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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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30
제52과온 영의 완성을 이루는 믿음의 5단계
요일 4:16
읽을말씀 : 요일 4:16 | 외울말씀 : 사 30:18 l 참고 말씀: 유 1:14
교육목표 : 마음과 뜻과 생각이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를 이루며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구함으로 선한 향을 발하는 온 영의 일꾼이 되게 한다.
믿음의 5단계는 성령의 열매가 온전히 맺힌 ‘온 영’의 차원입니다. 그러나 온 영의 마음을 이뤘다 해서 완성된 것은 아니며, 무한한 영의 세계로의 입문에 불과합니다. 온 영에서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깊은 차원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비록 몸은 육의 세계에 산다 해도 믿음의 5단계에 들어서면 영적으로는 영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장차 천국에 들어가면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비밀한 영의 지식들을 이 땅에서도 깨달아 갑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하나님을 밝히 알아 온 영에서도 100%에 가까운 최고의 차원에 이르게 됩니다.
1. 온 영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증거
1) 순복함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
온 영의 사람은 무엇보다 마음과 뜻과 생각이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하여 최선을 다해 이루어 드리지요. 또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기쁨과 감사로 행합니다.
말과 생각과 행동의 기준을 항상 하나님께 두고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길을 가도, 24시간 무엇을 해도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향이 풍깁니다. 하나님과 하나 된 자녀에게는 하나님께 속한 권능이 나타나고 축복이 임하며 많은 열매도 맺히게 되지요.
온 영이란 결국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을 꼭 닮은 자녀가 되어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 안에 담는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많이 감당하느냐’보다는 ‘아버지 하나님과 얼마나 하나 된 마음을 이루었느냐’ 곧 얼마나 아버지 하나님을 꼭 닮은 자녀인가에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정도와 천국에서 누리는 영광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의 존재 자체로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그의 마음은 항상 아버지 하나님으로 가득했고, 한순간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았지요. 에녹은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했고 그분에 대해 더 깊이 알고 느끼기 위해 늘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삶을 항상 하나님과 관련지어 나갔습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생각까지도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추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이 65세 때부터 동행해 주셨습니다. 이후로 300년간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마음과 뜻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끝 날에 있을 주님의 공중 강림까지 예언할 수 있었지요(유 1:14). 이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 깊이 교통하며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알려 주셨는지 나타내 줍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고 그 마음을 꼭 닮은 자녀를 얻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행복하셨겠습니까? 그러니 이 땅에서도 에녹과 동행해 주시고, 가까이 두고 싶으셨기에 아예 산 채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차원이 진정 하나 된 관계입니다. 굳이 대화하지 않아도 마음과 상태까지 깊이 헤아려 알 수 있는 관계이지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기 원하시는지, 어떤 방식으로 하기 원하시는지까지 그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순종합니다. 이것을 ‘순복’이라고 합니다.
온 영의 차원에 들어오면 하나님과 하나 되었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하나님 마음에 맞추게 됩니다. 물론 온 영으로 들어와도 100%에 가까운 만큼 더 하나 되었다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일단 온 영의 차원이 되면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하나 된 상태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맞추게 됩니다.
2) 생명을 살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선’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악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말과 행함과 표정 하나에서도 선한 향이 진하게 풍깁니다. 단순히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자신을 희생해 상대를 섬깁니다. 그러면서도 희생한다거나 스스로 낮아져 섬긴다는 의식조차 없습니다.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상대를 봐도 불편한 마음이 없고 선한 말과 행동으로 감동을 주지요.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이런 선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차원의 선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에게 좋은 말로 부드럽게 대하는 것을 선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 영에 들어오면 마음에 있는 선이 이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호되게 책망하거나 외면하기도 하는데 그 마음에는 깊은 선이 담겨 있지요.
물론 영의 사람도 이런 차원의 선을 행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온 영의 차원에서는 영적인 선과 육적인 선을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선과 악을 진리로 분별하여 선으로 악을 분쇄시킵니다. 이것이 권세 있는 선의 차원입니다. 엘리야의 선이 이에 해당합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의 범죄로 온 나라가 우상 숭배로 물들었을 때, 이방 선지자들과 불의 응답을 놓고 대결한 뒤, 불을 끌어내려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방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죽였지요. 이를 보고 ‘너무 잔혹하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악한 영에게 자기 영혼을 판 사람들이니 용서해 준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물들었고, 더 이상 그런 일이 없어야 하므로 단호히 척결했던 것입니다. 성정이 유약한 엘리야가 육적인 선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런 일을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선을 이루었기에 단호히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영적으로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 참된 선이므로 상대의 영혼을 위해 빛으로 어둠을 비춰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이 무엇인지 잘 분별해야 온 영으로 신속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선의 차원을 분별하지 못하면 영적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출 수도 없습니다.
진정한 선은 상대가 죄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두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회개하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켰을 때는 잘못을 덮어 줘야 하지만 죄에 따라 회개 여부와 상관없이 단호하게 처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악을 덮어 주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을 분쇄시킬 수 있어야 하지요.
3) 하나님 섭리를 이루기 위한 ‘영적인 충성’
온 영의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감당하며, 뜨거운 마음으로 변개함 없이 충성합니다. 여기에 더해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게 충성하지요. 오직 그 섭리를 이뤄 드리기 위해 생명 다해 충성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울이 주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에는 평생 복음을 전하며 순교하기까지 생명 다해 충성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석학 아래 교육을 받았고, 율법에도 능통했으며,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육의 충성을 원하셨다면 당장 그를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충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열정으로 하는 육적인 충성이 아니었습니다. 말씀 무장과 기도, 연단을 통해 합당한 그릇이 되어 영적인 충성을 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연단을 통해 10여 년간 마음 그릇을 갖추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역하며 20여 년 동안 다닌 거리는 최소 21,000km 이상이라고 합니다. 서울과 부산을 스물여덟 번 이상 왕복한 거리에 해당하지요. 이렇게 엄청난 거리를 걸으면서도 그는 ‘지친다, 힘들다’ 하지 않았습니다. 배가 파선하여 표류할 때도,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오직 기뻐하며 감사하였고, 돌에 맞아 심한 고초를 겪고서도 깨어나자마자 다음 사역지를 향해 떠났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오직 영혼 구원과 복음 전파,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뿐이었습니다.
온 영의 사람들은 자신이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 충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환경에서도 그 열정이 식지 않고 최선을 다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생명을 다해 충성합니다. 그러니 자기 방식이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하나님 마음과 뜻에 맞춰 충성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 취향, 성품대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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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진정한 선은 상대가 죄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두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돌이켰을 때는 잘못을 덮어 줘야 하지만 죄에 따라 회개 여부와 상관없이 단호하게 처리해야 할 때도 있다. 악을 덮어 주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을 ( )시킬 수 있어야 한다.
2. 온 영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증거를 말해 보세요.
* 금주 과제
한 해 동안도 질병, 사고, 재앙 가운데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 다해 감사를 드리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온 영의 완성을 이루려면
믿음의 5단계 곧 온 영의 차원에 진입했다면 이제는 ‘온 영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온 영의 완성 단계란 믿음의 5단계에서도 100%에 가까운 차원을 말한다.
온 영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 사랑의 차원을 바로 알고 더불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도 밝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과 공의가 치우치지 않고 하나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사랑을 바탕으로 공의를 이루는 것, 곧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차원에 이르러야 한다.
교육목표 : 마음과 뜻과 생각이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를 이루며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구함으로 선한 향을 발하는 온 영의 일꾼이 되게 한다.
믿음의 5단계는 성령의 열매가 온전히 맺힌 ‘온 영’의 차원입니다. 그러나 온 영의 마음을 이뤘다 해서 완성된 것은 아니며, 무한한 영의 세계로의 입문에 불과합니다. 온 영에서 깊이 들어갈수록 더욱 깊은 차원이 끝없이 펼쳐집니다.
비록 몸은 육의 세계에 산다 해도 믿음의 5단계에 들어서면 영적으로는 영의 세계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장차 천국에 들어가면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는 비밀한 영의 지식들을 이 땅에서도 깨달아 갑니다. 그러면서 점점 더 하나님을 밝히 알아 온 영에서도 100%에 가까운 최고의 차원에 이르게 됩니다.
1. 온 영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증거
1) 순복함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
온 영의 사람은 무엇보다 마음과 뜻과 생각이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입니다. 그렇기에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분별하여 최선을 다해 이루어 드리지요. 또한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마음으로 기쁨과 감사로 행합니다.
말과 생각과 행동의 기준을 항상 하나님께 두고 살아갑니다. 그런 사람은 밥을 먹어도, 잠을 자도, 길을 가도, 24시간 무엇을 해도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있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향이 풍깁니다. 하나님과 하나 된 자녀에게는 하나님께 속한 권능이 나타나고 축복이 임하며 많은 열매도 맺히게 되지요.
온 영이란 결국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을 꼭 닮은 자녀가 되어 아버지의 마음을 우리 안에 담는 것입니다. 범사에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하나님을 기준으로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으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지요.
따라서 ‘하나님의 일을 얼마나 많이 감당하느냐’보다는 ‘아버지 하나님과 얼마나 하나 된 마음을 이루었느냐’ 곧 얼마나 아버지 하나님을 꼭 닮은 자녀인가에 따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정도와 천국에서 누리는 영광이 달라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의 존재 자체로 심히 기뻐하셨습니다. 그의 마음은 항상 아버지 하나님으로 가득했고, 한순간도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지 않았지요. 에녹은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했고 그분에 대해 더 깊이 알고 느끼기 위해 늘 기도했습니다. 자신의 모든 삶을 항상 하나님과 관련지어 나갔습니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 생각까지도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추었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녹이 65세 때부터 동행해 주셨습니다. 이후로 300년간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면서 그분의 마음과 뜻을 더 깊이 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상 끝 날에 있을 주님의 공중 강림까지 예언할 수 있었지요(유 1:14). 이는 그가 얼마나 하나님과 깊이 교통하며 하나님께서 많은 것을 알려 주셨는지 나타내 줍니다. 하나님과 하나 되고 그 마음을 꼭 닮은 자녀를 얻었으니 하나님께서 얼마나 행복하셨겠습니까? 그러니 이 땅에서도 에녹과 동행해 주시고, 가까이 두고 싶으셨기에 아예 산 채로 데려가신 것입니다.
상대의 마음을 헤아려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차원이 진정 하나 된 관계입니다. 굳이 대화하지 않아도 마음과 상태까지 깊이 헤아려 알 수 있는 관계이지요. 하나님께서 왜 그렇게 하기 원하시는지, 어떤 방식으로 하기 원하시는지까지 그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순종합니다. 이것을 ‘순복’이라고 합니다.
온 영의 차원에 들어오면 하나님과 하나 되었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 하나님 마음에 맞추게 됩니다. 물론 온 영으로 들어와도 100%에 가까운 만큼 더 하나 되었다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일단 온 영의 차원이 되면 기본적으로 하나님과 하나 된 상태에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맞추게 됩니다.
2) 생명을 살리는 ‘아버지 하나님의 선’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악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말과 행함과 표정 하나에서도 선한 향이 진하게 풍깁니다. 단순히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자신을 희생해 상대를 섬깁니다. 그러면서도 희생한다거나 스스로 낮아져 섬긴다는 의식조차 없습니다. 자신에게 악을 행하는 상대를 봐도 불편한 마음이 없고 선한 말과 행동으로 감동을 주지요.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이런 선이 자연스럽게 배어 나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차원의 선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상대에게 좋은 말로 부드럽게 대하는 것을 선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온 영에 들어오면 마음에 있는 선이 이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 호되게 책망하거나 외면하기도 하는데 그 마음에는 깊은 선이 담겨 있지요.
물론 영의 사람도 이런 차원의 선을 행할 수 있지만, 정확하게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온 영의 차원에서는 영적인 선과 육적인 선을 정확하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선과 악을 진리로 분별하여 선으로 악을 분쇄시킵니다. 이것이 권세 있는 선의 차원입니다. 엘리야의 선이 이에 해당합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의 범죄로 온 나라가 우상 숭배로 물들었을 때, 이방 선지자들과 불의 응답을 놓고 대결한 뒤, 불을 끌어내려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방 선지자들을 모두 잡아 죽였지요. 이를 보고 ‘너무 잔혹하지 않나?’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악한 영에게 자기 영혼을 판 사람들이니 용서해 준다고 해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을 통해 백성들이 우상 숭배에 물들었고, 더 이상 그런 일이 없어야 하므로 단호히 척결했던 것입니다. 성정이 유약한 엘리야가 육적인 선에 머물러 있었다면 이런 일을 결코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온전한 선을 이루었기에 단호히 행동할 수 있었습니다. 영적으로는 생명을 살리는 것이 참된 선이므로 상대의 영혼을 위해 빛으로 어둠을 비춰 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이 무엇인지 잘 분별해야 온 영으로 신속히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선의 차원을 분별하지 못하면 영적 성장이 더딜 수밖에 없고,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출 수도 없습니다.
진정한 선은 상대가 죄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두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회개하도록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이켰을 때는 잘못을 덮어 줘야 하지만 죄에 따라 회개 여부와 상관없이 단호하게 처리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악을 덮어 주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을 분쇄시킬 수 있어야 하지요.
3) 하나님 섭리를 이루기 위한 ‘영적인 충성’
온 영의 사람들은 자기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감당하며, 뜨거운 마음으로 변개함 없이 충성합니다. 여기에 더해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게 충성하지요. 오직 그 섭리를 이뤄 드리기 위해 생명 다해 충성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랬습니다. 바울이 주님을 알지 못했을 때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난 후에는 평생 복음을 전하며 순교하기까지 생명 다해 충성했습니다.
그는 당대 최고의 석학 아래 교육을 받았고, 율법에도 능통했으며,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육의 충성을 원하셨다면 당장 그를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충성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지식과 열정으로 하는 육적인 충성이 아니었습니다. 말씀 무장과 기도, 연단을 통해 합당한 그릇이 되어 영적인 충성을 하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연단을 통해 10여 년간 마음 그릇을 갖추게 하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역하며 20여 년 동안 다닌 거리는 최소 21,000km 이상이라고 합니다. 서울과 부산을 스물여덟 번 이상 왕복한 거리에 해당하지요. 이렇게 엄청난 거리를 걸으면서도 그는 ‘지친다, 힘들다’ 하지 않았습니다. 배가 파선하여 표류할 때도, 매를 맞고 피투성이가 되어 감옥에 갇혔을 때도 오직 기뻐하며 감사하였고, 돌에 맞아 심한 고초를 겪고서도 깨어나자마자 다음 사역지를 향해 떠났습니다. 그의 마음에는 오직 영혼 구원과 복음 전파,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야 한다는 분명한 목표뿐이었습니다.
