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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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1
제8과모든 것에 화목하라
잠 16:7
읽을말씀 : 잠 16:7 | 외울말씀 : 히 12:14 l 참고 말씀:마 5:9, 잠 8:17
교육목표 : 어느 누구와도 불화하지 않고 원수까지도 사랑하여 화목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모가 나면 이리저리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고 서로 고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둥글둥글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며 서로 부딪히지 않고 화평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대하기도 좋고 마음도 편안해서 화목을 이루기가 쉬울 뿐아니라 자신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1. 화목의 중요성
사람들 사이에 종종 다툼이 일어나고 화목하지 못한 모습을 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부분 자기 생각이나 주장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하고 옳은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며,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만이 진리입니다(요 14:6).
사람이 태어나 진리로만 가르침 받고 진리 안에 산다면 주님의 마음을 닮아 모두와 화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나 스승, 이웃이나 친구들로부터 배웠고 그중에는 진리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정립한 이론이나 사고방식과 양심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화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빌 3:8) 고백한 것과 같이 자신이 옳다 여기는 것을 깨뜨리고 하나님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화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셨고,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하셨습니다. 따라서 화평이 얼마나 중요하며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화목하지 못할 때의 고통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서로 섬기며 사랑하면 화목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 내 이론, 내 방식만이 옳다 고집하면 화목할 수 없고 서로 고통을 받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75세 때에 자녀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10년이 넘도록 사라에게는 잉태의 소식이 없었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여종 하갈을 첩으로 주지요. 하갈이 잉태하자 여 주인 사라를 멸시합니다. 이에 사라가 아브라함을 원망하며 하갈을 학대하니 그녀는 도망가 버리지요.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 다시 돌아와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이스마엘이 태어난 지 14년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 마침내 아들 이삭을 낳았지요. 그런데 이삭이 태어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사라가 참지 못하고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하지요.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매우 근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말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하지요. 비록 약속의 아들은 아니지만 이스마엘을 떠나 보내야 하는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처럼 사라가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결과 이러한 많은 고통이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야곱의 아내 레아와 라헬의 경우입니다. 두 사람은 자매이지만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서로 투기하지요. 레아가 아들을 네 명이나 낳는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한 라헬은 자신의 여종을 야곱에게 첩으로 줍니다. 언니 레아도 지지 않고 자신의 여종을 첩으로 주지요.
이러한 관계가 그의 아들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야곱에게는 네 명의 아내에게서 얻은 열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소생으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게다가 요셉이 형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알리곤 하여 형들은 그가 눈엣가시였지요. 결국 이복 형들에 의해 요셉은 타국으로 팔려가고 맙니다. 나를 주장하고 시기 질투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화목하지 못하며 불행이 따르는 것을 봅니다. 진정한 행복은 진리 안에 살 때 누릴 수 있습니다.
3. 진정한 행복을 얻는 길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누군가와 화목하지 못하여 고통당한다면 여호와를 기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원수까지라도 화목하게 하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으로는 솔로몬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일천 번의 번제를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림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게 해드렸던지 하나님으로부터 전무후무한 지혜를 응답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화도 덤으로 받았습니다.
다음으로는 에스더를 들 수 있습니다. 유다인으로서 바사 제국의 왕비가 된 에스더는 하만의 간계에 의해 자기 민족이 몰살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사촌 모르드개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때 왕과 자기 백성 유다인 사이에 화목을 이루기 위해 에스더는 먼저 여호와를 기쁘시게 했습니다. 수도인 수산 성에 사는 모든 유다인들과 함께 3일을 물도 마시지 않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가 호소하였습니다. 이에 왕의 은총을 입지요.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기뻐하시고 민족을 구원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룻기에 나오는 모압 여인 룻 역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축복을 받은 주인공입니다. 룻은 이스라엘 족속의 남편에게 시집을 왔으나 불행하게도 집안의 모든 남자가 죽고 말았습니다.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날 수도 있었지만 정한 마음으로 홀로 남은 시어머니를 모시며 며느리의 도리를 다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그 지역의 부유한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결국 아들 오벳을 낳아 다윗의 족보에 오르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4. 모든 것에 화목하여 축복을 받으려면
그러면 우리가 모든 것에 화목하여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솔로몬처럼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번제 곧 예배드리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잠언 8장 17절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순종해 나감으로 마음이 깨끗한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참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음으로 열심히 전도하며 선을 행하고 열심히 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행함 있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구제와 선행을 많이 함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는 고넬료와 다비다를 들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면서도 온 가족이 성령을 받았고, 다비다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행 9~10장).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종들과 화목을 이루며, 믿음의 형제들과도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 자녀 간에, 부부간에, 형제간에, 이웃 간에, 친구 간에 그리고 직장 동료나 상사 사이 등 모든 사람과 화목해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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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 ) 안에 공통으로 들어갈 단어를 써보세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 )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 )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2. 다음 중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화목을 이룬 사람이 아닌 것은?
① 솔로몬 ② 룻
③ 에스더 ④ 사라
3. 사라, 하갈, 라헬, 레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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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러분은 모든 사람과 화평하기 위해 어떤 수고와 노력을 하고 있는지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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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99~10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하만’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로 아하수에로 왕의 대신이었다. 왕이 그의 지위를 높이자 왕의 모든 신복들이 꿇어 절하는데 유다 민족인 모르드개만 거부하자 이에 분을 품고 모르드개를 포함한 유다 민족을 멸절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에 에스더는 3일 금식을 하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가 하만의 음모가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다. 결국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던 나무에 하만과 그의 아들들이 달려 죽게 된다.
교육목표 : 어느 누구와도 불화하지 않고 원수까지도 사랑하여 화목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모가 나면 이리저리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고 서로 고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둥글둥글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며 서로 부딪히지 않고 화평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대하기도 좋고 마음도 편안해서 화목을 이루기가 쉬울 뿐아니라 자신도 행복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1. 화목의 중요성
사람들 사이에 종종 다툼이 일어나고 화목하지 못한 모습을 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부분 자기 생각이나 주장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하고 옳은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며,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만이 진리입니다(요 14:6).
사람이 태어나 진리로만 가르침 받고 진리 안에 산다면 주님의 마음을 닮아 모두와 화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나 스승, 이웃이나 친구들로부터 배웠고 그중에는 진리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정립한 이론이나 사고방식과 양심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화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빌 3:8) 고백한 것과 같이 자신이 옳다 여기는 것을 깨뜨리고 하나님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화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셨고,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하셨습니다. 따라서 화평이 얼마나 중요하며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화목하지 못할 때의 고통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서로 섬기며 사랑하면 화목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 내 이론, 내 방식만이 옳다 고집하면 화목할 수 없고 서로 고통을 받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75세 때에 자녀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10년이 넘도록 사라에게는 잉태의 소식이 없었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여종 하갈을 첩으로 주지요. 하갈이 잉태하자 여 주인 사라를 멸시합니다. 이에 사라가 아브라함을 원망하며 하갈을 학대하니 그녀는 도망가 버리지요.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 다시 돌아와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이스마엘이 태어난 지 14년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 마침내 아들 이삭을 낳았지요. 그런데 이삭이 태어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사라가 참지 못하고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하지요.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매우 근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말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하지요. 비록 약속의 아들은 아니지만 이스마엘을 떠나 보내야 하는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처럼 사라가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결과 이러한 많은 고통이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야곱의 아내 레아와 라헬의 경우입니다. 두 사람은 자매이지만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서로 투기하지요. 레아가 아들을 네 명이나 낳는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한 라헬은 자신의 여종을 야곱에게 첩으로 줍니다. 언니 레아도 지지 않고 자신의 여종을 첩으로 주지요.
이러한 관계가 그의 아들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야곱에게는 네 명의 아내에게서 얻은 열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소생으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게다가 요셉이 형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알리곤 하여 형들은 그가 눈엣가시였지요. 결국 이복 형들에 의해 요셉은 타국으로 팔려가고 맙니다. 나를 주장하고 시기 질투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화목하지 못하며 불행이 따르는 것을 봅니다. 진정한 행복은 진리 안에 살 때 누릴 수 있습니다.
3. 진정한 행복을 얻는 길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누군가와 화목하지 못하여 고통당한다면 여호와를 기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원수까지라도 화목하게 하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을 기쁘게 한 사람으로는 솔로몬을 들 수 있습니다. 그는 신령과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일천 번의 번제를 드려서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림으로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게 해드렸던지 하나님으로부터 전무후무한 지혜를 응답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귀와 영화도 덤으로 받았습니다.
다음으로는 에스더를 들 수 있습니다. 유다인으로서 바사 제국의 왕비가 된 에스더는 하만의 간계에 의해 자기 민족이 몰살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사촌 모르드개를 통해 들었습니다. 그때 왕과 자기 백성 유다인 사이에 화목을 이루기 위해 에스더는 먼저 여호와를 기쁘시게 했습니다. 수도인 수산 성에 사는 모든 유다인들과 함께 3일을 물도 마시지 않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가 호소하였습니다. 이에 왕의 은총을 입지요. 하나님께서 에스더를 기뻐하시고 민족을 구원할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룻기에 나오는 모압 여인 룻 역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축복을 받은 주인공입니다. 룻은 이스라엘 족속의 남편에게 시집을 왔으나 불행하게도 집안의 모든 남자가 죽고 말았습니다. 자기 살 길을 찾아 떠날 수도 있었지만 정한 마음으로 홀로 남은 시어머니를 모시며 며느리의 도리를 다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그 지역의 부유한 보아스의 아내가 되고, 결국 아들 오벳을 낳아 다윗의 족보에 오르는 큰 축복을 받았습니다.
4. 모든 것에 화목하여 축복을 받으려면
그러면 우리가 모든 것에 화목하여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솔로몬처럼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번제 곧 예배드리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잠언 8장 17절을 보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순종해 나감으로 마음이 깨끗한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참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음으로 열심히 전도하며 선을 행하고 열심히 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행함 있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구제와 선행을 많이 함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는 고넬료와 다비다를 들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면서도 온 가족이 성령을 받았고, 다비다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행 9~10장).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종들과 화목을 이루며, 믿음의 형제들과도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 자녀 간에, 부부간에, 형제간에, 이웃 간에, 친구 간에 그리고 직장 동료나 상사 사이 등 모든 사람과 화목해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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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 ) 안에 공통으로 들어갈 단어를 써보세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 )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 )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2. 다음 중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화목을 이룬 사람이 아닌 것은?
① 솔로몬 ② 룻
③ 에스더 ④ 사라
3. 사라, 하갈, 라헬, 레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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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여러분은 모든 사람과 화평하기 위해 어떤 수고와 노력을 하고 있는지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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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99~10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하만’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로 아하수에로 왕의 대신이었다. 왕이 그의 지위를 높이자 왕의 모든 신복들이 꿇어 절하는데 유다 민족인 모르드개만 거부하자 이에 분을 품고 모르드개를 포함한 유다 민족을 멸절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에 에스더는 3일 금식을 하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가 하만의 음모가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다. 결국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던 나무에 하만과 그의 아들들이 달려 죽게 된다.
2014-02-14
제7과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왕하 5:23~27
읽을말씀 : 왕하 5:23~27 | 외울말씀 : 마 10:26 l 참고 말씀:창 18:9~15, 요 1:47
교육목표 :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아시는 하나님 앞에 거짓됨 없이 정직하게 행함으로 범사에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사는 사람일수록 세상의 죄악을 보면 심령이 감각(感覺)되어 애통하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책망할 것이 없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심령이 감각되지 않아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그랬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온 나아만 장군
이스라엘과 인접한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은 부귀와 명예, 권세가 있었지만 커다란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문둥병에 걸린 것입니다. 어느 날 그는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아 온 여자 아이에게서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면 문둥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로서 스승을 끝까지 붙좇아 갑절의 영감을 얻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나아만은 포로로 잡아온 아이의 말이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은 아람 왕의 허락을 받아 은 열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값비싼 의복 열 벌을 준비해 이스라엘로 떠났습니다. 드디어 나아만은 엘리사의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사환이 나오더니 엘리사의 말씀이라며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면 깨끗이 회복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아만은 기가 막혔습니다. 먼 곳에서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왔건만 나오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 말만 전하니 자존심이 무척 상했지요. 더구나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니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람에는 요단강보다 더 좋은 강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아만은 너무 분하였습니다. 잔뜩 부푼 기대가 일시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비참한 심경으로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그에게 종들이 말합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이에 나아만은 돌이켜 순종하지요. 종들의 말에도 귀 기울이는 모습에서 그의 겸손과 선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아만은 요단강에 몸을 잠갔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일곱 번 몸을 잠갔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문둥병으로 흉측했던 피부가 어린아이 살같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요단강은 영적으로 구원을, 물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즉 말씀으로 깨끗이 씻고, 온전히 진리 가운데 살면 어떠한 병이라도 치료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 일곱은 완전수이므로 일곱 번 씻는 것은 완전하게 씻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문둥병을 치료받은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찾아가 준비해 온 예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끝내 받지 않습니다.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린 나아만은 이제부터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고백한 후 자기 나라로 향했습니다.
2. 엘리사를 속이다가 문둥병에 걸린 사환 게하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나아만이 가져 온 예물이 너무 탐이 났습니다. 그래서 뒤쫓아가 엘리사가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달라고 했다며 거짓말을 합니다. 이에 나아만이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자 자기 집에 감추어 두었지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는 “종이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시치미를 떼지요.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感覺)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는 무서운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사는 게하시의 범죄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회개할 수 있도록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게하시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고 또 거짓말을 했지요. 이처럼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게하시는 문둥병이 들어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게하시는 아무도 자기의 행동을 모르리라 여겼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심령을 감각시켜 알려 주시니 게하시가 행한 일을 훤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3.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이 사람들 몰래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사건이 나옵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인에게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는 경수도 이미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나이에 아들을 주겠다고 하시니 뒤편 장막문에서 듣고 있던 사라가 속으로 웃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셨지요.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 역시 누가 어디서 무슨 말과 생각을 한지도 다 아셨고, 모든 일들이 어떻게 돌아갈지도 다 아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47절에 빌립을 따라 예수님께 나온 나다나엘을 향해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칭찬하십니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자기를 아시느냐고 하자 예수님께서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를 직접 본 것이 아닌데도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선지자라 할지라도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가만히 앉아서도 아람 왕이 그 심복들과 어떤 작전을 펼치는지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알려 아람을 잘 방비하게 하였지요. 이에 아람 왕은 자기 신하들 중에 첩자가 있어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 주는 줄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왕하 6:8~12).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했는데 막상 돈을 쥐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 얼마를 감추고 전부인양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모르게 한 일이었지만 베드로는 알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을 속이려 한 아니니아를 엄히 책망하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삽비라 역시 베드로를 속이므로 죽고 말지요. 아무리 은밀히 행한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이들 부부에 대해 성경에 기록하신 것도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의 종을 속이면 그만큼 화가 미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4. 정직한 마음으로 순종해야 응답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과연 가르침대로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잘 드리는지, 믿음으로 행하는지, 기도하고 순종하는지 등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잘 드리고 기도도 잘하니 신앙이 좋은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속일 수 없습니다. 부모 형제나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하지요.
