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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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10
제45과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마태복음 16:15~19
읽을말씀 : 마태복음 16:15~19 | 외울말씀 : 마태복음 16:16 | 참고 말씀: 로마서 10:10 ; 야고보서 2:22
교육목표 :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술로 시인하여 믿음의 확실한 증거를 나타내 보이는 성도가 되게 한다.
어떤 부부는 평생을 같이 살면서도 사랑한다는 고백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음이 중요하지. 꼭 그걸 말로 해야 하느냐?”는 것이지요. 물론 입술의 고백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백 번, 천 번 말로는 “사랑한다.” 해놓고 정작 마음으로는 사랑하지 않으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나 진정 사랑한다면 마음에 간직한 것을 상대에게 표현할 때 기쁨이 배가 되고 행복이 넘칩니다. 영적으로도 마음에 있는 것을 고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1. 입술 고백의 중요성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씀합니다. 물론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입술로만 “믿습니다.” 한다고 해서 의에 이르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면 왜 마음에 믿은 것을 입술로 시인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바로 입술의 고백을 통해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에서 믿어지는 믿음 없이 입술로만 “믿습니다.” 하는 사람은 믿음에 대한 행함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믿은 것을 입술로도 고백하는 사람은 행함을 통해 믿음의 확실한 증거를 나타냅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한 대로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의 고백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참믿음으로 인정하시고, 마음의 소원에 응답하시며 축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2. 입술의 고백을 통해 물 위를 걸은 베드로
마태복음 14장 2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 무리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 산으로 기도하러 가십니다. 제자들은 건너편 벳새다로 가기 위해 배를 타고 떠났지요. 그런데 밤 4경(새벽 3시~6시)에 거센 풍랑을 만나 제자들은 힘겹게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이때 바다 위로 누군가 유유히 걸어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고 무서워 소리를 질렀지요. 그러자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라” 하시자 베드로는 곧바로 순종하여 바다 위를 걸어갔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 온전해서가 아닙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들어 가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건져 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책망하십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어떻게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을까요? 베드로의 믿음으로는 물 위를 걸을 수 없었지만, 예수님을 마음에서 믿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지요.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인정하며 그것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 이 고백은 온전한 것은 아닙니다. 만일 중심에서 예수님을 백 퍼센트 인정하는 믿음이라면 “주여! 주는 무엇이나 하실 수 있나이다.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온전한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기에 “만일 주시어든” 하며 확인하는 듯한 고백을 한 것이지요.
3. 입술의 고백을 통해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
물 위를 걷는 체험을 통해 베드로는 마침내 온전한 믿음의 고백을 드리게 됩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며 물 위를 걸을 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고백을 하지요.
당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메시아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기하여 죽이려는 사람도 있었지요. “미쳤다.”, “바알세불 지폈다.”, “미혹하는 자다.”, “귀신의 왕을 힘입었다.” 온갖 중상모략과 거짓 소문을 퍼뜨리며 판단 정죄하는 악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십니다. 이때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하지요. 나쁜 소문도 있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께 힘을 드릴 수 있는 선한 고백만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지요. 이때 베드로가 담대하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전에는 예수님께 “만일 주시어든”이라 하였지만 이제는 당당히 “주는”이라 고백하지요. 이에 예수님께서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 하시며 베드로에게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
베드로는 교회의 기초가 되는 축복과 함께 육의 공간 안에서 영의 공간의 일을 펼칠 수 있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훗날 베드로를 통해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며 죽은 사람이 살아날 뿐 아니라 수천 명이 일시에 회심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지요. 또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저주하니 즉시로 혼이 떠나 죽었습니다. 이는 그에게 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고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어 주시는 권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4. 예수님 앞에 나와 응답받으려면
성경을 보면 많은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와 질병과 연약함을 치료받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이방인도 있었지만 대부분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알고 믿은 유대인이었지요.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자신들의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응답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질병과 연약함이 치료되고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고 인정한다는 증거를 행함으로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와 옷자락이라도 만지려고 애쓴 것은 아직 그들의 믿음이 온전한 것은 아니라 해도 예수님 앞에 나가면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믿음으로는 응답받을 수 없었지만, 예수님을 믿고 그 앞에 나와 믿음을 고백하면 예수님께서 발하시는 근본의 소리를 통해 응답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과 똑같은 능력을 지닌 분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질병이나 연약함은 물론, 아무리 얽히고설킨 문제라도 풀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무조건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으며 관심조차 없는 사람에게까지 기도해 주고 축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베드로가 예수님을 믿고 인정했다 해도 정작 그것을 입술로 고백하지 않았다면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인정해 입술로 고백했기 때문에 공의에 조금도 어그러짐 없이 축복의 언약을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와 같이 성령의 사역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중심의 깨달음에 따른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 가운데 나오는 입술의 고백을 통해 모든 마음의 소원까지라도 신속히 응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제자들은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답하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십니다.
이때 베드로는 뭐라고 답변했을까요?
2.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마 8:8) 예수님께 믿음의 고백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① 삭개오 ② 부자 청년 ③ 백부장 ④ 선한 사마리아인
3. 다음 성경 구절 중 베드로에 관한 내용이 아닌 것은?
① 마태복음 16:19 ② 마태복음 16:16 ③ 사도행전 3:6 ④ 사도행전 19:12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밤 사경
이스라엘 시간의 ‘밤 사경’은 새벽 3~6시 사이를 말한다.
이스라엘은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의 시간을 사 등분 한다.
저녁 6~9시를 1경, 밤 9~12시를 2경, 밤 12~새벽 3시를 3경, 새벽 3~6시를 4경으로 구분한다.
교육목표 :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술로 시인하여 믿음의 확실한 증거를 나타내 보이는 성도가 되게 한다.
어떤 부부는 평생을 같이 살면서도 사랑한다는 고백을 거의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마음이 중요하지. 꼭 그걸 말로 해야 하느냐?”는 것이지요. 물론 입술의 고백보다는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백 번, 천 번 말로는 “사랑한다.” 해놓고 정작 마음으로는 사랑하지 않으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나 진정 사랑한다면 마음에 간직한 것을 상대에게 표현할 때 기쁨이 배가 되고 행복이 넘칩니다. 영적으로도 마음에 있는 것을 고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1. 입술 고백의 중요성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씀합니다. 물론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마음으로 믿는 것입니다. 입술로만 “믿습니다.” 한다고 해서 의에 이르고 구원받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면 왜 마음에 믿은 것을 입술로 시인하라고 하신 것일까요? 바로 입술의 고백을 통해 행함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음에서 믿어지는 믿음 없이 입술로만 “믿습니다.” 하는 사람은 믿음에 대한 행함이 따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에서 믿은 것을 입술로도 고백하는 사람은 행함을 통해 믿음의 확실한 증거를 나타냅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한 대로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의 고백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참믿음으로 인정하시고, 마음의 소원에 응답하시며 축복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믿음의 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2. 입술의 고백을 통해 물 위를 걸은 베드로
마태복음 14장 22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후 무리를 떠나보내고 홀로 남아 산으로 기도하러 가십니다. 제자들은 건너편 벳새다로 가기 위해 배를 타고 떠났지요. 그런데 밤 4경(새벽 3시~6시)에 거센 풍랑을 만나 제자들은 힘겹게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 이때 바다 위로 누군가 유유히 걸어오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고 무서워 소리를 질렀지요. 그러자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는 예수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라” 하시자 베드로는 곧바로 순종하여 바다 위를 걸어갔습니다. 베드로가 물 위를 걸을 수 있었던 것은 믿음이 온전해서가 아닙니다.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들어 가는 모습만 봐도 알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베드로를 건져 주시며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책망하십니다.
그러면 베드로는 어떻게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을까요? 베드로의 믿음으로는 물 위를 걸을 수 없었지만, 예수님을 마음에서 믿고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순간만큼은 물 위를 걸을 수 있었지요. 이처럼 예수님을 믿고 인정하며 그것을 입술로 고백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베드로가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한 이 고백은 온전한 것은 아닙니다. 만일 중심에서 예수님을 백 퍼센트 인정하는 믿음이라면 “주여! 주는 무엇이나 하실 수 있나이다.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온전한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기에 “만일 주시어든” 하며 확인하는 듯한 고백을 한 것이지요.
3. 입술의 고백을 통해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
물 위를 걷는 체험을 통해 베드로는 마침내 온전한 믿음의 고백을 드리게 됩니다. 마태복음 16장 16절에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하며 물 위를 걸을 때와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고백을 하지요.
당시 모든 사람이 예수님을 믿고 메시아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시기하여 죽이려는 사람도 있었지요. “미쳤다.”, “바알세불 지폈다.”, “미혹하는 자다.”, “귀신의 왕을 힘입었다.” 온갖 중상모략과 거짓 소문을 퍼뜨리며 판단 정죄하는 악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십니다. 이때 제자들은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하지요. 나쁜 소문도 있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께 힘을 드릴 수 있는 선한 고백만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지요. 이때 베드로가 담대하게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하였습니다. 전에는 예수님께 “만일 주시어든”이라 하였지만 이제는 당당히 “주는”이라 고백하지요. 이에 예수님께서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라” 하시며 베드로에게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마 16:18~19)
베드로는 교회의 기초가 되는 축복과 함께 육의 공간 안에서 영의 공간의 일을 펼칠 수 있는 권세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훗날 베드로를 통해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며 죽은 사람이 살아날 뿐 아니라 수천 명이 일시에 회심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지요. 또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와 삽비라를 저주하니 즉시로 혼이 떠나 죽었습니다. 이는 그에게 이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고 이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어 주시는 권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4. 예수님 앞에 나와 응답받으려면
성경을 보면 많은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와 질병과 연약함을 치료받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그중에는 이방인도 있었지만 대부분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알고 믿은 유대인이었지요. 그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도 자신들의 믿음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응답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왔을 때 질병과 연약함이 치료되고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고 인정한다는 증거를 행함으로 나타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와 옷자락이라도 만지려고 애쓴 것은 아직 그들의 믿음이 온전한 것은 아니라 해도 예수님 앞에 나가면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믿음으로는 응답받을 수 없었지만, 예수님을 믿고 그 앞에 나와 믿음을 고백하면 예수님께서 발하시는 근본의 소리를 통해 응답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하나님과 똑같은 능력을 지닌 분입니다. 그러니 어떠한 질병이나 연약함은 물론, 아무리 얽히고설킨 문제라도 풀어 주실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만나는 사람마다 무조건 문제를 해결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인정하지도 않으며 관심조차 없는 사람에게까지 기도해 주고 축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공의에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일 베드로가 예수님을 믿고 인정했다 해도 정작 그것을 입술로 고백하지 않았다면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이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인정해 입술로 고백했기 때문에 공의에 조금도 어그러짐 없이 축복의 언약을 받은 것입니다.
베드로와 같이 성령의 사역에 동참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중심의 깨달음에 따른 믿음의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 가운데 나오는 입술의 고백을 통해 모든 마음의 소원까지라도 신속히 응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제자들은 “세례 요한, 엘리야,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라고 답하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십니다.
이때 베드로는 뭐라고 답변했을까요?
2.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마 8:8) 예수님께 믿음의 고백을 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① 삭개오 ② 부자 청년 ③ 백부장 ④ 선한 사마리아인
3. 다음 성경 구절 중 베드로에 관한 내용이 아닌 것은?
① 마태복음 16:19 ② 마태복음 16:16 ③ 사도행전 3:6 ④ 사도행전 19:12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밤 사경
이스라엘 시간의 ‘밤 사경’은 새벽 3~6시 사이를 말한다.
이스라엘은 저녁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의 시간을 사 등분 한다.
저녁 6~9시를 1경, 밤 9~12시를 2경, 밤 12~새벽 3시를 3경, 새벽 3~6시를 4경으로 구분한다.
2023-11-03
제44과믿음
히브리서 10:22
읽을말씀 : 히브리서 10:22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0:22 | 참고 말씀: 요한일서 3:21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게 한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변함없는 진실 자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은 즉시 응답받지만 어떤 사람은 응답이 더디거나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1.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과의 관계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합니다. 여기서 ‘참마음’이란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마음입니다. ‘온전한 믿음’이란 성경 66권 말씀을 의심 없이 믿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모두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하지요. 그런데 온전한 믿음은 참마음을 이룬 만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참마음을 이룬 사람의 고백이야말로 진실한 믿음의 고백이므로 하나님께서도 그 기도에 신속하게 응답해 주십니다. 많은 사람이 믿음의 고백을 하지만 저마다 그 속에 담긴 진실함은 다릅니다. 참마음을 이루어 백 퍼센트 진실한 믿음의 고백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온전히 이루지 못해 오십 퍼센트뿐인 진실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를 반밖에 믿지 못하는구나.” 하실 수밖에 없지요.
이러한 진실함의 정도가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분량임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믿는다.”는 고백과 상대를 신뢰하는 정도가 다른 것을 봅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어린 자녀를 집에 두고 외출할 때 “얌전히 집 잘 보고 있어라. 엄마는 널 믿는다.” 한다면 엄마가 정말 그 자녀를 믿어서 말한 것일까요?
참으로 믿는다면 “믿는다.”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몇 시까지 들어올게. 집 잘 보고 있어.” 해도 되지요. 그런데 미덥지 못하니 “믿는다.”는 말을 덧붙인 것입니다. “엄마가 깨끗이 청소해 놨으니까 어지럽히지 말고, 엄마 화장품 만지지 말아라. 가스 불은 위험하니까 켜면 안 된다.” 등 염려가 되니 당부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당부하고 외출했으면서도 믿음이 가지 않으니 “지금 뭐하니? 아무 일 없지?” 하면서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평소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무엇이든지 그대로 순종하는 자녀에게 “너를 믿는다.” 했다면 자녀를 백 퍼센트 믿는 데서 나온 진실한 고백입니다. 이처럼 얼마나 순종하고 진실한지에 따라 신뢰가 가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미덥지 못한 자녀도 있는 것입니다.
만일 백 퍼센트 신뢰하는 자녀가 무엇을 요구한다면 부모는 이유도 묻지 않고 바라는 대로 해 줄 것입니다. ‘당연히 필요해서 구하겠지. 허튼 일을 할 아이가 아니니까.’ 하며 자녀에 대한 온전한 신뢰 속에서 구하는 대로 들어 주지요.
그러나 자녀에 대한 신뢰가 온전하지 않을 때는 요구가 타당할 때라야 비로소 들어 줍니다. 자녀에 대한 믿음이 적을수록 부모는 자녀의 요구 사항을 몇 차례 확인하고도 들어 주기를 주저하지요. 그래도 자녀가 계속해서 조르고 떼를 쓴다면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의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강청에 못 이겨서 어쩔 수 없이 들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하나님과 그의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미덥지 못한 자녀가 강청하니 마지못해서 조금 주시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진리 가운데 행하여 책망받을 것이 없으므로 구하는 것마다 주실 수 있도록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2.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지닌 아브라함
아브라함 선지자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한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도 의심치 않고 그대로 믿었습니다(롬 4:19~22).
아브라함이 75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큰 민족이 형성될 것을 말씀하셨지만, 20여 년이 지나도록 아브라함은 자손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이 99세, 아내 사라가 89세로 이미 잉태할 수 없는 몸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이듬해에 아들을 얻게 될 것을 알려 주셨지요.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하지만, 약속의 말씀을 전혀 의심치 않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이듬해에 아들 이삭을 낳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또 한 번의 믿음의 시험이 남아 있었습니다. 백 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어떻게 번제로 드렸을까요?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많은 자손이 나올 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에 그를 번제로 드린다고 해도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습니다(히 11:17~19).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이삭을 결박해 번제단 위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잡으려 했지요.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셨습니다(창 22:12).
이처럼 아브라함은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에 순종할 수 없는 일에도 순종했으며, 믿음의 시험을 통해 온전한 믿음을 인정받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3.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당회장님께서 7년간 온갖 질병으로 인해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음만 기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누님의 전도로 성전에 가서 단지 무릎을 꿇었을 뿐인데 하나님 능력으로 모든 질병을 치료받았지요. 이처럼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었기에 집 근처 교회에 출석하며 각종 예배는 물론 여기저기 부흥성회를 찾아다니며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행했습니다.
당시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매일 새벽예배에 참석하는 등 ‘어찌하면 하나님 말씀을 더 듣고 하나님 뜻을 깨우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뿐이었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하니 즉시 끊어 버렸습니다. 십일조와 감사헌금도 해야 한다고 하니 곧바로 드렸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지요.
성경을 읽어가면서 ‘하라’ 하는 것은 했고, ‘지키라’ 하는 것은 지켰습니다. ‘하지 말라’ 하는 것은 하지 않았으며, ‘버리라’ 하는 것은 버려 나갔지요. 만일 쉽게 버려지지 않으면 금식하며 기도해서라도 버렸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만큼 하나님께서는 귀한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날로 더욱 견고해져 어떤 시험이 오거나 어려운 일을 만나도 결코 하나님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지요. 모든 것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믿음으로 기도하니 어느새 거짓이 없는 참마음이 되어 갔습니다.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후에는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며 권능의 종이 되기 위해 불같이 기도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후에는 시험이 올 때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니 모든 시험을 넉넉히 통과할 수 있었지요.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위로부터 큰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권능의 역사를 바탕으로 200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해외 성회를 이루며 무수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우리도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믿으며 계명들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변화되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참마음이란 무엇일까요?
