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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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23
제25과사망에 이르는 죄
마태복음 12:31~32
읽을말씀 : 마태복음 12:31~32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0:26 | 참고 말씀: 히브리서 6:4~6
교육목표 :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에 대해 밝히 알아 구원받지 못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절대 짓지 않게 한다.
공장 폐수나 쓰레기, 농약 같은 독극물이나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된 땅은 회복되는 데에 오랜 세월이 걸리거나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마음 밭도 이와 비슷합니다. 독한 폐수와 같은 사망에 이르는 죄에 심히 오염되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기가 어렵고 구원에 이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황폐한 마음 밭도 소생시키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얼마나 철저히 통회자복하며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힘쓰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지요.
혹여 지난날 마음 밭을 개간하지 않고 더럽혀 왔다면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1. 구원과 상관있는 죄는 절대 짓지 말아야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마음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령을 선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거스르고 육체의 일을 행하기도 합니다.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해도 다시 반복해서 죄를 지으면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고 또 용서하시는 분이지만 일단 구원받았다고 해도 너무 중한 죄를 짓거나 계속 범죄해 어느 한계선을 넘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저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송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인 동시에 공의로운 분이기에 원수 마귀 사단이 영계의 법을 근거로 송사하면 이를 받아들이실 수밖에 없지요. 그러므로 어떤 죄든 지어서는 안 되지만 특히 구원과 상관있는 죄는 절대 짓지 말아야 합니다. 혹여 지었다면 즉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죄라고 해서 다 같은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죄 중에는 회개하면 바로 용서받을 수 있는 비교적 가벼운 죄가 있는가 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경고하신 무거운 죄들도 있습니다.
2.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이단을 비롯하여 현저한 육체의 일에 속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말씀한 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하는 죄’를 지었다 해도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죄에서 돌이키면 구원의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이라도 이단에서 나와 돌이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처럼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기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회개의 영이 오지 않아서 회개할 수가 없는 죄도 있습니다. 이런 죄를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합니다. 죄가 너무 중하기 때문에 아무리 용서를 구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경우입니다.
요한일서 5장 16절에 보면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용서해 달라고 구하지 말아야 할 ‘사망에 이르는 죄’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첫째,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둘째,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 보면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말씀했습니다.
셋째, 진리를 알면서 짐짓 즉 고의로 거듭 죄를 범하는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말씀했습니다.
3. 성령을 훼방, 거역, 모독하는 것은 사망에 이르는 죄
교회 역사를 보면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소한 교리 차이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이단이라고 정죄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중생, 부활, 재림, 심판, 천국 등 성경의 핵심 교리가 같다면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나 목회자를 함부로 정죄하면 성령 훼방, 거역, 모독이 되어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마 12:31~32).
먼저 ‘성령 훼방’이란 하나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경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역사인데도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므로 악으로 하나님 일에 훼방 놓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를 이단이라 정죄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거짓 문서를 조작하여 집회를 방해하는 것 등이 이에 속합니다. 진리를 몰라서 그런 경우라면 돌이켜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지만 알면서도 시기 질투하여 악한 마음으로 훼방한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성령 거역’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거나 성령의 역사를 임의로 판단 정죄하여 교단에 알리고 축출하는 등 상대를 해롭게 하는 경우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2절에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인자를 거역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단지 사람으로만 알고 거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구세주임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죄이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을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오늘날에도 진리를 모르거나 성령을 받기 전에 이러한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도 회개하여 용서받을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주님을 훼방하고 거역한다면 이는 성령을 거역하고 훼방하는 것과 같으므로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모독’이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욕되게 하거나 그 신성을 모독하는 일입니다(눅 12:10). 만일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라고 비방하거나 반대로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욕되게 하는 죄입니다. 또한 진리를 비진리라고 거짓으로 전하거나 사실을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과거에 잘 알지 못하여 성령을 훼방하거나 거역, 모독했다면 지금이라도 철저히 통회자복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입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 나열해 보세요.
2. 사망에 이르는 죄에 관한 성경 구절로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마태복음 12:31~32 ② 히브리서 6:4~6
③ 히브리서 10:26~27 ④ 잠언 8:17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성령 훼방’과 ‘성령 거역’을 쉽게 구분하는 법
성령 훼방과 성령 거역은 의미가 비슷하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의 차이점에 비유할 수 있다.
육신의 일이 아직 행하지는 않았으나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라면, 육체의 일은 육신의 일이 구체적으로 행함으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성령 훼방이 하나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막는 것이라면, 성령 거역은 이미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일을 적극적으로 궤사를 꾸며 거역하고 상대를 해롭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교육목표 :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에 대해 밝히 알아 구원받지 못하는 사망에 이르는 죄를 절대 짓지 않게 한다.
공장 폐수나 쓰레기, 농약 같은 독극물이나 방사능에 심하게 오염된 땅은 회복되는 데에 오랜 세월이 걸리거나 회복이 불가능합니다. 사람의 마음 밭도 이와 비슷합니다. 독한 폐수와 같은 사망에 이르는 죄에 심히 오염되면 본래의 상태로 회복되기가 어렵고 구원에 이르기도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황폐한 마음 밭도 소생시키는 능력을 갖고 계십니다. 얼마나 철저히 통회자복하며 마음을 정화하기 위해 힘쓰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긍휼을 입을 수 있지요.
혹여 지난날 마음 밭을 개간하지 않고 더럽혀 왔다면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회복하시기를 바랍니다.
1. 구원과 상관있는 죄는 절대 짓지 말아야
우리가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마음 문을 열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성령을 선물로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성령을 거스르고 육체의 일을 행하기도 합니다.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해도 다시 반복해서 죄를 지으면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하고 또 용서하시는 분이지만 일단 구원받았다고 해도 너무 중한 죄를 짓거나 계속 범죄해 어느 한계선을 넘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저 사람을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습니까?”라고 송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인 동시에 공의로운 분이기에 원수 마귀 사단이 영계의 법을 근거로 송사하면 이를 받아들이실 수밖에 없지요. 그러므로 어떤 죄든 지어서는 안 되지만 특히 구원과 상관있는 죄는 절대 짓지 말아야 합니다. 혹여 지었다면 즉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죄라고 해서 다 같은 죄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죄 중에는 회개하면 바로 용서받을 수 있는 비교적 가벼운 죄가 있는가 하면, ‘구원받지 못한다’고 경고하신 무거운 죄들도 있습니다.
2. 사망에 이르는 죄와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합니다.
이단을 비롯하여 현저한 육체의 일에 속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말씀한 대로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구원받지 못하는 죄’를 지었다 해도 철저히 통회자복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죄에서 돌이키면 구원의 길이 열릴 수 있습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이라도 이단에서 나와 돌이켜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십니다.
이처럼 회개하면 구원받을 수 있기에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는가 하면, 아무리 노력해도 회개의 영이 오지 않아서 회개할 수가 없는 죄도 있습니다. 이런 죄를 ‘사망에 이르는 죄’라고 합니다. 죄가 너무 중하기 때문에 아무리 용서를 구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경우입니다.
요한일서 5장 16절에 보면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용서해 달라고 구하지 말아야 할 ‘사망에 이르는 죄’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첫째, 성령 훼방, 모독, 거역의 죄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1~32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둘째, 주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인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6장 4~6절에 보면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말씀했습니다.
셋째, 진리를 알면서 짐짓 즉 고의로 거듭 죄를 범하는 경우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6~27절에 보면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사가 없고 오직 무서운 마음으로 심판을 기다리는 것과 대적하는 자를 소멸할 맹렬한 불만 있으리라” 말씀했습니다.
3. 성령을 훼방, 거역, 모독하는 것은 사망에 이르는 죄
교회 역사를 보면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소한 교리 차이나 개인적인 감정으로 인해 이단이라고 정죄한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중생, 부활, 재림, 심판, 천국 등 성경의 핵심 교리가 같다면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나 목회자를 함부로 정죄하면 성령 훼방, 거역, 모독이 되어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마 12:31~32).
먼저 ‘성령 훼방’이란 하나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경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 성령의 역사인데도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므로 악으로 하나님 일에 훼방 놓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는 교회를 이단이라 정죄하여 유언비어를 퍼뜨리거나 거짓 문서를 조작하여 집회를 방해하는 것 등이 이에 속합니다. 진리를 몰라서 그런 경우라면 돌이켜 회개하고 용서받을 수 있지만 알면서도 시기 질투하여 악한 마음으로 훼방한다면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다음으로, ‘성령 거역’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음성을 거역하거나 성령의 역사를 임의로 판단 정죄하여 교단에 알리고 축출하는 등 상대를 해롭게 하는 경우입니다. 마태복음 12장 32절에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 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인자를 거역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단지 사람으로만 알고 거역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구세주임을 깨닫지 못하는 무지에서 비롯된 죄이기 때문에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을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씀이지요. 오늘날에도 진리를 모르거나 성령을 받기 전에 이러한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도 회개하여 용서받을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나 만일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알면서도 주님을 훼방하고 거역한다면 이는 성령을 거역하고 훼방하는 것과 같으므로 결코 용서받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성령 모독’이란 하나님의 영인 성령을 욕되게 하거나 그 신성을 모독하는 일입니다(눅 12:10). 만일 성령의 역사를 사단의 역사라고 비방하거나 반대로 성령의 역사가 아닌 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을 욕되게 하는 죄입니다. 또한 진리를 비진리라고 거짓으로 전하거나 사실을 거짓으로 몰아붙이는 경우도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성령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고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과거에 잘 알지 못하여 성령을 훼방하거나 거역, 모독했다면 지금이라도 철저히 통회자복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입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망에 이르는 죄에 대해 나열해 보세요.
2. 사망에 이르는 죄에 관한 성경 구절로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마태복음 12:31~32 ② 히브리서 6:4~6
③ 히브리서 10:26~27 ④ 잠언 8:17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성령 훼방’과 ‘성령 거역’을 쉽게 구분하는 법
성령 훼방과 성령 거역은 의미가 비슷하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의 차이점에 비유할 수 있다.
육신의 일이 아직 행하지는 않았으나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라면, 육체의 일은 육신의 일이 구체적으로 행함으로 나타난 것을 말한다. 마찬가지로 성령 훼방이 하나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막는 것이라면, 성령 거역은 이미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일을 적극적으로 궤사를 꾸며 거역하고 상대를 해롭게 하는 행위를 말한다.
2023-06-16
제24과이단의 특징과 적그리스도의 영
베드로후서 2:1~3
읽을말씀 : 베드로후서 2:1~3 | 외울말씀 : 베드로전서 5:8 | 참고 말씀: 요한일서 4:1~6
교육목표 : 이단의 특징과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해 바로 알아 미혹 받지 않고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한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사소한 교리 차이를 놓고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을 부인하지도 않고 신앙고백을 할 뿐 아니라, 성경의 핵심 교리가 같은데도 이단이라고 판단해 버리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세주 되심과 부활과 재림, 심판을 가르치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결코 이단이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단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1. 이단의 특징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라는 이단 사상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 있으면 도덕적으로 살지 않아도 되고, 영혼과 육체는 별개이므로 육체로 죄를 지어도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부인했지요.
이처럼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 외에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2~3절에 기록한 대로 이들은 대부분 호색하므로 진리의 도, 곧 하나님 말씀을 훼방합니다. 또 탐심으로 인해 거짓말을 지어내어 자기 이익을 취해 나가지요. 천국이 없다고 부인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일 뿐 결코 하나님과 하나일 수 없다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지요.
예컨대,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믿습니다. 영혼은 죽음과 함께 소멸하고 지옥이 없다고 주장하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육체는 썩고 영만 부활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통일교라 불리는 ‘세계 기독교 통일 신령협회’가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기에 인류 구원에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다른 구세주가 필요한데 바로 그들의 교주가 구세주라고 하지요.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며 성경 외에 ‘원리강론’이라는 경전을 만들어 가르칩니다.
이처럼 이단들은 자기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시키고 다른 경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에게는 성경 66권 외에 어떤 경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구속 외에는 죄 사함과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그 어떤 길도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을 대적하는 가짜 복음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2.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들에게 미혹 받지 않으려면
디도서 3장 10절에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했습니다. 한두 번 말해서 상대가 듣지 않을 때는 변론해도 소용없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이단과 변론하다 보면 오히려 미혹될 수 있기 때문에 삼가 주의해야 합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 1:10)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에게 미혹 받지 않으려면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단번에 꺾어 버리겠다고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하지요. 다만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이 접근해 오면 자기 경험에 의지해 물리치려고 하지 말고, 전적으로 성령을 의지해 물리쳐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해야지요. “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우리의 소속을 분명히 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은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3. 적그리스도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장차 될 일들을 자세히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권면했습니다(요일 4:1). 초대교회 당시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했기 때문입니다.
영에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속한 선한 영과 미혹하여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한 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가?’입니다(요일 4:2~3). 이는 단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만 믿는 것이 아니라, 육체로 오셔야만 했던 이유와 구원의 섭리 전체를 믿는다는 의미이지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시인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진리대로 행해 나갑니다.
반면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해 나가는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를 부인합니다. 특히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묘히 미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잘 분별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않는 것은 곧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요이 1:7).
적그리스도의 영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 사로잡은 경우와 적그리스도의 영이 생각을 통해 미혹하는 경우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영들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과 정반대로 나가도록 사로잡거나 생각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미혹되도록 역사합니다(요일 4:5~6).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 중에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과연 그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는지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이는 그들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 말씀에 비춰 합당한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4.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려면
요한일서 3장 7절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말씀합니다. 미혹의 영은 세상의 영으로서 믿음에서 떠나도록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혹 믿는다고 하면서 악한 궤계를 부리고 하나님 나라를 훼파하려고 한다면 이는 미혹의 영에게 역사를 받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리의 영, 곧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 안에 내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또 자의로 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듣는 것을 말씀하시며 장래의 일을 알려 주시지요. 따라서 진리의 영을 받으면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고 확장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만 왔다 갔다 할 뿐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 세상에 속한 사람들로서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을 받지 못하면 미혹의 영에 이끌려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딤전 4:1~2).
