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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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1-27
제4과악행에서 돌이키라
렘 25:1~5
읽을말씀 : 렘 25:1~5 | 외울말씀 : 살전 5:22 ㅣ 참고 말씀: 갈 5:19~21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행에서 떠나 오직 진리대로 행하여 응답과 축복을 받는 주인공이 되게 한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이 평안할 때에는 하나님 섬기기를 게을리하다가, 어려움이 닥치면 다시 하나님 찾기를 반복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른길로 이끄시기 위해 선지자들을 보내 악행에서 돌이키도록 일깨워 주셨습니다.
1. 악행에서 돌이키기 원하시는 하나님
남유다 왕국 말기 요시야 왕 때부터 활동한 예레미야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며 율법을 무시해 온 백성을 향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백성은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했지요. 당시 북이스라엘 왕국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후였습니다. 그런데 남유다 왕국마저 그 악행 때문에 망하게 되었으니 예레미야가 이를 안타까워하며 악행에서 돌이켜야 할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왕국에 진노하신 것은 바로 간음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으로 간음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외에도 남유다 백성은 갖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23년간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라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렘 38:4~6).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말씀대로 행치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이나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데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하셨으니 악행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2. 우리가 왜 악행에서 돌이켜야 하는가?
우리는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집에서는 가족과 일가친척,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 직장에서는 상사와 동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유익을 주며 행복하게 살기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13~16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하시고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셨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서로에게 요구되는 사항이 있는데,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누군가 고통받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매일 술에 만취하여 귀가한다면 가족이 얼마나 고통받겠습니까? 학교에서 학생이 늘 소란을 피우며 수업을 방해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직장에서도 동료 간에 감정이나 불편한 마음이 있다면 서로 힘들고 업무 능률도 떨어질 것입니다. 더구나 법에 저촉받을 만큼 큰 죄에 해당하는 도둑질이나 사기 행각, 간음, 살인, 폭행 등은 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줍니다.
주 안에서도 크고 작은 죄가 많습니다. 그중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는 악행이 있는데, 바로 육체의 일입니다(갈 5:19~21). 이 외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쉽게 짓는 죄에는 시기, 비방, 판단, 정죄, 미움, 간음, 거짓 등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도 쉽게 짓는 죄 중의 하나입니다(삼상 12:23). 하나님께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 깨어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죄를 상세하게 열거하는 것은 죄를 짓지 않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혹 죄를 지었다 해도 돌이키기 원하시는 것이지요.
만일 이러한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이런저런 고통과 연단, 시험 환난이 따릅니다. 그리고 현저한 육체의 일 곧 음행과 호색, 우상 숭배, 분쟁, 방탕함 등의 죄를 계속 지어 나가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한 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처럼 악행에서 돌이키지 않아 온갖 재앙을 겪은 대표적인 사람이 애굽의 바로 왕입니다.
3. 온갖 재앙을 겪은 애굽 왕 바로를 통해서 얻는 교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심으로 모세를 그들의 구원자로 보내십니다. 즉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모세와 아론은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이적을 보여 주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내셨음을 알려 줍니다(출 7:9~10). 그래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이 깨닫고 돌이킬 수 있도록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립니다. 애굽의 하수 물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으로 시작하여 개구리 재앙, 이의 재앙, 파리 떼의 재앙, 악질의 재앙, 독종의 재앙, 우박의 재앙, 메뚜기 재앙, 흑암의 재앙, 장자의 재앙으로 생명까지 거두어 가는 열 재앙을 당하였지요.
바로 왕은 열 번째 재앙을 당한 후에야 출애굽을 허락하지만 이내 마음이 변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바로 왕의 마음이 또 변할 것을 다 아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급히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두셨습니다. 온 애굽 사람들도 이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서 떠나가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스라엘 자손이 다 떠나니 바로는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부랴부랴 병거를 타고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 결과 홍해를 건너던 애굽 군대는 병거와 함께 모두 수장되고 말았지요.
만일 바로 왕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곧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주었더라면 화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 재앙으로 고통받지도, 사랑하는 아들과 많은 생축, 재물과 병사를 잃지도 않았겠지요.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깨우쳐야 할까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에 순종하면 축복이요,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키라 하실 때에 금방 돌이키면 손실이 적지만 시간을 끄는 만큼 많은 손실을 입습니다.
4. 악행에서 돌이킬 때 임하는 축복
여기서 돌이킨다는 것은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했다면 다시는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였다면 즉시 돌이키되 완전히 돌이켜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 하셨는데 서쪽으로 갔다면 완전히 돌이켜 동쪽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 용서를 베풀며 응답해 주십니다.
열왕기하 20장에 나오는 히스기야 왕은 처음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교만해졌습니다. 결국 이사야 선지자에게서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하나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병으로 죽게 되자 그는 죄에서 돌이키고 통회자복하며 기도했습니다(왕하 20:3).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습니다. 지난날 그가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시고 기도를 들으셨지요.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하되, 죄에서 철저히 돌이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야겠습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녀들이 모두 죽고 많은 재물이 사라졌을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 악창이 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원망 불평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하나님’이라고까지 합니다(욥 27:2). 그럴 때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 나타나 잘못을 하나하나 지적하십니다. 이에 욥이 자신의 잘못과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악을 깨닫고 중심으로 회개하니 하나님께서는 이전보다 갑절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작심삼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이 마음 안에 계시기 때문에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면 온전히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한 번 약속한 것은 변개하지 않고 지켜 행해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악행이 발견되면 즉시 돌이킬 때 응답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언제 불러가실지, 주님께서 언제 강림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니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영과 혼과 몸을 흠 없게 보전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악에서 돌이켜 오직 진리로 행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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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범죄한 유다 백성에게 23년간이나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라고 호소한 눈물의 선지자는 누구일까요? ( )
2. 죽을병이 들었을 때 낯을 벽으로 향하여 여호와께 눈물로 통회자복하며 기도한 후에 15년이나 생명을 연장받은 왕은 누구일까요? ( )
3.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악행에 대해 써 보세요(갈 5:19~21).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61~7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애굽의 술객들은 어떻게 물을 피로 변하게 했을까?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첫 번째 재앙은 피의 재앙이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지팡이를 들어 하수를 치니 순식간에 물이 피로 변했다. 그런데 애굽의 술객들도 물이 피로 변하게 하니 바로가 모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다.
애굽 궁중의 술객들은 갖가지 재주를 부리며 왕을 즐겁게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술법을 통해 벼슬길에 올랐으며 조상 대대로 이어온 가업이기 때문에 재질을 타고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들은 악한 영들과 접하였고 교묘한 눈속임과 자신들이 터득한 기법을 활용하여 물이 피로 변하게 했다. 물론 애굽 전역의 하수를 피로 변하게 한 모세와 달리 그들은 일부만을 피로 변하게 했을 뿐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행에서 떠나 오직 진리대로 행하여 응답과 축복을 받는 주인공이 되게 한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이 평안할 때에는 하나님 섬기기를 게을리하다가, 어려움이 닥치면 다시 하나님 찾기를 반복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른길로 이끄시기 위해 선지자들을 보내 악행에서 돌이키도록 일깨워 주셨습니다.
1. 악행에서 돌이키기 원하시는 하나님
남유다 왕국 말기 요시야 왕 때부터 활동한 예레미야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며 율법을 무시해 온 백성을 향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백성은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했지요. 당시 북이스라엘 왕국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후였습니다. 그런데 남유다 왕국마저 그 악행 때문에 망하게 되었으니 예레미야가 이를 안타까워하며 악행에서 돌이켜야 할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왕국에 진노하신 것은 바로 간음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으로 간음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외에도 남유다 백성은 갖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23년간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라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렘 38:4~6).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말씀대로 행치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이나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데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하셨으니 악행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2. 우리가 왜 악행에서 돌이켜야 하는가?
우리는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집에서는 가족과 일가친척,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 직장에서는 상사와 동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유익을 주며 행복하게 살기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13~16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하시고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셨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서로에게 요구되는 사항이 있는데,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누군가 고통받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매일 술에 만취하여 귀가한다면 가족이 얼마나 고통받겠습니까? 학교에서 학생이 늘 소란을 피우며 수업을 방해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직장에서도 동료 간에 감정이나 불편한 마음이 있다면 서로 힘들고 업무 능률도 떨어질 것입니다. 더구나 법에 저촉받을 만큼 큰 죄에 해당하는 도둑질이나 사기 행각, 간음, 살인, 폭행 등은 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줍니다.
주 안에서도 크고 작은 죄가 많습니다. 그중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는 악행이 있는데, 바로 육체의 일입니다(갈 5:19~21). 이 외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쉽게 짓는 죄에는 시기, 비방, 판단, 정죄, 미움, 간음, 거짓 등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도 쉽게 짓는 죄 중의 하나입니다(삼상 12:23). 하나님께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 깨어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죄를 상세하게 열거하는 것은 죄를 짓지 않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혹 죄를 지었다 해도 돌이키기 원하시는 것이지요.
만일 이러한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이런저런 고통과 연단, 시험 환난이 따릅니다. 그리고 현저한 육체의 일 곧 음행과 호색, 우상 숭배, 분쟁, 방탕함 등의 죄를 계속 지어 나가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한 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처럼 악행에서 돌이키지 않아 온갖 재앙을 겪은 대표적인 사람이 애굽의 바로 왕입니다.
3. 온갖 재앙을 겪은 애굽 왕 바로를 통해서 얻는 교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심으로 모세를 그들의 구원자로 보내십니다. 즉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모세와 아론은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이적을 보여 주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내셨음을 알려 줍니다(출 7:9~10). 그래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이 깨닫고 돌이킬 수 있도록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립니다. 애굽의 하수 물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으로 시작하여 개구리 재앙, 이의 재앙, 파리 떼의 재앙, 악질의 재앙, 독종의 재앙, 우박의 재앙, 메뚜기 재앙, 흑암의 재앙, 장자의 재앙으로 생명까지 거두어 가는 열 재앙을 당하였지요.
바로 왕은 열 번째 재앙을 당한 후에야 출애굽을 허락하지만 이내 마음이 변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바로 왕의 마음이 또 변할 것을 다 아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급히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두셨습니다. 온 애굽 사람들도 이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서 떠나가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스라엘 자손이 다 떠나니 바로는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부랴부랴 병거를 타고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 결과 홍해를 건너던 애굽 군대는 병거와 함께 모두 수장되고 말았지요.
만일 바로 왕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곧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주었더라면 화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 재앙으로 고통받지도, 사랑하는 아들과 많은 생축, 재물과 병사를 잃지도 않았겠지요.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깨우쳐야 할까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에 순종하면 축복이요,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키라 하실 때에 금방 돌이키면 손실이 적지만 시간을 끄는 만큼 많은 손실을 입습니다.
4. 악행에서 돌이킬 때 임하는 축복
여기서 돌이킨다는 것은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했다면 다시는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였다면 즉시 돌이키되 완전히 돌이켜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 하셨는데 서쪽으로 갔다면 완전히 돌이켜 동쪽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 용서를 베풀며 응답해 주십니다.
열왕기하 20장에 나오는 히스기야 왕은 처음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교만해졌습니다. 결국 이사야 선지자에게서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하나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병으로 죽게 되자 그는 죄에서 돌이키고 통회자복하며 기도했습니다(왕하 20:3).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습니다. 지난날 그가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시고 기도를 들으셨지요.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하되, 죄에서 철저히 돌이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야겠습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녀들이 모두 죽고 많은 재물이 사라졌을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 악창이 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원망 불평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하나님’이라고까지 합니다(욥 27:2). 그럴 때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 나타나 잘못을 하나하나 지적하십니다. 이에 욥이 자신의 잘못과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악을 깨닫고 중심으로 회개하니 하나님께서는 이전보다 갑절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작심삼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이 마음 안에 계시기 때문에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면 온전히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한 번 약속한 것은 변개하지 않고 지켜 행해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악행이 발견되면 즉시 돌이킬 때 응답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언제 불러가실지, 주님께서 언제 강림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니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영과 혼과 몸을 흠 없게 보전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악에서 돌이켜 오직 진리로 행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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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범죄한 유다 백성에게 23년간이나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라고 호소한 눈물의 선지자는 누구일까요? ( )
2. 죽을병이 들었을 때 낯을 벽으로 향하여 여호와께 눈물로 통회자복하며 기도한 후에 15년이나 생명을 연장받은 왕은 누구일까요? ( )
3.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악행에 대해 써 보세요(갈 5:19~21).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61~7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애굽의 술객들은 어떻게 물을 피로 변하게 했을까?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첫 번째 재앙은 피의 재앙이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지팡이를 들어 하수를 치니 순식간에 물이 피로 변했다. 그런데 애굽의 술객들도 물이 피로 변하게 하니 바로가 모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다.
애굽 궁중의 술객들은 갖가지 재주를 부리며 왕을 즐겁게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술법을 통해 벼슬길에 올랐으며 조상 대대로 이어온 가업이기 때문에 재질을 타고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들은 악한 영들과 접하였고 교묘한 눈속임과 자신들이 터득한 기법을 활용하여 물이 피로 변하게 했다. 물론 애굽 전역의 하수를 피로 변하게 한 모세와 달리 그들은 일부만을 피로 변하게 했을 뿐이다.
2017-01-20
제3과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되리라
롬 10:10
읽을말씀 : 롬 10:10 | 외울말씀 : 롬 10:10 ㅣ 참고 말씀: 민 13:31~33, 14:7~9
교육목표 : 부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아닌 믿음의 긍정적인 고백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긍정적인 고백을 하며 하나님 역사를 입으로 시인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입술의 고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고백으로 항상 승리의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의 중요성
어떤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수록 더욱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중에도 긍정적인 자세로 어려움을 이기고 성공하는 경우를 봅니다. 물론 입술로 긍정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요. 최선을 다하는 노력과 인내,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먼저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중에 열 사람은 가나안 거민을 두려워하여 그 땅을 악평하며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 14:7~9)
이러한 믿음의 고백, 긍정의 고백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보고를 한 열 명의 정탐꾼과 그들의 말을 듣고 불평한 당시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어떤 일을 만날 때에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백부장의 믿음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는 자기 하인의 중풍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갸륵한 마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라가 하인을 고쳐 주시려 했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 8:8~9)
백부장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 8:10) 하며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과연 백부장이 시인한 대로 하인의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은 어떤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까?
여인은 딸에게 들린 귀신을 쫓아 주시라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뜻밖에도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말씀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개 취급을 당했으니 모멸감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그렇지 않았지요.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겸비한 고백으로 은혜를 구했습니다.
