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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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3-03
제9과심고 거두는 법칙
고후 9:6~8
읽을말씀 : 고후 9:6~8 | 외울말씀 : 고후 9:7 ㅣ 참고 말씀: 갈 6:7~9
교육목표 :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하여 심는 것마다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농부는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씨를 뿌리고 수고하며 열심히 경작합니다. 그런데 농사 짓는 법을 몰라서 어느 때 심고 거둬들여야 하는지 모른다면 열심히 수고한다 해도 좋은 수확을 기대하기가 어렵지요. 영적으로도 심고 거두는 법칙을 잘 알아야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1)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심기 위해서는 먼저 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거친 황무지라 할지라도 열심히 땀 흘리며 개간하면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단단한 밭이면 갈아엎고 거름을 주어 부드럽게 해 주고, 돌멩이가 있으면 주워 내며, 가시떨기가 있으면 뽑아 내고 정성스럽게 가꾸면 비옥한 밭으로 바뀌지요.
밭은 영적으로 우리 마음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밭으로 비유하면서 이를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좋은 밭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셨습니다. 자신이 어느 밭에 속하는지 점검해 보면 쉽게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할 수 있습니다.
먼저, ‘길가밭’입니다. 길가는 사람들이 늘 밟고 지나다니기 때문에 단단합니다. 씨앗이 이 길가에 떨어지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흙 속에 묻히지도 않기 때문에 아예 싹이 나지 않지요. 새들이 와서 그 씨앗을 먹어 버리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길가밭’은 단단하고 강퍅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마음이지요. 분명히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 주는데도 의심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다음으로, 씨를 뿌리면 싹이 나도 돌멩이 때문에 잘 성장하지 못하는 ‘돌밭’입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 마음 밭입니다. 믿음의 확신이 없기에 시험 환난이 오거나 핍박을 당하면 넘어져 버리지요. 은혜를 받았을 때는 마음이 뜨거워서 아멘 하다가도 금방 사단의 역사를 받아 의심하며 배신하기도 하는 마음입니다.
그다음은, 씨를 뿌리면 싹이 나서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떨기가 기운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밭’입니다. 즉 재리의 유혹이나 세상의 염려에 말씀이 막혀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마음 밭입니다. 이런 밭의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하기는 하지만 온전히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으므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가령, 말씀을 듣고 믿기는 하지만 육적인 생각으로 진리를 분별하려고 하지요. 자신의 생각, 이론, 주관에다 하나님 말씀을 비춰 보아 자기에게 유익하면 순종하고, 그렇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씨를 뿌리면 싹이 잘 나며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좋은 밭’입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하나님 앞에 다양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밭을 개간하는 농부는 계절에 따라 밭에 다양한 씨앗을 뿌립니다. 콩, 팥, 무, 배추, 호박 등 여러 씨앗을 심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씨앗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의미하며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하라’ 하신 말씀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기뻐하라, 전도하라, 사랑하라, 충성하라, 감사하라, 기도하라 하신 말씀대로 열심히 행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심는 것입니다. 이렇게 씨앗을 심으면 하나님께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릴 때 추수할 것을 믿고 기쁨으로 뿌리듯이, 하나님 앞에 심을 때에도 30배, 60배, 100배로 넘치게 축복하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쁨으로 심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개간을 마치고 나서야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옥토를 만드는 작업과 씨 뿌리는 작업을 겸해서 해야 합니다. 아직 옥토로 다 개간하지 못했다 해서 씨를 뿌리지 않고 땅을 놀려 둘 농부는 없습니다. 어찌하든 씨를 뿌려 조금이라도 더 수확하고자 합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미움, 원망, 불평 등을 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서 동시에 사랑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그럴 때 미움도 더 빨리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 밭을 개간하는 것은 하늘의 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버려야 할 것을 버리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마음을 개간할수록 죄를 버리고 주님의 성품을 닮으니 더 좋은 천국 처소를 얻지요. 밭을 개간했으면 이제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럴 때 열매가 나듯이 하나님 말씀 중에 ‘하라’ 하신 것을 행할 때 진리의 열매가 맺히며 그것이 상급이 됩니다.
