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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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8-17
제33과믿음의 5단계(2)
민 12:7~8
읽을말씀 : 민 12:7~8 | 외울말씀 : 민 12:7 l 참고 말씀:민 12:3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해야 함을 알려준다.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단계를 지나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그에 맞게 행하는 차원입니다. 그러니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무수한 기도를 쌓아 기사와 표적을 행할 뿐 아니라,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을 뿐 아니라, 온 집에 충성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민 12:3,7).
1. 온 집에 충성하는 믿음의 5단계
'충성'의 영적인 의미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 그 이상을 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일꾼으로 불러 급료를 주며 일을 맡겼을 때, 그 일만 잘 감당했다 해서 '충성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이지요. 그런데 삯을 받고 일해도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몸을 아끼지 않고 넘치게 주어진 일을 감당했을 때는 충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영적으로 충성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성결되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오면 성령의 열매가 맺히니 충성의 열매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충성의 차원을 넘어 온 집에 충성하려면 믿음의 5단계에 들어와 성령의 열매가 100퍼센트 맺혀야 합니다.
충성이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상대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랑이 없이는 희생하고 헌신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면 한쪽에서 아무리 충성한다 해도 다른 분야에는 좀 소홀하게 될 수 있지요.
'화평'의 열매가 온전히 맺혀 있지 않으면 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부딪힘이 생기고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화평이 깨어진 충성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영적인 충성을 하면서 온 집에 충성하려면 성령의 열매들이 모두 맺혀 있어야 합니다.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은 '자신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사명을 맡게 됩니다. 그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되 한두 가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해 감당하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여러 사명 중에는 중요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명도 있지만 조금은 덜 중요해 보이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명도 있습니다. 그러나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사람이 보기에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명을 소중히 여기므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당합니다.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아무리 많은 사명을 갖고 있어도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며 열매를 낼 수 있습니다. 온전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으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의 모든 과정도, 무수한 영혼들의 삶도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마음에 다 담고 주관해 가십니다. 믿음의 5단계인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많은 영혼이나 많은 일을 마음에 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혼 구원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 또한 있지요. 그 간절한 사랑으로 마음에 품고 간구하므로 자신이 맡은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끌어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분야를 똑같이 마음에 품고 소중하게 여기며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 모든 사명에 똑같은 시간을 할애하고 똑같이 긴급하게 여긴다는 말은 아닙니다. 분명히 급한 것과 나중에 할 것,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 있지요.
그러나 충성의 열매가 온전히 맺힌 사람은 많은 사명 중에 어떤 사명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며, 수많은 양 떼 중에 한 영혼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적게 들이든 많이 들이든, 모든 분야에 정성과 성실을 다하는 것입니다.
2. 온 집에 충성하려면
출애굽 당시, 이백만 가량이나 되는 수많은 백성들을 모세가 일일이 만나고 그들의 문제를 상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모든 백성들을 영으로 품고 있었고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 대해 이르시기를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영으로 들어간 만큼 영혼들을 품을 수 있고, 사명도 더 많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신이 맡은 양 떼가 오백 명이면 전부를 매주마다 심방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양 떼나 급한 문제가 있는 양 떼는 자주 돌아보게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심방하는 양 떼도 있지요.
그러나 충성된 마음을 가졌다면 자주 보든, 보지 않든 모든 양 떼를 항상 영으로 품어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몇 달 동안 예배 한 번 드리지 못한 영혼이라 해도 마음에 늘 담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지요. 그래서 꼭 필요할 때는 마음에 주관해 주셔서 특별히 기도를 하도록 하시거나 심방하게 하시기도 하며, 단 한 번을 짧게 만난다 해도 좋은 열매로 나오게 되지요.
이는 자신이 게을러 심방하지 않으면서 "그 대신 기도하고 있으니까" 하고 변명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생명 다해 사명을 감당하려고 노력하지만 "제가 직접 돌보지 못한 분야까지도 아버지께서 돌보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심정이 얼마나 안타깝고 애절하겠습니까? 그러한 중심의 향을 받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영혼들을 돌보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명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모든 분야에 대해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며, 영으로 품어 열매를 내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하는 비결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많은 사명을 맡으면 다 잘 감당하지 못할 것이니 차라리 한두 가지만 맡아서 정성을 다한다면 온 집에 충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충성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자 사명을 사모하는 마음이 뜨거울 것이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헌신하려는 열정이 뜨거우니 어찌하든 사명을 사모하게 되지요. 그러니 내가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만 감당하겠다는 말 자체가 이미 온 집에 충성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또한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은 사적인 분야에 있어서도 충성되이 행하여 열매를 내고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는 열심을 내는데 가정은 전혀 돌아보지 않는다거나 학교나 직장에서는 불성실하다면 "저 사람은 참으로 충성된 일꾼"이라고 칭찬할 수 없습니다.
충성된 사람은 마음 자체가 이미 성실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서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든 곳에서 성실하게 행합니다. 그렇다 해서 꼭 1등을 해야 하고 실적이 제일 좋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성실하게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는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선후를 따질 때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과 사명이 더 중요하고 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이 먼저이지요. 그렇다 해서 하나님의 일만 열심히 하고 다른 분야에서는 불성실해서도 안 됩니다. 만약 하나님 일만 열심히 한다면 이는 충성된 마음이기보다는 육적인 충성이거나 일시적인 뜨거움은 아닌지 스스로를 잘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영적인 충성은 두루두루 마음을 쓰기 마련이지요.
자신에게 맡겨 준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해 희생하며 섬겨 나가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은혜와 능력을 주시지요.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악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고 그 악을 버릴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영으로 온 영으로 신속하게 들어오게 해 주십니다.
시편 101편 6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말씀했습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주어진 모든 사명을 넘치게 감당함으로 온 집에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아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충성'과 '온 집에 충성'의 영적인 의미를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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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모세 선지자에 대해 말씀하신 민수기 12장 3절과 7절을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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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모세 선지자'
레위 족속 아므람과 요베겟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미리암과 아론의 동생이다. 당시 애굽의 박해로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웠는데 마침 애굽의 공주가 발견하고 양자로 삼는다. 40세 때 동족의 고역과 박해당하는 것을 보고 애굽 사람을 죽인 후 미디안으로 도망간다. 80세 때 여호와로부터 민족 해방의 사명을 받고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한 위대한 출애굽의 지도자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에 이르기 위해서는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해야 함을 알려준다.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단계를 지나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그에 맞게 행하는 차원입니다. 그러니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무수한 기도를 쌓아 기사와 표적을 행할 뿐 아니라,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을 뿐 아니라, 온 집에 충성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지자가 되었습니다(민 12:3,7).
1. 온 집에 충성하는 믿음의 5단계
'충성'의 영적인 의미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 그 이상을 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을 일꾼으로 불러 급료를 주며 일을 맡겼을 때, 그 일만 잘 감당했다 해서 '충성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할 일을 한 것뿐이지요. 그런데 삯을 받고 일해도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몸을 아끼지 않고 넘치게 주어진 일을 감당했을 때는 충성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영적으로 충성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성결되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오면 성령의 열매가 맺히니 충성의 열매도 당연히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충성의 차원을 넘어 온 집에 충성하려면 믿음의 5단계에 들어와 성령의 열매가 100퍼센트 맺혀야 합니다.
충성이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상대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랑이 없이는 희생하고 헌신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면 한쪽에서 아무리 충성한다 해도 다른 분야에는 좀 소홀하게 될 수 있지요.
'화평'의 열매가 온전히 맺혀 있지 않으면 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부딪힘이 생기고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화평이 깨어진 충성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영적인 충성을 하면서 온 집에 충성하려면 성령의 열매들이 모두 맺혀 있어야 합니다.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은 '자신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사명을 맡게 됩니다. 그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되 한두 가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해 감당하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여러 사명 중에는 중요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사명도 있지만 조금은 덜 중요해 보이거나 인정받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명도 있습니다. 그러나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사람이 보기에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명을 소중히 여기므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당합니다.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아무리 많은 사명을 갖고 있어도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며 열매를 낼 수 있습니다. 온전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으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의 모든 과정도, 무수한 영혼들의 삶도 손바닥을 들여다보듯 마음에 다 담고 주관해 가십니다. 믿음의 5단계인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많은 영혼이나 많은 일을 마음에 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혼 구원을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 또한 있지요. 그 간절한 사랑으로 마음에 품고 간구하므로 자신이 맡은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끌어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모든 분야를 똑같이 마음에 품고 소중하게 여기며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 모든 사명에 똑같은 시간을 할애하고 똑같이 긴급하게 여긴다는 말은 아닙니다. 분명히 급한 것과 나중에 할 것,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 있지요.
그러나 충성의 열매가 온전히 맺힌 사람은 많은 사명 중에 어떤 사명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며, 수많은 양 떼 중에 한 영혼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적게 들이든 많이 들이든, 모든 분야에 정성과 성실을 다하는 것입니다.
2. 온 집에 충성하려면
출애굽 당시, 이백만 가량이나 되는 수많은 백성들을 모세가 일일이 만나고 그들의 문제를 상담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모든 백성들을 영으로 품고 있었고 자신의 생명까지 내어놓을 수 있는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 대해 이르시기를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영으로 들어간 만큼 영혼들을 품을 수 있고, 사명도 더 많이 감당할 수 있습니다. 만약 자신이 맡은 양 떼가 오백 명이면 전부를 매주마다 심방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양 떼나 급한 문제가 있는 양 떼는 자주 돌아보게 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일 년에 겨우 한두 번 심방하는 양 떼도 있지요.
그러나 충성된 마음을 가졌다면 자주 보든, 보지 않든 모든 양 떼를 항상 영으로 품어 마음에 담고 있습니다. 몇 달 동안 예배 한 번 드리지 못한 영혼이라 해도 마음에 늘 담고 있으니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시지요. 그래서 꼭 필요할 때는 마음에 주관해 주셔서 특별히 기도를 하도록 하시거나 심방하게 하시기도 하며, 단 한 번을 짧게 만난다 해도 좋은 열매로 나오게 되지요.
이는 자신이 게을러 심방하지 않으면서 "그 대신 기도하고 있으니까" 하고 변명하는 모습과는 전혀 다릅니다. 생명 다해 사명을 감당하려고 노력하지만 "제가 직접 돌보지 못한 분야까지도 아버지께서 돌보아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심정이 얼마나 안타깝고 애절하겠습니까? 그러한 중심의 향을 받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영혼들을 돌보는 것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명에서도 마찬가지이지요. 모든 분야에 대해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분야에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며, 영으로 품어 열매를 내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하는 비결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많은 사명을 맡으면 다 잘 감당하지 못할 것이니 차라리 한두 가지만 맡아서 정성을 다한다면 온 집에 충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충성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자 사명을 사모하는 마음이 뜨거울 것이고, 죽어가는 영혼들을 위해 헌신하려는 열정이 뜨거우니 어찌하든 사명을 사모하게 되지요. 그러니 내가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만 감당하겠다는 말 자체가 이미 온 집에 충성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또한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은 사적인 분야에 있어서도 충성되이 행하여 열매를 내고 영광을 돌리게 된다는 점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는 열심을 내는데 가정은 전혀 돌아보지 않는다거나 학교나 직장에서는 불성실하다면 "저 사람은 참으로 충성된 일꾼"이라고 칭찬할 수 없습니다.
충성된 사람은 마음 자체가 이미 성실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에서만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모든 곳에서 성실하게 행합니다. 그렇다 해서 꼭 1등을 해야 하고 실적이 제일 좋아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성실하게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는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론 선후를 따질 때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과 사명이 더 중요하고 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것이 먼저이지요. 그렇다 해서 하나님의 일만 열심히 하고 다른 분야에서는 불성실해서도 안 됩니다. 만약 하나님 일만 열심히 한다면 이는 충성된 마음이기보다는 육적인 충성이거나 일시적인 뜨거움은 아닌지 스스로를 잘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영적인 충성은 두루두루 마음을 쓰기 마련이지요.
자신에게 맡겨 준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해 희생하며 섬겨 나가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은혜와 능력을 주시지요.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악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고 그 악을 버릴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영으로 온 영으로 신속하게 들어오게 해 주십니다.
시편 101편 6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말씀했습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주어진 모든 사명을 넘치게 감당함으로 온 집에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아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충성'과 '온 집에 충성'의 영적인 의미를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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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모세 선지자에 대해 말씀하신 민수기 12장 3절과 7절을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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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모세 선지자'
레위 족속 아므람과 요베겟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미리암과 아론의 동생이다. 당시 애굽의 박해로 모세를 갈대 상자에 넣어 나일강에 띄웠는데 마침 애굽의 공주가 발견하고 양자로 삼는다. 40세 때 동족의 고역과 박해당하는 것을 보고 애굽 사람을 죽인 후 미디안으로 도망간다. 80세 때 여호와로부터 민족 해방의 사명을 받고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한 위대한 출애굽의 지도자이다.
2012-08-10
제32과믿음의 5단계(1)
요일 3:21~22
읽을말씀 : 요일 3:21~22 | 외울말씀 : 히 10:22 ㅣ 참고 말씀:요 4:48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 특징에 대해 알아본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가 되면 사랑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에 순종하는 차원만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요.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런 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보다 넘치도록 순종합니다. 어느 한순간 행함을 보이거나 가끔 진한 사랑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분초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지요. 그런 모습이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변함없으며 날이 갈수록 승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믿음의 5단계
시편 37편 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이루어집니다.
교회 개척 당시 당회장님께서는 수중에 단돈 7천 원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나아감으로 결국 25평의 건물을 임대하여 개척 예배를 드릴 수 있었고,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창대히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막 9:23). 신명기 28장에 기록된 대로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며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아니하고 머리가 되는 축복이 임하고, 마가복음 16장에 기록된 대로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 나타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은 선진들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에녹은 65세에 성결을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하였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랑을 나누다가 365세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우는 축복을 받아 하나님 보좌 가까이 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하며 놀라운 권능의 역사로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였습니다.
2. 믿음의 5단계의 특징
1) 자신의 생명을 버릴 수 있는 온전한 믿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립니다(마 22:37~40).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의 5단계는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이므로 그리스도의 믿음, 완전한 영의 믿음이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지요. 이는 순종하는 차원 그 이상으로 자기 생명을 드리기까지 하나님을 위하여 온전히 희생하는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드렸던 믿음의 선진들이 많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고, 야고보는 칼로 목 베임을 당했으며, 요한은 펄펄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으나 죽지 않자 밧모 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찬송을 부르며 사자 밥이 된 사람들, 지하 공동묘지로 알려진 카타콤에서 평생 햇빛도 보지 못한 채 신앙을 지키다가 죽어간 이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생명도 아끼지 않는 초대교회 순교자들에 의해 세계 선교는 신속히 이뤄졌고, 우리나라도 순교자들로 인해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2)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완전한 영의 믿음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을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온 영이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온전히 품은 상태를 말합니다. 즉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깨달아 마음이 진리 자체가 되었기 때문에 온전히 성령의 음성을 들어 하나님 뜻대로만 살아가는 온전한 영의 사람이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마음의 성결을 이루면 영의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또한 영의 사람이 계속적으로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무장하면 마음뿐 아니라 생활 속에도 진리가 온전히 임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을 온전한 믿음이라 하고, 완전한 영의 믿음,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도 하지요.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하신 대로 참마음을 지니면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3) 무수한 기도를 쌓아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믿음
진리가 마음속에 온전히 임하여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살아가고자 무수한 기도를 쌓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영혼들을 구원하려면 능력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죄로 인해 사망의 길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의 5단계에 이르면 '어떻게 하면 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아버지의 나라와 의를 이룰까?' 궁구하며 불타는 마음을 행함으로 나타냅니다.
그래서 위로부터 능력을 받아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차원을 넘어 다른 사명까지도 감당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을 받을 수 있을까요? 부단히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끌어내려야 합니다. 영혼 구원은 사람의 말이나 지식, 경험이나 명예, 권세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고전 4:20).
따라서 믿음의 5단계에서는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받기 위해 뜨거운 마음으로 무수한 기도를 쌓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 위해 무수한 기도를 쌓으면 표적과 기사가 온전히 나타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을 소유한 증거가 됩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시며 공생애 동안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많은 영혼들에게 쉽게 믿음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역사가 이에 속합니다. 가령,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의 역사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7~18절을 보면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은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되어 나오지요.
다음으로 기사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천기를 움직이는 것으로 주로 기상 현상과 관계됩니다. 구름을 움직이고 비를 오게 하거나 멎게 하는 것, 천체를 움직이는 것들이 이에 속합니다(삼상 12:18 ; 왕하 20:11 ; 약 5:17~18).
이처럼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사람들을 통하여 눈에 보이는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시며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5단계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다.
② 기사와 표적이 따른다.
③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온전히 맺히지는 않았다.
④ 자신의 생명을 버릴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이다.
