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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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7
제32과십계명(4)
출 20:8-11
읽을말씀 : 출 20:8-11 | 외울말씀 : 요일 3:21-22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계명들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진정 복 있는 사람, 뛰어난 사람이 되게 한다.
1. 안식일의 유래
십계명 중 제4계명은"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입니다. 안식일이란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 곧 주 안에서 편히 쉬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시대는 이날을 주의 날 혹은 주일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안식일의 유래는 하나님께서 엿새 만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는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것에 기인합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열심히 창조사역을 하신 후 칠일째 안식하셨기에 일곱째 날에는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셔서 하나님을 믿는 온 백성도 안식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창 2:3). 그래서 구약시대는 제칠일 토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졌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으며 이날을 주일이라 하는데, 왜 안식일이 일요일이 되었으며 '주일' 혹은 '주의 날'이라고 칭하게 되었을까요?
2. 신약시대에 안식일이 주일이 된 이유
마태복음 12:8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모든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바로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 새벽 미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아 영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역사를 마치신 제칠일 곧 토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졌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구원의 역사를 마치시고 부활하신 일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를 예언해 놓으셨는데,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해서 안식 후 첫날에 드리라고 했습니다(레 23:10-11). 곧 첫 열매를 안식 후 첫날에 드리라는 구약의 말씀이 부활의 첫열매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의 첫열매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달력을 보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 바로 일요일을 한 주간의 첫날로 정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생명을 얻고 참 기쁨과 참 안식을 얻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함께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해 영이 죽으니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도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자마다 부활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데 이것이 바로 영적인 부활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공중강림하시면 무덤에 있는 사람들이 썩지 아니할 부활체로 나와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며 살아 있는 사람도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이 함께 이루어져 온전한 부활체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요일 새벽 미명에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심으로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갖고 이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므로 일곱째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지만, 신약시대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권세를 깨뜨린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이를 주님의 날 곧 주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행 20:7 ; 고전 16:2).
3.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려면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영적인 세계의 주인이심과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자신뿐 아니라 자녀들이나 일을 하는 일꾼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가축과 내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을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출 20:10).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주일 대예배는 축도로 끝을 맺으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믿음으로 축도를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한 주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일까요?
첫째, 주 안에서 영적인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안식한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오락을 즐기며 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쉼에 불과한 것이며 이러한 육적인 안식은 몸의 피로를 풀어 줄 수는 있지만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안식은 이러한 육적인 쉼이 아니요, 영적인 쉼 곧 참된 안식입니다.
영적인 안식이란 주일에는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진리 안에서 마음에 참된 기쁨과 평안을 얻고 영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일에는 오전 예배뿐만 아니라 오후 예배도 드려서 온전히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과 온전히 영적으로 교통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참된 안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여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복을 주십니다. 한 주간을 지켜 주셔서 시험 환난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사고와 질병, 위험으로부터 막아 주시며 혹여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고 범사에 형통하도록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주일에는 매매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느헤미야 13:17-18을 보면 예루살렘의 총독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 매매하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고 꾸짖으며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악이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즉 안식일에 매매 행위를 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악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영원한 생명과 직결되므로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범했기 때문에 모든 재앙이 임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곧 안식일을 범한 것은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치 않고 거룩한 날 복 주시겠다고 한 말씀을 믿지 않은 결과이니 공의의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수 마귀가 와서 시험 환난을 갖다 주며 재앙도 가져다주게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13:19에는 안식일 전날 어두워 갈 때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문을 닫듯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면 사업터의 문을 닫아 매매를 금하고 주 안에서 영적인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주일에 매매 행위를 허용할 수 있는 몇 가지 특별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가대원들이 식사해야 하는데 식당이 없다면 사 주어도 무방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요, 이러한 것은 주님을 위해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성도들이 예배를 충만하게 드릴 수 있도록 편의를 돕기 위해 교회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것은 가능하나 이익금은 개인이 사용해서는 안 되며 구제나 선교 등 선한 사업에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주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주일예배를 드린 후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중심에서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주일을 지키되 그 형제를 위해서는 가서 축하를 해 주어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니 혹여 서운하게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를 해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다른 점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진리의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2:10-12에 예수님을 송사하고자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묻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하시면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을 옳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병든 사람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의사나 간호사, 국가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 군인, 경찰 등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일에 업무를 보는 것은 나라를 위해 선을 행하는 일이니 주일예배를 드리고 업무를 처리한다해서 죄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 마음에서는 진정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해 예비하신 날로 세상의 일이나 오락을 금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영적인 쉼을 얻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이요,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온전하고 거룩히 지키심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계명들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진정 복 있는 사람, 뛰어난 사람이 되게 한다.
1. 안식일의 유래
십계명 중 제4계명은"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입니다. 안식일이란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 곧 주 안에서 편히 쉬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시대는 이날을 주의 날 혹은 주일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안식일의 유래는 하나님께서 엿새 만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는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것에 기인합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열심히 창조사역을 하신 후 칠일째 안식하셨기에 일곱째 날에는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셔서 하나님을 믿는 온 백성도 안식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창 2:3). 그래서 구약시대는 제칠일 토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졌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으며 이날을 주일이라 하는데, 왜 안식일이 일요일이 되었으며 '주일' 혹은 '주의 날'이라고 칭하게 되었을까요?
2. 신약시대에 안식일이 주일이 된 이유
마태복음 12:8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모든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바로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 새벽 미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아 영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역사를 마치신 제칠일 곧 토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졌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구원의 역사를 마치시고 부활하신 일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를 예언해 놓으셨는데,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해서 안식 후 첫날에 드리라고 했습니다(레 23:10-11). 곧 첫 열매를 안식 후 첫날에 드리라는 구약의 말씀이 부활의 첫열매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의 첫열매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달력을 보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 바로 일요일을 한 주간의 첫날로 정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생명을 얻고 참 기쁨과 참 안식을 얻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함께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해 영이 죽으니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도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자마다 부활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데 이것이 바로 영적인 부활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공중강림하시면 무덤에 있는 사람들이 썩지 아니할 부활체로 나와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며 살아 있는 사람도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이 함께 이루어져 온전한 부활체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요일 새벽 미명에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심으로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갖고 이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므로 일곱째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지만, 신약시대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권세를 깨뜨린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이를 주님의 날 곧 주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행 20:7 ; 고전 16:2).
3.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려면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영적인 세계의 주인이심과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자신뿐 아니라 자녀들이나 일을 하는 일꾼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가축과 내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을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출 20:10).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주일 대예배는 축도로 끝을 맺으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믿음으로 축도를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한 주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일까요?
첫째, 주 안에서 영적인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안식한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오락을 즐기며 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쉼에 불과한 것이며 이러한 육적인 안식은 몸의 피로를 풀어 줄 수는 있지만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안식은 이러한 육적인 쉼이 아니요, 영적인 쉼 곧 참된 안식입니다.
영적인 안식이란 주일에는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진리 안에서 마음에 참된 기쁨과 평안을 얻고 영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일에는 오전 예배뿐만 아니라 오후 예배도 드려서 온전히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과 온전히 영적으로 교통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참된 안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여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복을 주십니다. 한 주간을 지켜 주셔서 시험 환난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사고와 질병, 위험으로부터 막아 주시며 혹여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고 범사에 형통하도록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주일에는 매매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느헤미야 13:17-18을 보면 예루살렘의 총독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 매매하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고 꾸짖으며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악이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즉 안식일에 매매 행위를 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악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영원한 생명과 직결되므로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범했기 때문에 모든 재앙이 임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곧 안식일을 범한 것은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치 않고 거룩한 날 복 주시겠다고 한 말씀을 믿지 않은 결과이니 공의의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수 마귀가 와서 시험 환난을 갖다 주며 재앙도 가져다주게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13:19에는 안식일 전날 어두워 갈 때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문을 닫듯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면 사업터의 문을 닫아 매매를 금하고 주 안에서 영적인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주일에 매매 행위를 허용할 수 있는 몇 가지 특별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가대원들이 식사해야 하는데 식당이 없다면 사 주어도 무방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요, 이러한 것은 주님을 위해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성도들이 예배를 충만하게 드릴 수 있도록 편의를 돕기 위해 교회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것은 가능하나 이익금은 개인이 사용해서는 안 되며 구제나 선교 등 선한 사업에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주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주일예배를 드린 후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중심에서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주일을 지키되 그 형제를 위해서는 가서 축하를 해 주어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니 혹여 서운하게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를 해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다른 점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진리의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2:10-12에 예수님을 송사하고자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묻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하시면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을 옳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병든 사람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의사나 간호사, 국가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 군인, 경찰 등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일에 업무를 보는 것은 나라를 위해 선을 행하는 일이니 주일예배를 드리고 업무를 처리한다해서 죄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 마음에서는 진정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해 예비하신 날로 세상의 일이나 오락을 금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영적인 쉼을 얻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이요,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온전하고 거룩히 지키심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8-10
제31과십계명(3)
출 20:7
읽을말씀 : 출 20:7 | 외울말씀 : 요일 4:20
교육목표 :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아 성령의 인도함 속에 온전히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게 한다.
1. 제 3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중에서 제3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입니다(출 20:7).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고 있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엄위하심을 나타내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 출애굽기 3:14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자신에 대해 알려 주셨듯이, 여호와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감히 읽을 수가 없어서 <아도나이> 곧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토록 여호와라는 이름은 거룩하고 존귀한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13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우주 만물과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존귀한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신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주 만물을 보아도 조물주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마음이 강퍅한 사람은 이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 14:1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존귀하신 분이므로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어서는 안 됩니다.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은 언행이 정상을 벗어난 상태를 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를 죄 없다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신 5:11).
오늘날은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마치 말씀하신 것처럼 거짓되이 전하거나, 농담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넣는다면 하나님께서 결코 죄 없다 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말고 진실되이 경외하며 섬겨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죄가 되는 이유
1)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구약시대는 선한 사람들에게 감동함을 주셔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충만함을 주셔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선한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받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만나고자 간절히 찾는 사람들은 기도 중에 마음이 뜨거워지는가 하면 환상이나 신령한 꿈 등 갖가지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알려 주고 계시지만 여전히 믿지 않고 부인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마음이 완악하고 참으로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20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못하고 미워한다면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정녕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살피시며 우리의 앉고 일어서며 대화하는 것들을 낱낱이 지켜보시고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 세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 있는 사람들은 어떤 순간에도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 없으니 성령이 역사하지 않았는데 감히 성령의 음성인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으나 참으로 믿지 못한 것이며, 바로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7-8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찮고 우습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 봉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속이고 목자와 형제를 속이며 거짓되이 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에 속합니다. 또한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자기의 정욕대로 살아가거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성령을 속이며 거짓되이 행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행 5:1).
만일 성령의 은사를 지나치게 사모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데도 하나님께서 주신 음성이나, 환상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가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언행에 주의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은 것인데도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처럼 말하거나 합당치 않은 말이나 농담 등에 하나님의 이름을 넣는다면 이는 모두 거짓말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죄 있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8을 보면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들도 구원받지 못할 것을 경고하셨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결코 망령되이 일컫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 안에 기쁨이 없고 염려, 근심,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죄의 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담이 없다면 항상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 기쁨이 넘칠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30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말씀하셨으니 무엇이 하나님과 담이 되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컬었다면 신속하게 돌이켜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성령의 역사하심을 말할 때 존칭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비가 오면 "하늘에서 비가 오신다"라고 존칭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기가 들거나 질병이 생기면 어떻게 말합니까? 어느 누구도 "감기가 들어오셨다"라고 존칭어를 사용하여 말하지 않을 것인데, 이는 그들도 질병은 원수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결코 함부로 사용할 수 없고 감히 거짓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자기를 과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자는 '내가 기도했더니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것이 성령의 음성이면 상관없는데 세상과 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데도 마치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말을 하니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거짓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꿈으로 혹은 환상 가운데 역사를 받기도 하고 친히 음성을 들을 수도 있으나 이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성령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꿈도 있지만 인간적인 생각 속에서 꾸는 꿈이 있고 사단이 역사하는 꿈도 있습니다. 이렇게 꿈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한 채 무조건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말한다면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분별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면 항상 깨어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진리로 무장하게 됩니다. 그리하면 범사에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게 되며 성령의 주관을 받아 행해 나가니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거나 믿는다 하면서도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든가,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거짓말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임을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시편 89:6-7에 "대저 궁창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권능 있는 자 중에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심히 엄위하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자시니이다" 말씀했으니 하나님을 진실하게 경외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더욱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아 성령의 인도함 속에 온전히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게 한다.
1. 제 3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중에서 제3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입니다(출 20:7).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고 있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엄위하심을 나타내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 출애굽기 3:14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자신에 대해 알려 주셨듯이, 여호와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감히 읽을 수가 없어서 <아도나이> 곧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토록 여호와라는 이름은 거룩하고 존귀한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13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우주 만물과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존귀한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신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주 만물을 보아도 조물주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마음이 강퍅한 사람은 이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 14:1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존귀하신 분이므로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어서는 안 됩니다.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은 언행이 정상을 벗어난 상태를 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를 죄 없다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신 5:11).
