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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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6
제6과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고전 2:6~10
읽을말씀 : 고전 2:6~10 | 외울말씀 : 요 1:12 ㅣ 참고 말씀:창 3:14~15
교육목표 :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에 담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누리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사망의 길로 가게 될 것을 만세 전부터 아셨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지혜 가운데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때가 이르기까지 비밀리에 감추어 두셨지요. 만약 원수 마귀가 이러한 비밀을 안다면 범죄한 아담으로부터 넘겨받은 모든 권세를 빼앗기지 않고자 인간 구원의 섭리를 훼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 먹게 한 뱀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게 되었습니다(창 3:14).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말씀하셨기에 간교한 뱀을 사주한 원수 마귀 사단은 여자의 후손, 곧 예수님이 태어나 자신을 상하게 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 간악한 헤롯 왕을 사주하여 아기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과 그 주변에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를 통해 요셉에게 현몽하여 아기 예수와 마리아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게 하셨습니다. 헤롯이 죽자 예수님은 애굽을 떠나 갈릴리 지방 나사렛에 살면서 공생애를 준비하셨습니다. 30세부터는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공생애에 들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니 많은 사람이 믿고 따랐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예수님을 없애 버려야 자신들이 세세토록 세상을 주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래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사주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계략을 꾸몄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십자가에 양손, 양발을 못 박았습니다.
이처럼 철저하게 여자의 후손을 죽였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비밀한 섭리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7~8절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죄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심으로써 모든 사람이 죄의 문제를 해결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구원의 길이 세상에 알려지면 원수 마귀 사단의 훼방으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성취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지혜로 비밀한 가운데 철저히 감추어 두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어떻게 사망으로 가던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공의 가운데 모든 것을 영계의 법칙에 따라 행하시는 분입니다.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영계에도 법이 있습니다. 그 예로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이 있습니다(롬 6:23). 사망은 죄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죄도 흠도 없는 예수님을 원수 마귀 사단이 사람들을 사주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영계의 법칙을 어긴 것입니다.
이로 인해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지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만일 원수 마귀 사단이 하나님의 비밀한 섭리를 알았다면 예수님을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8절에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말씀합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이 죽게 된 것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참 생명과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계의 법에 따라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으로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에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지요. 원죄와 자범죄가 없었기에 원수 마귀를 이길 힘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는 전혀 죄가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영계의 법을 어긴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만세 전에 감춰진 비밀이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사랑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는 이 세상의 어떤 권세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왕의 자녀라 할지라도 권세가 대단한데 하물며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고 우주 만물을 치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는 어떠하겠습니까.
교회에 나오는 사람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곧 성도(聖徒)가 있는가 하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교인(敎人)이 있습니다. 교인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을 뿐,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만일 성도의 반열에 들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기에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사마리아 여인이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과정과 그녀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니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이 이방 민족과 혼혈이라는 이유로 그들과 상종하지 않을뿐더러 사마리아 땅을 밟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혹 그 땅을 거쳐 가야 할 경우에는 멀리 돌아서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으셨지요. 마침 사마리아 땅을 지나면서 우물가에 앉아 계시다가 물을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 지역 특성상 이스라엘의 여행자들은 항상 물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물이 떨어질 리 없고 설령 물이 떨어졌어도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으니 잠깐 기다리면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하신 것일까요?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을 두드린 것입니다. 결국 여인은 물론 동네 사람들도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전도자를 통해 마음을 두드리실 때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한 대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서 2장 14절에 기록된 대로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시고 선악과를 두셨는지, 왜 예수님만이 구세주가 되시며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지 인간 구원의 섭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과일의 맛을 알려면 단순히 겉모양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먹어 봐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다’라고 막연히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 십자가의 섭리를 깨달아야 행함이 따르는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멸망의 길로 가는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습니다. 인간 구원의 길을 완성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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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 중 옳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한 인간 구원의 길이 알려지면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것이기에 철저히 비밀리에 감추어 두셨다.
②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며 성령으로 잉태되어 원죄가 없다.
③ 원수 마귀는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실 줄 알았다.
④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는다.
2.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이란 무엇일까요? ( )
3.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2부 6과‘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을 적대시한 이유’는?
원래 사마리아인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가나안 정복 때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B.C. 721년 사마리아가 속한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당했다. 지배국 앗수르의 혼합정책에 따라 이방인들이 그 땅에 유입되자 사마리아인들이 그들과 결혼하여 혼혈족이 되므로 그때부터 유대인들이 적대시하게 되었다.
교육목표 :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에 담긴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깨닫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누리게 한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불순종으로 모든 사람이 사망의 길로 가게 될 것을 만세 전부터 아셨습니다. 그래서 놀라운 지혜 가운데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시고 때가 이르기까지 비밀리에 감추어 두셨지요. 만약 원수 마귀가 이러한 비밀을 안다면 범죄한 아담으로부터 넘겨받은 모든 권세를 빼앗기지 않고자 인간 구원의 섭리를 훼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하와를 유혹하여 선악과를 따 먹게 한 뱀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게 되었습니다(창 3:14). 하나님께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말씀하셨기에 간교한 뱀을 사주한 원수 마귀 사단은 여자의 후손, 곧 예수님이 태어나 자신을 상하게 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당시 간악한 헤롯 왕을 사주하여 아기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베들레헴과 그 주변에 두 살 이하의 모든 사내아이를 죽였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의 사자를 통해 요셉에게 현몽하여 아기 예수와 마리아를 데리고 애굽으로 피하게 하셨습니다. 헤롯이 죽자 예수님은 애굽을 떠나 갈릴리 지방 나사렛에 살면서 공생애를 준비하셨습니다. 30세부터는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공생애에 들어가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병든 사람을 고쳐 주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니 많은 사람이 믿고 따랐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예수님을 없애 버려야 자신들이 세세토록 세상을 주관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그래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을 사주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계략을 꾸몄습니다. 결국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우고 십자가에 양손, 양발을 못 박았습니다.
이처럼 철저하게 여자의 후손을 죽였지만 여기에는 하나님의 비밀한 섭리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장 7~8절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무 죄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도록 내어주심으로써 모든 사람이 죄의 문제를 해결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 구원의 길이 세상에 알려지면 원수 마귀 사단의 훼방으로 인류 구원의 역사를 성취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의 지혜로 비밀한 가운데 철저히 감추어 두셨습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어떻게 사망으로 가던 인류에게 구원의 길이 되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공의 가운데 모든 것을 영계의 법칙에 따라 행하시는 분입니다.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영계에도 법이 있습니다. 그 예로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이 있습니다(롬 6:23). 사망은 죄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무런 죄도 흠도 없는 예수님을 원수 마귀 사단이 사람들을 사주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영계의 법칙을 어긴 것입니다.
이로 인해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지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만일 원수 마귀 사단이 하나님의 비밀한 섭리를 알았다면 예수님을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서 5장 18절에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말씀합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이 죽게 된 것같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참 생명과 영생을 얻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계의 법에 따라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으로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하기 때문에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나셨지요. 원죄와 자범죄가 없었기에 원수 마귀를 이길 힘이 있었고, 사랑이 있었기에 우리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원수 마귀는 전혀 죄가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으니 영계의 법을 어긴 것입니다.
이로 인해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만세 전에 감춰진 비밀이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지혜이며 사랑입니다.
2.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는 이 세상의 어떤 권세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한 나라의 왕의 자녀라 할지라도 권세가 대단한데 하물며 인류 역사를 주관하시고 우주 만물을 치리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는 어떠하겠습니까.
교회에 나오는 사람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 곧 성도(聖徒)가 있는가 하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교인(敎人)이 있습니다. 교인은 교회에 출석하고 있을 뿐, 믿음이 있는 것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만일 성도의 반열에 들지 못한다면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기에 마음의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4장에는 사마리아 여인이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과정과 그녀가 예수님을 영접한 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니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님 앞에 나아오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이 이방 민족과 혼혈이라는 이유로 그들과 상종하지 않을뿐더러 사마리아 땅을 밟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혹 그 땅을 거쳐 가야 할 경우에는 멀리 돌아서 다닐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를 전혀 개의치 않으셨지요. 마침 사마리아 땅을 지나면서 우물가에 앉아 계시다가 물을 길으러 온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합니다.
그 당시 지역 특성상 이스라엘의 여행자들은 항상 물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물이 떨어질 리 없고 설령 물이 떨어졌어도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으니 잠깐 기다리면 되는데 예수님께서는 왜 사마리아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부탁하신 것일까요?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을 두드린 것입니다. 결국 여인은 물론 동네 사람들도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전도자를 통해 마음을 두드리실 때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말씀한 대로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서 2장 14절에 기록된 대로 행함이 없는 믿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시고 선악과를 두셨는지, 왜 예수님만이 구세주가 되시며 어떻게 구원에 이르게 하는지 인간 구원의 섭리를 깨달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때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과일의 맛을 알려면 단순히 겉모양만 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먹어 봐야 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시다’라고 막연히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 예수님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지 십자가의 섭리를 깨달아야 행함이 따르는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멸망의 길로 가는 인생들을 구원하기 위해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셨습니다. 인간 구원의 길을 완성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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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 중 옳지 않은 것을 고르시오.
①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한 인간 구원의 길이 알려지면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것이기에 철저히 비밀리에 감추어 두셨다.
②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며 성령으로 잉태되어 원죄가 없다.
③ 원수 마귀는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실 줄 알았다.
④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여 그 이름을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는다.
2.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이란 무엇일까요? ( )
3. 여러분은 얼마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을 누리고 있습니까?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2부 6과‘나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유대인들이 사마리아인을 적대시한 이유’는?
원래 사마리아인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가나안 정복 때 함께 전쟁에 참여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B.C. 721년 사마리아가 속한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당했다. 지배국 앗수르의 혼합정책에 따라 이방인들이 그 땅에 유입되자 사마리아인들이 그들과 결혼하여 혼혈족이 되므로 그때부터 유대인들이 적대시하게 되었다.
2015-01-30
제5과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예수 그리스도
레 25:23~25
읽을말씀 : 레 25:23~25 | 외울말씀 : 외울 말씀:롬 5:19 ㅣ 참고 말씀:계 5:1~5
교육목표 :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과 구세주가 되는 자격 조건에 대해 알아본다.
영계의 법에는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죄를 속량할 수 있는 법도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로 인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하려면 죄를 속량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과연 첫 사람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하는 법칙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좇아 비밀한 가운데 만세 전에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1. 토지를 사고파는 데 적용되는 토지 무르기 법칙
레위기 25장 23~25절에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近族)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말씀합니다. 즉 토지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 것이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합당한 규정에 따라 다시 무를 수 있는 ‘토지 무르기 법칙’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계약서에 어떤 경로로 토지를 팔고 사는가 하는 과정과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기록하게 합니다. 그리고 팔고 사는 사람이 도장을 찍고 증인들을 세웁니다. 그 후 계약서 1부는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여 성전 창고에 보관하고 다른 1부는 인봉하지 않고 언제라도 볼 수 있게 성전 입구에 펼쳐 놓습니다. 이는 언제라도 근족이 와서 대신 토지를 무를 수 있고, 근족 중에 무를 사람이 없으면 본인이 부를 쌓아 힘이 있을 때 무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도 토지 무르기의 법칙에 따라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천하 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모든 권세를 마귀에게 넘겨주게 되었지만(눅 4:6),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영영히 팔지는 못하며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지요.
그러므로 사랑과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때가 이르자 십자가 고난을 통해 인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2.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과 예수 그리스도
요한계시록 5장 4절에는 하나님과 마귀가 계약한 책이 나옵니다. 이는 ‘아담이 불순종하여 마귀에게 천하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넘겨주었지만, 무를 힘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그 권세를 넘겨주겠다.’는 계약서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보니 그 책을 일곱 인으로 봉하여 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크게 웁니다. 그때 장로 중 하나가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즉 다윗의 뿌리인 예수님이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른 구세주의 자격 조건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19절에는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즉 누군가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멸망의 길을 가던 모든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토지 무르기 법칙에 의하면 돈이 없어 토지를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되살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언제든지 무를 수 있습니다. 만일 본인이 무를 힘이 없을 때에는 근족이 대신 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범죄한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되찾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즉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토지 무르기 법칙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신 분입니다.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지으니 그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인류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면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죄인이 죄인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아담의 후예가 아닌 사람을 찾고자 하늘 위를 보니 천사만 있고, 땅 위를 살펴보니 아담의 후예인 죄인들만 있고, 땅 아래를 보니 지옥에 속한 것뿐이었기에 애통하였습니다(계 5:1~3).
그러면 예수님은 토지 무르기 법칙 두 번째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육적으로는 다윗의 뿌리이지만, 남녀가 결혼하여 잉태된 분이 아니므로 원죄가 없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아담의 후예가 아닙니다.
셋째로, 원수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빚을 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여도 자신에게 그만한 재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를 대속해 주려면 그만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이므로 원수 마귀에게 빼앗긴 아담의 권세를 회복하려면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원수 마귀를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토지 무르기 세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을까요?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기 때문에 원죄가 없습니다.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33년 동안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하셨으니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전혀 없으셨지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온전한 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전혀 죄가 없으시므로 토지 무를 힘이 있습니다.
넷째로,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앞서 설명한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성립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형이 아무리 부자라 해도 사랑이 없으면 동생의 빚을 갚아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룻기 4장을 보면 보아스가 가난했던 나오미의 형편을 알고 가장 가까운 근족에게 기업 무르기를 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그는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합니다. 그 토지를 무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근족은 자신이 손해를 입지 않으려고 토지 무르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근족이 기업을 무를 수 있는 힘이 있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무를 수 없습니다. 결국 나오미의 다음 근족인 보아스가 기업을 무를 수 있는 힘이 있고 사랑도 있어서 그를 대신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는 인류를 향한 크신 사랑이 있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는 희생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범죄한 아담으로 인해 원수 마귀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하나님 자녀로 되찾아 올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며,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시고,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주시며 오직 선만 행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온갖 고난과 멸시를 당하시고 마침내는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엄청난 희생과 사랑이 있었기에 인간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죄 없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삼 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신 분이며,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행 4:12).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하고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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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구세주의 자격 조건입니다. ( ) 안을 채워 보세요.
첫째, ( )이어야 한다.
둘째, ( )의 후예가 아니어야 한다.
셋째, 원수 마귀를 이길 수 있는 ( )이 있어야 한다.
넷째, 목숨까지 줄 수 있는 ( )이 있어야 한다.
2. 구약 성경에 나오는 토지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합당한 규정에 따라 근족(가까운 친척)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도록 하는 법칙은 무엇일까요? ( )
3. 아담의 권세가 왜 원수 마귀에게 넘어가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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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부 5과‘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을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원죄’란?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류는 부모의 기를 통해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를
원죄라 한다.
‘자범죄’란?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면서 스스로 짓는 죄를 말한다.
교육목표 :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과 구세주가 되는 자격 조건에 대해 알아본다.
영계의 법에는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그 죄를 속량할 수 있는 법도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로 인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하려면 죄를 속량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을 적용해야 합니다. 과연 첫 사람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회복하는 법칙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이 법을 좇아 비밀한 가운데 만세 전에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1. 토지를 사고파는 데 적용되는 토지 무르기 법칙
레위기 25장 23~25절에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近族)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말씀합니다. 즉 토지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 것이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합당한 규정에 따라 다시 무를 수 있는 ‘토지 무르기 법칙’을 설명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에서는 계약서에 어떤 경로로 토지를 팔고 사는가 하는 과정과 되돌려 받을 수 있는 토지 무르기의 내용을 기록하게 합니다. 그리고 팔고 사는 사람이 도장을 찍고 증인들을 세웁니다. 그 후 계약서 1부는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여 성전 창고에 보관하고 다른 1부는 인봉하지 않고 언제라도 볼 수 있게 성전 입구에 펼쳐 놓습니다. 이는 언제라도 근족이 와서 대신 토지를 무를 수 있고, 근족 중에 무를 사람이 없으면 본인이 부를 쌓아 힘이 있을 때 무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담의 불순종으로 하나님과 마귀 사이에도 토지 무르기의 법칙에 따라 계약이 이루어졌습니다. 아담이 불순종하여 천하 만국을 다스릴 수 있는 모든 권세를 마귀에게 넘겨주게 되었지만(눅 4:6),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라 영영히 팔지는 못하며 다시 되돌려 받을 수 있지요.
