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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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04
제1과마음을 새롭게 하자
롬 12:1-2
읽을말씀 : 롬 12:1-2 | 외울말씀 : 롬 12:2
교육목표 :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 주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사람들은 새 옷이나 새 집을 갖게 되면 꿈에 부풀어 마음이 새로워지고 신선한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일시적인 것으로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퇴색하기 마련입니다. 새해를 맞아 한 해 동안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지 않으면 여전히 옛것에 속한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먹고 마시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아왔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좇아 거짓말하고 미워하며 쾌락을 좇아 살면서도 죄인 줄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를 받거나 어떤 계기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마음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믿음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 즉시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므로 열심히 변화시켜야 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 7:21, 고전 6:9).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옥토밭으로 비유해 놓으셨습니다. 길가밭은 단단하게 굳어 있는 밭으로서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전혀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밭을 말합니다. 돌밭은 싹이 나더라도 돌멩이 때문에 자라지 못합니다. 이처럼 지식적으로 말씀을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는 않으니 믿음의 확신이 없고 시험이 오면 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시떨기밭은 가시떨기로 인해 잘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서 말씀을 믿고 행한다고 해도 탐욕과 재리의 유혹, 세상의 염려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마음밭입니다.
반면 옥토밭은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밭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으로 순종하는 마음밭입니다. 옥토밭으로 마음밭을 개간하려면 무엇보다 변화되고자 하는 노력 위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농부가 묵은 밭을 옥토로 바꾸어 풍성한 수확을 거두려면 돌을 골라내고 거름을 주며 잡초를 뽑고 벌레도 잡아주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밭을 일구는 농부와 같이 마음밭을 개간하는 이 작업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된 자녀가 되기 위한 과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 안에서 묵은 밭을 개간해 가면 예전의 강퍅한 마음이 변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더러운 마음이 깨끗한 마음으로, 비진리의 마음이 진리의 마음으로, 악한 마음이 선한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설령 누가 섭섭한 말을 해도 서운해하지 않고,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대어 줍니다. 이러한 과정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야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았다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선하신 뜻
마음이 새로워지기 전에는 아무리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며 하나님의 뜻은 이러한 것'이라고 알려 주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새로워지면 성령을 통하여 깨닫게 되므로 옥토로 변화된 만큼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게 됩니다. 마가복음 10:17-18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며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예수님을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시지 않고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고 되물으십니다. 사람 중에는 선한 이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선'이란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하나님의 뜻과 생각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진리의 말씀 안에서 믿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선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이 다르며,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아무리 선한 것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선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선한 사람이라 자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니 자신이 악하고 죄인인 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음을 알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 곧 선을 좇아 살아갈 때 많은 열매를 거두며 풍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히브리서 11:6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고, 시편 37:4에는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중풍병자인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간 백부장의 믿음을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는 백부장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친히 가서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며 크게 칭찬하시고 즉시 하인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외에도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고,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어졌습니다(히 11장). 예수님의 제자들도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갔으며,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진리를 좇아 살면서 큰 믿음을 내보이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제가 파키스탄에서 연합성회를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파키스탄은 회교국가로서 기독교 성회를 연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준비했는데, 성회 당일 국민 대다수가 회교도이기 때문에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집회가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성회 장소의 문은 굳게 닫혔고, 참석하는 사람들을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경찰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저와 선교팀은 성회가 무사히 열릴 것을 믿었고 저는 "낮 12시가 되면 운동장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담대히 선포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오직 믿음으로 행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나라 권세자의 마음을 주관하여 굳게 닫힌 문이 열렸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있다 해도 행함이 없으면 온전치 못합니다. 왜냐하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약 2:26).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려면 야구에 관한 공부뿐만 아니라, 실제로 공을 던져보고 쳐 보면서 열심히 연습해야 합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행함이 동반되어야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5:48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해야지' 마음먹었으면 변개함 없이 기도하고, '기뻐해야겠다.' 했으면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변함없이 기뻐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행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내보였기에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시며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창 22:17-18).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번성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 후손으로 오셔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천하 만민이 복을 받아 영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많은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였기에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으며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맞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고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새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며, 온전한 행함으로 나타내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 주 안에서 새롭게 변화된 삶을 영위하게 한다.
사람들은 새 옷이나 새 집을 갖게 되면 꿈에 부풀어 마음이 새로워지고 신선한 기분이 든다고 합니다. 이러한 마음은 일시적인 것으로 어느 정도 세월이 지나면 퇴색하기 마련입니다. 새해를 맞아 한 해 동안 많은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새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속사람이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되지 않으면 여전히 옛것에 속한 사람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1.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이 먹고 마시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좇아 살아왔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좇아 거짓말하고 미워하며 쾌락을 좇아 살면서도 죄인 줄 모르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를 받거나 어떤 계기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영인 성령이 마음 안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믿음 안에 들어왔다고 해서 그 즉시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 아니므로 열심히 변화시켜야 합니다. 교회에 다닌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 7:21, 고전 6:9).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옥토밭으로 비유해 놓으셨습니다. 길가밭은 단단하게 굳어 있는 밭으로서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여 전혀 믿음을 갖지 못하는 사람의 마음밭을 말합니다. 돌밭은 싹이 나더라도 돌멩이 때문에 자라지 못합니다. 이처럼 지식적으로 말씀을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는 않으니 믿음의 확신이 없고 시험이 오면 넘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가시떨기밭은 가시떨기로 인해 잘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서 말씀을 믿고 행한다고 해도 탐욕과 재리의 유혹, 세상의 염려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하는 마음밭입니다.
반면 옥토밭은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밭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으로 순종하는 마음밭입니다. 옥토밭으로 마음밭을 개간하려면 무엇보다 변화되고자 하는 노력 위에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농부가 묵은 밭을 옥토로 바꾸어 풍성한 수확을 거두려면 돌을 골라내고 거름을 주며 잡초를 뽑고 벌레도 잡아주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밭을 일구는 농부와 같이 마음밭을 개간하는 이 작업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된 자녀가 되기 위한 과정인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과 성령 안에서 묵은 밭을 개간해 가면 예전의 강퍅한 마음이 변하여 온유한 마음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더러운 마음이 깨끗한 마음으로, 비진리의 마음이 진리의 마음으로, 악한 마음이 선한 마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설령 누가 섭섭한 말을 해도 서운해하지 않고,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대어 줍니다. 이러한 과정이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옥토가 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좇아야
우리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았다면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1) 하나님의 선하신 뜻
마음이 새로워지기 전에는 아무리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며 하나님의 뜻은 이러한 것'이라고 알려 주어도 이해가 되지 않고 깨달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새로워지면 성령을 통하여 깨닫게 되므로 옥토로 변화된 만큼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게 됩니다. 마가복음 10:17-18에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하며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릅니다. 그는 예수님을 좋은 일을 많이 하는 사람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시지 않고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고 되물으십니다. 사람 중에는 선한 이가 없다는 것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선'이란 진리 곧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하나님의 뜻과 생각 그 자체를 의미합니다. 진리의 말씀 안에서 믿고 순종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선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이 다르며,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아무리 선한 것도 하나님 편에서 보면 선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선한 사람이라 자처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니 자신이 악하고 죄인인 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음을 알아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 곧 선을 좇아 살아갈 때 많은 열매를 거두며 풍성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히브리서 11:6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고, 시편 37:4에는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해 주시는 분입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중풍병자인 하인의 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께 나아간 백부장의 믿음을 예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인의 병을 고쳐 달라는 백부장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님께서는 친히 가서 고쳐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은 그의 믿음을 보시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하시며 크게 칭찬하시고 즉시 하인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이외에도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는 증거를 얻었고, 믿음으로 에녹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아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어졌습니다(히 11장). 예수님의 제자들도 믿음으로 고난의 길을 갔으며, 어떤 어려움에 처해 있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인 진리를 좇아 살면서 큰 믿음을 내보이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해 주셨습니다.
제가 파키스탄에서 연합성회를 인도할 때의 일입니다. 파키스탄은 회교국가로서 기독교 성회를 연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믿음으로 준비했는데, 성회 당일 국민 대다수가 회교도이기 때문에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이유로 집회가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성회 장소의 문은 굳게 닫혔고, 참석하는 사람들을 저지하기 위해 수많은 경찰들이 동원되었습니다.
저와 선교팀은 성회가 무사히 열릴 것을 믿었고 저는 "낮 12시가 되면 운동장의 문이 열릴 것이라."고 담대히 선포했는데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상황이었지만 오직 믿음으로 행하였더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그 나라 권세자의 마음을 주관하여 굳게 닫힌 문이 열렸던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이 있다 해도 행함이 없으면 온전치 못합니다. 왜냐하면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기 때문입니다(약 2:26).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려면 야구에 관한 공부뿐만 아니라, 실제로 공을 던져보고 쳐 보면서 열심히 연습해야 합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더불어 행함이 동반되어야 완전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태복음 5:48에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기도해야지' 마음먹었으면 변개함 없이 기도하고, '기뻐해야겠다.' 했으면 어떤 환난이 다가와도 변함없이 기뻐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행함으로 온전한 믿음을 내보였기에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시며 크게 축복해 주셨습니다(창 22:17-18).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같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번성하였고, 예수 그리스도가 그 후손으로 오셔서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천하 만민이 복을 받아 영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많은 복을 받은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였기에 의롭다 하심을 얻고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으며 믿음의 조상이 되는 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해를 맞아 마음을 새롭게 하여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고 무엇보다도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새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며, 온전한 행함으로 나타내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12-28
제51과다시 오실 주님
마 24:32-35
읽을말씀 : 마 24:32-35 | 외울말씀 : 계 22:20
교육목표 : 성경을 통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믿게 하고 재림에 대한 성경의 예언과 오늘날 그 징조들을 통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한다.
1. 성취될 재림의 사건
2천여 년 전,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는 하늘로 올라 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시게 되는데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행 1:11).
성경의 예언들은 기록된 대로 다 이루어져 왔으며 오직 주님의 공중 강림과 7년 환난, 지상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등 앞으로 이루어질 몇 가지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부활을 믿으며 재림과 천국을 믿기 때문에 천국의 소망 가운데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19을 보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아니하기에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등 하나님 앞에서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희생하며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언제 어떻게 재림하실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성도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림을 사모하기는커녕 재림에 대해 증거하면 두려워하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증거하는 사람들을 이단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이라면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깨달아 깨어 있게 됩니다. 만약 깨어 있지 않으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여 구원에 이를 수 없게 되기 때문이지요.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을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멋있고 웅장한 영광과 승리의 모습으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에 과연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다가 죽은 사람은 주님의 공중 재림 때 부활할 것이기에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잠자는 자"라고 부릅니다(고전 15:20). 이러한 자들의 영혼은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함께 데리고 오시며, 이때 무덤에 장사되었던 육은 썩지 아니할 육으로 부활하여 공중으로 끌어 올려지고 주님과 함께 온 영혼과 결합되어 완전한 부활체를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살전 4:14-16).
2)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남은 자의 휴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부활되면, 다음에는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서 아직 이 땅에 살아 있는 사람이 홀연히 변화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고전 15:51-52, 살전 4:17).
우리는 자연 속에서도 부활과 휴거에 대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던 굼벵이나 구더기가 매미나 파리로 변화되는 모습을 통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시니 그것이 안개가 되어 비를 이루는 모습을 통해서도(욥 36:27) 상상해 볼 수 있지요. 이렇듯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는 부활하는 것과 휴거 곧 공중으로 들림 받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2. 재림에 대한 성경적 예언
아모스 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셨고, 베드로후서 3:8에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인류의 오랜 역사 가운데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재림은 더욱 임박한 사실이며 하나님 편에서도 재림은 속히 이루어질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주님께서 속히 오실 것에 대해 곳곳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37에는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고, 요한계시록 3:11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재림의 때가 가까움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전하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은 물론이려니와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시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켜 행하는 알곡 신자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리지만, 세상과 짝하며 사는 쭉정이 신자는 재림이 두렵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주님께서 신랑이 되시고 믿는 자는 신부라고 하였는데 어찌 신랑이 오기를 사모하지 않는 신부가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깨어 있는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기도하고 있기에 때가 가까움을 깨닫고 열심히 신부단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마태복음 24:36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말씀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몇 월 며칠 몇 시에 오신다"고 하며 미혹게 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지만 어두움에 있으면 도적같이 임한다(살전 5:2-4)는 사실을 깨달아 항상 깨어 근신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세상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인이었던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기에 하나님께서 홍수에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도록 명하신 것에 순종하였고, 결국 노아와 그의 가족은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적 사실을 통해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무화과나무의 비유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대로 무화과나무에 내린 저주는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이루어졌고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말씀하셨으니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1:18-19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말씀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없고 지식적인 믿음 속에 형식적인 율법만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약 2:17),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마 7:21)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그 피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가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고 말았습니다(마 27:25).
그리하여 AD 70년 경,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여 이스라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마 24:2, 요 19:23). 그 당시 로마가 성전 훼파의 기념으로 남겨 둔 서쪽 성벽의 일부는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눈물로 기도하는 장소인 통곡의 벽으로 남아 역사적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민족은 끝까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율법을 지켜 행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학살을 당하는 등 참으로 처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찾으니 마침내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셨습니다. 1948년 5월 14일, 황무한 사막 가운데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땅에 이스라엘을 세워 주신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부상시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사 49:8, 겔 38:8).
이처럼 완전히 멸망해 버렸던 이스라엘이 약 190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세워졌다는 것은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 것이며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놀라운 사건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이 무성하여지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같이, 이스라엘이 독립하여 선진국이 되었으니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루어질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이 세대란 이스라엘이 독립해 살고 있는 현 세대를 지칭하거나 이스라엘의 희년으로 모든 것이 회복되어 자유를 누리는 기쁘고 즐거운 해 등 몇 가지 해석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나타나는 많은 징조들을 통해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이르렀음을 깨달아 늘 깨어 기도하며 신부단장을 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성경을 통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믿게 하고 재림에 대한 성경의 예언과 오늘날 그 징조들을 통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한다.
1. 성취될 재림의 사건
2천여 년 전,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부활 승천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는 하늘로 올라 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시게 되는데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행 1:11).