오늘날은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마치 말씀하신 것처럼 거짓되이 전하거나, 농담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넣는다면 하나님께서 결코 죄 없다 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말고 진실되이 경외하며 섬겨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죄가 되는 이유
1)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구약시대는 선한 사람들에게 감동함을 주셔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충만함을 주셔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선한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받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만나고자 간절히 찾는 사람들은 기도 중에 마음이 뜨거워지는가 하면 환상이나 신령한 꿈 등 갖가지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알려 주고 계시지만 여전히 믿지 않고 부인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마음이 완악하고 참으로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20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못하고 미워한다면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정녕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살피시며 우리의 앉고 일어서며 대화하는 것들을 낱낱이 지켜보시고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 세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 있는 사람들은 어떤 순간에도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 없으니 성령이 역사하지 않았는데 감히 성령의 음성인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으나 참으로 믿지 못한 것이며, 바로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7-8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찮고 우습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 봉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속이고 목자와 형제를 속이며 거짓되이 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에 속합니다. 또한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자기의 정욕대로 살아가거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성령을 속이며 거짓되이 행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행 5:1).
만일 성령의 은사를 지나치게 사모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데도 하나님께서 주신 음성이나, 환상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가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언행에 주의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은 것인데도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처럼 말하거나 합당치 않은 말이나 농담 등에 하나님의 이름을 넣는다면 이는 모두 거짓말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죄 있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8을 보면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들도 구원받지 못할 것을 경고하셨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결코 망령되이 일컫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 안에 기쁨이 없고 염려, 근심,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죄의 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담이 없다면 항상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 기쁨이 넘칠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30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말씀하셨으니 무엇이 하나님과 담이 되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컬었다면 신속하게 돌이켜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성령의 역사하심을 말할 때 존칭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비가 오면 "하늘에서 비가 오신다"라고 존칭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기가 들거나 질병이 생기면 어떻게 말합니까? 어느 누구도 "감기가 들어오셨다"라고 존칭어를 사용하여 말하지 않을 것인데, 이는 그들도 질병은 원수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결코 함부로 사용할 수 없고 감히 거짓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자기를 과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자는 '내가 기도했더니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것이 성령의 음성이면 상관없는데 세상과 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데도 마치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말을 하니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거짓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꿈으로 혹은 환상 가운데 역사를 받기도 하고 친히 음성을 들을 수도 있으나 이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성령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꿈도 있지만 인간적인 생각 속에서 꾸는 꿈이 있고 사단이 역사하는 꿈도 있습니다. 이렇게 꿈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한 채 무조건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말한다면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분별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면 항상 깨어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진리로 무장하게 됩니다. 그리하면 범사에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게 되며 성령의 주관을 받아 행해 나가니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거나 믿는다 하면서도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든가,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거짓말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임을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시편 89:6-7에 "대저 궁창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권능 있는 자 중에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심히 엄위하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자시니이다" 말씀했으니 하나님을 진실하게 경외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더욱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8-03
제30과십계명(2)
출 20:4-6
읽을말씀 : 출 20:4-6 | 외울말씀 : 마 22:37-40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2계명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구체적으로 깨달아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십계명 중 제2계명은 얼핏 들으면 제1계명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리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영적인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제1계명은 다신론에 대한 경고로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계실 뿐이며 그분만을 섬기고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반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라는 제2계명은 우상 숭배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상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제2계명의 영적인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우상이란 무엇인가?
1) 육적인 의미의 우상
우상이란 형태가 없는 신을 물질적인 형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서 새긴 우상이나 숭배의 대상이 되는 어떤 형상을 말합니다(사 46:6-7).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물질적 형상을 만들어 경배하는 것이 우상숭배이지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기를 좋아하는 것일까요? 우리 사람에게는 직접 보고 만지며 피부로 느껴져야 만족을 느끼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무나 돌, 쇠붙이나 금은붙이 등으로 남자나 여자의 형상, 땅 위에 있는 짐승이나 하늘에 나는 새, 땅 위에 기는 곤충,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족의 형상을 만들고 일월성신, 혹은 하늘 위의 군중을 경배하며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우상이 아닌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상과 마리아 상을 집 안에 두고 그 앞에 절하며 경배하고 마치 예수님처럼 섬기고 존경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우상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혹자는 '나무 십자가'에 대해서도 궁금하게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집 안에 걸린 나무 십자가를 바라보면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으며 보혈을 흘리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십자가는 우리에게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느끼게 해 줍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구원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음을 갖고 구원에 이르게 되니 우상에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양을 안고 계신 성화나 최후의 만찬 등의 그림도 그 자체가 우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화가가 어떤 뜻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려 놓은 것일 뿐이요, 사람들이 성화를 보고 '저분이 하나님이시다'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조각이나 성화 앞에서 절이나 경배하는 것은 결코 합당치 않으므로 어떤 경우에도 우상을 섬기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2) 영적인 의미의 우상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영적인 의미의 우상이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 앞에 절을 해야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좇아 남편, 아내,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바로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물질, 명예, 지식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 계명을 어기는 것도 우상을 섬기는 것에 속하지요.
그러므로 제2계명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하는 일이 없어야 합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으니 부모를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공경해야 합니다. 만일 부모가 교회 가지 말라고 하니 부모의 마음을 상치 않으려고 주일을 어겼다면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한 것이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부모가 참 생명을 얻도록 인도하는 것이므로, 주일을 지키며 신속히 부모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힘써 기도하며 전도해야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부모가 자녀를 진정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실한 사랑을 자녀에게 베풀 때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온전히 지켜 주십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로,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서로 자신의 유익을 좇아 육적인 사랑을 나누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님의 능력됨으로 변함 없는 영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 와서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가장 먼저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교회에 갔더니 하나님만 사랑하고 가족들을 사랑하지 말라더라.'고 오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여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축복을 주시고자 명하신 십일조를 아깝게 여겨 드리지 않거나,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돈을 사랑하고 권력과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할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도 영적인 우상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또한 청소년들 중에는 좋아하는 가수나 영화배우, 탤런트, 운동선수의 사진을 방에 걸어 놓거나 심지어는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좋아하는 인형이나 어떤 물건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면 결국 우상을 섬기는 것이니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2. 우상을 섬기는 사람에게 임하는 보응
제2계명 후반절에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말씀하시며 계명을 지켜 순종하는 자에게 내려질 축복과 불순종하는 자에 대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인간적 차원에서의 질투가 아닌 사랑의 질투입니다. 사람의 질투는 인간의 육정에서 나오므로 추하고 무섭지만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때 외면하시므로 시험 환난이 오고 질병이 틈타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는데,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가 죄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가지 아니하고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랑의 질투란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온전케 만들며 구원해 주셔서 영생으로 인도하기 위한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오직 사랑과 공의로 역사하시며, 전지전능하셔서 우리를 항상 지키시고 주관하십니다. 또 질병이 틈타지 않게 막아 주시고 가정, 일터, 사업터에서 형통함을 받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므로 하나님을 미워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두고도 다른 신들을 섬기고 우상을 만들어 놓고 절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주셔서 희생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시며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역사하셨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여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한다면 어찌 멸망의 길로 가도록 가만히 계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른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란 바로 하나님 앞에 반역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을 뿐 아니라 우상 앞에 절하며 그것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지켜 줄 수 없고 외면하시기 때문에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로 환난과 질고가 임하며 결국 삼사 대에 걸쳐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만일 재앙이 사 대까지 임한다면 그 가문은 완전히 멸족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니 재앙이 삼 대에서 끝나게 되지요. 만일 사 대까지 재앙이 임하면 질병이나 물질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가정일수록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니 그 후손들 가운데 갖가지 질병이나 불구자, 귀신 들린 자 등이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우상을 만들거나 그것에 절하고 섬김으로 하나님을 진노케 하여 시험 환난을 자초하며 재앙을 당하는 미련한 사람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3. 순종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시므로 길이길이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참 신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만사형통의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그 자녀들도 더불어 축복을 받으니 믿음이 있어 신앙생활을 잘하는 가정은 천 대 곧 길이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요,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에 죄는 삼사 대까지 적게 보응을 하시되 은혜는 천 대까지 길이길이 베푸십니다. 조상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그 후손들에게도 축복이 임하게 되지만, 무조건 천 대까지 축복을 주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아브라함에게 '자손 대대로 축복을 받을지라' 언약하셨지만 하나님을 찾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복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사랑하니 그 후손들에게 축복을 주신다고 언약하신 말씀대로 지켜 주시고 그 후손 대대로 멸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으나, 그 후손 중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조상의 마음이 선하여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후손들이 그 기를 물려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며 기쁘시게 하여 천 대까지 은혜를 입는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2계명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구체적으로 깨달아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십계명 중 제2계명은 얼핏 들으면 제1계명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리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영적인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제1계명은 다신론에 대한 경고로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계실 뿐이며 그분만을 섬기고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반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라는 제2계명은 우상 숭배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상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제2계명의 영적인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우상이란 무엇인가?
1) 육적인 의미의 우상
우상이란 형태가 없는 신을 물질적인 형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서 새긴 우상이나 숭배의 대상이 되는 어떤 형상을 말합니다(사 46:6-7).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물질적 형상을 만들어 경배하는 것이 우상숭배이지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기를 좋아하는 것일까요? 우리 사람에게는 직접 보고 만지며 피부로 느껴져야 만족을 느끼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무나 돌, 쇠붙이나 금은붙이 등으로 남자나 여자의 형상, 땅 위에 있는 짐승이나 하늘에 나는 새, 땅 위에 기는 곤충,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족의 형상을 만들고 일월성신, 혹은 하늘 위의 군중을 경배하며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우상이 아닌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상과 마리아 상을 집 안에 두고 그 앞에 절하며 경배하고 마치 예수님처럼 섬기고 존경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우상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혹자는 '나무 십자가'에 대해서도 궁금하게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집 안에 걸린 나무 십자가를 바라보면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으며 보혈을 흘리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십자가는 우리에게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느끼게 해 줍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구원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음을 갖고 구원에 이르게 되니 우상에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양을 안고 계신 성화나 최후의 만찬 등의 그림도 그 자체가 우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화가가 어떤 뜻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려 놓은 것일 뿐이요, 사람들이 성화를 보고 '저분이 하나님이시다'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조각이나 성화 앞에서 절이나 경배하는 것은 결코 합당치 않으므로 어떤 경우에도 우상을 섬기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2) 영적인 의미의 우상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영적인 의미의 우상이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 앞에 절을 해야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좇아 남편, 아내,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바로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물질, 명예, 지식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 계명을 어기는 것도 우상을 섬기는 것에 속하지요.
