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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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5
제7과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
롬 10:13~15
읽을말씀 : 롬 10:13~15 | 외울말씀 : 롬 12:3 ㅣ 참고 말씀:요일 2:12~14
교육목표 : 예수님만이 구세주의 자격 조건에 합당한 분임을 깨달아 구원의 기쁨을마음껏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무조건 교회 다닌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통회자복한 후 성령을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 나와 통회자복하기 전까지 곧 성령 받기 전까지의 과정을 '구원받을 믿음'이라 하고, 죄를 통회자복하고 성령을 받은 상태를 '구원받은 믿음'이라 하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가려면, 단순히 교회만 출석하는 교인이 아니라, '구원받은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인 '구원받을 믿음'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23장 39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 좌우편에 십자가 처형을 당한 두 행악자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편 강도가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라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편 강도가 예수님을 힐난하는 강도를 꾸짖으며 주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즉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하였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에게 구원받아 낙원에 이를 것을 약속해 주셨지요. 이는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주어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선포한 것입니다.
간혹 '회개한 강도처럼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편 강도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이미 '구원받을 믿음'이 있었기에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다른 편 강도가 예수님을 조롱할 때 그를 책망하며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 처형을 받는 것이라고 역설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편 강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이미 마음에 인정하였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민망했겠습니까.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향해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며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한 편 강도가 십자가 처형을 당하지 않고 생명이 연장되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결코 이전처럼 흉악한 죄를 지으며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한 편 강도의 고백을 들으시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구원에 이를 것을 확증해 주셨지요.
그렇다면 구원에 이른 강도가 예수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전에 갖고 있었던 '구원받을 믿음'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이는 아직 구원의 확신이 온전히 들지 않지만 열심히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는 믿음입니다.
누구든지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구원받을 믿음'에서 '구원받은 믿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곧 믿음을 갖고자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와 구원의 확신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구원받을 믿음에서 구원받은 믿음으로 바뀌려면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 무엇이 죄인지 깨달아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려고 간절히 찾고 노력하면 하나님 은혜가 임합니다.
이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게 되지요.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나' 때문이라고 믿으니 "나는 죄인 중에 죄인이었다."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번복하여 죄를 짓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능력을 주시지요.
이처럼 통회자복을 하기까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믿음이 '구원받을 믿음'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면 성령이 임하시고 마음이 시원해지면서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죄의 짐을 내려놓으니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고 기쁨이 샘솟아 나지요. 비로소 '구원받은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2. 구원의 확신이 있는 '구원받은 믿음'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그것은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때부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원수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 자녀로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시험 환난과 고통 속에 의지할 곳 없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영접하고 나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천국 소망 가운데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지요.
이처럼 성령을 받은 후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믿음을 '구원받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구원받을 믿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고 노력하여 통회자복을 하기 전까지의 믿음이라면, 구원받은 믿음은 통회자복한 후에 성령을 받아 하나님 말씀을 행해 나가는 믿음입니다. 즉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분하는 기준은 바로 성령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받은 믿음'이 주어지면 세상을 좇아 살아왔던 잘못된 구습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어집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에 감사하여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와 말씀을 지켜 행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은 즉시 술과 담배를 끊기도 하고 설교 말씀을 통해 배우는 대로 기쁨으로 순종해 나갑니다. 처음에는 겨자씨만 한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해 나가면서 어떤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나무처럼 큰 믿음으로 성장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자녀가 태어나면 아이, 청년의 과정을 거쳐 아비가 되듯이 믿음도 점점 성장해 갑니다. 갓 태어난 자녀와 같이 믿음이 작다 해도 성장 과정을 거치면 청년을 지나 아비와 같은 큰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의 믿음은 이제 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 받은 단계를 말합니다. 자녀들의 믿음이 자라면 아이들의 믿음이 됩니다.
아이들의 믿음이란,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믿음입니다. 즉 부모에 대해 깊이까지는 모르고 일부분 조금 아는 단계이지요. 그러니 진리를 알고 체험하지만 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있고 행치 못하는 것도 있지요. 아이들의 믿음이 자라면 청년의 믿음이 됩니다.
청년의 믿음이란, 완전히 성숙하지는 않았다 해도 말씀이 마음에 임해 있으므로 능히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깨뜨리고 승리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천국에 소망을 두며,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어떤 시험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을 힘이 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며 시험을 거뜬하게 이겨내지요.
청년의 믿음이 자라면 아비의 믿음이 됩니다. 이는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믿음' 곧 근본 하나님을 아는 믿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아이의 믿음에서 아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자녀를 낳아 봐야 부모의 심정을 안다'고 하듯이, 아비의 믿음이 되어야 비로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것, 근본까지도 알 수 있지요.
아비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본이 되고 겸손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포용하며,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림이 없이 진리 안에 온전히 서게 됩니다. 덕과 사랑을 갖추고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숙한 믿음이기에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분하여 설명해 보세요.
구원받을 믿음:
--------------------------------------------------------
구원받은 믿음:
--------------------------------------------------------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자녀들의 믿음(믿음의 1단계)- 성령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이다.
② 아이들의 믿음(믿음의 2단계)-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이다.
③ 청년들의 믿음(믿음의 3단계)-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이다.
④ 아비들의 믿음(믿음의 반석 이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다.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69~7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낙원'
간신히 구원받은 믿음을 지닌 영혼들이 들어가는 처소이다. 하나님 보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약하며 천국의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한다. 낙원의 가장자리는 백보좌 대심판 때까지 천국의 대기 장소로 활용된다. 온 영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영혼들을 제외하고 창세 이래 구원받은 무수한 영혼이 낙원의 가장 자리에 머물고 있다.
교육목표 : 예수님만이 구세주의 자격 조건에 합당한 분임을 깨달아 구원의 기쁨을마음껏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무조건 교회 다닌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통회자복한 후 성령을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 나와 통회자복하기 전까지 곧 성령 받기 전까지의 과정을 '구원받을 믿음'이라 하고, 죄를 통회자복하고 성령을 받은 상태를 '구원받은 믿음'이라 하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가려면, 단순히 교회만 출석하는 교인이 아니라, '구원받은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인 '구원받을 믿음'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23장 39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 좌우편에 십자가 처형을 당한 두 행악자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편 강도가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라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편 강도가 예수님을 힐난하는 강도를 꾸짖으며 주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였습니다.
즉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라고 하였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그에게 구원받아 낙원에 이를 것을 약속해 주셨지요. 이는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주어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선포한 것입니다.
간혹 '회개한 강도처럼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편 강도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이미 '구원받을 믿음'이 있었기에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다른 편 강도가 예수님을 조롱할 때 그를 책망하며 예수님은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 처형을 받는 것이라고 역설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편 강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이미 마음에 인정하였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민망했겠습니까.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향해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며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한 편 강도가 십자가 처형을 당하지 않고 생명이 연장되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결코 이전처럼 흉악한 죄를 지으며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한 편 강도의 고백을 들으시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구원에 이를 것을 확증해 주셨지요.
그렇다면 구원에 이른 강도가 예수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전에 갖고 있었던 '구원받을 믿음'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이는 아직 구원의 확신이 온전히 들지 않지만 열심히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는 믿음입니다.
누구든지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구원받을 믿음'에서 '구원받은 믿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도 필요합니다. 곧 믿음을 갖고자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와 구원의 확신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구원받을 믿음에서 구원받은 믿음으로 바뀌려면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 무엇이 죄인지 깨달아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려고 간절히 찾고 노력하면 하나님 은혜가 임합니다.
이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게 되지요. 하나님은 살아 계시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나' 때문이라고 믿으니 "나는 죄인 중에 죄인이었다."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번복하여 죄를 짓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능력을 주시지요.
이처럼 통회자복을 하기까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믿음이 '구원받을 믿음'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면 성령이 임하시고 마음이 시원해지면서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죄의 짐을 내려놓으니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고 기쁨이 샘솟아 나지요. 비로소 '구원받은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2. 구원의 확신이 있는 '구원받은 믿음'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그것은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때부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원수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 자녀로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시험 환난과 고통 속에 의지할 곳 없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영접하고 나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천국 소망 가운데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지요.
이처럼 성령을 받은 후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믿음을 '구원받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구원받을 믿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고 노력하여 통회자복을 하기 전까지의 믿음이라면, 구원받은 믿음은 통회자복한 후에 성령을 받아 하나님 말씀을 행해 나가는 믿음입니다. 즉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분하는 기준은 바로 성령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받은 믿음'이 주어지면 세상을 좇아 살아왔던 잘못된 구습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어집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에 감사하여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와 말씀을 지켜 행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은 즉시 술과 담배를 끊기도 하고 설교 말씀을 통해 배우는 대로 기쁨으로 순종해 나갑니다. 처음에는 겨자씨만 한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해 나가면서 어떤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나무처럼 큰 믿음으로 성장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자녀가 태어나면 아이, 청년의 과정을 거쳐 아비가 되듯이 믿음도 점점 성장해 갑니다. 갓 태어난 자녀와 같이 믿음이 작다 해도 성장 과정을 거치면 청년을 지나 아비와 같은 큰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의 믿음은 이제 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 받은 단계를 말합니다. 자녀들의 믿음이 자라면 아이들의 믿음이 됩니다.
아이들의 믿음이란,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믿음입니다. 즉 부모에 대해 깊이까지는 모르고 일부분 조금 아는 단계이지요. 그러니 진리를 알고 체험하지만 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있고 행치 못하는 것도 있지요. 아이들의 믿음이 자라면 청년의 믿음이 됩니다.
청년의 믿음이란, 완전히 성숙하지는 않았다 해도 말씀이 마음에 임해 있으므로 능히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깨뜨리고 승리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천국에 소망을 두며,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어떤 시험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을 힘이 있습니다. 쉬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며 시험을 거뜬하게 이겨내지요.
청년의 믿음이 자라면 아비의 믿음이 됩니다. 이는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믿음' 곧 근본 하나님을 아는 믿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아이의 믿음에서 아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자녀를 낳아 봐야 부모의 심정을 안다'고 하듯이, 아비의 믿음이 되어야 비로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것, 근본까지도 알 수 있지요.
아비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본이 되고 겸손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포용하며,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림이 없이 진리 안에 온전히 서게 됩니다. 덕과 사랑을 갖추고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숙한 믿음이기에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분하여 설명해 보세요.
구원받을 믿음:
--------------------------------------------------------
구원받은 믿음:
--------------------------------------------------------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자녀들의 믿음(믿음의 1단계)- 성령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이다.
② 아이들의 믿음(믿음의 2단계)-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이다.
③ 청년들의 믿음(믿음의 3단계)-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이다.
④ 아비들의 믿음(믿음의 반석 이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다.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69~7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낙원'
간신히 구원받은 믿음을 지닌 영혼들이 들어가는 처소이다. 하나님 보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약하며 천국의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한다. 낙원의 가장자리는 백보좌 대심판 때까지 천국의 대기 장소로 활용된다. 온 영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영혼들을 제외하고 창세 이래 구원받은 무수한 영혼이 낙원의 가장 자리에 머물고 있다.
2013-02-08
제6과구원의 징표인 하나님의 선물, 성령
고후 1:21~22
읽을말씀 : 고후 1:21~22 | 외울말씀 : 행 2:38 l 참고 말씀:요 14:16~17, 15:26
교육목표 : 구원의 징표이자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받아 자신의 삶 속에서 항상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범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그를 잊지 않으셨고, 인생들이 하나님 뜻 가운데 살도록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주셨지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회복해 인생들과 다시 함께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가는 길을 열어 주셨지만, 인생들이 그 길을 끝까지 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보혜사(保惠師)'란 성도를 보호하고 돕는 '성령'을 지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려주신 것처럼,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증시켜 주셨습니다.
1.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
사도행전 1장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곧 보혜사 성령(요 14:26, 15:26)을 기다리라고 하셨지요. 또한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라 하셨습니다(행 1:8).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곳은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했던 곳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목격한 500여 명 중에 120명이 그곳에 모여 성령 세례를 받고자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도행전 2장 1~4절에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사도와 성도들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 불같은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그들은 성령으로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 나라 방언을 했는데 그 소리가 굉장했습니다.
오순절을 맞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경건한 유대인들과 개종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다 놀라 기이히 여겼습니다. 모든 사람이 놀라고 당황하여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하고 서로 말하는데 어떤 이들은 "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사도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선포합니다. 이 사람들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대로(욜 2:28), 하나님의 영을 그들에게 부어 주신 까닭임을 전했습니다. 또한 구약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음을 외쳤습니다.
이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의 수가 무려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39절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신 대로입니다.
이를 계기로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졌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는 물론, 안디옥이라는 곳에도 교회가 생겨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이 시작되었으며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할 크리스천이 생겨났습니다.
