 다가와 하나님과의 교통이 깊어지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2)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알고 있다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식사할 때 밥만 먹는 것이 아니라 국이나 찌개, 그 외 여러 가지 반찬과 함께 먹어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듯이 하나님을 만나려면 말씀과 함께 기도를 병행해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 영혼의 호흡과 같아서 사람이 호흡을 해야 육의 생명이 유지되듯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어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되고 영적인 생명이 유지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29:12-13에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말씀하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방법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만나 영적인 교통을 이루며 지극한 사랑을 받았던 믿음의 선진들도 한결같이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녕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믿고 경외한다면 당연히 하나님의 뜻을 좇아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해야 하며, 이렇게 행할 때 모든 간구와 기도에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3) 찬양하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계가 큰 부흥을 이루면서 찬양을 감당하는 모임들이 많이 생겨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찬양을 매우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 다윗은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찬양하기를 즐겨하였고, 찬양을 기뻐 받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의 중심을 보시고 후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주셨습니다.
역대상 16장에는 다윗 왕이 하나님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장막 가운데 두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며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역대하 30:21에서는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이 날마다 여호와를 칭송하며 큰 소리 나는 악기를 울려 여호와를 찬양하였다고 했으며, 다니엘은 지혜와 능력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단 2:23).
하물며 우리를 구원과 영생의 길로 인도해 주시고 참 행복을 알게 하신 하나님께 마음 다해 찬양드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요. 우리가 예배 전이나 기도회를 하기 전에 중심으로 찬양을 드리면 뜨거운 찬양 가운데 마음의 문이 열리고 성령이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또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그분의 권능과 위엄과 인자하심과 구원의 은총을 찬양할 때 마음이 뜨거워지고 믿어지는 믿음이 생기며 기쁨과 감사의 눈물이 나오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찬양은 곡조 있는 기도로서 하나님을 만나는 길이요, 방법이니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마음 중심을 다해 찬양을 올릴 때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4) 예배드리는 가운데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제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었지만, 신약 시대에는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단을 쌓고 제사 드림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고, 솔로몬 왕도 일천 번의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을 만나 놀라운 축복을 받았지요. 이러한 구약 시대의 제사는 신약 시대에 이르러 예배로 드려지고 있으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릴 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이 제사 드릴 때 최상의 것으로 제물을 준비하여 드리지 않고 자신들에게 쓸모없는 최하의 것으로 드렸기에 크게 책망하시며, 형식은 같을지라도 마음과 정성이 담겨 있지 않은 제사는 받지 않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말 1:6-10).
그래서 예배는 자기 마음대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예배의 원칙에 따라 드리되, 구원의 은혜와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온전한 예물과 정성을 다해 드려야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신령과 진정으로 중심을 다한 예배를 드리면(요 4:24) 위로부터 은혜가 임하여 소망과 기쁨이 넘치며 생명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5) 선과 의, 빛과 공의, 진리와 사랑 가운데 하나님과 만나고 동행하는 축복을 받습니다
사도행전 10장에는 이스라엘 군대의 백부장 고넬료가 나오는데, 그는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는 사랑이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이방인이지만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니 그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하나님을 만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랑하는 종 베드로를 보내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온 가족은 물론 일가 친척, 가까운 친구들까지 성령을 받고 구원을 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알아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할 때 만나 주시며, 더 나아가 빛 가운데 온전히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창 5:22,24, 6:9, 막 16:20).
그러므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역사하심을 분명히 믿기에 간절히 찾고 만나는 것은 물론,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여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며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1-12
제2과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창 1:1, 출 3:14, 창 17:1
읽을말씀 : 창 1:1, 출 3:14, 창 17:1 | 외울말씀 : 히 11:6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물론,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구하여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또한 피조물인 인생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음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며 만나고 체험하는 복된 삶을 영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우주만물이나 여러 가지 기사와 표적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고 계시는데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실까요?
1.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우주만물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인간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생각하며 궁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 1:1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여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래 '창조하다'라는 말은 없는 것에서 있게 한다는 뜻으로서, 이는 히브리서 11:3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하신 대로 무(無)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창조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의 질서나 자연법칙의 오묘함 등을 통하여 인간이 이것만 보더라도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셨는데, 후일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고 핑계댈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몇 가지를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반드시 계시며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원숭이가 진화하여 인류로 발전된 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들은 왜 수천 년 전의 모습과 다름이 없으며 진화되지 못하고 있을까요?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음받은 인간만이 이성이 있고 양심이 있으므로 만물의 영장으로서 문명을 발전시켜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대륙이 다른 땅에서 살고 있어 인종이 달라도 사람은 눈이 두 개이며 귀도 두 개, 콧구멍이 두 개요, 코와 입은 각각 한 개이며 그 위치도 똑같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한 사람의 조상이 나오게 되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기록이 더 과학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공중의 새나 땅 위에 있는 사람과 동물, 바다에 있는 물고기 등 모든 생물의 구조를 살펴보면 일정한 위치에 동일한 생김새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두 개의 눈 밑에 하나의 코, 그 밑에 하나의 입, 양쪽에 있는 두 개의 귀 등을 보더라도 모든 생물이 한 분의 창조주에 의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인류의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인간은 생명을 만들어 내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창조의 역사는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과학과 문명은 창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것을 새롭게 발전시키며 이미 창조된 것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발명하는 것뿐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이 세계를 살펴본다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깨닫게 되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2.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서 나오셨으며 어떠한 분이신지 궁금하게 여깁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으로는 처음과 끝이 명확하게 있어야 한다고 여기므로 처음과 끝을 알고 싶어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관념으로 헤아릴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 처음과 끝이 없으신 분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계시는 분입니다. 더구나 누가 낳은 것도 아니요 만드신 것도 아니며 창조주로서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출애굽기 3:13-14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여쭐 때에 하나님의 답변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2:13).
알파와 오메가는 그리스 문자의 처음과 끝이 되는 문자로서 인간이 문자를 만들어 냄으로써 더하게 된 지식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문자로 인한 과학 문명의 발전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과학 문명의 시작과 끝으로서 알파와 오메가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으로 처음을 이루게 하셨고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의 구원 사업을 완성하게 하셨기에 처음과 나중이 되시며(고전 15:45) 인류 역사를 시작하셔서 끝 날까지 주관하시므로 시작과 끝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며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창 17:1, 28:3). 그래서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심으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요 4:48).
기사(奇事)란 비를 내리게 하거나 내리던 비를 멈추게 하는 등 천기(天氣)를 움직이는 것을 말하며, 표적(表蹟)이란 죽은 자를 살리고 의학의 힘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을 치료하는 등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행할 수 없는 단계의 것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가 갈라지기도 하고 해와 달의 운행이 멈추기도 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도 하고 삼 년 반의 가뭄 속에 큰 비가 내리기도 했지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도 죽은 자를 살리고 모든 질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며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시고 물 위를 걸으시는 등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그대로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은 사도들을 통해서도 계속 나타났는데, 베드로의 경우는 사람들이 병자를 데려와서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일 수 있기를 원했지요. 사도 바울의 경우는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에게 얹어도 질병이 떠나고 악귀가 나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오늘날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나타나는데, 특히 본교회에서는 암은 물론, 중풍, 뇌성마비, 백혈병 등 각종 불치 난치병들이 치료되고 있으며, 교통사고로 골절된 뼈가 기도받고 정상이 되는가 하면, 전신에 화상을 입고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이 깨끗이 치료되고, 연탄가스로 죽어 가던 사람이 기도받고 깨어나 후유증 하나 없이 치료된 경우도 많지요. 이 외에도 시공을 초월하여 음성전화 사서함 환자기도나 기도받은 손수건만 얹고도 치료되는 경우가 무수히 많습니다.