2. 믿음의 5단계에서 따르는 5가지의 표적은 무엇일까요? (막 16: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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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카타콤'이란?
초기 기독교 시대의 비밀 지하 묘지이다. 로마 황제의 박해를 피하여 죽은 사람을 그곳에 매장하고 예배를 보기도 하였다. 소아시아 · 북아프리카 · 남부 이탈리아 등지에 널리 있지만 로마 교외의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 특징에 대해 알아본다.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가 되면 사랑의 차원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에 순종하는 차원만이 아니라, 하나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요.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런 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보다 넘치도록 순종합니다. 어느 한순간 행함을 보이거나 가끔 진한 사랑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분초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지요. 그런 모습이 10년, 20년, 30년이 지나도 변함없으며 날이 갈수록 승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믿음의 5단계
시편 37편 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게 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이루어집니다.
교회 개척 당시 당회장님께서는 수중에 단돈 7천 원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믿음으로 나아감으로 결국 25평의 건물을 임대하여 개척 예배를 드릴 수 있었고, 민족 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창대히 이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막 9:23). 신명기 28장에 기록된 대로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으며 꾸어 줄지언정 꾸지 아니하고 머리가 되는 축복이 임하고, 마가복음 16장에 기록된 대로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 나타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은 선진들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에 나오는 에녹은 65세에 성결을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하였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삼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며 사랑을 나누다가 365세에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우는 축복을 받아 하나님 보좌 가까이 거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하며 놀라운 권능의 역사로 무수한 영혼을 구원하였기 때문에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였습니다.
2. 믿음의 5단계의 특징
1) 자신의 생명을 버릴 수 있는 온전한 믿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립니다(마 22:37~40).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의 5단계는 자신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주님을 위해서 기꺼이 버릴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이므로 그리스도의 믿음, 완전한 영의 믿음이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온전히 순종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고,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지요. 이는 순종하는 차원 그 이상으로 자기 생명을 드리기까지 하나님을 위하여 온전히 희생하는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회 역사를 살펴보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자기의 생명을 아끼지 않고 드렸던 믿음의 선진들이 많습니다. 베드로는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죽었고, 야고보는 칼로 목 베임을 당했으며, 요한은 펄펄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으나 죽지 않자 밧모 섬으로 유배되었습니다.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찬송을 부르며 사자 밥이 된 사람들, 지하 공동묘지로 알려진 카타콤에서 평생 햇빛도 보지 못한 채 신앙을 지키다가 죽어간 이들도 있습니다.
이처럼 생명도 아끼지 않는 초대교회 순교자들에 의해 세계 선교는 신속히 이뤄졌고, 우리나라도 순교자들로 인해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2)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완전한 영의 믿음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을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온 영이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온전히 품은 상태를 말합니다. 즉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깨달아 마음이 진리 자체가 되었기 때문에 온전히 성령의 음성을 들어 하나님 뜻대로만 살아가는 온전한 영의 사람이요, 온전한 믿음의 사람인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마음의 성결을 이루면 영의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또한 영의 사람이 계속적으로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무장하면 마음뿐 아니라 생활 속에도 진리가 온전히 임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을 온전한 믿음이라 하고, 완전한 영의 믿음,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도 하지요.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하신 대로 참마음을 지니면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3) 무수한 기도를 쌓아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믿음
진리가 마음속에 온전히 임하여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살아가고자 무수한 기도를 쌓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영혼들을 구원하려면 능력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것은 죄로 인해 사망의 길에서 방황하는 영혼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의 5단계에 이르면 '어떻게 하면 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아버지의 나라와 의를 이룰까?' 궁구하며 불타는 마음을 행함으로 나타냅니다.
그래서 위로부터 능력을 받아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는 차원을 넘어 다른 사명까지도 감당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요.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을 받을 수 있을까요? 부단히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끌어내려야 합니다. 영혼 구원은 사람의 말이나 지식, 경험이나 명예, 권세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고전 4:20).
따라서 믿음의 5단계에서는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할 수 있는 능력을 받기 위해 뜨거운 마음으로 무수한 기도를 쌓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뜨거운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 위해 무수한 기도를 쌓으면 표적과 기사가 온전히 나타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을 소유한 증거가 됩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시며 공생애 동안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셨습니다. 이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며 많은 영혼들에게 쉽게 믿음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역사가 이에 속합니다. 가령,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의 역사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7~18절을 보면 믿는 자에게 따르는 표적은 크게 다섯 가지로 구분되어 나오지요.
다음으로 기사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천기를 움직이는 것으로 주로 기상 현상과 관계됩니다. 구름을 움직이고 비를 오게 하거나 멎게 하는 것, 천체를 움직이는 것들이 이에 속합니다(삼상 12:18 ; 왕하 20:11 ; 약 5:17~18).
이처럼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사람들을 통하여 눈에 보이는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시며 수많은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따라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더욱 힘쓰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5단계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다.
② 기사와 표적이 따른다.
③ 성령의 9가지 열매가 온전히 맺히지는 않았다.
④ 자신의 생명을 버릴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이다.
2. 믿음의 5단계에서 따르는 5가지의 표적은 무엇일까요? (막 16: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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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카타콤'이란?
초기 기독교 시대의 비밀 지하 묘지이다. 로마 황제의 박해를 피하여 죽은 사람을 그곳에 매장하고 예배를 보기도 하였다. 소아시아 · 북아프리카 · 남부 이탈리아 등지에 널리 있지만 로마 교외의 것이 가장 대표적이다.
2012-08-03
제31과영의 사람이 온 영의 사람이 되어 성정대로 쓰임 받기까지
요 4:24
읽을말씀 : 요 4:24 | 외울말씀 : 요 4:24 ㅣ참고 말씀:살전 5:23
교육목표 :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뛰어난 믿음의 선진들처럼 성정대로 쓰임을 받으려면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 알아본다.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영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일단 그릇이 준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준비된 그릇에 영의 내용물들을 채워나가게 되지요. 이제 겨우 채워나가기 시작한 상태를 '결여'라 하고 그릇의 반쯤 넘어선 상태를 '부족'이라 하며 그릇을 완전히 채우면 이때부터 온 영의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80%부터 5단계 50% 미만까지는 가득 채웠다고는 하지만 아직 곳곳에 빈 공간이 조금은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믿음의 5단계 50%를 넘어야 빈 공간까지도 완전히 채웠다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의 그릇에 빈 공간 없이 영의 내용물을 완전히 채웠다 해도 그릇마다 재질이 다르고 크기와 모양이 다르지요.
일단 그릇을 영의 내용물로 완전히 채우면 그릇의 재질이나 크기와 모양이 더 이상 '육의 흔적'이라는 장애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그 그릇의 재질과 모양과 크기에 따라 특성에 맞게 활용해 가시지요.
1. 육의 흔적을 변환시키는 과정
우리가 원죄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접한 육의 지식과 경험, 부모에게 전달받은 성품이나 기질 같은 것들이 흔적처럼 남는데, 이것을 '육의 흔적'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덕과 사랑이 넘치지만 기질적으로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지 않아 끊어야 할 때 정확히 끊지 못합니다. 반면 베풀기는 즐겨하는데 기분에 따라 즉흥적인 사람도 있고, 늘 성실하고 바른 모습이지만 다소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으로 들어오면 이런 성품이나 기질적인 면이 악의 모양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육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한 영의 마음과는 차이가 나지요. 그래서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오면 이런 육의 흔적 중에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영적으로 결여되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서 온 영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육의 흔적의 변환'이라 말합니다.
육의 흔적이 신의 성품 안에 녹아지면서 영적인 것으로 변한다는 의미로서 인성도 사람의 인성이 아닌 신의 성품에 속한 인성으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4단계부터는 육의 흔적을 변환시켜 나가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믿음의 5단계 50%를 넘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2. 육의 흔적 변환 1단계(믿음의 4단계 1-50% 미만)
이 단계에서는 육의 흔적으로 인한 결여를 채워나가야 합니다. '결여'란 아예 없거나 조금밖에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크게 세가지 분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랑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사랑의 분야에 결여가 생깁니다. 그래서 영으로 들어와 마음에 악은 없다 해도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나타내야 하는지 잘 깨닫지 못합니다.
가령, 부모의 용서와 이해를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책망과 체벌을 받기도 하면서 이것이 부모의 사랑임을 깨달았다면 진정한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입니다. 이처럼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용서해 주고 품어 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책망하고 외면하는 것도 사랑임을 마음에서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사랑이 결여된 사람은 일방적으로 보듬어 주고 용서만 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하기도 하고, 반대로 일방적으로 질책하고 책망만 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하기도 하지요.
다음으로, 영의 지식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으로 쌓아왔다고는 하나 자기 마음에 온전히 영으로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그것이 결여로 자리 잡은 경우입니다. 가령 똑같은 하나님 말씀이라도 영의 깊이가 더할수록 그 말씀을 깨닫고 적용하는 차원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영의 지식의 결여가 있는 사람은 자기가 깨닫고 이해한 것이 전부라 생각하며 더 깊은 차원은 생각지 못하지요. 예를 들어, 영의 사랑은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열심히 상대의 유익을 구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며, 상대의 어려움을 앞장서서 해결해 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상대의 영혼이 잘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지요.
마지막으로, 온전한 선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이 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어떤 감정도 없고, 마음이 전혀 요동하지 않는 차원이므로 선의 2단계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온전한 선에 비하면 아직은 소극적인 수준의 선입니다. 비유를 들면, 규정 속도가 60km인 1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뒤에서 비상등을 켠 차가 빠르게 달려옵니다. 이때 온전한 선의 결여가 있는 사람은 자신만 법을 지키고 정도를 가면 된다고 생각하여 뒤차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뒤차가 추월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조금만 빨리 달려 주면 될 텐데, 자신은 교통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한계 안에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는 진리를 행한다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육의 흔적의 변환 2단계(믿음의 4단계 50-80% 미만)
이 단계는 육의 흔적으로 인해 부족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온전함을 향해 채워 나가는 차원이지요. 다시 말해 온 영의 차원과 비교할 때 아직은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온 영의 사람이 되려면 부족한 분야가 무엇일까요?
먼저, 사랑의 부족을 채워야 합니다. 가령 이해하고 용서해 주기로 했을 때, 어느 선(線)까지 해야 할지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되, 어떤 때는 한계를 그어야 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도가 넘치도록 해 줘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똑같이 이해하고 품는 방법을 택한다 해도 어떤 경우는 선을 그어 상대가 스스로 일어나게 하는가 하면, 반면에 넘치는 위로와 격려를 통해 상대가 감동함을 입고 변화되도록 하는 경우도 있지요. 따라서 더 깊이 있고, 섬세한 사랑의 차원을 깨달아 부족한 분야를 채워야 합니다.
다음으로, 영의 지식의 부족을 채워야 합니다. 영의 지식의 결여와 비교하면 그래도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있게 깨닫고 헤아리기는 하지만 아직은 부족한 상태를 말합니다. 똑같은 영의 지식이라도 그 말씀을 마음에 얼마나 영으로 이루었느냐에 따라 활용범위와 활용방법이 달라집니다. 한 말씀을 10가지로 활용하고 적용할 수 있다고 할 때, 아직은 5-6가지로밖에 활용하지 못하는 차원이지요.
마지막으로 온전한 선의 부족입니다. 규정 속도가 60km인 일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뒤에서 비상등을 켠 차가 빠르게 달려옵니다. 이때 온전한 선이 부족한 사람은 어떤 때는 뒤차의 입장을 생각해서 빨리 달리지만 어떤 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상대를 배려하지만 매번 그렇게 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일을 할 때 나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선이라 말할 수 있으려면 선의 4단계가 임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선의 3단계만 온전히 임해 있어도 온전한 선에 가깝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4. 육의 흔적의 변환을 통해 활용하는 방법을 깨닫는 단계 (믿음의 4단계 80% - 믿음의 5단계 50% 미만)
이처럼 육의 흔적이 온전히 변환되면 그때부터는 '성정' 즉,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적인 면'이 신의 성품 안에서 아름답게 발휘됩니다. 전에는 이러한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이 육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함을 이루는 데 장애물이 되었다면, 육의 흔적을 온전히 변환시킨 후부터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 즉, 각 사람의 성정이 그 사람만의 특별한 장점으로 활용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80%부터 믿음의 5단계 5% 미만은 아직 육의 흔적이 온전히 변환되어서 활용해 나가는 단계는 아닙니다. 어느 때는 육의 흔적이 나올 때도 있고, 어느 때는 육의 흔적이 변환되어 나올 때도 있지요. 그래서 스스로 '내가 영인가? 온 영인가?'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4단계 80%부터는 온 영으로 인정해 주시며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여 이끌어 가십니다.
5. 육의 흔적이 온전히 성정대로 쓰임 받는 단계(믿음의 5단계 50% 이상)
각각의 그릇마다 가지고 있는 그릇의 재질과 크기와 모양의 특성이 바로 각 사람의 '성정'에 해당합니다. 성경을 보면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사도 바울 등은 육의 흔적을 완전히 변환시킨 후, 자기 만이 가진 성정의 특징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는 의분이 있고 급한 성품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훗날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가장 승하다고 하나님께 인정받지요. 그리고 예전의 의분과 급한 성품이 이제는 백성을 향한 열정으로 바뀌어 나타납니다. 뜨거운 성품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온전히 변화된 후에는 수많은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까지도 그 마음 안에 다 담을 수 있는 큰 자가 되었지요. 백성들을 위한 애끓는 애통과 자신의 구원을 담보로 걸면서까지 백성들을 사랑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모세의 열정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꺼질 줄을 몰랐습니다.
만약 모세 선지자가 미지근하고 냉랭한 성품이었다면, 백성들을 향한 그런 열정을 가지고 인도해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수많은 백성을 이끌어야 했던 40년 광야생활에 지쳐 버릴 수도 있지요. 이처럼 모세 선지자의 성정이 영적으로 온전히 변화되어 쓰임 받았기에, 그 큰 사명을 아름답게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도 믿음의 선진들처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릴 뿐 아니라, 신속히 영의 사람이 되어 육의 흔적을 완전히 변환시킨 후, 각자의 성정에 따라 귀히 쓰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알고 넘어 갑시다!
'선의 4단계'란?
선의 1단계: 악을 악으로 대항치 않고 감정을 눌러 참는 단계, 사람이 보기에는 선하나 하나님께서는 선하다 하지 않음
선의 2단계: 악을 악으로 대항치 않고 어떤 감정도 품지 않는 선
선의 3단계: 악으로 나오는 자에게 오히려 감동을 줄 수 있는 선
선의 4단계: 악한 자를 위해 생명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
교육목표 :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뛰어난 믿음의 선진들처럼 성정대로 쓰임을 받으려면 어떤 단계를 거쳐야 하는지 알아본다.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영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일단 그릇이 준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부터는 준비된 그릇에 영의 내용물들을 채워나가게 되지요. 이제 겨우 채워나가기 시작한 상태를 '결여'라 하고 그릇의 반쯤 넘어선 상태를 '부족'이라 하며 그릇을 완전히 채우면 이때부터 온 영의 사람이 됩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80%부터 5단계 50% 미만까지는 가득 채웠다고는 하지만 아직 곳곳에 빈 공간이 조금은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믿음의 5단계 50%를 넘어야 빈 공간까지도 완전히 채웠다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영의 그릇에 빈 공간 없이 영의 내용물을 완전히 채웠다 해도 그릇마다 재질이 다르고 크기와 모양이 다르지요.
일단 그릇을 영의 내용물로 완전히 채우면 그릇의 재질이나 크기와 모양이 더 이상 '육의 흔적'이라는 장애물로 작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그 그릇의 재질과 모양과 크기에 따라 특성에 맞게 활용해 가시지요.
1. 육의 흔적을 변환시키는 과정
우리가 원죄를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 성장하면서 접한 육의 지식과 경험, 부모에게 전달받은 성품이나 기질 같은 것들이 흔적처럼 남는데, 이것을 '육의 흔적'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덕과 사랑이 넘치지만 기질적으로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지 않아 끊어야 할 때 정확히 끊지 못합니다. 반면 베풀기는 즐겨하는데 기분에 따라 즉흥적인 사람도 있고, 늘 성실하고 바른 모습이지만 다소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으로 들어오면 이런 성품이나 기질적인 면이 악의 모양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육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한 영의 마음과는 차이가 나지요. 그래서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오면 이런 육의 흔적 중에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영적으로 결여되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서 온 영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육의 흔적의 변환'이라 말합니다.