사도행전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1~12장까지는 사도 베드로를 중심으로, 13~28장까지는 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셨는지에 대한 성령의 역사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도 바울은 로마제국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철저히 회개한 후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이방인 선교에 힘썼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칼로 목 베임을 당하는 그 순간까지 그는 아시아와 유럽에 많은 교회를 세우며 14권의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할 때의 일이 나옵니다. 당시 소아시아에 위치한 에베소는 아시아 선교의 전초기지가 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들렀을 때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묻자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사도 바울이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하고 재차 질문하자 제자들이 "요한의 세례로라"라고 대답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세례 요한의 물 세례는 받았지만 성령이 무엇인지, 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하는지조차 몰랐지요. 오늘날도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 세례는 받았지만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물 세례는 교회에 다니며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히 받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 세례는 내가 받고 싶다고 해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마음 중심에서 예수가 정녕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을 때 죄 사함의 은혜와 함께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물 세례와 성령 세례를 받는 시점이 다릅니다.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와 물 세례를 받은 후에 성령 세례를 받을 수도 있으며, 물 세례를 받기 전에 성령 세례를 먼저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3. 구원의 징표인 하나님의 선물, 성령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로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징표인 성령을 받아야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고전 2:10). 우리 마음 안에 거하시면서 마치 가정교사처럼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지요. 엔진이 있어야 자동차가 움직이는 것처럼, 성령은 우리가 천국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최상의 엔진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전에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며,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도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17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시고,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죄 가운데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 안에 의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 받기 이전에 구습을 좇아 살던 죄악 된 모습을 버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진리를 좇아 행할 수 있게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빛 가운데 행하며 온전한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보혜사(保惠師)'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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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 안에 알맞은 답을 쓰시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 )이다.
우리 마음 안에 거하시면서 마치 ( )처럼 우리에게 ( )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다.
3. 성령에 관한 성경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요한복음 14:16 ② 고린도후서 5:17
③ 요한복음 14:26 ④ 요한복음 15:26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57~68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로마 시민권'이란?
재산, 직업, 신앙, 사상 등의 자유가 보장되는 로마 시민의 여러 권리를 말한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붙잡혀 채찍질 당하게 되었을 때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혀 위기를 모면했다. 로마 시민권자는 정당한 재판 청구권 및 무참한 형벌에서 보호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로마 시민권은 부모에 의해 세습되기도 하고, 돈으로 살 수도 있었다(행 22:28).
교육목표 : 구원의 징표이자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받아 자신의 삶 속에서 항상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범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그를 잊지 않으셨고, 인생들이 하나님 뜻 가운데 살도록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주셨지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회복해 인생들과 다시 함께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고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가는 길을 열어 주셨지만, 인생들이 그 길을 끝까지 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보혜사(保惠師)'란 성도를 보호하고 돕는 '성령'을 지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려주신 것처럼,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 사랑을 다시 한 번 확증시켜 주셨습니다.
1.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
사도행전 1장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곧 보혜사 성령(요 14:26, 15:26)을 기다리라고 하셨지요. 또한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라 하셨습니다(행 1:8).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곳은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했던 곳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곳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목격한 500여 명 중에 120명이 그곳에 모여 성령 세례를 받고자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도행전 2장 1~4절에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사도와 성도들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 불같은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그들은 성령으로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 나라 방언을 했는데 그 소리가 굉장했습니다.
오순절을 맞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경건한 유대인들과 개종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다 놀라 기이히 여겼습니다. 모든 사람이 놀라고 당황하여 "이것이 도대체 어찌된 일이냐"하고 서로 말하는데 어떤 이들은 "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사도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선포합니다. 이 사람들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대로(욜 2:28), 하나님의 영을 그들에게 부어 주신 까닭임을 전했습니다. 또한 구약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음을 외쳤습니다.
이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의 수가 무려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39절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신 대로입니다.
이를 계기로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졌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는 물론, 안디옥이라는 곳에도 교회가 생겨 사도 바울의 전도여행이 시작되었으며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할 크리스천이 생겨났습니다.
사도행전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1~12장까지는 사도 베드로를 중심으로, 13~28장까지는 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셨는지에 대한 성령의 역사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도 바울은 로마제국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철저히 회개한 후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이방인 선교에 힘썼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칼로 목 베임을 당하는 그 순간까지 그는 아시아와 유럽에 많은 교회를 세우며 14권의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할 때의 일이 나옵니다. 당시 소아시아에 위치한 에베소는 아시아 선교의 전초기지가 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들렀을 때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묻자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합니다. 이에 사도 바울이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 하고 재차 질문하자 제자들이 "요한의 세례로라"라고 대답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세례 요한의 물 세례는 받았지만 성령이 무엇인지, 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하는지조차 몰랐지요. 오늘날도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 세례는 받았지만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물 세례는 교회에 다니며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히 받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 세례는 내가 받고 싶다고 해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마음 중심에서 예수가 정녕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을 때 죄 사함의 은혜와 함께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물 세례와 성령 세례를 받는 시점이 다릅니다.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와 물 세례를 받은 후에 성령 세례를 받을 수도 있으며, 물 세례를 받기 전에 성령 세례를 먼저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3. 구원의 징표인 하나님의 선물, 성령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로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징표인 성령을 받아야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고전 2:10). 우리 마음 안에 거하시면서 마치 가정교사처럼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지요. 엔진이 있어야 자동차가 움직이는 것처럼, 성령은 우리가 천국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최상의 엔진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전에 자신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며,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도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17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시고,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죄 가운데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 안에 의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 받기 이전에 구습을 좇아 살던 죄악 된 모습을 버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진리를 좇아 행할 수 있게 하십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빛 가운데 행하며 온전한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보혜사(保惠師)'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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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 안에 알맞은 답을 쓰시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 )이다.
우리 마음 안에 거하시면서 마치 ( )처럼 우리에게 ( )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다.
3. 성령에 관한 성경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요한복음 14:16 ② 고린도후서 5:17
③ 요한복음 14:26 ④ 요한복음 15:26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57~68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로마 시민권'이란?
재산, 직업, 신앙, 사상 등의 자유가 보장되는 로마 시민의 여러 권리를 말한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붙잡혀 채찍질 당하게 되었을 때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혀 위기를 모면했다. 로마 시민권자는 정당한 재판 청구권 및 무참한 형벌에서 보호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로마 시민권은 부모에 의해 세습되기도 하고, 돈으로 살 수도 있었다(행 22:28).
2013-01-27
제5과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빌 2:11
읽을말씀 : 빌 2:11 | 외울말씀 : 요 14:6 l 참고 말씀:행 3:6, 16:18, 엡 5:20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영적 권세를 알아 구원은 물론, 응답과 축복을 받아 성도들이 능력 있는 삶을 영위하게 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 응답과 축복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할 때 어떤 이들은 습관을 좇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기도 합니다. 과연 기도는 어떻게 마무리하는 것이 옳을까요? 혹여 "뭐 그런 것까지 신경 쓰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고, 그 권세가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1. 유일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성경은 예수님이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알려 줍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했고, 사도행전 4장 12절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든 인류는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말씀대로 영원히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데, 이를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신 것은 언제일까요?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을 때 비로소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구세주의 의미가 담긴 그리스도를 덧붙여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야 합니다(빌 2:6~11).
성경을 보면 이러한 영적 의미를 알았던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은 기도하거나 말씀을 전할 때 예수님이라 하지 않고 '주'나 '그리스도'를 덧붙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는 '예수 그리스도'에 그치지 않고 더욱 강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즐겨 썼습니다.
에베소서 5장 20절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했고, 로마서 7장 25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외에도 성경 곳곳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이 많습니다.
2.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과 원수 마귀 사단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찌하든지 믿음의 사람들이 범죄하도록 미혹하며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말씀했습니다.
이러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 권세와 능력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기 전의 호칭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호칭에는 우리를 구속하신 피의 의미와 함께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구세주로서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은 두려워 떨 수밖에 없고,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의미를 깨우치지 못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점과 구원의 섭리를 정확하게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을 뿐 아니라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를 바로 알아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따르는 권세
사도행전 3장 6절 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곧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자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어 뛰고 걸으며 하나님을 찬미했지요.
또 사도행전 16장 1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귀신 들린 사람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야만 하는지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만일 도둑이 옆에 있는데도 경찰이 그를 몰라본다면 도둑은 두려워하지 않고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도둑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잡힐 것이 분명하니 도둑은 경찰을 무서워하며 재빨리 도망치거나 숨어 버릴 것입니다.
원수 마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정확히 구원의 섭리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막연히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는 것은 그 권세가 전혀 달라집니다. 자신의 의로는 불가능한 일도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가능함을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기에 담대하고 능력 있는 기도가 되지요.
여러분이 기도로 악한 영을 물리칠 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원수 마귀 사단의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음을 알고, 승리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두려워 떨며 물러갑니다. 이런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심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혹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종종 어떤 분들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나사렛'을 넣은 이유는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자랐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나사렛이란 이름을 넣을 필요가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됩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역사되지 않는 경우
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오래하며 여러 직분이 있다 해도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간다면 영적인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기도를 해도 시험 환난이 떠나지 않지요. 마치 더러운 것에 벌레가 모여드는 것과 같이 원수 마귀 사단이 계속적으로 역사하며 괴롭히는 것입니다.
반면 비록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면 그 아이에게는 영적인 힘이 따르게 됩니다. 그 아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면 원수 마귀가 순종하여 떠나지요. 누구든지 정녕 진리 안에 살면서 거룩한 마음과 행실을 이룰 때는 자신의 삶에서 어둠이 물러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인정받는 사람이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악을 버리지 않으면 영적인 권세가 따르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고 악이 없는 성결한 사람만이 영적인 권세가 따르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결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마다 놀라운 응답과 축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비로소 구세주가 되셨다.
②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는'예수'가 아니라'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③'예수'의 이름은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한 자라는 뜻이다.
④ 죄 가운데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면 하나님의 역사가 따르지 않는다.
2. 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가 아니라"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라고 해야 할까요?
( )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47~56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나사렛'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까지 사셨던 남부 갈릴리에 있는 마을이다. 동정녀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수태 고지를 받았고(눅 1:26~33),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은 요셉의 본적지인 베들레헴이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과 함께 헤롯 왕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이후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자라셨고(눅 2:39~51), 30세 즈음 나사렛을 떠나셨다.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영적 권세를 알아 구원은 물론, 응답과 축복을 받아 성도들이 능력 있는 삶을 영위하게 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 응답과 축복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할 때 어떤 이들은 습관을 좇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기도 합니다. 과연 기도는 어떻게 마무리하는 것이 옳을까요? 혹여 "뭐 그런 것까지 신경 쓰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고, 그 권세가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1. 유일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성경은 예수님이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알려 줍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했고, 사도행전 4장 12절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든 인류는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말씀대로 영원히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데, 이를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신 것은 언제일까요?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을 때 비로소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구세주의 의미가 담긴 그리스도를 덧붙여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야 합니다(빌 2:6~11).
성경을 보면 이러한 영적 의미를 알았던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은 기도하거나 말씀을 전할 때 예수님이라 하지 않고 '주'나 '그리스도'를 덧붙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는 '예수 그리스도'에 그치지 않고 더욱 강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즐겨 썼습니다.
에베소서 5장 20절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했고, 로마서 7장 25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했습니다.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외에도 성경 곳곳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이 많습니다.
2.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과 원수 마귀 사단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찌하든지 믿음의 사람들이 범죄하도록 미혹하며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말씀했습니다.
이러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 권세와 능력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기 전의 호칭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호칭에는 우리를 구속하신 피의 의미와 함께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구세주로서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은 두려워 떨 수밖에 없고,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의미를 깨우치지 못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점과 구원의 섭리를 정확하게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을 뿐 아니라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를 바로 알아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따르는 권세
사도행전 3장 6절 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곧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자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어 뛰고 걸으며 하나님을 찬미했지요.
또 사도행전 16장 18절에 보면 사도 바울이 귀신 들린 사람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야만 하는지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만일 도둑이 옆에 있는데도 경찰이 그를 몰라본다면 도둑은 두려워하지 않고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도둑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잡힐 것이 분명하니 도둑은 경찰을 무서워하며 재빨리 도망치거나 숨어 버릴 것입니다.
원수 마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정확히 구원의 섭리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막연히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하는 것은 그 권세가 전혀 달라집니다. 자신의 의로는 불가능한 일도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가능함을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기에 담대하고 능력 있는 기도가 되지요.
여러분이 기도로 악한 영을 물리칠 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원수 마귀 사단의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음을 알고, 승리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두려워 떨며 물러갑니다. 이런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심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혹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종종 어떤 분들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나사렛'을 넣은 이유는 예수님이 나사렛에서 자랐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나사렛이란 이름을 넣을 필요가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됩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역사되지 않는 경우
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오래하며 여러 직분이 있다 해도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간다면 영적인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기도를 해도 시험 환난이 떠나지 않지요. 마치 더러운 것에 벌레가 모여드는 것과 같이 원수 마귀 사단이 계속적으로 역사하며 괴롭히는 것입니다.