성경의 예언들은 기록된 대로 다 이루어져 왔으며 오직 주님의 공중 강림과 7년 환난, 지상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등 앞으로 이루어질 몇 가지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부활을 믿으며 재림과 천국을 믿기 때문에 천국의 소망 가운데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19을 보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아니하기에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등 하나님 앞에서 책망 받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희생하며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언제 어떻게 재림하실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성도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림을 사모하기는커녕 재림에 대해 증거하면 두려워하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증거하는 사람들을 이단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이라면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깨달아 깨어 있게 됩니다. 만약 깨어 있지 않으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여 구원에 이를 수 없게 되기 때문이지요.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을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멋있고 웅장한 영광과 승리의 모습으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에 과연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다가 죽은 사람은 주님의 공중 재림 때 부활할 것이기에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잠자는 자"라고 부릅니다(고전 15:20). 이러한 자들의 영혼은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함께 데리고 오시며, 이때 무덤에 장사되었던 육은 썩지 아니할 육으로 부활하여 공중으로 끌어 올려지고 주님과 함께 온 영혼과 결합되어 완전한 부활체를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살전 4:14-16).
2)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남은 자의 휴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부활되면, 다음에는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서 아직 이 땅에 살아 있는 사람이 홀연히 변화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고전 15:51-52, 살전 4:17).
우리는 자연 속에서도 부활과 휴거에 대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꿈틀거리며 기어 다니던 굼벵이나 구더기가 매미나 파리로 변화되는 모습을 통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시니 그것이 안개가 되어 비를 이루는 모습을 통해서도(욥 36:27) 상상해 볼 수 있지요. 이렇듯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는 부활하는 것과 휴거 곧 공중으로 들림 받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2. 재림에 대한 성경적 예언
아모스 3:7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하셨고, 베드로후서 3:8에는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고 하셨습니다. 따라서 인류의 오랜 역사 가운데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재림은 더욱 임박한 사실이며 하나님 편에서도 재림은 속히 이루어질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주님께서 속히 오실 것에 대해 곳곳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37에는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고, 요한계시록 3:11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재림의 때가 가까움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전하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은 물론이려니와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시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켜 행하는 알곡 신자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리지만, 세상과 짝하며 사는 쭉정이 신자는 재림이 두렵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주님께서 신랑이 되시고 믿는 자는 신부라고 하였는데 어찌 신랑이 오기를 사모하지 않는 신부가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깨어 있는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기도하고 있기에 때가 가까움을 깨닫고 열심히 신부단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마태복음 24:36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말씀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몇 월 며칠 몇 시에 오신다"고 하며 미혹게 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지만 어두움에 있으면 도적같이 임한다(살전 5:2-4)는 사실을 깨달아 항상 깨어 근신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세상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인이었던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기에 하나님께서 홍수에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도록 명하신 것에 순종하였고, 결국 노아와 그의 가족은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적 사실을 통해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무화과나무의 비유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대로 무화과나무에 내린 저주는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이루어졌고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말씀하셨으니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1:18-19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말씀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없고 지식적인 믿음 속에 형식적인 율법만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약 2:17),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마 7:21)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그 피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가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고 말았습니다(마 27:25).
그리하여 AD 70년 경,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여 이스라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마 24:2, 요 19:23). 그 당시 로마가 성전 훼파의 기념으로 남겨 둔 서쪽 성벽의 일부는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눈물로 기도하는 장소인 통곡의 벽으로 남아 역사적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민족은 끝까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율법을 지켜 행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학살을 당하는 등 참으로 처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찾으니 마침내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셨습니다. 1948년 5월 14일, 황무한 사막 가운데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땅에 이스라엘을 세워 주신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부상시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사 49:8, 겔 38:8).
이처럼 완전히 멸망해 버렸던 이스라엘이 약 190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세워졌다는 것은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 것이며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놀라운 사건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이 무성하여지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같이, 이스라엘이 독립하여 선진국이 되었으니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루어질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이 세대란 이스라엘이 독립해 살고 있는 현 세대를 지칭하거나 이스라엘의 희년으로 모든 것이 회복되어 자유를 누리는 기쁘고 즐거운 해 등 몇 가지 해석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나타나는 많은 징조들을 통해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이르렀음을 깨달아 늘 깨어 기도하며 신부단장을 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007-12-21
제50과주님은 누구의 구주이신가?
마 2:1-12
읽을말씀 : 마 2:1-12 | 외울말씀 : 마 2:11
교육목표 :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왜 구유에서 태어나셔야 했으며 동방박사들로부터 세 가지 예물을 받으신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한다.
1.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자녀들뿐 아니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세계인의 축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렸습니다. 온 인류에게 예수님의 탄생은 축복이요, 하나님께 영광인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으로 성령으로 잉태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마 1:21).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호화로운 곳에서 나신 것이 아니라,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누가복음 2:3-7에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므로 마리아도 요셉과 함께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베들레헴으로 올라가다가 해산할 날이 차서 아들을 낳았으나 사관에 있을 곳이 없어서 아기 예수를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2천여 전,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에서 태어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후로부터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게 되었고 혼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되므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졌던 것입니다. 영이 죽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죄 가운데 거하며 짐승과 다름없이 정욕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유익을 좇아 도덕과 윤리를 무시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후 혼의 사람이 되어 버린 인류를 다시금 영의 사람으로 변화시켜서 하나님과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헐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참된 양식, 곧 영의 양식이 되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사람의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요한복음 6:51-55에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이 죽어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 사람을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자녀로 변화시켜 주시기 위해 친히 영의 양식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영의 양식을 먹고 죄 사함을 받으며 참생명을 얻어 영생하게 하신 하나님의 깊고도 놀라운 사랑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1-12에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으며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노라 합니다. 그러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고 헤롯은 동방박사에게 아기 예수를 찾거든 알려 달라고 하지요. 헤롯 왕이 아기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박사들의 꿈에 헤롯 왕에게 가지 말라 하셨고, 요셉에게 역사하셔서 애굽으로 피신하게 하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았던 것처럼 영안이 열린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경배하였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 대제사장들이나 왕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정작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으로도 가장 낮은 계층인 양치는 목자들은 그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외에도 의롭고 경건하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과 나이 많아 늙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경외한 안나 선지자는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날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속히 오실 주님을 증거하지만(계 22:20), 마음 중심에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 하나님께서 예언해 놓으신 모든 말씀은 알았어도 막상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지 못했던 외식주의자들처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속히 오실 주님을 마음 중심에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3. 세 가지 예물의 영적인 의미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은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세 가지 예물을 드린 영적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1) 황금의 의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하는데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하셨듯이(마 6:21) 황금은 마음을 뜻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풍족하였으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들이 저주를 받아 가난과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난을 대속해 주시기 위해 보잘것없는 짐승의 구유에 누이셨고 오히려 우리를 부요케 하신 것입니다(고후 8:9). 동방박사들이 예물로 드린 황금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주시며 영원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선물로 주신다는 뜻입니다.
2) 유향의 의미
유향이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주는 것으로 영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죄악들을 대속해 주신 것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23:27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했습니다. 마태복음 15:11에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 것인가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성결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3) 몰약의 의미
몰약은 고대로부터 방향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즙액은 향수, 의료품, 구강 소독 등에 쓰이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썩지 않게 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호의호식하며 산다 해도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므로 몰약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이 영원히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영생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4. 성탄절의 영적인 의미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며 경배한 동방박사들은 온 인류를 대표하여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만인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시는 분이므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을 뿐 아니라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렸듯이 세상의 부귀, 영화, 명예를 주님 앞에 드리고 영원히 썩지 아니할 천국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향 곧 우리의 마음을 모두 주님께 드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또한 몰약, 곧 우리의 썩어 없어질 육체를 주님께 온전히 드림으로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생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더욱이 성탄절을 앞두고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황금과 유향, 몰약이 뜻하는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참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며 즐거운 성탄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눅 2:14)
교육목표 :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왜 구유에서 태어나셔야 했으며 동방박사들로부터 세 가지 예물을 받으신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한다.
1.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을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자녀들뿐 아니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세계인의 축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렸습니다. 온 인류에게 예수님의 탄생은 축복이요, 하나님께 영광인 것입니다.
'예수'의 이름에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으로 성령으로 잉태되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마 1:21).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호화로운 곳에서 나신 것이 아니라,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누가복음 2:3-7에 '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므로 마리아도 요셉과 함께 갈릴리 나사렛에서 유대 베들레헴으로 올라가다가 해산할 날이 차서 아들을 낳았으나 사관에 있을 곳이 없어서 아기 예수를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2천여 전, 온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구유에서 태어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 후로부터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첫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게 되었고 혼의 지배를 받는 사람이 되므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졌던 것입니다. 영이 죽으니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죄 가운데 거하며 짐승과 다름없이 정욕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유익을 좇아 도덕과 윤리를 무시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까.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신 후 혼의 사람이 되어 버린 인류를 다시금 영의 사람으로 변화시켜서 하나님과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헐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참된 양식, 곧 영의 양식이 되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에는 사람의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담겨 있습니다. 요한복음 6:51-55에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이 죽어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 사람을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자녀로 변화시켜 주시기 위해 친히 영의 양식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영의 양식을 먹고 죄 사함을 받으며 참생명을 얻어 영생하게 하신 하나님의 깊고도 놀라운 사랑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1-12에 동방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으며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노라 합니다. 그러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고 헤롯은 동방박사에게 아기 예수를 찾거든 알려 달라고 하지요. 헤롯 왕이 아기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박사들의 꿈에 헤롯 왕에게 가지 말라 하셨고, 요셉에게 역사하셔서 애굽으로 피신하게 하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았던 것처럼 영안이 열린 사람들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경배하였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 대제사장들이나 왕이라 할지라도 그들은 정작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가난하고 소외된 사회적으로도 가장 낮은 계층인 양치는 목자들은 그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외에도 의롭고 경건하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과 나이 많아 늙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과 기도로 하나님을 경외한 안나 선지자는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오늘날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속히 오실 주님을 증거하지만(계 22:20), 마음 중심에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 하나님께서 예언해 놓으신 모든 말씀은 알았어도 막상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지 못했던 외식주의자들처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속히 오실 주님을 마음 중심에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3. 세 가지 예물의 영적인 의미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은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세 가지 예물을 드린 영적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1) 황금의 의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하는데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 하셨듯이(마 6:21) 황금은 마음을 뜻합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풍족하였으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들이 저주를 받아 가난과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난을 대속해 주시기 위해 보잘것없는 짐승의 구유에 누이셨고 오히려 우리를 부요케 하신 것입니다(고후 8:9). 동방박사들이 예물로 드린 황금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구세주로 영접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주시며 영원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는 천국을 선물로 주신다는 뜻입니다.
2) 유향의 의미
유향이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주는 것으로 영적으로는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죄악들을 대속해 주신 것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23:27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했습니다. 마태복음 15:11에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 것인가를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해 주시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성결의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3) 몰약의 의미
몰약은 고대로부터 방향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즙액은 향수, 의료품, 구강 소독 등에 쓰이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썩지 않게 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사람은 아무리 호의호식하며 산다 해도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므로 몰약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이 영원히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영생에 이르게 하시는 것입니다.
4. 성탄절의 영적인 의미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께 예물을 드리며 경배한 동방박사들은 온 인류를 대표하여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조건 만인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시는 분이므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을 뿐 아니라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렸듯이 세상의 부귀, 영화, 명예를 주님 앞에 드리고 영원히 썩지 아니할 천국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향 곧 우리의 마음을 모두 주님께 드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또한 몰약, 곧 우리의 썩어 없어질 육체를 주님께 온전히 드림으로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생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더욱이 성탄절을 앞두고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황금과 유향, 몰약이 뜻하는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참자녀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넘치게 받으시며 즐거운 성탄절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눅 2:14)
2007-12-14
제49과열재앙(9) - 구원받는 길 -
출 12:1-4
읽을말씀 : 출 12:1-4 | 외울말씀 : 엡 6:14-17
교육목표 : 열 재앙 중 마지막 장자의 재앙이 임하기 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원한 규례로 지킬 것을 명하신 유월절 의식을 통해 구원의 길을 알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한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재앙을 면하고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길, 곧 유월절 의식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몇 주간에 걸쳐 유월절과 할례, 성찬 예식과의 연관성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온전한 구원의 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증거하겠습니다.
1. 유월절 규례 제정
출애굽기 12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하는지 유월절에 대한 규례가 나와 있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세상에서 구원받아 축복된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론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월절의 규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2:1-14을 보면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달이 되게 하고… 이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지니…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이달 십사 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요 1:29, 계 5:6),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되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급히 먹고 마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12:15-20을 보면 "너희는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 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그달 십사 일 저녁부터 이십일 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첫날이란 구원받은 날을 의미하므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에 이른 후에도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무교병을 먹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세상을 버리고 좁은 길을 간다는 뜻인데 만일 무교병을 먹지 않고 유교병을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는 세상을 버리지 않고 넓은 길로 가는 것이므로 당연히 구원에 이르지 못하지요. 그래서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는 것은 금식을 대신하는 것이요, 자신을 낮추고 겸비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자신을 낮추고 겸비한 마음으로 좁은 길을 가야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은혜받을 때요, 구원의 날인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금식하는 마음으로 겸비한 자세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좁은 길인 빛 가운데 가야 하지요. 노아 때처럼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며 그저 방탕하게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은 무교병이 아닌 유교병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끊어지는 것임을 알아 유월절의 규례를 지키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온전한 구원의 길
출애굽기 12:8 이하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 주신 구원의 길에 대한 핵심 내용이 나옵니다.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급히 먹으라"고 했는데 과연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어린 양을 통째로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66권 말씀을 통째로 먹으라는 것입니다. '머리'는 상체를, '정강이'는 하체를, '내장'은 중앙을 뜻합니다. 머리와 내장과 정강이를 다 먹으라는 것은 어린 양을 통째로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셨는데 만일 그대로 행하면 손해를 보니 이 말씀은 먹지 않겠다고 하면 이것이 바로 어린 양을 통째로 먹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대로 유익된 것만 양식을 삼는다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요.