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 반드시 응답받고자 하는 마음과 변함없는 믿음이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어떠한 말씀에도 오해하지 않고 변개하지 않는 선한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여인의 선과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집에 돌아가 보니 딸이 침대에 누워 있는데 귀신이 나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믿음대로 즉시 응답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구할 때 반드시 응답받습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에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2. 입술로 매를 자청한 사람과 복을 받은 사람
성경에 보면 입술로 매를 자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지만 결과는 그 입술로 시인한 대로 되었습니다. 장자의 모든 축복권이 동생 야곱에게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열왕기하 6~7장에도 비슷한 일이 나옵니다.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오래 포위해서 공격하므로 성 안에는 먹을 것이 없어 자식까지 잡아먹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밀가루와 보리가 헐값에 팔리리라” 예언하지만 왕의 심복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망령된 말을 하지요. 그러자 엘리사는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합니다.
다음 날 장관은 성문을 지키고 있다가 아람 군대의 진을 노략하러 가던 백성에게 밟혀 죽고 맙니다. 선지자의 말을 부정하므로 저주를 받았지요. 이처럼 말 한마디에 하나님 역사가 따르기도 하고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가 따르기도 합니다.
반면 역대하 20장을 보면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오자 여호사밧 왕은 온 백성과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자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가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왕은 백성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격려하지요. 또한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혀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왕의 긍정적인 고백과 믿음의 행함을 보시고 싸우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게 역사하셨습니다.
3.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응답받으려면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입으로 시인하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마음에 믿지 않고 의심하면서 “믿습니다.”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무조건 입으로 시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에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하여 비진리를 버리며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요. 그래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 뜻을 좇아 말씀대로 행하니 하나님께서 그가 입술로 시인할 때 응답하십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열심히 하나님 앞에 심고 구제하며 예배와 각종 모임에 참석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은커녕 어려운 일만 닥치니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원망 불평했다면 왜 그런 모습이 나온 것일까요? 그가 정말로 하나님을 마음에 믿었다면 마음이 바뀌지 않고 끝까지 인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믿은 것이 아니라 단지 입술로 시인한 것이니 때가 지나자 본심이 드러난 것이지요.
따라서 똑같이 충성하고 심었어도 누구는 응답받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입술의 고백대로 응답받습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은 입술로 고백했다 해도 그것이 참이 아니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의 악이 드러납니다.
야고보서 3장 11절에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라고 말씀합니다. “믿습니다.” 해 놓고 다음에 부정하는 쓴물을 낸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내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인한 대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혹여 힘들고 어려울 때, 시험 환난이 닥쳤을 때에 원망 불평하는 말, 하나님 혹은 주의 종, 형제를 서운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답게 단물만 내는 거룩한 입술이 되어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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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의 고백을 써 보세요(민 14:7~9).
2.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올 때 여호사밧 왕이 백성에게 한 믿음의 고백을 써 보세요(대하 20:20).
3. 귀신 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했을 때 개 취급을 당했음에도 겸손히 끝까지 믿음의 고백을 한 수로보니게 여인의 고백을 써 보세요(막 7:28).
4.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롬 10:10)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49~6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입술의 단물이란?
영적으로 진리의 말, 영혼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힘을 주는 말, 믿음의 고백 혹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간증을 말한다. 사람의 말은 그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단물만 내는 입술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선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씀하고 있다.
교육목표 : 부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아닌 믿음의 긍정적인 고백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긍정적인 고백을 하며 하나님 역사를 입으로 시인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입술의 고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고백으로 항상 승리의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의 중요성
어떤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수록 더욱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중에도 긍정적인 자세로 어려움을 이기고 성공하는 경우를 봅니다. 물론 입술로 긍정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요. 최선을 다하는 노력과 인내,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먼저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중에 열 사람은 가나안 거민을 두려워하여 그 땅을 악평하며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 14:7~9)
이러한 믿음의 고백, 긍정의 고백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보고를 한 열 명의 정탐꾼과 그들의 말을 듣고 불평한 당시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어떤 일을 만날 때에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백부장의 믿음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는 자기 하인의 중풍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갸륵한 마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라가 하인을 고쳐 주시려 했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 8:8~9)
백부장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 8:10) 하며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과연 백부장이 시인한 대로 하인의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은 어떤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까?
여인은 딸에게 들린 귀신을 쫓아 주시라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뜻밖에도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말씀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개 취급을 당했으니 모멸감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그렇지 않았지요.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겸비한 고백으로 은혜를 구했습니다.
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 반드시 응답받고자 하는 마음과 변함없는 믿음이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어떠한 말씀에도 오해하지 않고 변개하지 않는 선한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여인의 선과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집에 돌아가 보니 딸이 침대에 누워 있는데 귀신이 나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믿음대로 즉시 응답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구할 때 반드시 응답받습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에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2. 입술로 매를 자청한 사람과 복을 받은 사람
성경에 보면 입술로 매를 자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지만 결과는 그 입술로 시인한 대로 되었습니다. 장자의 모든 축복권이 동생 야곱에게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열왕기하 6~7장에도 비슷한 일이 나옵니다.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오래 포위해서 공격하므로 성 안에는 먹을 것이 없어 자식까지 잡아먹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밀가루와 보리가 헐값에 팔리리라” 예언하지만 왕의 심복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망령된 말을 하지요. 그러자 엘리사는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합니다.
다음 날 장관은 성문을 지키고 있다가 아람 군대의 진을 노략하러 가던 백성에게 밟혀 죽고 맙니다. 선지자의 말을 부정하므로 저주를 받았지요. 이처럼 말 한마디에 하나님 역사가 따르기도 하고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가 따르기도 합니다.
반면 역대하 20장을 보면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오자 여호사밧 왕은 온 백성과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자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가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왕은 백성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격려하지요. 또한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혀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왕의 긍정적인 고백과 믿음의 행함을 보시고 싸우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게 역사하셨습니다.
3.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응답받으려면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입으로 시인하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마음에 믿지 않고 의심하면서 “믿습니다.”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무조건 입으로 시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에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하여 비진리를 버리며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요. 그래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 뜻을 좇아 말씀대로 행하니 하나님께서 그가 입술로 시인할 때 응답하십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열심히 하나님 앞에 심고 구제하며 예배와 각종 모임에 참석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은커녕 어려운 일만 닥치니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원망 불평했다면 왜 그런 모습이 나온 것일까요? 그가 정말로 하나님을 마음에 믿었다면 마음이 바뀌지 않고 끝까지 인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믿은 것이 아니라 단지 입술로 시인한 것이니 때가 지나자 본심이 드러난 것이지요.
따라서 똑같이 충성하고 심었어도 누구는 응답받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입술의 고백대로 응답받습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은 입술로 고백했다 해도 그것이 참이 아니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의 악이 드러납니다.
야고보서 3장 11절에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라고 말씀합니다. “믿습니다.” 해 놓고 다음에 부정하는 쓴물을 낸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내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인한 대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혹여 힘들고 어려울 때, 시험 환난이 닥쳤을 때에 원망 불평하는 말, 하나님 혹은 주의 종, 형제를 서운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답게 단물만 내는 거룩한 입술이 되어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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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의 고백을 써 보세요(민 14:7~9).
2.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올 때 여호사밧 왕이 백성에게 한 믿음의 고백을 써 보세요(대하 20:20).
3. 귀신 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했을 때 개 취급을 당했음에도 겸손히 끝까지 믿음의 고백을 한 수로보니게 여인의 고백을 써 보세요(막 7:28).
4.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롬 10:10)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49~6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입술의 단물이란?
영적으로 진리의 말, 영혼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힘을 주는 말, 믿음의 고백 혹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간증을 말한다. 사람의 말은 그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단물만 내는 입술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선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씀하고 있다.
2017-01-13
제2과응답의 하나님
시 78:12~29
읽을말씀 : 시 78:12~29 | 외울말씀 : 마 7:7 l 참고 말씀: 삼상 1:11, 마 1:19
교육목표 : 아름답고 선한 마음을 이루어 믿음으로 순종하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행복한 삶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시행해 주기 원하십니다. 성도 중에는 하나님께 구하여 무엇이나 응답받아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간혹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실까? 천국과 지옥이 있을까? 혹 없다면 교회에 다니는 것이 손해인데….’ 하고 의심하므로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 반드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찾으면 누구나 만나게 될 것입니다.
1.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성경을 보면 한나가 잉태하지 못하여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사무엘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이미 경수가 끊어졌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니 이삭을 낳을 수 있었지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아무리 잉태할 수 없는 상태라 해도 아이를 출산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엘리사 선지자가 살려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지요(요 11장). 또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기도 하셨습니다. 시체를 향해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자 일어나 앉고 말하였지요(눅 7장).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러한 역사를 베풀었습니다. 바울은 삼층 누각에 걸터앉아 설교를 듣다 졸음을 이기지 못해 떨어져 죽은 유두고라는 청년을 살렸지요. 베드로는 다비다라는 여인을 기도로 살렸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그 당시뿐 아니라, 지금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받는 하나님의 종이나 믿음의 사람을 통해 역사하고 계십니다.
2.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나타내기 위해 선택된 민족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애굽(이집트)에서 약 400년간 노예생활을 합니다. 이때 심한 고역으로 탄식하며 부르짖는 백성들의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지요(출 2:23).
그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세워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축복과 구원의 땅으로 인도해 가셨습니다.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늘을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민 14:14).
그런데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때 모세가 반석을 치니 물이 강같이 흘렀지요. 하지만 백성들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계속 하나님께 불평하고 범죄합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시 78:19~20) 하였지요.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믿음이 온전치 않음을 아시기에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를 비같이 내려 40여 년간이나 먹이셨습니다. 또한 수많은 메추라기 떼를 이스라엘 백성의 거처에 보내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시 78:23~29).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많은 기사와 표적을 베푸셨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 여정은 우리가 죄 가운데 살던 생활에서 벗어나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믿음의 생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우리 삶 속에서 만나 주시고 응답하며 천국에까지 인도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약속하셨으니 우리는 얼마든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응답은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가?
아브라함은 변함없는 믿음으로 응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도 살리시는 전지전능한 분임을 믿었기에 어떤 것을 요구하시더라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의심하고 원망 불평합니다. 이처럼 두 마음을 품으면 응답받을 수 없지만(약 1:6~8)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응답받기 위해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로 들어갈 만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왕상 18:42). 이를 통해 3년 반 동안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던 땅에 큰 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한 사람에게 임합니다. 고넬료는 이달리야대 백부장으로 이방인입니다. 그는 경건하여 온 가족과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습니다(행 10:2). 이러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니 베드로를 보내 그와 그 자리에 참석한 고넬료의 일가친척, 친구까지도 모두 성령을 받고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정성껏 드림으로 축복과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셨지요. 이때 솔로몬은 부귀영화가 아닌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지혜는 물론 구하지 않은 부귀영화까지 주셨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오늘날의 예배를 의미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때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소년 다윗은 어떠하였습니까?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 군대와 대치할 때에 블레셋에는 골리앗이라는 큰 용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40일간이나 아침 저녁으로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였지만 아무도 그와 싸우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를 목도한 다윗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물매로 돌을 던졌는데 정확히 그의 이마에 박혀 엎드러지고 말았지요. 결국 이스라엘이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다윗처럼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합한 중심이 되면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행 13:22).
4. 하나님을 신속히 만나는 사람들의 중심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동침한 적도 없는데 마리아의 배가 불러옵니다. 물론 마리아는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했지만 요셉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사랑하는 여인을 죽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므로 이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지요(마 1:19). 상대의 허물을 알리거나 해를 끼치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런 착하고 의로운 마음이었기 때문에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했지요.
한편 마리아는 어떤 마음입니까?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했지요. 이때 마리아는 자신의 처지와 어려움을 생각지 않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고백하며 그대로 믿고 순종하였습니다(눅 1장).
세례 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눅 1:6). 제사장이었던 사가랴와 아내 엘리사벳은 늙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그들에게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가진 세례 요한을 잉태하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어떤 마음과 중심으로 나아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하나님을 만나면 다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사람에게 분명히 만나 주시므로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복을 받고 형통한 길로 항상 인도받아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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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인물을 찾아 써 보세요.
1.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며 항상 기도하였고, 베드로를 통해 일가친척, 친구까지 성령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 )
2. 정혼한 여인이 동침한 적이 없는데 배가 불러왔을 때 허물을 알리려 하거나 해를 끼치려는 마음이 전혀 없이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 )
3.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31~4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만나’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던 도중, 광야에서 먹을 음식이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신 양식이다.
작고 둥글며 희고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았다(민 11:7).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아 과자를 만들어 먹었는데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다(출 16:31).
교육목표 : 아름답고 선한 마음을 이루어 믿음으로 순종하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행복한 삶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시행해 주기 원하십니다. 성도 중에는 하나님께 구하여 무엇이나 응답받아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간혹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실까? 천국과 지옥이 있을까? 혹 없다면 교회에 다니는 것이 손해인데….’ 하고 의심하므로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 반드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찾으면 누구나 만나게 될 것입니다.
1.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성경을 보면 한나가 잉태하지 못하여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사무엘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이미 경수가 끊어졌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니 이삭을 낳을 수 있었지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아무리 잉태할 수 없는 상태라 해도 아이를 출산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엘리사 선지자가 살려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지요(요 11장). 또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기도 하셨습니다. 시체를 향해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자 일어나 앉고 말하였지요(눅 7장).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러한 역사를 베풀었습니다. 바울은 삼층 누각에 걸터앉아 설교를 듣다 졸음을 이기지 못해 떨어져 죽은 유두고라는 청년을 살렸지요. 베드로는 다비다라는 여인을 기도로 살렸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그 당시뿐 아니라, 지금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받는 하나님의 종이나 믿음의 사람을 통해 역사하고 계십니다.
2.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나타내기 위해 선택된 민족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애굽(이집트)에서 약 400년간 노예생활을 합니다. 이때 심한 고역으로 탄식하며 부르짖는 백성들의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지요(출 2:23).
그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세워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축복과 구원의 땅으로 인도해 가셨습니다.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늘을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민 14:14).
그런데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때 모세가 반석을 치니 물이 강같이 흘렀지요. 하지만 백성들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계속 하나님께 불평하고 범죄합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시 78:19~20) 하였지요.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믿음이 온전치 않음을 아시기에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를 비같이 내려 40여 년간이나 먹이셨습니다. 또한 수많은 메추라기 떼를 이스라엘 백성의 거처에 보내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시 78:23~29).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많은 기사와 표적을 베푸셨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 여정은 우리가 죄 가운데 살던 생활에서 벗어나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믿음의 생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우리 삶 속에서 만나 주시고 응답하며 천국에까지 인도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약속하셨으니 우리는 얼마든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응답은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가?
