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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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5-02
제18과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창 31:7~13
읽을말씀 : 창 31:7~13 | 외울말씀 : 히 11:1 l 참고 말씀:창 27:27~29, 30:43
교육목표 :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모든 삶에 형통함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과 인류의 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대로 행하면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며 축복을 내려 주시지요. 그러니 하나님을 만나면 아무리 불행했던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고,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도 명쾌하게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혹여 근심 걱정된 일로 인해 힘이 드십니까?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1.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삭의 아들로서, 형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에서는 들로 다니며 사냥하는 것을 좋아하였고 아버지 이삭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조용한 성품으로 집 안에 있으면서 어머니 일을 도우니 자연히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지혜로운 반면 간교한 성품이 있었고, 꿈과 야심이 있어서 형이 가진 장자의 축복을 자신이 받고 싶어했습니다.
어느 날,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와 몹시 배고파할 때에 팥죽 한 그릇을 줄 테니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합니다. 에서는 장자의 축복을 소홀히 여기고 아무 생각 없이 팔아버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 이삭이 나이가 들자 죽기 전에 장자 에서를 불러 축복을 빌어 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면 축복해 주겠노라고 하지요. 이것을 엿들은 어머니 리브가는 자기가 사랑하는 야곱에게 그 축복을 받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에서인 척 위장하고 들어가 형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야곱은 에서처럼 꾸미고 어머니가 만들어 준 별미를 갖고 들어갑니다. 눈이 어두운 이삭은 변장한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마음껏 축복해 줍니다(창 27장). 그런데 얼마 안 되어 에서가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들어오지요. 깜짝 놀란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을 다 해 주었으므로 더 이상 축복해 줄 것이 없다고 하지요.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리라 결심합니다. 이 일로 야곱은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으로 피하게 됩니다.
2. 축복의 비결을 터득한 야곱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기반을 닦으며 성실히 일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라반은 그에게 품삯을 정하라고 합니다. 이때 야곱은 7년을 봉사하는 조건으로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요청하지요.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7년을 수일같이 여기며 기쁘게 일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어떠한 연단이나 핍박이 와도 기쁨으로 이겨 나갑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면 이 세상 어떠한 것도 부럽지 않지요.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에 더 상급을 쌓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더 충성할까 하며 힘쓰게 됩니다.
야곱도 사랑하는 라헬을 위해 7년을 길다 여기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마침내 7년이 지나 결혼식을 올렸는데 정작 신부는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라반에게 속은 야곱이 분을 내자 외삼촌은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이 지방 풍속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7일을 기다리면 라헬을 아내로 줄 테니 다시 7년을 더 봉사하라는 조건을 내겁니다. 야곱은 억울했지만 그렇게 따르지요.
여기서 우리가 깨우쳐 봐야 할 점은, 자기 형편과 처지를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울하다, 비위가 상한다, 나와 맞지 않는다.” 하며 불평하며 분수에 지나친 행동을 하면 가정이나 직장은 물론 어디에서도 사랑과 인정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어렵다 할지라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긍정적인 마음과 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과 이익을 따지기보다는 내가 손해를 보고 희생한다 해도 선을 택하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요. 이런 사람은 결국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그 위치가 견고히 서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야곱이 여러 자녀를 낳고 요셉을 낳은 때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라반에게 말합니다. 라반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보시고 자기에게 복 주신 것을 잘 알았습니다(창 30:27). 야곱이 오기 전에는 소유가 적었는데 그가 온 후로는 재산이 크게 불어났기 때문입니다. 야곱을 놓치고 싶지 않은 라반은 야곱에게 품삯을 정하라고 합니다. 여러 번 외삼촌에게 속은 야곱은 지혜를 씁니다.
즉 외삼촌의 양 떼 중에서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 그리고 염소 중에서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 있으면 자기에게 품삯으로 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양들은 드물었기에 라반은 쾌히 승낙합니다. 그때부터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군데군데 껍질을 벗겨 알록달록한 무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양 떼가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다 세워 놓습니다.
야곱은 튼튼한 양이 새끼를 밸 때에는 알록달록한 가지를 놓았다가 약한 양이면 가지를 치웠습니다. 알록달록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물을 마신 튼튼한 양들은 교미하여 잉태한 후 아롱지거나 점이 있거나 검은 새끼를 많이 낳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실한 양들은 다 야곱의 것이 되고 약한 양들은 라반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야곱이 라반에게 기묘한 제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4년간 봉사하면서 어떻게 해야 양이 새끼를 잘 낳고 잘 자라는지 전문가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야곱은 바라보는 대로 이루어지는 믿음의 법칙을 터득하였지요(히 11:1). 누구든지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야곱처럼 성실하며, 꿈과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가령, 음식점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은 음식 맛 외에도 장소와 손님들에게 편안한 인테리어를 생각합니다. 또한 친절한 서비스와 메뉴도 개발해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게끔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3.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야곱은 20년간 같이 살던 라반으로부터 도주하듯이 고향을 향해 떠났습니다. 라반은 이 사실을 삼 일 후에야 알고 황급히 뒤쫓아 가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현몽하여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십니다. 이에 라반은 갈르엣에서 야곱과 약조를 맺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또다시 어려움이 닥칩니다.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형 에서가 사백 명을 이끌고 온다는 것입니다. 야곱 때문에 장자의 축복을 빼앗겼으니 그동안 얼마나 억울해하며 살았겠습니까. 조금만 어렵고 힘들어도 야곱이 자신의 축복을 가로챘기 때문이라고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오랜 세월 야곱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쌓였겠습니까.
야곱은 에서가 쫓아온다는 소리에 너무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이에 자신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자기와 함께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눕니다.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할 수 있겠다는 만약의 경우까지 대비한 것이지요. 그리고 형의 감정을 누그러뜨려 보고자 많은 예물을 앞서 준비했습니다.
야곱은 라반과 약조했으니 뒤로 물러설 수도 없고 형 에서 앞에 나아갈 수도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리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역부족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야곱은 자신의 모든 지혜를 내려놓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너무나 절박했기에 얍복 강가에서 환도뼈가 어긋나도록 밤새 천사와 씨름했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끌어내렸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의지하니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눈녹듯이 녹이심으로 환영을 받으며 고향에 돌아왔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에 형통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만 온전히 순종하면 야곱처럼 남한테 속거나 우여곡절을 겪지 않습니다. 가정이나 직장, 사업터에 축복을 받고 형통함을 받고 싶다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내가 옳다라고 하는 의와 지혜를 철저히 내려놓음으로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마음껏 받아 나가시기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야곱은 형 에서에게 팥죽을 주고 무엇을 샀나요?
( )
2. 야곱은 얍복 강에서 환도뼈가 어긋나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하나님께 얻은 새 이름은 무엇인가요?
( )
3. 야곱이 자신의 지혜를 의지했을 때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 )
4. 야곱이 바라봄의 법칙을 터득하여 바라본 대로 그 실상이 나타났습니다. 거기에 해당하는 내용을 간략하게 써 보세요.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207~21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환도뼈란?
현대 의학 용어로 대퇴골이라 하며, 허리 아래에 있는 넓적다리뼈를 말한다.
교육목표 :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함으로 모든 삶에 형통함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과 인류의 역사,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대로 행하면 형통한 길로 인도하시며 축복을 내려 주시지요. 그러니 하나님을 만나면 아무리 불행했던 사람도 행복해질 수 있고, 얽히고설킨 복잡한 문제도 명쾌하게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혹여 근심 걱정된 일로 인해 힘이 드십니까?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의지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이 여러분의 삶을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1. 장자의 축복을 받은 야곱
야곱은 아브라함의 손자이며 이삭의 아들로서, 형 에서와 쌍둥이로 태어났습니다. 에서는 들로 다니며 사냥하는 것을 좋아하였고 아버지 이삭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반면에 야곱은 조용한 성품으로 집 안에 있으면서 어머니 일을 도우니 자연히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지혜로운 반면 간교한 성품이 있었고, 꿈과 야심이 있어서 형이 가진 장자의 축복을 자신이 받고 싶어했습니다.
어느 날,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와 몹시 배고파할 때에 팥죽 한 그릇을 줄 테니 장자의 명분을 팔라고 합니다. 에서는 장자의 축복을 소홀히 여기고 아무 생각 없이 팔아버렸습니다. 세월이 흘러 아버지 이삭이 나이가 들자 죽기 전에 장자 에서를 불러 축복을 빌어 주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에게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가져오면 축복해 주겠노라고 하지요. 이것을 엿들은 어머니 리브가는 자기가 사랑하는 야곱에게 그 축복을 받게 해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에서인 척 위장하고 들어가 형 대신 장자의 축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야곱은 에서처럼 꾸미고 어머니가 만들어 준 별미를 갖고 들어갑니다. 눈이 어두운 이삭은 변장한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마음껏 축복해 줍니다(창 27장). 그런데 얼마 안 되어 에서가 사냥한 고기로 별미를 만들어 가지고 들어오지요. 깜짝 놀란 이삭은 야곱에게 축복을 다 해 주었으므로 더 이상 축복해 줄 것이 없다고 하지요. 장자의 축복을 빼앗긴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리라 결심합니다. 이 일로 야곱은 외삼촌 라반이 있는 하란으로 피하게 됩니다.
2. 축복의 비결을 터득한 야곱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기반을 닦으며 성실히 일했습니다. 이를 지켜본 라반은 그에게 품삯을 정하라고 합니다. 이때 야곱은 7년을 봉사하는 조건으로 라헬을 아내로 달라고 요청하지요.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기 때문에 7년을 수일같이 여기며 기쁘게 일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면 어떠한 연단이나 핍박이 와도 기쁨으로 이겨 나갑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면 이 세상 어떠한 것도 부럽지 않지요. 어떻게 하면 하늘나라에 더 상급을 쌓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더 충성할까 하며 힘쓰게 됩니다.
야곱도 사랑하는 라헬을 위해 7년을 길다 여기지 않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마침내 7년이 지나 결혼식을 올렸는데 정작 신부는 라헬이 아니라 레아였습니다. 라반에게 속은 야곱이 분을 내자 외삼촌은 형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이 지방 풍속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7일을 기다리면 라헬을 아내로 줄 테니 다시 7년을 더 봉사하라는 조건을 내겁니다. 야곱은 억울했지만 그렇게 따르지요.
여기서 우리가 깨우쳐 봐야 할 점은, 자기 형편과 처지를 잘 살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억울하다, 비위가 상한다, 나와 맞지 않는다.” 하며 불평하며 분수에 지나친 행동을 하면 가정이나 직장은 물론 어디에서도 사랑과 인정을 받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현실이 어렵다 할지라도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긍정적인 마음과 선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신에게 유리한 조건과 이익을 따지기보다는 내가 손해를 보고 희생한다 해도 선을 택하며 자신의 본분을 다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요. 이런 사람은 결국 하나님께서 높여 주시고 그 위치가 견고히 서게 됩니다.
세월이 흘러 야곱이 여러 자녀를 낳고 요셉을 낳은 때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라반에게 말합니다. 라반은 하나님께서 야곱을 보시고 자기에게 복 주신 것을 잘 알았습니다(창 30:27). 야곱이 오기 전에는 소유가 적었는데 그가 온 후로는 재산이 크게 불어났기 때문입니다. 야곱을 놓치고 싶지 않은 라반은 야곱에게 품삯을 정하라고 합니다. 여러 번 외삼촌에게 속은 야곱은 지혜를 씁니다.
즉 외삼촌의 양 떼 중에서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 그리고 염소 중에서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이 있으면 자기에게 품삯으로 달라는 것입니다. 이런 양들은 드물었기에 라반은 쾌히 승낙합니다. 그때부터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군데군데 껍질을 벗겨 알록달록한 무늬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양 떼가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다 세워 놓습니다.
야곱은 튼튼한 양이 새끼를 밸 때에는 알록달록한 가지를 놓았다가 약한 양이면 가지를 치웠습니다. 알록달록한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물을 마신 튼튼한 양들은 교미하여 잉태한 후 아롱지거나 점이 있거나 검은 새끼를 많이 낳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실한 양들은 다 야곱의 것이 되고 약한 양들은 라반의 것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야곱이 라반에게 기묘한 제안을 할 수 있었던 것은 14년간 봉사하면서 어떻게 해야 양이 새끼를 잘 낳고 잘 자라는지 전문가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지혜로운 야곱은 바라보는 대로 이루어지는 믿음의 법칙을 터득하였지요(히 11:1). 누구든지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야곱처럼 성실하며, 꿈과 비전을 가지고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가령, 음식점으로 성공하고자 하는 사람은 음식 맛 외에도 장소와 손님들에게 편안한 인테리어를 생각합니다. 또한 친절한 서비스와 메뉴도 개발해서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게끔 만들어야 성공할 수 있습니다.
3.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
야곱은 20년간 같이 살던 라반으로부터 도주하듯이 고향을 향해 떠났습니다. 라반은 이 사실을 삼 일 후에야 알고 황급히 뒤쫓아 가지요. 그때 하나님께서 라반에게 현몽하여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말하지 말라” 하십니다. 이에 라반은 갈르엣에서 야곱과 약조를 맺고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한숨 돌리는가 싶었는데 또다시 어려움이 닥칩니다.
야곱이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고 형 에서가 사백 명을 이끌고 온다는 것입니다. 야곱 때문에 장자의 축복을 빼앗겼으니 그동안 얼마나 억울해하며 살았겠습니까. 조금만 어렵고 힘들어도 야곱이 자신의 축복을 가로챘기 때문이라고 원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니 그 오랜 세월 야곱에 대한 분노가 얼마나 쌓였겠습니까.
야곱은 에서가 쫓아온다는 소리에 너무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이에 자신의 지혜를 총동원하여 자기와 함께한 종자와 양과 소와 약대를 두 떼로 나눕니다.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할 수 있겠다는 만약의 경우까지 대비한 것이지요. 그리고 형의 감정을 누그러뜨려 보고자 많은 예물을 앞서 준비했습니다.
야곱은 라반과 약조했으니 뒤로 물러설 수도 없고 형 에서 앞에 나아갈 수도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무리 이런저런 방법을 동원해 보았지만 자신의 힘으로는 역부족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야곱은 자신의 모든 지혜를 내려놓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너무나 절박했기에 얍복 강가에서 환도뼈가 어긋나도록 밤새 천사와 씨름했습니다. 마침내 야곱은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끌어내렸고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까지 얻게 되었습니다. 야곱이 하나님을 의지하니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눈녹듯이 녹이심으로 환영을 받으며 고향에 돌아왔고 이스라엘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때에 형통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만 온전히 순종하면 야곱처럼 남한테 속거나 우여곡절을 겪지 않습니다. 가정이나 직장, 사업터에 축복을 받고 형통함을 받고 싶다면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또한 내가 옳다라고 하는 의와 지혜를 철저히 내려놓음으로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고 가장 좋은 길로 이끌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응답과 축복을 마음껏 받아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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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야곱은 형 에서에게 팥죽을 주고 무엇을 샀나요?
( )
2. 야곱은 얍복 강에서 환도뼈가 어긋나도록 천사와 씨름하여 하나님께 얻은 새 이름은 무엇인가요?
( )
3. 야곱이 자신의 지혜를 의지했을 때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의지했을 때 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이야기해 보세요.
