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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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30
제5과육체의 일
갈 5:19~21
읽을말씀 : 갈 5:19~21 | 외울말씀 : 사 59:1, 참고말씀 마 7:21
교육목표 :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육체의 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아 신속히 버리고 철저히 경계하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의 담을 헐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구원의 섭리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일을 행하면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육체의 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1. 육체의 일과 육신의 일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지 않고 죄악 가운데 방탕하게 산다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했습니다. 비록 온전히 죄를 버리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창세기 6장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육체가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함께하지 않으시니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란 무슨 뜻일까요? 국어사전에는 육체에 대해 '구체적인 물질로서의 인간의 몸뚱이, 신체, 육신'이라고 했지만 성경에서는 이와 달리 영적 의미로 육체와 육신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육체란 행함으로 나타난 죄의 총칭'이며 이것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을 육체의 일이라고 합니다. 또한 '육신이란 진리가 빠져나간 사람의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말하며, 그 죄성들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을 육신의 일이라고 합니다. 즉 언제든지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죄성들을 육신의 일이라고 하며, 육신의 일을 총칭하여 육신이라고 하지요. 가령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여 때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합시다. 이때 상대를 미워하여 때리고 싶은 마음은 아직 행위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쁜 마음이요, 이런 마음 자체가 육신의 일이 됩니다. 만약 이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실제로 상대를 구타했다면 육체의 일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육체의 일들을 행하는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고 노력한다면 영이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다만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여전히 육체의 일을 행한다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육체의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육체의 일
1)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음행'이란 결혼 전 합법적인 부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육체적인 관계를 맺거나, 결혼한 사람이 다른 여자나 남자를 취하거나, 자기 몸을 내주는 경우입니다. 이런 육적 음행 외에도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우상을 섬기며 점을 보거나 사술이나 요사스러운 술법을 취하는 영적 음행이 있습니다.
'더러운 것'이란 죄성에 관계된 모든 것들에 해당되는데 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뛰어넘어 난잡하게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예를 들면 강도가 모녀를 같이 성폭행하는 경우나 아들이 어미의 하체를 범하는 것이나 아비가 자녀의 하체를 범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호색'이란 색욕을 좇아 각종 옳지 못한 행동들을 하는 것으로서 생활태도 전부가 음란을 좇아 행하며 음란에 젖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짐승과 교접한다거나 여자가 여자끼리 남자가 남자끼리 동성연애하는 것, 또 각종 기구를 사용하는 등 정상적인 한계를 벗어나 잘못되어진 것을 말합니다.
2)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
'우상숭배'란 참 신이신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목석이나 금, 은, 동, 나무나 쇠붙이로 여러 형상을 만들어 그 앞에 경배하는 것을 말합니다(신 4:16-19). 또한 물질이나 자녀, 남편이나 아내 등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다면 이것도 우상숭배가 됩니다(골 3:5, 6).
'술수'란 모든 것에 있어서 궤사 즉 교묘한 거짓으로 속여서 상대를 꾀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들을 말합니다. 무당을 믿는 무속 신앙, 점치는 복술, 사회 각 분야에서 나오는 사술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원수 맺는 것'이란 상대에게 원한을 품고 상대방이 극단적으로 파멸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원수같이 여기고 죽이려 한 것처럼 자신에게 악한 감정이 있어 상대를 멀리하고 미워하는 정도가 지나치면 해를 가하거나 비방하고 수군거리며 중상모략하는 등 각종 악한 일이 난무하게 됩니다.
3) 분쟁과 시기와 분냄
'분쟁'은 자기의 유익과 권세를 좇아 나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다툼입니다. 독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기의 독재와 권세를 추구하고 이기심과 욕심이 있으므로 분쟁하게 되는데 이러한 분쟁은 부부나 부모 자녀 또는 정당이나 각 나라에도 있으며 교회 안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삼하 18:7).
'시기'란 자신이 남보다 못함을 느낄 때 혹은 자신보다 남이 나음을 느낄 때 마음에서 질투함으로 인해 상대를 미워하고 멀리하는 것입니다. 결국 시기는 악의에 찬 분노로 발전하게 되며 분쟁이 되고 당 짓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창 30장, 삼상 18:7-8, 창 4:1-8).
'분냄'이란 속으로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가 그냥 참고 소화시키는 단순한 분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불의한 분냄을 말합니다.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죽이려고 쫓아다닌 사울 왕처럼 매사에 자기 생각과 맞지 않다고 화를 내는 경우입니다(삼상 18:6-11, 22:11-19).
4)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
'당 짓는 것'이란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하나로 뭉치지 않고 그룹을 형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마음과 생각과 말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서 수군거리고 비방하며 악의 모양을 좇아 판단하며 정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리함'이란 당을 만들어 자기 생각을 좇아 분리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가족이나 교회 안에서도 분리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아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자기의 유익을 좇아 갈라져 나가는 경우입니다(삼하 15장).
'이단'이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입니다(벧후 2:1).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이단이라 정죄할 수 없습니다.
5)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투기'란 시기, 질투 등이 발전해서 상대에게 해를 가하거나 어떠한 제재를 가하는 등의 행함으로 나타난 것을 말합니다. 즉 시기가 지나쳐 행함으로 옮겨진 것이 바로 투기입니다.
'술 취함'이란 술 탓으로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되므로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거나 행동이 거칠어져 범죄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창세기 9장에는 노아가 홍수 심판 이후에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실수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 외에도 술 때문에 건강을 해치고, 알코올 중독이 되면 참으로 비참한 신세가 됩니다.
'방탕함'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절제하고 방종한 생활로 술에 취하는 것뿐 아니라 자기를 지키지 못하고 음란한 생활을 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것도 방탕한 것입니다.
6)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 외에도 유사한 육체의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남편이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거나 부모가 자녀를 잘 간수하지 못하는 등 타락하고 부패한 죄의 모습은 우리 눈에 현저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육체의 일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응답받을 수도 없으며 천국에 갈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육체의 일이 아직 남아 있다면 눈물로 회개하면서 신속히 돌이켜야 합니다. 혹여 내 안에 육체의 일이 너무 많아 '언제 다 버릴 수 있을까' 염려하며 낙심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열심히 선을 행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으로 육체의 일은 물론, 육신의 일도 버리고 영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갈 5:21)
2. 육신이란 ( )으로 나타나지 않은 ( )의 총칭
( )이란 육신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
3. 육체란 ( )으로 나타난 ( )의 총칭
( )이란 육체를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
4. 육체의 일이나 육신의 일을 버린 경험담이나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간증하며 서로 은혜를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4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읽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몸'과 '육신'의 차이
첫 사람 아담은 생령으로서 전혀 죄가 없었지만 사단의 역사를 받아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죄의 삯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아담의 범죄 후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심어 주신 생명의 지식인 진리가 빠져나가고 비진리로 물들어 버린 사람의 형체를 '몸'이라 한다. 그리고 이 '몸'에 죄성이 결합된 것을 '육신'이라 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는 육체의 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지 알아 신속히 버리고 철저히 경계하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 때문에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어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권세와 능력,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의 담을 헐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런 구원의 섭리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일을 행하면 천국을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육체의 일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1. 육체의 일과 육신의 일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주여, 주여" 한다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만일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지 않고 죄악 가운데 방탕하게 산다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했습니다. 비록 온전히 죄를 버리지 못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창세기 6장 3절에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했습니다. 이처럼 육체가 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영원히 함께하지 않으시니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육체'란 무슨 뜻일까요? 국어사전에는 육체에 대해 '구체적인 물질로서의 인간의 몸뚱이, 신체, 육신'이라고 했지만 성경에서는 이와 달리 영적 의미로 육체와 육신을 구분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육체란 행함으로 나타난 죄의 총칭'이며 이것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을 육체의 일이라고 합니다. 또한 '육신이란 진리가 빠져나간 사람의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말하며, 그 죄성들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을 육신의 일이라고 합니다. 즉 언제든지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죄성들을 육신의 일이라고 하며, 육신의 일을 총칭하여 육신이라고 하지요. 가령 내가 누군가를 미워하여 때리고 싶은 마음이 있다고 합시다. 이때 상대를 미워하여 때리고 싶은 마음은 아직 행위로 나타나지 않았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 나쁜 마음이요, 이런 마음 자체가 육신의 일이 됩니다. 만약 이런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실제로 상대를 구타했다면 육체의 일에 해당됩니다.
이러한 육체의 일들을 행하는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습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려고 노력한다면 영이신 하나님께서 함께하십니다. 다만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여전히 육체의 일을 행한다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육체의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육체의 일
1)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
'음행'이란 결혼 전 합법적인 부부가 되지 않은 상태에서 육체적인 관계를 맺거나, 결혼한 사람이 다른 여자나 남자를 취하거나, 자기 몸을 내주는 경우입니다. 이런 육적 음행 외에도 하나님을 저버리고 다른 우상을 섬기며 점을 보거나 사술이나 요사스러운 술법을 취하는 영적 음행이 있습니다.
'더러운 것'이란 죄성에 관계된 모든 것들에 해당되는데 죄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뛰어넘어 난잡하게 이루어진 일들입니다. 예를 들면 강도가 모녀를 같이 성폭행하는 경우나 아들이 어미의 하체를 범하는 것이나 아비가 자녀의 하체를 범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호색'이란 색욕을 좇아 각종 옳지 못한 행동들을 하는 것으로서 생활태도 전부가 음란을 좇아 행하며 음란에 젖은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살아갑니다. 예를 들면 사람이 짐승과 교접한다거나 여자가 여자끼리 남자가 남자끼리 동성연애하는 것, 또 각종 기구를 사용하는 등 정상적인 한계를 벗어나 잘못되어진 것을 말합니다.
2) 우상숭배와 술수와 원수 맺는 것
'우상숭배'란 참 신이신 하나님을 찾지 못하고 목석이나 금, 은, 동, 나무나 쇠붙이로 여러 형상을 만들어 그 앞에 경배하는 것을 말합니다(신 4:16-19). 또한 물질이나 자녀, 남편이나 아내 등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다면 이것도 우상숭배가 됩니다(골 3:5, 6).
'술수'란 모든 것에 있어서 궤사 즉 교묘한 거짓으로 속여서 상대를 꾀어가는 것과 다를 바 없는 것들을 말합니다. 무당을 믿는 무속 신앙, 점치는 복술, 사회 각 분야에서 나오는 사술 등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원수 맺는 것'이란 상대에게 원한을 품고 상대방이 극단적으로 파멸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원수같이 여기고 죽이려 한 것처럼 자신에게 악한 감정이 있어 상대를 멀리하고 미워하는 정도가 지나치면 해를 가하거나 비방하고 수군거리며 중상모략하는 등 각종 악한 일이 난무하게 됩니다.
3) 분쟁과 시기와 분냄
'분쟁'은 자기의 유익과 권세를 좇아 나가기 때문에 일어나는 다툼입니다. 독재적이고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기의 독재와 권세를 추구하고 이기심과 욕심이 있으므로 분쟁하게 되는데 이러한 분쟁은 부부나 부모 자녀 또는 정당이나 각 나라에도 있으며 교회 안에도 있을 수 있습니다(삼하 18:7).
'시기'란 자신이 남보다 못함을 느낄 때 혹은 자신보다 남이 나음을 느낄 때 마음에서 질투함으로 인해 상대를 미워하고 멀리하는 것입니다. 결국 시기는 악의에 찬 분노로 발전하게 되며 분쟁이 되고 당 짓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창 30장, 삼상 18:7-8, 창 4:1-8).
'분냄'이란 속으로 씩씩거리며 화를 냈다가 그냥 참고 소화시키는 단순한 분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는 불의한 분냄을 말합니다.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죽이려고 쫓아다닌 사울 왕처럼 매사에 자기 생각과 맞지 않다고 화를 내는 경우입니다(삼상 18:6-11, 22:11-19).
4)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
'당 짓는 것'이란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하여 하나로 뭉치지 않고 그룹을 형성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마음과 생각과 말이 같은 사람끼리 모여서 수군거리고 비방하며 악의 모양을 좇아 판단하며 정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분리함'이란 당을 만들어 자기 생각을 좇아 분리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가족이나 교회 안에서도 분리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좇아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라 자기의 유익을 좇아 갈라져 나가는 경우입니다(삼하 15장).
'이단'이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자기들을 사신 주를 부인하고 임박한 멸망을 스스로 취하는 자들'입니다(벧후 2:1). 그러므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받아들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지 않는다면 이단이라 정죄할 수 없습니다.
5)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
'투기'란 시기, 질투 등이 발전해서 상대에게 해를 가하거나 어떠한 제재를 가하는 등의 행함으로 나타난 것을 말합니다. 즉 시기가 지나쳐 행함으로 옮겨진 것이 바로 투기입니다.
'술 취함'이란 술 탓으로 자신을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되므로 억눌린 감정이 폭발하거나 행동이 거칠어져 범죄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창세기 9장에는 노아가 홍수 심판 이후에 포도주를 마시고 취해서 실수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 외에도 술 때문에 건강을 해치고, 알코올 중독이 되면 참으로 비참한 신세가 됩니다.
'방탕함'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무절제하고 방종한 생활로 술에 취하는 것뿐 아니라 자기를 지키지 못하고 음란한 생활을 하거나 자기 마음대로 세상을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것도 방탕한 것입니다.
6)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이 외에도 유사한 육체의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남편이 자기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거나 부모가 자녀를 잘 간수하지 못하는 등 타락하고 부패한 죄의 모습은 우리 눈에 현저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육체의 일을 버리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응답받을 수도 없으며 천국에 갈 수도 없습니다.
