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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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14
제36과십계명(8)
출 20:15
읽을말씀 : 출 20:15 | 외울말씀 : 말 3:8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8계명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온전히 지켜 행함으로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출애굽기 20:15을 보면 "도적질하지 말지니라"라는 십계명 중 여덟 번째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전에 보면 도적질이란 '잘못된 목적을 위하여 잘못된 수단으로 재물을 다루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지요. 즉 자기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을 취해 오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중에는 '이 계명만큼은 자신 있게 지켜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도적질의 영적인 의미를 분명하게 알아야 온전히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도적질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두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남의 것을 취하는 육적인 의미의 도적질
육적인 의미의 도적질이란,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 것인 양 남의 것을 취해 오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훔치지 않았다면 도적질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직접 훔치지 않았다 해도 도적질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절도, 강도, 사기, 횡령 등 타인의 것을 취하는 경우뿐 아니라 상대를 속이는 것도 도적질에 해당합니다. 어떤 물건을 속여 팔아서 이익을 과다하게 남긴다거나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아니하고 남의 것을 사용하는 경우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도적질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친구 사이거나, 허물없이 다정한 사이라 해도 허락 없이 사용한다면 이것도 엄밀한 도적질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남의 것을 훔쳐야만 도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취하여 마음에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도적질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니면 주인의 허락을 받고 사용하거나 취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지요. 가령 어떤 성도 가정에 심방을 갔는데 마침 그분이 출타중이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목이 마르다고 해서 냉장고 문을 열고 마음대로 음료수를 마신다거나 음식을 꺼내 먹었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도적질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이런 사소한 것이 쌓이게 되면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나중에 어떤 큰 일을 저지르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합당하게 여기시지 않는 것입니다. 흔히 죄라고 하면 큰 것만 생각하기 쉬우나 죄 가운데는 아주 작은 것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 해도 한 번 행할 때와 열 번 행했을 때의 마음은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도적질을 거듭하면 할수록 그만큼 양심이 무디어지기 때문에 나중에는 양심의 가책도 느낄 줄 모르게 되고 큰 것도 서슴없이 도적질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죄악의 시초가 되는 것은 아예 용납하지 말고 단호히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당한 뇌물을 받는 것도 도적질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3:8을 보면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날 뇌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죄악들이 발생하고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남의 것을 탐내지 말며, 자기 것이 아니면 조금도 취하려는 마음이 없어야 도적질하는 죄를 범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영적인 의미의 도적질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도적질이라고 하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남의 것을 취하는 육적인 의미의 도적질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은 의롭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여 도적질하는 죄를 범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의미의 도적질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경우
말라기 3:8-9을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 곧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였기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것을 도적질해도 떨리고 무서운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의 것을 어찌 도적질할 수 있겠습니까? 십일조는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여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 되므로 저주가 임하게 되지요. 이 세상에서도 도적질을 하는 죄를 범하면 경중에 따라서 형량이 정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면 경중에 따라 물질의 어려움을 당하고 각종 시험 환난과 질병 등이 틈타는 것입니다.
말라기 3:10-12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란 수입 전체에서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입니다. 고정적인 수입 외에도 식사를 대접받았거나 기타 선물을 받았다면 이런 부수입도 계산하여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자연의 법칙과 같이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물질을 심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는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며 물질의 축복을 넘치게 주십니다.
다음은 헌물을 도적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헌물이란 감사예물을 뜻하는데 하나님의 자녀는 범사에 감사해야 하며 감사한 마음을 행함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감사의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에 이르고, 귀한 직분을 받아 사명을 감당하며, 시험 환난으로부터 지킴받는 등 여러 모로 은혜를 받았으면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집안에 우환질고가 끊이질 않고 사업도 잘 되지 않는 등 어려움이 많았던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 앞에 드렸더니 사고가 떠나가고 질병이 물러가며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으로 변화되었다는 간증이 많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도적질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 영광돌리며 복된 삶을 영위하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 모두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경우
영적인 도적질에는 이렇게 십일조와 헌물 외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23:30-32을 보면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몽사는 꿈을 말하는데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거짓 몽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것일까요?
자기 생각 속에서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에 대하여 이러한 꿈을 보여 주셨다."고 한다든가, 자기 생각 속에서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환상을 보여 주셨다."고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잘못 전해 주는 경우입니다.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도 있지만 자기 생각 속에 꾼 꿈이 있으며, 원수 마귀 사단이 주는 꿈도 있습니다. 그러니 꿈을 잘못 분별하고 상대에게 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오류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또한 사단이 준 환상을 보고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혹을 받는 경우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이런 것을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하며 미혹을 받는 일이 결코 없어야겠습니다.
심지어는 거짓으로 예언하는 사람도 많이 있는데 아무리 그럴 듯하게 해도 결과를 보면 거짓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무 때나 예언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경우, 곧 하나님의 섭리 속에 악이 없는 성결된 사람들을 택하여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자기 생각이나, 스스로의 감동함 속에서 나온 것을 예언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한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적질에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육적인 도적질뿐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취하는 영적인 도적질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으니 결코 도적질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진실한 믿음을 소유하여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8계명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온전히 지켜 행함으로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출애굽기 20:15을 보면 "도적질하지 말지니라"라는 십계명 중 여덟 번째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전에 보면 도적질이란 '잘못된 목적을 위하여 잘못된 수단으로 재물을 다루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지요. 즉 자기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을 취해 오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중에는 '이 계명만큼은 자신 있게 지켜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도적질의 영적인 의미를 분명하게 알아야 온전히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도적질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두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육적인 의미의 도적질이란,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 것인 양 남의 것을 취해 오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훔치지 않았다면 도적질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직접 훔치지 않았다 해도 도적질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절도, 강도, 사기, 횡령 등 타인의 것을 취하는 경우뿐 아니라 상대를 속이는 것도 도적질에 해당합니다. 어떤 물건을 속여 팔아서 이익을 과다하게 남긴다거나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아니하고 남의 것을 사용하는 경우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도적질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친구 사이거나, 허물없이 다정한 사이라 해도 허락 없이 사용한다면 이것도 엄밀한 도적질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남의 것을 훔쳐야만 도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취하여 마음에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도적질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니면 주인의 허락을 받고 사용하거나 취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지요. 가령 어떤 성도 가정에 심방을 갔는데 마침 그분이 출타중이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목이 마르다고 해서 냉장고 문을 열고 마음대로 음료수를 마신다거나 음식을 꺼내 먹었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도적질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이런 사소한 것이 쌓이게 되면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나중에 어떤 큰 일을 저지르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합당하게 여기시지 않는 것입니다. 흔히 죄라고 하면 큰 것만 생각하기 쉬우나 죄 가운데는 아주 작은 것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 해도 한 번 행할 때와 열 번 행했을 때의 마음은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도적질을 거듭하면 할수록 그만큼 양심이 무디어지기 때문에 나중에는 양심의 가책도 느낄 줄 모르게 되고 큰 것도 서슴없이 도적질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죄악의 시초가 되는 것은 아예 용납하지 말고 단호히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당한 뇌물을 받는 것도 도적질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3:8을 보면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날 뇌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죄악들이 발생하고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남의 것을 탐내지 말며, 자기 것이 아니면 조금도 취하려는 마음이 없어야 도적질하는 죄를 범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도적질이라고 하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남의 것을 취하는 육적인 의미의 도적질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은 의롭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여 도적질하는 죄를 범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의미의 도적질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말라기 3:8-9을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 곧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였기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것을 도적질해도 떨리고 무서운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의 것을 어찌 도적질할 수 있겠습니까? 십일조는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여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 되므로 저주가 임하게 되지요. 이 세상에서도 도적질을 하는 죄를 범하면 경중에 따라서 형량이 정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면 경중에 따라 물질의 어려움을 당하고 각종 시험 환난과 질병 등이 틈타는 것입니다.
말라기 3:10-12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란 수입 전체에서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입니다. 고정적인 수입 외에도 식사를 대접받았거나 기타 선물을 받았다면 이런 부수입도 계산하여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자연의 법칙과 같이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물질을 심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는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며 물질의 축복을 넘치게 주십니다.
다음은 헌물을 도적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헌물이란 감사예물을 뜻하는데 하나님의 자녀는 범사에 감사해야 하며 감사한 마음을 행함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감사의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에 이르고, 귀한 직분을 받아 사명을 감당하며, 시험 환난으로부터 지킴받는 등 여러 모로 은혜를 받았으면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집안에 우환질고가 끊이질 않고 사업도 잘 되지 않는 등 어려움이 많았던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 앞에 드렸더니 사고가 떠나가고 질병이 물러가며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으로 변화되었다는 간증이 많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도적질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 영광돌리며 복된 삶을 영위하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 모두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도적질에는 이렇게 십일조와 헌물 외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23:30-32을 보면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몽사는 꿈을 말하는데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거짓 몽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것일까요?
자기 생각 속에서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에 대하여 이러한 꿈을 보여 주셨다."고 한다든가, 자기 생각 속에서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환상을 보여 주셨다."고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잘못 전해 주는 경우입니다.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도 있지만 자기 생각 속에 꾼 꿈이 있으며, 원수 마귀 사단이 주는 꿈도 있습니다. 그러니 꿈을 잘못 분별하고 상대에게 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오류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또한 사단이 준 환상을 보고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혹을 받는 경우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이런 것을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하며 미혹을 받는 일이 결코 없어야겠습니다.
심지어는 거짓으로 예언하는 사람도 많이 있는데 아무리 그럴 듯하게 해도 결과를 보면 거짓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무 때나 예언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경우, 곧 하나님의 섭리 속에 악이 없는 성결된 사람들을 택하여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자기 생각이나, 스스로의 감동함 속에서 나온 것을 예언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한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적질에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육적인 도적질뿐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취하는 영적인 도적질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으니 결코 도적질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진실한 믿음을 소유하여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09-07
제35과십계명(7)
출 20:14
읽을말씀 : 출 20:14 | 외울말씀 : 골 3:5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7계명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계명을 지킴으로 칭찬받는 신앙인이 될 뿐 아니라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출애굽기 20:14을 보면 "간음하지 말지니라"는 제7계명이 나옵니다. '간음'의 사전적인 의미는 부부가 아닌 다른 남녀가 음란한 성적 관계를 맺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간음은 이런 육적인 간음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간음에 대해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영적인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인 간음이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육적인 간음 역시 근원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 정욕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5-6을 보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며 믿음이 있다 해도 마음에서 탐심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보다 세상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제2계명에 나오는 우상과 제7계명의 영적인 간음은 어떻게 다를까요? 우상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형태가 없는 신을 불상과 같이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과 믿는다는 사람들이 믿음이 연약하여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우상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여 온전히 진리 안에서 살아가지 못할 때는 하나님보다 남편이나 아내, 자녀를 더 사랑하고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 등을 더 사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간음은 믿음이 있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물질이나 가족 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이때는 영적인 간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과 영적인 간음은 차이가 있으므로 잘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나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할지라도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했을 때 이를 우상을 섬겼다고 하는 것이지, 영적인 간음을 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간음을 얼마나 싫어하시는가를 성경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예레미야 3:8을 보면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임금 이후 하나님을 배역하고 영적인 간음을 행함으로 인하여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를 회개치 않고 있다가 결국 멸망하게 되었는데 이를 보고도 남유다가 계속하여 우상을 섬기므로 영적인 간음을 행한다고 엄히 지적하신 것입니다.
야고보서 4:4을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 되어 주시고 우리는 주님의 신부가 되어 영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신랑이 되시니 믿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과 타협하여 벗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신부된 자격을 잃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간음하는 여자에게 '나의 사랑하는 신부여'라고 말씀할 수는 없지요.