그러므로 사랑과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만세 전에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자로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시고 때가 이르자 십자가 고난을 통해 인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2.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조건과 예수 그리스도
요한계시록 5장 4절에는 하나님과 마귀가 계약한 책이 나옵니다. 이는 ‘아담이 불순종하여 마귀에게 천하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넘겨주었지만, 무를 힘이 있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그 권세를 넘겨주겠다.’는 계약서입니다.
그런데 사도 요한이 보니 그 책을 일곱 인으로 봉하여 뗄 수 있는 사람이 없어 크게 웁니다. 그때 장로 중 하나가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고 말씀합니다.
즉 다윗의 뿌리인 예수님이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토지 무르기 법칙에 따른 구세주의 자격 조건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19절에는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즉 누군가 죄를 대속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멸망의 길을 가던 모든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토지 무르기 법칙에 의하면 돈이 없어 토지를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되살 수 있는 능력이 생기면 언제든지 무를 수 있습니다. 만일 본인이 무를 힘이 없을 때에는 근족이 대신 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범죄한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권세를 되찾을 수 있는 존재는 아담의 근족인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이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예수님은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입니다. 즉 육신을 입은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토지 무르기 법칙 첫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신 분입니다.
둘째로,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지으니 그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인류는 원죄를 가지고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이러한 인류의 죄를 대속하려면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죄인이 죄인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아담의 후예가 아닌 사람을 찾고자 하늘 위를 보니 천사만 있고, 땅 위를 살펴보니 아담의 후예인 죄인들만 있고, 땅 아래를 보니 지옥에 속한 것뿐이었기에 애통하였습니다(계 5:1~3).
그러면 예수님은 토지 무르기 법칙 두 번째 조건에 합당한 분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육적으로는 다윗의 뿌리이지만, 남녀가 결혼하여 잉태된 분이 아니므로 원죄가 없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나셨지만 하나님의 능력 가운데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셨기 때문에 아담의 후예가 아닙니다.
셋째로, 원수 마귀를 이길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빚을 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 아무리 간절하여도 자신에게 그만한 재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죄를 대속해 주려면 그만한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이므로 원수 마귀에게 빼앗긴 아담의 권세를 회복하려면 죄가 없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원수 마귀를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토지 무르기 세 번째 조건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었을까요? 예수님은 아담의 후예가 아니기 때문에 원죄가 없습니다. 생후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기까지 33년 동안 율법을 온전히 지켜 행하셨으니 스스로 짓는 자범죄도 전혀 없으셨지요. 오직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신 온전한 분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전혀 죄가 없으시므로 토지 무를 힘이 있습니다.
넷째로,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앞서 설명한 세 가지 조건이 모두 성립된다고 해도 가장 중요한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형이 아무리 부자라 해도 사랑이 없으면 동생의 빚을 갚아 줄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지요.
룻기 4장을 보면 보아스가 가난했던 나오미의 형편을 알고 가장 가까운 근족에게 기업 무르기를 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자 그는 “나는 내 기업에 손해가 있을까 하여 나를 위하여 무르지 못하노니 나의 무를 권리를 네가 취하라 나는 무르지 못하겠노라” 합니다. 그 토지를 무를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근족은 자신이 손해를 입지 않으려고 토지 무르기를 거부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근족이 기업을 무를 수 있는 힘이 있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무를 수 없습니다. 결국 나오미의 다음 근족인 보아스가 기업을 무를 수 있는 힘이 있고 사랑도 있어서 그를 대신하였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는 인류를 향한 크신 사랑이 있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죽으시는 희생적인 사랑이 없었다면 범죄한 아담으로 인해 원수 마귀의 자녀가 된 사람들을 하나님 자녀로 되찾아 올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죄인을 용서하시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며,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시고, 평화와 기쁨과 사랑을 주시며 오직 선만 행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온갖 고난과 멸시를 당하시고 마침내는 온 인류의 죄를 대신 지고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엄청난 희생과 사랑이 있었기에 인간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무 죄 없이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가 삼 일 만에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누구든지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하늘나라 생명책에 그 이름이 기록됩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신 분이며,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이로서는 결코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행 4:12). 이러한 사실을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하고 만사형통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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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토지 무르기 법칙에 합당한 구세주의 자격 조건입니다. ( ) 안을 채워 보세요.
첫째, ( )이어야 한다.
둘째, ( )의 후예가 아니어야 한다.
셋째, 원수 마귀를 이길 수 있는 ( )이 있어야 한다.
넷째, 목숨까지 줄 수 있는 ( )이 있어야 한다.
2. 구약 성경에 나오는 토지는 모두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영영히 팔지 말며, 가난하여 토지를 팔았다 하더라도 합당한 규정에 따라 근족(가까운 친척)이나 본인이 다시 무를 수 있도록 하는 법칙은 무엇일까요? ( )
3. 아담의 권세가 왜 원수 마귀에게 넘어가게 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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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부 5과‘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을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원죄’란?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류는 부모의 기를 통해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를
원죄라 한다.
‘자범죄’란?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면서 스스로 짓는 죄를 말한다.
2015-01-23
제4과선악과를 두신 이유
창 3:1~7
읽을말씀 : 창 3:1~7 | 외울말씀 : 약 1:15 ㅣ 참고 말씀:창 2:17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을 에덴동산에 이끌어 들이시고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섭리를 알아본다.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깊고 오묘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두어 사람을 멸망의 길로 가게 하셨느냐?”고 묻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시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일부러 선악과를 두고 사망의 길로 인도하셨을 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이며, 생령 아담은 왜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을까요?
1.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생령, 곧 살아 있는 영으로 창조하시고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고 생명수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령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 돕는 배필로 여자인 하와를 지어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창 2:18~25). 이는 아담이 스스로 외롭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홀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아담의 형편을 미리 헤아려 베푸신 사랑이었으며 장차 인간 경작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생령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마음껏 누리며 풍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 있었지요. 바로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시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 사이에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2. 뱀의 유혹을 받아 범죄한 아담과 하와
오랜 세월이 흐르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한 채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사단이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해 아내 하와를 유혹하니 결국 남편 아담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생령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명령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 1절을 보면 뱀이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묻습니다. 이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고 하나님 말씀을 변질시켜 답변하자 뱀은 더욱 적극적으로 유혹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며 하나님 말씀을 완전히 부정합니다. 뿐만 아니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면서 재차 유혹합니다(창 3:4~5). 이처럼 사단이 간교한 뱀을 통해 욕심을 불어넣으니 여자는 선악과가 예전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곧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여자는 선악과를 따 먹었고 자기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먹었습니다(창 3:6).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 악이 있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다.”고 하는데,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하기 전에는 전혀 악이 없었습니다. 다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에 따라 선악과를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다가 사단이 뱀을 통하여 유혹하자 선악과를 먹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세운 질서에 불순종하므로 악이 들어왔습니다. 즉 생령으로 창조된 사람에게 처음부터 악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유 의지 가운데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죄가 성립되었고, 비로소 악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3. 죄의 삯은 사망
로마서 6장 23절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이 나옵니다. 과연 불순종의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사망이 어떻게 임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한 후 곧바로 죽지 않고 오랜 세월을 살면서 많은 자녀를 낳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죽음이란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의 죽음을 뜻합니다.
원래 사람은 생령으로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습니다(살전 5:23).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니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던 사람의 영이 죽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죄로 인해 아담과 하와의 영이 죽으니 더 이상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영의 공간인 에덴동산에서 육의 공간인 이 땅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때부터 인류의 고난이 시작되어 하와는 잉태하는 고통이 크게 더하여 수고하며 자녀를 낳고, 또 남편을 사모하며 그의 다스림을 받아야 했습니다(창 3:16). 범죄한 아담은 저주받은 이 땅에서 평생토록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창 3:17).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되었지요. 그리하여 범죄한 아담의 후손들도 죄인으로 태어나 죄의 삯인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렇다면 사단의 사주를 받아 하와를 미혹한 뱀은 어떠한 저주를 받았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흙은 흙으로 창조된 사람을 말하며(창 2:7), 뱀은 원수 마귀 사단을 뜻합니다(계 20:2). 하나님께서 뱀에게 흙을 먹으라고 하신 것은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바로 원수 마귀 사단의 밥이 된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은 물론,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므로(벧전 5:8) 시험 환난이 찾아옵니다. 더욱이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말씀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4.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신 이유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의 가장 중앙에 두신 이유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고 멸망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대성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령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아주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상대성을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 행복과 사랑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많은 것을 누렸지만 스스로 땀 흘려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니었기에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결국 이 땅으로 쫓겨나 눈물, 슬픔, 고통, 불행, 죽음 등을 체험한 후에야 참된 행복과 불행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끄신 에덴동산에서의 자유와 풍요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상대성을 체험해야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영원히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 사람이 자유 의지에 따라 선악과를 따 먹어도 막지 않으시고, 인간 경작을 통해 이 땅에서 모든 희로애락을 경험하도록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상대성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사랑과 기쁨, 감사가 무엇인지 깨달아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경외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시고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통해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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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과정을 아래 보기의 단어를 넣어 초신자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 봅시다.
2.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사람들이 뱀을 싫어하게 된 근원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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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부 4과‘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자유 의지’(Free Will)란?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조절, 통제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말한다.
즉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도록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능력과 특권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사람을 에덴동산에 이끌어 들이시고 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섭리를 알아본다.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깊고 오묘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은 왜 선악과를 두어 사람을 멸망의 길로 가게 하셨느냐?”고 묻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시지 않았다면 사람들이 에덴동산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 일부러 선악과를 두고 사망의 길로 인도하셨을 리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이며, 생령 아담은 왜 사망의 길로 갈 수밖에 없었을까요?
1.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생령, 곧 살아 있는 영으로 창조하시고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었고 생명수 강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생령 아담이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여 돕는 배필로 여자인 하와를 지어 한 몸을 이루게 하셨습니다(창 2:18~25). 이는 아담이 스스로 외롭다고 느껴서가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홀로 계셨던 하나님께서 아담의 형편을 미리 헤아려 베푸신 사랑이었으며 장차 인간 경작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생령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마음껏 누리며 풍요롭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이 있었지요. 바로 동산 가운데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만은 먹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시고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사람 사이에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2. 뱀의 유혹을 받아 범죄한 아담과 하와
오랜 세월이 흐르자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한 채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고자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던 사단이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뱀을 통해 아내 하와를 유혹하니 결국 남편 아담도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것입니다. 창세기 2장 16~17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생령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명령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그런데 창세기 3장 1절을 보면 뱀이 여자에게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고 묻습니다. 이때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여자가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다고 하나님 말씀을 변질시켜 답변하자 뱀은 더욱 적극적으로 유혹합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하며 하나님 말씀을 완전히 부정합니다. 뿐만 아니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하면서 재차 유혹합니다(창 3:4~5). 이처럼 사단이 간교한 뱀을 통해 욕심을 불어넣으니 여자는 선악과가 예전과 다르게 보였습니다. 곧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였습니다. 결국 여자는 선악과를 따 먹었고 자기 남편에게도 주니 그도 먹었습니다(창 3:6).
어떤 사람은 “사람에게 악이 있었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다.”고 하는데,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하기 전에는 전혀 악이 없었습니다. 다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의지에 따라 선악과를 먹을 수도, 먹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다가 사단이 뱀을 통하여 유혹하자 선악과를 먹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세운 질서에 불순종하므로 악이 들어왔습니다. 즉 생령으로 창조된 사람에게 처음부터 악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자유 의지 가운데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죄가 성립되었고, 비로소 악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3. 죄의 삯은 사망
로마서 6장 23절을 보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이 나옵니다. 과연 불순종의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사망이 어떻게 임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정녕 죽으리라” 하셨는데 아담과 하와는 불순종한 후 곧바로 죽지 않고 오랜 세월을 살면서 많은 자녀를 낳았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죽음이란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이 아니라 영의 죽음을 뜻합니다.
원래 사람은 생령으로서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습니다(살전 5:23).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니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던 사람의 영이 죽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죄로 인해 아담과 하와의 영이 죽으니 더 이상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고 결국 영의 공간인 에덴동산에서 육의 공간인 이 땅으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이때부터 인류의 고난이 시작되어 하와는 잉태하는 고통이 크게 더하여 수고하며 자녀를 낳고, 또 남편을 사모하며 그의 다스림을 받아야 했습니다(창 3:16). 범죄한 아담은 저주받은 이 땅에서 평생토록 수고하여야 소산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창 3:17).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 되었지요. 그리하여 범죄한 아담의 후손들도 죄인으로 태어나 죄의 삯인 사망의 길로 가게 되었습니다(롬 5:12). 그렇다면 사단의 사주를 받아 하와를 미혹한 뱀은 어떠한 저주를 받았을까요?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모든 육축과 들의 모든 짐승보다 더욱 저주를 받아 배로 다니고 종신토록 흙을 먹을지니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흙은 흙으로 창조된 사람을 말하며(창 2:7), 뱀은 원수 마귀 사단을 뜻합니다(계 20:2). 하나님께서 뱀에게 흙을 먹으라고 하신 것은 어둠 가운데 사는 사람들이 바로 원수 마귀 사단의 밥이 된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은 물론, 하나님의 자녀라 할지라도 악을 행하고 죄를 지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므로(벧전 5:8) 시험 환난이 찾아옵니다. 더욱이 원수 마귀 사단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그 말씀을 확신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미혹하여 사망의 길로 인도합니다.
4.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신 이유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동산의 가장 중앙에 두신 이유는 사람으로 하여금 선악과를 먹고 멸망의 길로 가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상대성을 알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였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령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아주 행복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는 상대성을 체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 행복과 사랑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풍요로운 에덴동산에서 많은 것을 누렸지만 스스로 땀 흘려 수고하여 얻은 것이 아니었기에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소중함과 고마움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뱀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결국 이 땅으로 쫓겨나 눈물, 슬픔, 고통, 불행, 죽음 등을 체험한 후에야 참된 행복과 불행이 무엇인지 확실히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끄신 에덴동산에서의 자유와 풍요가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상대성을 체험해야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영원히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셨습니다. 사람이 자유 의지에 따라 선악과를 따 먹어도 막지 않으시고, 인간 경작을 통해 이 땅에서 모든 희로애락을 경험하도록 섭리하셨던 것입니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상대성을 체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진정한 사랑과 기쁨, 감사가 무엇인지 깨달아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경외하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시고 첫 사람 아담과 하와를 통해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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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 과정을 아래 보기의 단어를 넣어 초신자에게 알기 쉽게 설명해 봅시다.
2. 하나님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3. 사람들이 뱀을 싫어하게 된 근원은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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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부 4과‘토지 무르기에 합당한 예수 그리스도’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자유 의지’(Free Will)란?
자신의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조절, 통제할 수 있는 힘과 능력을 말한다.
즉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도록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능력과 특권이다.
2015-01-16
제3과사람을 경작하시는 하나님
창 1:28
읽을말씀 : 창 1:28 | 외울말씀 : 마 3:12 l 참고 말씀:딤전 2:4
교육목표 : 사랑의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의 섭리를 통해 알곡 성도는 천국에 들이고 쭉정이는 지옥에 던지시는 이유를 깨닫게 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많은 비유로써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려 주셨습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영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땅의 것들로 비유하여 깨우쳐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마 13:34). 그중에는 씨 뿌리는 비유, 겨자씨 비유, 밭의 가라지 비유, 포도원 비유, 불의한 농부의 비유 등 경작에 관한 것이 많습니다. 이는 농부가 땅을 개간하여 씨를 뿌리고 가꾸어 열매를 거두듯이,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시고 때가 되면 알곡을 거두어 천국으로 들인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1. 하나님께서 사람을 경작하시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우주 공간에 홀로 계셨습니다(요 1:1). 지극히 아름답고 영롱한 빛 안에 맑고 청아한 소리를 머금고 온 우주공간을 다스리셨습니다(요일 1:5).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함께 느끼며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갖고 계시기에 모든 것을 홀로 누리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품으신 하나님은 인간 경작을 위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영원 전부터 계시던 공간을 오묘하게 분리하시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기 시작하셨지요. 인간 경작의 총감독이 되시는 성부 하나님, 구세주가 되어 주실 성자 예수님, 구원을 온전케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때가 이르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한 이후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와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멈추지 않고 사람을 경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깨달아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어떤 부모에게 두 자녀가 있는데 큰아이는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사랑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반면 작은아이는 부모님을 서운케 할 때도 있지만 이내 돌이키며 사랑스럽게 매달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면 어느 자녀가 더 사랑스럽겠습니까?