하나님을 속이는 것에는 거짓말뿐 아니라 과장하고 보태는 것과 도적질도 포함됩니다. 또한 십일조, 감사예물 등을 마음에 작정하고 하지 않는 것, 기도하는 척하는 것, 중심으로 행하지 않는 것, 기도하라는 성령의 주관에 순종하지 않는 것, 금식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것, 그 밖에도 많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속이거나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두렵게 느껴집니다.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정직한 길로 갈 수 있고, 온전한 모습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연단받을 때에는 두렵고 어려운 것 같지만 값진 연단의 시기가 있기에 결국 응답받는 형통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부모가 책망하거나 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 사랑이듯이, 연단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모든 것이 생각의 차이이므로 범사에 정직한 길로 행하되 결코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신의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바치고자 했는데 왜 혼이 떠나 죽게 되었을까요?
( )
2. 게하시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었던 것일까요?
( )
3. 사람의 의학으로는 결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인 문둥병을 어떻게 이방인인 나아만 장군이 치료받을 수 있었을까요?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85~9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들 부부는 초대교회 신자로, 하나님의 종과 성령을 속이는 자들의 최후가 어떠한지를 엄중히 시사해 주고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자발적으로 교회에 드렸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역시 자신의 소유를 팔아 교회에 바친다고 했지만 사단이 마음에 가득하니 돈의 일부를 감추고 마치 전액인 것처럼 하나님의 종 베드로를 속인다. 이에 베드로가 책망하자 혼이 떠나 죽게 된다.
교육목표 :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아시는 하나님 앞에 거짓됨 없이 정직하게 행함으로 범사에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사는 사람일수록 세상의 죄악을 보면 심령이 감각(感覺)되어 애통하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책망할 것이 없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심령이 감각되지 않아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그랬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온 나아만 장군
이스라엘과 인접한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은 부귀와 명예, 권세가 있었지만 커다란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문둥병에 걸린 것입니다. 어느 날 그는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아 온 여자 아이에게서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면 문둥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로서 스승을 끝까지 붙좇아 갑절의 영감을 얻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나아만은 포로로 잡아온 아이의 말이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나아만은 아람 왕의 허락을 받아 은 열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값비싼 의복 열 벌을 준비해 이스라엘로 떠났습니다. 드디어 나아만은 엘리사의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사환이 나오더니 엘리사의 말씀이라며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면 깨끗이 회복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아만은 기가 막혔습니다. 먼 곳에서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왔건만 나오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 말만 전하니 자존심이 무척 상했지요. 더구나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니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람에는 요단강보다 더 좋은 강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아만은 너무 분하였습니다. 잔뜩 부푼 기대가 일시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비참한 심경으로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그에게 종들이 말합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 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이에 나아만은 돌이켜 순종하지요. 종들의 말에도 귀 기울이는 모습에서 그의 겸손과 선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아만은 요단강에 몸을 잠갔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일곱 번 몸을 잠갔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문둥병으로 흉측했던 피부가 어린아이 살같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요단강은 영적으로 구원을, 물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즉 말씀으로 깨끗이 씻고, 온전히 진리 가운데 살면 어떠한 병이라도 치료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 일곱은 완전수이므로 일곱 번 씻는 것은 완전하게 씻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문둥병을 치료받은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찾아가 준비해 온 예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끝내 받지 않습니다.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린 나아만은 이제부터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고백한 후 자기 나라로 향했습니다.
2. 엘리사를 속이다가 문둥병에 걸린 사환 게하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나아만이 가져 온 예물이 너무 탐이 났습니다. 그래서 뒤쫓아가 엘리사가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달라고 했다며 거짓말을 합니다. 이에 나아만이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자 자기 집에 감추어 두었지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는 “종이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시치미를 떼지요.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感覺)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는 무서운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사는 게하시의 범죄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회개할 수 있도록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게하시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고 또 거짓말을 했지요. 이처럼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게하시는 문둥병이 들어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게하시는 아무도 자기의 행동을 모르리라 여겼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심령을 감각시켜 알려 주시니 게하시가 행한 일을 훤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3.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
창세기 4장을 보면 가인이 사람들 몰래 동생 아벨을 쳐 죽인 사건이 나옵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가인에게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창세기 18장을 보면 하나님의 사자들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사라는 경수도 이미 끊어진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그 나이에 아들을 주겠다고 하시니 뒤편 장막문에서 듣고 있던 사라가 속으로 웃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다 보고 계셨지요.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 역시 누가 어디서 무슨 말과 생각을 한지도 다 아셨고, 모든 일들이 어떻게 돌아갈지도 다 아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47절에 빌립을 따라 예수님께 나온 나다나엘을 향해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칭찬하십니다. 나다나엘이 어떻게 자기를 아시느냐고 하자 예수님께서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 하십니다. 예수님이 그를 직접 본 것이 아닌데도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영이 임하면 선지자라 할지라도 사람으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가만히 앉아서도 아람 왕이 그 심복들과 어떤 작전을 펼치는지도 꿰뚫어 보았습니다. 그래서 왕에게 알려 아람을 잘 방비하게 하였지요. 이에 아람 왕은 자기 신하들 중에 첩자가 있어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 주는 줄로 생각할 정도였습니다(왕하 6:8~12).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했는데 막상 돈을 쥐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 얼마를 감추고 전부인양 가져왔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모르게 한 일이었지만 베드로는 알았습니다.
이에 하나님을 속이려 한 아니니아를 엄히 책망하자 그 자리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삽비라 역시 베드로를 속이므로 죽고 말지요. 아무리 은밀히 행한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이들 부부에 대해 성경에 기록하신 것도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의 종을 속이면 그만큼 화가 미친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4. 정직한 마음으로 순종해야 응답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과연 가르침대로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잘 드리는지, 믿음으로 행하는지, 기도하고 순종하는지 등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잘 드리고 기도도 잘하니 신앙이 좋은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속일 수 없습니다. 부모 형제나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하지요.
하나님을 속이는 것에는 거짓말뿐 아니라 과장하고 보태는 것과 도적질도 포함됩니다. 또한 십일조, 감사예물 등을 마음에 작정하고 하지 않는 것, 기도하는 척하는 것, 중심으로 행하지 않는 것, 기도하라는 성령의 주관에 순종하지 않는 것, 금식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것, 그 밖에도 많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속이거나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두렵게 느껴집니다.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정직한 길로 갈 수 있고, 온전한 모습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연단받을 때에는 두렵고 어려운 것 같지만 값진 연단의 시기가 있기에 결국 응답받는 형통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부모가 책망하거나 바른 길로 이끄는 것이 사랑이듯이, 연단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모든 것이 생각의 차이이므로 범사에 정직한 길로 행하되 결코 하나님을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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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신의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바치고자 했는데 왜 혼이 떠나 죽게 되었을까요?
( )
2. 게하시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었던 것일까요?
( )
3. 사람의 의학으로는 결코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인 문둥병을 어떻게 이방인인 나아만 장군이 치료받을 수 있었을까요?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85~9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들 부부는 초대교회 신자로, 하나님의 종과 성령을 속이는 자들의 최후가 어떠한지를 엄중히 시사해 주고 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자발적으로 교회에 드렸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역시 자신의 소유를 팔아 교회에 바친다고 했지만 사단이 마음에 가득하니 돈의 일부를 감추고 마치 전액인 것처럼 하나님의 종 베드로를 속인다. 이에 베드로가 책망하자 혼이 떠나 죽게 된다.
2014-02-07
제6과용서하는 마음
겔 18:21~24
읽을말씀 : 겔 18:21~24 | 외울말씀 : 마 5:23~24 l 참고 말씀:시 103:12~14
교육목표 : 어느 누구와도 원수 맺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하나님 앞에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악인이라도 멸하는 것을 즐거워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멸하시는 장면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악인을 멸하실 수밖에 없는 공의와 끊임없이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 어찌하든 용서하시려는 사랑의 하나님
창세기 18~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심히 극에 달한 도시였습니다.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멸하시지 않고 마지막 최후까지 살릴 수 있는 증거를 찾고자 천사들을 보내 살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일을 미리 알려 주십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 마음을 잘 알았던 아브라함은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하고 조심스레 여쭙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의인 오십을 찾으면 용서하시겠다고 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포기하지 않고 의인 40인, 30인, 20인, 10인이 있다면 용서해 주시겠냐고 여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돔 성에는 의인 열 명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살피러 온 천사들에게까지 해를 가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그들의 죄가 돌이킬 수 없는 한계에 달했기에 하나님께서 그 성을 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으로 인해 염려할 것을 아시고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시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을 멸하실 것이라는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긴 사위들은 소돔 성에 남아 있다가 죽었고,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돌아보았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기회를 주어 살리고자 하시지만 돌이키지 않고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2. 죄악이 가득 차서 돌이킬 수 없으니 멸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진멸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역시 오래도록 참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사백 년 동안이나 참으셨지요(창 15:13~16). 그런데도 그들은 돌이키지 않고 더 악을 쌓아갔습니다. 마침내 죄악이 가득 차서 돌이킬 가능성이 없으니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이라 할지라도 돌이키면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에스겔 18장 21~22절에 잘 나타나 있지요.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말씀합니다.
그러면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을 남김없이 진멸하도록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행위를 따라 우상을 섬기고 사술을 행하며 음란하고 패역한 것을 본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에서도 여리고 성에 살았던 라합과 그 친족은 구원해 주셨습니다.
라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놀라운 일들을 전해 듣고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였으며,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 주는 선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수 2장).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고 용서하실 뿐 아니라, 의로운 사람은 멸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시며, 비록 이방인이라 해도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만나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시지요.
3. 악인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어떠한 사랑과 용서를 베푸셨습니까?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국 앗수르의 수도였는데, 얼마나 부패했던지 그들의 악행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였지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로 멸하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자 요나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바랐기에 순종하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갑니다. 그러다가 대풍을 만나 파선할 위기에 놓이자 선원들이 누구 때문인지 알기 위해 제비를 뽑습니다. 결국 요나가 뽑혔고 그는 바다에 던져져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요나는 불순종을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용서하시고 물고기를 주관하여 육지에 토해내게 하십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칩니다. 이는 그들의 죄악이 너무 커서 도저히 용서가 불가능한 상태임을 뜻합니다. 그러자 니느웨 백성은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금식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멸하지 않으시지요. 이처럼 악인이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십니다.
4.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죄과를 옮기시는 하나님
어떤 이는 “왜 저런 악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벌을 내리시지 않을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 달라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 원하십니다(딤전 2:4). 우리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까닭에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다윗도 큰 죄를 범하고 나서 깨달은 즉시 회개하니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도 우상 숭배와 악을 행하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회개하였더니 다시 왕위를 회복시켜 주셨지요.
시편 103편 12절에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는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신다’ 했습니다. 무조건 용서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시지요. 사람들은 상대의 허물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죄를 미워할 뿐, 사람을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지요. 누구든지 죄에서 돌이키면 의인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양 일백 마리를 가진 목자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을 때까지 두루 찾아다니지요. 애타게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얼마나 기쁜지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함께 즐기자”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이러하기에 누가복음 15장 7절에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니 자녀 된 우리도 원수 맺는 일이나 미움 등 좋지 않은 감정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을 버리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화목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5. 사랑과 용서로 화목을 이루어야 응답
마태복음 5장 23~24절을 보면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였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돌이킨 후 예물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축복하시지요.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내 생각에 맞지 않는 일이나 애매한 일을 당하여 원수 맺거나 미워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허물이나 죄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셨으니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 하나님께서도 나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화목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도 아끼지 않는 사랑을 베푸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입었기에 모두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화목해야 합니다. 그러니 자신을 돌아보아 미움, 시기, 판단, 정죄 등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서로 용서하며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이 넘쳐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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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는 왜 아모리 족속과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 )
2.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며 도저히 용서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사람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 )
3. 요나는 자기 조국을 짓밟는 니느웨가 멸망했으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가서 그들을 회개시켜 구원에 이르도록 메시지를 전하라고 합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일을 하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77~8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니느웨’란?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수도이다. 사방 둘레가 13km 대규모의 성읍으로,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데 3일이나 걸렸다. 30미터가 넘는 높은 성벽에 둘러싸인 요새였다. 맨 꼭대기 성벽 위로는 3대의 마차가 달릴 정도로 성벽이 두꺼웠다. 앗수르 사람들은 건축술, 호전적인 태도, 군사력과 악독하기로 유명했다. 특히 포로에게 잔인하기로 악명 높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의, 무절제, 우상 숭배, 잔인한 폭력성 등을 묵인하지 않고 심판하려 하시는데 그에 앞서 요나를 보내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다. 이에 그들이 돌이킴으로 구원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교육목표 : 어느 누구와도 원수 맺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함으로 하나님 앞에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악인이라도 멸하는 것을 즐거워하시지 않습니다. 하지만 성경에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멸하시는 장면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여기에는 하나님의 공의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을 자세히 보면 악인을 멸하실 수밖에 없는 공의와 끊임없이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 어찌하든 용서하시려는 사랑의 하나님
창세기 18~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심히 극에 달한 도시였습니다.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멸하시지 않고 마지막 최후까지 살릴 수 있는 증거를 찾고자 천사들을 보내 살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일을 미리 알려 주십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 마음을 잘 알았던 아브라함은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그 성 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 하고 조심스레 여쭙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의인 오십을 찾으면 용서하시겠다고 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포기하지 않고 의인 40인, 30인, 20인, 10인이 있다면 용서해 주시겠냐고 여쭙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돔 성에는 의인 열 명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살피러 온 천사들에게까지 해를 가하려 했습니다. 이처럼 그들의 죄가 돌이킬 수 없는 한계에 달했기에 하나님께서 그 성을 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으로 인해 염려할 것을 아시고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시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을 멸하실 것이라는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긴 사위들은 소돔 성에 남아 있다가 죽었고,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돌아보았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기회를 주어 살리고자 하시지만 돌이키지 않고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심판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2. 죄악이 가득 차서 돌이킬 수 없으니 멸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진멸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역시 오래도록 참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사백 년 동안이나 참으셨지요(창 15:13~16). 그런데도 그들은 돌이키지 않고 더 악을 쌓아갔습니다. 마침내 죄악이 가득 차서 돌이킬 가능성이 없으니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이라 할지라도 돌이키면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에스겔 18장 21~22절에 잘 나타나 있지요.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말씀합니다.