2. 마음의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27-28을 보면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흔히 간음을 남녀간의 불륜관계만 생각하기 쉬운데, 주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간음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어도 마음에 상대방을 그리며 행위를 상상한다면 간음이 된다는 것이지요. 오늘날은 비디오나 스크린,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서 그러한 행위를 상상하며 즐기는 경우가 많은데 모두 간음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진리와 전혀 상관없는 것은 보거나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러한 마음의 간음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불같은 기도를 통하여 성령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간음하는 마음을 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간음의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임이나 잡지 등 음란물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생각이 떠오른다 해도 생각의 방향을 바꿔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행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시고 마음 중심을 기뻐하심으로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두 번 하다 그치는 것이 아니요, 한 달이 되든, 1년, 2년, 3년이 되든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해 나간다면 능히 마음의 간음을 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생각을 바꿔 나감으로 차단할 수 있는 단계를 통과하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는 음란한 장면을 보았다 해도 내가 생각하지 않아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마음의 간음은 느낌과 함께 생각을 통해 오는 것인데 이 생각 자체를 차단하고 지배해 버리니 마음으로 죄가 틈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냥 생각이 되지 않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좋지 않은 장면을 보았다 해도 전혀 내 생각 속에서 동요가 없으므로 간음하려는 마음이 일지 않게 됩니다. 더 나아가면 일부러 생각하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어떠한 음욕을 생각하려고 해도 생각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죄성 자체를 뽑아 버렸기에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듣는다 해도 느낌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진리가 아닌 것은 아예 떠오르지 않는 것이지요.
물론 간음을 버리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혹여 생각 속에 순간 틈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간음했다고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생각 속에 틈탄 것을 계속 받아들여서 상상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큰 죄가 되지만 깨닫는 즉시 회개하고 온전히 성결되고자 노력해 나갈 때는 하나님께서도 은혜와 능력을 주시고 승리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3. 육체의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6:32에는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하였고, 레위기 20:10에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6:9-10을 보면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하시며 육체의 간음을 하는 자도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셨지요. 육체의 간음은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을 파멸시키는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을 들었을 때 육체의 간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간음을 가장 싫어하시며 그 다음에는 마음의 간음이요, 그 다음이 육체의 간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의 간음이 있으므로 육체의 간음이 오는 것이니 마음에서 간음이 없어지면 육체의 간음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간음은 큰 죄로 여기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는 범할 수 없는 큰 죄이지요.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성령의 전입니다. 로마서 12:1을 보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거하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여 말씀에 위배된 일이 있다면 반드시 돌이켜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아야 할 것이고, 초신자여서 진리를 몰라 간음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부로 정죄할 것이 아니라, 그가 진리를 깨우치고 죄를 버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영적인 간음, 마음의 간음, 육체의 간음을 모두 벗어버리고 거룩한 행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모든 계명들을 지켜 행함으로 축복된 삶을 영위할 뿐 아니라,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된 자격을 잘 갖추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7계명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계명을 지킴으로 칭찬받는 신앙인이 될 뿐 아니라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출애굽기 20:14을 보면 "간음하지 말지니라"는 제7계명이 나옵니다. '간음'의 사전적인 의미는 부부가 아닌 다른 남녀가 음란한 성적 관계를 맺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간음은 이런 육적인 간음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간음에 대해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영적인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인 간음이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육적인 간음 역시 근원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 정욕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5-6을 보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며 믿음이 있다 해도 마음에서 탐심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보다 세상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제2계명에 나오는 우상과 제7계명의 영적인 간음은 어떻게 다를까요? 우상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형태가 없는 신을 불상과 같이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과 믿는다는 사람들이 믿음이 연약하여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우상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여 온전히 진리 안에서 살아가지 못할 때는 하나님보다 남편이나 아내, 자녀를 더 사랑하고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 등을 더 사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간음은 믿음이 있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물질이나 가족 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이때는 영적인 간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과 영적인 간음은 차이가 있으므로 잘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나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할지라도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했을 때 이를 우상을 섬겼다고 하는 것이지, 영적인 간음을 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간음을 얼마나 싫어하시는가를 성경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예레미야 3:8을 보면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임금 이후 하나님을 배역하고 영적인 간음을 행함으로 인하여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를 회개치 않고 있다가 결국 멸망하게 되었는데 이를 보고도 남유다가 계속하여 우상을 섬기므로 영적인 간음을 행한다고 엄히 지적하신 것입니다.
야고보서 4:4을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 되어 주시고 우리는 주님의 신부가 되어 영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신랑이 되시니 믿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과 타협하여 벗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신부된 자격을 잃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간음하는 여자에게 '나의 사랑하는 신부여'라고 말씀할 수는 없지요.
2. 마음의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27-28을 보면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흔히 간음을 남녀간의 불륜관계만 생각하기 쉬운데, 주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간음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어도 마음에 상대방을 그리며 행위를 상상한다면 간음이 된다는 것이지요. 오늘날은 비디오나 스크린,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서 그러한 행위를 상상하며 즐기는 경우가 많은데 모두 간음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진리와 전혀 상관없는 것은 보거나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러한 마음의 간음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불같은 기도를 통하여 성령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간음하는 마음을 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간음의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임이나 잡지 등 음란물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생각이 떠오른다 해도 생각의 방향을 바꿔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행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시고 마음 중심을 기뻐하심으로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두 번 하다 그치는 것이 아니요, 한 달이 되든, 1년, 2년, 3년이 되든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해 나간다면 능히 마음의 간음을 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생각을 바꿔 나감으로 차단할 수 있는 단계를 통과하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는 음란한 장면을 보았다 해도 내가 생각하지 않아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마음의 간음은 느낌과 함께 생각을 통해 오는 것인데 이 생각 자체를 차단하고 지배해 버리니 마음으로 죄가 틈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냥 생각이 되지 않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좋지 않은 장면을 보았다 해도 전혀 내 생각 속에서 동요가 없으므로 간음하려는 마음이 일지 않게 됩니다. 더 나아가면 일부러 생각하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어떠한 음욕을 생각하려고 해도 생각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죄성 자체를 뽑아 버렸기에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듣는다 해도 느낌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진리가 아닌 것은 아예 떠오르지 않는 것이지요.
물론 간음을 버리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혹여 생각 속에 순간 틈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간음했다고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생각 속에 틈탄 것을 계속 받아들여서 상상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큰 죄가 되지만 깨닫는 즉시 회개하고 온전히 성결되고자 노력해 나갈 때는 하나님께서도 은혜와 능력을 주시고 승리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3. 육체의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6:32에는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하였고, 레위기 20:10에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6:9-10을 보면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하시며 육체의 간음을 하는 자도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셨지요. 육체의 간음은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을 파멸시키는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을 들었을 때 육체의 간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간음을 가장 싫어하시며 그 다음에는 마음의 간음이요, 그 다음이 육체의 간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의 간음이 있으므로 육체의 간음이 오는 것이니 마음에서 간음이 없어지면 육체의 간음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간음은 큰 죄로 여기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는 범할 수 없는 큰 죄이지요.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성령의 전입니다. 로마서 12:1을 보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거하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여 말씀에 위배된 일이 있다면 반드시 돌이켜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아야 할 것이고, 초신자여서 진리를 몰라 간음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부로 정죄할 것이 아니라, 그가 진리를 깨우치고 죄를 버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영적인 간음, 마음의 간음, 육체의 간음을 모두 벗어버리고 거룩한 행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모든 계명들을 지켜 행함으로 축복된 삶을 영위할 뿐 아니라,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된 자격을 잘 갖추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8-31
제33과십계명(6)
출 20:13
읽을말씀 : 출 20:13 | 외울말씀 : 요일 3:15
교육목표 :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십계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한다.
1. 육적인 살인은 물론, 영적인 살인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0:13에 제6계명으로 "살인하지 말지니라" 말씀하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듯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문자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육적으로 죽이는 것도 큰 죄이지만 영적인 살인은 더 큰 죄가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는 살인하지 않았으니 제6계명은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쉬우나 영적인 의미를 알고 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육적인 살인은 나라의 법에 크게 저촉받는 죄이므로 하나님 앞에서도 당연히 죄가 되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방인도 큰 죄로 여기는 살인죄를 범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육적인 살인에는 실수나 부주의로 인한 교통사고 등으로 살인하는 경우가 있으며, 가족계획이라는 미명 하에 낙태를 시켜 살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자살하는 것도 살인에 해당됩니다. 이는 내세의 심판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지요.
그러면 영적인 살인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자녀를 실족시키는 것이 바로 영적인 살인입니다. 실족(失足)이란 발을 잘못 디딘다는 사전적인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바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참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8:7을 보면 예수님께서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말씀하시며 실족케 하는 사람에게 화가 미치게 됨을 경고하셨습니다.
2. 영적인 살인의 구체적인 예
1) 진리에 어긋난 말을 전하는 것은 영적인 살인이 됩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진리를 잘못 가르쳐 줌으로 죄를 범하게 하였다면 이는 영적인 살인에 해당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5:39). 그런데 오른뺨을 맞고 흥분하여 상담을 요청해 올 때, 당신도 지지 말고 같이 때려 주어야 한다고 하며 진리에 어긋나게 가르쳐 줬다면 결국 상대를 실족시킨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온전히 거룩하게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후에는 놀러가거나 오락을 취해도 괜찮다며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도록 가르쳤다면 진리에 어긋난 가르침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0:25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하셨는데, 바쁜 세상에 어떻게 자주 모일 수 있느냐며 모이기를 폐하도록 가르친다면 이것도 영혼을 실족시키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가르쳐 주면 금방 실족당하지는 않더라도 진리를 잘못 앎으로 점점 죄와 타협하게 되니 결국 영적 살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중상모략을 하고 분당을 시키거나 상대의 말만 듣고 사실이 아닌 말을 사실인 것처럼 전하는 것도 실족시키는 경우입니다. 일반적으로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말을 전할 때 그가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기분 나쁘게 여길 줄 압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악함으로 입술을 제어치 못하고 전하여 상대가 상처를 받게 되니 영적 살인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당신의 흉을 보더라."고 전해서 서로 감정을 갖고 미워하도록 했다면 이는 사단의 역사이며 형제를 살인하는 것이요, 실족시키는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형제의 티를 보고 지적하는 것이 곧 영적 살인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대를 칭찬하는 말이나 좋은 말이 아니면 굳이 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에 자신이 악함으로 스스로 실족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초신자가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왜 저런가?' 한다면 그 형제가 실족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악이 있으므로 스스로 실족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존경했던 사람이 어느 날 거짓말을 하거나 비진리를 행하는 것을 발견한 후 실망하여 하나님을 떠났다면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신앙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믿고 섬겼다면 사람 때문에 실족당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악이 있으므로 스스로 실족당하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사는 선한 사람은 그런 것을 보았다 해도 오히려 긍휼히 여기고 기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 살다가 교회에 나와서 회개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능력을 받아 빛 가운데 살아갈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성도의 도리이지요. 우리가 먼저 진리의 빛을 밝혀 줌으로써 그들이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동일하신 분입니다. 만일 누구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나오지 않는다면 참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람 편에서 믿었다 안 믿었다 하는 어리석은 행위일 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스스로 실족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요.
때론 아무리 진리의 말씀이어도 전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갓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이제 교회에 나오게 되었으니 술 담배를 완전히 끊어야 합니다. 주일에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합니다."라고 권면한다면 부담이 되어 교회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도 실족시키는 것이 될 수 있으므로 설령 진리의 말씀이라 해도 전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분별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혹 잘못 전달되었다 해도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지 않지만 그에 따른 보응은 받게 됩니다. 보응이 따른다고 해서 즉시 징계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성령의 역사를 깨우치지 못한 상태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형통함을 받지 못하게 하셔서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실족시키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의 마음을 닮으면 닮을수록 실족시키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실족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가룟 유다는 자신이 악하므로 스스로 실족을 당한 것이지요. 그러니 자신이 악함으로 인해 살인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진리를 알지 못할 때는 실수하여 상대를 실족시키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곧 회개할 수 있으나 진리를 알면서도 계속하여 상대를 실족시켜 나간다면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이 크게 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죄로 인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니 사단이 유혹하면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악의 모습을 벗어버리기 원하시며,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서 세상에서 잘못 입력된 구습들을 버려 나갈 때,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뿐 아니라 간구와 기도에 응답을 받아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진리를 행치 않는 모든 것들이 영적인 살인에 해당됩니다
영적인 살인은 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하며, 진리 속에 행치 않는 것을 뜻합니다. 진리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형제를 판단, 정죄하거나 티를 보고 이간질시키는 것 등은 다 말씀에 위배되지요. 진리에 어긋나고, 진실이 없는 말이나 태도 등은 사단이 역사하여 결국 영적인 살인을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며, 형제에게 욕설을 하는 마음속에는 미움과 더 나아가 살인할 수 있는 의지가 숨어 있으므로 미움은 살인하는 행위와 다름없습니다(마 5:21-22 ; 요일 3:15).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여전히 남을 비방하고 중상모략하거나 이간하고 헐뜯는다면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며 영적으로 살인하는 것입니다.
