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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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16
제46과추수감사절
출 23:16
읽을말씀 : 출 23:16 | 외울말씀 : 시 17:8 l 참고 말씀:레 23:42~43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와 영적 의미를 알아 하나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소유한다면 하나님께서 무척 기뻐하십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영혼을 살찌우며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감사절은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영육 간에 축복하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감사의 예배를 올리는 절기입니다. 이러한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장절은 우리나라 추석처럼 오곡백과가 풍성하여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과실과 곡식을 수확하여 저장을 마치고 '추수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 보면,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레 23:34)이라고도 부르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기거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23장 42~43절에 보면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수확물로 추수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수장절은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2. 청교도들의 신앙과 추수감사절
미국의 개척 역사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항해술이 취약했던 1620년,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180톤급 메이플라워호에는 146명이 타고 있었지요. 이들은 1620년 12월 26일, 극심한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며 117일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때마침 그곳은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44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지요.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 첫 추수감사절을 가졌습니다.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우며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잃지 않았지요. 그들은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풍성한 소산을 주신 것은 물론, 사건 사고 많은 이 세상에서 늘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청 통계에 의하면 명명된 병만 해도 약 1억2천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 중에는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생겨 나지요. 또한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과 마약의 굴레에서 노예로 살아갑니다.
요즘 들어 부와 명예, 권세도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공인(公人)들이 자살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하지요. 또 질병 중에는 병명도 모르고 의학으로 밝힐 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많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을 지켜 주셨고, 어린 자녀들도 지켜 주셨지요.
이처럼 좋으신 우리 하나님은 올해도 목자의 공간 안에서 전 세계 만민의 양 떼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재앙과 사고로부터도 지켜 주셨습니다. 오늘날 지구촌은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세계 처처에서 전쟁과 기근은 끊이지 않고, 지진과 화산폭발, 가뭄, 산불, 태풍, 폭우, 폭설, 홍수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지구촌을 공포 속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우리들을 털끝 하나 상하지 않게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성도라면 누구나 목자의 공간 안에서 지키시지요. 혹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돌이켜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위로하고 치료해 주십니다.
시편 17편 8절에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올해도 만민의 성도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이 사랑을 마음에 되새기며 살아 계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점은,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 소망을 주시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소망이 온전해지도록 은혜와 감동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 많은 성도들이 천국(상,하) 책자를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합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많은 성도님이 "저도 새 예루살렘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까지 이끄실 것을 확신하니 믿음이 생긴 것이지요.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로 양육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찬양이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사랑하셔서 은혜로 눈물로 이끄신 사랑하는 나의 목자. 사랑으로 애통함으로 간절한 기도로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 주신 분 내 눈에 눈물이 흘러요.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눈이 부셔요. 그 찬란한 빛 내 마음을 감동시켜요. 감사해요. 나의 아버지. 감사해요. 나의 주님.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가기까지 이끄신 내 목자님 이끄신 내 목자님 감사해요."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셨고 진리로 가득 채워 주셨지요.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렇게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는 중심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감사예배를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으세요.
( )이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거한 것을 기념하며, 가을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절기이다.
2. 지금까지 여러분은 하나님께 어떠한 축복을 받으셨나요? 받은 복을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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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청교도들의 일곱 가지 감사 조건'
하나, 180톤밖에 안 되는 작은 배지만 그 배라도 주심에 감사
둘, 평균 시속 2마일로 항해했으나 117일간 계속 전진할 수 있음에 감사
셋, 항해 중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이가 태어남에 감사
넷,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음에 감사
다섯, 몇 명이 심한 파도 속에 휩쓸렸지만 구출해 주심에 감사
여섯, 호의적인 원주민이 사는 곳에 상륙하게 해 주셔서 감사
일곱, 고통의 3개월 반 항해 도중 돌아가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음에 감사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와 영적 의미를 알아 하나님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소유한다면 하나님께서 무척 기뻐하십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영혼을 살찌우며 풍성한 은혜와 축복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감사절은 한 해 동안 지켜 주시고 영육 간에 축복하셔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 주신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며 감사의 예배를 올리는 절기입니다. 이러한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장절은 우리나라 추석처럼 오곡백과가 풍성하여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과실과 곡식을 수확하여 저장을 마치고 '추수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 보면,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레 23:34)이라고도 부르는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기거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23장 42~43절에 보면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수확물로 추수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수장절은 출애굽하여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절기라 할 수 있습니다.
2. 청교도들의 신앙과 추수감사절
미국의 개척 역사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항해술이 취약했던 1620년,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180톤급 메이플라워호에는 146명이 타고 있었지요. 이들은 1620년 12월 26일, 극심한 기아와 질병에 시달리며 117일간의 험난한 항해 끝에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때마침 그곳은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44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지요.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 첫 추수감사절을 가졌습니다.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우며 하나님을 향한 신앙을 잃지 않았지요. 그들은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것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풍성한 소산을 주신 것은 물론, 사건 사고 많은 이 세상에서 늘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청 통계에 의하면 명명된 병만 해도 약 1억2천 개가 넘는다고 합니다. 이 중에는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생겨 나지요. 또한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으로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과 마약의 굴레에서 노예로 살아갑니다.
요즘 들어 부와 명예, 권세도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공인(公人)들이 자살하여 세상을 놀라게 하기도 하지요. 또 질병 중에는 병명도 모르고 의학으로 밝힐 수 없는 것도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많은 세상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을 지켜 주셨고, 어린 자녀들도 지켜 주셨지요.
이처럼 좋으신 우리 하나님은 올해도 목자의 공간 안에서 전 세계 만민의 양 떼를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재앙과 사고로부터도 지켜 주셨습니다. 오늘날 지구촌은 자연재해로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세계 처처에서 전쟁과 기근은 끊이지 않고, 지진과 화산폭발, 가뭄, 산불, 태풍, 폭우, 폭설, 홍수 등이 하루가 멀다 하고 지구촌을 공포 속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우리들을 털끝 하나 상하지 않게 보호하여 주셨습니다. 말씀대로 사는 성도라면 누구나 목자의 공간 안에서 지키시지요. 혹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돌이켜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위로하고 치료해 주십니다.
시편 17편 8절에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올해도 만민의 성도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셨습니다. 이 사랑을 마음에 되새기며 살아 계신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우리가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점은, 우리에게 영원한 천국 소망을 주시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소망이 온전해지도록 은혜와 감동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전 세계 많은 성도들이 천국(상,하) 책자를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합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많은 성도님이 "저도 새 예루살렘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는 고백을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이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까지 이끄실 것을 확신하니 믿음이 생긴 것이지요.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로 양육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찬양이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사랑하셔서 은혜로 눈물로 이끄신 사랑하는 나의 목자. 사랑으로 애통함으로 간절한 기도로 우리의 마음을 이끌어 주신 분 내 눈에 눈물이 흘러요.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눈이 부셔요. 그 찬란한 빛 내 마음을 감동시켜요. 감사해요. 나의 아버지. 감사해요. 나의 주님. 아름다운 새 예루살렘 가기까지 이끄신 내 목자님 이끄신 내 목자님 감사해요."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셨고 진리로 가득 채워 주셨지요.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이렇게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앞에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여호와께서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꼬"라는 중심으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이 기뻐하실 만한 감사예배를 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으세요.
( )이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초막을 짓고 거한 것을 기념하며, 가을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절기이다.
2. 지금까지 여러분은 하나님께 어떠한 축복을 받으셨나요? 받은 복을 세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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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청교도들의 일곱 가지 감사 조건'
하나, 180톤밖에 안 되는 작은 배지만 그 배라도 주심에 감사
둘, 평균 시속 2마일로 항해했으나 117일간 계속 전진할 수 있음에 감사
셋, 항해 중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이가 태어남에 감사
넷, 폭풍으로 큰 돛이 부러졌으나 파선되지 않음에 감사
다섯, 몇 명이 심한 파도 속에 휩쓸렸지만 구출해 주심에 감사
여섯, 호의적인 원주민이 사는 곳에 상륙하게 해 주셔서 감사
일곱, 고통의 3개월 반 항해 도중 돌아가자는 사람이 한 명도 없음에 감사
2012-11-09
제45과팔복(3)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5
읽을말씀 : 마 5:5 | 외울말씀 : 마 5:5 l 참고 말씀:시 37:11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유한 마음과, 온유함을 온전케 하는 덕이란 무엇인지 알아 온유한 사람이 받는 축복을 받게 한다.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성군으로, 찬란한 민족문화를 꽃피웠습니다.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하여 과학과 기술의 혁명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의약기술과 음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토 확장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지요.
이처럼 세종대왕이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도 사랑과 덕으로 어진 정치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훌륭한 인재들이 깃들일 수 있었고,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후대에까지 이름이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유한 자에게 어떠한 복을 내려주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온유한 자란?
마태복음 5장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했습니다. 사전에 보면 '온유'에 대해 '성격이 온화하고 부드러움, 유순함,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듦'이라 정의합니다. 세상에서는 성품이 순해서 쉽게 화를 내지 않거나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고, 또 소극적이고 유약한 사람이나 친절하게 남의 얘기를 들어주면 '온유하다'고 합니다.
마음속에는 미움이 있고 불편하여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화가 나지만 꾹꾹 눌러 참고, 따져 묻고 싶지만 겉으론 상대에게 양보하며 부드럽게 대하면 '착하다. 온유하다.' 말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겉모습만 그럴 듯하게 온유한 것으로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마음에 어떤 불편함도, 싫어함도 없이 선한 마음으로 상대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품어 줄 수 있어야 온유하다고 인정해 주시지요. 악한 감정을 품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상대의 기쁜 일에 함께 기뻐하며 슬픈 일에 함께 슬퍼하고 위로가 되어 주는 마음이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기 생각과 교양에 맞지 않고, 내 성격과 취향에 맞지 않아도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품습니다. 악으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으며 매사에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섬겨 주는 포근한 마음이지요. 이런 온유한 마음은 '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솜에 단단한 물체나 돌멩이를 던지면 소리 나지 않고 포근히 감싸 안습니다.
반면 단단한 철판에 돌을 던지면 요란하고 튕겨져 나가지요. 또 유리에 돌을 던지면 "쨍!" 하고 깨져 버립니다. 따라서 온유한 마음은 솜같이 포근하고 따뜻하여 모든 사람을 품어 주는 마음입니다. 악한 사람도, 나를 찌르는 사람도 억지로가 아닌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이지요. 이런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에 '덕'을 겸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온유'의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2. 온유함을 온전케 하는 '덕'
'덕'이란 사전에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 마음이 올바르고 사람의 도리에 합당한 일, 인격이 갖추어져 남을 정복시키는 일'이라 설명합니다. 영적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따뜻하고 부드러운 심성을 가졌다 해도 덕이 없으면 온유함의 가치를 온전히 발휘하지 못합니다.
가령, 마음은 따뜻하고 사랑이 있지만 행동이 거칠고 실수가 많으면 사람들이 깃들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성격이 너무 소극적이어서 남들에게 답답함을 주고, 어떤 사람은 말이 많고 떠들며, 농담을 잘하여 신뢰가 떨어지지요.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지만 상대가 말하고 있는데, 딴청하거나 경청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요. 이처럼 덕이 없으므로 온유한 마음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온유함이 마음에 이룬 내면적인 것이라면 덕은 외면적인 옷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라도 지저분하고 남루하게 옷을 입고 있으면 사람들이 그 가치를 몰라 주고, 지나칠 수밖에 없지요. 덕을 갖춘 온유함은 마음과 함께 말이나 행동, 모습도 사람들에게 본이 됩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신뢰와 인정을 받으며, 사람들을 치리함에 있어서도 물리적인 힘이 아닌 사랑으로 포용하고 이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깃들지요.
이렇게 덕을 갖춘 온유함은 내가 선하게 행동하여 상대를 품는 것뿐만 아니라, 꽃향기에 나비와 벌이 모여들듯 많은 사람들이 그 선과 사랑에 감동을 얻고 깃들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온유한 마음이 되셨는지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여 내가 있는 곳에 소리가 나고 화평이 깨어지지는 않습니까? 만일 모임에 불평하고 고집스런 사람이 있어서 화평이 깨진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먼저 온유한 사람이 되어 그들에게 은혜를 끼치며 감동을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 때문에 불화하고, 아내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한다 하지 말고, 내가 가족에게 미소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연약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어도 외면하지 말고 끝까지 바라봐 줘야 합니다. 또 권면이나 지적을 받을 때 기쁘게 수용하여 자신을 돌아보며 발전시키는 모습이십니까? 나보다 못한 사람이 말을 해도 중심에서 귀히 여기며 감사하게 받으시는지요? 이런 사람은 어린 소자의 말이라도 귀 기울여 들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능력이 부족하여 실수하는 사람이라도 무시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기다려 주고 계십니까? 다투지 않고, 부드럽고 잔잔하며 쓸데없는 허탄한 말도 하지 않고 꼭 필요한 진리의 말만 내고 계신지요? 온전한 온유를 이룬 사람은 어떤 사람과도 걸림이 되지 않고, 상대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포용함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을뿐더러 변화시켜 나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온유함을 이루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열심히 마음밭을 개간해야 합니다. 거친 밭에서 돌을 골라내고 가시떨기도 뽑아내야지요. 불필요한 것을 걸러내고 거름도 주면서 개간하면 옥토밭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마음에서 미움, 시기, 질투, 다툼, 판단, 정죄, 교만 등 비진리,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면 온유한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온유한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
본문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했습니다. 기업이란 "선대로부터 이어오는 재산과 사업 또는 기초가 되는 업"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온유한 자에게 이 세상에 속한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영원한 천국의 땅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혹자는 "구원받아 천국 가면 그만이지. 개인적으로 땅을 꼭 받아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 충성한 것만큼 개개인에게 상급이 주어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교회만 왔다갔다 하고, 어떤 사람은 전도하고 충성하며 교회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애통하며 간구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생명을 잃기까지 헌신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렇게 각기 다르게 충성하였는데 똑같은 집에, 똑같은 상급을 주신다면 하나님을 어찌 '공평하시며 공의로우시다'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공평하시기에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바로 자신을 낮추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덕을 갖춰 온유함을 이룬 사람이 영혼 구원과 사명 감당에 최선을 다했으니 하늘나라에서 넓은 땅을 주어, 큰 집을 지을 수 있는 터전을 주시지요. 온유하여 많은 사람을 품고 천국에 이르게 하였으니, 천국에서도 그들이 감사하여 함께 사랑을 나누려고 방문할 텐데, 많은 사람을 맞을 집터도 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마음 중심에서 존경하고 깃들이는 것이 천국에서는 큰 권세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낮아지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기고 희생하였지만, 하늘나라에선 '큰 자'의 권세를 누리며, 큰 땅을 소유하게 되지요. 이렇게 주어진 넓은 땅에 이 세상에서 충성으로, 봉사로, 헌금으로 드려진 천국 집의 재료를 가지고, 우리 주님의 지휘 아래 멋지고 아름다운 내 집이 지어집니다. 이 넓은 땅에 정원과 호수, 수영장 등 각종 시설물을 짓게 되지요. 그러나 한 번 받은 천국 땅과 상급은 천국에서 더 이상 늘릴 수도, 나누어 줄 수도, 구입할 수도 없습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사랑과 덕으로 많은 사람을 품어 천국에서 큰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온유한 마음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악이 없는 선한 마음으로 상대를 따뜻하게 품어 줄 수 있는 마음이다.
② 사랑과 덕이 있는 아름답고 선한 마음이다.
③ 온유한 사람의 마음은 돌과 같이 단단하다.
④ 온유한 자는 천국의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2. 부드럽고 온화한 온유한 마음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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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옥토밭'이란?
땅이 고르고 비옥하여 씨를 뿌리면 싹이 자라 30배, 60배, 100배로 열매를 내는 밭이다. 이러한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자기 의와 틀에 매여 있는 단단한 길가밭과 같지 않고 부드럽다. 또 돌이나 가시떨기 즉 비진리나 육신의 생각이 없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으며, 하나님 말씀이라면 오직 아멘과 예로 순종하기에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유한 마음과, 온유함을 온전케 하는 덕이란 무엇인지 알아 온유한 사람이 받는 축복을 받게 한다.
세종대왕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훌륭한 성군으로, 찬란한 민족문화를 꽃피웠습니다. 훈민정음 창제를 비롯하여 과학과 기술의 혁명적인 발전을 이루었고, 의약기술과 음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토 확장 등 모든 분야에 걸쳐 국가의 기틀을 마련했지요.
