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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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6
제28과선의 4단계(2)
롬 12:2
읽을말씀 : 롬 12:2 | 외울말씀 : 마 5:39 ㅣ 참고 말씀:마 5:39~42
교육목표 : 선의 3단계와 4단계에 대해 알아 더 높은 차원의 선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온전한 선에 이르는 과정을 4단계로 나누어 1, 2단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악을 악으로 대응치는 않으나 마음에 감정이 있어 눌러 참는 1단계의 선, 마음에 어떠한 감정도 품지 않는 2단계의 선을 넘어서 3, 4단계의 선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상대를 감동시키는 3단계의 선(善)
선의 3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게도 선을 행하여 오히려 감동을 줄 수 있는 선의 차원입니다. 마음에 악이 없기에 단지 악으로 맞서 대항치 않는 선의 2단계가 소극적인 선의 단계라면, 악으로 대항치 않는 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을 선으로 갚는 선의 3단계는 적극적인 선의 단계라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선의 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온 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대로 육을 온전히 벗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렸을 뿐만 아니라,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도 온전히 임한 상태이지요.
예를 들면, 마태복음 5장 39~42절에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마음 중심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선의 3단계에 들어온 것이지요. 자기의 손익을 먼저 따지지 않으며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도 개의치 않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원수같이 대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어찌하면 그의 마음을 녹여 화평을 이룰까'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선의 깊은 단계에 들어갈수록 현실에서는 자신을 희생해야 할 수도 있지만 마음이 선으로 채워진 사람은 선을 행하는 것 자체가 기쁘고 즐겁기 때문에 힘들게 여기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이기 때문에 악을 버리고 선을 이룬 만큼 영적인 빛도 강하게 나타납니다.
선의 2단계에만 들어가도 영적인 빛으로 인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지 못하므로 시험 환난이나 핍박이 물러가고, 시험이 온다 해도 선으로 통과함으로 오히려 축복을 받게 되지요. 하물며 선의 3단계에 들어간다면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파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악으로 나온 상대의 마음이 선한 입술의 말과 행함에 감동을 받아 악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역사가 일어나지요. 이는 선을 행하는 사람의 영적인 빛이 너무나 강하여 상대에게 역사하는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그 상대의 마음에 남아 있는 작은 선에까지 그 빛이 다다랐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따라서 선이란 단지 착해서 져 주고 다 내어 주는 연약한 것이 아니라,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고 그 궤계도 파해 버리는 큰 위력을 지녔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의 경우,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모함한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도 원망도 없었습니다. 왕이 자신의 생명을 구해 주지 않았다 해서 서운해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역사로 사자 굴에서 살아났을 때도 오직 지극한 섬김의 말로 왕에게 고합니다.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했지요(단 6:21~22).
이처럼 선한 말을 들을 때 얼마나 왕의 심금을 울렸겠습니까. 왕은 다니엘을 해치려 했던 사람들을 즉각 징벌하고 다니엘을 영화롭게 할 뿐 아니라, 온 나라에 다니엘의 하나님을 존중하도록 조서를 내렸습니다.
다니엘처럼 상대를 감동시키는 3단계의 선에 이르면 하나님께서 항상 동행해 주시고 무엇이든 마음에 품은 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높은 차원의 선이 있습니다. 다니엘 역시 3단계의 선에 머문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차원의 선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에서도 존귀한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혹여 '나는 아직 악도 온전히 버리지 못했는데, 언제 선의 2단계를 거쳐서 3단계에 이르나?'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말씀하셨으니 아직 악을 온전히 버리지 못했어도 열심히 선을 행하고자 노력한다면 신속히 벗을 수 있습니다. 물론 마음 자체가 선으로 일궈져서 선한 말과 선한 행실이 나오는 것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최선을 다해 선을 쌓아 간다면 선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선으로 생각하고 선으로 말하며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면 그만큼 악을 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되 악이 온전히 벗어졌다면 그때가 비로소 선의 2단계입니다. 그러니 선의 2단계에서도 때에 따라 상대에게 감동을 주는 선한 말이나 선한 행함이 나올 수 있습니다.
때론 상대에게 맞대응하지 않는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의 마음을 평안케 할 수 있는 선한 말을 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상대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선한 섬김의 행함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의 3단계에서는 이런 선한 입술의 말과 선한 행함이 항상 나오지요.
그러니 '나는 상대가 악으로 나와도 마음에 아무 불편함이 없고 오히려 선한 말을 했으니 선의 3단계구나' 할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상황에나 어떠한 상대에게도 항상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그를 선대했는가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생명도 아낌없이 주는 4단계의 선(善)
가장 차원 높은 4단계의 선은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생명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선의 차원입니다. 바로 죄인들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 주신 하나님의 선의 차원이요, 의인들이나 선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우리 주 예수님의 선의 차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이 받아야 하는 사망이라는 저주를 속량하시기 위해 나무에 달리셨을 뿐만 아니라, 흠 없는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죄인들의 모든 죄를 단번에 대속해 주셨습니다. 정녕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전한 영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예수님처럼 생명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4단계의 선에 이른 분들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32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을 거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모세 선지자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걸어서 건너는 등의 많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케 해 줬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늘 불평했고, 모세를 원망하며 심지어는 돌로 치려고까지 했지요. 이런 백성들인데도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로마서 9장 3절을 보면 신약 시대의 사도 바울도 모세와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했습니다.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그들은 당시 심히도 사도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이지요. 심지어 유대인 가운데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사도 바울은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그들은 구원받기를 원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엘리야, 에녹과 같은 분들도 최고의 선의 차원에 이르렀는데 이러한 차원에 이르면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위로부터 권능도 받아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천국의 가장 아름다운 처소인 새 예루살렘에 거하게 되는 것은 물론, 하나님 보좌에 더 가까이 거하여 세세토록 큰 영화를 누리게 됩니다. 믿음으로 아름다운 선을 사모하며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 신속히 온전한 선의 단계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 ) 안을 채워 보세요.
선의 1단계 : ( )으로 대항치 않고 ( )을 눌러 참는 단계다.
선의 2단계 : 악을 ( )으로 갚지 않고, 마음에 어떤 불편한 ( )도 없다.
선의 3단계 :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게 ( )을 행하여 오히려 ( )을 준다.
선의 4단계 :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 )도 아낌없이 줄 수 있다.
2. 다음 중 최고의 선을 이룬 분만 O표를 해 보세요.
① 사도 바울 ② 다니엘 ③ 모세 ④ 엘리사
3. 다음 중 선에 관한 말씀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세요.
① 마 5:38~42 ② 롬 9:3 ③ 마 5:28 ④ 출 32:32
● 금주 과제
『2005년도 설교 선(3) 』듣거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송사'란?
백성 사이에 발생한 분쟁의 판결을 관청에 호소하는 일로 '소송'이라고도 한다.
교육목표 : 선의 3단계와 4단계에 대해 알아 더 높은 차원의 선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리게 한다.
지난 시간에는 온전한 선에 이르는 과정을 4단계로 나누어 1, 2단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악을 악으로 대응치는 않으나 마음에 감정이 있어 눌러 참는 1단계의 선, 마음에 어떠한 감정도 품지 않는 2단계의 선을 넘어서 3, 4단계의 선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상대를 감동시키는 3단계의 선(善)
선의 3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게도 선을 행하여 오히려 감동을 줄 수 있는 선의 차원입니다. 마음에 악이 없기에 단지 악으로 맞서 대항치 않는 선의 2단계가 소극적인 선의 단계라면, 악으로 대항치 않는 데서 머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을 선으로 갚는 선의 3단계는 적극적인 선의 단계라 할 수 있지요.
이러한 선의 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온 영'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대로 육을 온전히 벗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렸을 뿐만 아니라,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도 온전히 임한 상태이지요.
예를 들면, 마태복음 5장 39~42절에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마음 중심에서부터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선의 3단계에 들어온 것이지요. 자기의 손익을 먼저 따지지 않으며 선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도 개의치 않습니다. 또한 자신에게 원수같이 대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어찌하면 그의 마음을 녹여 화평을 이룰까'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선의 깊은 단계에 들어갈수록 현실에서는 자신을 희생해야 할 수도 있지만 마음이 선으로 채워진 사람은 선을 행하는 것 자체가 기쁘고 즐겁기 때문에 힘들게 여기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영적으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이기 때문에 악을 버리고 선을 이룬 만큼 영적인 빛도 강하게 나타납니다.
선의 2단계에만 들어가도 영적인 빛으로 인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지 못하므로 시험 환난이나 핍박이 물러가고, 시험이 온다 해도 선으로 통과함으로 오히려 축복을 받게 되지요. 하물며 선의 3단계에 들어간다면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파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악으로 나온 상대의 마음이 선한 입술의 말과 행함에 감동을 받아 악을 회개하고 돌이키는 역사가 일어나지요. 이는 선을 행하는 사람의 영적인 빛이 너무나 강하여 상대에게 역사하는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그 상대의 마음에 남아 있는 작은 선에까지 그 빛이 다다랐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따라서 선이란 단지 착해서 져 주고 다 내어 주는 연약한 것이 아니라,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고 그 궤계도 파해 버리는 큰 위력을 지녔다는 사실입니다.
다니엘의 경우,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모함한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도 원망도 없었습니다. 왕이 자신의 생명을 구해 주지 않았다 해서 서운해하지도 않았고 하나님의 역사로 사자 굴에서 살아났을 때도 오직 지극한 섬김의 말로 왕에게 고합니다.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했지요(단 6:21~22).
이처럼 선한 말을 들을 때 얼마나 왕의 심금을 울렸겠습니까. 왕은 다니엘을 해치려 했던 사람들을 즉각 징벌하고 다니엘을 영화롭게 할 뿐 아니라, 온 나라에 다니엘의 하나님을 존중하도록 조서를 내렸습니다.
다니엘처럼 상대를 감동시키는 3단계의 선에 이르면 하나님께서 항상 동행해 주시고 무엇이든 마음에 품은 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높은 차원의 선이 있습니다. 다니엘 역시 3단계의 선에 머문 것이 아니라 가장 높은 차원의 선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에서도 존귀한 자리에 이르렀습니다.
혹여 '나는 아직 악도 온전히 버리지 못했는데, 언제 선의 2단계를 거쳐서 3단계에 이르나?' 생각하시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갈 6:9) 말씀하셨으니 아직 악을 온전히 버리지 못했어도 열심히 선을 행하고자 노력한다면 신속히 벗을 수 있습니다. 물론 마음 자체가 선으로 일궈져서 선한 말과 선한 행실이 나오는 것과는 다르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최선을 다해 선을 쌓아 간다면 선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선으로 생각하고 선으로 말하며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면 그만큼 악을 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되 악이 온전히 벗어졌다면 그때가 비로소 선의 2단계입니다. 그러니 선의 2단계에서도 때에 따라 상대에게 감동을 주는 선한 말이나 선한 행함이 나올 수 있습니다.
때론 상대에게 맞대응하지 않는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도 있고, 어떤 경우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의 마음을 평안케 할 수 있는 선한 말을 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상대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선한 섬김의 행함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의 3단계에서는 이런 선한 입술의 말과 선한 행함이 항상 나오지요.
그러니 '나는 상대가 악으로 나와도 마음에 아무 불편함이 없고 오히려 선한 말을 했으니 선의 3단계구나' 할 것이 아닙니다. 어떠한 상황에나 어떠한 상대에게도 항상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그를 선대했는가를 살펴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생명도 아낌없이 주는 4단계의 선(善)
가장 차원 높은 4단계의 선은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생명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선의 차원입니다. 바로 죄인들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 주신 하나님의 선의 차원이요, 의인들이나 선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서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신 우리 주 예수님의 선의 차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이 받아야 하는 사망이라는 저주를 속량하시기 위해 나무에 달리셨을 뿐만 아니라, 흠 없는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죄인들의 모든 죄를 단번에 대속해 주셨습니다. 정녕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전한 영의 자녀가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예수님처럼 생명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4단계의 선에 이른 분들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 32절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을 거듭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모세 선지자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홍해를 마른 땅과 같이 걸어서 건너는 등의 많은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체험케 해 줬습니다. 그런데도 백성들은 늘 불평했고, 모세를 원망하며 심지어는 돌로 치려고까지 했지요. 이런 백성들인데도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입니다.
로마서 9장 3절을 보면 신약 시대의 사도 바울도 모세와 같은 마음으로 기도하였습니다.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했습니다.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그들은 당시 심히도 사도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이지요. 심지어 유대인 가운데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사도 바울은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그들은 구원받기를 원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엘리야, 에녹과 같은 분들도 최고의 선의 차원에 이르렀는데 이러한 차원에 이르면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위로부터 권능도 받아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차 천국의 가장 아름다운 처소인 새 예루살렘에 거하게 되는 것은 물론, 하나님 보좌에 더 가까이 거하여 세세토록 큰 영화를 누리게 됩니다. 믿음으로 아름다운 선을 사모하며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 신속히 온전한 선의 단계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 ) 안을 채워 보세요.
선의 1단계 : ( )으로 대항치 않고 ( )을 눌러 참는 단계다.
선의 2단계 : 악을 ( )으로 갚지 않고, 마음에 어떤 불편한 ( )도 없다.
선의 3단계 :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게 ( )을 행하여 오히려 ( )을 준다.
선의 4단계 :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 )도 아낌없이 줄 수 있다.
2. 다음 중 최고의 선을 이룬 분만 O표를 해 보세요.
① 사도 바울 ② 다니엘 ③ 모세 ④ 엘리사
3. 다음 중 선에 관한 말씀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세요.
① 마 5:38~42 ② 롬 9:3 ③ 마 5:28 ④ 출 32:32
● 금주 과제
『2005년도 설교 선(3) 』듣거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송사'란?
백성 사이에 발생한 분쟁의 판결을 관청에 호소하는 일로 '소송'이라고도 한다.
2010-07-09
제27과선의 단계(1)
롬 12:2
읽을말씀 : 롬 12:2 | 외울말씀 : 롬 12:2 l 참고 말씀:마 1:19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의 단계를 알아 더 높은 차원의 선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의 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시험 환난이 떠나며 무엇이나 기도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밝히 분별하여 온전한 선의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선의 기준과 단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온전한 선의 기준은 무엇인가
로마서 12장 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죄악으로 관영하여 너무나 세찬 육의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결코 추하고 악한 육의 흐름을 타지 말고 거룩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영의 흐름을 타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선의 기준은 전혀 다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선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착하다, 좋다' 혹은 '사람의 좋고 나쁨과 마땅하고 마땅하지 않음을 가리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막연한 기준을, 다시 각자의 기준에 맞춰서 '양심'이라는 틀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양심이라는 기준에 의해 어떤 것이 '선하다' '선하지 않다' 말하지만 사람의 양심은 결코 온전한 선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나름대로 '진리는 이것이다'라고 자기의 가치 판단 기준을 만들어 내지요. 따라서 양심에는 비진리도 섞여 있으며 지역마다, 혹은 시대마다 달라집니다. 같은 시대, 같은 곳에 산다 해도 사람마다 양심이 다르고, 어떤 환경, 어떤 부모, 어떤 스승의 영향을 받았느냐에 따라 서로 달라집니다. 그러니 '양심'은 절대적인 선의 기준이 될 수가 없으며 오직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적인 선, 온전한 선의 기준이 될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선의 기준으로 삼는 양심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의 기준은 다릅니다. 예를 들면, 세상에서는 원수를 갚는 것을 의롭게 여기는데 하나님께서는 원수 갚는 것은 악이며 용서하는 것이 선이라 하십니다(마 5:44, 롬 12:20).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온전한 선의 기준이요, 선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배워야 합니다. 또한 배운 것을 그대로 행함으로 마음에 일구어서 온전한 선에 이르러야 하는데 그 단계를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선의 1, 2단계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2. 악으로 대항치 않고 감정을 눌러 참는 선의 1단계
선의 1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마음에는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 할지라도 함께 악으로 대응하지 않는 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 여러분을 욕하고 때리는데 같이 욕하고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참았다고 합시다. 속으로는 억울하고 속상하여 마음이 불편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에 또는 나름대로 갖추어진 교양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꾹 눌러 참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선하고 온유해 보이므로 세상에서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인정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를 선하다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 해도 그 마음에 여전히 악이 있다면 이는 결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의 차원에 들 수 없습니다. 악에 맞대응해 싸우는 사람보다는 낫지만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눌러 참는다는 것은 여전히 그 속에 악이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처럼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선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정녕 믿는다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을 미워하게 되고 선을 좇아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악을 행하거나 심지어는 더욱 악을 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믿지도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지요.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죄악이 관영하여 선을 찾아보기 어렵고 진실한 믿음 가진 사람을 찾기도 어렵습니다(눅 18:8). 그런데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작은 불빛도 눈에 잘 띄는 법입니다. 사랑이 식어지고 더욱 심한 악으로 치닫는 이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된 선을 행해 나간다면 어둔 세상의 빛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빛 가운데로 이끌며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3.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는 선의 2단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은 바로 선의 2단계부터인데, 선의 2단계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음은 물론,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속이 상해도 꾹꾹 눌러 참는 것이 아니요, 아예 미움도 불편함도 없고 상대에 대한 어떤 감정도 품지 않는 차원입니다. 이는 바로 마음에 악이 전혀 없는 상태로서 "영의 마음"이라 할 수 있지요. 바로 이 상태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의 단계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과정이 있습니다. 악한 일을 당할 때 악으로 갚지는 않는다 해도 순간 마음에 감정이 일거나 요동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럴 때도 이내 마음을 다스리며 선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순간의 감정조차도 일어나지 않는 선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경우,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약혼녀가 자신과 동침하지도 않았는데 잉태한 것을 알았을 때 보통 사람 같으면 간음했다고 율법대로 벌을 받게 하거나, 그냥 참는다 해도 평안한 마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마 1:19) 했다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선한 요셉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이심을 알려 주셨지요.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최소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의 2단계 마음을 이루어야 원수 마귀 사단이 어찌하지 못하고 시험 환난도 당하지 않습니다. 만일 원수 마귀 사단이 악을 부추기는 대로 순종하여 악으로 생각하고 악으로 말하며 악을 행한다면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지킴 받거나 축복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만 이룬다 해도 그 선이 빛으로 역사되어 자연히 어둠이 물러갑니다.