만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가 보인다면 내 마음에 악한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마 7:3). 또한 형제의 잘못과 부족한 모습이 보이는 것은 내 마음에 사랑이 없음을 깨달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하시며,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며 원수가 주릴 때 먹이며 목마를 때 마시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살지 않으면 그것이 올무가 되어 사단의 역사를 받으므로 영혼을 실족시킬 수 있으니 날마다 육체의 일들과 육신의 일들을 벗어버리고 진리 안에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버리고 진리 안에 온전히 서게 되면 진실만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직 기도하며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이와 더불어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주관해 주심으로 비진리를 버리고, 절제할 수 있는 힘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주어지게 됩니다. 결국 때가 되면 비진리는 모두 벗어지고 거룩함이 임하므로 진리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들을 잘 지켜 행함으로 마음껏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십계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한다.
1. 육적인 살인은 물론, 영적인 살인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0:13에 제6계명으로 "살인하지 말지니라" 말씀하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듯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문자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육적으로 죽이는 것도 큰 죄이지만 영적인 살인은 더 큰 죄가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는 살인하지 않았으니 제6계명은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쉬우나 영적인 의미를 알고 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육적인 살인은 나라의 법에 크게 저촉받는 죄이므로 하나님 앞에서도 당연히 죄가 되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방인도 큰 죄로 여기는 살인죄를 범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육적인 살인에는 실수나 부주의로 인한 교통사고 등으로 살인하는 경우가 있으며, 가족계획이라는 미명 하에 낙태를 시켜 살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자살하는 것도 살인에 해당됩니다. 이는 내세의 심판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지요.
그러면 영적인 살인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자녀를 실족시키는 것이 바로 영적인 살인입니다. 실족(失足)이란 발을 잘못 디딘다는 사전적인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바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참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8:7을 보면 예수님께서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말씀하시며 실족케 하는 사람에게 화가 미치게 됨을 경고하셨습니다.
2. 영적인 살인의 구체적인 예
1) 진리에 어긋난 말을 전하는 것은 영적인 살인이 됩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진리를 잘못 가르쳐 줌으로 죄를 범하게 하였다면 이는 영적인 살인에 해당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5:39). 그런데 오른뺨을 맞고 흥분하여 상담을 요청해 올 때, 당신도 지지 말고 같이 때려 주어야 한다고 하며 진리에 어긋나게 가르쳐 줬다면 결국 상대를 실족시킨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온전히 거룩하게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후에는 놀러가거나 오락을 취해도 괜찮다며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도록 가르쳤다면 진리에 어긋난 가르침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0:25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하셨는데, 바쁜 세상에 어떻게 자주 모일 수 있느냐며 모이기를 폐하도록 가르친다면 이것도 영혼을 실족시키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가르쳐 주면 금방 실족당하지는 않더라도 진리를 잘못 앎으로 점점 죄와 타협하게 되니 결국 영적 살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중상모략을 하고 분당을 시키거나 상대의 말만 듣고 사실이 아닌 말을 사실인 것처럼 전하는 것도 실족시키는 경우입니다. 일반적으로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말을 전할 때 그가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기분 나쁘게 여길 줄 압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악함으로 입술을 제어치 못하고 전하여 상대가 상처를 받게 되니 영적 살인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당신의 흉을 보더라."고 전해서 서로 감정을 갖고 미워하도록 했다면 이는 사단의 역사이며 형제를 살인하는 것이요, 실족시키는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형제의 티를 보고 지적하는 것이 곧 영적 살인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대를 칭찬하는 말이나 좋은 말이 아니면 굳이 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에 자신이 악함으로 스스로 실족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초신자가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왜 저런가?' 한다면 그 형제가 실족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악이 있으므로 스스로 실족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존경했던 사람이 어느 날 거짓말을 하거나 비진리를 행하는 것을 발견한 후 실망하여 하나님을 떠났다면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신앙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믿고 섬겼다면 사람 때문에 실족당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악이 있으므로 스스로 실족당하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사는 선한 사람은 그런 것을 보았다 해도 오히려 긍휼히 여기고 기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 살다가 교회에 나와서 회개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능력을 받아 빛 가운데 살아갈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성도의 도리이지요. 우리가 먼저 진리의 빛을 밝혀 줌으로써 그들이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동일하신 분입니다. 만일 누구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나오지 않는다면 참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람 편에서 믿었다 안 믿었다 하는 어리석은 행위일 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스스로 실족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요.
때론 아무리 진리의 말씀이어도 전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갓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이제 교회에 나오게 되었으니 술 담배를 완전히 끊어야 합니다. 주일에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합니다."라고 권면한다면 부담이 되어 교회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도 실족시키는 것이 될 수 있으므로 설령 진리의 말씀이라 해도 전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분별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혹 잘못 전달되었다 해도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지 않지만 그에 따른 보응은 받게 됩니다. 보응이 따른다고 해서 즉시 징계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성령의 역사를 깨우치지 못한 상태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형통함을 받지 못하게 하셔서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실족시키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의 마음을 닮으면 닮을수록 실족시키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실족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가룟 유다는 자신이 악하므로 스스로 실족을 당한 것이지요. 그러니 자신이 악함으로 인해 살인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진리를 알지 못할 때는 실수하여 상대를 실족시키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곧 회개할 수 있으나 진리를 알면서도 계속하여 상대를 실족시켜 나간다면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이 크게 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죄로 인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니 사단이 유혹하면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악의 모습을 벗어버리기 원하시며,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서 세상에서 잘못 입력된 구습들을 버려 나갈 때,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뿐 아니라 간구와 기도에 응답을 받아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진리를 행치 않는 모든 것들이 영적인 살인에 해당됩니다
영적인 살인은 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하며, 진리 속에 행치 않는 것을 뜻합니다. 진리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형제를 판단, 정죄하거나 티를 보고 이간질시키는 것 등은 다 말씀에 위배되지요. 진리에 어긋나고, 진실이 없는 말이나 태도 등은 사단이 역사하여 결국 영적인 살인을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며, 형제에게 욕설을 하는 마음속에는 미움과 더 나아가 살인할 수 있는 의지가 숨어 있으므로 미움은 살인하는 행위와 다름없습니다(마 5:21-22 ; 요일 3:15).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여전히 남을 비방하고 중상모략하거나 이간하고 헐뜯는다면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며 영적으로 살인하는 것입니다.
만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가 보인다면 내 마음에 악한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마 7:3). 또한 형제의 잘못과 부족한 모습이 보이는 것은 내 마음에 사랑이 없음을 깨달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하시며,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며 원수가 주릴 때 먹이며 목마를 때 마시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살지 않으면 그것이 올무가 되어 사단의 역사를 받으므로 영혼을 실족시킬 수 있으니 날마다 육체의 일들과 육신의 일들을 벗어버리고 진리 안에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버리고 진리 안에 온전히 서게 되면 진실만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직 기도하며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이와 더불어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주관해 주심으로 비진리를 버리고, 절제할 수 있는 힘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주어지게 됩니다. 결국 때가 되면 비진리는 모두 벗어지고 거룩함이 임하므로 진리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들을 잘 지켜 행함으로 마음껏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8-24
제33과십계명(5)
출 20:12
읽을말씀 : 출 20:12 | 외울말씀 : 요일 4:20
교육목표 :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십계명 중 제5계명을 살펴봄으로 부모를 공경하며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1. 영적인 부모를 공경하라
본문 출애굽기 20:12을 보면 제5계명이 나와 있는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부모란 나를 낳아 길러 준 아버지와 어머니를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잉태될 수 있는 생명의 근본된 씨앗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자녀를 낳아 길러 주는 육적인 부모가 있는가 하면 영적인 부모가 있는데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공경이라는 단어는 공손히 섬긴다는 뜻으로서, 삼가서 예를 차려 높인다는 의미입니다. 즉 윗사람에 대한 순종과 섬김을 의미하는 것이며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의 공경의 대상은 단지 육의 부모만이 아니라 영을 낳아 주신 하나님도 되십니다. 우리가 참 생명을 주신 영적인 부모 곧 하나님을 공경하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며 진리 안에서 살아가게 되므로 육적인 부모도 자연히 공경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육적인 부모를 공경하기에 앞서 영적인 부모이신 하나님을 먼저 공경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요한복음 1:12-13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본된 씨를 주신 아버지임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또한 로마서 8:15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곧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죄를 싸워 버려 나가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20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나를 낳아 주신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육의 부모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공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빛 가운데 나아가는 사람은 부모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기 전에도 육의 부모를 공경하여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하고 주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후에는 부모를 사랑하는 차원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로서의 육적인 사랑을 하였지만 주 안에 들어오면 영적인 사랑 차원에서 부모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얼마큼 하나님을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나를 낳아 주신 부모를 사랑하는 정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진리 안에 들어와서 죄를 버리고 육체의 일들을 벗어 버리며 온전히 말씀 가운데 살아갈 때는 나를 낳아 주신 부모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사랑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신 것을 깨닫고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니 그분의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육의 부모도 극진히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자녀가 있지만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여 효도하는 자녀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사랑이 식어져 가는 오늘날에는 부모를 지극히 사랑하는 자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도 착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부모를 극진히 공경하며 사랑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더욱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사랑으로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공경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주 안에서 육적인 부모를 공경하라
에베소서 6:1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 사이에 교제할 때는 친절하고 밝은 미소를 띠던 사람이 성전을 나가면 달라집니다. 가정에 돌아가서는 내가 언제 웃었느냐는 듯이 부모나 형제 혹은 남편에게 불친절하게 대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하며 기쁨이 충만하여 주의 종들에게 순종도 잘하지만 막상 성전을 떠나 집에 가서는 가족들과 화목을 이루지 못하고 윗사람에게 순종하지도 못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도 공경하지 못하는데 어찌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사랑하려고 하는 것뿐이지, 정녕 하나님을 공경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되고 변함이 없는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들도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든지 변함없는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지도 않고 우습게 여기거나 오히려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축복을 달라고 기도해도 응답이 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진정 부모를 공경하고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부모와의 세대 차이로 교육방법과 사고방식이 달라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내 생각이나 의견이 부모와 맞지 않다고 해서 답답히 여길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자신이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주고 이해해 드려야 합니다.
즉 내가 죽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장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지 말고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만일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해도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도리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3:20을 보면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되 먼저는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고 불평하거나 무례히 행치 말아야 합니다. 또한 부모의 생각이나 의견이 자신과 다르고 옳지 않다고 해도 함부로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아야 하지요. 어떤 일이 생길 경우 혹여라도 섭섭해하시지 않도록 양해를 구하되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하여 따라야 하므로 주일을 지키지 말라는 등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명하거나 요구할 때는 순종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면 순복하는 것이 자녀의 마땅한 도리인 것입니다.