반면 비록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면 그 아이에게는 영적인 힘이 따르게 됩니다. 그 아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면 원수 마귀가 순종하여 떠나지요. 누구든지 정녕 진리 안에 살면서 거룩한 마음과 행실을 이룰 때는 자신의 삶에서 어둠이 물러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인정받는 사람이라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악을 버리지 않으면 영적인 권세가 따르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고 악이 없는 성결한 사람만이 영적인 권세가 따르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성결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마다 놀라운 응답과 축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후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비로소 구세주가 되셨다.
② 주님이 부활하신 후에는'예수'가 아니라'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③'예수'의 이름은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한 자라는 뜻이다.
④ 죄 가운데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면 하나님의 역사가 따르지 않는다.
2. 왜"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가 아니라"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라고 해야 할까요?
( )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47~56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나사렛'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까지 사셨던 남부 갈릴리에 있는 마을이다. 동정녀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수태 고지를 받았고(눅 1:26~33), 아기 예수님이 탄생하신 곳은 요셉의 본적지인 베들레헴이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과 함께 헤롯 왕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이후 예수님은 나사렛에서 자라셨고(눅 2:39~51), 30세 즈음 나사렛을 떠나셨다.
2013-01-25
제4과예수님만이 구세주가 되신 이유
레 25:23~25
읽을말씀 : 레 25:23~25 | 외울말씀 : 행 4:12 ㅣ 참고 말씀:고전 15:21
교육목표 : 오직 예수님만이 구세주의 자격 조건을 갖추신 분임을 알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참된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한다.
오늘날은 종교 다원주의 영향으로 모든 종교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에 오르는 길은 달라도 정상은 같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한 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세주의 자격을 갖춘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일까요?
1.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
세상에도 법이 있듯이 영의 세계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망으로 가는 것도,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는 것도 영계의 법칙에 의한 것이지요.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한 후 인류가 사망으로 가게 된 것도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영계의 법칙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망이라는 형벌에서 놓여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영계의 법칙에 따라야 합니다.
영계의 법칙에는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죄를 속량할 수 있는 법도 있습니다.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가 죄를 지은 사람 대신 그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죄의 대가는 아무나 치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영계의 법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은 토지 무르기 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토지 무르기 법이란 이스라엘의 토지 거래에 관한 법입니다. 레위기 25장 23~25절에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말씀합니다.
근본적으로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대로 팔 수 없었습니다. 만약 가난하여 토지를 팔게 될 경우, 언제든지 근족이 대신 토지의 값을 지불하면 반드시 그 땅을 돌려주도록 하셨지요. 이러한 토지를 무르는 법칙 안에 인류가 구원받을 길이 제시되어 있는데 과연 무엇일까요?
2. 죄를 대속할 수 있는 구세주의 자격 조건
하나님의 소유인 토지를 팔고 사는 법은 근본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과 직접 관계되는 영계의 법칙입니다(창 3:19, 3:23). 이스라엘의 모든 토지가 하나님의 소유인 것처럼 아담과 그의 권세 또한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영영히 팔 수 없지요. 비록 아담이 범죄하여 원수 마귀의 종이 되어 모든 권세를 넘겨주었다 해도 장차 토지 무르기의 법칙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나타나면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토지 무르기 법칙에 근거하여 예수님만이 구세주가 되시는 네 가지 조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람이어야 합니다
토지를 팔았을 때 근족이 되찾아 올 수 있듯이(레 25:25), 죗값으로 원수 마귀 사단에게 팔린 사람을 대속할 이도 반드시 아담의 근족이어야 합니다. 아담의 근족이라는 것은 아담과 같이 영과 혼과 육을 가진 존재 곧 사람을 말하지요. 천사나 짐승은 우리 사람의 죗값을 대속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1절에도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말씀하신 대로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해 죄가 들어왔으니 죄를 대신 져 줄 수 있는 존재도 반드시 아담과 같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했고,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했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살과 뼈를 가진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성장 과정을 거치셨고, 배고픔과 목마름, 기쁨과 슬픔을 느끼셨지요. 또한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피를 흘리고 고통도 느끼셨습니다. 바로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증거이지요.
2)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사람은 이미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외모와 성격뿐 아니라 죄성까지 물려받습니다. 젖먹이 아이에게서도 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엄마가 다른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라도 하면 이내 그 아이를 엄마 품에서 밀쳐내려 합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앙~!' 하고 울음을 터트립니다. 아무도 아이에게 미움이나 시기, 질투를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렇게 타고난 죄성을 '원죄'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아담의 후손으로 오신다면 필연적으로 부모로부터 죄성을 타고날 수밖에 없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남녀의 결합으로 잉태된 사람은 모두 조상으로부터 원죄를 물려받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입니다.
3)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혀간 동료를 구해내려면 힘이 있어야 하듯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도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이자, 능력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다스리기 위해서는 원죄뿐 아니라 자범죄도 없어야 합니다. 원죄는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죄성을 말하고, 자범죄란 사람이 태어난 후 성장하면서 스스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원죄와 자범죄가 있기 때문에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은 원죄가 없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사셨기에 자범죄도 없습니다. 이로써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조건에 모두 부합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살면서 크고 작은 죄를 짓습니다. 설령 행함으로는 죄를 짓지 않는다 해도 마음으로 미워하거나 시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죄라 여기십니다(마 5:28 ; 요일 3:15). 그러니 죄 없다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4)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가령 동생이 빚으로 고통받으며 산다고 합시다. 그의 형은 동생의 빚을 갚아 줄 능력이 있는 재벌입니다. 하지만 형에게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만일 사랑이 없으셨다면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흉악한 죄인처럼 정죄받고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하는 엄청난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죄인 된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니 참으로 큰 사랑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요한일서 2장 2절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하신 대로이지요. 보통 사람이라면 "왜 아무 죄가 없는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합니까?"라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 처형을 기꺼이 받으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죄를 대속하려면 네 가지 조건을 다 갖추어야 하는데 예수님 외에 다른 분이 있을까요? 인류 역사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이 구세주 되심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의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죄인 된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 )
2. 사도행전 4장 12절을 암송하여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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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수님만이 구세주가 되시는 자격 조건 네 가지를 써 보세요.
첫째, ( )
둘째, ( )
셋째, ( )
넷째, ( )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40~4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흙으로 창조된 사람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말씀했고, 23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말씀했다. 이처럼 흙은 영적으로 사람을 의미하므로 토지 무르기 법칙 안에는 인간 구원의 길이 담겨 있다.
교육목표 : 오직 예수님만이 구세주의 자격 조건을 갖추신 분임을 알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참된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한다.
오늘날은 종교 다원주의 영향으로 모든 종교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에 오르는 길은 달라도 정상은 같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한 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세주의 자격을 갖춘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일까요?
1.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
세상에도 법이 있듯이 영의 세계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망으로 가는 것도,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는 것도 영계의 법칙에 의한 것이지요.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한 후 인류가 사망으로 가게 된 것도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영계의 법칙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망이라는 형벌에서 놓여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영계의 법칙에 따라야 합니다.
영계의 법칙에는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죄를 속량할 수 있는 법도 있습니다.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가 죄를 지은 사람 대신 그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죄의 대가는 아무나 치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영계의 법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은 토지 무르기 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토지 무르기 법이란 이스라엘의 토지 거래에 관한 법입니다. 레위기 25장 23~25절에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말씀합니다.
근본적으로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대로 팔 수 없었습니다. 만약 가난하여 토지를 팔게 될 경우, 언제든지 근족이 대신 토지의 값을 지불하면 반드시 그 땅을 돌려주도록 하셨지요. 이러한 토지를 무르는 법칙 안에 인류가 구원받을 길이 제시되어 있는데 과연 무엇일까요?
2. 죄를 대속할 수 있는 구세주의 자격 조건
하나님의 소유인 토지를 팔고 사는 법은 근본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과 직접 관계되는 영계의 법칙입니다(창 3:19, 3:23). 이스라엘의 모든 토지가 하나님의 소유인 것처럼 아담과 그의 권세 또한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영영히 팔 수 없지요. 비록 아담이 범죄하여 원수 마귀의 종이 되어 모든 권세를 넘겨주었다 해도 장차 토지 무르기의 법칙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나타나면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토지 무르기 법칙에 근거하여 예수님만이 구세주가 되시는 네 가지 조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람이어야 합니다
토지를 팔았을 때 근족이 되찾아 올 수 있듯이(레 25:25), 죗값으로 원수 마귀 사단에게 팔린 사람을 대속할 이도 반드시 아담의 근족이어야 합니다. 아담의 근족이라는 것은 아담과 같이 영과 혼과 육을 가진 존재 곧 사람을 말하지요. 천사나 짐승은 우리 사람의 죗값을 대속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1절에도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말씀하신 대로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해 죄가 들어왔으니 죄를 대신 져 줄 수 있는 존재도 반드시 아담과 같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했고,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했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살과 뼈를 가진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성장 과정을 거치셨고, 배고픔과 목마름, 기쁨과 슬픔을 느끼셨지요. 또한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피를 흘리고 고통도 느끼셨습니다. 바로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증거이지요.
2)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사람은 이미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외모와 성격뿐 아니라 죄성까지 물려받습니다. 젖먹이 아이에게서도 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엄마가 다른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라도 하면 이내 그 아이를 엄마 품에서 밀쳐내려 합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앙~!' 하고 울음을 터트립니다. 아무도 아이에게 미움이나 시기, 질투를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렇게 타고난 죄성을 '원죄'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아담의 후손으로 오신다면 필연적으로 부모로부터 죄성을 타고날 수밖에 없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남녀의 결합으로 잉태된 사람은 모두 조상으로부터 원죄를 물려받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입니다.
3)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혀간 동료를 구해내려면 힘이 있어야 하듯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도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사람들을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이자, 능력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다스리기 위해서는 원죄뿐 아니라 자범죄도 없어야 합니다. 원죄는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죄성을 말하고, 자범죄란 사람이 태어난 후 성장하면서 스스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원죄와 자범죄가 있기 때문에 인류를 구원할 수 있는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은 원죄가 없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사셨기에 자범죄도 없습니다. 이로써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조건에 모두 부합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살면서 크고 작은 죄를 짓습니다. 설령 행함으로는 죄를 짓지 않는다 해도 마음으로 미워하거나 시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죄라 여기십니다(마 5:28 ; 요일 3:15). 그러니 죄 없다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4)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가령 동생이 빚으로 고통받으며 산다고 합시다. 그의 형은 동생의 빚을 갚아 줄 능력이 있는 재벌입니다. 하지만 형에게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만일 사랑이 없으셨다면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흉악한 죄인처럼 정죄받고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하는 엄청난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죄인 된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으니 참으로 큰 사랑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요한일서 2장 2절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하신 대로이지요. 보통 사람이라면 "왜 아무 죄가 없는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합니까?"라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 처형을 기꺼이 받으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죄를 대속하려면 네 가지 조건을 다 갖추어야 하는데 예수님 외에 다른 분이 있을까요? 인류 역사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이 구세주 되심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의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죄인 된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 )
2. 사도행전 4장 12절을 암송하여 써 보세요.
----------------------------------------------------------
3. 예수님만이 구세주가 되시는 자격 조건 네 가지를 써 보세요.
첫째, ( )
둘째, ( )
셋째, ( )
넷째, ( )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40~4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흙으로 창조된 사람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말씀했고, 23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말씀했다. 이처럼 흙은 영적으로 사람을 의미하므로 토지 무르기 법칙 안에는 인간 구원의 길이 담겨 있다.
2013-01-18
제3과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
요 20:30~31
읽을말씀 : 요 20:30~31 | 외울말씀 : 행 2:36 ㅣ 참고 말씀:마 1:21
교육목표 :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를 깨닫게 한다.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이 외에도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는 등 인간 경작을 위해 베푸신 하나님의 섭리 안에는 놀라운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 경작을 위한 섭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목은 무엇일까요? 바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인간 구원의 길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얻기까지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나라마다 법이 있듯이, 영의 세계에도 법이 있어 구세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만 구원의 길을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1.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천국복음을 전하시며 놀라운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는 아직 십자가 처형을 당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날이 갈수록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자,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찌하든 예수님의 허물을 찾아 책잡으려고 했지요.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하나님과 성전을 모독했다는 누명을 씌웠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당시 유대 지역을 관할하던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끌려가 사형 언도를 받고 밤새 심문과 온갖 고초를 겪으신 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사랑하는 아들을 혹독한 십자가 처형에 내어주셨을까요? 이는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죄로 인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대신 죗값을 치러야 했지요. 성경을 보면 나무에 달린다는 것은 저주를 받았다는 증거이며, 반드시 생명과 일체인 피를 흘려야만 죄가 속해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갈 3:13 ; 히 9:22).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셔야 했고, 하나님께서도 이를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심으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2.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영의 세계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이 있습니다(롬 6:23). 이 법에 따라 죄가 있는 사람은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하여 모든 사람이 사망의 길로 가게 될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놀라운 지혜 가운데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때가 이르기까지 비밀리에 감추어 두셨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7~8절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했고, 골로새서 1장 27절에는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은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드디어 공개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으면 구원과 영생의 축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받아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무시며 제자들에게 부활의 믿음과 천국 소망을 심어 주셨습니다. 승천을 앞두고는 성령이 임하실 것을 말씀하시며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당부하셨지요(행 1:8). 이처럼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남기신 예수 그리스도는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구세주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지금도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하시며 천국집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이제 때가 되면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2천여 년 전에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셨던 초라한 모습과는 달리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나팔 소리 속에 장엄하고 영광스럽게 오십니다(살전 4:16). 신부단장에 힘쓴 성도들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에서 신랑 되신 주님을 만나 7년간 혼인 잔치를 치릅니다. 그 후 주님과 함께 지상에서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다가 백보좌 대심판을 거쳐 영원한 천국에서 세세토록 살아갑니다.