또한 가정에 로봇이 있어 밥도 짓고 청소도 하며 모든 시중을 다 들어준다고 해서 자녀보다 로봇이 더 사랑스러울까요? 로봇이 아무리 유익하다 해도 자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도 순종을 잘하는 천군 천사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성과 감정을 가지고 자유 의지 가운데 즐거이 순종하는 자녀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창조하되 자유 의지를 주시고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며 참 자녀로 나오기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을 참고 기다리며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경작이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를 통해 열매를 얻는 과정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경작하는 수고를 통해 참 자녀를 얻고자 이 땅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번째 씨를 심으셨습니다.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마음밭을 개간하는 경작의 과정을 거쳐야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6장 5~6절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범죄할 줄을 모르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만세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사람을 창조하여 경작하시는 이유는 자녀를 기르는 부모의 심정을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자녀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고생스러운 일입니까? 잉태한 후 열 달 동안 여러 고통이 따르고, 해산할 때에도 큰 수고를 해야 합니다. 또 자녀를 먹이고 입히며 가르치기 위해 힘써 일하며 밤낮으로 수고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이유는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부모를 진정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대상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서 극진히 섬기고 효도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불순종하고 타락하여 근심할 것을 아셨지만,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가 나올 것을 믿기에 기꺼이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2.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하나님
농부가 열심히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농사를 짓는 이유는 추수 때에 많은 소산을 거둘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추수 때 보면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쭉정이도 섞여 나옵니다. 이때 알곡은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인간 경작을 마친 뒤에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십니다. 마태복음 3장 12절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참 자녀인 알곡은 천국에 들이지만 쭉정이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지십니다.
알곡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진리 안에 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즉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말씀대로 행하는 빛의 자녀들이지요.
반면에 쭉정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거나 입술로는 믿는다 하지만 말씀 안에 살지 않고 여전히 악을 행하며 세상의 정욕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쭉정이는 왜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지시는 것일까요?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시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여러 방법으로 깨우쳐 주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도 자유 의지 가운데 끝까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으므로 쭉정이에 속하며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전 3:18). 하지만 영원불멸하는 영혼을 지니고 있기에 영이 없는 짐승처럼 아예 무 상태로 멸해 버릴 수도 없고 알곡 성도와 함께 천국에 들이실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천국과 구별하여 지옥을 두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농부가 추수 때에 알곡을 거두어 쭉정이를 함께 두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온갖 죄악이 가득한 쭉정이와 같은 존재가 알곡 성도와 영원히 함께 산다면 아름다운 천국이 죄악으로 오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옥을 따로 두신 것도 근본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3. 인간 경작과 백보좌 대심판
농부가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이 한 해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같이 하나님께서도 인간 경작을 멈추지 않고 계십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려 주시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베드로, 바울 등과 같은 믿음의 선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주의 종과 일꾼들을 통해 깨어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하시며 끊임없이 인간을 경작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듯이, 인간 경작도 한없이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3절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때가 이르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간 경작의 섭리가 마쳐집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창조 사역을 마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처럼, 인간 경작의 역사가 끝나면 천년왕국을 보냅니다. 천년왕국이 끝난 후에는 백보좌 대심판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1~12절에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말씀한 대로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알곡 성도는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상급 심판을 받고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합당한 천국 처소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쭉정이는 지옥불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받습니다. 이러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깨달아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알곡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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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보세요.
알곡이란 ( )를 영접하여 진리 안에 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을 말한다. 쭉정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거나 입술로는 믿는다 하지만 ( ) 안에 살지 않고 여전히 악을 행하며 ( )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3. 사람의 가치를 잃은 쭉정이는 결국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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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부 3과‘선악과를 두신 이유’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알파와 오메가’란?
문명의 시작과 끝이 아버지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는 뜻이다.
‘처음과 나중’이란?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재림하심으로써 구속 사업을 마무리하신다는 뜻이다.
‘시작과 끝’이란?
성령님께서 인간 경작의 시작과 끝이 되신다는 뜻이다.
교육목표 : 사랑의 하나님께서 인간 경작의 섭리를 통해 알곡 성도는 천국에 들이고 쭉정이는 지옥에 던지시는 이유를 깨닫게 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많은 비유로써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알려 주셨습니다. 인간의 지식으로는 영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땅의 것들로 비유하여 깨우쳐 주고자 하신 것입니다(마 13:34). 그중에는 씨 뿌리는 비유, 겨자씨 비유, 밭의 가라지 비유, 포도원 비유, 불의한 농부의 비유 등 경작에 관한 것이 많습니다. 이는 농부가 땅을 개간하여 씨를 뿌리고 가꾸어 열매를 거두듯이,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시고 때가 되면 알곡을 거두어 천국으로 들인다는 사실을 알려 주기 위함입니다.
1. 하나님께서 사람을 경작하시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우주 공간에 홀로 계셨습니다(요 1:1). 지극히 아름답고 영롱한 빛 안에 맑고 청아한 소리를 머금고 온 우주공간을 다스리셨습니다(요일 1:5). 수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함께 느끼며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갖고 계시기에 모든 것을 홀로 누리기보다는 누군가와 함께 나누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품으신 하나님은 인간 경작을 위한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영원 전부터 계시던 공간을 오묘하게 분리하시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기 시작하셨지요. 인간 경작의 총감독이 되시는 성부 하나님, 구세주가 되어 주실 성자 예수님, 구원을 온전케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사역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때가 이르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한 이후 오늘날까지 하나님께서는 인류 역사와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며 멈추지 않고 사람을 경작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깨달아 중심에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함입니다.
어떤 부모에게 두 자녀가 있는데 큰아이는 시키는 대로만 하고 자신의 의견이나 사랑을 표현하지 않습니다. 반면 작은아이는 부모님을 서운케 할 때도 있지만 이내 돌이키며 사랑스럽게 매달리기도 하고 여러 가지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한다면 어느 자녀가 더 사랑스럽겠습니까?
또한 가정에 로봇이 있어 밥도 짓고 청소도 하며 모든 시중을 다 들어준다고 해서 자녀보다 로봇이 더 사랑스러울까요? 로봇이 아무리 유익하다 해도 자녀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늘에도 순종을 잘하는 천군 천사들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성과 감정을 가지고 자유 의지 가운데 즐거이 순종하는 자녀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창조하되 자유 의지를 주시고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며 참 자녀로 나오기까지 참으로 오랜 세월을 참고 기다리며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경작이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를 통해 열매를 얻는 과정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경작하는 수고를 통해 참 자녀를 얻고자 이 땅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번째 씨를 심으셨습니다.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은 마음밭을 개간하는 경작의 과정을 거쳐야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6장 5~6절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셨다’고 나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범죄할 줄을 모르셨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만세 전에 이미 모든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럼에도 사람을 창조하여 경작하시는 이유는 자녀를 기르는 부모의 심정을 안다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자녀를 낳아 기른다는 것이 얼마나 고생스러운 일입니까? 잉태한 후 열 달 동안 여러 고통이 따르고, 해산할 때에도 큰 수고를 해야 합니다. 또 자녀를 먹이고 입히며 가르치기 위해 힘써 일하며 밤낮으로 수고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는 이유는 부모의 사랑을 느끼고 부모를 진정으로 사랑해 줄 수 있는 대상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부모의 마음을 헤아려서 극진히 섬기고 효도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불순종하고 타락하여 근심할 것을 아셨지만,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가 나올 것을 믿기에 기꺼이 경작하시는 것입니다.
2.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시는 하나님
농부가 열심히 땅을 갈고 씨를 뿌리며 농사를 짓는 이유는 추수 때에 많은 소산을 거둘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추수 때 보면 알곡만 있는 것이 아니라 쭉정이도 섞여 나옵니다. 이때 알곡은 창고에 들이고, 쭉정이는 불에 태웁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인간 경작을 마친 뒤에는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십니다. 마태복음 3장 12절에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참 자녀인 알곡은 천국에 들이지만 쭉정이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지십니다.
알곡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진리 안에 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즉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말씀대로 행하는 빛의 자녀들이지요.
반면에 쭉정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거나 입술로는 믿는다 하지만 말씀 안에 살지 않고 여전히 악을 행하며 세상의 정욕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면 사랑의 하나님께서 쭉정이는 왜 영원히 꺼지지 않는 지옥불에 던지시는 것일까요?
디모데전서 2장 4절에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 원하시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여러 방법으로 깨우쳐 주시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런데도 자유 의지 가운데 끝까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거스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했으므로 쭉정이에 속하며 짐승과 다를 바 없습니다(전 3:18). 하지만 영원불멸하는 영혼을 지니고 있기에 영이 없는 짐승처럼 아예 무 상태로 멸해 버릴 수도 없고 알곡 성도와 함께 천국에 들이실 수도 없습니다. 그러니 천국과 구별하여 지옥을 두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농부가 추수 때에 알곡을 거두어 쭉정이를 함께 두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온갖 죄악이 가득한 쭉정이와 같은 존재가 알곡 성도와 영원히 함께 산다면 아름다운 천국이 죄악으로 오염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지옥을 따로 두신 것도 근본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3. 인간 경작과 백보좌 대심판
농부가 씨를 뿌리고 거두는 일이 한 해로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같이 하나님께서도 인간 경작을 멈추지 않고 계십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려 주시며 노아, 아브라함, 모세, 엘리야, 베드로, 바울 등과 같은 믿음의 선진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주의 종과 일꾼들을 통해 깨어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하시며 끊임없이 인간을 경작하고 계십니다.
그러나 시작이 있으면 반드시 끝이 있듯이, 인간 경작도 한없이 계속되지는 않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3절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말씀하신 대로 때가 이르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인간 경작의 섭리가 마쳐집니다.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창조 사역을 마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것처럼, 인간 경작의 역사가 끝나면 천년왕국을 보냅니다. 천년왕국이 끝난 후에는 백보좌 대심판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 11~12절에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말씀한 대로 심판이 이루어집니다.
알곡 성도는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상급 심판을 받고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합당한 천국 처소에 들어갑니다. 하지만 쭉정이는 지옥불에 들어가 영원히 고통받습니다. 이러한 인간 경작의 섭리를 깨달아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알곡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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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2. ( ) 안에 알맞은 단어를 써 보세요.
알곡이란 ( )를 영접하여 진리 안에 살면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을 말한다. 쭉정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거나 입술로는 믿는다 하지만 ( ) 안에 살지 않고 여전히 악을 행하며 ( )을 좇아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3. 사람의 가치를 잃은 쭉정이는 결국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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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부 3과‘선악과를 두신 이유’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알파와 오메가’란?
문명의 시작과 끝이 아버지 하나님께로 말미암았다는 뜻이다.
‘처음과 나중’이란?
주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시고, 재림하심으로써 구속 사업을 마무리하신다는 뜻이다.
‘시작과 끝’이란?
성령님께서 인간 경작의 시작과 끝이 되신다는 뜻이다.
2015-01-09
제2과창조주 하나님
창 1:1
읽을말씀 : 창 1:1 | 외울말씀 : 창 2:7 l 참고 말씀: 롬 1:20
교육목표 : 창조론과 진화론의 차이점을 알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뿐 아니라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사랑과 섭리를 깨닫게 한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창조주이며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배운다면, 진리를 알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이 교과과정에서 진화론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세계적인 스테디셀러인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구체적이면서도 명확하게 나옵니다. 특히 창세기 1장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시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신 대략의 과정과 우주 만물을 비롯해 사람을 창조하신 역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주 만물을 설계하고 창조하셨다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 중심으로 그분의 뜻을 좇아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신본주의(神本主義) 사상이지요. 반면 진화론은 모든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자연 발생하여 하등에서 고등으로, 동종에서 이종으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유인원이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고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근원을 우연의 산물로 보며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 사상이 팽배합니다. 이들은 삶의 목적을 이 땅에 두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며 살아갑니다. 인생을 즐기며 마음껏 누리는 것을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지만 참된 기쁨과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결국 육체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지니 얼마나 허무하고 공허한 인생입니까?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반드시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장난감에서부터 하늘을 나는 비행기까지 누군가가 만들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천하 만물도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이 있어 그분의 마음에 맞게 설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3절 이하를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천하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도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증거는 성경뿐 아니라 우주 만물 안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우주 만물을 돌아보면 동서남북과 사계절이 있고,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의 교차, 바람과 구름의 이동 등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운행됩니다. 이것을 어찌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가 아닌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사람이나 짐승, 새, 물고기 등 모든 동물이 한결같이 눈은 두 개요, 코는 하나에 입도 하나, 귀는 두 개요 그 위치 선정까지 똑같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조물주 한 분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천지 만물을 바라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느낄 수 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이래 어느 누구도 “나는 창조주 하나님을 몰라서 못 믿었습니다.”라고 핑계할 수 없도록 지금도 끊임없이 성령의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2.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지요(창 1:27~28).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은 어떻게 만드셨을까요?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흙이란 진흙을 말합니다. 뛰어난 도공은 진흙을 사용하여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대를 호가하는 도자기를 만들어 냅니다. 어떤 사람은 질그릇이나 기왓장, 혹은 값싼 벽돌을 만들어 내지요. 이처럼 누가 어떤 재료로 어떤 물건을 만들었느냐에 따라 가치가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하물며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형상을 따라 진흙으로 사람을 빚으셨으니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로 창조하셨겠습니까. 그리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영 곧 생령이 되었습니다.
생기란 하나님의 근본 된 능력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생령으로 창조된 과정은 형광등이 빛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형광등이 빛을 내게 하려면 먼저 잘 조립된 형광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빛을 낼 수 없으며, 전원과 연결되어 전류가 흘러야 비로소 빛을 냅니다.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이지요. 아무런 움직임 없이 죽어 있는 듯한 물건인데 전원을 연결하면 화면에 갖가지 영상이 나타납니다. 텔레비전은 외관상으로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오밀조밀한 부속품이 매우 복잡하게 조립되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흙으로 사람의 형상만 빚은 것이 아닙니다. 설계도대로 사람의 형상을 빚으시는 하나님의 손끝에서 근본의 빛이 나갔습니다. 그러자 몸 안에 오장육부와 뼈와 핏줄과 신경조직이 완벽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전류를 통하게 하듯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곧 피가 돌고 호흡하며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뇌세포 안에 기억 장치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람이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이 기억 장치에 저장되는데 이것이 지식입니다. 이 지식을 떠올리는 것이 생각이며, 지식을 적절히 배합하여 활용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피조물인 사람도 지혜와 지식이 더하여 문자나 사람의 음성을 인식하여 대화할 수 있는 컴퓨터까지 만들어 내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빚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을 만드시는 것이 어찌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참으로 쉬운 일이지만, 한계가 있는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신기하고 측량하기 어려운 일입니다(시 139:14).
3.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도록 가르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창조하신 후,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시고 그곳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창 2:8~15). 갓 태어난 자녀는 본능적인 생리작용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장하면서 부모, 형제, 교사 등을 통해 각종 교육을 받아야 인간답게 살아갑니다. 아담도 처음 생령이 되었을 때는 몸은 성인의 모습이지만 갓 태어난 아기처럼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천지 만물의 조화와 영계의 법칙, 진리의 말씀 등 필요한 것들을 자상하고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이런 것은 먹어도 되지만 저런 것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지요. 그런데 아담은 오랜 세월이 지나자 하나님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죄의 삯인 사망’이 임하게 됩니다(롬 6:23). 사람에게 있어 주인의 역할을 하는 영이 죽게 되었고, 결국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는 죄인으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인간 경작을 통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참 자녀를 얻어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고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고 풍성한 사랑을 공급하시며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자유 의지 가운데 순종하는 축복의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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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조주 하나님에 관련된 것을 모두 고르시오.
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다.
② 사람이나 짐승, 새, 물고기가 한결같이 눈은 두 개요, 코는 하나에 입도 하나, 귀는 두 개요, 그 위치 선정까지 똑같은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③ 진화론은 학교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참된 진리이다.
④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의 교차, 바람과 구름의 이동 등 우주 안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 속에 질서정연하게 운행된다.
2. 창세기 1장을 읽고 천지 만물이 창조된 순서를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부 2과‘사람을 경작하시는 하나님’을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생기’란?
하나님의 근본 된 능력으로 생명의 역사를 일으킨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의 코에 불어넣으신 생기가 아담의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포핵에 들어가자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령 곧 살아 있는 영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생령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범죄함으로 죽은 영이 되었고 더 이상 영의 공간인 에덴동산에 거할 수 없게 되었다.
교육목표 : 창조론과 진화론의 차이점을 알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을 뿐 아니라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사랑과 섭리를 깨닫게 한다.
