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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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3-11
제10과가시 면류관을 쓰고 손과 발에 못 박히신 예수님
마 27:29~30
읽을말씀 : 마 27:29~30 | 외울말씀 : 고후 10:5 l 참고 말씀: 사 53:5~6, 골 3:1~10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 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양손과 양발에 못 박혀야 했는지 그 영적 의미를 알게 한다.
왕관은 왕의 위엄과 고귀한 신분을 표시해 줍니다. 지금도 영국을 비롯한 군주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는 대관식을 거행하며 왕관을 착용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꼭 왕관이 아니더라도 군대에서는 장성들이 위엄과 권위를 표시하는 모자를 쓰고, 학교에서는 학위를 받을 때 학위모를 씁니다. 이처럼 사람의 신체 가장 윗부분인 머리에 관을 씌우는 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길고 단단한 가시로 엮은 면류관을 머리에 쓰시고 손과 발에 못 박히셨습니다.
1.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신 이유
마태복음 27장을 보면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민란이 일까 두려워 십자가의 처형을 언도하고 맙니다. 이에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힌 후 억센 가시 줄기를 얼기설기 엮어 머리보다 작게 만들어서 예수님 머리에 눌러 씌우지요. 이때 날카로운 가시가 살을 파고드니 예수님의 얼굴에는 온통 피로 낭자했습니다.
그러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이 가시 면류관을 쓰고 고통을 당하며 피 흘리도록 허락하신 것일까요?
첫째로, 사람의 생각에서 오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사람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 음성을 들어 나갈 때에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하고 순종하여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을 받아 사단이 주는 생각을 받아들이자 곧 죄를 낳게 되었지요. 전에는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선악과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여 결국은 먹고 맙니다. 이렇게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에 거역하도록 미혹한 사단은 지금도 사람의 생각을 통해 죄를 짓게 만들지요.
그러면 생각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의 머리에는 기억장치가 있어서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듣고 배운 것을 느낌과 함께 입력하는데, 이것을 '지식'이라고 합니다. 이 지식을 혼의 작용을 통해 되살려 내는 것이 바로 '생각'이지요. 그런데 사람마다 성장한 환경과 보고 듣고 배운 것이 다르기 때문에 입력된 내용도 같지 않습니다. 똑같이 배웠어도 각자가 어떤 느낌과 함께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가치관도 달라지지요. 이러한 사람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위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는 자신이 높아지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남을 누르고 일어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낮추는 자를 높여 준다고 하셨지요(마 23:12). 또한 사람들은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때 하나님께 속한 진리의 생각을 영적인 생각이라고 하고, 반대되는 생각을 육적인 생각이라고 하지요. 원수 마귀 사단은 육적인 생각을 주관하여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고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어찌하든 세상과 짝하며 죄를 지어 영원한 사망에 이르도록 유혹하지요.
우리가 모든 이론을 깨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해야만 진리를 좇아갈 수 있고 영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고후 10:5). 그러면 어떻게 해야 생각을 통해 짓는 모든 죄를 벗어 버릴 수 있을까요?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이는 사단이 주관하는 비진리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것으로 빚어지는 모든 불의, 불법, 죄악을 대속하기 위해 가시 면류관을 쓰고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 있기 때문에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피를 흘림으로써 우리가 생각을 통해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둘째, 우리에게 좋은 면류관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천국에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예비된 면류관이 많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도 어떤 경기에 출전하면 참가자 전원에게 주는 참가상이 있고, 금, 은, 동메달 등 순위에 따라 주는 여러 상이 있지요. 이처럼 천국에서 받는 면류관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먼저,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보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하신 대로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있습니다. 이는 경기에 참가한 모든 선수에게 참가상을 주듯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싸워 버리려고 노력한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주는 상입니다.
다음으로, 죄를 버리고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에게 주는 영광의 면류관이 있고(벧전 5:4),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여 죽도록 충성하며 모든 악의 모양을 버린 성결한 사람들이 받는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약 1:12 ; 계 2:10).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성결하여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명을 잘 감당한 성도들은 의의 면류관을 받습니다(딤후 4:8). 이 외에도 금 면류관이 있는데(계 4:4), 이는 성결하고 온 집에 충성하는 믿음, 영원히 변치 않는 금과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얼마큼 죄를 싸워 버리며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면류관을 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살 동안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꾀하지 않고 단정히 행하며(롬 13:13~14),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함으로 영혼이 잘되고(갈 5:16),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만큼 천국에서 큰 사람이 되어 좋은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심으로 천국의 좋은 면류관을 예비해 두셨기 때문에 무엇보다 자격을 갖추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 성결되고, 온 집에 충성함으로 가장 좋은 면류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께서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신 이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 처형장에 이르자 한 로마 병사가 쇠로 된 정을 쥐고 또 다른 병사는 망치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백부장의 구령에 맞추어 예수님의 양손과 양발에 못을 박았지요.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쇠못이 생살을 뚫고 들어오는 고통을 당하셔야만 했습니다. 거기다 체중으로 인해 못 박힌 양손과 양발이 찢어져 통증이 더욱 가중되었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 손과 발에 못 박하신 이유는 우리가 손과 발로 지은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사람의 생각을 통해 들어온 죄악을 마음에 심으면 손과 발을 움직여 죄를 범하므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신 것입니다(막 9:45~47).
사람들이 손과 발로 짓는 죄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혈기가 나면 상대를 때리고 폭력을 행하며, 도적질과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발로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서 죄를 짓지요. 그래서 발로 죄를 짓고 지옥에 가느니 차라리 잘라 버리고 절뚝발이로 천국에 가는 편이 낫다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눈으로 좋은 것을 보면 탐심이 일어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봄으로써 간음도 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눈을 빼내 버리고 죄를 짓지 않음으로 천국 가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눈으로 죄를 지으면 눈을 빼야 했고, 손으로 죄를 지으면 손을, 발로 죄를 지으면 발을 잘라야 했습니다. 이보다 더한 살인을 하거나 간음을 하면 돌로 쳐 죽였지요(신 19:19~21).
만일 십자가 고난이 없었다면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백성은 손으로 죄를 지으면 손을, 발로 죄를 지으면 발을 찍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힘으로써 보혈을 흘려 손과 발로 짓는 죄를 모두 씻어 주셨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며 진정 죄를 회개하고 돌이킬 때 주님의 보혈로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요일 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늘 감사하며 손과 발로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먼저 생각을 통해 들어오는 죄악을 마음에 심지 말고 오직 마음을 진리로 지켜 항상 승리하는 삶을 영위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셔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말할 수 있나요?
2. 서로 맞는 것끼리 선을 이어 보세요.
썩지 아니할 면류관 ● ● 3천층
영광의 면류관 ● ● 1천층
생명의 면류관 ● ● 새 예루살렘
금 면류관 ● ● 2천층
의의 면류관 ● ● 낙원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우리가 낙원보다 좋은 천국을 침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낙원은 간신히 구원받은 영혼들이 들어가는 천국의 가장 낮은 처소이기 때문이다. 낙원에 들어간 사람은 상급은 물론 개인 집이나 장식품, 면류관, 자신에게 속하여 시중드는 천사도 없다. 집이 없기에 복지관 같은 공공건물에서 휴식을 취한다.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 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양손과 양발에 못 박혀야 했는지 그 영적 의미를 알게 한다.
왕관은 왕의 위엄과 고귀한 신분을 표시해 줍니다. 지금도 영국을 비롯한 군주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에서는 대관식을 거행하며 왕관을 착용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꼭 왕관이 아니더라도 군대에서는 장성들이 위엄과 권위를 표시하는 모자를 쓰고, 학교에서는 학위를 받을 때 학위모를 씁니다. 이처럼 사람의 신체 가장 윗부분인 머리에 관을 씌우는 일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길고 단단한 가시로 엮은 면류관을 머리에 쓰시고 손과 발에 못 박히셨습니다.
1.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신 이유
마태복음 27장을 보면 빌라도 총독은 예수님께서 죄가 없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민란이 일까 두려워 십자가의 처형을 언도하고 맙니다. 이에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힌 후 억센 가시 줄기를 얼기설기 엮어 머리보다 작게 만들어서 예수님 머리에 눌러 씌우지요. 이때 날카로운 가시가 살을 파고드니 예수님의 얼굴에는 온통 피로 낭자했습니다.
그러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왜 사랑하는 아들 예수님이 가시 면류관을 쓰고 고통을 당하며 피 흘리도록 허락하신 것일까요?
첫째로, 사람의 생각에서 오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사람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그 음성을 들어 나갈 때에는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생각하고 순종하여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뱀의 유혹을 받아 사단이 주는 생각을 받아들이자 곧 죄를 낳게 되었지요. 전에는 감히 엄두도 못 내던 선악과가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며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 보여 결국은 먹고 맙니다. 이렇게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 말씀에 거역하도록 미혹한 사단은 지금도 사람의 생각을 통해 죄를 짓게 만들지요.
그러면 생각이란 무엇일까요? 사람의 머리에는 기억장치가 있어서 태어나면서부터 보고 듣고 배운 것을 느낌과 함께 입력하는데, 이것을 '지식'이라고 합니다. 이 지식을 혼의 작용을 통해 되살려 내는 것이 바로 '생각'이지요. 그런데 사람마다 성장한 환경과 보고 듣고 배운 것이 다르기 때문에 입력된 내용도 같지 않습니다. 똑같이 배웠어도 각자가 어떤 느낌과 함께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가치관도 달라지지요. 이러한 사람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과 위배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에서는 자신이 높아지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남을 누르고 일어섭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낮추는 자를 높여 준다고 하셨지요(마 23:12). 또한 사람들은 원수를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이때 하나님께 속한 진리의 생각을 영적인 생각이라고 하고, 반대되는 생각을 육적인 생각이라고 하지요. 원수 마귀 사단은 육적인 생각을 주관하여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고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합니다. 어찌하든 세상과 짝하며 죄를 지어 영원한 사망에 이르도록 유혹하지요.
우리가 모든 이론을 깨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해야만 진리를 좇아갈 수 있고 영의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고후 10:5). 그러면 어떻게 해야 생각을 통해 짓는 모든 죄를 벗어 버릴 수 있을까요?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이는 사단이 주관하는 비진리의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것으로 빚어지는 모든 불의, 불법, 죄악을 대속하기 위해 가시 면류관을 쓰고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죄를 대속할 수 있기 때문에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피를 흘림으로써 우리가 생각을 통해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둘째, 우리에게 좋은 면류관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천국에는 하나님의 자녀에게 예비된 면류관이 많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도 어떤 경기에 출전하면 참가자 전원에게 주는 참가상이 있고, 금, 은, 동메달 등 순위에 따라 주는 여러 상이 있지요. 이처럼 천국에서 받는 면류관의 종류도 다양합니다.
먼저,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보면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하신 대로 '썩지 아니할 면류관'이 있습니다. 이는 경기에 참가한 모든 선수에게 참가상을 주듯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죄를 싸워 버리려고 노력한 하나님의 모든 자녀에게 주는 상입니다.
다음으로, 죄를 버리고 말씀대로 살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 사람에게 주는 영광의 면류관이 있고(벧전 5:4),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여 죽도록 충성하며 모든 악의 모양을 버린 성결한 사람들이 받는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약 1:12 ; 계 2:10). 그리고 사도 바울처럼 성결하여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명을 잘 감당한 성도들은 의의 면류관을 받습니다(딤후 4:8). 이 외에도 금 면류관이 있는데(계 4:4), 이는 성결하고 온 집에 충성하는 믿음, 영원히 변치 않는 금과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이 땅에서 얼마큼 죄를 싸워 버리며 사명을 잘 감당했느냐에 따라 각기 다른 면류관을 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서 살 동안 정욕을 위해 육신의 일을 꾀하지 않고 단정히 행하며(롬 13:13~14),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함으로 영혼이 잘되고(갈 5:16), 하나님께 받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만큼 천국에서 큰 사람이 되어 좋은 면류관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시 면류관을 쓰심으로 천국의 좋은 면류관을 예비해 두셨기 때문에 무엇보다 자격을 갖추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 성결되고, 온 집에 충성함으로 가장 좋은 면류관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2. 예수님께서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신 이유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 처형장에 이르자 한 로마 병사가 쇠로 된 정을 쥐고 또 다른 병사는 망치를 들고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백부장의 구령에 맞추어 예수님의 양손과 양발에 못을 박았지요.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쇠못이 생살을 뚫고 들어오는 고통을 당하셔야만 했습니다. 거기다 체중으로 인해 못 박힌 양손과 양발이 찢어져 통증이 더욱 가중되었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 손과 발에 못 박하신 이유는 우리가 손과 발로 지은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일 사람의 생각을 통해 들어온 죄악을 마음에 심으면 손과 발을 움직여 죄를 범하므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만일 네 발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절뚝발이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빼어 버리라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니라" 하신 것입니다(막 9:45~47).
