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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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0-21
제42과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 버려야 할 9가지
요일 2:15
읽을말씀 : 요일 2:15 | 외울말씀 : 마 5:28 l 참고 말씀: 약 4:11~12
교육목표 :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소유하여 범사에 승리해 나가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육신의 일, 즉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도 웬만한 것은 다 버린 상태이므로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견고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 버려야 하는 악은 무엇일까요?
1. 분노, 짜증과 같은 혈기
혈기란 분노와 같은 악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말합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면 욕설이나 폭행 등 거친 말과 행동이 나오지요. 믿음의 반석에서는 마음에서 ‘욱!’ 하거나 부글부글 끓는 것도 거의 없어야 합니다.
만약 혈기를 참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거나 짜증 섞인 말과 감정이 담긴 말을 툭툭 내뱉는다면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멀지요. 더욱이 혈기가 얼굴에 분명히 드러나고 말이나 행동에서 확연히 느껴지는데도 스스로 반석에 섰다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혈기를 내고도 ‘상대를 깨우쳐 주기 위함’이며 ‘의분이 난 것’이라고 이유를 대거나 변명한다면 이 또한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2. 불편함, 서운함 등 나쁜 감정
감정이란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으로서 혈기보다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이 감정으로부터 여러 가지 육신의 일들이 파생돼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편함과 서운함이지요. 누군가가 자신에게 안 좋은 말을 하거나 지적 또는 책망할 때, 자신을 섬겨 주지 않거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 해 주지 않을 때 불편함이 생깁니다. 또한 남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자기가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애매히 오해를 받을 때 서운함이 생깁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어느 정도 무익한 종의 마음(눅 17:7~10)이 되어 서운함이나 불편한 감정이 스스로 느낄 만큼 올라오지는 않습니다. 간혹 착각 속에 ‘나는 그런 감정들이 없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처럼 자신을 속이면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없습니다.
3. 미움, 시기, 질투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에서 계속 상대를 미워한다면 이는 거듭 살인하는 것과 같으며(요일 3:15)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멉니다. 시기, 질투 역시 현저한 육체의 일(갈 5:19~21)이므로 반드시 버려야 할 악입니다.
만일 누군가 칭찬받을 때 ‘저 사람에게는 저런 부족한 모습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시기가 있는 것입니다. 상대와 비교하여 낙심하거나 자격지심을 갖는다면 이 역시 시기 질투로 인한 현상입니다. 시기 질투가 없다면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잘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인정과 칭찬을 받는다 해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미움, 시기, 질투를 가지고 있으면서 믿음의 반석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4. 거짓, 속이는 마음
자기 유익을 위해 속이거나 거짓말을 지어낸다면 믿음의 반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공을 드러내고자 허위로 실적을 보태고, 불리한 내용을 축소하거나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은 거짓과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현실을 덮는 데 급급하여 거짓말하고 속인다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당장은 속여서 넘어갔다 해도 결국 시험 환난으로 오고 나중에는 더 큰 일도 속이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속이려는 마음, 거짓말하거나 숨기려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있습니다.
5. 헤아림과 비방, 판단 정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100%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나 지식 또는 자기 보기에 선과 의를 기준으로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지요. 따라서 함부로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하는 것은 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약 4:11~12). 판단을 하면 대부분 수군거림과 헤아림, 비방과 정죄가 따릅니다. 특히 ‘분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안 좋은 말을 퍼뜨리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이렇게 남의 이야기나 소문, 혹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 정죄하는 사람은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6. 변개함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육의 대표적인 특징인 변개함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더욱이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꾸는 사람이라면 변개함의 속성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순교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순교의 믿음’이란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변개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 수시로 변개하며 하나님과의 약속도 어기는 사람이 어떻게 죽음의 위협 앞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7. 간음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버려야 할 것이 바로 간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7~28). 이성을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거나 생각으로 하는 간음도 없어야 반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란한 행위만 죄로 여길 뿐 음란한 생각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꼭 음란한 생각은 아니라 해도 이성을 보면서 ‘몸매 좋다.?거나 ‘잘생겼다.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간음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음란한 행위는 물론, 마음이나 생각으로 짓는 간음의 근본 뿌리까지 온전히 빼내야 합니다.
8. 욕심과 탐심, 사사로운 마음
욕심과 탐심은 물질, 명예, 권세, 외모 등 다양한 분야로 표출되어 나옵니다. 사심은 정과 욕심을 좇아 개인적인 유익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욕심, 사심, 탐심이 드러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물질과 관련된 경우입니다.
욕심이나 탐심이 있어 돈을 사랑하면 결국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딤전 6:10). 사심 역시 물질과 관련되면 온갖 부정과 부패의 원인이 되지요. 사심이 있으면 개인적인 유익,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유익을 먼저 챙깁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이러한 욕심, 탐심, 사심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9.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마음
배신은 변개함과도 관련이 있지만 간사한 마음과 크게 관련이 있습니다. 또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교만 등 여러 가지 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배신’이라는 악을 낳게 됩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함께했던 사람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 상대와 약속해 놓고 그 기대를 저버리는 것도 배신입니다. 더욱이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이를 저버리고 배신한다면 더 큰 악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이러한 배신의 마음을 근본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아홉 가지 기준에 비추어 걸릴 만한 것이 없다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으니 악을 버리고 믿음의 반석에 설 뿐 아니라 더 깊은 영의 차원으로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쓰세요.
1.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육의 대표적인 특징 ( )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꾼다면 ( )의 속성이 많다는 증거이다.
2. ( )이란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으로 혈기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 ( )으로부터 여러 가지 육신의 일들이 파생돼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편함과 서운함이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02~20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
가룟 유다는 사사로운 이익과 욕심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힘 있는 위치에 오르시면 자신도 그 곁에서 덕을 보려는 속셈이었다. 돈궤도 자기가 맡았고 때때로 물질을 임의로 빼돌리기도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점점 자기 기대와는 다른 길로 가시자 은 삼십에 팔아넘기고 만다. 가룟 유다의 최후에 대해 사도행전 1:18에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기록돼 있다.
사리사욕 때문에 예수님을 배신한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보여 준다.
교육목표 :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소유하여 범사에 승리해 나가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육신의 일, 즉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도 웬만한 것은 다 버린 상태이므로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견고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 버려야 하는 악은 무엇일까요?
1. 분노, 짜증과 같은 혈기
혈기란 분노와 같은 악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말합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면 욕설이나 폭행 등 거친 말과 행동이 나오지요. 믿음의 반석에서는 마음에서 ‘욱!’ 하거나 부글부글 끓는 것도 거의 없어야 합니다.
만약 혈기를 참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거나 짜증 섞인 말과 감정이 담긴 말을 툭툭 내뱉는다면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멀지요. 더욱이 혈기가 얼굴에 분명히 드러나고 말이나 행동에서 확연히 느껴지는데도 스스로 반석에 섰다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혈기를 내고도 ‘상대를 깨우쳐 주기 위함’이며 ‘의분이 난 것’이라고 이유를 대거나 변명한다면 이 또한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2. 불편함, 서운함 등 나쁜 감정
감정이란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으로서 혈기보다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이 감정으로부터 여러 가지 육신의 일들이 파생돼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편함과 서운함이지요. 누군가가 자신에게 안 좋은 말을 하거나 지적 또는 책망할 때, 자신을 섬겨 주지 않거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 해 주지 않을 때 불편함이 생깁니다. 또한 남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자기가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애매히 오해를 받을 때 서운함이 생깁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어느 정도 무익한 종의 마음(눅 17:7~10)이 되어 서운함이나 불편한 감정이 스스로 느낄 만큼 올라오지는 않습니다. 간혹 착각 속에 ‘나는 그런 감정들이 없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처럼 자신을 속이면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없습니다.
3. 미움, 시기, 질투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에서 계속 상대를 미워한다면 이는 거듭 살인하는 것과 같으며(요일 3:15)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멉니다. 시기, 질투 역시 현저한 육체의 일(갈 5:19~21)이므로 반드시 버려야 할 악입니다.
만일 누군가 칭찬받을 때 ‘저 사람에게는 저런 부족한 모습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시기가 있는 것입니다. 상대와 비교하여 낙심하거나 자격지심을 갖는다면 이 역시 시기 질투로 인한 현상입니다. 시기 질투가 없다면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잘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인정과 칭찬을 받는다 해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미움, 시기, 질투를 가지고 있으면서 믿음의 반석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4. 거짓, 속이는 마음
자기 유익을 위해 속이거나 거짓말을 지어낸다면 믿음의 반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공을 드러내고자 허위로 실적을 보태고, 불리한 내용을 축소하거나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은 거짓과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현실을 덮는 데 급급하여 거짓말하고 속인다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당장은 속여서 넘어갔다 해도 결국 시험 환난으로 오고 나중에는 더 큰 일도 속이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속이려는 마음, 거짓말하거나 숨기려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있습니다.
5. 헤아림과 비방, 판단 정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100%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나 지식 또는 자기 보기에 선과 의를 기준으로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지요. 따라서 함부로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하는 것은 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약 4:11~12). 판단을 하면 대부분 수군거림과 헤아림, 비방과 정죄가 따릅니다. 특히 ‘분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안 좋은 말을 퍼뜨리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이렇게 남의 이야기나 소문, 혹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 정죄하는 사람은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6. 변개함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육의 대표적인 특징인 변개함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더욱이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꾸는 사람이라면 변개함의 속성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순교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순교의 믿음’이란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변개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 수시로 변개하며 하나님과의 약속도 어기는 사람이 어떻게 죽음의 위협 앞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7. 간음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버려야 할 것이 바로 간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7~28). 이성을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거나 생각으로 하는 간음도 없어야 반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란한 행위만 죄로 여길 뿐 음란한 생각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꼭 음란한 생각은 아니라 해도 이성을 보면서 ‘몸매 좋다.?거나 ‘잘생겼다.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간음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음란한 행위는 물론, 마음이나 생각으로 짓는 간음의 근본 뿌리까지 온전히 빼내야 합니다.
8. 욕심과 탐심, 사사로운 마음
욕심과 탐심은 물질, 명예, 권세, 외모 등 다양한 분야로 표출되어 나옵니다. 사심은 정과 욕심을 좇아 개인적인 유익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욕심, 사심, 탐심이 드러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물질과 관련된 경우입니다.
욕심이나 탐심이 있어 돈을 사랑하면 결국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딤전 6:10). 사심 역시 물질과 관련되면 온갖 부정과 부패의 원인이 되지요. 사심이 있으면 개인적인 유익,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유익을 먼저 챙깁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이러한 욕심, 탐심, 사심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9.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마음
배신은 변개함과도 관련이 있지만 간사한 마음과 크게 관련이 있습니다. 또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교만 등 여러 가지 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배신’이라는 악을 낳게 됩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함께했던 사람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 상대와 약속해 놓고 그 기대를 저버리는 것도 배신입니다. 더욱이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이를 저버리고 배신한다면 더 큰 악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이러한 배신의 마음을 근본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아홉 가지 기준에 비추어 걸릴 만한 것이 없다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으니 악을 버리고 믿음의 반석에 설 뿐 아니라 더 깊은 영의 차원으로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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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쓰세요.
1.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육의 대표적인 특징 ( )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꾼다면 ( )의 속성이 많다는 증거이다.
2. ( )이란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으로 혈기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 ( )으로부터 여러 가지 육신의 일들이 파생돼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편함과 서운함이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02~20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
가룟 유다는 사사로운 이익과 욕심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힘 있는 위치에 오르시면 자신도 그 곁에서 덕을 보려는 속셈이었다. 돈궤도 자기가 맡았고 때때로 물질을 임의로 빼돌리기도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점점 자기 기대와는 다른 길로 가시자 은 삼십에 팔아넘기고 만다. 가룟 유다의 최후에 대해 사도행전 1:18에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기록돼 있다.
사리사욕 때문에 예수님을 배신한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보여 준다.
2016-10-14
제41과믿음의 3단계 초입과 반석의 차이
마 7:24~25
읽을말씀 : 마 7:24~25 | 외울말씀 : 히 12:4 l 참고 말씀: 계 3:15~1
교육목표 : 죄와의 싸움에서 멈추지 않고 죄성을 벗어 버림으로 믿음의 3단계에서 정체하지 않고 신속히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갈 수 있게 한다.
믿음의 1, 2단계를 지나 3단계가 되면 하나님 말씀에 담긴 뜻을 깨달아 가기 때문에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믿음의 3단계 초입에서는 가벼운 육체의 일(행함으로 짓는 죄)이 간혹 나올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 초입을 지나 믿음의 반석에 서면 육체의 일은 물론, 육신의 일(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도 웬만한 것은 버린 상태입니다. 과연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1. 죄를 싸워 버리기 시작하는 ‘믿음의 3단계 초입?
자발적으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왔다 해도 처음에는 마음에 갈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은 하지만, 마음에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선을 좇으려는 진리의 생각과, 악을 좇으려는 비진리의 생각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 초입이라면 어려움을 만날 때 ‘너무 힘들다.’라는 비진리 생각 때문에 성령 충만함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3단계에서도 중반을 넘어서게 되면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친다 해도 이내 생각을 바꾸어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가령, 직장 동료가 번번이 자신의 일을 떠넘기려 한다고 합시다. 이때 믿음의 2단계에 있는 사람은 상대의 행동에 기분이 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감정을 삭이고 섬기려고 노력해 봅니다. 그러다가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나? 본때를 보여 줘야지.’라는 생각에 결국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거나 따지기도 합니다.
