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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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2-11
제6과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예수 그리스도
레 25:23~25
읽을말씀 : 레 25:23~25 | 외울말씀 : 롬 5:19 ㅣ 참고 말씀:계 5:1~5
교육목표 :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과 구세주가 되는 자격 조건에 대해 알아본다.
영계의 법에는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죄를 속량할 수 있는 법도 있습니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이 죄로 인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하려면 죄를 속량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과연 사망에 이르는 사람의 죄를 속량하여 첫 사람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법칙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좇아 비밀한 가운데 만세 전에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1. 토지를 사고파는 데 적용되는 토지 무르기 법칙
레위기 25장 23~25절에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近族)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말씀합니다. 즉 토지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 것이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합당한 규정에 따라 근족(가까운 친척)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는 '토지 무르기 법칙'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계약서에 어떤 경로로 토지를 팔고 사는가 하는 계약 과정을 기록하고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기록하게 합니다. 그리고 팔고 사는 사람이 도장을 찍고 증인들을 세워서 1부는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여 성전 창고에 보관합니다. 또 다른 1부는 인봉하지 않다가 언제라도 볼 수 있게 성전 입구에 펼쳐 놓습니다. 이는 언제라도 근족이 와서 대신 토지를 무를 수 있게 하였고, 근족 중에 무를 사람이 없으면 본인이 부를 쌓아 힘이 있을 때 다시 사서 무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도 토지 무르기의 법칙에 따라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천하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모든 권세를 마귀에게 넘겨주게 되었지만(눅 4:6),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영영히 팔지는 못하며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지요.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2.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과 예수 그리스도
이러한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자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고 사람의 근족이어야 하며, 무를 수 있는 힘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4절에 보면 하나님과 마귀가 계약한 책이 나옵니다. 이는 '아담이 불순종하여 마귀에게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넘겨주었지만, 무를 힘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그 권세를 넘겨주겠다.'는 계약서이지요. 그런데 사도 요한이 보니 그 책이 일곱 인으로 봉하여 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크게 웁니다. 그때 장로 중 하나가 나타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즉 다윗의 뿌리 예수 그리스도가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로,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했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는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으면 멸망의 길을 가던 모든 인류가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토지 무르기 법칙에 의하면 돈이 없어 토지를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영영히 팔지 못하기 때문에 토지를 판 사람이 다시 달라고 하면 주어야 합니다. 만일 본인이 무를 힘이 없을 때에는 근족이 대신 물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무르기 위해서는 아담의 근족이어야 하므로 토지 무를 자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토지 무르기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요 1:14). 즉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토지 무르기 법칙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아담은 불순종한 죄가 있으므로 아담의 핏줄을 타고난 인류는 모두 원죄가 있습니다. 죄인이 죄인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없으니,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면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이런 사람을 찾고자 하늘 위를 보니 천사만 있고 땅 위를 살펴보니 아담의 후예인 죄인들만 있고 음부에 있는 영혼들 중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계 5:1~3).
그러면 예수님은 토지 무르기 법칙 두 번째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육적으로는 다윗의 뿌리이지만, 남녀가 결혼하여 잉태된 분이 아니므로 원죄가 없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오직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아담의 후예가 아닙니다(마 1:18~21).
셋째로, 원수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빚을 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여도 자신에게 그만한 재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처럼 죄를 대속하려면 죄를 무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마귀에게 빼앗긴 아담의 권세를 회복하려면 죄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어야 원수 마귀를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토지 무르기 세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을까요?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기 때문에 원죄가 없습니다.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33년 동안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하셨으니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전혀 없으셨지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온전한 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전혀 죄가 없으므로 토지 무를 힘이 있고, 결국에는 원수 마귀가 방해하지 못하고 되돌려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넷째로,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위의 세 가지가 조건이 모두 성립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일 동생이 빚을 졌는데 부자인 형이 빚을 대신 갚아 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룻기 4장 6절을 보면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합니다. 즉 토지 무를 힘이 있지만 무르지 않겠다고 하지요. 그러자 그다음 근족인 보아스가 대신 나오미의 토지를 물어 주는데, 이는 그가 사랑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부로서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큰 축복을 받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는 희생적인 사랑이 없으셨다면 과연 마귀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하나님 자녀로 되찾아 올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시며,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시고,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주시며 오직 선만 행하셨습니다. 그런데도 피조물인 사람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에 독생자를 아낌없이 우리들을 위해 주셨으며,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 뜻을 좇아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며,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행 4:12). 이러한 사실을 밝히 깨달아 하나님 자녀 된 모든 권세를 회복함으로 구원의 확신 속에서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모든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구세주의 자격에 대해 합당한 단어를 ( ) 안에 써 넣으세요.
첫째, ( )이어야 합니다.
둘째, ( )의 ( )가 아니어야 합니다.
셋째, 원수 ( )를 이길 수 있는 ( )이 있어야 합니다.
넷째, ( )까지 줄 수 있는 ( )이 있어야 합니다.
2. 토지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 것이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합당한 규정에 따라 근족(가까운 친척)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도록 하는 법칙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토지는 근본 흙으로 창조된 사람과 직접 연관성이 있다. 관련된 말씀은?
"네가 얼굴에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세기 3장 19절)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창세기 3장 23절)
교육목표 :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과 구세주가 되는 자격 조건에 대해 알아본다.
영계의 법에는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죄를 속량할 수 있는 법도 있습니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이 죄로 인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하려면 죄를 속량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과연 사망에 이르는 사람의 죄를 속량하여 첫 사람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법칙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좇아 비밀한 가운데 만세 전에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1. 토지를 사고파는 데 적용되는 토지 무르기 법칙
레위기 25장 23~25절에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近族)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말씀합니다. 즉 토지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 것이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합당한 규정에 따라 근족(가까운 친척)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는 '토지 무르기 법칙'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계약서에 어떤 경로로 토지를 팔고 사는가 하는 계약 과정을 기록하고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기록하게 합니다. 그리고 팔고 사는 사람이 도장을 찍고 증인들을 세워서 1부는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여 성전 창고에 보관합니다. 또 다른 1부는 인봉하지 않다가 언제라도 볼 수 있게 성전 입구에 펼쳐 놓습니다. 이는 언제라도 근족이 와서 대신 토지를 무를 수 있게 하였고, 근족 중에 무를 사람이 없으면 본인이 부를 쌓아 힘이 있을 때 다시 사서 무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도 토지 무르기의 법칙에 따라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천하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모든 권세를 마귀에게 넘겨주게 되었지만(눅 4:6),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영영히 팔지는 못하며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지요.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놓으셨습니다.
2.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과 예수 그리스도
이러한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자는 아담의 후예가 아니고 사람의 근족이어야 하며, 무를 수 있는 힘과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땅에는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5장 4절에 보면 하나님과 마귀가 계약한 책이 나옵니다. 이는 '아담이 불순종하여 마귀에게 천하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넘겨주었지만, 무를 힘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그 권세를 넘겨주겠다.'는 계약서이지요. 그런데 사도 요한이 보니 그 책이 일곱 인으로 봉하여 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크게 웁니다. 그때 장로 중 하나가 나타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즉 다윗의 뿌리 예수 그리스도가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첫째로,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보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했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는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따라서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 한 사람이 있으면 멸망의 길을 가던 모든 인류가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토지 무르기 법칙에 의하면 돈이 없어 토지를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영영히 팔지 못하기 때문에 토지를 판 사람이 다시 달라고 하면 주어야 합니다. 만일 본인이 무를 힘이 없을 때에는 근족이 대신 물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자녀를 하나님의 자녀로 무르기 위해서는 아담의 근족이어야 하므로 토지 무를 자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왜 예수님은 토지 무르기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요 1:14). 즉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토지 무르기 법칙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신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아담은 불순종한 죄가 있으므로 아담의 핏줄을 타고난 인류는 모두 원죄가 있습니다. 죄인이 죄인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없으니,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면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사도 요한이 이런 사람을 찾고자 하늘 위를 보니 천사만 있고 땅 위를 살펴보니 아담의 후예인 죄인들만 있고 음부에 있는 영혼들 중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계 5:1~3).
그러면 예수님은 토지 무르기 법칙 두 번째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육적으로는 다윗의 뿌리이지만, 남녀가 결혼하여 잉태된 분이 아니므로 원죄가 없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오직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아담의 후예가 아닙니다(마 1:18~21).
셋째로, 원수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빚을 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여도 자신에게 그만한 재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처럼 죄를 대속하려면 죄를 무를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하는데,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입니다. 그러므로 원수 마귀에게 빼앗긴 아담의 권세를 회복하려면 죄가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어야 원수 마귀를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토지 무르기 세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을까요?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기 때문에 원죄가 없습니다.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33년 동안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하셨으니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전혀 없으셨지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온전한 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전혀 죄가 없으므로 토지 무를 힘이 있고, 결국에는 원수 마귀가 방해하지 못하고 되돌려 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넷째로,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위의 세 가지가 조건이 모두 성립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일 동생이 빚을 졌는데 부자인 형이 빚을 대신 갚아 줄 사랑이 없으면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룻기 4장 6절을 보면 "그 기업 무를 자가 가로되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합니다. 즉 토지 무를 힘이 있지만 무르지 않겠다고 하지요. 그러자 그다음 근족인 보아스가 대신 나오미의 토지를 물어 주는데, 이는 그가 사랑이 많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보아스는 다윗의 증조부로서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큰 축복을 받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는 희생적인 사랑이 없으셨다면 과연 마귀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하나님 자녀로 되찾아 올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시며,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시고,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주시며 오직 선만 행하셨습니다. 그런데도 피조물인 사람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기에 독생자를 아낌없이 우리들을 위해 주셨으며,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 뜻을 좇아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는 오직 예수님 한 분이며,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행 4:12). 이러한 사실을 밝히 깨달아 하나님 자녀 된 모든 권세를 회복함으로 구원의 확신 속에서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항상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모든 인류의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구세주의 자격에 대해 합당한 단어를 ( ) 안에 써 넣으세요.
첫째, ( )이어야 합니다.
둘째, ( )의 ( )가 아니어야 합니다.
셋째, 원수 ( )를 이길 수 있는 ( )이 있어야 합니다.
넷째, ( )까지 줄 수 있는 ( )이 있어야 합니다.
2. 토지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 것이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합당한 규정에 따라 근족(가까운 친척)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도록 하는 법칙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토지는 근본 흙으로 창조된 사람과 직접 연관성이 있다. 관련된 말씀은?
"네가 얼굴에 …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창세기 3장 19절)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창세기 3장 23절)
2011-02-03
제5과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1. 주 안에서의 '설'에 대한 이해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의 나라들에 있어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이란 한 해의 첫날을 지칭하는 말로 음력 1월 1일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는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설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우리 조상들은 설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정의 평안과 건강 그 밖에 마음의 소원을 기원하며 막연히 신에게 복을 빌거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습니다. 이러한 축복과 마음의 소원의 응답은 오직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하나님께 맡겨 드린다는 의미를 담아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2.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 고유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도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셨으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기 원 ------------------------------------------------------ 사회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찬 송 ------------------------ 460장 ----------------------- 다 같이
1.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2.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3.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잖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기 도 ---------------------------------------------------가족 중에서
(기도 예문)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설을 맞아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렇게 함께 모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새로운 한 해의 출발을 맞아 하나님 말씀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 가족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옵시고,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후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 에베소서 5:20~21 ------------------- 사회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설 교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설교자
(설교 예문)
먼저 에베소서 5장 20절을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말씀합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킴 받고 보호받으며 살았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아버지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 기근과 전쟁, 폭설과 폭우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가 얼마나 많은지요. 또한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여 날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방면에서 아수라장 같은 혼란이 더해만 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자녀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기에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염려, 걱정,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한 해 동안도 항상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고 보호하시며 늘 좋은 것으로 주기를 원하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아버지 하나님께 다 함께 감사를 드립시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고,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7편 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지켜 주셨기에 설 명절을 맞아 이 시간 한자리에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설날에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갑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을 믿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몰랐기에 그동안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야 하지요.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응답과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장차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을 주실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모든 것에 부족됨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 주시지요. 그러니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할 때 더욱 기쁘게 여기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넘치도록 축복해 주십니다(롬 8:28).
감사는 어떠한 환경이라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유에서 유의 창조만 믿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영의 눈, 즉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무에서 유가 창조될 것을 믿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에베소서 5장 21절에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말씀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것이요, 섬기는 것이며 진리 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헛된 자존심과 교만, 스스로 옳다고 하는 생각과 이론을 모두 버려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내게 잘해 주니까, 저 사람은 나보다 윗사람이니까' 섬기고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처럼 마음 중심에서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부모에게 효를 행하고 윗사람을 섬기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 등 선을 행하는 모습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근본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은 자연히 상대를 높이고 섬겨 주며 자신을 낮추는 아름다운 행실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고유 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더욱 복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먼저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말씀하신 대로 주 안에서 서로 섬기며 상대를 위해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내 주장, 내 의견, 내 생각만을 고집할 때는 서로 간에 불목할 수밖에 없지만,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을 본받아 피차 복종한다면 얼마나 화목한 가정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주 안에서 경건하며 화평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 도 ------------------------------------------------------ 설교자
찬 송 -------------------------- 305장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교육목표 :
1. 주 안에서의 '설'에 대한 이해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의 나라들에 있어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설'이란 한 해의 첫날을 지칭하는 말로 음력 1월 1일을 가리킵니다. 여기에는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우리는 신앙 안에서 설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우리 조상들은 설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정의 평안과 건강 그 밖에 마음의 소원을 기원하며 막연히 신에게 복을 빌거나 조상에게 차례를 지냈습니다. 이러한 축복과 마음의 소원의 응답은 오직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만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안에서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새해를 하나님께 맡겨 드린다는 의미를 담아 행복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2.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우리 민족 고유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지난 한 해 동안도 항상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해 주셨으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모아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기 원 ------------------------------------------------------ 사회자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찬 송 ------------------------ 460장 ----------------------- 다 같이
1.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2.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3.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잖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기 도 ---------------------------------------------------가족 중에서
(기도 예문)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감사를 드립니다. 설을 맞아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함께 모여 지난날 베풀어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과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이렇게 함께 모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을 회개하오니 주님의 보혈로써 사해 주옵시고, 새로운 한 해의 출발을 맞아 하나님 말씀 안에서 온전히 살아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 자리에 함께 모인 우리 가족들이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이 되게 하옵시고,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행복한 시간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땅의 헛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늘나라에 소망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저희 모든 가족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후 시간도 우리 모두가 주 안에서 기쁘고 행복한 설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축복하여 주심을 믿고 감사드리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성경봉독 ---------------- 에베소서 5:20~21 ------------------- 사회자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설 교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설교자
(설교 예문)
먼저 에베소서 5장 20절을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말씀합니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의 자녀로서 지킴 받고 보호받으며 살았다는 사실 한 가지만으로도 아버지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릴 수 있습니다.
