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TOTAL : 1473 PAGE : 91/105
2007-09-25
제38과추석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1. 추석의 유래
추석은 우리 민족이 신라시대부터 지내온 명절로 오늘날에도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에 속합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다른 말로 한가위라고도 부르는데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8월 15일인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길쌈이란 실을 짜는 일을 말합니다. 신라 유리왕 때 한가위 한 달 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베를 짜서 한 달 뒤인 한가윗날 그동안 베를 짠 양을 가지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와 춤으로 갚은 것에서 가배라는 말이 나왔는데 후에 가위라는 말로 변했습니다.
또 한문으로는 '배'라고도 하는데 이날은 설과 단오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절의 하나입니다. 추석이 되면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철로 접어드는데 이 무렵에는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우리의 큰 명절로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속담 중에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2. 추석에 대한 성경적 이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절기로서 초실절(맥추감사절)과 수장절(추수감사절)을 주셔서 지키게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이러한 감사의 절기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3. 추석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은혜 가운데 풍성한 수확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시겠습니다.
묵상기도------------------------------------------------------------------- 다같이
기 원-----------------------------------------------------------------------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아멘 -
찬 송------------------------- 460장 --------------------------------------- 다같이
신앙고백 -------------------- 사도신경 -------------------------------------다같이
기 도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 아침에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지난날들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추석 명절의 의미를 잘 알아서 더욱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시고,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모든 가족들도 기억하여 주옵시고 늘 주님의 품 안에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모든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추석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민 6:24-26 ------------------------------------- 인도자
설 교 ------------------------------------------------------------------------- 설교자
기 도 ------------------------------------------------------------------------- 설교자
찬 송 ------------------------------------------------------------------------- 다같이
주기도문 ----------------------------------------------------------------------다같이
4. 설교 예문
본 문 : 민수기 6:24-26(제목: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역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1)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지켜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으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소년이 되어서는 스승님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이들에게는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곧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환난과 재앙 많은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3)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평강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온 가족들을 평강 가운데 지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추석이면 으레 음식과 과일을 차려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을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간에 화목하고 우애 있게 지내며 부모님 살아 생전에 효도를 다하는 자녀가 되며 온 가족이 하나님을 잘 섬겨 복받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가족은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1. 추석의 유래
추석은 우리 민족이 신라시대부터 지내온 명절로 오늘날에도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에 속합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다른 말로 한가위라고도 부르는데 '한'이라는 말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라는 말은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8월 15일인 한가위는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의미입니다.
'가위'라는 말은 신라 때 길쌈놀이인 가배에서 유래한 것으로 길쌈이란 실을 짜는 일을 말합니다. 신라 유리왕 때 한가위 한 달 전에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두 편으로 나누어 한 달 동안 베를 짜서 한 달 뒤인 한가윗날 그동안 베를 짠 양을 가지고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잔치와 춤으로 갚은 것에서 가배라는 말이 나왔는데 후에 가위라는 말로 변했습니다.
또 한문으로는 '배'라고도 하는데 이날은 설과 단오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명절의 하나입니다. 추석이 되면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철로 접어드는데 이 무렵에는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은 아주 오래 전부터 조상 대대로 지켜 온 우리의 큰 명절로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도 떡을 빚어 나눠 먹었다고 해서 속담 중에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생겼습니다.
2. 추석에 대한 성경적 이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절기로서 초실절(맥추감사절)과 수장절(추수감사절)을 주셔서 지키게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이러한 감사의 절기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3. 추석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은혜 가운데 풍성한 수확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시겠습니다.
묵상기도------------------------------------------------------------------- 다같이
기 원-----------------------------------------------------------------------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 아멘 -
찬 송------------------------- 460장 --------------------------------------- 다같이
신앙고백 -------------------- 사도신경 -------------------------------------다같이
기 도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감사하면서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 아침에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지난날들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추석 명절의 의미를 잘 알아서 더욱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시고,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모든 가족들도 기억하여 주옵시고 늘 주님의 품 안에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모든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추석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민 6:24-26 ------------------------------------- 인도자
설 교 ------------------------------------------------------------------------- 설교자
기 도 ------------------------------------------------------------------------- 설교자
찬 송 ------------------------------------------------------------------------- 다같이
주기도문 ----------------------------------------------------------------------다같이
4. 설교 예문
본 문 : 민수기 6:24-26(제목: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그런데 오늘날의 우리 역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1)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지켜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으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소년이 되어서는 스승님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이들에게는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곧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환난과 재앙 많은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살아갈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3)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평강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온 가족들을 평강 가운데 지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추석이면 으레 음식과 과일을 차려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을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간에 화목하고 우애 있게 지내며 부모님 살아 생전에 효도를 다하는 자녀가 되며 온 가족이 하나님을 잘 섬겨 복받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가족은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9-21
제37과십계명(9)
출 20:16
읽을말씀 : 출 20:16 | 외울말씀 : 야 4:11-12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9계명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출애굽기 20:16을 보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는 제9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네 이웃이란 내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을 말하며 부모, 형제, 자녀도 이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부모, 형제, 자녀 등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명하신 이유를 깨달아 결코 범죄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거짓 증거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판단하거나 비판하며 헤아려 정죄하는 경우
마태복음 7:1 이하를 보면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들추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실 수 있지만, 사람은 외모를 보기 때문에 그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상대를 판단하고 헤아리는 것은 스스로 거짓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므로 또다시 상대도 나를 비판하고 헤아리게 됩니다.
거짓 증거는 화평을 이루지 못하고 시험과 환난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들보를 빼내어 온전히 진리만이 임한 성결된 상태가 되면 진리로 밝히 분별할 수 있으니 상대방에게 티를 빼내라고 권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룩한 마음으로 변화되어 성결된 경지에 이르게 되면 상대방의 티를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짓 증거를 하지 않으려면 먼저는 이웃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말이나 겉모습을 통해서는 마음 중심을 알 수 없으므로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감찰하여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11-12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달아 결코 판단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율법을 판단하고 재판하는 사람이니 이는 곧 하나님을 판단하는 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왜 옳지 않은 것일까요? 요한일서 2:15-16 말씀대로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래서 각자 보고 듣고 배워 입력시킨 것으로 나름대로 양심의 판단기준을 만들어 가므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양심이 각각 다른 것입니다. 각 사람의 양심은 진리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양심을 좇아 판단하는 것도 진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영원히 변함이 없는 것이니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인 것이요, 자신이 입력시켜 놓은 지식과 교양을 바탕으로 상대를 판단하거나 정죄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모두 거짓 증거에 해당됩니다. 그러니 자신을 돌아보아 혹여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있다면 신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니 돌이켜 회개하면 용서를 받지만, 만일 회개치 않고 계속 판단하고 정죄해 간다면 심판 날에 재판을 받아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를 짓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아담의 후예인 인류를 정죄하셨다면 우리 가운데 단 한 사람도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정죄하셨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필요도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도 죄인인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으니, 우리도 상대를 정죄하거나 판단하고 헤아리는 죄를 결코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6:36 이하에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권면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비판하거나 판단, 정죄하여 거짓 증거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비록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오히려 사랑으로 감싸 주고 이해해 주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지요.
2. 말을 더하거나 빼는 경우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말로 인하여 오해를 빚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경우도 있지만 한 마디의 말을 잘못함으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말을 전할 때에는 조금도 실수가 없도록 제대로 전달해야 합니다.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결코 말을 더하거나 빼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설령 우리가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전달한다고 해도 억양이나 표정, 말의 장단, 어순에 따라 그 내용이나 뜻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 주 안에서 상대를 칭찬하는 말이나 사랑의 말, 권면의 말 등 좋은 말만 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내가 평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사람에 대하여 제3자로부터 험담을 듣게 되었다고 합시다. 이때 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자신의 감정을 더 보태서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면 엉뚱한 말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형제의 티를 보고 험담하는 말을 할 때에는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여 그에 따른 보응이 따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나에게 좋지 않은 말을 전달해 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어떤 사람이 나를 흉보았다며 내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전한다면 그 말을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좋지 않은 말을 전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하며 그런 말은 전하지 말아야 한다고 진리의 말씀으로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상대에게 어떠한 말을 전함에 있어서 사실 그대로를 전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생각에 의해 더하거나 빼서 전달하는 일이 있다면 이것도 거짓 증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대로를 전하지 않으면 상대가 오해할 수도 있고,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으며,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3. 사실과 다르게 증거하는 경우
마태복음 26:57 이하를 보면, 예수님을 잡은 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거짓 증거를 찾았으나 결국 얻지 못하게 되자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며 거짓 증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비유 들어 설명하신 것인데 이들은 이 말씀의 뜻을 영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판단 속에서 거짓으로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6:69-70을 보면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예수님과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이 한 말을 안 했다고 거짓말을 한다든가, 아니면 "그때 나는 그 자리에 없었노라." 하며 거짓 증거하는 일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여 어떤 해를 받을까 두려워하여 거짓 증거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진실하고 거룩한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1을 보면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의 도우심 속에 거짓말이나, 농담 등 비진리의 말을 모두 버리고 무슨 말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판단하거나 헤아려 정죄하는 일이나, 말을 더하거나 빼서 전하는 일, 또한 사실과 다르게 증거하는 것이 모두 거짓 증거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바로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성경에 기록된 모든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영혼이 잘된 만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9계명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출애굽기 20:16을 보면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는 제9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네 이웃이란 내가 아닌 다른 모든 사람을 말하며 부모, 형제, 자녀도 이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부모, 형제, 자녀 등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명하신 이유를 깨달아 결코 범죄하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그러면 거짓 증거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판단하거나 비판하며 헤아려 정죄하는 경우
마태복음 7:1 이하를 보면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고 들추어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실 수 있지만, 사람은 외모를 보기 때문에 그 마음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상대를 판단하고 헤아리는 것은 스스로 거짓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므로 또다시 상대도 나를 비판하고 헤아리게 됩니다.
거짓 증거는 화평을 이루지 못하고 시험과 환난을 자초하는 결과를 낳는 참으로 어리석은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나 내 안에 있는 들보를 빼내어 온전히 진리만이 임한 성결된 상태가 되면 진리로 밝히 분별할 수 있으니 상대방에게 티를 빼내라고 권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룩한 마음으로 변화되어 성결된 경지에 이르게 되면 상대방의 티를 보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거짓 증거를 하지 않으려면 먼저는 이웃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의 말이나 겉모습을 통해서는 마음 중심을 알 수 없으므로 아무것도 판단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을 판단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감찰하여 판단하고 비판하고 정죄할 수 있는 권한이 없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11-12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판단하는 것이 얼마나 큰 죄인가를 깨달아 결코 판단하는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셨는데도 불구하고 판단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이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만드신 율법을 판단하고 재판하는 사람이니 이는 곧 하나님을 판단하는 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판단하는 것이 왜 옳지 않은 것일까요? 요한일서 2:15-16 말씀대로 사람들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아갑니다. 그래서 각자 보고 듣고 배워 입력시킨 것으로 나름대로 양심의 판단기준을 만들어 가므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양심이 각각 다른 것입니다. 각 사람의 양심은 진리가 될 수 없을 뿐 아니라 양심을 좇아 판단하는 것도 진리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진리는 영원히 변함이 없는 것이니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인 것이요, 자신이 입력시켜 놓은 지식과 교양을 바탕으로 상대를 판단하거나 정죄하거나 비방하는 것은 모두 거짓 증거에 해당됩니다. 그러니 자신을 돌아보아 혹여 상대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마음이 있다면 신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대이니 돌이켜 회개하면 용서를 받지만, 만일 회개치 않고 계속 판단하고 정죄해 간다면 심판 날에 재판을 받아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죄를 짓고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아담의 후예인 인류를 정죄하셨다면 우리 가운데 단 한 사람도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를 정죄하셨다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실 필요도 없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도 죄인인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시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으니, 우리도 상대를 정죄하거나 판단하고 헤아리는 죄를 결코 범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6:36 이하에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권면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대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비판하거나 판단, 정죄하여 거짓 증거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비록 허물이 있다 할지라도 오히려 사랑으로 감싸 주고 이해해 주는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지요.