육의 흔적이 신의 성품 안에 녹아지면서 영적인 것으로 변한다는 의미로서 인성도 사람의 인성이 아닌 신의 성품에 속한 인성으로 바뀝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4단계부터는 육의 흔적을 변환시켜 나가는 과정을 겪게 되는데 믿음의 5단계 50%를 넘을 때까지 계속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2. 육의 흔적 변환 1단계(믿음의 4단계 1-50% 미만)
이 단계에서는 육의 흔적으로 인한 결여를 채워나가야 합니다. '결여'란 아예 없거나 조금밖에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크게 세가지 분야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랑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이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사람은 사랑의 분야에 결여가 생깁니다. 그래서 영으로 들어와 마음에 악은 없다 해도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나타내야 하는지 잘 깨닫지 못합니다.
가령, 부모의 용서와 이해를 받기도 하지만 때로는 책망과 체벌을 받기도 하면서 이것이 부모의 사랑임을 깨달았다면 진정한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입니다. 이처럼 사랑을 받고 자란 사람은 용서해 주고 품어 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책망하고 외면하는 것도 사랑임을 마음에서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사랑이 결여된 사람은 일방적으로 보듬어 주고 용서만 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하기도 하고, 반대로 일방적으로 질책하고 책망만 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하기도 하지요.
다음으로, 영의 지식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으로 쌓아왔다고는 하나 자기 마음에 온전히 영으로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그것이 결여로 자리 잡은 경우입니다. 가령 똑같은 하나님 말씀이라도 영의 깊이가 더할수록 그 말씀을 깨닫고 적용하는 차원이 달라집니다. 그런데 영의 지식의 결여가 있는 사람은 자기가 깨닫고 이해한 것이 전부라 생각하며 더 깊은 차원은 생각지 못하지요. 예를 들어, 영의 사랑은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열심히 상대의 유익을 구하고, 필요한 것을 공급해 주며, 상대의 어려움을 앞장서서 해결해 줍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기보다는 오히려 상대의 영혼이 잘되는 것을 방해할 수도 있지요.
마지막으로, 온전한 선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이 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어떤 감정도 없고, 마음이 전혀 요동하지 않는 차원이므로 선의 2단계 정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온전한 선에 비하면 아직은 소극적인 수준의 선입니다. 비유를 들면, 규정 속도가 60km인 1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뒤에서 비상등을 켠 차가 빠르게 달려옵니다. 이때 온전한 선의 결여가 있는 사람은 자신만 법을 지키고 정도를 가면 된다고 생각하여 뒤차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뒤차가 추월할 수 있는 공간이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조금만 빨리 달려 주면 될 텐데, 자신은 교통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한계 안에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나는 진리를 행한다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육의 흔적의 변환 2단계(믿음의 4단계 50-80% 미만)
이 단계는 육의 흔적으로 인해 부족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에 온전함을 향해 채워 나가는 차원이지요. 다시 말해 온 영의 차원과 비교할 때 아직은 부족하다는 의미입니다. 과연 온 영의 사람이 되려면 부족한 분야가 무엇일까요?
먼저, 사랑의 부족을 채워야 합니다. 가령 이해하고 용서해 주기로 했을 때, 어느 선(線)까지 해야 할지 분별하지 못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되, 어떤 때는 한계를 그어야 할 때가 있고, 어떤 때는 도가 넘치도록 해 줘야 하는 경우도 있는 것입니다. 똑같이 이해하고 품는 방법을 택한다 해도 어떤 경우는 선을 그어 상대가 스스로 일어나게 하는가 하면, 반면에 넘치는 위로와 격려를 통해 상대가 감동함을 입고 변화되도록 하는 경우도 있지요. 따라서 더 깊이 있고, 섬세한 사랑의 차원을 깨달아 부족한 분야를 채워야 합니다.
다음으로, 영의 지식의 부족을 채워야 합니다. 영의 지식의 결여와 비교하면 그래도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더 깊이 있게 깨닫고 헤아리기는 하지만 아직은 부족한 상태를 말합니다. 똑같은 영의 지식이라도 그 말씀을 마음에 얼마나 영으로 이루었느냐에 따라 활용범위와 활용방법이 달라집니다. 한 말씀을 10가지로 활용하고 적용할 수 있다고 할 때, 아직은 5-6가지로밖에 활용하지 못하는 차원이지요.
마지막으로 온전한 선의 부족입니다. 규정 속도가 60km인 일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뒤에서 비상등을 켠 차가 빠르게 달려옵니다. 이때 온전한 선이 부족한 사람은 어떤 때는 뒤차의 입장을 생각해서 빨리 달리지만 어떤 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최대한 상대를 배려하지만 매번 그렇게 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어떤 일을 할 때 나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얼마나 배려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온전한 선이라 말할 수 있으려면 선의 4단계가 임해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선의 3단계만 온전히 임해 있어도 온전한 선에 가깝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4. 육의 흔적의 변환을 통해 활용하는 방법을 깨닫는 단계 (믿음의 4단계 80% - 믿음의 5단계 50% 미만)
이처럼 육의 흔적이 온전히 변환되면 그때부터는 '성정' 즉,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적인 면'이 신의 성품 안에서 아름답게 발휘됩니다. 전에는 이러한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이 육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함을 이루는 데 장애물이 되었다면, 육의 흔적을 온전히 변환시킨 후부터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 즉, 각 사람의 성정이 그 사람만의 특별한 장점으로 활용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80%부터 믿음의 5단계 5% 미만은 아직 육의 흔적이 온전히 변환되어서 활용해 나가는 단계는 아닙니다. 어느 때는 육의 흔적이 나올 때도 있고, 어느 때는 육의 흔적이 변환되어 나올 때도 있지요. 그래서 스스로 '내가 영인가? 온 영인가?'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4단계 80%부터는 온 영으로 인정해 주시며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관하여 이끌어 가십니다.
5. 육의 흔적이 온전히 성정대로 쓰임 받는 단계(믿음의 5단계 50% 이상)
각각의 그릇마다 가지고 있는 그릇의 재질과 크기와 모양의 특성이 바로 각 사람의 '성정'에 해당합니다. 성경을 보면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사도 바울 등은 육의 흔적을 완전히 변환시킨 후, 자기 만이 가진 성정의 특징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을 받았습니다.
예를 들면, 모세는 의분이 있고 급한 성품도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훗날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가장 승하다고 하나님께 인정받지요. 그리고 예전의 의분과 급한 성품이 이제는 백성을 향한 열정으로 바뀌어 나타납니다. 뜨거운 성품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 온전히 변화된 후에는 수많은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까지도 그 마음 안에 다 담을 수 있는 큰 자가 되었지요. 백성들을 위한 애끓는 애통과 자신의 구원을 담보로 걸면서까지 백성들을 사랑으로 이끌어 갔습니다. 모세의 열정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꺼질 줄을 몰랐습니다.
만약 모세 선지자가 미지근하고 냉랭한 성품이었다면, 백성들을 향한 그런 열정을 가지고 인도해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수많은 백성을 이끌어야 했던 40년 광야생활에 지쳐 버릴 수도 있지요. 이처럼 모세 선지자의 성정이 영적으로 온전히 변화되어 쓰임 받았기에, 그 큰 사명을 아름답게 감당할 수가 있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도 믿음의 선진들처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릴 뿐 아니라, 신속히 영의 사람이 되어 육의 흔적을 완전히 변환시킨 후, 각자의 성정에 따라 귀히 쓰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 알고 넘어 갑시다!
'선의 4단계'란?
선의 1단계: 악을 악으로 대항치 않고 감정을 눌러 참는 단계, 사람이 보기에는 선하나 하나님께서는 선하다 하지 않음
선의 2단계: 악을 악으로 대항치 않고 어떤 감정도 품지 않는 선
선의 3단계: 악으로 나오는 자에게 오히려 감동을 줄 수 있는 선
선의 4단계: 악한 자를 위해 생명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
2012-07-27
제30과믿음의 4단계(3)
요 4:24
읽을말씀 : 요 4:24 | 외울말씀 : 외울 말씀: 요 4:24 l 참고 말씀:살전 5:23
교육목표 : 믿음의 4단계에서 5단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크게 넷으로 나누어 믿음의 성장과정을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렸기에 영의 사람이라고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십니다. 이러한 믿음의 4단계에서 믿음의 5단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100으로 나눌 때 1~10% 미만까지는 초입이라고 하고, 10~20% 미만은 정체기, 20~50% 미만은 중엽, 50% 이상은 말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믿음의 4단계 초입(1~10% 미만)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음의 3단계 말엽인지, 아니면 믿음의 4단계로 들어왔는지 정확히 분별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보기에 악은 다 버린 것 같지만 "내가 영으로 들어갔다"라고 자신 있게 고백하기에는 뭔가 조금 부끄럽고 민망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볼 때도 악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저 사람은 확실히 영의 사람이다"라고 인정하기에는 주저할 수 있지요. 이러한 믿음의 4단계 초입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열매가 온전치 못합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불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항상 순종할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명심하여 그대로 행하고자 하지요. 그런데도 열매가 온전치 않은 것은 마음에 맺힌 영의 열매가 온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온유하긴 한데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다든가, 충성은 하는데 화평의 열매가 온전치 못하기도 합니다. 육의 사랑은 아니지만 아직 영의 사랑이 온전히 맺힌 것이 아니지요. 이처럼 아직 영의 열매들이 온전히 맺힌 것이 아니므로 실제 보이는 열매 역시 온전치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부흥의 열매를 못 내기도 하고, 일도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하지요. 또 더 큰 열매를 낼 수 있음에도 어느 선에서 멈춰 버립니다. 4단계에서 깊이 들어갈수록 모든 영의 열매가 온전해지면서 눈에 보이는 열매도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둘째, 온전한 선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은 악이 없는 마음이기에 악한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어렵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악을 행하지는 않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선은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를 온전히 배려하지 못하거나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 주지 못합니다. 내가 선하다 하지만 온전한 선이 아닌 것, 상대를 온전히 배려하지 못하고,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 주지 못하지요. 또는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일이 지체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남에게는 비겁함이나 우유부단함 등 육의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믿음의 4단계 초입은 악의 모양은 다 벗었지만 아직 마음에 진리가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악은 아니지만 '하나님 보시기의 선'과는 아직 온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온전한 선이 아닌 모습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셋째, 육체의 결여가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 80%에서 99%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육체의 결여 때문에 지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육체의 결여는 3단계 말엽의 결여와는 다릅니다. 악은 다 버렸으되 더 온전한 열매를 내기에는 아직 부족한 결여를 말하지요.
예를 들면, 성격적인 결여로 인해 나서야 할 때도 잠잠히 있는 경우, 성장과정에서 생긴 결여로 인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 불편한 마음이나 감정은 없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먼저 손을 내밀고 위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인이 볼 때나 주위에서 볼 때 아직 '온전하다'고 생각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2. 믿음의 4단계 정체기 (10~20% 미만)
믿음의 3단계에서 불같은 기도와 연단의 과정을 겪었다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서 정체기 없이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10~20% 미만에 머물러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영의 정체기'라고 합니다. 또한 더 깊은 영의 차원에 대한 사모함이 부족해서 정체되기도 하지요. 아무리 영의 초입에는 들어왔다 해도 거기서 더 이상 사모함을 갖지 못한 채 영의 세계를 뚫어 들어가지 않으면 결국 영의 정체 현상을 겪게 됩니다.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같은 기도를 통해 '자기'가 온전히 깨어지고 없어야 합니다. 여기서 '자기'란, 영으로 들어오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육에 속한 자기'와는 다릅니다. 영으로 들어와서도 하나님의 뜻과 하나를 이루어 가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또 다른 자기'를 말합니다.
또한 영으로 들어오면 어떤 상황에서도 악이 나오지는 않지만 온전한 선의 마음, 온전한 영의 열매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도 채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불같은 기도를 하지 않으면 자신을 발견할 수도 없고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도 없지요. 그래서 불같은 기도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3. 믿음의 4단계 중엽 (20~50% 미만)
이 단계에만 들어와도 성도들의 인정을 받으며 목자와 함께 많은 일을 이루어 갈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첫째, 육의 흔적에 의한 육체의 결여가 조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나타나는 결여는 어떤 악의 모양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이미 기 속에 있는 악까지 다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때 조금 남아 있는 결여라는 것은 육의 흔적에 의한 것입니다. 대부분 타고난 기 속에서 형성된 각 사람의 '성정'에 관한 분야이지요.
성정이란 간단히 말해 타고난 본성입니다. 어떤 이는 소극적이고 어떤 이는 적극적이며, 어떤 이는 무디고 어떤 이는 예민합니다. 이처럼 타고난 성정의 차이로 인해 성격이나 행동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믿음의 4단계 50% 미만까지는 이렇게 성정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여를 다듬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정의 분야로 인한 결여를 어떻게 채워 가실까요? 가령, 성격이 소극적인 사람은 그의 소극적인 면을 섬세함으로 승화시키십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면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승화시키시지요. 또한 지혜롭고 민첩한 사람은 그 장점을 살리고, 좀 답답하고 무딘 사람도 그 장점을 살리시지요. 그래서 4단계 50% 이상을 넘어가면 이런 결여된 모습도 다 사라집니다.
둘째, 주님의 향이 납니다. 이때부터는 말하는 것, 먹는 것, 수저 드는 것, 신발 신는 것, 들어가는 것 등 모든 것들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 주님이 저렇게 하셨겠구나." 하고 은혜를 받습니다. 이 차원에 들어오면 모든 분야에서 영의 열매가 무르익어 가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지 주님의 향을 내며 믿는 이나 믿지 않는 이에게도 칭찬을 받습니다.
셋째, 사랑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믿음의 4단계 20%를 넘어가면 영의 사랑이 점점 더 온전해집니다. 여기에 덕까지 겸해지면서 많은 사람을 품어 줄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 주고, 사랑의 마음으로 품어 주니 많은 사람들이 영의 사랑을 느낍니다. 이런 영의 사랑이 결국 영혼을 변화시키고 많은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힘이 되지요. 그래서 믿음의 4단계 20~50% 미만에만 들어와도 풍성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4. 믿음의 4단계 말엽 (50% 이상)
믿음의 4단계 50% 이상이 되면 결여된 분야가 전혀 없고 '자기'라는 것도 전혀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얼마든지 취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기꺼이 포기합니다. 주님을 위해 생명까지 드릴 수 있음은 물론, 하나님과 100% 신뢰관계를 이루어 신뢰라는 말도 필요 없습니다. 물론 모든 면이 온전해지려면 당연히 온 영의 차원(80% 이상)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믿음의 4단계 50%만 넘어도 그만큼 온전함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도 신속히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을 이루어 영의 사람이 되시기 바라며 믿음의 4단계 100%를 이루어 믿음의 5단계를 침노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4단계 초입의 특징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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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믿음의 4단계에서 정체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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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믿음의 4단계 중엽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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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육의 흔적'이란?
영으로 변화되기 전에 갖고 있던 성품이나 기질, 지식 등이 흔적처럼 남아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옷을 빨아도 찌든 때는 잘 안 지고 자국이 남듯이 육의 흔적이 바로 이런 자국과 같다.
교육목표 : 믿음의 4단계에서 5단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크게 넷으로 나누어 믿음의 성장과정을 구체적으로 알아본다.
믿음의 4단계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렸기에 영의 사람이라고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십니다. 이러한 믿음의 4단계에서 믿음의 5단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100으로 나눌 때 1~10% 미만까지는 초입이라고 하고, 10~20% 미만은 정체기, 20~50% 미만은 중엽, 50% 이상은 말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 믿음의 4단계 초입(1~10% 미만)
여기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음의 3단계 말엽인지, 아니면 믿음의 4단계로 들어왔는지 정확히 분별을 못할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보기에 악은 다 버린 것 같지만 "내가 영으로 들어갔다"라고 자신 있게 고백하기에는 뭔가 조금 부끄럽고 민망한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주변에서 볼 때도 악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저 사람은 확실히 영의 사람이다"라고 인정하기에는 주저할 수 있지요. 이러한 믿음의 4단계 초입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열매가 온전치 못합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불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고, 항상 순종할 자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명심하여 그대로 행하고자 하지요. 그런데도 열매가 온전치 않은 것은 마음에 맺힌 영의 열매가 온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온유하긴 한데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다든가, 충성은 하는데 화평의 열매가 온전치 못하기도 합니다. 육의 사랑은 아니지만 아직 영의 사랑이 온전히 맺힌 것이 아니지요. 이처럼 아직 영의 열매들이 온전히 맺힌 것이 아니므로 실제 보이는 열매 역시 온전치 못한 것입니다. 그러니 부흥의 열매를 못 내기도 하고, 일도 완벽하게 처리하지 못하지요. 또 더 큰 열매를 낼 수 있음에도 어느 선에서 멈춰 버립니다. 4단계에서 깊이 들어갈수록 모든 영의 열매가 온전해지면서 눈에 보이는 열매도 온전해지는 것입니다.