오늘날 세계 도처에 기근과 전쟁, 폭설과 폭우 등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가 얼마나 많은지요. 또한 세상에 죄악이 관영하여 날마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모든 방면에서 아수라장 같은 혼란이 더해만 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참 자녀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기에 조금도 두려워하거나 염려, 걱정, 근심하지 않고 오히려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앞으로 한 해 동안도 항상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고 보호하시며 늘 좋은 것으로 주기를 원하시며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실 아버지 하나님께 다 함께 감사를 드립시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드립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가 있고,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습니다.
시편 127편 1절에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을 지켜 주셨기에 설 명절을 맞아 이 시간 한자리에 모여 감사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설날에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돌아가신 조상을 위해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고 있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갑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기독교는 이 땅에서 주님을 믿었던 하나님 자녀들이 사후에는 그 영혼이 천국에 가는 것을 믿습니다. 이러한 진리를 몰랐기에 그동안 죽은 사람을 위해 제사하기도 했으나, 이제는 진리를 바로 알아 오직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려야 하지요.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성경에 기록된 말씀 안에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응답과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장차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을 주실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모든 것에 부족됨이 없도록 넘치게 채워 주시지요. 그러니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는 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여기서 범사에 감사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든 궂은일이든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할 때 더욱 기쁘게 여기시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넘치도록 축복해 주십니다(롬 8:28).
감사는 어떠한 환경이라도 변화시키는 놀라운 능력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유에서 유의 창조만 믿지만,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영의 눈, 즉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기에 무에서 유가 창조될 것을 믿고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에베소서 5장 21절에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말씀합니다. 주님의 가르침은 자신을 겸손히 낮추는 것이요, 섬기는 것이며 진리 안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헛된 자존심과 교만, 스스로 옳다고 하는 생각과 이론을 모두 버려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내게 잘해 주니까, 저 사람은 나보다 윗사람이니까' 섬기고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주님처럼 마음 중심에서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람이 부모에게 효를 행하고 윗사람을 섬기며,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아끼고 사랑하는 것 등 선을 행하는 모습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근본은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 있습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사람은 자연히 상대를 높이고 섬겨 주며 자신을 낮추는 아름다운 행실이 나오게 됩니다.
우리가 고유 명절인 설을 맞이하여 더욱 복된 가정을 이루기 위해 먼저는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말씀하신 대로 주 안에서 서로 섬기며 상대를 위해 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내 주장, 내 의견, 내 생각만을 고집할 때는 서로 간에 불목할 수밖에 없지만,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주님을 본받아 피차 복종한다면 얼마나 화목한 가정이 되겠습니까. 이렇게 주 안에서 경건하며 화평하고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기 도 ------------------------------------------------------ 설교자
찬 송 -------------------------- 305장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2011-01-28
제4과선악과를 두신 이유
창 3:1~7
읽을말씀 : 창 3:1~7 | 외울말씀 : 약 1:15 ㅣ참고 말씀:창 2:17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와 왜 아담이 불순종하여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본다.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깊고 오묘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두어 사람을 멸망의 길로 가게 하셨느냐?"고 묻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죽음을 보지 않고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 일부러 선악과를 두고 사망의 길로 인도하셨을 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이며 어째서 아담이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을까요?
1.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창 2:7). 생령이란 살아 있는 영이란 뜻입니다. 아담이 처음 생령이 되었을 때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지식이나 지혜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뇌세포 안에 기억장치를 주셨지만 아직 보고 듣고 가르침 받은 것이 없기 때문에 본능적인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요. 몸은 성인의 모습이지만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즉 영의 지식이나 지혜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아담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그곳으로 아담을 이끌어 들이시고 영의 지식을 하나하나 가르치며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셨지요(창 2:19). 천지 만물의 조화와 영계의 법칙,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에 관한 무한한 지식을 알려 주시며 땅을 정복하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또한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돕는 배필로 여자인 하와를 지어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는 아담이 스스로 외롭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홀로 계신 하나님께서 아담의 형편을 미리 헤아려 베푸신 사랑입니다.
2. 사단의 사주를 받아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에덴동산에서 자녀 된 권세를 마음껏 누리며 풍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금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 사이에 질서를 세우시고 마음 중심에서 순종하는 자녀를 얻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결국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사단이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해 하와를 유혹하니 결국 아담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사단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말하지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창 2:17). 그런데 하와는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고 하나님 말씀을 변개하여 답변한 것입니다.
하와의 답변을 들은 뱀은 더욱 적극적으로 여자를 유혹합니다. 창세기 3장 4~5절을 보면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며 하나님 말씀을 완전히 부정하지요. 뿐만 아니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면서 재차 유혹합니다.
사단이 여자의 생각에 욕심을 불어넣으니 선악과가 예전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곧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여(창 3:6) 그만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남편에게 주니 그도 먹고 말았지요.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 악이 있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다"고 하는데, 아담이 불순종하기 전에는 전혀 악이 없었습니다. 다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에 따라 선악과를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었지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다가 사단이 뱀을 통하여 유혹하자 하나님께서 세운 질서에 불순종하므로 악이 들어왔습니다. 즉 생령으로 창조된 사람에게 처음부터 악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유 의지 가운데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악이 성립되었고, 비로소 죄가 잉태된 것입니다.
3. 죄의 삯은 사망
로마서 6장 23절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이 나오는데, 과연 사망이 불순종의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어떻게 임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하고 곧바로 죽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을 향수하며 자녀를 낳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죽음이란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의 죽음을 뜻합니다. 원래 사람은 생령으로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습니다(살전 5:23). 그런데 하나님 명령을 어기니 주인인 영이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생령이었을 때는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지만 죄 때문에 영이 죽으니 교통이 끊어지고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이때부터 인류의 고난이 시작되어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이 크게 더하여 수고하며 자녀를 낳고, 또 남편을 사모하며 그의 다스림을 받았습니다. 남자는 저주받은 땅에서 평생토록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을 수 있었지요(창 3:16~17). 또한 인류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되었고, 아담의 후손들 또한 모두가 죄인으로 태어나 죄의 삯인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러면 사단의 사주를 받아 하와를 미혹한 뱀은 어떠한 저주를 받았을까요?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흙은 영적으로 흙으로 창조된 사람을 말하며(창 2:7), 뱀은 원수 마귀 사단을 뜻합니다(계 20:2). 하나님께서 뱀에게 흙을 먹으라고 하신 것은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바로 원수 마귀 사단의 밥이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므로(벧전 5:8) 시험 환난이 찾아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말씀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4.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신 이유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의 가장 중앙에 두신 이유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고 멸망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대성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지요.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아주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상대성을 모르기 때문에 참 행복과 사랑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아담은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땀 흘려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니었기에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오랜 세월이 흐르자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말았지요. 결국 이 땅으로 쫓겨난 후에야 눈물, 슬픔, 고통, 불행, 죽음 등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그제야 행복과 불행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하나님 안에서 누리던 자유와 풍요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지요.
자녀들이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고 학교에 보내지 않고 놀게 할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비록 고생스럽더라도 장래를 위해 배우고 익히게끔 하지요. 이 땅에 인간을 두고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이러한 부모 마음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두고 아담이 자유 의지에 따라 먹어도 막지 않으셨고, 인간 경작을 통해 이 땅에서 모든 희로애락을 경험하도록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상대성을 체험하며 진정한 사랑과 기쁨, 감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경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상대성을 알고 참사랑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두시고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신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와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게 된 경로를 보기의 단어를 넣어 이야기해 봅시다.
(하와, 뱀, 사단, 선악과, 자유 의지, 불순종, 사망)
2.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알고 넘어 갑시다!
'자유 의지'(free will)란?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조절, 통제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말한다. 즉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도록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능력과 특권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와 왜 아담이 불순종하여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는지 알아본다.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깊고 오묘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두어 사람을 멸망의 길로 가게 하셨느냐?"고 묻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죽음을 보지 않고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사랑의 하나님께서 일부러 선악과를 두고 사망의 길로 인도하셨을 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이며 어째서 아담이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을까요?
1.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어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창 2:7). 생령이란 살아 있는 영이란 뜻입니다. 아담이 처음 생령이 되었을 때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지식이나 지혜가 없는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뇌세포 안에 기억장치를 주셨지만 아직 보고 듣고 가르침 받은 것이 없기 때문에 본능적인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지요. 몸은 성인의 모습이지만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즉 영의 지식이나 지혜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아담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그곳으로 아담을 이끌어 들이시고 영의 지식을 하나하나 가르치며 에덴동산을 다스리고 지키게 하셨지요(창 2:19). 천지 만물의 조화와 영계의 법칙, 진리의 말씀과 하나님에 관한 무한한 지식을 알려 주시며 땅을 정복하고 지키게 하셨습니다. 또한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함을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돕는 배필로 여자인 하와를 지어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이는 아담이 스스로 외롭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홀로 계신 하나님께서 아담의 형편을 미리 헤아려 베푸신 사랑입니다.
2. 사단의 사주를 받아 뱀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창설하신 에덴동산에서 자녀 된 권세를 마음껏 누리며 풍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금한 것이 있었는데 바로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 사이에 질서를 세우시고 마음 중심에서 순종하는 자녀를 얻고자 하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결국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사단이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해 하와를 유혹하니 결국 아담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사단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고 말하지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셨습니다(창 2:17). 그런데 하와는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고 하나님 말씀을 변개하여 답변한 것입니다.
하와의 답변을 들은 뱀은 더욱 적극적으로 여자를 유혹합니다. 창세기 3장 4~5절을 보면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며 하나님 말씀을 완전히 부정하지요. 뿐만 아니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면서 재차 유혹합니다.
사단이 여자의 생각에 욕심을 불어넣으니 선악과가 예전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곧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여(창 3:6) 그만 여자가 그 실과를 따 먹고 남편에게 주니 그도 먹고 말았지요.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 악이 있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다"고 하는데, 아담이 불순종하기 전에는 전혀 악이 없었습니다. 다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에 따라 선악과를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었지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다가 사단이 뱀을 통하여 유혹하자 하나님께서 세운 질서에 불순종하므로 악이 들어왔습니다. 즉 생령으로 창조된 사람에게 처음부터 악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유 의지 가운데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악이 성립되었고, 비로소 죄가 잉태된 것입니다.
3. 죄의 삯은 사망
로마서 6장 23절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이 나오는데, 과연 사망이 불순종의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어떻게 임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하고 곧바로 죽지 않았습니다. 오랜 세월을 향수하며 자녀를 낳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죽음이란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의 죽음을 뜻합니다. 원래 사람은 생령으로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습니다(살전 5:23). 그런데 하나님 명령을 어기니 주인인 영이 죽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생령이었을 때는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지만 죄 때문에 영이 죽으니 교통이 끊어지고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이때부터 인류의 고난이 시작되어 여자는 잉태하는 고통이 크게 더하여 수고하며 자녀를 낳고, 또 남편을 사모하며 그의 다스림을 받았습니다. 남자는 저주받은 땅에서 평생토록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을 수 있었지요(창 3:16~17). 또한 인류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되었고, 아담의 후손들 또한 모두가 죄인으로 태어나 죄의 삯인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러면 사단의 사주를 받아 하와를 미혹한 뱀은 어떠한 저주를 받았을까요?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흙은 영적으로 흙으로 창조된 사람을 말하며(창 2:7), 뱀은 원수 마귀 사단을 뜻합니다(계 20:2). 하나님께서 뱀에게 흙을 먹으라고 하신 것은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바로 원수 마귀 사단의 밥이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므로(벧전 5:8) 시험 환난이 찾아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말씀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4.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신 이유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의 가장 중앙에 두신 이유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고 멸망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대성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지요. 사람들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아주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상대성을 모르기 때문에 참 행복과 사랑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아담은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땀 흘려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니었기에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오랜 세월이 흐르자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말았지요. 결국 이 땅으로 쫓겨난 후에야 눈물, 슬픔, 고통, 불행, 죽음 등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아담은 그제야 행복과 불행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하나님 안에서 누리던 자유와 풍요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지요.
자녀들이 공부하는 것이 힘들다고 학교에 보내지 않고 놀게 할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비록 고생스럽더라도 장래를 위해 배우고 익히게끔 하지요. 이 땅에 인간을 두고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마음도 이러한 부모 마음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두고 아담이 자유 의지에 따라 먹어도 막지 않으셨고, 인간 경작을 통해 이 땅에서 모든 희로애락을 경험하도록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상대성을 체험하며 진정한 사랑과 기쁨, 감사가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고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경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상대성을 알고 참사랑과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두시고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신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와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따 먹게 된 경로를 보기의 단어를 넣어 이야기해 봅시다.
(하와, 뱀, 사단, 선악과, 자유 의지, 불순종, 사망)
2.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알고 넘어 갑시다!