2. 말을 더하거나 빼는 경우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말로 인하여 오해를 빚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 경우도 있지만 한 마디의 말을 잘못함으로 인해 엄청난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말을 전할 때에는 조금도 실수가 없도록 제대로 전달해야 합니다. 그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여 결코 말을 더하거나 빼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설령 우리가 상대방의 말을 그대로 전달한다고 해도 억양이나 표정, 말의 장단, 어순에 따라 그 내용이나 뜻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 주 안에서 상대를 칭찬하는 말이나 사랑의 말, 권면의 말 등 좋은 말만 전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내가 평소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던 사람에 대하여 제3자로부터 험담을 듣게 되었다고 합시다. 이때 사실 여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자신의 감정을 더 보태서 그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면 엉뚱한 말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형제의 티를 보고 험담하는 말을 할 때에는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여 그에 따른 보응이 따르게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또한 나에게 좋지 않은 말을 전달해 주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어떤 사람이 나를 흉보았다며 내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전한다면 그 말을 그대로 믿을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좋지 않은 말을 전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하며 그런 말은 전하지 말아야 한다고 진리의 말씀으로 깨우쳐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우리가 상대에게 어떠한 말을 전함에 있어서 사실 그대로를 전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생각에 의해 더하거나 빼서 전달하는 일이 있다면 이것도 거짓 증거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실 그대로를 전하지 않으면 상대가 오해할 수도 있고, 마음에 상처를 입을 수도 있으며,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3. 사실과 다르게 증거하는 경우
마태복음 26:57 이하를 보면, 예수님을 잡은 자들이 예수님을 죽일 거짓 증거를 찾았으나 결국 얻지 못하게 되자 "이 사람의 말이 내가 하나님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지을 수 있다 하더라"며 거짓 증거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비유 들어 설명하신 것인데 이들은 이 말씀의 뜻을 영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의 판단 속에서 거짓으로 증거하였던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6:69-70을 보면 "베드로가 바깥 뜰에 앉았더니 한 비자가 나아와 가로되 너도 갈릴리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베드로가 모든 사람 앞에서 부인하여 가로되 나는 네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겠노라" 하며 예수님을 부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분명히 예수님과 함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우리도 자신이 한 말을 안 했다고 거짓말을 한다든가, 아니면 "그때 나는 그 자리에 없었노라." 하며 거짓 증거하는 일은 없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혹여 어떤 해를 받을까 두려워하여 거짓 증거하는 사람이 되어서는 결코 아니 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진실하고 거룩한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11을 보면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말씀하셨으니 우리는 열심히 기도하여 성령의 도우심 속에 거짓말이나, 농담 등 비진리의 말을 모두 버리고 무슨 말을 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알지도 못하면서 판단하거나 헤아려 정죄하는 일이나, 말을 더하거나 빼서 전하는 일, 또한 사실과 다르게 증거하는 것이 모두 거짓 증거에 해당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바로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성경에 기록된 모든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영혼이 잘된 만큼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9-14
제36과십계명(8)
출 20:15
읽을말씀 : 출 20:15 | 외울말씀 : 말 3:8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8계명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온전히 지켜 행함으로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출애굽기 20:15을 보면 "도적질하지 말지니라"라는 십계명 중 여덟 번째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전에 보면 도적질이란 '잘못된 목적을 위하여 잘못된 수단으로 재물을 다루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지요. 즉 자기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을 취해 오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중에는 '이 계명만큼은 자신 있게 지켜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도적질의 영적인 의미를 분명하게 알아야 온전히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도적질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두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1. 남의 것을 취하는 육적인 의미의 도적질
육적인 의미의 도적질이란,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 것인 양 남의 것을 취해 오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훔치지 않았다면 도적질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직접 훔치지 않았다 해도 도적질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절도, 강도, 사기, 횡령 등 타인의 것을 취하는 경우뿐 아니라 상대를 속이는 것도 도적질에 해당합니다. 어떤 물건을 속여 팔아서 이익을 과다하게 남긴다거나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아니하고 남의 것을 사용하는 경우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도적질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친구 사이거나, 허물없이 다정한 사이라 해도 허락 없이 사용한다면 이것도 엄밀한 도적질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남의 것을 훔쳐야만 도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취하여 마음에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도적질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니면 주인의 허락을 받고 사용하거나 취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지요. 가령 어떤 성도 가정에 심방을 갔는데 마침 그분이 출타중이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목이 마르다고 해서 냉장고 문을 열고 마음대로 음료수를 마신다거나 음식을 꺼내 먹었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도적질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이런 사소한 것이 쌓이게 되면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나중에 어떤 큰 일을 저지르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합당하게 여기시지 않는 것입니다. 흔히 죄라고 하면 큰 것만 생각하기 쉬우나 죄 가운데는 아주 작은 것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 해도 한 번 행할 때와 열 번 행했을 때의 마음은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도적질을 거듭하면 할수록 그만큼 양심이 무디어지기 때문에 나중에는 양심의 가책도 느낄 줄 모르게 되고 큰 것도 서슴없이 도적질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죄악의 시초가 되는 것은 아예 용납하지 말고 단호히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당한 뇌물을 받는 것도 도적질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3:8을 보면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날 뇌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죄악들이 발생하고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남의 것을 탐내지 말며, 자기 것이 아니면 조금도 취하려는 마음이 없어야 도적질하는 죄를 범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것을 훔치는 영적인 의미의 도적질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도적질이라고 하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남의 것을 취하는 육적인 의미의 도적질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은 의롭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여 도적질하는 죄를 범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의미의 도적질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경우
말라기 3:8-9을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 곧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였기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것을 도적질해도 떨리고 무서운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의 것을 어찌 도적질할 수 있겠습니까? 십일조는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여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 되므로 저주가 임하게 되지요. 이 세상에서도 도적질을 하는 죄를 범하면 경중에 따라서 형량이 정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면 경중에 따라 물질의 어려움을 당하고 각종 시험 환난과 질병 등이 틈타는 것입니다.
말라기 3:10-12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란 수입 전체에서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입니다. 고정적인 수입 외에도 식사를 대접받았거나 기타 선물을 받았다면 이런 부수입도 계산하여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자연의 법칙과 같이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물질을 심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는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며 물질의 축복을 넘치게 주십니다.
다음은 헌물을 도적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헌물이란 감사예물을 뜻하는데 하나님의 자녀는 범사에 감사해야 하며 감사한 마음을 행함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감사의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에 이르고, 귀한 직분을 받아 사명을 감당하며, 시험 환난으로부터 지킴받는 등 여러 모로 은혜를 받았으면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집안에 우환질고가 끊이질 않고 사업도 잘 되지 않는 등 어려움이 많았던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 앞에 드렸더니 사고가 떠나가고 질병이 물러가며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으로 변화되었다는 간증이 많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도적질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 영광돌리며 복된 삶을 영위하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 모두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경우
영적인 도적질에는 이렇게 십일조와 헌물 외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23:30-32을 보면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몽사는 꿈을 말하는데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거짓 몽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것일까요?
자기 생각 속에서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에 대하여 이러한 꿈을 보여 주셨다."고 한다든가, 자기 생각 속에서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환상을 보여 주셨다."고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잘못 전해 주는 경우입니다.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도 있지만 자기 생각 속에 꾼 꿈이 있으며, 원수 마귀 사단이 주는 꿈도 있습니다. 그러니 꿈을 잘못 분별하고 상대에게 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오류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또한 사단이 준 환상을 보고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혹을 받는 경우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이런 것을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하며 미혹을 받는 일이 결코 없어야겠습니다.
심지어는 거짓으로 예언하는 사람도 많이 있는데 아무리 그럴 듯하게 해도 결과를 보면 거짓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무 때나 예언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경우, 곧 하나님의 섭리 속에 악이 없는 성결된 사람들을 택하여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자기 생각이나, 스스로의 감동함 속에서 나온 것을 예언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한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적질에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육적인 도적질뿐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취하는 영적인 도적질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으니 결코 도적질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진실한 믿음을 소유하여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8계명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온전히 지켜 행함으로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출애굽기 20:15을 보면 "도적질하지 말지니라"라는 십계명 중 여덟 번째 계명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전에 보면 도적질이란 '잘못된 목적을 위하여 잘못된 수단으로 재물을 다루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지요. 즉 자기 것이 아닌 타인의 것을 취해 오는 경우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 중에는 '이 계명만큼은 자신 있게 지켜 왔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꽤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도적질의 영적인 의미를 분명하게 알아야 온전히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도적질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두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육적인 의미의 도적질이란, 자기 것이 아닌데 자기 것인 양 남의 것을 취해 오는 것을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직접 훔치지 않았다면 도적질을 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볼 때는 직접 훔치지 않았다 해도 도적질에 속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절도, 강도, 사기, 횡령 등 타인의 것을 취하는 경우뿐 아니라 상대를 속이는 것도 도적질에 해당합니다. 어떤 물건을 속여 팔아서 이익을 과다하게 남긴다거나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아니하고 남의 것을 사용하는 경우도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도적질에 해당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친구 사이거나, 허물없이 다정한 사이라 해도 허락 없이 사용한다면 이것도 엄밀한 도적질에 해당됩니다.
이처럼 남의 것을 훔쳐야만 도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것이 아닌 것을 취하여 마음에 부끄러움이나 미안함을 느꼈다면 그것은 도적질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니면 주인의 허락을 받고 사용하거나 취하는 것이 합당한 것이지요. 가령 어떤 성도 가정에 심방을 갔는데 마침 그분이 출타중이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목이 마르다고 해서 냉장고 문을 열고 마음대로 음료수를 마신다거나 음식을 꺼내 먹었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도적질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 해도 이런 사소한 것이 쌓이게 되면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된다는 말이 있듯이 나중에 어떤 큰 일을 저지르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합당하게 여기시지 않는 것입니다. 흔히 죄라고 하면 큰 것만 생각하기 쉬우나 죄 가운데는 아주 작은 것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작은 죄라 해도 한 번 행할 때와 열 번 행했을 때의 마음은 매우 큰 차이가 있습니다.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도적질을 거듭하면 할수록 그만큼 양심이 무디어지기 때문에 나중에는 양심의 가책도 느낄 줄 모르게 되고 큰 것도 서슴없이 도적질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됩니다. 따라서 죄악의 시초가 되는 것은 아예 용납하지 말고 단호히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부당한 뇌물을 받는 것도 도적질에 해당이 됩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3:8을 보면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 경고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날 뇌물로 인하여 얼마나 많은 죄악들이 발생하고 있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남의 것을 탐내지 말며, 자기 것이 아니면 조금도 취하려는 마음이 없어야 도적질하는 죄를 범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도적질이라고 하면 앞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남의 것을 취하는 육적인 의미의 도적질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주변을 보면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 자신은 의롭게 산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여 도적질하는 죄를 범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인 의미의 도적질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말라기 3:8-9을 보면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씀하십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것 곧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하였기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사람의 것을 도적질해도 떨리고 무서운 일인데 하물며 하나님의 것을 어찌 도적질할 수 있겠습니까? 십일조는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여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일 뿐만 아니라 결국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 되므로 저주가 임하게 되지요. 이 세상에서도 도적질을 하는 죄를 범하면 경중에 따라서 형량이 정해지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십일조를 드리지 아니하면 경중에 따라 물질의 어려움을 당하고 각종 시험 환난과 질병 등이 틈타는 것입니다.
말라기 3:10-12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열방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온전한 십일조란 수입 전체에서 십분의 일을 드리는 것입니다. 고정적인 수입 외에도 식사를 대접받았거나 기타 선물을 받았다면 이런 부수입도 계산하여 하나님 앞에 십일조를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되는 자연의 법칙과 같이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물질을 심을 때 하나님께서 먼저는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며 물질의 축복을 넘치게 주십니다.
다음은 헌물을 도적질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헌물이란 감사예물을 뜻하는데 하나님의 자녀는 범사에 감사해야 하며 감사한 마음을 행함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감사의 조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앞에 감사할 줄 모른다면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에 이르고, 귀한 직분을 받아 사명을 감당하며, 시험 환난으로부터 지킴받는 등 여러 모로 은혜를 받았으면 이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주변에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집안에 우환질고가 끊이질 않고 사업도 잘 되지 않는 등 어려움이 많았던 가정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 앞에 드렸더니 사고가 떠나가고 질병이 물러가며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으로 변화되었다는 간증이 많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적인 도적질을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축복을 받아 영광돌리며 복된 삶을 영위하기를 원하십니다. 따라서 여러분 모두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기 바랍니다.
영적인 도적질에는 이렇게 십일조와 헌물 외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레미야 23:30-32을 보면 "보라 서로 내 말을 도적질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그들이 혀를 놀려 그가 말씀하셨다 하는 선지자들을 내가 치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거짓 몽사를 예언하여 이르며 거짓과 헛된 자만으로 내 백성을 미혹하게 하는 자를 내가 치리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몽사는 꿈을 말하는데 선지자라고 하는 사람들이 거짓 몽사를 가지고 하나님의 이름을 팔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하는 것일까요?
자기 생각 속에서 꿈을 꾸었는데 "하나님께서 당신에 대하여 이러한 꿈을 보여 주셨다."고 한다든가, 자기 생각 속에서 환상을 보고 "하나님께서 이러한 환상을 보여 주셨다."고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잘못 전해 주는 경우입니다.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도 있지만 자기 생각 속에 꾼 꿈이 있으며, 원수 마귀 사단이 주는 꿈도 있습니다. 그러니 꿈을 잘못 분별하고 상대에게 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남용하는 오류를 범치 말아야 합니다. 또한 사단이 준 환상을 보고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미혹을 받는 경우도 볼 수 있는데 우리는 이런 것을 잘 분별할 줄 알아야 하며 미혹을 받는 일이 결코 없어야겠습니다.