아브라함은 변함없는 믿음으로 응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도 살리시는 전지전능한 분임을 믿었기에 어떤 것을 요구하시더라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의심하고 원망 불평합니다. 이처럼 두 마음을 품으면 응답받을 수 없지만(약 1:6~8)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응답받기 위해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로 들어갈 만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왕상 18:42). 이를 통해 3년 반 동안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던 땅에 큰 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한 사람에게 임합니다. 고넬료는 이달리야대 백부장으로 이방인입니다. 그는 경건하여 온 가족과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습니다(행 10:2). 이러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니 베드로를 보내 그와 그 자리에 참석한 고넬료의 일가친척, 친구까지도 모두 성령을 받고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정성껏 드림으로 축복과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셨지요. 이때 솔로몬은 부귀영화가 아닌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지혜는 물론 구하지 않은 부귀영화까지 주셨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오늘날의 예배를 의미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때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소년 다윗은 어떠하였습니까?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 군대와 대치할 때에 블레셋에는 골리앗이라는 큰 용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40일간이나 아침 저녁으로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였지만 아무도 그와 싸우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를 목도한 다윗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물매로 돌을 던졌는데 정확히 그의 이마에 박혀 엎드러지고 말았지요. 결국 이스라엘이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다윗처럼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합한 중심이 되면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행 13:22).
4. 하나님을 신속히 만나는 사람들의 중심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동침한 적도 없는데 마리아의 배가 불러옵니다. 물론 마리아는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했지만 요셉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사랑하는 여인을 죽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므로 이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지요(마 1:19). 상대의 허물을 알리거나 해를 끼치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런 착하고 의로운 마음이었기 때문에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했지요.
한편 마리아는 어떤 마음입니까?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했지요. 이때 마리아는 자신의 처지와 어려움을 생각지 않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고백하며 그대로 믿고 순종하였습니다(눅 1장).
세례 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눅 1:6). 제사장이었던 사가랴와 아내 엘리사벳은 늙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그들에게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가진 세례 요한을 잉태하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어떤 마음과 중심으로 나아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하나님을 만나면 다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사람에게 분명히 만나 주시므로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복을 받고 형통한 길로 항상 인도받아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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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인물을 찾아 써 보세요.
1.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며 항상 기도하였고, 베드로를 통해 일가친척, 친구까지 성령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 )
2. 정혼한 여인이 동침한 적이 없는데 배가 불러왔을 때 허물을 알리려 하거나 해를 끼치려는 마음이 전혀 없이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 )
3.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31~4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만나’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던 도중, 광야에서 먹을 음식이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신 양식이다.
작고 둥글며 희고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았다(민 11:7).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아 과자를 만들어 먹었는데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다(출 16:31).
2017-01-06
제1과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고전 15:31
읽을말씀 : 고전 15:31 | 외울말씀 : 고후 5:17 l 참고 말씀: 삼상 15:22
교육목표 : 새해를 맞이하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며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은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우리의 신앙이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성장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새로워져야만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지요.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하며 신속히 온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진리의 사람으로 새로워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아무리 충성한다 해도 사심이 있으면 상대를 힘들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낼 수가 없지요.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습니다. 일꾼이라면 육의 정과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특히 주의 종이라면 내 부모나 자녀, 육의 가족보다 맡은 양 떼들을 더 귀히 여겨야 하지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으려면 탐심은 물론이고 자존심이나 교만도 버려야 하고, 명예욕, 권세욕도 버려야 합니다.
나를 잘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누구를 대한다 해도 태도와 안색이 달라져서도 안 되지요.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도 버려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사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핑계가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려고 일을 하면서도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했다.” 하지요.
가령, 성도들에게 이러 이러한 용도로 예물을 모으자 하거나 야외로 나가 어떤 모임을 갖자고 합니다. 굳이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이런 일을 추진했다.” 하며 자신을 드러내려고 굳이 일을 벌이지요. 어떤 행사를 치를 때도 성도들의 입장과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진행합니다.
이럴 때는 구성원들의 마음이 하나 되기 쉽지 않고 그 열매도 육의 열매가 나옵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고집하면서 자기 사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혹여 나는 어떤 일을 하거나 말 한마디 속에도 ‘주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내 의욕이 앞서고 내 공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은 아닌지, 섬김 받으려는 마음은 아닌지, 내 유익을 취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니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날마다 자신을 면밀히 점검하여 정결하게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2.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영의 일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 세상 것을 바라보고 천국을 소망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말로는 영을 사모한다 하면서 그 마음과 생각이 육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 시선이 육의 것을 향하지요. 이런 사람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런데 의외로 나름대로 믿음 있다, 일꾼이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충성한다 하는 사람들 중에 중한 육체의 일을 범하는 것을 봅니다. 이들도 처음부터 중한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큰 죄는 아니니까.” 하면서 작은 육의 것들을 허용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되었지요. 마음과 생각에 육을 허용하는 만큼 성령 충만함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육을 허용했기 때문에 처음 받은 은혜가 떨어졌고, 첫사랑을 잃어버렸으며 기도하는 게 싫어졌고, 예배드리는 것이 해이해진 것입니다. 자꾸 세상 것만 추구하게 되고,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게 되었지요. 그러니 하나님과의 사이에 담이 쌓이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귀가 둔해지고, 죄를 경계하는 마음이 무뎌져서 결국은 사망에 이르는 큰 죄까지 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만나 첫사랑의 뜨거움을 체험했을 때는 온 마음과 생각을 영의 일들로 채웠을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으려면 전에 취하던 작은 육의 일들도 하나하나 끊고, 여가 시간에도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이런 열정이 식어서는 안 됩니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워올수록 더 열정이 뜨거워져야지, 결코 제자리걸음 한다든가 식어서는 안 되지요.
우리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항상 생각하고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영의 일들입니다. “어찌하면 말씀을 더 무장할까, 어찌하면 더 기도할까, 어찌하면 속히 변화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까, 어찌하면 영혼들에게 생명을 주고 충만함을 줄까.” 이런 영의 일들만 생각해야 합니다.
길을 가면서도, 잠들기 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을 변화시키고 믿음의 형제들에게 은혜를 끼칠 생각을 해야지요. 영의 일들만 생각하며 영의 것으로 마음을 채워 나가면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습니다. 동행하시며 보장하시는 주님을 늘 체험하기에 허전함이나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습니다. 어찌하든 변화되어 성결을 이루고 사명 감당 잘하여 많은 열매를 낼까 힘쓰는 것이지요.
3.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처럼 저도 가장 소중한 것을 주께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은 쉽게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순종하는 일꾼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입장이 되면 온갖 육신의 생각들을 동원하는 것이지요. “아니, 이삭을 통해 후손을 번성케 하신다 하셨는데, 이제는 그 언약의 말씀을 번복하시는가?” 이런저런 육신의 생각 속에 충만함이 떨어지기도 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원망과 서운한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자기 의와 틀과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하는 것은 순종한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그대로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심도, 육신의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순종하겠다고 결심해도 육이 있으면 불순종이 나옵니다. 충분히 순종할 수 있는 일조차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고 이유를 대면서 불순종하지요. 그러니 자기 한계 속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령 “영의 일만 생각하라.” 하면 그 순간에는 “아멘” 하고 “영의 일만 생각하게 하소서.”라고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구습대로 육신의 생각을 하면서도 차단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 속에 빠져들어 육을 취해 가는데도 깨우치지 못하지요. 들은 말씀은 있고 기도한 것이 있어서 마음에 찔림은 되지만 “이것쯤이야 큰 죄는 아니니까.” 하며 넘어가 버립니다.
이처럼 죄에 대해 단호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면 신앙이 정체되거나 퇴보하며 정진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육체의 결여가 있어도 채울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도 없지요.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가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가장 빠른 길은 진리에 즉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유와 핑계를 대지 않고 진리대로만 행하면 됩니다. 이렇게 순종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도우심 속에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한걸음, 한걸음 인도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성공하려면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고 인내로 자신을 다스려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성공의 길을 아무리 알아도 게으름과 정욕을 좇아 사는 사람들은 그 길로 갈 수가 없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종종 극적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봅니다.
방탕하여 구제불능의 삶을 살던 사람이 큰 위험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에는 하루아침에 변화되어 반듯하고 성실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공부를 전혀 안 하고 놀기만 하던 학생이 어떤 일로 충격을 받아 밤낮으로 공부해서 우등생이 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을 보면 주변에서 “전혀 딴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완전히 달려졌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사심을 버리고 영의 일만 생각하며 온전한 순종을 이룸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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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날마다 새로워져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죄에 대해 단호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면 신앙이 정체되거나 퇴보하며 정진해 나갈 수 없다. 영으로 들어가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가장 빠른 길은 진리에 즉시 ( )하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7~3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순종의 유형
1. 명령에 억지로 순종하는 경우
2. 자기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만 순종하는 경우
지시나 명령이 자기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하고 맞지 않을 때는 불순종한다.
3. 무조건 순종하는 경우
자신이 할 수 있나 없나, 자기 생각에 맞나 틀리나를 따지지 않고 자기 의사없이 무조건 아멘 한다.
4. 명령하시는 의도를 마음으로 깨달아 기꺼이 순종하는 경우
순종할 때 이루어질 일의 결과도 대략 마음에 그려지고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온전히 순종한다.
교육목표 : 새해를 맞이하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며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은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우리의 신앙이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성장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새로워져야만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지요.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하며 신속히 온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진리의 사람으로 새로워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아무리 충성한다 해도 사심이 있으면 상대를 힘들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낼 수가 없지요.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습니다. 일꾼이라면 육의 정과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특히 주의 종이라면 내 부모나 자녀, 육의 가족보다 맡은 양 떼들을 더 귀히 여겨야 하지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으려면 탐심은 물론이고 자존심이나 교만도 버려야 하고, 명예욕, 권세욕도 버려야 합니다.
나를 잘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누구를 대한다 해도 태도와 안색이 달라져서도 안 되지요.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도 버려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사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핑계가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려고 일을 하면서도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했다.” 하지요.
가령, 성도들에게 이러 이러한 용도로 예물을 모으자 하거나 야외로 나가 어떤 모임을 갖자고 합니다. 굳이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이런 일을 추진했다.” 하며 자신을 드러내려고 굳이 일을 벌이지요. 어떤 행사를 치를 때도 성도들의 입장과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진행합니다.
이럴 때는 구성원들의 마음이 하나 되기 쉽지 않고 그 열매도 육의 열매가 나옵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고집하면서 자기 사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혹여 나는 어떤 일을 하거나 말 한마디 속에도 ‘주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내 의욕이 앞서고 내 공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은 아닌지, 섬김 받으려는 마음은 아닌지, 내 유익을 취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니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날마다 자신을 면밀히 점검하여 정결하게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2.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영의 일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 세상 것을 바라보고 천국을 소망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말로는 영을 사모한다 하면서 그 마음과 생각이 육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 시선이 육의 것을 향하지요. 이런 사람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런데 의외로 나름대로 믿음 있다, 일꾼이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충성한다 하는 사람들 중에 중한 육체의 일을 범하는 것을 봅니다. 이들도 처음부터 중한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큰 죄는 아니니까.” 하면서 작은 육의 것들을 허용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되었지요. 마음과 생각에 육을 허용하는 만큼 성령 충만함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육을 허용했기 때문에 처음 받은 은혜가 떨어졌고, 첫사랑을 잃어버렸으며 기도하는 게 싫어졌고, 예배드리는 것이 해이해진 것입니다. 자꾸 세상 것만 추구하게 되고,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게 되었지요. 그러니 하나님과의 사이에 담이 쌓이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귀가 둔해지고, 죄를 경계하는 마음이 무뎌져서 결국은 사망에 이르는 큰 죄까지 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만나 첫사랑의 뜨거움을 체험했을 때는 온 마음과 생각을 영의 일들로 채웠을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으려면 전에 취하던 작은 육의 일들도 하나하나 끊고, 여가 시간에도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이런 열정이 식어서는 안 됩니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워올수록 더 열정이 뜨거워져야지, 결코 제자리걸음 한다든가 식어서는 안 되지요.
우리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항상 생각하고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영의 일들입니다. “어찌하면 말씀을 더 무장할까, 어찌하면 더 기도할까, 어찌하면 속히 변화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까, 어찌하면 영혼들에게 생명을 주고 충만함을 줄까.” 이런 영의 일들만 생각해야 합니다.
길을 가면서도, 잠들기 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을 변화시키고 믿음의 형제들에게 은혜를 끼칠 생각을 해야지요. 영의 일들만 생각하며 영의 것으로 마음을 채워 나가면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습니다. 동행하시며 보장하시는 주님을 늘 체험하기에 허전함이나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습니다. 어찌하든 변화되어 성결을 이루고 사명 감당 잘하여 많은 열매를 낼까 힘쓰는 것이지요.
3.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처럼 저도 가장 소중한 것을 주께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은 쉽게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순종하는 일꾼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입장이 되면 온갖 육신의 생각들을 동원하는 것이지요. “아니, 이삭을 통해 후손을 번성케 하신다 하셨는데, 이제는 그 언약의 말씀을 번복하시는가?” 이런저런 육신의 생각 속에 충만함이 떨어지기도 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원망과 서운한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자기 의와 틀과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하는 것은 순종한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그대로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심도, 육신의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순종하겠다고 결심해도 육이 있으면 불순종이 나옵니다. 충분히 순종할 수 있는 일조차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고 이유를 대면서 불순종하지요. 그러니 자기 한계 속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령 “영의 일만 생각하라.” 하면 그 순간에는 “아멘” 하고 “영의 일만 생각하게 하소서.”라고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구습대로 육신의 생각을 하면서도 차단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 속에 빠져들어 육을 취해 가는데도 깨우치지 못하지요. 들은 말씀은 있고 기도한 것이 있어서 마음에 찔림은 되지만 “이것쯤이야 큰 죄는 아니니까.” 하며 넘어가 버립니다.
이처럼 죄에 대해 단호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면 신앙이 정체되거나 퇴보하며 정진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육체의 결여가 있어도 채울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도 없지요.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가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가장 빠른 길은 진리에 즉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유와 핑계를 대지 않고 진리대로만 행하면 됩니다. 이렇게 순종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도우심 속에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한걸음, 한걸음 인도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성공하려면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고 인내로 자신을 다스려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성공의 길을 아무리 알아도 게으름과 정욕을 좇아 사는 사람들은 그 길로 갈 수가 없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종종 극적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봅니다.
