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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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0
제28과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려면(2)
롬 8:12-18
읽을말씀 : 롬 8:12-18 | 외울말씀 : 요일 2:4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을 깨달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여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신앙생활은 물론 심방이나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주에는 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야 하는지 살펴보았고, 금주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며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을 받아 나가게 되지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8:13에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말씀하시며 그 믿음대로 응답받는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100% 신뢰하면 100% 신뢰해 주시고, 50%만 신뢰하면 하나님께서도 50%밖에 신뢰하실 수 없지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막상 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고민하거나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는데 하나님을 100%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4에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말씀했습니다. 진리가 내 안에 있다면 말씀에 순종하여 계명을 지킬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지식으로만 쌓아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마음 중심에서 행할 수 있는 믿음이 아니므로 순종이 따르지 않고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믿음을 내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고 할지라도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거짓말하는 습성을 좇아 나온 말에 불과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사와 표적을 보고서도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라고 나름대로 믿는다고 하지만 마음 중심에서 순종할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순종하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고 온전히 순종하면 끝이 없는 영적인 세계로 인도해 주시니 하나님에 대해 밝히 알게 되지요. 천국에 대한 소망과 그 아름다움은 물론 영적으로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달라지게 됩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신앙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새롭고 이해의 폭도 깊어지며, 전에는 하나의 윤리 도덕 정도로 들리던 말씀들이 영안이 열림에 따라 은혜로 다가오게 됩니다. 더 깊은 영적 차원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같이 달게 느껴지고 마음 중심에서 "아멘" 하며 말씀이 곧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혹여 말씀을 들을 때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말씀이니 은혜가 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음을 깨달아 신속히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으려면
1)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기 위한 필수 요건은 불 같은 기도입니다. 아무리 듣고 배워서 방법을 안다고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릴 수 없습니다. 기도해야 성령의 감동감화, 교통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지요. 성령의 음성을 듣고 행하여 인도를 받아야 육체의 일을 버리고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성장해 오는 동안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이 느낌과 함께 입력된 생각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비진리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비진리의 생각들이 바로 육신의 생각이지요(롬 8:7).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듣는다 해도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여 영적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불 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나 야곱, 베드로, 바울 사도 등 하나님의 인정받은 종들도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기 위한 연단을 받았으며, 연단 후에는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함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반면 사울 왕이나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속 불순종하여 결국은 멸망받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육신의 생각을 깨뜨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현 시점에서부터 더 이상 비진리를 입력시키지 말고 입력되어 있는 기존의 비진리들을 피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합니다.
로마서 7:21-24에도 보면 전에는 죄를 지어도 죄인지조차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 되어 혼과 영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므로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괴로움과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비진리를 도와주는 원군을 차단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원군이란 안목의 정욕을 말하며 이것은 하나님께로 오지 않고 세상 주관자인 원수 마귀로부터 오지요. 이것이 비진리에 작용하여 육신의 생각을 강하게 만듦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기회를 끊고 없애야 하는데 육에 물들어 있는 사람, 안목의 정욕에 물들어 있는 사람은 그러한 생각을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것들은 당연히 끊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속극을 보느라고 기도할 시간을 놓치고, 심방가는 데 늑장을 부리게 된다면 텔레비전 보는 일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절제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었다면 그러한 안목의 정욕은 끊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듣는 것도 만나면 누구를 헐뜯는다든가 비진리를 말한다고 한다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대할 때 힘들고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비진리의 말을 하면 진리의 대화로 이끌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가 싫어 떠나거나 변화되어 진리의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비진리를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더 이상 입력되지 않으므로 원군이 차단되지요. 원래 입력돼 있던 비진리는 마음 안에서 포위되어 꼼짝 못하고 갇혀 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 상태에서 진리를 주관하는 자신의 의지적인 노력과 성령의 도우심과 불 같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게 되면 비진리는 떠나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비진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불 같은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얼마큼 피 흘려 싸우고 노력하며 어떠한 각오를 하느냐에 따라 1년, 한 달, 순간에도 버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철야하며 기도와 금식으로 육신의 생각을 버려 나가는데 가장 힘든 것을 뿌리째 뽑아 버리면 부수적인 죄들은 큰 나무를 뽑으면 잔뿌리도 함께 뽑혀 나가듯 함께 버려집니다. 즉, 마음에서 비진리가 떠나면 육신의 생각은 자연히 떠나게 되지요. 단지 기억으로만 남으므로 더듬어 기억하지 않는 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과 인도를 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미워하지 말라고 하면 "이제 사랑하겠습니다." 하고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을까?' 하며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 나가면 결국 미움은 떠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영혼이 잘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입력된 육적인 것들을 전부 무(無)로 돌리고 66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영으로 마음을 일구면 생각도 영으로 일구어져 육신의 생각이 깨어지고 영의 생각만 남게 됩니다. 이처럼 계속적으로 인도받고 순종해 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므로 매사를 주관하실 것이고 불 같은 기도로 지혜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약 1:5).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인도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영으로 들어간 사람과 여전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과의 영적인 수준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요. 기쁨도 행복도 믿음도 달라질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와 축복이 달라질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변한 것도 없고 똑같은 것 같아도 그 능력이나 말의 권세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얼굴빛도 달라짐으로 원수 마귀가 무서워 떨게 되며 기도의 능력을 받아 쉽게 응답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장받는 단계로 들어가니 맡은 사명에 대한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육적인 문제도 다 해결되지요. 영혼이 잘되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게 되며 하나님께서 친히 이끄시고 역사해 가심으로 만사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 8:12 이하에 보면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 삼아 지켜 행함으로 늘 성령의 밝은 음성과 인도 주관을 받아 나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을 깨달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여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신앙생활은 물론 심방이나 하나님의 일을 이룸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합니다. 지난주에는 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야 하는지 살펴보았고, 금주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1.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며 그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축복과 응답을 받아 나가게 되지요.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8:13에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말씀하시며 그 믿음대로 응답받는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100% 신뢰하면 100% 신뢰해 주시고, 50%만 신뢰하면 하나님께서도 50%밖에 신뢰하실 수 없지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막상 어떤 어려움이 닥치면 고민하거나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하는데 하나님을 100%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2:4에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라고 말씀했습니다. 진리가 내 안에 있다면 말씀에 순종하여 계명을 지킬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단지 지식으로만 쌓아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증거가 됩니다.
마음 중심에서 행할 수 있는 믿음이 아니므로 순종이 따르지 않고 막상 어떤 일이 닥치면 믿음을 내보일 수 없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고 신뢰한다고 할지라도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니라 거짓말하는 습성을 좇아 나온 말에 불과한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기사와 표적을 보고서도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라고 나름대로 믿는다고 하지만 마음 중심에서 순종할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한 것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순종하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고 온전히 순종하면 끝이 없는 영적인 세계로 인도해 주시니 하나님에 대해 밝히 알게 되지요. 천국에 대한 소망과 그 아름다움은 물론 영적으로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이 달라지게 됩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신앙이 깊어질수록 하나님의 말씀이 더욱 새롭고 이해의 폭도 깊어지며, 전에는 하나의 윤리 도덕 정도로 들리던 말씀들이 영안이 열림에 따라 은혜로 다가오게 됩니다. 더 깊은 영적 차원으로 들어가면 하나님의 말씀이 꿀과 송이꿀같이 달게 느껴지고 마음 중심에서 "아멘" 하며 말씀이 곧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혹여 말씀을 들을 때 '이미 들어서 알고 있는 말씀이니 은혜가 되지 않는다'면 그만큼 자신이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했음을 깨달아 신속히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으려면
1)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기 위한 필수 요건은 불 같은 기도입니다. 아무리 듣고 배워서 방법을 안다고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릴 수 없습니다. 기도해야 성령의 감동감화, 교통 충만함을 받고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지요. 성령의 음성을 듣고 행하여 인도를 받아야 육체의 일을 버리고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 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태어나서 성장해 오는 동안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이 느낌과 함께 입력된 생각들 가운데는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는 비진리가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비진리의 생각들이 바로 육신의 생각이지요(롬 8:7).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듣는다 해도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하여 영적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불 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하는 것입니다.
모세나 야곱, 베드로, 바울 사도 등 하나님의 인정받은 종들도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기 위한 연단을 받았으며, 연단 후에는 정금 같은 믿음을 소유함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베풀었던 것입니다. 반면 사울 왕이나 가룟 유다와 같은 사람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속 불순종하여 결국은 멸망받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육신의 생각을 깨뜨릴 수 있을까요? 그것은 현 시점에서부터 더 이상 비진리를 입력시키지 말고 입력되어 있는 기존의 비진리들을 피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합니다.
로마서 7:21-24에도 보면 전에는 죄를 지어도 죄인지조차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게 되면 빛이신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 되어 혼과 영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므로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괴로움과 고통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비진리를 도와주는 원군을 차단시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원군이란 안목의 정욕을 말하며 이것은 하나님께로 오지 않고 세상 주관자인 원수 마귀로부터 오지요. 이것이 비진리에 작용하여 육신의 생각을 강하게 만듦으로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기회를 끊고 없애야 하는데 육에 물들어 있는 사람, 안목의 정욕에 물들어 있는 사람은 그러한 생각을 끊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원치 않으시는 것들은 당연히 끊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연속극을 보느라고 기도할 시간을 놓치고, 심방가는 데 늑장을 부리게 된다면 텔레비전 보는 일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절제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방해가 되었다면 그러한 안목의 정욕은 끊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입니다.
듣는 것도 만나면 누구를 헐뜯는다든가 비진리를 말한다고 한다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을 대할 때 힘들고 괴롭습니다. 그러므로 비진리의 말을 하면 진리의 대화로 이끌려고 해야 합니다. 그러면 상대가 싫어 떠나거나 변화되어 진리의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비진리를 보지 않고 듣지 않으면 더 이상 입력되지 않으므로 원군이 차단되지요. 원래 입력돼 있던 비진리는 마음 안에서 포위되어 꼼짝 못하고 갇혀 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 상태에서 진리를 주관하는 자신의 의지적인 노력과 성령의 도우심과 불 같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게 되면 비진리는 떠나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을 좇아 행하는 사람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고 순종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비진리를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불 같은 믿음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얼마큼 피 흘려 싸우고 노력하며 어떠한 각오를 하느냐에 따라 1년, 한 달, 순간에도 버릴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철야하며 기도와 금식으로 육신의 생각을 버려 나가는데 가장 힘든 것을 뿌리째 뽑아 버리면 부수적인 죄들은 큰 나무를 뽑으면 잔뿌리도 함께 뽑혀 나가듯 함께 버려집니다. 즉, 마음에서 비진리가 떠나면 육신의 생각은 자연히 떠나게 되지요. 단지 기억으로만 남으므로 더듬어 기억하지 않는 한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과 인도를 받아 나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성령께서 미워하지 말라고 하면 "이제 사랑하겠습니다." 하고 그때부터는 '어떻게 하면 사랑할 수 있을까?' 하며 성령의 음성에 순종해 나가면 결국 미움은 떠날 수밖에 없고 그만큼 영혼이 잘 된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지요.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과 입력된 육적인 것들을 전부 무(無)로 돌리고 66권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영으로 마음을 일구면 생각도 영으로 일구어져 육신의 생각이 깨어지고 영의 생각만 남게 됩니다. 이처럼 계속적으로 인도받고 순종해 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므로 매사를 주관하실 것이고 불 같은 기도로 지혜도 얻게 되는 것입니다(약 1:5).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인도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열심히 노력해서 영으로 들어간 사람과 여전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과의 영적인 수준은 엄청나게 차이가 나지요. 기쁨도 행복도 믿음도 달라질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도와 축복이 달라질 것입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변한 것도 없고 똑같은 것 같아도 그 능력이나 말의 권세가 엄청나게 달라지는 것입니다.
영적인 얼굴빛도 달라짐으로 원수 마귀가 무서워 떨게 되며 기도의 능력을 받아 쉽게 응답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보장받는 단계로 들어가니 맡은 사명에 대한 열매를 풍성히 맺으며 육적인 문제도 다 해결되지요. 영혼이 잘되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게 되며 하나님께서 친히 이끄시고 역사해 가심으로 만사형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로마서 8:12 이하에 보면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모두 이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 삼아 지켜 행함으로 늘 성령의 밝은 음성과 인도 주관을 받아 나가시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7-13
제27과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려면(1)
요 16:13
읽을말씀 : 요 16:13 | 외울말씀 : 요일 3:21-22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을 깨달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여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면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야 하는 이유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게 되면 영적 성장을 이루게 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도 능력있게 행하며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요 4:24) 하나님의 자녀들도 영적인 방법을 좇아서 행할 때 영적인 생명을 낳으며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심한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형제가 있다고 합시다. 그가 만일 육에 속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라는 위로의 말을 듣기 원하고 물질적인 도움을 바라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반면에 그 형제가 영에 속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주어 어려움을 이기도록 도와주는 사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만일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가 죄에서 비롯되었다면 회개하고 돌이킬 때 어려움이 해결될 것이고, 죄와 상관없이 어려움을 통하여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함으로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방이나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반드시 영적인 생명을 낳으며 영혼이 잘되게 도와주며 열매를 맺도록 변화시켜 주어야 합니다. 육적인 방법을 좇아 행하면 그 순간은 열매를 맺는 것 같아도 사단이 역사하거나 시험 환난이 닥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는 방법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진리를 알고 깨우친 만큼 그 안에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여 심비에 새기게 되면 우리 마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때를 따라 내 안에 있는 진리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존재하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므로 진리에 위배되는 비진리가 존재하면 그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비진리가 존재하면 진리로 마음을 주관하는 성령의 음성을 듣기 전에 비진리의 생각에서 오는 사단의 음성이 먼저 작용을 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평소에 알고 지내던 남녀가 벤치에 앉아 다정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았다면 사람들마다 느낌이 다릅니다. 자기에게 입력되어 있는 경험에 대입하게 되니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 것이지요. 똑같은 상황이지만 사람마다 각기 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순간에 생각이 와서 자기 안에 입력되어 있는 느낌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 안에 비진리가 전혀 없고 오직 진리의 마음만 있다면 사단이 생각을 통하여 주관할 수 없으니 생각에서 오는 사단의 음성은 전혀 들을 수 없고 오직 성령의 음성만 듣게 됩니다. 내 안에 비진리의 마음이 있을 때에는 사단이 역사하여 성령의 음성을 차단시키므로 입력된 생각이 앞서게 되지요. 비진리가 없으면 사단이 생각을 통하여 작용할 수 없으므로 이런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상대를 오해하거나 판단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진리가 조금 남아있다 할지라도 진리가 훨씬 더 많다면 성령은 내 안에 있는 진리를 강하게 주관하시므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주관받은 성령의 음성은 강하고 생각을 통해 역사하는 사단의 음성은 희미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비진리를 버리려고 하는 사람이 굳이 희미하게 들리는 사단의 음성을 들으려고 할 리 없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두 방송이 있는데 만일 A방송은 크게 틀어 놓고 B방송은 매우 작은 소리로 틀어 놓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느 방송이 잘 들리겠습니까? 억지로 들으려고 애쓰지 않는 이상 B방송은 거의 들리지 않고 A방송은 잘 들릴 것입니다. 더군다나 A방송을 시청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B방송에서 나오는 미세한 소리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니 B방송은 아예 무시되어 거의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3. 성령의 음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십니다. 그때부터 성령께서는 마음 안에 내주하시며 진리가 임한 만큼 직접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시게 됩니다.