그러므로 제2계명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하는 일이 없어야 합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으니 부모를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공경해야 합니다. 만일 부모가 교회 가지 말라고 하니 부모의 마음을 상치 않으려고 주일을 어겼다면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한 것이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부모가 참 생명을 얻도록 인도하는 것이므로, 주일을 지키며 신속히 부모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힘써 기도하며 전도해야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부모가 자녀를 진정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실한 사랑을 자녀에게 베풀 때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온전히 지켜 주십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로,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서로 자신의 유익을 좇아 육적인 사랑을 나누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님의 능력됨으로 변함 없는 영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 와서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가장 먼저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교회에 갔더니 하나님만 사랑하고 가족들을 사랑하지 말라더라.'고 오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여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축복을 주시고자 명하신 십일조를 아깝게 여겨 드리지 않거나,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돈을 사랑하고 권력과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할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도 영적인 우상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또한 청소년들 중에는 좋아하는 가수나 영화배우, 탤런트, 운동선수의 사진을 방에 걸어 놓거나 심지어는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좋아하는 인형이나 어떤 물건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면 결국 우상을 섬기는 것이니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2. 우상을 섬기는 사람에게 임하는 보응
제2계명 후반절에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말씀하시며 계명을 지켜 순종하는 자에게 내려질 축복과 불순종하는 자에 대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인간적 차원에서의 질투가 아닌 사랑의 질투입니다. 사람의 질투는 인간의 육정에서 나오므로 추하고 무섭지만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때 외면하시므로 시험 환난이 오고 질병이 틈타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는데,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가 죄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가지 아니하고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랑의 질투란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온전케 만들며 구원해 주셔서 영생으로 인도하기 위한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오직 사랑과 공의로 역사하시며, 전지전능하셔서 우리를 항상 지키시고 주관하십니다. 또 질병이 틈타지 않게 막아 주시고 가정, 일터, 사업터에서 형통함을 받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므로 하나님을 미워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두고도 다른 신들을 섬기고 우상을 만들어 놓고 절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주셔서 희생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시며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역사하셨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여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한다면 어찌 멸망의 길로 가도록 가만히 계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른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란 바로 하나님 앞에 반역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을 뿐 아니라 우상 앞에 절하며 그것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지켜 줄 수 없고 외면하시기 때문에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로 환난과 질고가 임하며 결국 삼사 대에 걸쳐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만일 재앙이 사 대까지 임한다면 그 가문은 완전히 멸족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니 재앙이 삼 대에서 끝나게 되지요. 만일 사 대까지 재앙이 임하면 질병이나 물질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가정일수록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니 그 후손들 가운데 갖가지 질병이나 불구자, 귀신 들린 자 등이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우상을 만들거나 그것에 절하고 섬김으로 하나님을 진노케 하여 시험 환난을 자초하며 재앙을 당하는 미련한 사람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3. 순종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시므로 길이길이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참 신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만사형통의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그 자녀들도 더불어 축복을 받으니 믿음이 있어 신앙생활을 잘하는 가정은 천 대 곧 길이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요,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에 죄는 삼사 대까지 적게 보응을 하시되 은혜는 천 대까지 길이길이 베푸십니다. 조상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그 후손들에게도 축복이 임하게 되지만, 무조건 천 대까지 축복을 주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아브라함에게 '자손 대대로 축복을 받을지라' 언약하셨지만 하나님을 찾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복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사랑하니 그 후손들에게 축복을 주신다고 언약하신 말씀대로 지켜 주시고 그 후손 대대로 멸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으나, 그 후손 중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조상의 마음이 선하여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후손들이 그 기를 물려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며 기쁘시게 하여 천 대까지 은혜를 입는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2007-07-27
제29과십계명(1)
출 20:3
읽을말씀 : 출 20:3 | 외울말씀 : 요일 5:2-3
교육목표 : 십계명의 영적 의미를 깨달아 지켜 나감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 받는 자녀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의 법도를 요약한 십계명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받고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성경을 통해 하늘나라의 법을 배우고 그대로 실천하여 만사형통한 축복과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 그대로 행하는 참자녀를 얻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십계명은 하나님의 법으로서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요약한 것입니다. 성경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을 낱낱이 풀이하여 살을 붙이면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으로 주신 것이지만, 구약시대나 오늘날이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변함없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도입니다. 십계명은 그만큼 중요한 하나님의 언약이요, 구원의 기초가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처럼 생각하여 어떻게 십계명을 다 지킬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요,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곧 66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며, 계명들은 우리가 지켜 행하기에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요일 5:2-3).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능히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연인들이 추운 겨울날 데이트를 해도 함께 사랑을 나눈다는 기쁨 때문에 추운 줄을 모르는 것처럼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의 계명들을 능히 지켜 나갈 수 있는 것이요,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자기 의지와 노력으로 행하므로 힘들었지만 신약시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기에 이를 믿고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능력됨으로 지키게 되니 조금도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요한일서 2:4에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고 자기 자신도 속이는 것이며 그 안에는 진리가 없다고 하셨는데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있다고 하면 당연히 진리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37 이하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십계명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한 두 가지 계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즉 제1-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이고, 제5계명-10계명까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십계명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2.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셨는데 여기서 '너'란 단순히 십계명을 받은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지켜야 할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가장 첫째 되는 계명으로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명하셨을까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요, 전지전능하시며 살아 계신 참신이시고, 참 생명과 영생을 주며, 모든 우주만물과 인류 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신'이란 종교적인 대상으로 초인적인 힘, 또는 초자연적인 위력을 가진 존재, 곧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지요. 사람들은 많은 신들이 자신을 도와주면 더 좋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처를, 고목나무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북두칠성 등을 신으로 믿고 열심히 절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800만이나 되는 우상을 섬기고 있지요. 이렇게 많은 신들을 만들어 섬기는 것은 마음이 연약해서 위안을 받기 위함이요, 혹은 습관을 좇아 조상들을 따르거나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신들은 말을 하거나 능력이 있어 우리를 구원해 주고 응답하거나 온전케 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응답해 주시며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 명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며,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여 정도를 좇아 살아갑니다. 마음이 혼잡한 사람들은 여러 신에게 빌면서 섬겼지만 마음이 곧은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믿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 중엽 이순신 장군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한 분으로서 하늘에 뜻을 두고 정도를 좇아 하늘의 신 곧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게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바로 양심심판입니다. 구약시대나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도 선한 양심을 따라 신을 인정하고 정도를 좇은 사람들이 많으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양심심판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롬 2:14-15).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시험 환난이 끊이지 않고 눈물, 슬픔, 고통, 질병 가운데 늘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은 신들을 만들어 경배하지만 이것들은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신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고, 하나님과 원수된 마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로마서 1:24-25에 기록된 대로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조물주이신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6 말씀처럼 아담의 불순종 이후 이 세상을 주관하게 된 원수 마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의심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믿음을 소유 못하도록 방해하고, 죄를 짓게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망의 길로 가게 하지요. 그러므로 참신 곧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두면 그 결국은 패망임을 알아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3. 제1계명을 지킬 때 임하는 축복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영원히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섬김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이 땅에서도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하여 정욕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경배하며 섬기는 것이지요.
질서정연하게 운행되는 우주만물을 살펴보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0에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천하 만물을 보아도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으니 어느 누구도 심판 날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믿지 못했다고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명하시며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독교는 하나님만 믿으라고 하니 너무 배타적인 종교가 아닌가' 하면서 제1계명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지한 사람들을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서 나온 귀한 계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계명을 기록해 놓지 않으셨다면 마음에 정함이 없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질서 문란하게 다른 신들을 섬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점을 치고 굿을 한다거나 고사를 지내며 그 외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가 없으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살아 계신 증거를 보여 주시며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각색 병든 자를 치료해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으며, 어두운 영혼을 밝게 해 주시고 죄에서 떠나 영생을 약속하시며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주의 종과 일꾼들을 통하여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1계명의 영적인 의미를 잘 깨달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우주만물과 세계 역사,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며 담대하게 '참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라고 증거할 수 있는 복된 입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십계명의 영적 의미를 깨달아 지켜 나감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 받는 자녀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의 법도를 요약한 십계명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받고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성경을 통해 하늘나라의 법을 배우고 그대로 실천하여 만사형통한 축복과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 그대로 행하는 참자녀를 얻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십계명은 하나님의 법으로서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요약한 것입니다. 성경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을 낱낱이 풀이하여 살을 붙이면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으로 주신 것이지만, 구약시대나 오늘날이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변함없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도입니다. 십계명은 그만큼 중요한 하나님의 언약이요, 구원의 기초가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처럼 생각하여 어떻게 십계명을 다 지킬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요,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곧 66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며, 계명들은 우리가 지켜 행하기에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요일 5:2-3).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능히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연인들이 추운 겨울날 데이트를 해도 함께 사랑을 나눈다는 기쁨 때문에 추운 줄을 모르는 것처럼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의 계명들을 능히 지켜 나갈 수 있는 것이요,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자기 의지와 노력으로 행하므로 힘들었지만 신약시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기에 이를 믿고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능력됨으로 지키게 되니 조금도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요한일서 2:4에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고 자기 자신도 속이는 것이며 그 안에는 진리가 없다고 하셨는데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있다고 하면 당연히 진리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37 이하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십계명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한 두 가지 계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즉 제1-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이고, 제5계명-10계명까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십계명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2.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셨는데 여기서 '너'란 단순히 십계명을 받은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지켜야 할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가장 첫째 되는 계명으로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명하셨을까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요, 전지전능하시며 살아 계신 참신이시고, 참 생명과 영생을 주며, 모든 우주만물과 인류 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신'이란 종교적인 대상으로 초인적인 힘, 또는 초자연적인 위력을 가진 존재, 곧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지요. 사람들은 많은 신들이 자신을 도와주면 더 좋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처를, 고목나무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북두칠성 등을 신으로 믿고 열심히 절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800만이나 되는 우상을 섬기고 있지요. 이렇게 많은 신들을 만들어 섬기는 것은 마음이 연약해서 위안을 받기 위함이요, 혹은 습관을 좇아 조상들을 따르거나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신들은 말을 하거나 능력이 있어 우리를 구원해 주고 응답하거나 온전케 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응답해 주시며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 명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며,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여 정도를 좇아 살아갑니다. 마음이 혼잡한 사람들은 여러 신에게 빌면서 섬겼지만 마음이 곧은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믿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 중엽 이순신 장군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한 분으로서 하늘에 뜻을 두고 정도를 좇아 하늘의 신 곧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게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바로 양심심판입니다. 구약시대나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도 선한 양심을 따라 신을 인정하고 정도를 좇은 사람들이 많으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양심심판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롬 2:14-15).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시험 환난이 끊이지 않고 눈물, 슬픔, 고통, 질병 가운데 늘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은 신들을 만들어 경배하지만 이것들은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신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고, 하나님과 원수된 마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로마서 1:24-25에 기록된 대로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조물주이신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6 말씀처럼 아담의 불순종 이후 이 세상을 주관하게 된 원수 마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의심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믿음을 소유 못하도록 방해하고, 죄를 짓게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망의 길로 가게 하지요. 그러므로 참신 곧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두면 그 결국은 패망임을 알아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3. 제1계명을 지킬 때 임하는 축복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영원히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섬김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이 땅에서도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하여 정욕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경배하며 섬기는 것이지요.
질서정연하게 운행되는 우주만물을 살펴보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0에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천하 만물을 보아도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으니 어느 누구도 심판 날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믿지 못했다고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명하시며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독교는 하나님만 믿으라고 하니 너무 배타적인 종교가 아닌가' 하면서 제1계명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지한 사람들을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서 나온 귀한 계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계명을 기록해 놓지 않으셨다면 마음에 정함이 없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질서 문란하게 다른 신들을 섬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점을 치고 굿을 한다거나 고사를 지내며 그 외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가 없으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살아 계신 증거를 보여 주시며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각색 병든 자를 치료해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으며, 어두운 영혼을 밝게 해 주시고 죄에서 떠나 영생을 약속하시며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주의 종과 일꾼들을 통하여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1계명의 영적인 의미를 잘 깨달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우주만물과 세계 역사,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며 담대하게 '참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라고 증거할 수 있는 복된 입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007-07-20
제28과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려면(2)
롬 8:12-18
읽을말씀 : 롬 8:12-18 | 외울말씀 : 요일 2:4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을 깨달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여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신앙생활은 물론 심방이나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주에는 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야 하는지 살펴보았고, 금주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며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을 받아 나가게 되지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8:13에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말씀하시며 그 믿음대로 응답받는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100% 신뢰하면 100% 신뢰해 주시고, 50%만 신뢰하면 하나님께서도 50%밖에 신뢰하실 수 없지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막상 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고민하거나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는데 하나님을 100%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4에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말씀했습니다. 진리가 내 안에 있다면 말씀에 순종하여 계명을 지킬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지식으로만 쌓아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마음 중심에서 행할 수 있는 믿음이 아니므로 순종이 따르지 않고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믿음을 내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고 할지라도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거짓말하는 습성을 좇아 나온 말에 불과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사와 표적을 보고서도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라고 나름대로 믿는다고 하지만 마음 중심에서 순종할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순종하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고 온전히 순종하면 끝이 없는 영적인 세계로 인도해 주시니 하나님에 대해 밝히 알게 되지요. 천국에 대한 소망과 그 아름다움은 물론 영적으로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달라지게 됩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신앙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새롭고 이해의 폭도 깊어지며, 전에는 하나의 윤리 도덕 정도로 들리던 말씀들이 영안이 열림에 따라 은혜로 다가오게 됩니다. 더 깊은 영적 차원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같이 달게 느껴지고 마음 중심에서 "아멘" 하며 말씀이 곧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혹여 말씀을 들을 때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말씀이니 은혜가 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음을 깨달아 신속히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으려면
1)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기 위한 필수 요건은 불 같은 기도입니다. 아무리 듣고 배워서 방법을 안다고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릴 수 없습니다. 기도해야 성령의 감동감화, 교통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지요. 성령의 음성을 듣고 행하여 인도를 받아야 육체의 일을 버리고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성장해 오는 동안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이 느낌과 함께 입력된 생각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비진리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비진리의 생각들이 바로 육신의 생각이지요(롬 8:7).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듣는다 해도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여 영적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불 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나 야곱, 베드로, 바울 사도 등 하나님의 인정받은 종들도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기 위한 연단을 받았으며, 연단 후에는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함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반면 사울 왕이나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속 불순종하여 결국은 멸망받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육신의 생각을 깨뜨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현 시점에서부터 더 이상 비진리를 입력시키지 말고 입력되어 있는 기존의 비진리들을 피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합니다.