이처럼 세종대왕이 큰 업적을 이룰 수 있었던 데는 무엇보다도 사랑과 덕으로 어진 정치를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변에 훌륭한 인재들이 깃들일 수 있었고,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후대에까지 이름이 빛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유한 자에게 어떠한 복을 내려주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온유한 자란?
마태복음 5장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했습니다. 사전에 보면 '온유'에 대해 '성격이 온화하고 부드러움, 유순함,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듦'이라 정의합니다. 세상에서는 성품이 순해서 쉽게 화를 내지 않거나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고, 또 소극적이고 유약한 사람이나 친절하게 남의 얘기를 들어주면 '온유하다'고 합니다.
마음속에는 미움이 있고 불편하여도 겉으로 표현하지 않고 다투지 않으며, 화가 나지만 꾹꾹 눌러 참고, 따져 묻고 싶지만 겉으론 상대에게 양보하며 부드럽게 대하면 '착하다. 온유하다.' 말하지요. 그러나 이렇게 겉모습만 그럴 듯하게 온유한 것으로는 하나님께 인정을 받지 못합니다.
마음에 어떤 불편함도, 싫어함도 없이 선한 마음으로 상대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품어 줄 수 있어야 온유하다고 인정해 주시지요. 악한 감정을 품지 않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상대의 기쁜 일에 함께 기뻐하며 슬픈 일에 함께 슬퍼하고 위로가 되어 주는 마음이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기 생각과 교양에 맞지 않고, 내 성격과 취향에 맞지 않아도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품습니다. 악으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않으며 매사에 상대의 입장에서 이해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섬겨 주는 포근한 마음이지요. 이런 온유한 마음은 '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솜에 단단한 물체나 돌멩이를 던지면 소리 나지 않고 포근히 감싸 안습니다.
반면 단단한 철판에 돌을 던지면 요란하고 튕겨져 나가지요. 또 유리에 돌을 던지면 "쨍!" 하고 깨져 버립니다. 따라서 온유한 마음은 솜같이 포근하고 따뜻하여 모든 사람을 품어 주는 마음입니다. 악한 사람도, 나를 찌르는 사람도 억지로가 아닌 사랑으로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이지요. 이런 부드럽고 온화한 마음에 '덕'을 겸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온전한 온유'의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2. 온유함을 온전케 하는 '덕'
'덕'이란 사전에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 마음이 올바르고 사람의 도리에 합당한 일, 인격이 갖추어져 남을 정복시키는 일'이라 설명합니다. 영적 의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따뜻하고 부드러운 심성을 가졌다 해도 덕이 없으면 온유함의 가치를 온전히 발휘하지 못합니다.
가령, 마음은 따뜻하고 사랑이 있지만 행동이 거칠고 실수가 많으면 사람들이 깃들지 않습니다. 어떤 이는 성격이 너무 소극적이어서 남들에게 답답함을 주고, 어떤 사람은 말이 많고 떠들며, 농담을 잘하여 신뢰가 떨어지지요. 대놓고 무시하지는 않지만 상대가 말하고 있는데, 딴청하거나 경청하지 않는 사람도 있지요. 이처럼 덕이 없으므로 온유한 마음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온유함이 마음에 이룬 내면적인 것이라면 덕은 외면적인 옷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멋지고 훌륭한 사람이라도 지저분하고 남루하게 옷을 입고 있으면 사람들이 그 가치를 몰라 주고, 지나칠 수밖에 없지요. 덕을 갖춘 온유함은 마음과 함께 말이나 행동, 모습도 사람들에게 본이 됩니다. 그래서 주변에서 신뢰와 인정을 받으며, 사람들을 치리함에 있어서도 물리적인 힘이 아닌 사랑으로 포용하고 이끌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깃들지요.
이렇게 덕을 갖춘 온유함은 내가 선하게 행동하여 상대를 품는 것뿐만 아니라, 꽃향기에 나비와 벌이 모여들듯 많은 사람들이 그 선과 사랑에 감동을 얻고 깃들이게 됩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얼마나 온유한 마음이 되셨는지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여 내가 있는 곳에 소리가 나고 화평이 깨어지지는 않습니까? 만일 모임에 불평하고 고집스런 사람이 있어서 화평이 깨진다고 생각한다면, 내가 먼저 온유한 사람이 되어 그들에게 은혜를 끼치며 감동을 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가족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 때문에 불화하고, 아내 때문에 눈치를 봐야 한다 하지 말고, 내가 가족에게 미소가 되기 위해 노력해 보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연약하고 악을 행하는 사람이 있어도 외면하지 말고 끝까지 바라봐 줘야 합니다. 또 권면이나 지적을 받을 때 기쁘게 수용하여 자신을 돌아보며 발전시키는 모습이십니까? 나보다 못한 사람이 말을 해도 중심에서 귀히 여기며 감사하게 받으시는지요? 이런 사람은 어린 소자의 말이라도 귀 기울여 들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능력이 부족하여 실수하는 사람이라도 무시하거나 싫어하지 않고 기다려 주고 계십니까? 다투지 않고, 부드럽고 잔잔하며 쓸데없는 허탄한 말도 하지 않고 꼭 필요한 진리의 말만 내고 계신지요? 온전한 온유를 이룬 사람은 어떤 사람과도 걸림이 되지 않고, 상대의 부족함을 이해하고 포용함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얻을뿐더러 변화시켜 나갑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기뻐하시는 온유함을 이루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열심히 마음밭을 개간해야 합니다. 거친 밭에서 돌을 골라내고 가시떨기도 뽑아내야지요. 불필요한 것을 걸러내고 거름도 주면서 개간하면 옥토밭이 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마음에서 미움, 시기, 질투, 다툼, 판단, 정죄, 교만 등 비진리,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면 온유한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온유한 사람에게 임하는 축복
본문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했습니다. 기업이란 "선대로부터 이어오는 재산과 사업 또는 기초가 되는 업"을 말합니다. 그러면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온유한 자에게 이 세상에 속한 땅을 기업으로 주신다는 말씀일까요? 아닙니다. 영원한 천국의 땅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혹자는 "구원받아 천국 가면 그만이지. 개인적으로 땅을 꼭 받아야 하나?"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 충성한 것만큼 개개인에게 상급이 주어집니다. 예를 들어, 어떤 이는 교회만 왔다갔다 하고, 어떤 사람은 전도하고 충성하며 교회를 위해, 성도들을 위해 애통하며 간구했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생명을 잃기까지 헌신하는 사람도 있지요. 이렇게 각기 다르게 충성하였는데 똑같은 집에, 똑같은 상급을 주신다면 하나님을 어찌 '공평하시며 공의로우시다' 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공평하시기에 우리가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바로 자신을 낮추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며 덕을 갖춰 온유함을 이룬 사람이 영혼 구원과 사명 감당에 최선을 다했으니 하늘나라에서 넓은 땅을 주어, 큰 집을 지을 수 있는 터전을 주시지요. 온유하여 많은 사람을 품고 천국에 이르게 하였으니, 천국에서도 그들이 감사하여 함께 사랑을 나누려고 방문할 텐데, 많은 사람을 맞을 집터도 커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많은 사람이 마음 중심에서 존경하고 깃들이는 것이 천국에서는 큰 권세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낮아지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기고 희생하였지만, 하늘나라에선 '큰 자'의 권세를 누리며, 큰 땅을 소유하게 되지요. 이렇게 주어진 넓은 땅에 이 세상에서 충성으로, 봉사로, 헌금으로 드려진 천국 집의 재료를 가지고, 우리 주님의 지휘 아래 멋지고 아름다운 내 집이 지어집니다. 이 넓은 땅에 정원과 호수, 수영장 등 각종 시설물을 짓게 되지요. 그러나 한 번 받은 천국 땅과 상급은 천국에서 더 이상 늘릴 수도, 나누어 줄 수도, 구입할 수도 없습니다. 마음을 깨끗이 하고 사랑과 덕으로 많은 사람을 품어 천국에서 큰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온유한 마음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악이 없는 선한 마음으로 상대를 따뜻하게 품어 줄 수 있는 마음이다.
② 사랑과 덕이 있는 아름답고 선한 마음이다.
③ 온유한 사람의 마음은 돌과 같이 단단하다.
④ 온유한 자는 천국의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2. 부드럽고 온화한 온유한 마음을 무엇에 비유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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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옥토밭'이란?
땅이 고르고 비옥하여 씨를 뿌리면 싹이 자라 30배, 60배, 100배로 열매를 내는 밭이다. 이러한 마음 밭을 가진 사람은 자기 의와 틀에 매여 있는 단단한 길가밭과 같지 않고 부드럽다. 또 돌이나 가시떨기 즉 비진리나 육신의 생각이 없기 때문에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으며, 하나님 말씀이라면 오직 아멘과 예로 순종하기에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다.
2012-11-02
제44과팔복(2) -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4
읽을말씀 : 마 5:4 | 외울말씀 : 마 5:4 l 참고 말씀:살전 5:16~18
교육목표 : 육적인 애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애통을 함으로 하나님의 위로와 상급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사람들은 삶이 버겁고 힘이 들 때 한탄하여 슬피 울며 애통합니다. 이런 육적인 애통은 하나님께 위로 받지도 못할뿐더러 복을 받지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애통할 때 기뻐하시지요. 마태복음 5장 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며, 자신의 성결을 위해 애통할 때 위로하시고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1. 자신의 슬픔 속에서 나오는 육적인 애통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가 가난해서 서글프고, 병약하고 무능해서 한탄합니다. 또 내 뜻대로 일이 되지 않고, 자녀가 말썽을 부리고, 남편이나 아내가 맘에 들지 않아서 불만입니다.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사랑받지 못하니 눈물을 흘리며 속상해하지요. 이는 육의 사람들이 하는 육적인 애통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상관없고 위로받거나 축복이 임하지도 않지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괴롭고 슬픈 일을 당해도 기뻐하고,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난 기뻐할 것이 없는데요. 근심거리가 가득한데 어떻게 기뻐합니까?"라고 반문하실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을 약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슬퍼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감정에서 나오는 슬픔으로 애통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시지요. 오직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영적인 애통을 원하십니다.
2.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영적인 애통
1) 회개의 애통을 합니다
우리가 처음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사실을 깨닫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통회자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애통이지요. 성도님들 중에는 부흥성회 때 말씀을 들으면서 지난날 자신의 죄가 떠올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대성통곡하며 회개했다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회개의 애통을 하고도 시간이 지나면서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기뻐하라는 말씀을 듣고 어떤 상황에서도 짜증 내지 말고 웃으며 기뻐해야지 해 놓고도, 상대가 기분 나쁜 얘기를 하니까 싸우며 화를 내고 말지요. 이렇게 말씀대로 살지 못하였을 때, 죄악이 발견될 때 애통하며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불같이 기도하고 금식하여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려고 노력해 갈 때, 그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십니다.
2) 사명 감당을 못했을 때 회개의 애통을 합니다
만일 내가 직분자요 일꾼인데 기도하지 않고,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지 못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구역장으로서, 기관장으로서 심방하고 전도하며 맡은 분야에서 열매를 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면 회개의 애통을 해야지요.
마태복음 25장에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장사하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주인에게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무서운 책망을 들었습니다. 나는 사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해 감당했는지, 혹여 게으르거나 나태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며 부족한 것이 발견되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사명을 맡으면 책임이 따르고 열심히 하지 못하면, 회개거리가 생기니 사명을 맡지 말고 그냥 교회만 열심히 다녀야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은혜를 갚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 봉사해야 합니다. 만일 사명을 맡고도 충성하지 못했다면,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중심으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참된 위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3) 형제가 사망의 길로 갈 때 사랑으로 애통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애통입니다.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뒤를, 슬피 울며 따르던 여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말씀하십니다(눅 23:28). 바로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사망으로 향해 가는 사람들을 위해 애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범죄하여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불쌍하고 긍휼한 마음으로 내가 대신하여 회개하며, 상대가 진리로 행할 수 있도록 애통하여 기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시험에 들어 힘을 잃고 있을 때 권면해 주며 힘을 실어 주되, 자신의 일과 같이 애통하며 기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크게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을 때 그들을 대신하여 회개하며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자비를 구했습니다(출 32:32). 순종 잘하는 사랑스러운 백성도 아니고, 늘 원망 불평하며 모세를 힘들게 하는 백성이었지만 모세는 그들을 대신하여 회개하며 애통하였던 것입니다.
4) 영혼 구원을 위해 애통합니다
가족, 일가친척, 이웃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면 그들의 구원을 위해 애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나아가 멸망으로 가는 무수한 영혼들을 위해 애통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라와 민족에 대한 애통, 교계에 대한 애통,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는 일들에 대해 애통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 앞에 영적인 애통입니다.
온 인류를 위해 흘리신 주님의 피 값을 찾아 드리기 위해 애통해한다면, 하나님께서 위로하시며 하늘나라에서 큰 자로 높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명예와 권세, 건강을 위해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영혼 구원을 위해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며 애통해하지요.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 숱한 고난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받는 고난으로 인해 힘들어하거나 애통해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염려하고 애통해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영혼들을 위해서였습니다(고후 11:28). 바로 성도들이 말씀 가운데 서지 못할 때, 교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할 때였지요. 그러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큰 권능을 주셔서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게 하셨고, 하늘나라에서도 큰 자로 높이시며 위로해 주셨습니다.
3. 애통하는 자가 받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애통을 하면 반드시 위로와 응답을 주십니다(마 5:4). 회개의 애통을 하는 사람에게는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심으로 위로하시지요.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중심에서 회개할 때,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기시는 큰 은혜가 임합니다. 그러나 다시 죄악 가운데 살면 하나님의 은혜는 거두어지지요. 따라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되 또 다시 범죄하였다면 신속히 회개하는 애통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사명 감당을 위해 애통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애통함의 내용에 따라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응답해 주십니다. 가령, 가르치는 자로서 말씀의 권세와 담대함이 필요하다면, 그와 같은 능력을 주셔서 많은 영혼을 개종시키고 구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또 지혜와 명철이 필요하다면 세상 사람보다 더 뛰어나게 하시고 사명 감당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지요.
이 외에도 형제가 사망으로 가는 것을 볼 때, 영혼 구원을 위해, 교회와 나라, 세계 선교를 위해 애통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에 맞게 위로와 응답을 주십니다. 범죄했던 사람이 새롭게 거듭나고, 선한 일꾼을 보내 주셔서 교회가 부흥되며, 세계 선교를 활발히 이루게 하시지요. 이처럼 영적인 애통은 하늘에 상급이 될 뿐 아니라, 자신은 물론 하나님 나라에도 큰 유익이 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애통에 관한 것입니다.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세요.
첫째, ( )의 애통이 있다.
둘째, ( ) 감당을 못했을 때 회개의 애통을 한다.
셋째, 형제가 ( )의 ( )로 갈 때 애통한다.
넷째, ( ) 구원을 위해 애통한다.
2.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비관하며 육적인 애통을 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어떤 말씀으로 위로를 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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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달란트'란?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뜻한다. 주의 종, 장로, 성가대, 기관장, 구역장 등 자신이 받은 사명을 말한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주인은 종들에게 각각의 재능대로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주고 떠난다. 여기서 재능은 세상적인 재능이 아닌, 영적인 재능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믿음, 소망, 사랑을 의미한다.
믿음이 있으면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소망이 클수록 세상을 사랑치 않고 천국을 더 사모하게 된다. 또 사랑이 있으면 악한 자도 품고 변화되기까지 기다려 줄 수 있기에 믿음, 소망, 사랑은 영혼을 구원하는 데 꼭 필요한 재능이다.
교육목표 : 육적인 애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애통을 함으로 하나님의 위로와 상급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사람들은 삶이 버겁고 힘이 들 때 한탄하여 슬피 울며 애통합니다. 이런 육적인 애통은 하나님께 위로 받지도 못할뿐더러 복을 받지도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애통할 때 기뻐하시지요. 마태복음 5장 4절에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며, 자신의 성결을 위해 애통할 때 위로하시고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1. 자신의 슬픔 속에서 나오는 육적인 애통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처지가 가난해서 서글프고, 병약하고 무능해서 한탄합니다. 또 내 뜻대로 일이 되지 않고, 자녀가 말썽을 부리고, 남편이나 아내가 맘에 들지 않아서 불만입니다. 나를 인정해 주지 않고 사랑받지 못하니 눈물을 흘리며 속상해하지요. 이는 육의 사람들이 하는 육적인 애통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과 상관없고 위로받거나 축복이 임하지도 않지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항상 기뻐하라'는 것은 괴롭고 슬픈 일을 당해도 기뻐하고, 핍박과 환난 속에서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난 기뻐할 것이 없는데요. 근심거리가 가득한데 어떻게 기뻐합니까?"라고 반문하실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을 약속받은 하나님의 자녀는 슬퍼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감정에서 나오는 슬픔으로 애통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으시지요. 오직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영적인 애통을 원하십니다.