( )
4. 야곱이 바라봄의 법칙을 터득하여 바라본 대로 그 실상이 나타났습니다. 거기에 해당하는 내용을 간략하게 써 보세요.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207~21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환도뼈란?
현대 의학 용어로 대퇴골이라 하며, 허리 아래에 있는 넓적다리뼈를 말한다.
2014-04-25
제17과순종의 축복
삼상 15:22~23
읽을말씀 : 삼상 15:22~23 | 외울말씀 : 막 9:23 ㅣ 참고 말씀:히 11:8
교육목표 :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함으로 기사와 표적이 따르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순종할 수 있는 것을 명하시고 행함으로 나타낼 때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시지요.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리고 성을 7일 동안 돌라고 명하셨습니다. 여리고 성은 사람이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순종할 수 있는 것을 명하시고 하나님께서 무너뜨려 주셨습니다. 오늘은 순종의 축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를 대며 순종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물며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에 비추어 맞지 않은 일이라면 어찌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하고,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행할 때 진정한 순종이라고 여기십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순종할 때 의로 여기시고 순종의 축복을 주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행함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따르도록 역사하십니다. 견고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도 순종함으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 말씀대로 7일 동안 그 성을 돌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이나 지식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했기에 하나님께서 그 순종을 보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 하나하나를 순종할 때 믿음이 성장하고 더욱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순종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사람 편에서 그렇지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순종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과 경험, 사고방식으로 한계를 짓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자신도 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시고 불가능이 없으신 분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적어 행함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며 사람의 생각 속에서 한계를 깨뜨리면 능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2.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변함없이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을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한 대로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러한 순종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여종 하갈과 사이에서 낳은 이스마엘을 내보낼 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랐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본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매우 근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근심하지 말고 사라의 말대로 하면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섭리가 이삭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 위해 엄청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100세에 낳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땅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창 22:1~2). 인간의 생각을 동원한다면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아들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라 칭할 것이라’ 하셨고(창 21:12), ‘자손이 심히 번성케 되며 나라들과 열왕들이 나오리라’(창 17:6)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시니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어떤 이유도 대지 않고 곧바로 순종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으로 갔지요(창 22:3).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 말씀에 조금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신속히 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삭을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히 11:17~19). 아버지 하나님께서 결코 선하지 않은 일을 지시하실 리가 없다는 믿음이 확고부동했지요. 아브라함은 이런 일을 명하신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알았던 것입니다.
3. 순종의 복과 불순종의 고통
아브라함이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기에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 되었으며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다른 나라 왕들조차도 그 권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고, 주변에 물이 없을 때에도 그에게는 물이 있었습니다. 소돔에 살던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집에서 길린 가신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구출할 정도로 많은 종이 있었으며, 자녀의 복과 건강, 장수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앞일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해 주실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습니다(창 18:17). 우리는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통해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사람을 얼마나 기뻐하시며 축복하시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이런 사람은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 것일까요? 바로 자기 생각과 자기 유익에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 자세를 가진 사람은 자기 유익이나 현실을 보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순종해 드릴까?”를 생각하며 행하고자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한계를 깨뜨림으로 순종하여 결국 놀라운 하나님 역사를 체험하게 되지요. 그러나 현실을 보고 여전히 자기 생각을 동원하면 불순종을 낳기 마련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시험 환난과 고통의 연속입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은 하나님께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함을 알면서도 자기 생각 속에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동생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피의 제사를 드렸지요. 이에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흠향하셨습니다. 이에 가인은 아벨을 시기하여 쳐 죽이고 말지요. 즉 불순종이 살인을 불러오고 결국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은 어떠하였습니까?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 선지자가 정한 기한에 오지 않자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번제를 자기가 드리는 만용을 부렸습니다. 이는 율법을 어기는 행위였기에 사무엘이 책망하자 오히려 핑계만 대지요. 사울은 자기 생각이 앞서니 불순종하여 월권한 줄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 하셨는데도 가장 좋은 것은 살려 두지요.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책망하지요(삼상 15:22~23).
사울 왕처럼 거듭거듭 불순종하면 멸망으로 치닫거나 각종 시험 환난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순종하면 놀라운 역사가 따릅니다. 사르밧 과부만 봐도 알 수 있지요(왕상 17장). 그녀는 아들과 먹을 마지막 양식을 엘리야가 자신에게 공궤하라고 했을 때 그대로 순종함으로 가뭄이 끝날 때까지 통의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육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종 엘리야의 말씀을 믿었기에 오직 순종함으로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순종하면 놀라운 역사와 축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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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순종은 물론 어떠한 차원까지 순종하기를 원하실까요?
( )
2. 순종하면 축복인 줄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
3. 어떻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 )
4. 다음 중 순종하여 축복받은 사람이 아닌 것은?
① 사르밧 과부 ② 나아만 장군 ③ 아브라함 ④ 사울 왕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97~20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번제란?
구약 시대 제사법 중에 하나로서 제물이 되는 짐승을 불에 태워 그 향기로운 냄새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이다(레 1:6~9). 희생되는 짐승은 흠이 없는 수컷에만 한하여 주로 소·양·염소 등을 드렸으며, 가난한 이들은 산비둘기·집비둘기 등을 바치기도 했다(레 5:7). 짐승을 잡아 번제로 드리는 것은 우리 생명 자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번제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 말씀 가운데 온전히 거하여 거룩하게 살며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순종함으로 기사와 표적이 따르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기 원하시는 분입니다. 순종할 수 있는 것을 명하시고 행함으로 나타낼 때 놀라운 역사를 베풀어 주시지요. 예를 들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리고 성을 7일 동안 돌라고 명하셨습니다. 여리고 성은 사람이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순종할 수 있는 것을 명하시고 하나님께서 무너뜨려 주셨습니다. 오늘은 순종의 축복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이런저런 핑계와 이유를 대며 순종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물며 자신의 지식이나 경험에 비추어 맞지 않은 일이라면 어찌 순종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순종은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당연히 하고,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믿음으로 행할 때 진정한 순종이라고 여기십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순종할 때 의로 여기시고 순종의 축복을 주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순종의 행함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따르도록 역사하십니다. 견고한 여리고 성을 무너뜨릴 때도 순종함으로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이스라엘 백성은 여리고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하나님 말씀대로 7일 동안 그 성을 돌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상식이나 지식과는 도무지 맞지 않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여호수아와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했기에 하나님께서 그 순종을 보시고 여리고 성을 무너뜨려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 하나하나를 순종할 때 믿음이 성장하고 더욱 담대한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사실 순종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사람 편에서 그렇지 하나님 편에서는 결코 순종할 수 없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에 대한 생각과 경험, 사고방식으로 한계를 짓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은 자신도 할 수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은 한계가 없으시고 불가능이 없으신 분입니다.
마가복음 9장 23절에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믿음이 적어 행함이 따르지 않기 때문이며 사람의 생각 속에서 한계를 깨뜨리면 능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2. 순종의 사람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변함없이 무엇이든 하나님 앞에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명하셨을 때에 어떻게 하였습니까? 히브리서 11장 8절에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한 대로 갈 바를 알지 못했으나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이러한 순종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모든 축복을 받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여종 하갈과 사이에서 낳은 이스마엘을 내보낼 때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따랐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을 본 사라가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매우 근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근심하지 말고 사라의 말대로 하면 이스마엘로 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그대로 순종합니다. 결국 하나님의 섭리가 이삭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 위해 엄청난 순종을 요구하십니다. 100세에 낳은 약속의 아들 이삭을 모리아 땅으로 데리고 가서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었습니다(창 22:1~2). 인간의 생각을 동원한다면 자신의 생명보다 귀한 아들을 번제로 드린다는 것은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서 나는 자라야 아브라함의 씨라 칭할 것이라’ 하셨고(창 21:12), ‘자손이 심히 번성케 되며 나라들과 열왕들이 나오리라’(창 17:6)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고 하시니 하나님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그런데도 아브라함은 어떤 이유도 대지 않고 곧바로 순종했습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이 자기에게 지시하는 곳으로 갔지요(창 22:3).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나님 말씀에 조금도 주저하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신속히 행할 수 있었던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삭을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히 11:17~19). 아버지 하나님께서 결코 선하지 않은 일을 지시하실 리가 없다는 믿음이 확고부동했지요. 아브라함은 이런 일을 명하신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알았던 것입니다.
3. 순종의 복과 불순종의 고통
아브라함이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순종했기에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 되었으며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받은 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컸습니다. 다른 나라 왕들조차도 그 권세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고, 주변에 물이 없을 때에도 그에게는 물이 있었습니다. 소돔에 살던 조카 롯이 포로로 잡혀갔을 때 집에서 길린 가신 318명을 거느리고 가서 구출할 정도로 많은 종이 있었으며, 자녀의 복과 건강, 장수의 축복도 받았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앞일에 대해 자상하게 설명해 주실 정도로 친밀한 관계였습니다(창 18:17). 우리는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통해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사람을 얼마나 기뻐하시며 축복하시는지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왜 이런 사람은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 것일까요? 바로 자기 생각과 자기 유익에 따라 행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 자세를 가진 사람은 자기 유익이나 현실을 보지 않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순종해 드릴까?”를 생각하며 행하고자 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생각과 한계를 깨뜨림으로 순종하여 결국 놀라운 하나님 역사를 체험하게 되지요. 그러나 현실을 보고 여전히 자기 생각을 동원하면 불순종을 낳기 마련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시험 환난과 고통의 연속입니다.
아담의 아들 가인은 하나님께 피의 제사를 드려야 함을 알면서도 자기 생각 속에 땅의 소산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지만 동생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기름으로 피의 제사를 드렸지요. 이에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만 흠향하셨습니다. 이에 가인은 아벨을 시기하여 쳐 죽이고 말지요. 즉 불순종이 살인을 불러오고 결국 저주를 받게 되었습니다.
사울 왕은 어떠하였습니까? 블레셋과의 전쟁을 앞두고 사무엘 선지자가 정한 기한에 오지 않자 제사장만이 드릴 수 있는 번제를 자기가 드리는 만용을 부렸습니다. 이는 율법을 어기는 행위였기에 사무엘이 책망하자 오히려 핑계만 대지요. 사울은 자기 생각이 앞서니 불순종하여 월권한 줄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모든 소유를 진멸하라 하셨는데도 가장 좋은 것은 살려 두지요. 이에 사무엘이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나이다”라고 책망하지요(삼상 15:22~23).
사울 왕처럼 거듭거듭 불순종하면 멸망으로 치닫거나 각종 시험 환난을 당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순종하면 놀라운 역사가 따릅니다. 사르밧 과부만 봐도 알 수 있지요(왕상 17장). 그녀는 아들과 먹을 마지막 양식을 엘리야가 자신에게 공궤하라고 했을 때 그대로 순종함으로 가뭄이 끝날 때까지 통의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육적으로 생각하면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만,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종 엘리야의 말씀을 믿었기에 오직 순종함으로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순종하면 놀라운 역사와 축복이 따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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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순종은 물론 어떠한 차원까지 순종하기를 원하실까요?
( )
2. 순종하면 축복인 줄 알면서도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
3. 어떻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했을 때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순종할 수 있었을까요?
( )
4. 다음 중 순종하여 축복받은 사람이 아닌 것은?
① 사르밧 과부 ② 나아만 장군 ③ 아브라함 ④ 사울 왕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97~20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번제란?
구약 시대 제사법 중에 하나로서 제물이 되는 짐승을 불에 태워 그 향기로운 냄새를 하나님 앞에 드리는 제사이다(레 1:6~9). 희생되는 짐승은 흠이 없는 수컷에만 한하여 주로 소·양·염소 등을 드렸으며, 가난한 이들은 산비둘기·집비둘기 등을 바치기도 했다(레 5:7). 짐승을 잡아 번제로 드리는 것은 우리 생명 자체를 하나님께 드린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번제의 영적인 의미는 하나님 말씀 가운데 온전히 거하여 거룩하게 살며 모든 삶을 하나님 앞에 드리는 것이다.
2014-04-18
제16과부활의 의미
요 14:6
읽을말씀 : 요 14:6 | 외울말씀 : 고전 15:20 l 참고 말씀:살전 4:16~17
교육목표 : 예수님의 공의를 뛰어넘는 십자가의 사랑과 주님의 부활을 마음 깊이 새김으로 부활의 소망이 넘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시종 가난한 길을 가셨고, 마침내 채찍에 맞고 가시면류관을 쓰며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처참히 돌아가셨습니다.
아무 흠도 티도 없으신 예수님이 온갖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바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공의를 뛰어넘는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온 인류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으셨기에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깨달음으로 부활의 소망이 가득하기 바랍니다. 오늘은 부활의 영적인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부활은 ‘참 생명’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씀했습니다. 즉 죄를 지으면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범죄한 아담의 후손이기에 죄의 성질을 물려받아 태어난 후 이런저런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건져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이 저주받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도를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신 대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땅의 삶이 전부인 줄 알고 있지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출세와 부와 만족을 위해 살아갈 뿐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죄인이 당할 사망은 육의 사망 곧 몸의 죽음만이 아닙니다. 몸의 죽음과 함께 영적인 사망 곧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망 앞에 놓여 있던 우리에게 주님께서 참 생명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히 죽지 않고 천국에서 세세토록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구원받은 성도 중에도 많은 사람이 수명을 다하고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들이 ‘죽었다’ 하지 않고, ‘잔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지요. 여기서 ‘잠자는 자들’이란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를 믿다가 육의 수명이 다해 장사된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공중강림하실 때 살아서 주를 맞는 성도들보다 앞서 부활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하신 대로, 죽어 장사되었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해 영혼과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7절에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했습니다. 곧 육의 죽음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변화되어 공중으로 들려 오릅니다. 이때 입는 몸은 영원히 죽지 않을 신령한 몸인 부활체입니다.
2. 부활은 ‘참사랑’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고, 영생과 천국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행하심으로 보여 주셨지요. 주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그 사랑이 참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죄가 전혀 없으셨기에 사망에 전혀 매이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아무 죄도 없으면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시기도 합니다.
아담은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아담은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육의 사람이 되었고, 죄인인 아담에게서 난 모든 후손들 또한 죄인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만세 전에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지극히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죄인들의 손에 내주어 죽게 하셨습니다. 비록 인생들이 죄를 범했을지라도, 독생자를 희생시켜 죄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실 만큼 인생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두신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나눌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천국과 영생을 주시고 참사랑을 나누기 위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때가 되자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 고난과 부활 사건을 이루심으로 그 사랑을 분명히 나타내셨지요.
이러한 참사랑은 약 2천 년이 흐른 지금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베풀고 계신 참사랑이 바로 그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면 우리 마음에 성령이 오십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지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점차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사랑은 상대를 대신해서 죽을 수 있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최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그 사랑이 참임을 확증하셨지요.
3. 부활은 ‘참 믿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기쁨으로 순종하셨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의 섭리를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때로는 애매히 핍박을 받고, 생명의 위협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니 철저히 혼자가 되시기도 했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죄인의 신분으로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셨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당한 후에는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과 함께 큰 영광을 누리실 것을 믿으셨지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부활을 허락하시고 천국을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잠시 잠깐 머물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기에 날마다 죄를 벗으며 성결을 이루기 위해 힘씁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며, 그 충성이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혹여 고난과 핍박이 올 때에도 우리를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하실 하나님을 굳게 믿으시고, 그날에 주실 영광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죄 없이 고난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통해 축복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시기까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시고 결코 잊지 않으시지요. 그 크신 아버지의 사랑과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마음 깊이 새김으로 부활의 소망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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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활에 담긴 영적인 의미 세 가지를 써 보세요.
