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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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8
제20과구원받기 위한 믿음의 1단계
행 2:38~39
읽을말씀 : 행 2:38~39 | 외울말씀 : 요 1:12 l 참고 말씀:살전 5:19
교육목표 : 믿음의 분량 중 가장 낮은 단계인 구원받기 위한 믿음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에 따라 사후의 세계는 너무나 다릅니다. 천국과 지옥으로 극명하게 갈라지기 때문에 구원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같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교회만 다닌다고 해서 무조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대충대충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뜻과는 어긋나게 산다면 천국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믿음을 소유해야 할까요?
1. 구원받기 위한 믿음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함으로 그의 후손들은 모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일생 동안 죄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에게 순종하여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면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나름대로 선하게 산다는 사람도 있지만 진리에 비춰 보면 원죄와 자범죄를 가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신 대로 율법의 의에 비추어 볼 때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치 밝은 빛으로 방 안을 비춰 보면 미세한 먼지까지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보면 숨겨진 악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 앞에서는 혈기, 다툼, 도적질 등 겉으로 드러난 죄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미움, 시기까지도 죄가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죄인들은 반드시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셨지요. 이 사실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여 호적에 이름을 올리듯이,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즉 하늘나라 시민권자가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구원받기 위한 믿음, 곧 믿음의 1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믿음을 말합니다.
2. 성령받기 위한 믿음
사도행전 19장 1~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지방에서 어떤 제자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합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세례 요한의 세례도 받았지만 성령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이 임하고 성령의 은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하나님의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욜 2:28, 행 2:17). 오늘날 그대로 성취되었고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받은 사람이 모여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마음 문을 열어 자신이 죄인임을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마음 안에 보내 주십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사람에게 보증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고 천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아 구원받은 믿음은 아직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죄와 싸워 버린 것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 받기 위한 믿음, 곧 믿음의 1단계는 가장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한 편 강도의 믿음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3. 낙원에 들어간 한 편 강도
누가복음 23장 3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두 강도도 예수님의 좌우편에 못 박혔습니다. 이때 한 편 강도는 악한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했지만, 다른 한 강도는 오히려 그를 꾸짖으며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고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지요. 이에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낙원에서 그와 함께 있겠다 하신 것은 강도가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을 말씀한 것이지, 예수님이 낙원에 계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낙원을 포함하여 모든 천국의 주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낙원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 곧 믿음의 1단계에 해당되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으로 천국의 가장 변두리에 해당하며 상급이 없습니다. 그 강도는 다만 선한 양심을 좇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를 용서받았을 뿐, 주님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낙원에 들어간 것입니다.
한편 강도는 죽기 전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천국 낙원을 약속받았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 받은 지 얼마 안 된 초신자만 믿음의 1단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여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행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1단계 믿음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믿음이 좋아 보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육체의 일(행위로 짓는 죄)을 행하면 믿음의 1단계로 떨어져 버리지요.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령 받은 직후에는 성령이 충만하여 가르침 받는 대로 순종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세상을 바라봄으로 성령 충만함을 잃어버리면 다시 구습을 좇아 세상과 짝하며 죄를 짓기도 합니다. 이것이 지속되면 성령마저 소멸되어 1단계 믿음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지요.
그러므로 자신이 1단계 믿음에 속한다면 각종 예배와 기도회, 모임에 참석해서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그대로 순종함으로 믿음의 2, 3단계로 신속하게 성장시켜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꾸 죄를 범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서 이름이 흐려져 구원조차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4.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어느 성도의 경우
소천한 어느 성도의 경우입니다. 예전에 자신이 병들어 있을 때 기도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였고, 아내도 죽을 고비에서 기도를 받고 살아났습니다. 그 은혜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사명을 감당하며 충성했지요.
그러나 막상 우리 교회에 큰 시험이 왔을 때 교회와 목자를 지키려 한 것이 아니라, 사단에게 생각을 내주며 입술로 낸 말들이 하나님 앞에 담이 되어 큰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충성하며 쌓아왔던 상급이 다 허물어졌지요. 게다가 기도의 능력이 오지 않으니 점점 믿음이 퇴보하여 구원조차 받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나마 예전에 목자를 붙좇으며 섬겼던 행함이 하나님께 기억되어 임종 직전에 회개하고 기도를 받아 간신히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은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이 아니며 오직 그 중심이 얼마나 합당하느냐에 있습니다. 또한 성령을 받고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 해도 말씀대로 행치 않고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을 쌓아 간다면 점점 성령이 소멸되어(살전 5:19) 결국 구원과는 멀어지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만일 믿음이 성장하다가 퇴보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니 결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자녀가 세월이 흘러도 자라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부모는 얼마나 걱정이 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아 겨자씨만 한 믿음을 소유했다면 열심히 말씀을 듣고 배우며 믿음의 성장을 이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구원받은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더욱 큰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불같이 기도하며 힘쓰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반석을 지나 영으로, 온 영으로 나오기까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1단계와 관계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낙원 ② 구원받기 위한 믿음 ③ 성령받기 위한 믿음 ④ 자녀들의 믿음 ⑤ 1천층
2. 괄호 안을 채워 보세요.
낙원은 ( )를 영접하여 ( )을 선물로 받은 믿음의 ( )단계가 들어가는 처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한 것이 없기에 상급은 ( )
3.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구원받았을까요?
구원받았다면 그들의 천국 처소는 어디일까요? (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생명책'이란?
생명책은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한다. "누가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백보좌 대심판 때 하나의 증거 자료로 사용된다. 이 책은 푸른빛이 감도는 밝은 흰빛을 띠고 있다.
교육목표 : 믿음의 분량 중 가장 낮은 단계인 구원받기 위한 믿음에 대해 알아본다.
우리가 구원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에 따라 사후의 세계는 너무나 다릅니다. 천국과 지옥으로 극명하게 갈라지기 때문에 구원은 이 세상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같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교회만 다닌다고 해서 무조건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대충대충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의 뜻과는 어긋나게 산다면 천국을 보장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떠한 믿음을 소유해야 할까요?
1. 구원받기 위한 믿음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함으로 그의 후손들은 모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일생 동안 죄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에게 순종하여 죄를 지으며 살아간다면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나름대로 선하게 산다는 사람도 있지만 진리에 비춰 보면 원죄와 자범죄를 가진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신 대로 율법의 의에 비추어 볼 때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치 밝은 빛으로 방 안을 비춰 보면 미세한 먼지까지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보면 숨겨진 악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 앞에서는 혈기, 다툼, 도적질 등 겉으로 드러난 죄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미움, 시기까지도 죄가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죄인들은 반드시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죄인들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셨지요. 이 사실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여 호적에 이름을 올리듯이,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즉 하늘나라 시민권자가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구원받기 위한 믿음, 곧 믿음의 1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믿음을 말합니다.
2. 성령받기 위한 믿음
사도행전 19장 1~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지방에서 어떤 제자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합니다. 제자들은 하나님을 믿고 세례 요한의 세례도 받았지만 성령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이 임하고 성령의 은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하나님의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욜 2:28, 행 2:17). 오늘날 그대로 성취되었고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받은 사람이 모여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성령을 받아야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듣고 마음 문을 열어 자신이 죄인임을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마음 안에 보내 주십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사람에게 보증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되고 천국 시민권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아 구원받은 믿음은 아직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죄와 싸워 버린 것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성령 받기 위한 믿음, 곧 믿음의 1단계는 가장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한 편 강도의 믿음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3. 낙원에 들어간 한 편 강도
누가복음 23장 3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두 강도도 예수님의 좌우편에 못 박혔습니다. 이때 한 편 강도는 악한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했지만, 다른 한 강도는 오히려 그를 꾸짖으며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고 자신의 영혼을 부탁하지요. 이에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낙원에서 그와 함께 있겠다 하신 것은 강도가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을 말씀한 것이지, 예수님이 낙원에 계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낙원을 포함하여 모든 천국의 주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낙원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 곧 믿음의 1단계에 해당되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으로 천국의 가장 변두리에 해당하며 상급이 없습니다. 그 강도는 다만 선한 양심을 좇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를 용서받았을 뿐, 주님을 위해 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낙원에 들어간 것입니다.
한편 강도는 죽기 전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천국 낙원을 약속받았습니다. 이처럼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 받은 지 얼마 안 된 초신자만 믿음의 1단계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여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행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1단계 믿음밖에 되지 않습니다. 또 믿음이 좋아 보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육체의 일(행위로 짓는 죄)을 행하면 믿음의 1단계로 떨어져 버리지요.
대부분의 성도들이 성령 받은 직후에는 성령이 충만하여 가르침 받는 대로 순종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좋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세상을 바라봄으로 성령 충만함을 잃어버리면 다시 구습을 좇아 세상과 짝하며 죄를 짓기도 합니다. 이것이 지속되면 성령마저 소멸되어 1단계 믿음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지요.
그러므로 자신이 1단계 믿음에 속한다면 각종 예배와 기도회, 모임에 참석해서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배우고 그대로 순종함으로 믿음의 2, 3단계로 신속하게 성장시켜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자꾸 죄를 범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서 이름이 흐려져 구원조차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4.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어느 성도의 경우
소천한 어느 성도의 경우입니다. 예전에 자신이 병들어 있을 때 기도를 받고 건강을 회복하였고, 아내도 죽을 고비에서 기도를 받고 살아났습니다. 그 은혜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며 나름대로 사명을 감당하며 충성했지요.
그러나 막상 우리 교회에 큰 시험이 왔을 때 교회와 목자를 지키려 한 것이 아니라, 사단에게 생각을 내주며 입술로 낸 말들이 하나님 앞에 담이 되어 큰 병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그동안 충성하며 쌓아왔던 상급이 다 허물어졌지요. 게다가 기도의 능력이 오지 않으니 점점 믿음이 퇴보하여 구원조차 받기 힘든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그나마 예전에 목자를 붙좇으며 섬겼던 행함이 하나님께 기억되어 임종 직전에 회개하고 기도를 받아 간신히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은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이 아니며 오직 그 중심이 얼마나 합당하느냐에 있습니다. 또한 성령을 받고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 해도 말씀대로 행치 않고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을 쌓아 간다면 점점 성령이 소멸되어(살전 5:19) 결국 구원과는 멀어지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만일 믿음이 성장하다가 퇴보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니 결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만일 자녀가 세월이 흘러도 자라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부모는 얼마나 걱정이 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아 겨자씨만 한 믿음을 소유했다면 열심히 말씀을 듣고 배우며 믿음의 성장을 이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구원받은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더욱 큰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 불같이 기도하며 힘쓰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반석을 지나 영으로, 온 영으로 나오기까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순종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1단계와 관계없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낙원 ② 구원받기 위한 믿음 ③ 성령받기 위한 믿음 ④ 자녀들의 믿음 ⑤ 1천층
2. 괄호 안을 채워 보세요.
낙원은 ( )를 영접하여 ( )을 선물로 받은 믿음의 ( )단계가 들어가는 처소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수고한 것이 없기에 상급은 ( )
3.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쫓겨난 아담과 하와는 구원받았을까요?
구원받았다면 그들의 천국 처소는 어디일까요? (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생명책'이란?
생명책은 구원 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을 말한다. "누가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백보좌 대심판 때 하나의 증거 자료로 사용된다. 이 책은 푸른빛이 감도는 밝은 흰빛을 띠고 있다.
2012-05-11
제19과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
요일 2:12~14, 겔 47:3~5
읽을말씀 : 요일 2:12~14, 겔 47:3~5 | 외울말씀 : 외울 말씀:엡 4:13 l 참고 말씀:롬 12:3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본다.
로마서 12장 3절에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말씀했듯이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구원받은 한 편 강도의 믿음과 주님을 위해 생명 다해 헌신한 베드로의 믿음은 천양지차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아주 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1.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한 믿음의 단계
요한일서 2장 12~14절에 보면 영적인 믿음의 단계를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즉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말씀하지요.
1) 자녀들의 믿음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습니다(요 1:12). 이렇게 죄 사함 받아 구원받은 믿음이 '자녀들의 믿음'입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은 상태이지요. 이때는 진리를 잘 모르기에 빛 가운데 살지도 못합니다. 단지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초신자의 믿음에 불과하지요.
자녀들의 믿음은 성령을 받아 거듭났지만 말씀을 행할 힘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과 짝하며 살아가지요. 주일 성수나 십일조 생활도 제대로 못합니다. 시험이나 핍박이 오면 금세 낙심하지요. 그러므로 안전하게 정착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지 않고 늘 관심과 사랑으로 돌아봐 줘야 합니다.
2) 아이들의 믿음
자녀들의 신앙이 자라면 아이들의 믿음이 됩니다. 마치 갓 태어난 자녀가 젖먹이 때를 지나면 사물을 인지하고 부모를 알아보는 것과 같지요. 이때는 부모를 안다 해도 고향, 취향, 학력, 성품 등 깊은 내용까지는 모릅니다. 영적인 성장 과정에서도 '아이들'은 아버지 하나님을 막 알게 된 믿음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2장 14절에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말씀한 대로이지요. 아버지를 알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안다는 말입니다.
갓난아기가 어느 정도 자라면 엄마, 아빠를 알아보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말씀을 듣고 배워 나가면 하나님의 뜻과 마음도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줄도 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때는 말씀에 순종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으며 시험이 오면 불평하거나 낙심하기도 합니다.
3) 청년들의 믿음
아이가 성장하면 청년이 되듯이, 영적으로도 아이들의 믿음이 자라면 청년의 신앙에 이릅니다. 이때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죄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청년의 때를 맞습니다. 청년의 믿음에 이르면, 하나님 말씀이 그 안에 거하며 악한 자를 이길 정도로 강해집니다.
요한일서 2장 13~14절에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는 말씀대로이지요.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이 마음에 임해 있으므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천국 소망으로 가득하지요. 뿐만 아니라 악한 자, 곧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려 나가며 미혹을 받지 않지요. 어떠한 시험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으며 쉬지 않고 기도하여 감사함으로 넉넉히 이겨냅니다.