2.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한 영적인 애통
1) 회개의 애통을 합니다
우리가 처음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사실을 깨닫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통회자복합니다. 이것이 바로 회개의 애통이지요. 성도님들 중에는 부흥성회 때 말씀을 들으면서 지난날 자신의 죄가 떠올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대성통곡하며 회개했다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회개의 애통을 하고도 시간이 지나면서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기뻐하라는 말씀을 듣고 어떤 상황에서도 짜증 내지 말고 웃으며 기뻐해야지 해 놓고도, 상대가 기분 나쁜 얘기를 하니까 싸우며 화를 내고 말지요. 이렇게 말씀대로 살지 못하였을 때, 죄악이 발견될 때 애통하며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며 불같이 기도하고 금식하여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려고 노력해 갈 때, 그 모습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위로해 주십니다.
2) 사명 감당을 못했을 때 회개의 애통을 합니다
만일 내가 직분자요 일꾼인데 기도하지 않고,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지 못했다면 회개해야 합니다. 구역장으로서, 기관장으로서 심방하고 전도하며 맡은 분야에서 열매를 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면 회개의 애통을 해야지요.
마태복음 25장에 한 달란트 받은 자는 장사하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있다가 주인에게 '바깥 어두운 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이를 갊이 있으리라'는 무서운 책망을 들었습니다. 나는 사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최선을 다해 감당했는지, 혹여 게으르거나 나태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며 부족한 것이 발견되면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사명을 맡으면 책임이 따르고 열심히 하지 못하면, 회개거리가 생기니 사명을 맡지 말고 그냥 교회만 열심히 다녀야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그 은혜를 갚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 봉사해야 합니다. 만일 사명을 맡고도 충성하지 못했다면, 하나님께 죄송한 마음으로 중심으로 회개하여 하나님의 참된 위로를 받아야 하겠습니다.
3) 형제가 사망의 길로 갈 때 사랑으로 애통합니다
여기서부터는 나를 위한 기도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애통입니다. 온 인류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의 뒤를, 슬피 울며 따르던 여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말씀하십니다(눅 23:28). 바로 주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고 사망으로 향해 가는 사람들을 위해 애통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범죄하여 사망의 길로 가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 불쌍하고 긍휼한 마음으로 내가 대신하여 회개하며, 상대가 진리로 행할 수 있도록 애통하여 기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시험에 들어 힘을 잃고 있을 때 권면해 주며 힘을 실어 주되, 자신의 일과 같이 애통하며 기도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모세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크게 범죄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샀을 때 그들을 대신하여 회개하며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자비를 구했습니다(출 32:32). 순종 잘하는 사랑스러운 백성도 아니고, 늘 원망 불평하며 모세를 힘들게 하는 백성이었지만 모세는 그들을 대신하여 회개하며 애통하였던 것입니다.
4) 영혼 구원을 위해 애통합니다
가족, 일가친척, 이웃이 지옥으로 가고 있다면 그들의 구원을 위해 애통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나아가 멸망으로 가는 무수한 영혼들을 위해 애통해야 합니다. 우리가 나라와 민족에 대한 애통, 교계에 대한 애통,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는 일들에 대해 애통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 앞에 영적인 애통입니다.
온 인류를 위해 흘리신 주님의 피 값을 찾아 드리기 위해 애통해한다면, 하나님께서 위로하시며 하늘나라에서 큰 자로 높여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은 나의 명예와 권세, 건강을 위해서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영혼 구원을 위해 간절히 눈물로 기도하며 애통해하지요.
사도 바울은 복음 전파를 위해 숱한 고난과 핍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받는 고난으로 인해 힘들어하거나 애통해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염려하고 애통해한 것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영혼들을 위해서였습니다(고후 11:28). 바로 성도들이 말씀 가운데 서지 못할 때, 교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지 못할 때였지요. 그러했기에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큰 권능을 주셔서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게 하셨고, 하늘나라에서도 큰 자로 높이시며 위로해 주셨습니다.
3. 애통하는 자가 받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애통을 하면 반드시 위로와 응답을 주십니다(마 5:4). 회개의 애통을 하는 사람에게는 죄 사함의 은혜를 주심으로 위로하시지요.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중심에서 회개할 때, 지옥에서 천국으로 옮기시는 큰 은혜가 임합니다. 그러나 다시 죄악 가운데 살면 하나님의 은혜는 거두어지지요. 따라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노력하되 또 다시 범죄하였다면 신속히 회개하는 애통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사명 감당을 위해 애통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애통함의 내용에 따라 필요로 하는 모든 것을 응답해 주십니다. 가령, 가르치는 자로서 말씀의 권세와 담대함이 필요하다면, 그와 같은 능력을 주셔서 많은 영혼을 개종시키고 구원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또 지혜와 명철이 필요하다면 세상 사람보다 더 뛰어나게 하시고 사명 감당을 잘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심으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지요.
이 외에도 형제가 사망으로 가는 것을 볼 때, 영혼 구원을 위해, 교회와 나라, 세계 선교를 위해 애통할 때도 하나님께서는 그에 맞게 위로와 응답을 주십니다. 범죄했던 사람이 새롭게 거듭나고, 선한 일꾼을 보내 주셔서 교회가 부흥되며, 세계 선교를 활발히 이루게 하시지요. 이처럼 영적인 애통은 하늘에 상급이 될 뿐 아니라, 자신은 물론 하나님 나라에도 큰 유익이 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애통에 관한 것입니다.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세요.
첫째, ( )의 애통이 있다.
둘째, ( ) 감당을 못했을 때 회개의 애통을 한다.
셋째, 형제가 ( )의 ( )로 갈 때 애통한다.
넷째, ( ) 구원을 위해 애통한다.
2.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비관하며 육적인 애통을 하는 사람에게 당신은 어떤 말씀으로 위로를 해 주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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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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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 넘어 갑시다!
'달란트'란?
각자에게 주어진 사명을 뜻한다. 주의 종, 장로, 성가대, 기관장, 구역장 등 자신이 받은 사명을 말한다. 마태복음 25장에 보면 주인은 종들에게 각각의 재능대로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를 주고 떠난다. 여기서 재능은 세상적인 재능이 아닌, 영적인 재능으로 영혼을 구원하는 데 필요한 믿음, 소망, 사랑을 의미한다.
믿음이 있으면 담대히 복음을 전할 수 있고, 소망이 클수록 세상을 사랑치 않고 천국을 더 사모하게 된다. 또 사랑이 있으면 악한 자도 품고 변화되기까지 기다려 줄 수 있기에 믿음, 소망, 사랑은 영혼을 구원하는 데 꼭 필요한 재능이다.
2012-10-26
제43과팔복(1) -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3
읽을말씀 : 마 5:3 | 외울말씀 : 마 5:3 l 참고 말씀:요일 2:15~16
교육목표 :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알아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세상 사람들은 부유하고 명예와 권세가 있으며, 자녀들이 효도하고 건강하며 가족이 화목하면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복'을 모두 누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물질이 많아도 건강을 잃어 걱정하고, 명예 권세가 있지만 가정이 불화하여 속상해합니다. 또 불의의 사고를 당해 비참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설령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다 해도 죽으면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지 않고, 이 땅에서 먹고 마시며 잘 사는 것에만 삶의 목표를 둔다면 무서운 지옥에 떨어지고 말지요. 그러니 이 땅에서의 '복'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참된 복은 과연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란?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가난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부유한 것이 좋지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여기서 '가난하다'는 것은 물질이 없어 가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것을 뜻하지요. 다시 말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악이 없고 선한 마음으로, 아무 욕심이 없어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중심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심령을 채울 영의 것을 사모하기에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전도해도 쉽게 받아들이고, 말씀을 들으면 그대로 순종하니 구원받기도 쉽지요. 그런데 마음이 부유한 사람들은 세상 욕심으로 그 마음이 가득 차 있어 전도를 하면 거부합니다. "사업이 바빠서요. 공부해야 해요. 돈 벌어야 해요. 나중에 한가해지면 갈게요." 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부, 명예, 권세로 그 눈과 마음이 가득 차 있으니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를 보여 주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심령이 부유한 부자와 심령이 가난한 거지 나사로가 대조적으로 나옵니다. 부자는 호의호식하며 날마다 잔치를 베풀 정도로 풍족한 삶을 살았기에 마음까지 부요해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비록 부자의 대문 앞에서 구걸하며, 그 상처를 개가 핥는 불쌍한 삶을 살았어도 심령이 가난했기에 하나님을 믿었지요.
그런데 두 사람이 죽은 후에는 형편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에 안겨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렸습니다. 반면 부자는 '아랫음부'에 떨어져 뜨거운 불꽃 가운데 고통 받으며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이라도 찍어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애걸합니다. 그러니 날마다 잔치를 즐겼던 부자와 비록 구걸하며 살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거지 나사로 중에서 진정 복 있는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은 거지 나사로이지요.
혹자는 "심령이 가난해지려면 그럼 거지 나사로처럼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비유는 거지와 같이 가난한 삶을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영원한 내세에서는 영생과 영벌이 있기에, 우리가 영생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가난한 심령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심령이 되어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녀들에게 이 땅에서도 건강의 복, 물질의 복, 머리 되는 복 등 만사형통의 복을 주십니다. 또한 어떤 부귀영화와도 바꿀 수 없는 참되고 영원한 복, 곧 천국을 주시지요.
2. 가난한 심령이 되어 천국을 소유하려면
1)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말씀합니다. 우리는 세상 것들로 채워 있던 우리 마음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천국의 소망으로 온전히 채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육신의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이란 죄를 지으려는 마음의 속성이지요. 다시 말해 '죄를 짓고 싶은 마음'입니다. 마음속에 미움, 혈기, 욕심, 음욕, 시기, 교만 등 온갖 악이 있으면 죄를 짓고 싶어지지요. 예를 들어, 초신자가 술을 끊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술을 마시고 싶다는 마음을 온전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술자리에 가면 술을 마시고 싶은 강한 욕구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육신의 정욕이 사람을 충동하여 술을 마시려는 마음을 갖게 하고 술을 마시도록 만듭니다. 또 판단 정죄하는 죄성이 있으면 남의 소문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수군수군합니다.
다음으로, 안목의 정욕을 차단해야 합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통해 마음이 동요되고 육의 것들을 추구하게 만드는 속성을 말합니다. 눈이 있어 보고 귀가 있어 들으며 발이 있어 간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며 어디에 있는지가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 번 스쳐가며 본 것이라 해도, 아무 의미 없이 보고 들었다 해도 그것이 느낌으로 입력되어 다시 떠오르기도 하고, 또 보고 싶고 취하고 싶어집니다. 문제는 이렇게 보고 듣고 접한 것들이 죄에 속한 것, 어둠에 속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가령, 음란물을 한 번 봤는데 그것이 공부를 방해하며 또 보고 싶어집니다. 이처럼 안목의 정욕은 내 안에 비진리를 발동시킴으로 육신의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주범이 됩니다. 그러니 진리가 아니면 보거나 듣지도 말고 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이생의 자랑은 현실의 모든 향락을 좇아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자랑하는 속성입니다. 이생의 자랑이 있으면 자신이 가진 것, 부, 명예, 권세, 재능, 외모, 지식 등을 자랑하며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야고보서 4장 16절에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말씀하지요. 이생의 자랑이 있으면 자신이 가진 것으로 남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교만이 나옵니다. 이는 가난한 심령인 섬김, 희생, 사랑과는 거리가 먼, 마음이 부유한 모습이지요. 그러니 천국의 아름다움과 소망은 없고 이 세상 것들이 더 좋아 보이고 가치 있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기도 싫고 그저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 쭉정이 신앙생활에 머무르지요.
혹여 여러분은 나를 자랑하고 싶고 세상 것에 욕심은 있지는 않는지, 은근히 인정받고 높여 주기를 바라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울 때,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2)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3절에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영적인 어린아이의 모습은 단순하고 순수하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알려 주면 쉽게 받아들이고 자존심이나 자기 고집이 없어 지적을 하거나 권면을 하여도 쉽게 인정하지요. 잘못한 것에 대해 바로 뉘우치고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힘씁니다. 그러나 세상에 물들어 순수함이 사라지면 죄를 범하면서도 무감각해지고 권면을 받아도 인정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죄책감도 없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에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지어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기도 하지요.
또한 영적인 어린아이는 선악 간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선한 것을 보면 쉽게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지만 악은 몸서리치도록 싫어하지요. 하나님께서 악이라 하시면 마음에서부터 싫어지고 어찌하든 범죄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성령님을 통해 신속히 변화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지요.
이렇게 가난한 심령이 되기 위해서 항상 겸손히 낮아지고, 말씀을 통해 자신의 악을 발견하며, 불같은 기도를 통해 죄악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 자녀가 되어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이 땅에서도 부와 명예, 건강, 물질 등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로 맞는 것을 고르시오.
① 물질이 없어 가난한 것을 말한다.
② 심령이 가난하면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③ '악이 없고 선한 마음으로, 아무 욕심이 없어서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중심' 상태를 말한다.
④ 마음이 부유한 자가 복음도 잘 받아들인다.
2.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세요.
가난한 심령으로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받으려면 첫째, ( )의 정욕, ( )의 정욕, ( )의 자랑을 버려야 한다. 둘째, 영적인 ( )가 되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지옥의 대기 장소인 '아랫음부'
창세 이래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이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 형벌을 받으며 머무는 장소이다. 이들은 인간 경작이 마쳐지고 백보좌 대심판 후에 죄의 경중에 따라 마침내 지옥의 불못이나 유황못으로 떨어진다.
교육목표 :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를 알아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받을 수 있게 한다.
세상 사람들은 부유하고 명예와 권세가 있으며, 자녀들이 효도하고 건강하며 가족이 화목하면 복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복'을 모두 누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물질이 많아도 건강을 잃어 걱정하고, 명예 권세가 있지만 가정이 불화하여 속상해합니다. 또 불의의 사고를 당해 비참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설령 한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다 해도 죽으면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준비를 하지 않고, 이 땅에서 먹고 마시며 잘 사는 것에만 삶의 목표를 둔다면 무서운 지옥에 떨어지고 말지요. 그러니 이 땅에서의 '복'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참된 복은 과연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5장에 나오는 팔복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심령이 가난한 자란?
마태복음 5장 3절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가난을 좋아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부유한 것이 좋지요.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시는 것일까요? 여기서 '가난하다'는 것은 물질이 없어 가난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마음이 가난한 것을 뜻하지요. 다시 말해,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악이 없고 선한 마음으로, 아무 욕심이 없어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중심 상태'를 말합니다.
이렇게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심령을 채울 영의 것을 사모하기에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전도해도 쉽게 받아들이고, 말씀을 들으면 그대로 순종하니 구원받기도 쉽지요. 그런데 마음이 부유한 사람들은 세상 욕심으로 그 마음이 가득 차 있어 전도를 하면 거부합니다. "사업이 바빠서요. 공부해야 해요. 돈 벌어야 해요. 나중에 한가해지면 갈게요." 합니다. 이렇게 세상의 부, 명예, 권세로 그 눈과 마음이 가득 차 있으니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를 보여 주어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심령이 부유한 부자와 심령이 가난한 거지 나사로가 대조적으로 나옵니다. 부자는 호의호식하며 날마다 잔치를 베풀 정도로 풍족한 삶을 살았기에 마음까지 부요해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거지 나사로는 비록 부자의 대문 앞에서 구걸하며, 그 상처를 개가 핥는 불쌍한 삶을 살았어도 심령이 가난했기에 하나님을 믿었지요.
그런데 두 사람이 죽은 후에는 형편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나사로는 아브라함 품에 안겨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렸습니다. 반면 부자는 '아랫음부'에 떨어져 뜨거운 불꽃 가운데 고통 받으며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이라도 찍어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애걸합니다. 그러니 날마다 잔치를 즐겼던 부자와 비록 구걸하며 살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거지 나사로 중에서 진정 복 있는 사람은 누구이겠습니까? 하나님을 믿은 거지 나사로이지요.