온 영의 사람들은 자신이 인정받고 칭찬받기 위해 충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힘든 환경에서도 그 열정이 식지 않고 최선을 다합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생명을 다해 충성합니다. 그러니 자기 방식이 아닌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식대로, 하나님 마음과 뜻에 맞춰 충성합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방식, 취향, 성품대로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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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진정한 선은 상대가 죄에 빠져 있는 것을 보고 가만히 두는 것이 아니라 먼저는 (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다. 그리고 돌이켰을 때는 잘못을 덮어 줘야 하지만 죄에 따라 회개 여부와 상관없이 단호하게 처리해야 할 때도 있다. 악을 덮어 주고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악을 ( )시킬 수 있어야 한다.
2. 온 영의 단계에서 나타나는 세 가지 증거를 말해 보세요.
* 금주 과제
한 해 동안도 질병, 사고, 재앙 가운데서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마음 다해 감사를 드리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온 영의 완성을 이루려면
믿음의 5단계 곧 온 영의 차원에 진입했다면 이제는 ‘온 영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온 영의 완성 단계란 믿음의 5단계에서도 100%에 가까운 차원을 말한다.
온 영의 완성을 이루기 위해서는 하나님 사랑의 차원을 바로 알고 더불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서도 밝히 알아야 한다. 그리고 사랑과 공의가 치우치지 않고 하나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사랑을 바탕으로 공의를 이루는 것, 곧 사랑으로 율법을 완성하는 차원에 이르러야 한다.
2016-12-23
제51과주님은 누구의 구주이신가
마 2:1~12
읽을말씀 : 마 2:1~12 | 외울말씀 : 눅 2:14 ㅣ 참고 말씀: 마 1:21
교육목표 :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세주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에 감사함으로 변화와 생명으로 나오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렸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인 것입니다.
1.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전 3:18).
원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지 못하고 죄 가운데 짐승과 다름없이 정욕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참된 양식, 곧 영의 양식이 되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하셨습니다(요 6:51~55).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영이 죽어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 사람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 변화시켜 주시기 위해 친히 영의 양식이 되어 주셨습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장 1절 이하를 보면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고 물으며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다고 합니다. 그러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이 소식을 듣고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헤롯 왕은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가르쳐 준 대로 동방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를 찾거든 알려 달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경배하고자 함이 아니라 죽이고자 함이었지요.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을 찾아가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박사들의 꿈을 통해 헤롯 왕에게 가지 말라는 지시를 하시니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의 부친인 요셉도 꿈을 통해 지시를 받아 온 가족이 헤롯 왕을 피해 애굽으로 떠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고 경배한 사람은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은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누가복음 2장 8~20절을 보면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지요.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께 찬송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안나’라는 여 선지자는 나이 많아 늙었는데도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눅 2:25~38).
3. 세 가지 예물의 의미
동방박사들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지요. 이 예물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예물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1) 황금의 영적 의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6장 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황금은 영적으로 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풍족하였으나,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그의 후손들은 가난과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친히 가난한 길을 가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신 것입니다(고후 8:9). 부의 상징인 황금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물로 주셨을까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 유향의 영적 의미
유향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린 영적 의미는 더럽고 냄새나는 악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7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에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여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3) 몰약의 영적 의미
몰약은 고대로부터 방향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즙액은 향수, 의료품, 구강 소독 등에 쓰이고 장사 지낼 때 시체를 썩지 않게 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 몰약을 예물로 드린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 즉 변함없는 믿음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4. 성탄절의 영적 의미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경배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조건 만인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해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렸듯이, 우리도 세 가지 예물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귀한 예물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고백하며 영원한 천국을 주심에 감사드리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 변함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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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1.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하며 영적으로 ( )을 뜻한다.
2. 유향을 예물로 드린 영적 의미는 더럽고 냄새나는 악을 버리고 ( )를 발한다는 것이다.
3. 몰약을 예물로 드린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 즉 ( )을 드린다는 것이다.
* 금주 과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더욱 감사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베들레헴
2천여 년 전,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다. 베들레헴은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으로 다윗 왕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삼상 16:1, 눅 2:4). 미가서 5장 2절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예언되어 있다.
교육목표 :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구세주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에 감사함으로 변화와 생명으로 나오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법에 매인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하나님의 뜻을 다 이루어 드렸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인 것입니다.
1.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18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성령으로 잉태된 하나님의 아들로서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인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전 3:18).
원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지으시고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지 못하고 죄 가운데 짐승과 다름없이 정욕대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다는 것은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사람들의 참된 양식, 곧 영의 양식이 되고자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하셨습니다(요 6:51~55).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영이 죽어 짐승과 다를 바 없게 된 사람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로 변화시켜 주시기 위해 친히 영의 양식이 되어 주셨습니다.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장 1절 이하를 보면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라고 물으며 그의 별을 보고 경배하러 왔다고 합니다. 그러자 헤롯 왕과 온 예루살렘이 이 소식을 듣고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헤롯 왕은 모든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서기관들을 모아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뇨?”라고 묻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가르쳐 준 대로 동방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며 아기를 찾거든 알려 달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경배하고자 함이 아니라 죽이고자 함이었지요.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을 찾아가 경배하고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박사들의 꿈을 통해 헤롯 왕에게 가지 말라는 지시를 하시니 그들은 고국으로 돌아갑니다. 예수님의 부친인 요셉도 꿈을 통해 지시를 받아 온 가족이 헤롯 왕을 피해 애굽으로 떠납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에는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과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고 경배한 사람은 이들이 아니었습니다. 과연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은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누가복음 2장 8~20절을 보면 밤에 자기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고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지요.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는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하나님께 찬송하며 영광을 돌렸습니다. ‘안나’라는 여 선지자는 나이 많아 늙었는데도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눅 2:25~38).
3. 세 가지 예물의 의미
동방박사들은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세 가지 예물을 드렸습니다.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것, 곧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지요. 이 예물은 영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며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예물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1) 황금의 영적 의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귀히 여기는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합니다. 또한 마태복음 6장 21절에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황금은 영적으로 마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셨을 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함 없이 풍족하였으나,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그의 후손들은 가난과 고통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친히 가난한 길을 가심으로 우리를 부요케 하신 것입니다(고후 8:9). 부의 상징인 황금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선물로 주셨을까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 유향의 영적 의미
유향은 좋은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린 영적 의미는 더럽고 냄새나는 악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3장 27절에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했습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에는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여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온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3) 몰약의 영적 의미
몰약은 고대로부터 방향제 및 방부제로 사용되었으며 즙액은 향수, 의료품, 구강 소독 등에 쓰이고 장사 지낼 때 시체를 썩지 않게 뿌리는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 몰약을 예물로 드린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 즉 변함없는 믿음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이를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주셨을까요?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4. 성탄절의 영적 의미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모든 인류를 대표하여 경배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무조건 만인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해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동방박사들이 예수님께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드렸듯이, 우리도 세 가지 예물의 영적인 의미를 깨달아 귀한 예물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눅 2:14) 고백하며 영원한 천국을 주심에 감사드리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을 사모하며 주님의 마음을 닮아 변함없는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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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1. 황금은 재물과 부귀를 뜻하며 영적으로 ( )을 뜻한다.
2. 유향을 예물로 드린 영적 의미는 더럽고 냄새나는 악을 버리고 ( )를 발한다는 것이다.
3. 몰약을 예물로 드린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 즉 ( )을 드린다는 것이다.
* 금주 과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더욱 감사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베들레헴
2천여 년 전,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이다. 베들레헴은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으로 다윗 왕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삼상 16:1, 눅 2:4). 미가서 5장 2절에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예언되어 있다.
2016-12-16
제50과온 집에 충성하는 믿음의 5단계
민 12:7
읽을말씀 : 민 12:7 | 외울말씀 : 시 101:6 l 참고 말씀: 고전 4:2
교육목표 : 믿음의 5단계에 이르러 성결을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하되 맡겨진 직무와 주어진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하는 충성된 일꾼이 되게 한다.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하는 차원입니다.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무수한 기도를 쌓아 기사와 표적을 행할 뿐 아니라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모든 분야에 마음 다해 충성하는 단계
‘충성’의 영적인 의미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 이상을 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몸을 아끼지 않고 넘치게 일을 감당했을 때 충성했다고 할 수 있지요.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영적으로 충성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충성이란, 꾸준히 마음의 할례를 하면서 하는 충성을 말합니다. 이러한 충성의 차원을 넘어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5단계에 들어와 갈라디아서 5장 22절 이하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온전히 맺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충성이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상대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랑이 없이는 희생하고 헌신할 수 없습니다. 또한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면 어느 분야에서는 넘치게 충성한다 해도 다른 분야에는 소홀할 수 있습니다.
화평의 열매가 온전히 맺혀 있지 않으면 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부딪힘이 생기고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화평이 깨어진 충성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영적인 충성을 하되 온 집에 충성하려면 충성의 분야만 승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들이 온전히 맺혀야 합니다.
그러면 온 집에 충성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이는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한두 가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하는 것이지요. 사명 중에는 중요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사명도 있지만, 덜 중요해 보이거나 드러나지 않는 사명도 있습니다. 믿음의 5단계 곧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크든 작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명을 소중히 여기므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당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명이 있어도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며 열매를 냅니다. 물론 모든 분야를 똑같이 마음에 품고 소중하게 여기며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 모든 사명에 똑같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분명 급히 할 것과 나중에 할 것,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충성의 열매가 온전히 맺힌 사람은 어떤 사명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며, 한 영혼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적게 들이든 많이 들이든 모든 분야에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또한 온 영의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많은 영혼과 사명을 마음에 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혼 구원을 위해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을 가지고 마음에 품고 간구하므로 맡은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지요.
2. 뜨거운 열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한 모세
모세는 출애굽의 지도자로서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으며, 온 집에 충성했던 사람입니다(민 12:3, 7).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당시, 장정만 해도 60만 명가량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었지요(출 18:13~14). 각종 문제를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세 혼자 일일이 상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모든 백성을 영으로 품었고 자신의 생명보다 귀히 여기며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 대해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영으로 들어간 만큼 영혼들을 더 품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사명도 감당할 수 있지요. 물론 자신이 맡은 영혼이 수백 명이라면 그들 모두를 매주 심방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이들이나 긴급한 문제가 있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처럼 온 집에 충성된 마음을 가졌다면 자주 보든, 보지 않든 모든 양 떼를 항상 영으로 품어 마음에 담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짧게 한 번 만난다 해도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변화됩니다. 이는 게을러 심방하지 않으면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까” 하고 변명하는 모습과는 다릅니다. 생명 다해 사명을 감당하려고 노력하지만 “직접 돌보지 못한 분야까지도 하나님께서 돌봐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심정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이러한 중심의 향을 받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영혼 관리뿐 아니라 다른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분야에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며, 영으로 품어 많은 열매를 내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하는 비결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사명을 다 감당하기 벅차니 차라리 한두 가지만 맡아서 정성을 다한다면 온 집에 충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충성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과 영혼들을 위해 헌신하려는 열정이 뜨거우니 어찌하든 사명을 더 사모합니다. 그러니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만 감당하겠다는 말 자체가 이미 온 집에 충성과는 거리가 멀지요.
또한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은 개인적인 분야에서도 자신의 소임을 다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는 열심을 내는데 가정은 전혀 돌보지 않는다거나 학교나 직장에서 불성실하다면 충성된 일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충성된 사람은 마음 자체가 성실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하나님 일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성실하게 행합니다. 그렇다 해서 꼭 1등을 해야 하고, 실적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성실하게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3.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
그러나 아직 온 영이 아니라 해도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 노력해 나간다면 그만큼 더 빨리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성결되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버려야 하지요. 그러면서 모든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마음씀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며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하나하나 감당하고자 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별로 원하지 않는 사명이나 또 사소하게 보이는 일은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또한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니까.” 하면서 더 많이 애쓰지 않거나, 자신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범위 내에서만 적당히 한다면 주인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떨까요?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차츰 신뢰도 떨어지고, 다음에는 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작은 것에 충성된 사람에게 큰 것도 믿고 맡길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 해도 주변에 도움을 청하거나 방법을 배워서라도 일을 감당해 내고자 하고 최선을 다하려는 진실과 노력이 보인다면 결과는 좀 부족하다 해도 그 사람에게는 신뢰가 쌓이게 됩니다. 그러니 “저 사람은 능력은 좀 부족하다 해도 마음 자세가 되었다.” 하면서 다음에는 더 중한 책임도 맡길 수가 있지요.
하나님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맡겨 준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해 희생하며 섬겨 나가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은혜와 능력을 주시지요.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악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고 그 악을 버릴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영으로, 온 영으로 신속하게 들어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육 간에 자신이 속한 모든 분야에서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마음과 정성과 지혜를 다해 하나님께 하는 것처럼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101편 6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하신 말씀대로 완전한 길로 행하며 충성된 자로 인정받아야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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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것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이다. 한두 가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2. 시편 101편 6절을 외워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56~26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죽도록 충성을 의미하는 붉은 빛깔의 홍마노
새 예루살렘 성곽의 다섯 번째 기초석인 홍마노는 영적으로 ‘충성’을 의미한다.
홍마노가 의미하는 충성이란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기록된 ‘죽도록 충성하는 것’을 말한다. 곧 성결된 사람이 거룩한 중심에서 생명 다하도록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해야 가능한 일이다.
모세 역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마음과 뜻, 정성을 다하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충성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홍마노의 빛깔로 나타내셨다.
교육목표 : 믿음의 5단계에 이르러 성결을 이루고 온 집에 충성하되 맡겨진 직무와 주어진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하는 충성된 일꾼이 되게 한다.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하는 차원입니다. 많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무수한 기도를 쌓아 기사와 표적을 행할 뿐 아니라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모든 분야에 마음 다해 충성하는 단계
‘충성’의 영적인 의미는 자기에게 맡겨진 일 이상을 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시간과 물질과 몸을 아끼지 않고 넘치게 일을 감당했을 때 충성했다고 할 수 있지요.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영적으로 충성한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영적인 충성이란, 꾸준히 마음의 할례를 하면서 하는 충성을 말합니다. 이러한 충성의 차원을 넘어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믿음의 5단계에 들어와 갈라디아서 5장 22절 이하에 나오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온전히 맺혀야 합니다.
예를 들어, 충성이 좋은 결실을 맺으려면 상대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사랑이 없이는 희생하고 헌신할 수 없습니다. 또한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면 어느 분야에서는 넘치게 충성한다 해도 다른 분야에는 소홀할 수 있습니다.