'자유 의지'(free will)란?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조절, 통제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말한다. 즉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도록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능력과 특권이다.
2011-01-21
제3과사람을 경작하시는 하나님
창 1:27, 마 3:12
읽을말씀 : 창 1:27, 마 3:12 | 외울말씀 : 마 3:12 ㅣ참고 말씀:딤전 2:4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의 인간 경작의 섭리를 통해 알곡은 천국에 들이고 쭉정이는 지옥으로 던져 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많은 비유로써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려 주셨습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영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땅의 것들로 비유하여 깨우쳐 주고자 한 것입니다(마 13:34).
그중에는 씨 뿌리는 비유, 겨자씨 비유, 밭의 가라지의 비유, 포도원의 비유, 불의한 농부의 비유 등 경작에 관한 비유가 많습니다. 이는 농부가 땅을 개간하여 씨를 뿌리고 가꾸어 열매를 거두듯이,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시고, 때가 되면 알곡을 천국으로 들인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1. 하나님께서 사람을 경작하시는 이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우주 공간에 홀로 계셨습니다. 지극히 아름답고 영롱한 빛 안에 맑고 청아한 소리를 머금고 온 우주공간을 다스리신 것입니다(요일 1:5, 요 1:1).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함께 느끼며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갖고 계시기에 홀로 누리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품으신 하나님은 인간 경작을 위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공간을 오묘하게 분리하시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멈추지 않고 사람을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깨달아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어떤 부모에게 두 자녀가 있는데 큰아이는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사랑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반면 작은아이는 부모님을 서운케 할 때도 있지만 이내 돌이키며 사랑스럽게 매달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면 어느 자녀가 더 사랑스럽겠습니까? 또한 가정에 로봇이 있어 밥도 짓고 청소도 하며 모든 시중을 다 들어 준다고 해서 자녀보다 로봇이 더 사랑스러울까요? 로봇이 아무리 유익하다고 해도 자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도 순종을 잘하는 천군 천사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성과 감정을 가지고 자유 의지 가운데 즐거이 순종하는 자녀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자유 의지를 주시고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시며 참 자녀로 나오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경작이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를 통해 열매를 얻는 과정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경작하는 수고를 통해 참 자녀를 얻고자 이 땅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번째 씨를 심으시고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을 경작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사람은 흙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마음밭을 개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창세기 6장 5~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만세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는 자녀를 기르는 부모의 심정을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자녀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고생스러운 일입니까? 잉태한 열 달 동안 여러 고통이 따르고, 해산할 때에도 큰 수고를 해야 합니다. 자녀를 먹이고 입히며 가르치기 위해 힘써 일하며 밤낮으로 수고해야 하지요. 그런데도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이유는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부모를 진정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대상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며 극진히 섬기고 효도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불순종하고 타락하여 근심할 것을 아셨지만,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가 나올 것을 아시기에 기꺼이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2.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하나님
농부가 열심히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농사를 짓는 이유는 추수 때에 많은 소산을 거둘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추수 때 보면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쭉정이도 섞여 나옵니다. 이때 알곡은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인간 경작을 마친 뒤에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2절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참 자녀인 알곡은 천국에 들이지만 쭉정이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태우십니다. 그러면 알곡과 쭉정이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알곡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진리 안에 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즉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말씀대로 행하는 빛의 자녀들이지요. 반면에 쭉정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거나 입술로는 믿는다지만 말씀 안에 살지 않고 여전히 악을 행하며 세상의 정욕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모든 사람이 알곡이 되어 천국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여러 방법으로 깨우치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만 자유 의지 속에서 끝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으므로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가치를 잃은 쭉정이는 결국 어떻게 될까요? 사람은 짐승과 달리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생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에 영원불멸하는 영혼이 있습니다. 따라서 짐승처럼 아예 무 상태로 멸해 버릴 수도 없고 알곡 성도와 함께 아름다운 천국에 들이실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알곡 성도는 모아서 천국에 들여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시지만 쭉정이는 세세토록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태우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천국과 함께 참혹한 지옥을 두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농부가 알곡과 쭉정이를 함께 두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온갖 악이 가득한 사람이 아름다운 천국에 함께 거한다면 죄악으로 오염될 수밖에 없으니 하나님께서 지옥을 따로 두신 것도 근본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3. 인간 경작과 백보좌 대심판
농부가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이 한 해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같이 하나님께서도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 경작을 멈추지 않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려 주시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베드로, 바울 등 믿음의 선진을 보내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하시며 놀라운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종과 일꾼을 통해 끊임없이 인간을 경작하시며 깨어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듯이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는 것도 한없이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하신 대로 때가 이르면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마쳐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창조 사역을 마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처럼, 인간 경작의 역사가 끝나면 백보좌 대심판을 통해 알곡은 아름다운 천국으로, 쭉정이는 지옥불에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고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크신 사랑을 깨달아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보세요.
영적으로 알곡이란 ( )를 영접하여 진리 안에 살면서 ( )을 사랑하는 사람을 말하며, 이들은 아름다운 ( )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말씀대로 행하는 ( )를 말합니다.
3. 다음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아는 것만 0표 해 보세요.
주님의 공중강림, 주님의 지상재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알고 넘어 갑시다!
'알파와 오메가'란? 문명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는 뜻이다.
'처음과 나중'이란?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재림하심으로써 구속 사업을 마무리 하신다는 뜻이다.
'시작과 끝'이란? 성령께서 인간 경작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신다는 뜻이다.
교육목표 : 창조주 하나님의 인간 경작의 섭리를 통해 알곡은 천국에 들이고 쭉정이는 지옥으로 던져 버릴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많은 비유로써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려 주셨습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영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땅의 것들로 비유하여 깨우쳐 주고자 한 것입니다(마 13:34).
그중에는 씨 뿌리는 비유, 겨자씨 비유, 밭의 가라지의 비유, 포도원의 비유, 불의한 농부의 비유 등 경작에 관한 비유가 많습니다. 이는 농부가 땅을 개간하여 씨를 뿌리고 가꾸어 열매를 거두듯이,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시고, 때가 되면 알곡을 천국으로 들인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1. 하나님께서 사람을 경작하시는 이유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우주 공간에 홀로 계셨습니다. 지극히 아름답고 영롱한 빛 안에 맑고 청아한 소리를 머금고 온 우주공간을 다스리신 것입니다(요일 1:5, 요 1:1).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함께 느끼며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갖고 계시기에 홀로 누리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품으신 하나님은 인간 경작을 위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영원 전부터 계신 공간을 오묘하게 분리하시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와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멈추지 않고 사람을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깨달아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어떤 부모에게 두 자녀가 있는데 큰아이는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사랑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반면 작은아이는 부모님을 서운케 할 때도 있지만 이내 돌이키며 사랑스럽게 매달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면 어느 자녀가 더 사랑스럽겠습니까? 또한 가정에 로봇이 있어 밥도 짓고 청소도 하며 모든 시중을 다 들어 준다고 해서 자녀보다 로봇이 더 사랑스러울까요? 로봇이 아무리 유익하다고 해도 자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도 순종을 잘하는 천군 천사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성과 감정을 가지고 자유 의지 가운데 즐거이 순종하는 자녀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창조하시되 자유 의지를 주시고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시며 참 자녀로 나오기까지 오랜 세월 동안 참고 기다리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경작이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를 통해 열매를 얻는 과정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경작하는 수고를 통해 참 자녀를 얻고자 이 땅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번째 씨를 심으시고 오늘날까지 수많은 사람을 경작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사람은 흙으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마음밭을 개간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창세기 6장 5~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이렇게 될 줄 몰랐을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만세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는 자녀를 기르는 부모의 심정을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자녀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고생스러운 일입니까? 잉태한 열 달 동안 여러 고통이 따르고, 해산할 때에도 큰 수고를 해야 합니다. 자녀를 먹이고 입히며 가르치기 위해 힘써 일하며 밤낮으로 수고해야 하지요. 그런데도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이유는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부모를 진정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대상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며 극진히 섬기고 효도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불순종하고 타락하여 근심할 것을 아셨지만,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가 나올 것을 아시기에 기꺼이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2.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하나님
농부가 열심히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농사를 짓는 이유는 추수 때에 많은 소산을 거둘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추수 때 보면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쭉정이도 섞여 나옵니다. 이때 알곡은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인간 경작을 마친 뒤에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3장 12절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참 자녀인 알곡은 천국에 들이지만 쭉정이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태우십니다. 그러면 알곡과 쭉정이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알곡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진리 안에 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즉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말씀대로 행하는 빛의 자녀들이지요. 반면에 쭉정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거나 입술로는 믿는다지만 말씀 안에 살지 않고 여전히 악을 행하며 세상의 정욕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모든 사람이 알곡이 되어 천국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여러 방법으로 깨우치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지만 자유 의지 속에서 끝내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으므로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러면 사람의 가치를 잃은 쭉정이는 결국 어떻게 될까요? 사람은 짐승과 달리 하나님께서 창조하실 때에 생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에 영원불멸하는 영혼이 있습니다. 따라서 짐승처럼 아예 무 상태로 멸해 버릴 수도 없고 알곡 성도와 함께 아름다운 천국에 들이실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알곡 성도는 모아서 천국에 들여 영원한 행복을 누리게 하시지만 쭉정이는 세세토록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태우실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천국과 함께 참혹한 지옥을 두실 수밖에 없는 이유는 농부가 알곡과 쭉정이를 함께 두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온갖 악이 가득한 사람이 아름다운 천국에 함께 거한다면 죄악으로 오염될 수밖에 없으니 하나님께서 지옥을 따로 두신 것도 근본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3. 인간 경작과 백보좌 대심판
농부가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이 한 해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같이 하나님께서도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 경작을 멈추지 않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려 주시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베드로, 바울 등 믿음의 선진을 보내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또한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하시며 놀라운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종과 일꾼을 통해 끊임없이 인간을 경작하시며 깨어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듯이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는 것도 한없이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8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하신 대로 때가 이르면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마쳐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창조 사역을 마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처럼, 인간 경작의 역사가 끝나면 백보좌 대심판을 통해 알곡은 아름다운 천국으로, 쭉정이는 지옥불에 던져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인간을 창조하고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와 크신 사랑을 깨달아 인생의 의미와 목적을 분명히 알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천국과 영생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보세요.
영적으로 알곡이란 ( )를 영접하여 진리 안에 살면서 ( )을 사랑하는 사람을 말하며, 이들은 아름다운 ( )에서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곧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말씀대로 행하는 ( )를 말합니다.
3. 다음 단어의 뜻이 무엇인지 알고 있나요? 아는 것만 0표 해 보세요.
주님의 공중강림, 주님의 지상재림, 천년왕국, 백보좌 대심판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알고 넘어 갑시다!
'알파와 오메가'란? 문명의 시작과 끝이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는 뜻이다.
'처음과 나중'이란?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재림하심으로써 구속 사업을 마무리 하신다는 뜻이다.
'시작과 끝'이란? 성령께서 인간 경작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신다는 뜻이다.
2011-01-14
제2과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 1:1
읽을말씀 : 창 1:1 | 외울말씀 : 창 2:7 ㅣ 참고 말씀:롬 1:20
교육목표 : 창조론과 진화론의 차이점을 깨닫고 창조론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사랑과 섭리를 깨닫게 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창조주이며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배운다면 진리를 알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구체적이면서도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시며 창조 사역을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신 대략적인 과정과 6일 동안 본격적으로 지구 위에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이 교과과정에서 진화론의 영향을 받으며, 그 외에도 생활 속에서 습득하는 지식 중에 진리에 비추어 옳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과연 진리는 무엇일까요?
1.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주 만물을 설계하시고 창조하셨다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 중심으로 그분의 뜻을 좇아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산다는 신본주의(神本主義) 사상이지요. 반면 진화론은 모든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자연 발생하여 하등에서 고등으로, 동종에서 이종으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유인원이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고집하지요.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근원을 우연의 산물로 보며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 사상이 팽배합니다. 이들은 삶의 목적을 이 땅에 두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며 살아갑니다. 인생을 즐기며 마음껏 누리는 것이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지만 참된 기쁨과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결국 육체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지니 얼마나 허무하고 공허한 인생입니까?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반드시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장난감에서부터 하늘을 나는 비행기까지 누군가가 만들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천지 만물도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이 있어 그분의 마음에 맞게 설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 보면 하나님을 조물주라 하였고 하나님께서 모든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하셨지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증거는 성경뿐 아니라 우주 만물 안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우주 만물을 돌아보면 동서남북과 사계절이 있고,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의 교차, 바람과 구름의 이동 등 우주 안의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운행되지요. 이것을 어찌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가 아닌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전 세계의 사람이나 짐승, 새, 물고기가 한결같이 눈은 두 개요, 코는 하나에 입도 하나, 귀는 두 개요 그 위치 선정까지 똑같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조물주 한 분에 의해 우주 만물이 창조되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분명히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천지 만물을 바라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느낄 수 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는 하나님을 몰라서 못 믿었습니다."라고 핑계할 수 없도록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지요(창 1:28).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만드셨을까요?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흙이란 진흙을 말합니다. 뛰어난 도공은 좋은 진흙을 사용하여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 대를 호가하는 도자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질그릇이나 기왓장, 혹은 값싼 벽돌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요. 누가 어떤 재료로 어떤 물건을 만들었느냐에 따라 가치가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을 따라 사람을 빚으셨으니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이렇게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뒤에는 그 코에 생기 즉 살아 있는 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러자 사람이 살아 있는 영, 곧 생령이 된 것입니다. 생기란 하나님의 기로서 힘, 능력, 에너지, 영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생령으로 창조된 과정은 형광등이 빛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형광등이 빛을 내게 하려면 먼저 잘 조립된 형광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형광등이 빛을 낼 수 없으며, 전원과 연결되어 전기가 흘러야 비로소 빛을 냅니다. 가정에 있는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이지요. 아무런 움직임 없이 죽어 있는 듯한 물건인데 전원을 연결하면 화면에 갖가지 영상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화면을 띄우기까지는 외관상으로 스위치만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오밀조밀한 부속품이 매우 복잡하게 조립되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흙으로 사람의 형상만을 빚은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오장육부와 뼈도 만들어 놓고 피가 통할 수 있는 핏줄과 또한 완벽하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신경조직을 다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전류를 통하게 하듯 하나님의 근본 된 능력이 들어 있는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곧 피가 돌고 호흡하며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또한 머리의 뇌세포 안에 기억 장치를 만들어 놓으니 사람이 듣고 보고 느끼는 대로 입력이 되고 기억하면서 지식이 되고, 이것이 재생되어 나오니 생각이 되며, 지식을 활용하여 지혜가 되었습니다.