첫째, 부활은 ( )을 의미한다.
둘째, 부활은 참사랑을 의미한다.
셋째, 부활은 ( )을 의미한다.
2.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분은 누구실까요?
( )
3.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목숨이 다하여 죽었을 때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표현했나요? ( )
● 금주 과제
다음 주일은 부활 주일입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더욱 뜨겁게 전하는 한 주간 되세요.
● 알고 넘어 갑시다!
‘부활체’란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성도들이 입게 되는 썩지도 죽지도 않는 신령한 몸이다. 성도들은 이 부활체를 입고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 공중에서 7년 혼인 잔치를 한다. 부활체는 영혼과 신령한 몸이 결합한 상태로서 손에 만져지고 숨도 쉬며 음식도 먹고 마실 수 있다. 신령한 몸이기에 부활하신 주님처럼 어떤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교육목표 : 예수님의 공의를 뛰어넘는 십자가의 사랑과 주님의 부활을 마음 깊이 새김으로 부활의 소망이 넘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 다 버리시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시종 가난한 길을 가셨고, 마침내 채찍에 맞고 가시면류관을 쓰며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처참히 돌아가셨습니다.
아무 흠도 티도 없으신 예수님이 온갖 조롱과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바로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처럼 공의를 뛰어넘는 예수님의 사랑이 있었기에 온 인류가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무런 죄도 없으셨기에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깨달음으로 부활의 소망이 가득하기 바랍니다. 오늘은 부활의 영적인 의미를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부활은 ‘참 생명’을 의미합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말씀했습니다. 즉 죄를 지으면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은 범죄한 아담의 후손이기에 죄의 성질을 물려받아 태어난 후 이런저런 죄를 지으며 살아갑니다. 그래서 로마서 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인류를 건져 주셨습니다.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이 저주받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십자가의 도를 믿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로 인해 사망에 이르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2절에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하신 대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려고 합니다. 이 땅의 삶이 전부인 줄 알고 있지요. 자신의 목표를 위해, 출세와 부와 만족을 위해 살아갈 뿐 사후 세계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죄인이 당할 사망은 육의 사망 곧 몸의 죽음만이 아닙니다. 몸의 죽음과 함께 영적인 사망 곧 지옥에 떨어져 세세토록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사망 앞에 놓여 있던 우리에게 주님께서 참 생명을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히 죽지 않고 천국에서 세세토록 살아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구원받은 성도 중에도 많은 사람이 수명을 다하고 죽음을 맞았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들이 ‘죽었다’ 하지 않고, ‘잔다’고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0절에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했지요. 여기서 ‘잠자는 자들’이란 이 땅에 사는 동안 주를 믿다가 육의 수명이 다해 장사된 사람들을 뜻합니다. 이들은 주님께서 공중강림하실 때 살아서 주를 맞는 성도들보다 앞서 부활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16절에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하신 대로, 죽어 장사되었던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해 영혼과 결합하는 것입니다. 이어지는 17절에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했습니다. 곧 육의 죽음을 겪지 않은 사람들은 순식간에 변화되어 공중으로 들려 오릅니다. 이때 입는 몸은 영원히 죽지 않을 신령한 몸인 부활체입니다.
2. 부활은 ‘참사랑’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을 구원하시고, 영생과 천국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말로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몸소 행하심으로 보여 주셨지요. 주님은 죽었다가 부활하심으로 그 사랑이 참임을 증명하셨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인데 죄가 전혀 없으셨기에 사망에 전혀 매이지 않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부활은 아무 죄도 없으면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또한 아버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시기도 합니다.
아담은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의 사랑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아담은 영계의 법칙에 따라 죽을 수밖에 없는 육의 사람이 되었고, 죄인인 아담에게서 난 모든 후손들 또한 죄인으로서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만세 전에 예수님을 예비하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지극히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죄인들의 손에 내주어 죽게 하셨습니다. 비록 인생들이 죄를 범했을지라도, 독생자를 희생시켜 죄 문제를 대신 해결해 주실 만큼 인생들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두신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영원히 함께 나눌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천국과 영생을 주시고 참사랑을 나누기 위해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때가 되자 독생자를 보내셔서 십자가 고난과 부활 사건을 이루심으로 그 사랑을 분명히 나타내셨지요.
이러한 참사랑은 약 2천 년이 흐른 지금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베풀고 계신 참사랑이 바로 그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영접하면 우리 마음에 성령이 오십니다. 그러면 성령으로 말미암아 죽었던 영이 살아나지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점차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사랑은 상대를 대신해서 죽을 수 있는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심으로 최고의 사랑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그 사랑이 참임을 확증하셨지요.
3. 부활은 ‘참 믿음’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에 기쁨으로 순종하셨고, 십자가를 지심으로 구원의 섭리를 온전히 성취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때로는 애매히 핍박을 받고, 생명의 위협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실 때에는 하나님께서 외면하시니 철저히 혼자가 되시기도 했습니다. 인류의 모든 죄를 지고 죄인의 신분으로 십자가를 지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던 마지막 순간까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셨습니다. 십자가 고난을 당한 후에는 다시 부활하여 하나님과 함께 큰 영광을 누리실 것을 믿으셨지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믿음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부활을 허락하시고 천국을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잠시 잠깐 머물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습니다. 썩어 없어질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기에 날마다 죄를 벗으며 성결을 이루기 위해 힘씁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기까지 충성하며, 그 충성이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혹여 고난과 핍박이 올 때에도 우리를 생명의 부활로 나오게 하실 하나님을 굳게 믿으시고, 그날에 주실 영광을 소망하시기 바랍니다. 죄 없이 고난을 받는다면 하나님께서 그 고난을 통해 축복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16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내주시기까지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의 이름을 손바닥에 새기시고 결코 잊지 않으시지요. 그 크신 아버지의 사랑과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마음 깊이 새김으로 부활의 소망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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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부활에 담긴 영적인 의미 세 가지를 써 보세요.
첫째, 부활은 ( )을 의미한다.
둘째, 부활은 참사랑을 의미한다.
셋째, 부활은 ( )을 의미한다.
2.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분은 누구실까요?
( )
3.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목숨이 다하여 죽었을 때 성경에는 무엇이라고 표현했나요? ( )
● 금주 과제
다음 주일은 부활 주일입니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을 더욱 뜨겁게 전하는 한 주간 되세요.
● 알고 넘어 갑시다!
‘부활체’란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성도들이 입게 되는 썩지도 죽지도 않는 신령한 몸이다. 성도들은 이 부활체를 입고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 공중에서 7년 혼인 잔치를 한다. 부활체는 영혼과 신령한 몸이 결합한 상태로서 손에 만져지고 숨도 쉬며 음식도 먹고 마실 수 있다. 신령한 몸이기에 부활하신 주님처럼 어떤 공간의 제약도 받지 않는다.
2014-04-11
제15과순전
마 12:18~21
읽을말씀 : 마 12:18~21 | 외울말씀 : 마 12:20 ㅣ 참고 말씀:욥 1:20~21
교육목표 :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 예수님처럼 순전한 마음을 이루어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게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마음이 순전치 못하여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마음이 순전한 사람은 허탄한 것을 좇지 않고 자기 마음을 지키며 거룩함을 좇아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감당합니다. 따라서 순전한 자가 되면 하늘로부터 지혜를 받을 뿐 아니라, 모든 일에 만사형통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1. 순전의 영적인 의미
사람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는 분이므로 누가 선한지 악한지 정확하게 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욥의 중심을 보시니 순전하였지요(욥 1:1).
순전의 사전적 의미는 ‘순수하고 완전함’입니다. 순전한 사람은 온화하고 유순하여 말이나 행동에 덕이 있습니다. 설령 해로운 일을 만나도 악으로 갚지 않고 모든 것을 선으로 수용합니다. 따라서 순전의 영적인 의미는 ‘행함으로 온유함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욥은 동방에서 가장 큰 자라 불릴 정도로 물질과 명예, 자녀와 건강 등 많은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재난으로 인해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합니다(욥 1:20).
이렇게 욥은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으며 순전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런 욥이었기에 하나님께서도 그를 인정하여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말씀합니다(욥 2:3). 그런데 욥기를 읽다보면 욥이 악창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자 자기 생일을 저주하며 친구들과 변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악의 모습이 있는 욥을 순전하다고 하셨을까요?
당시는 성령이 오시기 전인 구약 시대이므로 율법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욥은 행위로 죄를 짓지 않았고,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선행을 많이 쌓았기에 ‘순전하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행위로만 죄를 짓지 않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는 죄성까지 온전히 버리길 원하십니다. 즉 마음에 할례하여 본성 속의 악까지 버려야 영적인 의미의 순전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마태복음 12장 19~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순전한 마음을 지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말씀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아야 합니다.
나무나 화초를 키울 때 상한 잎사귀나 가지가 있으면 잘라내 버립니다. 이처럼 사람들도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으면 외면하거나 꺾어 버리려고 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상한 갈대와 같은 영혼이라 할지라도 꺾지 않으시고 살리고자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바로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행하시는 선을 보고도 악을 품고 나오는 사람들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도 버리지 않고 진리로 깨우쳐 주시며 변화되기까지 인내하셨습니다. 또한 병들고 불쌍한 영혼들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며 구원하려 하셨지요. 순전한 사람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 할지라도 긍휼히 여기며 어찌하든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말아야 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마음이 악으로 심하게 물들어서 그 영혼의 등불이 꺼져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없고 모든 것이 포기 상태에 이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려 내고자 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함께하며 변화되기를 오래 참아 기다려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한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대신 용서의 간구를 올리셨습니다.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악한 사람들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으셨지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할 수 있는 오래 참음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는 마음은 곧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오래 참음의 열매와 같습니다. 영적인 사랑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바라보며 끝까지 오래 참으며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부모나 자녀라 해도 자신에게 크나큰 해를 입히고 수치를 당하게 하면 꺼져 가는 심지를 끄듯 꺼 버립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나가는 것이 순전한 마음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마음입니다.
셋째로, 다투거나 들레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을 만나도 다투거나 들레지 않으셨습니다. 악한 자들은 예수님을 시기하며 온갖 일로 모함하고 죽이려 하였지만 맞서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선한 지혜로 그들을 일깨워 주고 피해야 할 자리는 피하셨습니다. 또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심문받으실 때도 잠잠하셨지요.
우리가 믿음이 적을 때는 자기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은 일이 생기면 혈기내고 언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만일 다툼이 일어났다면 그 원인은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를 품지 못한 작은 그릇이고 부딪히면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자기적인 의와 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음의 악을 빨리 벗어야 하지요.
예수님은 들레지도 않고 모든 행함이 참으로 거룩하고 깨끗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베푸셨기 때문에 얼마든지 들레고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누가 알아 주기를 바라지도 않으셨습니다. 들레지 않고 오직 겸손히 행하시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셨습니다.
우리도 자신이 한 일을 누가 알아 주기 원하며 들레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 좋은 일을 드러나도록 역사하십니다.
3. 순전한 사람이 받는 축복
아브라함은 마음이 순전하고 모든 행함이 온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거나 악으로 갚지도 않았지요. 모든 것을 선 속에서 해결하면서 참고 인내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소유가 많아져 그들의 목자들이 서로 다툴 때도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삼촌이지만 조카에게 양보하고 자기의 유익을 좇아 더 좋은 쪽을 취한 조카에게 서운함이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또한 롯이 포로로 잡혀 가자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다투거나 들레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으며 하나님 앞에 순전하게 행하니 손해 보기는커녕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라 일컬음을 받았지요.
우리도 마음이 순전하여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며, 다투거나 들레지 않으면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고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라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천국에서 큰 자라 일컬음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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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으로 상한 갈대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 )
2. 영적으로 꺼져가는 심지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 )
3.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떠한 마음을 소유해야 할까요?
첫째, ( )를 꺾지 않아야 한다.
둘째, ( )를 끄지 말아야 한다.
셋째, 다투거나 ( ) 않아야 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83~19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오래 참음’
영적인 오래 참음은 악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참는 것이다.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으면 어떠한 사람도 이해하고 품으며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용서한다든지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치 않다. 선으로 참을 때는 힘든 일도 소망 중에 감사함으로 이겨내며 결과적으로 더 넓고 큰 마음이 된다. 반면 악으로 참을 때는 감정이 쌓여 병이 되거나 점점 심성이 거칠어진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에 나오는 오래 참음은 ‘사랑을 이루기 위한 오래 참음’을 말한다. 나아가 갈라디아서 5장 성령의 열매에 나오는 오래 참음은 ‘모든 것에 대한 오래 참음’으로 고린도전서 13장의 오래 참음보다 차원이 더 높다.
교육목표 :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신 예수님처럼 순전한 마음을 이루어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게 한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만나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마음이 순전치 못하여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반면에 마음이 순전한 사람은 허탄한 것을 좇지 않고 자기 마음을 지키며 거룩함을 좇아 자신의 본분을 충실히 감당합니다. 따라서 순전한 자가 되면 하늘로부터 지혜를 받을 뿐 아니라, 모든 일에 만사형통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1. 순전의 영적인 의미
사람은 겉모습을 보고 판단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는 분이므로 누가 선한지 악한지 정확하게 아십니다. 이러한 하나님께서 욥의 중심을 보시니 순전하였지요(욥 1:1).
순전의 사전적 의미는 ‘순수하고 완전함’입니다. 순전한 사람은 온화하고 유순하여 말이나 행동에 덕이 있습니다. 설령 해로운 일을 만나도 악으로 갚지 않고 모든 것을 선으로 수용합니다. 따라서 순전의 영적인 의미는 ‘행함으로 온유함을 나타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욥은 동방에서 가장 큰 자라 불릴 정도로 물질과 명예, 자녀와 건강 등 많은 축복을 누렸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재난으로 인해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욥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을 밀고 땅에 엎드려 하나님을 경배합니다(욥 1:20).
이렇게 욥은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어리석게 원망하지 않으며 순전을 굳게 지켰습니다. 그런 욥이었기에 하나님께서도 그를 인정하여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말씀합니다(욥 2:3). 그런데 욥기를 읽다보면 욥이 악창으로 극심한 고통을 받자 자기 생일을 저주하며 친구들과 변론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악의 모습이 있는 욥을 순전하다고 하셨을까요?
당시는 성령이 오시기 전인 구약 시대이므로 율법에 어긋난 행동을 하지 않으면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욥은 행위로 죄를 짓지 않았고,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선행을 많이 쌓았기에 ‘순전하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행위로만 죄를 짓지 않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안에 있는 죄성까지 온전히 버리길 원하십니다. 즉 마음에 할례하여 본성 속의 악까지 버려야 영적인 의미의 순전한 사람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마태복음 12장 19~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얼마나 순전한 마음을 지녔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말씀합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로, 상한 갈대를 꺾지 않아야 합니다.