4. 성경의 저자가 되십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 주셨는데, 그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완전하게 하나님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聖經)은 거룩한 책이라는 뜻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34:16에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되어 있으며 주전 1500년부터 주후 100년경까지 약 1600년간 34명의 손길을 통하여 기록된 대전집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에 여러 사람을 통하여 기록되었지만 마치 구슬을 꿰어맨 것처럼 정확하고 질서가 있어 마치 한 사람이 기록한 것과 같은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기록한 것이며(벧후 1:21), 사람들이 임의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임을 증거하는 것이니 우리는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요한복음 20:31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고, 디모데후서 3:15에는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하였으니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말씀은 곧 하나님(요 1:1)이심을 알아 성경을 대할 때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뵙는 마음으로 읽고, 듣고, 보며 영생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요 5:39). 성경을 어떤 교양을 쌓기 위한 교양서적이나 문학서적쯤으로 오인하여 자신의 생각에 맞춰 더하고 빼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우주만물과 인류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삶을 의뢰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소유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은 물론, 무엇이든지 믿음으로 구하여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생사화복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또한 피조물인 인생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음으로 날마다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며 만나고 체험하는 복된 삶을 영위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오늘날도 우주만물이나 여러 가지 기사와 표적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고 계시는데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분이실까요?
1.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우주만물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인간의 기원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생각하며 궁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창세기 1:1에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여 하나님께서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원래 '창조하다'라는 말은 없는 것에서 있게 한다는 뜻으로서, 이는 히브리서 11:3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하신 대로 무(無)의 상태에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창조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우주만물의 질서나 자연법칙의 오묘함 등을 통하여 인간이 이것만 보더라도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믿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셨는데, 후일 하나님 앞에 심판받을 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고 핑계댈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상식적으로 몇 가지를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반드시 계시며 모든 만물을 지으신 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원숭이가 진화하여 인류로 발전된 것이 사실이라면 오늘날 동물원에 있는 원숭이들은 왜 수천 년 전의 모습과 다름이 없으며 진화되지 못하고 있을까요?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음받은 인간만이 이성이 있고 양심이 있으므로 만물의 영장으로서 문명을 발전시켜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대륙이 다른 땅에서 살고 있어 인종이 달라도 사람은 눈이 두 개이며 귀도 두 개, 콧구멍이 두 개요, 코와 입은 각각 한 개이며 그 위치도 똑같습니다.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한 사람의 조상이 나오게 되니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성경의 기록이 더 과학적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공중의 새나 땅 위에 있는 사람과 동물, 바다에 있는 물고기 등 모든 생물의 구조를 살펴보면 일정한 위치에 동일한 생김새가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두 개의 눈 밑에 하나의 코, 그 밑에 하나의 입, 양쪽에 있는 두 개의 귀 등을 보더라도 모든 생물이 한 분의 창조주에 의하여 창조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더구나 인류의 과학문명이 아무리 발달하여도 인간은 생명을 만들어 내지 못했으며 앞으로도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내는 창조의 역사는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과학과 문명은 창조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창조해 놓으신 것을 새롭게 발전시키며 이미 창조된 것을 발견하고 그것으로 발명하는 것뿐입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이 세계를 살펴본다면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것을 깨닫게 되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인류의 역사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믿을 수 있습니다.
2.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서 나오셨으며 어떠한 분이신지 궁금하게 여깁니다.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으로는 처음과 끝이 명확하게 있어야 한다고 여기므로 처음과 끝을 알고 싶어하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관념으로 헤아릴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서 처음과 끝이 없으신 분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셨고 지금도 계시며 앞으로도 영원히 계시는 분입니다. 더구나 누가 낳은 것도 아니요 만드신 것도 아니며 창조주로서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출애굽기 3:13-14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여쭐 때에 하나님의 답변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 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계 22:13).
알파와 오메가는 그리스 문자의 처음과 끝이 되는 문자로서 인간이 문자를 만들어 냄으로써 더하게 된 지식도 결국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요, 문자로 인한 과학 문명의 발전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고 있는 것이므로 하나님은 과학 문명의 시작과 끝으로서 알파와 오메가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으로 처음을 이루게 하셨고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인류의 구원 사업을 완성하게 하셨기에 처음과 나중이 되시며(고전 15:45) 인류 역사를 시작하셔서 끝 날까지 주관하시므로 시작과 끝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며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창 17:1, 28:3). 그래서 각 시대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는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심으로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이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요 4:48).
기사(奇事)란 비를 내리게 하거나 내리던 비를 멈추게 하는 등 천기(天氣)를 움직이는 것을 말하며, 표적(表蹟)이란 죽은 자를 살리고 의학의 힘으로는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을 치료하는 등 인간의 힘과 능력으로는 행할 수 없는 단계의 것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가 갈라지기도 하고 해와 달의 운행이 멈추기도 했습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기도 하고 삼 년 반의 가뭄 속에 큰 비가 내리기도 했지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도 죽은 자를 살리고 모든 질병과 약한 것을 고치시며 바람과 파도를 잠잠케 하시고 물 위를 걸으시는 등 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그대로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전능하신 하나님의 권능은 사도들을 통해서도 계속 나타났는데, 베드로의 경우는 사람들이 병자를 데려와서 베드로의 그림자라도 덮일 수 있기를 원했지요. 사도 바울의 경우는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자에게 얹어도 질병이 떠나고 악귀가 나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오늘날도 성령의 역사하심을 통해 나타나는데, 특히 본교회에서는 암은 물론, 중풍, 뇌성마비, 백혈병 등 각종 불치 난치병들이 치료되고 있으며, 교통사고로 골절된 뼈가 기도받고 정상이 되는가 하면, 전신에 화상을 입고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이 깨끗이 치료되고, 연탄가스로 죽어 가던 사람이 기도받고 깨어나 후유증 하나 없이 치료된 경우도 많지요. 이 외에도 시공을 초월하여 음성전화 사서함 환자기도나 기도받은 손수건만 얹고도 치료되는 경우가 무수히 많습니다.
4. 성경의 저자가 되십니다
영이신 하나님은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으므로 여러 가지 방법을 통해 자신을 나타내 주셨는데, 그 중에서 가장 광범위하고 완전하게 하나님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聖經)은 거룩한 책이라는 뜻으로서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책이라는 것입니다.