화평의 열매가 온전히 맺혀 있지 않으면 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부딪힘이 생기고 상대에게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화평이 깨어진 충성은 하나님 앞에 온전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영적인 충성을 하되 온 집에 충성하려면 충성의 분야만 승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들이 온전히 맺혀야 합니다.
그러면 온 집에 충성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이는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한두 가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하는 것이지요. 사명 중에는 중요해 보이고 사람들에게 드러나는 사명도 있지만, 덜 중요해 보이거나 드러나지 않는 사명도 있습니다. 믿음의 5단계 곧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크든 작든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사명을 소중히 여기므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당합니다.
아무리 많은 사명이 있어도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며 열매를 냅니다. 물론 모든 분야를 똑같이 마음에 품고 소중하게 여기며 정성을 다한다는 것이 모든 사명에 똑같은 시간을 할애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분명 급히 할 것과 나중에 할 것, 상대적으로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할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충성의 열매가 온전히 맺힌 사람은 어떤 사명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으며, 한 영혼도 소홀하게 대하지 않습니다. 시간을 적게 들이든 많이 들이든 모든 분야에 정성을 다하는 것입니다.
또한 온 영의 사람은 영이신 하나님의 속성을 닮아 많은 영혼과 사명을 마음에 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와 영혼 구원을 위해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사랑도 있습니다. 이처럼 사랑을 가지고 마음에 품고 간구하므로 맡은 모든 분야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지요.
2. 뜨거운 열정으로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한 모세
모세는 출애굽의 지도자로서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였으며, 온 집에 충성했던 사람입니다(민 12:3, 7).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할 당시, 장정만 해도 60만 명가량이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었지요(출 18:13~14). 각종 문제를 갖고 찾아오는 사람들을 모세 혼자 일일이 상담하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모든 백성을 영으로 품었고 자신의 생명보다 귀히 여기며 사랑으로 돌보았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모세에 대해 “그는 나의 온 집에 충성됨이라”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영으로 들어간 만큼 영혼들을 더 품을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사명도 감당할 수 있지요. 물론 자신이 맡은 영혼이 수백 명이라면 그들 모두를 매주 심방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이들이나 긴급한 문제가 있는 이들을 우선적으로 돌아보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처럼 온 집에 충성된 마음을 가졌다면 자주 보든, 보지 않든 모든 양 떼를 항상 영으로 품어 마음에 담고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짧게 한 번 만난다 해도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변화됩니다. 이는 게을러 심방하지 않으면서 “그를 위해 기도하고 있으니까” 하고 변명하는 모습과는 다릅니다. 생명 다해 사명을 감당하려고 노력하지만 “직접 돌보지 못한 분야까지도 하나님께서 돌봐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심정이 얼마나 간절하겠습니까?
이러한 중심의 향을 받으시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역사해 주시는 것입니다. 영혼 관리뿐 아니라 다른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분야에 똑같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며, 영으로 품어 많은 열매를 내는 것이 바로 온 집에 충성하는 비결입니다.
어떤 사람은 “많은 사명을 다 감당하기 벅차니 차라리 한두 가지만 맡아서 정성을 다한다면 온 집에 충성할 수 있지 않겠는가?”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충성된 사람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과 영혼들을 위해 헌신하려는 열정이 뜨거우니 어찌하든 사명을 더 사모합니다. 그러니 잘할 수 있는 한두 가지만 감당하겠다는 말 자체가 이미 온 집에 충성과는 거리가 멀지요.
또한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은 개인적인 분야에서도 자신의 소임을 다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교회에서는 열심을 내는데 가정은 전혀 돌보지 않는다거나 학교나 직장에서 불성실하다면 충성된 일꾼이라 할 수 없습니다. 충성된 사람은 마음 자체가 성실하고 진실하기 때문에 하나님 일만 아니라 모든 곳에서 성실하게 행합니다. 그렇다 해서 꼭 1등을 해야 하고, 실적이 뛰어나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적어도 성실하게 본분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3.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
그러나 아직 온 영이 아니라 해도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 노력해 나간다면 그만큼 더 빨리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가장 기본적으로는 성결되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워 버려야 하지요. 그러면서 모든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마음씀을 넓히기 위해 노력하며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해 하나하나 감당하고자 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별로 원하지 않는 사명이나 또 사소하게 보이는 일은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또한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니까.” 하면서 더 많이 애쓰지 않거나, 자신을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범위 내에서만 적당히 한다면 주인의 입장에서 볼 때 어떨까요? 이런 사람에 대해서는 차츰 신뢰도 떨어지고, 다음에는 그 사람에게 맡기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작은 것에 충성된 사람에게 큰 것도 믿고 맡길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 해도 주변에 도움을 청하거나 방법을 배워서라도 일을 감당해 내고자 하고 최선을 다하려는 진실과 노력이 보인다면 결과는 좀 부족하다 해도 그 사람에게는 신뢰가 쌓이게 됩니다. 그러니 “저 사람은 능력은 좀 부족하다 해도 마음 자세가 되었다.” 하면서 다음에는 더 중한 책임도 맡길 수가 있지요.
하나님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에게 맡겨 준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해 희생하며 섬겨 나가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은혜와 능력을 주시지요. 전에는 깨닫지 못했던 자신의 악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고 그 악을 버릴 수 있는 능력을 받아 영으로, 온 영으로 신속하게 들어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영육 간에 자신이 속한 모든 분야에서 사람에게 하는 것처럼 하지 말고 마음과 정성과 지혜를 다해 하나님께 하는 것처럼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시편 101편 6절에 “내 눈이 이 땅의 충성된 자를 살펴 나와 함께 거하게 하리니 완전한 길에 행하는 자가 나를 수종하리로다” 하신 말씀대로 완전한 길로 행하며 충성된 자로 인정받아야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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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것은,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되 모든 분야에서 주어지는 대가 이상으로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이다. 한두 가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모든 분야에 마음을 다하는 것이다.
2. 시편 101편 6절을 외워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56~26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죽도록 충성을 의미하는 붉은 빛깔의 홍마노
새 예루살렘 성곽의 다섯 번째 기초석인 홍마노는 영적으로 ‘충성’을 의미한다.
홍마노가 의미하는 충성이란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기록된 ‘죽도록 충성하는 것’을 말한다. 곧 성결된 사람이 거룩한 중심에서 생명 다하도록 맡은 바 사명을 감당해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해야 가능한 일이다.
모세 역시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마음과 뜻, 정성을 다하고 목숨까지 바칠 수 있었다. 바로 이러한 충성된 마음을 하나님께서는 홍마노의 빛깔로 나타내셨다.
2016-12-09
제49과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
살전 5:23
읽을말씀 : 살전 5:23 | 외울말씀 : 막 16:17~18 ㅣ 참고 말씀: 요 4:48
교육목표 :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5단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 영의 차원에 이르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부모 자녀 간에 서로 사랑한다 하지만 부모님 말씀에 100% 순종하는 자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떤 자녀는 순종은커녕 아예 반항하거나 빗나가기도 합니다. 반면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은 아니지만 부모님 말씀이기 때문에 도리를 좇아 따르는 자녀도 있습니다.
더 선한 자녀라면 부모님을 사랑하기에 마음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 그 말씀에 오직 순종만 합니다. 말씀대로 100% 순종하여 부모의 마음을 편케 해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보다 선과 사랑이 승하다면 부모님이 무엇을 명하실 때 왜 그 말씀을 하시는지 마음까지 헤아려 원하는 이상으로 이뤄 드립니다. 또한 시키지 않은 것까지 찾아서, 부모님의 마음에 꼭 맞게 미리미리 해 놓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부모의 마음이 기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기록된 성경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녀를 볼 때 지극히 사랑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까지 헤아려 행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시지요. 바로 믿음의 5단계에 이른 사람이 이러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 이상으로 넘치게 순종합니다. 어느 한순간만 넘치는 행함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매분 매초,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살아갑니다.
2. 믿음의 5단계의 특징
1) 자신의 생명을 버리기까지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
믿음의 5단계는 사람으로서 불가능한 일도 그것이 하나님 뜻이라면 자기 생명을 드려서라도 명하신 것 이상으로 순종하는 차원입니다. 믿음의 4단계와 5단계가 겉으로는 똑같이 순종하여 생명을 드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받으실 때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바로 마음에 있지요. 곧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깊이 헤아리며 얼마나 그 마음이 되어 순종해 드렸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해 드리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그 이상으로 순종해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차원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들로서 아무 죄가 없기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죄인 된 인류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어주셨지요. 이때 예수님은 단순히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그 뜻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왜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하는지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온전히 순종하여 구원의 섭리를 이뤄 드린 것입니다.
2)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믿음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을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온 영’이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온전히 품은 상태를 말합니다. 즉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깨달아 마음이 진리 자체가 되었기 때문에 온전히 성령의 음성을 들어 하나님 뜻대로만 살아가는 온전한 영의 사람, 온전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마음의 성결을 이루면 영의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나아가 계속하여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무장하고 이뤄 가면 마음뿐 아니라 삶 속에도 진리가 온전히 임하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을 ‘온전한 믿음’이라 하고, 완전한 영의 믿음,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도 하지요.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신 대로 참마음을 이루면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3) 무수한 기도를 쌓아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믿음
믿음의 5단계에 이르면 ‘어떻게 해야 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룰 수 있을까?’ 궁구하며, 뜨거운 열정을 행함으로 나타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넘치게 감당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요.
또한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영혼들을 구원하려면 권능을 받아야 하기에 무수한 기도를 쌓게 됩니다. 영혼 구원은 사람의 말이나 지식, 경험이나 명예, 권세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고전 4:20).
따라서 믿음의 5단계에서는 수많은 영혼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할 수 있는 권능을 받기 위해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무수한 기도를 쌓아갑니다. 이러한 기도가 쌓이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을 소유한 증거이지요.
요한복음 4장 4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시며 공생애 기간 동안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셨습니다. 표적과 기사로써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면 많은 영혼에게 쉽게 믿음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온 영의 사람이 받는 축복
1) 하나님과 항상 교통하며 깊은 사랑을 나누는 행복
믿음의 5단계에 이르러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행복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영육 간에 많은 축복을 받는 것도 행복하지만 그중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과 항상 교통하며 깊은 사랑을 나누는 일이지요.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어떤 기쁨과 행복보다 더한 충만함이 늘 마음에 채워져 있습니다. 혼자 있어도, 길을 걸어도, 사람들을 만나도, 무엇을 보고 들을 때에도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며 범사에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무엇이든 즉시 응답받는 차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진 온 영의 사람은 마음에 품기만 해도 신속하게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공의에 합당하게 응답하십니다. 공의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곱 영’의 측정이지요.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일곱 가지 분야 곧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을 측정하여 일정한 기준치에 합격할 때 응답을 주십니다.
온 영의 사람은 성결되어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없을 뿐 아니라 영의 열매들이 마음 가득 채워져 있기에 일곱 영의 측정 시 모든 분야에서 합격점을 받습니다. 그러니 무엇이든 즉시 응답받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닮은 마음으로 하나님 뜻에 합당한 것만 구하기 때문에 매번 넘치도록 응답을 받습니다.
3) 범사에 명철의 길을 찾는 차원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이룬 만큼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온 영의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기 때문에 위험한 길은 피하고 늘 형통한 축복이 임합니다. 또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해결 방법을 알아 늘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만 들어가도 성결된 마음에 성령의 음성을 비교적 정확하게 들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됩니다.
믿음의 5단계에서 더 깊은 차원에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방법론까지 온전하게 깨달아집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깨달음으로 방법론까지 주관받는 것이 바로 믿음의 5단계에서 체험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여 온 영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 속한 권능이 나타나고 넘치는 축복이 임하며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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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 )과 ( )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 이상으로 넘치게 순종한다.
2. 믿음의 5단계 특징과 온 영의 사람이 받는 축복에 대해 알고 있나요?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50~25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기사와 표적이란?
‘기사’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천기를 움직이는 것으로 주로 기상 현상과 관계된다. 구름을 움직이고 비를 오게 하거나 멎게 하는 것, 천체를 움직이는 것 등이 여기에 속한다(삼상 12:18, 수 10:13, 약 5:17~18).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역사를 말한다.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의 역사이다(막 16:17~18).
교육목표 :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의 5단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온 영의 차원에 이르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부모 자녀 간에 서로 사랑한다 하지만 부모님 말씀에 100% 순종하는 자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어떤 자녀는 순종은커녕 아예 반항하거나 빗나가기도 합니다. 반면에 마음에서 우러나는 순종은 아니지만 부모님 말씀이기 때문에 도리를 좇아 따르는 자녀도 있습니다.
더 선한 자녀라면 부모님을 사랑하기에 마음 아프게 하지 않기 위해 그 말씀에 오직 순종만 합니다. 말씀대로 100% 순종하여 부모의 마음을 편케 해 드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보다 선과 사랑이 승하다면 부모님이 무엇을 명하실 때 왜 그 말씀을 하시는지 마음까지 헤아려 원하는 이상으로 이뤄 드립니다. 또한 시키지 않은 것까지 찾아서, 부모님의 마음에 꼭 맞게 미리미리 해 놓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부모의 마음이 기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기록된 성경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는 자녀를 볼 때 지극히 사랑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나아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까지 헤아려 행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시지요. 바로 믿음의 5단계에 이른 사람이 이러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 이상으로 넘치게 순종합니다. 어느 한순간만 넘치는 행함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 하루 24시간 매분 매초,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살아갑니다.
2. 믿음의 5단계의 특징
1) 자신의 생명을 버리기까지 온전히 순종하는 믿음
믿음의 5단계는 사람으로서 불가능한 일도 그것이 하나님 뜻이라면 자기 생명을 드려서라도 명하신 것 이상으로 순종하는 차원입니다. 믿음의 4단계와 5단계가 겉으로는 똑같이 순종하여 생명을 드린다 해도 하나님께서 받으실 때는 분명히 차이가 있습니다. 그 차이는 바로 마음에 있지요. 곧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얼마나 깊이 헤아리며 얼마나 그 마음이 되어 순종해 드렸는지에 따라 다릅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는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무조건 순종해 드리는 마음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서 그 이상으로 순종해 드립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해 생명을 내어주신 차원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들로서 아무 죄가 없기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죄인 된 인류를 위해 기꺼이 생명을 내어주셨지요. 이때 예수님은 단순히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그 뜻에 순종한 것이 아닙니다. 왜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하는지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과 뜻을 헤아려 온전히 순종하여 구원의 섭리를 이뤄 드린 것입니다.