반면에 사단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 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에 비진리의 생각을 통하여 역사합니다. 즉 어떤 집의 안방에 들어가려고 할 때 집 밖에 있는 사람은 대문을 통과하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비진리의 생각을 차단하려면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해 나갈 때 비진리의 생각을 차단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밝히 인도받을 수 있게 됩니다.
요한일서 3:21-22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비진리의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을 때 임하는 축복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은 영혼이 잘된 사람이므로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요삼 2절). 더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으로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하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시고 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간섭하여 주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친히 인도하여 주시면 염려, 근심, 걱정할 일이 없으며 범사에 형통함을 받게 됩니다.
만일 잠이 부족하여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매우 힘든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면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될 때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난다든지, 누가 찾아온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등 하나님께서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정확하게 깨워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살게 되면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주관하시며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성령께서 온전히 주관하시면 내 생각인지 아니면 성령의 음성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없으며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말하게 하시고 장래 일도 알게 하십니다(요 14:26, 16:13). 더 나아가 하나님의 보장을 받게 되면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 나타나고(막 16:17-18),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게 되니(요 1:12) 영적인 믿음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았으면서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자꾸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영을 낳아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는데,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으니 계속하여 영을 낳을 수 없는 것이요, 이렇게 자신을 영적인 사람으로 일구지 못한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듣기가 힘든 것입니다.
만약 내 생각이나 마음의 10% 정도를 하나님께 맡겼다면 10% 정도만 성령의 역사를 받고 나머지 90%는 하나님과 원수된 육신의 생각이 앞서므로 그만큼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게 되면 점점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므로 성령의 음성을 들었을 때 이를 무시하거나 거역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무엘상 15:22-23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성장을 하며 영혼을 변화시켜 천국으로 인도받기 위해서는 육적인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모든 문제를 영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방법을 깨달아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여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면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것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야 하는 이유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게 되면 영적 성장을 이루게 되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혼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일도 능력있게 행하며 많은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요 4:24) 하나님의 자녀들도 영적인 방법을 좇아서 행할 때 영적인 생명을 낳으며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경제적으로 심한 어려움 가운데 처해 있는 형제가 있다고 합시다. 그가 만일 육에 속한 사람이라면 "얼마나 힘이 드십니까?"라는 위로의 말을 듣기 원하고 물질적인 도움을 바라기 때문에 도움을 주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
반면에 그 형제가 영에 속한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르침을 주어 어려움을 이기도록 도와주는 사람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만일 어려움을 당하는 이유가 죄에서 비롯되었다면 회개하고 돌이킬 때 어려움이 해결될 것이고, 죄와 상관없이 어려움을 통하여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게 되었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함으로 승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방이나 하나님의 일을 할 때에도 반드시 영적인 생명을 낳으며 영혼이 잘되게 도와주며 열매를 맺도록 변화시켜 주어야 합니다. 육적인 방법을 좇아 행하면 그 순간은 열매를 맺는 것 같아도 사단이 역사하거나 시험 환난이 닥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2.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는 방법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진리를 알고 깨우친 만큼 그 안에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여 심비에 새기게 되면 우리 마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때를 따라 내 안에 있는 진리를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안에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가 존재하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므로 진리에 위배되는 비진리가 존재하면 그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습니다. 비진리가 존재하면 진리로 마음을 주관하는 성령의 음성을 듣기 전에 비진리의 생각에서 오는 사단의 음성이 먼저 작용을 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평소에 알고 지내던 남녀가 벤치에 앉아 다정하게 대화하는 것을 보았다면 사람들마다 느낌이 다릅니다. 자기에게 입력되어 있는 경험에 대입하게 되니 순수하고 아름답게 보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 것이지요. 똑같은 상황이지만 사람마다 각기 다른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순간에 생각이 와서 자기 안에 입력되어 있는 느낌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 안에 비진리가 전혀 없고 오직 진리의 마음만 있다면 사단이 생각을 통하여 주관할 수 없으니 생각에서 오는 사단의 음성은 전혀 들을 수 없고 오직 성령의 음성만 듣게 됩니다. 내 안에 비진리의 마음이 있을 때에는 사단이 역사하여 성령의 음성을 차단시키므로 입력된 생각이 앞서게 되지요. 비진리가 없으면 사단이 생각을 통하여 작용할 수 없으므로 이런 사람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상대를 오해하거나 판단하는 우(愚)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진리가 조금 남아있다 할지라도 진리가 훨씬 더 많다면 성령은 내 안에 있는 진리를 강하게 주관하시므로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주관받은 성령의 음성은 강하고 생각을 통해 역사하는 사단의 음성은 희미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비진리를 버리려고 하는 사람이 굳이 희미하게 들리는 사단의 음성을 들으려고 할 리 없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A와 B라는 두 방송이 있는데 만일 A방송은 크게 틀어 놓고 B방송은 매우 작은 소리로 틀어 놓았다고 합시다. 그러면 어느 방송이 잘 들리겠습니까? 억지로 들으려고 애쓰지 않는 이상 B방송은 거의 들리지 않고 A방송은 잘 들릴 것입니다. 더군다나 A방송을 시청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B방송에서 나오는 미세한 소리는 들으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니 B방송은 아예 무시되어 거의 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3. 성령의 음성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십니다. 그때부터 성령께서는 마음 안에 내주하시며 진리가 임한 만큼 직접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시게 됩니다.
반면에 사단은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 권세를 잡고 있기 때문에 비진리의 생각을 통하여 역사합니다. 즉 어떤 집의 안방에 들어가려고 할 때 집 밖에 있는 사람은 대문을 통과하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가 비진리의 생각을 차단하려면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해 나갈 때 비진리의 생각을 차단하고 성령의 음성을 듣고 밝히 인도받을 수 있게 됩니다.
요한일서 3:21-22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고 인도받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인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비진리의 생각을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4.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을 때 임하는 축복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은 영혼이 잘된 사람이므로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요삼 2절). 더구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으로 마음에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하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를 받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므로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는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모든 일에 관심을 가지시고 미세한 것에 이르기까지 간섭하여 주시며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친히 인도하여 주시면 염려, 근심, 걱정할 일이 없으며 범사에 형통함을 받게 됩니다.
만일 잠이 부족하여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매우 힘든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면 일어나야 할 시간이 될 때 누가 부르는 소리가 난다든지, 누가 찾아온 발자국 소리가 들리는 등 하나님께서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정확하게 깨워 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는 삶을 살게 되면 성령께서 사람의 마음을 온전히 주관하시며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십니다. 성령께서 온전히 주관하시면 내 생각인지 아니면 성령의 음성인지를 구분할 필요가 없으며 성령께서는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시며 말하게 하시고 장래 일도 알게 하십니다(요 14:26, 16:13). 더 나아가 하나님의 보장을 받게 되면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 나타나고(막 16:17-18),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게 되니(요 1:12) 영적인 믿음 안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게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았으면서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자꾸 성령을 좇아 행함으로 영을 낳아야 성령의 인도를 받는 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되는데,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으니 계속하여 영을 낳을 수 없는 것이요, 이렇게 자신을 영적인 사람으로 일구지 못한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듣기가 힘든 것입니다.
만약 내 생각이나 마음의 10% 정도를 하나님께 맡겼다면 10% 정도만 성령의 역사를 받고 나머지 90%는 하나님과 원수된 육신의 생각이 앞서므로 그만큼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도 순종하지 않게 되면 점점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므로 성령의 음성을 들었을 때 이를 무시하거나 거역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사무엘상 15:22-23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지 못하는 이유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영적인 성장을 하며 영혼을 변화시켜 천국으로 인도받기 위해서는 육적인 방법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고 모든 문제를 영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007-07-06
제26과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의 본분
요일 5:3
읽을말씀 : 요일 5:3 | 외울말씀 : 전 12:13
교육목표 :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라면 하나님의 계명들을 무거운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 계명들을 감사와 기쁨으로 지킬 수 있게 한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소속된 국가의 법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지키기를 원하시는 규칙으로서 이를 계명이라고 하는데,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로서 그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계명들과 그에 따르는 축복은 무엇이 있을까요?
1. 사랑의 증거인 하나님의 계명들
요한일서 5:3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지름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계명들을 지키도록 도와주시므로 결코 계명들이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고난도 기쁨으로 여기며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듯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계명들을 지키기 어렵다 하지 않으며 기쁨으로 계명들을 지키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며 축복으로 갚아 주시지요(신 28:1-13).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우리가 계명들을 지키는가, 지키지 않는가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분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요일 5:2).
성경에는 수많은 계명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간단하게 요약한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켜야 할 계명들이지요.
마태복음 22:35-40을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대답하십니다.
이처럼 십계명 중에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지켜야 할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여 지켜야 할 계명이 있지요. 즉 제1-4계명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 있어서 지켜야 할 계명들이며, 제5-10계명은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입니다.
그러면 십계명 중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몇 가지 계명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온전한 주일성수와 영적인 축복
1) 주일성수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일(主日)이란, 주님의 날이라는 뜻이며,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시고자 정하신 안식일로서 주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날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킴으로 참된 안식을 누리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이 임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므로 이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으며(창 2:1-3),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 20:8).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안식일인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인 권한을 인정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2)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에 와서 주일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창조의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 즉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는데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첫날 즉 안식일 다음 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 배경은 인간이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러 하나님의 참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자(창 3장),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의 피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주시고(갈 3:13) 생명에 이르게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전날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인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며,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과 참된 안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셨고 이때부터 주님이 부활하신 날 즉 매주 첫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으며 주일이라 칭하게 된 것입니다(고전 16:2).
3) 주일을 성수하면 하나님께서 영적인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되 주일은 일하지 않고 주 안에서 쉬어야 합니다. 육체의 쉼은 물론, 기쁨과 평강을 주는 영혼의 안식을 누려야 참된 안식이 되기 때문이지요(출 20:8-10). 설령 이 세상의 높은 명예나 부귀를 얻었다 하더라도 마음에 평강이 없고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고 자유함을 얻으면 영혼의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참된 안식이지요.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짐을 져 주셨으니 우리가 말씀대로 행하기만 하면 위로부터 기쁨과 평강이 임하고 참된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세상일을 멈추고 교회에 나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성도들과 교제하고 주 안에서 쉼을 얻으며 영적인 성장을 추구해야 하지요.
이와 같이 주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세상 욕심을 추구하지 않고, 사고파는 매매행위나 자기 유익을 구하는 세상적인 일들을 삼가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참된 안식을 누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한 주간을 지켜 주시며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이지요.
3. 온전한 십일조와 물질의 축복
1)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의 물권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십일조란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요, 헌물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모든 예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십일조와 헌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과 같습니다(말 3:8-9).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해 드리는 것이라면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주인이시라는 하나님의 물질적인 권한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물질 축복의 지름길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죄의 삯으로 영적인 저주뿐 아니라 육적인 저주도 임하게 되었습니다(창 3:17). 저주받은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가난하게 사심으로 모든 인류의 가난을 대속해 주셨지요(고후 8:9). 이 사실을 믿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하나님의 물권을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육적인 저주가 회복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만약 농부가 10가마니의 소출을 얻었다면 10분의 1인 1가마니를 드려야 온전한 십일조가 됩니다. 그런데 수확하기까지 인건비나 비료대, 각종 세금을 뺀 나머지 수입을 계산하여 드리면 온전한 십일조라 할 수 없습니다. 그 외 선물, 보너스 등 기타 수입으로 들어온 모든 것도 총수입으로 계산하여 십일조를 드려야 온전한 것입니다.
학생들의 경우는 자신이 임의대로 쓸 수 있는 용돈이나 선물, 세뱃돈 등이 수입이 되므로 그에 대한 십일조를 드리면 됩니다. 반면 수업료나 등록금은 자신의 수입이 아니므로 십일조를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십일조는 성도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 곧 자신이 소속되어 영의 양식을 공급받고 있는 교회에 드려야 하며 하나님의 것이므로 임의로 사용할 수 없고 감사헌금이나 기타 다른 명목의 헌금으로 드려져서도 안 됩니다.
헌물은 크게 감사헌금과 절기헌금으로 구분되며, 감사헌금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여 드리는 예물로서 주일헌금이나, 기도한 것에 응답받아 감사하여, 또는 생일 등 특별히 감사할 조건이 생겨서 드리는 각종 감사헌금, 직분을 받고 잘 감당하기 위한 위임예물, 회개하며 드리는 속죄예물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절기헌금은 각종 절기를 맞이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드리는 헌금입니다. 신년을 맞이하여 한 해를 의뢰하며 드리는 신년 감사예물, 혹은 부활절, 맥추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 절기에 따라 특별하게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입술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이 따르는 감사를 할 때 기뻐 받으시고 그에 따른 축복을 해 주시지요.
이러한 십일조와 헌물은 모든 소산의 첫 열매로 드려야 하며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교회의 재정기관을 통하여 쓰여지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의 종이나 일꾼들에게 주어지고 복음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일에 사용됩니다.
3)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물질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3:10을 통해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켜 행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온전히 주일을 지키며 온전히 십일조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물적 주권을 모두 인정해 드리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축복과 더불어 물질의 축복을 주시는 것이지요. 또한 원수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과 환난, 불의의 사고와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고 가정, 일터, 사업터에 놀라운 축복과 평강이 임하도록 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라면 성경에 기록된 각종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기 위하여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온전한 주일을 지키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하며 십계명을 지키심으로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넘치도록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라면 하나님의 계명들을 무거운 것으로 여기지 않고 그 계명들을 감사와 기쁨으로 지킬 수 있게 한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소속된 국가의 법을 지키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도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지키기를 원하시는 규칙으로서 이를 계명이라고 하는데,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로서 그 본분을 다하기 위해서 지켜야 할 계명들과 그에 따르는 축복은 무엇이 있을까요?
1. 사랑의 증거인 하나님의 계명들
요한일서 5:3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지름길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령을 주셔서 계명들을 지키도록 도와주시므로 결코 계명들이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고난도 기쁨으로 여기며 상대를 위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듯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면 계명들을 지키기 어렵다 하지 않으며 기쁨으로 계명들을 지키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자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시며 축복으로 갚아 주시지요(신 28:1-13).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우리가 계명들을 지키는가, 지키지 않는가에 따라 하나님께서는 분별하시게 되는 것입니다(요일 5:2).
성경에는 수많은 계명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간단하게 요약한 것이 바로 십계명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받은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지켜야 할 계명들이지요.
마태복음 22:35-40을 보면 한 율법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묻자,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대답하십니다.
이처럼 십계명 중에도 하나님을 사랑하여 지켜야 할 계명과 이웃을 사랑하여 지켜야 할 계명이 있지요. 즉 제1-4계명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사이에 있어서 지켜야 할 계명들이며, 제5-10계명은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입니다.