둘째, 온전한 선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은 악이 없는 마음이기에 악한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주변 사람들을 어렵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악을 행하지는 않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선은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를 온전히 배려하지 못하거나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 주지 못합니다. 내가 선하다 하지만 온전한 선이 아닌 것, 상대를 온전히 배려하지 못하고, 상대의 마음을 온전히 이해해 주지 못하지요. 또는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일이 지체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남에게는 비겁함이나 우유부단함 등 육의 사람의 모습처럼 보이기도 하지요.
믿음의 4단계 초입은 악의 모양은 다 벗었지만 아직 마음에 진리가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악은 아니지만 '하나님 보시기의 선'과는 아직 온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온전한 선이 아닌 모습들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셋째, 육체의 결여가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 80%에서 99%에 있는 사람들 중에도 육체의 결여 때문에 지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영으로 들어온 사람들의 육체의 결여는 3단계 말엽의 결여와는 다릅니다. 악은 다 버렸으되 더 온전한 열매를 내기에는 아직 부족한 결여를 말하지요.
예를 들면, 성격적인 결여로 인해 나서야 할 때도 잠잠히 있는 경우, 성장과정에서 생긴 결여로 인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 불편한 마음이나 감정은 없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먼저 손을 내밀고 위해 주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인이 볼 때나 주위에서 볼 때 아직 '온전하다'고 생각지 않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2. 믿음의 4단계 정체기 (10~20% 미만)
믿음의 3단계에서 불같은 기도와 연단의 과정을 겪었다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서 정체기 없이 더 깊은 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10~20% 미만에 머물러 더 이상 자라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영의 정체기'라고 합니다. 또한 더 깊은 영의 차원에 대한 사모함이 부족해서 정체되기도 하지요. 아무리 영의 초입에는 들어왔다 해도 거기서 더 이상 사모함을 갖지 못한 채 영의 세계를 뚫어 들어가지 않으면 결국 영의 정체 현상을 겪게 됩니다.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같은 기도를 통해 '자기'가 온전히 깨어지고 없어야 합니다. 여기서 '자기'란, 영으로 들어오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육에 속한 자기'와는 다릅니다. 영으로 들어와서도 하나님의 뜻과 하나를 이루어 가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또 다른 자기'를 말합니다.
또한 영으로 들어오면 어떤 상황에서도 악이 나오지는 않지만 온전한 선의 마음, 온전한 영의 열매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도 채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 불같은 기도를 하지 않으면 자신을 발견할 수도 없고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도 없지요. 그래서 불같은 기도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3. 믿음의 4단계 중엽 (20~50% 미만)
이 단계에만 들어와도 성도들의 인정을 받으며 목자와 함께 많은 일을 이루어 갈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첫째, 육의 흔적에 의한 육체의 결여가 조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때 나타나는 결여는 어떤 악의 모양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이미 기 속에 있는 악까지 다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때 조금 남아 있는 결여라는 것은 육의 흔적에 의한 것입니다. 대부분 타고난 기 속에서 형성된 각 사람의 '성정'에 관한 분야이지요.
성정이란 간단히 말해 타고난 본성입니다. 어떤 이는 소극적이고 어떤 이는 적극적이며, 어떤 이는 무디고 어떤 이는 예민합니다. 이처럼 타고난 성정의 차이로 인해 성격이나 행동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믿음의 4단계 50% 미만까지는 이렇게 성정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여를 다듬는 과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성정의 분야로 인한 결여를 어떻게 채워 가실까요? 가령, 성격이 소극적인 사람은 그의 소극적인 면을 섬세함으로 승화시키십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면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승화시키시지요. 또한 지혜롭고 민첩한 사람은 그 장점을 살리고, 좀 답답하고 무딘 사람도 그 장점을 살리시지요. 그래서 4단계 50% 이상을 넘어가면 이런 결여된 모습도 다 사라집니다.
둘째, 주님의 향이 납니다. 이때부터는 말하는 것, 먹는 것, 수저 드는 것, 신발 신는 것, 들어가는 것 등 모든 것들이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 주님이 저렇게 하셨겠구나." 하고 은혜를 받습니다. 이 차원에 들어오면 모든 분야에서 영의 열매가 무르익어 가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지 주님의 향을 내며 믿는 이나 믿지 않는 이에게도 칭찬을 받습니다.
셋째, 사랑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믿음의 4단계 20%를 넘어가면 영의 사랑이 점점 더 온전해집니다. 여기에 덕까지 겸해지면서 많은 사람을 품어 줄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사랑의 눈으로 바라봐 주고, 사랑의 마음으로 품어 주니 많은 사람들이 영의 사랑을 느낍니다. 이런 영의 사랑이 결국 영혼을 변화시키고 많은 영혼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힘이 되지요. 그래서 믿음의 4단계 20~50% 미만에만 들어와도 풍성한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4. 믿음의 4단계 말엽 (50% 이상)
믿음의 4단계 50% 이상이 되면 결여된 분야가 전혀 없고 '자기'라는 것도 전혀 없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이 마음 안에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얼마든지 취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기꺼이 포기합니다. 주님을 위해 생명까지 드릴 수 있음은 물론, 하나님과 100% 신뢰관계를 이루어 신뢰라는 말도 필요 없습니다. 물론 모든 면이 온전해지려면 당연히 온 영의 차원(80% 이상)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믿음의 4단계 50%만 넘어도 그만큼 온전함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도 신속히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을 이루어 영의 사람이 되시기 바라며 믿음의 4단계 100%를 이루어 믿음의 5단계를 침노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4단계 초입의 특징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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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믿음의 4단계에서 정체 현상이 나타나는 원인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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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믿음의 4단계 중엽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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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육의 흔적'이란?
영으로 변화되기 전에 갖고 있던 성품이나 기질, 지식 등이 흔적처럼 남아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가령 옷을 빨아도 찌든 때는 잘 안 지고 자국이 남듯이 육의 흔적이 바로 이런 자국과 같다.
2012-07-20
제29과믿음의 4단계(2)
요삼 1:2
읽을말씀 : 요삼 1:2 | 외울말씀 : 요삼 1:2 ㅣ 참고 말씀:빌 2:5
교육목표 : 지난주에 이어서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 특징과 축복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의 4단계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기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며, 마음 중심에서 믿음의 고백과 함께 행함이 따릅니다. 지난주에 믿음의 4단계는 1)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 2) 기쁨으로 계명을 지키는 믿음, 3)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고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믿음이라 했습니다. 이어서 믿음의 4단계 특징과 축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4) 영혼이 잘되어 만사형통한 축복이 임하는 단계
원래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실 때는 생령으로 지으셨습니다. 생령인 아담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 그리고 영의 지배를 받는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범죄하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아담의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이 소멸되었다,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영의 활동이 중지되었다는 뜻입니다. 영이 사람의 주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영이 죽으니 영의 지배를 받던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혼'이란 두뇌의 기억장치와 그 안에 담긴 모든 지식, 그리고 그것을 떠올리고 활용하는 작용과 이 모든 것을 총칭한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무엇을 체험할 때 그것을 기억하고 떠올려 생각하고 활용하는 것이 다 혼의 작용이지요.
영이 주인 노릇 할 때는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진리의 지식을 받아들였습니다. 혼의 작용도 진리이며 몸도 영이 원하는 대로 했지요. 그러나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자 원수 마귀 사단이 혼을 통해 사람을 주관해 갔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마음에 심어 주신 진리의 지식이 빠져 나가고 대신 원수 마귀 사단이 심어 주는 비진리가 심겨졌지요.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의 마음은 비진리로 물들어갔습니다.
그리하여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은 혼과 육으로 지어진 짐승과 다름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전 3:18). 온갖 거짓과 간음, 미움, 살인, 시기, 질투 등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비진리 속에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시고, 그를 영접하는 자마다 죽었던 영이 살아나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며, 성령으로 영을 낳아 영의 사람이 되게 하셨지요. 이것이 바로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이며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은 믿음의 1단계를 지나 성령의 소욕을 좇으려는 영과 육체의 소욕을 좇으려는 혼의 치열한 싸움을 통과하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면 믿음의 반석에 서게 되지요. 더 나아가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면 영이 사람의 주인이 됩니다.
이처럼 영이 사람의 주인으로서 혼을 지배하고, 혼은 종으로서 영의 지시에 순종하는 주종관계를 회복한 것이 바로 영혼이 잘된 상태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말씀한 대로 주님의 마음을 닮아갑니다.
영이 혼을 지배하면 말씀인 진리가 마음 전체를 사로잡으니 자기 생각이나 자기 뜻이 동원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을 온전히 주관하시니 시험 환난을 피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지킴을 받습니다. 즉 육신의 생각이 철저히 깨어지고 마음이 진리 자체가 되니 온전한 순종과 행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혼이 잘된 사람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시며 인도하시므로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또한 장차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은 물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강, 물질, 자녀, 가정, 직장, 일터 등 모든 것에 복을 받습니다(신 28장).
5)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을 그냥 사랑하는 단계
믿음의 3단계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깨우침으로 사랑하려고 애쓴 반면, 믿음의 4단계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그냥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설령 어떤 시험 환난이 닥쳐도 마음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의 기도가 우러나오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그냥 사랑한다는 것은 어떠한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열심히 충성하면서도 어떤 축복이나 응답과 같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당연히 할 바를 했다고 여깁니다. 만일 부모가 자녀를 진정 사랑한다면 자녀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사랑을 주는 것은 물론, 사랑을 줄 수 있는 자녀가 있음에 감사하고 기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그냥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에서는 주님께서 구원해 주신 은총에 너무 감사하여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까 궁구합니다. 뿐만 아니라, 무조건 하나님이 좋고 진리가 좋지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불철주야 기도하고 충성하고 봉사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6)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단계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 계명들을 온전히 지키며, 영혼이 잘되면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고백했습니다(빌 3:7~9). 예수님께서는 사복음서를 통해 사도 바울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금세에 백배의 축복을 받고 내세에 영생의 축복을 받는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막 10:29~30).
우리가 사랑하는 부모와 자녀, 아내와 남편, 형제와 자매를 버리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집과 전토를 버린다는 것은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으며 육을 끊고 영이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부모와 자녀, 아내와 남편, 형제자매보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고 해서 가족들에게 무정하게 대하고 도리를 하지 말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욱 가족들을 섬기며 가족의 일원으로서 온 집에 충성해야 하지요. 주를 믿지 않는 가족들도 그러한 모습을 통해 감동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잘 섬기는 것이 하나님 뜻이지요. 그러나 창조주시며 우리 영혼을 낳아 주고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범사에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니 모든 면에서 조금도 부족됨이 없고 위로부터 주시는 충만함으로 진정한 행복이 마음 안에 임합니다. 마음에 악이 없으니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을 끊임없이 제공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지요(고전 13:4~7).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면 처음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핍박이 올 수 있지만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영혼이 잘되어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오히려 핍박이 축복으로 바뀌며 핍박했던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됩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상급이 쌓이고 이 땅에서도 백배의 축복을 받게 되지요.
또한 믿음의 4단계에서는 성령의 열매가 맺히기는 하지만 열매 중에서도 어떤 것은 실하고 어떤 것은 좀 덜한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사랑의 열매는 승한데 절제의 열매는 좀 약하다거나, 충성의 열매는 승한데 온유는 약할 수도 있지요. 따라서 모든 성령의 열매들이 100% 온전히 맺히게 되면 마침내 믿음의 5단계로 들어서는 것이며, 이러한 사람은 모든 분야에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서 모든 열매들이 100% 온전히 맺힐 때라야 아버지의 마음 깊은 것까지라도 밝히 깨닫고 온전히 순종할 수가 있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에 이르렀다 해도 성령의 열매를 100% 맺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하는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행진을 멈추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4단계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무엇일까요?
① 영이 주인으로서 혼을 지배하고 혼은 종으로서 영에게 순종한다.
② 마음에 악이 없으므로 성령의 밝은 음성 인도 주관을 받는다.
③ 영적인 사랑과 성령의 열매, 팔복의 열매가 100% 맺힌다.
④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는 단계이다.
2.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면 성령의 열매, 영적인 사랑, 팔복이 임하게 됩니다. 성경 어디에 있는지 찾아 써 보세요.
1) 성령의 열매( )
2) 영적인 사랑 ( )
3) 팔복 (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생명의 면류관'
하나님께서 믿음의 4단계인 3천층에 들어온 영혼들에게 기본적으로 주시는 면류관이다. 이들은 주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도 시험을 통과하면 자격증이 주어지듯이, 주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이다(약 1:12, 계 2:10).
교육목표 : 지난주에 이어서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 특징과 축복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의 4단계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기에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며, 마음 중심에서 믿음의 고백과 함께 행함이 따릅니다. 지난주에 믿음의 4단계는 1)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 2) 기쁨으로 계명을 지키는 믿음, 3)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고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믿음이라 했습니다. 이어서 믿음의 4단계 특징과 축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4) 영혼이 잘되어 만사형통한 축복이 임하는 단계
원래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실 때는 생령으로 지으셨습니다. 생령인 아담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 그리고 영의 지배를 받는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범죄하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아담의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이 소멸되었다, 없어졌다는 것이 아니라 영의 활동이 중지되었다는 뜻입니다. 영이 사람의 주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영이 죽으니 영의 지배를 받던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혼'이란 두뇌의 기억장치와 그 안에 담긴 모든 지식, 그리고 그것을 떠올리고 활용하는 작용과 이 모든 것을 총칭한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무엇을 체험할 때 그것을 기억하고 떠올려 생각하고 활용하는 것이 다 혼의 작용이지요.
영이 주인 노릇 할 때는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며 진리의 지식을 받아들였습니다. 혼의 작용도 진리이며 몸도 영이 원하는 대로 했지요. 그러나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자 원수 마귀 사단이 혼을 통해 사람을 주관해 갔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마음에 심어 주신 진리의 지식이 빠져 나가고 대신 원수 마귀 사단이 심어 주는 비진리가 심겨졌지요.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의 마음은 비진리로 물들어갔습니다.
그리하여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은 혼과 육으로 지어진 짐승과 다름없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전 3:18). 온갖 거짓과 간음, 미움, 살인, 시기, 질투 등 하나님 말씀에 어긋나는 비진리 속에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시고, 그를 영접하는 자마다 죽었던 영이 살아나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며, 성령으로 영을 낳아 영의 사람이 되게 하셨지요. 이것이 바로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이며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은 믿음의 1단계를 지나 성령의 소욕을 좇으려는 영과 육체의 소욕을 좇으려는 혼의 치열한 싸움을 통과하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면 믿음의 반석에 서게 되지요. 더 나아가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면 영이 사람의 주인이 됩니다.
이처럼 영이 사람의 주인으로서 혼을 지배하고, 혼은 종으로서 영의 지시에 순종하는 주종관계를 회복한 것이 바로 영혼이 잘된 상태입니다. 빌립보서 2장 5절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말씀한 대로 주님의 마음을 닮아갑니다.
영이 혼을 지배하면 말씀인 진리가 마음 전체를 사로잡으니 자기 생각이나 자기 뜻이 동원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을 온전히 주관하시니 시험 환난을 피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지킴을 받습니다. 즉 육신의 생각이 철저히 깨어지고 마음이 진리 자체가 되니 온전한 순종과 행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혼이 잘된 사람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시며 인도하시므로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또한 장차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은 물론, 이 땅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건강, 물질, 자녀, 가정, 직장, 일터 등 모든 것에 복을 받습니다(신 28장).
5) 대가를 바라지 않고 하나님을 그냥 사랑하는 단계
믿음의 3단계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깨우침으로 사랑하려고 애쓴 반면, 믿음의 4단계는 주님을 지극히 사랑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그냥 사랑하는 단계입니다. 설령 어떤 시험 환난이 닥쳐도 마음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의 기도가 우러나오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그냥 사랑한다는 것은 어떠한 조건을 제시하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열심히 충성하면서도 어떤 축복이나 응답과 같은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당연히 할 바를 했다고 여깁니다. 만일 부모가 자녀를 진정 사랑한다면 자녀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사랑을 주는 것은 물론, 사랑을 줄 수 있는 자녀가 있음에 감사하고 기쁜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그냥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에서는 주님께서 구원해 주신 은총에 너무 감사하여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까 궁구합니다. 뿐만 아니라, 무조건 하나님이 좋고 진리가 좋지요.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불철주야 기도하고 충성하고 봉사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6)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단계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되어 계명들을 온전히 지키며, 영혼이 잘되면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기의 가진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처럼 버렸다고 고백했습니다(빌 3:7~9). 예수님께서는 사복음서를 통해 사도 바울처럼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금세에 백배의 축복을 받고 내세에 영생의 축복을 받는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막 10:29~30).