이처럼 천국의 처소와 상급은 차이가 있습니다. 곧 개간을 통해 하나님을 닮은 만큼 좋은 처소에 들어가며 진리의 씨를 뿌려 열매를 맺는 만큼 큰 상급을 받습니다. 그러니 개간과 씨 뿌림을 겸한다면 더 좋은 천국 처소와 더 큰 상급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영적으로 열매가 잘 자라도록 가꾸는 비결
농부는 밭에 씨를 심은 다음에 물과 거름을 주고 풀을 뽑고 벌레를 잡아 주며 인내와 정성으로 가꿉니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싹이 자라다가 파리해지거나 열매를 맺기 전에 병충해를 입어 죽기도 하지요. 그러니 열매가 잘 자라도록 가꿔 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으로는 어떻게 가꿔야 할까요?
먼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몸과 마음과 뜻, 힘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려야 잡념, 피곤, 졸음이 틈타지 못하고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며 하나님과 교통이 이뤄집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그 뜻을 좇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기도와 찬송을 통해 성령의 감동과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농부가 건강하여 힘이 있어야 일을 잘 할수 있듯이 우리도 기도와 찬송을 통해 위로부터 힘을 받아야 열매를 잘 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 곧 영적인 힘을 말합니다. 영적인 힘이 있어야 원수 마귀 사단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 힘을 얻기 위해 항상 깨어 기도하되 부르짖어 중심을 다한 기도를 드릴 때에 성령이 충만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농부 마음에 기쁨이 없으면 밭을 정성껏 가꾸지 않고 일을 게을리하게 됩니다. 흥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가꾸어야 농작물이 잘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항상 기쁘고 감사가 넘쳐야 원수 마귀 사단이 틈타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힘을 얻어 응답의 열매를 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내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종자마다 열매 맺는 기간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 앞에 심은 것도 금방 응답받는 것도 있지만 오랜 시간 걸리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합니다(갈 6:9).
3.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농부가 씨를 심어 열매가 맺히면 심은 대로 거두는 것처럼 영계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갈 6:7). 우리가 기도를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해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되어 갑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를 하면 연약함이 떠나가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으며, 십일조와 감사예물 등 물질로 열심히 드리면 물질 축복이 임하여 마음껏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수넴에 사는 귀부인은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정성으로 대접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여인을 위해 간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오래도록 아이가 없던 여인에게 아들을 잉태하는 축복을 주셨지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행한 다비다는 병들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깨달아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해당되는 마음 밭을 써 보세요.
1.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고, 믿음의 확신이 없기에 시험 환난이 오거나 핍박을 당하면 넘어져 버린다.( )
2. 단단하고 강퍅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 줘도 의심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다.( )
3. 재리의 유혹이나 세상의 염려로 인해 열매 맺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하기는 하지만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는 못한다.(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25~13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 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교육목표 :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하여 심는 것마다 30배, 60배, 100배의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농부는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씨를 뿌리고 수고하며 열심히 경작합니다. 그런데 농사 짓는 법을 몰라서 어느 때 심고 거둬들여야 하는지 모른다면 열심히 수고한다 해도 좋은 수확을 기대하기가 어렵지요. 영적으로도 심고 거두는 법칙을 잘 알아야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1)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해야 합니다
농부가 씨를 심기 위해서는 먼저 밭을 개간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아무리 거친 황무지라 할지라도 열심히 땀 흘리며 개간하면 옥토가 될 수 있습니다. 단단한 밭이면 갈아엎고 거름을 주어 부드럽게 해 주고, 돌멩이가 있으면 주워 내며, 가시떨기가 있으면 뽑아 내고 정성스럽게 가꾸면 비옥한 밭으로 바뀌지요.
밭은 영적으로 우리 마음을 말합니다. 마태복음 13장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밭으로 비유하면서 이를 길가밭, 돌밭, 가시떨기밭, 좋은 밭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셨습니다. 자신이 어느 밭에 속하는지 점검해 보면 쉽게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할 수 있습니다.
