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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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0
제15과부활의 소망
행 1:10~11
읽을말씀 : 행 1:10~11 | 외울말씀 : 요 11:25 l 참고 말씀 : 요 11:26
교육목표 : 부활의 소망 가운데 악을 선으로 이기고 영적 사랑으로 충만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전혀 죄가 없으시기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했습니다. 그러면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요?
1. 마음에 악을 버리고 선으로 악을 이깁니다
예수님은 오직 선 자체만 있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에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잡아 죽이려는 이들을 결코 미워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 섭리를 이루는 데 악한 도구로 쓰이는 것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역할을 정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악하기 때문에 스스로 마귀의 종이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많은 말씀을 듣고 권능을 목도했지만 자신의 악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그의 마음에 교만과 탐심 등 악이 가득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주했고, 결국 그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이러한 영적 상황을 아셨기에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6장 24절에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셨지요.
예수님은 상대가 악을 행해서 마음이 상하거나 힘든 것이 아니라, 악으로 인해 죄를 짓고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마음 아프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마음이 악으로 물들어 있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 가엾고 불쌍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조차 자신을 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신 것같이, 악 자체가 없으니 어떠한 악의 도전에도 오직 선만 나온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기 때문에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율법의 저주에 매이지 않고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영적 원리를 알기에 당회장님께서도 어떠한 악의 도전에도 오직 선으로만 대응했습니다. 지금까지 터무니없는 거짓 소문으로 우리를 훼방하는 이들도, 자신들의 육체의 소욕을 따라 은혜받은 제단을 떠나며 오히려 대적한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당장에는 그들로 인해 큰 손실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럴 때에도 상대의 불의를 드러내지 않았고, 감정을 내거나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직 상대가 선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받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어떤 악에도 오직 선으로 대응했더니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악한 사람들에게 애매히 고난받을 이유가 전혀 없음이 확실하게 증명됐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악이 있으면 그만큼 선으로 이길 수 있는 힘이 오지 않습니다. 상대가 나를 힘들게 한다 해서 기분이 상하고 미운 감정이 나는 사람은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 마음의 악을 주관하는 권세를 가진 원수 마귀 사단의 놀림감이 되고 맙니다. 만일 원수 마귀 사단이 건드리는 대로 악한 감정이 드러나고 악한 말이 나온다면, 그들은 좋아하며 더욱 악을 요동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여 나쁜 감정이 꿈틀거리면 일단은 눌러 참고, 항상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불같이 기도해서 악을 뽑아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똑같은 상황을 만나도 나쁜 감정이 생기지 않고 선으로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선을 쌓아서 공의에 합당한 수준에 이르면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놀라운 축복이 범사에 임하는 것입니다.
2. 영적인 사랑이 충만합니다
예수님께 사랑이 없었다면 십자가의 고난은 물론 부활의 영광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마음에는 지극히 큰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그 뜻에 따라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영혼들에 대한 큰 사랑으로 죄인들이 받을 사망의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영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만큼 더 큰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주님을 더욱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도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하셨습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고 십일조와 헌금하며 전도하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이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증거는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사는 만큼 부활의 소망도 더해지며, 그것이 더해질수록 세상 것에 대한 미련이 사라집니다. 장차 영원히 썩지 않는 것을 얻을 수 있는데, 육의 것에 미련 둘 이유가 없지요. 잠시 사는 이 땅에 물질을 쌓기보다는 영원한 천국에 쌓으며 영광을 얻으려 하고, 내세에 더 귀한 것으로 다시 얻을 참 소망이 있기 때문에 헌신하게 됩니다. 비록 이 땅에서 힘써 이룬 것이라 해도 고집하지 않고 내주고 또 내줄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어떤 직분도, 명예도, 권세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되었다고 섬김 받으려고 하지 않고 항상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합니다.
이렇게 충만한 영적 사랑으로 우리 교회에 새로 오는 분들이 어떤 마음의 장벽도 느끼지 않도록 포근히 감싸 안아야 하지요. 먼저 성결의 복음을 들었다면 사랑의 마음으로 나중에 오시는 분들을 배려해 줌으로 함께 부활의 소망 가운데 좋은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행함은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셨다가 장차 천국의 상급으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3. 입술에 기쁨과 감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사실인 것처럼 우리도 부활 때에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신령한 몸은 장애도 없고 아프지도 않으며 피로를 느끼지도 않습니다. 또한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은 밟고 다니는 길이 금이고, 각종 보석으로 단장된 곳입니다. 이처럼 행복하고 아름다운 천국의 주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진정 믿는다면 어떤 일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며 빚쟁이들로부터 혹독한 독촉을 받는 어려운 상황인데 내일이면 억만금이 생긴다고 합시다. 비록 오늘은 험한 일을 당하고 굶을지라도 내일이면 억만금이 생기기 때문에 슬프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억만금보다 더 값진 천국이 마음에 임해 있으니 이 땅의 일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기쁨과 감사를 곧잘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데 채워지지 않으니 불만이 쌓이고 힘든 것입니다.
참으로 부활의 소망으로 가득한 사람은 현실의 어려움 탓으로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을 보시고 현실적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환경, 기뻐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꿔 주십니다. 즉 문제가 해결되며,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쁨' 하나만 온전히 이룬다 해도, '감사' 하나만 온전히 이룬다 해도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활절을 기점으로 부활의 소망으로 충만하여 불평불만, 육적인 슬픔과 애통을 다 떨쳐버리고 모든 일에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하여 영육 간에 큰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복음 11장 25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3가지로 이야기해 봅시다.
3. 억만금보다 더 값진 천국이 마음에 임했다면서 혹 어렵고 힘든 문제가 닥치면 이내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4. 상대가 나를 힘들게 하니 기분이 상하고 나쁜 감정이 꿈틀거립니다. 이때 악을 선으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3편 '뜻을 거스르지 말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부활절'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사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부활절이 복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우리도 부활하여 영원한 삶을 누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눈에 보이는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분명히 사후의 세계가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있으며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 땅의 삶이 끝난다 해도 부활하여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수명이 다하여 죽으면 성경에서는 "죽었다" 하지 않고 "잠들었다"고 합니다.
교육목표 : 부활의 소망 가운데 악을 선으로 이기고 영적 사랑으로 충만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지만, 전혀 죄가 없으시기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3일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래서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은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부활의 소망 가운데 살아갑니다. 요한복음 11장 25~2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했습니다. 그러면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갈까요?
1. 마음에 악을 버리고 선으로 악을 이깁니다
예수님은 오직 선 자체만 있으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3절에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잡아 죽이려는 이들을 결코 미워하지 않으셨고,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 섭리를 이루는 데 악한 도구로 쓰이는 것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악한 역할을 정해 주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마음이 악하기 때문에 스스로 마귀의 종이 되었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대적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많은 말씀을 듣고 권능을 목도했지만 자신의 악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그의 마음에 교만과 탐심 등 악이 가득한 것을 알았기 때문에 사주했고, 결국 그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룟 유다의 이러한 영적 상황을 아셨기에 그를 불쌍히 여겼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6장 24절에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하셨지요.
예수님은 상대가 악을 행해서 마음이 상하거나 힘든 것이 아니라, 악으로 인해 죄를 짓고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 마음 아프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마음이 악으로 물들어 있어서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 가엾고 불쌍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조차 자신을 해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신 것같이, 악 자체가 없으니 어떠한 악의 도전에도 오직 선만 나온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기 때문에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율법의 저주에 매이지 않고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영적 원리를 알기에 당회장님께서도 어떠한 악의 도전에도 오직 선으로만 대응했습니다. 지금까지 터무니없는 거짓 소문으로 우리를 훼방하는 이들도, 자신들의 육체의 소욕을 따라 은혜받은 제단을 떠나며 오히려 대적한 사람도 많이 있었습니다. 당장에는 그들로 인해 큰 손실과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럴 때에도 상대의 불의를 드러내지 않았고, 감정을 내거나 싸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오직 상대가 선의 길, 생명의 길로 인도받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어떤 악에도 오직 선으로 대응했더니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악한 사람들에게 애매히 고난받을 이유가 전혀 없음이 확실하게 증명됐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악이 있으면 그만큼 선으로 이길 수 있는 힘이 오지 않습니다. 상대가 나를 힘들게 한다 해서 기분이 상하고 미운 감정이 나는 사람은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없습니다. 오히려 사람 마음의 악을 주관하는 권세를 가진 원수 마귀 사단의 놀림감이 되고 맙니다. 만일 원수 마귀 사단이 건드리는 대로 악한 감정이 드러나고 악한 말이 나온다면, 그들은 좋아하며 더욱 악을 요동하게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여 나쁜 감정이 꿈틀거리면 일단은 눌러 참고, 항상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불같이 기도해서 악을 뽑아내야 합니다. 그 다음에는 똑같은 상황을 만나도 나쁜 감정이 생기지 않고 선으로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한 번, 두 번 선을 쌓아서 공의에 합당한 수준에 이르면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놀라운 축복이 범사에 임하는 것입니다.
2. 영적인 사랑이 충만합니다
예수님께 사랑이 없었다면 십자가의 고난은 물론 부활의 영광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 마음에는 지극히 큰 사랑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그 뜻에 따라 자기를 낮추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영혼들에 대한 큰 사랑으로 죄인들이 받을 사망의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도 영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만큼 더 큰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과 주님을 더욱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도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하셨습니다. 주일마다 교회에 출석하고 십일조와 헌금하며 전도하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는 방법이지만 무엇보다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는 증거는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사는 만큼 부활의 소망도 더해지며, 그것이 더해질수록 세상 것에 대한 미련이 사라집니다. 장차 영원히 썩지 않는 것을 얻을 수 있는데, 육의 것에 미련 둘 이유가 없지요. 잠시 사는 이 땅에 물질을 쌓기보다는 영원한 천국에 쌓으며 영광을 얻으려 하고, 내세에 더 귀한 것으로 다시 얻을 참 소망이 있기 때문에 헌신하게 됩니다. 비록 이 땅에서 힘써 이룬 것이라 해도 고집하지 않고 내주고 또 내줄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어떤 직분도, 명예도, 권세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먼저 되었다고 섬김 받으려고 하지 않고 항상 다른 사람을 먼저 배려합니다.
이렇게 충만한 영적 사랑으로 우리 교회에 새로 오는 분들이 어떤 마음의 장벽도 느끼지 않도록 포근히 감싸 안아야 하지요. 먼저 성결의 복음을 들었다면 사랑의 마음으로 나중에 오시는 분들을 배려해 줌으로 함께 부활의 소망 가운데 좋은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행함은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돌아옵니다. 하나님께서 다 기억하셨다가 장차 천국의 상급으로 갚아 주시기 때문입니다.
3. 입술에 기쁨과 감사가 끊이지 않습니다
주님의 부활이 사실인 것처럼 우리도 부활 때에 신령한 몸을 입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됩니다. 신령한 몸은 장애도 없고 아프지도 않으며 피로를 느끼지도 않습니다. 또한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은 밟고 다니는 길이 금이고, 각종 보석으로 단장된 곳입니다. 이처럼 행복하고 아름다운 천국의 주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진정 믿는다면 어떤 일에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며 빚쟁이들로부터 혹독한 독촉을 받는 어려운 상황인데 내일이면 억만금이 생긴다고 합시다. 비록 오늘은 험한 일을 당하고 굶을지라도 내일이면 억만금이 생기기 때문에 슬프지 않을 것입니다. 진정으로 부활의 소망을 가진 사람도 이와 같습니다. 억만금보다 더 값진 천국이 마음에 임해 있으니 이 땅의 일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지요.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기쁨과 감사를 곧잘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을 바라는 마음이 있는데 채워지지 않으니 불만이 쌓이고 힘든 것입니다.
참으로 부활의 소망으로 가득한 사람은 현실의 어려움 탓으로 힘들어하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믿음을 보시고 현실적으로도 감사할 수 있는 환경, 기뻐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꿔 주십니다. 즉 문제가 해결되며,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기쁨' 하나만 온전히 이룬다 해도, '감사' 하나만 온전히 이룬다 해도 큰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부활절을 기점으로 부활의 소망으로 충만하여 불평불만, 육적인 슬픔과 애통을 다 떨쳐버리고 모든 일에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하여 영육 간에 큰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복음 11장 25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부활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지 3가지로 이야기해 봅시다.
3. 억만금보다 더 값진 천국이 마음에 임했다면서 혹 어렵고 힘든 문제가 닥치면 이내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리지는 않았습니까?
4. 상대가 나를 힘들게 하니 기분이 상하고 나쁜 감정이 꿈틀거립니다. 이때 악을 선으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3편 '뜻을 거스르지 말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부활절'
부활절은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사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부활절이 복된 것은,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 우리도 부활하여 영원한 삶을 누릴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은 눈에 보이는 이 땅의 삶이 전부가 아니라 분명히 사후의 세계가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은 있으며 주님을 믿는 성도들은 이 땅의 삶이 끝난다 해도 부활하여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수명이 다하여 죽으면 성경에서는 "죽었다" 하지 않고 "잠들었다"고 합니다.
2009-04-03
제14과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창 6:5~9
읽을말씀 : 창 6:5~9 | 외울말씀 : 창 6:9 l 참고 말씀 : 마 12:35 \; 전 12:14
교육목표 : 사랑의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을 통해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신 이유를 깨닫고 심판을 면할 수 있게 한다.
성경을 보면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며 물로 심판하여 지면에서 쓸어버릴 것을 선포하십니다. 사람을 창조하고 친히 동행하며 지극한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께서 왜 이런 무서운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이유와 어떻게 하면 심판을 면하고 축복받을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
사람을 대하다 보면 선하거나 악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체로 좋은 환경 속에서 배우고 자란 사람은 성품이 온유하고 선한 반면, 불우한 환경 속에서 비진리를 많이 보고 배운 사람 중에 악을 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환경이 좋아도 잘못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환경 속에서 훌륭한 가르침을 받고 또 스스로 노력하여 선하게 성장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선한 사람의 예로는, 예수님을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정혼한 마리아와 동침하지도 않았는데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율법대로라면 간음한 사람은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드러내 알리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나중에야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사실을 알았지만 마음이 참으로 선했기 때문에 이런 행함이 나온 것입니다.
반면 악한 사람의 예로는 압살롬을 들 수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은 이복 형이 자기의 여동생을 범하자 마음속으로 복수를 다집니다. 결국 기회를 엿보다가 이복 형 암논을 죽인 뒤 아버지 다윗에게까지 감정을 품고 반역을 일으키는 등 큰 악을 행하다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이처럼 악한 사람은 그 마음에 있는 악을 행함으로 결국 심판받게 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사랑의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
창세기 6장 5-8절을 보면 노아 시대에 홍수심판이 임한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로, 세상의 죄악이 관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기록이나 세계사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시대를 막론하고 죄악이 가득하여 그 정도를 넘어서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국가적으로 악을 쌓아 간 경우입니다. 나라의 머리와 백성이 동조하여 죄악을 쌓아 간 경우로, 독일 나치 히틀러가 행한 600만 명 유대인 대학살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독일은 패전국이 되어 동서로 분열되었으며, 그 당시 전범들은 숨어 살거나 사형을 당했습니다.