어린 시절부터 ‘하나님은 살아 계시고 창조주이며 전지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배운다면, 진리를 알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일이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이 교과과정에서 진화론의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지만 세계적인 스테디셀러인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창조 역사가 구체적이면서도 명확하게 나옵니다. 특히 창세기 1장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시며 창조주 하나님께서 지구를 창조하신 대략의 과정과 우주 만물을 비롯해 사람을 창조하신 역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론은 하나님께서 친히 우주 만물을 설계하고 창조하셨다는 이론입니다. 그래서 피조물인 사람은 하나님 중심으로 그분의 뜻을 좇아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는 신본주의(神本主義) 사상이지요. 반면 진화론은 모든 생물이 무생물로부터 자연 발생하여 하등에서 고등으로, 동종에서 이종으로 진화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유인원이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고 고집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진화론을 믿는 사람들은 생명의 근원을 우연의 산물로 보며 창조주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인본주의(人本主義) 사상이 팽배합니다. 이들은 삶의 목적을 이 땅에 두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며 살아갑니다. 인생을 즐기며 마음껏 누리는 것을 최대의 행복으로 여기지만 참된 기쁨과 평안을 얻지 못합니다. 결국 육체는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지니 얼마나 허무하고 공허한 인생입니까?
이 세상의 모든 물건은 반드시 만든 사람이 있습니다. 장난감에서부터 하늘을 나는 비행기까지 누군가가 만들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지 결코 저절로 생겨난 것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천하 만물도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께서 분명한 목적이 있어 그분의 마음에 맞게 설계하여 창조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장 3절 이하를 자세히 읽어보면 하나님께서 천하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에도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고 말씀합니다.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증거는 성경뿐 아니라 우주 만물 안에도 무수히 많습니다. 우주 만물을 돌아보면 동서남북과 사계절이 있고,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의 교차, 바람과 구름의 이동 등 모든 것이 질서정연하게 운행됩니다. 이것을 어찌 하나님의 창조의 섭리가 아닌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더구나 사람이나 짐승, 새, 물고기 등 모든 동물이 한결같이 눈은 두 개요, 코는 하나에 입도 하나, 귀는 두 개요 그 위치 선정까지 똑같습니다. 이것만 보아도 조물주 한 분에 의해 창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로마서 1장 20절에는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천지 만물을 바라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느낄 수 있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고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세 이래 어느 누구도 “나는 창조주 하나님을 몰라서 못 믿었습니다.”라고 핑계할 수 없도록 지금도 끊임없이 성령의 역사를 베풀고 계십니다.
2.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첫 사람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지요(창 1:27~28).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은 어떻게 만드셨을까요? 창세기 2장 7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흙이란 진흙을 말합니다. 뛰어난 도공은 진흙을 사용하여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대를 호가하는 도자기를 만들어 냅니다. 어떤 사람은 질그릇이나 기왓장, 혹은 값싼 벽돌을 만들어 내지요. 이처럼 누가 어떤 재료로 어떤 물건을 만들었느냐에 따라 가치가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하물며 전지전능한 하나님께서 친히 자기 형상을 따라 진흙으로 사람을 빚으셨으니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는 존재로 창조하셨겠습니까. 그리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살아 있는 영 곧 생령이 되었습니다.
생기란 하나님의 근본 된 능력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생령으로 창조된 과정은 형광등이 빛을 내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형광등이 빛을 내게 하려면 먼저 잘 조립된 형광등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상태로는 빛을 낼 수 없으며, 전원과 연결되어 전류가 흘러야 비로소 빛을 냅니다.
텔레비전도 마찬가지이지요. 아무런 움직임 없이 죽어 있는 듯한 물건인데 전원을 연결하면 화면에 갖가지 영상이 나타납니다. 텔레비전은 외관상으로 단순해 보이지만 그 속에는 오밀조밀한 부속품이 매우 복잡하게 조립되어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단순히 흙으로 사람의 형상만 빚은 것이 아닙니다. 설계도대로 사람의 형상을 빚으시는 하나님의 손끝에서 근본의 빛이 나갔습니다. 그러자 몸 안에 오장육부와 뼈와 핏줄과 신경조직이 완벽하게 만들어졌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전류를 통하게 하듯 생기를 불어넣으시니 곧 피가 돌고 호흡하며 움직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뇌세포 안에 기억 장치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사람이 보고 듣고 체험한 것이 기억 장치에 저장되는데 이것이 지식입니다. 이 지식을 떠올리는 것이 생각이며, 지식을 적절히 배합하여 활용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피조물인 사람도 지혜와 지식이 더하여 문자나 사람의 음성을 인식하여 대화할 수 있는 컴퓨터까지 만들어 내는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빚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을 만드시는 것이 어찌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참으로 쉬운 일이지만, 한계가 있는 사람으로서는 너무나 신기하고 측량하기 어려운 일입니다(시 139:14).
3.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도록 가르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창조하신 후, 에덴동산을 창설하셨습니다. 그리고 아담을 에덴동산으로 이끌어 들이시고 그곳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습니다(창 2:8~15). 갓 태어난 자녀는 본능적인 생리작용 외에는 거의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성장하면서 부모, 형제, 교사 등을 통해 각종 교육을 받아야 인간답게 살아갑니다. 아담도 처음 생령이 되었을 때는 몸은 성인의 모습이지만 갓 태어난 아기처럼 아무것도 입력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천지 만물의 조화와 영계의 법칙, 진리의 말씀 등 필요한 것들을 자상하고 상세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부모가 어린 자녀에게 “이런 것은 먹어도 되지만 저런 것은 절대로 먹으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아담에게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가르쳐 주셨지요. 그런데 아담은 오랜 세월이 지나자 하나님 말씀을 소홀히 여기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죄의 삯인 사망’이 임하게 됩니다(롬 6:23). 사람에게 있어 주인의 역할을 하는 영이 죽게 되었고, 결국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는 죄인으로 타락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니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인간 경작을 통해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참 자녀를 얻어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고자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지금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알려 주시고 풍성한 사랑을 공급하시며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자유 의지 가운데 순종하는 축복의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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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창조주 하나님에 관련된 것을 모두 고르시오.
①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가르쳐 주셨다.
② 사람이나 짐승, 새, 물고기가 한결같이 눈은 두 개요, 코는 하나에 입도 하나, 귀는 두 개요, 그 위치 선정까지 똑같은 것은 하나님의 역사이다.
③ 진화론은 학교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참된 진리이다.
④ 지구의 자전과 공전, 밀물과 썰물의 교차, 바람과 구름의 이동 등 우주 안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창조 섭리 속에 질서정연하게 운행된다.
2. 창세기 1장을 읽고 천지 만물이 창조된 순서를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부 2과‘사람을 경작하시는 하나님’을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생기’란?
하나님의 근본 된 능력으로 생명의 역사를 일으킨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의 코에 불어넣으신 생기가 아담의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포핵에 들어가자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생령 곧 살아 있는 영적인 존재가 된 것이다. 그러나 생령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범죄함으로 죽은 영이 되었고 더 이상 영의 공간인 에덴동산에 거할 수 없게 되었다.
2015-01-02
제1과새롭게 하소서
눅 5:38
읽을말씀 : 눅 5:38 | 외울말씀 : 엡 5:9 ㅣ 참고 말씀:롬 12:3
교육목표 : 새해를 맞아 성결을 사모하며 주 안에서 날마다 새롭게 변화를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새해가 되면 나름대로 목표를 정하고 새롭게 마음을 결단합니다. 특히 성결을 사모하는 성도들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리라” 고백하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사람이 되고자 힘쓰게 됩니다. 하루에 성경을 한 장 이상 읽고 성구를 외우며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은 물론,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연초에 결심하고 고백한 것을 변개치 않으며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전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의 모든 것을 살피시며 사람의 깊은 곳까지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피조물인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속이려 합니다. 즉 진실하지 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초대교회 당시 하나님을 속였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재산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욕심이 틈타자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던 재산 중 일부를 감추고 사도들 앞에 내놓았지요.
그때 베드로가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책망합니다. 그러자 남편 아나니아의 혼이 떠나 죽고 말았습니다. 세 시간쯤 후에 그 영문을 모르고 들어온 아내 삽비라도 남편과 똑같이 하나님의 종 베드로를 속임으로 혼이 떠나 죽고 맙니다. 결국 이들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성령을 속이는 것은 곧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으며, 하나님의 종을 속이는 것 또한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초대교회 당시만이 아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진실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거짓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으면서 사모하는 척하고, 믿음이 없으면서 있는 척 외식하지요.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눈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기 자신까지 속이게 됩니다. 자신이 외식하고 있어도 깨닫지 못하고 충성하는 일꾼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이 외에도 자기 공적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 나라에 무익한 일을 추진하기도 하고, 누가 지켜볼 때는 성실하게 하고 혼자 있을 때는 불성실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지요. 에베소서 5장 9절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충성함으로 진실한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섬김이란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상대를 섬기기 위해 내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들여 희생할 때가 많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아무리 상대에게 많은 것을 주고 희생했다고 하더라도 먼저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면 빛을 발할 수가 없지요.
예를 들어, 직원에게 어떤 일을 부탁했더니 열심히 일은 하는데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고 무뚝뚝하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다음에 일을 부탁하기가 어렵고 망설여지니 아무리 일을 잘해도 “섬기며 일한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무섭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으니 자신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까지 섬김의 기준에서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서로 간에 얼마나 사랑과 희생으로 섬기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가령, 교회 안에는 여러 부서 사람들이 함께 쓰는 화장실이나 복도, 계단 등의 공용 장소가 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은 아무리 화장실이 지저분해도 ‘내 업무가 아니니까’ 하고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치 나의 일처럼 깨끗이 청소합니다. 같은 부서 안에서도 누가 아침에 일찍 와서 책상을 닦아 주는지, 쓰레기통을 비우며 청소를 도와주는지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전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행하는지 낱낱이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하게 되면 마음이 불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내 업무도 아닌데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나는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많은데, 이런 사소한 일들은 업무가 적은 사람들이나 직분이 낮은 사람들이 해 줘야 하지 않나?’ 하면서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일했다면 비록 행함으로는 섬겼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상급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일을 해서 결과만 내면 인정을 받지만, 교회에서는 믿음과 사랑으로 행할 때 상급이 됩니다. 세상에서는 돈을 받는 만큼 자기의 업무만 하면 되지만, 교회에서는 보직에 해당되는 일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하나님의 일이 모두 자신의 업무입니다. 겨우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씀씀이를 넓혀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어야 하지요. 세상에서는 낮은 사람이 섬기고 높은 사람이 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대하든지 행위적으로만 섬길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 섬길 때 큰 자가 되어 이 땅에서도 사람들의 존중을 받고 천국에서도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3.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흘려버리지 않고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2장 13절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말씀했습니다.
처음부터 진리대로만 행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쉼 없이 노력해 가야 하지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보시고 영으로 변화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다소 부족하다 할지라도 순종하여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다듬어 일꾼으로 쓰시지요.
가령, 사람들이 처음 사명을 받았을 때는 사명 감당을 위해서 반드시 성결되리라 다짐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직분이 높아지면서 마음의 할례에 대한 간절함이 식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는 진리를 지식으로만 알고 행치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악을 덮어 놓고 절제하므로 크게 악을 행하거나 화평을 깨는 일은 없습니다. 본인이 할 일은 하고, 있어야 할 곳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는 잘하고 있다 생각하지요.
혹여 나는 이러한 모습은 있지 않나 항상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예배나 기도회에 습관적으로 참석하거나 마지못해 앉아 있는지 하나하나 돌아보아야 하지요. 그 상태가 지속되면 신앙이 정체되어 성령의 충만함이 식어지고, 자칫 구원받기 힘든 육체의 일까지 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제단에서 겨우 구원의 문제에 연연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지요.
주님을 영접하여 첫사랑으로 충만할 때는 하나님 나라에 열심히 충성 봉사합니다. 예배나 기도에 늦지 않기 위해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사모함으로 단숨에 달려오지요. 생명의 말씀을 송이꿀처럼 달게 들으며 하나라도 깨우치고 변화되기 위해 금식하며 불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멈춰 있으니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죽은 믿음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고 진실한 행함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라시지요.
누가복음 5장 38절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만들고 계시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묵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진실한 마음과 행함으로 섬길 뿐 아니라 서로 화평하며 질서를 좇아 하나님의 나라를 창대히 이루는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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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 충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 )해야 합니다.
2) ( )이 있어야 합니다.
3) ( )이 있어야 합니다.
2.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진실, 섬김, 행함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몇 점을 주실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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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부 1과‘창조주 하나님’을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들은 부부이며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 신자이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하나님께 드렸다. 그런데 이들은 땅을 팔아 일부는 감추고 나머지를 전부라고 속여 사도들 앞에 내놓는다. 결국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인 죄로 혼이 떠나 죽게 된다.
교육목표 : 새해를 맞아 성결을 사모하며 주 안에서 날마다 새롭게 변화를 받아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께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한다.
대부분의 사람은 새해가 되면 나름대로 목표를 정하고 새롭게 마음을 결단합니다. 특히 성결을 사모하는 성도들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리라” 고백하며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사람이 되고자 힘쓰게 됩니다. 하루에 성경을 한 장 이상 읽고 성구를 외우며 기도를 쉬지 않는 것은 물론,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연초에 결심하고 고백한 것을 변개치 않으며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전진해 나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진실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의 모든 것을 살피시며 사람의 깊은 곳까지 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입니다. 그러니 피조물인 사람이 아무리 하나님을 속이려 해도 속일 수가 없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속이려 합니다. 즉 진실하지 못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지요.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초대교회 당시 하나님을 속였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하게 된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그렇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재산을 팔아서 하나님께 드리고자 했던 사람들이었지만 욕심이 틈타자 하나님께 드리려고 했던 재산 중 일부를 감추고 사도들 앞에 내놓았지요.
그때 베드로가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라고 책망합니다. 그러자 남편 아나니아의 혼이 떠나 죽고 말았습니다. 세 시간쯤 후에 그 영문을 모르고 들어온 아내 삽비라도 남편과 똑같이 하나님의 종 베드로를 속임으로 혼이 떠나 죽고 맙니다. 결국 이들은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성령을 속이는 것은 곧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으며, 하나님의 종을 속이는 것 또한 하나님을 속이는 것과 같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초대교회 당시만이 아니라,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이 진실하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 거짓으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모하지 않으면서 사모하는 척하고, 믿음이 없으면서 있는 척 외식하지요. 그러다가 다른 사람의 눈만 속이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자기 자신까지 속이게 됩니다. 자신이 외식하고 있어도 깨닫지 못하고 충성하는 일꾼이라고 착각하는 것이지요.
이 외에도 자기 공적을 세우기 위해 하나님 나라에 무익한 일을 추진하기도 하고, 누가 지켜볼 때는 성실하게 하고 혼자 있을 때는 불성실하게 합니다. 이런 사람은 진실과는 거리가 멀지요. 에베소서 5장 9절에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하신 대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충성함으로 진실한 열매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설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섬김이 있어야 합니다
섬김이란 ‘자신을 희생하며 상대를 편안하게 해 주는 것’입니다. 상대를 섬기기 위해 내 시간과 물질과 노력을 들여 희생할 때가 많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아무리 상대에게 많은 것을 주고 희생했다고 하더라도 먼저 상대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면 빛을 발할 수가 없지요.
예를 들어, 직원에게 어떤 일을 부탁했더니 열심히 일은 하는데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고 무뚝뚝하다면 어떻겠습니까? 그 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다음에 일을 부탁하기가 어렵고 망설여지니 아무리 일을 잘해도 “섬기며 일한다.”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무섭다.”는 말을 들을 수도 있으니 자신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까지 섬김의 기준에서 돌아보아야 합니다.