사람들이 손과 발로 짓는 죄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혈기가 나면 상대를 때리고 폭력을 행하며, 도적질과 도박으로 패가망신한 사람도 있습니다. 또 발로 가지 말아야 할 곳에 가서 죄를 짓지요. 그래서 발로 죄를 짓고 지옥에 가느니 차라리 잘라 버리고 절뚝발이로 천국에 가는 편이 낫다고 하신 것입니다.
또한 눈으로 좋은 것을 보면 탐심이 일어나고,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봄으로써 간음도 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눈을 빼내 버리고 죄를 짓지 않음으로 천국 가는 것이 훨씬 낫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눈으로 죄를 지으면 눈을 빼야 했고, 손으로 죄를 지으면 손을, 발로 죄를 지으면 발을 잘라야 했습니다. 이보다 더한 살인을 하거나 간음을 하면 돌로 쳐 죽였지요(신 19:19~21).
만일 십자가 고난이 없었다면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백성은 손으로 죄를 지으면 손을, 발로 죄를 지으면 발을 찍어 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힘으로써 보혈을 흘려 손과 발로 짓는 죄를 모두 씻어 주셨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며 진정 죄를 회개하고 돌이킬 때 주님의 보혈로 죄를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요일 1:7).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늘 감사하며 손과 발로 죄를 짓지 않기 위하여 먼저 생각을 통해 들어오는 죄악을 마음에 심지 말고 오직 마음을 진리로 지켜 항상 승리하는 삶을 영위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왜 가시 면류관을 쓰시고 양손과 양발에 못 박히셔야만 했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말할 수 있나요?
2. 서로 맞는 것끼리 선을 이어 보세요.
썩지 아니할 면류관 ● ● 3천층
영광의 면류관 ● ● 1천층
생명의 면류관 ● ● 새 예루살렘
금 면류관 ● ● 2천층
의의 면류관 ● ● 낙원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우리가 낙원보다 좋은 천국을 침노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낙원은 간신히 구원받은 영혼들이 들어가는 천국의 가장 낮은 처소이기 때문이다. 낙원에 들어간 사람은 상급은 물론 개인 집이나 장식품, 면류관, 자신에게 속하여 시중드는 천사도 없다. 집이 없기에 복지관 같은 공공건물에서 휴식을 취한다.
2011-03-04
제9과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갈 3:13~14
읽을말씀 : 갈 3:13~14 | 외울말씀 : 갈 3:13 l 참고 말씀:사 53:4~6
교육목표 :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저주받은 사람들이 받는 나무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한 이유를 알아본다.
십자가의 원래 의미는 참혹한 사형의 도구요 영적으로 볼 때는 저주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를 살리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저주의 의미가 변하여 한량없는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상징하게 되었지요. 인류의 모든 저주를 예수님께서 한 몸에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게 된 것입니다.
1.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데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이유를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말씀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모든 인류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함으로 그의 후손들 또한 죄인이 되어 저주받아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로마서 6장 23절에 기록된 대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인 것입니다.
이러한 저주에서 속량하려면 영계의 법칙에 따라 저주를 받은바 되어 나무에 달려야 합니다(신 21:23).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고자 대신 저주를 받아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이로써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롬 5:17~19).
레위기 17장 11~14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말씀했습니다. 모든 육체에는 피가 있어야 생명이 유지되고 없으면 죽습니다. 때문에 생명과 일체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생할 수 있는 영의 생명을 얻으려면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신 대로 반드시 생명과 일체인 피를 흘려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원죄와 자범죄가 없는 깨끗한 피, 곧 영에 속한 피를 단번에 흘려주심으로 모든 사람이 온전히 죄를 용서받고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짐승을 잡아 제사드릴 필요가 없으며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아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아브라함의 복을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복이 선민 이스라엘뿐 아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믿음으로 의롭게 된 모든 사람에게 미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벗이라는 영혼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 건강, 장수, 물질 등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22장 17~18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크게 축복받은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하셨을 때도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또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창 22:2) 하셨을 때도 어떤 이유나 핑계를 대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히 11:19). 아브라함은 확고한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하나님 자녀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소유할 수 있고, 모든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로,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마다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나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그 증표로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요 1:12 ; 롬 8:16).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그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어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천국 백성이 됩니다(롬 8:15 ; 눅 10:20 ; 빌 3:20). 하나님의 마음이며 능력인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 계시면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진리 안에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위로부터 믿음을 주어 영생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요.
그런데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할 뿐 아니라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것을 마음에 믿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 마귀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시험 환난과 온갖 고통을 당하며 마침내는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음으로 구원과 영생,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겪으신 고통
예수님 당시 죄인들의 처형법은 칼로 죽이거나, 사자굴에 던지거나, 십자가에 매달거나, 시체와 함께 묶어 매장하는 등 잔인하고 끔찍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십자가의 처형이 가장 가혹한 처형법이었지요. 그러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어떠한 고통을 받으셨을까요?
십자가의 처형법은 큰 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사람을 묶어 놓고 양손과 양발에 큰 못을 박아 수 시간 매달아 죽게 하는 방법입니다. 참수형을 당한다면 죽음의 고통이 순간에 끝나지만 십자가 처형은 죽을 때까지 십자가에 매달려 피와 물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갈증과 탈진으로 인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체중으로 인해 못 박힌 양손과 양발이 찢기는 심한 고통을 겪으셔야 했지요.
또한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온몸은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나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뜨거운 햇볕 아래 여러 시간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어디선가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온 벌레들은 상처 난 부위를 물어뜯었지요. 그뿐 아니라 악한 자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모욕하며 저주하였지요(마 27:39~43).
이같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참으로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정작 고통스러워한 것은 육체의 괴로움이나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가 아니었습니다. 인류의 저주를 한 몸에 담당했건만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 마음이 완악하여 믿지 않으므로 여전히 사망의 길로 가게 될 불쌍한 영혼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어찌하면 보답할까 하는 심정으로 날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입니다. ( ) 안을 채워 보세요.
① 율법의 ( )에서 ( )하기 위해서이다.
② ( )의 복을 ( )에게 미치게 하기 위해서이다.
③ 믿음으로 ( )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2. 모든 육체에는 피가 있어야 생명이 유지되기 때문에 피는 생명과 일체라 말씀합니다. 관련된 성구가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레위기 17:11 ② 히브리서 9:22 ③ 레위기 17:14 ④ 요한복음 1:1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예수'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란 뜻이다.
'그리스도'란? 메시아라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이다. 즉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자이고 중보자인 구세주의 직임을 가리킨다. 따라서 예수는 구원할 자라는 미래형의 표현이고, 그리스도는 구원자로서 완성형의 표현이다.
교육목표 : 아무 죄도 없으신 예수님께서 저주받은 사람들이 받는 나무 십자가에 달리셔야만 한 이유를 알아본다.
십자가의 원래 의미는 참혹한 사형의 도구요 영적으로 볼 때는 저주의 상징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를 살리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저주의 의미가 변하여 한량없는 주님의 사랑과 구원을 상징하게 되었지요. 인류의 모든 저주를 예수님께서 한 몸에 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가 용서받고 구원받아 천국에 가게 된 것입니다.
1.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데에는 깊은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이유를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말씀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써 모든 인류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는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함으로 그의 후손들 또한 죄인이 되어 저주받아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즉 로마서 6장 23절에 기록된 대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인 것입니다.
이러한 저주에서 속량하려면 영계의 법칙에 따라 저주를 받은바 되어 나무에 달려야 합니다(신 21:23).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율법의 저주에서 구원하고자 대신 저주를 받아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리신 것입니다. 이로써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는 길이 열리게 되었습니다(롬 5:17~19).
레위기 17장 11~14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 모든 생물은 그 피가 생명과 일체라" 말씀했습니다. 모든 육체에는 피가 있어야 생명이 유지되고 없으면 죽습니다. 때문에 생명과 일체라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영생할 수 있는 영의 생명을 얻으려면 죄를 용서받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하신 대로 반드시 생명과 일체인 피를 흘려야 합니다.
구약 시대에는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원죄와 자범죄가 없는 깨끗한 피, 곧 영에 속한 피를 단번에 흘려주심으로 모든 사람이 온전히 죄를 용서받고 영생의 길로 갈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제는 짐승을 잡아 제사드릴 필요가 없으며 단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아 구원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둘째로, 아브라함의 복을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복이 선민 이스라엘뿐 아니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믿음으로 의롭게 된 모든 사람에게 미치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 되었고, 하나님의 벗이라는 영혼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 건강, 장수, 물질 등 이 땅에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복을 받았습니다. 창세기 22장 17~18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크게 축복받은 이유가 나와 있습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하셨을 때도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또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창 22:2) 하셨을 때도 어떤 이유나 핑계를 대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히 11:19). 아브라함은 확고한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아 믿음의 조상이요, 복의 근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하나님 자녀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소유할 수 있고, 모든 복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로,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4절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는 사람마다 율법의 저주에서 풀려나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그 증표로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됩니다(요 1:12 ; 롬 8:16). 성령을 받은 사람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고, 그 이름이 하늘나라 생명책에 기록되어 하늘나라 시민권을 가진 천국 백성이 됩니다(롬 8:15 ; 눅 10:20 ; 빌 3:20). 하나님의 마음이며 능력인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 계시면 하나님 말씀을 깨닫고 진리 안에 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위로부터 믿음을 주어 영생에 이를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요.
그런데 로마서 10장 9절에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하셨습니다. 즉 예수님을 구세주로 시인할 뿐 아니라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것을 마음에 믿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원수 마귀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시험 환난과 온갖 고통을 당하며 마침내는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형벌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음으로 구원과 영생, 부활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2.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겪으신 고통
예수님 당시 죄인들의 처형법은 칼로 죽이거나, 사자굴에 던지거나, 십자가에 매달거나, 시체와 함께 묶어 매장하는 등 잔인하고 끔찍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십자가의 처형이 가장 가혹한 처형법이었지요. 그러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어떠한 고통을 받으셨을까요?
십자가의 처형법은 큰 나무로 만든 십자가에 사람을 묶어 놓고 양손과 양발에 큰 못을 박아 수 시간 매달아 죽게 하는 방법입니다. 참수형을 당한다면 죽음의 고통이 순간에 끝나지만 십자가 처형은 죽을 때까지 십자가에 매달려 피와 물을 쏟아야 하기 때문에 갈증과 탈진으로 인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더군다나 체중으로 인해 못 박힌 양손과 양발이 찢기는 심한 고통을 겪으셔야 했지요.
또한 머리에는 가시관을 쓰시고 온몸은 채찍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몸으로, 나무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님께서는 뜨거운 햇볕 아래 여러 시간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어디선가 피 냄새를 맡고 몰려온 벌레들은 상처 난 부위를 물어뜯었지요. 그뿐 아니라 악한 자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향해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모욕하며 저주하였지요(마 27:39~43).
이같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참으로 인간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엄청난 고통이 따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정작 고통스러워한 것은 육체의 괴로움이나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가 아니었습니다. 인류의 저주를 한 몸에 담당했건만 이 사실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 마음이 완악하여 믿지 않으므로 여전히 사망의 길로 가게 될 불쌍한 영혼들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의 고난을 기억하고 주님의 은혜와 사랑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의 죄를 속량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어찌하면 보답할까 하는 심정으로 날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이유입니다. ( ) 안을 채워 보세요.
① 율법의 ( )에서 ( )하기 위해서이다.
② ( )의 복을 ( )에게 미치게 하기 위해서이다.
③ 믿음으로 ( )의 약속을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2. 모든 육체에는 피가 있어야 생명이 유지되기 때문에 피는 생명과 일체라 말씀합니다. 관련된 성구가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레위기 17:11 ② 히브리서 9:22 ③ 레위기 17:14 ④ 요한복음 1:1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예수'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란 뜻이다.
'그리스도'란? 메시아라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서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이다. 즉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화목자이고 중보자인 구세주의 직임을 가리킨다. 따라서 예수는 구원할 자라는 미래형의 표현이고, 그리스도는 구원자로서 완성형의 표현이다.