반면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불편한 심정이지만 따지거나 짜증을 내지는 않습니다. 다만 3단계 초입에서는 불편한 생각을 진리의 생각으로 바꾸기까지 마음을 다스리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반석을 지나면 순간적으로는 불편한 생각이 스칠 수 있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고 상대를 배려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3단계 초입에서 반석으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가복음 9장 29절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셨으니 무엇보다 불같은 기도와 금식을 통해 죄를 버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있습니다.
2.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믿음의 반석?
같은 믿음의 단계 안에서도 저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각 믿음의 단계를 100으로 나누어 분량을 측정한다면 10%, 20%, 30% …, 이렇게 올라갑니다. 결국 100%가 되면 그다음 단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마 7:24~25). 반석은 넓고 평평한 큰 돌로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고전 10:4). 믿음의 반석에 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단계를 말합니다.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와 믿음의 반석에 서면 신앙생활이 힘든 것이 아니라 신이 납니다. 시험 환난이 오더라도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 뜻에 순종하고 변함없이 기도함으로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지요.
믿음의 3단계 70~80%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비진리의 생각이 나오지 않고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면 마침내 악이 없는 4단계의 믿음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여 연륜이 쌓이면 장로, 권사 혹은 구역장이나 기관장 등 여러 직분을 받습니다. 이러한 직분자라면 적어도 믿음의 3단계는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2단계에 머물러 자기 신앙도 바로 세우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영혼을 진리로 이끌어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말씀을 들었는데도 여전히 2단계의 믿음에 있다면 하나님 앞에 참으로 민망한 일이지요. 세월이 지나도 노력하지 않으면 여전히 2단계에 머물다가 믿음의 1단계로 퇴보하기도 하며, 그러다 자칫하면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5~16절에는 이를 경계하여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면 토하여 내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직분을 맡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믿음의 3단계에는 들어와야 합니다. 또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1, 2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살피고 돌아보아 그들도 3단계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죄와 싸우느라 지쳐 교회에서 직분 받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러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하신 말씀대로, 자신의 죄를 버려갈 뿐 아니라 믿음이 여린 영혼들을 돌아볼 때 주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달아 믿음이 쑥쑥 성장할 수 있습니다.
3.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믿음의 3단계는 육체의 일은 이미 버렸기에 본격적으로 육신의 일을 벗기 위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러다 믿음의 반석을 지나 더 성장하면, 육신의 일까지 대부분 버렸기에 비진리의 생각이 순간 스친다 해도 이내 진리로 바꾸고 범사에 순종하며 진리의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마음 먹기에 따라 믿음의 3단계로 들어가는 것은 신속히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3단계에서 4단계로 진입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립니다. 마치 나무가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새들이 깃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려면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하는데,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짧은 기간에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령, ‘미워하지 말라,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담긴 뜻을 깨닫기에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해하며 품어 주려고 하지만 마음에는 아직 미움이라는 죄성이 남아 있지요. 또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대로 늘 기뻐하고 감사하기 위해 노력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지만 마음에서 불평이나 낙심, 서운함의 뿌리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에 죄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게으름이나 우유부단한 성품 때문에 결단력 있게 벗어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에서 오래 지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 버리는 노력, 곧 마음의 할례를 멈췄기 때문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마음에 죄성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죄와 악이 있는지 발견하지 못하니 여전히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오랫동안 정체되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볼 때는 딱히 죄를 짓는 것 같지 않고 말씀대로 사는데 마음에 기쁨이 없고 답답합니다. 성령 충만함이 떨어지고 곤고함을 느끼지요. 따라서 죄와의 싸움을 멈추지 말고 신속히 죄성을 버려야 믿음의 4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하신 대로 작은 죄악이라도 발견하면 어찌하든 버리고자 금식하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다섯 번, 열 번 그 이상 도전해 보십시오. 부단히 금식하고 기도함으로 노력하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성까지 버릴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3~24절에는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말씀합니다. 거울을 보아 머리카락이 흐트러졌으면 빗고 더러운 것이 묻었으면 씻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비진리 모습을 발견했다면 그냥 두지 말고 그때그때 진리로 변화시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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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세요.
1.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다. 반석은 넓고 평평한 큰 돌로 영적으로는 ( )를 의미한다. 믿음의 반석에 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단계를 말한다.
2. 3단계 ( ~ )%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비진리의 생각이 나오지 않고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면 마침내 악이 없는 ( )의 믿음으로 들어선 것이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94~20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미지근한 신앙이란?
미지근한 신앙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면서도 뜨거워지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미지근한 신앙으로는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자신의 모습을 깨우치지 못한다.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니 삶의 변화 역시 없다. 미지근한 상태에 머물러만 있고 계속해서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결국 차가운 신앙이 되고 만다.
교육목표 : 죄와의 싸움에서 멈추지 않고 죄성을 벗어 버림으로 믿음의 3단계에서 정체하지 않고 신속히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갈 수 있게 한다.
믿음의 1, 2단계를 지나 3단계가 되면 하나님 말씀에 담긴 뜻을 깨달아 가기 때문에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믿음의 3단계 초입에서는 가벼운 육체의 일(행함으로 짓는 죄)이 간혹 나올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 초입을 지나 믿음의 반석에 서면 육체의 일은 물론, 육신의 일(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도 웬만한 것은 버린 상태입니다. 과연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1. 죄를 싸워 버리기 시작하는 ‘믿음의 3단계 초입?
자발적으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왔다 해도 처음에는 마음에 갈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은 하지만, 마음에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선을 좇으려는 진리의 생각과, 악을 좇으려는 비진리의 생각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 초입이라면 어려움을 만날 때 ‘너무 힘들다.’라는 비진리 생각 때문에 성령 충만함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3단계에서도 중반을 넘어서게 되면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친다 해도 이내 생각을 바꾸어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가령, 직장 동료가 번번이 자신의 일을 떠넘기려 한다고 합시다. 이때 믿음의 2단계에 있는 사람은 상대의 행동에 기분이 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감정을 삭이고 섬기려고 노력해 봅니다. 그러다가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나? 본때를 보여 줘야지.’라는 생각에 결국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거나 따지기도 합니다.
반면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불편한 심정이지만 따지거나 짜증을 내지는 않습니다. 다만 3단계 초입에서는 불편한 생각을 진리의 생각으로 바꾸기까지 마음을 다스리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반석을 지나면 순간적으로는 불편한 생각이 스칠 수 있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고 상대를 배려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3단계 초입에서 반석으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가복음 9장 29절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셨으니 무엇보다 불같은 기도와 금식을 통해 죄를 버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있습니다.
2.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믿음의 반석?
같은 믿음의 단계 안에서도 저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각 믿음의 단계를 100으로 나누어 분량을 측정한다면 10%, 20%, 30% …, 이렇게 올라갑니다. 결국 100%가 되면 그다음 단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마 7:24~25). 반석은 넓고 평평한 큰 돌로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고전 10:4). 믿음의 반석에 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단계를 말합니다.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와 믿음의 반석에 서면 신앙생활이 힘든 것이 아니라 신이 납니다. 시험 환난이 오더라도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 뜻에 순종하고 변함없이 기도함으로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지요.
믿음의 3단계 70~80%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비진리의 생각이 나오지 않고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면 마침내 악이 없는 4단계의 믿음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여 연륜이 쌓이면 장로, 권사 혹은 구역장이나 기관장 등 여러 직분을 받습니다. 이러한 직분자라면 적어도 믿음의 3단계는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2단계에 머물러 자기 신앙도 바로 세우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영혼을 진리로 이끌어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말씀을 들었는데도 여전히 2단계의 믿음에 있다면 하나님 앞에 참으로 민망한 일이지요. 세월이 지나도 노력하지 않으면 여전히 2단계에 머물다가 믿음의 1단계로 퇴보하기도 하며, 그러다 자칫하면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5~16절에는 이를 경계하여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면 토하여 내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직분을 맡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믿음의 3단계에는 들어와야 합니다. 또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1, 2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살피고 돌아보아 그들도 3단계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죄와 싸우느라 지쳐 교회에서 직분 받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러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하신 말씀대로, 자신의 죄를 버려갈 뿐 아니라 믿음이 여린 영혼들을 돌아볼 때 주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달아 믿음이 쑥쑥 성장할 수 있습니다.
3.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믿음의 3단계는 육체의 일은 이미 버렸기에 본격적으로 육신의 일을 벗기 위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러다 믿음의 반석을 지나 더 성장하면, 육신의 일까지 대부분 버렸기에 비진리의 생각이 순간 스친다 해도 이내 진리로 바꾸고 범사에 순종하며 진리의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마음 먹기에 따라 믿음의 3단계로 들어가는 것은 신속히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3단계에서 4단계로 진입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립니다. 마치 나무가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새들이 깃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려면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하는데,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짧은 기간에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령, ‘미워하지 말라,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담긴 뜻을 깨닫기에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해하며 품어 주려고 하지만 마음에는 아직 미움이라는 죄성이 남아 있지요. 또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대로 늘 기뻐하고 감사하기 위해 노력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지만 마음에서 불평이나 낙심, 서운함의 뿌리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에 죄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게으름이나 우유부단한 성품 때문에 결단력 있게 벗어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에서 오래 지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 버리는 노력, 곧 마음의 할례를 멈췄기 때문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마음에 죄성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죄와 악이 있는지 발견하지 못하니 여전히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오랫동안 정체되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볼 때는 딱히 죄를 짓는 것 같지 않고 말씀대로 사는데 마음에 기쁨이 없고 답답합니다. 성령 충만함이 떨어지고 곤고함을 느끼지요. 따라서 죄와의 싸움을 멈추지 말고 신속히 죄성을 버려야 믿음의 4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하신 대로 작은 죄악이라도 발견하면 어찌하든 버리고자 금식하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다섯 번, 열 번 그 이상 도전해 보십시오. 부단히 금식하고 기도함으로 노력하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성까지 버릴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3~24절에는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말씀합니다. 거울을 보아 머리카락이 흐트러졌으면 빗고 더러운 것이 묻었으면 씻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비진리 모습을 발견했다면 그냥 두지 말고 그때그때 진리로 변화시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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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세요.
1.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다. 반석은 넓고 평평한 큰 돌로 영적으로는 ( )를 의미한다. 믿음의 반석에 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단계를 말한다.
2. 3단계 ( ~ )%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비진리의 생각이 나오지 않고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면 마침내 악이 없는 ( )의 믿음으로 들어선 것이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94~20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미지근한 신앙이란?
미지근한 신앙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면서도 뜨거워지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미지근한 신앙으로는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자신의 모습을 깨우치지 못한다.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니 삶의 변화 역시 없다. 미지근한 상태에 머물러만 있고 계속해서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결국 차가운 신앙이 되고 만다.
2016-10-07
제40과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살전 5:16~18
읽을말씀 : 살전 5:16~18 | 외울말씀 : 마 7:24 l 참고 말씀 : 말 3:8~9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마음 중심에서 기쁨으로 행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2단계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라 했습니다.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지킬 때도 있고 지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걷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잘 걷는 것처럼, 말씀대로 행하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점점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니 자연스럽게 말씀대로 행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를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또 하나님 말씀이니 의무감으로 행하는 것과 왜 행해야 하는지를 깨달아 마음에서 우러나와 순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요. 믿음의 3단계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 말씀을 억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고 질병이 떠나게 하시며, 물질의 축복도 주신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합시다. 이러한 말씀을 아는 것만으로는 행함이 온전히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온전히 마음에 믿어지기 전까지는 지킬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요.
그러나 어찌하든 행하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어느 순간 왜 이 말씀을 주셨는지 하나님 사랑이 깨달아지면서 마음에서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타협하지 않고 온전한 주일을 지키며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믿는다는 것과, 육의 세계를 포함하여 광대한 영의 세계의 주인이심을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 그래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한 주 동안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지켜 주시고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또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물적 주권 곧 우리 눈에 보이는 천하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시니 생명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셨으므로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수입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중 십 분의 일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자유롭게 쓰도록 허락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진정 마음 중심에서 깨달으면 도리어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엄청난 죄임을 깨닫기 때문이지요. 또한 그동안 행하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을 깨달아 행하면 하나님께서 지키고 보호하시며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려면
아기가 태어나 성장할 때 음식을 섭취하는 것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보고 듣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지식이 쌓이고 지혜가 생겨야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주 안에서 성장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알고 있는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씀이 마음에 깨우쳐지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차원을 넘어 참된 의미를 깨달아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이 따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마음에 깨달음이 오지 않으면 머리로 아는 지식에 불과하기 때문에 순종이 따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 들어간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이니 억지로라도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조건이나 환경이 어려워지면 이내 불평하며 감사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3단계에서는 어떨까요? 잠시 염려 근심이 찾아왔다 해도 이내 마음과 생각을 바꿉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빛의 행함입니다. 그러니 감사하고 기뻐할 때 그 영적인 빛으로 인해 시험 환난이 떠나고 축복이 임합니다. 이런 사실을 체험할 때 하나님께서 왜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하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믿음의 2단계처럼 마지못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발적인 행함이 나오는데 이것이 믿음의 3단계의 행함입니다.