피조물인 사람도 지혜와 지식이 더하여 문자나 사람의 음성을 인식하여 대화할 수 있는 컴퓨터까지 만들어 내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빚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을 만드는 것이 어찌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참으로 쉬운 일이지만 한계가 있는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신기하고 측량하기 어려운 일이지요(시 139:14).
3.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도록 가르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시고 그곳을 지키며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막 태어난 어린아이가 처음에는 생리작용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환경 조건을 통하여 부모, 형제, 교사 등을 통해 여러 가지 교육을 받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천지 만물의 조화와 영계의 법칙과 진리의 말씀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이런 것은 먹어도 되지만 저런 것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하나하나 상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짓고 맙니다. 그 결과 죄의 삯인 사망이 임하여 사람에게 있어 주인의 역할을 하는 영이 죽게 되었고, 결국 영원히 살 수 없는 육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사람들의 이러한 불순종을 미리 아셨지만 사랑이 많으시기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시며 복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하나님 사랑을 깨달아 구원의 섭리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조주 하나님에 관련된 것을 모두 고르시오.
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영계의 법칙과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다.
② 사람이나 짐승, 새, 고기가 한결같이 눈은 두 개요, 코는 하나에 입도 하나, 귀는 두 개요 그 위치 선정까지 똑같은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③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자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④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의 교차, 바람과 구름의 이동 등 우주 안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 속에 질서정연하게 운행된다.
⑤ 진화론은 학교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참된 진리이다.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알고 넘어 갑시다!
'유인원(類人猿)'이란?
긴팔원숭이,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등 원숭이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교육목표 : 창조론과 진화론의 차이점을 깨닫고 창조론을 믿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사랑과 섭리를 깨닫게 한다.
우리가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창조주이며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배운다면 진리를 알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구체적이면서도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시며 창조 사역을 시작하여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신 대략적인 과정과 6일 동안 본격적으로 지구 위에 천하 만물을 창조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이 교과과정에서 진화론의 영향을 받으며, 그 외에도 생활 속에서 습득하는 지식 중에 진리에 비추어 옳지 않은 것이 많습니다. 과연 진리는 무엇일까요?
1.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주 만물을 설계하시고 창조하셨다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 중심으로 그분의 뜻을 좇아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산다는 신본주의(神本主義) 사상이지요. 반면 진화론은 모든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자연 발생하여 하등에서 고등으로, 동종에서 이종으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유인원이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고집하지요.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근원을 우연의 산물로 보며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 사상이 팽배합니다. 이들은 삶의 목적을 이 땅에 두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며 살아갑니다. 인생을 즐기며 마음껏 누리는 것이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지만 참된 기쁨과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결국 육체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지니 얼마나 허무하고 공허한 인생입니까?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반드시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장난감에서부터 하늘을 나는 비행기까지 누군가가 만들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천지 만물도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이 있어 그분의 마음에 맞게 설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성경 곳곳에 보면 하나님을 조물주라 하였고 하나님께서 모든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말씀하셨지요.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증거는 성경뿐 아니라 우주 만물 안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우주 만물을 돌아보면 동서남북과 사계절이 있고,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의 교차, 바람과 구름의 이동 등 우주 안의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운행되지요. 이것을 어찌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가 아닌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전 세계의 사람이나 짐승, 새, 물고기가 한결같이 눈은 두 개요, 코는 하나에 입도 하나, 귀는 두 개요 그 위치 선정까지 똑같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조물주 한 분에 의해 우주 만물이 창조되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지 않습니까?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분명히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천지 만물을 바라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느낄 수 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나는 하나님을 몰라서 못 믿었습니다."라고 핑계할 수 없도록 지금도 역사하고 계십니다.
2.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지요(창 1:28). 그러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사람을 만드셨을까요?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흙이란 진흙을 말합니다. 뛰어난 도공은 좋은 진흙을 사용하여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 대를 호가하는 도자기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사람은 질그릇이나 기왓장, 혹은 값싼 벽돌을 만들어 내기도 하지요. 누가 어떤 재료로 어떤 물건을 만들었느냐에 따라 가치가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그런데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을 따라 사람을 빚으셨으니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이렇게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뒤에는 그 코에 생기 즉 살아 있는 기를 불어넣으셨습니다. 그러자 사람이 살아 있는 영, 곧 생령이 된 것입니다. 생기란 하나님의 기로서 힘, 능력, 에너지, 영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생령으로 창조된 과정은 형광등이 빛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형광등이 빛을 내게 하려면 먼저 잘 조립된 형광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형광등이 빛을 낼 수 없으며, 전원과 연결되어 전기가 흘러야 비로소 빛을 냅니다. 가정에 있는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이지요. 아무런 움직임 없이 죽어 있는 듯한 물건인데 전원을 연결하면 화면에 갖가지 영상이 나타납니다. 이렇게 화면을 띄우기까지는 외관상으로 스위치만 움직이는 것 같지만 그 속에는 오밀조밀한 부속품이 매우 복잡하게 조립되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흙으로 사람의 형상만을 빚은 것이 아닙니다. 그 안에 오장육부와 뼈도 만들어 놓고 피가 통할 수 있는 핏줄과 또한 완벽하게 기능을 발휘할 수 있는 신경조직을 다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전류를 통하게 하듯 하나님의 근본 된 능력이 들어 있는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곧 피가 돌고 호흡하며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또한 머리의 뇌세포 안에 기억 장치를 만들어 놓으니 사람이 듣고 보고 느끼는 대로 입력이 되고 기억하면서 지식이 되고, 이것이 재생되어 나오니 생각이 되며, 지식을 활용하여 지혜가 되었습니다.
피조물인 사람도 지혜와 지식이 더하여 문자나 사람의 음성을 인식하여 대화할 수 있는 컴퓨터까지 만들어 내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빚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을 만드는 것이 어찌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참으로 쉬운 일이지만 한계가 있는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신기하고 측량하기 어려운 일이지요(시 139:14).
3.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도록 가르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신 후,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시고 그곳을 지키며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곳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시기 시작하셨습니다. 막 태어난 어린아이가 처음에는 생리작용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지만 환경 조건을 통하여 부모, 형제, 교사 등을 통해 여러 가지 교육을 받음으로 인간답게 살 수 있게 되는 것처럼,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천지 만물의 조화와 영계의 법칙과 진리의 말씀들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게 하셨습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이런 것은 먹어도 되지만 저런 것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하나하나 상세히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나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짓고 맙니다. 그 결과 죄의 삯인 사망이 임하여 사람에게 있어 주인의 역할을 하는 영이 죽게 되었고, 결국 영원히 살 수 없는 육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없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사람들의 이러한 불순종을 미리 아셨지만 사랑이 많으시기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치시며 복된 삶을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하나님 사랑을 깨달아 구원의 섭리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더욱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조주 하나님에 관련된 것을 모두 고르시오.
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영계의 법칙과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다.
② 사람이나 짐승, 새, 고기가 한결같이 눈은 두 개요, 코는 하나에 입도 하나, 귀는 두 개요 그 위치 선정까지 똑같은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③ 흙으로 사람을 만드시고 생기를 불어넣자 사람이 생령이 되었다.
④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의 교차, 바람과 구름의 이동 등 우주 안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 속에 질서정연하게 운행된다.
⑤ 진화론은 학교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참된 진리이다.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알고 넘어 갑시다!
'유인원(類人猿)'이란?
긴팔원숭이,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등 원숭이류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다.
2011-01-07
제1과새롭게 하소서
눅 5:38
읽을말씀 : 눅 5:38 | 외울말씀 : 엡 5:9 ㅣ 참고 말씀:롬12:3
교육목표 : 묵은 마음을 버리고 날마다 새롭게 변화를 받아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새해가 되면 나름대로 목표를 정하고 새롭게 마음을 결단합니다. 특히 성결을 사모하는 성도들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리라" 고백하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사람이 되고자 힘쓰게 됩니다. 하루에 성경을 한 장 이상 읽고 성구를 외우며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은 물론,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연초에 결심하고 고백한 것을 변개치 않으며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전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의 모든 것을 살피시며 사람의 깊은 곳까지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피조물인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속이려 합니다. 즉 진실하지 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초대교회 당시 하나님을 속였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재산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던 나름대로 믿음 있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욕심이 틈타자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던 재산 중 일부를 감추고 사도들 앞에 내놓지요.
그때 베드로가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책망을 합니다. 그러자 순간 아나니아의 혼이 떠나 죽고 말지요. 세 시간쯤 후에 그 영문을 모르고 들어온 아내 삽비라도 남편과 똑같이 하나님의 종 베드로를 속이므로 혼이 떠나 죽고 맙니다. 결국 이들은 구원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행 5:1~11).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성령을 속이는 것은 곧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으며, 하나님의 종을 속이는 것 또한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초대교회 당시만이 아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진실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거짓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으면서 사모하는 척하고, 믿음이 없으면서 있는 척 외식하지요.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눈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기 자신까지 속이게 됩니다. 자신이 외식하고 있어도 깨닫지 못하고 충성하는 일꾼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이 외에도 자기 공적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 나라에 무익한 일을 추진하기도 하고, 누가 지켜볼 때는 성실하게 하고 혼자 있을 때는 불성실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지요. 에베소서 5장 9절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충성함으로 진실한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섬김이란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상대를 섬기기 위해 내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들여 희생할 때가 많지요. 섬김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아무리 상대에게 많은 것을 주고 희생했다고 하더라도 먼저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면 빛을 발할 수가 없지요.
예를 들어, 직원에게 어떤 일을 부탁했는데 열심히 일은 하지만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고 무뚝뚝하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의 눈치를 보며 다음에 일을 부탁하기가 어렵고 망설여지지요. 아무리 일을 잘해도 "섬기며 일한다!"라고 할 수는 없고, "무섭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까지 섬김의 기준에서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서로 간에 얼마나 사랑과 희생으로 섬기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가령, 교회 안에는 여러 부서 사람들이 함께 쓰는 화장실이나 복도, 계단 등의 공용 장소가 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은 아무리 화장실이 지저분해도 '내 업무가 아니니까' 하고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치 나의 일처럼 깨끗이 하지요. 같은 부서 안에서도 누가 아침에 일찍 와서 책상을 닦아주는지, 쓰레기통을 비우며 청소를 도와주는지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전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행하는지 낱낱이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하게 되면 마음이 불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내 업무도 아닌데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나는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많은데. 이런 사소한 일들은 업무가 적은 사람들이나 직분이 낮은 사람들이 해 줘야 하지 않나?' 하면서 힘들어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일을 했다면 비록 행함으로는 섬겼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상급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일을 해서 결과만 내면 인정을 받지만, 교회에서는 믿음과 사랑으로 행할 때 상급이 됩니다. 세상에서는 돈을 받는 만큼 자기의 업무만 하면 되지만, 교회에서는 보직에 해당되는 일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하나님의 일이 모두 자신의 업무입니다.
겨우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씀씀이를 넓혀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어야 하지요. 세상에서는 낮은 사람이 섬기고 높은 사람이 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대하든지 행위적으로만 섬길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 섬길 때 큰 자가 되어 이 땅에서도 사람들의 존중을 받고 천국에서도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로,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흘려버리지 않고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2장 13절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말씀했습니다. 처음부터 진리대로만 행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쉼 없이 노력해 가야 하지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보시고 영으로 변화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다소 부족하다 할지라도 순종하여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다듬어 일꾼으로 쓰시지요.
가령, 사람들이 처음 사명을 받았을 때는 사명 감당을 위해서 반드시 성결되리라 다짐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직분이 높아지면서 마음의 할례에 대한 간절함이 식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는 진리를 지식으로만 알고 행치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악을 덮어 놓고 절제하므로 크게 악을 행하거나 화평을 깨는 일은 없습니다. 본인이 할 일은 하고, 있어야 할 곳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는 잘하고 있다 생각하지요.
혹여 나는 이러한 모습은 있지 않나 항상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예배나 기도회에 습관적으로 참석하거나 마지못해 앉아 있는지 하나하나 돌아보아야 하지요. 그 상태가 지속되면 신앙이 정체되어 성령의 충만함이 식어지고, 자칫 구원받기 힘든 육체의 일까지 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제단에서 겨우 구원의 문제에 연연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지요.
주님을 영접하여 첫사랑으로 충만할 때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열심히 충성 봉사합니다. 예배나 기도에 늦지 않기 위해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사모함으로 단숨에 달려오지요. 생명의 말씀을 송이꿀처럼 달게 들으며 하나라도 깨우치고 변화되기 위해 금식하며 불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멈춰 있으니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죽은 믿음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고 진실한 행함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라시지요.
누가복음 5장 38절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만들고 계시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묵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진실한 마음과 행함으로 섬길 뿐 아니라 서로 화평하며 질서를 좇아 하나님의 나라를 창대히 이루는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 충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해야 합니다.
둘째, ( )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 )이 있어야 합니다.
