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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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7-01
제26과맥추절을 지키라
출 23:14~18
읽을말씀 : 출 23:14~18 | 외울말씀 : 출 23:16 l 참고 말씀:신 16:9~12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맥추절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수확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로서 매년 지켜야 할 3대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곡물의 첫 열매를 드리며 전반기에 은혜 주심에 감사할 뿐 아니라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킵니다. 맥추절을 앞두고 그 유래와 영적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1. 맥추절(麥秋節)의 유래와 영적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첫 열매는 바로 밀을 의미합니다. 밭에 뿌린 밀의 첫 수확을 감사하여 지키는 맥추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는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합니다.
칠칠절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므로 붙여진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 강림 역사가 나타났으므로 한국 교회에서 오순절을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신명기 16장 9~12절을 보면 "칠 주(七週)를 계수(計數)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했습니다.
민수기 28장 26~31절에는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요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에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막 거두어들인 새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이 소제로서(레 23:17) 특별히 드려집니다. 또한 이것과 함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리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후 안식일이 지난 첫날에 처음 익은 곡식 단을 하나님께 바친 것은 유월절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또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두게 됨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됨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에 감사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되었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영생할 수 있는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성결되어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2. 맥추감사제
맥추감사제는 소제와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되 상번제(매일 제단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을 드림: 민 28:3~4)와 소제(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빻아낸 기름 힌 사분지 일을 섞어서 드림: 민 28:5~6)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리라고 했습니다(민 28:26~31).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 받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감사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예물을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 하면 나름대로 마음에 주관이 오거나 깨달음을 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녀라면 즉시 순종하여 그대로 행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감사함으로 중심을 바쳐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고후 9:6~7).
우리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며, 생명 곧 진리를 심으면 영생을 거두고 비진리를 심으면 사망을 거둡니다. 또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한 과부의 두 렙돈을 기뻐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막 12:44)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으나 오늘날은 주로 헌금으로 드립니다. 때로는 특별히 자신이 소유한 값진 물건을 드리며, 물질을 드릴 수 없는 경우 마음을 다해 봉사로 몸을 드리기도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정성을 다해 기쁨과 순전한 마음, 그리고 믿음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각종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시고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지요.
신명기 16장 10~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성전에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며 기쁨으로 성도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성령을 주시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천국을 소망하며 성결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심에 감사하며, 더욱 기뻐하고 즐거워해야지요.
3.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도의 응답은 물론, 아름다운 천국을 약속하셨으니 비록 눈물, 슬픔, 질병, 고통 등을 겪는다 해도 천국의 소망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삶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으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설사 어떤 염려, 근심,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고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시편 50편 23절을 보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때로 고난과 연단의 시간을 만난다 해도 진정 감사함으로 받으면 자신을 발견하고 영으로 변화되는 축복의 시간이 되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가 깨달아 전반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세어 보며 더욱 감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넣으세요.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 )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이다. ( )이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라는 뜻이고, ( )이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붙여졌다.
3. "항상 ( )하라 쉬지 말고 ( )하라 범사에 ( )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 )이니라" (살전 5:16~18)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소제(素祭)'란?
레위기 2장 1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하신 말씀대로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이다. 이는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로서 오늘날 주일 예배를 드릴 때에 한 주간 지켜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맥추절을 지키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수확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로서 매년 지켜야 할 3대 절기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에서는 7월 첫 주일을 맥추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곡물의 첫 열매를 드리며 전반기에 은혜 주심에 감사할 뿐 아니라 후반기에도 함께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지킵니다. 맥추절을 앞두고 그 유래와 영적 의미를 알아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준비하시기 바랍니다.
1. 맥추절(麥秋節)의 유래와 영적 의미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보면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첫 열매는 바로 밀을 의미합니다. 밭에 뿌린 밀의 첫 수확을 감사하여 지키는 맥추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는데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합니다.
칠칠절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므로 붙여진 것입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오순절에 성령 강림 역사가 나타났으므로 한국 교회에서 오순절을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면 맥추절은 어떻게 지켜야 할까요? 신명기 16장 9~12절을 보면 "칠 주(七週)를 계수(計數)할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날부터 칠 주를 계수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거하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지니라" 했습니다.
민수기 28장 26~31절에는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수송아지 둘과 숫양 하나와 일 년 된 숫양 일곱으로 여호와께 향기로운 번제를 드릴 것이며 그 소제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서 쓰되 매 수송아지에는 에바 십분지 삼이요 숫양 하나에는 에바 십분지 이요 어린양 일곱에는 매 어린양에 에바 십분지 일을 드릴 것이며 또 너희를 속하기 위하여 숫염소 하나를 드리되 너희는 다 흠 없는 것으로 상번제와 그 소제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릴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맥추절에는 일반적으로 드리는 제사 외에 막 거두어들인 새 수확의 결실인 고운 가루에 누룩을 섞어 구운 두 덩어리 떡이 소제로서(레 23:17) 특별히 드려집니다. 또한 이것과 함께 향기로운 냄새로 번제를 드리고 속죄제를 드리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유월절 후 안식일이 지난 첫날에 처음 익은 곡식 단을 하나님께 바친 것은 유월절 어린양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또한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성령의 충만함 속에서 항상 몸과 마음을 바쳐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해야 함을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구원하시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념하고 그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더욱 거룩해져야 함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맥추절을 지키는 영적 의미는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두게 됨에 감사할 뿐만 아니라,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성령으로 영을 낳아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가 됨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멸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심에 감사해야 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되었고 하나님과 교통하며 영생할 수 있는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이루며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기까지 성결되어가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2. 맥추감사제
맥추감사제는 소제와 번제와 속죄제를 드리되 상번제(매일 제단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 둘을 드림: 민 28:3~4)와 소제(고운 가루 에바 십분지 일에 빻아낸 기름 힌 사분지 일을 섞어서 드림: 민 28:5~6)와 전제 외에 그것들을 드리라고 했습니다(민 28:26~31). 하나님께서 진정 기뻐 받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과 막힌 담을 헐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예배를 드리며 감사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감사예물을 준비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을 받았으므로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려고 하면 나름대로 마음에 주관이 오거나 깨달음을 받게 됩니다. 이때 하나님을 사랑하고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는 자녀라면 즉시 순종하여 그대로 행해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감사함으로 중심을 바쳐 즐거이 내는 것을 기뻐하십니다(고후 9:6~7).
우리가 선을 심으면 선을 거두고 악을 심으면 악을 거두며, 생명 곧 진리를 심으면 영생을 거두고 비진리를 심으면 사망을 거둡니다. 또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둡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그러나 이 기준은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한 과부의 두 렙돈을 기뻐하신 예수님께서는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막 12:44) 말씀하셨습니다.
옛날에는 소나 양이나 염소 등을 잡아서 제물로 드렸으나 오늘날은 주로 헌금으로 드립니다. 때로는 특별히 자신이 소유한 값진 물건을 드리며, 물질을 드릴 수 없는 경우 마음을 다해 봉사로 몸을 드리기도 합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정성을 다해 기쁨과 순전한 마음, 그리고 믿음으로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기뻐 받으시고 축복해 주십니다. 각종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시고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하시지요.
신명기 16장 10~1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 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성전에 모여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며 기쁨으로 성도들과 교제해야 합니다. 성령을 주시고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천국을 소망하며 성결한 삶을 살도록 도와주심에 감사하며, 더욱 기뻐하고 즐거워해야지요.
3.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기도의 응답은 물론, 아름다운 천국을 약속하셨으니 비록 눈물, 슬픔, 질병, 고통 등을 겪는다 해도 천국의 소망으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또 영원한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삶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으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설사 어떤 염려, 근심, 걱정거리가 있다 해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시니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고 모든 것을 해결해 주실 수 있는 분입니다. 시편 50편 23절을 보면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때로 고난과 연단의 시간을 만난다 해도 진정 감사함으로 받으면 자신을 발견하고 영으로 변화되는 축복의 시간이 되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게 됩니다.
맥추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일인가 깨달아 전반기에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세어 보며 더욱 감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출애굽기 23장 16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넣으세요.
맥추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 얻은 ( )에 감사하여 지키기 시작한 절기이다. ( )이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라는 뜻이고, ( )이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붙여졌다.
3. "항상 ( )하라 쉬지 말고 ( )하라 범사에 ( )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 )이니라" (살전 5:16~18)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소제(素祭)'란?
레위기 2장 1절에 "누구든지 소제의 예물을 여호와께 드리려거든 고운 가루로 예물을 삼아" 하신 말씀대로 곡식을 곱게 갈아 드리는 제사이다. 이는 생명을 주시고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제사로서 오늘날 주일 예배를 드릴 때에 한 주간 지켜 주신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의 예물을 의미한다.
2011-06-24
제25과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
요일 3:21~22
읽을말씀 : 요일 3:21~22 | 외울말씀 : 요일 3:21~22 ㅣ 참고 말씀:막 16:17~18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의 특징과 천국 처소에 대해 알아본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단계에서 더 성장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분량에 이릅니다. 즉 믿음의 5단계로 여기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차원이 더욱 깊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에 순종하는 차원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요. 그래서 믿음의 5단계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자녀들이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말씀에 100퍼센트 순종하는 자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떤 자녀는 아예 반항하거나 빗나가고, 어떤 자녀는 하라고 하니까 억지로 합니다. 그런가 하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은 아니지만 부모님 말씀이니까 도리를 좇아 복종하는 자녀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한 자녀는 부모님을 사랑하기에 마음 아프지 않도록 말씀에 오직 순종합니다. 즉 부모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지요. 여기서 더 사랑이 승한 자녀는, 부모님이 왜 그 말씀을 하시는지 마음까지 헤아려 그 이상까지 해 놓습니다. 시키지 않은 것까지 찾아서 부모님의 마음에 꼭 맞게 해 놓지요. 그러니 얼마나 부모의 마음이 기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하는 자녀가 지극히 사랑스럽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까지 헤아려 행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시지요. 이처럼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보다 넘치도록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순간만 넘치는 행함을 보이거나 가끔가다가 진한 사랑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분초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살아가지요. 그런 모습이 10년이 가도, 100년이 가도 변함이 없으며 오히려 승해질 뿐입니다.
이렇게 온 영을 이룬 사람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든 즉시 응답받고, 마음에 품은 것까지도 응답을 받습니다. 범사에 명철의 길이 보이고, 어떤 질병 균이나 약한 것이 틈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질병이나 약함도 고치며 귀신도 쫓아냅니다. 영적인 권세가 있기 때문에 어둠의 세력이 해를 입히지 못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만한 죄악이 없으니 시험 환난을 가져다 줄 수도 없지요. 혹여 영의 사람이나 온 영의 사람에게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때, 하나님이 시험을 허락하시는 경우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거나 더 큰 권능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2. 믿음의 5단계 특징
첫째로, 생명을 버리기까지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단계를 지나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그에 맞게 행하는 차원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명해도 하나님 뜻이라면 오직 예와 아멘뿐이며 생명을 바쳐서 순종하지요. 믿음의 4단계에서도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드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순종한 믿음의 5단계와는 차이가 납니다.
가령, 어머니가 출근하면서 자녀들에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청소를 해 놓아라." 했습니다. 이때 어떤 자녀는 억지로 청소를 하는 반면 착한 자녀는 어머니를 사랑하여 기쁜 마음으로 이곳저곳 정성껏 청소를 합니다. 이보다 더 선한 자녀는 "어머니가 일하고 오시면 피곤할 텐데 뭐 더 할 것이 없나?" 하고 살피지요. 즉 청소뿐 아니라, 시키지 않은 일까지 찾아서 해 놓습니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는 사랑스러운 정도를 지나서 너무나 대견하고 기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는 죄악이 없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하지만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헤아려 순종하기엔 부족하지요. 그러나 믿음의 5단계는 명한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이런 것을 말씀하셨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더 넘치게 하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무수한 기도를 쌓아 기사와 표적을 행합니다
진리가 마음속에 가득하고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살아가고자 무수한 기도를 쌓게 됩니다. 즉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받기 위해서이지요.
이때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 위해 무수한 기도를 쌓으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 4:48) 말씀하시며 공생애 기간 동안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5단계에서 불같이 기도하여 권능을 받으면 기사와 표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신 대로 표적이 나타나지요. 이러한 증거들을 보여 줄 때 사람들의 생각이 깨지고 마음 문이 열리며 단번에 무수한 영혼이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온 집에 충성합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했고, 7절에는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말씀했습니다. 즉 모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의 5단계에 있었습니다.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은 '자신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사명을 맡게 됩니다. 그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되 한두 가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모든 분야에 마음 다해 감당하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이지요.
여러 사명 중에는 중요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명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사명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5단계 즉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크든 작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명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최선을 다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명을 갖고 있어도 소홀함 없이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며 열매를 내지요. 이는 온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을 직접 뵈올 수 있는 새 예루살렘 성
거룩한 성, 영광의 성이라고 불리는 새 예루살렘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하나님을 직접 뵈올 수 있는 특권을 받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동서남북 사면에 세 개씩 열두 진주문이 있고, 문마다 한 천사가 지키고 있지요.
새 예루살렘 성의 집은 복층이며 정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집주인이 영으로 들어간 깊이와 충성한 공로에 따라, 행적과 취향에 따라 특색이 있고 다채롭지요. 영광의 빛이 집에 얼마나 둘러져 있는지, 장식되어진 보석만 보아도 집주인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연못, 정원, 동물원, 골프장, 무도회장 등 원하는 부대시설은 모두 개인의 소유로 주어집니다. 또한 구름 자가용도 개인 소유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하고 싶고, 갖고 싶지만 주님을 위해 포기한 것을 기억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서 위로와 아름다운 상급으로 갚아 주시지요.
면류관은 기본적으로 금 면류관과 의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계 4:4 ; 딤후 4:7~8). 또한 각 사람에게 딸린 천사들은 무엇을 하든지 그림자처럼 수종을 듭니다. 영으로 통하기 때문에 주인이 원하는 것을 알아서 섬기지요. 이렇게 수종 드는 천사의 수도 온 영에서 더 깊이 들어간 정도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우리가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이 땅에서도 천국의 행복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속이 성결을 이루고 신부 단장을 온전히 마침으로 거룩하고 온전하신 주님의 신부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을 채워 보세요.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 )하는 믿음이다.
2. 믿음에 5단계에 해당되는 것에 동그라미를 해 보세요.
생명의 면류관 금 면류관 복층 주택 새 예루살렘 온 영
믿음의 5단계 단층 주택 정육면체 구름 자가용 문패
3. 믿음의 5단계 특징입니다. ( ) 안을 채워 보세요.
첫째, ( )을 버리기까지 온전히 ( )합니다.
둘째, 무수한 ( )를 쌓아 기사와 ( )을 행합니다.
셋째, ( )에 충성합니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기사'와 '표적'이란?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역사가 이에 속한다. 즉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의 역사이다. 기사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천기를 움직이는 것으로 주로 기상 현상과 관계된다. 구름을 움직이고 비를 오게 하거나 멎게 하는 것, 천체를 움직이는 것들이 이에 속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의 특징과 천국 처소에 대해 알아본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단계에서 더 성장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분량에 이릅니다. 즉 믿음의 5단계로 여기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차원이 더욱 깊어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에 순종하는 차원뿐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요. 그래서 믿음의 5단계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자녀들이 부모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그 말씀에 100퍼센트 순종하는 자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떤 자녀는 아예 반항하거나 빗나가고, 어떤 자녀는 하라고 하니까 억지로 합니다. 그런가 하면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은 아니지만 부모님 말씀이니까 도리를 좇아 복종하는 자녀도 있습니다.
하지만 선한 자녀는 부모님을 사랑하기에 마음 아프지 않도록 말씀에 오직 순종합니다. 즉 부모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마음을 편하게 해 드리지요. 여기서 더 사랑이 승한 자녀는, 부모님이 왜 그 말씀을 하시는지 마음까지 헤아려 그 이상까지 해 놓습니다. 시키지 않은 것까지 찾아서 부모님의 마음에 꼭 맞게 해 놓지요. 그러니 얼마나 부모의 마음이 기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하는 자녀가 지극히 사랑스럽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까지 헤아려 행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시지요. 이처럼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보다 넘치도록 순종하는 것입니다.