만약 믿음의 형제를 중상모략하거나 수군수군하는 등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며 훼방한다면 이는 진리의 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행함이 충성스럽게 보여도 미움, 시기, 질투 등 악의 열매, 불법의 열매가 맺혔다면 하나님께 속한 진리의 영이 아님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렇다고 진리에서 벗어난 사람이라 해서 다 적그리스도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믿고 십자가 구원의 도를 시인한다면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 없지요.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은 고의로 성경을 변질시키고 성령을 정면으로 대적해 성령 훼방, 모독, 거역해 나갑니다. 따라서 진리에 굳게 서서 영들을 밝히 분별하여 미혹 받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단에 대한 특징으로 맞지 않은 것을 고르세요.
①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영혼과 육체는 별개이므로 육체로 죄를 지어도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다.
②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부인한다.
③ 성경을 왜곡하고 다른 경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④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한다.
2.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3. ( ) 안에 알맞은 답을 쓰세요.
진리의 영 곧 ( )은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 안에 내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고 ( )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또 자의로 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듣는 것을 말씀하시며 ( )의 ( )을 알려 주신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사도 요한’
예수님의 제자로서 아버지 세베대와 어머니 살로메 사이에서 야고보의 동생으로 태어났다. 그는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성격이 급했다. 예수님을 매우 사랑한 그는 최후의 만찬상에서 예수님 품에 의지해 누울 정도로 예수님의 총애를 받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그 곁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으며, 이때 동정녀 마리아를 돌봐달라는 예수님의 부탁을 받는다.
그는 요한복음과 요한서신(1,2,3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교육목표 : 이단의 특징과 적그리스도의 영에 대해 바로 알아 미혹 받지 않고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하게 한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사소한 교리 차이를 놓고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님을 부인하지도 않고 신앙고백을 할 뿐 아니라, 성경의 핵심 교리가 같은데도 이단이라고 판단해 버리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세주 되심과 부활과 재림, 심판을 가르치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정한다면 결코 이단이라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단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1. 이단의 특징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라는 이단 사상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 있으면 도덕적으로 살지 않아도 되고, 영혼과 육체는 별개이므로 육체로 죄를 지어도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셔서 우리를 구원하신 것을 부인했지요.
이처럼 이단에 속한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것 외에 또 다른 특징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2~3절에 기록한 대로 이들은 대부분 호색하므로 진리의 도, 곧 하나님 말씀을 훼방합니다. 또 탐심으로 인해 거짓말을 지어내어 자기 이익을 취해 나가지요. 천국이 없다고 부인하기도 합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께서는 사람일 뿐 결코 하나님과 하나일 수 없다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지요.
예컨대,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믿습니다. 영혼은 죽음과 함께 소멸하고 지옥이 없다고 주장하며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육체는 썩고 영만 부활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통일교라 불리는 ‘세계 기독교 통일 신령협회’가 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기에 인류 구원에 실패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다른 구세주가 필요한데 바로 그들의 교주가 구세주라고 하지요. 여러 사업체를 운영하며 성경 외에 ‘원리강론’이라는 경전을 만들어 가르칩니다.
이처럼 이단들은 자기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성경을 왜곡시키고 다른 경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인에게는 성경 66권 외에 어떤 경전도 있을 수 없습니다. 십자가의 구속 외에는 죄 사함과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그 어떤 길도 없습니다. 따라서 주님을 대적하는 가짜 복음을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2.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들에게 미혹 받지 않으려면
디도서 3장 10절에 “이단에 속한 사람을 한두 번 훈계한 후에 멀리하라” 했습니다. 한두 번 말해서 상대가 듣지 않을 때는 변론해도 소용없습니다. 믿음이 약한 사람이 이단과 변론하다 보면 오히려 미혹될 수 있기 때문에 삼가 주의해야 합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이 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요이 1:10)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단 사상에 물든 사람에게 미혹 받지 않으려면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이단들이 주장하는 교리를 단번에 꺾어 버리겠다고 하는 생각은 버려야 하지요. 다만 하나님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말고 하나님 말씀을 담대히 증거해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으로 성령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단에 속한 사람이 접근해 오면 자기 경험에 의지해 물리치려고 하지 말고, 전적으로 성령을 의지해 물리쳐야 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의 소속을 분명히 해야지요. “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라고 고백하며 우리의 소속을 분명히 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은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3. 적그리스도의 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아 장차 될 일들을 자세히 기록한 사도 요한은 성도들에게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권면했습니다(요일 4:1). 초대교회 당시에도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나와 하나님의 자녀들을 미혹했기 때문입니다.
영에는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속한 선한 영과 미혹하여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한 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가?’입니다(요일 4:2~3). 이는 단지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신 것만 믿는 것이 아니라, 육체로 오셔야만 했던 이유와 구원의 섭리 전체를 믿는다는 의미이지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고 돌아가셔서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시인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곧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으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 진리대로 행해 나갑니다.
반면에 적그리스도는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해 나가는 사람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를 부인합니다. 특히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교묘히 미혹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잘 분별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든 예수 그리스도를 시인하지 않는 것은 곧 주님을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요이 1:7).
적그리스도의 영은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적그리스도의 영이 사로잡은 경우와 적그리스도의 영이 생각을 통해 미혹하는 경우입니다. 적그리스도의 영들은 사람들이 하나님 말씀과 정반대로 나가도록 사로잡거나 생각을 통해 자신도 모르게 미혹되도록 역사합니다(요일 4:5~6).
오늘날도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 중에 성도들을 미혹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과연 그들이 하나님께 속해 있는지 시험해 보아야 합니다. 이는 그들의 말과 행동이 하나님 말씀에 비춰 합당한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4.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분별하려면
요한일서 3장 7절에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말씀합니다. 미혹의 영은 세상의 영으로서 믿음에서 떠나도록 마음을 흐리게 합니다. 혹 믿는다고 하면서 악한 궤계를 부리고 하나님 나라를 훼파하려고 한다면 이는 미혹의 영에게 역사를 받는 것입니다.
반면에 진리의 영, 곧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 안에 내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또 자의로 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듣는 것을 말씀하시며 장래의 일을 알려 주시지요. 따라서 진리의 영을 받으면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고 확장되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그런데 믿는다고 하면서 교회만 왔다 갔다 할 뿐 하나님 말씀을 즐거워하지 않으며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아직 세상에 속한 사람들로서 여전히 세상을 사랑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영을 받지 못하면 미혹의 영에 이끌려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딤전 4:1~2).
만약 믿음의 형제를 중상모략하거나 수군수군하는 등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며 훼방한다면 이는 진리의 영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아무리 행함이 충성스럽게 보여도 미움, 시기, 질투 등 악의 열매, 불법의 열매가 맺혔다면 하나님께 속한 진리의 영이 아님을 깨우쳐야 합니다.
그렇다고 진리에서 벗어난 사람이라 해서 다 적그리스도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었다는 것을 믿고 십자가 구원의 도를 시인한다면 적그리스도라고 할 수 없지요. 적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사람은 고의로 성경을 변질시키고 성령을 정면으로 대적해 성령 훼방, 모독, 거역해 나갑니다. 따라서 진리에 굳게 서서 영들을 밝히 분별하여 미혹 받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단에 대한 특징으로 맞지 않은 것을 고르세요.
① 초대교회 당시 영지주의자들은 영혼과 육체는 별개이므로 육체로 죄를 지어도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다.
②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과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부인한다.
③ 성경을 왜곡하고 다른 경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④ 여호와의 증인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한다.
2. 하나님의 영과 적그리스도의 영을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3. ( ) 안에 알맞은 답을 쓰세요.
진리의 영 곧 ( )은 하나님의 자녀들 마음 안에 내주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시고 ( ) 가운데로 인도하신다. 또 자의로 말하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듣는 것을 말씀하시며 ( )의 ( )을 알려 주신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사도 요한’
예수님의 제자로서 아버지 세베대와 어머니 살로메 사이에서 야고보의 동생으로 태어났다. 그는 우레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성격이 급했다. 예수님을 매우 사랑한 그는 최후의 만찬상에서 예수님 품에 의지해 누울 정도로 예수님의 총애를 받았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그 곁에서 예수님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보았으며, 이때 동정녀 마리아를 돌봐달라는 예수님의 부탁을 받는다.
그는 요한복음과 요한서신(1,2,3서),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다.
2023-06-09
제23과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이단
베드로후서 2:1
읽을말씀 : 베드로후서 2:1 | 외울말씀 : 베드로후서 2:1 | 참고 말씀: 요한일서 2:22~23
교육목표 :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임을 알아 함부로 판단 정죄하거나 미혹 당하지 않도록 한다.
세월이 갈수록 허황한 이론이 세상을 혼란케 하고 사람들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해 미혹되기도 합니다. 자신이 보기에 옳다고 인정해 온 이론이나 지식 때문에 잘못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지요.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여러 오류를 범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단에 관한 인식입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소한 교리 차이 때문에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오늘날과 같이 이단 사상이 난무하는 마지막 때는 성경을 근거로 하여 이단에 관한 인식을 바로 정립해야 합니다. 이단의 정의를 정확하게 알 때 미혹 당하지 않고, 자기 생각과 달라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1. 사도 바울을 이단의 괴수라 송사한 유대인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의 일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뛰어난 지식을 가진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하나님만 믿는 유대교 신자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할 메시아, 곧 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보면서 사울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이라고 전파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할 때도 사울은 마땅하다고 여겼으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옥에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신앙에 대전환점을 맞는 사건이 생깁니다. 그가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행 9:4~5). 그 뒤 그는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사울은 일변하여 큰 권능을 행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다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으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했지요.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4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단의 괴수’라고 고소당합니다.
이때 총독 앞에 선 바울은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4~16) 하고 자신의 신앙을 담대히 고백하지요.
이단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 옳지 않은 도,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설 또는 이론’입니다.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 바울을 이단이라고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이단
오늘날도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를 믿는다고 해서,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이론을 주장한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단을 분별할 때는 반드시 성경의 기준에 근거해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 ‘이단’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 나오는데, 그 정의는 한 군데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1절에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한 말씀입니다. ‘자기들을 사신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지요.
원래 사람은 하나님께 속해 하나님 뜻대로 살았으나 아담의 불순종 이후 죄인이 되어 원수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피 값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죄로 인해 원수 마귀에게 속해 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 받아 생명을 얻고 다시 하나님께 속하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피 값을 주고 우리를 사신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성하시기 전까지는 ‘자기들을 사신 주’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이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에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핍박했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등 누구도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았지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신 뒤에야 ‘자기들을 사신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 곧 이단이 등장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한 번도 ‘자기를 사신 주’를 부인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며 심한 고난과 모진 핍박을 받아도 오직 기쁨으로 이겨냈지요. 순교하는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며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큰 권능을 나타내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믿으면 결코 이단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대적하는 사람들, 곧 ‘적그리스도’가 이단임을 알아 결코 미혹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처럼 성령의 권능으로 복음을 널리 전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3. 이단의 정의를 바로 알고 판단 정죄하는 일이 없어야
요한일서 2장 22~23절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와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거짓말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요, 이단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이들은 성령의 역사가 활발한 교회를 이단이라 하거나 적그리스도라 정죄합니다. 이는 자신들이 영적인 무지함 때문에 하나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가령, 부르짖어 기도한다고 이단이라 하고, 주기도문에 ‘대개’라는 단어를 안 넣었다고 이단이라 합니다. 방언이나 환상, 예언 등의 은사가 나타나고 치료의 역사나 표적이 일어나니까 이단이라 정죄합니다. 이 외에도 찬양할 때 손뼉 치고 예배 때 특송으로 무용을 하니까 이단이라고 하지요.
이는 성경에 근거한 이단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고, 성경이 절대적인 하나님 말씀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함부로 이단이라고 한다면 곧 성령을 정죄하며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이단의 정의를 올바로 아는 사람은 쉽게 상대를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이 표적과 기사를 많이 나타내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이를 시기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고자 했지요. 이때 바리새인이었던 교법사 가말리엘은 자기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면 굳이 사람이 나서서 무너뜨리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행 5:38~39).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인데 악한 마음으로 반대하고 훼방한다면 상대를 무너뜨리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므로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 되지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성경을 근거로 이단을 분별해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단의 정의를 써 보세요.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자기들을 사신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②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
③ 가말리엘은 사도 바울의 제자이다.
④ 구약 성경이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가말리엘’
그는 바리새인이자 위대한 율법 학자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받았으며, 사도 바울의 스승이기도 하다(행 22:3).
산헤드린 공회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죽이려고 할 때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그는 이 일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뜨릴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해 사도들을 변증해 주었다(행 5:33~40).
교육목표 :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임을 알아 함부로 판단 정죄하거나 미혹 당하지 않도록 한다.
세월이 갈수록 허황한 이론이 세상을 혼란케 하고 사람들은 참과 거짓을 분별하지 못해 미혹되기도 합니다. 자신이 보기에 옳다고 인정해 온 이론이나 지식 때문에 잘못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실수를 범하기도 하지요.
주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도 여러 오류를 범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단에 관한 인식입니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기준으로 하지 않고 사소한 교리 차이 때문에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오늘날과 같이 이단 사상이 난무하는 마지막 때는 성경을 근거로 하여 이단에 관한 인식을 바로 정립해야 합니다. 이단의 정의를 정확하게 알 때 미혹 당하지 않고, 자기 생각과 달라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1. 사도 바울을 이단의 괴수라 송사한 유대인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의 일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울이라는 청년이 있었는데, 그는 뛰어난 지식을 가진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하나님만 믿는 유대교 신자들은 이스라엘을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할 메시아, 곧 구세주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예루살렘 교회가 부흥하는 것을 보면서 사울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하나님 아들이라고 전파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스데반 집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죽임을 당할 때도 사울은 마땅하다고 여겼으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을 끌어다가 옥에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의 신앙에 대전환점을 맞는 사건이 생깁니다. 그가 대제사장의 공문을 가지고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려고 다메섹으로 가던 중,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행 9:4~5). 그 뒤 그는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사울은 일변하여 큰 권능을 행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생명을 다했습니다. 옥에 갇히기도 하고 매도 수없이 맞으며 여러 번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했지요.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4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단의 괴수’라고 고소당합니다.