둘째로, 하나님 앞에 드릴 때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온전히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반면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으며,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거나 거역하면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에도 성령을 거슬려 온전히 드리지 못하고 일부분만 드리면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고 받지 않으십니다. 사도행전 5:1-11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렇게 행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약속한 것과 성령이 주관한 것, 그리고 십일조도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할 때 자신뿐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도 지켜 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이 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기도에 대한 응답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는 것입니다.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66권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을 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이해와 함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거룩한 날이므로 예배 시간에 졸거나 어떤 잡념도 없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온전히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각종 사고로부터 지켜 주시며 한 주간 형통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만일 예배 시간에 지각한다면 머리 부분을 먹지 않는 것이요, 예배가 마치기 전에 나간다면 정강이를 먹지 못하는 것이며, 설교 시간에 나갔다가 끝날 때쯤 해서 들어오는 사람은 내장을 먹지 않은 것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를 드려야겠습니다.
넷째로, 주님께서 구원의 길을 온전히 이루셨다는 뜻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인류 구원의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로 예비되었다가 때가 이르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으며, 다시 오셔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출애굽기 12:10을 보면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말씀하십니다. 아침이란 영적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의미합니다. 주님의 재림 이전에 성경 66권의 말씀을 양식삼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러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먹고 양식삼은 사람이라면 성결을 이루어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온전히 진리를 양식삼은 사람은 주님께서 하나님과 하나인 것처럼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12:11에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했는데 이는 출애굽하기 위해서, 즉 세상에서 구원받고 가나안 땅을 향해 가기 위해서 완전히 준비를 갖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에베소서 6:14-16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했는데 이는 방패로 화살과 칼을 막아 생명을 보전하듯이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믿음으로 보전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으로만이 의롭다 함을 받고,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지팡이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믿음의 증거로 사람이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을 의지하는 지팡이를 주셨습니다. 당시는 성령을 받은 시대가 아니기에 눈에 보이는 표적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일 믿음의 지팡이를 주시고 믿음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부지런히 진리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중에 마지막 장자의 재앙을 내리시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재앙을 면할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즉 유월절 의식으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에 바르고 문 밖에 나오지 말고 집 안에서 어린 양의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피로 죄사함을 받고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보혈의 피를 의지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겸비한 자세로 열심히 예배를 드리며 부지런히 어린 양의 살 곧 진리 말씀을 듣고 행하며 부지런히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당시 할례받은 사람만이 유월절 의식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도 계속해서 마음에 할례를 받아 나가는 사람이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즉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면서 육체의 일, 육신의 일들을 벗어버리고 계속해서 성결되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의 할례를 받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열 재앙 중 마지막 장자의 재앙이 임하기 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원한 규례로 지킬 것을 명하신 유월절 의식을 통해 구원의 길을 알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한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재앙을 면하고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제시하신 구원의 길, 곧 유월절 의식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몇 주간에 걸쳐 유월절과 할례, 성찬 예식과의 연관성에 대하여 살펴보았는데, 오늘은 출애굽기 12장에 나오는 온전한 구원의 길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증거하겠습니다.
1. 유월절 규례 제정
출애굽기 12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종 모세를 통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어떠한 준비를 해야 하는지 유월절에 대한 규례가 나와 있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세상에서 구원받아 축복된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방법론이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월절의 규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출애굽기 12:1-14을 보면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달로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달이 되게 하고… 이달 열흘에 너희 매인이 어린 양을 취할지니… 어린 양은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되… 이달 십사 일까지 간직하였다가 해 질 때에… 그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 했습니다. 여기서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요 1:29, 계 5:6),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되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까지 급히 먹고 마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12:15-20을 보면 "너희는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그 첫날에 누룩을 너희 집에서 제하라 무릇 첫날부터 칠 일까지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쳐지리라… 너희는 무교절을 지키라… 그달 십사 일 저녁부터 이십일 일 저녁까지 너희는 무교병을 먹을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첫날이란 구원받은 날을 의미하므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에 이른 후에도 무교병을 먹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무교병을 먹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세상을 버리고 좁은 길을 간다는 뜻인데 만일 무교병을 먹지 않고 유교병을 먹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이는 세상을 버리지 않고 넓은 길로 가는 것이므로 당연히 구원에 이르지 못하지요. 그래서 유교병을 먹는 자는 이스라엘에서 끊어지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무교병과 쓴 나물을 먹는 것은 금식을 대신하는 것이요, 자신을 낮추고 겸비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자신을 낮추고 겸비한 마음으로 좁은 길을 가야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은혜받을 때요, 구원의 날인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되겠습니까?
금식하는 마음으로 겸비한 자세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즉 좁은 길인 빛 가운데 가야 하지요. 노아 때처럼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며 그저 방탕하게 멸망의 길로 가는 사람들은 무교병이 아닌 유교병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구원받지 못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완전히 끊어지는 것임을 알아 유월절의 규례를 지키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온전한 구원의 길
출애굽기 12:8 이하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알려 주신 구원의 길에 대한 핵심 내용이 나옵니다.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급히 먹으라"고 했는데 과연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어린 양을 통째로 먹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에 이르기까지 성경 66권 말씀을 통째로 먹으라는 것입니다. '머리'는 상체를, '정강이'는 하체를, '내장'은 중앙을 뜻합니다. 머리와 내장과 정강이를 다 먹으라는 것은 어린 양을 통째로 먹으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예수님께서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말씀하셨는데 만일 그대로 행하면 손해를 보니 이 말씀은 먹지 않겠다고 하면 이것이 바로 어린 양을 통째로 먹지 않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대로 유익된 것만 양식을 삼는다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요.
둘째로, 하나님 앞에 드릴 때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온전히 드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에게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셔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면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반면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으며,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거나 거역하면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에도 성령을 거슬려 온전히 드리지 못하고 일부분만 드리면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시고 받지 않으십니다. 사도행전 5:1-11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렇게 행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약속한 것과 성령이 주관한 것, 그리고 십일조도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온전한 십일조를 할 때 자신뿐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도 지켜 주시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이 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신뢰와 사랑을 받을 수 있으며 기도에 대한 응답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라는 것입니다.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66권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을 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예배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께 대한 바른 이해와 함께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예배하는 것을 말합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거룩한 날이므로 예배 시간에 졸거나 어떤 잡념도 없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며 온전히 십일조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각종 사고로부터 지켜 주시며 한 주간 형통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만일 예배 시간에 지각한다면 머리 부분을 먹지 않는 것이요, 예배가 마치기 전에 나간다면 정강이를 먹지 못하는 것이며, 설교 시간에 나갔다가 끝날 때쯤 해서 들어오는 사람은 내장을 먹지 않은 것이 된다는 것을 깨달아 하나님께 온전히 예배를 드려야겠습니다.
넷째로, 주님께서 구원의 길을 온전히 이루셨다는 뜻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인류 구원의 시작과 끝이 되십니다.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로 예비되었다가 때가 이르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하여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으며, 다시 오셔서 구원받은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출애굽기 12:10을 보면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말씀하십니다. 아침이란 영적으로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의미합니다. 주님의 재림 이전에 성경 66권의 말씀을 양식삼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러야 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다 먹고 양식삼은 사람이라면 성결을 이루어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온전히 진리를 양식삼은 사람은 주님께서 하나님과 하나인 것처럼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출애굽기 12:11에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했는데 이는 출애굽하기 위해서, 즉 세상에서 구원받고 가나안 땅을 향해 가기 위해서 완전히 준비를 갖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신약에 와서는 에베소서 6:14-16에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했는데 이는 방패로 화살과 칼을 막아 생명을 보전하듯이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믿음으로 보전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믿음으로만이 의롭다 함을 받고,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지팡이는 '믿음'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믿음의 증거로 사람이 넘어지지 않으려고 몸을 의지하는 지팡이를 주셨습니다. 당시는 성령을 받은 시대가 아니기에 눈에 보이는 표적이 필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일 믿음의 지팡이를 주시고 믿음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게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부지런히 진리의 말씀을 듣고 행하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중에 마지막 장자의 재앙을 내리시기 전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재앙을 면할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즉 유월절 의식으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에 바르고 문 밖에 나오지 말고 집 안에서 어린 양의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피로 죄사함을 받고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님의 보혈의 피를 의지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들어와 겸비한 자세로 열심히 예배를 드리며 부지런히 어린 양의 살 곧 진리 말씀을 듣고 행하며 부지런히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그 당시 할례받은 사람만이 유월절 의식에 참여할 수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도 계속해서 마음에 할례를 받아 나가는 사람이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즉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면서 육체의 일, 육신의 일들을 벗어버리고 계속해서 성결되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마음의 할례를 받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12-07
제48과열재앙(8) - 유월절과 성찬예식 -
출 12:21-28, 43-51
읽을말씀 : 출 12:21-28, 43-51 | 외울말씀 : 요 6:53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명하신 유월절 의식과 성찬예식의 연관성을 살펴 보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한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을 면하고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구원의 길, 곧 유월절 의식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할례받지 않으면 유월절 의식을 지킬 수 있는 자격이 없으므로 구원받지 못하고 죽임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할례는 생명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것이므로 오늘은 구약시대의 할례와 유월절이 오늘날의 성찬예식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할례와 유월절의 연관성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창대케 해 주리라" 언약하시며,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나리라" 축복해 주셨습니다(창 15:5, 17:6).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짐으로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7:14을 보면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말씀하시며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만일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끊어져서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7:9을 통하여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은 유월절 예식에 참여할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출애굽기 12:43-49을 보면 "유월절 규례가 이러하니라 …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우거한 이방인에게나 이 법이 동일하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유월절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중에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을 면할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출애굽기 12:1-4에 기록된 유월절 의식으로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에 바르고 문밖에 나오지 말고 집 안에서 어린 양의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피로 죄사함을 받고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유월절 의식은 구원을 받기 위한 순간의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유월절 의식에 참여했다고 해서 영원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유월절 의식은 행위적인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음이 깨끗해서도 온전해서도 아니요, 단지 하나님께로부터 보호를 받는 선민이기 때문에 할례를 받고 매번 유월절 의식에 참여하면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인 오늘날은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잠 4:23, 롬 10:10).
구약시대는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그 당시 고비를 넘기는 것뿐이었지만 신약시대는 마음의 할례를 받아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켜야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 당시만 재앙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면하기 위하여 수시로 마음의 할례를 받아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약시대에 행해진 육신의 할례는 한 번으로 끝나지만 마음의 할례는 계속적으로 해 가야 합니다. 육신에 할례를 행하면 질병이 예방되고 냄새도 나지 않으므로 사람에게 유익이 되듯이 마음의 할례를 행하면 죄를 지을 리 없고 마음에서 악취가 날 리도 없으니(마 15:18-19) 결국은 성결을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고 그 즉시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40년의 연단의 과정이 필요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의 할례를 행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마음이 온전히 진리로 채워져 성결되면 온전한 할례를 받은 것이요,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7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옛 구습을 버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유월절 양은 십자가를 지시고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2장을 보면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로 구원받았습니다. 어린 양을 잡아 아침이 되기 전까지 다 먹으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오늘날 구약의 모든 행위적인 것들은 내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감으로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11을 보면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손으로 할례를 행했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마음의 할례이므로 육적인 몸을 벗는 것이 됩니다. 즉 육체의 일, 육신의 일 등 마음에 추하고 더러운 육적인 때를 벗는 것으로 곧 그리스도의 할례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 7:51에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귀로 듣고 마음에 양식을 삼을 수가 있으므로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좇게 되면 자연히 마음과 귀에 할례를 하게 되는데, 목이 곧고 교만한 사람은 항상 성령을 거슬러 세상 법도인 육체의 소욕을 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깨달아 기필코 마음의 할례를 행하여 구원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2. 할례와 유월절, 성찬예식과의 연관성
고린도전서 11:23-26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잘 잊어버리므로 매년 생일을 기념하여 망각하지 않듯이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주의 죽으심을 기억하도록 성례전을 마련하시고 영원히 지키며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약 2천 년 전에 주님께서는 멸망의 길로 가는 우리의 죄를 대신 져 주시기 위해 양손, 양발에 못 박히시고 옆구리를 창으로 찔리셔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기까지 고난을 당하시며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복하여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왜 주님이 이렇게 피를 흘리셔야 했는가를 되새겨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6:53에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말씀했으니 진리의 말씀을 먹고 소화시킴으로 죄악된 모습을 벗고 성결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 살지 아니하면 그 안에 생명이 없으니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양식 삼으면서 계속하여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할례받은 사람이라야 유월절 의식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월절은 구원의 표시가 되며 이스라엘 선민들을 장자의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출애굽할 수 있게 해 주신 구원의 예식인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찬예식과 결부되는데 애굽 곧 세상에서 멸망의 길로 가고 있던 우리가 어린 양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출애굽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니 하나님의 백성으로 환원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받은 사람은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온전한 할례, 즉 영원한 구원을 받는 사람만이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히 구원받기 위하여 가나안 땅을 향해 광야를 행진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지요. 유월절은 출애굽하기 위한, 장자의 재앙을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인 구원이요, 온전히 구원에 이르기까지, 즉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어도 마음에 할례를 해 가지 않는 사람은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27 이하에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말씀하신 대로 자신을 돌아보아 죄가 없는 깨끗한 중심으로 성례전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통해 할례가 유월절과 연관이 되고 유월절은 성찬예식과 연관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생명이 있고 구원에 이를 수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계속하여 마음을 할례해 나감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명하신 유월절 의식과 성찬예식의 연관성을 살펴 보면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한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을 면하고 구원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명하신 구원의 길, 곧 유월절 의식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할례받지 않으면 유월절 의식을 지킬 수 있는 자격이 없으므로 구원받지 못하고 죽임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할례는 생명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것이므로 오늘은 구약시대의 할례와 유월절이 오늘날의 성찬예식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할례와 유월절의 연관성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창대케 해 주리라" 언약하시며,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나리라" 축복해 주셨습니다(창 15:5, 17:6). 하나님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그대로 이루어짐으로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 되었습니다.