이러한 육체의 일이 아직 남아 있다면 눈물로 회개하면서 신속히 돌이켜야 합니다. 혹여 내 안에 육체의 일이 너무 많아 '언제 다 버릴 수 있을까' 염려하며 낙심하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열심히 선을 행하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으로 육체의 일은 물론, 육신의 일도 버리고 영의 사람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갈 5:21)
2. 육신이란 ( )으로 나타나지 않은 ( )의 총칭
( )이란 육신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
3. 육체란 ( )으로 나타난 ( )의 총칭
( )이란 육체를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
4. 육체의 일이나 육신의 일을 버린 경험담이나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간증하며 서로 은혜를 나누어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4편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읽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몸'과 '육신'의 차이
첫 사람 아담은 생령으로서 전혀 죄가 없었지만 사단의 역사를 받아 선악과를 먹은 후에는 죄의 삯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아담의 범죄 후 원래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심어 주신 생명의 지식인 진리가 빠져나가고 비진리로 물들어 버린 사람의 형체를 '몸'이라 한다. 그리고 이 '몸'에 죄성이 결합된 것을 '육신'이라 한다.
2009-01-23
제0과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1. 주 안에서의 '설'에 대한 이해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의 나라들에게 있어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이란 한 해의 첫날을 지칭하는 말로 음력 1월 1일을 가리키는데, 이는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신앙 안에서 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 조상들은 설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정의 평안과 건강 그 밖에 마음의 소원을 기원하며 막연히 신에게 복을 빌거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습니다. 이러한 축복과 마음의 소원의 응답은 오직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하나님께 맡겨 드린다는 의미를 담아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2.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 고유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도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셨으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 - - - - - - - - - - - - - - 사도신경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원 인도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아 멘 -
찬 송 - - - - - - - - - - - - - - - - 460장-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렇게 함께 모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날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새로운 한 해의 출발을 맞아 하나님 말씀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 가족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옵시고,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후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 - - - - - - - - - - - - - - - 에베소서 5:20-21 - - - - - - - - - - - - - - - - 인도자
설 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찬 송 - - - - - - - - - - - - - - - - - 305장 - - - - - - - - - - - - - - - - - 다같이
주기도문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다같이
3. 설교 예문
제 목: 하나님께 감사하라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에베소서 5:20-21)
본문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무한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세계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지요.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두려워하거나 염려, 걱정,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불꽃같은 눈동자로 자녀 된 우리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늘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 중심에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므로 이 시간 우리 가족이 설 명절을 맞이하여 한자리에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설날에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을 믿습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씀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에 약속된 대로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해 주십니다. 장차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을 주셨을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모든 것에 부족됨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 주시지요. 그러니 우리는 범사에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목자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해 가시는 분이 바로 목자이십니다.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 계셔도 그분을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그분의 자녀가 되어 사랑받고 축복받을 수 있는지, 그 길을 밝히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밝히 제시해 주시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축복받는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친히 본이 되어 이끌어 가시는 분이 목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그와 함께했던 조카 롯이 지킴받고 축복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받고 보장받는 목자의 양 떼로 있는 가정이라면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양 떼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눈물로 간구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목자가 계시기에 지난 한 해도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목자를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본문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신 말씀대로 가족 모두가 서로 섬기며 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주장, 내 의견, 내 생각만을 고집할 때는 서로 간에 불목할 수밖에 없지만, 이 땅에 우리를 섬기러 오신 주님을 경외함으로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 섬기며 복종한다면 주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화목하며 우애하고 부모는 자녀를 주의 교양으로 양육해야 하지요. 이렇게 주 안에서 경건하며 화평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범사에 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올 한 해도 하나님께 사랑받고 축복받는 가정이 될 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더욱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여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1. 주 안에서의 '설'에 대한 이해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의 나라들에게 있어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이란 한 해의 첫날을 지칭하는 말로 음력 1월 1일을 가리키는데, 이는 '묵은 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신앙 안에서 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리 조상들은 설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정의 평안과 건강 그 밖에 마음의 소원을 기원하며 막연히 신에게 복을 빌거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습니다. 이러한 축복과 마음의 소원의 응답은 오직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하나님께 맡겨 드린다는 의미를 담아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2.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 고유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도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셨으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 - - - - - - - - - - - - - - 사도신경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원 인도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 아 멘 -
찬 송 - - - - - - - - - - - - - - - - 460장- -- - - - - - - - - - - - - - - - 다같이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렇게 함께 모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날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새로운 한 해의 출발을 맞아 하나님 말씀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 가족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옵시고,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후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 - - - - - - - - - - - - - - - 에베소서 5:20-21 - - - - - - - - - - - - - - - - 인도자
설 교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기 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설교자
찬 송 - - - - - - - - - - - - - - - - - 305장 - - - - - - - - - - - - - - - - - 다같이
주기도문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다같이
3. 설교 예문
제 목: 하나님께 감사하라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에베소서 5:20-21)
본문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한 해 동안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살아갈 수 있었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께 무한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어떻습니까? 세계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날마다 혼란이 더해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지요. 하나님을 믿기에 우리는 이러한 세상을 살아가면서도 두려워하거나 염려, 걱정,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 먼저 불꽃같은 눈동자로 자녀 된 우리들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늘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 중심에서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7:1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므로 이 시간 우리 가족이 설 명절을 맞이하여 한자리에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설날에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을 믿습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립니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말씀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성경에 약속된 대로 놀라운 축복으로 함께해 주십니다. 장차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을 주셨을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모든 것에 부족됨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 주시지요. 그러니 우리는 범사에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우리는 목자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주님을 대신하여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해 가시는 분이 바로 목자이십니다. 우리에게 아버지가 되시는 좋으신 하나님이 계셔도 그분을 어떻게 해야 만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그분의 자녀가 되어 사랑받고 축복받을 수 있는지, 그 길을 밝히 알지 못한다면 우리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바로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밝히 제시해 주시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사랑받고 축복받는 길로 나갈 수 있도록 친히 본이 되어 이끌어 가시는 분이 목자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그와 함께했던 조카 롯이 지킴받고 축복받을 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의 사랑받고 보장받는 목자의 양 떼로 있는 가정이라면 더욱 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 속에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양 떼 한 영혼 한 영혼을 위해 눈물로 간구하시며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목자가 계시기에 지난 한 해도 지킴받고 보호받으며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로 한걸음 더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목자를 우리에게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범사에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본문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하신 말씀대로 가족 모두가 서로 섬기며 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내 주장, 내 의견, 내 생각만을 고집할 때는 서로 간에 불목할 수밖에 없지만, 이 땅에 우리를 섬기러 오신 주님을 경외함으로 우리 가족 모두가 서로 섬기며 복종한다면 주 안에서 아름다운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에 화목하며 우애하고 부모는 자녀를 주의 교양으로 양육해야 하지요. 이렇게 주 안에서 경건하며 화평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범사에 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올 한 해도 하나님께 사랑받고 축복받는 가정이 될 뿐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가 더욱 온전한 신앙생활을 하여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9-01-16
제3과성부·성자·성령
마 28:19
읽을말씀 : 마 28:19 | 외울말씀 : 고후 13:13, 참고 말씀 요일 5:8
교육목표 :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고 깨달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한다.
구원의 섭리를 이루기 위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역할은 다르지만 근본이 하나이시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는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교리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에 대한 비밀한 말씀이므로 사람의 제한적인 사고와 이론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아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1. 삼위일체 하나님
출애굽기 3장 14절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누가 낳거나 지은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의 생각과 상상을 초월하여 시작도 끝도 없고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신 분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께서는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 계셨습니다(요 1:1, 요일 1:5).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여 참 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계획하셨습니다. 근본 하나님께서 거하시던 하나의 공간을 여럿으로 나누고 스스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근본 하나님으로부터 나셨으며(행 13:33, 히 5:5), 성령님 역시 근본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요 15:26, 갈 4:6).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부터 시작하여 백보좌 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구원의 섭리를 함께 이루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예수님만 고통당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령님께서도 함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또한 성령님께서 이 땅의 영혼들을 위해 애통함으로 간구하시며 사역하실 때, 주님과 하나님도 같은 마음으로 느끼시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5장 8절에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하셨습니다. 물은 영적으로 말씀이신 하나님의 사역이며 피는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주님의 사역을 말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 되어 사역하심으로 믿는 자녀들에게 구원받은 증거를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8장 19절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했고,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축복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근본 속성이 같고 마음과 생각이 일치하기 때문에 질서 가운데 인간 경작을 위한 역할이 정확히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온전한 구원을 위한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보혜사 성령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2. 성부 하나님
성부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총감독으로서 인류역사의 주관자이시며 마지막 때의 심판자가 되십니다. 사람이 이 땅에 온 시작이 있으니 심판의 날도 있기 마련입니다(계 20:11-15, 요 3:18). 창조주로서 인간 경작의 시작을 이루셨으니 심판주로서 백보좌 심판을 통해 끝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성부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 경우에 따라 다르게 쓰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라는 표현은 민족과 민족 위에, 세계 열방 위에 모든 걸 통치하시는 분, 세계 속에 유일하신 참 신이라는 의미가 있고 '하나님'이란 표현에는 개개의 민족이나 나라 혹은 개인에게 임하시는 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에는 축복이 임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을 때에는 저주가 임합니다. 무엇이 죄이고, 의인지 알려 주어 심판이 임하지 않도록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이 듣지 않고 계속하여 죄를 짓습니다.
때가 이르매 성부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예비하신 구세주를 보내시고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을 때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3. 성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 처형을 당해야 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으며(히 9:22, 레 17:11)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려면 나무에 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갈 3:13).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기 때문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이처럼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아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하면 그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고 이단이라 정의합니다(요일 4:2-3, 벧후 2:1). 그래서 이단으로 정죄된 파를 보면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오직 성부 하나님을 알리고, 사망 권세를 깨뜨려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34절에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루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빌 2:5-11).
4. 보혜사 성령
인간 경작에 있어서 보혜사 성령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6, 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는 온 인류 위에 동시에 임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온 인류에게 임하시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보혜사란 법정 대리인, 조언자라는 뜻으로 성령의 사명을 담은 호칭입니다. 구약 시대는 예수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전이므로 보혜사 성령이 우리 마음에 오실 수 없었지만 오늘날은 누구든지 믿는 자들의 마음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이유는 개인 교사와 같이 우리 마음에 내주하면서 영혼을 살리지 않고는 결단코 진리 가운데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서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통달하고 계시므로(고전 2:10)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도록 도와주며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보혜사 성령의 사역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을 알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달으며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끄시며 우리를 깨뜨려 좋은 그릇으로 만들어 주십니다(롬 8:26). 셋째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며(요 14:26),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장래 일을 알려 주십니다(요 16:13). 넷째로 성령의 소욕에 순종하여 열매를 맺으며 은사를 받게 하십니다(갈 5:22-23, 고전 12:7-10). 이 밖에도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기도 하고(행 10:19), 지시하시며(행 8:29),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막아 주십니다(행 16:6).
따라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성도가 되려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 생명을 얻고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왜 인간 경작을 계획하셨을까요?
2.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할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3.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3과 '육체의 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인간 경작이란?
일반적으로 '경작'이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를 통해 열매를 얻는 과정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인간을 경작하시는 수고를 통해 참 자녀라는 열매를 얻고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번째 씨앗을 이 땅에 심으셨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이 헤아릴 수 없이 태어나고 있으며 마음 밭을 개간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거듭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과정을 '인간 경작'이라고 한다.
교육목표 :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 경작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고 깨달아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한다.
구원의 섭리를 이루기 위한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의 역할은 다르지만 근본이 하나이시기 때문에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는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교리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에 대한 비밀한 말씀이므로 사람의 제한적인 사고와 이론으로는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바로 알아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1. 삼위일체 하나님
출애굽기 3장 14절에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누가 낳거나 지은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스스로 계신 분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의 생각과 상상을 초월하여 시작도 끝도 없고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계신 분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께서는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 계셨습니다(요 1:1, 요일 1:5).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여 참 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계획하셨습니다. 근본 하나님께서 거하시던 하나의 공간을 여럿으로 나누고 스스로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근본 하나님으로부터 나셨으며(행 13:33, 히 5:5), 성령님 역시 근본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습니다(요 15:26, 갈 4:6).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은 천지만물의 창조부터 시작하여 백보좌 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간 구원의 섭리를 함께 이루고 계십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에도 예수님만 고통당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령님께서도 함께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또한 성령님께서 이 땅의 영혼들을 위해 애통함으로 간구하시며 사역하실 때, 주님과 하나님도 같은 마음으로 느끼시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5장 8절에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하셨습니다. 물은 영적으로 말씀이신 하나님의 사역이며 피는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주님의 사역을 말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 되어 사역하심으로 믿는 자녀들에게 구원받은 증거를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28장 19절을 보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했고, 고린도후서 13장 13절에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하여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축복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근본 속성이 같고 마음과 생각이 일치하기 때문에 질서 가운데 인간 경작을 위한 역할이 정확히 나뉘어져 있습니다. 그러면 온전한 구원을 위한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 그리스도, 보혜사 성령의 역할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2. 성부 하나님
성부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총감독으로서 인류역사의 주관자이시며 마지막 때의 심판자가 되십니다. 사람이 이 땅에 온 시작이 있으니 심판의 날도 있기 마련입니다(계 20:11-15, 요 3:18). 창조주로서 인간 경작의 시작을 이루셨으니 심판주로서 백보좌 심판을 통해 끝을 맺으시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성부 하나님에 대한 호칭이 경우에 따라 다르게 쓰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라는 표현은 민족과 민족 위에, 세계 열방 위에 모든 걸 통치하시는 분, 세계 속에 유일하신 참 신이라는 의미가 있고 '하나님'이란 표현에는 개개의 민족이나 나라 혹은 개인에게 임하시는 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구약 성경을 보면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에는 축복이 임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했을 때에는 저주가 임합니다. 무엇이 죄이고, 의인지 알려 주어 심판이 임하지 않도록 깨우쳐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약 시대의 선지자들과 종들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아무리 외쳐도 사람들이 듣지 않고 계속하여 죄를 짓습니다.