이때 총독 앞에 선 바울은 “나는 저희가 이단이라 하는 도를 좇아 조상의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과 및 선지자들의 글에 기록된 것을 다 믿으며 저희의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행 24:14~16) 하고 자신의 신앙을 담대히 고백하지요.
이단의 사전적 의미는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 옳지 않은 도,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설 또는 이론’입니다. 유대교를 믿는 사람들은 이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도 바울을 이단이라고 정죄하였던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가 이단
오늘날도 자기가 믿는 이외의 도를 믿는다고 해서, 전통이나 권위에 반항하는 이론을 주장한다고 해서 이단이라고 정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단을 분별할 때는 반드시 성경의 기준에 근거해야 합니다. 신약 성경에 ‘이단’이라는 단어가 다섯 번 나오는데, 그 정의는 한 군데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후서 2장 1절에 “그러나 민간에 또한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났었나니 이와 같이 너희 중에도 거짓 선생들이 있으리라 저희는 멸망케 할 이단을 가만히 끌어들여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이라” 한 말씀입니다. ‘자기들을 사신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지요.
원래 사람은 하나님께 속해 하나님 뜻대로 살았으나 아담의 불순종 이후 죄인이 되어 원수 마귀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긍휼히 여기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대신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그 피 값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죄로 인해 원수 마귀에게 속해 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 받아 생명을 얻고 다시 하나님께 속하도록 섭리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상에서 피 값을 주고 우리를 사신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바로 이렇게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는 것이 이단입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의 사명을 완성하시기 전까지는 ‘자기들을 사신 주’라는 표현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이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에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 것도 이런 까닭입니다. 당시 예수님을 핍박했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등 누구도 예수님을 이단이라고 하지 않았지요. 예수님께서 부활하셔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신 뒤에야 ‘자기들을 사신 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사람들, 곧 이단이 등장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한 번도 ‘자기를 사신 주’를 부인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 가는 곳마다 복음을 전하며 심한 고난과 모진 핍박을 받아도 오직 기쁨으로 이겨냈지요. 순교하는 날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을 치료하며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큰 권능을 나타내 살아 계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가 ‘자기들을 사신 주’라고 믿으면 결코 이단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대적하는 사람들, 곧 ‘적그리스도’가 이단임을 알아 결코 미혹 당하는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사도 바울처럼 성령의 권능으로 복음을 널리 전하는 사람들을 함부로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는 일도 없어야 합니다.
3. 이단의 정의를 바로 알고 판단 정죄하는 일이 없어야
요한일서 2장 22~23절에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와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가 거짓말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요, 이단이라는 말씀입니다.
어떤 이들은 성령의 역사가 활발한 교회를 이단이라 하거나 적그리스도라 정죄합니다. 이는 자신들이 영적인 무지함 때문에 하나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가령, 부르짖어 기도한다고 이단이라 하고, 주기도문에 ‘대개’라는 단어를 안 넣었다고 이단이라 합니다. 방언이나 환상, 예언 등의 은사가 나타나고 치료의 역사나 표적이 일어나니까 이단이라 정죄합니다. 이 외에도 찬양할 때 손뼉 치고 예배 때 특송으로 무용을 하니까 이단이라고 하지요.
이는 성경에 근거한 이단과는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고, 성경이 절대적인 하나님 말씀이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을 함부로 이단이라고 한다면 곧 성령을 정죄하며 대적하는 것과 같습니다. 따라서 이단의 정의를 올바로 아는 사람은 쉽게 상대를 이단이라고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이 표적과 기사를 많이 나타내자,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습니다. 이를 시기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사도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고자 했지요. 이때 바리새인이었던 교법사 가말리엘은 자기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면 굳이 사람이 나서서 무너뜨리지 않아도 스스로 무너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행 5:38~39).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인데 악한 마음으로 반대하고 훼방한다면 상대를 무너뜨리지도 못할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므로 심판을 자초하는 일이 되지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인이라면 반드시 성경을 근거로 이단을 분별해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단의 정의를 써 보세요.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자기들을 사신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②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시기 전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사용되지 않았다.
③ 가말리엘은 사도 바울의 제자이다.
④ 구약 성경이나 예수님의 공생애를 기록한 사복음서에는 이단이라는 말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가말리엘’
그는 바리새인이자 위대한 율법 학자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받았으며, 사도 바울의 스승이기도 하다(행 22:3).
산헤드린 공회가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을 죽이려고 할 때 산헤드린 공회원이었던 그는 이 일이 사람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질 것이고,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면 무너뜨릴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해 사도들을 변증해 주었다(행 5:33~40).
2023-06-02
제22과응답받기 위한 하나님의 측정 기준 - 일곱 영 (2)
요한계시록 5:6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5: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21 | 참고 말씀: 잠언 8:17, 출애굽기 20:6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은 우리의 어떤 분야를 측정하는지 정확히 알아 공의에 맞는 응답과 축복을 받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응답과 축복을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 공의에 따라 주십니다. 여기에 적용되는 공의의 법칙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 행실 등 모든 분야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일곱 가지 측면에서 측정하지요. 지난주에는 세 가지 측면 곧 믿음, 기쁨, 기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나머지 일곱 영의 측정 기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넷째로, ‘감사’를 측정합니다.
참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중심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영혼이 값없이 주신 주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었고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중심에서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지요. 더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한 걸음씩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특별한 감사의 조건이 없다 해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성장할수록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축복해 주시기 때문에 감사의 조건도 점점 많아집니다. 여러분은 범사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시는지요? 당장 눈앞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하여 일곱 영의 기준에 합격하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감사한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는 원망 불평한다면 일곱 영이 측정할 때 불합격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했습니다. 아무리 환경과 조건이 나쁘다 해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행함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일에 합력해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다섯째로,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를 측정합니다.
성경을 보면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그중에 십계명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함축하고 있는 열 가지 항목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도들이 십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정확하게 측정하여 잘 지킨 성도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계명을 잘 지키는지’가 왜 기도 응답의 조건에 들어갈까요?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니 계명을 지키고 공의 가운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야 은혜와 사랑을 주시지요(출 20:6). 그래서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하셨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기쁘고 행복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하지만 믿음이 어린 성도들은 계명대로 사는 것을 힘들게 느끼기도 하고 온전히 지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모습 그대로를 믿음으로 인정해 주시지요. 계명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할지라도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여기셔서 응답해 주십니다.
여섯째로, ‘충성’을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각 사람에게 맡겨진 직분과 사명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충성되게 감당하는지를 측정합니다. 이때 충성은 교회에서 받은 사명뿐만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의 충성을 포함하여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주의 일과 세상일 중의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믿음 있는 성도는 주의 일을 택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일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진리 안에서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때때로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고 직분 있는 일꾼인데도 지킴 받지 못하고 큰 문제를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전에는 뜨겁게 사명 감당하며 충성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명을 놓고 미지근해졌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가령, 사업터를 확장하는 데 마음을 빼앗겨 주의 일을 소홀히 합니다. 또 생활이 어렵거나 가족의 핍박을 피해 보고자 타협하다 보니 사명에 대한 충성이 식어졌지요. 결국 사명을 억지로 힘들게 감당하는가 하면, 자리를 지키지 못하거나 겨우 자리만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한때는 충성했는데 왜 마음이 변개한 것일까요? 이는 열심을 냈다고 하지만 영적인 충성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충성은 꾸준히 마음의 할례, 곧 마음의 악을 버리는 작업이지요. 영적인 충성을 한 사람은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도 변함없이 해 나가며, 어떤 어려움이 와도 사명을 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면 육적으로 힘든 일이 생길 때 마음에 남아 있는 육의 속성, 악의 모양이 발동되어 스스로 마음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변함없이 온전한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영적인 충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일곱째로, ‘사랑’을 측정합니다.
여기에서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은 여섯 가지 전체를 온전하게 매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곧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을 사랑이 하나로 엮어서 온전하게 하지요.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바로 사랑이 없는 믿음이나 기도, 감사, 충성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3절에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시지요.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면 이 얼마나 악한 마음입니까? 기도할 때도 사랑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사랑 없는 기도는 하나님께 향으로 상달되기 어렵습니다. 사랑 없는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는 물론이요, 사람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즐거이 지키는 것이 참입니다. 충성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시지요.
이처럼 사랑이 다른 여섯 가지를 온전하게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므로 사랑이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우리가 모든 것을 행할 때 얼마나 진실한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지를 두루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행하여 일곱 영의 측정에 온전히 합격함으로 모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은 전자제품의 부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 부품 중의 하나라도 빠지면 스위치를 켜도 작동하지 않지요. 이처럼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기도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셔서 각각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합격 기준을 정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통과하지 못할 높은 기준을 정해 놓고 응답하지 않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을 고려하여 그 수준에 맞게 합격 기준을 정하고 그에 합당하면 응답하시고자 함이지요.
하나님께서 일곱 영을 통해 세밀하게 기도 응답의 기준을 정하신 것은 어찌하든 더 많은 응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을 측정하는 일곱 영의 기준에 모두 합격하셔서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순서대로 써보세요.
(믿음) → ( ) → (기도) → ( ) → (계명 지킴)→ ( ) → (사랑)
2. 다음 설명 중 옳은 것을 고르세요.
① 일곱 영이 마지막으로 측정하는 것은 충성이다.
② 일곱 영은 믿음, 기쁨, 기도, 감사, 충성, 온유, 절제를 측정한다.
③ 일곱 영은 하나님의 영이 일곱이라는 뜻이다.
④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맞게 구하도록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준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
육적인 사랑 -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질하는 사랑이다.
영적인 사랑 -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어떤 상황에도 변함없고 자신의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은 우리의 어떤 분야를 측정하는지 정확히 알아 공의에 맞는 응답과 축복을 받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응답과 축복을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 공의에 따라 주십니다. 여기에 적용되는 공의의 법칙이 바로 일곱 영입니다. 이는 사람의 마음과 생각, 행실 등 모든 분야를 한 치의 오차 없이 일곱 가지 측면에서 측정하지요. 지난주에는 세 가지 측면 곧 믿음, 기쁨, 기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나머지 일곱 영의 측정 기준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넷째로, ‘감사’를 측정합니다.
참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중심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영혼이 값없이 주신 주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었고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중심에서 감사가 나올 수밖에 없지요. 더구나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한 걸음씩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특별한 감사의 조건이 없다 해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성장할수록 하나님께서는 더 많은 것으로 축복해 주시기 때문에 감사의 조건도 점점 많아집니다. 여러분은 범사에 얼마나 감사하며 살아가시는지요? 당장 눈앞에 어떤 어려움이 있다 해도 오직 하나님을 믿음으로 감사하여 일곱 영의 기준에 합격하시기를 바랍니다. 만일 감사한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는 원망 불평한다면 일곱 영이 측정할 때 불합격 판정을 내릴 수밖에 없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했습니다. 아무리 환경과 조건이 나쁘다 해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믿음의 행함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모든 일에 합력해 선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다섯째로, ‘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를 측정합니다.
성경을 보면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이 많습니다. 그중에 십계명은 성경의 모든 말씀을 함축하고 있는 열 가지 항목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성도들이 십계명을 얼마나 잘 지키는지 정확하게 측정하여 잘 지킨 성도에게 응답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계명을 잘 지키는지’가 왜 기도 응답의 조건에 들어갈까요?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니 계명을 지키고 공의 가운데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라야 은혜와 사랑을 주시지요(출 20:6). 그래서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장 명확한 증거는 바로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하셨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기쁘고 행복하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킵니다.
하지만 믿음이 어린 성도들은 계명대로 사는 것을 힘들게 느끼기도 하고 온전히 지키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모습 그대로를 믿음으로 인정해 주시지요. 계명을 지키지 못할 때가 있다 할지라도 다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여기셔서 응답해 주십니다.
여섯째로, ‘충성’을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각 사람에게 맡겨진 직분과 사명을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충성되게 감당하는지를 측정합니다. 이때 충성은 교회에서 받은 사명뿐만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의 충성을 포함하여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주의 일과 세상일 중의 하나만 택하라고 한다면 믿음 있는 성도는 주의 일을 택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세상일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궁극적으로는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진리 안에서 합당하게 행해야 합니다.
때때로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고 직분 있는 일꾼인데도 지킴 받지 못하고 큰 문제를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보면 전에는 뜨겁게 사명 감당하며 충성하다가 어느 순간부터 사명을 놓고 미지근해졌다고 고백하기도 합니다.
가령, 사업터를 확장하는 데 마음을 빼앗겨 주의 일을 소홀히 합니다. 또 생활이 어렵거나 가족의 핍박을 피해 보고자 타협하다 보니 사명에 대한 충성이 식어졌지요. 결국 사명을 억지로 힘들게 감당하는가 하면, 자리를 지키지 못하거나 겨우 자리만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면 한때는 충성했는데 왜 마음이 변개한 것일까요? 이는 열심을 냈다고 하지만 영적인 충성을 등한히 했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충성은 꾸준히 마음의 할례, 곧 마음의 악을 버리는 작업이지요. 영적인 충성을 한 사람은 사명을 감당하는 충성도 변함없이 해 나가며, 어떤 어려움이 와도 사명을 놓지 않습니다.
그런데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면 육적으로 힘든 일이 생길 때 마음에 남아 있는 육의 속성, 악의 모양이 발동되어 스스로 마음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기도 하지요. 그러므로 변함없이 온전한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영적인 충성이 동반되어야 합니다.
일곱째로, ‘사랑’을 측정합니다.
여기에서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입니다. 사랑은 여섯 가지 전체를 온전하게 매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곧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을 사랑이 하나로 엮어서 온전하게 하지요.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바로 사랑이 없는 믿음이나 기도, 감사, 충성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3절에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다고 말씀하시지요.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이 잘못되는 것을 보고 기뻐한다면 이 얼마나 악한 마음입니까? 기도할 때도 사랑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사랑 없는 기도는 하나님께 향으로 상달되기 어렵습니다. 사랑 없는 감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중심을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는 물론이요, 사람에게도 감동을 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때도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즐거이 지키는 것이 참입니다. 충성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원하시지요.
