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TOTAL : 1473 PAGE : 80/105
2009-11-06
제45과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 15:24~28
읽을말씀 : 마 15:24~28 | 외울말씀 : 마 15:27 ㅣ 참고 말씀:삼상 21장, 왕하 25장
교육목표 : 자신을 개 취급하는 예수님 앞에 자존심을 철저히 버리고 겸비한 모습으로 믿음의 고백을 하여 응답받은 수로보니게 여인에 대해 알아본다.
자존심이란 '자기 몸을 굽히지 않고 스스로 높이는 마음'을 뜻합니다. 간혹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존심을 버림으로써 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존심을 버리고 그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도움 받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다윗 왕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겸손한 자였기에 이 땅에서는 물론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1. 자존심을 굽힘으로 좋은 결과를 얻은 다윗
다윗은 블레셋 최고의 용사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어 백전백승하였습니다. 그러자 시기심에 사로잡힌 사울 왕은 국가 기관을 총동원하여 다윗을 죽이려 하였지요. 사무엘상 21장을 보면 다윗은 얼마나 다급하고 절박했던지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을 칩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적국이며 '가드'라는 성읍은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아기스 왕의 신하들은 자기 나라 최고의 전사를 죽이고 병사들을 수없이 죽인 다윗을 당장에 처치하라고 권합니다. 다윗은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미친 척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질질 흘리기까지 합니다. 아기스 왕은 다윗의 이런 행동을 보고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며 쫓아냈습니다.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다윗은 자존심을 버림으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훗날 다윗은 왕이 되어 블레셋을 완전히 굴복시켜 조공을 바치게 했고, 견고한 통일왕국을 이룩하였습니다. 만일 다윗이 자존심을 내세우다 죽었다면 얼마나 헛된 삶입니까. 만약 여러분이 그러한 상황에 처했더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죽을망정 그렇게는 못하겠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 자존심이 가치가 있는지,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옳은지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자존심을 세우다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시드기야 왕
남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어떠했습니까? 바벨론의 피지배국이었던 유다는 두 차례에 걸쳐 강대국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똑똑한 귀인들은 다 바벨론으로 잡혀 가고, 평범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대상으로 유다를 다스린 왕입니다. 그는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한 번 소환을 당해 국정을 보고하고 조공을 바치고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애굽 왕 바로와 비밀리에 동맹관계를 맺고 내통하다가 바벨론을 배반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지만 수치스럽게 여기며 오히려 선지자를 감옥에 가둬 버립니다. 아무 힘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내세우다가 결국 바벨론에게 세 번째 침략을 당합니다. 예루살렘 성은 바벨론에 무려 1년 7개월간 포위되어 성안의 보급 물자들이 완전히 끊기고, 식량도 떨어져 사람들은 굶어 죽어 갔습니다. 게다가 바벨론 군대가 성벽을 뚫고 들어와 시드기야와 군사들은 한밤중에 도망치다 결국 붙잡히지요.
결국 예루살렘 성전은 불탔고 완전히 함락되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배반한 시드기야 목전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버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고 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습니다. 남유다 왕은 자존심을 굽히지 않음으로 자신뿐 아니라 나라가 망하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러니 자존심 때문에 자기를 낮추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우쳐야 합니다.
3. 겸비한 마음을 소유하여 응답받은 수로보니게 여인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지방에 가셨을 때 더러운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며 간청하지만 예수님은 한 말씀도 하지 않습니다. 여인이 계속하여 소리 지르며 애원하자 제자들이 나서서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하지요. 그제야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답변하십니다.
여인이 예수님께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며 이방 여인을 개에 비유하셨지요. 이는 여인을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을 개 취급하는 말에 자존심이 상해 돌아갈 수도 있지요. 그러나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지요. 겸손히 대답한 여인의 말에 감동한 예수님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여인의 딸이 그때로부터 나았습니다. 자기를 철저히 낮춤으로 믿음의 시험을 잘 통과하여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은 것입니다.
4. 의로운 중심에서 나오는 믿음의 고백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자신을 낮춘 것은 단지 딸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분을 삭히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계산하여 한 말이 아닙니다. 여인의 중심이 의롭고 겸비하기 때문에 그런 대답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순간에 지혜를 짜내 '내가 이렇게 대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사야겠다' 한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 있는 선과 온유와 겸손이 그대로 나온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교만을 버리며, 마음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진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으며, 육의 마음을 온전히 버리고 영의 마음, 의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이든 응답받을 수 있고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 거칠 것이 없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 중심이 겸비하고 의로웠기 때문에 끝까지 믿음의 고백을 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중심이 되면 어떤 문제에 부딪힌다 해도 믿음의 행함이 나오게 되므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는 것입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이고 그 신뢰에 변함이 없으며 또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을 믿고 예수님을 신뢰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어떤 행동과 말씀을 하셔도 요지부동하고 변함없는 마음으로 믿어 드렸습니다. 그러면 순종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예수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니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라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서운함이나 자존심 상한다는 감정을 품지 않고 그 말씀에 긍정의 말로써 순종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말을 하였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의롭고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내보이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와 명예 등 결국은 없어지고 마는 육의 것들을 얻기 위해 얼마나 땀 흘리며 수고합니까? 그런데 그러한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영생과 아름다운 천국의 삶을 얻기 위해 정녕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겸비하여 낮아지고 영원한 것을 취하기 위하여 수고하며 인내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 안에 있는 자존심, 높아지고 섬김 받고자 하는 마음, 자랑하고 싶은 마음,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이런 어둠의 마음을 버리고 참으로 겸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내보임으로 모든 것에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15장 27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나는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했는데도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멸망당했습니다. 아들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두 눈이 뽑혀 바벨론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3. 혹여 "나는 자존심을 빼면 시체야! 다른 건 몰라도 내 자존심 건드리면 누구도 용서 못해!" 했던 적은 없습니까?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감사하며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겸손한 자가 되기 위해 합심으로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시며 더욱 감사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 갑시다!
수로보니게
팔레스타인 북부 수리아 지역의 베니게를 이르는 말이다. 수로보니게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는 수리아의 베니게란 뜻이다(막 7:26). 마태복음 15:22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이 가나안 여자로 기록되었는데 가나안이 베니게의 옛 이름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교육목표 : 자신을 개 취급하는 예수님 앞에 자존심을 철저히 버리고 겸비한 모습으로 믿음의 고백을 하여 응답받은 수로보니게 여인에 대해 알아본다.
자존심이란 '자기 몸을 굽히지 않고 스스로 높이는 마음'을 뜻합니다. 간혹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존심을 버림으로써 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존심을 버리고 그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기도하여 도움 받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의 다윗 왕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겸손한 자였기에 이 땅에서는 물론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1. 자존심을 굽힘으로 좋은 결과를 얻은 다윗
다윗은 블레셋 최고의 용사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어 백전백승하였습니다. 그러자 시기심에 사로잡힌 사울 왕은 국가 기관을 총동원하여 다윗을 죽이려 하였지요. 사무엘상 21장을 보면 다윗은 얼마나 다급하고 절박했던지 블레셋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도망을 칩니다.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적국이며 '가드'라는 성읍은 다윗이 죽인 골리앗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아기스 왕의 신하들은 자기 나라 최고의 전사를 죽이고 병사들을 수없이 죽인 다윗을 당장에 처치하라고 권합니다. 다윗은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미친 척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질질 흘리기까지 합니다. 아기스 왕은 다윗의 이런 행동을 보고 "어찌하여 그를 내게로 데려왔느냐,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오겠느냐" 하며 쫓아냈습니다.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서 다윗은 자존심을 버림으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훗날 다윗은 왕이 되어 블레셋을 완전히 굴복시켜 조공을 바치게 했고, 견고한 통일왕국을 이룩하였습니다. 만일 다윗이 자존심을 내세우다 죽었다면 얼마나 헛된 삶입니까. 만약 여러분이 그러한 상황에 처했더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자존심이 강한 사람은 "죽을망정 그렇게는 못하겠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과연 그 자존심이 가치가 있는지,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옳은지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2. 자존심을 세우다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시드기야 왕
남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어떠했습니까? 바벨론의 피지배국이었던 유다는 두 차례에 걸쳐 강대국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었습니다.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똑똑한 귀인들은 다 바벨론으로 잡혀 가고, 평범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대상으로 유다를 다스린 왕입니다. 그는 바벨론 느부갓네살 왕에게 한 번 소환을 당해 국정을 보고하고 조공을 바치고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애굽 왕 바로와 비밀리에 동맹관계를 맺고 내통하다가 바벨론을 배반하기에 이릅니다.
이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하지만 수치스럽게 여기며 오히려 선지자를 감옥에 가둬 버립니다. 아무 힘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내세우다가 결국 바벨론에게 세 번째 침략을 당합니다. 예루살렘 성은 바벨론에 무려 1년 7개월간 포위되어 성안의 보급 물자들이 완전히 끊기고, 식량도 떨어져 사람들은 굶어 죽어 갔습니다. 게다가 바벨론 군대가 성벽을 뚫고 들어와 시드기야와 군사들은 한밤중에 도망치다 결국 붙잡히지요.
결국 예루살렘 성전은 불탔고 완전히 함락되었습니다. 바벨론 왕은 배반한 시드기야 목전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빼버리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고 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습니다. 남유다 왕은 자존심을 굽히지 않음으로 자신뿐 아니라 나라가 망하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러니 자존심 때문에 자기를 낮추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깨우쳐야 합니다.
3. 겸비한 마음을 소유하여 응답받은 수로보니게 여인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지방에 가셨을 때 더러운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였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며 간청하지만 예수님은 한 말씀도 하지 않습니다. 여인이 계속하여 소리 지르며 애원하자 제자들이 나서서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고 하지요. 그제야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답변하십니다.
여인이 예수님께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하지만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며 이방 여인을 개에 비유하셨지요. 이는 여인을 시험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자신을 개 취급하는 말에 자존심이 상해 돌아갈 수도 있지요. 그러나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지요. 겸손히 대답한 여인의 말에 감동한 예수님은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여인의 딸이 그때로부터 나았습니다. 자기를 철저히 낮춤으로 믿음의 시험을 잘 통과하여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은 것입니다.
4. 의로운 중심에서 나오는 믿음의 고백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자신을 낮춘 것은 단지 딸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분을 삭히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계산하여 한 말이 아닙니다. 여인의 중심이 의롭고 겸비하기 때문에 그런 대답이 나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순간에 지혜를 짜내 '내가 이렇게 대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사야겠다' 한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 있는 선과 온유와 겸손이 그대로 나온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교만을 버리며, 마음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진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으며, 육의 마음을 온전히 버리고 영의 마음, 의로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어떤 문제이든 응답받을 수 있고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 거칠 것이 없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 중심이 겸비하고 의로웠기 때문에 끝까지 믿음의 고백을 하여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중심이 되면 어떤 문제에 부딪힌다 해도 믿음의 행함이 나오게 되므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는 것입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이고 그 신뢰에 변함이 없으며 또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을 믿고 예수님을 신뢰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어떤 행동과 말씀을 하셔도 요지부동하고 변함없는 마음으로 믿어 드렸습니다. 그러면 순종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예수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니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라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서운함이나 자존심 상한다는 감정을 품지 않고 그 말씀에 긍정의 말로써 순종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말을 하였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의롭고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내보이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부와 명예 등 결국은 없어지고 마는 육의 것들을 얻기 위해 얼마나 땀 흘리며 수고합니까? 그런데 그러한 것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영생과 아름다운 천국의 삶을 얻기 위해 정녕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모든 자존심을 버리고 겸비하여 낮아지고 영원한 것을 취하기 위하여 수고하며 인내하는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내 안에 있는 자존심, 높아지고 섬김 받고자 하는 마음, 자랑하고 싶은 마음,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이런 어둠의 마음을 버리고 참으로 겸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내보임으로 모든 것에 응답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15장 27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나는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서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라고 하나님의 뜻을 전했는데도 자존심을 내세우다가 멸망당했습니다. 아들들의 죽음을 눈앞에서 목도하고 두 눈이 뽑혀 바벨론 포로가 되었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3. 혹여 "나는 자존심을 빼면 시체야! 다른 건 몰라도 내 자존심 건드리면 누구도 용서 못해!" 했던 적은 없습니까? 자신의 변화된 모습에 감사하며 수로보니게 여인처럼 겸손한 자가 되기 위해 합심으로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이 얼마나 많은지 생각해 보시며 더욱 감사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 갑시다!
수로보니게
팔레스타인 북부 수리아 지역의 베니게를 이르는 말이다. 수로보니게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는 수리아의 베니게란 뜻이다(막 7:26). 마태복음 15:22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이 가나안 여자로 기록되었는데 가나안이 베니게의 옛 이름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09-10-30
제44과일천 번제의 정성
왕상 3:4~12
읽을말씀 : 왕상 3:4~12 | 외울말씀 : 왕상 3:5 ㅣ참고 말씀:말 1:6~9
교육목표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성을 내보임으로 넘치는 축복을 받은 솔로몬 왕을 통해 응답과 축복의 비결을 알게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극한 정성에는 하늘도 감동한다는 뜻으로 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하는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무엇이든 정성을 다한다면 뜻을 이루게 됨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 솔로몬 왕은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림으로 전무후무한 지혜는 물론 부와 영광까지 받았습니다.
1. 일천 번제의 정성을 드린 솔로몬
솔로몬은 주전 970년에서 930년까지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입니다. 다윗 왕이 통일왕국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군사 등의 기반을 닦아 놓은 후였기 때문에 안정 속에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신앙 교육으로 성장한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기에 힘썼습니다.