2. 온전한 믿음이란 어떠한 믿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3.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요?
① 이삭 ② 아브라함 ③ 야곱 ④ 사라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이삭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며 아버지가 자신을 번제물로 드리려 했을 때 반항하지 않았다.
그는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해 60세에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야곱보다 에서를 더 사랑했고 노년에 축복하려 했으나 리브가와 야곱의 속임수로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 주게 된다.
그는 하나님께 가나안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창 26:2~5)을 축복받아 거부가 되었으며,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막아 버릴 때도 대항하지 않고 오히려 양보함으로 화평을 이루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로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게 한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변함없는 진실 자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정하고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시니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어떤 사람은 즉시 응답받지만 어떤 사람은 응답이 더디거나 받지 못하는 것일까요?
1.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과의 관계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합니다. 여기서 ‘참마음’이란 거짓이 없는 진실한 마음 곧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마음입니다. ‘온전한 믿음’이란 성경 66권 말씀을 의심 없이 믿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모두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하지요. 그런데 온전한 믿음은 참마음을 이룬 만큼 소유할 수 있습니다.
참마음을 이룬 사람의 고백이야말로 진실한 믿음의 고백이므로 하나님께서도 그 기도에 신속하게 응답해 주십니다. 많은 사람이 믿음의 고백을 하지만 저마다 그 속에 담긴 진실함은 다릅니다. 참마음을 이루어 백 퍼센트 진실한 믿음의 고백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온전히 이루지 못해 오십 퍼센트뿐인 진실하지 않은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 하나님께서는 “너는 나를 반밖에 믿지 못하는구나.” 하실 수밖에 없지요.
이러한 진실함의 정도가 바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의 분량임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도 “믿는다.”는 고백과 상대를 신뢰하는 정도가 다른 것을 봅니다. 예를 들어, 엄마가 어린 자녀를 집에 두고 외출할 때 “얌전히 집 잘 보고 있어라. 엄마는 널 믿는다.” 한다면 엄마가 정말 그 자녀를 믿어서 말한 것일까요?
참으로 믿는다면 “믿는다.”는 말이 필요 없습니다. “몇 시까지 들어올게. 집 잘 보고 있어.” 해도 되지요. 그런데 미덥지 못하니 “믿는다.”는 말을 덧붙인 것입니다. “엄마가 깨끗이 청소해 놨으니까 어지럽히지 말고, 엄마 화장품 만지지 말아라. 가스 불은 위험하니까 켜면 안 된다.” 등 염려가 되니 당부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당부하고 외출했으면서도 믿음이 가지 않으니 “지금 뭐하니? 아무 일 없지?” 하면서 다시 한번 확인합니다.
평소 부모님 말씀을 잘 듣고 무엇이든지 그대로 순종하는 자녀에게 “너를 믿는다.” 했다면 자녀를 백 퍼센트 믿는 데서 나온 진실한 고백입니다. 이처럼 얼마나 순종하고 진실한지에 따라 신뢰가 가는 자녀가 있는가 하면 미덥지 못한 자녀도 있는 것입니다.
만일 백 퍼센트 신뢰하는 자녀가 무엇을 요구한다면 부모는 이유도 묻지 않고 바라는 대로 해 줄 것입니다. ‘당연히 필요해서 구하겠지. 허튼 일을 할 아이가 아니니까.’ 하며 자녀에 대한 온전한 신뢰 속에서 구하는 대로 들어 주지요.
그러나 자녀에 대한 신뢰가 온전하지 않을 때는 요구가 타당할 때라야 비로소 들어 줍니다. 자녀에 대한 믿음이 적을수록 부모는 자녀의 요구 사항을 몇 차례 확인하고도 들어 주기를 주저하지요. 그래도 자녀가 계속해서 조르고 떼를 쓴다면 부모 입장에서는 자녀의 말을 믿어서가 아니라 강청에 못 이겨서 어쩔 수 없이 들어 주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원리는 하나님과 그의 자녀와의 관계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미덥지 못한 자녀가 강청하니 마지못해서 조금 주시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진리 가운데 행하여 책망받을 것이 없으므로 구하는 것마다 주실 수 있도록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2.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지닌 아브라함
아브라함 선지자가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까닭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은 한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어떤 상황에서도 의심치 않고 그대로 믿었습니다(롬 4:19~22).
아브라함이 75세가 되던 해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 큰 민족이 형성될 것을 말씀하셨지만, 20여 년이 지나도록 아브라함은 자손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아브라함이 99세, 아내 사라가 89세로 이미 잉태할 수 없는 몸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비로소 이듬해에 아들을 얻게 될 것을 알려 주셨지요.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불가능하지만, 약속의 말씀을 전혀 의심치 않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이듬해에 아들 이삭을 낳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기 위해서는 또 한 번의 믿음의 시험이 남아 있었습니다. 백 세에 얻은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어떻게 번제로 드렸을까요?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께서 이삭을 통해 많은 자손이 나올 것을 알려 주셨기 때문에 그를 번제로 드린다고 해도 다시 살리실 줄로 믿었습니다(히 11:17~19). 그래서 오직 믿음으로 이삭을 결박해 번제단 위에 올려놓고 칼을 들어 잡으려 했지요.
이때 하나님께서는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셨습니다(창 22:12).
이처럼 아브라함은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경외했기 때문에 순종할 수 없는 일에도 순종했으며, 믿음의 시험을 통해 온전한 믿음을 인정받고 믿음의 조상이 되는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3.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당회장님께서 7년간 온갖 질병으로 인해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음만 기다리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누님의 전도로 성전에 가서 단지 무릎을 꿇었을 뿐인데 하나님 능력으로 모든 질병을 치료받았지요. 이처럼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입었기에 집 근처 교회에 출석하며 각종 예배는 물론 여기저기 부흥성회를 찾아다니며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행했습니다.
당시 힘든 노동을 하면서도 매일 새벽예배에 참석하는 등 ‘어찌하면 하나님 말씀을 더 듣고 하나님 뜻을 깨우칠 수 있을까?’ 하는 마음뿐이었지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것은 합당치 않다고 하니 즉시 끊어 버렸습니다. 십일조와 감사헌금도 해야 한다고 하니 곧바로 드렸으며 그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지요.
성경을 읽어가면서 ‘하라’ 하는 것은 했고, ‘지키라’ 하는 것은 지켰습니다. ‘하지 말라’ 하는 것은 하지 않았으며, ‘버리라’ 하는 것은 버려 나갔지요. 만일 쉽게 버려지지 않으면 금식하며 기도해서라도 버렸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만큼 하나님께서는 귀한 믿음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날로 더욱 견고해져 어떤 시험이 오거나 어려운 일을 만나도 결코 하나님을 의심해 본 적이 없었지요. 모든 것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맡기고 오직 믿음으로 기도하니 어느새 거짓이 없는 참마음이 되어 갔습니다.
주의 종으로 부름을 받은 후에는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며 권능의 종이 되기 위해 불같이 기도했습니다. 교회를 개척한 후에는 시험이 올 때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니 모든 시험을 넉넉히 통과할 수 있었지요.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위로부터 큰 권능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권능의 역사를 바탕으로 2000년부터는 본격적으로 해외 성회를 이루며 무수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우리도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믿으며 계명들을 지켜 행해야 합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변화되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갈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참마음이란 무엇일까요?
2. 온전한 믿음이란 어떠한 믿음을 말하는 것일까요?
3.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일까요?
① 이삭 ② 아브라함 ③ 야곱 ④ 사라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이삭
이삭은 아브라함과 사라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며 아버지가 자신을 번제물로 드리려 했을 때 반항하지 않았다.
그는 40세에 리브가와 결혼해 60세에 쌍둥이 에서와 야곱을 낳았다.
야곱보다 에서를 더 사랑했고 노년에 축복하려 했으나 리브가와 야곱의 속임수로 야곱에게 장자의 축복을 해 주게 된다.
그는 하나님께 가나안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창 26:2~5)을 축복받아 거부가 되었으며,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막아 버릴 때도 대항하지 않고 오히려 양보함으로 화평을 이루었다.
2023-10-27
제43과순종
빌립보서 2:8
읽을말씀 : 빌립보서 2:8 | 외울말씀 : 사무엘상 15:22 | 참고 말씀: 고린도후서 1:19 ; 히브리서 5:8~9
교육목표 : 하나님 말씀에 오직 ‘예’와 ‘아멘’으로 순종하여 믿음의 증거를 보임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 말씀에 오직 ‘예’와 ‘아멘’으로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끌어내리는 지름길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도 “…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셨습니다. 구세주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순종으로 나오셨을까요?
1. 예수님의 철저한 순종으로 열린 인간 구원의 길
아담은 죄인이 되기 전에 에덴동산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하므로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공의에 따라 사망에 이르렀고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불순종할 것을 이미 아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구세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예언하셨기 때문에 이를 알고 있는 원수 마귀 사단은 예수님을 죽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악한 사람들을 사주해 예수님을 핍박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요. 원수 마귀 사단은 구세주가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없애 버리기만 하면 죄인 된 인류를 자기가 주관하다 지옥으로 끌고 갈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죄와 자범죄가 없기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공의의 법칙에 의해 죽임을 당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 사단은 공의의 법칙을 어기고 예수님을 죽였지요. 결국 예수님께서는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과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만세 전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입니다(고전 2:7).
예수님께서는 ‘나는 아무 죄도 없는데 왜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어야 하나?’ 생각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섭리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처럼 철저한 순종이 있었기에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2. 첫째 하늘의 공의에 순종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과 근본이 하나이신데도 피조물인 사람과 똑같은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첫째 하늘의 공의에 합당하게 사셨기에 배고픔과 피곤함, 고통과 슬픔, 외로움을 다 느끼셔야 했지요.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앞두고 40일 금식을 하셨습니다. 천하 만물의 주인이면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금식하며 애써 부르짖어 기도하신 것입니다. 40일 금식 중에 원수 마귀에게 세 차례 시험을 받았지만 조금도 미혹되지 않고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언제든지 기적과 같은 놀라운 일을 베풀 수 있었는데도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물로 포도주를 만들거나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타내시는 등 필요한 순간에만 권능을 나타내 보이셨지요.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도 얼마든지 멸할 수 있는 권세가 있었지만, 잠잠히 핍박받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며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모든 고통을 당하셨지요. 그래서 히브리서 5장 8~9절에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철저한 순종으로 공의의 법칙을 온전히 이루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주님을 영접하여 진리대로 살면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사망을 향해 가지 않고 의의 종이 되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롬 6:16).
3. 순종의 행함은 믿음의 증거
마가복음 9장 23절에 “…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믿음만 있으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능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질병이 떠나고 믿음으로 명하면 귀신이 나가며 시험 환난과 모든 재앙이 물러가지요. 공의의 법칙에 따라 믿음대로 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순종의 행함입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마지막 양식을 가져오라 할 때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믿습니다.” 해놓고 순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믿음의 증거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가 순종했기에 그 행함이 믿음의 증거가 되어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공의대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꿈과 비전을 주실 때 얼마나 명심해 끝까지 믿고 순종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믿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며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했습니다.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여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계명대로 순종하며 정도를 걸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요셉의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불과 30세에 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 왕 다음가는 지도자가 되었지요.
4.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려면
첫째, 성경 66권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 뜻을 알고 순종하되 먼저 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 배우는 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는 말씀은 하나님 공의의 법칙이므로 순종해 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죄를 회개하고 통회자복을 하라.”는 것은 회개하여 죄의 담을 헐어야 하나님께 응답받을 수 있다는 법칙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또한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은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 땀 흘려야 소산을 먹는다는 법칙에 따라 응답받는 기도의 방법을 알려 주지요(눅 22:44). 하나님을 만나고 응답받기 위해서는 죄를 회개하고 구할 바를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구할 바를 구하되 정성과 믿음을 내보여야 하지요.
둘째,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주의 종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개척 때 어떤 분이 암에 걸려 들것에 실려 와서 누운 채로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당회장님께서 “앉아서 예배드리세요.” 하시자 가족이 등 뒤를 받쳐서 비스듬히 앉아 예배를 드렸지요. 그분이 일어나 앉기조차 힘든 것을 왜 모르시겠습니까? 하지만 성령의 주관을 받아 명하신 당회장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결국 치료의 역사를 체험했지요. 이처럼 자신의 믿음으로는 할 수 없지만 권능을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 성령의 역사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주관이 오면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공의의 법칙에 따라 응답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은 예배가 끝나고 기도하라.’는 주관을 받으면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순종하면 회개의 영이 임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헐리거나 방언의 은사를 받는 등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기도하는 동안 응답의 축복이 오는 경우도 있지요.
누구든지 공의의 법칙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순종으로 믿음의 행함을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것처럼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순종만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창대하게 펼쳐집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오직 ‘예’와 ‘아멘’으로 순종해 하나님의 역사를 친히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순종에 관한 성경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세요.
① 사무엘상 15:22 ② 히브리서 5:8~9
③ 고린도후서 1:19 ④ 갈라디아서 5:24
2. 하나님 뜻에 순종했던 인물과 거리가 먼 것을 고르세요.
① 베드로, 바울 ② 아브라함, 요셉 ③ 사울, 발람 ④ 사무엘, 다윗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순종의 네 가지 유형
첫 번째 유형 : 징계가 두려워 명령에 억지로 순종한다.
두 번째 유형 : 자기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만 순종한다.
지시나 명령이 자기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한다.
세 번째 유형 : 무조건 순종한다. 자신이 할 수 있나 없나, 자기 생각에 맞나 틀리나를 따지지 않는다. 자기 의사 없이 무조건 아멘 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명하시니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무조건 떠난 순종이다.
네 번째 유형 : 명령하시는 의도를 마음으로 깨달아 기꺼이 순종한다.
순종할 때 이루어질 일의 결과도 대략 마음에 그려진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온전히 순종한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려 주실 것을 믿었다.
교육목표 : 하나님 말씀에 오직 ‘예’와 ‘아멘’으로 순종하여 믿음의 증거를 보임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 말씀에 오직 ‘예’와 ‘아멘’으로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끌어내리는 지름길입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도 “…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셨습니다. 구세주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순종으로 나오셨을까요?
1. 예수님의 철저한 순종으로 열린 인간 구원의 길
아담은 죄인이 되기 전에 에덴동산에서 영생을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하므로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공의에 따라 사망에 이르렀고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불순종할 것을 이미 아셨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해서이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태어나신 것입니다.
구세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이미 예언하셨기 때문에 이를 알고 있는 원수 마귀 사단은 예수님을 죽일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습니다. 악한 사람들을 사주해 예수님을 핍박하고 결국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요. 원수 마귀 사단은 구세주가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없애 버리기만 하면 죄인 된 인류를 자기가 주관하다 지옥으로 끌고 갈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죄와 자범죄가 없기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공의의 법칙에 의해 죽임을 당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 사단은 공의의 법칙을 어기고 예수님을 죽였지요. 결국 예수님께서는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다시 살아나셨고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과 영생을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만세 전에 감추어진 하나님의 비밀입니다(고전 2:7).
예수님께서는 ‘나는 아무 죄도 없는데 왜 죄인들을 대신해서 죽어야 하나?’ 생각하지 않았고 오직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섭리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이처럼 철저한 순종이 있었기에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2. 첫째 하늘의 공의에 순종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과 근본이 하나이신데도 피조물인 사람과 똑같은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첫째 하늘의 공의에 합당하게 사셨기에 배고픔과 피곤함, 고통과 슬픔, 외로움을 다 느끼셔야 했지요.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앞두고 40일 금식을 하셨습니다. 천하 만물의 주인이면서도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금식하며 애써 부르짖어 기도하신 것입니다. 40일 금식 중에 원수 마귀에게 세 차례 시험을 받았지만 조금도 미혹되지 않고 말씀으로 물리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아들로서 언제든지 기적과 같은 놀라운 일을 베풀 수 있었는데도 오직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물로 포도주를 만들거나 오병이어의 기적을 나타내시는 등 필요한 순간에만 권능을 나타내 보이셨지요.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도 얼마든지 멸할 수 있는 권세가 있었지만, 잠잠히 핍박받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며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모든 고통을 당하셨지요. 그래서 히브리서 5장 8~9절에 “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말씀한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철저한 순종으로 공의의 법칙을 온전히 이루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주님을 영접하여 진리대로 살면 더 이상 죄의 종으로 사망을 향해 가지 않고 의의 종이 되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롬 6:16).