2)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믿음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을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온 영’이란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온전히 품은 상태를 말합니다. 즉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깨달아 마음이 진리 자체가 되었기 때문에 온전히 성령의 음성을 들어 하나님 뜻대로만 살아가는 온전한 영의 사람, 온전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마음의 성결을 이루면 영의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됩니다. 나아가 계속하여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무장하고 이뤄 가면 마음뿐 아니라 삶 속에도 진리가 온전히 임하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을 ‘온전한 믿음’이라 하고, 완전한 영의 믿음,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도 하지요.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하신 대로 참마음을 이루면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3) 무수한 기도를 쌓아 표적과 기사가 나타나는 믿음
믿음의 5단계에 이르면 ‘어떻게 해야 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 나라와 의를 이룰 수 있을까?’ 궁구하며, 뜨거운 열정을 행함으로 나타냅니다.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뿐만 아니라 그 이상을 넘치게 감당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지요.
또한 하나님께서 천하보다 귀히 여기시는 영혼들을 구원하려면 권능을 받아야 하기에 무수한 기도를 쌓게 됩니다. 영혼 구원은 사람의 말이나 지식, 경험이나 명예, 권세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고전 4:20).
따라서 믿음의 5단계에서는 수많은 영혼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할 수 있는 권능을 받기 위해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무수한 기도를 쌓아갑니다. 이러한 기도가 쌓이면 표적과 기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을 소유한 증거이지요.
요한복음 4장 48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하시며 공생애 기간 동안 수많은 표적과 기사를 나타내셨습니다. 표적과 기사로써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면 많은 영혼에게 쉽게 믿음을 심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온 영의 사람이 받는 축복
1) 하나님과 항상 교통하며 깊은 사랑을 나누는 행복
믿음의 5단계에 이르러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행복이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영육 간에 많은 축복을 받는 것도 행복하지만 그중 가장 큰 행복은 하나님과 항상 교통하며 깊은 사랑을 나누는 일이지요. 온 영으로 들어간 사람은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어떤 기쁨과 행복보다 더한 충만함이 늘 마음에 채워져 있습니다. 혼자 있어도, 길을 걸어도, 사람들을 만나도, 무엇을 보고 들을 때에도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며 범사에 그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2) 무엇이든 즉시 응답받는 차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가진 온 영의 사람은 마음에 품기만 해도 신속하게 응답을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에게 공의에 합당하게 응답하십니다. 공의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일곱 영’의 측정이지요.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일곱 가지 분야 곧 믿음, 기쁨, 기도, 감사, 계명 지킴, 충성, 사랑을 측정하여 일정한 기준치에 합격할 때 응답을 주십니다.
온 영의 사람은 성결되어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없을 뿐 아니라 영의 열매들이 마음 가득 채워져 있기에 일곱 영의 측정 시 모든 분야에서 합격점을 받습니다. 그러니 무엇이든 즉시 응답받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을 닮은 마음으로 하나님 뜻에 합당한 것만 구하기 때문에 매번 넘치도록 응답을 받습니다.
3) 범사에 명철의 길을 찾는 차원
깨끗하고 맑은 마음을 이룬 만큼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온 영의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기 때문에 위험한 길은 피하고 늘 형통한 축복이 임합니다. 또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해결 방법을 알아 늘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만 들어가도 성결된 마음에 성령의 음성을 비교적 정확하게 들으므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면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더욱 분명히 알게 됩니다.
믿음의 5단계에서 더 깊은 차원에 들어갈수록 하나님의 뜻에 맞는 방법론까지 온전하게 깨달아집니다.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 깨달음으로 방법론까지 주관받는 것이 바로 믿음의 5단계에서 체험하는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여 온 영의 사람이 되면 하나님께 속한 권능이 나타나고 넘치는 축복이 임하며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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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5단계는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순종할 뿐 아니라 ‘왜 그것을 명하시는지? 하나님의 ( )과 ( )을 헤아려서 명하신 것 이상으로 넘치게 순종한다.
2. 믿음의 5단계 특징과 온 영의 사람이 받는 축복에 대해 알고 있나요?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50~25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기사와 표적이란?
‘기사’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천기를 움직이는 것으로 주로 기상 현상과 관계된다. 구름을 움직이고 비를 오게 하거나 멎게 하는 것, 천체를 움직이는 것 등이 여기에 속한다(삼상 12:18, 수 10:13, 약 5:17~18).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역사를 말한다.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의 역사이다(막 16:17~18).
2016-12-02
제48과육의 흔적을 변환시켜 성정대로 쓰임 받기까지
히 10:22
읽을말씀 : 히 10:22 | 외울말씀 : 벧후 1:4 ㅣ 참고 말씀: 살전 5:23
교육목표 : 육의 흔적을 완전히 변환시킨 후 자기만이 가진 성정의 특징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한다.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영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일단 깨끗한 마음 그릇이 준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그릇에 영의 내용물들을 채워 나가기 시작한 상태를 ‘결여’라 하고 그릇의 반쯤 넘어선 상태를 ‘부족’이라 합니다. 그릇에 영의 내용물을 완전히 채우면 ‘온 영’이라 하지요. 그런데 4단계 80%부터 5단계 50% 미만까지는 아직 곳곳에 빈 공간이 조금은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믿음의 5단계 50%를 넘어야 빈 공간까지도 완전히 채웠다 할 수 있습니다.
1. 육의 흔적을 변환시키는 과정
어떤 사람은 덕과 사랑이 넘치지만 기질적으로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지 않아 끊어야 할 때 정확히 끊지 못합니다. 베풀기는 즐겨하는데 기분에 따라 즉흥적인 사람도 있고, 성실하고 바른 모습이지만 다소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으로 들어오면 이런 성품이나 기질적인 면이 악의 모양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육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한 영의 마음과는 차이가 납니다.
육의 흔적 중에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영적으로 결여되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온 영의 사람이 되지요. 이것을 ‘육의 흔적의 변환’이라 합니다. 육의 흔적이 신의 성품 안에 녹아지면서 영적인 것으로 변한다는 의미로서 인성도 사람의 인성이 아닌 신의 성품에 속한 인성으로 바뀝니다.
가령, 소극적인 사람은 그의 소극적인 면이 섬세함으로 승화됩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면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승화되지요. 또한 사리 판단이 빠르고 꾀가 있는 사람은 지혜롭고 민첩하게 바뀝니다. 답답하고 무딘 사람이라도 그 장점을 살려 진중한 모습으로 변환되지요. 이처럼 육의 흔적을 변환시켜 나가는 과정은 믿음의 4단계부터 믿음의 5단계 50%를 넘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2. 결여를 채우는 육의 흔적의 변환 1단계
믿음의 4단계 50% 미만에서는 육의 흔적으로 인한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결여란 아예 없거나 조금밖에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랑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은 사랑의 분야에 결여가 생깁니다. 영으로 들어와 마음에 악은 없다 해도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일방적으로 보듬어 주고 용서만 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여기기도 하고, 반대로 일방적으로 질책하고 책망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하기도 하지요.
부모로부터 따뜻한 관심과 이해와 용서를 받고 때로는 잘못에 대해 책망과 체벌을 적절히 받으며 이것이 부모의 사랑임을 깨달은 사람은 단지 용서하고 품어 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책망하고 외면하는 것도 사랑임을 마음에서 깨닫게 됩니다. 반면에 무조건적인 이해와 사랑만 받으며 성장하거나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성장하게 되면 사랑의 결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상대를 보듬어야 할지, 책망하고 외면해야 할지, 용서하고 품어야 할지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성장하면서 생긴 사랑의 결여를 채워야 온전한 영의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영의 지식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 지식으로 쌓아 왔다고는 하나 자기 마음을 온전히 영으로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그것이 결여로 자리 잡은 경우입니다. 영의 깊이가 더할수록 말씀을 깨닫고 적용하는 차원이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그러나 영의 지식이 결여된 사람은 자기가 마음에 이룬 한계 안에서만 그 말씀을 적용하므로 때로는 원하는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선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이 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감정이 없고 마음이 요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선에 비하면 아직은 소극적인 수준의 선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선은 악한 상대에게 나쁜 감정이 없음은 물론, 선대하고 감동을 주어 그를 변화시키는 차원입니다. 나아가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차원이지요. 이러한 온전한 선에 비교해 볼 때 거리가 멀다 할 수 있으므로 ‘결여’라고 합니다.
비유를 들면, 규정 속도가 60km인 1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뒤에서 비상등을 켠 차가 급속도로 달려옵니다. 이때 온전한 선의 결여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교통법규를 준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뒤따라 오는 운전자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 차가 추월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될 때까지만이라도 조금 빨리 달려 주면 될 텐데, 교통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한계 안에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3. 부족을 채우는 육의 흔적의 변환 2단계
믿음의 4단계 50% 이상 80% 미만에서는 육의 흔적으로 인해 부족 현상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부족’이란 온 영의 차원과 비교할 때 아직은 부족하다는 의미로서, 아예 없거나 조금밖에 없는 ‘결여?와는 다릅니다. 그렇다면 온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해 채워야 할 분야는 무엇일까요?
먼저, 사랑의 부족을 채워야 합니다. 가령,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해 주기로 했을 때, 어느 선까지 해야 할지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되, 어떤 때는 선을 그어야 하고, 어떤 때는 도가 넘치도록 해 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똑같이 이해하고 품는다 해도 어떤 경우는 선을 그어 상대가 스스로 일어나게 하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넘치는 위로와 격려를 통해 상대가 힘을 얻고 변화되도록 해야 하지요. 따라서 더 깊이 있고, 섬세한 사랑의 차원을 깨달아 부족한 분야를 채워야 합니다.
다음으로, 영의 지식의 부족을 채워야 합니다. 똑같은 영의 지식이라도 마음을 얼마나 영으로 이뤘느냐에 따라 활용 범위와 방법이 달라집니다. 한 가지 영의 지식을 열 가지로 활용하고 적용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영의 지식이 부족하면 아직 대여섯 가지로밖에 활용하지 못하지요.
만일 어떤 여 성도가 이혼 문제로 상담을 요청했는데 무조건 ‘이혼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만 적용합니다. 물론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남편의 심한 핍박으로 인해 아내가 구원의 길에서 멀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경우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깊이 있게 깨달아 오직 성령의 감동 속에 영의 지식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더욱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선의 부족입니다. 가령, 규정 속도가 60km인 1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비상등을 켠 차가 급속도로 달려옵니다. 이때 온전한 선이 부족한 사람은 뒤차의 입장을 생각해 빨리 달릴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최대한 상대를 배려하지만 매번 그렇게 행하지는 못하지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결여에 해당되지만, 배려하되 항상 그런 것이 아니라면 부족입니다.
4. 육의 흔적의 변환을 통해 성정대로 쓰임 받기까지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육의 흔적이 변환되는 과정을 거쳐 믿음의 5단계에서 온전히 변환되면 그때부터는 ‘성정’ 즉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적인 면’이 신의 성품 안에서 아름답게 발휘됩니다. 전에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이 육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함을 이루는 데 장애물이 되었다면, 육의 흔적을 온전히 변환시킨 후부터는 그만의 특별한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80%부터 5단계 5% 미만은 아직 육의 흔적이 온전히 변환되어서 활용해 나가는 단계는 아닙니다. 육의 흔적이 나올 때도 있고, 변환되어 나올 때도 있어서 스스로 ‘내가 영인가, 온 영인가?’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4단계 80%부터는 온 영으로 인정해 주시며 그를 친히 주관하여 이끌어 가십니다.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등은 육의 흔적을 완전히 변환시킨 후, 자기만이 가진 성정의 특징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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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을 채워 보세요.
1. 육의 흔적 중에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영적으로 결여되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온 영의 사람이 된다. 이것을 ( )이라 한다.
2.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육의 흔적이 변환되는 과정을 거쳐 믿음의 5단계에서 온전히 변환되면 그때부터는 ( ) 즉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적인 면’이 신의 성품 안에서 아름답게 발휘된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41~24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육의 흔적을 변환시킨 뒤 성정대로 쓰임 받은 모세
모세는 자기 동족을 때리는 애굽 사람을 쳐 죽일 만큼 의분이 있고 급한 성품도 있었다. 하지만 변화된 후에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하다고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예전의 의분과 급한 성품이 백성을 향한 열정으로 바뀌었다.
뜨거운 성품이 있기에 온전히 변화된 후에는 수많은 백성을 마음 안에 다 담을 수 있는 큰 자가 되었다. 만약 모세가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한 성품이었다면, 백성들을 향한 열정으로 출애굽의 지도자 사명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교육목표 : 육의 흔적을 완전히 변환시킨 후 자기만이 가진 성정의 특징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한다.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영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일단 깨끗한 마음 그릇이 준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그릇에 영의 내용물들을 채워 나가기 시작한 상태를 ‘결여’라 하고 그릇의 반쯤 넘어선 상태를 ‘부족’이라 합니다. 그릇에 영의 내용물을 완전히 채우면 ‘온 영’이라 하지요. 그런데 4단계 80%부터 5단계 50% 미만까지는 아직 곳곳에 빈 공간이 조금은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믿음의 5단계 50%를 넘어야 빈 공간까지도 완전히 채웠다 할 수 있습니다.
1. 육의 흔적을 변환시키는 과정
어떤 사람은 덕과 사랑이 넘치지만 기질적으로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지 않아 끊어야 할 때 정확히 끊지 못합니다. 베풀기는 즐겨하는데 기분에 따라 즉흥적인 사람도 있고, 성실하고 바른 모습이지만 다소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으로 들어오면 이런 성품이나 기질적인 면이 악의 모양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육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한 영의 마음과는 차이가 납니다.
육의 흔적 중에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영적으로 결여되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온 영의 사람이 되지요. 이것을 ‘육의 흔적의 변환’이라 합니다. 육의 흔적이 신의 성품 안에 녹아지면서 영적인 것으로 변한다는 의미로서 인성도 사람의 인성이 아닌 신의 성품에 속한 인성으로 바뀝니다.
가령, 소극적인 사람은 그의 소극적인 면이 섬세함으로 승화됩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면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승화되지요. 또한 사리 판단이 빠르고 꾀가 있는 사람은 지혜롭고 민첩하게 바뀝니다. 답답하고 무딘 사람이라도 그 장점을 살려 진중한 모습으로 변환되지요. 이처럼 육의 흔적을 변환시켜 나가는 과정은 믿음의 4단계부터 믿음의 5단계 50%를 넘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2. 결여를 채우는 육의 흔적의 변환 1단계
믿음의 4단계 50% 미만에서는 육의 흔적으로 인한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결여란 아예 없거나 조금밖에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랑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은 사랑의 분야에 결여가 생깁니다. 영으로 들어와 마음에 악은 없다 해도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일방적으로 보듬어 주고 용서만 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여기기도 하고, 반대로 일방적으로 질책하고 책망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하기도 하지요.