3.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증거들
이처럼 믿음이 성장하여 3단계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마음으로 깨달아지기 때문에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더 이상 짐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증거들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해서 힘이 든다든가 싫다든가 하지 않습니다.
또한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압니다. 천국과 지옥, 내세가 있는 것도 알고 믿습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의 삶을 알고 믿기 때문에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이 버거운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마치 일상생활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안정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앙생활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주일을 깜박 잊어버리고 어겼습니다.” 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믿음의 3단계부터는 눈에 크게 드러나는 비진리는 대부분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 육체의 일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육신의 일을 버려 나가는 시기입니다.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하며, 육신의 일이란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술 담배를 한다거나, 내 생각과 맞지 않을 때 화를 내며 말다툼을 하거나 몸싸움을 하는 것 등은 육체의 일입니다. 이러한 행함이 자주 나온다면 아직 믿음의 2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이러한 육체의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 말씀대로 행한다 해서 무조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는 없습니다. 가령, 주일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도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가에 따라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눈치 보이고 주일을 어기면 재앙을 당할까 두려워서 교회에 나오거나, 예배 시간 내내 졸음과 잡념 속에 드린다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분량은 한두 가지 외적인 행함만 보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믿으며 행하는지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깨달아 행함으로 나타내는 시기가 믿음의 3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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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써 보세요.
1.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면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니 자연스럽게 말씀대로 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를 ( )이라고 말한다.
2. 믿음의 3단계부터는 눈에 크게 드러나는 비진리는 대부분 정리가 되었기에 육체의 일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 )을 버려 나가는 시기이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87~19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3단계 처소와 면류관
처소 _ 믿음의 3단계는 2천층에 들어가며 독립된 개인 주택이 주어진다.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답다. 2천층에서는 주인이 가장 원하는 것으로 집에 딸린 부속시설 한가지씩 주어지게 된다. 또 집마다 문패가 있고, 천국 글씨로 집주인의 이름과 섬기던 교회 이름이 새겨진다.
면류관 _ 영광의 면류관이 각 사람에게 주어진다(벧전 5:4).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마음 중심에서 기쁨으로 행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2단계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라 했습니다.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지킬 때도 있고 지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걷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잘 걷는 것처럼, 말씀대로 행하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점점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니 자연스럽게 말씀대로 행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를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또 하나님 말씀이니 의무감으로 행하는 것과 왜 행해야 하는지를 깨달아 마음에서 우러나와 순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요. 믿음의 3단계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 말씀을 억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고 질병이 떠나게 하시며, 물질의 축복도 주신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합시다. 이러한 말씀을 아는 것만으로는 행함이 온전히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온전히 마음에 믿어지기 전까지는 지킬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요.
그러나 어찌하든 행하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어느 순간 왜 이 말씀을 주셨는지 하나님 사랑이 깨달아지면서 마음에서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타협하지 않고 온전한 주일을 지키며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믿는다는 것과, 육의 세계를 포함하여 광대한 영의 세계의 주인이심을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 그래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한 주 동안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지켜 주시고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또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물적 주권 곧 우리 눈에 보이는 천하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시니 생명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셨으므로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수입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중 십 분의 일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자유롭게 쓰도록 허락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진정 마음 중심에서 깨달으면 도리어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엄청난 죄임을 깨닫기 때문이지요. 또한 그동안 행하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을 깨달아 행하면 하나님께서 지키고 보호하시며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려면
아기가 태어나 성장할 때 음식을 섭취하는 것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보고 듣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지식이 쌓이고 지혜가 생겨야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주 안에서 성장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알고 있는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씀이 마음에 깨우쳐지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차원을 넘어 참된 의미를 깨달아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이 따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마음에 깨달음이 오지 않으면 머리로 아는 지식에 불과하기 때문에 순종이 따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 들어간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이니 억지로라도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조건이나 환경이 어려워지면 이내 불평하며 감사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3단계에서는 어떨까요? 잠시 염려 근심이 찾아왔다 해도 이내 마음과 생각을 바꿉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빛의 행함입니다. 그러니 감사하고 기뻐할 때 그 영적인 빛으로 인해 시험 환난이 떠나고 축복이 임합니다. 이런 사실을 체험할 때 하나님께서 왜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하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믿음의 2단계처럼 마지못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발적인 행함이 나오는데 이것이 믿음의 3단계의 행함입니다.
3.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증거들
이처럼 믿음이 성장하여 3단계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마음으로 깨달아지기 때문에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더 이상 짐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증거들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해서 힘이 든다든가 싫다든가 하지 않습니다.
또한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압니다. 천국과 지옥, 내세가 있는 것도 알고 믿습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의 삶을 알고 믿기 때문에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이 버거운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마치 일상생활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안정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앙생활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주일을 깜박 잊어버리고 어겼습니다.” 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믿음의 3단계부터는 눈에 크게 드러나는 비진리는 대부분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 육체의 일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육신의 일을 버려 나가는 시기입니다.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하며, 육신의 일이란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술 담배를 한다거나, 내 생각과 맞지 않을 때 화를 내며 말다툼을 하거나 몸싸움을 하는 것 등은 육체의 일입니다. 이러한 행함이 자주 나온다면 아직 믿음의 2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이러한 육체의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 말씀대로 행한다 해서 무조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는 없습니다. 가령, 주일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도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가에 따라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눈치 보이고 주일을 어기면 재앙을 당할까 두려워서 교회에 나오거나, 예배 시간 내내 졸음과 잡념 속에 드린다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분량은 한두 가지 외적인 행함만 보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믿으며 행하는지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깨달아 행함으로 나타내는 시기가 믿음의 3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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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써 보세요.
1.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면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니 자연스럽게 말씀대로 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를 ( )이라고 말한다.
2. 믿음의 3단계부터는 눈에 크게 드러나는 비진리는 대부분 정리가 되었기에 육체의 일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 )을 버려 나가는 시기이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87~19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3단계 처소와 면류관
처소 _ 믿음의 3단계는 2천층에 들어가며 독립된 개인 주택이 주어진다.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답다. 2천층에서는 주인이 가장 원하는 것으로 집에 딸린 부속시설 한가지씩 주어지게 된다. 또 집마다 문패가 있고, 천국 글씨로 집주인의 이름과 섬기던 교회 이름이 새겨진다.
면류관 _ 영광의 면류관이 각 사람에게 주어진다(벧전 5:4).
2016-09-30
제39과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
고전 3:1~2
읽을말씀 : 고전 3:1~2 | 외울말씀 : 잠 3:11 l 참고 말씀: 히 12:6~8
교육목표 : 말씀을 스스로 행할 수 있는 밥 먹는 신자가 되어 열심히 마음에 할례하여 성결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에는 분량이 있어서 성장 과정에 따라 자녀들의 믿음, 아이들의 믿음, 청년들의 믿음, 아비들의 믿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기가 태어나면 젖을 먹다가 성장하면서 밥을 먹는 것처럼,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의 믿음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까요?
1. 믿음의 1, 2단계는 ‘젖 먹는 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고 천국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믿음의 1단계입니다. 하나님과 자녀 관계가 성립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요. 하지만 이제 막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기에 영적으로는 갓난아기와 같은 상태입니다. 이때는 아직 진리가 무엇이며 비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죄를 지어도 죄인 줄 깨닫지 못합니다. 갓난아기가 발가벗고 있어도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지요.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어 진리로 분별할 수 없으니 설령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크게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마치 아기가 기어다니다가 물그릇을 엎거나 깨어도 야단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부모나 가족들 편에서 그릇을 치우지 않고 주의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고 여기지요.
믿음이 성장하여 2단계가 되면 성령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들은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죄를 지을 때는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게 되고 곤고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직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말씀을 들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마음에 비진리가 많으므로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처럼 아직은 연약한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을 ‘젖 먹는 신자’라고 합니다. 아무리 중한 사명과 직분을 받았다 해도 여전히 말씀대로 행치 못하고 비진리 가운데 살아간다면 그는 믿음의 2단계요, 어린아이의 신앙에 불과합니다. 주의 종이나 장로, 권사라 해도, 구역장이나 교사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직분이 무엇인지, 신앙생활한 지 오래되었는지, 성경 말씀을 많이 알아서 잘 가르칠 수 있는지, 이런 것을 보고 “믿음이 크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여 행하는지, 얼마나 진리 가운데 거하는지를 보시지요.
2. 젖 먹는 신자를 양육하는 방법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 해서 무조건 징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 이해하고 인도해 가시지요.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아직 믿음이 연약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이듯이 부드럽게 권면하며 하나하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만일 젖 먹이에게 젖을 먹이지 않고 밥을 먹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에 소화불량에 걸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젖 먹는 신자를 갈무리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조건 하나님 말씀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지혜롭게 권면해야 합니다.
아직 술 담배를 하는 사람에게 “술, 담배를 끊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하면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술 담배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면 자연히 버릴 수 있으니 하나님께 기도하세요.”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가게 문을 여는 사람에게는 “주일을 온전히 지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6일만 일해도 주일에 얻는 수입보다 더 큰 수입으로 축복하시는 것을 체험할 거예요.”라고 믿음을 심어 주면서 부드럽게 권면해 주면 좋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신자를 양육할 때는 죄를 지으면 징계하시는 두려움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할 수 있다.’며 힘과 능력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느낄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3. 믿음의 3단계는 ‘밥 먹는 신자’
믿음이 성장하여 말씀을 이해하고, 스스로 행할 수 있다면 ‘밥 먹는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믿음의 3단계에 해당합니다.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힘쓰면, 하나님께서 시험 환난으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의 2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야 부모의 마음이 흐뭇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면 말씀과 기도를 통해 부지런히 믿음을 성장시켜 나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여전히 1, 2단계에 해당하는 삶을 산다면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따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믿음이 성장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지요.
어린 자녀가 성장하면 균형 잡힌 식사를 통해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밥을 먹지 않고 젖만 찾는다면 아무래도 건강에 지장이 있지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어찌하든 젖을 떼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행치 않으면 영적으로 파리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처참한 십자가에 내어주셨는데, 자녀들이 오랜 세월 믿음의 성장이 멈춰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안타깝지만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12장 6~8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그러니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2단계 행함을 내보이고 있다면 하나님의 응답이나 축복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기 때문에 세상 방법을 동원하거나 시험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혹여 죄를 지었는데도 징계가 없다면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계속 범죄함으로 성령이 완전히 소멸되면 하나님 자녀라고 할 수 없기에 사생자요, 다시금 원수 마귀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기 때문에 징계마저도 오지 않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에게 사로잡혀 종노릇을 하며 죄를 짓다가 결국 지옥에 갈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나는 죄를 지어도 징계가 없으니 완전히 버림받았구나!” 자포자기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 중심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하며 죄 사함 받을 때까지 간절히 매달려야 합니다. 한편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증거임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으로 대충 하는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통회자복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은혜를 구하면 눈물, 콧물과 함께 마음을 찢는 회개가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헐어져 마음이 가벼워지고 성령 충만함이 임하여 다시금 믿음의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아직도 젖 먹는 신자에 머물러 있다면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밥 먹는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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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써 보세요.
1. 믿음의 2단계가 되면 죄를 지을 때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게 되고 곤고함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말씀을 들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마음에 비진리가 많으므로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진다.
이처럼 아직은 연약한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을 ( )라 한다.
2. 믿음이 성장하여 말씀을 이해하고 스스로 행할 수 있다면 ( )라 할 수 있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81~18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2단계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면?
신앙생활한 지 얼마 안 된 성도라면 2단계의 믿음 안에서도 노력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며 나름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한 지 오래되었고 직분도 있으면서 믿음의 2단계에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 앞에 계속 담을 쌓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의 할례하여 신속히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81~18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교육목표 : 말씀을 스스로 행할 수 있는 밥 먹는 신자가 되어 열심히 마음에 할례하여 성결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에는 분량이 있어서 성장 과정에 따라 자녀들의 믿음, 아이들의 믿음, 청년들의 믿음, 아비들의 믿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기가 태어나면 젖을 먹다가 성장하면서 밥을 먹는 것처럼,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의 믿음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까요?
1. 믿음의 1, 2단계는 ‘젖 먹는 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고 천국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믿음의 1단계입니다. 하나님과 자녀 관계가 성립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요. 하지만 이제 막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기에 영적으로는 갓난아기와 같은 상태입니다. 이때는 아직 진리가 무엇이며 비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죄를 지어도 죄인 줄 깨닫지 못합니다. 갓난아기가 발가벗고 있어도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지요.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어 진리로 분별할 수 없으니 설령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크게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마치 아기가 기어다니다가 물그릇을 엎거나 깨어도 야단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부모나 가족들 편에서 그릇을 치우지 않고 주의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고 여기지요.