혹자는 "심령이 가난해지려면 그럼 거지 나사로처럼 가난하게 살아야 합니까?"라고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비유는 거지와 같이 가난한 삶을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영원한 내세에서는 영생과 영벌이 있기에, 우리가 영생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가난한 심령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심령이 되어 말씀대로 살아가는 자녀들에게 이 땅에서도 건강의 복, 물질의 복, 머리 되는 복 등 만사형통의 복을 주십니다. 또한 어떤 부귀영화와도 바꿀 수 없는 참되고 영원한 복, 곧 천국을 주시지요.
2. 가난한 심령이 되어 천국을 소유하려면
1)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온 것이라" 말씀합니다. 우리는 세상 것들로 채워 있던 우리 마음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천국의 소망으로 온전히 채워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육신의 정욕을 버려야 합니다.
육신의 정욕이란 죄를 지으려는 마음의 속성이지요. 다시 말해 '죄를 짓고 싶은 마음'입니다. 마음속에 미움, 혈기, 욕심, 음욕, 시기, 교만 등 온갖 악이 있으면 죄를 짓고 싶어지지요. 예를 들어, 초신자가 술을 끊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술을 마시고 싶다는 마음을 온전히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술자리에 가면 술을 마시고 싶은 강한 욕구가 일어납니다. 이러한 육신의 정욕이 사람을 충동하여 술을 마시려는 마음을 갖게 하고 술을 마시도록 만듭니다. 또 판단 정죄하는 죄성이 있으면 남의 소문을 듣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며 수군수군합니다.
다음으로, 안목의 정욕을 차단해야 합니다.
안목의 정욕이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을 통해 마음이 동요되고 육의 것들을 추구하게 만드는 속성을 말합니다. 눈이 있어 보고 귀가 있어 들으며 발이 있어 간다 하지만,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으며 어디에 있는지가 우리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 번 스쳐가며 본 것이라 해도, 아무 의미 없이 보고 들었다 해도 그것이 느낌으로 입력되어 다시 떠오르기도 하고, 또 보고 싶고 취하고 싶어집니다. 문제는 이렇게 보고 듣고 접한 것들이 죄에 속한 것, 어둠에 속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가령, 음란물을 한 번 봤는데 그것이 공부를 방해하며 또 보고 싶어집니다. 이처럼 안목의 정욕은 내 안에 비진리를 발동시킴으로 육신의 정욕을 불러일으키는 주범이 됩니다. 그러니 진리가 아니면 보거나 듣지도 말고 가지도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이생의 자랑'을 버려야 합니다.
이생의 자랑은 현실의 모든 향락을 좇아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자랑하는 속성입니다. 이생의 자랑이 있으면 자신이 가진 것, 부, 명예, 권세, 재능, 외모, 지식 등을 자랑하며 드러내고 싶어합니다. 야고보서 4장 16절에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말씀하지요. 이생의 자랑이 있으면 자신이 가진 것으로 남을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교만이 나옵니다. 이는 가난한 심령인 섬김, 희생, 사랑과는 거리가 먼, 마음이 부유한 모습이지요. 그러니 천국의 아름다움과 소망은 없고 이 세상 것들이 더 좋아 보이고 가치 있게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기도 싫고 그저 교회만 왔다갔다 하는 쭉정이 신앙생활에 머무르지요.
혹여 여러분은 나를 자랑하고 싶고 세상 것에 욕심은 있지는 않는지, 은근히 인정받고 높여 주기를 바라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세상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울 때, 천국의 소망으로 가득 채워 주십니다.
2)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8장 3절에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셨습니다.
영적인 어린아이의 모습은 단순하고 순수하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좋은 것을 알려 주면 쉽게 받아들이고 자존심이나 자기 고집이 없어 지적을 하거나 권면을 하여도 쉽게 인정하지요. 잘못한 것에 대해 바로 뉘우치고 말씀대로 살아가고자 힘씁니다. 그러나 세상에 물들어 순수함이 사라지면 죄를 범하면서도 무감각해지고 권면을 받아도 인정하지 않으며 심지어는 죄책감도 없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에도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를 지어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기도 하지요.
또한 영적인 어린아이는 선악 간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선한 것을 보면 쉽게 감동받아 눈물을 흘리지만 악은 몸서리치도록 싫어하지요. 하나님께서 악이라 하시면 마음에서부터 싫어지고 어찌하든 범죄하지 않으려고 애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성령님을 통해 신속히 변화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지요.
이렇게 가난한 심령이 되기 위해서 항상 겸손히 낮아지고, 말씀을 통해 자신의 악을 발견하며, 불같은 기도를 통해 죄악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 자녀가 되어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이 땅에서도 부와 명예, 건강, 물질 등 축복을 받을 수 있는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로 맞는 것을 고르시오.
① 물질이 없어 가난한 것을 말한다.
② 심령이 가난하면 복음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③ '악이 없고 선한 마음으로, 아무 욕심이 없어서 자기를 비울 줄 아는 중심' 상태를 말한다.
④ 마음이 부유한 자가 복음도 잘 받아들인다.
2.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세요.
가난한 심령으로 천국을 소유하는 복을 받으려면 첫째, ( )의 정욕, ( )의 정욕, ( )의 자랑을 버려야 한다. 둘째, 영적인 ( )가 되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지옥의 대기 장소인 '아랫음부'
창세 이래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영혼들이 지옥으로 떨어지기 전 형벌을 받으며 머무는 장소이다. 이들은 인간 경작이 마쳐지고 백보좌 대심판 후에 죄의 경중에 따라 마침내 지옥의 불못이나 유황못으로 떨어진다.
2012-10-19
제42과성령의 열매(9) - 절제
갈 5:22~23
읽을말씀 : 갈 5:22~23 | 외울말씀 : 잠 25:28 l 참고 말씀:잠 16:32
교육목표 : 우리의 삶을 제어해 주며 온전케 하는 절제의 열매와 그 미덕에 대해 알아보고 성령의 열매를 온전히 맺게 한다.
한 기자가 파산한 사람과 크게 성공한 사업가를 인터뷰했습니다. 먼저, 파산한 사람에게 "실패의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자 그는 "낭비였습니다. 사업이 잘될 때 돈을 물 쓰듯 펑펑 썼더니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라고 하였지요. 이어 성공한 기업가에게 그 비결을 묻자 그는 "절제였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물 한 방울, 종이 한 장도 낭비하지 않고 금(金)처럼 소중하게 아껴 썼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무슨 일이든 너무 지나치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이처럼 절제의 열매는 우리의 삶을 제어해 주고 온전케 하는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1. 성령의 열매를 온전케 하는 절제
사전을 찾아보면 절제는 '정도에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함'이라고 정의합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어지럽게 하고 어려움을 자초합니다. 도박이나 향락에 빠진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하겠다."고 하지만, 절제하지 못하니 한 번이 두 번, 세 번이 되어 결국 패가망신하고 말지요.
잠언 16장 32절에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말씀했습니다. 절제의 힘이 약하면 자신을 제어하기가 힘듭니다. 뿐만 아니라, 죄를 버리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 이제는 육을 취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지만, 번번이 세상 유혹에 넘어가 버리지요. 그러나 절제를 잘하면 죄도 보다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에 속한 '절제'는 단순히 죄를 짓지 않도록 자기를 제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성령의 열매들이 온전해지도록 조절해 줍니다. '사랑'으로 시작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마지막 '절제'로 끝난 이유가 바로 그런 까닭에서입니다. 절제는 다른 성령의 열매에 비해 두드러진 특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알맞게 조절함으로 안정되고 단단하게 지탱해 주지요.
절제의 미덕은 삶의 질을 높여 주고 빛나게 하지만, 무절제한 행동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하나님 일을 한다면서 절제하지 못함으로 덕이 되지 않는 경우도 봅니다. 예컨대 저녁 모임이 정해진 시간에 끝나지 않는다면 다니엘철야 기도회 시간까지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시간을 경과하여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하나님 일을 한다는 것으로 자신을 합리화시키지요.
또 가정주부라면 가족들을 생각해야 하는데, 모임이 충만하고 은혜롭다고 하여 저녁 식사 때가 되었는데도 집에 가지 않습니다. 이처럼 자기를 제어하지 못하면 온 집에 충성도 할 수 없지요. 반면에 절제의 열매가 맺힌 사람은 아무리 사명이 많아도 무엇을 먼저 해야 하고 나중에 해야 할지, 앞으로 나가야 할지, 뒤로 물러서야 할지, 잠잠히 있어야 할지 분별할 줄 압니다.
2. 절제의 열매가 맺힌 사람의 미덕
첫째, 항상 질서를 좇아 행합니다
절제의 열매가 맺힌 사람은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가만히 있어야 할 때,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잘 분별하여 질서를 따릅니다. 그러니 누구와도 변론하거나 다투지 않고 오해 할 일이 없지요. 또한 격에 맞지 않는 일이나 분수에 지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절제하지 못하면 질서를 무너뜨리고 월권하는 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가령 선교회 회장이 총무에게 어떤 일을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총무가 너무 열정이 넘친 나머지 임의로 일을 변경해 버렸습니다. 총무는 일을 더 크게 이루었다는 데에만 의의를 둘 뿐 정작 자신이 질서를 깨뜨렸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지요.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요, 화평과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가정, 교회, 학교, 직장에서든 질서를 좇아 행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화평이 깨지는 곳에는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진리를 행할 때도 대상과 시기, 장소 등을 고려할 줄 압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라 했다고 해서 아무 데서나 큰 소리로 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 전도나 심방을 할 때도 믿음의 분량에 맞게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깊은 말씀을 초신자나 전도자에게 무분별하게 전한다면 그 영혼을 실족시킬 수도 있고, 판단 정죄하게 만들지요.
또한 바쁜 사람을 붙잡아 놓고 자신이 깨달은 말씀이나 은혜받은 체험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는 실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듣고는 있지만 초조하여 내용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지요. 그러므로 항상 상대의 상황을 잘 고려하고 지금 대화를 해도 좋을는지 다음에 해야 하는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도 시기에 맞지 않으면 은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 조급하지 않고 침착하며 일의 전후를 분별하여 대응합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급하고 경솔합니다. 서두르다 보면 분별력이 흐려져서 중요한 일들을 빠뜨리기도 하고 실수를 범하기 마련이지요. 또 상대의 말을 중간에 끊고 자신의 생각 속에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립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이 급하기 때문에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지 못합니다.
그러나 절제의 열매가 맺힌 사람은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을 뿐 아니라, 무슨 말을 듣고 쉽게 요동하지도 않습니다. 차분히 상대의 말을 듣고 성령의 역사 속에 진실을 분별할 수 있지요. 매사에 조급하지 않고 침착하면 남을 잘못 판단하지도 않을뿐더러 실수를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3. 절제의 열매를 맺으려면
첫째, 변개함 없는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즉 거짓이 없고 간사함이 없는 마음, 진실한 마음을 이루어야 하지요. 그러면 '내가 이렇게 해야겠다'고 할 때 그대로 행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런 마음을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일 하나에서부터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훈련을 쌓아가야 하지요.
작은 약속도 어기지 않고 지킬 때라야 큰 약속도 이행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지킬 때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고 변개함이 없는 마음이 되지요. 한 번 마음을 정했다면 자기 유익을 좇아 변개하지 말고 지켜 나가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 결국 정한 마음이 되고 절제의 능력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둘째, 범사에 앞서지 말고 성령의 소욕에 귀 기울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있는 비진리를 부지런히 버리고 말씀을 양식 삼아 나갈 때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습니다. 당장 내가 보기에 급한 것, 내가 보기에 좋은 것, 이런 것보다 먼저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고 노력해 나가야 하지요. 그래서 들은 성령의 음성과 주관대로 순종해서 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늘 성령의 소욕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해 나가는 훈련을 할수록 점점 더 세미한 것까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훈련이 될 때 진리대로 내가 그렇게 지켜야겠다 마음먹으면 지킬 수 있는 힘이 오지요. 기도도 내가 1시간 해야겠다면 1시간 하게 되고, 2시간 해야겠다면 2시간 하게 됩니다. 말씀 한 절 암송해야겠다, 한 장 이상 읽어야겠다고 하면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습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행할 때 늘 질서 가운데 조화롭게 행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 중 절제는 두드러진 특성이 없지만 약방에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즉 모든 약의 성질을 조화롭게 하여 약효를 잘 발휘하게 하는 감초처럼,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의 열매를 조절하여 온전케 해 주는 것이 바로 절제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들을 맺으면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범사에 형통하고 보장받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둔 세상에서 빛 된 권세와 능력을 행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지요. 여러분은 성령의 열매들을 맺기에 더욱 힘쓰심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탐스럽고 아름다운 최상품의 열매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절제의 열매가 맺힌 사람의 미덕으로 맞지 않는 것을 고르시오.
① 조급하지 않고 침착하며 일의 전후를 분별하여 대응한다.
② 진리를 행할 때도 대상과 시기, 장소 등을 고려한다.
③ 항상 질서를 좇아 행한다.
④ 주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무조건 넘치는 것이 좋다.
2.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 )는 단순히 죄를 짓지 않도록 자기를 제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 )의 열매들이 온전해지도록 ( )해 주는 역할을 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절제를 의미하는 '비취옥'
새 예루살렘 성곽의 열 번째 기초석인 비취옥은 반투명의 청록색 빛이 난다. 옛날 우리나라 여인들이 귀하게 여기던 보석으로 정숙함과 정결을 상징한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풍성하면 좋겠지만 질서를 따라 아름답게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제가 필요하다.
교육목표 : 우리의 삶을 제어해 주며 온전케 하는 절제의 열매와 그 미덕에 대해 알아보고 성령의 열매를 온전히 맺게 한다.
한 기자가 파산한 사람과 크게 성공한 사업가를 인터뷰했습니다. 먼저, 파산한 사람에게 "실패의 요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자 그는 "낭비였습니다. 사업이 잘될 때 돈을 물 쓰듯 펑펑 썼더니 결국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라고 하였지요. 이어 성공한 기업가에게 그 비결을 묻자 그는 "절제였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매며 물 한 방울, 종이 한 장도 낭비하지 않고 금(金)처럼 소중하게 아껴 썼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무슨 일이든 너무 지나치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이처럼 절제의 열매는 우리의 삶을 제어해 주고 온전케 하는 매우 중요한 덕목입니다.
1. 성령의 열매를 온전케 하는 절제
사전을 찾아보면 절제는 '정도에 넘지 않도록 알맞게 조절하여 제한함'이라고 정의합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삶을 어지럽게 하고 어려움을 자초합니다. 도박이나 향락에 빠진 사람들은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하겠다."고 하지만, 절제하지 못하니 한 번이 두 번, 세 번이 되어 결국 패가망신하고 말지요.
잠언 16장 32절에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말씀했습니다. 절제의 힘이 약하면 자신을 제어하기가 힘듭니다. 뿐만 아니라, 죄를 버리는 것 또한 쉽지 않습니다.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으면 이제는 육을 취하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지만, 번번이 세상 유혹에 넘어가 버리지요. 그러나 절제를 잘하면 죄도 보다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에 속한 '절제'는 단순히 죄를 짓지 않도록 자기를 제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다른 성령의 열매들이 온전해지도록 조절해 줍니다. '사랑'으로 시작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마지막 '절제'로 끝난 이유가 바로 그런 까닭에서입니다. 절제는 다른 성령의 열매에 비해 두드러진 특성은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알맞게 조절함으로 안정되고 단단하게 지탱해 주지요.
절제의 미덕은 삶의 질을 높여 주고 빛나게 하지만, 무절제한 행동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듭니다. 하나님 일을 한다면서 절제하지 못함으로 덕이 되지 않는 경우도 봅니다. 예컨대 저녁 모임이 정해진 시간에 끝나지 않는다면 다니엘철야 기도회 시간까지 지장을 줄 수 있습니다. 시간을 경과하여 여러 사람에게 피해를 주면서도 하나님 일을 한다는 것으로 자신을 합리화시키지요.
또 가정주부라면 가족들을 생각해야 하는데, 모임이 충만하고 은혜롭다고 하여 저녁 식사 때가 되었는데도 집에 가지 않습니다. 이처럼 자기를 제어하지 못하면 온 집에 충성도 할 수 없지요. 반면에 절제의 열매가 맺힌 사람은 아무리 사명이 많아도 무엇을 먼저 해야 하고 나중에 해야 할지, 앞으로 나가야 할지, 뒤로 물러서야 할지, 잠잠히 있어야 할지 분별할 줄 압니다.