다음 예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선한지를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떤 분야의 책임자로 있는데, 아랫사람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일이 잘못되었다고 합시다. 이런 경우 많은 분들이 제 앞에서 "제 탓입니다. 제가 더 잘 돌아보지 못한 까닭입니다."라고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그런데 이후에 혹 마음 한편에 아랫사람을 탓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 그를 탓하고 책망했다면 이는 결코 선하다 할 수가 없습니다. 선한 사람은 억지가 아니라 진심으로 내 탓이라 고백하며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은혜를 주시며 다음에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은 직접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책망을 듣는 것을 보았을 때입니다. 여러분은 혹 '나는 상관없는 일이니 다행이다.' 하거나 자신도 책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마음속으로 함께 책망하지 않습니까? 정녕 마음이 선한 사람은 자신과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니라 해도 '내가 도와줬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하며 민망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니 자신이 직접 관련된 일인 경우는 당연히 모든 상황을 진실하게 말하되,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의당 자신이 져야 할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때론 어려움과 곤욕을 당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욱 선을 사모함으로 모든 일을 선으로 생각하고 선한 마음을 가지며, 선으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로마서 12장 2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 ) 안에 알맞은 말을 채워 보세요.
선의 ( )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마음에는 좋지 않은 감정이 있어도 함께 ( )으로 ( )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의 ( )단계는 악을 ( )으로 갚지 않으며 ( )에 어떤 불편한 ( )도 없다. 이는 마음에 악이 전혀 없는 영의 마음이며, 이 상태가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 )의 ( )의 단계이다.
● 금주 과제
『2005년도 설교 선(2) 』듣거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마귀'란?
천사와 정반대로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죄를 짓게 한다. 생각을 통해 비진리를 사주하는 것이 사단의 역사라면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귀다. 그래서 성경은 죄를 짓는 사람에 대해 마귀에게 속했다고 말씀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의 단계를 알아 더 높은 차원의 선을 이룸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선의 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모든 시험 환난이 떠나며 무엇이나 기도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오늘은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 밝히 분별하여 온전한 선의 차원에 이를 수 있도록 선의 기준과 단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온전한 선의 기준은 무엇인가
로마서 12장 2절에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하셨습니다. 날이 갈수록 세상은 죄악으로 관영하여 너무나 세찬 육의 흐름을 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결코 추하고 악한 육의 흐름을 타지 말고 거룩하고 선하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영의 흐름을 타야 합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과 하나님께서 보시는 선의 기준은 전혀 다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선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착하다, 좋다' 혹은 '사람의 좋고 나쁨과 마땅하고 마땅하지 않음을 가리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러한 막연한 기준을, 다시 각자의 기준에 맞춰서 '양심'이라는 틀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양심이라는 기준에 의해 어떤 것이 '선하다' '선하지 않다' 말하지만 사람의 양심은 결코 온전한 선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나름대로 '진리는 이것이다'라고 자기의 가치 판단 기준을 만들어 내지요. 따라서 양심에는 비진리도 섞여 있으며 지역마다, 혹은 시대마다 달라집니다. 같은 시대, 같은 곳에 산다 해도 사람마다 양심이 다르고, 어떤 환경, 어떤 부모, 어떤 스승의 영향을 받았느냐에 따라 서로 달라집니다. 그러니 '양심'은 절대적인 선의 기준이 될 수가 없으며 오직 영원히 변치 않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절대적인 선, 온전한 선의 기준이 될 수가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선의 기준으로 삼는 양심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선의 기준은 다릅니다. 예를 들면, 세상에서는 원수를 갚는 것을 의롭게 여기는데 하나님께서는 원수 갚는 것은 악이며 용서하는 것이 선이라 하십니다(마 5:44, 롬 12:20).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온전한 선의 기준이요, 선 자체이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듣고 배워야 합니다. 또한 배운 것을 그대로 행함으로 마음에 일구어서 온전한 선에 이르러야 하는데 그 단계를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선의 1, 2단계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2. 악으로 대항치 않고 감정을 눌러 참는 선의 1단계
선의 1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마음에는 좋지 않은 감정이 있다 할지라도 함께 악으로 대응하지 않는 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누가 여러분을 욕하고 때리는데 같이 욕하고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참았다고 합시다. 속으로는 억울하고 속상하여 마음이 불편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에 또는 나름대로 갖추어진 교양을 지키기 위해 감정을 꾹 눌러 참고 있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선하고 온유해 보이므로 세상에서는 "법 없이도 살 사람이다." 인정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이를 선하다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외모를 보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는다 해도 그 마음에 여전히 악이 있다면 이는 결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의 차원에 들 수 없습니다. 악에 맞대응해 싸우는 사람보다는 낫지만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눌러 참는다는 것은 여전히 그 속에 악이 있다는 증거가 됩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처럼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진실로 하나님을 믿는다면 선으로 가득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하고자 노력할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정녕 믿는다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을 미워하게 되고 선을 좇아 행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 사람들과 같이 악을 행하거나 심지어는 더욱 악을 행한다면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지도, 믿지도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지요.
마지막 때가 가까울수록 죄악이 관영하여 선을 찾아보기 어렵고 진실한 믿음 가진 사람을 찾기도 어렵습니다(눅 18:8). 그런데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작은 불빛도 눈에 잘 띄는 법입니다. 사랑이 식어지고 더욱 심한 악으로 치닫는 이 세대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된 선을 행해 나간다면 어둔 세상의 빛이 되어 많은 사람들을 빛 가운데로 이끌며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3.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는 선의 2단계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은 바로 선의 2단계부터인데, 선의 2단계는 악을 악으로 갚지 않음은 물론,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편하고 속이 상해도 꾹꾹 눌러 참는 것이 아니요, 아예 미움도 불편함도 없고 상대에 대한 어떤 감정도 품지 않는 차원입니다. 이는 바로 마음에 악이 전혀 없는 상태로서 "영의 마음"이라 할 수 있지요. 바로 이 상태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의 단계라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렇게 되기까지는 과정이 있습니다. 악한 일을 당할 때 악으로 갚지는 않는다 해도 순간 마음에 감정이 일거나 요동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럴 때도 이내 마음을 다스리며 선으로 이해하고자 노력해 나가다 보면 나중에는 순간의 감정조차도 일어나지 않는 선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동정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의 경우, 이런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약혼녀가 자신과 동침하지도 않았는데 잉태한 것을 알았을 때 보통 사람 같으면 간음했다고 율법대로 벌을 받게 하거나, 그냥 참는다 해도 평안한 마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마 1:19) 했다고 말씀합니다. 이처럼 선한 요셉이므로 하나님께서는 마리아가 잉태한 아기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이심을 알려 주셨지요.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최소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의 2단계 마음을 이루어야 원수 마귀 사단이 어찌하지 못하고 시험 환난도 당하지 않습니다. 만일 원수 마귀 사단이 악을 부추기는 대로 순종하여 악으로 생각하고 악으로 말하며 악을 행한다면 아무리 교회를 다녀도 지킴 받거나 축복받을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만 이룬다 해도 그 선이 빛으로 역사되어 자연히 어둠이 물러갑니다.
다음 예를 통해 자신의 마음이 얼마나 선한지를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어떤 분야의 책임자로 있는데, 아랫사람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일이 잘못되었다고 합시다. 이런 경우 많은 분들이 제 앞에서 "제 탓입니다. 제가 더 잘 돌아보지 못한 까닭입니다."라고 고백하며 회개합니다. 그런데 이후에 혹 마음 한편에 아랫사람을 탓하는 마음이 남아 있어서 그를 탓하고 책망했다면 이는 결코 선하다 할 수가 없습니다. 선한 사람은 억지가 아니라 진심으로 내 탓이라 고백하며 자신을 돌아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은혜를 주시며 다음에 또다시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살펴볼 것은 직접 자신과는 관련이 없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이 책망을 듣는 것을 보았을 때입니다. 여러분은 혹 '나는 상관없는 일이니 다행이다.' 하거나 자신도 책망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마음속으로 함께 책망하지 않습니까? 정녕 마음이 선한 사람은 자신과 직접 관련된 일이 아니라 해도 '내가 도와줬더라면 그러지 않았을 텐데' 하며 민망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니 자신이 직접 관련된 일인 경우는 당연히 모든 상황을 진실하게 말하되, 일의 결과에 대한 책임도 의당 자신이 져야 할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이런 연유로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때론 어려움과 곤욕을 당하는 것처럼 보일 때도 있지만 결국은 하나님께 사랑과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욱 선을 사모함으로 모든 일을 선으로 생각하고 선한 마음을 가지며, 선으로 행하시기를 바랍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로마서 12장 2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 ) 안에 알맞은 말을 채워 보세요.
선의 ( )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마음에는 좋지 않은 감정이 있어도 함께 ( )으로 ( )하지 않는다. 이는 하나님께서 선이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선의 ( )단계는 악을 ( )으로 갚지 않으며 ( )에 어떤 불편한 ( )도 없다. 이는 마음에 악이 전혀 없는 영의 마음이며, 이 상태가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 )의 ( )의 단계이다.
● 금주 과제
『2005년도 설교 선(2) 』듣거나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마귀'란?
천사와 정반대로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죄를 짓게 한다. 생각을 통해 비진리를 사주하는 것이 사단의 역사라면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귀다. 그래서 성경은 죄를 짓는 사람에 대해 마귀에게 속했다고 말씀한다.
2010-07-02
제26과맥추절을 지키라
출 23:14~18
읽을말씀 : 출 23:14~18 | 외울말씀 : 출 23:16 ㅣ 참고 말씀:신 16:9~12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맥추절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수확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로서 매년 지켜야 할 3대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보리가 익는 철을 맞아 하나님께 곡물의 첫 열매를 드리며 전반기에 은혜 주심에 감사할 뿐 아니라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절을 앞두고 그 유래와 영적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1. 맥추절(麥秋節)의 유래와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첫 열매는 바로 밀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밭에 뿌린 밀의 첫 수확을 감사하여 지키는 맥추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는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합니다.
칠칠절이란 명칭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이란 명칭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신명기 16장 9~12절을 보면 "칠 주(七週)를 계수(計數)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했습니다.
민수기 28장 26~31절에는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요 어린 양 일곱에는 매 어린 양에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에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막 거두어들인 새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이 소제로서(레 23:17) 특별히 드려집니다. 또한 이것과 함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리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이 지난 후 첫날에 처음 익은 곡식 단을 하나님께 바친 것은 유월절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 후 50일 되는 날 곧 맥추절에 새 곡식가루로 만든 떡 두 덩이는 예수님의 부활 후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로 새로워지고 구원에 이른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하게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두게 됨을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됨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을 감사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되었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영생할 수 있는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성결되어 나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2. 맥추감사제
맥추감사제는 소제와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되 상번제(매일 제단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을 드림: 민 28:3~4)와 소제(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빻아낸 기름 힌 사분지 일을 섞은 가루: 민 28:5~6)와 전제(독주: 민 28:7) 외에 그것들을 드리라고 했으니(민 28:26~31)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 받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감사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예물을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 하면 나름대로 마음에 주관이 오거나 깨달음을 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녀라면 즉시 순종하여 그대로 행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감사함으로 중심을 바쳐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고후 9:6~7).
우리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며, 생명 곧 진리를 심으면 영생을 거두고 비진리를 심으면 사망을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며, 마찬가지로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한 과부의 두 렙돈을 기뻐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막 12:44).
옛날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으나 오늘날은 주로 헌금으로 드립니다. 때로는 특별히 자신이 소유한 값진 물건을 드리며 물질을 드릴 수 없는 경우 마음을 다해 봉사로 몸을 드리기도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정성을 다해 기쁨과 순전한 마음, 그리고 믿음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각종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시고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지요.
그러므로 신명기 16장 10~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하신 대로 주의 성전에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준비하며 기쁨으로 성도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을 주시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천국을 소망하며 성결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심에 감사하며, 더욱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겠습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도의 응답은 물론, 아름다운 천국을 약속하셨으니 비록 눈물, 슬픔, 질병, 고통이 있는 이 땅에 살면서 온갖 일들을 겪는다 해도 천국의 소망으로 언제나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원히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설사 어떤 염려, 근심,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고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역대하 20장 20~23절을 보면 암몬, 모압, 세일산 세 거민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여호사밧 왕은 맨 앞에 거룩한 옷을 입힌 찬양대를 내보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적들이 자기들끼리 싸워 자멸하게 만들고 그들의 재물과 양식들을 취하게 하셨습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가 깨달아 전반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세어 보며 더욱 감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넣으세요.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 )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이다. ( )이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라는 뜻이고, ( )이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붙여졌다.
3. "항상 ( )하라 쉬지 말고 ( )하라 범사에 ( )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 )이니라" (살전 5:16~18)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개정판 제1장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소제(素祭)'란?
레위기 2장 1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라는 말씀대로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이다. 이는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로서 오늘날 주일 예배를 드릴 때에 한 주간 지켜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맥추절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수확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로서 매년 지켜야 할 3대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보리가 익는 철을 맞아 하나님께 곡물의 첫 열매를 드리며 전반기에 은혜 주심에 감사할 뿐 아니라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오늘은 맥추절을 앞두고 그 유래와 영적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1. 맥추절(麥秋節)의 유래와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첫 열매는 바로 밀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밭에 뿌린 밀의 첫 수확을 감사하여 지키는 맥추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는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합니다.
칠칠절이란 명칭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이란 명칭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신명기 16장 9~12절을 보면 "칠 주(七週)를 계수(計數)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했습니다.
민수기 28장 26~31절에는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요 어린 양 일곱에는 매 어린 양에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에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막 거두어들인 새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이 소제로서(레 23:17) 특별히 드려집니다. 또한 이것과 함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리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이 지난 후 첫날에 처음 익은 곡식 단을 하나님께 바친 것은 유월절 어린 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그 후 50일 되는 날 곧 맥추절에 새 곡식가루로 만든 떡 두 덩이는 예수님의 부활 후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의 역사로 새로워지고 구원에 이른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또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하게 되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두게 됨을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됨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을 감사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되었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영생할 수 있는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성결되어 나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2. 맥추감사제
맥추감사제는 소제와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되 상번제(매일 제단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을 드림: 민 28:3~4)와 소제(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빻아낸 기름 힌 사분지 일을 섞은 가루: 민 28:5~6)와 전제(독주: 민 28:7) 외에 그것들을 드리라고 했으니(민 28:26~31)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 받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감사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예물을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 하면 나름대로 마음에 주관이 오거나 깨달음을 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녀라면 즉시 순종하여 그대로 행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감사함으로 중심을 바쳐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고후 9:6~7).
우리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며, 생명 곧 진리를 심으면 영생을 거두고 비진리를 심으면 사망을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며, 마찬가지로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두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한 과부의 두 렙돈을 기뻐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막 12:44).
옛날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으나 오늘날은 주로 헌금으로 드립니다. 때로는 특별히 자신이 소유한 값진 물건을 드리며 물질을 드릴 수 없는 경우 마음을 다해 봉사로 몸을 드리기도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정성을 다해 기쁨과 순전한 마음, 그리고 믿음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각종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시고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지요.
그러므로 신명기 16장 10~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하신 대로 주의 성전에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준비하며 기쁨으로 성도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또한 성령을 주시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천국을 소망하며 성결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심에 감사하며, 더욱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하겠습니다.