다음으로, 서로 간에 얼마나 사랑과 희생으로 섬기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가령, 교회 안에는 여러 부서 사람들이 함께 쓰는 화장실이나 복도, 계단 등의 공용 장소가 있습니다. 이때 어떤 사람은 아무리 화장실이 지저분해도 ‘내 업무가 아니니까’ 하고 신경을 쓰지 않습니다. 반면 어떤 사람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마치 나의 일처럼 깨끗이 청소합니다. 같은 부서 안에서도 누가 아침에 일찍 와서 책상을 닦아 주는지, 쓰레기통을 비우며 청소를 도와주는지 하나님께서는 다 알고 계십니다. 누가 하나님의 전을 사랑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행하는지 낱낱이 지켜보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이 원하는 업무 외에 다른 일을 하게 되면 마음이 불편한 경우도 있습니다. ‘내 업무도 아닌데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나는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많은데, 이런 사소한 일들은 업무가 적은 사람들이나 직분이 낮은 사람들이 해 줘야 하지 않나?’ 하면서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불편한 마음으로 일했다면 비록 행함으로는 섬겼을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상급이 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는 일을 해서 결과만 내면 인정을 받지만, 교회에서는 믿음과 사랑으로 행할 때 상급이 됩니다. 세상에서는 돈을 받는 만큼 자기의 업무만 하면 되지만, 교회에서는 보직에 해당되는 일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하나님의 일이 모두 자신의 업무입니다. 겨우 자신에게 주어진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씀씀이를 넓혀 더 많은 것을 품을 수 있어야 하지요. 세상에서는 낮은 사람이 섬기고 높은 사람이 섬김을 받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대하든지 행위적으로만 섬길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으로 섬길 때 큰 자가 되어 이 땅에서도 사람들의 존중을 받고 천국에서도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3. 행함이 있어야 합니다
행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흘려버리지 않고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로마서 2장 13절에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말씀했습니다.
처음부터 진리대로만 행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래도 쉼 없이 노력해 가야 하지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 그 노력을 보시고 영으로 변화될 수 있는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다소 부족하다 할지라도 순종하여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다듬어 일꾼으로 쓰시지요.
가령, 사람들이 처음 사명을 받았을 때는 사명 감당을 위해서 반드시 성결되리라 다짐합니다. 그런데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직분이 높아지면서 마음의 할례에 대한 간절함이 식어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는 진리를 지식으로만 알고 행치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사람은 악을 덮어 놓고 절제하므로 크게 악을 행하거나 화평을 깨는 일은 없습니다. 본인이 할 일은 하고, 있어야 할 곳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는 잘하고 있다 생각하지요.
혹여 나는 이러한 모습은 있지 않나 항상 점검해 봐야 합니다. 예배나 기도회에 습관적으로 참석하거나 마지못해 앉아 있는지 하나하나 돌아보아야 하지요. 그 상태가 지속되면 신앙이 정체되어 성령의 충만함이 식어지고, 자칫 구원받기 힘든 육체의 일까지 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하는 제단에서 겨우 구원의 문제에 연연하는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되지요.
주님을 영접하여 첫사랑으로 충만할 때는 하나님 나라에 열심히 충성 봉사합니다. 예배나 기도에 늦지 않기 위해 식사를 거르면서까지 사모함으로 단숨에 달려오지요. 생명의 말씀을 송이꿀처럼 달게 들으며 하나라도 깨우치고 변화되기 위해 금식하며 불같이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멈춰 있으니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결코 우리가 죽은 믿음에 머물러 있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깊이 느끼고 진실한 행함으로 변화되기를 간절히 바라시지요.
누가복음 5장 38절에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새로운 땅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우리의 심령을 새롭게 만들고 계시는 중요한 시점입니다. 이러한 때에 우리의 묵은 마음을 제하여 버리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을 진실한 마음과 행함으로 섬길 뿐 아니라 서로 화평하며 질서를 좇아 하나님의 나라를 창대히 이루는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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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항상 새로운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 충성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 )해야 합니다.
2) ( )이 있어야 합니다.
3) ( )이 있어야 합니다.
2. 여러분이 스스로에게 진실, 섬김, 행함에 점수를 준다면 몇 점을 주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몇 점을 주실 수 있을까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상) 책자 1부 1과‘창조주 하나님’을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들은 부부이며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 신자이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발적으로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하나님께 드렸다. 그런데 이들은 땅을 팔아 일부는 감추고 나머지를 전부라고 속여 사도들 앞에 내놓는다. 결국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속인 죄로 혼이 떠나 죽게 된다.
2014-12-26
제52과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
삿 11:30~35
읽을말씀 : 삿 11:30~35 | 외울말씀 : 신 23:21 ㅣ 참고 말씀:민 30:2
교육목표 :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 서원하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킴으로 하나님께 인정과 사랑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만약 여러분이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내일 3시에 만납시다.”라고 약속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다음 날 대통령에게 “급한 볼일이 있으니 10분만 늦게 가겠습니다.”라고 한다든가, 아무 말도 없이 약속을 어길 분이 과연 계실까요?
하물며 한 나라의 대통령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천지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바꾸거나 어기는 일은 심히 무례하고 악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입다를 통해 약속을 지키는 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입다의 서원과 전쟁에서의 승리
입다는 이스라엘 길르앗 지방의 큰 용사로 아버지 길르앗이 기생에게서 얻은 아들입니다. 그런데 길르앗의 본부인을 통해 태어난 아들들이 입다를 미워하여 상속권을 주지 않으려고 그를 내쫓아 버리지요. 돕 땅으로 도망간 입다는 그곳에서 많은 추종자들을 얻어 큰 세력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비롯해 온갖 신들을 섬겼습니다. 이로 인해 18년간이나 블레셋과 암몬 사람들에 의해 학대받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신 우상을 숭배하니 지켜 주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심히 곤고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습니다(삿 10:10).
그러한 상황에 암몬 자손이 쳐들어옵니다. 이스라엘은 싸우기 위해 미스바에 모여 진을 쳤지만 군대를 통솔할 장수가 없었습니다. 고심하던 길르앗 장로들은 결국 돕에 거하는 입다를 찾아가 자신들의 장관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지요. 이에 입다는 자기의 동족을 구하기 위해 추종 세력을 이끌고 돌아옵니다.
입다는 먼저 암몬 왕과 협상을 해 보지만 암몬 왕은 듣지 않습니다. 결국 전쟁에 출전하게 된 입다는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라고 서원을 하지요(삿 11:30~31). 입다의 간절한 서원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암몬 자손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큰 승리를 거두게 하십니다.
그런데 입다가 승리하여 집에 이르렀을 때 처음 맞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사랑스런 무남독녀였습니다. 아버지의 승전이 너무 기뻐 춤추며 영접하였지요. 만일 여러분이 멀리 출장을 다녀오는데 하나밖에 없는 딸이 문밖에서 기다렸다가 반갑게 맞이해 주면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사사기 11장 35절을 보면 입다는 옷을 찢으며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라고 괴로운 심정을 토로합니다. 아무리 사랑스런 무남독녀라 해도 한 번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변개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라고 하며 하나님과의 약속을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입다의 딸 역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며 순종하지요.
2. 사랑스런 딸을 번제로 드리게 된 입다
혹자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끔찍한 서원을 하게 하셨을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번제로 드리는 것을 결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입다에게 그런 서원을 하라고 요구하신 적도 없는데 입다가 급박한 상황에서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조급하게 서원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번제를 드리는 것이 오늘날의 예배처럼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처럼, 구약의 사람들은 가장 귀한 것을 번제로 드려 향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렸지요.
그러면 왜 입다는 자신을 처음으로 영접하는 사람을 번제로 드린다고 했을까요? 처음 것은 그만큼 소중하고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출 23:19). 입다는 급하고 간절했기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응답받기 위해 특별한 의미를 가진 첫 번째 맞는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는, 하나님께서 미리 수양을 준비해 두셔서 이삭이 죽지 않도록 해 주셨는데, 왜 입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이는 하나님께 대한 입다의 진실한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어 후세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 교훈을 삼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지요.
그러면 입다의 딸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맞는 죽음을 피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이나 사도 바울도 중심에서 하나님을 믿고 사랑했기에 기쁨으로 순교하였지요.
아브라함이나 입다의 입장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자녀를 번제로 드리는 것보다 차라리 자신이 대신 불 속으로 뛰어들기가 더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나 사랑하는 자녀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을 더 귀히 여겼기에 하나밖에 없는 자녀라도 번제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3. 올바른 서원과 이행의 중요성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우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할 때 급하다고 말을 함부로 내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잠 18:21). 꼭 서원이 아니어도 함부로 말을 내지 말고, 하나님께 약속했다면 크든 작든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신명기 23장 2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말씀하시며 서원 이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요.
민수기 30장 2절에는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입다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도 번제 즉 짐승처럼 잡아 살은 살대로, 뼈는 뼈대로 가른 후 불에 태워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렸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입다의 중심을 아셨기에 그의 서원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약속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합니다. 믿음의 형제나 세상 사람과의 약속, 혹은 자신에게 마음으로 한 약속까지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마음에 거짓과 간사함이 없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지요.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4. 서원과 약속을 지켰을 때 따르는 축복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을 그대로 지켜 행할 때,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축복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설령 서원한 것이 지키기 어렵더라도 마음에 결심하고 신속히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축복을 받지요. 그런데 서원한 것을 더디 행하면 그만큼 축복도 더딥니다. 만일 서원해 놓고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담이 되어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예 서원이나 약속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까요? 아니지요.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했습니다. 믿음이 없어 아무것도 심지 않으면 거둘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정성껏 심으면 하나님께서는 30배, 60배, 100배로 넘치게 거두게 하십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기도로, 봉사로, 물질로 심는 사람들은 놀라운 축복을 받아 마음껏 영광 돌리는 복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도 핑계 대지 않고 서원과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마음 중심이 되면 하나님께서도 반드시 신실하게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실 뿐만 아니라(민 23:19),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좋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마음에 결심한 바, 서원한 바를 반드시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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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길르앗의 아들로, 암몬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① 돌라 ② 야일 ③ 입다 ④ 기드온
2.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반갑게 맞이해 준 사람은 누구였나요? ( )
3. 왜 입다는 자신을 처음 영접하는 사람을 번제로 드린다고 했을까요?
( )
4.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할 때 급하다고 말을 함부로 내어서는 안 된다.
② 하나님께 약속했다면 크든 작든 반드시 지켜야 한다.
③ 하나님 앞에 서원이나 약속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④ 서원한 것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축복으로 역사해 주신다.
● 금주 과제
한 해 동안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있는지 점검해 보고 신속히 지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암몬 왕과 협상하는 입다’ (사사기 11장)
암몬과의 전쟁을 앞둔 입다는 먼저 암몬 왕과 외교적인 협상을 한다. 암몬 왕은 전에 빼앗긴 땅을 돌려 달라고 했고 입다는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을 침략한 적도 없고, 아모리 왕 시혼과도 전쟁을 원치 않았으나 먼저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때 취한 시혼 왕의 땅은 이스라엘 것이지 암몬 족속의 것이 아니며, 그 일은 오래되었는데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한다. 그러나 암몬 왕은 입다의 말을 듣지 않고 전쟁을 일으키고 만다.
교육목표 :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 서원하고 약속한 것은 반드시 지킴으로 하나님께 인정과 사랑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만약 여러분이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내일 3시에 만납시다.”라고 약속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다음 날 대통령에게 “급한 볼일이 있으니 10분만 늦게 가겠습니다.”라고 한다든가, 아무 말도 없이 약속을 어길 분이 과연 계실까요?
하물며 한 나라의 대통령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천지 만물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과의 약속을 일방적으로 바꾸거나 어기는 일은 심히 무례하고 악한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의 약속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 입다를 통해 약속을 지키는 선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입다의 서원과 전쟁에서의 승리
입다는 이스라엘 길르앗 지방의 큰 용사로 아버지 길르앗이 기생에게서 얻은 아들입니다. 그런데 길르앗의 본부인을 통해 태어난 아들들이 입다를 미워하여 상속권을 주지 않으려고 그를 내쫓아 버리지요. 돕 땅으로 도망간 입다는 그곳에서 많은 추종자들을 얻어 큰 세력을 형성하게 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비롯해 온갖 신들을 섬겼습니다. 이로 인해 18년간이나 블레셋과 암몬 사람들에 의해 학대받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증스럽게 여기신 우상을 숭배하니 지켜 주실 수 없었던 것입니다. 심히 곤고해진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습니다(삿 10:10).
그러한 상황에 암몬 자손이 쳐들어옵니다. 이스라엘은 싸우기 위해 미스바에 모여 진을 쳤지만 군대를 통솔할 장수가 없었습니다. 고심하던 길르앗 장로들은 결국 돕에 거하는 입다를 찾아가 자신들의 장관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지요. 이에 입다는 자기의 동족을 구하기 위해 추종 세력을 이끌고 돌아옵니다.
입다는 먼저 암몬 왕과 협상을 해 보지만 암몬 왕은 듣지 않습니다. 결국 전쟁에 출전하게 된 입다는 “주께서 과연 암몬 자손을 내 손에 붙이시면 내가 암몬 자손에게서 평안히 돌아올 때에 누구든지 내 집 문에서 나와서 나를 영접하는 그는 여호와께 돌릴 것이니 내가 그를 번제로 드리겠나이다”라고 서원을 하지요(삿 11:30~31). 입다의 간절한 서원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암몬 자손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큰 승리를 거두게 하십니다.
그런데 입다가 승리하여 집에 이르렀을 때 처음 맞이한 사람은 다름 아닌 자신의 사랑스런 무남독녀였습니다. 아버지의 승전이 너무 기뻐 춤추며 영접하였지요. 만일 여러분이 멀리 출장을 다녀오는데 하나밖에 없는 딸이 문밖에서 기다렸다가 반갑게 맞이해 주면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사사기 11장 35절을 보면 입다는 옷을 찢으며 “슬프다 내 딸이여 너는 나로 참담케 하는 자요 너는 나를 괴롭게 하는 자 중의 하나이로다”라고 괴로운 심정을 토로합니다. 아무리 사랑스런 무남독녀라 해도 한 번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변개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내가 여호와를 향하여 입을 열었으니 능히 돌이키지 못하리로다”라고 하며 하나님과의 약속을 번복하지 않았습니다. 입다의 딸 역시 “이는 여호와께서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의 대적 암몬 자손에게 원수를 갚으셨음이니이다” 하며 순종하지요.
2. 사랑스런 딸을 번제로 드리게 된 입다
혹자는 ‘하나님께서 왜 이런 끔찍한 서원을 하게 하셨을까?’라고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번제로 드리는 것을 결코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입다에게 그런 서원을 하라고 요구하신 적도 없는데 입다가 급박한 상황에서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조급하게 서원했던 것입니다. 그 당시에는 번제를 드리는 것이 오늘날의 예배처럼 하나님과 교통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우리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림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것처럼, 구약의 사람들은 가장 귀한 것을 번제로 드려 향으로 하나님께 올려드렸지요.
그러면 왜 입다는 자신을 처음으로 영접하는 사람을 번제로 드린다고 했을까요? 처음 것은 그만큼 소중하고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출 23:19). 입다는 급하고 간절했기에 하나님을 의지하여 응답받기 위해 특별한 의미를 가진 첫 번째 맞는 사람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서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릴 때는, 하나님께서 미리 수양을 준비해 두셔서 이삭이 죽지 않도록 해 주셨는데, 왜 입다에게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을까요? 이는 하나님께 대한 입다의 진실한 모습이 성경에 기록되어 후세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지 교훈을 삼게 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 서원한 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함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이지요.
그러면 입다의 딸이 너무 억울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맞는 죽음을 피하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이나 사도 바울도 중심에서 하나님을 믿고 사랑했기에 기쁨으로 순교하였지요.
아브라함이나 입다의 입장에서는 하나밖에 없는 자녀를 번제로 드리는 것보다 차라리 자신이 대신 불 속으로 뛰어들기가 더 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나 사랑하는 자녀보다도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사랑을 더 귀히 여겼기에 하나밖에 없는 자녀라도 번제로 드릴 수 있었습니다.
3. 올바른 서원과 이행의 중요성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우선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할 때 급하다고 말을 함부로 내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잠 18:21). 꼭 서원이 아니어도 함부로 말을 내지 말고, 하나님께 약속했다면 크든 작든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신명기 23장 21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서원하거든 갚기를 더디하지 말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반드시 그것을 네게 요구하시리니 더디면 네게 죄라” 말씀하시며 서원 이행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지요.