먼저, ‘길가밭’입니다. 길가는 사람들이 늘 밟고 지나다니기 때문에 단단합니다. 씨앗이 이 길가에 떨어지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흙 속에 묻히지도 않기 때문에 아예 싹이 나지 않지요. 새들이 와서 그 씨앗을 먹어 버리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길가밭’은 단단하고 강퍅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마음이지요. 분명히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 주는데도 의심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다음으로, 씨를 뿌리면 싹이 나도 돌멩이 때문에 잘 성장하지 못하는 ‘돌밭’입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 마음 밭입니다. 믿음의 확신이 없기에 시험 환난이 오거나 핍박을 당하면 넘어져 버리지요. 은혜를 받았을 때는 마음이 뜨거워서 아멘 하다가도 금방 사단의 역사를 받아 의심하며 배신하기도 하는 마음입니다.
그다음은, 씨를 뿌리면 싹이 나서 자라기는 하지만 가시떨기가 기운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시떨기밭’입니다. 즉 재리의 유혹이나 세상의 염려에 말씀이 막혀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마음 밭입니다. 이런 밭의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하기는 하지만 온전히 하나님 뜻대로 행하지 않으므로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가령, 말씀을 듣고 믿기는 하지만 육적인 생각으로 진리를 분별하려고 하지요. 자신의 생각, 이론, 주관에다 하나님 말씀을 비춰 보아 자기에게 유익하면 순종하고, 그렇지 않으면 순종하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씨를 뿌리면 싹이 잘 나며 30배, 60배, 100배로 거둘 수 있는 ‘좋은 밭’입니다. 이는 하나님 말씀이라면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계산하지 않고 무조건 아멘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항상 하나님과 교통하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그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하나님 앞에 다양한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밭을 개간하는 농부는 계절에 따라 밭에 다양한 씨앗을 뿌립니다. 콩, 팥, 무, 배추, 호박 등 여러 씨앗을 심지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하나님 앞에 여러 가지 씨앗을 심어야 합니다. 씨앗은 영적으로 하나님 말씀을 의미하며 씨앗을 심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에 ‘하라’ 하신 말씀을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기뻐하라, 전도하라, 사랑하라, 충성하라, 감사하라, 기도하라 하신 말씀대로 열심히 행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심는 것입니다. 이렇게 씨앗을 심으면 하나님께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농부가 씨앗을 뿌릴 때 추수할 것을 믿고 기쁨으로 뿌리듯이, 하나님 앞에 심을 때에도 30배, 60배, 100배로 넘치게 축복하실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기쁨으로 심어야 합니다.
여기에서 기억해야 할 것은 개간을 마치고 나서야 씨를 뿌리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옥토를 만드는 작업과 씨 뿌리는 작업을 겸해서 해야 합니다. 아직 옥토로 다 개간하지 못했다 해서 씨를 뿌리지 않고 땅을 놀려 둘 농부는 없습니다. 어찌하든 씨를 뿌려 조금이라도 더 수확하고자 합니다. 그와 같이 우리도 미움, 원망, 불평 등을 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면서 동시에 사랑의 씨를 심어야 합니다. 그럴 때 미움도 더 빨리 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마음 밭을 개간하는 것은 하늘의 상이 되지는 않습니다. 당연히 버려야 할 것을 버리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마음을 개간할수록 죄를 버리고 주님의 성품을 닮으니 더 좋은 천국 처소를 얻지요. 밭을 개간했으면 이제 씨를 뿌려야 합니다. 그럴 때 열매가 나듯이 하나님 말씀 중에 ‘하라’ 하신 것을 행할 때 진리의 열매가 맺히며 그것이 상급이 됩니다.