방탕하여 구제불능의 삶을 살던 사람이 큰 위험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에는 하루아침에 변화되어 반듯하고 성실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공부를 전혀 안 하고 놀기만 하던 학생이 어떤 일로 충격을 받아 밤낮으로 공부해서 우등생이 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을 보면 주변에서 “전혀 딴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완전히 달려졌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사심을 버리고 영의 일만 생각하며 온전한 순종을 이룸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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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날마다 새로워져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죄에 대해 단호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면 신앙이 정체되거나 퇴보하며 정진해 나갈 수 없다. 영으로 들어가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가장 빠른 길은 진리에 즉시 ( )하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7~3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순종의 유형
1. 명령에 억지로 순종하는 경우
2. 자기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만 순종하는 경우
지시나 명령이 자기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하고 맞지 않을 때는 불순종한다.
3. 무조건 순종하는 경우
자신이 할 수 있나 없나, 자기 생각에 맞나 틀리나를 따지지 않고 자기 의사없이 무조건 아멘 한다.
4. 명령하시는 의도를 마음으로 깨달아 기꺼이 순종하는 경우
순종할 때 이루어질 일의 결과도 대략 마음에 그려지고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온전히 순종한다.
2016-12-30
제52과온 영의 완성을 이루는 믿음의 5단계
요일 4:16
읽을말씀 : 요일 4:16 | 외울말씀 : 사 30:18 l 참고 말씀: 유 1:14
교육목표 : 마음과 뜻과 생각이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를 이루며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구함으로 선한 향을 발하는 온 영의 일꾼이 되게 한다.
믿음의 5단계는 성령의 열매가 온전히 맺힌 ‘온 영’의 차원입니다. 그러나 온 영의 마음을 이뤘다 해서 완성된 것은 아니며, 무한한 영의 세계로의 입문에 불과합니다. 온 영에서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깊은 차원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비록 몸은 육의 세계에 산다 해도 믿음의 5단계에 들어서면 영적으로는 영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장차 천국에 들어가면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비밀한 영의 지식들을 이 땅에서도 깨달아 갑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하나님을 밝히 알아 온 영에서도 100%에 가까운 최고의 차원에 이르게 됩니다.
1. 온 영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증거
1) 순복함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
온 영의 사람은 무엇보다 마음과 뜻과 생각이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하여 최선을 다해 이루어 드리지요. 또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기쁨과 감사로 행합니다.
말과 생각과 행동의 기준을 항상 하나님께 두고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길을 가도, 24시간 무엇을 해도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향이 풍깁니다. 하나님과 하나 된 자녀에게는 하나님께 속한 권능이 나타나고 축복이 임하며 많은 열매도 맺히게 되지요.
온 영이란 결국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을 꼭 닮은 자녀가 되어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 안에 담는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많이 감당하느냐’보다는 ‘아버지 하나님과 얼마나 하나 된 마음을 이루었느냐’ 곧 얼마나 아버지 하나님을 꼭 닮은 자녀인가에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정도와 천국에서 누리는 영광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의 존재 자체로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그의 마음은 항상 아버지 하나님으로 가득했고, 한순간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았지요. 에녹은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했고 그분에 대해 더 깊이 알고 느끼기 위해 늘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삶을 항상 하나님과 관련지어 나갔습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생각까지도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추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이 65세 때부터 동행해 주셨습니다. 이후로 300년간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마음과 뜻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끝 날에 있을 주님의 공중 강림까지 예언할 수 있었지요(유 1:14). 이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 깊이 교통하며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알려 주셨는지 나타내 줍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고 그 마음을 꼭 닮은 자녀를 얻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행복하셨겠습니까? 그러니 이 땅에서도 에녹과 동행해 주시고, 가까이 두고 싶으셨기에 아예 산 채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차원이 진정 하나 된 관계입니다. 굳이 대화하지 않아도 마음과 상태까지 깊이 헤아려 알 수 있는 관계이지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기 원하시는지, 어떤 방식으로 하기 원하시는지까지 그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순종합니다. 이것을 ‘순복’이라고 합니다.
온 영의 차원에 들어오면 하나님과 하나 되었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하나님 마음에 맞추게 됩니다. 물론 온 영으로 들어와도 100%에 가까운 만큼 더 하나 되었다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일단 온 영의 차원이 되면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하나 된 상태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맞추게 됩니다.
2) 생명을 살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선’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악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말과 행함과 표정 하나에서도 선한 향이 진하게 풍깁니다. 단순히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자신을 희생해 상대를 섬깁니다. 그러면서도 희생한다거나 스스로 낮아져 섬긴다는 의식조차 없습니다.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상대를 봐도 불편한 마음이 없고 선한 말과 행동으로 감동을 주지요.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이런 선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차원의 선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에게 좋은 말로 부드럽게 대하는 것을 선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 영에 들어오면 마음에 있는 선이 이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호되게 책망하거나 외면하기도 하는데 그 마음에는 깊은 선이 담겨 있지요.
물론 영의 사람도 이런 차원의 선을 행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온 영의 차원에서는 영적인 선과 육적인 선을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선과 악을 진리로 분별하여 선으로 악을 분쇄시킵니다. 이것이 권세 있는 선의 차원입니다. 엘리야의 선이 이에 해당합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의 범죄로 온 나라가 우상 숭배로 물들었을 때, 이방 선지자들과 불의 응답을 놓고 대결한 뒤, 불을 끌어내려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방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죽였지요. 이를 보고 ‘너무 잔혹하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악한 영에게 자기 영혼을 판 사람들이니 용서해 준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물들었고, 더 이상 그런 일이 없어야 하므로 단호히 척결했던 것입니다. 성정이 유약한 엘리야가 육적인 선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런 일을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선을 이루었기에 단호히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영적으로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 참된 선이므로 상대의 영혼을 위해 빛으로 어둠을 비춰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이 무엇인지 잘 분별해야 온 영으로 신속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선의 차원을 분별하지 못하면 영적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출 수도 없습니다.
진정한 선은 상대가 죄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두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회개하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켰을 때는 잘못을 덮어 줘야 하지만 죄에 따라 회개 여부와 상관없이 단호하게 처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악을 덮어 주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을 분쇄시킬 수 있어야 하지요.
3) 하나님 섭리를 이루기 위한 ‘영적인 충성’
온 영의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감당하며, 뜨거운 마음으로 변개함 없이 충성합니다. 여기에 더해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게 충성하지요. 오직 그 섭리를 이뤄 드리기 위해 생명 다해 충성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울이 주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에는 평생 복음을 전하며 순교하기까지 생명 다해 충성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석학 아래 교육을 받았고, 율법에도 능통했으며,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육의 충성을 원하셨다면 당장 그를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충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열정으로 하는 육적인 충성이 아니었습니다. 말씀 무장과 기도, 연단을 통해 합당한 그릇이 되어 영적인 충성을 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연단을 통해 10여 년간 마음 그릇을 갖추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역하며 20여 년 동안 다닌 거리는 최소 21,000km 이상이라고 합니다. 서울과 부산을 스물여덟 번 이상 왕복한 거리에 해당하지요. 이렇게 엄청난 거리를 걸으면서도 그는 ‘지친다, 힘들다’ 하지 않았습니다. 배가 파선하여 표류할 때도,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오직 기뻐하며 감사하였고, 돌에 맞아 심한 고초를 겪고서도 깨어나자마자 다음 사역지를 향해 떠났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오직 영혼 구원과 복음 전파,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뿐이었습니다.
온 영의 사람들은 자신이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 충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환경에서도 그 열정이 식지 않고 최선을 다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생명을 다해 충성합니다. 그러니 자기 방식이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하나님 마음과 뜻에 맞춰 충성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 취향, 성품대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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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진정한 선은 상대가 죄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두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돌이켰을 때는 잘못을 덮어 줘야 하지만 죄에 따라 회개 여부와 상관없이 단호하게 처리해야 할 때도 있다. 악을 덮어 주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을 ( )시킬 수 있어야 한다.
2. 온 영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증거를 말해 보세요.
* 금주 과제
한 해 동안도 질병, 사고, 재앙 가운데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 다해 감사를 드리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온 영의 완성을 이루려면
믿음의 5단계 곧 온 영의 차원에 진입했다면 이제는 ‘온 영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온 영의 완성 단계란 믿음의 5단계에서도 100%에 가까운 차원을 말한다.
온 영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 사랑의 차원을 바로 알고 더불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도 밝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과 공의가 치우치지 않고 하나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사랑을 바탕으로 공의를 이루는 것, 곧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차원에 이르러야 한다.
교육목표 : 마음과 뜻과 생각이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를 이루며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구함으로 선한 향을 발하는 온 영의 일꾼이 되게 한다.
믿음의 5단계는 성령의 열매가 온전히 맺힌 ‘온 영’의 차원입니다. 그러나 온 영의 마음을 이뤘다 해서 완성된 것은 아니며, 무한한 영의 세계로의 입문에 불과합니다. 온 영에서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깊은 차원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비록 몸은 육의 세계에 산다 해도 믿음의 5단계에 들어서면 영적으로는 영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장차 천국에 들어가면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비밀한 영의 지식들을 이 땅에서도 깨달아 갑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하나님을 밝히 알아 온 영에서도 100%에 가까운 최고의 차원에 이르게 됩니다.
1. 온 영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증거
1) 순복함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
온 영의 사람은 무엇보다 마음과 뜻과 생각이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하여 최선을 다해 이루어 드리지요. 또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기쁨과 감사로 행합니다.
말과 생각과 행동의 기준을 항상 하나님께 두고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길을 가도, 24시간 무엇을 해도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향이 풍깁니다. 하나님과 하나 된 자녀에게는 하나님께 속한 권능이 나타나고 축복이 임하며 많은 열매도 맺히게 되지요.
온 영이란 결국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을 꼭 닮은 자녀가 되어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 안에 담는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많이 감당하느냐’보다는 ‘아버지 하나님과 얼마나 하나 된 마음을 이루었느냐’ 곧 얼마나 아버지 하나님을 꼭 닮은 자녀인가에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정도와 천국에서 누리는 영광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의 존재 자체로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그의 마음은 항상 아버지 하나님으로 가득했고, 한순간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았지요. 에녹은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했고 그분에 대해 더 깊이 알고 느끼기 위해 늘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삶을 항상 하나님과 관련지어 나갔습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생각까지도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추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이 65세 때부터 동행해 주셨습니다. 이후로 300년간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마음과 뜻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끝 날에 있을 주님의 공중 강림까지 예언할 수 있었지요(유 1:14). 이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 깊이 교통하며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알려 주셨는지 나타내 줍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고 그 마음을 꼭 닮은 자녀를 얻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행복하셨겠습니까? 그러니 이 땅에서도 에녹과 동행해 주시고, 가까이 두고 싶으셨기에 아예 산 채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차원이 진정 하나 된 관계입니다. 굳이 대화하지 않아도 마음과 상태까지 깊이 헤아려 알 수 있는 관계이지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기 원하시는지, 어떤 방식으로 하기 원하시는지까지 그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순종합니다. 이것을 ‘순복’이라고 합니다.
온 영의 차원에 들어오면 하나님과 하나 되었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하나님 마음에 맞추게 됩니다. 물론 온 영으로 들어와도 100%에 가까운 만큼 더 하나 되었다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일단 온 영의 차원이 되면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하나 된 상태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맞추게 됩니다.
2) 생명을 살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선’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악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말과 행함과 표정 하나에서도 선한 향이 진하게 풍깁니다. 단순히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자신을 희생해 상대를 섬깁니다. 그러면서도 희생한다거나 스스로 낮아져 섬긴다는 의식조차 없습니다.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상대를 봐도 불편한 마음이 없고 선한 말과 행동으로 감동을 주지요.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이런 선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차원의 선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에게 좋은 말로 부드럽게 대하는 것을 선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 영에 들어오면 마음에 있는 선이 이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호되게 책망하거나 외면하기도 하는데 그 마음에는 깊은 선이 담겨 있지요.
물론 영의 사람도 이런 차원의 선을 행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온 영의 차원에서는 영적인 선과 육적인 선을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선과 악을 진리로 분별하여 선으로 악을 분쇄시킵니다. 이것이 권세 있는 선의 차원입니다. 엘리야의 선이 이에 해당합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의 범죄로 온 나라가 우상 숭배로 물들었을 때, 이방 선지자들과 불의 응답을 놓고 대결한 뒤, 불을 끌어내려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방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죽였지요. 이를 보고 ‘너무 잔혹하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악한 영에게 자기 영혼을 판 사람들이니 용서해 준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물들었고, 더 이상 그런 일이 없어야 하므로 단호히 척결했던 것입니다. 성정이 유약한 엘리야가 육적인 선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런 일을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선을 이루었기에 단호히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영적으로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 참된 선이므로 상대의 영혼을 위해 빛으로 어둠을 비춰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이 무엇인지 잘 분별해야 온 영으로 신속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선의 차원을 분별하지 못하면 영적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출 수도 없습니다.
진정한 선은 상대가 죄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두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회개하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켰을 때는 잘못을 덮어 줘야 하지만 죄에 따라 회개 여부와 상관없이 단호하게 처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악을 덮어 주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을 분쇄시킬 수 있어야 하지요.
3) 하나님 섭리를 이루기 위한 ‘영적인 충성’
온 영의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감당하며, 뜨거운 마음으로 변개함 없이 충성합니다. 여기에 더해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게 충성하지요. 오직 그 섭리를 이뤄 드리기 위해 생명 다해 충성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울이 주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에는 평생 복음을 전하며 순교하기까지 생명 다해 충성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석학 아래 교육을 받았고, 율법에도 능통했으며,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육의 충성을 원하셨다면 당장 그를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충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열정으로 하는 육적인 충성이 아니었습니다. 말씀 무장과 기도, 연단을 통해 합당한 그릇이 되어 영적인 충성을 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연단을 통해 10여 년간 마음 그릇을 갖추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역하며 20여 년 동안 다닌 거리는 최소 21,000km 이상이라고 합니다. 서울과 부산을 스물여덟 번 이상 왕복한 거리에 해당하지요. 이렇게 엄청난 거리를 걸으면서도 그는 ‘지친다, 힘들다’ 하지 않았습니다. 배가 파선하여 표류할 때도,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오직 기뻐하며 감사하였고, 돌에 맞아 심한 고초를 겪고서도 깨어나자마자 다음 사역지를 향해 떠났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오직 영혼 구원과 복음 전파,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뿐이었습니다.
온 영의 사람들은 자신이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 충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환경에서도 그 열정이 식지 않고 최선을 다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생명을 다해 충성합니다. 그러니 자기 방식이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하나님 마음과 뜻에 맞춰 충성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 취향, 성품대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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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진정한 선은 상대가 죄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두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돌이켰을 때는 잘못을 덮어 줘야 하지만 죄에 따라 회개 여부와 상관없이 단호하게 처리해야 할 때도 있다. 악을 덮어 주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을 ( )시킬 수 있어야 한다.
2. 온 영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증거를 말해 보세요.