민수기 30장 2절에는 “사람이 여호와께 서원하였거나 마음을 제어하기로 서약하였거든 파약하지 말고 그 입에서 나온 대로 다 행할 것이니라” 했습니다. 그래서 입다는 하나밖에 없는 딸이라도 번제 즉 짐승처럼 잡아 살은 살대로, 뼈는 뼈대로 가른 후 불에 태워 하나님께 제사를 올려드렸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입다의 중심을 아셨기에 그의 서원을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약속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중요합니다. 믿음의 형제나 세상 사람과의 약속, 혹은 자신에게 마음으로 한 약속까지도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마음에 거짓과 간사함이 없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이지요. 반드시 약속을 지켜야 하나님과 사람들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4. 서원과 약속을 지켰을 때 따르는 축복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을 그대로 지켜 행할 때,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축복으로 역사해 주십니다. 설령 서원한 것이 지키기 어렵더라도 마음에 결심하고 신속히 지키는 사람은 반드시 축복을 받지요. 그런데 서원한 것을 더디 행하면 그만큼 축복도 더딥니다. 만일 서원해 놓고도 지키지 않는다면 하나님과 담이 되어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예 서원이나 약속을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까요? 아니지요.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했습니다. 믿음이 없어 아무것도 심지 않으면 거둘 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정성껏 심으면 하나님께서는 30배, 60배, 100배로 넘치게 거두게 하십니다. 그러니 믿음으로, 기도로, 봉사로, 물질로 심는 사람들은 놀라운 축복을 받아 마음껏 영광 돌리는 복된 삶을 영위하게 됩니다. 어떤 상황에도 핑계 대지 않고 서원과 약속을 반드시 지키는 마음 중심이 되면 하나님께서도 반드시 신실하게 응답해 주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실 뿐만 아니라(민 23:19),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좋으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온전하심과 같이 마음에 결심한 바, 서원한 바를 반드시 지켜 행함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으며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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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길르앗의 아들로, 암몬에게서 이스라엘을 구원한 인물은 누구일까요?
① 돌라 ② 야일 ③ 입다 ④ 기드온
2. 입다가 암몬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왔을 때 가장 먼저 반갑게 맞이해 준 사람은 누구였나요? ( )
3. 왜 입다는 자신을 처음 영접하는 사람을 번제로 드린다고 했을까요?
( )
4.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하나님 앞에 서원을 할 때 급하다고 말을 함부로 내어서는 안 된다.
② 하나님께 약속했다면 크든 작든 반드시 지켜야 한다.
③ 하나님 앞에 서원이나 약속은 절대로 하지 말아야 한다.
④ 서원한 것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축복으로 역사해 주신다.
● 금주 과제
한 해 동안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이 있는지 점검해 보고 신속히 지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암몬 왕과 협상하는 입다’ (사사기 11장)
암몬과의 전쟁을 앞둔 입다는 먼저 암몬 왕과 외교적인 협상을 한다. 암몬 왕은 전에 빼앗긴 땅을 돌려 달라고 했고 입다는 그럴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을 침략한 적도 없고, 아모리 왕 시혼과도 전쟁을 원치 않았으나 먼저 공격했기 때문이다. 그때 취한 시혼 왕의 땅은 이스라엘 것이지 암몬 족속의 것이 아니며, 그 일은 오래되었는데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한다. 그러나 암몬 왕은 입다의 말을 듣지 않고 전쟁을 일으키고 만다.
2014-12-19
제51과아버지의 사랑
요일 4:16
읽을말씀 : 요일 4:16 | 외울말씀 : 요일 4:16 l 참고 말씀:벧후 3:8~9, 요 17:24
교육목표 : 성탄절을 앞두고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신 주님의 사랑을 되새겨 본다 .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3년간의 공생애 동안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다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마침내는 나무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심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지요. 성탄절은 이렇게 우리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는 사람이라야 죄와는 상관없이 살아갈 수 있으며 진정 성탄의 의미를 깨우쳐 기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탄절을 앞두고 다시 한 번 깨우쳐 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1. 오래 참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나누며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녀를 쉽게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고 생명의 길을 알려 줘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했지요.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8~9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했지요.
영적으로 ‘오래 참는다’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로 인해 밀려오는 모든 여파를 감당하며 열매를 낼 때까지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여파를 감당하며 대가를 치르기 위해 큰 아픔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홍수로 세상을 멸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사랑스럽게 지으신 이 땅을 심판해야 할 때 하늘에서 쏟아지는 홍수의 빗줄기만큼이나 하나님의 가슴에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셔야 했고, 결국 그들이 멸망하는 것도 보셔야 했습니다.
독생하신 아들이 인생들에게 멸시당하고 마침내 십자가에 처형되는 것도 보셨습니다. 소중하게 창조한 세상이 죄로 물들고 인생들이 악을 발하는 것을 보실 때마다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겪어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여전히 기다리십니다. 처음에 계획하신 경작의 역사를 마칠 때까지 반드시 참 자녀들이 나오리라는 믿음으로 긴 세월을 참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를 받고 즉시 주님을 믿지 않았다거나 교회에 나와서도 죄를 버리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몇 번 기회를 주시다가 포기하셨다면 여러분은 어찌 되었을까요? 아마 구원받을 분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참아 주신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기에 여러분이 지금 있는 것입니다.
2. 버리지 않으시고 변화시켜 주신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 많은 권능을 보았습니다. 열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며,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영광을 볼 때는 기뻐하고 찬양했지만 마음은 변화되지 않았지요. 그러나 어려움이 닥치면 원망 불평을 쏟아내며 불순종에 불순종을 거듭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들을 버리고자 하셨지만 모세가 생명을 걸고 용서를 받아냈지요. 그런데 이때 하나님의 진노를 보면서도 모세가 담대히 용서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공의로 따지면 멸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도 어찌하든 살리는 것이 아버지의 더 깊은 마음임을 모세는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것을 이렇게 생명을 담보로 구해서 용서를 얻어냈지요. 모세 입장에서 보면 새로 시작하는 것이 훨씬 쉬울 수도 있습니다. 오랜 노예 살이 속에서 심히 강퍅해진 백성들을 인도하는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새 백성을 이루어 처음부터 율법을 잘 가르치고 훈련시키면 훨씬 순종을 잘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모세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네 살쯤 되는 아들이 갑자기 말도 잘 못하고 걸음도 못 걸어서 검사를 해 보니, 완전히 고칠 방법도 없고 성인이 되기 전에 대부분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어차피 완치도 안 되고 키워 봤자 고생이니 포기하자. 건강한 다른 자녀를 낳으면 되지.” 할 수 있을까요? 부모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나아질 가능성이 티끌만큼만 있어도 집안의 재물을 다 탕진한다 해도 끝까지 아이를 고쳐 주려고 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도 그러하십니다. 노하기도 하고 호되게 책망도 하시지만 버릴 수가 없으셨지요. 어찌하든 살려서 변화시키고자 하시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러하셨습니다. 지난날 여러분을 생각해 볼 때 “나는 선했다.” 할 수 있습니까? 의와 틀은 얼마나 강했고 불순종은 얼마나 많이 낳았습니까? 주변에서 ‘저분이 언제나 변화될까? 정말 영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답답하고 변화가 더딘 분들도 있었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셨고, 변화될 수 있도록 끝까지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사랑 까닭에 새 예루살렘을 바라며 달려갈 수 있음에 다시 한 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영광의 열매를 얻게 하신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죄 사함은 물론 주님을 닮은 참 자녀가 되어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함이지요(요 17:24). 물론 낙원만 가도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간발의 차이로 지옥의 불길에서 벗어났으니 얼마나 감격적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천국의 가장자리에 있는 낙원이 아니라 천국의 중심부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아직 죄를 다 버리지 못해서 부끄럽고 민망한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녀들로 변화되어 큰 영광을 누리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구원 이상의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구원받았다 해도 믿음의 분량이 다름을 알고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야 함을 배워 알고 있으니 더 큰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당회장님께서는 성결의 복음으로 세계를 이루라는 비전을 받은 후 30년이 넘게 성결을 외쳐 왔습니다. 교회적인 연단이 왔을 때 한 주 한 주, 짊어져야 하는 재정의 짐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지요. 일꾼들이 믿음을 내보이지 못할 때도 홀로 믿음으로 고백하며 열매를 보여 주었지요. 그러면서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권능을 보여 주면 우리 성도들도 믿음이 쑥쑥 자라겠지. 조금만 지나면 성결되겠지. 이제 곧 영의 장수들이 나오겠지.” 기대하며 사역해 왔습니다.
그런데 2010년 당회장님 앞에 펼쳐진 것은 30여 년간 그토록 기다렸던 영의 사람들의 명단이 아니었습니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죄로, 주님의 십자가를 현저히 짓밟았기에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주의 종, 일꾼, 레위족, 성도들의 명단이었습니다. 그때 당회장님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 속에서도 낙심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30여 년 쏟아 부은 사랑에 배신을 당했다 해도, 아무리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은 영혼들이라도 “그만 포기하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보다 못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구했습니다. 2010년 12월 25일이 그런 날이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으니 말할 수 없이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심히 부끄럽고 민망한 회개의 날이었지요. 그러나 아버지께서 원하신 것은 부끄럽고 민망한 날이 아니라 영광의 날이었습니다. 회개와 부끄러운 구원을 지나 반석으로, 영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당회장님께서 다시 매달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매달려서 마침내 얻은 결과가 오늘의 여러분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이었는데 믿음의 3단계라는 말씀을 들었고 이제는 반석으로, 심지어 영의 열매로까지 나왔지요. 아직 반석에 들어서지 못한 분들도 지금의 영에 대한 사모함을 잃지 않고 열심히 달려가시면 됩니다.
지난 2010년 12월 25일 이후 목자를 통해 보고 듣고 깨우친 사랑을 여러분이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사랑에 꼭 보답해 드리는 영광의 열매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탄을 맞아 우리가 깨우쳐 봐야 할 세 가지 분야를 써 보세요.
1)
2)
3)
2. 여러분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영광의 열매로 나오기까지 오래 참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느끼고 감사해 하며 살고 있습니까?
3. 여러분은 2010년 12월 25일 이후 현재 어떠한 각오와 행함으로 목자님의 희생과 헌신에 보상의 열매로 나오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까?
● 금주 과제
<하나님의 선하신 뜻> 책자 369~39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모세 선지자의 기도’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출 32:31~32)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여 진멸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찌하든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백성들을 용서해 달라고 구하는 모세 선지자의 기도이다.
교육목표 : 성탄절을 앞두고 독생자를 아낌없이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신 주님의 사랑을 되새겨 본다 .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3년간의 공생애 동안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다 쏟아부어 주셨습니다. 마침내는 나무 십자가에서 달려 죽으심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셨지요. 성탄절은 이렇게 우리를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하는 날입니다.
요한일서 4장 16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했습니다.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믿는 사람이라야 죄와는 상관없이 살아갈 수 있으며 진정 성탄의 의미를 깨우쳐 기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성탄절을 앞두고 다시 한 번 깨우쳐 봐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1. 오래 참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나누며 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기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녀를 쉽게 얻을 수는 없었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고 생명의 길을 알려 줘도 사람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거역했지요.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베드로후서 3장 8~9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했지요.
영적으로 ‘오래 참는다’는 것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로 인해 밀려오는 모든 여파를 감당하며 열매를 낼 때까지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 여파를 감당하며 대가를 치르기 위해 큰 아픔을 겪으셔야 했습니다. 홍수로 세상을 멸하실 때도 있었습니다. 사랑스럽게 지으신 이 땅을 심판해야 할 때 하늘에서 쏟아지는 홍수의 빗줄기만큼이나 하나님의 가슴에도 눈물이 흘렀습니다. 선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셔야 했고, 결국 그들이 멸망하는 것도 보셔야 했습니다.
독생하신 아들이 인생들에게 멸시당하고 마침내 십자가에 처형되는 것도 보셨습니다. 소중하게 창조한 세상이 죄로 물들고 인생들이 악을 발하는 것을 보실 때마다 감당하기 힘든 아픔을 겪어 오셨습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는 여전히 기다리십니다. 처음에 계획하신 경작의 역사를 마칠 때까지 반드시 참 자녀들이 나오리라는 믿음으로 긴 세월을 참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도를 받고 즉시 주님을 믿지 않았다거나 교회에 나와서도 죄를 버리지 못할 때, 하나님께서 몇 번 기회를 주시다가 포기하셨다면 여러분은 어찌 되었을까요? 아마 구원받을 분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참아 주신 아버지의 사랑이 있었기에 여러분이 지금 있는 것입니다.
2. 버리지 않으시고 변화시켜 주신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 많은 권능을 보았습니다. 열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며,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가 내리는 것도 보았습니다. 영광을 볼 때는 기뻐하고 찬양했지만 마음은 변화되지 않았지요. 그러나 어려움이 닥치면 원망 불평을 쏟아내며 불순종에 불순종을 거듭했습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이들을 버리고자 하셨지만 모세가 생명을 걸고 용서를 받아냈지요. 그런데 이때 하나님의 진노를 보면서도 모세가 담대히 용서를 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공의로 따지면 멸해야만 하는 상황이라도 어찌하든 살리는 것이 아버지의 더 깊은 마음임을 모세는 잘 알았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것을 이렇게 생명을 담보로 구해서 용서를 얻어냈지요. 모세 입장에서 보면 새로 시작하는 것이 훨씬 쉬울 수도 있습니다. 오랜 노예 살이 속에서 심히 강퍅해진 백성들을 인도하는 일이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새 백성을 이루어 처음부터 율법을 잘 가르치고 훈련시키면 훨씬 순종을 잘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모세의 마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네 살쯤 되는 아들이 갑자기 말도 잘 못하고 걸음도 못 걸어서 검사를 해 보니, 완전히 고칠 방법도 없고 성인이 되기 전에 대부분 죽는다고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찌하시겠습니까? “어차피 완치도 안 되고 키워 봤자 고생이니 포기하자. 건강한 다른 자녀를 낳으면 되지.” 할 수 있을까요? 부모는 그럴 수가 없습니다. 나아질 가능성이 티끌만큼만 있어도 집안의 재물을 다 탕진한다 해도 끝까지 아이를 고쳐 주려고 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도 그러하십니다. 노하기도 하고 호되게 책망도 하시지만 버릴 수가 없으셨지요. 어찌하든 살려서 변화시키고자 하시는 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에게도 그러하셨습니다. 지난날 여러분을 생각해 볼 때 “나는 선했다.” 할 수 있습니까? 의와 틀은 얼마나 강했고 불순종은 얼마나 많이 낳았습니까? 주변에서 ‘저분이 언제나 변화될까? 정말 영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할 정도로 답답하고 변화가 더딘 분들도 있었지요. 그러나 아버지는 여러분을 버리지 않으셨고, 변화될 수 있도록 끝까지 은혜를 주셨습니다. 그 사랑 까닭에 새 예루살렘을 바라며 달려갈 수 있음에 다시 한 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 영광의 열매를 얻게 하신 아버지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만이 아닙니다. 죄 사함은 물론 주님을 닮은 참 자녀가 되어 주님과 함께 영광을 누리기 위함이지요(요 17:24). 물론 낙원만 가도 너무 감사한 일입니다. 간발의 차이로 지옥의 불길에서 벗어났으니 얼마나 감격적이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천국의 가장자리에 있는 낙원이 아니라 천국의 중심부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을 주시기 원하십니다. 아직 죄를 다 버리지 못해서 부끄럽고 민망한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녀들로 변화되어 큰 영광을 누리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구원 이상의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구원받았다 해도 믿음의 분량이 다름을 알고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야 함을 배워 알고 있으니 더 큰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당회장님께서는 성결의 복음으로 세계를 이루라는 비전을 받은 후 30년이 넘게 성결을 외쳐 왔습니다. 교회적인 연단이 왔을 때 한 주 한 주, 짊어져야 하는 재정의 짐만 해도 숨이 턱턱 막힐 정도였지요. 일꾼들이 믿음을 내보이지 못할 때도 홀로 믿음으로 고백하며 열매를 보여 주었지요. 그러면서 기다렸습니다. “이렇게 권능을 보여 주면 우리 성도들도 믿음이 쑥쑥 자라겠지. 조금만 지나면 성결되겠지. 이제 곧 영의 장수들이 나오겠지.” 기대하며 사역해 왔습니다.
그런데 2010년 당회장님 앞에 펼쳐진 것은 30여 년간 그토록 기다렸던 영의 사람들의 명단이 아니었습니다. 차마 입에 담을 수도 없는 죄로, 주님의 십자가를 현저히 짓밟았기에 사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주의 종, 일꾼, 레위족, 성도들의 명단이었습니다. 그때 당회장님은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 속에서도 낙심할 여유조차 없었습니다. 30여 년 쏟아 부은 사랑에 배신을 당했다 해도, 아무리 사망에 이르는 죄를 지은 영혼들이라도 “그만 포기하자.” 할 수가 없었습니다.