3.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
사람들은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보여 주셨습니다(요 20:30~31). 부활하신 후에도 예루살렘과 갈릴리를 오가며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의심 많은 도마는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보고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마음 중심에서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모든 의심을 버리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였지요. 결국 도마는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힌두교의 나라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순교하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부활하신 모습을 직접 목도한 제자들은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구세주로 영접하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지요.
여기서 우리가 깨우쳐야 할 것은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입니다. 도마의 경우만 봐도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에는 참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후 그리스도로서 사역하실 때에는 단번에 영적인 고백을 하며 참 믿음과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와 '그리스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말씀합니다. 즉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미래형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란 '메시아'라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서 '구세주'라는 뜻이며 완료형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예수'가 이름이라면 '그리스도'는 직함과 같아서 어떤 자격을 갖출 때 주어지는 공식적인 호칭입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훌륭한 의사를 꿈꾼다고 해서 의사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시험에 통과하고 정해진 코스를 밟은 후에야 의사라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얻기까지 특별한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탄생부터 30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3년의 공생애,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신 후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그리스도가 되셨지요. 예수님은 부활하신 그 순간부터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얻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와 '그리스도'라는 두 이름 사이에는 '구원할 자'와 '구원한 자'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부활 사건 전에는 '예수'라는 호칭을 쓰는 것이 옳지만, 부활 사건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 혹은 '주 예수, 주님'이라는 호칭을 써야 합니다. 성경을 보아도 부활, 승천 사건 이후에는 '예수'라는 호칭에 '주'나 '그리스도'를 덧붙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는 왜 사랑하는 아들을 혹독한 십자가 처형에 내어주셨을까요?
--------------------------------------------------------------
2. 예수와 그리스도의 의미를 써 보세요.
① '예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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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그리스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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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1장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 36-39페이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십자가 처형법'
십자가 처형법은 너무 가혹하고 치욕적이어서 로마 사람들에게는 행하지 않았다. 유대인들도 나무에 매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여겼다(신 21:22~23). 그러나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대신 저주를 받아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과 수치를 당하셨다. 그래서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속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것이다.
교육목표 :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를 깨닫게 한다.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시고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이 외에도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는 등 인간 경작을 위해 베푸신 하나님의 섭리 안에는 놀라운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 경작을 위한 섭리 가운데 가장 중요한 대목은 무엇일까요? 바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처형을 당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인간 구원의 길을 완성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얻기까지 특별한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나라마다 법이 있듯이, 영의 세계에도 법이 있어 구세주가 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만 구원의 길을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1. 우리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신 후 천국복음을 전하시며 놀라운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고백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는 아직 십자가 처형을 당할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은 날이 갈수록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많아지자, 위기의식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찌하든 예수님의 허물을 찾아 책잡으려고 했지요. 그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하나님과 성전을 모독했다는 누명을 씌웠습니다. 결국 예수님은 당시 유대 지역을 관할하던 로마 총독 빌라도에게 끌려가 사형 언도를 받고 밤새 심문과 온갖 고초를 겪으신 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사랑하는 아들을 혹독한 십자가 처형에 내어주셨을까요? 이는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죄로 인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대신 죗값을 치러야 했지요. 성경을 보면 나무에 달린다는 것은 저주를 받았다는 증거이며, 반드시 생명과 일체인 피를 흘려야만 죄가 속해진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갈 3:13 ; 히 9:22).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셔야 했고, 하나님께서도 이를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심으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셨습니다.
2.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영의 세계에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이 있습니다(롬 6:23). 이 법에 따라 죄가 있는 사람은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하지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부터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하여 모든 사람이 사망의 길로 가게 될 것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놀라운 지혜 가운데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때가 이르기까지 비밀리에 감추어 두셨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7~8절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박지 아니하였으리라" 했고, 골로새서 1장 27절에는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은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드디어 공개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으면 구원과 영생의 축복을 얻게 된 것입니다.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받아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가 영생복락을 누리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라운 축복인지요.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40일 동안 이 땅에 머무시며 제자들에게 부활의 믿음과 천국 소망을 심어 주셨습니다. 승천을 앞두고는 성령이 임하실 것을 말씀하시며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땅 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당부하셨지요(행 1:8). 이처럼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마지막 말씀을 남기신 예수 그리스도는 수많은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구세주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지금도 성도들을 위해 중보기도하시며 천국집을 예비하고 계십니다.
이제 때가 되면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해 다시 오실 것입니다. 2천여 년 전에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오셨던 초라한 모습과는 달리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나팔 소리 속에 장엄하고 영광스럽게 오십니다(살전 4:16). 신부단장에 힘쓴 성도들은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어 공중에서 신랑 되신 주님을 만나 7년간 혼인 잔치를 치릅니다. 그 후 주님과 함께 지상에서 천 년 동안 왕 노릇하다가 백보좌 대심판을 거쳐 영원한 천국에서 세세토록 살아갑니다.
3.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
사람들은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땅에서 사역하시는 동안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보여 주셨습니다(요 20:30~31). 부활하신 후에도 예루살렘과 갈릴리를 오가며 많은 사람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의심 많은 도마는 3년 동안이나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보고도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마음 중심에서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에는 모든 의심을 버리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 고백하였지요. 결국 도마는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힌두교의 나라 인도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순교하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부활하신 모습을 직접 목도한 제자들은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구세주로 영접하니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지요.
여기서 우리가 깨우쳐야 할 것은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입니다. 도마의 경우만 봐도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서 사역하실 때에는 참 믿음을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부활하신 후 그리스도로서 사역하실 때에는 단번에 영적인 고백을 하며 참 믿음과 영생을 얻게 됩니다.
그러면 '예수'와 '그리스도'는 구체적으로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말씀합니다. 즉 '예수'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미래형의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란 '메시아'라는 히브리어를 헬라어로 번역한 것으로서 '구세주'라는 뜻이며 완료형의 의미가 있습니다. 사실 '예수'가 이름이라면 '그리스도'는 직함과 같아서 어떤 자격을 갖출 때 주어지는 공식적인 호칭입니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훌륭한 의사를 꿈꾼다고 해서 의사라고 부르지는 않습니다. 열심히 공부하여 시험에 통과하고 정해진 코스를 밟은 후에야 의사라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도 그리스도라는 호칭을 얻기까지 특별한 과정을 거치셨습니다. 탄생부터 30년간의 준비기간을 거쳐 3년의 공생애, 그리고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신 후 삼 일 만에 부활하심으로써 그리스도가 되셨지요. 예수님은 부활하신 그 순간부터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얻으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와 '그리스도'라는 두 이름 사이에는 '구원할 자'와 '구원한 자'라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부활 사건 전에는 '예수'라는 호칭을 쓰는 것이 옳지만, 부활 사건 후에는 '예수 그리스도' 혹은 '주 예수, 주님'이라는 호칭을 써야 합니다. 성경을 보아도 부활, 승천 사건 이후에는 '예수'라는 호칭에 '주'나 '그리스도'를 덧붙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는 왜 사랑하는 아들을 혹독한 십자가 처형에 내어주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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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예수와 그리스도의 의미를 써 보세요.
① '예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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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그리스도'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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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1장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 36-39페이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십자가 처형법'
십자가 처형법은 너무 가혹하고 치욕적이어서 로마 사람들에게는 행하지 않았다. 유대인들도 나무에 매달린 자는 저주를 받은 자라고 여겼다(신 21:22~23). 그러나 예수님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대신 저주를 받아 십자가의 극심한 고통과 수치를 당하셨다. 그래서 십자가는 그리스도의 대속과 구속을 상징하는 용어로 사용되는 것이다.
2013-01-11
제2과구세주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요 1:1~4
읽을말씀 : 요 1:1~4 | 외울말씀 : 요 3:16 ㅣ 참고 말씀:빌 2:6~8
교육목표 :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한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 성경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앞서 전하였고, 신약 성경은 이 땅에 오셔서 구약의 예언과 구속 사업을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근본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지요(요 1:2~3).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는다면 어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혹여라도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이나 위대한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인이 되려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왜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이신지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를 알기 위해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 예수님의 근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랑으로 시작된 태초의 비밀
요한복음 1장 1~3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태초는 사람의 시간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는 아득히 오래전 일입니다.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전, 그때에는 우주가 하나였고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지구도, 푸른 하늘도, 별들도, 사람도, 동물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광활한 우주의 주인으로 계셨지요.
이처럼 태초에 하나님은 어떤 형체가 없이 영롱한 빛으로 온 우주를 감싸고 그 안에 소리를 머금고 '말씀'으로 계셨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홀로 우주 공간을 다스리시던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엔가 이러한 마음을 품으셨습니다. '이 넓고도 오묘한 공간에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감동이 될까….' 하시며 한 가지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으려는 계획입니다. 마치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고 열심히 가꿔 열매를 거두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형상을 닮은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 '인간 경작'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래서 영롱한 빛과 웅장한 소리로 계시던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총감독으로서, 성자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구세주로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보혜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때가 이르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 1:26) 하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담긴 생기를 불어넣어 하나님 마음을 닮은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에덴동산을 창설하여 첫 사람 아담을 이끌어 들이시고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금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곧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지요. 창세기 2장 16~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하는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죄로 사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담에게 명하신 후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끝없이 넓은 에덴동산에 아담 한 사람만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 여자를 창조하시고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아내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에서 많은 자녀를 낳으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간교한 뱀의 유혹을 받은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줍니다. 아담은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한 채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받아서 먹었습니다(창 3:6). 이로써 그들은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 말씀대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더는 에덴동산에서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범죄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권세와 축복을 잃고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나 험난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죄성을 이어받아 영원한 사망인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계획하실 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면서 만세 전부터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성자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길로 가는 인류에게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온 세상과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2천여 년 전, 예수님은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있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지요.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 왜 초라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셔야 했을까요?
첫 사람 아담은 영과 혼과 육으로 지음 받아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한 후에는 '정녕 죽으리라' 한 대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되었습니다. 이후 원수 마귀 사단의 주관 아래 아담의 후손들은 점점 정욕을 좇아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전 3:18). 이러한 인생들의 죄를 대속하고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지요.
요한복음 6장 51절에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양식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듯이 사람의 영도 영의 양식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말씀 자체이신(요 1:1, 14)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짐승과 같은 인류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게 태어나셨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가득했고, 수많은 천군 천사가 함께하며 구세주의 탄생을 기뻐했습니다. 그날 밤 들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은 천사에게서 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전해 듣고 찾아와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렸습니다(눅 2:8~20).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셨지만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되어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입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이 아니기에 원죄(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가 없으며 성장하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만 사셨기 때문에 자범죄(스스로 짓는 죄)도 없으셨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틈만 나면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준비하셨지요.
마침내 30세가 되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는 한편,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치료하셨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을 온전케 하셨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셨습니다. 또 물 위를 걸으며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는 등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 말씀의 권세와 능력에 놀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음 주에 이어서 공부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 년)
2. 신앙인의 기본 책자 15페이지를 보고 다음 약자의 뜻을 써 보세요.
① A.D. (Anno Domini: )
② B.C. (Before Christ: )
3. 요한복음 3장 16절, 마태복음 16장 16절, 빌립보서 2장 6~8절을 찾아 함께 읽어보세요. 그리고 공통점은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 )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장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 3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태초(창세기) VS 태초(요한복음)
창세기 1장 1절에서의 '태초'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시점을 가리킨다. 반면에 요한복음 1장 1절에서의 '태초'는 창조 이전, 사람의 한계로 이해할 수 없는 아득히 오래전을 말하므로 이 두 말씀에서 나타내는 '태초'는 전혀 시점이 다르다.