때가 이르매 성부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예비하신 구세주를 보내시고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믿을 때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3. 성자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친히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 처형을 당해야 했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으며(히 9:22, 레 17:11)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려면 나무에 달려야 하기 때문입니다(갈 3:13).
예수님은 죄가 전혀 없기 때문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 이처럼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아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을 부인하면 그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고 이단이라 정의합니다(요일 4:2-3, 벧후 2:1). 그래서 이단으로 정죄된 파를 보면 한결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합니다.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은 오직 성부 하나님을 알리고, 사망 권세를 깨뜨려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죄에서 구원하여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34절에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말씀한 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루고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빌 2:5-11).
4. 보혜사 성령
인간 경작에 있어서 보혜사 성령의 역할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4장 16, 17절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계실 때는 온 인류 위에 동시에 임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께서 오셔서 온 인류에게 임하시는 일이 가능해졌습니다. 보혜사란 법정 대리인, 조언자라는 뜻으로 성령의 사명을 담은 호칭입니다. 구약 시대는 예수님께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전이므로 보혜사 성령이 우리 마음에 오실 수 없었지만 오늘날은 누구든지 믿는 자들의 마음에 내주하고 계십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마다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이유는 개인 교사와 같이 우리 마음에 내주하면서 영혼을 살리지 않고는 결단코 진리 가운데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거룩한 영으로서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통달하고 계시므로(고전 2:10)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도록 도와주며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보혜사 성령의 사역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하나님을 알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달으며 하나님의 법을 지킬 수 있습니다. 둘째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이끄시며 우리를 깨뜨려 좋은 그릇으로 만들어 주십니다(롬 8:26). 셋째로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치고 생각나게 하시며(요 14:26),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며 장래 일을 알려 주십니다(요 16:13). 넷째로 성령의 소욕에 순종하여 열매를 맺으며 은사를 받게 하십니다(갈 5:22-23, 고전 12:7-10). 이 밖에도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친히 말씀하기도 하고(행 10:19), 지시하시며(행 8:29),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막아 주십니다(행 16:6).
따라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복된 성도가 되려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 생명을 얻고 유지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왜 인간 경작을 계획하셨을까요?
2.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할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3. 고린도후서 13장 13절 말씀을 함께 외워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3과 '육체의 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인간 경작이란?
일반적으로 '경작'이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를 통해 열매를 얻는 과정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인간을 경작하시는 수고를 통해 참 자녀라는 열매를 얻고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번째 씨앗을 이 땅에 심으셨다. 그 결과 오늘날까지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이 헤아릴 수 없이 태어나고 있으며 마음 밭을 개간하여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하나님의 자녀들로 거듭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사람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 역사를 주관해 가시는 과정을 '인간 경작'이라고 한다.
2009-01-09
제2과구원
행 4:12 / 참고말씀 : 요일 3:21, 22
읽을말씀 : 행 4:12 / 참고말씀 : 요일 3:21, 22 | 외울말씀 : 요 14:6
교육목표 :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 알게 한다.
요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에 대한 약속을 하면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성령의 사역, 특히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깨달음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인이 되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1. 진정한 축복의 주인공이 되려면
세상에는 종교와 문화에 따라 많은 신이 있고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까지 있습니다(행 17:23). 요즘에는 여러 종교의 장점을 혼합시켜 만든 '신흥종교'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고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믿는 '종교다원주의'가 보편적인 철학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신 4:39, 요 14:6, 행 4:12).
손목시계만 보더라도 부속품이 정교하게 맞물려 작동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 줍니다. 자그마한 시계 하나도 그것을 설계한 사람이 있고 분명한 계획 속에 그 일을 해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이 우주는 시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광대하여 인간의 두뇌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태양계가 한 치 오차 없이 정밀하게 운행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든 기관과 세포 등 여러 구성 요소가 정교하게 어울리는데 그중 인간이 밝혀 낸 사실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인체가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천지만물을 창조한 신이 왜 보이지 않으며 우리와 대화할 수 없는 것입니까? 그 모습이 보이고 음성이 들린다면 확실히 있는 줄 알겠는데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의 담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고 온전히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죄가 있으면 그분을 만날 수도, 교통할 수도 없습니다. 캄캄한 곳에 있으면 자기 옷에 때가 묻어 있어도 보이지 않지만 눈부시게 밝은 빛이 있으면 옷에 묻은 조그만 티까지도 낱낱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 그러면 믿겠다." 아니면 "하나님! 나에게 좀 나타나 주세요. 나도 믿고 싶은데 도무지 그 증거가 없어서 내게 믿음이 안 옵니다." 하는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받아야 진정한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잠언 8:17-18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2. 성경에 기록된 구원(救援)의 의미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성경 39권은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기 이전의 내용입니다.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신약성경 27권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온 이후의 내용으로서 영원한 천국에 대해서도 밝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락한 인간들이 갖가지 신을 섬기는데 진정한 축복을 줄 수 있는 참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었을 때, 사업에 실패한 사람에게 재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을 때, 가정 형편상 공부하기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을 때에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인류를 죄악에서 건져내는 것, 곧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테두리 안에 들어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알기 쉽게 영적으로 표현한다면 구원의 입구는 예수 그리스도요, 구원의 집은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도 예수님께서 친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으로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때가 이르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길을 완성하셨습니다. 사람이 원죄와 자범죄로 인하여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불멸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어 나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의 영혼은 천국에 들어가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결국 심판 받아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섭리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얻을 때에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가능한 것일까요?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에덴동산에서 살다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죄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우리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아담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으며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른 것입니다.
영계의 법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죄를 속량할 수 있는 법도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 대신하여 죄의 대가를 받을 때만 가능합니다. 즉 모든 인류의 죄를 영계의 법에 합당한 사람이 대신 져야 죄의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불순종의 죄로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다시 찾으려면 영계의 법인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레 25:23-25).
사람은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외모와 성격뿐 아니라 죄성까지도 물려받습니다. 가령 어린아이에게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시기하고 미워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죄성을 바로 원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원죄가 없어야 하므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고, 스스로 율법을 다 지켜 행하셨기에 자범죄가 없습니다. 또한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랑이 있었기에 십자가의 처형을 기쁨으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시고자 나무 십자가에 달려 (갈 3:13) 원죄와 자범죄가 없는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심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도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주시는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어 자기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버림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그 법도를 지키며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 영원한 구원의 집인 천국에 이를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2. 사도행전 4:12 말씀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3. 여러분은 자신있게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성부.성자.성령' 읽어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토지 무르기 법칙이란?
이스라엘 토지법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토지를 팔 때에 영영히 팔지 않고 나중에 되찾을 수 있도록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매매계약서에 명시했다. 언제라도 부유한 근족이 와서 대신 토지를 무르게 하였고, 근족 중에 무를 사람이 없으면 본인이 부유케 되어 무를 힘이 있을 때 되찾을 수 있었다(레 25:23-25).
토지 무르기법은 인간 구원에 관한 영계의 법과 직접 연관이 있다. 즉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권세를 원수 마귀에게 넘겨 주었지만 그 권세를 무를 수 있는 합당한 자가 나타나면 되돌려 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다.
교육목표 :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무엇이며 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지 알게 한다.
요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은 보혜사 성령에 대한 약속을 하면서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말씀합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고 성령의 사역, 특히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깨달음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인이 되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1. 진정한 축복의 주인공이 되려면
세상에는 종교와 문화에 따라 많은 신이 있고 심지어 '알지 못하는 신'까지 있습니다(행 17:23). 요즘에는 여러 종교의 장점을 혼합시켜 만든 '신흥종교'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도 하고 모든 종교에 구원이 있다고 믿는 '종교다원주의'가 보편적인 철학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창조주 하나님만이 참 신이며 예수 그리스도만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신 4:39, 요 14:6, 행 4:12).
손목시계만 보더라도 부속품이 정교하게 맞물려 작동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시간을 알려 줍니다. 자그마한 시계 하나도 그것을 설계한 사람이 있고 분명한 계획 속에 그 일을 해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그냥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하물며 이 우주는 시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광대하여 인간의 두뇌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중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 태양계가 한 치 오차 없이 정밀하게 운행되는 것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를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모든 기관과 세포 등 여러 구성 요소가 정교하게 어울리는데 그중 인간이 밝혀 낸 사실은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인체가 우연히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면 천지만물을 창조한 신이 왜 보이지 않으며 우리와 대화할 수 없는 것입니까? 그 모습이 보이고 음성이 들린다면 확실히 있는 줄 알겠는데 말입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죄의 담이 가로막혀 있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죄가 전혀 없고 온전히 의로우신 분이시므로 죄가 있으면 그분을 만날 수도, 교통할 수도 없습니다. 캄캄한 곳에 있으면 자기 옷에 때가 묻어 있어도 보이지 않지만 눈부시게 밝은 빛이 있으면 옷에 묻은 조그만 티까지도 낱낱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을 보여 달라! 그러면 믿겠다." 아니면 "하나님! 나에게 좀 나타나 주세요. 나도 믿고 싶은데 도무지 그 증거가 없어서 내게 믿음이 안 옵니다." 하는 사람은 자기 속에 있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받아야 진정한 축복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잠언 8:17-18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2. 성경에 기록된 구원(救援)의 의미
창세기부터 말라기까지 구약성경 39권은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기 이전의 내용입니다. 마태복음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신약성경 27권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온 이후의 내용으로서 영원한 천국에 대해서도 밝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락한 인간들이 갖가지 신을 섬기는데 진정한 축복을 줄 수 있는 참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으로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었을 때, 사업에 실패한 사람에게 재기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었을 때, 가정 형편상 공부하기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었을 때에 구원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인류를 죄악에서 건져내는 것, 곧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테두리 안에 들어가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알기 쉽게 영적으로 표현한다면 구원의 입구는 예수 그리스도요, 구원의 집은 천국, 곧 하나님의 나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도 예수님께서 친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으로 구원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때가 이르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구원의 길을 완성하셨습니다. 사람이 원죄와 자범죄로 인하여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영혼은 불멸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으면 육체로부터 영혼이 분리되어 나옵니다. 이 땅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사람의 영혼은 천국에 들어가지만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결국 심판 받아 지옥에 들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3.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섭리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구원을 얻을 때에 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만 가능한 것일까요?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에덴동산에서 살다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음으로 죄가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우리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고 했습니다. 즉 아담으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모든 사람이 죄를 지으며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른 것입니다.
영계의 법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죄를 속량할 수 있는 법도 있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누군가 대신하여 죄의 대가를 받을 때만 가능합니다. 즉 모든 인류의 죄를 영계의 법에 합당한 사람이 대신 져야 죄의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불순종의 죄로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다시 찾으려면 영계의 법인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레 25:23-25).
사람은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외모와 성격뿐 아니라 죄성까지도 물려받습니다. 가령 어린아이에게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시기하고 미워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죄성을 바로 원죄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원죄가 없어야 하므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고, 스스로 율법을 다 지켜 행하셨기에 자범죄가 없습니다. 또한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는 사랑이 있었기에 십자가의 처형을 기쁨으로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해 주시고자 나무 십자가에 달려 (갈 3:13) 원죄와 자범죄가 없는 보배로운 피를 흘려 주심으로 인간의 죄를 대속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도 아낌없이 십자가에 내주시는 크신 사랑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셨고, 예수님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어 자기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버림으로 우리를 사랑하는 증거를 보이셨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에 나가 예배를 드리며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그 법도를 지키며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 영원한 구원의 집인 천국에 이를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의 의미란 무엇일까요?
2. 사도행전 4:12 말씀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3. 여러분은 자신있게 "나는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성부.성자.성령' 읽어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토지 무르기 법칙이란?
이스라엘 토지법은 다른 나라와는 달리 토지를 팔 때에 영영히 팔지 않고 나중에 되찾을 수 있도록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매매계약서에 명시했다. 언제라도 부유한 근족이 와서 대신 토지를 무르게 하였고, 근족 중에 무를 사람이 없으면 본인이 부유케 되어 무를 힘이 있을 때 되찾을 수 있었다(레 25:23-25).
토지 무르기법은 인간 구원에 관한 영계의 법과 직접 연관이 있다. 즉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모든 권세를 원수 마귀에게 넘겨 주었지만 그 권세를 무를 수 있는 합당한 자가 나타나면 되돌려 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토지 무르기 법에 합당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다.
2009-01-02
제1과마음을 하나로
수 1:6~9
읽을말씀 : 수 1:6~9 | 외울말씀 : 히 10:38
교육목표 : 모든 성도들과 일꾼들이 하나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크게 이루며 영육간에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한다.
축복의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교회와 개개인에게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며 자신과 화평을 이룰 뿐아니라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당부한 것처럼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는다면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정이나 학교, 교회, 직장, 사회 등 여러 공동체 안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갑니다. 서로 마음이 하나되어 화평을 이룬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넘치는 축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주 안에서 마음이 하나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1) 범사에 믿음의 눈으로 바라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모두가 하나 되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제사장들에게 범람하는 요단 강물을 밟으라 할 때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급하고 거센 물살이 아닌 하나님 역사를 바라보고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렇게 한마음으로 강물을 밟을 때, 요단강은 흐름을 멈추었습니다(수 3장).