창세기 17:14을 보면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말씀하시며 언약의 표징으로 할례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만일 순종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끊어져서 구원받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17:9을 통하여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 할례 받지 않은 사람은 유월절 예식에 참여할 자격도 주어지지 않았으므로 출애굽기 12:43-49을 보면 "유월절 규례가 이러하니라 …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지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우거한 이방인에게나 이 법이 동일하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유월절이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리셨는데 그 중에 마지막 재앙인 장자의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을 면할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출애굽기 12:1-4에 기록된 유월절 의식으로서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에 바르고 문밖에 나오지 말고 집 안에서 어린 양의 고기를 먹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피로 죄사함을 받고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유월절 의식은 구원을 받기 위한 순간의 사건이었습니다. 이는 유월절 의식에 참여했다고 해서 영원한 구원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영원한 구원을 받았다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가나안 땅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유월절 의식은 행위적인 구원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마음이 깨끗해서도 온전해서도 아니요, 단지 하나님께로부터 보호를 받는 선민이기 때문에 할례를 받고 매번 유월절 의식에 참여하면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인 오늘날은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잠 4:23, 롬 10:10).
구약시대는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발라 그 당시 고비를 넘기는 것뿐이었지만 신약시대는 마음의 할례를 받아 생명의 근원인 마음을 지켜야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 당시만 재앙을 면하는 것이 아니라 항상 면하기 위하여 수시로 마음의 할례를 받아 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구약시대에 행해진 육신의 할례는 한 번으로 끝나지만 마음의 할례는 계속적으로 해 가야 합니다. 육신에 할례를 행하면 질병이 예방되고 냄새도 나지 않으므로 사람에게 유익이 되듯이 마음의 할례를 행하면 죄를 지을 리 없고 마음에서 악취가 날 리도 없으니(마 15:18-19) 결국은 성결을 이루게 됩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고 그 즉시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서 40년의 연단의 과정이 필요했듯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음의 할례를 행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신앙생활입니다.
마음이 온전히 진리로 채워져 성결되면 온전한 할례를 받은 것이요,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7에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어 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이 되셨느니라"는 말씀대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옛 구습을 버리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유월절 양은 십자가를 지시고 피 흘려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2장을 보면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로 구원받았습니다. 어린 양을 잡아 아침이 되기 전까지 다 먹으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오늘날 구약의 모든 행위적인 것들은 내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감으로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2:11을 보면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손으로 할례를 행했지만 신약시대에 와서는 마음의 할례이므로 육적인 몸을 벗는 것이 됩니다. 즉 육체의 일, 육신의 일 등 마음에 추하고 더러운 육적인 때를 벗는 것으로 곧 그리스도의 할례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사도행전 7:51에는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귀로 듣고 마음에 양식을 삼을 수가 있으므로 우리가 성령의 소욕을 좇게 되면 자연히 마음과 귀에 할례를 하게 되는데, 목이 곧고 교만한 사람은 항상 성령을 거슬러 세상 법도인 육체의 소욕을 좇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출애굽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을 깨달아 기필코 마음의 할례를 행하여 구원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2. 할례와 유월절, 성찬예식과의 연관성
고린도전서 11:23-26을 보면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하였습니다.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잘 잊어버리므로 매년 생일을 기념하여 망각하지 않듯이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주의 죽으심을 기억하도록 성례전을 마련하시고 영원히 지키며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약 2천 년 전에 주님께서는 멸망의 길로 가는 우리의 죄를 대신 져 주시기 위해 양손, 양발에 못 박히시고 옆구리를 창으로 찔리셔서 물과 피를 다 쏟으시기까지 고난을 당하시며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복하여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왜 주님이 이렇게 피를 흘리셔야 했는가를 되새겨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6:53에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말씀했으니 진리의 말씀을 먹고 소화시킴으로 죄악된 모습을 벗고 성결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그러나 진리 안에 살지 아니하면 그 안에 생명이 없으니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양식 삼으면서 계속하여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는 할례받은 사람이라야 유월절 의식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유월절은 구원의 표시가 되며 이스라엘 선민들을 장자의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출애굽할 수 있게 해 주신 구원의 예식인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찬예식과 결부되는데 애굽 곧 세상에서 멸망의 길로 가고 있던 우리가 어린 양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출애굽하여 구원에 이르게 되니 하나님의 백성으로 환원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받은 사람은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이 있습니다. 온전한 할례, 즉 영원한 구원을 받는 사람만이 유월절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영원히 구원받기 위하여 가나안 땅을 향해 광야를 행진해 가는 과정이 필요하지요. 유월절은 출애굽하기 위한, 장자의 재앙을 모면하기 위한, 일시적인 구원이요, 온전히 구원에 이르기까지, 즉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의 과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았어도 마음에 할례를 해 가지 않는 사람은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1:27 이하에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치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를 범하는 죄가 있느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말씀하신 대로 자신을 돌아보아 죄가 없는 깨끗한 중심으로 성례전에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통해 할례가 유월절과 연관이 되고 유월절은 성찬예식과 연관이 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생명이 있고 구원에 이를 수 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계속하여 마음을 할례해 나감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11-30
제47과열재앙(7) - 유월절과 할례-
창 17:9-14
읽을말씀 : 창 17:9-14 | 외울말씀 : 롬 2:28-29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명하신 마음의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빛 가운데 살아감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한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12장을 통하여 제시하신 구원의 길 곧 재앙을 면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유월절 의식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할례받지 않으면 유월절 의식을 지킬 수 있는 자격이 없으므로 구원받지 못하고 죽임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할례는 생명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것이기에 오늘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할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할례는 하나님 언약의 표징
창세기 17:1-2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며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나리라" 언약하셨습니다(창 17:5-6).
아브라함이란 '열국의 아비, 많은 무리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완전히 행하였기 때문에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또 열국의 아비가 되었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열왕이 나왔습니다. 오늘날 아브라함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기독교 국가가 태어났습니까? 또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왕들이나 대통령 또는 수상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발자취를 좇는 믿음의 후손들인 것입니다.
창세기 17:7-10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도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언약하시고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며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축복이 임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하며 만일 할례를 받지 아니한 사람이라면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7:11-14에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영원히 지켜야 할 하나님의 규례에 순종하여 할례를 받되 영적인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남자가 태어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하도록 명하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태아가 모체 자궁 내의 양수 속에서 갇혀 지내다가 모체 밖으로 나와 바깥 공기를 접하게 되면 온도나 평안함 등 모든 환경이 전혀 다르므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포들이 가장 여린 상태로 있다가 칠 일이 지나게 되면 환경에 익숙해지기는 하지만 아직 동작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이때에 할례를 하게 되면 아픔이나 고통이 조금밖에 없고, 여린 살이므로 빨리 아물고 부작용이 없으니 여러 면에서 좋습니다. 그러나 어른은 살이 굳어 단단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그만큼 고통스럽고 좋지 않습니다(창 34:24-25).
이처럼 태어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도록 명하신 것은 만일 기한을 명하지 않으면 게을러질 것이며, 자꾸 미루다 보면 결국 받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자상하고 섬세하신 하나님의 사랑인지요. 하나님께서는 절대 주권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들을 위하여 명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할례를 남자의 성기 끝에 행하도록 명하신 이유는 가장 불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행하여 양피를 제거하면 질병이 예방되고 냄새도 나지 않으므로 발육에도 여러 가지로 유익하지요. 이처럼 사람 편에서도 좋고 하나님 편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징을 남길 수 있으니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에게만 할례를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도울 수 있는 배필이 없으므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인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창 2:20-24). 그리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셨지요.
여자는 남자를 돕기 위해서 지음을 받았고 또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남자가 할례를 하면 여자 또한 받은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창 3:16, 엡 5:22, 28). 이와 같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육체의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었고 만일 할례를 받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렘 4:4).
2. 할례의 영적인 의미
로마서 2:28-29을 보면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즉 육체의 할례는 하나의 그림자요, 신약시대에 와서는 실체로서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육체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마음 안에 성령을 받으면 진리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므로 마음의 할례를 받게 됩니다.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며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 죄를 온전히 버리고 의 가운데 온전히 거하면 곧 성결을 이룬 것이요, 이런 사람은 죄를 지을 리도 없고 마음에서 악취가 날 리도 없으니 온전한 마음의 할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육체의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유월절 의식을 지켰던 것처럼 성령받은 사람들은 성찬예식에 참여하여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요 6:53). 그러나 죄를 짓고 아직 회개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성찬예식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수가 없으므로 고린도전서 11:29-30에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말씀하고 있지요.
여기서 주의 몸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성례전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자신을 돌아보아 마음이 꺼림칙한데도 성례전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다면 질병이나 시험 환난이 틈탈 수 있으므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한 심령이 되어 성찬예식에 참여해야 합니다.
교단에 따라서는 물세례를 받은 사람만이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를 구세주로 믿으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했고, 요한복음 1:12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했으니 성령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물세례를 받는 것보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요. 물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받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 세례를 받고 자신의 죄를 회개한 깨끗한 심령이라면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3. 모세의 할례와 구원
출애굽기 4:24-26을 보면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지만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에 남자 아이는 모두 죽였기 때문에 할례받을 상황이 못되었고, 하숫가에 버려졌다가 애굽에서 공주의 아들로서 자라났으니 할례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다 해도 할례를 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차돌을 취하여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졌습니다. 돌에는 생명이 있는 돌과 생명이 없는 돌이 있는데 생명이 없는 돌은 표면을 깨끗이 닦으면 병균이 자랄 수 없기 때문에 차돌을 취하여 할례를 행했던 것입니다. 십보라는 슬기로운 여인이었으므로 할례를 받지 않아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을 알고 재빨리 차돌을 취하여 할례를 행한 것이지요.
모세는 스스로 할례를 행했는데 두 아들과 남편이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십보라의 마음이 얼마나 쓰리고 아프겠습니까? 십보라는 고운 마음씨의 여인이었으므로 모세가 할례를 행한 모습을 보니 더욱 사랑스럽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보라는 모세에게 "당신은 참으로 나의 피 남편이로다" 고백하며 피 흘린 남편에게 존경어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모세 오경 중의 하나로서 모세가 기록했는데 "그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고 할례의 중요성에 대해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명하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으면 사명을 감당하기는커녕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열 재앙을 면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강권적으로 할례를 받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데 이는 마음의 할례입니다. 즉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마음의 가죽을 벗겨야 하는 것이요, 성결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빛 가운데 살아감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명하신 마음의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빛 가운데 살아감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한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출애굽기 12장을 통하여 제시하신 구원의 길 곧 재앙을 면하고 구원받을 수 있는 유월절 의식에 대하여 증거했습니다. 할례받지 않으면 유월절 의식을 지킬 수 있는 자격이 없으므로 구원받지 못하고 죽임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할례는 생명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것이기에 오늘은 하나님께서 명하신 할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할례는 하나님 언약의 표징
창세기 17:1-2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고, 아브라함이라는 새 이름을 주시며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나라들이 네게로 좇아 일어나며 열왕이 네게로 좇아나리라" 언약하셨습니다(창 17:5-6).
아브라함이란 '열국의 아비, 많은 무리의 아비'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 완전히 행하였기 때문에 약속하신 축복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또 열국의 아비가 되었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열왕이 나왔습니다. 오늘날 아브라함을 통해서 얼마나 많은 기독교 국가가 태어났습니까? 또 예수를 구세주로 믿는 왕들이나 대통령 또는 수상들도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발자취를 좇는 믿음의 후손들인 것입니다.
창세기 17:7-10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도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언약하시고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주시며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하신 축복이 임하려면 할례를 받아야 하며 만일 할례를 받지 아니한 사람이라면 축복을 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7:11-14에 "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대대로 남자는 집에서 난 자나 혹 너희 자손이 아니요 이방 사람에게서 돈으로 산 자를 무론하고 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을 것이라 … 내 언약이 너희 살에 있어 영원한 언약이 되려니와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영원히 지켜야 할 하나님의 규례에 순종하여 할례를 받되 영적인 의미를 잘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남자가 태어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하도록 명하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태아가 모체 자궁 내의 양수 속에서 갇혀 지내다가 모체 밖으로 나와 바깥 공기를 접하게 되면 온도나 평안함 등 모든 환경이 전혀 다르므로 적응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포들이 가장 여린 상태로 있다가 칠 일이 지나게 되면 환경에 익숙해지기는 하지만 아직 동작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라고 합니다. 이때에 할례를 하게 되면 아픔이나 고통이 조금밖에 없고, 여린 살이므로 빨리 아물고 부작용이 없으니 여러 면에서 좋습니다. 그러나 어른은 살이 굳어 단단해진 상태이기 때문에 그만큼 고통스럽고 좋지 않습니다(창 34:24-25).
이처럼 태어난 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도록 명하신 것은 만일 기한을 명하지 않으면 게을러질 것이며, 자꾸 미루다 보면 결국 받지도 못하고 죽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자상하고 섬세하신 하나님의 사랑인지요. 하나님께서는 절대 주권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명령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들을 위하여 명하셨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할례를 남자의 성기 끝에 행하도록 명하신 이유는 가장 불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행하여 양피를 제거하면 질병이 예방되고 냄새도 나지 않으므로 발육에도 여러 가지로 유익하지요. 이처럼 사람 편에서도 좋고 하나님 편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표징을 남길 수 있으니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면 남자에게만 할례를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담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도울 수 있는 배필이 없으므로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여자인 하와를 창조하셨습니다(창 2:20-24). 그리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셨지요.
여자는 남자를 돕기 위해서 지음을 받았고 또 한 몸을 이루기 때문에 남자가 할례를 하면 여자 또한 받은 것이 된다는 뜻입니다(창 3:16, 엡 5:22, 28). 이와 같이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육체의 할례를 받아야만 구원에 이를 수 있었고 만일 할례를 받지 못하면 구원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렘 4:4).
2. 할례의 영적인 의미
로마서 2:28-29을 보면 "대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라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즉 육체의 할례는 하나의 그림자요, 신약시대에 와서는 실체로서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육체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마음 안에 성령을 받으면 진리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께서 도와주시므로 마음의 할례를 받게 됩니다.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하시며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도록 도와주시기 때문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받아 죄를 온전히 버리고 의 가운데 온전히 거하면 곧 성결을 이룬 것이요, 이런 사람은 죄를 지을 리도 없고 마음에서 악취가 날 리도 없으니 온전한 마음의 할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육체의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유월절 의식을 지켰던 것처럼 성령받은 사람들은 성찬예식에 참여하여 주님의 살을 먹고 주님의 피를 마실 수 있습니다(요 6:53). 그러나 죄를 짓고 아직 회개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성찬예식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수가 없으므로 고린도전서 11:29-30에 "주의 몸을 분변치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라 이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잠자는 자도 적지 아니하니" 말씀하고 있지요.