심지어는 거짓으로 예언하는 사람도 많이 있는데 아무리 그럴 듯하게 해도 결과를 보면 거짓이 드러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무 때나 예언하게 하신 것이 아니라 특별한 경우, 곧 하나님의 섭리 속에 악이 없는 성결된 사람들을 택하여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자기 생각이나, 스스로의 감동함 속에서 나온 것을 예언이라고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도적질한 것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도적질에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육적인 도적질뿐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취하는 영적인 도적질도 있다는 사실을 배웠으니 결코 도적질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며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릴 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진실한 믿음을 소유하여 축복된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09-07
제35과십계명(7)
출 20:14
읽을말씀 : 출 20:14 | 외울말씀 : 골 3:5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7계명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계명을 지킴으로 칭찬받는 신앙인이 될 뿐 아니라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출애굽기 20:14을 보면 "간음하지 말지니라"는 제7계명이 나옵니다. '간음'의 사전적인 의미는 부부가 아닌 다른 남녀가 음란한 성적 관계를 맺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간음은 이런 육적인 간음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간음에 대해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영적인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인 간음이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육적인 간음 역시 근원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 정욕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5-6을 보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며 믿음이 있다 해도 마음에서 탐심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보다 세상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제2계명에 나오는 우상과 제7계명의 영적인 간음은 어떻게 다를까요? 우상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형태가 없는 신을 불상과 같이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과 믿는다는 사람들이 믿음이 연약하여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우상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여 온전히 진리 안에서 살아가지 못할 때는 하나님보다 남편이나 아내, 자녀를 더 사랑하고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 등을 더 사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간음은 믿음이 있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물질이나 가족 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이때는 영적인 간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과 영적인 간음은 차이가 있으므로 잘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나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할지라도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했을 때 이를 우상을 섬겼다고 하는 것이지, 영적인 간음을 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간음을 얼마나 싫어하시는가를 성경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예레미야 3:8을 보면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임금 이후 하나님을 배역하고 영적인 간음을 행함으로 인하여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를 회개치 않고 있다가 결국 멸망하게 되었는데 이를 보고도 남유다가 계속하여 우상을 섬기므로 영적인 간음을 행한다고 엄히 지적하신 것입니다.
야고보서 4:4을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 되어 주시고 우리는 주님의 신부가 되어 영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신랑이 되시니 믿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과 타협하여 벗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신부된 자격을 잃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간음하는 여자에게 '나의 사랑하는 신부여'라고 말씀할 수는 없지요.
2. 마음의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27-28을 보면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흔히 간음을 남녀간의 불륜관계만 생각하기 쉬운데, 주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간음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어도 마음에 상대방을 그리며 행위를 상상한다면 간음이 된다는 것이지요. 오늘날은 비디오나 스크린,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서 그러한 행위를 상상하며 즐기는 경우가 많은데 모두 간음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진리와 전혀 상관없는 것은 보거나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러한 마음의 간음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불같은 기도를 통하여 성령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간음하는 마음을 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간음의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임이나 잡지 등 음란물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생각이 떠오른다 해도 생각의 방향을 바꿔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행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시고 마음 중심을 기뻐하심으로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두 번 하다 그치는 것이 아니요, 한 달이 되든, 1년, 2년, 3년이 되든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해 나간다면 능히 마음의 간음을 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생각을 바꿔 나감으로 차단할 수 있는 단계를 통과하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는 음란한 장면을 보았다 해도 내가 생각하지 않아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마음의 간음은 느낌과 함께 생각을 통해 오는 것인데 이 생각 자체를 차단하고 지배해 버리니 마음으로 죄가 틈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냥 생각이 되지 않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좋지 않은 장면을 보았다 해도 전혀 내 생각 속에서 동요가 없으므로 간음하려는 마음이 일지 않게 됩니다. 더 나아가면 일부러 생각하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어떠한 음욕을 생각하려고 해도 생각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죄성 자체를 뽑아 버렸기에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듣는다 해도 느낌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진리가 아닌 것은 아예 떠오르지 않는 것이지요.
물론 간음을 버리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혹여 생각 속에 순간 틈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간음했다고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생각 속에 틈탄 것을 계속 받아들여서 상상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큰 죄가 되지만 깨닫는 즉시 회개하고 온전히 성결되고자 노력해 나갈 때는 하나님께서도 은혜와 능력을 주시고 승리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3. 육체의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6:32에는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하였고, 레위기 20:10에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6:9-10을 보면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하시며 육체의 간음을 하는 자도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셨지요. 육체의 간음은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을 파멸시키는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을 들었을 때 육체의 간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간음을 가장 싫어하시며 그 다음에는 마음의 간음이요, 그 다음이 육체의 간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의 간음이 있으므로 육체의 간음이 오는 것이니 마음에서 간음이 없어지면 육체의 간음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간음은 큰 죄로 여기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는 범할 수 없는 큰 죄이지요.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성령의 전입니다. 로마서 12:1을 보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거하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여 말씀에 위배된 일이 있다면 반드시 돌이켜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아야 할 것이고, 초신자여서 진리를 몰라 간음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부로 정죄할 것이 아니라, 그가 진리를 깨우치고 죄를 버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영적인 간음, 마음의 간음, 육체의 간음을 모두 벗어버리고 거룩한 행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모든 계명들을 지켜 행함으로 축복된 삶을 영위할 뿐 아니라,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된 자격을 잘 갖추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7계명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계명을 지킴으로 칭찬받는 신앙인이 될 뿐 아니라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출애굽기 20:14을 보면 "간음하지 말지니라"는 제7계명이 나옵니다. '간음'의 사전적인 의미는 부부가 아닌 다른 남녀가 음란한 성적 관계를 맺음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간음은 이런 육적인 간음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간음에 대해 크게 세 가지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영적인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적인 간음이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육적인 간음 역시 근원을 따지고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고 세상 정욕을 더 사랑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3:5-6을 보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고 하나님의 역사들을 체험하며 믿음이 있다 해도 마음에서 탐심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보다 세상 것들을 더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면 제2계명에 나오는 우상과 제7계명의 영적인 간음은 어떻게 다를까요? 우상이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형태가 없는 신을 불상과 같이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과 믿는다는 사람들이 믿음이 연약하여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우상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하여 온전히 진리 안에서 살아가지 못할 때는 하나님보다 남편이나 아내, 자녀를 더 사랑하고 물질이나 명예나 권세 등을 더 사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영적인 의미에서 볼 때 우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간음은 믿음이 있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이 물질이나 가족 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이때는 영적인 간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상과 영적인 간음은 차이가 있으므로 잘 분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이나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 할지라도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없는 사람이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했을 때 이를 우상을 섬겼다고 하는 것이지, 영적인 간음을 했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간음을 얼마나 싫어하시는가를 성경에 기록해 두셨습니다.
예레미야 3:8을 보면 "내게 배역한 이스라엘이 간음을 행하였으므로 내가 그를 내어쫓고 이혼서까지 주었으되 그 패역한 자매 유다가 두려워 아니하고 자기도 가서 행음함을 내가 보았노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솔로몬 임금 이후 하나님을 배역하고 영적인 간음을 행함으로 인하여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라지고 말았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이를 회개치 않고 있다가 결국 멸망하게 되었는데 이를 보고도 남유다가 계속하여 우상을 섬기므로 영적인 간음을 행한다고 엄히 지적하신 것입니다.
야고보서 4:4을 보면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주님은 우리의 신랑이 되어 주시고 우리는 주님의 신부가 되어 영적인 사랑을 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신랑이 되시니 믿는 사람들은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두 신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과 타협하여 벗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신부된 자격을 잃게 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간음하는 여자에게 '나의 사랑하는 신부여'라고 말씀할 수는 없지요.
2. 마음의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5:27-28을 보면 "간음치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흔히 간음을 남녀간의 불륜관계만 생각하기 쉬운데, 주님은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하였다고 하셨습니다.
간음하는 행위를 하지 않았어도 마음에 상대방을 그리며 행위를 상상한다면 간음이 된다는 것이지요. 오늘날은 비디오나 스크린,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서 그러한 행위를 상상하며 즐기는 경우가 많은데 모두 간음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진리와 전혀 상관없는 것은 보거나 듣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이러한 마음의 간음을 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불같은 기도를 통하여 성령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간음하는 마음을 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간음의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임이나 잡지 등 음란물을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생각이 떠오른다 해도 생각의 방향을 바꿔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행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받으시고 마음 중심을 기뻐하심으로 버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한두 번 하다 그치는 것이 아니요, 한 달이 되든, 1년, 2년, 3년이 되든 끝까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기도해 나간다면 능히 마음의 간음을 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생각을 바꿔 나감으로 차단할 수 있는 단계를 통과하면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는 음란한 장면을 보았다 해도 내가 생각하지 않아야 되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마음의 간음은 느낌과 함께 생각을 통해 오는 것인데 이 생각 자체를 차단하고 지배해 버리니 마음으로 죄가 틈탈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그냥 생각이 되지 않는 단계에 이르게 되는데 좋지 않은 장면을 보았다 해도 전혀 내 생각 속에서 동요가 없으므로 간음하려는 마음이 일지 않게 됩니다. 더 나아가면 일부러 생각하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는 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 도달하면 어떠한 음욕을 생각하려고 해도 생각이 되어지지 않습니다. 마음에서 죄성 자체를 뽑아 버렸기에 좋지 않은 것을 보고 듣는다 해도 느낌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으니 진리가 아닌 것은 아예 떠오르지 않는 것이지요.
물론 간음을 버리고자 노력하는 과정에서 혹여 생각 속에 순간 틈탔다고 해도 하나님께서는 간음했다고 정죄하지는 않습니다. 생각 속에 틈탄 것을 계속 받아들여서 상상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면 큰 죄가 되지만 깨닫는 즉시 회개하고 온전히 성결되고자 노력해 나갈 때는 하나님께서도 은혜와 능력을 주시고 승리할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3. 육체의 간음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6:32에는 "부녀와 간음하는 자는 무지한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하였고, 레위기 20:10에 "누구든지 남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 곧 그 이웃의 아내와 간음하는 자는 그 간부와 음부를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6:9-10을 보면 "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고 하시며 육체의 간음을 하는 자도 구원받지 못한다고 하셨지요. 육체의 간음은 우리의 육체뿐 아니라 영혼을 파멸시키는 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간음하지 말라는 제7계명을 들었을 때 육체의 간음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간음을 가장 싫어하시며 그 다음에는 마음의 간음이요, 그 다음이 육체의 간음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마음의 간음이 있으므로 육체의 간음이 오는 것이니 마음에서 간음이 없어지면 육체의 간음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간음은 큰 죄로 여기는데 하물며 하나님의 자녀로서는 범할 수 없는 큰 죄이지요.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성령의 전입니다. 로마서 12:1을 보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 거하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혹여 말씀에 위배된 일이 있다면 반드시 돌이켜 회개함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을 받아야 할 것이고, 초신자여서 진리를 몰라 간음하는 사람이 있다면 함부로 정죄할 것이 아니라, 그가 진리를 깨우치고 죄를 버릴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영적인 간음, 마음의 간음, 육체의 간음을 모두 벗어버리고 거룩한 행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모든 계명들을 지켜 행함으로 축복된 삶을 영위할 뿐 아니라,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된 자격을 잘 갖추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8-31
제33과십계명(6)
출 20:13
읽을말씀 : 출 20:13 | 외울말씀 : 요일 3:15
교육목표 :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십계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한다.
1. 육적인 살인은 물론, 영적인 살인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0:13에 제6계명으로 "살인하지 말지니라" 말씀하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듯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문자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육적으로 죽이는 것도 큰 죄이지만 영적인 살인은 더 큰 죄가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는 살인하지 않았으니 제6계명은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쉬우나 영적인 의미를 알고 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육적인 살인은 나라의 법에 크게 저촉받는 죄이므로 하나님 앞에서도 당연히 죄가 되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방인도 큰 죄로 여기는 살인죄를 범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육적인 살인에는 실수나 부주의로 인한 교통사고 등으로 살인하는 경우가 있으며, 가족계획이라는 미명 하에 낙태를 시켜 살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자살하는 것도 살인에 해당됩니다. 이는 내세의 심판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지요.
그러면 영적인 살인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자녀를 실족시키는 것이 바로 영적인 살인입니다. 실족(失足)이란 발을 잘못 디딘다는 사전적인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바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참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8:7을 보면 예수님께서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말씀하시며 실족케 하는 사람에게 화가 미치게 됨을 경고하셨습니다.