노아 당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 인간 경작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하였고, 죄로 가득하니 하나님께서는 한탄하며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까지 멸하시는데 그것은 동물이 사람들의 타락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동물 형상을 본뜬 우상을 만들어 장식하고 섬겼습니다. 창조주 하나님만 경배하고 찬양해야 할 사람이 피조물인 동물을 우상화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동물들까지 멸함으로 사람들이 만든 우상이 얼마나 헛되며 동물 역시 한낱 피조물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데에는 공의와 함께 사랑이 담겨 있음을 깨우쳐야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떠나 짐승보다 못한 상태가 되어 버린 사람들에 대해 심판을 미룬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법칙에 따라 정리한 후 새롭게 인간 경작을 시작하는 것이 인간 경작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사랑이었지요. 따라서 홍수 심판은 단지 죄를 벌하는 공의의 심판을 넘어 인간 경작의 마지막까지를 염두에 두신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개인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악을 쌓아 갔을 때에 반드시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자신의 악으로 인해 생명이 단축되거나 그렇지 않다 해도 죄의 경중에 따라 비참한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오늘날은 국가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죄가 관영했습니다. 사람들은 참 신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 하고 자기 주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헛된 신을 좇거나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좋아합니다. 혼전 동거는 예삿일이고 동성연애자와 그들의 결혼까지 합법화하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마약이 성행하고 다투고 원수 맺고 미워하며 부정부패가 만연하지요. 이러한 현실을 흠도 점도 없는 하나님께서 어찌 그냥 두고 보실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죄악이 가득하여 짐승과 다름이 없다면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죄악이 관영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 악한 것을 한탄하며 심판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면 생각하는 것도 악합니다. 매사에 자기 유익을 좇아 욕심 부리며 부를 축적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늘 악한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말씀을 머리에 지식으로는 쌓되 행치 않는 사람은 자기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매사에 생각이 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마음이 선한 목동이나 여 선지자 안나와 시므온과 같은 사람은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잘 지켜 행하며 가르친다고 하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알지 못했지요. 그들은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고 겉으로만 거룩한 척 했기 때문에 완악하여 하나님 뜻을 깨우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악해졌는지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고 믿는다면서도 불법과 불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워왔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셋째로, 사람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악하면 그 가운데 나오는 계획이 악하고 결국 악을 행하게 됩니다. 이미 생각 속에서 계획이 세워졌기 때문에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라를 올바로 이끌어야 할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이 뇌물 수수, 비자금 조성, 땅 투기 등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입시 부정, 병역 비리 등 각종 비리와 살인, 강도, 방화, 폭행 등 인륜을 저버리는 행동이 난무합니다. 이렇게 자기 유익에 급급하니 모든 행사와 계획이 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문명의 발달에 따라 향락과 퇴폐문화에 젖어든 노아 시대처럼 죄악이 가득 찬 세상이 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려면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했습니다. 노아는 죄악으로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았습니다. 평소 삶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따랐고, 조상들 가르침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였지요. 이런 노아였기 때문에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심판 가운데에서도 지킴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하여 마음과 생각이 악하고 그 계획이 악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마음이 선한 사람은 누군가의 전도를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뜻대로 살아갑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축복을 받으며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전 12:14).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려면 온갖 타락과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롬 12:2). 마지막이 가까워졌음을 알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하나님이 원하는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한 것만 생각하고 진리대로 행하면 영혼이 잘되는 것은 물론, 이 세상에서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으며 천국에서도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며 물로 심판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창세기 6장 9절을 외워 봅시다.
3.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방법을 아는 대로 말해 봅시다.
● 금주 과제
세상의 죄를 대속하고자 아무 죄 없이 하나님 뜻에 순종하여 고난을 당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한 주간 몸과 마음을 경건케 하고 한 끼 이상 금식에 동참합시다.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 : 진리 곧 하나님 말씀을 뜻하며 하나님의 뜻과 생각 그 자체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자체이시므로 하나님 뜻에 따라 기록된 성경을 통해 그분의 모든 선하신 뜻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믿고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한 다. 참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히 11:6).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기뻐하시는 행함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라면 온전하다고 할 수 없다(마 5:48). 하나님께 온전하다고 인정받으려면 그 선한 마음과 행함이 항상 변함 없어야 한다.
교육목표 : 사랑의 하나님께서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을 통해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신 이유를 깨닫고 심판을 면할 수 있게 한다.
성경을 보면 노아 시대에 하나님께서 땅 위에 사람을 지으셨음을 한탄하며 물로 심판하여 지면에서 쓸어버릴 것을 선포하십니다. 사람을 창조하고 친히 동행하며 지극한 사랑을 베푸신 하나님께서 왜 이런 무서운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었을까요? 그러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이유와 어떻게 하면 심판을 면하고 축복받을 수 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선한 사람과 악한 사람의 차이
사람을 대하다 보면 선하거나 악하다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체로 좋은 환경 속에서 배우고 자란 사람은 성품이 온유하고 선한 반면, 불우한 환경 속에서 비진리를 많이 보고 배운 사람 중에 악을 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환경이 좋아도 잘못되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열악한 환경을 극복하고 바르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환경 속에서 훌륭한 가르침을 받고 또 스스로 노력하여 선하게 성장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선한 사람의 예로는, 예수님을 잉태한 동정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정혼한 마리아와 동침하지도 않았는데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율법대로라면 간음한 사람은 돌로 쳐 죽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는 드러내 알리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습니다. 나중에야 마리아가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사실을 알았지만 마음이 참으로 선했기 때문에 이런 행함이 나온 것입니다.
반면 악한 사람의 예로는 압살롬을 들 수 있습니다. 다윗의 아들인 압살롬은 이복 형이 자기의 여동생을 범하자 마음속으로 복수를 다집니다. 결국 기회를 엿보다가 이복 형 암논을 죽인 뒤 아버지 다윗에게까지 감정을 품고 반역을 일으키는 등 큰 악을 행하다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이처럼 악한 사람은 그 마음에 있는 악을 행함으로 결국 심판받게 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2. 사랑의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
창세기 6장 5-8절을 보면 노아 시대에 홍수심판이 임한 이유를 알 수 있는데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첫째로, 세상의 죄악이 관영하기 때문입니다.
성경 기록이나 세계사를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시대를 막론하고 죄악이 가득하여 그 정도를 넘어서면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이 임했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하다는 것은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국가적으로 악을 쌓아 간 경우입니다. 나라의 머리와 백성이 동조하여 죄악을 쌓아 간 경우로, 독일 나치 히틀러가 행한 600만 명 유대인 대학살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독일은 패전국이 되어 동서로 분열되었으며, 그 당시 전범들은 숨어 살거나 사형을 당했습니다.
노아 당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 인간 경작이 시작된 지 얼마 안 되어 사람들은 우상을 숭배하였고, 죄로 가득하니 하나님께서는 한탄하며 이 세상을 물로 심판하시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까지 멸하시는데 그것은 동물이 사람들의 타락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동물 형상을 본뜬 우상을 만들어 장식하고 섬겼습니다. 창조주 하나님만 경배하고 찬양해야 할 사람이 피조물인 동물을 우상화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은 동물들까지 멸함으로 사람들이 만든 우상이 얼마나 헛되며 동물 역시 한낱 피조물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데에는 공의와 함께 사랑이 담겨 있음을 깨우쳐야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떠나 짐승보다 못한 상태가 되어 버린 사람들에 대해 심판을 미룬다고 해서 그것이 사랑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공의의 법칙에 따라 정리한 후 새롭게 인간 경작을 시작하는 것이 인간 경작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사랑이었지요. 따라서 홍수 심판은 단지 죄를 벌하는 공의의 심판을 넘어 인간 경작의 마지막까지를 염두에 두신 하나님의 사랑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개인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든지 안 믿든지 악을 쌓아 갔을 때에 반드시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자신의 악으로 인해 생명이 단축되거나 그렇지 않다 해도 죄의 경중에 따라 비참한 말년을 보내게 됩니다. 오늘날은 국가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죄가 관영했습니다. 사람들은 참 신이신 하나님을 믿지 않으려 하고 자기 주장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헛된 신을 좇거나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좋아합니다. 혼전 동거는 예삿일이고 동성연애자와 그들의 결혼까지 합법화하려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마약이 성행하고 다투고 원수 맺고 미워하며 부정부패가 만연하지요. 이러한 현실을 흠도 점도 없는 하나님께서 어찌 그냥 두고 보실 수 있겠습니까. 사람의 죄악이 가득하여 짐승과 다름이 없다면 심판을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로, 사람의 마음과 생각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죄악이 관영할 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각이 악한 것을 한탄하며 심판하십니다. 사람의 마음이 완악하면 생각하는 것도 악합니다. 매사에 자기 유익을 좇아 욕심 부리며 부를 축적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늘 악한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말씀을 머리에 지식으로는 쌓되 행치 않는 사람은 자기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매사에 생각이 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을 때에 마음이 선한 목동이나 여 선지자 안나와 시므온과 같은 사람은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잘 지켜 행하며 가르친다고 하는 서기관이나 바리새인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알지 못했지요. 그들은 마음을 변화시키지 않고 겉으로만 거룩한 척 했기 때문에 완악하여 하나님 뜻을 깨우칠 수 없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람들의 마음이 얼마나 악해졌는지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고 믿는다면서도 불법과 불의를 행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심판이 가까워왔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셋째로, 사람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각이 악하면 그 가운데 나오는 계획이 악하고 결국 악을 행하게 됩니다. 이미 생각 속에서 계획이 세워졌기 때문에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라를 올바로 이끌어야 할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이 뇌물 수수, 비자금 조성, 땅 투기 등에 열을 올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입시 부정, 병역 비리 등 각종 비리와 살인, 강도, 방화, 폭행 등 인륜을 저버리는 행동이 난무합니다. 이렇게 자기 유익에 급급하니 모든 행사와 계획이 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질문명의 발달에 따라 향락과 퇴폐문화에 젖어든 노아 시대처럼 죄악이 가득 찬 세상이 된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려면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했습니다. 노아는 죄악으로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았습니다. 평소 삶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따랐고, 조상들 가르침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였지요. 이런 노아였기 때문에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심판 가운데에서도 지킴받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도 세상이 죄악으로 관영하여 마음과 생각이 악하고 그 계획이 악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마음이 선한 사람은 누군가의 전도를 받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뜻대로 살아갑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와 축복을 받으며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으며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전 12:14).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려면 온갖 타락과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롬 12:2). 마지막이 가까워졌음을 알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하나님이 원하는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하나님 뜻대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한 것만 생각하고 진리대로 행하면 영혼이 잘되는 것은 물론, 이 세상에서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으며 천국에서도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시며 물로 심판하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2. 창세기 6장 9절을 외워 봅시다.
3.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는 방법을 아는 대로 말해 봅시다.
● 금주 과제
세상의 죄를 대속하고자 아무 죄 없이 하나님 뜻에 순종하여 고난을 당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한 주간 몸과 마음을 경건케 하고 한 끼 이상 금식에 동참합시다.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 : 진리 곧 하나님 말씀을 뜻하며 하나님의 뜻과 생각 그 자체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 자체이시므로 하나님 뜻에 따라 기록된 성경을 통해 그분의 모든 선하신 뜻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 :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믿고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한 다. 참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 진정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히 11:6).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 :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고 기뻐하시는 행함이 있다 할지라도 그것이 일시적인 것이라면 온전하다고 할 수 없다(마 5:48). 하나님께 온전하다고 인정받으려면 그 선한 마음과 행함이 항상 변함 없어야 한다.
2009-03-27
제13과하나님을 거역한 죄
창 3:17~19
읽을말씀 : 창 3:17~19 | 외울말씀 : 창 3:17 l 참고 말씀 : 사무엘상 15:22~23
교육목표 :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이며 그 결과 얼마나 많은 시험 환난이 임하는가를 깨달아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구원에 이르게 한다.
많은 사람이 인생은 그 자체가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데 얼마나 많은 고초가 있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일까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먹고 사느라고 고생을 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의식주가 아닌 또 다른 인생의 문제로 고민하고 수고합니다. 이처럼 인생의 수레바퀴 속에서 갖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거역한 죄 때문입니다.
1.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결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축복하셨습니다. 또한 에덴동산을 창설하여 사람이 그곳을 다스리며 지키고 얼굴에 땀을 흘리지 않아도 식물을 먹으며 풍족한 삶을 누리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단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자 하나님의 주권을 표시하며 하나님께서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신 선악과를 아담과 하와가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니 원수 마귀 사단의 미혹을 받고 결국 하나님을 거역하며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대로 정녕 죽게 되었습니다(창 2:17).
이는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근본적인 죽음, 곧 사람의 영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는데(살전 5:23) 하나님 명령을 어기니 주인인 영이 죽게 되었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거역한 죄 때문에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져 더 이상 에덴동산에서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인은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인류의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이 크게 더하여 수고하며 자녀를 낳고, 남편을 사모하며 그 다스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저주받은 땅에서 평생 수고해야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지요(창 3:16~17). 즉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로 만물이 저주받을 뿐 아니라,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나 사망의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더러는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셨을까? 아셨다면 왜 선악과를 두어 불순종하게 하셨을까?"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신 것은 우리를 멸망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상대성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진리만 있기 때문에 비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악이 없으니 미움, 고통, 질병, 사망을 몰랐지요. 상대적으로 에덴동산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불행을 겪지 않았으니 무엇이 행복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선악과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살 때에는 선에 대해 배웠지만 불순종한 뒤 그의 후손들은 마귀의 종이 되어 점점 악으로 물들어 갔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악해졌습니다. 부모로부터 죄성을 물려받을 뿐 아니라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배우는 가운데 악이 입력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것도, 이 땅에 죄가 가득 찰 것도, 인간이 사망의 길로 갈 것도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서 만세 전에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때가 되자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리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하셨지요. 그래서 성령의 소욕을 좇아 비진리를 버리고 진리대로 살아감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켜 사람의 본분을 다하면(전 12:13)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빛 가운데 나올 때 죄로 인한 저주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진리 가운데 나오는 자녀들을 기뻐하시며 모든 저주에서 풀어 주십니다.
2. 사울 왕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결과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공격하라" 하시면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명령하셨습니다(삼상 15장). 이는 아말렉 족속이 하나님을 크게 대적한 일에 대한 보응으로 정확히 행해져야 하는 일이었습니다(출 17장).
그런데 사울 왕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아말렉 왕 아각을 포로로 사로잡고 기름지고 좋은 양과 소를 끌고 돌아옵니다. 자신의 공적을 백성에게 보여 칭송받기 원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울은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하며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깨달을 수 있도록 권면하지만 그는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변명만 늘어 놓았지요. 백성이 좋은 가축으로 하나님께 제사드리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상 15장 22~23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했습니다. 즉 사술과 우상 숭배하는 죄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술이란 요사스러운 술법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중죄이며 우상 숭배는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는 죄이지요. 결국 사무엘 선지자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면서 엄히 책망합니다.
그런데도 사울은 끝내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 앞에서 높여 달라고 사정하지요.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처럼 무섭고 슬픈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거역한 결과 명예와 권세를 잃었을 뿐 아니라 악신에게 시달리며 끝내 전쟁터에서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습니다. 이는 사울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면 그러한 죄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국가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3. 가인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결과
창세기 4장을 보면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이 나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고 아벨은 양을 치던 사람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은 기쁘게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짐승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려야 죄가 씻긴다는 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히 9:22).