여기서 주의 몸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성례전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자신을 돌아보아 마음이 꺼림칙한데도 성례전에 참여하여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신다면 질병이나 시험 환난이 틈탈 수 있으므로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보시기에 합한 심령이 되어 성찬예식에 참여해야 합니다.
교단에 따라서는 물세례를 받은 사람만이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예수를 구세주로 믿으면 성령을 선물로 주신다고 했고, 요한복음 1:12에는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했으니 성령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됩니다.
따라서 물세례를 받는 것보다 예수를 믿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는 것이 더욱 중요하지요. 물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받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물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 세례를 받고 자신의 죄를 회개한 깨끗한 심령이라면 성찬예식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3. 모세의 할례와 구원
출애굽기 4:24-26을 보면 "여호와께서 길의 숙소에서 모세를 만나사 그를 죽이려 하시는지라 십보라가 차돌을 취하여 그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지며 가로되 당신은 참으로 내게 피 남편이로다 하니 여호와께서 모세를 놓으시니라 그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 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지만 아직 할례를 받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모세가 태어날 때에 남자 아이는 모두 죽였기 때문에 할례받을 상황이 못되었고, 하숫가에 버려졌다가 애굽에서 공주의 아들로서 자라났으니 할례를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름을 받았다 해도 할례를 받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으므로 하나님의 사자가 그를 죽이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의 아내 십보라는 차돌을 취하여 아들의 양피를 베어 모세의 발 앞에 던졌습니다. 돌에는 생명이 있는 돌과 생명이 없는 돌이 있는데 생명이 없는 돌은 표면을 깨끗이 닦으면 병균이 자랄 수 없기 때문에 차돌을 취하여 할례를 행했던 것입니다. 십보라는 슬기로운 여인이었으므로 할례를 받지 않아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을 알고 재빨리 차돌을 취하여 할례를 행한 것이지요.
모세는 스스로 할례를 행했는데 두 아들과 남편이 피를 흘리며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십보라의 마음이 얼마나 쓰리고 아프겠습니까? 십보라는 고운 마음씨의 여인이었으므로 모세가 할례를 행한 모습을 보니 더욱 사랑스럽고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십보라는 모세에게 "당신은 참으로 나의 피 남편이로다" 고백하며 피 흘린 남편에게 존경어를 쓰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는 모세 오경 중의 하나로서 모세가 기록했는데 "그때에 십보라가 피 남편이라 함은 할례를 인함이었더라"고 할례의 중요성에 대해 부연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명하신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할례를 받지 않으면 사명을 감당하기는커녕 구원에 이르지 못하고 열 재앙을 면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강권적으로 할례를 받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오늘날도 할례를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고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데 이는 마음의 할례입니다. 즉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마음의 가죽을 벗겨야 하는 것이요, 성결을 이루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로서 빛 가운데 살아감으로 온전한 구원에 이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11-23
제46과열재앙(6) - 유월절 -
출 12:1-10
읽을말씀 : 출 12:1-10 | 외울말씀 : 출 12:13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영원한 규례로 지킬 것을 명하신 유월절 의식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구원의 길로 온전히 갈 수 있도록 한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애굽 땅에 마지막 재앙을 내리시기 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을 면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길은 유월절 의식으로서 할례와 성찬예식과도 연결되므로 앞으로 몇 주간에 걸쳐 증거하겠습니다.
1. 어린 양을 취하라
어린 양에 대한 기록이 성경 곳곳에 나오는데 베드로전서 1:19에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 했고, 요한복음 1:29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5:12에도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말씀하신 것처럼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왜 어린 양에 비유하신 것일까요?
첫째, 양은 수많은 짐승 중에서 가장 순하고 온유합니다. 대부분의 짐승은 사나운데 유독 양만은 자기를 해치려고 하는 상대에게조차 대항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온유하고 순하며 악이 없는 양의 성품은 마치 예수님의 성품과도 같습니다. 마태복음 12:19-20에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하였지요.
둘째, 양은 순종을 잘합니다.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고 그 음성에 순종할 뿐 주인에게 반항할 줄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앞에 오직 순종과 아멘만 있으셨지 '아니오'가 없으셨지요(계 3:14). 누가복음 22:42에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일이 결코 없으셨으며 오직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셋째, 양은 사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고 제공해 줍니다. 양은 사람에게 하얗고 부드러운 털뿐만 아니라 젖과 고기까지 제공해 주지요. 이는 예수님께서 죄인된 인류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온갖 고초와 수욕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기꺼이 화목제물로 드려진 모습과 같습니다.
넷째, 양의 고기는 영양분이 많고 맛이 있습니다. 어린 양의 고기가 맛이 있듯이 우리는 주님의 살 곧 하나님의 말씀이 송이꿀과 같이 맛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 다윗은 시편 19:10에서 하나님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어린 양에 비유하시며 출애굽기 12:5에 '하나님께 어린 양을 드리되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어린 양을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드리라고 하신 것일까요?
이는 일 년 된 양이 가장 살이 연하고 맛이 있으며, 그 모습이 깨끗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교미하기 직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청년기인 2,30대 초반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양은 일 년 된 어린 양의 때가 사람의 청년기에 해당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흠과 티가 조금도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므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기의 양 곧 일 년 된 어린 양을 취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
출애굽기 12:5-6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을 취하여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양을 곧바로 잡지 않고 며칠간 데리고 있다 잡으라고 하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 양을 데리고 있는 동안 정들면 나중에 잡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실 때의 아픈 마음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양을 잡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므로 그동안 마음을 다하여 정성으로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해질 때에 잡으라고 하셨을까요? 성경을 상고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인간 경작을 하시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때가 인간 경작의 마지막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 이후 노아시대가 끝나고 아브라함이 태어날 때까지의 2천 년이 지나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때부터 구원의 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까지의 2천 년이 지난 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지금까지 약 2천 년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대를 성경은 말세 또는 마지막 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요일 2:18, 유 1:18, 히 1:2, 벧전 1:5, 20). 따라서 하루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해질 때에 어린 양을 잡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12:6-7). 설주란 문의 양쪽에 세워 문짝을 달게 된 기둥이며, 인방은 출입구 위에 가로 놓여 벽을 받쳐 주는 나무 또는 돌을 말합니다.
어린 양의 피는 영적으로 주님의 보혈을 의미하며, 그 피를 어린 양을 먹을 집의 문에 바르라고 하신 것은 구원의 문이 되시는 주님의 피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이 딛고 다니지 못하도록 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0:7을 보면 "나는 양의 문이라" 했고, 9절에는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말씀했습니다. 장자의 재앙이 임했을 때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르지 않은 집은 모두 죽임을 당했지만 피를 바른 집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밖으로 나오면 죽음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주님을 영접했다 해도 다시금 구원의 문밖으로 나가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니 구원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3. 어린 양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라
출애굽기 12:8-10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어린 양의 고기를 먹어야 하는지 그 방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밤에 먹으라는 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기 이전에는 어두움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로는 영적인 밤이 시작되었으므로 영적인 밤에 사는 우리는 어린 양인 주님의 살, 곧 진리의 말씀인 성경 66권 말씀을 먹어야 구원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어린 양의 고기를 어떻게 먹어야 할까요?
불에 구워 먹되 누룩을 넣지 않은 맛없는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지금 장자의 재앙을 면하고 생명을 구원받아야 할 절박한 시기에 놓여 있으므로 원래는 금식해야 하지만 믿음이 적은 상태였기에 먹되 맛없는 것들을 먹고 기억하게 하신 것입니다.
어린 양의 고기는 불에 구워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으라고 했습니다. 날로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문자적으로 풀어서 읽고 양식삼는 것을 말합니다. 문자적으로 먹다 보면 영적인 믿음이 생기지 않아 구원에도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금한 것입니다.
또한 고기를 물에 삶아 먹으면 살아 있는 영양분이 파괴되고 맛도 없습니다. 따라서 물에 삶아서 먹는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온전히 가르치지 않고 여기에다 철학이나 과학, 의학, 인간의 생각을 가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지식적인 믿음은 소유할 수 있겠으나 영적인 믿음이 되지 않으니 이것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지요.
그러므로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불에 구워 먹되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어야 합니다.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빼지 말고 통째로 다 양식삼되 성령의 불에 구워 먹어야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해질 때에 어린 양을 잡아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통째로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는 것은 아침은 어두움이 물러가고 빛이 임하는 때로서 영적으로는 주님의 재림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오신 다음에는 기름 준비를 할 수 없으므로(마 25:1-13) 그 전에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양식삼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재림이 아니더라도 인생은 강건해야 7,80이며 언제 인생이 끝날지 알 수 없으므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삼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2:11에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말씀하셨지요. 허리띠를 띠고 신을 신는 것은 해야 될 일이 있는 것과 바삐 움직여야 될 것을 의미합니다. 즉 진리 안에서 부지런히 말씀을 듣고 부지런히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팡이는 영적으로 믿음을 의미합니다. 연세 든 분들은 지팡이가 있으면 넘어지지 않고 평안하게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받지 않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주신 것입니다. 지팡이를 의지해서 하나님의 뜻을 좇게 하시고 온 이스라엘 자손이 그 지팡이의 능력됨을 보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게 하셨던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어린 양의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어린 양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음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보혈의 피로 구원의 문 안에 있되 부지런히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침이 되기 전에 급히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영원한 규례로 지킬 것을 명하신 유월절 의식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구원의 길로 온전히 갈 수 있도록 한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애굽 땅에 마지막 재앙을 내리시기 전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재앙을 면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길은 유월절 의식으로서 할례와 성찬예식과도 연결되므로 앞으로 몇 주간에 걸쳐 증거하겠습니다.
1. 어린 양을 취하라
어린 양에 대한 기록이 성경 곳곳에 나오는데 베드로전서 1:19에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라 했고, 요한복음 1:29에는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5:12에도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말씀하신 것처럼 어린 양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왜 어린 양에 비유하신 것일까요?
첫째, 양은 수많은 짐승 중에서 가장 순하고 온유합니다. 대부분의 짐승은 사나운데 유독 양만은 자기를 해치려고 하는 상대에게조차 대항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온유하고 순하며 악이 없는 양의 성품은 마치 예수님의 성품과도 같습니다. 마태복음 12:19-20에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하였지요.
둘째, 양은 순종을 잘합니다. 양은 자기 목자의 음성을 알고 그 음성에 순종할 뿐 주인에게 반항할 줄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앞에 오직 순종과 아멘만 있으셨지 '아니오'가 없으셨지요(계 3:14). 누가복음 22:42에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신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불순종하는 일이 결코 없으셨으며 오직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셋째, 양은 사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희생하고 제공해 줍니다. 양은 사람에게 하얗고 부드러운 털뿐만 아니라 젖과 고기까지 제공해 주지요. 이는 예수님께서 죄인된 인류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해 온갖 고초와 수욕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기꺼이 화목제물로 드려진 모습과 같습니다.
넷째, 양의 고기는 영양분이 많고 맛이 있습니다. 어린 양의 고기가 맛이 있듯이 우리는 주님의 살 곧 하나님의 말씀이 송이꿀과 같이 맛이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맛이 있는지 다윗은 시편 19:10에서 하나님 말씀을 "정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어린 양에 비유하시며 출애굽기 12:5에 '하나님께 어린 양을 드리되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하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어린 양을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드리라고 하신 것일까요?
이는 일 년 된 양이 가장 살이 연하고 맛이 있으며, 그 모습이 깨끗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교미하기 직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도 청년기인 2,30대 초반이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로 양은 일 년 된 어린 양의 때가 사람의 청년기에 해당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흠과 티가 조금도 없으신 거룩하신 분이므로 가장 깨끗하고 아름다운 시기의 양 곧 일 년 된 어린 양을 취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2. 어린 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라
출애굽기 12:5-6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을 취하여 간직하였다가 해질 때에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어린 양을 곧바로 잡지 않고 며칠간 데리고 있다 잡으라고 하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린 양을 데리고 있는 동안 정들면 나중에 잡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온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실 때의 아픈 마음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또한 양을 잡기 위한 준비가 필요하므로 그동안 마음을 다하여 정성으로 준비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해질 때에 잡으라고 하셨을까요? 성경을 상고해 보면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인간 경작을 하시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때가 인간 경작의 마지막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의 불순종 이후 노아시대가 끝나고 아브라함이 태어날 때까지의 2천 년이 지나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때부터 구원의 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기까지의 2천 년이 지난 후,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지금까지 약 2천 년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대를 성경은 말세 또는 마지막 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요일 2:18, 유 1:18, 히 1:2, 벧전 1:5, 20). 따라서 하루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해질 때에 어린 양을 잡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로 양을 먹을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12:6-7). 설주란 문의 양쪽에 세워 문짝을 달게 된 기둥이며, 인방은 출입구 위에 가로 놓여 벽을 받쳐 주는 나무 또는 돌을 말합니다.
어린 양의 피는 영적으로 주님의 보혈을 의미하며, 그 피를 어린 양을 먹을 집의 문에 바르라고 하신 것은 구원의 문이 되시는 주님의 피로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이 딛고 다니지 못하도록 설주와 인방에 바르도록 했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0:7을 보면 "나는 양의 문이라" 했고, 9절에는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말씀했습니다. 장자의 재앙이 임했을 때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피를 바르지 않은 집은 모두 죽임을 당했지만 피를 바른 집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문밖으로 나오면 죽음을 면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주님을 영접했다 해도 다시금 구원의 문밖으로 나가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니 구원받을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3. 어린 양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라
출애굽기 12:8-10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어떻게 어린 양의 고기를 먹어야 하는지 그 방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밤에 먹으라는 것은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기 이전에는 어두움이 없었으나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은 이후로는 영적인 밤이 시작되었으므로 영적인 밤에 사는 우리는 어린 양인 주님의 살, 곧 진리의 말씀인 성경 66권 말씀을 먹어야 구원받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어린 양의 고기를 어떻게 먹어야 할까요?