믿음이 성장하여 2단계가 되면 성령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들은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죄를 지을 때는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게 되고 곤고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직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말씀을 들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마음에 비진리가 많으므로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처럼 아직은 연약한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을 ‘젖 먹는 신자’라고 합니다. 아무리 중한 사명과 직분을 받았다 해도 여전히 말씀대로 행치 못하고 비진리 가운데 살아간다면 그는 믿음의 2단계요, 어린아이의 신앙에 불과합니다. 주의 종이나 장로, 권사라 해도, 구역장이나 교사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직분이 무엇인지, 신앙생활한 지 오래되었는지, 성경 말씀을 많이 알아서 잘 가르칠 수 있는지, 이런 것을 보고 “믿음이 크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여 행하는지, 얼마나 진리 가운데 거하는지를 보시지요.
2. 젖 먹는 신자를 양육하는 방법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 해서 무조건 징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 이해하고 인도해 가시지요.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아직 믿음이 연약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이듯이 부드럽게 권면하며 하나하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만일 젖 먹이에게 젖을 먹이지 않고 밥을 먹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에 소화불량에 걸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젖 먹는 신자를 갈무리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조건 하나님 말씀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지혜롭게 권면해야 합니다.
아직 술 담배를 하는 사람에게 “술, 담배를 끊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하면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술 담배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면 자연히 버릴 수 있으니 하나님께 기도하세요.”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가게 문을 여는 사람에게는 “주일을 온전히 지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6일만 일해도 주일에 얻는 수입보다 더 큰 수입으로 축복하시는 것을 체험할 거예요.”라고 믿음을 심어 주면서 부드럽게 권면해 주면 좋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신자를 양육할 때는 죄를 지으면 징계하시는 두려움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할 수 있다.’며 힘과 능력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느낄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3. 믿음의 3단계는 ‘밥 먹는 신자’
믿음이 성장하여 말씀을 이해하고, 스스로 행할 수 있다면 ‘밥 먹는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믿음의 3단계에 해당합니다.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힘쓰면, 하나님께서 시험 환난으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의 2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야 부모의 마음이 흐뭇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면 말씀과 기도를 통해 부지런히 믿음을 성장시켜 나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여전히 1, 2단계에 해당하는 삶을 산다면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따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믿음이 성장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지요.
어린 자녀가 성장하면 균형 잡힌 식사를 통해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밥을 먹지 않고 젖만 찾는다면 아무래도 건강에 지장이 있지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어찌하든 젖을 떼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행치 않으면 영적으로 파리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처참한 십자가에 내어주셨는데, 자녀들이 오랜 세월 믿음의 성장이 멈춰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안타깝지만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12장 6~8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그러니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2단계 행함을 내보이고 있다면 하나님의 응답이나 축복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기 때문에 세상 방법을 동원하거나 시험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혹여 죄를 지었는데도 징계가 없다면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계속 범죄함으로 성령이 완전히 소멸되면 하나님 자녀라고 할 수 없기에 사생자요, 다시금 원수 마귀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기 때문에 징계마저도 오지 않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에게 사로잡혀 종노릇을 하며 죄를 짓다가 결국 지옥에 갈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나는 죄를 지어도 징계가 없으니 완전히 버림받았구나!” 자포자기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 중심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하며 죄 사함 받을 때까지 간절히 매달려야 합니다. 한편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증거임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으로 대충 하는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통회자복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은혜를 구하면 눈물, 콧물과 함께 마음을 찢는 회개가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헐어져 마음이 가벼워지고 성령 충만함이 임하여 다시금 믿음의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아직도 젖 먹는 신자에 머물러 있다면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밥 먹는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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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써 보세요.
1. 믿음의 2단계가 되면 죄를 지을 때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게 되고 곤고함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말씀을 들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마음에 비진리가 많으므로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진다.
이처럼 아직은 연약한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을 ( )라 한다.
2. 믿음이 성장하여 말씀을 이해하고 스스로 행할 수 있다면 ( )라 할 수 있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81~18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2단계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면?
신앙생활한 지 얼마 안 된 성도라면 2단계의 믿음 안에서도 노력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며 나름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한 지 오래되었고 직분도 있으면서 믿음의 2단계에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 앞에 계속 담을 쌓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의 할례하여 신속히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81~18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2016-09-23
제38과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
롬 7:22~24
읽을말씀 : 롬 7:22~24 | 외울말씀 : 신 10:13 ㅣ 참고 말씀: 요 14:27
교육목표 : 세상적인 것을 온전히 끊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감으로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고 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구원의 기쁨으로 충만해지는데 여기서부터 믿음의 1단계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 것은 아직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고 주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이전의 구습을 그대로 행하는 것이지요. 아직 술, 담배를 끊지 못한 경우도 있고, 혈기내고 험한 말을 하기도 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도 하는 등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 없는 모습입니다.
믿음의 1단계에 속한 사람은 죄를 지어도 마음에 곤고함이나 성령의 탄식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비진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점차 믿음이 성장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결국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로 접어듭니다.
1.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
믿음의 2단계부터는 하나님 말씀을 배워서 알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진리는 이것이 아닌데 ….” 하며 곤고함을 느낍니다.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이 탄식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해 나가니 진리대로 할 때도 있지만 죄와의 싸움에 져서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셨기에 그 말씀대로 지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집안이나 직장에 무슨 일이 있으면 온전히 주일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려고는 하지만 바쁜 일들이 생기면 기도를 쉬기도 합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다가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합니다. 주변 사람과 화평을 좇다가도 자기 뜻에 맞지 않거나 상대가 건드리면 참지 못하여 혈기 내고 다투기도 하지요.
이때에도 절대 낙심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은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못한다 해도 계속 노력해 가면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고 은혜를 주시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열심히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 차츰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변화되어 갑니다. 전에는 열 번 범죄했던 사람이 아홉 번, 여덟 번, 점점 줄어서 두 번, 한 번이 되고 결국 범죄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이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시기
믿음의 2단계에서는 신앙생활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알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배웠지만, 여전히 세상이 좋고 비진리를 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대등하여 팽팽히 싸울 때는 신앙생활이 가장 힘들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심해지면 마음이 곤고해지고 충만함이 떨어져서 신앙생활을 등한시하거나 아예 믿음을 저버리고 세상으로 향하기도 합니다.
로마서 7장 21~24절을 보면 선과 악이 내 안에서 싸울 때 신앙생활이 얼마나 힘든지가 잘 나옵니다.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혹 죄를 버리는 것이 힘들다는 이유로 죄를 지적하지 않는 교회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일에 매매를 해도,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책망하지 않는 교회를 좋다고 여기지요. 그러나 죄를 지적하지 않는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죄에 대해 다시 무디어져 죄 가운데 빠져들게 되니 구원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거룩한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버리지 않고 교회만 왔다갔다 한다면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요. 믿음의 1단계에서 2단계가 되었다면 당연히 3단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편한 대로 신앙생활 하며 오히려 믿음이 퇴보한다면 원수 마귀 사단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지요.
그나마 겨자씨만 한 믿음까지 빼앗기 위해 자꾸 비진리의 생각을 불어넣습니다. 어찌하든 은혜를 저버리고 세상을 취하도록 주변 환경을 통해 미혹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둘 저버리고 성령의 충만함도 식은 채, 교회만 왔다갔다 한다면 결국 성령이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말씀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는 “성령을 소멸치 말며” 말씀했지요. 그러니 죄를 버리는 것이 힘들게 느껴진다 해도 그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이 길만이 축복의 길, 천국 가는 길이기에 원수 마귀와 싸워 이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하는 것이지요.
비유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누군가가 어마어마한 보물들을 숨겨 놓고 그곳까지 꼬박 한 달을 걸어가기만 하면 엄청난 보물들을 다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확실히 믿는다면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해도 불평하지 않고 기쁨으로 걸어서 갈 것입니다. 어찌하면 더 빨리 가고자 하겠지요. 중간쯤 가다가 “아이구! 나는 많이 걸어서 너무 힘드니까 되돌아가야겠다.”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천국을 소망한다면 결코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기꺼이 해 주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십수 년간 교회에서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던 성도님이 갑자기 소천한 적이 있습니다. 이분의 경우, 사명을 감당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다투며 하나님 말씀에도 불순종한 것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개인 사업을 하면서 정도를 걷지 못하고 여러 사람과 돈 문제로 얽혀 그대로 두면 더는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자칫 믿음이 퇴보하여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를 수 있었지요.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그나마 구원받을 수 있을 때 영혼을 부르신 것입니다. 겉으로는 열심을 내며 충성했지만 정작 마음의 할례 곧 죄악을 버리기 위해 힘쓰지 않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이분은 믿음의 2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밭에서 일하는 소가 주인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면 힘들지 않습니다. 자꾸 다른 곳으로 가려 할 때 주인이 고삐를 잡아당기니 힘들 수밖에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미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당부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신앙생활이 쉬울 텐데, 여전히 나를 고집하며 하지 말라는 것을 하니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주 안에서 참된 평안이 임하는 것을 체험하며 마음에 염려 근심 걱정이 떠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갈 때 천국을 소유하는 기쁨을 누리며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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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세요.
1. ( )에 속한 사람은 죄를 지어도 마음에 곤고함이나 성령의 탄식을 잘 느끼지 못한다. 진리가 무엇인지, 비진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점차 믿음이 성장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결국 행하려고 노력하는 ( )로 접어든다.
2. 신앙생활이란 ( )를 버리고 성결되어 거룩한 하나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 )를 버리지 않고 교회만 왔다갔다 한다면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그칠 수밖에 없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74~18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2단계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
처 소 : 믿음의 2단계 사람은 천국의 처소 1천층에 들어가며 이 땅의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에 비유할 수 있는 형태의 집을 소유할 수 있다.
면류관 :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받는다(고전 9:25).
교육목표 : 세상적인 것을 온전히 끊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감으로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고 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구원의 기쁨으로 충만해지는데 여기서부터 믿음의 1단계가 시작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는 것은 아직 아닙니다. 교회에 다니고 주님을 믿는다고는 하지만 이전의 구습을 그대로 행하는 것이지요. 아직 술, 담배를 끊지 못한 경우도 있고, 혈기내고 험한 말을 하기도 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도 하는 등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 없는 모습입니다.
믿음의 1단계에 속한 사람은 죄를 지어도 마음에 곤고함이나 성령의 탄식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비진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점차 믿음이 성장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결국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로 접어듭니다.
1.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
믿음의 2단계부터는 하나님 말씀을 배워서 알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진리는 이것이 아닌데 ….” 하며 곤고함을 느낍니다.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이 탄식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해 나가니 진리대로 할 때도 있지만 죄와의 싸움에 져서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셨기에 그 말씀대로 지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집안이나 직장에 무슨 일이 있으면 온전히 주일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려고는 하지만 바쁜 일들이 생기면 기도를 쉬기도 합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다가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합니다. 주변 사람과 화평을 좇다가도 자기 뜻에 맞지 않거나 상대가 건드리면 참지 못하여 혈기 내고 다투기도 하지요.
이때에도 절대 낙심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은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못한다 해도 계속 노력해 가면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고 은혜를 주시고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열심히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 차츰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변화되어 갑니다. 전에는 열 번 범죄했던 사람이 아홉 번, 여덟 번, 점점 줄어서 두 번, 한 번이 되고 결국 범죄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이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시기
믿음의 2단계에서는 신앙생활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알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배웠지만, 여전히 세상이 좋고 비진리를 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대등하여 팽팽히 싸울 때는 신앙생활이 가장 힘들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심해지면 마음이 곤고해지고 충만함이 떨어져서 신앙생활을 등한시하거나 아예 믿음을 저버리고 세상으로 향하기도 합니다.
로마서 7장 21~24절을 보면 선과 악이 내 안에서 싸울 때 신앙생활이 얼마나 힘든지가 잘 나옵니다.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말씀하고 있습니다.
간혹 죄를 버리는 것이 힘들다는 이유로 죄를 지적하지 않는 교회를 선호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주일에 매매를 해도,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책망하지 않는 교회를 좋다고 여기지요. 그러나 죄를 지적하지 않는 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는 것이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죄에 대해 다시 무디어져 죄 가운데 빠져들게 되니 구원과는 거리가 멀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거룩한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버리지 않고 교회만 왔다갔다 한다면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요. 믿음의 1단계에서 2단계가 되었다면 당연히 3단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편한 대로 신앙생활 하며 오히려 믿음이 퇴보한다면 원수 마귀 사단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지요.
그나마 겨자씨만 한 믿음까지 빼앗기 위해 자꾸 비진리의 생각을 불어넣습니다. 어찌하든 은혜를 저버리고 세상을 취하도록 주변 환경을 통해 미혹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둘 저버리고 성령의 충만함도 식은 채, 교회만 왔다갔다 한다면 결국 성령이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말씀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는 “성령을 소멸치 말며” 말씀했지요. 그러니 죄를 버리는 것이 힘들게 느껴진다 해도 그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이 길만이 축복의 길, 천국 가는 길이기에 원수 마귀와 싸워 이기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해야 하는 것이지요.