아담은 아들들에게 피의 제사법에 대해 누누이 가르쳤고,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제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벨은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배운 대로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원하는 제사를 드렸으나 가인은 자기 생각 속에서 편리를 좇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일로 가인은 불붙는 듯한 투기가 일어 결국에는 동생을 돌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예배드리고 내 유익에 맞추어 신앙생활 하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가인이 악하여 하나님 뜻을 거역하니 투기와 살인 등 육체의 일을 저지르고, 심판의 결과로 저주가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하신 대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창 4:11~12). 이처럼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이며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시험 환난이 초래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담이나, 사울, 가인처럼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며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여 온전한 구원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세기 3장 17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 ~□□□□, ~□□□, ~□□□"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지키시고 □□ 주시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이 갖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근본 원인은 □ 때문입 니다.
3. 혹여 나의 욕심이나 체면, 자존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적은 없나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려는 죄의 성질까지 발견하여 벗어 버리면 신속히 성결을 이룰 수 있습니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2편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성령 거역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음성을 거스르거나 성령의 역사를 임의로 판단 정죄하여 교단에 알리고 축출하는 등 상대를 해롭게 하는 경우, 또는 이와 유사한 일들을 말한다. 성령 훼방이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가로 막는 것이라면 성령 거역은 이미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궤사를 꾸미고 일을 벌여 상대를 해롭게 하는 행위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이며 그 결과 얼마나 많은 시험 환난이 임하는가를 깨달아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구원에 이르게 한다.
많은 사람이 인생은 그 자체가 고난이라고 말합니다.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는 데 얼마나 많은 고초가 있기에 그렇게 표현한 것일까요?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먹고 사느라고 고생을 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의식주가 아닌 또 다른 인생의 문제로 고민하고 수고합니다. 이처럼 인생의 수레바퀴 속에서 갖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을 거역한 죄 때문입니다.
1.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결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축복하셨습니다. 또한 에덴동산을 창설하여 사람이 그곳을 다스리며 지키고 얼굴에 땀을 흘리지 않아도 식물을 먹으며 풍족한 삶을 누리도록 역사하셨습니다. 단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셨지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자 하나님의 주권을 표시하며 하나님께서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신 선악과를 아담과 하와가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니 원수 마귀 사단의 미혹을 받고 결국 하나님을 거역하며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대로 정녕 죽게 되었습니다(창 2:17).
이는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근본적인 죽음, 곧 사람의 영이 죽었다는 말입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는데(살전 5:23) 하나님 명령을 어기니 주인인 영이 죽게 되었지요. 이처럼 하나님을 거역한 죄 때문에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져 더 이상 에덴동산에서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인은 하나님과 함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때부터 인류의 고난이 시작되었습니다.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이 크게 더하여 수고하며 자녀를 낳고, 남편을 사모하며 그 다스림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남자는 저주받은 땅에서 평생 수고해야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지요(창 3:16~17). 즉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로 만물이 저주받을 뿐 아니라,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나 사망의 길로 가게 된 것입니다.
더러는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셨을까? 아셨다면 왜 선악과를 두어 불순종하게 하셨을까?"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신 것은 우리를 멸망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바로 상대성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에덴동산에는 진리만 있기 때문에 비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습니다. 악이 없으니 미움, 고통, 질병, 사망을 몰랐지요. 상대적으로 에덴동산에서의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불행을 겪지 않았으니 무엇이 행복인지, 불행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선악과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살 때에는 선에 대해 배웠지만 불순종한 뒤 그의 후손들은 마귀의 종이 되어 점점 악으로 물들어 갔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악해졌습니다. 부모로부터 죄성을 물려받을 뿐 아니라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배우는 가운데 악이 입력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것도, 이 땅에 죄가 가득 찰 것도, 인간이 사망의 길로 갈 것도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서 만세 전에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때가 되자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흘리심으로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하셨지요. 그래서 성령의 소욕을 좇아 비진리를 버리고 진리대로 살아감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명령을 지켜 사람의 본분을 다하면(전 12:13)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모든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빛 가운데 나올 때 죄로 인한 저주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진리 가운데 나오는 자녀들을 기뻐하시며 모든 저주에서 풀어 주십니다.
2. 사울 왕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결과
하나님께서는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공격하라" 하시면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먹는 아이와 우양과 약대와 나귀를 죽이라" 명령하셨습니다(삼상 15장). 이는 아말렉 족속이 하나님을 크게 대적한 일에 대한 보응으로 정확히 행해져야 하는 일이었습니다(출 17장).
그런데 사울 왕은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아말렉 왕 아각을 포로로 사로잡고 기름지고 좋은 양과 소를 끌고 돌아옵니다. 자신의 공적을 백성에게 보여 칭송받기 원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사울은 자기 생각에 옳은 대로 행하며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선지자 사무엘이 깨달을 수 있도록 권면하지만 그는 여전히 회개하지 않고 변명만 늘어 놓았지요. 백성이 좋은 가축으로 하나님께 제사드리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상 15장 22~23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했습니다. 즉 사술과 우상 숭배하는 죄와 같다는 것입니다. 사술이란 요사스러운 술법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중죄이며 우상 숭배는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는 죄이지요. 결국 사무엘 선지자는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면서 엄히 책망합니다.
그런데도 사울은 끝내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체면을 유지하기 위해 백성 앞에서 높여 달라고 사정하지요.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처럼 무섭고 슬픈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는 하나님을 거역한 결과 명예와 권세를 잃었을 뿐 아니라 악신에게 시달리며 끝내 전쟁터에서 비참한 말로를 맞이했습니다. 이는 사울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면 그러한 죄과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국가나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3. 가인이 하나님을 거역한 죄의 결과
창세기 4장을 보면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이 나옵니다. 가인은 농사를 짓고 아벨은 양을 치던 사람입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고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 제물은 기쁘게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 제물은 받지 않았습니다. 이미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날 때 짐승을 잡아 피의 제사를 드려야 죄가 씻긴다는 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히 9:22).
아담은 아들들에게 피의 제사법에 대해 누누이 가르쳤고, 가인과 아벨은 하나님께서 원하는 제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아벨은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배운 대로 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원하는 제사를 드렸으나 가인은 자기 생각 속에서 편리를 좇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는 받고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 일로 가인은 불붙는 듯한 투기가 일어 결국에는 동생을 돌로 쳐 죽이고 말았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를 기뻐 받으십니다. 그러나 내 마음대로 예배드리고 내 유익에 맞추어 신앙생활 하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가인이 악하여 하나님 뜻을 거역하니 투기와 살인 등 육체의 일을 저지르고, 심판의 결과로 저주가 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하신 대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습니다(창 4:11~12). 이처럼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가 얼마나 큰 죄이며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시험 환난이 초래되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아담이나, 사울, 가인처럼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거역하는 죄를 범하는 일이 없도록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며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발견하고 회개하여 온전한 구원에 이르러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세기 3장 17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는데 "~□□, ~□□□□, ~□□□, ~□□□"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자녀들을 지키시고 □□ 주시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이 갖가지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가는 근본 원인은 □ 때문입 니다.
3. 혹여 나의 욕심이나 체면, 자존심으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한 적은 없나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려는 죄의 성질까지 발견하여 벗어 버리면 신속히 성결을 이룰 수 있습니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2편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성령 거역이란?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의 음성을 거스르거나 성령의 역사를 임의로 판단 정죄하여 교단에 알리고 축출하는 등 상대를 해롭게 하는 경우, 또는 이와 유사한 일들을 말한다. 성령 훼방이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성령의 역사를 가로 막는 것이라면 성령 거역은 이미 성령의 역사로 이루어진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궤사를 꾸미고 일을 벌여 상대를 해롭게 하는 행위이다.
2009-03-20
제12과축 복
창 12:1~4
읽을말씀 : 창 12:1~4 | 외울말씀 : 창 15:6 l 참고 말씀 : 신 28:1~12
교육목표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은 이유를 알아 그의 신앙을 본받으며 축복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서 복의 근원이 되었고 하나님의 벗이라는 칭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크신 사랑과 놀라운 축복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계획하신 섭리를 이루기 위해 각 시대마다 합당한 사람을 세우시고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지요. 하나님 앞에 기둥같이 쓰이는 사람들은 마음 씀씀이나 하나님을 향한 중심이 일반 사람과는 매우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축복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세기 15장 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했습니다.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즉시 순종하였고 한 번 말씀하신 것은 아무리 상황이 바뀐다 해도 결코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하시니 그대로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왜 그러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즉시로 순종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은 삶의 터전과 가족 및 친척들과의 관계를 뒤로 하고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은 낯선 곳을 향해 무작정 떠나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그릇 됨을 아셨기에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룰 것과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 12:2).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할 것이라' 하시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통해 복을 얻을 것이라 약속하신 것입니다(창 12:3). 또한 그의 후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을 것을 알려주십니다(창 15:4~5).
2. 연단을 통해 합당한 그릇을 만드시는 하나님
이처럼 꿈과 비전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연단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는 연단을 통해 합당한 자질을 갖추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는 연단을 받으면서도 오직 아멘만 하였습니다. 자기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았으며 욕심이나 미움, 시기 질투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말씀을 믿고 인내하며, 결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창 17:4~5)
하나님께서는 연단 중에도 피할 길을 주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미모가 출중하였기 때문에 혹여 애굽 사람에게 자신이 죽임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하나님을 의뢰하기보다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였습니다. 결국 애굽 왕에게 아내를 빼앗긴 아브라함은 이것을 통해 큰 깨우침을 얻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시고 바로 왕은 당장 사라를 돌려보냅니다. 비록 사람의 방법을 동원하여 엄청난 일을 겪었지만 아브라함은 해를 받지 않았고 오히려 상당한 재물을 얻기까지 했습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 약속하신 대로 왕이라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었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연단 중에도 피할 길을 주며 함께하십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의를 지키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당장 현실은 어렵고 곤경에 처한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 볼 때는 오히려 축복인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믿음을 내보임으로 연단 중에도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가나안 땅에는 물이 매우 귀했는데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물이 풍부했고 육축과 은과 금도 많았습니다.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 갔을 때 아브라함이 집에서 양성한 318명을 이끌고 간 것만 봐도 얼마나 부유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그 땅과 지역은 물론, 함께한 사람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 나라 왕들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았고, 부귀와 명예, 권세, 건강, 자녀 등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복을 받았습니다. 신명기 28장에 기록된 대로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는 사람이 된 것이지요. 이처럼 믿음의 조상으로서 복의 근원이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그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하나님의 벗이 되었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3.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의 그릇 됨됨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은 이유는 그릇 됨됨이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 속에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영적 사랑과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모든 일을 선과 사랑으로 행했습니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수 맺지 않았고, 상대의 허물을 들추지도 않았으며 모든 사람을 섬겼습니다. 또한 희락의 열매가 맺혀 있으므로 어떤 연단이 와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였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였지요.
아브라함은 모든 사람과도 화평을 이루었습니다. 아내 사라와 첩 하갈 사이에서도 항상 화평을 좇았고 아랫사람에게나 윗사람에게나 또는 가족에게나 모두와 화평을 좇았습니다. 자기 생활 속에서 생기는 일에 대해 감정적이거나 편벽한 처리를 하지 않고 오래 참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아브라함은 자비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조카 롯과 서로 동거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자신은 삼촌이지만 조카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여 좋은 땅을 선택하도록 양보하였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윗사람이 당연히 먼저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겠지만 아브라함은 양보하며 자비를 베풀었지요.
또한 그는 양선의 마음을 이루었기 때문에 조카 롯이 소돔 땅과 함께 멸망당할 위기에 놓이자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창 18:22~32). 그 결과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요.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 성은 의인 열 명이 없어 결국 멸망당합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롯을 구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백 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순종하여 번제로 바칠 정도로 충성했으며, 아들을 가르치는 것이나 종들과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흠이 없이 온 집에 충성했습니다. 누구와도 걸리지 않음으로 화평하고 온유했으며, 사람을 구제하고 대접하는 것을 즐겨하였습니다. 모든 일에 절제할 줄 알았기에 일생 동안 경거망동하거나 지나치게 벗어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축복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내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불통한 것이지, 하나님 앞에 전폭적으로 맡기고 의뢰하며 순종한다면 아브라함과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을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자세한 기록을 남기셨으니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세기 15장 6절을 함께 외워봅시다.
2.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아브람처럼 순종할 수 없는 것을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축복으로 갚아주셨나요? 하나님께 간증으로 영광을 돌렸나요?
아직 간증하지 않았다면 다음 주까지 간증을 기록해서 가져옵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1편 '하나님을 거역한 죄'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그릇 됨됨이란?
마음의 재질에 해당되는데 디모데후서 1장 20~21절에는 금그릇, 은그릇, 질그릇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어떤 심정으로 받고 들은 말씀을 어떻게 마음에 새기고 행해 나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금처럼 변함이 없는 중심을 지닌 사람은 그릇됨이 좋은 만큼 신속히 성결을 이루고 영적인 능력도 더 크게 나타낼 수 있다. 마음 밭이 옥토가 되어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잘 새겨 행하는 만큼 좋은 그릇 됨됨이가 되는 것이요, 아브라함처럼 놀라운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교육목표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은 이유를 알아 그의 신앙을 본받으며 축복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 중의 한 사람으로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서 복의 근원이 되었고 하나님의 벗이라는 칭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크신 사랑과 놀라운 축복을 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의 삶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축복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계획하신 섭리를 이루기 위해 각 시대마다 합당한 사람을 세우시고 인류의 역사를 이끌어 가십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지요. 하나님 앞에 기둥같이 쓰이는 사람들은 마음 씀씀이나 하나님을 향한 중심이 일반 사람과는 매우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축복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창세기 15장 6절에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했습니다.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즉시 순종하였고 한 번 말씀하신 것은 아무리 상황이 바뀐다 해도 결코 의심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12:1) 하시니 그대로 순종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왜 그러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 해도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즉시로 순종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은 삶의 터전과 가족 및 친척들과의 관계를 뒤로 하고 목적지도 정해지지 않은 낯선 곳을 향해 무작정 떠나야 한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그릇 됨을 아셨기에 그를 통해 큰 민족을 이룰 것과 복의 근원이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창 12:2). '아브람을 축복하는 자에게는 복을 내리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할 것이라' 하시며, 땅의 모든 족속이 그를 통해 복을 얻을 것이라 약속하신 것입니다(창 12:3). 또한 그의 후손이 하늘의 뭇별과 같이 많을 것을 알려주십니다(창 15:4~5).
2. 연단을 통해 합당한 그릇을 만드시는 하나님
이처럼 꿈과 비전을 주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연단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는 연단을 통해 합당한 자질을 갖추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그는 연단을 받으면서도 오직 아멘만 하였습니다. 자기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고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았으며 욕심이나 미움, 시기 질투도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의 말씀을 믿고 인내하며, 결코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창 17:4~5)
하나님께서는 연단 중에도 피할 길을 주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의 미모가 출중하였기 때문에 혹여 애굽 사람에게 자신이 죽임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며 하나님을 의뢰하기보다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였습니다. 결국 애굽 왕에게 아내를 빼앗긴 아브라함은 이것을 통해 큰 깨우침을 얻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시고 바로 왕은 당장 사라를 돌려보냅니다. 비록 사람의 방법을 동원하여 엄청난 일을 겪었지만 아브라함은 해를 받지 않았고 오히려 상당한 재물을 얻기까지 했습니다.