교육목표 : 예수님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로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한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 성경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앞서 전하였고, 신약 성경은 이 땅에 오셔서 구약의 예언과 구속 사업을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근본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지요(요 1:2~3).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는다면 어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혹여라도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이나 위대한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인이 되려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왜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이신지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를 알기 위해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 예수님의 근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랑으로 시작된 태초의 비밀
요한복음 1장 1~3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태초는 사람의 시간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는 아득히 오래전 일입니다.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전, 그때에는 우주가 하나였고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지구도, 푸른 하늘도, 별들도, 사람도, 동물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광활한 우주의 주인으로 계셨지요.
이처럼 태초에 하나님은 어떤 형체가 없이 영롱한 빛으로 온 우주를 감싸고 그 안에 소리를 머금고 '말씀'으로 계셨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홀로 우주 공간을 다스리시던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엔가 이러한 마음을 품으셨습니다. '이 넓고도 오묘한 공간에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감동이 될까….' 하시며 한 가지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으려는 계획입니다. 마치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고 열심히 가꿔 열매를 거두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형상을 닮은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 '인간 경작'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래서 영롱한 빛과 웅장한 소리로 계시던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총감독으로서, 성자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구세주로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보혜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때가 이르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창 1:26) 하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담긴 생기를 불어넣어 하나님 마음을 닮은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에덴동산을 창설하여 첫 사람 아담을 이끌어 들이시고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금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곧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지요. 창세기 2장 16~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하셨습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하는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죄로 사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담에게 명하신 후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끝없이 넓은 에덴동산에 아담 한 사람만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 여자를 창조하시고 돕는 배필로 주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아내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에서 많은 자녀를 낳으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간교한 뱀의 유혹을 받은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줍니다. 아담은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한 채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받아서 먹었습니다(창 3:6). 이로써 그들은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 말씀대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더는 에덴동산에서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범죄함으로 하나님이 주신 권세와 축복을 잃고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나 험난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죄성을 이어받아 영원한 사망인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계획하실 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면서 만세 전부터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성자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길로 가는 인류에게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온 세상과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2천여 년 전, 예수님은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있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지요.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 왜 초라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셔야 했을까요?
첫 사람 아담은 영과 혼과 육으로 지음 받아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한 후에는 '정녕 죽으리라' 한 대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이로써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되었습니다. 이후 원수 마귀 사단의 주관 아래 아담의 후손들은 점점 정욕을 좇아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전 3:18). 이러한 인생들의 죄를 대속하고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은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지요.
요한복음 6장 51절에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양식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듯이 사람의 영도 영의 양식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말씀 자체이신(요 1:1, 14)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짐승과 같은 인류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게 태어나셨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가득했고, 수많은 천군 천사가 함께하며 구세주의 탄생을 기뻐했습니다. 그날 밤 들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은 천사에게서 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전해 듣고 찾아와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렸습니다(눅 2:8~20).
예수님은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셨지만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되어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입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이 아니기에 원죄(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가 없으며 성장하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만 사셨기 때문에 자범죄(스스로 짓는 죄)도 없으셨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틈만 나면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준비하셨지요.
마침내 30세가 되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는 한편,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치료하셨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을 온전케 하셨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셨습니다. 또 물 위를 걸으며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는 등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 말씀의 권세와 능력에 놀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이때 예수님은 제자들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경계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음 주에 이어서 공부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 년)
2. 신앙인의 기본 책자 15페이지를 보고 다음 약자의 뜻을 써 보세요.
① A.D. (Anno Domini: )
② B.C. (Before Christ: )
3. 요한복음 3장 16절, 마태복음 16장 16절, 빌립보서 2장 6~8절을 찾아 함께 읽어보세요. 그리고 공통점은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 )
● 금주 과제
[신앙인의 기본] 책자 1장 예수와 그리스도의 차이, 3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태초(창세기) VS 태초(요한복음)
창세기 1장 1절에서의 '태초'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시점을 가리킨다. 반면에 요한복음 1장 1절에서의 '태초'는 창조 이전, 사람의 한계로 이해할 수 없는 아득히 오래전을 말하므로 이 두 말씀에서 나타내는 '태초'는 전혀 시점이 다르다.
2013-01-04
제1과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사 60:1
읽을말씀 : 사 60:1 | 외울말씀 : 사 60:1 l 참고 말씀:요일 1:5, 엡 5:8
교육목표 :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에서 일어나 빛을 발함으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밤이 깊고 어둠이 짙어 갈수록 사람들은 빛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그 가치는 더욱 커지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에서 수많은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빛은 그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영의 사람이 되어 더욱 찬란히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새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명령이요, 그들의 영광스런 미래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은 온통 절망과 어둠으로 가득했습니다. 온 나라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숭배하고 범죄하며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듣지 않고 계속 악에 악을 더해 갔습니다.
더구나 앗수르를 비롯한 주변 국가의 위협이 도사리고 국력은 쇠퇴해질 대로 쇠퇴해졌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이 심판을 받을 것과 이스라엘에 다시 영광스러운 미래와 메시아의 도래를 약속하시며 본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날은 이사야 당시보다 더욱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러한 때 당당히 일어나 여호와의 영광의 빛을 만방에 비추는 사명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무엇으로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장 48절에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곧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여 주어야 믿는다는 것이지요.
참된 진리가 없어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섭리와 뜻이 담긴 십자가의 도를 밝히 깨닫게 해 줄 생명의 말씀을 전하되, 따르는 기사와 표적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확증해야 합니다. 따라서 값없이 구원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천국을 소망하는 거룩한 성도들이라면 자원하는 심령으로 이러한 하나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이루려면
1)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둠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빛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셨고, 요한복음 8장 12절에는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말씀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빛의 근원되신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고 권면하는 것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엡 5:9)을 좇아 행해야 하지요.
어둠에 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둠에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비추이면 무엇이 어둠이고, 빛인지가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 들어오면 들어오는 만큼 전에 행하던 죄들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요.
각 사람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에 이루었고, 악을 버려 성결되었느냐에 따라 빛을 비추는 힘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빛을 소유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당당히 하나님의 역사들을 나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둠의 세력과 싸우다가 그만 힘을 잃고 어둠에 묻혀 버리기도 하지요.
분명한 것은 빛이 임하면 임하는 만큼 어둠은 반드시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사 흑암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그 빛 가운데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을 비추는 큰 빛으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생명의 빛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바로 내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넓게는 사회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으며, 마침내는 세계 만방에 일어나 마음껏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2)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권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는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어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셨으며(요 11장), 하나님의 권능을 받았던 사도 바울에게는 희한한 능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으며(행 19:12), 베드로 사도의 그림자만 스쳐도 병든 사람이 낫고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뿐 아니라, 빌립 집사나 스데반 집사와 같은 성도들도 권능을 베풀며 복음을 증거하는 곳곳마다 수많은 사람이 주께로 나아오도록 놀라운 역사를 나타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종이 아니라, 성도들이라 해도 권능을 받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그릇을 갖추어야 합니다. 곧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주님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온전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권능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흠이 없고 온유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권능은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가며 불같은 기도를 쌓아야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받아 온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눈으로 목격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만약 핍박이 두려워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하는 자들이 없다면 들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른 성도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 생명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여 가정과 직장 등을 복음화시켜야 합니다.
빛이 임하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듯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들을 선포할 때 이것이 빛이 되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다 깨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게 되지요. 이제는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생명 다해 복음 증거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서신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도 된 자신을 소개하며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비록 옥에 갇혀 매인 몸이 되었어도 편지로 성도들을 깨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결과, 성도들이 박해를 넉넉히 이겨내고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은 든든히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증인된 우리도 어찌하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어느 곳에 있든지 '일어나 빛을 발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
2.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②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③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이사야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없이 선포하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많이 하였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유다와 열방을 향해 가깝고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였다. 특히 유다의 정치, 도덕, 종교적인 부패상을 비판하면서 유다가 살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외치며,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의 약속을 전하였다.
교육목표 :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에서 일어나 빛을 발함으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밤이 깊고 어둠이 짙어 갈수록 사람들은 빛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그 가치는 더욱 커지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에서 수많은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빛은 그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영의 사람이 되어 더욱 찬란히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새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명령이요, 그들의 영광스런 미래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은 온통 절망과 어둠으로 가득했습니다. 온 나라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숭배하고 범죄하며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듣지 않고 계속 악에 악을 더해 갔습니다.
더구나 앗수르를 비롯한 주변 국가의 위협이 도사리고 국력은 쇠퇴해질 대로 쇠퇴해졌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이 심판을 받을 것과 이스라엘에 다시 영광스러운 미래와 메시아의 도래를 약속하시며 본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날은 이사야 당시보다 더욱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러한 때 당당히 일어나 여호와의 영광의 빛을 만방에 비추는 사명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무엇으로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4장 48절에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곧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여 주어야 믿는다는 것이지요.
참된 진리가 없어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섭리와 뜻이 담긴 십자가의 도를 밝히 깨닫게 해 줄 생명의 말씀을 전하되, 따르는 기사와 표적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확증해야 합니다. 따라서 값없이 구원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천국을 소망하는 거룩한 성도들이라면 자원하는 심령으로 이러한 하나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이루려면
1)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둠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빛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셨고, 요한복음 8장 12절에는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말씀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빛의 근원되신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고 권면하는 것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엡 5:9)을 좇아 행해야 하지요.
어둠에 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둠에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의 진리의 빛이 비추이면 무엇이 어둠이고, 빛인지가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 들어오면 들어오는 만큼 전에 행하던 죄들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요.
각 사람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에 이루었고, 악을 버려 성결되었느냐에 따라 빛을 비추는 힘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빛을 소유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당당히 하나님의 역사들을 나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둠의 세력과 싸우다가 그만 힘을 잃고 어둠에 묻혀 버리기도 하지요.
분명한 것은 빛이 임하면 임하는 만큼 어둠은 반드시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사 흑암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그 빛 가운데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을 비추는 큰 빛으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생명의 빛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바로 내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넓게는 사회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으며, 마침내는 세계 만방에 일어나 마음껏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2)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권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는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어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셨으며(요 11장), 하나님의 권능을 받았던 사도 바울에게는 희한한 능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으며(행 19:12), 베드로 사도의 그림자만 스쳐도 병든 사람이 낫고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뿐 아니라, 빌립 집사나 스데반 집사와 같은 성도들도 권능을 베풀며 복음을 증거하는 곳곳마다 수많은 사람이 주께로 나아오도록 놀라운 역사를 나타냈습니다.
이와 같이 주의 종이 아니라, 성도들이라 해도 권능을 받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그릇을 갖추어야 합니다. 곧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주님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온전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권능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흠이 없고 온유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권능은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가며 불같은 기도를 쌓아야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받아 온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눈으로 목격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만약 핍박이 두려워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하는 자들이 없다면 들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른 성도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 생명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여 가정과 직장 등을 복음화시켜야 합니다.
빛이 임하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듯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들을 선포할 때 이것이 빛이 되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다 깨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게 되지요. 이제는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생명 다해 복음 증거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서신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도 된 자신을 소개하며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비록 옥에 갇혀 매인 몸이 되었어도 편지로 성도들을 깨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결과, 성도들이 박해를 넉넉히 이겨내고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은 든든히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주님의 증인된 우리도 어찌하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어느 곳에 있든지 '일어나 빛을 발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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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②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③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이사야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없이 선포하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많이 하였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유다와 열방을 향해 가깝고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였다. 특히 유다의 정치, 도덕, 종교적인 부패상을 비판하면서 유다가 살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외치며,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의 약속을 전하였다.
2012-12-28
제52과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10~12
읽을말씀 : 마 5:10~12 | 외울말씀 : 마 5:10 ㅣ 참고 말씀:막 10:30
교육목표 : 주님을 위해 고난과 핍박을 받아도 기뻐하고 즐거워함으로 하늘의 큰 상급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마태복음 5장 10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핍박받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핍박받는 것이 참되고 영원한 복이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만큼, 영생의 축복과 이 땅에서도 복을 받게 되는데, 핍박도 겸하여 받는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30절에는 주와 그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가족이나 전토를 버린 사람에 대해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지요. 그러면 우리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1.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진리와 선과 빛을 좇아 살아갈 때 받는 핍박을,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이라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면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 보면 어려움을 당하거나 애매히 핍박을 받기도 하지요.
그러면 왜 주님을 믿으면 고난을 받는 것일까요? 이는 물과 기름이 하나 될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말씀하신 대로 주님을 믿고 말씀대로 사는 것은 영적으로 빛에 속합니다(요일 1:5).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주인은 어두움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입니다(엡 6:12). 그러니 원수 마귀 사단은 빛의 자녀들을 싫어하지요.