우리가 사랑하는 부모와 자녀, 아내와 남편, 형제와 자매를 버리고 우리에게 유익을 주는 집과 전토를 버린다는 것은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으며 육을 끊고 영이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부모와 자녀, 아내와 남편, 형제자매보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고 해서 가족들에게 무정하게 대하고 도리를 하지 말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경우가 아니라면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욱 가족들을 섬기며 가족의 일원으로서 온 집에 충성해야 하지요. 주를 믿지 않는 가족들도 그러한 모습을 통해 감동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잘 섬기는 것이 하나님 뜻이지요. 그러나 창조주시며 우리 영혼을 낳아 주고 지옥의 형벌에서 구원해 주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범사에 하나님께서 인도해 주시니 모든 면에서 조금도 부족됨이 없고 위로부터 주시는 충만함으로 진정한 행복이 마음 안에 임합니다. 마음에 악이 없으니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을 끊임없이 제공하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지요(고전 13:4~7).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면 처음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핍박이 올 수 있지만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영혼이 잘되어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오히려 핍박이 축복으로 바뀌며 핍박했던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됩니다. 하늘나라에서도 상급이 쌓이고 이 땅에서도 백배의 축복을 받게 되지요.
또한 믿음의 4단계에서는 성령의 열매가 맺히기는 하지만 열매 중에서도 어떤 것은 실하고 어떤 것은 좀 덜한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가령, 사랑의 열매는 승한데 절제의 열매는 좀 약하다거나, 충성의 열매는 승한데 온유는 약할 수도 있지요. 따라서 모든 성령의 열매들이 100% 온전히 맺히게 되면 마침내 믿음의 5단계로 들어서는 것이며, 이러한 사람은 모든 분야에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서 모든 열매들이 100% 온전히 맺힐 때라야 아버지의 마음 깊은 것까지라도 밝히 깨닫고 온전히 순종할 수가 있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에 이르렀다 해도 성령의 열매를 100% 맺으며, 하나님의 뜻대로 온전히 순종하는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기까지 믿음의 행진을 멈추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4단계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은 무엇일까요?
① 영이 주인으로서 혼을 지배하고 혼은 종으로서 영에게 순종한다.
② 마음에 악이 없으므로 성령의 밝은 음성 인도 주관을 받는다.
③ 영적인 사랑과 성령의 열매, 팔복의 열매가 100% 맺힌다.
④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는 단계이다.
2.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면 성령의 열매, 영적인 사랑, 팔복이 임하게 됩니다. 성경 어디에 있는지 찾아 써 보세요.
1) 성령의 열매( )
2) 영적인 사랑 ( )
3) 팔복 (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생명의 면류관'
하나님께서 믿음의 4단계인 3천층에 들어온 영혼들에게 기본적으로 주시는 면류관이다. 이들은 주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드리는 시험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세상에서도 시험을 통과하면 자격증이 주어지듯이, 주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시험을 믿음으로 통과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면류관이다(약 1:12, 계 2:10).
2012-07-13
제28과믿음의 4단계(1)
요 14:21
읽을말씀 : 요 14:21 | 외울말씀 : 요일 5:3 l 참고 말씀:요일 3:21~22, 잠 8:17
교육목표 :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마음에 악이 없는 성결된 믿음의 4단계 특징에 대해 알아본다.
성령 받고 구원받은 믿음의 1단계와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를 거쳐 계속적으로 노력하면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 마음 안에 있는 죄의 성질까지도 벗어 버리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서게 됩니다.
1. 믿음의 단계에 따른 행함의 차이
어떤 목적지를 향해 계단을 오를 때에 첫 번째 계단을 오르고 나면 둘째 계단, 셋째 계단을 계속 밟아 올라가야 하는 것처럼, 믿음도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단계를 밟아 성장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했습니다. 이때 믿음의 2단계에서는 이 말씀을 들어서는 알지만 시험 환난을 만나면 기뻐하지 못하고 불평하며 기도를 쉬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3단계에서는 어려운 일을 만나도 말씀대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지요.
물론 3단계 초입에서는 연단이 심히 어렵게 여겨질 때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때로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하며 힘들어하는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물리치고 하나님 말씀대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3단계이지요. 믿음의 3단계 중반 이상이 되면 이런 생각은 거의 들지 않고 마음에서부터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더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서면 심히 고난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맞는다 해도 중심에서 기쁨이 샘솟게 되지요.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현실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막막하다 해도 마음은 항상 기쁘고 행복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체가 행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체가 즐겁지요. 믿음의 3단계가 하나님 말씀대로 기뻐하고 감사한다 해도 믿음의 4단계와는 차이가 납니다.
어떤 사람은 선하고 섬김이 승해서 상대의 마음을 편케 하기 원하며 상대가 무엇을 요구하면 다 들어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상대가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할 때는 원하는 대로 들어는 주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그러나 상대를 지극히 사랑할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아무리 어려운 입장이라고 해도 힘들다 여기지 않습니다. 상대를 기쁘게 해 주려는 마음뿐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기쁨으로 말씀대로 행하는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야 하나님께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지요.
2. 믿음의 4단계의 특징
1)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2, 3단계에 속한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고백과 믿음의 4단계가 고백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을 적당히 사랑하는 마음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의 깊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지요.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했습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습니다.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선진들은 아무 잘못 없이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마음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구약 시대의 다니엘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고 하니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고 근심하며 슬픔의 기도를 올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안하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지요.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을 행할 뿐이고 결과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님께 맡기므로 사나 죽으나 감사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단 6:10~27).
다니엘의 세 친구도 그러했습니다. 금 신상 앞에 절을 하지 않으면 풀무 불에 던지겠다는 왕의 위협 앞에서 그들은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들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고백했지요. 불 가운데서도 건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굳게 신뢰할 뿐 아니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상관없이, 곧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뜻을 행할 따름이었습니다.
신약 시대의 바울과 실라도 그러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매를 맞고 차꼬에 채인 채 깊은 감옥에 갇혔으나 조금의 원망이나 불평하지 않았고, 앞으로 어찌 될까 염려 근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감동 속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렸지요. 이것이 바로 믿음의 4단계에 이른 모습이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 모습입니다. 그러니 이 감동의 찬양이 울려 퍼질 때 하나님의 역사로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벗어지는 체험을 했지요.
2) 기쁨으로 계명을 지키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고 싶어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면 모든 계명들을 기쁨으로 지키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을 어떻게 측량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말씀한 대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내십니다. 하지만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니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없고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결코 힘들지 않기에 계명을 온전히 지키지요. 계명들을 알기 때문에 마지못해 힘들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깨달아 사랑의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3)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고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믿음입니다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1~22절에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신 대로, 진리에 온전히 순종하여 성결을 이룹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것은 물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라고 그 사랑의 증거를 약속해 주셨습니다(요일 5:18).
성령을 받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며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서 범죄치 아니하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 곧 영의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 곧 주님께서 지키시므로 악한 원수 마귀가 만지지도 못하지요.
또한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며 죄를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으니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식언치 않으시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민 23:19). 따라서 여러분은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여 성결을 이루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모님이 위독하여 병원비로 거액이 필요한데 마침 길에서 돈 가방을 주웠습니다.
각 사람의 마음이 믿음의 몇 단계에 해당하는지 ( ) 안에 써 보세요.
■ 보는 사람이 없으면 얼른 돈 가방을 가지고 집으로 향한다( )
■ 선과 악이 치열하게 싸우다가 결국 돈 가방을 가지고 간다( )
■ 잠시 유혹이 틈타지만 선한 양심을 좇아 주인에게 돌려준다( )
■ 남의 것을 취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고 주인을 먼저 생각한다( )
2. 믿음의 4단계의 특징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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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실라'
예루살렘 교회 교인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 회의의 결정을 안디옥 교회에 전하기 위해 선임한 한 사람이다(행 15:22).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함께 동행했으며, 바울이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을 치료해 준 것 때문에 빌립보 감옥에 함께 투옥된다.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함으로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한다.
교육목표 :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마음에 악이 없는 성결된 믿음의 4단계 특징에 대해 알아본다.
성령 받고 구원받은 믿음의 1단계와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를 거쳐 계속적으로 노력하면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 마음 안에 있는 죄의 성질까지도 벗어 버리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서게 됩니다.
1. 믿음의 단계에 따른 행함의 차이
어떤 목적지를 향해 계단을 오를 때에 첫 번째 계단을 오르고 나면 둘째 계단, 셋째 계단을 계속 밟아 올라가야 하는 것처럼, 믿음도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계속적으로 단계를 밟아 성장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했습니다. 이때 믿음의 2단계에서는 이 말씀을 들어서는 알지만 시험 환난을 만나면 기뻐하지 못하고 불평하며 기도를 쉬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3단계에서는 어려운 일을 만나도 말씀대로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지요.
물론 3단계 초입에서는 연단이 심히 어렵게 여겨질 때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지 못하고 때로 "왜 이런 일을 겪어야 하나?" 하며 힘들어하는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을 물리치고 하나님 말씀대로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이 바로 믿음의 3단계이지요. 믿음의 3단계 중반 이상이 되면 이런 생각은 거의 들지 않고 마음에서부터 기뻐하고 감사합니다.
더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서면 심히 고난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맞는다 해도 중심에서 기쁨이 샘솟게 되지요.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현실은 아무리 고통스럽고 막막하다 해도 마음은 항상 기쁘고 행복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자체가 행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체가 즐겁지요. 믿음의 3단계가 하나님 말씀대로 기뻐하고 감사한다 해도 믿음의 4단계와는 차이가 납니다.
어떤 사람은 선하고 섬김이 승해서 상대의 마음을 편케 하기 원하며 상대가 무엇을 요구하면 다 들어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상대가 너무 무리한 것을 요구할 때는 원하는 대로 들어는 주지만 그래도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그러나 상대를 지극히 사랑할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으며 아무리 어려운 입장이라고 해도 힘들다 여기지 않습니다. 상대를 기쁘게 해 주려는 마음뿐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기쁨으로 말씀대로 행하는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야 하나님께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지요.
2. 믿음의 4단계의 특징
1)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입니다
믿음의 2, 3단계에 속한 사람이 주님을 사랑하는 고백과 믿음의 4단계가 고백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주님을 적당히 사랑하는 마음과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의 깊이가 전혀 다르기 때문이지요.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했습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습니다.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는 믿음의 선진들은 아무 잘못 없이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마음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했습니다.
구약 시대의 다니엘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살려 주세요.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고 하니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고 근심하며 슬픔의 기도를 올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평안하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지요.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을 행할 뿐이고 결과에 대해서는 오직 하나님께 맡기므로 사나 죽으나 감사만 할 수 있는 것입니다(단 6:10~27).
다니엘의 세 친구도 그러했습니다. 금 신상 앞에 절을 하지 않으면 풀무 불에 던지겠다는 왕의 위협 앞에서 그들은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들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고백했지요. 불 가운데서도 건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굳게 신뢰할 뿐 아니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상관없이, 곧 사나 죽으나 하나님의 뜻을 행할 따름이었습니다.
신약 시대의 바울과 실라도 그러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매를 맞고 차꼬에 채인 채 깊은 감옥에 갇혔으나 조금의 원망이나 불평하지 않았고, 앞으로 어찌 될까 염려 근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감동 속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렸지요. 이것이 바로 믿음의 4단계에 이른 모습이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 모습입니다. 그러니 이 감동의 찬양이 울려 퍼질 때 하나님의 역사로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벗어지는 체험을 했지요.
2) 기쁨으로 계명을 지키는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고 싶어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면 모든 계명들을 기쁨으로 지키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으며, 그 사랑을 어떻게 측량할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말씀한 대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내십니다. 하지만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증거이니 사랑과 인정을 받을 수 없고 축복된 삶을 영위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결코 힘들지 않기에 계명을 온전히 지키지요. 계명들을 알기 때문에 마지못해 힘들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중심에서 깨달아 사랑의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3)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고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믿음입니다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데살로니가전서 5장 21~22절에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하신 대로, 진리에 온전히 순종하여 성결을 이룹니다.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는 것은 물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라고 그 사랑의 증거를 약속해 주셨습니다(요일 5:18).
성령을 받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며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서 범죄치 아니하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 곧 영의 사람이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 곧 주님께서 지키시므로 악한 원수 마귀가 만지지도 못하지요.
또한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며 죄를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으니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식언치 않으시고 말씀하신 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민 23:19). 따라서 여러분은 지극히 주님을 사랑하여 성결을 이루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모님이 위독하여 병원비로 거액이 필요한데 마침 길에서 돈 가방을 주웠습니다.
각 사람의 마음이 믿음의 몇 단계에 해당하는지 ( ) 안에 써 보세요.
■ 보는 사람이 없으면 얼른 돈 가방을 가지고 집으로 향한다( )
■ 선과 악이 치열하게 싸우다가 결국 돈 가방을 가지고 간다( )
■ 잠시 유혹이 틈타지만 선한 양심을 좇아 주인에게 돌려준다( )
■ 남의 것을 취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고 주인을 먼저 생각한다( )
2. 믿음의 4단계의 특징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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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실라'
예루살렘 교회 교인으로 예루살렘 교회가 사도 회의의 결정을 안디옥 교회에 전하기 위해 선임한 한 사람이다(행 15:22).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 함께 동행했으며, 바울이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을 치료해 준 것 때문에 빌립보 감옥에 함께 투옥된다. 하지만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미함으로 옥문이 열리는 기적을 체험한다.
2012-07-06
제27과믿음의 반석에서 영으로 들어가기까지
롬 12:3
읽을말씀 : 롬 12:3 | 외울말씀 : 잠 18:12 ㅣ 참고 말씀:마 7:24~25
교육목표 : 믿음의 3단계 60%를 지나 믿음의 4단계 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발견하여 영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믿음의 3단계 초입만 되어도 사소해 보이는 육체의 일, 곧 행함으로 짓는 죄는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믿음의 3단계 60%가 되면 믿음의 반석으로서 육신의 일 즉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웬만한 죄는 다 버린 상태가 되지요. 혈기, 감정, 미움, 시기, 질투, 거짓, 속이는 마음, 판단, 변개함, 간음, 욕심, 사심, 탐심, 배신하는 마음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반석을 넘어서면 일부러 악을 행하거나 하나님 뜻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거나 설령 깨달아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육의 분야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반석을 지나 영으로 신속히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자신이 옳다고 하는 '착각'을 버리고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해요.
믿음의 반석을 지나면 겉으로 볼 때는 특별히 지적할 만한 악의 모양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기도를 쉬는 것도 아니고 눈에 띌 만한 비진리를 행하지 않지요. 말씀에 드러나게 불순종하거나 사명 감당을 힘들어하지도 않습니다. 말씀에 걸릴 만한 어떤 것을 쉽게 발견하지도 못하니 '이 정도면 나도 영으로 들어왔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생각입니다.
자신은 순종한다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불순종도 하고, '선'이 아닌 모습도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도 100% 다 벗어진 상태가 아니지요. 그렇다고 악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보기에 더 옳아 보이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자기'를 고집하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아직 믿음이 약해 열심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머리 된 사람이 "왜 충성하지 않느냐, 왜 기도하지 않느냐!"지적하고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당연히 가르칠 것을 가르쳤고 진리에 비춰 맞는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책망을 들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낙심을 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멘!" 하고 받을 수 있으면 좋은데 받지를 못하고 오히려 힘들어하고 낙심하지요.
그런데 머리 된 사람이 "왜 기쁨과 감사로 받지 못하느냐?"며 또다시 지적을 합니다. 윗사람은 진리에 비추어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니기에 자기의 권면을 받지 못하는 상대에게 전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요. 자신은 전혀 잘못되었다고 생각지 못하고 잘한다고 여깁니다. 이것을 바로 '자기 의와 틀'이라 할 수 있는데 믿음의 3단계에서 집중적으로 깨뜨려야 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틀은 자기가 볼 때 분명히 옳다고 여기는 것이므로 무엇이 잘못인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지요. 더욱이 진리로 만든 의와 틀은 말씀에 비추어 보아도 틀리지 않기 때문에 깨닫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착각'을 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일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겠지.'한다면 여전히 착각 속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오랫동안 습관처럼 굳어진 '육체의 결여'를 깨닫고 채워야 해요.
육체의 결여는 범위도 넓고 형태도 다양합니다. 가벼운 육체의 결여도 있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로까지 이어질 만큼 심각한 육체의 결여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오랫동안 습관처럼 굳어져서 스스로 잘 깨닫지 못하고 알아도 바로잡기가 쉽지 않은 육체의 결여입니다.
예를 들면, 문을 '쾅!' 하고 닫고, 방문을 열어놓고 나갑니다. 사람들과 밥을 함께 먹을 때나 어른 앞에서 식사할 때 쩝!쩝!쩝!" 소리 내어 먹거나 흘리면서 먹습니다. 발소리를 크게 내면서 거칠게 걷거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거북할 만큼 이상한 걸음걸이를 하는 사람도 있지요.