창세기 12장 3절에 약속하신 대로 왕이라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었고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사람에게는 연단 중에도 피할 길을 주며 함께하십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의를 지키는 사람은 어떤 어려움이 닥쳐와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당장 현실은 어렵고 곤경에 처한 것 같아도 결과적으로 볼 때는 오히려 축복인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순종하며 믿음을 내보임으로 연단 중에도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당시 가나안 땅에는 물이 매우 귀했는데 아브라함이 가는 곳마다 물이 풍부했고 육축과 은과 금도 많았습니다.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 갔을 때 아브라함이 집에서 양성한 318명을 이끌고 간 것만 봐도 얼마나 부유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아브라함으로 인해 그 땅과 지역은 물론, 함께한 사람까지 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변 나라 왕들에게 존귀히 여김을 받았고, 부귀와 명예, 권세, 건강, 자녀 등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복을 받았습니다. 신명기 28장에 기록된 대로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는 사람이 된 것이지요. 이처럼 믿음의 조상으로서 복의 근원이요,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헤아려 그 마음을 함께 나눌 수 있는 하나님의 벗이 되었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3.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아브라함의 그릇 됨됨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은 이유는 그릇 됨됨이가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삶 속에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영적 사랑과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맺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모든 일을 선과 사랑으로 행했습니다. 누구를 미워하거나 원수 맺지 않았고, 상대의 허물을 들추지도 않았으며 모든 사람을 섬겼습니다. 또한 희락의 열매가 맺혀 있으므로 어떤 연단이 와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였기 때문에 항상 기뻐하였지요.
아브라함은 모든 사람과도 화평을 이루었습니다. 아내 사라와 첩 하갈 사이에서도 항상 화평을 좇았고 아랫사람에게나 윗사람에게나 또는 가족에게나 모두와 화평을 좇았습니다. 자기 생활 속에서 생기는 일에 대해 감정적이거나 편벽한 처리를 하지 않고 오래 참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 외에도 아브라함은 자비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조카 롯과 서로 동거할 수 없게 되었을 때 자신은 삼촌이지만 조카에게 선택권을 주었습니다.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여 좋은 땅을 선택하도록 양보하였습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윗사람이 당연히 먼저 좋은 것을 선택해야 한다고 하겠지만 아브라함은 양보하며 자비를 베풀었지요.
또한 그는 양선의 마음을 이루었기 때문에 조카 롯이 소돔 땅과 함께 멸망당할 위기에 놓이자 그들을 대신하여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창 18:22~32). 그 결과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멸하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지요. 하지만 소돔과 고모라 성은 의인 열 명이 없어 결국 멸망당합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생각하여 롯을 구해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백 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순종하여 번제로 바칠 정도로 충성했으며, 아들을 가르치는 것이나 종들과 이웃과의 관계에서도 흠이 없이 온 집에 충성했습니다. 누구와도 걸리지 않음으로 화평하고 온유했으며, 사람을 구제하고 대접하는 것을 즐겨하였습니다. 모든 일에 절제할 줄 알았기에 일생 동안 경거망동하거나 지나치게 벗어나는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축복받는 사람이 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내 생각이 앞서기 때문에 불통한 것이지, 하나님 앞에 전폭적으로 맡기고 의뢰하며 순종한다면 아브라함과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책임지시고 복된 길로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받은 축복을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기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 자세한 기록을 남기셨으니 아브라함의 신앙을 본받아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세기 15장 6절을 함께 외워봅시다.
2. 여러분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후 아브람처럼 순종할 수 없는 것을 믿음으로 순종하며 살아가고 있나요?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고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축복으로 갚아주셨나요? 하나님께 간증으로 영광을 돌렸나요?
아직 간증하지 않았다면 다음 주까지 간증을 기록해서 가져옵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1편 '하나님을 거역한 죄'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그릇 됨됨이란?
마음의 재질에 해당되는데 디모데후서 1장 20~21절에는 금그릇, 은그릇, 질그릇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어떤 심정으로 받고 들은 말씀을 어떻게 마음에 새기고 행해 나가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금처럼 변함이 없는 중심을 지닌 사람은 그릇됨이 좋은 만큼 신속히 성결을 이루고 영적인 능력도 더 크게 나타낼 수 있다. 마음 밭이 옥토가 되어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잘 새겨 행하는 만큼 좋은 그릇 됨됨이가 되는 것이요, 아브라함처럼 놀라운 축복이 임하는 것이다.
2009-03-13
제11과주께서 칭찬하시는 자
갈 5:24
읽을말씀 : 갈 5:24 | 외울말씀 : 막 14:9, 누가복음 21:3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할 바를 하고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은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주께 칭찬받는 자가 되게 한다.
우리가 어떤 직종에 있든 그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면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칭찬받는다 해도 평범한 일반인이 칭찬하는 것과 그 분야의 전문가가 칭찬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주님께서 옳다 인정하며 칭찬하시는 자가 된다면 그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1.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의롭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는 일이 극히 드물었는데, 간혹 칭찬하실 때에는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옳은 일을 행하였다, 이 여인을 기억하라, 기념하라, 널리 전파하라" 등의 표현을 빌려 칭찬하셨습니다(막 14:9 ; 눅 21:3). 예수님께서 주 안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는 사람들을 알려 주어 그 행함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주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관심을 갖고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가 되어 옳다 인정함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으려면
1) 하나님 앞에 열심히 단을 쌓아야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기 위하여 마땅히 단을 쌓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이나 야곱 등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정성껏 단을 쌓은 기록이 많습니다(창 12:7~8, 13:4, 18, 28:18).
하나님 앞에 단을 쌓는 것이란 오늘날 하나님의 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정성껏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 말씀을 듣고 양식 삼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마음에 양식 삼아 지켜 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축복된 삶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해야
기도는 영적 호흡이며 하나님과의 대화이므로 기도의 중요성이 성경 곳곳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런데도 자녀들과 대화하며 사랑을 주고받기 원하시기 때문에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영혼이 잘되어 천국에 가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 은혜와 능력이 임하고 성령 충만해야 비진리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채울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해야 진리의 사람, 영의 사람이 되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습니다. 따라서 쉬지 말고 기도하되 예수님처럼 무릎을 꿇고 중심을 다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중언부언의 기도는 받지 않으시기 때문에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중심의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고 응답으로 축복하십니다.
3)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로마 군대의 한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와 중풍으로 괴로워하는 하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가서 고쳐 주시려 하자 그는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니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백부장의 믿음과 겸손을 귀히 여기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적 믿음은 사모한다고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선을 이루고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일을 보고 듣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처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고 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칭찬하며 믿음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4) 하나님 앞에 겸비한 자가 되어야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께 귀신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여인에게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셨지요. 여인은 자신을 개 취급하는 예수님께 화를 내거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겸손히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 믿음과 겸손에 감동을 받고 딸에게서 귀신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겸비한 중심을 가지고 간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5) 믿음으로 심는 자가 되어야
믿음으로 심는 것도 의에 속하며 하나님께서 칭찬하십니다. 만일 부요하기 원한다면 심고 거두는 법칙에 따라 심으면 됩니다. 십일조와 감사예물이 특히 그렇습니다. 자연의 법칙만 보아도 심은 대로 거두지요(고후 9:6).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은 영혼을 구원하고 성전을 지으며 선교와 구제에 쓰입니다. 그래서 헌금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데 쓰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30배, 60배, 100배로 갚아 주십니다. 따라서 헌금을 드릴 때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지 않고 믿음과 사랑으로 즐겨 심어야 합니다.
6) 범사에 하나님을 믿고 의뢰해야
다윗은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친히 인도하심으로 갖가지 어려움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믿고 의뢰하는 자녀를 더욱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세상이나 자기 지식을 더 의존한다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하는 만큼 하나님을 의뢰하고, 주님께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행할 때에 하나님께 구하고 참아 기다리며 응답받을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여 오직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7)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셨으니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성도와 교제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는 것입니다. 또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으니 무슨 일을 만나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여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말씀하실 때 믿음의 분량에 따라 이끄십니다. 믿음의 분량이 안 되는 사람에게 무조건 순종하라고 무리하게 명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작은 일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케 함으로 더 큰 영적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음엔 그보다 더 큰 일을 명하셔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3. 주께 칭찬받으려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우리가 육적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고 칭찬하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듯이 영의 사람이 되려면 정과 욕심은 죄와 다름이 없기 때문에 온전히 끊어야 합니다. 다윗도 안목의 정욕 때문에 부하의 아내를 간음한 후 부하를 죽게 함으로 엄청난 연단을 받았습니다. 아간은 욕심 때문에 외투와 은금을 훔쳐 가족이 말살되고, 이스라엘은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지요.
반면 아사 임금은 정과 욕심을 단호히 끊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비록 어머니라 할지라도 우상을 섬기니 더 이상 사람들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태후의 위를 폐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뜻대로 행하려면 정과 욕심을 끊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지녀야 자신을 지킬 수 있지요. 하나님 자녀로서 마땅히 할 바를 하고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주께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기도의 응답을 체험한 적이 있나요? 있다면 서로 나누어 보세요.
2. 수로보니게 여인이 어떻게 행했을 때 예수님께 칭찬받았나요?
3. 어른이나 상사에게 지적이나 책망을 받았을 때 나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4. 갈라디아서 5장 24절을 함께 외워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0편 '축복'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넘치는 축복과 30배, 60배, 100배의 축복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죄악을 다 버리기 전에도 믿음으로 심고 구할 때에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는 축복 곧 두 배 이상의 축복을 받는다(눅 6:38). 하지만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양도 버려 성결되어 영으로 들어간 뒤에는 30배 이상, 나아가 온 영이 되었을 때에는 60배, 100배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마땅히 할 바를 하고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은 십자가에 못 박음으로 주께 칭찬받는 자가 되게 한다.
우리가 어떤 직종에 있든 그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되면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칭찬받는다 해도 평범한 일반인이 칭찬하는 것과 그 분야의 전문가가 칭찬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하물며 만왕의 왕, 만주의 주이신 주님께서 옳다 인정하며 칭찬하시는 자가 된다면 그 기쁨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것입니다.
1.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의롭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사람을 칭찬하십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 칭찬하시는 일이 극히 드물었는데, 간혹 칭찬하실 때에는 직설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옳은 일을 행하였다, 이 여인을 기억하라, 기념하라, 널리 전파하라" 등의 표현을 빌려 칭찬하셨습니다(막 14:9 ; 눅 21:3). 예수님께서 주 안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는 사람들을 알려 주어 그 행함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처럼 주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은 당연히 하나님께서 관심을 갖고 축복하십니다.
우리가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가 되어 옳다 인정함을 받으려면 무엇보다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하나님 앞에서 옳다 인정함을 받으려면
1) 하나님 앞에 열심히 단을 쌓아야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은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기 위하여 마땅히 단을 쌓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이나 야곱 등 하나님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정성껏 단을 쌓은 기록이 많습니다(창 12:7~8, 13:4, 18, 28:18).
하나님 앞에 단을 쌓는 것이란 오늘날 하나님의 전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또한 감사한 마음으로 정성껏 예물을 드리며, 하나님 말씀을 듣고 양식 삼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을 들었으면 듣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마음에 양식 삼아 지켜 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축복된 삶으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를 해야
기도는 영적 호흡이며 하나님과의 대화이므로 기도의 중요성이 성경 곳곳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런데도 자녀들과 대화하며 사랑을 주고받기 원하시기 때문에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영혼이 잘되어 천국에 가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 은혜와 능력이 임하고 성령 충만해야 비진리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채울 수 있습니다. 또한 기도해야 진리의 사람, 영의 사람이 되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습니다. 따라서 쉬지 말고 기도하되 예수님처럼 무릎을 꿇고 중심을 다해 부르짖어야 합니다. 중언부언의 기도는 받지 않으시기 때문에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중심의 기도를 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쁘게 받고 응답으로 축복하십니다.
3)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로마 군대의 한 백부장이 예수님을 찾아와 중풍으로 괴로워하는 하인을 고쳐 달라고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가서 고쳐 주시려 하자 그는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니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백부장의 믿음과 겸손을 귀히 여기고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 칭찬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런 영적 믿음은 사모한다고 쉽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선을 이루고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백부장은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예수님에 대한 일을 보고 듣고 그대로 믿었습니다. 이처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고 행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께서 칭찬하며 믿음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4) 하나님 앞에 겸비한 자가 되어야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께 귀신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여인에게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셨지요. 여인은 자신을 개 취급하는 예수님께 화를 내거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겸손히 자신을 낮추었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그 믿음과 겸손에 감동을 받고 딸에게서 귀신을 물리쳐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겸비한 중심을 가지고 간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5) 믿음으로 심는 자가 되어야
믿음으로 심는 것도 의에 속하며 하나님께서 칭찬하십니다. 만일 부요하기 원한다면 심고 거두는 법칙에 따라 심으면 됩니다. 십일조와 감사예물이 특히 그렇습니다. 자연의 법칙만 보아도 심은 대로 거두지요(고후 9:6).
우리가 하나님 앞에 드리는 헌금은 영혼을 구원하고 성전을 지으며 선교와 구제에 쓰입니다. 그래서 헌금을 통해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헌금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는 데 쓰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30배, 60배, 100배로 갚아 주십니다. 따라서 헌금을 드릴 때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지 않고 믿음과 사랑으로 즐겨 심어야 합니다.
6) 범사에 하나님을 믿고 의뢰해야
다윗은 범사에 하나님을 의뢰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의 길을 친히 인도하심으로 갖가지 어려움을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믿고 의뢰하는 자녀를 더욱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면서도 세상이나 자기 지식을 더 의존한다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습니다.
우리가 진리 안에 거하는 만큼 하나님을 의뢰하고, 주님께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행할 때에 하나님께 구하고 참아 기다리며 응답받을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여 오직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합니다.
7)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셨으니 주일이 되면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성도와 교제를 나누며 하루를 보내는 것입니다. 또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셨으니 무슨 일을 만나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여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말씀하실 때 믿음의 분량에 따라 이끄십니다. 믿음의 분량이 안 되는 사람에게 무조건 순종하라고 무리하게 명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작은 일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케 함으로 더 큰 영적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니 다음엔 그보다 더 큰 일을 명하셔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3. 주께 칭찬받으려면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우리가 육적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하나님께서 의로 여기고 칭찬하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듯이 영의 사람이 되려면 정과 욕심은 죄와 다름이 없기 때문에 온전히 끊어야 합니다. 다윗도 안목의 정욕 때문에 부하의 아내를 간음한 후 부하를 죽게 함으로 엄청난 연단을 받았습니다. 아간은 욕심 때문에 외투와 은금을 훔쳐 가족이 말살되고, 이스라엘은 아이 성 전투에서 패배하고 말지요.
반면 아사 임금은 정과 욕심을 단호히 끊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비록 어머니라 할지라도 우상을 섬기니 더 이상 사람들이 죄에 빠지지 않도록 태후의 위를 폐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뜻대로 행하려면 정과 욕심을 끊고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믿음을 지녀야 자신을 지킬 수 있지요. 하나님 자녀로서 마땅히 할 바를 하고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주께 칭찬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기도의 응답을 체험한 적이 있나요? 있다면 서로 나누어 보세요.
2. 수로보니게 여인이 어떻게 행했을 때 예수님께 칭찬받았나요?
3. 어른이나 상사에게 지적이나 책망을 받았을 때 나의 반응은 어떠했나요?