어느 한순간만 넘치는 행함을 보이거나 가끔가다가 진한 사랑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분초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살아가지요. 그런 모습이 10년이 가도, 100년이 가도 변함이 없으며 오히려 승해질 뿐입니다.
이렇게 온 영을 이룬 사람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든 즉시 응답받고, 마음에 품은 것까지도 응답을 받습니다. 범사에 명철의 길이 보이고, 어떤 질병 균이나 약한 것이 틈타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의 질병이나 약함도 고치며 귀신도 쫓아냅니다. 영적인 권세가 있기 때문에 어둠의 세력이 해를 입히지 못합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만한 죄악이 없으니 시험 환난을 가져다 줄 수도 없지요. 혹여 영의 사람이나 온 영의 사람에게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때, 하나님이 시험을 허락하시는 경우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거나 더 큰 권능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2. 믿음의 5단계 특징
첫째로, 생명을 버리기까지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단계를 지나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그에 맞게 행하는 차원입니다. 불가능한 일을 명해도 하나님 뜻이라면 오직 예와 아멘뿐이며 생명을 바쳐서 순종하지요. 믿음의 4단계에서도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드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순종한 믿음의 5단계와는 차이가 납니다.
가령, 어머니가 출근하면서 자녀들에게 "내가 돌아올 때까지 청소를 해 놓아라." 했습니다. 이때 어떤 자녀는 억지로 청소를 하는 반면 착한 자녀는 어머니를 사랑하여 기쁜 마음으로 이곳저곳 정성껏 청소를 합니다. 이보다 더 선한 자녀는 "어머니가 일하고 오시면 피곤할 텐데 뭐 더 할 것이 없나?" 하고 살피지요. 즉 청소뿐 아니라, 시키지 않은 일까지 찾아서 해 놓습니다. 이런 자녀를 둔 부모는 사랑스러운 정도를 지나서 너무나 대견하고 기쁠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는 죄악이 없고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하지만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헤아려 순종하기엔 부족하지요. 그러나 믿음의 5단계는 명한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이런 것을 말씀하셨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더 넘치게 하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무수한 기도를 쌓아 기사와 표적을 행합니다
진리가 마음속에 가득하고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살아가고자 무수한 기도를 쌓게 됩니다. 즉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받기 위해서이지요.
이때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 위해 무수한 기도를 쌓으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요 4:48) 말씀하시며 공생애 기간 동안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통해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셨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5단계에서 불같이 기도하여 권능을 받으면 기사와 표적을 행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7~18절에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신 대로 표적이 나타나지요. 이러한 증거들을 보여 줄 때 사람들의 생각이 깨지고 마음 문이 열리며 단번에 무수한 영혼이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온 집에 충성합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했고, 7절에는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말씀했습니다. 즉 모세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의 5단계에 있었습니다.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은 '자신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여러 사명을 맡게 됩니다. 그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되 한두 가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모든 분야에 마음 다해 감당하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이지요.
여러 사명 중에는 중요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명도 있지만 드러나지 않는 사명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5단계 즉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크든 작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명을 소중히 여기기 때문에 최선을 다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명을 갖고 있어도 소홀함 없이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며 열매를 내지요. 이는 온전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3. 하나님을 직접 뵈올 수 있는 새 예루살렘 성
거룩한 성, 영광의 성이라고 불리는 새 예루살렘은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곳입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보좌가 있고 하나님을 직접 뵈올 수 있는 특권을 받습니다. 새 예루살렘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성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동서남북 사면에 세 개씩 열두 진주문이 있고, 문마다 한 천사가 지키고 있지요.
새 예루살렘 성의 집은 복층이며 정금과 보석으로 화려하기 그지없습니다. 집주인이 영으로 들어간 깊이와 충성한 공로에 따라, 행적과 취향에 따라 특색이 있고 다채롭지요. 영광의 빛이 집에 얼마나 둘러져 있는지, 장식되어진 보석만 보아도 집주인이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에서는 연못, 정원, 동물원, 골프장, 무도회장 등 원하는 부대시설은 모두 개인의 소유로 주어집니다. 또한 구름 자가용도 개인 소유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에서 하고 싶고, 갖고 싶지만 주님을 위해 포기한 것을 기억하여 새 예루살렘 성에서 위로와 아름다운 상급으로 갚아 주시지요.
면류관은 기본적으로 금 면류관과 의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계 4:4 ; 딤후 4:7~8). 또한 각 사람에게 딸린 천사들은 무엇을 하든지 그림자처럼 수종을 듭니다. 영으로 통하기 때문에 주인이 원하는 것을 알아서 섬기지요. 이렇게 수종 드는 천사의 수도 온 영에서 더 깊이 들어간 정도에 따라 차이가 납니다.
우리가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이 땅에서도 천국의 행복을 얼마든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속이 성결을 이루고 신부 단장을 온전히 마침으로 거룩하고 온전하신 주님의 신부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을 채워 보세요.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 )하는 믿음이다.
2. 믿음에 5단계에 해당되는 것에 동그라미를 해 보세요.
생명의 면류관 금 면류관 복층 주택 새 예루살렘 온 영
믿음의 5단계 단층 주택 정육면체 구름 자가용 문패
3. 믿음의 5단계 특징입니다. ( ) 안을 채워 보세요.
첫째, ( )을 버리기까지 온전히 ( )합니다.
둘째, 무수한 ( )를 쌓아 기사와 ( )을 행합니다.
셋째, ( )에 충성합니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기사'와 '표적'이란?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역사가 이에 속한다. 즉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의 역사이다. 기사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천기를 움직이는 것으로 주로 기상 현상과 관계된다. 구름을 움직이고 비를 오게 하거나 멎게 하는 것, 천체를 움직이는 것들이 이에 속한다.
2011-06-17
제24과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
요 14:21
읽을말씀 : 요 14:21 | 외울말씀 : 요 14:21 l 참고 말씀:요 14:15
교육목표 :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성결된 믿음의 4단계의 특징과 천국 처소에 대해 알아본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했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도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지만 마음의 죄성까지 다 버리지 않았기에 "주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것이 조금은 민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에서는 온전히 계명을 지키며 죄성을 버렸기 때문에 담대히 "주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하지요.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나타나고, 강건하고 형통한 복을 누릴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많은 영광과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1.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는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를 지나 마음의 죄성까지도 벗어 버림으로 온전히 진리 안에 거합니다. 즉 영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참 자녀라 할 수 있지요. 그러면 믿음의 4단계와 믿음의 1, 2, 3단계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살전 5:16~18).
만일 누군가 아무 죄도 없는 여러분을 모함했다면 어떤 심정이 들겠습니까? 이때 믿음의 1단계나 2단계 초입은 당사자를 찾아가 시시비비를 따집니다. 변론하며 언성이 높아져 다투지요. 하지만 믿음의 2단계 중반만 되어도 악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크게 혈기 내거나 악을 발하는 것은 웬만큼은 절제합니다.
믿음의 3단계, 믿음의 반석에 서기 전이라면 감정이 요동하기도 합니다. 진리를 알기 때문에 '감사하자, 기뻐하자.' 하며 참지만 마음 중심에서 감사가 나오지는 않지요. 그리고 믿음의 반석에 서면 불평하기보다는 더 기뻐하고 감사하려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혹여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쳐도 이내 바꾸지요.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그런 일에는 전혀 요동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고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로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지는 않지요. 원수라도 축복하고 상대가 범죄하지 않도록 긍휼히 여기며 기도해 줍니다.
이처럼 똑같은 상황이라 해도 믿음의 분량에 따라 반응이 다르고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마음의 향이 차이가 나지요. 믿음의 4단계에서는 팔복과 사랑장의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많이 맺힐 뿐 아니라, 건강과 물질, 가족복음화의 축복은 물론 범사가 형통합니다.
2. 믿음의 4단계 특징
첫째, 하나님을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하나님 이것을 해 주시면 제가 그걸 하겠습니다."라고 조건을 달거나,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조건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응답과 축복받기 위해서나 재앙을 당할까 두려워서 지키는 것도 아니지요. 다만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에 사무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깁니다.
성경에 다니엘의 세 친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 불에 던지겠다고 왕이 위협하는데도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라고 단호히 말하지요. 불 가운데서도 건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굳게 신뢰했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상관없이 곧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뜻을 행할 따름이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을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면 세상 부귀영화도 아깝지 않고 가족이나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며 주를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 3:7~8).
예수님께서는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처음에는 핍박이 올 수도 있고 믿음이 적을 때는 그로 인해 힘들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이 변치 않고 거룩하게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아갈 때, 세상 사람에게도 인정받습니다. 더구나 영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믿음이 되면 사단이 역사하지 못하므로 핍박이 물러가고, 주변으로부터도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을 받습니다.
셋째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집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했습니다.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다는 것은 건강을 포함하여 가정, 일터, 사업터와 범사에 잘되고 형통한 것을 의미합니다. 영혼이 잘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항상 모든 일을 앞서 해결해 주시니 만사에 형통합니다.
그러면 영혼이 잘된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이는 죽었던 영이 살아나서 영과 혼과 육의 질서가 바로 잡히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영이 주인이 되어 혼과 육이 순종하니 오직 진리대로만 살아가지요.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납니다. 이때 살아난 영이 성장하여 혼과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주인 역할을 하지요. 영혼이 잘된 사람은 사단이 아무리 비진리의 생각을 주입시키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악이 없기 때문이지요.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방송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사단이 그의 마음을 주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믿음의 4단계가 들어가는 3천층
믿음의 3단계가 들어가는 2천층과 믿음의 4단계가 가는 3천층의 삶은 천양지차입니다. 그 영광과 행복이 이처럼 차이가 나는 것은 성결됐느냐, 안 됐느냐에 있지요. 먼저 천사가 수종 드는 것만 보아도 다릅니다. 낙원이나 1, 2천층에는 천사들이 천국을 관리하고 때를 좇아 하나님의 자녀들을 돕지만 개인적으로 수종은 들지 않습니다. 반면 3천층부터는 각 사람에게 수종 드는 천사가 있으며, 얼마나 더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기쁘시게 했는지에 따라 따르는 천사의 수도 달라집니다.
또한 3천층에서는 천사가 주인의 마음을 읽고 순종합니다. 주인이 과일을 먹고 싶어 하면 그 마음을 읽고 과일을 따다 주지요. 하지만 2천층에서는 천사에게 과일을 가져오라고 명해야 움직입니다. 또한 3천층에서는 구름 자가용을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2천층 이하의 사람과 3천층 이상에 들어간 사람은 겉모습만 보아도 큰 차이가 납니다. 각 사람의 영광의 빛이 다르고 옷과 옷의 문양, 장식, 머리 모양 등이 달라서 그가 얼마나 성결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지 금방 구별이 됩니다.
집을 보면 2천층은 모두 단층인 반면 3천층부터는 복층 건물로 지어집니다. 수영장이나, 산책길, 호수 등 부속시설을 2천층에서는 한 가지만 소유할 수 있는데, 3천층에서는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지요. 그리고 2천층의 집에는 문패가 있는 반면 3천층에는 없습니다. 그 집 자체에서 주인의 향이 흘러나와 누가 주인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결을 이루고 생명 다해 충성한 3천층의 영혼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약 1:12 ; 계 2:10).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뿐 아니라, 조건 없이 사랑한다 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지 자신의 믿음의 현주소를 잘 점검하여 더 높은 믿음의 단계로 끌어올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을 채워 보세요.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을 ( ) ( ) 믿음이다.
2. ( ) 안에 알맞은 천국 처소를 써보세요.
영광의 면류관 ( ) 생명의 면류관 ( )
복층 주택 ( ) 단층 주택 ( )
공동 구름자가용 ( ) 개인 구름자가용 ( )
썩지 아니할 면류관 ( ) 문패가 있다 ( )
3. 어떤 사람이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우길 때 여러분의 심정은 어떠할지 체크해 보세요.
① 시시비비를 따지며 끝장을 본다. ② 표현은 않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③ 기쁨과 감사로 이기며 그를 위해 기도해 준다. ④ 그냥 무시해 버린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죽도록 충성'이란?
단순히 육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열심히 일하고 충성한다는 뜻이 아니라, 성경 66권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루어 드린다는 뜻이다. 즉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 나가는 충성을 말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성결된 믿음의 4단계의 특징과 천국 처소에 대해 알아본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말씀했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도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지만 마음의 죄성까지 다 버리지 않았기에 "주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것이 조금은 민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에서는 온전히 계명을 지키며 죄성을 버렸기 때문에 담대히 "주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하지요. 이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증거가 나타나고, 강건하고 형통한 복을 누릴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참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많은 영광과 권세를 누리게 됩니다.
1.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는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를 지나 마음의 죄성까지도 벗어 버림으로 온전히 진리 안에 거합니다. 즉 영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참 자녀라 할 수 있지요. 그러면 믿음의 4단계와 믿음의 1, 2, 3단계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살전 5:16~18).
만일 누군가 아무 죄도 없는 여러분을 모함했다면 어떤 심정이 들겠습니까? 이때 믿음의 1단계나 2단계 초입은 당사자를 찾아가 시시비비를 따집니다. 변론하며 언성이 높아져 다투지요. 하지만 믿음의 2단계 중반만 되어도 악을 버리기 위해 노력하기 때문에 크게 혈기 내거나 악을 발하는 것은 웬만큼은 절제합니다.
믿음의 3단계, 믿음의 반석에 서기 전이라면 감정이 요동하기도 합니다. 진리를 알기 때문에 '감사하자, 기뻐하자.' 하며 참지만 마음 중심에서 감사가 나오지는 않지요. 그리고 믿음의 반석에 서면 불평하기보다는 더 기뻐하고 감사하려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혹여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쳐도 이내 바꾸지요.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그런 일에는 전혀 요동함이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고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로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지는 않지요. 원수라도 축복하고 상대가 범죄하지 않도록 긍휼히 여기며 기도해 줍니다.
이처럼 똑같은 상황이라 해도 믿음의 분량에 따라 반응이 다르고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마음의 향이 차이가 나지요. 믿음의 4단계에서는 팔복과 사랑장의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많이 맺힐 뿐 아니라, 건강과 물질, 가족복음화의 축복은 물론 범사가 형통합니다.
2. 믿음의 4단계 특징
첫째, 하나님을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을 사랑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하나님 이것을 해 주시면 제가 그걸 하겠습니다."라고 조건을 달거나,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무조건 사랑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응답과 축복받기 위해서나 재앙을 당할까 두려워서 지키는 것도 아니지요. 다만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가슴에 사무치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을 너무나 당연하게 여깁니다.
성경에 다니엘의 세 친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상에 절하지 않으면 풀무 불에 던지겠다고 왕이 위협하는데도 "만일 그럴 것이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라고 단호히 말하지요. 불 가운데서도 건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굳게 신뢰했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상관없이 곧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뜻을 행할 따름이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을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둘째로,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면 세상 부귀영화도 아깝지 않고 가족이나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사도 바울은 무엇이든지 자신에게 유익하던 것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기며 주를 위해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빌 3:7~8).
예수님께서는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처음에는 핍박이 올 수도 있고 믿음이 적을 때는 그로 인해 힘들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믿음이 변치 않고 거룩하게 구별된 성도의 삶을 살아갈 때, 세상 사람에게도 인정받습니다. 더구나 영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을 제일로 사랑하는 믿음이 되면 사단이 역사하지 못하므로 핍박이 물러가고, 주변으로부터도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을 받습니다.
셋째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해집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했습니다.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다는 것은 건강을 포함하여 가정, 일터, 사업터와 범사에 잘되고 형통한 것을 의미합니다. 영혼이 잘된 사람은 하나님께서 항상 모든 일을 앞서 해결해 주시니 만사에 형통합니다.