3.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도의 응답은 물론, 아름다운 천국을 약속하셨으니 비록 눈물, 슬픔, 질병, 고통이 있는 이 땅에 살면서 온갖 일들을 겪는다 해도 천국의 소망으로 언제나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한 영원히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설사 어떤 염려, 근심,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고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니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역대하 20장 20~23절을 보면 암몬, 모압, 세일산 세 거민이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때 여호사밧 왕은 맨 앞에 거룩한 옷을 입힌 찬양대를 내보내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보시고 적들이 자기들끼리 싸워 자멸하게 만들고 그들의 재물과 양식들을 취하게 하셨습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가 깨달아 전반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세어 보며 더욱 감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넣으세요.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 )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이다. ( )이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라는 뜻이고, ( )이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붙여졌다.
3. "항상 ( )하라 쉬지 말고 ( )하라 범사에 ( )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 )이니라" (살전 5:16~18)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개정판 제1장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소제(素祭)'란?
레위기 2장 1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라는 말씀대로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이다. 이는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로서 오늘날 주일 예배를 드릴 때에 한 주간 지켜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의미한다.
2010-06-25
제25과천국의 처소와 면류관(5)
요일 3:21~22
읽을말씀 : 요일 3:21~22 | 외울말씀 : 계 21:11 l 참고 말씀:딤후 4:8, 계 4:4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 사람들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알아본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4단계의 믿음이 성장하면 5단계의 믿음이 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에 순종하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차원이지요. 그러면 믿음의 5단계 사람들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1.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넘치도록 순종하는 단계
부모 자녀 간에 서로 사랑한다 하지만 부모님 말씀에 100퍼센트 순종하는 자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순종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으며, 어떤 자녀는 순종은커녕 아예 반항하거나 빗나가기도 하지요. 반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은 아니지만 부모님 말씀이므로 도리를 좇아 복종하는 자녀도 있습니다.
선한 자녀는 부모님을 사랑하여 마음 아프지 않도록 말씀에 오직 순종만 합니다. 말씀하는 대로 100퍼센트 순종하여 부모의 마음을 편케 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사랑이 승한 자녀는 부모님이 무엇을 명하실 때 왜 그 말씀을 하셨는지 마음까지 헤아려 부모님이 원하는 그 이상으로 이뤄 드립니다. 또한 시키지 않은 것까지 찾아서, 부모님의 마음에 꼭 맞게 미리미리 해 놓습니다.
부모님은 모든 자녀를 다 사랑하지만 그중 특히 부모를 사랑하여 중심에서 순종하는 아들이 있다면 그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그가 부모의 좋은 점들을 쏙 빼닮았고 부모의 마음 깊은 것까지 하는 일마다 마음에 꼭 들게 해 준다면 부모님은 참으로 기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기록된 성경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녀를 지극히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나아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까지 헤아려 행한다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바로 믿음의 5단계에 이른 사람이 이러합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는 마음에 죄악이 없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하시면 무조건 순종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헤아려서 순종하기에는 아직 부족하지요. 반면 믿음의 5단계는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런 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보다 넘치도록 순종합니다.
그것도 어느 한 순간에만 넘치는 행함을 보이거나 가끔 가다가 진한 사랑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24시간 매분, 매초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살아갑니다. 그런 모습이 10년이 가도, 100년이 가도 변함이 없으며 오히려 승해지기만 하는 것이 믿음의 5단계입니다.
2. 믿음의 5단계가 들어가는 새 예루살렘 성
천국의 처소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곳이 바로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랑의 결정체이지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오랜 세월을 기다려 오신 하나님께서 참 자녀들과 영원히 사랑을 나누며 살고자 정성을 다해 마련하신 보금자리입니다. 이곳에는 꽃잎 하나, 장식된 보석 하나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이 담겨 있으며 그분의 영광이 가득합니다.
1)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와 모양
새 예루살렘 성의 모양은 정육면체로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하며 일만 이천 스다디온(약 2,400km)입니다(계 21~22장). 성곽은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 감도는 벽옥이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입니다. 사면 성벽에는 각각 세 개씩 총 열두 개의 아치형 진주문이 있고, 문 위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기초석은 열두 보석으로 되어 있고, 열두 보석의 영적인 의미를 종합하면 하나님의 온전하신 마음이며 주님의 마음입니다. 진주문을 통과하여 성 안으로 들어가면 해나 달이 없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온통 두르고 있어 항상 낮처럼 밝고 눈이 부십니다. 찬란한 영광의 구름 사이로 집을 장식한 각종 보석 빛이 어우러져 마치 성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요.
3천층과 새 예루살렘 성의 집은 복층이며 정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져 있습니다. 연못, 정원, 동물원, 골프장, 무도회장 등 원하는 시설을 모두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습니다. 3천층 집도 정금과 보석으로 되어 있지만 그 종류와 빛이 새 예루살렘 성과는 차이가 납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보석이 있으며 각 보석에서 이중, 삼중으로 빛을 발산하기도 합니다.
또한 새 예루살렘 성의 각 집마다 주인이 영으로 들어간 깊이와 충성한 공로에 따라, 행적과 취향에 따라 다양한 특색이 있습니다. 영광의 빛이 집에 얼마나 둘려 있는지, 어떤 보석으로 장식되었는가만 보아도 집주인이 얼마나 성결되었으며 이 땅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새 예루살렘의 상급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소망하는 것은 무엇이나 이뤄지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크고 아름다운 처소와 상급을 받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건축자재와 시설 하나하나가 이 땅에서 하나님께 드린 사랑과 인내, 충성과 헌신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서 사랑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을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드리면 새 예루살렘에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한 위로와 상급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애통할 때 흘린 눈물 한 방울도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집을 만드는 자재와 장식이 됩니다. 오직 하나님 뜻대로 살았기에 천국에서는 모든 것을 누리게 하시지요. 이곳의 옷은 가장 아름답고 선명하며, 광채가 나고 하늘하늘한 옷감에 화려한 보석이 달려 있고 다양한 문양이 수놓아 있습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감사했는지에 따라 감사의 문양이 새겨져 있고, 찬양의 문양, 기쁨, 기도 등 다양한 문양이 있습니다. 특히 그중에 영광의 문양은 하나님께 특별히 영광 돌린 사람이 받습니다. 다른 문양과 확연하게 구별되며 이러한 문양을 단 사람은 더욱 존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머리에 쓰는 면류관에는 기본적으로 의의 면류관(딤후 4:8)과 금 면류관(계 4:4)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꽃으로 장식한 화관과 진주관, 크리스털 관을 비롯하여 온갖 보석이 섬세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면류관들이 준비되어 있어 때에 맞게 바꾸어 사용합니다. 또 여인에게는 특별한 머리 장식이 있습니다. 낙원에는 면류관이 없고 장식도 없는 맨머리이지만 윗단계로 갈수록 아름답고 화려한 장식을 합니다. 새 예루살렘 여인들은 각종 보석과 함께 특별히 아름다운 색을 발하는 실과 같은 장식으로 머리를 꾸밉니다.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장식줄이 마치 머리카락 일부처럼 길게 드리워져 황홀한 광채를 발산합니다.
이렇게 천국에서는 각 사람이 입은 옷 색깔이나 빛, 옷에 새겨진 문양과 장식한 보석, 또 머리에 쓴 면류관과 각종 장식을 통해 얼마나 하나님께 사랑받고 인정받는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서는 옷을 갈아입을 때나 잔치 자리에 가거나,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지 각 사람에게 딸린 천사가 그림자처럼 수종 듭니다. 또한 각 사람이 영으로 들어온 정도에 따라 수종하는 천사의 수도 다르지요.
새 예루살렘 성은 아름답고 화려할 뿐 아니라 그 안에서 배우고 보고 듣고 즐기며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 끝이 없습니다. 영원한 삶의 매 순간마다 새롭고 행복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항상 연회가 열리는데 때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도 하고 주님과 성령님이 주관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연회에는 각 사람마다 최고로 아름답게 단장하고 최상의 것을 먹고 마시며 아름다운 찬양과 춤을 즐깁니다. 그 영화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결되어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천국의 행복을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천국의 소망과 기쁨이 더해질수록 이 땅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함께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영적인 소원만 마음에 가득해집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셨으니 신속히 성결을 이루고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 ) 안을 채워 보세요.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 ) 같고 ( )과 ( )같이 맑더라" (계 21:11)
2. 믿음의 5단계가 들어가는 새 예루살렘에 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① 새 예루살렘 성의 모양은 정육면체로 가로, 세로, 높이가 같다.
② 사면 성벽에는 각각 세 개씩 총 열두 개의 아치형 진주문이 있다.
③ 새 예루살렘에서는 의의 면류관과 금면류관만 주어진다.
④ 집은 복층으로 정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지며 연못, 정원, 동물원, 골프장, 무도회장 등 원하는 모든 시설을 소유할 수 있다. .
● 금주 과제
맥추절의 의미를 상고해 보며 전반기 동안 지키시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열두 문을 '진주'로 만드신 이유?
조개는 이물질이 살점을 파고들면 고통스러워 진액을 내어 이물질을 감싸는데, 그 진액의 결정체가 바로 진주이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기까지 많은 아픔과 인내가 필요하듯이,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의 자격을 얻기까지 어떠한 고통도 인내하고 진리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진주로 새 예루살렘의 문을 만드셨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 사람들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알아본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4단계의 믿음이 성장하면 5단계의 믿음이 됩니다.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에 순종하는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차원이지요. 그러면 믿음의 5단계 사람들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1.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넘치도록 순종하는 단계
부모 자녀 간에 서로 사랑한다 하지만 부모님 말씀에 100퍼센트 순종하는 자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순종하는 것도 있고 못하는 것도 있으며, 어떤 자녀는 순종은커녕 아예 반항하거나 빗나가기도 하지요. 반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은 아니지만 부모님 말씀이므로 도리를 좇아 복종하는 자녀도 있습니다.
선한 자녀는 부모님을 사랑하여 마음 아프지 않도록 말씀에 오직 순종만 합니다. 말씀하는 대로 100퍼센트 순종하여 부모의 마음을 편케 해 드리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사랑이 승한 자녀는 부모님이 무엇을 명하실 때 왜 그 말씀을 하셨는지 마음까지 헤아려 부모님이 원하는 그 이상으로 이뤄 드립니다. 또한 시키지 않은 것까지 찾아서, 부모님의 마음에 꼭 맞게 미리미리 해 놓습니다.
부모님은 모든 자녀를 다 사랑하지만 그중 특히 부모를 사랑하여 중심에서 순종하는 아들이 있다면 그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그가 부모의 좋은 점들을 쏙 빼닮았고 부모의 마음 깊은 것까지 하는 일마다 마음에 꼭 들게 해 준다면 부모님은 참으로 기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기록된 성경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녀를 지극히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서 나아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까지 헤아려 행한다면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바로 믿음의 5단계에 이른 사람이 이러합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는 마음에 죄악이 없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하시면 무조건 순종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헤아려서 순종하기에는 아직 부족하지요. 반면 믿음의 5단계는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런 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보다 넘치도록 순종합니다.
그것도 어느 한 순간에만 넘치는 행함을 보이거나 가끔 가다가 진한 사랑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24시간 매분, 매초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살아갑니다. 그런 모습이 10년이 가도, 100년이 가도 변함이 없으며 오히려 승해지기만 하는 것이 믿음의 5단계입니다.
2. 믿음의 5단계가 들어가는 새 예루살렘 성
천국의 처소 중에서 가장 아름답고 좋은 곳이 바로 새 예루살렘 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사랑의 결정체이지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오랜 세월을 기다려 오신 하나님께서 참 자녀들과 영원히 사랑을 나누며 살고자 정성을 다해 마련하신 보금자리입니다. 이곳에는 꽃잎 하나, 장식된 보석 하나에도 하나님의 사랑과 권능이 담겨 있으며 그분의 영광이 가득합니다.
1) 새 예루살렘 성의 크기와 모양
새 예루살렘 성의 모양은 정육면체로 가로, 세로, 높이가 동일하며 일만 이천 스다디온(약 2,400km)입니다(계 21~22장). 성곽은 맑고 투명한 푸른빛이 감도는 벽옥이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입니다. 사면 성벽에는 각각 세 개씩 총 열두 개의 아치형 진주문이 있고, 문 위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 이름이 쓰여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의 기초석은 열두 보석으로 되어 있고, 열두 보석의 영적인 의미를 종합하면 하나님의 온전하신 마음이며 주님의 마음입니다. 진주문을 통과하여 성 안으로 들어가면 해나 달이 없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온통 두르고 있어 항상 낮처럼 밝고 눈이 부십니다. 찬란한 영광의 구름 사이로 집을 장식한 각종 보석 빛이 어우러져 마치 성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지요.
3천층과 새 예루살렘 성의 집은 복층이며 정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져 있습니다. 연못, 정원, 동물원, 골프장, 무도회장 등 원하는 시설을 모두 개인적으로 가질 수 있습니다. 3천층 집도 정금과 보석으로 되어 있지만 그 종류와 빛이 새 예루살렘 성과는 차이가 납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보석이 있으며 각 보석에서 이중, 삼중으로 빛을 발산하기도 합니다.
또한 새 예루살렘 성의 각 집마다 주인이 영으로 들어간 깊이와 충성한 공로에 따라, 행적과 취향에 따라 다양한 특색이 있습니다. 영광의 빛이 집에 얼마나 둘려 있는지, 어떤 보석으로 장식되었는가만 보아도 집주인이 얼마나 성결되었으며 이 땅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새 예루살렘의 상급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면 소망하는 것은 무엇이나 이뤄지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크고 아름다운 처소와 상급을 받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건축자재와 시설 하나하나가 이 땅에서 하나님께 드린 사랑과 인내, 충성과 헌신을 통해 만들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서 사랑하는 것이나 원하는 것을 주님을 위해 헌신하고 드리면 새 예루살렘에서는 이 모든 것에 대한 위로와 상급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애통할 때 흘린 눈물 한 방울도 헛되이 사라지지 않고 집을 만드는 자재와 장식이 됩니다. 오직 하나님 뜻대로 살았기에 천국에서는 모든 것을 누리게 하시지요. 이곳의 옷은 가장 아름답고 선명하며, 광채가 나고 하늘하늘한 옷감에 화려한 보석이 달려 있고 다양한 문양이 수놓아 있습니다.
이 땅에서 얼마나 감사했는지에 따라 감사의 문양이 새겨져 있고, 찬양의 문양, 기쁨, 기도 등 다양한 문양이 있습니다. 특히 그중에 영광의 문양은 하나님께 특별히 영광 돌린 사람이 받습니다. 다른 문양과 확연하게 구별되며 이러한 문양을 단 사람은 더욱 존귀한 대접을 받습니다.
머리에 쓰는 면류관에는 기본적으로 의의 면류관(딤후 4:8)과 금 면류관(계 4:4)이 있습니다. 그 외에도 꽃으로 장식한 화관과 진주관, 크리스털 관을 비롯하여 온갖 보석이 섬세하고 화려하게 장식된 면류관들이 준비되어 있어 때에 맞게 바꾸어 사용합니다. 또 여인에게는 특별한 머리 장식이 있습니다. 낙원에는 면류관이 없고 장식도 없는 맨머리이지만 윗단계로 갈수록 아름답고 화려한 장식을 합니다. 새 예루살렘 여인들은 각종 보석과 함께 특별히 아름다운 색을 발하는 실과 같은 장식으로 머리를 꾸밉니다. 반짝거리는 아름다운 장식줄이 마치 머리카락 일부처럼 길게 드리워져 황홀한 광채를 발산합니다.
이렇게 천국에서는 각 사람이 입은 옷 색깔이나 빛, 옷에 새겨진 문양과 장식한 보석, 또 머리에 쓴 면류관과 각종 장식을 통해 얼마나 하나님께 사랑받고 인정받는지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에서는 옷을 갈아입을 때나 잔치 자리에 가거나,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하든지 각 사람에게 딸린 천사가 그림자처럼 수종 듭니다. 또한 각 사람이 영으로 들어온 정도에 따라 수종하는 천사의 수도 다르지요.
새 예루살렘 성은 아름답고 화려할 뿐 아니라 그 안에서 배우고 보고 듣고 즐기며 사랑을 주고받는 일이 끝이 없습니다. 영원한 삶의 매 순간마다 새롭고 행복한 일들로 가득합니다. 항상 연회가 열리는데 때로는 하나님께서 주관하시기도 하고 주님과 성령님이 주관하시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연회에는 각 사람마다 최고로 아름답게 단장하고 최상의 것을 먹고 마시며 아름다운 찬양과 춤을 즐깁니다. 그 영화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결되어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천국의 행복을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천국의 소망과 기쁨이 더해질수록 이 땅에 대한 미련이 사라지며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함께 새 예루살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을까 하는 영적인 소원만 마음에 가득해집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셨으니 신속히 성결을 이루고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 ) 안을 채워 보세요.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 ) 같고 ( )과 ( )같이 맑더라" (계 21:11)
2. 믿음의 5단계가 들어가는 새 예루살렘에 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① 새 예루살렘 성의 모양은 정육면체로 가로, 세로, 높이가 같다.
② 사면 성벽에는 각각 세 개씩 총 열두 개의 아치형 진주문이 있다.
③ 새 예루살렘에서는 의의 면류관과 금면류관만 주어진다.