비유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누군가가 어마어마한 보물들을 숨겨 놓고 그곳까지 꼬박 한 달을 걸어가기만 하면 엄청난 보물들을 다 가질 수 있다고 합니다. 이것을 확실히 믿는다면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해도 불평하지 않고 기쁨으로 걸어서 갈 것입니다. 어찌하면 더 빨리 가고자 하겠지요. 중간쯤 가다가 “아이구! 나는 많이 걸어서 너무 힘드니까 되돌아가야겠다.”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천국을 소망한다면 결코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도 사랑하는 사람이 원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기꺼이 해 주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십수 년간 교회에서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던 성도님이 갑자기 소천한 적이 있습니다. 이분의 경우, 사명을 감당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다투며 하나님 말씀에도 불순종한 것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개인 사업을 하면서 정도를 걷지 못하고 여러 사람과 돈 문제로 얽혀 그대로 두면 더는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자칫 믿음이 퇴보하여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를 수 있었지요.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그나마 구원받을 수 있을 때 영혼을 부르신 것입니다. 겉으로는 열심을 내며 충성했지만 정작 마음의 할례 곧 죄악을 버리기 위해 힘쓰지 않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이분은 믿음의 2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밭에서 일하는 소가 주인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면 힘들지 않습니다. 자꾸 다른 곳으로 가려 할 때 주인이 고삐를 잡아당기니 힘들 수밖에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 “미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당부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신앙생활이 쉬울 텐데, 여전히 나를 고집하며 하지 말라는 것을 하니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주 안에서 참된 평안이 임하는 것을 체험하며 마음에 염려 근심 걱정이 떠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갈 때 천국을 소유하는 기쁨을 누리며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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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세요.
1. ( )에 속한 사람은 죄를 지어도 마음에 곤고함이나 성령의 탄식을 잘 느끼지 못한다. 진리가 무엇인지, 비진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점차 믿음이 성장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결국 행하려고 노력하는 ( )로 접어든다.
2. 신앙생활이란 ( )를 버리고 성결되어 거룩한 하나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 )를 버리지 않고 교회만 왔다갔다 한다면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그칠 수밖에 없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74~18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2단계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
처 소 : 믿음의 2단계 사람은 천국의 처소 1천층에 들어가며 이 땅의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에 비유할 수 있는 형태의 집을 소유할 수 있다.
면류관 :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받는다(고전 9:25).
2016-09-15
제0과추석 감사예배 순서와 설교 예문
민수기 6:24~26
읽을말씀 : 민수기 6:24~26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무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길러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을 이웃들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지요.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성경에도 우리나라 추석처럼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사도신경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460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 같이
1.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2.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3.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잖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기 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민수기 6:24~26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인도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설 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설교자
2. 설교 예문
민수기 6장 24~26절에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역시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 주기 원하십니다.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사고, 질병, 재앙이 많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 있고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사랑하는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고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온 가족이 하나님 뜻대로 행하여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늘 은혜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청소년이 되어서는 스승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이처럼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 소망 가운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십자가의 사랑을 베푸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늘 은혜를 베푸시는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평강을 주기 원하십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축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고,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도 가정이나 학교, 직장이나 사업터, 일터에서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올해도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더욱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 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 같이
주기도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무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길러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을 이웃들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지요.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성경에도 우리나라 추석처럼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사도신경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460장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 같이
1.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2. 몸도 맘도 연약하나 새 힘 받아 살았네 물 붓듯이 부으시는 주의 은혜 족하다
사랑 없는 거리에나 험한 산길 헤맬 때 주의 손을 굳게 잡고 찬송하며 가리라
3. 주님 다시 뵈올 날이 날로날로 다가와 무거운 짐 주께 맡겨 벗을 날도 멀잖네
나를 위해 예비하신 고향집에 돌아가 아버지의 품 안에서 영원토록 살리라
기 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민수기 6:24~26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인도자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설 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하나님의 축복된 가정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설교자
2. 설교 예문
민수기 6장 24~26절에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어떻게 축복하기 원하시는지를 알려 주십니다.
당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나고 있던 광야는 척박하고 위험한 땅으로,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마실 물도 찾기 어렵고 먹을 열매나 곡식을 얻을 수도 없으며, 독이 있는 불뱀이나 전갈 같은 것들이 도처에 있었지요.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 역시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처에 기근과 전쟁, 천재지변으로 인한 각종 사고 등이 일어나며 혼란이 더해 가고 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시면 마음 편히 살아갈 수가 없는 세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가운데 본문의 말씀은 바로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 모두에게 주시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24절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먼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켜 주기 원하십니다. 광야 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 주셨듯이 사고, 질병, 재앙이 많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 가정을 지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지켜 주셔야 건강할 수 있고 물질도 지켜 주셔야 생활에 어려움이 없습니다. 옛 속담에 “지키는 열 사람의 파수꾼이 도둑 하나를 막지 못한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며 사랑하는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고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온 가족이 하나님 뜻대로 행하여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께서 지키시는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5절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다음으로, 하나님께서는 늘 은혜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어린아이는 부모님의 보살피는 은혜 속에 성장하고 청소년이 되어서는 스승의 은혜 속에 성장을 합니다. 이처럼 인생 전반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믿음으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천국 소망 가운데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십자가의 사랑을 베푸신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말고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늘 은혜를 베푸시는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6절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는 평강을 주기 원하십니다. 광야에서 지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편히 쉴 만한 곳이 없었습니다. 광야 같은 세상을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의 참된 평강은 오직 주 안에서만 가능합니다.
평강이란 마음이 평안하고 몸이 건강한 것을 의미합니다. 온 가족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강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축복된 가정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고,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도 가정이나 학교, 직장이나 사업터, 일터에서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올해도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더욱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 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 같이
주기도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16-09-09
제37과구원받기 위한 믿음의 1단계
행 2:38
읽을말씀 : 행 2:38 | 외울말씀 : 요 1:12 l 참고 말씀 : 행 19:1~2
교육목표 :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은 믿음의 1단계에서 열심히 말씀을 듣고 배워 행함으로 신속히 믿음의 성장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도, 기도하여 응답받는 것도 믿음으로 이뤄지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이라야 하지요. 이러한 믿음에는 크고 작은 분량이 있으며, 각각의 특징에 따라 크게 다섯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단계가 바로 믿음의 1단계입니다.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1. 주님을 영접해 구원받기 위한 믿음
범죄한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죄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속하여 죄를 지으며 살아가니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선하게 산다는 사람도 있지만 진리에 비춰 보면 모두가 죄인입니다. 부모를 통해 물려받은 원죄가 있고, 살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크고 작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치 밝은 빛으로 방 안을 비춰 보면 미세한 먼지까지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보면 숨겨진 악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 앞에서는 혈기, 다툼, 도적질 등 겉으로 드러난 죄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미움, 시기와 같은 것도 죄가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신 대로 죄인들은 반드시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셨지요.
이 사실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주십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하늘나라 시민권자가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구원받기 위한 믿음, 곧 믿음의 1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믿음을 말합니다.
2. 회개하고 성령 받기 위한 믿음
사도행전 19장 1~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지방에서 만난 몇몇 제자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세례 요한의 세례도 받았지만 성령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때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이 임하고 성령의 은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하나님의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욜 2:28, 행 2:17).
이 말씀이 오늘날 그대로 성취되었고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받은 사람이 모여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사도행전 2장 38절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하신 대로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마음 문을 열어 자신이 죄인임을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마음 안에 보내 주십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 받은 사람에게 보증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아야 비로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갓 성령을 받고 구원받은 단계를 믿음의 1단계라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1단계를 구원받기 위한 믿음, 성령 받기 위한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때는 막 성령을 받아 아직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죄와 싸워 버린 것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1단계에서 삶을 마감한다면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강도의 믿음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3. 십자가에 달려 회개한 강도의 믿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예수님의 좌우편 십자가에 두 강도도 함께 못 박혔습니다(눅 23:33). 이때 한 편 강도는 악한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했지만, 다른 강도는 오히려 그를 꾸짖으며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고 자신의 영혼을 부탁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낙원에 함께 있겠다’ 하신 것은 강도가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을 말씀한 것이지, 예수님이 낙원에 계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낙원을 포함한 모든 천국의 주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낙원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 곧 믿음의 1단계에 해당되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으로 천국의 가장 변두리에 해당하며 상급이 없습니다. 그 강도는 죽기 직전에 선한 양심을 좇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을 뿐,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낙원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영접해 성령 받은 지 얼마 안 된 초신자만 믿음의 1단계에 해당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여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행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1단계의 믿음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또 믿음이 좋아 보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육체의 일(행함으로 짓는 죄)을 행하면 믿음의 1단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성령 받은 직후에는 성령이 충만하여 가르침 받는 대로 순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세상을 바라봄으로 성령 충만함을 잃으면 다시 구습을 좇아 세상과 짝하며 죄를 짓기도 하지요. 이것이 지속되면 성령이 소멸되어 믿음의 1단계를 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 믿음의 1단계에 들어왔다면 예배와 기도회, 모임에 열심히 참석해서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대로 순종함으로 신속히 믿음의 2, 3단계로 성장해 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은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이 아닙니다. 그 중심이 얼마나 합당한지가 중요하지요. 비록 성령을 받고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 해도 말씀대로 행치 않고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을 쌓아 간다면 점점 성령이 소멸되어(살전 5:19) 결국 구원과 멀어집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만일 자녀가 세월이 흘러도 자라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부모는 얼마나 애가 타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믿음이 성장하지 않거나 퇴보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러니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열심히 말씀을 듣고 배우며 믿음의 성장을 이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구원받은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자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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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신생아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듯이, 하나님 자녀가 되면 하늘나라 ( )에 이름이 기록된다. 하늘나라 시민권자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구원받기 위한 믿음 곧 믿음의 1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 )가 되는 믿음을 말한다.
2. 어떻게 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3. 십자가에 달려 회개한 강도는 천국의 어느 처소에 들어갈까요?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67~17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믿음의 1단계가 들어가는 천국 처소 낙원
낙원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가운데 마련된 천국의 처소이다.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기에는 부끄럽지만 차마 지옥으로 보내기에는 안타까운 영혼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다. 믿음의 단계로 보면 낙원은 간신히 구원받은 믿음을 가진 영혼들이 들어가는 처소로서 하나님 보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약하며 천국의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한다.
교육목표 :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은 믿음의 1단계에서 열심히 말씀을 듣고 배워 행함으로 신속히 믿음의 성장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도, 기도하여 응답받는 것도 믿음으로 이뤄지는 일들입니다. 그런데 이 믿음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이라야 하지요. 이러한 믿음에는 크고 작은 분량이 있으며, 각각의 특징에 따라 크게 다섯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가장 낮은 단계가 바로 믿음의 1단계입니다.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1. 주님을 영접해 구원받기 위한 믿음
범죄한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 원죄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게다가 죄의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에게 속하여 죄를 지으며 살아가니 모든 사람이 지옥에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름대로 선하게 산다는 사람도 있지만 진리에 비춰 보면 모두가 죄인입니다. 부모를 통해 물려받은 원죄가 있고, 살면서 알게 모르게 지은 크고 작은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3장 10절에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하신 대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죄가 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마치 밝은 빛으로 방 안을 비춰 보면 미세한 먼지까지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 말씀에 비춰 보면 숨겨진 악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더구나 하나님 앞에서는 혈기, 다툼, 도적질 등 겉으로 드러난 죄뿐만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미움, 시기와 같은 것도 죄가 됩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신 대로 죄인들은 반드시 사망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으로써 우리의 죗값을 대신 치러 주셨지요.
이 사실을 믿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 마음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주십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신생아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 자녀가 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하늘나라 시민권자가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구원받기 위한 믿음, 곧 믿음의 1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믿음을 말합니다.
2. 회개하고 성령 받기 위한 믿음
사도행전 19장 1~2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 지방에서 만난 몇몇 제자들에게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들은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세례 요한의 세례도 받았지만 성령에 대해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때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 성령이 임하고 성령의 은사가 나타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세에 하나님의 영으로 모든 육체에게 부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욜 2:28, 행 2:17).
이 말씀이 오늘날 그대로 성취되었고 하나님의 영, 곧 성령을 받은 사람이 모여 교회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사도행전 2장 38절에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하신 대로 회개하여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마음 문을 열어 자신이 죄인임을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마음 안에 보내 주십니다.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 받은 사람에게 보증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렇게 성령을 받아야 비로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갓 성령을 받고 구원받은 단계를 믿음의 1단계라고 합니다. 그래서 믿음의 1단계를 구원받기 위한 믿음, 성령 받기 위한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때는 막 성령을 받아 아직 하나님을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죄와 싸워 버린 것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거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도 없습니다. 따라서 믿음의 1단계에서 삶을 마감한다면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실 때에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한 강도의 믿음이 여기에 해당되지요.