4. 갈라디아서 5장 24절을 함께 외워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10편 '축복'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넘치는 축복과 30배, 60배, 100배의 축복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행하는 만큼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죄악을 다 버리기 전에도 믿음으로 심고 구할 때에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는 축복 곧 두 배 이상의 축복을 받는다(눅 6:38). 하지만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양도 버려 성결되어 영으로 들어간 뒤에는 30배 이상, 나아가 온 영이 되었을 때에는 60배, 100배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2009-03-06
제10과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라
고후 10:3~6
읽을말씀 : 고후 10:3~6 | 외울말씀 : 고후 10:5 ㅣ 참고 말씀 : 롬 8:7
교육목표 :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적 믿음을 소유한 의인이 되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크게 이루어 영광 돌릴 뿐 아니라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으며 만사형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열심히 기도하며 충성한다 하지만 축복을 받지 못하고 시험과 환난, 질병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당연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축복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육신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은 깨뜨려야
육신이란 몸과 결합된 죄성으로 아직 행위로 나타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비진리를 말합니다. 이 마음에 있는 비진리가 생각을 통해 나오는 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로마서 8장 6~7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육신의 생각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생각에는 하나님의 법인 진리대로 행하게 하는 영의 생각과 그러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이 있습니다(롬 8:6).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진리와 비진리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영의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육신의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미운 사람을 볼 때 그냥 감정에 따라 미워하는 육신의 생각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지 하는 영의 생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이므로 믿음의 성장을 방해하며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만일 육신의 생각을 좇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세상으로 빠지며 시험 환난을 당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보고 듣고 배운 것 중에서 하나님 뜻에 어긋나고 믿음 생활을 방해하는 생각이라면 육신의 생각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육신의 생각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기 의'입니다. '자기 의'란 쉽게 말하면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사람은 태어나서 부모, 스승, 친구 등 여러 사람을 통해 많은 것을 듣고 배웁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롬 3:10) 아무리 훌륭한 부모나 스승으로부터 배운다 할지라도 진리대로만 가르침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뜻에 위배되는 비진리를 더 많이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선 자체이므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고, 사람의 의와 하나님의 의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 미운 자가 오 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동행해 주고,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도 주라고 하십니다. 섬기는 자가 큰 자라 하시고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이 결국 이기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의는 다릅니다. 원수는 갚아야 하며 악은 끝까지 대항하여 이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 그렇게 행하는 사람들을 의인이라 부릅니다.
빌립보서 3장 7절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이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고백합니다.
그는 길리기아의 수도 다소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당시 세계를 지배한 로마 시민권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냐민 지파의 정통 바리새인에 속한 그는 당대 최고의 교법사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습니다(행 22:3). 철저한 유대교도로서 기독교 박해에 앞장섰으며 다메섹, 즉 지금의 다마스쿠스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체포하고자 그곳으로 가던 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이 만남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구세주임을 알았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지식과 교양, 사회적 지위를 모두 버리고 주를 좇았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긴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생명과 행복이 있고 모든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배우는 모든 학문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부수적인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고상한 지식임을 깨우쳤기에 곳곳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2.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울 왕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된 대표적인 인물로 사울 왕을 들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은 사사들이 다스리던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아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왕이 되기 전 겸손한 사람이었으나 왕이 된 후 점차 교만해졌지요.
한 예로, 블레셋과 전투를 하려고 대치한 상황에서 제사장 사무엘이 정한 기한에 오지 않아 백성이 흩어지자,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번제를 임의로 드려 하나님 뜻을 거스르고 말았습니다. 이를 사무엘이 책망하자 회개는커녕 변명하기에 급급했지요. 또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셨을 때에도 그는 순종하지 않고 적국의 왕과 가축 중에 좋은 것은 멸하지 않고 끌고 왔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틈타니 하나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운 것입니다.
결국 사울 왕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악신으로 인해 고통당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차례 돌이킬 기회를 주셨지만 그는 끝내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거듭 불순종하여 사망의 길로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3.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려면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면 모든 이론과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해야 합니다(고후 10:5).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라는 것은 결코 우리를 얽매이거나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은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살전 5:22)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비진리가 없으면 육신의 생각이 나오지 않으며, 비진리가 있는 만큼 생각을 통해 사단의 역사를 받아서 악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은 곧 비진리를 버리며 하나님 말씀을 알고 그대로 행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모이기에 힘쓰라" 하였으면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법도를 깨우쳐 그대로 순종하면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안다고 해서 다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를 해야 위로부터 능력이 옵니다. 기도하면 성령이 충만하여 육신의 생각을 제어할 수 있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육신의 생각에 사로 잡혀 끌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힘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쉬자, 즐기자, 먹자 하며 육체의 소욕을 좇아 나갔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룰 것인지를 묵상하며 열심히 행해 나가야 합니다. 미움, 시기 등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갖가지 악을 발견하여 버리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섬기는 사람이 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2. 고린도후서 10장 5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3.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형통치 못했던 경험이 있나요?
4. 영의 생각을 하여 안 될 것도 되고 될 것은 더 잘되는 경험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9편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육신의 생각'이란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가 혼의 작용을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즉 진리가 아닌 비진리의 모든 생각을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진리인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기 때문에 죄가 되며(롬 8:6~7) 결국 사망을 낳게 됩니다. (롬 6:23)
교육목표 :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함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영적 믿음을 소유한 의인이 되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크게 이루어 영광 돌릴 뿐 아니라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으며 만사형통한 삶을 살게 됩니다. 그런데 열심히 기도하며 충성한다 하지만 축복을 받지 못하고 시험과 환난, 질병과 고통 속에 살아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이 있다면 당연히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축복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육신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1.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은 깨뜨려야
육신이란 몸과 결합된 죄성으로 아직 행위로 나타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비진리를 말합니다. 이 마음에 있는 비진리가 생각을 통해 나오는 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로마서 8장 6~7절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했습니다.
그러면 육신의 생각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생각에는 하나님의 법인 진리대로 행하게 하는 영의 생각과 그러지 못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이 있습니다(롬 8:6). 이 둘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진리와 비진리 중에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영의 생각을 할 수도 있고, 육신의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가령, 미운 사람을 볼 때 그냥 감정에 따라 미워하는 육신의 생각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미워하지 말고 사랑해야지 하는 영의 생각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하나님과 원수이므로 믿음의 성장을 방해하며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만일 육신의 생각을 좇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세상으로 빠지며 시험 환난을 당합니다. 이 세상을 살면서 보고 듣고 배운 것 중에서 하나님 뜻에 어긋나고 믿음 생활을 방해하는 생각이라면 육신의 생각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육신의 생각 중에 대표적인 것이 바로 '자기 의'입니다. '자기 의'란 쉽게 말하면 내가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지요.
사람은 태어나서 부모, 스승, 친구 등 여러 사람을 통해 많은 것을 듣고 배웁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의인은 하나도 없기 때문에(롬 3:10) 아무리 훌륭한 부모나 스승으로부터 배운다 할지라도 진리대로만 가르침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뜻에 위배되는 비진리를 더 많이 배우게 됩니다. 하나님은 선 자체이므로 사람의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다르고, 사람의 의와 하나님의 의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선으로 악을 이기라, 미운 자가 오 리를 가자고 하면 십 리를 동행해 주고, 속옷을 달라고 하면 겉옷도 주라고 하십니다. 섬기는 자가 큰 자라 하시고 양보하고 희생하는 것이 결국 이기는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이 옳다고 하는 의는 다릅니다. 원수는 갚아야 하며 악은 끝까지 대항하여 이겨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또 그렇게 행하는 사람들을 의인이라 부릅니다.
빌립보서 3장 7절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이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고백합니다.
그는 길리기아의 수도 다소에서 태어나면서부터 당시 세계를 지배한 로마 시민권이 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냐민 지파의 정통 바리새인에 속한 그는 당대 최고의 교법사인 가말리엘의 문하에서 엄격한 교육을 받았습니다(행 22:3). 철저한 유대교도로서 기독교 박해에 앞장섰으며 다메섹, 즉 지금의 다마스쿠스에 있는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체포하고자 그곳으로 가던 중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습니다. 이 만남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한 구세주임을 알았습니다. 그 후 그는 자신의 지식과 교양, 사회적 지위를 모두 버리고 주를 좇았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긴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영원한 생명과 행복이 있고 모든 지식의 근본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배우는 모든 학문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부수적인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인간의 근본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고상한 지식임을 깨우쳤기에 곳곳에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2.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한 사울 왕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된 대표적인 인물로 사울 왕을 들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은 사사들이 다스리던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선지자 사무엘로부터 기름 부음을 받아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습니다. 그는 왕이 되기 전 겸손한 사람이었으나 왕이 된 후 점차 교만해졌지요.
한 예로, 블레셋과 전투를 하려고 대치한 상황에서 제사장 사무엘이 정한 기한에 오지 않아 백성이 흩어지자,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번제를 임의로 드려 하나님 뜻을 거스르고 말았습니다. 이를 사무엘이 책망하자 회개는커녕 변명하기에 급급했지요. 또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진멸하라" 하셨을 때에도 그는 순종하지 않고 적국의 왕과 가축 중에 좋은 것은 멸하지 않고 끌고 왔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틈타니 하나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운 것입니다.
결국 사울 왕은 하나님께 버림받아 악신으로 인해 고통당하였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운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수차례 돌이킬 기회를 주셨지만 그는 끝내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거듭 불순종하여 사망의 길로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3.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려면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려면 모든 이론과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해야 합니다(고후 10:5).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라는 것은 결코 우리를 얽매이거나 괴롭히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을 깨달은 사람들은 말씀에 기꺼이 순종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려고 노력합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살전 5:22) 선을 이루어야 합니다. 내 마음에 비진리가 없으면 육신의 생각이 나오지 않으며, 비진리가 있는 만큼 생각을 통해 사단의 역사를 받아서 악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은 곧 비진리를 버리며 하나님 말씀을 알고 그대로 행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모이기에 힘쓰라" 하였으면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하나님의 법도를 깨우쳐 그대로 순종하면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안다고 해서 다 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기도를 해야 위로부터 능력이 옵니다. 기도하면 성령이 충만하여 육신의 생각을 제어할 수 있지만 기도하지 않으면 육신의 생각에 사로 잡혀 끌려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힘써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쉬자, 즐기자, 먹자 하며 육체의 소욕을 좇아 나갔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룰 것인지를 묵상하며 열심히 행해 나가야 합니다. 미움, 시기 등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갖가지 악을 발견하여 버리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섬기는 사람이 되면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에 대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2. 고린도후서 10장 5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3.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형통치 못했던 경험이 있나요?
4. 영의 생각을 하여 안 될 것도 되고 될 것은 더 잘되는 경험이 있다면 함께 이야기해 봅시다.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9편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육신의 생각'이란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가 혼의 작용을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즉 진리가 아닌 비진리의 모든 생각을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진리인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기 때문에 죄가 되며(롬 8:6~7) 결국 사망을 낳게 됩니다. (롬 6:23)
2009-02-27
제9과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롬 1:17
읽을말씀 : 롬 1:17 | 외울말씀 : 롬 10:10 l 참고 말씀 : 눅 1:5~6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차원을 넘어 진정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기 위해 죄를 버리고 영 적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흔히 고아나 과부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 의로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 온유하고 착해 보이며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 성내지 않으며 말없이 잘 참는 사람을 볼 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인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의인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고 마음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며 사람의 겉과 속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마음속에 시기 질투가 있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이기적인 마음과 배신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의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
성경을 보면 여호와의 도를 행하는 사람(호 14:9),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 없이 행하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눅 1:5~6). 그런데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된 대로 사람이 아무리 의롭게 살고자 해도 태어날 때부터 조상의 기를 통해 죄의 성질을 이어받으므로 원죄가 있고, 살면서 짓는 자범죄가 있기 때문에 의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피 흘려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고 의인이라 불리웁니다. 또한 성령을 선물로 받아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되니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기뻐하시는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죄를 버리고 마음의 의를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죄를 버릴 수 없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인 구약시대에는 행위로 죄를 짓지 않으면 죄인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행위적인 구원은 온전치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도우심으로 부르짖어 간구하며 죄를 버리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죄를 온전히 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죄를 버리고 성결을 이루며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를수록 하나님의 사랑괴 인정을 받는 의인이 되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됩니다.
2. 왜 의인이 되어야 하는가?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씀한 대로 죄인은 원수 마귀에게 속하여 멸망의 길로 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죄에서 돌이키면 원수 마귀가 주는 시험 환난과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면 악한 원수 마귀가 만지지도 못하니 질병과 상관이 없으며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삼가 듣고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선수들이 혹독한 훈련을 받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의인이 되기까지는 연단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감당할 만한 연단을 허락하시며 더욱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친히 인도하시며 연단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게 하시고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하시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으로서 완전해지기까지 연단하셨습니다. 결국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라는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여 모든 연단이 끝난 뒤에는 범사에 축복을 받고 형통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성장을 위해 연단을 허락하시고 의인이 되는 축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을 통과하는 만큼 축복을 주시고 더 큰 믿음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의 마음을 닮은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3. 영적 믿음을 소유하려면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여기서 믿음이란 영적 믿음을 말합니다. 믿음에는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육적 믿음을 지식적인 믿음 또는 이성적인 믿음이라 합니다. 인간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부모, 스승, 이웃, 친구 등으로부터 배운 것들을 머리 뇌세포 기억장치에 지식으로 담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입력해 놓은 지식과 일치하면 믿는 믿음을 육적 믿음이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유에서 유(有)의 창조 즉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은 믿을 수 있지만,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 즉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은 믿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바다야, 파도야, 잠잠하라!" 하시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나귀의 입을 열어 말하게 하시고,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게도 하시며, 견고한 여리고성도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일반적인 상식과 도무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니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지만 이는 세상 사람의 지식으로 이해도 안 되고 믿어지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영적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이러한 사실들이 마음에 믿어지지 않으니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적 믿음은 구하는 것을 응답받을 수 없으며 구원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영적 믿음은 산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무에서 유의 창조가 믿어지는 믿음입니다. 즉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내 생각과 지식에 맞추지 않으니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믿어집니다. 그래서 영적 믿음은 순종할 수 없는 것을 행하는 믿음,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믿음이며, 구원에 이르게 하는 산 믿음입니다.
이러한 영적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열심히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하였으니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서는 진리를 알 수 없으니 믿음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며 말씀을 듣고, 각종 모임을 통해 말씀이나 간증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의 지식이 심겨지고 지식적인 믿음이 생겨난다고 해서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진리에 위배되는 비진리를 버리며 말씀대로 행해 나가야 지식적인 믿음이 받침대가 되어 영적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4. 의인이 되어 믿음으로 살아가는 방법
아브라함은 항상 자기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영적 믿음으로 오직 순종하며 믿음의 행군을 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과정에서 앞길을 가로막는 홍해를 어떻게 건넜습니까?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범람하는 요단강을 어떻게 건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는 영적 믿음을 소유했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응답으로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생활 가운데도 앞길을 가로막는 홍해, 무너뜨려야 할 여리고 성과 범람하는 요단강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닥쳤을 때 의로운 중심으로 진리 안에 사는 것이 곧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상대가 나를 때렸을 때 육적 믿음으로는 같이 때리고 미워하지만, 영적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합니다. 이러한 산 믿음, 행하는 믿음이 있을 때 원수 마귀가 물러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의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며 진리대로 행합니다. 간혹 어떻게 계명을 다 지킬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했는데 우리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으로 □□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은 □□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2. 로마서 10장 10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을 받으며 마음 중심에서 얼마나 감사하고 있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8편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믿음이 장성하여 의인이 되는 만큼 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영광이 다릅니다.