다윗에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지극한 정성으로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제물로 가져온 짐승을 하나하나 각을 떠서 불태워 그 향기로 드리는 제사법으로 많은 수고와 정성이 필요하지요. 이는 가장 보편적인 제사법으로서 생명을 드리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규례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희생과 헌신, 자발적인 봉사를 상징하는 번제를 일천 번이나 드린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모든 예배가 여기에 속합니다. 예수님이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드려 인류를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니 예배는 기쁨이 없이 피곤, 졸음, 잡념 속에서 드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늘의 소망 가운데 기쁨으로 충만하고 구원의 은혜와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기도하는 중심으로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예물을 드릴 때에도 얼마나 정성껏, 믿음으로, 사랑으로 드리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고 말씀하셨지요. 예수님께서 한 가난한 과부가 연보궤에 헌금하는 것을 보고 칭찬하셨습니다(막 12장). 과부가 헌금한 두 렙돈은 이스라엘의 가장 작은 화폐 단위인 동전 두 닢에 불과했지만 그녀에게는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중심을 보시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정성을 담아 즐거이 드릴 때 기뻐하시며 축복하십니다. 솔로몬의 일천 번제를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는 왕으로서 백성을 재판할 때에 선악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로이 명예나 부를 구하지 않는 것을 기뻐하시고 솔로몬이 구한 지혜와 총명은 물론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까지도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과 축복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정성을 내보이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주의 종이나 부모를 섬길 때에도, 이웃이나 형제, 그 밖의 누군가를 섬길 때에도 정성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십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솔로몬의 중심과 마음씀씀이를 아셨기에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의 정성이 어떠하였는지 성전 건축 과정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왕으로 즉위한 지 4년 만에 시작된 성전 건축은 완공까지 7년이 걸렸습니다. 솔로몬은 정성을 다하여 실로 아름답고 정교하게 건축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돌을 뜨는 곳에서 아예 규격에 맞추어 다듬은 후 가져오게 하여 성전에서 망치나 철 연장 소리가 일절 들리지 않게 했습니다. 성전 내부는 백향목 널판으로 벽에 입힌 후 정금으로 덧입혀 돌이 보이지 않게 하였고, 사면 벽에는 그룹들과 종려와 꽃 핀 형상을 정교하게 아로새겼습니다.
성전 앞에는 기둥 둘을 웅장하게 만들었는데 사슬로 기둥머리에 두르고 석류 일백 개를 달았습니다. 또 성전의 기구들, 즉 등대와 꽃, 등잔과 화 젓가락, 그리고 불집게와 주발, 숟가락과 불 옮기는 그릇 같은 것들을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아름답고도 정교하게, 그리고 웅장하게 건축하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기도하고 헌물을 드릴 때든 무엇을 하든지 정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축복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우리의 중심은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지혜를 구한 솔로몬과 같아야 합니다. 자기 유익이 아닌 상대의 유익을 위하여,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영혼들을 위하여 구하면 기뻐하시고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풍족하게 채워 주십니다.
수넴의 귀부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그 지방을 지날 때면 음식을 대접하고 쉴 수 있는 방을 마련해 드렸습니다. 여인의 섬김에 감동한 엘리사가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지만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사환을 통해 여인에게 아들이 없음을 알고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갖게 될 것을 말해 줍니다. 정성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니 구하지 않은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 앞에 감동적인 정성을 보인 사람들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을 치료받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갈 때 많은 금은과 귀한 의복을 정성껏 준비하여 갔습니다. 엘리사가 그것을 받지 않았지만 나아만은 그만한 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치료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길손도 소홀하지 않고 마치 주를 섬기듯 대접했습니다. 그러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여 고대하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축복의 예언을 또다시 듣지요.
야곱은 자기를 미워하는 형 에서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암염소 200마리, 숫염소 20마리, 암양 200마리, 숫양 20마리, 젖 나는 약대 30마리와 그 새끼들, 암소 40마리, 황소 10마리, 암나귀 20마리와 그 새끼 나귀 10마리를 세 떼로 나누어 준비하여 형의 감정을 풀고자 했지요.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주관하여 화해할 수 있었지만 야곱의 정성 역시 형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때도 백성이 자원하여 너도 나도 즐거이 예물을 드렸는데 어찌나 많이 드렸던지 그만 가져오도록 공포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백성의 정성이 그처럼 지극했던 것입니다.
삭개오의 정성과 사모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뵙고자 자신의 체면이나 위치 따위는 생각지 않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지요. 그의 사모함을 아신 예수님은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지요. 삭개오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감격에 찬 삭개오는 예수님께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하지요.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하시며 구원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감찰하며 지극한 정성을 보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신약 시대 안나 선지자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여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어머니 한나는 오랫동안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였을 때 눈물로 기도하여 아들 사무엘을 얻었습니다. 또 서원을 지킴으로써 더 많은 자녀를 얻었습니다. 엘리사는 끝까지 스승 엘리야를 붙좇는 정성을 보임으로 스승의 갑절의 영감을 받았지요.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지극한 정성을 내보임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축복이 넘쳐 나시길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여러분도 솔로몬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천 번제를 드리고 있나요?
2.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여 응답받기를 원하시는지요?
3. 본문에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난 하나님과 솔로몬의 대화를 찾아 인도자와 구역원이 서로 교독하면서 자신의 기도문을 작성해 봅시다.
하나님 (인도자):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솔로몬 (구역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나님 (인도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9편 '주여 저를 도우소서' 읽어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일천 번제란?
천 번의 제사 즉 천 번의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뜻이며 솔로몬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지극한 정성을 들인 제사에서 유래되었다. 번제는 제물로 가져온 짐승을 각을 떠서 제단 위에 올려 불태워 그 향기로운 냄새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법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정성을 내보임으로 넘치는 축복을 받은 솔로몬 왕을 통해 응답과 축복의 비결을 알게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극한 정성에는 하늘도 감동한다는 뜻으로 정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하는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무엇이든 정성을 다한다면 뜻을 이루게 됨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 솔로몬 왕은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림으로 전무후무한 지혜는 물론 부와 영광까지 받았습니다.
1. 일천 번제의 정성을 드린 솔로몬
솔로몬은 주전 970년에서 930년까지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입니다. 다윗 왕이 통일왕국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군사 등의 기반을 닦아 놓은 후였기 때문에 안정 속에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 나단 선지자의 신앙 교육으로 성장한 솔로몬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기에 힘썼습니다.
다윗에 이어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지극한 정성으로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제물로 가져온 짐승을 하나하나 각을 떠서 불태워 그 향기로 드리는 제사법으로 많은 수고와 정성이 필요하지요. 이는 가장 보편적인 제사법으로서 생명을 드리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규례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 온전한 희생과 헌신, 자발적인 봉사를 상징하는 번제를 일천 번이나 드린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모든 예배가 여기에 속합니다. 예수님이 자기 몸을 희생 제물로 드려 인류를 구원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그러니 예배는 기쁨이 없이 피곤, 졸음, 잡념 속에서 드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마음이 하늘의 소망 가운데 기쁨으로 충만하고 구원의 은혜와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기도하는 중심으로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예물을 드릴 때에도 얼마나 정성껏, 믿음으로, 사랑으로 드리는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고 말씀하셨지요. 예수님께서 한 가난한 과부가 연보궤에 헌금하는 것을 보고 칭찬하셨습니다(막 12장). 과부가 헌금한 두 렙돈은 이스라엘의 가장 작은 화폐 단위인 동전 두 닢에 불과했지만 그녀에게는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중심을 보시고 칭찬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정성을 담아 즐거이 드릴 때 기뻐하시며 축복하십니다. 솔로몬의 일천 번제를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그의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는 왕으로서 백성을 재판할 때에 선악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로이 명예나 부를 구하지 않는 것을 기뻐하시고 솔로몬이 구한 지혜와 총명은 물론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까지도 주셨습니다.
2.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과 축복
우리가 어떤 마음으로 정성을 내보이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주의 종이나 부모를 섬길 때에도, 이웃이나 형제, 그 밖의 누군가를 섬길 때에도 정성으로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십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솔로몬의 중심과 마음씀씀이를 아셨기에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의 정성이 어떠하였는지 성전 건축 과정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왕으로 즉위한 지 4년 만에 시작된 성전 건축은 완공까지 7년이 걸렸습니다. 솔로몬은 정성을 다하여 실로 아름답고 정교하게 건축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돌을 뜨는 곳에서 아예 규격에 맞추어 다듬은 후 가져오게 하여 성전에서 망치나 철 연장 소리가 일절 들리지 않게 했습니다. 성전 내부는 백향목 널판으로 벽에 입힌 후 정금으로 덧입혀 돌이 보이지 않게 하였고, 사면 벽에는 그룹들과 종려와 꽃 핀 형상을 정교하게 아로새겼습니다.
성전 앞에는 기둥 둘을 웅장하게 만들었는데 사슬로 기둥머리에 두르고 석류 일백 개를 달았습니다. 또 성전의 기구들, 즉 등대와 꽃, 등잔과 화 젓가락, 그리고 불집게와 주발, 숟가락과 불 옮기는 그릇 같은 것들을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하여 아름답고도 정교하게, 그리고 웅장하게 건축하였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 기도하고 헌물을 드릴 때든 무엇을 하든지 정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축복을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께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우리의 중심은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지혜를 구한 솔로몬과 같아야 합니다. 자기 유익이 아닌 상대의 유익을 위하여,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영혼들을 위하여 구하면 기뻐하시고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풍족하게 채워 주십니다.
수넴의 귀부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그 지방을 지날 때면 음식을 대접하고 쉴 수 있는 방을 마련해 드렸습니다. 여인의 섬김에 감동한 엘리사가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지만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사환을 통해 여인에게 아들이 없음을 알고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갖게 될 것을 말해 줍니다. 정성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니 구하지 않은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하나님 앞에 감동적인 정성을 보인 사람들
나아만 장군은 문둥병을 치료받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갈 때 많은 금은과 귀한 의복을 정성껏 준비하여 갔습니다. 엘리사가 그것을 받지 않았지만 나아만은 그만한 정성이 있었기 때문에 치료받을 수 있었습니다. 또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길손도 소홀하지 않고 마치 주를 섬기듯 대접했습니다. 그러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여 고대하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축복의 예언을 또다시 듣지요.
야곱은 자기를 미워하는 형 에서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암염소 200마리, 숫염소 20마리, 암양 200마리, 숫양 20마리, 젖 나는 약대 30마리와 그 새끼들, 암소 40마리, 황소 10마리, 암나귀 20마리와 그 새끼 나귀 10마리를 세 떼로 나누어 준비하여 형의 감정을 풀고자 했지요.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주관하여 화해할 수 있었지만 야곱의 정성 역시 형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때도 백성이 자원하여 너도 나도 즐거이 예물을 드렸는데 어찌나 많이 드렸던지 그만 가져오도록 공포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백성의 정성이 그처럼 지극했던 것입니다.
삭개오의 정성과 사모함도 마찬가지입니다.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뵙고자 자신의 체면이나 위치 따위는 생각지 않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지요. 그의 사모함을 아신 예수님은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지요. 삭개오는 얼마나 기뻤겠습니까? 감격에 찬 삭개오는 예수님께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라고 하지요.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하시며 구원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 중심을 감찰하며 지극한 정성을 보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신약 시대 안나 선지자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여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의 어머니 한나는 오랫동안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였을 때 눈물로 기도하여 아들 사무엘을 얻었습니다. 또 서원을 지킴으로써 더 많은 자녀를 얻었습니다. 엘리사는 끝까지 스승 엘리야를 붙좇는 정성을 보임으로 스승의 갑절의 영감을 받았지요.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지극한 정성을 내보임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축복이 넘쳐 나시길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여러분도 솔로몬처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천 번제를 드리고 있나요?
2.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여 응답받기를 원하시는지요?
3. 본문에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난 하나님과 솔로몬의 대화를 찾아 인도자와 구역원이 서로 교독하면서 자신의 기도문을 작성해 봅시다.
하나님 (인도자):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솔로몬 (구역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나님 (인도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9편 '주여 저를 도우소서' 읽어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일천 번제란?
천 번의 제사 즉 천 번의 번제를 하나님께 드렸다는 뜻이며 솔로몬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지극한 정성을 들인 제사에서 유래되었다. 번제는 제물로 가져온 짐승을 각을 떠서 제단 위에 올려 불태워 그 향기로운 냄새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제사법이다.
2009-10-23
제43과율법을 행하는 자
롬 2:13
읽을말씀 : 롬 2:13 | 외울말씀 : 약 2:22 ㅣ 참고 말씀:요일 1:5~7, 마태복음 7:21
교육목표 : 진정한 의인은 어떤 사람이며 그러한 의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 알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은 진정한 의인이 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나를 변화시키고 주위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1. 사람마다 다른 마음 중심
자녀를 낳아 길러 보면 주로 부모를 닮지만 부모보다 할머니, 할아버지 등 조상을 닮기도 합니다. 외모만이 아니라 성격이나 걸음걸이, 습관까지 그대로 닮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부모의 성격이 급하고 난폭하며 시기 질투가 강하면 자녀에게서도 그러한 성향이 나타나지요. 이렇게 타고난 것은 쉽게 고쳐지지 않기 때문에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질과 속성을 지닌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조선 시대 폭군 연산군의 어머니는 지나치게 질투심이 강했습니다. 그 영향을 받아 연산군도 시기심이 많고 포악할 뿐 아니라,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며 온갖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왕족으로 태어나 훌륭한 스승의 교육을 받았지만 변화되지 않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성에다 악을 쌓아가니 마음 중심이 악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심이 선한 사람은 어떠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악을 행치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성과 자신이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통해 형성됩니다. 이러한 마음이 굳혀진 것이 바로 중심이며 사람은 마음 중심에 따라 선을 추구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비록 태어날 때 좋지 않은 기질을 물려받았어도 변화시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만나 성결을 이루기 위해 믿음으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말씀대로 행하면 결국에는 좋은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선한 중심을 가졌기에 강대국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하나님 섬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으로 금하신 가증한 음식은 먹지 않았고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결코 우상에 절하지 않는 등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며 그 나라의 중책을 맡게 하셨습니다.