하나님 일을 이룰 때 몇몇 사람이 불신의 눈으로 보면 전체적인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철벽 같은 여리고 성을 돌 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침묵을 지켰습니다. '적군이 화살이라도 쏘면 그대로 맞을 텐데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 성 주위를 돌면 어쩌나.' 하며 불평불만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한마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굳건한 성벽이 무너졌습니다(수 6장).
'믿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현실이나 세상 이치를 모르고 사람이 해야 할 바를 하지 않으면서 하늘만 바라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믿음이 그런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열두 정탐꾼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에도 여호수아는 정탐꾼을 보내 상황을 파악하게 했습니다. 현실은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기에 믿고 그 뜻을 구해 나간 것입니다.
모세가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을 바라보니 불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도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40년 광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민 13, 14장). 하나님께서는 광야생활을 통해 출애굽 2세대의 믿음이 성장하게 하셨고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받으려면 사람이 최선을 다해 믿음의 받침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개척 이후 우리 교회도 이처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이뤄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니 안일하게 있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힘쓰고 애썼습니다. 요단강이 범람하는 것처럼 어려운 현실에 직면할 때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는 믿음의 고백과 행함으로 하나님 뜻을 이뤄 갔습니다.
2) 소망으로 새 예루살렘을 바라봄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은 이 땅에서 영광이나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충성할 때 이 땅에서도 축복을 주시지만, 혹여 아무런 상이 없다 해도 장차 누릴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고 기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온 영으로,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계 21장, 『천국』 책자 참조).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가장 큰 소망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주님의 피 값을 찾아드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10:38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앞서가는 몇몇 일꾼뿐 아니라 모두가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그 소망 가운데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노력해 나갈 때 자신의 마음 그릇이 변화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지 소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새 예루살렘이 마음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2. 마음을 선한 것에 두어야 합니다
아무리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해도 서로 선을 마음에 품을 때라야 진정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선으로 하나 되었느냐에 따라,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서로 마음이 하나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간은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범죄하였고 결국 그로 인해 이스라엘도 아이 성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수 7장).
그러므로 하나님 일을 할 때에는 함께 선한 것을 품어야 합니다. 각 사람이 선을 품었는지, 욕심을 품었는지, 또 하나님 영광을 위하는 마음인지, 자기 명예를 구하는 마음인지에 따라 마음이 하나 될 수도 있고 흩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할 때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며 교회와 목자를 사랑해서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정적으로 해도 마음에 선한 것을 두지 않으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항상 양보와 용서, 화평과 섬김, 희생과 인내 등 선의 마음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윗 사람이 열심히 어떤 행사를 추진할 때에 아랫 사람은 '교회에 힘이 되고자 하는데 나도 최대한 힘을 모아야겠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이 일이 잘되어도 주도하는 사람들만 인정받고 칭찬받는데 왜 내가 굳이 힘든 일을 해야 하나.' 하지는 않았는지요.
또한 윗사람의 입장에서 전체를 위해 일을 추진하는데 일꾼들의 마음이 잘 모이지 않을 때, 감사와 기쁨으로 '내가 더 기도하고 능력을 받아야겠다.' 했는지요. 아니면 '교회와 전체를 위해 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마음을 써주지 않는가.', '당연히 질서를 따라 순종해야 하는데 왜 순종해 주지 않는가.' 불편해하며 상대를 노여워하지는 않았는지요. '일꾼들이 자기가 맡은 분야만 생각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니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너무 힘들다. 다음에는 애쓰지 말고 각자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야겠다.' 하며 서운해 하지는 않았는지요.
영육간에 질서는 지켜야 하지만 질서를 주장할 때에도 상대의 입장을 한 번 더 헤아려 주는 것이 선인 것입니다. 또한 더 좋은 의견이 있어서 건의했는데, 다른 일꾼이나 머리가 그 의견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이때 항상 선을 좇는 사람이라면 겸비하게 전체의 입장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내 의견이 더 낫다 해도, 혹은 전체의 의견대로 하면 내가 희생한다 해도 따라 줍니다. 비진리가 아니면 결정된 사항에 대해 최대한 마음을 모아 주지요. 이처럼 하나님 일을 이루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선입니다. 누가 더 옳고 그른지, 조금 열매를 더 내고 덜 내는지가 핵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섬겨 주고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닮은 자녀들이 선한 마음으로 하나 되어 일할 때, 그 열매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려 주셔서 안 될 것도 되고 될 것은 더 잘되게 인도하시지요. 하나님 일은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모든 일을 믿음과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선으로 마음을 모아 하나님 나라를 크게 이루며 영육간에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모든 성도들과 일꾼들이 하나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크게 이루며 영육간에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한다.
축복의 새해를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교회와 개개인에게 주신 비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며 자신과 화평을 이룰 뿐아니라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당부한 것처럼 마음을 강하게 하고 극히 담대히 하여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 행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지지 않는다면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가정이나 학교, 교회, 직장, 사회 등 여러 공동체 안에서 하나의 구성원으로서 살아갑니다. 서로 마음이 하나되어 화평을 이룬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넘치는 축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주 안에서 마음이 하나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1) 범사에 믿음의 눈으로 바라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을 건너고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 모두가 하나 되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제사장들에게 범람하는 요단 강물을 밟으라 할 때 그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급하고 거센 물살이 아닌 하나님 역사를 바라보고 발을 내디뎠습니다. 이렇게 한마음으로 강물을 밟을 때, 요단강은 흐름을 멈추었습니다(수 3장).
하나님 일을 이룰 때 몇몇 사람이 불신의 눈으로 보면 전체적인 사기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철벽 같은 여리고 성을 돌 때 이스라엘 백성은 모두 침묵을 지켰습니다. '적군이 화살이라도 쏘면 그대로 맞을 텐데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 성 주위를 돌면 어쩌나.' 하며 불평불만도 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며 한마음으로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굳건한 성벽이 무너졌습니다(수 6장).
'믿음으로 바라본다'는 것은 현실이나 세상 이치를 모르고 사람이 해야 할 바를 하지 않으면서 하늘만 바라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믿음이 그런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열두 정탐꾼을 보내어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여리고 성을 점령할 때에도 여호수아는 정탐꾼을 보내 상황을 파악하게 했습니다. 현실은 불가능한 상황이지만,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기에 믿고 그 뜻을 구해 나간 것입니다.
모세가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냈을 때 여호수아와 갈렙 만이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나머지 열 명의 정탐꾼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현실을 바라보니 불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백성도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하나님을 원망하였고 40년 광야생활이 시작되었습니다(민 13, 14장). 하나님께서는 광야생활을 통해 출애굽 2세대의 믿음이 성장하게 하셨고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받으려면 사람이 최선을 다해 믿음의 받침대를 만들어야 합니다. 개척 이후 우리 교회도 이처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이뤄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실 것이니 안일하게 있지 않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힘쓰고 애썼습니다. 요단강이 범람하는 것처럼 어려운 현실에 직면할 때도 끝까지 흔들리지 않고 변함없는 믿음의 고백과 행함으로 하나님 뜻을 이뤄 갔습니다.
2) 소망으로 새 예루살렘을 바라봄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하는 것은 이 땅에서 영광이나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충성할 때 이 땅에서도 축복을 주시지만, 혹여 아무런 상이 없다 해도 장차 누릴 천국의 상급을 바라보고 기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두가 온 영으로,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계 21장, 『천국』 책자 참조). 이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가장 큰 소망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주님의 피 값을 찾아드리는 것이기도 합니다.
히브리서 10:38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앞서가는 몇몇 일꾼뿐 아니라 모두가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그 소망 가운데 마음을 하나로 모아야 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입니다.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노력해 나갈 때 자신의 마음 그릇이 변화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단지 소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새 예루살렘이 마음 안에 임하는 것입니다.
2. 마음을 선한 것에 두어야 합니다
아무리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일을 해도 서로 선을 마음에 품을 때라야 진정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선으로 하나 되었느냐에 따라, 일이 쉽게 풀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지요.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서로 마음이 하나된 것처럼 보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간은 물질에 대한 욕심으로 범죄하였고 결국 그로 인해 이스라엘도 아이 성을 정복하지 못했습니다(수 7장).
그러므로 하나님 일을 할 때에는 함께 선한 것을 품어야 합니다. 각 사람이 선을 품었는지, 욕심을 품었는지, 또 하나님 영광을 위하는 마음인지, 자기 명예를 구하는 마음인지에 따라 마음이 하나 될 수도 있고 흩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할 때에 하나님 나라를 위하며 교회와 목자를 사랑해서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열정적으로 해도 마음에 선한 것을 두지 않으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항상 양보와 용서, 화평과 섬김, 희생과 인내 등 선의 마음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윗 사람이 열심히 어떤 행사를 추진할 때에 아랫 사람은 '교회에 힘이 되고자 하는데 나도 최대한 힘을 모아야겠다.' 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경우에는 '이 일이 잘되어도 주도하는 사람들만 인정받고 칭찬받는데 왜 내가 굳이 힘든 일을 해야 하나.' 하지는 않았는지요.
또한 윗사람의 입장에서 전체를 위해 일을 추진하는데 일꾼들의 마음이 잘 모이지 않을 때, 감사와 기쁨으로 '내가 더 기도하고 능력을 받아야겠다.' 했는지요. 아니면 '교회와 전체를 위해 하는 일인데 왜 이렇게 마음을 써주지 않는가.', '당연히 질서를 따라 순종해야 하는데 왜 순종해 주지 않는가.' 불편해하며 상대를 노여워하지는 않았는지요. '일꾼들이 자기가 맡은 분야만 생각하고 자기 유익을 구하니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어서 너무 힘들다. 다음에는 애쓰지 말고 각자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둬야겠다.' 하며 서운해 하지는 않았는지요.
영육간에 질서는 지켜야 하지만 질서를 주장할 때에도 상대의 입장을 한 번 더 헤아려 주는 것이 선인 것입니다. 또한 더 좋은 의견이 있어서 건의했는데, 다른 일꾼이나 머리가 그 의견을 수용하지 않습니다. 이때 항상 선을 좇는 사람이라면 겸비하게 전체의 입장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내 의견이 더 낫다 해도, 혹은 전체의 의견대로 하면 내가 희생한다 해도 따라 줍니다. 비진리가 아니면 결정된 사항에 대해 최대한 마음을 모아 주지요. 이처럼 하나님 일을 이루는 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선입니다. 누가 더 옳고 그른지, 조금 열매를 더 내고 덜 내는지가 핵심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존중하고 이해하며, 섬겨 주고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닮은 자녀들이 선한 마음으로 하나 되어 일할 때, 그 열매는 하나님께서 책임지시는 것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려 주셔서 안 될 것도 되고 될 것은 더 잘되게 인도하시지요. 하나님 일은 사람의 능력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새해에는 모든 일을 믿음과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선으로 마음을 모아 하나님 나라를 크게 이루며 영육간에 풍성한 축복의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2008-12-26
제52과지극히 충성된 자
눅 16:10
읽을말씀 : 눅 16:10 | 외울말씀 : 눅 16:10
교육목표 : 지극히 충성된 자가 되어 주님께 ""잘 하였다."" 칭찬받을 뿐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만큼 자금을 주었습니다. 그중에 한 종은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열심히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의 이윤을 더 남겼고, 또 한 종은 두 달란트를 받아서 두 달란트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며 칭찬을 하였지요.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사명 하나라도 귀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정녕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작은 사명일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사명이라도 소중한 것이지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사명을 잘 감당할 때는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얻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서 당장 맡은 일은 소홀히 하고 있으면서 "더 큰 사명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는 경우도 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사명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받으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인정받기 원하고 사람 앞에 드러나고자 직분을 원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우, 충성하는 자체보다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내기 어렵고 큰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6:10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말씀하신 대로 작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도 큰 사명을 맡기실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창세기 37-4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 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 족속이 한 민족으로 성장하기까지 애굽에 들어가 거할 길을 여십니다. 먼저 요셉이 강대국 애굽에 들어가서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어린 요셉을 총리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애굽의 한 장관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서, 미천한 일부터 시작하게 하셨지요. 점차 주인의 신망을 얻게 되니 모든 살림을 주관하는 자리에 세우시고, 다음에는 왕의 감옥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 감옥은 일반 죄수들이 아니라 고위층 사람들이 왕에게 범죄했을 때 수감되는 감옥으로 요셉은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라 전체를 다스릴 수 있도록 넓은 안목과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13년을 보내고서야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될 수 있었지요. 요셉은 타고난 성실함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통해 그 모든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장관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 자신의 직무를 대충했다면 그는 종으로서 자신의 일생을 마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무리 미천한 일이라도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 이상의 일을 해냄으로 주인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더 높은 직분을 맡게 된 후에도 사심과 들렘이 없었으며, '어찌하면 주인에게 유익을 줄까?' 하는 마음으로 온 집안을 최선을 다해 돌아보았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충성을 다하는 요셉이었기에 결국 나라 전체를 맡아서도 잘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귀히 여기며 '어찌하면 사명을 잘 감당할까?' 마음을 쓰다 보면 자신의 한계를 느끼므로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맡은 영혼들이 시험 환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쳐 주고 싶고, 믿음을 갖지 못하는 영혼들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고 싶지요. 그러나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잘되지 않을 때 심히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서 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때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상대를 섬기는 것 같아도 원하는 열매를 낼 수가 없습니다. 육적인 사랑을 베푼다 해서 영혼들이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관을 좇아 행할 때라야 영혼들이 새 힘을 얻어 충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심방하면 변화되지 않으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심방하면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이, 정확하게 영혼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은혜받고 마음 문을 열게 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자신의 방법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이 생기면 자연히 겸비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매달리게 되지요. 따라서 사명 감당을 잘하는 것은 곧 영혼이 잘되는 축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다 보면 무엇보다 자신이 성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요. 성결되어 능력받고 열매를 내고자 하는 뜨거운 소망이 있으면 오직 진리와 함께 기뻐하면서 짜증이나 감정,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모습 등 작은 악의 모양이라도 민감하게 깨달으며 버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그릇을 만들어 가는 만큼 더 큰 능력을 받게 되고 많은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심장으로,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8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참혹한 고난을 당하시면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심장으로 맡겨진 양 떼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니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피곤함도 개의치 않았고, 험한 파도와 높은 산, 광야의 모든 위험도 무릅쓸 수 있었습니다. 주의 복음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수모와 살과 뼈가 부서지도록 매를 맞는 고통,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희생은 자신을 사랑하사 피 흘리신 주님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모든 영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9:3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할 정도였지요. 이처럼 주어진 사명을 소중히 여겨 온전히 감당하고자 기도하면서 성결되는 만큼 영혼을 위해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신 주님의 마음이 임하게 됩니다. 또한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 만큼, 삶 전체를 영혼들을 위해 내어 주는 목자의 심정을 깨닫게 되지요.