로마서 7:21-24에도 보면 전에는 죄를 지어도 죄인지조차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 되어 혼과 영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므로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괴로움과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비진리를 도와주는 원군을 차단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원군이란 안목의 정욕을 말하며 이것은 하나님께로 오지 않고 세상 주관자인 원수 마귀로부터 오지요. 이것이 비진리에 작용하여 육신의 생각을 강하게 만듦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기회를 끊고 없애야 하는데 육에 물들어 있는 사람, 안목의 정욕에 물들어 있는 사람은 그러한 생각을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것들은 당연히 끊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속극을 보느라고 기도할 시간을 놓치고, 심방가는 데 늑장을 부리게 된다면 텔레비전 보는 일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절제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었다면 그러한 안목의 정욕은 끊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듣는 것도 만나면 누구를 헐뜯는다든가 비진리를 말한다고 한다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대할 때 힘들고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비진리의 말을 하면 진리의 대화로 이끌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가 싫어 떠나거나 변화되어 진리의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비진리를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더 이상 입력되지 않으므로 원군이 차단되지요. 원래 입력돼 있던 비진리는 마음 안에서 포위되어 꼼짝 못하고 갇혀 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 상태에서 진리를 주관하는 자신의 의지적인 노력과 성령의 도우심과 불 같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게 되면 비진리는 떠나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비진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불 같은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얼마큼 피 흘려 싸우고 노력하며 어떠한 각오를 하느냐에 따라 1년, 한 달, 순간에도 버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철야하며 기도와 금식으로 육신의 생각을 버려 나가는데 가장 힘든 것을 뿌리째 뽑아 버리면 부수적인 죄들은 큰 나무를 뽑으면 잔뿌리도 함께 뽑혀 나가듯 함께 버려집니다. 즉, 마음에서 비진리가 떠나면 육신의 생각은 자연히 떠나게 되지요. 단지 기억으로만 남으므로 더듬어 기억하지 않는 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과 인도를 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미워하지 말라고 하면 "이제 사랑하겠습니다." 하고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을까?' 하며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 나가면 결국 미움은 떠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영혼이 잘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입력된 육적인 것들을 전부 무(無)로 돌리고 66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영으로 마음을 일구면 생각도 영으로 일구어져 육신의 생각이 깨어지고 영의 생각만 남게 됩니다. 이처럼 계속적으로 인도받고 순종해 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므로 매사를 주관하실 것이고 불 같은 기도로 지혜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약 1:5).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인도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영으로 들어간 사람과 여전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과의 영적인 수준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요. 기쁨도 행복도 믿음도 달라질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와 축복이 달라질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변한 것도 없고 똑같은 것 같아도 그 능력이나 말의 권세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얼굴빛도 달라짐으로 원수 마귀가 무서워 떨게 되며 기도의 능력을 받아 쉽게 응답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장받는 단계로 들어가니 맡은 사명에 대한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육적인 문제도 다 해결되지요. 영혼이 잘되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게 되며 하나님께서 친히 이끄시고 역사해 가심으로 만사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 8:12 이하에 보면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 삼아 지켜 행함으로 늘 성령의 밝은 음성과 인도 주관을 받아 나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을 깨달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여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신앙생활은 물론 심방이나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주에는 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야 하는지 살펴보았고, 금주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며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을 받아 나가게 되지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8:13에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말씀하시며 그 믿음대로 응답받는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100% 신뢰하면 100% 신뢰해 주시고, 50%만 신뢰하면 하나님께서도 50%밖에 신뢰하실 수 없지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막상 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고민하거나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는데 하나님을 100%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4에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말씀했습니다. 진리가 내 안에 있다면 말씀에 순종하여 계명을 지킬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지식으로만 쌓아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마음 중심에서 행할 수 있는 믿음이 아니므로 순종이 따르지 않고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믿음을 내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고 할지라도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거짓말하는 습성을 좇아 나온 말에 불과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사와 표적을 보고서도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라고 나름대로 믿는다고 하지만 마음 중심에서 순종할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순종하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고 온전히 순종하면 끝이 없는 영적인 세계로 인도해 주시니 하나님에 대해 밝히 알게 되지요. 천국에 대한 소망과 그 아름다움은 물론 영적으로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달라지게 됩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신앙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새롭고 이해의 폭도 깊어지며, 전에는 하나의 윤리 도덕 정도로 들리던 말씀들이 영안이 열림에 따라 은혜로 다가오게 됩니다. 더 깊은 영적 차원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같이 달게 느껴지고 마음 중심에서 "아멘" 하며 말씀이 곧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혹여 말씀을 들을 때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말씀이니 은혜가 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음을 깨달아 신속히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으려면
1)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기 위한 필수 요건은 불 같은 기도입니다. 아무리 듣고 배워서 방법을 안다고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릴 수 없습니다. 기도해야 성령의 감동감화, 교통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지요. 성령의 음성을 듣고 행하여 인도를 받아야 육체의 일을 버리고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성장해 오는 동안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이 느낌과 함께 입력된 생각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비진리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비진리의 생각들이 바로 육신의 생각이지요(롬 8:7).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듣는다 해도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여 영적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불 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나 야곱, 베드로, 바울 사도 등 하나님의 인정받은 종들도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기 위한 연단을 받았으며, 연단 후에는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함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반면 사울 왕이나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속 불순종하여 결국은 멸망받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육신의 생각을 깨뜨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현 시점에서부터 더 이상 비진리를 입력시키지 말고 입력되어 있는 기존의 비진리들을 피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합니다.
로마서 7:21-24에도 보면 전에는 죄를 지어도 죄인지조차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 되어 혼과 영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므로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괴로움과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비진리를 도와주는 원군을 차단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원군이란 안목의 정욕을 말하며 이것은 하나님께로 오지 않고 세상 주관자인 원수 마귀로부터 오지요. 이것이 비진리에 작용하여 육신의 생각을 강하게 만듦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기회를 끊고 없애야 하는데 육에 물들어 있는 사람, 안목의 정욕에 물들어 있는 사람은 그러한 생각을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것들은 당연히 끊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속극을 보느라고 기도할 시간을 놓치고, 심방가는 데 늑장을 부리게 된다면 텔레비전 보는 일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절제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었다면 그러한 안목의 정욕은 끊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듣는 것도 만나면 누구를 헐뜯는다든가 비진리를 말한다고 한다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대할 때 힘들고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비진리의 말을 하면 진리의 대화로 이끌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가 싫어 떠나거나 변화되어 진리의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비진리를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더 이상 입력되지 않으므로 원군이 차단되지요. 원래 입력돼 있던 비진리는 마음 안에서 포위되어 꼼짝 못하고 갇혀 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 상태에서 진리를 주관하는 자신의 의지적인 노력과 성령의 도우심과 불 같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게 되면 비진리는 떠나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비진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불 같은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얼마큼 피 흘려 싸우고 노력하며 어떠한 각오를 하느냐에 따라 1년, 한 달, 순간에도 버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철야하며 기도와 금식으로 육신의 생각을 버려 나가는데 가장 힘든 것을 뿌리째 뽑아 버리면 부수적인 죄들은 큰 나무를 뽑으면 잔뿌리도 함께 뽑혀 나가듯 함께 버려집니다. 즉, 마음에서 비진리가 떠나면 육신의 생각은 자연히 떠나게 되지요. 단지 기억으로만 남으므로 더듬어 기억하지 않는 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과 인도를 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미워하지 말라고 하면 "이제 사랑하겠습니다." 하고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을까?' 하며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 나가면 결국 미움은 떠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영혼이 잘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입력된 육적인 것들을 전부 무(無)로 돌리고 66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영으로 마음을 일구면 생각도 영으로 일구어져 육신의 생각이 깨어지고 영의 생각만 남게 됩니다. 이처럼 계속적으로 인도받고 순종해 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므로 매사를 주관하실 것이고 불 같은 기도로 지혜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약 1:5).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인도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영으로 들어간 사람과 여전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과의 영적인 수준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요. 기쁨도 행복도 믿음도 달라질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와 축복이 달라질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변한 것도 없고 똑같은 것 같아도 그 능력이나 말의 권세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얼굴빛도 달라짐으로 원수 마귀가 무서워 떨게 되며 기도의 능력을 받아 쉽게 응답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장받는 단계로 들어가니 맡은 사명에 대한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육적인 문제도 다 해결되지요. 영혼이 잘되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게 되며 하나님께서 친히 이끄시고 역사해 가심으로 만사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 8:12 이하에 보면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 삼아 지켜 행함으로 늘 성령의 밝은 음성과 인도 주관을 받아 나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7-13
제27과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려면(1)
요 16:13
읽을말씀 : 요 16:13 | 외울말씀 : 요일 3:21-22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을 깨달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여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면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야 하는 이유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게 되면 영적 성장을 이루게 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도 능력있게 행하며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요 4:24) 하나님의 자녀들도 영적인 방법을 좇아서 행할 때 영적인 생명을 낳으며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심한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형제가 있다고 합시다. 그가 만일 육에 속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라는 위로의 말을 듣기 원하고 물질적인 도움을 바라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반면에 그 형제가 영에 속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주어 어려움을 이기도록 도와주는 사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만일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가 죄에서 비롯되었다면 회개하고 돌이킬 때 어려움이 해결될 것이고, 죄와 상관없이 어려움을 통하여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함으로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방이나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반드시 영적인 생명을 낳으며 영혼이 잘되게 도와주며 열매를 맺도록 변화시켜 주어야 합니다. 육적인 방법을 좇아 행하면 그 순간은 열매를 맺는 것 같아도 사단이 역사하거나 시험 환난이 닥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는 방법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진리를 알고 깨우친 만큼 그 안에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여 심비에 새기게 되면 우리 마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때를 따라 내 안에 있는 진리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존재하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므로 진리에 위배되는 비진리가 존재하면 그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비진리가 존재하면 진리로 마음을 주관하는 성령의 음성을 듣기 전에 비진리의 생각에서 오는 사단의 음성이 먼저 작용을 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평소에 알고 지내던 남녀가 벤치에 앉아 다정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았다면 사람들마다 느낌이 다릅니다. 자기에게 입력되어 있는 경험에 대입하게 되니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 것이지요. 똑같은 상황이지만 사람마다 각기 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순간에 생각이 와서 자기 안에 입력되어 있는 느낌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 안에 비진리가 전혀 없고 오직 진리의 마음만 있다면 사단이 생각을 통하여 주관할 수 없으니 생각에서 오는 사단의 음성은 전혀 들을 수 없고 오직 성령의 음성만 듣게 됩니다. 내 안에 비진리의 마음이 있을 때에는 사단이 역사하여 성령의 음성을 차단시키므로 입력된 생각이 앞서게 되지요. 비진리가 없으면 사단이 생각을 통하여 작용할 수 없으므로 이런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상대를 오해하거나 판단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진리가 조금 남아있다 할지라도 진리가 훨씬 더 많다면 성령은 내 안에 있는 진리를 강하게 주관하시므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주관받은 성령의 음성은 강하고 생각을 통해 역사하는 사단의 음성은 희미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비진리를 버리려고 하는 사람이 굳이 희미하게 들리는 사단의 음성을 들으려고 할 리 없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두 방송이 있는데 만일 A방송은 크게 틀어 놓고 B방송은 매우 작은 소리로 틀어 놓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느 방송이 잘 들리겠습니까? 억지로 들으려고 애쓰지 않는 이상 B방송은 거의 들리지 않고 A방송은 잘 들릴 것입니다. 더군다나 A방송을 시청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B방송에서 나오는 미세한 소리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니 B방송은 아예 무시되어 거의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3. 성령의 음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십니다. 그때부터 성령께서는 마음 안에 내주하시며 진리가 임한 만큼 직접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시게 됩니다.
반면에 사단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 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에 비진리의 생각을 통하여 역사합니다. 즉 어떤 집의 안방에 들어가려고 할 때 집 밖에 있는 사람은 대문을 통과하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비진리의 생각을 차단하려면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해 나갈 때 비진리의 생각을 차단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밝히 인도받을 수 있게 됩니다.
요한일서 3:21-22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비진리의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을 때 임하는 축복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은 영혼이 잘된 사람이므로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요삼 2절). 더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으로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하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시고 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간섭하여 주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친히 인도하여 주시면 염려, 근심, 걱정할 일이 없으며 범사에 형통함을 받게 됩니다.
만일 잠이 부족하여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매우 힘든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면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될 때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난다든지, 누가 찾아온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등 하나님께서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정확하게 깨워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살게 되면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주관하시며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성령께서 온전히 주관하시면 내 생각인지 아니면 성령의 음성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없으며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말하게 하시고 장래 일도 알게 하십니다(요 14:26, 16:13). 더 나아가 하나님의 보장을 받게 되면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 나타나고(막 16:17-18),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게 되니(요 1:12) 영적인 믿음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았으면서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자꾸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영을 낳아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는데,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으니 계속하여 영을 낳을 수 없는 것이요, 이렇게 자신을 영적인 사람으로 일구지 못한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듣기가 힘든 것입니다.