3. 순종의 행함은 믿음의 증거
마가복음 9장 23절에 “…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누구든지 믿음만 있으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능히 체험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질병이 떠나고 믿음으로 명하면 귀신이 나가며 시험 환난과 모든 재앙이 물러가지요. 공의의 법칙에 따라 믿음대로 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 주는 것이 바로 순종의 행함입니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마지막 양식을 가져오라 할 때 “당신이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믿습니다.” 해놓고 순종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믿음의 증거가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역사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르밧 과부가 순종했기에 그 행함이 믿음의 증거가 되어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공의대로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꿈과 비전을 주실 때 얼마나 명심해 끝까지 믿고 순종하는지가 매우 중요합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믿었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며 인도하심을 따라 순종했습니다. 13년 동안 종살이와 감옥살이를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께서 주신 꿈과 정반대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여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계명대로 순종하며 정도를 걸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요셉의 믿음과 순종을 보시고 꿈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불과 30세에 강대국 애굽의 총리가 되어 왕 다음가는 지도자가 되었지요.
4.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려면
첫째, 성경 66권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 뜻을 알고 순종하되 먼저 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 배우는 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는 말씀은 하나님 공의의 법칙이므로 순종해 행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죄를 회개하고 통회자복을 하라.”는 것은 회개하여 죄의 담을 헐어야 하나님께 응답받을 수 있다는 법칙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또한 “부르짖어 기도하라.”는 것은 아담이 죄를 범한 이후 땀 흘려야 소산을 먹는다는 법칙에 따라 응답받는 기도의 방법을 알려 주지요(눅 22:44). 하나님을 만나고 응답받기 위해서는 죄를 회개하고 구할 바를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구할 바를 구하되 정성과 믿음을 내보여야 하지요.
둘째,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주의 종의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개척 때 어떤 분이 암에 걸려 들것에 실려 와서 누운 채로 예배에 참석하셨습니다. 당회장님께서 “앉아서 예배드리세요.” 하시자 가족이 등 뒤를 받쳐서 비스듬히 앉아 예배를 드렸지요. 그분이 일어나 앉기조차 힘든 것을 왜 모르시겠습니까? 하지만 성령의 주관을 받아 명하신 당회장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결국 치료의 역사를 체험했지요. 이처럼 자신의 믿음으로는 할 수 없지만 권능을 행하는 하나님의 사람을 믿고 순종하면 하나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셋째, 성령의 역사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말씀을 듣고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의 주관이 오면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성령께서 공의의 법칙에 따라 응답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오늘은 예배가 끝나고 기도하라.’는 주관을 받으면 그대로 순종하면 됩니다. 순종하면 회개의 영이 임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헐리거나 방언의 은사를 받는 등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기도하는 동안 응답의 축복이 오는 경우도 있지요.
누구든지 공의의 법칙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순종으로 믿음의 행함을 보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것처럼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순종만 하면 하나님의 역사가 창대하게 펼쳐집니다. 하나님 말씀 앞에 오직 ‘예’와 ‘아멘’으로 순종해 하나님의 역사를 친히 체험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순종에 관한 성경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세요.
① 사무엘상 15:22 ② 히브리서 5:8~9
③ 고린도후서 1:19 ④ 갈라디아서 5:24
2. 하나님 뜻에 순종했던 인물과 거리가 먼 것을 고르세요.
① 베드로, 바울 ② 아브라함, 요셉 ③ 사울, 발람 ④ 사무엘, 다윗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순종의 네 가지 유형
첫 번째 유형 : 징계가 두려워 명령에 억지로 순종한다.
두 번째 유형 : 자기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만 순종한다.
지시나 명령이 자기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한다.
세 번째 유형 : 무조건 순종한다. 자신이 할 수 있나 없나, 자기 생각에 맞나 틀리나를 따지지 않는다. 자기 의사 없이 무조건 아멘 한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명하시니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무조건 떠난 순종이다.
네 번째 유형 : 명령하시는 의도를 마음으로 깨달아 기꺼이 순종한다.
순종할 때 이루어질 일의 결과도 대략 마음에 그려진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온전히 순종한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면서 하나님께서 그를 다시 살려 주실 것을 믿었다.
2023-10-20
제42과공의
시편 37:6
읽을말씀 : 시편 37:6 | 외울말씀 : 시편 37:6 | 참고 말씀: 갈라디아서 6:7
교육목표 :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의의 법칙을 깨달아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로서 전지전능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응답받는 방법을 알아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정확히 알고 행할 때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고 응답과 축복을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공의
‘공의’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에 따라 정확하게 집행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원인과 결과에 대한 법칙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어떤 원인에는 어떤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도 ‘뿌린 대로 거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하는 말이 있는데 진리 안에서는 공의의 법칙들이 더욱 확실하지요. 그래서 성경을 보면 ‘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면 찾을 것이며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리 안에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전혀 이해되지 않는 공의의 법칙도 있지요. ‘섬기는 자가 큰 자’라든가 ‘목숨을 얻고자 하면 잃고 잃고자 하면 얻는다’ 등의 말씀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맞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고 변하지 않는 진리이므로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공의의 법칙만 깨닫는다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신속히 그 원인을 찾아내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스스로도 어그러짐 없이 공의를 지키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며 모든 것의 주관자인데도 스스로 공의의 법칙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으십니다. “내가 만든 법칙이니까 나는 안 지켜도 괜찮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치 오차도 없이 모든 것을 공의에 맞게 정확하게 역사하시지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도 공의의 법칙에 따라 정확하게 우리의 죄를 속량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이 원수 마귀 사단을 다 멸하고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면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인간 경작을 계획하시면서 공의의 법칙을 정해 놓으셨고 스스로도 어그러짐 없이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독생자 아들까지 내어 주시는 희생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도 단지 “주여, 믿습니다.” 하며 대충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구원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공의의 법칙에 따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3. 공의의 양면성
흔히 사람들은 공의는 무섭고 두려우며 징계와 형벌이 따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의가 있기 때문에 죄와 악에는 무섭고 두려운 형벌이 따르지만, 반면 응답과 축복을 가져다주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공의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는 무서운 것이지만, 빛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는 축복의 열쇠와 같습니다. 칼을 강도가 들었을 때는 흉기가 되지만, 어머니가 들었을 때는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도구인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공의의 양면성을 알면 공의는 사랑이 있으므로 완성되고 하나님의 사랑 역시 공의가 있으므로 완성됨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며, 사랑이 없는 공의 역시 참된 공의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빗나가서 잘못했을 때 무조건 체벌한다거나 아니면 무조건 용서해 준다면 자녀를 잘못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공의에 따라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엄하게 해야 할 때도 있고, 용서와 사랑으로 보듬어야 할 때도 있지요.
마태복음 18장 22절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하며 무한대 용서의 사랑을 말씀하지만, 히브리서 12장 6절에는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며 참사랑에는 징계가 따른다는 공의에 대해서도 말씀합니다. 이는 사랑 안에서 공의가 온전케 되며 공의를 궁구할수록 그 안에 깊은 사랑이 담겨 있음을 깨우치게 됩니다.
4. 수준이 다른 공의의 차원
공의는 각각의 하늘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즉 첫째, 둘째, 셋째, 넷째 하늘의 차원으로 올라갈수록 공의의 차원도 더 깊고 넓어지지요. 또한 공의의 차원에 차이가 나는 것은 하늘마다 사랑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공의는 떼려야 뗄 수 없으며 사랑의 차원이 깊어질수록 공의의 차원도 깊어집니다. 예를 들어 구약 시대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보복의 원리가 적용되었는데, 신약 시대에 와서는 ‘원수라도 사랑하라’ 하며, 보복의 원리가 깨지고 용서와 사랑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을 봅니다.
이는 얼마나 사랑을 이루었느냐에 따라 똑같은 공의라도 적용되는 수준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시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는 사랑의 수준이 매우 낮은 차원이었습니다. 만일 이들에게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는 지극히 높은 차원의 공의를 적용하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그들의 수준에 맞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낮은 차원의 공의의 법칙을 적용하며 질서를 세우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는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뒤에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공의의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원수도 사랑하는 사랑의 차원을 보았기에 용서와 긍휼함이 적용되는 공의의 차원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공의는 얼마나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고 영으로 일구느냐에 따라 느끼는 차원 역시 다릅니다.
5. 공의의 기본 법칙은 믿음과 순종
우리가 응답받기 위해서는 선과 겸비함 등 많은 응답의 법칙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법칙은 믿음과 순종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할 때 응답받는 것이 바로 공의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백부장이 이러한 공의 법칙대로 행했지요. 백부장은 하인의 병을 위해 지배국인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라는 신분을 벗고 예수님 앞에 나오는 겸비함이 있었습니다. 또한 하인의 병을 위해 자신이 직접 나오는 선한 마음도 있었지요. 무엇보다 그가 응답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만 나가면 어떤 병도 깨끗이 치료된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대로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였지요. 그래서 예수님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마 8:8).
우리도 이런 믿음을 소유하려면 먼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것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서운케 하거나, 하나님 앞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온전한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하지 못한 것 등을 회개해야 하지요.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화목하지 못하고 혈기, 짜증, 시기, 질투, 다툼, 거짓 등 온갖 악을 품고 행한 것을 회개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기도 받을 때 믿음이 주어지고 믿음대로 공의의 법칙에 따라 응답받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각종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 심는 등 응답받기 위해 순종해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순종이 나오기 위해서는 철저히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즉 교만, 자존심, 틀, 생각, 이론, 세상의 자랑, 세상에 의지하려는 마음 등을 다 버려야 하지요. 따라서 하나님 공의의 법칙을 하나하나 깨달아 행함으로써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 응답받고 풍성한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과 그에 따라 정확하게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2. ( )는 사랑이 있으므로 완성되고 하나님의 ( ) 역시 공의가 있으므로 완성된다. ( )가 없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며, ( )이 없는 공의 역시 참된 공의라 할 수 없다.
3. 공의에 관한 성경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세요.
① 갈라디아서 6:7 ② 고린도후서 9:6
③ 마태복음 10:39 ④ 마태복음 18:20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하늘들
첫째 하늘 : 우리가 살고 있는 육의 공간이다.
둘째 하늘 : 빛의 영역인 에덴과 어둠의 영역이 있는 곳이다.
셋째 하늘 :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이 있는 곳이다.
넷째 하늘 : 근본 하나님의 공간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위한 곳이다.
교육목표 : 심은 대로 거두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의의 법칙을 깨달아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의 창조주로서 전지전능하십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려면 응답받는 방법을 알아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정확히 알고 행할 때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할 수 있고 응답과 축복을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공의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 하나님의 공의
‘공의’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에 따라 정확하게 집행하시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원인과 결과에 대한 법칙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데, 이는 어떤 원인에는 어떤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도 ‘뿌린 대로 거둔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하는 말이 있는데 진리 안에서는 공의의 법칙들이 더욱 확실하지요. 그래서 성경을 보면 ‘구하면 주실 것이요 찾으면 찾을 것이며 문을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진리 안에는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전혀 이해되지 않는 공의의 법칙도 있지요. ‘섬기는 자가 큰 자’라든가 ‘목숨을 얻고자 하면 잃고 잃고자 하면 얻는다’ 등의 말씀은 세상 사람들의 생각으로는 맞지 않아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틀림이 없고 변하지 않는 진리이므로 반드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공의의 법칙만 깨닫는다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라도 신속히 그 원인을 찾아내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스스로도 어그러짐 없이 공의를 지키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며 모든 것의 주관자인데도 스스로 공의의 법칙에서 전혀 벗어나지 않으십니다. “내가 만든 법칙이니까 나는 안 지켜도 괜찮다.” 하는 것이 아니라 한 치 오차도 없이 모든 것을 공의에 맞게 정확하게 역사하시지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도 공의의 법칙에 따라 정확하게 우리의 죄를 속량하기 위함입니다.
어떤 이는 “하나님이 원수 마귀 사단을 다 멸하고 모든 사람을 구원해 주면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인간 경작을 계획하시면서 공의의 법칙을 정해 놓으셨고 스스로도 어그러짐 없이 지키시는 분입니다. 그래서 독생자 아들까지 내어 주시는 희생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도 단지 “주여, 믿습니다.” 하며 대충 신앙생활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구원의 테두리 안에 들어와야 합니다. 공의의 법칙에 따라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으며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3. 공의의 양면성
흔히 사람들은 공의는 무섭고 두려우며 징계와 형벌이 따르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공의가 있기 때문에 죄와 악에는 무섭고 두려운 형벌이 따르지만, 반면 응답과 축복을 가져다주는 열쇠이기도 합니다. 공의는 마치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는 무서운 것이지만, 빛 가운데 사는 사람에게는 축복의 열쇠와 같습니다. 칼을 강도가 들었을 때는 흉기가 되지만, 어머니가 들었을 때는 맛있는 요리를 만드는 도구인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공의의 양면성을 알면 공의는 사랑이 있으므로 완성되고 하나님의 사랑 역시 공의가 있으므로 완성됨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며, 사랑이 없는 공의 역시 참된 공의라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자녀가 빗나가서 잘못했을 때 무조건 체벌한다거나 아니면 무조건 용서해 준다면 자녀를 잘못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공의에 따라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엄하게 해야 할 때도 있고, 용서와 사랑으로 보듬어야 할 때도 있지요.
마태복음 18장 22절에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하며 무한대 용서의 사랑을 말씀하지만, 히브리서 12장 6절에는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며 참사랑에는 징계가 따른다는 공의에 대해서도 말씀합니다. 이는 사랑 안에서 공의가 온전케 되며 공의를 궁구할수록 그 안에 깊은 사랑이 담겨 있음을 깨우치게 됩니다.
4. 수준이 다른 공의의 차원
공의는 각각의 하늘에 따라 차이가 있습니다. 즉 첫째, 둘째, 셋째, 넷째 하늘의 차원으로 올라갈수록 공의의 차원도 더 깊고 넓어지지요. 또한 공의의 차원에 차이가 나는 것은 하늘마다 사랑의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랑과 공의는 떼려야 뗄 수 없으며 사랑의 차원이 깊어질수록 공의의 차원도 깊어집니다. 예를 들어 구약 시대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보복의 원리가 적용되었는데, 신약 시대에 와서는 ‘원수라도 사랑하라’ 하며, 보복의 원리가 깨지고 용서와 사랑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을 봅니다.
이는 얼마나 사랑을 이루었느냐에 따라 똑같은 공의라도 적용되는 수준이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시기 전까지는 사람들이 깨달을 수 있는 사랑의 수준이 매우 낮은 차원이었습니다. 만일 이들에게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라는 지극히 높은 차원의 공의를 적용하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지요. 그래서 구약 시대에는 그들의 수준에 맞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는 낮은 차원의 공의의 법칙을 적용하며 질서를 세우신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인 우리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는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뒤에는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공의의 수준이 높아졌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원수도 사랑하는 사랑의 차원을 보았기에 용서와 긍휼함이 적용되는 공의의 차원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공의는 얼마나 마음을 사랑으로 채우고 영으로 일구느냐에 따라 느끼는 차원 역시 다릅니다.
5. 공의의 기본 법칙은 믿음과 순종
우리가 응답받기 위해서는 선과 겸비함 등 많은 응답의 법칙이 있지만 가장 기본적인 두 가지 법칙은 믿음과 순종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대로 순종할 때 응답받는 것이 바로 공의의 법칙이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8장에 나오는 백부장이 이러한 공의 법칙대로 행했지요. 백부장은 하인의 병을 위해 지배국인 로마 군대의 백부장이라는 신분을 벗고 예수님 앞에 나오는 겸비함이 있었습니다. 또한 하인의 병을 위해 자신이 직접 나오는 선한 마음도 있었지요. 무엇보다 그가 응답받을 수 있었던 까닭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백부장은 예수님께만 나가면 어떤 병도 깨끗이 치료된다는 소문을 들었을 때 그대로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였지요. 그래서 예수님께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는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마 8:8).
우리도 이런 믿음을 소유하려면 먼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한 것들을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서운케 하거나, 하나님 앞에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온전한 주일성수와 십일조를 하지 못한 것 등을 회개해야 하지요. 세상을 사랑하고 사람들과 화목하지 못하고 혈기, 짜증, 시기, 질투, 다툼, 거짓 등 온갖 악을 품고 행한 것을 회개함으로써 하나님 앞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기도 받을 때 믿음이 주어지고 믿음대로 공의의 법칙에 따라 응답받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각종 예배에 빠짐없이 참석하고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하며, 하나님 앞에 심는 등 응답받기 위해 순종해야 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순종이 나오기 위해서는 철저히 자신을 죽여야 합니다. 즉 교만, 자존심, 틀, 생각, 이론, 세상의 자랑, 세상에 의지하려는 마음 등을 다 버려야 하지요. 따라서 하나님 공의의 법칙을 하나하나 깨달아 행함으로써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 응답받고 풍성한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법칙과 그에 따라 정확하게 집행하는 것을 말한다.
2. ( )는 사랑이 있으므로 완성되고 하나님의 ( ) 역시 공의가 있으므로 완성된다. ( )가 없는 사랑은 참사랑이 아니며, ( )이 없는 공의 역시 참된 공의라 할 수 없다.
3. 공의에 관한 성경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세요.
① 갈라디아서 6:7 ② 고린도후서 9:6
③ 마태복음 10:39 ④ 마태복음 18:20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하늘들
첫째 하늘 : 우리가 살고 있는 육의 공간이다.
둘째 하늘 : 빛의 영역인 에덴과 어둠의 영역이 있는 곳이다.