이사야 34:16에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 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되어 있으며 주전 1500년부터 주후 100년경까지 약 1600년간 34명의 손길을 통하여 기록된 대전집입니다. 오랜 기간 동안에 여러 사람을 통하여 기록되었지만 마치 구슬을 꿰어맨 것처럼 정확하고 질서가 있어 마치 한 사람이 기록한 것과 같은 통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는 성경이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기록한 것이며(벧후 1:21), 사람들이 임의로 기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딤후 3:16)임을 증거하는 것이니 우리는 성경의 저자가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왜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을까요? 요한복음 20:31에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고, 디모데후서 3:15에는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하였으니 우리가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며 말씀은 곧 하나님(요 1:1)이심을 알아 성경을 대할 때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뵙는 마음으로 읽고, 듣고, 보며 영생을 얻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요 5:39). 성경을 어떤 교양을 쌓기 위한 교양서적이나 문학서적쯤으로 오인하여 자신의 생각에 맞춰 더하고 빼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우주만물과 인류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삶을 의뢰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축복을 마음껏 소유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1-05
제1과마음을 새롭게 하자
롬 12:1-2
읽을말씀 : 롬 12:1-2 | 외울말씀 : 롬 12:2
교육목표 :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 주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아이나 어른을 막론하고 새로 산 옷, 새로 지은 집 등 무엇이든지 새것으로 바꾸면 신선한 기분이 느껴지고 새로운 꿈으로 마음이 부풀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신선한 기분이 사라지고 새로운 꿈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새해를 맞아 새로운 기분으로 한해를 시작하여 많은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지 않으면 여전히 옛것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해야 새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1.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먹고 마시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아왔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좇아 거짓말하고 미워하며 쾌락을 좇아 살면서도 죄인 줄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전도를 받거나 어떤 계기를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마음의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마음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믿음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 즉시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므로 열심히 변화시켜야 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 7:21, 고전 6:9).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밭에 비유하여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옥토밭으로 설명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길가밭은 단단하게 굳어 있는 밭으로서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전혀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 밭을 비유한 것입니다.
돌밭은 싹이 나더라도 돌멩이 때문에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서 지식적으로 말씀을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는 않으니 믿음의 확신이 없고 시험이 오면 넘어지게 됩니다. 가시떨기밭은 가시떨기로 인해 잘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서 말씀을 믿고 행한다고 해도 탐욕과 재리의 유혹, 세상의 염려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지만 옥토밭은 씨를 뿌리면 싹이 잘 나고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밭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이러한 옥토밭으로 우리의 마음밭을 개간하려면 무엇보다 변화되고자 하는 노력 위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농부가 묵은 밭을 옥토로 바꾸어 풍성한 수확을 거두려면 돌을 골라내고 흙을 고르게 하고 거름을 주며 잡초도 뽑고 벌레도 잡아주는 등 많은 수고를 하는 것처럼 우리도 밭을 일구는 농부와 같이 마음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된 자녀가 되기 위한 과정이지요.
우리가 말씀과 성령 안에서 묵은 밭을 개간해 가면 예전의 강퍅한 마음이 변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더러운 마음이 깨끗한 마음으로, 비진리의 마음이 진리의 마음으로, 악한 마음이 선한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설령 누가 섭섭한 말을 해도 서운해 하지 않고,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대어 주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옥토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야
이처럼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선하신 뜻
마음이 새로워지기 전에는 아무리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며 하나님의 뜻은 이러한 것'이라고 알려 주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새로워지면 성령을 통하여 깨닫게 되므로 옥토로 변화된 만큼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게 됩니다.
마가복음 10:17-18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질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은 단지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시지 않고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고 되물으셨습니다. 사람 중에는 선한 이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질문하신 것이지요. 그리고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선'이란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하나님의 뜻과 생각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 안에서 믿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것이지요.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선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이 다르며,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아무리 선한 사람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선하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선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는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니 자신이 악한 사람이고 죄인인 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음을 알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 곧 선을 좇아 살아갈 때 많은 열매를 거두며 풍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히브리서 11:6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고, 시편 37:4에는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중풍병자인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간 백부장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는 백부장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친히 가서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며 크게 칭찬하시고 즉시 하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외에도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고,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워졌습니다(히 11장). 예수님의 제자들도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갔으며,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진리를 좇아 살면서 큰 믿음을 내보이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제가 파키스탄에서 연합성회를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파키스탄은 회교국가로서 기독교 성회를 연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준비를 해 나갔고, 막상 성회 당일이 되자 국민 대다수가 회교도이기 때문에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집회가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지요. 성회 장소의 문은 굳게 닫혔고, 참석하는 사람들을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경찰들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선교팀들은 성회가 무사히 열릴 것을 믿었고, 저는 "낮 12시가 되면 운동장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담대히 선포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오직 믿음으로 행하였더니 이를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그 나라의 권세자의 마음을 주관하여 굳게 닫힌 문이 열렸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있다 해도 행함이 없으면 온전치 못합니다. 왜냐하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약 2:26).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면 야구에 관한 책을 공부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공을 던져보고 쳐 보면서 열심히 연습해야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행함이 동반되어야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5:48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대로 '기도해야지' 하고 마음먹었으면 변개함 없이 기도하고, 기뻐하기로 작정했으면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변함없이 기뻐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행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내보였기에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시며 크게 축복해 주셨지요(창 22:17-18).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번성하였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후손으로 오셔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시고 천하 만민이 복을 받아 영생의 길로 가게 되었지요. 아브라함이 이렇게 많은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였기에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으며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맞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고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새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며, 온전히 행함으로 나타내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육목표 :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 주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아이나 어른을 막론하고 새로 산 옷, 새로 지은 집 등 무엇이든지 새것으로 바꾸면 신선한 기분이 느껴지고 새로운 꿈으로 마음이 부풀게 됩니다. 그러나 정작 마음이 새로워지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신선한 기분이 사라지고 새로운 꿈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새해를 맞아 새로운 기분으로 한해를 시작하여 많은 열매를 맺기를 원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어 새사람이 되지 않으면 여전히 옛것에 속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우리가 어떻게 해야 새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1.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먹고 마시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아왔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좇아 거짓말하고 미워하며 쾌락을 좇아 살면서도 죄인 줄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전도를 받거나 어떤 계기를 통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마음의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마음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믿음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 즉시 우리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므로 열심히 변화시켜야 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 7:21, 고전 6:9).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밭에 비유하여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옥토밭으로 설명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길가밭은 단단하게 굳어 있는 밭으로서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전혀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 밭을 비유한 것입니다.
돌밭은 싹이 나더라도 돌멩이 때문에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서 지식적으로 말씀을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는 않으니 믿음의 확신이 없고 시험이 오면 넘어지게 됩니다. 가시떨기밭은 가시떨기로 인해 잘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서 말씀을 믿고 행한다고 해도 탐욕과 재리의 유혹, 세상의 염려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하지만 옥토밭은 씨를 뿌리면 싹이 잘 나고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밭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이러한 옥토밭으로 우리의 마음밭을 개간하려면 무엇보다 변화되고자 하는 노력 위에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농부가 묵은 밭을 옥토로 바꾸어 풍성한 수확을 거두려면 돌을 골라내고 흙을 고르게 하고 거름을 주며 잡초도 뽑고 벌레도 잡아주는 등 많은 수고를 하는 것처럼 우리도 밭을 일구는 농부와 같이 마음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된 자녀가 되기 위한 과정이지요.