그러면 십계명 중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로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몇 가지 계명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 온전한 주일성수와 영적인 축복
1) 주일성수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일(主日)이란, 주님의 날이라는 뜻이며,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시고자 정하신 안식일로서 주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날입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킴으로 참된 안식을 누리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이 임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에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므로 이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으며(창 2:1-3),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령하셨습니다(출 20:8).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안식일인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인 권한을 인정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2) 구약의 안식일이 신약에 와서 주일이 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창조의 마지막 날인 일곱째 날 즉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는데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첫날 즉 안식일 다음 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 배경은 인간이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러 하나님의 참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되자(창 3장),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그의 피로 모든 인간의 죄를 대속하여 주시고(갈 3:13) 생명에 이르게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안식일 전날 금요일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사흘 만인 일요일 새벽에 부활하심으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며, 우리에게 부활의 소망과 참된 안식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셨고 이때부터 주님이 부활하신 날 즉 매주 첫날인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으며 주일이라 칭하게 된 것입니다(고전 16:2).
3) 주일을 성수하면 하나님께서 영적인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가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되 주일은 일하지 않고 주 안에서 쉬어야 합니다. 육체의 쉼은 물론, 기쁨과 평강을 주는 영혼의 안식을 누려야 참된 안식이 되기 때문이지요(출 20:8-10). 설령 이 세상의 높은 명예나 부귀를 얻었다 하더라도 마음에 평강이 없고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을 받는다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와 사망에서 해방되고 자유함을 얻으면 영혼의 안식을 누릴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참된 안식이지요.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짐을 져 주셨으니 우리가 말씀대로 행하기만 하면 위로부터 기쁨과 평강이 임하고 참된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세상일을 멈추고 교회에 나와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성도들과 교제하고 주 안에서 쉼을 얻으며 영적인 성장을 추구해야 하지요.
이와 같이 주 안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세상 욕심을 추구하지 않고, 사고파는 매매행위나 자기 유익을 구하는 세상적인 일들을 삼가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참된 안식을 누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축복을 주십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한 주간을 지켜 주시며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이지요.
3. 온전한 십일조와 물질의 축복
1)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의 물권을 인정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십일조란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요, 헌물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모든 예물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십일조와 헌물을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과 같습니다(말 3:8-9).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해 드리는 것이라면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주인이시라는 하나님의 물질적인 권한을 인정하는 것으로서 물질 축복의 지름길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죄의 삯으로 영적인 저주뿐 아니라 육적인 저주도 임하게 되었습니다(창 3:17). 저주받은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예수 그리스도는 마구간에서 태어나시고 가난하게 사심으로 모든 인류의 가난을 대속해 주셨지요(고후 8:9). 이 사실을 믿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하나님의 물권을 인정하는 것이 되므로 육적인 저주가 회복되어 하나님께서 주시는 물질 축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은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만약 농부가 10가마니의 소출을 얻었다면 10분의 1인 1가마니를 드려야 온전한 십일조가 됩니다. 그런데 수확하기까지 인건비나 비료대, 각종 세금을 뺀 나머지 수입을 계산하여 드리면 온전한 십일조라 할 수 없습니다. 그 외 선물, 보너스 등 기타 수입으로 들어온 모든 것도 총수입으로 계산하여 십일조를 드려야 온전한 것입니다.
학생들의 경우는 자신이 임의대로 쓸 수 있는 용돈이나 선물, 세뱃돈 등이 수입이 되므로 그에 대한 십일조를 드리면 됩니다. 반면 수업료나 등록금은 자신의 수입이 아니므로 십일조를 드릴 필요는 없습니다.
십일조는 성도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 곧 자신이 소속되어 영의 양식을 공급받고 있는 교회에 드려야 하며 하나님의 것이므로 임의로 사용할 수 없고 감사헌금이나 기타 다른 명목의 헌금으로 드려져서도 안 됩니다.
헌물은 크게 감사헌금과 절기헌금으로 구분되며, 감사헌금은 하나님 앞에 감사하여 드리는 예물로서 주일헌금이나, 기도한 것에 응답받아 감사하여, 또는 생일 등 특별히 감사할 조건이 생겨서 드리는 각종 감사헌금, 직분을 받고 잘 감당하기 위한 위임예물, 회개하며 드리는 속죄예물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절기헌금은 각종 절기를 맞이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드리는 헌금입니다. 신년을 맞이하여 한 해를 의뢰하며 드리는 신년 감사예물, 혹은 부활절, 맥추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 절기에 따라 특별하게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입술로만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이 따르는 감사를 할 때 기뻐 받으시고 그에 따른 축복을 해 주시지요.
이러한 십일조와 헌물은 모든 소산의 첫 열매로 드려야 하며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려진 십일조와 헌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교회의 재정기관을 통하여 쓰여지며, 하나님의 일을 하는 주의 종이나 일꾼들에게 주어지고 복음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일에 사용됩니다.
3)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물질 축복을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말라기 3:10을 통해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지켜 행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온전히 주일을 지키며 온전히 십일조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물적 주권을 모두 인정해 드리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축복과 더불어 물질의 축복을 주시는 것이지요. 또한 원수 마귀로부터 오는 시험과 환난, 불의의 사고와 질병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고 가정, 일터, 사업터에 놀라운 축복과 평강이 임하도록 해 주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라면 성경에 기록된 각종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기 위하여 더욱 힘써야 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온전한 주일을 지키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하며 십계명을 지키심으로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넘치도록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6-29
제25과신실하신 분께 감사함으로
민 23:19
읽을말씀 : 민 23:19 | 외울말씀 : 출 23:16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1. 맥추절의 의미
출애굽기 23:16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하신 대로 맥추절은 일 년 중 곡물의 첫 수확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맥추절이 되면 처음 수확한 곡식과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이웃과 함께 음식을 먹고 춤을 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요. 오늘날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상반기 동안 각자의 삶 속에서 수고하여 거둔 영육간의 열매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동안 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 오신 분들은 해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얼마나 신실하게 이뤄 오셨는지를 상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개척과 함께 세계선교와 대성전 건축의 큰 목표를 주시고 해마다 목표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약속의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해 온 만큼 하나님께서는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매년 감사의 제목들이 풍성하게 넘치도록 하셨지요.
그러면 맥추절을 맞아 상반기 동안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반기에 더욱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언약을 풍성한 열매로 거두려면
1)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100% 믿는 믿음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현실과는 전혀 반대되는 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인 믿음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렘 32:27).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와 모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므로 결코 불가능한 일이 없으며 한 번 이루리라 말씀하셨으면 변개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러니 정녕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말씀을 주신다 해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본교회 개척 이후로 하나님께서 되어질 일을 한 번 말씀하시면 우리는 결코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장차 세계를 이룰 것"이라는 말씀이나 "천하 만민이 하나님께 나와 영광돌리는 대성전을 이룰 것"이라는 말씀도 전혀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동안 무수한 권능의 역사들을 체험해 왔고, 실제로 세계를 이뤄 가는 과정들이 눈앞에 드러나 보이고 있으니 의심할 이유가 없지요.
그러나 처음 이런 말씀을 받을 당시는 사정이 전혀 달랐습니다. 십여 평의 조그만 성전에,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겨우 열세 명이 모인 조그만 개척 교회입니다. 주교사도, 성가대도, 찬양팀도, 봉사대도 없었지요. 심지어 아직 창문의 유리도 없는 성전에서 사과 상자를 강대상 삼아 개척 예배를 드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것으로 마음에 새기며 현실과 상관없이 온전히 믿어드릴 때 바로 그 믿음이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을 너무나 많이 보고 들으며 직접 체험해 오셨습니다. 그러니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을 뿐 아니라 본제단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결의 복음으로 세계를 이루며 가나안성전과 대성전을 이루는 주역들로 쓰임받을 것을 믿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요. 또한 "나도 성결되어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의지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친히 이뤄주신다(살전 5:24)는 믿음으로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인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라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야고보서 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사람에게 어떤 유익도 주지 않습니다.
모세가 기도하여 홍해를 갈랐을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건너지 않았다면 애굽 군대에게 붙잡혔을 것이고, 요단 강물이 멈추었을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지 않았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축복의 약속을 주셨다 해도, 또 사람이 그것을 믿는다고 고백해도 직접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내 보이는 사람만이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축복의 길을 열어 주셨고, 주 안에서 어떻게 하면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 수많은 방법들을 성경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바로 무엇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이 그것이지요. 요한일서 3:21-22에도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만약 목이 말라 죽어가면서도 눈앞에 있는 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는 물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된다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로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을 사람이 없고, 당연히 신속하게 죄악들을 벗어 버리고 뜨겁게 충성하며 달려갈 것입니다. 진심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요, 마음에 불편한 일이 있으면 혈기내거나 감정을 품기도 하며, 자기 유익을 위해 비진리와 타협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죄악을 벗고 충성하는 행함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2007년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많은 축복의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특히 온 영의 흐름을 타게 하신다는 말씀대로 신속하게 성결될 수 있도록 은혜의 문을 활짝 열어 주고 계시며,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는 축복을 넘치게 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약속들을 믿으신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행함을 보이고 계시는지요?
하나님께서 어떤 비전과 축복의 약속을 주실 때, 정녕 그 말씀을 믿는다면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았다면, 먼저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구해야 합니다(겔 36:37). 불같이 중심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 방법론을 주시지요.
우리는 식언치 않으시고 후회가 없으신 하나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섭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들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찾아 행해 왔지요. 전 세계에서 본제단을 사모할 날을 대비해서 일찍부터 수많은 주의 종들을 양성해왔고, 기독 문화의 중요성을 알아 찬양팀과 예능팀, 오케스트라를 양성하였으며 문서와 방송의 중요성을 깨달음으로 문서, 방송 선교를 위해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정과 희생이 필요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분명히 믿었기에 힘을 다해 이뤄온 것입니다. 만약 "여력이 있으면 준비하겠다." 하고 손을 놓고 있거나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오늘날과 같이 세계를 이루는 열매로 나올 수가 없었겠지요. 요단 강을 멈추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지만, 믿음으로 강을 밟고 건너는 행함은 사람의 몫인 것처럼, 우리를 향해 주신 말씀을 믿었기에 부지런히 행함으로 믿음을 보여 왔던 것입니다.
3) 열매를 거두기까지 인내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고 행함으로 심은 것은 반드시 거두게 하시는데, 중요한 것은 끝까지 인내하며 변개함이 없이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해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견고한 여리고 성을 점령하게 하시면서 단지 여리고 성 주변을 돌게 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하루 한 바퀴씩, 마지막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큰 소리로 외치라 하셨지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철벽같은 성을 돈다고 해서 성이 무너질 리도 없고, 더구나 성 안에서 먼저 공격을 해 올 수도 있는데 무방비 상태로 성 주변을 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온전히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했고 하나님께서는 칠 일이라는 날 수를 채우고, 칠 일 째에 일곱 바퀴를 돌아서 총 열세 바퀴를 다 돌았을 때 비로소 성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야고보서 1:6-7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는 범사에 마찬가지입니다. 환도뼈가 위골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자를 놓치지 않았던 야곱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변개함이 없을 때, 믿음과 행함으로 심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고 기도하며 행했다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도 이뤄지지 않으면 더 이상 구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상황이 더 어려워져서 기도한 것과 반대로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므로 낙심하고 원망하는 부정적인 말로 지금까지 행함으로 쌓아온 것을 무너뜨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중도에 변질되어 포기해 버리면 그 전까지 아무리 열심히 심었다고 해도 열매로 거둘 수가 없게 됩니다.
본제단의 경우에도 개척 이후로 변함없이 축복의 언약을 믿고 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해마다 부흥하고 발전하게 하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 가운데 완전히 죽어지는 것 같은 상황들도 있었으나 오직 감사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한 연단의 과정을 믿음과 진실함으로 이겨낼 때마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한 축복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도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하셨을 때 출애굽해서 바로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홍해를 건너고 요단 강을 건너며 여리고 성을 끝까지 돌아서 성을 점령해야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지요. 이처럼 온전히 믿고 행하되 변개함이 없이 행할 때라야 축복을 받고 거둘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해 나가심으로 믿음으로 심은 모든 것들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풍성한 축복과 영원한 천국의 상급으로 열매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1. 맥추절의 의미
출애굽기 23:16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하신 대로 맥추절은 일 년 중 곡물의 첫 수확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맥추절이 되면 처음 수확한 곡식과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이웃과 함께 음식을 먹고 춤을 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요. 오늘날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상반기 동안 각자의 삶 속에서 수고하여 거둔 영육간의 열매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동안 본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 오신 분들은 해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얼마나 신실하게 이뤄 오셨는지를 상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개척과 함께 세계선교와 대성전 건축의 큰 목표를 주시고 해마다 목표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는 크고 작은 약속의 말씀들을 주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순종해 온 만큼 하나님께서는 교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매년 감사의 제목들이 풍성하게 넘치도록 하셨지요.
그러면 맥추절을 맞아 상반기 동안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반기에 더욱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언약을 풍성한 열매로 거두려면
1)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6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100% 믿는 믿음입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현실과는 전혀 반대되는 일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믿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인 믿음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렘 32:27).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와 모든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므로 결코 불가능한 일이 없으며 한 번 이루리라 말씀하셨으면 변개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러니 정녕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어떠한 말씀을 주신다 해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본교회 개척 이후로 하나님께서 되어질 일을 한 번 말씀하시면 우리는 결코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장차 세계를 이룰 것"이라는 말씀이나 "천하 만민이 하나님께 나와 영광돌리는 대성전을 이룰 것"이라는 말씀도 전혀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그동안 무수한 권능의 역사들을 체험해 왔고, 실제로 세계를 이뤄 가는 과정들이 눈앞에 드러나 보이고 있으니 의심할 이유가 없지요.
그러나 처음 이런 말씀을 받을 당시는 사정이 전혀 달랐습니다. 십여 평의 조그만 성전에,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겨우 열세 명이 모인 조그만 개척 교회입니다. 주교사도, 성가대도, 찬양팀도, 봉사대도 없었지요. 심지어 아직 창문의 유리도 없는 성전에서 사과 상자를 강대상 삼아 개척 예배를 드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적인 것으로 마음에 새기며 현실과 상관없이 온전히 믿어드릴 때 바로 그 믿음이 축복의 통로가 됩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들을 너무나 많이 보고 들으며 직접 체험해 오셨습니다. 그러니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을 뿐 아니라 본제단에 주신 하나님의 약속대로 성결의 복음으로 세계를 이루며 가나안성전과 대성전을 이루는 주역들로 쓰임받을 것을 믿고 바라볼 수 있어야 하지요. 또한 "나도 성결되어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바랍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믿음으로 의지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친히 이뤄주신다(살전 5:24)는 믿음으로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영적인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라는 증거가 나타납니다. 야고보서 2:22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했습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사람에게 어떤 유익도 주지 않습니다.
모세가 기도하여 홍해를 갈랐을지라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건너지 않았다면 애굽 군대에게 붙잡혔을 것이고, 요단 강물이 멈추었을지라도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지 않았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축복의 약속을 주셨다 해도, 또 사람이 그것을 믿는다고 고백해도 직접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내 보이는 사람만이 축복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축복의 길을 열어 주셨고, 주 안에서 어떻게 하면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 수많은 방법들을 성경에 기록해 주셨습니다. 바로 무엇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이 그것이지요. 요한일서 3:21-22에도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만약 목이 말라 죽어가면서도 눈앞에 있는 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는 물을 마시면 갈증이 해소된다는 사실을 믿지 않기 때문이지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로 믿는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않을 사람이 없고, 당연히 신속하게 죄악들을 벗어 버리고 뜨겁게 충성하며 달려갈 것입니다. 진심으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요, 마음에 불편한 일이 있으면 혈기내거나 감정을 품기도 하며, 자기 유익을 위해 비진리와 타협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죄악을 벗고 충성하는 행함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2007년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많은 축복의 약속들을 주셨습니다. 특히 온 영의 흐름을 타게 하신다는 말씀대로 신속하게 성결될 수 있도록 은혜의 문을 활짝 열어 주고 계시며, 행한 대로 심은 대로 거두는 축복을 넘치게 주고 계십니다. 이러한 약속들을 믿으신다면 여러분은 과연 어떤 행함을 보이고 계시는지요?