④ 집은 복층으로 정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지며 연못, 정원, 동물원, 골프장, 무도회장 등 원하는 모든 시설을 소유할 수 있다. .
● 금주 과제
맥추절의 의미를 상고해 보며 전반기 동안 지키시고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자.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열두 문을 '진주'로 만드신 이유?
조개는 이물질이 살점을 파고들면 고통스러워 진액을 내어 이물질을 감싸는데, 그 진액의 결정체가 바로 진주이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기까지 많은 아픔과 인내가 필요하듯이,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의 자격을 얻기까지 어떠한 고통도 인내하고 진리로 승화시켜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진주로 새 예루살렘의 문을 만드셨다.
2010-06-18
제24과천국의 처소와 면류관(4)
요 14:21
읽을말씀 : 요 14:21 | 외울말씀 : 계 2:10 l 참고 말씀:약 1:12
교육목표 :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가 들어가는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알아본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경작하는 것은 튼실한 열매를 거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 인간이 태어나 살아갈 수 있도록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알곡은 천국으로, 쭉정이는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알곡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 자녀를 말합니다. 이처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지닌 영의 사람을 얻고자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인간이라는 씨를 심고 경작을 하시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하나님께서는 영의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시며, 이때부터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 자녀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믿음의 3단계에서도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그러나 믿음의 3단계에서는 아직 마음의 죄성까지 다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것이 조금은 민망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를 지나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온전히 계명을 지키며 죄성을 벗어 버려야 담대하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항상 나타납니다. 이 땅에서 강건하고 형통한 복을 누릴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많은 영광과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면 믿음의 1, 2, 3단계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 하신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애매한 말로 여러분을 모함한다면 믿음의 1단계나 2단계 초입인 경우, 상대를 찾아가 시시비비를 따지려 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만나면 감정이 난 상태에서 변론하며 언성이 높아지거나 다투기도 합니다. 하지만 2단계 중반만 되어도 악을 버리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에 크게 혈기 내거나 악을 발하는 것은 어느 정도 절제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와 반석에 서기 전이라면 이런 일을 당했을 때 감정이 요동하기도 합니다. 진리를 알기 때문에 '감사하자, 기뻐하자.' 하고 마음을 다스리며 참지만 마음 중심에서 감사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반면에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선 사람은 그런 일에도 전혀 요동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고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로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원수라도 축복하고 상대가 범죄하지 않도록 긍휼히 여기며 기도해 줄 수 있는 마음이지요. 이처럼 똑같은 상황이라 해도 믿음의 분량에 따라 반응이 다르고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마음의 향이 다릅니다.
또 다른 예로, 만일 부모님이 위독하여 급히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이때 돈 가방을 주웠다면 믿음의 1단계나 2단계에서는 그 돈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선한 것을 좇으려는 영의 마음과 자기 욕심을 좇으려는 육의 마음이 싸웁니다. 그러다가 "이 돈이 너무 필요하다." 하면서 육신의 소욕이 이기면 양심에 가책은 있지만 자신이 써버릴 수 있지요. 그러나 믿음의 3단계에서는 "이 돈만 있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 하는 비진리의 생각이 잠시 틈탈 수는 있지만 결국 선한 양심을 좇아 주인을 찾아 줍니다.
믿음의 4단계는 차원이 다릅니다. 아무리 물질이 필요하다 해도 남의 것을 가지려는 마음 자체가 없으니 고민하지 않습니다. "돈을 잃은 주인이 얼마나 걱정할까" 염려되어 한시라도 빨리 주인을 찾아 주려는 마음뿐입니다. 이런 마음이 되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악이 있으니 사람과의 문제나 어떤 환경에 따라 힘이 들고 곤고한 것인데, 악이 없으니 항상 성령이 충만하며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2. 믿음의 4단계에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
천국의 모든 처소는 이 땅과는 비교할 수 없이 행복한 곳입니다. 어둠은 조금도 없고 사랑과 기쁨만 있는 곳이지요. 천국 곳곳에는 천사들이 있고 감미로운 찬양이 흐르며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살아갑니다. 이러한 천국의 영광도 믿음의 단계에 따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낙원이나 1, 2천층에는 많은 천사가 있어서 천국을 관리하고 때를 좇아 하나님의 자녀들을 돕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수종드는 천사가 딸려 있지는 않습니다. 3천층 이상의 천국에 들어가야 각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수종드는 천사가 있으며, 그중에서도 얼마나 더 성결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에 따라 천사의 숫자가 달라집니다. 천사가 수종드는 것도 천국의 처소에 따라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천층에서는 천사가 주인의 마음을 읽고 순종합니다. 주인이 과일을 먹고 싶어 하면 그 마음을 읽고 과일을 따다 줍니다. 하지만 2천층의 천사는 과일을 가져 오라고 명해야 움직입니다.
또 3천층 이상에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구름 자가용이 주어지는데,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은 개인 소유의 구름 자가용을, 3천층에 들어간 사람은 공동 소유의 구름 자가용을 탈 수 있습니다. 천국의 구름은 이 세상의 구름과 다릅니다. 천국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장식품과 같지요.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 구름 가운데 강림하셨고, 솔로몬 왕이 성전을 봉헌할 때 성전 안에 구름이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 26:64)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천국 구름으로 만들어진 구름 자가용을 타려면 3천층 이상의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3천층 이상에 들어간 사람은 겉모습만 보아도 2천층의 사람들과 큰 차이가 납니다. 각 사람에게 영광의 빛이 다르고 옷과 옷의 문양, 달려 있는 장식, 머리 모양 등이 달라서 그가 얼마나 주님을 닮아 성결된 사람인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인지를 금방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3천층의 집은 어떻게 지어졌을까요? 2천층의 건물은 모두 단층이지만 3천층부터는 복층 건물입니다. 이 땅에서는 땅이 좁으니 높은 빌딩이 필요하지만 천국은 끝없이 넓으므로 건물을 높이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집은 정금과 보석으로 장식돼 있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과 나무로 화려하게 단장된 정원과 호수가 있습니다. 2천층에서는 호수나 골프장, 수영장 등 한 가지 부속시설을 가질 수 있는데 3천층은 원하는 것을 모두 소유할 수 있습니다. 3천층 저택은 이 세상의 백만장자라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2천층과 다른 점은 집에 문패가 없다는 것인데 집 자체에서 주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영적인 향이 흘러나와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의 영적인 향이 다른 것처럼 그 집에서 흘러나오는 향과 빛도 다릅니다. 주인이 성결되어 하나님을 닮을수록 더 아름다운 빛과 향이 나오지요. 천국에는 이 땅의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화려하며 영리하고 온순한 동물과 새들이 있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줍니다.
그러면 3천층에서는 어떤 면류관을 받게 될까요? 야고보서 1장 12절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는 말씀대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는데 여기서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영적인 충성을 말합니다. 즉, 순교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명을 감당할 뿐 아니라 세상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린 사람, 온전히 성결된 사람이 되어야 죽도록 충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결을 이루고 생명을 다해 죽도록 충성한 사람이 3천층에 들어가며, 그에 대한 상급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또 비록 성결을 온전히 이루지는 못했다 해도 주님의 이름으로 순교한 사람은 3천층에 들어가며,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물론 참된 믿음과 사랑으로 생명을 드린 경우여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부귀영화를 사모할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결을 사모하여 죄를 버려 나가야 하겠습니다. 반드시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리라 하는 사모함과 소망으로 결코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매 순간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요한계시록 2장 10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믿음의 4단계가 들어가는 3천층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2천층의 집은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 형태지만 3천층의 집은 단층이다.
② 성결하며 죽도록 충성한 사람이 들어가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
③ 2천층과 다른 점은 문패가 없고, 집 자체에서 주인의 향이 흘러나온다.
④ 3천층에서는 천사가 주인의 마음을 읽고 순종하지만, 2천층에서는 천사에게 명해야 움직인다.
● 금주 과제
『믿음의 분량』개정판 제8장 믿음의 5단계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구름 자가용'이란?
천국의 교통수단으로 3천층에 들어간 영혼들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고, 새 예루살렘에서는 각자에게 자가용으로 주어진다. 구름 자가용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유한 사람의 영광과 위엄과 권세를 나타내 준다. 주로 천사가 운전하며, 혼자 탈 수 있는 개인용과 여러 사람과 함께 탈 수 있는 것이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가 들어가는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알아본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경작하는 것은 튼실한 열매를 거둘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런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 인간이 태어나 살아갈 수 있도록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를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알곡은 천국으로, 쭉정이는 지옥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알곡이란 어떤 사람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 자녀를 말합니다. 이처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지닌 영의 사람을 얻고자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인간이라는 씨를 심고 경작을 하시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하나님께서는 영의 사람이라고 인정해 주시며, 이때부터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참 자녀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믿음의 3단계에서도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그러나 믿음의 3단계에서는 아직 마음의 죄성까지 다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것이 조금은 민망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를 지나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온전히 계명을 지키며 죄성을 벗어 버려야 담대하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온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항상 나타납니다. 이 땅에서 강건하고 형통한 복을 누릴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많은 영광과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그러면 믿음의 1, 2, 3단계와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살전 5:16~18) 하신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애매한 말로 여러분을 모함한다면 믿음의 1단계나 2단계 초입인 경우, 상대를 찾아가 시시비비를 따지려 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만나면 감정이 난 상태에서 변론하며 언성이 높아지거나 다투기도 합니다. 하지만 2단계 중반만 되어도 악을 버리기 위해 노력해 왔기 때문에 크게 혈기 내거나 악을 발하는 것은 어느 정도 절제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와 반석에 서기 전이라면 이런 일을 당했을 때 감정이 요동하기도 합니다. 진리를 알기 때문에 '감사하자, 기뻐하자.' 하고 마음을 다스리며 참지만 마음 중심에서 감사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반면에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선 사람은 그런 일에도 전혀 요동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고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로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과 같이 원수라도 축복하고 상대가 범죄하지 않도록 긍휼히 여기며 기도해 줄 수 있는 마음이지요. 이처럼 똑같은 상황이라 해도 믿음의 분량에 따라 반응이 다르고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마음의 향이 다릅니다.
또 다른 예로, 만일 부모님이 위독하여 급히 수술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습니다. 이때 돈 가방을 주웠다면 믿음의 1단계나 2단계에서는 그 돈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선한 것을 좇으려는 영의 마음과 자기 욕심을 좇으려는 육의 마음이 싸웁니다. 그러다가 "이 돈이 너무 필요하다." 하면서 육신의 소욕이 이기면 양심에 가책은 있지만 자신이 써버릴 수 있지요. 그러나 믿음의 3단계에서는 "이 돈만 있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다." 하는 비진리의 생각이 잠시 틈탈 수는 있지만 결국 선한 양심을 좇아 주인을 찾아 줍니다.
믿음의 4단계는 차원이 다릅니다. 아무리 물질이 필요하다 해도 남의 것을 가지려는 마음 자체가 없으니 고민하지 않습니다. "돈을 잃은 주인이 얼마나 걱정할까" 염려되어 한시라도 빨리 주인을 찾아 주려는 마음뿐입니다. 이런 마음이 되면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 조금도 부끄러울 것이 없고 담대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악이 있으니 사람과의 문제나 어떤 환경에 따라 힘이 들고 곤고한 것인데, 악이 없으니 항상 성령이 충만하며 행복하고 평안합니다.
2. 믿음의 4단계에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
천국의 모든 처소는 이 땅과는 비교할 수 없이 행복한 곳입니다. 어둠은 조금도 없고 사랑과 기쁨만 있는 곳이지요. 천국 곳곳에는 천사들이 있고 감미로운 찬양이 흐르며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환경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영원히 살아갑니다. 이러한 천국의 영광도 믿음의 단계에 따라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낙원이나 1, 2천층에는 많은 천사가 있어서 천국을 관리하고 때를 좇아 하나님의 자녀들을 돕는 일을 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수종드는 천사가 딸려 있지는 않습니다. 3천층 이상의 천국에 들어가야 각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수종드는 천사가 있으며, 그중에서도 얼마나 더 성결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에 따라 천사의 숫자가 달라집니다. 천사가 수종드는 것도 천국의 처소에 따라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천층에서는 천사가 주인의 마음을 읽고 순종합니다. 주인이 과일을 먹고 싶어 하면 그 마음을 읽고 과일을 따다 줍니다. 하지만 2천층의 천사는 과일을 가져 오라고 명해야 움직입니다.
또 3천층 이상에 들어가는 사람에게는 구름 자가용이 주어지는데,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은 개인 소유의 구름 자가용을, 3천층에 들어간 사람은 공동 소유의 구름 자가용을 탈 수 있습니다. 천국의 구름은 이 세상의 구름과 다릅니다. 천국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더하기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장식품과 같지요.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실 때 구름 가운데 강림하셨고, 솔로몬 왕이 성전을 봉헌할 때 성전 안에 구름이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였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이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마 26:64)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천국 구름으로 만들어진 구름 자가용을 타려면 3천층 이상의 천국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3천층 이상에 들어간 사람은 겉모습만 보아도 2천층의 사람들과 큰 차이가 납니다. 각 사람에게 영광의 빛이 다르고 옷과 옷의 문양, 달려 있는 장식, 머리 모양 등이 달라서 그가 얼마나 주님을 닮아 성결된 사람인지,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인지를 금방 구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3천층의 집은 어떻게 지어졌을까요? 2천층의 건물은 모두 단층이지만 3천층부터는 복층 건물입니다. 이 땅에서는 땅이 좁으니 높은 빌딩이 필요하지만 천국은 끝없이 넓으므로 건물을 높이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집은 정금과 보석으로 장식돼 있고 아름답고 향기로운 꽃과 나무로 화려하게 단장된 정원과 호수가 있습니다. 2천층에서는 호수나 골프장, 수영장 등 한 가지 부속시설을 가질 수 있는데 3천층은 원하는 것을 모두 소유할 수 있습니다. 3천층 저택은 이 세상의 백만장자라도 흉내 낼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게 꾸며져 있습니다.
2천층과 다른 점은 집에 문패가 없다는 것인데 집 자체에서 주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영적인 향이 흘러나와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각 사람의 영적인 향이 다른 것처럼 그 집에서 흘러나오는 향과 빛도 다릅니다. 주인이 성결되어 하나님을 닮을수록 더 아름다운 빛과 향이 나오지요. 천국에는 이 땅의 동물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화려하며 영리하고 온순한 동물과 새들이 있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줍니다.
그러면 3천층에서는 어떤 면류관을 받게 될까요? 야고보서 1장 12절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는 말씀대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는데 여기서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영적인 충성을 말합니다. 즉, 순교의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사명을 감당할 뿐 아니라 세상 비진리와 타협하지 않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린 사람, 온전히 성결된 사람이 되어야 죽도록 충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결을 이루고 생명을 다해 죽도록 충성한 사람이 3천층에 들어가며, 그에 대한 상급으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또 비록 성결을 온전히 이루지는 못했다 해도 주님의 이름으로 순교한 사람은 3천층에 들어가며, 생명의 면류관을 받습니다. 물론 참된 믿음과 사랑으로 생명을 드린 경우여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 부귀영화를 사모할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결을 사모하여 죄를 버려 나가야 하겠습니다. 반드시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리라 하는 사모함과 소망으로 결코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매 순간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 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요한계시록 2장 10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믿음의 4단계가 들어가는 3천층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2천층의 집은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 형태지만 3천층의 집은 단층이다.
② 성결하며 죽도록 충성한 사람이 들어가 생명의 면류관을 받는다.
③ 2천층과 다른 점은 문패가 없고, 집 자체에서 주인의 향이 흘러나온다.
④ 3천층에서는 천사가 주인의 마음을 읽고 순종하지만, 2천층에서는 천사에게 명해야 움직인다.
● 금주 과제
『믿음의 분량』개정판 제8장 믿음의 5단계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구름 자가용'이란?
천국의 교통수단으로 3천층에 들어간 영혼들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고, 새 예루살렘에서는 각자에게 자가용으로 주어진다. 구름 자가용은 그 자체만으로도 소유한 사람의 영광과 위엄과 권세를 나타내 준다. 주로 천사가 운전하며, 혼자 탈 수 있는 개인용과 여러 사람과 함께 탈 수 있는 것이 있다.
2010-06-11
제23과천국의 처소와 면류관(3)
마 7:24~25
읽을말씀 : 마 7:24~25 | 외울말씀 : 마 7:24 ㅣ 참고 말씀:벧전 5:2~4
교육목표 :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사람들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때로는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행하려고 계속 노력하면 믿음이 성장하여 점차 말씀대로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간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서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행함으로 나타나는 죄를 버리게 됩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행함으로 나타내는 죄 곧 육체의 일을 범할 때도 있지만 3단계에 이르면 당연히 육체의 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부터는 오히려 행함이 변화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됩니다. 애매하게 욕하고 책망하는 말을 듣는다 해도 잠잠히 참으며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고자 노력하지요. 어찌하든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모든 사람을 섬기려고 합니다.