3. 부모를 공경할 때 임하는 축복
그러면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지키면 어떠한 복이 임하게 될까요? 출애굽기 20:12을 보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셨고 에베소서 6:2-3을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생명이 길다는 것은 단순히 80세, 90세까지 장수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면 영혼이 잘되어 가며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함께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마귀가 왔다가도 일곱 길로 물러가는 것이요, 일터, 사업터도 축복을 받으며 불의의 사고나 질병, 시험 환난 등도 만나지 않고 항상 형통함을 입게 되니 이러한 모든 것을 통틀어 곧 생명이 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 부모님을 사랑하며 공경하고 계신지요? 만약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사랑하고 지극히 섬겨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십계명 중 제5계명을 살펴봄으로 부모를 공경하며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1. 영적인 부모를 공경하라
본문 출애굽기 20:12을 보면 제5계명이 나와 있는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부모란 나를 낳아 길러 준 아버지와 어머니를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잉태될 수 있는 생명의 근본된 씨앗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자녀를 낳아 길러 주는 육적인 부모가 있는가 하면 영적인 부모가 있는데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공경이라는 단어는 공손히 섬긴다는 뜻으로서, 삼가서 예를 차려 높인다는 의미입니다. 즉 윗사람에 대한 순종과 섬김을 의미하는 것이며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의 공경의 대상은 단지 육의 부모만이 아니라 영을 낳아 주신 하나님도 되십니다. 우리가 참 생명을 주신 영적인 부모 곧 하나님을 공경하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며 진리 안에서 살아가게 되므로 육적인 부모도 자연히 공경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육적인 부모를 공경하기에 앞서 영적인 부모이신 하나님을 먼저 공경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요한복음 1:12-13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본된 씨를 주신 아버지임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또한 로마서 8:15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곧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죄를 싸워 버려 나가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20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나를 낳아 주신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육의 부모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공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빛 가운데 나아가는 사람은 부모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기 전에도 육의 부모를 공경하여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하고 주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후에는 부모를 사랑하는 차원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로서의 육적인 사랑을 하였지만 주 안에 들어오면 영적인 사랑 차원에서 부모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얼마큼 하나님을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나를 낳아 주신 부모를 사랑하는 정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진리 안에 들어와서 죄를 버리고 육체의 일들을 벗어 버리며 온전히 말씀 가운데 살아갈 때는 나를 낳아 주신 부모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사랑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신 것을 깨닫고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니 그분의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육의 부모도 극진히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자녀가 있지만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여 효도하는 자녀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사랑이 식어져 가는 오늘날에는 부모를 지극히 사랑하는 자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도 착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부모를 극진히 공경하며 사랑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더욱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사랑으로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공경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주 안에서 육적인 부모를 공경하라
에베소서 6:1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 사이에 교제할 때는 친절하고 밝은 미소를 띠던 사람이 성전을 나가면 달라집니다. 가정에 돌아가서는 내가 언제 웃었느냐는 듯이 부모나 형제 혹은 남편에게 불친절하게 대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하며 기쁨이 충만하여 주의 종들에게 순종도 잘하지만 막상 성전을 떠나 집에 가서는 가족들과 화목을 이루지 못하고 윗사람에게 순종하지도 못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도 공경하지 못하는데 어찌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사랑하려고 하는 것뿐이지, 정녕 하나님을 공경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되고 변함이 없는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들도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든지 변함없는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지도 않고 우습게 여기거나 오히려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축복을 달라고 기도해도 응답이 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진정 부모를 공경하고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부모와의 세대 차이로 교육방법과 사고방식이 달라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내 생각이나 의견이 부모와 맞지 않다고 해서 답답히 여길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자신이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주고 이해해 드려야 합니다.
즉 내가 죽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장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지 말고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만일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해도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도리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3:20을 보면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되 먼저는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고 불평하거나 무례히 행치 말아야 합니다. 또한 부모의 생각이나 의견이 자신과 다르고 옳지 않다고 해도 함부로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아야 하지요. 어떤 일이 생길 경우 혹여라도 섭섭해하시지 않도록 양해를 구하되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하여 따라야 하므로 주일을 지키지 말라는 등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명하거나 요구할 때는 순종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면 순복하는 것이 자녀의 마땅한 도리인 것입니다.
3. 부모를 공경할 때 임하는 축복
그러면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지키면 어떠한 복이 임하게 될까요? 출애굽기 20:12을 보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셨고 에베소서 6:2-3을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생명이 길다는 것은 단순히 80세, 90세까지 장수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면 영혼이 잘되어 가며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함께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마귀가 왔다가도 일곱 길로 물러가는 것이요, 일터, 사업터도 축복을 받으며 불의의 사고나 질병, 시험 환난 등도 만나지 않고 항상 형통함을 입게 되니 이러한 모든 것을 통틀어 곧 생명이 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 부모님을 사랑하며 공경하고 계신지요? 만약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사랑하고 지극히 섬겨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8-17
제32과십계명(4)
출 20:8-11
읽을말씀 : 출 20:8-11 | 외울말씀 : 요일 3:21-22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계명들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진정 복 있는 사람, 뛰어난 사람이 되게 한다.
1. 안식일의 유래
십계명 중 제4계명은"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입니다. 안식일이란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 곧 주 안에서 편히 쉬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시대는 이날을 주의 날 혹은 주일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안식일의 유래는 하나님께서 엿새 만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는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것에 기인합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열심히 창조사역을 하신 후 칠일째 안식하셨기에 일곱째 날에는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셔서 하나님을 믿는 온 백성도 안식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창 2:3). 그래서 구약시대는 제칠일 토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졌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으며 이날을 주일이라 하는데, 왜 안식일이 일요일이 되었으며 '주일' 혹은 '주의 날'이라고 칭하게 되었을까요?
2. 신약시대에 안식일이 주일이 된 이유
마태복음 12:8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모든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바로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 새벽 미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아 영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역사를 마치신 제칠일 곧 토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졌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구원의 역사를 마치시고 부활하신 일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를 예언해 놓으셨는데,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해서 안식 후 첫날에 드리라고 했습니다(레 23:10-11). 곧 첫 열매를 안식 후 첫날에 드리라는 구약의 말씀이 부활의 첫열매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의 첫열매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달력을 보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 바로 일요일을 한 주간의 첫날로 정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생명을 얻고 참 기쁨과 참 안식을 얻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함께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해 영이 죽으니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도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자마다 부활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데 이것이 바로 영적인 부활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공중강림하시면 무덤에 있는 사람들이 썩지 아니할 부활체로 나와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며 살아 있는 사람도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이 함께 이루어져 온전한 부활체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요일 새벽 미명에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심으로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갖고 이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므로 일곱째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지만, 신약시대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권세를 깨뜨린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이를 주님의 날 곧 주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행 20:7 ; 고전 16:2).
3.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려면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영적인 세계의 주인이심과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자신뿐 아니라 자녀들이나 일을 하는 일꾼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가축과 내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을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출 20:10).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주일 대예배는 축도로 끝을 맺으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믿음으로 축도를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한 주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일까요?
첫째, 주 안에서 영적인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안식한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오락을 즐기며 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쉼에 불과한 것이며 이러한 육적인 안식은 몸의 피로를 풀어 줄 수는 있지만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안식은 이러한 육적인 쉼이 아니요, 영적인 쉼 곧 참된 안식입니다.
영적인 안식이란 주일에는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진리 안에서 마음에 참된 기쁨과 평안을 얻고 영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일에는 오전 예배뿐만 아니라 오후 예배도 드려서 온전히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과 온전히 영적으로 교통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참된 안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여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복을 주십니다. 한 주간을 지켜 주셔서 시험 환난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사고와 질병, 위험으로부터 막아 주시며 혹여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고 범사에 형통하도록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주일에는 매매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느헤미야 13:17-18을 보면 예루살렘의 총독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 매매하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고 꾸짖으며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악이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즉 안식일에 매매 행위를 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악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영원한 생명과 직결되므로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범했기 때문에 모든 재앙이 임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곧 안식일을 범한 것은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치 않고 거룩한 날 복 주시겠다고 한 말씀을 믿지 않은 결과이니 공의의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수 마귀가 와서 시험 환난을 갖다 주며 재앙도 가져다주게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13:19에는 안식일 전날 어두워 갈 때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문을 닫듯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면 사업터의 문을 닫아 매매를 금하고 주 안에서 영적인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주일에 매매 행위를 허용할 수 있는 몇 가지 특별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가대원들이 식사해야 하는데 식당이 없다면 사 주어도 무방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요, 이러한 것은 주님을 위해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성도들이 예배를 충만하게 드릴 수 있도록 편의를 돕기 위해 교회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것은 가능하나 이익금은 개인이 사용해서는 안 되며 구제나 선교 등 선한 사업에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주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주일예배를 드린 후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중심에서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주일을 지키되 그 형제를 위해서는 가서 축하를 해 주어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니 혹여 서운하게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를 해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다른 점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진리의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2:10-12에 예수님을 송사하고자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묻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하시면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을 옳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병든 사람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의사나 간호사, 국가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 군인, 경찰 등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일에 업무를 보는 것은 나라를 위해 선을 행하는 일이니 주일예배를 드리고 업무를 처리한다해서 죄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 마음에서는 진정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해 예비하신 날로 세상의 일이나 오락을 금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영적인 쉼을 얻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이요,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온전하고 거룩히 지키심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계명들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진정 복 있는 사람, 뛰어난 사람이 되게 한다.
1. 안식일의 유래
십계명 중 제4계명은"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입니다. 안식일이란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 곧 주 안에서 편히 쉬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시대는 이날을 주의 날 혹은 주일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안식일의 유래는 하나님께서 엿새 만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는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것에 기인합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열심히 창조사역을 하신 후 칠일째 안식하셨기에 일곱째 날에는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셔서 하나님을 믿는 온 백성도 안식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창 2:3). 그래서 구약시대는 제칠일 토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졌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으며 이날을 주일이라 하는데, 왜 안식일이 일요일이 되었으며 '주일' 혹은 '주의 날'이라고 칭하게 되었을까요?
2. 신약시대에 안식일이 주일이 된 이유
마태복음 12:8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모든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바로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 새벽 미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아 영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역사를 마치신 제칠일 곧 토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졌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구원의 역사를 마치시고 부활하신 일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를 예언해 놓으셨는데,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해서 안식 후 첫날에 드리라고 했습니다(레 23:10-11). 곧 첫 열매를 안식 후 첫날에 드리라는 구약의 말씀이 부활의 첫열매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의 첫열매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달력을 보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 바로 일요일을 한 주간의 첫날로 정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생명을 얻고 참 기쁨과 참 안식을 얻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함께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해 영이 죽으니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도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자마다 부활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데 이것이 바로 영적인 부활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공중강림하시면 무덤에 있는 사람들이 썩지 아니할 부활체로 나와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며 살아 있는 사람도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이 함께 이루어져 온전한 부활체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요일 새벽 미명에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심으로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갖고 이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므로 일곱째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지만, 신약시대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권세를 깨뜨린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이를 주님의 날 곧 주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행 20:7 ; 고전 16:2).
3.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려면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영적인 세계의 주인이심과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자신뿐 아니라 자녀들이나 일을 하는 일꾼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가축과 내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을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출 20:10).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주일 대예배는 축도로 끝을 맺으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믿음으로 축도를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한 주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일까요?
첫째, 주 안에서 영적인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안식한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오락을 즐기며 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쉼에 불과한 것이며 이러한 육적인 안식은 몸의 피로를 풀어 줄 수는 있지만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안식은 이러한 육적인 쉼이 아니요, 영적인 쉼 곧 참된 안식입니다.
영적인 안식이란 주일에는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진리 안에서 마음에 참된 기쁨과 평안을 얻고 영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일에는 오전 예배뿐만 아니라 오후 예배도 드려서 온전히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과 온전히 영적으로 교통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참된 안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여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복을 주십니다. 한 주간을 지켜 주셔서 시험 환난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사고와 질병, 위험으로부터 막아 주시며 혹여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고 범사에 형통하도록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주일에는 매매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느헤미야 13:17-18을 보면 예루살렘의 총독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 매매하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고 꾸짖으며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악이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즉 안식일에 매매 행위를 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악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영원한 생명과 직결되므로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범했기 때문에 모든 재앙이 임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곧 안식일을 범한 것은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치 않고 거룩한 날 복 주시겠다고 한 말씀을 믿지 않은 결과이니 공의의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수 마귀가 와서 시험 환난을 갖다 주며 재앙도 가져다주게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13:19에는 안식일 전날 어두워 갈 때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문을 닫듯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면 사업터의 문을 닫아 매매를 금하고 주 안에서 영적인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주일에 매매 행위를 허용할 수 있는 몇 가지 특별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가대원들이 식사해야 하는데 식당이 없다면 사 주어도 무방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요, 이러한 것은 주님을 위해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성도들이 예배를 충만하게 드릴 수 있도록 편의를 돕기 위해 교회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것은 가능하나 이익금은 개인이 사용해서는 안 되며 구제나 선교 등 선한 사업에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주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주일예배를 드린 후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중심에서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주일을 지키되 그 형제를 위해서는 가서 축하를 해 주어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니 혹여 서운하게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를 해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다른 점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진리의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2:10-12에 예수님을 송사하고자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묻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하시면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을 옳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병든 사람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의사나 간호사, 국가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 군인, 경찰 등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일에 업무를 보는 것은 나라를 위해 선을 행하는 일이니 주일예배를 드리고 업무를 처리한다해서 죄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 마음에서는 진정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해 예비하신 날로 세상의 일이나 오락을 금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영적인 쉼을 얻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이요,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온전하고 거룩히 지키심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8-10
제31과십계명(3)
출 20:7
읽을말씀 : 출 20:7 | 외울말씀 : 요일 4:20
교육목표 :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아 성령의 인도함 속에 온전히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게 한다.