하나님께서 어떤 비전과 축복의 약속을 주실 때, 정녕 그 말씀을 믿는다면 그냥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았다면, 먼저 그 말씀대로 이루시기를 구해야 합니다(겔 36:37). 불같이 중심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행할 것인가 방법론을 주시지요.
우리는 식언치 않으시고 후회가 없으신 하나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섭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들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찾아 행해 왔지요. 전 세계에서 본제단을 사모할 날을 대비해서 일찍부터 수많은 주의 종들을 양성해왔고, 기독 문화의 중요성을 알아 찬양팀과 예능팀, 오케스트라를 양성하였으며 문서와 방송의 중요성을 깨달음으로 문서, 방송 선교를 위해 많은 투자를 했습니다.
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엄청난 재정과 희생이 필요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분명히 믿었기에 힘을 다해 이뤄온 것입니다. 만약 "여력이 있으면 준비하겠다." 하고 손을 놓고 있거나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오늘날과 같이 세계를 이루는 열매로 나올 수가 없었겠지요. 요단 강을 멈추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지만, 믿음으로 강을 밟고 건너는 행함은 사람의 몫인 것처럼, 우리를 향해 주신 말씀을 믿었기에 부지런히 행함으로 믿음을 보여 왔던 것입니다.
3) 열매를 거두기까지 인내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고 행함으로 심은 것은 반드시 거두게 하시는데, 중요한 것은 끝까지 인내하며 변개함이 없이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해 들어갈 때, 하나님께서는 견고한 여리고 성을 점령하게 하시면서 단지 여리고 성 주변을 돌게 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하루 한 바퀴씩, 마지막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돌고 큰 소리로 외치라 하셨지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철벽같은 성을 돈다고 해서 성이 무너질 리도 없고, 더구나 성 안에서 먼저 공격을 해 올 수도 있는데 무방비 상태로 성 주변을 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온전히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했고 하나님께서는 칠 일이라는 날 수를 채우고, 칠 일 째에 일곱 바퀴를 돌아서 총 열세 바퀴를 다 돌았을 때 비로소 성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야고보서 1:6-7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는 범사에 마찬가지입니다. 환도뼈가 위골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자를 놓치지 않았던 야곱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변개함이 없을 때, 믿음과 행함으로 심은 열매를 거둘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믿고 기도하며 행했다 해도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도 이뤄지지 않으면 더 이상 구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상황이 더 어려워져서 기도한 것과 반대로 되어가는 것처럼 보이므로 낙심하고 원망하는 부정적인 말로 지금까지 행함으로 쌓아온 것을 무너뜨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중도에 변질되어 포기해 버리면 그 전까지 아무리 열심히 심었다고 해도 열매로 거둘 수가 없게 됩니다.
본제단의 경우에도 개척 이후로 변함없이 축복의 언약을 믿고 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해마다 부흥하고 발전하게 하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 가운데 완전히 죽어지는 것 같은 상황들도 있었으나 오직 감사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그러한 연단의 과정을 믿음과 진실함으로 이겨낼 때마다 우리는 이전보다 더한 축복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도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하셨을 때 출애굽해서 바로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홍해를 건너고 요단 강을 건너며 여리고 성을 끝까지 돌아서 성을 점령해야만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었지요. 이처럼 온전히 믿고 행하되 변개함이 없이 행할 때라야 축복을 받고 거둘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행해 나가심으로 믿음으로 심은 모든 것들이 여러분의 삶 가운데 풍성한 축복과 영원한 천국의 상급으로 열매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6-22
제24과팔복이란 무엇인가(2)
마 5:1-12
읽을말씀 : 마 5:1-12 | 외울말씀 : 마 5:7-8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덟 가지 영적인 복이 무엇인가 살펴보아 팔복을 소유한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팔복 중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임하는 복, 애통하는 자에게 임하는 복, 온유한 자에게 임하는 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임하는 복에 대해서 상고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팔복 중에서 다섯 번째 복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이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잘못된 행함을 참아 주고 용서해 주며 이해하고 바로 세워 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영적인 긍휼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용서의 긍휼입니다. 마태복음 6:12을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매일 드리는 주기도문의 일부입니다. 내가 형제를 긍휼히 여기며 용서하고 사랑하였으니 하나님께서도 나의 허물과 죄를 사하여 주시라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마음으로는 형제를 용서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하나님 앞에 주기도문을 한다면 그것은 거짓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고, 형제의 티와 허물도 덮어 주라 하셨으니 누가 나를 헐뜯고 미워하고 욕하더라도 내가 먼저 용서하고 긍휼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도 긍휼하심으로 나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11-24에는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준 유산을 먼 나라에 가서 다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이 아버지 앞에 회개하였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극진히 대해 주며 용서의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이런 용서의 긍휼을 누구에게나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기에 우리가 죄를 버리고 주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입어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징계의 긍휼입니다.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부모가 방관만 하고 있다면 이는 참사랑이 아닙니다. 매를 드는 자체가 마음 아프지만 징계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엄히 훈계하여 자녀를 바르게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잘못했을 때마다 매를 드는 것은 부모의 감정과 혈기에서 나온 것이므로 사랑의 마음이 아닙니다. 진정 긍휼의 마음이 있다면 경솔하게 매를 들지 않고 먼저 권면하며 타이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권면해도 듣지 않고 계속 잘못된 길로 간다면 분명히 깨우쳐 마음에 명심시켜 주기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매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자녀도 감정으로 받지 않고 마음에 깊이 새겨 돌이키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들의 잘못을 보고도 엄히 경책하지 않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던 엘리 제사장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아들들은 백성들이 제사 드리기 위해 가져온 성물을 자신들이 먼저 취하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등 심한 악을 행했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엘리 제사장은 엄히 징계하여 돌이키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엘리와 그 아들들에게 임하여 집안에 환난이 끊이지 않았지요(삼상 2장).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에게 가하는 징계는 오직 사랑하기 때문에 가하는 긍휼의 징계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시는 것입니다(히 12:5-6).
셋째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긍휼입니다. 긍휼은 입으로만이 아니라 행함으로 돌볼 줄 아는 마음입니다. 내 이웃 중에 가난하거나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어려움을 해소시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도와주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긍휼한 마음으로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영적인 긍휼함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부족함을 채워 주시며 연약함을 강하게 해 주시고 기도에 신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마음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고 오로지 진리 안에서 정결하고 깨끗한 마음을 말합니다. 악이나 무례함은 생각지도 아니하며 불의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는 흠도 점도 없는 진리의 선한 마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도 거룩하고 청결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시므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1:16) 권면하십니다.
그러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 마음 안에는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함께 있는데 비진리의 마음을 버린 만큼 청결한 마음이 됩니다.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이 마음속에 누구를 미워하거나 간음할 마음이 있더라도 행함으로 나타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를 죄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므로 비록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았을지라도 이런 비진리의 마음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마 5:2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마음에 있는 비진리들을 버려 나가며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청결한 마음이 되는데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직접 육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룻기에 보면 룻은 남편을 잃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섬길 뿐 아니라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섬겼으므로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청결하였기에 물질의 축복뿐 아니라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축복도 받았던 것입니다.
룻과 같이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지는 만큼 성령의 주관과 인도함을 받아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하나님께 영광돌려 나가게 되는데 이것을 하나님을 본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진리로 마음을 청결케 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능력을 체험함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뵙는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7.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죄로 인한 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갖은 멸시와 조롱을 다 받으시며 십자가에 달려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심으로 원수가 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함을 이루려면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하늘나라에 시민권을 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니 당연히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였으니 나를 미워하거나 핍박하는 사람과도 화평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하며 인내와 절제, 용서와 이해가 있어서 영적인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같이 온유하며 청결하고 사랑과 덕을 갖추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예루살렘에 거할 자격을 갖추었으므로 천국에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는 것입니다.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악이나 불법으로 인해 받는 핍박은 아무 복이나 상급이 될 수 없지만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은 복입니다. 이는 바로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빛 가운데 계시며 사랑과 공의 가운데 계실 뿐 아니라 선 자체가 되시므로 그 자녀들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인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는 빛을 싫어하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빛 가운데 나갈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행해 나갈 때 훼방하여 핍박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간혹 지혜가 부족함으로 스스로 자초하여 핍박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아무런 상급도 되지 않지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 누구나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으므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데,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도를 행함으로 악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는 만큼 주어지는 영광은 다릅니다(고전 15:41).
다니엘은 일국의 총리로서 사자굴에 던짐받는다 해도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지켰습니다(단 6장). 다니엘의 세 친구 역시 풀무불에 들어갈지라도 우상 앞에 절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를 나타내고 영광을 돌렸습니다(단 3장).
이들이 하나님의 법을 좇지 않았더라면 핍박받았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의를 위해 핍박받은 만큼 더 성결되고 하늘나라에는 더 큰 상급으로 쌓여지기 때문에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오는 핍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주님으로 인해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마 5:11-12). 이러한 핍박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칭찬과 위로해 주시며 하늘에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한 나라의 왕이라도 자신을 대신하여 신하가 어떤 희생을 치렀다면 큰 상급으로 위로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를 행하면서 핍박을 받거나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핍박받는다 하더라도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것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주제설교 모음집 팔복편 <참된 복을 좇는 자> 책자를 통해 양식 삼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팔복은 변하지 않고 영원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진정한 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진정한 의미의 영적인 복을 누리기 위해 더욱 열심히 죄를 버리며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덟 가지 영적인 복이 무엇인가 살펴보아 팔복을 소유한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팔복 중에서 심령이 가난한 자에게 임하는 복, 애통하는 자에게 임하는 복, 온유한 자에게 임하는 복,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임하는 복에 대해서 상고해 보았습니다. 오늘은 팔복 중에서 다섯 번째 복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5.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이란 윗사람이 아랫사람의 잘못된 행함을 참아 주고 용서해 주며 이해하고 바로 세워 나가는 것을 말하는데 이러한 영적인 긍휼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용서의 긍휼입니다. 마태복음 6:12을 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하였는데 이는 우리가 매일 드리는 주기도문의 일부입니다. 내가 형제를 긍휼히 여기며 용서하고 사랑하였으니 하나님께서도 나의 허물과 죄를 사하여 주시라는 뜻입니다.
만일 우리가 마음으로는 형제를 용서하고 이해하지 못하면서 하나님 앞에 주기도문을 한다면 그것은 거짓된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고, 형제의 티와 허물도 덮어 주라 하셨으니 누가 나를 헐뜯고 미워하고 욕하더라도 내가 먼저 용서하고 긍휼히 여길 때 하나님께서도 긍휼하심으로 나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사랑해 주시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11-24에는 탕자의 비유가 나옵니다. 아버지가 준 유산을 먼 나라에 가서 다 탕진하고 돌아온 둘째 아들이 아버지 앞에 회개하였을 때 아버지는 아들을 극진히 대해 주며 용서의 긍휼을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은 이런 용서의 긍휼을 누구에게나 베풀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있기에 우리가 죄를 버리고 주님의 사랑과 긍휼하심을 입어 천국을 소망하며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둘째는, 징계의 긍휼입니다. 자녀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을 때 부모가 방관만 하고 있다면 이는 참사랑이 아닙니다. 매를 드는 자체가 마음 아프지만 징계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엄히 훈계하여 자녀를 바르게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가 잘못했을 때마다 매를 드는 것은 부모의 감정과 혈기에서 나온 것이므로 사랑의 마음이 아닙니다. 진정 긍휼의 마음이 있다면 경솔하게 매를 들지 않고 먼저 권면하며 타이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권면해도 듣지 않고 계속 잘못된 길로 간다면 분명히 깨우쳐 마음에 명심시켜 주기 위해 하나님 앞에 기도하고 매를 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때 자녀도 감정으로 받지 않고 마음에 깊이 새겨 돌이키게 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들의 잘못을 보고도 엄히 경책하지 않아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던 엘리 제사장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 아들들은 백성들이 제사 드리기 위해 가져온 성물을 자신들이 먼저 취하고 성전에서 수종드는 여인과 동침하는 등 심한 악을 행했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엘리 제사장은 엄히 징계하여 돌이키게 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엘리와 그 아들들에게 임하여 집안에 환난이 끊이지 않았지요(삼상 2장).
그러므로 우리가 자녀에게 가하는 징계는 오직 사랑하기 때문에 가하는 긍휼의 징계라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징계하시고 채찍질하시는 것입니다(히 12:5-6).
셋째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돌아볼 줄 아는 긍휼입니다. 긍휼은 입으로만이 아니라 행함으로 돌볼 줄 아는 마음입니다. 내 이웃 중에 가난하거나 불쌍한 사람이 있으면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어려움을 해소시켜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도와주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으며 긍휼한 마음으로 실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영적인 긍휼함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으로부터 긍휼히 여김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잘못을 용서해 주시고 부족함을 채워 주시며 연약함을 강하게 해 주시고 기도에 신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6.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마음을 허탄한 데 두지 아니하고 오로지 진리 안에서 정결하고 깨끗한 마음을 말합니다. 악이나 무례함은 생각지도 아니하며 불의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는 흠도 점도 없는 진리의 선한 마음입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들도 거룩하고 청결한 마음을 갖기를 원하시므로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벧전 1:16) 권면하십니다.
그러면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우리 마음 안에는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함께 있는데 비진리의 마음을 버린 만큼 청결한 마음이 됩니다. 사람은 외모로 판단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분입니다.
어떤 사람이 마음속에 누구를 미워하거나 간음할 마음이 있더라도 행함으로 나타내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그를 죄인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므로 비록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았을지라도 이런 비진리의 마음 자체가 하나님 보시기에는 죄가 되는 것입니다(마 5:28).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마음에 있는 비진리들을 버려 나가며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청결한 마음이 되는데 마음이 청결한 자가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직접 육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룻기에 보면 룻은 남편을 잃은 이방 여인이었지만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고 끝까지 섬길 뿐 아니라 시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을 섬겼으므로 많은 축복을 받았습니다. 마음이 청결하였기에 물질의 축복뿐 아니라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축복도 받았던 것입니다.
룻과 같이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지는 만큼 성령의 주관과 인도함을 받아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하나님께 영광돌려 나가게 되는데 이것을 하나님을 본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진리로 마음을 청결케 하여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능력을 체험함으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뵙는 축복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7.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죄로 인한 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께서 갖은 멸시와 조롱을 다 받으시며 십자가에 달려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심으로 원수가 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평이 이루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과 화평함을 이루려면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하늘나라에 시민권을 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니 당연히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였으니 나를 미워하거나 핍박하는 사람과도 화평함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화평케 하는 자가 될 수 있을까요?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하며 인내와 절제, 용서와 이해가 있어서 영적인 생명을 줄 수 있는 사랑의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같이 온유하며 청결하고 사랑과 덕을 갖추어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예루살렘에 거할 자격을 갖추었으므로 천국에서도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는 것입니다.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악이나 불법으로 인해 받는 핍박은 아무 복이나 상급이 될 수 없지만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은 복입니다. 이는 바로 천국이 저희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빛 가운데 계시며 사랑과 공의 가운데 계실 뿐 아니라 선 자체가 되시므로 그 자녀들도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인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 세상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는 빛을 싫어하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빛 가운데 나갈 때,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를 행해 나갈 때 훼방하여 핍박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간혹 지혜가 부족함으로 스스로 자초하여 핍박을 받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아무런 상급도 되지 않지요.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 누구나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에 이를 수 있으므로 천국에 들어가게 되는데, 세상과 타협지 않고 하나님의 법도를 행함으로 악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는 만큼 주어지는 영광은 다릅니다(고전 15:41).