셋째 하늘 :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이 있는 곳이다.
넷째 하늘 : 근본 하나님의 공간으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위한 곳이다.
2023-10-13
제41과삼위일체 하나님
마태복음 28:19
읽을말씀 : 마태복음 28:19 | 외울말씀 : 마태복음 28:19 | 참고 말씀: 고린도후서 13:13
교육목표 :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할을 바로 알아 참믿음을 갖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성도가 되게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한 분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분명 한 분이지만 동시에 세 분의 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곧 아버지 격인 성부 하나님, 아들 격인 성자 예수님과 보혜사 격인 성령님입니다. 그러나 근본은 하나이기에 ‘성 삼위일체’라고 표현하지요.
이는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교리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에 대한 비밀스러운 말씀입니다. 사람의 제한적인 사고와 이론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아는 만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달아 놀라운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인간 경작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께서는 “…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낳거나 지은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스스로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의 지각과 상상을 초월해 시작도, 끝도 없으며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스스로 존재하시는 것이지요.
원래 하나님께서는 광대한 공간 안에 홀로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 계셨습니다(요 1:1 ; 요일 1:5).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셨고, 참 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을 계획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해 가장 먼저 공간을 나누셨습니다. 영의 공간과 육의 몸을 입은 사람들이 살아갈 육의 공간을 나누신 것입니다. 그 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게 됩니다.
성경에는 성자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셨으며(행 13:33 ; 히 5:5), 성령님 역시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요 15:26 ; 갈 4:6). 마치 분신을 만들어 내듯이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을 낳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경작을 위한 필수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근본 하나이지만 인간 경작을 위해 독립적으로 존재하시며 역할은 다르지만, 마음도, 생각도, 능력도 하나이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표현합니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과 질서
성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또한 성부 하나님께서 느끼고 원하시는 것을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께서도 동일하게 느끼고 원하시지요. 역으로,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의 기쁨이나 고통을 성부 하나님께서도 그대로 느끼십니다.
그런데도 역할에 따라 성품이 구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 성부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받으셨지만, 성자 예수님께서는 신성적인 면이 더 강해 신(神)적 위엄과 공의가 두드러집니다. 반면에 성령님께서는 인성(人性)적인 면이 더 강하므로 자상하고 섬세하며 자비와 긍휼의 측면을 더 많이 갖고 계십니다.
이처럼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지만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성품이 구별될 뿐 아니라 뚜렷한 질서 가운데 각각의 역할이 다릅니다. 성부 하나님 다음이 성자 예수님이시며, 성령님께서는 그다음이 되어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사랑으로 섬기십니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한 사역 또한 함께 이루어 가십니다. 각각의 역할을 정확히 감당하심으로 인간의 창조에서부터 구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작의 섭리가 온전히 완성되는 것입니다. 과연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담당하시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1) 구원의 길을 여시는 성자 예수님
성자 예수님의 역할은 구세주로서, 죄인 된 인류를 위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구세주가 되시는 이유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구세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류의 구세주가 되려면 첫째로 사람이어야 하고,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하며, 셋째로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하고,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십자가의 도』 책자 참조).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셨지만, 동정녀 마리아의 몸 안에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결합해 난 것이 아니므로 원죄가 없으셨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셨기에 자범죄도 없으셨지요. 이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보혈의 공로로 죄를 용서받게 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셨다면 불순종한 아담 이후로 모든 인류는 다 지옥에 가야 하므로 인간 경작의 목적이 달성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으실 수 없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구세주의 역할을 감당하실 수 있는 성자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무 죄 없이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신 것입니다.
2) 구원을 온전케 하시는 성령님
인간 경작에 있어서 성령님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성자 예수님을 통해 얻은 구원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고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그 삶을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의 특징은 영을 무수히 분리해 일하신다는 점입니다. 본체는 한 곳에 계실지라도 본체와 똑같은 마음과 능력을 가진 영이 무수히 분리됨으로써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사역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뿐 아니라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도 그 영을 분리하시지만, 성령님께서 사역하시는 데는 영으로 분리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면 이처럼 분리되신 성령님의 영이 우리 마음에 임하십니다. 성도의 마음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는 구원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이끄는 개인 교사와 같은 역할을 하십니다.
또한 부지런히 진리를 깨우쳐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범죄할 때는 애통하시며 회개해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 도와주십니다(롬 8:26). 이와 함께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과 각종 은사를 주셔서 능히 죄를 버릴 힘을 주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도 성령님의 역할입니다.
3) 인간 경작의 총감독이신 성부 하나님
성부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총감독자가 되시며, 창조주요 만물의 주관자이며 마지막 때의 심판자 역할을 하십니다.
참 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성취해 나가는 데 있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할은 질서 가운데 정확히 나뉘어져 있지만, 결국 세 분이 동시에 이루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8절에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했습니다. 물은 영적으로 말씀이신 하나님의 사역이며, 피는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주님의 사역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성령과 물과 피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 되어 사역해 믿는 자녀들에게 구원받은 증거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하셨고, 사도 바울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 주고 축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으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께서는 인간 경작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총감독자이시며, 창조주요 주관자이시며, 마지막 때의 심판자 역할을 하신다.
( )께서는 구세주로서 죄인 된 인류를 위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 )께서는 성자 예수님을 통해 얻은 구원을 온전케 하신다.
2. 성자 예수님께서는 ( ) 면이 더 강해 위엄과 공의가 두드러지지만, 성령님께서는 ( ) 면이 강하며 자상하고 섬세하며 자비와 긍휼의 측면을 더 많이 갖고 계신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영을 분리하시는 성자 예수님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통해 성자 예수님께서도 영을 분리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주의 이름으로 모이면 주님의 본체가 모든 장소마다 일일이 갈 수 없으므로 분리된 주님의 영이 곳곳에 임하신다.
교육목표 :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할을 바로 알아 참믿음을 갖고 온전한 구원에 이르는 성도가 되게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이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께서 한 분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분명 한 분이지만 동시에 세 분의 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곧 아버지 격인 성부 하나님, 아들 격인 성자 예수님과 보혜사 격인 성령님입니다. 그러나 근본은 하나이기에 ‘성 삼위일체’라고 표현하지요.
이는 기독교에서 매우 중요한 교리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에 대한 비밀스러운 말씀입니다. 사람의 제한적인 사고와 이론으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아는 만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깨달아 놀라운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인간 경작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께서는 “…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낳거나 지은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스스로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의 지각과 상상을 초월해 시작도, 끝도 없으며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스스로 존재하시는 것이지요.
원래 하나님께서는 광대한 공간 안에 홀로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 계셨습니다(요 1:1 ; 요일 1:5).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셨고, 참 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을 계획하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해 가장 먼저 공간을 나누셨습니다. 영의 공간과 육의 몸을 입은 사람들이 살아갈 육의 공간을 나누신 것입니다. 그 후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게 됩니다.
성경에는 성자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셨으며(행 13:33 ; 히 5:5), 성령님 역시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는 기록이 있습니다(요 15:26 ; 갈 4:6). 마치 분신을 만들어 내듯이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을 낳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 경작을 위한 필수 과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피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근본 하나이지만 인간 경작을 위해 독립적으로 존재하시며 역할은 다르지만, 마음도, 생각도, 능력도 하나이므로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표현합니다.
2. 삼위일체 하나님의 속성과 질서
성부 하나님과 마찬가지로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십니다. 또한 성부 하나님께서 느끼고 원하시는 것을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께서도 동일하게 느끼고 원하시지요. 역으로,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의 기쁨이나 고통을 성부 하나님께서도 그대로 느끼십니다.
그런데도 역할에 따라 성품이 구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분명 성부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받으셨지만, 성자 예수님께서는 신성적인 면이 더 강해 신(神)적 위엄과 공의가 두드러집니다. 반면에 성령님께서는 인성(人性)적인 면이 더 강하므로 자상하고 섬세하며 자비와 긍휼의 측면을 더 많이 갖고 계십니다.
이처럼 성자 예수님과 성령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지만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성품이 구별될 뿐 아니라 뚜렷한 질서 가운데 각각의 역할이 다릅니다. 성부 하나님 다음이 성자 예수님이시며, 성령님께서는 그다음이 되어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을 사랑으로 섬기십니다.
3.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할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한 사역 또한 함께 이루어 가십니다. 각각의 역할을 정확히 감당하심으로 인간의 창조에서부터 구원에 이르기까지 모든 경작의 섭리가 온전히 완성되는 것입니다. 과연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담당하시는 역할은 무엇일까요?
1) 구원의 길을 여시는 성자 예수님
성자 예수님의 역할은 구세주로서, 죄인 된 인류를 위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구세주가 되시는 이유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구세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인류의 구세주가 되려면 첫째로 사람이어야 하고,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하며, 셋째로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하고, 넷째로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십자가의 도』 책자 참조).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태어나셨지만, 동정녀 마리아의 몸 안에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남자의 정자와 여자의 난자가 결합해 난 것이 아니므로 원죄가 없으셨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셨기에 자범죄도 없으셨지요. 이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기 때문에 우리가 그 보혈의 공로로 죄를 용서받게 되었습니다.
만약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역할을 감당하지 않으셨다면 불순종한 아담 이후로 모든 인류는 다 지옥에 가야 하므로 인간 경작의 목적이 달성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으실 수 없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구세주의 역할을 감당하실 수 있는 성자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아들로서 아무 죄 없이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신 것입니다.
2) 구원을 온전케 하시는 성령님
인간 경작에 있어서 성령님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사람들이 성자 예수님을 통해 얻은 구원을 온전케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고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그 삶을 인도하십니다.
성령님의 특징은 영을 무수히 분리해 일하신다는 점입니다. 본체는 한 곳에 계실지라도 본체와 똑같은 마음과 능력을 가진 영이 무수히 분리됨으로써 세계 곳곳에서 동시에 사역을 이루시는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뿐 아니라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도 그 영을 분리하시지만, 성령님께서 사역하시는 데는 영으로 분리하시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면 이처럼 분리되신 성령님의 영이 우리 마음에 임하십니다. 성도의 마음에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는 구원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이 장성한 분량에 이르도록 이끄는 개인 교사와 같은 역할을 하십니다.
또한 부지런히 진리를 깨우쳐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들이 범죄할 때는 애통하시며 회개해 하나님 뜻대로 살도록 도와주십니다(롬 8:26). 이와 함께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과 각종 은사를 주셔서 능히 죄를 버릴 힘을 주시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것도 성령님의 역할입니다.
3) 인간 경작의 총감독이신 성부 하나님
성부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총감독자가 되시며, 창조주요 만물의 주관자이며 마지막 때의 심판자 역할을 하십니다.
참 자녀를 얻기 위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성취해 나가는 데 있어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할은 질서 가운데 정확히 나뉘어져 있지만, 결국 세 분이 동시에 이루시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8절에 “증거하는 이가 셋이니 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이 합하여 하나이니라” 했습니다. 물은 영적으로 말씀이신 하나님의 사역이며, 피는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신 주님의 사역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성령과 물과 피로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하나 되어 사역해 믿는 자녀들에게 구원받은 증거를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하셨고, 사도 바울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 13:13) 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 주고 축복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역사 속에 참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으며 온전한 구원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께서는 인간 경작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총감독자이시며, 창조주요 주관자이시며, 마지막 때의 심판자 역할을 하신다.
( )께서는 구세주로서 죄인 된 인류를 위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다.
( )께서는 성자 예수님을 통해 얻은 구원을 온전케 하신다.
2. 성자 예수님께서는 ( ) 면이 더 강해 위엄과 공의가 두드러지지만, 성령님께서는 ( ) 면이 강하며 자상하고 섬세하며 자비와 긍휼의 측면을 더 많이 갖고 계신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영을 분리하시는 성자 예수님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라는 말씀을 통해 성자 예수님께서도 영을 분리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사람이 서로 다른 장소에서 주의 이름으로 모이면 주님의 본체가 모든 장소마다 일일이 갈 수 없으므로 분리된 주님의 영이 곳곳에 임하신다.
2023-10-06
제40과하늘들
느헤미야 9:6
읽을말씀 : 느헤미야 9:6 | 외울말씀 : 느헤미야 9:6 | 참고 말씀: 시편 68:33, 고린도후서 12:2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위해 여러 하늘을 지으셨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음으로 불가능이 없는 삶을 영위하게 한다.
느헤미야 9장 6절에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했습니다. 이는 여러 하늘이 있음을 암시하는데, 과연 몇 개의 하늘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1. 여러 개의 하늘
천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라면 두 개의 하늘까지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육의 세계 하늘과 천국, 곧 영의 세계 하늘이지요. 그런데 성경에는 하늘을 표현할 때 여러 개의 하늘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시편 68편 33절에는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발하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했고, 열왕기상 8장 27절에는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말씀했지요.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고후 12:2)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는 것은 첫째 하늘, 둘째 하늘, 셋째 하늘과 그 이상의 하늘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지요. 그런가 하면 스데반 집사는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함으로써(행 7:56) 사람이 영안이 열리면 영의 세계를 볼 수 있고, 천국이 실존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오늘날에는 과학자들도 하늘이 여럿임을 인정합니다. 일례로,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 교수 맥스 테그마크는 ‘평행 우주론’을 통해 우리가 사는 우주 외에도 다른 우주가 존재하는데 각각의 우주가 물리적 성격 즉 시간과 공간적인 특징이 전혀 다를 수 있다고 했지요. 이는 곧 여러 하늘이 있음을 뒷받침합니다.
2. 지구가 속한 첫째 하늘과 에덴동산이 있는 둘째 하늘
여러 하늘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 하늘과 우리가 사는 육의 세계 하늘이지요. 우리가 사는 지구가 속한 우주, 곧 육의 세계 하늘이 첫째 하늘이라면 둘째 하늘부터는 영의 세계에 속합니다. 둘째 하늘에는 에덴동산이 있는 빛의 영역과 악의 영들이 존재하는 어둠의 영역이 공존하지요.
에베소서 2장 2절에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에 대해 나오는데 그들이 거하는 곳이 둘째 하늘에 속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둘째 하늘에 속한 에덴동산의 동편을 두루 도는 화염검과 그룹들로 지키게 하셨습니다(창 3:24). 에덴동산 동편은 악한 영의 세계와 빛이신 하나님께 속한 에덴동산의 경계선이기 때문입니다.
생령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과 첫째 하늘의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담에게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이 범죄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는 관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또한 생령 아담이 죄를 범하기 전에는 에덴동산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첫째 하늘에 속한 지구를 오갈 수 있었지만, 아담이 범죄한 후에는 제약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속한 첫째 하늘과 에덴동산이 속한 둘째 하늘의 시간이나 공간의 개념은 전혀 다릅니다. 둘째 하늘에도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사는 육의 세상과 같이 제한된 개념이 아닙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사람이 늙거나 죽는 일이 없고, 사물이 변질하거나 소멸하는 일이 없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에덴동산의 사람들은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며 어찌 보면 정지된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공간 역시 에덴에서는 제약 없이 무한하게 펼쳐집니다. 만약 첫째 하늘의 공간에서 사람들이 죽지 않고 계속 태어나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포화상태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하늘은 공간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인구가 불어나도 좁아지거나 가득 찰 걱정은 없습니다.
3. 천국이 있는 셋째 하늘
셋째 하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장차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을 말합니다. 주의 계시와 환상을 밝히 받은 사도 바울은 “…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하며 셋째 하늘에 속한 낙원을 보았다고 했습니다(고후 12:2~4).
나라마다 대통령이 사는 수도가 있는가 하면 중소 도시와 시골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도 가장자리라 할 수 있는 낙원부터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처소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여 아름다운 진리의 마음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잃어버린 하나님 형상을 되찾았는지에 따라 들어가는 처소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셋째 하늘은 둘째 하늘보다도 더욱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영원한 시간과 공간을 지닌 곳입니다. 그래서 첫째 하늘에 사는 사람들의 제한적 사고로는 천국의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고무풍선에 바람을 불어넣기 전에는 풍선 자체의 좁은 면적과 부피가 있지만 얼마나 바람을 불어넣느냐에 따라 자유자재로 풍선의 면적과 부피가 변합니다.
천국의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이 땅에서 집을 짓는다면 일정한 면적이 있어야 하고 그 안에 지을 수 있는 공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셋째 하늘의 공간에서는 면적이나 부피, 길이, 높이 등의 개념을 모두 초월하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처소인 넷째 하늘
넷째 하늘은 태초의 하나님께서 공간을 분리하기 이전에 계시던 근본의 하늘입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나 공간이라는 표현 자체가 무의미하지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하나님께서 마음에 품기만 하셔도 즉시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굳게 닫고 집 안에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요 20:19~29).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는데도 그들 가운데 나타나신 것입니다. 또 홀연히 갈릴리 해변에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함께 식사하기도 하셨지요(요 21:1~14). 이렇게 사십 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오백여 명이 보는 가운데 구름 속으로 승천하셨습니다.
하물며 근본 하나님께서 계시던 넷째 하늘의 공간은 어떻겠습니까? 태초에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 계시면서 모든 우주 공간을 품고 다스리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넷째 하늘에 계시면서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셋째 하늘 등 모든 하늘을 지배하고 다스리십니다.