1. 제 3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중에서 제3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입니다(출 20:7).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고 있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엄위하심을 나타내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 출애굽기 3:14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자신에 대해 알려 주셨듯이, 여호와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감히 읽을 수가 없어서 <아도나이> 곧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토록 여호와라는 이름은 거룩하고 존귀한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13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우주 만물과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존귀한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신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주 만물을 보아도 조물주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마음이 강퍅한 사람은 이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 14:1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존귀하신 분이므로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어서는 안 됩니다.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은 언행이 정상을 벗어난 상태를 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를 죄 없다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신 5:11).
오늘날은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마치 말씀하신 것처럼 거짓되이 전하거나, 농담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넣는다면 하나님께서 결코 죄 없다 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말고 진실되이 경외하며 섬겨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죄가 되는 이유
1)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구약시대는 선한 사람들에게 감동함을 주셔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충만함을 주셔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선한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받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만나고자 간절히 찾는 사람들은 기도 중에 마음이 뜨거워지는가 하면 환상이나 신령한 꿈 등 갖가지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알려 주고 계시지만 여전히 믿지 않고 부인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마음이 완악하고 참으로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20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못하고 미워한다면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정녕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살피시며 우리의 앉고 일어서며 대화하는 것들을 낱낱이 지켜보시고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 세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 있는 사람들은 어떤 순간에도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 없으니 성령이 역사하지 않았는데 감히 성령의 음성인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으나 참으로 믿지 못한 것이며, 바로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7-8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찮고 우습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 봉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속이고 목자와 형제를 속이며 거짓되이 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에 속합니다. 또한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자기의 정욕대로 살아가거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성령을 속이며 거짓되이 행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행 5:1).
만일 성령의 은사를 지나치게 사모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데도 하나님께서 주신 음성이나, 환상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가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언행에 주의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은 것인데도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처럼 말하거나 합당치 않은 말이나 농담 등에 하나님의 이름을 넣는다면 이는 모두 거짓말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죄 있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8을 보면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들도 구원받지 못할 것을 경고하셨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결코 망령되이 일컫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 안에 기쁨이 없고 염려, 근심,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죄의 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담이 없다면 항상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 기쁨이 넘칠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30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말씀하셨으니 무엇이 하나님과 담이 되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컬었다면 신속하게 돌이켜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성령의 역사하심을 말할 때 존칭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비가 오면 "하늘에서 비가 오신다"라고 존칭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기가 들거나 질병이 생기면 어떻게 말합니까? 어느 누구도 "감기가 들어오셨다"라고 존칭어를 사용하여 말하지 않을 것인데, 이는 그들도 질병은 원수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결코 함부로 사용할 수 없고 감히 거짓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자기를 과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자는 '내가 기도했더니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것이 성령의 음성이면 상관없는데 세상과 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데도 마치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말을 하니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거짓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꿈으로 혹은 환상 가운데 역사를 받기도 하고 친히 음성을 들을 수도 있으나 이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성령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꿈도 있지만 인간적인 생각 속에서 꾸는 꿈이 있고 사단이 역사하는 꿈도 있습니다. 이렇게 꿈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한 채 무조건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말한다면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분별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면 항상 깨어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진리로 무장하게 됩니다. 그리하면 범사에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게 되며 성령의 주관을 받아 행해 나가니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거나 믿는다 하면서도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든가,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거짓말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임을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시편 89:6-7에 "대저 궁창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권능 있는 자 중에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심히 엄위하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자시니이다" 말씀했으니 하나님을 진실하게 경외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더욱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아 성령의 인도함 속에 온전히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게 한다.
1. 제 3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중에서 제3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입니다(출 20:7).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고 있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엄위하심을 나타내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 출애굽기 3:14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자신에 대해 알려 주셨듯이, 여호와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감히 읽을 수가 없어서 <아도나이> 곧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토록 여호와라는 이름은 거룩하고 존귀한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13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우주 만물과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존귀한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신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주 만물을 보아도 조물주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마음이 강퍅한 사람은 이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 14:1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존귀하신 분이므로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어서는 안 됩니다.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은 언행이 정상을 벗어난 상태를 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를 죄 없다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신 5:11).
오늘날은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마치 말씀하신 것처럼 거짓되이 전하거나, 농담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넣는다면 하나님께서 결코 죄 없다 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말고 진실되이 경외하며 섬겨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죄가 되는 이유
1)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구약시대는 선한 사람들에게 감동함을 주셔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충만함을 주셔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선한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받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만나고자 간절히 찾는 사람들은 기도 중에 마음이 뜨거워지는가 하면 환상이나 신령한 꿈 등 갖가지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알려 주고 계시지만 여전히 믿지 않고 부인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마음이 완악하고 참으로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20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못하고 미워한다면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정녕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살피시며 우리의 앉고 일어서며 대화하는 것들을 낱낱이 지켜보시고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 세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 있는 사람들은 어떤 순간에도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 없으니 성령이 역사하지 않았는데 감히 성령의 음성인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으나 참으로 믿지 못한 것이며, 바로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7-8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찮고 우습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 봉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속이고 목자와 형제를 속이며 거짓되이 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에 속합니다. 또한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자기의 정욕대로 살아가거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성령을 속이며 거짓되이 행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행 5:1).
만일 성령의 은사를 지나치게 사모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데도 하나님께서 주신 음성이나, 환상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가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언행에 주의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은 것인데도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처럼 말하거나 합당치 않은 말이나 농담 등에 하나님의 이름을 넣는다면 이는 모두 거짓말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죄 있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8을 보면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들도 구원받지 못할 것을 경고하셨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결코 망령되이 일컫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 안에 기쁨이 없고 염려, 근심,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죄의 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담이 없다면 항상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 기쁨이 넘칠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30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말씀하셨으니 무엇이 하나님과 담이 되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컬었다면 신속하게 돌이켜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성령의 역사하심을 말할 때 존칭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비가 오면 "하늘에서 비가 오신다"라고 존칭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기가 들거나 질병이 생기면 어떻게 말합니까? 어느 누구도 "감기가 들어오셨다"라고 존칭어를 사용하여 말하지 않을 것인데, 이는 그들도 질병은 원수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결코 함부로 사용할 수 없고 감히 거짓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자기를 과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자는 '내가 기도했더니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것이 성령의 음성이면 상관없는데 세상과 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데도 마치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말을 하니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거짓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꿈으로 혹은 환상 가운데 역사를 받기도 하고 친히 음성을 들을 수도 있으나 이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성령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꿈도 있지만 인간적인 생각 속에서 꾸는 꿈이 있고 사단이 역사하는 꿈도 있습니다. 이렇게 꿈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한 채 무조건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말한다면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분별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면 항상 깨어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진리로 무장하게 됩니다. 그리하면 범사에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게 되며 성령의 주관을 받아 행해 나가니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거나 믿는다 하면서도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든가,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거짓말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임을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시편 89:6-7에 "대저 궁창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권능 있는 자 중에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심히 엄위하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자시니이다" 말씀했으니 하나님을 진실하게 경외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더욱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8-03
제30과십계명(2)
출 20:4-6
읽을말씀 : 출 20:4-6 | 외울말씀 : 마 22:37-40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2계명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구체적으로 깨달아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십계명 중 제2계명은 얼핏 들으면 제1계명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리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영적인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제1계명은 다신론에 대한 경고로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계실 뿐이며 그분만을 섬기고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반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라는 제2계명은 우상 숭배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상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제2계명의 영적인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우상이란 무엇인가?
1) 육적인 의미의 우상
우상이란 형태가 없는 신을 물질적인 형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서 새긴 우상이나 숭배의 대상이 되는 어떤 형상을 말합니다(사 46:6-7).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물질적 형상을 만들어 경배하는 것이 우상숭배이지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기를 좋아하는 것일까요? 우리 사람에게는 직접 보고 만지며 피부로 느껴져야 만족을 느끼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무나 돌, 쇠붙이나 금은붙이 등으로 남자나 여자의 형상, 땅 위에 있는 짐승이나 하늘에 나는 새, 땅 위에 기는 곤충,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족의 형상을 만들고 일월성신, 혹은 하늘 위의 군중을 경배하며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우상이 아닌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상과 마리아 상을 집 안에 두고 그 앞에 절하며 경배하고 마치 예수님처럼 섬기고 존경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우상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혹자는 '나무 십자가'에 대해서도 궁금하게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집 안에 걸린 나무 십자가를 바라보면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으며 보혈을 흘리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십자가는 우리에게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느끼게 해 줍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구원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음을 갖고 구원에 이르게 되니 우상에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양을 안고 계신 성화나 최후의 만찬 등의 그림도 그 자체가 우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화가가 어떤 뜻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려 놓은 것일 뿐이요, 사람들이 성화를 보고 '저분이 하나님이시다'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조각이나 성화 앞에서 절이나 경배하는 것은 결코 합당치 않으므로 어떤 경우에도 우상을 섬기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2) 영적인 의미의 우상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영적인 의미의 우상이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 앞에 절을 해야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좇아 남편, 아내,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바로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물질, 명예, 지식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 계명을 어기는 것도 우상을 섬기는 것에 속하지요.
그러므로 제2계명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하는 일이 없어야 합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으니 부모를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공경해야 합니다. 만일 부모가 교회 가지 말라고 하니 부모의 마음을 상치 않으려고 주일을 어겼다면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한 것이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부모가 참 생명을 얻도록 인도하는 것이므로, 주일을 지키며 신속히 부모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힘써 기도하며 전도해야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부모가 자녀를 진정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실한 사랑을 자녀에게 베풀 때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온전히 지켜 주십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로,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서로 자신의 유익을 좇아 육적인 사랑을 나누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님의 능력됨으로 변함 없는 영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 와서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가장 먼저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교회에 갔더니 하나님만 사랑하고 가족들을 사랑하지 말라더라.'고 오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여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축복을 주시고자 명하신 십일조를 아깝게 여겨 드리지 않거나,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돈을 사랑하고 권력과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할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도 영적인 우상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또한 청소년들 중에는 좋아하는 가수나 영화배우, 탤런트, 운동선수의 사진을 방에 걸어 놓거나 심지어는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좋아하는 인형이나 어떤 물건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면 결국 우상을 섬기는 것이니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2. 우상을 섬기는 사람에게 임하는 보응
제2계명 후반절에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말씀하시며 계명을 지켜 순종하는 자에게 내려질 축복과 불순종하는 자에 대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인간적 차원에서의 질투가 아닌 사랑의 질투입니다. 사람의 질투는 인간의 육정에서 나오므로 추하고 무섭지만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때 외면하시므로 시험 환난이 오고 질병이 틈타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는데,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가 죄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가지 아니하고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랑의 질투란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온전케 만들며 구원해 주셔서 영생으로 인도하기 위한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오직 사랑과 공의로 역사하시며, 전지전능하셔서 우리를 항상 지키시고 주관하십니다. 또 질병이 틈타지 않게 막아 주시고 가정, 일터, 사업터에서 형통함을 받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므로 하나님을 미워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두고도 다른 신들을 섬기고 우상을 만들어 놓고 절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주셔서 희생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시며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역사하셨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여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한다면 어찌 멸망의 길로 가도록 가만히 계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른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란 바로 하나님 앞에 반역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을 뿐 아니라 우상 앞에 절하며 그것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지켜 줄 수 없고 외면하시기 때문에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로 환난과 질고가 임하며 결국 삼사 대에 걸쳐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만일 재앙이 사 대까지 임한다면 그 가문은 완전히 멸족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니 재앙이 삼 대에서 끝나게 되지요. 만일 사 대까지 재앙이 임하면 질병이나 물질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가정일수록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니 그 후손들 가운데 갖가지 질병이나 불구자, 귀신 들린 자 등이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우상을 만들거나 그것에 절하고 섬김으로 하나님을 진노케 하여 시험 환난을 자초하며 재앙을 당하는 미련한 사람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3. 순종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시므로 길이길이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참 신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만사형통의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그 자녀들도 더불어 축복을 받으니 믿음이 있어 신앙생활을 잘하는 가정은 천 대 곧 길이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요,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에 죄는 삼사 대까지 적게 보응을 하시되 은혜는 천 대까지 길이길이 베푸십니다. 조상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그 후손들에게도 축복이 임하게 되지만, 무조건 천 대까지 축복을 주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아브라함에게 '자손 대대로 축복을 받을지라' 언약하셨지만 하나님을 찾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복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사랑하니 그 후손들에게 축복을 주신다고 언약하신 말씀대로 지켜 주시고 그 후손 대대로 멸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으나, 그 후손 중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조상의 마음이 선하여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후손들이 그 기를 물려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며 기쁘시게 하여 천 대까지 은혜를 입는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2계명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구체적으로 깨달아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십계명 중 제2계명은 얼핏 들으면 제1계명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리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영적인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제1계명은 다신론에 대한 경고로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계실 뿐이며 그분만을 섬기고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반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라는 제2계명은 우상 숭배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상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제2계명의 영적인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우상이란 무엇인가?