2. 영적인 살인의 구체적인 예
1) 진리에 어긋난 말을 전하는 것은 영적인 살인이 됩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진리를 잘못 가르쳐 줌으로 죄를 범하게 하였다면 이는 영적인 살인에 해당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5:39). 그런데 오른뺨을 맞고 흥분하여 상담을 요청해 올 때, 당신도 지지 말고 같이 때려 주어야 한다고 하며 진리에 어긋나게 가르쳐 줬다면 결국 상대를 실족시킨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온전히 거룩하게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후에는 놀러가거나 오락을 취해도 괜찮다며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도록 가르쳤다면 진리에 어긋난 가르침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0:25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하셨는데, 바쁜 세상에 어떻게 자주 모일 수 있느냐며 모이기를 폐하도록 가르친다면 이것도 영혼을 실족시키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가르쳐 주면 금방 실족당하지는 않더라도 진리를 잘못 앎으로 점점 죄와 타협하게 되니 결국 영적 살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중상모략을 하고 분당을 시키거나 상대의 말만 듣고 사실이 아닌 말을 사실인 것처럼 전하는 것도 실족시키는 경우입니다. 일반적으로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말을 전할 때 그가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기분 나쁘게 여길 줄 압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악함으로 입술을 제어치 못하고 전하여 상대가 상처를 받게 되니 영적 살인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당신의 흉을 보더라."고 전해서 서로 감정을 갖고 미워하도록 했다면 이는 사단의 역사이며 형제를 살인하는 것이요, 실족시키는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형제의 티를 보고 지적하는 것이 곧 영적 살인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대를 칭찬하는 말이나 좋은 말이 아니면 굳이 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에 자신이 악함으로 스스로 실족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초신자가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왜 저런가?' 한다면 그 형제가 실족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악이 있으므로 스스로 실족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존경했던 사람이 어느 날 거짓말을 하거나 비진리를 행하는 것을 발견한 후 실망하여 하나님을 떠났다면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신앙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믿고 섬겼다면 사람 때문에 실족당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악이 있으므로 스스로 실족당하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사는 선한 사람은 그런 것을 보았다 해도 오히려 긍휼히 여기고 기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 살다가 교회에 나와서 회개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능력을 받아 빛 가운데 살아갈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성도의 도리이지요. 우리가 먼저 진리의 빛을 밝혀 줌으로써 그들이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동일하신 분입니다. 만일 누구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나오지 않는다면 참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람 편에서 믿었다 안 믿었다 하는 어리석은 행위일 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스스로 실족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요.
때론 아무리 진리의 말씀이어도 전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갓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이제 교회에 나오게 되었으니 술 담배를 완전히 끊어야 합니다. 주일에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합니다."라고 권면한다면 부담이 되어 교회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도 실족시키는 것이 될 수 있으므로 설령 진리의 말씀이라 해도 전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분별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혹 잘못 전달되었다 해도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지 않지만 그에 따른 보응은 받게 됩니다. 보응이 따른다고 해서 즉시 징계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성령의 역사를 깨우치지 못한 상태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형통함을 받지 못하게 하셔서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실족시키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의 마음을 닮으면 닮을수록 실족시키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실족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가룟 유다는 자신이 악하므로 스스로 실족을 당한 것이지요. 그러니 자신이 악함으로 인해 살인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진리를 알지 못할 때는 실수하여 상대를 실족시키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곧 회개할 수 있으나 진리를 알면서도 계속하여 상대를 실족시켜 나간다면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이 크게 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죄로 인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니 사단이 유혹하면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악의 모습을 벗어버리기 원하시며,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서 세상에서 잘못 입력된 구습들을 버려 나갈 때,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뿐 아니라 간구와 기도에 응답을 받아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진리를 행치 않는 모든 것들이 영적인 살인에 해당됩니다
영적인 살인은 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하며, 진리 속에 행치 않는 것을 뜻합니다. 진리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형제를 판단, 정죄하거나 티를 보고 이간질시키는 것 등은 다 말씀에 위배되지요. 진리에 어긋나고, 진실이 없는 말이나 태도 등은 사단이 역사하여 결국 영적인 살인을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며, 형제에게 욕설을 하는 마음속에는 미움과 더 나아가 살인할 수 있는 의지가 숨어 있으므로 미움은 살인하는 행위와 다름없습니다(마 5:21-22 ; 요일 3:15).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여전히 남을 비방하고 중상모략하거나 이간하고 헐뜯는다면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며 영적으로 살인하는 것입니다.
만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가 보인다면 내 마음에 악한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마 7:3). 또한 형제의 잘못과 부족한 모습이 보이는 것은 내 마음에 사랑이 없음을 깨달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하시며,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며 원수가 주릴 때 먹이며 목마를 때 마시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살지 않으면 그것이 올무가 되어 사단의 역사를 받으므로 영혼을 실족시킬 수 있으니 날마다 육체의 일들과 육신의 일들을 벗어버리고 진리 안에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버리고 진리 안에 온전히 서게 되면 진실만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직 기도하며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이와 더불어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주관해 주심으로 비진리를 버리고, 절제할 수 있는 힘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주어지게 됩니다. 결국 때가 되면 비진리는 모두 벗어지고 거룩함이 임하므로 진리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들을 잘 지켜 행함으로 마음껏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십계명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한다.
1. 육적인 살인은 물론, 영적인 살인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출애굽기 20:13에 제6계명으로 "살인하지 말지니라" 말씀하십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그러하듯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문자적인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을 육적으로 죽이는 것도 큰 죄이지만 영적인 살인은 더 큰 죄가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나는 살인하지 않았으니 제6계명은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기가 쉬우나 영적인 의미를 알고 나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육적인 살인은 나라의 법에 크게 저촉받는 죄이므로 하나님 앞에서도 당연히 죄가 되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이방인도 큰 죄로 여기는 살인죄를 범하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합니다. 육적인 살인에는 실수나 부주의로 인한 교통사고 등으로 살인하는 경우가 있으며, 가족계획이라는 미명 하에 낙태를 시켜 살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한 생명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므로 자살하는 것도 살인에 해당됩니다. 이는 내세의 심판이나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지요.
그러면 영적인 살인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자녀를 실족시키는 것이 바로 영적인 살인입니다. 실족(失足)이란 발을 잘못 디딘다는 사전적인 의미가 있는데, 여기서는 바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참 생명을 잃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태복음 18:7을 보면 예수님께서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말씀하시며 실족케 하는 사람에게 화가 미치게 됨을 경고하셨습니다.
2. 영적인 살인의 구체적인 예
1) 진리에 어긋난 말을 전하는 것은 영적인 살인이 됩니다
우리가 상대에게 진리를 잘못 가르쳐 줌으로 죄를 범하게 하였다면 이는 영적인 살인에 해당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라고 가르치셨습니다(마 5:39). 그런데 오른뺨을 맞고 흥분하여 상담을 요청해 올 때, 당신도 지지 말고 같이 때려 주어야 한다고 하며 진리에 어긋나게 가르쳐 줬다면 결국 상대를 실족시킨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안식일을 온전히 거룩하게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물었을 때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오후에는 놀러가거나 오락을 취해도 괜찮다며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도록 가르쳤다면 진리에 어긋난 가르침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0:25에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고 하셨는데, 바쁜 세상에 어떻게 자주 모일 수 있느냐며 모이기를 폐하도록 가르친다면 이것도 영혼을 실족시키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잘못 가르쳐 주면 금방 실족당하지는 않더라도 진리를 잘못 앎으로 점점 죄와 타협하게 되니 결국 영적 살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 외에도 중상모략을 하고 분당을 시키거나 상대의 말만 듣고 사실이 아닌 말을 사실인 것처럼 전하는 것도 실족시키는 경우입니다. 일반적으로 상대방에게 좋지 않은 말을 전할 때 그가 마음에 상처를 받거나 기분 나쁘게 여길 줄 압니다. 그런데도 자신이 악함으로 입술을 제어치 못하고 전하여 상대가 상처를 받게 되니 영적 살인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어떤 집사님이 당신의 흉을 보더라."고 전해서 서로 감정을 갖고 미워하도록 했다면 이는 사단의 역사이며 형제를 살인하는 것이요, 실족시키는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형제의 티를 보고 지적하는 것이 곧 영적 살인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상대를 칭찬하는 말이나 좋은 말이 아니면 굳이 전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반면에 자신이 악함으로 스스로 실족을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초신자가 술과 담배를 끊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왜 저런가?' 한다면 그 형제가 실족시킨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악이 있으므로 스스로 실족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존경했던 사람이 어느 날 거짓말을 하거나 비진리를 행하는 것을 발견한 후 실망하여 하나님을 떠났다면 하나님을 바라본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고 신앙생활을 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로 믿고 섬겼다면 사람 때문에 실족당하지 않습니다. 자신에게 악이 있으므로 스스로 실족당하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 사는 선한 사람은 그런 것을 보았다 해도 오히려 긍휼히 여기고 기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죄악 가운데 살다가 교회에 나와서 회개한 사람이 있다면 그가 능력을 받아 빛 가운데 살아갈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 성도의 도리이지요. 우리가 먼저 진리의 빛을 밝혀 줌으로써 그들이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도록 열심히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동일하신 분입니다. 만일 누구 때문에 교회에 나오고, 나오지 않는다면 참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사람 편에서 믿었다 안 믿었다 하는 어리석은 행위일 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 속에서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스스로 실족당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요.
때론 아무리 진리의 말씀이어도 전하지 말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갓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사람에게 "이제 교회에 나오게 되었으니 술 담배를 완전히 끊어야 합니다. 주일에는 가게 문을 닫아야 합니다."라고 권면한다면 부담이 되어 교회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이런 경우도 실족시키는 것이 될 수 있으므로 설령 진리의 말씀이라 해도 전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분별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혹 잘못 전달되었다 해도 하나님께서 죄라고 하지 않지만 그에 따른 보응은 받게 됩니다. 보응이 따른다고 해서 즉시 징계가 임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성령의 역사를 깨우치지 못한 상태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가 형통함을 받지 못하게 하셔서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실족시키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주님의 마음을 닮으면 닮을수록 실족시키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느 누구도 실족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가룟 유다는 자신이 악하므로 스스로 실족을 당한 것이지요. 그러니 자신이 악함으로 인해 살인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진리를 알지 못할 때는 실수하여 상대를 실족시키는 경우가 생기더라도 곧 회개할 수 있으나 진리를 알면서도 계속하여 상대를 실족시켜 나간다면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이 크게 쌓여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죄로 인하여 성령의 음성을 듣지 못하니 사단이 유혹하면 넘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악의 모습을 벗어버리기 원하시며,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면서 세상에서 잘못 입력된 구습들을 버려 나갈 때,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뿐 아니라 간구와 기도에 응답을 받아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2) 진리를 행치 않는 모든 것들이 영적인 살인에 해당됩니다
영적인 살인은 진리에 어긋나는 말을 하며, 진리 속에 행치 않는 것을 뜻합니다. 진리는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으니 형제를 판단, 정죄하거나 티를 보고 이간질시키는 것 등은 다 말씀에 위배되지요. 진리에 어긋나고, 진실이 없는 말이나 태도 등은 사단이 역사하여 결국 영적인 살인을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며, 형제에게 욕설을 하는 마음속에는 미움과 더 나아가 살인할 수 있는 의지가 숨어 있으므로 미움은 살인하는 행위와 다름없습니다(마 5:21-22 ; 요일 3:15). 믿음이 있노라 하면서 여전히 남을 비방하고 중상모략하거나 이간하고 헐뜯는다면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며 영적으로 살인하는 것입니다.