4) 아비들의 믿음
자기주장이 강하여 굽힐 줄 모르는 청년의 때를 지나 장년이 되면, 인생의 경륜이 쌓여 삶의 지혜가 보입니다. 매사에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 가만히 있어야 할 때를 알고,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고 잘 다스릴 수 있는지도 알지요. 청년이나 아이들의 시기와는 차원이 다르지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비의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근본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2장 14절에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말씀한 것입니다. 즉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믿음입니다. 이는 아이의 믿음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아이의 믿음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철없는 아이가 자기 수준에서 부모를 이해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아비의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근본까지 아는 차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근본을 알았기에 천지 창조를 비롯하여 무수한 비밀을 계시 받아 모세 오경을 기록했습니다. 아브라함도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단계'에 이르렀기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기쁘게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깊은 마음 곧 근본까지 알아야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도 오직 예와 아멘만 할 수 있지요.
2. 에스겔의 이상을 통해 본 믿음의 분량
에스겔 47장 3~5절에 보면 물이 차오르는 높이로써 믿음의 분량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말씀하지요.
여기서 물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성전에서 나온 하나님 말씀이 온 세상에 퍼져가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지요.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다 했는데 이는 장차 백보좌 대심판 때 주님께서 각 사람의 믿음을 측정하고 그에 따라 심판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손에 줄을 잡은 사람은 주의 사자이며 그가 일천 척을 척량할 때마다 물이 발목에서부터 무릎과 허리, 그 이상으로 차오른다는 것은 바로 믿음의 분량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발목까지 물이 찼다는 것은 자녀의 믿음, 곧 겨우 구원받을 만한 믿음입니다. 무릎까지 찼다는 것은 아이의 믿음, 허리까지 찼다는 것은 청년의 믿음을 나타내며 키를 넘을 만큼 창일하다는 것은 장성한 아비의 믿음을 뜻합니다.
일천 척을 척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넓고 큰마음과 한 치 오차도 없는 정확함, 모든 분야를 헤아리는 깊은 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믿음을 측정하실 때 어느 한 면이 아니라 모든 분야를 종합적으로 살핀다는 의미지요. 각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마음 깊은 곳까지도 정확히 살핌으로써 어느 누구도 억울하다 할 수 없도록 정확하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믿음의 분량에 대해 곳곳에 알려 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여 우리가 더 큰 믿음의 분량,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도달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 말씀을 듣고 지식으로 알 뿐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 행함으로 온전해질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서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주님과 동행하면서 영원한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구원받은 한 편 강도는 어느 단계의 믿음을 소유했을까요? ( )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자녀들의 믿음은 성령을 받고 구원받은 초신자의 믿음이다.
② 아이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알아 행한다.
③ 청년들의 믿음은 원수 마귀 사단을 말씀으로 물리친다.
④ 아비들의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근본까지 안다.
3. ( ) 안에 정답을 써넣어 보세요.
자녀들의 믿음 : 성전에서 나온 물이 ( )까지 찼다는 것
아이들의 믿음 : 성전에서 나온 물이 ( )까지 찼다는 것
청년들의 믿음 : 성전에서 나온 물이 ( )까지 찼다는 것
아비들의 믿음 : (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미래의 소망을 이미 소유한 것처럼 확신하니 결국 실상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란 육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실재를 영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적 믿음과 확신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알아본다.
로마서 12장 3절에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말씀했듯이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은 다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구원받은 한 편 강도의 믿음과 주님을 위해 생명 다해 헌신한 베드로의 믿음은 천양지차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아주 큰 사람이 있는가 하면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1.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한 믿음의 단계
요한일서 2장 12~14절에 보면 영적인 믿음의 단계를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즉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말씀하지요.
1) 자녀들의 믿음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습니다(요 1:12). 이렇게 죄 사함 받아 구원받은 믿음이 '자녀들의 믿음'입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은 상태이지요. 이때는 진리를 잘 모르기에 빛 가운데 살지도 못합니다. 단지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받을 수 있는 초신자의 믿음에 불과하지요.
자녀들의 믿음은 성령을 받아 거듭났지만 말씀을 행할 힘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과 짝하며 살아가지요. 주일 성수나 십일조 생활도 제대로 못합니다. 시험이나 핍박이 오면 금세 낙심하지요. 그러므로 안전하게 정착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지 않고 늘 관심과 사랑으로 돌아봐 줘야 합니다.
2) 아이들의 믿음
자녀들의 신앙이 자라면 아이들의 믿음이 됩니다. 마치 갓 태어난 자녀가 젖먹이 때를 지나면 사물을 인지하고 부모를 알아보는 것과 같지요. 이때는 부모를 안다 해도 고향, 취향, 학력, 성품 등 깊은 내용까지는 모릅니다. 영적인 성장 과정에서도 '아이들'은 아버지 하나님을 막 알게 된 믿음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2장 14절에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말씀한 대로이지요. 아버지를 알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안다는 말입니다.
갓난아기가 어느 정도 자라면 엄마, 아빠를 알아보는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말씀을 듣고 배워 나가면 하나님의 뜻과 마음도 알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줄도 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때는 말씀에 순종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으며 시험이 오면 불평하거나 낙심하기도 합니다.
3) 청년들의 믿음
아이가 성장하면 청년이 되듯이, 영적으로도 아이들의 믿음이 자라면 청년의 신앙에 이릅니다. 이때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죄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청년의 때를 맞습니다. 청년의 믿음에 이르면, 하나님 말씀이 그 안에 거하며 악한 자를 이길 정도로 강해집니다.
요한일서 2장 13~14절에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는 말씀대로이지요.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이 마음에 임해 있으므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천국 소망으로 가득하지요. 뿐만 아니라 악한 자, 곧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려 나가며 미혹을 받지 않지요. 어떠한 시험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으며 쉬지 않고 기도하여 감사함으로 넉넉히 이겨냅니다.
4) 아비들의 믿음
자기주장이 강하여 굽힐 줄 모르는 청년의 때를 지나 장년이 되면, 인생의 경륜이 쌓여 삶의 지혜가 보입니다. 매사에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 가만히 있어야 할 때를 알고,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고 잘 다스릴 수 있는지도 알지요. 청년이나 아이들의 시기와는 차원이 다르지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비의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근본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2장 14절에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말씀한 것입니다. 즉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믿음입니다. 이는 아이의 믿음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아이의 믿음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철없는 아이가 자기 수준에서 부모를 이해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아비의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근본까지 아는 차원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근본을 알았기에 천지 창조를 비롯하여 무수한 비밀을 계시 받아 모세 오경을 기록했습니다. 아브라함도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단계'에 이르렀기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기쁘게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깊은 마음 곧 근본까지 알아야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한 일도 오직 예와 아멘만 할 수 있지요.
2. 에스겔의 이상을 통해 본 믿음의 분량
에스겔 47장 3~5절에 보면 물이 차오르는 높이로써 믿음의 분량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말씀하지요.
여기서 물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성전에서 나온 하나님 말씀이 온 세상에 퍼져가는 것을 보여 주신 것이지요.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다 했는데 이는 장차 백보좌 대심판 때 주님께서 각 사람의 믿음을 측정하고 그에 따라 심판하실 것을 의미합니다. 손에 줄을 잡은 사람은 주의 사자이며 그가 일천 척을 척량할 때마다 물이 발목에서부터 무릎과 허리, 그 이상으로 차오른다는 것은 바로 믿음의 분량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발목까지 물이 찼다는 것은 자녀의 믿음, 곧 겨우 구원받을 만한 믿음입니다. 무릎까지 찼다는 것은 아이의 믿음, 허리까지 찼다는 것은 청년의 믿음을 나타내며 키를 넘을 만큼 창일하다는 것은 장성한 아비의 믿음을 뜻합니다.
일천 척을 척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넓고 큰마음과 한 치 오차도 없는 정확함, 모든 분야를 헤아리는 깊은 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믿음을 측정하실 때 어느 한 면이 아니라 모든 분야를 종합적으로 살핀다는 의미지요. 각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마음 깊은 곳까지도 정확히 살핌으로써 어느 누구도 억울하다 할 수 없도록 정확하게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믿음의 분량에 대해 곳곳에 알려 주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4장 13절에는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하여 우리가 더 큰 믿음의 분량, 곧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도달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 말씀을 듣고 지식으로 알 뿐 아니라 마음으로 믿어 행함으로 온전해질 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서 땅에서나 하늘에서나 주님과 동행하면서 영원한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렸다가 죽기 직전에 회개하고 구원받은 한 편 강도는 어느 단계의 믿음을 소유했을까요? ( )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자녀들의 믿음은 성령을 받고 구원받은 초신자의 믿음이다.
② 아이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알아 행한다.
③ 청년들의 믿음은 원수 마귀 사단을 말씀으로 물리친다.
④ 아비들의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근본까지 안다.
3. ( ) 안에 정답을 써넣어 보세요.
자녀들의 믿음 : 성전에서 나온 물이 ( )까지 찼다는 것
아이들의 믿음 : 성전에서 나온 물이 ( )까지 찼다는 것
청년들의 믿음 : 성전에서 나온 물이 ( )까지 찼다는 것
아비들의 믿음 : (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란 미래의 소망을 이미 소유한 것처럼 확신하니 결국 실상으로 나타난다는 뜻이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란 육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모든 것들의 실재를 영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영적 믿음과 확신을 의미한다.
2012-05-04
제18과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히 11:6
읽을말씀 : 히 11:6 | 외울말씀 : 고후 10:5 l 참고 말씀:롬10:17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심지어 시험 환난 속에 힘들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시간에 배운 대로 자신의 지식과 생각에 일치하는 것만 믿는 믿음, 행함이 없는 믿음, 곧 육적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이란?
영적인 믿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는 것으로서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입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사실이 의심 없이 믿어집니다.
영적인 믿음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이지요. 그러니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사건이 믿어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지켜 행하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은 줄로 믿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재미있고 행복하지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때 하나님께서 참 자녀라 인정하시며 응답과 축복으로 보장해 주십니다.
예를 들어,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똑같은 조건에서 한 사람은 다섯 가마를 소출하고, 다른 한 사람은 한 가마밖에 거두지 못했습니다. 누가 더 인정받고 칭찬을 받겠습니까? 당연히 많이 거둔 사람이지요. 다섯 가마를 수확한 사람은 부지런히 잡초를 뽑고 때를 좇아 물을 주며 땀 흘려 수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게 거둔 사람은 노력하지 않고 농사를 게을리했기에 열매가 부실한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자신의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 26장을 보면 베드로가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후에는 달라졌지요. 바로 육적인 믿음이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되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탄없이 복음을 전하는 권능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기까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길을 갔지요.
이처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철저히 지켜 행하며 변함없는 중심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믿음은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이므로 구원과 영생을 주는 것은 물론, 온전한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또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영육 간에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믿음은 응답의 열쇠요, 보배 중에 보배이며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2.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1) 의심을 가져오는 육신의 생각과 이론을 깨뜨려야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입력된 세상적인 지식은 대부분 진리인 하나님 말씀과 위배됩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데 큰 방해 요소가 되지요. 특히 진화론은 창조주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이론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진화론처럼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의심을 가져다주는 이론과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모든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이론과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 말씀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예배를 드린다 해도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지요. 그러니 구원도, 기도의 응답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육적인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기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잡아 가두고 핍박했지요.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회심한 후 자신의 쌓아온 모든 지식과 이론과 생각을 깨뜨려 나갔습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 보면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귀하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지식과 생각을 깨뜨려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되니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권능의 종이 되었지요. 따라서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려면 진리에 위배된 모든 이론과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고후 10:5).
2)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들으며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가르침 받을 때 하나님에 대해 깊이 알게 되고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기에 많이 알수록 하나님의 마음도 더 밝히 알 수 있지요. 또한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원수 마귀 사단을 깨뜨려 나갈 수 있습니다.
만일 성경을 듣거나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도 모를뿐더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도 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배우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지만 지식으로만 쌓고 행하지 않으면 교만해질 수 있으므로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머리로 아는 지식을 마치 행하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할 때 영적 믿음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켜 행해야 합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교본만 수백 번, 수천 번 읽어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하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아무리 열심히 읽고 들으며 배웠어도 삶 가운데 적용하며 행치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지켜 행할 때 그것이 살아 역사하여 자신에게 생명이 되고, 응답과 축복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심 없이 말씀을 듣고 행하면 마음에 확신이 생기며 영적인 믿음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즉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시지요. 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행함이 더 온전케 되고, 능치 못할 일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1세대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하는데도 믿지 못하고 원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 여호수아와 갈렙만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드리며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고백하였지요. 하지만 백성들은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다"고 악평하는가 하면,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하며 한 장관을 세워 돌아가자고까지 하였습니다. 영적인 믿음이 아니라 육적인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땅에 내린 열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고,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 주시며,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등 하나님의 역사를 수없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여전히 육적인 믿음에 머물러 있었지요. 영적인 믿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지켜 순종할 때 주어집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워 온전히 지켜 행함으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것은 물론 새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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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을 원망 불평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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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빈칸을 채워 보세요.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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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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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켜 행해야 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여호수아 : 에브라임 지파인 눈의 아들이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군대 지휘관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고 모세의 수종자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갈렙과 함께 확고한 믿음의 모본을 보였다.
갈렙 : 유다 지파인 여분네의 아들이다. 가나안을 차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던 이스라엘 백성과는 달리 순종함으로 가나안 땅 헤브론에 정착하는 복을 누렸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아본다.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기도해도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심지어 시험 환난 속에 힘들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지난 시간에 배운 대로 자신의 지식과 생각에 일치하는 것만 믿는 믿음, 행함이 없는 믿음, 곧 육적인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이란?
영적인 믿음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는 것으로서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는 믿음입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사실이 의심 없이 믿어집니다.
영적인 믿음은 내가 원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이지요. 그러니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사건이 믿어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지켜 행하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대로 응답을 받은 줄로 믿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재미있고 행복하지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때 하나님께서 참 자녀라 인정하시며 응답과 축복으로 보장해 주십니다.
예를 들어, 남의 땅을 빌려 농사짓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똑같은 조건에서 한 사람은 다섯 가마를 소출하고, 다른 한 사람은 한 가마밖에 거두지 못했습니다. 누가 더 인정받고 칭찬을 받겠습니까? 당연히 많이 거둔 사람이지요. 다섯 가마를 수확한 사람은 부지런히 잡초를 뽑고 때를 좇아 물을 주며 땀 흘려 수고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적게 거둔 사람은 노력하지 않고 농사를 게을리했기에 열매가 부실한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자신의 삶 속에서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사랑을 받게 됩니다. 마태복음 26장을 보면 베드로가 성령을 받기 전에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였습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후에는 달라졌지요. 바로 육적인 믿음이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되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탄없이 복음을 전하는 권능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기까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의 길을 갔지요.