이처럼 천국의 처소와 상급은 차이가 있습니다. 곧 개간을 통해 하나님을 닮은 만큼 좋은 처소에 들어가며 진리의 씨를 뿌려 열매를 맺는 만큼 큰 상급을 받습니다. 그러니 개간과 씨 뿌림을 겸한다면 더 좋은 천국 처소와 더 큰 상급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2. 영적으로 열매가 잘 자라도록 가꾸는 비결
농부는 밭에 씨를 심은 다음에 물과 거름을 주고 풀을 뽑고 벌레를 잡아 주며 인내와 정성으로 가꿉니다. 이런 노력이 없으면 싹이 자라다가 파리해지거나 열매를 맺기 전에 병충해를 입어 죽기도 하지요. 그러니 열매가 잘 자라도록 가꿔 줘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적으로는 어떻게 가꿔야 할까요?
먼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몸과 마음과 뜻, 힘과 정성을 다하여 예배를 드려야 잡념, 피곤, 졸음이 틈타지 못하고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며 하나님과 교통이 이뤄집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그 뜻을 좇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기도와 찬송을 통해 성령의 감동과 충만함을 입어야 합니다.
농부가 건강하여 힘이 있어야 일을 잘 할수 있듯이 우리도 기도와 찬송을 통해 위로부터 힘을 받아야 열매를 잘 낼 수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 곧 영적인 힘을 말합니다. 영적인 힘이 있어야 원수 마귀 사단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습니다. 이 힘을 얻기 위해 항상 깨어 기도하되 부르짖어 중심을 다한 기도를 드릴 때에 성령이 충만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농부 마음에 기쁨이 없으면 밭을 정성껏 가꾸지 않고 일을 게을리하게 됩니다. 흥이 나서 콧노래를 부르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열심히 가꾸어야 농작물이 잘 자랍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항상 기쁘고 감사가 넘쳐야 원수 마귀 사단이 틈타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힘을 얻어 응답의 열매를 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내로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종자마다 열매 맺는 기간이 다른 것처럼 하나님 앞에 심은 것도 금방 응답받는 것도 있지만 오랜 시간 걸리는 것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합니다(갈 6:9).
3.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농부가 씨를 심어 열매가 맺히면 심은 대로 거두는 것처럼 영계의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갈 6:7). 우리가 기도를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해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되어 갑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를 하면 연약함이 떠나가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으며, 십일조와 감사예물 등 물질로 열심히 드리면 물질 축복이 임하여 마음껏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수넴에 사는 귀부인은 하나님의 종 엘리사를 정성으로 대접하였습니다. 이에 엘리사는 여인을 위해 간구하였고 하나님께서는 오래도록 아이가 없던 여인에게 아들을 잉태하는 축복을 주셨지요. 선행과 구제를 많이 행한 다비다는 병들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습니다. 이처럼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사실을 깨달아 마음 밭을 옥토로 개간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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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해당되는 마음 밭을 써 보세요.
1. 하나님 말씀을 들어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고, 믿음의 확신이 없기에 시험 환난이 오거나 핍박을 당하면 넘어져 버린다.( )
2. 단단하고 강퍅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믿을 만한 증거를 보여 줘도 의심하고 믿으려고 하지 않는 마음이다.( )
3. 재리의 유혹이나 세상의 염려로 인해 열매 맺지 못하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하기는 하지만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는 못한다.( )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25~13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성경 말씀을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마음에 양식 삼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과 함께 마음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을 바르게 이해하고,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중심으로 기쁨과 감사, 기도와 찬양, 행함과 예물로써 드리는 예배를 말한다.
2017-02-24
제8과금식과 기도의 위력
욘 3:1~10
읽을말씀 : 욘 3:1~10 | 외울말씀 : 렘 33:3 ㅣ 참고 말씀: 사 58:3~9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금식과 기도를 통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 해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면 위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여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 중에는 금식과 기도가 있습니다. 금식과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1. 금식과 기도로 응답받은 니느웨 백성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는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뜻을 외치라고 명하시지요. 요나는 주전 785년을 전후하여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북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적국 앗수르가 망하기를 원했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니느웨와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배를 타고 갑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대풍을 내리셨고, 요나가 탄 배는 거의 난파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뽑혀 바다에 던져지지요. 그러자 놀랍게도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예비하였다가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통회자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십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말씀대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외쳤습니다. 그러자 이방 민족인 니느웨 백성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어른이나 어린이나 할 것 없이 하나님께 회개했지요. 그 소문을 들은 왕 또한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니느웨 백성에게 선포하기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였습니다(욘 3:7~8).