부모로부터 따뜻한 관심과 이해와 용서를 받고 때로는 잘못에 대해 책망과 체벌을 적절히 받으며 이것이 부모의 사랑임을 깨달은 사람은 단지 용서하고 품어 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책망하고 외면하는 것도 사랑임을 마음에서 깨닫게 됩니다. 반면에 무조건적인 이해와 사랑만 받으며 성장하거나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성장하게 되면 사랑의 결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상대를 보듬어야 할지, 책망하고 외면해야 할지, 용서하고 품어야 할지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성장하면서 생긴 사랑의 결여를 채워야 온전한 영의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영의 지식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 지식으로 쌓아 왔다고는 하나 자기 마음을 온전히 영으로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그것이 결여로 자리 잡은 경우입니다. 영의 깊이가 더할수록 말씀을 깨닫고 적용하는 차원이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그러나 영의 지식이 결여된 사람은 자기가 마음에 이룬 한계 안에서만 그 말씀을 적용하므로 때로는 원하는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선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이 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감정이 없고 마음이 요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선에 비하면 아직은 소극적인 수준의 선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선은 악한 상대에게 나쁜 감정이 없음은 물론, 선대하고 감동을 주어 그를 변화시키는 차원입니다. 나아가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차원이지요. 이러한 온전한 선에 비교해 볼 때 거리가 멀다 할 수 있으므로 ‘결여’라고 합니다.
비유를 들면, 규정 속도가 60km인 1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뒤에서 비상등을 켠 차가 급속도로 달려옵니다. 이때 온전한 선의 결여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교통법규를 준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뒤따라 오는 운전자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 차가 추월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될 때까지만이라도 조금 빨리 달려 주면 될 텐데, 교통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한계 안에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3. 부족을 채우는 육의 흔적의 변환 2단계
믿음의 4단계 50% 이상 80% 미만에서는 육의 흔적으로 인해 부족 현상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부족’이란 온 영의 차원과 비교할 때 아직은 부족하다는 의미로서, 아예 없거나 조금밖에 없는 ‘결여?와는 다릅니다. 그렇다면 온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해 채워야 할 분야는 무엇일까요?
먼저, 사랑의 부족을 채워야 합니다. 가령,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해 주기로 했을 때, 어느 선까지 해야 할지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되, 어떤 때는 선을 그어야 하고, 어떤 때는 도가 넘치도록 해 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똑같이 이해하고 품는다 해도 어떤 경우는 선을 그어 상대가 스스로 일어나게 하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넘치는 위로와 격려를 통해 상대가 힘을 얻고 변화되도록 해야 하지요. 따라서 더 깊이 있고, 섬세한 사랑의 차원을 깨달아 부족한 분야를 채워야 합니다.
다음으로, 영의 지식의 부족을 채워야 합니다. 똑같은 영의 지식이라도 마음을 얼마나 영으로 이뤘느냐에 따라 활용 범위와 방법이 달라집니다. 한 가지 영의 지식을 열 가지로 활용하고 적용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영의 지식이 부족하면 아직 대여섯 가지로밖에 활용하지 못하지요.
만일 어떤 여 성도가 이혼 문제로 상담을 요청했는데 무조건 ‘이혼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만 적용합니다. 물론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남편의 심한 핍박으로 인해 아내가 구원의 길에서 멀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경우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깊이 있게 깨달아 오직 성령의 감동 속에 영의 지식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더욱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선의 부족입니다. 가령, 규정 속도가 60km인 1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비상등을 켠 차가 급속도로 달려옵니다. 이때 온전한 선이 부족한 사람은 뒤차의 입장을 생각해 빨리 달릴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최대한 상대를 배려하지만 매번 그렇게 행하지는 못하지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결여에 해당되지만, 배려하되 항상 그런 것이 아니라면 부족입니다.
4. 육의 흔적의 변환을 통해 성정대로 쓰임 받기까지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육의 흔적이 변환되는 과정을 거쳐 믿음의 5단계에서 온전히 변환되면 그때부터는 ‘성정’ 즉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적인 면’이 신의 성품 안에서 아름답게 발휘됩니다. 전에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이 육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함을 이루는 데 장애물이 되었다면, 육의 흔적을 온전히 변환시킨 후부터는 그만의 특별한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80%부터 5단계 5% 미만은 아직 육의 흔적이 온전히 변환되어서 활용해 나가는 단계는 아닙니다. 육의 흔적이 나올 때도 있고, 변환되어 나올 때도 있어서 스스로 ‘내가 영인가, 온 영인가?’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4단계 80%부터는 온 영으로 인정해 주시며 그를 친히 주관하여 이끌어 가십니다.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등은 육의 흔적을 완전히 변환시킨 후, 자기만이 가진 성정의 특징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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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을 채워 보세요.
1. 육의 흔적 중에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영적으로 결여되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온 영의 사람이 된다. 이것을 ( )이라 한다.
2.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육의 흔적이 변환되는 과정을 거쳐 믿음의 5단계에서 온전히 변환되면 그때부터는 ( ) 즉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적인 면’이 신의 성품 안에서 아름답게 발휘된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41~24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육의 흔적을 변환시킨 뒤 성정대로 쓰임 받은 모세
모세는 자기 동족을 때리는 애굽 사람을 쳐 죽일 만큼 의분이 있고 급한 성품도 있었다. 하지만 변화된 후에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하다고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예전의 의분과 급한 성품이 백성을 향한 열정으로 바뀌었다.
뜨거운 성품이 있기에 온전히 변화된 후에는 수많은 백성을 마음 안에 다 담을 수 있는 큰 자가 되었다. 만약 모세가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한 성품이었다면, 백성들을 향한 열정으로 출애굽의 지도자 사명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2016-11-25
제47과선과 사랑을 채워 가는 믿음의 4단계
엡 4:13
읽을말씀 : 엡 4:13 | 외울말씀 : 빌 3:14 ㅣ 참고 말씀: 벧후 1:4~7
교육목표 : 불같은 기도로 자기를 깨뜨림으로 영의 정체기를 겪지 않고 신속히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온전한 영의 열매가 되게 한다.
믿음의 3단계는 마음의 악을 버려가는 단계이므로 악을 버린 만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힐 조짐을 보입니다.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열매가 100% 맺히면 온 영, 곧 믿음의 5단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서도 모든 열매가 얼마나 온전히 익었느냐에 따라 더 깊은 온 영의 차원에 이르러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밝히 깨닫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 믿음의 5단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100으로 나눈다면 1~10% 미만까지는 초입이라고 합니다. 10~20% 미만은 정체기, 20~50% 미만은 중엽, 50% 이상은 말엽이라 할 수 있지요.
1. 영의 열매가 온전치 않은 믿음의 4단계 초입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스스로 보기에 악은 다 버린 것 같지만 “내가 영으로 들어갔다.”라고 자신 있게 고백하기에는 조금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믿음의 3단계 말엽인지, 아니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왔는지 정확히 분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서 볼 때도 악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저 사람은 확실히 영의 사람이다.”라고 인정하기에는 주저할 수 있지요.
그러면 믿음의 4단계 초입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첫째, 열매가 온전치 못합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불순종하려는 마음이 없고, 항상 순종할 자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명심하여 그대로 행하고자 합니다. 그런데도 열매가 온전치 않은 것은, 마음에 맺힌 영의 열매가 온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온유하기는 한데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다든가, 충성은 하는데 화평의 열매가 온전치 못하기도 합니다. 또 사랑한다 해도 영적인 사랑이 온전히 맺힌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아직 영의 열매들이 마음에 온전히 맺힌 것이 아니므로 실제 보이는 열매 역시 온전치 못합니다. 부흥의 열매를 못 내기도 하고, 일 처리도 완벽하지 못하지요. 또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음에도 어느 선에서 멈춰 버립니다.
둘째, 마음에 악은 없지만 온전한 선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악한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주변 사람을 어렵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악을 행치는 않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선이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를 온전히 배려하지 못하거나 상대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해 주지 못합니다. 선하다 하지만 온전한 선이 아닌 것입니다. 또는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일이 지체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남에게는 비겁함이나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하지요. 악은 벗었지만 아직 마음에 진리가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으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온전한 선이 아닌 모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셋째, 육체의 결여가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 말엽에 있는 사람 중에도 육체의 결여 때문에 믿음 성장이 지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4단계 초입에 들어온 사람의 육체의 결여는 3단계 말엽의 결여와는 다릅니다. 악은 다 버렸으되 더 온전한 열매를 내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지요.
예를 들면, 성격적인 결여로 인해 나서야 할 때도 잠잠히 있는 경우, 성장 과정에서 생긴 결여로 인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 불편한 마음이나 감정은 없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섬겨 주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볼 때도 아직 온전하다 생각지 않을 수 있습니다.
2. 불같은 기도가 필요한 믿음의 4단계 정체기
믿음의 3단계에서 불같은 기도를 쌓았고 자기 의와 틀을 깨뜨리는 연단의 과정을 잘 겪었다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서 정체기 없이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빠르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10~20% 미만에 머물러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영의 정체기’라고 합니다.
비록 영의 초입에는 들어왔다 해도 더 이상 사모함을 갖지 못한 채 영의 세계를 뚫어 들어가지 않으면 결국 정체 현상을 겪게 됩니다.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같은 기도를 통해 ‘자기’가 온전히 깨어지고 없어야 합니다.
여기서 ‘자기’란, 영으로 들어오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육에 속한 자기’와는 다릅니다. 영으로 들어와서도 하나님의 뜻과 하나를 이루어 가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또 다른 자기’를 말합니다. 또한 영으로 들어오면 악이 나오지는 않지만 온전한 선의 마음, 온전한 영의 열매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도 채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때 불같이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을 발견할 수 없고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불같은 기도가 중요합니다.
3. 주님의 향이 나는 믿음의 4단계 중엽
이 단계에만 들어와도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많은 일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서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첫째, ‘육의 흔적’에 의한 육체의 결여가 조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육의 흔적이란, 성장하면서 습득한 여러 지식과 경험, 부모에게 전달받은 성품이나 기질 등이 영으로 들어가도 흔적처럼 남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나타나는 육체의 결여는 악의 모양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타고난 기 속에서 형성된 각 사람의 ‘성정’에 관한 분야이지요.
성정이란 간단히 말해 ‘타고난 본성?입니다. 어떤 이는 소극적이고 어떤 이는 적극적이며, 어떤 이는 무디고 어떤 이는 예민합니다. 이처럼 타고난 성정으로 인해 성격이나 행동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믿음의 4단계 50% 미만까지는 이렇게 성정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여를 다듬는 과정입니다.
둘째, 주님의 향이 납니다.
이때부터는 모든 것이 주의 교양으로 바뀌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 주님이 저렇게 하셨겠구나.” 하고 은혜를 받습니다. 이 차원에 들어오면 모든 분야에서 영의 열매가 무르익어 가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지 주님의 향을 내며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습니다.
셋째, 사랑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믿음의 4단계 20%를 넘어가면 영의 사랑이 점점 더 온전해집니다. 이와 더불어 덕까지 갖춰 많은 사람을 마음으로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사랑으로 바라봐 주고 품어 주니 그에게서 영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영의 사랑이 결국 수많은 영혼을 변화시키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힘이 되므로 풍성한 영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4.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가는 믿음의 4단계 말엽
믿음의 4단계 50% 이상이 되면 육체의 결여된 분야가 없고 이때는 자기가 얼마든지 누릴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기꺼이 포기합니다. 주님을 위해 생명까지 드릴 수 있고 하나님과 신뢰관계가 더욱 온전해집니다. 물론 모든 면이 온전해지려면 당연히 온 영의 차원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믿음의 4단계 50%만 넘어도 그만큼 온전함에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이 단계에서는 선과 사랑, 영의 지식을 조금만 더 채우면 믿음의 4단계 80%를 넘어 온 영의 차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영의 차원에서 깊이 들어올수록 1%를 채운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1% 채우는 것과,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 1% 채우는 것, 그리고 믿음의 4단계에서도 더 깊이 들어와 1%를 채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으로 깊이 들어올수록 더 깊고 세미한 분야까지 깨우쳐 변화되어야 비로소 1%가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4단계 80%부터 친히 연단하시며 믿음의 5단계 곧 온 영의 차원에 진입하여 믿음의 선진들처럼 성정대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야(벧후 1:4~7)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룰 수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1. 믿음의 3단계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힐 조짐을 보인다.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 )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열매가 ( ) 맺히면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2. ( )이란, 성장하면서 습득한 여러 지식과 경험, 부모에게 전달받은 성품이나 기질 등이 영으로 들어가도 흔적처럼 남는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32~24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은?
온전한 빛의 차원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빛에 흡수되어도 좋을 만큼의 온전한 빛을 이루어 근본 하나님이 계신 4차원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근본 하나님이 계신 4차원의 공간은 빛 가운데 소리를 머금고 계신 공간으로서 온전한 참 빛을 이룬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들어갈 수 있다.
교육목표 : 불같은 기도로 자기를 깨뜨림으로 영의 정체기를 겪지 않고 신속히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온전한 영의 열매가 되게 한다.
믿음의 3단계는 마음의 악을 버려가는 단계이므로 악을 버린 만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힐 조짐을 보입니다.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열매가 100% 맺히면 온 영, 곧 믿음의 5단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서도 모든 열매가 얼마나 온전히 익었느냐에 따라 더 깊은 온 영의 차원에 이르러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밝히 깨닫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 믿음의 5단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100으로 나눈다면 1~10% 미만까지는 초입이라고 합니다. 10~20% 미만은 정체기, 20~50% 미만은 중엽, 50% 이상은 말엽이라 할 수 있지요.
1. 영의 열매가 온전치 않은 믿음의 4단계 초입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스스로 보기에 악은 다 버린 것 같지만 “내가 영으로 들어갔다.”라고 자신 있게 고백하기에는 조금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믿음의 3단계 말엽인지, 아니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왔는지 정확히 분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서 볼 때도 악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저 사람은 확실히 영의 사람이다.”라고 인정하기에는 주저할 수 있지요.
그러면 믿음의 4단계 초입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첫째, 열매가 온전치 못합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불순종하려는 마음이 없고, 항상 순종할 자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명심하여 그대로 행하고자 합니다. 그런데도 열매가 온전치 않은 것은, 마음에 맺힌 영의 열매가 온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온유하기는 한데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다든가, 충성은 하는데 화평의 열매가 온전치 못하기도 합니다. 또 사랑한다 해도 영적인 사랑이 온전히 맺힌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아직 영의 열매들이 마음에 온전히 맺힌 것이 아니므로 실제 보이는 열매 역시 온전치 못합니다. 부흥의 열매를 못 내기도 하고, 일 처리도 완벽하지 못하지요. 또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음에도 어느 선에서 멈춰 버립니다.