이처럼 사랑이 다른 여섯 가지를 온전하게 하나로 묶는 역할을 하므로 사랑이 맨 마지막에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곱 영은 우리가 모든 것을 행할 때 얼마나 진실한 사랑의 마음으로 하는지를 두루 감찰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사랑으로 모든 것을 행하여 일곱 영의 측정에 온전히 합격함으로 모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은 전자제품의 부품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그 부품 중의 하나라도 빠지면 스위치를 켜도 작동하지 않지요. 이처럼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일곱 가지 항목 중 어느 한 가지라도 부족하면 기도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셔서 각각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합격 기준을 정하신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통과하지 못할 높은 기준을 정해 놓고 응답하지 않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을 고려하여 그 수준에 맞게 합격 기준을 정하고 그에 합당하면 응답하시고자 함이지요.
하나님께서 일곱 영을 통해 세밀하게 기도 응답의 기준을 정하신 것은 어찌하든 더 많은 응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을 측정하는 일곱 영의 기준에 모두 합격하셔서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풍성한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순서대로 써보세요.
(믿음) → ( ) → (기도) → ( ) → (계명 지킴)→ ( ) → (사랑)
2. 다음 설명 중 옳은 것을 고르세요.
① 일곱 영이 마지막으로 측정하는 것은 충성이다.
② 일곱 영은 믿음, 기쁨, 기도, 감사, 충성, 온유, 절제를 측정한다.
③ 일곱 영은 하나님의 영이 일곱이라는 뜻이다.
④ 일곱 영은 영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과 마음에 맞게 구하도록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준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
육적인 사랑 - 자기의 유익을 구하며 환경과 조건에 따라 변질하는 사랑이다.
영적인 사랑 -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어떤 상황에도 변함없고 자신의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이다.
2023-05-26
제21과성령이 도우시는 신앙
요한복음 14:16
읽을말씀 : 요한복음 14:1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6:7 | 참고 말씀: 사도행전 2:1~4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성령 충만한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한다.
성령강림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성령이 처음으로 성도들에게 임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약 120명쯤 되는 성도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 불같이 임했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지고 사도들을 비롯해 성도들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활발하게 복음을 전했지요(행 1:8).
이러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우리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진리와 은혜가 충만하여 뜨겁게 전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1. 보혜사 성령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이제 곧 제자들을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아버지 집으로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도대체 어디로 가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요. 또한 늘 자신들과 동고동락하신 예수님께서 떠나신다고 하니 걱정되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결코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며 위로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하며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시지요. 또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하며 예수님께서 떠나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십니다(요 16:7).
‘보혜사’란 한자로 지킬 ‘보(保)’, 은혜 ‘혜(惠)’, 스승 ‘사(師)’자를 써서 성도를 보호하고 돕는 ‘성령’을 지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이 어떻게 제자들을 돕는지 그 역할에 대해 조목조목 가르쳐 주셨지요. 제자들은 당시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성령이 임한 후에는 그 말씀들을 하나하나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맺으신 복음의 열매들 곧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처음으로 임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이들은 어떠한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성령강림 사건 이후 주님을 믿는 모든 성도에게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이 세상을 믿음으로 넉넉히 이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참 자녀로 나올 수 있습니다.
2. 성령이 도우시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1) 내 안에 계신 성령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계심을 여러 증거로 보이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예수님)의 위에 머물렀더라” 증언합니다(요 1:32). 성령은 어떤 형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기에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의 영안을 열어서 보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4절에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체험한 성령강림 사건이 나오는데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그 능력을 체험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했지요.
성령 충만함을 입은 사도들은 권세 있는 말씀으로 단번에 수천 명도 회개시키고, 주 예수의 이름 앞에 굴복시켰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등 성령이 존재하신다는 증거를 보였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배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것도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이 믿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내 안에 정말 성령이 계시나? 내가 이런 죄를 범했는데 성령이 소멸한 것은 아닌가?’라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강퍅하여 말씀을 의심하고 판단 정죄하는 길가 밭의 마음이 아니라면 대부분 성령을 받습니다. 설령 죄를 지었어도 대부분의 죄는 회개하고 다시 말씀 안에 살고자 노력하면 용서해 주시기 때문에 성령이 쉽게 소멸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령이 도우시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내 안에 성령이 계심을 믿을 뿐 아니라 성령을 신뢰해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이 나를 도와주시는 분임을 믿고 늘 의지해야 하지요. 세상을 좇는 옛사람의 모습은 다 벗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없고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을 때도 성령의 도우심을 믿고 의지하면 내가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게 되고 알 수 없는 것은 알게 해 주십니다.
2) 성령이 깨우쳐 주시는 선의 말씀을 무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또는 성령의 음성으로 선에 대해 깨우쳐 주십니다. 그런데 ‘나에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니다.’ 하고 마음 문을 닫아 버리면 깨달을 수 없고, 선한 마음을 이룰 수 없을뿐더러 믿음도 성장하지 않지요.
가령 영적인 사랑, 선, 성령의 열매 등 영의 마음을 이뤄야 할 말씀을 듣습니다. 성령은 이러한 말씀을 통해 최고의 선과 장성한 믿음의 분량을 이루는 길을 깨우쳐 주어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가는 길로 인도해 주시지요.
혹자는 ‘저렇게 높은 차원의 선은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런 믿음의 행함은 아직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다.’라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선을 이룰 수 있고 믿음의 선진들처럼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믿음으로 바라봐 주시지요. 나아가 각자 믿음의 단계에서 무엇을 깨우치고 행해야 하는지 깨닫게 하시며 행할 수 있도록 자상하고 섬세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데 성령이 깨우쳐 주셔도 그것을 무시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가령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우쳐 주시는데 ‘나는 아직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해서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다.’며 말씀을 외면해 버립니다. 이는 하나님과 원수인 육신의 생각을 동원해서 선의 말씀을 무시하는 행함이지요. 이렇게 계속 성령의 깨우침을 무시하면 성령이 주관하시는 선한 생각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도 입을 수 없습니다.
3)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분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늘 이끌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 뜻대로 살려는 의지를 내보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 안에 계신 성령이 다 하시니까.”라고 성령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성령이 깨우쳐 주시는 것을 깨닫고 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나를 도우시는 성령이 내 안에 계심을 참으로 믿는 사람은 성령의 주관을 받기 위해 말씀을 듣고 기도하기를 사모합니다. 깨우쳐 주시는 대로 순종하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복종시켜 나가지요. 주관하시는 대로 행하기가 어려울 때도 나를 도우시는 성령을 믿는 사람은 ‘내 안에 성령이 계시니 할 수 있다.’ 믿고 성령을 의지합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시간이 갈수록 이런 행함이 쌓이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주관과 인도를 받는 것이 점점 쉬워집니다. 그러니 늘 성령이 도우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참으로 위대한 일을 행한 믿음의 선진들이 나옵니다. ‘어떻게 그런 놀라운 일을 행했을까.’ 하고 그분들을 부러워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그렇게 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사랑과 능력을 힘입어 자신이 할 수 없는 것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의지하면 마냥 힘들고 어렵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이 계셔서 신앙생활이 참 쉽고 행복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령이 도우시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둘째,
셋째,
2. ( ) 안을 채워 보세요.
‘보혜사(保惠師)’란 성도를 ( )하고 돕는 ( )을 지칭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선의 단계’
선의 1단계 :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게 감정이 있지만 대항하지 않고 눌러 참는다.
선의 2단계 :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을뿐더러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다.
선의 3단계 :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게 선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단계이다.
선의 4단계 :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생명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이다.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성령 충만한 신앙생활을 영위하게 한다.
성령강림 주일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 이후 성령이 처음으로 성도들에게 임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약 120명쯤 되는 성도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할 때 불같이 임했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지고 사도들을 비롯해 성도들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활발하게 복음을 전했지요(행 1:8).
이러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우리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진리와 은혜가 충만하여 뜨겁게 전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1. 보혜사 성령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 자리에서 이제 곧 제자들을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아버지 집으로 간다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도대체 어디로 가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지요. 또한 늘 자신들과 동고동락하신 예수님께서 떠나신다고 하니 걱정되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결코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겠다며 위로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6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하며 또 다른 보혜사를 보내겠다고 약속하시지요. 또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하며 예수님께서 떠나는 것이 유익하다고 하십니다(요 16:7).
‘보혜사’란 한자로 지킬 ‘보(保)’, 은혜 ‘혜(惠)’, 스승 ‘사(師)’자를 써서 성도를 보호하고 돕는 ‘성령’을 지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성령이 어떻게 제자들을 돕는지 그 역할에 대해 조목조목 가르쳐 주셨지요. 제자들은 당시 다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성령이 임한 후에는 그 말씀들을 하나하나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성령은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맺으신 복음의 열매들 곧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처음으로 임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이들은 어떠한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담대히 복음을 전파할 수 있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성령강림 사건 이후 주님을 믿는 모든 성도에게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이 세상을 믿음으로 넉넉히 이길 뿐 아니라 하나님의 참 자녀로 나올 수 있습니다.
2. 성령이 도우시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1) 내 안에 계신 성령을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누구든지 자기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성령을 주십니다.
성령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계심을 여러 증거로 보이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같이 하늘로서 내려와서 그(예수님)의 위에 머물렀더라” 증언합니다(요 1:32). 성령은 어떤 형체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기에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의 영안을 열어서 보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행전 2장 1~4절에는 초대교회 성도들이 체험한 성령강림 사건이 나오는데 성령이 임하시는 것을 보고 그 능력을 체험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했지요.
성령 충만함을 입은 사도들은 권세 있는 말씀으로 단번에 수천 명도 회개시키고, 주 예수의 이름 앞에 굴복시켰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우는 등 성령이 존재하신다는 증거를 보였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예배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것도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이 믿음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분들은 ‘내 안에 정말 성령이 계시나? 내가 이런 죄를 범했는데 성령이 소멸한 것은 아닌가?’라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강퍅하여 말씀을 의심하고 판단 정죄하는 길가 밭의 마음이 아니라면 대부분 성령을 받습니다. 설령 죄를 지었어도 대부분의 죄는 회개하고 다시 말씀 안에 살고자 노력하면 용서해 주시기 때문에 성령이 쉽게 소멸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성령이 도우시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내 안에 성령이 계심을 믿을 뿐 아니라 성령을 신뢰해야 합니다. 보혜사 성령이 나를 도와주시는 분임을 믿고 늘 의지해야 하지요. 세상을 좇는 옛사람의 모습은 다 벗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없고 잘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을 때도 성령의 도우심을 믿고 의지하면 내가 할 수 없는 것도 할 수 있게 되고 알 수 없는 것은 알게 해 주십니다.
2) 성령이 깨우쳐 주시는 선의 말씀을 무시하지 않아야 합니다
성령은 말씀을 통해, 또는 성령의 음성으로 선에 대해 깨우쳐 주십니다. 그런데 ‘나에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니다.’ 하고 마음 문을 닫아 버리면 깨달을 수 없고, 선한 마음을 이룰 수 없을뿐더러 믿음도 성장하지 않지요.
가령 영적인 사랑, 선, 성령의 열매 등 영의 마음을 이뤄야 할 말씀을 듣습니다. 성령은 이러한 말씀을 통해 최고의 선과 장성한 믿음의 분량을 이루는 길을 깨우쳐 주어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가는 길로 인도해 주시지요.
혹자는 ‘저렇게 높은 차원의 선은 내가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저런 믿음의 행함은 아직 내 능력으로는 할 수 없다.’라고 단정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최고의 선을 이룰 수 있고 믿음의 선진들처럼 큰 믿음을 가질 수 있다고 믿음으로 바라봐 주시지요. 나아가 각자 믿음의 단계에서 무엇을 깨우치고 행해야 하는지 깨닫게 하시며 행할 수 있도록 자상하고 섬세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그런데 성령이 깨우쳐 주셔도 그것을 무시하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가령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깨우쳐 주시는데 ‘나는 아직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체험하지 못해서 아버지를 사랑할 수 없다.’며 말씀을 외면해 버립니다. 이는 하나님과 원수인 육신의 생각을 동원해서 선의 말씀을 무시하는 행함이지요. 이렇게 계속 성령의 깨우침을 무시하면 성령이 주관하시는 선한 생각을 받을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도 입을 수 없습니다.
3)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 뜻대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분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늘 이끌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러한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하나님 뜻대로 살려는 의지를 내보여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 안에 계신 성령이 다 하시니까.”라고 성령에게만 모든 책임을 돌려서는 안 됩니다. 성령이 깨우쳐 주시는 것을 깨닫고 행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합니다.
나를 도우시는 성령이 내 안에 계심을 참으로 믿는 사람은 성령의 주관을 받기 위해 말씀을 듣고 기도하기를 사모합니다. 깨우쳐 주시는 대로 순종하기 위해 부단히 자신을 복종시켜 나가지요. 주관하시는 대로 행하기가 어려울 때도 나를 도우시는 성령을 믿는 사람은 ‘내 안에 성령이 계시니 할 수 있다.’ 믿고 성령을 의지합니다. 처음에는 이렇게 노력하는 과정이 필요하고, 시간이 갈수록 이런 행함이 쌓이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주관과 인도를 받는 것이 점점 쉬워집니다. 그러니 늘 성령이 도우시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참으로 위대한 일을 행한 믿음의 선진들이 나옵니다. ‘어떻게 그런 놀라운 일을 행했을까.’ 하고 그분들을 부러워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그렇게 행하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으면 사랑과 능력을 힘입어 자신이 할 수 없는 것도 쉽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나를 의지하면 마냥 힘들고 어렵기 마련입니다. 여러분은 “성령이 계셔서 신앙생활이 참 쉽고 행복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령이 도우시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둘째,
셋째,
2. ( ) 안을 채워 보세요.
‘보혜사(保惠師)’란 성도를 ( )하고 돕는 ( )을 지칭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선의 단계’
선의 1단계 :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게 감정이 있지만 대항하지 않고 눌러 참는다.
선의 2단계 :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을뿐더러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다.
선의 3단계 :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게 선으로 감동을 줄 수 있는 단계이다.
선의 4단계 :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생명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이다.
2023-05-19
제20과응답받기 위한 하나님의 측정기준 - 일곱 영 (1)
요한계시록 5:6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5: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4:24 | 참고 말씀: 야고보서 4:2~3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은 우리의 어떤 분야를 측정하는지 정확히 알아 공의에 맞는 응답과 축복을 받게 한다.