불에 구워 먹되 누룩을 넣지 않은 맛없는 무교병과 쓴 나물과 아울러 먹으라고 했습니다. 이들은 지금 장자의 재앙을 면하고 생명을 구원받아야 할 절박한 시기에 놓여 있으므로 원래는 금식해야 하지만 믿음이 적은 상태였기에 먹되 맛없는 것들을 먹고 기억하게 하신 것입니다.
어린 양의 고기는 불에 구워 먹되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으라고 했습니다. 날로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문자적으로 풀어서 읽고 양식삼는 것을 말합니다. 문자적으로 먹다 보면 영적인 믿음이 생기지 않아 구원에도 이르지 못하기 때문에 금한 것입니다.
또한 고기를 물에 삶아 먹으면 살아 있는 영양분이 파괴되고 맛도 없습니다. 따라서 물에 삶아서 먹는다는 것은 진리의 말씀을 온전히 가르치지 않고 여기에다 철학이나 과학, 의학, 인간의 생각을 가미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지식적인 믿음은 소유할 수 있겠으나 영적인 믿음이 되지 않으니 이것도 구원에 이르지 못하지요.
그러므로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불에 구워 먹되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어야 합니다.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도 빼지 말고 통째로 다 양식삼되 성령의 불에 구워 먹어야 하나님의 뜻을 바로 깨달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해질 때에 어린 양을 잡아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통째로 먹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또한 이것을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는 것은 아침은 어두움이 물러가고 빛이 임하는 때로서 영적으로는 주님의 재림을 뜻합니다. 주님께서 오신 다음에는 기름 준비를 할 수 없으므로(마 25:1-13) 그 전에 모든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양식삼으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의 재림이 아니더라도 인생은 강건해야 7,80이며 언제 인생이 끝날지 알 수 없으므로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삼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2:11에 "너희는 그것을 이렇게 먹을지니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급히 먹으라 이것이 여호와의 유월절이니라" 말씀하셨지요. 허리띠를 띠고 신을 신는 것은 해야 될 일이 있는 것과 바삐 움직여야 될 것을 의미합니다. 즉 진리 안에서 부지런히 말씀을 듣고 부지런히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팡이는 영적으로 믿음을 의미합니다. 연세 든 분들은 지팡이가 있으면 넘어지지 않고 평안하게 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받지 않은 모세에게 지팡이를 주신 것입니다. 지팡이를 의지해서 하나님의 뜻을 좇게 하시고 온 이스라엘 자손이 그 지팡이의 능력됨을 보고 하나님을 믿고 따르게 하셨던 것이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은 주님의 보혈을 상징하는 어린 양의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름으로 죽음을 피할 수 있었고, 그 안에서 어린 양의 고기를 불에 구워 먹음으로 죽음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보혈의 피로 구원의 문 안에 있되 부지런히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 영생에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아침이 되기 전에 급히 진리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007-11-16
제45과추수감사제
출 23:14-17
읽을말씀 : 출 23:14-17 | 외울말씀 : 출 23:16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와 의미 등에 대해 알아본다.
1.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근거
우리가 매년 지켜야 할 절기로는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이러한 절기 중의 하나로서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한 해의 마지막 때)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23:14-16을 보면 "너는 매년 삼 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3대 절기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무교병의 절기란 유대 정월인 아빕월(태양력 3-4월) 10일에 어린 양을 취하여 4일 동안 간직하였다가 잡아 그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며 출애굽 당시 죽음의 사자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는 유월절을 지낸 후, 일주일간 무교병을 먹으며 출애굽하였던 때를 기념하는 절기로서 무교절(신명기 16:16)이라고 합니다.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할 때 급히 탈출하느라 발효시키지 않고 만든 떡을 먹었기 때문에 그 고난의 때를 기억하며 무교병을 먹는 것입니다. 무교절은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을 얻음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이므로 오늘날 신약시대에 와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지키는 부활절과 같은 의미입니다.
다음으로 맥추절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가 지난 후에 있는 절기이므로 칠칠절(출애굽기 34:22)이라고도 하며, 날짜로 계산하여 50일이 되므로 오순절(사도행전 2:1)이라고도 합니다. 오늘날은 맥추감사절로 지키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수장절은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수고하여 거둔 것을 저장함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이며 초막절 또는 장막절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광야에 있는 동안 초막에 거하게 하신 줄을 자손 대대로 알게 하기 위해 지켜지며 일주일 동안 집을 떠나 초막에 거하는 훈련을 하기도 합니다(레위기 23:42-43).
그러므로 수장절은 광야에서 약 40년간 방황하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해방을 기념하고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므로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됩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매년 지켜야 할 절기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있으며 신년감사주일, 교회창립기념일 등이 있지요.
2. 추수감사절의 의미
초막절은 레위기 23장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절기 중 마지막 절기로서 큰 기쁨과 즐거움의 축제였습니다. 신명기 16:13-17을 보면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 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 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일 년간 농사를 지어 일용할 양식과 땅의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일 뿐 아니라 영적인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게 하시며, 내세의 소망 가운데 영생의 길로 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천국을 예비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인도하시니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구하는 이에게 주시고 찾는 이에게 찾게 하시며 두드리는 이에게 열리게 하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추수감사절은 참으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상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은 역사적으로 성결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를 통해 일어난 영국의 신앙적 대각성 운동이 전 유럽에 출렁일 때에, 믿음을 위해 독자적인 길을 나선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땅에 와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처음 수확한 소산들을 하나님께 정성껏 드리며 예배한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땅을 일구며 살아온 청교도들이 심은 대로 거둘 수 있도록 축복하셔서 오늘날 미국이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고, 그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과 조상들의 믿음을 기리며 더욱 뜻깊게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3. 추수감사제
추수감사절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은 사람들은 추수감사제를 드리게 됩니다. 먼저는 생명을 주시고 사망에서 건져 주심에 감사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감사제를 드려야 하며(시편 56:12-13), 또한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믿음으로 감사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9:7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으니 기쁨으로 감사제를 드려야 합니다.
아브라함, 엘리야, 모세뿐만 아니라 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나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감사제를 드림으로 마음의 소원을 이루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사밧 임금은 모압과 압몬과 몇 마온 사람들의 침입을 당했을 때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고 감사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는 암몬, 모압, 세일산 거민을 진멸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역대하 20:20 이하).
또한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사르밧 과부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아니하였으므로 궁핍한 중에도 자기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귀한 음식인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을 하나님의 종이었던 엘리야에게 심었습니다. 먹을 것이 금보다 귀한 때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심으니 하나님께서는 가뭄이 끝날 때까지 사르밧 과부와 그의 가족과 엘리야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넘치게 축복해 주셨습니다(열왕기상 17:8-16).
열왕기하 4:8-17을 보면 하나님의 종인 엘리사를 지극한 정성으로 대접한 수넴 여인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녀는 자식이 없었으나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섬겼으므로 소원대로 아들을 낳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12:44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제자들에게 칭찬하셨으니 그 여인은 후에 큰 축복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중심에서 우러나온 믿음을 통해 드리는 감사제를 기뻐 받으시고 행함이 따르는 감사의 제물을 드릴 때 즉시 역사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갈라디아서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농부가 봄에 씨앗을 많이 뿌리면 가을에 많이 거둘 수 있듯이 하나님 앞에 행함 있는 감사를 심어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받아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와 의미 등에 대해 알아본다.
1. 추수감사절의 성경적 근거
우리가 매년 지켜야 할 절기로는 부활절, 맥추감사절, 추수감사절, 성탄절 등이 있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이러한 절기 중의 하나로서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한 해의 마지막 때)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출애굽기 23:14-16을 보면 "너는 매년 삼 차 내게 절기를 지킬지니라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 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지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지니라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고 3대 절기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무교병의 절기란 유대 정월인 아빕월(태양력 3-4월) 10일에 어린 양을 취하여 4일 동안 간직하였다가 잡아 그 피를 집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바르고 그 밤에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먹으며 출애굽 당시 죽음의 사자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리는 유월절을 지낸 후, 일주일간 무교병을 먹으며 출애굽하였던 때를 기념하는 절기로서 무교절(신명기 16:16)이라고 합니다.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할 때 급히 탈출하느라 발효시키지 않고 만든 떡을 먹었기 때문에 그 고난의 때를 기억하며 무교병을 먹는 것입니다. 무교절은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자유함을 얻음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이므로 오늘날 신약시대에 와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여 지키는 부활절과 같은 의미입니다.
다음으로 맥추절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가 지난 후에 있는 절기이므로 칠칠절(출애굽기 34:22)이라고도 하며, 날짜로 계산하여 50일이 되므로 오순절(사도행전 2:1)이라고도 합니다. 오늘날은 맥추감사절로 지키고 있지요.
마지막으로, 수장절은 가을 추수가 끝난 후 수고하여 거둔 것을 저장함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이며 초막절 또는 장막절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셔서 광야에 있는 동안 초막에 거하게 하신 줄을 자손 대대로 알게 하기 위해 지켜지며 일주일 동안 집을 떠나 초막에 거하는 훈련을 하기도 합니다(레위기 23:42-43).
그러므로 수장절은 광야에서 약 40년간 방황하는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해방을 기념하고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므로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됩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매년 지켜야 할 절기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있으며 신년감사주일, 교회창립기념일 등이 있지요.
2. 추수감사절의 의미
초막절은 레위기 23장에 기록되어 있는 여호와의 절기 중 마지막 절기로서 큰 기쁨과 즐거움의 축제였습니다. 신명기 16:13-17을 보면 "너희 타작 마당과 포도주 틀의 소출을 수장한 후에 칠 일 동안 초막절을 지킬 것이요 절기를 지킬 때에는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연락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너는 칠 일 동안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모든 물산과 네 손을 댄 모든 일에 복 주실 것을 인하여 너는 온전히 즐거워할지니라 너희 중 모든 남자는 일 년 삼 차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께 보이되 공수로 여호와께 보이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추수감사절은 일 년간 농사를 지어 일용할 양식과 땅의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일 뿐 아니라 영적인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절기이기도 합니다.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게 하시며, 내세의 소망 가운데 영생의 길로 가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것입니다. 천국을 예비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인도하시니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하는 생활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구하는 이에게 주시고 찾는 이에게 찾게 하시며 두드리는 이에게 열리게 하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추수감사절은 참으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며 상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지키는 절기입니다. 오늘날의 추수감사절은 역사적으로 성결교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레를 통해 일어난 영국의 신앙적 대각성 운동이 전 유럽에 출렁일 때에, 믿음을 위해 독자적인 길을 나선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땅에 와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처음 수확한 소산들을 하나님께 정성껏 드리며 예배한 것이 그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땅을 일구며 살아온 청교도들이 심은 대로 거둘 수 있도록 축복하셔서 오늘날 미국이 세계적인 국가가 되었고, 그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의 사랑과 조상들의 믿음을 기리며 더욱 뜻깊게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3. 추수감사제
추수감사절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은 사람들은 추수감사제를 드리게 됩니다. 먼저는 생명을 주시고 사망에서 건져 주심에 감사하며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감사제를 드려야 하며(시편 56:12-13), 또한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믿음으로 감사제를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9:7에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 했으니 기쁨으로 감사제를 드려야 합니다.
아브라함, 엘리야, 모세뿐만 아니라 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어려움을 당할 때나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감사제를 드림으로 마음의 소원을 이루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사밧 임금은 모압과 압몬과 몇 마온 사람들의 침입을 당했을 때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노래하는 자들을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고 감사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는 암몬, 모압, 세일산 거민을 진멸하도록 섭리하셨습니다(역대하 20:20 이하).
또한 열왕기상 17장을 보면 사르밧 과부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비가 오지 아니하였으므로 궁핍한 중에도 자기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귀한 음식인 밀가루 한 움큼과 기름 조금을 하나님의 종이었던 엘리야에게 심었습니다. 먹을 것이 금보다 귀한 때였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심으니 하나님께서는 가뭄이 끝날 때까지 사르밧 과부와 그의 가족과 엘리야가 먹고 살 수 있도록 넘치게 축복해 주셨습니다(열왕기상 17:8-16).
열왕기하 4:8-17을 보면 하나님의 종인 엘리사를 지극한 정성으로 대접한 수넴 여인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그녀는 자식이 없었으나 정성을 다해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섬겼으므로 소원대로 아들을 낳는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12:44을 보면 예수님께서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고 제자들에게 칭찬하셨으니 그 여인은 후에 큰 축복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중심에서 우러나온 믿음을 통해 드리는 감사제를 기뻐 받으시고 행함이 따르는 감사의 제물을 드릴 때 즉시 역사하시고 축복하십니다. 갈라디아서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농부가 봄에 씨앗을 많이 뿌리면 가을에 많이 거둘 수 있듯이 하나님 앞에 행함 있는 감사를 심어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받아 영광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7-11-09
제44과열재앙(5) - 메뚜기ㆍ흑암ㆍ장자의 재앙 -
출 10:12-15, 21-29, 11:4-8
읽을말씀 : 출 10:12-15, 21-29, 11:4-8 | 외울말씀 : 출 12:13
교육목표 : 열 재앙 중 메뚜기와 흑암과 장자의 재앙이 왜 임하는지를 깨달아 재앙을 당하지 않고 승리의 삶을 영위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악질과 독종과 우박의 재앙을 통해 가족 중에 질병이 생기거나 재물로 큰 손해를 보는 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메뚜기·흑암·장자의 재앙을 살펴보겠습니다.