* 금주 과제
한 해 동안도 질병, 사고, 재앙 가운데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 다해 감사를 드리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온 영의 완성을 이루려면
믿음의 5단계 곧 온 영의 차원에 진입했다면 이제는 ‘온 영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온 영의 완성 단계란 믿음의 5단계에서도 100%에 가까운 차원을 말한다.
온 영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 사랑의 차원을 바로 알고 더불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도 밝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과 공의가 치우치지 않고 하나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사랑을 바탕으로 공의를 이루는 것, 곧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차원에 이르러야 한다.
2016-12-23
제51과주님은 누구의 구주이신가
마 2:1~12
읽을말씀 : 마 2:1~12 | 외울말씀 : 눅 2:14 ㅣ 참고 말씀: 마 1:21
교육목표 :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세주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에 감사함으로 변화와 생명으로 나오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렸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인 것입니다.
1.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전 3:18).
원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지 못하고 죄 가운데 짐승과 다름없이 정욕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참된 양식, 곧 영의 양식이 되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하셨습니다(요 6:51~55).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영이 죽어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 사람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 변화시켜 주시기 위해 친히 영의 양식이 되어 주셨습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장 1절 이하를 보면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고 물으며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다고 합니다. 그러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이 소식을 듣고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헤롯 왕은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가르쳐 준 대로 동방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를 찾거든 알려 달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경배하고자 함이 아니라 죽이고자 함이었지요.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을 찾아가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박사들의 꿈을 통해 헤롯 왕에게 가지 말라는 지시를 하시니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의 부친인 요셉도 꿈을 통해 지시를 받아 온 가족이 헤롯 왕을 피해 애굽으로 떠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고 경배한 사람은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은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누가복음 2장 8~20절을 보면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지요.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께 찬송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안나’라는 여 선지자는 나이 많아 늙었는데도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눅 2:25~38).
3. 세 가지 예물의 의미
동방박사들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지요. 이 예물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예물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1) 황금의 영적 의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6장 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황금은 영적으로 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풍족하였으나,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그의 후손들은 가난과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친히 가난한 길을 가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신 것입니다(고후 8:9). 부의 상징인 황금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물로 주셨을까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 유향의 영적 의미
유향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린 영적 의미는 더럽고 냄새나는 악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7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에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여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3) 몰약의 영적 의미
몰약은 고대로부터 방향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즙액은 향수, 의료품, 구강 소독 등에 쓰이고 장사 지낼 때 시체를 썩지 않게 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 몰약을 예물로 드린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 즉 변함없는 믿음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4. 성탄절의 영적 의미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경배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조건 만인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해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렸듯이, 우리도 세 가지 예물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귀한 예물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고백하며 영원한 천국을 주심에 감사드리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 변함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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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1.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하며 영적으로 ( )을 뜻한다.
2. 유향을 예물로 드린 영적 의미는 더럽고 냄새나는 악을 버리고 ( )를 발한다는 것이다.
3. 몰약을 예물로 드린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 즉 ( )을 드린다는 것이다.
* 금주 과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더욱 감사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베들레헴
2천여 년 전,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다. 베들레헴은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으로 다윗 왕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삼상 16:1, 눅 2:4). 미가서 5장 2절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예언되어 있다.
교육목표 :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세주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에 감사함으로 변화와 생명으로 나오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렸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인 것입니다.
1.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전 3:18).
원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지 못하고 죄 가운데 짐승과 다름없이 정욕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참된 양식, 곧 영의 양식이 되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하셨습니다(요 6:51~55).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영이 죽어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 사람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 변화시켜 주시기 위해 친히 영의 양식이 되어 주셨습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장 1절 이하를 보면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고 물으며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다고 합니다. 그러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이 소식을 듣고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헤롯 왕은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가르쳐 준 대로 동방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를 찾거든 알려 달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경배하고자 함이 아니라 죽이고자 함이었지요.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을 찾아가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박사들의 꿈을 통해 헤롯 왕에게 가지 말라는 지시를 하시니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의 부친인 요셉도 꿈을 통해 지시를 받아 온 가족이 헤롯 왕을 피해 애굽으로 떠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고 경배한 사람은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은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누가복음 2장 8~20절을 보면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지요.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께 찬송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안나’라는 여 선지자는 나이 많아 늙었는데도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눅 2:25~38).
3. 세 가지 예물의 의미
동방박사들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지요. 이 예물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예물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1) 황금의 영적 의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6장 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황금은 영적으로 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풍족하였으나,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그의 후손들은 가난과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친히 가난한 길을 가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신 것입니다(고후 8:9). 부의 상징인 황금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물로 주셨을까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 유향의 영적 의미
유향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린 영적 의미는 더럽고 냄새나는 악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7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에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여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3) 몰약의 영적 의미
몰약은 고대로부터 방향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즙액은 향수, 의료품, 구강 소독 등에 쓰이고 장사 지낼 때 시체를 썩지 않게 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 몰약을 예물로 드린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 즉 변함없는 믿음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4. 성탄절의 영적 의미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경배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조건 만인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해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렸듯이, 우리도 세 가지 예물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귀한 예물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고백하며 영원한 천국을 주심에 감사드리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 변함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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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1.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하며 영적으로 ( )을 뜻한다.
2. 유향을 예물로 드린 영적 의미는 더럽고 냄새나는 악을 버리고 ( )를 발한다는 것이다.
3. 몰약을 예물로 드린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 즉 ( )을 드린다는 것이다.
* 금주 과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더욱 감사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베들레헴
2천여 년 전,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다. 베들레헴은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으로 다윗 왕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삼상 16:1, 눅 2:4). 미가서 5장 2절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예언되어 있다.
2016-12-16
제50과온 집에 충성하는 믿음의 5단계
민 12:7
읽을말씀 : 민 12:7 | 외울말씀 : 시 101:6 l 참고 말씀: 고전 4:2
교육목표 : 믿음의 5단계에 이르러 성결을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하되 맡겨진 직무와 주어진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하는 충성된 일꾼이 되게 한다.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하는 차원입니다.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무수한 기도를 쌓아 기사와 표적을 행할 뿐 아니라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모든 분야에 마음 다해 충성하는 단계
‘충성’의 영적인 의미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 이상을 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몸을 아끼지 않고 넘치게 일을 감당했을 때 충성했다고 할 수 있지요.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영적으로 충성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충성이란, 꾸준히 마음의 할례를 하면서 하는 충성을 말합니다. 이러한 충성의 차원을 넘어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5단계에 들어와 갈라디아서 5장 22절 이하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온전히 맺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충성이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상대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랑이 없이는 희생하고 헌신할 수 없습니다. 또한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면 어느 분야에서는 넘치게 충성한다 해도 다른 분야에는 소홀할 수 있습니다.
화평의 열매가 온전히 맺혀 있지 않으면 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부딪힘이 생기고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화평이 깨어진 충성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영적인 충성을 하되 온 집에 충성하려면 충성의 분야만 승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들이 온전히 맺혀야 합니다.
그러면 온 집에 충성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이는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한두 가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하는 것이지요. 사명 중에는 중요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사명도 있지만, 덜 중요해 보이거나 드러나지 않는 사명도 있습니다. 믿음의 5단계 곧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크든 작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명을 소중히 여기므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당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명이 있어도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며 열매를 냅니다. 물론 모든 분야를 똑같이 마음에 품고 소중하게 여기며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 모든 사명에 똑같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분명 급히 할 것과 나중에 할 것,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충성의 열매가 온전히 맺힌 사람은 어떤 사명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며, 한 영혼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적게 들이든 많이 들이든 모든 분야에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또한 온 영의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많은 영혼과 사명을 마음에 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혼 구원을 위해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을 가지고 마음에 품고 간구하므로 맡은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지요.
2. 뜨거운 열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한 모세
모세는 출애굽의 지도자로서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으며, 온 집에 충성했던 사람입니다(민 12:3, 7).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당시, 장정만 해도 60만 명가량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었지요(출 18:13~14). 각종 문제를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세 혼자 일일이 상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모든 백성을 영으로 품었고 자신의 생명보다 귀히 여기며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 대해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영으로 들어간 만큼 영혼들을 더 품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사명도 감당할 수 있지요. 물론 자신이 맡은 영혼이 수백 명이라면 그들 모두를 매주 심방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이들이나 긴급한 문제가 있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처럼 온 집에 충성된 마음을 가졌다면 자주 보든, 보지 않든 모든 양 떼를 항상 영으로 품어 마음에 담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짧게 한 번 만난다 해도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변화됩니다. 이는 게을러 심방하지 않으면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까” 하고 변명하는 모습과는 다릅니다. 생명 다해 사명을 감당하려고 노력하지만 “직접 돌보지 못한 분야까지도 하나님께서 돌봐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심정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이러한 중심의 향을 받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영혼 관리뿐 아니라 다른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분야에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며, 영으로 품어 많은 열매를 내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하는 비결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사명을 다 감당하기 벅차니 차라리 한두 가지만 맡아서 정성을 다한다면 온 집에 충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충성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과 영혼들을 위해 헌신하려는 열정이 뜨거우니 어찌하든 사명을 더 사모합니다. 그러니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만 감당하겠다는 말 자체가 이미 온 집에 충성과는 거리가 멀지요.
또한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은 개인적인 분야에서도 자신의 소임을 다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는 열심을 내는데 가정은 전혀 돌보지 않는다거나 학교나 직장에서 불성실하다면 충성된 일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충성된 사람은 마음 자체가 성실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하나님 일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성실하게 행합니다. 그렇다 해서 꼭 1등을 해야 하고, 실적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성실하게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3.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
그러나 아직 온 영이 아니라 해도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 노력해 나간다면 그만큼 더 빨리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성결되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버려야 하지요. 그러면서 모든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마음씀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며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하나하나 감당하고자 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별로 원하지 않는 사명이나 또 사소하게 보이는 일은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또한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니까.” 하면서 더 많이 애쓰지 않거나, 자신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범위 내에서만 적당히 한다면 주인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떨까요?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차츰 신뢰도 떨어지고, 다음에는 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작은 것에 충성된 사람에게 큰 것도 믿고 맡길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 해도 주변에 도움을 청하거나 방법을 배워서라도 일을 감당해 내고자 하고 최선을 다하려는 진실과 노력이 보인다면 결과는 좀 부족하다 해도 그 사람에게는 신뢰가 쌓이게 됩니다. 그러니 “저 사람은 능력은 좀 부족하다 해도 마음 자세가 되었다.” 하면서 다음에는 더 중한 책임도 맡길 수가 있지요.
하나님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맡겨 준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해 희생하며 섬겨 나가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은혜와 능력을 주시지요.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악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고 그 악을 버릴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영으로, 온 영으로 신속하게 들어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육 간에 자신이 속한 모든 분야에서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마음과 정성과 지혜를 다해 하나님께 하는 것처럼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101편 6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하신 말씀대로 완전한 길로 행하며 충성된 자로 인정받아야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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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것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이다. 한두 가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2. 시편 101편 6절을 외워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56~26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죽도록 충성을 의미하는 붉은 빛깔의 홍마노
새 예루살렘 성곽의 다섯 번째 기초석인 홍마노는 영적으로 ‘충성’을 의미한다.
홍마노가 의미하는 충성이란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기록된 ‘죽도록 충성하는 것’을 말한다. 곧 성결된 사람이 거룩한 중심에서 생명 다하도록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해야 가능한 일이다.
모세 역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마음과 뜻, 정성을 다하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충성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홍마노의 빛깔로 나타내셨다.
교육목표 : 믿음의 5단계에 이르러 성결을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하되 맡겨진 직무와 주어진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하는 충성된 일꾼이 되게 한다.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하는 차원입니다.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무수한 기도를 쌓아 기사와 표적을 행할 뿐 아니라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모든 분야에 마음 다해 충성하는 단계
‘충성’의 영적인 의미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 이상을 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몸을 아끼지 않고 넘치게 일을 감당했을 때 충성했다고 할 수 있지요.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영적으로 충성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충성이란, 꾸준히 마음의 할례를 하면서 하는 충성을 말합니다. 이러한 충성의 차원을 넘어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5단계에 들어와 갈라디아서 5장 22절 이하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온전히 맺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충성이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상대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랑이 없이는 희생하고 헌신할 수 없습니다. 또한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면 어느 분야에서는 넘치게 충성한다 해도 다른 분야에는 소홀할 수 있습니다.
화평의 열매가 온전히 맺혀 있지 않으면 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부딪힘이 생기고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화평이 깨어진 충성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영적인 충성을 하되 온 집에 충성하려면 충성의 분야만 승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들이 온전히 맺혀야 합니다.
그러면 온 집에 충성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이는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한두 가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하는 것이지요. 사명 중에는 중요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사명도 있지만, 덜 중요해 보이거나 드러나지 않는 사명도 있습니다. 믿음의 5단계 곧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크든 작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명을 소중히 여기므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당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명이 있어도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며 열매를 냅니다. 물론 모든 분야를 똑같이 마음에 품고 소중하게 여기며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 모든 사명에 똑같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분명 급히 할 것과 나중에 할 것,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충성의 열매가 온전히 맺힌 사람은 어떤 사명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며, 한 영혼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적게 들이든 많이 들이든 모든 분야에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또한 온 영의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많은 영혼과 사명을 마음에 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혼 구원을 위해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을 가지고 마음에 품고 간구하므로 맡은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지요.
2. 뜨거운 열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한 모세
모세는 출애굽의 지도자로서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으며, 온 집에 충성했던 사람입니다(민 12:3, 7).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당시, 장정만 해도 60만 명가량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었지요(출 18:13~14). 각종 문제를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세 혼자 일일이 상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모든 백성을 영으로 품었고 자신의 생명보다 귀히 여기며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 대해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영으로 들어간 만큼 영혼들을 더 품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사명도 감당할 수 있지요. 물론 자신이 맡은 영혼이 수백 명이라면 그들 모두를 매주 심방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이들이나 긴급한 문제가 있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처럼 온 집에 충성된 마음을 가졌다면 자주 보든, 보지 않든 모든 양 떼를 항상 영으로 품어 마음에 담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짧게 한 번 만난다 해도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변화됩니다. 이는 게을러 심방하지 않으면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까” 하고 변명하는 모습과는 다릅니다. 생명 다해 사명을 감당하려고 노력하지만 “직접 돌보지 못한 분야까지도 하나님께서 돌봐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심정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이러한 중심의 향을 받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영혼 관리뿐 아니라 다른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분야에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며, 영으로 품어 많은 열매를 내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하는 비결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사명을 다 감당하기 벅차니 차라리 한두 가지만 맡아서 정성을 다한다면 온 집에 충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충성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과 영혼들을 위해 헌신하려는 열정이 뜨거우니 어찌하든 사명을 더 사모합니다. 그러니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만 감당하겠다는 말 자체가 이미 온 집에 충성과는 거리가 멀지요.