그러면 영혼이 잘된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이는 죽었던 영이 살아나서 영과 혼과 육의 질서가 바로 잡히는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 영이 주인이 되어 혼과 육이 순종하니 오직 진리대로만 살아가지요.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납니다. 이때 살아난 영이 성장하여 혼과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주인 역할을 하지요. 영혼이 잘된 사람은 사단이 아무리 비진리의 생각을 주입시키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악이 없기 때문이지요. 주파수가 맞지 않으면 방송을 들을 수 없는 것처럼 사단이 그의 마음을 주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3. 믿음의 4단계가 들어가는 3천층
믿음의 3단계가 들어가는 2천층과 믿음의 4단계가 가는 3천층의 삶은 천양지차입니다. 그 영광과 행복이 이처럼 차이가 나는 것은 성결됐느냐, 안 됐느냐에 있지요. 먼저 천사가 수종 드는 것만 보아도 다릅니다. 낙원이나 1, 2천층에는 천사들이 천국을 관리하고 때를 좇아 하나님의 자녀들을 돕지만 개인적으로 수종은 들지 않습니다. 반면 3천층부터는 각 사람에게 수종 드는 천사가 있으며, 얼마나 더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기쁘시게 했는지에 따라 따르는 천사의 수도 달라집니다.
또한 3천층에서는 천사가 주인의 마음을 읽고 순종합니다. 주인이 과일을 먹고 싶어 하면 그 마음을 읽고 과일을 따다 주지요. 하지만 2천층에서는 천사에게 과일을 가져오라고 명해야 움직입니다. 또한 3천층에서는 구름 자가용을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2천층 이하의 사람과 3천층 이상에 들어간 사람은 겉모습만 보아도 큰 차이가 납니다. 각 사람의 영광의 빛이 다르고 옷과 옷의 문양, 장식, 머리 모양 등이 달라서 그가 얼마나 성결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지 금방 구별이 됩니다.
집을 보면 2천층은 모두 단층인 반면 3천층부터는 복층 건물로 지어집니다. 수영장이나, 산책길, 호수 등 부속시설을 2천층에서는 한 가지만 소유할 수 있는데, 3천층에서는 원하는 모든 것을 소유하지요. 그리고 2천층의 집에는 문패가 있는 반면 3천층에는 없습니다. 그 집 자체에서 주인의 향이 흘러나와 누가 주인인지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결을 이루고 생명 다해 충성한 3천층의 영혼들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십니다(약 1:12 ; 계 2:10).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뿐 아니라, 조건 없이 사랑한다 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지 자신의 믿음의 현주소를 잘 점검하여 더 높은 믿음의 단계로 끌어올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을 채워 보세요.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을 ( ) ( ) 믿음이다.
2. ( ) 안에 알맞은 천국 처소를 써보세요.
영광의 면류관 ( ) 생명의 면류관 ( )
복층 주택 ( ) 단층 주택 ( )
공동 구름자가용 ( ) 개인 구름자가용 ( )
썩지 아니할 면류관 ( ) 문패가 있다 ( )
3. 어떤 사람이 내가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고 우길 때 여러분의 심정은 어떠할지 체크해 보세요.
① 시시비비를 따지며 끝장을 본다. ② 표현은 않지만 마음이 불편하다.
③ 기쁨과 감사로 이기며 그를 위해 기도해 준다. ④ 그냥 무시해 버린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죽도록 충성'이란?
단순히 육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열심히 일하고 충성한다는 뜻이 아니라, 성경 66권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루어 드린다는 뜻이다. 즉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켜 나가는 충성을 말한다.
2011-06-10
제23과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마 7:24~25
읽을말씀 : 마 7:24~25 | 외울말씀 : 마 7:24 ㅣ 참고 말씀:요일 2:14
교육목표 : 믿음의 3단계 초입에서 60% 이상 반석에 온전히 서기까지 믿음의 행함과 이들이 들어가는 천국 처소에 대해 알아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들어서 안다고 해도 지켜 행하지 않으면 믿음이란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하든 지켜 행하려고 애쓰다 보면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주심으로 믿음이 점점 자라나지요.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하든 기도하며 육체의 일을 온전히 버리면 마침내 말씀대로 능히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1.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믿음의 2단계에서는 행함으로 짓는 죄 곧 육체의 일을 범할 때도 있지만, 3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육체의 일은 나오지 않습니다. 3단계부터는 오히려 변화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요.
가령, 애매하게 욕을 먹고 책망을 들어도 묵묵히 참으며 어려운 일을 당해도 기뻐하려고 애씁니다. 내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아도 상대 입장에서 이해하고 섬기려 노력하지요. 그러니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세상 사람에게 "저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니 뭔가 다르다."는 말을 듣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 들어서면 하나님 말씀을 의무감 속에 억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행함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드리면 축복받고 지킴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온전히 지킵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이 마치 일상처럼 익숙해져 안정적이지요. 하지만 믿음의 2단계는 마음에서부터 깨달은 상태가 아니기에 지켰다, 못 지켰다 합니다. 이렇게 마음에서 깨달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확연히 차이가 나지요.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 말씀대로 행한다 해서 무조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가족의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일 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한다거나, 예배 시간 내내 졸고 "얼른 집에 가서 축구 경기를 봐야겠다." 등 잡념 속에 예배를 드린다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없습니다. 또 심고 행한 것에 본인이 생각한 만큼 빨리 축복이 오지 않으면 후회하거나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믿음의 분량이란 어느 한두 가지의 외적인 행함이 아니라 마음에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믿는지를 통해 분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의 3단계에서는 육신의 일을 버리기 위한 선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이미 육체의 일을 버렸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마음속의 죄성 즉 육신의 일을 버려 나가게 되지요. 죄성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할 수가 없기 때문에 뿌리를 완전히 뽑을 때까지 계속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기 마련입니다.
2.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
같은 믿음의 단계에 속해도 저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믿음의 2단계를 1퍼센트에서 100퍼센트로 나눌 때 100퍼센트에 가까울수록 믿음의 3단계에 가깝고, 믿음의 3단계에서 100퍼센트가 되면 믿음의 4단계로 들어가지요.
믿음의 2단계를 지나 믿음의 3단계에 들어서서 말씀대로 행한다 해도 처음에는 마음에 갈등을 겪습니다. 즉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싸우지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은 하지만 마음에 남아 있는 죄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믿음의 2단계처럼 육체의 일을 행하거나 "진리대로 행할까, 말까." 갈등하지는 않습니다. 진리대로 행하기는 하되 그러면서도 선을 좇으려는 영의 생각과 악을 좇으려는 육신의 생각이 싸우지요.
믿음의 2단계는 고난을 당할 때 기뻐하고 감사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결국 이기지 못해 불평을 쏟아버립니다. 그러나 믿음의 3단계는 고난 중에도 능히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단계에서 100% 온전한 기쁨과 감사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3단계 초입이라면 어려움을 만나는 순간 "너무 힘들다." 하는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낙심되고 충만함이 사라지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곧 성령의 음성을 들음으로 '아니야, 기뻐하고 감사해야지. 하나님은 살아 계신데 내가 왜 낙심하는가.' 하고 자신의 마음을 진리로 다지지요.
그러다가 믿음의 3단계 60퍼센트 이상에 이르면 마음에서 죄성이 많이 버려진 상태이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많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만큼 죄성을 버리고 영에 가까이 왔다는 증거이지요. 이때는 어려움을 갑자기 만난다 해도 낙심하거나 불평하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려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혹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쳐도 이내 감사와 기쁨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4~25절에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했습니다. 반석은 곧 그리스도(고전 10:4)로 시험 환난에 믿음이 요동하지 않고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면,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섰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 60%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 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합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순간 불편한 생각이 든다 해도 즉시 영의 생각, 진리의 생각으로 바꿀 수 있고, 평안한 마음으로 상대를 섬깁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이 힘들지 않고 하루하루가 기쁘고 행복하지요.
나아가 70~80%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이때는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마치 몸에 배인 습관처럼 저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믿음의 3단계에 들어서서 육신의 일을 하나하나 버려 나가 4단계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과 더 밝히 교통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더 진하게 느낍니다.
이때는 아무리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를 사랑하지는 못할망정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급히 돈이 필요할 때 길에서 지갑을 줍는다 해도 "내가 쓸까, 주인을 찾아 줄까." 갈등하지 않고 바로 주인을 찾아 주지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순간의 육신의 생각조차 동원되지 않고 즉시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면 마침내 영의 믿음, 곧 믿음의 4단계가 됩니다.
요한일서 2장 14절에 "청년들아 …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청년들은 믿음의 3단계로, 하나님 말씀이 그 안에 거하시니 항상 말씀대로 행할 수 있고, 그 말씀의 검으로 흉악한 자, 곧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길 수 있는 믿음입니다.
3. 믿음의 3단계가 들어가는 2천층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는 2천층입니다. 다세대 주택 형태의 집이 주어지는 1천층과는 달리 2천층에는 독립된 주택이 주어집니다. 2천층의 집은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로운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꽃과 나무들로 잘 단장되어 있습니다.
2천층에서는 자신이 가장 원하는 부속시설 한 가지만 자신의 소유로 받습니다. 아름다운 호수가 갖고 싶으면 호수를, 수영장을 갖고 싶으면 수영장을 가질 수 있지요. 자신에게 없는 부속시설은 다른 사람의 집에 가서 사용해도 서로 행복해합니다.
또한 각 사람의 집에는 문패가 있고 거기에는 천국 글씨로 주인의 이름과 이 땅에서 섬기던 교회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면 그만큼 영광과 자랑이 더하지요. 게다가 2천층에 들어오면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벧전 5:4). 이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가령, 전에는 작은 일에도 혈기를 냈는데 "교회 다니더니 착하게 변했다."고 가족이나 주변으로부터 칭찬이 자자하지요. 이처럼 언어, 행실이 진리의 말씀대로 바뀌면 사람들에게 그 자체가 빛으로 비춰져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마 5:16).
2천층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것과 비할 수 없는 상급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가 넘쳐납니다. 하지만 '마음의 죄성까지 버려서 온전히 성결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들지요.
우리 안에 죄성이 있으면 결코 3천층이나 새 예루살렘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림으로 성결되고, 온 집에 충성함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참으로 너는 내 아들이다. 딸이다."라고 인정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을 채워 보세요.
믿음의 3단계 ( )에서는 어려움을 만나면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낙심되려고도 한다. 그러나 3단계 ( )% 이상이 되면 어려움을 갑자기 만나도 낙심하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뻐하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이때는 믿음의 ( )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 ~ )%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서서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몸에 밴 습관처럼 저절로 나온다.
2. 다음 중 믿음의 3단계에 해당하는 것을 고르시오.
① 2천층 ② 영광의 면류관 ③ 문패
④ 단층의 개인 주택 ⑤ 청년들의 믿음 ⑥ 1천층
3. "나는 당당히 믿음의 반석에 섰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육신의 일'이란?
미움, 시기, 질투, 교만, 판단, 간음, 등 아직 행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들을 말한다. 즉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죄성들을 하나하나 분리해 놓은 것이다.
교육목표 : 믿음의 3단계 초입에서 60% 이상 반석에 온전히 서기까지 믿음의 행함과 이들이 들어가는 천국 처소에 대해 알아본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들어서 안다고 해도 지켜 행하지 않으면 믿음이란 성장할 수가 없습니다. 어찌하든 지켜 행하려고 애쓰다 보면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주심으로 믿음이 점점 자라나지요.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때로는 지키기도 하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찌하든 기도하며 육체의 일을 온전히 버리면 마침내 말씀대로 능히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1.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믿음의 2단계에서는 행함으로 짓는 죄 곧 육체의 일을 범할 때도 있지만, 3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육체의 일은 나오지 않습니다. 3단계부터는 오히려 변화되어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지요.
가령, 애매하게 욕을 먹고 책망을 들어도 묵묵히 참으며 어려운 일을 당해도 기뻐하려고 애씁니다. 내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아도 상대 입장에서 이해하고 섬기려 노력하지요. 그러니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세상 사람에게 "저 사람은 하나님을 믿으니 뭔가 다르다."는 말을 듣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 들어서면 하나님 말씀을 의무감 속에 억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행함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드리면 축복받고 지킴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기에 온전히 지킵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이 마치 일상처럼 익숙해져 안정적이지요. 하지만 믿음의 2단계는 마음에서부터 깨달은 상태가 아니기에 지켰다, 못 지켰다 합니다. 이렇게 마음에서 깨달은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은 확연히 차이가 나지요.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 말씀대로 행한다 해서 무조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는 없습니다. 만일 가족의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주일 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한다거나, 예배 시간 내내 졸고 "얼른 집에 가서 축구 경기를 봐야겠다." 등 잡념 속에 예배를 드린다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없습니다. 또 심고 행한 것에 본인이 생각한 만큼 빨리 축복이 오지 않으면 후회하거나 불평불만을 쏟아내는 것도 마찬가지이지요. 믿음의 분량이란 어느 한두 가지의 외적인 행함이 아니라 마음에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믿는지를 통해 분별할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의 3단계에서는 육신의 일을 버리기 위한 선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이미 육체의 일을 버렸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마음속의 죄성 즉 육신의 일을 버려 나가게 되지요. 죄성이 있으면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할 수가 없기 때문에 뿌리를 완전히 뽑을 때까지 계속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기 마련입니다.
2.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
같은 믿음의 단계에 속해도 저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믿음의 2단계를 1퍼센트에서 100퍼센트로 나눌 때 100퍼센트에 가까울수록 믿음의 3단계에 가깝고, 믿음의 3단계에서 100퍼센트가 되면 믿음의 4단계로 들어가지요.
믿음의 2단계를 지나 믿음의 3단계에 들어서서 말씀대로 행한다 해도 처음에는 마음에 갈등을 겪습니다. 즉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이 싸우지요.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은 하지만 마음에 남아 있는 죄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믿음의 2단계처럼 육체의 일을 행하거나 "진리대로 행할까, 말까." 갈등하지는 않습니다. 진리대로 행하기는 하되 그러면서도 선을 좇으려는 영의 생각과 악을 좇으려는 육신의 생각이 싸우지요.
믿음의 2단계는 고난을 당할 때 기뻐하고 감사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결국 이기지 못해 불평을 쏟아버립니다. 그러나 믿음의 3단계는 고난 중에도 능히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단계에서 100% 온전한 기쁨과 감사가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3단계 초입이라면 어려움을 만나는 순간 "너무 힘들다." 하는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낙심되고 충만함이 사라지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곧 성령의 음성을 들음으로 '아니야, 기뻐하고 감사해야지. 하나님은 살아 계신데 내가 왜 낙심하는가.' 하고 자신의 마음을 진리로 다지지요.
그러다가 믿음의 3단계 60퍼센트 이상에 이르면 마음에서 죄성이 많이 버려진 상태이므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데 별 어려움이 없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많이 작용하지 않기 때문인데 그만큼 죄성을 버리고 영에 가까이 왔다는 증거이지요. 이때는 어려움을 갑자기 만난다 해도 낙심하거나 불평하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려는 생각이 먼저 떠오릅니다. 혹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쳐도 이내 감사와 기쁨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24~25절에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했습니다. 반석은 곧 그리스도(고전 10:4)로 시험 환난에 믿음이 요동하지 않고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면,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든든히 섰다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 60%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 위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합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순간 불편한 생각이 든다 해도 즉시 영의 생각, 진리의 생각으로 바꿀 수 있고, 평안한 마음으로 상대를 섬깁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이 힘들지 않고 하루하루가 기쁘고 행복하지요.
나아가 70~80%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이때는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마치 몸에 배인 습관처럼 저절로 나옵니다. 이렇게 믿음의 3단계에 들어서서 육신의 일을 하나하나 버려 나가 4단계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님과 더 밝히 교통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더 진하게 느낍니다.
이때는 아무리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그를 사랑하지는 못할망정 미워하지는 않습니다. 급히 돈이 필요할 때 길에서 지갑을 줍는다 해도 "내가 쓸까, 주인을 찾아 줄까." 갈등하지 않고 바로 주인을 찾아 주지요.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순간의 육신의 생각조차 동원되지 않고 즉시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하게 되면 마침내 영의 믿음, 곧 믿음의 4단계가 됩니다.