그러니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세상 사람이 볼 때도 "저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니 뭔가 다르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므로 의무감 속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깨달았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함이 나옵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머리로만 아는 것과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 행함으로 나타내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주일 성수와 십일조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주일 성수는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하여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 한 주간 재난이나 질병, 사고에서 지키시며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여 우리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함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어서 알지만 행치 못하고 아는 데 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는 마음으로 깨달아 행함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믿음의 2단계와 믿음의 3단계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또한 믿음의 3단계에서는 눈에 드러나는 비진리를 버려 육체의 일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음으로 짓는 죄 곧 육신의 일을 버리며 마음의 죄성까지 뽑아 나갑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마음의 죄성이 온전히 뽑힐 때까지 계속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면 믿음의 4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
믿음의 단계가 같다고 해도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은 다릅니다. 믿음의 2단계를 1퍼센트에서 100퍼센트까지 나눌 때 100퍼센트에 가까울수록 믿음의 3단계에 이른 것이며, 믿음의 3단계에서 100퍼센트가 되어야 믿음의 4단계로 들어갑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말씀대로 행한다 해도 처음에는 마음에 갈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은 하지만, 마음에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두 마음이 서로 싸우지요. 진리대로 행하기는 하되 선을 좇으려는 영의 생각과 악을 좇으려는 육신의 생각이 싸우는 것입니다.
3단계 중에서도 초입이라면 어려움을 만나는 순간 '너무 힘들다.' 하는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충만함이 사라지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곧 성령의 음성을 들으므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데 왜 낙심하는가' 하고 마음을 진리로 다지게 됩니다. 그리고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하기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여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으면 더 큰 감사와 기쁨이 솟아납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60퍼센트 이상에 이르게 되면 마음에서 죄성이 많이 버려진 상태이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악을 발하지 않으려고 애써 참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죄성을 버린 만큼 악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갑자기 어려움을 만난다 해도 낙심하거나 불평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지요. 혹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친다 해도 즉시 몰아내고 감사와 기쁨으로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4~25절에 보면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했고,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했지요. 따라서 어떤 시험이나 환난에도 요동하지 않고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는 믿음이 되면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에서 60퍼센트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 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깨달아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반석에 들어서면 신앙생활이 힘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쁘고 신이 납니다. 70~80퍼센트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이때는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마치 몸에 밴 습관처럼 저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믿음의 4단계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대가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결코 미워하지 않습니다. 급히 돈이 필요한 경우, 지갑을 주웠다 해도 '내가 쓸까, 주인을 찾아줄까?' 하면서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주인을 찾아 주려는 마음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지 않고 즉시로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선 것입니다.
3. 믿음의 3단계에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
믿음의 3단계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는 2천층입니다. 다세대 주택 형태의 집이 주어지는 1천층과는 달리 2천층에는 독립된 주택이 주어집니다. 2천층의 집은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로운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꽃과 나무들로 잘 단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가장 원하는 부속시설이 한 가지씩 주어집니다. 아름다운 호수 혹은 정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수영장을 가질 수 있지요. 기화요초로 가득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 노니는 아름다운 산책길 또는 무도회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2천층에서는 이중 하나만 가질 수 있기에, 필요에 따라 다른 집에 있는 것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하고 시설을 사용한다 해도 서로 불편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섬길 수 있고 사랑을 나눌 수 있으니 기쁨으로 사용을 허락하고 사용하는 사람도 평안하게 즐길 수 있지요. 2천층의 집에는 문패가 달려 있어 천국의 글씨로 주인의 이름과 이 땅에서 섬기던 교회의 이름도 새겨져 있습니다.
2천층의 사람들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벧전 5:2~4). 믿음의 3단계의 영혼들은 마음에 온전한 할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사명을 잘 감당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이처럼 너무나 아름다운 처소에 거하게 되고 자신이 행한 것과 비할 수 없는 상급을 주시므로 감사가 넘치지만 그래도 안타깝고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며 열심히 사명 감당할 뿐 아니라 마음의 죄까지 버려서 온전히 성결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성결된 사람이 가는 3천층이나 온 영의 사람이 가는 새 예루살렘의 영광은 2천층과는 비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천국에는 시기 질투가 없기 때문에 더 좋은 천국의 영광을 부러워하거나 자신이 누리지 못한다고 마음 아파하는 것은 아니지요. 다른 사람이 더 큰 영광을 누린다 해도 함께 기뻐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처소와 상급만으로도 감사와 행복이 넘칩니다. 하지만 안타깝고 민망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토록 많은 사랑과 기회를 주셨는데도 온전히 죄를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다면 2천층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새 예루살렘을 향해 쉬지 않고 침노해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참된 자녀로 변화되어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에베소서 5장 16절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말씀하셨으니 주어진 시간을 귀하게 여기며 말씀과 기도로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부지런히 천국을 침노하시기 바랍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마태복음 7장 24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믿음의 3단계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독립된 주택과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진다.
② 주인이 가장 원하는 부속시설이 한 가지씩 주어진다.
③ 2천층의 집에는 문패가 없으며, 향으로 누구의 집인지 알 수 있다.
④ 믿음의 3단계 60퍼센트가 되면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다.
● 금주 과제
『믿음의 분량』개정판 제7장 믿음의 4단계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육신의 일'이란?
미움, 시기, 교만, 판단, 정죄, 간음 등 아직 행하지는 않았으나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들로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죄의 성질을 말한다.
교육목표 :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사람들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때로는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행하려고 계속 노력하면 믿음이 성장하여 점차 말씀대로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오늘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간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서 믿음이 성장하는 만큼 행함으로 나타나는 죄를 버리게 됩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행함으로 나타내는 죄 곧 육체의 일을 범할 때도 있지만 3단계에 이르면 당연히 육체의 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부터는 오히려 행함이 변화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됩니다. 애매하게 욕하고 책망하는 말을 듣는다 해도 잠잠히 참으며 어려운 문제 앞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하고자 노력하지요. 어찌하든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모든 사람을 섬기려고 합니다.
그러니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세상 사람이 볼 때도 "저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니 뭔가 다르다."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알므로 의무감 속에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깨달았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행함이 나옵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머리로만 아는 것과 하나님 말씀을 깨달아 행함으로 나타내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주일 성수와 십일조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주일 성수는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하여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 한 주간 재난이나 질병, 사고에서 지키시며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또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여 우리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는 믿음의 행함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어서 알지만 행치 못하고 아는 데 그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는 마음으로 깨달아 행함으로 나타내기 때문에 믿음의 2단계와 믿음의 3단계는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또한 믿음의 3단계에서는 눈에 드러나는 비진리를 버려 육체의 일을 행하지 않을 뿐 아니라, 마음으로 짓는 죄 곧 육신의 일을 버리며 마음의 죄성까지 뽑아 나갑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마음의 죄성이 온전히 뽑힐 때까지 계속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워 나가면 믿음의 4단계에 이를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
믿음의 단계가 같다고 해도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은 다릅니다. 믿음의 2단계를 1퍼센트에서 100퍼센트까지 나눌 때 100퍼센트에 가까울수록 믿음의 3단계에 이른 것이며, 믿음의 3단계에서 100퍼센트가 되어야 믿음의 4단계로 들어갑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말씀대로 행한다 해도 처음에는 마음에 갈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은 하지만, 마음에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에 두 마음이 서로 싸우지요. 진리대로 행하기는 하되 선을 좇으려는 영의 생각과 악을 좇으려는 육신의 생각이 싸우는 것입니다.
3단계 중에서도 초입이라면 어려움을 만나는 순간 '너무 힘들다.' 하는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충만함이 사라지려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곧 성령의 음성을 들으므로 '하나님께서 살아 계신데 왜 낙심하는가' 하고 마음을 진리로 다지게 됩니다. 그리고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하기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여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으면 더 큰 감사와 기쁨이 솟아납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60퍼센트 이상에 이르게 되면 마음에서 죄성이 많이 버려진 상태이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악을 발하지 않으려고 애써 참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죄성을 버린 만큼 악이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갑자기 어려움을 만난다 해도 낙심하거나 불평하기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르지요. 혹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친다 해도 즉시 몰아내고 감사와 기쁨으로 마음을 바꿀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4~25절에 보면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했고,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했지요. 따라서 어떤 시험이나 환난에도 요동하지 않고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는 믿음이 되면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에서 60퍼센트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 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에 깨달아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반석에 들어서면 신앙생활이 힘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기쁘고 신이 납니다. 70~80퍼센트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이때는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마치 몸에 밴 습관처럼 저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믿음의 4단계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느낄 수 있습니다. 아무리 자신을 힘들게 하는 상대가 있어도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에 결코 미워하지 않습니다. 급히 돈이 필요한 경우, 지갑을 주웠다 해도 '내가 쓸까, 주인을 찾아줄까?' 하면서 갈등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히 주인을 찾아 주려는 마음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지 않고 즉시로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다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선 것입니다.
3. 믿음의 3단계에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
믿음의 3단계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는 2천층입니다. 다세대 주택 형태의 집이 주어지는 1천층과는 달리 2천층에는 독립된 주택이 주어집니다. 2천층의 집은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로운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꽃과 나무들로 잘 단장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이 가장 원하는 부속시설이 한 가지씩 주어집니다. 아름다운 호수 혹은 정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수영장을 가질 수 있지요. 기화요초로 가득하고 사랑스러운 동물이 노니는 아름다운 산책길 또는 무도회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2천층에서는 이중 하나만 가질 수 있기에, 필요에 따라 다른 집에 있는 것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하고 시설을 사용한다 해도 서로 불편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이를 통해 섬길 수 있고 사랑을 나눌 수 있으니 기쁨으로 사용을 허락하고 사용하는 사람도 평안하게 즐길 수 있지요. 2천층의 집에는 문패가 달려 있어 천국의 글씨로 주인의 이름과 이 땅에서 섬기던 교회의 이름도 새겨져 있습니다.
2천층의 사람들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벧전 5:2~4). 믿음의 3단계의 영혼들은 마음에 온전한 할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사명을 잘 감당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영광의 면류관입니다. 이처럼 너무나 아름다운 처소에 거하게 되고 자신이 행한 것과 비할 수 없는 상급을 주시므로 감사가 넘치지만 그래도 안타깝고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며 열심히 사명 감당할 뿐 아니라 마음의 죄까지 버려서 온전히 성결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입니다. 성결된 사람이 가는 3천층이나 온 영의 사람이 가는 새 예루살렘의 영광은 2천층과는 비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천국에는 시기 질투가 없기 때문에 더 좋은 천국의 영광을 부러워하거나 자신이 누리지 못한다고 마음 아파하는 것은 아니지요. 다른 사람이 더 큰 영광을 누린다 해도 함께 기뻐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처소와 상급만으로도 감사와 행복이 넘칩니다. 하지만 안타깝고 민망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토록 많은 사랑과 기회를 주셨는데도 온전히 죄를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있다면 2천층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 새 예루살렘을 향해 쉬지 않고 침노해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참된 자녀로 변화되어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에베소서 5장 16절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말씀하셨으니 주어진 시간을 귀하게 여기며 말씀과 기도로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부지런히 천국을 침노하시기 바랍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마태복음 7장 24절을 다 함께 외워 보세요.
2. 믿음의 3단계에 대한 설명으로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독립된 주택과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진다.
② 주인이 가장 원하는 부속시설이 한 가지씩 주어진다.
③ 2천층의 집에는 문패가 없으며, 향으로 누구의 집인지 알 수 있다.
④ 믿음의 3단계 60퍼센트가 되면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다.
● 금주 과제
『믿음의 분량』개정판 제7장 믿음의 4단계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육신의 일'이란?
미움, 시기, 교만, 판단, 정죄, 간음 등 아직 행하지는 않았으나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들로서,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죄의 성질을 말한다.
2010-06-04
제22과천국의 처소와 면류관(2)
롬 7:21~25
읽을말씀 : 롬 7:21~25 | 외울말씀 : 고전 9:25 ㅣ 참고 말씀:롬 8:26
교육목표 : 믿음의 단계 중 자기와의 싸움이 가장 치열한 믿음의 2단계의 사람들이 들어가는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알아본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는 곳이므로 믿음으로 침노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고, 믿음의 행함에 따라 더 좋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즉 믿음의 1단계에 있는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과 믿음의 2단계, 3단계, 4단계, 5단계에 있는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은 각기 다르며 믿음의 분량이 클수록 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처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행하려고 노력해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세상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교회로 향하고 말씀을 듣는 것이 기쁩니다. 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통해 하나님 자녀는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해야 함을 배웁니다. 또 '사랑하라, 기도하라, 섬기라, 화평하라, 미워하지 말라, 판단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등의 말씀을 배우지요.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알게 되니 주님 마음을 닮아가야겠다는 결심이 생깁니다.
이때 마음 안에 계신 성령께서 말씀을 떠올려 주며 진리 가운데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롬 8:26). 하나님 자녀들이 말씀대로 살지 않고 불법을 행할 때에는 성령께서 탄식하시므로 곤고함을 느낍니다. 반면에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 가운데 행하면 성령께서 기뻐하시므로 평안과 행복이 임하며 성령 충만함을 입습니다.
믿음의 1단계에서는 교회에 다니며 믿는다 하지만 이전의 구습이 계속 됩니다. 술,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혈기를 내며 자기 유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등 세상 사람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아직 진리가 무엇인지, 비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서도 죄인 줄 알지 못하지요. 마치 아기가 발가벗어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에는 성령의 탄식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 말씀을 들은 대로 행해 나가려는 마음이 생기고 행하기 위해 노력하면 믿음의 2단계로 접어듭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말씀을 알면서도 여전히 죄를 지으면 성령이 탄식하는 것을 느낍니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진리는 이것이 아닌데." 하면서 마음이 곤고해지고 충만함이 떨어집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을 마음으로 깨닫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믿음의 2단계에 있는 사람은 신앙생활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지식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알고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아직 온전히 행하지는 못합니다.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승리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요. 말씀대로 행하려고 무던히 힘쓰지만 정작 뜻대로 되지 않으니 신앙생활 하기가 가장 힘든 단계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단계에 이르면 '교회에 괜히 나왔나?' 하고 회의를 품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어떤 모임이나 약속 혹은 다른 이유 때문에 온전히 지키지 못합니다. 또 십일조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말씀을 알지만 때로는 순종하지 못하고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여전히 미움이 있는 것을 발견하지요. 간음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마음에 드는 이성을 보면 동요하기도 합니다. 시험을 만나면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이럴 때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믿고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비록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못한다 해도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믿음이 있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하며 하나님 능력을 구하고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 변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에는 한 달에 열 번 혈기를 내던 사람이 다섯 번, 세 번으로 줄다가 결국 범죄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될수록 믿음의 2단계에서 3단계로 가까이 가게 됩니다.
2. 기도하면서 성령의 소욕을 좇으면 축복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21~23절에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했습니다. 이처럼 선과 악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함께 있어 싸우므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2단계 중반쯤에서는 진리와 비진리의 세력이 대등하기 때문에 갈등이 심해집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라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러나 계속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나가는 만큼 비진리를 좇으려는 마음은 점점 세력을 잃습니다. 그러면 진리대로 행하는 것이 수월해지고 신앙생활이 점점 더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곤고한 단계에서 승리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 7:25) 고백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행할 수 있는 믿음이 되면 믿음의 3단계로 접어듭니다. 젖이나 죽을 먹는 단계를 벗어나 밥 먹는 단계의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젖 먹는 신자는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밥 먹는 신자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힘쓰면 시험 환난에서 지켜 주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말씀과 기도로써 부지런히 믿음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때를 좇아 믿음의 3단계로 이끌기 위해 연단을 허락하고 승리하면 축복을 주시며 더 큰 믿음으로 인도하십니다.
3. 1천층의 천국 집과 썩지 아니할 면류관
믿음의 2단계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는 1천층입니다. 믿음의 1단계 사람이 들어가는 낙원과는 달리 개인 집과 면류관과 상급이 있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잘 마치고 승리하여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은 면류관을 받는데, 1천층의 면류관은 바로 썩지 아니할 면류관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했습니다. 비록 비진리가 많이 남아 있지만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한 것을, 썩지 않을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에 참여한 것으로 인정하여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1천층의 천국 집은 궁전같이 크고 화려한 건물이 아닙니다. 이 땅의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에 비유할 수 있는 형태의 집입니다. 하나님 은혜 가운데 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람 중에 "천국에도 아파트가 있더라."고 간증하는 경우가 바로 1천층을 본 것입니다. 천국의 집은 정금과 보석 같은 천국의 재료로 지어져 있으며, 윗층과 아랫층 사이에 아름다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원하는 층수를 손으로 누르지 않아도 타기만 하면 원하는 곳에서 저절로 멈춥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예비되어 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집에는 책이 있으며 각자의 취향에 따라 편히 쉴 공간이 꾸며져 있습니다. 집주인이 원하는 취향과 기호에 따라 아름답게 꾸며져 있으므로 비록 1천층에 거한다 해도 큰 기쁨과 만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1천층에서는 자신의 집 이외에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시설이 없습니다. 대신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원이나 골프장, 수영장, 운동시설 등이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수종 드는 천사는 없지만, 필요한 장소마다 천사들이 배치되어 시설을 관리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사용하고자 할 때 편리하도록 도와줍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에 가면 영원한 세월 동안 무엇을 하고 살까? 무수한 세월이 지나면 지루하지 않을까?" 합니다. 천국에는 이 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즐거운 것이 많이 있습니다. 화려한 연회를 즐길 뿐 아니라 운동 경기나 게임, 오락 시설과 영화관, 공연장 등 무수한 것들이 갖추어져 있으며 신기하고 새로운 영의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배웁니다. 더구나 천국에는 육이 없기 때문에 변질되는 것도 지루함도 없으며 늘 새로운 기쁨과 행복으로만 가득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1천층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장 좋은 새 예루살렘까지 침노하여 들어오기를 고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힘써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해 가야 하겠습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 ) 안을 채워 보세요.