또한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은 개인적인 분야에서도 자신의 소임을 다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는 열심을 내는데 가정은 전혀 돌보지 않는다거나 학교나 직장에서 불성실하다면 충성된 일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충성된 사람은 마음 자체가 성실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하나님 일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성실하게 행합니다. 그렇다 해서 꼭 1등을 해야 하고, 실적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성실하게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3.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
그러나 아직 온 영이 아니라 해도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 노력해 나간다면 그만큼 더 빨리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성결되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버려야 하지요. 그러면서 모든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마음씀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며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하나하나 감당하고자 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별로 원하지 않는 사명이나 또 사소하게 보이는 일은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또한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니까.” 하면서 더 많이 애쓰지 않거나, 자신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범위 내에서만 적당히 한다면 주인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떨까요?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차츰 신뢰도 떨어지고, 다음에는 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작은 것에 충성된 사람에게 큰 것도 믿고 맡길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 해도 주변에 도움을 청하거나 방법을 배워서라도 일을 감당해 내고자 하고 최선을 다하려는 진실과 노력이 보인다면 결과는 좀 부족하다 해도 그 사람에게는 신뢰가 쌓이게 됩니다. 그러니 “저 사람은 능력은 좀 부족하다 해도 마음 자세가 되었다.” 하면서 다음에는 더 중한 책임도 맡길 수가 있지요.
하나님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맡겨 준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해 희생하며 섬겨 나가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은혜와 능력을 주시지요.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악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고 그 악을 버릴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영으로, 온 영으로 신속하게 들어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육 간에 자신이 속한 모든 분야에서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마음과 정성과 지혜를 다해 하나님께 하는 것처럼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101편 6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하신 말씀대로 완전한 길로 행하며 충성된 자로 인정받아야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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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것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이다. 한두 가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2. 시편 101편 6절을 외워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56~26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죽도록 충성을 의미하는 붉은 빛깔의 홍마노
새 예루살렘 성곽의 다섯 번째 기초석인 홍마노는 영적으로 ‘충성’을 의미한다.
홍마노가 의미하는 충성이란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기록된 ‘죽도록 충성하는 것’을 말한다. 곧 성결된 사람이 거룩한 중심에서 생명 다하도록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해야 가능한 일이다.
모세 역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마음과 뜻, 정성을 다하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충성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홍마노의 빛깔로 나타내셨다.
2016-12-09
제49과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
살전 5:23
읽을말씀 : 살전 5:23 | 외울말씀 : 막 16:17~18 ㅣ 참고 말씀: 요 4:48
교육목표 :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5단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 영의 차원에 이르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부모 자녀 간에 서로 사랑한다 하지만 부모님 말씀에 100% 순종하는 자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떤 자녀는 순종은커녕 아예 반항하거나 빗나가기도 합니다. 반면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은 아니지만 부모님 말씀이기 때문에 도리를 좇아 따르는 자녀도 있습니다.
더 선한 자녀라면 부모님을 사랑하기에 마음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 그 말씀에 오직 순종만 합니다. 말씀대로 100% 순종하여 부모의 마음을 편케 해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보다 선과 사랑이 승하다면 부모님이 무엇을 명하실 때 왜 그 말씀을 하시는지 마음까지 헤아려 원하는 이상으로 이뤄 드립니다. 또한 시키지 않은 것까지 찾아서, 부모님의 마음에 꼭 맞게 미리미리 해 놓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부모의 마음이 기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기록된 성경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녀를 볼 때 지극히 사랑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까지 헤아려 행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시지요. 바로 믿음의 5단계에 이른 사람이 이러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 이상으로 넘치게 순종합니다. 어느 한순간만 넘치는 행함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매분 매초,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살아갑니다.
2. 믿음의 5단계의 특징
1) 자신의 생명을 버리기까지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
믿음의 5단계는 사람으로서 불가능한 일도 그것이 하나님 뜻이라면 자기 생명을 드려서라도 명하신 것 이상으로 순종하는 차원입니다. 믿음의 4단계와 5단계가 겉으로는 똑같이 순종하여 생명을 드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받으실 때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바로 마음에 있지요. 곧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깊이 헤아리며 얼마나 그 마음이 되어 순종해 드렸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해 드리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그 이상으로 순종해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차원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들로서 아무 죄가 없기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죄인 된 인류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어주셨지요. 이때 예수님은 단순히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그 뜻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왜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하는지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온전히 순종하여 구원의 섭리를 이뤄 드린 것입니다.
2)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믿음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을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온 영’이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온전히 품은 상태를 말합니다. 즉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깨달아 마음이 진리 자체가 되었기 때문에 온전히 성령의 음성을 들어 하나님 뜻대로만 살아가는 온전한 영의 사람, 온전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마음의 성결을 이루면 영의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나아가 계속하여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무장하고 이뤄 가면 마음뿐 아니라 삶 속에도 진리가 온전히 임하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을 ‘온전한 믿음’이라 하고, 완전한 영의 믿음,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도 하지요.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신 대로 참마음을 이루면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3) 무수한 기도를 쌓아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믿음
믿음의 5단계에 이르면 ‘어떻게 해야 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룰 수 있을까?’ 궁구하며, 뜨거운 열정을 행함으로 나타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넘치게 감당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요.
또한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영혼들을 구원하려면 권능을 받아야 하기에 무수한 기도를 쌓게 됩니다. 영혼 구원은 사람의 말이나 지식, 경험이나 명예, 권세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고전 4:20).
따라서 믿음의 5단계에서는 수많은 영혼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할 수 있는 권능을 받기 위해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무수한 기도를 쌓아갑니다. 이러한 기도가 쌓이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을 소유한 증거이지요.
요한복음 4장 4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시며 공생애 기간 동안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셨습니다. 표적과 기사로써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면 많은 영혼에게 쉽게 믿음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온 영의 사람이 받는 축복
1) 하나님과 항상 교통하며 깊은 사랑을 나누는 행복
믿음의 5단계에 이르러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행복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영육 간에 많은 축복을 받는 것도 행복하지만 그중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과 항상 교통하며 깊은 사랑을 나누는 일이지요.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어떤 기쁨과 행복보다 더한 충만함이 늘 마음에 채워져 있습니다. 혼자 있어도, 길을 걸어도, 사람들을 만나도, 무엇을 보고 들을 때에도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며 범사에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무엇이든 즉시 응답받는 차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진 온 영의 사람은 마음에 품기만 해도 신속하게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공의에 합당하게 응답하십니다. 공의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곱 영’의 측정이지요.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일곱 가지 분야 곧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을 측정하여 일정한 기준치에 합격할 때 응답을 주십니다.
온 영의 사람은 성결되어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없을 뿐 아니라 영의 열매들이 마음 가득 채워져 있기에 일곱 영의 측정 시 모든 분야에서 합격점을 받습니다. 그러니 무엇이든 즉시 응답받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닮은 마음으로 하나님 뜻에 합당한 것만 구하기 때문에 매번 넘치도록 응답을 받습니다.
3) 범사에 명철의 길을 찾는 차원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이룬 만큼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온 영의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기 때문에 위험한 길은 피하고 늘 형통한 축복이 임합니다. 또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해결 방법을 알아 늘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만 들어가도 성결된 마음에 성령의 음성을 비교적 정확하게 들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됩니다.
믿음의 5단계에서 더 깊은 차원에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방법론까지 온전하게 깨달아집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깨달음으로 방법론까지 주관받는 것이 바로 믿음의 5단계에서 체험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여 온 영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 속한 권능이 나타나고 넘치는 축복이 임하며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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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 )과 ( )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 이상으로 넘치게 순종한다.
2. 믿음의 5단계 특징과 온 영의 사람이 받는 축복에 대해 알고 있나요?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50~25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기사와 표적이란?
‘기사’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천기를 움직이는 것으로 주로 기상 현상과 관계된다. 구름을 움직이고 비를 오게 하거나 멎게 하는 것, 천체를 움직이는 것 등이 여기에 속한다(삼상 12:18, 수 10:13, 약 5:17~18).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역사를 말한다.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의 역사이다(막 16:17~18).
교육목표 :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5단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 영의 차원에 이르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부모 자녀 간에 서로 사랑한다 하지만 부모님 말씀에 100% 순종하는 자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떤 자녀는 순종은커녕 아예 반항하거나 빗나가기도 합니다. 반면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은 아니지만 부모님 말씀이기 때문에 도리를 좇아 따르는 자녀도 있습니다.
더 선한 자녀라면 부모님을 사랑하기에 마음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 그 말씀에 오직 순종만 합니다. 말씀대로 100% 순종하여 부모의 마음을 편케 해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보다 선과 사랑이 승하다면 부모님이 무엇을 명하실 때 왜 그 말씀을 하시는지 마음까지 헤아려 원하는 이상으로 이뤄 드립니다. 또한 시키지 않은 것까지 찾아서, 부모님의 마음에 꼭 맞게 미리미리 해 놓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부모의 마음이 기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기록된 성경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녀를 볼 때 지극히 사랑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까지 헤아려 행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시지요. 바로 믿음의 5단계에 이른 사람이 이러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 이상으로 넘치게 순종합니다. 어느 한순간만 넘치는 행함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매분 매초,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살아갑니다.
2. 믿음의 5단계의 특징
1) 자신의 생명을 버리기까지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
믿음의 5단계는 사람으로서 불가능한 일도 그것이 하나님 뜻이라면 자기 생명을 드려서라도 명하신 것 이상으로 순종하는 차원입니다. 믿음의 4단계와 5단계가 겉으로는 똑같이 순종하여 생명을 드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받으실 때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바로 마음에 있지요. 곧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깊이 헤아리며 얼마나 그 마음이 되어 순종해 드렸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해 드리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그 이상으로 순종해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차원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들로서 아무 죄가 없기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죄인 된 인류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어주셨지요. 이때 예수님은 단순히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그 뜻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왜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하는지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온전히 순종하여 구원의 섭리를 이뤄 드린 것입니다.
2)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믿음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을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온 영’이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온전히 품은 상태를 말합니다. 즉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깨달아 마음이 진리 자체가 되었기 때문에 온전히 성령의 음성을 들어 하나님 뜻대로만 살아가는 온전한 영의 사람, 온전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마음의 성결을 이루면 영의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나아가 계속하여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무장하고 이뤄 가면 마음뿐 아니라 삶 속에도 진리가 온전히 임하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을 ‘온전한 믿음’이라 하고, 완전한 영의 믿음,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도 하지요.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신 대로 참마음을 이루면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3) 무수한 기도를 쌓아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믿음
믿음의 5단계에 이르면 ‘어떻게 해야 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룰 수 있을까?’ 궁구하며, 뜨거운 열정을 행함으로 나타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넘치게 감당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요.
또한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영혼들을 구원하려면 권능을 받아야 하기에 무수한 기도를 쌓게 됩니다. 영혼 구원은 사람의 말이나 지식, 경험이나 명예, 권세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고전 4:20).
따라서 믿음의 5단계에서는 수많은 영혼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할 수 있는 권능을 받기 위해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무수한 기도를 쌓아갑니다. 이러한 기도가 쌓이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을 소유한 증거이지요.
요한복음 4장 4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시며 공생애 기간 동안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셨습니다. 표적과 기사로써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면 많은 영혼에게 쉽게 믿음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온 영의 사람이 받는 축복
1) 하나님과 항상 교통하며 깊은 사랑을 나누는 행복
믿음의 5단계에 이르러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행복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영육 간에 많은 축복을 받는 것도 행복하지만 그중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과 항상 교통하며 깊은 사랑을 나누는 일이지요.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어떤 기쁨과 행복보다 더한 충만함이 늘 마음에 채워져 있습니다. 혼자 있어도, 길을 걸어도, 사람들을 만나도, 무엇을 보고 들을 때에도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며 범사에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무엇이든 즉시 응답받는 차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진 온 영의 사람은 마음에 품기만 해도 신속하게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공의에 합당하게 응답하십니다. 공의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곱 영’의 측정이지요.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일곱 가지 분야 곧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을 측정하여 일정한 기준치에 합격할 때 응답을 주십니다.
온 영의 사람은 성결되어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없을 뿐 아니라 영의 열매들이 마음 가득 채워져 있기에 일곱 영의 측정 시 모든 분야에서 합격점을 받습니다. 그러니 무엇이든 즉시 응답받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닮은 마음으로 하나님 뜻에 합당한 것만 구하기 때문에 매번 넘치도록 응답을 받습니다.
3) 범사에 명철의 길을 찾는 차원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이룬 만큼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온 영의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기 때문에 위험한 길은 피하고 늘 형통한 축복이 임합니다. 또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해결 방법을 알아 늘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만 들어가도 성결된 마음에 성령의 음성을 비교적 정확하게 들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됩니다.
믿음의 5단계에서 더 깊은 차원에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방법론까지 온전하게 깨달아집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깨달음으로 방법론까지 주관받는 것이 바로 믿음의 5단계에서 체험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여 온 영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 속한 권능이 나타나고 넘치는 축복이 임하며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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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 )과 ( )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 이상으로 넘치게 순종한다.
2. 믿음의 5단계 특징과 온 영의 사람이 받는 축복에 대해 알고 있나요?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50~25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기사와 표적이란?
‘기사’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천기를 움직이는 것으로 주로 기상 현상과 관계된다. 구름을 움직이고 비를 오게 하거나 멎게 하는 것, 천체를 움직이는 것 등이 여기에 속한다(삼상 12:18, 수 10:13, 약 5:17~18).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역사를 말한다.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의 역사이다(막 16:17~18).
2016-12-02
제48과육의 흔적을 변환시켜 성정대로 쓰임 받기까지
히 10:22
읽을말씀 : 히 10:22 | 외울말씀 : 벧후 1:4 ㅣ 참고 말씀: 살전 5:23
교육목표 : 육의 흔적을 완전히 변환시킨 후 자기만이 가진 성정의 특징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한다.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영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일단 깨끗한 마음 그릇이 준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그릇에 영의 내용물들을 채워 나가기 시작한 상태를 ‘결여’라 하고 그릇의 반쯤 넘어선 상태를 ‘부족’이라 합니다. 그릇에 영의 내용물을 완전히 채우면 ‘온 영’이라 하지요. 그런데 4단계 80%부터 5단계 50% 미만까지는 아직 곳곳에 빈 공간이 조금은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믿음의 5단계 50%를 넘어야 빈 공간까지도 완전히 채웠다 할 수 있습니다.