목자의 마음은 육의 부모들이 먼 곳에 간 자녀를 늘 마음에 품고 '내 아들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밥은 잘 챙겨먹고 있을까?' 염려하는 것보다 더하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1:28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백한 것처럼 밤낮 영혼들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들을 갈무리하는 사명을 맡은 일꾼도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품을 때 열심히 심방하게 될 뿐 아니라, 무시로 그들의 형편을 떠올리며 기도하게 됩니다. 혹여 뾰족한 말로 찌르고 부딪혀 오는 양 떼라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지요. 소중한 목자의 양 떼이니 그들 모두 자신의 소중한 기업으로 여겨져 사랑이 갈 뿐입니다.
아기가 짜증을 내어도 어머니는 좋은 것을 주듯이 갈무리하는 영혼을 편케 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섬겨 주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어찌하면 그 영혼이 잘될 수 있을까?' 하여 영육간에 희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영혼들이 범죄하여 시험 환난을 당할 때면 자신이 더 애통하며 부르짖어 기도하게 됩니다. 맡은 양 떼의 문제를 위해 늘 기도해 주고 양 떼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간구하며 내 자녀나 가족 이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으로 열심히 영혼을 갈무리하며 섬기다 보면 진실을 느끼고 감사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부모가 되면 진정한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처럼 자신이 영혼을 갈무리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목자의 마음을 느끼며 더욱 주님께도 아버지께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심장과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을 품고 사랑을 주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더 많은 영혼들을 보내 주시고 부흥에 부흥을 더하여 더 큰 사명을 맡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변함없는 모습으로 지극히 충성된 자가 되어 주님께 칭찬받을 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교육목표 : 지극히 충성된 자가 되어 주님께 ""잘 하였다."" 칭찬받을 뿐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어떤 사람이 자신의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만큼 자금을 주었습니다. 그중에 한 종은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열심히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의 이윤을 더 남겼고, 또 한 종은 두 달란트를 받아서 두 달란트의 이윤을 남겼습니다. 그러자 주인은 두 사람 모두에게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하며 칭찬을 하였지요.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사명 하나라도 귀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정녕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작은 사명일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사명이라도 소중한 것이지요.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자신의 영혼을 구원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사명을 잘 감당할 때는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얻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서 당장 맡은 일은 소홀히 하고 있으면서 "더 큰 사명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는 경우도 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사명을 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해 받으려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기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인정받기 원하고 사람 앞에 드러나고자 직분을 원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경우, 충성하는 자체보다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내기 어렵고 큰 일을 맡길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6:10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말씀하신 대로 작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도 큰 사명을 맡기실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창세기 37-4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 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 족속이 한 민족으로 성장하기까지 애굽에 들어가 거할 길을 여십니다. 먼저 요셉이 강대국 애굽에 들어가서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어린 요셉을 총리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애굽의 한 장관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서, 미천한 일부터 시작하게 하셨지요. 점차 주인의 신망을 얻게 되니 모든 살림을 주관하는 자리에 세우시고, 다음에는 왕의 감옥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 감옥은 일반 죄수들이 아니라 고위층 사람들이 왕에게 범죄했을 때 수감되는 감옥으로 요셉은 이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라 전체를 다스릴 수 있도록 넓은 안목과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13년을 보내고서야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될 수 있었지요. 요셉은 타고난 성실함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통해 그 모든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장관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 자신의 직무를 대충했다면 그는 종으로서 자신의 일생을 마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무리 미천한 일이라도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 이상의 일을 해냄으로 주인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더 높은 직분을 맡게 된 후에도 사심과 들렘이 없었으며, '어찌하면 주인에게 유익을 줄까?' 하는 마음으로 온 집안을 최선을 다해 돌아보았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충성을 다하는 요셉이었기에 결국 나라 전체를 맡아서도 잘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귀히 여기며 '어찌하면 사명을 잘 감당할까?' 마음을 쓰다 보면 자신의 한계를 느끼므로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이 맡은 영혼들이 시험 환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쳐 주고 싶고, 믿음을 갖지 못하는 영혼들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고 싶지요. 그러나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잘되지 않을 때 심히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서 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때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상대를 섬기는 것 같아도 원하는 열매를 낼 수가 없습니다. 육적인 사랑을 베푼다 해서 영혼들이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관을 좇아 행할 때라야 영혼들이 새 힘을 얻어 충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심방하면 변화되지 않으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심방하면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이, 정확하게 영혼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은혜받고 마음 문을 열게 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자신의 방법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이 생기면 자연히 겸비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매달리게 되지요. 따라서 사명 감당을 잘하는 것은 곧 영혼이 잘되는 축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다 보면 무엇보다 자신이 성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요. 성결되어 능력받고 열매를 내고자 하는 뜨거운 소망이 있으면 오직 진리와 함께 기뻐하면서 짜증이나 감정,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모습 등 작은 악의 모양이라도 민감하게 깨달으며 버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그릇을 만들어 가는 만큼 더 큰 능력을 받게 되고 많은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심장으로,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1:8에서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참혹한 고난을 당하시면서 "저들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심장으로 맡겨진 양 떼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니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피곤함도 개의치 않았고, 험한 파도와 높은 산, 광야의 모든 위험도 무릅쓸 수 있었습니다. 주의 복음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수모와 살과 뼈가 부서지도록 매를 맞는 고통,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도 얼마든지 감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모든 희생은 자신을 사랑하사 피 흘리신 주님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모든 영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로마서 9:3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할 정도였지요. 이처럼 주어진 사명을 소중히 여겨 온전히 감당하고자 기도하면서 성결되는 만큼 영혼을 위해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신 주님의 마음이 임하게 됩니다. 또한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 만큼, 삶 전체를 영혼들을 위해 내어 주는 목자의 심정을 깨닫게 되지요.
목자의 마음은 육의 부모들이 먼 곳에 간 자녀를 늘 마음에 품고 '내 아들이 지금 뭘 하고 있을까?', '밥은 잘 챙겨먹고 있을까?' 염려하는 것보다 더하지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고린도후서 11:28에 "이 외의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 고백한 것처럼 밤낮 영혼들을 마음에 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혼들을 갈무리하는 사명을 맡은 일꾼도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품을 때 열심히 심방하게 될 뿐 아니라, 무시로 그들의 형편을 떠올리며 기도하게 됩니다. 혹여 뾰족한 말로 찌르고 부딪혀 오는 양 떼라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지요. 소중한 목자의 양 떼이니 그들 모두 자신의 소중한 기업으로 여겨져 사랑이 갈 뿐입니다.
아기가 짜증을 내어도 어머니는 좋은 것을 주듯이 갈무리하는 영혼을 편케 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섬겨 주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어찌하면 그 영혼이 잘될 수 있을까?' 하여 영육간에 희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영혼들이 범죄하여 시험 환난을 당할 때면 자신이 더 애통하며 부르짖어 기도하게 됩니다. 맡은 양 떼의 문제를 위해 늘 기도해 주고 양 떼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간구하며 내 자녀나 가족 이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으로 열심히 영혼을 갈무리하며 섬기다 보면 진실을 느끼고 감사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부모가 되면 진정한 부모의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것처럼 자신이 영혼을 갈무리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목자의 마음을 느끼며 더욱 주님께도 아버지께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심장과 목자의 마음으로 영혼을 품고 사랑을 주면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됩니다.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더 많은 영혼들을 보내 주시고 부흥에 부흥을 더하여 더 큰 사명을 맡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변함없는 모습으로 지극히 충성된 자가 되어 주님께 칭찬받을 뿐만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2008-12-19
제51과주님은 누구의 구주이신가?
마 2:1~12
읽을말씀 : 마 2:1~12 | 외울말씀 : 마 2:11
교육목표 :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왜 구유에서 태어나셔야 했으며 동방 박사들로부터 세 가지 예물을 받으셨는지 그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한다.
1.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자녀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세계인의 축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렸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은 온 인류의 축복이요 하나님께는 영광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18-25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으로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에도 불구하고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아무 보잘것없는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눅 2:3-7). 이는 전도서 3:18에 말씀한 대로 사람들이 짐승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심으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으니 혼의 지배를 받는 혼의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혼의 지배를 받게 된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죄 가운데 거하며 짐승과 다름없이 정욕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혼의 사람이 되어 버린 인류를 다시금 영의 사람으로 변화시켜서 하나님과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헐기 위해 친히 대속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참된 양식, 곧 영의 양식이 되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여기에는 사람의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51-55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영이 죽어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 사람을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자녀로 변화시켜 주시기 위해 친히 영의 양식이 되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영의 양식을 먹는 사람마다 죄 사함을 받고 참 생명을 얻어 영생하게 하신 하나님과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기쁨으로 담당하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머리 숙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1-12에 보면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으며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노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고, 헤롯 왕은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르쳐 준 대로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 예수를 찾거든 자기에게 고하여 자기도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하는데, 이는 아기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박사들에게 꿈으로 헤롯 왕에게 가지 말 것을 지시하시고, 예수님의 육의 부친인 요셉에게 역사하셔서 애굽으로 피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았던 것처럼 영안이 열린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 땅에는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들이나 율법학자들, 또한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누가복음 2:8-20에 보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주었고 목자들은 이 일로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양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누가복음 2:25-38을 보면 의롭고 경건하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또한 "안나"라는 여선지자 역시 나이 많아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였는데, 결국 이들은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고 하나님께 영광돌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속히 오실 주님을 증거하지만(계 22:20), 주님께서 곧 오실 것을 마음 중심에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 하나님께서 예언해 놓으신 모든 말씀은 알았어도 막상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지 못했던 외식주의자들처럼, 교회에 다니며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을 알긴 알아도 속히 오실 주님을 중심에서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외식주의자들처럼 외모만 경건할 것이 아니라, 속마음이 먼저 경건하여지며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고 늘 깨어 기도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세 가지 예물의 의미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만물이 썩어 없어질 것들이므로 황금, 유향, 몰약도 결국은 썩어 없어질 것이지만, 예물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변치 아니하고 썩지 아니할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렇다면 세 가지 예물을 드린 영적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1) 황금의 의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합니다. 그런데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마 6:21)고 했으니 황금은 또한 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풍족하였으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저주를 받아 가난과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난을 대속해 주시기 위해 친히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보잘것없는 짐승의 구유에 누이셨고 오히려 우리를 부요케 하셨습니다(고후 8:9).
또한 부의 상징인 황금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영원한 천국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귀히 여겼다 할지라도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영생을 사모하며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2) 유향의 의미
유향이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주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죄악들을 대속해 주신 것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23:27을 보면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했고, 마태복음 15:11에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여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는 분이므로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드린 영적인 의미는 예수님께서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3) 몰약의 의미
몰약은 고대로부터 방향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즙액은 향수, 의료품, 구강 소독 등에 쓰이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썩지 않게 뿌려지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아무리 호의호식하며 산 사람이라도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몰약을 예물로 드린 영적인 의미는 예수님께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이로써 우리의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4. 성탄절의 영적인 의미
예수님께 경배하며 예물을 드린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무조건 만인의 구주가 되시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깨어 있는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시는 분이므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게 됩니다.
더 나아가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렸듯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황금 곧 세상의 부귀, 영화, 명예를 주님 앞에 드리고 영원히 썩지 아니할 천국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향 곧 우리의 마음을 모두 주님께 드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또한 몰약, 곧 우리의 썩어 없어질 육체를 주님께 온전히 드림으로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생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나갈 뿐 아니라, 오직 그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과 영생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을 맞아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황금과 유향, 몰약이 뜻하는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을 넘치게 받으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고백하는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성탄절을 맞이하여 예수님께서 왜 구유에서 태어나셔야 했으며 동방 박사들로부터 세 가지 예물을 받으셨는지 그 영적인 의미를 깨닫게 한다.