이처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순종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철저히 지켜 행하며 변함없는 중심이 되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믿음은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이므로 구원과 영생을 주는 것은 물론, 온전한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또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영육 간에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믿음은 응답의 열쇠요, 보배 중에 보배이며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2.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1) 의심을 가져오는 육신의 생각과 이론을 깨뜨려야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입력된 세상적인 지식은 대부분 진리인 하나님 말씀과 위배됩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데 큰 방해 요소가 되지요. 특히 진화론은 창조주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이론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진화론처럼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의심을 가져다주는 이론과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모든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세상의 이론과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면 하나님 말씀이 믿어지지 않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예배를 드린다 해도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지요. 그러니 구원도, 기도의 응답도 받을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육적인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기에 주님을 믿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잡아 가두고 핍박했지요. 하지만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 회심한 후 자신의 쌓아온 모든 지식과 이론과 생각을 깨뜨려 나갔습니다.
빌립보서 3장 8절에 보면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아는 지식이 가장 귀하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지식과 생각을 깨뜨려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되니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권능의 종이 되었지요. 따라서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려면 진리에 위배된 모든 이론과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고후 10:5).
2)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들으며 가르침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들으며 가르침 받을 때 하나님에 대해 깊이 알게 되고 믿음이 자라게 됩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기에 많이 알수록 하나님의 마음도 더 밝히 알 수 있지요. 또한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원수 마귀 사단을 깨뜨려 나갈 수 있습니다.
만일 성경을 듣거나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뜻도 모를뿐더러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도 행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배우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지만 지식으로만 쌓고 행하지 않으면 교만해질 수 있으므로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머리로 아는 지식을 마치 행하는 것처럼 착각하기 때문이지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할 때 영적 믿음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켜 행해야 합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려면 교본만 수백 번, 수천 번 읽어 안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피나는 연습을 해야 하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아무리 열심히 읽고 들으며 배웠어도 삶 가운데 적용하며 행치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지켜 행할 때 그것이 살아 역사하여 자신에게 생명이 되고, 응답과 축복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의심 없이 말씀을 듣고 행하면 마음에 확신이 생기며 영적인 믿음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즉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는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지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시지요. 뿐만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행함이 더 온전케 되고, 능치 못할 일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1세대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하는데도 믿지 못하고 원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단 여호수아와 갈렙만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드리며 "저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고백하였지요. 하지만 백성들은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다"고 악평하는가 하면,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하며 한 장관을 세워 돌아가자고까지 하였습니다. 영적인 믿음이 아니라 육적인 믿음이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 땅에 내린 열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고,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 주시며,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등 하나님의 역사를 수없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여전히 육적인 믿음에 머물러 있었지요. 영적인 믿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지켜 순종할 때 주어집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워 온전히 지켜 행함으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것은 물론 새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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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이 어떤 믿음을 가졌기에 하나님을 원망 불평했던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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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빈칸을 채워 보세요.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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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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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켜 행해야 한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인물' 알고 넘어 갑시다!
여호수아 : 에브라임 지파인 눈의 아들이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군대 지휘관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고 모세의 수종자이다.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갈렙과 함께 확고한 믿음의 모본을 보였다.
갈렙 : 유다 지파인 여분네의 아들이다. 가나안을 차지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했던 이스라엘 백성과는 달리 순종함으로 가나안 땅 헤브론에 정착하는 복을 누렸다.
2012-04-27
제17과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
히 11:1~3
읽을말씀 : 히 11:1~3 | 외울말씀 : 막 9:23 ㅣ 참고 말씀:약 2:26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과 반대되는 육적인 믿음의 특징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보배 중에 보배요,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어떠한 일이라도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하실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심지어 하늘의 해와 달을 멈추거나 홍해 바다를 가르기도 하며, 전쟁터에서 승리하거나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하는 무수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사람이 질병과 연약함을 고침 받는 것도, 가정과 사업터의 꼬인 문제들을 해결받는 것도 믿음만 있다면 어려울 것이 없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참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입술로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고 "주여 믿습니다" 기도한다 해도, 참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영적인 믿음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 보면 구원의 확신조차 없이 막연하게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질병과 각종 문제들로 고통 받으며 시험 환난 속에 살아가기 마련이지요.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반드시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믿습니다!" 기도했는데도 응답받지 못한다면 자신의 믿음이 참 믿음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하지요.
시편 37편 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했고,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이는 참된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참된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육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육적인 믿음
1) 자신의 지식과 생각에 일치하는 것만 믿는 믿음
육적인 믿음은 구원이나 신앙의 문제와 상관없이 세상 사람들도 가질 수 있습니다. 가령, "이 물수건은 흰색입니다."라고 했을 때, 사실을 확인한 사람들은 누구나 믿습니다. 자신이 배우고 받아들인 지식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옳다고 배운 지식들이 모두 진리는 아닙니다. 세월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 너무나 많지요. 나라와 민족, 개인마다 진리라고 생각하는 지식이나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오래전에는 지구가 둥글지 않고 평평하다고 배웠고 태양이 지구의 주변을 돈다고 배웠지요. 그 당시 사람들은 이것이 진리인 줄 알았지만 지금은 이것을 진리로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어떤 것을 진리라고 배우면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지식과 맞지 않으면 진리를 비진리로 간주해 버리지요.
오늘날 복음을 듣고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어릴 때부터 진화론이라는 거짓 이론을 진리라고 배웠기 때문에 창조를 가르쳐 줘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진화론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짜맞춘 잘못된 이론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수천만 년, 수억만 년이 지나도 물고기가 육지 동물이 될 수 없고, 유인원인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면서도 성경을 자기의 지식과 이론에 맞는 부분만 믿습니다. 세상 지식과 이론에 맞추려고 하면, 성경에는 믿을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지요.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권능의 역사들도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기사와 표적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상징이나 비유라 여기지요.
또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다 하면 얕은 곳을 걸었다고 합니다. 약을 먹고 수술해서 질병이 나았다면 믿어지지만 단지 기도만 받고 치료받았다고 하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요. 이런 믿음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참된 믿음은 자신의 생각과 지식에 상관없이 성경 말씀 전체가 하나님 말씀이요 절대적인 진리임을 믿는 것입니다.
2) 변개하는 믿음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 기도하며 충성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때에 응답이 오지 않자 조급해지고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왜 다른 사람은 금방 응답해 주시고 나는 이렇게 들어주시지 않나?"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점점 은혜가 떨어지고 예전에 응답받은 것이나 다른 사람의 간증까지도 우연의 일치로 돌립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처럼 변개하는 믿음은 응답받을 수 있는 참 믿음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대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을 줄로 믿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질병의 문제도 그러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말씀한 대로, 약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과 저주를 대속하셨으니 이미 나음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있다면 더 이상 힘들고 고통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소망으로 가득차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어도 응답받았다는 믿음에 변개함이 없을 때 온전히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3) 행함이 없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별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으로가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따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건강이나 물질,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영계의 법칙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 종의 명령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오랜 가뭄 중에 마지막으로 남은 양식을 엘리야에게 드렸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동원하면 도무지 드릴 수 없는 생명과 같은 양식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가뭄이 끝날 때까지 기름병과 가루통에서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지요(왕상 17장).
그런데 육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들어서 지식으로는 알지만 막상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면 행하지 못합니다. 당장 생활비가 부족하겠다 싶으면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지 않는가 하면, 각종 예물을 심는 것에도 인색합니다. 하나님께 심는 것마다 축복으로 갚아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인색하게 드리지 않습니다. 지식으로만 알기 때문에 아까워하고 온전한 행함이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심을 믿는 사람이라면 질병에 걸렸을 때 어찌 세상 방법을 동원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지식으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 방법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께서 얼마나 서운해하시는 지는 아사 왕이 병들었을 때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다가 죽었다 한 기록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대하 16:12~13).
그 밖에도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섬기라, 화평하라' 말씀하신 것을 줄줄 암송해도 지식으로만 알고 행하지 못하면 하나님 역사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했으니 육적인 믿음은 응답이나 축복은 물론, 자칫하면 구원조차 받을 수 없음을 기억하여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응답의 열쇠요, 보배 중에 보배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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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 안에 육적인 믿음의 특징을 써 넣으시오.
첫째, 자신의 ( )과 ( )에 일치하는 것만 믿는다.
둘째, ( )하는 믿음이다.
셋째, ( )이 없는 믿음이다.
3.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까?"라는 미심쩍은 마음이 자꾸 듭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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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진화론'이란?
각종 동식물은 서로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단계로부터 높은 단계로, 단순한 형태로부터 복잡한 형태로, 불완전한 것으로부터 완전한 것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생물학 이론이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론과 정반대되는 이론이다. 진화론은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나왔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믿음과 반대되는 육적인 믿음의 특징에 대해 알아본다.
믿음은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보배 중에 보배요, 세상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입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어떠한 일이라도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하실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심지어 하늘의 해와 달을 멈추거나 홍해 바다를 가르기도 하며, 전쟁터에서 승리하거나 죽은 사람을 살리는 등 불가능이 가능으로 변하는 무수한 기록이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므로 사람이 질병과 연약함을 고침 받는 것도, 가정과 사업터의 꼬인 문제들을 해결받는 것도 믿음만 있다면 어려울 것이 없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반드시 참된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무리 입술로 아버지 하나님을 부르고 "주여 믿습니다" 기도한다 해도, 참 믿음이 없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가 없습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영적인 믿음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 보면 구원의 확신조차 없이 막연하게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이 질병과 각종 문제들로 고통 받으며 시험 환난 속에 살아가기 마련이지요.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반드시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믿습니다!" 기도했는데도 응답받지 못한다면 자신의 믿음이 참 믿음인가를 점검해 보아야 하지요.
시편 37편 4절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했고, 히브리서 11장 6절에는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따라서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이는 참된 믿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어떤 믿음일까요?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참된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육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 않는 육적인 믿음
1) 자신의 지식과 생각에 일치하는 것만 믿는 믿음
육적인 믿음은 구원이나 신앙의 문제와 상관없이 세상 사람들도 가질 수 있습니다. 가령, "이 물수건은 흰색입니다."라고 했을 때, 사실을 확인한 사람들은 누구나 믿습니다. 자신이 배우고 받아들인 지식과 일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옳다고 배운 지식들이 모두 진리는 아닙니다. 세월이 지나면 변하는 것이 너무나 많지요. 나라와 민족, 개인마다 진리라고 생각하는 지식이나 옳다고 생각하는 기준이 다 다릅니다.
예를 들어, 오래전에는 지구가 둥글지 않고 평평하다고 배웠고 태양이 지구의 주변을 돈다고 배웠지요. 그 당시 사람들은 이것이 진리인 줄 알았지만 지금은 이것을 진리로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어려서부터 어떤 것을 진리라고 배우면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 지식과 맞지 않으면 진리를 비진리로 간주해 버리지요.
오늘날 복음을 듣고도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어릴 때부터 진화론이라는 거짓 이론을 진리라고 배웠기 때문에 창조를 가르쳐 줘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진화론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서 짜맞춘 잘못된 이론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수천만 년, 수억만 년이 지나도 물고기가 육지 동물이 될 수 없고, 유인원인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면서도 성경을 자기의 지식과 이론에 맞는 부분만 믿습니다. 세상 지식과 이론에 맞추려고 하면, 성경에는 믿을 수 없는 부분이 너무 많지요.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권능의 역사들도 납득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기사와 표적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 아니라, 상징이나 비유라 여기지요.
또 베드로가 물 위를 걸었다 하면 얕은 곳을 걸었다고 합니다. 약을 먹고 수술해서 질병이 나았다면 믿어지지만 단지 기도만 받고 치료받았다고 하면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지요. 이런 믿음은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참된 믿음은 자신의 생각과 지식에 상관없이 성경 말씀 전체가 하나님 말씀이요 절대적인 진리임을 믿는 것입니다.
2) 변개하는 믿음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 기도하며 충성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원하는 때에 응답이 오지 않자 조급해지고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왜 다른 사람은 금방 응답해 주시고 나는 이렇게 들어주시지 않나?" 하는 것이지요. 그러니 점점 은혜가 떨어지고 예전에 응답받은 것이나 다른 사람의 간증까지도 우연의 일치로 돌립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처럼 변개하는 믿음은 응답받을 수 있는 참 믿음이 아닙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대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을 줄로 믿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질병의 문제도 그러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말씀한 대로, 약 이천 년 전에 예수님께서 고난을 당하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악과 저주를 대속하셨으니 이미 나음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믿음이 있다면 더 이상 힘들고 고통스러운 모습이 아니라 소망으로 가득차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증거가 없어도 응답받았다는 믿음에 변개함이 없을 때 온전히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3) 행함이 없는 믿음
하나님의 말씀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은 별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식으로가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라야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따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말씀했습니다. 이것은 건강이나 물질, 모든 분야에 해당되는 영계의 법칙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 종의 명령을 믿음으로 순종하여 오랜 가뭄 중에 마지막으로 남은 양식을 엘리야에게 드렸습니다. 사람의 생각을 동원하면 도무지 드릴 수 없는 생명과 같은 양식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믿었기 때문에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가뭄이 끝날 때까지 기름병과 가루통에서 양식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지요(왕상 17장).
그런데 육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이런 말씀을 들어서 지식으로는 알지만 막상 어려운 현실에 직면하면 행하지 못합니다. 당장 생활비가 부족하겠다 싶으면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지 않는가 하면, 각종 예물을 심는 것에도 인색합니다. 하나님께 심는 것마다 축복으로 갚아 주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인색하게 드리지 않습니다. 지식으로만 알기 때문에 아까워하고 온전한 행함이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심을 믿는 사람이라면 질병에 걸렸을 때 어찌 세상 방법을 동원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능력을 지식으로는 알지만 마음으로는 믿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 방법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께서 얼마나 서운해하시는 지는 아사 왕이 병들었을 때 여호와께 구하지 아니하고 의원들에게 구하였다가 죽었다 한 기록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대하 16:12~13).
그 밖에도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섬기라, 화평하라' 말씀하신 것을 줄줄 암송해도 지식으로만 알고 행하지 못하면 하나님 역사를 체험할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했으니 육적인 믿음은 응답이나 축복은 물론, 자칫하면 구원조차 받을 수 없음을 기억하여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응답의 열쇠요, 보배 중에 보배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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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 안에 육적인 믿음의 특징을 써 넣으시오.
첫째, 자신의 ( )과 ( )에 일치하는 것만 믿는다.