3. 십자가에 달려 회개한 강도의 믿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예수님의 좌우편 십자가에 두 강도도 함께 못 박혔습니다(눅 23:33). 이때 한 편 강도는 악한 사람들과 함께 예수님을 비방하고 조롱했지만, 다른 강도는 오히려 그를 꾸짖으며 예수님께 믿음을 고백합니다.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고 자신의 영혼을 부탁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낙원에 함께 있겠다’ 하신 것은 강도가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가게 될 것을 말씀한 것이지, 예수님이 낙원에 계신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낙원을 포함한 모든 천국의 주인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낙원은 부끄러운 구원을 받은 사람 곧 믿음의 1단계에 해당되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으로 천국의 가장 변두리에 해당하며 상급이 없습니다. 그 강도는 죽기 직전에 선한 양심을 좇아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예수님을 영접하였을 뿐,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한 일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낙원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을 영접해 성령 받은 지 얼마 안 된 초신자만 믿음의 1단계에 해당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 하여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행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으면 1단계의 믿음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또 믿음이 좋아 보이던 사람이 어느 순간 육체의 일(행함으로 짓는 죄)을 행하면 믿음의 1단계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성령 받은 직후에는 성령이 충만하여 가르침 받는 대로 순종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세상을 바라봄으로 성령 충만함을 잃으면 다시 구습을 좇아 세상과 짝하며 죄를 짓기도 하지요. 이것이 지속되면 성령이 소멸되어 믿음의 1단계를 유지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아 믿음의 1단계에 들어왔다면 예배와 기도회, 모임에 열심히 참석해서 하나님 말씀을 배우는 대로 순종함으로 신속히 믿음의 2, 3단계로 성장해 가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중요한 것은 신앙의 연륜이나 직분이 아닙니다. 그 중심이 얼마나 합당한지가 중요하지요. 비록 성령을 받고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 해도 말씀대로 행치 않고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을 쌓아 간다면 점점 성령이 소멸되어(살전 5:19) 결국 구원과 멀어집니다.
히브리서 10장 38절에 “오직 나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 만일 자녀가 세월이 흘러도 자라지 않고 그대로 있다면 부모는 얼마나 애가 타겠습니까. 마찬가지로 믿음이 성장하지 않거나 퇴보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러니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열심히 말씀을 듣고 배우며 믿음의 성장을 이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구원받은 것에 만족할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자 기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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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신생아가 태어나면 출생신고를 하듯이, 하나님 자녀가 되면 하늘나라 ( )에 이름이 기록된다. 하늘나라 시민권자가 되는 것이다. 이처럼 구원받기 위한 믿음 곧 믿음의 1단계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죄 사함을 받고 ( )가 되는 믿음을 말한다.
2. 어떻게 해야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3. 십자가에 달려 회개한 강도는 천국의 어느 처소에 들어갈까요?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67~17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믿음의 1단계가 들어가는 천국 처소 낙원
낙원은 하나님의 사랑과 긍휼 가운데 마련된 천국의 처소이다. 하나님의 자녀라 부르기에는 부끄럽지만 차마 지옥으로 보내기에는 안타까운 영혼들을 위해 준비된 곳이다. 믿음의 단계로 보면 낙원은 간신히 구원받은 믿음을 가진 영혼들이 들어가는 처소로서 하나님 보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다. 그만큼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약하며 천국의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한다.
2016-09-02
제36과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
롬 12:3
읽을말씀 : 롬 12:3 | 외울말씀 : 요일 2:12 ㅣ 참고 말씀: 고전 3:12~15
교육목표 : 믿음에는 크고 작은 분량이 있음을 알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않고 정진해 나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많은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심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도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여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1.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한 믿음의 분량
요한일서 2장을 보면 믿음의 분량을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 자녀들의 믿음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고 회개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습니다(요 1:12). 이렇게 죄 사함 받아 구원받은 믿음이 ‘자녀들의 믿음’입니다(요일 2:12). 이때는 하나님 말씀을 잘 모르고 빛 가운데 살지도 못합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이 단지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여 겨우 구원받을 수 있는 상태로 초신자의 믿음에 불과합니다. 성령을 받아 거듭났다 해도 아직 말씀을 행할 수 있는 힘이 없으니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과 짝하기도 하지요. 따라서 이들이 안전하게 정착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지 않고 늘 관심과 사랑으로 살펴 줘야 합니다.
2) 아이들의 믿음
‘자녀들의 믿음’이 성장하면 ‘아이들의 믿음’이 됩니다. ‘아이들의 믿음’은 아버지 하나님을 이제 막 알게 된 믿음을 말합니다(요일 2:14). 아버지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안다는 말입니다.
마치 갓 태어난 자녀가 젖먹이 때를 지나면 사물을 인지하고 부모를 알아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는 부모를 안다 해도 고향, 취향, 학력, 성품 등 깊은 내용까지는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깊은 뜻이나 섭리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예배와 각종 모임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지만 순종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으며 시험이 오면 불평하거나 낙심하기도 합니다.
3) 청년들의 믿음
아이가 성장하면 청년이 되듯이, 영적으로도 아이들의 믿음이 자라면 청년의 신앙에 이릅니다. 이때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죄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압니다.
요한일서 2장 14절에 “청년들아 …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이 마음에 있으므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천국 소망으로 가득합니다. 뿐만 아니라 악한 자, 곧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려 나가며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시험 환난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으며 쉬지 않고 기도하여 감사함으로 이겨냅니다.
4) 아비들의 믿음
자기주장이 강하여 굽힐 줄 모르는 청년의 때를 지나 장년이 되면, 인생의 경륜이 쌓여 삶의 지혜가 보입니다. 앞뒤 상황 판단을 잘하여 매사에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알고,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고 다스릴 수 있는지도 알지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비의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근본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2장 14절에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믿음은 아이의 믿음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아이의 믿음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철없는 아이가 자기 수준에서 부모를 이해하는 것이라면 아비의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아는 차원입니다.
2. 에스겔의 이상을 통해 살펴본 믿음의 분량
에스겔 47장 3~5절에는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사람의 몸에 차오르는 높이로 믿음의 분량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험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여기서 ‘물’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의미하며, ‘그 사람’ 곧 손에 줄을 잡은 사람은 주의 사자를 말합니다. 그가 일천 척을 척량할 때마다 물이 발목에서부터 무릎과 허리, 그 이상으로 차오른다는 것은 믿음의 분량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발목까지 물이 찼다’는 것은 자녀의 믿음, ‘무릎까지 찼다’는 것은 아이의 믿음, ‘허리까지 찼다’는 것은 청년의 믿음을 나타내며 ‘키를 넘을 만큼 창일하다’는 것은 장성한 아비의 믿음을 뜻합니다. ‘일천 척을 척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넓고 큰 마음과 한 치 오차도 없는 정확함, 모든 분야를 헤아리는 깊은 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믿음을 측정하실 때 어느 한 면이 아니라 모든 분야를 종합적으로 정확하게 살핀다는 의미이지요.
3. 공력에 비유한 믿음의 분량
고린도전서 3장 12~13절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터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사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믿음을 쌓아 가는데 공력, 곧 믿음의 행함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쌓았는가에 따라 각자 받을 상이 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금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불같은 시험의 때에도 요동이 없습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이기며 이를 통해 더 큰 축복을 받아 갑니다. 그러나 은, 보석, 나무, 풀의 단계로 내려갈수록 시험을 이기는 힘이 약해집니다. 그러면 은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어떨까요? 금 같은 믿음을 지닌 사람보다는 못하지만, 불에 깨지고 부서지는 보석과 같은 믿음을 지닌 사람보다는 낫습니다.
보석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평소에 충만해 보이다가도 시험이 오면 열심이 식고 충만함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 속에서도 어느 정도 보석의 형체가 보존되듯이 불같은 시험에도 그 공력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보석의 믿음은 금이나 은의 믿음보다는 못하지만 믿음의 행함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 받을 영광과 상급도 있습니다. 그러면 나무나 풀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보석보다 못한 믿음으로서 불같은 시험이 오면 승리하지 못합니다. 더욱이 생명이 없는 마른 짚의 믿음은 구원조차 받을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교회에 출석하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마음에는 구원받을 만한 영적인 믿음이 없는 경우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1절에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구원받은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을, 어떤 사람은 달의 영광을, 어떤 사람은 별의 영광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다는 것은 무수한 별들의 밝기가 다르듯이, 별의 영광이라도 믿음에 따라 각각의 영광이 다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나무나 풀의 믿음에 멈추지 말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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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경에 믿음의 분량이 있음을 비유해 놓은 구절들을 찾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60~16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믿음의 단계/ 고전 3:12~15/ 고전 15:41/ 요일 2:12~14/ 겔 47:3~5
구원받지 못하는 단계/ 짚/ _ / _ / _
1단계(낙원) /풀 / _ /자녀들의 믿음/ 발목까지 물이 참
2단계(1천층)/ 나무/ 별의 영광, 별과 별의 영광/ 아이들의 믿음/ 무릎까지 물이 참
3단계(2천층)/ 보석/ 달의 영광/ 청년들의 믿음/ 허리까지 물이 참
4단계(3천층)/ 은/ 해의 영광/ 아비들의 믿음/ 키를 넘을 만큼 물이 창일함
5단계/ (새 예루살렘)/ 금/ 해의 영광/ 아비들의 믿음/ 키를 넘을 만큼 물이 창일함
교육목표 : 믿음에는 크고 작은 분량이 있음을 알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멈추지 않고 정진해 나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많은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믿으며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심을 믿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믿음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도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하여 사람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1.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한 믿음의 분량
요한일서 2장을 보면 믿음의 분량을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1) 자녀들의 믿음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고 회개하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습니다(요 1:12). 이렇게 죄 사함 받아 구원받은 믿음이 ‘자녀들의 믿음’입니다(요일 2:12). 이때는 하나님 말씀을 잘 모르고 빛 가운데 살지도 못합니다. 마치 갓 태어난 아기와 같이 단지 복음을 듣고 주님을 영접하여 겨우 구원받을 수 있는 상태로 초신자의 믿음에 불과합니다. 성령을 받아 거듭났다 해도 아직 말씀을 행할 수 있는 힘이 없으니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세상과 짝하기도 하지요. 따라서 이들이 안전하게 정착할 때까지는 마음을 놓지 않고 늘 관심과 사랑으로 살펴 줘야 합니다.
2) 아이들의 믿음
‘자녀들의 믿음’이 성장하면 ‘아이들의 믿음’이 됩니다. ‘아이들의 믿음’은 아버지 하나님을 이제 막 알게 된 믿음을 말합니다(요일 2:14). 아버지를 안다는 것은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안다는 말입니다.
마치 갓 태어난 자녀가 젖먹이 때를 지나면 사물을 인지하고 부모를 알아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는 부모를 안다 해도 고향, 취향, 학력, 성품 등 깊은 내용까지는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아이들의 믿음은 하나님의 깊은 뜻이나 섭리까지는 알지 못합니다. 예배와 각종 모임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지만 순종할 때도 있고 못할 때도 있으며 시험이 오면 불평하거나 낙심하기도 합니다.
3) 청년들의 믿음
아이가 성장하면 청년이 되듯이, 영적으로도 아이들의 믿음이 자라면 청년의 신앙에 이릅니다. 이때는 말씀과 기도를 통해 죄가 무엇이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압니다.
요한일서 2장 14절에 “청년들아 …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한다’는 것은 말씀을 지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이 마음에 있으므로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천국 소망으로 가득합니다. 뿐만 아니라 악한 자, 곧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려 나가며 미혹을 받지 않습니다. 시험 환난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으며 쉬지 않고 기도하여 감사함으로 이겨냅니다.
4) 아비들의 믿음
자기주장이 강하여 굽힐 줄 모르는 청년의 때를 지나 장년이 되면, 인생의 경륜이 쌓여 삶의 지혜가 보입니다. 앞뒤 상황 판단을 잘하여 매사에 나서야 할 때와 물러서야 할 때를 알고, 어떻게 하면 사람의 마음을 얻고 다스릴 수 있는지도 알지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비의 믿음을 가지면 하나님의 근본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깨닫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2장 14절에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을 아는 믿음은 아이의 믿음에서 하나님을 아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입니다. 아이의 믿음에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철없는 아이가 자기 수준에서 부모를 이해하는 것이라면 아비의 믿음은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아는 차원입니다.
2. 에스겔의 이상을 통해 살펴본 믿음의 분량
에스겔 47장 3~5절에는 성전에서 나오는 물이 사람의 몸에 차오르는 높이로 믿음의 분량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사람이 손에 줄을 잡고 동으로 나아가며 일천 척을 척량한 후에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고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 다시 일천 척을 척량하시니 물이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 된지라 그 물이 창일하여 헤험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여기서 ‘물’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의미하며, ‘그 사람’ 곧 손에 줄을 잡은 사람은 주의 사자를 말합니다. 그가 일천 척을 척량할 때마다 물이 발목에서부터 무릎과 허리, 그 이상으로 차오른다는 것은 믿음의 분량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발목까지 물이 찼다’는 것은 자녀의 믿음, ‘무릎까지 찼다’는 것은 아이의 믿음, ‘허리까지 찼다’는 것은 청년의 믿음을 나타내며 ‘키를 넘을 만큼 창일하다’는 것은 장성한 아비의 믿음을 뜻합니다. ‘일천 척을 척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넓고 큰 마음과 한 치 오차도 없는 정확함, 모든 분야를 헤아리는 깊은 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믿음을 측정하실 때 어느 한 면이 아니라 모든 분야를 종합적으로 정확하게 살핀다는 의미이지요.
3. 공력에 비유한 믿음의 분량
고린도전서 3장 12~13절에 “만일 누구든지 금이나 은이나 보석이나 나무나 풀이나 짚으로 이 터 위에 세우면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터란,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사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믿음을 쌓아 가는데 공력, 곧 믿음의 행함을 얼마나 정성스럽게 쌓았는가에 따라 각자 받을 상이 달라진다는 말씀입니다.