'해의 영광'이란 악을 온전히 버리고 성결하여 3천층 또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을 뜻합니다.
'달의 영광'이란 2천층에 가는 사람의 영광을 뜻하며, '별의 영광'은 1천층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을 말합니다. 또한 별마다 영광이 다릅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이 각각 크기나 밝기가 다르듯이 영광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천국에 가서 받을 상급과 영광이 다릅니다. 낙원에 들어 가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 한 일이 없으므로 상급이 없고 아예 영광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참고 말씀 고전 15:39~41)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차원을 넘어 진정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기 위해 죄를 버리고 영 적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흔히 고아나 과부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좋은 일을 하면 의로운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 온유하고 착해 보이며 질서를 잘 지키는 사람, 성내지 않으며 말없이 잘 참는 사람을 볼 때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인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의인과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않고 마음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며 사람의 겉과 속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마음속에 시기 질투가 있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이기적인 마음과 배신하는 마음이 있다면 어찌 의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1.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
성경을 보면 여호와의 도를 행하는 사람(호 14:9),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 없이 행하는 사람을 의인이라고 합니다(눅 1:5~6). 그런데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된 대로 사람이 아무리 의롭게 살고자 해도 태어날 때부터 조상의 기를 통해 죄의 성질을 이어받으므로 원죄가 있고, 살면서 짓는 자범죄가 있기 때문에 의인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피 흘려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면 누구든지 죄사함을 받고 의인이라 불리웁니다. 또한 성령을 선물로 받아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깨닫게 되니 죄를 버리고 의를 행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기뻐하시는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죄를 버리고 마음의 의를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람의 힘만으로는 죄를 버릴 수 없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인 구약시대에는 행위로 죄를 짓지 않으면 죄인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행위적인 구원은 온전치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신약시대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도우심으로 부르짖어 간구하며 죄를 버리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셔서 죄를 온전히 버릴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죄를 버리고 성결을 이루며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를수록 하나님의 사랑괴 인정을 받는 의인이 되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리게 됩니다.
2. 왜 의인이 되어야 하는가?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씀한 대로 죄인은 원수 마귀에게 속하여 멸망의 길로 가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죄에서 돌이키면 원수 마귀가 주는 시험 환난과 질병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되면 악한 원수 마귀가 만지지도 못하니 질병과 상관이 없으며 신명기 28장에 나오는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삼가 듣고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올림픽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선수들이 혹독한 훈련을 받는 것과 같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의인이 되기까지는 연단이 따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위해 감당할 만한 연단을 허락하시며 더욱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친히 인도하시며 연단하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게 하시고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 17:1) 하시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으로서 완전해지기까지 연단하셨습니다. 결국 독자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바치라는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여 모든 연단이 끝난 뒤에는 범사에 축복을 받고 형통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성장을 위해 연단을 허락하시고 의인이 되는 축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을 통과하는 만큼 축복을 주시고 더 큰 믿음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주님의 마음을 닮은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3. 영적 믿음을 소유하려면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여기서 믿음이란 영적 믿음을 말합니다. 믿음에는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육적 믿음을 지식적인 믿음 또는 이성적인 믿음이라 합니다. 인간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부모, 스승, 이웃, 친구 등으로부터 배운 것들을 머리 뇌세포 기억장치에 지식으로 담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입력해 놓은 지식과 일치하면 믿는 믿음을 육적 믿음이라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유에서 유(有)의 창조 즉 이미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은 믿을 수 있지만,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 즉 아무것도 없는 데에서 무엇을 만들어내는 것은 믿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바다야, 파도야, 잠잠하라!" 하시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나귀의 입을 열어 말하게 하시고, 지팡이로 홍해를 가르게도 하시며, 견고한 여리고성도 무너지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일들은 일반적인 상식과 도무지 맞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시니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 있지만 이는 세상 사람의 지식으로 이해도 안 되고 믿어지지도 않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영적 믿음을 가지지 못한 사람은 이러한 사실들이 마음에 믿어지지 않으니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육적 믿음은 구하는 것을 응답받을 수 없으며 구원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죽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영적 믿음은 산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무에서 유의 창조가 믿어지는 믿음입니다. 즉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내 생각과 지식에 맞추지 않으니 하나님 말씀이 그대로 믿어집니다. 그래서 영적 믿음은 순종할 수 없는 것을 행하는 믿음, 즉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믿음이며, 구원에 이르게 하는 산 믿음입니다.
이러한 영적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열심히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 하였으니 믿음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서는 진리를 알 수 없으니 믿음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열심히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며 말씀을 듣고, 각종 모임을 통해 말씀이나 간증을 들으면 믿음이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진리의 지식이 심겨지고 지식적인 믿음이 생겨난다고 해서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고 했습니다. 열심히 기도하며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 진리에 위배되는 비진리를 버리며 말씀대로 행해 나가야 지식적인 믿음이 받침대가 되어 영적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4. 의인이 되어 믿음으로 살아가는 방법
아브라함은 항상 자기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순종했습니다. 어떠한 상황에서도 영적 믿음으로 오직 순종하며 믿음의 행군을 했던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과정에서 앞길을 가로막는 홍해를 어떻게 건넜습니까?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는 범람하는 요단강을 어떻게 건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렸습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하는 영적 믿음을 소유했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응답으로 축복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생활 가운데도 앞길을 가로막는 홍해, 무너뜨려야 할 여리고 성과 범람하는 요단강 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가 닥쳤을 때 의로운 중심으로 진리 안에 사는 것이 곧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상대가 나를 때렸을 때 육적 믿음으로는 같이 때리고 미워하지만, 영적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합니다. 이러한 산 믿음, 행하는 믿음이 있을 때 원수 마귀가 물러가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아가는 의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며 진리대로 행합니다. 간혹 어떻게 계명을 다 지킬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고 했는데 우리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으로 □□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은 □□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2. 로마서 10장 10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3.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을 받으며 마음 중심에서 얼마나 감사하고 있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8편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믿음이 장성하여 의인이 되는 만큼 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영광이 다릅니다.
'해의 영광'이란 악을 온전히 버리고 성결하여 3천층 또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을 뜻합니다.
'달의 영광'이란 2천층에 가는 사람의 영광을 뜻하며, '별의 영광'은 1천층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을 말합니다. 또한 별마다 영광이 다릅니다. 밤하늘의 무수한 별이 각각 크기나 밝기가 다르듯이 영광에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천국에 가서 받을 상급과 영광이 다릅니다. 낙원에 들어 가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 한 일이 없으므로 상급이 없고 아예 영광이라고 표현하지 않습니다.(참고 말씀 고전 15:39~41)
2009-02-20
제8과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의
롬 5:18
읽을말씀 : 롬 5:18 | 외울말씀 : 잠 4:23 l 참고 말씀 : 마 22:37~39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한 행동은 무엇이며, 우리가 생명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어떤 의를 이루어야 하는지 알게 한다.
일반적으로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을 의롭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란 사람들이 말하는 의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의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의로써 우리가 참 생명과 영생을 얻도록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의인이 되어 참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1. 의의 한 행동과 예수 그리스도의 의
로마서 5장 18절에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했는데 여기서 '한 범죄'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의 범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에서 자녀 된 권세를 누리며 풍요롭게 살도록 축복하면서 선악과만은 먹지 말도록 금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사단의 사주를 받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이로 인해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사망이 임하게 되었고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게 된 것입니다.
원래 사람은 영 혼 육으로 창조되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하는 영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없고 영생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눈물, 고통, 질병, 사망이 있는 이 땅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결국 범죄한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도 죄인이 되어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러면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하여 죄를 지었는데 왜 그 후손까지 죄인이 된 것일까요? 사람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태어나는데 그 안에는 부모의 기가 들어 있어 부모의 생김새, 성품, 취향, 습관 등이 닮아 나옵니다. 이처럼 부모의 기가 자녀에게 전달되듯이 부모가 가지고 있는 죄성도 유전되는 것입니다. 태어난 지 1, 2년밖에 안 되는 아기들도 미워하고 시기하며 분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고백한 것처럼 범죄한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기(氣)속에 죄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어 사망에 이를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서 만세 전에 구원의 길을 예비하고 감추어 두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입니다.
때가 이르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아무 죄없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여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의의 한 행동으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영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2.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의
그러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전도서 12장 13절에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자체를 죄라고 하는 것이며(요 16:9) 의인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만일 자기를 낳아 준 부모를 배신한다면 인륜을 저버린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원수 마귀를 따른다면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그 말씀을 지킨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주만물과 우리를 지은 창조주이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또 스스로 계시며,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실 뿐 아니라, 천국과 지옥을 예비하시고 공의의 심판자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처럼 값없이 구원의 문에 들어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하듯이 믿음으로 천국 시민권을 소유했으면 하늘나라의 법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의의 법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것을 지키면 의에 이르고 결국 천국에 들어가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둘째로, 생각을 지키고 마음의 악을 버리며 행함이 온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원죄도 없고 자범죄도 없으시니 악의 모양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본받아 의로운 사람이 되려면 생각을 지키고 마음의 악을 버리며 행함이 온전해야 합니다.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마음인 진리가 임해 생각을 통해 죄를 짓지 않고, 성령의 주관 인도를 받아 행함이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머리로 불법을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악한 행동이 나옵니다. 탐욕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부귀영화를 누릴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마음에 심습니다. 이 마음이 요동하여 결국 악한 행동으로 나오지요. 즉 탐심이 마음 안에 있기 때문에 생각을 통해 사단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사기나 횡령, 도둑질 등 악한 행동으로 나온다는 말입니다. 만일 마음 자체에 악이 없으면 생각을 통해 사단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거짓을 생각하기 때문에 거짓말이 나오며 간음을 생각하기 때문에 간음이 행동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서 죄의 쓴 뿌리를 빼내면 생각을 통해 죄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무엇을 보아도 선으로 보고, 선으로 말하고, 선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도를 지켜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의 도를 다 지켜 행하여 표본이 되어 주셨으니 우리도 그대로 본받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를 지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규례에 대해 흠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계명이란 대표적으로 십계명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 66권 안에 담긴 하나님의 명령을 축약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십계명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있으므로 참뜻을 알고 지켜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첫째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둘째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39)는 대로 행해야 하지요. 예수님은 말씀대로 다 행하시며 다투거나 들레지 않으셨고, 틈나는 대로 낮이나 밤이나 무시로 기도하시며 규례도 온전히 지켰습니다.
규례란 하나님께서 정한 규칙으로 가령 유월절을 지키거나 십일조를 드리는 것 등입니다. 유월절은 오늘날 부활절에 해당되는데 예수님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지요.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기독교인은 이스라엘이 지키는 여러 의식의 영적 의미를 계승하여 오늘날도 지키고 있습니다. 즉 구약 시대의 육의 할례가 신약 시대에는 마음의 할례를 의미하고, 구약 시대의 제사법을 계승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 즉 계명과 규례를 지켜 행하면 참된 생명을 얻어 의롭게 됩니다. 사람이 의롭지 못하므로 분쟁이 생기고 원수 맺으며 질병이 오기 마련인데, 하나님의 모든 계명과 규례를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면 어떤 질병도 틈타지 않고(출 15:26) 만사형통한 삶과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만민 위에 뛰어난 사람,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신 28:1~14).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잠언 4장 23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의를 얼마나 행하고 있는지 체크해 봅시다.
a. □ 매일 성경 1장 이상 읽고 있나요?
b. □ 주보에 나오는 성구를 매일 외우고 있나요?
c. □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나요?
d. □ 거짓말 등 버려야 할 나쁜 습관을 버렸나요?
e. □ 내가 말한 대로, 마음에 정한 대로 실천하나요?
f. □ 늘 복음을 전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7편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읽어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혼이란? 사람의 뇌세포 안에는 기억장치가 있는데 이 기억장치와 그 안에 기억된 지식들과 그것을 떠올리는 생각의 작용을 통틀어 혼이라 한다. 이러한 혼이 있으므로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다.
생각이란? 뇌의 기억장치에 입력된 지식을 혼의 작용을 통해 되살려 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크게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영의 생각으로 구분할 수 있다.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한 행동은 무엇이며, 우리가 생명에 이르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어떤 의를 이루어야 하는지 알게 한다.
일반적으로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을 의롭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의란 사람들이 말하는 의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의 의는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의로써 우리가 참 생명과 영생을 얻도록 인도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의인이 되어 참 생명을 얻을 수 있을까요?
1. 의의 한 행동과 예수 그리스도의 의
로마서 5장 18절에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했는데 여기서 '한 범죄'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의 범죄를 말합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에덴동산에서 자녀 된 권세를 누리며 풍요롭게 살도록 축복하면서 선악과만은 먹지 말도록 금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고 사단의 사주를 받은 뱀의 꼬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었습니다. 이로 인해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사망이 임하게 되었고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신 대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게 된 것입니다.
원래 사람은 영 혼 육으로 창조되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하는 영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의 범죄로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없고 영생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아름답고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눈물, 고통, 질병, 사망이 있는 이 땅에서 살게 된 것입니다. 결국 범죄한 아담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도 죄인이 되어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러면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하여 죄를 지었는데 왜 그 후손까지 죄인이 된 것일까요? 사람은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태어나는데 그 안에는 부모의 기가 들어 있어 부모의 생김새, 성품, 취향, 습관 등이 닮아 나옵니다. 이처럼 부모의 기가 자녀에게 전달되듯이 부모가 가지고 있는 죄성도 유전되는 것입니다. 태어난 지 1, 2년밖에 안 되는 아기들도 미워하고 시기하며 분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51편 5절에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고백한 것처럼 범죄한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기(氣)속에 죄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어 사망에 이를 것을 이미 아셨습니다. 그래서 만세 전에 구원의 길을 예비하고 감추어 두셨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입니다.
때가 이르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아무 죄없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여 주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의의 한 행동으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의롭다 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영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2.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의
그러면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아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전도서 12장 13절에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 자체를 죄라고 하는 것이며(요 16:9) 의인이 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입니다. 만일 자기를 낳아 준 부모를 배신한다면 인륜을 저버린 죄인이라고 손가락질합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고 원수 마귀를 따른다면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그 말씀을 지킨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우주만물과 우리를 지은 창조주이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또 스스로 계시며, 처음과 나중이 되시고, 시작과 끝이 되실 뿐 아니라, 천국과 지옥을 예비하시고 공의의 심판자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구원의 문을 열어 주셨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이처럼 값없이 구원의 문에 들어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나라의 법을 지켜야 하듯이 믿음으로 천국 시민권을 소유했으면 하늘나라의 법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의의 법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그것을 지키면 의에 이르고 결국 천국에 들어가며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둘째로, 생각을 지키고 마음의 악을 버리며 행함이 온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원죄도 없고 자범죄도 없으시니 악의 모양이 전혀 없으셨습니다.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본받아 의로운 사람이 되려면 생각을 지키고 마음의 악을 버리며 행함이 온전해야 합니다.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의 마음인 진리가 임해 생각을 통해 죄를 짓지 않고, 성령의 주관 인도를 받아 행함이 온전케 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머리로 불법을 생각하기 때문에 결국 악한 행동이 나옵니다. 탐욕이 있는 사람은 '어떻게 부귀영화를 누릴까' 하는 생각을 먼저 하고, 그 다음에 마음에 심습니다. 이 마음이 요동하여 결국 악한 행동으로 나오지요. 즉 탐심이 마음 안에 있기 때문에 생각을 통해 사단의 유혹을 받아들이고 사기나 횡령, 도둑질 등 악한 행동으로 나온다는 말입니다. 만일 마음 자체에 악이 없으면 생각을 통해 사단이 역사할 수 없습니다. 거짓을 생각하기 때문에 거짓말이 나오며 간음을 생각하기 때문에 간음이 행동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에서 죄의 쓴 뿌리를 빼내면 생각을 통해 죄가 들어오지 않습니다. 무엇을 보아도 선으로 보고, 선으로 말하고, 선으로 행동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도를 지켜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계시는 동안 하나님의 도를 다 지켜 행하여 표본이 되어 주셨으니 우리도 그대로 본받아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를 지켜 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규례에 대해 흠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계명이란 대표적으로 십계명을 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성경 66권 안에 담긴 하나님의 명령을 축약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십계명에는 깊은 영적 의미가 있으므로 참뜻을 알고 지켜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십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가장 큰 계명이라고 말씀하신 "첫째는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둘째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7~39)는 대로 행해야 하지요. 예수님은 말씀대로 다 행하시며 다투거나 들레지 않으셨고, 틈나는 대로 낮이나 밤이나 무시로 기도하시며 규례도 온전히 지켰습니다.