5.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창조주 하나님
우리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광활하고 신비한 모든 하늘에 비하면 작은 점과 같이 제한된 공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일생 이런저런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겪으며 풍족한 삶을 위해 아등바등 애쓰지요. 모든 하늘을 지배하고 통찰하시는 하나님 편에서는 이 세상의 삶이 조금도 복잡한 것이 없고 어려운 것도 없지만 첫째 하늘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예컨대, 개미로서는 도무지 옮길 수 없는 큰 짐이라도 사람이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옮길 수 있고 도무지 건널 수 없는 물웅덩이라도 사람은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같이 개미에게 어렵고 불가능한 일도 사람 편에서는 매우 쉬운 것처럼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어떠한 일도 문제 될 것이 없지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시며 어떤 기도에도 응답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좌절하고 낙심되는 현실에 처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모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소유하여 응답과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넷째 하늘은 태초의 하나님께서 공간을 분리하기 이전에 계시던 근본의 하늘을 의미한다.
② 셋째 하늘은 둘째 하늘보다도 더욱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영원한 시간과 공간을 지닌 곳이다.
③ 둘째 하늘에는 에덴동산이 있는 빛의 영역과 악의 영들이 존재하는 어둠의 영역이 공존한다.
④ 에덴동산은 첫째 하늘 중동에 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낙원
셋째 하늘에 있는 낙원은 천국의 처소 중 가장 낮은 곳이지만 이 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낙원에 거하는 사람은 믿음의 1단계로 상급이나 면류관이 없으며 집도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집이 없다고 해서 마냥 잔디밭을 거닐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땅에서 마을 회관 같은 곳이 있어 여러 사람이 함께 쉬며 사용하듯이, 낙원에도 공동으로 사용하는 장소가 있어 그 안에서 모이고 안락하게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을 위해 여러 하늘을 지으셨다는 사실을 온전히 믿음으로 불가능이 없는 삶을 영위하게 한다.
느헤미야 9장 6절에 “오직 주는 여호와시라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과 일월성신과 땅과 땅 위의 만물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지으시고 다 보존하시오니 모든 천군이 주께 경배하나이다” 했습니다. 이는 여러 하늘이 있음을 암시하는데, 과연 몇 개의 하늘이 존재하는 것일까요?
1. 여러 개의 하늘
천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이라면 두 개의 하늘까지는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육의 세계 하늘과 천국, 곧 영의 세계 하늘이지요. 그런데 성경에는 하늘을 표현할 때 여러 개의 하늘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시편 68편 33절에는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발하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했고, 열왕기상 8장 27절에는 “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말씀했지요.
사도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한 사람을 아노니 십사 년 전에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고후 12:2) 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갔다는 것은 첫째 하늘, 둘째 하늘, 셋째 하늘과 그 이상의 하늘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지요. 그런가 하면 스데반 집사는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함으로써(행 7:56) 사람이 영안이 열리면 영의 세계를 볼 수 있고, 천국이 실존하고 있음을 말해 줍니다.
오늘날에는 과학자들도 하늘이 여럿임을 인정합니다. 일례로, 미국의 저명한 물리학 교수 맥스 테그마크는 ‘평행 우주론’을 통해 우리가 사는 우주 외에도 다른 우주가 존재하는데 각각의 우주가 물리적 성격 즉 시간과 공간적인 특징이 전혀 다를 수 있다고 했지요. 이는 곧 여러 하늘이 있음을 뒷받침합니다.
2. 지구가 속한 첫째 하늘과 에덴동산이 있는 둘째 하늘
여러 하늘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영의 세계 하늘과 우리가 사는 육의 세계 하늘이지요. 우리가 사는 지구가 속한 우주, 곧 육의 세계 하늘이 첫째 하늘이라면 둘째 하늘부터는 영의 세계에 속합니다. 둘째 하늘에는 에덴동산이 있는 빛의 영역과 악의 영들이 존재하는 어둠의 영역이 공존하지요.
에베소서 2장 2절에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에 대해 나오는데 그들이 거하는 곳이 둘째 하늘에 속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둘째 하늘에 속한 에덴동산의 동편을 두루 도는 화염검과 그룹들로 지키게 하셨습니다(창 3:24). 에덴동산 동편은 악한 영의 세계와 빛이신 하나님께 속한 에덴동산의 경계선이기 때문입니다.
생령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에덴동산과 첫째 하늘의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담에게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이 범죄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는 관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또한 생령 아담이 죄를 범하기 전에는 에덴동산의 사람들이 자유롭게 첫째 하늘에 속한 지구를 오갈 수 있었지만, 아담이 범죄한 후에는 제약이 따르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가 속한 첫째 하늘과 에덴동산이 속한 둘째 하늘의 시간이나 공간의 개념은 전혀 다릅니다. 둘째 하늘에도 시간의 흐름이 존재하지만, 우리가 사는 육의 세상과 같이 제한된 개념이 아닙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사람이 늙거나 죽는 일이 없고, 사물이 변질하거나 소멸하는 일이 없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에덴동산의 사람들은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하며 어찌 보면 정지된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것과 같은 느낌입니다.
공간 역시 에덴에서는 제약 없이 무한하게 펼쳐집니다. 만약 첫째 하늘의 공간에서 사람들이 죽지 않고 계속 태어나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포화상태가 되어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하늘은 공간의 제약이 없기 때문에 아무리 인구가 불어나도 좁아지거나 가득 찰 걱정은 없습니다.
3. 천국이 있는 셋째 하늘
셋째 하늘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장차 영원히 살게 될 천국을 말합니다. 주의 계시와 환상을 밝히 받은 사도 바울은 “… 그가 셋째 하늘에 이끌려 간 자라 … 그가 낙원으로 이끌려 가서 말할 수 없는 말을 들었으니…” 하며 셋째 하늘에 속한 낙원을 보았다고 했습니다(고후 12:2~4).
나라마다 대통령이 사는 수도가 있는가 하면 중소 도시와 시골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나라인 천국에도 가장자리라 할 수 있는 낙원부터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에 이르기까지 여러 처소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 살면서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여 아름다운 진리의 마음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잃어버린 하나님 형상을 되찾았는지에 따라 들어가는 처소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셋째 하늘은 둘째 하늘보다도 더욱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영원한 시간과 공간을 지닌 곳입니다. 그래서 첫째 하늘에 사는 사람들의 제한적 사고로는 천국의 시간과 공간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고무풍선에 바람을 불어넣기 전에는 풍선 자체의 좁은 면적과 부피가 있지만 얼마나 바람을 불어넣느냐에 따라 자유자재로 풍선의 면적과 부피가 변합니다.
천국의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이 땅에서 집을 짓는다면 일정한 면적이 있어야 하고 그 안에 지을 수 있는 공간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셋째 하늘의 공간에서는 면적이나 부피, 길이, 높이 등의 개념을 모두 초월하기 때문에 자유자재로 집을 지을 수 있습니다.
4. 하나님의 처소인 넷째 하늘
넷째 하늘은 태초의 하나님께서 공간을 분리하기 이전에 계시던 근본의 하늘입니다. 이곳에서는 시간이나 공간이라는 표현 자체가 무의미하지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하나님께서 마음에 품기만 하셔도 즉시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문을 굳게 닫고 집 안에 숨어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요 20:19~29). 아무도 문을 열지 않았는데도 그들 가운데 나타나신 것입니다. 또 홀연히 갈릴리 해변에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함께 식사하기도 하셨지요(요 21:1~14). 이렇게 사십 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오백여 명이 보는 가운데 구름 속으로 승천하셨습니다.
하물며 근본 하나님께서 계시던 넷째 하늘의 공간은 어떻겠습니까? 태초에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 계시면서 모든 우주 공간을 품고 다스리셨듯이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넷째 하늘에 계시면서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셋째 하늘 등 모든 하늘을 지배하고 다스리십니다.
5.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창조주 하나님
우리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는 광활하고 신비한 모든 하늘에 비하면 작은 점과 같이 제한된 공간 속에서 살아갑니다. 일생 이런저런 복잡하고 어려운 일을 겪으며 풍족한 삶을 위해 아등바등 애쓰지요. 모든 하늘을 지배하고 통찰하시는 하나님 편에서는 이 세상의 삶이 조금도 복잡한 것이 없고 어려운 것도 없지만 첫째 하늘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않은 것입니다.
예컨대, 개미로서는 도무지 옮길 수 없는 큰 짐이라도 사람이 손가락 하나만 움직이면 옮길 수 있고 도무지 건널 수 없는 물웅덩이라도 사람은 간단히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같이 개미에게 어렵고 불가능한 일도 사람 편에서는 매우 쉬운 것처럼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어떠한 일도 문제 될 것이 없지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사정을 아시며 어떤 기도에도 응답하실 능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좌절하고 낙심되는 현실에 처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모든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소유하여 응답과 축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넷째 하늘은 태초의 하나님께서 공간을 분리하기 이전에 계시던 근본의 하늘을 의미한다.
② 셋째 하늘은 둘째 하늘보다도 더욱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없는 영원한 시간과 공간을 지닌 곳이다.
③ 둘째 하늘에는 에덴동산이 있는 빛의 영역과 악의 영들이 존재하는 어둠의 영역이 공존한다.
④ 에덴동산은 첫째 하늘 중동에 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낙원
셋째 하늘에 있는 낙원은 천국의 처소 중 가장 낮은 곳이지만 이 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낙원에 거하는 사람은 믿음의 1단계로 상급이나 면류관이 없으며 집도 따로 주어지지 않는다. 집이 없다고 해서 마냥 잔디밭을 거닐고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땅에서 마을 회관 같은 곳이 있어 여러 사람이 함께 쉬며 사용하듯이, 낙원에도 공동으로 사용하는 장소가 있어 그 안에서 모이고 안락하게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2023-09-29
제39과사람의 근본
요한복음 1:1
읽을말씀 : 요한복음 1:1 | 외울말씀 : 창세기 2:7 | 참고 말씀: 로마서 1:20
교육목표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임을 깨달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한다.
많은 사람이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깊이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성인이라고 불리는 공자나 석가모니, 소크라테스도 근본적인 해답을 찾고자 힘썼습니다.
공자는 인을 정치, 윤리 사상의 이상으로 하는 도덕주의를 설파하며 많은 제자를 양성했습니다. 석가모니는 생로병사의 번뇌에서 해탈하고자 스스로 고행의 길을 갔지요. 소크라테스는 나름대로 진리를 추구하며 참다운 지식을 탐구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근본적인 해답을 찾지 못하여 참된 진리에 이르지 못했으며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었습니다. 창세 전부터 감추어진 진리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지요.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우칠 때라야 비로소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사람의 근본
세상에서는 “닭이 먼저다! 달걀이 먼저다!” 하며 갑론을박하지만,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그 해답이 명확히 나와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장성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다음에 정자와 난자를 주어 잉태하게 하신 것을 보면 무엇이 먼저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장 7절에 사람의 근본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 지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코에 하나님의 능력이 담긴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생령, 곧 살아 있는 영이 되게 하셨지요.
이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된 일입니다. 다시 말해, 아담은 어린아이의 상태가 아니라 성인으로 지음을 받은 후 생령이 되었고 하나님을 통해 영의 지식을 하나하나 배워 나갔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진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사람은 진화된 것이 아니지요.
우리 사람은 진화론에서 말하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존재입니다. 한낱 하등한 생물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지요.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셨고 생기를 불어 넣었기 때문에 영육 간의 모든 것이 근본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위로부터 난 신령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다른 동물보다 좀 더 진화된 고등동물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진화의 증거로 내세우는 화석을 살펴보아도 종과 종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 형태의 화석이 없으니, 과학적으로도 타당성이 없습니다. 오히려 창조의 증거는 매우 많습니다.
한 예로,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는 눈, 코, 입 등의 구조와 위치가 같습니다. 각종 동물도 무리의 법칙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역시 사람과 흡사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창조주 한 분에 의해 설계되고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 외에도 태양계 안의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운행되는 사실 자체가 창조의 증거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이 진화되어 나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왜 이 땅에서 살아가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은 거룩한 존재임을 깨달으면 우리의 아버지가 누구신지 바로 알기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며 그분을 닮아 가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내 아버지는 분명히 나를 낳아 주신 분인데….’ 하며 혈연으로 이어진 아버지만을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조상을 찾아 올라가면 첫 사람 아담이 나옵니다. 그러니 우리의 참 아버지는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임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씨인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될 수 있도록 자기 몸을 도구로 빌려 드린 것뿐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씨와 잉태
이처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남자에게는 정자, 여자에게는 난자를 주고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자기 능력으로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근본 생명의 씨를 주신 것입니다. 생명의 씨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의 모든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지만, 부모의 성격이나 외모, 습관 등 모든 기(氣)가 한군데로 모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태어나면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도 부모를 닮습니다. 만약 사람에게 능력이 있어서 자녀를 낳을 수 있다면 왜 많은 사람이 잉태하지 못해서 고통을 받겠습니까?
잉태는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영역으로서 하나님만이 주관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병원에서 인공수정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지만, 정자와 난자를 창조해서 잉태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창조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뿐 아니라, 해외의 수많은 성도가 이러한 사실을 체험했지요. 결혼하여 수년이나 십여 년 이상, 또는 20년이 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여 병원에서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아도 소용이 없던 부부들이 기도를 받은 뒤 잉태하여 건강한 자녀를 낳은 경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일례로, 일본에 사는 한 부부가 부흥성회에 참석해서 제게 기도를 받은 후 질병을 치료받음은 물론 잉태의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그러한 사실이 주변에 전해지면서 일본에 계시는 많은 분이 기도 받기 위해 찾아오셨고, 그분들의 믿음대로 잉태의 축복을 받았지요. 이를 계기로 성도들의 요청으로 그곳에 지교회가 세워지기까지 했습니다.
3. 불가능이 없으신 창조주 하나님
오늘날 의학이 아무리 발달했다지만 생명을 창조하는 것은 오직 생명의 주관자인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잉태뿐만이 아닙니다. 호흡이 끊어진 사람이나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나며, 인간의 과학과 의학으로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불치병, 난치병이 깨끗이 치료되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발하시는 근본의 소리만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며, 불가능이 없는 권능의 역사를 펼쳐내지요.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한 대로 만물을 보아도 그 속에서 우리는 만물의 근본인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해 깨닫고자 한다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또 믿는다면서도 성경 말씀을 백 퍼센트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아시기에 요한복음 4장 4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수많은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심으로써 선포되는 말씀이 참임을 증거하셨지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것이 없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마음에서 믿고 전적으로 의뢰할 때 어떠한 문제나 질병도 해결됩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시며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근본의 소리가 발하여질 때 눈먼 사람이 보며, 지팡이와 목발과 휠체어를 버리고 일어나 걷고 뛰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의 근본인 하나님 근본의 소리가 발하여질 때 믿고 순종함으로 모든 간구와 소원에 응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진화론의 허구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아래와 같은 일을 본 적이 있나요?
□ 생물이 아무것도 없는 데서 저절로 생기는 것을 보았나요?
(콩을 심지도 않았는데 콩이 땅에서 나올 리는 없다.)
□ 돌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무생물이 생명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원숭이가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을 본 적 있나요?
(종(種)에서 다른 종으로 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세상에서 만든 이가 없이 저절로 된 것이 있나요?
(비행기, 자동차, 휴대폰 등)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진화론의 허구
진화론에서는 사람이 원숭이와 동일한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동일 조상으로부터 사람에 이르는 중간 단계 유사 화석 조각에 수많은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 근거가 상당히 미약하여 상상에 불과한 중간 단계 화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숭이가 아니면 사람이지, 중간 동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진화론은 문자 그대로 하나의 이론으로서 상상에 기초한 가설일 뿐이다.
추석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수고하여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지요.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 ------------------------- 308장 ---------------------- 다 같이
1.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 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2. 추수할 것 많은 때에 일꾼 심히 적으니
열심 있는 일꾼들을 주여 보내 주소서
3. 먼동 틀 때 일어나서 일찍 들에 나아가
황혼 때가 되기까지 추수하게 하소서
4. 거둬들인 모든 알곡 천국 창고 들인 후
주가 베풀 잔치 자리 우리 참여하겠네
후렴
무르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는데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아멘
기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로마서 12:18 ------------------- 인도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설교 --------------------- 화목한 가정 --------------------- 설교자
2. 설교 예문
어느 노부부가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지요. 식사 때가 되어 할아버지에게 상은 차려 주었지만, 한쪽에 앉아 말없이 바느질만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전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내가 침묵하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지요. 그러다가 순간 묘안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옷장을 열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또 여기저기 서랍을 뒤지는 것이었지요.
할머니는 처음에는 못 본 척하다가 남편이 옷장 속의 옷이며 서랍 안의 물건들까지 다 꺼내 놓으니 왜 그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뭘 찾는데 그래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지, 뭐야. 이제야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구려.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이제 화 풀어요.” 하며 사과했습니다.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었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이내 마음이 풀어져 “제가 잘못했어요.” 하며 다시 웃음꽃이 피어났지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다투지 않고 화평을 이루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이란, 비록 내가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맞춰 줄 수 있고 내 믿음이 크다 하더라도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는 마음이며,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을 수 있고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거나 상대의 단점을 보지 않음으로 누구와도 걸리지 않는 마음이지요.