다니엘은 일국의 총리로서 사자굴에 던짐받는다 해도 쉬지 않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지켰습니다(단 6장). 다니엘의 세 친구 역시 풀무불에 들어갈지라도 우상 앞에 절하지 않고 믿음을 지켰으므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를 나타내고 영광을 돌렸습니다(단 3장).
이들이 하나님의 법을 좇지 않았더라면 핍박받았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의를 위해 핍박받은 만큼 더 성결되고 하늘나라에는 더 큰 상급으로 쌓여지기 때문에 상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이겨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할 때 오는 핍박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함으로 주님으로 인해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마 5:11-12). 이러한 핍박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칭찬과 위로해 주시며 하늘에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한 나라의 왕이라도 자신을 대신하여 신하가 어떤 희생을 치렀다면 큰 상급으로 위로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의를 행하면서 핍박을 받거나 하나님의 일꾼으로서 복음을 증거하다가 핍박받는다 하더라도 낙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나라의 상급을 바라보며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것입니다. 더 자세한 내용을 원하시면 주제설교 모음집 팔복편 <참된 복을 좇는 자> 책자를 통해 양식 삼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팔복은 변하지 않고 영원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므로 진정한 복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진정한 의미의 영적인 복을 누리기 위해 더욱 열심히 죄를 버리며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2007-06-15
제23과팔복이란 무엇인가(1)
마 5:1-12
읽을말씀 : 마 5:1-12 | 외울말씀 : 마 5:3-6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덟 가지 영적인 복이 무엇인가 살펴보아 팔복을 소유한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주로 갈릴리 주변에서 사역하셨습니다. 이곳에서 팔복에 대해 증거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들의 마음과 이러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에게 임하는 축복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풍요하거나 자녀가 출세하고 건강하며 가정이 화평하면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은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 등으로 순간에 사라질 수 있지만, 팔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복으로서 영원하며 변치 않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신 축복은 이 땅에서도 복이 되지만 하늘나라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복으로 쌓여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완성을 진정한 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아무리 이 땅에서 부유하게 살았고 명예와 권세가 있었다 할지라도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면 무슨 복이 되겠습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팔복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건강이 좋지 못하거나 물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악이 없고 선한 마음을 말합니다. 욕심이나 교만, 이기심이 없으며, 세상 물정이나 육에 가려지지도 않은 가난한 마음으로서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중심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부요하면 하나님의 빛이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할 수 없지만, 선한 중심을 가진 사람들은 재물이 많거나 풍요로운 상태라 할지라도 전도를 받으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령이 부요하다 해도 시험 환난을 만나거나 고통과 충격적인 일을 당하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난한 심령이 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므로 전도하기 쉬운 것입니다.
간혹 시험 환난을 당하지 않고도 복음을 전하면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스스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그만큼 심령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마음 중심이 선하거나 자존심과 교만이 깨어져 나감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 하나님을 마음에 인정할 수 있기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고 천국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하여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팔복을 받는 첫 번째 관문입니다.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나머지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으니 무엇보다 먼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이란 몹시 슬퍼하며 가슴 아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애통에는 갖가지 슬픈 일을 당하여 애통하는 육적인 애통과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영적인 애통이 있습니다. 가난하여 애통하고, 자기 악을 이기지 못하거나 슬픔과 고통을 당하여 애통하는 것은 모두 육적인 애통에 속합니다. 이는 믿음이 없을 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하셨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믿음을 보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니 육적인 애통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육적인 애통이 아닌 영적인 애통을 하기 원하시는데, 영적인 애통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죄에 대한 회개의 애통입니다. 회개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죄악 가운데 살았던 것을 돌이켜 하나님의 진리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회개의 애통을 하고 나면 죄의 짐을 벗은 느낌 속에 후련해지며 기쁘고 가벼운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진리로 비추어 내 안에 있는 죄를 발견하게 되고 죄를 버리기 위해 마음을 찢으면서 애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뻐받으시고 위로와 능력을 주셔서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둘째로는, 직분자로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나오는 애통이 있습니다. 직분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기도나 전도, 충성, 봉사를 하지 못했을 때 심히 마음을 찢으면서 애통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애통하는 자에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위로받게 하십니다.
셋째로는, 죄로 인하여 사망의 길로 가는 형제를 위한 애통이 있습니다. 사망의 길로 가는 형제를 보고 긍휼히 여기는 자는 그를 위하여 애통하며 사랑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형제가 범죄치 않고 말씀 안에 살 수 있도록 믿음으로 간구하는 눈물의 기도는 진정 사랑의 마음에서 나오므로 이러한 애통의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하시며 위로받게 하십니다.
넷째로, 세상을 보며 애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죄악으로 물든 세상과 많은 영혼들, 나라와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마음을 찢는 애통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애통은 영적인 사랑이 있어야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영적으로 애통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복을 주시되 이 땅에서 위로받게 하실 뿐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사람들은 인품이 온화하고 유순한 것을 '온유'라고 하지만, 영적인 온유는 여기에 덕을 겸한 것을 말합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상대와 어떤 일로 마음이 불편해진다거나 걸림이 없으며 매사를 악으로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온유하며 덕이 있는 사람은 상대의 잘못을 용서해 줄 수 있고 이해하며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소유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마음의 쉼을 얻고 평안함을 누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니 이것이 곧 영적인 권세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상대를 섬기며 덕을 갖춘 온유한 사람에게 천국에서 큰 권세를 주시니 당연히 큰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는 물질이나 명예가 있어야 얻게 되지만 천국에서의 영적인 권세는 마음을 낮추며 섬기는 자가 될 때 얻게 되지요.
마태복음 20:26-27을 보면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8:3-4에는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셨으니 어린아이와 같이 마음을 낮추면 이 땅에서 많은 이의 마음을 얻게 되며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큰 땅을 주어 부자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장차 우리가 영원히 거하게 될 천국의 땅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덕이 있어 온유함을 이룬 만큼 많은 이에게 은혜를 끼치고 믿음을 심어 주며 많은 사람을 포용하고 이끌어 갔을 것이니 그것이 영적인 권세가 되어 천국에서는 그만큼 큰 땅을 얻고 권세를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덕을 겸한 온유함은 마음에 악이 없고 모든 육신의 생각과 이론을 파하며 성령의 소욕을 좇아 진리대로 행해 나가는 만큼 얻어지는 것이므로 오직 진리에 순종해 나가는 온유한 자가 되어 하늘나라의 큰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받는 복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의(義)는 사람의 도리를 위하여 진력하는 일이나 옳은 행위를 말하는데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좇아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거나 마실 물이 없어 심하게 갈증을 느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일용할 양식이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물의 귀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리고 목마른 것은 고통스러운 일인데 왜 예수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주리고 목마른 자가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찾아 갈급해 하듯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된다면 당연히 그 사람은 믿음이 있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으며 독생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므로 영적인 배부름의 복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심령은 갈급한 마음으로 진리를 좇아 살아가므로 비진리는 벗어지고 진리로 채워지게 되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영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배부른 만큼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며 영혼이 잘되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니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삶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에 이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주시는 여덟 가지 영적인 복이 무엇인가 살펴보아 팔복을 소유한 하나님의 참자녀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 주로 갈릴리 주변에서 사역하셨습니다. 이곳에서 팔복에 대해 증거하실 때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들의 마음과 이러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에게 임하는 축복에 대해 가르치셨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물질적으로 풍요하거나 자녀가 출세하고 건강하며 가정이 화평하면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은 갑작스런 사고나 질병 등으로 순간에 사라질 수 있지만, 팔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복으로서 영원하며 변치 않는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신 축복은 이 땅에서도 복이 되지만 하늘나라에서도 그에 상응하는 복으로 쌓여지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구원의 완성을 진정한 복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아무리 이 땅에서 부유하게 살았고 명예와 권세가 있었다 할지라도 구원받지 못하고 지옥에 간다면 무슨 복이 되겠습니까. 그러면 이제부터 팔복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 것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건강이 좋지 못하거나 물질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악이 없고 선한 마음을 말합니다. 욕심이나 교만, 이기심이 없으며, 세상 물정이나 육에 가려지지도 않은 가난한 마음으로서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중심 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부요하면 하나님의 빛이 들어갈 틈이 없기 때문에 주님을 영접할 수 없지만, 선한 중심을 가진 사람들은 재물이 많거나 풍요로운 상태라 할지라도 전도를 받으면 주님을 영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심령이 부요하다 해도 시험 환난을 만나거나 고통과 충격적인 일을 당하면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가난한 심령이 됩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복음을 받아들이므로 전도하기 쉬운 것입니다.
간혹 시험 환난을 당하지 않고도 복음을 전하면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스스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그만큼 심령이 가난하기 때문입니다. 마음 중심이 선하거나 자존심과 교만이 깨어져 나감으로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면 하나님을 마음에 인정할 수 있기에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고 천국을 얻게 됩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하여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팔복을 받는 첫 번째 관문입니다. 이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면 나머지 복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지 않으니 무엇보다 먼저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2.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애통이란 몹시 슬퍼하며 가슴 아파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애통에는 갖가지 슬픈 일을 당하여 애통하는 육적인 애통과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영적인 애통이 있습니다. 가난하여 애통하고, 자기 악을 이기지 못하거나 슬픔과 고통을 당하여 애통하는 것은 모두 육적인 애통에 속합니다. 이는 믿음이 없을 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하셨으니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믿음을 보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니 육적인 애통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육적인 애통이 아닌 영적인 애통을 하기 원하시는데, 영적인 애통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죄에 대한 회개의 애통입니다. 회개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 죄악 가운데 살았던 것을 돌이켜 하나님의 진리 안에 들어오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회개의 애통을 하고 나면 죄의 짐을 벗은 느낌 속에 후련해지며 기쁘고 가벼운 마음이 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을 해 나가면서 진리로 비추어 내 안에 있는 죄를 발견하게 되고 죄를 버리기 위해 마음을 찢으면서 애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기뻐받으시고 위로와 능력을 주셔서 죄와 싸워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둘째로는, 직분자로서 사명을 감당하지 못할 때 나오는 애통이 있습니다. 직분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기도나 전도, 충성, 봉사를 하지 못했을 때 심히 마음을 찢으면서 애통하게 되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애통하는 자에게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위로받게 하십니다.
셋째로는, 죄로 인하여 사망의 길로 가는 형제를 위한 애통이 있습니다. 사망의 길로 가는 형제를 보고 긍휼히 여기는 자는 그를 위하여 애통하며 사랑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형제가 범죄치 않고 말씀 안에 살 수 있도록 믿음으로 간구하는 눈물의 기도는 진정 사랑의 마음에서 나오므로 이러한 애통의 기도를 받으시고 응답하시며 위로받게 하십니다.
넷째로, 세상을 보며 애통할 줄 알아야 합니다. 죄악으로 물든 세상과 많은 영혼들, 나라와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마음을 찢는 애통함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영적인 애통은 영적인 사랑이 있어야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영적으로 애통하는 기도를 들으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복을 주시되 이 땅에서 위로받게 하실 뿐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3.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사람들은 인품이 온화하고 유순한 것을 '온유'라고 하지만, 영적인 온유는 여기에 덕을 겸한 것을 말합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상대와 어떤 일로 마음이 불편해진다거나 걸림이 없으며 매사를 악으로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온유하며 덕이 있는 사람은 상대의 잘못을 용서해 줄 수 있고 이해하며 포용할 수 있는 마음을 소유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안에서 마음의 쉼을 얻고 평안함을 누리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얻게 되니 이것이 곧 영적인 권세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상대를 섬기며 덕을 갖춘 온유한 사람에게 천국에서 큰 권세를 주시니 당연히 큰 땅을 기업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세는 물질이나 명예가 있어야 얻게 되지만 천국에서의 영적인 권세는 마음을 낮추며 섬기는 자가 될 때 얻게 되지요.
마태복음 20:26-27을 보면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8:3-4에는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하셨으니 어린아이와 같이 마음을 낮추면 이 땅에서 많은 이의 마음을 얻게 되며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큰 땅을 주어 부자로 만들어 주시겠다는 의미가 아니라 장차 우리가 영원히 거하게 될 천국의 땅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덕이 있어 온유함을 이룬 만큼 많은 이에게 은혜를 끼치고 믿음을 심어 주며 많은 사람을 포용하고 이끌어 갔을 것이니 그것이 영적인 권세가 되어 천국에서는 그만큼 큰 땅을 얻고 권세를 누리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덕을 겸한 온유함은 마음에 악이 없고 모든 육신의 생각과 이론을 파하며 성령의 소욕을 좇아 진리대로 행해 나가는 만큼 얻어지는 것이므로 오직 진리에 순종해 나가는 온유한 자가 되어 하늘나라의 큰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받는 복 있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4.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의(義)는 사람의 도리를 위하여 진력하는 일이나 옳은 행위를 말하는데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를 좇아 행하는 것을 뜻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거나 마실 물이 없어 심하게 갈증을 느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은 일용할 양식이 있다는 것에 대한 감사와 물의 귀중함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주리고 목마른 것은 고통스러운 일인데 왜 예수님께서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을까요? 주리고 목마른 자가 먹을 것과 마실 물을 찾아 갈급해 하듯이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된다면 당연히 그 사람은 믿음이 있고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으며 독생자를 희생시키면서까지 구원의 은총을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므로 영적인 배부름의 복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헤매듯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는 심령은 갈급한 마음으로 진리를 좇아 살아가므로 비진리는 벗어지고 진리로 채워지게 되며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서 영적인 성장을 하게 됩니다. 영적으로 배부른 만큼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며 영혼이 잘되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니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삶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음 주에 이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2007-06-08
제22과영적인 사랑이란 무엇인가
고전 13:1-13
읽을말씀 : 고전 13:1-13 | 외울말씀 : 고전 13:13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 사람들과 같은 육적인 사랑이 아니라 영적인 사랑을 소유하여 주님을 본받을 수 있도록 영적인 사랑의 특성들에 대해 살펴본다.
1.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
사랑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여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육적인 사랑은 나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이요, 영적인 사랑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입니다. 육적인 사랑에는 부모 자녀간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형제, 이웃, 친구간의 사랑 등이 있는데, 그 사랑의 농도는 모두 다릅니다.
자녀를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내어줄 수 있는 부모의 사랑이 고귀하다고 하지만 이것을 영적인 사랑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낳은 자녀를 위해서만 희생하려 하거나, 자녀가 자꾸 부모의 속을 썩이면 희생하던 마음도 차츰 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내 유익에 맞지 않으면 헤어지자고 서슴없이 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처럼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변질되는 사랑이 육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사랑은 자신을 희생해 줄 수 있는 사랑이요 결코 변치 않고 썩어지지 아니하며 영생에 이르는 사랑입니다.