금 같은 믿음을 가진 사람은 불같은 시험의 때에도 요동이 없습니다. 감사와 기쁨으로 이기며 이를 통해 더 큰 축복을 받아 갑니다. 그러나 은, 보석, 나무, 풀의 단계로 내려갈수록 시험을 이기는 힘이 약해집니다. 그러면 은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어떨까요? 금 같은 믿음을 지닌 사람보다는 못하지만, 불에 깨지고 부서지는 보석과 같은 믿음을 지닌 사람보다는 낫습니다.
보석 같은 믿음을 소유한 사람은 평소에 충만해 보이다가도 시험이 오면 열심이 식고 충만함이 떨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불 속에서도 어느 정도 보석의 형체가 보존되듯이 불같은 시험에도 그 공력이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보석의 믿음은 금이나 은의 믿음보다는 못하지만 믿음의 행함에 따라 장차 천국에서 받을 영광과 상급도 있습니다. 그러면 나무나 풀의 믿음은 어떻습니까? 보석보다 못한 믿음으로서 불같은 시험이 오면 승리하지 못합니다. 더욱이 생명이 없는 마른 짚의 믿음은 구원조차 받을 수 없습니다. 겉으로는 교회에 출석하고 신앙생활을 하지만 마음에는 구원받을 만한 영적인 믿음이 없는 경우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1절에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구원받은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은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을, 어떤 사람은 달의 영광을, 어떤 사람은 별의 영광을 누린다는 것입니다.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다는 것은 무수한 별들의 밝기가 다르듯이, 별의 영광이라도 믿음에 따라 각각의 영광이 다름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나무나 풀의 믿음에 멈추지 말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정진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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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경에 믿음의 분량이 있음을 비유해 놓은 구절들을 찾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60~16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믿음의 단계/ 고전 3:12~15/ 고전 15:41/ 요일 2:12~14/ 겔 47:3~5
구원받지 못하는 단계/ 짚/ _ / _ / _
1단계(낙원) /풀 / _ /자녀들의 믿음/ 발목까지 물이 참
2단계(1천층)/ 나무/ 별의 영광, 별과 별의 영광/ 아이들의 믿음/ 무릎까지 물이 참
3단계(2천층)/ 보석/ 달의 영광/ 청년들의 믿음/ 허리까지 물이 참
4단계(3천층)/ 은/ 해의 영광/ 아비들의 믿음/ 키를 넘을 만큼 물이 창일함
5단계/ (새 예루살렘)/ 금/ 해의 영광/ 아비들의 믿음/ 키를 넘을 만큼 물이 창일함
2016-08-26
제35과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영적인 믿음
히 11:1~3
읽을말씀 : 히 11:1~3 | 외울말씀 : 막 9:23 ㅣ 참고 말씀: 막 11:24
교육목표 : 의심을 가져오는 모든 이론과 생각을 깨뜨림으로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믿는다면서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영적인 믿음과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육적인 믿음입니다. 육적인 믿음은 자신의 지식과 생각에 일치하는 것만 믿는 믿음,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변개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전폭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지식, 생각에 맞는 부분만 믿습니다. 그러니 과학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성경 사건들은 납득하기가 어렵지요.
이처럼 육적인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안다 해도 막상 현실에 어려움이 닥치면 믿음을 내보이지 못합니다. 응답이 더디면 마음이 변하여 점차 의심이 생깁니다. 이런 믿음으로는 기도의 응답이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을까요?
1.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응답하시는 영적인 믿음
1)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습니다
영적인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는 것으로서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습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사실이 의심 없이 믿어집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믿어지니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지켜 행하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대로 응답받은 줄로 믿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재미있고 행복하지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때 하나님께서 참 자녀라 인정하시며 응답과 축복으로 보장해 주십니다.
2) 어떤 상황에서도 변개치 않습니다
한번 믿은 것은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변개하지 않고 믿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입니다. 가령, 어떤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 기도했는데 자신이 원하는 때에 응답이 오지 않는다 해서 “왜 응답해 주시지 않나?” 하고 불평하거나 의심이 생긴다면 이는 육적인 믿음에 불과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약 1:6~7).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한 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변개치 않고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는 믿음이지요.
3)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데 그치지 않고 행함이 따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고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인정하고 응답하시는 영적인 믿음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여 오랜 가뭄 중에 마지막 남은 양식으로 그를 공궤했습니다. 생명과도 같은 양식이지만 하나님의 사람의 말이기에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가뭄이 끝날 때까지 떡을 구울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지요(왕상 17장). 이런 믿음이 있으면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도 기도하여 응답을 받습니다. 나아가 아름답고 영화로운 천국을 소유하여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2.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1) 의심을 가져오는 모든 생각과 이론을 깨뜨려야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입력된 세상적인 지식은 대부분 진리인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므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데 큰 방해 요소가 됩니다. 특히 진화론은 창조주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이론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진화론처럼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의심을 가져다주는 이론과,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모든 비진리의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세상에서 배운 지식이나 이론이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면 철저히 무(無)로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과 이론이 옳다 고집하면 하나님 말씀을 전폭적으로 믿지 못하니 영적인 믿음을 갖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예배를 드린다 해도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지요. 그러니 기도 응답도 받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진리인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그에 맞지 않는 생각과 이론을 깨뜨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에 육적인 믿음의 소유자였지만 주님을 만나 회심한 후에는 그동안 쌓은 학식과 이론 등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생각을 깨뜨려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되니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권능의 사도가 될 수 있었지요. 따라서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려면 진리에 위배된 모든 이론과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고후 10:5).
2)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들으며 가르침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가르침 받을 때 믿음이 자라납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기에 말씀을 많이 알수록 하나님의 마음과 뜻도 더 밝히 알 수 있지요. 또한 에베소서 6장 17절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신 대로 내 안에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모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듣고 배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단, 지식으로만 쌓고 행하지 않으면 교만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3)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켜 행해야 합니다
피아노 교본을 수백 번, 수천 번 보고 외운다 해서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피아노를 치며 연습을 해야 하지요. 마찬가지로 말씀을 아무리 열심히 읽고 들으며 배워도 삶에 적용하여 행치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지켜 행할 때 그것이 살아 역사하여 생명이 되고, 응답과 축복으로 임하지요.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면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는 말씀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시지요. 그러니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행함이 더 온전케 되고, 불가능한 일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1세대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원망했습니다. 열두 정탐꾼 중에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 드리며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 고백하였지요. 반면에 열 정탐꾼은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다’고 악평합니다. 이에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하였습니다.
그들은 애굽 땅에 내린 열 재앙과, 홍해가 갈라져 마른 땅으로 건넌 일,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일 등 하나님의 역사를 수없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놀라운 일을 보고도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고, 여전히 육적인 믿음에 머물러 있었지요.
따라서 참 믿음을 소유하려면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적인 믿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할 때 주어집니다.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워서 온전히 지켜 행함으로 구원과 응답, 축복의 길로 인도하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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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의심을 가져오는 모든 ( )과 ( )을 깨뜨려야 한다.
②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들으며 ( ) 받아야 한다.
③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켜 ( ) 한다.
2.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서는 어떠한 행함이 나올까요?
① 자신의 ( )이나 ( )에 맞지 않아도 믿는다.
② 어떤 상황에서도 ( ) 않는다.
③ 하나님 말씀에 ( )하는 행함이 나온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52~15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구원의 투구란?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한다. 전쟁에서 군인이 몸에서 가장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투구를 쓰듯이 우리도 구원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붙잡고 있어야 한다.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생명 다해 충성할 수 있다.
성령의 검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곧 영적으로 말씀을 무장한 만큼 위로부터 능력과 권세가 주어져 어두움을 능히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다.
교육목표 : 의심을 가져오는 모든 이론과 생각을 깨뜨림으로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입니다.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믿는다면서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한다면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믿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응답해 주시는 영적인 믿음과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육적인 믿음입니다. 육적인 믿음은 자신의 지식과 생각에 일치하는 것만 믿는 믿음, 행함이 없는 죽은 믿음,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변개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과 그 말씀을 전폭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지식, 생각에 맞는 부분만 믿습니다. 그러니 과학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성경 사건들은 납득하기가 어렵지요.
이처럼 육적인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들어서 안다 해도 막상 현실에 어려움이 닥치면 믿음을 내보이지 못합니다. 응답이 더디면 마음이 변하여 점차 의심이 생깁니다. 이런 믿음으로는 기도의 응답이나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가질 수 있을까요?
1.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응답하시는 영적인 믿음
1) 자신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습니다
영적인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는 것으로서 무(無)에서 유(有)의 창조를 믿습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사실이 의심 없이 믿어집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믿어지니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지켜 행하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대로 응답받은 줄로 믿기 때문에 신앙생활이 재미있고 행복하지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때 하나님께서 참 자녀라 인정하시며 응답과 축복으로 보장해 주십니다.
2) 어떤 상황에서도 변개치 않습니다
한번 믿은 것은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변개하지 않고 믿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입니다. 가령, 어떤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 기도했는데 자신이 원하는 때에 응답이 오지 않는다 해서 “왜 응답해 주시지 않나?” 하고 불평하거나 의심이 생긴다면 이는 육적인 믿음에 불과합니다.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약 1:6~7).
하나님이 원하시는 믿음은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한 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변개치 않고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는 믿음이지요.
3)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영적인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데 그치지 않고 행함이 따릅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고 순종하여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이 인정하고 응답하시는 영적인 믿음입니다.
사르밧 과부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의 말에 순종하여 오랜 가뭄 중에 마지막 남은 양식으로 그를 공궤했습니다. 생명과도 같은 양식이지만 하나님의 사람의 말이기에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가뭄이 끝날 때까지 떡을 구울 가루와 기름이 떨어지지 않는 축복을 받았지요(왕상 17장). 이런 믿음이 있으면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도 기도하여 응답을 받습니다. 나아가 아름답고 영화로운 천국을 소유하여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2.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1) 의심을 가져오는 모든 생각과 이론을 깨뜨려야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입력된 세상적인 지식은 대부분 진리인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므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데 큰 방해 요소가 됩니다. 특히 진화론은 창조주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하는 이론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진화론처럼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도록 의심을 가져다주는 이론과,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모든 비진리의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 세상에서 배운 지식이나 이론이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면 철저히 무(無)로 돌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과 이론이 옳다 고집하면 하나님 말씀을 전폭적으로 믿지 못하니 영적인 믿음을 갖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교회에 다니며 예배를 드린다 해도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지요. 그러니 기도 응답도 받기 어렵습니다. 따라서 진리인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그에 맞지 않는 생각과 이론을 깨뜨려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에 육적인 믿음의 소유자였지만 주님을 만나 회심한 후에는 그동안 쌓은 학식과 이론 등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자신의 지식과 생각을 깨뜨려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되니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행하는 권능의 사도가 될 수 있었지요. 따라서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려면 진리에 위배된 모든 이론과 생각을 깨뜨려야 합니다(고후 10:5).
2)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들으며 가르침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가르침 받을 때 믿음이 자라납니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기에 말씀을 많이 알수록 하나님의 마음과 뜻도 더 밝히 알 수 있지요. 또한 에베소서 6장 17절에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하신 대로 내 안에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모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행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듣고 배우는 것은 중요합니다. 단, 지식으로만 쌓고 행하지 않으면 교만해질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3)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켜 행해야 합니다
피아노 교본을 수백 번, 수천 번 보고 외운다 해서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직접 피아노를 치며 연습을 해야 하지요. 마찬가지로 말씀을 아무리 열심히 읽고 들으며 배워도 삶에 적용하여 행치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말씀을 지켜 행할 때 그것이 살아 역사하여 생명이 되고, 응답과 축복으로 임하지요.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면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하라, 지키라, 하지 말라, 버리라”는 말씀대로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부어 주시지요. 그러니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행함이 더 온전케 되고, 불가능한 일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1세대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원망했습니다. 열두 정탐꾼 중에 오직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어 드리며 “저들은 우리의 밥이라” 고백하였지요. 반면에 열 정탐꾼은 ‘그 땅은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와 같다’고 악평합니다. 이에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하였습니다.
그들은 애굽 땅에 내린 열 재앙과, 홍해가 갈라져 마른 땅으로 건넌 일,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만나와 메추라기, 반석에서 물이 나오는 일 등 하나님의 역사를 수없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토록 놀라운 일을 보고도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고, 여전히 육적인 믿음에 머물러 있었지요.
따라서 참 믿음을 소유하려면 육적인 믿음을 영적인 믿음으로 변화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적인 믿음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말씀대로 순종할 때 주어집니다.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워서 온전히 지켜 행함으로 구원과 응답, 축복의 길로 인도하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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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의심을 가져오는 모든 ( )과 ( )을 깨뜨려야 한다.
②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들으며 ( ) 받아야 한다.
③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고 지켜 ( ) 한다.
2.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서는 어떠한 행함이 나올까요?
① 자신의 ( )이나 ( )에 맞지 않아도 믿는다.
② 어떤 상황에서도 ( ) 않는다.