둘째, ( )하는 믿음이다.
셋째, ( )이 없는 믿음이다.
3. 기도해도 응답이 없고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응답해 주실까?"라는 미심쩍은 마음이 자꾸 듭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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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진화론'이란?
각종 동식물은 서로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단계로부터 높은 단계로, 단순한 형태로부터 복잡한 형태로, 불완전한 것으로부터 완전한 것으로 발전한다는 것을 주장하는 생물학 이론이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창조론과 정반대되는 이론이다. 진화론은 1859년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에 나왔다.
2012-04-20
제16과그리스도의 사랑
엡 5:2
읽을말씀 : 엡 5:2 | 외울말씀 : 엡 5:2 ㅣ 참고 말씀:롬 8:35~39
교육목표 : 인류를 위해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율법을 사랑으로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본받게 한다.
젊은 수도사가 작은 마을에 부임하여 어려운 이들을 가족처럼 사랑하고 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마을 처녀가 임신한 사실이 마을에 알려져 죽게 될 위기에 처하자 그만 수도사가 임신시킨 장본인이라고 거짓말을 했지요. 분노에 찬 주민들은 수도사를 돌로 쳐 죽이고 맙니다. 피투성이가 된 시신을 추스르다가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던 것입니다. 수도사는 충분히 자신을 변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인을 살리기 위해 침묵으로 죽음을 택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을까요?
1.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 영광스런 분이 죄악에 물들어 하나님 형상을 잃어버리고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또한 참된 양식이 되시기 위해(요 6:51) 짐승의 먹이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8장 20절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신 대로 주무실 곳이 없어 들에서 몸을 누이며 추위를 견디셨고, 먹을 것이 없어 주리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난을 대속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수님은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첫 표적을 신호탄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많은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지요. 보지 못하던 사람이 보고 듣지 못하던 사람이 들었습니다. 문둥병자가 고침 받았고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었으며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어둠의 세력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죽은 지 나흘이 된 썩은 사람이 무덤에서 걸어 나왔지요(요 11장).
근본 하나님과 하나이며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은 율법 또한 온전히 지키셨습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을 정죄하지도 않으셨지요. 다만 한 영혼이라도 더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밤낮 진리로 가르치셨습니다.
2.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
성경에는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지 행위로 율법을 지키는 데 그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행하기를 바라시지요.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 마음을 잘 아시기에 친히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한 여인의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께 고소합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당장에 돌로 쳐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율법대로 하면 예수님을 사랑이 없다 할 것이고, 용서하라 하면 율법을 무시하는 사람이라 정죄할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 없이 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군중에게 해당되는 죄목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하나 써내려 가시는 자신의 죄목을 보고 차마 돌을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하나하나 그 자리를 떠나고 여인만 남게 되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십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도 여인을 정죄치 않으셨지요. 이처럼 예수님은 여인뿐 아니라, 그녀를 정죄했던 자들이라 할지라도 율법으로 찌르지 않고,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율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에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말씀했지요.
누군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한다면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알 수 없지만 율법이 있기에 가늠할 수 있습니다.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율법을 지키게 되며, 율법을 지키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습니다.
3. 죽기까지 순종하여 십자가 섭리를 이루신 사랑
3년간 공생애가 끝나갈 무렵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는 죄가 전혀 없는 예수님 자신의 피 값으로 모든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생명을 건 절규였습니다. 얼마나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던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땅에 떨어질 정도였습니다(눅 22:42~44).
그날 밤 군병들에게 잡히신 예수님은 심문을 받으신 뒤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침을 뱉고 때리며 처형장으로 끌고 갔습니다(마 27:28~31). 밤새 희롱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아 피로 얼룩진 몸으로 나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에 이른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인 우리를 속량하려고 나무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다 쏟으셨습니다.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고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생각으로 지은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손과 발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가 손과 발로 지은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위해 용서와 사랑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기도하시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6시간이나 달려 고통당하신 뒤 운명하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사랑의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허물어지고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대제사장이 우리를 대신해서 죄를 대속할 제사를 드렸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직접 죄를 고하며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었지요.
4. 천국 처소를 예비하며 한 영혼이라도 더 이끄시는 사랑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말씀합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바로 천국의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지요.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중보 기도를 올리고 계십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간절히 기도하시지요(마 26:29). 우리가 인간 경작을 잘 받아 승리하고 영혼이 잘되어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도록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 경작을 마친 후 백보좌 대심판 때에도 주님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십니다. 공의 가운데 모든 사람이 자신의 행한 일들에 대해 심판받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자녀들이 더 좋은 천국의 처소와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변호해 주십니다. 직접 사람들이 겪는 모든 것을 체험하셨기에 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상대의 입장에서 대변해 주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 사랑은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아끼지 않는 생명 다한 사랑이셨습니다. 과연 이 사랑에서 누가 우리를 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외치심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왜 예수님은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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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님이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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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관한 성경 구절을 찾으시오.
① 요한복음 1:12 ② 요한복음 1:14 ③ 사무엘상 15:22 ④ 요한복음 4:24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골고다'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곳이다. '해골'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에 많은 시체가 버려져 해골이 많고, 해골 모양의 언덕으로 되어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교육목표 : 인류를 위해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율법을 사랑으로 완성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고 본받게 한다.
젊은 수도사가 작은 마을에 부임하여 어려운 이들을 가족처럼 사랑하고 도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마을 처녀가 임신한 사실이 마을에 알려져 죽게 될 위기에 처하자 그만 수도사가 임신시킨 장본인이라고 거짓말을 했지요. 분노에 찬 주민들은 수도사를 돌로 쳐 죽이고 맙니다. 피투성이가 된 시신을 추스르다가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그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였던 것입니다. 수도사는 충분히 자신을 변호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인을 살리기 위해 침묵으로 죽음을 택했습니다. 그러면 모든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을까요?
1.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태초에 말씀으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친히 사람의 형상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로서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죄악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오셨습니다.
그 영광스런 분이 죄악에 물들어 하나님 형상을 잃어버리고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또한 참된 양식이 되시기 위해(요 6:51) 짐승의 먹이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지요. 그뿐만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8장 20절에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신 대로 주무실 곳이 없어 들에서 몸을 누이며 추위를 견디셨고, 먹을 것이 없어 주리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이 없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가난을 대속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예수님은 가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첫 표적을 신호탄으로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많은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지요. 보지 못하던 사람이 보고 듣지 못하던 사람이 들었습니다. 문둥병자가 고침 받았고 걷지 못하던 사람이 일어나 걷고 뛰었으며 귀신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어둠의 세력에서 놓임을 받았습니다. 심지어 죽은 지 나흘이 된 썩은 사람이 무덤에서 걸어 나왔지요(요 11장).
근본 하나님과 하나이며 말씀 자체이신 예수님은 율법 또한 온전히 지키셨습니다. 그렇다고 율법을 지키지 못한 사람들을 정죄하지도 않으셨지요. 다만 한 영혼이라도 더 회개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밤낮 진리로 가르치셨습니다.
2.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
성경에는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단지 행위로 율법을 지키는 데 그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으로 행하기를 바라시지요. 예수님은 이러한 하나님 마음을 잘 아시기에 친히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셨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 간음한 여인의 사건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을 끌고 와서 예수님께 고소합니다.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당장에 돌로 쳐 죽여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그런데 율법대로 하면 예수님을 사랑이 없다 할 것이고, 용서하라 하면 율법을 무시하는 사람이라 정죄할 것입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 없이 바닥에 무엇인가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군중에게 해당되는 죄목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하나하나 써내려 가시는 자신의 죄목을 보고 차마 돌을 던질 수가 없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느껴 하나하나 그 자리를 떠나고 여인만 남게 되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치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십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도 여인을 정죄치 않으셨지요. 이처럼 예수님은 여인뿐 아니라, 그녀를 정죄했던 자들이라 할지라도 율법으로 찌르지 않고,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사랑으로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만 있으면 율법은 필요 없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5장 17절에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말씀했지요.
누군가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고백한다면 그 사랑이 얼마나 크고 넓은지 알 수 없지만 율법이 있기에 가늠할 수 있습니다. 마음 다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당연히 율법을 지키게 되며, 율법을 지키는 것이 조금도 힘들지 않습니다.
3. 죽기까지 순종하여 십자가 섭리를 이루신 사랑
3년간 공생애가 끝나갈 무렵 예수님은 죽음을 앞두고 겟세마네 동산에 가셔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 기도는 죄가 전혀 없는 예수님 자신의 피 값으로 모든 영혼을 구원하시려는 생명을 건 절규였습니다. 얼마나 힘쓰고 애써 간절히 기도하셨던지 땀방울이 핏방울이 되어 땅에 떨어질 정도였습니다(눅 22:42~44).
그날 밤 군병들에게 잡히신 예수님은 심문을 받으신 뒤 사형 판결을 받았습니다.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씌우고 침을 뱉고 때리며 처형장으로 끌고 갔습니다(마 27:28~31). 밤새 희롱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아 피로 얼룩진 몸으로 나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을 오르셨습니다.
골고다 언덕에 이른 예수님은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율법의 저주 아래 놓인 우리를 속량하려고 나무 십자가에 달려 보혈을 다 쏟으셨습니다.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고 피 흘리심으로 우리가 생각으로 지은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손과 발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가 손과 발로 지은 죄를 대속해 주셨습니다.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이들을 위해 용서와 사랑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기도하시며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6시간이나 달려 고통당하신 뒤 운명하셨습니다.
인류 역사상 사랑의 절정을 이루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허물어지고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대제사장이 우리를 대신해서 죄를 대속할 제사를 드렸으나,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직접 죄를 고하며 하나님과 교통하게 되었지요.
4. 천국 처소를 예비하며 한 영혼이라도 더 이끄시는 사랑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말씀합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많은 사람이 보는 가운데 하늘로 오르셨습니다. 바로 천국의 처소를 예비하러 가셨지요.
주님은 지금도 우리를 위해 끊임없이 중보 기도를 올리고 계십니다.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며 간절히 기도하시지요(마 26:29). 우리가 인간 경작을 잘 받아 승리하고 영혼이 잘되어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도록 간구하시는 것입니다.
또한 인간 경작을 마친 후 백보좌 대심판 때에도 주님은 한시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십니다. 공의 가운데 모든 사람이 자신의 행한 일들에 대해 심판받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구원받은 자녀들이 더 좋은 천국의 처소와 상급을 받을 수 있도록 변호해 주십니다. 직접 사람들이 겪는 모든 것을 체험하셨기에 변호사와 같은 역할을 하면서 상대의 입장에서 대변해 주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려 주셨습니다. 이 사랑은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아끼지 않는 생명 다한 사랑이셨습니다. 과연 이 사랑에서 누가 우리를 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은 십자가에 죽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사랑을 온 세상에 외치심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왜 예수님은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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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님이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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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관한 성경 구절을 찾으시오.
① 요한복음 1:12 ② 요한복음 1:14 ③ 사무엘상 15:22 ④ 요한복음 4:24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골고다'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예수님께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곳이다. '해골'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이곳에 많은 시체가 버려져 해골이 많고, 해골 모양의 언덕으로 되어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2012-04-13
제15과하나님의 사랑
요일 4:16
읽을말씀 : 요일 4:16 | 외울말씀 : 이 49:15 ㅣ 참고 말씀:롬 8:26~27
교육목표 :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깨닫고 자유의지 가운데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미국에서 9·11 테러로 수많은 사람이 참사를 당했을 때의 일입니다. 구조대원들이 어느 시신의 꽉 움켜쥔 손을 보며 '뭐가 그리 소중하기에 죽어가면서까지 놓지 못했을까?' 궁금하여 굳은 손가락을 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어린아이의 손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자식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그 손을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떨까요? 이사야 49장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1.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을 경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신 뒤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그곳은 신비하리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갖가지 꽃과 나무들이 자라고 사랑스러운 동물들이 뛰놀며 어디를 가든지 풍성한 열매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위해 하와라는 사랑스런 배필도 주셨습니다. 아담이 스스로 외롭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홀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미리 헤아려 베푸신 사랑이지요.
첫 사람 아담은 하와와 함께 최상의 환경 속에서 오랜 세월 하나님과 동행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큰 권세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지 못했지요. 불행이나 죽음을 느껴 보지 못했기에 그 의미를 몰랐고, 미움을 겪어본 일이 없기에 사랑의 진정한 가치도 몰랐지요. 즉 상대성을 체험해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하셨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셨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지만 아담과 하와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여기에는 인간 경작이라는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눈물, 슬픔, 고통, 사망 등을 체험함으로 장차 천국에 이르러 자신이 누리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 깨닫기 원하셨습니다. 에덴동산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아름다운 천국에서 세세토록 사랑을 주고받으며 참된 행복을 누리기 원하신 것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자유의지 가운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천하 만물을 호령하던 아담이 권세를 잃으니 그 아래 있던 동식물까지도 저주를 받았지요. 풍요롭고 아름답던 이 땅도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며, 땀 흘려 수고하지 않으면 소산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이지만 에덴동산과 전혀 환경이 다른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그들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혀 이 땅으로 내려 보내셨습니다. 자녀의 장래를 위해 잠시 곁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처럼 애처러우셨지요. 이런 하나님의 마음과 달리 인간 경작이 시작된 이래 인류는 급속도로 죄로 물들어 하나님과 멀어져갔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21~23절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말씀합니다.
2.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신 하나님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사랑은 특정 시대, 특정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러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악에 빠져 사망으로 달음박질해 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범할 것을 아셨기에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지요. 그리고 때가 이르매 예수님의 보혈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죄인들이 치러야 할 죗값을 대신 지불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속량하기 위해 예수님의 보혈을 흘리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한 사랑이셨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4장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은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아무 죄가 없으셨기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고, 이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독생자 아들을 주신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녀는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이므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주신 것은 사랑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3.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를 용서받은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 우리 마음 안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돕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26~27절에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말씀한 대로 성령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돌이키도록 이끄십니다. 믿음이 적은 이에게 믿음을 더하고 소망이 없는 이에게는 천국 소망을 더해 주십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양육하듯이 넘어질세라, 다칠세라 때에 따라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천국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시지요.