단체생활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을 먼저 섬긴다거나 배려하는 행함이 부족합니다. 어디를 가든 늘 어지르고 정리를 하지 않지요. 물건을 쓰고 나서 제자리에 두지 않고 아무 데나 둡니다. 약속을 수시로 어기거나 습관처럼 늦습니다. 상대의 말에 경청하지 않는 태도나, 윗분이 말씀하시는데 딴청하고 딴 데 보고 있는 것, 상대의 말을 끊고 자기 할 말만 하거나, 상대에게 양보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것도 다 육체의 결여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라온 환경 속에 늘 '자기 위주'로 살았기 때문에 자기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는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의도적으로 하려고 하지는 않는데 말이나 행동에서는 결여된 모습이 나오지요. 이 밖에도 몸가짐이나 태도, 말투나 자세 등에서 여러 가지 육체의 결여가 나타납니다.
이런 것들이 영으로 들어가는 데 장애물이 되지요. 주의 교양이라고 말하기 전에 세상에서도 기본적인 교양에 속하는 것인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기본적인 소양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육체의 결여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먼저 '지식의 결여'로 생깁니다. 자라면서 당연히 배워야 할 것들을 지식으로 배우지 못한 까닭이지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거나 도리나 예절에 대한 지식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의 한계 안에서 자기 것만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지식적인 결여에서 오는 육체의 결여이지요. 이처럼 지식 자체가 없으니 당연히 행함으로도 결여된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경우는 결여된 모습을 찾아 그에 대한 지식을 하나하나 배우면서 행하면 됩니다.
다음으로 '행함의 결여'로 인해 생깁니다. 듣고 배웠지만 행하지는 않은 결과이지요. 가령, 자기 전에는 꼭 양치질을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수년 동안 행하지 않았다면 자기 전에 양치질 하지 않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 버리지요. 마찬가지로 듣고 배웠는데도 자기 편한 대로 행해 온 것들이 쌓여 결국 육체의 결여를 낳고 만 것입니다.
육체의 결여가 개인의 문제로 끝나면 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로 굳이 꼽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체의 결여가 주변 사람에게 불편함과 어려움을 주고, 많은 사람에게 덕과 은혜가 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육체의 결여가 상대에게 무례를 범하거나 실족시키면 안 되지요. 또 하나님의 일을 더 아름답게 이룰 수 있는데도 육체의 결여로 인해 제한되기도 합니다.
셋째는, 판단 정죄하는 일이 없도록 영적인 '교만'을 버려야 해요.
겉으로 드러나는 육적인 교만이 아니라 영적인 교만을 말합니다. 지식으로 많이 알기 때문에 생기는 교만이지요. 예를 들어 하나님 말씀과 영적인 공의에 대해 많이 들어서 너무나 잘 압니다. 또 목자에 대해서도 나름대로는 오랜 세월 동안 보고 듣고 배웠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교회의 일을 처리해 나감에 있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노하우를 알고 있으며 거기에 따라 '척척' 처리해 나갑니다. 교회의 질서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루트를 통해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은 누구를 통해서 해야 하는지도 잘 알지요. 이 정도가 되면 교회 일이든 개인의 일이든 얼마든지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간혹 판단과 정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교만에서 비롯되지요. 지식으로만 많이 알아서 문제인 것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충성하며 하나님과 목자를 사랑하여 달려가지만, 지식으로 아는 것에 비해 행함이 따르지 못하여 부족한 모습이 나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열심히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빼고자 합니다. 자기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희생하고 헌신하기보다는 피하고자 하지요. 이는 질서 가운데 순종하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다 교만에서 나오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언 18장 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말씀합니다. 그만큼 교만은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합니다. 물론 믿음의 4단계에 가까울수록 깊은 악의 뿌리를 거의 다 뽑아 버렸기에 교만이 큰 악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그 뿌리가 남아 있으면 결국 다시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경계해서 미미한 교만의 모양이라도 온전히 뽑아내야 합니다. 질서에 온전히 순종해야 함은 물론이고, 자기가 아는 것으로 쉽게 분별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겸손과 섬김과 희생, 배려의 마음을 이루어야 하지요. 여러분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세미한 육의 분야까지 발견해서 온전히 벗어 버림으로 신속히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반석을 지났지만 더 신속히 영으로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
둘째, ----------------------------------------------------------
셋째, ----------------------------------------------------------
2. 육체의 결여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육체의 결여'란?
사람이 성장하면서 거쳐야 할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함으로 인해 보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를 통틀어 일컫는다. 사람은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까지는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등을 거치면서 보편적으로 체득해 가는 과정이 있다. 이 과정을 정상적으로 거치지 못하면 지적인 능력, 행동 능력이 결여되거나 정서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많이 동떨어진 감정 상태를 느끼게 된다.
교육목표 : 믿음의 3단계 60%를 지나 믿음의 4단계 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를 발견하여 영의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돕는다.
믿음의 3단계 초입만 되어도 사소해 보이는 육체의 일, 곧 행함으로 짓는 죄는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믿음의 3단계 60%가 되면 믿음의 반석으로서 육신의 일 즉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웬만한 죄는 다 버린 상태가 되지요. 혈기, 감정, 미움, 시기, 질투, 거짓, 속이는 마음, 판단, 변개함, 간음, 욕심, 사심, 탐심, 배신하는 마음이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반석을 넘어서면 일부러 악을 행하거나 하나님 뜻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거나 설령 깨달아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육의 분야들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반석을 지나 영으로 신속히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자신이 옳다고 하는 '착각'을 버리고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해요.
믿음의 반석을 지나면 겉으로 볼 때는 특별히 지적할 만한 악의 모양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기도를 쉬는 것도 아니고 눈에 띌 만한 비진리를 행하지 않지요. 말씀에 드러나게 불순종하거나 사명 감당을 힘들어하지도 않습니다. 말씀에 걸릴 만한 어떤 것을 쉽게 발견하지도 못하니 '이 정도면 나도 영으로 들어왔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생각입니다.
자신은 순종한다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불순종도 하고, '선'이 아닌 모습도 있습니다. 육신의 생각도 100% 다 벗어진 상태가 아니지요. 그렇다고 악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보기에 더 옳아 보이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그러니'자기'를 고집하기도 하지요.
예를 들어, 아직 믿음이 약해 열심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 머리 된 사람이 "왜 충성하지 않느냐, 왜 기도하지 않느냐!"지적하고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당연히 가르칠 것을 가르쳤고 진리에 비춰 맞는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책망을 들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낙심을 한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아멘!" 하고 받을 수 있으면 좋은데 받지를 못하고 오히려 힘들어하고 낙심하지요.
그런데 머리 된 사람이 "왜 기쁨과 감사로 받지 못하느냐?"며 또다시 지적을 합니다. 윗사람은 진리에 비추어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니기에 자기의 권면을 받지 못하는 상대에게 전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요. 자신은 전혀 잘못되었다고 생각지 못하고 잘한다고 여깁니다. 이것을 바로 '자기 의와 틀'이라 할 수 있는데 믿음의 3단계에서 집중적으로 깨뜨려야 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틀은 자기가 볼 때 분명히 옳다고 여기는 것이므로 무엇이 잘못인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지요. 더욱이 진리로 만든 의와 틀은 말씀에 비추어 보아도 틀리지 않기 때문에 깨닫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착각'을 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일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겠지.'한다면 여전히 착각 속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는, 오랫동안 습관처럼 굳어진 '육체의 결여'를 깨닫고 채워야 해요.
육체의 결여는 범위도 넓고 형태도 다양합니다. 가벼운 육체의 결여도 있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로까지 이어질 만큼 심각한 육체의 결여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것은, 오랫동안 습관처럼 굳어져서 스스로 잘 깨닫지 못하고 알아도 바로잡기가 쉽지 않은 육체의 결여입니다.
예를 들면, 문을 '쾅!' 하고 닫고, 방문을 열어놓고 나갑니다. 사람들과 밥을 함께 먹을 때나 어른 앞에서 식사할 때 쩝!쩝!쩝!" 소리 내어 먹거나 흘리면서 먹습니다. 발소리를 크게 내면서 거칠게 걷거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거북할 만큼 이상한 걸음걸이를 하는 사람도 있지요.
단체생활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을 먼저 섬긴다거나 배려하는 행함이 부족합니다. 어디를 가든 늘 어지르고 정리를 하지 않지요. 물건을 쓰고 나서 제자리에 두지 않고 아무 데나 둡니다. 약속을 수시로 어기거나 습관처럼 늦습니다. 상대의 말에 경청하지 않는 태도나, 윗분이 말씀하시는데 딴청하고 딴 데 보고 있는 것, 상대의 말을 끊고 자기 할 말만 하거나, 상대에게 양보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것도 다 육체의 결여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라온 환경 속에 늘 '자기 위주'로 살았기 때문에 자기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는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의도적으로 하려고 하지는 않는데 말이나 행동에서는 결여된 모습이 나오지요. 이 밖에도 몸가짐이나 태도, 말투나 자세 등에서 여러 가지 육체의 결여가 나타납니다.
이런 것들이 영으로 들어가는 데 장애물이 되지요. 주의 교양이라고 말하기 전에 세상에서도 기본적인 교양에 속하는 것인데 의외로 많은 분들이 기본적인 소양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육체의 결여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먼저 '지식의 결여'로 생깁니다. 자라면서 당연히 배워야 할 것들을 지식으로 배우지 못한 까닭이지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거나 도리나 예절에 대한 지식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의 한계 안에서 자기 것만이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지식적인 결여에서 오는 육체의 결여이지요. 이처럼 지식 자체가 없으니 당연히 행함으로도 결여된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경우는 결여된 모습을 찾아 그에 대한 지식을 하나하나 배우면서 행하면 됩니다.
다음으로 '행함의 결여'로 인해 생깁니다. 듣고 배웠지만 행하지는 않은 결과이지요. 가령, 자기 전에는 꼭 양치질을 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수년 동안 행하지 않았다면 자기 전에 양치질 하지 않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 버리지요. 마찬가지로 듣고 배웠는데도 자기 편한 대로 행해 온 것들이 쌓여 결국 육체의 결여를 낳고 만 것입니다.
육체의 결여가 개인의 문제로 끝나면 영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로 굳이 꼽을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육체의 결여가 주변 사람에게 불편함과 어려움을 주고, 많은 사람에게 덕과 은혜가 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육체의 결여가 상대에게 무례를 범하거나 실족시키면 안 되지요. 또 하나님의 일을 더 아름답게 이룰 수 있는데도 육체의 결여로 인해 제한되기도 합니다.
셋째는, 판단 정죄하는 일이 없도록 영적인 '교만'을 버려야 해요.
겉으로 드러나는 육적인 교만이 아니라 영적인 교만을 말합니다. 지식으로 많이 알기 때문에 생기는 교만이지요. 예를 들어 하나님 말씀과 영적인 공의에 대해 많이 들어서 너무나 잘 압니다. 또 목자에 대해서도 나름대로는 오랜 세월 동안 보고 듣고 배웠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요.
교회의 일을 처리해 나감에 있어서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노하우를 알고 있으며 거기에 따라 '척척' 처리해 나갑니다. 교회의 질서도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루트를 통해 일을 해야 하고 어떤 일은 누구를 통해서 해야 하는지도 잘 알지요. 이 정도가 되면 교회 일이든 개인의 일이든 얼마든지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간혹 판단과 정죄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국은 교만에서 비롯되지요. 지식으로만 많이 알아서 문제인 것입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충성하며 하나님과 목자를 사랑하여 달려가지만, 지식으로 아는 것에 비해 행함이 따르지 못하여 부족한 모습이 나오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열심히 하지만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빼고자 합니다. 자기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희생하고 헌신하기보다는 피하고자 하지요. 이는 질서 가운데 순종하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다 교만에서 나오는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잠언 18장 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앞잡이니라" 말씀합니다. 그만큼 교만은 경계하고 또 경계해야 합니다. 물론 믿음의 4단계에 가까울수록 깊은 악의 뿌리를 거의 다 뽑아 버렸기에 교만이 큰 악으로 나오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그 뿌리가 남아 있으면 결국 다시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늘 경계해서 미미한 교만의 모양이라도 온전히 뽑아내야 합니다. 질서에 온전히 순종해야 함은 물론이고, 자기가 아는 것으로 쉽게 분별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겸손과 섬김과 희생, 배려의 마음을 이루어야 하지요. 여러분 모두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세미한 육의 분야까지 발견해서 온전히 벗어 버림으로 신속히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반석을 지났지만 더 신속히 영으로 나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 ----------------------------------------------------------
둘째, ----------------------------------------------------------
셋째, ----------------------------------------------------------
2. 육체의 결여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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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육체의 결여'란?
사람이 성장하면서 거쳐야 할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함으로 인해 보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를 통틀어 일컫는다. 사람은 태어나서 성인이 되기까지는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 등을 거치면서 보편적으로 체득해 가는 과정이 있다. 이 과정을 정상적으로 거치지 못하면 지적인 능력, 행동 능력이 결여되거나 정서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많이 동떨어진 감정 상태를 느끼게 된다.
2012-06-29
제26과신실하신 분께 감사함으로
민 23:19
읽을말씀 : 민 23:19 | 외울말씀 : 출 23:16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약속하신 축복을 풍성하게 거두는 성도가 되게 한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맥추절은 일 년 중 곡물의 첫 수확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맥추절이 되면 처음 수확한 곡식과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이웃과 함께 음식을 먹고 춤을 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요.
오늘날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각자의 삶 속에서 수고하여 거둔 영육 간의 열매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면 됩니다. 맥추절을 맞아 상반기 동안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반기에는 더욱 풍성한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말씀을 100%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믿는 영적 믿음이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결코 불가능이란 것이 없으며 한 번 이루리라 하시면 변개치 않고 반드시 이루시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주셔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 때부터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장차 세계를 이루고, 천하 만민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대성전을 이룰 것이라" 하시며 앞일에 대한 말씀을 주실 때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믿었기에 오늘날 무수한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며 세계를 이루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현실과 상관없이 온전히 믿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과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만민의 성도님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수없이 보고 들으며 체험하였습니다. 따라서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을 뿐 아니라 성결의 복음으로 세계를 이루며 가나안성전과 대성전을 이루는 주역이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을 소망하며 힘차게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이뤄 주신다는 믿음으로 범사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뢰하면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2.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영적 믿음은 행함의 증거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홍해를 갈랐어도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지 않으면 애굽 군대에 사로잡히기 마련이고, 요단 강물이 멈췄어도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아무리 축복의 약속을 주셨어도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내지 않으면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성경에 기록해 놓았지요. 즉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면 신속히 죄악을 버리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한 대로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만일 갈증이 나도 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을 마셔도 갈증이 해소된다는 것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편한 일이 있으면 혈기를 내고 감정을 품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비진리와 타협하기도 하지요. 죄악을 벗고 충성하는 행함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66권을 통해 무수한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성령을 물 붓듯이 부으시며 급속한 영의 흐름 속에 신속하게 성결을 이룰 수 있도록 넘치는 축복으로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축복의 약속을 믿는다면 마냥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구해야 하지요(겔 36:37).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서 불같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행해야 할지 방법론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는 식언치 않고 후회가 없으며 한 치 오차 없이 그 섭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전 세계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많은 주의 종과 일꾼을 양성해 왔습니다. 또한 찬양팀과 예능팀,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기독문화의 수준을 높이며, 문서와 방송 선교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일을 하기 위해 엄청난 재정이 필요하고 희생이 따랐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그대로 될 것을 믿었기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만약 "여력이 되면 준비하겠다." 하며 손을 놓고 있거나,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지금처럼 세계를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단강이 멈추는 것은 하나님 능력에 달려 있지만, 믿음으로 강을 밟고 건너는 행함은 사람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믿고 행함으로 온전히 나타내 보여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3. 인내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고 행함으로 심은 것은 반드시 거두게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끝까지 인내하며 변함없이 행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어떻게 행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견고한 여리고 성 주변을 믿음으로 돌게 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하루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돈 후 큰 소리로 외치라 하셨지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금성철벽 같은 여리고 성을 돈다고 해서 무너질 리도 없고, 더구나 성 안에서 먼저 공격을 해 올 수도 있습니다. 무방비 상태로 성 주변을 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명하신 대로 순종하였고, 마침내 여리고 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야곱이 환도뼈가 위골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자를 놓지 않은 것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변함없이 믿음으로 행함을 나타내야 심은 대로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믿고 기도하며 행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이뤄지지 않으면 더 이상 구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때론 상황이 더 어려워져 기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 때 낙심하고 원망합니다. 지금까지 행함으로 쌓아온 것을 부정적인 말로 무너뜨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중도에 변질되어 포기하면 그 전까지 아무리 열심히 심었어도 열매로 거둘 수 없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 후 변함없이 축복의 언약을 믿고 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해마다 부흥하고 발전하도록 이끄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 가운데서 완전히 죽는 것 같은 상황도 있었지만 오직 감사와 기쁨으로 극복했지요. 연단을 믿음과 진실함으로 이겨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전보다 더한 축복을 주셨고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곧바로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홍해와 요단 강을 건너 여리고 성을 점령했을 때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처럼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열매를 거두기까지 인내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여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민수기 23장 19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반기에 더욱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넣으세요.