2. 마음의 의를 이루어야 진정한 의인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 진정한 의인이 되려면 마음 중심이 진리로 온전히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4절에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진정한 의인이 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연단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를 온전케 하십니다. 이러한 연단을 통과해야 값진 열매로 나올 수 있고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원래 자기 의가 매우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민족 히브리 사람을 애굽 사람이 치는 것을 보고 주위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모래에 감추었지요. 그 후 40년의 연단을 통해 철저히 자기 의가 깨어지면서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그릇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했습니다. 악한 백성을 대신하여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져도 좋으니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기를 간구할 정도로 온유하고 사랑이 넘쳐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출 32:32).
이처럼 진정한 의인은 단순히 말씀을 듣는다 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마음 중심에 있는 악을 빼냄으로 마음의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즉 율법을 들어서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진정한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려면 크게 두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첫째는 진리의 말씀을 알므로 순종하는 단계입니다. 즉 '기도하라' 했으니 기도하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했으니 지키는 것입니다. 둘째는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온전히 이루어 행하는 단계입니다. 곧 온전한 행함의 단계이지요.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행하는 것을 온전한 행함이라 말합니다.
3. 온전한 행함에 따르는 축복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온전한 행함의 단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먼저 하나님 말씀에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워하지 말라, 시기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죄를 버리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것을 하지 않고 버리면 옥토와 같은 좋은 마음이 됩니다. 다음으로 좋은 마음 밭을 만들었으면 하나님 말씀을 심어야 합니다. 즉 '하라, 지키라'는 말씀대로 행하면 믿음이 성장하여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을 순종하는 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가 교통법규를 잘 지키면 법의 제재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수 없으므로 시험 환난 질병이 오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동자와 천군 천사로 지켜 주시니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비록 처음에는 의무감 속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다 해도 마음의 악이 버려지는 만큼 차츰 기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영혼이 잘되어 주님의 마음을 닮는 것이며,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면 스스로 자신을 책망할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 구하는 것을 응답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질병이나 가정의 화목, 가정 복음화를 비롯한 그 어떤 문제라도 응답받는 것입니다.
4.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믿음
야고보서 2장 22절에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믿는다면 행함이 따르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어 무엇이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똑같이 듣는데도 사람마다 믿음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 사람의 마음 중심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얼마나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는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면서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거짓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시니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을 믿는다 할 수 있고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지요. 어떤 사람들은 교회만 다니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사람이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의인이기 때문입니다(롬 2:13).
성경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했는가 하면,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이 함께 짝을 이루어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으니 우리는 구원의 기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진정으로 마음에 믿는 사람은 당연히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마음에 믿고 행하면서 입술로 시인하는 것이 참 신앙이요, 그럴 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 구원에 이르는 것은 물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의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야고보서 2장 22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빈칸에 알맞은 단어는 무엇일까요?
믿음이 그의 ( )과 함께 일하고 ( )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3. 우리가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시험과 환난이 왔을 때에 잘 통과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왜 그런 것일까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8편 '일천 번제의 정성' 읽어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네 가지 마음밭(마 13장)
'길가밭'은 단단히 굳은 밭으로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전혀 믿음을 갖지 못한 밭이다. '돌밭'은 싹이 나도 돌멩이 때문에 잘 자라지 못하듯이 지식적으로 말씀을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으니 믿음의 확신이 없고 시험이 오면 넘어지는 밭이다. '가시떨기밭'은 가시떨기로 인해 잘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 말씀을 믿고 행한다 해도 탐욕과 재리의 유혹, 세상의 염려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밭이다. '좋은 밭'은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 거두는 밭으로 하나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는 밭이다.
교육목표 : 진정한 의인은 어떤 사람이며 그러한 의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방법에 대해 알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것은 진정한 의인이 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백 마디 말보다 한 번의 실천이 나를 변화시키고 주위를 변화시키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1. 사람마다 다른 마음 중심
자녀를 낳아 길러 보면 주로 부모를 닮지만 부모보다 할머니, 할아버지 등 조상을 닮기도 합니다. 외모만이 아니라 성격이나 걸음걸이, 습관까지 그대로 닮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부모의 성격이 급하고 난폭하며 시기 질투가 강하면 자녀에게서도 그러한 성향이 나타나지요. 이렇게 타고난 것은 쉽게 고쳐지지 않기 때문에 부모나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기질과 속성을 지닌 채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조선 시대 폭군 연산군의 어머니는 지나치게 질투심이 강했습니다. 그 영향을 받아 연산군도 시기심이 많고 포악할 뿐 아니라,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며 온갖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왕족으로 태어나 훌륭한 스승의 교육을 받았지만 변화되지 않고,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성에다 악을 쌓아가니 마음 중심이 악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중심이 선한 사람은 어떠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악을 행치 않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부모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죄성과 자신이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통해 형성됩니다. 이러한 마음이 굳혀진 것이 바로 중심이며 사람은 마음 중심에 따라 선을 추구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비록 태어날 때 좋지 않은 기질을 물려받았어도 변화시키고자 끊임없이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만나 성결을 이루기 위해 믿음으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말씀대로 행하면 결국에는 좋은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선한 중심을 가졌기에 강대국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가서도 조상에게서 물려받은 하나님 섬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으로 금하신 가증한 음식은 먹지 않았고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결코 우상에 절하지 않는 등 하나님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시며 그 나라의 중책을 맡게 하셨습니다.
2. 마음의 의를 이루어야 진정한 의인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 진정한 의인이 되려면 마음 중심이 진리로 온전히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2장 4절에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진정한 의인이 되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연단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를 온전케 하십니다. 이러한 연단을 통과해야 값진 열매로 나올 수 있고 축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의 위대한 지도자 모세는 원래 자기 의가 매우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민족 히브리 사람을 애굽 사람이 치는 것을 보고 주위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 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모래에 감추었지요. 그 후 40년의 연단을 통해 철저히 자기 의가 깨어지면서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그릇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했습니다. 악한 백성을 대신하여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져도 좋으니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기를 간구할 정도로 온유하고 사랑이 넘쳐나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입니다(출 32:32).
이처럼 진정한 의인은 단순히 말씀을 듣는다 하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마음 중심에 있는 악을 빼냄으로 마음의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즉 율법을 들어서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진정한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려면 크게 두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첫째는 진리의 말씀을 알므로 순종하는 단계입니다. 즉 '기도하라' 했으니 기도하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했으니 지키는 것입니다. 둘째는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온전히 이루어 행하는 단계입니다. 곧 온전한 행함의 단계이지요.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행하는 것을 온전한 행함이라 말합니다.
3. 온전한 행함에 따르는 축복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온전한 행함의 단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먼저 하나님 말씀에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워하지 말라, 시기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죄를 버리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것을 하지 않고 버리면 옥토와 같은 좋은 마음이 됩니다. 다음으로 좋은 마음 밭을 만들었으면 하나님 말씀을 심어야 합니다. 즉 '하라, 지키라'는 말씀대로 행하면 믿음이 성장하여 많은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을 순종하는 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우리가 교통법규를 잘 지키면 법의 제재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수 없으므로 시험 환난 질병이 오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불꽃 같은 눈동자와 천군 천사로 지켜 주시니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비록 처음에는 의무감 속에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다 해도 마음의 악이 버려지는 만큼 차츰 기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영혼이 잘되어 주님의 마음을 닮는 것이며,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면 스스로 자신을 책망할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 구하는 것을 응답받는다는 말씀입니다. 질병이나 가정의 화목, 가정 복음화를 비롯한 그 어떤 문제라도 응답받는 것입니다.
4.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믿음
야고보서 2장 22절에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믿는다면 행함이 따르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어 무엇이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똑같이 듣는데도 사람마다 믿음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 사람의 마음 중심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얼마나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는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면서 그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이는 거짓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시니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을 믿는다 할 수 있고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지요. 어떤 사람들은 교회만 다니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사람이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의인이기 때문입니다(롬 2:13).
성경을 보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했는가 하면,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이 함께 짝을 이루어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으니 우리는 구원의 기준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진정으로 마음에 믿는 사람은 당연히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마음에 믿고 행하면서 입술로 시인하는 것이 참 신앙이요, 그럴 때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어 구원에 이르는 것은 물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의인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야고보서 2장 22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빈칸에 알맞은 단어는 무엇일까요?
믿음이 그의 ( )과 함께 일하고 ( )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3. 우리가 함께 신앙생활을 한다 해도 시험과 환난이 왔을 때에 잘 통과하여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는데 왜 그런 것일까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8편 '일천 번제의 정성' 읽어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네 가지 마음밭(마 13장)
'길가밭'은 단단히 굳은 밭으로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전혀 믿음을 갖지 못한 밭이다. '돌밭'은 싹이 나도 돌멩이 때문에 잘 자라지 못하듯이 지식적으로 말씀을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으니 믿음의 확신이 없고 시험이 오면 넘어지는 밭이다. '가시떨기밭'은 가시떨기로 인해 잘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 말씀을 믿고 행한다 해도 탐욕과 재리의 유혹, 세상의 염려로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밭이다. '좋은 밭'은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 거두는 밭으로 하나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는 밭이다.
2009-10-16
제42과욥의 행사
욥 1:1~5
읽을말씀 : 욥 1:1~5 | 외울말씀 : 욥 1:1 l 참고 말씀:욥기 29:8~17, 31:16~32
교육목표 : 욥의 신앙을 통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알게 한다.
어떤 사람은 혈기를 버린 줄 알았는데 마음에 고통을 받다 보니 순간 혈기가 나와 놀라기도 하고, 형제가 사랑받고 크게 축복받는 것을 보자 온전히 기뻐하지 못한 마음을 발견하여 회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좋고 선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연단을 허락하여 본성 속에 숨겨진 비진리를 발견케 하십니다. 욥은 연단받기 전에는 스스로 어떤 악도 발견할 수 없었는데 극심한 연단을 통해 본성 속의 죄를 발견하였고 갑절의 축복을 받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1.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인 욥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욥 1:3)라 할 만큼 재물이 많았습니다. 양이 칠천 마리, 약대(낙타)가 삼천 마리, 소가 오백 겨리, 암나귀 오백 마리가 있었습니다. 한 겨리는 두 마리를 의미하니 소만 해도 천 마리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양과 낙타는 그보다 몇 곱절 많았으니 참으로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어떤 면을 보고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하셨을까요? '큰 자'란 사람마다 관점이 달라 재물이 많고 바르게 쓸 줄 아는 사람 혹은 지식이 많으며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하거나 사랑과 덕이 많아 존경받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존경할 만하다고 인정하는 큰 자는 단지 눈에 드러난 업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 자로 여길 수 있는 마음씀이나 됨됨이가 있어서 존경할 만한 기본 조건을 갖춘 사람을 말하지요. 마음 됨됨이가 좋은 사람은 시킨 일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많은 것을 포용력 있게 잘 감당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뿐만 아니라 두루 살필 수 있는 넓은 마음과 얼마나 정성을 다하느냐에 따라 마음 그릇의 크고 작은 정도에 차이가 납니다. 만일 마음 됨됨이가 부족하다면 이제부터라도 더 넓고 큰 마음으로 바꿔나가면 됩니다. 모든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이루는 것이 마음 됨됨이를 좋게 하는 길입니다.
욥은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큰 자로서 마음 씀씀이가 고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모든 지혜와 지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고 그들과 함께 즐거워할 줄 안 사람입니다. 그리고 재물이 풍부하여 후히 베풀었으니 참으로 큰 자라 할 수 있지요.
그 밖에도 욥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마시며 행해도 욥만은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그래서 잔칫날이 지나면 아침에 일어나 아들들을 부르고 그들의 수대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혹시 그들이 잔치 중에 실수하여 죄를 지었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욥을 기뻐하고 순전하다 여기셨습니다. 더구나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모든 것, 곧 모든 자녀와 재산을 다 거두어 가셨어도 감사하였습니다.
2. 연단을 통하여 온전한 의인이 된 욥
욥은 자녀와 재물을 다 잃는 엄청난 일을 당했어도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욥에게 계속하여 시험 환난이 다가왔습니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심해 재 가운데 앉아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는 비참한 모습으로 변했지요. 그의 아내는 위로는커녕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비웃으며 저주하지만 욥은 입술로도 범죄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순전한 욥도 통과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는 의롭고 진실했으며 참되게 하나님을 경외했는데 왜 이런 고통을 주고 멸시받게 하시는가?" 했지요.
하나님이 욥에게 진정 원하셨던 것은 변함없이 진실하며 악이 없는 온전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정녕 욥이 하나님 앞에 진실한지, 하나님을 끝까지 믿는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는지 보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욥은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도 감사했지만 시련이 계속되자 마침내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자 깊이 감춰진 악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욥은 자기가 태어날 때 자연 환경을 원망하더니 점점 자기를 낳아 준 부모를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욥 27:2)라며 하나님까지 원망하지요. 결국 자기는 의인이고 하나님은 의롭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좋은 중심을 가졌고 거기에 한 가지만 더하면 당대의 의인 중에 의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을 아셨습니다. 행함으로는 누구보다 온전했지만 마음 깊이 있는 악의 모양까지도 발견하여 벗어 버리고 성결을 이룰 때라야 진정한 의인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단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고 그것을 통해 악을 버리고 더욱 영으로 들어오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참된 의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욥과 같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 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그런 시험을 주시면 어떡하나?'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 그런 시험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음 그릇을 보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시지요(고전 10:13). 욥은 능히 시험을 감당할 줄 아시기에 허락하신 것입니다.