1) 육적인 의미의 우상
우상이란 형태가 없는 신을 물질적인 형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서 새긴 우상이나 숭배의 대상이 되는 어떤 형상을 말합니다(사 46:6-7).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물질적 형상을 만들어 경배하는 것이 우상숭배이지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기를 좋아하는 것일까요? 우리 사람에게는 직접 보고 만지며 피부로 느껴져야 만족을 느끼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무나 돌, 쇠붙이나 금은붙이 등으로 남자나 여자의 형상, 땅 위에 있는 짐승이나 하늘에 나는 새, 땅 위에 기는 곤충,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족의 형상을 만들고 일월성신, 혹은 하늘 위의 군중을 경배하며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우상이 아닌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상과 마리아 상을 집 안에 두고 그 앞에 절하며 경배하고 마치 예수님처럼 섬기고 존경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우상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혹자는 '나무 십자가'에 대해서도 궁금하게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집 안에 걸린 나무 십자가를 바라보면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으며 보혈을 흘리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십자가는 우리에게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느끼게 해 줍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구원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음을 갖고 구원에 이르게 되니 우상에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양을 안고 계신 성화나 최후의 만찬 등의 그림도 그 자체가 우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화가가 어떤 뜻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려 놓은 것일 뿐이요, 사람들이 성화를 보고 '저분이 하나님이시다'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조각이나 성화 앞에서 절이나 경배하는 것은 결코 합당치 않으므로 어떤 경우에도 우상을 섬기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2) 영적인 의미의 우상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영적인 의미의 우상이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 앞에 절을 해야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좇아 남편, 아내,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바로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물질, 명예, 지식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 계명을 어기는 것도 우상을 섬기는 것에 속하지요.
그러므로 제2계명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하는 일이 없어야 합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으니 부모를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공경해야 합니다. 만일 부모가 교회 가지 말라고 하니 부모의 마음을 상치 않으려고 주일을 어겼다면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한 것이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부모가 참 생명을 얻도록 인도하는 것이므로, 주일을 지키며 신속히 부모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힘써 기도하며 전도해야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부모가 자녀를 진정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실한 사랑을 자녀에게 베풀 때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온전히 지켜 주십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로,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서로 자신의 유익을 좇아 육적인 사랑을 나누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님의 능력됨으로 변함 없는 영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 와서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가장 먼저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교회에 갔더니 하나님만 사랑하고 가족들을 사랑하지 말라더라.'고 오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여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축복을 주시고자 명하신 십일조를 아깝게 여겨 드리지 않거나,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돈을 사랑하고 권력과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할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도 영적인 우상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또한 청소년들 중에는 좋아하는 가수나 영화배우, 탤런트, 운동선수의 사진을 방에 걸어 놓거나 심지어는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좋아하는 인형이나 어떤 물건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면 결국 우상을 섬기는 것이니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2. 우상을 섬기는 사람에게 임하는 보응
제2계명 후반절에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말씀하시며 계명을 지켜 순종하는 자에게 내려질 축복과 불순종하는 자에 대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인간적 차원에서의 질투가 아닌 사랑의 질투입니다. 사람의 질투는 인간의 육정에서 나오므로 추하고 무섭지만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때 외면하시므로 시험 환난이 오고 질병이 틈타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는데,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가 죄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가지 아니하고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랑의 질투란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온전케 만들며 구원해 주셔서 영생으로 인도하기 위한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오직 사랑과 공의로 역사하시며, 전지전능하셔서 우리를 항상 지키시고 주관하십니다. 또 질병이 틈타지 않게 막아 주시고 가정, 일터, 사업터에서 형통함을 받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므로 하나님을 미워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두고도 다른 신들을 섬기고 우상을 만들어 놓고 절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주셔서 희생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시며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역사하셨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여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한다면 어찌 멸망의 길로 가도록 가만히 계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른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란 바로 하나님 앞에 반역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을 뿐 아니라 우상 앞에 절하며 그것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지켜 줄 수 없고 외면하시기 때문에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로 환난과 질고가 임하며 결국 삼사 대에 걸쳐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만일 재앙이 사 대까지 임한다면 그 가문은 완전히 멸족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니 재앙이 삼 대에서 끝나게 되지요. 만일 사 대까지 재앙이 임하면 질병이나 물질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가정일수록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니 그 후손들 가운데 갖가지 질병이나 불구자, 귀신 들린 자 등이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우상을 만들거나 그것에 절하고 섬김으로 하나님을 진노케 하여 시험 환난을 자초하며 재앙을 당하는 미련한 사람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3. 순종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시므로 길이길이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참 신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만사형통의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그 자녀들도 더불어 축복을 받으니 믿음이 있어 신앙생활을 잘하는 가정은 천 대 곧 길이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요,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에 죄는 삼사 대까지 적게 보응을 하시되 은혜는 천 대까지 길이길이 베푸십니다. 조상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그 후손들에게도 축복이 임하게 되지만, 무조건 천 대까지 축복을 주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아브라함에게 '자손 대대로 축복을 받을지라' 언약하셨지만 하나님을 찾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복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사랑하니 그 후손들에게 축복을 주신다고 언약하신 말씀대로 지켜 주시고 그 후손 대대로 멸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으나, 그 후손 중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조상의 마음이 선하여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후손들이 그 기를 물려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며 기쁘시게 하여 천 대까지 은혜를 입는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2007-07-27
제29과십계명(1)
출 20:3
읽을말씀 : 출 20:3 | 외울말씀 : 요일 5:2-3
교육목표 : 십계명의 영적 의미를 깨달아 지켜 나감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 받는 자녀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의 법도를 요약한 십계명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받고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성경을 통해 하늘나라의 법을 배우고 그대로 실천하여 만사형통한 축복과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 그대로 행하는 참자녀를 얻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십계명은 하나님의 법으로서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요약한 것입니다. 성경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을 낱낱이 풀이하여 살을 붙이면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으로 주신 것이지만, 구약시대나 오늘날이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변함없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도입니다. 십계명은 그만큼 중요한 하나님의 언약이요, 구원의 기초가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처럼 생각하여 어떻게 십계명을 다 지킬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요,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곧 66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며, 계명들은 우리가 지켜 행하기에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요일 5:2-3).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능히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연인들이 추운 겨울날 데이트를 해도 함께 사랑을 나눈다는 기쁨 때문에 추운 줄을 모르는 것처럼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의 계명들을 능히 지켜 나갈 수 있는 것이요,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자기 의지와 노력으로 행하므로 힘들었지만 신약시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기에 이를 믿고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능력됨으로 지키게 되니 조금도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요한일서 2:4에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고 자기 자신도 속이는 것이며 그 안에는 진리가 없다고 하셨는데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있다고 하면 당연히 진리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37 이하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십계명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한 두 가지 계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즉 제1-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이고, 제5계명-10계명까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십계명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2.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셨는데 여기서 '너'란 단순히 십계명을 받은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지켜야 할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가장 첫째 되는 계명으로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명하셨을까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요, 전지전능하시며 살아 계신 참신이시고, 참 생명과 영생을 주며, 모든 우주만물과 인류 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신'이란 종교적인 대상으로 초인적인 힘, 또는 초자연적인 위력을 가진 존재, 곧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지요. 사람들은 많은 신들이 자신을 도와주면 더 좋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처를, 고목나무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북두칠성 등을 신으로 믿고 열심히 절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800만이나 되는 우상을 섬기고 있지요. 이렇게 많은 신들을 만들어 섬기는 것은 마음이 연약해서 위안을 받기 위함이요, 혹은 습관을 좇아 조상들을 따르거나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신들은 말을 하거나 능력이 있어 우리를 구원해 주고 응답하거나 온전케 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응답해 주시며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 명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며,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여 정도를 좇아 살아갑니다. 마음이 혼잡한 사람들은 여러 신에게 빌면서 섬겼지만 마음이 곧은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믿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 중엽 이순신 장군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한 분으로서 하늘에 뜻을 두고 정도를 좇아 하늘의 신 곧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게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바로 양심심판입니다. 구약시대나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도 선한 양심을 따라 신을 인정하고 정도를 좇은 사람들이 많으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양심심판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롬 2:14-15).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시험 환난이 끊이지 않고 눈물, 슬픔, 고통, 질병 가운데 늘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은 신들을 만들어 경배하지만 이것들은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신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고, 하나님과 원수된 마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로마서 1:24-25에 기록된 대로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조물주이신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6 말씀처럼 아담의 불순종 이후 이 세상을 주관하게 된 원수 마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의심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믿음을 소유 못하도록 방해하고, 죄를 짓게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망의 길로 가게 하지요. 그러므로 참신 곧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두면 그 결국은 패망임을 알아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3. 제1계명을 지킬 때 임하는 축복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영원히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섬김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이 땅에서도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하여 정욕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경배하며 섬기는 것이지요.