그러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되 생명까지 줄 수 있어야 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 것, 내 입장, 내 스타일 등을 고집하는 자아가 없어야 모든 사람과 화평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면 무례히 행치 않고 자신을 드러내 자랑하지 않습니다. 중심에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한쪽으로 편벽되지도 않지요.
둘째로, 자기 의와 틀을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품과 자란 환경이 다릅니다. 교육받은 내용도, 믿음의 분량도 다르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고, 좋고 나쁨의 기준도 다릅니다. A라는 사람은 옳다고 생각해도 B는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서로 자기 입장만 주장해서는 화평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내 입장, 내 기준에 맞추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섬길 때라야 화평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평을 이루는 과정에서 깨우쳐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 편에서는 감정도 없고 화평한데 상대가 화평을 깬다.”라고 한다면, 정말 상대 탓인가 하는 점입니다. 고의는 아니지만, 내 편에서 화평을 깨는 원인 제공을 해 놓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지중에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럴 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나는 상대에게 감정이 없다.” 고집한다면 결국 화평이 이뤄질 수가 없지요.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봐도 내가 화평을 좇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화평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가장 사랑이 넘치고 화목해야 할 곳입니다. 모두가 조금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해 준다면 상하고 얽혔던 감정도 쉽게 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섬기고 희생함으로 화평을 이루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고,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가정이나 학교, 직장이나 사업터, 일터에서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더욱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 풍성한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영적인 존재임을 깨달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거룩한 성도가 되게 한다.
많은 사람이 “인간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생의 의미와 목적은 무엇인가?” 등에 대한 해답을 찾고자 깊이 생각합니다. 세계적인 성인이라고 불리는 공자나 석가모니, 소크라테스도 근본적인 해답을 찾고자 힘썼습니다.
공자는 인을 정치, 윤리 사상의 이상으로 하는 도덕주의를 설파하며 많은 제자를 양성했습니다. 석가모니는 생로병사의 번뇌에서 해탈하고자 스스로 고행의 길을 갔지요. 소크라테스는 나름대로 진리를 추구하며 참다운 지식을 탐구했습니다.
그러나 누구도 근본적인 해답을 찾지 못하여 참된 진리에 이르지 못했으며 영원한 생명을 줄 수 없었습니다. 창세 전부터 감추어진 진리는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이지요.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깨우칠 때라야 비로소 그에 대한 명쾌한 해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1. 사람의 근본
세상에서는 “닭이 먼저다! 달걀이 먼저다!” 하며 갑론을박하지만, 아직도 결론을 내리지 못한 채 의견이 분분합니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그 해답이 명확히 나와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장성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다음에 정자와 난자를 주어 잉태하게 하신 것을 보면 무엇이 먼저인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장 7절에 사람의 근본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 지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의 코에 하나님의 능력이 담긴 생기를 불어 넣으심으로 생령, 곧 살아 있는 영이 되게 하셨지요.
이 과정은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 아니라 순식간에 된 일입니다. 다시 말해, 아담은 어린아이의 상태가 아니라 성인으로 지음을 받은 후 생령이 되었고 하나님을 통해 영의 지식을 하나하나 배워 나갔습니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사람이 진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사람은 진화된 것이 아니지요.
우리 사람은 진화론에서 말하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존재입니다. 한낱 하등한 생물에서 진화한 것이 아니지요. 처음부터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영적 존재로 지어졌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셨고 생기를 불어 넣었기 때문에 영육 간의 모든 것이 근본 하나님에게서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위로부터 난 신령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다른 동물보다 좀 더 진화된 고등동물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진화의 증거로 내세우는 화석을 살펴보아도 종과 종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 형태의 화석이 없으니, 과학적으로도 타당성이 없습니다. 오히려 창조의 증거는 매우 많습니다.
한 예로, 인종에 상관없이 모든 인류는 눈, 코, 입 등의 구조와 위치가 같습니다. 각종 동물도 무리의 법칙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역시 사람과 흡사한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창조주 한 분에 의해 설계되고 만들어졌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 외에도 태양계 안의 모든 것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정확하게 운행되는 사실 자체가 창조의 증거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사람이 진화되어 나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이 어디서 왔는지, 왜 이 땅에서 살아가는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은 거룩한 존재임을 깨달으면 우리의 아버지가 누구신지 바로 알기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며 그분을 닮아 가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내 아버지는 분명히 나를 낳아 주신 분인데….’ 하며 혈연으로 이어진 아버지만을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조상을 찾아 올라가면 첫 사람 아담이 나옵니다. 그러니 우리의 참 아버지는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임을 깨우칠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씨인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여 잉태될 수 있도록 자기 몸을 도구로 빌려 드린 것뿐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씨와 잉태
이처럼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남자에게는 정자, 여자에게는 난자를 주고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자기 능력으로 자녀를 낳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녀를 낳을 수 있도록 근본 생명의 씨를 주신 것입니다. 생명의 씨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의 모든 조직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구비되어 있습니다.
육안으로는 보이지도 않을 만큼 작지만, 부모의 성격이나 외모, 습관 등 모든 기(氣)가 한군데로 모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녀가 태어나면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도 부모를 닮습니다. 만약 사람에게 능력이 있어서 자녀를 낳을 수 있다면 왜 많은 사람이 잉태하지 못해서 고통을 받겠습니까?
잉태는 창조주 하나님께 속한 영역으로서 하나님만이 주관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날 병원에서 인공수정이라는 방법을 사용하지만, 정자와 난자를 창조해서 잉태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창조의 능력은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뿐 아니라, 해외의 수많은 성도가 이러한 사실을 체험했지요. 결혼하여 수년이나 십여 년 이상, 또는 20년이 넘도록 아이를 갖지 못하여 병원에서 온갖 방법을 다 써 보아도 소용이 없던 부부들이 기도를 받은 뒤 잉태하여 건강한 자녀를 낳은 경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일례로, 일본에 사는 한 부부가 부흥성회에 참석해서 제게 기도를 받은 후 질병을 치료받음은 물론 잉태의 축복까지 받았습니다. 그러한 사실이 주변에 전해지면서 일본에 계시는 많은 분이 기도 받기 위해 찾아오셨고, 그분들의 믿음대로 잉태의 축복을 받았지요. 이를 계기로 성도들의 요청으로 그곳에 지교회가 세워지기까지 했습니다.
3. 불가능이 없으신 창조주 하나님
오늘날 의학이 아무리 발달했다지만 생명을 창조하는 것은 오직 생명의 주관자인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잉태뿐만이 아닙니다. 호흡이 끊어진 사람이나 병원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나며, 인간의 과학과 의학으로 어찌할 수 없는 수많은 불치병, 난치병이 깨끗이 치료되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고 인간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발하시는 근본의 소리만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며, 불가능이 없는 권능의 역사를 펼쳐내지요.
로마서 1장 20절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한 대로 만물을 보아도 그 속에서 우리는 만물의 근본인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을 가지고 하나님에 대해 깨닫고자 한다면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합니다. 또 믿는다면서도 성경 말씀을 백 퍼센트 믿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마음을 잘 아시기에 요한복음 4장 4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는 곳마다 수많은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심으로써 선포되는 말씀이 참임을 증거하셨지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능치 못할 것이 없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마음에서 믿고 전적으로 의뢰할 때 어떠한 문제나 질병도 해결됩니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시며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근본의 소리가 발하여질 때 눈먼 사람이 보며, 지팡이와 목발과 휠체어를 버리고 일어나 걷고 뛰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만물의 근본인 하나님 근본의 소리가 발하여질 때 믿고 순종함으로 모든 간구와 소원에 응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진화론의 허구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아래와 같은 일을 본 적이 있나요?
□ 생물이 아무것도 없는 데서 저절로 생기는 것을 보았나요?
(콩을 심지도 않았는데 콩이 땅에서 나올 리는 없다.)
□ 돌이 말하는 것을 본 적이 있나요?
(무생물이 생명체가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원숭이가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을 본 적 있나요?
(종(種)에서 다른 종으로 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 세상에서 만든 이가 없이 저절로 된 것이 있나요?
(비행기, 자동차, 휴대폰 등)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진화론의 허구
진화론에서는 사람이 원숭이와 동일한 조상으로부터 진화되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동일 조상으로부터 사람에 이르는 중간 단계 유사 화석 조각에 수많은 이름을 붙여 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 근거가 상당히 미약하여 상상에 불과한 중간 단계 화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숭이가 아니면 사람이지, 중간 동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진화론은 문자 그대로 하나의 이론으로서 상상에 기초한 가설일 뿐이다.
추석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수고하여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지요.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송 ------------------------- 308장 ---------------------- 다 같이
1.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 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2. 추수할 것 많은 때에 일꾼 심히 적으니
열심 있는 일꾼들을 주여 보내 주소서
3. 먼동 틀 때 일어나서 일찍 들에 나아가
황혼 때가 되기까지 추수하게 하소서
4. 거둬들인 모든 알곡 천국 창고 들인 후
주가 베풀 잔치 자리 우리 참여하겠네
후렴
무르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는데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아멘
기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로마서 12:18 ------------------- 인도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설교 --------------------- 화목한 가정 --------------------- 설교자
2. 설교 예문
어느 노부부가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지요. 식사 때가 되어 할아버지에게 상은 차려 주었지만, 한쪽에 앉아 말없이 바느질만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전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내가 침묵하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지요. 그러다가 순간 묘안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옷장을 열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또 여기저기 서랍을 뒤지는 것이었지요.
할머니는 처음에는 못 본 척하다가 남편이 옷장 속의 옷이며 서랍 안의 물건들까지 다 꺼내 놓으니 왜 그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뭘 찾는데 그래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지, 뭐야. 이제야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구려.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이제 화 풀어요.” 하며 사과했습니다.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었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말 한마디에 이내 마음이 풀어져 “제가 잘못했어요.” 하며 다시 웃음꽃이 피어났지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다투지 않고 화평을 이루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이란, 비록 내가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맞춰 줄 수 있고 내 믿음이 크다 하더라도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는 마음이며,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을 수 있고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거나 상대의 단점을 보지 않음으로 누구와도 걸리지 않는 마음이지요.
그러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되 생명까지 줄 수 있어야 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 것, 내 입장, 내 스타일 등을 고집하는 자아가 없어야 모든 사람과 화평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면 무례히 행치 않고 자신을 드러내 자랑하지 않습니다. 중심에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한쪽으로 편벽되지도 않지요.
둘째로, 자기 의와 틀을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품과 자란 환경이 다릅니다. 교육받은 내용도, 믿음의 분량도 다르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고, 좋고 나쁨의 기준도 다릅니다. A라는 사람은 옳다고 생각해도 B는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서로 자기 입장만 주장해서는 화평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내 입장, 내 기준에 맞추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섬길 때라야 화평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평을 이루는 과정에서 깨우쳐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 편에서는 감정도 없고 화평한데 상대가 화평을 깬다.”라고 한다면, 정말 상대 탓인가 하는 점입니다. 고의는 아니지만, 내 편에서 화평을 깨는 원인 제공을 해 놓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지중에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럴 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나는 상대에게 감정이 없다.” 고집한다면 결국 화평이 이뤄질 수가 없지요.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봐도 내가 화평을 좇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화평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가장 사랑이 넘치고 화목해야 할 곳입니다. 모두가 조금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해 준다면 상하고 얽혔던 감정도 쉽게 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섬기고 희생함으로 화평을 이루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고,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가정이나 학교, 직장이나 사업터, 일터에서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더욱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 풍성한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23-09-22
제38과하나님의 근본
요한복음 1:1
읽을말씀 : 요한복음 1:1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1 | 참고 말씀: 요한일서 1:5, 창세기 1:1
교육목표 :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의 근본을 바로 알아 아비의 믿음을 소유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에는 천지 만물이 어떻게 생겨났고 광활한 우주 공간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며, 참 신이 누구신지를 모르기 때문에 헛된 것을 좇아 방황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이 땅에 살고 있는지, 참된 삶의 목적과 가치를 모르니 자기 뜻대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마치 뿌리 없는 나무같이 사람의 근본에 대해 모른 채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살아가지요.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을 알고 사람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깨우친다면 누구나 하나님을 믿고 사람의 본분을 좇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의 근본
요한복음 1장 1절을 보면 태초의 하나님, 곧 하나님의 근본에 대해 알려 줍니다. 태초란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영원 전을 의미하며, 우주 모든 공간 속에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 계실 때를 말합니다.
여기서 우주 모든 공간이란 우리가 아는 거대한 우주 공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우주 공간 외에 이보다 크고 넓은 공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에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이 영원 전부터 계셨지요. 이 땅의 모든 것이 유한하며 시작과 끝이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은 영원 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태초에 하나님이 계시니라” 해도 되는데 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한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계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보고 만질 수 있는 실질적인 형상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우상을 만드는 등 늘 형상화된 신을 찾지요. 하지만 어찌 사람이 만든 우상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는 신이 될 수 있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며 인류 역사를 주관할 수 있겠습니까?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러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므로 스스로 형상을 입으셨습니다. 과연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존재하셨을까요?
어떤 이름이나 형상도 필요 없는 아름다운 빛과 소리로 존재하셨습니다. 바로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 계시면서 모든 우주 공간을 다스리셨지요. 요한일서 1장 5절에 “… 하나님은 빛이시라…” 말씀하신 대로 빛으로 모든 우주 공간을 두르고 그 빛 가운데 소리를 머금으셨습니다. 그 소리가 바로 ‘말씀’입니다.
2. 인간 경작을 계획하신 근본 하나님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던 근본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자 한 가지 계획을 세우십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 경작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 땅에 인간을 창조하고 번성하게 하셔서 그들 중에 하나님을 닮은 참 자녀로 나온 영혼들을 아름다운 천국으로 들여 영원토록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사시려는 계획’입니다.
이처럼 인간 경작의 계획을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준비 작업을 하나하나 이루십니다. 첫 번째가 공간을 나누는 것이었지요. 본디 모든 공간이 하나였는데 인간 경작을 위해 필요에 따라 여럿으로 나누신 것입니다. 그런데 공간을 분리한 뒤 매우 중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태초에 근본의 빛과 소리로 존재하시던 근본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게 된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을 낳으신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의 아들 또는 독생자라 표현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5절에도 “…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말씀했지요.
이처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근본 하나님 한 분에게서 나오셨고 마음도, 능력도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빌립보서 2장 6~7절에 예수님에 대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말씀하지요.
3.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
태초에 빛 가운데 소리를 머금고 계셨던 근본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형상을 입으셨습니다. 과연 어떠한 형상을 입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하며,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말씀을 통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어떤 형상을 입고 계신지도 능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사람을 만들었다는 말씀이 단지 겉모습만 그대로 본떴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사람의 근본 마음까지도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진리가 충만한 영적 존재로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의 죄로 인해 사람은 창조될 때의 형상을 잃고 점점 죄와 악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 형상에 따라 지음받은 존재임을 안다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4. 참 자녀를 얻고자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분리하신 공간 안에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창조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태초에 빛과 소리로 계실 때에는 처소가 필요하지 않았지만,형상을 입은 뒤에는 처소를 비롯하여 수종 드는 천군과 천사 등 많은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영의 공간 안에 우선 영의 존재들을 창조하시고, 루시퍼 배반 이후에 비로소 지구를 창조하시고 우리가 사는 우주 공간 안에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천군 천사들이 영의 공간에서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세월을 함께 지낸 뒤 마침내 육의 공간에도 천지창조가 이루어졌습니다(창세기 강해 참조).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만드신 뒤 맨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지요.
그러면 수많은 천군과 천사가 있는데도 굳이 사람을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참 자녀’란 하나님을 닮은 자녀로서 하나님과 참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천군과 천사는 특별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로봇과 같이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복종하고 섬기는 존재입니다. 반면에 사람은 자유 의지 가운데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순종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이지요. 아무리 자기 뜻대로 움직인다 해도 자녀보다 로봇을 더 좋아할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진정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녀가 더 사랑스럽고 좋지요. 사람은 자유 의지 가운데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물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라면서 온갖 삶을 체험하며 오직 참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깨달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누가 시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두려워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아니지요. 자유 의지 가운데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그러면서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마음에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인간 경작을 계획하시고, 이를 위해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인간을 경작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근본을 밝히 깨닫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참 자녀로 나와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창세기 1:1의 ‘태초’는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시작하신 시점이다.
② 요한복음 1:1의 ‘태초’는 천지 창조 이전 사람의 시간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득히 오래전의 시점을 말한다.
③ 하나님께서는 홀로 완전하신 분이기에 누가 하나님을 낳은 것이 아니며 원래부터 스스로 계셨다.
④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계셨다.
2. 근본의 하나님께서는 어떤 모습으로 계셨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근본의 소리
창조주 하나님께서 발하시는 소리이다. 시편 68편 33절에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발하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했는데, 주께서 발하시는 이 웅장한 소리가 근본의 소리이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 자체로서 이 소리가 발하여질 때 천하 모든 우주 만물이 순종하며 발해진 소리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명하시자, 그 말씀대로 천지 만물이 창조되었는데 이때 발하신 하나님의 소리가 창조의 근본의 소리이다.