2. 여러분 자신에게 진실성, 섬김, 행함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몇 점을 주실 수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읽고 밑줄 쳐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들은 부부이며 초대교회 신자이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하나님께 드렸다. 그런데 이들은 땅을 팔아 일부는 감추고 나머지를 전부라고 속여 사도들 앞에 내놓는다. 결국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인 죄로 혼이 떠나 죽게 된다.
교육목표 : 묵은 마음을 버리고 날마다 새롭게 변화를 받아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새해가 되면 나름대로 목표를 정하고 새롭게 마음을 결단합니다. 특히 성결을 사모하는 성도들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리라" 고백하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사람이 되고자 힘쓰게 됩니다. 하루에 성경을 한 장 이상 읽고 성구를 외우며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은 물론,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연초에 결심하고 고백한 것을 변개치 않으며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전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의 모든 것을 살피시며 사람의 깊은 곳까지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피조물인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속이려 합니다. 즉 진실하지 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도행전 5장에 보면 초대교회 당시 하나님을 속였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재산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던 나름대로 믿음 있다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욕심이 틈타자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던 재산 중 일부를 감추고 사도들 앞에 내놓지요.
그때 베드로가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책망을 합니다. 그러자 순간 아나니아의 혼이 떠나 죽고 말지요. 세 시간쯤 후에 그 영문을 모르고 들어온 아내 삽비라도 남편과 똑같이 하나님의 종 베드로를 속이므로 혼이 떠나 죽고 맙니다. 결국 이들은 구원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행 5:1~11).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성령을 속이는 것은 곧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으며, 하나님의 종을 속이는 것 또한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초대교회 당시만이 아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진실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거짓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으면서 사모하는 척하고, 믿음이 없으면서 있는 척 외식하지요.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눈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기 자신까지 속이게 됩니다. 자신이 외식하고 있어도 깨닫지 못하고 충성하는 일꾼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이 외에도 자기 공적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 나라에 무익한 일을 추진하기도 하고, 누가 지켜볼 때는 성실하게 하고 혼자 있을 때는 불성실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지요. 에베소서 5장 9절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충성함으로 진실한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섬김이란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상대를 섬기기 위해 내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들여 희생할 때가 많지요. 섬김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아무리 상대에게 많은 것을 주고 희생했다고 하더라도 먼저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면 빛을 발할 수가 없지요.
예를 들어, 직원에게 어떤 일을 부탁했는데 열심히 일은 하지만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고 무뚝뚝하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의 눈치를 보며 다음에 일을 부탁하기가 어렵고 망설여지지요. 아무리 일을 잘해도 "섬기며 일한다!"라고 할 수는 없고, "무섭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까지 섬김의 기준에서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서로 간에 얼마나 사랑과 희생으로 섬기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가령, 교회 안에는 여러 부서 사람들이 함께 쓰는 화장실이나 복도, 계단 등의 공용 장소가 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은 아무리 화장실이 지저분해도 '내 업무가 아니니까' 하고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치 나의 일처럼 깨끗이 하지요. 같은 부서 안에서도 누가 아침에 일찍 와서 책상을 닦아주는지, 쓰레기통을 비우며 청소를 도와주는지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전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행하는지 낱낱이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하게 되면 마음이 불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내 업무도 아닌데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나는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많은데. 이런 사소한 일들은 업무가 적은 사람들이나 직분이 낮은 사람들이 해 줘야 하지 않나?' 하면서 힘들어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일을 했다면 비록 행함으로는 섬겼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상급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일을 해서 결과만 내면 인정을 받지만, 교회에서는 믿음과 사랑으로 행할 때 상급이 됩니다. 세상에서는 돈을 받는 만큼 자기의 업무만 하면 되지만, 교회에서는 보직에 해당되는 일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하나님의 일이 모두 자신의 업무입니다.
겨우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씀씀이를 넓혀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어야 하지요. 세상에서는 낮은 사람이 섬기고 높은 사람이 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대하든지 행위적으로만 섬길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 섬길 때 큰 자가 되어 이 땅에서도 사람들의 존중을 받고 천국에서도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셋째로,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흘려버리지 않고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2장 13절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말씀했습니다. 처음부터 진리대로만 행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쉼 없이 노력해 가야 하지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보시고 영으로 변화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다소 부족하다 할지라도 순종하여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다듬어 일꾼으로 쓰시지요.
가령, 사람들이 처음 사명을 받았을 때는 사명 감당을 위해서 반드시 성결되리라 다짐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직분이 높아지면서 마음의 할례에 대한 간절함이 식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는 진리를 지식으로만 알고 행치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악을 덮어 놓고 절제하므로 크게 악을 행하거나 화평을 깨는 일은 없습니다. 본인이 할 일은 하고, 있어야 할 곳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는 잘하고 있다 생각하지요.
혹여 나는 이러한 모습은 있지 않나 항상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예배나 기도회에 습관적으로 참석하거나 마지못해 앉아 있는지 하나하나 돌아보아야 하지요. 그 상태가 지속되면 신앙이 정체되어 성령의 충만함이 식어지고, 자칫 구원받기 힘든 육체의 일까지 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제단에서 겨우 구원의 문제에 연연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지요.
주님을 영접하여 첫사랑으로 충만할 때는 어떻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열심히 충성 봉사합니다. 예배나 기도에 늦지 않기 위해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사모함으로 단숨에 달려오지요. 생명의 말씀을 송이꿀처럼 달게 들으며 하나라도 깨우치고 변화되기 위해 금식하며 불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멈춰 있으니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죽은 믿음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고 진실한 행함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라시지요.
누가복음 5장 38절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만들고 계시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묵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진실한 마음과 행함으로 섬길 뿐 아니라 서로 화평하며 질서를 좇아 하나님의 나라를 창대히 이루는 일꾼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 충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해야 합니다.
둘째, ( )이 있어야 합니다.
셋째, ( )이 있어야 합니다.
2. 여러분 자신에게 진실성, 섬김, 행함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몇 점을 주실 수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읽고 밑줄 쳐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들은 부부이며 초대교회 신자이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하나님께 드렸다. 그런데 이들은 땅을 팔아 일부는 감추고 나머지를 전부라고 속여 사도들 앞에 내놓는다. 결국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인 죄로 혼이 떠나 죽게 된다.
2010-12-31
제52과후회 없는 삶
딤후 4:7~8
읽을말씀 : 딤후 4:7~8 | 외울말씀 : 외울 말씀:딤후 4:8 ㅣ 참고 말씀:잠 22:11
교육목표 : 단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참으로 가치 있게 살아가는 길은 과연 무엇인지 알려 준다.
이 땅에서의 삶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 주어지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으니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본분을 행하며 행복을 찾아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혹여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소중함을 망각한 채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는지 점검하고 새해에는 진정 후회 없는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1. 인생의 허무함을 고백한 솔로몬 왕
솔로몬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부강한 나라의 왕으로서 큰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전무후무한 지혜를 얻고 많은 지식도 쌓았으며 화려한 궁전을 짓고 동산과 과원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 공사도 크게 벌였습니다. 아름다운 처첩도 많이 취해 보았으며 음식이나 의복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향락들을 누리되 좋아 보이는 것은 무엇이나 금하지 않았고 마음껏 누려 보았지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누려 본 솔로몬 왕의 결론은 무엇이었습니까? 전도서 1장 2절에 나온 대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취해도 그 마음은 채워지지 않으며 결국 공허함만 남았던 것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사람은 육의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으며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전도서 12장 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신 말씀대로 사람의 본분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리 육적인 쾌락을 취한다 해도 마음에 참된 만족과 평안은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많은 것을 이루고 나름대로 성실하게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해도 참된 사람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다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는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은 반드시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 가치 있는 삶, 후회 없는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크게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2. 진정 헛되지 않은 삶을 영위하려면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여 뜨겁게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라 해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드리고도 "더 드릴 것이 없나?" 하고 찾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 최고 권능의 사도인 바울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볼 때도 자랑할 것이 참으로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강대국 로마의 시민권을 소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했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주님을 만난 후 가문이나 지위, 학문, 지식 등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주님을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길이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고상하고 귀했기에 세상적인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장차 천국에서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음을 확신하였기에 아무리 죽을 지경에 이를 만큼 극심한 핍박과 시험이 와도 힘들어하지 않았고, 오직 감사와 기쁨으로 이겨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큰 권능의 종이 되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창대히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생명 다해 충성한 사도 바울은 많은 성도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었지요. 뿐만 아니라,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도 가장 존귀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영화로운 상급인 의의 면류관이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들을 취하며 살았다 해도 하나님을 떠난 삶은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그 결국은 지옥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여 뜨겁게 달려감으로 축복받고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누리는 것이 곧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가장 확실한 길인 것입니다.
둘째, 마음의 온전함을 이뤄야 합니다.
마음의 온전함을 이룬다는 것은 모든 죄와 악을 벗어 버리고 진리로 채워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이 온전한 사람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바로 입술의 말이 온전한 것입니다. 마음에 진리가 채워지면 그 입술에서도 오직 진리의 말만 나오고 마음이 거룩하면 입술도 거룩해지지요.
잠언 22장 11절에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했습니다. 무익하고 헛된 말이나 불평하는 말이 나오는 부끄러운 입술이 아니라, 늘 감사의 고백과 찬송, 믿음의 말로 단물을 내는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당회장님의 삶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것은 하지 않고 온전히 버리셨으며, 하라, 지키라 하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심으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당회장님의 삶을 친히 인도해 가시고, 큰 기사와 표적, 권능으로 세계 곳곳에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크게 이루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은 사람의 열심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중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기에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마음에 진리를 채워 온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능력을 주실 뿐 아니라, 무엇이나 구하는 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셋째, 화평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 하셨듯이 주님을 사랑한다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나만이 옳다!"고 하는 독단적인 마음이나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항상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하여 지금까지 직원회나 사무연회, 원로회 등 회의를 했을 때 한 번도 화평이 깨진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아니요!"라고 발언하는 분이 없을 정도로, 화평을 이루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당회장님께서도 목회를 하면서 상식적으로 이해 못할 일들을 무수히 겪으셨지만 한 번도 화평을 깨뜨린 적이 없었습니다. 불순종하는 양 떼나 애매히 비난하는 사람들, 은혜를 원수로 갚아 심히 대적해 오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긍휼히 여기시며 그들을 위해 대신 중보 기도하셨지요.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과 선으로 이겼기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어려움을 축복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이처럼 아비의 마음으로 화평을 좇으며 모든 영혼들을 섬기고 희생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또한 맡겨진 사명도 잘 감당하게 하시고 부흥하도록 축복해 주시지요.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고백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이 얼마나 후회 없는 열정적인 삶을 살았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을 영접하여 최선을 다해 믿음의 싸움을 싸운 후 천국에서 최고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정녕 가치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루하루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결코 허탄한 데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함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칭찬과 영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을 사랑하여 ( ) 달려가야 합니다.
둘째, 마음의 ( )을 이뤄야 합니다.
셋째, ( )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오늘'이라는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하루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3. 2010년이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며 나는 과연 가치 있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았는지 점검해 봅시다. 혹여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다가 오는 2011년을 기대하며 새 예루살렘을 향해 힘차게 달려갑시다.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솔로몬 왕'에 대해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나온 아들이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기브온에서 일천 번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전무후무한 지혜와 부와 영광을 받는다. 7년 만에 성전을 건축하고 주변 국가들로부터 조공을 받을 정도로 국력을 신장시켰다. 그러나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여 그들이 섬기던 이방 신전을 세우고 타락하므로 아들 르호보암 대에 가서는 이스라엘이 둘로 나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교육목표 : 단 한 번뿐인 인생을 후회하지 않고 참으로 가치 있게 살아가는 길은 과연 무엇인지 알려 준다.
이 땅에서의 삶은 누구에게나 단 한 번 주어지는 축복의 기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모든 죄를 사함 받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얻었으니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본분을 행하며 행복을 찾아 만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혹여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소중함을 망각한 채 세월을 헛되이 보내지는 않았는지 점검하고 새해에는 진정 후회 없는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1. 인생의 허무함을 고백한 솔로몬 왕
솔로몬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부강한 나라의 왕으로서 큰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전무후무한 지혜를 얻고 많은 지식도 쌓았으며 화려한 궁전을 짓고 동산과 과원을 만드는 등 여러 가지 공사도 크게 벌였습니다. 아름다운 처첩도 많이 취해 보았으며 음식이나 의복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향락들을 누리되 좋아 보이는 것은 무엇이나 금하지 않았고 마음껏 누려 보았지요.
그런데 그 모든 것을 누려 본 솔로몬 왕의 결론은 무엇이었습니까? 전도서 1장 2절에 나온 대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하는 것이었습니다. 무엇을 취해도 그 마음은 채워지지 않으며 결국 공허함만 남았던 것입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사람은 육의 것만으로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았으며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전도서 12장 13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신 말씀대로 사람의 본분을 지키지 않으면 아무리 육적인 쾌락을 취한다 해도 마음에 참된 만족과 평안은 얻을 수가 없습니다. 이 땅에서 많은 것을 이루고 나름대로 성실하게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해도 참된 사람의 본분을 다하지 못한다면 결국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는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나간 시간은 다시 돌아올 수 없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은 반드시 자신이 책임져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진정 가치 있는 삶, 후회 없는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크게 세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2. 진정 헛되지 않은 삶을 영위하려면
첫째, 하나님을 사랑하여 뜨겁게 달려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달은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리라 해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와 사랑은 세상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신의 모든 소유를 다 드리고도 "더 드릴 것이 없나?" 하고 찾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 시대 최고 권능의 사도인 바울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볼 때도 자랑할 것이 참으로 많은 사람이었습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강대국 로마의 시민권을 소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했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사람이었지요. 그런데 주님을 만난 후 가문이나 지위, 학문, 지식 등을 다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주님을 자기 생명보다 더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원의 길이 되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너무나 고상하고 귀했기에 세상적인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장차 천국에서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음을 확신하였기에 아무리 죽을 지경에 이를 만큼 극심한 핍박과 시험이 와도 힘들어하지 않았고, 오직 감사와 기쁨으로 이겨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큰 권능의 종이 되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창대히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생명 다해 충성한 사도 바울은 많은 성도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었지요. 뿐만 아니라,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하나님의 자녀들 중에서도 가장 존귀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영화로운 상급인 의의 면류관이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들을 취하며 살았다 해도 하나님을 떠난 삶은 헛되고 헛될 뿐입니다. 그 결국은 지옥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여 뜨겁게 달려감으로 축복받고 영원한 생명과 영광을 누리는 것이 곧 후회 없는 삶을 사는 가장 확실한 길인 것입니다.