죽음보다 못한 시간을 보내면서도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구했습니다. 2010년 12월 25일이 그런 날이었습니다. 죄 사함을 받았으니 말할 수 없이 감사하지만 한편으로는 심히 부끄럽고 민망한 회개의 날이었지요. 그러나 아버지께서 원하신 것은 부끄럽고 민망한 날이 아니라 영광의 날이었습니다. 회개와 부끄러운 구원을 지나 반석으로, 영으로 변화될 수 있도록 당회장님께서 다시 매달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매달려서 마침내 얻은 결과가 오늘의 여러분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던 죄인이었는데 믿음의 3단계라는 말씀을 들었고 이제는 반석으로, 심지어 영의 열매로까지 나왔지요. 아직 반석에 들어서지 못한 분들도 지금의 영에 대한 사모함을 잃지 않고 열심히 달려가시면 됩니다.
지난 2010년 12월 25일 이후 목자를 통해 보고 듣고 깨우친 사랑을 여러분이 결코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사랑에 꼭 보답해 드리는 영광의 열매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탄을 맞아 우리가 깨우쳐 봐야 할 세 가지 분야를 써 보세요.
1)
2)
3)
2. 여러분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영광의 열매로 나오기까지 오래 참아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느끼고 감사해 하며 살고 있습니까?
3. 여러분은 2010년 12월 25일 이후 현재 어떠한 각오와 행함으로 목자님의 희생과 헌신에 보상의 열매로 나오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까?
● 금주 과제
<하나님의 선하신 뜻> 책자 369~39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모세 선지자의 기도’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 (출 32:31~32)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여 진멸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어찌하든 살리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백성들을 용서해 달라고 구하는 모세 선지자의 기도이다.
2014-12-12
제50과주신 자도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욥 1:18~22
읽을말씀 : 욥 1:18~22 | 외울말씀 : 약 1:13 ㅣ 참고 말씀:욥 42장
교육목표 : 욥처럼 본성 속의 악을 버리고 온전한 선을 이루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영육 간에 큰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욥기 1장 1절에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씀합니다. 이어 8절에서도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욥인데 왜 보통 사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시험을 받아야 했을까요?
1. 하나님께서 욥에게 시험을 허락하신 이유
욥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로서 빈민과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등 많은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적도, 친히 음성을 들은 적도 없지만, 욥이 하나님에 대해 전해만 듣고도 선을 행했다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선한 사람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는데도,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신 이유는 욥이 행위적으로는 완벽했지만 본성 속의 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욥의 마음 깊은 곳까지 감찰하신 하나님께서는 욥을 연단하여 성결케 하고 온전한 선에 이르는 차원에 이르도록 이끄셨던 것입니다.
하루는 사단이 하나님께로 와서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송사합니다. 욥기 1장 10절에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하지요. 사단이 욥을 송사하니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유물은 다 거둘지라도 몸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직접 시험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송사하므로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시험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요, 다만 사람이 죄를 지어 사단이 송사하니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이지요.
2.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한 욥
하나님께서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시자 욥에게 엄청난 시험들이 다가왔습니다. 자신의 몸을 제외한 모든 소유와 자녀들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때 욥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열심히 섬겼는데 이런 시험을 당해야 합니까?”라고 원망하거나 불평했을까요? 만일 욥이 이 정도의 시험에 원망할 사람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시험 자체를 허락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욥은 어리석은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하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물질의 어려움이 왔거나 가정에 문제가 생겼을 때, 또는 질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이셨는지요? 시험이 오고 어려움이 온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3.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자 근본의 악이 나오는 욥
욥은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였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시험이 찾아옵니다. 그의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났지요. 욥이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자신의 몸을 긁고 있으니 아내가 말하기를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조롱합니다.
이때도 욥은 아내에게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며 입술로 범죄치 않았지요. 이는 욥이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해서 하는 말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았으면 재앙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 입술을 지키며 감사하였던 욥은 이어지는 시험으로 절망적인 상황이 계속되자 마침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합니다. 이는 부모를 원망하는 것과 같지요. 자신의 모든 소유와 자녀들을 잃었을 때는 감사가 나왔지만,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받는 시험 앞에서는 근본의 악이 나왔던 것입니다. 결국 욥은 친구들과 변론하며 하나님께 원망 불평을 하며, 친구들에 대한 저주들을 쏟아내었습니다.
4. 욥과 세 친구들의 변론을 통해 본 사람의 마음
욥을 위로하러 왔던 친구들은 도리어 욥과의 변론을 통해 자신들도 범죄할 뿐 아니라, 욥으로 하여금 더욱 악을 발하게 만들었습니다.
먼저, 엘리바스는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말합니다(욥 4:7). 즉 죄가 있으니 망한 것이고 정직하지 못하니 끊어진 것이 아니냐는 말이지요. 이 말은 분명 맞는 말이지만 이 말을 하는 엘리바스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만일 시험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회개하시오. 당신에게 죄가 있어서 그런 어려움이 찾아온 것이 아니겠소!” 말한다면 이는 사랑이 아니라 도리어 찌르는 말이 되고 말지요.
다음으로, 소발은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개정하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욥 11:10) 하였는데 이는 많은 사람이 오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누가 막겠느냐 한 것은 맞는 말이지만,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유 없이 그렇게 하실 수도 있는 분이라고 단정한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사람은 문제가 왔을 때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그냥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 가운데 행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할 때 지키시고 축복을 주십니다.
많은 사람이 욥기 말씀을 오해해서 “시험 환난이 와도 욥처럼 참으면 복이 온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험 환난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을 돌아보고 통회자복하여 하나님 앞에 막힌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욥도 하나님을 만나고 회개한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빌닷은 “그를 동일 줄이 땅에 숨겼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에 베풀렸으며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래고 그 뒤를 쫓아올 것이며”라고 저주합니다(욥 18:10~11). 이런 말이 나오기까지는 욥과 계속 변론이 있었고, 욥도 친구들을 무시하고 저주하였지요. 하지만 욥을 위로하러 온 빌닷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큰 악에 속합니다. 전에 욥에게 느꼈던 시기심에서 나온 말이지요.
욥은 비록 하나님 앞에 원망하고 불평했지만, 이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연단을 통해 극도의 절망 가운데 나온 말이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조그만 일에도 감정이 상하거나 혈기를 내는 사람과는 그 차원이 다릅니다.
5.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이루어 축복받은 욥
그동안 욥은 지식적으로만 알고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음성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 앞에 큰소리치며 원망 불평했던 욥이 막상 하나님을 대하고 나니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의롭고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교만한 모습이었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철저히 돌이키며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라고 고백합니다(욥 42:2).
이처럼 욥은 연단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을 정금과 같은 중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의 마음이 되니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영적인 사랑이 중심에서 우러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욥은 예전보다 갑절이나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자녀의 축복도 넘치게 주셔서 아들 일곱과 세 딸을 낳았는데 전국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을 정도였지요. 명예, 권세, 자녀, 건강, 물질 등 모든 축복을 넘치게 받은 욥처럼 여러분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전한 선을 이루어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순전하고 정직한 욥에게 시험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② 본성 속의 악을 버리고 성결되어 온전한 선의 차원에 이끌기 위해서다.
③ 행위적으로 더 완전해지기 위해서이다.
④ 축복을 받으려면 무조건 연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2.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세요.
욥은 자신의 모든 소유와 자녀들을 잃었을 때만 해도 ( )가 나왔지만, ( )까지 위협받는 시험 앞에서 ( )의 악이 나왔습니다.
3. 욥이 시험을 통과한 후 받은 복이 무엇 무엇이 있었는지 써 보세요.
( )
● 금주 과제
가정과 직장에서 성탄 장식을 하며 주님의 사랑 전하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선의 4단계’
♣ 선의 1단계 -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은 있지만 악으로 대응하지는 않는다. 속으로는 억울하고 속상하지만 꾹 눌러 참을 뿐이다.
♣ 선의 2단계 -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며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다. 악이 없는 영의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이다.
♣ 선의 3단계 - 상대가 악으로 나올 때 마음에 감정이 없음은 물론 감동적인 선의 말로 상대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주는 차원이다.
♣ 선의 4단계 - 가장 높은 차원으로 자신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줄 수 있다.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선, 죄인된 인류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주신 주님의 선으로, 최고의 선이며 온전한 사랑이다.
교육목표 : 욥처럼 본성 속의 악을 버리고 온전한 선을 이루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영육 간에 큰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욥기 1장 1절에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라고 말씀합니다. 이어 8절에서도 하나님께서 욥에 대해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인정받았던 욥인데 왜 보통 사람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시험을 받아야 했을까요?
1. 하나님께서 욥에게 시험을 허락하신 이유
욥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로서 빈민과 고아와 과부를 돌아보는 등 많은 선행을 베풀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적도, 친히 음성을 들은 적도 없지만, 욥이 하나님에 대해 전해만 듣고도 선을 행했다는 것을 볼 때, 얼마나 선한 사람이었는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는데도,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신 이유는 욥이 행위적으로는 완벽했지만 본성 속의 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욥의 마음 깊은 곳까지 감찰하신 하나님께서는 욥을 연단하여 성결케 하고 온전한 선에 이르는 차원에 이르도록 이끄셨던 것입니다.
하루는 사단이 하나님께로 와서 욥이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큰 축복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송사합니다. 욥기 1장 10절에 “주께서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하지요. 사단이 욥을 송사하니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유물은 다 거둘지라도 몸은 건드리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직접 시험하시는 것이 아니라, 사단이 송사하므로 허락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야고보서 1장 13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시험하시는 분이 결코 아니요, 다만 사람이 죄를 지어 사단이 송사하니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하시는 것이지요.
2.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첫 번째 시험을 통과한 욥
하나님께서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시자 욥에게 엄청난 시험들이 다가왔습니다. 자신의 몸을 제외한 모든 소유와 자녀들을 순식간에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때 욥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열심히 섬겼는데 이런 시험을 당해야 합니까?”라고 원망하거나 불평했을까요? 만일 욥이 이 정도의 시험에 원망할 사람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시험 자체를 허락하시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욥은 어리석은 말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고 오히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고백하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물질의 어려움이 왔거나 가정에 문제가 생겼을 때, 또는 질병에 걸렸을 때 하나님 앞에 어떤 모습이셨는지요? 시험이 오고 어려움이 온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3. 자신의 생명이 위협받자 근본의 악이 나오는 욥
욥은 모든 것을 잃은 상황에서도 하나님 앞에 감사하였는데, 이번에는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시험이 찾아옵니다. 그의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났지요. 욥이 기와 조각을 가져다가 자신의 몸을 긁고 있으니 아내가 말하기를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조롱합니다.
이때도 욥은 아내에게 “그대의 말이 어리석은 여자 중 하나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며 입술로 범죄치 않았지요. 이는 욥이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해서 하는 말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하나님께로부터 복을 받았으면 재앙도 함께 받아야 한다는 말씀은 없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 입술을 지키며 감사하였던 욥은 이어지는 시험으로 절망적인 상황이 계속되자 마침내 자기의 생일을 저주합니다. 이는 부모를 원망하는 것과 같지요. 자신의 모든 소유와 자녀들을 잃었을 때는 감사가 나왔지만, 자신의 생명까지 위협받는 시험 앞에서는 근본의 악이 나왔던 것입니다. 결국 욥은 친구들과 변론하며 하나님께 원망 불평을 하며, 친구들에 대한 저주들을 쏟아내었습니다.
4. 욥과 세 친구들의 변론을 통해 본 사람의 마음
욥을 위로하러 왔던 친구들은 도리어 욥과의 변론을 통해 자신들도 범죄할 뿐 아니라, 욥으로 하여금 더욱 악을 발하게 만들었습니다.
먼저, 엘리바스는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 말합니다(욥 4:7). 즉 죄가 있으니 망한 것이고 정직하지 못하니 끊어진 것이 아니냐는 말이지요. 이 말은 분명 맞는 말이지만 이 말을 하는 엘리바스의 마음이 문제입니다. 만일 시험 환난 가운데 있는 사람들에게 “회개하시오. 당신에게 죄가 있어서 그런 어려움이 찾아온 것이 아니겠소!” 말한다면 이는 사랑이 아니라 도리어 찌르는 말이 되고 말지요.
다음으로, 소발은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개정하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욥 11:10) 하였는데 이는 많은 사람이 오해할 수 있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누가 막겠느냐 한 것은 맞는 말이지만,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유 없이 그렇게 하실 수도 있는 분이라고 단정한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사람은 문제가 왔을 때 자신을 돌아보기보다는 그냥 참아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 가운데 행하시는 분이시기에 우리가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할 때 지키시고 축복을 주십니다.
많은 사람이 욥기 말씀을 오해해서 “시험 환난이 와도 욥처럼 참으면 복이 온다.”고 하는데 과연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큰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시험 환난이 왔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자신을 돌아보고 통회자복하여 하나님 앞에 막힌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욥도 하나님을 만나고 회개한 다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축복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빌닷은 “그를 동일 줄이 땅에 숨겼고 그를 빠뜨릴 함정이 길에 베풀렸으며 무서운 것이 사방에서 그를 놀래고 그 뒤를 쫓아올 것이며”라고 저주합니다(욥 18:10~11). 이런 말이 나오기까지는 욥과 계속 변론이 있었고, 욥도 친구들을 무시하고 저주하였지요. 하지만 욥을 위로하러 온 빌닷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큰 악에 속합니다. 전에 욥에게 느꼈던 시기심에서 나온 말이지요.
욥은 비록 하나님 앞에 원망하고 불평했지만, 이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연단을 통해 극도의 절망 가운데 나온 말이니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조그만 일에도 감정이 상하거나 혈기를 내는 사람과는 그 차원이 다릅니다.
5.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이루어 축복받은 욥
그동안 욥은 지식적으로만 알고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음성으로 역사하셨습니다. 그러자 하나님 앞에 큰소리치며 원망 불평했던 욥이 막상 하나님을 대하고 나니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욥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의롭고 모든 것을 아는 것처럼 교만한 모습이었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후에는 철저히 돌이키며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라고 고백합니다(욥 42:2).
이처럼 욥은 연단을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을 정금과 같은 중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의 마음이 되니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영적인 사랑이 중심에서 우러나왔습니다. 그리하여 욥은 예전보다 갑절이나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자녀의 축복도 넘치게 주셔서 아들 일곱과 세 딸을 낳았는데 전국에서 욥의 딸들처럼 아리따운 여자가 없을 정도였지요. 명예, 권세, 자녀, 건강, 물질 등 모든 축복을 넘치게 받은 욥처럼 여러분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전한 선을 이루어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순전하고 정직한 욥에게 시험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죄를 지었기 때문이다.
② 본성 속의 악을 버리고 성결되어 온전한 선의 차원에 이끌기 위해서다.
③ 행위적으로 더 완전해지기 위해서이다.
④ 축복을 받으려면 무조건 연단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2.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어 보세요.
욥은 자신의 모든 소유와 자녀들을 잃었을 때만 해도 ( )가 나왔지만, ( )까지 위협받는 시험 앞에서 ( )의 악이 나왔습니다.
3. 욥이 시험을 통과한 후 받은 복이 무엇 무엇이 있었는지 써 보세요.
( )
● 금주 과제
가정과 직장에서 성탄 장식을 하며 주님의 사랑 전하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선의 4단계’
♣ 선의 1단계 -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은 있지만 악으로 대응하지는 않는다. 속으로는 억울하고 속상하지만 꾹 눌러 참을 뿐이다.
♣ 선의 2단계 - 악을 악으로 갚지 않으며 마음에 어떤 불편한 감정도 없다. 악이 없는 영의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최소한의 선이다.
♣ 선의 3단계 - 상대가 악으로 나올 때 마음에 감정이 없음은 물론 감동적인 선의 말로 상대에게 기쁨을 주고 행복을 주는 차원이다.
♣ 선의 4단계 - 가장 높은 차원으로 자신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줄 수 있다. 독생자를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선, 죄인된 인류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주신 주님의 선으로, 최고의 선이며 온전한 사랑이다.