우리가 말씀과 성령 안에서 묵은 밭을 개간해 가면 예전의 강퍅한 마음이 변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더러운 마음이 깨끗한 마음으로, 비진리의 마음이 진리의 마음으로, 악한 마음이 선한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설령 누가 섭섭한 말을 해도 서운해 하지 않고,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대어 주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옥토가 되어가는 과정인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야
이처럼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았다면 이제는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선하신 뜻
마음이 새로워지기 전에는 아무리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며 하나님의 뜻은 이러한 것'이라고 알려 주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새로워지면 성령을 통하여 깨닫게 되므로 옥토로 변화된 만큼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게 됩니다.
마가복음 10:17-18을 보면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나아와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고 질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가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은 단지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시지 않고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고 되물으셨습니다. 사람 중에는 선한 이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 질문하신 것이지요. 그리고는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선'이란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하나님의 뜻과 생각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진리의 말씀 안에서 믿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것이지요. 따라서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선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이 다르며,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아무리 선한 사람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선하지 않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자기가 선한 사람이라고 자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는 안타깝고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니 자신이 악한 사람이고 죄인인 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음을 알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 곧 선을 좇아 살아갈 때 많은 열매를 거두며 풍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히브리서 11:6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고, 시편 37:4에는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중풍병자인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간 백부장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인의 병을 고쳐달라는 백부장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친히 가서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며 크게 칭찬하시고 즉시 하인의 병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외에도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고,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워졌습니다(히 11장). 예수님의 제자들도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갔으며,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진리를 좇아 살면서 큰 믿음을 내보이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제가 파키스탄에서 연합성회를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파키스탄은 회교국가로서 기독교 성회를 연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준비를 해 나갔고, 막상 성회 당일이 되자 국민 대다수가 회교도이기 때문에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집회가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지요. 성회 장소의 문은 굳게 닫혔고, 참석하는 사람들을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경찰들이 동원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와 선교팀들은 성회가 무사히 열릴 것을 믿었고, 저는 "낮 12시가 되면 운동장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담대히 선포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오직 믿음으로 행하였더니 이를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그 나라의 권세자의 마음을 주관하여 굳게 닫힌 문이 열렸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있다 해도 행함이 없으면 온전치 못합니다. 왜냐하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약 2:26).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면 야구에 관한 책을 공부하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실제로 공을 던져보고 쳐 보면서 열심히 연습해야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행함이 동반되어야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5:48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는 말씀대로 '기도해야지' 하고 마음먹었으면 변개함 없이 기도하고, 기뻐하기로 작정했으면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변함없이 기뻐해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행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내보였기에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시며 크게 축복해 주셨지요(창 22:17-18).
그리하여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번성하였고, 또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 후손으로 오셔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시고 천하 만민이 복을 받아 영생의 길로 가게 되었지요. 아브라함이 이렇게 많은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였기에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으며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맞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고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새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며, 온전히 행함으로 나타내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12-29
제52과지극히 충성된 자
눅 16:10
읽을말씀 : 눅 16:10 | 외울말씀 : 눅 16:10
교육목표 : 지극히 충성된 자가 되어 주님께 “잘 하였다.” 칭찬받을 뿐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만큼 자금을 주었습니다. 그 중에 한 종은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열심히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의 이윤을 더 남겼고, 또 한 종은 두 달란트를 받아서 두 달란트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며 칭찬을 하였지요.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사명 하나라도 귀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정녕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작은 사명일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사명이라도 소중한 것이지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사명을 잘 감당할 때는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얻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서 당장 맡은 일은 소홀히 하고 있으면서 "더 큰 사명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는 경우도 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사명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받으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인정받기 원하고 사람 앞에 드러나고자 직분을 원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우, 충성하는 자체보다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내기 어렵고 큰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6:10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말씀하신 대로 작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도 큰 사명을 맡기실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창세기 37-4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 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 족속이 한 민족으로 성장하기까지 애굽에 들어가 거할 길을 여십니다. 먼저 요셉이 강대국 애굽에 들어가서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어린 요셉을 총리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애굽의 한 장관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서, 미천한 일부터 시작하게 하셨지요. 점차 주인의 신망을 얻게 되니 모든 살림을 주관하는 자리에 세우시고, 다음에는 왕의 감옥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 감옥은 일반 죄수들이 아니라 고위층 사람들이 왕에게 범죄했을 때 수감되는 감옥으로 요셉은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라 전체를 다스릴 수 있도록 넓은 안목과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13년을 보내고서야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될 수 있었지요. 요셉은 타고난 성실함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통해 그 모든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장관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 자신의 직무를 대충했다면 그는 종으로서 자신의 일생을 마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무리 미천한 일이라도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 이상의 일을 해냄으로 주인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더 높은 직분을 맡게 된 후에도 사심과 들렘이 없었으며, '어찌하면 주인에게 유익을 줄까?' 하는 마음으로 온 집안을 최선을 다해 돌아보았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충성을 다하는 요셉이었기에 결국 나라 전체를 맡아서도 잘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귀히 여기며 '어찌하면 사명을 잘 감당할까?' 마음을 쓰다 보면 자신의 한계를 느끼므로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맡은 영혼들이 시험 환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쳐 주고 싶고, 믿음을 갖지 못하는 영혼들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고 싶지요. 그러나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잘되지 않을 때 심히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서 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때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상대를 섬기는 것 같아도 원하는 열매를 낼 수가 없습니다.
육적인 사랑을 베푼다 해서 영혼들이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관을 좇아 행할 때라야 영혼들이 새 힘을 얻어 충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심방하면 변화되지 않으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심방하면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이, 정확하게 영혼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은혜받고 마음 문을 열게 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자신의 방법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이 생기면 자연히 겸비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매달리게 되지요. 따라서 사명 감당을 잘하는 것은 곧 영혼이 잘되는 축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다 보면 무엇보다 자신이 성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요. 성결되어 능력받고 열매를 내고자 하는 뜨거운 소망이 있으면 오직 진리와 함께 기뻐하면서 짜증이나 감정,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모습 등 작은 악의 모양이라도 민감하게 깨달으며 버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그릇을 만들어 가는 만큼 더 큰 능력을 받게 되고 많은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심장으로,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8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참혹한 고난을 당하시면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심장으로 맡겨진 양 떼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니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피곤함도 개의치 않았고, 험한 파도와 높은 산, 광야의 모든 위험도 무릅쓸 수 있었습니다. 주의 복음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수모와 살과 뼈가 부서지도록 매를 맞는 고통,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희생은 자신을 사랑하사 피 흘리신 주님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모든 영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9:3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할 정도였지요.
이처럼 주어진 사명을 소중히 여겨 온전히 감당하고자 기도하면서 성결되는 만큼 영혼을 위해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신 주님의 마음이 임하게 됩니다. 또한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 만큼, 삶 전체를 영혼들을 위해 내어 주는 목자의 심정을 깨닫게 되지요.