빛이 비추이면 어두움이 사라지듯이 빛이신 주님을 믿는 성도들이 많아질수록 어두움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의 영역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니 원수 마귀 사단은 자기에게 속한 세상 사람들을 주관하여, 빛에 속한 성도들을 핍박함으로 주를 믿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을 하면서 핍박받는 경우
1)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경우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기 시작하면 여러 모양으로 핍박이 오기도 합니다. 세상에 있을 때는 친구들과 만나면 술도 마시고 비진리의 말과 행동으로 어울렸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영접하고 나서는 술도 끊고 거룩하게 행동하려고 하니까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지고 싫은 소리를 듣게 되지요.
직장에서 주일에 체육대회나 친목회가 있으면, 주일을 지키는 성도들은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회사생활하면 승진하기 어렵다."며 압박을 가하지요. 복음화 되지 않은 가정에서는 제사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핍박을 합니다. 또 남들은 적당히 속이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씀대로 정직하게 행하니, 속이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싫어하지요. 세상 사람들은 윗사람이 있을 때는 섬기고 비위를 맞추다가도, 자리를 비우면 험담하고 자기 유익에 따라 잘 변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진실히 행하고 자기의 유익에 따라 변하지 않지요.
세상에서는 이런 경우들이 핍박거리가 될 수 있지만, 지나고 보면 회사에서도, 사람들과 관계에서도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을 봅니다. 즉 선과 사랑으로 승리해 가기 때문에 핍박이 물러갈 수밖에 없지요. 나아가 핍박을 이겨 나감으로 믿음이 더 장성해 가고, 주변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으니 영육 간에 축복인 것입니다.
2) 자신의 잘못이나 지혜가 부족해서 핍박받는 경우
의를 행함으로 핍박받는 경우 외에 지혜가 부족하거나 본인의 잘못으로 핍박받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온 집에 충성하지 못해서, 주변에 덕이 되지 못해 욕을 먹거나 어려움을 받는 일도 발생하지요.
가령, 여 성도님이 게을러서 집 안 청소나 식사 준비를 해 놓지 않고, 교회 일에 바쁘다면 핍박을 받게 됩니다. 이때 집안을 돌보지 못한 것이 문제인데 정작 핍박받은 당사자는 자신이 하나님 일 때문에 그렇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직장에서도 교회 간다면서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실수를 잘하며 불성실합니다. 그러면서 동료들을 전도한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요. "교회 갈 시간에 자기 일이나 잘하지."라는 소리나 듣게 되지요.
그러므로 의를 위해 핍박받는다면 감사하고 기뻐함으로 승리하시되, 혹여 자신의 부족한 모습으로 인해 핍박을 받는다면, 신속히 고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3.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10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악이나 불법으로 인해 받는 핍박은 복이나 상급이 될 수 없지만,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기에 복되다 하신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면 믿음이 장성하여 하나님께 축복들을 크게 받아갈 뿐만 아니라, 더 좋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팔복의 첫 번째 복인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소유하는 '천국'과, 여덟 번째 복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사람이 소유하는 '천국'은 어떻게 다를까요? 전자가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천국이라면, 후자는 각 사람이 의를 행함으로 핍박을 받은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보다 세밀한 의미에서의 천국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게 되면 그로 인해 믿음이 더욱 견고해집니다. 핍박을 받으면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진리로 인내함으로 어린아이 믿음에서 점차 청년의 믿음으로, 아비의 믿음으로 장성해 가기 때문이지요. 고난당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마음속 깊이 있는 비진리까지도 발견하여 버리니, 온유함과 화평함을 이루며,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1절에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얼마나 의를 행하여 마음을 변화시켰느냐에 따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말해 줍니다.
4. 주를 위해 받은 핍박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함으로 의를 온전히 이루었다 해도 모든 핍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를 위해 받는 핍박' 곧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꾼 된 사람들이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말씀하시지요. 예부터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누구보다도 근본 하나님의 본체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흠도 티도 없는 분이셨지만 죄인들의 형벌을 친히 당하셨습니다. 구원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채찍에 맞으셨고, 온갖 조롱과 멸시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요.
주님을 위해 많은 고난을 받고 생명까지 드렸던 사도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고 담대히 고백하였지요(딤후 4:7).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위해 핍박받고 순교했던 사람들의 충성과 수고를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넘치는 영광과 상급으로 갚아 주시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를 확실히 보여 주십니다.
영혼이 잘되는 축복은 물론,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고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지요. 혹여 주님을 위해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장차 천국에서 받게 될 영원한 상급을 바라봄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심령이 가난한 자가 들어가는 '천국'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은 어떻게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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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앙생활을 바르게 해서 핍박받은 경우나 자신의 잘못이나 지혜가 부족해서 핍박받은 경우가 있다면 함께 나눠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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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 별과 별의 영광'이란?(고전 15:41)
·해의 영광 - 아비들의 믿음으로 3천층 또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
·달의 영광 - 청년들의 믿음으로 2천층에 들어가는 사람의 영광
·별의 영광, 별과 별의 영광 - 아이들의 믿음으로 1천층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을 뜻한다.
이처럼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은 각각 큰 차이가 난다. 또한 밤하늘의 무수한 별의 크기나 밝기가 다르듯이 별마다 영광이 다르다. 낙원에 들어가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 한 일이 없으므로 상급이 없고 영광이라고 표현하지도 않는다.
교육목표 : 주님을 위해 고난과 핍박을 받아도 기뻐하고 즐거워함으로 하늘의 큰 상급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마태복음 5장 10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 핍박받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핍박받는 것이 참되고 영원한 복이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린 만큼, 영생의 축복과 이 땅에서도 복을 받게 되는데, 핍박도 겸하여 받는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30절에는 주와 그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가족이나 전토를 버린 사람에 대해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말씀하지요. 그러면 우리가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1.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진리와 선과 빛을 좇아 살아갈 때 받는 핍박을, 의를 위하여 받는 핍박이라 말합니다.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지 않고 적당히 타협하면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다 보면 어려움을 당하거나 애매히 핍박을 받기도 하지요.
그러면 왜 주님을 믿으면 고난을 받는 것일까요? 이는 물과 기름이 하나 될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말씀하신 대로 주님을 믿고 말씀대로 사는 것은 영적으로 빛에 속합니다(요일 1:5). 그런데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주인은 어두움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입니다(엡 6:12). 그러니 원수 마귀 사단은 빛의 자녀들을 싫어하지요.
빛이 비추이면 어두움이 사라지듯이 빛이신 주님을 믿는 성도들이 많아질수록 어두움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의 영역이 줄어들게 됩니다. 그러니 원수 마귀 사단은 자기에게 속한 세상 사람들을 주관하여, 빛에 속한 성도들을 핍박함으로 주를 믿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을 하면서 핍박받는 경우
1)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경우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기 시작하면 여러 모양으로 핍박이 오기도 합니다. 세상에 있을 때는 친구들과 만나면 술도 마시고 비진리의 말과 행동으로 어울렸습니다. 그런데 주님을 영접하고 나서는 술도 끊고 거룩하게 행동하려고 하니까 친구들과 사이가 멀어지고 싫은 소리를 듣게 되지요.
직장에서 주일에 체육대회나 친목회가 있으면, 주일을 지키는 성도들은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회사생활하면 승진하기 어렵다."며 압박을 가하지요. 복음화 되지 않은 가정에서는 제사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핍박을 합니다. 또 남들은 적당히 속이는데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씀대로 정직하게 행하니, 속이고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싫어하지요. 세상 사람들은 윗사람이 있을 때는 섬기고 비위를 맞추다가도, 자리를 비우면 험담하고 자기 유익에 따라 잘 변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진실히 행하고 자기의 유익에 따라 변하지 않지요.
세상에서는 이런 경우들이 핍박거리가 될 수 있지만, 지나고 보면 회사에서도, 사람들과 관계에서도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을 봅니다. 즉 선과 사랑으로 승리해 가기 때문에 핍박이 물러갈 수밖에 없지요. 나아가 핍박을 이겨 나감으로 믿음이 더 장성해 가고, 주변 사람들에게 존중을 받으니 영육 간에 축복인 것입니다.
2) 자신의 잘못이나 지혜가 부족해서 핍박받는 경우
의를 행함으로 핍박받는 경우 외에 지혜가 부족하거나 본인의 잘못으로 핍박받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온 집에 충성하지 못해서, 주변에 덕이 되지 못해 욕을 먹거나 어려움을 받는 일도 발생하지요.
가령, 여 성도님이 게을러서 집 안 청소나 식사 준비를 해 놓지 않고, 교회 일에 바쁘다면 핍박을 받게 됩니다. 이때 집안을 돌보지 못한 것이 문제인데 정작 핍박받은 당사자는 자신이 하나님 일 때문에 그렇다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직장에서도 교회 간다면서 자신의 일을 다른 사람에게 미루고, 실수를 잘하며 불성실합니다. 그러면서 동료들을 전도한다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지요. "교회 갈 시간에 자기 일이나 잘하지."라는 소리나 듣게 되지요.
그러므로 의를 위해 핍박받는다면 감사하고 기뻐함으로 승리하시되, 혹여 자신의 부족한 모습으로 인해 핍박을 받는다면, 신속히 고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3. 의를 위해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마태복음 5장 10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악이나 불법으로 인해 받는 핍박은 복이나 상급이 될 수 없지만,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기에 복되다 하신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으면 믿음이 장성하여 하나님께 축복들을 크게 받아갈 뿐만 아니라, 더 좋은 천국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팔복의 첫 번째 복인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소유하는 '천국'과, 여덟 번째 복인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사람이 소유하는 '천국'은 어떻게 다를까요? 전자가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갈 수 있는 포괄적인 의미에서의 천국이라면, 후자는 각 사람이 의를 행함으로 핍박을 받은 만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보다 세밀한 의미에서의 천국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성도들이 세상에서 핍박을 받게 되면 그로 인해 믿음이 더욱 견고해집니다. 핍박을 받으면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진리로 인내함으로 어린아이 믿음에서 점차 청년의 믿음으로, 아비의 믿음으로 장성해 가기 때문이지요. 고난당하기 전에는 알지 못했던 마음속 깊이 있는 비진리까지도 발견하여 버리니, 온유함과 화평함을 이루며, 원수까지도 사랑할 수 있는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1절에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얼마나 의를 행하여 마음을 변화시켰느냐에 따라 더 좋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음을 말해 줍니다.
4. 주를 위해 받은 핍박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함으로 의를 온전히 이루었다 해도 모든 핍박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를 위해 받는 핍박' 곧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꾼 된 사람들이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에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말씀하시지요. 예부터 수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고난을 받았습니다. 누구보다도 근본 하나님의 본체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흠도 티도 없는 분이셨지만 죄인들의 형벌을 친히 당하셨습니다. 구원의 섭리를 이루시기 위해 채찍에 맞으셨고, 온갖 조롱과 멸시 가운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요.
주님을 위해 많은 고난을 받고 생명까지 드렸던 사도 바울은,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라고 담대히 고백하였지요(딤후 4:7).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위해 핍박받고 순교했던 사람들의 충성과 수고를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넘치는 영광과 상급으로 갚아 주시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를 확실히 보여 주십니다.
영혼이 잘되는 축복은 물론,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고 따르는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지요. 혹여 주님을 위해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장차 천국에서 받게 될 영원한 상급을 바라봄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심령이 가난한 자가 들어가는 '천국'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사람이 들어가는 '천국'은 어떻게 다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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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신앙생활을 바르게 해서 핍박받은 경우나 자신의 잘못이나 지혜가 부족해서 핍박받은 경우가 있다면 함께 나눠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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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해의 영광, 달의 영광, 별의 영광, 별과 별의 영광'이란?(고전 15:41)
·해의 영광 - 아비들의 믿음으로 3천층 또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
·달의 영광 - 청년들의 믿음으로 2천층에 들어가는 사람의 영광
·별의 영광, 별과 별의 영광 - 아이들의 믿음으로 1천층에 들어간 사람의 영광을 뜻한다.
이처럼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은 각각 큰 차이가 난다. 또한 밤하늘의 무수한 별의 크기나 밝기가 다르듯이 별마다 영광이 다르다. 낙원에 들어가는 사람은 주님을 위해 한 일이 없으므로 상급이 없고 영광이라고 표현하지도 않는다.
2012-12-21
제51과예수 그리스도(성탄절)
빌 2:8
읽을말씀 : 빌 2:8 | 외울말씀 : 빌 2:8 ㅣ 참고 말씀:벧전2:22, 마 12:19~20
교육목표 :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성탄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선물을 주신 복된 날입니다. 그 선물은 바로 '구원의 길'이지요.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희생시키심으로 죄인이었던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더구나 우리 만민의 성도들은 2010년 12월 25일에 특별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한때 주님께서 생명 다한 희생으로 주신 '구원'이라는 선물을 귀히 여기지 못하고 범죄하여 잃어버린 분들, 혹은 잃을 뻔했던 분들도 있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에서 돌이킨 이들에게 다시 '구원'을 값없이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에게 구세주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은 더욱 뜻깊고 행복한 날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살펴볼까요?