1. 구유에서 태어나신 예수님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이날은 하나님의 자녀들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세계인의 축제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렸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은 온 인류의 축복이요 하나님께는 영광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1:18-25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해 기록하고 있는데,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으로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심에도 불구하고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아무 보잘것없는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에서 태어나셨습니다(눅 2:3-7). 이는 전도서 3:18에 말씀한 대로 사람들이 짐승과 다를 바 없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처음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심으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으니 혼의 지배를 받는 혼의 사람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렇게 혼의 지배를 받게 된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지 못하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죄 가운데 거하며 짐승과 다름없이 정욕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혼의 사람이 되어 버린 인류를 다시금 영의 사람으로 변화시켜서 하나님과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헐기 위해 친히 대속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참된 양식, 곧 영의 양식이 되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여기에는 사람의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의 사람으로 성장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51-55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영이 죽어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 사람을 진정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자녀로 변화시켜 주시기 위해 친히 영의 양식이 되어 주셨습니다. 따라서 영의 양식을 먹는 사람마다 죄 사함을 받고 참 생명을 얻어 영생하게 하신 하나님과 십자가의 모진 고통을 기쁨으로 담당하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에 머리 숙여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1-12에 보면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고 물으며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노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에 소동이 일어났고, 헤롯 왕은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가르쳐 준 대로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 예수를 찾거든 자기에게 고하여 자기도 그에게 경배하게 하라고 하는데, 이는 아기 예수님을 잡아 죽이려고 그렇게 말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박사들에게 꿈으로 헤롯 왕에게 가지 말 것을 지시하시고, 예수님의 육의 부친인 요셉에게 역사하셔서 애굽으로 피하게 하심으로 예수님의 죽음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동방박사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았던 것처럼 영안이 열린 사람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 땅에는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들이나 율법학자들, 또한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누구였을까요?
누가복음 2:8-20에 보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주었고 목자들은 이 일로 찬송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고 했습니다. 양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누가복음 2:25-38을 보면 의롭고 경건하게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어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또한 "안나"라는 여선지자 역시 나이 많아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였는데, 결국 이들은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고 하나님께 영광돌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도 성경에 기록된 대로 속히 오실 주님을 증거하지만(계 22:20), 주님께서 곧 오실 것을 마음 중심에 믿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봅니다. 마치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 하나님께서 예언해 놓으신 모든 말씀은 알았어도 막상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하지 못했던 외식주의자들처럼, 교회에 다니며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들은 주님의 재림을 알긴 알아도 속히 오실 주님을 중심에서 믿을 수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외식주의자들처럼 외모만 경건할 것이 아니라, 속마음이 먼저 경건하여지며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고 늘 깨어 기도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세 가지 예물의 의미
동방으로부터 온 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만물이 썩어 없어질 것들이므로 황금, 유향, 몰약도 결국은 썩어 없어질 것이지만, 예물을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영원히 변치 아니하고 썩지 아니할 영생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렇다면 세 가지 예물을 드린 영적인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1) 황금의 의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합니다. 그런데 "보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마 6:21)고 했으니 황금은 또한 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풍족하였으나,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저주를 받아 가난과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가난을 대속해 주시기 위해 친히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셔서 보잘것없는 짐승의 구유에 누이셨고 오히려 우리를 부요케 하셨습니다(고후 8:9).
또한 부의 상징인 황금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영원한 천국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기 전에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귀히 여겼다 할지라도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은 영생을 사모하며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2) 유향의 의미
유향이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주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죄악들을 대속해 주신 것을 상징합니다. 마태복음 23:27을 보면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했고, 마태복음 15:11에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여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 것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는 분이므로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드린 영적인 의미는 예수님께서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신다는 것입니다.
3) 몰약의 의미
몰약은 고대로부터 방향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즙액은 향수, 의료품, 구강 소독 등에 쓰이고 죽은 사람을 장사지낼 때 썩지 않게 뿌려지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아무리 호의호식하며 산 사람이라도 죽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게 마련입니다. 따라서 몰약을 예물로 드린 영적인 의미는 예수님께서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이로써 우리의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4. 성탄절의 영적인 의미
예수님께 경배하며 예물을 드린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영접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무조건 만인의 구주가 되시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깨어 있는 사람들의 구세주가 되시는 분이므로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얻게 됩니다.
더 나아가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렸듯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황금 곧 세상의 부귀, 영화, 명예를 주님 앞에 드리고 영원히 썩지 아니할 천국을 소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유향 곧 우리의 마음을 모두 주님께 드림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또한 몰약, 곧 우리의 썩어 없어질 육체를 주님께 온전히 드림으로 썩지 아니할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영생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나갈 뿐 아니라, 오직 그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국과 영생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을 맞아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며 황금과 유향, 몰약이 뜻하는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축복을 넘치게 받으며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고백하는 성탄절이 되시기 바랍니다.
2008-12-12
제50과다시 오실 주님
마 24:32-35
읽을말씀 : 마 24:32-35 | 외울말씀 : 계 22:20
교육목표 : 성경을 통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믿게 하고 재림에 대한 성경의 예언과 오늘날 그 징조들을 통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한다.
1. 성취될 재림의 사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 부활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는 하늘로 올리워 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시게 되는데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행 1:11).
이제까지 성경에 기록된 예언들은 기록된 대로 다 이루어져 왔으며 오직 주님의 공중 강림과 7년 환난, 지상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등 앞으로 이루어질 몇 가지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부활을 믿으며 재림과 천국을 믿기 때문에 천국의 소망 가운데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19을 보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기에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등 하나님 앞에서 책망받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희생하며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언제 어떻게 재림하실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성도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림을 사모하기는커녕 재림에 대해 증거하면 두려워하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증거하는 사람들을 이단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이라면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깨달아 깨어 있게 됩니다. 만약 깨어 있지 않으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여 구원에 이를 수 없게 되기 때문이지요.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을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멋있고 웅장한 영광과 승리의 모습으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에 과연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다가 죽은 사람은 주님의 공중 재림 때 부활할 것이기에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잠자는 자"라고 부릅니다(고전 15:20). 이러한 자들의 영혼은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함께 데리고 오시며, 이때 무덤에 장사되었던 육은 썩지 아니할 육으로 부활하여 공중으로 끌어 올려지고 주님과 함께 온 영혼과 결합되어 완전한 부활체를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살전 4:14-16).
2)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남은 자의 휴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부활되면, 다음에는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서 아직 이 땅에 살아 있는 사람이 홀연히 변화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고전 15:51-58, 살전 4:17).
우리는 자연 속에서 부활과 휴거에 대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꿈틀거리며 기어다니던 굼벵이나 구더기가 매미나 파리로 변화되는 모습을 통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시니 그것이 안개가 되어 비를 이루는 모습을 통해서도(욥 36:27) 상상해 볼 수 있지요. 이렇듯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는 부활하는 것과 휴거 곧 공중으로 들림받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2. 재림에 대한 성경적 예언
성경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고 하셨고,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말씀하셨습니다(계 1:3).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으며(벧후 3:8), 우리의 연수는 칠십이요 강건해야 팔십입니다(시 90:10). 따라서 인류의 오랜 역사 가운데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재림은 더욱 임박한 사실이며 하나님 편에서도 재림은 속히 이루어질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주님께서 속히 오실 것에 대해 곳곳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37을 보면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고, 빌립보서 4:5에는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말씀했으며, 야고보서 5:8에서는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3:11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권면하고 있으며, 요한계시록 22:20에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재림의 때가 가까움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전하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은 물론이려니와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시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켜 행하는 알곡 신자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리지만, 세상과 짝하며 사는 쭉정이 신자는 재림이 두렵게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성경에는 주님께서 신랑이 되시고 믿는 자는 신부라고 하였는데 어찌 신랑이 오기를 사모하지 않는 신부가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깨어 있는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기도하고 있기에 때가 가까움을 깨닫고 열심히 신부단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마태복음 24:36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몇 월 며칠 몇 시에 오신다"고 하며 미혹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지만 어두움에 있으면 도적같이 임한다(살전 5:2-4)는 사실을 깨달아 항상 깨어 근신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세상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인이었던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기에 하나님께서 홍수에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도록 명하신 것에 순종하였고, 결국 노아와 그의 가족은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적 사실을 통해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고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무화과나무의 비유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대로 무화과나무에 내린 저주는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이루어졌고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말씀하셨으니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1:18-19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말씀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없고 지식적인 믿음 속에 형식적인 율법만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약 2:17),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마 7:21)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고, 그 피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가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고 말았습니다(마 27:25).
그리하여 AD 70년 경,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여 이스라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마 24:2, 요 19:23). 그 당시 로마가 성전 훼파의 기념으로 남겨 둔 서쪽 성벽의 일부는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눈물로 기도하는 장소인 통곡의 벽으로 남아 역사적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민족은 끝까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율법을 지켜 행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학살을 당하는 등 참으로 처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찾으니 마침내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셨습니다. 1948년 5월 14일, 황무한 사막 가운데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땅에 이스라엘을 세워 주신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부상시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사 49:8, 겔 38:8).
이처럼 완전히 멸망해 버렸던 이스라엘이 약 190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세워졌다는 것은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 것이며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놀라운 사건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이 무성하여지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같이, 이스라엘이 독립하여 선진국이 되었으니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루어질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이 세대란 이스라엘이 독립해 살고 있는 현 세대를 지칭하거나 이스라엘의 희년으로 모든 것이 회복되어 자유를 누리는 기쁘고 즐거운 해 등 몇 가지 해석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나타나는 많은 징조들을 통해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이르렀음을 깨달아 늘 깨어 기도하며 신부단장을 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성경을 통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믿게 하고 재림에 대한 성경의 예언과 오늘날 그 징조들을 통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게 한다.
1. 성취될 재림의 사건
지금으로부터 2천 년 전,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신 후 부활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께서는 하늘로 올리워 가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심판하시기 위해 재림하시게 되는데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행 1:11).
이제까지 성경에 기록된 예언들은 기록된 대로 다 이루어져 왔으며 오직 주님의 공중 강림과 7년 환난, 지상재림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등 앞으로 이루어질 몇 가지 일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는 성도들은 부활을 믿으며 재림과 천국을 믿기 때문에 천국의 소망 가운데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고린도전서 15:19을 보면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기에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박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계명들을 지켜 행하는 등 하나님 앞에서 책망받을 것이 없는 사람이 되기 위해 희생하며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언제 어떻게 재림하실 것인가 하는 문제는 모든 성도들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림을 사모하기는커녕 재림에 대해 증거하면 두려워하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증거하는 사람들을 이단시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진정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성도들이라면 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는 대로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깨달아 깨어 있게 됩니다. 만약 깨어 있지 않으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여 구원에 이를 수 없게 되기 때문이지요.
데살로니가전서 4:16-17을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멋있고 웅장한 영광과 승리의 모습으로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중에 재림하실 때에 과연 어떠한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요?
1)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의 부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다가 죽은 사람은 주님의 공중 재림 때 부활할 것이기에 성경은 이들을 가리켜 "잠자는 자"라고 부릅니다(고전 15:20). 이러한 자들의 영혼은 주님께서 강림하실 때 함께 데리고 오시며, 이때 무덤에 장사되었던 육은 썩지 아니할 육으로 부활하여 공중으로 끌어 올려지고 주님과 함께 온 영혼과 결합되어 완전한 부활체를 이루게 됩니다. 따라서 주님의 재림이 이루어지면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살전 4:14-16).
2)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남은 자의 휴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가 부활되면, 다음에는 믿음이 있는 사람으로서 아직 이 땅에 살아 있는 사람이 홀연히 변화하여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하게 됩니다(고전 15:51-58, 살전 4:17).
우리는 자연 속에서 부활과 휴거에 대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습니다. 꿈틀거리며 기어다니던 굼벵이나 구더기가 매미나 파리로 변화되는 모습을 통해서, 또는 하나님께서 물을 가늘게 이끌어 올리시니 그것이 안개가 되어 비를 이루는 모습을 통해서도(욥 36:27) 상상해 볼 수 있지요. 이렇듯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는 부활하는 것과 휴거 곧 공중으로 들림받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2. 재림에 대한 성경적 예언
성경을 보면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암 3:7)고 하셨고,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말씀하셨습니다(계 1:3).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으며(벧후 3:8), 우리의 연수는 칠십이요 강건해야 팔십입니다(시 90:10). 따라서 인류의 오랜 역사 가운데 마지막 때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있어서 재림은 더욱 임박한 사실이며 하나님 편에서도 재림은 속히 이루어질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주님께서 속히 오실 것에 대해 곳곳에 예언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0:37을 보면 "잠시 잠깐 후면 오실 이가 오시리니 지체하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했고, 빌립보서 4:5에는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 말씀했으며, 야고보서 5:8에서는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3:11에는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권면하고 있으며, 요한계시록 22:20에도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재림의 때가 가까움을 곳곳에서 강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주님께서 속히 오신다고 전하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은 물론이려니와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시험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켜 행하는 알곡 신자는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리지만, 세상과 짝하며 사는 쭉정이 신자는 재림이 두렵게 느껴지기 때문이지요.
성경에는 주님께서 신랑이 되시고 믿는 자는 신부라고 하였는데 어찌 신랑이 오기를 사모하지 않는 신부가 있겠습니까? 다행히도 깨어 있는 주의 종들과 성도들은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기도하고 있기에 때가 가까움을 깨닫고 열심히 신부단장하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마태복음 24:36에 "그날과 그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고 말씀했기 때문에 "주님께서 몇 월 며칠 몇 시에 오신다"고 하며 미혹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면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못하지만 어두움에 있으면 도적같이 임한다(살전 5:2-4)는 사실을 깨달아 항상 깨어 근신하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 세상 사람들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인이었던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였기에 하나님께서 홍수에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도록 명하신 것에 순종하였고, 결국 노아와 그의 가족은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적 사실을 통해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37)고 말씀하신 주님의 음성을 듣고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3. 무화과나무의 비유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이스라엘 역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귀한 말씀입니다. 성경에 예언된 대로 무화과나무에 내린 저주는 이스라엘의 멸망으로 이루어졌고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냈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말씀하셨으니 주님의 재림이 가까움을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1:18-19을 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오실 때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말씀하시니 무화과나무가 곧 말랐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도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시는 예수님께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은 없고 지식적인 믿음 속에 형식적인 율법만을 강조했습니다.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약 2:17),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므로(마 7:21) 그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할 것을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결국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고 도리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고, 그 피는 이스라엘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돌아가 하나님의 저주가 임하고 말았습니다(마 27:25).