만약 내 생각이나 마음의 10% 정도를 하나님께 맡겼다면 10% 정도만 성령의 역사를 받고 나머지 90%는 하나님과 원수된 육신의 생각이 앞서므로 그만큼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게 되면 점점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므로 성령의 음성을 들었을 때 이를 무시하거나 거역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무엘상 15:22-23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성장을 하며 영혼을 변화시켜 천국으로 인도받기 위해서는 육적인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모든 문제를 영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을 깨달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여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면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야 하는 이유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게 되면 영적 성장을 이루게 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도 능력있게 행하며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요 4:24) 하나님의 자녀들도 영적인 방법을 좇아서 행할 때 영적인 생명을 낳으며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심한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형제가 있다고 합시다. 그가 만일 육에 속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라는 위로의 말을 듣기 원하고 물질적인 도움을 바라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반면에 그 형제가 영에 속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주어 어려움을 이기도록 도와주는 사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만일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가 죄에서 비롯되었다면 회개하고 돌이킬 때 어려움이 해결될 것이고, 죄와 상관없이 어려움을 통하여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함으로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방이나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반드시 영적인 생명을 낳으며 영혼이 잘되게 도와주며 열매를 맺도록 변화시켜 주어야 합니다. 육적인 방법을 좇아 행하면 그 순간은 열매를 맺는 것 같아도 사단이 역사하거나 시험 환난이 닥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는 방법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진리를 알고 깨우친 만큼 그 안에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여 심비에 새기게 되면 우리 마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때를 따라 내 안에 있는 진리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존재하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므로 진리에 위배되는 비진리가 존재하면 그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비진리가 존재하면 진리로 마음을 주관하는 성령의 음성을 듣기 전에 비진리의 생각에서 오는 사단의 음성이 먼저 작용을 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평소에 알고 지내던 남녀가 벤치에 앉아 다정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았다면 사람들마다 느낌이 다릅니다. 자기에게 입력되어 있는 경험에 대입하게 되니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 것이지요. 똑같은 상황이지만 사람마다 각기 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순간에 생각이 와서 자기 안에 입력되어 있는 느낌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 안에 비진리가 전혀 없고 오직 진리의 마음만 있다면 사단이 생각을 통하여 주관할 수 없으니 생각에서 오는 사단의 음성은 전혀 들을 수 없고 오직 성령의 음성만 듣게 됩니다. 내 안에 비진리의 마음이 있을 때에는 사단이 역사하여 성령의 음성을 차단시키므로 입력된 생각이 앞서게 되지요. 비진리가 없으면 사단이 생각을 통하여 작용할 수 없으므로 이런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상대를 오해하거나 판단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진리가 조금 남아있다 할지라도 진리가 훨씬 더 많다면 성령은 내 안에 있는 진리를 강하게 주관하시므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주관받은 성령의 음성은 강하고 생각을 통해 역사하는 사단의 음성은 희미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비진리를 버리려고 하는 사람이 굳이 희미하게 들리는 사단의 음성을 들으려고 할 리 없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두 방송이 있는데 만일 A방송은 크게 틀어 놓고 B방송은 매우 작은 소리로 틀어 놓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느 방송이 잘 들리겠습니까? 억지로 들으려고 애쓰지 않는 이상 B방송은 거의 들리지 않고 A방송은 잘 들릴 것입니다. 더군다나 A방송을 시청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B방송에서 나오는 미세한 소리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니 B방송은 아예 무시되어 거의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3. 성령의 음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십니다. 그때부터 성령께서는 마음 안에 내주하시며 진리가 임한 만큼 직접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시게 됩니다.
반면에 사단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 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에 비진리의 생각을 통하여 역사합니다. 즉 어떤 집의 안방에 들어가려고 할 때 집 밖에 있는 사람은 대문을 통과하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비진리의 생각을 차단하려면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해 나갈 때 비진리의 생각을 차단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밝히 인도받을 수 있게 됩니다.
요한일서 3:21-22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비진리의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을 때 임하는 축복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은 영혼이 잘된 사람이므로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요삼 2절). 더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으로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하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시고 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간섭하여 주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친히 인도하여 주시면 염려, 근심, 걱정할 일이 없으며 범사에 형통함을 받게 됩니다.
만일 잠이 부족하여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매우 힘든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면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될 때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난다든지, 누가 찾아온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등 하나님께서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정확하게 깨워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살게 되면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주관하시며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성령께서 온전히 주관하시면 내 생각인지 아니면 성령의 음성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없으며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말하게 하시고 장래 일도 알게 하십니다(요 14:26, 16:13). 더 나아가 하나님의 보장을 받게 되면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 나타나고(막 16:17-18),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게 되니(요 1:12) 영적인 믿음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았으면서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자꾸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영을 낳아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는데,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으니 계속하여 영을 낳을 수 없는 것이요, 이렇게 자신을 영적인 사람으로 일구지 못한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듣기가 힘든 것입니다.
만약 내 생각이나 마음의 10% 정도를 하나님께 맡겼다면 10% 정도만 성령의 역사를 받고 나머지 90%는 하나님과 원수된 육신의 생각이 앞서므로 그만큼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게 되면 점점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므로 성령의 음성을 들었을 때 이를 무시하거나 거역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무엘상 15:22-23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성장을 하며 영혼을 변화시켜 천국으로 인도받기 위해서는 육적인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모든 문제를 영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007-07-06
제26과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본분
요일 5:3
읽을말씀 : 요일 5:3 | 외울말씀 : 전 12:13
교육목표 :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라면 하나님의 계명들을 무거운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 계명들을 감사와 기쁨으로 지킬 수 있게 한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소속된 국가의 법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지키기를 원하시는 규칙으로서 이를 계명이라고 하는데,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로서 그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계명들과 그에 따르는 축복은 무엇이 있을까요?
1. 사랑의 증거인 하나님의 계명들
요한일서 5:3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지름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계명들을 지키도록 도와주시므로 결코 계명들이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고난도 기쁨으로 여기며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듯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계명들을 지키기 어렵다 하지 않으며 기쁨으로 계명들을 지키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며 축복으로 갚아 주시지요(신 28:1-13).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우리가 계명들을 지키는가, 지키지 않는가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분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요일 5:2).
성경에는 수많은 계명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간단하게 요약한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켜야 할 계명들이지요.
마태복음 22:35-40을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대답하십니다.
이처럼 십계명 중에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지켜야 할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여 지켜야 할 계명이 있지요. 즉 제1-4계명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 있어서 지켜야 할 계명들이며, 제5-10계명은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입니다.
그러면 십계명 중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몇 가지 계명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온전한 주일성수와 영적인 축복
1) 주일성수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일(主日)이란, 주님의 날이라는 뜻이며,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시고자 정하신 안식일로서 주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날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킴으로 참된 안식을 누리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이 임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므로 이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으며(창 2:1-3),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 20:8).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안식일인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인 권한을 인정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2)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에 와서 주일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창조의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 즉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는데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첫날 즉 안식일 다음 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 배경은 인간이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러 하나님의 참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자(창 3장),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의 피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주시고(갈 3:13) 생명에 이르게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전날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인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며,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과 참된 안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셨고 이때부터 주님이 부활하신 날 즉 매주 첫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으며 주일이라 칭하게 된 것입니다(고전 16:2).
3) 주일을 성수하면 하나님께서 영적인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되 주일은 일하지 않고 주 안에서 쉬어야 합니다. 육체의 쉼은 물론, 기쁨과 평강을 주는 영혼의 안식을 누려야 참된 안식이 되기 때문이지요(출 20:8-10). 설령 이 세상의 높은 명예나 부귀를 얻었다 하더라도 마음에 평강이 없고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고 자유함을 얻으면 영혼의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참된 안식이지요.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짐을 져 주셨으니 우리가 말씀대로 행하기만 하면 위로부터 기쁨과 평강이 임하고 참된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세상일을 멈추고 교회에 나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성도들과 교제하고 주 안에서 쉼을 얻으며 영적인 성장을 추구해야 하지요.
이와 같이 주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세상 욕심을 추구하지 않고, 사고파는 매매행위나 자기 유익을 구하는 세상적인 일들을 삼가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참된 안식을 누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한 주간을 지켜 주시며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이지요.
3. 온전한 십일조와 물질의 축복
1)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의 물권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십일조란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요, 헌물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모든 예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십일조와 헌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과 같습니다(말 3:8-9).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해 드리는 것이라면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주인이시라는 하나님의 물질적인 권한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물질 축복의 지름길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죄의 삯으로 영적인 저주뿐 아니라 육적인 저주도 임하게 되었습니다(창 3:17). 저주받은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가난하게 사심으로 모든 인류의 가난을 대속해 주셨지요(고후 8:9). 이 사실을 믿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하나님의 물권을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육적인 저주가 회복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만약 농부가 10가마니의 소출을 얻었다면 10분의 1인 1가마니를 드려야 온전한 십일조가 됩니다. 그런데 수확하기까지 인건비나 비료대, 각종 세금을 뺀 나머지 수입을 계산하여 드리면 온전한 십일조라 할 수 없습니다. 그 외 선물, 보너스 등 기타 수입으로 들어온 모든 것도 총수입으로 계산하여 십일조를 드려야 온전한 것입니다.
학생들의 경우는 자신이 임의대로 쓸 수 있는 용돈이나 선물, 세뱃돈 등이 수입이 되므로 그에 대한 십일조를 드리면 됩니다. 반면 수업료나 등록금은 자신의 수입이 아니므로 십일조를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십일조는 성도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 곧 자신이 소속되어 영의 양식을 공급받고 있는 교회에 드려야 하며 하나님의 것이므로 임의로 사용할 수 없고 감사헌금이나 기타 다른 명목의 헌금으로 드려져서도 안 됩니다.
헌물은 크게 감사헌금과 절기헌금으로 구분되며, 감사헌금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여 드리는 예물로서 주일헌금이나, 기도한 것에 응답받아 감사하여, 또는 생일 등 특별히 감사할 조건이 생겨서 드리는 각종 감사헌금, 직분을 받고 잘 감당하기 위한 위임예물, 회개하며 드리는 속죄예물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절기헌금은 각종 절기를 맞이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드리는 헌금입니다. 신년을 맞이하여 한 해를 의뢰하며 드리는 신년 감사예물, 혹은 부활절, 맥추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 절기에 따라 특별하게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입술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이 따르는 감사를 할 때 기뻐 받으시고 그에 따른 축복을 해 주시지요.
이러한 십일조와 헌물은 모든 소산의 첫 열매로 드려야 하며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교회의 재정기관을 통하여 쓰여지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의 종이나 일꾼들에게 주어지고 복음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일에 사용됩니다.
3)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물질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3:10을 통해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켜 행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온전히 주일을 지키며 온전히 십일조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물적 주권을 모두 인정해 드리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축복과 더불어 물질의 축복을 주시는 것이지요. 또한 원수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과 환난, 불의의 사고와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고 가정, 일터, 사업터에 놀라운 축복과 평강이 임하도록 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라면 성경에 기록된 각종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기 위하여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온전한 주일을 지키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하며 십계명을 지키심으로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넘치도록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라면 하나님의 계명들을 무거운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 계명들을 감사와 기쁨으로 지킬 수 있게 한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소속된 국가의 법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지키기를 원하시는 규칙으로서 이를 계명이라고 하는데,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로서 그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계명들과 그에 따르는 축복은 무엇이 있을까요?
1. 사랑의 증거인 하나님의 계명들
요한일서 5:3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지름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계명들을 지키도록 도와주시므로 결코 계명들이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고난도 기쁨으로 여기며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듯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계명들을 지키기 어렵다 하지 않으며 기쁨으로 계명들을 지키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며 축복으로 갚아 주시지요(신 28:1-13).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우리가 계명들을 지키는가, 지키지 않는가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분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요일 5:2).
성경에는 수많은 계명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간단하게 요약한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켜야 할 계명들이지요.
마태복음 22:35-40을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대답하십니다.
이처럼 십계명 중에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지켜야 할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여 지켜야 할 계명이 있지요. 즉 제1-4계명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 있어서 지켜야 할 계명들이며, 제5-10계명은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입니다.
그러면 십계명 중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몇 가지 계명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온전한 주일성수와 영적인 축복
1) 주일성수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일(主日)이란, 주님의 날이라는 뜻이며,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시고자 정하신 안식일로서 주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날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킴으로 참된 안식을 누리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이 임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므로 이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으며(창 2:1-3),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 20:8).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안식일인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인 권한을 인정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2)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에 와서 주일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창조의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 즉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는데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첫날 즉 안식일 다음 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 배경은 인간이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러 하나님의 참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자(창 3장),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의 피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주시고(갈 3:13) 생명에 이르게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전날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인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며,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과 참된 안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셨고 이때부터 주님이 부활하신 날 즉 매주 첫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으며 주일이라 칭하게 된 것입니다(고전 16:2).
3) 주일을 성수하면 하나님께서 영적인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되 주일은 일하지 않고 주 안에서 쉬어야 합니다. 육체의 쉼은 물론, 기쁨과 평강을 주는 영혼의 안식을 누려야 참된 안식이 되기 때문이지요(출 20:8-10). 설령 이 세상의 높은 명예나 부귀를 얻었다 하더라도 마음에 평강이 없고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고 자유함을 얻으면 영혼의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참된 안식이지요.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짐을 져 주셨으니 우리가 말씀대로 행하기만 하면 위로부터 기쁨과 평강이 임하고 참된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세상일을 멈추고 교회에 나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성도들과 교제하고 주 안에서 쉼을 얻으며 영적인 성장을 추구해야 하지요.
이와 같이 주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세상 욕심을 추구하지 않고, 사고파는 매매행위나 자기 유익을 구하는 세상적인 일들을 삼가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참된 안식을 누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한 주간을 지켜 주시며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이지요.