이러한 사랑을 깊이 깨우친다면 누구나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되돌려 주십니다. 강건함의 축복뿐만 아니라 범사에 잘되고 형통한 복을 주십니다. 이는 영계의 법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축복과 응답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처음 하나님을 만나 갖가지 문제를 해결 받았을 때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해 주셨다."는 사랑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 했을 것입니다. 근심 걱정이 없고 질병이나 고통 사망이 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가슴 벅찼지요.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장 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까닭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에 가면 아름다운 면류관과 빛나는 세마포 옷, 황금 보석으로 만들어진 천국 집 등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선물에 입을 다물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런 상급과 선물을 준비하고 영원한 영광 중에 함께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심으로 늘 감사가 넘쳐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말씀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이사야 49:15 ② 요한일서 4:16
③ 요한일서 4:9 ④ 고린도후서 5:17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에 관해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
②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셨다.
③ 참 자녀와 사랑을 나누시기 위해 인간을 경작하셨다.
④ 우리 안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천국까지 인도하고 계신다.
3.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진하게 느껴질 때는 언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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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선악과'란?
에덴동산 중앙에 있던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이다. 생명과일은 사과와 비슷한 모양에 홍조를 띠지만 선악과는 복숭아와 비슷한 모양이며 분홍빛을 띤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에 대해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고 엄히 경계하셨다. 그런데 하와가 따 먹고 남편 아담에게 주어 먹게 함으로 결국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게 되었고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교육목표 :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깨닫고 자유의지 가운데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미국에서 9·11 테러로 수많은 사람이 참사를 당했을 때의 일입니다. 구조대원들이 어느 시신의 꽉 움켜쥔 손을 보며 '뭐가 그리 소중하기에 죽어가면서까지 놓지 못했을까?' 궁금하여 굳은 손가락을 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어린아이의 손이 있었습니다. 엄마가 자식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그 손을 놓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어떨까요? 이사야 49장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말씀합니다.
1.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인간을 경작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신 뒤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그곳은 신비하리만큼 아름다웠습니다. 갖가지 꽃과 나무들이 자라고 사랑스러운 동물들이 뛰놀며 어디를 가든지 풍성한 열매가 가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위해 하와라는 사랑스런 배필도 주셨습니다. 아담이 스스로 외롭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홀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미리 헤아려 베푸신 사랑이지요.
첫 사람 아담은 하와와 함께 최상의 환경 속에서 오랜 세월 하나님과 동행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큰 권세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한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정작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지 못했지요. 불행이나 죽음을 느껴 보지 못했기에 그 의미를 몰랐고, 미움을 겪어본 일이 없기에 사랑의 진정한 가치도 몰랐지요. 즉 상대성을 체험해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뱀의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먹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하셨지만 죽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셨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지만 아담과 하와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여기에는 인간 경작이라는 섭리가 숨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눈물, 슬픔, 고통, 사망 등을 체험함으로 장차 천국에 이르러 자신이 누리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것인지 깨닫기 원하셨습니다. 에덴동산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아름다운 천국에서 세세토록 사랑을 주고받으며 참된 행복을 누리기 원하신 것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자유의지 가운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천하 만물을 호령하던 아담이 권세를 잃으니 그 아래 있던 동식물까지도 저주를 받았지요. 풍요롭고 아름답던 이 땅도 가시와 엉겅퀴가 자라며, 땀 흘려 수고하지 않으면 소산을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비록 불순종한 아담과 하와이지만 에덴동산과 전혀 환경이 다른 이 땅에서 살아가야 할 그들의 몸을 보호하기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혀 이 땅으로 내려 보내셨습니다. 자녀의 장래를 위해 잠시 곁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심정처럼 애처러우셨지요. 이런 하나님의 마음과 달리 인간 경작이 시작된 이래 인류는 급속도로 죄로 물들어 하나님과 멀어져갔습니다.
그래서 로마서 1장 21~23절에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말씀합니다.
2.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신 하나님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사랑은 특정 시대, 특정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러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악에 빠져 사망으로 달음박질해 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범할 것을 아셨기에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지요. 그리고 때가 이르매 예수님의 보혈로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죄인들이 치러야 할 죗값을 대신 지불해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좇아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케 되나니 피 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인류의 모든 죄를 속량하기 위해 예수님의 보혈을 흘리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진한 사랑이셨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4장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말씀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예수님은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으나 아무 죄가 없으셨기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삼 일 만에 부활하셨고, 이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습니다. 독생자 아들을 주신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녀는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이므로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주신 것은 사랑의 극치라 할 수 있습니다.
3.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천국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사랑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를 용서받은 사람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십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님이 부활하여 승천하신 후 우리 마음 안에 보혜사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돕게 하셨습니다.
로마서 8장 26~27절에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말씀한 대로 성령은 우리가 죄를 지으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돌이키도록 이끄십니다. 믿음이 적은 이에게 믿음을 더하고 소망이 없는 이에게는 천국 소망을 더해 주십니다. 어머니가 자녀를 양육하듯이 넘어질세라, 다칠세라 때에 따라 성령의 음성을 들려주시고, 천국까지 우리를 인도해 주시지요.
이러한 사랑을 깊이 깨우친다면 누구나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랑하면 하나님께서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놀라운 사랑으로 되돌려 주십니다. 강건함의 축복뿐만 아니라 범사에 잘되고 형통한 복을 주십니다. 이는 영계의 법칙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축복과 응답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처음 하나님을 만나 갖가지 문제를 해결 받았을 때 "나 같은 죄인도 용서해 주셨다."는 사랑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무엇으로 보답할까" 했을 것입니다. 근심 걱정이 없고 질병이나 고통 사망이 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가슴 벅찼지요.
하나님은 항상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장 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말씀합니다.
사람들은 내가 하나님을 먼저 사랑했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우리에게 사랑받을 만한 자격이 있어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죄인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었기 까닭에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에 가면 아름다운 면류관과 빛나는 세마포 옷, 황금 보석으로 만들어진 천국 집 등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선물에 입을 다물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우리가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에도 그런 상급과 선물을 준비하고 영원한 영광 중에 함께할 날을 손꼽아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심으로 늘 감사가 넘쳐나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말씀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이사야 49:15 ② 요한일서 4:16
③ 요한일서 4:9 ④ 고린도후서 5:17
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에 관해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셔서 구원에 이르게 하셨다.
② 하나님은 아담이 선악과를 먹을 줄 모르셨다.
③ 참 자녀와 사랑을 나누시기 위해 인간을 경작하셨다.
④ 우리 안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며 천국까지 인도하고 계신다.
3.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진하게 느껴질 때는 언제였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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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선악과'란?
에덴동산 중앙에 있던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이다. 생명과일은 사과와 비슷한 모양에 홍조를 띠지만 선악과는 복숭아와 비슷한 모양이며 분홍빛을 띤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에 대해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고 엄히 경계하셨다. 그런데 하와가 따 먹고 남편 아담에게 주어 먹게 함으로 결국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게 되었고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2012-04-06
제14과부활의 주
행 1:11
읽을말씀 : 행 1:11 | 외울말씀 : 고후 1:19 ㅣ 참고 말씀:빌 2:9~11
교육목표 :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은 하나님께 어떠한 열매로 나오셨는지 알아본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후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과 응답, 영생과 천국을 소유할 수 있도록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탐스런 열매를 맺기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부활의 주님은 순종의 열매를 드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어떤 고난이 따를지 잘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 내려오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랐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19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 후 인생들은 점차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갔습니다. 죄를 짓고 불법을 행하며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녀들을 보시며 매우 슬퍼하셨지요.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 마음을 아셨고 그 슬픔을 고스란히 느끼셨습니다. 이에 죄인들을 구원하여 아버지 하나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자 예수님은 처참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며 구세주의 사명을 기쁘게 감당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자신의 핏값으로 원수 마귀 사단에게서 영혼들을 사서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는 말씀대로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순종을 통해 많은 의인을 얻으셨고, 죄가 없으신 주님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여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순종하면 축복이니까' 하는 차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오직 "예"와 "아멘"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좋은 것만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 순종하면 누구든지 온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부활의 주님은 사랑의 열매를 드리셨습니다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심으로 보배로운 사랑의 열매로 나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됨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예수님은 이 땅에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어떠한 고난도 달게 받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셨기에 그리할 수 있었지요. 그 결과 어떤 사랑을 입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최고의 영광을 입혀 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참으로 고단한 나날을 보내셨습니다. 가난하게 사셨고 마치 종처럼 쉴 틈 없이 일하셨지요. 배고픔과 피곤함도 느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잡히셨을 때는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피조물들에게 멸시 천대를 받으셨지요.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제물로 바쳐진 짐승처럼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셨습니다. 공간의 제약 없이 예루살렘과 갈릴리를 자유롭게 오가셨고, 문이 굳게 닫혀 있는데도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드셨고, 드시지 않아도 상관없는 몸이 되셨지요. 하물며 승천하신 주님은 얼마나 영화로우실까요? 그 영화는 이 세상의 언어로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만 아니라 우리도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랑의 열매로 맺혀 하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려 주시고자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이 땅에 보내셨지요.
물론 육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따릅니다. 온갖 죄악으로 더러워진 마음 가죽을 베어낼 때 그 과정에는 아픔이 따르기 마련이지요. 마음밭을 갈아엎고 돌과 가시떨기를 걷어내어 옥토로 개간하는 데에는 많은 수고가 따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서 영혼을 구원하려면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신의 몸에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고난이든 감내합니다.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입게 되지요. 그로 인한 영광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육을 입고 육의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다 이해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큰 영광을 입혀 주시지요. 물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날마다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능히 그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기에 주님께서 그 본을 보여 주신 것이지요. 따라서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서 아버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3. 부활의 주님은 소망의 열매를 드리셨습니다
육의 사람들이 보기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깊은 절망 속에 계신 듯 보였습니다. 아무 희망도 없어 보였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에는 소망으로 빛났습니다. 이로 인해 모진 고통을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지요. 이 소망대로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셨고 큰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또한 죄인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영혼들에게는 구원의 길과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지요.
마가복음 16장 19절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한 대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요한은 성령의 감동 속에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2~4절에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말씀했지요.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요한이 환상 가운데 보고 기록한 새 예루살렘 성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천국 중에서도 바로 이곳 새 예루살렘 성에 있지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은 천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화로운 곳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을 소망하시며 이 땅의 고난을 잘 이기셨습니다. 구속의 사역을 완수하신 후에는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이르셨지요. 하나님의 보좌 곁에는 24장로의 보좌들이 둘려 있습니다. 24장로들도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을 바라보고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살았습니다. 그로 인해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과 주님의 보좌 곁에 앉게 되지요.
주님은 우리에게도 이 소망을 안겨 주고 가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약속하셨지요. 여러분들이 이 소망을 품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만큼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하여 온 영의 사람이 되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지요. 따라서 주님 마음을 온전히 닮아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은 하나님 앞에 어떤 열매로 나오셨을까요?
① 순종의 열매, ② 사랑의 열매, ③________________________
2. 부활의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_______________________
3. 여러분은 다시 오실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며 간절히 소망하시는지요?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 22:13)
▶ 알파와 오메가 - 인류의 모든 지식과 문명을 시작하고 마무리 지으시는 성부 하나님을 표현한다.
▶ 처음과 나중 - 인간 구원을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재림을 통해 구속 사업을 마무리하시는 성자 하나님을 의미한다.
▶ 시작과 끝 - 인간 경작의 시작과 끝을 감당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뜻한다.
교육목표 :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주님은 하나님께 어떠한 열매로 나오셨는지 알아본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후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과 응답, 영생과 천국을 소유할 수 있도록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신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 탐스런 열매를 맺기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에 대해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부활의 주님은 순종의 열매를 드리셨습니다
주님께서는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어떤 고난이 따를지 잘 아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이 땅에 내려오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아무 조건 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랐습니다. 고린도후서 1장 19절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였으니 저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헤아리셨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 후 인생들은 점차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갔습니다. 죄를 짓고 불법을 행하며 마귀의 종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녀들을 보시며 매우 슬퍼하셨지요. 예수님은 이런 하나님 마음을 아셨고 그 슬픔을 고스란히 느끼셨습니다. 이에 죄인들을 구원하여 아버지 하나님 마음을 위로해 드리고자 예수님은 처참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며 구세주의 사명을 기쁘게 감당하신 것입니다.
부활의 주님은 자신의 핏값으로 원수 마귀 사단에게서 영혼들을 사서 아버지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로마서 5장 19절에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는 말씀대로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순종을 통해 많은 의인을 얻으셨고, 죄가 없으신 주님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여 만왕의 왕 만주의 주가 되셨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순종하면 축복이니까' 하는 차원에 머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서 오직 "예"와 "아멘"만 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좋은 것만 주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의 마음을 헤아려 순종하면 누구든지 온전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부활의 주님은 사랑의 열매를 드리셨습니다
주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심으로 보배로운 사랑의 열매로 나오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귀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이유 중 하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됨을 보여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예수님은 이 땅에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시기 위해 어떠한 고난도 달게 받으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셨기에 그리할 수 있었지요. 그 결과 어떤 사랑을 입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 최고의 영광을 입혀 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에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예수님은 이 땅에 사시는 동안 참으로 고단한 나날을 보내셨습니다. 가난하게 사셨고 마치 종처럼 쉴 틈 없이 일하셨지요. 배고픔과 피곤함도 느끼셨습니다. 십자가를 지기 위해 잡히셨을 때는 매우 초라한 모습으로 피조물들에게 멸시 천대를 받으셨지요.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혀 제물로 바쳐진 짐승처럼 처참하게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후에는 전혀 다른 모습이셨습니다. 공간의 제약 없이 예루살렘과 갈릴리를 자유롭게 오가셨고, 문이 굳게 닫혀 있는데도 들어가셨습니다. 사람들이 먹는 음식을 드셨고, 드시지 않아도 상관없는 몸이 되셨지요. 하물며 승천하신 주님은 얼마나 영화로우실까요? 그 영화는 이 세상의 언어로도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만 아니라 우리도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사랑의 열매로 맺혀 하늘의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알려 주시고자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이 땅에 보내셨지요.