나무나 화초를 키울 때 상한 잎사귀나 가지가 있으면 잘라내 버립니다. 이처럼 사람들도 자신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해를 끼치는 사람이 있으면 외면하거나 꺾어 버리려고 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리 상한 갈대와 같은 영혼이라 할지라도 꺾지 않으시고 살리고자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상한 갈대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요? 바로 ‘세상의 죄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행하시는 선을 보고도 악을 품고 나오는 사람들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도 버리지 않고 진리로 깨우쳐 주시며 변화되기까지 인내하셨습니다. 또한 병들고 불쌍한 영혼들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사랑하며 구원하려 하셨지요. 순전한 사람은 악으로 가득 찬 사람이라 할지라도 긍휼히 여기며 어찌하든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말아야 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사람에 비유한다면 ‘마음이 악으로 심하게 물들어서 그 영혼의 등불이 꺼져가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처럼 영적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없고 모든 것이 포기 상태에 이른 사람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살려 내고자 하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 것을 아시면서도 끝까지 함께하며 변화되기를 오래 참아 기다려 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고 조롱한 사람들을 위해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대신 용서의 간구를 올리셨습니다.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악한 사람들일지라도 포기하지 않으셨지요.
우리도 예수님처럼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할 수 있는 오래 참음의 마음이 필요합니다.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는 마음은 곧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중에 오래 참음의 열매와 같습니다. 영적인 사랑을 가지고 소망 가운데 믿음으로 바라보며 끝까지 오래 참으며 이끌어 주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부모나 자녀라 해도 자신에게 크나큰 해를 입히고 수치를 당하게 하면 꺼져 가는 심지를 끄듯 꺼 버립니다. 그러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나가는 것이 순전한 마음이며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마음입니다.
셋째로, 다투거나 들레지 않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을 만나도 다투거나 들레지 않으셨습니다. 악한 자들은 예수님을 시기하며 온갖 일로 모함하고 죽이려 하였지만 맞서 싸우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선한 지혜로 그들을 일깨워 주고 피해야 할 자리는 피하셨습니다. 또한 십자가 구원의 섭리를 이루기 위해 심문받으실 때도 잠잠하셨지요.
우리가 믿음이 적을 때는 자기 생각과 마음에 맞지 않은 일이 생기면 혈기내고 언성을 높이기도 합니다. 만일 다툼이 일어났다면 그 원인은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가 상대를 품지 못한 작은 그릇이고 부딪히면 소리가 날 수밖에 없는 자기적인 의와 틀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마음의 악을 빨리 벗어야 하지요.
예수님은 들레지도 않고 모든 행함이 참으로 거룩하고 깨끗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베푸셨기 때문에 얼마든지 들레고 자랑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누가 알아 주기를 바라지도 않으셨습니다. 들레지 않고 오직 겸손히 행하시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셨습니다.
우리도 자신이 한 일을 누가 알아 주기 원하며 들레고 싶어 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 좋은 일을 드러나도록 역사하십니다.
3. 순전한 사람이 받는 축복
아브라함은 마음이 순전하고 모든 행함이 온전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거나 악으로 갚지도 않았지요. 모든 것을 선 속에서 해결하면서 참고 인내하였으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조카 롯의 소유가 많아져 그들의 목자들이 서로 다툴 때도 아브라함은 어떻게 하였습니까? 삼촌이지만 조카에게 양보하고 자기의 유익을 좇아 더 좋은 쪽을 취한 조카에게 서운함이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또한 롯이 포로로 잡혀 가자 오히려 위험을 무릅쓰고 구해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다투거나 들레지 않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으며 하나님 앞에 순전하게 행하니 손해 보기는커녕 엄청난 축복을 받았습니다. 결국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부터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라 일컬음을 받았지요.
우리도 마음이 순전하여 상한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며, 다투거나 들레지 않으면 많은 사람을 품을 수 있고 구원의 길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라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며 천국에서 큰 자라 일컬음을 받는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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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으로 상한 갈대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 )
2. 영적으로 꺼져가는 심지란 무엇을 의미할까요?
( )
3. 순전한 사람이 되려면 어떠한 마음을 소유해야 할까요?
첫째, ( )를 꺾지 않아야 한다.
둘째, ( )를 끄지 말아야 한다.
셋째, 다투거나 ( ) 않아야 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83~19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오래 참음’
영적인 오래 참음은 악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참는 것이다. 오래 참음의 열매를 맺으면 어떠한 사람도 이해하고 품으며 아무런 감정이 없기 때문에 용서한다든지참는다는 말 자체가 필요치 않다. 선으로 참을 때는 힘든 일도 소망 중에 감사함으로 이겨내며 결과적으로 더 넓고 큰 마음이 된다. 반면 악으로 참을 때는 감정이 쌓여 병이 되거나 점점 심성이 거칠어진다.
고린도전서 13장 사랑장에 나오는 오래 참음은 ‘사랑을 이루기 위한 오래 참음’을 말한다. 나아가 갈라디아서 5장 성령의 열매에 나오는 오래 참음은 ‘모든 것에 대한 오래 참음’으로 고린도전서 13장의 오래 참음보다 차원이 더 높다.
2014-04-04
제14과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룻 1:16
읽을말씀 : 룻 1:16 | 외울말씀 : 갈 6:9 ㅣ 참고 말씀:고전 13:4~7
교육목표 : 변함없는 마음으로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않음으로 룻과 같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거나 좌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열매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영계의 법칙 또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러 반드시 거두게 마련입니다. 오늘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므로 결국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은 여인 룻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끝까지 선을 행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니실 때에 어떤 사람이 어떻게 충성하며 어떻게 순교할지, 누가 자신을 팔 자인지 이미 그들의 마음 중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수제자 베드로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고백했을 때에도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고백했지만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마 26장).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에 대해서도 미리 알고 계셨지만 그를 버리거나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든 깨닫고 돌이켜 회개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알려 주며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하셨지요(요 6:64, 70~71). 자기를 팔거나 죽일 자인 줄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와 동행하며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영의 마음을 이루지 못하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도 열매가 보이지 않으니 ‘내가 괜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고 항상 변함없는 마음으로 끝까지 선을 행하는 사람을 기뻐하며 축복하십니다.
2. 정한 마음을 소유한 룻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죽자 또다시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져들고 맙니다. 그 결과 주변 민족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흉년이 들어 많은 어려움을 겪지요. 이때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는 두 아들을 데리고 기근을 피해 모압 지방으로 이주합니다. 그런데 이주한 뒤 가장인 엘리멜렉이 죽고 말지요. 과부가 된 나오미는 모압 여인인 오르바와 룻을 며느리로 맞아들입니다. 10년쯤 되었을 때에 두 아들마저 죽고 맙니다.
온 가족이 기근을 피해 왔건만 집안의 모든 남자가 죽고 과부가 되었으니 얼마나 기구한 삶입니까. 이를 통해 우리가 깨우칠 점은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영적으로 하나님 품인데 나오미 가정은 하나님을 떠나 이방 땅인 모압으로 갔으니 이는 세상을 바라본 것이지요. 그러니 더 큰 어려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가세는 기울고 몹시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결심합니다. 그런데 남편도 없는 두 며느리가 마음에 걸려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권하지요. 아무 희망도 없이 과부로 살아야 할 며느리들을 생각하니 마음 아팠기 때문입니다.
이에 오르바는 울며 친정으로 돌아갔지만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습니다. 나오미가 돌아가라고 강권하자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룻 1:16~17)라고 단호히 말하지요.
3. 변함없이 선을 행하여 축복을 받은 룻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룻은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처음과 동일한 마음으로 변함없이 시어머니를 섬겼지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삭을 주워 정성껏 시어머니를 봉양하였고, 시어머니의 말씀에도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고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으며 마땅한 도리로 여기고 부지런히 섬겼습니다.
요즘은 부모를 모시는 문제로 형제간에 불화하거나 고부간의 갈등으로 고통받는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룻처럼 하나님을 믿음으로 도리를 좇는 선을 택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룻의 효성이 이처럼 지극했기에 주변에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 지역의 부유하고 신망을 받는 보아스도 룻에 대해 익히 알고 호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보리와 밀 추수를 마칠 때까지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도록 배려해 주었지요. 그는 나오미 남편의 친족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기 집안의 기업 무를 사람 중에 하나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보아스에게 부탁을 하지요. 모세의 율법에는 기업 무르기 법이 있습니다. 팔았던 토지를 원래 소유자에게 회복시키거나 자녀없이 죽은 사람의 대를 잇도록 하기 위해 그의 미망인을 죽은 사람의 친척이 취하여 대를 잇게 하는 법입니다.
보아스는 룻이 성읍 사람들이 다 아는 정숙한 여인임을 알고 있었기에 룻에게 기업 무를 사람의 책임을 행하기로 맹세했습니다. 기업 무를 사람으로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지만 그는 사랑이 없으므로 거절하였고, 그 다음 차례인 보아스는 사랑이 있으므로 허락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삼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가 바로 다윗의 조부 오벳입니다. 결국 룻은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어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4.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룻의 마음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베들레헴에 온 이방 여인 룻이 어떻게 이러한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바로 그녀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 앞에 합하였기 때문입니다. 룻은 자기 앞날에 아무런 희망이 없는데도 인내하며 선을 좇아 나갔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으며, 투기라든가 자랑하는 마음, 교만하거나 무례한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거나 악한 것을 생각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견뎠습니다. 룻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중심을 보시고 축복의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룻기 말씀을 통해 깨달을 점은 수많은 여인 중에서 룻에 대한 기록이 성경 66권 중 한 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룻의 마음을 본받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하십니다. 룻은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데도 나오미의 집안에 시집온 후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도 룻처럼 정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한 번 하나님을 믿었으면 변함이 없어야 하지요. 룻은 효성이 지극하며 사람의 도리를 다하여 홀로 된 시어머니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자유와 젊음 등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시어머니를 붙좇아 끝까지 봉양하였으니 참으로 아름답고 정한 마음이지요.
오늘날 이러한 마음을 지닌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자기 생각이나 마음에 맞지 않아도 함께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룻처럼 절망적인 상황이 되면 누가 그 길을 가려 하겠습니까. 룻은 시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공경했기에 그 길이 고생임을 알면서도 마땅한 도리로 여기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행복이나 불행은 환경이나 조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선한 마음에 달려 있지요. 룻이 대가를 바라고 선을 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갚아 주신 것처럼, 우리도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않으면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중심이 선한 사람은 선한 일을 할 때 몇 번 하다가 그치지 않습니다. 상대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사람으로서 바른 도리를 좇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변함없이 선을 행하지요. 그러므로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행하여 간구와 기도에 응답받으며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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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 그의 변함없는 사랑을 어떻게 고백했나요? (룻 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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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 안에 알맞은 이름을 써 넣으세요. (룻 4:18~22)
베레스 → 헤스론 → 람 → 암미나답 → 나손 → 살몬 → ( ) → 오벳 → 이새 →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73~18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베들레헴’
‘떡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예수님의 탄생지다.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라고 예언했다(미 5:2). 그 예언은 메시아가 그곳에서 탄생하심으로 성취되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며,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 부은 곳이기도 하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모압 땅으로 이주했다가 룻과 함께 다시 돌아왔다.
교육목표 : 변함없는 마음으로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않음으로 룻과 같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거나 좌절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열매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 것처럼 영계의 법칙 또한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면 때가 이르러 반드시 거두게 마련입니다. 오늘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않으므로 결국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은 여인 룻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끝까지 선을 행하기 원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아들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다니실 때에 어떤 사람이 어떻게 충성하며 어떻게 순교할지, 누가 자신을 팔 자인지 이미 그들의 마음 중심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수제자 베드로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 고백했을 때에도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고백했지만 결국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마 26장).
예수님은 가룟 유다가 자신을 팔 것에 대해서도 미리 알고 계셨지만 그를 버리거나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어찌하든 깨닫고 돌이켜 회개할 수 있도록 간접적으로 알려 주며 끝까지 사랑으로 인도하셨지요(요 6:64, 70~71). 자기를 팔거나 죽일 자인 줄을 알면서도 끝까지 그와 동행하며 여전히 사랑할 수 있다면 참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의롭고 사랑스러운 사람일 것입니다.
이러한 영의 마음을 이루지 못하면 자기 나름대로 열심히 선을 행하다가도 열매가 보이지 않으니 ‘내가 괜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고 항상 변함없는 마음으로 끝까지 선을 행하는 사람을 기뻐하며 축복하십니다.
2. 정한 마음을 소유한 룻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죽자 또다시 하나님을 떠나 우상 숭배에 빠져들고 맙니다. 그 결과 주변 민족으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흉년이 들어 많은 어려움을 겪지요. 이때 베들레헴에 살던 엘리멜렉과 나오미 부부는 두 아들을 데리고 기근을 피해 모압 지방으로 이주합니다. 그런데 이주한 뒤 가장인 엘리멜렉이 죽고 말지요. 과부가 된 나오미는 모압 여인인 오르바와 룻을 며느리로 맞아들입니다. 10년쯤 되었을 때에 두 아들마저 죽고 맙니다.
온 가족이 기근을 피해 왔건만 집안의 모든 남자가 죽고 과부가 되었으니 얼마나 기구한 삶입니까. 이를 통해 우리가 깨우칠 점은 물을 떠난 고기가 살 수 없듯이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떠나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영적으로 하나님 품인데 나오미 가정은 하나님을 떠나 이방 땅인 모압으로 갔으니 이는 세상을 바라본 것이지요. 그러니 더 큰 어려움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가세는 기울고 몹시 힘든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풍년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결심합니다. 그런데 남편도 없는 두 며느리가 마음에 걸려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권하지요. 아무 희망도 없이 과부로 살아야 할 며느리들을 생각하니 마음 아팠기 때문입니다.
이에 오르바는 울며 친정으로 돌아갔지만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습니다. 나오미가 돌아가라고 강권하자 룻은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룻 1:16~17)라고 단호히 말하지요.
3. 변함없이 선을 행하여 축복을 받은 룻
시어머니를 따라 베들레헴에 온 룻은 한 번도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처음과 동일한 마음으로 변함없이 시어머니를 섬겼지요. 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삭을 주워 정성껏 시어머니를 봉양하였고, 시어머니의 말씀에도 온전히 순종하였습니다. 선을 행하되 낙심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았고 대가를 바라지도 않았으며 마땅한 도리로 여기고 부지런히 섬겼습니다.
요즘은 부모를 모시는 문제로 형제간에 불화하거나 고부간의 갈등으로 고통받는 가정이 얼마나 많습니까? 룻처럼 하나님을 믿음으로 도리를 좇는 선을 택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룻의 효성이 이처럼 지극했기에 주변에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그 지역의 부유하고 신망을 받는 보아스도 룻에 대해 익히 알고 호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보아스는 룻에게 보리와 밀 추수를 마칠 때까지 자기 밭에서 이삭을 줍도록 배려해 주었지요. 그는 나오미 남편의 친족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자기 집안의 기업 무를 사람 중에 하나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보아스에게 부탁을 하지요. 모세의 율법에는 기업 무르기 법이 있습니다. 팔았던 토지를 원래 소유자에게 회복시키거나 자녀없이 죽은 사람의 대를 잇도록 하기 위해 그의 미망인을 죽은 사람의 친척이 취하여 대를 잇게 하는 법입니다.