결국 욥은 자신도 몰랐던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악을 발견하여 버리고 참된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험을 통과하여 좋은 그릇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더 큰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3. 진실한 사람을 찾아 축복하시는 하나님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진실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존귀한 사람으로 높이시고 영화로운 관을 씌워 주십니다. 욥처럼 의로운 사람이 되어 자기의 행사를 돌아보아 항상 하나님 앞에 흠과 티가 없이 깨끗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행사란 '습관을 좇아 행하는 행함'을 의미합니다. 길을 걷든지 무엇을 계획하거나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의인을 원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욥처럼 어려운 일에 부딪혔다면 끝까지 하나님 앞에 원망하지 않고 의롭게 행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감사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 해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진실한 신앙을 갖기 원하시지요. 이러한 의인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욥에게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결국 욥은 악의 모양까지도 벗어 버린 온전한 의인으로서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 깊은 영적 단계로 들어가 예전보다 갑절이나 축복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갑절의 축복을 받으면 얼마 되지 않지만, 재벌 총수가 갑절의 축복을 받았다면 어떻겠습니까? 연단을 받기 전에도 욥은 동방에서 제일가는 거부였으니 그것의 갑절이면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합당한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따라서 축복을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평, 원망, 탄식, 슬픔, 염려 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악의 모양들을 버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진정 의로운 마음이 되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오고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흠도 티도 없는 영의 마음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신속하게 응답과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욥처럼 순전하고 정직하며 악에서 떠난 진정한 의인이 되어 마음껏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욥기 1장 1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다음은 연단을 받게 된 욥의 고백입니다. 빈칸을 채우면서 자신이 연단을 받 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봅시다.
"나의 □□□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기 3:25)
3. 만일 자신에게 욥과 같은 시험이 왔다면 진정한 의인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기도할 수 있나요?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전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마음에 변개함이 없는 진정한 의인이 되기 위해 합심으로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7편 '율법을 행하는 자' 읽어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순전'의 사전적 의미는 '순수하고 완전함'이며, 영적 의미는 '행함으로 온유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직'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마음이 바르고 곧음'이며 영적 의미는 '타인을 속이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을 뜻한다. 자기 자신과 약속한 것일지라도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정직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신다.
교육목표 : 욥의 신앙을 통해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알게 한다.
어떤 사람은 혈기를 버린 줄 알았는데 마음에 고통을 받다 보니 순간 혈기가 나와 놀라기도 하고, 형제가 사랑받고 크게 축복받는 것을 보자 온전히 기뻐하지 못한 마음을 발견하여 회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믿음이 좋고 선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연단을 허락하여 본성 속에 숨겨진 비진리를 발견케 하십니다. 욥은 연단받기 전에는 스스로 어떤 악도 발견할 수 없었는데 극심한 연단을 통해 본성 속의 죄를 발견하였고 갑절의 축복을 받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1.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인 욥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욥 1:3)라 할 만큼 재물이 많았습니다. 양이 칠천 마리, 약대(낙타)가 삼천 마리, 소가 오백 겨리, 암나귀 오백 마리가 있었습니다. 한 겨리는 두 마리를 의미하니 소만 해도 천 마리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양과 낙타는 그보다 몇 곱절 많았으니 참으로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의 어떤 면을 보고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하셨을까요? '큰 자'란 사람마다 관점이 달라 재물이 많고 바르게 쓸 줄 아는 사람 혹은 지식이 많으며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하거나 사랑과 덕이 많아 존경받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존경할 만하다고 인정하는 큰 자는 단지 눈에 드러난 업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 자로 여길 수 있는 마음씀이나 됨됨이가 있어서 존경할 만한 기본 조건을 갖춘 사람을 말하지요. 마음 됨됨이가 좋은 사람은 시킨 일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많은 것을 포용력 있게 잘 감당합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뿐만 아니라 두루 살필 수 있는 넓은 마음과 얼마나 정성을 다하느냐에 따라 마음 그릇의 크고 작은 정도에 차이가 납니다. 만일 마음 됨됨이가 부족하다면 이제부터라도 더 넓고 큰 마음으로 바꿔나가면 됩니다. 모든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이루는 것이 마음 됨됨이를 좋게 하는 길입니다.
욥은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했습니다. 큰 자로서 마음 씀씀이가 고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모든 지혜와 지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고 그들과 함께 즐거워할 줄 안 사람입니다. 그리고 재물이 풍부하여 후히 베풀었으니 참으로 큰 자라 할 수 있지요.
그 밖에도 욥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마시며 행해도 욥만은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입니다. 그래서 잔칫날이 지나면 아침에 일어나 아들들을 부르고 그들의 수대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혹시 그들이 잔치 중에 실수하여 죄를 지었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욥을 기뻐하고 순전하다 여기셨습니다. 더구나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모든 것, 곧 모든 자녀와 재산을 다 거두어 가셨어도 감사하였습니다.
2. 연단을 통하여 온전한 의인이 된 욥
욥은 자녀와 재물을 다 잃는 엄청난 일을 당했어도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욥에게 계속하여 시험 환난이 다가왔습니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심해 재 가운데 앉아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는 비참한 모습으로 변했지요. 그의 아내는 위로는커녕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비웃으며 저주하지만 욥은 입술로도 범죄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순전한 욥도 통과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는 의롭고 진실했으며 참되게 하나님을 경외했는데 왜 이런 고통을 주고 멸시받게 하시는가?" 했지요.
하나님이 욥에게 진정 원하셨던 것은 변함없이 진실하며 악이 없는 온전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정녕 욥이 하나님 앞에 진실한지, 하나님을 끝까지 믿는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는지 보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욥은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도 감사했지만 시련이 계속되자 마침내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자 깊이 감춰진 악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욥은 자기가 태어날 때 자연 환경을 원망하더니 점점 자기를 낳아 준 부모를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욥 27:2)라며 하나님까지 원망하지요. 결국 자기는 의인이고 하나님은 의롭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욥이 좋은 중심을 가졌고 거기에 한 가지만 더하면 당대의 의인 중에 의인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을 아셨습니다. 행함으로는 누구보다 온전했지만 마음 깊이 있는 악의 모양까지도 발견하여 벗어 버리고 성결을 이룰 때라야 진정한 의인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단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고 그것을 통해 악을 버리고 더욱 영으로 들어오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참된 의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욥과 같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 해서 '하나님이 나에게 그런 시험을 주시면 어떡하나?'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 그런 시험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음 그릇을 보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시지요(고전 10:13). 욥은 능히 시험을 감당할 줄 아시기에 허락하신 것입니다.
결국 욥은 자신도 몰랐던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악을 발견하여 버리고 참된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험을 통과하여 좋은 그릇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더 큰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3. 진실한 사람을 찾아 축복하시는 하나님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진실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존귀한 사람으로 높이시고 영화로운 관을 씌워 주십니다. 욥처럼 의로운 사람이 되어 자기의 행사를 돌아보아 항상 하나님 앞에 흠과 티가 없이 깨끗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행사란 '습관을 좇아 행하는 행함'을 의미합니다. 길을 걷든지 무엇을 계획하거나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의인을 원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욥처럼 어려운 일에 부딪혔다면 끝까지 하나님 앞에 원망하지 않고 의롭게 행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감사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 해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진실한 신앙을 갖기 원하시지요. 이러한 의인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은 욥에게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결국 욥은 악의 모양까지도 벗어 버린 온전한 의인으로서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 깊은 영적 단계로 들어가 예전보다 갑절이나 축복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갑절의 축복을 받으면 얼마 되지 않지만, 재벌 총수가 갑절의 축복을 받았다면 어떻겠습니까? 연단을 받기 전에도 욥은 동방에서 제일가는 거부였으니 그것의 갑절이면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합당한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따라서 축복을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에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평, 원망, 탄식, 슬픔, 염려 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악의 모양들을 버리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 진정 의로운 마음이 되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오고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흠도 티도 없는 영의 마음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신속하게 응답과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욥처럼 순전하고 정직하며 악에서 떠난 진정한 의인이 되어 마음껏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욥기 1장 1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다음은 연단을 받게 된 욥의 고백입니다. 빈칸을 채우면서 자신이 연단을 받 는 근본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찾아봅시다.
"나의 □□□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욥기 3:25)
3. 만일 자신에게 욥과 같은 시험이 왔다면 진정한 의인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깨닫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기도할 수 있나요? 자신이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할지라도 전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마음에 변개함이 없는 진정한 의인이 되기 위해 합심으로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7편 '율법을 행하는 자' 읽어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순전'의 사전적 의미는 '순수하고 완전함'이며, 영적 의미는 '행함으로 온유함을 나타내는 것'이다.
'정직'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마음이 바르고 곧음'이며 영적 의미는 '타인을 속이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을 뜻한다. 자기 자신과 약속한 것일지라도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정직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신다.
2009-10-09
제41과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마 5:10~12
읽을말씀 : 마 5:10~12 | 외울말씀 : 마 5:10 ㅣ 참고 말씀:딤후 3:12
교육목표 :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받는 핍박의 종류와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영적으로 설명해 준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의인들이 핍박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자기에게 속한 세상 사람들을 주관하여 빛에 속한 성도들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영적으로 빛에 속한 반면 이 세상의 주인은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이기 때문입니다.
1.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면
로마제국의 박해로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당한 로마의 원형극장은 당시로서는 놀랄 만한 규모의 건물이었습니다. 많은 성도가 바로 이 원형극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이 성도들에게 덤벼들었지만 조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찬양하며 죽어 갑니다.
그러자 로마 시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찬송하며 죽어 갈까? 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기에 죽음도 불사하고 믿음을 지키는가?' 하는 궁금증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했고 차츰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황제의 어머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마침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정합니다.
이처럼 거룩한 성도들의 피 흘림이 있었기에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니 신속하게 복음이 전파되었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 섭리 가운데 진행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교한 사람 역시 조금도 억울하지 않게 천국에서 큰 상을 받고 빛나는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2. 핍박의 종류
첫째로, 하나님 일을 이루어 갈 때에 다른 사람의 시기 질투로 오는 핍박이 있습니다. 시기하는 마음이 있으면 누가 잘되는 것을 보고 자기 생각에 맞추어 왜곡하여 소문을 퍼뜨리거나 악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듣는 사람은 '그러한가?' 하고 동조하여 수군거립니다. 전에 우리 교회도 그런 핍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교회가 크게 부흥하니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의를 지키고 선 가운데 행해 나가니 하나님께서 오히려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저는 핍박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고, 오직 기도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합니다.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더구나 믿음의 형제끼리 미워하거나 감정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감정을 품고 속상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사랑을 줄 수 있다면 오히려 평안과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허락하신 핍박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가령 지혜가 부족한 사람을 더 지혜롭게 하기 위해 핍박을 허락한 것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마태복음 10장 16절에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했고,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셨습니다(약 1:5).
또 다른 경우는 큰그릇을 만들어 축복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윗은 소년이었을 때, 오직 여호와 이름으로 나아가서 이스라엘 온 군대가 두려워 떠는 블레셋 군대 골리앗 장군을 물맷돌로 쓰러뜨렸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겨다니면서 연단을 받았는데 이는 큰그릇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장차 하나님 성전을 짓기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고, 또 이스라엘을 반석에 세울 수 있는 훌륭한 왕으로 다듬기 위해서 핍박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어 핍박을 허락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 당시 큰 핍박 때문에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는데 이로 인해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은 왜 밧모 섬으로 유배를 가야만 했습니까? 핍박을 통해 인적이 드문 섬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뜻에 따라 허락되는 핍박들을 잘 해결해 나가면 더 훌륭한 그릇, 더 축복받는 그릇이 되고 전도의 문이 크게 열리며 하나님 뜻을 온전히 감당하게 됩니다.
셋째로,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 가령, 밤늦게까지 기도하다 집에 들어가지 않아서 믿지 않는 가족으로부터 핍박을 자초합니다. 또 하나님 일을 한다고 다른 일은 등한히 하거나 가족을 잘 섬기지 못할 때, 언행일치가 안 되고 쉽게 약속을 어기며 세상 사람보다 못한 행동을 할 때에도 핍박을 받습니다. 이처럼 핍박을 자초하는 것에도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살펴 지혜롭지 못하여 핍박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3. 핍박에 대처하는 방법
먼저, 자신이 잘못해서 받는 핍박은 미련하여 자초한 것이니 잘못을 깨달아 자신을 개선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는데도 핍박이 온다면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을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니 하늘에서 상이 클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복을 받으며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자 핍박을 허락하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경우에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면 아무 걱정하지 말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아둔함을 깨우쳐 주고 지혜롭게 해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일을 이루는 과정에 이런저런 분야에서 핍박을 받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것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서로 진리 가운데 행하며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며느리가 바로 행하지 못하면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하고, 또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워합니다. 또한 형제간에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투고, 이웃 간에 사소한 일로 서로 미워하는 경우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런 악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누가 내게 잘못을 했어도 하나님 말씀에 용서하라 하셨으니 용서할 수 있어야 하지요.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셨기에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눅 23:34). 이와 같이 우리도 서로 선 가운데 행하되 믿음을 가지고 용서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기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설령 상대가 내게 악을 행한다 할지라도 선으로 갚습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생각과 맞지 않게 인도하시는 것 같아도 우리에게는 '아멘'만 있어야 하며, 그럴 때 하나님이 좋은 결과를 맺도록 예비하고 축복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을 주기 위해서, 큰그릇으로 만들기 위해서 허락하신 모든 핍박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믿음을 굳건히 하고 하늘 소망 가운데 온전히 기쁘게 여길 줄 아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5장 10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우리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3.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위치에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경우는 없습니까? 학교에서, 집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의 경우를 들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6편 '욥의 행사' 읽어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
악이나 불법으로 인해 받는 핍박은 상급이 안 되지만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이 복이 되는 것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핍박을 받으면 믿음이 더 견고해지고 그 전에 알지 못한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죄성까지 발견하여 버림으로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받는 핍박의 종류와 이에 대처하는 방법을 영적으로 설명해 준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의인들이 핍박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자기에게 속한 세상 사람들을 주관하여 빛에 속한 성도들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은 영적으로 빛에 속한 반면 이 세상의 주인은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이기 때문입니다.