만일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가 보인다면 내 마음에 악한 모습이 있기 때문입니다(마 7:3). 또한 형제의 잘못과 부족한 모습이 보이는 것은 내 마음에 사랑이 없음을 깨달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핍박하는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기를 원하시며,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며 원수가 주릴 때 먹이며 목마를 때 마시우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살지 않으면 그것이 올무가 되어 사단의 역사를 받으므로 영혼을 실족시킬 수 있으니 날마다 육체의 일들과 육신의 일들을 벗어버리고 진리 안에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서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버리고 진리 안에 온전히 서게 되면 진실만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오직 기도하며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기고 의지할 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고 이와 더불어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주관해 주심으로 비진리를 버리고, 절제할 수 있는 힘과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이 주어지게 됩니다. 결국 때가 되면 비진리는 모두 벗어지고 거룩함이 임하므로 진리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계명들을 잘 지켜 행함으로 마음껏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8-24
제33과십계명(5)
출 20:12
읽을말씀 : 출 20:12 | 외울말씀 : 요일 4:20
교육목표 :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십계명 중 제5계명을 살펴봄으로 부모를 공경하며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1. 영적인 부모를 공경하라
본문 출애굽기 20:12을 보면 제5계명이 나와 있는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부모란 나를 낳아 길러 준 아버지와 어머니를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잉태될 수 있는 생명의 근본된 씨앗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자녀를 낳아 길러 주는 육적인 부모가 있는가 하면 영적인 부모가 있는데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공경이라는 단어는 공손히 섬긴다는 뜻으로서, 삼가서 예를 차려 높인다는 의미입니다. 즉 윗사람에 대한 순종과 섬김을 의미하는 것이며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의 공경의 대상은 단지 육의 부모만이 아니라 영을 낳아 주신 하나님도 되십니다. 우리가 참 생명을 주신 영적인 부모 곧 하나님을 공경하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며 진리 안에서 살아가게 되므로 육적인 부모도 자연히 공경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육적인 부모를 공경하기에 앞서 영적인 부모이신 하나님을 먼저 공경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요한복음 1:12-13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본된 씨를 주신 아버지임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또한 로마서 8:15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곧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죄를 싸워 버려 나가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20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나를 낳아 주신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육의 부모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공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빛 가운데 나아가는 사람은 부모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기 전에도 육의 부모를 공경하여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하고 주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후에는 부모를 사랑하는 차원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로서의 육적인 사랑을 하였지만 주 안에 들어오면 영적인 사랑 차원에서 부모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얼마큼 하나님을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나를 낳아 주신 부모를 사랑하는 정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진리 안에 들어와서 죄를 버리고 육체의 일들을 벗어 버리며 온전히 말씀 가운데 살아갈 때는 나를 낳아 주신 부모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사랑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신 것을 깨닫고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니 그분의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육의 부모도 극진히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자녀가 있지만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여 효도하는 자녀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사랑이 식어져 가는 오늘날에는 부모를 지극히 사랑하는 자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도 착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부모를 극진히 공경하며 사랑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더욱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사랑으로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공경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주 안에서 육적인 부모를 공경하라
에베소서 6:1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 사이에 교제할 때는 친절하고 밝은 미소를 띠던 사람이 성전을 나가면 달라집니다. 가정에 돌아가서는 내가 언제 웃었느냐는 듯이 부모나 형제 혹은 남편에게 불친절하게 대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하며 기쁨이 충만하여 주의 종들에게 순종도 잘하지만 막상 성전을 떠나 집에 가서는 가족들과 화목을 이루지 못하고 윗사람에게 순종하지도 못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도 공경하지 못하는데 어찌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사랑하려고 하는 것뿐이지, 정녕 하나님을 공경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되고 변함이 없는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들도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든지 변함없는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지도 않고 우습게 여기거나 오히려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축복을 달라고 기도해도 응답이 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진정 부모를 공경하고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부모와의 세대 차이로 교육방법과 사고방식이 달라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내 생각이나 의견이 부모와 맞지 않다고 해서 답답히 여길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자신이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주고 이해해 드려야 합니다.
즉 내가 죽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장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지 말고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만일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해도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도리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3:20을 보면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되 먼저는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고 불평하거나 무례히 행치 말아야 합니다. 또한 부모의 생각이나 의견이 자신과 다르고 옳지 않다고 해도 함부로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아야 하지요. 어떤 일이 생길 경우 혹여라도 섭섭해하시지 않도록 양해를 구하되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하여 따라야 하므로 주일을 지키지 말라는 등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명하거나 요구할 때는 순종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면 순복하는 것이 자녀의 마땅한 도리인 것입니다.
3. 부모를 공경할 때 임하는 축복
그러면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지키면 어떠한 복이 임하게 될까요? 출애굽기 20:12을 보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셨고 에베소서 6:2-3을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생명이 길다는 것은 단순히 80세, 90세까지 장수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면 영혼이 잘되어 가며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함께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마귀가 왔다가도 일곱 길로 물러가는 것이요, 일터, 사업터도 축복을 받으며 불의의 사고나 질병, 시험 환난 등도 만나지 않고 항상 형통함을 입게 되니 이러한 모든 것을 통틀어 곧 생명이 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 부모님을 사랑하며 공경하고 계신지요? 만약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사랑하고 지극히 섬겨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될 수 있도록 십계명 중 제5계명을 살펴봄으로 부모를 공경하며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1. 영적인 부모를 공경하라
본문 출애굽기 20:12을 보면 제5계명이 나와 있는데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부모란 나를 낳아 길러 준 아버지와 어머니를 말합니다. 그런데 사람이 잉태될 수 있는 생명의 근본된 씨앗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자녀를 낳아 길러 주는 육적인 부모가 있는가 하면 영적인 부모가 있는데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공경이라는 단어는 공손히 섬긴다는 뜻으로서, 삼가서 예를 차려 높인다는 의미입니다. 즉 윗사람에 대한 순종과 섬김을 의미하는 것이며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의 공경의 대상은 단지 육의 부모만이 아니라 영을 낳아 주신 하나님도 되십니다. 우리가 참 생명을 주신 영적인 부모 곧 하나님을 공경하게 되면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며 진리 안에서 살아가게 되므로 육적인 부모도 자연히 공경할 수 있게 됩니다. 따라서 육적인 부모를 공경하기에 앞서 영적인 부모이신 하나님을 먼저 공경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요한복음 1:12-13을 보면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 창조주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본된 씨를 주신 아버지임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또한 로마서 8:15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으므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한다는 것은 곧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분의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죄를 싸워 버려 나가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20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도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나를 낳아 주신 부모를 공경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육의 부모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공경하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를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일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빛 가운데 나아가는 사람은 부모에 대한 사랑을 깨닫게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하나님을 알기 전에도 육의 부모를 공경하여 사랑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하고 주 안에 들어와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후에는 부모를 사랑하는 차원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실 것입니다. 예전에는 단순히 나를 낳아 주시고 길러 주신 부모로서의 육적인 사랑을 하였지만 주 안에 들어오면 영적인 사랑 차원에서 부모를 사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얼마큼 하나님을 사랑하느냐에 따라서 나를 낳아 주신 부모를 사랑하는 정도도 달라지는 것입니다. 내가 진리 안에 들어와서 죄를 버리고 육체의 일들을 벗어 버리며 온전히 말씀 가운데 살아갈 때는 나를 낳아 주신 부모도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참된 사랑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해 주신 것을 깨닫고 나도 하나님을 사랑하니 그분의 계명을 지켜 행함으로 육의 부모도 극진히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많은 자녀가 있지만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여 효도하는 자녀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사랑이 식어져 가는 오늘날에는 부모를 지극히 사랑하는 자녀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도 착하고 의롭게 사는 사람들은 부모를 극진히 공경하며 사랑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는 더욱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인 사랑으로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공경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주 안에서 육적인 부모를 공경하라
에베소서 6:1을 보면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 형제, 자매 사이에 교제할 때는 친절하고 밝은 미소를 띠던 사람이 성전을 나가면 달라집니다. 가정에 돌아가서는 내가 언제 웃었느냐는 듯이 부모나 형제 혹은 남편에게 불친절하게 대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열심히 기도하고 사랑하며 기쁨이 충만하여 주의 종들에게 순종도 잘하지만 막상 성전을 떠나 집에 가서는 가족들과 화목을 이루지 못하고 윗사람에게 순종하지도 못한다면 하나님을 경외한다고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님도 공경하지 못하는데 어찌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을 알기 때문에 사랑하려고 하는 것뿐이지, 정녕 하나님을 공경하지는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참되고 변함이 없는 것이니 하나님의 자녀들도 어느 곳에서나 누구에게든지 변함없는 사랑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니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지도 않고 우습게 여기거나 오히려 부모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 축복을 달라고 기도해도 응답이 올 수 없다는 것을 알아 진정 부모를 공경하고 하나님의 참된 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물론 부모와의 세대 차이로 교육방법과 사고방식이 달라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내 생각이나 의견이 부모와 맞지 않다고 해서 답답히 여길 것이 아니라, 먼저 내 자신이 부모님의 의견에 따라 주고 이해해 드려야 합니다.
즉 내가 죽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장하고 교육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부모님의 헌신적인 희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잊지 말고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만일 부모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했다 해도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도리인 것입니다.
골로새서 3:20을 보면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되 먼저는 부모의 입장을 이해하고 불평하거나 무례히 행치 말아야 합니다. 또한 부모의 생각이나 의견이 자신과 다르고 옳지 않다고 해도 함부로 무시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아야 하지요. 어떤 일이 생길 경우 혹여라도 섭섭해하시지 않도록 양해를 구하되 주 안에서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하나님의 말씀을 우선하여 따라야 하므로 주일을 지키지 말라는 등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을 명하거나 요구할 때는 순종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라면 순복하는 것이 자녀의 마땅한 도리인 것입니다.
3. 부모를 공경할 때 임하는 축복
그러면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지키면 어떠한 복이 임하게 될까요? 출애굽기 20:12을 보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하셨고 에베소서 6:2-3을 보면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생명이 길다는 것은 단순히 80세, 90세까지 장수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진리 안에서 하나님을 공경하고 부모를 공경하면 영혼이 잘되어 가며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고 함께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마귀가 왔다가도 일곱 길로 물러가는 것이요, 일터, 사업터도 축복을 받으며 불의의 사고나 질병, 시험 환난 등도 만나지 않고 항상 형통함을 입게 되니 이러한 모든 것을 통틀어 곧 생명이 길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진정 부모님을 사랑하며 공경하고 계신지요? 만약 부모님을 공경하지 못하고 있다면 하나님을 공경한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부모님을 사랑하고 지극히 섬겨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8-17
제32과십계명(4)
출 20:8-11
읽을말씀 : 출 20:8-11 | 외울말씀 : 요일 3:21-22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계명들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진정 복 있는 사람, 뛰어난 사람이 되게 한다.
1. 안식일의 유래
십계명 중 제4계명은"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입니다. 안식일이란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 곧 주 안에서 편히 쉬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시대는 이날을 주의 날 혹은 주일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안식일의 유래는 하나님께서 엿새 만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는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것에 기인합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열심히 창조사역을 하신 후 칠일째 안식하셨기에 일곱째 날에는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셔서 하나님을 믿는 온 백성도 안식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창 2:3). 그래서 구약시대는 제칠일 토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졌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으며 이날을 주일이라 하는데, 왜 안식일이 일요일이 되었으며 '주일' 혹은 '주의 날'이라고 칭하게 되었을까요?
2. 신약시대에 안식일이 주일이 된 이유
마태복음 12:8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모든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바로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 새벽 미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아 영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역사를 마치신 제칠일 곧 토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졌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구원의 역사를 마치시고 부활하신 일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를 예언해 놓으셨는데,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해서 안식 후 첫날에 드리라고 했습니다(레 23:10-11). 곧 첫 열매를 안식 후 첫날에 드리라는 구약의 말씀이 부활의 첫열매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의 첫열매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달력을 보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 바로 일요일을 한 주간의 첫날로 정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생명을 얻고 참 기쁨과 참 안식을 얻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함께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해 영이 죽으니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도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자마다 부활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데 이것이 바로 영적인 부활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공중강림하시면 무덤에 있는 사람들이 썩지 아니할 부활체로 나와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며 살아 있는 사람도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이 함께 이루어져 온전한 부활체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요일 새벽 미명에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심으로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갖고 이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므로 일곱째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지만, 신약시대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권세를 깨뜨린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이를 주님의 날 곧 주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행 20:7 ; 고전 16:2).
3.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려면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영적인 세계의 주인이심과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자신뿐 아니라 자녀들이나 일을 하는 일꾼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가축과 내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을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출 20:10).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주일 대예배는 축도로 끝을 맺으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믿음으로 축도를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한 주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일까요?
첫째, 주 안에서 영적인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안식한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오락을 즐기며 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쉼에 불과한 것이며 이러한 육적인 안식은 몸의 피로를 풀어 줄 수는 있지만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안식은 이러한 육적인 쉼이 아니요, 영적인 쉼 곧 참된 안식입니다.
영적인 안식이란 주일에는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진리 안에서 마음에 참된 기쁨과 평안을 얻고 영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일에는 오전 예배뿐만 아니라 오후 예배도 드려서 온전히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과 온전히 영적으로 교통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참된 안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여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복을 주십니다. 한 주간을 지켜 주셔서 시험 환난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사고와 질병, 위험으로부터 막아 주시며 혹여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고 범사에 형통하도록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주일에는 매매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느헤미야 13:17-18을 보면 예루살렘의 총독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 매매하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고 꾸짖으며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악이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즉 안식일에 매매 행위를 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악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영원한 생명과 직결되므로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범했기 때문에 모든 재앙이 임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곧 안식일을 범한 것은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치 않고 거룩한 날 복 주시겠다고 한 말씀을 믿지 않은 결과이니 공의의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수 마귀가 와서 시험 환난을 갖다 주며 재앙도 가져다주게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13:19에는 안식일 전날 어두워 갈 때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문을 닫듯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면 사업터의 문을 닫아 매매를 금하고 주 안에서 영적인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주일에 매매 행위를 허용할 수 있는 몇 가지 특별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가대원들이 식사해야 하는데 식당이 없다면 사 주어도 무방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요, 이러한 것은 주님을 위해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성도들이 예배를 충만하게 드릴 수 있도록 편의를 돕기 위해 교회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것은 가능하나 이익금은 개인이 사용해서는 안 되며 구제나 선교 등 선한 사업에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주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주일예배를 드린 후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중심에서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주일을 지키되 그 형제를 위해서는 가서 축하를 해 주어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니 혹여 서운하게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를 해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다른 점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진리의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2:10-12에 예수님을 송사하고자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묻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하시면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을 옳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병든 사람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의사나 간호사, 국가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 군인, 경찰 등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일에 업무를 보는 것은 나라를 위해 선을 행하는 일이니 주일예배를 드리고 업무를 처리한다해서 죄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 마음에서는 진정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해 예비하신 날로 세상의 일이나 오락을 금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영적인 쉼을 얻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이요,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온전하고 거룩히 지키심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계명들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진정 복 있는 사람, 뛰어난 사람이 되게 한다.