요한일서 2장 14절에 "청년들아 …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청년들은 믿음의 3단계로, 하나님 말씀이 그 안에 거하시니 항상 말씀대로 행할 수 있고, 그 말씀의 검으로 흉악한 자, 곧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길 수 있는 믿음입니다.
3. 믿음의 3단계가 들어가는 2천층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는 2천층입니다. 다세대 주택 형태의 집이 주어지는 1천층과는 달리 2천층에는 독립된 주택이 주어집니다. 2천층의 집은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로운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꽃과 나무들로 잘 단장되어 있습니다.
2천층에서는 자신이 가장 원하는 부속시설 한 가지만 자신의 소유로 받습니다. 아름다운 호수가 갖고 싶으면 호수를, 수영장을 갖고 싶으면 수영장을 가질 수 있지요. 자신에게 없는 부속시설은 다른 사람의 집에 가서 사용해도 서로 행복해합니다.
또한 각 사람의 집에는 문패가 있고 거기에는 천국 글씨로 주인의 이름과 이 땅에서 섬기던 교회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면 그만큼 영광과 자랑이 더하지요. 게다가 2천층에 들어오면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벧전 5:4). 이들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사명을 감당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입니다.
가령, 전에는 작은 일에도 혈기를 냈는데 "교회 다니더니 착하게 변했다."고 가족이나 주변으로부터 칭찬이 자자하지요. 이처럼 언어, 행실이 진리의 말씀대로 바뀌면 사람들에게 그 자체가 빛으로 비춰져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마 5:16).
2천층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것과 비할 수 없는 상급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가 넘쳐납니다. 하지만 '마음의 죄성까지 버려서 온전히 성결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는 안타깝고 아쉬운 마음이 들지요.
우리 안에 죄성이 있으면 결코 3천층이나 새 예루살렘에는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림으로 성결되고, 온 집에 충성함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참으로 너는 내 아들이다. 딸이다."라고 인정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을 채워 보세요.
믿음의 3단계 ( )에서는 어려움을 만나면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 낙심되려고도 한다. 그러나 3단계 ( )% 이상이 되면 어려움을 갑자기 만나도 낙심하기보다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뻐하려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 이때는 믿음의 ( )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 ~ )%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서서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몸에 밴 습관처럼 저절로 나온다.
2. 다음 중 믿음의 3단계에 해당하는 것을 고르시오.
① 2천층 ② 영광의 면류관 ③ 문패
④ 단층의 개인 주택 ⑤ 청년들의 믿음 ⑥ 1천층
3. "나는 당당히 믿음의 반석에 섰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까?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육신의 일'이란?
미움, 시기, 질투, 교만, 판단, 간음, 등 아직 행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들을 말한다. 즉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죄성들을 하나하나 분리해 놓은 것이다.
2011-06-03
제22과말씀대로 행하려는 믿음의 2단계
롬 7:21~25
읽을말씀 : 롬 7:21~25 | 외울말씀 : 고전 9:25 ㅣ 참고 말씀:롬 8:26
교육목표 :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팽팽히 싸우므로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믿음의 2단계에 대해 알아본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호적에 올려야 비로소 대한민국 국민이 됩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마침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가 바로 믿음의 1단계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고 주님을 믿기 전과 큰 차이 없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 후 점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배운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믿음의 2단계 선상에 오르게 됩니다.
1.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
믿음의 2단계는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입니다. 이때는 진리대로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말씀대로 살 때도 있고, 때로는 죄를 짓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라" 했는데 집안이나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가끔씩 주일을 빠집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려고는 하지만 바쁜 일이 생기면 기도를 쉬지요. 시험과 환난을 만나면 기뻐하고 감사하려고 애는 쓰지만 어느 한계점에서 참지 못하고 원망을 쏟아냅니다. 내 생각과 뜻에 맞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처음에는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폭발하여 혈기 내고 싸우지요. 육체의 일을 버리지 못한 이런 모습이 바로 2단계의 믿음입니다.
아무리 '나는 주의 종이요, 장로요, 권사요, 연합회장이요, 기관장'이라 해도 혈기 내고 싸우며 불평불만을 쏟아내면 믿음의 2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연수나 직분의 높낮이로 믿음을 판가름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말씀대로 행했느냐에 따라 믿음의 유무를 가늠하시지요.
그렇다고 나의 믿음이 2단계라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큰 믿음으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당장은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노력하는 모습을 가상히 여기시지요. 그러므로 불같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말씀대로 행하려고 계속 노력해 가면 스스로도 변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에는 열 번 범죄했는데 아홉 번, 여덟 번, 다섯 번, 세 번, 한 번으로 점점 줄어들어 마침내는 범죄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되지요. 이렇게 변화될수록 믿음의 2단계에서 점점 믿음의 3단계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 중에서 가장 힘든 믿음의 2단계
믿음의 2단계에 있는 사람은 신앙생활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여전히 세상이 좋고 비진리를 행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과 죄를 좇고자 하는 마음이 팽팽하여 신앙생활 하기가 가장 힘들지요. 만일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행치 못하고, 점점 충만함이 떨어지고 곤고해지다가 신앙생활을 등한시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이처럼 연약한 영혼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절히 기도해 주시지요. 로마서 8장 26절에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의 1단계에 있을 때는 죄가 죄인지도 모릅니다. 죄를 지어도 곤고함이나 성령의 탄식을 느끼지도 못하지요. 그러나 믿음의 1단계를 지나 믿음의 2단계가 되면 죄를 지었을 때 곤고해지고 충만함이 떨어져 괴로워합니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성령께서 탄식하는 것을 느끼지요. 그렇다고 믿음의 2단계가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서 깨달아 행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를 배웠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할 뿐이지요.
예를 들어 "안식일을 지키라"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송하며 성도와 교제하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지요. 설령 누가 주일에 영화 보러 가자고 해도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을 마음으로 깨닫지 못한 사람은 피곤하면 망설여집니다. 집에서 쉬고 싶고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면 안 되나?' 하고 갈등이 생기지요. 친구들이 주일에 여행을 가자고 하면 '주일을 지켜야 된다.'는 마음과 '여행을 갈까?'라는 두 마음이 대립합니다. 곧 말씀대로 행하려는 성령의 소욕과 세상을 좇으려는 육신의 소욕이 싸우지요.
이때 세상을 좇으려는 마음이 강하면 주일을 어길 가능성이 크고, 성령의 소욕을 좇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하면 세상 정욕을 이겨 주일을 지키게 됩니다. 이런 싸움이 가장 치열할 때가 바로 두 마음이 50대 50일 때입니다. 진리의 마음이든 비진리의 마음이든 한쪽의 힘이 월등하면 센 쪽으로 기울 텐데 양쪽이 팽팽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지지요.
로마서 7장 22~24절에 보면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말씀했습니다.
이는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진리의 마음과 하나님을 거슬러 불의, 불법을 행하기 원하는 비진리의 마음이 싸우므로 곤고해지고 힘들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빨리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쉬지 말고 기도하며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리를 행하는 만큼 비진리를 좇으려는 마음은 점점 약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수월해지면서 신앙생활이 재밌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성장하여 마침내 말씀대로 행할 수 있으면 믿음의 3단계로 접어들지요.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는 믿음의 1, 2단계가 '젖 먹는 신자'라면 믿음의 3단계는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밥 먹는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3. 믿음의 2단계가 들어가는 1천층
하나님께서는 조금이라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 것을 믿음으로 여기고 1천층의 영혼들에게 개인 취향과 기호에 맞춘 집과 면류관을 주십니다. 이것이 낙원과 크게 다른 점이지요. 영원히 사는 천국에서 개인 소유의 집을 상급으로 받는 자체만도 큰 영광이므로 낙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낍니다.
1천층에 예비된 개인 소유의 집은 이 땅의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와 같은 형태입니다. 이 땅의 아파트와 다른 점은 내부에 아름답게 장식된 엘리베이터만 있고 계단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버튼을 눌러야 원하는 층수에 서지만 천국에서는 올라타기만 하면 원하는 곳에 세워 줍니다.
집 안에는 모든 것이 잘 갖추어졌으므로 생활하는 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악기가 있어서 연주할 수 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책을 읽으며 편히 쉴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1천층에는 예쁜 정원이 많고 울창한 숲이 우거진 드넓은 공원과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각종 놀이기구를 갖춘 놀이공원과 수영장, 골프장 등 많은 스포츠 시설도 있습니다. 그런데 집과 면류관 외에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이용합니다. 마치 이 땅에서 아파트 내 조성된 공원이나 스포츠 시설 등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낙원에는 천사들이 모든 시설을 관리만 할 뿐 도와주지는 않지만, 1천층에서는 천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므로 차원이 다른 즐거움을 누립니다. 비록 개인에게 속한 천사는 없지만 필요한 장소마다 천사들이 있어서 여러 도움을 주지요.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했습니다. 믿음의 2단계는 비록 비진리가 많이 남아 있지만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한 것을, 썩지 않을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에 참여한 것으로 인정받아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받습니다.
천국은 육이 없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늘 새롭고 행복이 가득합니다. 그렇다고 결코 1천층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기를 고대하시기 때문에 더욱 힘써 큰 믿음으로 성장해 가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을 채워 보세요.
2. 믿음의 2단계는 ( )대로 행하려고 ( )하는 단계이다.
다음 중 믿음의 2단계에 해당하는 것을 고르시오.
① 1천층 ② 썩지 아니할 면류관 ③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든 단계
④ 다세대 주택, 아파트 ⑤ 개인적으로 수종드는 천사가 있다.
3. 신앙생활 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믿음의 2단계에 있다면 하나님과 담이 됩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한 후 계속 믿음의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까?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육체'와 '육체의 일'이란?
육체란 영적으로 우리 마음에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 행함으로 드러난 것을 총칭한다. 즉 미움, 시기, 간음, 교만 등 잠재된 비진리가 폭력, 욕설, 살인 등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난 것을 '육체'라고 하며, 이러한 죄를 하나하나 분류해 놓은 것을 '육체의 일'이라 한다.
교육목표 :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지만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팽팽히 싸우므로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믿음의 2단계에 대해 알아본다.
아기가 태어나면 이름을 호적에 올려야 비로소 대한민국 국민이 됩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고 마침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가 바로 믿음의 1단계입니다. 그러나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지 못하고 주님을 믿기 전과 큰 차이 없는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그 후 점점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배운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할 때 비로소 믿음의 2단계 선상에 오르게 됩니다.
1.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
믿음의 2단계는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입니다. 이때는 진리대로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말씀대로 살 때도 있고, 때로는 죄를 짓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온전히 지키라" 했는데 집안이나 직장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가끔씩 주일을 빠집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려고는 하지만 바쁜 일이 생기면 기도를 쉬지요. 시험과 환난을 만나면 기뻐하고 감사하려고 애는 쓰지만 어느 한계점에서 참지 못하고 원망을 쏟아냅니다. 내 생각과 뜻에 맞지 않는 상대를 만나면 처음에는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지만, 어느 순간에 다다르면 폭발하여 혈기 내고 싸우지요. 육체의 일을 버리지 못한 이런 모습이 바로 2단계의 믿음입니다.
아무리 '나는 주의 종이요, 장로요, 권사요, 연합회장이요, 기관장'이라 해도 혈기 내고 싸우며 불평불만을 쏟아내면 믿음의 2단계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앙의 연수나 직분의 높낮이로 믿음을 판가름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말씀대로 행했느냐에 따라 믿음의 유무를 가늠하시지요.
그렇다고 나의 믿음이 2단계라고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 가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더 큰 믿음으로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당장은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못해도 하나님께서는 그 노력하는 모습을 가상히 여기시지요. 그러므로 불같이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말씀대로 행하려고 계속 노력해 가면 스스로도 변화되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전에는 열 번 범죄했는데 아홉 번, 여덟 번, 다섯 번, 세 번, 한 번으로 점점 줄어들어 마침내는 범죄하지 않는 사람으로 변화되지요. 이렇게 변화될수록 믿음의 2단계에서 점점 믿음의 3단계로 성장해 가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 중에서 가장 힘든 믿음의 2단계
믿음의 2단계에 있는 사람은 신앙생활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배웠습니다. 하지만 마음으로는 여전히 세상이 좋고 비진리를 행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때는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과 죄를 좇고자 하는 마음이 팽팽하여 신앙생활 하기가 가장 힘들지요. 만일 죄를 짓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알면서도 행치 못하고, 점점 충만함이 떨어지고 곤고해지다가 신앙생활을 등한시합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이처럼 연약한 영혼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절히 기도해 주시지요. 로마서 8장 26절에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의 1단계에 있을 때는 죄가 죄인지도 모릅니다. 죄를 지어도 곤고함이나 성령의 탄식을 느끼지도 못하지요. 그러나 믿음의 1단계를 지나 믿음의 2단계가 되면 죄를 지었을 때 곤고해지고 충만함이 떨어져 괴로워합니다.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하고 성령께서 탄식하는 것을 느끼지요. 그렇다고 믿음의 2단계가 하나님의 뜻을 마음에서 깨달아 행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를 배웠기 때문에 의무적으로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할 뿐이지요.
예를 들어 "안식일을 지키라"라는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사람은 주일을 지키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송하며 성도와 교제하는 것이 더없이 행복하지요. 설령 누가 주일에 영화 보러 가자고 해도 일언지하에 거절합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라"는 말씀을 마음으로 깨닫지 못한 사람은 피곤하면 망설여집니다. 집에서 쉬고 싶고 '인터넷으로 예배드리면 안 되나?' 하고 갈등이 생기지요. 친구들이 주일에 여행을 가자고 하면 '주일을 지켜야 된다.'는 마음과 '여행을 갈까?'라는 두 마음이 대립합니다. 곧 말씀대로 행하려는 성령의 소욕과 세상을 좇으려는 육신의 소욕이 싸우지요.
이때 세상을 좇으려는 마음이 강하면 주일을 어길 가능성이 크고, 성령의 소욕을 좇고자 하는 마음이 더 강하면 세상 정욕을 이겨 주일을 지키게 됩니다. 이런 싸움이 가장 치열할 때가 바로 두 마음이 50대 50일 때입니다. 진리의 마음이든 비진리의 마음이든 한쪽의 힘이 월등하면 센 쪽으로 기울 텐데 양쪽이 팽팽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지지요.
로마서 7장 22~24절에 보면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말씀했습니다.
이는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진리의 마음과 하나님을 거슬러 불의, 불법을 행하기 원하는 비진리의 마음이 싸우므로 곤고해지고 힘들어진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빨리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바로 쉬지 말고 기도하며 말씀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진리를 행하는 만큼 비진리를 좇으려는 마음은 점점 약해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 수월해지면서 신앙생활이 재밌습니다. 이렇게 믿음이 성장하여 마침내 말씀대로 행할 수 있으면 믿음의 3단계로 접어들지요.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는 믿음의 1, 2단계가 '젖 먹는 신자'라면 믿음의 3단계는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밥 먹는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3. 믿음의 2단계가 들어가는 1천층
하나님께서는 조금이라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 것을 믿음으로 여기고 1천층의 영혼들에게 개인 취향과 기호에 맞춘 집과 면류관을 주십니다. 이것이 낙원과 크게 다른 점이지요. 영원히 사는 천국에서 개인 소유의 집을 상급으로 받는 자체만도 큰 영광이므로 낙원과는 비교할 수 없는 행복을 느낍니다.
1천층에 예비된 개인 소유의 집은 이 땅의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와 같은 형태입니다. 이 땅의 아파트와 다른 점은 내부에 아름답게 장식된 엘리베이터만 있고 계단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는 버튼을 눌러야 원하는 층수에 서지만 천국에서는 올라타기만 하면 원하는 곳에 세워 줍니다.
집 안에는 모든 것이 잘 갖추어졌으므로 생활하는 데 조금도 불편함이 없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악기가 있어서 연주할 수 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책을 읽으며 편히 쉴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또한 1천층에는 예쁜 정원이 많고 울창한 숲이 우거진 드넓은 공원과 각종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습니다. 각종 놀이기구를 갖춘 놀이공원과 수영장, 골프장 등 많은 스포츠 시설도 있습니다. 그런데 집과 면류관 외에는 모든 것을 공동으로 이용합니다. 마치 이 땅에서 아파트 내 조성된 공원이나 스포츠 시설 등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과 같습니다.