목자의 마음은 육의 부모들이 먼 곳에 간 자녀를 늘 마음에 품고 '내 아들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밥은 잘 챙겨먹고 있을까?' 염려하는 것보다 더하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1:28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백한 것처럼 밤낮 영혼들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들을 갈무리하는 사명을 맡은 일꾼도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품을 때 열심히 심방하게 될 뿐 아니라, 무시로 그들의 형편을 떠올리며 기도하게 됩니다. 혹여 뾰족한 말로 찌르고 부딪혀 오는 양 떼라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지요. 소중한 목자의 양 떼이니 그들 모두 자신의 소중한 기업으로 여겨져 사랑이 갈 뿐입니다.
아기가 짜증을 내어도 어머니는 좋은 것을 주듯이 갈무리하는 영혼을 편케 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섬겨 주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어찌하면 그 영혼이 잘될 수 있을까?' 하여 영육간에 희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영혼들이 범죄하여 시험 환난을 당할 때면 자신이 더 애통하며 부르짖어 기도하게 됩니다. 맡은 양 떼의 문제를 위해 늘 기도해 주고 양 떼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간구하며 내 자녀나 가족 이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으로 열심히 영혼을 갈무리하며 섬기다 보면 진실을 느끼고 감사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부모가 되면 진정한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처럼 자신이 영혼을 갈무리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목자의 마음을 느끼며 더욱 주님께도 아버지께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심장과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을 품고 사랑을 주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더 많은 영혼들을 보내 주시고 부흥에 부흥을 더하여 더 큰 사명을 맡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변함없는 모습으로 지극히 충성된 자가 되어 주님께 칭찬받을 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지극히 충성된 자가 되어 주님께 “잘 하였다.” 칭찬받을 뿐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만큼 자금을 주었습니다. 그 중에 한 종은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열심히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의 이윤을 더 남겼고, 또 한 종은 두 달란트를 받아서 두 달란트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며 칭찬을 하였지요.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사명 하나라도 귀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정녕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작은 사명일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사명이라도 소중한 것이지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사명을 잘 감당할 때는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얻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서 당장 맡은 일은 소홀히 하고 있으면서 "더 큰 사명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는 경우도 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사명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받으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인정받기 원하고 사람 앞에 드러나고자 직분을 원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우, 충성하는 자체보다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내기 어렵고 큰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6:10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말씀하신 대로 작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도 큰 사명을 맡기실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창세기 37-4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 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 족속이 한 민족으로 성장하기까지 애굽에 들어가 거할 길을 여십니다. 먼저 요셉이 강대국 애굽에 들어가서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어린 요셉을 총리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애굽의 한 장관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서, 미천한 일부터 시작하게 하셨지요. 점차 주인의 신망을 얻게 되니 모든 살림을 주관하는 자리에 세우시고, 다음에는 왕의 감옥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 감옥은 일반 죄수들이 아니라 고위층 사람들이 왕에게 범죄했을 때 수감되는 감옥으로 요셉은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라 전체를 다스릴 수 있도록 넓은 안목과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13년을 보내고서야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될 수 있었지요. 요셉은 타고난 성실함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통해 그 모든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장관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 자신의 직무를 대충했다면 그는 종으로서 자신의 일생을 마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무리 미천한 일이라도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 이상의 일을 해냄으로 주인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더 높은 직분을 맡게 된 후에도 사심과 들렘이 없었으며, '어찌하면 주인에게 유익을 줄까?' 하는 마음으로 온 집안을 최선을 다해 돌아보았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충성을 다하는 요셉이었기에 결국 나라 전체를 맡아서도 잘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귀히 여기며 '어찌하면 사명을 잘 감당할까?' 마음을 쓰다 보면 자신의 한계를 느끼므로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맡은 영혼들이 시험 환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쳐 주고 싶고, 믿음을 갖지 못하는 영혼들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고 싶지요. 그러나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잘되지 않을 때 심히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서 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때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상대를 섬기는 것 같아도 원하는 열매를 낼 수가 없습니다.
육적인 사랑을 베푼다 해서 영혼들이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관을 좇아 행할 때라야 영혼들이 새 힘을 얻어 충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심방하면 변화되지 않으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심방하면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이, 정확하게 영혼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은혜받고 마음 문을 열게 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자신의 방법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이 생기면 자연히 겸비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매달리게 되지요. 따라서 사명 감당을 잘하는 것은 곧 영혼이 잘되는 축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다 보면 무엇보다 자신이 성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요. 성결되어 능력받고 열매를 내고자 하는 뜨거운 소망이 있으면 오직 진리와 함께 기뻐하면서 짜증이나 감정,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모습 등 작은 악의 모양이라도 민감하게 깨달으며 버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그릇을 만들어 가는 만큼 더 큰 능력을 받게 되고 많은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심장으로,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8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참혹한 고난을 당하시면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심장으로 맡겨진 양 떼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니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피곤함도 개의치 않았고, 험한 파도와 높은 산, 광야의 모든 위험도 무릅쓸 수 있었습니다. 주의 복음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수모와 살과 뼈가 부서지도록 매를 맞는 고통,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희생은 자신을 사랑하사 피 흘리신 주님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모든 영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9:3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할 정도였지요.
이처럼 주어진 사명을 소중히 여겨 온전히 감당하고자 기도하면서 성결되는 만큼 영혼을 위해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신 주님의 마음이 임하게 됩니다. 또한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 만큼, 삶 전체를 영혼들을 위해 내어 주는 목자의 심정을 깨닫게 되지요.
목자의 마음은 육의 부모들이 먼 곳에 간 자녀를 늘 마음에 품고 '내 아들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밥은 잘 챙겨먹고 있을까?' 염려하는 것보다 더하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1:28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백한 것처럼 밤낮 영혼들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들을 갈무리하는 사명을 맡은 일꾼도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품을 때 열심히 심방하게 될 뿐 아니라, 무시로 그들의 형편을 떠올리며 기도하게 됩니다. 혹여 뾰족한 말로 찌르고 부딪혀 오는 양 떼라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지요. 소중한 목자의 양 떼이니 그들 모두 자신의 소중한 기업으로 여겨져 사랑이 갈 뿐입니다.