물론 육적인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고난이 따릅니다. 온갖 죄악으로 더러워진 마음 가죽을 베어낼 때 그 과정에는 아픔이 따르기 마련이지요. 마음밭을 갈아엎고 돌과 가시떨기를 걷어내어 옥토로 개간하는 데에는 많은 수고가 따릅니다. 또한 하나님 나라의 일꾼으로서 영혼을 구원하려면 그리스도의 고난을 자신의 몸에 채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어떤 고난이든 감내합니다. 진실하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회복한 사람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입게 되지요. 그로 인한 영광은 사람이 생각하는 것 이상입니다. 육을 입고 육의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으로서는 다 이해할 수 없고 측량할 수 없는 큰 영광을 입혀 주시지요. 물론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아버지 하나님을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날마다 마음에 새기고 또 새겨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도 능히 그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할 수 있기에 주님께서 그 본을 보여 주신 것이지요. 따라서 온전한 사랑을 이루어서 아버지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3. 부활의 주님은 소망의 열매를 드리셨습니다
육의 사람들이 보기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은 깊은 절망 속에 계신 듯 보였습니다. 아무 희망도 없어 보였지요. 그러나 예수님의 마음에는 소망으로 빛났습니다. 이로 인해 모진 고통을 꿋꿋하게 견딜 수 있었지요. 이 소망대로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셨고 큰 영광을 얻으셨습니다. 또한 죄인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는 영혼들에게는 구원의 길과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지요.
마가복음 16장 19절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한 대로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였던 요한은 성령의 감동 속에 하나님의 보좌를 보았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2~4절에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또 보좌에 둘려 이십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사 장로들이 흰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말씀했지요.
요한계시록 21장에는 요한이 환상 가운데 보고 기록한 새 예루살렘 성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보좌는 천국 중에서도 바로 이곳 새 예루살렘 성에 있지요.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은 천국에서 가장 아름답고 영화로운 곳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을 소망하시며 이 땅의 고난을 잘 이기셨습니다. 구속의 사역을 완수하신 후에는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이르셨지요. 하나님의 보좌 곁에는 24장로의 보좌들이 둘려 있습니다. 24장로들도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을 바라보고 주어진 삶을 아름답게 살았습니다. 그로 인해 장차 천국에서 하나님과 주님의 보좌 곁에 앉게 되지요.
주님은 우리에게도 이 소망을 안겨 주고 가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2~3절에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약속하셨지요. 여러분들이 이 소망을 품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만큼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하여 온 영의 사람이 되면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되지요. 따라서 주님 마음을 온전히 닮아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활의 첫 열매이신 주님은 하나님 앞에 어떤 열매로 나오셨을까요?
① 순종의 열매, ② 사랑의 열매, ③________________________
2. 부활의 주님을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_______________________
3. 여러분은 다시 오실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며 간절히 소망하시는지요?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용어' 알고 넘어 갑시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 22:13)
▶ 알파와 오메가 - 인류의 모든 지식과 문명을 시작하고 마무리 지으시는 성부 하나님을 표현한다.
▶ 처음과 나중 - 인간 구원을 위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재림을 통해 구속 사업을 마무리하시는 성자 하나님을 의미한다.
▶ 시작과 끝 - 인간 경작의 시작과 끝을 감당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뜻한다.
2012-03-30
제13과온전한 사랑
고전 13:8~13
읽을말씀 : 고전 13:8~13 | 외울말씀 : 고전 13:13 l 참고 말씀:시 103:15
교육목표 :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 중 제일은 사랑이라 하신 말씀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살펴본다.
이 세상에 속한 풀, 꽃, 나무와 같이 육의 모든 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 103편 15절에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말씀합니다. 부와 명예, 권세 등도 모두 변하고 결국에는 사라집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등 죄와 어둠도 없어지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사랑만은 영원히 변하지 않기에 천국에까지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1.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전 13:8)
예언이나 방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신령한 것인데 왜 이것도 사라진다고 하는 것일까요? 영의 세계인 천국은 온전한 곳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언한다 해도 장차 천국에서 알고 깨닫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천국에서는 하나님과 주님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예언이 더 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방언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나라나 민족, 지역에 따라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대화하려면 서로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천국에 가면 이런 걱정이 없습니다. 언어가 하나이기 때문에 알아듣지 못할 염려가 없고, 선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오해나 편견이 생기지 않지요.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열심히 배웁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배우지만 이는 천국 가는 데 필요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언이나 방언, 지식 등은 영에 속한 것이지만 천국 가기 위해 한시적으로 필요할 뿐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폐하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사랑은 천국에서도 폐하지 않으며 마음에 할례하여 영적인 사랑을 이루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원한 사랑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9~12)
어린아이에게 오백 원짜리 동전과 오만 원짜리 지폐를 내밀면 으레 동전을 집습니다. 오백 원으로 과자를 사 봤지만 지폐로는 안 사 보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모르지요. 우리가 천국을 알고 깨닫는 깊이도 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천국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은 알지만,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광채가 얼마나 찬란한지 온전히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장차 천국에 이르면 그때는 무한히 넓고 신비로운 영의 세계와 모든 것이 운행되는 원리도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는 이처럼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물론 이 땅에서도 믿음의 분량에 따라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것에 차이가 나지요. 요한일서 2장에 보면 믿음의 각 단계를 자녀, 아이, 청년, 아비에 비유해 놓았습니다. 자녀나 아이의 믿음은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고 잘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 후 청년의 믿음이 되고 더 장성하여 아비의 믿음이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깨닫는 차원도 달라지지요. 하지만 아무리 이 땅에서 아비의 믿음을 이뤘다 해도 육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천국에 비하면 역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또한 영원한 천국에 비하면 이 세상은 그림자와 같습니다. 그림자는 해가 지면 사라지는 허상이며, 실체가 아니라 실체를 닮은 모형에 불과하지요. 이 세상은 영원한 세계가 어떠한지 짐작하게 하는 그림자일 뿐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림자 같은 삶이 지나면 그때에는 실체인 천국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12절에 보면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말씀했습니다.
지금은 영의 세계를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지만 천국에 가면 얼굴을 마주하고 보는 것처럼 뚜렷이 알게 되지요. 사도 바울이 사랑장을 기록한 시대는 약 2천 년 전입니다. 당시 거울은 은, 청동, 철 등으로 만들어져 지금처럼 선명하지 않았기에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다고 한 것입니다.
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데 믿음과 소망은 매우 귀한 덕목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구원받아 천국에 가고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구원과 영생, 천국을 얻을 수 있기에 믿음은 보배 중에 보배이며, 응답의 열쇠입니다. 또한 소망을 가짐으로써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다면 당연히 소망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천국과 지옥을 확실히 믿는다면 천국을 소망하지요. 또한 소망이 있다면 죄를 버리고 성결되기 위해 힘쓰고 열심히 충성합니다.
이처럼 믿음과 소망은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서는 사랑이 제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왜일까요?
첫째로, 믿음과 소망은 인간 경작을 받을 동안 필요한 것일 뿐 천국에는 영적인 사랑만 남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면 이미 그곳에 있기 때문에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필요 없으며, 소망 역시 필요치 않습니다.
진정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세월이 흐를수록, 믿음이 장성할수록 천국에 대한 소망이 더욱 커지게 마련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주님이 사무치도록 뵙고 싶어지지요. 이처럼 천국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이 땅에서 좁고 험한 길을 가더라도 "힘들다, 괴롭다." 하지 않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최종 목적지인 천국에 이르면 믿음과 소망은 더 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오직 사랑만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이어지기 때문에 사랑이 제일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가장 좋은 처소인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소망으로 행한 만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죄를 버리고 아름다운 마음을 이룬 만큼 영적인 믿음이 주어지고 이 믿음의 분량에 따라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 성으로 처소가 구분됩니다.
낙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겨우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들어갑니다. 1천층은 하나님을 믿은 후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들어갑니다. 2천층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행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한 사람들이 들어가지요. 3천층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악은 모양이라도 버린 성결된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나아가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고 온 집에 충성한 사람들이 들어갑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믿음으로 온전한 사랑을 이룬 하나님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천국으로서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원래 새 예루살렘 성에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 새 예루살렘 성에 거하기 위해서는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하는데 그 길이 곧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있어야 우리에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팔복이 임하여 주님의 성품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갖출 수 있지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믿음이 있을 때 천국에 갈 수 있고, 소망이 있을 때 죄를 버릴 수 있습니다. 믿음과 소망은 분명히 필요한 것이지만 온전한 사랑이 있을 때라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사랑이 제일인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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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 설명 중 맞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천국에서는 하나님과 주님의 마음을 잘 알기에 예언이 필요치 않다.
② 천국에서는 언어가 하나이므로 알아듣지 못할 염려가 없다.
③ 천국에는 이 땅의 지식이 필요치 않다.
④ 천국에서도 믿음과 소망이 필요하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새 예루살렘 성 열두 기초석에 담긴 영의 마음
① 벽옥(믿음) ② 남보석(곧음과 절개) ③ 옥수(결백과 희생적인 사랑) ④ 녹보석 (의와 푸르름, 정의롭고 깨끗함)
⑤ 홍마노(충성) ⑥ 홍보석 (열정과 정성) ⑦ 황옥(자비) ⑧ 녹옥 (오래 참음) ⑨ 담황옥(양선) ⑩ 비취옥(절제)
⑪ 청옥(청결함) ⑫ 자정 (온유)
교육목표 :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 중 제일은 사랑이라 하신 말씀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살펴본다.
이 세상에 속한 풀, 꽃, 나무와 같이 육의 모든 것들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시편 103편 15절에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말씀합니다. 부와 명예, 권세 등도 모두 변하고 결국에는 사라집니다. 미움, 다툼, 시기, 질투 등 죄와 어둠도 없어지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사랑만은 영원히 변하지 않기에 천국에까지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1.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고전 13:8)
예언이나 방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신령한 것인데 왜 이것도 사라진다고 하는 것일까요? 영의 세계인 천국은 온전한 곳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예언한다 해도 장차 천국에서 알고 깨닫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요. 천국에서는 하나님과 주님의 마음을 잘 알기 때문에 예언이 더 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방언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나라나 민족, 지역에 따라 다른 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대화하려면 서로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천국에 가면 이런 걱정이 없습니다. 언어가 하나이기 때문에 알아듣지 못할 염려가 없고, 선한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기 때문에 오해나 편견이 생기지 않지요.
지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땅에서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 열심히 배웁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배우지만 이는 천국 가는 데 필요한 극히 일부분에 지나지 않습니다. 예언이나 방언, 지식 등은 영에 속한 것이지만 천국 가기 위해 한시적으로 필요할 뿐입니다. 그래서 천국에서는 이러한 것들이 폐하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사랑은 천국에서도 폐하지 않으며 마음에 할례하여 영적인 사랑을 이루는 만큼 더 좋은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원한 사랑을 이루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고전 13:9~12)
어린아이에게 오백 원짜리 동전과 오만 원짜리 지폐를 내밀면 으레 동전을 집습니다. 오백 원으로 과자를 사 봤지만 지폐로는 안 사 보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모르지요. 우리가 천국을 알고 깨닫는 깊이도 이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천국이 아름다운 곳이라는 것은 알지만, 얼마나 아름다운지, 그 광채가 얼마나 찬란한지 온전히 깨닫기가 어렵습니다.
장차 천국에 이르면 그때는 무한히 넓고 신비로운 영의 세계와 모든 것이 운행되는 원리도 얼마든지 깨달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11절에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는 이처럼 확연히 차이가 납니다. 물론 이 땅에서도 믿음의 분량에 따라 말하고 깨닫고 생각하는 것에 차이가 나지요. 요한일서 2장에 보면 믿음의 각 단계를 자녀, 아이, 청년, 아비에 비유해 놓았습니다. 자녀나 아이의 믿음은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고 잘 깨닫지도 못합니다. 그 후 청년의 믿음이 되고 더 장성하여 아비의 믿음이 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깨닫는 차원도 달라지지요. 하지만 아무리 이 땅에서 아비의 믿음을 이뤘다 해도 육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 천국에 비하면 역시 어린아이와 같습니다.
또한 영원한 천국에 비하면 이 세상은 그림자와 같습니다. 그림자는 해가 지면 사라지는 허상이며, 실체가 아니라 실체를 닮은 모형에 불과하지요. 이 세상은 영원한 세계가 어떠한지 짐작하게 하는 그림자일 뿐 결코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림자 같은 삶이 지나면 그때에는 실체인 천국이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고린도전서 13장 12절에 보면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말씀했습니다.
지금은 영의 세계를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지만 천국에 가면 얼굴을 마주하고 보는 것처럼 뚜렷이 알게 되지요. 사도 바울이 사랑장을 기록한 시대는 약 2천 년 전입니다. 당시 거울은 은, 청동, 철 등으로 만들어져 지금처럼 선명하지 않았기에 거울로 보는 것처럼 희미하다고 한 것입니다.
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전 13:13)
우리의 신앙이 성장하는 데 믿음과 소망은 매우 귀한 덕목입니다. 믿음이 있어야 구원받아 천국에 가고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구원과 영생, 천국을 얻을 수 있기에 믿음은 보배 중에 보배이며, 응답의 열쇠입니다. 또한 소망을 가짐으로써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믿음이 있다면 당연히 소망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천국과 지옥을 확실히 믿는다면 천국을 소망하지요. 또한 소망이 있다면 죄를 버리고 성결되기 위해 힘쓰고 열심히 충성합니다.
이처럼 믿음과 소망은 천국에 가는 그날까지 꼭 필요한 것들입니다. 그런데도 고린도전서 13장 13절에서는 사랑이 제일이라고 말씀합니다. 왜일까요?
첫째로, 믿음과 소망은 인간 경작을 받을 동안 필요한 것일 뿐 천국에는 영적인 사랑만 남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가면 이미 그곳에 있기 때문에 보지 않고 믿는 믿음이 필요 없으며, 소망 역시 필요치 않습니다.
진정 믿음이 있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세월이 흐를수록, 믿음이 장성할수록 천국에 대한 소망이 더욱 커지게 마련입니다. 시간이 갈수록 주님이 사무치도록 뵙고 싶어지지요. 이처럼 천국의 소망이 있는 사람은 아무리 이 땅에서 좁고 험한 길을 가더라도 "힘들다, 괴롭다." 하지 않고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최종 목적지인 천국에 이르면 믿음과 소망은 더 이상 필요치 않습니다. 오직 사랑만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이어지기 때문에 사랑이 제일이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둘째,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하지만 사랑이 없으면 가장 좋은 처소인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음과 소망으로 행한 만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죄를 버리고 아름다운 마음을 이룬 만큼 영적인 믿음이 주어지고 이 믿음의 분량에 따라 낙원, 1천층, 2천층, 3천층, 새 예루살렘 성으로 처소가 구분됩니다.