그러면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을 남김없이 진멸하도록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행위를 따라 우상을 섬기고 사술을 행하며 음란하고 패역한 것을 본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에서도 여리고 성에 살았던 라합과 그 친족은 구원해 주셨습니다.
라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놀라운 일들을 전해 듣고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였으며,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 주는 선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수 2장).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고 용서하실 뿐 아니라, 의로운 사람은 멸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시며, 비록 이방인이라 해도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만나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시지요.
3. 악인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어떠한 사랑과 용서를 베푸셨습니까?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국 앗수르의 수도였는데, 얼마나 부패했던지 그들의 악행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였지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로 멸하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자 요나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요나는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바랐기에 순종하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갑니다. 그러다가 대풍을 만나 파선할 위기에 놓이자 선원들이 누구 때문인지 알기 위해 제비를 뽑습니다. 결국 요나가 뽑혔고 그는 바다에 던져져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요나는 불순종을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용서하시고 물고기를 주관하여 육지에 토해내게 하십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칩니다. 이는 그들의 죄악이 너무 커서 도저히 용서가 불가능한 상태임을 뜻합니다. 그러자 니느웨 백성은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금식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멸하지 않으시지요. 이처럼 악인이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십니다.
4.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죄과를 옮기시는 하나님
어떤 이는 “왜 저런 악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벌을 내리시지 않을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 달라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 원하십니다(딤전 2:4). 우리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까닭에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다윗도 큰 죄를 범하고 나서 깨달은 즉시 회개하니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도 우상 숭배와 악을 행하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회개하였더니 다시 왕위를 회복시켜 주셨지요.
시편 103편 12절에 그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는 자에게는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신다’ 했습니다. 무조건 용서하신다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시지요. 사람들은 상대의 허물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죄를 미워할 뿐, 사람을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지요. 누구든지 죄에서 돌이키면 의인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양 일백 마리를 가진 목자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을 때까지 두루 찾아다니지요. 애타게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얼마나 기쁜지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함께 즐기자”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이러하기에 누가복음 15장 7절에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니 자녀 된 우리도 원수 맺는 일이나 미움 등 좋지 않은 감정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것을 버리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화목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5. 사랑과 용서로 화목을 이루어야 응답
마태복음 5장 23~24절을 보면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하였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돌이킨 후 예물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축복하시지요.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내 생각에 맞지 않는 일이나 애매한 일을 당하여 원수 맺거나 미워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허물이나 죄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셨으니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 하나님께서도 나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화목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도 아끼지 않는 사랑을 베푸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입었기에 모두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화목해야 합니다. 그러니 자신을 돌아보아 미움, 시기, 판단, 정죄 등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서로 용서하며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이 넘쳐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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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는 왜 아모리 족속과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실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요?
( )
2. 나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며 도저히 용서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는 사람에 대해 여러분은 어떤 마음으로 대하고 있습니까?
( )
3. 요나는 자기 조국을 짓밟는 니느웨가 멸망했으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가서 그들을 회개시켜 구원에 이르도록 메시지를 전하라고 합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일을 하라고 하시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77~8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니느웨’란?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수도이다. 사방 둘레가 13km 대규모의 성읍으로,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데 3일이나 걸렸다. 30미터가 넘는 높은 성벽에 둘러싸인 요새였다. 맨 꼭대기 성벽 위로는 3대의 마차가 달릴 정도로 성벽이 두꺼웠다. 앗수르 사람들은 건축술, 호전적인 태도, 군사력과 악독하기로 유명했다. 특히 포로에게 잔인하기로 악명 높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의, 무절제, 우상 숭배, 잔인한 폭력성 등을 묵인하지 않고 심판하려 하시는데 그에 앞서 요나를 보내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다. 이에 그들이 돌이킴으로 구원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2014-01-30
제5과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게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이날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대망의 새해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지난 한 해도 지키시고 풍성한 것들로 채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지난 한 해 동안도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하시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_____________________ 사도신경 ________________________ 다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_________________________ 458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같이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후렴 _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기 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__________________ 고린도후서 5:18~19 ___________________ 사회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설 교 ___________________________ 화 목 ________________________ 설교자
2. 설교 예문
가정에 싸움과 다툼이 없고 사랑이 넘친다면 항상 웃음꽃이 만발할 것입니다. 가족간에 화기애애하고 서로 사랑하니 안 보면 보고 싶고, 늘 함께하고 싶어지지요. 행복한 가정의 예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깜짝 놀라 “왜 우느냐?”고 물었지요. 이유인즉슨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신랑은 “내가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해 밥이 탔다.”며 자기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의 위로에 아내는 감격해서 더 눈물이 났습니다.
마침 부엌을 지나가시던 시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아버지는 “내가 장작을 굵게 패지 못하고, 잘게 패서 화력이 너무 세 밥이 탔다.”며 자기 탓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시어머니는 “내가 늙어 밥 냄새를 못 맡아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며느리를 감싸 주었지요.
가족들 중 어느 누구 하나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남의 탓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돌아보며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상대방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지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다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서로 화목하는 것입니다. 어떤 집은 화목을 중요시하여 가훈으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써 놓은 것도 봅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기 때문입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말씀합니다. 육선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훨씬 낫다라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항상 화목을 이룰 수 있을까요?
먼저,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 불로 번지면 많은 재산을 잃고 사람이 다치고 죽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이 화근(禍根)이 되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히지요. 야고보서 3장 5~6절에 보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의 말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싸움으로 번지게 만듭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요. 그러니 그 사람이 가는 곳은 늘 분쟁이 일고 화평이 깨지기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말할 자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인생의 큰 해를 입기도 하고,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습니다.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듯이, 우리가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한마디 말도 항상 심사숙고하여 신중하게 하고 쓸데없는 농담이나 험담은 삼가야지요. 오직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고, 격려하며 자존감을 높여 주는 힘이 되는 말을 하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 속에서 늘 상대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겨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면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는 무조건 남편이 자기에게 맞춰 주길 바라고 자신이 한 만큼 받지 못하면 서운해하고 삐칩니다. 자존심 강한 남편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내에게 져주기보다는 자기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지요. 그러니 티격태격 싸우고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섬김’이란 겸손하고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에게 유익을 주고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고,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은 온전히 녹아지는 것과 같지요.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고 그의 유익을 구해 줍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힘이 될까?’를 생각하지요.
이렇게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의 공통점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 내 것, 자존심, 내 고집, 나 보기에 의로움’이 없지요. 요한복음 13장 34절에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했습니다. 나를 주장하지 않고 삼가 입술의 말을 주의하여 오직 덕을 세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고 섬기면 화평할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더욱 하나 될 수 있지요.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면 하나님께서는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주시고 형통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비진리, 악들을 행할 때는 하는 일마다 꼬이고 불통하는 것을 봅니다. 안 될 것은 당연히 안 되고, 될 일도 안 되지요.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0장 4~5절에 보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말씀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과 마음의 소원을 막연히 신에게 빌었습니다. 또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제사를 지냈지요.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그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다해 차례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갑니다. 우리 조상들은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신을 찾고 기도를 하였지요.
하나님은 살아 계신 참 신으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어떤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여러분이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심으로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기 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같이
주기도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게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이날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대망의 새해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지난 한 해도 지키시고 풍성한 것들로 채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지난 한 해 동안도 우리를 지키시고 축복하시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신앙고백 _____________________ 사도신경 ________________________ 다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_________________________ 458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같이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후렴 _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기 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__________________ 고린도후서 5:18~19 ___________________ 사회자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설 교 ___________________________ 화 목 ________________________ 설교자
2. 설교 예문
가정에 싸움과 다툼이 없고 사랑이 넘친다면 항상 웃음꽃이 만발할 것입니다. 가족간에 화기애애하고 서로 사랑하니 안 보면 보고 싶고, 늘 함께하고 싶어지지요. 행복한 가정의 예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깜짝 놀라 “왜 우느냐?”고 물었지요. 이유인즉슨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신랑은 “내가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해 밥이 탔다.”며 자기 잘못이라고 하였습니다. 남편의 위로에 아내는 감격해서 더 눈물이 났습니다.
마침 부엌을 지나가시던 시아버지가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아버지는 “내가 장작을 굵게 패지 못하고, 잘게 패서 화력이 너무 세 밥이 탔다.”며 자기 탓이라고 하였습니다. 또 시어머니는 “내가 늙어 밥 냄새를 못 맡아 이런 일이 일어났다.”며 며느리를 감싸 주었지요.
가족들 중 어느 누구 하나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남의 탓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돌아보며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상대방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지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다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서로 화목하는 것입니다. 어떤 집은 화목을 중요시하여 가훈으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써 놓은 것도 봅니다.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기 때문입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말씀합니다. 육선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훨씬 낫다라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항상 화목을 이룰 수 있을까요?
먼저,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 불로 번지면 많은 재산을 잃고 사람이 다치고 죽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이 화근(禍根)이 되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히지요. 야고보서 3장 5~6절에 보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의 말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싸움으로 번지게 만듭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요. 그러니 그 사람이 가는 곳은 늘 분쟁이 일고 화평이 깨지기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말할 자유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인생의 큰 해를 입기도 하고,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습니다.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듯이, 우리가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한마디 말도 항상 심사숙고하여 신중하게 하고 쓸데없는 농담이나 험담은 삼가야지요. 오직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고, 격려하며 자존감을 높여 주는 힘이 되는 말을 하기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 속에서 늘 상대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치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겨야 합니다.
부부간에도 서로 자기의 유익을 구하면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는 무조건 남편이 자기에게 맞춰 주길 바라고 자신이 한 만큼 받지 못하면 서운해하고 삐칩니다. 자존심 강한 남편도 만만치 않습니다. 아내에게 져주기보다는 자기 의견을 강하게 내세우지요. 그러니 티격태격 싸우고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는 것입니다.
‘섬김’이란 겸손하고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에게 유익을 주고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고,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은 온전히 녹아지는 것과 같지요.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하고 그의 유익을 구해 줍니다.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힘이 될까?’를 생각하지요.
이렇게 남을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의 공통점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 내 것, 자존심, 내 고집, 나 보기에 의로움’이 없지요. 요한복음 13장 34절에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했습니다. 나를 주장하지 않고 삼가 입술의 말을 주의하여 오직 덕을 세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고 섬기면 화평할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더욱 하나 될 수 있지요.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서로 사랑하고 화평하면 하나님께서는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주시고 형통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출애굽기 20장 6절에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비진리, 악들을 행할 때는 하는 일마다 꼬이고 불통하는 것을 봅니다. 안 될 것은 당연히 안 되고, 될 일도 안 되지요. 죄를 짓게 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0장 4~5절에 보면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말씀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과 마음의 소원을 막연히 신에게 빌었습니다. 또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제사를 지냈지요.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그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다해 차례를 지냈습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가지 못하고 지옥에 갑니다. 우리 조상들은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신을 찾고 기도를 하였지요.
하나님은 살아 계신 참 신으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어떤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여러분이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심으로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기 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같이
주기도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14-01-24
제4과악행에서 돌이키라
렘 25:1~5
읽을말씀 : 렘 25:1~5 | 외울말씀 : 살전 5:22 ㅣ 참고 말씀:갈 5:19~21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행에서 떠나 오직 진리대로 행하여 응답과 축복을 받는 주인공이 되게 한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는 진리 말씀대로 행치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악행의 결과는 무엇이며 또한 돌이킬 때 주시는 축복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악행에서 돌이키기 원하시는 하나님
예레미야 25장 1~5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유다 백성들을 향해 악행에서 돌이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 왕국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후였습니다. 그런데 남유다 왕국마저 악행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려 하자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를 안타까워하며 악행에서 돌이킬 것을 계속해서 선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신 것은 바로 영적 간음이었습니다. 여기서 간음이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라 했는데,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 돌과 나무로 만든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렘 3:8~10). 하나님께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출 20:3~5) 그들은 하나님 뜻을 어기고 반대로 나갔던 것입니다.
또한 유다 백성이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 나타내기를 원치 않고 여러 가지 죄 범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23년간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라 했지만 그들은 도리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렘 38:4~6).
오늘날 가정, 학교, 직장, 그 외 모든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돌이켜야 할 일이 매우 많습니다. 가정의 경우를 보면 우리는 가족의 일원으로 각자에게 요구되는 사항들이 있습니다. ‘서로 섬기자’라든가, ‘서로 기쁨이 되는 일을 행하자’ 등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말이 반복되고 짜증 내는 일들이 빈번히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령, 남편이 매일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다면 가족이 얼마나 고통을 받겠습니까? 이는 가정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사회를 보면 죄가 관영하여 각종 사기 행각, 간음, 살인, 폭행, 마약, 유괴, 인신매매 등 수많은 악행이 저질러지고 있는데 이는 마땅히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악행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 안에서도 크고 작은 죄를 짓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 큰 악행이 육체의 일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을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했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쉽게 짓는 죄에는 시기, 질투, 비방, 판단, 정죄, 미움, 간음, 거짓 등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도 쉽게 짓는 죄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는 것도 죄”(삼상 12:23)라 하시며 “쉬지 말고 기도하라”,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이런저런 고통과 연단, 시험 환난이 따릅니다. 그리고 현저한 육체의 일 곧 음행과 호색, 우상 숭배, 분쟁, 방탕함 등의 죄를 계속 지어 나가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한 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롬 6:23). 이처럼 악행에서 돌이키지 않아 온갖 재앙을 겪은 대표적인 사람이 애굽의 바로 왕입니다.
2. 애굽 왕 바로를 통해서 얻는 교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심으로 모세를 그들의 구원자로 보내십니다. 즉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모세와 아론은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이적을 보여 주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내셨음을 알려 줍니다(출 7:9~10). 그래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이 깨닫고 돌이킬 수 있도록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립니다.
첫째는 애굽의 모든 물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이요, 둘째는 개구리 재앙이요, 셋째는 이의 재앙입니다. 넷째는 파리 떼의 재앙이요, 다섯째는 악질의 재앙이요, 여섯째는 독종의 재앙입니다. 일곱째는 우박의 재앙이요, 여덟째는 메뚜기 재앙이요, 아홉째는 흑암의 재앙이요, 열 번째는 장자의 재앙으로 생명까지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바로 왕은 열 번째 재앙을 당한 후에야 출애굽을 허락하지만 이내 마음이 변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바로 왕의 마음이 또 변할 것을 다 아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급히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두셨습니다. 온 애굽 사람들도 이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서 떠나가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스라엘 자손이 다 떠나니 바로는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부랴부랴 병거를 타고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 결과 홍해를 건너던 애굽 군대가 병거와 함께 홍해 속에 모두 수장되고 말았지요.