2. 영적인 사랑의 속성
1) 오래 참습니다
사랑하는 데 있어서 내게 오는 시련들과 내게 닥치는 모든 일들 즉 내 개인에 대한 오래 참음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나를 미워하고 어렵게 만들어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으로 인내하는 것이 바로 영적인 사랑의 오래 참음입니다(마 5:44).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시고 병든 자들을 치료해 주시며 온갖 희생을 다하셨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사랑과 오래 참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사랑이요 오래 참음입니다.
2) 온유합니다
진리 안에서의 온유함이란 부드럽고 온화하여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 많은 사람이 깃들여 쉴 수 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어떠한 사람과도 거침돌이 되지 않으며 매사에 모든 것을 악으로 판단 정죄치 않고 이해해 주고 용서해 주며 감싸 줄 수 있는 덕이 있습니다. 이러한 덕을 지닌 온유한 사람이 바로 사랑이 있는 사람입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하고 온 집에 충성한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선지자들에게는 이상이나 꿈 가운데 말씀하셨지만 모세에게는 친히 대면하여 말씀하실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십니다.
3) 투기하지 않습니다
투기는 시기 질투보다 더 심한 악의 모습입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높아지거나 부유해지고, 사랑받을 때 시기 질투가 나오며 더 발전하면 투기가 됩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동생 아벨이 드린 제사를 하나님께서 열납하시자, 동생을 시기하여 투기하기까지 하니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맙니다(창 4:3-12). 흔히 부와 명예, 지식, 애정 등에 대하여 투기가 일어나는데, 이러한 헛된 것을 위해 투기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서로서로 도와주는 가운데 선의의 경쟁을 해 나가야 합니다.
4)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랑이란 자신의 일이나 물건을 드러내어 칭찬하거나 높여 떠벌리는 것, 다시 말하면 자기를 드러내어 내세우고 뽐내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1에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하여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했더니 이러한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렇게 살았더니 이러한 축복을 받았다.' 전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고, 은혜를 끼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입니다.
5) 교만하지 않습니다
교만은 스스로 잘난 체하며 겸손하지 않고 뽐내어 방자한 것을 말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이기적이고 무엇이든지 자기를 앞세우고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며 남을 통용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잠언 16:18에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했으니 마음을 높은 데 두지 않고 항상 낮은 데 두어 형제를 섬기며 겸손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
6)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무례하다는 것은 예의가 없거나 예의에 벗어난 것을 말하는데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예의를 지키고,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예배시간에 지각하거나 졸고 있는 것, 딴 생각하거나 옆 사람과 대화하는 것, 슬리퍼를 신거나 모자를 쓰고 예배드리는 것, 무성의한 옷차림으로 예배드리는 것도 무례한 경우입니다. 또 기도하는 사람을 흔든다든지 성전 안에서 돈 버는 이야기 등 세상 말을 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 무례한 것이니 진리 안에서 대화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형제나 자녀, 부모에게도 무례히 행치 않으며 존중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무례히 행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 없다는 뜻이니 우리는 하나님 앞과 부모, 형제, 자녀, 이웃에게도 항상 예의 바르게 행해야 할 것입니다.
7)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합니다
유익이란 이익 또는 이로움을 말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다고 해서 일용할 양식이나 진리의 말씀, 기도, 충성하는 것까지도 구하면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진리에 합당한 개인적인 유익은 얼마든지 구해도 되는데 상대방을 해롭게 하면서까지 자기의 유익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나보다 상대방을 더욱 귀히 여기고 위할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영적인 사랑입니다. 매사에 나부터 생각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과 목자, 교회의 일, 형제, 남편, 아내부터 생각하고 자신은 마지막에 두고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8) 성내지 아니합니다
대부분 피해를 입거나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에 분노합니다. 분노하면 하나님의 사랑 속에 거할 수 없으며 영적 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됩니다.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가장 긍정적으로 만들지만 성내는 것은 부정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내는 것을 신속히 벗어 버리되 아직 남아 있다면 성내기 전에 시간적인 여유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분이 다 가라앉은 후에 생각하면 오히려 부끄러울 때가 많지요. 또한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 곳에서든지 화낼 수 없는 것입니다.
9)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합니다
이웃이나 형제를 사랑한다면 어려운 일을 당하여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의 마음은 남이 나쁘게 되는 것을 생각지 않으며 언제나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미워하거나 시기 질투하는 것은 악한 생각이 들어오기 때문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다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것은 모두가 죄요 불법이며 원수 마귀가 좋아하는 악의 모양이므로 진리에 위배되는 것은 생각지도 말고 마음에 두지도 말며 보지도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10)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불의는 하나님과 원수이며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불의로 부를 축적하거나 권력을 획득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불의를 행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요한복음 14:6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하셨듯이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더 나아가 복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기뻐하며 복음이 전파되는 것, 교회가 부흥하는 것,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지요. 또한 누군가 불의를 행할 때 동조하지 않고 애통하며 기도해 주는 것은 물론, 오직 진리만 듣고 진리를 좇아 행하며 진리로만 기뻐하게 됩니다.
11)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이 말씀은 영적인 사랑에 대한 결론입니다. 모든 것을 참는다는 것은 사랑장에 나오는 진리의 말씀과 위배되는 것,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는 것이지요. 투기할 것도 투기하지 않고, 세상 것을 자랑하는 것, 교만한 것, 무례히 행하는 것,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 성내는 것, 악한 것을 생각하는 것, 불의를 기뻐하는 것 등을 버리고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참을 때 영적인 사랑이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냥 참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람으로 모든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성경 66권의 말씀을 온전히 믿으며, 주님의 부활과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으며,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아름다운 천국이 있기에 믿음 가운데서 하늘에 소망을 두고 바라봄으로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는 것이지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결정체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께서도 사랑으로 율법을 온전히 이루셨으니 하나님의 자녀들도 영적인 사랑을 소유하여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 사람들과 같은 육적인 사랑이 아니라 영적인 사랑을 소유하여 주님을 본받을 수 있도록 영적인 사랑의 특성들에 대해 살펴본다.
1.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
사랑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하여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육적인 사랑은 나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이요, 영적인 사랑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입니다. 육적인 사랑에는 부모 자녀간의 사랑, 부부간의 사랑, 형제, 이웃, 친구간의 사랑 등이 있는데, 그 사랑의 농도는 모두 다릅니다.
자녀를 위해서는 생명까지도 내어줄 수 있는 부모의 사랑이 고귀하다고 하지만 이것을 영적인 사랑이라 하기는 어렵습니다. 내가 낳은 자녀를 위해서만 희생하려 하거나, 자녀가 자꾸 부모의 속을 썩이면 희생하던 마음도 차츰 변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의 사랑도 내 유익에 맞지 않으면 헤어지자고 서슴없이 말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요.
이처럼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변질되는 사랑이 육적인 사랑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사랑은 자신을 희생해 줄 수 있는 사랑이요 결코 변치 않고 썩어지지 아니하며 영생에 이르는 사랑입니다.
2. 영적인 사랑의 속성
1) 오래 참습니다
사랑하는 데 있어서 내게 오는 시련들과 내게 닥치는 모든 일들 즉 내 개인에 대한 오래 참음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상대방이 나를 미워하고 어렵게 만들어도 미워하지 않고 사랑으로 인내하는 것이 바로 영적인 사랑의 오래 참음입니다(마 5:44).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시고 병든 자들을 치료해 주시며 온갖 희생을 다하셨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핍박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상에서도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며 사랑과 오래 참음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사랑이요 오래 참음입니다.
2) 온유합니다
진리 안에서의 온유함이란 부드럽고 온화하여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마음, 많은 사람이 깃들여 쉴 수 있는 마음을 말합니다. 어떠한 사람과도 거침돌이 되지 않으며 매사에 모든 것을 악으로 판단 정죄치 않고 이해해 주고 용서해 주며 감싸 줄 수 있는 덕이 있습니다. 이러한 덕을 지닌 온유한 사람이 바로 사랑이 있는 사람입니다.
민수기 12장에 보면 모세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하고 온 집에 충성한 자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른 선지자들에게는 이상이나 꿈 가운데 말씀하셨지만 모세에게는 친히 대면하여 말씀하실 정도로 하나님께서는 온유한 사람을 기뻐하시고 사랑하십니다.
3) 투기하지 않습니다
투기는 시기 질투보다 더 심한 악의 모습입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높아지거나 부유해지고, 사랑받을 때 시기 질투가 나오며 더 발전하면 투기가 됩니다. 창세기 4장에 보면 동생 아벨이 드린 제사를 하나님께서 열납하시자, 동생을 시기하여 투기하기까지 하니 결국 살인을 저지르고 맙니다(창 4:3-12). 흔히 부와 명예, 지식, 애정 등에 대하여 투기가 일어나는데, 이러한 헛된 것을 위해 투기하지 말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서로서로 도와주는 가운데 선의의 경쟁을 해 나가야 합니다.
4) 자랑하지 않습니다
자랑이란 자신의 일이나 물건을 드러내어 칭찬하거나 높여 떠벌리는 것, 다시 말하면 자기를 드러내어 내세우고 뽐내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1에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하여 오직 하나님께 영광돌리기를 말씀했습니다. '이렇게 기도했더니 이러한 응답을 받았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렇게 살았더니 이러한 축복을 받았다.' 전하며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고, 은혜를 끼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입니다.
5) 교만하지 않습니다
교만은 스스로 잘난 체하며 겸손하지 않고 뽐내어 방자한 것을 말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이기적이고 무엇이든지 자기를 앞세우고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것은 받아들이지 못하며 남을 통용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잠언 16:18에 보면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했으니 마음을 높은 데 두지 않고 항상 낮은 데 두어 형제를 섬기며 겸손한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서 높여 주십니다.
6)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무례하다는 것은 예의가 없거나 예의에 벗어난 것을 말하는데 영적인 사랑이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예의를 지키고, 무례히 행치 않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할 예배시간에 지각하거나 졸고 있는 것, 딴 생각하거나 옆 사람과 대화하는 것, 슬리퍼를 신거나 모자를 쓰고 예배드리는 것, 무성의한 옷차림으로 예배드리는 것도 무례한 경우입니다. 또 기도하는 사람을 흔든다든지 성전 안에서 돈 버는 이야기 등 세상 말을 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 무례한 것이니 진리 안에서 대화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형제나 자녀, 부모에게도 무례히 행치 않으며 존중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무례히 행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 없다는 뜻이니 우리는 하나님 앞과 부모, 형제, 자녀, 이웃에게도 항상 예의 바르게 행해야 할 것입니다.
7)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합니다
유익이란 이익 또는 이로움을 말합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는다고 해서 일용할 양식이나 진리의 말씀, 기도, 충성하는 것까지도 구하면 안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진리에 합당한 개인적인 유익은 얼마든지 구해도 되는데 상대방을 해롭게 하면서까지 자기의 유익을 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나보다 상대방을 더욱 귀히 여기고 위할 수 있는 마음이 바로 영적인 사랑입니다. 매사에 나부터 생각하지 않고 항상 하나님과 목자, 교회의 일, 형제, 남편, 아내부터 생각하고 자신은 마지막에 두고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8) 성내지 아니합니다
대부분 피해를 입거나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에 분노합니다. 분노하면 하나님의 사랑 속에 거할 수 없으며 영적 성장에 막대한 지장을 받게 됩니다.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가장 긍정적으로 만들지만 성내는 것은 부정적으로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내는 것을 신속히 벗어 버리되 아직 남아 있다면 성내기 전에 시간적인 여유를 갖는 것이 좋습니다. 분이 다 가라앉은 후에 생각하면 오히려 부끄러울 때가 많지요. 또한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느 곳에서든지 화낼 수 없는 것입니다.
9)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합니다
이웃이나 형제를 사랑한다면 어려운 일을 당하여 잘못되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랑의 마음은 남이 나쁘게 되는 것을 생각지 않으며 언제나 남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미워하거나 시기 질투하는 것은 악한 생각이 들어오기 때문인데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면 다 악한 것입니다. 하나님께 합당치 않은 것은 모두가 죄요 불법이며 원수 마귀가 좋아하는 악의 모양이므로 진리에 위배되는 것은 생각지도 말고 마음에 두지도 말며 보지도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10)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불의는 하나님과 원수이며 마귀에게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불의로 부를 축적하거나 권력을 획득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면서까지 불의를 행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고 보다 적극적으로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요한복음 14:6에 보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하셨듯이 진리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더 나아가 복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기뻐하며 복음이 전파되는 것, 교회가 부흥하는 것,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지요. 또한 누군가 불의를 행할 때 동조하지 않고 애통하며 기도해 주는 것은 물론, 오직 진리만 듣고 진리를 좇아 행하며 진리로만 기뻐하게 됩니다.
11)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딥니다
이 말씀은 영적인 사랑에 대한 결론입니다. 모든 것을 참는다는 것은 사랑장에 나오는 진리의 말씀과 위배되는 것,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는 것이지요. 투기할 것도 투기하지 않고, 세상 것을 자랑하는 것, 교만한 것, 무례히 행하는 것,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 성내는 것, 악한 것을 생각하는 것, 불의를 기뻐하는 것 등을 버리고 참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참을 때 영적인 사랑이 임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냥 참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람으로 모든 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고 성경 66권의 말씀을 온전히 믿으며, 주님의 부활과 주님께서 다시 오실 것을 믿으며,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아름다운 천국이 있기에 믿음 가운데서 하늘에 소망을 두고 바라봄으로 모든 것을 참을 수 있는 것이지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결정체이십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께서도 사랑으로 율법을 온전히 이루셨으니 하나님의 자녀들도 영적인 사랑을 소유하여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007-06-01
제21과복 있는 사람
시 1:1-3
읽을말씀 : 시 1:1-3 | 외울말씀 : 시 1:1-3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약속하신 모든 복을 누리며 만사형통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 어떻게 행하여야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 복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한다.
세상에서는 대체로 건강, 재물, 명예, 권세, 지식이 많은 사람이나 자녀가 출세하여 효도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을 다 누린다 해도 자칫하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생명을 잃게 되면 다 헛된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면 불의의 사고나 어떤 재앙으로도 무너지지 않으며, 천국에서도 영원한 상급이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야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합니다
악인의 꾀는 육신의 생각을 주관하는 사단으로부터 오는데, 사람의 마음에 악이 있으면 생각을 해도 육신의 생각 즉 비진리의 악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악한 생각 속에서 나오는 꾀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악한 일들을 도모하게 되지요.