그리하여 AD 70년 경,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멸망당하여 이스라엘 성전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졌고 이스라엘 백성은 세계 각국으로 흩어져 살게 되었습니다(마 24:2, 요 19:23). 그 당시 로마가 성전 훼파의 기념으로 남겨 둔 서쪽 성벽의 일부는 오늘날 이스라엘 민족이 눈물로 기도하는 장소인 통곡의 벽으로 남아 역사적 사실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 민족은 끝까지 하나님을 버리지 않고 율법을 지켜 행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나치에 의해 학살을 당하는 등 참으로 처참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고 찾으니 마침내 때가 이르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흩어진 백성들을 모아 이스라엘을 독립시켜 주셨습니다. 1948년 5월 14일, 황무한 사막 가운데 적국으로 둘러싸인 조그만 땅에 이스라엘을 세워 주신 하나님께서는 순식간에 세계적인 선진국으로 부상시키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사 49:8, 겔 38:8).
이처럼 완전히 멸망해 버렸던 이스라엘이 약 1900년이 지난 후에 다시 세워졌다는 것은 저주받은 무화과나무의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 것이며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놀라운 사건입니다. 무화과나무의 잎이 무성하여지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는 것같이, 이스라엘이 독립하여 선진국이 되었으니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운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루어질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이 세대란 이스라엘이 독립해 살고 있는 현 세대를 지칭하거나 이스라엘의 희년으로 모든 것이 회복되어 자유를 누리는 기쁘고 즐거운 해 등 몇 가지 해석들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경에 기록된 대로 나타나는 많은 징조들을 통해 주님의 재림이 가까이 이르렀음을 깨달아 늘 깨어 기도하며 신부단장을 잘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2008-12-05
제49과우리들의 처소와 면류관
요 14:1~6
읽을말씀 : 요 14:1~6 | 외울말씀 : 요 14:2~3
교육목표 : 천국과 면류관의 분류에 대해 알아보고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장차 거할 처소와 면류관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되게 한다.
1. 천국과 면류관의 분류
많은 사람들이 천국은 있다고 알고 있어도 천국의 구조가 어떠한지 알지 못하며, 각 사람마다 믿음이 다르고 행함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천국을 가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요한복음 14:2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말씀했으니 천국은 하나가 아니요 둘 이상 여러 곳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곳곳에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며(갈 6:7)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마 16:27, 계 2:23) 공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으므로 천국도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어야 합당한 것이요,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천국이 주어져야 마땅한 것입니다.
천국은 굉장히 넓은 곳이요,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좋은 곳으로서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낙원은 천국 중에서도 가장 못한 곳이지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셔서 살게 하셨던 에덴동산보다 더욱 아름다운 곳입니다. 또한 천국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처럼 천국이 여러 곳으로 분류되어 있듯이 상급으로 주어지는 면류관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썩지 아니할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금면류관 등이 있어 믿음에 따라 상급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2.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처소와 면류관
1) 믿음의 1단계: 낙원, 면류관 없음
낙원은 이 세상과 달리 눈물, 슬픔, 고통이 없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천국 중에서는 가장 못한 곳으로 믿음의 1단계, 곧 성령받을 만한 믿음(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소유한 자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누가복음 23:42-43에 보면, 한편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답변하셨습니다. 결국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께서는 3일 동안 옥의 영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시고(벧전 3:19) 부활하신 후 40일간 이 땅에 머무셨다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한편 강도가 십자가상에서 회개하고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구원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앞으로 낙원에 거하게 될 것을 아시기에 믿음의 눈으로 보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편 강도는 왜 낙원에 거하게 될까요? 하늘나라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상급심판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뿐 죄를 싸워 버리지도 않았고 사명을 감당한 것도 아닌 한편 강도에게는 면류관이 주어지지 않으며 천국에서 가장 못한 낙원에 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2) 믿음의 2단계: 1천층, 썩지 아니할 면류관
구원에 이르게 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열심을 내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이때는 믿음의 2단계라고 하는데 이러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천국의 1천층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1천층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면류관이 주어질까요? 디모데후서 2:5-6에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말씀하셨으니 운동선수가 경기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해야 상을 탈 수 있듯이 하나님 말씀대로 경기해야만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진리 말씀에 주일을 지키라 했고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고 했으면 주일을 지키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말씀을 지켜나갈 때 면류관을 받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법인 영계의 법칙을 무시하면 이는 지식적인 믿음에 불과한 것이니 법대로 경기하지 않는 운동선수와 같은 것이요, 경기에 참여한 자라고 할 수 없으니 면류관을 받을 수 없지요.
그러나 아직 믿음이 연약하다 할지라도 행하려고 노력한다면 경기에 참여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요, 법대로 경기한 자이니 이러한 사람에게는 이름이 붙지는 않으나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이 상급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3) 믿음의 3단계: 2천층, 영광의 면류관
믿음의 3단계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단계에 들어오면 2천층에 거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나아가는 단계이므로 언행이 변화되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구실을 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여 믿는 자로서 본을 보이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했으니(전 1:2-3) 이 땅에서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잠시잠깐에 불과하며 명예, 지식, 권력, 재물이 아무리 많다 하여도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헛된 삶이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의 3단계가 되면 행함과 진실함으로 모든 일을 하게 되므로 주변에서 "저런 사람 같으면 나도 교회에 다니겠다"란 말을 듣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므로 상급으로 면류관을 주시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와 2천층에 거할 자격을 얻은 성도에게 어떤 면류관을 주실까요? 베드로전서 5:3-4에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양무리의 본이 되는 자,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자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는 결국은 시들어 없어지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은 시들지 않는 것이요, 이 세상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4) 믿음의 4단계: 3천층, 생명의 면류관
믿음의 4단계, 곧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단계에 들어오면 온갖 시험 환난을 다 거치면서 승리하여 모든 죄악을 버리고 예수님을 닮아 성결된 자로서 죽도록 충성하기 때문에 3천층에 거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마태복음 5:10-12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고 천군천사로 호위하시며 영광의 구름으로 함께해 주십니다.
그러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3천층에 거할 자격을 얻게 되면 어떤 면류관이 주어질까요? 요한계시록 2:10에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것은 육적인 봉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하여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죽도록 모든 모양의 죄와 싸워서 버린 것으로 바로 "나"가 없는 것이요, 생명이 다하기까지 싸워 바친 것이니 하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2에도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자는 죽도록 충성하며 모든 시험을 참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5) 믿음의 5단계: 새 예루살렘, 의의 면류관, 금면류관
믿음의 5단계,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단계에 들어오면 성결되고 온 집에 충성한 자로서 새 예루살렘에 거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특별시 안에 대통령이 거하는 청와대가 있듯이 천국의 3천층 안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니 천군천사가 호위하고 영광의 구름이 둘려 있으니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한 곳이겠습니까.
새 예루살렘은 가로, 세로, 높이가 6천 리이며 열두 진주문이 있어 12지파의 이름이 적혀 있고 12기초석에는 12제자의 이름이 적혀 있으며 12천사가 지키고 있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계 21:7-8). 성결되었다고 해도 다 행함이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온 집에 충성하고 팔복이 온전히 임하여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도 성령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했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는 일변하여 성결되어 갔으며 복음을 전파하다 끝내는 순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면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어떤 면류관이 주어질까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소유자들에게 24장로들이 쓰는 금면류관(계 4:4)이나 사도 바울에게 주셨던 의의 면류관을 주십니다(딤후 4:8).
이제까지 믿음의 단계에 따라 앞으로 천국에서 거하게 될 처소와 주어지는 면류관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1, 2천층에 거하면 천사가 따르지 않고 영광의 구름으로 둘리지도 않지만 3천층 이상 들어오면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니 그만큼 영광의 빛이 달라집니다.
잠언 17:3에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신다"고 했으니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의의 면류관, 금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육목표 : 천국과 면류관의 분류에 대해 알아보고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장차 거할 처소와 면류관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아 천국을 침노하는 자가 되게 한다.
1. 천국과 면류관의 분류
많은 사람들이 천국은 있다고 알고 있어도 천국의 구조가 어떠한지 알지 못하며, 각 사람마다 믿음이 다르고 행함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천국을 가는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됩니다.
요한복음 14:2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말씀했으니 천국은 하나가 아니요 둘 이상 여러 곳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곳곳에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며(갈 6:7)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마 16:27, 계 2:23) 공의로우신 하나님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으므로 천국도 여러 곳으로 나뉘어 있어야 합당한 것이요,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천국이 주어져야 마땅한 것입니다.
천국은 굉장히 넓은 곳이요, 이 세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좋은 곳으로서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으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낙원은 천국 중에서도 가장 못한 곳이지만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셔서 살게 하셨던 에덴동산보다 더욱 아름다운 곳입니다. 또한 천국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처럼 천국이 여러 곳으로 분류되어 있듯이 상급으로 주어지는 면류관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썩지 아니할 면류관, 영광의 면류관, 생명의 면류관, 의의 면류관, 금면류관 등이 있어 믿음에 따라 상급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2.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처소와 면류관
1) 믿음의 1단계: 낙원, 면류관 없음
낙원은 이 세상과 달리 눈물, 슬픔, 고통이 없는 아름다운 곳이지만 천국 중에서는 가장 못한 곳으로 믿음의 1단계, 곧 성령받을 만한 믿음(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소유한 자가 들어가는 곳입니다.
누가복음 23:42-43에 보면, 한편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니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답변하셨습니다. 결국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신 예수님께서는 3일 동안 옥의 영들에게 가서 복음을 전하시고(벧전 3:19) 부활하신 후 40일간 이 땅에 머무셨다가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신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한편 강도가 십자가상에서 회개하고 예수를 구세주로 영접하여 구원받았다는 것을 의미하며 앞으로 낙원에 거하게 될 것을 아시기에 믿음의 눈으로 보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편 강도는 왜 낙원에 거하게 될까요? 하늘나라는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상급심판이기 때문입니다.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을 뿐 죄를 싸워 버리지도 않았고 사명을 감당한 것도 아닌 한편 강도에게는 면류관이 주어지지 않으며 천국에서 가장 못한 낙원에 거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2) 믿음의 2단계: 1천층, 썩지 아니할 면류관
구원에 이르게 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열심을 내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대로 행하려고 하는 믿음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이때는 믿음의 2단계라고 하는데 이러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천국의 1천층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1천층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어떠한 면류관이 주어질까요? 디모데후서 2:5-6에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면류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말씀하셨으니 운동선수가 경기 규칙에 따라 경기를 해야 상을 탈 수 있듯이 하나님 말씀대로 경기해야만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진리 말씀에 주일을 지키라 했고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고 했으면 주일을 지키고 형제를 사랑함으로 말씀을 지켜나갈 때 면류관을 받을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법인 영계의 법칙을 무시하면 이는 지식적인 믿음에 불과한 것이니 법대로 경기하지 않는 운동선수와 같은 것이요, 경기에 참여한 자라고 할 수 없으니 면류관을 받을 수 없지요.
그러나 아직 믿음이 연약하다 할지라도 행하려고 노력한다면 경기에 참여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요, 법대로 경기한 자이니 이러한 사람에게는 이름이 붙지는 않으나 썩지 아니하는 면류관이 상급으로 주어지게 됩니다.
3) 믿음의 3단계: 2천층, 영광의 면류관
믿음의 3단계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단계에 들어오면 2천층에 거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나아가는 단계이므로 언행이 변화되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으로서의 구실을 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여 믿는 자로서 본을 보이기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다고 했으니(전 1:2-3) 이 땅에서 아무리 좋은 것일지라도 잠시잠깐에 불과하며 명예, 지식, 권력, 재물이 아무리 많다 하여도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헛된 삶이겠습니까? 그러나 믿음의 3단계가 되면 행함과 진실함으로 모든 일을 하게 되므로 주변에서 "저런 사람 같으면 나도 교회에 다니겠다"란 말을 듣게 되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므로 상급으로 면류관을 주시게 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와 2천층에 거할 자격을 얻은 성도에게 어떤 면류관을 주실까요? 베드로전서 5:3-4에 "오직 양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양무리의 본이 되는 자,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자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부귀영화는 결국은 시들어 없어지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면류관은 시들지 않는 것이요, 이 세상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것입니다.
4) 믿음의 4단계: 3천층, 생명의 면류관
믿음의 4단계, 곧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단계에 들어오면 온갖 시험 환난을 다 거치면서 승리하여 모든 죄악을 버리고 예수님을 닮아 성결된 자로서 죽도록 충성하기 때문에 3천층에 거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마태복음 5:10-12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고 천군천사로 호위하시며 영광의 구름으로 함께해 주십니다.