1. 고우신 분이셨습니다
모양이 거칠지 않고 모나지 않은 것, 부드러운 것을 '곱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마음과 행동, 말씨, 모든 것이 고우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수백 년 전에 예수님의 모습을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묘사했습니다(마 12:19).
예수님의 말씀은 지혜롭고 그 권세가 대단했습니다. 놀라운 권능을 행하셔서 손을 얹기만 하셔도, 혹은 병자들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치료받았고, 소경, 귀머거리, 중풍병자 등 중증 환자들이 나았지요. 거친 바람과 바다도 예수님의 명에 순종하여 잠잠해졌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큰 무리가 몰려들었지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전혀 들레지 않으셨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거나 칭송받기 원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셨지요.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자 길을 걸을 때도 조용히 걸으셨고 요란하게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큰 권세와 능력을 가졌다고 사람들을 제압하여 부당 이득을 취하거나 남을 해치는 일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소자 한 사람을 대하더라도 섬기는 자세로 대하셨고, 오히려 낮아져서 피조물인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을 주시하는 이들 중에는 바리새인이나 제사장들같이 예수님을 반대하는 부류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틈만 나면 올무를 놓아 잡으려 하고 깎아내리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까지도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물론 때로는 책망을 하셨지만 이는 그들과 싸워 이겨서 억지로 굴복시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진리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였지요.
마태복음 12장 20절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하신 대로 포기할 수밖에 없을 법한 영혼들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처럼 고운 마음을 지니신 분이 그 누구에게 거친 말이나 행동을 하셨겠습니까. 베드로전서 2장 22절에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말씀한 대로, 예수님은 모든 말이 온전하셨고 행실도 참으로 거룩하고 온전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고운 마음을 지니면 자연히 고운 말과 행실이 뒤따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기 원하고, 한마디 말도 믿음의 말, 선한 말만 하려고 하지요. 또 누구를 대하든지 자신의 말과 행실을 꼼꼼히 살핍니다.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기 위해서입니다.
2. 자기를 철저히 희생하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신 날부터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신 날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영혼들을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짐승보다 못한 인생들을 속량하시려고 '짐승의 우리'에서 나셨습니다. 또 이런 인생들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시려고 '구유'에 누이셨지요. 인생들을 가난의 저주에서 풀어 주시려고 부요하신 분임에도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모든 질병과 연약함을 온전케 하시려고 채찍에 온몸이 상하셨습니다. 마침내 죄인들을 대신하여 죄의 짐을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요.
예수님은 무엇을 넉넉하게 누릴 권한도, 자유로이 살 권리도 다 포기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생애에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과 영혼들만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전혀 없으셨지요. 빌립보서 2장 8절에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신 대로입니다.
이 희생은 '내가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니까' 이런 의무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내가 이렇게 희생했으니 인생들이 내 뜻과 내 말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이렇게 군림하고 높임 받기 위해 계산적으로 희생하신 것도 아니었지요. 예수님의 희생은 오직 순전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이 낮고 낮은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또 가장 귀한 것 바로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너희가 죄를 지었으나 죽기까지 너희를 사랑하노라.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기를 원하노라." 예수님은 희생을 통해 이런 아버지 하나님의 크고 깊은 사랑을 전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이 희생은 예수님께서 어찌하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고픈 마음을 표현하신 사랑의 행함이기도 했지요. 예수님은 그 귀하신 몸을 제물 삼아 인생들에게 구원과 천국을 주시라고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희생으로 인해 결국 우리에게 구원의 길, 천국 길이 열렸지요. 히브리서 10장 20절에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마음에는 오직 영혼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희생을 떠올릴 때 과연 무엇을 느끼십니까? 주님의 희생은 오직 사랑이었습니다. 강압적인 의무가 아니지요. 이런 주님의 사랑이 바로 여러분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마음으로 느낀다면, 여러분도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3. 항상 간구하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결이나 사랑을 구하실 필요가 없을 만큼 하나님을 온전히 닮은 분이셨습니다.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지요. 바쁜 나날을 보내시면서도 예수님은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낮추시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구하셨습니다.
구세주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케 하여 주시기를, 영혼들을 깨우쳐 주시고 제자들을 붙들어 주시기를 늘 간구하셨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이에게 응답이 주어진다는 영계의 법칙을 너무나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셨기에 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더 온전히 헤아려 이루어 드리기를 간절히 바라셨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연히 따르는 행함입니다. 어떤 분들은 목자를 사랑해서 간절히 기도하시는데 물론 이것도 하나님을 사랑해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누구 눈치 보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기에 스스로가 하는 것입니다.
뜻깊은 성탄절을 맞아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구원해 주시고, 변화시켜 주심에 감사합니다. 다시는 꿈꿀 수 없었던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이제 아버지 하나님의 참 자녀로 나와 오직 하나님 나라와 영혼들을 위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라는 마음으로 간절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 주님, 목자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마음이 간절하다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삶 가운데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결을 위해, 사명 감당을 위해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결단한 바를 이뤄 가는 과정 속에서 혹여,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만난다 해도, '역시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 하고 낙심하기보다 '우리 예수님도 늘 기도하셨지. 나는 더욱 기도해야겠구나.' 하며 더 간절히 간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영을 향해 달려가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더 신속히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첫째,----------------------------------------------------------
둘째, 자기를 철저히 희생하는 분이셨습니다.
셋째,----------------------------------------------------------
2.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신 주님께 여러분은 어떤 선물을 준비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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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상한 갈대' & '꺼져 가는 심지'란?
'상한 갈대'란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하며, '꺼져 가는 심지'란 '마음이 심히 악으로 물들어서 그 영혼의 등불이 꺼져 가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나무에 상한 가지가 있으면 잘라내야 잘자라고, 꺼져 가는 심지는 빛도 약하고 그을음이 심하기 때문에 아예 꺼버리는 것이 낫다. 마태복음 12장 20절에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는다는 것은, 만의 하나라도 회생 가능할 영혼이 있다면 어찌하든 살 길을 열어 주려는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나타낸다.
교육목표 :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성탄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한 선물을 주신 복된 날입니다. 그 선물은 바로 '구원의 길'이지요. 하나님은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희생시키심으로 죄인이었던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더구나 우리 만민의 성도들은 2010년 12월 25일에 특별한 선물을 받았습니다.
한때 주님께서 생명 다한 희생으로 주신 '구원'이라는 선물을 귀히 여기지 못하고 범죄하여 잃어버린 분들, 혹은 잃을 뻔했던 분들도 있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죄에서 돌이킨 이들에게 다시 '구원'을 값없이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날 이후 우리에게 구세주 예수님이 탄생하신 성탄은 더욱 뜻깊고 행복한 날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어떤 분인지 살펴볼까요?
1. 고우신 분이셨습니다
모양이 거칠지 않고 모나지 않은 것, 부드러운 것을 '곱다'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마음과 행동, 말씨, 모든 것이 고우셨습니다. 선지자 이사야는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수백 년 전에 예수님의 모습을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묘사했습니다(마 12:19).
예수님의 말씀은 지혜롭고 그 권세가 대단했습니다. 놀라운 권능을 행하셔서 손을 얹기만 하셔도, 혹은 병자들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치료받았고, 소경, 귀머거리, 중풍병자 등 중증 환자들이 나았지요. 거친 바람과 바다도 예수님의 명에 순종하여 잠잠해졌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큰 무리가 몰려들었지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전혀 들레지 않으셨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알아주거나 칭송받기 원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으셨지요. 오히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자 길을 걸을 때도 조용히 걸으셨고 요란하게 말씀하지도 않으셨습니다. 큰 권세와 능력을 가졌다고 사람들을 제압하여 부당 이득을 취하거나 남을 해치는 일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소자 한 사람을 대하더라도 섬기는 자세로 대하셨고, 오히려 낮아져서 피조물인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예수님을 주시하는 이들 중에는 바리새인이나 제사장들같이 예수님을 반대하는 부류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틈만 나면 올무를 놓아 잡으려 하고 깎아내리려 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까지도 사랑으로 품으셨습니다. 물론 때로는 책망을 하셨지만 이는 그들과 싸워 이겨서 억지로 굴복시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 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진리를 깨우쳐 주시기 위해서였지요.
마태복음 12장 20절에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하신 대로 포기할 수밖에 없을 법한 영혼들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처럼 고운 마음을 지니신 분이 그 누구에게 거친 말이나 행동을 하셨겠습니까. 베드로전서 2장 22절에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말씀한 대로, 예수님은 모든 말이 온전하셨고 행실도 참으로 거룩하고 온전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고운 마음을 지니면 자연히 고운 말과 행실이 뒤따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기 원하고, 한마디 말도 믿음의 말, 선한 말만 하려고 하지요. 또 누구를 대하든지 자신의 말과 행실을 꼼꼼히 살핍니다.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않기 위해서입니다.
2. 자기를 철저히 희생하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태어나신 날부터 십자가에서 죽임당하신 날까지 자신의 모든 것을 영혼들을 위해 내어 주셨습니다. 짐승보다 못한 인생들을 속량하시려고 '짐승의 우리'에서 나셨습니다. 또 이런 인생들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시려고 '구유'에 누이셨지요. 인생들을 가난의 저주에서 풀어 주시려고 부요하신 분임에도 가난하게 사셨습니다. 모든 질병과 연약함을 온전케 하시려고 채찍에 온몸이 상하셨습니다. 마침내 죄인들을 대신하여 죄의 짐을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지요.
예수님은 무엇을 넉넉하게 누릴 권한도, 자유로이 살 권리도 다 포기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의 생애에는 오직 아버지 하나님과 영혼들만 있었습니다.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 전혀 없으셨지요. 빌립보서 2장 8절에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하신 대로입니다.
이 희생은 '내가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니까' 이런 의무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또 '내가 이렇게 희생했으니 인생들이 내 뜻과 내 말에 무조건 따르는 것이 마땅하다.' 이렇게 군림하고 높임 받기 위해 계산적으로 희생하신 것도 아니었지요. 예수님의 희생은 오직 순전한 '사랑'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이 낮고 낮은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또 가장 귀한 것 바로 생명을 버리셨습니다. "너희가 죄를 지었으나 죽기까지 너희를 사랑하노라.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기를 원하노라." 예수님은 희생을 통해 이런 아버지 하나님의 크고 깊은 사랑을 전해 주고자 하셨습니다.
또한 이 희생은 예수님께서 어찌하든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고픈 마음을 표현하신 사랑의 행함이기도 했지요. 예수님은 그 귀하신 몸을 제물 삼아 인생들에게 구원과 천국을 주시라고 아버지 하나님께 간구하셨습니다. 이 사랑의 희생으로 인해 결국 우리에게 구원의 길, 천국 길이 열렸지요. 히브리서 10장 20절에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이처럼 주님의 마음에는 오직 영혼들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주님의 희생을 떠올릴 때 과연 무엇을 느끼십니까? 주님의 희생은 오직 사랑이었습니다. 강압적인 의무가 아니지요. 이런 주님의 사랑이 바로 여러분 자신을 위한 것이었음을 깨닫고 마음으로 느낀다면, 여러분도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3. 항상 간구하는 분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성결이나 사랑을 구하실 필요가 없을 만큼 하나님을 온전히 닮은 분이셨습니다. 능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지요. 바쁜 나날을 보내시면서도 예수님은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낮추시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구하셨습니다.
구세주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케 하여 주시기를, 영혼들을 깨우쳐 주시고 제자들을 붙들어 주시기를 늘 간구하셨습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이에게 응답이 주어진다는 영계의 법칙을 너무나 잘 아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예수님은 하나님을 깊이 사랑하셨기에 늘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뜻을 더 온전히 헤아려 이루어 드리기를 간절히 바라셨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면 자연히 따르는 행함입니다. 어떤 분들은 목자를 사랑해서 간절히 기도하시는데 물론 이것도 하나님을 사랑해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면 할 수밖에 없습니다. 누가 시켜서 하는 게 아니고, 누구 눈치 보고 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랑하기에 스스로가 하는 것입니다.
뜻깊은 성탄절을 맞아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구원해 주시고, 변화시켜 주심에 감사합니다. 다시는 꿈꿀 수 없었던 새 예루살렘을 바라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이제 아버지 하나님의 참 자녀로 나와 오직 하나님 나라와 영혼들을 위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라는 마음으로 간절하실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 주님, 목자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런 마음이 간절하다 해도 기도하지 않으면, 삶 가운데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성결을 위해, 사명 감당을 위해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함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에 결단한 바를 이뤄 가는 과정 속에서 혹여, 뜻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만난다 해도, '역시 나는 안 되는 사람인가?' 하고 낙심하기보다 '우리 예수님도 늘 기도하셨지. 나는 더욱 기도해야겠구나.' 하며 더 간절히 간구해 보시기 바랍니다. 기도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영을 향해 달려가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더 신속히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첫째,----------------------------------------------------------
둘째, 자기를 철저히 희생하는 분이셨습니다.