보아스는 룻이 성읍 사람들이 다 아는 정숙한 여인임을 알고 있었기에 룻에게 기업 무를 사람의 책임을 행하기로 맹세했습니다. 기업 무를 사람으로 보아스보다 더 가까운 친족이 있었지만 그는 사랑이 없으므로 거절하였고, 그 다음 차례인 보아스는 사랑이 있으므로 허락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보아스는 룻을 아내로 삼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가 바로 다윗의 조부 오벳입니다. 결국 룻은 다윗 왕의 증조모가 되어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영광을 누렸습니다.
4.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룻의 마음
홀로 된 시어머니를 모시고 베들레헴에 온 이방 여인 룻이 어떻게 이러한 축복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바로 그녀의 마음 중심이 하나님 앞에 합하였기 때문입니다. 룻은 자기 앞날에 아무런 희망이 없는데도 인내하며 선을 좇아 나갔습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으며, 투기라든가 자랑하는 마음, 교만하거나 무례한 모습은 상상할 수도 없었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성내거나 악한 것을 생각지 않았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견뎠습니다. 룻은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중심을 보시고 축복의 길로 인도하신 것입니다.
룻기 말씀을 통해 깨달을 점은 수많은 여인 중에서 룻에 대한 기록이 성경 66권 중 한 권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룻의 마음을 본받아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원하십니다. 룻은 하나님이 선택한 이스라엘 백성이 아닌데도 나오미의 집안에 시집온 후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자기의 백성으로 삼았습니다.
우리도 룻처럼 정한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한 번 하나님을 믿었으면 변함이 없어야 하지요. 룻은 효성이 지극하며 사람의 도리를 다하여 홀로 된 시어머니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자유와 젊음 등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시어머니를 붙좇아 끝까지 봉양하였으니 참으로 아름답고 정한 마음이지요.
오늘날 이러한 마음을 지닌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자기 생각이나 마음에 맞지 않아도 함께하려 하지 않습니다. 하물며 룻처럼 절망적인 상황이 되면 누가 그 길을 가려 하겠습니까. 룻은 시어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공경했기에 그 길이 고생임을 알면서도 마땅한 도리로 여기며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행복이나 불행은 환경이나 조건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선한 마음에 달려 있지요. 룻이 대가를 바라고 선을 행한 것은 아니었지만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갚아 주신 것처럼, 우리도 선을 행하되 낙심치 않으면 반드시 축복을 받습니다.
중심이 선한 사람은 선한 일을 할 때 몇 번 하다가 그치지 않습니다. 상대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며 사람으로서 바른 도리를 좇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변함없이 선을 행하지요. 그러므로 선을 행하되 낙심치 말고 끝까지 믿음으로 행하여 간구와 기도에 응답받으며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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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가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했을 때 그의 변함없는 사랑을 어떻게 고백했나요? (룻 1: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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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 ) 안에 알맞은 이름을 써 넣으세요. (룻 4:18~22)
베레스 → 헤스론 → 람 → 암미나답 → 나손 → 살몬 → ( ) → 오벳 → 이새 → (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73~18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베들레헴’
‘떡집’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예루살렘 남쪽에 위치한 예수님의 탄생지다.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라고 예언했다(미 5:2). 그 예언은 메시아가 그곳에서 탄생하심으로 성취되었다.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이며,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 부은 곳이기도 하다.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자 모압 땅으로 이주했다가 룻과 함께 다시 돌아왔다.
2014-03-28
제13과믿음의 행함
수 3:7~13
읽을말씀 : 수 3:7~13 | 외울말씀 : 막 9:23 ㅣ 참고 말씀:히 11:1
교육목표 :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깨뜨림으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늘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주님을 믿으면 이 세상의 어떤 권세나 명예, 부로도 얻을 수 없는 구원과 천국, 영생복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이 있으면 전지전능한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여 응답받을 수 있으니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막 9:23). 따라서 믿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응답의 열쇠로 신앙생활은 물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믿음
믿음은 크게 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육적인 믿음은 눈으로 보아 확인이 되고 자신의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하기 때문에 믿는 믿음입니다. 가령 나무로 책상을 만드는 것을 이미 보아서 아는 사람은 누가 나무로 책상을 만들었다고 하면 의심 없이 믿습니다. 이것은 유에서 유의 창조, 즉 있는 것에서 무엇인가 만들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반면에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는 것을 영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육적인 믿음과 반대되는 영적인 믿음은 무에서 유의 창조, 즉 없는 것에서 무엇인가 만들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천지 만물이 하나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믿으며,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이지요.
영적인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응답과 축복을 받으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믿음은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가질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3절을 보면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셨습니다. 즉 각 사람의 그릇에 따라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나눠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영적인 믿음을 주실까요?
바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미움, 다툼, 시기, 간음 등 비진리의 마음을 버리고 원수라도 사랑하며 계명을 준행하는 만큼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만일 스스로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응답받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주여, 대통령이 되게 해 주세요. 믿습니다.” 할 것이고, 미운 사람이 있다면 “저 사람을 징계하여 주옵소서.” 하면 될 것입니다. 그 기도대로 응답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영적인 믿음을 주시지 않고 진리로 변화된 만큼 마음으로부터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응답받으려면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이란 비진리의 모든 생각을 말하며, 이 생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믿어지지 않고 자꾸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쌓은 지식, 경험, 생각을 옳다 여기지만 그중에는 진리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이렇게 잘못 입력된 지식이 육신의 생각을 불러일으켜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육신의 생각이 많은 사람은 자기 지혜를 동원하므로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은 못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입력된 지식 가운데 잘못된 것은 빼내어 영적인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행함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무렵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해마다 보리를 거두는 그맘때면 요단강이 범람하여 언덕에 넘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말씀하십니다(수 3:8).
여호수아는 하나님 말씀을 믿고 백성에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하지요. 사람의 생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진했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멘 열두 제사장을 앞세운 행렬이 드디어 요단 강가에 다다랐습니다. 선두에 선 제사장들이 거세게 흘러내리는 강물에 발을 딛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던 강물이 멈추더니 멀리 있는 아담읍 변방에 물이 쌓이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 흐르던 강물이 완전히 끊어졌습니다(수 3:15~17).
이 외에도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고, 모세가 나뭇가지를 던져 넣으니 쓴 물이 단물이 되며, 만나가 하늘에서 내리고, 반석을 치니 물이 나오는 일 등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행했을 때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3.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1)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모세가 마음속으로 ‘지팡이 든 손을 내민다고 해서 과연 홍해가 갈라질까? 안 되면 어떻게 하나?’ 의심했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겠습니까? 의심치 않고 온전히 믿었기에 믿음대로 역사된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가 영적인 믿음을 갖기까지에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라 명하셨을 때(출 3~4장) 모세는 백성이 자기를 믿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는 증거로 표적을 보여 주십니다. 모세가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던졌더니 지팡이가 뱀이 되고 손을 내밀어 꼬리를 잡았더니 다시 지팡이가 되었지요. 또 손을 품에 넣었다가 빼니 문둥병이 생겼고 다시 품에 넣으니 정상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모세가 순종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열 재앙 등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나타내 주시니 그의 믿음이 온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믿음의 행군을 할 수 있기까지는 금식하고 기도하며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받아 믿음으로 행군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체험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체험이 없는 사람은 체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하나님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이나 문제가 있는 사람은 이를 해결받기 위해 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필요한 것들을 기도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는 것, 믿음으로 죄 사함 받는 것,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재능을 계발하는 것, 순종하는 것 등을 구해야 하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3) 꿈과 목표를 응답받기 위한 믿음의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꿈과 목표를 세웠다면 그것을 응답받기 위해 믿음의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가령,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손 놓고 마냥 기도와 금식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영혼을 갈무리하는 이들이 심방하고 전도하는 등 구체적인 행함이 따라야 하지요.
물질의 축복을 받아 선교하고 구제하기 원한다면 믿음으로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약속하셨습니다(말 3:10).
따라서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만히 때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기도와 금식은 물론, 적극적인 믿음의 행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고 행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 하신 대로 바라던 것이 실제로 나타납니다. 그러니 현실적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응답의 열매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심으로 항상 믿음의 행군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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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육적인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 )
2.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 )
3.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
4.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 말씀을 듣고 ( )해야 한다.
둘째, 믿음의 체험을 얻기 위해 ( )해야 한다.
셋째, 꿈과 목표를 응답받기 위한 믿음의 ( )이 있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59~16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여호수아’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이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군대 지휘관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고 모세의 수종자로 함께 시내산에 올라갔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 중 한 사람으로 악평하는 10명의 장탐꾼과는 달리 갈렙과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임을 확신에 찬 믿음의 고백을 하였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다. 가나안 땅을 12지파에게 분배하였고, 110세에 죽어 자신이 기업으로 받은 땅 딤낫세라에 장사되었다(수 24:29~30).
교육목표 :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깨뜨림으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늘 체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주님을 믿으면 이 세상의 어떤 권세나 명예, 부로도 얻을 수 없는 구원과 천국, 영생복락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믿음이 있으면 전지전능한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여 응답받을 수 있으니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막 9:23). 따라서 믿음은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응답의 열쇠로 신앙생활은 물론 성공적인 삶을 영위하는 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믿음
믿음은 크게 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육적인 믿음은 눈으로 보아 확인이 되고 자신의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하기 때문에 믿는 믿음입니다. 가령 나무로 책상을 만드는 것을 이미 보아서 아는 사람은 누가 나무로 책상을 만들었다고 하면 의심 없이 믿습니다. 이것은 유에서 유의 창조, 즉 있는 것에서 무엇인가 만들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반면에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는 것을 영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육적인 믿음과 반대되는 영적인 믿음은 무에서 유의 창조, 즉 없는 것에서 무엇인가 만들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천지 만물이 하나님 말씀으로 창조된 것을 믿으며,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믿는 믿음이지요.
영적인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고 응답과 축복을 받으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믿음은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가질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3절을 보면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셨습니다. 즉 각 사람의 그릇에 따라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나눠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 영적인 믿음을 주실까요?
바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미움, 다툼, 시기, 간음 등 비진리의 마음을 버리고 원수라도 사랑하며 계명을 준행하는 만큼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만일 스스로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응답받지 못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대통령이 되고 싶다면 “주여, 대통령이 되게 해 주세요. 믿습니다.” 할 것이고, 미운 사람이 있다면 “저 사람을 징계하여 주옵소서.” 하면 될 것입니다. 그 기도대로 응답된다면 이 세상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나 영적인 믿음을 주시지 않고 진리로 변화된 만큼 마음으로부터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응답받으려면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이란 비진리의 모든 생각을 말하며, 이 생각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이 믿어지지 않고 자꾸 의심이 생기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쌓은 지식, 경험, 생각을 옳다 여기지만 그중에는 진리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이렇게 잘못 입력된 지식이 육신의 생각을 불러일으켜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육신의 생각이 많은 사람은 자기 지혜를 동원하므로 자신의 능력 밖의 일은 못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입력된 지식 가운데 잘못된 것은 빼내어 영적인 믿음을 가져야 하나님의 능력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행함으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40년의 광야 생활을 마치고 마침내 여호수아를 따라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무렵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요단강을 건너야 했습니다.
해마다 보리를 거두는 그맘때면 요단강이 범람하여 언덕에 넘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너는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 물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 하라” 말씀하십니다(수 3:8).
여호수아는 하나님 말씀을 믿고 백성에게 말합니다. “여호와의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바닥이 요단 물을 밟고 멈추면 요단 물 곧 위에서부터 흘러 내리던 물이 끊어지고 쌓여 서리라” 하지요. 사람의 생각으로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그대로 행진했습니다.
여호와의 궤를 멘 열두 제사장을 앞세운 행렬이 드디어 요단 강가에 다다랐습니다. 선두에 선 제사장들이 거세게 흘러내리는 강물에 발을 딛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던 강물이 멈추더니 멀리 있는 아담읍 변방에 물이 쌓이고, 이스라엘 백성 앞에 흐르던 강물이 완전히 끊어졌습니다(수 3:15~17).
이 외에도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너고, 모세가 나뭇가지를 던져 넣으니 쓴 물이 단물이 되며, 만나가 하늘에서 내리고, 반석을 치니 물이 나오는 일 등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하지만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행했을 때에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3.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1)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만일 모세가 마음속으로 ‘지팡이 든 손을 내민다고 해서 과연 홍해가 갈라질까? 안 되면 어떻게 하나?’ 의심했다면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졌겠습니까? 의심치 않고 온전히 믿었기에 믿음대로 역사된 것입니다. 이렇게 모세가 영적인 믿음을 갖기까지에는 과정이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라 명하셨을 때(출 3~4장) 모세는 백성이 자기를 믿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믿을 수 있는 증거로 표적을 보여 주십니다. 모세가 말씀에 순종하여 지팡이를 던졌더니 지팡이가 뱀이 되고 손을 내밀어 꼬리를 잡았더니 다시 지팡이가 되었지요. 또 손을 품에 넣었다가 빼니 문둥병이 생겼고 다시 품에 넣으니 정상이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모세가 순종할 때마다 하나님께서 열 재앙 등 믿을 수 있는 증거를 나타내 주시니 그의 믿음이 온전해질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믿음의 행군을 할 수 있기까지는 금식하고 기도하며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해 나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받아 믿음으로 행군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체험을 얻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는다면서도 체험이 없는 사람은 체험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더 뜨겁게 사랑할 수 있도록 여러 방면으로 하나님에 대해 더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질병이나 문제가 있는 사람은 이를 해결받기 위해 구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필요한 것들을 기도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을 만나는 것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갖는 것, 믿음으로 죄 사함 받는 것,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재능을 계발하는 것, 순종하는 것 등을 구해야 하지요.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십니다.
3) 꿈과 목표를 응답받기 위한 믿음의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꿈과 목표를 세웠다면 그것을 응답받기 위해 믿음의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가령, 교회가 부흥하기 위해서는 손 놓고 마냥 기도와 금식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적으로 영혼을 갈무리하는 이들이 심방하고 전도하는 등 구체적인 행함이 따라야 하지요.
물질의 축복을 받아 선교하고 구제하기 원한다면 믿음으로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약속하셨습니다(말 3:10).
따라서 자신이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는 가만히 때만 기다릴 것이 아니라, 기도와 금식은 물론, 적극적인 믿음의 행함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바라보고 행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히 11:1)라 하신 대로 바라던 것이 실제로 나타납니다. 그러니 현실적으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응답의 열매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심으로 항상 믿음의 행군을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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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육적인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 )
2.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 )
3.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
4.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 말씀을 듣고 ( )해야 한다.
둘째, 믿음의 체험을 얻기 위해 ( )해야 한다.
셋째, 꿈과 목표를 응답받기 위한 믿음의 ( )이 있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59~16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여호수아’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이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군대 지휘관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고 모세의 수종자로 함께 시내산에 올라갔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 중 한 사람으로 악평하는 10명의 장탐꾼과는 달리 갈렙과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임을 확신에 찬 믿음의 고백을 하였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다. 가나안 땅을 12지파에게 분배하였고, 110세에 죽어 자신이 기업으로 받은 땅 딤낫세라에 장사되었다(수 24:29~30).
2014-03-21
제12과감정을 제어하라
롬 12:19~21
읽을말씀 : 롬 12:19~21 | 외울말씀 : 롬 12:21 ㅣ 참고 말씀:시 37:7~9
교육목표 : 직접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며 감정을 제어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게 한다.