둘째, 마음의 온전함을 이뤄야 합니다.
마음의 온전함을 이룬다는 것은 모든 죄와 악을 벗어 버리고 진리로 채워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이 온전한 사람의 가장 확실한 증거는 바로 입술의 말이 온전한 것입니다. 마음에 진리가 채워지면 그 입술에서도 오직 진리의 말만 나오고 마음이 거룩하면 입술도 거룩해지지요.
잠언 22장 11절에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했습니다. 무익하고 헛된 말이나 불평하는 말이 나오는 부끄러운 입술이 아니라, 늘 감사의 고백과 찬송, 믿음의 말로 단물을 내는 입술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당회장님의 삶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순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고 미워하시는 것은 하지 않고 온전히 버리셨으며, 하라, 지키라 하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심으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당회장님의 삶을 친히 인도해 가시고, 큰 기사와 표적, 권능으로 세계 곳곳에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크게 이루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것은 사람의 열심과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공중 권세를 잡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이기에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마음에 진리를 채워 온전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능력을 주실 뿐 아니라, 무엇이나 구하는 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셋째, 화평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주님께서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 하셨듯이 주님을 사랑한다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나만이 옳다!"고 하는 독단적인 마음이나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항상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하여 지금까지 직원회나 사무연회, 원로회 등 회의를 했을 때 한 번도 화평이 깨진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아니요!"라고 발언하는 분이 없을 정도로, 화평을 이루며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당회장님께서도 목회를 하면서 상식적으로 이해 못할 일들을 무수히 겪으셨지만 한 번도 화평을 깨뜨린 적이 없었습니다. 불순종하는 양 떼나 애매히 비난하는 사람들, 은혜를 원수로 갚아 심히 대적해 오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긍휼히 여기시며 그들을 위해 대신 중보 기도하셨지요.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수 있도록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랑과 선으로 이겼기에 하나님께서는 모든 어려움을 축복으로 바꿔 주셨습니다. 이처럼 아비의 마음으로 화평을 좇으며 모든 영혼들을 섬기고 희생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또한 맡겨진 사명도 잘 감당하게 하시고 부흥하도록 축복해 주시지요.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고백합니다. 이 말씀을 통해 사도 바울이 얼마나 후회 없는 열정적인 삶을 살았는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주님을 영접하여 최선을 다해 믿음의 싸움을 싸운 후 천국에서 최고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정녕 가치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루하루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결코 허탄한 데 마음을 빼앗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자기에게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함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칭찬과 영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을 사랑하여 ( ) 달려가야 합니다.
둘째, 마음의 ( )을 이뤄야 합니다.
셋째, ( )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2. '오늘'이라는 시간은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하루 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습니까?
3. 2010년이 저물어 가고 있습니다. 올 한 해를 돌아보며 나는 과연 가치 있고 후회 없는 삶을 살았는지 점검해 봅시다. 혹여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다가 오는 2011년을 기대하며 새 예루살렘을 향해 힘차게 달려갑시다.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솔로몬 왕'에 대해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나온 아들이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기브온에서 일천 번제를 드림으로 하나님께 전무후무한 지혜와 부와 영광을 받는다. 7년 만에 성전을 건축하고 주변 국가들로부터 조공을 받을 정도로 국력을 신장시켰다. 그러나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여 그들이 섬기던 이방 신전을 세우고 타락하므로 아들 르호보암 대에 가서는 이스라엘이 둘로 나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2010-12-24
제51과성탄절의 참된 의미
눅 2:13~14
읽을말씀 : 눅 2:13~14 | 외울말씀 : 눅 2:14 ㅣ 참고 말씀:요일 4:9~10
교육목표 :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알게 한다.
많은 사람이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노는 날, 파티하는 날, 선물 주고받는 날, 산타가 선물 주는 날'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런 세상 풍조에 휩쓸려간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자리를 결코 선물이나 산타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성탄절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날입니다. 과연 성탄절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 인류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온 인류는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되어 구원의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구원받는 날은 다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에 인류에게는 비로소 구원의 문이 열린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바로 인류에게 구원을 주신 날이 됩니다. 모든 인류가 가장 기뻐해야 할 날이지요.
만일 어떤 사람이 빚을 너무 많이 져서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부자가 나타나 모든 빚을 갚아 주고, 앞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때 도움을 받은 사람은 평생을 두고 그 부자의 은혜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사망 즉 지옥에서 건짐 받고, 천국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안다면 성탄절 하루만 아니라 1년 365일,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감사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성탄절이라 하여 마냥 분위기에 휩쓸려 '기쁘고 행복하다'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감사한지 마음 중심에서 느껴야 하지요. 예수님의 탄생은 모든 인류에게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기쁨인 구원을 안겨 줬습니다. 그러니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복된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당시, 동방박사와 목자 등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구세주의 탄생을 알고 기뻐했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수많은 천군, 천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누가복음 2장 13~14절에 기록된 대로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구원의 날이요, 가장 큰 기쁜 날이라는 것을 알아, 구원의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최고의 사랑을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9~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아무리 큰 부귀와 권세를 가졌다 해도 그것으로 죄인을 구원하는 구세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영계의 법에 따라 구세주의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죄인을 구원할 수 있지요. 이러한 모든 자격을 갖추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지요.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려 주셔야만 했습니다(갈 3:13). 생명을 얻으려면 반드시 생명과 일체인 피 흘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히 9:22).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 대신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려 죽으셨던 것입니다(롬 6:23).
이처럼 죄인을 구원할 구세주가 되려면 철저히 자신을 희생해야 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셨음에도 지극히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대신하여 죄의 값을 치르는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당하도록 허락하셨지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생명과 맞바꿀 정도로 우리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서 죄악 중에 살다가 영원한 사망으로 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보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까지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인들을 위한 화목제물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롬 5:8).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도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요?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땅에 오시고, 생명을 버리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중심에서 사랑하는 마음을 드려야겠습니다.
사람 사이에도 상대를 사랑하면 그가 마음 아파할 일은 하지 않고 어찌하든 상대가 좋아하고 기뻐할 일만 찾아서 합니다. 마찬가지로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면 다시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 아파하실 일은 하지 않아야 하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했습니다(요일 5:3). 하나님 말씀, 진리를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안다는 것은 이처럼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마음 깊이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 참 자녀를 천국으로 많이 이끌어 들여 세세토록 사랑과 기쁨을 나누시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천국'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때는 천국이 온전히 형성되지 않았지요. 산 채로 들림 받은 믿음의 선진들을 제외하고 구원받은 영혼들은 윗음부로 갔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천국의 대기 장소인 낙원의 가장자리로 옮겨갔지요. 이는 구약 시대 영혼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창세 이래 누구든지 주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주님의 이름으로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라도 더 많이 천국에 오기를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질병, 사망, 고통, 근심이 없고 오직 행복과 기쁨, 평안과 사랑이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천국에 이르러 참사랑을 주고받으며 세세토록 살기 원하시지요.
이처럼 좋은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독생자 아들까지도 아낌없이 내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마음에 와 닿으시는지요?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좋은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가장 사랑하는 아들까지 내어주면서 우리들에게 천국 가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시고 우리에게는 너무나 아름다운 천국을 얻게 해 주신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가서 살게 될 천국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천국을 만들어 놓으시고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그곳에서 세세토록 살기 원하시지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천국을 만드시고 "오라, 어서 오라!" 하시는 하나님을 뒤로 한 채 세상을 향해 가는 영혼들을 보신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시고 6천 년 인간 경작의 시간 동안 모든 아픔과 슬픔을 참아 오셨습니다. 정성스럽게 예비해 두신 천국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세세토록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랑을 나누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하나님 보좌 가까이에서 세세토록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기쁨이 되는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했듯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모든 사람과 화평하는 온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탄절과 관련된 설명 중 맞지 않는 것을 고르시오.
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절기이다.
②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고대 영어인 Cristes(그리스도)와 maesse(미사)의 합성어로 '그리스도 예배'라는 뜻이다.
③ 그리스도(Christ)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이다.
④ 크리스마스를 엑스마스(X-MAS)로 읽어도 맞는 말이다.
● 금주 과제
성탄 전야 예배 및 축하 공연(12. 24(금) 오후 7시), 성탄 축하 예배(12. 25(토) 오전 11시) 참석하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크리스마스'와 'X-MAS'
크리스마스를 X-MAS로도 쓰는데 'X'는 영어 알파벳이 아니라, 헬라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첫 글자 '크스'이다. 여기에 영어 'MAS'를 붙여 크리스마스라고 한다. 그래서 '엑스마스'가 아니라, '크리스마스'로 읽어야 한다
교육목표 :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알게 한다.
많은 사람이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모르고 '노는 날, 파티하는 날, 선물 주고받는 날, 산타가 선물 주는 날'로 생각합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면서도 이런 세상 풍조에 휩쓸려간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하늘 영광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자리를 결코 선물이나 산타가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성탄절은 온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날입니다. 과연 성탄절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1. 우리 인류에게 구원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온 인류는 예수님의 탄생으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되어 구원의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사람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구원받는 날은 다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기에 인류에게는 비로소 구원의 문이 열린 것이지요. 따라서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이 바로 인류에게 구원을 주신 날이 됩니다. 모든 인류가 가장 기뻐해야 할 날이지요.
만일 어떤 사람이 빚을 너무 많이 져서 파산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어느 부자가 나타나 모든 빚을 갚아 주고, 앞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습니다. 그때 도움을 받은 사람은 평생을 두고 그 부자의 은혜를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영원한 사망 즉 지옥에서 건짐 받고, 천국을 얻었습니다. 이러한 구원의 은혜를 안다면 성탄절 하루만 아니라 1년 365일, 주님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감사를 잊지 않아야 합니다.
성탄절이라 하여 마냥 분위기에 휩쓸려 '기쁘고 행복하다' 할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은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감사한지 마음 중심에서 느껴야 하지요. 예수님의 탄생은 모든 인류에게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기쁨인 구원을 안겨 줬습니다. 그러니 구원의 기쁨을 누리는 복된 성탄절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당시, 동방박사와 목자 등 극히 소수의 사람들만 구세주의 탄생을 알고 기뻐했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수많은 천군, 천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누가복음 2장 13~14절에 기록된 대로 홀연히 허다한 천군이 그 천사와 함께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여 가로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탄절은 구원의 날이요, 가장 큰 기쁜 날이라는 것을 알아, 구원의 기쁨으로 주님을 찬양하며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께서 인생들에게 최고의 사랑을 보이셨다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4장 9~10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아무리 큰 부귀와 권세를 가졌다 해도 그것으로 죄인을 구원하는 구세주가 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영계의 법에 따라 구세주의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죄인을 구원할 수 있지요. 이러한 모든 자격을 갖추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시지요. 예수님은 죄인들을 대신하여 나무 십자가에 달려 피를 흘려 주셔야만 했습니다(갈 3:13). 생명을 얻으려면 반드시 생명과 일체인 피 흘림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히 9:22).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를 풀기 위해서 대신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려 죽으셨던 것입니다(롬 6:23).
이처럼 죄인을 구원할 구세주가 되려면 철저히 자신을 희생해야 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셨음에도 지극히 사랑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죄인들을 대신하여 죄의 값을 치르는 엄청난 희생과 고통을 당하도록 허락하셨지요. 왜냐하면 예수님의 생명과 맞바꿀 정도로 우리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생들이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서 죄악 중에 살다가 영원한 사망으로 가는 것을 그냥 두고 보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독생자 예수님까지 이 땅에 보내셔서 죄인들을 위한 화목제물이 되게 하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해 주셨습니다(롬 5:8).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도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나님께 우리는 무엇을 드릴 수 있을까요?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 땅에 오시고, 생명을 버리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예수님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다른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중심에서 사랑하는 마음을 드려야겠습니다.
사람 사이에도 상대를 사랑하면 그가 마음 아파할 일은 하지 않고 어찌하든 상대가 좋아하고 기뻐할 일만 찾아서 합니다. 마찬가지로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면 다시 죄를 짓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마음 아파하실 일은 하지 않아야 하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 했습니다(요일 5:3). 하나님 말씀, 진리를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안다는 것은 이처럼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를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마음 깊이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 참 자녀를 천국으로 많이 이끌어 들여 세세토록 사랑과 기쁨을 나누시려는 것입니다
구약 성경에는 '천국'이란 단어가 나오지 않습니다. 그때는 천국이 온전히 형성되지 않았지요. 산 채로 들림 받은 믿음의 선진들을 제외하고 구원받은 영혼들은 윗음부로 갔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 천국의 대기 장소인 낙원의 가장자리로 옮겨갔지요. 이는 구약 시대 영혼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천국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창세 이래 누구든지 주님의 보혈로 죄 씻음을 받고 주님의 이름으로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라도 더 많이 천국에 오기를 하나님은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 천국에는 질병, 사망, 고통, 근심이 없고 오직 행복과 기쁨, 평안과 사랑이 가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천국에 이르러 참사랑을 주고받으며 세세토록 살기 원하시지요.