첫째로, ( )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둘째로, 행함으로 ( )을 온전케 해야 합니다.
셋째로, 열매를 거두기까지 ( )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 )을 내보여야
합니다.
3. 어떤 일에 대한 열매를 거둘 때 혹 자신이 수고한 대가로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나요? 스스로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맥추절의 유래
밭에 뿌린 밀의 첫 수확을 감사하여 지키는 맥추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다.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한다. 칠칠절이란 명칭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이란 명칭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맥추절은 맥추감사절로 구별하여 지키고 있다.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약속하신 축복을 풍성하게 거두는 성도가 되게 한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맥추절은 일 년 중 곡물의 첫 수확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맥추절이 되면 처음 수확한 곡식과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이웃과 함께 음식을 먹고 춤을 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요.
오늘날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각자의 삶 속에서 수고하여 거둔 영육 간의 열매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면 됩니다. 맥추절을 맞아 상반기 동안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반기에는 더욱 풍성한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말씀을 100% 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고 현실과는 동떨어진 일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믿는 영적 믿음이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결코 불가능이란 것이 없으며 한 번 이루리라 하시면 변개치 않고 반드시 이루시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주셔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 때부터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장차 세계를 이루고, 천하 만민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대성전을 이룰 것이라" 하시며 앞일에 대한 말씀을 주실 때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믿었기에 오늘날 무수한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며 세계를 이루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현실과 상관없이 온전히 믿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과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만민의 성도님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수없이 보고 들으며 체험하였습니다. 따라서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을 뿐 아니라 성결의 복음으로 세계를 이루며 가나안성전과 대성전을 이루는 주역이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을 소망하며 힘차게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이뤄 주신다는 믿음으로 범사에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뢰하면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2.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영적 믿음은 행함의 증거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홍해를 갈랐어도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지 않으면 애굽 군대에 사로잡히기 마련이고, 요단 강물이 멈췄어도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지 않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아무리 축복의 약속을 주셨어도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내지 않으면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성경에 기록해 놓았지요. 즉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말씀하신 대로 순종하면 신속히 죄악을 버리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한 대로 축복이 임하게 됩니다.
만일 갈증이 나도 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을 마셔도 갈증이 해소된다는 것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편한 일이 있으면 혈기를 내고 감정을 품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비진리와 타협하기도 하지요. 죄악을 벗고 충성하는 행함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66권을 통해 무수한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성령을 물 붓듯이 부으시며 급속한 영의 흐름 속에 신속하게 성결을 이룰 수 있도록 넘치는 축복으로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축복의 약속을 믿는다면 마냥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구해야 하지요(겔 36:37).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서 불같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행해야 할지 방법론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는 식언치 않고 후회가 없으며 한 치 오차 없이 그 섭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전 세계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많은 주의 종과 일꾼을 양성해 왔습니다. 또한 찬양팀과 예능팀, 오케스트라를 조직하여 기독문화의 수준을 높이며, 문서와 방송 선교를 위해 아낌없이 투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일을 하기 위해 엄청난 재정이 필요하고 희생이 따랐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그대로 될 것을 믿었기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만약 "여력이 되면 준비하겠다." 하며 손을 놓고 있거나,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지금처럼 세계를 이루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단강이 멈추는 것은 하나님 능력에 달려 있지만, 믿음으로 강을 밟고 건너는 행함은 사람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믿고 행함으로 온전히 나타내 보여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3. 인내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고 행함으로 심은 것은 반드시 거두게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가 끝까지 인내하며 변함없이 행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어떻게 행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견고한 여리고 성 주변을 믿음으로 돌게 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하루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일곱 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돈 후 큰 소리로 외치라 하셨지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금성철벽 같은 여리고 성을 돈다고 해서 무너질 리도 없고, 더구나 성 안에서 먼저 공격을 해 올 수도 있습니다. 무방비 상태로 성 주변을 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명하신 대로 순종하였고, 마침내 여리고 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야곱이 환도뼈가 위골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자를 놓지 않은 것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변함없이 믿음으로 행함을 나타내야 심은 대로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믿고 기도하며 행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이뤄지지 않으면 더 이상 구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때론 상황이 더 어려워져 기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 때 낙심하고 원망합니다. 지금까지 행함으로 쌓아온 것을 부정적인 말로 무너뜨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중도에 변질되어 포기하면 그 전까지 아무리 열심히 심었어도 열매로 거둘 수 없게 됩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 후 변함없이 축복의 언약을 믿고 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해마다 부흥하고 발전하도록 이끄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 가운데서 완전히 죽는 것 같은 상황도 있었지만 오직 감사와 기쁨으로 극복했지요. 연단을 믿음과 진실함으로 이겨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전보다 더한 축복을 주셨고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곧바로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홍해와 요단 강을 건너 여리고 성을 점령했을 때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처럼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열매를 거두기까지 인내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여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민수기 23장 19절을 다 함께 외워 봅시다.
2. 하반기에 더욱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넣으세요.
첫째로, ( )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둘째로, 행함으로 ( )을 온전케 해야 합니다.
셋째로, 열매를 거두기까지 ( )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 )을 내보여야
합니다.
3. 어떤 일에 대한 열매를 거둘 때 혹 자신이 수고한 대가로 당연하게 여기지는 않나요? 스스로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맥추절의 유래
밭에 뿌린 밀의 첫 수확을 감사하여 지키는 맥추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다.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한다. 칠칠절이란 명칭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이란 명칭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맥추절은 맥추감사절로 구별하여 지키고 있다.
2012-06-22
제25과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롬 12:3
읽을말씀 : 롬 12:3 | 외울말씀 : 롬 12:3 ㅣ 참고 말씀:요일 3:15, 약 1:14~15
교육목표 :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분별할 수 있도록 믿음의 반석에 들어 갈 수 있는 아홉 가지 기준에 대해 살펴본다.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면 행함으로 짓는 육체의 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사소한 육체의 일이라도 자주 반복적으로 행한다면 아직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없지요.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육신의 일 즉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웬만한 죄도 다 버린 상태이므로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말합니다.
반석이란 넓고 평평한 돌로서 아주 안전하고 견고한 상태를 뜻합니다. 반석에 서면 믿음이 견고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으며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반석에 섰는지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1) 분노나 짜증과 같은 악한 혈기를 버려야 해요
혈기란 분노와 같은 악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말합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면 욕설이나 폭행 등 거친 말과 행동으로 나오지요. 믿음의 반석에서는 마음에서 '욱!' 하고 부글부글 끓는 것도 거의 없어야 합니다.
만약 혈기를 억지로 참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오랜 시간 지속되거나 짜증 섞인 말과 감정이 담긴 말을 툭툭 던지는 모습이 있다면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멀지요. 더욱이 얼굴에 혈기가 분명히 드러나고 말이나 행동에서도 혈기가 확연히 느껴지는데 스스로 반석이라 생각하고 있다면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혹 혈기를 내고도 '짜증이나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상대를 깨우쳐 주기 위함'이며 '의분이 난 것'이라고 이유를 대거나 변명한다면 이 또한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2) 불편함과 서운함 등 나쁜 감정이 없어야 해요
감정이란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으로서 혈기보다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불편함과 서운함이지요.
누군가가 자신에게 안 좋은 말을 하거나 지적 또는 책망을 했을 때, 자신을 섬겨 주지 않거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 상대가 해 주지 않을 때 불편함이 생깁니다. 또한 남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자기가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애매히 오해를 받을 때 서운함이 생깁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어느 정도 무익한 종의 마음(눅 17:7~10)이 되어 서운함이나 불편한 감정이 스스로 느낄 만큼 올라오지 않습니다. 혹여 착각 속에 '나는 그런 감정들이 없다' 할 수 있는데 이처럼 자신을 속이면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없지요.
3) 마음에서 미움, 시기, 질투를 버려야 해요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해도 마음에서 계속 상대를 미워한다면 이는 거듭 살인하는 것과 같으며(요일 3:15)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멉니다.
시기, 질투 역시 현저한 육체의 일(갈 5:19~21)이므로 반드시 버려야 할 악입니다. 누군가 칭찬받을 때 '저 사람에게는 저런 부족한 모습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면 시기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바로 진리의 마음입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잘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시기, 질투를 가지고 있으면서 믿음의 반석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4) 사소한 거짓이나 속이는 마음을 버려야 해요
자기 유익을 위해 속이거나 거짓말을 지어낸다면 믿음의 반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공을 드러내고자 허위로 실적을 보태서 또는 불리한 것은 줄이거나 없는 것처럼 보고한다면 거짓과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윗사람을 속이고 교회와 목자를 속인다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장은 속여서 넘어갔다 해도 결국 시험 환난으로 오고 나중에는 더 큰 일도 속이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속이려는 마음, 거짓말하거나 숨기려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있습니다.
5) 헤아리고 비방, 정죄하는 판단이 없어야 해요
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지식 또는 자기 보기에 선과 의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십니다. 따라서 사람을 함부로 판단, 정죄하는 것은 교만임을 알아야 합니다(약 4:11~12).
판단을 하면 대부분 수군거림과 헤아림, 비방과 정죄가 따릅니다. 특히 '분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안 좋은 말을 퍼뜨리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거나 사람의 이야기나 소문만 듣고 판단을 하는 사람은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6) 약속을 어기고 수시로 변개하는 일이 없어야 해요
육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가 바로 변개함입니다. 한 번 정한 것을 변개함 없이 지키는 것이 영입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더욱이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꾸는 사람이라면 변개함의 속성이 많이 남아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순교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순교의 믿음'이란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변개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도 수시로 변개하며 하나님과의 약속도 어기는 사람이 어떻게 죽음의 위협 앞에서 변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육의 속성의 대표적 특징인 변개함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7) 음욕을 품거나 생각으로 간음하는 일이 없어야 해요
이성을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거나 생각으로 범하는 간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색, 음란, 음행, 더러운 것 등 간음과 관련된 죄들을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버려야 할 것이 바로 간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7~28). 따라서 행위는 물론, 마음이나 생각으로 짓는 간음의 근본 뿌리까지도 온전히 빼내야 합니다.
8) 욕심과 탐심, 사사로운 마음을 버려야 해요
욕심과 탐심은 물질, 명예, 권세, 외모 등 다양한 분야로 표출되어 나옵니다. 또한 사심 즉 사사로운 마음은 정과 욕심을 좇아 개인적인 유익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물질과 관련된 경우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나 탐심이 있어 돈을 사랑하다 보면 결국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점점 세상으로 빠지고 정욕적인 것에 쏠립니다. 사심 역시 물질과 관련되면 온갖 부정과 부패의 원인이 되지요. 사심이 있으면 개인적인 유익,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유익을 먼저 챙깁니다. 따라서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욕심, 사심, 탐심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9)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마음이 없어야 해요
배신은 변개함과도 관련이 있지만 간사한 마음과 크게 관련이 있습니다. 또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교만 등 여러 가지 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배신'이라는 악을 낳게 됩니다. 더욱이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한다면 이것은 더 큰 악입니다.
가룟 유다는 스승인 예수님을 배신하고 나서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결국 목 매달아 죽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함께 사역하다가 한때 곁을 떠났던 '마가 요한'이 다시 함께 사역하기를 원했을 때 받아주지 않으려 했지요. 따라서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배신의 마음을 근본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 살펴 본 아홉 가지 기준에 비추어 걸릴 만한 것이 없다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순교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변개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으니 신속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의 마음을 이루어 영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반석에 섰는지 분별할 수 있는 아홉 가지 기준입니다.
( ) 안을 채우면서 나는 얼마나 육의 마음을 버렸는지 점검해 볼까요?
혈기, ( ), 미움 · 시기· 질투, ( )과 ( ), 판단, ( ),
간음, 욕심 · 사심 · 탐심, ( )
2. 아홉 가지 버려야 할 악들 중에 여러분의 가장 취약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온전히 버리고 영의 마음을 신속히 채우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더욱 불같이 기도하여 온전히 버리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마가 요한'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으로 유대인 본래 이름은 요한이며(행 12:12)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다. 바나바의 조카이기도 한 마가는 안디옥 교회에서 큰 신뢰를 얻고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바울의 수종자로 동행하게 된다. 그런데 마가가 전도 여행 도중에 혼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제2차 전도여행 때 바나바는 마가를 함께 데리고 가려 했으나 바울은 거절함으로 둘이 심히 다툰다. 이에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소아시아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전도여행을 떠났다. 나중에 마가는 다시 바울에게 인정을 받아 함께 지냈으며 바울은 그를 가리켜 "나의 일에 유익한 자"라고 고백했다(딤후 4:11).
교육목표 : 자신의 믿음을 점검하고 분별할 수 있도록 믿음의 반석에 들어 갈 수 있는 아홉 가지 기준에 대해 살펴본다.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면 행함으로 짓는 육체의 일은 더 이상 나오지 않습니다. 사소한 육체의 일이라도 자주 반복적으로 행한다면 아직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없지요.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육신의 일 즉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웬만한 죄도 다 버린 상태이므로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말합니다.
반석이란 넓고 평평한 돌로서 아주 안전하고 견고한 상태를 뜻합니다. 반석에 서면 믿음이 견고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으며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반석에 섰는지 분별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1) 분노나 짜증과 같은 악한 혈기를 버려야 해요
혈기란 분노와 같은 악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말합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면 욕설이나 폭행 등 거친 말과 행동으로 나오지요. 믿음의 반석에서는 마음에서 '욱!' 하고 부글부글 끓는 것도 거의 없어야 합니다.
만약 혈기를 억지로 참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오랜 시간 지속되거나 짜증 섞인 말과 감정이 담긴 말을 툭툭 던지는 모습이 있다면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멀지요. 더욱이 얼굴에 혈기가 분명히 드러나고 말이나 행동에서도 혈기가 확연히 느껴지는데 스스로 반석이라 생각하고 있다면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간혹 혈기를 내고도 '짜증이나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상대를 깨우쳐 주기 위함'이며 '의분이 난 것'이라고 이유를 대거나 변명한다면 이 또한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2) 불편함과 서운함 등 나쁜 감정이 없어야 해요
감정이란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으로서 혈기보다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불편함과 서운함이지요.
누군가가 자신에게 안 좋은 말을 하거나 지적 또는 책망을 했을 때, 자신을 섬겨 주지 않거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 상대가 해 주지 않을 때 불편함이 생깁니다. 또한 남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자기가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애매히 오해를 받을 때 서운함이 생깁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어느 정도 무익한 종의 마음(눅 17:7~10)이 되어 서운함이나 불편한 감정이 스스로 느낄 만큼 올라오지 않습니다. 혹여 착각 속에 '나는 그런 감정들이 없다' 할 수 있는데 이처럼 자신을 속이면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없지요.
3) 마음에서 미움, 시기, 질투를 버려야 해요
겉으로는 드러내지 않았다 해도 마음에서 계속 상대를 미워한다면 이는 거듭 살인하는 것과 같으며(요일 3:15)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멉니다.
시기, 질투 역시 현저한 육체의 일(갈 5:19~21)이므로 반드시 버려야 할 악입니다. 누군가 칭찬받을 때 '저 사람에게는 저런 부족한 모습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먼저 떠오른다면 시기가 있는 것입니다.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바로 진리의 마음입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잘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인정과 칭찬을 받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시기, 질투를 가지고 있으면서 믿음의 반석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4) 사소한 거짓이나 속이는 마음을 버려야 해요
자기 유익을 위해 속이거나 거짓말을 지어낸다면 믿음의 반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공을 드러내고자 허위로 실적을 보태서 또는 불리한 것은 줄이거나 없는 것처럼 보고한다면 거짓과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윗사람을 속이고 교회와 목자를 속인다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것입니다. 당장은 속여서 넘어갔다 해도 결국 시험 환난으로 오고 나중에는 더 큰 일도 속이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속이려는 마음, 거짓말하거나 숨기려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있습니다.
5) 헤아리고 비방, 정죄하는 판단이 없어야 해요
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지식 또는 자기 보기에 선과 의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십니다. 따라서 사람을 함부로 판단, 정죄하는 것은 교만임을 알아야 합니다(약 4:11~12).
판단을 하면 대부분 수군거림과 헤아림, 비방과 정죄가 따릅니다. 특히 '분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안 좋은 말을 퍼뜨리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거나 사람의 이야기나 소문만 듣고 판단을 하는 사람은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6) 약속을 어기고 수시로 변개하는 일이 없어야 해요
육의 가장 큰 특징 중에 하나가 바로 변개함입니다. 한 번 정한 것을 변개함 없이 지키는 것이 영입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더욱이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꾸는 사람이라면 변개함의 속성이 많이 남아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순교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순교의 믿음'이란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변개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도 수시로 변개하며 하나님과의 약속도 어기는 사람이 어떻게 죽음의 위협 앞에서 변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육의 속성의 대표적 특징인 변개함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7) 음욕을 품거나 생각으로 간음하는 일이 없어야 해요
이성을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거나 생각으로 범하는 간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호색, 음란, 음행, 더러운 것 등 간음과 관련된 죄들을 엄히 경계하셨습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버려야 할 것이 바로 간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7~28). 따라서 행위는 물론, 마음이나 생각으로 짓는 간음의 근본 뿌리까지도 온전히 빼내야 합니다.