아기가 짜증을 내어도 어머니는 좋은 것을 주듯이 갈무리하는 영혼을 편케 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섬겨 주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어찌하면 그 영혼이 잘될 수 있을까?' 하여 영육간에 희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영혼들이 범죄하여 시험 환난을 당할 때면 자신이 더 애통하며 부르짖어 기도하게 됩니다. 맡은 양 떼의 문제를 위해 늘 기도해 주고 양 떼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간구하며 내 자녀나 가족 이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으로 열심히 영혼을 갈무리하며 섬기다 보면 진실을 느끼고 감사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부모가 되면 진정한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처럼 자신이 영혼을 갈무리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목자의 마음을 느끼며 더욱 주님께도 아버지께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의 심장과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을 품고 사랑을 주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더 많은 영혼들을 보내 주시고 부흥에 부흥을 더하여 더 큰 사명을 맡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변함없는 모습으로 지극히 충성된 자가 되어 주님께 칭찬받을 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2-22
제51과예수 그리스도
행 4:12
읽을말씀 : 행 4:12 | 외울말씀 : 행 4:12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깨달아 그 이름의 능력과 권세를 힘입음으로 삶에 항상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사람의 이름은 단지 몇 음절로 구성된 문자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어떤 한 사람의 이름을 생각하면 단지 그 이름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얼굴과 성품, 언행과 분위기 등 그 사람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함께 떠오르지요. 여러분은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어떠한 마음과 생각이 드시는지요?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세 가지로 말씀드릴 때에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새록새록 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
1)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사도행전 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지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순간부터 성장 과정과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의 모든 것이 인생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인생들의 어려움을 대신 지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시고 구유에 누이신 것도 인류의 구원자로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지요.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짐승과 다름없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흠도 점도 없는 깨끗한 보혈을 흘리셨으며 참혹한 십자가의 형벌을 받고 죽으셨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이 죽임당하셨기 때문에 사망에 매여 계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사망을 이기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완전한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이처럼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고 입술로 시인하는 사람은 누구나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혹 현실의 이런저런 문제들이 발생할 때 힘들고 절망하며 낙심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잊었거나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저주를 풀어 주심으로 영원한 사망의 고통에서 건져내신 구원자이심을 믿는다면 현실의 문제로 인한 어려움에서도 능히 여러분을 건져 주실 수 있음을 믿음으로 다시금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승리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시며 우리에게는 "위로자"가 되십니다
요한일서 2:1-2에 보면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전서 2:5-6에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했지요. 이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로서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려고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죄인들의 죄를 속량하기 위한 속전으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 주셨지요.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의로운 행동을 중심에서 믿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서 간구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빛 가운데 살기 위해 하나님께 능력을 구할 때 주님께서도 이 영혼을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 대신 간구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저 영혼이 중심에서 죄를 회개하오니 보혈의 능력으로 모든 죄를 다 씻었나이다. 저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고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을 내려 주옵소서."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요 중보가 되십니다.
이에 히브리서 4:15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했지요. 물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으로, 로마서 8:26에 보면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 모두 여러분의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여러분 자신보다 더 간절함으로 하나님 앞에 간구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혹 여러분이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 해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심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1:5을 보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도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멸시받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 열심히 붙좇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하셨고, 오히려 심령이 가난한 자들과 애통하는 자, 핍박받는 자들이 복이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곧 천국이 저희 것이며 위로를 받을 것이고 또한 천국의 상급이 크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자들의 압제로 인해 눌려 있던 사람들과 가난으로 인해 궁핍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한줄기 큰 소망의 빛으로 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기에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의 위로를 바라면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사랑과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말씀으로만 위로하시는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는 참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도록 상황을 바꿔 주시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부요함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위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의 이름이요, 어떤 사람에게는 소망의 이름이며, 부요의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응답자가 되십니다
요한복음 14:13-14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들으심으로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케 해 주십니다.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은 문제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 이름의 권세로 인해 어둠이 물러가고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그 권세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알아야 능력이 나타나고 원수 마귀 사단도 무서워서 물러가지요.
비유를 들자면, 만일 경찰과 도둑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자신이 도둑인 것을 모르는 경찰이라면 도둑은 그 경찰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태연하게 행동하고 도망가려 하지도 않지요. 그러나 자신이 도둑인 것을 알고 있는 경찰이 나타나면 잡힐 것이 무서워 재빨리 도망치겠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칠 때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물리칠 때의 능력이 전혀 다르며 기도의 응답도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란 마태복음 1:21에 나온 대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으로서 '구원한 자'라는 완성형이 아니라, 앞으로 '구원할 자'라는 미래형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자요, 중보자인 구세주의 직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로 구세주의 자격을 획득한 사람을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요,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언제 구세주가 되셨습니까?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 깨뜨리고 부활하셨을 때 우리의 구원자,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예수이고,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말로 하면 '구세주' 또는 줄여서 '주'라 하고 여기에 존칭어를 붙여서 '주님'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사도들도 주님의 부활 승천 후에 기도하거나 말씀을 증거할 때 '예수님'이라 하지 않고 '주'나 '그리스도'를 덧붙였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행 3:6). 그러므로 여러분이 기도할 때도 예수님의 이름과 함께 반드시 '주' 혹은 '그리스도'를 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요 16:23).
그런데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 해도 의심하며 구하거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할 때는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약 1:6, 4:3). 따라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되 온전한 믿음으로 의심 없이 기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구한 모든 것을 응답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원자요, 대언자시며 위로자가 되시고 응답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과 권세로 인해 여러분들의 삶에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풍성하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깨달아 그 이름의 능력과 권세를 힘입음으로 삶에 항상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사람의 이름은 단지 몇 음절로 구성된 문자 이상의 의미를 지닙니다. 어떤 한 사람의 이름을 생각하면 단지 그 이름만 떠오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얼굴과 성품, 언행과 분위기 등 그 사람과 관련된 많은 것들이 함께 떠오르지요. 여러분은 성탄절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떠올리면 어떠한 마음과 생각이 드시는지요? 이 시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를 세 가지로 말씀드릴 때에 여러분의 마음에 주님의 은혜와 사랑이 새록새록 임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
1) 우리의 구원자가 되십니다
사도행전 4:12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가 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가장 궁극적인 목적이기도 하지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순간부터 성장 과정과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의 모든 것이 인생들의 죄를 대속하시고 인생들의 어려움을 대신 지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시고 구유에 누이신 것도 인류의 구원자로서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지요.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예수님이 짐승과 다름없는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생명의 양식이 되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8:9) 말씀하신 대로 우리를 부요케 하시기 위함이셨습니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흠도 점도 없는 깨끗한 보혈을 흘리셨으며 참혹한 십자가의 형벌을 받고 죽으셨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이 죽임당하셨기 때문에 사망에 매여 계실 필요가 없으셨습니다. 사망을 이기고 3일 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완전한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이처럼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믿고 입술로 시인하는 사람은 누구나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혹 현실의 이런저런 문제들이 발생할 때 힘들고 절망하며 낙심하는 분들이 계시다면 주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을 잊었거나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진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의 저주를 풀어 주심으로 영원한 사망의 고통에서 건져내신 구원자이심을 믿는다면 현실의 문제로 인한 어려움에서도 능히 여러분을 건져 주실 수 있음을 믿음으로 다시금 은혜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승리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시며 우리에게는 "위로자"가 되십니다
요한일서 2:1-2에 보면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했습니다.
또한 디모데전서 2:5-6에는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 그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자기를 속전으로 주셨으니 기약이 이르면 증거할 것이라" 했지요. 이 말씀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로서 죄인들을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려고 친히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죄인들의 죄를 속량하기 위한 속전으로 자신을 온전히 내어주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 주셨지요.
그리고 이러한 예수님의 의로운 행동을 중심에서 믿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서 간구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빛 가운데 살기 위해 하나님께 능력을 구할 때 주님께서도 이 영혼을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 대신 간구해 주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저 영혼이 중심에서 죄를 회개하오니 보혈의 능력으로 모든 죄를 다 씻었나이다. 저 영혼을 긍휼히 여기시고 아버지의 사랑과 은혜와 능력을 내려 주옵소서."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요 중보가 되십니다.