1. 안식일의 유래
십계명 중 제4계명은"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입니다. 안식일이란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 곧 주 안에서 편히 쉬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시대는 이날을 주의 날 혹은 주일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안식일의 유래는 하나님께서 엿새 만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는 창조사역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것에 기인합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열심히 창조사역을 하신 후 칠일째 안식하셨기에 일곱째 날에는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셔서 하나님을 믿는 온 백성도 안식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창 2:3). 그래서 구약시대는 제칠일 토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졌습니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으며 이날을 주일이라 하는데, 왜 안식일이 일요일이 되었으며 '주일' 혹은 '주의 날'이라고 칭하게 되었을까요?
2. 신약시대에 안식일이 주일이 된 이유
마태복음 12:8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신약시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의 주인이 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피 흘리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모든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이 바로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 새벽 미명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아 영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역사를 마치신 제칠일 곧 토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졌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구원의 역사를 마치시고 부활하신 일요일이 안식일로 지켜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이를 예언해 놓으셨는데,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해서 안식 후 첫날에 드리라고 했습니다(레 23:10-11). 곧 첫 열매를 안식 후 첫날에 드리라는 구약의 말씀이 부활의 첫열매인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면서 첫째 날에 빛이 있으라고 말씀하셨는데 바로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의 첫열매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래서 달력을 보면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 바로 일요일을 한 주간의 첫날로 정해진 것입니다.
우리는 사망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참 생명을 얻고 참 기쁨과 참 안식을 얻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함께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인해 영이 죽으니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도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망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심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자마다 부활에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는데 이것이 바로 영적인 부활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공중강림하시면 무덤에 있는 사람들이 썩지 아니할 부활체로 나와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며 살아 있는 사람도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그래서 영적인 부활과 육적인 부활이 함께 이루어져 온전한 부활체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요일 새벽 미명에 부활하셔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심으로 우리도 부활의 소망을 갖고 이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시대는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므로 일곱째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지만, 신약시대는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사망권세를 깨뜨린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이를 주님의 날 곧 주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행 20:7 ; 고전 16:2).
3.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려면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셨으며 영적인 세계의 주인이심과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함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자신뿐 아니라 자녀들이나 일을 하는 일꾼을 비롯하여 심지어는 가축과 내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을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출 20:10).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주일 대예배는 축도로 끝을 맺으며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고 믿음으로 축도를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한 주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일까요?
첫째, 주 안에서 영적인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안식한다는 것은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고 집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오락을 즐기며 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육체적인 쉼에 불과한 것이며 이러한 육적인 안식은 몸의 피로를 풀어 줄 수는 있지만 생명을 주지는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안식은 이러한 육적인 쉼이 아니요, 영적인 쉼 곧 참된 안식입니다.
영적인 안식이란 주일에는 세상일에 얽매이지 않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도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진리 안에서 마음에 참된 기쁨과 평안을 얻고 영적인 성장을 추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주일에는 오전 예배뿐만 아니라 오후 예배도 드려서 온전히 안식일을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이 되시는 주님과 온전히 영적으로 교통을 이루는 것이야말로 참된 안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여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복을 주십니다. 한 주간을 지켜 주셔서 시험 환난으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사고와 질병, 위험으로부터 막아 주시며 혹여 실수가 있다 하더라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고 범사에 형통하도록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둘째, 주일에는 매매 행위를 하지 않아야 합니다.
느헤미야 13:17-18을 보면 예루살렘의 총독 느헤미야는 안식일에 예루살렘에 들어와 매매하는 사람들에게 "너희가 어찌 이 악을 행하여 안식일을 범하느냐 너희 열조가 이같이 행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므로 우리 하나님이 이 모든 재앙으로 우리와 이 성읍에 내리신 것이 아니냐"고 꾸짖으며 안식일을 범하는 것은 악이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된다고 알려 주고 있습니다. 즉 안식일에 매매 행위를 하는 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악이라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영원한 생명과 직결되므로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느헤미야는 안식일을 범했기 때문에 모든 재앙이 임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곧 안식일을 범한 것은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치 않고 거룩한 날 복 주시겠다고 한 말씀을 믿지 않은 결과이니 공의의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원수 마귀가 와서 시험 환난을 갖다 주며 재앙도 가져다주게 되는 것입니다.
느헤미야 13:19에는 안식일 전날 어두워 갈 때 성문을 닫고 안식일이 지나기 전까지는 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성문을 닫듯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려면 사업터의 문을 닫아 매매를 금하고 주 안에서 영적인 안식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나 주일에 매매 행위를 허용할 수 있는 몇 가지 특별한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성가대원들이 식사해야 하는데 식당이 없다면 사 주어도 무방합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시요, 이러한 것은 주님을 위해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밖에도 성도들이 예배를 충만하게 드릴 수 있도록 편의를 돕기 위해 교회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것은 가능하나 이익금은 개인이 사용해서는 안 되며 구제나 선교 등 선한 사업에 사용해야 합니다.
또한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주일에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주일예배를 드린 후 결혼식에 참석하여 축하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중심에서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주일을 지키되 그 형제를 위해서는 가서 축하를 해 주어도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안식일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 한 영혼이 천하보다 귀하니 혹여 서운하게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배려를 해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다른 점이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기에 진리의 자유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2:10-12에 예수님을 송사하고자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묻는 사람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너희 중에 어느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붙잡아 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하시면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을 옳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병든 사람을 위하여 선을 행하는 의사나 간호사, 국가와 사회의 안녕과 질서를 지키는 군인, 경찰 등 특수한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주일에 업무를 보는 것은 나라를 위해 선을 행하는 일이니 주일예배를 드리고 업무를 처리한다해서 죄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단, 마음에서는 진정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기 위해 예비하신 날로 세상의 일이나 오락을 금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에 나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서 영적인 쉼을 얻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이요,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일을 온전하고 거룩히 지키심으로 하나님께로부터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8-10
제31과십계명(3)
출 20:7
읽을말씀 : 출 20:7 | 외울말씀 : 요일 4:20
교육목표 :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아 성령의 인도함 속에 온전히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게 한다.
1. 제 3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중에서 제3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입니다(출 20:7).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고 있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엄위하심을 나타내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 출애굽기 3:14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자신에 대해 알려 주셨듯이, 여호와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감히 읽을 수가 없어서 <아도나이> 곧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토록 여호와라는 이름은 거룩하고 존귀한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13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우주 만물과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존귀한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신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주 만물을 보아도 조물주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마음이 강퍅한 사람은 이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 14:1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존귀하신 분이므로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어서는 안 됩니다.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은 언행이 정상을 벗어난 상태를 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를 죄 없다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신 5:11).
오늘날은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마치 말씀하신 것처럼 거짓되이 전하거나, 농담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넣는다면 하나님께서 결코 죄 없다 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말고 진실되이 경외하며 섬겨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죄가 되는 이유
1)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구약시대는 선한 사람들에게 감동함을 주셔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충만함을 주셔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선한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받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만나고자 간절히 찾는 사람들은 기도 중에 마음이 뜨거워지는가 하면 환상이나 신령한 꿈 등 갖가지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알려 주고 계시지만 여전히 믿지 않고 부인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마음이 완악하고 참으로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20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못하고 미워한다면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정녕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살피시며 우리의 앉고 일어서며 대화하는 것들을 낱낱이 지켜보시고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 세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 있는 사람들은 어떤 순간에도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 없으니 성령이 역사하지 않았는데 감히 성령의 음성인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으나 참으로 믿지 못한 것이며, 바로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7-8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찮고 우습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 봉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속이고 목자와 형제를 속이며 거짓되이 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에 속합니다. 또한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자기의 정욕대로 살아가거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성령을 속이며 거짓되이 행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행 5:1).
만일 성령의 은사를 지나치게 사모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데도 하나님께서 주신 음성이나, 환상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가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언행에 주의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은 것인데도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처럼 말하거나 합당치 않은 말이나 농담 등에 하나님의 이름을 넣는다면 이는 모두 거짓말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죄 있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8을 보면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들도 구원받지 못할 것을 경고하셨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결코 망령되이 일컫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 안에 기쁨이 없고 염려, 근심,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죄의 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담이 없다면 항상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 기쁨이 넘칠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30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말씀하셨으니 무엇이 하나님과 담이 되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컬었다면 신속하게 돌이켜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성령의 역사하심을 말할 때 존칭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비가 오면 "하늘에서 비가 오신다"라고 존칭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기가 들거나 질병이 생기면 어떻게 말합니까? 어느 누구도 "감기가 들어오셨다"라고 존칭어를 사용하여 말하지 않을 것인데, 이는 그들도 질병은 원수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결코 함부로 사용할 수 없고 감히 거짓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자기를 과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자는 '내가 기도했더니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것이 성령의 음성이면 상관없는데 세상과 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데도 마치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말을 하니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거짓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꿈으로 혹은 환상 가운데 역사를 받기도 하고 친히 음성을 들을 수도 있으나 이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성령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꿈도 있지만 인간적인 생각 속에서 꾸는 꿈이 있고 사단이 역사하는 꿈도 있습니다. 이렇게 꿈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한 채 무조건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말한다면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분별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면 항상 깨어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진리로 무장하게 됩니다. 그리하면 범사에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게 되며 성령의 주관을 받아 행해 나가니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거나 믿는다 하면서도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든가,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거짓말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임을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시편 89:6-7에 "대저 궁창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권능 있는 자 중에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심히 엄위하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자시니이다" 말씀했으니 하나님을 진실하게 경외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더욱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아 성령의 인도함 속에 온전히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게 한다.
1. 제 3계명: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하나님께서 주신 십계명 중에서 제3계명은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입니다(출 20:7).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라고 부르고 있는데, 여기에는 하나님의 영광스럽고 엄위하심을 나타내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또 출애굽기 3:14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자신에 대해 알려 주셨듯이, 여호와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옛날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경을 읽을 때 '여호와'라는 이름이 나오면 감히 읽을 수가 없어서 <아도나이> 곧 주님이라고 불렀습니다. 그토록 여호와라는 이름은 거룩하고 존귀한 이름이었던 것입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13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로서 우주 만물과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존귀한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도 신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주 만물을 보아도 조물주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마음이 강퍅한 사람은 이 사실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 14:1에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저희는 부패하고 소행이 가증하여 선을 행하는 자가 없도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존귀하신 분이므로 그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어서는 안 됩니다.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것은 언행이 정상을 벗어난 상태를 뜻하므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를 죄 없다 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신 5:11).
오늘날은 하나님을 믿든, 믿지 않든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마치 말씀하신 것처럼 거짓되이 전하거나, 농담을 하면서 하나님의 이름을 넣는다면 하나님께서 결코 죄 없다 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말고 진실되이 경외하며 섬겨야 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 죄가 되는 이유
1) 하나님을 믿지 못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구약시대는 선한 사람들에게 감동함을 주셔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케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는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게 충만함을 주셔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마음의 문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선한 사람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의 길로 인도받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만나고자 간절히 찾는 사람들은 기도 중에 마음이 뜨거워지는가 하면 환상이나 신령한 꿈 등 갖가지 방법을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증거들을 갖가지 방법으로 알려 주고 계시지만 여전히 믿지 않고 부인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마음이 완악하고 참으로 어리석기 때문입니다.
요한일서 4:20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치 못하고 미워한다면 거짓말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정녕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살피시며 우리의 앉고 일어서며 대화하는 것들을 낱낱이 지켜보시고 머리카락 하나라도 다 세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이러한 믿음 있는 사람들은 어떤 순간에도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컬을 수 없으니 성령이 역사하지 않았는데 감히 성령의 음성인 것처럼 말할 수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 것 같으나 참으로 믿지 못한 것이며, 바로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죄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7-8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만홀히 여긴다는 것은 하나님을 하찮고 우습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앞에 충성 봉사한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속이고 목자와 형제를 속이며 거짓되이 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에 속합니다. 또한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자기의 정욕대로 살아가거나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성령을 속이며 거짓되이 행하는 경우를 의미합니다(행 5:1).