교육목표 :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의 근본을 바로 알아 아비의 믿음을 소유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중에는 천지 만물이 어떻게 생겨났고 광활한 우주 공간을 주관하시는 분이 누구며, 참 신이 누구신지를 모르기 때문에 헛된 것을 좇아 방황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왜 이 땅에 살고 있는지, 참된 삶의 목적과 가치를 모르니 자기 뜻대로 이 세상을 살아갑니다. 마치 뿌리 없는 나무같이 사람의 근본에 대해 모른 채 하루하루를 의미 없이 살아가지요.
그러나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을 알고 사람이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는지 깨우친다면 누구나 하나님을 믿고 사람의 본분을 좇아 살아갈 수 있습니다.
1.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의 근본
요한복음 1장 1절을 보면 태초의 하나님, 곧 하나님의 근본에 대해 알려 줍니다. 태초란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요? 바로 영원 전을 의미하며, 우주 모든 공간 속에 오직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 계실 때를 말합니다.
여기서 우주 모든 공간이란 우리가 아는 거대한 우주 공간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는 우주 공간 외에 이보다 크고 넓은 공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끝없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러한 공간에 창조주 하나님 한 분만이 영원 전부터 계셨지요. 이 땅의 모든 것이 유한하며 시작과 끝이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사람은 영원 전이라는 개념 자체가 쉽게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태초에 하나님이 계시니라” 해도 되는데 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한 것일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계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보고 만질 수 있는 실질적인 형상을 추구합니다. 그래서 이런저런 우상을 만드는 등 늘 형상화된 신을 찾지요. 하지만 어찌 사람이 만든 우상이 천지 만물을 창조하는 신이 될 수 있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며 인류 역사를 주관할 수 있겠습니까?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러 사람이 하나님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하므로 스스로 형상을 입으셨습니다. 과연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존재하셨을까요?
어떤 이름이나 형상도 필요 없는 아름다운 빛과 소리로 존재하셨습니다. 바로 소리를 머금은 빛으로 계시면서 모든 우주 공간을 다스리셨지요. 요한일서 1장 5절에 “… 하나님은 빛이시라…” 말씀하신 대로 빛으로 모든 우주 공간을 두르고 그 빛 가운데 소리를 머금으셨습니다. 그 소리가 바로 ‘말씀’입니다.
2. 인간 경작을 계획하신 근본 하나님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던 근본 하나님께서는 때가 이르자 한 가지 계획을 세우십니다. 그것이 바로 인간 경작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이 땅에 인간을 창조하고 번성하게 하셔서 그들 중에 하나님을 닮은 참 자녀로 나온 영혼들을 아름다운 천국으로 들여 영원토록 사랑을 나누며 행복하게 사시려는 계획’입니다.
이처럼 인간 경작의 계획을 세우신 하나님께서는 준비 작업을 하나하나 이루십니다. 첫 번째가 공간을 나누는 것이었지요. 본디 모든 공간이 하나였는데 인간 경작을 위해 필요에 따라 여럿으로 나누신 것입니다. 그런데 공간을 분리한 뒤 매우 중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태초에 근본의 빛과 소리로 존재하시던 근본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게 된 것입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을 낳으신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예수님에 대해 하나님의 아들 또는 독생자라 표현한 것입니다. 히브리서 5장 5절에도 “…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날 너를 낳았다 하셨고” 말씀했지요.
이처럼 성자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은 근본 하나님 한 분에게서 나오셨고 마음도, 능력도 모든 것이 하나입니다. 빌립보서 2장 6~7절에 예수님에 대해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말씀하지요.
3.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
태초에 빛 가운데 소리를 머금고 계셨던 근본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형상을 입으셨습니다. 과연 어떠한 형상을 입으셨을까요?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할 때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에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란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하며, 사람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는 말씀을 통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어떤 형상을 입고 계신지도 능히 깨달을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사람을 만들었다는 말씀이 단지 겉모습만 그대로 본떴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사람의 근본 마음까지도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 진리가 충만한 영적 존재로 지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의 죄로 인해 사람은 창조될 때의 형상을 잃고 점점 죄와 악으로 물들어 갔습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이 하나님 형상에 따라 지음받은 존재임을 안다면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야 할 것입니다.
4. 참 자녀를 얻고자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분리하신 공간 안에 필요한 것을 하나하나 창조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태초에 빛과 소리로 계실 때에는 처소가 필요하지 않았지만,형상을 입은 뒤에는 처소를 비롯하여 수종 드는 천군과 천사 등 많은 것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영의 공간 안에 우선 영의 존재들을 창조하시고, 루시퍼 배반 이후에 비로소 지구를 창조하시고 우리가 사는 우주 공간 안에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천군 천사들이 영의 공간에서 셀 수 없을 만큼 수많은 세월을 함께 지낸 뒤 마침내 육의 공간에도 천지창조가 이루어졌습니다(창세기 강해 참조).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모든 환경을 만드신 뒤 맨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지요.
그러면 수많은 천군과 천사가 있는데도 굳이 사람을 만드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참 자녀’란 하나님을 닮은 자녀로서 하나님과 참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를 말합니다.
천군과 천사는 특별한 몇몇을 제외하고는 로봇과 같이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복종하고 섬기는 존재입니다. 반면에 사람은 자유 의지 가운데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순종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이지요. 아무리 자기 뜻대로 움직인다 해도 자녀보다 로봇을 더 좋아할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진정 마음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자녀가 더 사랑스럽고 좋지요. 사람은 자유 의지 가운데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사랑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물론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라면서 온갖 삶을 체험하며 오직 참이신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사람으로서의 본분을 깨달은 사람만이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그분의 뜻에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누가 시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이 두려워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도 아니지요. 자유 의지 가운데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감사하며 그러면서도 변함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마음에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인간 경작을 계획하시고, 이를 위해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인간을 경작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근본을 밝히 깨닫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참 자녀로 나와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세요.
① 창세기 1:1의 ‘태초’는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를 시작하신 시점이다.
② 요한복음 1:1의 ‘태초’는 천지 창조 이전 사람의 시간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아득히 오래전의 시점을 말한다.
③ 하나님께서는 홀로 완전하신 분이기에 누가 하나님을 낳은 것이 아니며 원래부터 스스로 계셨다.
④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사람과 같은 모습으로 계셨다.
2. 근본의 하나님께서는 어떤 모습으로 계셨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근본의 소리
창조주 하나님께서 발하시는 소리이다. 시편 68편 33절에 “옛적 하늘들의 하늘을 타신 자에게 찬송하라 주께서 그 소리를 발하시니 웅장한 소리로다” 했는데, 주께서 발하시는 이 웅장한 소리가 근본의 소리이다.
이는 하나님의 능력 자체로서 이 소리가 발하여질 때 천하 모든 우주 만물이 순종하며 발해진 소리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명하시자, 그 말씀대로 천지 만물이 창조되었는데 이때 발하신 하나님의 소리가 창조의 근본의 소리이다.
2023-09-15
제37과하나님의 섭리는 변함이 없나니
신명기 26:16~19
읽을말씀 : 신명기 26:16~19 | 외울말씀 : 신명기 26:16 | 참고 말씀: 요한복음 4:48, 디모데후서 3:1~5
교육목표 : 성경 상 나타난 마지막 때 징조들을 정확히 알아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신부 단장을 잘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늘이 흐리면 비가 올 것을 알 수 있듯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마지막 때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는 마지막 때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21장을 보면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는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말씀하지요.
1. 모든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베드로후서 3장 3~4절에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했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를 알려 주어도 믿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때가 있으면 반드시 죽는 때가 오듯이, 인류 역사도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이 세상도 종말을 맞이합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게 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산 사람은 천국에 가고, 전도를 받고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았거나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악 중에 산 사람들은 지옥에 갑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자 마음이 급하신 것이지요. 오늘날 하나님께서 권능을 나타내시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 주어 어찌하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한 대로 죄악이 관영하고 지식이 더하는 오늘날은 더더욱 권능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2. 마지막 때 복음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인간 경작의 역사는 이미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마지막 날이 이르기 전에 구원받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아직도 핍박과 억압으로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나라들이 많습니다.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지요. 또한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참된 신앙을 가진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한 대로(눅 18:8)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 사람과 별다른 바 없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핍박이 심한 곳도 권능을 체험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고 복음이 불같이 확산합니다.
참믿음을 갖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던 사람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면 말씀대로 살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법적으로 복음 전파를 금지하고 우상을 섬기며 교회를 핍박하는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힘써 선교해 왔습니다.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은 이슬람교가 왕성한 파키스탄과 두바이, 대부분이 힌두교도인 인도 등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셨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권능을 체험하고 개신교로 개종했지요.
농부가 추수 때에 곡식을 거둬들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마지막 때 전 세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3.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과 하나님의 섭리
성경은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도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예언한 내용들은 대부분 그대로 이루어졌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거나 앞으로 나타날 일들입니다. 마지막 때에 관한 내용 중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남북 관계에 관한 예언입니다
개척 당시부터 남북 관계에 대한 말씀을 주신 것은 마지막 때 본 제단에 북한 선교의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해 왔고 주변 정세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정치, 경제가 불안정하고 우방이라 믿었던 중국과 러시아가 개방의 물결을 타고 급속히 변하고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북한이 일시적으로 개방할 것과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문을 닫게 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미국의 압력으로 개방하지만, 그 후로 중국과 러시아의 권력을 힘입어 다시 문을 닫게 됩니다.
그러니 북한이 개방되어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주의 종을 통해 북한 선교가 이루어지면 많은 영혼이 놀라운 치료와 응답의 역사를 체험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2) 세계 선교의 사명에 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만, 수십만, 수백만 명이 모이는 해외 성회를 예비하시고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 CNN을 통해 보도된 바 있는 우간다 연합대성회를 시작으로 중동 선교의 문을 연 파키스탄 연합대성회, 에이즈(AIDS) 등 수많은 질병이 치료된 케냐 연합대성회를 통해 놀랍게 역사하셨지요.
하나님의 권능이 폭발적으로 나타난 필리핀 연합대성회와 중남미에 온두라스 연합대성회, 인도 기독교 사상 최대 최다 최고인 연인원 3백만 명 이상이 참석한 인도 연합대성회를 허락하시고 두바이 선교를 통해 본격적인 중동 선교의 발판을 마련하게 하셨지요. 이후에도 러시아, 독일, 페루, 콩고민주공화국, 미국 뉴욕, 이스라엘, 에스토니아에서 해외 성회를 통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였습니다.
그중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마지막 때가 되면 그곳에 우리가 들어가 선교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에 2007년 7월 선교를 시작하여 2009년 9월까지 3년 동안 예수가 우리 구세주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큰 결실은 기독교 단체인 크리스털 포럼이 결성되어 복음을 전파하며, 부부 세미나 청소년 캠프, 찬양 페스티벌 등 활발한 사역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복음의 근원지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심으로 복음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체제를 고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장벽을 쌓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기에 마지막 때에 성령의 권능으로 기사와 표적, 권능을 펼치시며 복음이 전파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마지막 때 성령의 불같은 역사로 그들의 마음 문이 열리고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여 인간 경작의 섭리가 완성될 것입니다.
3) 대성전 건축과 관련된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지막 때 섭리를 알려 주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대성전 건축이라는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대성전을 건축하여 마지막 때 전 세계 무수한 영혼이 구원받을 방주를 예비하는 것입니다.
노아 당시와 같이 죄악이 관영한 마지막 때이지만 대성전을 건축하면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의 소문을 듣고 사모함으로 성전에 나올 것입니다. 무수한 하나님의 증거를 보고 영계의 비밀을 배우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거룩한 참 자녀를 얻는 데 있음을 알고 신부 단장에 힘쓰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처럼 대성전은 복음 전파의 마무리 작업을 위한 중추 기지가 될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대성전을 지을 때 하나님의 권능을 사모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도울 수 있도록 주관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과 섭리를 하나님께서는 개척 당시부터 알려 주시며 그 말씀들을 이루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명한 모든 사명을 다 이루게 하시며 온 세계에 주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이 아닌 것을 고르세요.
① 마태복음 24장 ② 데살로니가전서 5:16
③ 누가복음 21장 ④ 디모데후서 3:1~5
2. 당회장님께서 2000년 이후 수많은 영혼을 개종시키고 구원에 이르게 했던 해외 성회입니다. 밑줄 친 곳에 나라 이름을 넣으세요.
_____(00.7)-나고야(00.9)-파키스탄(00.10)-케냐(01.6)-필리핀(01.9)-온두라스(02.7)-_____(02.10)-러시아(03.11)-독일(04.10)-페루(04.12)-콩고민주공화국(06.2)-미국 뉴욕(06.7)-_____(09.9)-에스토니아(10.10)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대성전 기둥
지름 600미터에 높이가 70미터의 거대한 건축물인 대성전은 열두 개의 큰 기둥들이 있다. 이 큰 기둥들 사이로 일곱 개씩 작은 기둥이 세워진다.
기둥의 수를 합하면 총 96개가 된다. 12개의 큰 기둥은 우윳빛 나는 맑고 아름다운 대리석이며, 기둥 맨 위에는 다섯 꽃잎이 둘러 가며 장식된다.
특히 꽃술 중심부는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에 해당하는 보석들이 박힌다.
첫 번째 기둥에는 벽옥, 두 번째 기둥에는 남보석, 세 번째 기둥에는 옥수 이렇게 차례대로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정의 보석들이 꽃들의 중앙에 박힌다. 조명을 받을 때 오색 찬란한 광채를 발하며 천국의 아름다움을 한껏 더해 준다.
교육목표 : 성경 상 나타난 마지막 때 징조들을 정확히 알아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신부 단장을 잘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늘이 흐리면 비가 올 것을 알 수 있듯이,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마지막 때를 예측할 수 있습니다. 성경 곳곳에는 마지막 때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누가복음 21장을 보면 “난리와 소란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 말라”,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서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말씀합니다.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는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말씀하지요.
1. 모든 영혼을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베드로후서 3장 3~4절에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했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를 알려 주어도 믿지 않으려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이 태어나는 때가 있으면 반드시 죽는 때가 오듯이, 인류 역사도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면 이 세상도 종말을 맞이합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으로 이 땅에 살았던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게 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 말씀대로 산 사람은 천국에 가고, 전도를 받고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지 않았거나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죄악 중에 산 사람들은 지옥에 갑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을 수 있도록 온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자 마음이 급하신 것이지요. 오늘날 하나님께서 권능을 나타내시는 까닭도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보여 주어 어찌하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한 대로 죄악이 관영하고 지식이 더하는 오늘날은 더더욱 권능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2. 마지막 때 복음 전파를 위한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인간 경작의 역사는 이미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마지막 날이 이르기 전에 구원받을 만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려면 꼭 필요한 것이 크고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아직도 핍박과 억압으로 복음을 전하기 어려운 나라들이 많습니다. 복음을 접하지 못한 사람들도 많지요. 또한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참된 신앙을 가진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말씀한 대로(눅 18:8) 교회는 다니지만, 세상 사람과 별다른 바 없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핍박이 심한 곳도 권능을 체험하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믿음을 갖게 되고 복음이 불같이 확산합니다.
참믿음을 갖지 못하고 죄 가운데 살던 사람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면 말씀대로 살 힘을 얻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법적으로 복음 전파를 금지하고 우상을 섬기며 교회를 핍박하는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힘써 선교해 왔습니다.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은 이슬람교가 왕성한 파키스탄과 두바이, 대부분이 힌두교도인 인도 등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하셨습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이 권능을 체험하고 개신교로 개종했지요.
농부가 추수 때에 곡식을 거둬들이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마지막 때 전 세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시고자 놀라운 권능의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3.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과 하나님의 섭리
성경은 물론 하나님께서 주신 예언의 말씀을 통해서도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예언한 내용들은 대부분 그대로 이루어졌고,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것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거나 앞으로 나타날 일들입니다. 마지막 때에 관한 내용 중에서 몇 가지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남북 관계에 관한 예언입니다
개척 당시부터 남북 관계에 대한 말씀을 주신 것은 마지막 때 본 제단에 북한 선교의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폐쇄적인 체제를 유지해 왔고 주변 정세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국내외적으로 정치, 경제가 불안정하고 우방이라 믿었던 중국과 러시아가 개방의 물결을 타고 급속히 변하고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북한이 일시적으로 개방할 것과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문을 닫게 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미국의 압력으로 개방하지만, 그 후로 중국과 러시아의 권력을 힘입어 다시 문을 닫게 됩니다.
그러니 북한이 개방되어도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주의 종을 통해 북한 선교가 이루어지면 많은 영혼이 놀라운 치료와 응답의 역사를 체험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2) 세계 선교의 사명에 관한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만, 수십만, 수백만 명이 모이는 해외 성회를 예비하시고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을 나타내셨습니다. CNN을 통해 보도된 바 있는 우간다 연합대성회를 시작으로 중동 선교의 문을 연 파키스탄 연합대성회, 에이즈(AIDS) 등 수많은 질병이 치료된 케냐 연합대성회를 통해 놀랍게 역사하셨지요.