사람들은 감정 때문에 중요한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여기서 감정이란 사랑이나 기쁨과 같은 좋은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망하거나 성내는 등 좋지 않은 마음입니다.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므로 서로 상처를 주고, 원수를 갚기 위해 악을 행하기도 하지요. 사소한 감정 때문에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길을 내주고 하나님과 죄의 담을 만듭니다. 이처럼 감정은 백해무익하므로 에베소서 4장 26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말씀합니다.
1. 직접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하는 이유
사람들은 부모나 스승 또는 친구의 원수를 갚는 것을 의로운 행동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직접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로마서 12장 19절에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했지요.
또한 하나님이 심판하는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으니(요 5:27) 오직 우리 주님 외에는 어떤 사람에게도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재판장이 되어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수군거리지 말라, 비방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에는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하셨지요.
그러니 주님을 믿는 사람은 서로 섬겨야 합니다. 섬기는 것은 나보다 상대를 더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되면 누구를 얕잡아 볼 수 없고 판단 정죄하거나 수군거리는 악을 행할 수 없습니다. 성도 중에는 자기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정죄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1절을 보면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말씀합니다. 율법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우리가 재판장이 되어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교만이요, 큰 죄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심판해서도, 원수를 갚아서도 안 됩니다.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갚아 주심을 믿기에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활 속에서 감정 상할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살다 보면 개인적으로나 형제간에, 혹은 가족 간에, 동료나 이웃 간에 감정 상할 일들이 수없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39~42)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말씀하셨지요. 이러한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면 감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의지하여 서로 이해하며 포용하려고 노력한다면 다툼, 원망, 불평, 불만, 탄식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상대의 마음을 녹인다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룰 수 있지요.
2. 감정을 제어하지 않으면
사람이 살다 보면 큰 문제는 물론 사소한 일로도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만일 감정이 일어날 때 제어하지 않고 감정대로 일을 처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무엇보다 자신이 힘들며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안겨줍니다.
성경에는 시기라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여 인생을 망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울 왕입니다. 그는 신하 다윗을 시기했습니다. 매번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왕인 사울보다 더 칭송하고 사랑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찾아보기 힘들 만큼 용모가 준수했고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그러한 자신 외에 감히 누가 칭송을 받는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고, 자칫 왕위를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다윗이 백성의 힘을 등에 업는다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질투라는 감정은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낳았고 평생 불안에 시달리게 했습니다. 심지어 다윗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합니다. 결국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많은 군사를 이끌고 다윗의 뒤를 쫓았던 사울에게 과연 평안이 있었겠습니까? 나라는 또한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한 사람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므로 자신과 가족, 나라 전체가 고통받았던 것입니다.
3. 감정을 제어하고 하나님께 맡겨야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선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십니다. 구약 성경 에스더서에 나오는 악한 하만에 대한 심판이 그 예입니다. 바사 제국의 신하 하만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몹시 노하여 감정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는 물론 그의 민족까지 말살하려고 흉계를 꾸며 왕의 조서까지 받아냅니다. 이를 안 모르드개와 사촌 누이 에스더는 금식하며 이 일을 하나님께 의뢰하였습니다. 유다인으로서 바사국의 왕비가 된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가 탄원하지요. 이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직접 심판하셨습니다. 악한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세워 놓은 나무에 오히려 자신이 달려 죽은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헤롯 왕이 교회를 핍박하면서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때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겼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쇠사슬에 매인 베드로를 풀어 밖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을 핍박하고 악을 행한 헤롯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12장 21~23절에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신 것입니다.
4. 선으로 악을 이겨야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조금도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역사를 보아도 감정 싸움으로 많은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지요. 부부 간에도 사소한 일로 감정이 생기면 다툼으로 이어지고 심하면 별거나 이혼까지 갑니다. 형제 간에도 감정 대립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원수 맺는 일도 생기지요. 그러나 모든 일에 감정으로 대하지 않고 오직 선으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상대가 감정이 나서 악을 행해도 선으로 대한다면 이런 사람은 누구와도 화목할 수 있습니다. 화목하니 뼈가 상하는 고통을 받지도 않습니다. 상대가 비방하고 악으로 대해도 오히려 사랑으로 이해하고 기도해 주므로 고통받을 이유가 없지요.
그러니 가족이나 이웃 또는 일터 등에서 감정으로 부딪히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감정을 제어하고 다만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범사에 형통한 복을 주시고 사랑과 인정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선한 중심을 찾으십니다. 혹여 누가 기분 나쁘게 하면 그 자리에서 얼굴을 붉히거나 감정이 일어나지는 않습니까? 그러므로 감정으로 원수 맺은 것은 없는지, 내 눈에는 들보가 있으면서 재판장이 되어 남을 판단하거나 형제의 티를 빼려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시편 37편 7~9절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했습니다.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길 뿐만 아니라, 감정을 제어하고 오직 사랑의 마음으로 선을 행하여 범사에 복된 길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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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상대와 부딪히거나 감정 상할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마태복음 5:39~44을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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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들은 원수 갚는 것이 의롭다고 여기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직접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롬 12:19 \; 요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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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49~15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들보’란?
건물을 지을 때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가로질러서 얹는 지지대로서, 오늘날 건설 현장에서 들보는 보통 목재, 쇠,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본다’(마 7:5)는 말은 자신의 커다란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작은 허물이나 잘못만을 책잡고 나무라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교육목표 : 직접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께 맡기며 감정을 제어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게 한다.
사람들은 감정 때문에 중요한 일을 그르치기도 합니다. 여기서 감정이란 사랑이나 기쁨과 같은 좋은 감정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망하거나 성내는 등 좋지 않은 마음입니다.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므로 서로 상처를 주고, 원수를 갚기 위해 악을 행하기도 하지요. 사소한 감정 때문에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길을 내주고 하나님과 죄의 담을 만듭니다. 이처럼 감정은 백해무익하므로 에베소서 4장 26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말씀합니다.
1. 직접 원수를 갚지 말아야 하는 이유
사람들은 부모나 스승 또는 친구의 원수를 갚는 것을 의로운 행동으로 여겨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직접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로마서 12장 19절에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했지요.
또한 하나님이 심판하는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에게 주셨으니(요 5:27) 오직 우리 주님 외에는 어떤 사람에게도 심판할 자격이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재판장이 되어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쉽게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수군거리지 말라, 비방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에는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라’ 하셨지요.
그러니 주님을 믿는 사람은 서로 섬겨야 합니다. 섬기는 것은 나보다 상대를 더 낫게 여기는 마음입니다. 그러한 마음이 되면 누구를 얕잡아 볼 수 없고 판단 정죄하거나 수군거리는 악을 행할 수 없습니다. 성도 중에는 자기만 옳고 상대는 그르다고 정죄하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야고보서 4장 11절을 보면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말씀합니다. 율법을 주신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우리가 재판장이 되어 형제를 비방하고 판단하는 것은 교만이요, 큰 죄입니다. 그러니 누구를 심판해서도, 원수를 갚아서도 안 됩니다. 심판 날에 하나님께서 갚아 주심을 믿기에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생활 속에서 감정 상할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가 살다 보면 개인적으로나 형제간에, 혹은 가족 간에, 동료나 이웃 간에 감정 상할 일들이 수없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39~42) 말씀하셨습니다.
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말씀하셨지요. 이러한 마음으로 상대를 이해하고 포용하면 감정을 제어할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의지하여 서로 이해하며 포용하려고 노력한다면 다툼, 원망, 불평, 불만, 탄식이 나오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상대의 마음을 녹인다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룰 수 있지요.
2. 감정을 제어하지 않으면
사람이 살다 보면 큰 문제는 물론 사소한 일로도 감정이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만일 감정이 일어날 때 제어하지 않고 감정대로 일을 처리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무엇보다 자신이 힘들며 많은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안겨줍니다.
성경에는 시기라는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여 인생을 망친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사울 왕입니다. 그는 신하 다윗을 시기했습니다. 매번 전쟁을 승리로 이끈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왕인 사울보다 더 칭송하고 사랑했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에서 찾아보기 힘들 만큼 용모가 준수했고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그러한 자신 외에 감히 누가 칭송을 받는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고, 자칫 왕위를 빼앗기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생겼습니다. 다윗이 백성의 힘을 등에 업는다면 못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요.
질투라는 감정은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낳았고 평생 불안에 시달리게 했습니다. 심지어 다윗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신의 아들 요나단에게 화를 내며 단창을 던져 죽이려 합니다. 결국 감정을 제어하지 못한 사울은 다윗을 죽이기 위해 갖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많은 군사를 이끌고 다윗의 뒤를 쫓았던 사울에게 과연 평안이 있었겠습니까? 나라는 또한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한 사람이 감정을 제어하지 못하므로 자신과 가족, 나라 전체가 고통받았던 것입니다.
3. 감정을 제어하고 하나님께 맡겨야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선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십니다. 구약 성경 에스더서에 나오는 악한 하만에 대한 심판이 그 예입니다. 바사 제국의 신하 하만은 유다 사람 모르드개가 자기에게 절하지 않는 것을 보고 몹시 노하여 감정을 품었습니다. 그래서 모르드개는 물론 그의 민족까지 말살하려고 흉계를 꾸며 왕의 조서까지 받아냅니다. 이를 안 모르드개와 사촌 누이 에스더는 금식하며 이 일을 하나님께 의뢰하였습니다. 유다인으로서 바사국의 왕비가 된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가 탄원하지요. 이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여 직접 심판하셨습니다. 악한 하만이 모르드개를 달려고 세워 놓은 나무에 오히려 자신이 달려 죽은 것입니다.
신약 시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헤롯 왕이 교회를 핍박하면서 사도 야고보를 칼로 죽이고 베드로를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때 교회는 베드로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께 맡겼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쇠사슬에 매인 베드로를 풀어 밖으로 이끄셨습니다. 그런데 사도들을 핍박하고 악을 행한 헤롯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12장 21~23절에 “헤롯이 날을 택하여 왕복을 입고 위에 앉아 백성을 효유한대 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심판하신 것입니다.
4. 선으로 악을 이겨야
감정으로 일을 처리하는 것은 조금도 유익이 되지 않습니다. 역사를 보아도 감정 싸움으로 많은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지요. 부부 간에도 사소한 일로 감정이 생기면 다툼으로 이어지고 심하면 별거나 이혼까지 갑니다. 형제 간에도 감정 대립으로 오해를 불러일으키고 심지어 원수 맺는 일도 생기지요. 그러나 모든 일에 감정으로 대하지 않고 오직 선으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상대가 감정이 나서 악을 행해도 선으로 대한다면 이런 사람은 누구와도 화목할 수 있습니다. 화목하니 뼈가 상하는 고통을 받지도 않습니다. 상대가 비방하고 악으로 대해도 오히려 사랑으로 이해하고 기도해 주므로 고통받을 이유가 없지요.
그러니 가족이나 이웃 또는 일터 등에서 감정으로 부딪히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감정을 제어하고 다만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범사에 형통한 복을 주시고 사랑과 인정을 받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선한 중심을 찾으십니다. 혹여 누가 기분 나쁘게 하면 그 자리에서 얼굴을 붉히거나 감정이 일어나지는 않습니까? 그러므로 감정으로 원수 맺은 것은 없는지, 내 눈에는 들보가 있으면서 재판장이 되어 남을 판단하거나 형제의 티를 빼려 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시편 37편 7~9절에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여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 대저 행악하는 자는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기대하는 자는 땅을 차지하리로다” 했습니다.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공의롭게 심판하시는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길 뿐만 아니라, 감정을 제어하고 오직 사랑의 마음으로 선을 행하여 범사에 복된 길로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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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상대와 부딪히거나 감정 상할 일이 생겼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마태복음 5:39~44을 써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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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람들은 원수 갚는 것이 의롭다고 여기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원수를 직접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롬 12:19 \; 요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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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49~15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들보’란?
건물을 지을 때 칸과 칸 사이의 두 기둥 위를 가로질러서 얹는 지지대로서, 오늘날 건설 현장에서 들보는 보통 목재, 쇠, 철근 콘크리트로 만든다. ‘자기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본다’(마 7:5)는 말은 자신의 커다란 잘못은 보지 못하고 남의 작은 허물이나 잘못만을 책잡고 나무라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2014-03-14
제11과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마 20:20~23
읽을말씀 : 마 20:20~23 | 외울말씀 : 막 11:24 ㅣ 참고 말씀:약 1:6~8
교육목표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구하여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자녀들의 소원에 응답하시며 자녀들과 참된 사랑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자녀에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시며 그 소원을 들어주기를 기뻐하시지요.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려운 일이 닥쳐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응답
마태복음 20장 20~21절을 보면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느뇨?”라고 물으시지요. 그러자 여인은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간청합니다. 그만한 권한을 가진 분이라고 믿었기에 높은 자리를 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들은 예수님의 어떠한 면을 보았기에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침과 진실한 행하심을 보았고 또한 예수님이 베푸신 기사와 표적들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에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으며(요 2장),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고(요 9장), 간질을 하며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막 9장). 또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 속에 장사된 나사로를 살리시기도 하셨습니다(요 11장).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기도 하시고 물 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마 14장).
그렇다면 예수님이 기사와 표적을 행하신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바로 모든 사람에게 영생, 곧 영원한 나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누누이 천국에 대해 듣고 배웠으며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의 권세가 천국에서 얼마나 큰지도 알았고 예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받을 줄도 믿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나아가 두 아들이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도록 요청하면서 약속을 받고자 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답변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앉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아버지 뜻대로 행하여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무엇을 구하든지 믿음으로 구해야 응답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하나님 앞에 나와 의지합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갈급하여 나오는가 하면 각종 질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치료받고자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도를 받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므로 주님께서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시면 각자 구하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증거를 보여 주기를 구하는 사람도 있고 “질병을 치료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고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증거를 구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사기 6장을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족속에게 약탈을 당하고 고통을 받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을 주십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이 무서워 몰래 밀 타작을 하던 자였는데 자신이 그러한 사명을 맡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워 하나님께 두 가지 표징을 구합니다.
먼저 “양털 한 뭉치를 땅에다 두겠으니 밤새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고 주위 땅은 말라 있다면 믿을 수 있겠나이다” 기도하였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과연 양털에만 이슬이 내렸습니다. 기드온은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이번에는 반대로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과연 양털만 말라 있고 주변 땅은 다 이슬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하는 대로 응답하시며 참 신이심을 증거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각종 문제로 하나님을 찾는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응답으로 역사하십니다. 출애굽하여 홍해 앞에 선 모세는 완전무장한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돌격해 오자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지팡이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더니 홍해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분이므로 그의 자녀들이 믿음을 내보이고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역사해 주십니다.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온 경우로는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침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온 백부장(마 8장),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생하다가 예수님을 찾아 나온 여인(마 9장), 자기 딸에게 들린 흉악한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온 수로보니게 여인(막 7장)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어 그 즉시 응답을 받았는데 백부장은 믿음의 고백만으로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하인을 사랑하는 백부장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시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하시자 백부장은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라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 8:8~9) 하지요.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여 그 앞에 순종하려는 믿음을 지닌 백부장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하인이 그 시로 나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면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을 받습니다.