만일 성령의 은사를 지나치게 사모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닌데도 하나님께서 주신 음성이나, 환상이라고 말한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가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를 범하지 않도록 언행에 주의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거짓말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은 것인데도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처럼 말하거나 합당치 않은 말이나 농담 등에 하나님의 이름을 넣는다면 이는 모두 거짓말에 해당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죄 있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1:8을 보면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들도 구원받지 못할 것을 경고하셨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결코 망령되이 일컫는 미련한 사람이 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의 마음 안에 기쁨이 없고 염려, 근심, 걱정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과 죄의 담이 있기 때문입니다. 죄의 담이 없다면 항상 성령으로 충만함을 입어 기쁨이 넘칠 수 있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30에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말씀하셨으니 무엇이 하나님과 담이 되었는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컬었다면 신속하게 돌이켜 회개하여 죄사함을 받고 다시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거나 성령의 역사하심을 말할 때 존칭어를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비가 오면 "하늘에서 비가 오신다"라고 존칭어를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 주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기가 들거나 질병이 생기면 어떻게 말합니까? 어느 누구도 "감기가 들어오셨다"라고 존칭어를 사용하여 말하지 않을 것인데, 이는 그들도 질병은 원수 마귀가 가져다주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결코 함부로 사용할 수 없고 감히 거짓말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 한 마디를 하더라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주변을 살펴보면 자기를 과시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함부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혹자는 '내가 기도했더니 성령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그것이 성령의 음성이면 상관없는데 세상과 짝하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없는데도 마치 성령의 음성을 듣는 것처럼 말을 하니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거짓말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여러 가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꿈으로 혹은 환상 가운데 역사를 받기도 하고 친히 음성을 들을 수도 있으나 이런 일은 자주 있는 일이 아닙니다. 또한 성령의 음성을 듣기도 하고 감동으로 하나님의 뜻을 알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자기의 생각이나 감정에 의해 이루어진 것을 마치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말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꿈도 있지만 인간적인 생각 속에서 꾸는 꿈이 있고 사단이 역사하는 꿈도 있습니다. 이렇게 꿈에도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영적으로 분별하지 못한 채 무조건 하나님께서 주신 것처럼 말한다면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분별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꿈은 시간이 지나면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면 항상 깨어 기도하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진리로 무장하게 됩니다. 그리하면 범사에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게 되며 성령의 주관을 받아 행해 나가니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죄를 범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믿지 못하거나 믿는다 하면서도 육체를 위하여 심는다든가,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거짓말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임을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시편 89:6-7에 "대저 궁창에서 능히 여호와와 비교할 자 누구며 권능 있는 자 중에 여호와와 같은 자 누구리이까 하나님은 거룩한 자의 회중에서 심히 엄위하시오며 둘러 있는 모든 자 위에 더욱 두려워할 자시니이다" 말씀했으니 하나님을 진실하게 경외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더욱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입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08-03
제30과십계명(2)
출 20:4-6
읽을말씀 : 출 20:4-6 | 외울말씀 : 마 22:37-40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2계명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구체적으로 깨달아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십계명 중 제2계명은 얼핏 들으면 제1계명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리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영적인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제1계명은 다신론에 대한 경고로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계실 뿐이며 그분만을 섬기고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반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라는 제2계명은 우상 숭배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상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제2계명의 영적인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우상이란 무엇인가?
1) 육적인 의미의 우상
우상이란 형태가 없는 신을 물질적인 형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서 새긴 우상이나 숭배의 대상이 되는 어떤 형상을 말합니다(사 46:6-7).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물질적 형상을 만들어 경배하는 것이 우상숭배이지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기를 좋아하는 것일까요? 우리 사람에게는 직접 보고 만지며 피부로 느껴져야 만족을 느끼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무나 돌, 쇠붙이나 금은붙이 등으로 남자나 여자의 형상, 땅 위에 있는 짐승이나 하늘에 나는 새, 땅 위에 기는 곤충,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족의 형상을 만들고 일월성신, 혹은 하늘 위의 군중을 경배하며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우상이 아닌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상과 마리아 상을 집 안에 두고 그 앞에 절하며 경배하고 마치 예수님처럼 섬기고 존경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우상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혹자는 '나무 십자가'에 대해서도 궁금하게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집 안에 걸린 나무 십자가를 바라보면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으며 보혈을 흘리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십자가는 우리에게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느끼게 해 줍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구원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음을 갖고 구원에 이르게 되니 우상에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양을 안고 계신 성화나 최후의 만찬 등의 그림도 그 자체가 우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화가가 어떤 뜻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려 놓은 것일 뿐이요, 사람들이 성화를 보고 '저분이 하나님이시다'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조각이나 성화 앞에서 절이나 경배하는 것은 결코 합당치 않으므로 어떤 경우에도 우상을 섬기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2) 영적인 의미의 우상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영적인 의미의 우상이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 앞에 절을 해야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좇아 남편, 아내,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바로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물질, 명예, 지식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 계명을 어기는 것도 우상을 섬기는 것에 속하지요.
그러므로 제2계명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하는 일이 없어야 합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으니 부모를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공경해야 합니다. 만일 부모가 교회 가지 말라고 하니 부모의 마음을 상치 않으려고 주일을 어겼다면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한 것이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부모가 참 생명을 얻도록 인도하는 것이므로, 주일을 지키며 신속히 부모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힘써 기도하며 전도해야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부모가 자녀를 진정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실한 사랑을 자녀에게 베풀 때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온전히 지켜 주십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로,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서로 자신의 유익을 좇아 육적인 사랑을 나누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님의 능력됨으로 변함 없는 영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 와서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가장 먼저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교회에 갔더니 하나님만 사랑하고 가족들을 사랑하지 말라더라.'고 오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여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축복을 주시고자 명하신 십일조를 아깝게 여겨 드리지 않거나,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돈을 사랑하고 권력과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할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도 영적인 우상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또한 청소년들 중에는 좋아하는 가수나 영화배우, 탤런트, 운동선수의 사진을 방에 걸어 놓거나 심지어는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좋아하는 인형이나 어떤 물건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면 결국 우상을 섬기는 것이니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2. 우상을 섬기는 사람에게 임하는 보응
제2계명 후반절에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말씀하시며 계명을 지켜 순종하는 자에게 내려질 축복과 불순종하는 자에 대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인간적 차원에서의 질투가 아닌 사랑의 질투입니다. 사람의 질투는 인간의 육정에서 나오므로 추하고 무섭지만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때 외면하시므로 시험 환난이 오고 질병이 틈타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는데,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가 죄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가지 아니하고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랑의 질투란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온전케 만들며 구원해 주셔서 영생으로 인도하기 위한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오직 사랑과 공의로 역사하시며, 전지전능하셔서 우리를 항상 지키시고 주관하십니다. 또 질병이 틈타지 않게 막아 주시고 가정, 일터, 사업터에서 형통함을 받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므로 하나님을 미워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두고도 다른 신들을 섬기고 우상을 만들어 놓고 절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주셔서 희생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시며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역사하셨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여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한다면 어찌 멸망의 길로 가도록 가만히 계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른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란 바로 하나님 앞에 반역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을 뿐 아니라 우상 앞에 절하며 그것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지켜 줄 수 없고 외면하시기 때문에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로 환난과 질고가 임하며 결국 삼사 대에 걸쳐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만일 재앙이 사 대까지 임한다면 그 가문은 완전히 멸족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니 재앙이 삼 대에서 끝나게 되지요. 만일 사 대까지 재앙이 임하면 질병이나 물질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가정일수록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니 그 후손들 가운데 갖가지 질병이나 불구자, 귀신 들린 자 등이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우상을 만들거나 그것에 절하고 섬김으로 하나님을 진노케 하여 시험 환난을 자초하며 재앙을 당하는 미련한 사람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3. 순종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시므로 길이길이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참 신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만사형통의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그 자녀들도 더불어 축복을 받으니 믿음이 있어 신앙생활을 잘하는 가정은 천 대 곧 길이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요,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에 죄는 삼사 대까지 적게 보응을 하시되 은혜는 천 대까지 길이길이 베푸십니다. 조상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그 후손들에게도 축복이 임하게 되지만, 무조건 천 대까지 축복을 주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아브라함에게 '자손 대대로 축복을 받을지라' 언약하셨지만 하나님을 찾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복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사랑하니 그 후손들에게 축복을 주신다고 언약하신 말씀대로 지켜 주시고 그 후손 대대로 멸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으나, 그 후손 중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조상의 마음이 선하여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후손들이 그 기를 물려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며 기쁘시게 하여 천 대까지 은혜를 입는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십계명 중에서 제2계명에 대한 영적인 의미를 구체적으로 깨달아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십계명 중 제2계명은 얼핏 들으면 제1계명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리시킬 수밖에 없는 것은 영적인 의미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는 제1계명은 다신론에 대한 경고로서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계실 뿐이며 그분만을 섬기고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반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라는 제2계명은 우상 숭배에 대한 교훈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상에 대해 먼저 살펴보고 제2계명의 영적인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우상이란 무엇인가?
1) 육적인 의미의 우상
우상이란 형태가 없는 신을 물질적인 형상으로 만들어낸 것으로서 새긴 우상이나 숭배의 대상이 되는 어떤 형상을 말합니다(사 46:6-7). 즉 살아 계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물질적 형상을 만들어 경배하는 것이 우상숭배이지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기를 좋아하는 것일까요? 우리 사람에게는 직접 보고 만지며 피부로 느껴져야 만족을 느끼는 속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무나 돌, 쇠붙이나 금은붙이 등으로 남자나 여자의 형상, 땅 위에 있는 짐승이나 하늘에 나는 새, 땅 위에 기는 곤충,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족의 형상을 만들고 일월성신, 혹은 하늘 위의 군중을 경배하며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가정에서는 우상이 아닌 우상을 섬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상과 마리아 상을 집 안에 두고 그 앞에 절하며 경배하고 마치 예수님처럼 섬기고 존경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하나님 앞에서 우상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가 하면 혹자는 '나무 십자가'에 대해서도 궁금하게 여기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우리가 집 안에 걸린 나무 십자가를 바라보면 어떻습니까? 예수님께서 죄인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으며 보혈을 흘리고 돌아가셨기 때문에 십자가는 우리에게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느끼게 해 줍니다.
따라서 십자가는 구원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우리가 십자가를 바라보고 믿음을 갖고 구원에 이르게 되니 우상에 해당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양을 안고 계신 성화나 최후의 만찬 등의 그림도 그 자체가 우상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화가가 어떤 뜻을 표현하기 위하여 그려 놓은 것일 뿐이요, 사람들이 성화를 보고 '저분이 하나님이시다'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모습을 담은 조각이나 성화 앞에서 절이나 경배하는 것은 결코 합당치 않으므로 어떤 경우에도 우상을 섬기는 일이 없어야겠습니다.
2) 영적인 의미의 우상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영적인 의미의 우상이라고 말합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 앞에 절을 해야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욕심을 좇아 남편, 아내, 자녀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바로 우상을 섬기는 것입니다. 물질, 명예, 지식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여 계명을 어기는 것도 우상을 섬기는 것에 속하지요.
그러므로 제2계명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 외에 다른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공경하는 것도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하는 일이 없어야 합당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셨으니 부모를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공경해야 합니다. 만일 부모가 교회 가지 말라고 하니 부모의 마음을 상치 않으려고 주일을 어겼다면 하나님보다 부모를 더 사랑한 것이 됩니다. 진정한 사랑은 부모가 참 생명을 얻도록 인도하는 것이므로, 주일을 지키며 신속히 부모가 구원받을 수 있도록 힘써 기도하며 전도해야 참으로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 됩니다.
또한 부모가 자녀를 진정 사랑한다면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실한 사랑을 자녀에게 베풀 때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온전히 지켜 주십니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로, 참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서로 자신의 유익을 좇아 육적인 사랑을 나누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하나님의 능력됨으로 변함 없는 영적인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들어 와서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고 그 안에서 모든 것을 사랑할 때 하나님께서 보다 더 아름다운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축복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가장 먼저 사랑하되 진리 안에서 모든 것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교회에 갔더니 하나님만 사랑하고 가족들을 사랑하지 말라더라.'고 오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늘날 하나님보다 물질을 더 사랑하여 주일을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축복을 주시고자 명하신 십일조를 아깝게 여겨 드리지 않거나,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돈을 사랑하고 권력과 명예를 유지하기 위해 마땅히 지켜야 할 주일을 지키지 않는 것도 영적인 우상을 섬기는 것이 됩니다.