과연 바로 왕을 통하여 우리가 깨우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뜻을 알고 순종하면 축복이요, 반면에 순종하지 않으면 재앙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키라 하셨을 때 금방 돌이키면 그만큼 손실이 적지만 돌이키는 데에 시간을 끄는 만큼 많은 손실을 입습니다(「거역된 삶과 순종의 삶」 책자 참조).
3. 악행에서 돌이킬 때 임하는 축복
우리가 돌이킬 때에는 진정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한 번 마음에서부터 돌이키리라고 결심을 했으면 끝까지 가야 하지요. 세상 사람은 어떤 것을 결심하고도 작심삼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받으면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키는 것 같다가 다시 번복되는 일이 계속된다면 이는 돌이킨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비록 하나님 앞에 범죄했지만 깨달은 후 즉시 돌이킨 다윗 왕이 나옵니다. 다윗 왕은 부하 장수인 우리아의 아내와 동침하는 간음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궤계를 써서 의로운 사람인 우리아까지 죽이는 살인죄를 지었습니다(삼하 11:2~27). 그러나 나단 선지자가 와서 죄를 지적하자 즉시 회개하였습니다(삼하 12:1~23). 회개하여 용서는 받지만 죄의 대가로 엄청난 연단이 따릅니다. 이때 다윗은 겸비한 마음으로 연단을 받아 훌륭한 왕이 될 수 있는 그릇으로 나왔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어떠했습니까? 열왕기하 20장을 보면 히스기야 왕에게 죽을병이 든 사건이 나옵니다. 히스기야는 처음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교만해졌습니다. 그러니 이사야 선지자에게서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라는 하나님의 엄한 말씀을 듣게 되지요. 히스기야는 죄에서 돌이키고 통회자복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으며, 앗수르 왕의 침략에서 성을 보호해 주겠다는 축복의 약속까지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면 그 즉시 완전히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 하셨는데 서쪽으로 가고 있다면 완전히 돌이켜 동쪽으로 가야 합니다. 가끔씩 다시 서쪽으로 간다면 어찌 돌이킨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에 작정한 것은 변개하지 않고 지켜 행해야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므로 은혜가 임하고 응답이 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23절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그러니 악에서 돌이켜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오직 진리대로 행함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영과 혼과 몸이 흠없게 보전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범죄한 유다 백성에게 23년간이나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라고 호소한 눈물의 선지자는 누구일까요? ( )
2. 비록 범죄했지만 철저히 돌이킨 후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이 된 사람은
누구일까요?
① 사울 왕 ② 다윗 왕 ③ 솔로몬 왕 ④ 아합 왕
3. 죽을병이 들었을 때 낯을 벽으로 향하여 여호와께 눈물로 통회자복하며 기도한 후에 15년이나 생명을 연장받은 왕은 누구일까요? ( )
4.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악행에 대해 써 보세요.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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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61~7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나단 선지자’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할 때 솔로몬에게 짓게 할 것과 다윗의 후손을 세워 다윗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다윗이 우리아라는 장수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아를 전쟁터에 보내 죽게 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것을 경고했다. 아도니야가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려고 할 때 나단 선지자는 솔로몬이 왕이 되도록 밧세바와 함께 다윗을 찾아가 왕의 후계자에 대해 조언하였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행에서 떠나 오직 진리대로 행하여 응답과 축복을 받는 주인공이 되게 한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 중에는 진리 말씀대로 행치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악행의 결과는 무엇이며 또한 돌이킬 때 주시는 축복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1. 악행에서 돌이키기 원하시는 하나님
예레미야 25장 1~5절을 보면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유다 백성들을 향해 악행에서 돌이킬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당시 북이스라엘 왕국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당한 후였습니다. 그런데 남유다 왕국마저 악행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려 하자 눈물의 선지자 예레미야가 이를 안타까워하며 악행에서 돌이킬 것을 계속해서 선포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신 것은 바로 영적 간음이었습니다. 여기서 간음이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라 했는데, 오히려 하나님을 떠나 돌과 나무로 만든 다른 우상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렘 3:8~10). 하나님께서 다른 신을 섬기는 것이나 우상을 숭배하는 것이 죄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출 20:3~5) 그들은 하나님 뜻을 어기고 반대로 나갔던 것입니다.
또한 유다 백성이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영광 나타내기를 원치 않고 여러 가지 죄 범하는 것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23년간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라 했지만 그들은 도리어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렘 38:4~6).
오늘날 가정, 학교, 직장, 그 외 모든 사회생활에 있어서도 돌이켜야 할 일이 매우 많습니다. 가정의 경우를 보면 우리는 가족의 일원으로 각자에게 요구되는 사항들이 있습니다. ‘서로 섬기자’라든가, ‘서로 기쁨이 되는 일을 행하자’ 등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지 않기 때문에 같은 말이 반복되고 짜증 내는 일들이 빈번히 벌어지는 것입니다.
가령, 남편이 매일 직장 동료들과 어울려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다면 가족이 얼마나 고통을 받겠습니까? 이는 가정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우리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현대 사회를 보면 죄가 관영하여 각종 사기 행각, 간음, 살인, 폭행, 마약, 유괴, 인신매매 등 수많은 악행이 저질러지고 있는데 이는 마땅히 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악행이 없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주 안에서도 크고 작은 죄를 짓는 경우가 많은데 그중 큰 악행이 육체의 일입니다. 갈라디아서 5장 19~21절을 보면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했습니다.
이 외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쉽게 짓는 죄에는 시기, 질투, 비방, 판단, 정죄, 미움, 간음, 거짓 등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도 쉽게 짓는 죄 중의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기도하지 않는 것도 죄”(삼상 12:23)라 하시며 “쉬지 말고 기도하라”,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이러한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이런저런 고통과 연단, 시험 환난이 따릅니다. 그리고 현저한 육체의 일 곧 음행과 호색, 우상 숭배, 분쟁, 방탕함 등의 죄를 계속 지어 나가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한 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롬 6:23). 이처럼 악행에서 돌이키지 않아 온갖 재앙을 겪은 대표적인 사람이 애굽의 바로 왕입니다.
2. 애굽 왕 바로를 통해서 얻는 교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심으로 모세를 그들의 구원자로 보내십니다. 즉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모세와 아론은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이적을 보여 주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내셨음을 알려 줍니다(출 7:9~10). 그래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이 깨닫고 돌이킬 수 있도록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립니다.
첫째는 애굽의 모든 물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이요, 둘째는 개구리 재앙이요, 셋째는 이의 재앙입니다. 넷째는 파리 떼의 재앙이요, 다섯째는 악질의 재앙이요, 여섯째는 독종의 재앙입니다. 일곱째는 우박의 재앙이요, 여덟째는 메뚜기 재앙이요, 아홉째는 흑암의 재앙이요, 열 번째는 장자의 재앙으로 생명까지 거두어 가시는 것입니다.
바로 왕은 열 번째 재앙을 당한 후에야 출애굽을 허락하지만 이내 마음이 변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바로 왕의 마음이 또 변할 것을 다 아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급히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두셨습니다. 온 애굽 사람들도 이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서 떠나가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스라엘 자손이 다 떠나니 바로는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부랴부랴 병거를 타고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 결과 홍해를 건너던 애굽 군대가 병거와 함께 홍해 속에 모두 수장되고 말았지요.
과연 바로 왕을 통하여 우리가 깨우쳐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 뜻을 알고 순종하면 축복이요, 반면에 순종하지 않으면 재앙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키라 하셨을 때 금방 돌이키면 그만큼 손실이 적지만 돌이키는 데에 시간을 끄는 만큼 많은 손실을 입습니다(「거역된 삶과 순종의 삶」 책자 참조).
3. 악행에서 돌이킬 때 임하는 축복
우리가 돌이킬 때에는 진정으로 돌이켜야 합니다. 한 번 마음에서부터 돌이키리라고 결심을 했으면 끝까지 가야 하지요. 세상 사람은 어떤 것을 결심하고도 작심삼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이 내 안에 계시기 때문에 기도하면서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받으면 지켜나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돌이키는 것 같다가 다시 번복되는 일이 계속된다면 이는 돌이킨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 보면 비록 하나님 앞에 범죄했지만 깨달은 후 즉시 돌이킨 다윗 왕이 나옵니다. 다윗 왕은 부하 장수인 우리아의 아내와 동침하는 간음죄를 지었을 뿐만 아니라 궤계를 써서 의로운 사람인 우리아까지 죽이는 살인죄를 지었습니다(삼하 11:2~27). 그러나 나단 선지자가 와서 죄를 지적하자 즉시 회개하였습니다(삼하 12:1~23). 회개하여 용서는 받지만 죄의 대가로 엄청난 연단이 따릅니다. 이때 다윗은 겸비한 마음으로 연단을 받아 훌륭한 왕이 될 수 있는 그릇으로 나왔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어떠했습니까? 열왕기하 20장을 보면 히스기야 왕에게 죽을병이 든 사건이 나옵니다. 히스기야는 처음에는 하나님 보시기에 정직히 행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교만해졌습니다. 그러니 이사야 선지자에게서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라는 하나님의 엄한 말씀을 듣게 되지요. 히스기야는 죄에서 돌이키고 통회자복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으며, 앗수르 왕의 침략에서 성을 보호해 주겠다는 축복의 약속까지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죄를 지었으면 그 즉시 완전히 돌이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 하셨는데 서쪽으로 가고 있다면 완전히 돌이켜 동쪽으로 가야 합니다. 가끔씩 다시 서쪽으로 간다면 어찌 돌이킨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마음에 작정한 것은 변개하지 않고 지켜 행해야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주시므로 은혜가 임하고 응답이 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23절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했습니다. 그러니 악에서 돌이켜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오직 진리대로 행함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영과 혼과 몸이 흠없게 보전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범죄한 유다 백성에게 23년간이나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라고 호소한 눈물의 선지자는 누구일까요? ( )
2. 비록 범죄했지만 철저히 돌이킨 후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훌륭한 왕이 된 사람은
누구일까요?
① 사울 왕 ② 다윗 왕 ③ 솔로몬 왕 ④ 아합 왕
3. 죽을병이 들었을 때 낯을 벽으로 향하여 여호와께 눈물로 통회자복하며 기도한 후에 15년이나 생명을 연장받은 왕은 누구일까요? ( )
4.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악행에 대해 써 보세요.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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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61~7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나단 선지자’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이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고자 할 때 솔로몬에게 짓게 할 것과 다윗의 후손을 세워 다윗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다윗이 우리아라는 장수의 아내 밧세바를 취하고 우리아를 전쟁터에 보내 죽게 한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징계가 임할 것을 경고했다. 아도니야가 반란을 일으켜 왕이 되려고 할 때 나단 선지자는 솔로몬이 왕이 되도록 밧세바와 함께 다윗을 찾아가 왕의 후계자에 대해 조언하였다.
2014-01-17
제3과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되리라
롬 10:10
읽을말씀 : 롬 10:10 | 외울말씀 : 롬 10:10 ㅣ 참고 말씀:민 13:31~33,14:7~9, 단 3:17~18
교육목표 : 부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아닌 믿음의 긍정적인 고백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긍정적인 고백을 하며 하나님 역사를 입으로 시인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입술의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 믿음의 고백으로 항상 승리의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의 중요성
어떤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수록 더욱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라 할지라도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면 보다 쉽게 돌파구를 발견하여 일을 이루어갑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하며 말씀을 믿고 행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역사하셨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한 고백은 천지 차이입니다. 그중 열 사람은 가나안 거민을 두려워하여 그 땅을 악평하며 부정적인 보고를 한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긍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민수기 14장 7~9절에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하지요.
이처럼 그들은 구구절절 긍정적인 시인과 믿음의 고백이었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을 제외한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백부장이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갸륵한 마음에 감동받아 그 집에 가서 하인을 고쳐 주시려 했습니다. 이때 백부장은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하며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지요. 결국 백부장이 시인한 대로 하인의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믿음을 칭찬해 주시면 모든 문제가 신속히 해결됩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어려운 일도 하나님께서는 다 하실 수 있으므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믿음으로 고백하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마가복음 7장 24절 이하를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귀신 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시지요. 보통 사람 같으면 서운함과 모멸감으로 가버렸을 텐데 오히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변함없이 겸비한 자세로 은혜를 구합니다.
여인은 믿음으로 나왔기 때문에 어떤 말씀에도 상처받지 않고 변개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의 선과 믿음을 보신 예수님은 즉시로 딸을 치료해 주시지요. 이처럼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반드시 응답이 옵니다.
다니엘 3장을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금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에 넣겠다고 위협할 때에 다니엘의 세 친구는 담대히 고백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이들은 결국 풀무불에 던져졌으나 하나님께서 지키심으로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에 설령 시험과 핍박이 온다 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오히려 축복받고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2. 입술로 매를 자청한 사람과 복을 받은 사람
성경에 보면 입술로 매를 자청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지만 결과는 그 입술로 시인한 대로 되었습니다. 장자의 모든 축복권이 동생 야곱에게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열왕기하 6~7장에도 비슷한 일이 나옵니다.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오래 포위해서 공격하므로 성 안에는 먹을 것이 없어 자식까지 잡아먹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성문에서 밀가루와 보리가 헐값에 팔리리라” 예언하지만 왕의 심복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망령된 말을 하지요.
그러자 엘리사는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합니다. 다음 날 장관은 성문을 지키고 있다가 아람 군대의 진을 노략하러 가던 백성에게 밟혀 죽고 맙니다. 선지자의 말을 부정하므로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말 한마디에 하나님 역사가 따르기도 하고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가 따르기도 합니다.
반면 역대하 20장을 보면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오자 여호사밧 왕은 온 백성과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자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가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왕은 백성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격려하지요.
뿐만 아니라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혀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왕의 긍정적인 고백과 믿음의 행함을 보시고 싸우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게 역사하셨습니다.
3.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응답받으려면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입으로 시인하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마음에 믿지 않고 의심하면서 “믿습니다.”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무조건 입으로 시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에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하여 비진리를 버리며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요. 그래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 뜻을 좇아 말씀대로 행하니 하나님께서 그가 입술로 시인할 때 응답하십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열심히 하나님 앞에 심고 구제하며 예배와 각종 모임에 참석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은커녕 오히려 어려운 일만 닥치니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원망 불평했다면 왜 그런 모습이 나온 것일까요? 그가 정말로 하나님을 마음에 믿었다면 마음이 바뀌지 않고 끝까지 인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믿은 것이 아니라 단지 입술로 시인한 것이니 때가 지나자 본심이 드러난 것이지요. 따라서 똑같이 충성하고 심었어도 누구는 응답받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입술의 고백대로 응답받습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은 입술로 고백했다 해도 그것이 참이 아니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의 악이 드러납니다.