③ 하나님 말씀에 ( )하는 행함이 나온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52~15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구원의 투구란?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구원의 투구를 써야 한다. 전쟁에서 군인이 몸에서 가장 중요한 머리를 보호하기 위해 투구를 쓰듯이 우리도 구원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붙잡고 있어야 한다. 구원의 확신이 있으면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생명 다해 충성할 수 있다.
성령의 검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한다. 곧 영적으로 말씀을 무장한 만큼 위로부터 능력과 권세가 주어져 어두움을 능히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다.
2016-08-19
제34과상대를 감동시키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선
마 5:39~42
읽을말씀 : 마 5:39~42 | 외울말씀 : 롬 12:20~21 ㅣ 참고 말씀: 롬 9:3
교육목표 : 악한 상대에게 선을 행하여 오히려 감동을 주며 생명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죄악이 관영하여 선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만일 이러한 세대 속에서 참된 선을 행하여 많은 사람을 빛 가운데로 이끌 수 있다면 하나님께 큰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대응치는 않으나 마음에 악한 감정이 있어 눌러 참는 것은 ‘1단계의 선’입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착하다 할 수 있으나 하나님 보시기에 선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은 마음에 어떠한 악한 감정도 품지 않는 ‘2단계의 선’부터입니다. 이 단계만 이르러도 마음에 기쁨과 감사, 행복, 사랑이 가득합니다.
1.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는 ‘선의 3단계’
선의 3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게도 선을 행하여 오히려 감동을 줄 수 있는 차원입니다. 마음에 악이 없기에 악으로 맞대응하지 않는 ‘선의 2단계’가 소극적인 선이라면, 선으로 악을 이기는 ‘선의 3단계’는 적극적인 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의 3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마음이 진리로 채워진 ‘온 영’의 차원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지요.
예를 들면, 마태복음 5장 39~42절에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진정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선의 3단계에 들어온 것이지요.
자기의 손익을 먼저 따지지 않으며 선을 좇기 위해서는 희생도 개의치 않습니다. 또한 자신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어찌하면 그의 마음을 풀어 화평을 이룰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선이 깊어질수록 자신을 희생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을 행하는 자체가 기쁘고 즐겁기 때문에 이것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지요. 더욱이 영적으로 죄가 없는 것이 힘이기 때문에 악을 버리고 선을 이룬 만큼 영적인 빛도 강하게 나타납니다.
선의 2단계에만 들어가도 영적인 빛으로 인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지 못하므로 시험 환난이나 핍박이 물러간다 했습니다. 하물며 선의 3단계에 들어가면 감히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할 뿐 아니라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분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악을 행하는 상대에게 선한 말과 행함으로 감동을 주어 그가 회개하고 돌이키는 역사가 일어나지요. 이는 선을 행하는 사람의 영적인 빛이 강하여 상대에게 역사하는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상대의 마음에 남아 있는 작은 선에까지 그 빛이 다다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은 단지 착해서 져주고 다 내어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고 그 궤계까지도 분쇄시키는 큰 위력이 있습니다. 다니엘의 경우,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모함한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이나 원망도 없었습니다. 왕이 악한 무리들의 궤계에 휘말려 자신의 생명을 구해 주지 않았다 해서 서운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역사로 사자 굴에서 살아났을 때에 감동적인 말로 왕에게 아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단 6:21~22)
이처럼 선한 말을 들을 때 왕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즉시로 왕은 다니엘을 해치려 했던 사람들을 징벌하고 다니엘을 더욱 높여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이 온 나라에 하나님을 존중하도록 조서를 내렸지요. 다니엘처럼 상대를 감동시키는 선에 이르면 하나님께서 항상 동행해 주시고 무엇이든 마음에 품은 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을 이루어 천국에서도 매우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혹여 ‘나는 아직 악도 온전히 버리지 못했는데, 언제 선의 2단계를 거쳐서 3단계에 이르나?’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아직 악을 온전히 버리지 못했어도 열심히 선을 행하고자 노력한다면 변화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선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는 등 최선을 다해 선을 쌓아 나가면 그만큼 신속히 악을 버릴 수 있습니다.
선의 2단계에서도 때에 따라 상대에게 감동을 주는 적극적인 선이 나올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상대에게 맞대응하지 않는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의 마음을 평안케 할 수 있는 선한 말을 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상대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선한 행함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의 3단계에서는 이런 선한 말과 행함이 항상 나옵니다. 따라서 악을 행하는 상대에게 어쩌다가 선한 말과 행함이 나왔다고 해서 자신을 선의 3단계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과연 어떠한 상황이나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항상 선대할 수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2. 악한 상대에게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선의 4단계’
가장 차원 높은 선은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생명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선의 4단계’입니다. 바로 죄인들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하나님의 선의 차원이지요. 또한 의인이나 선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선의 차원이 이에 해당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실 때 그 이유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부분 예수님께서 징벌을 받아서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했지요(사 53: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허물 때문이 아니라 죄인들이 받아야 하는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를 속량하시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흠 없는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죄인들의 모든 죄를 단번에 대속해 주셨지요.
십자가의 고통 중에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 자신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병정들도 십자가의 섭리를 깨달아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가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예수님처럼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생명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선의 4단계에 이른 믿음의 선진들이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번번이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출 32:31~32).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도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늘 불평했던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심지어 모세를 원망하며 돌로 치려고까지 했지요. 그럼에도 모세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기도했습니다(롬 9:3).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당시 사도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그들은 구원받기 원하였던 것입니다.
이 외에 엘리야, 에녹과 아브라함과 같은 분들도 최고의 선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선의 차원에 이르면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수 없고 마음에 소원을 품기만 해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위로부터 권능을 받아 무수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며 하나님 보좌 가까이에서 세세토록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믿음의 선진들처럼 최고의 선을 이루어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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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세요.
1. 선의 3단계에서는 악을 행하는 상대에게 선한 ( )과 ( )으로 감동을 주어 그가 회개하고 돌이키는 역사가 일어난다.
2. 선의 4단계는 가장 높은 차원의 선으로,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 )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단계이다. 바로 죄인들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하나님의 선의 차원이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44~15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최고의 선에 이른 에녹
원래 모난 것이 없고 순수하고 착한 성정을 지녔다. 늘 하나님에 대해 궁구하며, 영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였다. 무엇을 보아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찾으려 했고, 영적인 것을 궁구했다.
강하거나 자기를 주장하는 성정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찾을 때는 적극적이었기에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 만물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고 느끼는데 적극적이었던 에녹의 성정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큰 바탕이 되었다.
교육목표 : 악한 상대에게 선을 행하여 오히려 감동을 주며 생명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세월이 흐를수록 죄악이 관영하여 선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만일 이러한 세대 속에서 참된 선을 행하여 많은 사람을 빛 가운데로 이끌 수 있다면 하나님께 큰 사랑을 받을 것입니다.
악을 악으로 대응치는 않으나 마음에 악한 감정이 있어 눌러 참는 것은 ‘1단계의 선’입니다. 이는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착하다 할 수 있으나 하나님 보시기에 선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선은 마음에 어떠한 악한 감정도 품지 않는 ‘2단계의 선’부터입니다. 이 단계만 이르러도 마음에 기쁨과 감사, 행복, 사랑이 가득합니다.
1.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감동시킬 수 있는 ‘선의 3단계’
선의 3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게도 선을 행하여 오히려 감동을 줄 수 있는 차원입니다. 마음에 악이 없기에 악으로 맞대응하지 않는 ‘선의 2단계’가 소극적인 선이라면, 선으로 악을 이기는 ‘선의 3단계’는 적극적인 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의 3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마음이 진리로 채워진 ‘온 영’의 차원에 들어왔다고 할 수 있지요.
예를 들면, 마태복음 5장 39~42절에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진정 마음으로부터 자연스럽게 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선의 3단계에 들어온 것이지요.
자기의 손익을 먼저 따지지 않으며 선을 좇기 위해서는 희생도 개의치 않습니다. 또한 자신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해도 ‘어찌하면 그의 마음을 풀어 화평을 이룰까.’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선이 깊어질수록 자신을 희생해야 할 일이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을 행하는 자체가 기쁘고 즐겁기 때문에 이것이 힘들게 느껴지지 않지요. 더욱이 영적으로 죄가 없는 것이 힘이기 때문에 악을 버리고 선을 이룬 만큼 영적인 빛도 강하게 나타납니다.
선의 2단계에만 들어가도 영적인 빛으로 인해 원수 마귀 사단이 역사하지 못하므로 시험 환난이나 핍박이 물러간다 했습니다. 하물며 선의 3단계에 들어가면 감히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할 뿐 아니라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분쇄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악을 행하는 상대에게 선한 말과 행함으로 감동을 주어 그가 회개하고 돌이키는 역사가 일어나지요. 이는 선을 행하는 사람의 영적인 빛이 강하여 상대에게 역사하는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상대의 마음에 남아 있는 작은 선에까지 그 빛이 다다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선은 단지 착해서 져주고 다 내어주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고 그 궤계까지도 분쇄시키는 큰 위력이 있습니다. 다니엘의 경우, 억울하게 모함을 받아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모함한 사람들에게 어떤 감정이나 원망도 없었습니다. 왕이 악한 무리들의 궤계에 휘말려 자신의 생명을 구해 주지 않았다 해서 서운해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역사로 사자 굴에서 살아났을 때에 감동적인 말로 왕에게 아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단 6:21~22)
이처럼 선한 말을 들을 때 왕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습니까. 즉시로 왕은 다니엘을 해치려 했던 사람들을 징벌하고 다니엘을 더욱 높여 영화롭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왕이 온 나라에 하나님을 존중하도록 조서를 내렸지요. 다니엘처럼 상대를 감동시키는 선에 이르면 하나님께서 항상 동행해 주시고 무엇이든 마음에 품은 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다니엘은 자신의 생명까지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을 이루어 천국에서도 매우 존귀한 자가 되었습니다.
혹여 ‘나는 아직 악도 온전히 버리지 못했는데, 언제 선의 2단계를 거쳐서 3단계에 이르나?’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아직 악을 온전히 버리지 못했어도 열심히 선을 행하고자 노력한다면 변화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선으로 생각하고 말하며 선을 행하려고 노력하는 등 최선을 다해 선을 쌓아 나가면 그만큼 신속히 악을 버릴 수 있습니다.
선의 2단계에서도 때에 따라 상대에게 감동을 주는 적극적인 선이 나올 수 있습니다. 때로는 상대에게 맞대응하지 않는 정도에서 그치는 경우도 있고, 때로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의 마음을 평안케 할 수 있는 선한 말을 내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상대의 마음에 감동을 줄 수 있는 선한 행함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선의 3단계에서는 이런 선한 말과 행함이 항상 나옵니다. 따라서 악을 행하는 상대에게 어쩌다가 선한 말과 행함이 나왔다고 해서 자신을 선의 3단계로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과연 어떠한 상황이나 어느 누구에게도 마음이 불편하지 않고 항상 선대할 수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2. 악한 상대에게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선의 4단계’
가장 차원 높은 선은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생명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선의 4단계’입니다. 바로 죄인들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하나님의 선의 차원이지요. 또한 의인이나 선인들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죄인들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예수님의 선의 차원이 이에 해당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실 때 그 이유를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대부분 예수님께서 징벌을 받아서 고난을 당한다고 생각했지요(사 53: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허물 때문이 아니라 죄인들이 받아야 하는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를 속량하시기 위해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흠 없는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죄인들의 모든 죄를 단번에 대속해 주셨지요.
십자가의 고통 중에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 자신을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병정들도 십자가의 섭리를 깨달아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가 되기를 원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살펴보면 예수님처럼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생명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선의 4단계에 이른 믿음의 선진들이 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번번이 불순종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출 32:31~32).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도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늘 불평했던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심지어 모세를 원망하며 돌로 치려고까지 했지요. 그럼에도 모세는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라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기도했습니다(롬 9:3).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당시 사도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입니다. 심지어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그들은 구원받기 원하였던 것입니다.
이 외에 엘리야, 에녹과 아브라함과 같은 분들도 최고의 선에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선의 차원에 이르면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수 없고 마음에 소원을 품기만 해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위로부터 권능을 받아 무수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며 하나님 보좌 가까이에서 세세토록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믿음의 선진들처럼 최고의 선을 이루어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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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세요.
1. 선의 3단계에서는 악을 행하는 상대에게 선한 ( )과 ( )으로 감동을 주어 그가 회개하고 돌이키는 역사가 일어난다.
2. 선의 4단계는 가장 높은 차원의 선으로, 악으로 나오는 상대를 위해 ( )도 아낌없이 줄 수 있는 단계이다. 바로 죄인들을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하나님의 선의 차원이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44~15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 갑시다!
최고의 선에 이른 에녹
원래 모난 것이 없고 순수하고 착한 성정을 지녔다. 늘 하나님에 대해 궁구하며, 영의 세계에 대해 생각하였다. 무엇을 보아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찾으려 했고, 영적인 것을 궁구했다.
강하거나 자기를 주장하는 성정은 아니지만 하나님을 찾을 때는 적극적이었기에 깊은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 만물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리고 느끼는데 적극적이었던 에녹의 성정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데 큰 바탕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