2014-12-05
제49과내가 어찌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창 39:1~9
읽을말씀 : 창 39:1~9 | 외울말씀 : 요일 3:21 l 참고 말씀:창 41장
교육목표 : 어떤 상황에서도 범죄치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며 정도를 좇아 성실로 식물을 삼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자신의 유익만 추구하며 살았어도,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가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자 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기에 범죄하는 자체가 싫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어떠한 인물이었기에 정도를 좇으며 결코 하나님 앞에 득죄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1.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간 요셉
요셉은 성장하면서 아버지 야곱을 통해 그의 조상들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에 대해 배워 알았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야곱은 네 명의 부인으로부터 열두 아들을 낳았는데, 라헬의 소생인 요셉을 편애하였지요. 유독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입히며, 요셉이 다른 형들의 과실을 고하면 그 말을 듣고 형들을 꾸짖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요셉은 이복형들로부터 시기와 미움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우쳐야 할 점은 요셉은 형들의 불의를 보고 야곱에게 알리는 것을 정당하게 여겼는데, 이것이 요셉의 의였다는 것입니다. 형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알리는 요셉이 얼마나 밉고 싫었겠습니까. 만일 요셉의 형들이 스스로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면 동생 요셉이 아버지 야곱에게 무슨 말을 하든 전혀 개의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 마음이 불안한데 요셉이 그들의 과실을 드러내니 더욱 미웠던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요셉이 꿈을 꾸었는데, 모든 형제와 부모까지도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게 된다는 내용이었지요. 형들은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듣고 시기와 미움이 더욱 커졌고, 마침내 요셉을 죽일 궤계를 꾸미게 됩니다. 다행히 맏형 르우벤과 넷째 형 유다의 만류로 목숨은 건졌지만, 결국 상인에게 팔려 애굽의 고위 관료인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하였습니다.
만일 우리 마음에 악이 없다면 거리낌이 없이 담대할 것이요, 요셉의 형들처럼 시기할 일도 미워할 일도 없습니다. 요셉도 자신이 옳다고 하는 의를 선으로 바꿨다면 형들의 미움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2. 보디발의 집에서 오직 정도를 걸으며 성실했던 요셉
요셉은 부유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이방 나라의 종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성실히 주인을 섬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범사에 형통하게 하시고, 그 집을 총괄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비참한 신세가 되면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하며 방탕한 삶을 살기도 하고, 삶을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주인 보디발의 소유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정성껏 관리했고, ‘주인이라면 집을 어떻게 관리하며 일꾼들을 어떻게 다스릴까?’ 하며 늘 주인의 마음으로 모든 일을 신중하고 성실하게 처리해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아 자기 소유를 다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않았습니다(창 39:5~6).
만일 요셉이 노예로 팔려 갔을 때 너무도 억울하고 불행한 처지에서 당장 벗어나기 위해 무리한 탈출을 시도했다든가, 혹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히려 더 혹독한 종살이를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3. 주인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여 감옥에 갇혔으나
어느 날 요셉에게 한 차례 시험이 옵니다. 안주인이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한 요셉을 날마다 유혹하며 동침하자고 청하는 것이었지요.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하며 거절합니다(창 39:9).
그런데 어느 날 안주인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요셉의 옷을 잡고 유혹하는 바람에 이를 뿌리치느라 겉옷을 두고 도망치듯 나왔지요. 이에 안주인은 앙심을 품고 남편 보디발에게 요셉이 자신을 희롱하려고 들어왔다가 자기가 소리 지르자 옷을 버려 두고 도망갔다며 요셉의 옷을 증표로 내놓습니다. 그러자 보디발은 심히 노하여 사실을 확인도 않고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깊은 감옥에 요셉을 넣어 버렸지요.
이처럼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실과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려와 기구한 형편에 처하게 되었어도 마음 중심에서 주인을 섬기며 자신이 지켜야 할 선(線)은 결코 넘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심이니 안주인의 불의한 청을 거절하면 어떤 곤란을 당할지 뻔히 알면서도 하나님과 주인 앞에, 자신에게도 부끄러운 일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보디발의 가정을 총괄하며 비교적 안정된 자리에 있었던 요셉은 수치스러운 죄목으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성실함은 감옥을 관리하는 전옥, 즉 오늘날의 교도소장과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옥중의 모든 사무와 죄수들을 다 맡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성실할 뿐 아니라 담대히 정도를 지키는 요셉을 기뻐하시며 그의 길을 친히 인도하시고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4. 하나님의 축복으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축복하시고자 역사하십니다. 애굽 왕 바로가 기이한 꿈을 꾸었는데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므로 번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꿈을 두 번이나 겹쳐 꾼 바로 왕은 번민하여 해석해 줄 사람을 찾았지만 애굽의 술객과 박사 중 누구도 풀지 못하니 더욱 염려가 커져 갔지요.
그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추천하여 꿈을 풀이합니다. 즉 ‘왕의 꿈에 나온 일곱 좋은 암소와 좋은 이삭은 일곱 해의 풍년이며, 일곱 파리한 암소와 마른 이삭은 일곱 해의 흉년이라’ 하지요. 그런데 ‘흉년이 극심해 전의 풍작을 기억하지 못하며, 동일한 꿈을 겹쳐 꾼 것은 이 일이 속히 이루어질 것이라’ 해석합니다.
이처럼 요셉은 왕의 꿈을 시원하게 해석한 후, 대처 방법까지도 명쾌하게 제시해 줍니다. 이에 왕은 요셉을 택하여 애굽 온 땅을 치리하는 총리로 세우지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요셉은 하루아침에 애굽의 왕 다음가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말대로 풍년 동안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산을 각 성에 거두어들이니 7년의 기근의 때에 이르러 각국에 양식이 떨어졌어도 애굽 왕의 창고에는 곡식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니 각지에서 먹을 것이 떨어진 사람마다 왕의 양식을 사려고 요셉에게로 왔습니다. 그중에는 요셉의 형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을 종으로 팔아넘긴 형들을 전혀 탓하지 않고 오히려 형들과 가족들까지 애굽에 오게 한 후 부양하였지요.
이처럼 요셉은 어린 나이에 부모와 형제를 떠나 타국에 종으로 팔려와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형들을 사랑으로 용서하였습니다. 모든 일에 선한 마음으로 행했던 요셉이었기에 당대에 의인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크게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성실히 살고자 노력하면 스스로 득죄하지 않고, 요셉의 형들처럼 득죄한 사람도 변화시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를 만나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으로 이끌어 줄까’를 생각합니다. 만일 득죄한 사람이라면 죄의 담을 헐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당회장님께서 죄인이라 할지라도 변화시켜 축복의 반열에 동참시킬 방법을 모색하시니 모난 사람도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등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쑥쑥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또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며 살아가니 하나님께서 각종 사고나 어려움으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을 지켜 주시고 기쁨과 감사의 조건들이 넘쳐 납니다. 요셉이 “내가 어찌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한 것처럼 득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상대의 유익을 위해 산다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고 정도를 좇으며, 모든 일에 성실로 식물을 삼아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셉의 아버지는 누구일까요?
① 아브라함 ② 이삭 ③ 야곱 ④ 유다
2. 이복형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한 까닭이 아닌 것은?
① 아버지 야곱이 요셉만 편애했기 때문이다.
② 자신들의 과실을 요셉이 아버지에게 일러바쳤기 때문이다.
③ 부모와 형제가 요셉에게 엎드려 절한다는 꿈을 듣고 더 미워하였다.
④ 자신들에 비해 싸움을 잘해서 미워했다.
3. 부유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종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요셉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 )
4.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유혹하며 동침하자고 하였을 때 요셉이 단호하게 뿌리치며 고백한 내용은 성경 어디에 있나요? ( )
● 금주 과제
<하나님의 선하신 뜻> 책자 341~36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애굽의 술사나 박사도 풀이 못한 바로 왕의 꿈’
첫 번째 꿈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 먹는데 그 뒤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나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먹어 버린다. 두 번째 꿈은, 한 줄기의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과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세약한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다. 이는 곧 일곱 해의 풍년과 일곱 해의 흉년이 올 것을 의미한다. 요셉이 시원하게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해 주고, 그에 대한 대처 방법까지 알려 주자 바로 왕은 요셉을 애굽의 왕 다음가는 총리로 세웠다.
교육목표 : 어떤 상황에서도 범죄치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며 정도를 좇아 성실로 식물을 삼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자신의 유익만 추구하며 살았어도,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가면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자 합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났기에 범죄하는 자체가 싫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요셉은 어떠한 인물이었기에 정도를 좇으며 결코 하나님 앞에 득죄하지 않았던 것일까요?
1.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간 요셉
요셉은 성장하면서 아버지 야곱을 통해 그의 조상들에게 역사하신 하나님에 대해 배워 알았으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 대한 확고한 믿음을 갖게 됩니다. 야곱은 네 명의 부인으로부터 열두 아들을 낳았는데, 라헬의 소생인 요셉을 편애하였지요. 유독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입히며, 요셉이 다른 형들의 과실을 고하면 그 말을 듣고 형들을 꾸짖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요셉은 이복형들로부터 시기와 미움을 받았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우쳐야 할 점은 요셉은 형들의 불의를 보고 야곱에게 알리는 것을 정당하게 여겼는데, 이것이 요셉의 의였다는 것입니다. 형들의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알리는 요셉이 얼마나 밉고 싫었겠습니까. 만일 요셉의 형들이 스스로 아무 거리낌이 없었다면 동생 요셉이 아버지 야곱에게 무슨 말을 하든 전혀 개의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해 마음이 불안한데 요셉이 그들의 과실을 드러내니 더욱 미웠던 것이지요.
이런 상황에서 요셉이 꿈을 꾸었는데, 모든 형제와 부모까지도 자신에게 엎드려 절하게 된다는 내용이었지요. 형들은 요셉의 꿈 이야기를 듣고 시기와 미움이 더욱 커졌고, 마침내 요셉을 죽일 궤계를 꾸미게 됩니다. 다행히 맏형 르우벤과 넷째 형 유다의 만류로 목숨은 건졌지만, 결국 상인에게 팔려 애굽의 고위 관료인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하였습니다.
만일 우리 마음에 악이 없다면 거리낌이 없이 담대할 것이요, 요셉의 형들처럼 시기할 일도 미워할 일도 없습니다. 요셉도 자신이 옳다고 하는 의를 선으로 바꿨다면 형들의 미움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2. 보디발의 집에서 오직 정도를 걸으며 성실했던 요셉
요셉은 부유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이방 나라의 종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누구를 원망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며 성실히 주인을 섬겼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범사에 형통하게 하시고, 그 집을 총괄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루아침에 비참한 신세가 되면 “에라 모르겠다. 될 대로 되라.” 하며 방탕한 삶을 살기도 하고, 삶을 포기해 버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을 신뢰했기에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살았습니다. 주인 보디발의 소유를 마치 자신의 것처럼 정성껏 관리했고, ‘주인이라면 집을 어떻게 관리하며 일꾼들을 어떻게 다스릴까?’ 하며 늘 주인의 마음으로 모든 일을 신중하고 성실하게 처리해 나갔던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아 자기 소유를 다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않았습니다(창 39:5~6).
만일 요셉이 노예로 팔려 갔을 때 너무도 억울하고 불행한 처지에서 당장 벗어나기 위해 무리한 탈출을 시도했다든가, 혹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오히려 더 혹독한 종살이를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3. 주인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여 감옥에 갇혔으나
어느 날 요셉에게 한 차례 시험이 옵니다. 안주인이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한 요셉을 날마다 유혹하며 동침하자고 청하는 것이었지요. 요셉은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하며 거절합니다(창 39:9).
그런데 어느 날 안주인이 아무도 없는 곳에서 요셉의 옷을 잡고 유혹하는 바람에 이를 뿌리치느라 겉옷을 두고 도망치듯 나왔지요. 이에 안주인은 앙심을 품고 남편 보디발에게 요셉이 자신을 희롱하려고 들어왔다가 자기가 소리 지르자 옷을 버려 두고 도망갔다며 요셉의 옷을 증표로 내놓습니다. 그러자 보디발은 심히 노하여 사실을 확인도 않고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깊은 감옥에 요셉을 넣어 버렸지요.
이처럼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성실과 정의를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형들에 의해 종으로 팔려와 기구한 형편에 처하게 되었어도 마음 중심에서 주인을 섬기며 자신이 지켜야 할 선(線)은 결코 넘지 않았습니다. 그런 중심이니 안주인의 불의한 청을 거절하면 어떤 곤란을 당할지 뻔히 알면서도 하나님과 주인 앞에, 자신에게도 부끄러운 일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보디발의 가정을 총괄하며 비교적 안정된 자리에 있었던 요셉은 수치스러운 죄목으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성실함은 감옥을 관리하는 전옥, 즉 오늘날의 교도소장과 같은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도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옥중의 모든 사무와 죄수들을 다 맡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성실할 뿐 아니라 담대히 정도를 지키는 요셉을 기뻐하시며 그의 길을 친히 인도하시고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습니다.
4. 하나님의 축복으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축복하시고자 역사하십니다. 애굽 왕 바로가 기이한 꿈을 꾸었는데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므로 번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꿈을 두 번이나 겹쳐 꾼 바로 왕은 번민하여 해석해 줄 사람을 찾았지만 애굽의 술객과 박사 중 누구도 풀지 못하니 더욱 염려가 커져 갔지요.
그때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추천하여 꿈을 풀이합니다. 즉 ‘왕의 꿈에 나온 일곱 좋은 암소와 좋은 이삭은 일곱 해의 풍년이며, 일곱 파리한 암소와 마른 이삭은 일곱 해의 흉년이라’ 하지요. 그런데 ‘흉년이 극심해 전의 풍작을 기억하지 못하며, 동일한 꿈을 겹쳐 꾼 것은 이 일이 속히 이루어질 것이라’ 해석합니다.
이처럼 요셉은 왕의 꿈을 시원하게 해석한 후, 대처 방법까지도 명쾌하게 제시해 줍니다. 이에 왕은 요셉을 택하여 애굽 온 땅을 치리하는 총리로 세우지요.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요셉은 하루아침에 애굽의 왕 다음가는 위치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말대로 풍년 동안에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소산을 각 성에 거두어들이니 7년의 기근의 때에 이르러 각국에 양식이 떨어졌어도 애굽 왕의 창고에는 곡식이 가득했습니다. 그러니 각지에서 먹을 것이 떨어진 사람마다 왕의 양식을 사려고 요셉에게로 왔습니다. 그중에는 요셉의 형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자신을 종으로 팔아넘긴 형들을 전혀 탓하지 않고 오히려 형들과 가족들까지 애굽에 오게 한 후 부양하였지요.
이처럼 요셉은 어린 나이에 부모와 형제를 떠나 타국에 종으로 팔려와 13년이라는 세월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형들을 사랑으로 용서하였습니다. 모든 일에 선한 마음으로 행했던 요셉이었기에 당대에 의인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 속에 크게 쓰임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성실히 살고자 노력하면 스스로 득죄하지 않고, 요셉의 형들처럼 득죄한 사람도 변화시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어느 누구를 만나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으로 이끌어 줄까’를 생각합니다. 만일 득죄한 사람이라면 죄의 담을 헐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당회장님께서 죄인이라 할지라도 변화시켜 축복의 반열에 동참시킬 방법을 모색하시니 모난 사람도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등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쑥쑥 성장해 가고 있습니다. 또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을 구하며 살아가니 하나님께서 각종 사고나 어려움으로부터 교회와 성도들을 지켜 주시고 기쁨과 감사의 조건들이 넘쳐 납니다. 요셉이 “내가 어찌 하나님께 득죄하리이까” 한 것처럼 득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과 상대의 유익을 위해 산다면 얼마나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의뢰하고 정도를 좇으며, 모든 일에 성실로 식물을 삼아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셉의 아버지는 누구일까요?
① 아브라함 ② 이삭 ③ 야곱 ④ 유다
2. 이복형들이 요셉을 시기하고 미워한 까닭이 아닌 것은?
① 아버지 야곱이 요셉만 편애했기 때문이다.
② 자신들의 과실을 요셉이 아버지에게 일러바쳤기 때문이다.
③ 부모와 형제가 요셉에게 엎드려 절한다는 꿈을 듣고 더 미워하였다.
④ 자신들에 비해 싸움을 잘해서 미워했다.
3. 부유한 가정에서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종으로 전락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요셉의 모습은 어떠했나요?
( )
4. 보디발의 아내가 날마다 유혹하며 동침하자고 하였을 때 요셉이 단호하게 뿌리치며 고백한 내용은 성경 어디에 있나요? ( )
● 금주 과제
<하나님의 선하신 뜻> 책자 341~36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애굽의 술사나 박사도 풀이 못한 바로 왕의 꿈’
첫 번째 꿈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 먹는데 그 뒤에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나와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를 먹어 버린다. 두 번째 꿈은, 한 줄기의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과 세약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세약한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다. 이는 곧 일곱 해의 풍년과 일곱 해의 흉년이 올 것을 의미한다. 요셉이 시원하게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해 주고, 그에 대한 대처 방법까지 알려 주자 바로 왕은 요셉을 애굽의 왕 다음가는 총리로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