야고보서 3장 11절에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라고 말씀합니다. “믿습니다.” 해 놓고 다음에 부정하는 쓴 물을 낸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인내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인한 대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혹여 힘들고 어려울 때, 시험 환난이 닥쳤을 때에 원망 불평하는 말, 하나님 혹은 주의 종, 형제를 서운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자녀답게 단물만 내는 거룩한 입술이 되어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의 고백을 써 보세요(민수기 14:7~9).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올 때 여호사밧 왕이 백성에게 한 믿음의 고백을 써 보세요(역대하 20:20).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귀신 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했을 때 개 취급을 당했음에도 겸손히 끝까지 믿음의 고백을 한 수로보니게 여인의 고백을 써 보세요(막 7:28).
주여 옳소이다마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49~6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입술의 단물이란?
영적으로 진리의 말, 영혼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힘을 주는 말, 믿음의 고백 혹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간증을 말한다. 사람의 말은 그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단물만 내는 입술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선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씀하고 있다.
교육목표 : 부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아닌 믿음의 긍정적인 고백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고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긍정적인 고백을 하며 하나님 역사를 입으로 시인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입술의 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아 믿음의 고백으로 항상 승리의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의 중요성
어떤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수록 더욱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라 할지라도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면 보다 쉽게 돌파구를 발견하여 일을 이루어갑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도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하며 말씀을 믿고 행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역사하셨습니다.
모세는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들이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와서 한 고백은 천지 차이입니다. 그중 열 사람은 가나안 거민을 두려워하여 그 땅을 악평하며 부정적인 보고를 한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에 긍정적인 보고를 합니다.
민수기 14장 7~9절에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하지요.
이처럼 그들은 구구절절 긍정적인 시인과 믿음의 고백이었기에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을 제외한 출애굽 당시 20세 이상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백부장이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예수님께서 백부장의 갸륵한 마음에 감동받아 그 집에 가서 하인을 고쳐 주시려 했습니다. 이때 백부장은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라고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하며 그의 믿음을 칭찬하시지요. 결국 백부장이 시인한 대로 하인의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 믿음을 칭찬해 주시면 모든 문제가 신속히 해결됩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은 어려운 일도 하나님께서는 다 하실 수 있으므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믿음으로 고백하면 안 될 것이 없습니다.
마가복음 7장 24절 이하를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귀신 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고 하시지요. 보통 사람 같으면 서운함과 모멸감으로 가버렸을 텐데 오히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변함없이 겸비한 자세로 은혜를 구합니다.
여인은 믿음으로 나왔기 때문에 어떤 말씀에도 상처받지 않고 변개하지 않았습니다. 여인의 선과 믿음을 보신 예수님은 즉시로 딸을 치료해 주시지요. 이처럼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반드시 응답이 옵니다.
다니엘 3장을 보면 느부갓네살 왕이 금 신상에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에 넣겠다고 위협할 때에 다니엘의 세 친구는 담대히 고백합니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 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단 3:17~18). 이들은 결국 풀무불에 던져졌으나 하나님께서 지키심으로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에 설령 시험과 핍박이 온다 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오히려 축복받고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2. 입술로 매를 자청한 사람과 복을 받은 사람
성경에 보면 입술로 매를 자청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지만 결과는 그 입술로 시인한 대로 되었습니다. 장자의 모든 축복권이 동생 야곱에게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열왕기하 6~7장에도 비슷한 일이 나옵니다.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오래 포위해서 공격하므로 성 안에는 먹을 것이 없어 자식까지 잡아먹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성문에서 밀가루와 보리가 헐값에 팔리리라” 예언하지만 왕의 심복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망령된 말을 하지요.
그러자 엘리사는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합니다. 다음 날 장관은 성문을 지키고 있다가 아람 군대의 진을 노략하러 가던 백성에게 밟혀 죽고 맙니다. 선지자의 말을 부정하므로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말 한마디에 하나님 역사가 따르기도 하고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가 따르기도 합니다.
반면 역대하 20장을 보면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오자 여호사밧 왕은 온 백성과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자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가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왕은 백성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격려하지요.
뿐만 아니라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혀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왕의 긍정적인 고백과 믿음의 행함을 보시고 싸우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게 역사하셨습니다.
3.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응답받으려면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입으로 시인하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마음에 믿지 않고 의심하면서 “믿습니다.”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무조건 입으로 시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에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하여 비진리를 버리며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요. 그래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 뜻을 좇아 말씀대로 행하니 하나님께서 그가 입술로 시인할 때 응답하십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열심히 하나님 앞에 심고 구제하며 예배와 각종 모임에 참석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은커녕 오히려 어려운 일만 닥치니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원망 불평했다면 왜 그런 모습이 나온 것일까요? 그가 정말로 하나님을 마음에 믿었다면 마음이 바뀌지 않고 끝까지 인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믿은 것이 아니라 단지 입술로 시인한 것이니 때가 지나자 본심이 드러난 것이지요. 따라서 똑같이 충성하고 심었어도 누구는 응답받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입술의 고백대로 응답받습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은 입술로 고백했다 해도 그것이 참이 아니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의 악이 드러납니다.
야고보서 3장 11절에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라고 말씀합니다. “믿습니다.” 해 놓고 다음에 부정하는 쓴 물을 낸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인내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인한 대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혹여 힘들고 어려울 때, 시험 환난이 닥쳤을 때에 원망 불평하는 말, 하나님 혹은 주의 종, 형제를 서운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자녀답게 단물만 내는 거룩한 입술이 되어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의 고백을 써 보세요(민수기 14:7~9).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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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올 때 여호사밧 왕이 백성에게 한 믿음의 고백을 써 보세요(역대하 20:20).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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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귀신 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했을 때 개 취급을 당했음에도 겸손히 끝까지 믿음의 고백을 한 수로보니게 여인의 고백을 써 보세요(막 7:28).
주여 옳소이다마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49~6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입술의 단물이란?
영적으로 진리의 말, 영혼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힘을 주는 말, 믿음의 고백 혹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간증을 말한다. 사람의 말은 그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단물만 내는 입술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선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씀하고 있다.
2014-01-10
제2과응답의 하나님
시 78:12~29
읽을말씀 : 시 78:12~29 | 외울말씀 : 마 7:7 l 참고 말씀:삼상 1:11, 마 1:19
교육목표 :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만들어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며 무엇이든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시고 영광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 돌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응답의 비결을 살펴보겠습니다.
1.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애굽, 지금으로 말하면 이집트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고역으로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출 2:23).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지도자로 삼으시고 그들을 출애굽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출애굽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목전에서 각종 기사와 표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반석을 쳐서 강같이 물을 흐르게 하여 마시게 했고,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하늘 문을 열어 만나라는 하늘 양식을 먹이셨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는 우리가 이 세상 죄 가운데 살던 생활에서 나와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이 땅에서의 믿음생활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뒷짐 지고 지켜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우리 삶의 과정에서 만나 주고 함께하시며 구하는 것에 응답하고 천국에까지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말씀하시며 응답의 비결을 알려 주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고 응답하신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죽은 자를 살려 주신 경우도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 후 아이 위에 올라가 엎드리니 그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고 살아납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자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걸어 나왔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향해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니 그가 살아나지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뿐만 아니라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런 역사를 베풀었습니다(행 20:7~12).
이 외에도 성경에는 이미 경수가 끊어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은 것이나,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쓴 대로 나라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벨사살 왕의 경우도 있습니다(단 5장).
마태복음 11장 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는 일을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마감하면서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5) 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구약 시대나 예수님 당시뿐만 아니라 어제나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종이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변함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응답은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가
그러면 하나님의 응답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 것일까요? 아브라함은 변함없는 믿음으로 응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도 살려 주실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요구하시더라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의심하고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이처럼 두 마음을 품으면 응답받을 수 없지만(약 1:6~8)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응답받기 위해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였다 했습니다(왕상 18:42).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니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였는가를 알 수 있지요. 그러한 기도를 통해 3년 반 동안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던 땅에 큰 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떠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였나요?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습니다(행 10:2). 이러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상달되어 그를 기억하시고 베드로를 보내 그와 그 자리에 참석한 일가친척, 친구까지도 모두 성령 받고 구원받으며 방언의 은사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행 10장).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를 정성껏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고 그에게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오늘날의 예배를 의미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 솔로몬처럼 축복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소년 다윗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고 믿음을 내보임으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바로 블레셋 사람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물맷돌로 쓰러뜨린 것입니다(삼상 17:32~49). 골리앗의 죽음을 본 블레셋 군대는 놀라서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하였고, 이스라엘은 이 싸움에서 크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일개 소년 목동에 지나지 않던 다윗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이렇게 엄청나게 컸기에 하나님께 응답받아 영광도 돌리고 위기에 처한 나라도 구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앞에 큰 문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가 있다 해도 다윗처럼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신속히 만나는 사람들의 중심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침한 적이 없으니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도록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찌 하였습니까? 마태복음 1장 19절을 보면,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했습니다. 그 여인을 위해서 끝까지 선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이런 착하고 의로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마 1:20).
마리아 또한 그 중심이 곧고 선했습니다. 마리아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 처녀인데도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합니다(눅 1:31~32). 이때 마리아는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기쁨으로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며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엘리사벳이나 사가랴 같은 이들은 어떠하였습니까? 누가복음 1장 6절을 보면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하였습니다. 이들은 늙도록 자식이 없었으나 하나님 앞에 그 기도가 상달되어 세례 요한을 낳는 큰 축복을 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나는 하나님 앞에 서원을 갚는 마음 중심이었으므로 응답을 받을 수 있었지요. 소원대로 아들을 얻은 후 아이의 젖을 떼자 곧 그를 데리고 여호와의 집이 있는 실로로 나아가 엘리 제사장에게 그 아이 사무엘을 하나님의 종으로 드렸던 것입니다. 한나는 서원을 지켰으므로 그 이후로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을 수 있었고, 또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대선지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 기적을 베푸시고 능치 못하실 것이 없는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니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막힌 죄의 담을 헐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선한 마음으로 간절히 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인물을 보기에서 골라 쓰세요.
<보기 : 한나, 요셉, 고넬료, 엘리야, 아브라함>
1. 죽은 자도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하실
때도 온전히 순종했다. ( )
2. 왕과 백성들의 극심한 우상 숭배로 나라에 3년 반 동안 가뭄이 들었을 때 머리가
무릎 사이로 들어가는 간절한 기도로 비를 내리게 하였다. ( )
3.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며 항상 기도하였고, 베드로를 통해 일가
친척, 친구까지 성령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 )
4. 정혼한 여인이 동침한 적이 없는데 배가 불러왔을 때 허물을 알리려 하거나 해를
끼치려는 마음이 전혀 없이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 )
5.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변개치 않고 온전히 이행함으로 이스라엘의 대선지자 사무
엘을 탄생하게 하였다.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31~4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만나’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던 도중, 광야에서 먹을 음식이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신 양식이다. 작고 둥글며 희고 모양은 깟씨(고수씨) 또는 진주와 같았다(민 11:7).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아 과자를 만들어 먹었는데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다(출 16:31).
교육목표 :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만들어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며 무엇이든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시고 영광 받으시기 원하십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 돌리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늘은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통해 응답의 비결을 살펴보겠습니다.
1.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민족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서 애굽, 지금으로 말하면 이집트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이 그 고역으로 탄식하며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됩니다(출 2:23).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지도자로 삼으시고 그들을 출애굽시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출애굽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목전에서 각종 기사와 표적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길을 인도하시며, 반석을 쳐서 강같이 물을 흐르게 하여 마시게 했고, 먹을 것이 없을 때에는 하늘 문을 열어 만나라는 하늘 양식을 먹이셨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하던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는 우리가 이 세상 죄 가운데 살던 생활에서 나와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이 땅에서의 믿음생활과 연관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만히 뒷짐 지고 지켜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우리 삶의 과정에서 만나 주고 함께하시며 구하는 것에 응답하고 천국에까지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말씀하시며 응답의 비결을 알려 주십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만나 주시고 응답하신 장면이 많이 나오는데, 죽은 자를 살려 주신 경우도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위해 간절히 기도한 후 아이 위에 올라가 엎드리니 그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하고 살아납니다. 요한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무덤을 향해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자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가 나던 나사로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 걸어 나왔습니다. 누가복음 7장에는 예수님께서 나인 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향해 “청년아! 일어나라” 하시니 그가 살아나지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뿐만 아니라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런 역사를 베풀었습니다(행 20:7~12).
이 외에도 성경에는 이미 경수가 끊어진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90세에 아들 이삭을 낳은 것이나,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글자를 쓴 대로 나라를 빼앗기고 죽임을 당한 벨사살 왕의 경우도 있습니다(단 5장).
마태복음 11장 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이 하는 일을 “소경이 보며 앉은뱅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적을 기록한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마감하면서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5) 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구약 시대나 예수님 당시뿐만 아니라 어제나 오늘도 하나님의 사랑받는 종이나 믿음의 사람들을 통해 변함없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2. 하나님의 응답은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가
그러면 하나님의 응답은 구체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 것일까요? 아브라함은 변함없는 믿음으로 응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도 살려 주실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에 어떤 것을 요구하시더라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의심하고 원망하며 불평합니다. 이처럼 두 마음을 품으면 응답받을 수 없지만(약 1:6~8)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응답받기 위해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였다 했습니다(왕상 18:42).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니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였는가를 알 수 있지요. 그러한 기도를 통해 3년 반 동안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던 땅에 큰 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어떠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임하였나요? 고넬료는 경건하여 온 집안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습니다(행 10:2). 이러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상달되어 그를 기억하시고 베드로를 보내 그와 그 자리에 참석한 일가친척, 친구까지도 모두 성령 받고 구원받으며 방언의 은사까지 받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행 10장).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일천번제를 정성껏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고 축복해 주셨습니다.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고 그에게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는 권한을 주신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오늘날의 예배를 의미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리면 솔로몬처럼 축복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소년 다윗은 어떠하였습니까? 그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고 믿음을 내보임으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바로 블레셋 사람 골리앗이라는 거인을 물맷돌로 쓰러뜨린 것입니다(삼상 17:32~49). 골리앗의 죽음을 본 블레셋 군대는 놀라서 혼비백산 달아나기 시작하였고, 이스라엘은 이 싸움에서 크게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일개 소년 목동에 지나지 않던 다윗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 이렇게 엄청나게 컸기에 하나님께 응답받아 영광도 돌리고 위기에 처한 나라도 구한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 앞에 큰 문제,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문제가 있다 해도 다윗처럼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신속히 만나는 사람들의 중심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였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잉태했다는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침한 적이 없으니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도록 내놓아야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찌 하였습니까? 마태복음 1장 19절을 보면, 그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저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했습니다. 그 여인을 위해서 끝까지 선을 베풀었던 것입니다. 요셉은 이런 착하고 의로운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만나고 그 음성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마 1:20).