이에 히브리서 4:15에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했지요. 물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는 분으로, 로마서 8:26에 보면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 모두 여러분의 연약함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여러분 자신보다 더 간절함으로 하나님 앞에 간구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혹 여러분이 연약함으로 인해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 해도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심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과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1:5을 보면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사역하실 때도 사회적으로 천대받고 멸시받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더 열심히 붙좇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분에 상관없이 누구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하셨고, 오히려 심령이 가난한 자들과 애통하는 자, 핍박받는 자들이 복이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곧 천국이 저희 것이며 위로를 받을 것이고 또한 천국의 상급이 크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자들의 압제로 인해 눌려 있던 사람들과 가난으로 인해 궁핍하게 지내던 사람들에게 한줄기 큰 소망의 빛으로 임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시기에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의 위로를 바라면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고 사랑과 위로를 베풀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말씀으로만 위로하시는 것이 아니라, 심령이 가난한 사람에게는 참된 행복을 만끽할 수 있도록 상황을 바꿔 주시며, 가난한 사람에게는 부요함을 누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래서 위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어떤 사람에게는 행복의 이름이요, 어떤 사람에게는 소망의 이름이며, 부요의 이름이 되는 것입니다.
3) 우리의 응답자가 되십니다
요한복음 14:13-14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이름을 들으심으로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케 해 주십니다. 도무지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은 문제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그 이름의 권세로 인해 어둠이 물러가고 문제 해결의 길이 열립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그 권세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알아야 능력이 나타나고 원수 마귀 사단도 무서워서 물러가지요.
비유를 들자면, 만일 경찰과 도둑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자신이 도둑인 것을 모르는 경찰이라면 도둑은 그 경찰을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태연하게 행동하고 도망가려 하지도 않지요. 그러나 자신이 도둑인 것을 알고 있는 경찰이 나타나면 잡힐 것이 무서워 재빨리 도망치겠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른지를 정확히 아는 사람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칠 때와 그렇지 않은 사람이 물리칠 때의 능력이 전혀 다르며 기도의 응답도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란 마태복음 1:21에 나온 대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으로서 '구원한 자'라는 완성형이 아니라, 앞으로 '구원할 자'라는 미래형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란 뜻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자요, 중보자인 구세주의 직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로 구세주의 자격을 획득한 사람을 헬라어로는 '그리스도'요, 히브리어로는 '메시야'라고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언제 구세주가 되셨습니까? 바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사망 권세 깨뜨리고 부활하셨을 때 우리의 구원자,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예수이고, 십자가를 지고 부활하신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다른 말로 하면 '구세주' 또는 줄여서 '주'라 하고 여기에 존칭어를 붙여서 '주님'이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과 사도들도 주님의 부활 승천 후에 기도하거나 말씀을 증거할 때 '예수님'이라 하지 않고 '주'나 '그리스도'를 덧붙였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행 3:6). 그러므로 여러분이 기도할 때도 예수님의 이름과 함께 반드시 '주' 혹은 '그리스도'를 붙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도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요 16:23).
그런데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한다 해도 의심하며 구하거나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할 때는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약 1:6, 4:3). 따라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되 온전한 믿음으로 의심 없이 기도함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구한 모든 것을 응답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원자요, 대언자시며 위로자가 되시고 응답자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의 능력과 권세로 인해 여러분들의 삶에 은혜와 사랑과 축복이 풍성하게 넘쳐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6-12-15
제50과믿음으로 바라보자
히 11:1-3
읽을말씀 : 히 11:1-3 | 외울말씀 : 히 11:1-3
교육목표 : 믿음으로 바라보고 행군함으로 신속히 영으로 들어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크신 영광과 축복들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믿음으로 바라보라" 말씀하셨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을 많이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의 힘과 지혜로 불가능한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너무나 쉽고 신속하게 해결되는 것을 무수히 보여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러한 증거들과 권능의 역사들을 통해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길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증거들을 보여 주시며 믿음으로 바라보라고 이끄시기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따라갈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스스로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하시지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지금까지 쌓아온 믿음의 훈련들을 통해 여러분 스스로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의 행군을 할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믿음으로 바라보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힘찬 믿음의 행진을 해야 하겠습니다.
1. 믿음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육적인 믿음이 아닌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육적인 믿음은 유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요,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이지요. 예를 들어, 나무로 책상을 만들었다 하는, 바로 유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 육적인 믿음이요, 내 지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믿는 지식적인 믿음입니다. 이 육적인 믿음으로는 사람의 생각과 틀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릴 수가 없으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역사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믿음은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요,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이지요. 이러한 산 믿음, 영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본 교회에 주신 비전들을 하나하나 성취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2천 년도부터 해외 연합대성회들을 여러 차례 이루었는데 단지 육적인 믿음만 가졌다면 어느 성회도 그처럼 크게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장 넉넉한 재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성회를 개최할 현지 상황도 좋지 않았지요. 성회 개최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어서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사람들을 미혹하는가 하면 테러의 위협도 있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믿음으로 순종하여 발을 내딛으면 방해가 큰 만큼 하나님의 영광도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적인 믿음은 진실 자체이기에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힘이 있으며 어떤 불가능한 일도 가능케 하는 놀라운 능력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여러분들이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현실을 보니 "어렵겠다, 못하겠다." 생각한다면 이는 육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만 알고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 지식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이러한 죽은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의 행함을 내보일 수 있는 산 믿음, 바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 현실적인 사람의 생각으로는 벼랑에서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것처럼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행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벼랑에서 자신의 몸을 내던질지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의 손을 펴서 받아 주실 것을 조금도 의심 없이 믿기 때문에 그처럼 행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앞으로 이루어야 할 많은 일들 앞에서도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민 14:8-9) 출애굽 1세대 중에서는 이처럼 믿음으로 고백했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믿음의 고백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의 주도적인 흐름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반드시 이뤄지지만 육신의 생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루는 데 참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제는 영이 아니고서는 아니 된다 강조했던 말씀대로 영의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온전한 영의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절대로 포기라는 것이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다가 포기하는 이유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에 그것을 뛰어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계가 있는 사람의 생각으로 볼 때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만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장애물이 장애물로 보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한계를 짓지도 않기에 불가능이라는 것도 포기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의 기본자세이지요.