일곱 영은 영 자체인 하나님의 마음을 말합니다(요 4:24). 우리가 응답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마음을 알아서 그 뜻에 맞게 구해야 하는데, 이러한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일곱 영입니다. 여기서 ‘일곱’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영이 일곱이라는 뜻이 아니라,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로서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인생을 두루 감찰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계 5:6). 일곱 영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핌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에게 공의에 맞게 응답과 축복을 주시지요. 가령 저울의 무게만큼 값을 치르듯이 일곱 영은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시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1.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믿음대로 돼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면 마음에서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아니라 지식으로만 아는 육적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로 알고 입술로 고백한다고 해서 믿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은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 없이 믿는 믿음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지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은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을 버리고 성결되는 만큼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면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드시 계명을 지키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것은 하고, “하지 말라” 하신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버리라” 하신 것은 버리고 “지키라” 하신 것은 지켜야 하지요. 이렇게 진리대로 준행할 때 하나님 앞에 책망할 것이 없으니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하는 것마다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영적인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더구나 죄를 짓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믿습니다.” 한다고 해도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이 오지 않지요. 죄를 회개하고 빛 가운데 행할 때만이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일곱 영이 가장 먼저 믿음을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을 기준으로 다른 분야도 측정되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분량에 맞춰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각각 다르게 정해 놓으셨습니다. 먼저 믿음을 측정한 후 나머지 여섯 가지 분야도 그 믿음의 분량에 맞는 기준을 적용하시지요. 그런데 큰 문제를 응답받기 위해서는 자기 믿음의 분량을 뛰어넘는 행함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믿음도 한층 성장할 수 있습니다.
2.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믿기 전에는 세상의 온갖 문제로 인해 눈물, 슬픔, 근심, 걱정 가운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사랑과 은혜를 입었으니 날마다 천국 소망과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합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오면 슬퍼하고 이내 기쁨이 사라지지요. 내 유익에 맞고 나 보기에 좋을 때 나오는 조건적이고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신앙 안에서 영적인 기쁨이 임한 사람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한 영생을 얻었고, 천국이 마음 가득하기에 중심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때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위해 애통할 때도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은 끊이지 않지요. 이런 영적인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과 그리스도인을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은 곧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응답 주실 것을 믿는 사람은 비록 현실은 어려워도 기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쓰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찾아 행하지요. 그러니 하나님과 화평하고 주변 사람들과는 물론 자신과도 화평을 이룸으로 기쁨이 샘솟는 것입니다.
3. 기도를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지,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는지” 등을 측정합니다. 무조건 많이 기도한다고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기도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먼저, 하나님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대로 매일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 어떤 시험에도 들지 않습니다. 설령 시험이 와도 신속히 통과할 수 있지요.
또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 상의 선지자들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아뢴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음으로, 내 뜻대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셨듯이(눅 22:42), 기도는 자기 뜻이 아닌 하나님 뜻에 맞춰서 해야 합니다. 욕심이나 정욕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 뜻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응답받을 수 없으며(약 4:2~3), 자신의 유익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먼저 구해야 합니다(마 6:33).
그다음으로 기도는 힘쓰고 애써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다 했습니다(눅 22:44). 우리는 핏방울까지는 아니더라도 땀이 날 정도로 힘써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응답받는 영계의 법칙입니다.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 말씀했습니다. 육적으로도 땀 흘리며 일해야 양식을 얻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응답받기 위해서는 땀 흘리는 수고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것을 기록해 두셨습니다(렘 29:12, 33:3).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아셨기에 큰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부르셨지요. 심지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큰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했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늘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중심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 기도란 마음에서 간절히 바라는 바를 입술로 내어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모습으로, 유창한 말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중심의 진실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반드시 믿음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정말 응답받을 수 있을까? 안 되면 어떡하지?”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정녕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기뻐 받으시지요.
만일 기도할 때 믿음과 사랑 없이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흠향하실 만한 향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짧은 시간을 기도한다 해도 반드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마음 다해 기도함으로 구하는 것마다 신속히 응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보세요.
일곱 영은 영 자체인 ( )의 ( )을 말한다.
우리가 응답받는 데 있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 )이다.
2. 일곱 영이 첫 번째로 믿음을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일곱 영이 두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4. 일곱 영이 세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공의’란?
선악 간에 공평하게 상벌(賞罰)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또는 속성을 일컫는다. 이때 ‘선악’을 가르는 기준은 진리 자체인 성경 66권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의로우시기에 불법, 불의, 편벽, 거짓, 어둠이 전혀 없으시다. 태초에 정하신 법과 질서에 따라 공의롭게 세상을 다스리신다. 인간을 경작하실 때도 인생들을 선악 간에 공정하게 심판해 각 사람에게 상벌을 주신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은 우리의 어떤 분야를 측정하는지 정확히 알아 공의에 맞는 응답과 축복을 받게 한다.
일곱 영은 영 자체인 하나님의 마음을 말합니다(요 4:24). 우리가 응답받기 위해서는 하나님 마음을 알아서 그 뜻에 맞게 구해야 하는데, 이러한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일곱 영입니다. 여기서 ‘일곱’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영이 일곱이라는 뜻이 아니라,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로서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인생을 두루 감찰하실 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계 5:6). 일곱 영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핌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사람에게 공의에 맞게 응답과 축복을 주시지요. 가령 저울의 무게만큼 값을 치르듯이 일곱 영은 하나님께서 응답을 주시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1.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분명히 ‘믿음대로 돼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면 마음에서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아니라 지식으로만 아는 육적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로 알고 입술로 고백한다고 해서 믿음이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은 현실적으로 눈에 보이지 않고 인간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 없이 믿는 믿음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지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은 내가 갖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악을 버리고 성결되는 만큼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그러면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드시 계명을 지키는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것은 하고, “하지 말라” 하신 것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버리라” 하신 것은 버리고 “지키라” 하신 것은 지켜야 하지요. 이렇게 진리대로 준행할 때 하나님 앞에 책망할 것이 없으니 담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구하는 것마다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영적인 믿음은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으면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더구나 죄를 짓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믿습니다.” 한다고 해도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이 오지 않지요. 죄를 회개하고 빛 가운데 행할 때만이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주어집니다.
그렇다면 일곱 영이 가장 먼저 믿음을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을 기준으로 다른 분야도 측정되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분량에 맞춰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각각 다르게 정해 놓으셨습니다. 먼저 믿음을 측정한 후 나머지 여섯 가지 분야도 그 믿음의 분량에 맞는 기준을 적용하시지요. 그런데 큰 문제를 응답받기 위해서는 자기 믿음의 분량을 뛰어넘는 행함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믿음도 한층 성장할 수 있습니다.
2.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우리는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항상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을 믿기 전에는 세상의 온갖 문제로 인해 눈물, 슬픔, 근심, 걱정 가운데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그 사랑과 은혜를 입었으니 날마다 천국 소망과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에는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합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 오면 슬퍼하고 이내 기쁨이 사라지지요. 내 유익에 맞고 나 보기에 좋을 때 나오는 조건적이고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기쁨이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신앙 안에서 영적인 기쁨이 임한 사람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합니다.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한 영생을 얻었고, 천국이 마음 가득하기에 중심에서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때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위해 애통할 때도 있지만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은 끊이지 않지요. 이런 영적인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입니다. 그러니 세상 사람과 그리스도인을 구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기쁨은 곧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과 응답 주실 것을 믿는 사람은 비록 현실은 어려워도 기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힘쓰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찾아 행하지요. 그러니 하나님과 화평하고 주변 사람들과는 물론 자신과도 화평을 이룸으로 기쁨이 샘솟는 것입니다.
3. 기도를 측정합니다
일곱 영은 우리가 “쉬지 않고 기도하는지, 하나님 뜻에 합당하게 기도하는지” 등을 측정합니다. 무조건 많이 기도한다고 합격하는 것이 아니라, 짧은 시간 기도해도 하나님의 마음에 맞게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먼저, 하나님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대로 매일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적으로 깨어 있어 어떤 시험에도 들지 않습니다. 설령 시험이 와도 신속히 통과할 수 있지요.
또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 상의 선지자들은 물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아뢴다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음으로, 내 뜻대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셨듯이(눅 22:42), 기도는 자기 뜻이 아닌 하나님 뜻에 맞춰서 해야 합니다. 욕심이나 정욕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 뜻에 맞지 않기 때문에 응답받을 수 없으며(약 4:2~3), 자신의 유익이 먼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먼저 구해야 합니다(마 6:33).
그다음으로 기도는 힘쓰고 애써 간절히 부르짖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다 했습니다(눅 22:44). 우리는 핏방울까지는 아니더라도 땀이 날 정도로 힘써서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응답받는 영계의 법칙입니다.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 말씀했습니다. 육적으로도 땀 흘리며 일해야 양식을 얻는 것처럼, 영적으로도 응답받기 위해서는 땀 흘리는 수고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것을 기록해 두셨습니다(렘 29:12, 33:3).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잘 아셨기에 큰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죽은 지 나흘이 된 나사로를 살리실 때도 큰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라고 부르셨지요. 심지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도 큰소리로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6절에 “예수께서 큰소리로 불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하신 후 운명하시다” 했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늘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또한 중심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십니다. 중심 기도란 마음에서 간절히 바라는 바를 입술로 내어 기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거룩한 모습으로, 유창한 말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보시는 것은 중심의 진실함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기도는 반드시 믿음과 사랑으로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정말 응답받을 수 있을까? 안 되면 어떡하지?”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정녕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기뻐 받으시지요.
만일 기도할 때 믿음과 사랑 없이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흠향하실 만한 향이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짧은 시간을 기도한다 해도 반드시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마음 다해 기도함으로 구하는 것마다 신속히 응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보세요.
일곱 영은 영 자체인 ( )의 ( )을 말한다.
우리가 응답받는 데 있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 )이다.
2. 일곱 영이 첫 번째로 믿음을 측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일곱 영이 두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4. 일곱 영이 세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공의’란?
선악 간에 공평하게 상벌(賞罰)을 집행하시는 하나님의 성품, 또는 속성을 일컫는다. 이때 ‘선악’을 가르는 기준은 진리 자체인 성경 66권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의로우시기에 불법, 불의, 편벽, 거짓, 어둠이 전혀 없으시다. 태초에 정하신 법과 질서에 따라 공의롭게 세상을 다스리신다. 인간을 경작하실 때도 인생들을 선악 간에 공정하게 심판해 각 사람에게 상벌을 주신다.
2023-05-12
제19과축복의 비결 (4)
말라기 3:8~10
읽을말씀 : 말라기 3:8~10 | 외울말씀 : 말라기 3:10 | 참고 말씀: 마태복음 6:21
교육목표 : 모든 물질의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통해 진정한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십일조는 우리의 소득은 물론 모든 물질에 대한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믿는다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생명과도 같은 물질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십일조는 주일 성수와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믿음이 있다고 하나님 앞에 증명하는 행함인 것입니다. 십일조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구원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1. 십일조의 중요성
십일조란 사업터와 일터 등 여러 분야에서 들어오는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 만물은 하나님에게서 왔고, 모든 산업은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수고해 벌어들인 수입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여 전체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요. 이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는 행함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므로 십일조는 구원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것을 주시고 그중 십분의 일만 구별하여 드리라 하셨는데 그런데도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씀합니다.
많은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한다는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이신 하나님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소중한 물질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믿음과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배와 기도, 찬양, 충성 등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물질을 생명에 비길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마 6:21).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믿음이 있다는 최소한의 증거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축복받기 위해 십일조를 드리고, 어떤 사람은 십일조를 하면 축복받지만, 안 해도 상관없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충성, 봉사해도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작은 초신자의 경우는 구원받더라도 겨우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십일조를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축복받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힘들게 하려고 십일조라는 규례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했습니다.
아직 믿음이 부족해 ‘정말 그럴까?’ 의심하고 아까워하는 사람이라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축복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헌금으로 나온 교회의 재정은 영혼 구원과 직결된 일에 쓰입니다. 즉 주의 종이나 교회 직원들의 급여, 선교비, 각종 행사비, 성전 유지비, 구제비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2.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려면
온전한 십일조를 하려면 우선 총수입에서 십일조를 떼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 달 급여가 100만 원인데 각종 세금, 연금, 보험료 등이 공제되어 실제로는 80만 원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 80만 원을 수입으로 잡아 8만 원을 십일조로 드렸다면 이는 바르게 계산한 것이 아닙니다. 총급여액인 100만 원을 수입으로 계산해야 합니다. 총수입이란, 현금 수입뿐 아니라 각종 현물 수입도 포함합니다. 음식 대접이나 선물도 수입에 포함해 이에 대한 십일조를 드려야 하지요.
또한 감사예물 등 다른 예물과 구별하여 별도로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로 드려야 할 것을 다른 명목으로 헌금한다면 하나님의 것을 임의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수입에서 가장 먼저 구별해 드려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십일조를 먼저 떼고, 나머지를 쓰는 것이 정석입니다. 수입이 생기는 즉시 십일조를 떼어 놓으면, 돈이 없어서 못 드리는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는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교회에 드려야 합니다. 단순히 출석하는 교회가 아니라, 영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곳에 드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감사헌금이나 건축헌금 등 기타 헌금은 주관 받는 곳에 드릴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십일조는 각자의 이름으로 드려야 합니다. 남편의 수입이라면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의 수입이라면 아내의 이름으로 드려야 합니다. 천국에서는 개인별로 땅과 집과 상급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함께 사업터를 운영하는 경우에는 공동의 이름으로 십일조를 드려도 가합니다. 자녀들도 세뱃돈이나 용돈, 생일 선물 등 수입이 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십일조를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학비나 학용품 등과 같이 정해진 용도로 받는 것은 자녀의 수입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십일조는 떼지 않아도 됩니다.
십일조는 적어도 한 달 간격으로 계수해야 잊어버리지 않고 온전히 드릴 수 있습니다. 수입이 생기는 그때그때 드리거나 한 달에 한 번 이상 드리는 것이 좋지요. 농사를 짓는 경우나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경우에는 몇 달 간격으로, 또는 일 년 단위로 드려도 괜찮습니다.