2011-02-25
제8과온몸에 채찍을 맞고 피 흘리신 예수님
사 53:5~6
읽을말씀 : 사 53:5~6 | 외울말씀 : 벧전2:24ㅣ참고 말씀 : 출15:26, 레17:10~11, 히9:22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아 흘리신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질병과 연약함과는 상관없는 건강한 삶을 누리게 되었음을 알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로마 병사에게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때리고 침을 뱉으며 뾰족한 납덩이가 매달린 채찍으로 온몸을 내리쳤습니다. 채찍이 예수님 몸을 휘감아 잡아챌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 피가 흐르고 뼈가 드러날 정도였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토록 혹독한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셔야만 했던 것일까요?
1.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질병을 치료하시기 위하여
이사야 53장 5~6절에 보면 예수님이 받은 고난의 섭리가 잘 나와 있습니다. 즉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말씀했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찔리고 상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누리게 하고 모든 질병에서 해방시키려고 징계를 받으며, 채찍에 맞아 피 흘리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병을 짊어지셨는데도 왜 여전히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치료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중풍병자를 바로 치료해 주시기보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며 죄의 문제부터 해결해 주셨지요. 그다음에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는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뒤에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이처럼 사람이 질병으로부터 해방되려면 누군가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하는 것이 영계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레 17:11).
2.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고 병을 짊어지시기 위하여
마태복음 8장 17절을 보면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신 의미를 알고 그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연약함이나 질병으로 고통받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말씀한 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아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연약함과 병을 짊어지셨으니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면 어떤 질병이나 연약함이 틈타지 않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자녀가 밖에서 어떤 아이한테 맞고 들어왔습니다. 이때 화가 난 부모는 "왜 너는 만날 맞고만 다니니? 한 대 맞으면 너는 두 대, 세 대를 때려 줘야지."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때린 아이의 부모에게까지 찾아가서 따집니다. 꼭 그렇게까지는 않더라도 몹시 속상해합니다. 자신이 받은 만큼 되돌려 줘야 정당한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지요.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하며 선으로 악을 이기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화평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보시는 의와 사람이 보는 의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키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기도하면서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고, 성령의 도움 속에 쉽게 행할 수가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키면 어떠한 질병도 틈타지 않습니다. 설령 질병에 걸렸다 해도 치료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두려울 것이 전혀 없습니다. 무엇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했는지를 발견하여 중심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깨끗이 치료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입술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하면서 막상 자신한테 문제가 생기면 세상에 의존해 버립니다. 질병에 걸리면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우선 병원부터 찾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러한 행동은 곧 믿음이 없다는 소치이며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지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이 없으니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도 없습니다(대하 16장).
3.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리신 이유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을 잡아 그 피로 속죄제를 드려야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늘 같은 제사로 드리는 짐승의 피가 사람의 죄를 온전히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시적인 속죄이므로 온전한 것이 될 수 없었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온전히 사해 주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주셨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를 흘림으로 피가 죄를 속한다는 의미이지요.
흠도 점도 없는 예수님께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 흘리신 보혈로 단번에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10장 19~20절에는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원래 아담은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는 존재였는데 그만 불순종한 후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지요. 이런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죄 사함과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 통로가 바로 구약 시대의 제사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가 없기에 제사장이 대신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 와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았지요. 이로 인해 우리는 제사장만이 들어가는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죄를 지으면 그때마다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려 정결케 했지만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모두 대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피는 흠도 점도 없이 깨끗하여 죄를 온전히 씻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녀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기에 질병이나 연약함으로 고통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강건한 삶을 살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시기 위해 온몸을 채찍에 맞아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깊은 사랑과 은혜를 마음 깊이 새기며 어찌하든 그 은혜에 보답해 드리기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 )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 )을 인함이라 그가 ( )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 )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5)
2.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병을 짊어지셨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제사장'이란?
제사 의식을 집전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보 역할을 하며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일을 했다. 제사장은 아론 지파에 속한 사람만 될 수 있었으며 육체적인 흠이 없어야 했다. 제사장들은 성소에서 봉사하는 일을 맡았던 레위인과 제단에서 희생 제물을 드리는 일들을 주관했던 아론 자손의 제사장,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으로 나뉜다.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아 흘리신 보혈로 죄 사함을 받고 질병과 연약함과는 상관없는 건강한 삶을 누리게 되었음을 알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로마 병사에게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때리고 침을 뱉으며 뾰족한 납덩이가 매달린 채찍으로 온몸을 내리쳤습니다. 채찍이 예수님 몸을 휘감아 잡아챌 때마다 살점이 떨어져 나가 피가 흐르고 뼈가 드러날 정도였습니다. 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이토록 혹독한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셔야만 했던 것일까요?
1.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질병을 치료하시기 위하여
이사야 53장 5~6절에 보면 예수님이 받은 고난의 섭리가 잘 나와 있습니다. 즉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말씀했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허물과 죄악 때문에 찔리고 상하셨습니다. 우리에게 평화를 누리게 하고 모든 질병에서 해방시키려고 징계를 받으며, 채찍에 맞아 피 흘리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병을 짊어지셨는데도 왜 여전히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죄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9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치료해 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중풍병자를 바로 치료해 주시기보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며 죄의 문제부터 해결해 주셨지요. 그다음에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는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뒤에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이처럼 사람이 질병으로부터 해방되려면 누군가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합니다.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피를 흘려야 하는 것이 영계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레 17:11).
2.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고 병을 짊어지시기 위하여
마태복음 8장 17절을 보면 "이는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이 채찍에 맞아 피를 흘리신 의미를 알고 그 사실을 믿는 사람들은 연약함이나 질병으로 고통받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말씀한 것은 이미 예수님께서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아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연약함과 병을 짊어지셨으니 우리가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면 어떤 질병이나 연약함이 틈타지 않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자녀가 밖에서 어떤 아이한테 맞고 들어왔습니다. 이때 화가 난 부모는 "왜 너는 만날 맞고만 다니니? 한 대 맞으면 너는 두 대, 세 대를 때려 줘야지."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때린 아이의 부모에게까지 찾아가서 따집니다. 꼭 그렇게까지는 않더라도 몹시 속상해합니다. 자신이 받은 만큼 되돌려 줘야 정당한 것이라 여기기 때문이지요.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하며 선으로 악을 이기고, 원수까지도 사랑하며 화평해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보시는 의와 사람이 보는 의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키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기도하면서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고, 성령의 도움 속에 쉽게 행할 수가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청종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규례를 지키면 어떠한 질병도 틈타지 않습니다. 설령 질병에 걸렸다 해도 치료하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두려울 것이 전혀 없습니다. 무엇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했는지를 발견하여 중심에서 회개하고 돌이키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깨끗이 치료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입술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하면서 막상 자신한테 문제가 생기면 세상에 의존해 버립니다. 질병에 걸리면 하나님을 의지하기보다는 우선 병원부터 찾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이러한 행동은 곧 믿음이 없다는 소치이며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지 못한다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런 사람은 믿음이 없으니 하나님을 기쁘게 할 수도 없습니다(대하 16장).
3.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리신 이유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사람이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을 잡아 그 피로 속죄제를 드려야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해마다 늘 같은 제사로 드리는 짐승의 피가 사람의 죄를 온전히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일시적인 속죄이므로 온전한 것이 될 수 없었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온전히 사해 주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주셨습니다. 레위기 17장 11절에 "육체의 생명은 피에 있음이라 내가 이 피를 너희에게 주어 단에 뿌려 너희의 생명을 위하여 속하게 하였나니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육체의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를 흘림으로 피가 죄를 속한다는 의미이지요.
흠도 점도 없는 예수님께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 흘리신 보혈로 단번에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것입니다. 이에 대해 히브리서 10장 19~20절에는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죄인이 되었습니다. 원래 아담은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는 존재였는데 그만 불순종한 후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지요. 이런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죄 사함과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놓으셨습니다. 그 통로가 바로 구약 시대의 제사입니다.
그러나 죄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가 없기에 제사장이 대신 성소에 들어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 와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모든 죄를 용서받았지요. 이로 인해 우리는 제사장만이 들어가는 성소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고 성령 안에서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죄를 지으면 그때마다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려 정결케 했지만 신약 시대에는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과거, 현재, 미래의 죄까지 모두 대속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의 보혈만이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피는 흠도 점도 없이 깨끗하여 죄를 온전히 씻는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자녀들은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해 주셨기에 질병이나 연약함으로 고통당할 이유가 없습니다. 누구보다도 강건한 삶을 살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시기 위해 온몸을 채찍에 맞아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깊은 사랑과 은혜를 마음 깊이 새기며 어찌하든 그 은혜에 보답해 드리기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여 아름다운 열매를 풍성히 맺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넣으세요.
"그가 찔림은 우리의 ( )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 )을 인함이라 그가 ( )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 )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 53:5)
2.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과 병을 짊어지셨는데도 불구하고 여전히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제사장'이란?
제사 의식을 집전하는 사람을 말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중보 역할을 하며 백성을 대신해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일을 했다. 제사장은 아론 지파에 속한 사람만 될 수 있었으며 육체적인 흠이 없어야 했다. 제사장들은 성소에서 봉사하는 일을 맡았던 레위인과 제단에서 희생 제물을 드리는 일들을 주관했던 아론 자손의 제사장, 온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1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가는 대제사장으로 나뉜다.
2011-02-18
제7과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고전 2:6~10
읽을말씀 : 고전 2:6~10 | 외울말씀 : 요 1:12 l 참고 말씀:창 3:14~15
교육목표 :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누리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불순종하여 모든 사람이 사망의 길로 가게 될 것을 만세 전부터 아셨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지혜 가운데 예수님을 통한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때가 이르기까지 비밀리에 감추어 두셨지요. 만약 원수 마귀가 이러한 비밀을 알았다면 아담으로부터 넘겨받은 모든 권세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담의 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도록 훼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만세 전에 감취어진 비밀
선악과를 따 먹도록 사람을 유혹했던 간교한 뱀은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게 되었습니다(창 3:14). 또한 창세기 3장 15절에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하신 대로 원수 마귀는 여자의 후손 중에 자기를 상하게 할 사람이 태어날 것을 알고 그를 죽이고자 작정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원수 마귀 사단은 구약 시대부터 악한 사람을 사주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괴롭히며 핍박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에는 간악한 헤롯 왕을 사주하여 베들레헴과 그 주변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였지요.
예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를 통해 요셉에게 현몽하여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게 하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헤롯이 죽기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마 2:13~15). 그 후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 살며 30세부터 공생애에 들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셨지요.
원수 마귀는 자기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을 모두 죽여서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사주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계략을 꾸밉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양손, 양발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원수 마귀는 철저하게 여자의 후손을 죽였다고 승리의 개가를 불렀지만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한 섭리가 감춰 있지요.
고린도전서 2장 7~8절에 보면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무 죄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고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인간 구원의 길이 세상에 알려지면 원수 마귀 사단의 훼방으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성취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비밀리에 감추어 두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세 전에 섭리하신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요?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영계에도 법이 있으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영계의 법칙에 따라 행하셨습니다. 그 예로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이 있습니다(롬 6:23). 그런데 원수 마귀는 아무런 죄도 흠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히 7:26 ; 벧전 2:22~23). 원수 마귀가 영계의 법을 어기게 된 것이지요.
이로 인해 아담이 불순종함의 죄를 범하여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원수 마귀가 이런 하나님의 비밀을 알았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8절에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말씀합니다. 불순종의 죄를 범한 아담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참 생명과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영계의 법에 따라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근족으로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에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지요. 원죄와 자범죄가 없었기에 원수 마귀를 이길 힘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는 죄가 전혀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는 이 세상의 어떤 권세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의 자녀라 할지라도 권세가 대단한데 하물며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고 우주 만물을 치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는 어떠하겠습니까.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곧 성도(聖徒)가 있는가 하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교인(敎人)이 있습니다. 교인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을 뿐,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의 반열에 들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기에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했는데, 과연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가 주어지는 것일까요? 요한복음 4장에는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과정과 그녀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니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이 이방 민족과 혼혈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상종하지도 않을뿐더러 사마리아 땅을 밟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혹 그 땅을 거쳐 가야 할 경우에는 멀리 돌아서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으셨지요. 마침 사마리아 땅을 지나면서 우물가에 앉아 계시다가 물을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 지역적인 특성상 이스라엘의 여행자들은 항상 물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물이 떨어질 리 없고 설령 물이 떨어졌어도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으니 잠깐 기다리면 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하신 것일까요?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을 두드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영접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사마리아 여인이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이 소식을 동네 사람에게 전파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심으로 참 생명과 영생을 얻고 천국을 소유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과 단순히 아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요.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합니다.
왜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시고 선악과를 두어 멸망의 길로 가게 하셨는지,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하셨는지 구원의 섭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요. 귤의 맛을 알려면 단순히 겉모양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먹어 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다'라고 막연히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가? 하는 십자가의 섭리와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을 깨달을 때 진정한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과 관계가 없는 것을 고르시오.