" )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 )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2. 1천층에 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① 자신의 집 외에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
② 썩지 아니할 면류관과 상급이 주어진다.
③ 수종 드는 개인 천사는 없지만, 천사들이 배치되어 시설을 관리한다.
④ 단독 주택이 주어진다.
● 금주 과제
『믿음의 분량』개정판 제6장 믿음의 3단계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란?
이 땅의 면류관과 달리 그 가치가 영원함을 나타내며 그 빛이 결코 흐려지지 않는다. 금빛, 은빛, 붉은빛, 푸른빛 등 보석의 단순한 빛을 띠는 몇 가지 종류가 있으며 그 모양이나 형태도 면류관으로서 기본적인 것만으로 단순하게 갖추어져 있다.
교육목표 : 믿음의 단계 중 자기와의 싸움이 가장 치열한 믿음의 2단계의 사람들이 들어가는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알아본다.
천국은 하나님께서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는 곳이므로 믿음으로 침노하는 자라야 들어갈 수 있고, 믿음의 행함에 따라 더 좋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즉 믿음의 1단계에 있는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과 믿음의 2단계, 3단계, 4단계, 5단계에 있는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은 각기 다르며 믿음의 분량이 클수록 더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처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믿음의 2단계에 속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배우며 행하려고 노력해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세상으로 향하던 발걸음이 교회로 향하고 말씀을 듣는 것이 기쁩니다. 예배에 참석하여 말씀을 통해 하나님 자녀는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해야 함을 배웁니다. 또 '사랑하라, 기도하라, 섬기라, 화평하라, 미워하지 말라, 판단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등의 말씀을 배우지요. 이렇게 하나님 말씀을 알게 되니 주님 마음을 닮아가야겠다는 결심이 생깁니다.
이때 마음 안에 계신 성령께서 말씀을 떠올려 주며 진리 가운데 행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롬 8:26). 하나님 자녀들이 말씀대로 살지 않고 불법을 행할 때에는 성령께서 탄식하시므로 곤고함을 느낍니다. 반면에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 가운데 행하면 성령께서 기뻐하시므로 평안과 행복이 임하며 성령 충만함을 입습니다.
믿음의 1단계에서는 교회에 다니며 믿는다 하지만 이전의 구습이 계속 됩니다. 술,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혈기를 내며 자기 유익을 위해 거짓말을 하는 등 세상 사람과 별 차이가 없습니다. 아직 진리가 무엇인지, 비진리가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서도 죄인 줄 알지 못하지요. 마치 아기가 발가벗어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에는 성령의 탄식 소리도 듣지 못합니다.
그러다가 하나님 말씀을 들은 대로 행해 나가려는 마음이 생기고 행하기 위해 노력하면 믿음의 2단계로 접어듭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말씀을 알면서도 여전히 죄를 지으면 성령이 탄식하는 것을 느낍니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진리는 이것이 아닌데." 하면서 마음이 곤고해지고 충만함이 떨어집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것을 마음으로 깨닫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믿음의 2단계에 있는 사람은 신앙생활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지식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알고 말씀대로 행해야 한다는 것도 압니다. 그러나 아직 온전히 행하지는 못합니다.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승리할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요. 말씀대로 행하려고 무던히 힘쓰지만 정작 뜻대로 되지 않으니 신앙생활 하기가 가장 힘든 단계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단계에 이르면 '교회에 괜히 나왔나?' 하고 회의를 품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일을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어떤 모임이나 약속 혹은 다른 이유 때문에 온전히 지키지 못합니다. 또 십일조를 온전히 해야 한다는 말씀을 알지만 때로는 순종하지 못하고 미워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여전히 미움이 있는 것을 발견하지요. 간음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기에 마음에 드는 이성을 보면 동요하기도 합니다. 시험을 만나면 감사하지 못하고 원망하고 불평합니다.
그러나 이럴 때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말고 믿고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비록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못한다 해도 이렇게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믿음이 있다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기도하며 하나님 능력을 구하고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 변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에는 한 달에 열 번 혈기를 내던 사람이 다섯 번, 세 번으로 줄다가 결국 범죄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될수록 믿음의 2단계에서 3단계로 가까이 가게 됩니다.
2. 기도하면서 성령의 소욕을 좇으면 축복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21~23절에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했습니다. 이처럼 선과 악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함께 있어 싸우므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2단계 중반쯤에서는 진리와 비진리의 세력이 대등하기 때문에 갈등이 심해집니다. 사도 바울은 이에 대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롬 7:24)라고 탄식하였습니다. 그러나 계속 힘들기만 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나가는 만큼 비진리를 좇으려는 마음은 점점 세력을 잃습니다. 그러면 진리대로 행하는 것이 수월해지고 신앙생활이 점점 더 행복하게 느껴집니다. 그리하여 바울은 곤고한 단계에서 승리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롬 7:25) 고백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행할 수 있는 믿음이 되면 믿음의 3단계로 접어듭니다. 젖이나 죽을 먹는 단계를 벗어나 밥 먹는 단계의 신앙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젖 먹는 신자는 말씀대로 살아가면서 밥 먹는 신자가 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힘쓰면 시험 환난에서 지켜 주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단계에 오래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말씀과 기도로써 부지런히 믿음을 성장시켜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때를 좇아 믿음의 3단계로 이끌기 위해 연단을 허락하고 승리하면 축복을 주시며 더 큰 믿음으로 인도하십니다.
3. 1천층의 천국 집과 썩지 아니할 면류관
믿음의 2단계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는 1천층입니다. 믿음의 1단계 사람이 들어가는 낙원과는 달리 개인 집과 면류관과 상급이 있습니다. 믿음의 경주를 잘 마치고 승리하여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은 면류관을 받는데, 1천층의 면류관은 바로 썩지 아니할 면류관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했습니다. 비록 비진리가 많이 남아 있지만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한 것을, 썩지 않을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에 참여한 것으로 인정하여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1천층의 천국 집은 궁전같이 크고 화려한 건물이 아닙니다. 이 땅의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에 비유할 수 있는 형태의 집입니다. 하나님 은혜 가운데 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람 중에 "천국에도 아파트가 있더라."고 간증하는 경우가 바로 1천층을 본 것입니다. 천국의 집은 정금과 보석 같은 천국의 재료로 지어져 있으며, 윗층과 아랫층 사이에 아름다운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원하는 층수를 손으로 누르지 않아도 타기만 하면 원하는 곳에서 저절로 멈춥니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습니다.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예비되어 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집에는 책이 있으며 각자의 취향에 따라 편히 쉴 공간이 꾸며져 있습니다. 집주인이 원하는 취향과 기호에 따라 아름답게 꾸며져 있으므로 비록 1천층에 거한다 해도 큰 기쁨과 만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1천층에서는 자신의 집 이외에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시설이 없습니다. 대신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정원이나 골프장, 수영장, 운동시설 등이 있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수종 드는 천사는 없지만, 필요한 장소마다 천사들이 배치되어 시설을 관리하며 하나님의 자녀가 사용하고자 할 때 편리하도록 도와줍니다.
어떤 사람은 "천국에 가면 영원한 세월 동안 무엇을 하고 살까? 무수한 세월이 지나면 지루하지 않을까?" 합니다. 천국에는 이 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하고 즐거운 것이 많이 있습니다. 화려한 연회를 즐길 뿐 아니라 운동 경기나 게임, 오락 시설과 영화관, 공연장 등 무수한 것들이 갖추어져 있으며 신기하고 새로운 영의 세계를 끊임없이 탐구하며 배웁니다. 더구나 천국에는 육이 없기 때문에 변질되는 것도 지루함도 없으며 늘 새로운 기쁨과 행복으로만 가득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1천층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 가장 좋은 새 예루살렘까지 침노하여 들어오기를 고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여 힘써 더 큰 믿음으로 성장해 가야 하겠습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 ) 안을 채워 보세요.
" )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 )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2. 1천층에 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① 자신의 집 외에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
② 썩지 아니할 면류관과 상급이 주어진다.
③ 수종 드는 개인 천사는 없지만, 천사들이 배치되어 시설을 관리한다.
④ 단독 주택이 주어진다.
● 금주 과제
『믿음의 분량』개정판 제6장 믿음의 3단계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란?
이 땅의 면류관과 달리 그 가치가 영원함을 나타내며 그 빛이 결코 흐려지지 않는다. 금빛, 은빛, 붉은빛, 푸른빛 등 보석의 단순한 빛을 띠는 몇 가지 종류가 있으며 그 모양이나 형태도 면류관으로서 기본적인 것만으로 단순하게 갖추어져 있다.
2010-05-28
제21과천국의 처소와 면류관(1)
행 2:38~39
읽을말씀 : 행 2:38~39 | 외울말씀 : 행 2:38 ㅣ 참고 말씀:요일 2:12, 요 1:12
교육목표 : 믿음의 단계 중 가장 낮은 믿음의 1단계에 속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알아본다.
천국이 있다는 것은 알아도 많은 사람이 천국의 구조 등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믿음이 다르고 행함이 다른데 누구나 똑같은 천국을 가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며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의 분량에 따라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 등 천국의 처소가 다르며 상급으로 주어지는 면류관도 여러 가지로 구분됩니다. 오늘은 믿음의 1단계에 속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믿음의 1단계는 '구원받기 위한 믿음' 또는 '성령 받기 위한 믿음'이라고 합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그의 후손들은 처음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고, 일생 동안 죄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에게 순종하여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원죄와 자범죄를 가진 죄인이기에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롬 6:2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셨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므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죄 사함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신 대로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하여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요일 2:12)가 된 것이 믿음의 1단계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38절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하셨지요.
우리가 복음을 듣고 마음 문을 열어 자신이 죄인임을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마음 안에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사람에게 보증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고후 1:21~22).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비로소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천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치 아이가 태어나면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것처럼 천국 백성으로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는 것입니다.
2. 십자가에 달려 회개한 한 편 강도의 믿음
누가복음 23장 3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두 강도도 예수님의 좌우편에 못 박혔습니다. 이때 한 편 강도는 악한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했지만 다른 한 편 강도는 오히려 그를 꾸짖으며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고 자신의 영혼을 부탁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는 죽기 전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여 천국 낙원을 약속받은 것입니다.
낙원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 곧 믿음의 1단계에 해당되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으로 천국의 가장 변두리에 해당하며 상급이 없습니다. 그 강도는 다만 선한 양심을 좇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를 용서받았을 뿐 주님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낙원에 들어간 것이지요. 낙원은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이지만 이 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3.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낙원
하늘은 눈부시게 맑고 푸른데 하얀 구름들이 그림처럼 떠 있습니다. 고운 모래가 반짝이는 해변에, 바다는 맑디맑아 물속이 훤히 비치며 여러 색깔의 물고기들이 산호초 사이로 헤엄쳐 다닙니다. 아름다운 수목과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달콤한 꽃향기가 사방에서 퍼져 나오며 잔디가 끝없이 펼쳐져 있지요. 춥지도 덥지도 않은 쾌적한 날씨에 곳곳에서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땅에서도 이렇게 아름답고 평안한 곳을 보면 "마치 천국 같다." 말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 땅에서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 해도 또 어떤 상상을 해 본다 해도 낙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꽃잎 하나, 풀잎 하나가 이 땅의 것과는 전혀 다르며 새의 깃털 하나만 보아도 그 빛깔과 부드러움과 광채가 황홀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낙원에 들어서면 마치 꿈속에 들어온 것처럼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은혜를 받게 되었는가." 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솟아나는 맑은 생명수가 새 예루살렘과 3천층, 2천층, 1천층을 두루 돌아 낙원까지 흘러 들어오고 생명수 강가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가 달마다 맺힙니다. 영안이 열려서 천국의 낙원을 본 분들은 길이 잘 정비된 넓은 공간에 펼쳐진 잔디와 아름답게 꾸며진 많은 정원을 보셨을 것입니다. 많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리고 꽃들이 만발하여 아름다운 향을 발하며, 나무에 달린 과실들도 마음껏 먹을 수 있지요. 슬픔, 고통, 질병이나 죽음이 없으며 해를 입히는 짐승이나 재앙도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낙원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하십니까? 물론 낙원은 좋은 곳이지만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 들어가야 합니다. 아무리 낙원이 좋아도 1천층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으며 그보다 윗단계의 천국과는 더 큰 차이가 납니다. 가령, 정금과 각종 보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진 궁전 같은 집이나 왕자와 공주처럼 영화로운 면류관을 쓰고 화려한 의복을 입은 모습, 아름다운 천사들이 주인으로 섬기며 수종드는 모습 등은 낙원에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4. 천국의 면류관이 주어지지 않는 낙원
낙원에 거하는 사람에게는 상급이나 면류관이 없으며, 집도 따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면서 믿음으로 행한 것,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심은 것이 천국에서 상급으로 주어집니다. 그런데 믿음의 1단계는 겨우 구원받기에 급급하니 천국에 상급을 쌓을 여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물론 집이 없다 해서 사람들이 마냥 잔디밭을 거닐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도 마을회관 같은 곳이 있어서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듯이 낙원에도 공동으로 사용하는 장소가 있어서 그 안에서 모일 수도 있고 안락하게 휴식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공동생활을 한다 해도 천국에는 악이 없으므로 서로 양보하고 상대를 배려하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나는 낙원에만 들어가도 족하다." 하는 분은 없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있다면 더 좋은 천국을 사모해야 합니다. 천국을 침노하기 위해 말씀을 지켜 행하며 마음의 악을 버리고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이렇게 좋은 천국을 침노하기 위한 선한 싸움이 시작되면, 믿음의 2단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아직 젊으니 세상을 즐기다가 노인이 되면 교회에 가겠다." 합니다. 복음을 들어 지식으로는 알지만, 세상의 쾌락이 좋고 신앙생활 하기는 싫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자신이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설사 얼마 후에 죽을 것을 알고 "이제 믿겠습니다." 한들 구원받을 믿음이 주어진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로서 자신이 마음대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믿습니다." 해도 구원받을 믿음이 주어지지 않고 성령을 받지 못한다면 결국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까지 성령을 받지 못한 분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의 성령을 간절히 구하여 반드시 선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령을 받은 분들은 그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더 큰 믿음을 지니기 위해 힘쓰며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사도행전 2장 38절을 외울 수 있나요?
2. 낙원에 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① 상급이나 면류관이 없고, 집도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② 믿음의 1단계 사람이 겨우 구원받아 들어가는 곳이다.
③ 천사가 수종 든다.
④ 한 편 강도가 들어간 곳이다.
3. ( ) 안을 채워 보세요.
성령은 ( )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 ) 된 권세를 얻은 사람에게 보증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 )입니다. 성령은 죽은 ( )을 살리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 금주 과제
『믿음의 분량』개정판 제5장 믿음의 2단계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십자가'에 대해
페르시아 사람들에 의해 로마에 전해진 십자가 처형법은 노예나 죄수를 사형에 처할 때 흔히 사용되었다. 유대인들은 나무에 매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따라서 나무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속을 상징한다.
교육목표 : 믿음의 단계 중 가장 낮은 믿음의 1단계에 속한 사람들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알아본다.
천국이 있다는 것은 알아도 많은 사람이 천국의 구조 등 자세한 것은 알지 못합니다. 사람마다 믿음이 다르고 행함이 다른데 누구나 똑같은 천국을 가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며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의 분량에 따라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 등 천국의 처소가 다르며 상급으로 주어지는 면류관도 여러 가지로 구분됩니다. 오늘은 믿음의 1단계에 속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믿음의 1단계는 '구원받기 위한 믿음' 또는 '성령 받기 위한 믿음'이라고 합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그의 후손들은 처음부터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고, 일생 동안 죄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에게 순종하여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이렇게 원죄와 자범죄를 가진 죄인이기에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롬 6:23)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셨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죄가 없으므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죄 사함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하신 대로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하여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요일 2:12)가 된 것이 믿음의 1단계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장 38절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하셨지요.