낙원에는 천사들이 모든 시설을 관리만 할 뿐 도와주지는 않지만, 1천층에서는 천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므로 차원이 다른 즐거움을 누립니다. 비록 개인에게 속한 천사는 없지만 필요한 장소마다 천사들이 있어서 여러 도움을 주지요.
고린도전서 9장 25절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했습니다. 믿음의 2단계는 비록 비진리가 많이 남아 있지만 하나님 말씀을 행하려고 한 것을, 썩지 않을 영원한 것을 바라보고 믿음의 경주에 참여한 것으로 인정받아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받습니다.
천국은 육이 없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고 늘 새롭고 행복이 가득합니다. 그렇다고 결코 1천층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기를 고대하시기 때문에 더욱 힘써 큰 믿음으로 성장해 가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을 채워 보세요.
2. 믿음의 2단계는 ( )대로 행하려고 ( )하는 단계이다.
다음 중 믿음의 2단계에 해당하는 것을 고르시오.
① 1천층 ② 썩지 아니할 면류관 ③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든 단계
④ 다세대 주택, 아파트 ⑤ 개인적으로 수종드는 천사가 있다.
3. 신앙생활 한 지 오래되었는데도 여전히 믿음의 2단계에 있다면 하나님과 담이 됩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한 후 계속 믿음의 성장을 이루고 있습니까?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육체'와 '육체의 일'이란?
육체란 영적으로 우리 마음에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 행함으로 드러난 것을 총칭한다. 즉 미움, 시기, 간음, 교만 등 잠재된 비진리가 폭력, 욕설, 살인 등 구체적인 행위로 나타난 것을 '육체'라고 하며, 이러한 죄를 하나하나 분류해 놓은 것을 '육체의 일'이라 한다.
2011-05-27
제21과구원받기 위한 믿음의 1단계
행 2:38~39
읽을말씀 : 행 2:38~39 | 외울말씀 : 행 2:38 l 참고 말씀:요일 2:12, 눅 23장
교육목표 : 가장 믿음의 초보 단계라 할 수 있는 믿음의 1단계와 이들이 들어가는 천국 곧 낙원의 삶에 대해 알아본다.
부모에게 있어 자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그 아이가 쑥쑥 자라 아동기를 거쳐 학생의 때를 지나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 얼마나 든든하고 대견스럽겠습니까? 그런데 자녀가 몇 년이 지나도 성장하지 않고 있다면 부모는 근심하고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의 믿음이 쑥쑥 자라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퇴보된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가장 초보적인 믿음의 단계를 지나 날로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1. 구원받기 위한 믿음의 1단계
믿음의 분량을 각각의 특징에 따라 다섯 단계로 나눌 때 가장 초보적인 단계의 믿음을 '성령받기 위한 믿음' 또는 '구원받기 위한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에 '성령받기 위한 믿음'이라 합니다. 또한 성령을 받으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천국 백성이 되기 때문에 '구원받기 위한 믿음'이라고도 하지요. 이는 마치 가정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1단계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어 "아들아, 딸아" 부를 수 있는 믿음이므로 '자녀들의 믿음'이라고도 일컫습니다(요일 2:1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고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날로 믿음이 성장하여 큰 믿음이 되면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이 임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한 대로 누구든지 구원에 이르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그냥 값없이 주시는 은혜요, 선물입니다. 베드로도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했습니다(행 2:38). 즉 자신이 죄인인 것을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마음에 구원의 확신이 임합니다. 나의 죄를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나의 구세주가 되신 것이 믿어지지요. 사소한 질병들은 즉시 성령의 불로 치료받기도 하고, 방언의 은사를 받기도 합니다. 죄 사함의 은혜로 인해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해져 찬양이 끊이지 않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다시금 세상을 바라봄으로 죄를 지어 믿음의 2, 3단계에서 1단계로 뚝 떨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같이 섬길 수 없기에 세상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세상 것을 사랑하지 않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2. 십자가에 달려 회개한 한 편 강도의 믿음
낙원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가운데 마련된 천국의 처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기에는 부끄럽지만 차마 지옥으로 보내기에는 안타까운 영혼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지요. 또한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함께 십자가 처형을 받은 한 편 강도처럼 죽음 직전에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함으로써 구원받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누가복음 23장 3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두 강도도 예수님의 좌우편에 못 박혔습니다. 그때 한 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였고 다른 편 강도는 그를 꾸짖으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지요. 예수님은 그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으로 구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강도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을 뿐, 죄악을 버리거나 말씀대로 살지도 않았습니다. 겨우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했으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며 깨우쳐 행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했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아무 수고한 것이 없는 사람에게 예비된 천국이 바로 낙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기 직전에 주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갈 수 있으니 나도 그래야겠구나.'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강도가 죽지 않고 신앙생활을 했다면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변치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구원을 허락하신 것이지요.
누구나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주님을 영접했다 해도 믿음이 순식간에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회개한 한 편 강도와 같이 죽음 직전에 구원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요.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마음대로 세상과 짝하며 살았습니다. 죄를 버리지도 않고 믿음으로 행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요. 그래서 주님을 영접하여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구원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3. 믿음의 1단계가 들어가는 낙원
낙원은 간신히 구원받을 믿음을 지닌 영혼들이 들어가는 처소로서 하나님 보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약하며 천국의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하지요. 낙원의 가장자리는 백보좌 대심판(계 20:11~ 12)이 있을 때까지 천국의 대기 장소로 활용됩니다. 온 영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영혼들을 제외하고는 창세 이래 구원받은 무수한 영혼이 대기 장소인 낙원의 가장자리에 머물고 있습니다.
낙원의 일부가 천국의 대기 장소로 사용되므로 낙원의 크기는 실로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크고 넓습니다. 이처럼 광활한 낙원은 비록 천국의 여러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하지만 이 땅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행복한 곳입니다. 낙원은 초원과 같이 잘 정비된 잔디밭과 아름답게 꾸민 정원이 많습니다.
이 세상의 나무나 꽃은 시간이 흐르면 시들고 썩지만 낙원의 나무는 항상 잎사귀가 푸르고 꽃도 결코 시들지 않습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꽃들은 반갑게 흔들기도 하고 꽃잎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각기 독특하고도 그윽한 향을 발산합니다. 싱그러운 나무에는 탐스러운 과일들이 풍성하게 달려 있지요. 과일들은 반짝반짝 빛이 나며 윤기가 흘러 아주 먹음직스러우며, 먼지나 벌레가 없으니 먹을 때에 껍질을 벗길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에서 남자들은 머리카락이 목선까지 내려옵니다. 반면 여자들의 머리카락의 길이는 성결의 정도를 나타내기 때문에 온 영을 이룬 여인의 머리카락은 척추 끝까지 닿습니다. 그러나 낙원에 있는 여인들은 남자보다 좀 더 긴, 어깨선에 닿을락말락합니다. 옷은 통으로 된 흰옷을 입으며, 옷에 장식하는 브로치나 머리에 장식하는 핀과 면류관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한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낙원에 들어간 사람은 상급이 없기 때문에 개인 소유의 집이나, 장식품이 없으며 자신에게 속하여 시중드는 천사도 없습니다. 다만 함께 쉴 수 있는 공공건물에서 서로 섬기며 살지요. 마치 이 땅의 복지관 같은 건물 안에 한 사람만 들어가서 쉬는 작은 방도 있고, 여러 명이 함께 들어가 쉬는 큰 방도 있습니다.
이곳은 개인 소유가 아니므로 자기 취향에 맞게 꾸밀 수도 없고 오랫동안 머무르거나 독차지하지도 못합니다. 일정 시간 동안 쉬었으면 다른 사람을 위해 비워 줘야 하고, 자리가 빌 때까지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서로 섬기고 배려하며 모든 것이 질서 있게 운영되기 때문에 설령 기다린다 해도 그 시간이 길지 않으며 대기하는 장소도 안락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비록 낙원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산다고 해도 천국에는 악이 없으며 서로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오직 섬기고 사랑하며 기쁘게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도 "나는 낙원에만 들어가도 족하다." 하며 구원받은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낙원보다 더 좋은 천국을 사모하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어찌하든 믿음을 성장시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온전히 갖추고자 힘쓰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1단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 ) 안에 알맞은 말은 무엇일까요?
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한 편 강도에게 천국 ( )을 약속해 주셨다.
② ( )받기 위한 믿음 또는 성령받기 위한 믿음이라고 한다.
③ 요한일서 2장 12절에 나오는 ( )의 믿음을 말한다.
④ 낙원은 개인 소유의 집이 없고 ( ) 같은 건물이 있다.
2. 믿음의 1단계에서 신속히 믿음이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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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 자녀들의 믿음 - 믿음의 1단계
* 아이들의 믿음 - 믿음의 2단계
* 청년들의 믿음 - 믿음의 3단계
* 아비들의 믿음 - 믿음의 4, 5단계
교육목표 : 가장 믿음의 초보 단계라 할 수 있는 믿음의 1단계와 이들이 들어가는 천국 곧 낙원의 삶에 대해 알아본다.
부모에게 있어 자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스러운 존재입니다. 그 아이가 쑥쑥 자라 아동기를 거쳐 학생의 때를 지나고 청년이 되고 어른이 되면 얼마나 든든하고 대견스럽겠습니까? 그런데 자녀가 몇 년이 지나도 성장하지 않고 있다면 부모는 근심하고 걱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자녀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의 믿음이 쑥쑥 자라지 않고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퇴보된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가장 초보적인 믿음의 단계를 지나 날로 믿음이 성장하여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1. 구원받기 위한 믿음의 1단계
믿음의 분량을 각각의 특징에 따라 다섯 단계로 나눌 때 가장 초보적인 단계의 믿음을 '성령받기 위한 믿음' 또는 '구원받기 위한 믿음'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에 '성령받기 위한 믿음'이라 합니다. 또한 성령을 받으면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어 천국 백성이 되기 때문에 '구원받기 위한 믿음'이라고도 하지요. 이는 마치 가정에서 아기가 태어나면 호적에 이름을 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1단계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어 "아들아, 딸아" 부를 수 있는 믿음이므로 '자녀들의 믿음'이라고도 일컫습니다(요일 2:12).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고 구원에 이를 뿐 아니라 날로 믿음이 성장하여 큰 믿음이 되면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이 임합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한 대로 누구든지 구원에 이르려면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이 그냥 값없이 주시는 은혜요, 선물입니다. 베드로도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 했습니다(행 2:38). 즉 자신이 죄인인 것을 회개하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서 성령을 선물로 보내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마음에 구원의 확신이 임합니다. 나의 죄를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께서 부활하심으로 나의 구세주가 되신 것이 믿어지지요. 사소한 질병들은 즉시 성령의 불로 치료받기도 하고, 방언의 은사를 받기도 합니다. 죄 사함의 은혜로 인해 마음이 가벼워지고 기쁨과 행복으로 충만해져 찬양이 끊이지 않고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는 것이 즐겁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다시금 세상을 바라봄으로 죄를 지어 믿음의 2, 3단계에서 1단계로 뚝 떨어진 사람도 있습니다. 세상과 하나님을 같이 섬길 수 없기에 세상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기 마련입니다. 하나님과 원수 된 세상 것을 사랑하지 않아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2. 십자가에 달려 회개한 한 편 강도의 믿음
낙원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가운데 마련된 천국의 처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기에는 부끄럽지만 차마 지옥으로 보내기에는 안타까운 영혼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지요. 또한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함께 십자가 처형을 받은 한 편 강도처럼 죽음 직전에 회개하고 주님을 영접함으로써 구원받은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누가복음 23장 3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 두 강도도 예수님의 좌우편에 못 박혔습니다. 그때 한 편 강도는 예수님을 비방하였고 다른 편 강도는 그를 꾸짖으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지요. 예수님은 그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말씀으로 구원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 강도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을 뿐, 죄악을 버리거나 말씀대로 살지도 않았습니다. 겨우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했으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며 깨우쳐 행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했지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서 아무 수고한 것이 없는 사람에게 예비된 천국이 바로 낙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죽기 직전에 주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갈 수 있으니 나도 그래야겠구나.'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회개한 강도가 죽지 않고 신앙생활을 했다면 주님을 배반하지 않고 끝까지 변치 않을 것을 아셨기 때문에 구원을 허락하신 것이지요.
누구나 죽음 직전에 주님을 영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주님을 영접했다 해도 믿음이 순식간에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회개한 한 편 강도와 같이 죽음 직전에 구원받는 경우는 매우 드물지요.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 마음대로 세상과 짝하며 살았습니다. 죄를 버리지도 않고 믿음으로 행한 것이 아무것도 없지요. 그래서 주님을 영접하여 지옥에 떨어지지 않고 구원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3. 믿음의 1단계가 들어가는 낙원
낙원은 간신히 구원받을 믿음을 지닌 영혼들이 들어가는 처소로서 하나님 보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약하며 천국의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하지요. 낙원의 가장자리는 백보좌 대심판(계 20:11~ 12)이 있을 때까지 천국의 대기 장소로 활용됩니다. 온 영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영혼들을 제외하고는 창세 이래 구원받은 무수한 영혼이 대기 장소인 낙원의 가장자리에 머물고 있습니다.
낙원의 일부가 천국의 대기 장소로 사용되므로 낙원의 크기는 실로 상상을 초월할 만큼 크고 넓습니다. 이처럼 광활한 낙원은 비록 천국의 여러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하지만 이 땅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행복한 곳입니다. 낙원은 초원과 같이 잘 정비된 잔디밭과 아름답게 꾸민 정원이 많습니다.
이 세상의 나무나 꽃은 시간이 흐르면 시들고 썩지만 낙원의 나무는 항상 잎사귀가 푸르고 꽃도 결코 시들지 않습니다.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꽃들은 반갑게 흔들기도 하고 꽃잎을 오므렸다 폈다 하면서 각기 독특하고도 그윽한 향을 발산합니다. 싱그러운 나무에는 탐스러운 과일들이 풍성하게 달려 있지요. 과일들은 반짝반짝 빛이 나며 윤기가 흘러 아주 먹음직스러우며, 먼지나 벌레가 없으니 먹을 때에 껍질을 벗길 필요가 없습니다.
천국에서 남자들은 머리카락이 목선까지 내려옵니다. 반면 여자들의 머리카락의 길이는 성결의 정도를 나타내기 때문에 온 영을 이룬 여인의 머리카락은 척추 끝까지 닿습니다. 그러나 낙원에 있는 여인들은 남자보다 좀 더 긴, 어깨선에 닿을락말락합니다. 옷은 통으로 된 흰옷을 입으며, 옷에 장식하는 브로치나 머리에 장식하는 핀과 면류관이 없습니다.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한 것이 없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낙원에 들어간 사람은 상급이 없기 때문에 개인 소유의 집이나, 장식품이 없으며 자신에게 속하여 시중드는 천사도 없습니다. 다만 함께 쉴 수 있는 공공건물에서 서로 섬기며 살지요. 마치 이 땅의 복지관 같은 건물 안에 한 사람만 들어가서 쉬는 작은 방도 있고, 여러 명이 함께 들어가 쉬는 큰 방도 있습니다.
이곳은 개인 소유가 아니므로 자기 취향에 맞게 꾸밀 수도 없고 오랫동안 머무르거나 독차지하지도 못합니다. 일정 시간 동안 쉬었으면 다른 사람을 위해 비워 줘야 하고, 자리가 빌 때까지 기다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서로 섬기고 배려하며 모든 것이 질서 있게 운영되기 때문에 설령 기다린다 해도 그 시간이 길지 않으며 대기하는 장소도 안락하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비록 낙원에서 공동생활을 하면서 산다고 해도 천국에는 악이 없으며 서로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오직 섬기고 사랑하며 기쁘게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도 "나는 낙원에만 들어가도 족하다." 하며 구원받은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낙원보다 더 좋은 천국을 사모하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선한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어찌하든 믿음을 성장시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온전히 갖추고자 힘쓰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1단계에 대한 설명입니다. ( ) 안에 알맞은 말은 무엇일까요?