하나님의 권능이 폭발적으로 나타난 필리핀 연합대성회와 중남미에 온두라스 연합대성회, 인도 기독교 사상 최대 최다 최고인 연인원 3백만 명 이상이 참석한 인도 연합대성회를 허락하시고 두바이 선교를 통해 본격적인 중동 선교의 발판을 마련하게 하셨지요. 이후에도 러시아, 독일, 페루, 콩고민주공화국, 미국 뉴욕, 이스라엘, 에스토니아에서 해외 성회를 통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였습니다.
그중 이스라엘에 대해서는 마지막 때가 되면 그곳에 우리가 들어가 선교할 것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이스라엘에 2007년 7월 선교를 시작하여 2009년 9월까지 3년 동안 예수가 우리 구세주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무엇보다 큰 결실은 기독교 단체인 크리스털 포럼이 결성되어 복음을 전파하며, 부부 세미나 청소년 캠프, 찬양 페스티벌 등 활발한 사역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복음의 근원지인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자부심으로 복음을 배척하고 자신들의 체제를 고수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장벽을 쌓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기에 마지막 때에 성령의 권능으로 기사와 표적, 권능을 펼치시며 복음이 전파되도록 섭리하셨습니다. 마지막 때 성령의 불같은 역사로 그들의 마음 문이 열리고 예수를 구세주로 받아들여 인간 경작의 섭리가 완성될 것입니다.
3) 대성전 건축과 관련된 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지막 때 섭리를 알려 주면서 온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대성전 건축이라는 귀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시기 전에 대성전을 건축하여 마지막 때 전 세계 무수한 영혼이 구원받을 방주를 예비하는 것입니다.
노아 당시와 같이 죄악이 관영한 마지막 때이지만 대성전을 건축하면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과 권능의 소문을 듣고 사모함으로 성전에 나올 것입니다. 무수한 하나님의 증거를 보고 영계의 비밀을 배우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찬양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거룩한 참 자녀를 얻는 데 있음을 알고 신부 단장에 힘쓰면서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처럼 대성전은 복음 전파의 마무리 작업을 위한 중추 기지가 될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대성전을 지을 때 하나님의 권능을 사모하는 전 세계 사람들이 도울 수 있도록 주관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지막 때에 관한 예언과 섭리를 하나님께서는 개척 당시부터 알려 주시며 그 말씀들을 이루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우리에게 명한 모든 사명을 다 이루게 하시며 온 세계에 주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경에 기록된 마지막 때에 관한 말씀이 아닌 것을 고르세요.
① 마태복음 24장 ② 데살로니가전서 5:16
③ 누가복음 21장 ④ 디모데후서 3:1~5
2. 당회장님께서 2000년 이후 수많은 영혼을 개종시키고 구원에 이르게 했던 해외 성회입니다. 밑줄 친 곳에 나라 이름을 넣으세요.
_____(00.7)-나고야(00.9)-파키스탄(00.10)-케냐(01.6)-필리핀(01.9)-온두라스(02.7)-_____(02.10)-러시아(03.11)-독일(04.10)-페루(04.12)-콩고민주공화국(06.2)-미국 뉴욕(06.7)-_____(09.9)-에스토니아(10.10)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대성전 기둥
지름 600미터에 높이가 70미터의 거대한 건축물인 대성전은 열두 개의 큰 기둥들이 있다. 이 큰 기둥들 사이로 일곱 개씩 작은 기둥이 세워진다.
기둥의 수를 합하면 총 96개가 된다. 12개의 큰 기둥은 우윳빛 나는 맑고 아름다운 대리석이며, 기둥 맨 위에는 다섯 꽃잎이 둘러 가며 장식된다.
특히 꽃술 중심부는 새 예루살렘의 기초석에 해당하는 보석들이 박힌다.
첫 번째 기둥에는 벽옥, 두 번째 기둥에는 남보석, 세 번째 기둥에는 옥수 이렇게 차례대로 녹보석, 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정의 보석들이 꽃들의 중앙에 박힌다. 조명을 받을 때 오색 찬란한 광채를 발하며 천국의 아름다움을 한껏 더해 준다.
2023-09-08
제36과기뻐 춤추며 노래하며
마가복음 7:31~37
읽을말씀 : 마가복음 7:31~37 | 외울말씀 : 에베소서 4:13 | 참고 말씀: 히브리서 13:8
교육목표 : 자신을 돌아보아 빛 가운데 행함으로 건강은 물론 범사에 형통함을 받아 기뻐 춤추며 노래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각색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약한 자들을 고치심으로 전하신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게 하셨지요. 마태복음 4장 23~24절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 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한 대로입니다.
1. 귀먹고 어눌한 자를 온전케 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 주시고 다시 갈릴리 지역으로 돌아오셨을 때입니다.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고쳐 주기를 청하였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를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시더니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에바다”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때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을 하게 되었지요. 창조의 근본의 소리로 명하시자 곧바로 듣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에바다”라고 명하기 전에 그의 귀에 손가락을 넣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느낌을 통해서라도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청력을 잃은 사람은 말씀을 듣지 못하니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귀먹고 어눌한 사람은 말씀을 듣지 못했으니 믿음이 들어가지 못했지요. 그러니 스스로 예수님 앞에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나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를 위해 귀에 직접 손가락을 넣어 주셔서 느낌을 통해서라도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이지요.
근본 하나님 본체로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믿음이 장성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구하면 성경 상의 역사가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했고, 에베소서 4장 13절에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했기 때문입니다.
신체 조직의 일부가 퇴화했거나 신경 세포가 죽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단지 신유의 은사만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른 사람이 하나님께 권세와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 뜻에 맞춰 믿음으로 기도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2. 지금도 나타나는 청각장애 치료 사례들
우리 성도님들은 난청이 치료되는 것은 물론, 태어날 때부터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듣게 되는 경우도 무수히 보아 왔습니다. 심지어는 50년이 넘도록 들리지 않던 귀가 기도 받고 듣게 된 사람도 있지요.
당회장님께서 강사로 서신 2000년 9월, 일본 나고야 신유 대성회 때는 13명의 청각장애인이 단 한 번의 기도로 한꺼번에 치료받았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역사가 국내 청각장애인들에게도 알려져 2001년 5월 본교회 2주 연속 특별 부흥성회 시에는 많은 청각장애인이 참석해 치료받아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지요.
해가 갈수록 권능의 역사는 더 크게 나타나 듣지 못하던 많은 사람이 치료받았습니다. 해외 연합대성회 때마다 수많은 난청 환자가 치료받았지요. 온두라스 성회 때는 귀머거리와 벙어리 된 많은 사람이 듣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성회 안전 총책임자였던 분의 딸도 나면서부터 들리지 않던 귀가 치료되었지요.
비트릭 메헤르만 이라는 여자분은 평소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아 고통을 받았는데 독일 연합대성회 때 당회장님의 기도를 받고 ‘뻥’ 하는 소리가 나면서 듣게 되었습니다. 진찰 결과, 얇았던 고막이 두꺼워져서 잘 듣게 된 것이라며 담당 의사도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였지요.
본 교회 한 권사님은 신경이 죽어 4~5년 동안 들리지 않았는데 당회장님의 기도를 받고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당회장님께 기도를 받은 후 평소에 귀 가까이에 대고 큰 소리로 말을 해야만 들을 수 있었는데, 보청기를 빼고도 평소의 대화 소리가 잘 들리게 되었지요.
한 성도님은 60여 년 전, 열여섯 살 때 심한 고문으로 인해 양쪽 귀 고막이 터져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전혀 들리지 않아 상대와 대화를 하려면 입 모양이나 눈치로 판단해서 대충 소통해야만 했었는데 당회장님께 기도를 받고 나서는 소리가 또렷이 들리게 되었지요.
이처럼 놀라운 역사는 지금도 당회장님께서 기도해 주신 권능의 손수건(행 19:11~12)을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권능의 손수건으로 기도해 줄 때 이명이나 난청은 물론 전혀 듣지 못했던 사람들이 듣게 돼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지요.
3.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응답받으려면
1)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로만 전해도 믿음을 갖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치료하신 귀먹고 어눌한 사람의 경우에는 듣지 못했기 때문에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손가락을 귀에 넣으심으로 믿음을 갖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무언가 감각적으로 와닿을 때 사람들이 믿음을 갖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치료받을 당사자가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예수님 당시와 달리 문명이 발달하여 청각장애가 있더라도 복음을 접할 수 있는 매체들이 많습니다. 수화로 하나님 말씀을 배울 수도 있고 비디오나 점자책 등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매체들이 얼마든지 있지요.
비록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본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치료받을 수 있는 믿음만 있으면 누구나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어눌한 사람의 양 귀에 손가락을 넣었다 빼신 후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영적으로 물세례를 의미하는 것으로 죄 사함을 베풀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맑은 물과 같은 하나님 말씀으로 죄를 씻어 버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반드시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다만 이 사람의 경우 주변에 물이 없어 물 대신에 침으로써 죄 사함의 의미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사야 59장 1~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한 대로 죄악이 하나님과 담을 만들어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외면해 버리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자백’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서 온전히 돌이키는 것이지요. 회개한 후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그 죄성까지 뽑아버리는 것입니다.
만일 회개했다 하고 또 죄를 지으면 이는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눕는 것과 같습니다. 중심에서 자백하는 사람은 마음을 찢는 애통과 회개가 따릅니다.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응답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둘째,
2.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어눌한 자를 말씀만으로도 능히 치료하실 수 있는 데, 왜 양 귀에 손가락을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셨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회당
유대인들의 모임 장소를 말한다. 회당제도는 포로 생활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릴 수 없게 되면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신약 시대에 와서는 유대인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회당이 세워졌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외에도 회당에 자주 모였는데 남녀가 따로 떨어져 앉았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회당에 들어가셔서 예배도 드리시고 말씀을 전하셨으며 병도 고치시고 귀신도 쫓아내셨다. 나사렛 회당에서는 이사야서를 통해 자신이 메시아임을 가르치셨지만 배척받으셨다(눅 4:16~30).
회당은 율법 교육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눅 13:10) 법정 용도로도 쓰였다(마 10:17, 23:34 ; 막 13:9).
교육목표 : 자신을 돌아보아 빛 가운데 행함으로 건강은 물론 범사에 형통함을 받아 기뻐 춤추며 노래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 두루 다니시며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각색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들과 약한 자들을 고치심으로 전하신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게 하셨지요. 마태복음 4장 23~24절에 “예수께서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사 저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백성 중에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 그의 소문이 온 수리아에 퍼진지라 사람들이 모든 앓는 자 곧 각색 병과 고통에 걸린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 병자들을 데려오니 저희를 고치시더라” 한 대로입니다.
1. 귀먹고 어눌한 자를 온전케 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에서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고쳐 주시고 다시 갈릴리 지역으로 돌아오셨을 때입니다. 사람들이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님 앞에 나와서 고쳐 주기를 청하였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를 한적한 곳으로 데리고 가시더니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고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에바다”라고 명하셨습니다. 이때 그의 귀가 열리고 혀의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을 하게 되었지요. 창조의 근본의 소리로 명하시자 곧바로 듣고 말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에바다”라고 명하기 전에 그의 귀에 손가락을 넣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느낌을 통해서라도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청력을 잃은 사람은 말씀을 듣지 못하니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습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귀먹고 어눌한 사람은 말씀을 듣지 못했으니 믿음이 들어가지 못했지요. 그러니 스스로 예수님 앞에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그를 데리고 나왔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그를 위해 귀에 직접 손가락을 넣어 주셔서 느낌을 통해서라도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주신 것이지요.
근본 하나님 본체로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는 능치 못할 일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믿음이 장성하여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을 구하면 성경 상의 역사가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했고, 에베소서 4장 13절에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했기 때문입니다.
신체 조직의 일부가 퇴화했거나 신경 세포가 죽어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은 단지 신유의 은사만으로 고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른 사람이 하나님께 권세와 능력을 받아서 하나님 뜻에 맞춰 믿음으로 기도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2. 지금도 나타나는 청각장애 치료 사례들
우리 성도님들은 난청이 치료되는 것은 물론, 태어날 때부터 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이 듣게 되는 경우도 무수히 보아 왔습니다. 심지어는 50년이 넘도록 들리지 않던 귀가 기도 받고 듣게 된 사람도 있지요.
당회장님께서 강사로 서신 2000년 9월, 일본 나고야 신유 대성회 때는 13명의 청각장애인이 단 한 번의 기도로 한꺼번에 치료받았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역사가 국내 청각장애인들에게도 알려져 2001년 5월 본교회 2주 연속 특별 부흥성회 시에는 많은 청각장애인이 참석해 치료받아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지요.
해가 갈수록 권능의 역사는 더 크게 나타나 듣지 못하던 많은 사람이 치료받았습니다. 해외 연합대성회 때마다 수많은 난청 환자가 치료받았지요. 온두라스 성회 때는 귀머거리와 벙어리 된 많은 사람이 듣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그중 성회 안전 총책임자였던 분의 딸도 나면서부터 들리지 않던 귀가 치료되었지요.
비트릭 메헤르만 이라는 여자분은 평소 왼쪽 귀가 들리지 않아 고통을 받았는데 독일 연합대성회 때 당회장님의 기도를 받고 ‘뻥’ 하는 소리가 나면서 듣게 되었습니다. 진찰 결과, 얇았던 고막이 두꺼워져서 잘 듣게 된 것이라며 담당 의사도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였지요.
본 교회 한 권사님은 신경이 죽어 4~5년 동안 들리지 않았는데 당회장님의 기도를 받고 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떤 성도님은 당회장님께 기도를 받은 후 평소에 귀 가까이에 대고 큰 소리로 말을 해야만 들을 수 있었는데, 보청기를 빼고도 평소의 대화 소리가 잘 들리게 되었지요.
한 성도님은 60여 년 전, 열여섯 살 때 심한 고문으로 인해 양쪽 귀 고막이 터져 듣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평소에 전혀 들리지 않아 상대와 대화를 하려면 입 모양이나 눈치로 판단해서 대충 소통해야만 했었는데 당회장님께 기도를 받고 나서는 소리가 또렷이 들리게 되었지요.
이처럼 놀라운 역사는 지금도 당회장님께서 기도해 주신 권능의 손수건(행 19:11~12)을 통해 나타나고 있습니다. 권능의 손수건으로 기도해 줄 때 이명이나 난청은 물론 전혀 듣지 못했던 사람들이 듣게 돼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있지요.
3.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응답받으려면
1)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말로만 전해도 믿음을 갖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증거를 보여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치료하신 귀먹고 어눌한 사람의 경우에는 듣지 못했기 때문에 믿음을 갖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손가락을 귀에 넣으심으로 믿음을 갖도록 배려하신 것입니다. 무언가 감각적으로 와닿을 때 사람들이 믿음을 갖기가 더 쉽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치료받을 당사자가 믿음을 소유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예수님 당시와 달리 문명이 발달하여 청각장애가 있더라도 복음을 접할 수 있는 매체들이 많습니다. 수화로 하나님 말씀을 배울 수도 있고 비디오나 점자책 등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매체들이 얼마든지 있지요.
비록 소리를 듣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본인이 원한다면 얼마든지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치료받을 수 있는 믿음만 있으면 누구나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어눌한 사람의 양 귀에 손가락을 넣었다 빼신 후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영적으로 물세례를 의미하는 것으로 죄 사함을 베풀기 위해서였습니다.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은 맑은 물과 같은 하나님 말씀으로 죄를 씻어 버린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반드시 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다만 이 사람의 경우 주변에 물이 없어 물 대신에 침으로써 죄 사함의 의미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이사야 59장 1~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한 대로 죄악이 하나님과 담을 만들어서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외면해 버리신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게 하실 것이요” 말씀했습니다. ‘자백’은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서 온전히 돌이키는 것이지요. 회개한 후 다시는 죄를 짓지 않고 그 죄성까지 뽑아버리는 것입니다.
만일 회개했다 하고 또 죄를 지으면 이는 개가 토한 것을 다시 먹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다시 눕는 것과 같습니다. 중심에서 자백하는 사람은 마음을 찢는 애통과 회개가 따릅니다. 온전히 빛 가운데 행함으로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고 응답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둘째,
2.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어눌한 자를 말씀만으로도 능히 치료하실 수 있는 데, 왜 양 귀에 손가락을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셨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회당
유대인들의 모임 장소를 말한다. 회당제도는 포로 생활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릴 수 없게 되면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신약 시대에 와서는 유대인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회당이 세워졌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외에도 회당에 자주 모였는데 남녀가 따로 떨어져 앉았다.
예수님께서는 여러 회당에 들어가셔서 예배도 드리시고 말씀을 전하셨으며 병도 고치시고 귀신도 쫓아내셨다. 나사렛 회당에서는 이사야서를 통해 자신이 메시아임을 가르치셨지만 배척받으셨다(눅 4:16~30).
회당은 율법 교육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눅 13:10) 법정 용도로도 쓰였다(마 10:17, 23:34 ; 막 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