둘째, 마음에 악은 없지만 온전한 선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악한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주변 사람을 어렵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악을 행치는 않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선이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를 온전히 배려하지 못하거나 상대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해 주지 못합니다. 선하다 하지만 온전한 선이 아닌 것입니다. 또는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일이 지체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남에게는 비겁함이나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하지요. 악은 벗었지만 아직 마음에 진리가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으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온전한 선이 아닌 모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셋째, 육체의 결여가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 말엽에 있는 사람 중에도 육체의 결여 때문에 믿음 성장이 지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4단계 초입에 들어온 사람의 육체의 결여는 3단계 말엽의 결여와는 다릅니다. 악은 다 버렸으되 더 온전한 열매를 내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지요.
예를 들면, 성격적인 결여로 인해 나서야 할 때도 잠잠히 있는 경우, 성장 과정에서 생긴 결여로 인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 불편한 마음이나 감정은 없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섬겨 주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볼 때도 아직 온전하다 생각지 않을 수 있습니다.
2. 불같은 기도가 필요한 믿음의 4단계 정체기
믿음의 3단계에서 불같은 기도를 쌓았고 자기 의와 틀을 깨뜨리는 연단의 과정을 잘 겪었다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서 정체기 없이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빠르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10~20% 미만에 머물러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영의 정체기’라고 합니다.
비록 영의 초입에는 들어왔다 해도 더 이상 사모함을 갖지 못한 채 영의 세계를 뚫어 들어가지 않으면 결국 정체 현상을 겪게 됩니다.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같은 기도를 통해 ‘자기’가 온전히 깨어지고 없어야 합니다.
여기서 ‘자기’란, 영으로 들어오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육에 속한 자기’와는 다릅니다. 영으로 들어와서도 하나님의 뜻과 하나를 이루어 가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또 다른 자기’를 말합니다. 또한 영으로 들어오면 악이 나오지는 않지만 온전한 선의 마음, 온전한 영의 열매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도 채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때 불같이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을 발견할 수 없고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불같은 기도가 중요합니다.
3. 주님의 향이 나는 믿음의 4단계 중엽
이 단계에만 들어와도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많은 일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서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첫째, ‘육의 흔적’에 의한 육체의 결여가 조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육의 흔적이란, 성장하면서 습득한 여러 지식과 경험, 부모에게 전달받은 성품이나 기질 등이 영으로 들어가도 흔적처럼 남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나타나는 육체의 결여는 악의 모양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타고난 기 속에서 형성된 각 사람의 ‘성정’에 관한 분야이지요.
성정이란 간단히 말해 ‘타고난 본성?입니다. 어떤 이는 소극적이고 어떤 이는 적극적이며, 어떤 이는 무디고 어떤 이는 예민합니다. 이처럼 타고난 성정으로 인해 성격이나 행동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믿음의 4단계 50% 미만까지는 이렇게 성정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여를 다듬는 과정입니다.
둘째, 주님의 향이 납니다.
이때부터는 모든 것이 주의 교양으로 바뀌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 주님이 저렇게 하셨겠구나.” 하고 은혜를 받습니다. 이 차원에 들어오면 모든 분야에서 영의 열매가 무르익어 가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지 주님의 향을 내며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습니다.
셋째, 사랑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믿음의 4단계 20%를 넘어가면 영의 사랑이 점점 더 온전해집니다. 이와 더불어 덕까지 갖춰 많은 사람을 마음으로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사랑으로 바라봐 주고 품어 주니 그에게서 영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영의 사랑이 결국 수많은 영혼을 변화시키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힘이 되므로 풍성한 영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4.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가는 믿음의 4단계 말엽
믿음의 4단계 50% 이상이 되면 육체의 결여된 분야가 없고 이때는 자기가 얼마든지 누릴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기꺼이 포기합니다. 주님을 위해 생명까지 드릴 수 있고 하나님과 신뢰관계가 더욱 온전해집니다. 물론 모든 면이 온전해지려면 당연히 온 영의 차원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믿음의 4단계 50%만 넘어도 그만큼 온전함에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이 단계에서는 선과 사랑, 영의 지식을 조금만 더 채우면 믿음의 4단계 80%를 넘어 온 영의 차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영의 차원에서 깊이 들어올수록 1%를 채운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1% 채우는 것과,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 1% 채우는 것, 그리고 믿음의 4단계에서도 더 깊이 들어와 1%를 채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으로 깊이 들어올수록 더 깊고 세미한 분야까지 깨우쳐 변화되어야 비로소 1%가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4단계 80%부터 친히 연단하시며 믿음의 5단계 곧 온 영의 차원에 진입하여 믿음의 선진들처럼 성정대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야(벧후 1:4~7)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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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1. 믿음의 3단계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힐 조짐을 보인다.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 )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열매가 ( ) 맺히면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2. ( )이란, 성장하면서 습득한 여러 지식과 경험, 부모에게 전달받은 성품이나 기질 등이 영으로 들어가도 흔적처럼 남는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32~24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은?
온전한 빛의 차원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빛에 흡수되어도 좋을 만큼의 온전한 빛을 이루어 근본 하나님이 계신 4차원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근본 하나님이 계신 4차원의 공간은 빛 가운데 소리를 머금고 계신 공간으로서 온전한 참 빛을 이룬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들어갈 수 있다.
2016-11-18
제46과하나님께 감사
출 23:16
읽을말씀 : 출 23:16 | 외울말씀 : 시 17:8 l 참고 말씀: 레 23:42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알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스럽고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될까요?
1.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의 계절을 맞아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절기 중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장절은 원래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추수할 수 있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확한 곡식을 저장한 후 ‘추수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는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레위기 23장 34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지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23장 42~43절에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감동적인 추수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수장절은 출애굽하여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심과,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2. 청교도들의 신앙과 추수감사절
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의 개척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도착한 그곳은 혹독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지요.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 첫 추수감사절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지낸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
먼저, 이 세상의 수많은 질병, 사고, 재앙으로부터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명명된 병만 해도 약 1억 2천 2백만 개가 넘습니다. 이중에는 세상 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도 심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 마약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와 명예, 권세도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살하기도 하지요.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병, 의학으로 밝힐 수 없는 병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셨습니다.
여 성도 한 분은 ‘양수 과소증’으로 도저히 살릴 길 없었던 태아를 기도를 받고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양수가 거의 없는 태반 속에서 그 연약한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남았지요. 또 한 분은 급성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진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병원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던 중 통회자복을 한 후 기도를 받았는데 수술을 받지 않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재앙과 사고로부터도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지구는 대지진과 가뭄과 산불, 태풍,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지켜 주십니다.
혹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철저히 돌이키고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해결됩니다. 시편 17편 8절에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다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원한 천국 소망을 주시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소망이 온전해지도록 은혜와 감동을 주십니다.
전 세계 수많은 성도들이 『천국』 책자를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해졌습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저도 새 예루살렘 성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말씀한 대로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까지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로 양육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찬양이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알곡처럼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더욱 사랑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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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어떻게 하면 질병, 사고, 재앙을 만나지 않고 지킴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3. 올 한 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감사의 조건들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추수감사절을 맞아 늘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다해
감사드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진주문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열두 개의 문이 있다. 문마다 큰 천사가 지키고 있어 성의 위엄과 권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참을 올려다볼 정도로 큰 아치형의 문 전체가 하나의 영롱한 진주로 되어 있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며 황금보석 손잡이가 달려 있으나 굳이 손으로 열지 않아도 저절로 열린다.
열두 진주문을 통과하려면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 내기까지 고통을 인내한 것처럼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여 승리했을 때 들어갈 수 있다.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알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스럽고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될까요?
1.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의 계절을 맞아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절기 중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장절은 원래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추수할 수 있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확한 곡식을 저장한 후 ‘추수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는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레위기 23장 34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지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23장 42~43절에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감동적인 추수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수장절은 출애굽하여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심과,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2. 청교도들의 신앙과 추수감사절
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의 개척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도착한 그곳은 혹독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지요.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 첫 추수감사절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지낸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
먼저, 이 세상의 수많은 질병, 사고, 재앙으로부터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명명된 병만 해도 약 1억 2천 2백만 개가 넘습니다. 이중에는 세상 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도 심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 마약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와 명예, 권세도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살하기도 하지요.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병, 의학으로 밝힐 수 없는 병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셨습니다.
여 성도 한 분은 ‘양수 과소증’으로 도저히 살릴 길 없었던 태아를 기도를 받고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양수가 거의 없는 태반 속에서 그 연약한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남았지요. 또 한 분은 급성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진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병원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던 중 통회자복을 한 후 기도를 받았는데 수술을 받지 않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재앙과 사고로부터도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지구는 대지진과 가뭄과 산불, 태풍,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지켜 주십니다.
혹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철저히 돌이키고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해결됩니다. 시편 17편 8절에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다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원한 천국 소망을 주시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소망이 온전해지도록 은혜와 감동을 주십니다.
전 세계 수많은 성도들이 『천국』 책자를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해졌습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저도 새 예루살렘 성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말씀한 대로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까지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로 양육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찬양이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알곡처럼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더욱 사랑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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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어떻게 하면 질병, 사고, 재앙을 만나지 않고 지킴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3. 올 한 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감사의 조건들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추수감사절을 맞아 늘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다해
감사드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진주문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열두 개의 문이 있다. 문마다 큰 천사가 지키고 있어 성의 위엄과 권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참을 올려다볼 정도로 큰 아치형의 문 전체가 하나의 영롱한 진주로 되어 있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며 황금보석 손잡이가 달려 있으나 굳이 손으로 열지 않아도 저절로 열린다.
열두 진주문을 통과하려면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 내기까지 고통을 인내한 것처럼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여 승리했을 때 들어갈 수 있다.
2016-11-11
제45과영혼이 잘되어 만사형통한 믿음의 4단계
요 1:2
읽을말씀 : 요 1:2 | 외울말씀 : 빌 3:8 l 참고 말씀: 요일 3:21~22
교육목표 :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림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는 영의 사람이 되게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이 많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계명을 지켜 행하면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까지는 열심히 심은 대로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넘치게 부어 주십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오면 마음의 죄성까지 버린 ‘영의 사람’이기에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영혼이 잘되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지요.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1.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영과 혼과 육의 질서가 바로잡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난 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영이 주인으로서 혼과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상태이지요.
원래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지으셨습니다. 생령인 아담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 그리고 영의 지배를 받는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범죄하자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영이 죽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영이 소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영의 활동이 중지되었다는 뜻입니다. 영이 죽으니 영의 지배를 받던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혼’이란 두뇌의 기억 장치와 그 안에 담긴 모든 지식, 그리고 그것을 떠올리고 활용하는 모든 작용을 총칭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체험한 것을 기억하고 떠올려 활용하는 것이 다 혼의 작용이지요.
영이 주인 역할을 할 때는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진리의 지식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자 원수 마귀 사단이 혼을 통해 사람을 주관해 가니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의 마음은 비진리로 물들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은 혼과 육으로 지어진 짐승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전도서 3장 18절에 보면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시고, 그를 영접하는 자마다 죽었던 영이 살아나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며, 나아가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는 만큼 마음에 비진리는 벗어지고 진리로 채워집니다. 이것이 곧 성령으로 영을 낳는 것이며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우리 마음이 진리로 채워지면 하나님께서 처음 지으신 사람의 형상을 되찾게 되는데 바로 이 상태를 ‘영혼이 잘됐다? 하는 것입니다.
2.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큰 영광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린 상태이므로 영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 ‘영의 사람?이라 부릅니다. 영이 혼을 지배하면 말씀인 진리가 마음 전체를 사로잡으니 자기 생각이나 자기 뜻이 동원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을 온전히 주관하시니 시험 환난을 피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지킴을 받습니다.
영혼이 잘된 사람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시며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다?는 것은 질병 없이 몸이 건강한 것만이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가 잘되고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영의 사람은 범죄하지 않으므로 영적인 권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육적인 분야에서도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구하여 응답을 받습니다.
우선, 성령의 주관을 받으니 범사가 형통합니다. 믿음의 4단계는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차원이 아니라 마음 자체가 진리로 변화되었기에 저절로 진리의 행함이 나오는 단계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면 건강의 축복을 받습니다. 죄가 없기에 질병이나 연약함으로 고통받지 않습니다. 항상 성령의 불담으로 지킴 받으니 질병이 틈타지 않을 뿐 아니라 혹여 틈탔다 해도 기도하면 즉시 성령의 불로 태움 받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보면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뒤에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말씀하십니다. 죄로 인해 병이 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 치료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하신 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질의 축복도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축복을 주십니다. 따라서 영의 사람이 되기 전에도 믿음으로 심고 구할 때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곧 두 배 이상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영의 사람이 되면 하나를 심어도 30배, 60배 이상 거두며, 나아가 믿음의 5단계, 온 영의 사람이 되면 60배, 100배로도 거둡니다.
마태복음 13장 23절에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축복받을 만한 일이나 별다른 기술이나 재능이 없다 해도 영으로 들어가면 신명기 28장 약속의 말씀이 임하는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2~6)
이뿐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면 가정복음화가 이뤄집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면 그로 인해 그 가정까지 구원을 받습니다.
영으로 들어오는 만큼 영적인 권세가 따르므로 가족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전도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수 없고 상대도 그 선과 사랑에 더 쉽게 마음 문을 열게 됩니다.
영의 사람이 되면 범사에 섬기고 낮아지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씀씀이, 사소한 말 한마디와 행동도 아름답고 선하게 나타납니다. 착한 행실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주변을 감동시키고 하나님께서도 감동하심으로 범사에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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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세요.
1. ( )는 것은, 영과 혼과 육의 질서가 바로잡히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난 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영이 주인으로서 혼과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상태이다.
2. ( )는 것은 질병 없이 몸이 건강한 것만이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가 잘되고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23~23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영이란?
‘썩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이요, ‘영원하며 참된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이시라’ 하는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이처럼 거룩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속성 중 일부를 나눠 주셨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은 생령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아담은 범죄함으로 육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육으로 변질된 사람에게 있어 반드시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교육목표 :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림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는 영의 사람이 되게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이 많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계명을 지켜 행하면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까지는 열심히 심은 대로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넘치게 부어 주십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오면 마음의 죄성까지 버린 ‘영의 사람’이기에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영혼이 잘되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지요.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1.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영과 혼과 육의 질서가 바로잡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난 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영이 주인으로서 혼과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상태이지요.