① 십자가에 달린 예수님은 한 편 강도에게 천국 ( )을 약속해 주셨다.
② ( )받기 위한 믿음 또는 성령받기 위한 믿음이라고 한다.
③ 요한일서 2장 12절에 나오는 ( )의 믿음을 말한다.
④ 낙원은 개인 소유의 집이 없고 ( ) 같은 건물이 있다.
2. 믿음의 1단계에서 신속히 믿음이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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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 자녀들의 믿음 - 믿음의 1단계
* 아이들의 믿음 - 믿음의 2단계
* 청년들의 믿음 - 믿음의 3단계
* 아비들의 믿음 - 믿음의 4, 5단계
2011-05-20
제20과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
히 11:1~3
읽을말씀 : 히 11:1~3 | 외울말씀 : 히 11:1 l 참고 말씀:약 2:26, 롬 10:17
교육목표 : 육적인 믿음은 구원받지 못하기에 참 믿음인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이 땅에서 보배 중에 보배요, 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기에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만약 대통령을 언제든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대단한 특권을 소유한 것입니다. 이처럼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언제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는 특권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영적인 믿음과 육적인 믿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1. 육적인 믿음이란?
육적인 믿음이란 눈으로 보아 확인이 되고, 내가 아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될 때라야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지식적인 믿음, 또는 이성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나무로 만든 강대상을 보고 "이것은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믿습니까?" 하면 의심 없이 "네, 믿습니다!" 대답합니다. 즉 직접 나무로 된 것을 보았고 내가 아는 지식과 일치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지요.
이런 믿음은 유(有)에서 유(有) 창조, 다시 말해 있는 것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때 믿는 믿음이므로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뇌 속에 있는 기억장치에 여러 지식을 입력시킵니다. 가정, 학교, 직장 등 주변 환경을 통해 보고 들은 지식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에 사용하지요.
이처럼 입력된 지식들 중에는 진리가 아닌 비진리가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에서 배운 지식들이 변하는 것만 보아도 온전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에 비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비진리가 진리인 줄 알고 열심히 배워 나갑니다. 진화론만 해도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웠기 때문에 그것이 맞다고 여기지요.
또한 유(有)에서 유의 창조만 배운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 상태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하면 황당해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눈에 보이지 않는 무(無) 상태에서 창조하시고,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물 위를 걸으시며 바람과 파도를 잔잔하게 하셨다고 나옵니다. 또한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며, 죽은 자를 살리셨다고 말씀하지요. 이런 말씀들을 들으면 육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체험한 경우도 있습니다. 처음 성령을 받고 은혜가 충만할 때는 기도해서 응답도 척척 받았지요. 하지만 은혜가 떨어지고 신앙생활을 나태하게 하다 보면 의심이 찾아오고 과거에 응답받았던 것까지도 우연으로 돌려 버리지요. 그런가 하면 세상에 있을 때 입력된 지식과 이론이 주님을 영접한 후 알게 된 하나님의 말씀과 상반되기 때문에 갈등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밖에서 다른 아이에게 맞고 들어오면 세상에서는 "너는 왜 만날 바보처럼 맞고만 들어오니? 그 애가 한 대 때리면 너는 두 대 때려 줘야지."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주님은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가르치셨지요. 이처럼 내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은 상반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 육적인 믿음을 지닌 사람이 말씀대로 행하려면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니 힘들고 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육적인 믿음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요, 영적인 믿음은 행함이 있는 산 믿음입니다. 따라서 육적인 믿음을 신속히 영적인 믿음으로 바꾸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으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영적인 믿음이란?
육적인 믿음과 달리 영적인 믿음은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나의 생각과 지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는 믿음이지요. 또한 하나님이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는 말씀을 행하는 산 믿음을 말합니다.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아무것도 없는 무(無) 상태에서 말씀으로 창조했다는 것을 믿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세계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약 2천 년 전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다시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는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뢰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도 해결을 받고 응답을 받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믿음은 자기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셔야만 가능하지요. 로마서 12장 3절에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르지요.
만약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지 않아도 스스로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응답과 축복을 받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주여, 대통령이 되게 해 주세요." 하면 대통령이 될 것이고, 미운 사람이 있으면 "주여, 저 사람 징계해 주옵소서."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니 이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워지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영적인 믿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공의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비진리 어둠들을 벗어 버리며 빛 가운데 행할 때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이런 믿음은 행함이 따르고 반드시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에 행함 있는 믿음, 산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3.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바꾸려면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계신 것과 상 주시는 이심을 믿고 계명들을 지켜 행할 뿐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세상에서 입력된 비진리의 지식은 영적인 믿음을 갖는 데에 큰 방해 요소가 됩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케 하고 의심하게 하는 비진리의 지식을 뽑아 버리지 않으면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보고 들으며 불같이 기도함으로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를 빼내고 진리로 채워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담고 있으면 지식적인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는 말씀을 행함으로 옮겨서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즉 육적인 믿음에서 영적인 믿음으로 바꾸려면 그만큼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데 피아노 교본을 백 번, 천 번 읽기만 한다면 피아노를 잘 칠 수 있을까요? 아니지요. 그렇게 수십 년, 수천 년이 지나도 못 칩니다. 이론은 해박할지 몰라도 실제 행함으로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주를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론을 익히고 열심히 연습해야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씀을 양식 삼고 행할 때라야 영적인 믿음이 주어집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 앞에 온전한 믿음을 내보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벗이요, 믿음의 조상이라" 불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행함으로 순종하지 않았다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순종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온전히 확증시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으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여 듣고 배웠다 해도 행함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참 믿음을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구원과 영생은 물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까지 침노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중 의미가 다른 하나를 고르시오.
① 육적인 믿음 ② 지식적인 믿음 ③ 이성적인 믿음 ④ 행함 있는 믿음
2. 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을 간단히 설명할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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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이삭'은 누구일까요?
창세기 17장 17절에 기록된 대로 아브라함이 100세, 아내 사라가 90세에 낳은 아들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해 죽이려고 했을 때도 반항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대신하여 수양을 준비해 주셨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 사이에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교육목표 : 육적인 믿음은 구원받지 못하기에 참 믿음인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께 인정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이 땅에서 보배 중에 보배요, 영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는 열쇠와도 같습니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을 움직일 수 있기에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만약 대통령을 언제든 만나고 싶을 때 만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대단한 특권을 소유한 것입니다. 이처럼 온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언제 어디서든지 만날 수 있는 특권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영적인 믿음과 육적인 믿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과연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1. 육적인 믿음이란?
육적인 믿음이란 눈으로 보아 확인이 되고, 내가 아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될 때라야 믿는 믿음입니다. 그래서 지식적인 믿음, 또는 이성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나무로 만든 강대상을 보고 "이것은 나무로 만들었습니다. 믿습니까?" 하면 의심 없이 "네, 믿습니다!" 대답합니다. 즉 직접 나무로 된 것을 보았고 내가 아는 지식과 일치하기 때문에 믿는 것이지요.
이런 믿음은 유(有)에서 유(有) 창조, 다시 말해 있는 것에서 무엇인가를 만들어낼 때 믿는 믿음이므로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사람들은 태어나 성장하면서 뇌 속에 있는 기억장치에 여러 지식을 입력시킵니다. 가정, 학교, 직장 등 주변 환경을 통해 보고 들은 지식들을 기억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에 사용하지요.
이처럼 입력된 지식들 중에는 진리가 아닌 비진리가 너무나 많습니다. 세상에서 배운 지식들이 변하는 것만 보아도 온전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이에 비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치 비진리가 진리인 줄 알고 열심히 배워 나갑니다. 진화론만 해도 그렇습니다.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웠기 때문에 그것이 맞다고 여기지요.
또한 유(有)에서 유의 창조만 배운 사람은 아무것도 없는 무(無) 상태에서 유를 창조한다고 하면 황당해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눈에 보이지 않는 무(無) 상태에서 창조하시고,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시고, 물 위를 걸으시며 바람과 파도를 잔잔하게 하셨다고 나옵니다. 또한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걷게 하며, 죽은 자를 살리셨다고 말씀하지요. 이런 말씀들을 들으면 육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체험한 경우도 있습니다. 처음 성령을 받고 은혜가 충만할 때는 기도해서 응답도 척척 받았지요. 하지만 은혜가 떨어지고 신앙생활을 나태하게 하다 보면 의심이 찾아오고 과거에 응답받았던 것까지도 우연으로 돌려 버리지요. 그런가 하면 세상에 있을 때 입력된 지식과 이론이 주님을 영접한 후 알게 된 하나님의 말씀과 상반되기 때문에 갈등이 생깁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밖에서 다른 아이에게 맞고 들어오면 세상에서는 "너는 왜 만날 바보처럼 맞고만 들어오니? 그 애가 한 대 때리면 너는 두 대 때려 줘야지."라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주님은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라" 가르치셨지요. 이처럼 내 생각과 하나님의 말씀은 상반되는 것이 많습니다. 그러니 육적인 믿음을 지닌 사람이 말씀대로 행하려면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니 힘들고 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육적인 믿음은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이요, 영적인 믿음은 행함이 있는 산 믿음입니다. 따라서 육적인 믿음을 신속히 영적인 믿음으로 바꾸어야 구원에 이를 수 있으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영적인 믿음이란?
육적인 믿음과 달리 영적인 믿음은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나의 생각과 지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는 믿음이지요. 또한 하나님이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는 말씀을 행하는 산 믿음을 말합니다.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이 천지 만물을 아무것도 없는 무(無) 상태에서 말씀으로 창조했다는 것을 믿습니다.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세계 역사를 주관하신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약 2천 년 전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으며, 다시 우리를 데리러 오신다는 것을 믿고 기다립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의뢰하기 때문에 어떤 문제도 해결을 받고 응답을 받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믿음은 자기가 원한다고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셔야만 가능하지요. 로마서 12장 3절에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이 있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르지요.
만약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지 않아도 스스로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세상에 응답과 축복을 받지 못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주여, 대통령이 되게 해 주세요." 하면 대통령이 될 것이고, 미운 사람이 있으면 "주여, 저 사람 징계해 주옵소서." 하면 그대로 될 것이니 이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워지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영적인 믿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공의 가운데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에게 주십니다. 비진리 어둠들을 벗어 버리며 빛 가운데 행할 때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이런 믿음은 행함이 따르고 반드시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때문에 행함 있는 믿음, 산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3.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바꾸려면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계신 것과 상 주시는 이심을 믿고 계명들을 지켜 행할 뿐 아니라, 자신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세상에서 입력된 비진리의 지식은 영적인 믿음을 갖는 데에 큰 방해 요소가 됩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케 하고 의심하게 하는 비진리의 지식을 뽑아 버리지 않으면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열심히 보고 들으며 불같이 기도함으로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를 빼내고 진리로 채워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했습니다. 만일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식으로만 담고 있으면 지식적인 믿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는 말씀을 행함으로 옮겨서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즉 육적인 믿음에서 영적인 믿음으로 바꾸려면 그만큼 행함이 따라야 한다는 뜻입니다.
가령, 어떤 사람이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은데 피아노 교본을 백 번, 천 번 읽기만 한다면 피아노를 잘 칠 수 있을까요? 아니지요. 그렇게 수십 년, 수천 년이 지나도 못 칩니다. 이론은 해박할지 몰라도 실제 행함으로 연습하지 않았기 때문에 연주를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이론을 익히고 열심히 연습해야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씀을 양식 삼고 행할 때라야 영적인 믿음이 주어집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 앞에 온전한 믿음을 내보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벗이요, 믿음의 조상이라" 불릴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행함으로 순종하지 않았다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진심으로 신뢰했기 때문에 순종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온전히 확증시켜 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으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을 받게 됩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고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여 듣고 배웠다 해도 행함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참 믿음을 소유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구원과 영생은 물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까지 침노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중 의미가 다른 하나를 고르시오.
① 육적인 믿음 ② 지식적인 믿음 ③ 이성적인 믿음 ④ 행함 있는 믿음
2. 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을 간단히 설명할 수 있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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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이삭'은 누구일까요?
창세기 17장 17절에 기록된 대로 아브라함이 100세, 아내 사라가 90세에 낳은 아들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이삭을 번제물로 바치기 위해 죽이려고 했을 때도 반항하지 않았다. 이를 지켜보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대신하여 수양을 준비해 주셨다. 이삭은 아내 리브가와 사이에서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2011-05-13
제19과빛 가운데 행할 때의 축복
요일 1:5~7
읽을말씀 : 요일 1:5~7 | 외울말씀 : 요일 1:7 l 참고 말씀:요일 5:18,신 28장, 요삼 2
교육목표 : 빛과 어둠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고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아무리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 해도 태양이 떠오르면 순식간에 어둠은 사라지고 밝은 세상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태양과 비교할 수 없이 밝은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문제라 할지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 각종 인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1. 빛과 어둠의 영적인 의미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하셨는데 영적으로 빛이란 무엇이며, 그와 반대되는 어둠이란 무엇일까요?
먼저 영적으로 빛이란, 어둠이 전혀 없는 온전하신 하나님을 나타냄과 동시에 진리, 선, 사랑 자체를 뜻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진리의 말씀들이 바로 빛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라, 사랑하라, 용서하라, 겸손하라, 기도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 서원을 지키라"는 말씀들을 순종할 때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또한 "하지 말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리는 것도 빛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어둠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둠이란 일반적으로 빛이 없는 깜깜한 상태를 말하는데, 영적으로는 죄에 속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곧 불의, 불법, 악, 진리와 반대되는 비진리가 여기에 속하지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즉, "도적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미워하지 말라,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시기 질투를 버리라, 탐심을 버리라, 교만을 버리라, 육신의 생각을 버리라" 하셨지요. 왜냐하면 도적질, 살인, 미움, 우상 숭배, 시기, 질투, 탐심, 교만 등이 어둠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것을 계속 행하고 버리지 않는다면 어둠에 거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하라, 지키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지키지 않는 것 역시 빛과 반대되는 어둠에 거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영적인 빛과 어둠 중 과연 어디에 더 속해 있습니까?
하나님은 어둠이 단 1%도 없으신 100% 온전한 빛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100% 빛 가운데 행하기를 원하시지요. 어둠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은 그것을 빌미로 시험과 환난을 가져다 줍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기 때문이지요.
2.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부모에게 자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 자녀가 장성하여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깊은 사랑을 나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밀한 사귐을 갖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단서가 있는데 진리 즉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둠과 짝하며 악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원수 마귀 사단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 자녀가 부모를 욕하고 죽이려고 하는 악한 자들과 함께 어울리며 나쁜 짓을 일삼는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을 붙좇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요? '사귐'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내 편에서만 상대를 안다고 해서 사귐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우리나라 대통령이 누구인지 압니다. 이처럼 대통령을 안다고 그분과 사귐이 있다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대통령을 잘 알아도 대통령이 나를 모르면 서로 사귀는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사귐에 있어서도 그 정도가 다 다릅니다.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가 있는가 하면, 안부를 묻는 좀 더 가까운 관계도 있고, 아주 친밀하게 비밀도 나눌 수 있는 관계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사귐이 되려면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 믿으시며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 하며 부르짖어 기도한다 해도 하나님 뜻대로 행치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는 너를 모른다."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금식하며 기도해도 응답이 오지 않지요.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 그 증거들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즉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지킴과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질병으로 고통 받거나 연약할 이유도 없고, 환난을 만나거나 재앙을 당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진리인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과 진정한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다.
3. 어둠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해야 축복
아무리 짙은 어둠도 빛이 비취면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면 어둠의 권세가 결코 역사하지 못합니다. 내가 빛 가운데 50%를 산다면 50%의 권세가 따르고, 90%를 산다면 90%의 권세가 따르지요. 빛의 권세는 우리가 얼마나 빛 가운데 행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전등을 열 개 켰을 때의 빛은 한 개 켰을 때보다 훨씬 밝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빛이 강할수록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힘도 세집니다.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대로 행하는 만큼 어둠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비록 예전에는 어둠에 있었을지라도 지금부터라도 빛 가운데 거하면 어둠에 있을 때 찾아왔던 질병과 가난 등 온갖 문제들이 떠납니다. 축복의 길이 열리며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옵니다.