마리아 또한 그 중심이 곧고 선했습니다. 마리아는 사내를 알지 못하는 처녀인데도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합니다(눅 1:31~32). 이때 마리아는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않았습니다. 오직 기쁨으로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며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바랐습니다.
또한 엘리사벳이나 사가랴 같은 이들은 어떠하였습니까? 누가복음 1장 6절을 보면 “이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의인이니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 흠이 없이 행하더라” 하였습니다. 이들은 늙도록 자식이 없었으나 하나님 앞에 그 기도가 상달되어 세례 요한을 낳는 큰 축복을 누렸습니다. 뿐만 아니라 한나는 하나님 앞에 서원을 갚는 마음 중심이었으므로 응답을 받을 수 있었지요. 소원대로 아들을 얻은 후 아이의 젖을 떼자 곧 그를 데리고 여호와의 집이 있는 실로로 나아가 엘리 제사장에게 그 아이 사무엘을 하나님의 종으로 드렸던 것입니다. 한나는 서원을 지켰으므로 그 이후로 세 아들과 두 딸을 더 낳을 수 있었고, 또한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대선지자가 되었으니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 기적을 베푸시고 능치 못하실 것이 없는 하나님을 만나기만 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니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막힌 죄의 담을 헐고 믿음으로 순종하며 선한 마음으로 간절히 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인물을 보기에서 골라 쓰세요.
<보기 : 한나, 요셉, 고넬료, 엘리야, 아브라함>
1. 죽은 자도 살리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었기에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 하실
때도 온전히 순종했다. ( )
2. 왕과 백성들의 극심한 우상 숭배로 나라에 3년 반 동안 가뭄이 들었을 때 머리가
무릎 사이로 들어가는 간절한 기도로 비를 내리게 하였다. ( )
3.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며 항상 기도하였고, 베드로를 통해 일가
친척, 친구까지 성령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 )
4. 정혼한 여인이 동침한 적이 없는데 배가 불러왔을 때 허물을 알리려 하거나 해를
끼치려는 마음이 전혀 없이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 )
5.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변개치 않고 온전히 이행함으로 이스라엘의 대선지자 사무
엘을 탄생하게 하였다.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31~4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만나’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던 도중, 광야에서 먹을 음식이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신 양식이다. 작고 둥글며 희고 모양은 깟씨(고수씨) 또는 진주와 같았다(민 11:7).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아 과자를 만들어 먹었는데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다(출 16:31).
2014-01-03
제1과전 진
마 25:14~30
읽을말씀 : 마 25:14~30 | 외울말씀 : 마 25:21 ㅣ 참고 말씀:민 25장
교육목표 : 목자를 신뢰하고 순종하며 각자 달란트대로 충성하되 오직 진리대로 행함으로 힘차게 전진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 되어 앞을 향해 달려 나가기 원하십니다.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 가나안성전과 대성전 건축 등 본 제단에 주신 비전을 오직 믿음으로 바라보고 힘차게 전진하기 바라시지요. 아버지께서 주신 비전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하려면 무엇보다 우리의 대오를 정비해야 합니다. 대오가 흐트러지면 아무리 잘 닦인 길을 간다 해도 목적지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구심점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천 사람, 만 사람이 한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어야 하지요. 새해를 맞아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를 신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목자를 이 제단의 구심점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갈 때 구심점은 바로 모세였습니다. 모세가 구심점이 된 것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인정하시고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말에 능한 모세의 형 아론이라 할지라도 모세를 돕는 보조자일뿐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말 잘하는 아론이 모세보다 뛰어나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머리는 오직 모세였습니다. 만일 누군가 모세와 자신을 동등하게 여기거나 모세를 비방하고 업신 여기면 용납하지 않으셨지요(민 12장). 이는 모세를 머리로 세우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편에서는 모든 면에서 모세가 제일 우선이지요. 모세의 형 아론이나 누이 미리암, 그리고 백성의 장로들은 각각의 달란트대로 모세를 돕는 보조자의 역할을 감당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세보다 앞서고자 하는 것도 모세와 자신을 동등하게 여기는 것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지요.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됐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말에 보장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신뢰하여 순종하였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기 전 “스스로 성결케 하라” 하면 그대로 순종함으로 범람하던 요단강도 마른 땅처럼 건넜습니다.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도 아무 불평없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여호수아의 말에 순종했지요. 6일 동안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7일째는 일곱 바퀴를 돌라고 하면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무장하지 않은 채 여리고 성을 돌다가 그들이 갑자기 공격하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이의를 달거나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외치라” 하시는 그날 그 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쳤고, 철옹성과 같은 여리고 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직 여호수아의 말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온전히 신뢰하며 순종했기 때문에 놀라운 역사를 보았지요.
이러한 신뢰와 순종을 우리에게도 당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를 신뢰하되 어떠한 사람의 생각도 동원하지 말고 마음에서 100% 신뢰하기를 바라시지요. 혹여 “저는 목자를 신뢰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목자가 알지 못해서 이러한 것이니 이것은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하며 목자의 뜻에 어긋나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100% 중심에서 신뢰하고 마음에서 섬긴다면 어떤 일도 오직 예와 아멘만 합니다. 이의를 달거나 이유나 핑계가 나오지 않지요. 따라서 온전한 신뢰와 순종으로 하나 되어 힘차게 비전을 향해 전진해 가시기 바랍니다.
2. 각자 달란트대로 충성하되 서로 도우며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쳤습니다. 이 성막에 관한 일을 레위 지파가 담당했습니다. 민수기 4장에 보면 레위 지파 중 세 가문이 각기 고유의 임무를 맡았지요. 고핫 가문은 증거궤(십계명을 넣어둔 궤)와 번제단(번제로 드려진 희생제물을 태워드리는 단) 등 성막의 기구들을 관리했고, 게르손 가문은 성막의 휘장과 덮개를 맡았습니다. 므라리 가문은 성막의 널판, 띠, 기둥, 받침을 맡았지요. 이렇게 각자의 분야를 감당해 줌으로 성막은 온전히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성막이 온전히 유지되었기에 가나안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전진도 계속될 수 있었지요. 만일 증거궤가 아무리 중요해도 그것만 챙기면 성막이 완성될 수는 없습니다. 성막을 이루는 말뚝 하나, 줄 하나도 절대 빠트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레위 지파 세 가문 중 누구는 중요한 일을 맡았고 누구는 하찮은 일을 맡았다 할 수가 없지요. 모두가 다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꾼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25장 14~30절에 나오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을 보면 각 사람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습니다. 달란트란 영적으로는 믿음, 소망, 사랑을 의미하며, 육적으로는 재능이지요.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도 다르고 육적인 재능도 다르지만 서로 도우며 하나로 모아지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달란트가 뛰어나다 하여 그 혼자서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다섯 달란트를 받았다 하여 혼자 다 하겠다고 하면 안 되지요. 또 한 달란트밖에 받지 못했다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만큼 감당해 줘야 하며, 다섯 달란트 받았다 해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요. 하나님께서 다섯 달란트를 주신 것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라는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을 시기 질투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 주니 감사하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저 사람이 해 주어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니 참으로 고맙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지요.
마태복음 25장 22~23절에 보면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동일하게 칭찬과 복을 받았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도 배를 남겼다면 동일하게 칭찬을 받았겠지요. 따라서 각자 달란트대로 충성하고 화평하며 서로 돕고 하나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럴 때 본 제단에 주신 비전을 향해 더 빠른 속도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3. 불의와 타협지 않고 오직 진리의 마음이 굳건히 자리 잡혀야 합니다
이는 곧 성결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수기 25장에 보면 가나안 땅을 향해 승승장구하며 나아가던 이스라엘 백성 중에 염병이 돌아 2만 4천 명이나 죽습니다. 왜 이런 재앙이 임한 것일까요? 당시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의 땅도 취하고 바산 왕 옥의 땅도 취한 후 모압 평지에 머물고 있었지요.
민수기 25장 1~3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생활 약 40년 동안 모세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만 섬길 것을 누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방 여인들의 미혹을 받자 곧바로 미혹에 빠져든 사람들이 있었지요.
오늘날도 기독교계에서 다른 종교에도 마치 구원이 있는 것처럼 공공연히 말하는 것을 봅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염병처럼 퍼져 자기도 모르게 입력되고 물들어 가지요. 사도행전 4장 12절에 분명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절대로 구원은 없습니다. 다른 종교는 죄 사함이라는 게 없는데 어떻게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미혹에 빠져 이방신에게 절하는 등 너무 쉽게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니 출애굽 1세대 중에서 단 두 사람 곧 여호수아와 갈렙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고 모두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여기서 깨우쳐야 할 중요한 교훈은 여러분이 죄성을 온전히 뽑아 버리지 않으면 세상 미혹을 받을 때 자기를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나안 성전에 들어가고 영육 간에 풍성한 축복이 임할 때 이스라엘 백성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되지요. 자칫 ‘이제는 됐다’ 하며 육으로 풀어져서는 안 됩니다.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고 오직 진리로만 생각하고, 어떤 세상 미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영의 마음으로 굳혀야 합니다. 대성전의 건축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계에 나타낼 때까지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그러니 “온 영을 이루어 가나안 성전에 들어가리라.”는 목표를 세우고 힘차게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본 제단에 주신 비전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각자 달란트대로 충성하되 서로 도우며 하나 되어야 합니다.
3)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구심점은 누구였나요?
① 아론 ② 모세
③ 미리암 ④ 바로 왕
3. 누군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면 어떤 성경 말씀으로 답을 해 주시겠습니까? 사도행전 4장 12절을 써 보세요.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7~3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여호수아’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군대 지휘관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모세의 수종자로 모세와 함께 시내산에 올라가는 특권을 누렸다. 가나안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갈렙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본을 보였다. 모세의 후계자로 임명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다.
교육목표 : 목자를 신뢰하고 순종하며 각자 달란트대로 충성하되 오직 진리대로 행함으로 힘차게 전진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 되어 앞을 향해 달려 나가기 원하십니다. 민족복음화와 세계선교, 가나안성전과 대성전 건축 등 본 제단에 주신 비전을 오직 믿음으로 바라보고 힘차게 전진하기 바라시지요. 아버지께서 주신 비전을 향해 거침없이 전진하려면 무엇보다 우리의 대오를 정비해야 합니다. 대오가 흐트러지면 아무리 잘 닦인 길을 간다 해도 목적지에 도달하기 어렵습니다. 구심점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서 천 사람, 만 사람이 한 사람처럼 움직일 수 있어야 하지요. 새해를 맞아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를 신뢰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목자를 이 제단의 구심점으로 삼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갈 때 구심점은 바로 모세였습니다. 모세가 구심점이 된 것은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인정하시고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말에 능한 모세의 형 아론이라 할지라도 모세를 돕는 보조자일뿐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말 잘하는 아론이 모세보다 뛰어나 보일 수도 있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머리는 오직 모세였습니다. 만일 누군가 모세와 자신을 동등하게 여기거나 모세를 비방하고 업신 여기면 용납하지 않으셨지요(민 12장). 이는 모세를 머리로 세우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 편에서는 모든 면에서 모세가 제일 우선이지요. 모세의 형 아론이나 누이 미리암, 그리고 백성의 장로들은 각각의 달란트대로 모세를 돕는 보조자의 역할을 감당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모세보다 앞서고자 하는 것도 모세와 자신을 동등하게 여기는 것도 결코 용납될 수 없는 것이지요.
모세의 뒤를 이어 여호수아가 지도자가 됐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의 말에 보장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뜻을 전하면 백성들은 여호수아를 신뢰하여 순종하였습니다. 요단강을 건너기 전 “스스로 성결케 하라” 하면 그대로 순종함으로 범람하던 요단강도 마른 땅처럼 건넜습니다.
여리고 성을 함락시킬 때도 아무 불평없이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여호수아의 말에 순종했지요. 6일 동안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돌고 7일째는 일곱 바퀴를 돌라고 하면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무장하지 않은 채 여리고 성을 돌다가 그들이 갑자기 공격하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이의를 달거나 반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외치라” 하시는 그날 그 시에 이스라엘 백성이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쳤고, 철옹성과 같은 여리고 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오직 여호수아의 말이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임을 온전히 신뢰하며 순종했기 때문에 놀라운 역사를 보았지요.
이러한 신뢰와 순종을 우리에게도 당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를 신뢰하되 어떠한 사람의 생각도 동원하지 말고 마음에서 100% 신뢰하기를 바라시지요. 혹여 “저는 목자를 신뢰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목자가 알지 못해서 이러한 것이니 이것은 이렇게 하면 안 됩니다.” 하며 목자의 뜻에 어긋나는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100% 중심에서 신뢰하고 마음에서 섬긴다면 어떤 일도 오직 예와 아멘만 합니다. 이의를 달거나 이유나 핑계가 나오지 않지요. 따라서 온전한 신뢰와 순종으로 하나 되어 힘차게 비전을 향해 전진해 가시기 바랍니다.
2. 각자 달란트대로 충성하되 서로 도우며 하나 되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생활을 할 때 하나님의 성막을 중심으로 진을 쳤습니다. 이 성막에 관한 일을 레위 지파가 담당했습니다. 민수기 4장에 보면 레위 지파 중 세 가문이 각기 고유의 임무를 맡았지요. 고핫 가문은 증거궤(십계명을 넣어둔 궤)와 번제단(번제로 드려진 희생제물을 태워드리는 단) 등 성막의 기구들을 관리했고, 게르손 가문은 성막의 휘장과 덮개를 맡았습니다. 므라리 가문은 성막의 널판, 띠, 기둥, 받침을 맡았지요. 이렇게 각자의 분야를 감당해 줌으로 성막은 온전히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성막이 온전히 유지되었기에 가나안을 향한 이스라엘 백성의 전진도 계속될 수 있었지요. 만일 증거궤가 아무리 중요해도 그것만 챙기면 성막이 완성될 수는 없습니다. 성막을 이루는 말뚝 하나, 줄 하나도 절대 빠트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레위 지파 세 가문 중 누구는 중요한 일을 맡았고 누구는 하찮은 일을 맡았다 할 수가 없지요. 모두가 다 중요하고 꼭 필요한 일꾼들이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태복음 25장 14~30절에 나오는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을 보면 각 사람마다 능력의 차이가 있습니다. 달란트란 영적으로는 믿음, 소망, 사랑을 의미하며, 육적으로는 재능이지요.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도 다르고 육적인 재능도 다르지만 서로 도우며 하나로 모아지면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 달란트가 뛰어나다 하여 그 혼자서 하나님의 일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다섯 달란트를 받았다 하여 혼자 다 하겠다고 하면 안 되지요. 또 한 달란트밖에 받지 못했다 해서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어서도 안 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만큼 감당해 줘야 하며, 다섯 달란트 받았다 해서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을 무시해서도 안 되지요. 하나님께서 다섯 달란트를 주신 것은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라는 뜻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을 시기 질투해서는 안 됩니다. “나의 부족함을 채워 주니 감사하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저 사람이 해 주어 하나님의 나라가 잘되니 참으로 고맙다.”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지요.