3. 무엇을 구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두 마음을 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내보여야 하며, 어떠한 일을 만난다 해도 오직 하나님 뜻대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은 어떤 시험 환난이 오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부인하고 탄식하면서, 끝까지 믿음을 내보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가 기도하고 금식해도 하나님께서 응답을 안 해 주시니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지 응답해 주시면 내가 왜 원망하고 탄식하며 불평하겠느냐?”고 변명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한 출애굽 1세대들은 믿음을 내보이지 못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적어 보이는데도 응답을 받습니다. 그것은 응답해 주어도 그 마음이 변치 않을 중심인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을 배신할 줄 알면서도 응답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훗날에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내가 너에게 이렇게 응답을 주었지만 너는 이러한 응답을 보고도 나를 부인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 하며 공의의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 따라 응답을 주는 방법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번에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씩 주십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설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단번에 응답해 주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도록 변화된 만큼 조금씩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자라가는 만큼 믿음대로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십니다. 단지 응답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의 중심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참된 믿음을 가지고 행함을 나타내 보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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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믿음을 내보여 하나님 역사를 나타낸 성경 인물의 이름을 ( ) 안에 쓰세요.
1. 자신이 개 취급을 당해도 끝까지 겸비한 마음과 믿음을 내보임으로 마침내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이 치료받았다.( )
2. 3백 명 군사로 메뚜기의 중다함과 같고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 미디안과 아말렉 연합군과 싸워 승리한 사사이다.( )
3. 예수님께 다만 말씀으로 명하기만 해도 하인이 낫겠다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하여 중풍에 걸린 하인이 치료를 받았다.(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33~14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기드온’
미디안은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을 7년 동안 압제했던 민족이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사람들이 무서워서 몰래 밀 타작을 하고 있던 기드온을 불러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하신다. 이에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부르셨다는 표징을 두 번에 걸쳐 받고 확신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그의 3백 명 군사로 하여금 메뚜기의 중다함과 같고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의 연합군을 쳐 승리케 하셨다.
교육목표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구하여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자녀들의 소원에 응답하시며 자녀들과 참된 사랑을 나누기 원하십니다. 자녀에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시며 그 소원을 들어주기를 기뻐하시지요.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면 응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려운 일이 닥쳐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응답
마태복음 20장 20~21절을 보면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가 두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무엇을 원하느뇨?”라고 물으시지요. 그러자 여인은 “나의 두 아들을 주의 나라에서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주의 좌편에 앉게 명하소서.”라고 간청합니다. 그만한 권한을 가진 분이라고 믿었기에 높은 자리를 구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들은 예수님의 어떠한 면을 보았기에 이러한 요구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놀라운 가르침과 진실한 행하심을 보았고 또한 예수님이 베푸신 기사와 표적들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기에 믿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은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으며(요 2장), 태어날 때부터 소경된 자의 눈을 뜨게 하셨고(요 9장), 간질을 하며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쳐 주셨습니다(막 9장). 또한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무덤 속에 장사된 나사로를 살리시기도 하셨습니다(요 11장).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풀기도 하시고 물 위를 걷기도 하셨습니다(마 14장).
그렇다면 예수님이 기사와 표적을 행하신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바로 모든 사람에게 영생, 곧 영원한 나라 천국으로 인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누누이 천국에 대해 듣고 배웠으며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님의 권세가 천국에서 얼마나 큰지도 알았고 예수님께 무엇이든지 구하면 응답받을 줄도 믿었습니다.
그래서 요한과 야고보의 어머니는 예수님께 나아가 두 아들이 천국에서 큰 자가 될 수 있도록 요청하면서 약속을 받고자 원했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답변하십니다. 즉 예수님께서 어떤 사람을 앉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아버지 뜻대로 행하여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앉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2. 무엇을 구하든지 믿음으로 구해야 응답
오늘날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습니다. 어떤 사람은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하나님 앞에 나와 의지합니다.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갈급하여 나오는가 하면 각종 질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치료받고자 나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도를 받고 단순한 호기심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므로 주님께서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물으시면 각자 구하는 것이 다릅니다.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증거를 보여 주기를 구하는 사람도 있고 “질병을 치료하여 주시기 원합니다.” 고백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참 신이라는 증거를 구한 사람이 있습니다. 사사기 6장을 보면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이 미디안 족속에게 약탈을 당하고 고통을 받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을 구원할 사명을 주십니다.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이 무서워 몰래 밀 타작을 하던 자였는데 자신이 그러한 사명을 맡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심스러워 하나님께 두 가지 표징을 구합니다.
먼저 “양털 한 뭉치를 땅에다 두겠으니 밤새 이슬이 양털에만 내리고 주위 땅은 말라 있다면 믿을 수 있겠나이다” 기도하였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과연 양털에만 이슬이 내렸습니다. 기드온은 보다 확실히 하기 위해 이번에는 반대로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과연 양털만 말라 있고 주변 땅은 다 이슬에 젖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구하는 대로 응답하시며 참 신이심을 증거하십니다.
사람으로서는 어찌할 수 없는 각종 문제로 하나님을 찾는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응답으로 역사하십니다. 출애굽하여 홍해 앞에 선 모세는 완전무장한 애굽 군대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돌격해 오자 여호와께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지팡이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었더니 홍해가 갈라지고 마른 땅이 되어 이스라엘 백성이 무사히 건널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한 분이므로 그의 자녀들이 믿음을 내보이고 기도하면 무엇이든지 역사해 주십니다.
질병을 치료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온 경우로는 자기 하인의 중풍병을 고침받기 위해 예수님 앞에 나온 백부장(마 8장), 열두 해 동안이나 혈루증으로 고생하다가 예수님을 찾아 나온 여인(마 9장), 자기 딸에게 들린 흉악한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예수님을 찾아온 수로보니게 여인(막 7장)을 들 수 있습니다. 이들은 믿음을 행함으로 나타내어 그 즉시 응답을 받았는데 백부장은 믿음의 고백만으로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하인을 사랑하는 백부장의 아름다운 마음을 보시고 “내가 가서 고쳐 주리라” 하시자 백부장은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라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 8:8~9) 하지요. 예수님을 온전히 신뢰하여 그 앞에 순종하려는 믿음을 지닌 백부장의 고백을 들으신 예수님은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하인이 그 시로 나았습니다. 이처럼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오면 무엇을 구하든지 응답을 받습니다.
3. 무엇을 구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나왔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장 큰 이유는 온전히 믿지 못하고 의심하며 두 마음을 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의심하지 않는 믿음을 내보여야 하며, 어떠한 일을 만난다 해도 오직 하나님 뜻대로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사람은 어떤 시험 환난이 오면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부인하고 탄식하면서, 끝까지 믿음을 내보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내가 기도하고 금식해도 하나님께서 응답을 안 해 주시니까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지 응답해 주시면 내가 왜 원망하고 탄식하며 불평하겠느냐?”고 변명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그러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한 출애굽 1세대들은 믿음을 내보이지 못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결국 광야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이 적어 보이는데도 응답을 받습니다. 그것은 응답해 주어도 그 마음이 변치 않을 중심인 것을 하나님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을 배신할 줄 알면서도 응답을 주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훗날에 그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변명할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내가 너에게 이렇게 응답을 주었지만 너는 이러한 응답을 보고도 나를 부인하는 사람이 되었으니 어찌 구원을 얻을 수 있겠느냐?” 하며 공의의 심판을 내리기 위해서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 따라 응답을 주는 방법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단번에 주고 어떤 사람에게는 조금씩 주십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설 수 있도록 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단번에 응답해 주면 그 사람의 마음이 변질될 수도 있기 때문에 깨달을 수 있도록 변화된 만큼 조금씩 주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자라가는 만큼 믿음대로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해 줄 수 있는 전지전능한 분이십니다. 단지 응답을 받느냐, 받지 못하느냐 하는 문제는 우리의 중심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믿되 참된 믿음을 가지고 행함을 나타내 보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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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믿음을 내보여 하나님 역사를 나타낸 성경 인물의 이름을 ( ) 안에 쓰세요.
1. 자신이 개 취급을 당해도 끝까지 겸비한 마음과 믿음을 내보임으로 마침내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이 치료받았다.( )
2. 3백 명 군사로 메뚜기의 중다함과 같고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 미디안과 아말렉 연합군과 싸워 승리한 사사이다.( )
3. 예수님께 다만 말씀으로 명하기만 해도 하인이 낫겠다는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하여 중풍에 걸린 하인이 치료를 받았다.(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33~14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기드온’
미디안은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을 7년 동안 압제했던 민족이다.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사람들이 무서워서 몰래 밀 타작을 하고 있던 기드온을 불러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하신다. 이에 기드온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부르셨다는 표징을 두 번에 걸쳐 받고 확신하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과 그의 3백 명 군사로 하여금 메뚜기의 중다함과 같고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의 연합군을 쳐 승리케 하셨다.
2014-03-07
제10과심고 거두는 법칙
고후 9:6~8
읽을말씀 : 고후 9:6~8 | 외울말씀 : 고후 9:7 ㅣ 참고 말씀:갈 6:7~9
교육목표 : 마음밭을 옥토로 개간하여 심는 것마다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농부는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씨를 뿌리고 수고하며 열심히 경작합니다. 그런데 농부가 농사 짓는 법을 몰라서 어느 때 심고 어느 때 거둬들여야 하는지 모른다면 아무리 열심히 수고한다 해도 좋은 수확을 기대하기가 어렵지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심고 거두는 법칙을 잘 알아야 구하는 대로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심기 위해서는 먼저 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거친 황무지라 할지라도 열심히 땀 흘리며 개간하면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단단한 밭이면 갈아엎고 거름을 주어 부드럽게 해 주고, 돌멩이가 있으면 주워 내며, 가시떨기가 있으면 뽑아 내고 정성스럽게 가꾸면 비옥한 밭으로 바뀌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밭도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않고, ‘버리라’고 하신 것을 열심히 버려 나가면 개간이 됩니다. 나아가 ‘하라’, ‘지키라’ 하신 것들을 지키고 행하면 영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혀 가지요. 마태복음 13장에는 영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는 네 가지 밭의 비유가 나옵니다.
첫째, ‘길가밭’입니다. 길가는 사람들이 늘 밟고 지나다니기 때문에 단단하지요. 씨앗이 이 길가에 떨어지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흙 속에 묻히지도 못하기 때문에 아예 싹이 나지 않지요. 새들이 와서 그 씨앗을 먹어 버리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길가밭’은 바로 단단한 마음, 강퍅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마음이지요. 분명히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 주는데도 의심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둘째, 씨를 뿌리면 싹이 나도 돌멩이 때문에 잘 성장하지 못하는 ‘돌밭’입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 마음밭입니다. 믿음의 확신이 없기에 시험 환난이 오거나 핍박을 당하면 넘어져 버리지요. 은혜를 받았을 때는 마음이 뜨거워서 아멘 하다가도 금방 사단의 역사를 받아 의심하며 배신하기도 하는 마음입니다.
셋째, 씨를 뿌리면 싹이 나서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떨기가 기운을 막아 잘 자라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밭’입니다. 즉 재리의 유혹이나 세상의 염려에 말씀이 막혀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마음밭입니다. 이런 밭의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하기는 하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않고 육신의 생각 가운데 행합니다. 예들 들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예배를 드리지만 집안 일, 사업터 걱정, 내일 출근할 걱정 등 육의 일들에 대한 염려가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그러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축복을 온전히 받지 못합니다.
넷째, 씨를 뿌리면 싹이 잘 나며 열매를 맺되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옥토밭’입니다. 하나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마음밭입니다. 그래서 옥토밭인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그분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씨를 뿌리고 가꾼다 해도 마음밭이 옥토가 아니라면 수고한 것에 비해 수확이 좋지 못합니다. 그러니 먼저는 마음밭을 개간하는 작업, 곧 죄와 악을 벗어 버리고 성결된 깨끗한 마음을 이뤄야 하지요. 옥토 곧 선한 마음, 사랑과 덕과 온유한 마음을 이루어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 앞에 다양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밭을 개간하는 농부는 계절에 따라 그 밭에 다양한 씨앗을 뿌립니다. 콩, 팥, 무씨, 배추씨, 호박씨 등 여러 씨앗을 심지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밭을 개간하는 작업과 함께 씨를 뿌리는 것도 동시에 해야 합니다.
‘미움’을 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서 ‘사랑’의 씨를 심으면 신속히 미움을 버리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밭을 개간해 나가면 점점 옥토가 되는데, 우리가 비진리를 버린다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 상급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심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경에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이 바로 심는 작업입니다. 성경 66권에 “기뻐하라, 전도하라, 계명을 지키라, 안식을 지키라”는 말씀들을 열심히 지켜 행하는 것이 바로 다양한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릴 때 가을에 추수할 것을 믿고 뿌리듯이, 하나님 앞에 심을 때도 30배, 60배, 100배로 넘치게 축복해 주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심어야 합니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심는 것이 아니라 즐겨 심을 때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고후 9:7).
3. 주 안에서 인내와 정성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농부는 밭에 씨를 심은 다음에 물과 거름을 주고 풀을 뽑고 벌레를 잡아 주며 인내와 정성으로 잘 가꿉니다. 이러한 노력이 없으면 싹이 나서 자라다가 파리해지거나 열매를 맺기 전에 병충해를 입어 죽기도 합니다. 열매가 잘 자라기까지 땀 흘리는 수고가 있어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무럭무럭 자라나 아름답게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중심을 바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못하고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며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우쳐야 자신을 발견하고 영적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기도와 찬송을 통해 성령의 감동함과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 환난을 막을 수 없고, 원수 마귀와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항상 깨어 기도하되 하나님 말씀대로 부르짖으며 중심을 다한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성령의 감동, 감화, 교통, 충만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셋째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식물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꾸어 주어야 싱싱하게 잘 자라는 것과 같이 내 마음이 항상 기쁘고 감사가 넘쳐야 원수 마귀가 물러가고 틈타지 못합니다.
넷째는, 인내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종자마다 그 열매 맺는 기간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 앞에 심은 것도 금방 응답받아 열매를 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인내하며 가꾸다 보면 마음 안에 영적인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팔복의 열매가 맺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4.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농부가 씨를 심어 열매가 맺히면 심은 대로 거두는 것처럼 영계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되어 갑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를 하면 연약함이 떠나가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으며, 십일조와 감사예물 등 물질로 열심히 드리면 물질 축복이 임하여 마음껏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수넴에 사는 귀부인은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정성으로 대접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여인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오래도록 아이가 없던 여인에게 아들을 축복해 주셨지요.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여 병들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마음밭을 옥토로 개간하여 다양한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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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내 마음은 어떤 유형의 밭일까요? 다음 보기에서 골라 ( ) 안에 쓰세요.