2. 절제의 열매가 맺힌 사람의 미덕
첫째, 항상 질서를 좇아 행합니다
절제의 열매가 맺힌 사람은 자신이 나서야 할 때와 가만히 있어야 할 때, 해야 할 말과 해서는 안 될 말을 잘 분별하여 질서를 따릅니다. 그러니 누구와도 변론하거나 다투지 않고 오해 할 일이 없지요. 또한 격에 맞지 않는 일이나 분수에 지나는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절제하지 못하면 질서를 무너뜨리고 월권하는 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가령 선교회 회장이 총무에게 어떤 일을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총무가 너무 열정이 넘친 나머지 임의로 일을 변경해 버렸습니다. 총무는 일을 더 크게 이루었다는 데에만 의의를 둘 뿐 정작 자신이 질서를 깨뜨렸다는 것은 깨닫지 못하지요.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요, 화평과 질서의 하나님이십니다. 가정, 교회, 학교, 직장에서든 질서를 좇아 행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화평이 깨지는 곳에는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진리를 행할 때도 대상과 시기, 장소 등을 고려할 줄 압니다
부르짖어 기도하라 했다고 해서 아무 데서나 큰 소리로 한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밖에 없습니다. 또 전도나 심방을 할 때도 믿음의 분량에 맞게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영적인 깊은 말씀을 초신자나 전도자에게 무분별하게 전한다면 그 영혼을 실족시킬 수도 있고, 판단 정죄하게 만들지요.
또한 바쁜 사람을 붙잡아 놓고 자신이 깨달은 말씀이나 은혜받은 체험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는 실례를 범하지 않기 위해 듣고는 있지만 초조하여 내용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지요. 그러므로 항상 상대의 상황을 잘 고려하고 지금 대화를 해도 좋을는지 다음에 해야 하는지를 잘 분별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도 시기에 맞지 않으면 은혜가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셋째, 조급하지 않고 침착하며 일의 전후를 분별하여 대응합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급하고 경솔합니다. 서두르다 보면 분별력이 흐려져서 중요한 일들을 빠뜨리기도 하고 실수를 범하기 마련이지요. 또 상대의 말을 중간에 끊고 자신의 생각 속에 전혀 다른 결론을 내립니다. 뿐만 아니라, 마음이 급하기 때문에 주변을 주의 깊게 살피지 못합니다.
그러나 절제의 열매가 맺힌 사람은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을 뿐 아니라, 무슨 말을 듣고 쉽게 요동하지도 않습니다. 차분히 상대의 말을 듣고 성령의 역사 속에 진실을 분별할 수 있지요. 매사에 조급하지 않고 침착하면 남을 잘못 판단하지도 않을뿐더러 실수를 많이 줄일 수 있습니다.
3. 절제의 열매를 맺으려면
첫째, 변개함 없는 마음을 이루어야 합니다
즉 거짓이 없고 간사함이 없는 마음, 진실한 마음을 이루어야 하지요. 그러면 '내가 이렇게 해야겠다'고 할 때 그대로 행할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런 마음을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일 하나에서부터 자신의 마음을 지키는 훈련을 쌓아가야 하지요.
작은 약속도 어기지 않고 지킬 때라야 큰 약속도 이행할 수 있습니다. 사소한 것 하나라도 지킬 때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고 변개함이 없는 마음이 되지요. 한 번 마음을 정했다면 자기 유익을 좇아 변개하지 말고 지켜 나가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 쌓이면 결국 정한 마음이 되고 절제의 능력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둘째, 범사에 앞서지 말고 성령의 소욕에 귀 기울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에 있는 비진리를 부지런히 버리고 말씀을 양식 삼아 나갈 때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습니다. 당장 내가 보기에 급한 것, 내가 보기에 좋은 것, 이런 것보다 먼저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고 노력해 나가야 하지요. 그래서 들은 성령의 음성과 주관대로 순종해서 행해야 합니다. 이렇게 늘 성령의 소욕에 귀를 기울이며 순종해 나가는 훈련을 할수록 점점 더 세미한 것까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훈련이 될 때 진리대로 내가 그렇게 지켜야겠다 마음먹으면 지킬 수 있는 힘이 오지요. 기도도 내가 1시간 해야겠다면 1시간 하게 되고, 2시간 해야겠다면 2시간 하게 됩니다. 말씀 한 절 암송해야겠다, 한 장 이상 읽어야겠다고 하면 그대로 하는 것입니다. 습관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대로 행할 때 늘 질서 가운데 조화롭게 행할 수가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 중 절제는 두드러진 특성이 없지만 약방에 감초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즉 모든 약의 성질을 조화롭게 하여 약효를 잘 발휘하게 하는 감초처럼,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의 열매를 조절하여 온전케 해 주는 것이 바로 절제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들을 맺으면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범사에 형통하고 보장받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둔 세상에서 빛 된 권세와 능력을 행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지요. 여러분은 성령의 열매들을 맺기에 더욱 힘쓰심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탐스럽고 아름다운 최상품의 열매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절제의 열매가 맺힌 사람의 미덕으로 맞지 않는 것을 고르시오.
① 조급하지 않고 침착하며 일의 전후를 분별하여 대응한다.
② 진리를 행할 때도 대상과 시기, 장소 등을 고려한다.
③ 항상 질서를 좇아 행한다.
④ 주 안에서는 무엇이든지 무조건 넘치는 것이 좋다.
2.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 )는 단순히 죄를 짓지 않도록 자기를 제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 )의 열매들이 온전해지도록 ( )해 주는 역할을 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절제를 의미하는 '비취옥'
새 예루살렘 성곽의 열 번째 기초석인 비취옥은 반투명의 청록색 빛이 난다. 옛날 우리나라 여인들이 귀하게 여기던 보석으로 정숙함과 정결을 상징한다. 하나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풍성하면 좋겠지만 질서를 따라 아름답게 이루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제가 필요하다.
2012-10-12
제41과성령의 열매(8) - 온유
갈 5:22~23
읽을말씀 : 갈 5:22~23 | 외울말씀 : 민 12:3 ㅣ 참고 말씀:마 13:3~8
교육목표 : 덕을 겸비한 영적인 온유란 무엇이며, 온유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고 성령의 열매를 온전히 맺게 한다.
사전에 '온유'란 '성격이 온화하고 부드러움'이라고 정의합니다. 세상에서는 흔히 성품이 유순해서 화를 내지 않고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사람을 온유하다고 합니다. 본래 성품이 소극적이고 유약해서 남의 말을 잘 따르거나 마음에선 부글부글하지만 눌러 참으면 "저 사람은 참으로 유(柔)하다."고 하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악이 있으면서 겉으로만 그럴 듯하게 참는 사람을 온유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1. 많은 사람을 품는 온유의 열매
영적으로 온유란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되 악이 없어 모두를 이해하고 품어 주는 부드러운 마음을 말합니다. 곧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德)이 겸한 마음이지요. 덕(德)이 있으면 마냥 유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사에 절도 있고 반듯하며 위엄이 흐릅니다. 또한 온유한 사람의 마음은 솜털같이 포근합니다. 푹신한 솜털에 돌을 던지거나 바늘로 찔러도, 솜털은 소리 없이 감싸 안습니다.
이처럼 온유한 사람은 아무에게도 걸림이 없습니다. 곧 상대로 인해 혈기를 내거나 서운해하지도 않지요. 불편해하거나 상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 하지 않고 이해하며 감싸 줍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깃들이며 쉼을 얻지요. 마치 우람한 나무에 새들이 깃들여 보금자리를 짓고 쉼을 누리는 것과 같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마음에 악이 없고 지혜로우며 영적인 사랑으로 어떤 악한 사람도 대적하지 않고 포용합니다. 많은 사람을 의의 길로 인도하여 생명을 낳지요. 따라서 마음에 악이 없는 것은 온유함의 기본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성결해야 '온유하다'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유함을 인정받은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민 12:3). 그는 2백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갔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번번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조금만 힘든 상황이 오면 모세를 원망하고 대적하였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을 이끌고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한 것만으로도 모세의 온유함이 얼마나 승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마음이 바로 영적인 온유함이며, 성령의 열매 중 온유의 열매에 속합니다.
2. 덕을 겸비한 영적인 온유
사전에 '덕(德)'은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넓고 공정하며 사리사욕이 없습니다. 언행이 반듯하고 이해심이 깊어 많은 사람을 포용하지요. 덕이 있으면 그 외모에서부터 위엄이 흘러나옵니다.
영적인 온유함은 부드럽고 유순한 것만이 아니라 덕을 겸해야 합니다. 내면에 온유한 성품과 외면에 덕스러움을 갖춰야 영적으로 온유하다 할 수 있습니다. 마치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그에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과 같지요.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라 해도 그가 벌거벗고 돌아다닌다면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처럼 덕이 없는 온유는 그 가치를 다하지 못합니다.
덕은 온유함을 빛나게 하는 옷과 같은 것이지만 율법적이거나 외식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마음의 성결을 이루기보다 겉모습을 바르게 하는 데 치우치다 보면 자기 발견을 멈추고 스스로 영적인 성장을 이룬 줄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세상에서도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외모를 그럴 듯하게 꾸민다 해서 뭇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안에서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갖추지 않고 외면에 치중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3. 온유한 사람의 특징
첫째, 반듯하고 위엄 있으며 절도 있는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분별없이 순하기만 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포용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으로 인하여 무시당하고 이용을 당하기 쉽지요. 진정한 온유는 반듯하고 위엄과 절도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실 때에나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의 외식을 책망하실 때에도 단호하고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부드러운 마음이지만 책망해야 할 때는 호되게 책망하셨지요. 그런 단호함과 의로움이 내면에 있는 사람은 언성을 높이거나 엄하게 하지 않아도, 뭇사람들이 그를 경솔하게 대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주의 교양이나 온전한 몸의 행실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덕 있는 사람은 말 한마디에도 무게가 있어 무익한 말이나 헛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복장도 때와 장소에 적합하게 입지요. 표정도 무뚝뚝하거나 차가운 것이 아니라 부드럽습니다. 이처럼 덕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반듯하게 하되 동시에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여 편하게 하는 마음 씀씀이를 갖고 있습니다.
둘째, 마음을 넓게 쓰는 긍휼과 자비의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온유한 사람은 물질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구제할 뿐 아니라 영적으로 곤고한 사람, 연약한 사람을 돌아보아 위로하고 은혜를 끼칩니다. 그런데 온유함이 마음 안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 자체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기 어렵습니다.
가령, 핍박 중에 힘들게 신앙생활 하는 성도가 있다고 합시다.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기회가 될 때마다 따뜻하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고 상황을 살펴 구제합니다. 믿음으로 잘 승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지요.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안에 담고만 있느냐, 행함으로 나타내느냐 하는 것은 상대의 입장에서 느낄 때 큰 차이가 납니다.
온유한 마음이 덕 있는 모습으로 드러나야 상대에게 은혜와 생명이 될 수 있습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씀은 덕으로 인해 나타나는 충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땅을 받는다는 것은 상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급은 충성과 관련이 깊지요. 마찬가지로 온유한 사람이 받는 축복도, 마음이 온유한 것만 가지고 받는 상이 아닙니다.
온유한 마음이 덕스럽게 표현될 때 결과적으로 충성의 열매를 맺으니 그로 인해 상을 받는 것입니다. 곧 많은 영혼을 덕스럽게 품어서 힘과 위로를 주고 생명을 심어 줄 때 천국의 땅을 상급으로 받게 되지요.
4. 온유의 열매를 맺으려면
우리가 온유의 열매를 맺으려면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혈기, 미움, 시기, 욕심, 다툼, 들렘, 자기 의 이런 것들을 뽑아내야 온유해지지요. 그래서 온유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보다도 성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옥토 즉 온유한 마음이 되면 구하는 것마다 신속히 응답을 받습니다. 성령의 음성도 밝히 들어 나감으로 범사가 형통하지요.
마태복음 5장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땅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마음에 영적인 온유함을 이룬 만큼 천국에서 넓은 땅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 땅에서 자기 안에 깃들였던 모든 영혼들을 다 초청하여 함께할 수 있을 만큼 큰 처소를 상급으로 받는다는 말입니다.
천국에서 그렇게 큰 처소를 얻었다면 그만큼 영화로운 지위에 있다는 뜻도 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넓은 땅을 소유했다 해도 그것을 천국에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마음을 이룬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천국의 땅은 세세토록 사라지지 않는 자신의 기업입니다. 그 기업 안에서 주님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요.
그러므로 부지런히 마음을 개간하여 아름다운 온유의 열매를 맺어 모세와 같이 큰 그릇으로서 장차 천국에서 크고 넓은 땅을 기업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넣어 보세요.
영적으로 ( )란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되 악이 없어 모두를 ( )하고 품어 주는 ( ) 마음이다. 곧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 )이 겸한 마음이다.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온유의 열매를 맺으려면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한다.
② 영적인 온유함을 이루면 천국에서 넓은 땅을 받고 큰 권세를 얻는다.
③ 덕 있는 사람은 언행이 반듯하고 이해심이 깊어 많은 사람을 포용한다.
④ 온유한 자는 이 세상에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
온유함을 의미하는 '자정'
새 예루살렘 성곽에 있는 열두 번째 기초석이다. 자정은 일반적으로 자수정이라고 불리며, 보랏빛을 내는 투명한 보석이다. 빛이 고상하고 아름다워 예로부터 귀족에게 사랑을 받았다.
교육목표 : 덕을 겸비한 영적인 온유란 무엇이며, 온유의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고 성령의 열매를 온전히 맺게 한다.
사전에 '온유'란 '성격이 온화하고 부드러움'이라고 정의합니다. 세상에서는 흔히 성품이 유순해서 화를 내지 않고 자기주장이 강하지 않은 사람을 온유하다고 합니다. 본래 성품이 소극적이고 유약해서 남의 말을 잘 따르거나 마음에선 부글부글하지만 눌러 참으면 "저 사람은 참으로 유(柔)하다."고 하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악이 있으면서 겉으로만 그럴 듯하게 참는 사람을 온유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1. 많은 사람을 품는 온유의 열매
영적으로 온유란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되 악이 없어 모두를 이해하고 품어 주는 부드러운 마음을 말합니다. 곧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德)이 겸한 마음이지요. 덕(德)이 있으면 마냥 유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매사에 절도 있고 반듯하며 위엄이 흐릅니다. 또한 온유한 사람의 마음은 솜털같이 포근합니다. 푹신한 솜털에 돌을 던지거나 바늘로 찔러도, 솜털은 소리 없이 감싸 안습니다.
이처럼 온유한 사람은 아무에게도 걸림이 없습니다. 곧 상대로 인해 혈기를 내거나 서운해하지도 않지요. 불편해하거나 상대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도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 하지 않고 이해하며 감싸 줍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깃들이며 쉼을 얻지요. 마치 우람한 나무에 새들이 깃들여 보금자리를 짓고 쉼을 누리는 것과 같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마음에 악이 없고 지혜로우며 영적인 사랑으로 어떤 악한 사람도 대적하지 않고 포용합니다. 많은 사람을 의의 길로 인도하여 생명을 낳지요. 따라서 마음에 악이 없는 것은 온유함의 기본 조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성결해야 '온유하다'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온유함을 인정받은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모세입니다(민 12:3). 그는 2백만 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갔습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번번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며, 조금만 힘든 상황이 오면 모세를 원망하고 대적하였습니다. 이러한 백성들을 이끌고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한 것만으로도 모세의 온유함이 얼마나 승했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모세의 마음이 바로 영적인 온유함이며, 성령의 열매 중 온유의 열매에 속합니다.
2. 덕을 겸비한 영적인 온유
사전에 '덕(德)'은 공정하고 남을 넓게 이해하며 받아들이는 마음이나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마음이 넓고 공정하며 사리사욕이 없습니다. 언행이 반듯하고 이해심이 깊어 많은 사람을 포용하지요. 덕이 있으면 그 외모에서부터 위엄이 흘러나옵니다.
영적인 온유함은 부드럽고 유순한 것만이 아니라 덕을 겸해야 합니다. 내면에 온유한 성품과 외면에 덕스러움을 갖춰야 영적으로 온유하다 할 수 있습니다. 마치 훌륭한 인격을 가진 사람이 그에 어울리는 옷을 입은 것과 같지요. 인격이 훌륭한 사람이라 해도 그가 벌거벗고 돌아다닌다면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처럼 덕이 없는 온유는 그 가치를 다하지 못합니다.