①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한 인간 구원의 길이 알려지면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것이기에 철저히 비밀리에 감추어 두셨다.
②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며 성령으로 잉태되어 원죄가 없다.
③ 원수 마귀는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실 줄 알았다.
④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는다.
2.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을 적대시 한 이유는?
원래 사마리아인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가나안 정복 때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BC 721년 사마리아가 속한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당하자 이방인들이 그 땅에 유입되면서 그들과 결혼하여 혼혈족이 되므로 그때부터 유대인들이 적대시하게 되었다.
교육목표 :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누리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불순종하여 모든 사람이 사망의 길로 가게 될 것을 만세 전부터 아셨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지혜 가운데 예수님을 통한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때가 이르기까지 비밀리에 감추어 두셨지요. 만약 원수 마귀가 이러한 비밀을 알았다면 아담으로부터 넘겨받은 모든 권세를 빼앗기지 않기 위해 아담의 죄에 관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도록 훼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만세 전에 감취어진 비밀
선악과를 따 먹도록 사람을 유혹했던 간교한 뱀은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게 되었습니다(창 3:14). 또한 창세기 3장 15절에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하신 대로 원수 마귀는 여자의 후손 중에 자기를 상하게 할 사람이 태어날 것을 알고 그를 죽이고자 작정했습니다.
성경을 보면 원수 마귀 사단은 구약 시대부터 악한 사람을 사주하여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고 괴롭히며 핍박해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에는 간악한 헤롯 왕을 사주하여 베들레헴과 그 주변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였지요.
예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를 통해 요셉에게 현몽하여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게 하셨습니다. 아기 예수님은 헤롯이 죽기까지 그곳에 머물렀습니다(마 2:13~15). 그 후 예수님은 갈릴리 나사렛에 살며 30세부터 공생애에 들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셨지요.
원수 마귀는 자기를 상하게 할 여자의 후손을 모두 죽여서 승리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람이 나타나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고 귀신을 쫓아냈습니다. 그러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사주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계략을 꾸밉니다.
결국 예수님께서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양손, 양발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물과 피를 다 쏟으셨습니다. 원수 마귀는 철저하게 여자의 후손을 죽였다고 승리의 개가를 불렀지만 여기에 하나님의 비밀한 섭리가 감춰 있지요.
고린도전서 2장 7~8절에 보면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무 죄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고 모든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십자가를 통한 인간 구원의 길이 세상에 알려지면 원수 마귀 사단의 훼방으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성취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철저히 비밀리에 감추어 두신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세 전에 섭리하신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요?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영계에도 법이 있으므로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영계의 법칙에 따라 행하셨습니다. 그 예로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이 있습니다(롬 6:23). 그런데 원수 마귀는 아무런 죄도 흠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히 7:26 ; 벧전 2:22~23). 원수 마귀가 영계의 법을 어기게 된 것이지요.
이로 인해 아담이 불순종함의 죄를 범하여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일 원수 마귀가 이런 하나님의 비밀을 알았다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8절에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말씀합니다. 불순종의 죄를 범한 아담으로 인해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참 생명과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지난 시간에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께서는 영계의 법에 따라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근족으로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에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지요. 원죄와 자범죄가 없었기에 원수 마귀를 이길 힘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는 죄가 전혀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하나님의 법을 어긴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는 이 세상의 어떤 권세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나 대통령의 자녀라 할지라도 권세가 대단한데 하물며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고 우주 만물을 치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는 어떠하겠습니까.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곧 성도(聖徒)가 있는가 하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교인(敎人)이 있습니다. 교인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을 뿐,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인 성도의 반열에 들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기에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했는데, 과연 어떤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가 주어지는 것일까요? 요한복음 4장에는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영접하는 과정과 그녀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니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이 이방 민족과 혼혈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상종하지도 않을뿐더러 사마리아 땅을 밟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혹 그 땅을 거쳐 가야 할 경우에는 멀리 돌아서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으셨지요. 마침 사마리아 땅을 지나면서 우물가에 앉아 계시다가 물을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 지역적인 특성상 이스라엘의 여행자들은 항상 물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물이 떨어질 리 없고 설령 물이 떨어졌어도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으니 잠깐 기다리면 됩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하신 것일까요?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을 두드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여 영접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결국 사마리아 여인이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영접한 후 이 소식을 동네 사람에게 전파하여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였지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심으로 참 생명과 영생을 얻고 천국을 소유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것과 단순히 아는 것에는 많은 차이가 있지요. 마태복음 7장 21절에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합니다.
왜 예수가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시고 선악과를 두어 멸망의 길로 가게 하셨는지,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하셨는지 구원의 섭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지요. 귤의 맛을 알려면 단순히 겉모양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먹어 봐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다'라고 막연히 믿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가? 하는 십자가의 섭리와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을 깨달을 때 진정한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를 알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과 관계가 없는 것을 고르시오.
①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한 인간 구원의 길이 알려지면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것이기에 철저히 비밀리에 감추어 두셨다.
②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며 성령으로 잉태되어 원죄가 없다.
③ 원수 마귀는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실 줄 알았다.
④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는다.
2.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을 적대시 한 이유는?
원래 사마리아인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가나안 정복 때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BC 721년 사마리아가 속한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당하자 이방인들이 그 땅에 유입되면서 그들과 결혼하여 혼혈족이 되므로 그때부터 유대인들이 적대시하게 되었다.
2011-02-11
제6과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예수 그리스도
레 25:23~25
읽을말씀 : 레 25:23~25 | 외울말씀 : 롬 5:19 ㅣ 참고 말씀:계 5:1~5
교육목표 :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과 구세주가 되는 자격 조건에 대해 알아본다.
영계의 법에는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죄를 속량할 수 있는 법도 있습니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이 죄로 인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하려면 죄를 속량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과연 사망에 이르는 사람의 죄를 속량하여 첫 사람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법칙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좇아 비밀한 가운데 만세 전에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1. 토지를 사고파는 데 적용되는 토지 무르기 법칙
레위기 25장 23~25절에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近族)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말씀합니다. 즉 토지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 것이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합당한 규정에 따라 근족(가까운 친척)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는 '토지 무르기 법칙'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계약서에 어떤 경로로 토지를 팔고 사는가 하는 계약 과정을 기록하고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기록하게 합니다. 그리고 팔고 사는 사람이 도장을 찍고 증인들을 세워서 1부는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여 성전 창고에 보관합니다. 또 다른 1부는 인봉하지 않다가 언제라도 볼 수 있게 성전 입구에 펼쳐 놓습니다. 이는 언제라도 근족이 와서 대신 토지를 무를 수 있게 하였고, 근족 중에 무를 사람이 없으면 본인이 부를 쌓아 힘이 있을 때 다시 사서 무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도 토지 무르기의 법칙에 따라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천하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모든 권세를 마귀에게 넘겨주게 되었지만(눅 4:6),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영영히 팔지는 못하며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지요.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2.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과 예수 그리스도
이러한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자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고 사람의 근족이어야 하며, 무를 수 있는 힘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4절에 보면 하나님과 마귀가 계약한 책이 나옵니다. 이는 '아담이 불순종하여 마귀에게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넘겨주었지만, 무를 힘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그 권세를 넘겨주겠다.'는 계약서이지요. 그런데 사도 요한이 보니 그 책이 일곱 인으로 봉하여 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크게 웁니다. 그때 장로 중 하나가 나타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즉 다윗의 뿌리 예수 그리스도가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로,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했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는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으면 멸망의 길을 가던 모든 인류가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토지 무르기 법칙에 의하면 돈이 없어 토지를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영영히 팔지 못하기 때문에 토지를 판 사람이 다시 달라고 하면 주어야 합니다. 만일 본인이 무를 힘이 없을 때에는 근족이 대신 물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무르기 위해서는 아담의 근족이어야 하므로 토지 무를 자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토지 무르기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요 1:14). 즉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토지 무르기 법칙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아담은 불순종한 죄가 있으므로 아담의 핏줄을 타고난 인류는 모두 원죄가 있습니다. 죄인이 죄인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없으니,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면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이런 사람을 찾고자 하늘 위를 보니 천사만 있고 땅 위를 살펴보니 아담의 후예인 죄인들만 있고 음부에 있는 영혼들 중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계 5:1~3).
그러면 예수님은 토지 무르기 법칙 두 번째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육적으로는 다윗의 뿌리이지만, 남녀가 결혼하여 잉태된 분이 아니므로 원죄가 없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오직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아담의 후예가 아닙니다(마 1:18~21).
셋째로, 원수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빚을 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여도 자신에게 그만한 재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처럼 죄를 대속하려면 죄를 무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마귀에게 빼앗긴 아담의 권세를 회복하려면 죄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어야 원수 마귀를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토지 무르기 세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을까요?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기 때문에 원죄가 없습니다.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33년 동안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하셨으니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전혀 없으셨지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온전한 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전혀 죄가 없으므로 토지 무를 힘이 있고, 결국에는 원수 마귀가 방해하지 못하고 되돌려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넷째로,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위의 세 가지가 조건이 모두 성립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일 동생이 빚을 졌는데 부자인 형이 빚을 대신 갚아 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룻기 4장 6절을 보면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합니다. 즉 토지 무를 힘이 있지만 무르지 않겠다고 하지요. 그러자 그다음 근족인 보아스가 대신 나오미의 토지를 물어 주는데, 이는 그가 사랑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부로서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큰 축복을 받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는 희생적인 사랑이 없으셨다면 과연 마귀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하나님 자녀로 되찾아 올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시며,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시고,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주시며 오직 선만 행하셨습니다. 그런데도 피조물인 사람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에 독생자를 아낌없이 우리들을 위해 주셨으며,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 뜻을 좇아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며,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행 4:12). 이러한 사실을 밝히 깨달아 하나님 자녀 된 모든 권세를 회복함으로 구원의 확신 속에서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모든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구세주의 자격에 대해 합당한 단어를 ( ) 안에 써 넣으세요.
첫째, ( )이어야 합니다.
둘째, ( )의 ( )가 아니어야 합니다.
셋째, 원수 ( )를 이길 수 있는 ( )이 있어야 합니다.
넷째, ( )까지 줄 수 있는 ( )이 있어야 합니다.
2. 토지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 것이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합당한 규정에 따라 근족(가까운 친척)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도록 하는 법칙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토지는 근본 흙으로 창조된 사람과 직접 연관성이 있다. 관련된 말씀은?
"네가 얼굴에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세기 3장 19절)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창세기 3장 23절)
교육목표 :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과 구세주가 되는 자격 조건에 대해 알아본다.
영계의 법에는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죄를 속량할 수 있는 법도 있습니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이 죄로 인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하려면 죄를 속량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과연 사망에 이르는 사람의 죄를 속량하여 첫 사람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법칙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좇아 비밀한 가운데 만세 전에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1. 토지를 사고파는 데 적용되는 토지 무르기 법칙
레위기 25장 23~25절에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近族)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말씀합니다. 즉 토지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 것이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합당한 규정에 따라 근족(가까운 친척)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는 '토지 무르기 법칙'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계약서에 어떤 경로로 토지를 팔고 사는가 하는 계약 과정을 기록하고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기록하게 합니다. 그리고 팔고 사는 사람이 도장을 찍고 증인들을 세워서 1부는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여 성전 창고에 보관합니다. 또 다른 1부는 인봉하지 않다가 언제라도 볼 수 있게 성전 입구에 펼쳐 놓습니다. 이는 언제라도 근족이 와서 대신 토지를 무를 수 있게 하였고, 근족 중에 무를 사람이 없으면 본인이 부를 쌓아 힘이 있을 때 다시 사서 무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도 토지 무르기의 법칙에 따라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천하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모든 권세를 마귀에게 넘겨주게 되었지만(눅 4:6),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영영히 팔지는 못하며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지요.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2.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과 예수 그리스도
이러한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자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고 사람의 근족이어야 하며, 무를 수 있는 힘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4절에 보면 하나님과 마귀가 계약한 책이 나옵니다. 이는 '아담이 불순종하여 마귀에게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넘겨주었지만, 무를 힘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그 권세를 넘겨주겠다.'는 계약서이지요. 그런데 사도 요한이 보니 그 책이 일곱 인으로 봉하여 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크게 웁니다. 그때 장로 중 하나가 나타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즉 다윗의 뿌리 예수 그리스도가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로,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했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는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으면 멸망의 길을 가던 모든 인류가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토지 무르기 법칙에 의하면 돈이 없어 토지를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영영히 팔지 못하기 때문에 토지를 판 사람이 다시 달라고 하면 주어야 합니다. 만일 본인이 무를 힘이 없을 때에는 근족이 대신 물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무르기 위해서는 아담의 근족이어야 하므로 토지 무를 자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토지 무르기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요 1:14). 즉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토지 무르기 법칙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아담은 불순종한 죄가 있으므로 아담의 핏줄을 타고난 인류는 모두 원죄가 있습니다. 죄인이 죄인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없으니,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면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이런 사람을 찾고자 하늘 위를 보니 천사만 있고 땅 위를 살펴보니 아담의 후예인 죄인들만 있고 음부에 있는 영혼들 중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계 5:1~3).