셋째,----------------------------------------------------------
2. 우리에게 구원의 선물을 주신 주님께 여러분은 어떤 선물을 준비하셨나요?
--------------------------------------------------------------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상한 갈대' & '꺼져 가는 심지'란?
'상한 갈대'란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하며, '꺼져 가는 심지'란 '마음이 심히 악으로 물들어서 그 영혼의 등불이 꺼져 가고 있는 사람'을 뜻한다. 나무에 상한 가지가 있으면 잘라내야 잘자라고, 꺼져 가는 심지는 빛도 약하고 그을음이 심하기 때문에 아예 꺼버리는 것이 낫다. 마태복음 12장 20절에 상한 갈대도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도 끄지 않는다는 것은, 만의 하나라도 회생 가능할 영혼이 있다면 어찌하든 살 길을 열어 주려는 주님의 사랑의 마음을 나타낸다.
2012-12-14
제50과팔복(7) -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마 5:9
읽을말씀 : 마 5:9 | 외울말씀 : 마 5:9 l 참고 말씀:히 12:14, 롬 6:16
교육목표 : 자신을 희생하여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화목케 하신 예수님을 닮아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
화평은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낮추며 상대를 섬기고 높이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러니 무례히 행치 않고, 설령 내가 옳다 하더라도 비진리가 아니면 상대에게 맞춰 줄 수 있지요. 또한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으며 나를 드러내지 않을뿐더러 편벽됨 없이 진리 안에서 양면성 있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려면, 나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되 생명까지 내어주는 것이 바로 영적인 의미의 화평이기 때문입니다.
1. 자신을 희생하여 화평케 하신 예수님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가 들어오자,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모두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 죄의 담으로 가로막히게 되었지요. 즉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다'는 말씀처럼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골 1:21).
로마서 6장 16절에는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인류의 조상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순종하여 죄를 범함으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고 말았지요.
이처럼 죄로 인해 원수 된 모든 인류와 하나님 사이에 화평을 이루시고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1장 20절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말씀했지요. 즉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심으로 하나님과의 화평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고,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를 얻으셨지요. 우리도 가정과 일터, 교회 등 자신이 속해 있는 모든 분야에서 희생하고 섬겨 줄 때 아름다운 화평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옳다고 하는 자기 의가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화평을 깨게 됩니다. 이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맞춰 주는가, 아니면 남들이 나에게 맞추어 주는가를 보면 알 수 있지요. 가령, 아내는 싱겁게 먹는데 남편은 짜게 먹습니다. 짜게 먹는 것에 길들여진 남편의 식습관을 단번에 바꾸기란 쉽지 않지요. 만일 아내가 자기주장만 내세운다면 다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범사에 화평하려면 최대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즉 나를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나를 미워하고 괴롭게 하는 사람과도 화평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1)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사야 59장 1~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사이에 죄의 담으로 가로막히게 됩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죄가 없어야 하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인해 모든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과 가로막혔던 죄의 담이 허물어져 화평을 이루게 되지요. 그런데 죄를 사함 받았는데 또다시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과 화평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받을 수 있습니다. 질병이 있으면 치료받아 강건해지고, 물질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부요해지는 등 마음의 소원들을 응답받게 되지요.
2) 자기 자신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음 안에 미움, 시기, 질투 등 악이 있으면, 환경과 조건에 따라 악이 발동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화평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고통을 받기 때문에 평안할 수가 없지요. 옛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남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는 시기심 때문에 스스로 고통받는다는 뜻이지요.
이처럼 시기, 질투, 교만, 다툼, 간음 등 마음에 악이 있으면 참 평안을 누릴 수 없고,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탄식하시니 마음이 곤고해질 뿐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의 악을 벗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나가야 합니다.
3)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악해서 화평을 깨기보다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포용하지 못하므로 화평을 깨기도 합니다. 가령, 열정적으로 일을 추진하다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도 본인은 모릅니다. 반대 의견이 나와도 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더 좋은 쪽을 택했으니까 하며 그냥 계획대로 추진해 갑니다. 이런 사람을 주님께서 보실 때,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열심은 기특하지만 실족하고 상처받는 영혼들에 대해서는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비진리가 아니라면 상대의 연약한 믿음도 고려하여 화평을 좇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몇몇 사람이 뜨거워 많은 일을 이루는 것보다, 모두가 화평함 속에 적은 일을 이루었어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축복
마태복음 5장 9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만일 내 안에 짜증이나 혈기 다툼, 의견대립, 불편함이 생긴다면, 화평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뜻일까요? 아니지요.
여기에는 영적으로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남자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포함된 '하나님의 자녀'를 뜻합니다. 바로 악은 모양도 없고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이룬 하나님을 쏙 빼닮은 자녀를 의미하지요. 일반적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과는 현격히 다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믿음의 분량은 각 사람마다 차이가 납니다. 가령, 겨우 구원받을 만한 '자녀들의 믿음'이 있는가 하면, 이제 막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는 '아이들의 믿음'이 있습니다. 또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칠 수 있는 '청년들의 믿음'이 있는가 하면, 장성한 믿음의 분량으로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아비들의 믿음'도 있지요.
따라서 '화평케 하는 자'란 아비들의 믿음을 이룬 하나님의 자녀를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이룬 하나님의 마음을 쏙 빼닮은 사랑받는 자녀이지요. 이런 사람들은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축복이 임하며, 하나님으로부터 권세와 권능도 받아 원수 마귀가 두려워 떨며 물러갑니다.
이 외에도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면 장차 하나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참 아들로서 존귀와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왕위를 계승할 왕자라면 그 영화로움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하물며 만물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꼭 닮아 그분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면 그 영광과 존귀함은 엄청나지요. 천군 천사들의 호위와 수종을 받으며, 수많은 천국 백성에게 세세토록 칭송을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웅장한 황금 보석 집과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누리며, 존귀와 영광 가운데 영원히 살아가게 되지요.
따라서 자신을 희생하여 화목제물이 되어 주신 주님을 닮아 더 낮아지고 섬기심으로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가리키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
2.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 위한 3가지 조건을 써보세요.
첫째,----------------------------------------------------------
둘째,----------------------------------------------------------
셋째,----------------------------------------------------------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아비들의 믿음'(요한일서 2:14)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까지 아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고,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차원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근본을 알았기에 천지 창조를 비롯하여 무수한 비밀을 계시 받아 모세 오경을 기록했다. 아브라함도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단계'에 이르렀기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었다.
교육목표 : 자신을 희생하여 사람과 하나님 사이를 화목케 하신 예수님을 닮아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한다.
화평은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낮추며 상대를 섬기고 높이는 마음을 말합니다. 그러니 무례히 행치 않고, 설령 내가 옳다 하더라도 비진리가 아니면 상대에게 맞춰 줄 수 있지요. 또한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으며 나를 드러내지 않을뿐더러 편벽됨 없이 진리 안에서 양면성 있는 마음입니다.
따라서 화평케 하는 사람이 되려면, 나 자신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되 생명까지 내어주는 것이 바로 영적인 의미의 화평이기 때문입니다.
1. 자신을 희생하여 화평케 하신 예수님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가 들어오자,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모두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과 인간들 사이에 죄의 담으로 가로막히게 되었지요. 즉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다'는 말씀처럼 죄로 인해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골 1:21).
로마서 6장 16절에는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인류의 조상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순종하여 죄를 범함으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고 말았지요.
이처럼 죄로 인해 원수 된 모든 인류와 하나님 사이에 화평을 이루시고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1장 20절에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말씀했지요. 즉 예수님께서 화목제물이 되셔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심으로 하나님과의 화평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기까지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고, 수많은 하나님의 자녀를 얻으셨지요. 우리도 가정과 일터, 교회 등 자신이 속해 있는 모든 분야에서 희생하고 섬겨 줄 때 아름다운 화평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옳다고 하는 자기 의가 있으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화평을 깨게 됩니다. 이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맞춰 주는가, 아니면 남들이 나에게 맞추어 주는가를 보면 알 수 있지요. 가령, 아내는 싱겁게 먹는데 남편은 짜게 먹습니다. 짜게 먹는 것에 길들여진 남편의 식습관을 단번에 바꾸기란 쉽지 않지요. 만일 아내가 자기주장만 내세운다면 다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범사에 화평하려면 최대한 상대를 이해하고 배려하면서 개선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즉 나를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나를 미워하고 괴롭게 하는 사람과도 화평할 수 있어야 합니다.
2. 화평케 하는 자가 되려면
1)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사야 59장 1~2절에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사이에 죄의 담으로 가로막히게 됩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죄가 없어야 하지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주님의 보혈의 공로로 인해 모든 죄를 용서받게 됩니다. 이로 인해 하나님과 가로막혔던 죄의 담이 허물어져 화평을 이루게 되지요. 그런데 죄를 사함 받았는데 또다시 죄를 짓는다면, 하나님과 화평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받을 수 있습니다. 질병이 있으면 치료받아 강건해지고, 물질의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부요해지는 등 마음의 소원들을 응답받게 되지요.
2) 자기 자신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마음 안에 미움, 시기, 질투 등 악이 있으면, 환경과 조건에 따라 악이 발동하기 때문에, 자기 자신과 화평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고통을 받기 때문에 평안할 수가 없지요. 옛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남이 잘되는 것을 싫어하는 시기심 때문에 스스로 고통받는다는 뜻이지요.
이처럼 시기, 질투, 교만, 다툼, 간음 등 마음에 악이 있으면 참 평안을 누릴 수 없고, 내 안에 계신 성령께서 탄식하시니 마음이 곤고해질 뿐입니다. 그러니 자기 자신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서는 마음의 악을 벗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나가야 합니다.
3)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악해서 화평을 깨기보다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포용하지 못하므로 화평을 깨기도 합니다. 가령, 열정적으로 일을 추진하다가 주변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데도 본인은 모릅니다. 반대 의견이 나와도 나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더 좋은 쪽을 택했으니까 하며 그냥 계획대로 추진해 갑니다. 이런 사람을 주님께서 보실 때,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열심은 기특하지만 실족하고 상처받는 영혼들에 대해서는 마음 아파하실 것입니다.
비진리가 아니라면 상대의 연약한 믿음도 고려하여 화평을 좇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몇몇 사람이 뜨거워 많은 일을 이루는 것보다, 모두가 화평함 속에 적은 일을 이루었어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 축복
마태복음 5장 9절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말씀합니다. 만일 내 안에 짜증이나 혈기 다툼, 의견대립, 불편함이 생긴다면, 화평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면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뜻일까요? 아니지요.
여기에는 영적으로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남자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가 포함된 '하나님의 자녀'를 뜻합니다. 바로 악은 모양도 없고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이룬 하나님을 쏙 빼닮은 자녀를 의미하지요. 일반적으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과는 현격히 다릅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믿음의 분량은 각 사람마다 차이가 납니다. 가령, 겨우 구원받을 만한 '자녀들의 믿음'이 있는가 하면, 이제 막 하나님에 대해 알아가는 '아이들의 믿음'이 있습니다. 또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칠 수 있는 '청년들의 믿음'이 있는가 하면, 장성한 믿음의 분량으로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아비들의 믿음'도 있지요.
따라서 '화평케 하는 자'란 아비들의 믿음을 이룬 하나님의 자녀를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이룬 하나님의 마음을 쏙 빼닮은 사랑받는 자녀이지요. 이런 사람들은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축복이 임하며, 하나님으로부터 권세와 권능도 받아 원수 마귀가 두려워 떨며 물러갑니다.
이 외에도 화평케 하는 자가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으면 장차 하나님 보좌가 있는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 참 아들로서 존귀와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왕위를 계승할 왕자라면 그 영화로움이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하물며 만물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꼭 닮아 그분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면 그 영광과 존귀함은 엄청나지요. 천군 천사들의 호위와 수종을 받으며, 수많은 천국 백성에게 세세토록 칭송을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새 예루살렘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웅장한 황금 보석 집과 온갖 아름다운 것들을 누리며, 존귀와 영광 가운데 영원히 살아가게 되지요.
따라서 자신을 희생하여 화목제물이 되어 주신 주님을 닮아 더 낮아지고 섬기심으로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는 복된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마태복음 5장 9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가리키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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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화평케 하는 자가 되기 위한 3가지 조건을 써보세요.
첫째,----------------------------------------------------------
둘째,----------------------------------------------------------
셋째,----------------------------------------------------------
● 금주 과제
매주 주보에 나오는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아비들의 믿음'(요한일서 2:14)
창조주 하나님의 근본까지 아는 믿음이다.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고,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차원이다. 모세는 하나님의 근본을 알았기에 천지 창조를 비롯하여 무수한 비밀을 계시 받아 모세 오경을 기록했다. 아브라함도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단계'에 이르렀기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