마태복음 25장 22~23절에 보면 두 달란트 받은 자는 다섯 달란트 받은 자와 동일하게 칭찬과 복을 받았습니다. 한 달란트 받은 자도 배를 남겼다면 동일하게 칭찬을 받았겠지요. 따라서 각자 달란트대로 충성하고 화평하며 서로 돕고 하나 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럴 때 본 제단에 주신 비전을 향해 더 빠른 속도로 전진할 수 있습니다.
3. 불의와 타협지 않고 오직 진리의 마음이 굳건히 자리 잡혀야 합니다
이는 곧 성결을 이루는 것을 의미합니다. 민수기 25장에 보면 가나안 땅을 향해 승승장구하며 나아가던 이스라엘 백성 중에 염병이 돌아 2만 4천 명이나 죽습니다. 왜 이런 재앙이 임한 것일까요? 당시 이스라엘은 아모리 왕 시혼의 땅도 취하고 바산 왕 옥의 땅도 취한 후 모압 평지에 머물고 있었지요.
민수기 25장 1~3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백성이 먹고 그들의 신들에게 절하므로 이스라엘이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시니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생활 약 40년 동안 모세를 통해 여호와 하나님만 섬길 것을 누누이 들었습니다. 그런데도 이방 여인들의 미혹을 받자 곧바로 미혹에 빠져든 사람들이 있었지요.
오늘날도 기독교계에서 다른 종교에도 마치 구원이 있는 것처럼 공공연히 말하는 것을 봅니다. 무서운 일입니다. 이러한 사상이 염병처럼 퍼져 자기도 모르게 입력되고 물들어 가지요. 사도행전 4장 12절에 분명히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절대로 구원은 없습니다. 다른 종교는 죄 사함이라는 게 없는데 어떻게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은 미혹에 빠져 이방신에게 절하는 등 너무 쉽게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러니 출애굽 1세대 중에서 단 두 사람 곧 여호수아와 갈렙만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고 모두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여기서 깨우쳐야 할 중요한 교훈은 여러분이 죄성을 온전히 뽑아 버리지 않으면 세상 미혹을 받을 때 자기를 지키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나안 성전에 들어가고 영육 간에 풍성한 축복이 임할 때 이스라엘 백성의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되지요. 자칫 ‘이제는 됐다’ 하며 육으로 풀어져서는 안 됩니다. 어떤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고 오직 진리로만 생각하고, 어떤 세상 미혹에도 넘어가지 않는 영의 마음으로 굳혀야 합니다. 대성전의 건축을 이루고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계에 나타낼 때까지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그러니 “온 영을 이루어 가나안 성전에 들어가리라.”는 목표를 세우고 힘차게 전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본 제단에 주신 비전을 향해 힘차게 전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각자 달란트대로 충성하되 서로 도우며 하나 되어야 합니다.
3)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의 구심점은 누구였나요?
① 아론 ② 모세
③ 미리암 ④ 바로 왕
3. 누군가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면 어떤 성경 말씀으로 답을 해 주시겠습니까? 사도행전 4장 12절을 써 보세요.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7~3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여호수아’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군대 지휘관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모세의 수종자로 모세와 함께 시내산에 올라가는 특권을 누렸다. 가나안을 정탐한 12명의 정탐꾼 가운데 갈렙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본을 보였다. 모세의 후계자로 임명되어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다.
2013-12-27
제52과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고전 15:31
읽을말씀 : 고전 15:31 | 외울말씀 : 고후 5:17 ㅣ참고 말씀:삼상 15:22
교육목표 :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며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은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우리의 신앙이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성장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새로워져야만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지요.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하며 신속히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진리의 사람으로 새로워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아무리 충성한다 해도 사심이 있으면 상대를 힘들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낼 수가 없지요.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습니다. 일꾼이라면 육의 정과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특히 주의 종이라면 내 부모나 자녀, 육의 가족보다 맡은 양 떼들을 더 귀히 여겨야 하지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으려면 탐심은 물론이고 자존심이나 교만도 버려야 하고, 명예욕, 권세욕도 버려야 합니다. 나를 잘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누구를 대한다 해도 태도와 안색이 달라져서도 안 되지요.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도 버려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사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핑계가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려고 일을 하면서도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했다.” 하지요. 가령, 성도들에게 이러 이러한 용도로 예물을 모으자 하거나 야외로 나가 어떤 모임을 갖자고 합니다. 굳이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이런 일을 추진했다.” 하며 자신을 드러내려고 굳이 일을 벌이지요.
어떤 행사를 치를 때도 성도들의 입장과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진행합니다. 이럴 때는 구성원들의 마음이 하나 되기 쉽지 않고 그 열매도 육의 열매가 나옵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고집하면서 자기 사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혹여 나는 어떤 일을 하거나 말 한마디 속에도 ‘주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내 의욕이 앞서고 내 공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은 아닌지, 섬김 받으려는 마음은 아닌지, 내 유익을 취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날마다 자신을 면밀히 점검하여 정결하게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2.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영의 일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 세상 것을 바라보고 천국을 소망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말로는 영을 사모한다 하면서 그 마음과 생각이 육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 시선이 육의 것을 향하지요. 이런 사람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런데 의외로 나름대로 믿음 있다, 일꾼이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충성한다 하는 사람들 중에 중(重)한 육체의 일을 범하는 것을 봅니다. 이들도 처음부터 중한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큰 죄는 아니니까.” 하면서 작은 육의 것들을 허용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되었지요. 마음과 생각에 육을 허용하는 만큼 성령 충만함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육을 허용했기 때문에 처음 받은 은혜가 떨어졌고 첫사랑을 잃어버렸고 기도하는 게 싫어졌고 예배드리는 것이 해이해졌고 자꾸 마음이 세상 것만 추구하게 되고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게 되었지요.
그러니 하나님과의 사이에 담이 쌓이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귀가 둔해지고 죄를 경계하는 마음이 무뎌져서 결국은 사망에 이르는 큰 죄까지 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만나 첫사랑의 뜨거움을 체험했을 때는 온 마음과 생각을 영의 일들로 채웠을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으려면 전에 취하던 작은 육의 일들도 하나하나 끊고, 여가 시간에도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이런 열정이 식어서는 안 됩니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워올수록 더 열정이 뜨거워져야 하지 결코 제자리걸음 한다든가 식어서는 안 되지요.
우리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항상 생각하고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영의 일들입니다. “어찌하면 말씀을 더 무장할까, 어찌하면 더 기도할까, 어찌하면 속히 변화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까, 어찌하면 영혼들에게 생명을 주고 충만함을 줄까.” 이런 영의 일들만 생각해야 합니다.
길을 가면서도, 잠들기 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을 변화시키고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은혜를 끼칠 생각을 해야지요. 영의 일들만 생각하며 영의 것으로 마음을 채워 나가면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습니다. 동행하시며 보장하시는 주님을 늘 체험하기에 허전함이나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습니다. 어찌하든 변화되어 성결을 이루고 사명 감당 잘하여 많은 열매를 낼까 힘쓰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항상 영의 일만 생각하여 날마다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시기 바랍니다.
3.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처럼 저도 가장 소중한 것을 주께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은 쉽게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순종하는 일꾼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입장이 되면 온갖 육신의 생각들을 동원하는 것이지요. “아니, 이삭을 통해 후손을 번성케 하신다 하셨는데, 이제는 그 언약의 말씀을 번복하시는가?” 이런저런 육신의 생각 속에 충만함이 떨어지기도 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원망과 서운한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자기 의와 틀과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하는 것은 순종한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그대로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심도, 육신의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순종하겠다고 결심해도 육이 있으면 불순종이 나옵니다. 충분히 순종할 수 있는 일조차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고 이유를 대면서 불순종하지요. 그러니 자기 한계 속에서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령 “영의 일만 생각하라.” 하면 그 순간에는 “아멘”으로 화답하고 “영의 일만 생각하게 하소서.”라고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구습대로 육신의 생각을 하면서도 차단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 속에 계속 빠져들어 육을 취해 나가는데도 깨우치지 못하지요. 들은 말씀은 있고 기도한 것이 있어서 마음에 찔림은 되지만 “이것쯤이야. 큰 죄는 아니니까.” 하며 넘어가 버립니다.
이처럼 죄에 대해 단호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끊지 못하면 신앙이 정체되거나 퇴보할 수밖에 없고 더 정진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육체의 결여가 있어도 채울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도 없지요.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가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가장 빠른 길은 진리에 즉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유와 핑계를 대지 않고 진리대로만 행하면 됩니다. 이렇게 순종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도우심 속에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한걸음, 한걸음 인도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고 인내로 자신을 다스려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성공의 길을 아무리 알아도 게으름과 정욕을 좇아 사는 사람들은 정작 그 길로 갈 수가 없지요.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종종 극적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봅니다. 방탕하여 구제불능의 삶을 살던 사람이 큰 위험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에는 하루아침에 변화되어 반듯하고 성실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공부를 전혀 안 하고 놀기만 하던 학생이 어떤 일로 충격을 받아 밤낮으로 공부해서 우등생이 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을 보면 주변에서 “전혀 딴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완전히 달려졌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2014년도를 맞아 옛구습을 벗고 더욱 새롭게 변화되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당당히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날마다 새로워져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영의 일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3)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2.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뜻을 써 보세요. ( )
3. ( ) 안에 알맞은 성경 말씀을 넣어 보세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 )”(고린도전서 15:31)
● 금주 과제
한해 동안도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변화와 생명으로 이끌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 갑시다!
‘육과 영’
영적으로 육이란 시간이 흐르면 썩고 변질되며 결국 없어지는 것, 비진리 추하고 더러운 것의 총칭이다. 반면에 영이란 죽거나 썩지 않고 변함이 없는 것, 영원한 것으로 생명이요, 진리 자체를 말한다.
교육목표 : 한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하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며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은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우리의 신앙이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성장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새로워져야만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지요.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하며 신속히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진리의 사람으로 새로워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아무리 충성한다 해도 사심이 있으면 상대를 힘들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낼 수가 없지요.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습니다. 일꾼이라면 육의 정과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특히 주의 종이라면 내 부모나 자녀, 육의 가족보다 맡은 양 떼들을 더 귀히 여겨야 하지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으려면 탐심은 물론이고 자존심이나 교만도 버려야 하고, 명예욕, 권세욕도 버려야 합니다. 나를 잘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누구를 대한다 해도 태도와 안색이 달라져서도 안 되지요.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도 버려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사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핑계가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려고 일을 하면서도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했다.” 하지요. 가령, 성도들에게 이러 이러한 용도로 예물을 모으자 하거나 야외로 나가 어떤 모임을 갖자고 합니다. 굳이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이런 일을 추진했다.” 하며 자신을 드러내려고 굳이 일을 벌이지요.
어떤 행사를 치를 때도 성도들의 입장과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진행합니다. 이럴 때는 구성원들의 마음이 하나 되기 쉽지 않고 그 열매도 육의 열매가 나옵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고집하면서 자기 사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혹여 나는 어떤 일을 하거나 말 한마디 속에도 ‘주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내 의욕이 앞서고 내 공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은 아닌지, 섬김 받으려는 마음은 아닌지, 내 유익을 취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니었는지.’ 돌아보고 또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날마다 자신을 면밀히 점검하여 정결하게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2.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영의 일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 세상 것을 바라보고 천국을 소망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말로는 영을 사모한다 하면서 그 마음과 생각이 육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 시선이 육의 것을 향하지요. 이런 사람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런데 의외로 나름대로 믿음 있다, 일꾼이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충성한다 하는 사람들 중에 중(重)한 육체의 일을 범하는 것을 봅니다. 이들도 처음부터 중한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큰 죄는 아니니까.” 하면서 작은 육의 것들을 허용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되었지요. 마음과 생각에 육을 허용하는 만큼 성령 충만함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육을 허용했기 때문에 처음 받은 은혜가 떨어졌고 첫사랑을 잃어버렸고 기도하는 게 싫어졌고 예배드리는 것이 해이해졌고 자꾸 마음이 세상 것만 추구하게 되고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게 되었지요.
그러니 하나님과의 사이에 담이 쌓이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귀가 둔해지고 죄를 경계하는 마음이 무뎌져서 결국은 사망에 이르는 큰 죄까지 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만나 첫사랑의 뜨거움을 체험했을 때는 온 마음과 생각을 영의 일들로 채웠을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으려면 전에 취하던 작은 육의 일들도 하나하나 끊고, 여가 시간에도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이런 열정이 식어서는 안 됩니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워올수록 더 열정이 뜨거워져야 하지 결코 제자리걸음 한다든가 식어서는 안 되지요.
우리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항상 생각하고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영의 일들입니다. “어찌하면 말씀을 더 무장할까, 어찌하면 더 기도할까, 어찌하면 속히 변화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까, 어찌하면 영혼들에게 생명을 주고 충만함을 줄까.” 이런 영의 일들만 생각해야 합니다.
길을 가면서도, 잠들기 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을 변화시키고 믿음의 형제 자매들에게 은혜를 끼칠 생각을 해야지요. 영의 일들만 생각하며 영의 것으로 마음을 채워 나가면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습니다. 동행하시며 보장하시는 주님을 늘 체험하기에 허전함이나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습니다. 어찌하든 변화되어 성결을 이루고 사명 감당 잘하여 많은 열매를 낼까 힘쓰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항상 영의 일만 생각하여 날마다 자신을 변화시켜 나가시기 바랍니다.