그러면 예수님은 토지 무르기 법칙 두 번째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육적으로는 다윗의 뿌리이지만, 남녀가 결혼하여 잉태된 분이 아니므로 원죄가 없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오직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아담의 후예가 아닙니다(마 1:18~21).
셋째로, 원수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빚을 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여도 자신에게 그만한 재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처럼 죄를 대속하려면 죄를 무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마귀에게 빼앗긴 아담의 권세를 회복하려면 죄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어야 원수 마귀를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토지 무르기 세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을까요?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기 때문에 원죄가 없습니다.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33년 동안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하셨으니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전혀 없으셨지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온전한 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전혀 죄가 없으므로 토지 무를 힘이 있고, 결국에는 원수 마귀가 방해하지 못하고 되돌려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넷째로,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위의 세 가지가 조건이 모두 성립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일 동생이 빚을 졌는데 부자인 형이 빚을 대신 갚아 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룻기 4장 6절을 보면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합니다. 즉 토지 무를 힘이 있지만 무르지 않겠다고 하지요. 그러자 그다음 근족인 보아스가 대신 나오미의 토지를 물어 주는데, 이는 그가 사랑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부로서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큰 축복을 받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는 희생적인 사랑이 없으셨다면 과연 마귀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하나님 자녀로 되찾아 올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시며,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시고,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주시며 오직 선만 행하셨습니다. 그런데도 피조물인 사람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에 독생자를 아낌없이 우리들을 위해 주셨으며,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 뜻을 좇아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며,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행 4:12). 이러한 사실을 밝히 깨달아 하나님 자녀 된 모든 권세를 회복함으로 구원의 확신 속에서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모든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구세주의 자격에 대해 합당한 단어를 ( ) 안에 써 넣으세요.
첫째, ( )이어야 합니다.
둘째, ( )의 ( )가 아니어야 합니다.
셋째, 원수 ( )를 이길 수 있는 ( )이 있어야 합니다.
넷째, ( )까지 줄 수 있는 ( )이 있어야 합니다.
2. 토지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 것이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합당한 규정에 따라 근족(가까운 친척)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도록 하는 법칙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토지는 근본 흙으로 창조된 사람과 직접 연관성이 있다. 관련된 말씀은?
"네가 얼굴에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세기 3장 19절)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창세기 3장 23절)
2011-02-03
제5과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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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목표 :
1. 주 안에서의 '설'에 대한 이해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의 나라들에 있어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이란 한 해의 첫날을 지칭하는 말로 음력 1월 1일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는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설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우리 조상들은 설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정의 평안과 건강 그 밖에 마음의 소원을 기원하며 막연히 신에게 복을 빌거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습니다. 이러한 축복과 마음의 소원의 응답은 오직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하나님께 맡겨 드린다는 의미를 담아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2.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 고유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도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셨으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기 원 ------------------------------------------------------ 사회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찬 송 ------------------------ 460장 ----------------------- 다 같이
1.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2.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3.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잖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기 도 ---------------------------------------------------가족 중에서
(기도 예문)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설을 맞아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렇게 함께 모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새로운 한 해의 출발을 맞아 하나님 말씀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 가족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옵시고,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후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 에베소서 5:20~21 ------------------- 사회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설 교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설교자
(설교 예문)
먼저 에베소서 5장 20절을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말씀합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킴 받고 보호받으며 살았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아버지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 기근과 전쟁, 폭설과 폭우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가 얼마나 많은지요. 또한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여 날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방면에서 아수라장 같은 혼란이 더해만 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자녀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기에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염려, 걱정,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한 해 동안도 항상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고 보호하시며 늘 좋은 것으로 주기를 원하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아버지 하나님께 다 함께 감사를 드립시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고,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7편 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지켜 주셨기에 설 명절을 맞아 이 시간 한자리에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설날에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갑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을 믿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몰랐기에 그동안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야 하지요.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응답과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장차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을 주실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모든 것에 부족됨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 주시지요. 그러니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할 때 더욱 기쁘게 여기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넘치도록 축복해 주십니다(롬 8:28).
감사는 어떠한 환경이라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유에서 유의 창조만 믿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영의 눈, 즉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무에서 유가 창조될 것을 믿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에베소서 5장 21절에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말씀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것이요, 섬기는 것이며 진리 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헛된 자존심과 교만, 스스로 옳다고 하는 생각과 이론을 모두 버려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내게 잘해 주니까, 저 사람은 나보다 윗사람이니까' 섬기고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처럼 마음 중심에서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부모에게 효를 행하고 윗사람을 섬기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 등 선을 행하는 모습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근본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은 자연히 상대를 높이고 섬겨 주며 자신을 낮추는 아름다운 행실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고유 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더욱 복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먼저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말씀하신 대로 주 안에서 서로 섬기며 상대를 위해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내 주장, 내 의견, 내 생각만을 고집할 때는 서로 간에 불목할 수밖에 없지만,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을 본받아 피차 복종한다면 얼마나 화목한 가정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주 안에서 경건하며 화평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 도 ------------------------------------------------------ 설교자
찬 송 -------------------------- 305장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교육목표 :
1. 주 안에서의 '설'에 대한 이해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의 나라들에 있어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이란 한 해의 첫날을 지칭하는 말로 음력 1월 1일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는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설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우리 조상들은 설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정의 평안과 건강 그 밖에 마음의 소원을 기원하며 막연히 신에게 복을 빌거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습니다. 이러한 축복과 마음의 소원의 응답은 오직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하나님께 맡겨 드린다는 의미를 담아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2.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 고유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도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셨으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기 원 ------------------------------------------------------ 사회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찬 송 ------------------------ 460장 ----------------------- 다 같이
1.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2.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3.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잖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기 도 ---------------------------------------------------가족 중에서
(기도 예문)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설을 맞아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렇게 함께 모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새로운 한 해의 출발을 맞아 하나님 말씀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 가족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옵시고,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후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 에베소서 5:20~21 ------------------- 사회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설 교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설교자
(설교 예문)
먼저 에베소서 5장 20절을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말씀합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킴 받고 보호받으며 살았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아버지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 기근과 전쟁, 폭설과 폭우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가 얼마나 많은지요. 또한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여 날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방면에서 아수라장 같은 혼란이 더해만 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자녀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기에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염려, 걱정,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한 해 동안도 항상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고 보호하시며 늘 좋은 것으로 주기를 원하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아버지 하나님께 다 함께 감사를 드립시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고,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7편 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지켜 주셨기에 설 명절을 맞아 이 시간 한자리에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설날에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갑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을 믿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몰랐기에 그동안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야 하지요.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응답과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장차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을 주실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모든 것에 부족됨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 주시지요. 그러니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할 때 더욱 기쁘게 여기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넘치도록 축복해 주십니다(롬 8:28).
감사는 어떠한 환경이라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유에서 유의 창조만 믿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영의 눈, 즉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무에서 유가 창조될 것을 믿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에베소서 5장 21절에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말씀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것이요, 섬기는 것이며 진리 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헛된 자존심과 교만, 스스로 옳다고 하는 생각과 이론을 모두 버려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내게 잘해 주니까, 저 사람은 나보다 윗사람이니까' 섬기고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처럼 마음 중심에서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부모에게 효를 행하고 윗사람을 섬기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 등 선을 행하는 모습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근본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은 자연히 상대를 높이고 섬겨 주며 자신을 낮추는 아름다운 행실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고유 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더욱 복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먼저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말씀하신 대로 주 안에서 서로 섬기며 상대를 위해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내 주장, 내 의견, 내 생각만을 고집할 때는 서로 간에 불목할 수밖에 없지만,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을 본받아 피차 복종한다면 얼마나 화목한 가정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주 안에서 경건하며 화평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 도 ------------------------------------------------------ 설교자
찬 송 -------------------------- 305장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2011-01-28
제4과선악과를 두신 이유
창 3:1~7
읽을말씀 : 창 3:1~7 | 외울말씀 : 약 1:15 ㅣ참고 말씀:창 2:17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와 왜 아담이 불순종하여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본다.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깊고 오묘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두어 사람을 멸망의 길로 가게 하셨느냐?"고 묻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죽음을 보지 않고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 일부러 선악과를 두고 사망의 길로 인도하셨을 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이며 어째서 아담이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을까요?
1.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창 2:7). 생령이란 살아 있는 영이란 뜻입니다. 아담이 처음 생령이 되었을 때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지식이나 지혜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뇌세포 안에 기억장치를 주셨지만 아직 보고 듣고 가르침 받은 것이 없기 때문에 본능적인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요. 몸은 성인의 모습이지만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즉 영의 지식이나 지혜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아담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그곳으로 아담을 이끌어 들이시고 영의 지식을 하나하나 가르치며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셨지요(창 2:19). 천지 만물의 조화와 영계의 법칙,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에 관한 무한한 지식을 알려 주시며 땅을 정복하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또한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돕는 배필로 여자인 하와를 지어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는 아담이 스스로 외롭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홀로 계신 하나님께서 아담의 형편을 미리 헤아려 베푸신 사랑입니다.
2. 사단의 사주를 받아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에덴동산에서 자녀 된 권세를 마음껏 누리며 풍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금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 사이에 질서를 세우시고 마음 중심에서 순종하는 자녀를 얻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결국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사단이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해 하와를 유혹하니 결국 아담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사단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말하지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창 2:17). 그런데 하와는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고 하나님 말씀을 변개하여 답변한 것입니다.
하와의 답변을 들은 뱀은 더욱 적극적으로 여자를 유혹합니다. 창세기 3장 4~5절을 보면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며 하나님 말씀을 완전히 부정하지요. 뿐만 아니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면서 재차 유혹합니다.
사단이 여자의 생각에 욕심을 불어넣으니 선악과가 예전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곧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여(창 3:6) 그만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남편에게 주니 그도 먹고 말았지요.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 악이 있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다"고 하는데, 아담이 불순종하기 전에는 전혀 악이 없었습니다. 다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에 따라 선악과를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었지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다가 사단이 뱀을 통하여 유혹하자 하나님께서 세운 질서에 불순종하므로 악이 들어왔습니다. 즉 생령으로 창조된 사람에게 처음부터 악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유 의지 가운데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악이 성립되었고, 비로소 죄가 잉태된 것입니다.
3. 죄의 삯은 사망
로마서 6장 23절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이 나오는데, 과연 사망이 불순종의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어떻게 임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하고 곧바로 죽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을 향수하며 자녀를 낳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죽음이란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의 죽음을 뜻합니다. 원래 사람은 생령으로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습니다(살전 5:23). 그런데 하나님 명령을 어기니 주인인 영이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생령이었을 때는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지만 죄 때문에 영이 죽으니 교통이 끊어지고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이때부터 인류의 고난이 시작되어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이 크게 더하여 수고하며 자녀를 낳고, 또 남편을 사모하며 그의 다스림을 받았습니다. 남자는 저주받은 땅에서 평생토록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을 수 있었지요(창 3:16~17). 또한 인류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되었고, 아담의 후손들 또한 모두가 죄인으로 태어나 죄의 삯인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러면 사단의 사주를 받아 하와를 미혹한 뱀은 어떠한 저주를 받았을까요?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흙은 영적으로 흙으로 창조된 사람을 말하며(창 2:7), 뱀은 원수 마귀 사단을 뜻합니다(계 20:2). 하나님께서 뱀에게 흙을 먹으라고 하신 것은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바로 원수 마귀 사단의 밥이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므로(벧전 5:8) 시험 환난이 찾아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말씀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4.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신 이유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의 가장 중앙에 두신 이유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고 멸망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대성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지요.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아주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상대성을 모르기 때문에 참 행복과 사랑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아담은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땀 흘려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니었기에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오랜 세월이 흐르자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말았지요. 결국 이 땅으로 쫓겨난 후에야 눈물, 슬픔, 고통, 불행, 죽음 등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그제야 행복과 불행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하나님 안에서 누리던 자유와 풍요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지요.