이처럼 내가 빛 가운데 거하는 만큼 빛의 권세가 따르게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사로잡히고 맙니다. 죄는 어둠에 속하기 때문에 어둠이 어둠의 세력을 쫓아낼 수가 없습니다. 다만 죄를 벗고 진리를 좇을 때라야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옵니다. 범죄하여 어둠 가운데 있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빛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빛 가운데 거해야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습니다!"하고 고백하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줄로 아는데 성경 어디에도 그렇게 쓰여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서 빛 가운데 행할 때 서로 사귐이 있고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어둠이 있으면 참 빛이신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어 시험과 환난을 겪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의 권세'가 나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능히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과 하나 된 증거가 바로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질병아 물러가라, 재앙아 물러가라, 가난아 물러가라, 시험 환난아 물러가라" 하며 기도할 때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은 빛 가운데 행하므로 범죄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니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지요. 또한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고, 영혼이 잘되어 만사가 형통합니다(신 28:1~14 ; 요삼 2).
우리는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철저히 어둠을 벗어버리고 더욱 밝은 빛 가운데 행하며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빛과 어둠에 담긴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
2.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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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축복장이라고 불리는 신명기 28장 1~14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마귀'란?
악한 영들에 속한 마귀는 루시퍼와 함께 타락한 천사 중 일부로, 검은 형상에 사람처럼 이목구비와 손발이 있다. 사단의 지시를 받아 수많은 귀신을 관리하고 지시하며 비진리의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죄를 행하게 한다. 생각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사단이라면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귀다.
교육목표 : 빛과 어둠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고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아무리 칠흑같이 어두운 밤이라 해도 태양이 떠오르면 순식간에 어둠은 사라지고 밝은 세상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태양과 비교할 수 없이 밝은 빛이신 하나님을 만나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문제라 할지라도 쉽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만나 빛 가운데 행하는 것이 각종 인생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1. 빛과 어둠의 영적인 의미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하셨는데 영적으로 빛이란 무엇이며, 그와 반대되는 어둠이란 무엇일까요?
먼저 영적으로 빛이란, 어둠이 전혀 없는 온전하신 하나님을 나타냄과 동시에 진리, 선, 사랑 자체를 뜻합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크게 넷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진리의 말씀들이 바로 빛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라, 사랑하라, 용서하라, 겸손하라, 기도하라, 안식일을 지키라, 십계명을 지키라, 서원을 지키라"는 말씀들을 순종할 때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게 됩니다. 또한 "하지 말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버리라" 하신 것을 버리는 것도 빛 가운데 거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어둠의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둠이란 일반적으로 빛이 없는 깜깜한 상태를 말하는데, 영적으로는 죄에 속한 모든 것을 말합니다. 곧 불의, 불법, 악, 진리와 반대되는 비진리가 여기에 속하지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즉, "도적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미워하지 말라,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시기 질투를 버리라, 탐심을 버리라, 교만을 버리라, 육신의 생각을 버리라" 하셨지요. 왜냐하면 도적질, 살인, 미움, 우상 숭배, 시기, 질투, 탐심, 교만 등이 어둠에 속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것을 계속 행하고 버리지 않는다면 어둠에 거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하라, 지키라" 하신 것을 하지 않고, 지키지 않는 것 역시 빛과 반대되는 어둠에 거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영적인 빛과 어둠 중 과연 어디에 더 속해 있습니까?
하나님은 어둠이 단 1%도 없으신 100% 온전한 빛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도 100% 빛 가운데 행하기를 원하시지요. 어둠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은 그것을 빌미로 시험과 환난을 가져다 줍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기 때문이지요.
2.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이 있으려면
부모에게 자녀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귀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그런 자녀가 장성하여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고 깊은 사랑을 나눈다면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도 우리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친밀한 사귐을 갖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단서가 있는데 진리 즉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둠과 짝하며 악을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사귐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원수 마귀 사단을 따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 자녀가 부모를 욕하고 죽이려고 하는 악한 자들과 함께 어울리며 나쁜 짓을 일삼는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겠습니까. 이처럼 우리가 빛이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않고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을 붙좇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요? '사귐'이란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단지 내 편에서만 상대를 안다고 해서 사귐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우리나라 대통령이 누구인지 압니다. 이처럼 대통령을 안다고 그분과 사귐이 있다 할 수는 없습니다. 나는 대통령을 잘 알아도 대통령이 나를 모르면 서로 사귀는 것이 아니지요.
그런데 사귐에 있어서도 그 정도가 다 다릅니다.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가 있는가 하면, 안부를 묻는 좀 더 가까운 관계도 있고, 아주 친밀하게 비밀도 나눌 수 있는 관계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한 사귐이 되려면 하나님께서 나를 알고 믿으시며 인정해 주셔야 합니다.
아무리 "주여! 주여!" 하며 부르짖어 기도한다 해도 하나님 뜻대로 행치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이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나는 너를 모른다." 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금식하며 기도해도 응답이 오지 않지요.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면 그 증거들이 분명히 나타납니다. 즉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의 지킴과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질병으로 고통 받거나 연약할 이유도 없고, 환난을 만나거나 재앙을 당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진리인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과 진정한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다.
3. 어둠을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해야 축복
아무리 짙은 어둠도 빛이 비취면 물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길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면 어둠의 권세가 결코 역사하지 못합니다. 내가 빛 가운데 50%를 산다면 50%의 권세가 따르고, 90%를 산다면 90%의 권세가 따르지요. 빛의 권세는 우리가 얼마나 빛 가운데 행하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전등을 열 개 켰을 때의 빛은 한 개 켰을 때보다 훨씬 밝습니다. 마찬가지로 영적인 빛이 강할수록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는 힘도 세집니다.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 말씀하신 대로 행하는 만큼 어둠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비록 예전에는 어둠에 있었을지라도 지금부터라도 빛 가운데 거하면 어둠에 있을 때 찾아왔던 질병과 가난 등 온갖 문제들이 떠납니다. 축복의 길이 열리며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옵니다.
이처럼 내가 빛 가운데 거하는 만큼 빛의 권세가 따르게 되지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에게 사로잡히고 맙니다. 죄는 어둠에 속하기 때문에 어둠이 어둠의 세력을 쫓아낼 수가 없습니다. 다만 죄를 벗고 진리를 좇을 때라야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칠 수 있는 힘이 옵니다. 범죄하여 어둠 가운데 있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야 빛이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빛 가운데 거해야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우리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습니다!"하고 고백하기만 하면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줄로 아는데 성경 어디에도 그렇게 쓰여 있지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서 빛 가운데 행할 때 서로 사귐이 있고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 어둠이 있으면 참 빛이신 주님과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오히려 어둠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어 시험과 환난을 겪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주님과 하나 되어 '주님의 권세'가 나의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능히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과 하나 된 증거가 바로 빛 가운데 행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질병아 물러가라, 재앙아 물러가라, 가난아 물러가라, 시험 환난아 물러가라" 하며 기도할 때 그대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과 사귐이 있는 사람은 빛 가운데 행하므로 범죄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니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지요. 또한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고, 영혼이 잘되어 만사가 형통합니다(신 28:1~14 ; 요삼 2).
우리는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철저히 어둠을 벗어버리고 더욱 밝은 빛 가운데 행하며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마음껏 받아 누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빛과 어둠에 담긴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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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빛이신 하나님과 사귐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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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우리가 빛 가운데 행할 때 임하는 축복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축복장이라고 불리는 신명기 28장 1~14절을 함께 읽어 봅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마귀'란?
악한 영들에 속한 마귀는 루시퍼와 함께 타락한 천사 중 일부로, 검은 형상에 사람처럼 이목구비와 손발이 있다. 사단의 지시를 받아 수많은 귀신을 관리하고 지시하며 비진리의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죄를 행하게 한다. 생각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사단이라면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귀다.
2011-05-06
제18과인자의 살을 먹고 피를 마셔야 영생
요 6:53~55
읽을말씀 : 요 6:53~55 | 외울말씀 : 요 6:53 l 참고 말씀:출 12:9~10
교육목표 : 인자의 살과 피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살펴보고, 영생을 위하여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사람이 사는 동안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식을 먹으며 동시에 수분을 섭취해야 합니다. 음식과 물이 적절히 배합되어야 영양소가 소화, 흡수되며 불필요한 노폐물과 독소가 배출되기 때문이지요.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알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만 영생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고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인자의 살이란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
요한복음 6장 53절에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인자의 살이란 예수님의 살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스스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요 6:51) 말씀하셨습니다. 즉 참된 양식인 인자의 살 곧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영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자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만 담는 것과 마음에 양식 삼는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말씀을 지식으로만 담는 사람은 세월이 흐르면 기억된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행함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양식 삼은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암송할 때도 영적인 의미를 새기고 묵상하며 삶 가운데 행함으로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하신 말씀을 머리로만 알고 마음에 양식 삼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고 핍박할 때 감정이 상하고 상대가 미워지며 결국 악으로 갚고 말지요. 그러나 "사랑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은 사람은 이 말씀이 성경 몇 장 몇 절에 있는지는 잊어버렸다 해도 상대가 악을 행할 때 저절로 사랑과 긍휼이 우러납니다. 이처럼 인자의 살을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아 가면 진리가 마음에 채워지며 반대로 비진리가 빠져나가게 됩니다.
2. 인자의 살을 먹는 방법
출애굽기 12장에는 유월절 어린양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어린양에 비유하여 인자의 살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고 있습니다. 즉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출 12:9~10) 하셨지요.
먼저, '날로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기록된 영적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고기를 날로 먹으면 소화도 잘 안 되고 배탈이 나기 쉽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날로 먹으면 엉뚱한 해석이 나오기 마련이지요.
예를 들어, 마태복음 6장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했는데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골방에 들어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믿음의 선진들이 골방에서 기도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골방이 아닌 동산이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지요. 골방은 영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말씀은 골방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듯이, 세상 근심 걱정이나 잡념 속에서 중언부언하지 말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중심 바쳐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물에 삶아 먹지 말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 말씀에 세상 것을 가미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면서 "어떤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며 세상 지식을 인용하여 마치 진리인 양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생각과 지식은 극히 제한적이며 아무리 훌륭한 사상도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어떤 지식보다 뛰어나며(고전 1:25) 유일한 진리요, 영원히 변함이 없기 때문에 세상 것을 가미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으라'고 했는데 무슨 뜻일까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66권에 기록된 모든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레위기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은 빼고 읽거나 기사와 표적은 믿지 않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생각에 맞지 않는 것을 빼면 결국 남는 것은 진리도, 믿음도 아니며 윤리와 도덕에 해당하는 것만 남습니다. 더구나 자신이 지키기 어려운 말씀들은 지나쳐 버리니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다고 해도 믿음이 성장해 영생을 얻을 수가 없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 생각에 맞는 특정한 부분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을 온전히 믿고 양식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을 통째로 불에 구워 먹으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불은 성령의 불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 말씀을 성령의 감동함 속에 깨닫고 양식 삼으라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풀지 않고 억지로 풀면 오히려 진리를 벗어나 사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벧후 3:16).
마지막으로,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고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燒火-불사르거나 태움)하라' 했는데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원수 마귀 사단이 권세를 잡고 있는 어두운 세상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는 밤에 속하지만 때가 이르러 참 빛이신 주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게 되면 영적으로는 아침이 되지요.
이처럼 주님이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시면 더 이상 마음밭을 개간하여 변화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내가 빨리 죄악을 버리고 영으로 들어갈 걸…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상급도 많이 쌓을 걸…' 아무리 안타깝게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습니다. 따라서 고기를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는 말씀은,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부지런히 인자의 살인 하나님 말씀을 잘 양식 삼아 신부단장을 온전히 마치라는 뜻입니다.
3. 인자의 피를 마시는 것이란?
요한복음 6장 54~55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음식과 함께 물을 마셔야 합니다. 음식과 물을 함께 섭취해야 소화가 잘되고, 영양분이 흡수되고 노폐물은 배설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자의 살과 함께 인자의 피를 반드시 마셔야 영생할 수 있습니다.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양식 삼은 하나님 말씀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함으로 실천할 때 영적인 믿음이 되고 생명이 되지요. 그래서 야고보서 2장 22절에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단지 머리로만 알고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직접 행함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가 양식 삼은 하나님 말씀을 행하면 진리는 흡수되고 그와 반대되는 비진리는 배설되므로 검은 마음에서 하얀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가령 "미워하지 말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양식 삼아 그대로 하면 '사랑'이라는 영양분은 흡수되고 '미움'이라는 노폐물은 배설되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아 행하면 더럽고 추한 비진리의 마음은 빠져 나가고 선한 마음 곧 진리로 변화되어 갑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즉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심히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심으로 영생을 얻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진리로 변화시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2.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방법입니다. 괄호 안에서 맞는 것을 찾아 O표 하세요.
① 날로 먹지 말라 (ㄱ ㄴ ㄷ ㄹ)
②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 (ㄱ ㄴ ㄷ ㄹ)
③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으라 (ㄱ ㄴ ㄷ ㄹ)
④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 (ㄱ ㄴ ㄷ ㄹ)
ㄱ.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 66권의 모든 말씀을 빠짐없이 양식 삼아야 한다.
ㄴ.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아 신속히 신부단장을 마쳐야 한다.
ㄷ. 하나님 말씀에 세상 것을 가미하지 말라는 뜻이다.
ㄹ. 영적인 의미를 모르고 하나님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어린양'이란?
아직 교미하지 않은 일 년 된 양을 어린양이라고 하는데 영적으로는 흠도 점도 없이 순결하신 예수님을 뜻한다. 양이 순종을 잘하고 온유하며 사람들에게 털과 고기와 젖 등 모든 것을 아낌없이 제공하듯이,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주셨다.
교육목표 : 인자의 살과 피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 살펴보고, 영생을 위하여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방법에 대해 알아본다.
사람이 사는 동안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양식을 먹으며 동시에 수분을 섭취해야 합니다. 음식과 물이 적절히 배합되어야 영양소가 소화, 흡수되며 불필요한 노폐물과 독소가 배출되기 때문이지요.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구세주이심을 알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인정한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인자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만 영생할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고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 인자의 살이란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
요한복음 6장 53절에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인자의 살이란 예수님의 살 곧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에 보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런가 하면 예수님은 스스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요 6:51) 말씀하셨습니다. 즉 참된 양식인 인자의 살 곧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영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자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만 담는 것과 마음에 양식 삼는다는 것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말씀을 지식으로만 담는 사람은 세월이 흐르면 기억된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행함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양식 삼은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암송할 때도 영적인 의미를 새기고 묵상하며 삶 가운데 행함으로 나타냅니다.
예를 들어,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하신 말씀을 머리로만 알고 마음에 양식 삼지 않았다면, 어떤 사람이 악을 행하고 핍박할 때 감정이 상하고 상대가 미워지며 결국 악으로 갚고 말지요. 그러나 "사랑하라"는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은 사람은 이 말씀이 성경 몇 장 몇 절에 있는지는 잊어버렸다 해도 상대가 악을 행할 때 저절로 사랑과 긍휼이 우러납니다. 이처럼 인자의 살을 먹고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아 가면 진리가 마음에 채워지며 반대로 비진리가 빠져나가게 됩니다.
2. 인자의 살을 먹는 방법
출애굽기 12장에는 유월절 어린양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어린양에 비유하여 인자의 살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 주고 있습니다. 즉 "날로나 물에 삶아서나 먹지 말고 그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고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며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하라"(출 12:9~10) 하셨지요.
먼저, '날로 먹지 말라'고 하셨는데 무슨 뜻일까요? 하나님의 말씀 안에 기록된 영적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고기를 날로 먹으면 소화도 잘 안 되고 배탈이 나기 쉽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도 날로 먹으면 엉뚱한 해석이 나오기 마련이지요.