덕은 온유함을 빛나게 하는 옷과 같은 것이지만 율법적이거나 외식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마음의 성결을 이루기보다 겉모습을 바르게 하는 데 치우치다 보면 자기 발견을 멈추고 스스로 영적인 성장을 이룬 줄로 착각하기 쉽습니다. 세상에서도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외모를 그럴 듯하게 꾸민다 해서 뭇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 안에서도 내면의 아름다움을 갖추지 않고 외면에 치중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3. 온유한 사람의 특징
첫째, 반듯하고 위엄 있으며 절도 있는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분별없이 순하기만 하고 우유부단한 사람은 다른 사람을 포용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으로 인하여 무시당하고 이용을 당하기 쉽지요. 진정한 온유는 반듯하고 위엄과 절도가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실 때에나 바리새인들과 율법사들의 외식을 책망하실 때에도 단호하고 엄히 꾸짖으셨습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는 부드러운 마음이지만 책망해야 할 때는 호되게 책망하셨지요. 그런 단호함과 의로움이 내면에 있는 사람은 언성을 높이거나 엄하게 하지 않아도, 뭇사람들이 그를 경솔하게 대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주의 교양이나 온전한 몸의 행실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덕 있는 사람은 말 한마디에도 무게가 있어 무익한 말이나 헛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복장도 때와 장소에 적합하게 입지요. 표정도 무뚝뚝하거나 차가운 것이 아니라 부드럽습니다. 이처럼 덕 있는 사람은 모든 것을 반듯하게 하되 동시에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여 편하게 하는 마음 씀씀이를 갖고 있습니다.
둘째, 마음을 넓게 쓰는 긍휼과 자비의 행함으로 나타납니다.
온유한 사람은 물질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구제할 뿐 아니라 영적으로 곤고한 사람, 연약한 사람을 돌아보아 위로하고 은혜를 끼칩니다. 그런데 온유함이 마음 안에만 머물러 있다면 그 자체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기 어렵습니다.
가령, 핍박 중에 힘들게 신앙생활 하는 성도가 있다고 합시다.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합니다. 반면에 어떤 사람은 기회가 될 때마다 따뜻하게 위로와 격려의 말을 건네고 상황을 살펴 구제합니다. 믿음으로 잘 승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주지요.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을 안에 담고만 있느냐, 행함으로 나타내느냐 하는 것은 상대의 입장에서 느낄 때 큰 차이가 납니다.
온유한 마음이 덕 있는 모습으로 드러나야 상대에게 은혜와 생명이 될 수 있습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씀은 덕으로 인해 나타나는 충성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땅을 받는다는 것은 상급이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상급은 충성과 관련이 깊지요. 마찬가지로 온유한 사람이 받는 축복도, 마음이 온유한 것만 가지고 받는 상이 아닙니다.
온유한 마음이 덕스럽게 표현될 때 결과적으로 충성의 열매를 맺으니 그로 인해 상을 받는 것입니다. 곧 많은 영혼을 덕스럽게 품어서 힘과 위로를 주고 생명을 심어 줄 때 천국의 땅을 상급으로 받게 되지요.
4. 온유의 열매를 맺으려면
우리가 온유의 열매를 맺으려면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혈기, 미움, 시기, 욕심, 다툼, 들렘, 자기 의 이런 것들을 뽑아내야 온유해지지요. 그래서 온유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보다도 성결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습니다. 심는 대로 거두는 옥토 즉 온유한 마음이 되면 구하는 것마다 신속히 응답을 받습니다. 성령의 음성도 밝히 들어 나감으로 범사가 형통하지요.
마태복음 5장 5절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땅을 받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마음에 영적인 온유함을 이룬 만큼 천국에서 넓은 땅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이 땅에서 자기 안에 깃들였던 모든 영혼들을 다 초청하여 함께할 수 있을 만큼 큰 처소를 상급으로 받는다는 말입니다.
천국에서 그렇게 큰 처소를 얻었다면 그만큼 영화로운 지위에 있다는 뜻도 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넓은 땅을 소유했다 해도 그것을 천국에 가지고 갈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온유한 마음을 이룬 사람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천국의 땅은 세세토록 사라지지 않는 자신의 기업입니다. 그 기업 안에서 주님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지요.
그러므로 부지런히 마음을 개간하여 아름다운 온유의 열매를 맺어 모세와 같이 큰 그릇으로서 장차 천국에서 크고 넓은 땅을 기업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넣어 보세요.
영적으로 ( )란 지혜로울 뿐만 아니라, 옳고 그름을 분별하되 악이 없어 모두를 ( )하고 품어 주는 ( ) 마음이다. 곧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 )이 겸한 마음이다.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온유의 열매를 맺으려면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한다.
② 영적인 온유함을 이루면 천국에서 넓은 땅을 받고 큰 권세를 얻는다.
③ 덕 있는 사람은 언행이 반듯하고 이해심이 깊어 많은 사람을 포용한다.
④ 온유한 자는 이 세상에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
온유함을 의미하는 '자정'
새 예루살렘 성곽에 있는 열두 번째 기초석이다. 자정은 일반적으로 자수정이라고 불리며, 보랏빛을 내는 투명한 보석이다. 빛이 고상하고 아름다워 예로부터 귀족에게 사랑을 받았다.
2012-10-05
제40과성령의 열매(7) - 충성
갈 5:22~23
읽을말씀 : 갈 5:22~23 | 외울말씀 : 잠 25:13 ㅣ 참고 말씀:시 101:6, 계 2:10
교육목표 :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충성에 대해 알아보고 성령의 열매를 온전히 맺게 한다.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보배요, 아름다운 보석같이 귀한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서는 요동함이 없는 한결같은 마음의 향이 납니다. 소처럼 우직하고 묵묵히 순종하는 향과 더불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신뢰가 가는 신실한 마음의 향이 나지요. 그래서 뭇사람들에게 칭찬과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께서도 착하고 충성된 자라 인정하시며 칭찬하시지요.
1. 사랑과 정성을 다해 맡겨진 일 이상 감당해야 충성
회사에서 급여를 받는 직원이 자신의 업무를 잘 감당했다고 해서 '충성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책임을 완수했다고는 할 수 있지요. 자신이 맡은 일에서 넘치게 감당해야 충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수고합니다. '내가 급여를 받은 만큼만 해야지'라고 계산적이거나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는 충성으로 수고합니다. 이처럼 충성의 열매가 맺힌 사람은 책임을 지는 분야에 있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 이상으로 책임을 다합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 선지자가 그랬습니다. 모세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기도했습니다.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지요(출 32:31~32).
모세는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 "나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 뜻을 전했지만 그들이 불순종하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과 정성을 다해 백성을 인도했습니다. 그들이 잘못했을 때도 자신이 그런 것처럼 책임을 지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질지라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명을 잘 감당해 왔는데 구성원들 때문에 일이 잘못되거나 난처한 일이 생기면 "하나님,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동안 저도 많이 괴로웠습니다." 하며 책임을 회피하고자 합니다. "내가 할 바는 다 했기에 떳떳하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마음은 충성과는 거리가 먼 마음입니다.
충성의 열매가 맺힌 사람이라면 "나는 책임이 없다." 하지 않습니다. 비록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 해도 그것을 생각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자신에게 사명을 맡기셨는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모세의 심정이라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구성원들을 멸하겠다고 하셨어도, 그들이 멸망당하기보다 회개하여 돌이키기 원하시는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 먼저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다 제 탓입니다. 제가 잘못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저를 봐서라도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라는 진심 어린 기도가 나오지요.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충성된 사람은 어떤 분야를 감당하든지 마음과 정성을 다해 넘치게 감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영적인 충성이란?
영적인 충성이란 꾸준히 '마음의 할례'를 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끊임없이 마음의 두루마기를 빠는 것이지요.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비진리, 악, 불의, 불법 등 모든 죄를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목숨을 다하기까지 열심히 일하고 충성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 66권에 담긴 하나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뤄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충성을 하려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이런 마음의 할례 없이 사명만 감당한다고 충성했다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했던 사도 바울처럼 비진리에 속한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죽이고 성결되는 것이 곧 영적인 충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결'되기를 무엇보다도 원하십니다. 그렇다고 온전히 성결되기까지 다른 사명은 감당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직분이나 사명을 맡더라도 항상 마음의 할례를 함께 이뤄가야 하지요. 그런 사람은 변함없이 사명 감당도 잘합니다. 현실에 어떤 어려움이 오거나 마음의 연단이 있어도 그것 때문에 사명을 놓거나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사명은 하나님과 나와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는 것은 상급이 되지 않지만 성결된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더 많은 상급을 쌓을 수 있습니다.
3. 주인의 마음에 맞게 순종해야 충성
잠언 25장 13절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했습니다. 아무리 일을 잘한다 해도 자신의 뜻대로 한다면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할 수 없습니다.
가령, 사장님이 직원에게 "귀한 손님이 오실 테니까 꼭 사무실에서 기다리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나갔다가 늦게 들어왔습니다. 사장님이 이 직원을 잘했다고 할까요? 아니지요. 아무리 회사 일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불순종하였기에 칭찬을 받을 수 없지요. 이런 부류의 사람은 자기 생각과 욕심을 좇아 일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주인의 뜻을 저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보다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맞춰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충성한들 어찌 그것이 상급이 되겠습니까? 무슨 일이든 비진리가 아닌 이상 윗분의 의중에 맞춰 일을 해야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지 않고, 결과 또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4. 온 집에 충성이란?
자신이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두루 충성하는 것을 온 집에 충성한다고 말합니다. 만일 교회에서 특별한 사명이 없다 해도 성도로서, 각종 모임에 속한 회원으로서 자리를 지키는 것도 충성의 한 분야이지요.
가정, 직장,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속한 구성원으로서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내와 남편으로서, 부모로서, 학생으로서, 직원으로서 본분을 다할 때 온 집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한두 가지 분야만 열심히 하고 나머지는 좀 소홀히 한다면 온전한 충성이라 할 수 없지요.
그렇다면 몸은 하나고 직분이 많을 때 모든 분야에 어떻게 충성할 수 있습니까? 영으로 변화되면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가령, A 모임에서는 회장이고 B 모임에서는 회원입니다. 이때 충성의 열매가 맺히면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하지 않습니다. "나는 A 모임의 머리니까, B 모임에 가지 않아도 이해하겠지?" 하지 않습니다. B 모임에 가지 못할 상황이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마음을 쓰며 힘이 되려고 합니다.
이렇게 선이 있는 만큼 온 집에 충성할 수 있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도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충성함이 예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요? 예전에는 사명도 사모하고 충성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맡지 않은 분이 계십니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명은 그대로라 해도 처음 그 사명을 맡았을 때의 뜨거웠던 마음이 식지는 않았는지요?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신앙의 경륜이 쌓일수록 충성도 더 승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충성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충성입니다. 그러니 장차 천국에서는 얼마나 값지고 귀한 상급으로 받겠습니까? 시편 101편 6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말씀했습니다.
누구든지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하면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습니다. 충성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 나라에 기둥같이 쓰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 보좌 가까이 거하는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충성(忠誠)의 의미를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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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충성에 관한 말씀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시편 101:6
② 잠언 25:13
③ 마태복음 25:21
④ 사도행전 1:8
3. 만일 여러분 주위에 자신의 사명을 소홀히 여기거나 신앙생활을 쉬고 싶다는 성도가 있다면 어떻게 권면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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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충성을 의미하는 '홍마노'
새 예루살렘 성곽의 다섯 번째 기초석인 홍마노는 영적으로 충성을 의미한다. 어떤 분야에서 자신이 맡은 것만 해놓고 손을 뗀다면 충성이라 할 수 없다. 맡은 것 이상을 감당할 때 충성이라 한다. 그러려면 매사에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한 홍마노가 의미하는 충성이란 요한계시록 2:10에 기록된 죽도록 충성하는 것을 말한다. 곧 정성과 시간과 물질을 아끼지 않고 생명 다해 사명 이상을 감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충성에 대해 알아보고 성령의 열매를 온전히 맺게 한다.
하나님 앞에 충성된 사람은 하나님 나라의 보배요, 아름다운 보석같이 귀한 존재라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에게서는 요동함이 없는 한결같은 마음의 향이 납니다. 소처럼 우직하고 묵묵히 순종하는 향과 더불어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신뢰가 가는 신실한 마음의 향이 나지요. 그래서 뭇사람들에게 칭찬과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께서도 착하고 충성된 자라 인정하시며 칭찬하시지요.
1. 사랑과 정성을 다해 맡겨진 일 이상 감당해야 충성
회사에서 급여를 받는 직원이 자신의 업무를 잘 감당했다고 해서 '충성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책임을 완수했다고는 할 수 있지요. 자신이 맡은 일에서 넘치게 감당해야 충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수고합니다. '내가 급여를 받은 만큼만 해야지'라고 계산적이거나 억지로 하지 않습니다.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는 충성으로 수고합니다. 이처럼 충성의 열매가 맺힌 사람은 책임을 지는 분야에 있어서도 자신에게 주어진 것 이상으로 책임을 다합니다.
성경에 보면 모세 선지자가 그랬습니다. 모세는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기도했습니다.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였지요(출 32:31~32).
모세는 백성들이 범죄했을 때 "나는 최선을 다해 하나님 뜻을 전했지만 그들이 불순종하니 어쩔 수 없었습니다."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사랑과 정성을 다해 백성을 인도했습니다. 그들이 잘못했을 때도 자신이 그런 것처럼 책임을 지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래서 생명책에서 자신의 이름이 지워질지라도 용서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사명을 잘 감당해 왔는데 구성원들 때문에 일이 잘못되거나 난처한 일이 생기면 "하나님, 저는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동안 저도 많이 괴로웠습니다." 하며 책임을 회피하고자 합니다. "내가 할 바는 다 했기에 떳떳하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마음은 충성과는 거리가 먼 마음입니다.
충성의 열매가 맺힌 사람이라면 "나는 책임이 없다." 하지 않습니다. 비록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 해도 그것을 생각하기에 앞서 하나님께서 어떤 마음으로 자신에게 사명을 맡기셨는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모세의 심정이라면 어떠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진노하여 구성원들을 멸하겠다고 하셨어도, 그들이 멸망당하기보다 회개하여 돌이키기 원하시는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 먼저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다 제 탓입니다. 제가 잘못 인도했기 때문입니다. 저를 봐서라도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라는 진심 어린 기도가 나오지요.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충성된 사람은 어떤 분야를 감당하든지 마음과 정성을 다해 넘치게 감당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영적인 충성이란?
영적인 충성이란 꾸준히 '마음의 할례'를 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끊임없이 마음의 두루마기를 빠는 것이지요.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비진리, 악, 불의, 불법 등 모든 죄를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목숨을 다하기까지 열심히 일하고 충성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 66권에 담긴 하나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뤄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영적인 충성을 하려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이런 마음의 할례 없이 사명만 감당한다고 충성했다 하지 않습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했던 사도 바울처럼 비진리에 속한 자신의 모습을 철저히 죽이고 성결되는 것이 곧 영적인 충성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성결'되기를 무엇보다도 원하십니다. 그렇다고 온전히 성결되기까지 다른 사명은 감당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어떤 직분이나 사명을 맡더라도 항상 마음의 할례를 함께 이뤄가야 하지요. 그런 사람은 변함없이 사명 감당도 잘합니다. 현실에 어떤 어려움이 오거나 마음의 연단이 있어도 그것 때문에 사명을 놓거나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사명은 하나님과 나와의 약속입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는 것은 상급이 되지 않지만 성결된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고, 더 많은 상급을 쌓을 수 있습니다.
3. 주인의 마음에 맞게 순종해야 충성
잠언 25장 13절에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 했습니다. 아무리 일을 잘한다 해도 자신의 뜻대로 한다면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할 수 없습니다.
가령, 사장님이 직원에게 "귀한 손님이 오실 테니까 꼭 사무실에서 기다리라."고 지시하였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나갔다가 늦게 들어왔습니다. 사장님이 이 직원을 잘했다고 할까요? 아니지요. 아무리 회사 일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불순종하였기에 칭찬을 받을 수 없지요. 이런 부류의 사람은 자기 생각과 욕심을 좇아 일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주인의 뜻을 저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할 때도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보다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맞춰 하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충성한들 어찌 그것이 상급이 되겠습니까? 무슨 일이든 비진리가 아닌 이상 윗분의 의중에 맞춰 일을 해야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지 않고, 결과 또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4. 온 집에 충성이란?
자신이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두루 충성하는 것을 온 집에 충성한다고 말합니다. 만일 교회에서 특별한 사명이 없다 해도 성도로서, 각종 모임에 속한 회원으로서 자리를 지키는 것도 충성의 한 분야이지요.
가정, 직장,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가 속한 구성원으로서 본분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아내와 남편으로서, 부모로서, 학생으로서, 직원으로서 본분을 다할 때 온 집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한두 가지 분야만 열심히 하고 나머지는 좀 소홀히 한다면 온전한 충성이라 할 수 없지요.