정규 수입이 없는 전업주부의 경우는 친구를 만나거나 여가를 즐기는 등 임의로 쓸 수 있는 돈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살림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지출이 바로 자신의 수입이 되므로 이를 계산하여 십일조를 드리면 됩니다.
3. 온전한 헌물을 드리려면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주시고 가정, 일터, 사업터를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헌물이란, 십일조 외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모든 예물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와 더불어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것 또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참믿음이 없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형편이 어려워서 드릴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적은 것이라도 사랑과 정성을 담아 드리면 됩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도 상한 것, 흠 있는 것을 주지 않듯이 하나님께 드릴 때는 반드시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흠이 없는 예물이란,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드리는 ‘예물’에 흠이 없어야 함을 뜻합니다. 만일 아까워하는 마음으로 억지로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있는 채로, 또는 형제와 불목하면서 드리는 예물 또한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죄나 허물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 담을 헐고 나서, 이웃 간에도 화평을 이룬 다음에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또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 예물에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구겨지거나 찢어진 돈, 오물이 묻은 경우는 깨끗한 돈으로 바꾸어 드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쓰고 남은 것 중에서 대충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별도로 준비하였다가 드려야 하지요.
우리가 헌물을 드림에 있어 명심해야 할 것은 변개함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감사헌금으로 드릴 것은 감사헌금으로, 건축헌금으로 드릴 것은 건축헌금으로 정확하게 드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건축헌금을 작정했다가 임의로 구제나 찬조로 바꾸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 건축헌금은 여전히 드리지 않은 것이 됩니다.
헌물은 반드시 단에 올려 안수받아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드린 헌금에 주의 종이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인 쳐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드린 손길에 온전한 축복을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십일조란 무엇일까요?
2. 헌물이란 무엇일까요?
3.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십일조란 사업터와 일터 등 여러 분야에서 들어오는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을 말한다.
② 십일조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는 행함이다.
③ 십일조는 구원의 기준이 될 정도로 중요하다.
④ 100만 원의 월급에서 각종 세금, 연금, 보험료를 공제한 80만 원에 대한 십일조만 하면 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십일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랫음부에서 받는 형벌
십일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도적’이라 표기된 명찰을 달고 있다. 그리고 의자에 양손과 양발이 묶인 채 자신과 같이 십일조를 도적질한 사람들에 의해 돌로 맞고 죽창과 같은 것에 찔리는 형벌을 받는다. 돌아가면서 서로 고문하고 고문당한다. 고문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지옥 사자의 채찍에 맞기 때문이다. 백보좌 대심판 후에는 불과 유황 못으로 들어가 세세토록 고통받는다.
교육목표 : 모든 물질의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통해 진정한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십일조는 우리의 소득은 물론 모든 물질에 대한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인정하고 믿는다는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의 생명과도 같은 물질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지요.
십일조는 주일 성수와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명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믿음이 있다고 하나님 앞에 증명하는 행함인 것입니다. 십일조는 이런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구원과도 상관이 있습니다.
1. 십일조의 중요성
십일조란 사업터와 일터 등 여러 분야에서 들어오는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자연 만물은 하나님에게서 왔고, 모든 산업은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수고해 벌어들인 수입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인정하여 전체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요. 이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는 행함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십일조를 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증거가 되므로 십일조는 구원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은 것을 주시고 그중 십분의 일만 구별하여 드리라 하셨는데 그런데도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면, 이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씀합니다.
많은 죄 중에 가장 큰 죄는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고,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내어 주심으로 우리를 사랑한다는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영이신 하나님께 마음을 표현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소중한 물질을 드림으로써 하나님께 믿음과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물론 예배와 기도, 찬양, 충성 등으로 표현할 수도 있지만 많은 사람이 물질을 생명에 비길 정도로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입니다(마 6:21).
진정 하나님을 믿는다면 믿음이 있다는 최소한의 증거로 십일조를 드려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단순히 축복받기 위해 십일조를 드리고, 어떤 사람은 십일조를 하면 축복받지만, 안 해도 상관없다고 가르치기도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충성, 봉사해도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믿음이 작은 초신자의 경우는 구원받더라도 겨우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십일조를 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축복받기 위해서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자녀들을 힘들게 하려고 십일조라는 규례를 주신 것이 아닙니다. 말라기 3장 10절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했습니다.
아직 믿음이 부족해 ‘정말 그럴까?’ 의심하고 아까워하는 사람이라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축복받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헌금으로 나온 교회의 재정은 영혼 구원과 직결된 일에 쓰입니다. 즉 주의 종이나 교회 직원들의 급여, 선교비, 각종 행사비, 성전 유지비, 구제비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
2.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려면
온전한 십일조를 하려면 우선 총수입에서 십일조를 떼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한 달 급여가 100만 원인데 각종 세금, 연금, 보험료 등이 공제되어 실제로는 80만 원을 받았다고 합시다. 그 80만 원을 수입으로 잡아 8만 원을 십일조로 드렸다면 이는 바르게 계산한 것이 아닙니다. 총급여액인 100만 원을 수입으로 계산해야 합니다. 총수입이란, 현금 수입뿐 아니라 각종 현물 수입도 포함합니다. 음식 대접이나 선물도 수입에 포함해 이에 대한 십일조를 드려야 하지요.
또한 감사예물 등 다른 예물과 구별하여 별도로 드려야 합니다. 십일조로 드려야 할 것을 다른 명목으로 헌금한다면 하나님의 것을 임의로 취급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수입에서 가장 먼저 구별해 드려야 합니다. 기본적으로 십일조를 먼저 떼고, 나머지를 쓰는 것이 정석입니다. 수입이 생기는 즉시 십일조를 떼어 놓으면, 돈이 없어서 못 드리는 일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십일조는 영의 양식을 공급받는 교회에 드려야 합니다. 단순히 출석하는 교회가 아니라, 영적으로 자신을 성장시키는 곳에 드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물론 감사헌금이나 건축헌금 등 기타 헌금은 주관 받는 곳에 드릴 수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십일조는 각자의 이름으로 드려야 합니다. 남편의 수입이라면 남편의 이름으로, 아내의 수입이라면 아내의 이름으로 드려야 합니다. 천국에서는 개인별로 땅과 집과 상급이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부부가 함께 사업터를 운영하는 경우에는 공동의 이름으로 십일조를 드려도 가합니다. 자녀들도 세뱃돈이나 용돈, 생일 선물 등 수입이 있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십일조를 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학비나 학용품 등과 같이 정해진 용도로 받는 것은 자녀의 수입이 아니므로 이에 대한 십일조는 떼지 않아도 됩니다.
십일조는 적어도 한 달 간격으로 계수해야 잊어버리지 않고 온전히 드릴 수 있습니다. 수입이 생기는 그때그때 드리거나 한 달에 한 번 이상 드리는 것이 좋지요. 농사를 짓는 경우나 고정적인 수입이 없는 경우에는 몇 달 간격으로, 또는 일 년 단위로 드려도 괜찮습니다.
정규 수입이 없는 전업주부의 경우는 친구를 만나거나 여가를 즐기는 등 임의로 쓸 수 있는 돈이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살림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지출이 바로 자신의 수입이 되므로 이를 계산하여 십일조를 드리면 됩니다.
3. 온전한 헌물을 드리려면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면 쌓을 곳이 없도록 복을 주시고 가정, 일터, 사업터를 지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헌물이란, 십일조 외에 하나님 앞에 드리는 모든 예물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일조와 더불어 헌물을 드리지 않는 것 또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곧 참믿음이 없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는 “형편이 어려워서 드릴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은 적은 것이라도 사랑과 정성을 담아 드리면 됩니다.
누군가에게 선물할 때도 상한 것, 흠 있는 것을 주지 않듯이 하나님께 드릴 때는 반드시 흠 없는 것으로 드려야 합니다. 흠이 없는 예물이란,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드리는 ‘예물’에 흠이 없어야 함을 뜻합니다. 만일 아까워하는 마음으로 억지로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수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있는 채로, 또는 형제와 불목하면서 드리는 예물 또한 기쁨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죄나 허물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 담을 헐고 나서, 이웃 간에도 화평을 이룬 다음에 예물을 드려야 합니다. 또 마음만이 아니라 실제 예물에도 흠이 없어야 합니다. 구겨지거나 찢어진 돈, 오물이 묻은 경우는 깨끗한 돈으로 바꾸어 드리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한 쓰고 남은 것 중에서 대충 드리는 것이 아니라, 별도로 준비하였다가 드려야 하지요.
우리가 헌물을 드림에 있어 명심해야 할 것은 변개함이 없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감사헌금으로 드릴 것은 감사헌금으로, 건축헌금으로 드릴 것은 건축헌금으로 정확하게 드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건축헌금을 작정했다가 임의로 구제나 찬조로 바꾸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럴 경우 건축헌금은 여전히 드리지 않은 것이 됩니다.
헌물은 반드시 단에 올려 안수받아야 합니다. 예배 시간에 드린 헌금에 주의 종이 기도함으로써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인 쳐야 하나님께서 받으시고, 드린 손길에 온전한 축복을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십일조란 무엇일까요?
2. 헌물이란 무엇일까요?
3.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십일조란 사업터와 일터 등 여러 분야에서 들어오는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을 말한다.
② 십일조는 하나님의 뜻이며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는 행함이다.
③ 십일조는 구원의 기준이 될 정도로 중요하다.
④ 100만 원의 월급에서 각종 세금, 연금, 보험료를 공제한 80만 원에 대한 십일조만 하면 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십일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이 아랫음부에서 받는 형벌
십일조를 하지 않은 사람들은 저마다 가슴에 ‘도적’이라 표기된 명찰을 달고 있다. 그리고 의자에 양손과 양발이 묶인 채 자신과 같이 십일조를 도적질한 사람들에 의해 돌로 맞고 죽창과 같은 것에 찔리는 형벌을 받는다. 돌아가면서 서로 고문하고 고문당한다. 고문하지 않으면 자신들이 지옥 사자의 채찍에 맞기 때문이다. 백보좌 대심판 후에는 불과 유황 못으로 들어가 세세토록 고통받는다.
2023-05-05
제18과축복의 비결 (3)
출애굽기 20:8~10
읽을말씀 : 출애굽기 20:8~10 | 외울말씀 : 출애굽기 20:8 | 참고 말씀: 이사야 58:13~14
교육목표 : 축복의 비결인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방법을 알아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며 영육 간에 강건한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두 가지를 손꼽으라 하면 주일 성수와 온전한 십일조라 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이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믿음의 행함’이라면 주일, 곧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믿음의 행함’이지요.
이 두 가지를 지킴으로 영육 간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녀라면, 어떤 재앙이나 시험 환난을 겪지 않고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먼저 온전한 주일 성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안식일의 유래
출애굽기 20장 8~10절에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안식일’이란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 곧 주 안에서 편히 쉬는 날을 의미합니다.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 만물과 사람을 지으시고 제7일째 안식하신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창세기 2장 1~3절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므로 하나님의 백성들도 일곱째 날을 복되고 거룩한 안식일로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일을 하지 않는 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날 하루 세상일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림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 드려야 하지요. 따라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됩니다.
2.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뀐 이유
원래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날은 일곱째 날이었습니다. 달력을 보면 일요일이 첫째 날이고, 토요일이 한 주의 마지막 일곱째 날로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지요.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에서는 지금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에 와서 왜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을까요?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된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무덤에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곧 안식 후 첫날, 일요일 새벽 미명에 다시 살아나셨지요. 죄인 된 인류에게 소망을 주시고 참 안식과 기쁨을 주신 날이 바로 일요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우리에게 참되고 영원한 안식을 주신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은 우리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주일, 곧 주님의 날이라고도 부릅니다. 주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고자 정하신 날이지요. 우리가 이러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참된 안식을 누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 사람 아담의 범죄 이후 죄인 된 인류에게는 참된 안식이 없었습니다. 죄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어 고달픈 삶을 살며, 죄의 짐으로 인해 그 영혼이 눌려 있었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지요. 이를 믿는 자마다 죄 용서받고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해 부활의 소망에 동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죄에서 자유함을 얻어 참 안식을 얻으며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소망을 갖게 되었지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참된 안식을 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3. 주일을 온전히 거룩하게 지키려면
우리가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되 주일에는 세상일을 하지 않고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영혼의 안식을 누려야 참된 안식이 됩니다. 토요일에는 집 안 청소와 빨래를 하고 목욕을 하는 등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 정돈하고 주일에 입을 깨끗한 의복과 함께 하나님께 드릴 예물도 정성껏 준비해 놓습니다.
주일에는 TV 시청이나 오락을 취하지 않고 경건하게 보내야 합니다. 또한 악을 행치 않도록 마음과 생각을 잘 지켜야지요. 만일 다투고 혈기 내며, 세상일로 염려 근심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예배만 드리고 ‘주일을 지켰다’며 놀러 가거나 일하러 갑니다. 이는 주일을 온전히 지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저녁예배까지 다 드렸다 해도, 그 후 시간을 경건한 마음으로 보내지 않는다면 이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주일 하루를 온전히 드리려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요 4:24). 졸음이나 잡념에 빠지지 않고 집중하여 설교 말씀을 듣고, 마음을 실어 기도하며 찬양해야 하지요. 예배 전에 미리 기도로 준비하고, 축도나 주기도문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성전은 거룩한 곳이므로 가정사나 사업, 쇼핑, 연예인, 세상적인 말과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이사야 58장 13~14절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때 하나님께서 불필요한 지출을 막아 주시고 물질이 새 나가지 않게 해 주십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일터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심으로 수입이 넘쳐 나지요.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일을 한다면,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수입이 줄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질병이나 사고와 재앙을 만나 수입이 새 나가지요.
특수한 직업이나 상황에 따라 주일에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군인이나 경찰, 의사와 같이 사람의 생명과 나라의 안전과 관련되고 유통업과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출장이나 연수를 다녀와야 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주일에 근무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죄 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온전히 주일을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주일 저녁 늦게라도 예배를 드린다거나 인터넷 또는 화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지요.