그러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3천층에 거할 자격을 얻게 되면 어떤 면류관이 주어질까요? 요한계시록 2:10에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것은 육적인 봉사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하여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죽도록 모든 모양의 죄와 싸워서 버린 것으로 바로 "나"가 없는 것이요, 생명이 다하기까지 싸워 바친 것이니 하나님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1:12에도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자는 죽도록 충성하며 모든 시험을 참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5) 믿음의 5단계: 새 예루살렘, 의의 면류관, 금면류관
믿음의 5단계, 곧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단계에 들어오면 성결되고 온 집에 충성한 자로서 새 예루살렘에 거하게 됩니다. 우리나라의 수도인 서울특별시 안에 대통령이 거하는 청와대가 있듯이 천국의 3천층 안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니 천군천사가 호위하고 영광의 구름이 둘려 있으니 얼마나 아름답고 황홀한 곳이겠습니까.
새 예루살렘은 가로, 세로, 높이가 6천 리이며 열두 진주문이 있어 12지파의 이름이 적혀 있고 12기초석에는 12제자의 이름이 적혀 있으며 12천사가 지키고 있어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계 21:7-8). 성결되었다고 해도 다 행함이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온 집에 충성하고 팔복이 온전히 임하여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12제자도 성령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했지만 성령을 받은 후에는 일변하여 성결되어 갔으며 복음을 전파하다 끝내는 순교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니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에 이름이 기록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요.
그러면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에게는 어떤 면류관이 주어질까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소유자들에게 24장로들이 쓰는 금면류관(계 4:4)이나 사도 바울에게 주셨던 의의 면류관을 주십니다(딤후 4:8).
이제까지 믿음의 단계에 따라 앞으로 천국에서 거하게 될 처소와 주어지는 면류관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1, 2천층에 거하면 천사가 따르지 않고 영광의 구름으로 둘리지도 않지만 3천층 이상 들어오면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니 그만큼 영광의 빛이 달라집니다.
잠언 17:3에 "도가니는 은을 풀무는 금을 연단하거니와 여호와는 마음을 연단하신다"고 했으니 연단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의의 면류관, 금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8-11-28
제48과복 있는 사람
시 1:1~3
읽을말씀 : 시 1:1~3 | 외울말씀 : 시 1:1~3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약속하신 모든 복을 누리며 만사형통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 어떻게 행하여야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 복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한다.
세상에서는 대체로 건강, 재물, 명예, 권세, 지식이 많은 사람이나 자녀가 출세하여 효도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을 다 누린다 해도 자칫하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생명을 잃게 되면 다 헛된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면 불의의 사고나 어떤 재앙으로도 무너지지 않으며, 천국에서도 영원한 상급이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야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합니다
악인의 꾀는 육신의 생각을 주관하는 사단으로부터 오는데, 사람의 마음에 악이 있으면 생각을 해도 육신의 생각 즉 비진리의 악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악한 생각 속에서 나오는 꾀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악한 일들을 도모하게 되지요.
미워하고 시기하며 질투함으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위한 갖가지 계교를 세우고, 상대를 짓밟아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한 꾀로는 결코 참된 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만은 악인의 꾀를 좇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하만은 유대인 모르드개가 자신을 경배하지 않으므로 심히 마음이 상하여 모르드개뿐 아니라 그 나라 안에 있는 유대인 전체를 멸하려고 꾀를 짜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계획을 아심으로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악한 계략이 밝혀져서 결국 죽음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 갖가지 모략을 세우고 부정과 비리를 행하는 사람들에 관한 일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니 오직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지혜를 좇아 행할 때라야 복되고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주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며, 한 푼이라도 더 저축하고 투자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심지어 남을 속이더라도 유익을 취하되 그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주일에는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온전한 십일조와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드립니다. 또 사업을 할 때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행하여 손해를 본다 해도 상대를 속이거나 어떤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이러한 행함이 때로는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지만 진리 안에서 행할 때라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2.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들을 행위적으로 어긴 사람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살인하고 도적질할 마음이 있어도 실제 살인하지 않고 훔치지 않으면 죄인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죄악을 품는 것만으로도 죄인이라 하십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도적질, 간음, 판단, 정죄 등이 마음 안에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인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죄악을 품는 것도 죄인인데 행함으로 범죄하는 육체의 일은 하나님 앞에 더욱 중한 죄가 됩니다(갈 5:19-21). 아무리 입술로 '주여 믿습니다.'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고 육체의 일들을 행하면 결국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24-25을 보면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범죄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이 반드시 드러나며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고 범죄하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사람이 계명들을 다 지킬 수 있는가, 그렇게 살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결코 힘든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 질투해 본 경험이 있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고 범죄하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책망할 것이 없이 하나님 앞에 담대하므로 마음이 항상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또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능히 피할 길을 주시며 모든 시험 환난, 질병, 재난도 막아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범죄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기쁨과 평강이 없고 시험 환난을 당할 때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결코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3.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너무나 싫어하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람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도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사단의 미혹을 받아 높아지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이 사람이 교만하여 범죄한 이후로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세상에서는 스스로 높아지려 하고 자기를 내세우며 대접받으려 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멸시한다고 느끼면 고통스러워하며, 상대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떻게든 섬김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며, 겸손하여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반드시 높임을 받습니다. 이는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진리의 법칙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4:11을 보면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말씀하셨지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도 종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십자가를 지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섬기며 낮은 자가 될 때 이 땅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중받으며, 또한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라 인정받으니 진정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4.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본문 시편 1:2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말씀합니다. 밤낮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간다는 뜻입니다. 율법이란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이며, 좁은 의미로는 십계명을 포함하여 모세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규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그 오묘하신 뜻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각종 예배나 기도회 등 어디든 참석하여 말씀을 듣기 위해 힘써 노력할 것입니다. 예배 때 잡념이나 졸음에 빠지는 일도 없으며,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달아서 "아멘"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명심하고 묵상함으로 마음에 온전히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감정을 품거나 육신의 생각,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행하며 마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과 주관, 인도를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의 적극적인 삶의 자세이며 마음가짐입니다. 또한 본문 시편 1:3에는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일수록 더 깊이 더 멀리 뿌리를 내려서 무럭무럭 자라고 더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항상 수분을 흡수할 수 있으므로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시냇가는 영적으로 축복의 근원 곧 생수를 마음껏 빨아들여서 늘 푸르를 수 있고 때를 따라 열매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의 품을 말합니다. 정녕 하나님의 품 안에 심겨져 있다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마음 안에 진리의 말씀이 뿌리내리게 됩니다. 즉 말씀을 깨우쳐서 마음에 양식삼는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기 위한 뿌리가 마음 깊숙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묵상하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순종하게 되므로 복 있는 사람이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며 선과 사랑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또한 항상 기뻐하고 깨어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며 살아가니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진리 가운데 거하여 하나님 앞에 복 있는 사람이 됨으로 이 땅에서 복된 삶을 누릴 뿐 아니라, 장차 영원한 천국에서도 풍성한 상급을 받고 존귀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누구나 약속하신 모든 복을 누리며 만사형통한 삶을 살기 원하신다. 어떻게 행하여야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 복을 받는 사람이 되게 한다.
세상에서는 대체로 건강, 재물, 명예, 권세, 지식이 많은 사람이나 자녀가 출세하여 효도하고 화목한 가정을 꾸리면 복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것을 다 누린다 해도 자칫하면 하루아침에 사라져 버릴 수도 있고, 생명을 잃게 되면 다 헛된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으면 불의의 사고나 어떤 재앙으로도 무너지지 않으며, 천국에서도 영원한 상급이 됩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아야 참으로 복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합니다
악인의 꾀는 육신의 생각을 주관하는 사단으로부터 오는데, 사람의 마음에 악이 있으면 생각을 해도 육신의 생각 즉 비진리의 악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악한 생각 속에서 나오는 꾀는 하나님과 반대되는 악한 일들을 도모하게 되지요.
미워하고 시기하며 질투함으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기 위한 갖가지 계교를 세우고, 상대를 짓밟아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악한 꾀로는 결코 참된 복을 얻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구약성경에 나오는 하만은 악인의 꾀를 좇은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하만은 유대인 모르드개가 자신을 경배하지 않으므로 심히 마음이 상하여 모르드개뿐 아니라 그 나라 안에 있는 유대인 전체를 멸하려고 꾀를 짜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계획을 아심으로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악한 계략이 밝혀져서 결국 죽음을 맞게 되었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부귀영화를 얻기 위해 갖가지 모략을 세우고 부정과 비리를 행하는 사람들에 관한 일들이 각종 매체를 통해 전해지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니 오직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지혜를 좇아 행할 때라야 복되고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주일에도 쉬지 않고 일하며, 한 푼이라도 더 저축하고 투자하는 것이 지혜로운 일입니다. 심지어 남을 속이더라도 유익을 취하되 그것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지혜롭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주일에는 하나님의 성전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온전한 십일조와 정성껏 준비한 예물을 드립니다. 또 사업을 할 때도 성실하고 정직하게 행하여 손해를 본다 해도 상대를 속이거나 어떤 해를 입히지 않습니다. 이러한 행함이 때로는 어리석게 보일 수도 있지만 진리 안에서 행할 때라야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이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2. 복 있는 사람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법으로 규정되어 있는 것들을 행위적으로 어긴 사람을 죄인이라고 합니다. 아무리 살인하고 도적질할 마음이 있어도 실제 살인하지 않고 훔치지 않으면 죄인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죄악을 품는 것만으로도 죄인이라 하십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도적질, 간음, 판단, 정죄 등이 마음 안에 있으면 하나님 앞에서는 죄인인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죄악을 품는 것도 죄인인데 행함으로 범죄하는 육체의 일은 하나님 앞에 더욱 중한 죄가 됩니다(갈 5:19-21). 아무리 입술로 '주여 믿습니다.' 해도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고 육체의 일들을 행하면 결국 천국에 가지 못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5:24-25을 보면 "어떤 사람들의 죄는 밝히 드러나 먼저 심판에 나아가고 어떤 사람들의 죄는 그 뒤를 좇나니 이와 같이 선행도 밝히 드러나고 그렇지 아니한 것도 숨길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범죄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이 반드시 드러나며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고 범죄하지 말라고 하면 '어떻게 사람이 계명들을 다 지킬 수 있는가, 그렇게 살려면 얼마나 힘들겠는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결코 힘든 것이 아니며 오히려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이 힘든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 질투해 본 경험이 있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 것입니다.
계명을 지키고 범죄하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책망할 것이 없이 하나님 앞에 담대하므로 마음이 항상 평안하고 행복합니다. 또한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이 다가와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능히 피할 길을 주시며 모든 시험 환난, 질병, 재난도 막아 주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범죄하는 사람의 마음에는 기쁨과 평강이 없고 시험 환난을 당할 때 도와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니 복 있는 사람이 되려면 결코 죄인의 길에 서지 말아야 합니다.
3. 복 있는 사람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사람을 너무나 싫어하십니다. 교만한 사람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사람의 가치를 잃어버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것도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리라'는 사단의 미혹을 받아 높아지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와 같이 사람이 교만하여 범죄한 이후로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세상에서는 스스로 높아지려 하고 자기를 내세우며 대접받으려 합니다. 누군가 자신을 멸시한다고 느끼면 고통스러워하며, 상대를 섬기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어떻게든 섬김받으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며, 겸손하여 자신을 낮추는 사람은 반드시 높임을 받습니다. 이는 해가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것처럼 틀림없이 이루어지는 진리의 법칙인 것입니다.
누가복음 14:11을 보면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말씀하셨지요.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도 종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십자가를 지심으로 섬김의 본을 보이셨습니다. 우리도 주님과 같이 섬기며 낮은 자가 될 때 이 땅에서도 많은 사람들에게 존중받으며, 또한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라 인정받으니 진정 복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4. 복 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합니다
본문 시편 1:2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말씀합니다. 밤낮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함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나간다는 뜻입니다. 율법이란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이며, 좁은 의미로는 십계명을 포함하여 모세오경인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기록된 하나님의 법규들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마음과 그 오묘하신 뜻이 모두 담겨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각종 예배나 기도회 등 어디든 참석하여 말씀을 듣기 위해 힘써 노력할 것입니다. 예배 때 잡념이나 졸음에 빠지는 일도 없으며, 말씀이 꿀과 송이꿀보다 달아서 "아멘"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듣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명심하고 묵상함으로 마음에 온전히 이루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은 어떤 일이 생겼을 때 감정을 품거나 육신의 생각,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지 않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을 그대로 행하며 마음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의 음성과 주관, 인도를 받아 나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복 있는 사람의 적극적인 삶의 자세이며 마음가짐입니다. 또한 본문 시편 1:3에는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말씀합니다. 시냇가에 심은 나무일수록 더 깊이 더 멀리 뿌리를 내려서 무럭무럭 자라고 더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아무리 오랜 가뭄에도 항상 수분을 흡수할 수 있으므로 잎사귀가 마르지 않습니다.
여기서 시냇가는 영적으로 축복의 근원 곧 생수를 마음껏 빨아들여서 늘 푸르를 수 있고 때를 따라 열매 맺을 수 있는 하나님의 품을 말합니다. 정녕 하나님의 품 안에 심겨져 있다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마음 안에 진리의 말씀이 뿌리내리게 됩니다. 즉 말씀을 깨우쳐서 마음에 양식삼는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곧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의 열매를 맺기 위한 뿌리가 마음 깊숙이 내려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묵상하는 사람은 그 말씀대로 순종하게 되므로 복 있는 사람이 됩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며 선과 사랑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또한 항상 기뻐하고 깨어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준행하며 살아가니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진리 가운데 거하여 하나님 앞에 복 있는 사람이 됨으로 이 땅에서 복된 삶을 누릴 뿐 아니라, 장차 영원한 천국에서도 풍성한 상급을 받고 존귀한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