1.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면
로마제국의 박해로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순교당한 로마의 원형극장은 당시로서는 놀랄 만한 규모의 건물이었습니다. 많은 성도가 바로 이 원형극장에서 사자의 밥이 되었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이 성도들에게 덤벼들었지만 조금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찬양하며 죽어 갑니다.
그러자 로마 시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찬송하며 죽어 갈까? 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기에 죽음도 불사하고 믿음을 지키는가?' 하는 궁금증을 갖기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했고 차츰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는 황제의 어머니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마침내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로마의 국교로 정합니다.
이처럼 거룩한 성도들의 피 흘림이 있었기에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가 기독교 국가가 되니 신속하게 복음이 전파되었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졌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하나님 섭리 가운데 진행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교한 사람 역시 조금도 억울하지 않게 천국에서 큰 상을 받고 빛나는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2. 핍박의 종류
첫째로, 하나님 일을 이루어 갈 때에 다른 사람의 시기 질투로 오는 핍박이 있습니다. 시기하는 마음이 있으면 누가 잘되는 것을 보고 자기 생각에 맞추어 왜곡하여 소문을 퍼뜨리거나 악을 행하기도 합니다. 그것을 듣는 사람은 '그러한가?' 하고 동조하여 수군거립니다. 전에 우리 교회도 그런 핍박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교회가 크게 부흥하니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이런저런 이유를 내세워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의를 지키고 선 가운데 행해 나가니 하나님께서 오히려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저는 핍박하는 사람들을 미워하지 않았고, 오직 기도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말씀합니다.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더구나 믿음의 형제끼리 미워하거나 감정을 품어서는 안 됩니다. 누구를 미워하고 감정을 품고 속상해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입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사랑을 줄 수 있다면 오히려 평안과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허락하신 핍박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가령 지혜가 부족한 사람을 더 지혜롭게 하기 위해 핍박을 허락한 것입니다. 지혜가 있어야 세상을 이기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지요. 마태복음 10장 16절에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 했고,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하셨습니다(약 1:5).
또 다른 경우는 큰그릇을 만들어 축복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윗은 소년이었을 때, 오직 여호와 이름으로 나아가서 이스라엘 온 군대가 두려워 떠는 블레셋 군대 골리앗 장군을 물맷돌로 쓰러뜨렸습니다. 그렇지만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겨다니면서 연단을 받았는데 이는 큰그릇으로 만들기 위함이었습니다. 장차 하나님 성전을 짓기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추고, 또 이스라엘을 반석에 세울 수 있는 훌륭한 왕으로 다듬기 위해서 핍박을 허락하셨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어 핍박을 허락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 당시 큰 핍박 때문에 사도 외에는 다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졌는데 이로 인해 복음이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은 왜 밧모 섬으로 유배를 가야만 했습니까? 핍박을 통해 인적이 드문 섬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함으로써 하나님께 계시를 받아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뜻에 따라 허락되는 핍박들을 잘 해결해 나가면 더 훌륭한 그릇, 더 축복받는 그릇이 되고 전도의 문이 크게 열리며 하나님 뜻을 온전히 감당하게 됩니다.
셋째로,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 가령, 밤늦게까지 기도하다 집에 들어가지 않아서 믿지 않는 가족으로부터 핍박을 자초합니다. 또 하나님 일을 한다고 다른 일은 등한히 하거나 가족을 잘 섬기지 못할 때, 언행일치가 안 되고 쉽게 약속을 어기며 세상 사람보다 못한 행동을 할 때에도 핍박을 받습니다. 이처럼 핍박을 자초하는 것에도 여러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살펴 지혜롭지 못하여 핍박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3. 핍박에 대처하는 방법
먼저, 자신이 잘못해서 받는 핍박은 미련하여 자초한 것이니 잘못을 깨달아 자신을 개선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는데도 핍박이 온다면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더욱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을 의지하면 됩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을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면 하나님이 인정하시니 하늘에서 상이 클 뿐만 아니라 이 땅에서도 복을 받으며 존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자 핍박을 허락하신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 경우에도 자기가 해야 할 일을 다 했으면 아무 걱정하지 말고 기쁨과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아둔함을 깨우쳐 주고 지혜롭게 해 주십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 일을 이루는 과정에 이런저런 분야에서 핍박을 받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것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서로 진리 가운데 행하며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며느리가 바로 행하지 못하면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미워하고, 또 며느리는 시어머니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미워합니다. 또한 형제간에 서로 마음이 맞지 않아 다투고, 이웃 간에 사소한 일로 서로 미워하는 경우들을 흔히 볼 수 있는데 이런 악한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누가 내게 잘못을 했어도 하나님 말씀에 용서하라 하셨으니 용서할 수 있어야 하지요.
구세주이신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는 마음이셨기에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눅 23:34). 이와 같이 우리도 서로 선 가운데 행하되 믿음을 가지고 용서해야 합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자기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설령 상대가 내게 악을 행한다 할지라도 선으로 갚습니다.
로마서 12장 14절에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생각과 맞지 않게 인도하시는 것 같아도 우리에게는 '아멘'만 있어야 하며, 그럴 때 하나님이 좋은 결과를 맺도록 예비하고 축복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우리를 축복을 주기 위해서, 큰그릇으로 만들기 위해서 허락하신 모든 핍박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믿음을 굳건히 하고 하늘 소망 가운데 온전히 기쁘게 여길 줄 아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5장 10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우리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3. 여러분은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이유로 자신의 위치에서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경우는 없습니까? 학교에서, 집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의 경우를 들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6편 '욥의 행사' 읽어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의를 위해 핍박을 받는 자가 복이 있는 이유
악이나 불법으로 인해 받는 핍박은 상급이 안 되지만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이 복이 되는 것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핍박을 받으면 믿음이 더 견고해지고 그 전에 알지 못한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죄성까지 발견하여 버림으로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 수 있다.
2009-10-02
제40과추석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추석은 우리 민족이 신라 시대부터 지내 온 명절로 오늘날에도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에 속합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한'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추석이 되면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드는데 이 무렵에는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기 때문에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1. 추석에 대한 성경적 이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절기로서 초실절(맥추감사절)과 수장절(추수감사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고유 명절인 추석을 이러한 감사의 절기로 이해하고 가족과 함께 감사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2.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은혜 가운데 풍성한 수확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시겠습니다.
묵상기도 ------------------------------------------------------------------- 다같이
기 원 ----------------------------------------------------------------------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멘.
찬 송 ------------------------------- 460장---------------------------------- 다같이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같이
기 도 ---------------------------------------------------------------------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리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지난날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추석 명절의 의미를 잘 알아서 더욱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시고,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행복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모든 가족들도 기억하여 주옵시고 늘 주님의 품 안에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모든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추석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 민 6:24~26 ------------------------------- 인도자
설 교 ----------------------------------------------------------------------------- 설교자
기 도 ----------------------------------------------------------------------------- 설교자
찬 송 ----------------------------------------------------------------------------- 다같이
주기도문 -------------------------------------------------------------------------- 다같이
3. 설교 예문
본 문 : 민 6:24~26 (제목 :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역시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지켜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으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소년이 되어서는 스승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이들에게는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곧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환난과 재앙 많은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평강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온 가족들을 평강 가운데 지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추석이면 으레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을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간에 화목하고 우애 있게 지내며 부모님 생전에 효도를 다하는 자녀가 되며 온 가족이 주 하나님을 잘 섬겨 복 받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가족은 고유 명절 추석을 맞아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책자 제5편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읽어 오기
교육목표 :
추석은 우리 민족이 신라 시대부터 지내 온 명절로 오늘날에도 가장 큰 명절 중 하나에 속합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한'은 크다라는 뜻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을 가진 옛말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이라는 뜻입니다. 추석이 되면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드는데 이 무렵에는 넓은 들판에 오곡이 무르익어 황금빛으로 물들며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눠 먹으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기 때문에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1. 추석에 대한 성경적 이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추수에 대한 감사의 절기로서 초실절(맥추감사절)과 수장절(추수감사절)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우리 민족에게 있어서는 고유 명절인 추석을 이러한 감사의 절기로 이해하고 가족과 함께 감사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2.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인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은혜 가운데 풍성한 수확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시겠습니다.
묵상기도 ------------------------------------------------------------------- 다같이
기 원 ----------------------------------------------------------------------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주에 뛰어나신 주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육체에게 식물을 주신 이에게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멘.
찬 송 ------------------------------- 460장---------------------------------- 다같이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같이
기 도 ---------------------------------------------------------------------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리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함께 모여 감사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시간 지난날을 돌아볼 때,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추석 명절의 의미를 잘 알아서 더욱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시고,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행복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모든 가족들도 기억하여 주옵시고 늘 주님의 품 안에 지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이후의 모든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추석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 민 6:24~26 ------------------------------- 인도자
설 교 ----------------------------------------------------------------------------- 설교자
기 도 ----------------------------------------------------------------------------- 설교자
찬 송 ----------------------------------------------------------------------------- 다같이
주기도문 -------------------------------------------------------------------------- 다같이
3. 설교 예문
본 문 : 민 6:24~26 (제목 :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본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역시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입니다.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지켜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으로 오늘 우리 가족은 이렇게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소년이 되어서는 스승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한 이들에게는 천국의 소망을 주시고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의 은혜를 주시는 분이 곧 하나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환난과 재앙 많은 세상에서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평강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이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온 가족들을 평강 가운데 지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추석이면 으레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님을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바로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을 가는 것을 믿는 종교입니다. 그동안은 진리를 몰랐기에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였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서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형제간에 화목하고 우애 있게 지내며 부모님 생전에 효도를 다하는 자녀가 되며 온 가족이 주 하나님을 잘 섬겨 복 받는 가족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온 가족은 고유 명절 추석을 맞아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책자 제5편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읽어 오기
2009-09-25
제39과당세에 완전한 자
창 6:5~12
읽을말씀 : 창 6:5~12 | 외울말씀 : 창 6:9 l 참고 말씀:벧전 2:1~2
교육목표 :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받는 축복과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는 길을 깨닫게 한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들 좋을 대로 살며 스스로의 삶을 찬양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등 심히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며 사람의 가치와 본분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고 당세에 완전한 자라 인정받은 노아와 그 가족만이 살아남았습니다.
1. 당세에 완전한 의인 노아
창세기 6장 5~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했습니다. 이는 땅에 있는 모든 혈육 있는 사람의 행위가 패괴하였고 강포가 땅에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패괴하다는 것은 부수어지고 무너짐, 즉 타락한 것을 말하고, 강포는 완강하고 포악한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패괴한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는지요. 세상의 패괴와 강포가 한계를 넘어서면 하나님께서는 한탄하며 심판하십니다. 노아 때에는 이 세상을 물로, 아브라함 때에는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는 백보좌 심판을 통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알곡은 천국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지옥불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노아 시대에 심판을 면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세에 의인 노아와 그의 가족뿐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노아는 의인으로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았기 때문에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도 지킴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노아의 아내와 세 아들과 며느리들도 의인이어서 심판을 면했던 것일까요? 그들이 노아처럼 온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의인 노아에게 속해 있었고, 노아의 말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았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노아의 가족이라 해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거나 세상을 사랑하여 갔다면 그들도 멸망에 이르고 말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했기에 구원의 방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오늘날은 어떤 사람이 노아와 같은 의인이 될 수 있을까요? 성실하게 살며 법을 준수하고 의로우며 정직하며 자기 모든 위치와 본분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 은혜로 죄사함 받고 구원을 얻어 천국을 소유하면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점차 진리를 알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준행하고자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노아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고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건져 주시며 친히 역사해 주십니다.
2. 의인을 지키며 구원하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은 연단을 받을 때에 아내 사라를 빼앗긴 적이 있었습니다.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갔는데 아내 사라가 매우 아름다우므로 애굽 왕 바로가 취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인 아브라함에게 닥친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니 바로는 사라를 즉시 돌려 줄 수밖에 없었지요.
또한 바울 사도가 실라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깊은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 하나님은 지진을 일으켜 착고를 풀고 감옥 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이라 해도 고넬료가 구제에 힘쓰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니 그와 그의 가족을 구원해 주고자 했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에게 동일하게 환상으로 보여 주고 성령을 통해 역사하여 서로 만나게 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령을 받고 구원받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면 항상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며, 그 앞길을 인도해 주고, 미리 예비해 주며 축복하십니다. 이러한 것을 깨달아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죄로 관영된 이 세상에서 당세에 의인이라 칭함 받아 하나님 사랑과 축복을 받아야 하지요.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니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들도 죄인이 되어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그래야만 멸망의 길로 가던 사람들이 죄사함 받고 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생명의 부활로 나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려면
첫째로,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말씀했습니다. 신령한 젖이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배우지 않고 깨닫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은 하나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선에 속하고 악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즉 선에 속하기 위해서는 그와 반대되는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악독한 것을 벗어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바른 소리를 듣고 마음에 담아 심비에 새기고 믿음으로 행해야만 생명이 되고 승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각종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는 온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고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썩어지고 결국에는 무로 돌아가지만, 하나님 말씀만은 영원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이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의 떡을 떼며, 구제하고 서로 돌아보아 고아나 과부를 살피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야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3장 3~4절에 "너희 단장을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즉 외모를 단장하려 하지 말고 속사람을 단장하라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9~10절에도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했고, 디모데전서 6장 8절에도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먹는 것, 입는 것, 꾸미는 것 등 모든 것이 흠이 되지 않을 정도이면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각종 현란한 것들이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고, 탐심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에 물들게 하여 사망의 길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을 보면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말씀합니다. 그러면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하나님 말씀의 지식을 더하는 것, 경건한 것, 덕을 세우는 것, 사랑하는 것, 오래 참는 것, 용서하는 것, 진실한 것, 무정하지 않는 것 등 이 밖에도 많이 있지요.