규례란 하나님께서 정한 규칙으로 가령 유월절을 지키거나 십일조를 드리는 것 등입니다. 유월절은 오늘날 부활절에 해당되는데 예수님도 유월절을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지요. 영적 이스라엘인 우리 기독교인은 이스라엘이 지키는 여러 의식의 영적 의미를 계승하여 오늘날도 지키고 있습니다. 즉 구약 시대의 육의 할례가 신약 시대에는 마음의 할례를 의미하고, 구약 시대의 제사법을 계승하여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도 즉 계명과 규례를 지켜 행하면 참된 생명을 얻어 의롭게 됩니다. 사람이 의롭지 못하므로 분쟁이 생기고 원수 맺으며 질병이 오기 마련인데, 하나님의 모든 계명과 규례를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면 어떤 질병도 틈타지 않고(출 15:26) 만사형통한 삶과 영생 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하여 만민 위에 뛰어난 사람, 진정 복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신 28:1~14).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잠언 4장 23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생명에 이르게 하는 의를 얼마나 행하고 있는지 체크해 봅시다.
a. □ 매일 성경 1장 이상 읽고 있나요?
b. □ 주보에 나오는 성구를 매일 외우고 있나요?
c. □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나요?
d. □ 거짓말 등 버려야 할 나쁜 습관을 버렸나요?
e. □ 내가 말한 대로, 마음에 정한 대로 실천하나요?
f. □ 늘 복음을 전하며 이웃 사랑을 실천하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7편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읽어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혼이란? 사람의 뇌세포 안에는 기억장치가 있는데 이 기억장치와 그 안에 기억된 지식들과 그것을 떠올리는 생각의 작용을 통틀어 혼이라 한다. 이러한 혼이 있으므로 기억하고 생각할 수 있다.
생각이란? 뇌의 기억장치에 입력된 지식을 혼의 작용을 통해 되살려 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크게 하나님과 원수 된 육신의 생각,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영의 생각으로 구분할 수 있다.
2009-02-13
제7과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마 23:13~33
읽을말씀 : 마 23:13~33 | 외울말씀 : 롬 12:9 l 참고 말씀 : 마 11:20~24
교육목표 : 고통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의 모습을 철저히 버리게 한다.
오늘날 부모 자녀 간이나 부부, 형제, 이웃 사이에 이런저런 악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족 간에 재산 문제로 고소하는가 하면, 자기 유익에 따라 배신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많은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자신에게도 큰 고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 가운데 계시므로 하나님의 자녀들도 선에 속하기를 간절히 원하시지요.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1. 고통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을 미워하라
세상에서는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을 선하다고 하지만 도덕이나 양심도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보면 선이 아니거나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인 것도 있습니다. 모름지기 선의 절대적 기준은 오직 하나님 말씀이며 이에 어긋난 것은 모두 악입니다.
마음에 악이 있으면 어느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습니다. 비록 조그마한 악의 모양일지라도 그 악이 자라면 사단이 역사하여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죄 가운데 빠져들지요. 악은 자신과 상대에게 고통과 아픔이 되므로 모양이라도 미워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면 자연히 멀리하게 되고 생각지도 않으며 행치 않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악을 미워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질병이 틈타거나 시험 환난이 오는 것은 마음의 악을 행함으로 나타내는 육체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육체의 일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짐승과 다름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며 사람의 본분을 찾도록 징계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비진리의 생각이나 육신의 일 때문에 시험 환난이 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육신의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육체의 일로 발전할 수 있으니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2. 완악한 마음을 버리고 선에 속한 자가 되어야
만일 하나님의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면 이것도 악 중의 악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0~2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라신과 벳새다가 회개치 않자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책망하시고, 가버나움에 대하여는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큰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할 만한 놀라운 권능을 보았으니 그 가르침을 좇아 회개하고 악을 버려야 할 텐데 오히려 그들은 배척하였지요.
그런가 하면 마태복음 12장 38~39절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몇 사람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시지요. 가령 하나님을 보여 주면 믿겠다거나, 죽은 자를 살리면 믿겠다는 사람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믿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흠을 잡고 배척하며 잡아 죽일까 궁리하면서 믿으려 하지 않았지요.
오늘날도 하나님의 종과 일꾼들을 통해 수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도 믿지 않고 판단 정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속에 악이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일을 버리지 않아 육체의 일을 자꾸 행하다 보니 점점 심령이 무뎌지고 완악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양심이 무뎌져 화인 맞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깨닫지를 못하니 회개할 수도 없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육체의 일을 끊고 그 다음에는 마음에 있는 육신의 일을 버려야지요. 이렇게 죄와 악을 버려 나갈 때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요일 1:7, 3:9). 이런 사람의 얼굴에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며 어떠한 질병도 치료받고 가정이나 일터, 사업터 등 어떤 문제라도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3. 우리가 미워해야 할 악의 모양들
그러면 선에 속한 자가 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악을 미워해야 하는지 마태복음 23장 13~33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는 경우
천국 문이란 복음 안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우리가 진리를 알고 지켜 행함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말씀을 지키는 척 했지만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 뜻과는 반대로 행했습니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속에는 불법과 악이 가득하였므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온갖 궤계를 꾸며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오늘날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손가락질받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은 물론 상대도 구원받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 교인 하나가 생기면 자기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경우
시집살이를 호되게 한 며느리가 정작 시어머니가 되면 더 심하게 시집살이를 시킨다고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배여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누구에게 배우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사고방식, 언어 행동이 크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같은 사람을 만나 신앙생활을 하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함께 악으로 빠지게 되지요.
예를 들면 교회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인도한 사람의 언어와 행동으로 인해 출석하지 않거나 주님을 믿지 않는 경우, 머리 된 일꾼이 본이 되지 못해 교구나, 구역, 기관의 부흥을 막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3) 탐심, 거짓, 욕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잘못 전달하는 경우
하나님께 무엇을 맹세하거나 서원한 것은 마땅히 지키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자신의 탐심, 욕심을 따라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영이 아닌 썩을 육입니다. 가령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말씀은 소홀히 하고 헌금 작정에만 강조한다면 그는 소경 된 인도자입니다. 어떻게 하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천국에 들어갈 것인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4)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린 경우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버린 '의와 인과 신'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의'란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을 좇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인'이란 인간의 삶 속에서 자기 본분을 다하는 것으로,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짐승만도 못할 수 있고 법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신'이란 믿음으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입니다(벧후 1:4). 악을 버리고 계명을 온전히 지켜야 신의 성품을 참예할 수 있습니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의와 인과 신은 소홀히 하고 예물만 중요시했기 때문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물보다도 상한 심령 곧 회개하는 마음을 더 기뻐하십니다(시 51:16~17). 가르치는 사람은 먼저 죄를 지적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고, 십일조나 기타 것을 가르쳐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해야 합니다.
5)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경우
투명한 크리스털 잔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아름답게 빛날 수도, 추하고 더러운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 안에 미움, 시기, 질투 등 악이 가득하다면 어찌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니 말씀으로 자신을 조명하여 탐욕과 방탕 등 마음의 악을 버려야 합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면 겉모습은 자연히 깨끗해집니다.
6) 회칠한 무덤과 같은 경우
아무리 호화롭게 꾸며 놓은 무덤이라도 속에는 벌레가 우글거리며 시체가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마음속에는 더러운 악이 있으면서 겉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척 가장하는 가증한 사람을 회칠한 무덤이라 합니다. 즉 마음속에는 미움, 시기, 질투, 간음 등 많은 죄가 있으면서 선하고 지혜로우며 온전한 척하며 상대를 권면하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7) 자신은 여전히 의롭다고 여기는 경우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다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예하지 않았을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조상보다 선하거나 의롭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악한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진리를 듣고 마음에 걸리는데도 여전히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하며 회개치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말씀에 자신을 조명하여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신속히 벗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로마서 12장 9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악을 버리고 선에 속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엇인가요?
3. 내 안에서 책망받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모습을 찾아보세요. 혹여 나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상대가 교회나 목자를 멀리한 한 적은 없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6편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죄'와 '악'의 차이
'죄'란 마음의 악이 구체적인 모양으로 나타난 것이며 '악'은 마음 안에 있는 '죄의 속성'이다. 그래서 '악'은 보이지 않는 땅속의 뿌리와 같고 '죄'는 눈에 보이는 줄기와 잎, 열매 부분과 같다. 뿌리가 없으면 나무의 줄기와 잎, 열매가 있을 수 없듯이 악으로 인해 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교육목표 : 고통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하는 이유를 알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의 모습을 철저히 버리게 한다.
오늘날 부모 자녀 간이나 부부, 형제, 이웃 사이에 이런저런 악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가족 간에 재산 문제로 고소하는가 하면, 자기 유익에 따라 배신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많은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자신에게도 큰 고통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 가운데 계시므로 하나님의 자녀들도 선에 속하기를 간절히 원하시지요. 참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1. 고통과 멸망으로 인도하는 악을 미워하라
세상에서는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을 선하다고 하지만 도덕이나 양심도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보면 선이 아니거나 하나님의 뜻과 정반대인 것도 있습니다. 모름지기 선의 절대적 기준은 오직 하나님 말씀이며 이에 어긋난 것은 모두 악입니다.
마음에 악이 있으면 어느 때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알 수 없습니다. 비록 조그마한 악의 모양일지라도 그 악이 자라면 사단이 역사하여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죄 가운데 빠져들지요. 악은 자신과 상대에게 고통과 아픔이 되므로 모양이라도 미워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면 자연히 멀리하게 되고 생각지도 않으며 행치 않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악을 미워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질병이 틈타거나 시험 환난이 오는 것은 마음의 악을 행함으로 나타내는 육체의 일을 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육체의 일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짐승과 다름없으므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며 사람의 본분을 찾도록 징계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있는 비진리의 생각이나 육신의 일 때문에 시험 환난이 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육신의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육체의 일로 발전할 수 있으니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2. 완악한 마음을 버리고 선에 속한 자가 되어야
만일 하나님의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않는다면 이것도 악 중의 악입니다. 마태복음 11장 20~2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라신과 벳새다가 회개치 않자 "심판 날에 두로와 시돈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책망하시고, 가버나움에 대하여는 "심판 날에 소돔 땅이 너보다 견디기 쉬우리라"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하셨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큰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할 만한 놀라운 권능을 보았으니 그 가르침을 좇아 회개하고 악을 버려야 할 텐데 오히려 그들은 배척하였지요.
그런가 하면 마태복음 12장 38~39절에 서기관과 바리새인 몇 사람이 예수님께 표적을 보여 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한다고 하시지요. 가령 하나님을 보여 주면 믿겠다거나, 죽은 자를 살리면 믿겠다는 사람들처럼, 순수한 마음으로 믿으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흠을 잡고 배척하며 잡아 죽일까 궁리하면서 믿으려 하지 않았지요.
오늘날도 하나님의 종과 일꾼들을 통해 수많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서도 믿지 않고 판단 정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 마음속에 악이 있다는 것도 깨닫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일을 버리지 않아 육체의 일을 자꾸 행하다 보니 점점 심령이 무뎌지고 완악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양심이 무뎌져 화인 맞게 되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깨닫지를 못하니 회개할 수도 없고 예수님을 영접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먼저 육체의 일을 끊고 그 다음에는 마음에 있는 육신의 일을 버려야지요. 이렇게 죄와 악을 버려 나갈 때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요일 1:7, 3:9). 이런 사람의 얼굴에는 기쁨과 감사가 넘치며 어떠한 질병도 치료받고 가정이나 일터, 사업터 등 어떤 문제라도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3. 우리가 미워해야 할 악의 모양들
그러면 선에 속한 자가 되기 위하여 구체적으로 어떤 악을 미워해야 하는지 마태복음 23장 13~33절을 중심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는 경우
천국 문이란 복음 안으로 들어가는 문으로 우리가 진리를 알고 지켜 행함으로 천국에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말씀을 지키는 척 했지만 마음이 완악하여 하나님 뜻과는 반대로 행했습니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속에는 불법과 악이 가득하였므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온갖 궤계를 꾸며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오늘날도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처럼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손가락질받는 사람이 있다면 자신은 물론 상대도 구원받지 못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2) 교인 하나가 생기면 자기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 경우
시집살이를 호되게 한 며느리가 정작 시어머니가 되면 더 심하게 시집살이를 시킨다고 합니다. 자기도 모르게 배여 그대로 답습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누구에게 배우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가르치는 사람의 마음가짐과 사고방식, 언어 행동이 크게 영향을 끼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서기관이나 바리새인 같은 사람을 만나 신앙생활을 하면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함께 악으로 빠지게 되지요.
예를 들면 교회 온 지 얼마 안 되었는데 인도한 사람의 언어와 행동으로 인해 출석하지 않거나 주님을 믿지 않는 경우, 머리 된 일꾼이 본이 되지 못해 교구나, 구역, 기관의 부흥을 막는 경우 등이 있습니다.
3) 탐심, 거짓, 욕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잘못 전달하는 경우
하나님께 무엇을 맹세하거나 서원한 것은 마땅히 지키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자신의 탐심, 욕심을 따라 가르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들이 추구하는 것은 영이 아닌 썩을 육입니다. 가령 교회에서 가르치는 사람이 말씀은 소홀히 하고 헌금 작정에만 강조한다면 그는 소경 된 인도자입니다. 어떻게 하면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천국에 들어갈 것인지를 가르쳐야 합니다.
4)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린 경우
서기관과 바리새인이 버린 '의와 인과 신'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의'란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을 좇아 순종하는 것입니다. '인'이란 인간의 삶 속에서 자기 본분을 다하는 것으로,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 짐승만도 못할 수 있고 법 없이 살 수 있습니다. '신'이란 믿음으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입니다(벧후 1:4). 악을 버리고 계명을 온전히 지켜야 신의 성품을 참예할 수 있습니다.