1. 육의 흔적을 변환시키는 과정
어떤 사람은 덕과 사랑이 넘치지만 기질적으로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지 않아 끊어야 할 때 정확히 끊지 못합니다. 베풀기는 즐겨하는데 기분에 따라 즉흥적인 사람도 있고, 성실하고 바른 모습이지만 다소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으로 들어오면 이런 성품이나 기질적인 면이 악의 모양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육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한 영의 마음과는 차이가 납니다.
육의 흔적 중에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영적으로 결여되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온 영의 사람이 되지요. 이것을 ‘육의 흔적의 변환’이라 합니다. 육의 흔적이 신의 성품 안에 녹아지면서 영적인 것으로 변한다는 의미로서 인성도 사람의 인성이 아닌 신의 성품에 속한 인성으로 바뀝니다.
가령, 소극적인 사람은 그의 소극적인 면이 섬세함으로 승화됩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면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승화되지요. 또한 사리 판단이 빠르고 꾀가 있는 사람은 지혜롭고 민첩하게 바뀝니다. 답답하고 무딘 사람이라도 그 장점을 살려 진중한 모습으로 변환되지요. 이처럼 육의 흔적을 변환시켜 나가는 과정은 믿음의 4단계부터 믿음의 5단계 50%를 넘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2. 결여를 채우는 육의 흔적의 변환 1단계
믿음의 4단계 50% 미만에서는 육의 흔적으로 인한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결여란 아예 없거나 조금밖에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랑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은 사랑의 분야에 결여가 생깁니다. 영으로 들어와 마음에 악은 없다 해도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일방적으로 보듬어 주고 용서만 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여기기도 하고, 반대로 일방적으로 질책하고 책망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하기도 하지요.
부모로부터 따뜻한 관심과 이해와 용서를 받고 때로는 잘못에 대해 책망과 체벌을 적절히 받으며 이것이 부모의 사랑임을 깨달은 사람은 단지 용서하고 품어 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책망하고 외면하는 것도 사랑임을 마음에서 깨닫게 됩니다. 반면에 무조건적인 이해와 사랑만 받으며 성장하거나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성장하게 되면 사랑의 결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상대를 보듬어야 할지, 책망하고 외면해야 할지, 용서하고 품어야 할지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성장하면서 생긴 사랑의 결여를 채워야 온전한 영의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영의 지식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 지식으로 쌓아 왔다고는 하나 자기 마음을 온전히 영으로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그것이 결여로 자리 잡은 경우입니다. 영의 깊이가 더할수록 말씀을 깨닫고 적용하는 차원이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그러나 영의 지식이 결여된 사람은 자기가 마음에 이룬 한계 안에서만 그 말씀을 적용하므로 때로는 원하는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선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이 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감정이 없고 마음이 요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선에 비하면 아직은 소극적인 수준의 선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선은 악한 상대에게 나쁜 감정이 없음은 물론, 선대하고 감동을 주어 그를 변화시키는 차원입니다. 나아가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차원이지요. 이러한 온전한 선에 비교해 볼 때 거리가 멀다 할 수 있으므로 ‘결여’라고 합니다.
비유를 들면, 규정 속도가 60km인 1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뒤에서 비상등을 켠 차가 급속도로 달려옵니다. 이때 온전한 선의 결여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교통법규를 준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뒤따라 오는 운전자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 차가 추월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될 때까지만이라도 조금 빨리 달려 주면 될 텐데, 교통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한계 안에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3. 부족을 채우는 육의 흔적의 변환 2단계
믿음의 4단계 50% 이상 80% 미만에서는 육의 흔적으로 인해 부족 현상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부족’이란 온 영의 차원과 비교할 때 아직은 부족하다는 의미로서, 아예 없거나 조금밖에 없는 ‘결여?와는 다릅니다. 그렇다면 온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해 채워야 할 분야는 무엇일까요?
먼저, 사랑의 부족을 채워야 합니다. 가령,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해 주기로 했을 때, 어느 선까지 해야 할지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되, 어떤 때는 선을 그어야 하고, 어떤 때는 도가 넘치도록 해 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똑같이 이해하고 품는다 해도 어떤 경우는 선을 그어 상대가 스스로 일어나게 하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넘치는 위로와 격려를 통해 상대가 힘을 얻고 변화되도록 해야 하지요. 따라서 더 깊이 있고, 섬세한 사랑의 차원을 깨달아 부족한 분야를 채워야 합니다.
다음으로, 영의 지식의 부족을 채워야 합니다. 똑같은 영의 지식이라도 마음을 얼마나 영으로 이뤘느냐에 따라 활용 범위와 방법이 달라집니다. 한 가지 영의 지식을 열 가지로 활용하고 적용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영의 지식이 부족하면 아직 대여섯 가지로밖에 활용하지 못하지요.
만일 어떤 여 성도가 이혼 문제로 상담을 요청했는데 무조건 ‘이혼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만 적용합니다. 물론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남편의 심한 핍박으로 인해 아내가 구원의 길에서 멀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경우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깊이 있게 깨달아 오직 성령의 감동 속에 영의 지식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더욱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선의 부족입니다. 가령, 규정 속도가 60km인 1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비상등을 켠 차가 급속도로 달려옵니다. 이때 온전한 선이 부족한 사람은 뒤차의 입장을 생각해 빨리 달릴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최대한 상대를 배려하지만 매번 그렇게 행하지는 못하지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결여에 해당되지만, 배려하되 항상 그런 것이 아니라면 부족입니다.
4. 육의 흔적의 변환을 통해 성정대로 쓰임 받기까지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육의 흔적이 변환되는 과정을 거쳐 믿음의 5단계에서 온전히 변환되면 그때부터는 ‘성정’ 즉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적인 면’이 신의 성품 안에서 아름답게 발휘됩니다. 전에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이 육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함을 이루는 데 장애물이 되었다면, 육의 흔적을 온전히 변환시킨 후부터는 그만의 특별한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80%부터 5단계 5% 미만은 아직 육의 흔적이 온전히 변환되어서 활용해 나가는 단계는 아닙니다. 육의 흔적이 나올 때도 있고, 변환되어 나올 때도 있어서 스스로 ‘내가 영인가, 온 영인가?’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4단계 80%부터는 온 영으로 인정해 주시며 그를 친히 주관하여 이끌어 가십니다.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등은 육의 흔적을 완전히 변환시킨 후, 자기만이 가진 성정의 특징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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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을 채워 보세요.
1. 육의 흔적 중에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영적으로 결여되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온 영의 사람이 된다. 이것을 ( )이라 한다.
2.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육의 흔적이 변환되는 과정을 거쳐 믿음의 5단계에서 온전히 변환되면 그때부터는 ( ) 즉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적인 면’이 신의 성품 안에서 아름답게 발휘된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41~24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육의 흔적을 변환시킨 뒤 성정대로 쓰임 받은 모세
모세는 자기 동족을 때리는 애굽 사람을 쳐 죽일 만큼 의분이 있고 급한 성품도 있었다. 하지만 변화된 후에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하다고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예전의 의분과 급한 성품이 백성을 향한 열정으로 바뀌었다.
뜨거운 성품이 있기에 온전히 변화된 후에는 수많은 백성을 마음 안에 다 담을 수 있는 큰 자가 되었다. 만약 모세가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한 성품이었다면, 백성들을 향한 열정으로 출애굽의 지도자 사명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교육목표 : 육의 흔적을 완전히 변환시킨 후 자기만이 가진 성정의 특징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한다.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영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일단 깨끗한 마음 그릇이 준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그릇에 영의 내용물들을 채워 나가기 시작한 상태를 ‘결여’라 하고 그릇의 반쯤 넘어선 상태를 ‘부족’이라 합니다. 그릇에 영의 내용물을 완전히 채우면 ‘온 영’이라 하지요. 그런데 4단계 80%부터 5단계 50% 미만까지는 아직 곳곳에 빈 공간이 조금은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믿음의 5단계 50%를 넘어야 빈 공간까지도 완전히 채웠다 할 수 있습니다.
1. 육의 흔적을 변환시키는 과정
어떤 사람은 덕과 사랑이 넘치지만 기질적으로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지 않아 끊어야 할 때 정확히 끊지 못합니다. 베풀기는 즐겨하는데 기분에 따라 즉흥적인 사람도 있고, 성실하고 바른 모습이지만 다소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으로 들어오면 이런 성품이나 기질적인 면이 악의 모양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육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한 영의 마음과는 차이가 납니다.
육의 흔적 중에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영적으로 결여되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온 영의 사람이 되지요. 이것을 ‘육의 흔적의 변환’이라 합니다. 육의 흔적이 신의 성품 안에 녹아지면서 영적인 것으로 변한다는 의미로서 인성도 사람의 인성이 아닌 신의 성품에 속한 인성으로 바뀝니다.
가령, 소극적인 사람은 그의 소극적인 면이 섬세함으로 승화됩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면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승화되지요. 또한 사리 판단이 빠르고 꾀가 있는 사람은 지혜롭고 민첩하게 바뀝니다. 답답하고 무딘 사람이라도 그 장점을 살려 진중한 모습으로 변환되지요. 이처럼 육의 흔적을 변환시켜 나가는 과정은 믿음의 4단계부터 믿음의 5단계 50%를 넘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2. 결여를 채우는 육의 흔적의 변환 1단계
믿음의 4단계 50% 미만에서는 육의 흔적으로 인한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결여란 아예 없거나 조금밖에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랑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은 사랑의 분야에 결여가 생깁니다. 영으로 들어와 마음에 악은 없다 해도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일방적으로 보듬어 주고 용서만 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여기기도 하고, 반대로 일방적으로 질책하고 책망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하기도 하지요.
부모로부터 따뜻한 관심과 이해와 용서를 받고 때로는 잘못에 대해 책망과 체벌을 적절히 받으며 이것이 부모의 사랑임을 깨달은 사람은 단지 용서하고 품어 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책망하고 외면하는 것도 사랑임을 마음에서 깨닫게 됩니다. 반면에 무조건적인 이해와 사랑만 받으며 성장하거나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성장하게 되면 사랑의 결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상대를 보듬어야 할지, 책망하고 외면해야 할지, 용서하고 품어야 할지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성장하면서 생긴 사랑의 결여를 채워야 온전한 영의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영의 지식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 지식으로 쌓아 왔다고는 하나 자기 마음을 온전히 영으로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그것이 결여로 자리 잡은 경우입니다. 영의 깊이가 더할수록 말씀을 깨닫고 적용하는 차원이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그러나 영의 지식이 결여된 사람은 자기가 마음에 이룬 한계 안에서만 그 말씀을 적용하므로 때로는 원하는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선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이 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감정이 없고 마음이 요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선에 비하면 아직은 소극적인 수준의 선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선은 악한 상대에게 나쁜 감정이 없음은 물론, 선대하고 감동을 주어 그를 변화시키는 차원입니다. 나아가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차원이지요. 이러한 온전한 선에 비교해 볼 때 거리가 멀다 할 수 있으므로 ‘결여’라고 합니다.
비유를 들면, 규정 속도가 60km인 1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뒤에서 비상등을 켠 차가 급속도로 달려옵니다. 이때 온전한 선의 결여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교통법규를 준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뒤따라 오는 운전자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 차가 추월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될 때까지만이라도 조금 빨리 달려 주면 될 텐데, 교통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한계 안에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3. 부족을 채우는 육의 흔적의 변환 2단계
믿음의 4단계 50% 이상 80% 미만에서는 육의 흔적으로 인해 부족 현상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부족’이란 온 영의 차원과 비교할 때 아직은 부족하다는 의미로서, 아예 없거나 조금밖에 없는 ‘결여?와는 다릅니다. 그렇다면 온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해 채워야 할 분야는 무엇일까요?
먼저, 사랑의 부족을 채워야 합니다. 가령,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해 주기로 했을 때, 어느 선까지 해야 할지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되, 어떤 때는 선을 그어야 하고, 어떤 때는 도가 넘치도록 해 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똑같이 이해하고 품는다 해도 어떤 경우는 선을 그어 상대가 스스로 일어나게 하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넘치는 위로와 격려를 통해 상대가 힘을 얻고 변화되도록 해야 하지요. 따라서 더 깊이 있고, 섬세한 사랑의 차원을 깨달아 부족한 분야를 채워야 합니다.
다음으로, 영의 지식의 부족을 채워야 합니다. 똑같은 영의 지식이라도 마음을 얼마나 영으로 이뤘느냐에 따라 활용 범위와 방법이 달라집니다. 한 가지 영의 지식을 열 가지로 활용하고 적용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영의 지식이 부족하면 아직 대여섯 가지로밖에 활용하지 못하지요.
만일 어떤 여 성도가 이혼 문제로 상담을 요청했는데 무조건 ‘이혼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만 적용합니다. 물론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남편의 심한 핍박으로 인해 아내가 구원의 길에서 멀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경우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깊이 있게 깨달아 오직 성령의 감동 속에 영의 지식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더욱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선의 부족입니다. 가령, 규정 속도가 60km인 1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비상등을 켠 차가 급속도로 달려옵니다. 이때 온전한 선이 부족한 사람은 뒤차의 입장을 생각해 빨리 달릴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최대한 상대를 배려하지만 매번 그렇게 행하지는 못하지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결여에 해당되지만, 배려하되 항상 그런 것이 아니라면 부족입니다.
4. 육의 흔적의 변환을 통해 성정대로 쓰임 받기까지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육의 흔적이 변환되는 과정을 거쳐 믿음의 5단계에서 온전히 변환되면 그때부터는 ‘성정’ 즉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적인 면’이 신의 성품 안에서 아름답게 발휘됩니다. 전에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이 육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함을 이루는 데 장애물이 되었다면, 육의 흔적을 온전히 변환시킨 후부터는 그만의 특별한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80%부터 5단계 5% 미만은 아직 육의 흔적이 온전히 변환되어서 활용해 나가는 단계는 아닙니다. 육의 흔적이 나올 때도 있고, 변환되어 나올 때도 있어서 스스로 ‘내가 영인가, 온 영인가?’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4단계 80%부터는 온 영으로 인정해 주시며 그를 친히 주관하여 이끌어 가십니다.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등은 육의 흔적을 완전히 변환시킨 후, 자기만이 가진 성정의 특징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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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을 채워 보세요.
1. 육의 흔적 중에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영적으로 결여되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온 영의 사람이 된다. 이것을 ( )이라 한다.
2.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육의 흔적이 변환되는 과정을 거쳐 믿음의 5단계에서 온전히 변환되면 그때부터는 ( ) 즉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적인 면’이 신의 성품 안에서 아름답게 발휘된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41~24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육의 흔적을 변환시킨 뒤 성정대로 쓰임 받은 모세
모세는 자기 동족을 때리는 애굽 사람을 쳐 죽일 만큼 의분이 있고 급한 성품도 있었다. 하지만 변화된 후에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하다고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예전의 의분과 급한 성품이 백성을 향한 열정으로 바뀌었다.