그런데 수년 전 여러분이 가나안 성전을 이루고자 했을 때 왜 그것을 취하지 못했을까요? 애쓰고 힘써서 취해 보고자 하였으나 매번 필요한 만큼 재정이 준비되지 않자 '어렵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왔고 결국은 포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당시 취하려던 곳은 가나안 성전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합한 곳이 아니었지만 그러한 과정을 허락하신 것은 여러분들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목자의 믿음으로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믿음으로 가나안 성전을 취해 보도록 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은 영적인 믿음이 없이는 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셨던 것이지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갈 때에도 장애물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기브온에서는 다섯 나라 연합군과 싸워야 했고 가나안 땅의 동 서편과 북방을 취할 때에도 그곳의 연합한 이방 군대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 적군의 수가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 했지요.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여호수아에게는 두려움이나 낙심이 아니라 오직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만이 있을 뿐이었지요. 그러니 항상 하나님께서 책임지셔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과 권능을 친히 이 제단을 통해서 나타내 행해 보여 주시는 것을 여러분들도 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녕 믿음으로 바라보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순종하여 행하기만 하심으로 우리가 이루게 될 과업을 온전히 이루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3) 자신의 성결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처음 하나님을 만나 믿음의 1단계에서 지금의 믿음으로 성장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믿고 바라봐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영으로 일구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와질 것을 기대하시며 바라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자신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한 자녀로 나와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도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지요. 그리고 마음의 심비에 새겨서 행함으로 나타내 보일 때 어느 순간 깊숙이 영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육의 모습이 발견된다 하여 낙심하며 포기하는 사람이라면 영적인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결도 영적인 믿음으로 바라본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이 변함없으며 흔들림이 없습니다. 성결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비진리와 육의 마음을 발견하면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러한 축복도 성결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에게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영의 흐름을 타고 어찌하든 영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 성령도 도우시고 늘 깨우침을 주시는 것이지요.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능히 성결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들은 영을 사모하여 어찌하든 영으로 들어가기 원하시지요? 그러면 많은 일들이 믿음으로 가능한 것처럼 성결도 능히 이룰 수 있음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변함없이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는 목자가 이끌어서가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가 영의 흐름을 주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가지되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포기라는 것이 없으며 자신의 성결에 대해서도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신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크신 영광과 놀라운 축복들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믿음으로 바라보고 행군함으로 신속히 영으로 들어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크신 영광과 축복들을 받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믿음으로 바라보라" 말씀하셨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을 많이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의 힘과 지혜로 불가능한 일들이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너무나 쉽고 신속하게 해결되는 것을 무수히 보여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그러한 증거들과 권능의 역사들을 통해 온전한 믿음을 갖게 되길 바라셨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 증거들을 보여 주시며 믿음으로 바라보라고 이끄시기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따라갈 때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스스로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기를 원하시지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 할지라도 지금까지 쌓아온 믿음의 훈련들을 통해 여러분 스스로 믿음으로 바라보고 믿음의 행군을 할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믿음으로 바라보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힘찬 믿음의 행진을 해야 하겠습니다.
1. 믿음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1) 육적인 믿음이 아닌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육적인 믿음은 유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요,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이지요. 예를 들어, 나무로 책상을 만들었다 하는, 바로 유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 육적인 믿음이요, 내 지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믿는 지식적인 믿음입니다. 이 육적인 믿음으로는 사람의 생각과 틀을 뛰어 넘는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릴 수가 없으며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하나님의 역사도 이룰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믿음은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이요,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이지요. 이러한 산 믿음, 영적인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본 교회에 주신 비전들을 하나하나 성취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 2천 년도부터 해외 연합대성회들을 여러 차례 이루었는데 단지 육적인 믿음만 가졌다면 어느 성회도 그처럼 크게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당장 넉넉한 재정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성회를 개최할 현지 상황도 좋지 않았지요. 성회 개최를 반대하는 세력들이 있어서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사람들을 미혹하는가 하면 테러의 위협도 있었습니다. 이런 부정적인 요소들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믿음으로 순종하여 발을 내딛으면 방해가 큰 만큼 하나님의 영광도 더 크게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영적인 믿음은 진실 자체이기에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힘이 있으며 어떤 불가능한 일도 가능케 하는 놀라운 능력도 베풀 수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여러분들이 가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현실을 보니 "어렵겠다, 못하겠다." 생각한다면 이는 육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만 알고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 지식적인 믿음을 가졌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이러한 죽은 믿음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기에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순종의 행함을 내보일 수 있는 산 믿음, 바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믿음으로 바라보고 나아가는 것이 현실적인 사람의 생각으로는 벼랑에서 자신의 몸을 내던지는 것처럼 무모하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뢰하는 행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벼랑에서 자신의 몸을 내던질지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크신 권능의 손을 펴서 받아 주실 것을 조금도 의심 없이 믿기 때문에 그처럼 행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앞으로 이루어야 할 많은 일들 앞에서도 여러분들이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고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민 14:8-9) 출애굽 1세대 중에서는 이처럼 믿음으로 고백했던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믿음의 고백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영의 주도적인 흐름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섭리는 반드시 이뤄지지만 육신의 생각으로 현실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이루는 데 참여할 수가 없게 됩니다. 이제는 영이 아니고서는 아니 된다 강조했던 말씀대로 영의 믿음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명심하여 온전한 영의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2) 절대로 포기라는 것이 있어서는 아니 됩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다가 포기하는 이유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에 그것을 뛰어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계가 있는 사람의 생각으로 볼 때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만나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장애물이 장애물로 보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한계를 짓지도 않기에 불가능이라는 것도 포기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의 기본자세이지요.
그런데 수년 전 여러분이 가나안 성전을 이루고자 했을 때 왜 그것을 취하지 못했을까요? 애쓰고 힘써서 취해 보고자 하였으나 매번 필요한 만큼 재정이 준비되지 않자 '어렵다,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어왔고 결국은 포기를 하고 말았습니다.
물론 당시 취하려던 곳은 가나안 성전으로서 하나님의 뜻에 합한 곳이 아니었지만 그러한 과정을 허락하신 것은 여러분들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함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목자의 믿음으로가 아니라 여러분들의 믿음으로 가나안 성전을 취해 보도록 하심으로 하나님의 일은 영적인 믿음이 없이는 되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셨던 것이지요.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갈 때에도 장애물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기브온에서는 다섯 나라 연합군과 싸워야 했고 가나안 땅의 동 서편과 북방을 취할 때에도 그곳의 연합한 이방 군대와 싸워야 했습니다. 그 적군의 수가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 했지요.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여호수아에게는 두려움이나 낙심이 아니라 오직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만이 있을 뿐이었지요. 그러니 항상 하나님께서 책임지셔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과 권능을 친히 이 제단을 통해서 나타내 행해 보여 주시는 것을 여러분들도 아십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정녕 믿음으로 바라보고 절대 포기하지 않으며 믿음으로 순종하여 행하기만 하심으로 우리가 이루게 될 과업을 온전히 이루는 데 큰 힘이 되어 주시길 바랍니다.
3) 자신의 성결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처음 하나님을 만나 믿음의 1단계에서 지금의 믿음으로 성장하기까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믿고 바라봐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마음을 영으로 일구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 나와질 것을 기대하시며 바라봐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도 자신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한 자녀로 나와질 것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도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는 믿음과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하지요. 그리고 마음의 심비에 새겨서 행함으로 나타내 보일 때 어느 순간 깊숙이 영으로 들어와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지금 당장 육의 모습이 발견된다 하여 낙심하며 포기하는 사람이라면 영적인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성결도 영적인 믿음으로 바라본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믿음이 변함없으며 흔들림이 없습니다. 성결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비진리와 육의 마음을 발견하면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러한 축복도 성결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에게 임한다는 사실입니다. 영의 흐름을 타고 어찌하든 영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하는 사람에게 성령도 도우시고 늘 깨우침을 주시는 것이지요.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능히 성결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여러분들은 영을 사모하여 어찌하든 영으로 들어가기 원하시지요? 그러면 많은 일들이 믿음으로 가능한 것처럼 성결도 능히 이룰 수 있음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변함없이 노력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이제는 목자가 이끌어서가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가 영의 흐름을 주도해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을 가지되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포기라는 것이 없으며 자신의 성결에 대해서도 믿음으로 바라봄으로 신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크신 영광과 놀라운 축복들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