이처럼 금식으로 정성을 내보이며, 악한 행실에서 떠나 힘써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릴 재앙을 거두셨지요. 그만큼 금식과 기도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큰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니느웨 백성이 왕과 함께 회개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금식하면서 부르짖어 기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됩니다.
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
금식은 한 끼에서 하루, 이틀, 사흘을 할 수도 있고 오 일, 칠 일 또는 그 이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금식을 못하는 사람은 한 끼 혹은 하루, 이틀 등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장기 금식은 먼저, 많은 기도를 쌓은 후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정확히 주관받아 해야 합니다.
이사야 58장 6~7절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무조건 굶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금식하면서 기운이 없다며 잠만 자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금식 중이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으면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금식할 때에는 오락을 금하고 사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사 58:3).
이러한 금식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 58:8~9) 약속하셨습니다.
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
금식뿐 아니라 기도도 하나님께 합당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리고 응답받은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고(눅 22:39),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행 3:1). 청소도 매일 하면 간단히 끝낼 수 있으나 오래 묵혀 두면 먼지가 쌓이고 때가 찌들어 한참 걸립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도 평소에 습관을 좇아서 하면 시험 환난이 오지 않고, 설령 오더라도 가볍게 물러가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시험 환난을 당하고 나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둘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으면 중심이 바로 서고 상대를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 됩니다. 우리가 부모님이나 대통령 앞에서도 삼가 조심하는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고(눅 22:41),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행 7:60).
셋째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렘 29:12~13, 33:3). 사도행전 4장을 보면 교회 역사상 큰 권능과 부흥이 일어났던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고 많은 기사와 표적이 따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을 때도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여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출 15:22~25).
하나님께서는 금식할 때에도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공중 권세 잡은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뚫고 하늘 보좌에 상달되는 기도를 하려면 간절한 중심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이 충만하고 시험 환난이 물러가는 등 크고 작은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 응답받은 사람들의 행함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에 갈멜 산에 올라가 기도하여 비를 내리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어찌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였던지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온 지 70년 가까이 되어 나이가 많은데도 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며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회개하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니엘의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장은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고 크고 놀라운 계시를 전해 주었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과 세상 끝 날에 될 일을 알려 준 것입니다.
예수님도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눅 22:44) 하신 대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 믿음과 직분과 위치에 맞춰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에 지나쳐서 욕심을 좇아 구한다면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또한 믿고 구한 것은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응답받은 줄로 믿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하셨지요(막 11:24).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과 하늘 보좌를 울리는 기도를 통해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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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다가 큰 물고기에게 삼켜 3일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통회자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선지자는 누구일까요?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떠한 것일까요?
①
②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다
③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09~11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금식과 보호식’
금식기도는 어떤 목적을 갖고 아무 음식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보호식은 금식이 끝난 후 빠진 기를 보충하고 약해진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도록 먹는 음식을 말하며, 금식한 날짜만큼 보호식을 할 때 온전한 금식이 된다.
보호식 중에는 무리가 가거나 힘든 일은 피해야 한다. 식사는 미음이나 죽으로 하고, 반찬은 주로 채식을 하되 양념은 하지 않는다. 육류나 기름기 있는 음식, 맵거나 짜고 단 자극적인 음식, 화학조미료와 향신료는 피하는 것이 좋다.