3.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처럼 저도 가장 소중한 것을 주께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은 쉽게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순종하는 일꾼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입장이 되면 온갖 육신의 생각들을 동원하는 것이지요. “아니, 이삭을 통해 후손을 번성케 하신다 하셨는데, 이제는 그 언약의 말씀을 번복하시는가?” 이런저런 육신의 생각 속에 충만함이 떨어지기도 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원망과 서운한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자기 의와 틀과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하는 것은 순종한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그대로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심도, 육신의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순종하겠다고 결심해도 육이 있으면 불순종이 나옵니다. 충분히 순종할 수 있는 일조차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고 이유를 대면서 불순종하지요. 그러니 자기 한계 속에서만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령 “영의 일만 생각하라.” 하면 그 순간에는 “아멘”으로 화답하고 “영의 일만 생각하게 하소서.”라고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구습대로 육신의 생각을 하면서도 차단하지 않고 있습니다. 자기 생각 속에 계속 빠져들어 육을 취해 나가는데도 깨우치지 못하지요. 들은 말씀은 있고 기도한 것이 있어서 마음에 찔림은 되지만 “이것쯤이야. 큰 죄는 아니니까.” 하며 넘어가 버립니다.
이처럼 죄에 대해 단호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게 끊지 못하면 신앙이 정체되거나 퇴보할 수밖에 없고 더 정진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육체의 결여가 있어도 채울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도 없지요.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가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가장 빠른 길은 진리에 즉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유와 핑계를 대지 않고 진리대로만 행하면 됩니다. 이렇게 순종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도우심 속에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한걸음, 한걸음 인도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인생에서 성공하려면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고 인내로 자신을 다스려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성공의 길을 아무리 알아도 게으름과 정욕을 좇아 사는 사람들은 정작 그 길로 갈 수가 없지요.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종종 극적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봅니다. 방탕하여 구제불능의 삶을 살던 사람이 큰 위험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에는 하루아침에 변화되어 반듯하고 성실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공부를 전혀 안 하고 놀기만 하던 학생이 어떤 일로 충격을 받아 밤낮으로 공부해서 우등생이 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을 보면 주변에서 “전혀 딴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완전히 달려졌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2014년도를 맞아 옛구습을 벗고 더욱 새롭게 변화되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당당히 고백하며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날마다 새로워져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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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의 일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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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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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의 뜻을 써 보세요. ( )
3. ( ) 안에 알맞은 성경 말씀을 넣어 보세요.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 바 너희에게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 )”(고린도전서 15:31)
● 금주 과제
한해 동안도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변화와 생명으로 이끌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 갑시다!
‘육과 영’
영적으로 육이란 시간이 흐르면 썩고 변질되며 결국 없어지는 것, 비진리 추하고 더러운 것의 총칭이다. 반면에 영이란 죽거나 썩지 않고 변함이 없는 것, 영원한 것으로 생명이요, 진리 자체를 말한다.
2013-12-20
제51과주님의 사랑
사 53:7
읽을말씀 : 사 53:7 | 외울말씀 : 이사야 53:7 l 참고 말씀:요 15:13
교육목표 :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드리는 성탄절은 우리에게 너무나 행복하고 기쁜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셔서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7절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안에는 예수님께서 육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 잘 나타나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가장 잔혹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며 온갖 멸시와 핍박을 감내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느끼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사역의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공의의 측면에서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 된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반드시 공의의 값을 치러야 했지요. 즉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기에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 곧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인류는 죄인으로서 영계의 법에 의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율법의 저주를 끊어 주시고자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공의의 값을 치른다는 것이 비단 십자가의 사건 하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부터가 그 모든 공의를 이루는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근본 본체로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과 동일한 영광과 권능을 가지셨지요. 그럼에도 사람의 몸에 그 신성을 가두시고, 육의 공간의 한계들을 철저히 겪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호화로운 왕궁에서 태어나 안락한 침대에 누이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초라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짐승의 구유에 누이셨지요. 이는 예수님이 죄인들을 살리는 ‘참된 생명의 양식’이 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화를 가진 부유한 분이셨지만 인간의 가난을 대속하기 위해 가난하게 나셔야 했습니다. 육의 사람들처럼 굶주림과 피곤함, 슬픔과 고통도 느끼셔야만 했지요. 예수님은 자신이 언제 어떻게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할지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십자가의 사역을 쉽게 감당하셨을 거야.” 하지만 죄 사함의 공의를 충족시키는 과정은 예수님도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에 “그는(곧 예수님은)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값을 치르시며 공의를 채워 가셨습니다. 장차 임할 십자가의 고난을 잘 아셨지만 구원의 길이 열리는 그 영광의 순간을 마음에 그리며 온 생애를 헌신하시고 종국에는 생명까지 내어주셨습니다.
2. 사랑의 측면에서 예수님의 사역
공의를 이룸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실 만큼 영혼들을 사랑하셨기에, 십자가를 기꺼이 지실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은 생명을 살리는 영적인 사랑이었다는 점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상대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맞춰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친다면 그 사랑은 육의 사랑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은 심령에 변화와 생명을 주는 사랑 곧 영적 사랑이었습니다. 자기 소유로 예수님을 섬겼던 여인들이나 함께하는 제자들에게도 늘 자상하게만 대하신 것이 아니었지요. 때로는 사랑하는 이들을 외면하기도 하시고, 호되게 지적과 권면도 하셨습니다.
한 예로 마태복음 16장 2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여 제삼 일에 살아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하지요.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답하셨을까요? “역시 베드로 네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알지만 그래도 나는 이 길을 가야 한다.” 하시며 베드로를 칭찬하셨을까요? 아니지요. 오히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시며 호되게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사단의 주관을 받고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선한 말, 주님을 위해서 한다고 했지만 사단의 주관을 받아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그 사단을 향하여 물러가라고 말씀하셨지요.
진정한 사랑은 무조건 감싸주고 받아주며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에게 참으로 이로운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참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때로는 아픔도 느낄 수 있고 희생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감내하면서 참된 길을 알려 주고, 그 길을 스스로 걸을 수 있도록 믿음으로 상대를 기다려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있으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기꺼이 지셨습니다. 인생들을 너무 사랑하심으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책망과 권면의 말씀도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연단을 받을 때도 이 사랑을 기억한다면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영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하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도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을 수 있지요. 잘하려고 했는데도 책망을 들었다 하여 힘들어하거나 지쳐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것이 나를 온전하게 이끌어 가시는 주님의 사랑임을 느낌으로써 진리를 마음에 새기는 기회로 삼아 나가지요.
3. 영광의 측면에서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께서는 공의와 사랑 이 두 가지로 십자가의 도를 완성시키셨습니다. 이를 통해 얻으신 열매가 바로 영광이지요.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공의를 완성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즉 죄인 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을 상승시켜 주셨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속했던 자녀들을 무수히 건져 오심으로써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었지요.
예수님도 물론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10절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또한 믿음의 자녀들이 세상을 이기고 승리할 때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하물며 영, 온 영의 자녀가 나온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큰 영광을 얻으시겠습니까.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은 하나님께 능력, 권세, 권능을 받아 행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 땅에 보이는 권능의 역사는 많은 영혼이 아버지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하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 증거로 인해 믿는 이들은 원수 마귀 사단의 핍박과 유혹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빼앗기지 않을 수 있지요. 이처럼 믿음을 지켜 거듭 성장시켜 나가면 결국 영으로, 온 영으로 나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마치 온 세상을 새하얗게 덮은 흰눈과 같지요. 주님은 따스한 사랑으로 우리의 허다한 죄를 덮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는 주님의 사랑이 마음에 쌓이고 그 사랑은 마음 안의 죄를 맑게 씻어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시지요. 성탄절을 맞이하여 이러한 사랑을 주신 주님께 감사의 고백을 맘껏 올려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시오.
1.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 된 영혼들을 ( )하시기 위해서이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영계의 법칙인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 )의
값을 치러야 했다.
2. ( ) 안에 공통적으로 들어갈 단어는 무엇일까요?
공의를 이룸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 )이다. 요한복음 15장
13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 )이
없나니” 말씀했다.
3. 여러분에게 12월 25일은 왜 특별한지 함께 은혜를 나눠 보세요.
● 금주 과제
금주 주보에 실린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단’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인 루시퍼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사단은 사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며, 실질적인 형태는 없다. 루시퍼가 가진 어둠의 능력을 그대로 담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생각과 마음을 갖게 한다. 마치 공중에 수없이 퍼져 있는 전파와 같이 어둠의 능력을 공중에 퍼뜨린다.
교육목표 :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주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드리는 성탄절은 우리에게 너무나 행복하고 기쁜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생명의 빛으로 오셔서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던 우리에게 십자가의 보혈로 구원의 길을 활짝 열어 주셨습니다.
이사야 53장 7절에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안에는 예수님께서 육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궁극적인 목적이 잘 나타나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가장 잔혹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며 온갖 멸시와 핍박을 감내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더 깊이 느끼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행하신 사역의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공의의 측면에서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 된 영혼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반드시 공의의 값을 치러야 했지요. 즉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기에 죄를 지으면 반드시 사망 곧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모든 인류는 죄인으로서 영계의 법에 의해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율법의 저주를 끊어 주시고자 인간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공의의 값을 치른다는 것이 비단 십자가의 사건 하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부터가 그 모든 공의를 이루는 시작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근본 본체로서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과 동일한 영광과 권능을 가지셨지요. 그럼에도 사람의 몸에 그 신성을 가두시고, 육의 공간의 한계들을 철저히 겪어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호화로운 왕궁에서 태어나 안락한 침대에 누이신 것도 아니었습니다. 초라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짐승의 구유에 누이셨지요. 이는 예수님이 죄인들을 살리는 ‘참된 생명의 양식’이 되시기 위해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영화를 가진 부유한 분이셨지만 인간의 가난을 대속하기 위해 가난하게 나셔야 했습니다. 육의 사람들처럼 굶주림과 피곤함, 슬픔과 고통도 느끼셔야만 했지요. 예수님은 자신이 언제 어떻게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할지 정확히 알고 계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 십자가의 사역을 쉽게 감당하셨을 거야.” 하지만 죄 사함의 공의를 충족시키는 과정은 예수님도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히브리서 5장 7절에 “그는(곧 예수님은)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자신을 희생하심으로 값을 치르시며 공의를 채워 가셨습니다. 장차 임할 십자가의 고난을 잘 아셨지만 구원의 길이 열리는 그 영광의 순간을 마음에 그리며 온 생애를 헌신하시고 종국에는 생명까지 내어주셨습니다.
2. 사랑의 측면에서 예수님의 사역
공의를 이룸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사랑입니다. 요한복음 15장 13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말씀했습니다. 예수님은 생명을 아낌없이 내어주실 만큼 영혼들을 사랑하셨기에, 십자가를 기꺼이 지실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사랑은 생명을 살리는 영적인 사랑이었다는 점입니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은 상대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을 맞춰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친다면 그 사랑은 육의 사랑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사랑은 심령에 변화와 생명을 주는 사랑 곧 영적 사랑이었습니다. 자기 소유로 예수님을 섬겼던 여인들이나 함께하는 제자들에게도 늘 자상하게만 대하신 것이 아니었지요. 때로는 사랑하는 이들을 외면하기도 하시고, 호되게 지적과 권면도 하셨습니다.
한 예로 마태복음 16장 21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장차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여 제삼 일에 살아날 것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을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하지요.
이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어떻게 답하셨을까요? “역시 베드로 네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나를 사랑하는 마음은 알지만 그래도 나는 이 길을 가야 한다.” 하시며 베드로를 칭찬하셨을까요? 아니지요. 오히려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시며 호되게 베드로를 꾸짖으셨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사단의 주관을 받고 말을 했기 때문입니다. 자신은 선한 말, 주님을 위해서 한다고 했지만 사단의 주관을 받아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그 사단을 향하여 물러가라고 말씀하셨지요.
진정한 사랑은 무조건 감싸주고 받아주며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에게 참으로 이로운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참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할 때, 때로는 아픔도 느낄 수 있고 희생이 따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또한 감내하면서 참된 길을 알려 주고, 그 길을 스스로 걸을 수 있도록 믿음으로 상대를 기다려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 있으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기꺼이 지셨습니다. 인생들을 너무 사랑하심으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책망과 권면의 말씀도 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연단을 받을 때도 이 사랑을 기억한다면 능히 이기고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영으로 들어가고자 노력하는 것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을 때도 좌절하거나 낙망하지 않을 수 있지요. 잘하려고 했는데도 책망을 들었다 하여 힘들어하거나 지쳐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것이 나를 온전하게 이끌어 가시는 주님의 사랑임을 느낌으로써 진리를 마음에 새기는 기회로 삼아 나가지요.
3. 영광의 측면에서 예수님의 사역
예수님께서는 공의와 사랑 이 두 가지로 십자가의 도를 완성시키셨습니다. 이를 통해 얻으신 열매가 바로 영광이지요.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공의를 완성하심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영광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즉 죄인 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을 상승시켜 주셨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의 희생을 통해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속했던 자녀들을 무수히 건져 오심으로써 예수님의 사역이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되었지요.
예수님도 물론 큰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10절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또한 믿음의 자녀들이 세상을 이기고 승리할 때마다 하나님께 영광이 됩니다. 하물며 영, 온 영의 자녀가 나온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얼마나 더 큰 영광을 얻으시겠습니까.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은 하나님께 능력, 권세, 권능을 받아 행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 땅에 보이는 권능의 역사는 많은 영혼이 아버지 하나님의 존재를 믿게 하는 확실한 증거입니다.
이 증거로 인해 믿는 이들은 원수 마귀 사단의 핍박과 유혹 속에서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빼앗기지 않을 수 있지요. 이처럼 믿음을 지켜 거듭 성장시켜 나가면 결국 영으로, 온 영으로 나와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 1장 18절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 주님의 사랑은 마치 온 세상을 새하얗게 덮은 흰눈과 같지요. 주님은 따스한 사랑으로 우리의 허다한 죄를 덮어 주셨습니다. 그러니 주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에게는 주님의 사랑이 마음에 쌓이고 그 사랑은 마음 안의 죄를 맑게 씻어 깨끗하게 정화시켜 주시지요. 성탄절을 맞이하여 이러한 사랑을 주신 주님께 감사의 고백을 맘껏 올려드려 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시오.
1.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죄인 된 영혼들을 ( )하시기 위해서이다.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영계의 법칙인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 )의
값을 치러야 했다.
2. ( ) 안에 공통적으로 들어갈 단어는 무엇일까요?
공의를 이룸에 있어서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은 ( )이다. 요한복음 15장
13절에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 )이
없나니” 말씀했다.
3. 여러분에게 12월 25일은 왜 특별한지 함께 은혜를 나눠 보세요.
● 금주 과제
금주 주보에 실린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사단’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인 루시퍼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사단은 사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며, 실질적인 형태는 없다. 루시퍼가 가진 어둠의 능력을 그대로 담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생각과 마음을 갖게 한다. 마치 공중에 수없이 퍼져 있는 전파와 같이 어둠의 능력을 공중에 퍼뜨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