질서정연하게 운행되는 우주만물을 살펴보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0에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천하 만물을 보아도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으니 어느 누구도 심판 날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믿지 못했다고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명하시며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독교는 하나님만 믿으라고 하니 너무 배타적인 종교가 아닌가' 하면서 제1계명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지한 사람들을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서 나온 귀한 계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계명을 기록해 놓지 않으셨다면 마음에 정함이 없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질서 문란하게 다른 신들을 섬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점을 치고 굿을 한다거나 고사를 지내며 그 외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가 없으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살아 계신 증거를 보여 주시며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각색 병든 자를 치료해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으며, 어두운 영혼을 밝게 해 주시고 죄에서 떠나 영생을 약속하시며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주의 종과 일꾼들을 통하여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1계명의 영적인 의미를 잘 깨달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우주만물과 세계 역사,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며 담대하게 '참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라고 증거할 수 있는 복된 입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십계명의 영적 의미를 깨달아 지켜 나감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 받는 자녀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의 법도를 요약한 십계명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받고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성경을 통해 하늘나라의 법을 배우고 그대로 실천하여 만사형통한 축복과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 그대로 행하는 참자녀를 얻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십계명은 하나님의 법으로서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요약한 것입니다. 성경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을 낱낱이 풀이하여 살을 붙이면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으로 주신 것이지만, 구약시대나 오늘날이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변함없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도입니다. 십계명은 그만큼 중요한 하나님의 언약이요, 구원의 기초가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처럼 생각하여 어떻게 십계명을 다 지킬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요,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곧 66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며, 계명들은 우리가 지켜 행하기에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요일 5:2-3).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능히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연인들이 추운 겨울날 데이트를 해도 함께 사랑을 나눈다는 기쁨 때문에 추운 줄을 모르는 것처럼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의 계명들을 능히 지켜 나갈 수 있는 것이요,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자기 의지와 노력으로 행하므로 힘들었지만 신약시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기에 이를 믿고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능력됨으로 지키게 되니 조금도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요한일서 2:4에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고 자기 자신도 속이는 것이며 그 안에는 진리가 없다고 하셨는데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있다고 하면 당연히 진리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37 이하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십계명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한 두 가지 계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즉 제1-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이고, 제5계명-10계명까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십계명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2.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셨는데 여기서 '너'란 단순히 십계명을 받은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지켜야 할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가장 첫째 되는 계명으로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명하셨을까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요, 전지전능하시며 살아 계신 참신이시고, 참 생명과 영생을 주며, 모든 우주만물과 인류 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신'이란 종교적인 대상으로 초인적인 힘, 또는 초자연적인 위력을 가진 존재, 곧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지요. 사람들은 많은 신들이 자신을 도와주면 더 좋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처를, 고목나무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북두칠성 등을 신으로 믿고 열심히 절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800만이나 되는 우상을 섬기고 있지요. 이렇게 많은 신들을 만들어 섬기는 것은 마음이 연약해서 위안을 받기 위함이요, 혹은 습관을 좇아 조상들을 따르거나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신들은 말을 하거나 능력이 있어 우리를 구원해 주고 응답하거나 온전케 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응답해 주시며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 명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며,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여 정도를 좇아 살아갑니다. 마음이 혼잡한 사람들은 여러 신에게 빌면서 섬겼지만 마음이 곧은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믿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 중엽 이순신 장군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한 분으로서 하늘에 뜻을 두고 정도를 좇아 하늘의 신 곧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게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바로 양심심판입니다. 구약시대나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도 선한 양심을 따라 신을 인정하고 정도를 좇은 사람들이 많으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양심심판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롬 2:14-15).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시험 환난이 끊이지 않고 눈물, 슬픔, 고통, 질병 가운데 늘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은 신들을 만들어 경배하지만 이것들은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신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고, 하나님과 원수된 마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로마서 1:24-25에 기록된 대로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조물주이신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6 말씀처럼 아담의 불순종 이후 이 세상을 주관하게 된 원수 마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의심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믿음을 소유 못하도록 방해하고, 죄를 짓게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망의 길로 가게 하지요. 그러므로 참신 곧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두면 그 결국은 패망임을 알아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3. 제1계명을 지킬 때 임하는 축복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영원히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섬김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이 땅에서도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하여 정욕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경배하며 섬기는 것이지요.
질서정연하게 운행되는 우주만물을 살펴보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0에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천하 만물을 보아도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으니 어느 누구도 심판 날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믿지 못했다고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명하시며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독교는 하나님만 믿으라고 하니 너무 배타적인 종교가 아닌가' 하면서 제1계명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지한 사람들을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서 나온 귀한 계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계명을 기록해 놓지 않으셨다면 마음에 정함이 없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질서 문란하게 다른 신들을 섬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점을 치고 굿을 한다거나 고사를 지내며 그 외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가 없으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살아 계신 증거를 보여 주시며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각색 병든 자를 치료해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으며, 어두운 영혼을 밝게 해 주시고 죄에서 떠나 영생을 약속하시며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주의 종과 일꾼들을 통하여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1계명의 영적인 의미를 잘 깨달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우주만물과 세계 역사,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며 담대하게 '참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라고 증거할 수 있는 복된 입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007-07-20
제28과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려면(2)
롬 8:12-18
읽을말씀 : 롬 8:12-18 | 외울말씀 : 요일 2:4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을 깨달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여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신앙생활은 물론 심방이나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주에는 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야 하는지 살펴보았고, 금주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며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을 받아 나가게 되지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8:13에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말씀하시며 그 믿음대로 응답받는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100% 신뢰하면 100% 신뢰해 주시고, 50%만 신뢰하면 하나님께서도 50%밖에 신뢰하실 수 없지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막상 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고민하거나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는데 하나님을 100%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4에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말씀했습니다. 진리가 내 안에 있다면 말씀에 순종하여 계명을 지킬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지식으로만 쌓아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마음 중심에서 행할 수 있는 믿음이 아니므로 순종이 따르지 않고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믿음을 내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고 할지라도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거짓말하는 습성을 좇아 나온 말에 불과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사와 표적을 보고서도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라고 나름대로 믿는다고 하지만 마음 중심에서 순종할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순종하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고 온전히 순종하면 끝이 없는 영적인 세계로 인도해 주시니 하나님에 대해 밝히 알게 되지요. 천국에 대한 소망과 그 아름다움은 물론 영적으로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달라지게 됩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신앙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새롭고 이해의 폭도 깊어지며, 전에는 하나의 윤리 도덕 정도로 들리던 말씀들이 영안이 열림에 따라 은혜로 다가오게 됩니다. 더 깊은 영적 차원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같이 달게 느껴지고 마음 중심에서 "아멘" 하며 말씀이 곧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혹여 말씀을 들을 때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말씀이니 은혜가 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음을 깨달아 신속히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으려면
1)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기 위한 필수 요건은 불 같은 기도입니다. 아무리 듣고 배워서 방법을 안다고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릴 수 없습니다. 기도해야 성령의 감동감화, 교통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지요. 성령의 음성을 듣고 행하여 인도를 받아야 육체의 일을 버리고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성장해 오는 동안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이 느낌과 함께 입력된 생각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비진리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비진리의 생각들이 바로 육신의 생각이지요(롬 8:7).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듣는다 해도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여 영적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불 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나 야곱, 베드로, 바울 사도 등 하나님의 인정받은 종들도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기 위한 연단을 받았으며, 연단 후에는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함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반면 사울 왕이나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속 불순종하여 결국은 멸망받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육신의 생각을 깨뜨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현 시점에서부터 더 이상 비진리를 입력시키지 말고 입력되어 있는 기존의 비진리들을 피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합니다.
로마서 7:21-24에도 보면 전에는 죄를 지어도 죄인지조차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 되어 혼과 영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므로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괴로움과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비진리를 도와주는 원군을 차단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원군이란 안목의 정욕을 말하며 이것은 하나님께로 오지 않고 세상 주관자인 원수 마귀로부터 오지요. 이것이 비진리에 작용하여 육신의 생각을 강하게 만듦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기회를 끊고 없애야 하는데 육에 물들어 있는 사람, 안목의 정욕에 물들어 있는 사람은 그러한 생각을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것들은 당연히 끊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속극을 보느라고 기도할 시간을 놓치고, 심방가는 데 늑장을 부리게 된다면 텔레비전 보는 일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절제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었다면 그러한 안목의 정욕은 끊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듣는 것도 만나면 누구를 헐뜯는다든가 비진리를 말한다고 한다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대할 때 힘들고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비진리의 말을 하면 진리의 대화로 이끌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가 싫어 떠나거나 변화되어 진리의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비진리를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더 이상 입력되지 않으므로 원군이 차단되지요. 원래 입력돼 있던 비진리는 마음 안에서 포위되어 꼼짝 못하고 갇혀 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 상태에서 진리를 주관하는 자신의 의지적인 노력과 성령의 도우심과 불 같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게 되면 비진리는 떠나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비진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불 같은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얼마큼 피 흘려 싸우고 노력하며 어떠한 각오를 하느냐에 따라 1년, 한 달, 순간에도 버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철야하며 기도와 금식으로 육신의 생각을 버려 나가는데 가장 힘든 것을 뿌리째 뽑아 버리면 부수적인 죄들은 큰 나무를 뽑으면 잔뿌리도 함께 뽑혀 나가듯 함께 버려집니다. 즉, 마음에서 비진리가 떠나면 육신의 생각은 자연히 떠나게 되지요. 단지 기억으로만 남으므로 더듬어 기억하지 않는 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과 인도를 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미워하지 말라고 하면 "이제 사랑하겠습니다." 하고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을까?' 하며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 나가면 결국 미움은 떠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영혼이 잘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입력된 육적인 것들을 전부 무(無)로 돌리고 66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영으로 마음을 일구면 생각도 영으로 일구어져 육신의 생각이 깨어지고 영의 생각만 남게 됩니다. 이처럼 계속적으로 인도받고 순종해 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므로 매사를 주관하실 것이고 불 같은 기도로 지혜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약 1:5).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인도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영으로 들어간 사람과 여전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과의 영적인 수준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요. 기쁨도 행복도 믿음도 달라질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와 축복이 달라질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변한 것도 없고 똑같은 것 같아도 그 능력이나 말의 권세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얼굴빛도 달라짐으로 원수 마귀가 무서워 떨게 되며 기도의 능력을 받아 쉽게 응답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장받는 단계로 들어가니 맡은 사명에 대한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육적인 문제도 다 해결되지요. 영혼이 잘되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게 되며 하나님께서 친히 이끄시고 역사해 가심으로 만사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 8:12 이하에 보면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 삼아 지켜 행함으로 늘 성령의 밝은 음성과 인도 주관을 받아 나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을 깨달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여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신앙생활은 물론 심방이나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주에는 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야 하는지 살펴보았고, 금주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며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을 받아 나가게 되지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8:13에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말씀하시며 그 믿음대로 응답받는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100% 신뢰하면 100% 신뢰해 주시고, 50%만 신뢰하면 하나님께서도 50%밖에 신뢰하실 수 없지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막상 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고민하거나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는데 하나님을 100%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4에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말씀했습니다. 진리가 내 안에 있다면 말씀에 순종하여 계명을 지킬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지식으로만 쌓아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마음 중심에서 행할 수 있는 믿음이 아니므로 순종이 따르지 않고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믿음을 내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고 할지라도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거짓말하는 습성을 좇아 나온 말에 불과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사와 표적을 보고서도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라고 나름대로 믿는다고 하지만 마음 중심에서 순종할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순종하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고 온전히 순종하면 끝이 없는 영적인 세계로 인도해 주시니 하나님에 대해 밝히 알게 되지요. 천국에 대한 소망과 그 아름다움은 물론 영적으로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달라지게 됩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신앙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새롭고 이해의 폭도 깊어지며, 전에는 하나의 윤리 도덕 정도로 들리던 말씀들이 영안이 열림에 따라 은혜로 다가오게 됩니다. 더 깊은 영적 차원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같이 달게 느껴지고 마음 중심에서 "아멘" 하며 말씀이 곧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혹여 말씀을 들을 때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말씀이니 은혜가 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음을 깨달아 신속히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으려면
1)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기 위한 필수 요건은 불 같은 기도입니다. 아무리 듣고 배워서 방법을 안다고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릴 수 없습니다. 기도해야 성령의 감동감화, 교통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지요. 성령의 음성을 듣고 행하여 인도를 받아야 육체의 일을 버리고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성장해 오는 동안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이 느낌과 함께 입력된 생각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비진리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비진리의 생각들이 바로 육신의 생각이지요(롬 8:7).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듣는다 해도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여 영적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불 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나 야곱, 베드로, 바울 사도 등 하나님의 인정받은 종들도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기 위한 연단을 받았으며, 연단 후에는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함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반면 사울 왕이나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속 불순종하여 결국은 멸망받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육신의 생각을 깨뜨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현 시점에서부터 더 이상 비진리를 입력시키지 말고 입력되어 있는 기존의 비진리들을 피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합니다.