낙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겨우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들어갑니다. 1천층은 하나님을 믿은 후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들어갑니다. 2천층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행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한 사람들이 들어가지요. 3천층은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여 악은 모양이라도 버린 성결된 사람들에게 주어집니다. 나아가 새 예루살렘 성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고 온 집에 충성한 사람들이 들어갑니다.
새 예루살렘 성은 믿음으로 온전한 사랑을 이룬 하나님 자녀들에게 주어지는 천국으로서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원래 새 예루살렘 성에는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피조물인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로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자격이 주어집니다.
우리가 주님을 닮아 새 예루살렘 성에 거하기 위해서는 주님이 가신 길을 따라가야 하는데 그 길이 곧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있어야 우리에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팔복이 임하여 주님의 성품을 닮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갖출 수 있지요. 그러므로 우리에게 믿음이 있을 때 천국에 갈 수 있고, 소망이 있을 때 죄를 버릴 수 있습니다. 믿음과 소망은 분명히 필요한 것이지만 온전한 사랑이 있을 때라야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으므로 사랑이 제일인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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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다음 설명 중 맞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천국에서는 하나님과 주님의 마음을 잘 알기에 예언이 필요치 않다.
② 천국에서는 언어가 하나이므로 알아듣지 못할 염려가 없다.
③ 천국에는 이 땅의 지식이 필요치 않다.
④ 천국에서도 믿음과 소망이 필요하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새 예루살렘 성 열두 기초석에 담긴 영의 마음
① 벽옥(믿음) ② 남보석(곧음과 절개) ③ 옥수(결백과 희생적인 사랑) ④ 녹보석 (의와 푸르름, 정의롭고 깨끗함)
⑤ 홍마노(충성) ⑥ 홍보석 (열정과 정성) ⑦ 황옥(자비) ⑧ 녹옥 (오래 참음) ⑨ 담황옥(양선) ⑩ 비취옥(절제)
⑪ 청옥(청결함) ⑫ 자정 (온유)
2012-03-23
제12과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는 것
고전 13:7
읽을말씀 : 고전 13:7 | 외울말씀 : 벤전 1:7 ㅣ 참고 말씀:마 5:11~12
교육목표 : 교육 내용/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진리 안에서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며 어떤 연단이든지 능히 견딜 수 있음을 알려 준다.
우리가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다 보면 그에 따른 여파가 오기 마련입니다. 마치 큰 물결이 지나가면 그 뒤를 따라 잔물결이 이는 것처럼 모든 것을 참을 때에도 참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이 오기도 하고 마음에 고통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견딘다.'는 것은 모든 것을 참을 때 밀려오는 여파를 견디는 것입니다.
1.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는 것
예수님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고 당부하시며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권면하셨습니다(마 5:39~42).
이 말씀대로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고 잠잠히 참는다 해도 사람마다 느끼는 아픔이 다릅니다. 마음에 얼마나 사랑을 일구었느냐에 따라 달라지지요. 참음의 여파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외부 환경으로부터 올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오른뺨을 때릴 때 참고 왼편을 돌려 댔는데 사정없이 왼뺨까지 때립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참았는데도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다니엘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갈 줄을 알고도 기도를 쉬지 않았지요.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또 자신을 시기하여 죽음으로 몰아가는 무리에게 악으로 대항치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 말씀대로 참으니 상황이 곧바로 좋아졌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굶주린 사자가 울부짖는 굴에 던져졌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에 위배되는 것을 참았으니 곧바로 시험이 물러가야 할 것 같은데 이러한 연단이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우리를 온전케 하고 축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농작물은 비, 바람, 따가운 햇살을 견딤으로 실한 열매를 맺듯이 우리도 견디는 시간을 통해 알곡으로 맺혀지지요.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참 자녀로 나오는 것이 바로 인간 경작의 섭리입니다.
2. 연단은 하나님의 참 자녀로 이끄시는 축복
예컨대, 악을 행하는 사람을 볼 때 겉으로는 참지만 마음에는 여전히 '보기 싫다, 이해할 수 없다.'라는 감정이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게 되면 연단이 따르지요. 마음에 악이 없다고 인정받기까지는 크든 작든 연단이라는 테스트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물론 악이 전혀 없다 해도 연단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축복을 주시려는 연단입니다. 마음에 악이 없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사랑, 온전한 선으로 이끄시기 위함이지요. 개인적인 축복을 주실 때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룰 때에도 이런 원리가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베푸시기 위해서는 그만큼 공의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큰 믿음과 사랑의 행함으로 응답받을 만한 그릇임을 증명해야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지 못하지요.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시련의 비바람을 견디게 하십니다. 그럴 때 오직 선과 사랑으로 인내하면 결국 승리하여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특히 주님의 이름을 인하여 애매히 받는 핍박이나 고난을 잘 이기면 반드시 축복이 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11~12절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모든 것을 참고 믿으며 바라고 견뎌야 할까요?
3. 모든 것을 참고 믿으며 바라고 견디려면
첫째로, 연단 중에도 하나님 사랑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의 삶이 끝나는 날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도록 연단을 허락하십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 보면 애매히 고난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구나.' 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오히려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나를 더 좋은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허락하신 연단이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사랑을 믿되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믿음의 시련에는 아픔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연단의 시간이 길어지면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실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에 더 좋은 천국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하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끝까지 인내하면 결국 온전한 사람으로 나오게 됩니다.
둘째로, 연단이 소망을 이루는 지름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3~4절에 보면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말씀한 대로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지름길입니다. 때로 자신을 볼 때 '어느 세월에 변화될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연마 끝에 빛나는 보석처럼 연단을 잘 견딤으로 변화되고 또 변화되면 결국 하나님을 닮은 온전한 자녀가 됩니다.
그러므로 연단을 통과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물론 좀 더 쉬운 길로 가기 원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만 연단을 피해 가면 그만큼 더디지요. 만약 주위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사람이 있을 때 싫은 내색은 하지는 않지만 불편해집니다. 이때도 피하는 것이 상책은 아닙니다. 인내하며 상대를 진정 이해하고 용서하는 적극적인 마음이 필요하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며 변화되도록 이끄십니다. 이처럼 연단의 상황들 하나하나가 소망을 이루는 징검다리가 되고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모든 것을 견디려면 오직 선만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참았는데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왜 상황이 바뀌지 않습니까?" 하고 불평하지요. 육적으로 보면 시험 환난은 사람이나 환경으로 인해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믿음의 시련은 원수 마귀 사단이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곧 시험, 환난은 선과 악의 싸움입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영계의 법칙대로 싸워야 합니다. 영계의 법칙은 결국 선이 승리합니다.
로마서 12장 21절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말씀했습니다. 때로는 선을 행하면 지는 것 같고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반드시 선은 승리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혹여 시험, 환난, 핍박이 온다면 더욱 선을 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저 사람 때문에 힘들다.'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걸핏하면 불평하고 토라지고 안하무인 하여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마음에 참사랑을 이루면 견디기 힘든 사람이 없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 하신 대로 상대를 자신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해하고 품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을 이러한 사랑으로 이해하고 견뎌 주십니다.
참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아픔을 믿음과 소망으로 잘 견뎌야 합니다. '영적인 사랑'이라는 최상품의 사랑을 만들면 장차 하나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영적인 사랑을 이루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우리 마음을 영롱한 진주와 같이 아름답게 빚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참고 믿으며 바라고 견뎌 주심에 감사합니다."라는 감동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 맞지 않는 것을 고르시오.
① 연단이 소망을 이루는 지름길임을 믿어야 한다.
② 연단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믿어야 한다.
③ 모든 것을 견디려면 오직 선만 행해야 한다.
④ 악한 자에게는 따끔하게 손을 봐 줘야 한다.
2.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세요.
모든 것을 참는다는 것은 ( )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는 것이다. 모든 것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100% 신뢰하고 사랑하기에, 어떤 ( )이든 믿어주는 것이다. 모든 것을 ( )는 것은 믿는 것이 실상으로 나타날 때까지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모든 것을 ( )는 것은 모든 것을 참을 때 밀려오는 여파를 견디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천국에는 오직 마음에 이룬 '사랑'만 가져갈 수 있다!
천국에 원하는 것 한 가지를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고 싶나요?
아무리 귀한 황금보석, 금, 다이아몬드도 천국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마음에 이룬 참사랑만은 가져갈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교육목표 : 교육 내용/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면 진리 안에서 모든 것을 참고 믿고 바라며 어떤 연단이든지 능히 견딜 수 있음을 알려 준다.
우리가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다 보면 그에 따른 여파가 오기 마련입니다. 마치 큰 물결이 지나가면 그 뒤를 따라 잔물결이 이는 것처럼 모든 것을 참을 때에도 참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험이 오기도 하고 마음에 고통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견딘다.'는 것은 모든 것을 참을 때 밀려오는 여파를 견디는 것입니다.
1.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는 것
예수님께서는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고 당부하시며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권면하셨습니다(마 5:39~42).
이 말씀대로 악한 자를 대적하지 않고 잠잠히 참는다 해도 사람마다 느끼는 아픔이 다릅니다. 마음에 얼마나 사랑을 일구었느냐에 따라 달라지지요. 참음의 여파는 이뿐만이 아닙니다. 외부 환경으로부터 올 수도 있습니다. 상대가 오른뺨을 때릴 때 참고 왼편을 돌려 댔는데 사정없이 왼뺨까지 때립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참았는데도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오히려 더 나빠진 것처럼 보입니다. 다니엘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다니엘은 사자 굴에 들어갈 줄을 알고도 기도를 쉬지 않았지요.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또 자신을 시기하여 죽음으로 몰아가는 무리에게 악으로 대항치 않았습니다. 다니엘이 하나님 말씀대로 참으니 상황이 곧바로 좋아졌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굶주린 사자가 울부짖는 굴에 던져졌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랑에 위배되는 것을 참았으니 곧바로 시험이 물러가야 할 것 같은데 이러한 연단이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우리를 온전케 하고 축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농작물은 비, 바람, 따가운 햇살을 견딤으로 실한 열매를 맺듯이 우리도 견디는 시간을 통해 알곡으로 맺혀지지요. 연단을 통해 하나님의 참 자녀로 나오는 것이 바로 인간 경작의 섭리입니다.
2. 연단은 하나님의 참 자녀로 이끄시는 축복
예컨대, 악을 행하는 사람을 볼 때 겉으로는 참지만 마음에는 여전히 '보기 싫다, 이해할 수 없다.'라는 감정이 있습니다. 이것을 아는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게 되면 연단이 따르지요. 마음에 악이 없다고 인정받기까지는 크든 작든 연단이라는 테스트가 따르기 마련입니다.
물론 악이 전혀 없다 해도 연단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축복을 주시려는 연단입니다. 마음에 악이 없는 차원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사랑, 온전한 선으로 이끄시기 위함이지요. 개인적인 축복을 주실 때뿐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이룰 때에도 이런 원리가 적용됩니다.
하나님께서 큰 역사를 베푸시기 위해서는 그만큼 공의가 충족되어야 합니다. 큰 믿음과 사랑의 행함으로 응답받을 만한 그릇임을 증명해야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지 못하지요.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시련의 비바람을 견디게 하십니다. 그럴 때 오직 선과 사랑으로 인내하면 결국 승리하여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특히 주님의 이름을 인하여 애매히 받는 핍박이나 고난을 잘 이기면 반드시 축복이 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11~12절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모든 것을 참고 믿으며 바라고 견뎌야 할까요?
3. 모든 것을 참고 믿으며 바라고 견디려면
첫째로, 연단 중에도 하나님 사랑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땅의 삶이 끝나는 날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도록 연단을 허락하십니다.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다 보면 애매히 고난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내가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고 있구나.' 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오히려 모든 것이 감사의 조건이 됩니다. 나를 더 좋은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허락하신 연단이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이 사랑을 믿되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믿음의 시련에는 아픔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연단의 시간이 길어지면 '하나님께서 정말 나를 사랑하실까?'라는 생각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에 더 좋은 천국으로 이끄신다는 것을 믿어야 하지요.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끝까지 인내하면 결국 온전한 사람으로 나오게 됩니다.
둘째로, 연단이 소망을 이루는 지름길임을 믿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3~4절에 보면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말씀한 대로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지름길입니다. 때로 자신을 볼 때 '어느 세월에 변화될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연마 끝에 빛나는 보석처럼 연단을 잘 견딤으로 변화되고 또 변화되면 결국 하나님을 닮은 온전한 자녀가 됩니다.
그러므로 연단을 통과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물론 좀 더 쉬운 길로 가기 원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지만 연단을 피해 가면 그만큼 더디지요. 만약 주위에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사람이 있을 때 싫은 내색은 하지는 않지만 불편해집니다. 이때도 피하는 것이 상책은 아닙니다. 인내하며 상대를 진정 이해하고 용서하는 적극적인 마음이 필요하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며 변화되도록 이끄십니다. 이처럼 연단의 상황들 하나하나가 소망을 이루는 징검다리가 되고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모든 것을 견디려면 오직 선만 행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모든 것을 참았는데도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왜 상황이 바뀌지 않습니까?" 하고 불평하지요. 육적으로 보면 시험 환난은 사람이나 환경으로 인해 오는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으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믿음의 시련은 원수 마귀 사단이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곧 시험, 환난은 선과 악의 싸움입니다. 영적 싸움에서 승리하려면 영계의 법칙대로 싸워야 합니다. 영계의 법칙은 결국 선이 승리합니다.
로마서 12장 21절에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말씀했습니다. 때로는 선을 행하면 지는 것 같고 손해 보는 것 같지만 반드시 선은 승리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인생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기 때문입니다. 혹여 시험, 환난, 핍박이 온다면 더욱 선을 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저 사람 때문에 힘들다.'라고 느껴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걸핏하면 불평하고 토라지고 안하무인 하여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까?
마음에 참사랑을 이루면 견디기 힘든 사람이 없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 22:39) 하신 대로 상대를 자신처럼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해하고 품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도 우리들을 이러한 사랑으로 이해하고 견뎌 주십니다.
참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모든 아픔을 믿음과 소망으로 잘 견뎌야 합니다. '영적인 사랑'이라는 최상품의 사랑을 만들면 장차 하나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영적인 사랑을 이루어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시고 우리 마음을 영롱한 진주와 같이 아름답게 빚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것을 참고 믿으며 바라고 견뎌 주심에 감사합니다."라는 감동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 맞지 않는 것을 고르시오.
① 연단이 소망을 이루는 지름길임을 믿어야 한다.
② 연단 중에도 하나님의 사랑을 굳게 믿어야 한다.