이렇게 신의 성품에 참예할 때에 온유한 사람, 성실한 사람, 선행하는 사람,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지면(벧전 1:16 ; 마 5:48)) 하나님 성품을 닮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장)가 맺히고, 팔복(마 5장), 그리고 영적인 사랑(고전 13장)이 임하여 범사에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세기 6장 9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노아는 언제 올지 모르는 홍수를 대비하여 오랜 세월 방주를 지어 가는 동안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비웃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자신을 조롱하고 핍박하는 세상 사람들을 늘 애타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고 죄악을 돌이키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외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차례대로 자신의 각오를 이야기하고 가정복음화를 위해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가정복음화를 위해 더욱 기도하며 전도합시다.
● 알고 넘어 갑시다!
노아의 방주 (창 6:14~16)
노아의 방주는 길이 138미터, 폭 23미터, 높이 14미터 정도의 거대한 규모로 지금부터 4,5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에덴동산 사람들의 영향으로 인해 당시의 기술이나 지식이 뛰어난 점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대로 설계되었기에 노아의 여덟 식구와 수많은 종류의 동물이 40일간의 홍수를 견뎌내고 1년 이상 방주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방주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은 구원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노아 시대의 홍수 심판을 통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이 받는 축복과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는 길을 깨닫게 한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들 좋을 대로 살며 스스로의 삶을 찬양하고 우상을 숭배하는 등 심히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며 사람의 가치와 본분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셨고 당세에 완전한 자라 인정받은 노아와 그 가족만이 살아남았습니다.
1. 당세에 완전한 의인 노아
창세기 6장 5~6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했습니다. 이는 땅에 있는 모든 혈육 있는 사람의 행위가 패괴하였고 강포가 땅에 가득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패괴하다는 것은 부수어지고 무너짐, 즉 타락한 것을 말하고, 강포는 완강하고 포악한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얼마나 패괴한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있는지요. 세상의 패괴와 강포가 한계를 넘어서면 하나님께서는 한탄하며 심판하십니다. 노아 때에는 이 세상을 물로, 아브라함 때에는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앞으로는 백보좌 심판을 통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알곡은 천국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지옥불에 던져진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노아 시대에 심판을 면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세에 의인 노아와 그의 가족뿐이었습니다. 창세기 6장 9절에 보면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고 했습니다. 이처럼 노아는 의인으로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았기 때문에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도 지킴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 노아의 아내와 세 아들과 며느리들도 의인이어서 심판을 면했던 것일까요? 그들이 노아처럼 온전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의인 노아에게 속해 있었고, 노아의 말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았기 때문에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아무리 노아의 가족이라 해도 노아의 말을 믿지 않거나 세상을 사랑하여 갔다면 그들도 멸망에 이르고 말았을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했기에 구원의 방주에 들어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오늘날은 어떤 사람이 노아와 같은 의인이 될 수 있을까요? 성실하게 살며 법을 준수하고 의로우며 정직하며 자기 모든 위치와 본분에 충실한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 은혜로 죄사함 받고 구원을 얻어 천국을 소유하면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될 수 있습니다. 점차 진리를 알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준행하고자 노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에게 노아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고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건져 주시며 친히 역사해 주십니다.
2. 의인을 지키며 구원하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은 연단을 받을 때에 아내 사라를 빼앗긴 적이 있었습니다. 기근 때문에 애굽으로 내려갔는데 아내 사라가 매우 아름다우므로 애굽 왕 바로가 취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인 아브라함에게 닥친 이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 바로와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니 바로는 사라를 즉시 돌려 줄 수밖에 없었지요.
또한 바울 사도가 실라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깊은 감옥에 갇혀 있었을 때 하나님은 지진을 일으켜 착고를 풀고 감옥 문을 여셨습니다. 그리고 이방인이라 해도 고넬료가 구제에 힘쓰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니 그와 그의 가족을 구원해 주고자 했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에게 동일하게 환상으로 보여 주고 성령을 통해 역사하여 서로 만나게 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령을 받고 구원받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면 항상 하나님께서 사랑해 주며, 그 앞길을 인도해 주고, 미리 예비해 주며 축복하십니다. 이러한 것을 깨달아 자신과 가족만을 위해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죄로 관영된 이 세상에서 당세에 의인이라 칭함 받아 하나님 사랑과 축복을 받아야 하지요.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니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들도 죄인이 되어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보혈을 흘리셨습니다. 그래야만 멸망의 길로 가던 사람들이 죄사함 받고 의롭게 살아갈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리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것을 믿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 생명의 부활로 나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3.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려면
첫째로,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말씀했습니다. 신령한 젖이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배우지 않고 깨닫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은 하나님 음성을 듣고 그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선에 속하고 악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즉 선에 속하기 위해서는 그와 반대되는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악독한 것을 벗어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바른 소리를 듣고 마음에 담아 심비에 새기고 믿음으로 행해야만 생명이 되고 승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각종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는 온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고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썩어지고 결국에는 무로 돌아가지만, 하나님 말씀만은 영원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이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의 떡을 떼며, 구제하고 서로 돌아보아 고아나 과부를 살피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야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3장 3~4절에 "너희 단장을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즉 외모를 단장하려 하지 말고 속사람을 단장하라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9~10절에도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했고, 디모데전서 6장 8절에도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먹는 것, 입는 것, 꾸미는 것 등 모든 것이 흠이 되지 않을 정도이면 족한 줄로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각종 현란한 것들이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고, 탐심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에 물들게 하여 사망의 길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을 보면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말씀합니다. 그러면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것은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하나님 말씀의 지식을 더하는 것, 경건한 것, 덕을 세우는 것, 사랑하는 것, 오래 참는 것, 용서하는 것, 진실한 것, 무정하지 않는 것 등 이 밖에도 많이 있지요.
이렇게 신의 성품에 참예할 때에 온유한 사람, 성실한 사람, 선행하는 사람, 거룩한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해지고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온전해지면(벧전 1:16 ; 마 5:48)) 하나님 성품을 닮고,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갈 5장)가 맺히고, 팔복(마 5장), 그리고 영적인 사랑(고전 13장)이 임하여 범사에 축복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세기 6장 9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노아는 언제 올지 모르는 홍수를 대비하여 오랜 세월 방주를 지어 가는 동안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비웃음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자신을 조롱하고 핍박하는 세상 사람들을 늘 애타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알리고 죄악을 돌이키고 하나님께 돌아오라 외치기를 쉬지 않았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차례대로 자신의 각오를 이야기하고 가정복음화를 위해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을 맞아 가정복음화를 위해 더욱 기도하며 전도합시다.
● 알고 넘어 갑시다!
노아의 방주 (창 6:14~16)
노아의 방주는 길이 138미터, 폭 23미터, 높이 14미터 정도의 거대한 규모로 지금부터 4,5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에덴동산 사람들의 영향으로 인해 당시의 기술이나 지식이 뛰어난 점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대로 설계되었기에 노아의 여덟 식구와 수많은 종류의 동물이 40일간의 홍수를 견뎌내고 1년 이상 방주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방주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은 구원을 의미한다.
2009-09-18
제38과요동하지 말라
삿 9:7~15
읽을말씀 : 삿 9:7~15 | 외울말씀 : 삿 8:23 l 참고 말씀:왕상 22장
교육목표 :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라야 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약방의 감초는 뿌리에 특수한 단맛이 있어서 다른 약재와 달리 유난히 많은 곳에 쓰이지만 환자의 증상에 따라 금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감초의 단맛이 토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흔히 사용하는 물품들 중에도 그것이 들어가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잘못 들어가면 부작용이나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자신의 위치를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1. 기드온의 아들들을 죽이고 왕이 된 아비멜렉
기드온의 아들인 요담이 세겜 사람들을 향해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와 가시나무의 비유 들어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배경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족속에게 고통당하자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으로 하여금 3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미디안 사람들을 물리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들이 전쟁에 승리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과 그의 자손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려 줄 것을 건의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오히려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며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죽자 그의 첩에게서 낳은 아비멜렉이 왕이 되려는 야심으로 음모를 꾸밉니다.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세겜에서 사람들을 회유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기드온의 칠십 명의 아들을 전부 몰살시키려 하지요. 이때 기드온의 말째 아들 요담만 화를 면하였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로 인하여 왕이 되었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요담은 참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세겜 남쪽에 있는 그리심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세겜 사람들을 향해 소리 높여 외칩니다.
그 내용인 즉, 나무들이 왕을 삼으려고 하자 감람나무나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는 전부 왕이 되는 것을 사양하며 결코 요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왕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가시나무만은 왕이 되라는 요청에 요동하여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한다는 것입니다. 요담은 우화를 통해 아비멜렉이 신뢰할 만한 지도자인지, 과연 왕으로 삼은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것인지를 물으며 세겜 사람들을 책망했습니다.
기드온과 그의 아들들은 감람나무나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와 같이 결코 왕의 자리를 탐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은 가시나무와 같이 악한 방법으로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결국 이 일로 아비멜렉과 그를 추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응을 받지요.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웠던 세겜 사람들은 오히려 그의 손에 의해 진멸되고, 아비멜렉은 여인이 망대 위에서 던진 맷돌에 머리를 맞아 두골이 깨져 죽고 말았습니다.
2. 각자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
모든 사람들이 각자 위치 속에서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목자의 위치라면 성도들이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여 죄악을 버릴 수 있도록 깨우쳐 주며, 또한 날마다 영적으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천국 소망 가운데 살며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도 목자의 도리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목자의 말에 순종함으로 의롭고, 깨끗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이나 선지자나 서기관, 바리새인의 사명은 사람들을 영생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중에는 거짓 행함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 가운데 빠지도록 하여 나라까지 망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자기 신분을 지키지 못한 것은 교만과 탐심과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목자는 하나님을 바로 알도록 해 주고, 회개하여 그 마음이 깨끗해지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잘못된 왕들처럼 왕이라는 직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멀리하여 죄 가운데 빠지거나 오히려 왕으로 인해 나라가 어렵게 되고 모든 백성이 고통 가운데 빠지는 슬픈 일이 생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를 망각하여 자신의 위치를 잃고 요동하면 여러 분야에서 혼동이 오고 망하기 쉽기 때문에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3. 요동하지 않는 신앙생활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지체 중에 어떤 것은 소중하고 어떤 것은 덜 소중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각자 위치에서 나름대로 다 소중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인 줄 알아 서로 소중히 여기며 결코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근심이나 고통을 주지 말고, 미워하거나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명을 잘 감당할 때 그것이 진정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있는 것이며 또한 진정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자신의 위치가 참으로 소중함을 깨달아 서로 귀히 여기며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보기에는 저것이 좋으니 나는 저것을 하리라' 하고 자기 일을 그만 둔다면 그것이 어찌 하나님 앞에 합당하겠습니까. 앞서 언급한 감람나무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며 왕이 되는 것을 마다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도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했고, 포도나무 역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면서 왕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왕이 되라는 요청에 결국 요동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유를 통해 자신의 분수와 위치를 아는 것, 자기를 깨우쳐 자기를 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잘 깨달아야 합니다.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길 때에 비로소 큰 일을 이룰 수 있지요. 하나님 편에서는 모든 분야가 다 소중한 것이므로 각자가 어떻게 자기 일을 감당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며, 행한 대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따라서 요동하는 가시나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음을 알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키며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4. 기타 요동하지 말아야 할 분야들
로마서 12장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큰 믿음도 있고 적은 믿음도 있으니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지혜롭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찬 비바람이 불고 어떤 시험 환난이 닥쳐도 결코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흔들리지 않는 반석에 선 믿음을 갖기까지 요동하지 말아야 하며 오직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였으며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무릎을 꿇고 습관을 좇아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 달라 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 요동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사랑하는 것에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을 끝까지 변치 말고 사랑하며, 그 사랑이 더욱 승화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 목자를 사랑하는 마음, 믿음의 형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사명을 사랑하는 마음에 조금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이 외에도 충성 봉사하는 것, 전도하는 것에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생명의 말씀을 전함으로 어둠에 속한 사람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귀하고 복된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이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요동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요동하여 자기 형제를 죽이고 악한 방법으로 왕 위에 오른 아비멜렉을 본문에서 요담은 무엇에 비유하고 있나요?
2.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는 무엇인가요? 또한 각자 처한 위치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도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3. 혹여 내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요동하여 분수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거나 행동을 한 적은 없었는지 점검해 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합심으로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4편 '당세에 완전한 자' 읽어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사시대 '기드온'
이스라엘 다섯 번째 사사인 기드온은 '베는 자', '자르는 자'를 뜻하며, 므낫세 지파 요아스의 마지막 아들이다. 후에 바알 신상을 훼파하여 ' 바알과 다툰다'라는 뜻의 여룹바알이란 이름을 얻는다. 그는 농장과 과수원을 가진 순수한 농부였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곳도 타작마당이었다. 기드온은 3만 2천 명 중에서 3백 명을 선발하여 항아리와 횃불을 이용해 미디안 족속을 격파하고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삿 8:28).