3. 온전한 십일조와 물질의 축복
1)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의 물권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십일조란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요, 헌물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모든 예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십일조와 헌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과 같습니다(말 3:8-9).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해 드리는 것이라면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주인이시라는 하나님의 물질적인 권한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물질 축복의 지름길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죄의 삯으로 영적인 저주뿐 아니라 육적인 저주도 임하게 되었습니다(창 3:17). 저주받은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가난하게 사심으로 모든 인류의 가난을 대속해 주셨지요(고후 8:9). 이 사실을 믿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하나님의 물권을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육적인 저주가 회복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만약 농부가 10가마니의 소출을 얻었다면 10분의 1인 1가마니를 드려야 온전한 십일조가 됩니다. 그런데 수확하기까지 인건비나 비료대, 각종 세금을 뺀 나머지 수입을 계산하여 드리면 온전한 십일조라 할 수 없습니다. 그 외 선물, 보너스 등 기타 수입으로 들어온 모든 것도 총수입으로 계산하여 십일조를 드려야 온전한 것입니다.
학생들의 경우는 자신이 임의대로 쓸 수 있는 용돈이나 선물, 세뱃돈 등이 수입이 되므로 그에 대한 십일조를 드리면 됩니다. 반면 수업료나 등록금은 자신의 수입이 아니므로 십일조를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십일조는 성도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 곧 자신이 소속되어 영의 양식을 공급받고 있는 교회에 드려야 하며 하나님의 것이므로 임의로 사용할 수 없고 감사헌금이나 기타 다른 명목의 헌금으로 드려져서도 안 됩니다.
헌물은 크게 감사헌금과 절기헌금으로 구분되며, 감사헌금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여 드리는 예물로서 주일헌금이나, 기도한 것에 응답받아 감사하여, 또는 생일 등 특별히 감사할 조건이 생겨서 드리는 각종 감사헌금, 직분을 받고 잘 감당하기 위한 위임예물, 회개하며 드리는 속죄예물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절기헌금은 각종 절기를 맞이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드리는 헌금입니다. 신년을 맞이하여 한 해를 의뢰하며 드리는 신년 감사예물, 혹은 부활절, 맥추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 절기에 따라 특별하게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입술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이 따르는 감사를 할 때 기뻐 받으시고 그에 따른 축복을 해 주시지요.
이러한 십일조와 헌물은 모든 소산의 첫 열매로 드려야 하며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교회의 재정기관을 통하여 쓰여지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의 종이나 일꾼들에게 주어지고 복음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일에 사용됩니다.
3)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물질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3:10을 통해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켜 행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온전히 주일을 지키며 온전히 십일조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물적 주권을 모두 인정해 드리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축복과 더불어 물질의 축복을 주시는 것이지요. 또한 원수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과 환난, 불의의 사고와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고 가정, 일터, 사업터에 놀라운 축복과 평강이 임하도록 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라면 성경에 기록된 각종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기 위하여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온전한 주일을 지키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하며 십계명을 지키심으로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넘치도록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6-29
제25과신실하신 분께 감사함으로
민 23:19
읽을말씀 : 민 23:19 | 외울말씀 : 출 23:16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1. 맥추절의 의미
출애굽기 23:16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하신 대로 맥추절은 일 년 중 곡물의 첫 수확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맥추절이 되면 처음 수확한 곡식과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이웃과 함께 음식을 먹고 춤을 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요. 오늘날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상반기 동안 각자의 삶 속에서 수고하여 거둔 영육간의 열매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동안 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 오신 분들은 해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얼마나 신실하게 이뤄 오셨는지를 상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개척과 함께 세계선교와 대성전 건축의 큰 목표를 주시고 해마다 목표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약속의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해 온 만큼 하나님께서는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매년 감사의 제목들이 풍성하게 넘치도록 하셨지요.
그러면 맥추절을 맞아 상반기 동안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반기에 더욱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언약을 풍성한 열매로 거두려면
1)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100% 믿는 믿음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현실과는 전혀 반대되는 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인 믿음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렘 32:27).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와 모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므로 결코 불가능한 일이 없으며 한 번 이루리라 말씀하셨으면 변개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러니 정녕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말씀을 주신다 해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본교회 개척 이후로 하나님께서 되어질 일을 한 번 말씀하시면 우리는 결코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장차 세계를 이룰 것"이라는 말씀이나 "천하 만민이 하나님께 나와 영광돌리는 대성전을 이룰 것"이라는 말씀도 전혀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동안 무수한 권능의 역사들을 체험해 왔고, 실제로 세계를 이뤄 가는 과정들이 눈앞에 드러나 보이고 있으니 의심할 이유가 없지요.
그러나 처음 이런 말씀을 받을 당시는 사정이 전혀 달랐습니다. 십여 평의 조그만 성전에,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겨우 열세 명이 모인 조그만 개척 교회입니다. 주교사도, 성가대도, 찬양팀도, 봉사대도 없었지요. 심지어 아직 창문의 유리도 없는 성전에서 사과 상자를 강대상 삼아 개척 예배를 드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것으로 마음에 새기며 현실과 상관없이 온전히 믿어드릴 때 바로 그 믿음이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을 너무나 많이 보고 들으며 직접 체험해 오셨습니다. 그러니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을 뿐 아니라 본제단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결의 복음으로 세계를 이루며 가나안성전과 대성전을 이루는 주역들로 쓰임받을 것을 믿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요. 또한 "나도 성결되어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의지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친히 이뤄주신다(살전 5:24)는 믿음으로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인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라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야고보서 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사람에게 어떤 유익도 주지 않습니다.
모세가 기도하여 홍해를 갈랐을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건너지 않았다면 애굽 군대에게 붙잡혔을 것이고, 요단 강물이 멈추었을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지 않았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축복의 약속을 주셨다 해도, 또 사람이 그것을 믿는다고 고백해도 직접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내 보이는 사람만이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축복의 길을 열어 주셨고, 주 안에서 어떻게 하면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 수많은 방법들을 성경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바로 무엇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이 그것이지요. 요한일서 3:21-22에도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만약 목이 말라 죽어가면서도 눈앞에 있는 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는 물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된다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로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을 사람이 없고, 당연히 신속하게 죄악들을 벗어 버리고 뜨겁게 충성하며 달려갈 것입니다. 진심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요, 마음에 불편한 일이 있으면 혈기내거나 감정을 품기도 하며, 자기 유익을 위해 비진리와 타협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죄악을 벗고 충성하는 행함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2007년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많은 축복의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특히 온 영의 흐름을 타게 하신다는 말씀대로 신속하게 성결될 수 있도록 은혜의 문을 활짝 열어 주고 계시며,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는 축복을 넘치게 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약속들을 믿으신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행함을 보이고 계시는지요?
하나님께서 어떤 비전과 축복의 약속을 주실 때, 정녕 그 말씀을 믿는다면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았다면, 먼저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구해야 합니다(겔 36:37). 불같이 중심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 방법론을 주시지요.
우리는 식언치 않으시고 후회가 없으신 하나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섭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들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찾아 행해 왔지요. 전 세계에서 본제단을 사모할 날을 대비해서 일찍부터 수많은 주의 종들을 양성해왔고, 기독 문화의 중요성을 알아 찬양팀과 예능팀, 오케스트라를 양성하였으며 문서와 방송의 중요성을 깨달음으로 문서, 방송 선교를 위해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정과 희생이 필요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분명히 믿었기에 힘을 다해 이뤄온 것입니다. 만약 "여력이 있으면 준비하겠다." 하고 손을 놓고 있거나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오늘날과 같이 세계를 이루는 열매로 나올 수가 없었겠지요. 요단 강을 멈추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지만, 믿음으로 강을 밟고 건너는 행함은 사람의 몫인 것처럼, 우리를 향해 주신 말씀을 믿었기에 부지런히 행함으로 믿음을 보여 왔던 것입니다.
3) 열매를 거두기까지 인내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고 행함으로 심은 것은 반드시 거두게 하시는데, 중요한 것은 끝까지 인내하며 변개함이 없이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해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견고한 여리고 성을 점령하게 하시면서 단지 여리고 성 주변을 돌게 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하루 한 바퀴씩, 마지막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큰 소리로 외치라 하셨지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철벽같은 성을 돈다고 해서 성이 무너질 리도 없고, 더구나 성 안에서 먼저 공격을 해 올 수도 있는데 무방비 상태로 성 주변을 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온전히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했고 하나님께서는 칠 일이라는 날 수를 채우고, 칠 일 째에 일곱 바퀴를 돌아서 총 열세 바퀴를 다 돌았을 때 비로소 성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야고보서 1:6-7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는 범사에 마찬가지입니다. 환도뼈가 위골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자를 놓치지 않았던 야곱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변개함이 없을 때, 믿음과 행함으로 심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고 기도하며 행했다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도 이뤄지지 않으면 더 이상 구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상황이 더 어려워져서 기도한 것과 반대로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므로 낙심하고 원망하는 부정적인 말로 지금까지 행함으로 쌓아온 것을 무너뜨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중도에 변질되어 포기해 버리면 그 전까지 아무리 열심히 심었다고 해도 열매로 거둘 수가 없게 됩니다.
본제단의 경우에도 개척 이후로 변함없이 축복의 언약을 믿고 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해마다 부흥하고 발전하게 하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 가운데 완전히 죽어지는 것 같은 상황들도 있었으나 오직 감사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한 연단의 과정을 믿음과 진실함으로 이겨낼 때마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한 축복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도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하셨을 때 출애굽해서 바로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홍해를 건너고 요단 강을 건너며 여리고 성을 끝까지 돌아서 성을 점령해야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지요. 이처럼 온전히 믿고 행하되 변개함이 없이 행할 때라야 축복을 받고 거둘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해 나가심으로 믿음으로 심은 모든 것들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풍성한 축복과 영원한 천국의 상급으로 열매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1. 맥추절의 의미
출애굽기 23:16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하신 대로 맥추절은 일 년 중 곡물의 첫 수확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맥추절이 되면 처음 수확한 곡식과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이웃과 함께 음식을 먹고 춤을 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요. 오늘날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상반기 동안 각자의 삶 속에서 수고하여 거둔 영육간의 열매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동안 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 오신 분들은 해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얼마나 신실하게 이뤄 오셨는지를 상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개척과 함께 세계선교와 대성전 건축의 큰 목표를 주시고 해마다 목표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약속의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해 온 만큼 하나님께서는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매년 감사의 제목들이 풍성하게 넘치도록 하셨지요.
그러면 맥추절을 맞아 상반기 동안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반기에 더욱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언약을 풍성한 열매로 거두려면
1)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100% 믿는 믿음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현실과는 전혀 반대되는 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인 믿음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렘 32:27).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와 모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므로 결코 불가능한 일이 없으며 한 번 이루리라 말씀하셨으면 변개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러니 정녕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말씀을 주신다 해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본교회 개척 이후로 하나님께서 되어질 일을 한 번 말씀하시면 우리는 결코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장차 세계를 이룰 것"이라는 말씀이나 "천하 만민이 하나님께 나와 영광돌리는 대성전을 이룰 것"이라는 말씀도 전혀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동안 무수한 권능의 역사들을 체험해 왔고, 실제로 세계를 이뤄 가는 과정들이 눈앞에 드러나 보이고 있으니 의심할 이유가 없지요.
그러나 처음 이런 말씀을 받을 당시는 사정이 전혀 달랐습니다. 십여 평의 조그만 성전에,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겨우 열세 명이 모인 조그만 개척 교회입니다. 주교사도, 성가대도, 찬양팀도, 봉사대도 없었지요. 심지어 아직 창문의 유리도 없는 성전에서 사과 상자를 강대상 삼아 개척 예배를 드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것으로 마음에 새기며 현실과 상관없이 온전히 믿어드릴 때 바로 그 믿음이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을 너무나 많이 보고 들으며 직접 체험해 오셨습니다. 그러니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을 뿐 아니라 본제단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결의 복음으로 세계를 이루며 가나안성전과 대성전을 이루는 주역들로 쓰임받을 것을 믿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요. 또한 "나도 성결되어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의지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친히 이뤄주신다(살전 5:24)는 믿음으로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인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라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야고보서 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사람에게 어떤 유익도 주지 않습니다.
모세가 기도하여 홍해를 갈랐을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건너지 않았다면 애굽 군대에게 붙잡혔을 것이고, 요단 강물이 멈추었을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지 않았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축복의 약속을 주셨다 해도, 또 사람이 그것을 믿는다고 고백해도 직접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내 보이는 사람만이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축복의 길을 열어 주셨고, 주 안에서 어떻게 하면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 수많은 방법들을 성경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바로 무엇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이 그것이지요. 요한일서 3:21-22에도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만약 목이 말라 죽어가면서도 눈앞에 있는 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는 물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된다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로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을 사람이 없고, 당연히 신속하게 죄악들을 벗어 버리고 뜨겁게 충성하며 달려갈 것입니다. 진심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요, 마음에 불편한 일이 있으면 혈기내거나 감정을 품기도 하며, 자기 유익을 위해 비진리와 타협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죄악을 벗고 충성하는 행함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2007년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많은 축복의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특히 온 영의 흐름을 타게 하신다는 말씀대로 신속하게 성결될 수 있도록 은혜의 문을 활짝 열어 주고 계시며,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는 축복을 넘치게 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약속들을 믿으신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행함을 보이고 계시는지요?