③ 모든 것을 견디려면 오직 선만 행해야 한다.
④ 악한 자에게는 따끔하게 손을 봐 줘야 한다.
2.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세요.
모든 것을 참는다는 것은 ( )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는 것이다. 모든 것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100% 신뢰하고 사랑하기에, 어떤 ( )이든 믿어주는 것이다. 모든 것을 ( )는 것은 믿는 것이 실상으로 나타날 때까지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모든 것을 ( )는 것은 모든 것을 참을 때 밀려오는 여파를 견디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천국에는 오직 마음에 이룬 '사랑'만 가져갈 수 있다!
천국에 원하는 것 한 가지를 가져갈 수 있다면 무엇을 가져가고 싶나요?
아무리 귀한 황금보석, 금, 다이아몬드도 천국에서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마음에 이룬 참사랑만은 가져갈 수 있습니다. 천국에서도 영원히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2012-03-16
제11과사랑은 모든 것을 참고 믿으며 바라는 것
고전 13:7
읽을말씀 : 고전 13:7 | 외울말씀 : 고전 13:7 l 참고 말씀:고전 15:19
교육목표 : 영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참고 믿고 바라는지에 대해 알려 준다.
우리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참아야 할 일이 매우 많습니다. 혈기가 나고 짜증이 나도 참아야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는 마음도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개념을 설명할 때에도 가장 먼저 '오래 참고'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를 버리기 위해 온갖 시련을 참는 자기와의 싸움을 '오래 참음'이라고 한다면 '모든 것을 참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자신의 마음을 진리로 일군 후에 상대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고통을 참는 것입니다. 즉 '오래 참음'보다 넓은 의미로 '영적인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는 것'이지요.
1.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 것
성경을 보면 우리 예수님도 죄인들에 대해 잠잠히 참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오직 선만 행하셨는데도 악한 사람들은 조롱하고 멸시하며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들이라 할지라도 참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참으신 사랑의 결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망에서 벗어나 영생에 이르게 되었지요.
우리 영혼의 주인 되신 아버지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고통을 기쁨으로 참고 기다리십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사람들이 악을 행할지라도 선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보며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가증한 우상을 섬길지라도 다시 하나님이 참 신임을 나타내 보이셨지요. 만약 "너는 불의가 가득하니 도저히 안 되겠어. 가망이 없구나. 더 이상은 못 참겠다."라고 하나님이 하신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만민의 성도들을 가르치시며 기도해 주시는 당회장님을 통해서도 얼마나 한 영혼 영혼이 변화될 때까지 사랑으로 기다리시며 오래 참아 주시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하고 성격이 모난 사람이라도 언젠가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기대하며 항상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셨지요. 온전히 변화될 때까지 성결의 복음을 가르치며 간절히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참으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니 결국 많은 성도가 좋은 일꾼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2.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
상대를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면 신뢰할 수밖에 없습니다. 긴가민가 의심하고 멀리하지 않지요. 설령 허물이 있고 부족한 모습이 보이더라도 흠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앞으로 변화될 것을 믿어 주며 사랑스럽게 바라봐 줄 뿐이지요. 믿는다는 것은 상대를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서로를 신뢰하는 부부는 사랑으로 더욱 결속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서로 믿지 못하는 부부는 사사건건 다투며 의심하지요. 사랑이 부족한 것이 말과 행동으로 툭툭 튀어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은 상대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보여 주는 척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말과 같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의 벗이라,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신실했던지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을 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순종했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면 하나님 말씀을 백 퍼센트 믿습니다. 모든 것을 믿기 때문에 또한 모든 것을 참습니다. 영적인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으려면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을 때라야 모든 것을 바라게 되고, 열심히 마음에 할례하여 사랑과 위배되는 것을 버릴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죄인이었던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여 믿은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고 그 사실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영적인 사랑을 이루면 사랑하기 때문에 믿는 차원에 이릅니다.
영적인 사랑을 이뤘다는 것은 비진리의 마음을 다 버렸기에 가능합니다. 마음에 죄성이 없으면 하늘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옵니다. 이때부터는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거나 신뢰가 흔들리는 일이 없습니다. 영적인 사랑을 온전히 이룬 사람은 모든 사람을 믿습니다. 상대가 믿을 만해서가 아니라 허물 많고 부족해도 믿음으로 바라봐 주지요.
따라서 여러분은 신속히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모든 사람을 믿어 줄 수 있는 영적인 참사랑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실망하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나를 놓지 않으시고 변화시키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지요. 성령님은 항상 우리에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십니다. 그 사랑을 믿고 변화되기 위해 노력하면 그 믿음대로 이뤄 주십니다. 그러니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여러분은 자신뿐 아니라, 어떤 사람도 믿어 줄 수 있는 영적인 사랑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3.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는 것
사람들은 상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바꾸려고 합니다. 사소한 것 가지고도 다투며 포용하지 못하는데 상대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그러니 상대가 변화되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먼저 변화되기 위해 힘쓰며 어찌하든 사랑으로 바라며 기다려 줘야 합니다.
모든 것을 바란다는 것은 믿는 것이 실상으로 나타날 때까지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이뤄질 것을 바라게 됩니다. 장차 아름다운 천국에서 하나님과 세세토록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참으며 달려갑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바라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장래의 소망이 없으니 현실이 전부인 양 살아가지요. 육을 위해 더 취하고 누리기 위해 살아갑니다. 하지만 채워도 채워도 만족함이 없고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감 속에 살다 결국 죽음을 맞게 되지요.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은 모든 것을 바람으로 세상과 구별된 좁은 길을 갑니다. 왜 좁은 길이라 할까요?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편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세상 정욕적인 것이나 오락을 취하지 않습니다. 주일에는 온종일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 봉사하는 등 말씀대로 살아가지요. 이 자체가 믿음이 없으면 힘들기 때문에 좁은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 말씀했습니다. 육적으로 보면 성도들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절제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니 고생스럽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영생의 길이기에 힘들지 않고 행복하지요. 이처럼 사랑은 믿는 모든 것이 실상으로 나타날 때까지 변함없이 기다리고 바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면 매우 큰 힘이 발산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영혼들을 갈무리할 때 자신의 생각 가운데 상대를 단정 지어 판단합니다. '저 사람은 변화되기 어려울 것 같다. 여전히 그 모습이구나.' 하고 실망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될 것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격려해 주며, 끊임없이 기도해 줘야 하지요. 여러분들은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처럼 영혼들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사랑으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한 '오래 참음'과 '모든 것을 참음'의 차이를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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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혹여 여러분 주위에 참아 주고 믿어 주며 바라봐 줘야 할 대상이 있습니까? 영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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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고린도교회'에 대하여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을 통해 그리스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도시인 고린도 지방에 세워진 교회이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넘쳤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분쟁, 소송문제, 은사 나눔 문제, 부활 논쟁, 심지어 바울의 사도권까지 문제 삼았다. 또한 거짓 선지자가 들어와 훼방하며, 음행 같은 세상 문화가 들어와 교회를 더럽혔다. 빈부 격차에 제사 음식 먹는 것 가지고도 싸웠기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도 바울이 쓴 서신이 고린도전·후서이다.
교육목표 : 영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을 어떻게 참고 믿고 바라는지에 대해 알려 준다.
우리가 처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다 보면 참아야 할 일이 매우 많습니다. 혈기가 나고 짜증이 나도 참아야 하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는 마음도 참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개념을 설명할 때에도 가장 먼저 '오래 참고'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를 버리기 위해 온갖 시련을 참는 자기와의 싸움을 '오래 참음'이라고 한다면 '모든 것을 참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바로 자신의 마음을 진리로 일군 후에 상대로 인해 겪어야 하는 모든 고통을 참는 것입니다. 즉 '오래 참음'보다 넓은 의미로 '영적인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는 것'이지요.
1. 사랑은 모든 것을 참는 것
성경을 보면 우리 예수님도 죄인들에 대해 잠잠히 참아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오직 선만 행하셨는데도 악한 사람들은 조롱하고 멸시하며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인생들이라 할지라도 참아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라고 기도하셨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참으신 사랑의 결과로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 자녀가 되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사망에서 벗어나 영생에 이르게 되었지요.
우리 영혼의 주인 되신 아버지 하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모든 고통을 기쁨으로 참고 기다리십니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사람들이 악을 행할지라도 선으로 변화되기를 바라보며 기다리셨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가증한 우상을 섬길지라도 다시 하나님이 참 신임을 나타내 보이셨지요. 만약 "너는 불의가 가득하니 도저히 안 되겠어. 가망이 없구나. 더 이상은 못 참겠다."라고 하나님이 하신다면 구원받을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만민의 성도들을 가르치시며 기도해 주시는 당회장님을 통해서도 얼마나 한 영혼 영혼이 변화될 때까지 사랑으로 기다리시며 오래 참아 주시는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연약하고 성격이 모난 사람이라도 언젠가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것을 기대하며 항상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셨지요. 온전히 변화될 때까지 성결의 복음을 가르치며 간절히 기도하기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참으며 기다리고 또 기다리니 결국 많은 성도가 좋은 일꾼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2.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
상대를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면 신뢰할 수밖에 없습니다. 긴가민가 의심하고 멀리하지 않지요. 설령 허물이 있고 부족한 모습이 보이더라도 흠이라 여기지 않습니다. 앞으로 변화될 것을 믿어 주며 사랑스럽게 바라봐 줄 뿐이지요. 믿는다는 것은 상대를 사랑하는 증거입니다. 서로를 신뢰하는 부부는 사랑으로 더욱 결속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서로 믿지 못하는 부부는 사사건건 다투며 의심하지요. 사랑이 부족한 것이 말과 행동으로 툭툭 튀어 나오는 것입니다.
믿음은 상대에 대한 사랑의 크기를 보여 주는 척도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한다는 말과 같지요.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하나님의 벗이라, 믿음의 조상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신실했던지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했을 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바로 순종했습니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사랑은 모든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사랑하면 하나님 말씀을 백 퍼센트 믿습니다. 모든 것을 믿기 때문에 또한 모든 것을 참습니다. 영적인 사랑에 위배되는 모든 것을 참으려면 반드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믿을 때라야 모든 것을 바라게 되고, 열심히 마음에 할례하여 사랑과 위배되는 것을 버릴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죄인이었던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주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여 믿은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고 그 사실을 믿음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이런 사실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영적인 사랑을 이루면 사랑하기 때문에 믿는 차원에 이릅니다.
영적인 사랑을 이뤘다는 것은 비진리의 마음을 다 버렸기에 가능합니다. 마음에 죄성이 없으면 하늘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옵니다. 이때부터는 하나님 말씀을 의심하거나 신뢰가 흔들리는 일이 없습니다. 영적인 사랑을 온전히 이룬 사람은 모든 사람을 믿습니다. 상대가 믿을 만해서가 아니라 허물 많고 부족해도 믿음으로 바라봐 주지요.
따라서 여러분은 신속히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모든 사람을 믿어 줄 수 있는 영적인 참사랑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자신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부족한 모습에 실망하고 주저앉을 것이 아니라, 나를 놓지 않으시고 변화시키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지요. 성령님은 항상 우리에게 "할 수 있다."고 용기를 주십니다. 그 사랑을 믿고 변화되기 위해 노력하면 그 믿음대로 이뤄 주십니다. 그러니 믿는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입니까. 여러분은 자신뿐 아니라, 어떤 사람도 믿어 줄 수 있는 영적인 사랑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3. 사랑은 모든 것을 바라는 것
사람들은 상대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자기가 원하는 대로 바꾸려고 합니다. 사소한 것 가지고도 다투며 포용하지 못하는데 상대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요. 그러니 상대가 변화되기를 바라기보다 내가 먼저 변화되기 위해 힘쓰며 어찌하든 사랑으로 바라며 기다려 줘야 합니다.
모든 것을 바란다는 것은 믿는 것이 실상으로 나타날 때까지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말씀을 믿고 말씀대로 이뤄질 것을 바라게 됩니다. 장차 아름다운 천국에서 하나님과 세세토록 사랑을 나누며 살게 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참으며 달려갑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바라지 않는 세상 사람들은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습니다. 장래의 소망이 없으니 현실이 전부인 양 살아가지요. 육을 위해 더 취하고 누리기 위해 살아갑니다. 하지만 채워도 채워도 만족함이 없고 미래에 대한 막막함과 불안감 속에 살다 결국 죽음을 맞게 되지요.
하지만 하나님을 믿는 자녀들은 모든 것을 바람으로 세상과 구별된 좁은 길을 갑니다. 왜 좁은 길이라 할까요? 이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믿지 않는 사람 편에서 볼 때 그렇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세상 정욕적인 것이나 오락을 취하지 않습니다. 주일에는 온종일 교회에서 예배드리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 봉사하는 등 말씀대로 살아가지요. 이 자체가 믿음이 없으면 힘들기 때문에 좁은 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전 15:19) 말씀했습니다. 육적으로 보면 성도들은 세상에서 많은 것을 절제하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하니 고생스럽게 보입니다. 그러나 이 길이 영생의 길이기에 힘들지 않고 행복하지요. 이처럼 사랑은 믿는 모든 것이 실상으로 나타날 때까지 변함없이 기다리고 바라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면 매우 큰 힘이 발산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영혼들을 갈무리할 때 자신의 생각 가운데 상대를 단정 지어 판단합니다. '저 사람은 변화되기 어려울 것 같다. 여전히 그 모습이구나.' 하고 실망하고 포기해 버립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변화될 것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라고 격려해 주며, 끊임없이 기도해 줘야 하지요. 여러분들은 천 년을 하루같이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마음처럼 영혼들을 소망의 눈으로 바라보시고 사랑으로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한 '오래 참음'과 '모든 것을 참음'의 차이를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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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혹여 여러분 주위에 참아 주고 믿어 주며 바라봐 줘야 할 대상이 있습니까? 영적인 사랑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기도하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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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고린도교회'에 대하여
사도 바울의 선교 여행을 통해 그리스에서 가장 활발한 상업도시인 고린도 지방에 세워진 교회이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넘쳤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분쟁, 소송문제, 은사 나눔 문제, 부활 논쟁, 심지어 바울의 사도권까지 문제 삼았다. 또한 거짓 선지자가 들어와 훼방하며, 음행 같은 세상 문화가 들어와 교회를 더럽혔다. 빈부 격차에 제사 음식 먹는 것 가지고도 싸웠기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사도 바울이 쓴 서신이 고린도전·후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