우리가 복음을 듣고 마음 문을 열어 자신이 죄인임을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마음 안에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사람에게 보증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고후 1:21~22).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비로소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천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마치 아이가 태어나면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것처럼 천국 백성으로 이름이 기록되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는 것입니다.
2. 십자가에 달려 회개한 한 편 강도의 믿음
누가복음 23장 3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두 강도도 예수님의 좌우편에 못 박혔습니다. 이때 한 편 강도는 악한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했지만 다른 한 편 강도는 오히려 그를 꾸짖으며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고 자신의 영혼을 부탁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는 죽기 전 마지막 순간에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여 천국 낙원을 약속받은 것입니다.
낙원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 곧 믿음의 1단계에 해당되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으로 천국의 가장 변두리에 해당하며 상급이 없습니다. 그 강도는 다만 선한 양심을 좇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를 용서받았을 뿐 주님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낙원에 들어간 것이지요. 낙원은 천국에서 가장 낮은 처소이지만 이 땅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3. 이 세상과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낙원
하늘은 눈부시게 맑고 푸른데 하얀 구름들이 그림처럼 떠 있습니다. 고운 모래가 반짝이는 해변에, 바다는 맑디맑아 물속이 훤히 비치며 여러 색깔의 물고기들이 산호초 사이로 헤엄쳐 다닙니다. 아름다운 수목과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달콤한 꽃향기가 사방에서 퍼져 나오며 잔디가 끝없이 펼쳐져 있지요. 춥지도 덥지도 않은 쾌적한 날씨에 곳곳에서 사람들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이 땅에서도 이렇게 아름답고 평안한 곳을 보면 "마치 천국 같다." 말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 땅에서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 해도 또 어떤 상상을 해 본다 해도 낙원과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꽃잎 하나, 풀잎 하나가 이 땅의 것과는 전혀 다르며 새의 깃털 하나만 보아도 그 빛깔과 부드러움과 광채가 황홀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낙원에 들어서면 마치 꿈속에 들어온 것처럼 아름다운 경관 속에서 "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은혜를 받게 되었는가." 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솟아나는 맑은 생명수가 새 예루살렘과 3천층, 2천층, 1천층을 두루 돌아 낙원까지 흘러 들어오고 생명수 강가 좌우에는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가 달마다 맺힙니다. 영안이 열려서 천국의 낙원을 본 분들은 길이 잘 정비된 넓은 공간에 펼쳐진 잔디와 아름답게 꾸며진 많은 정원을 보셨을 것입니다. 많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음악처럼 들리고 꽃들이 만발하여 아름다운 향을 발하며, 나무에 달린 과실들도 마음껏 먹을 수 있지요. 슬픔, 고통, 질병이나 죽음이 없으며 해를 입히는 짐승이나 재앙도 없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이런 낙원에서 영원히 살기를 원하십니까? 물론 낙원은 좋은 곳이지만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 들어가야 합니다. 아무리 낙원이 좋아도 1천층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으며 그보다 윗단계의 천국과는 더 큰 차이가 납니다. 가령, 정금과 각종 보석으로 화려하게 지어진 궁전 같은 집이나 왕자와 공주처럼 영화로운 면류관을 쓰고 화려한 의복을 입은 모습, 아름다운 천사들이 주인으로 섬기며 수종드는 모습 등은 낙원에는 해당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4. 천국의 면류관이 주어지지 않는 낙원
낙원에 거하는 사람에게는 상급이나 면류관이 없으며, 집도 따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면서 믿음으로 행한 것,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고 심은 것이 천국에서 상급으로 주어집니다. 그런데 믿음의 1단계는 겨우 구원받기에 급급하니 천국에 상급을 쌓을 여유가 없었던 것이지요.
물론 집이 없다 해서 사람들이 마냥 잔디밭을 거닐고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땅에도 마을회관 같은 곳이 있어서 여러 사람이 함께 사용하듯이 낙원에도 공동으로 사용하는 장소가 있어서 그 안에서 모일 수도 있고 안락하게 휴식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공동생활을 한다 해도 천국에는 악이 없으므로 서로 양보하고 상대를 배려하기 때문에 불편하지 않고 행복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나는 낙원에만 들어가도 족하다." 하는 분은 없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있다면 더 좋은 천국을 사모해야 합니다. 천국을 침노하기 위해 말씀을 지켜 행하며 마음의 악을 버리고 거룩한 사람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이렇게 좋은 천국을 침노하기 위한 선한 싸움이 시작되면, 믿음의 2단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나는 아직 젊으니 세상을 즐기다가 노인이 되면 교회에 가겠다." 합니다. 복음을 들어 지식으로는 알지만, 세상의 쾌락이 좋고 신앙생활 하기는 싫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자신이 언제 죽을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설사 얼마 후에 죽을 것을 알고 "이제 믿겠습니다." 한들 구원받을 믿음이 주어진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성령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선물로서 자신이 마음대로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믿습니다." 해도 구원받을 믿음이 주어지지 않고 성령을 받지 못한다면 결국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아직까지 성령을 받지 못한 분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은혜의 성령을 간절히 구하여 반드시 선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한 성령을 받은 분들은 그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더 큰 믿음을 지니기 위해 힘쓰며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사도행전 2장 38절을 외울 수 있나요?
2. 낙원에 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① 상급이나 면류관이 없고, 집도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② 믿음의 1단계 사람이 겨우 구원받아 들어가는 곳이다.
③ 천사가 수종 든다.
④ 한 편 강도가 들어간 곳이다.
3. ( ) 안을 채워 보세요.
성령은 ( )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 ) 된 권세를 얻은 사람에게 보증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 )입니다. 성령은 죽은 ( )을 살리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 금주 과제
『믿음의 분량』개정판 제5장 믿음의 2단계 읽어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십자가'에 대해
페르시아 사람들에 의해 로마에 전해진 십자가 처형법은 노예나 죄수를 사형에 처할 때 흔히 사용되었다. 유대인들은 나무에 매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죄 없으신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다. 따라서 나무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속을 상징한다.
2010-05-21
제20과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마 11:12
읽을말씀 : 마 11:12 | 외울말씀 : 마 11:12 l 참고 말씀:마 13:31~32
교육목표 : 믿음으로 천국을 침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며, 우리가 침노해야 하는 천국은 과연 어떤 곳인지에 대해 알아본다.
마태복음 11장 12절을 보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했습니다. 천국은 빛이신 하나님의 나라이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근접할 수도 없는 빛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감히 누가 천국을 침노하며 어떻게 천국을 빼앗는다는 말씀일까요? 이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며 온전한 믿음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나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 사단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라도 미혹하여 죄를 짓게 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지요.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과 싸워 이겨서 천국을 빼앗아야 하기에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 한 것입니다.
1.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악한 영들과 대적하여 믿음으로 이길 때 더 좋은 천국을 취하여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이 침노를 당하는 것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라고 말씀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사역을 이루시도록 그 길을 예비하며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명을 맡은 사람입니다. 여기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요,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는 율법 시대로서 율법의 행위로써 구원을 받았습니다. 율법을 지켜 행해야 했고 지키지 못하여 범죄했을 때는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사함을 받았습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 이후 신약 시대는 성령 시대, 혹은 은혜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율법대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보혈의 공로와 성령의 능력으로 죄 사함 받아 구원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오해하여 행위적으로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 구약 시대와는 달리 신약 시대에는 입으로 "믿습니다." 고백하면 죄를 지어도 용서받고 구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구약의 '행위적인 구원'이란 비록 마음에 악이 있어도 행위로만 범죄하지 않으면 '죄 있다' 정죄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신약에서는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아도 마음에 악을 품은 자체가 벌써 죄이며 형제를 미워하면 이미 살인자와도 같습니다. 하물며 행위적으로 범죄하면 더욱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일을 하는 자' 곧 행함으로 범죄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갈 5:19~21). 그 밖에도 성경 곳곳에 행위적으로 범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고 경고하였지요. 구원받을 믿음이 있다면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의 악까지도 버려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구약 시대보다 신약 시대에 구원받기가 더 어려운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범죄하지 않고 율법을 지켜야 했지만 신약 시대에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마음 중심에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율법을 지켜 행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 되심과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음을 믿는다면 당연히 죄를 버리고자 노력하게 되지요.
우리가 들어서 지식으로 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녕 십자가에 담긴 사랑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율법을 행하며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악을 행하던 사람이 선을 행합니다. 인격과 교양이 있어서 행위적으로만 범죄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마음의 죄성 자체를 버리고 성결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가능한 일이며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세상 사람들은 담배 하나 끊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하지만 주님을 영접한 후에 성령의 역사를 받으니 술, 담배를 아주 쉽게 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죄를 버리고자 노력해 나갈 때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점점 주님 닮은 깨끗한 마음으로 변하지요. 이처럼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기에 믿음으로 구원받고 죄를 버리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2. 여러 처소로 분류되어 있는 천국
우리가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도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좋은 곳이 있으므로 사모하여 침노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천국이 눈에 보이는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은 보이지 않는 영의 하늘에 속해 있으며 영의 하늘은 이 육의 하늘과 차원이 다른 영역입니다. 영의 하늘도 다시 여러 하늘로 나뉩니다(느 9:6 ; 왕상 8:27).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는 사도 바울의 영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갔음을 말합니다. 셋째 하늘이 있으면 당연히 첫째, 둘째 하늘이 있고 그 이상의 하늘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여러 영의 하늘 중에서 바울이 말하는 셋째 하늘이 바로 천국이 있는 하늘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2장 4절에는 "그가(곧 사도 바울이)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했습니다. 즉 셋째 하늘의 천국 중에서도 사도 바울은 낙원을 보았지요.
그러면 낙원은 어떤 곳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한 한 편 강도와 같이 간신히 구원받을 믿음을 가진 사람이 가는 처소가 낙원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충성한 일도 없으니 상급도 없으며 천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사도 요한이 본 새 예루살렘 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두 보석이 기초석을 이루고 있는 거룩하고 영화로운 성으로 묘사되어 있지요. 이곳은 천국에서 가장 영화로운 처소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며,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지키며 마음에 이루어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거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새 예루살렘과 낙원 사이에는 다시 여러 단계로 구분된 처소 곧 1천층, 2천층, 3천층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중 어느 처소에 들어갈 것인지는 자신의 믿음에 따라 결정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만큼 더 좋은 처소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지요.
3.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려면
우리의 믿음이 커 가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천국을 침노해 들어간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이처럼 침노해 들어가는 천국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하셨습니다(마 13:31~32).
겨자씨는 흰 종이 위에 펜으로 점을 찍은 크기의 작은 씨앗입니다. 처음 구원받은 성도들의 믿음은 겨자씨만큼밖에 되지 않지만 그 씨를 자신의 마음 밭에 심고 열심히 가꾸면 울창하여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나무처럼 큰 믿음으로 자라게 되지요. 큰 나무에는 많은 새가 깃들이고 쉼을 얻는 것처럼 믿음이 큰 사람은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심어 주고 많은 영혼을 품는 크고 넓은 마음이 되면 천국에서 더 넓고 좋은 처소에 거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좋은 것,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며 행복한 것을 상상한다 해도 천국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천국에서 가장 낮은 낙원이라 해도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보다 훨씬 아름답습니다. 더구나 1천층은 낙원과 비교할 수 없고 2천층은 1천층과 비교할 수 없이 더 좋으며, 3천층과 2천층은 천지 차이라 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의 영광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천국에 대해 밝히 알면 이 땅의 것이 참으로 헛된 줄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헛된 욕심과 정욕을 다 버리고 오직 말씀대로 자신을 변화시키며 좋은 천국만을 침노하기 위해 달려가게 되지요. 우리가 장차 들어갈 천국의 처소는 우리의 경작이 마쳐지는 순간에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껴 부지런히 더 큰 믿음을 이루며 가장 좋은 천국을 침노해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마태복음 11장 12절 말씀을 다 함께 외울 수 있나요?
2.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넣으세요.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 )의 시대요, 믿음으로 구원받는 ( )시대를 의미한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는 말씀은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며 ( ) 믿음에 이르는 과정을 뜻한다. 즉 원수 마귀 사단은 우리를 미혹하여 죄를 짓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들과 싸워 ( )을 빼앗아야 하기에 ( )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한 것이다.
● 금주 과제
『믿음의 분량』책자 제12장 '믿음의 분량에 따른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 읽어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열두 기초석에 담긴 영적인 의미
벽옥(믿음)→ 남보석(곧음, 절개)→ 옥수(결백, 희생적인 사랑)→ 녹보석(의, 푸 르름, 정의롭고 깨끗함)→ 홍마노(충성)→ 홍보석(열심)→ 황옥(자비)→녹옥(오래 참음)→ 담황옥(양선)→ 비취옥(절제)→ 청옥(청결함, 거룩함)→ 자정(온유)
교육목표 : 믿음으로 천국을 침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며, 우리가 침노해야 하는 천국은 과연 어떤 곳인지에 대해 알아본다.
마태복음 11장 12절을 보면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했습니다. 천국은 빛이신 하나님의 나라이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근접할 수도 없는 빛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감히 누가 천국을 침노하며 어떻게 천국을 빼앗는다는 말씀일까요? 이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며 온전한 믿음에 이르는 과정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나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 사단은 복음을 듣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도록 훼방합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이라도 미혹하여 죄를 짓게 하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지요.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과 싸워 이겨서 천국을 빼앗아야 하기에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 한 것입니다.
1.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악한 영들과 대적하여 믿음으로 이길 때 더 좋은 천국을 취하여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이 침노를 당하는 것은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라고 말씀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사역을 이루시도록 그 길을 예비하며 예수님을 증거하는 사명을 맡은 사람입니다. 여기서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요, 믿음으로 구원받는 신약 시대를 의미합니다.
구약 시대는 율법 시대로서 율법의 행위로써 구원을 받았습니다. 율법을 지켜 행해야 했고 지키지 못하여 범죄했을 때는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사함을 받았습니다. 반면 예수 그리스도 이후 신약 시대는 성령 시대, 혹은 은혜의 시대라고 말합니다. 이제는 율법대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지 않아도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보혈의 공로와 성령의 능력으로 죄 사함 받아 구원받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오해하여 행위적으로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 구약 시대와는 달리 신약 시대에는 입으로 "믿습니다." 고백하면 죄를 지어도 용서받고 구원받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구약의 '행위적인 구원'이란 비록 마음에 악이 있어도 행위로만 범죄하지 않으면 '죄 있다' 정죄받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반면에 신약에서는 행위적으로 죄를 짓지 않아도 마음에 악을 품은 자체가 벌써 죄이며 형제를 미워하면 이미 살인자와도 같습니다. 하물며 행위적으로 범죄하면 더욱 큰 죄가 되는 것입니다.
'육체의 일을 하는 자' 곧 행함으로 범죄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갈 5:19~21). 그 밖에도 성경 곳곳에 행위적으로 범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다고 경고하였지요. 구원받을 믿음이 있다면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의 악까지도 버려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면 구약 시대보다 신약 시대에 구원받기가 더 어려운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 범죄하지 않고 율법을 지켜야 했지만 신약 시대에는 자신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하신 말씀처럼 마음 중심에 믿음이 있는 사람은 반드시 율법을 지켜 행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 되심과 예수님이 내 죄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음을 믿는다면 당연히 죄를 버리고자 노력하게 되지요.
우리가 들어서 지식으로 알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녕 십자가에 담긴 사랑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대로 율법을 행하며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악을 행하던 사람이 선을 행합니다. 인격과 교양이 있어서 행위적으로만 범죄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마음의 죄성 자체를 버리고 성결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변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가능한 일이며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입니다. 예를 들어, 세상 사람들은 담배 하나 끊는 것도 너무 힘들다고 하지만 주님을 영접한 후에 성령의 역사를 받으니 술, 담배를 아주 쉽게 끊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주님을 영접하고 죄를 버리고자 노력해 나갈 때 성령의 능력이 임하여, 행위적인 죄는 물론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 버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점점 주님 닮은 깨끗한 마음으로 변하지요. 이처럼 신약 시대에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기에 믿음으로 구원받고 죄를 버리는 것이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2. 여러 처소로 분류되어 있는 천국
우리가 천국을 침노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도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어서 상대적으로 더 좋은 곳이 있으므로 사모하여 침노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천국이 눈에 보이는 하늘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천국은 보이지 않는 영의 하늘에 속해 있으며 영의 하늘은 이 육의 하늘과 차원이 다른 영역입니다. 영의 하늘도 다시 여러 하늘로 나뉩니다(느 9:6 ; 왕상 8:27).
고린도후서 12장 2절에는 사도 바울의 영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갔음을 말합니다. 셋째 하늘이 있으면 당연히 첫째, 둘째 하늘이 있고 그 이상의 하늘도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여러 영의 하늘 중에서 바울이 말하는 셋째 하늘이 바로 천국이 있는 하늘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2장 4절에는 "그가(곧 사도 바울이) 낙원으로 이끌려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말이로다" 했습니다. 즉 셋째 하늘의 천국 중에서도 사도 바울은 낙원을 보았지요.