1. 메뚜기의 재앙
우박의 재앙이 임하자 바로 왕은 모세와 아론에게 회개하며 뇌성과 우박을 그치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모세가 하늘을 향해 손을 펴니 뇌성과 우박이 그치고 비가 내리지 아니하였지요. 그런데 바로는 또다시 마음을 완강케 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메뚜기의 재앙을 허락하셨고,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이르신 대로 바로를 만나 메뚜기 재앙을 예고하며 이제까지 세상에서 보지 못했던 큰 재앙임을 알려 주었지요. 바로의 신하들은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하자고 하면서 다시 모세와 아론을 데려오지만 바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남정(男丁)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고 하며 쫓아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 손을 애굽 땅 위에 들어 메뚜기로 애굽 땅에 올라와서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고 명하셨지요. 모세가 지팡이를 들자 밤새 동풍이 불더니 메뚜기가 온 지면에 덮여 날매 땅이 어둡게 되었고,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어 애굽 전경에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때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득죄하였으니 청컨대 나의 죄를 이번만 용서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들의 요구대로 모세가 하나님께 구하니 하나님께서 강렬한 서풍을 불게 하셔서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넣으시니 애굽 온 지경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바로는 마음을 강퍅게 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메뚜기는 우리 사람이 볼 때 하찮은 곤충 같지만 메뚜기의 재앙은 애굽을 파탄 지경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러면 메뚜기 재앙은 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출애굽기 10:14-15을 보면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 그 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러라 메뚜기가 온 지면에 덮여 날으매 땅이 어둡게 되었고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전경에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우박의 재앙에서는 그래도 살아남은 것이 있었습니다. 아직 땅 위에 나지 아니한 밀과 나맥 같은 것들은 상하지 아니하였고 또한 바로의 신하들 중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여 생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인 사람들은 우박에 상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박의 재앙은 부분적으로 큰 재앙이 임하는 경우이므로 갑자기 불이 나서 공장이 불타 버리거나 화상을 입은 사람이 생겨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지만 완전히 망한 상태는 아닙니다. 그런데 메뚜기의 재앙이 임하니 남은 것들까지 다 뜯어 먹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집 안까지 메뚜기가 가득하였습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메뚜기 재앙이란 남아 있는 분야분야 사업터, 일터, 가정 소유물들이 하나하나 조각나고 깊숙이 숨겨 놓은 패물까지도 다 없어지며 빈손만 남게 되는 재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업하다가 부도난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속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재앙을 만난 후에야 하나님을 찾게 되는데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못을 깨달아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시 예전의 것들이 회복되는 것이지요. 정녕 돌이켜서 빛 가운데 살아가면 그때는 더 큰 축복을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진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느냐에 따라서 회복뿐 아니라 더 큰 축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비진리를 행한 경우, 하나님께서 그 주간을 넘기지 않고 깨닫게 하시는 것을 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아주 작은 재앙을 만났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증거임을 깨닫고 즉시 돌이키게 되지요. 반대로 하나님께서 두 번, 세 번을 역사하셨는데도 돌이키지 않고 깨닫지 못하면 외면해 버리시므로 점점 속병이 자라고 악질이나 독종이 발하게 되며 더 나아가서는 우박이나 메뚜기의 재앙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재앙을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신앙인이 된다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다시 형통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상한 갈대라도 꺾지 아니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흑암의 재앙
바로 왕이 메뚜기의 재앙을 만나고도 마음을 강퍅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다음 재앙인 흑암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0:21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서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었더니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므로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거하는 곳에는 흑암이 아닌 광명이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흑암의 재앙은 어두움의 재앙, 즉 죽음 직전의 재앙을 말합니다. 질병으로든 사업이 망해서든 생명처럼 아끼는 물질까지 깡그리 다 날려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개하고 돌이키지 아니하는 강퍅한 자에게 임하는 재앙입니다. 흑암의 재앙이 임하면 삶의 막다른 골목인 죽음을 앞에 놓고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헤어 나올 수도 없는 캄캄한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많은 재앙을 당하고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하지 않고 악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이 떠남으로 결국은 생명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커다란 재앙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생명까지 해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질병으로 인해 재산을 탕진하고 병든 몸으로 소망이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흑암의 재앙을 당한 경우이지요. 이때라도 자신의 악을 발견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시고 재앙을 거두어 주십니다. 그러나 많은 재앙 속에서도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참지 않으시고 죽음의 재앙을 허락하시게 되는데 이는 출애굽시대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악을 발견하지 못하여 회개하고 돌이키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달아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악에서 신속히 돌이키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장자의 재앙
바로가 강퍅하여 흑암의 재앙을 당하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장자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보낼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모세가 바로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출 11:4-6)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하여 바로와 신하와 온 백성과 종에 이르기까지 장남이 죽고,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다 죽는 장자의 재앙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 밤에 바로와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장자의 재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장자의 재앙이란 가장 사랑하는 자녀나 가족 중에 누군가가 죽게 되는 경우나, 혹은 완전히 타락의 길로 빠져서 구원받지 못할 길로 들어가는 경우를 뜻합니다. 그러니 이런 재앙을 당하기 전에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출애굽기의 열 재앙을 오늘날 영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무지한 인생들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 위하여 재앙을 허락하시고, 이 재앙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돌이켜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령 재앙이 임했을지라도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것은 무엇이며, 자신 안에 있는 비진리는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신속히 돌이켜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열 재앙의 말씀을 잘 양식삼아 왜 재앙이 임하는지를 깨닫고, 시험 환난, 재앙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미연에 방지하여 승리의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교육목표 : 열 재앙 중 메뚜기와 흑암과 장자의 재앙이 왜 임하는지를 깨달아 재앙을 당하지 않고 승리의 삶을 영위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악질과 독종과 우박의 재앙을 통해 가족 중에 질병이 생기거나 재물로 큰 손해를 보는 것은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메뚜기·흑암·장자의 재앙을 살펴보겠습니다.
1. 메뚜기의 재앙
우박의 재앙이 임하자 바로 왕은 모세와 아론에게 회개하며 뇌성과 우박을 그치게 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에 모세가 하늘을 향해 손을 펴니 뇌성과 우박이 그치고 비가 내리지 아니하였지요. 그런데 바로는 또다시 마음을 완강케 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메뚜기의 재앙을 허락하셨고,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이르신 대로 바로를 만나 메뚜기 재앙을 예고하며 이제까지 세상에서 보지 못했던 큰 재앙임을 알려 주었지요. 바로의 신하들은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하자고 하면서 다시 모세와 아론을 데려오지만 바로는 모세와 아론에게 남정(男丁)만 가서 여호와를 섬기라고 하며 쫓아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네 손을 애굽 땅 위에 들어 메뚜기로 애굽 땅에 올라와서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고 명하셨지요. 모세가 지팡이를 들자 밤새 동풍이 불더니 메뚜기가 온 지면에 덮여 날매 땅이 어둡게 되었고,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어 애굽 전경에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때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급히 불러 "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득죄하였으니 청컨대 나의 죄를 이번만 용서하고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을 내게서 떠나게 하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들의 요구대로 모세가 하나님께 구하니 하나님께서 강렬한 서풍을 불게 하셔서 메뚜기를 홍해에 몰아넣으시니 애굽 온 지경에 메뚜기가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바로는 마음을 강퍅게 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메뚜기는 우리 사람이 볼 때 하찮은 곤충 같지만 메뚜기의 재앙은 애굽을 파탄 지경에 이르게 했습니다.
그러면 메뚜기 재앙은 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출애굽기 10:14-15을 보면 "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그 사방에 내리매 그 해가 심하니 이런 메뚜기는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을러라 메뚜기가 온 지면에 덮여 날으매 땅이 어둡게 되었고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애굽 전경에 나무나 밭의 채소나 푸른 것은 남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우박의 재앙에서는 그래도 살아남은 것이 있었습니다. 아직 땅 위에 나지 아니한 밀과 나맥 같은 것들은 상하지 아니하였고 또한 바로의 신하들 중에서도 여호와의 말씀을 두려워하여 생축을 집으로 피하여 들인 사람들은 우박에 상하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우박의 재앙은 부분적으로 큰 재앙이 임하는 경우이므로 갑자기 불이 나서 공장이 불타 버리거나 화상을 입은 사람이 생겨 막대한 손해를 보게 되지만 완전히 망한 상태는 아닙니다. 그런데 메뚜기의 재앙이 임하니 남은 것들까지 다 뜯어 먹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집 안까지 메뚜기가 가득하였습니다.
따라서 영적으로 메뚜기 재앙이란 남아 있는 분야분야 사업터, 일터, 가정 소유물들이 하나하나 조각나고 깊숙이 숨겨 놓은 패물까지도 다 없어지며 빈손만 남게 되는 재앙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업하다가 부도난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속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재앙을 만난 후에야 하나님을 찾게 되는데 교회에 나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잘못을 깨달아 회개하고 돌이키면 다시 예전의 것들이 회복되는 것이지요. 정녕 돌이켜서 빛 가운데 살아가면 그때는 더 큰 축복을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진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느냐에 따라서 회복뿐 아니라 더 큰 축복을 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사람들이 비진리를 행한 경우, 하나님께서 그 주간을 넘기지 않고 깨닫게 하시는 것을 봅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아주 작은 재앙을 만났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증거임을 깨닫고 즉시 돌이키게 되지요. 반대로 하나님께서 두 번, 세 번을 역사하셨는데도 돌이키지 않고 깨닫지 못하면 외면해 버리시므로 점점 속병이 자라고 악질이나 독종이 발하게 되며 더 나아가서는 우박이나 메뚜기의 재앙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재앙을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두 손을 들고 항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신앙인이 된다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다시 형통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상한 갈대라도 꺾지 아니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2. 흑암의 재앙
바로 왕이 메뚜기의 재앙을 만나고도 마음을 강퍅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다음 재앙인 흑암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출애굽기 10:21을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하늘을 향하여 네 손을 들어서 애굽 땅 위에 흑암이 있게 하라 곧 더듬을 만한 흑암이리라"고 했습니다.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손을 들었더니 흑암이 삼 일 동안 애굽 온 땅에 있어서 사람이 서로 볼 수 없으므로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거하는 곳에는 흑암이 아닌 광명이 있었습니다.
영적으로 흑암의 재앙은 어두움의 재앙, 즉 죽음 직전의 재앙을 말합니다. 질병으로든 사업이 망해서든 생명처럼 아끼는 물질까지 깡그리 다 날려 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회개하고 돌이키지 아니하는 강퍅한 자에게 임하는 재앙입니다. 흑암의 재앙이 임하면 삶의 막다른 골목인 죽음을 앞에 놓고 스스로 일어나지 못하고 헤어 나올 수도 없는 캄캄한 상황에 이르게 됩니다. 이는 많은 재앙을 당하고도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을 믿되 하나님의 말씀대로 지켜 행하지 않고 악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믿음이 떠남으로 결국은 생명이 끊어지는 것과 같은 커다란 재앙이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셔서 생명까지 해하시지는 않습니다.
우리 주변을 보면 질병으로 인해 재산을 탕진하고 병든 몸으로 소망이 없이 죽을 날만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이 바로 흑암의 재앙을 당한 경우이지요. 이때라도 자신의 악을 발견하고 회개하고 돌이키면 하나님께서는 긍휼을 베푸시고 재앙을 거두어 주십니다. 그러나 많은 재앙 속에서도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참지 않으시고 죽음의 재앙을 허락하시게 되는데 이는 출애굽시대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악을 발견하지 못하여 회개하고 돌이키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가를 깨달아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악에서 신속히 돌이키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장자의 재앙
바로가 강퍅하여 흑암의 재앙을 당하고도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장자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보낼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에 모세가 바로에게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애굽 가운데 처음 난 것은 위에 앉은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여종의 장자까지와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죽을지라 애굽 전국에 전무후무한 큰 곡성이 있으리라"(출 11:4-6)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리하여 바로와 신하와 온 백성과 종에 이르기까지 장남이 죽고, 모든 생축의 처음 난 것이 다 죽는 장자의 재앙이 임하게 된 것입니다. 그 밤에 바로와 신하와 모든 애굽 사람이 일어나고 애굽에 큰 호곡이 있었으니, 그 나라에 사망치 아니한 집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영적으로 장자의 재앙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장자의 재앙이란 가장 사랑하는 자녀나 가족 중에 누군가가 죽게 되는 경우나, 혹은 완전히 타락의 길로 빠져서 구원받지 못할 길로 들어가는 경우를 뜻합니다. 그러니 이런 재앙을 당하기 전에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출애굽기의 열 재앙을 오늘날 영적인 측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무지한 인생들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시기 위하여 재앙을 허락하시고, 이 재앙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돌이켜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설령 재앙이 임했을지라도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 앞에 불순종한 것은 무엇이며, 자신 안에 있는 비진리는 무엇인가를 발견하여 신속히 돌이켜 재앙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들은 열 재앙의 말씀을 잘 양식삼아 왜 재앙이 임하는지를 깨닫고, 시험 환난, 재앙을 물리칠 뿐만 아니라 미연에 방지하여 승리의 삶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7-11-02
제43과열재앙(4) - 악질ㆍ독종ㆍ우박의 재앙 -
출 9:1-12, 9:22-26
읽을말씀 : 출 9:1-12, 9:22-26 | 외울말씀 : 출 9:4
교육목표 : 악질과 독종, 우박의 재앙이 왜 임하는지를 깨달아 재앙을 당하지 않고 항상 승리의 삶을 영위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이와 파리의 재앙을 통해 믿음 안에서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악질과 독종과 우박의 재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악질의 재앙
바로 왕이 파리 떼의 재앙을 만나 전염병으로 고통을 당했음에도 강퍅하여 이스라엘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악질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네가 만일 그들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 두면 여호와의 손이 들에 있는 네 생축 곧 말과 나귀와 약대와 우양에게 더하리니 심한 악질이 있을 것이며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생축과 애굽의 생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지요(출 9:2-5).