원래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지으셨습니다. 생령인 아담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 그리고 영의 지배를 받는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범죄하자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영이 죽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영이 소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영의 활동이 중지되었다는 뜻입니다. 영이 죽으니 영의 지배를 받던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혼’이란 두뇌의 기억 장치와 그 안에 담긴 모든 지식, 그리고 그것을 떠올리고 활용하는 모든 작용을 총칭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체험한 것을 기억하고 떠올려 활용하는 것이 다 혼의 작용이지요.
영이 주인 역할을 할 때는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진리의 지식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자 원수 마귀 사단이 혼을 통해 사람을 주관해 가니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의 마음은 비진리로 물들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은 혼과 육으로 지어진 짐승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전도서 3장 18절에 보면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시고, 그를 영접하는 자마다 죽었던 영이 살아나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며, 나아가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는 만큼 마음에 비진리는 벗어지고 진리로 채워집니다. 이것이 곧 성령으로 영을 낳는 것이며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우리 마음이 진리로 채워지면 하나님께서 처음 지으신 사람의 형상을 되찾게 되는데 바로 이 상태를 ‘영혼이 잘됐다? 하는 것입니다.
2.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큰 영광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린 상태이므로 영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 ‘영의 사람?이라 부릅니다. 영이 혼을 지배하면 말씀인 진리가 마음 전체를 사로잡으니 자기 생각이나 자기 뜻이 동원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을 온전히 주관하시니 시험 환난을 피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지킴을 받습니다.
영혼이 잘된 사람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시며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다?는 것은 질병 없이 몸이 건강한 것만이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가 잘되고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영의 사람은 범죄하지 않으므로 영적인 권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육적인 분야에서도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구하여 응답을 받습니다.
우선, 성령의 주관을 받으니 범사가 형통합니다. 믿음의 4단계는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차원이 아니라 마음 자체가 진리로 변화되었기에 저절로 진리의 행함이 나오는 단계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면 건강의 축복을 받습니다. 죄가 없기에 질병이나 연약함으로 고통받지 않습니다. 항상 성령의 불담으로 지킴 받으니 질병이 틈타지 않을 뿐 아니라 혹여 틈탔다 해도 기도하면 즉시 성령의 불로 태움 받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보면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뒤에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말씀하십니다. 죄로 인해 병이 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 치료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하신 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질의 축복도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축복을 주십니다. 따라서 영의 사람이 되기 전에도 믿음으로 심고 구할 때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곧 두 배 이상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영의 사람이 되면 하나를 심어도 30배, 60배 이상 거두며, 나아가 믿음의 5단계, 온 영의 사람이 되면 60배, 100배로도 거둡니다.
마태복음 13장 23절에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축복받을 만한 일이나 별다른 기술이나 재능이 없다 해도 영으로 들어가면 신명기 28장 약속의 말씀이 임하는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2~6)
이뿐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면 가정복음화가 이뤄집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면 그로 인해 그 가정까지 구원을 받습니다.
영으로 들어오는 만큼 영적인 권세가 따르므로 가족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전도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수 없고 상대도 그 선과 사랑에 더 쉽게 마음 문을 열게 됩니다.
영의 사람이 되면 범사에 섬기고 낮아지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씀씀이, 사소한 말 한마디와 행동도 아름답고 선하게 나타납니다. 착한 행실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주변을 감동시키고 하나님께서도 감동하심으로 범사에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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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세요.
1. ( )는 것은, 영과 혼과 육의 질서가 바로잡히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난 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영이 주인으로서 혼과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상태이다.
2. ( )는 것은 질병 없이 몸이 건강한 것만이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가 잘되고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23~23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영이란?
‘썩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이요, ‘영원하며 참된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이시라’ 하는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이처럼 거룩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속성 중 일부를 나눠 주셨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은 생령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아담은 범죄함으로 육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육으로 변질된 사람에게 있어 반드시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2016-11-04
제44과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
요 4:24
읽을말씀 : 요 4:24 | 외울말씀 : 요 5:3 l 참고 말씀: 요 14:15
교육목표 : 주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부족함이 없는 영의 사람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목적지를 향해 계단을 오를 때에 한 계단, 한 계단 차례대로 밟아 올라가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단계를 거쳐 성장합니다. 마음의 악을 모두 버리고 내가 옳다는 착각, 육체의 결여, 교만까지 정리되면 믿음의 4단계에 진입합니다. 바로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영의 사람은 죄악을 벗어 버리고 거룩하게 변화된 사람을 말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악이 없기에 고난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맞는다 해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현실은 막막하다 해도 마음에서 기쁨과 평안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행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체가 즐겁지요.
이때부터 비로소 영이신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신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 할 수 있지요. 그러면 믿음의 4단계에 진입한 영의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1. 주님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4단계의 믿음에 이르면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는 깊이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물론 믿음의 3단계에서도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말씀했지요.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마음의 죄성까지 다 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것이 조금은 민망합니다. 반면에 성결되어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담대하게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고, 하나님도 그 고백을 기뻐 받으시므로 위로부터 성령의 감동이 임하지요.
그래서 믿음의 4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 하나님, 주님!” 하고 부르기만 해도 진한 감동이 밀려와 금세 눈물이 흘러내리고 그 사랑이 변함없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대할 때도 마음이 다릅니다. 만약 누군가 애매한 말로 자신을 모함한다고 합시다.
이때 3단계의 믿음에 있는 사람이라면 순간 ‘너무한다, 피하고 싶다.’는 서운함과 미움의 감정이 스치기도 합니다. 또 진리를 알기 때문에 “감사하자, 기뻐하자.” 하며 마음을 다스리지만 온전한 감사가 나오지는 않지요.
하지만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선 사람은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해도 마음에 요동이 없습니다. 상대가 밉다는 생각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고 스스로도 마음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로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을 통해 더욱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고, 상대가 범죄하지 않도록 기도하게 되지요.
이처럼 똑같은 상황이라 해도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선의 향, 사랑의 향이 다릅니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고 싶어 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면 모든 계명을 기쁨으로 지키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한 대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내십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때 하나님 편에서도 그런 자녀들을 지극히 사랑하며 항상 만나 주십니다.
2. 대가를 바라지 않고 조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깨우침으로 사랑하려고 애씁니다. 반면, 믿음의 4단계에서는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뿐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사무치도록 느끼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요. 어떤 시험 환난에도 마음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가 우러나오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다 생명이 위태로워졌다.”고 근심하며 슬픔 가운데 기도한 것이 아니라, 평안하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지요.
다니엘 6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을 행할 뿐이기에 사나 죽으나 오직 감사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바울과 실라도 그러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매를 맞고 차꼬에 채인 채 깊은 감옥에 갇혔으나 원망 불평하지 않았고, 앞으로 어찌 될까 염려 근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감동 속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립니다. 이것이 믿음의 4단계의 모습이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 자녀의 모습입니다. 이 감동의 찬양이 울려 퍼질 때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벗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믿음의 4단계에 이르게 되면 무조건 하나님이 좋고 진리가 좋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불철주야 기도하고 충성하고 봉사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은혜만으로도 감사하여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까 궁구하게 됩니다.
3.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부귀영화도 아깝지 않고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빌립보서 3장 7~8절에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금세에 백배의 축복을 받고 내세에 영생의 축복을 받는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여기서 가족이나 집과 전토를 버린다는 것은 곧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영이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고 해서 가족들과의 관계를 끊고 도리를 하지 말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욱 가족들을 섬기며 가족의 일원으로서 온 집에 충성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이 그 섬김과 사랑에 감동받아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이끄는 것이 하나님 뜻이지요. 다만 가족이 하나님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범사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위로부터 진정한 행복이 임합니다. 또한 마음에 악이 없으니 선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며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을 줄 수 있지요(고전 13:4~7).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처음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핍박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이 잘되어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오히려 핍박이 축복으로 바뀌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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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4단계의 특징입니다. ( ) 안을 채워 보세요.
① 주님을 ( ) 사랑한다.
② ( )를 바라지 않고 ( ) 없이 하나님을 사랑한다.
③ 모든 것을 버리고 ( )을 첫째로 사랑한다.
2. 여러분에게 다니엘 선지자나 사도 바울과 같은 시험이 왔다면 어떠한 믿음의 행함을 내보이시겠습니까?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17~22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4단계에 주어지는 천국 처소와 면류관
처 소 : 믿음의 4단계가 들어가는 3천층의 집은 주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영적인 향이 흘러나오므로 문패가 없어도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집은 복층 건물로 정금과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3천층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모든 시설을 소유할 수 있다.
면류관 :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다(계 2:10).
교육목표 : 주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부족함이 없는 영의 사람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목적지를 향해 계단을 오를 때에 한 계단, 한 계단 차례대로 밟아 올라가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단계를 거쳐 성장합니다. 마음의 악을 모두 버리고 내가 옳다는 착각, 육체의 결여, 교만까지 정리되면 믿음의 4단계에 진입합니다. 바로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영의 사람은 죄악을 벗어 버리고 거룩하게 변화된 사람을 말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악이 없기에 고난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맞는다 해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현실은 막막하다 해도 마음에서 기쁨과 평안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행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체가 즐겁지요.
이때부터 비로소 영이신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신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 할 수 있지요. 그러면 믿음의 4단계에 진입한 영의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1. 주님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4단계의 믿음에 이르면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는 깊이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물론 믿음의 3단계에서도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말씀했지요.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마음의 죄성까지 다 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것이 조금은 민망합니다. 반면에 성결되어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담대하게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고, 하나님도 그 고백을 기뻐 받으시므로 위로부터 성령의 감동이 임하지요.
그래서 믿음의 4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 하나님, 주님!” 하고 부르기만 해도 진한 감동이 밀려와 금세 눈물이 흘러내리고 그 사랑이 변함없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대할 때도 마음이 다릅니다. 만약 누군가 애매한 말로 자신을 모함한다고 합시다.
이때 3단계의 믿음에 있는 사람이라면 순간 ‘너무한다, 피하고 싶다.’는 서운함과 미움의 감정이 스치기도 합니다. 또 진리를 알기 때문에 “감사하자, 기뻐하자.” 하며 마음을 다스리지만 온전한 감사가 나오지는 않지요.
하지만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선 사람은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해도 마음에 요동이 없습니다. 상대가 밉다는 생각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고 스스로도 마음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로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을 통해 더욱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고, 상대가 범죄하지 않도록 기도하게 되지요.
이처럼 똑같은 상황이라 해도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선의 향, 사랑의 향이 다릅니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고 싶어 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면 모든 계명을 기쁨으로 지키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한 대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내십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때 하나님 편에서도 그런 자녀들을 지극히 사랑하며 항상 만나 주십니다.
2. 대가를 바라지 않고 조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깨우침으로 사랑하려고 애씁니다. 반면, 믿음의 4단계에서는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뿐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사무치도록 느끼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요. 어떤 시험 환난에도 마음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가 우러나오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다 생명이 위태로워졌다.”고 근심하며 슬픔 가운데 기도한 것이 아니라, 평안하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지요.
다니엘 6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을 행할 뿐이기에 사나 죽으나 오직 감사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바울과 실라도 그러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매를 맞고 차꼬에 채인 채 깊은 감옥에 갇혔으나 원망 불평하지 않았고, 앞으로 어찌 될까 염려 근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감동 속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립니다. 이것이 믿음의 4단계의 모습이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 자녀의 모습입니다. 이 감동의 찬양이 울려 퍼질 때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벗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믿음의 4단계에 이르게 되면 무조건 하나님이 좋고 진리가 좋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불철주야 기도하고 충성하고 봉사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은혜만으로도 감사하여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까 궁구하게 됩니다.
3.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부귀영화도 아깝지 않고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빌립보서 3장 7~8절에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금세에 백배의 축복을 받고 내세에 영생의 축복을 받는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여기서 가족이나 집과 전토를 버린다는 것은 곧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영이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고 해서 가족들과의 관계를 끊고 도리를 하지 말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욱 가족들을 섬기며 가족의 일원으로서 온 집에 충성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이 그 섬김과 사랑에 감동받아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이끄는 것이 하나님 뜻이지요. 다만 가족이 하나님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범사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위로부터 진정한 행복이 임합니다. 또한 마음에 악이 없으니 선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며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을 줄 수 있지요(고전 13:4~7).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처음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핍박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이 잘되어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오히려 핍박이 축복으로 바뀌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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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4단계의 특징입니다. ( ) 안을 채워 보세요.
① 주님을 ( ) 사랑한다.
② ( )를 바라지 않고 ( ) 없이 하나님을 사랑한다.
③ 모든 것을 버리고 ( )을 첫째로 사랑한다.
2. 여러분에게 다니엘 선지자나 사도 바울과 같은 시험이 왔다면 어떠한 믿음의 행함을 내보이시겠습니까?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17~22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4단계에 주어지는 천국 처소와 면류관
처 소 : 믿음의 4단계가 들어가는 3천층의 집은 주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영적인 향이 흘러나오므로 문패가 없어도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집은 복층 건물로 정금과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3천층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모든 시설을 소유할 수 있다.
면류관 :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다(계 2:10).