미워하고 시기하며 질투함으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위한 갖가지 계교를 세우고, 상대를 짓밟아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한 꾀로는 결코 참된 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만은 악인의 꾀를 좇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하만은 유대인 모르드개가 자신을 경배하지 않으므로 심히 마음이 상하여 모르드개뿐 아니라 그 나라 안에 있는 유대인 전체를 멸하려고 꾀를 짜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계획을 아심으로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악한 계략이 밝혀져서 결국 죽음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 갖가지 모략을 세우고 부정과 비리를 행하는 사람들에 관한 일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니 오직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지혜를 좇아 행할 때라야 복되고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주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며, 한 푼이라도 더 저축하고 투자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심지어 남을 속이더라도 유익을 취하되 그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주일에는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온전한 십일조와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드립니다. 또 사업을 할 때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행하여 손해를 본다 해도 상대를 속이거나 어떤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이러한 행함이 때로는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지만 진리 안에서 행할 때라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2.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들을 행위적으로 어긴 사람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살인하고 도적질할 마음이 있어도 실제 살인하지 않고 훔치지 않으면 죄인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죄악을 품는 것만으로도 죄인이라 하십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도적질, 간음, 판단, 정죄 등이 마음 안에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인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죄악을 품는 것도 죄인인데 행함으로 범죄하는 육체의 일은 하나님 앞에 더욱 중한 죄가 됩니다(갈 5:19-21). 아무리 입술로 '주여 믿습니다.'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고 육체의 일들을 행하면 결국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24-25을 보면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범죄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이 반드시 드러나며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고 범죄하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사람이 계명들을 다 지킬 수 있는가, 그렇게 살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결코 힘든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 질투해 본 경험이 있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고 범죄하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책망할 것이 없이 하나님 앞에 담대하므로 마음이 항상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또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능히 피할 길을 주시며 모든 시험 환난, 질병, 재난도 막아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범죄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기쁨과 평강이 없고 시험 환난을 당할 때 도와줄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결코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요.
3.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너무나 싫어하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람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도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사단의 미혹을 받아 높아지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이 사람이 교만하여 범죄한 이후로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세상에서는 스스로 높아지려 하고 자기를 내세우며 대접받으려 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멸시한다고 느끼면 고통스러워하며, 상대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떻게든 섬김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며, 겸손하여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반드시 높임을 받습니다. 이는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진리의 법칙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4:11을 보면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말씀하셨지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도 종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십자가를 지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섬기며 낮은 자가 될 때 이 땅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중받으며, 또한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라 인정받으니 진정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4.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본문 시편 1:2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말씀합니다. 밤낮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간다는 뜻입니다. 율법이란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이며, 좁은 의미로는 십계명을 포함하여 모세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규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그 오묘하신 뜻이 모두 담겨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각종 예배나 기도회 등 어디든 참석하여 말씀을 듣기 위해 힘써 노력할 것입니다. 예배 때 잡념이나 졸음에 빠지는 일도 없으며,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달아서 "아멘"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명심하고 묵상함으로 마음에 온전히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감정을 품거나 육신의 생각,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행하며 마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과 주관, 인도를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의 적극적인 삶의 자세이며 마음가짐입니다. 또한 본문 시편 1:3에는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일수록 더 깊이 더 멀리 뿌리를 내려서 무럭무럭 자라고 더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항상 수분을 흡수할 수 있으므로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시냇가는 영적으로 축복의 근원 곧 생수를 마음껏 빨아들여서 늘 푸르를 수 있고 때를 따라 열매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의 품을 말합니다. 정녕 하나님의 품 안에 심겨져 있다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마음 안에 진리의 말씀이 뿌리내리게 됩니다. 즉 말씀을 깨우쳐서 마음에 양식삼는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기 위한 뿌리가 마음 깊숙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묵상하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순종하게 되므로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며 선과 사랑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또한 항상 기뻐하고 깨어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며 살아가니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진리 가운데 거하여 하나님 앞에 복 있는 사람이 됨으로 이 땅에서 복된 삶을 누릴 뿐 아니라, 장차 영원한 천국에서도 풍성한 상급을 받고 존귀히 여김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약속하신 모든 복을 누리며 만사형통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 어떻게 행하여야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 복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한다.
세상에서는 대체로 건강, 재물, 명예, 권세, 지식이 많은 사람이나 자녀가 출세하여 효도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을 다 누린다 해도 자칫하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생명을 잃게 되면 다 헛된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면 불의의 사고나 어떤 재앙으로도 무너지지 않으며, 천국에서도 영원한 상급이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야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합니다
악인의 꾀는 육신의 생각을 주관하는 사단으로부터 오는데, 사람의 마음에 악이 있으면 생각을 해도 육신의 생각 즉 비진리의 악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악한 생각 속에서 나오는 꾀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악한 일들을 도모하게 되지요.
미워하고 시기하며 질투함으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위한 갖가지 계교를 세우고, 상대를 짓밟아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한 꾀로는 결코 참된 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만은 악인의 꾀를 좇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하만은 유대인 모르드개가 자신을 경배하지 않으므로 심히 마음이 상하여 모르드개뿐 아니라 그 나라 안에 있는 유대인 전체를 멸하려고 꾀를 짜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계획을 아심으로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악한 계략이 밝혀져서 결국 죽음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 갖가지 모략을 세우고 부정과 비리를 행하는 사람들에 관한 일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니 오직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지혜를 좇아 행할 때라야 복되고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주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며, 한 푼이라도 더 저축하고 투자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심지어 남을 속이더라도 유익을 취하되 그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주일에는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온전한 십일조와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드립니다. 또 사업을 할 때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행하여 손해를 본다 해도 상대를 속이거나 어떤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이러한 행함이 때로는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지만 진리 안에서 행할 때라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2.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들을 행위적으로 어긴 사람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살인하고 도적질할 마음이 있어도 실제 살인하지 않고 훔치지 않으면 죄인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죄악을 품는 것만으로도 죄인이라 하십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도적질, 간음, 판단, 정죄 등이 마음 안에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인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죄악을 품는 것도 죄인인데 행함으로 범죄하는 육체의 일은 하나님 앞에 더욱 중한 죄가 됩니다(갈 5:19-21). 아무리 입술로 '주여 믿습니다.'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고 육체의 일들을 행하면 결국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24-25을 보면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범죄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이 반드시 드러나며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고 범죄하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사람이 계명들을 다 지킬 수 있는가, 그렇게 살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결코 힘든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 질투해 본 경험이 있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고 범죄하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책망할 것이 없이 하나님 앞에 담대하므로 마음이 항상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또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능히 피할 길을 주시며 모든 시험 환난, 질병, 재난도 막아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범죄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기쁨과 평강이 없고 시험 환난을 당할 때 도와줄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결코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하는 것이지요.
3.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너무나 싫어하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람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도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사단의 미혹을 받아 높아지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이 사람이 교만하여 범죄한 이후로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세상에서는 스스로 높아지려 하고 자기를 내세우며 대접받으려 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멸시한다고 느끼면 고통스러워하며, 상대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떻게든 섬김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며, 겸손하여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반드시 높임을 받습니다. 이는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진리의 법칙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4:11을 보면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말씀하셨지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도 종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십자가를 지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섬기며 낮은 자가 될 때 이 땅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중받으며, 또한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라 인정받으니 진정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4.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본문 시편 1:2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말씀합니다. 밤낮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간다는 뜻입니다. 율법이란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이며, 좁은 의미로는 십계명을 포함하여 모세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규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그 오묘하신 뜻이 모두 담겨져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각종 예배나 기도회 등 어디든 참석하여 말씀을 듣기 위해 힘써 노력할 것입니다. 예배 때 잡념이나 졸음에 빠지는 일도 없으며,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달아서 "아멘"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명심하고 묵상함으로 마음에 온전히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감정을 품거나 육신의 생각,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행하며 마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과 주관, 인도를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의 적극적인 삶의 자세이며 마음가짐입니다. 또한 본문 시편 1:3에는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일수록 더 깊이 더 멀리 뿌리를 내려서 무럭무럭 자라고 더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항상 수분을 흡수할 수 있으므로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시냇가는 영적으로 축복의 근원 곧 생수를 마음껏 빨아들여서 늘 푸르를 수 있고 때를 따라 열매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의 품을 말합니다. 정녕 하나님의 품 안에 심겨져 있다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마음 안에 진리의 말씀이 뿌리내리게 됩니다. 즉 말씀을 깨우쳐서 마음에 양식삼는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기 위한 뿌리가 마음 깊숙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묵상하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순종하게 되므로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며 선과 사랑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또한 항상 기뻐하고 깨어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며 살아가니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진리 가운데 거하여 하나님 앞에 복 있는 사람이 됨으로 이 땅에서 복된 삶을 누릴 뿐 아니라, 장차 영원한 천국에서도 풍성한 상급을 받고 존귀히 여김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5-25
제20과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자
갈 5:16-26
읽을말씀 : 갈 5:16-26 | 외울말씀 : 갈 5:22-23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영의 사람이 되도록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영위하게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측량하는 데 척도가 되는 귀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바로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고린도전서 13장의 영적인 사랑,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입니다. 그중에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사 랑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 사랑과 세상에 속한 육적인 사랑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4-7에 기록된 사랑은 영원히 변함이 없는 참사랑이며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만족을 느끼는 영적인 사랑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의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보다도 한 차원 높은 사랑으로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사랑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온전한 사랑으로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 주면서도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그냥 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은 성결되어진 만큼 임하는 것이므로 모세나 사도 바울은 설령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 할지라도 자신의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출 32:32, 롬 9:3).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온전한 사랑을 보이셨던 것처럼 주님을 닮은 사람들 역시 생명까지 주신 주님의 사랑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2. 희 락
희락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차원이 아니라, 어떠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할 수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들은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살전 5:16).
우리 안에 죄와 악과 불법 등의 육이 있기 때문에 슬픔, 눈물, 근심, 걱정과 갖가지 문제들과 고통이 따릅니다. 이 밖에 탐심, 내 유익만을 구하려는 마음, 혈기, 짜증 등도 결국은 자신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지요. 이러한 육의 모양들을 신속히 벗어 버려야 희락을 되찾을 수 있고, 천국에서도 희락이 있기에 세세토록 기쁨과 감사가 변치 않고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감사와 기쁨의 조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진리를 깨달으며 작은 문제 하나를 응답받을 때도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기쁘고 감사한 것은 구원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는다면 구원의 기쁨이 항상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3. 화 평
우리에게 선만 있으며 상대를 위하여 희생하는 사랑이 있다면 화평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죄가 있으므로 화평을 이루지 못하고 불화하며 불평과 원망과 시비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화평의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화목제물로 이 땅에 오신 이유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었던 죄의 담을 허물기 위함이므로(엡 2:14)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의 죄를 버려 나가는 것이 하나님과 참된 화평을 이루는 첫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자기 자신과의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역시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될 때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비진리의 마음들을 다 벗어 내고 성령의 주관을 받아 진리의 마음을 좇아 나갈 때 자기 자신과도 화평함을 이루어 마음이 평안하여 솜털같이 부드럽고 온유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먼저는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다음으로 자기 자신과의 화평이 이루어지면 자연히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도 화평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럴 때 온전한 화평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4. 오래 참음
사람들은 참아야 할 일들이 생길 때 부들부들 떨면서 참는가 하면, 울면서 분을 삭이기도 하고, 아예 말을 하지 않거나, 방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참음은 육적인 참음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영적인 오래 참음으로 선과 진리 가운데 참을 필요조차 없는 참음입니다. 사실 온전한 사랑이 임해 있다면 어떠한 사람이라도 이해하고 품게 되며 아무런 감정이 없으니 용서한다거나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 없게 됩니다.
영적인 오래 참음으로는 마음을 개조하기 위한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마음을 진리로 일구기 위해 오래 참으며 악을 하나하나 버려나가는 것이지요.
또한 사람 사이의 오래 참음으로서 상대방이 내 의견이나 생각, 성격에 맞지 않더라도 항상 선 가운데서 이해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오래 참음이 있는데, 이는 응답받기 위한 오래 참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가장 적절한 때에 응답해 주시므로 반드시 믿음으로 참고 기다리는 오래 참음이 있어야 하지요(막 11:24).
5. 자 비
자비란 진리 안에서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악을 발하는 상대를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마음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악한 마음이므로 자비의 열매를 이룬 사람은 이런 상대라도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해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자인 줄 알면서도 끝까지 사랑했던 것이나,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 하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죽이지 않은 것은 자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처럼 자비의 마음으로 돌아보며 도와주고 위로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은 상대방을 감쌀 수 있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이루는데 이것이 자비의 마음이며 이는 사랑과는 다른 것입니다.
6. 양 선
양선이란 모든 죄악을 벗어 버리고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선을 추구하는 진리의 마음을 뜻하는 것으로, 빌립보서 2:5에 기록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마 12:19-20) 한 것처럼 양선의 마음은 분냄이 없는 마음이요, 거룩한 마음입니다.
양선의 열매를 소유하려면 마음을 집중하여 말뿐만 아니라 모든 것 하나하나를 조심하여 행하는 습관을 들이며 걸음걸이까지도 변화시키면서 육체와 함께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럴 때 양순하고 조용하며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7. 충 성
충성이란 맡겨진 일 이상을 해내는 것으로서 온 집에 충성됨을 의미합니다. 각자의 위치 속에서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므로 아내로서, 자녀로서, 부모로서, 며느리로서, 남편으로서 행할 바를 행하는 것은 충성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직무에 대하여 보상받는 대가 이상으로 감당해 내어야 충성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0에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는데,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 나가는 충성과 더불어 주 안에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며 모든 위치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라면 당연히 죄는 싸워 버려야 하기에 죄를 버리는 자체가 상급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아버지의 형상을 닮는 만큼 장차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 곁에 더 가까이 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8. 온 유
영적인 온유함은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에 덕(德)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는 많은 사람이 깃들일 수 있는 포근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온유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온유한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도 거침돌이 되지 않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할 수 있습니다. 매사에 모든 것을 악으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이해하고 포용해 주며 감싸 줄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5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하신 것처럼 온유의 열매를 맺으면 하늘의 땅을 기업으로 받되 크게 받아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온유의 열매를 소유할 수 있을까요? 마음 속에 있는 거친 것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된 비진리를 빼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묵상하며 마음을 다하여 간구함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마음밭이 개간되어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9. 절 제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풍성한 것이 좋은 것이로되 절제의 열매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열매입니다. 절제의 열매가 필요한 것은 질서를 따라 하나님의 일을 아름답게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분 내키는 대로 행하지 않고 절제하면서 성령의 뜻을 좇아서 행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따라서 절제의 열매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을 조절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열매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서 처음이 '사랑'인 이유는 사랑의 열매가 있는 만큼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의 열매가 맺혀지기 때문이며, 마지막 열매가 '절제'인 것은 절제를 통해 온전함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충성의 열매를 온전히 거두기 위해 온 집에 충성하려면 하나님 나라의 일은 물론, 자녀, 아내, 남편 등 여러 가지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받아 시간 배분을 잘하여 질서 있게 행해야 온 집에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주렁주렁 맺으며 복된 삶을 영위하는 영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는 영의 사람이 되도록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며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을 영위하게 한다.
우리의 신앙생활을 측량하는 데 척도가 되는 귀한 말씀들이 있습니다. 바로 갈라디아서 5장의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고린도전서 13장의 영적인 사랑,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입니다. 그중에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사 랑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영적인 사랑과 세상에 속한 육적인 사랑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3:4-7에 기록된 사랑은 영원히 변함이 없는 참사랑이며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만족을 느끼는 영적인 사랑입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의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보다도 한 차원 높은 사랑으로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사랑을 말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온전한 사랑으로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내어 주면서도 어떠한 대가를 바라지 않으며 그냥 주는 것만으로도 기뻐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은 성결되어진 만큼 임하는 것이므로 모세나 사도 바울은 설령 자기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진다 할지라도 자신의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출 32:32, 롬 9:3). 예수님께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시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온전한 사랑을 보이셨던 것처럼 주님을 닮은 사람들 역시 생명까지 주신 주님의 사랑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2. 희 락
희락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차원이 아니라, 어떠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세상 사람들도 할 수 있으니 하나님의 사람들은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살전 5:16).