주일에 개인 이득을 위해 영업하거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 매매하는 일은 금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초신자에게 무조건 주일에 영업하면 안 되고 물품을 구매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치면 힘들어 교회를 떠날 수 있습니다. 그 성도님이 안식일을 기쁨으로 지킬 수 있는 믿음을 가질 때까지 지혜롭게 이끌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매매 행위가 허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가대나 주일학교 교사들의 식사를 제공할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 성도의 편의를 위해 교회 내 서점이나 매점, 자판기를 비치하여 운영하는 경우입니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구제와 선교 등 영혼 구원을 위해 사용하지요. 하지만 안식일에 이런 매매조차 하지 않도록 전날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이처럼 주일을 거룩히 지키면 생명, 건강, 자녀, 일터 등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니 참된 즐거움과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고와 질병, 시험 환난이 없도록 한 주 동안 지킴 받으며 복을 받습니다(사 56:4~7).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신약 시대에 와서 왜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을까요?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 새벽 미명에 다시 살아나셨다.
② 원래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날은 일요일이다.
③ 주일 성수는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함이다.
④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된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안식일 곧 주일이라고 부른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사단’과 ‘마귀’의 차이
‘사단’은 악한 영 중 하나로 루시퍼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며, 실질적인 형태는 없다.
루시퍼가 가진 어둠의 능력을 그대로 담고 있어 사람들에게 악한 생각과 마음을 갖게 한다. 마치 공중에 수없이 퍼져 있는 전파와 같이 어둠의 능력을 공중에 퍼뜨린다.
악한 영들에 속한 ‘마귀’는 루시퍼와 함께 타락한 천사 중 일부로, 검은 형상에 사람처럼 이목구비와 손발도 있다.
사단의 지시를 받아 수많은 귀신을 관리하며 사람들이 온갖 죄를 짓게 한다. 생각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사단이라면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귀다.
교육목표 : 축복의 비결인 주일을 온전히 지키는 방법을 알아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며 영육 간에 강건한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두 가지를 손꼽으라 하면 주일 성수와 온전한 십일조라 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이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믿음의 행함’이라면 주일, 곧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믿음의 행함’이지요.
이 두 가지를 지킴으로 영육 간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자녀라면, 어떤 재앙이나 시험 환난을 겪지 않고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먼저 온전한 주일 성수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안식일의 유래
출애굽기 20장 8~10절에 보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말씀했습니다.
‘안식일’이란 주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날, 곧 주 안에서 편히 쉬는 날을 의미합니다. 안식일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천지 만물과 사람을 지으시고 제7일째 안식하신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창세기 2장 1~3절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으므로 하나님의 백성들도 일곱째 날을 복되고 거룩한 안식일로 지키라고 명하셨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단지 일을 하지 않는 것만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날 하루 세상일에 마음을 두지 않고 온전히 하나님 앞에 마음을 드림으로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 드려야 하지요. 따라서 안식일을 거룩히 지킨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증거가 됩니다.
2.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뀐 이유
원래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날은 일곱째 날이었습니다. 달력을 보면 일요일이 첫째 날이고, 토요일이 한 주의 마지막 일곱째 날로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지요.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에서는 지금도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킵니다.
그러면 신약 시대에 와서 왜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을까요?
이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된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무덤에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곧 안식 후 첫날, 일요일 새벽 미명에 다시 살아나셨지요. 죄인 된 인류에게 소망을 주시고 참 안식과 기쁨을 주신 날이 바로 일요일이었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구원의 사역을 완성하시고 우리에게 참되고 영원한 안식을 주신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구원받은 우리는 일요일을 안식일로 지키는 것입니다.
안식일은 주일, 곧 주님의 날이라고도 부릅니다. 주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주일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을 주고자 정하신 날이지요. 우리가 이러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우리 영혼이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나타냅니다.
그렇다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참된 안식을 누린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첫 사람 아담의 범죄 이후 죄인 된 인류에게는 참된 안식이 없었습니다. 죄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어 고달픈 삶을 살며, 죄의 짐으로 인해 그 영혼이 눌려 있었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지요. 이를 믿는 자마다 죄 용서받고 부활하신 주님과 연합해 부활의 소망에 동참할 수 있게 됐습니다. 죄에서 자유함을 얻어 참 안식을 얻으며 천국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소망을 갖게 되었지요.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참된 안식을 누린다고 하는 것입니다.
3. 주일을 온전히 거룩하게 지키려면
우리가 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되 주일에는 세상일을 하지 않고 성전에 나와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영혼의 안식을 누려야 참된 안식이 됩니다. 토요일에는 집 안 청소와 빨래를 하고 목욕을 하는 등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 정돈하고 주일에 입을 깨끗한 의복과 함께 하나님께 드릴 예물도 정성껏 준비해 놓습니다.
주일에는 TV 시청이나 오락을 취하지 않고 경건하게 보내야 합니다. 또한 악을 행치 않도록 마음과 생각을 잘 지켜야지요. 만일 다투고 혈기 내며, 세상일로 염려 근심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대예배만 드리고 ‘주일을 지켰다’며 놀러 가거나 일하러 갑니다. 이는 주일을 온전히 지켰다고 할 수 없습니다. 저녁예배까지 다 드렸다 해도, 그 후 시간을 경건한 마음으로 보내지 않는다면 이 역시 마찬가지이지요.
주일 하루를 온전히 드리려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요 4:24). 졸음이나 잡념에 빠지지 않고 집중하여 설교 말씀을 듣고, 마음을 실어 기도하며 찬양해야 하지요. 예배 전에 미리 기도로 준비하고, 축도나 주기도문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뜨지 않아야 합니다. 또한 성전은 거룩한 곳이므로 가정사나 사업, 쇼핑, 연예인, 세상적인 말과 행동은 삼가야 합니다.
이사야 58장 13~14절에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때 하나님께서 불필요한 지출을 막아 주시고 물질이 새 나가지 않게 해 주십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 일터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심으로 수입이 넘쳐 나지요.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일을 한다면, 하나님의 보호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수입이 줄기도 하고, 예상치 못한 질병이나 사고와 재앙을 만나 수입이 새 나가지요.
특수한 직업이나 상황에 따라 주일에 일을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군인이나 경찰, 의사와 같이 사람의 생명과 나라의 안전과 관련되고 유통업과 요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출장이나 연수를 다녀와야 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 주일에 근무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죄 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능하다면 온전히 주일을 지키는 것이 좋습니다. 주일 저녁 늦게라도 예배를 드린다거나 인터넷 또는 화상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지요.
주일에 개인 이득을 위해 영업하거나, 자신의 편의를 위해 매매하는 일은 금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초신자에게 무조건 주일에 영업하면 안 되고 물품을 구매해서도 안 된다고 가르치면 힘들어 교회를 떠날 수 있습니다. 그 성도님이 안식일을 기쁨으로 지킬 수 있는 믿음을 가질 때까지 지혜롭게 이끌어 줘야 합니다.
그런데 안식일에 매매 행위가 허용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에서 성가대나 주일학교 교사들의 식사를 제공할 여건이 되지 않는 경우, 성도의 편의를 위해 교회 내 서점이나 매점, 자판기를 비치하여 운영하는 경우입니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수익금은 구제와 선교 등 영혼 구원을 위해 사용하지요. 하지만 안식일에 이런 매매조차 하지 않도록 전날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 좋습니다.
이처럼 주일을 거룩히 지키면 생명, 건강, 자녀, 일터 등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니 참된 즐거움과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고와 질병, 시험 환난이 없도록 한 주 동안 지킴 받으며 복을 받습니다(사 56:4~7).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신약 시대에 와서 왜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었을까요?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운명하시고 안식 후 첫날인 일요일 새벽 미명에 다시 살아나셨다.
② 원래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날은 일요일이다.
③ 주일 성수는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함이다.
④ 주님 안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게 된 날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안식일 곧 주일이라고 부른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사단’과 ‘마귀’의 차이
‘사단’은 악한 영 중 하나로 루시퍼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며, 실질적인 형태는 없다.
루시퍼가 가진 어둠의 능력을 그대로 담고 있어 사람들에게 악한 생각과 마음을 갖게 한다. 마치 공중에 수없이 퍼져 있는 전파와 같이 어둠의 능력을 공중에 퍼뜨린다.
악한 영들에 속한 ‘마귀’는 루시퍼와 함께 타락한 천사 중 일부로, 검은 형상에 사람처럼 이목구비와 손발도 있다.
사단의 지시를 받아 수많은 귀신을 관리하며 사람들이 온갖 죄를 짓게 한다. 생각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사단이라면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귀다.
2023-04-28
제17과축복의 비결 (2)
마태복음 22:37~40
읽을말씀 : 마태복음 22:37~40 | 외울말씀 : 요한일서 5:3 | 참고 말씀: 신명기 10:13
교육목표 : 참 행복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마음을 알아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게 한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민수기 6장 24~26절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말씀한 대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 주기를 참으로 즐거워하시지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최소한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하게 갚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눅 6:38). 물론 축복의 그릇을 잘 준비하면 심은 것의 30배, 60배, 100배 그 이상도 채워 주십니다(마 13:23).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축복을 마음껏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계명을 지켜 행해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을 지키라, ~을 하라”고 적극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계명을 지켜 행하면 축복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을 하지 말라, ~을 버리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격을 갖추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하지 말고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에 순종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과 죄의 담이 되거나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기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 7:1), “간음하지 말지니라”(출 20:14),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말씀하고 있지요.
성경에 기록된 이 네 가지 유형의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려면 당연히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계명이란 종교적, 도덕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정을 말하는데 구약에서는 율법과 십계명을 말하며 신약에서는 주로 예수님의 명령을 가리키지요.
마태복음 22장을 보면 바리새인 중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지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만약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고자 할 것입니다. 설령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사랑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들어주려 하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아무리 먼 길도 멀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의 아버지시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참혹한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는 사실을 진정 믿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지요. 그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어긋나게 사는 것이 더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
2. 축복의 길로 인도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해 두신 계명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신명기 10장 13절에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계명을 주셨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생활에 필요한 여러 규칙을 가르치는 것은 질병이나 사고로부터 안전하게 지킴 받으며 평안하게 살도록 하기 위한 배려이며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것이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임을 깨달으면 이를 지키는 것이 힘들지 않고 오히려 기쁩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모든 말씀을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계명을 지키라’는 것은 의무감으로나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복종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자원함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이지요. 물론 처음부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전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계명을 열심히 지켜 나가다 보면, 차츰 하나님의 뜻이 깨달아지고 또 그분의 사랑이 느껴지므로 하나님을 진정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말씀은 마음 밭을 개간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마음을 할례 하는 것이기에 비록 상급은 되지 않지만, 마음 밭을 좋은 땅으로 개간하면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지요.
또한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은 축복의 씨앗을 심고 거두는 작업과 같습니다. 농부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씨를 심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이 바로 축복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 시험 환난이나 각종 사고로부터 지킴 받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축복받고 천국에 상급이 쌓이게 됩니다.
3. 기쁨과 감사로 축복의 씨앗을 심고 거두어야
하나님께서는 행함 자체가 아닌 마음의 향을 받으십니다. 바쁜 중에도 최선을 다해 중심으로 기도하는 사람, 작은 사명이지만 늘 섬김의 자세로 충성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각 사람의 상황과 형편을 다 아시기 때문에 믿음과 소망, 사랑 가운데 마음의 향을 드린다면 결코 작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만일 억지로 행한다거나 그저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한다면 믿음과 소망으로 축복의 씨앗을 심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열심히 축복의 씨앗을 심은 후에 불평불만하고, 부정적인 고백을 한다면 자신이 심은 것을 파헤치고 쌓은 것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계명이든지 마음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응답과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시편 37편 4절에는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며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는 방법도 알려 주지요.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에녹은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랑을 나누다가 365세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엘리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놀라운 권능의 역사로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였기에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지면 가정, 사업터, 일터 등 모든 분야에서 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말씀한 대로입니다.
당회장님의 경우만 봐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모든 질병을 치료받은 후 하나님을 사랑해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자 힘썼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기쁨으로 행했지요. 그러자 하나님 편에서도 당회장님께서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실 뿐 아니라 마음에 품은 것까지도 이루어 주셨습니다. 언제 무엇이 필요할지 다 아시기에 미리 준비해 두셨다가 필요할 때 주시는 것을 무수히 체험했지요. 이처럼 계명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이루게 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경에 “~을 버리라, ~을 하지 말라”는 말씀들을 찾아 쓰세요.
2. 성경에 “~을 하라, ~을 지키라”는 말씀들을 찾아 쓰세요.
3.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으시오.
성경에 ‘하지 말라, 버리라’ 한 말씀은 우리의 마음 밭을 ( )하는 것과 같다. 마음 밭을 좋은 땅으로 개간하면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간다. 또한 ‘하라, 지키라’ 한 말씀은 ( )의 ( )을 심고 거두는 작업과 같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십계명’이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열 가지 계명이다.
이는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열 가지로 축약한 것’으로 성경의 뼈대라 할 수 있다.
성경 66권 전체를 다 기억하지는 못해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십계명 정도는 기억하고 반드시 지키는 것이 신앙의 기본이다.
교육목표 : 참 행복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마음을 알아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게 한다.
우리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민수기 6장 24~26절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말씀한 대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좋은 것 주기를 참으로 즐거워하시지요.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은 최소한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후하게 갚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눅 6:38). 물론 축복의 그릇을 잘 준비하면 심은 것의 30배, 60배, 100배 그 이상도 채워 주십니다(마 13:23).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풍성한 축복을 마음껏 받을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계명을 지켜 행해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네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을 지키라, ~을 하라”고 적극적으로 말씀하십니다. 이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계명을 지켜 행하면 축복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을 하지 말라, ~을 버리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격을 갖추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하지 말고 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에 순종하지 않을 때는 하나님과 죄의 담이 되거나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기에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출 20:8), “네 부모를 공경하라…”(출 20:12),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마 7:1), “간음하지 말지니라”(출 20:14),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말씀하고 있지요.
성경에 기록된 이 네 가지 유형의 말씀은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려면 당연히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계명이란 종교적, 도덕적으로 지켜야 하는 규정을 말하는데 구약에서는 율법과 십계명을 말하며 신약에서는 주로 예수님의 명령을 가리키지요.