뜨거운 성품이 있기에 온전히 변화된 후에는 수많은 백성을 마음 안에 다 담을 수 있는 큰 자가 되었다. 만약 모세가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한 성품이었다면, 백성들을 향한 열정으로 출애굽의 지도자 사명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2016-11-25
제47과선과 사랑을 채워 가는 믿음의 4단계
엡 4:13
읽을말씀 : 엡 4:13 | 외울말씀 : 빌 3:14 ㅣ 참고 말씀: 벧후 1:4~7
교육목표 : 불같은 기도로 자기를 깨뜨림으로 영의 정체기를 겪지 않고 신속히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온전한 영의 열매가 되게 한다.
믿음의 3단계는 마음의 악을 버려가는 단계이므로 악을 버린 만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힐 조짐을 보입니다.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열매가 100% 맺히면 온 영, 곧 믿음의 5단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서도 모든 열매가 얼마나 온전히 익었느냐에 따라 더 깊은 온 영의 차원에 이르러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밝히 깨닫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 믿음의 5단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100으로 나눈다면 1~10% 미만까지는 초입이라고 합니다. 10~20% 미만은 정체기, 20~50% 미만은 중엽, 50% 이상은 말엽이라 할 수 있지요.
1. 영의 열매가 온전치 않은 믿음의 4단계 초입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스스로 보기에 악은 다 버린 것 같지만 “내가 영으로 들어갔다.”라고 자신 있게 고백하기에는 조금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믿음의 3단계 말엽인지, 아니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왔는지 정확히 분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서 볼 때도 악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저 사람은 확실히 영의 사람이다.”라고 인정하기에는 주저할 수 있지요.
그러면 믿음의 4단계 초입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첫째, 열매가 온전치 못합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불순종하려는 마음이 없고, 항상 순종할 자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명심하여 그대로 행하고자 합니다. 그런데도 열매가 온전치 않은 것은, 마음에 맺힌 영의 열매가 온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온유하기는 한데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다든가, 충성은 하는데 화평의 열매가 온전치 못하기도 합니다. 또 사랑한다 해도 영적인 사랑이 온전히 맺힌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아직 영의 열매들이 마음에 온전히 맺힌 것이 아니므로 실제 보이는 열매 역시 온전치 못합니다. 부흥의 열매를 못 내기도 하고, 일 처리도 완벽하지 못하지요. 또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음에도 어느 선에서 멈춰 버립니다.
둘째, 마음에 악은 없지만 온전한 선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악한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주변 사람을 어렵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악을 행치는 않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선이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를 온전히 배려하지 못하거나 상대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해 주지 못합니다. 선하다 하지만 온전한 선이 아닌 것입니다. 또는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일이 지체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남에게는 비겁함이나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하지요. 악은 벗었지만 아직 마음에 진리가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으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온전한 선이 아닌 모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셋째, 육체의 결여가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 말엽에 있는 사람 중에도 육체의 결여 때문에 믿음 성장이 지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4단계 초입에 들어온 사람의 육체의 결여는 3단계 말엽의 결여와는 다릅니다. 악은 다 버렸으되 더 온전한 열매를 내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지요.
예를 들면, 성격적인 결여로 인해 나서야 할 때도 잠잠히 있는 경우, 성장 과정에서 생긴 결여로 인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 불편한 마음이나 감정은 없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섬겨 주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볼 때도 아직 온전하다 생각지 않을 수 있습니다.
2. 불같은 기도가 필요한 믿음의 4단계 정체기
믿음의 3단계에서 불같은 기도를 쌓았고 자기 의와 틀을 깨뜨리는 연단의 과정을 잘 겪었다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서 정체기 없이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빠르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10~20% 미만에 머물러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영의 정체기’라고 합니다.
비록 영의 초입에는 들어왔다 해도 더 이상 사모함을 갖지 못한 채 영의 세계를 뚫어 들어가지 않으면 결국 정체 현상을 겪게 됩니다.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같은 기도를 통해 ‘자기’가 온전히 깨어지고 없어야 합니다.
여기서 ‘자기’란, 영으로 들어오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육에 속한 자기’와는 다릅니다. 영으로 들어와서도 하나님의 뜻과 하나를 이루어 가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또 다른 자기’를 말합니다. 또한 영으로 들어오면 악이 나오지는 않지만 온전한 선의 마음, 온전한 영의 열매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도 채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때 불같이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을 발견할 수 없고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불같은 기도가 중요합니다.
3. 주님의 향이 나는 믿음의 4단계 중엽
이 단계에만 들어와도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많은 일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서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첫째, ‘육의 흔적’에 의한 육체의 결여가 조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육의 흔적이란, 성장하면서 습득한 여러 지식과 경험, 부모에게 전달받은 성품이나 기질 등이 영으로 들어가도 흔적처럼 남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나타나는 육체의 결여는 악의 모양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타고난 기 속에서 형성된 각 사람의 ‘성정’에 관한 분야이지요.
성정이란 간단히 말해 ‘타고난 본성?입니다. 어떤 이는 소극적이고 어떤 이는 적극적이며, 어떤 이는 무디고 어떤 이는 예민합니다. 이처럼 타고난 성정으로 인해 성격이나 행동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믿음의 4단계 50% 미만까지는 이렇게 성정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여를 다듬는 과정입니다.
둘째, 주님의 향이 납니다.
이때부터는 모든 것이 주의 교양으로 바뀌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 주님이 저렇게 하셨겠구나.” 하고 은혜를 받습니다. 이 차원에 들어오면 모든 분야에서 영의 열매가 무르익어 가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지 주님의 향을 내며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습니다.
셋째, 사랑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믿음의 4단계 20%를 넘어가면 영의 사랑이 점점 더 온전해집니다. 이와 더불어 덕까지 갖춰 많은 사람을 마음으로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사랑으로 바라봐 주고 품어 주니 그에게서 영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영의 사랑이 결국 수많은 영혼을 변화시키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힘이 되므로 풍성한 영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4.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가는 믿음의 4단계 말엽
믿음의 4단계 50% 이상이 되면 육체의 결여된 분야가 없고 이때는 자기가 얼마든지 누릴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기꺼이 포기합니다. 주님을 위해 생명까지 드릴 수 있고 하나님과 신뢰관계가 더욱 온전해집니다. 물론 모든 면이 온전해지려면 당연히 온 영의 차원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믿음의 4단계 50%만 넘어도 그만큼 온전함에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이 단계에서는 선과 사랑, 영의 지식을 조금만 더 채우면 믿음의 4단계 80%를 넘어 온 영의 차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영의 차원에서 깊이 들어올수록 1%를 채운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1% 채우는 것과,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 1% 채우는 것, 그리고 믿음의 4단계에서도 더 깊이 들어와 1%를 채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으로 깊이 들어올수록 더 깊고 세미한 분야까지 깨우쳐 변화되어야 비로소 1%가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4단계 80%부터 친히 연단하시며 믿음의 5단계 곧 온 영의 차원에 진입하여 믿음의 선진들처럼 성정대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야(벧후 1:4~7)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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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1. 믿음의 3단계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힐 조짐을 보인다.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 )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열매가 ( ) 맺히면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2. ( )이란, 성장하면서 습득한 여러 지식과 경험, 부모에게 전달받은 성품이나 기질 등이 영으로 들어가도 흔적처럼 남는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32~24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은?
온전한 빛의 차원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빛에 흡수되어도 좋을 만큼의 온전한 빛을 이루어 근본 하나님이 계신 4차원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근본 하나님이 계신 4차원의 공간은 빛 가운데 소리를 머금고 계신 공간으로서 온전한 참 빛을 이룬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들어갈 수 있다.
교육목표 : 불같은 기도로 자기를 깨뜨림으로 영의 정체기를 겪지 않고 신속히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온전한 영의 열매가 되게 한다.
믿음의 3단계는 마음의 악을 버려가는 단계이므로 악을 버린 만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힐 조짐을 보입니다.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열매가 100% 맺히면 온 영, 곧 믿음의 5단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서도 모든 열매가 얼마나 온전히 익었느냐에 따라 더 깊은 온 영의 차원에 이르러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밝히 깨닫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 믿음의 5단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100으로 나눈다면 1~10% 미만까지는 초입이라고 합니다. 10~20% 미만은 정체기, 20~50% 미만은 중엽, 50% 이상은 말엽이라 할 수 있지요.
1. 영의 열매가 온전치 않은 믿음의 4단계 초입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스스로 보기에 악은 다 버린 것 같지만 “내가 영으로 들어갔다.”라고 자신 있게 고백하기에는 조금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믿음의 3단계 말엽인지, 아니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왔는지 정확히 분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서 볼 때도 악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저 사람은 확실히 영의 사람이다.”라고 인정하기에는 주저할 수 있지요.
그러면 믿음의 4단계 초입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첫째, 열매가 온전치 못합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불순종하려는 마음이 없고, 항상 순종할 자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명심하여 그대로 행하고자 합니다. 그런데도 열매가 온전치 않은 것은, 마음에 맺힌 영의 열매가 온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온유하기는 한데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다든가, 충성은 하는데 화평의 열매가 온전치 못하기도 합니다. 또 사랑한다 해도 영적인 사랑이 온전히 맺힌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아직 영의 열매들이 마음에 온전히 맺힌 것이 아니므로 실제 보이는 열매 역시 온전치 못합니다. 부흥의 열매를 못 내기도 하고, 일 처리도 완벽하지 못하지요. 또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음에도 어느 선에서 멈춰 버립니다.
둘째, 마음에 악은 없지만 온전한 선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악한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주변 사람을 어렵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악을 행치는 않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선이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를 온전히 배려하지 못하거나 상대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해 주지 못합니다. 선하다 하지만 온전한 선이 아닌 것입니다. 또는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일이 지체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남에게는 비겁함이나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하지요. 악은 벗었지만 아직 마음에 진리가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으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온전한 선이 아닌 모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셋째, 육체의 결여가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 말엽에 있는 사람 중에도 육체의 결여 때문에 믿음 성장이 지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4단계 초입에 들어온 사람의 육체의 결여는 3단계 말엽의 결여와는 다릅니다. 악은 다 버렸으되 더 온전한 열매를 내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지요.
예를 들면, 성격적인 결여로 인해 나서야 할 때도 잠잠히 있는 경우, 성장 과정에서 생긴 결여로 인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 불편한 마음이나 감정은 없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섬겨 주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볼 때도 아직 온전하다 생각지 않을 수 있습니다.
2. 불같은 기도가 필요한 믿음의 4단계 정체기
믿음의 3단계에서 불같은 기도를 쌓았고 자기 의와 틀을 깨뜨리는 연단의 과정을 잘 겪었다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서 정체기 없이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빠르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10~20% 미만에 머물러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영의 정체기’라고 합니다.
비록 영의 초입에는 들어왔다 해도 더 이상 사모함을 갖지 못한 채 영의 세계를 뚫어 들어가지 않으면 결국 정체 현상을 겪게 됩니다.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같은 기도를 통해 ‘자기’가 온전히 깨어지고 없어야 합니다.
여기서 ‘자기’란, 영으로 들어오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육에 속한 자기’와는 다릅니다. 영으로 들어와서도 하나님의 뜻과 하나를 이루어 가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또 다른 자기’를 말합니다. 또한 영으로 들어오면 악이 나오지는 않지만 온전한 선의 마음, 온전한 영의 열매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도 채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때 불같이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을 발견할 수 없고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불같은 기도가 중요합니다.
3. 주님의 향이 나는 믿음의 4단계 중엽
이 단계에만 들어와도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많은 일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서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첫째, ‘육의 흔적’에 의한 육체의 결여가 조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육의 흔적이란, 성장하면서 습득한 여러 지식과 경험, 부모에게 전달받은 성품이나 기질 등이 영으로 들어가도 흔적처럼 남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나타나는 육체의 결여는 악의 모양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타고난 기 속에서 형성된 각 사람의 ‘성정’에 관한 분야이지요.
성정이란 간단히 말해 ‘타고난 본성?입니다. 어떤 이는 소극적이고 어떤 이는 적극적이며, 어떤 이는 무디고 어떤 이는 예민합니다. 이처럼 타고난 성정으로 인해 성격이나 행동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믿음의 4단계 50% 미만까지는 이렇게 성정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여를 다듬는 과정입니다.
둘째, 주님의 향이 납니다.
이때부터는 모든 것이 주의 교양으로 바뀌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 주님이 저렇게 하셨겠구나.” 하고 은혜를 받습니다. 이 차원에 들어오면 모든 분야에서 영의 열매가 무르익어 가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지 주님의 향을 내며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습니다.
셋째, 사랑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믿음의 4단계 20%를 넘어가면 영의 사랑이 점점 더 온전해집니다. 이와 더불어 덕까지 갖춰 많은 사람을 마음으로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사랑으로 바라봐 주고 품어 주니 그에게서 영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영의 사랑이 결국 수많은 영혼을 변화시키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힘이 되므로 풍성한 영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4.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가는 믿음의 4단계 말엽
믿음의 4단계 50% 이상이 되면 육체의 결여된 분야가 없고 이때는 자기가 얼마든지 누릴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기꺼이 포기합니다. 주님을 위해 생명까지 드릴 수 있고 하나님과 신뢰관계가 더욱 온전해집니다. 물론 모든 면이 온전해지려면 당연히 온 영의 차원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믿음의 4단계 50%만 넘어도 그만큼 온전함에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이 단계에서는 선과 사랑, 영의 지식을 조금만 더 채우면 믿음의 4단계 80%를 넘어 온 영의 차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영의 차원에서 깊이 들어올수록 1%를 채운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1% 채우는 것과,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 1% 채우는 것, 그리고 믿음의 4단계에서도 더 깊이 들어와 1%를 채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으로 깊이 들어올수록 더 깊고 세미한 분야까지 깨우쳐 변화되어야 비로소 1%가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4단계 80%부터 친히 연단하시며 믿음의 5단계 곧 온 영의 차원에 진입하여 믿음의 선진들처럼 성정대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야(벧후 1:4~7)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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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1. 믿음의 3단계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힐 조짐을 보인다.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 )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열매가 ( ) 맺히면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2. ( )이란, 성장하면서 습득한 여러 지식과 경험, 부모에게 전달받은 성품이나 기질 등이 영으로 들어가도 흔적처럼 남는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32~24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은?
온전한 빛의 차원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빛에 흡수되어도 좋을 만큼의 온전한 빛을 이루어 근본 하나님이 계신 4차원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근본 하나님이 계신 4차원의 공간은 빛 가운데 소리를 머금고 계신 공간으로서 온전한 참 빛을 이룬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들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