로마서 7:21-24에도 보면 전에는 죄를 지어도 죄인지조차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 되어 혼과 영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므로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괴로움과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비진리를 도와주는 원군을 차단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원군이란 안목의 정욕을 말하며 이것은 하나님께로 오지 않고 세상 주관자인 원수 마귀로부터 오지요. 이것이 비진리에 작용하여 육신의 생각을 강하게 만듦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기회를 끊고 없애야 하는데 육에 물들어 있는 사람, 안목의 정욕에 물들어 있는 사람은 그러한 생각을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것들은 당연히 끊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속극을 보느라고 기도할 시간을 놓치고, 심방가는 데 늑장을 부리게 된다면 텔레비전 보는 일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절제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었다면 그러한 안목의 정욕은 끊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듣는 것도 만나면 누구를 헐뜯는다든가 비진리를 말한다고 한다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대할 때 힘들고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비진리의 말을 하면 진리의 대화로 이끌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가 싫어 떠나거나 변화되어 진리의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비진리를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더 이상 입력되지 않으므로 원군이 차단되지요. 원래 입력돼 있던 비진리는 마음 안에서 포위되어 꼼짝 못하고 갇혀 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 상태에서 진리를 주관하는 자신의 의지적인 노력과 성령의 도우심과 불 같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게 되면 비진리는 떠나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비진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불 같은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얼마큼 피 흘려 싸우고 노력하며 어떠한 각오를 하느냐에 따라 1년, 한 달, 순간에도 버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철야하며 기도와 금식으로 육신의 생각을 버려 나가는데 가장 힘든 것을 뿌리째 뽑아 버리면 부수적인 죄들은 큰 나무를 뽑으면 잔뿌리도 함께 뽑혀 나가듯 함께 버려집니다. 즉, 마음에서 비진리가 떠나면 육신의 생각은 자연히 떠나게 되지요. 단지 기억으로만 남으므로 더듬어 기억하지 않는 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과 인도를 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미워하지 말라고 하면 "이제 사랑하겠습니다." 하고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을까?' 하며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 나가면 결국 미움은 떠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영혼이 잘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입력된 육적인 것들을 전부 무(無)로 돌리고 66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영으로 마음을 일구면 생각도 영으로 일구어져 육신의 생각이 깨어지고 영의 생각만 남게 됩니다. 이처럼 계속적으로 인도받고 순종해 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므로 매사를 주관하실 것이고 불 같은 기도로 지혜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약 1:5).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인도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영으로 들어간 사람과 여전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과의 영적인 수준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요. 기쁨도 행복도 믿음도 달라질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와 축복이 달라질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변한 것도 없고 똑같은 것 같아도 그 능력이나 말의 권세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얼굴빛도 달라짐으로 원수 마귀가 무서워 떨게 되며 기도의 능력을 받아 쉽게 응답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장받는 단계로 들어가니 맡은 사명에 대한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육적인 문제도 다 해결되지요. 영혼이 잘되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게 되며 하나님께서 친히 이끄시고 역사해 가심으로 만사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 8:12 이하에 보면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 삼아 지켜 행함으로 늘 성령의 밝은 음성과 인도 주관을 받아 나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7-13
제27과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려면(1)
요 16:13
읽을말씀 : 요 16:13 | 외울말씀 : 요일 3:21-22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을 깨달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여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면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야 하는 이유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게 되면 영적 성장을 이루게 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도 능력있게 행하며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요 4:24) 하나님의 자녀들도 영적인 방법을 좇아서 행할 때 영적인 생명을 낳으며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심한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형제가 있다고 합시다. 그가 만일 육에 속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라는 위로의 말을 듣기 원하고 물질적인 도움을 바라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반면에 그 형제가 영에 속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주어 어려움을 이기도록 도와주는 사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만일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가 죄에서 비롯되었다면 회개하고 돌이킬 때 어려움이 해결될 것이고, 죄와 상관없이 어려움을 통하여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함으로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방이나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반드시 영적인 생명을 낳으며 영혼이 잘되게 도와주며 열매를 맺도록 변화시켜 주어야 합니다. 육적인 방법을 좇아 행하면 그 순간은 열매를 맺는 것 같아도 사단이 역사하거나 시험 환난이 닥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는 방법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진리를 알고 깨우친 만큼 그 안에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여 심비에 새기게 되면 우리 마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때를 따라 내 안에 있는 진리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존재하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므로 진리에 위배되는 비진리가 존재하면 그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비진리가 존재하면 진리로 마음을 주관하는 성령의 음성을 듣기 전에 비진리의 생각에서 오는 사단의 음성이 먼저 작용을 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평소에 알고 지내던 남녀가 벤치에 앉아 다정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았다면 사람들마다 느낌이 다릅니다. 자기에게 입력되어 있는 경험에 대입하게 되니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 것이지요. 똑같은 상황이지만 사람마다 각기 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순간에 생각이 와서 자기 안에 입력되어 있는 느낌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 안에 비진리가 전혀 없고 오직 진리의 마음만 있다면 사단이 생각을 통하여 주관할 수 없으니 생각에서 오는 사단의 음성은 전혀 들을 수 없고 오직 성령의 음성만 듣게 됩니다. 내 안에 비진리의 마음이 있을 때에는 사단이 역사하여 성령의 음성을 차단시키므로 입력된 생각이 앞서게 되지요. 비진리가 없으면 사단이 생각을 통하여 작용할 수 없으므로 이런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상대를 오해하거나 판단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진리가 조금 남아있다 할지라도 진리가 훨씬 더 많다면 성령은 내 안에 있는 진리를 강하게 주관하시므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주관받은 성령의 음성은 강하고 생각을 통해 역사하는 사단의 음성은 희미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비진리를 버리려고 하는 사람이 굳이 희미하게 들리는 사단의 음성을 들으려고 할 리 없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두 방송이 있는데 만일 A방송은 크게 틀어 놓고 B방송은 매우 작은 소리로 틀어 놓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느 방송이 잘 들리겠습니까? 억지로 들으려고 애쓰지 않는 이상 B방송은 거의 들리지 않고 A방송은 잘 들릴 것입니다. 더군다나 A방송을 시청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B방송에서 나오는 미세한 소리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니 B방송은 아예 무시되어 거의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3. 성령의 음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십니다. 그때부터 성령께서는 마음 안에 내주하시며 진리가 임한 만큼 직접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시게 됩니다.
반면에 사단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 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에 비진리의 생각을 통하여 역사합니다. 즉 어떤 집의 안방에 들어가려고 할 때 집 밖에 있는 사람은 대문을 통과하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비진리의 생각을 차단하려면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해 나갈 때 비진리의 생각을 차단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밝히 인도받을 수 있게 됩니다.
요한일서 3:21-22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비진리의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을 때 임하는 축복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은 영혼이 잘된 사람이므로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요삼 2절). 더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으로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하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시고 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간섭하여 주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친히 인도하여 주시면 염려, 근심, 걱정할 일이 없으며 범사에 형통함을 받게 됩니다.
만일 잠이 부족하여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매우 힘든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면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될 때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난다든지, 누가 찾아온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등 하나님께서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정확하게 깨워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살게 되면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주관하시며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성령께서 온전히 주관하시면 내 생각인지 아니면 성령의 음성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없으며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말하게 하시고 장래 일도 알게 하십니다(요 14:26, 16:13). 더 나아가 하나님의 보장을 받게 되면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 나타나고(막 16:17-18),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게 되니(요 1:12) 영적인 믿음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았으면서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자꾸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영을 낳아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는데,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으니 계속하여 영을 낳을 수 없는 것이요, 이렇게 자신을 영적인 사람으로 일구지 못한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듣기가 힘든 것입니다.
만약 내 생각이나 마음의 10% 정도를 하나님께 맡겼다면 10% 정도만 성령의 역사를 받고 나머지 90%는 하나님과 원수된 육신의 생각이 앞서므로 그만큼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게 되면 점점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므로 성령의 음성을 들었을 때 이를 무시하거나 거역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무엘상 15:22-23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성장을 하며 영혼을 변화시켜 천국으로 인도받기 위해서는 육적인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모든 문제를 영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을 깨달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여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면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야 하는 이유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게 되면 영적 성장을 이루게 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도 능력있게 행하며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요 4:24) 하나님의 자녀들도 영적인 방법을 좇아서 행할 때 영적인 생명을 낳으며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심한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형제가 있다고 합시다. 그가 만일 육에 속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라는 위로의 말을 듣기 원하고 물질적인 도움을 바라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반면에 그 형제가 영에 속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주어 어려움을 이기도록 도와주는 사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만일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가 죄에서 비롯되었다면 회개하고 돌이킬 때 어려움이 해결될 것이고, 죄와 상관없이 어려움을 통하여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함으로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방이나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반드시 영적인 생명을 낳으며 영혼이 잘되게 도와주며 열매를 맺도록 변화시켜 주어야 합니다. 육적인 방법을 좇아 행하면 그 순간은 열매를 맺는 것 같아도 사단이 역사하거나 시험 환난이 닥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는 방법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진리를 알고 깨우친 만큼 그 안에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여 심비에 새기게 되면 우리 마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때를 따라 내 안에 있는 진리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존재하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므로 진리에 위배되는 비진리가 존재하면 그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비진리가 존재하면 진리로 마음을 주관하는 성령의 음성을 듣기 전에 비진리의 생각에서 오는 사단의 음성이 먼저 작용을 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평소에 알고 지내던 남녀가 벤치에 앉아 다정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았다면 사람들마다 느낌이 다릅니다. 자기에게 입력되어 있는 경험에 대입하게 되니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 것이지요. 똑같은 상황이지만 사람마다 각기 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순간에 생각이 와서 자기 안에 입력되어 있는 느낌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 안에 비진리가 전혀 없고 오직 진리의 마음만 있다면 사단이 생각을 통하여 주관할 수 없으니 생각에서 오는 사단의 음성은 전혀 들을 수 없고 오직 성령의 음성만 듣게 됩니다. 내 안에 비진리의 마음이 있을 때에는 사단이 역사하여 성령의 음성을 차단시키므로 입력된 생각이 앞서게 되지요. 비진리가 없으면 사단이 생각을 통하여 작용할 수 없으므로 이런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상대를 오해하거나 판단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진리가 조금 남아있다 할지라도 진리가 훨씬 더 많다면 성령은 내 안에 있는 진리를 강하게 주관하시므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주관받은 성령의 음성은 강하고 생각을 통해 역사하는 사단의 음성은 희미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비진리를 버리려고 하는 사람이 굳이 희미하게 들리는 사단의 음성을 들으려고 할 리 없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두 방송이 있는데 만일 A방송은 크게 틀어 놓고 B방송은 매우 작은 소리로 틀어 놓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느 방송이 잘 들리겠습니까? 억지로 들으려고 애쓰지 않는 이상 B방송은 거의 들리지 않고 A방송은 잘 들릴 것입니다. 더군다나 A방송을 시청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B방송에서 나오는 미세한 소리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니 B방송은 아예 무시되어 거의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3. 성령의 음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십니다. 그때부터 성령께서는 마음 안에 내주하시며 진리가 임한 만큼 직접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시게 됩니다.
반면에 사단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 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에 비진리의 생각을 통하여 역사합니다. 즉 어떤 집의 안방에 들어가려고 할 때 집 밖에 있는 사람은 대문을 통과하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비진리의 생각을 차단하려면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해 나갈 때 비진리의 생각을 차단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밝히 인도받을 수 있게 됩니다.
요한일서 3:21-22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비진리의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을 때 임하는 축복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은 영혼이 잘된 사람이므로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요삼 2절). 더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으로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하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시고 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간섭하여 주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친히 인도하여 주시면 염려, 근심, 걱정할 일이 없으며 범사에 형통함을 받게 됩니다.
만일 잠이 부족하여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매우 힘든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면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될 때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난다든지, 누가 찾아온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등 하나님께서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정확하게 깨워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살게 되면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주관하시며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성령께서 온전히 주관하시면 내 생각인지 아니면 성령의 음성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없으며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말하게 하시고 장래 일도 알게 하십니다(요 14:26, 16:13). 더 나아가 하나님의 보장을 받게 되면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 나타나고(막 16:17-18),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게 되니(요 1:12) 영적인 믿음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았으면서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자꾸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영을 낳아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는데,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으니 계속하여 영을 낳을 수 없는 것이요, 이렇게 자신을 영적인 사람으로 일구지 못한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듣기가 힘든 것입니다.
만약 내 생각이나 마음의 10% 정도를 하나님께 맡겼다면 10% 정도만 성령의 역사를 받고 나머지 90%는 하나님과 원수된 육신의 생각이 앞서므로 그만큼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게 되면 점점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므로 성령의 음성을 들었을 때 이를 무시하거나 거역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무엘상 15:22-23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성장을 하며 영혼을 변화시켜 천국으로 인도받기 위해서는 육적인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모든 문제를 영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