8) 욕심과 탐심, 사사로운 마음을 버려야 해요
욕심과 탐심은 물질, 명예, 권세, 외모 등 다양한 분야로 표출되어 나옵니다. 또한 사심 즉 사사로운 마음은 정과 욕심을 좇아 개인적인 유익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물질과 관련된 경우입니다.
물질에 대한 욕심이나 탐심이 있어 돈을 사랑하다 보면 결국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 점점 세상으로 빠지고 정욕적인 것에 쏠립니다. 사심 역시 물질과 관련되면 온갖 부정과 부패의 원인이 되지요. 사심이 있으면 개인적인 유익,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유익을 먼저 챙깁니다. 따라서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욕심, 사심, 탐심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9)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마음이 없어야 해요
배신은 변개함과도 관련이 있지만 간사한 마음과 크게 관련이 있습니다. 또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교만 등 여러 가지 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배신'이라는 악을 낳게 됩니다. 더욱이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한다면 이것은 더 큰 악입니다.
가룟 유다는 스승인 예수님을 배신하고 나서 얼마나 고통스러우면 결국 목 매달아 죽었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함께 사역하다가 한때 곁을 떠났던 '마가 요한'이 다시 함께 사역하기를 원했을 때 받아주지 않으려 했지요. 따라서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배신의 마음을 근본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까지 살펴 본 아홉 가지 기준에 비추어 걸릴 만한 것이 없다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순교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변개하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으니 신속히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의 마음을 이루어 영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반석에 섰는지 분별할 수 있는 아홉 가지 기준입니다.
( ) 안을 채우면서 나는 얼마나 육의 마음을 버렸는지 점검해 볼까요?
혈기, ( ), 미움 · 시기· 질투, ( )과 ( ), 판단, ( ),
간음, 욕심 · 사심 · 탐심, ( )
2. 아홉 가지 버려야 할 악들 중에 여러분의 가장 취약점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온전히 버리고 영의 마음을 신속히 채우기 위해서는 말씀과 기도로 무장해야 합니다. 더욱 불같이 기도하여 온전히 버리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마가 요한'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으로 유대인 본래 이름은 요한이며(행 12:12)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다. 바나바의 조카이기도 한 마가는 안디옥 교회에서 큰 신뢰를 얻고 바울과 바나바가 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바울의 수종자로 동행하게 된다. 그런데 마가가 전도 여행 도중에 혼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다. 제2차 전도여행 때 바나바는 마가를 함께 데리고 가려 했으나 바울은 거절함으로 둘이 심히 다툰다. 이에 바울은 실라를 데리고 소아시아로,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전도여행을 떠났다. 나중에 마가는 다시 바울에게 인정을 받아 함께 지냈으며 바울은 그를 가리켜 "나의 일에 유익한 자"라고 고백했다(딤후 4:11).
2012-06-15
제24과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
마 7:24~25
읽을말씀 : 마 7:24~25 | 외울말씀 : 히 12:4 l 참고 말씀:막 9:29
교육목표 :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에 섰을 때 신앙생활의 차이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고 배우는 대로 죄를 버리고자 노력해 갑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해 깨달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지요.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바로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가 성령의 소욕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진리인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려고 하는데 이 단계가 바로 믿음의 3단계입니다.
1. 죄를 싸워 버리기 시작하는 믿음의 3단계 초입
믿음의 3단계가 되면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버리라'는 것들을 열심히 버려 나가고, '행하라'는 것들은 열심히 행해 나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일 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하는 사람은 모두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의 종이나 다른 성도의 눈치를 보거나 시험 환난이 따를까 두려워 할 수 없이 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마음은 세상에 빼앗기고 몸만 성전에 와서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온전한 주일 성수라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설령 십일조 생활을 해도 여전히 믿음의 2단계에 속하지요. 그런데 같은 믿음의 단계에 속한다 할지라도 각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가령 믿음의 2단계를 100으로 나누어 믿음의 분량을 측정한다면 10%, 20%, 50% 성장하여 100%에 가까울수록 믿음의 3단계에 가깝고, 100%가 되어야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간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기 위해서는 마가복음 9장 29절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는 말씀대로 먼저 불같은 기도와 금식을 통한 나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을 이루는 믿음의 반석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을 이루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마 7:24~25).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고전 10:4), 믿음의 반석이란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단계를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반석에 서면 어떤 시험과 환난이 오더라도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에 따라 정도(正道)를 걸으며 하나님 뜻이라면 순종하기에 원수 마귀 사단의 유혹을 받지 않고 항상 승리하며 영광 돌립니다. 또한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가 우러나오며 변함없이 기도함으로 평강을 잃지 않습니다. 설령 자녀가 교통사고를 당했어도 믿음이 있기에 진정 마음에서 감사하며 하나님께 "왜 지켜 주시지 않았느냐!"고 불평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의 3단계 초입에는 행할 수 있는 마음은 가졌으되 아직 남아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 있어 기쁨으로 순종할 때도 있지만 마지못해 하거나 못할 때도 있습니다. 가령, 하나님이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기에 상대를 미워하지 않고 섬기려 하지만 중심에서 우러나는 사랑의 행함이 아니기 때문에 온전치 않으며 마음도 힘들지요.
하지만 믿음의 반석에 선 사람은 성령의 소욕을 좇는 진리의 마음이 강하므로 원수 마귀가 역사하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 가운데 행해 나감으로 설령 어떤 시험 환난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해결사가 되어 주실 것을 믿고 담대히 승리해 갈 뿐이지요.
3. 성령을 받고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의 과정
성령을 받고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 과정은 권투 선수가 세계 챔피언이 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부단한 노력과 인내와 자기와의 싸움이 필요하지요. 처음에는 실력이 없어 많이 맞습니다. 거기서 더 열심히 노력하고 인내해서 실력이 향상되면 지는 경우보다는 이기는 경우가 더욱 많아지고 자신감도 붙지요. 원수 마귀와의 영적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을 좇고자 하는 두 마음이 치열하게 싸웁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도 하지만 패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며 성령께서 도우심으로 성령의 소욕이 점점 강해져 믿음의 3단계를 향해서 계속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오면 육신의 소욕이 점점 약해져 신앙생활이 차츰 수월해집니다. 예전에는 10분 기도했는데 점점 20분, 30분, 1시간으로 늘고 두세 시간도 거뜬히 하게 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믿음의 3단계 깊숙이 들어가면 진리 안에 굳건히 서게 되므로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림이 없는 믿음이 됩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기도하는 것마다 신속히 응답을 받습니다. 또한 말씀대로 지켜 행하니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며,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며 항상 깨어 기도하게 됩니다. 반드시 믿음의 반석에 서야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초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믿음의 1단계에서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신속히 믿음이 성장하지요.
4.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믿음의 2단계는 성령의 소욕을 좇는 마음과 육신의 소욕을 좇는 마음이 서로 싸우는 단계입니다. 반면 믿음의 3단계는 성령의 소욕을 좇아 말씀대로 행하여 승리해 나가는 단계이지요. 행함으로 죄를 짓는 육체의 일은 이미 버렸으므로 신앙생활이 수월합니다.
그렇지만 몸과 결합해 있는 죄의 성질 곧 육신의 일을 벗기 위해 죄를 피 흘리기까지 버리는 싸움이 시작됩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서 믿음의 3단계에 깊이 들어가면, 육신의 일을 버렸으므로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지 않고, 범사에 순종하며 진리의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 믿음의 3단계로 들어가는 시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심히 노력하기만 한다면 결코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녀도 말씀대로 행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여전히 믿음의 2단계에 머물러 있게 되지요.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깨우쳐 행할 때라야 영이 자라며 영혼이 잘되어 가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 3단계로 들어가는 것은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더 빨리 이룰 수도 있고, 더딜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3단계에서 4단계로 진입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요. 마치 나무가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새들이 깃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66권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려면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하는데, 온전히 아버지의 뜻을 안다는 것이 짧은 기간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곧바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검정고시를 통해 조기 진학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수, 삼수를 거쳐 늦게 진학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믿음도 자신이 얼마큼 노력하느냐에 따라 믿음의 3단계에서 4단계로 신속히 들어갈 수도 있고 더딜 수도 있지요.
영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 그릇이 큽니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그만큼 성결되려는 간절함이나 죄를 버리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 그릇이 큰 사람은 그것이 옳다는 것을 깨닫고 한 번 하겠다고 결심하면 중간에 변개하지 않고 끝까지 이루어 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노력하고 노력해서 성취해 내지요.
여러분이 믿음의 3단계에서 신속히 4단계로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시기 바랍니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다섯 번, 열 번 그 이상 도전해 보십시오. 부단히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지고 들어가도 복, 나가도 복을 받는 영의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의 차이를 설명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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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믿음의 1단계는 성령받아 구원받은 단계요, 믿음의 2단계는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3단계는 어떤 단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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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러분의 믿음의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체크해 보세요.
① 믿음의 1단계 ② 믿음의 2단계 ③ 믿음의 3단계 초입
④ 믿음의 반석 ⑤ 믿음의 4단계 ⑥ 믿음의 5단계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육신의 일이란? '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인 육신을 낱낱이 분리해 놓은 것을 말한다. 즉, 미움, 시기, 질투, 거짓됨, 간사함, 교만, 혈기, 판단, 정죄, 간음, 욕심 등을 말한다.
교육목표 :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에 섰을 때 신앙생활의 차이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고 배우는 대로 죄를 버리고자 노력해 갑니다.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해 깨달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힘쓰지요. 하지만 마음처럼 쉽지가 않습니다. 바로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가 성령의 소욕을 가로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진리인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려고 하는데 이 단계가 바로 믿음의 3단계입니다.
1. 죄를 싸워 버리기 시작하는 믿음의 3단계 초입
믿음의 3단계가 되면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버리라'는 것들을 열심히 버려 나가고, '행하라'는 것들은 열심히 행해 나가게 됩니다. 그렇다면 주일 성수를 하고 십일조를 하는 사람은 모두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의 종이나 다른 성도의 눈치를 보거나 시험 환난이 따를까 두려워 할 수 없이 행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마음은 세상에 빼앗기고 몸만 성전에 와서 형식적으로 드리는 예배를 온전한 주일 성수라 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설령 십일조 생활을 해도 여전히 믿음의 2단계에 속하지요. 그런데 같은 믿음의 단계에 속한다 할지라도 각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가령 믿음의 2단계를 100으로 나누어 믿음의 분량을 측정한다면 10%, 20%, 50% 성장하여 100%에 가까울수록 믿음의 3단계에 가깝고, 100%가 되어야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간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기 위해서는 마가복음 9장 29절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는 말씀대로 먼저 불같은 기도와 금식을 통한 나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을 이루는 믿음의 반석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을 이루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마 7:24~25). 반석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고전 10:4), 믿음의 반석이란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단계를 말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반석에 서면 어떤 시험과 환난이 오더라도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에 따라 정도(正道)를 걸으며 하나님 뜻이라면 순종하기에 원수 마귀 사단의 유혹을 받지 않고 항상 승리하며 영광 돌립니다. 또한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가 우러나오며 변함없이 기도함으로 평강을 잃지 않습니다. 설령 자녀가 교통사고를 당했어도 믿음이 있기에 진정 마음에서 감사하며 하나님께 "왜 지켜 주시지 않았느냐!"고 불평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습니다.
믿음의 3단계 초입에는 행할 수 있는 마음은 가졌으되 아직 남아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 있어 기쁨으로 순종할 때도 있지만 마지못해 하거나 못할 때도 있습니다. 가령, 하나님이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셨기에 상대를 미워하지 않고 섬기려 하지만 중심에서 우러나는 사랑의 행함이 아니기 때문에 온전치 않으며 마음도 힘들지요.
하지만 믿음의 반석에 선 사람은 성령의 소욕을 좇는 진리의 마음이 강하므로 원수 마귀가 역사하지 못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 가운데 행해 나감으로 설령 어떤 시험 환난 앞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해결사가 되어 주실 것을 믿고 담대히 승리해 갈 뿐이지요.
3. 성령을 받고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의 과정
성령을 받고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 과정은 권투 선수가 세계 챔피언이 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부단한 노력과 인내와 자기와의 싸움이 필요하지요. 처음에는 실력이 없어 많이 맞습니다. 거기서 더 열심히 노력하고 인내해서 실력이 향상되면 지는 경우보다는 이기는 경우가 더욱 많아지고 자신감도 붙지요. 원수 마귀와의 영적 싸움도 마찬가지입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성령의 소욕과 육신의 소욕을 좇고자 하는 두 마음이 치열하게 싸웁니다. 그래서 원수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기도 하지만 패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낙심하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며 성령께서 도우심으로 성령의 소욕이 점점 강해져 믿음의 3단계를 향해서 계속 올라가게 됩니다.
그리하여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오면 육신의 소욕이 점점 약해져 신앙생활이 차츰 수월해집니다. 예전에는 10분 기도했는데 점점 20분, 30분, 1시간으로 늘고 두세 시간도 거뜬히 하게 됩니다. 이렇게 기도하면서 믿음의 3단계 깊숙이 들어가면 진리 안에 굳건히 서게 되므로 어떤 시험 환난이 와도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림이 없는 믿음이 됩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기도하는 것마다 신속히 응답을 받습니다. 또한 말씀대로 지켜 행하니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며,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며 항상 깨어 기도하게 됩니다. 반드시 믿음의 반석에 서야만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초신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믿음의 1단계에서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신속히 믿음이 성장하지요.
4.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믿음의 2단계는 성령의 소욕을 좇는 마음과 육신의 소욕을 좇는 마음이 서로 싸우는 단계입니다. 반면 믿음의 3단계는 성령의 소욕을 좇아 말씀대로 행하여 승리해 나가는 단계이지요. 행함으로 죄를 짓는 육체의 일은 이미 버렸으므로 신앙생활이 수월합니다.
그렇지만 몸과 결합해 있는 죄의 성질 곧 육신의 일을 벗기 위해 죄를 피 흘리기까지 버리는 싸움이 시작됩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서 믿음의 3단계에 깊이 들어가면, 육신의 일을 버렸으므로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지 않고, 범사에 순종하며 진리의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 믿음의 3단계로 들어가는 시간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열심히 노력하기만 한다면 결코 길지 않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다녀도 말씀대로 행하려 노력하지 않으면 여전히 믿음의 2단계에 머물러 있게 되지요. 하나님 말씀을 듣고 그 뜻을 깨우쳐 행할 때라야 영이 자라며 영혼이 잘되어 가는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 3단계로 들어가는 것은 자신이 마음먹기에 따라 더 빨리 이룰 수도 있고, 더딜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3단계에서 4단계로 진입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요. 마치 나무가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새들이 깃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66권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려면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하는데, 온전히 아버지의 뜻을 안다는 것이 짧은 기간에 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초등학교에서 공부를 잘한다고 곧바로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 검정고시를 통해 조기 진학을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재수, 삼수를 거쳐 늦게 진학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믿음도 자신이 얼마큼 노력하느냐에 따라 믿음의 3단계에서 4단계로 신속히 들어갈 수도 있고 더딜 수도 있지요.
영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 그릇이 큽니다. 그릇이 작은 사람은 그만큼 성결되려는 간절함이나 죄를 버리기 위한 노력이 부족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음 그릇이 큰 사람은 그것이 옳다는 것을 깨닫고 한 번 하겠다고 결심하면 중간에 변개하지 않고 끝까지 이루어 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노력하고 노력해서 성취해 내지요.
여러분이 믿음의 3단계에서 신속히 4단계로 들어가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하다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시기 바랍니다.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다섯 번, 열 번 그 이상 도전해 보십시오. 부단히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지고 들어가도 복, 나가도 복을 받는 영의 사람이 되어 있을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의 차이를 설명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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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믿음의 1단계는 성령받아 구원받은 단계요, 믿음의 2단계는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3단계는 어떤 단계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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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여러분의 믿음의 현주소는 어디입니까? 체크해 보세요.
① 믿음의 1단계 ② 믿음의 2단계 ③ 믿음의 3단계 초입
④ 믿음의 반석 ⑤ 믿음의 4단계 ⑥ 믿음의 5단계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육신의 일이란? '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인 육신을 낱낱이 분리해 놓은 것을 말한다. 즉, 미움, 시기, 질투, 거짓됨, 간사함, 교만, 혈기, 판단, 정죄, 간음, 욕심 등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