우리 안에 죄와 악과 불법 등의 육이 있기 때문에 슬픔, 눈물, 근심, 걱정과 갖가지 문제들과 고통이 따릅니다. 이 밖에 탐심, 내 유익만을 구하려는 마음, 혈기, 짜증 등도 결국은 자신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이지요. 이러한 육의 모양들을 신속히 벗어 버려야 희락을 되찾을 수 있고, 천국에서도 희락이 있기에 세세토록 기쁨과 감사가 변치 않고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감사와 기쁨의 조건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진리를 깨달으며 작은 문제 하나를 응답받을 때도 감사하지만, 무엇보다 기쁘고 감사한 것은 구원의 기쁨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믿는다면 구원의 기쁨이 항상 넘칠 수밖에 없습니다.
3. 화 평
우리에게 선만 있으며 상대를 위하여 희생하는 사랑이 있다면 화평을 이루게 됩니다. 그러나 죄가 있으므로 화평을 이루지 못하고 불화하며 불평과 원망과 시비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화평의 열매를 맺으려면 먼저 하나님과의 화평을 이루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화목제물로 이 땅에 오신 이유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있었던 죄의 담을 허물기 위함이므로(엡 2:14)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마음의 죄를 버려 나가는 것이 하나님과 참된 화평을 이루는 첫걸음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자기 자신과의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역시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될 때 온전히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비진리의 마음들을 다 벗어 내고 성령의 주관을 받아 진리의 마음을 좇아 나갈 때 자기 자신과도 화평함을 이루어 마음이 평안하여 솜털같이 부드럽고 온유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먼저는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다음으로 자기 자신과의 화평이 이루어지면 자연히 그 밖의 다른 사람들과도 화평이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럴 때 온전한 화평의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4. 오래 참음
사람들은 참아야 할 일들이 생길 때 부들부들 떨면서 참는가 하면, 울면서 분을 삭이기도 하고, 아예 말을 하지 않거나, 방황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참음은 육적인 참음이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영적인 오래 참음으로 선과 진리 가운데 참을 필요조차 없는 참음입니다. 사실 온전한 사랑이 임해 있다면 어떠한 사람이라도 이해하고 품게 되며 아무런 감정이 없으니 용서한다거나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 없게 됩니다.
영적인 오래 참음으로는 마음을 개조하기 위한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마음을 진리로 일구기 위해 오래 참으며 악을 하나하나 버려나가는 것이지요.
또한 사람 사이의 오래 참음으로서 상대방이 내 의견이나 생각, 성격에 맞지 않더라도 항상 선 가운데서 이해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참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사이에 오래 참음이 있는데, 이는 응답받기 위한 오래 참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가장 적절한 때에 응답해 주시므로 반드시 믿음으로 참고 기다리는 오래 참음이 있어야 하지요(막 11:24).
5. 자 비
자비란 진리 안에서 이해하고 용서하며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악을 발하는 상대를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겠다는 마음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악한 마음이므로 자비의 열매를 이룬 사람은 이런 상대라도 용서하고 이해하며 사랑해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자인 줄 알면서도 끝까지 사랑했던 것이나,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 하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죽이지 않은 것은 자비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처럼 자비의 마음으로 돌아보며 도와주고 위로가 되어 주어야 합니다.
성령이 임한 사람은 상대방을 감쌀 수 있고 아름다운 인간관계를 이루는데 이것이 자비의 마음이며 이는 사랑과는 다른 것입니다.
6. 양 선
양선이란 모든 죄악을 벗어 버리고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선을 추구하는 진리의 마음을 뜻하는 것으로, 빌립보서 2:5에 기록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마 12:19-20) 한 것처럼 양선의 마음은 분냄이 없는 마음이요, 거룩한 마음입니다.
양선의 열매를 소유하려면 마음을 집중하여 말뿐만 아니라 모든 것 하나하나를 조심하여 행하는 습관을 들이며 걸음걸이까지도 변화시키면서 육체와 함께 마음을 다스려야 합니다.
그럴 때 양순하고 조용하며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는 겸손한 사람이 됩니다.
7. 충 성
충성이란 맡겨진 일 이상을 해내는 것으로서 온 집에 충성됨을 의미합니다. 각자의 위치 속에서 주어진 일을 감당하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므로 아내로서, 자녀로서, 부모로서, 며느리로서, 남편으로서 행할 바를 행하는 것은 충성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자기에게 맡겨진 직무에 대하여 보상받는 대가 이상으로 감당해 내어야 충성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0에 보면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는데,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 나가는 충성과 더불어 주 안에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며 모든 위치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라면 당연히 죄는 싸워 버려야 하기에 죄를 버리는 자체가 상급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아버지의 형상을 닮는 만큼 장차 영원한 천국에서 하나님 곁에 더 가까이 살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8. 온 유
영적인 온유함은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에 덕(德)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는 많은 사람이 깃들일 수 있는 포근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온유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온유한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도 거침돌이 되지 않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할 수 있습니다. 매사에 모든 것을 악으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고 이해하고 포용해 주며 감싸 줄 수 있는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5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하신 것처럼 온유의 열매를 맺으면 하늘의 땅을 기업으로 받되 크게 받아 누리는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온유의 열매를 소유할 수 있을까요? 마음 속에 있는 거친 것들, 즉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된 비진리를 빼내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묵상하며 마음을 다하여 간구함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마음밭이 개간되어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9. 절 제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풍성한 것이 좋은 것이로되 절제의 열매는 없어서는 안 되는 중요한 열매입니다. 절제의 열매가 필요한 것은 질서를 따라 하나님의 일을 아름답게 이루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기분 내키는 대로 행하지 않고 절제하면서 성령의 뜻을 좇아서 행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따라서 절제의 열매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을 조절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없어서는 안 되는 귀한 열매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서 처음이 '사랑'인 이유는 사랑의 열매가 있는 만큼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의 열매가 맺혀지기 때문이며, 마지막 열매가 '절제'인 것은 절제를 통해 온전함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충성의 열매를 온전히 거두기 위해 온 집에 충성하려면 하나님 나라의 일은 물론, 자녀, 아내, 남편 등 여러 가지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되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받아 시간 배분을 잘하여 질서 있게 행해야 온 집에 충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주렁주렁 맺으며 복된 삶을 영위하는 영의 사람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5-18
제19과응답받는 기도생활의 비결
눅 22:39-46
읽을말씀 : 눅 22:39-46 | 외울말씀 : 약 1:6-8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모습을 통하여 기도의 올바른 자세를 배우고 응답받는 기도생활을 하게 한다.
1. 기도는 왜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므로(요 14:13-14) 기도는 응답의 열쇠이며 축복의 근원입니다. 또한 기도는 영적인 호흡으로서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해야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영적인 호흡을 하는 것에서부터 신앙생활이 시작되며 이것이 바로 기도생활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대화하며 교통을 이루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며, 기도의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됩니다. 따라서 기도는 신앙인의 기본이며 성공적인 신앙생활의 필수요건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기도생활의 중요성을 알려 주셨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하셨고(살전 5:17),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깨어 기도해야 한다고 권면하셨으며(마 26:41), 기도를 쉬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도 가르쳐 주셨습니다(삼상 12:23).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성도의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한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므로 원수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할 수 없으니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도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2. 기도의 본을 보여 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행하셨으므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모습을 본받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기도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1)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고(눅 22:39), 선지자 다니엘은 왕의 명령을 어기면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세 번씩 기도했으며(단 6:10),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행 3:1).
우리도 예수님과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시간을 정해 놓고 꾸준히 매일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특히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 가장 먼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 위해 드리는 새벽기도나, 하루의 일과를 마친 후 지켜 보호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드리는 철야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응답으로 역사하시며 능력으로 함께해 주십니다.
2)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창조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으며(왕상 18:42),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행 7:60).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기도할 때 무릎을 꿇었으며(눅 22:41), 솔로몬 왕이나 사도였던 바울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왕상 8:54 ; 행 20:36).
기도할 때에 무릎을 꿇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능력을 신뢰한다는 표현임을 깨달아 우리도 기도할 때에 몸을 단정히 하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기도라야 중심을 바친 기도가 되므로 쉽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이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기에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말씀하셨으니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욕으로 잘못 구하는 것이 됩니다. 야고보서 4:2-3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하셨으니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4)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44을 보면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하여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밤이면 기온이 낮아 땀이 날 수 없는 기후임에도 불구하고 그 밤에 땀이 나고 땀방울이 맺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첫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을 수 있으므로(창 3:17) 땀 흘려 수고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습니다. 농부가 수고함으로 농산물을 수확할 수 있듯이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땀 흘려 힘쓰고 애써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권세를 가진 예수님께서 친히 본을 보이시며 기도하셨는데 우리는 과연 어떠한 자세로 기도해야 할까요?
1) 중심을 바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모습을 통하여,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집중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위골되기까지 기도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듯이(창 32:24-30), 엘리야가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3년 반의 가뭄 끝에 큰 비가 내릴 때까지 기도했듯이(왕상 18:42) 간절한 중심의 기도라야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기도의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간절한 중심으로 하나님께 소리 높여 간구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기도를 통하여 성령이 충만해지고 세상을 이기게 되고 원수 마귀의 세력이 물러가고 기도의 응답을 받으며 더 나아가서 신령한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렘 29:12-13, 33:3).
2)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으면 일을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 일의 성취도가 높아지듯이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과 상 주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믿는다면(히 11:6) 기도의 응답을 주실 줄도 분명히 믿게 되므로 하나님께서는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마 8:13).
우리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하여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1:24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약속하셨고, 야고보서 1:6-7에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교훈하셨기 때문입니다.
3) 사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66:18에 다윗은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고백하였습니다. 죄란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을 위배하는 것으로서 그 법을 어기려고 하는 마음 자체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간음하고자 하는 마음이 죄입니다. 이 죄를 행하려고 마음에 결정하는 것이 죄악이며 이것을 행함으로 나타내면 허물이 되고 곧 불의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죄악이 행함으로 나타나 허물을 만들고 불의한 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돌이킬 수 있도록 사랑의 징계를 하십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원수 마귀가 가정과 일터, 사업터에 시험 환난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악이나 불의를 범하였다 하더라도 다시금 행함으로 온전히 돌이켜 하나님과의 담을 헐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시며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 하셨습니다.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치 않는 것이요,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과 혀로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죄악을 버리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용서하고 이해하면서 무엇이든지 사랑으로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 자세를 본받으며 믿음과 사랑으로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기도를 통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알고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모습을 통하여 기도의 올바른 자세를 배우고 응답받는 기도생활을 하게 한다.
1. 기도는 왜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므로(요 14:13-14) 기도는 응답의 열쇠이며 축복의 근원입니다. 또한 기도는 영적인 호흡으로서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기도해야 영적인 생명을 유지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영적인 호흡을 하는 것에서부터 신앙생활이 시작되며 이것이 바로 기도생활입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과 대화하며 교통을 이루게 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며, 기도의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됩니다. 따라서 기도는 신앙인의 기본이며 성공적인 신앙생활의 필수요건이기도 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기도생활의 중요성을 알려 주셨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하셨고(살전 5:17),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깨어 기도해야 한다고 권면하셨으며(마 26:41), 기도를 쉬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도 가르쳐 주셨습니다(삼상 12:23).
이와 같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성도의 의무이자 권리이기도 한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하므로 원수 마귀를 대적하여 승리할 수 없으니 하나님의 자녀로서 복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서도 기도에 힘써야 합니다.
2. 기도의 본을 보여 주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셔서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행하셨으므로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모습을 본받으면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기도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1)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셔서 기도하셨고(눅 22:39), 선지자 다니엘은 왕의 명령을 어기면서도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 세 번씩 기도했으며(단 6:10),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행 3:1).
우리도 예수님과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아 시간을 정해 놓고 꾸준히 매일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특히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 가장 먼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기 위해 드리는 새벽기도나, 하루의 일과를 마친 후 지켜 보호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드리는 철야기도는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응답으로 역사하시며 능력으로 함께해 주십니다.
2)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기도는 창조주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으며(왕상 18:42),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행 7:60). 하나님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기도할 때 무릎을 꿇었으며(눅 22:41), 솔로몬 왕이나 사도였던 바울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왕상 8:54 ; 행 20:36).
기도할 때에 무릎을 꿇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능력을 신뢰한다는 표현임을 깨달아 우리도 기도할 때에 몸을 단정히 하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이러한 기도라야 중심을 바친 기도가 되므로 쉽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뜻에 합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길이 인류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기에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말씀하셨으니 우리가 기도하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정욕으로 잘못 구하는 것이 됩니다. 야고보서 4:2-3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하셨으니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4)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44을 보면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하여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은 밤이면 기온이 낮아 땀이 날 수 없는 기후임에도 불구하고 그 밤에 땀이 나고 땀방울이 맺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과 힘을 다하여 부르짖어 기도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첫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는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을 수 있으므로(창 3:17) 땀 흘려 수고하지 않고는 얻을 수 없습니다. 농부가 수고함으로 농산물을 수확할 수 있듯이 기도의 응답을 받으려면 땀 흘려 힘쓰고 애써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응답받는 기도의 비결
하나님의 아들로서 모든 권세를 가진 예수님께서 친히 본을 보이시며 기도하셨는데 우리는 과연 어떠한 자세로 기도해야 할까요?
1) 중심을 바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모습을 통하여,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집중하여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환도뼈가 위골되기까지 기도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듯이(창 32:24-30), 엘리야가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3년 반의 가뭄 끝에 큰 비가 내릴 때까지 기도했듯이(왕상 18:42) 간절한 중심의 기도라야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기도의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것은 그만큼 간절한 중심으로 하나님께 소리 높여 간구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기도를 통하여 성령이 충만해지고 세상을 이기게 되고 원수 마귀의 세력이 물러가고 기도의 응답을 받으며 더 나아가서 신령한 것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렘 29:12-13, 33:3).
2)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으면 일을 추진하는 데 큰 도움이 되어 일의 성취도가 높아지듯이 우리가 기도할 때에도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과 상 주시는 분이심을 분명히 믿는다면(히 11:6) 기도의 응답을 주실 줄도 분명히 믿게 되므로 하나님께서는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마 8:13).
우리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하나님께 간구하여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마가복음 11:24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약속하셨고, 야고보서 1:6-7에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고 교훈하셨기 때문입니다.
3) 사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시편 66:18에 다윗은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고백하였습니다. 죄란 하나님이 정하신 율법을 위배하는 것으로서 그 법을 어기려고 하는 마음 자체를 말합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8)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간음하고자 하는 마음이 죄입니다. 이 죄를 행하려고 마음에 결정하는 것이 죄악이며 이것을 행함으로 나타내면 허물이 되고 곧 불의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죄악이 행함으로 나타나 허물을 만들고 불의한 자가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돌이킬 수 있도록 사랑의 징계를 하십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원수 마귀가 가정과 일터, 사업터에 시험 환난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악이나 불의를 범하였다 하더라도 다시금 행함으로 온전히 돌이켜 하나님과의 담을 헐고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시며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마 18:35) 하셨습니다.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치 않는 것이요,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말과 혀로만 하나님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죄악을 버리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용서하고 이해하면서 무엇이든지 사랑으로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신 예수님의 기도 자세를 본받으며 믿음과 사랑으로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기도를 통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