그렇다면 몸은 하나고 직분이 많을 때 모든 분야에 어떻게 충성할 수 있습니까? 영으로 변화되면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가령, A 모임에서는 회장이고 B 모임에서는 회원입니다. 이때 충성의 열매가 맺히면 어느 것 하나도 소홀하지 않습니다. "나는 A 모임의 머리니까, B 모임에 가지 않아도 이해하겠지?" 하지 않습니다. B 모임에 가지 못할 상황이면 다른 방법으로라도 마음을 쓰며 힘이 되려고 합니다.
이렇게 선이 있는 만큼 온 집에 충성할 수 있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도 이룰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 충성함이 예전과 얼마나 달라졌는지요? 예전에는 사명도 사모하고 충성했는데 지금은 아무것도 맡지 않은 분이 계십니까? 예전이나 지금이나 사명은 그대로라 해도 처음 그 사명을 맡았을 때의 뜨거웠던 마음이 식지는 않았는지요?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신앙의 경륜이 쌓일수록 충성도 더 승해지기 마련입니다.
우리가 주 안에서 충성하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충성입니다. 그러니 장차 천국에서는 얼마나 값지고 귀한 상급으로 받겠습니까? 시편 101편 6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말씀했습니다.
누구든지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하면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습니다. 충성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 나라에 기둥같이 쓰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 보좌 가까이 거하는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충성(忠誠)의 의미를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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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충성에 관한 말씀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시편 101:6
② 잠언 25:13
③ 마태복음 25:21
④ 사도행전 1:8
3. 만일 여러분 주위에 자신의 사명을 소홀히 여기거나 신앙생활을 쉬고 싶다는 성도가 있다면 어떻게 권면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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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충성을 의미하는 '홍마노'
새 예루살렘 성곽의 다섯 번째 기초석인 홍마노는 영적으로 충성을 의미한다. 어떤 분야에서 자신이 맡은 것만 해놓고 손을 뗀다면 충성이라 할 수 없다. 맡은 것 이상을 감당할 때 충성이라 한다. 그러려면 매사에 게으르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또한 홍마노가 의미하는 충성이란 요한계시록 2:10에 기록된 죽도록 충성하는 것을 말한다. 곧 정성과 시간과 물질을 아끼지 않고 생명 다해 사명 이상을 감당하는 것을 의미한다.
2012-09-30
제0과추석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민수기 6:24~26
읽을말씀 : 민수기 6:24~26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우리 민족은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리는 절기이지요.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
묵상기도 / 다 같이
기 원 /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멘
찬 송 / 460장 / 다 같이
1.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이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2.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3.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잖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리시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이 함께 모여 하나님 앞에 찬양과 예배를 드리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함께 모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혹여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이 있다면 주님의 보혈로 사해 주옵시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예배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추석 명절의 의미를 잘 알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시고,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성경봉독 / 민수기 6:24~26 / 인도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설 교 /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 설교자
기 도 / 설교자
찬 송 / 305장 / 다 같이
1.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2.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 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하니 한 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3.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 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후렴 - 고마와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와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 설교 예문
민수기 6장 24~26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역시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지켜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지요.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으로 오늘 우리 가족이 모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청소년이 되어서는 스승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 소망 가운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십자가의 사랑을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시험과 환난과 재앙 많은 이 세상에서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평강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온 가족들을 평강 가운데 지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추석이면 으레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진리를 알았으니 우상을 섬기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대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우리 민족은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이 나온 것입니다.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리는 절기이지요.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
묵상기도 / 다 같이
기 원 /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모든 신에 뛰어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아멘
찬 송 / 460장 / 다 같이
1.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이 손이 항상 살펴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2.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3.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잖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리시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기 도 / 가족 중에서
예 문)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추석 명절을 맞이하여 흩어져 지내던 가족이 함께 모여 하나님 앞에 찬양과 예배를 드리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세상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각종 천재지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때에 하나님께서는 저희 온 가족들을 지켜 주시고 보호해 주셨다가 오늘 함께 모일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지난날을 돌아보며 혹여 하나님 앞에 합하지 못했던 모습이 있다면 주님의 보혈로 사해 주옵시고,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예배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해 주신 추석 명절의 의미를 잘 알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할 수 있는 시간들이 되게 하옵시고, 온 가족이 한마음이 되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성경봉독 / 민수기 6:24~26 / 인도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설 교 /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 설교자
기 도 / 설교자
찬 송 / 305장 / 다 같이
1.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2.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 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하니 한 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3.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 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후렴 - 고마와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와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 설교 예문
민수기 6장 24~26절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신 말씀입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역시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지켜 주시는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정과 직장, 사업터, 일터, 온 가족을 지켜 주셔야 행복할 수 있지요.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켜 주심으로 오늘 우리 가족이 모여 감사예배를 드릴 수 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은혜 베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청소년이 되어서는 스승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그런데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 주시고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영생을 얻었습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 소망 가운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십자가의 사랑을 주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시험과 환난과 재앙 많은 이 세상에서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평강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온 가족들을 평강 가운데 지켜 주셨으니 이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주변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보면, 추석이면 으레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냅니다.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 앞에 음식을 차려 놓고 절을 하고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가 감사로 제사를 드려야 할 분은 한 해 동안도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한 해의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이지요.
이제는 진리를 알았으니 우상을 섬기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축복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대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서로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12-09-28
제39과성령의 열매(6) - 양선
갈 5:22~23
읽을말씀 : 갈 5:22~23 | 외울말씀 : 마 5:16 l 참고 말씀:마 12:35
교육목표 : 세상적인 선과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되는 참된 선에 대해 알아보고 양선의 열매를 맺게 한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 진리대로 행하면 마음과 행실이 선해집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15~16절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말씀한 대로 범사에 선을 좇아 행함으로 양선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1. 각자의 양심이 기준이 되는 '선'
주 안에서 성령을 받지 않은 세상 사람들도 나름대로 선을 분별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즉 자기 양심에 따라 "이것은 선하다. 저것은 악하다." 하지요. 그래서 자기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면 나름 선하고 의롭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양심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나는 선하다고 여긴 것이 상대에게는 악할 수 있고, 내게는 악한 것이 남에게는 선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양심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본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부모로부터 어떤 기를 받고 태어나는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선한 부모의 기를 받고 태어난 자녀는 비교적 본성이 선합니다. 또 좋은 환경 속에서 선한 것을 많이 보고 들으며 자란 사람은 양심이 선하게 만들어지기 쉽지요. 반면 악한 부모의 기를 받고 태어나 악한 것을 많이 보고 듣고 접하면 본성과 양심이 악해지기 마련입니다.
가령, 정직의 중요성을 교육받고 자라는 아이는 작은 거짓말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며 자란 아이는 큰 거짓말을 하면서도 잘못한 줄도 모르지요. 양심이 그만큼 악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가치관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양심은 달라지며, 사회마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가치관이 다 같지는 않습니다.
옛날 왕정 시대에는 노예를 부리며 학대를 해도 그것을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또 30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의식이 많이 바뀌었지요. 그만큼 시대의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보기에 선한 것'을 추구할 뿐이지 절대적으로 선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선악과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기준이 항상 동일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없는 진리, 곧 하나님 말씀이 그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기준 삼아 행하려는 마음이 바로 '양선'입니다.
2. 양선의 열매란?
'양선(良善)'을 문자대로 풀면 '어질고 착하다'는 뜻입니다. 영적으로는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이지요.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낸다' 하신 것처럼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선이 배어나옵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선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선행을 베풀지요. 마치 향수를 뿌린 사람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듯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합니다. 그런데 선을 추구하는 마음만 간절하다 해서 양선의 열매가 맺히지는 않습니다. 선을 보고 듣고 배웠으면 반드시 마음에 이루고 행함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어떻게 양선을 행했는지 잘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를 보았으나 그냥 지나쳐 버리지요. 그 뒤에 레위인이 지나가지만 그도 외면해 버립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 뜻을 행해야 할 순간에는 행함을 내보이지 못했지요.
마침 한 사마리아인이 그곳을 지나다가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바로 상처를 싸매 주며 황급히 주막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었지요. 이튿날 두 데나리온을 주막 주인에게 주며 그를 잘 돌봐 달라고 부탁하며 비용이 더 들면 나중에 와서 지불하겠다고 합니다.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인데도 물질과 시간에 손해를 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지요.
선을 추구하며 선을 행하는 양선의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냥 지나쳐 버렸다면 '다친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하며 내내 마음에 걸렸을 것입니다. 이처럼 양선은 선을 택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 하는 마음입니다.
3. 예수님의 양선의 마음
마태복음 12장 19~20절에는 예수님의 양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말씀한 대로 양선의 열매가 가득하고 향기가 진동을 합니다.
선한 일만 하신 예수님을 악한 사람들은 죽이려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참 뜻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아무리 악한 자들이 훼방하여도 다투거나 들레지도 않으셨지요. 육의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기 좋아합니다. 나를 알아주기 원하고 대접받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고 큰 권능을 베풀면서도 들레지 않으셨고 겸손하셨습니다.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걸음걸이, 몸가짐, 언어에도 흠이 없으셨지요. 오직 그 마음에는 지극한 선과 겸손함, 영적인 사랑만이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양선의 열매를 맺으면 예수님처럼 누구와도 걸리거나 부딪치지 않습니다. 상대의 티나 허물을 들추어내지 않지요. 자신을 드러내 높임 받으려 하지도 않고 경우에 맞지 않는 일을 당한다 해서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셨습니다. 영적으로 '상한 갈대'란,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란 마음이 심히 악으로 물들어 그 영혼의 등불이 꺼져 가는 사람이지요.
상한 갈대와 꺼져 가는 심지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그 행함을 보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고 오히려 성령을 거역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우도 있지요. 예수님 당시 놀라운 권능을 보면서도 여전히 믿지 않고 악을 발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도 끝까지 믿음으로 바라보며 구원받을 기회를 열어 주셨습니다.
양선의 열매가 맺히면 악을 발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품습니다. 굳이 시비를 따져 상대의 잘못을 드러내거나 꺾으려고 하지 않지요. 진실한 마음으로 선대하여 그들의 마음을 녹이고 감동을 줍니다. 설령 사망의 길로 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기까지만 참자!"라고 한계를 두고 선을 넘는다고 해서 외면하는 것도 없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리고자 애쓰지요. 이것이 곧 양선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양선'의 마음과 다른 성령의 열매와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가령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것은 자비나 구제와 긍휼이 아닌가?" 또 "다투지도 않고 들레지도 않는 마음은 화평과 겸손의 마음이 아닌가?"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떤 면에 중점을 두었느냐를 보면 됩니다.
'양선'에서 부각시키고자 하는 측면은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과 선을 좇아 '행할 수 있는 힘'입니다. 즉 상대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긍휼'에 초점을 두지 않고, 긍휼히 여겨야 할 상황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선의 마음'에 중점을 두었지요. 또 다투지도 들레지도 않는다는 것은 화평과 겸손의 마음입니다. 이것을 양선에 비유했을 때는 선해서 화평을 깰 수 없는 마음, 인정받으려고 들레기보다는 겸비한 것을 더 좋아하는 선한 마음에 포인트를 둔 것입니다.
양선의 열매를 온전히 맺으면 주님의 마음을 닮게 됩니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거나 실족시키지 않으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습니다. 외적으로도 선과 겸손이 풍겨납니다. 주의 교양으로 범사에 존경받을 만하며 걸음걸이나 몸가짐, 언어 습관 등이 온전해지지요. 따라서 여러분은 신속히 양선의 마음을 이루어 누가 봐도 존중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양선(良善)의 영적인 의미를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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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양선은 선을 추구하는 마음,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이다.
② 진리는 각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③ 양선은 다른 성령의 열매에 비해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과 선을 좇아'행할 수 있는 힘'에 중점을 두었다.
④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 자체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마리아'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그 주변을 일컫는 말이다. 이곳에 바알 당이나 다른 종교의 사당들이 있었기 때문에 선지자들은 '우상숭배의 중심지'로 여겼다. 예후는 왕이 된 후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한 사마리아는 여러 번 앗수르의 공격을 받다가 마침내 함락되고 만다. 앗수르 왕은 사마리아에 자국민들을 이주시켜 혼혈정책을 펼친다. 이로 인해 사마리아는 혼혈 민족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이런 사마리아인들을 적대시하며 상종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교육목표 : 세상적인 선과 하나님 말씀이 기준이 되는 참된 선에 대해 알아보고 양선의 열매를 맺게 한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 진리대로 행하면 마음과 행실이 선해집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15~16절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말씀한 대로 범사에 선을 좇아 행함으로 양선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1. 각자의 양심이 기준이 되는 '선'
주 안에서 성령을 받지 않은 세상 사람들도 나름대로 선을 분별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즉 자기 양심에 따라 "이것은 선하다. 저것은 악하다." 하지요. 그래서 자기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면 나름 선하고 의롭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양심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나는 선하다고 여긴 것이 상대에게는 악할 수 있고, 내게는 악한 것이 남에게는 선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양심이란 무엇일까요? 바로 '본성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선악을 판단하는 기준'입니다. 사람의 본성은 부모로부터 어떤 기를 받고 태어나는가, 어떤 환경에서 자라는가에 따라 달라집니다. 선한 부모의 기를 받고 태어난 자녀는 비교적 본성이 선합니다. 또 좋은 환경 속에서 선한 것을 많이 보고 들으며 자란 사람은 양심이 선하게 만들어지기 쉽지요. 반면 악한 부모의 기를 받고 태어나 악한 것을 많이 보고 듣고 접하면 본성과 양심이 악해지기 마련입니다.
가령, 정직의 중요성을 교육받고 자라는 아이는 작은 거짓말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낍니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거짓말하며 자란 아이는 큰 거짓말을 하면서도 잘못한 줄도 모르지요. 양심이 그만큼 악에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또 어떤 가치관의 영향을 받고 성장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양심은 달라지며, 사회마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가치관이 다 같지는 않습니다.
옛날 왕정 시대에는 노예를 부리며 학대를 해도 그것을 잘못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또 30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는 노출이 심한 옷을 입으면 손가락질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의식이 많이 바뀌었지요. 그만큼 시대의 가치관이 달라졌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보기에 선한 것'을 추구할 뿐이지 절대적으로 선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는 선악과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기준이 항상 동일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없는 진리, 곧 하나님 말씀이 그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기준 삼아 행하려는 마음이 바로 '양선'입니다.
2. 양선의 열매란?
'양선(良善)'을 문자대로 풀면 '어질고 착하다'는 뜻입니다. 영적으로는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이지요.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낸다' 하신 것처럼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선이 배어나옵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선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선행을 베풀지요. 마치 향수를 뿌린 사람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듯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합니다. 그런데 선을 추구하는 마음만 간절하다 해서 양선의 열매가 맺히지는 않습니다. 선을 보고 듣고 배웠으면 반드시 마음에 이루고 행함으로 실천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0장에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어떻게 양선을 행했는지 잘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마침 한 제사장이 그를 보았으나 그냥 지나쳐 버리지요. 그 뒤에 레위인이 지나가지만 그도 외면해 버립니다. 제사장이나 레위인은 하나님을 섬기고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정작 하나님 뜻을 행해야 할 순간에는 행함을 내보이지 못했지요.
마침 한 사마리아인이 그곳을 지나다가 쓰러져 있는 사람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는 바로 상처를 싸매 주며 황급히 주막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었지요. 이튿날 두 데나리온을 주막 주인에게 주며 그를 잘 돌봐 달라고 부탁하며 비용이 더 들면 나중에 와서 지불하겠다고 합니다. 자신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인데도 물질과 시간에 손해를 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았지요.
선을 추구하며 선을 행하는 양선의 마음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그냥 지나쳐 버렸다면 '다친 사람은 어떻게 되었을까?' 걱정하며 내내 마음에 걸렸을 것입니다. 이처럼 양선은 선을 택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어 하는 마음입니다.
3. 예수님의 양선의 마음
마태복음 12장 19~20절에는 예수님의 양선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말씀한 대로 양선의 열매가 가득하고 향기가 진동을 합니다.
선한 일만 하신 예수님을 악한 사람들은 죽이려 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그들을 미워하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참 뜻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아무리 악한 자들이 훼방하여도 다투거나 들레지도 않으셨지요. 육의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랑하기 좋아합니다. 나를 알아주기 원하고 대접받고 싶어 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고 큰 권능을 베풀면서도 들레지 않으셨고 겸손하셨습니다.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할 정도로 걸음걸이, 몸가짐, 언어에도 흠이 없으셨지요. 오직 그 마음에는 지극한 선과 겸손함, 영적인 사랑만이 가득했습니다.