그리고 자연적인 재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재앙임을 깨닫도록 기한을 정하여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신 대로 시행하셨습니다(출 9:6). 그 후 애굽의 모든 생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않았지요. 그런데도 바로 왕은 마음이 완강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악질의 재앙이란 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심한 악질은 고치기 힘든 전염병으로서 몸 안에 번지는 질병을 말합니다. 이 악질의 재앙으로 애굽의 모든 생축이 죽었으니 그 피해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생축이란 사람이 기르는 짐승으로 말, 소, 양, 염소, 낙타 등을 가리키며 그 당시 왕이나 신하, 백성들의 소유물로서 재산 척도가 되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집, 일터, 사업터, 동거하는 가족들 중 살아있는 소유물 즉 사람이 생축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애굽의 생축에게 악질의 재앙이 임한 것은 애굽 왕 바로의 악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악질의 재앙은 자신의 악이 쌓여 하나님께서 외면하실 때 가족에게 악한 질병이 생기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함으로 사랑하는 자녀에게 악질이 임한다거나 아내의 악함으로 남편에게 질병이 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재앙이 임하면 자신을 돌아볼 뿐 아니라 가족이 함께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출애굽기 20:5에 우상을 섬겼던 부모의 죄에 대한 보응이 자녀에게 삼사 대까지도 임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부모가 악하면 자녀는 부모로부터 악행을 배워 더욱 악을 쌓아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손이 선하여 믿음 안에서 살아간다면 부모나 조상의 악으로 인한 재앙이 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혹여 자신의 악함으로 인해 가족에게 악질이 임해 있지 않는가를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면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지만 여전히 돌이키지 않는다면 더 심한 재앙이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령 자녀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을 때 처음에는 야단을 치지만 다음에도 말을 듣지 않고 빗나간다면 매를 때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녀가 강퍅하면 부모도 강퍅하게 대하듯이 사랑의 하나님도 돌이키지 않고 악을 쌓아 가는 자녀는 외면하시고 재앙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질의 재앙을 만났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 더 큰 재앙이 임하지 않도록 대처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독종의 재앙
바로가 악질의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도 강퍅하여 백성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독종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풀무의 재 두 움큼을 가지고 모세가 바로의 목전에서 하늘을 향하여 날리라 그 재가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되어 애굽 온 땅의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서 독종이 발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9:8-9). 모세가 그대로 행하니 사람과 짐승에게 독종이 발하고 술객도 독종으로 인해 모세 앞에 서지 못했습니다. 독종이 술객으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발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독종의 재앙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독종(毒腫)은 몹시 악성인 부스럼이라는 뜻으로, 악질이 속으로 침투하는 병이라면 독종은 외부로 드러나는 병입니다. 원래 독종은 부스럼이 나서 심히 가려우며 진물과 고름이 흐르는 심한 피부병으로 내부에 생긴 병이 깊어져 외부로 드러나게 되는 질병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암으로 아픈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속에서 병이 생겼는데 그것이 점점 더 심해지면 외부로 드러나게 됩니다. 폐병이나 에이즈, 중풍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병이 생긴 사람들의 성품은 대부분 완악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혈기가 굉장히 많고 교만하며 다른 사람의 잘못은 용서하지 않고 자신이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포악하거나 남의 말은 경청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내세워 상대를 무시해 버리는 사람의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므로 이유 없이 이런 재앙을 당하는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신 28장). 그러면 "나는 마음이 강퍅하지 않은데 왜 암에 걸렸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본인이 강퍅하지 않다면 부모가 강퍅할 수도 있고, 조상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쌓았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출 20:5).
이러한 경우 가족에게도 책임이 있으니 재앙으로 인해 가족이 회개하고 돌이켜서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설령 부모가 우상을 섬겼다 해도 그 자녀가 하나님 말씀 안에 살 때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에 재앙이 임하지 않습니다(출 20:6). 그 자녀나 손자, 증손이 하나님 말씀 안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우상을 섬긴 부모의 죄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도 귀히 여기시므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결코 멸망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 재앙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이라도 돌이키고 회개해서 구원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앙을 통해 회개하고 돌이켜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3. 우박의 재앙
바로가 백성 앞에 자고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우박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국 이래 없었던 중한 우박을 내리시겠다고 예고하시고,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릇 들에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은 자에게는 우박이 그 위에 내려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출 9:18-19).
그래서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자 하나님께서 뇌성과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우박이 애굽 온 땅에 내려서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무릇 밭에 있는 것을 쳤고, 밭의 모든 채소를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꺾었으니 이 재앙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거하는 고센 땅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우박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9:31-32을 보면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그러나 밀과 나맥은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하였으니 부분적으로 상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박의 재앙은 어떤 영적인 의미를 가졌을까요?
불 섞인 우박이 예고 없이 쏟아져 사람과 짐승이 죽고 밭의 채소가 다 상하여 먹을 것이 없게 되었으니 이는 어떤 불의의 사고나 일로 인하여 재물에 큰 손해를 보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사업터나 일터에 갑작스레 큰 일이 일어나 많은 손해를 본다거나 가족 중 한 사람이 큰 질병이나 사고를 당하여 갑자기 많은 돈이 나가게 되는 경우이지요. 또한 우박은 예고 없이 쏟아지되 일시에 모든 곳에 내리지 아니하고 부분적으로 크게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박의 재앙은 한꺼번에 큰 일이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큰 일이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악을 행한다거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물질의 손해로 일시에 망해 버리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끊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일시에 망하지 않도록 부분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라 부분적으로 재앙을 허락하시되 크게 임하게 하심으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박의 재앙이 왜 큰 것일까요? 세상 사람들은 목숨 다음으로 돈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돈 때문에 살인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끊어지기도 하지요. 믿는 사람 중에도 십계명을 알면서 돈을 벌기 위해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주일 성수를 안 하면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결국 구원받을 수가 없게 되지요.
이처럼 돈은 영혼 구원과도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박이 거의 모든 식물을 쓸어버림같이 물질에 큰 손해가 오는 것이니 얼마나 큰 재앙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됨을 깨달아 오직 말씀대로 살며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우박의 재앙을 만나지 않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악질과 독종과 우박의 재앙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왕처럼 강퍅하고 완악해서 순종하지 않을 때 임하는 재앙들입니다. 악하면 악할수록 더 큰 재앙이 임하는 것이니 혹 재앙이 임했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열 재앙의 말씀을 잘 양식삼아 재앙을 면할 뿐 아니라, 악을 벗어 버림으로 자신과 가족이 평안함을 누리며 복된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악질과 독종, 우박의 재앙이 왜 임하는지를 깨달아 재앙을 당하지 않고 항상 승리의 삶을 영위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이와 파리의 재앙을 통해 믿음 안에서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배웠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악질과 독종과 우박의 재앙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악질의 재앙
바로 왕이 파리 떼의 재앙을 만나 전염병으로 고통을 당했음에도 강퍅하여 이스라엘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자 하나님께서는 악질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네가 만일 그들 보내기를 거절하고 억지로 잡아 두면 여호와의 손이 들에 있는 네 생축 곧 말과 나귀와 약대와 우양에게 더하리니 심한 악질이 있을 것이며 여호와가 이스라엘의 생축과 애굽의 생축을 구별하리니 이스라엘 자손에 속한 것은 하나도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지요(출 9:2-5).
그리고 자연적인 재해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의한 재앙임을 깨닫도록 기한을 정하여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행하리라" 하신 대로 시행하셨습니다(출 9:6). 그 후 애굽의 모든 생축은 죽었으나 이스라엘의 생축은 하나도 죽지 않았지요. 그런데도 바로 왕은 마음이 완강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악질의 재앙이란 영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심한 악질은 고치기 힘든 전염병으로서 몸 안에 번지는 질병을 말합니다. 이 악질의 재앙으로 애굽의 모든 생축이 죽었으니 그 피해가 얼마나 컸겠습니까? 생축이란 사람이 기르는 짐승으로 말, 소, 양, 염소, 낙타 등을 가리키며 그 당시 왕이나 신하, 백성들의 소유물로서 재산 척도가 되었습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집, 일터, 사업터, 동거하는 가족들 중 살아있는 소유물 즉 사람이 생축에 해당됩니다. 이렇게 애굽의 생축에게 악질의 재앙이 임한 것은 애굽 왕 바로의 악 때문이었습니다. 따라서 악질의 재앙은 자신의 악이 쌓여 하나님께서 외면하실 때 가족에게 악한 질병이 생기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부모가 하나님 앞에 불순종함으로 사랑하는 자녀에게 악질이 임한다거나 아내의 악함으로 남편에게 질병이 임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재앙이 임하면 자신을 돌아볼 뿐 아니라 가족이 함께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출애굽기 20:5에 우상을 섬겼던 부모의 죄에 대한 보응이 자녀에게 삼사 대까지도 임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부모가 악하면 자녀는 부모로부터 악행을 배워 더욱 악을 쌓아 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손이 선하여 믿음 안에서 살아간다면 부모나 조상의 악으로 인한 재앙이 임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혹여 자신의 악함으로 인해 가족에게 악질이 임해 있지 않는가를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면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지만 여전히 돌이키지 않는다면 더 심한 재앙이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가령 자녀가 부모의 말을 듣지 않을 때 처음에는 야단을 치지만 다음에도 말을 듣지 않고 빗나간다면 매를 때리는 것과 같습니다. 자녀가 강퍅하면 부모도 강퍅하게 대하듯이 사랑의 하나님도 돌이키지 않고 악을 쌓아 가는 자녀는 외면하시고 재앙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악질의 재앙을 만났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 더 큰 재앙이 임하지 않도록 대처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독종의 재앙
바로가 악질의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권능을 보고도 강퍅하여 백성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독종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아론에게 "너희는 풀무의 재 두 움큼을 가지고 모세가 바로의 목전에서 하늘을 향하여 날리라 그 재가 애굽 온 땅의 티끌이 되어 애굽 온 땅의 사람과 짐승에게 붙어서 독종이 발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9:8-9). 모세가 그대로 행하니 사람과 짐승에게 독종이 발하고 술객도 독종으로 인해 모세 앞에 서지 못했습니다. 독종이 술객으로부터 애굽 모든 사람에게 발하였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독종의 재앙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독종(毒腫)은 몹시 악성인 부스럼이라는 뜻으로, 악질이 속으로 침투하는 병이라면 독종은 외부로 드러나는 병입니다. 원래 독종은 부스럼이 나서 심히 가려우며 진물과 고름이 흐르는 심한 피부병으로 내부에 생긴 병이 깊어져 외부로 드러나게 되는 질병을 뜻합니다. 예를 들면, 암으로 아픈 사람들을 보면 처음에는 속에서 병이 생겼는데 그것이 점점 더 심해지면 외부로 드러나게 됩니다. 폐병이나 에이즈, 중풍 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병이 생긴 사람들의 성품은 대부분 완악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혈기가 굉장히 많고 교만하며 다른 사람의 잘못은 용서하지 않고 자신이 제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포악하거나 남의 말은 경청하지 않고 자기 주장만 내세워 상대를 무시해 버리는 사람의 경우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므로 이유 없이 이런 재앙을 당하는 것은 결코 아닌 것입니다(신 28장). 그러면 "나는 마음이 강퍅하지 않은데 왜 암에 걸렸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본인이 강퍅하지 않다면 부모가 강퍅할 수도 있고, 조상이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쌓았을 수도 있는 것이지요(출 20:5).
이러한 경우 가족에게도 책임이 있으니 재앙으로 인해 가족이 회개하고 돌이켜서 화목한 가정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설령 부모가 우상을 섬겼다 해도 그 자녀가 하나님 말씀 안에 살 때는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기 때문에 재앙이 임하지 않습니다(출 20:6). 그 자녀나 손자, 증손이 하나님 말씀 안에 살지 못하기 때문에 우상을 섬긴 부모의 죄가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을 온 천하보다도 귀히 여기시므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결코 멸망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 재앙을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한 명이라도 돌이키고 회개해서 구원받을 수 있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재앙을 통해 회개하고 돌이켜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할 것입니다.
3. 우박의 재앙
바로가 백성 앞에 자고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우박의 재앙을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개국 이래 없었던 중한 우박을 내리시겠다고 예고하시고,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릇 들에 있어서 집에 돌아오지 않은 자에게는 우박이 그 위에 내려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출 9:18-19).
그래서 모세가 하늘을 향하여 지팡이를 들자 하나님께서 뇌성과 우박을 보내시고 불을 내려 땅에 달리게 하셨습니다. 우박이 애굽 온 땅에 내려서 사람과 짐승을 무론하고 무릇 밭에 있는 것을 쳤고, 밭의 모든 채소를 치고 들의 모든 나무를 꺾었으니 이 재앙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이 거하는 고센 땅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우박이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출애굽기 9:31-32을 보면 "때에 보리는 이삭이 나왔고 삼은 꽃이 피었으므로 삼과 보리가 상하였으나 그러나 밀과 나맥은 자라지 아니한 고로 상하지 아니하였더라" 하였으니 부분적으로 상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박의 재앙은 어떤 영적인 의미를 가졌을까요?
불 섞인 우박이 예고 없이 쏟아져 사람과 짐승이 죽고 밭의 채소가 다 상하여 먹을 것이 없게 되었으니 이는 어떤 불의의 사고나 일로 인하여 재물에 큰 손해를 보는 경우를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사업터나 일터에 갑작스레 큰 일이 일어나 많은 손해를 본다거나 가족 중 한 사람이 큰 질병이나 사고를 당하여 갑자기 많은 돈이 나가게 되는 경우이지요. 또한 우박은 예고 없이 쏟아지되 일시에 모든 곳에 내리지 아니하고 부분적으로 크게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박의 재앙은 한꺼번에 큰 일이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부분적으로 큰 일이 일어나는 경우입니다.
믿는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악을 행한다거나 신앙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들은 물질의 손해로 일시에 망해 버리면 자신의 목숨까지도 끊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일시에 망하지 않도록 부분적으로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라 부분적으로 재앙을 허락하시되 크게 임하게 하심으로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역사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면 우박의 재앙이 왜 큰 것일까요? 세상 사람들은 목숨 다음으로 돈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돈 때문에 살인하고, 형제간에 우애가 끊어지기도 하지요. 믿는 사람 중에도 십계명을 알면서 돈을 벌기 위해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도 있는데, 주일 성수를 안 하면 신앙생활을 올바로 하지 못하는 것이므로 결국 구원받을 수가 없게 되지요.
이처럼 돈은 영혼 구원과도 직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박이 거의 모든 식물을 쓸어버림같이 물질에 큰 손해가 오는 것이니 얼마나 큰 재앙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됨을 깨달아 오직 말씀대로 살며 하나님의 도우심 가운데 우박의 재앙을 만나지 않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악질과 독종과 우박의 재앙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바로 왕처럼 강퍅하고 완악해서 순종하지 않을 때 임하는 재앙들입니다. 악하면 악할수록 더 큰 재앙이 임하는 것이니 혹 재앙이 임했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열 재앙의 말씀을 잘 양식삼아 재앙을 면할 뿐 아니라, 악을 벗어 버림으로 자신과 가족이 평안함을 누리며 복된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