하나님께서 어떤 비전과 축복의 약속을 주실 때, 정녕 그 말씀을 믿는다면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았다면, 먼저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구해야 합니다(겔 36:37). 불같이 중심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 방법론을 주시지요.
우리는 식언치 않으시고 후회가 없으신 하나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섭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들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찾아 행해 왔지요. 전 세계에서 본제단을 사모할 날을 대비해서 일찍부터 수많은 주의 종들을 양성해왔고, 기독 문화의 중요성을 알아 찬양팀과 예능팀, 오케스트라를 양성하였으며 문서와 방송의 중요성을 깨달음으로 문서, 방송 선교를 위해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정과 희생이 필요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분명히 믿었기에 힘을 다해 이뤄온 것입니다. 만약 "여력이 있으면 준비하겠다." 하고 손을 놓고 있거나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오늘날과 같이 세계를 이루는 열매로 나올 수가 없었겠지요. 요단 강을 멈추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지만, 믿음으로 강을 밟고 건너는 행함은 사람의 몫인 것처럼, 우리를 향해 주신 말씀을 믿었기에 부지런히 행함으로 믿음을 보여 왔던 것입니다.
3) 열매를 거두기까지 인내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고 행함으로 심은 것은 반드시 거두게 하시는데, 중요한 것은 끝까지 인내하며 변개함이 없이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해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견고한 여리고 성을 점령하게 하시면서 단지 여리고 성 주변을 돌게 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하루 한 바퀴씩, 마지막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큰 소리로 외치라 하셨지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철벽같은 성을 돈다고 해서 성이 무너질 리도 없고, 더구나 성 안에서 먼저 공격을 해 올 수도 있는데 무방비 상태로 성 주변을 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온전히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했고 하나님께서는 칠 일이라는 날 수를 채우고, 칠 일 째에 일곱 바퀴를 돌아서 총 열세 바퀴를 다 돌았을 때 비로소 성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야고보서 1:6-7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는 범사에 마찬가지입니다. 환도뼈가 위골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자를 놓치지 않았던 야곱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변개함이 없을 때, 믿음과 행함으로 심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고 기도하며 행했다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도 이뤄지지 않으면 더 이상 구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상황이 더 어려워져서 기도한 것과 반대로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므로 낙심하고 원망하는 부정적인 말로 지금까지 행함으로 쌓아온 것을 무너뜨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중도에 변질되어 포기해 버리면 그 전까지 아무리 열심히 심었다고 해도 열매로 거둘 수가 없게 됩니다.
본제단의 경우에도 개척 이후로 변함없이 축복의 언약을 믿고 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해마다 부흥하고 발전하게 하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 가운데 완전히 죽어지는 것 같은 상황들도 있었으나 오직 감사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한 연단의 과정을 믿음과 진실함으로 이겨낼 때마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한 축복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도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하셨을 때 출애굽해서 바로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홍해를 건너고 요단 강을 건너며 여리고 성을 끝까지 돌아서 성을 점령해야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지요. 이처럼 온전히 믿고 행하되 변개함이 없이 행할 때라야 축복을 받고 거둘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해 나가심으로 믿음으로 심은 모든 것들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풍성한 축복과 영원한 천국의 상급으로 열매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6-22
제24과팔복이란 무엇인가(2)
마 5:1-12
읽을말씀 : 마 5:1-12 | 외울말씀 : 마 5:7-8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덟 가지 영적인 복이 무엇인가 살펴보아 팔복을 소유한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팔복 중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임하는 복, 애통하는 자에게 임하는 복, 온유한 자에게 임하는 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임하는 복에 대해서 상고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팔복 중에서 다섯 번째 복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이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잘못된 행함을 참아 주고 용서해 주며 이해하고 바로 세워 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영적인 긍휼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용서의 긍휼입니다. 마태복음 6:12을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매일 드리는 주기도문의 일부입니다. 내가 형제를 긍휼히 여기며 용서하고 사랑하였으니 하나님께서도 나의 허물과 죄를 사하여 주시라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마음으로는 형제를 용서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하나님 앞에 주기도문을 한다면 그것은 거짓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고, 형제의 티와 허물도 덮어 주라 하셨으니 누가 나를 헐뜯고 미워하고 욕하더라도 내가 먼저 용서하고 긍휼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도 긍휼하심으로 나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11-24에는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준 유산을 먼 나라에 가서 다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이 아버지 앞에 회개하였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극진히 대해 주며 용서의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이런 용서의 긍휼을 누구에게나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기에 우리가 죄를 버리고 주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입어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징계의 긍휼입니다.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부모가 방관만 하고 있다면 이는 참사랑이 아닙니다. 매를 드는 자체가 마음 아프지만 징계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엄히 훈계하여 자녀를 바르게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잘못했을 때마다 매를 드는 것은 부모의 감정과 혈기에서 나온 것이므로 사랑의 마음이 아닙니다. 진정 긍휼의 마음이 있다면 경솔하게 매를 들지 않고 먼저 권면하며 타이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권면해도 듣지 않고 계속 잘못된 길로 간다면 분명히 깨우쳐 마음에 명심시켜 주기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매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자녀도 감정으로 받지 않고 마음에 깊이 새겨 돌이키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들의 잘못을 보고도 엄히 경책하지 않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던 엘리 제사장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아들들은 백성들이 제사 드리기 위해 가져온 성물을 자신들이 먼저 취하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등 심한 악을 행했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엘리 제사장은 엄히 징계하여 돌이키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엘리와 그 아들들에게 임하여 집안에 환난이 끊이지 않았지요(삼상 2장).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에게 가하는 징계는 오직 사랑하기 때문에 가하는 긍휼의 징계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시는 것입니다(히 12:5-6).
셋째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긍휼입니다. 긍휼은 입으로만이 아니라 행함으로 돌볼 줄 아는 마음입니다. 내 이웃 중에 가난하거나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어려움을 해소시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도와주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긍휼한 마음으로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영적인 긍휼함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부족함을 채워 주시며 연약함을 강하게 해 주시고 기도에 신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마음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고 오로지 진리 안에서 정결하고 깨끗한 마음을 말합니다. 악이나 무례함은 생각지도 아니하며 불의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는 흠도 점도 없는 진리의 선한 마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도 거룩하고 청결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시므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1:16) 권면하십니다.
그러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 마음 안에는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함께 있는데 비진리의 마음을 버린 만큼 청결한 마음이 됩니다.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이 마음속에 누구를 미워하거나 간음할 마음이 있더라도 행함으로 나타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를 죄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므로 비록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았을지라도 이런 비진리의 마음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마 5:2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마음에 있는 비진리들을 버려 나가며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청결한 마음이 되는데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직접 육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룻기에 보면 룻은 남편을 잃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섬길 뿐 아니라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섬겼으므로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청결하였기에 물질의 축복뿐 아니라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축복도 받았던 것입니다.
룻과 같이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지는 만큼 성령의 주관과 인도함을 받아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하나님께 영광돌려 나가게 되는데 이것을 하나님을 본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진리로 마음을 청결케 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능력을 체험함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뵙는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7.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죄로 인한 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갖은 멸시와 조롱을 다 받으시며 십자가에 달려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심으로 원수가 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함을 이루려면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하늘나라에 시민권을 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니 당연히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였으니 나를 미워하거나 핍박하는 사람과도 화평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하며 인내와 절제, 용서와 이해가 있어서 영적인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같이 온유하며 청결하고 사랑과 덕을 갖추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예루살렘에 거할 자격을 갖추었으므로 천국에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는 것입니다.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악이나 불법으로 인해 받는 핍박은 아무 복이나 상급이 될 수 없지만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은 복입니다. 이는 바로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빛 가운데 계시며 사랑과 공의 가운데 계실 뿐 아니라 선 자체가 되시므로 그 자녀들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인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는 빛을 싫어하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빛 가운데 나갈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행해 나갈 때 훼방하여 핍박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간혹 지혜가 부족함으로 스스로 자초하여 핍박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아무런 상급도 되지 않지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 누구나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으므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데,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도를 행함으로 악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는 만큼 주어지는 영광은 다릅니다(고전 15:41).
다니엘은 일국의 총리로서 사자굴에 던짐받는다 해도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지켰습니다(단 6장). 다니엘의 세 친구 역시 풀무불에 들어갈지라도 우상 앞에 절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를 나타내고 영광을 돌렸습니다(단 3장).
이들이 하나님의 법을 좇지 않았더라면 핍박받았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의를 위해 핍박받은 만큼 더 성결되고 하늘나라에는 더 큰 상급으로 쌓여지기 때문에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오는 핍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주님으로 인해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마 5:11-12). 이러한 핍박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칭찬과 위로해 주시며 하늘에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한 나라의 왕이라도 자신을 대신하여 신하가 어떤 희생을 치렀다면 큰 상급으로 위로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를 행하면서 핍박을 받거나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핍박받는다 하더라도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것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주제설교 모음집 팔복편 <참된 복을 좇는 자> 책자를 통해 양식 삼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팔복은 변하지 않고 영원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진정한 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진정한 의미의 영적인 복을 누리기 위해 더욱 열심히 죄를 버리며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덟 가지 영적인 복이 무엇인가 살펴보아 팔복을 소유한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팔복 중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임하는 복, 애통하는 자에게 임하는 복, 온유한 자에게 임하는 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임하는 복에 대해서 상고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팔복 중에서 다섯 번째 복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이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잘못된 행함을 참아 주고 용서해 주며 이해하고 바로 세워 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영적인 긍휼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용서의 긍휼입니다. 마태복음 6:12을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매일 드리는 주기도문의 일부입니다. 내가 형제를 긍휼히 여기며 용서하고 사랑하였으니 하나님께서도 나의 허물과 죄를 사하여 주시라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마음으로는 형제를 용서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하나님 앞에 주기도문을 한다면 그것은 거짓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고, 형제의 티와 허물도 덮어 주라 하셨으니 누가 나를 헐뜯고 미워하고 욕하더라도 내가 먼저 용서하고 긍휼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도 긍휼하심으로 나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11-24에는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준 유산을 먼 나라에 가서 다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이 아버지 앞에 회개하였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극진히 대해 주며 용서의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이런 용서의 긍휼을 누구에게나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기에 우리가 죄를 버리고 주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입어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징계의 긍휼입니다.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부모가 방관만 하고 있다면 이는 참사랑이 아닙니다. 매를 드는 자체가 마음 아프지만 징계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엄히 훈계하여 자녀를 바르게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잘못했을 때마다 매를 드는 것은 부모의 감정과 혈기에서 나온 것이므로 사랑의 마음이 아닙니다. 진정 긍휼의 마음이 있다면 경솔하게 매를 들지 않고 먼저 권면하며 타이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권면해도 듣지 않고 계속 잘못된 길로 간다면 분명히 깨우쳐 마음에 명심시켜 주기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매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자녀도 감정으로 받지 않고 마음에 깊이 새겨 돌이키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들의 잘못을 보고도 엄히 경책하지 않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던 엘리 제사장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아들들은 백성들이 제사 드리기 위해 가져온 성물을 자신들이 먼저 취하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등 심한 악을 행했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엘리 제사장은 엄히 징계하여 돌이키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엘리와 그 아들들에게 임하여 집안에 환난이 끊이지 않았지요(삼상 2장).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에게 가하는 징계는 오직 사랑하기 때문에 가하는 긍휼의 징계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시는 것입니다(히 12:5-6).
셋째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긍휼입니다. 긍휼은 입으로만이 아니라 행함으로 돌볼 줄 아는 마음입니다. 내 이웃 중에 가난하거나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어려움을 해소시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도와주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긍휼한 마음으로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영적인 긍휼함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부족함을 채워 주시며 연약함을 강하게 해 주시고 기도에 신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마음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고 오로지 진리 안에서 정결하고 깨끗한 마음을 말합니다. 악이나 무례함은 생각지도 아니하며 불의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는 흠도 점도 없는 진리의 선한 마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도 거룩하고 청결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시므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1:16) 권면하십니다.
그러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 마음 안에는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함께 있는데 비진리의 마음을 버린 만큼 청결한 마음이 됩니다.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이 마음속에 누구를 미워하거나 간음할 마음이 있더라도 행함으로 나타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를 죄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므로 비록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았을지라도 이런 비진리의 마음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마 5:2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마음에 있는 비진리들을 버려 나가며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청결한 마음이 되는데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직접 육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룻기에 보면 룻은 남편을 잃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섬길 뿐 아니라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섬겼으므로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청결하였기에 물질의 축복뿐 아니라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축복도 받았던 것입니다.