교육목표 :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자신의 위치를 지키며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라야 의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약방의 감초는 뿌리에 특수한 단맛이 있어서 다른 약재와 달리 유난히 많은 곳에 쓰이지만 환자의 증상에 따라 금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감초의 단맛이 토하는 작용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흔히 사용하는 물품들 중에도 그것이 들어가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만 잘못 들어가면 부작용이나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살아가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치 않고 자신의 위치를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1. 기드온의 아들들을 죽이고 왕이 된 아비멜렉
기드온의 아들인 요담이 세겜 사람들을 향해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와 포도나무와 가시나무의 비유 들어 외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배경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족속에게 고통당하자 백성이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으로 하여금 300명의 군사를 이끌고 미디안 사람들을 물리치도록 역사하셨습니다. 이들이 전쟁에 승리하자 이스라엘 백성은 기드온과 그의 자손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려 줄 것을 건의합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오히려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하며 제안을 거절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죽자 그의 첩에게서 낳은 아비멜렉이 왕이 되려는 야심으로 음모를 꾸밉니다.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세겜에서 사람들을 회유하고 경박한 사람들을 사서 기드온의 칠십 명의 아들을 전부 몰살시키려 하지요. 이때 기드온의 말째 아들 요담만 화를 면하였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은 세겜 사람들로 인하여 왕이 되었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요담은 참을 수가 없었지요. 그래서 세겜 남쪽에 있는 그리심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세겜 사람들을 향해 소리 높여 외칩니다.
그 내용인 즉, 나무들이 왕을 삼으려고 하자 감람나무나 무화과나무나 포도나무는 전부 왕이 되는 것을 사양하며 결코 요동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이 왕이 되는 것보다 더 중요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가시나무만은 왕이 되라는 요청에 요동하여 "너희 왕을 삼겠거든 와서 내 그늘에 피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불이 가시나무에서 나와서 레바논의 백향목을 사를 것이니라" 한다는 것입니다. 요담은 우화를 통해 아비멜렉이 신뢰할 만한 지도자인지, 과연 왕으로 삼은 것이 진실하고 의로운 것인지를 물으며 세겜 사람들을 책망했습니다.
기드온과 그의 아들들은 감람나무나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와 같이 결코 왕의 자리를 탐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은 가시나무와 같이 악한 방법으로 스스로 왕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결국 이 일로 아비멜렉과 그를 추종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보응을 받지요.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웠던 세겜 사람들은 오히려 그의 손에 의해 진멸되고, 아비멜렉은 여인이 망대 위에서 던진 맷돌에 머리를 맞아 두골이 깨져 죽고 말았습니다.
2. 각자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
모든 사람들이 각자 위치 속에서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목자의 위치라면 성도들이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여 죄악을 버릴 수 있도록 깨우쳐 주며, 또한 날마다 영적으로 거듭나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천국 소망 가운데 살며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도 목자의 도리입니다. 그리고 성도는 목자의 말에 순종함으로 의롭고, 깨끗한 사람으로 변화되어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마땅한 도리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왕이나 선지자나 서기관, 바리새인의 사명은 사람들을 영생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중에는 거짓 행함으로 하나님을 멀리하고 죄 가운데 빠지도록 하여 나라까지 망하게 하기도 했습니다. 이들이 자기 신분을 지키지 못한 것은 교만과 탐심과 욕심으로 가득 차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목자는 하나님을 바로 알도록 해 주고, 회개하여 그 마음이 깨끗해지도록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잘못된 왕들처럼 왕이라는 직위를 가지고 하나님을 멀리하여 죄 가운데 빠지거나 오히려 왕으로 인해 나라가 어렵게 되고 모든 백성이 고통 가운데 빠지는 슬픈 일이 생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맡겨진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이를 망각하여 자신의 위치를 잃고 요동하면 여러 분야에서 혼동이 오고 망하기 쉽기 때문에 자기 자리를 지킨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3. 요동하지 않는 신앙생활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의 지체 중에 어떤 것은 소중하고 어떤 것은 덜 소중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모든 것이 각자 위치에서 나름대로 다 소중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인 줄 알아 서로 소중히 여기며 결코 상대의 마음을 아프게 하거나 근심이나 고통을 주지 말고, 미워하거나 다투지 말아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사명을 잘 감당할 때 그것이 진정 하나님 보시기에 가치 있는 것이며 또한 진정한 사랑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자신의 위치가 참으로 소중함을 깨달아 서로 귀히 여기며 자부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보기에는 저것이 좋으니 나는 저것을 하리라' 하고 자기 일을 그만 둔다면 그것이 어찌 하나님 앞에 합당하겠습니까. 앞서 언급한 감람나무는 "나의 기름은 하나님과 사람을 영화롭게 하나니 내가 어찌 그것을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며 왕이 되는 것을 마다하였습니다. 무화과나무도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했고, 포도나무 역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면서 왕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가시나무는 왕이 되라는 요청에 결국 요동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비유를 통해 자신의 분수와 위치를 아는 것, 자기를 깨우쳐 자기를 안다는 그 자체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잘 깨달아야 합니다. 그 자체를 소중히 여길 때에 비로소 큰 일을 이룰 수 있지요. 하나님 편에서는 모든 분야가 다 소중한 것이므로 각자가 어떻게 자기 일을 감당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며, 행한 대로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따라서 요동하는 가시나무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음을 알아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신을 지키며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4. 기타 요동하지 말아야 할 분야들
로마서 12장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큰 믿음도 있고 적은 믿음도 있으니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지혜롭게 생각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세찬 비바람이 불고 어떤 시험 환난이 닥쳐도 결코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흔들리지 않는 반석에 선 믿음을 갖기까지 요동하지 말아야 하며 오직 앞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였으며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또한 무릎을 꿇고 습관을 좇아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시되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 달라 하지 않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 원대로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도 주님을 본받아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 요동하지 말고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사랑하는 것에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을 깨달아 하나님을 끝까지 변치 말고 사랑하며, 그 사랑이 더욱 승화되어야 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 성전을 사랑하는 마음, 목자를 사랑하는 마음, 믿음의 형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 사명을 사랑하는 마음에 조금도 변함이 없어야 합니다.
이 외에도 충성 봉사하는 것, 전도하는 것에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항상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생명의 말씀을 전함으로 어둠에 속한 사람들을 빛 가운데로 인도하는 귀하고 복된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이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결코 요동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요동하여 자기 형제를 죽이고 악한 방법으로 왕 위에 오른 아비멜렉을 본문에서 요담은 무엇에 비유하고 있나요?
2. 가정에서, 직장에서, 교회에서 지금 자신에게 주어진 위치는 무엇인가요? 또한 각자 처한 위치 속에서 자신이 해야 할 도리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3. 혹여 내 위치를 지키지 못하고 요동하여 분수에 지나친 욕심을 부리거나 행동을 한 적은 없었는지 점검해 보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요동하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해 합심으로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4편 '당세에 완전한 자' 읽어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사시대 '기드온'
이스라엘 다섯 번째 사사인 기드온은 '베는 자', '자르는 자'를 뜻하며, 므낫세 지파 요아스의 마지막 아들이다. 후에 바알 신상을 훼파하여 ' 바알과 다툰다'라는 뜻의 여룹바알이란 이름을 얻는다. 그는 농장과 과수원을 가진 순수한 농부였다.
하나님의 소명을 받은 곳도 타작마당이었다. 기드온은 3만 2천 명 중에서 3백 명을 선발하여 항아리와 횃불을 이용해 미디안 족속을 격파하고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하였다(삿 8:28).
2009-09-11
제37과순 종
삼상 15:22~23
읽을말씀 : 삼상 15:22~23 | 외울말씀 : 삼상 15:22 ㅣ 참고 말씀:롬 10:10, 8:7~8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불순종을 싫어하시고 순종을 기뻐하시는 이유를 깨달아 오직 순종함으로 의인된 축복을 누리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끌어내리는 힘이 바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마지못해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 명령을 기쁨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온전히 순종하는 차원이 되면 사람 생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행하게 되고 어떠한 환경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1. 순종은 의인으로 들어가는 문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왜 마음으로 믿어야 의에 이르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모든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을 알고 정녕 마음에 믿으면 주님의 보혈로 모든 죄를 사함받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열심히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한 대로 정녕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보면 '미워하지 말라' 하셨으니 미움을 버리고, '시기하지 말라' 하셨으니 시기하지 않으며,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원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행함으로 순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차원을 넘어서 참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이루어지면 의인의 문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으며, 바로 순종이라는 문으로 들어간 후에 비로소 하나하나 짝을 이루어 가면서 참된 의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2. 질서 안에서 순종하는 사람은 축복
이 세상에는 질서 안에서 순종의 관계가 잘 이루어져야 될 분야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는 부모가 거룩하고 진실되며 바른 삶을 살아갈수록 자기 자녀를 바르게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당연히 자녀가 '예' 하고 순종하기 원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자녀가 있을 때에는 불행과 슬픔, 다툼의 원인이 되고 고민거리가 되기 쉽지요. 반대로 그 즉시 순종하여 자기를 신속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자녀는 부모의 기쁨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제지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의 입장에서는 제자가 깍듯이 스승을 존중하며 배우는 것을 바로 깨우치고, 잘 양식 삼아 활용하며 타의 모범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회사 사장 역시 부하 직원이 자기 말에 순종할 뿐 아니라, 성실하고 진실하며 지혜로워서 회사 발전에 기여하는 유능한 사람을 원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의 자녀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찌 아브라함이 사랑스럽지 않으셨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생명보다 귀한 독자라도 하나님께 바칠 만큼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의로 여기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2장 12절에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며 크게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반면에 사울 왕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에게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고 엄히 책망을 합니다(삼상 15:22~23).
3.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
그러면 사울이 왜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 명하셨는데 사울은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아말렉의 아각 왕을 사로잡는가 하면 기름진 양과 소 등 좋은 것을 남기고 가치 없고 낮은 것만 멸하였습니다. 이러한 불순종으로 인해 사울은 결국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사람이 자기의 생각 때문에 순종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입력된 지식과는 반대되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낮아져라 그러면 높아진다, 죽어져라 그러면 산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어 줘라 등의 말씀들을 보면 우리 육신의 생각과는 너무나 맞지 않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도 순종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요한일서 4장 20절을 보면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내가 속한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마음도 맞춰 주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자기의 생각에 맞추지 말고 '아멘'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행하는 것이 바로 순종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4. 순종하는 의인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맡아 길을 떠나려 하는데 일을 앞두고 갑자기 집안에 큰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아이구, 내 집에 문제가 생겼으니 어떻게 가나?' 하고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가지 못했다면 하나님 일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작정했으니 가자' 하고 가면 그 뒤의 일은 하나님께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을 버리고 순종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역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철저히 깨우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서로가 자기 생각에 맞추기 때문에 부부나 가족이 하나 되지 못하고, 하나님 마음에도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7~8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치 않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순종의 의인이 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순적하게 역사하셔서 형통케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경우에는 어떠하였습니까? 가뭄이 극심한 때 한 번 먹을 음식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음식이기에 먹고 나면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그것을 자기에게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약속하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합니다(왕상 17:14). 과연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였더니 그 약속대로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양식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인간적인 생각을 깨뜨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바로 순종하면 하나님 역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진리대로 순종하고 행함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며 참으로 영혼이 잘되는 축복과 이 땅에서의 모든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무엘상 15장 22절을 다 함께 읽고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보다 나으니라"
2. 많은 사람이 자신이 순종할 수 있는 것에만 순종합니다.
가령,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말씀에 순종한다면 직장 일이 바쁘다, 심방이며 행사 준비가 있다 하여 기도의 양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순종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축복받은 간증을 해 봅시다. 그리고 온전한 순종을 위해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며 불순종한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순종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3편 '요동하지 말라' 읽어 오기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불순종을 싫어하시고 순종을 기뻐하시는 이유를 깨달아 오직 순종함으로 의인된 축복을 누리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끌어내리는 힘이 바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순종은 마지못해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 명령을 기쁨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온전히 순종하는 차원이 되면 사람 생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행하게 되고 어떠한 환경도 초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의인은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1. 순종은 의인으로 들어가는 문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왜 마음으로 믿어야 의에 이르는 것일까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아무 죄 없이 모든 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을 알고 정녕 마음에 믿으면 주님의 보혈로 모든 죄를 사함받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여 열심히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아갑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한 대로 정녕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보면 '미워하지 말라' 하셨으니 미움을 버리고, '시기하지 말라' 하셨으니 시기하지 않으며,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원수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행함으로 순종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 차원을 넘어서 참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순종이 이루어지면 의인의 문에 들어갔다고 볼 수 있으며, 바로 순종이라는 문으로 들어간 후에 비로소 하나하나 짝을 이루어 가면서 참된 의인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2. 질서 안에서 순종하는 사람은 축복
이 세상에는 질서 안에서 순종의 관계가 잘 이루어져야 될 분야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는 부모가 거룩하고 진실되며 바른 삶을 살아갈수록 자기 자녀를 바르게 가르치려고 합니다. 그리고 부모는 당연히 자녀가 '예' 하고 순종하기 원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자녀가 있을 때에는 불행과 슬픔, 다툼의 원인이 되고 고민거리가 되기 쉽지요. 반대로 그 즉시 순종하여 자기를 신속하게 발전시켜 나가는 자녀는 부모의 기쁨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제지간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의 입장에서는 제자가 깍듯이 스승을 존중하며 배우는 것을 바로 깨우치고, 잘 양식 삼아 활용하며 타의 모범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회사 사장 역시 부하 직원이 자기 말에 순종할 뿐 아니라, 성실하고 진실하며 지혜로워서 회사 발전에 기여하는 유능한 사람을 원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의 자녀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찌 아브라함이 사랑스럽지 않으셨겠습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생명보다 귀한 독자라도 하나님께 바칠 만큼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의로 여기시고 기뻐하셨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22장 12절에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며 크게 축복하셨던 것입니다.
반면에 사울 왕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고 불순종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무엘 선지자가 사울 왕에게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하고 엄히 책망을 합니다(삼상 15:22~23).