우리가 양선의 열매를 맺으면 예수님처럼 누구와도 걸리거나 부딪치지 않습니다. 상대의 티나 허물을 들추어내지 않지요. 자신을 드러내 높임 받으려 하지도 않고 경우에 맞지 않는 일을 당한다 해서 불평하지도 않습니다.
예수님은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셨습니다. 영적으로 '상한 갈대'란,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란 마음이 심히 악으로 물들어 그 영혼의 등불이 꺼져 가는 사람이지요.
상한 갈대와 꺼져 가는 심지 같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해도 그 행함을 보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고 오히려 성령을 거역하며 하나님을 대적하는 경우도 있지요. 예수님 당시 놀라운 권능을 보면서도 여전히 믿지 않고 악을 발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도 끝까지 믿음으로 바라보며 구원받을 기회를 열어 주셨습니다.
양선의 열매가 맺히면 악을 발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품습니다. 굳이 시비를 따져 상대의 잘못을 드러내거나 꺾으려고 하지 않지요. 진실한 마음으로 선대하여 그들의 마음을 녹이고 감동을 줍니다. 설령 사망의 길로 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여기까지만 참자!"라고 한계를 두고 선을 넘는다고 해서 외면하는 것도 없습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살리고자 애쓰지요. 이것이 곧 양선의 마음입니다.
그렇다면 '양선'의 마음과 다른 성령의 열매와는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요? 가령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와준 것은 자비나 구제와 긍휼이 아닌가?" 또 "다투지도 않고 들레지도 않는 마음은 화평과 겸손의 마음이 아닌가?"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어떤 면에 중점을 두었느냐를 보면 됩니다.
'양선'에서 부각시키고자 하는 측면은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과 선을 좇아 '행할 수 있는 힘'입니다. 즉 상대를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는 '긍휼'에 초점을 두지 않고, 긍휼히 여겨야 할 상황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선의 마음'에 중점을 두었지요. 또 다투지도 들레지도 않는다는 것은 화평과 겸손의 마음입니다. 이것을 양선에 비유했을 때는 선해서 화평을 깰 수 없는 마음, 인정받으려고 들레기보다는 겸비한 것을 더 좋아하는 선한 마음에 포인트를 둔 것입니다.
양선의 열매를 온전히 맺으면 주님의 마음을 닮게 됩니다.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거나 실족시키지 않으며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습니다. 외적으로도 선과 겸손이 풍겨납니다. 주의 교양으로 범사에 존경받을 만하며 걸음걸이나 몸가짐, 언어 습관 등이 온전해지지요. 따라서 여러분은 신속히 양선의 마음을 이루어 누가 봐도 존중할 만한 아름다운 모습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양선(良善)의 영적인 의미를 써 보세요.
--------------------------------------------------------------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양선은 선을 추구하는 마음,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이다.
② 진리는 각 사람의 가치관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③ 양선은 다른 성령의 열매에 비해 선을 행하고자 하는 '마음'과 선을 좇아'행할 수 있는 힘'에 중점을 두었다.
④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 자체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마리아'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이자 그 주변을 일컫는 말이다. 이곳에 바알 당이나 다른 종교의 사당들이 있었기 때문에 선지자들은 '우상숭배의 중심지'로 여겼다. 예후는 왕이 된 후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숭배한 사마리아는 여러 번 앗수르의 공격을 받다가 마침내 함락되고 만다. 앗수르 왕은 사마리아에 자국민들을 이주시켜 혼혈정책을 펼친다. 이로 인해 사마리아는 혼혈 민족이 되었다. 유대인들은 이런 사마리아인들을 적대시하며 상종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2012-09-21
제38과성령의 열매(5) - 자비
갈 5:22~23
읽을말씀 : 갈 5:22~23 | 외울말씀 : 눅 6:32 ㅣ 참고 말씀:약 2장
교육목표 : 자비의 영적인 의미와 자비의 특징에 대해 밝히 알아보고 자비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한다.
어느 날 출장 중인 아버지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아들이 상급생에게 폭행을 당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들을 죽인 상급생이 너무 밉고 원통하여 어떻게 하면 복수할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탄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용서하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니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1. 자비의 열매란?
자비(慈悲)는 사전에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영적인 의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지 않고 공의로만 심판하신다면 하나님 앞에 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하시기 때문에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으로 품어 주시지요. 나아가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은 생명까지 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아무리 좋게 이해하려고 해도 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거나 "아무리 용서하려고 해도 저 사람만은 도무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만큼 자비의 마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자비와 사랑이 어떻게 다를까요? 사랑이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아무런 대가 없이 상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이라면, 자비는 용서와 포용의 성격이 강합니다. 자비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오해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감싸 줄 수 있는 마음이지요.
자비의 열매가 맺히면 상대의 큰 허물이 보여도 정죄하기보다 긍휼의 마음이 앞섭니다. 상대를 이해해 주며 어찌하든 그를 살리고자 힘씁니다. 선과 사랑으로 포용하기 때문에 싫거나 걸리거나 밉고 불편한 사람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의 자비하신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그 당시 간음죄는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었지요. 이들은 여인을 불쌍히 여기거나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십니다.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죄를 용서한다는 의미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죄임에도 예수님은 용서함으로써 여인에게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비의 마음입니다.
2. 영적인 자비의 특성
1) 편견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부유하고 명예 있는 사람을 대할 때와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상대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거나 마음 자세가 달라지는 자체가 없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나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주님의 마음으로 섬길 수 있어야 하지요.
야고보서 2장 1~4절에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말씀했습니다.
자비의 열매가 맺히면 상대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오직 재판관은 한 분 하나님이시며 누구도 형제를 정죄할 권한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비의 마음이 있으면 징계받는 이를 볼 때 긍휼히 여기며 '저가 힘을 내어 잘 통과하기를' 바라고 기도해 주게 되지요.
2)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즐겨 구제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에게 말로만 "힘내세요!" 하는 것은 긍휼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비의 마음이 있으면 실질적으로 힘이 되도록 돕습니다. 야고보서 2장 15~17절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말씀했습니다.
진실한 구제는 상대가 굶고 있는데 '나도 한 끼 먹을 양식뿐이니 어쩔 수 없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어려워도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물질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고통을 나누고자 하지요. 더구나 주님을 믿지 않으므로 지옥에 갈 영혼들을 본다면 어찌하든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마음을 쓰는 것이 곧 자비의 마음입니다.
3) 상대를 함부로 지적하지 않습니다
자비의 마음이 있으면 내 의분에 못 이겨 쉽게 상대를 책망하거나 지적하지 않습니다. 한마디 지적을 해도 기도하는 심정으로 상대의 마음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하지요. 잠언 12장 18절에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말씀했습니다.
어떤 일꾼은 자기 의와 틀 속에서 쉽게 지적을 합니다. 그 말이 아무리 맞는 말이라 하여도 사랑이 없이 지적할 때는 생명이 되지 않습니다. 지적을 받은 상대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날카로운 칼에 찔린 것처럼 마음에 상처를 받고 낙심하여 힘을 잃을 수 있지요.
어린 소자를 대할 때도 찌르거나 허물을 들춰내어 상처를 주거나 실족시키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꼭 필요해서 권면을 한다 해도 상대의 입장에서 그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랑으로 할 수 있어야 생명과 능력이 되어 변화될 수 있지요.
4) 모든 사람에게 관대합니다
세상의 악한 사람도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너그럽게 대하며 자기 것을 내어줍니다. 누가복음 6장 32절에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자비의 마음은 악한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사랑합니다. 대가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상대를 위해 나를 내어줄 때 자비의 열매가 맺히지요.
스데반 집사는 악한 자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며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했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미워하거나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지 않았고 사랑의 기도를 올렸지요.
혹여 아직도 내 마음에 싫고 걸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만큼 마음이 좁다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성격과 의견이 맞지 않아도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며 이해하게 되지요. 만일 상대에 대한 좋지 않은 느낌이 있다면 좋은 느낌으로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5) 상대에게 공적을 돌립니다
자비의 열매가 맺히면 잘한 일이 있으면 상대의 공으로 돌리고, 반대로 잘못된 일이 있으면 자신의 허물로 돌립니다. 함께 일해서 열매를 냈는데 상대만 칭찬을 받아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지요. '내가 더 수고했는데 왜 저 사람만 칭찬하시지?' 하며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를 생각하며 더 기뻐하지요.
가령, 부모의 도움으로 자녀가 큰 상을 받았다면 "왜 나에게는 상을 주지 않느냐?"고 불편해하는 부모가 있을까요? 어찌하든 자녀에게 모든 공을 돌리기 원할 것입니다. 자비의 마음 또한 그렇습니다. 진리 안에서 어떤 사람이라도 이해하고 용서하는 자비의 마음을 이루어야 많은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을 채워 보세요.
( )는 사전에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 더하여 영적인 의미는 "도저히 ( )할 수 없고 ( )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다.
2. 자비의 마음을 이룬 사람의 특징으로 맞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상대에게 공적을 돌린다.
②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다.
③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즐겨 구제한다.
④ 무조건 상대를 따끔하게 지적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스데반' 집사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이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뽑혔으며,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기사와 표적을 많이 행하고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유대 지도자들은 거짓 증인을 내세워 스데반을 모함하고 고소하였다. 이에 스데반이 설교를 통해 그들의 죄를 지적하며 회개할 수 있도록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하자 유대 지도자들은 오히려 큰 소리를 지르며 스데반에게 달려 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쳐 죽였다.
교육목표 : 자비의 영적인 의미와 자비의 특징에 대해 밝히 알아보고 자비의 열매를 맺을 수 있게 한다.
어느 날 출장 중인 아버지가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습니다. 아들이 상급생에게 폭행을 당해 죽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들을 죽인 상급생이 너무 밉고 원통하여 어떻게 하면 복수할까 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래서 탄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이 나타나시고 '용서하라'는 음성이 들렸습니다. 결코 용서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나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하니 아들을 죽인 사람을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비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1. 자비의 열매란?
자비(慈悲)는 사전에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정의합니다. 여기에 더하여 영적인 의미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지 않고 공의로만 심판하신다면 하나님 앞에 설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하시기 때문에 도저히 용서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사랑으로 품어 주시지요. 나아가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은 생명까지 주심으로 우리에게 대한 사랑을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아무리 좋게 이해하려고 해도 저 사람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거나 "아무리 용서하려고 해도 저 사람만은 도무지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런 사람은 그만큼 자비의 마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자비와 사랑이 어떻게 다를까요? 사랑이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아무런 대가 없이 상대를 위해 희생할 수 있는 마음이라면, 자비는 용서와 포용의 성격이 강합니다. 자비는 도저히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라도 오해하거나 미워하지 않고 모든 것을 감싸 줄 수 있는 마음이지요.
자비의 열매가 맺히면 상대의 큰 허물이 보여도 정죄하기보다 긍휼의 마음이 앞섭니다. 상대를 이해해 주며 어찌하든 그를 살리고자 힘씁니다. 선과 사랑으로 포용하기 때문에 싫거나 걸리거나 밉고 불편한 사람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보면 예수님의 자비하신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끌고 왔습니다. 그 당시 간음죄는 돌로 쳐 죽이게 되어 있었지요. 이들은 여인을 불쌍히 여기거나 살리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하십니다. 정죄하지 않는다는 것은 죄를 용서한다는 의미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죄임에도 예수님은 용서함으로써 여인에게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비의 마음입니다.
2. 영적인 자비의 특성
1) 편견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판단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부유하고 명예 있는 사람을 대할 때와 가난하고 무식한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지요. 하나님의 자녀들은 상대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거나 마음 자세가 달라지는 자체가 없어야 합니다. 어린아이나 부족해 보이는 사람이라 해도 나보다 낫게 여기며 주님의 마음으로 섬길 수 있어야 하지요.
야고보서 2장 1~4절에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말씀했습니다.
자비의 열매가 맺히면 상대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 정죄하지 않습니다. 오직 재판관은 한 분 하나님이시며 누구도 형제를 정죄할 권한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비의 마음이 있으면 징계받는 이를 볼 때 긍휼히 여기며 '저가 힘을 내어 잘 통과하기를' 바라고 기도해 주게 되지요.
2)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즐겨 구제합니다
어려운 일을 당한 사람에게 말로만 "힘내세요!" 하는 것은 긍휼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자비의 마음이 있으면 실질적으로 힘이 되도록 돕습니다. 야고보서 2장 15~17절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더웁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말씀했습니다.
진실한 구제는 상대가 굶고 있는데 '나도 한 끼 먹을 양식뿐이니 어쩔 수 없지'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아무리 어려워도 같이 나누는 것입니다. 물질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고통을 나누고자 하지요. 더구나 주님을 믿지 않으므로 지옥에 갈 영혼들을 본다면 어찌하든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마음을 쓰는 것이 곧 자비의 마음입니다.
3) 상대를 함부로 지적하지 않습니다
자비의 마음이 있으면 내 의분에 못 이겨 쉽게 상대를 책망하거나 지적하지 않습니다. 한마디 지적을 해도 기도하는 심정으로 상대의 마음을 살피면서 조심스럽게 하지요. 잠언 12장 18절에 "혹은 칼로 찌름같이 함부로 말하거니와 지혜로운 자의 혀는 양약 같으니라" 말씀했습니다.
어떤 일꾼은 자기 의와 틀 속에서 쉽게 지적을 합니다. 그 말이 아무리 맞는 말이라 하여도 사랑이 없이 지적할 때는 생명이 되지 않습니다. 지적을 받은 상대가 변화되는 것이 아니라 마치 날카로운 칼에 찔린 것처럼 마음에 상처를 받고 낙심하여 힘을 잃을 수 있지요.
어린 소자를 대할 때도 찌르거나 허물을 들춰내어 상처를 주거나 실족시키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꼭 필요해서 권면을 한다 해도 상대의 입장에서 그 영혼을 소중히 여기는 사랑으로 할 수 있어야 생명과 능력이 되어 변화될 수 있지요.
4) 모든 사람에게 관대합니다
세상의 악한 사람도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너그럽게 대하며 자기 것을 내어줍니다. 누가복음 6장 32절에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자비의 마음은 악한 사람이든 선한 사람이든 사랑합니다. 대가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상대를 위해 나를 내어줄 때 자비의 열매가 맺히지요.
스데반 집사는 악한 자들이 던지는 돌에 맞아 죽어 가면서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며 그들을 위해 중보 기도했습니다. 자신을 죽이는 자들을 미워하거나 원수를 갚아 달라고 하지 않았고 사랑의 기도를 올렸지요.
혹여 아직도 내 마음에 싫고 걸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만큼 마음이 좁다는 증거입니다. 아무리 성격과 의견이 맞지 않아도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저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겠구나.' 하며 이해하게 되지요. 만일 상대에 대한 좋지 않은 느낌이 있다면 좋은 느낌으로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5) 상대에게 공적을 돌립니다
자비의 열매가 맺히면 잘한 일이 있으면 상대의 공으로 돌리고, 반대로 잘못된 일이 있으면 자신의 허물로 돌립니다. 함께 일해서 열매를 냈는데 상대만 칭찬을 받아도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지요. '내가 더 수고했는데 왜 저 사람만 칭찬하시지?' 하며 불편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상대를 생각하며 더 기뻐하지요.
가령, 부모의 도움으로 자녀가 큰 상을 받았다면 "왜 나에게는 상을 주지 않느냐?"고 불편해하는 부모가 있을까요? 어찌하든 자녀에게 모든 공을 돌리기 원할 것입니다. 자비의 마음 또한 그렇습니다. 진리 안에서 어떤 사람이라도 이해하고 용서하는 자비의 마음을 이루어야 많은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을 채워 보세요.
( )는 사전에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마음'이라고 정의한다. 여기에 더하여 영적인 의미는 "도저히 ( )할 수 없고 ( )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다.
2. 자비의 마음을 이룬 사람의 특징으로 맞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상대에게 공적을 돌린다.
② 모든 사람에게 관대하다.
③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즐겨 구제한다.
④ 무조건 상대를 따끔하게 지적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스데반' 집사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이다.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뽑혔으며,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기사와 표적을 많이 행하고 회당에서 복음을 전파하기도 하였다. 그러자 유대 지도자들은 거짓 증인을 내세워 스데반을 모함하고 고소하였다. 이에 스데반이 설교를 통해 그들의 죄를 지적하며 회개할 수 있도록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하자 유대 지도자들은 오히려 큰 소리를 지르며 스데반에게 달려 들어 성 밖으로 내치고 돌로 쳐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