룻과 같이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지는 만큼 성령의 주관과 인도함을 받아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하나님께 영광돌려 나가게 되는데 이것을 하나님을 본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진리로 마음을 청결케 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능력을 체험함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뵙는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7.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죄로 인한 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갖은 멸시와 조롱을 다 받으시며 십자가에 달려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심으로 원수가 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함을 이루려면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하늘나라에 시민권을 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니 당연히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였으니 나를 미워하거나 핍박하는 사람과도 화평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하며 인내와 절제, 용서와 이해가 있어서 영적인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같이 온유하며 청결하고 사랑과 덕을 갖추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예루살렘에 거할 자격을 갖추었으므로 천국에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는 것입니다.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악이나 불법으로 인해 받는 핍박은 아무 복이나 상급이 될 수 없지만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은 복입니다. 이는 바로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빛 가운데 계시며 사랑과 공의 가운데 계실 뿐 아니라 선 자체가 되시므로 그 자녀들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인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는 빛을 싫어하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빛 가운데 나갈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행해 나갈 때 훼방하여 핍박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간혹 지혜가 부족함으로 스스로 자초하여 핍박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아무런 상급도 되지 않지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 누구나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으므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데,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도를 행함으로 악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는 만큼 주어지는 영광은 다릅니다(고전 15:41).
다니엘은 일국의 총리로서 사자굴에 던짐받는다 해도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지켰습니다(단 6장). 다니엘의 세 친구 역시 풀무불에 들어갈지라도 우상 앞에 절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를 나타내고 영광을 돌렸습니다(단 3장).
이들이 하나님의 법을 좇지 않았더라면 핍박받았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의를 위해 핍박받은 만큼 더 성결되고 하늘나라에는 더 큰 상급으로 쌓여지기 때문에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오는 핍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주님으로 인해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마 5:11-12). 이러한 핍박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칭찬과 위로해 주시며 하늘에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한 나라의 왕이라도 자신을 대신하여 신하가 어떤 희생을 치렀다면 큰 상급으로 위로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를 행하면서 핍박을 받거나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핍박받는다 하더라도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것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주제설교 모음집 팔복편 <참된 복을 좇는 자> 책자를 통해 양식 삼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팔복은 변하지 않고 영원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진정한 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진정한 의미의 영적인 복을 누리기 위해 더욱 열심히 죄를 버리며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2007-06-15
제23과팔복이란 무엇인가(1)
마 5:1-12
읽을말씀 : 마 5:1-12 | 외울말씀 : 마 5:3-6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덟 가지 영적인 복이 무엇인가 살펴보아 팔복을 소유한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주로 갈릴리 주변에서 사역하셨습니다. 이곳에서 팔복에 대해 증거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들의 마음과 이러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에게 임하는 축복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풍요하거나 자녀가 출세하고 건강하며 가정이 화평하면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은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 등으로 순간에 사라질 수 있지만, 팔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복으로서 영원하며 변치 않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신 축복은 이 땅에서도 복이 되지만 하늘나라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복으로 쌓여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완성을 진정한 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아무리 이 땅에서 부유하게 살았고 명예와 권세가 있었다 할지라도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면 무슨 복이 되겠습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팔복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건강이 좋지 못하거나 물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악이 없고 선한 마음을 말합니다. 욕심이나 교만, 이기심이 없으며, 세상 물정이나 육에 가려지지도 않은 가난한 마음으로서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중심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부요하면 하나님의 빛이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할 수 없지만, 선한 중심을 가진 사람들은 재물이 많거나 풍요로운 상태라 할지라도 전도를 받으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령이 부요하다 해도 시험 환난을 만나거나 고통과 충격적인 일을 당하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난한 심령이 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므로 전도하기 쉬운 것입니다.
간혹 시험 환난을 당하지 않고도 복음을 전하면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스스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그만큼 심령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마음 중심이 선하거나 자존심과 교만이 깨어져 나감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 하나님을 마음에 인정할 수 있기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고 천국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하여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팔복을 받는 첫 번째 관문입니다.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나머지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으니 무엇보다 먼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이란 몹시 슬퍼하며 가슴 아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애통에는 갖가지 슬픈 일을 당하여 애통하는 육적인 애통과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영적인 애통이 있습니다. 가난하여 애통하고, 자기 악을 이기지 못하거나 슬픔과 고통을 당하여 애통하는 것은 모두 육적인 애통에 속합니다. 이는 믿음이 없을 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하셨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믿음을 보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니 육적인 애통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육적인 애통이 아닌 영적인 애통을 하기 원하시는데, 영적인 애통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죄에 대한 회개의 애통입니다. 회개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죄악 가운데 살았던 것을 돌이켜 하나님의 진리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회개의 애통을 하고 나면 죄의 짐을 벗은 느낌 속에 후련해지며 기쁘고 가벼운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진리로 비추어 내 안에 있는 죄를 발견하게 되고 죄를 버리기 위해 마음을 찢으면서 애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뻐받으시고 위로와 능력을 주셔서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둘째로는, 직분자로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나오는 애통이 있습니다. 직분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기도나 전도, 충성, 봉사를 하지 못했을 때 심히 마음을 찢으면서 애통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애통하는 자에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위로받게 하십니다.
셋째로는, 죄로 인하여 사망의 길로 가는 형제를 위한 애통이 있습니다. 사망의 길로 가는 형제를 보고 긍휼히 여기는 자는 그를 위하여 애통하며 사랑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형제가 범죄치 않고 말씀 안에 살 수 있도록 믿음으로 간구하는 눈물의 기도는 진정 사랑의 마음에서 나오므로 이러한 애통의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하시며 위로받게 하십니다.
넷째로, 세상을 보며 애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죄악으로 물든 세상과 많은 영혼들, 나라와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마음을 찢는 애통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애통은 영적인 사랑이 있어야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영적으로 애통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복을 주시되 이 땅에서 위로받게 하실 뿐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사람들은 인품이 온화하고 유순한 것을 '온유'라고 하지만, 영적인 온유는 여기에 덕을 겸한 것을 말합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상대와 어떤 일로 마음이 불편해진다거나 걸림이 없으며 매사를 악으로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온유하며 덕이 있는 사람은 상대의 잘못을 용서해 줄 수 있고 이해하며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소유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마음의 쉼을 얻고 평안함을 누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니 이것이 곧 영적인 권세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상대를 섬기며 덕을 갖춘 온유한 사람에게 천국에서 큰 권세를 주시니 당연히 큰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는 물질이나 명예가 있어야 얻게 되지만 천국에서의 영적인 권세는 마음을 낮추며 섬기는 자가 될 때 얻게 되지요.
마태복음 20:26-27을 보면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8:3-4에는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셨으니 어린아이와 같이 마음을 낮추면 이 땅에서 많은 이의 마음을 얻게 되며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큰 땅을 주어 부자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장차 우리가 영원히 거하게 될 천국의 땅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덕이 있어 온유함을 이룬 만큼 많은 이에게 은혜를 끼치고 믿음을 심어 주며 많은 사람을 포용하고 이끌어 갔을 것이니 그것이 영적인 권세가 되어 천국에서는 그만큼 큰 땅을 얻고 권세를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덕을 겸한 온유함은 마음에 악이 없고 모든 육신의 생각과 이론을 파하며 성령의 소욕을 좇아 진리대로 행해 나가는 만큼 얻어지는 것이므로 오직 진리에 순종해 나가는 온유한 자가 되어 하늘나라의 큰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받는 복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의(義)는 사람의 도리를 위하여 진력하는 일이나 옳은 행위를 말하는데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좇아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거나 마실 물이 없어 심하게 갈증을 느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일용할 양식이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물의 귀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리고 목마른 것은 고통스러운 일인데 왜 예수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주리고 목마른 자가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찾아 갈급해 하듯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된다면 당연히 그 사람은 믿음이 있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으며 독생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므로 영적인 배부름의 복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심령은 갈급한 마음으로 진리를 좇아 살아가므로 비진리는 벗어지고 진리로 채워지게 되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영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배부른 만큼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며 영혼이 잘되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니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삶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에 이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덟 가지 영적인 복이 무엇인가 살펴보아 팔복을 소유한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주로 갈릴리 주변에서 사역하셨습니다. 이곳에서 팔복에 대해 증거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들의 마음과 이러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에게 임하는 축복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풍요하거나 자녀가 출세하고 건강하며 가정이 화평하면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은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 등으로 순간에 사라질 수 있지만, 팔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복으로서 영원하며 변치 않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신 축복은 이 땅에서도 복이 되지만 하늘나라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복으로 쌓여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완성을 진정한 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아무리 이 땅에서 부유하게 살았고 명예와 권세가 있었다 할지라도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면 무슨 복이 되겠습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팔복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건강이 좋지 못하거나 물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악이 없고 선한 마음을 말합니다. 욕심이나 교만, 이기심이 없으며, 세상 물정이나 육에 가려지지도 않은 가난한 마음으로서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중심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부요하면 하나님의 빛이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할 수 없지만, 선한 중심을 가진 사람들은 재물이 많거나 풍요로운 상태라 할지라도 전도를 받으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령이 부요하다 해도 시험 환난을 만나거나 고통과 충격적인 일을 당하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난한 심령이 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므로 전도하기 쉬운 것입니다.
간혹 시험 환난을 당하지 않고도 복음을 전하면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스스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그만큼 심령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마음 중심이 선하거나 자존심과 교만이 깨어져 나감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 하나님을 마음에 인정할 수 있기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고 천국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하여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팔복을 받는 첫 번째 관문입니다.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나머지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으니 무엇보다 먼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이란 몹시 슬퍼하며 가슴 아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애통에는 갖가지 슬픈 일을 당하여 애통하는 육적인 애통과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영적인 애통이 있습니다. 가난하여 애통하고, 자기 악을 이기지 못하거나 슬픔과 고통을 당하여 애통하는 것은 모두 육적인 애통에 속합니다. 이는 믿음이 없을 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하셨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믿음을 보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니 육적인 애통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육적인 애통이 아닌 영적인 애통을 하기 원하시는데, 영적인 애통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죄에 대한 회개의 애통입니다. 회개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죄악 가운데 살았던 것을 돌이켜 하나님의 진리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회개의 애통을 하고 나면 죄의 짐을 벗은 느낌 속에 후련해지며 기쁘고 가벼운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진리로 비추어 내 안에 있는 죄를 발견하게 되고 죄를 버리기 위해 마음을 찢으면서 애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뻐받으시고 위로와 능력을 주셔서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둘째로는, 직분자로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나오는 애통이 있습니다. 직분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기도나 전도, 충성, 봉사를 하지 못했을 때 심히 마음을 찢으면서 애통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애통하는 자에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위로받게 하십니다.
셋째로는, 죄로 인하여 사망의 길로 가는 형제를 위한 애통이 있습니다. 사망의 길로 가는 형제를 보고 긍휼히 여기는 자는 그를 위하여 애통하며 사랑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형제가 범죄치 않고 말씀 안에 살 수 있도록 믿음으로 간구하는 눈물의 기도는 진정 사랑의 마음에서 나오므로 이러한 애통의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하시며 위로받게 하십니다.
넷째로, 세상을 보며 애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죄악으로 물든 세상과 많은 영혼들, 나라와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마음을 찢는 애통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애통은 영적인 사랑이 있어야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영적으로 애통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복을 주시되 이 땅에서 위로받게 하실 뿐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사람들은 인품이 온화하고 유순한 것을 '온유'라고 하지만, 영적인 온유는 여기에 덕을 겸한 것을 말합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상대와 어떤 일로 마음이 불편해진다거나 걸림이 없으며 매사를 악으로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온유하며 덕이 있는 사람은 상대의 잘못을 용서해 줄 수 있고 이해하며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소유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마음의 쉼을 얻고 평안함을 누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니 이것이 곧 영적인 권세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상대를 섬기며 덕을 갖춘 온유한 사람에게 천국에서 큰 권세를 주시니 당연히 큰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는 물질이나 명예가 있어야 얻게 되지만 천국에서의 영적인 권세는 마음을 낮추며 섬기는 자가 될 때 얻게 되지요.
마태복음 20:26-27을 보면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8:3-4에는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셨으니 어린아이와 같이 마음을 낮추면 이 땅에서 많은 이의 마음을 얻게 되며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큰 땅을 주어 부자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장차 우리가 영원히 거하게 될 천국의 땅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덕이 있어 온유함을 이룬 만큼 많은 이에게 은혜를 끼치고 믿음을 심어 주며 많은 사람을 포용하고 이끌어 갔을 것이니 그것이 영적인 권세가 되어 천국에서는 그만큼 큰 땅을 얻고 권세를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덕을 겸한 온유함은 마음에 악이 없고 모든 육신의 생각과 이론을 파하며 성령의 소욕을 좇아 진리대로 행해 나가는 만큼 얻어지는 것이므로 오직 진리에 순종해 나가는 온유한 자가 되어 하늘나라의 큰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받는 복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의(義)는 사람의 도리를 위하여 진력하는 일이나 옳은 행위를 말하는데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좇아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거나 마실 물이 없어 심하게 갈증을 느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일용할 양식이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물의 귀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리고 목마른 것은 고통스러운 일인데 왜 예수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주리고 목마른 자가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찾아 갈급해 하듯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된다면 당연히 그 사람은 믿음이 있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으며 독생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므로 영적인 배부름의 복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심령은 갈급한 마음으로 진리를 좇아 살아가므로 비진리는 벗어지고 진리로 채워지게 되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영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배부른 만큼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며 영혼이 잘되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니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삶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에 이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