또한 청소년들 중에는 좋아하는 가수나 영화배우, 탤런트, 운동선수의 사진을 방에 걸어 놓거나 심지어는 가슴에 품고 다니면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좋아하는 인형이나 어떤 물건에 온통 마음을 빼앗긴다면 결국 우상을 섬기는 것이니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2. 우상을 섬기는 사람에게 임하는 보응
제2계명 후반절에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말씀하시며 계명을 지켜 순종하는 자에게 내려질 축복과 불순종하는 자에 대한 경고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한 것은 인간적 차원에서의 질투가 아닌 사랑의 질투입니다. 사람의 질투는 인간의 육정에서 나오므로 추하고 무섭지만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기 위한 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을 때 외면하시므로 시험 환난이 오고 질병이 틈타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는데, 하나님의 질투는 우리가 죄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가지 아니하고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사랑의 질투란 우리를 새롭게 변화시키고 온전케 만들며 구원해 주셔서 영생으로 인도하기 위한 사랑의 표현인 것입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오직 사랑과 공의로 역사하시며, 전지전능하셔서 우리를 항상 지키시고 주관하십니다. 또 질병이 틈타지 않게 막아 주시고 가정, 일터, 사업터에서 형통함을 받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므로 하나님을 미워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두고도 다른 신들을 섬기고 우상을 만들어 놓고 절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독생자를 주셔서 희생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시며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역사하셨는데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여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한다면 어찌 멸망의 길로 가도록 가만히 계실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른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의 죄란 바로 하나님 앞에 반역죄를 짓는 것과 같습니다. 즉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을 뿐 아니라 우상 앞에 절하며 그것들을 섬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을 지켜 줄 수 없고 외면하시기 때문에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로 환난과 질고가 임하며 결국 삼사 대에 걸쳐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만일 재앙이 사 대까지 임한다면 그 가문은 완전히 멸족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니 재앙이 삼 대에서 끝나게 되지요. 만일 사 대까지 재앙이 임하면 질병이나 물질의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우상을 섬기는 가정일수록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니 그 후손들 가운데 갖가지 질병이나 불구자, 귀신 들린 자 등이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결코 우상을 만들거나 그것에 절하고 섬김으로 하나님을 진노케 하여 시험 환난을 자초하며 재앙을 당하는 미련한 사람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3. 순종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천 대까지 은혜를 베풀어 주시므로 길이길이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참 신이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복 주시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만사형통의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한 그 자녀들도 더불어 축복을 받으니 믿음이 있어 신앙생활을 잘하는 가정은 천 대 곧 길이길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요,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기 때문에 죄는 삼사 대까지 적게 보응을 하시되 은혜는 천 대까지 길이길이 베푸십니다. 조상이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그 후손들에게도 축복이 임하게 되지만, 무조건 천 대까지 축복을 주신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아브라함에게 '자손 대대로 축복을 받을지라' 언약하셨지만 하나님을 찾지 아니한 사람에게는 복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하나님을 사랑하니 그 후손들에게 축복을 주신다고 언약하신 말씀대로 지켜 주시고 그 후손 대대로 멸하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으나, 그 후손 중에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축복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조상의 마음이 선하여 하나님을 잘 섬겼다면 후손들이 그 기를 물려받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모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며 기쁘시게 하여 천 대까지 은혜를 입는 복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2007-07-27
제29과십계명(1)
출 20:3
읽을말씀 : 출 20:3 | 외울말씀 : 요일 5:2-3
교육목표 : 십계명의 영적 의미를 깨달아 지켜 나감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 받는 자녀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의 법도를 요약한 십계명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받고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성경을 통해 하늘나라의 법을 배우고 그대로 실천하여 만사형통한 축복과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 그대로 행하는 참자녀를 얻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십계명은 하나님의 법으로서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요약한 것입니다. 성경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을 낱낱이 풀이하여 살을 붙이면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으로 주신 것이지만, 구약시대나 오늘날이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변함없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도입니다. 십계명은 그만큼 중요한 하나님의 언약이요, 구원의 기초가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처럼 생각하여 어떻게 십계명을 다 지킬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요,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곧 66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며, 계명들은 우리가 지켜 행하기에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요일 5:2-3).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능히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연인들이 추운 겨울날 데이트를 해도 함께 사랑을 나눈다는 기쁨 때문에 추운 줄을 모르는 것처럼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의 계명들을 능히 지켜 나갈 수 있는 것이요,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자기 의지와 노력으로 행하므로 힘들었지만 신약시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기에 이를 믿고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능력됨으로 지키게 되니 조금도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요한일서 2:4에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고 자기 자신도 속이는 것이며 그 안에는 진리가 없다고 하셨는데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있다고 하면 당연히 진리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37 이하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십계명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한 두 가지 계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즉 제1-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이고, 제5계명-10계명까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십계명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2.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셨는데 여기서 '너'란 단순히 십계명을 받은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지켜야 할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가장 첫째 되는 계명으로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명하셨을까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요, 전지전능하시며 살아 계신 참신이시고, 참 생명과 영생을 주며, 모든 우주만물과 인류 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신'이란 종교적인 대상으로 초인적인 힘, 또는 초자연적인 위력을 가진 존재, 곧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지요. 사람들은 많은 신들이 자신을 도와주면 더 좋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처를, 고목나무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북두칠성 등을 신으로 믿고 열심히 절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800만이나 되는 우상을 섬기고 있지요. 이렇게 많은 신들을 만들어 섬기는 것은 마음이 연약해서 위안을 받기 위함이요, 혹은 습관을 좇아 조상들을 따르거나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신들은 말을 하거나 능력이 있어 우리를 구원해 주고 응답하거나 온전케 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응답해 주시며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 명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며,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여 정도를 좇아 살아갑니다. 마음이 혼잡한 사람들은 여러 신에게 빌면서 섬겼지만 마음이 곧은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믿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 중엽 이순신 장군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한 분으로서 하늘에 뜻을 두고 정도를 좇아 하늘의 신 곧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게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바로 양심심판입니다. 구약시대나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도 선한 양심을 따라 신을 인정하고 정도를 좇은 사람들이 많으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양심심판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롬 2:14-15).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시험 환난이 끊이지 않고 눈물, 슬픔, 고통, 질병 가운데 늘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은 신들을 만들어 경배하지만 이것들은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신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고, 하나님과 원수된 마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로마서 1:24-25에 기록된 대로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조물주이신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6 말씀처럼 아담의 불순종 이후 이 세상을 주관하게 된 원수 마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의심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믿음을 소유 못하도록 방해하고, 죄를 짓게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망의 길로 가게 하지요. 그러므로 참신 곧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두면 그 결국은 패망임을 알아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3. 제1계명을 지킬 때 임하는 축복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영원히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섬김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이 땅에서도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하여 정욕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경배하며 섬기는 것이지요.
질서정연하게 운행되는 우주만물을 살펴보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0에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천하 만물을 보아도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으니 어느 누구도 심판 날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믿지 못했다고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명하시며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독교는 하나님만 믿으라고 하니 너무 배타적인 종교가 아닌가' 하면서 제1계명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지한 사람들을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서 나온 귀한 계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계명을 기록해 놓지 않으셨다면 마음에 정함이 없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질서 문란하게 다른 신들을 섬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점을 치고 굿을 한다거나 고사를 지내며 그 외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가 없으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살아 계신 증거를 보여 주시며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각색 병든 자를 치료해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으며, 어두운 영혼을 밝게 해 주시고 죄에서 떠나 영생을 약속하시며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주의 종과 일꾼들을 통하여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1계명의 영적인 의미를 잘 깨달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우주만물과 세계 역사,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며 담대하게 '참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라고 증거할 수 있는 복된 입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십계명의 영적 의미를 깨달아 지켜 나감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 받는 자녀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의 법도를 요약한 십계명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받고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성경을 통해 하늘나라의 법을 배우고 그대로 실천하여 만사형통한 축복과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계명을 주신 것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아 그대로 행하는 참자녀를 얻기 위함이요, 하나님의 자녀들이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주기 위함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십계명은 하나님의 법으로서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요약한 것입니다. 성경의 뼈대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을 낱낱이 풀이하여 살을 붙이면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켜야 할 율법으로 주신 것이지만, 구약시대나 오늘날이나 하나님의 자녀라면 변함없이 지켜야 할 하나님의 법도입니다. 십계명은 그만큼 중요한 하나님의 언약이요, 구원의 기초가 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십계명을 지키는 것이 매우 어려운 것처럼 생각하여 어떻게 십계명을 다 지킬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요, 그의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곧 66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며, 계명들은 우리가 지켜 행하기에 결코 무거운 것이 아닙니다(요일 5:2-3).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능히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사랑하는 연인들이 추운 겨울날 데이트를 해도 함께 사랑을 나눈다는 기쁨 때문에 추운 줄을 모르는 것처럼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고 오히려 기쁘고 즐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의 계명들을 능히 지켜 나갈 수 있는 것이요, 결국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구약시대의 율법은 자기 의지와 노력으로 행하므로 힘들었지만 신약시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셨기에 이를 믿고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능력됨으로 지키게 되니 조금도 어렵지 않은 것입니다.
요한일서 2:4에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 앞에서 거짓말하고 자기 자신도 속이는 것이며 그 안에는 진리가 없다고 하셨는데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 안에 있다고 하면 당연히 진리대로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2:37 이하에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십계명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고 말한 두 가지 계명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즉 제1-4계명까지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이고, 제5계명-10계명까지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지켜야 할 계명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들이 당연히 지켜야 할 십계명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2. 제1계명: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나님께서는 가장 먼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하셨는데 여기서 '너'란 단순히 십계명을 받은 모세나 이스라엘 백성들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계명을 지켜야 할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가장 첫째 되는 계명으로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고 명하셨을까요?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조물주는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요, 전지전능하시며 살아 계신 참신이시고, 참 생명과 영생을 주며, 모든 우주만물과 인류 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전에 '신'이란 종교적인 대상으로 초인적인 힘, 또는 초자연적인 위력을 가진 존재, 곧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심을 지식적으로는 알고 있지만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고 있지요. 사람들은 많은 신들이 자신을 도와주면 더 좋을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부처를, 고목나무나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북두칠성 등을 신으로 믿고 열심히 절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800만이나 되는 우상을 섬기고 있지요. 이렇게 많은 신들을 만들어 섬기는 것은 마음이 연약해서 위안을 받기 위함이요, 혹은 습관을 좇아 조상들을 따르거나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신들은 말을 하거나 능력이 있어 우리를 구원해 주고 응답하거나 온전케 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우리를 온전케 하시고, 응답해 주시며 구원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 명하시고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을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며, 선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인정하여 정도를 좇아 살아갑니다. 마음이 혼잡한 사람들은 여러 신에게 빌면서 섬겼지만 마음이 곧은 사람들은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바라보며 믿었던 것입니다.
조선시대 중엽 이순신 장군은 부모에게 효도하고 나라에 충성한 분으로서 하늘에 뜻을 두고 정도를 좇아 하늘의 신 곧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에게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으셨는데 바로 양심심판입니다. 구약시대나 복음이 들어오기 전에도 선한 양심을 따라 신을 인정하고 정도를 좇은 사람들이 많으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양심심판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롬 2:14-15).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는 시험 환난이 끊이지 않고 눈물, 슬픔, 고통, 질병 가운데 늘 불행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이 많은 신들을 만들어 경배하지만 이것들은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고 오히려 해를 가져다준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신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지 않고, 하나님과 원수된 마귀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것일까요?
로마서 1:24-25에 기록된 대로 사람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조물주이신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6 말씀처럼 아담의 불순종 이후 이 세상을 주관하게 된 원수 마귀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도록 의심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믿음을 소유 못하도록 방해하고, 죄를 짓게 하며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망의 길로 가게 하지요. 그러므로 참신 곧 하나님 외에 다른 신들을 두면 그 결국은 패망임을 알아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하겠습니다.
3. 제1계명을 지킬 때 임하는 축복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영원히 멸망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므로 창조주 하나님을 섬김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고 이 땅에서도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사랑하여 정욕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고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경배하며 섬기는 것이지요.
질서정연하게 운행되는 우주만물을 살펴보면 살아 계신 하나님의 무한하신 능력을 느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0에도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천하 만물을 보아도 창조주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으니 어느 누구도 심판 날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믿지 못했다고 핑계를 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명하시며 심판을 면할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기독교는 하나님만 믿으라고 하니 너무 배타적인 종교가 아닌가' 하면서 제1계명에 대하여 반론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무지한 사람들을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에서 나온 귀한 계명임을 알아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 외에 다른 신들을 두지 말라는 계명을 기록해 놓지 않으셨다면 마음에 정함이 없는 사람이나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질서 문란하게 다른 신들을 섬겼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점을 치고 굿을 한다거나 고사를 지내며 그 외 다른 신들을 섬기는 것은 결코 용납될 수가 없으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을 섬기는 것이 마땅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 살아 계신 증거를 보여 주시며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을 섬기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각색 병든 자를 치료해 주시고 죽은 자를 살리셨으며, 어두운 영혼을 밝게 해 주시고 죄에서 떠나 영생을 약속하시며 영원한 나라에 대한 소망을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주의 종과 일꾼들을 통하여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역사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1계명의 영적인 의미를 잘 깨달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우주만물과 세계 역사,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뢰하며 담대하게 '참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라고 증거할 수 있는 복된 입술이 되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