마태복음 22장을 보면 바리새인 중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선생님이여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지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만약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무슨 부탁이든 들어주고자 할 것입니다. 설령 어렵고 힘든 일이라도 사랑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들어주려 하지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면 아무리 먼 길도 멀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의 아버지시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참혹한 십자가에 내어 주셨다는 사실을 진정 믿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지요. 그 사랑과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과 뜻에 어긋나게 사는 것이 더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
2. 축복의 길로 인도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해 두신 계명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을 축복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입니다. 신명기 10장 13절에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계명을 주셨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생활에 필요한 여러 규칙을 가르치는 것은 질병이나 사고로부터 안전하게 지킴 받으며 평안하게 살도록 하기 위한 배려이며 사랑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계명을 주신 것이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임을 깨달으면 이를 지키는 것이 힘들지 않고 오히려 기쁩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모든 말씀을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계명을 지키라’는 것은 의무감으로나 로봇처럼 기계적으로 복종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자원함으로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이지요. 물론 처음부터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전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계명을 열심히 지켜 나가다 보면, 차츰 하나님의 뜻이 깨달아지고 또 그분의 사랑이 느껴지므로 하나님을 진정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말씀은 마음 밭을 개간하는 것과 같습니다. 자기 마음을 할례 하는 것이기에 비록 상급은 되지 않지만, 마음 밭을 좋은 땅으로 개간하면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되지요.
또한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은 축복의 씨앗을 심고 거두는 작업과 같습니다. 농부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씨를 심어야 하듯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는 것이 바로 축복의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 시험 환난이나 각종 사고로부터 지킴 받을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 축복받고 천국에 상급이 쌓이게 됩니다.
3. 기쁨과 감사로 축복의 씨앗을 심고 거두어야
하나님께서는 행함 자체가 아닌 마음의 향을 받으십니다. 바쁜 중에도 최선을 다해 중심으로 기도하는 사람, 작은 사명이지만 늘 섬김의 자세로 충성하는 사람을 기뻐하십니다. 각 사람의 상황과 형편을 다 아시기 때문에 믿음과 소망, 사랑 가운데 마음의 향을 드린다면 결코 작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만일 억지로 행한다거나 그저 남들이 하니까 따라 한다면 믿음과 소망으로 축복의 씨앗을 심는 것이라 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열심히 축복의 씨앗을 심은 후에 불평불만하고, 부정적인 고백을 한다면 자신이 심은 것을 파헤치고 쌓은 것을 무너뜨리는 것과 같습니다. 어떤 계명이든지 마음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응답과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시편 37편 4절에는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하며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는 방법도 알려 주지요.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에녹은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랑을 나누다가 365세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엘리야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놀라운 권능의 역사로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였기에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지면 가정, 사업터, 일터 등 모든 분야에서 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되고 어떤 것은 안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말씀한 대로입니다.
당회장님의 경우만 봐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모든 질병을 치료받은 후 하나님을 사랑해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고자 힘썼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기쁨으로 행했지요. 그러자 하나님 편에서도 당회장님께서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실 뿐 아니라 마음에 품은 것까지도 이루어 주셨습니다. 언제 무엇이 필요할지 다 아시기에 미리 준비해 두셨다가 필요할 때 주시는 것을 무수히 체험했지요. 이처럼 계명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이루게 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경에 “~을 버리라, ~을 하지 말라”는 말씀들을 찾아 쓰세요.
2. 성경에 “~을 하라, ~을 지키라”는 말씀들을 찾아 쓰세요.
3.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으시오.
성경에 ‘하지 말라, 버리라’ 한 말씀은 우리의 마음 밭을 ( )하는 것과 같다. 마음 밭을 좋은 땅으로 개간하면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간다. 또한 ‘하라, 지키라’ 한 말씀은 ( )의 ( )을 심고 거두는 작업과 같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십계명’이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열 가지 계명이다.
이는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열 가지로 축약한 것’으로 성경의 뼈대라 할 수 있다.
성경 66권 전체를 다 기억하지는 못해도 하나님의 자녀라면 십계명 정도는 기억하고 반드시 지키는 것이 신앙의 기본이다.
2023-04-21
제16과축복의 비결 (1)
신명기 28:1~6
읽을말씀 : 신명기 28:1~6 | 외울말씀 : 민수기 6:24 | 참고 말씀: 누가복음 16:19~31
교육목표 :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축복을 받기 위해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만민 찬양 중에 ‘축복의 비결’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축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지요. 다 함께 불러 볼까요?
“축복의 비결이 여기 있네 아버지 하나님 계명을 지키는 길
안식일의 주인이신 아버지를 인정 축복의 씨앗인 십일조와 헌물
아버지 말씀대로 현저한 육체의 일 버리고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 훼방 거역 모독 절대 절대 하지 말며
먹으나 마시나 먹으나 마시나 아버지 나라에 우리 모두 충성”
여기에 나온 가사처럼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 때 진정한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릴 뿐 아니라 참된 행복과 기쁨,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1. 진정한 축복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즐겼습니다. 반면에 그 집의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는 병든 거지가 누워 있었지요.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곤 하였습니다. 헌데를 개들이 핥을 정도로 비참한 삶이었지요.
세월이 흐른 뒤 부자도 죽고 거지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죽은 뒤에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던 거지 나사로는 구원받아 천국에서 편히 안식하였지만, 부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에 구원받지 못하고 뜨거운 불 속에서 고통받은 것입니다.
과연 누가 복 있는 사람일까요? 부자와 같이 이 땅에서 많은 재산을 가지고 호화롭게 사는 것은 잠시 잠깐입니다. 비록 비천하게 살았다고 해도 나사로와 같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복된 사람입니다. 길어야 100년도 안 되는 이 땅의 삶은 한순간이지요. 하지만 눈물, 슬픔, 질병, 고통, 사망이 없는 천국에서의 삶은 영원합니다. 그곳에서 참된 행복과 기쁨, 평안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복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이 땅에서 나사로처럼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가난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아무 죄 없이 채찍에 맞고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친히 가난한 길을 가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질병과 가난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십니다.
민수기 6장 24~26절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믿음을 소유하면 누구든지 이 세상의 온갖 위험과 재앙으로부터 지킴을 받는 것은 물론 진정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시편 1편 1~3절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지요. 이처럼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만사가 형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는 주님을 영접하기 전, 7년 동안 각색 질병으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누님의 기도와 전도로 성전에 가서 무릎을 꿇는 순간 성령의 불을 받고 모든 질병을 깨끗이 치료받았지요.
그 후 부흥성회에 참석하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술과 담배를 끊고 십일조와 감사헌금도 드렸습니다. 기도하며 성경도 읽기 시작하였지요. 세상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던 병을 하나님 능력으로 순간에 치료받았기에 성경 말씀이 100% 믿어졌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는 즉시 순종해 나갔지요.
성경에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오면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가령 “식사했느냐?”고 물으면 하지 않았는데도 상대를 배려한다는 생각에 “했습니다.”라고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때도 말씀대로 행하고자 “이런 거짓말도 버리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였지요. 하나님 말씀을 명심해 기도하니 사소한 거짓말도 버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성경을 읽으면서 버려야 할 죄와 악을 찾아 일일이 노트에 기록하여 불같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래도 버려지지 않으면 작정하여 금식과 기도를 하였고, 완전히 버렸다는 확신이 들 때 비로소 빨간색 펜으로 지웠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말씀대로 행하니 신앙생활이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축복을 주셔서 그 많던 부채를 단기간에 모두 갚게 하셨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오직 성경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니 넘치도록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3. 진정한 축복의 비결은 순종
평소에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사랑받는 아들이라면 무엇이 필요할 때 아버지에게 담대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늘 말썽부리고 불순종하는 아들은 원하는 것이 있어도 아버지가 들어 주실지 확신이 오지 않지요.
아버지 편에서도 마음에 꼭 맞게 순종하는 아들에게는 어떤 요구도 쉽게 들어줍니다. 아들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순종하고 말썽부리는 아들은 혹시 나쁜 용도로 쓰지는 않을까 염려되어 선뜻 줄 수가 없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인류의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이처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시니 축복을 얼마든지 주실 수가 있지요. 그러나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과 짝하며 죄악 가운데 살면 응답해 주시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힘들 수 있습니다(마 7:13~14). 하지만 말씀을 하나하나 순종해 가다 보면 이것이 천국을 소유하는 기쁘고 행복한 길임을 깨우치게 되지요.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담대하게 하나님께 구할 수 있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습니다.
신명기 28장 1~6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머무는 곳에 복이 임한다는 뜻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는다’는 것은 자녀의 복은 물론 사업터, 일터에 복이 임하고 모든 소유에 복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는다’는 것은 소유가 넘쳐남으로 먹을 식물이 풍성할 것을 의미하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는 것은 가는 곳마다 복이 임하며 범사가 형통할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오직 순종함으로 이 땅에서 축복받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임하는 신명기 28장 1~6절을 쓰세요.
2. 자신이 축복받은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현저한 육체의 일’이란?
누가 보나, 악하고 추하다고 느껴지는 행위로 구원받지 못하는 육체의 일을 말한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다.
교육목표 :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정한 축복을 받기 위해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만민 찬양 중에 ‘축복의 비결’이라는 곡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축복의 주인공이 되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지요. 다 함께 불러 볼까요?
“축복의 비결이 여기 있네 아버지 하나님 계명을 지키는 길
안식일의 주인이신 아버지를 인정 축복의 씨앗인 십일조와 헌물
아버지 말씀대로 현저한 육체의 일 버리고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 훼방 거역 모독 절대 절대 하지 말며
먹으나 마시나 먹으나 마시나 아버지 나라에 우리 모두 충성”
여기에 나온 가사처럼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 때 진정한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릴 뿐 아니라 참된 행복과 기쁨,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1. 진정한 축복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한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아름다운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즐겼습니다. 반면에 그 집의 대문 앞에는 나사로라는 병든 거지가 누워 있었지요.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곤 하였습니다. 헌데를 개들이 핥을 정도로 비참한 삶이었지요.
세월이 흐른 뒤 부자도 죽고 거지도 죽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죽은 뒤에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을 믿었던 거지 나사로는 구원받아 천국에서 편히 안식하였지만, 부자는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에 구원받지 못하고 뜨거운 불 속에서 고통받은 것입니다.
과연 누가 복 있는 사람일까요? 부자와 같이 이 땅에서 많은 재산을 가지고 호화롭게 사는 것은 잠시 잠깐입니다. 비록 비천하게 살았다고 해도 나사로와 같이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이야말로 진정 복된 사람입니다. 길어야 100년도 안 되는 이 땅의 삶은 한순간이지요. 하지만 눈물, 슬픔, 질병, 고통, 사망이 없는 천국에서의 삶은 영원합니다. 그곳에서 참된 행복과 기쁨, 평안을 누리는 것이 진정한 복이지요.
그렇다고 해서 이 땅에서 나사로처럼 질병으로 고통받으며 가난하게 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아무 죄 없이 채찍에 맞고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시고 친히 가난한 길을 가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질병과 가난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를 원하십니다.
민수기 6장 24~26절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믿음을 소유하면 누구든지 이 세상의 온갖 위험과 재앙으로부터 지킴을 받는 것은 물론 진정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시편 1편 1~3절에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않습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지요. 이처럼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만사가 형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서는 주님을 영접하기 전, 7년 동안 각색 질병으로 인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누님의 기도와 전도로 성전에 가서 무릎을 꿇는 순간 성령의 불을 받고 모든 질병을 깨끗이 치료받았지요.
그 후 부흥성회에 참석하여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술과 담배를 끊고 십일조와 감사헌금도 드렸습니다. 기도하며 성경도 읽기 시작하였지요. 세상 의학으로는 치료할 수 없던 병을 하나님 능력으로 순간에 치료받았기에 성경 말씀이 100% 믿어졌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읽는 즉시 순종해 나갔지요.
성경에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씀이 나오면 어떤 경우에도 거짓말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가령 “식사했느냐?”고 물으면 하지 않았는데도 상대를 배려한다는 생각에 “했습니다.”라고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때도 말씀대로 행하고자 “이런 거짓말도 버리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하였지요. 하나님 말씀을 명심해 기도하니 사소한 거짓말도 버릴 수 있었습니다.
또한 성경을 읽으면서 버려야 할 죄와 악을 찾아 일일이 노트에 기록하여 불같이 기도하였습니다. 그래도 버려지지 않으면 작정하여 금식과 기도를 하였고, 완전히 버렸다는 확신이 들 때 비로소 빨간색 펜으로 지웠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말씀대로 행하니 신앙생활이 어렵거나 힘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축복을 주셔서 그 많던 부채를 단기간에 모두 갚게 하셨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오직 성경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니 넘치도록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3. 진정한 축복의 비결은 순종
평소에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고 사랑받는 아들이라면 무엇이 필요할 때 아버지에게 담대하게 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늘 말썽부리고 불순종하는 아들은 원하는 것이 있어도 아버지가 들어 주실지 확신이 오지 않지요.
아버지 편에서도 마음에 꼭 맞게 순종하는 아들에게는 어떤 요구도 쉽게 들어줍니다. 아들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불순종하고 말썽부리는 아들은 혹시 나쁜 용도로 쓰지는 않을까 염려되어 선뜻 줄 수가 없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고 인류의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십니다. 이처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시니 축복을 얼마든지 주실 수가 있지요. 그러나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과 짝하며 죄악 가운데 살면 응답해 주시기가 어렵습니다.
물론 처음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힘들 수 있습니다(마 7:13~14). 하지만 말씀을 하나하나 순종해 가다 보면 이것이 천국을 소유하는 기쁘고 행복한 길임을 깨우치게 되지요.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담대하게 하나님께 구할 수 있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습니다.
신명기 28장 1~6절에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그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머무는 곳에 복이 임한다는 뜻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는다’는 것은 자녀의 복은 물론 사업터, 일터에 복이 임하고 모든 소유에 복이 임한다는 뜻입니다.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는다’는 것은 소유가 넘쳐남으로 먹을 식물이 풍성할 것을 의미하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는다’는 것은 가는 곳마다 복이 임하며 범사가 형통할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오직 순종함으로 이 땅에서 축복받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임하는 신명기 28장 1~6절을 쓰세요.
2. 자신이 축복받은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현저한 육체의 일’이란?
누가 보나, 악하고 추하다고 느껴지는 행위로 구원받지 못하는 육체의 일을 말한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라고 말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