자녀들이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고 학교에 보내지 않고 놀게 할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비록 고생스럽더라도 장래를 위해 배우고 익히게끔 하지요. 이 땅에 인간을 두고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이러한 부모 마음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두고 아담이 자유 의지에 따라 먹어도 막지 않으셨고, 인간 경작을 통해 이 땅에서 모든 희로애락을 경험하도록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상대성을 체험하며 진정한 사랑과 기쁨, 감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경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상대성을 알고 참사랑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두시고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신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와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게 된 경로를 보기의 단어를 넣어 이야기해 봅시다.
(하와, 뱀, 사단, 선악과, 자유 의지, 불순종, 사망)
2.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알고 넘어 갑시다!
'자유 의지'(free will)란?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조절, 통제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말한다. 즉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도록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능력과 특권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와 왜 아담이 불순종하여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본다.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깊고 오묘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두어 사람을 멸망의 길로 가게 하셨느냐?"고 묻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죽음을 보지 않고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 일부러 선악과를 두고 사망의 길로 인도하셨을 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이며 어째서 아담이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을까요?
1.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창 2:7). 생령이란 살아 있는 영이란 뜻입니다. 아담이 처음 생령이 되었을 때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지식이나 지혜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뇌세포 안에 기억장치를 주셨지만 아직 보고 듣고 가르침 받은 것이 없기 때문에 본능적인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요. 몸은 성인의 모습이지만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즉 영의 지식이나 지혜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아담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그곳으로 아담을 이끌어 들이시고 영의 지식을 하나하나 가르치며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셨지요(창 2:19). 천지 만물의 조화와 영계의 법칙,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에 관한 무한한 지식을 알려 주시며 땅을 정복하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또한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돕는 배필로 여자인 하와를 지어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는 아담이 스스로 외롭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홀로 계신 하나님께서 아담의 형편을 미리 헤아려 베푸신 사랑입니다.
2. 사단의 사주를 받아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에덴동산에서 자녀 된 권세를 마음껏 누리며 풍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금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 사이에 질서를 세우시고 마음 중심에서 순종하는 자녀를 얻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결국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사단이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해 하와를 유혹하니 결국 아담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사단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말하지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창 2:17). 그런데 하와는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고 하나님 말씀을 변개하여 답변한 것입니다.
하와의 답변을 들은 뱀은 더욱 적극적으로 여자를 유혹합니다. 창세기 3장 4~5절을 보면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며 하나님 말씀을 완전히 부정하지요. 뿐만 아니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면서 재차 유혹합니다.
사단이 여자의 생각에 욕심을 불어넣으니 선악과가 예전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곧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여(창 3:6) 그만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남편에게 주니 그도 먹고 말았지요.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 악이 있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다"고 하는데, 아담이 불순종하기 전에는 전혀 악이 없었습니다. 다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에 따라 선악과를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었지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다가 사단이 뱀을 통하여 유혹하자 하나님께서 세운 질서에 불순종하므로 악이 들어왔습니다. 즉 생령으로 창조된 사람에게 처음부터 악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유 의지 가운데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악이 성립되었고, 비로소 죄가 잉태된 것입니다.
3. 죄의 삯은 사망
로마서 6장 23절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이 나오는데, 과연 사망이 불순종의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어떻게 임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하고 곧바로 죽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을 향수하며 자녀를 낳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죽음이란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의 죽음을 뜻합니다. 원래 사람은 생령으로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습니다(살전 5:23). 그런데 하나님 명령을 어기니 주인인 영이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생령이었을 때는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지만 죄 때문에 영이 죽으니 교통이 끊어지고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이때부터 인류의 고난이 시작되어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이 크게 더하여 수고하며 자녀를 낳고, 또 남편을 사모하며 그의 다스림을 받았습니다. 남자는 저주받은 땅에서 평생토록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을 수 있었지요(창 3:16~17). 또한 인류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되었고, 아담의 후손들 또한 모두가 죄인으로 태어나 죄의 삯인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러면 사단의 사주를 받아 하와를 미혹한 뱀은 어떠한 저주를 받았을까요?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흙은 영적으로 흙으로 창조된 사람을 말하며(창 2:7), 뱀은 원수 마귀 사단을 뜻합니다(계 20:2). 하나님께서 뱀에게 흙을 먹으라고 하신 것은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바로 원수 마귀 사단의 밥이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므로(벧전 5:8) 시험 환난이 찾아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말씀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4.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신 이유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의 가장 중앙에 두신 이유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고 멸망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대성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지요.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아주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상대성을 모르기 때문에 참 행복과 사랑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아담은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땀 흘려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니었기에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오랜 세월이 흐르자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말았지요. 결국 이 땅으로 쫓겨난 후에야 눈물, 슬픔, 고통, 불행, 죽음 등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그제야 행복과 불행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하나님 안에서 누리던 자유와 풍요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지요.
자녀들이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고 학교에 보내지 않고 놀게 할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비록 고생스럽더라도 장래를 위해 배우고 익히게끔 하지요. 이 땅에 인간을 두고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이러한 부모 마음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두고 아담이 자유 의지에 따라 먹어도 막지 않으셨고, 인간 경작을 통해 이 땅에서 모든 희로애락을 경험하도록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상대성을 체험하며 진정한 사랑과 기쁨, 감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경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상대성을 알고 참사랑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두시고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신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와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게 된 경로를 보기의 단어를 넣어 이야기해 봅시다.
(하와, 뱀, 사단, 선악과, 자유 의지, 불순종, 사망)
2.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알고 넘어 갑시다!
'자유 의지'(free will)란?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조절, 통제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말한다. 즉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도록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능력과 특권이다.
2011-01-21
제3과사람을 경작하시는 하나님
창 1:27, 마 3:12
읽을말씀 : 창 1:27, 마 3:12 | 외울말씀 : 마 3:12 ㅣ참고 말씀:딤전 2:4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의 인간 경작의 섭리를 통해 알곡은 천국에 들이고 쭉정이는 지옥으로 던져 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많은 비유로써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려 주셨습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영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땅의 것들로 비유하여 깨우쳐 주고자 한 것입니다(마 13:34).
그중에는 씨 뿌리는 비유, 겨자씨 비유, 밭의 가라지의 비유, 포도원의 비유, 불의한 농부의 비유 등 경작에 관한 비유가 많습니다. 이는 농부가 땅을 개간하여 씨를 뿌리고 가꾸어 열매를 거두듯이,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시고, 때가 되면 알곡을 천국으로 들인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1. 하나님께서 사람을 경작하시는 이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우주 공간에 홀로 계셨습니다. 지극히 아름답고 영롱한 빛 안에 맑고 청아한 소리를 머금고 온 우주공간을 다스리신 것입니다(요일 1:5, 요 1:1).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함께 느끼며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갖고 계시기에 홀로 누리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품으신 하나님은 인간 경작을 위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공간을 오묘하게 분리하시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멈추지 않고 사람을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깨달아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어떤 부모에게 두 자녀가 있는데 큰아이는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사랑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반면 작은아이는 부모님을 서운케 할 때도 있지만 이내 돌이키며 사랑스럽게 매달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면 어느 자녀가 더 사랑스럽겠습니까? 또한 가정에 로봇이 있어 밥도 짓고 청소도 하며 모든 시중을 다 들어 준다고 해서 자녀보다 로봇이 더 사랑스러울까요? 로봇이 아무리 유익하다고 해도 자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도 순종을 잘하는 천군 천사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성과 감정을 가지고 자유 의지 가운데 즐거이 순종하는 자녀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자유 의지를 주시고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시며 참 자녀로 나오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경작이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를 통해 열매를 얻는 과정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경작하는 수고를 통해 참 자녀를 얻고자 이 땅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번째 씨를 심으시고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을 경작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사람은 흙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마음밭을 개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창세기 6장 5~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만세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는 자녀를 기르는 부모의 심정을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자녀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고생스러운 일입니까? 잉태한 열 달 동안 여러 고통이 따르고, 해산할 때에도 큰 수고를 해야 합니다. 자녀를 먹이고 입히며 가르치기 위해 힘써 일하며 밤낮으로 수고해야 하지요. 그런데도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이유는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부모를 진정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대상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며 극진히 섬기고 효도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불순종하고 타락하여 근심할 것을 아셨지만,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가 나올 것을 아시기에 기꺼이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2.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하나님
농부가 열심히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농사를 짓는 이유는 추수 때에 많은 소산을 거둘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추수 때 보면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쭉정이도 섞여 나옵니다. 이때 알곡은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인간 경작을 마친 뒤에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2절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참 자녀인 알곡은 천국에 들이지만 쭉정이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태우십니다. 그러면 알곡과 쭉정이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알곡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진리 안에 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즉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말씀대로 행하는 빛의 자녀들이지요. 반면에 쭉정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거나 입술로는 믿는다지만 말씀 안에 살지 않고 여전히 악을 행하며 세상의 정욕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모든 사람이 알곡이 되어 천국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여러 방법으로 깨우치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만 자유 의지 속에서 끝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으므로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가치를 잃은 쭉정이는 결국 어떻게 될까요? 사람은 짐승과 달리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생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에 영원불멸하는 영혼이 있습니다. 따라서 짐승처럼 아예 무 상태로 멸해 버릴 수도 없고 알곡 성도와 함께 아름다운 천국에 들이실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알곡 성도는 모아서 천국에 들여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시지만 쭉정이는 세세토록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태우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천국과 함께 참혹한 지옥을 두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농부가 알곡과 쭉정이를 함께 두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온갖 악이 가득한 사람이 아름다운 천국에 함께 거한다면 죄악으로 오염될 수밖에 없으니 하나님께서 지옥을 따로 두신 것도 근본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3. 인간 경작과 백보좌 대심판
농부가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이 한 해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같이 하나님께서도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 경작을 멈추지 않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려 주시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베드로, 바울 등 믿음의 선진을 보내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하시며 놀라운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종과 일꾼을 통해 끊임없이 인간을 경작하시며 깨어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듯이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는 것도 한없이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하신 대로 때가 이르면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마쳐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창조 사역을 마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처럼, 인간 경작의 역사가 끝나면 백보좌 대심판을 통해 알곡은 아름다운 천국으로, 쭉정이는 지옥불에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고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크신 사랑을 깨달아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보세요.
영적으로 알곡이란 ( )를 영접하여 진리 안에 살면서 ( )을 사랑하는 사람을 말하며, 이들은 아름다운 ( )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말씀대로 행하는 ( )를 말합니다.
3. 다음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아는 것만 0표 해 보세요.
주님의 공중강림, 주님의 지상재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알고 넘어 갑시다!
'알파와 오메가'란? 문명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는 뜻이다.
'처음과 나중'이란?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재림하심으로써 구속 사업을 마무리 하신다는 뜻이다.
'시작과 끝'이란? 성령께서 인간 경작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신다는 뜻이다.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의 인간 경작의 섭리를 통해 알곡은 천국에 들이고 쭉정이는 지옥으로 던져 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많은 비유로써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려 주셨습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영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땅의 것들로 비유하여 깨우쳐 주고자 한 것입니다(마 13:34).