보기: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옥토
1.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고, 믿음의 확신이 없기 에 시험 환난이 오거나 핍박을 당하면 넘어져 버린다.( )
2. 단단하고 강퍅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 줘도 의심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다.( )
3.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밭으로 하나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는 마음밭이다.( )
4. 재리의 유혹이나 세상의 염려로 말씀대로 온전히 행치 못하고, 육신의 생각을 좇으며 하나님을 중심에서 의뢰하지 못한다.(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25~13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 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교육목표 : 마음밭을 옥토로 개간하여 심는 것마다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농부는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씨를 뿌리고 수고하며 열심히 경작합니다. 그런데 농부가 농사 짓는 법을 몰라서 어느 때 심고 어느 때 거둬들여야 하는지 모른다면 아무리 열심히 수고한다 해도 좋은 수확을 기대하기가 어렵지요.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 심고 거두는 법칙을 잘 알아야 구하는 대로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는 신앙생활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심기 위해서는 먼저 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거친 황무지라 할지라도 열심히 땀 흘리며 개간하면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단단한 밭이면 갈아엎고 거름을 주어 부드럽게 해 주고, 돌멩이가 있으면 주워 내며, 가시떨기가 있으면 뽑아 내고 정성스럽게 가꾸면 비옥한 밭으로 바뀌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밭도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하지 않고, ‘버리라’고 하신 것을 열심히 버려 나가면 개간이 됩니다. 나아가 ‘하라’, ‘지키라’ 하신 것들을 지키고 행하면 영의 열매들이 주렁주렁 맺혀 가지요. 마태복음 13장에는 영적으로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는 네 가지 밭의 비유가 나옵니다.
첫째, ‘길가밭’입니다. 길가는 사람들이 늘 밟고 지나다니기 때문에 단단하지요. 씨앗이 이 길가에 떨어지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흙 속에 묻히지도 못하기 때문에 아예 싹이 나지 않지요. 새들이 와서 그 씨앗을 먹어 버리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길가밭’은 바로 단단한 마음, 강퍅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마음이지요. 분명히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 주는데도 의심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둘째, 씨를 뿌리면 싹이 나도 돌멩이 때문에 잘 성장하지 못하는 ‘돌밭’입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 마음밭입니다. 믿음의 확신이 없기에 시험 환난이 오거나 핍박을 당하면 넘어져 버리지요. 은혜를 받았을 때는 마음이 뜨거워서 아멘 하다가도 금방 사단의 역사를 받아 의심하며 배신하기도 하는 마음입니다.
셋째, 씨를 뿌리면 싹이 나서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떨기가 기운을 막아 잘 자라지 못하여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밭’입니다. 즉 재리의 유혹이나 세상의 염려에 말씀이 막혀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마음밭입니다. 이런 밭의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하기는 하지만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않고 육신의 생각 가운데 행합니다. 예들 들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여 예배를 드리지만 집안 일, 사업터 걱정, 내일 출근할 걱정 등 육의 일들에 대한 염려가 끊임없이 밀려옵니다. 그러니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없고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축복을 온전히 받지 못합니다.
넷째, 씨를 뿌리면 싹이 잘 나며 열매를 맺되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옥토밭’입니다. 하나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마음밭입니다. 그래서 옥토밭인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그분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씨를 뿌리고 가꾼다 해도 마음밭이 옥토가 아니라면 수고한 것에 비해 수확이 좋지 못합니다. 그러니 먼저는 마음밭을 개간하는 작업, 곧 죄와 악을 벗어 버리고 성결된 깨끗한 마음을 이뤄야 하지요. 옥토 곧 선한 마음, 사랑과 덕과 온유한 마음을 이루어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하나님 앞에 다양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밭을 개간하는 농부는 계절에 따라 그 밭에 다양한 씨앗을 뿌립니다. 콩, 팥, 무씨, 배추씨, 호박씨 등 여러 씨앗을 심지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밭을 개간하는 작업과 함께 씨를 뿌리는 것도 동시에 해야 합니다.
‘미움’을 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서 ‘사랑’의 씨를 심으면 신속히 미움을 버리고 사랑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마음밭을 개간해 나가면 점점 옥토가 되는데, 우리가 비진리를 버린다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 상급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심는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경에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이 바로 심는 작업입니다. 성경 66권에 “기뻐하라, 전도하라, 계명을 지키라, 안식을 지키라”는 말씀들을 열심히 지켜 행하는 것이 바로 다양한 씨앗을 심는 것입니다.
농부가 봄에 씨앗을 뿌릴 때 가을에 추수할 것을 믿고 뿌리듯이, 하나님 앞에 심을 때도 30배, 60배, 100배로 넘치게 축복해 주실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면서 기쁨으로 심어야 합니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심는 것이 아니라 즐겨 심을 때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고후 9:7).
3. 주 안에서 인내와 정성으로 가꾸어야 합니다
농부는 밭에 씨를 심은 다음에 물과 거름을 주고 풀을 뽑고 벌레를 잡아 주며 인내와 정성으로 잘 가꿉니다. 이러한 노력이 없으면 싹이 나서 자라다가 파리해지거나 열매를 맺기 전에 병충해를 입어 죽기도 합니다. 열매가 잘 자라기까지 땀 흘리는 수고가 있어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무럭무럭 자라나 아름답게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중심을 바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못하고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며 하나님과 교통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 말씀을 깨우쳐야 자신을 발견하고 영적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기도와 찬송을 통해 성령의 감동함과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아무리 믿음이 있는 사람일지라도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 환난을 막을 수 없고, 원수 마귀와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반면에 항상 깨어 기도하되 하나님 말씀대로 부르짖으며 중심을 다한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성령의 감동, 감화, 교통, 충만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셋째는,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식물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꾸어 주어야 싱싱하게 잘 자라는 것과 같이 내 마음이 항상 기쁘고 감사가 넘쳐야 원수 마귀가 물러가고 틈타지 못합니다.
넷째는, 인내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종자마다 그 열매 맺는 기간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 앞에 심은 것도 금방 응답받아 열매를 딸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인내하며 가꾸다 보면 마음 안에 영적인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 팔복의 열매가 맺히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4.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됩니다
농부가 씨를 심어 열매가 맺히면 심은 대로 거두는 것처럼 영계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8절에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되어 갑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를 하면 연약함이 떠나가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으며, 십일조와 감사예물 등 물질로 열심히 드리면 물질 축복이 임하여 마음껏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수넴에 사는 귀부인은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정성으로 대접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여인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오래도록 아이가 없던 여인에게 아들을 축복해 주셨지요. 다비다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하여 병들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마음밭을 옥토로 개간하여 다양한 믿음의 씨앗을 심어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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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내 마음은 어떤 유형의 밭일까요? 다음 보기에서 골라 ( ) 안에 쓰세요.
보기: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옥토
1.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고, 믿음의 확신이 없기 에 시험 환난이 오거나 핍박을 당하면 넘어져 버린다.( )
2. 단단하고 강퍅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 줘도 의심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다.( )
3.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밭으로 하나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순종하는 마음밭이다.( )
4. 재리의 유혹이나 세상의 염려로 말씀대로 온전히 행치 못하고, 육신의 생각을 좇으며 하나님을 중심에서 의뢰하지 못한다.(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25~13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 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2014-02-28
제9과금식과 기도의 위력
욘 3:1~10
읽을말씀 : 욘 3:1~10 | 외울말씀 : 렘 33:3 ㅣ 참고 말씀:사 58:3~9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금식과 기도를 통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불가능한 일도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행하며 구할 때 신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그 응답의 비결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금식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입니다.
1. 금식과 기도로 응답받은 니느웨 백성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는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뜻을 외치라고 명하시지요. 요나는 주전 785년을 전후하여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북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적국 앗수르가 망하기를 원했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니느웨와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배를 타고 갑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대풍을 내리셨고, 요나가 탄 배는 거의 난파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뽑혀 바다에 던져지지요. 그러자 놀랍게도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예비하였다가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통회자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십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말씀대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외쳤습니다. 그러자 이방 민족인 니느웨 백성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어른이나 어린이나 할 것 없이 하나님께 회개했지요.
그 소문을 들은 왕 또한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니느웨 백성에게 선포하기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였습니다(욘 3:7~8).
이처럼 금식으로 정성을 내보이며, 악한 행실에서 떠나 힘써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릴 재앙을 거두셨지요. 그만큼 금식과 기도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큰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니느웨 백성이 왕과 함께 회개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금식하면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
금식은 한 끼에서 하루, 이틀, 사흘을 할 수도 있고 오 일, 칠 일 또는 그 이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금식을 잘 못하는 사람은 한 끼 혹은 하루, 이틀 등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장기 금식은 먼저 많은 기도를 쌓은 후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정확히 주관받아 해야 합니다.
이사야 58장 6~7절에 보면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했습니다.
이사야 58장 4~5절에는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무조건 굶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금식하면서 기운이 없다며 잠만 자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금식 중이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으면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금식할 때에는 오락을 금하고 사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사 58:3).
이러한 금식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 58:8~9) 약속하셨습니다.
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
금식뿐 아니라 기도도 하나님께 합당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리고 응답받은 사례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고(눅 22:39),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행 3:1). 청소도 매일 하면 간단히 끝낼 수 있으나 오래 묵혀 두면 먼지가 쌓이고 때가 찌들어 한참 걸립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도 평소에 습관을 좇아서 하면 시험 환난이 오지 않고, 설령 오더라도 가볍게 물러가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시험 환난을 당하고 나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둘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으면 중심이 바로 서고 상대를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 됩니다. 우리가 부모님이나 대통령 앞에서도 삼가 조심하는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고(눅 22:41)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행 7:60).
셋째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렘 29:12~13, 33:3). 사도행전 4장을 보면 교회 역사상 큰 권능과 부흥이 일어났던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고 많은 기사와 표적이 따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을 때도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여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출 15:22~25).
4. 하나님께 응답받은 사람들의 행함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에 갈멜 산에 올라가 기도하여 비를 내리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어찌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였던지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으로 배가 당기면서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온 지 70년 가까이 되어 나이가 많은데도 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며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회개하고 간구하였습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가지고 온 가브리엘 천사장은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고 크고 놀라운 계시를 주었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과 세상 끝 날에 될 일을 알려 준 것입니다.
예수님도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눅 22:44) 하신 대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에 응답받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자기 욕심을 좇아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 믿음과 직분과 위치에 맞춰 필요한 것을 구하되 욕심을 좇아 구한다면 응답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약 4:2~3).
또한 믿고 구한 것은 응답받은 줄로 믿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하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하지요(약 1:6~7).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과 하늘 보좌를 울리는 기도를 통해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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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이란 어떤 것인지 이사야 58:6~7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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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떠한 것인지 써 보세요.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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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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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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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식도 하나님께 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금식할 때 얼마나 부르짖어 기도하시는지요? 혹여 기운이 없다고 누워 있거나 잠을 자지는 않나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09~11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금식과 보호식’
금식기도는 어떤 목적을 갖고 아무 음식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보호식은 금식이 끝난 후 빠진 기를 보충하고 약해진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도록 먹는 음식을 말하며, 금식한 날짜만큼 보호식을 할 때 온전한 금식이 된다. 보호식 하는 중에는 무리가 가거나 힘든 일은 피해야 한다. 식사는 미음이나 죽으로 하고, 반찬은 주로 채식을 하되 양념은 하지 않으며, 육류나 기름기 있는 음식, 맵거나 짜고 단 자극적인 음식, 화학조미료와 향신료는 피하는 것이 좋다. 보호식을 잘하면 붓지 않고 피부도 뽀얗게 살아나며 체중도 신속하게 회복된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금식과 기도를 통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해 주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불가능한 일도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행하며 구할 때 신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그 응답의 비결이 바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금식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입니다.
1. 금식과 기도로 응답받은 니느웨 백성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는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뜻을 외치라고 명하시지요. 요나는 주전 785년을 전후하여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북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적국 앗수르가 망하기를 원했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니느웨와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배를 타고 갑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대풍을 내리셨고, 요나가 탄 배는 거의 난파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뽑혀 바다에 던져지지요. 그러자 놀랍게도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예비하였다가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통회자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십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말씀대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외쳤습니다. 그러자 이방 민족인 니느웨 백성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어른이나 어린이나 할 것 없이 하나님께 회개했지요.
그 소문을 들은 왕 또한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니느웨 백성에게 선포하기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였습니다(욘 3:7~8).
이처럼 금식으로 정성을 내보이며, 악한 행실에서 떠나 힘써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릴 재앙을 거두셨지요. 그만큼 금식과 기도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 큰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니느웨 백성이 왕과 함께 회개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금식하면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
금식은 한 끼에서 하루, 이틀, 사흘을 할 수도 있고 오 일, 칠 일 또는 그 이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금식을 잘 못하는 사람은 한 끼 혹은 하루, 이틀 등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장기 금식은 먼저 많은 기도를 쌓은 후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정확히 주관받아 해야 합니다.
이사야 58장 6~7절에 보면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했습니다.
이사야 58장 4~5절에는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무조건 굶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금식하면서 기운이 없다며 잠만 자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금식 중이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으면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금식할 때에는 오락을 금하고 사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사 58:3).
이러한 금식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 58:8~9) 약속하셨습니다.
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
금식뿐 아니라 기도도 하나님께 합당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리고 응답받은 사례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고(눅 22:39),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행 3:1). 청소도 매일 하면 간단히 끝낼 수 있으나 오래 묵혀 두면 먼지가 쌓이고 때가 찌들어 한참 걸립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도 평소에 습관을 좇아서 하면 시험 환난이 오지 않고, 설령 오더라도 가볍게 물러가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시험 환난을 당하고 나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둘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으면 중심이 바로 서고 상대를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 됩니다. 우리가 부모님이나 대통령 앞에서도 삼가 조심하는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고(눅 22:41)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행 7:60).
셋째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렘 29:12~13, 33:3). 사도행전 4장을 보면 교회 역사상 큰 권능과 부흥이 일어났던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고 많은 기사와 표적이 따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을 때도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여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출 15:22~25).
4. 하나님께 응답받은 사람들의 행함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에 갈멜 산에 올라가 기도하여 비를 내리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어찌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였던지 창자가 뒤틀리는 듯한 고통으로 배가 당기면서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온 지 70년 가까이 되어 나이가 많은데도 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며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회개하고 간구하였습니다. 이러한 다니엘의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가지고 온 가브리엘 천사장은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고 크고 놀라운 계시를 주었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과 세상 끝 날에 될 일을 알려 준 것입니다.
예수님도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눅 22:44) 하신 대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에 응답받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자기 욕심을 좇아 기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각자 자기 믿음과 직분과 위치에 맞춰 필요한 것을 구하되 욕심을 좇아 구한다면 응답이 오지 않기 때문입니다(약 4:2~3).
또한 믿고 구한 것은 응답받은 줄로 믿어야 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하셨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하지요(약 1:6~7).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과 하늘 보좌를 울리는 기도를 통해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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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기뻐하는 금식이란 어떤 것인지 이사야 58:6~7을 써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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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떠한 것인지 써 보세요.
첫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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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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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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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금식도 하나님께 향으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금식할 때 얼마나 부르짖어 기도하시는지요? 혹여 기운이 없다고 누워 있거나 잠을 자지는 않나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09~11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금식과 보호식’
금식기도는 어떤 목적을 갖고 아무 음식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보호식은 금식이 끝난 후 빠진 기를 보충하고 약해진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도록 먹는 음식을 말하며, 금식한 날짜만큼 보호식을 할 때 온전한 금식이 된다. 보호식 하는 중에는 무리가 가거나 힘든 일은 피해야 한다. 식사는 미음이나 죽으로 하고, 반찬은 주로 채식을 하되 양념은 하지 않으며, 육류나 기름기 있는 음식, 맵거나 짜고 단 자극적인 음식, 화학조미료와 향신료는 피하는 것이 좋다. 보호식을 잘하면 붓지 않고 피부도 뽀얗게 살아나며 체중도 신속하게 회복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