2016-10-28
제43과믿음의 4단계에 신속히 들어가려면
살전 5:21~22
읽을말씀 : 살전 5:21~22 | 외울말씀 : 마 5:37 l 참고 말씀: 잠언 18:12
교육목표 : 자신이 옳다고 하는 착각과 육체의 결여와 교만을 온전히 벗어 버림으로 악이 없는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반석을 넘어선 사람은 일부러 악을 행하거나 하나님 뜻을 거스르려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거나, 쉽게 버리지 못하는 육의 분야들이 남아 있어 믿음 성장의 정체를 겪기도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죄성까지 벗어 버리고 신속히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자신이 옳다는 착각을 버리고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믿음의 반석을 지나 4단계에 가까워지면 겉으로 볼 때는 특별히 지적할 만한 악의 모양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기도를 쉬거나 눈에 띌 만한 비진리를 행치 않지요. 하나님 말씀에 드러나게 불순종하거나 사명 감당을 힘들어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말씀에 걸릴 만한 요소가 쉽게 발견되지 않으니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여기며 이 정도면 나도 믿음의 4단계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온전하지 못한 모습이 많습니다. 자신은 순종한다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불순종하는 것도 있고, ‘선’이 아닌 모습도 있습니다. 순간순간 비진리의 생각이 동원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자기 생각에는 옳은 것처럼 보이기에 무엇이 잘못인지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악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보기에 더 옳아 보이는 것이 남아 있어 ‘자기’를 고집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기가 옳다고 고집하는 것을 ‘자기 의’라고 합니다.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은 상대에게도 자기 뜻을 따르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또 틀이란,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단단하게 굳은 것을 말합니다. 틀이 강한 사람은 자신이 진리라 생각하는 것만 고집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이고 답답하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자기 의와 틀이 강한 사람은 믿음이 여려 열심 내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왜 충성하지 않느냐, 왜 기도하지 않느냐!” 지적하고 책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당연히 가르칠 것을 가르쳤고 옳은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책망을 들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낙심하면 “왜 기쁨과 감사로 받지 못하느냐?”며 또다시 지적하지요. 진리에 비추어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에 자기의 권면을 받지 못하는 상대에게 전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아는 진리가 옳다고만 생각하므로 자신의 방법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고 선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의와 틀’을 믿음의 3단계에서 집중적으로 깨뜨려야 4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틀은 자기가 볼 때 분명히 옳다고 여기는 것이므로 무엇이 잘못인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진리로 만든 의와 틀은 말씀에 비추어 보아도 틀리지 않기 때문에 깨닫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착각’을 하지요. 더 큰 문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일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겠지.’ 한다면 여전히 착각 속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자기 의와 틀을 버리려면 간절하고 겸비한 마음으로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2. 오랜 습관처럼 굳어진 ‘육체의 결여’를 깨닫고 채워야
육체의 결여란, 사람이 성장하면서 거쳐야 할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함으로 인해 보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를 통틀어 일컫습니다. 육체의 결여는 범위도 넓고 형태도 다양합니다. 가벼운 육체의 결여도 있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로 이어질 만큼 심각한 육체의 결여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4단계에 가까운 경우라면 이런 종류의 결여는 이미 정리되었을 것입니다. 다만 몸가짐이나 태도, 말투나 자세 등에서 여러 가지 육체의 결여가 나타나는데 이런 것들이 4단계의 믿음으로 들어가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이러한 육체의 결여는 단지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불편함과 어려움을 주고, 사람들에게 덕과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육체의 결여로 인해 상대에게 무례를 범하거나 실족시키는 일이 발생하며, 하나님의 일을 더 아름답게 이루는 데 지장을 초래하지요. 오랫동안 습관처럼 굳어져서 스스로 잘 깨닫지 못하고, 알아도 바로잡기 쉽지 않은 육체의 결여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문을 ‘쾅!’ 하고 닫거나, 방을 나갈 때 으레 문을 열어놓고 나갑니다. 식사할 때 ‘쩝쩝’ 소리를 내거나 음식을 흘리면서 먹습니다. 발소리가 요란하거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거북할 만큼 이상한 걸음걸이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단체생활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을 먼저 섬긴다거나 배려하는 행함이 부족합니다. 물건을 쓴 후 제자리에 두지 않고 아무 데나 두며 어디를 가든 늘 어지르고 정리를 하지 않지요. 약속을 수시로 어기거나 습관처럼 늦습니다.
이 외에도 상대의 말에 경청하지 않는 태도나, 윗사람이 말하는데 딴청하는 것, 상대의 말을 중도에 끊고 자기 할 말만 하거나, 상대에게 양보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경우 등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부러 악을 행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라온 환경 속에 늘 ‘자기 위주’로 살았기 때문에 자기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는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육체의 결여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먼저, ‘지식의 결여’로 생깁니다. 자라면서 당연히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못한 까닭이지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도리나 예절에 대한 지식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의 한계 안에서 자기 것만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지식의 결여에서 나오는 모습입니다. 지식 자체가 없으니 행함으로도 결여된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경우는 결여된 모습을 찾아 그에 대한 지식을 하나하나 배우며 행하면 됩니다.
다음으로, ‘행함의 결여’로 인해 생깁니다. 듣고 배웠지만 행하지 않은 결과이지요. 주변 정리정돈을 잘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게을러서 미루거나 치우지 않고 지저분하게 살다 보면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 버립니다. 듣고 배웠는데도 자기 편한 대로 살아온 것들이 쌓여 결국 육체의 결여를 낳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타고난 기’로 인해 결여가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부정적인 사고로 인해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더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부모님과 사이가 서먹서먹하고 어색하며 제대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버지 하나님과도 이런 모습이라면 더 깊은 관계로 뚫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육체의 결여는 다양한 원인으로 생길 수 있습니다. 육체의 결여는 마음이나 행함의 결여로 작용할 수도 있고, 생각이나 사고의 결여로 작용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이러한 것이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 속에서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믿음의 4단계로 들어가려면 이러한 육체의 결여는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3. 판단 정죄하는 일이 없도록 영적인 ‘교만’을 버려야
상대보다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는 육적인 교만도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이 단계에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영적인 교만입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지요. 자신이 아는 하나님 말씀과 지식을 기준으로 ‘이것이 옳다.? 생각하는 것이 자칫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말씀을 잘 알고 교회 일을 처리해 나가는 노하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일이든 개인의 일이든 얼마든지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영적인 교만에서 오는 것으로 자칫 판단 정죄를 낳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나름대로 열심히 충성하며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한다 하지만, 지식에 비해 행함이 따르지 못하므로 여러 부족한 모습이 나오기도 합니다. 자기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열심히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소극적이며 희생과 헌신하기보다는 회피하고자 하지요. 이는 질서 가운데 순종하는 것이 아니므로 교만에서 나오는 모습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잠 18:12) 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 가까울수록 깊은 악의 뿌리를 거의 뽑아 버렸기에 교만이 큰 악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뿌리가 남아 있으면 다시 자랄 수 있으므로 온전히 뽑아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질서에 온전히 순종하고 자기가 아는 것으로 쉽게 분별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겸손과 섬김, 희생과 배려의 마음을 이루어야 하지요. 이처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미세한 비진리의 분야까지 발견해서 온전히 버려야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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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혹여 아래와 같은 육체의 결여가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 ) 음식이 맛있다고 쩝쩝 소리를 내면서 먹지는 않는가?
( ) 바쁘다고 설거지를 하지 않고 쌓아 두지는 않는가?
( ) 평소 정리정돈을 잘하지 않아 주변이 지저분하지는 않는가?
( ) 상대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자기 용건만 말하지는 않는가?
( ) 자녀나 아랫사람에게 질책하거나 가르치는 말투를 사용하는가?
( ) 규모없이 생활하며 수중에 있는 대로 돈을 쓰지는 않는가?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10~21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랑이 부족해 영으로 들어가지 못한 경우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기중심적으로 살면서 자신을 만들어 온 사람은 주 안에 들어와서도 자기적인 것이 강하게 남아 있다. 자기 지식과 경험 등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옳다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눈물을 흘려 줄 수 있는 사랑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으로 들어가려면 오랜 세월 동안 자기를 만들어온 것과는 반대로 심어 나가야 한다. 열심히 자기를 낮추고 섬기며, 주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며 채워야 한다. 그래야 진정 마음에서 상대를 영적인 사랑으로 대할 수 있게 되며, 상대의 마음과 입장, 아픔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다.
교육목표 : 자신이 옳다고 하는 착각과 육체의 결여와 교만을 온전히 벗어 버림으로 악이 없는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반석을 넘어선 사람은 일부러 악을 행하거나 하나님 뜻을 거스르려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거나, 쉽게 버리지 못하는 육의 분야들이 남아 있어 믿음 성장의 정체를 겪기도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죄성까지 벗어 버리고 신속히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자신이 옳다는 착각을 버리고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믿음의 반석을 지나 4단계에 가까워지면 겉으로 볼 때는 특별히 지적할 만한 악의 모양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기도를 쉬거나 눈에 띌 만한 비진리를 행치 않지요. 하나님 말씀에 드러나게 불순종하거나 사명 감당을 힘들어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말씀에 걸릴 만한 요소가 쉽게 발견되지 않으니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여기며 이 정도면 나도 믿음의 4단계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온전하지 못한 모습이 많습니다. 자신은 순종한다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불순종하는 것도 있고, ‘선’이 아닌 모습도 있습니다. 순간순간 비진리의 생각이 동원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자기 생각에는 옳은 것처럼 보이기에 무엇이 잘못인지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악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보기에 더 옳아 보이는 것이 남아 있어 ‘자기’를 고집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기가 옳다고 고집하는 것을 ‘자기 의’라고 합니다.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은 상대에게도 자기 뜻을 따르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또 틀이란,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단단하게 굳은 것을 말합니다. 틀이 강한 사람은 자신이 진리라 생각하는 것만 고집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이고 답답하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자기 의와 틀이 강한 사람은 믿음이 여려 열심 내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왜 충성하지 않느냐, 왜 기도하지 않느냐!” 지적하고 책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당연히 가르칠 것을 가르쳤고 옳은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책망을 들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낙심하면 “왜 기쁨과 감사로 받지 못하느냐?”며 또다시 지적하지요. 진리에 비추어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에 자기의 권면을 받지 못하는 상대에게 전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아는 진리가 옳다고만 생각하므로 자신의 방법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고 선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의와 틀’을 믿음의 3단계에서 집중적으로 깨뜨려야 4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틀은 자기가 볼 때 분명히 옳다고 여기는 것이므로 무엇이 잘못인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진리로 만든 의와 틀은 말씀에 비추어 보아도 틀리지 않기 때문에 깨닫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착각’을 하지요. 더 큰 문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일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겠지.’ 한다면 여전히 착각 속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자기 의와 틀을 버리려면 간절하고 겸비한 마음으로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2. 오랜 습관처럼 굳어진 ‘육체의 결여’를 깨닫고 채워야
육체의 결여란, 사람이 성장하면서 거쳐야 할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함으로 인해 보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를 통틀어 일컫습니다. 육체의 결여는 범위도 넓고 형태도 다양합니다. 가벼운 육체의 결여도 있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로 이어질 만큼 심각한 육체의 결여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4단계에 가까운 경우라면 이런 종류의 결여는 이미 정리되었을 것입니다. 다만 몸가짐이나 태도, 말투나 자세 등에서 여러 가지 육체의 결여가 나타나는데 이런 것들이 4단계의 믿음으로 들어가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이러한 육체의 결여는 단지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불편함과 어려움을 주고, 사람들에게 덕과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육체의 결여로 인해 상대에게 무례를 범하거나 실족시키는 일이 발생하며, 하나님의 일을 더 아름답게 이루는 데 지장을 초래하지요. 오랫동안 습관처럼 굳어져서 스스로 잘 깨닫지 못하고, 알아도 바로잡기 쉽지 않은 육체의 결여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문을 ‘쾅!’ 하고 닫거나, 방을 나갈 때 으레 문을 열어놓고 나갑니다. 식사할 때 ‘쩝쩝’ 소리를 내거나 음식을 흘리면서 먹습니다. 발소리가 요란하거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거북할 만큼 이상한 걸음걸이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단체생활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을 먼저 섬긴다거나 배려하는 행함이 부족합니다. 물건을 쓴 후 제자리에 두지 않고 아무 데나 두며 어디를 가든 늘 어지르고 정리를 하지 않지요. 약속을 수시로 어기거나 습관처럼 늦습니다.
이 외에도 상대의 말에 경청하지 않는 태도나, 윗사람이 말하는데 딴청하는 것, 상대의 말을 중도에 끊고 자기 할 말만 하거나, 상대에게 양보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경우 등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부러 악을 행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라온 환경 속에 늘 ‘자기 위주’로 살았기 때문에 자기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는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육체의 결여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먼저, ‘지식의 결여’로 생깁니다. 자라면서 당연히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못한 까닭이지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도리나 예절에 대한 지식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의 한계 안에서 자기 것만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지식의 결여에서 나오는 모습입니다. 지식 자체가 없으니 행함으로도 결여된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경우는 결여된 모습을 찾아 그에 대한 지식을 하나하나 배우며 행하면 됩니다.
다음으로, ‘행함의 결여’로 인해 생깁니다. 듣고 배웠지만 행하지 않은 결과이지요. 주변 정리정돈을 잘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게을러서 미루거나 치우지 않고 지저분하게 살다 보면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 버립니다. 듣고 배웠는데도 자기 편한 대로 살아온 것들이 쌓여 결국 육체의 결여를 낳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타고난 기’로 인해 결여가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부정적인 사고로 인해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더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부모님과 사이가 서먹서먹하고 어색하며 제대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버지 하나님과도 이런 모습이라면 더 깊은 관계로 뚫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육체의 결여는 다양한 원인으로 생길 수 있습니다. 육체의 결여는 마음이나 행함의 결여로 작용할 수도 있고, 생각이나 사고의 결여로 작용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이러한 것이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 속에서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믿음의 4단계로 들어가려면 이러한 육체의 결여는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3. 판단 정죄하는 일이 없도록 영적인 ‘교만’을 버려야
상대보다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는 육적인 교만도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이 단계에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영적인 교만입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지요. 자신이 아는 하나님 말씀과 지식을 기준으로 ‘이것이 옳다.? 생각하는 것이 자칫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말씀을 잘 알고 교회 일을 처리해 나가는 노하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일이든 개인의 일이든 얼마든지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영적인 교만에서 오는 것으로 자칫 판단 정죄를 낳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나름대로 열심히 충성하며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한다 하지만, 지식에 비해 행함이 따르지 못하므로 여러 부족한 모습이 나오기도 합니다. 자기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열심히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소극적이며 희생과 헌신하기보다는 회피하고자 하지요. 이는 질서 가운데 순종하는 것이 아니므로 교만에서 나오는 모습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잠 18:12) 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 가까울수록 깊은 악의 뿌리를 거의 뽑아 버렸기에 교만이 큰 악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뿌리가 남아 있으면 다시 자랄 수 있으므로 온전히 뽑아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질서에 온전히 순종하고 자기가 아는 것으로 쉽게 분별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겸손과 섬김, 희생과 배려의 마음을 이루어야 하지요. 이처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미세한 비진리의 분야까지 발견해서 온전히 버려야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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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혹여 아래와 같은 육체의 결여가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 ) 음식이 맛있다고 쩝쩝 소리를 내면서 먹지는 않는가?
( ) 바쁘다고 설거지를 하지 않고 쌓아 두지는 않는가?
( ) 평소 정리정돈을 잘하지 않아 주변이 지저분하지는 않는가?
( ) 상대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자기 용건만 말하지는 않는가?
( ) 자녀나 아랫사람에게 질책하거나 가르치는 말투를 사용하는가?
( ) 규모없이 생활하며 수중에 있는 대로 돈을 쓰지는 않는가?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10~21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랑이 부족해 영으로 들어가지 못한 경우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기중심적으로 살면서 자신을 만들어 온 사람은 주 안에 들어와서도 자기적인 것이 강하게 남아 있다. 자기 지식과 경험 등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옳다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눈물을 흘려 줄 수 있는 사랑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으로 들어가려면 오랜 세월 동안 자기를 만들어온 것과는 반대로 심어 나가야 한다. 열심히 자기를 낮추고 섬기며, 주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며 채워야 한다. 그래야 진정 마음에서 상대를 영적인 사랑으로 대할 수 있게 되며, 상대의 마음과 입장, 아픔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