그중에는 씨 뿌리는 비유, 겨자씨 비유, 밭의 가라지의 비유, 포도원의 비유, 불의한 농부의 비유 등 경작에 관한 비유가 많습니다. 이는 농부가 땅을 개간하여 씨를 뿌리고 가꾸어 열매를 거두듯이,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시고, 때가 되면 알곡을 천국으로 들인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1. 하나님께서 사람을 경작하시는 이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우주 공간에 홀로 계셨습니다. 지극히 아름답고 영롱한 빛 안에 맑고 청아한 소리를 머금고 온 우주공간을 다스리신 것입니다(요일 1:5, 요 1:1).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함께 느끼며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갖고 계시기에 홀로 누리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품으신 하나님은 인간 경작을 위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공간을 오묘하게 분리하시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멈추지 않고 사람을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깨달아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어떤 부모에게 두 자녀가 있는데 큰아이는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사랑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반면 작은아이는 부모님을 서운케 할 때도 있지만 이내 돌이키며 사랑스럽게 매달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면 어느 자녀가 더 사랑스럽겠습니까? 또한 가정에 로봇이 있어 밥도 짓고 청소도 하며 모든 시중을 다 들어 준다고 해서 자녀보다 로봇이 더 사랑스러울까요? 로봇이 아무리 유익하다고 해도 자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도 순종을 잘하는 천군 천사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성과 감정을 가지고 자유 의지 가운데 즐거이 순종하는 자녀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자유 의지를 주시고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시며 참 자녀로 나오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경작이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를 통해 열매를 얻는 과정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경작하는 수고를 통해 참 자녀를 얻고자 이 땅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번째 씨를 심으시고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을 경작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사람은 흙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마음밭을 개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창세기 6장 5~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만세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는 자녀를 기르는 부모의 심정을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자녀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고생스러운 일입니까? 잉태한 열 달 동안 여러 고통이 따르고, 해산할 때에도 큰 수고를 해야 합니다. 자녀를 먹이고 입히며 가르치기 위해 힘써 일하며 밤낮으로 수고해야 하지요. 그런데도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이유는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부모를 진정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대상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며 극진히 섬기고 효도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불순종하고 타락하여 근심할 것을 아셨지만,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가 나올 것을 아시기에 기꺼이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2.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하나님
농부가 열심히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농사를 짓는 이유는 추수 때에 많은 소산을 거둘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추수 때 보면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쭉정이도 섞여 나옵니다. 이때 알곡은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인간 경작을 마친 뒤에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2절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참 자녀인 알곡은 천국에 들이지만 쭉정이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태우십니다. 그러면 알곡과 쭉정이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알곡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진리 안에 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즉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말씀대로 행하는 빛의 자녀들이지요. 반면에 쭉정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거나 입술로는 믿는다지만 말씀 안에 살지 않고 여전히 악을 행하며 세상의 정욕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모든 사람이 알곡이 되어 천국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여러 방법으로 깨우치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만 자유 의지 속에서 끝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으므로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가치를 잃은 쭉정이는 결국 어떻게 될까요? 사람은 짐승과 달리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생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에 영원불멸하는 영혼이 있습니다. 따라서 짐승처럼 아예 무 상태로 멸해 버릴 수도 없고 알곡 성도와 함께 아름다운 천국에 들이실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알곡 성도는 모아서 천국에 들여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시지만 쭉정이는 세세토록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태우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천국과 함께 참혹한 지옥을 두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농부가 알곡과 쭉정이를 함께 두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온갖 악이 가득한 사람이 아름다운 천국에 함께 거한다면 죄악으로 오염될 수밖에 없으니 하나님께서 지옥을 따로 두신 것도 근본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3. 인간 경작과 백보좌 대심판
농부가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이 한 해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같이 하나님께서도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 경작을 멈추지 않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려 주시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베드로, 바울 등 믿음의 선진을 보내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하시며 놀라운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종과 일꾼을 통해 끊임없이 인간을 경작하시며 깨어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듯이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는 것도 한없이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하신 대로 때가 이르면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마쳐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창조 사역을 마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처럼, 인간 경작의 역사가 끝나면 백보좌 대심판을 통해 알곡은 아름다운 천국으로, 쭉정이는 지옥불에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고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크신 사랑을 깨달아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보세요.
영적으로 알곡이란 ( )를 영접하여 진리 안에 살면서 ( )을 사랑하는 사람을 말하며, 이들은 아름다운 ( )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말씀대로 행하는 ( )를 말합니다.
3. 다음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아는 것만 0표 해 보세요.
주님의 공중강림, 주님의 지상재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알고 넘어 갑시다!
'알파와 오메가'란? 문명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는 뜻이다.
'처음과 나중'이란?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재림하심으로써 구속 사업을 마무리 하신다는 뜻이다.
'시작과 끝'이란? 성령께서 인간 경작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신다는 뜻이다.
2011-01-14
제2과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 1:1
읽을말씀 : 창 1:1 | 외울말씀 : 창 2:7 ㅣ 참고 말씀:롬 1:20
교육목표 : 창조론과 진화론의 차이점을 깨닫고 창조론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사랑과 섭리를 깨닫게 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창조주이며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배운다면 진리를 알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구체적이면서도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시며 창조 사역을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신 대략적인 과정과 6일 동안 본격적으로 지구 위에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이 교과과정에서 진화론의 영향을 받으며, 그 외에도 생활 속에서 습득하는 지식 중에 진리에 비추어 옳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과연 진리는 무엇일까요?
1.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주 만물을 설계하시고 창조하셨다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 중심으로 그분의 뜻을 좇아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산다는 신본주의(神本主義) 사상이지요. 반면 진화론은 모든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자연 발생하여 하등에서 고등으로, 동종에서 이종으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유인원이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고집하지요.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근원을 우연의 산물로 보며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 사상이 팽배합니다. 이들은 삶의 목적을 이 땅에 두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며 살아갑니다. 인생을 즐기며 마음껏 누리는 것이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지만 참된 기쁨과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결국 육체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지니 얼마나 허무하고 공허한 인생입니까?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반드시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장난감에서부터 하늘을 나는 비행기까지 누군가가 만들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천지 만물도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이 있어 그분의 마음에 맞게 설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 보면 하나님을 조물주라 하였고 하나님께서 모든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하셨지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증거는 성경뿐 아니라 우주 만물 안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우주 만물을 돌아보면 동서남북과 사계절이 있고,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의 교차, 바람과 구름의 이동 등 우주 안의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운행되지요. 이것을 어찌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가 아닌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전 세계의 사람이나 짐승, 새, 물고기가 한결같이 눈은 두 개요, 코는 하나에 입도 하나, 귀는 두 개요 그 위치 선정까지 똑같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조물주 한 분에 의해 우주 만물이 창조되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분명히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천지 만물을 바라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느낄 수 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는 하나님을 몰라서 못 믿었습니다."라고 핑계할 수 없도록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지요(창 1:28).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만드셨을까요?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흙이란 진흙을 말합니다. 뛰어난 도공은 좋은 진흙을 사용하여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 대를 호가하는 도자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질그릇이나 기왓장, 혹은 값싼 벽돌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요. 누가 어떤 재료로 어떤 물건을 만들었느냐에 따라 가치가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을 따라 사람을 빚으셨으니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이렇게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뒤에는 그 코에 생기 즉 살아 있는 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러자 사람이 살아 있는 영, 곧 생령이 된 것입니다. 생기란 하나님의 기로서 힘, 능력, 에너지, 영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생령으로 창조된 과정은 형광등이 빛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형광등이 빛을 내게 하려면 먼저 잘 조립된 형광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형광등이 빛을 낼 수 없으며, 전원과 연결되어 전기가 흘러야 비로소 빛을 냅니다. 가정에 있는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이지요. 아무런 움직임 없이 죽어 있는 듯한 물건인데 전원을 연결하면 화면에 갖가지 영상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화면을 띄우기까지는 외관상으로 스위치만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오밀조밀한 부속품이 매우 복잡하게 조립되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흙으로 사람의 형상만을 빚은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오장육부와 뼈도 만들어 놓고 피가 통할 수 있는 핏줄과 또한 완벽하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신경조직을 다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전류를 통하게 하듯 하나님의 근본 된 능력이 들어 있는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곧 피가 돌고 호흡하며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또한 머리의 뇌세포 안에 기억 장치를 만들어 놓으니 사람이 듣고 보고 느끼는 대로 입력이 되고 기억하면서 지식이 되고, 이것이 재생되어 나오니 생각이 되며, 지식을 활용하여 지혜가 되었습니다.
피조물인 사람도 지혜와 지식이 더하여 문자나 사람의 음성을 인식하여 대화할 수 있는 컴퓨터까지 만들어 내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빚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을 만드는 것이 어찌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참으로 쉬운 일이지만 한계가 있는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신기하고 측량하기 어려운 일이지요(시 139:14).
3.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도록 가르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시고 그곳을 지키며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막 태어난 어린아이가 처음에는 생리작용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환경 조건을 통하여 부모, 형제, 교사 등을 통해 여러 가지 교육을 받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천지 만물의 조화와 영계의 법칙과 진리의 말씀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이런 것은 먹어도 되지만 저런 것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하나하나 상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짓고 맙니다. 그 결과 죄의 삯인 사망이 임하여 사람에게 있어 주인의 역할을 하는 영이 죽게 되었고, 결국 영원히 살 수 없는 육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사람들의 이러한 불순종을 미리 아셨지만 사랑이 많으시기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시며 복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하나님 사랑을 깨달아 구원의 섭리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조주 하나님에 관련된 것을 모두 고르시오.
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영계의 법칙과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다.
② 사람이나 짐승, 새, 고기가 한결같이 눈은 두 개요, 코는 하나에 입도 하나, 귀는 두 개요 그 위치 선정까지 똑같은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③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자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④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의 교차, 바람과 구름의 이동 등 우주 안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 속에 질서정연하게 운행된다.
⑤ 진화론은 학교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참된 진리이다.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알고 넘어 갑시다!
'유인원(類人猿)'이란?
긴팔원숭이,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등 원숭이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교육목표 : 창조론과 진화론의 차이점을 깨닫고 창조론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사랑과 섭리를 깨닫게 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창조주이며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배운다면 진리를 알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구체적이면서도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시며 창조 사역을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신 대략적인 과정과 6일 동안 본격적으로 지구 위에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이 교과과정에서 진화론의 영향을 받으며, 그 외에도 생활 속에서 습득하는 지식 중에 진리에 비추어 옳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과연 진리는 무엇일까요?
1.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주 만물을 설계하시고 창조하셨다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 중심으로 그분의 뜻을 좇아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산다는 신본주의(神本主義) 사상이지요. 반면 진화론은 모든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자연 발생하여 하등에서 고등으로, 동종에서 이종으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유인원이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고집하지요.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근원을 우연의 산물로 보며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 사상이 팽배합니다. 이들은 삶의 목적을 이 땅에 두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며 살아갑니다. 인생을 즐기며 마음껏 누리는 것이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지만 참된 기쁨과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결국 육체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지니 얼마나 허무하고 공허한 인생입니까?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반드시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장난감에서부터 하늘을 나는 비행기까지 누군가가 만들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천지 만물도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이 있어 그분의 마음에 맞게 설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 보면 하나님을 조물주라 하였고 하나님께서 모든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하셨지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증거는 성경뿐 아니라 우주 만물 안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우주 만물을 돌아보면 동서남북과 사계절이 있고,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의 교차, 바람과 구름의 이동 등 우주 안의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운행되지요. 이것을 어찌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가 아닌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전 세계의 사람이나 짐승, 새, 물고기가 한결같이 눈은 두 개요, 코는 하나에 입도 하나, 귀는 두 개요 그 위치 선정까지 똑같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조물주 한 분에 의해 우주 만물이 창조되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분명히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천지 만물을 바라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느낄 수 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는 하나님을 몰라서 못 믿었습니다."라고 핑계할 수 없도록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지요(창 1:28).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만드셨을까요?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흙이란 진흙을 말합니다. 뛰어난 도공은 좋은 진흙을 사용하여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 대를 호가하는 도자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질그릇이나 기왓장, 혹은 값싼 벽돌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요. 누가 어떤 재료로 어떤 물건을 만들었느냐에 따라 가치가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을 따라 사람을 빚으셨으니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이렇게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뒤에는 그 코에 생기 즉 살아 있는 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러자 사람이 살아 있는 영, 곧 생령이 된 것입니다. 생기란 하나님의 기로서 힘, 능력, 에너지, 영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생령으로 창조된 과정은 형광등이 빛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형광등이 빛을 내게 하려면 먼저 잘 조립된 형광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형광등이 빛을 낼 수 없으며, 전원과 연결되어 전기가 흘러야 비로소 빛을 냅니다. 가정에 있는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이지요. 아무런 움직임 없이 죽어 있는 듯한 물건인데 전원을 연결하면 화면에 갖가지 영상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화면을 띄우기까지는 외관상으로 스위치만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오밀조밀한 부속품이 매우 복잡하게 조립되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흙으로 사람의 형상만을 빚은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오장육부와 뼈도 만들어 놓고 피가 통할 수 있는 핏줄과 또한 완벽하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신경조직을 다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전류를 통하게 하듯 하나님의 근본 된 능력이 들어 있는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곧 피가 돌고 호흡하며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또한 머리의 뇌세포 안에 기억 장치를 만들어 놓으니 사람이 듣고 보고 느끼는 대로 입력이 되고 기억하면서 지식이 되고, 이것이 재생되어 나오니 생각이 되며, 지식을 활용하여 지혜가 되었습니다.
피조물인 사람도 지혜와 지식이 더하여 문자나 사람의 음성을 인식하여 대화할 수 있는 컴퓨터까지 만들어 내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빚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을 만드는 것이 어찌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참으로 쉬운 일이지만 한계가 있는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신기하고 측량하기 어려운 일이지요(시 139:14).