이처럼 좋은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려고 독생자 아들까지도 아낌없이 내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마음에 와 닿으시는지요?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좋은 천국을 우리에게 주시면서 우리에게 아무런 대가도 바라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가장 사랑하는 아들까지 내어주면서 우리들에게 천국 가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시고 우리에게는 너무나 아름다운 천국을 얻게 해 주신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가 가서 살게 될 천국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아름답고 좋은 것으로 천국을 만들어 놓으시고 사랑하는 자녀들과 함께 그곳에서 세세토록 살기 원하시지요. 그런데 이렇게 좋은 천국을 만드시고 "오라, 어서 오라!" 하시는 하나님을 뒤로 한 채 세상을 향해 가는 영혼들을 보신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하나님은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시고 6천 년 인간 경작의 시간 동안 모든 아픔과 슬픔을 참아 오셨습니다. 정성스럽게 예비해 두신 천국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세세토록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바라보며 사랑을 나누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하나님 보좌 가까이에서 세세토록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기쁨이 되는 자녀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했듯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모든 사람과 화평하는 온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성탄절의 참된 의미를 깨달아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탄절과 관련된 설명 중 맞지 않는 것을 고르시오.
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우리 주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절기이다.
②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고대 영어인 Cristes(그리스도)와 maesse(미사)의 합성어로 '그리스도 예배'라는 뜻이다.
③ 그리스도(Christ)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이다.
④ 크리스마스를 엑스마스(X-MAS)로 읽어도 맞는 말이다.
● 금주 과제
성탄 전야 예배 및 축하 공연(12. 24(금) 오후 7시), 성탄 축하 예배(12. 25(토) 오전 11시) 참석하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크리스마스'와 'X-MAS'
크리스마스를 X-MAS로도 쓰는데 'X'는 영어 알파벳이 아니라, 헬라어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첫 글자 '크스'이다. 여기에 영어 'MAS'를 붙여 크리스마스라고 한다. 그래서 '엑스마스'가 아니라, '크리스마스'로 읽어야 한다
2010-12-17
제50과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5)
계 3:7~13
읽을말씀 : 계 3:7~13 | 외울말씀 : 대하 20:20 ㅣ참고 말씀:요 7:16~17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세우신 목자를 믿고 신뢰하는 교회라는 것을 알려 준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기초가 되시며 유일한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지요.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십니다. 또한 주님께서 대신 피 값을 치르시고 사신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교회의 지체가 됩니다(엡 1:22~23, 5:30~32).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첫째, 성도들이 구원받게 해 주는 교회 둘째, 성도들의 신앙이 자라서 성결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하는 교회 셋째는, 재림의 주님을 선포하는 교회 넷째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해 주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기준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를 믿고 신뢰하는 교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치리하는 목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직접 치리할 수 없기 때문에 대신 목자를 세우시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운 목자는 그 따르는 증거가 확실히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요, 친히 세우신 목자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했습니다(고후 12:12). 초대교회는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으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성도들로 변화되었기에 큰 부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는 성결되어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주님처럼 온전히 순종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들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행했던 놀라운 권능들이 지금 우리 교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를 온전히 믿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간혹 성도들 중에는 목자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신뢰하지 못하는 분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목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증거하는 말씀을 신뢰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죄를 지적하고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자신은 여전히 죄 가운데 살고 천국 가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마음 중심에서 목자를 신뢰한다면 단에서 선포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아직 세상이 좋고 미련이 남아서 버리기가 싫은 것이지요. 즉 말씀대로 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상태의 믿음이므로 '당회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목자를 믿지 못하겠다' 등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목도하면서도 자꾸 사단의 사주를 받아들이니 매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밖에 없지요. 만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제단을 "이단이다, 잘못됐다." 한다면 이는 사단의 사주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단에서 선포하신 말씀을 믿고 행하려고 노력하면 당연히 목자를 신뢰하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16~17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했습니다. 즉 단에서 선포하신 말씀을 지켜 행하려고 하면 그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아니면 설교자 스스로 말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8절에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말씀한 대로 보내신 이 즉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라야 참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목자는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 권능의 목자
1992년, 당회장님께서 과도하게 피를 흘리신 나머지 숨을 멈추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많은 고뇌와 무거운 짐들이 마음을 짓누른 탓에 이런 현상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당회장님께 이대로 주님 품에 안길는지, 아니면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 나라를 이룰 것인지 물으셨습니다.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는 당회장님은 주님 품에 안기길 원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성도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이곳저곳 흩어져 방황하는 장면을 보여 주셨습니다. 많은 영혼이 생명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망으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당회장님은 다시 양 떼를 돌보는 목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후 다시 살아나 지금까지 오직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고 계십니다.
만일 지금 주님 품에 안겨도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면 이 땅에 더 살고자 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 땅에 미련이 있고 세상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새 예루살렘에 한시라도 빨리 들어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당회장님은 새 예루살렘에서의 영광을 뒤로 하고 영혼들을 사랑하신 까닭에 다시 영혼 구원의 사역을 선택하셨지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 뜻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이러한 선택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3~24절에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즉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어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과 함께 있고 싶은 욕망이 더 크지만 영혼들을 위해 이 땅에 있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당회장님께서도 천국 새 예루살렘에서 주님과 함께하고 싶지만 우리를 위해 이 땅에 계시는 것이지요.
이처럼 뭇 영혼들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 분이 바로 우리 목자이십니다. 그런 분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하는지, 하나님 사랑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지 깊이 깨우쳐 봐야 할 것입니다.
3. 마음에 믿어 행함이 따르는 신앙생활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사람의 머리에서 가슴이라고 합니다. 즉 머리로 아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기가 어렵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그보다 더 먼 거리는 가슴에서 손발이라고 합니다. 가슴으로 느낀 것을 행동으로 옮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머리로 아무리 알아도 마음에 일구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머리는 천국이지만 마음이 지옥이면 그것처럼 먼 데가 없지요. 혹여 아직도 하나님이 함께하신 권능의 목자를 판단하고 육신의 생각을 동원한다면 참 신앙이 마음으로 내려오질 않은 것입니다. 모든 진실한 것은 마음으로 통합니다. 믿음도, 사랑도, 우정도, 섬김도, 겸손도 마음에서 나오는 사람이 머리에서 가슴이 가까운 사람이며, 가슴에서 손발이 가까운 사람이지요.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하기 때문에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옵니다. 또한 야고보서 2장 17절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말씀했지요. 이는 역설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에 비로소 믿음이 온전케 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출애굽 2세대들은 여호수아가 이르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행했습니다. 그러자 범람하던 요단강도 흐름이 멈추어 마른 땅처럼 걸어서 건넜고, 견고한 여리고 성도 쉽게 함락시켰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서는 행함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역대하 20장 20절에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능력을 주시고, 친히 권능으로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종을 신뢰하는 것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형통케 해 주십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세우신 교회의 성도로서 창조주 하나님, 권능의 목자를 신뢰함으로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으시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다섯 가지 기준은 첫째, 성도들이 ( )받게 하며, 둘째, 성도들의 ( )이 자라서 성결된 하나님의 ( )가 되게 한다.
셋째, ( )의 주님을 선포하며, 넷째, 하나님을 만나고 ( )할 수 있게 해 준다. 다섯째로, 세우신 ( )를 믿고 ( )하는 교회이다.
2. 하나님의 사람을 끝까지 믿고 신뢰하며 붙좇은 사람이 아닌 것은?
① 엘리사 ② 여호수아 ③ 디모데 ④ 요압 장군
● 금주 과제
가정이나 직장에서 성탄절 장식을 하며 성탄절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표적이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말한다.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의 역사이다(막 16:17~18).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세우신 목자를 믿고 신뢰하는 교회라는 것을 알려 준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거룩한 성도들의 모임입니다. 이러한 교회의 기초가 되시며 유일한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지요. 그러므로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 되십니다. 또한 주님께서 대신 피 값을 치르시고 사신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며, 모든 성도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는 교회의 지체가 됩니다(엡 1:22~23, 5:30~32).
지난 시간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첫째, 성도들이 구원받게 해 주는 교회 둘째, 성도들의 신앙이 자라서 성결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하는 교회 셋째는, 재림의 주님을 선포하는 교회 넷째는, 하나님을 체험하게 해 주는 교회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섯 번째 기준은 무엇일까요?
1.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를 믿고 신뢰하는 교회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치리하는 목자는 하나님께서 세우십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직접 치리할 수 없기 때문에 대신 목자를 세우시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친히 세운 목자는 그 따르는 증거가 확실히 나타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요, 친히 세우신 목자라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사도의 표 된 것은 내가 너희 가운데서 모든 참음과 표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한 것이라" 했습니다(고후 12:12). 초대교회는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으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아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성도들로 변화되었기에 큰 부흥을 이룰 수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는 성결되어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주님처럼 온전히 순종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들이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행했던 놀라운 권능들이 지금 우리 교회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를 온전히 믿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간혹 성도들 중에는 목자를 사랑한다 하면서도 신뢰하지 못하는 분을 볼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목자를 신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목자가 증거하는 말씀을 신뢰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목자가 죄를 지적하고 천국과 지옥이 분명히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자신은 여전히 죄 가운데 살고 천국 가기도 쉽지 않아 보입니다. 마음 중심에서 목자를 신뢰한다면 단에서 선포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데 아직 세상이 좋고 미련이 남아서 버리기가 싫은 것이지요. 즉 말씀대로 살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이런 상태의 믿음이므로 '당회장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참이 아니었으면 좋겠다, 목자를 믿지 못하겠다' 등 부정적인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직접 목도하면서도 자꾸 사단의 사주를 받아들이니 매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수밖에 없지요. 만일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제단을 "이단이다, 잘못됐다." 한다면 이는 사단의 사주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단에서 선포하신 말씀을 믿고 행하려고 노력하면 당연히 목자를 신뢰하게 되어 있습니다.
요한복음 7장 16~17절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 교훈은 내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것이니라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 하면 이 교훈이 하나님께로서 왔는지 내가 스스로 말함인지 알리라" 했습니다. 즉 단에서 선포하신 말씀을 지켜 행하려고 하면 그 말씀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는지, 아니면 설교자 스스로 말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8절에 "스스로 말하는 자는 자기 영광만 구하되 보내신 이의 영광을 구하는 자는 참되니 그 속에 불의가 없느니라" 말씀한 대로 보내신 이 즉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는 자라야 참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목자는 자기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는 권능의 목자
1992년, 당회장님께서 과도하게 피를 흘리신 나머지 숨을 멈추신 적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한 많은 고뇌와 무거운 짐들이 마음을 짓누른 탓에 이런 현상이 나타났던 것입니다. 그때 주님은 당회장님께 이대로 주님 품에 안길는지, 아니면 다시 살아나서 하나님 나라를 이룰 것인지 물으셨습니다.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는 당회장님은 주님 품에 안기길 원했습니다. 이때 주님께서 성도들이 목자 없는 양처럼 이곳저곳 흩어져 방황하는 장면을 보여 주셨습니다. 많은 영혼이 생명의 울타리를 벗어나 사망으로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자 당회장님은 다시 양 떼를 돌보는 목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후 다시 살아나 지금까지 오직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고 계십니다.
만일 지금 주님 품에 안겨도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면 이 땅에 더 살고자 할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이 땅에 미련이 있고 세상이 좋은 사람이 아니라면 새 예루살렘에 한시라도 빨리 들어가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당회장님은 새 예루살렘에서의 영광을 뒤로 하고 영혼들을 사랑하신 까닭에 다시 영혼 구원의 사역을 선택하셨지요. 그것이 바로 하나님 뜻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에게도 이러한 선택의 순간이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1장 23~24절에 "내가 그 두 사이에 끼였으니" 즉 죽느냐 사느냐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이어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그러나 내가 육신에 거하는 것이 너희를 위하여 더 유익하리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과 함께 있고 싶은 욕망이 더 크지만 영혼들을 위해 이 땅에 있는 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입니다. 당회장님께서도 천국 새 예루살렘에서 주님과 함께하고 싶지만 우리를 위해 이 땅에 계시는 것이지요.
이처럼 뭇 영혼들을 위해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내어 주신 분이 바로 우리 목자이십니다. 그런 분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하는지, 하나님 사랑을 얼마나 느끼고 있는지 깊이 깨우쳐 봐야 할 것입니다.
3. 마음에 믿어 행함이 따르는 신앙생활
이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가 사람의 머리에서 가슴이라고 합니다. 즉 머리로 아는 것을 가슴으로 느끼기가 어렵다는 뜻이지요. 그런데 그보다 더 먼 거리는 가슴에서 손발이라고 합니다. 가슴으로 느낀 것을 행동으로 옮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머리로 아무리 알아도 마음에 일구지 않으면 소용없습니다. 머리는 천국이지만 마음이 지옥이면 그것처럼 먼 데가 없지요. 혹여 아직도 하나님이 함께하신 권능의 목자를 판단하고 육신의 생각을 동원한다면 참 신앙이 마음으로 내려오질 않은 것입니다. 모든 진실한 것은 마음으로 통합니다. 믿음도, 사랑도, 우정도, 섬김도, 겸손도 마음에서 나오는 사람이 머리에서 가슴이 가까운 사람이며, 가슴에서 손발이 가까운 사람이지요.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하기 때문에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옵니다. 또한 야고보서 2장 17절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말씀했지요. 이는 역설적으로 말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에 비로소 믿음이 온전케 된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을 정복한 출애굽 2세대들은 여호수아가 이르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행했습니다. 그러자 범람하던 요단강도 흐름이 멈추어 마른 땅처럼 걸어서 건넜고, 견고한 여리고 성도 쉽게 함락시켰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기 위해서는 행함 있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역대하 20장 20절에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능력을 주시고, 친히 권능으로 보장하시는 하나님의 종을 신뢰하는 것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형통케 해 주십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세우신 교회의 성도로서 창조주 하나님, 권능의 목자를 신뢰함으로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으시오.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다섯 가지 기준은 첫째, 성도들이 ( )받게 하며, 둘째, 성도들의 ( )이 자라서 성결된 하나님의 ( )가 되게 한다.