그러면 낙원은 어떤 곳일까요?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한 한 편 강도와 같이 간신히 구원받을 믿음을 가진 사람이 가는 처소가 낙원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하나님 나라에 충성한 일도 없으니 상급도 없으며 천국 중에서도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사도 요한이 본 새 예루살렘 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열두 보석이 기초석을 이루고 있는 거룩하고 영화로운 성으로 묘사되어 있지요. 이곳은 천국에서 가장 영화로운 처소로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이며,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지키며 마음에 이루어 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거하는 곳입니다.
이러한 새 예루살렘과 낙원 사이에는 다시 여러 단계로 구분된 처소 곧 1천층, 2천층, 3천층이 있습니다. 우리가 그중 어느 처소에 들어갈 것인지는 자신의 믿음에 따라 결정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고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진리의 마음으로 변화되는 만큼 더 좋은 처소에 들어갈 자격을 얻게 되지요.
3.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려면
우리의 믿음이 커 가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천국을 침노해 들어간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이처럼 침노해 들어가는 천국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하셨습니다(마 13:31~32).
겨자씨는 흰 종이 위에 펜으로 점을 찍은 크기의 작은 씨앗입니다. 처음 구원받은 성도들의 믿음은 겨자씨만큼밖에 되지 않지만 그 씨를 자신의 마음 밭에 심고 열심히 가꾸면 울창하여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나무처럼 큰 믿음으로 자라게 되지요. 큰 나무에는 많은 새가 깃들이고 쉼을 얻는 것처럼 믿음이 큰 사람은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사람들에게 생명을 심어 주고 많은 영혼을 품는 크고 넓은 마음이 되면 천국에서 더 넓고 좋은 처소에 거하게 됩니다.
이 땅에서 아무리 좋은 것, 아무리 아름답고 화려하며 행복한 것을 상상한다 해도 천국과는 비교할 수조차 없습니다. 천국에서 가장 낮은 낙원이라 해도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보다 훨씬 아름답습니다. 더구나 1천층은 낙원과 비교할 수 없고 2천층은 1천층과 비교할 수 없이 더 좋으며, 3천층과 2천층은 천지 차이라 할 정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의 영광은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천국에 대해 밝히 알면 이 땅의 것이 참으로 헛된 줄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의 헛된 욕심과 정욕을 다 버리고 오직 말씀대로 자신을 변화시키며 좋은 천국만을 침노하기 위해 달려가게 되지요. 우리가 장차 들어갈 천국의 처소는 우리의 경작이 마쳐지는 순간에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세월을 아껴 부지런히 더 큰 믿음을 이루며 가장 좋은 천국을 침노해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마태복음 11장 12절 말씀을 다 함께 외울 수 있나요?
2.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넣으세요.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란 ( )의 시대요, 믿음으로 구원받는 ( )시대를 의미한다. 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빼앗는다는 말씀은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가며 ( ) 믿음에 이르는 과정을 뜻한다. 즉 원수 마귀 사단은 우리를 미혹하여 죄를 짓게 하려고 하기 때문에 이들과 싸워 ( )을 빼앗아야 하기에 ( )하는 자가 빼앗는다고 한 것이다.
● 금주 과제
『믿음의 분량』책자 제12장 '믿음의 분량에 따른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 읽어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열두 기초석에 담긴 영적인 의미
벽옥(믿음)→ 남보석(곧음, 절개)→ 옥수(결백, 희생적인 사랑)→ 녹보석(의, 푸 르름, 정의롭고 깨끗함)→ 홍마노(충성)→ 홍보석(열심)→ 황옥(자비)→녹옥(오래 참음)→ 담황옥(양선)→ 비취옥(절제)→ 청옥(청결함, 거룩함)→ 자정(온유)
2010-05-14
제19과능력과 권세와 권능
행 2:22
읽을말씀 : 행 2:22 | 외울말씀 : 막 10:27 l 참고 말씀:눅 4:6,고전 4:20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능력과 권세, 권능에 대해 밝히 알고 사모하게 한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도 할 수 있고 그보다 큰 것도 할 수 있습니다(요 14:12). 우리가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에 이르면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권능이 주어집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말할 때 권세와 능력, 권능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데 여기에는 각각의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 은사와 능력의 차이
아직 성결되지 않은 사람도 하나님과 영혼을 사랑하여 불같은 기도를 무수히 쌓으면 병 고치는 은사나 능력 행함 등 성령의 은사가 나타납니다. 또 어떤 사람을 위해 사랑으로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주의 종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닌데 양 떼 편에서 매우 간절한 믿음으로 기도를 요청하는 경우 그 간절함과 순수한 믿음을 보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성결된 사람에게 하나님 능력이 온전히 임하여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마음의 성결을 이루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서 무수한 기도를 쌓아야 어느 정도 하나님 능력이 임하고, 믿음의 5단계에 이르렀을 때에야 온전히 임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5단계에 들어와 온전한 능력을 받았다면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이 항상 나타나며, 그 이상의 기사와 표적도 행할 수 있습니다. 병의 치료뿐 아니라 약한 것, 곧 불구된 것도 고칠 수 있고 그 밖에 여러 기사와 표적을 필요할 때마다 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 보면 능력과 병 고치는 은사가 나오는데 이 둘의 역사하는 힘은 전혀 다릅니다. 병 고치는 은사를 받으면 세균과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은 고칠 수 있지만 소경, 벙어리, 앉은뱅이 등 이미 기능이 마비되었거나 퇴화된 것들은 능력이 있어야 고칠 수 있습니다. 선천적인 불구나 신체장애 같은 것은 질병이 아니라 약한 것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약한 것이란, 감기 몸살 등 가벼운 병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 기관의 기능이 마비되고 퇴화되어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증세를 말합니다. 그래서 병 고치는 은사 위에 능력이 있는 것이며 능력을 행하는 자에게는 병 고치는 은사로는 베풀 수 없는 기사와 표적이 따르는 것입니다.
아직 악을 다 버리기 전이라 해도 기도를 많이 쌓으면 성령의 은사로서 능력을 받을 수 있지만 온전한 것이 아니며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차원입니다. 이렇게 은사 차원에서 능력을 받은 사람은 교만해지거나 마음이 변질될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은사는 다시 거두어질 수 있지요.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받는 능력은 이와 다릅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단계에 들어온 사람이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고 능력 받아 일하기 위해 불같은 기도를 쌓으면 능력이 임하는데 이미 성결되었기에 교만해지거나 변질될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능력이 사라질 리 없으며 많은 기도를 쌓아가는 만큼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만큼 하나님께서는 마음껏 능력을 행할 수 있도록 영적인 권세까지 주십니다.
2. 능력이란?
능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많이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믿고 맡기면 위로부터 믿음의 힘이 와서 무엇이든지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0장 27절에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했고, 마가복음 9장 23절에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인간 구원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요, 결코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으므로(고전 4:20)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사망에서 영생의 길로 가는 자체도 능력이며 귀신을 내쫓고 병이나 약함을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는 등 모든 신령한 역사가 능력에 포함됩니다.
3. 권세란?
권세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정하신 엄위 있고 영광스런 힘이요,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명(命)'을 의미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영광스런 권세를 사람에게 허락하신 것이지요. 로마서 13장 1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위에서(즉 하나님이)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라" 하셨지요. 천하 만물과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며,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떤 시험이 올 때 사람의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해결할 길을 찾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권세는 성결과 직결됩니다. 아직 성결되지 않은 사람이 불같은 기도를 쌓을 때 부분적이나마 임할 수 있는 능력과는 달리 영적인 권세는 성결되지 않으면 결코 받을 수 없지요. 어린아이에게 예리한 칼을 주면 위험한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권세를 아무나 가질 수 있다면 큰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적어도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간 사람, 악이 없고 형제를 위해 생명도 줄 수 있는 사랑과 덕과 관용이 있는 사람에게 영적인 권세를 주십니다.
4. 권능이란?
영적인 권세와 함께 능력을 받은 사람은 권능을 행하게 됩니다. '권능'이란 권세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누가복음 4장 36절을 보면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은 능력만이 아니라 권세와 함께 나타난 권능의 역사였습니다.
믿음의 5단계에 이르지 않았다 해도 예외적으로 권능이 나타난 경우가 있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안수하여 권능을 행하도록 명하신 경우이지요. 이는 예수님의 뜻 가운데 예수님의 권능이 제자들에게 일시적으로 부여되므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면 능력과 권능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비유를 들어, 부모와 자녀 간에, 아들이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크다 해도, 아버지의 말씀에는 순종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권세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또 옛날에, 왕의 명을 가지고 가는 사신에게는 어떤 신하도 복종해야 했던 것을 봅니다. 비록 그 사신보다 더 지위가 높다 해도 사신은 왕의 권세를 받아서 오는 것이기에 그 명령에 순종할 수밖에 없지요. 하물며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영적인 권세를 부여해 주셨다면 모든 피조물과 악한 영들까지도 그 앞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권세는 창조주 하나님께 속하므로 능력과 함께 권세까지 있다면 악한 영들이나 질병 균, 심지어 무생물이라도 순종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바람과 파도도 잔잔케 할 수 있고 비와 구름 등을 명하여 천기를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성결하고 정금같이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이러한 권능을 받을 수 있으며, 믿음의 5단계에서도 깊은 차원으로 들어갈수록 권능은 더욱 크고 놀랍게 나타납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고린도전서 4장 20절을 외워서 쓸 수 있나요?
2. 은사와 능력의 차이점을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3. □ 안에 알맞은 글자를 써 넣으세요.
능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의 힘을 말한다.
□□란 하나님의 정하신 엄위 있고 영광스러운 힘을 말한다.
권능이란 악이 없고 성결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있는 하나님의 □□을 말한다.
● 금주 과제
『믿음의 분량』책자 제12장 읽어 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빌라도'는 누구일까?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면서도 민란이 일까 두려워 예수님께 사형을 언도한 역사적인 인물이다. 이에 대해 그는 스스로 무죄하다며 손을 씻었지만 그의 책임은 면제될 수 없었다. 사도신경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말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의 역사성을 증거해 주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능력과 권세, 권능에 대해 밝히 알고 사모하게 한다.
하나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도 할 수 있고 그보다 큰 것도 할 수 있습니다(요 14:12). 우리가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에 이르면 무한한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 권능이 주어집니다.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말할 때 권세와 능력, 권능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데 여기에는 각각의 영적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 은사와 능력의 차이
아직 성결되지 않은 사람도 하나님과 영혼을 사랑하여 불같은 기도를 무수히 쌓으면 병 고치는 은사나 능력 행함 등 성령의 은사가 나타납니다. 또 어떤 사람을 위해 사랑으로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주의 종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닌데 양 떼 편에서 매우 간절한 믿음으로 기도를 요청하는 경우 그 간절함과 순수한 믿음을 보고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성결된 사람에게 하나님 능력이 온전히 임하여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것과 차원이 다릅니다. 마음의 성결을 이루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서 무수한 기도를 쌓아야 어느 정도 하나님 능력이 임하고, 믿음의 5단계에 이르렀을 때에야 온전히 임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5단계에 들어와 온전한 능력을 받았다면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이 항상 나타나며, 그 이상의 기사와 표적도 행할 수 있습니다. 병의 치료뿐 아니라 약한 것, 곧 불구된 것도 고칠 수 있고 그 밖에 여러 기사와 표적을 필요할 때마다 행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 28절에 보면 능력과 병 고치는 은사가 나오는데 이 둘의 역사하는 힘은 전혀 다릅니다. 병 고치는 은사를 받으면 세균과 바이러스로 인한 질병은 고칠 수 있지만 소경, 벙어리, 앉은뱅이 등 이미 기능이 마비되었거나 퇴화된 것들은 능력이 있어야 고칠 수 있습니다. 선천적인 불구나 신체장애 같은 것은 질병이 아니라 약한 것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약한 것이란, 감기 몸살 등 가벼운 병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 기관의 기능이 마비되고 퇴화되어 정상적인 활동이 불가능한 증세를 말합니다. 그래서 병 고치는 은사 위에 능력이 있는 것이며 능력을 행하는 자에게는 병 고치는 은사로는 베풀 수 없는 기사와 표적이 따르는 것입니다.
아직 악을 다 버리기 전이라 해도 기도를 많이 쌓으면 성령의 은사로서 능력을 받을 수 있지만 온전한 것이 아니며 부분적으로 나타나는 차원입니다. 이렇게 은사 차원에서 능력을 받은 사람은 교만해지거나 마음이 변질될 수 있는데 이런 경우 은사는 다시 거두어질 수 있지요.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받는 능력은 이와 다릅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단계에 들어온 사람이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고 능력 받아 일하기 위해 불같은 기도를 쌓으면 능력이 임하는데 이미 성결되었기에 교만해지거나 변질될 리가 없습니다. 따라서 능력이 사라질 리 없으며 많은 기도를 쌓아가는 만큼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만큼 하나님께서는 마음껏 능력을 행할 수 있도록 영적인 권세까지 주십니다.
2. 능력이란?
능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사람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는 일이 세상에는 많이 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믿고 맡기면 위로부터 믿음의 힘이 와서 무엇이든지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복음 10장 27절에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했고, 마가복음 9장 23절에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인간 구원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요, 결코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장 18절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으므로(고전 4:20)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사망에서 영생의 길로 가는 자체도 능력이며 귀신을 내쫓고 병이나 약함을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기도 하는 등 모든 신령한 역사가 능력에 포함됩니다.
3. 권세란?
권세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정하신 엄위 있고 영광스런 힘이요,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위로부터 난 하나님의 명(命)'을 의미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영광스런 권세를 사람에게 허락하신 것이지요. 로마서 13장 1절에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했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할 때에도 예수님께서는 "위에서(즉 하나님이) 주지 아니하셨더면 나를 해할 권세가 없었으리라" 하셨지요. 천하 만물과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며,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시면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안다면 어떤 시험이 올 때 사람의 방법을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해결할 길을 찾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권세는 성결과 직결됩니다. 아직 성결되지 않은 사람이 불같은 기도를 쌓을 때 부분적이나마 임할 수 있는 능력과는 달리 영적인 권세는 성결되지 않으면 결코 받을 수 없지요. 어린아이에게 예리한 칼을 주면 위험한 것처럼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권세를 아무나 가질 수 있다면 큰 혼란이 생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적어도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간 사람, 악이 없고 형제를 위해 생명도 줄 수 있는 사랑과 덕과 관용이 있는 사람에게 영적인 권세를 주십니다.
4. 권능이란?
영적인 권세와 함께 능력을 받은 사람은 권능을 행하게 됩니다. '권능'이란 권세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누가복음 4장 36절을 보면 "다 놀라 서로 말하여 가로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세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은 능력만이 아니라 권세와 함께 나타난 권능의 역사였습니다.
믿음의 5단계에 이르지 않았다 해도 예외적으로 권능이 나타난 경우가 있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안수하여 권능을 행하도록 명하신 경우이지요. 이는 예수님의 뜻 가운데 예수님의 권능이 제자들에게 일시적으로 부여되므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면 능력과 권능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비유를 들어, 부모와 자녀 간에, 아들이 아무리 똑똑하고 능력이 크다 해도, 아버지의 말씀에는 순종하게 됩니다. 아버지의 권세에 복종하는 것입니다. 또 옛날에, 왕의 명을 가지고 가는 사신에게는 어떤 신하도 복종해야 했던 것을 봅니다. 비록 그 사신보다 더 지위가 높다 해도 사신은 왕의 권세를 받아서 오는 것이기에 그 명령에 순종할 수밖에 없지요. 하물며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영적인 권세를 부여해 주셨다면 모든 피조물과 악한 영들까지도 그 앞에 복종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권세는 창조주 하나님께 속하므로 능력과 함께 권세까지 있다면 악한 영들이나 질병 균, 심지어 무생물이라도 순종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바람과 파도도 잔잔케 할 수 있고 비와 구름 등을 명하여 천기를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성결하고 정금같이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야 이러한 권능을 받을 수 있으며, 믿음의 5단계에서도 깊은 차원으로 들어갈수록 권능은 더욱 크고 놀랍게 나타납니다.
● 다 함께 풀어 봅시다
1. 고린도전서 4장 20절을 외워서 쓸 수 있나요?
2. 은사와 능력의 차이점을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3. □ 안에 알맞은 글자를 써 넣으세요.
능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으로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는 □□의 힘을 말한다.
□□란 하나님의 정하신 엄위 있고 영광스러운 힘을 말한다.
권능이란 악이 없고 성결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있는 하나님의 □□을 말한다.
● 금주 과제
『믿음의 분량』책자 제12장 읽어 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빌라도'는 누구일까?
예수님의 무죄함을 알면서도 민란이 일까 두려워 예수님께 사형을 언도한 역사적인 인물이다. 이에 대해 그는 스스로 무죄하다며 손을 씻었지만 그의 책임은 면제될 수 없었다. 사도신경에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라는 말은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의 역사성을 증거해 주는 표현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