3.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도록 가르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시고 그곳을 지키며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막 태어난 어린아이가 처음에는 생리작용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환경 조건을 통하여 부모, 형제, 교사 등을 통해 여러 가지 교육을 받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천지 만물의 조화와 영계의 법칙과 진리의 말씀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이런 것은 먹어도 되지만 저런 것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하나하나 상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짓고 맙니다. 그 결과 죄의 삯인 사망이 임하여 사람에게 있어 주인의 역할을 하는 영이 죽게 되었고, 결국 영원히 살 수 없는 육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사람들의 이러한 불순종을 미리 아셨지만 사랑이 많으시기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시며 복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하나님 사랑을 깨달아 구원의 섭리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조주 하나님에 관련된 것을 모두 고르시오.
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영계의 법칙과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다.
② 사람이나 짐승, 새, 고기가 한결같이 눈은 두 개요, 코는 하나에 입도 하나, 귀는 두 개요 그 위치 선정까지 똑같은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③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자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④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의 교차, 바람과 구름의 이동 등 우주 안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 속에 질서정연하게 운행된다.
⑤ 진화론은 학교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참된 진리이다.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알고 넘어 갑시다!
'유인원(類人猿)'이란?
긴팔원숭이,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등 원숭이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2011-01-07
제1과새롭게 하소서
눅 5:38
읽을말씀 : 눅 5:38 | 외울말씀 : 엡 5:9 ㅣ 참고 말씀:롬12:3
교육목표 : 묵은 마음을 버리고 날마다 새롭게 변화를 받아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새해가 되면 나름대로 목표를 정하고 새롭게 마음을 결단합니다. 특히 성결을 사모하는 성도들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리라" 고백하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사람이 되고자 힘쓰게 됩니다. 하루에 성경을 한 장 이상 읽고 성구를 외우며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은 물론,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연초에 결심하고 고백한 것을 변개치 않으며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전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의 모든 것을 살피시며 사람의 깊은 곳까지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피조물인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속이려 합니다. 즉 진실하지 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초대교회 당시 하나님을 속였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재산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던 나름대로 믿음 있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욕심이 틈타자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던 재산 중 일부를 감추고 사도들 앞에 내놓지요.
그때 베드로가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책망을 합니다. 그러자 순간 아나니아의 혼이 떠나 죽고 말지요. 세 시간쯤 후에 그 영문을 모르고 들어온 아내 삽비라도 남편과 똑같이 하나님의 종 베드로를 속이므로 혼이 떠나 죽고 맙니다. 결국 이들은 구원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행 5:1~11).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성령을 속이는 것은 곧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으며, 하나님의 종을 속이는 것 또한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초대교회 당시만이 아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진실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거짓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으면서 사모하는 척하고, 믿음이 없으면서 있는 척 외식하지요.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눈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기 자신까지 속이게 됩니다. 자신이 외식하고 있어도 깨닫지 못하고 충성하는 일꾼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이 외에도 자기 공적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 나라에 무익한 일을 추진하기도 하고, 누가 지켜볼 때는 성실하게 하고 혼자 있을 때는 불성실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지요. 에베소서 5장 9절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충성함으로 진실한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섬김이란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상대를 섬기기 위해 내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들여 희생할 때가 많지요. 섬김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아무리 상대에게 많은 것을 주고 희생했다고 하더라도 먼저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면 빛을 발할 수가 없지요.
예를 들어, 직원에게 어떤 일을 부탁했는데 열심히 일은 하지만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고 무뚝뚝하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의 눈치를 보며 다음에 일을 부탁하기가 어렵고 망설여지지요. 아무리 일을 잘해도 "섬기며 일한다!"라고 할 수는 없고, "무섭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까지 섬김의 기준에서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서로 간에 얼마나 사랑과 희생으로 섬기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가령, 교회 안에는 여러 부서 사람들이 함께 쓰는 화장실이나 복도, 계단 등의 공용 장소가 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은 아무리 화장실이 지저분해도 '내 업무가 아니니까' 하고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치 나의 일처럼 깨끗이 하지요. 같은 부서 안에서도 누가 아침에 일찍 와서 책상을 닦아주는지, 쓰레기통을 비우며 청소를 도와주는지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전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행하는지 낱낱이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하게 되면 마음이 불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내 업무도 아닌데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나는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많은데. 이런 사소한 일들은 업무가 적은 사람들이나 직분이 낮은 사람들이 해 줘야 하지 않나?' 하면서 힘들어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일을 했다면 비록 행함으로는 섬겼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상급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일을 해서 결과만 내면 인정을 받지만, 교회에서는 믿음과 사랑으로 행할 때 상급이 됩니다. 세상에서는 돈을 받는 만큼 자기의 업무만 하면 되지만, 교회에서는 보직에 해당되는 일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하나님의 일이 모두 자신의 업무입니다.
겨우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씀씀이를 넓혀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어야 하지요. 세상에서는 낮은 사람이 섬기고 높은 사람이 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대하든지 행위적으로만 섬길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 섬길 때 큰 자가 되어 이 땅에서도 사람들의 존중을 받고 천국에서도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로,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흘려버리지 않고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2장 13절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말씀했습니다. 처음부터 진리대로만 행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쉼 없이 노력해 가야 하지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보시고 영으로 변화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다소 부족하다 할지라도 순종하여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다듬어 일꾼으로 쓰시지요.
가령, 사람들이 처음 사명을 받았을 때는 사명 감당을 위해서 반드시 성결되리라 다짐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직분이 높아지면서 마음의 할례에 대한 간절함이 식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는 진리를 지식으로만 알고 행치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악을 덮어 놓고 절제하므로 크게 악을 행하거나 화평을 깨는 일은 없습니다. 본인이 할 일은 하고, 있어야 할 곳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는 잘하고 있다 생각하지요.
혹여 나는 이러한 모습은 있지 않나 항상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예배나 기도회에 습관적으로 참석하거나 마지못해 앉아 있는지 하나하나 돌아보아야 하지요. 그 상태가 지속되면 신앙이 정체되어 성령의 충만함이 식어지고, 자칫 구원받기 힘든 육체의 일까지 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제단에서 겨우 구원의 문제에 연연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지요.
주님을 영접하여 첫사랑으로 충만할 때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열심히 충성 봉사합니다. 예배나 기도에 늦지 않기 위해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사모함으로 단숨에 달려오지요. 생명의 말씀을 송이꿀처럼 달게 들으며 하나라도 깨우치고 변화되기 위해 금식하며 불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멈춰 있으니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죽은 믿음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고 진실한 행함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라시지요.
누가복음 5장 38절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만들고 계시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묵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진실한 마음과 행함으로 섬길 뿐 아니라 서로 화평하며 질서를 좇아 하나님의 나라를 창대히 이루는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 충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해야 합니다.
둘째, ( )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 )이 있어야 합니다.
2. 여러분 자신에게 진실성, 섬김, 행함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몇 점을 주실 수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읽고 밑줄 쳐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들은 부부이며 초대교회 신자이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하나님께 드렸다. 그런데 이들은 땅을 팔아 일부는 감추고 나머지를 전부라고 속여 사도들 앞에 내놓는다. 결국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인 죄로 혼이 떠나 죽게 된다.
교육목표 : 묵은 마음을 버리고 날마다 새롭게 변화를 받아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새해가 되면 나름대로 목표를 정하고 새롭게 마음을 결단합니다. 특히 성결을 사모하는 성도들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리라" 고백하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사람이 되고자 힘쓰게 됩니다. 하루에 성경을 한 장 이상 읽고 성구를 외우며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은 물론,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연초에 결심하고 고백한 것을 변개치 않으며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전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의 모든 것을 살피시며 사람의 깊은 곳까지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피조물인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속이려 합니다. 즉 진실하지 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초대교회 당시 하나님을 속였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재산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던 나름대로 믿음 있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욕심이 틈타자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던 재산 중 일부를 감추고 사도들 앞에 내놓지요.
그때 베드로가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책망을 합니다. 그러자 순간 아나니아의 혼이 떠나 죽고 말지요. 세 시간쯤 후에 그 영문을 모르고 들어온 아내 삽비라도 남편과 똑같이 하나님의 종 베드로를 속이므로 혼이 떠나 죽고 맙니다. 결국 이들은 구원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행 5:1~11).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성령을 속이는 것은 곧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으며, 하나님의 종을 속이는 것 또한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초대교회 당시만이 아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진실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거짓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으면서 사모하는 척하고, 믿음이 없으면서 있는 척 외식하지요.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눈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기 자신까지 속이게 됩니다. 자신이 외식하고 있어도 깨닫지 못하고 충성하는 일꾼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이 외에도 자기 공적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 나라에 무익한 일을 추진하기도 하고, 누가 지켜볼 때는 성실하게 하고 혼자 있을 때는 불성실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지요. 에베소서 5장 9절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충성함으로 진실한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섬김이란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상대를 섬기기 위해 내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들여 희생할 때가 많지요. 섬김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아무리 상대에게 많은 것을 주고 희생했다고 하더라도 먼저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면 빛을 발할 수가 없지요.
예를 들어, 직원에게 어떤 일을 부탁했는데 열심히 일은 하지만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고 무뚝뚝하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의 눈치를 보며 다음에 일을 부탁하기가 어렵고 망설여지지요. 아무리 일을 잘해도 "섬기며 일한다!"라고 할 수는 없고, "무섭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까지 섬김의 기준에서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서로 간에 얼마나 사랑과 희생으로 섬기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가령, 교회 안에는 여러 부서 사람들이 함께 쓰는 화장실이나 복도, 계단 등의 공용 장소가 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은 아무리 화장실이 지저분해도 '내 업무가 아니니까' 하고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치 나의 일처럼 깨끗이 하지요. 같은 부서 안에서도 누가 아침에 일찍 와서 책상을 닦아주는지, 쓰레기통을 비우며 청소를 도와주는지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전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행하는지 낱낱이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하게 되면 마음이 불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내 업무도 아닌데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나는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많은데. 이런 사소한 일들은 업무가 적은 사람들이나 직분이 낮은 사람들이 해 줘야 하지 않나?' 하면서 힘들어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일을 했다면 비록 행함으로는 섬겼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상급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일을 해서 결과만 내면 인정을 받지만, 교회에서는 믿음과 사랑으로 행할 때 상급이 됩니다. 세상에서는 돈을 받는 만큼 자기의 업무만 하면 되지만, 교회에서는 보직에 해당되는 일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하나님의 일이 모두 자신의 업무입니다.
겨우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씀씀이를 넓혀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어야 하지요. 세상에서는 낮은 사람이 섬기고 높은 사람이 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대하든지 행위적으로만 섬길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 섬길 때 큰 자가 되어 이 땅에서도 사람들의 존중을 받고 천국에서도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로,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흘려버리지 않고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2장 13절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말씀했습니다. 처음부터 진리대로만 행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쉼 없이 노력해 가야 하지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보시고 영으로 변화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다소 부족하다 할지라도 순종하여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다듬어 일꾼으로 쓰시지요.
가령, 사람들이 처음 사명을 받았을 때는 사명 감당을 위해서 반드시 성결되리라 다짐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직분이 높아지면서 마음의 할례에 대한 간절함이 식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는 진리를 지식으로만 알고 행치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악을 덮어 놓고 절제하므로 크게 악을 행하거나 화평을 깨는 일은 없습니다. 본인이 할 일은 하고, 있어야 할 곳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는 잘하고 있다 생각하지요.
혹여 나는 이러한 모습은 있지 않나 항상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예배나 기도회에 습관적으로 참석하거나 마지못해 앉아 있는지 하나하나 돌아보아야 하지요. 그 상태가 지속되면 신앙이 정체되어 성령의 충만함이 식어지고, 자칫 구원받기 힘든 육체의 일까지 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제단에서 겨우 구원의 문제에 연연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지요.
주님을 영접하여 첫사랑으로 충만할 때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열심히 충성 봉사합니다. 예배나 기도에 늦지 않기 위해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사모함으로 단숨에 달려오지요. 생명의 말씀을 송이꿀처럼 달게 들으며 하나라도 깨우치고 변화되기 위해 금식하며 불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멈춰 있으니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죽은 믿음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고 진실한 행함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라시지요.
누가복음 5장 38절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만들고 계시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묵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진실한 마음과 행함으로 섬길 뿐 아니라 서로 화평하며 질서를 좇아 하나님의 나라를 창대히 이루는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 충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해야 합니다.
둘째, ( )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 )이 있어야 합니다.
2. 여러분 자신에게 진실성, 섬김, 행함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몇 점을 주실 수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읽고 밑줄 쳐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들은 부부이며 초대교회 신자이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하나님께 드렸다. 그런데 이들은 땅을 팔아 일부는 감추고 나머지를 전부라고 속여 사도들 앞에 내놓는다. 결국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인 죄로 혼이 떠나 죽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