3.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
그러면 사울이 왜 사무엘 선지자로부터 이런 말을 듣게 되었을까요? 하나님은 사울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 명하셨는데 사울은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아말렉의 아각 왕을 사로잡는가 하면 기름진 양과 소 등 좋은 것을 남기고 가치 없고 낮은 것만 멸하였습니다. 이러한 불순종으로 인해 사울은 결국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사람이 자기의 생각 때문에 순종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진리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입력된 지식과는 반대되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낮아져라 그러면 높아진다, 죽어져라 그러면 산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어 줘라 등의 말씀들을 보면 우리 육신의 생각과는 너무나 맞지 않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도 순종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요한일서 4장 20절을 보면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내가 속한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마음도 맞춰 주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자기의 생각에 맞추지 말고 '아멘'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행하는 것이 바로 순종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4. 순종하는 의인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맡아 길을 떠나려 하는데 일을 앞두고 갑자기 집안에 큰 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아이구, 내 집에 문제가 생겼으니 어떻게 가나?' 하고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가지 못했다면 하나님 일은 이루어지지 못한 채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작정했으니 가자' 하고 가면 그 뒤의 일은 하나님께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을 버리고 순종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역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철저히 깨우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서로가 자기 생각에 맞추기 때문에 부부나 가족이 하나 되지 못하고, 하나님 마음에도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8장 7~8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종치 않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실 수가 없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이 되고 순종의 의인이 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순적하게 역사하셔서 형통케 인도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르밧 과부의 경우에는 어떠하였습니까? 가뭄이 극심한 때 한 번 먹을 음식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음식이기에 먹고 나면 죽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그것을 자기에게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약속하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합니다(왕상 17:14). 과연 사르밧 과부가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였더니 그 약속대로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양식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인간적인 생각을 깨뜨리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바로 순종하면 하나님 역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오직 진리대로 순종하고 행함으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며 참으로 영혼이 잘되는 축복과 이 땅에서의 모든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무엘상 15장 22절을 다 함께 읽고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보다 나으니라"
2. 많은 사람이 자신이 순종할 수 있는 것에만 순종합니다.
가령,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신 말씀에 순종한다면 직장 일이 바쁘다, 심방이며 행사 준비가 있다 하여 기도의 양을 채우지 못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순종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하여 축복받은 간증을 해 봅시다. 그리고 온전한 순종을 위해 다시 한 번 자신을 돌아보며 불순종한 것이 있다면 회개하고 순종의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3편 '요동하지 말라' 읽어 오기
2009-09-04
제36과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창 22:1~13
읽을말씀 : 창 22:1~13 | 외울말씀 : 창 22:12 l 참고 말씀:히 11:19
교육목표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를 통해 의인과 믿음에 대해 알게 한다.
서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 관계가 이루어지면 눈빛이나 몸짓만 보아도 상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설령 이해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해도 오해하지 않고 그 입장에서 이해해 주려고 하지요. 그러나 서로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친한 것 같아도 작은 일로도 감정이 상하고 갈라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과 얼마나 진실함으로 신뢰를 쌓았느냐에 따라 더욱 아름다운 관계로 승화될 수도 있고 반대로 순간에 허물어질 수도 있습니다.
1. 아름다운 신뢰 관계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남에게 부탁해야 할 때도 있고, 부탁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만일 악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결코 동참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탐욕을 일삼는 사람들은 자기 유익을 위해 동참하는데 그 결과는 참으로 비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선한 일을 부탁받았을 때는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생명도 아끼지 않고 나서서 해결해 준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에스더는 부모 없는 자신을 딸처럼 양육한 사촌 오빠 모르드개의 청을 들어 주기 위해 생명을 걸고 왕 앞에 나가 결국 자기 민족 유다인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합니다. 에스더가 선 가운데에 모르드개의 청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참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그 결과도 축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서로 얼마나 믿고, 잘 알며,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신의 속에서 서로 주고받을 때 진정 아름답고 온전한 결과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지전능한 창조주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온전하다면 누구든지 하나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항상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신뢰 관계
창세기 12장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얼마나 온전했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분명한 목적지를 알려 주지 않고 앞으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지요.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믿음으로 맡기고 말씀에 순종하여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고 길을 떠났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 뜻에 순종해 나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말씀하시니 아브라함은 그대로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약속하셨을 때에도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였습니다. 그 땅에는 기근이 심하여 애굽 땅으로 거처를 옮겨야만 하는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오직 인내하며 그분의 뜻을 좇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매우 돈독하였습니다.
3. 아브라함의 의와 믿음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아브라함의 소유가 점점 많아졌고 조카 롯도 아브라함과 함께함으로 복을 받아 부유해지다 보니 둘이 한곳에 더 이상 거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며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자신을 양보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롯이 곤경에 빠졌을 때에도 결코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양성한 가신 318인을 이끌고 가서 롯과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과 재물을 되찾아 오기도 했지요.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모든 일에 의를 좇아 행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 하셨고,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뭇별처럼 자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마음 중심에서 믿었습니다. 이미 자신과 아내는 나이가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었지만, 그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어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을 사랑스럽게 여기며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하나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여종인 하갈과 동침하여 자녀를 얻을 것을 권유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그는 사라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하갈과 동침하였습니다. 훗날 이것은 큰 풍파를 일으키는 불씨가 되고 맙니다. 하갈이 자신이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여주인 사라를 멸시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오히려 사라가 아브라함을 원망합니다. 이때에도 그는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침 없이 공평하게 일을 처리했습니다. 비록 하갈이 아브라함의 자녀를 잉태하였지만, 질서상 사라의 여종이기에 그녀의 눈에 좋을 대로 행하게 합니다. 창세기 16장을 보면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을 낳게 되는데 아브라함이 86세 때의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99세 되던 해, 하나님께서는 다음 해에 아들을 낳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약속의 씨인 이삭을 100세에 얻게 됩니다. 어느 날, 사라는 여종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봅니다. 그녀는 이를 참지 못하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지요. 늙은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신의 아들이기에 갈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모든 입장에서 오직 정도를 좇아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른 판단을 주실 때를 기다렸고,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셨을 때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말씀하시며, 이스마엘을 통해서도 한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고 즉시 순종하여 아침 일찍 하갈과 이스마엘을 떠나 보냅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 뜻이면 오직 아멘으로 순종하고, 아니면 돌아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런 믿음은 금방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순종하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에 순간순간 오는 것이며, 그러다 보면 온전케 됩니다.
4.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
이와 같이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보고 하나님은 축복 주기 위한 시험을 마지막으로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한다면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기 때문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히 11:19).
그는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신뢰했기 때문에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위해 아내와 상의하지 않고 길을 떠납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도 있게 하시고, 있는 것도 없게 할 수 있으니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 해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함 있는 참 믿음이며 온전한 믿음이지요. 이렇게 아브라함의 중심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그대로 믿고 나아가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하여 하나님 역사를 받을 수 있는 그 마음 자체가 바로 의로운 마음입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은 의로운 마음이며,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의인이라 말합니다. 또한 의인이 행하는 바가 곧 믿음이며 또한 참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불릴 정도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의를 이루고 항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항상 의인의 삶을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세기 22장 12절을 다 함께 읽고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네가 네 아들 네 □ □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 □ □을 □ □하는 줄을 아노라"
2.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의 문제, 아내 사라와 하갈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각자 본받아야 할 모습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그리고 주일성수, 십일조 등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할 일인데도 쉽게 행하지 못하는 모습이 있다면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2편 '순종' 읽어 오기
● 의인(義人)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모든 죄를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된다. 이처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으면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다. 그러나 진정한 의인이 되려면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죄를 버리는 것은 물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
교육목표 :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를 통해 의인과 믿음에 대해 알게 한다.
서로에 대한 온전한 신뢰 관계가 이루어지면 눈빛이나 몸짓만 보아도 상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설령 이해되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해도 오해하지 않고 그 입장에서 이해해 주려고 하지요. 그러나 서로 신뢰 관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으면 아무리 친한 것 같아도 작은 일로도 감정이 상하고 갈라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과 얼마나 진실함으로 신뢰를 쌓았느냐에 따라 더욱 아름다운 관계로 승화될 수도 있고 반대로 순간에 허물어질 수도 있습니다.
1. 아름다운 신뢰 관계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남에게 부탁해야 할 때도 있고, 부탁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만일 악한 일이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 결코 동참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나 탐욕을 일삼는 사람들은 자기 유익을 위해 동참하는데 그 결과는 참으로 비참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달리 선한 일을 부탁받았을 때는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생명도 아끼지 않고 나서서 해결해 준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일입니다. 예를 들어, 에스더는 부모 없는 자신을 딸처럼 양육한 사촌 오빠 모르드개의 청을 들어 주기 위해 생명을 걸고 왕 앞에 나가 결국 자기 민족 유다인을 멸망의 위기에서 구합니다. 에스더가 선 가운데에 모르드개의 청을 들어주었기 때문에 그 과정이 참으로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그 결과도 축복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처럼 사람이 서로 얼마나 믿고, 잘 알며, 얼마나 사랑하느냐 하는 신의 속에서 서로 주고받을 때 진정 아름답고 온전한 결과를 맺게 됩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전지전능한 창조주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온전하다면 누구든지 하나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항상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신뢰 관계
창세기 12장을 보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얼마나 온전했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분명한 목적지를 알려 주지 않고 앞으로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지요.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신뢰했기 때문에 모든 것을 믿음으로 맡기고 말씀에 순종하여 아무런 이유도 대지 않고 길을 떠났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하나님 뜻에 순종해 나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인도하는 대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가나안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말씀하시니 아브라함은 그대로 믿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약속하셨을 때에도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였습니다. 그 땅에는 기근이 심하여 애굽 땅으로 거처를 옮겨야만 하는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도 하나님을 조금도 원망하지 않고 오직 인내하며 그분의 뜻을 좇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과의 신뢰 관계가 매우 돈독하였습니다.
3. 아브라함의 의와 믿음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한 아브라함의 소유가 점점 많아졌고 조카 롯도 아브라함과 함께함으로 복을 받아 부유해지다 보니 둘이 한곳에 더 이상 거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롯에게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 하며 땅을 먼저 선택할 수 있는 우선권을 주었습니다.
이렇게 아브라함은 자신을 양보하였을 뿐 아니라 또한 롯이 곤경에 빠졌을 때에도 결코 방관하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양성한 가신 318인을 이끌고 가서 롯과 포로로 잡혀 간 사람들과 재물을 되찾아 오기도 했지요.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모든 일에 의를 좇아 행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네 자손으로 땅의 티끌 같게 하리라" 하셨고,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의 뭇별처럼 자손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에도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마음 중심에서 믿었습니다. 이미 자신과 아내는 나이가 많아 아이를 가질 수 없었지만, 그는 변함없이 하나님을 믿어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브라함을 사랑스럽게 여기며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하나님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하였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여종인 하갈과 동침하여 자녀를 얻을 것을 권유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그는 사라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고 하갈과 동침하였습니다. 훗날 이것은 큰 풍파를 일으키는 불씨가 되고 맙니다. 하갈이 자신이 잉태했다는 사실을 알고는 여주인 사라를 멸시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오히려 사라가 아브라함을 원망합니다. 이때에도 그는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침 없이 공평하게 일을 처리했습니다. 비록 하갈이 아브라함의 자녀를 잉태하였지만, 질서상 사라의 여종이기에 그녀의 눈에 좋을 대로 행하게 합니다. 창세기 16장을 보면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하갈이 아들 이스마엘을 낳게 되는데 아브라함이 86세 때의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99세 되던 해, 하나님께서는 다음 해에 아들을 낳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아브라함은 약속의 씨인 이삭을 100세에 얻게 됩니다. 어느 날, 사라는 여종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봅니다. 그녀는 이를 참지 못하고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아브라함에게 요구하지요. 늙은 아브라함은 이스마엘도 자신의 아들이기에 갈등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그 모든 입장에서 오직 정도를 좇아 행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른 판단을 주실 때를 기다렸고, 하나님께서 선택해 주셨을 때에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말씀하시며, 이스마엘을 통해서도 한 민족을 이루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고 즉시 순종하여 아침 일찍 하갈과 이스마엘을 떠나 보냅니다. 이처럼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 뜻이면 오직 아멘으로 순종하고, 아니면 돌아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런 믿음은 금방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순종하고 기도하며 나아갈 때에 순간순간 오는 것이며, 그러다 보면 온전케 됩니다.
4.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
이와 같이 순종하는 아브라함을 보고 하나님은 축복 주기 위한 시험을 마지막으로 허락하십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을 동원한다면 참으로 기가 막힐 노릇이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기 때문에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히 11:19).
그는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신뢰했기 때문에 이삭을 번제로 바치기 위해 아내와 상의하지 않고 길을 떠납니다. 하나님은 없는 것도 있게 하시고, 있는 것도 없게 할 수 있으니 이삭을 번제로 드린다 해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행함 있는 참 믿음이며 온전한 믿음이지요. 이렇게 아브라함의 중심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그대로 믿고 나아가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전폭적으로 믿고 의지하여 하나님 역사를 받을 수 있는 그 마음 자체가 바로 의로운 마음입니다. 하나님 앞에 순종할 수 있는 마음은 의로운 마음이며,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을 의인이라 말합니다. 또한 의인이 행하는 바가 곧 믿음이며 또한 참 믿음은 반드시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벗'이라 불릴 정도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의를 이루고 항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항상 의인의 삶을 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세기 22장 12절을 다 함께 읽고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네가 네 아들 네 □ □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 □ □을 □ □하는 줄을 아노라"
2. 아브라함이 조카 롯과의 문제, 아내 사라와 하갈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각자 본받아야 할 모습은 무엇인지 이야기해 봅시다.
그리고 주일성수, 십일조 등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할 일인데도 쉽게 행하지 못하는 모습이 있다면 합심하여 기도합시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제2편 '순종' 읽어 오기
● 의인(義人)이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모든 죄를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된다. 이처럼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의롭다 함을 얻으면 의인이라 칭함을 받는다. 그러나 진정한 의인이 되려면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죄를 버리는 것은 물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