예를 들어, 마태복음 6장 6절에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했는데 문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골방에 들어가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디에도 믿음의 선진들이 골방에서 기도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도 골방이 아닌 동산이나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지요. 골방은 영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말씀은 골방이 외부와 완전히 차단되듯이, 세상 근심 걱정이나 잡념 속에서 중언부언하지 말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중심 바쳐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다음으로, '물에 삶아 먹지 말라'고 했는데, 이는 하나님 말씀에 세상 것을 가미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증거하면서 "어떤 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하며 세상 지식을 인용하여 마치 진리인 양 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생각과 지식은 극히 제한적이며 아무리 훌륭한 사상도 온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어떤 지식보다 뛰어나며(고전 1:25) 유일한 진리요, 영원히 변함이 없기 때문에 세상 것을 가미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으라'고 했는데 무슨 뜻일까요?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성경 66권에 기록된 모든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레위기처럼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은 빼고 읽거나 기사와 표적은 믿지 않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생각에 맞지 않는 것을 빼면 결국 남는 것은 진리도, 믿음도 아니며 윤리와 도덕에 해당하는 것만 남습니다. 더구나 자신이 지키기 어려운 말씀들은 지나쳐 버리니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다고 해도 믿음이 성장해 영생을 얻을 수가 없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자기 생각에 맞는 특정한 부분만 취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말씀을 온전히 믿고 양식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을 통째로 불에 구워 먹으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불은 성령의 불을 뜻합니다. 즉 하나님 말씀을 성령의 감동함 속에 깨닫고 양식 삼으라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풀지 않고 억지로 풀면 오히려 진리를 벗어나 사망의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벧후 3:16).
마지막으로,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고 아침까지 남은 것은 곧 소화(燒火-불사르거나 태움)하라' 했는데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원수 마귀 사단이 권세를 잡고 있는 어두운 세상입니다. 그래서 영적으로는 밤에 속하지만 때가 이르러 참 빛이신 주님께서 이 땅에 재림하시게 되면 영적으로는 아침이 되지요.
이처럼 주님이 우리를 데리러 다시 오시면 더 이상 마음밭을 개간하여 변화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내가 빨리 죄악을 버리고 영으로 들어갈 걸…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상급도 많이 쌓을 걸…' 아무리 안타깝게 후회해도 때는 이미 늦습니다. 따라서 고기를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는 말씀은,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에 부지런히 인자의 살인 하나님 말씀을 잘 양식 삼아 신부단장을 온전히 마치라는 뜻입니다.
3. 인자의 피를 마시는 것이란?
요한복음 6장 54~55절에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하셨습니다.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려면 음식과 함께 물을 마셔야 합니다. 음식과 물을 함께 섭취해야 소화가 잘되고, 영양분이 흡수되고 노폐물은 배설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인자의 살과 함께 인자의 피를 반드시 마셔야 영생할 수 있습니다.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양식 삼은 하나님 말씀을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행함으로 실천할 때 영적인 믿음이 되고 생명이 되지요. 그래서 야고보서 2장 22절에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단지 머리로만 알고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직접 행함으로 나타내야 합니다.
우리가 양식 삼은 하나님 말씀을 행하면 진리는 흡수되고 그와 반대되는 비진리는 배설되므로 검은 마음에서 하얀 마음으로 변화됩니다. 가령 "미워하지 말라, 서로 사랑하라"는 말씀을 양식 삼아 그대로 하면 '사랑'이라는 영양분은 흡수되고 '미움'이라는 노폐물은 배설되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아 행하면 더럽고 추한 비진리의 마음은 빠져 나가고 선한 마음 곧 진리로 변화되어 갑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즉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열심히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심으로 영생을 얻을 뿐만 아니라, 마음을 진리로 변화시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신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2.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방법입니다. 괄호 안에서 맞는 것을 찾아 O표 하세요.
① 날로 먹지 말라 (ㄱ ㄴ ㄷ ㄹ)
② 물에 삶아서 먹지 말라 (ㄱ ㄴ ㄷ ㄹ)
③ 머리와 정강이와 내장을 다 불에 구워 먹으라 (ㄱ ㄴ ㄷ ㄹ)
④ 아침까지 남겨 두지 말라 (ㄱ ㄴ ㄷ ㄹ)
ㄱ.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성경 66권의 모든 말씀을 빠짐없이 양식 삼아야 한다.
ㄴ.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아 신속히 신부단장을 마쳐야 한다.
ㄷ. 하나님 말씀에 세상 것을 가미하지 말라는 뜻이다.
ㄹ. 영적인 의미를 모르고 하나님 말씀을 문자 그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어린양'이란?
아직 교미하지 않은 일 년 된 양을 어린양이라고 하는데 영적으로는 흠도 점도 없이 순결하신 예수님을 뜻한다. 양이 순종을 잘하고 온유하며 사람들에게 털과 고기와 젖 등 모든 것을 아낌없이 제공하듯이, 예수님도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며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도 아낌없이 주셨다.
2011-04-29
제17과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
요 3:3~8
읽을말씀 : 요 3:3~8 | 외울말씀 : 요 3:5 ㅣ 참고 말씀:요 4:14, 행 2:38
교육목표 :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를 통해 천국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깨닫고 구원에 이르게 한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들은 부활과 천사와 종말론,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을 믿었고,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이스라엘의 지도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라고 호되게 책망을 하시지요. 겉모습은 거룩한 체하나 속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여 마치 회칠한 무덤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예수님이 전파하시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며 죽이고자 했습니다.
1. 선한 중심을 소유한 니고데모
니고데모는 외식하는 그들과는 달리 선한 중심을 소유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 여긴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그는 오늘날 법을 제정하고 재판하는 국회와 법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유대 최고 회의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 의원으로, 사회적으로는 최고의 권력과 부와 명성을 가진 상류층 인사였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정통한 그였지만 진리에 대한 갈급함은 더 깊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사와 표적을 행하며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이 여느 사람과는 달라 보였습니다. 선포하시는 모든 말씀이 확신에 찬 진리의 말씀이었고, 그분의 가르침 속에서 알 수 없는 권세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한밤중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신 줄 몰랐고, 유대인의 관원으로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이 증오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예수님을 찾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지요.
이처럼 예수님을 만난 이후,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비방하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하며 예수님을 옹호하였지요(요 7:51). 이러한 발언은 유대 관원으로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잘못하면 직위를 박탈당하고 박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와서 장사 지낸 것만 보아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요 19:39~40).
2.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영적인 대화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만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존경의 의미를 담아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고, 소경이 눈을 뜨며, 벙어리가 말을 하고, 걷지 못하는 자가 걷는 등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권능을 행하는 것을 보고 선한 양심 속에 하늘에서 오신 분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네 말이 옳다"고 대답하시기보다는 뜻밖에도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무지한 니고데모를 깨우쳐 주기 위함이었지요. 니고데모는 도대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니. 아니 어떻게 사람이 두 번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의아하게 생각했지요. 그래서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라고 되물었습니다. 사람이 한 번 태어나면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갈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영적으로 깨우치지 못하니 육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하시면서 영적으로 깨우칠 수 있도록 알려 주십니다. 즉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3.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그러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말씀하신 것을 깨우치기 위해 사람의 영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이 땅의 흙으로 지어졌지만 생기 곧 하나님의 근본 된 능력이 들어가자 영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즉 살아 있는 영, 생령이 되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범죄함으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아담의 영이 살아 있을 때는 하나님과 항상 교통하며 진리를 공급받았지만, 영이 죽자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져 육체의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지요. 즉 영의 지식을 공급받지 못하고 원수 마귀 사단이 비진리를 심어 주므로 세상 정욕을 좇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영이 죽었다고 하니까 아담의 목숨이 끊어져 죽은 줄로 아는데, 아닙니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아담이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자 진리인 영의 지식이 빠져나가고, 비진리가 들어와 영을 꼼짝 못하게 감싸므로 영이 활동을 못하고 죽은 것처럼 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처럼 첫 사람 아담의 영이 죽으므로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도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나고 어둠과 짝하다가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죽은 영을 살리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먼저, 사람이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마음의 할례를 받아 진리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물이란 영생수 곧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뜻하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 14절에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
물은 갈증을 해소해 주고 생명을 유지하며 더러움을 씻어 줍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인 물은 마음에 있는 추하고 더러운 악을 씻어냅니다. 그러나 눈앞에 물이 있어도 마시지 않으면 갈증을 해소할 수 없고, 씻지 않으면 깨끗해질 수 없듯이 영생수인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지켜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대로 미움, 시기, 질투, 판단, 정죄 등 비진리를 버리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더불어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사랑하고 섬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는 말씀들을 행해 나가면 마음 안에 진리가 채워지지요. 이렇게 비진리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인 진리로 채우면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나야 할 뿐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을 받을 때라야 죽은 영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선물로 성령을 우리의 마음 안에 주십니다.
성령은 마음 안에 내주하셔서 죽은 영을 살리고,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죄를 버리도록 도우심으로 진리의 사람, 영의 사람으로 변화시키시지요. 이것을 곧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지 않으면 죽은 영이 살아나지도 않을뿐더러 하나님 말씀에 담긴 영적인 뜻을 깨우칠 수도 없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심겨지거나 믿음이 되지 않으니 행할 수 있는 능력도 따르지 않지요.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안다 해도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없고, 단지 머리에 지식으로 남을 뿐 그것으로는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영적 깨달음이 오고 마음에서 믿어지며, 기도할 때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와서 말씀대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 죽은 영이 살아났으면 계속하여 믿음이 성장해 가야 합니다. 씨를 심었으면 열매를 따기까지 가꾸고 수고하는 것처럼 성령의 도움으로 영이 자라가야 하지요.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변화되어 참마음을 이루는 만큼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 믿음을 주시며 놀라운 응답과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니고데모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다.
② 예수님을 본 순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신 줄 알았다.
③ 예수님을 배척하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담대히 예수님을 변호하였다.
2. 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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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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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산헤드린 공회'란?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로 구성된 유대 공동체 최고 통치 기관이다. 주로 백성들의 종교생활과 일상생활에 관해 재판하였으며 벌금형이나 태형을 선고하고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공회의 권한이 막강했다.
교육목표 : 니고데모와 예수님의 대화를 통해 천국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깨닫고 구원에 이르게 한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전통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그들은 부활과 천사와 종말론, 메시아가 오신다는 것을 믿었고,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는 이스라엘의 지도층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향해 "화 있을진저!"라고 호되게 책망을 하시지요. 겉모습은 거룩한 체하나 속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여 마치 회칠한 무덤 같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위치에 있었음에도 예수님이 전파하시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예수님을 배척하며 죽이고자 했습니다.
1. 선한 중심을 소유한 니고데모
니고데모는 외식하는 그들과는 달리 선한 중심을 소유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라 여긴 것만 봐도 알 수 있지요. 그는 오늘날 법을 제정하고 재판하는 국회와 법원과 같은 역할을 하는 유대 최고 회의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 의원으로, 사회적으로는 최고의 권력과 부와 명성을 가진 상류층 인사였습니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정통한 그였지만 진리에 대한 갈급함은 더 깊어갔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사와 표적을 행하며 복음을 전파하시는 예수님이 여느 사람과는 달라 보였습니다. 선포하시는 모든 말씀이 확신에 찬 진리의 말씀이었고, 그분의 가르침 속에서 알 수 없는 권세가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한밤중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예수님을 찾아갑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구세주이신 줄 몰랐고, 유대인의 관원으로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이 증오하고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며 잡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예수님을 찾아간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했지요.
이처럼 예수님을 만난 이후,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비방하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우리 율법은 사람의 말을 듣고 그 행한 것을 알기 전에 판결하느냐" 하며 예수님을 옹호하였지요(요 7:51). 이러한 발언은 유대 관원으로서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잘못하면 직위를 박탈당하고 박해를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이 운명하실 때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가지고 와서 장사 지낸 것만 보아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요 19:39~40).
2. 니고데모와 예수님과의 영적인 대화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만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존경의 의미를 담아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고, 소경이 눈을 뜨며, 벙어리가 말을 하고, 걷지 못하는 자가 걷는 등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권능을 행하는 것을 보고 선한 양심 속에 하늘에서 오신 분이라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니고데모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네 말이 옳다"고 대답하시기보다는 뜻밖에도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영적으로 무지한 니고데모를 깨우쳐 주기 위함이었지요. 니고데모는 도대체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니. 아니 어떻게 사람이 두 번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의아하게 생각했지요. 그래서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라고 되물었습니다. 사람이 한 번 태어나면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갈 수 없음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영적으로 깨우치지 못하니 육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하시면서 영적으로 깨우칠 수 있도록 알려 주십니다. 즉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 죽었던 영이 다시 살아나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3.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그러면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말씀하신 것을 깨우치기 위해 사람의 영이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이 땅의 흙으로 지어졌지만 생기 곧 하나님의 근본 된 능력이 들어가자 영적인 존재가 되었습니다. 즉 살아 있는 영, 생령이 되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범죄함으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아담의 영이 살아 있을 때는 하나님과 항상 교통하며 진리를 공급받았지만, 영이 죽자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져 육체의 사람으로 전락하고 말았지요. 즉 영의 지식을 공급받지 못하고 원수 마귀 사단이 비진리를 심어 주므로 세상 정욕을 좇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영이 죽었다고 하니까 아담의 목숨이 끊어져 죽은 줄로 아는데, 아닙니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아담이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자 진리인 영의 지식이 빠져나가고, 비진리가 들어와 영을 꼼짝 못하게 감싸므로 영이 활동을 못하고 죽은 것처럼 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처럼 첫 사람 아담의 영이 죽으므로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도 영이 죽은 상태로 태어나고 어둠과 짝하다가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죽은 영을 살리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두셨습니다.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먼저, 사람이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마음의 할례를 받아 진리로 변화되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물이란 영생수 곧 진리인 하나님 말씀을 뜻하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 14절에 예수님은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
물은 갈증을 해소해 주고 생명을 유지하며 더러움을 씻어 줍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인 물은 마음에 있는 추하고 더러운 악을 씻어냅니다. 그러나 눈앞에 물이 있어도 마시지 않으면 갈증을 해소할 수 없고, 씻지 않으면 깨끗해질 수 없듯이 영생수인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지켜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대로 미움, 시기, 질투, 판단, 정죄 등 비진리를 버리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더불어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사랑하고 섬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는 말씀들을 행해 나가면 마음 안에 진리가 채워지지요. 이렇게 비진리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인 진리로 채우면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구원을 받으려면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나야 할 뿐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을 받을 때라야 죽은 영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하나님께서 선물로 성령을 우리의 마음 안에 주십니다.
성령은 마음 안에 내주하셔서 죽은 영을 살리고, 진리의 말씀을 깨달아 죄를 버리도록 도우심으로 진리의 사람, 영의 사람으로 변화시키시지요. 이것을 곧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지 않으면 죽은 영이 살아나지도 않을뿐더러 하나님 말씀에 담긴 영적인 뜻을 깨우칠 수도 없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심겨지거나 믿음이 되지 않으니 행할 수 있는 능력도 따르지 않지요.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안다 해도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없고, 단지 머리에 지식으로 남을 뿐 그것으로는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셔야 영적 깨달음이 오고 마음에서 믿어지며, 기도할 때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와서 말씀대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 죽은 영이 살아났으면 계속하여 믿음이 성장해 가야 합니다. 씨를 심었으면 열매를 따기까지 가꾸고 수고하는 것처럼 성령의 도움으로 영이 자라가야 하지요.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변화되어 참마음을 이루는 만큼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 믿음을 주시며 놀라운 응답과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니고데모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다.
② 예수님을 본 순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신 줄 알았다.
③ 예수님을 배척하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담대히 예수님을 변호하였다.
2. 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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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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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산헤드린 공회'란?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로 구성된 유대 공동체 최고 통치 기관이다. 주로 백성들의 종교생활과 일상생활에 관해 재판하였으며 벌금형이나 태형을 선고하고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공회의 권한이 막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