셋째, ( )의 주님을 선포하며, 넷째, 하나님을 만나고 ( )할 수 있게 해 준다. 다섯째로, 세우신 ( )를 믿고 ( )하는 교회이다.
2. 하나님의 사람을 끝까지 믿고 신뢰하며 붙좇은 사람이 아닌 것은?
① 엘리사 ② 여호수아 ③ 디모데 ④ 요압 장군
● 금주 과제
가정이나 직장에서 성탄절 장식을 하며 성탄절의 의미를 깨닫게 한다.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표적이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을 말한다.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의 역사이다(막 16:17~18).
2010-12-10
제49과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4)
계 3:7~13
읽을말씀 : 계 3:7~13 | 외울말씀 : 잠 8:17 ㅣ참고 말씀:마 7:7~8, 잠 8:17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게 해 주는 교회임을 알려 준다.
지난 시간까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기준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기준은 '성도들을 구원받게 하는 교회' 두 번째 기준은 '성도들의 신앙이 자라서 성결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하는 교회' 세 번째 기준은 '재림의 주님을 선포하는 교회'라고 했지요. 오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네 번째 기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게 해 주는 교회
주님의 몸 된 교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므로 당연히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며 교통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10년, 20년 다녀도 하나님을 한 번도 만난 체험이 없다면 자신은 물론 그 교회가 정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기록된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행 2:43)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는 등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일곱 집사들을 통해서도 표적이 나타나 더러운 귀신이 크게 소리 지르며 나가고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았습니다(행 8:7).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늘 기사와 표적이 넘쳐납니다. 예컨대 권능의 손수건, 무지개, 단물, 잠자리 출현, 별의 이동, 날씨와 기후 조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권능의 역사들을 다방면으로 수없이 체험하고 있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기사와 표적을 강조하느냐? 성경에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더 복되다 하지 않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분은 정말 믿음이 좋아서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일까요?
비유를 하나 들어보지요. 서울에 사는 한 아들이 명절날 제주도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뵈려고 전화를 드렸더니 부모님이 "아들아! 너 바쁘니까 여기 먼 데까지 올 필요 없다."고 하십니다. 아들은 그 말을 듣고 10년, 20년 부모님 댁에 발걸음은 물론, 전화 통화도 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얼마나 아들이 보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아들은 '나의 효심을 부모님은 아실 거야' 하고 찾아뵙지를 않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아들이 정말 효자일까요? 아니지요. 부모와 자식 간에 돈독한 관계가 제대로 안 되어 있고,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도 잘 몰라 부모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자녀이지요. 정말 부모님을 사랑한다면 늘 보고 싶고 궁금하여 어찌하든 찾아뵈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기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이 좋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구하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말씀했고, 잠언 8장 17절에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만약에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필요가 없고, 간절히 찾는 것은 믿음이 적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왜 성경에 이런 기록을 남겼을까요? 그냥 "보지 않고 믿어라! 그것이 복되다."라는 기록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했으면 "제가 믿음이 부족해서 만나지 못했습니다."라고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더 하나님의 도우심과 긍휼을 받는 길이지요.
2. 크고 작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만민의 성도들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렇다 할 큰 간증거리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중한 질병을 치료받아 믿음이 쑥 성장하는데 자신은 그런 계기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분들이 정말 체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칼에 손가락을 베거나 넘어져 무릎을 다치면 세상 사람들은 '파상풍에 걸린다, 세균에 감염된다.'며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연고를 바릅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님들은 어린아이이라 할지라도 상처 부위에 단물을 뿌리거나 당회장님의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으면 낫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인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당연시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지요.
최근 일본의 한 병원에서 독성과 내성이 강한 수퍼 박테리아에 의한 대규모 의료 관련 감염 사고로 많은 환자들이 감염되고 몇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님들은 수퍼 박테리아가 전국에 퍼진다 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늘 지키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신종 플루로 전 세계가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지만 우리 성도님들은 목자의 공간 안에서 지킴과 보호를 받음으로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종 플루에 감염될까봐 전전긍긍하며 마스크를 착용하고 약을 복용하며 예방 주사를 맞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지요. 심지어 옆 사람이 기침만 해도 그 자리를 피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매스컴을 통해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종 플루에 감염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요.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만민의 성도님들은 세상 사람처럼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지 않았고, 수시로 성전에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며 예배드렸지만 이상이 없었습니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하나님을 체험한 증거인 것입니다.
3.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성경이 참임을 확증하는 교회
예수님께서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 4:48)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들을 보면서도 믿지를 않습니다. 자신이 아는 지식이나 이론과는 도무지 맞지 않으니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라'(고후 10:5) 말씀하셨지요.
사람이 믿고자 하면 100가지 중에 한 가지만 확실해도 나머지 99가지는 안 보고도 믿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믿지 않으려고 하면 100가지 중에 99가지가 맞고 한 가지만 틀려도 안 믿는다고 하지요. 이것이 사람의 육의 속성이지요. 하지만 우리 교회에서는 마음 문만 열면 하나님의 역사를 쉽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우리 지식과 일치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영의 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내 지식과 맞지 않는다고 영의 세계가 없다고 한들 그 말이 맞겠습니까? 육적인 지식을 가지고 영의 세계를 판단한다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초등학생이 대학교 수학 교재를 보고 자기가 이해 못하니 엉터리라고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신앙생활은 먼저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권능의 역사를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이해되지 않아도 마음으로 믿고 나아가면 자연히 머리로도 이해가 되어 생명을 낳습니다. 죄악으로 관영한 이 마지막 때는 아무리 주님을 믿으라 해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권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 권능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할 때 믿음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 역사를 늘 체험하게 해 주는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당회장님께서는 성경 66권 말씀이 참임을 기사와 표적을 통해 확실히 보여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영의 세계가 믿어지고 천국 소망이 넘쳐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요. 또한 이를 통해 영적인 힘을 받아 열심히 죄를 버리며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칭찬만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세상에 물들지 않으며 믿음을 지켜 말씀대로 행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새 예루살렘의 기둥이 되는 축복의 언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개척 때부터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오직 믿음으로 행군하였기에 오늘날 멈추지 않는 권능으로 세계를 이루는 교회, 새 예루살렘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교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성도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틀린 것을 골라 보세요.
①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
②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고 찾아야 한다.
③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되므로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없다.
④ 기사와 표적을 사모하며 간절히 구해야 한다.
2.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간증을 서로 나누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2010. 6. 13 설교) 듣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일곱 교회'란?
주님이 부활하신 후 사도들을 중심으로 소아시아에 세워진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를 말한다. 영적으로 일곱 교회는 주님의 이름으로 이 땅에 세워진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은 마지막 심판 날에 모든 교회들을 심판하는 기준이 된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게 해 주는 교회임을 알려 준다.
지난 시간까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기준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 번째 기준은 '성도들을 구원받게 하는 교회' 두 번째 기준은 '성도들의 신앙이 자라서 성결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하는 교회' 세 번째 기준은 '재림의 주님을 선포하는 교회'라고 했지요. 오늘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의 네 번째 기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게 해 주는 교회
주님의 몸 된 교회는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곳이므로 당연히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며 교통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를 10년, 20년 다녀도 하나님을 한 번도 만난 체험이 없다면 자신은 물론 그 교회가 정말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교회인지 돌아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이 기록된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행 2:43)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는 등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기록이 있습니다. 또한 일곱 집사들을 통해서도 표적이 나타나 더러운 귀신이 크게 소리 지르며 나가고 많은 중풍병자와 앉은뱅이가 나았습니다(행 8:7).
그렇다면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늘 기사와 표적이 넘쳐납니다. 예컨대 권능의 손수건, 무지개, 단물, 잠자리 출현, 별의 이동, 날씨와 기후 조절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권능의 역사들을 다방면으로 수없이 체험하고 있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왜 그렇게 기사와 표적을 강조하느냐? 성경에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더 복되다 하지 않았느냐!"고 말합니다. 그러면 그분은 정말 믿음이 좋아서 보지 않고도 믿는 것일까요?
비유를 하나 들어보지요. 서울에 사는 한 아들이 명절날 제주도에 계신 부모님을 찾아뵈려고 전화를 드렸더니 부모님이 "아들아! 너 바쁘니까 여기 먼 데까지 올 필요 없다."고 하십니다. 아들은 그 말을 듣고 10년, 20년 부모님 댁에 발걸음은 물론, 전화 통화도 하지 않습니다. 부모님은 얼마나 아들이 보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아들은 '나의 효심을 부모님은 아실 거야' 하고 찾아뵙지를 않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아들이 정말 효자일까요? 아니지요. 부모와 자식 간에 돈독한 관계가 제대로 안 되어 있고, 사람의 도리가 무엇인지도 잘 몰라 부모 마음을 기쁘게 하지 못하는 자녀이지요. 정말 부모님을 사랑한다면 늘 보고 싶고 궁금하여 어찌하든 찾아뵈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이 없어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기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이 좋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구하고 체험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말씀했고, 잠언 8장 17절에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만약에 구하고 찾고 두드리며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필요가 없고, 간절히 찾는 것은 믿음이 적은 사람이 하는 것이라면 왜 성경에 이런 기록을 남겼을까요? 그냥 "보지 않고 믿어라! 그것이 복되다."라는 기록만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는 것은 지극히 정상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체험하지 못했으면 "제가 믿음이 부족해서 만나지 못했습니다."라고 솔직히 고백하는 것이 더 하나님의 도우심과 긍휼을 받는 길이지요.
2. 크고 작은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만민의 성도들
우리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렇다 할 큰 간증거리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중한 질병을 치료받아 믿음이 쑥 성장하는데 자신은 그런 계기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그분들이 정말 체험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칼에 손가락을 베거나 넘어져 무릎을 다치면 세상 사람들은 '파상풍에 걸린다, 세균에 감염된다.'며 상처 부위를 소독하고 연고를 바릅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님들은 어린아이이라 할지라도 상처 부위에 단물을 뿌리거나 당회장님의 '환자를 위한 기도'를 받으면 낫습니다. 이러한 것들이 다 하나님을 체험하는 것인데 이를 깨닫지 못하고 당연시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지요.
최근 일본의 한 병원에서 독성과 내성이 강한 수퍼 박테리아에 의한 대규모 의료 관련 감염 사고로 많은 환자들이 감염되고 몇 명이 사망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 성도님들은 수퍼 박테리아가 전국에 퍼진다 해도 걱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늘 지키고 보호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신종 플루로 전 세계가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지만 우리 성도님들은 목자의 공간 안에서 지킴과 보호를 받음으로 편안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신종 플루에 감염될까봐 전전긍긍하며 마스크를 착용하고 약을 복용하며 예방 주사를 맞고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지요. 심지어 옆 사람이 기침만 해도 그 자리를 피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매스컴을 통해 들으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종 플루에 감염된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요.
이와는 대조적으로 우리 만민의 성도님들은 세상 사람처럼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지 않았고, 수시로 성전에 모여 기도하고 찬양하며 예배드렸지만 이상이 없었습니다. 이런 것 하나하나가 하나님을 체험한 증거인 것입니다.
3.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성경이 참임을 확증하는 교회
예수님께서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 4:48)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는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들을 보면서도 믿지를 않습니다. 자신이 아는 지식이나 이론과는 도무지 맞지 않으니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라'(고후 10:5) 말씀하셨지요.
사람이 믿고자 하면 100가지 중에 한 가지만 확실해도 나머지 99가지는 안 보고도 믿는다고 합니다. 반대로 믿지 않으려고 하면 100가지 중에 99가지가 맞고 한 가지만 틀려도 안 믿는다고 하지요. 이것이 사람의 육의 속성이지요. 하지만 우리 교회에서는 마음 문만 열면 하나님의 역사를 쉽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우리 지식과 일치되지 않는 것이 많습니다.
영의 세계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 내 지식과 맞지 않는다고 영의 세계가 없다고 한들 그 말이 맞겠습니까? 육적인 지식을 가지고 영의 세계를 판단한다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초등학생이 대학교 수학 교재를 보고 자기가 이해 못하니 엉터리라고 한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입니까.
신앙생활은 먼저 하나님 말씀과 하나님 권능의 역사를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이해되지 않아도 마음으로 믿고 나아가면 자연히 머리로도 이해가 되어 생명을 낳습니다. 죄악으로 관영한 이 마지막 때는 아무리 주님을 믿으라 해도 믿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 권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 권능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할 때 믿음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 역사를 늘 체험하게 해 주는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당회장님께서는 성경 66권 말씀이 참임을 기사와 표적을 통해 확실히 보여 주고 계십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영의 세계가 믿어지고 천국 소망이 넘쳐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요. 또한 이를 통해 영적인 힘을 받아 열심히 죄를 버리며 달려올 수 있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 중에서 유일하게 칭찬만 받은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세상에 물들지 않으며 믿음을 지켜 말씀대로 행해 나갔습니다. 그 결과 새 예루살렘의 기둥이 되는 축복의 언약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개척 때부터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오직 믿음으로 행군하였기에 오늘날 멈추지 않는 권능으로 세계를 이루는 교회, 새 예루살렘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교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의 성도라는 사실에 감사하며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틀린 것을 골라 보세요.
①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한다.
②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고 찾아야 한다.
③ 보지 않고 믿는 것이 복되므로 하나님을 찾을 필요가 없다.
④ 기사와 표적을 사모하며 간절히 구해야 한다.
2.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한 간증을 서로 나누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2010. 6. 13 설교) 듣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일곱 교회'란?
주님이 부활하신 후 사도들을 중심으로 소아시아에 세워진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교회를 말한다. 영적으로 일곱 교회는 주님의 이름으로 이 땅에 세워진 모든 교회를 대표하는 것으로서,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은 마지막 심판 날에 모든 교회들을 심판하는 기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