서기관들이나 바리새인들은 의와 인과 신은 소홀히 하고 예물만 중요시했기 때문에 책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물보다도 상한 심령 곧 회개하는 마음을 더 기뻐하십니다(시 51:16~17). 가르치는 사람은 먼저 죄를 지적하여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하고, 십일조나 기타 것을 가르쳐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해야 합니다.
5)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한 경우
투명한 크리스털 잔에 무엇을 담느냐에 따라 아름답게 빛날 수도, 추하고 더러운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마음 안에 미움, 시기, 질투 등 악이 가득하다면 어찌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는 분이시니 말씀으로 자신을 조명하여 탐욕과 방탕 등 마음의 악을 버려야 합니다. 마음이 깨끗해지면 겉모습은 자연히 깨끗해집니다.
6) 회칠한 무덤과 같은 경우
아무리 호화롭게 꾸며 놓은 무덤이라도 속에는 벌레가 우글거리며 시체가 있을 뿐입니다. 이처럼 마음속에는 더러운 악이 있으면서 겉은 깨끗하고 아름다운 척 가장하는 가증한 사람을 회칠한 무덤이라 합니다. 즉 마음속에는 미움, 시기, 질투, 간음 등 많은 죄가 있으면서 선하고 지혜로우며 온전한 척하며 상대를 권면하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7) 자신은 여전히 의롭다고 여기는 경우
외식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우리가 조상 때에 있었다면 선지자의 피를 흘리는 데 참예하지 않았을 것이라"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조상보다 선하거나 의롭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얼마나 악한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고 진리를 듣고 마음에 걸리는데도 여전히 자신은 의롭다고 생각하며 회개치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말씀에 자신을 조명하여 걸리는 부분이 있다면 신속히 벗어 버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로마서 12장 9절을 다 함께 외워봅시다.
2. 악을 버리고 선에 속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무엇인가요?
3. 내 안에서 책망받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과 같은 모습을 찾아보세요. 혹여 나의 말이나 행동 때문에 상대가 교회나 목자를 멀리한 한 적은 없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6편 '생명으로 이르게 하는 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죄'와 '악'의 차이
'죄'란 마음의 악이 구체적인 모양으로 나타난 것이며 '악'은 마음 안에 있는 '죄의 속성'이다. 그래서 '악'은 보이지 않는 땅속의 뿌리와 같고 '죄'는 눈에 보이는 줄기와 잎, 열매 부분과 같다. 뿌리가 없으면 나무의 줄기와 잎, 열매가 있을 수 없듯이 악으로 인해 죄가 성립되는 것이다.
2009-02-06
제6과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마 3:5~10
읽을말씀 : 마 3:5~10 | 외울말씀 : 마 3:10, 참고 말씀 : 갈 5:22~23
교육목표 :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책망한 이유를 알아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한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치며 죄를 자복하는 사람마다 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세례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하면서 엄히 책망합니다.
1. 독사의 자식들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당시 유대교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중에 바리새인은 성별된 자로 자처했습니다. 그들은 내세에 대해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심판을 믿고 모세의 율법과 장로의 유전을 철저히 지킨 사람들로서 상당한 사회적인 지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전문가 중심의 중류 계급이라면 사두개인은 부유한 귀족층과 제사장 계급을 대표하는 상류층 사람들입니다. 사두개인은 바리새인들과 달리 세속 세력과 적당히 타협하였으며, 헬라 문화를 수용하고 지지했습니다. 이들은 기록된 율법만을 경전으로 인정했고, 부활, 영혼의 영원성, 천사,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은 거부했으며 하나님의 나라도 현세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이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이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6장 1~4절을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시험했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치시자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고(마 9:34),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의논하였습니다(마 12:14).
이처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시기 질투하며 마귀의 역사로 판단 정죄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혹여 여러분은 믿음이 없을 때 하나님 능력으로 벙어리가 말하며 귀신이 나가는 등 온갖 역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정죄하지는 않았습니까? 성경대로 기사와 표적을 베풀며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교회를 이단이다, 잘못되었다고 하지는 않았습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악의가 가득하여 시기, 질투, 미움, 교만, 판단, 정죄 등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하였습니다. 형식적인 율법 준수와 세속적인 명예만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들은 옛 뱀(계 12:9), 곧 사단의 사주를 받았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이를 암시하기 위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표현했지요.
2.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하나님의 자녀라면 빛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만일 빛과 반대인 어둠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하고 책망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에 순종하고 매사에 선과 사랑으로 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여전히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이 가득하니 어찌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고 여전히 원수 마귀의 뜻을 좇아 살아간다면 차라리 돌들로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는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여 인간 경작을 하시는 이유는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하면서 경고합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으니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한 대로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져진다는 것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지옥불에 던져진다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했습니다. 첫째 사망은 육의 생명이 끝남으로 죽는 것이라면 둘째 사망은 사람의 주인인 영혼이 심판받아 지옥에 던져지는 것을 말합니다.
지옥은 불과 유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믿는다고 해도 불의를 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니 지옥의 불못에 들어갑니다. 이때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심한 악을 행하거나 하나님을 심히 대적하고 거짓 선지자같이 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인도한 사람들은 불못보다 칠배나 뜨거운 유황못에 던져집니다(계 19:20).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를 촉구하는 동시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3.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은 아담의 불순종 때문에 세상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의 자녀로 태어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행하면 참 믿음이 없다는 증거이므로 구원에 이르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빛과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빛의 열매, 사랑의 열매, 성령의 열매 등 선하고 아름다운 진리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열매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듯이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거나 무례히 행치 않는 등 영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생명까지라도 줄 수 있는 희생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죄와 악과 불법을 버리고 성결한 만큼 이룰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열매는 희락입니다. 좋은 일뿐만 아니라 어떠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소망 가운데 항상 기뻐하는 사람은 염려 근심하지 않으며 어떠한 문제가 와도 믿음으로 구하니 그대로 응답을 받습니다.
세 번째 열매인 화평은 아무와도 걸림이 없는 마음입니다. 마음속에 미움이나 다툼, 이기적인 욕심이 없기에 상대를 위하고 희생하며 섬기고 무례하지 않으므로 화평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열매는 오래 참음입니다. 이해하고 용서하여 진리 안에서 참는 것입니다. 화가 나고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지만 억지로 눌러서 참는 것이 아니라 악을 버리고 선과 진리로 채우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이해하고 품으며 아무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용서나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치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마음에 악을 버리기 위해 오래 참으며 하나님 앞에 올린 기도와 간구가 응답이 올 때까지 오래 참는 것을 말합니다.
다섯 번째 열매인 자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며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자기가 옳다는 마음이 있다면 자비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모든 것을 넓게 받아들이며 사랑으로 상대를 돌아볼 때에 비로소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열매는 양선으로 주님의 마음을 닮아 다투지도 들레지도 않으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는 마음입니다. 모든 죄를 벗어 버리고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선을 추구하는 진리의 마음입니다.
일곱 번째 열매는 충성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를 싸워 버리며 진리를 이루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또 교회나 가정, 직장 등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모든 사명을 감당하는 온 집의 충성이 있습니다.
여덟 번째 열매는 온유인데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솜털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말합니다. 온유해지면 누가 찔러도 아파하거나 상처받지 않습니다. 솜에 돌을 던지면 소리없이 감싸듯이 많은 사람이 쉴 수 있는 그늘이 되며 포용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절제의 열매가 맺히면 모든 면에서 안정을 누리며 질서 속에서 때를 맞추어 합력하여 열매 맺을 수 있으니 아름답고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합당한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서는 이를 믿음으로 여기시고 기뻐하십니다. 비록 악을 행했어도 중심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은 회개를 받으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시편 103편 12절에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한 대로 구원해 주십니다. 하물며 의를 지켜서 선을 행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들이 구하지 않은 마음의 소원까지도 아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성령의 열매, 빛의 열매를 맺으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엄히 책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다 함께 외워 봅시다.
3. 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후손처럼 살아가고 있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5편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빛의 열매란?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리대로 행할 때 나타나는 모든 열매를 말하며 에베소서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 했습니다.
'착함'이란 악이 없는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유익을 좇아 악을 행치 않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의로움'이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에 믿어야 순종의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했습니다(롬 10:10).
'진실함'이란 거짓되지 않고 약속을 지키며, 어떤 상황에도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을 말합니다.
교육목표 :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을 책망한 이유를 알아 자신의 죄악을 발견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게 한다.
세례 요한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고 외치며 죄를 자복하는 사람마다 물로 세례를 베풀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 오는 것을 보고 세례 요한은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하면서 엄히 책망합니다.
1. 독사의 자식들아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당시 유대교를 대표하는 사람들입니다. 그중에 바리새인은 성별된 자로 자처했습니다. 그들은 내세에 대해 의인의 부활과 악인의 심판을 믿고 모세의 율법과 장로의 유전을 철저히 지킨 사람들로서 상당한 사회적인 지위를 갖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전문가 중심의 중류 계급이라면 사두개인은 부유한 귀족층과 제사장 계급을 대표하는 상류층 사람들입니다. 사두개인은 바리새인들과 달리 세속 세력과 적당히 타협하였으며, 헬라 문화를 수용하고 지지했습니다. 이들은 기록된 율법만을 경전으로 인정했고, 부활, 영혼의 영원성, 천사, 영적 존재에 대한 믿음은 거부했으며 하나님의 나라도 현세적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면 세례 요한이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이들을 독사의 자식이라고 표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6장 1~4절을 보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와서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서 오는 표적 보이기를 청하니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요나의 표적밖에는 보여 줄 표적이 없느니라 하시고 저희를 떠나가시다" 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시험했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일을 대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귀신들려 벙어리 된 자를 고치시자 "귀신의 왕을 빙자하여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고(마 9:34),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신 예수님을 어떻게 죽일까 의논하였습니다(마 12:14).
이처럼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예수님을 시기 질투하며 마귀의 역사로 판단 정죄하고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니 어찌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혹여 여러분은 믿음이 없을 때 하나님 능력으로 벙어리가 말하며 귀신이 나가는 등 온갖 역사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정죄하지는 않았습니까? 성경대로 기사와 표적을 베풀며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교회를 이단이다, 잘못되었다고 하지는 않았습니까?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악의가 가득하여 시기, 질투, 미움, 교만, 판단, 정죄 등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하였습니다. 형식적인 율법 준수와 세속적인 명예만을 추구한 것입니다. 그들은 옛 뱀(계 12:9), 곧 사단의 사주를 받았기 때문에 세례 요한은 이를 암시하기 위해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표현했지요.
2.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하나님의 자녀라면 빛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만일 빛과 반대인 어둠 가운데 있다면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하고 책망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에 순종하고 매사에 선과 사랑으로 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여전히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이 가득하니 어찌 아브라함의 후손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들처럼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고 여전히 원수 마귀의 뜻을 좇아 살아간다면 차라리 돌들로 아브라함의 자손을 만드는 것이 낫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여 인간 경작을 하시는 이유는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은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지우리라" 하면서 경고합니다.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다는 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으니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한 대로 심판받는다는 것입니다.
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마다 찍어 불에 던져진다는 것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지옥불에 던져진다는 말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8절에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했습니다. 첫째 사망은 육의 생명이 끝남으로 죽는 것이라면 둘째 사망은 사람의 주인인 영혼이 심판받아 지옥에 던져지는 것을 말합니다.
지옥은 불과 유황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이나 믿는다고 해도 불의를 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하나님과 상관이 없으니 지옥의 불못에 들어갑니다. 이때 사람으로서 할 수 없는 심한 악을 행하거나 하나님을 심히 대적하고 거짓 선지자같이 많은 사람을 지옥으로 인도한 사람들은 불못보다 칠배나 뜨거운 유황못에 던져집니다(계 19:20). 그래서 세례 요한은 회개를 촉구하는 동시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강조한 것입니다.
3. 회개에 합당한 열매란 무엇인가?
모든 사람은 아담의 불순종 때문에 세상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의 자녀로 태어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여전히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행하면 참 믿음이 없다는 증거이므로 구원에 이르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빛과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빛의 열매, 사랑의 열매, 성령의 열매 등 선하고 아름다운 진리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가운데 대표적으로 갈라디아서 5장 22~23절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 열매는 사랑의 열매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듯이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거나 자랑하지 않고 교만하거나 무례히 행치 않는 등 영적인 사랑을 말합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생명까지라도 줄 수 있는 희생적인 사랑을 뜻합니다. 이러한 사랑은 죄와 악과 불법을 버리고 성결한 만큼 이룰 수 있습니다.
두 번째 열매는 희락입니다. 좋은 일뿐만 아니라 어떠한 환경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천국의 소망 가운데 항상 기뻐하는 사람은 염려 근심하지 않으며 어떠한 문제가 와도 믿음으로 구하니 그대로 응답을 받습니다.
세 번째 열매인 화평은 아무와도 걸림이 없는 마음입니다. 마음속에 미움이나 다툼, 이기적인 욕심이 없기에 상대를 위하고 희생하며 섬기고 무례하지 않으므로 화평할 수 있습니다.
네 번째 열매는 오래 참음입니다. 이해하고 용서하여 진리 안에서 참는 것입니다. 화가 나고 속에서는 부글부글 끓지만 억지로 눌러서 참는 것이 아니라 악을 버리고 선과 진리로 채우는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라도 이해하고 품으며 아무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용서나 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치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마음에 악을 버리기 위해 오래 참으며 하나님 앞에 올린 기도와 간구가 응답이 올 때까지 오래 참는 것을 말합니다.
다섯 번째 열매인 자비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하며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자기가 옳다는 마음이 있다면 자비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모든 것을 넓게 받아들이며 사랑으로 상대를 돌아볼 때에 비로소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섯 번째 열매는 양선으로 주님의 마음을 닮아 다투지도 들레지도 않으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는 마음입니다. 모든 죄를 벗어 버리고 성령 안에서 아름다운 선을 추구하는 진리의 마음입니다.
일곱 번째 열매는 충성입니다. 내 안에 있는 죄를 싸워 버리며 진리를 이루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는 것입니다. 또 교회나 가정, 직장 등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모든 사명을 감당하는 온 집의 충성이 있습니다.
여덟 번째 열매는 온유인데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는 솜털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말합니다. 온유해지면 누가 찔러도 아파하거나 상처받지 않습니다. 솜에 돌을 던지면 소리없이 감싸듯이 많은 사람이 쉴 수 있는 그늘이 되며 포용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절제의 열매가 맺히면 모든 면에서 안정을 누리며 질서 속에서 때를 맞추어 합력하여 열매 맺을 수 있으니 아름답고 복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합당한 열매를 맺으면 하나님께서는 이를 믿음으로 여기시고 기뻐하십니다. 비록 악을 행했어도 중심에서 돌이키면 하나님은 회개를 받으시고 자비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시편 103편 12절에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한 대로 구원해 주십니다. 하물며 의를 지켜서 선을 행하며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사람들에게는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들이 구하지 않은 마음의 소원까지도 아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성령의 열매, 빛의 열매를 맺으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세례 요한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엄히 책망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다 함께 외워 봅시다.
3. 나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후손처럼 살아가고 있나요?
● 금주 과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책자 제5편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빛의 열매란?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진리대로 행할 때 나타나는 모든 열매를 말하며 에베소서 5:9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라" 했습니다.
'착함'이란 악이 없는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 유익을 좇아 악을 행치 않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의로움'이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에 믿어야 순종의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했습니다(롬 10:10).
'진실함'이란 거짓되지 않고 약속을 지키며, 어떤 상황에도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마음을 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