보호식을 잘하면 붓지 않고 피부도 뽀얗게 살아나며 체중도 신속하게 회복된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금식과 기도를 통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하기를 원하십니다.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라 해도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구하면 위로부터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이 임하여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법 중에는 금식과 기도가 있습니다. 금식과 기도는 하나님의 응답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1. 금식과 기도로 응답받은 니느웨 백성
강대국 앗수르 제국의 수도 니느웨는 그 악독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로 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뜻을 외치라고 명하시지요. 요나는 주전 785년을 전후하여 북이스라엘에서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요나는 북이스라엘을 괴롭히는 적국 앗수르가 망하기를 원했기에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고 니느웨와 반대 방향인 다시스로 배를 타고 갑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대풍을 내리셨고, 요나가 탄 배는 거의 난파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배에 탄 사람들은 이 재앙이 누구 때문인지 알아보기 위해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뽑혀 바다에 던져지지요. 그러자 놀랍게도 바다가 잔잔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를 예비하였다가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 요나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3일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통회자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물고기에게 명하여 요나를 육지에 토하게 하십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 말씀대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외쳤습니다. 그러자 이방 민족인 니느웨 백성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어른이나 어린이나 할 것 없이 하나님께 회개했지요. 그 소문을 들은 왕 또한 조복을 벗고 굵은 베를 입고 재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조서를 내려 니느웨 백성에게 선포하기를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를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하였습니다(욘 3:7~8).
이처럼 금식으로 정성을 내보이며, 악한 행실에서 떠나 힘써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내릴 재앙을 거두셨지요. 그만큼 금식과 기도의 위력이 대단하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큰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니느웨 백성이 왕과 함께 회개했던 것처럼,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고 금식하면서 부르짖어 기도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면 됩니다.
2.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
금식은 한 끼에서 하루, 이틀, 사흘을 할 수도 있고 오 일, 칠 일 또는 그 이상을 할 수도 있습니다. 금식을 못하는 사람은 한 끼 혹은 하루, 이틀 등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시작하면 됩니다. 장기 금식은 먼저, 많은 기도를 쌓은 후 성령이 충만한 가운데 정확히 주관받아 해야 합니다.
이사야 58장 6~7절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은 무조건 굶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간절히 기도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금식하면서 기운이 없다며 잠만 자는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금식 중이라도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으면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습니다. 또한 금식할 때에는 오락을 금하고 사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사 58:3).
이러한 금식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사 58:8~9) 약속하셨습니다.
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
금식뿐 아니라 기도도 하나님께 합당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리고 응답받은 사례가 많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첫째로, 습관을 좇아 기도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고(눅 22:39),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행 3:1). 청소도 매일 하면 간단히 끝낼 수 있으나 오래 묵혀 두면 먼지가 쌓이고 때가 찌들어 한참 걸립니다. 마찬가지로 기도도 평소에 습관을 좇아서 하면 시험 환난이 오지 않고, 설령 오더라도 가볍게 물러가고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됩니다. 시험 환난을 당하고 나서 기도하는 사람은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허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둘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으면 중심이 바로 서고 상대를 경외하는 마음의 표현이 됩니다. 우리가 부모님이나 대통령 앞에서도 삼가 조심하는데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하지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고(눅 22:41),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행 7:60).
셋째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렘 29:12~13, 33:3). 사도행전 4장을 보면 교회 역사상 큰 권능과 부흥이 일어났던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고 많은 기사와 표적이 따랐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마실 물이 없을 때도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여 쓴물이 단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출 15:22~25).
하나님께서는 금식할 때에도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 공중 권세 잡은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뚫고 하늘 보좌에 상달되는 기도를 하려면 간절한 중심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이 충만하고 시험 환난이 물러가는 등 크고 작은 문제가 해결되는 것입니다.
4. 하나님께 응답받은 사람들의 행함
엘리야는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아 심한 가뭄이 들었을 때에 갈멜 산에 올라가 기도하여 비를 내리는 응답을 받았습니다. 어찌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였던지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온 지 70년 가까이 되어 나이가 많은데도 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며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회개하고 간구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니엘의 기도가 응답되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장은 다니엘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고 크고 놀라운 계시를 전해 주었습니다. 장차 오실 메시아에 대한 것과 세상 끝 날에 될 일을 알려 준 것입니다.
예수님도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눅 22:44) 하신 대로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기도하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자기 믿음과 직분과 위치에 맞춰 필요한 것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에 지나쳐서 욕심을 좇아 구한다면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또한 믿고 구한 것은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응답받은 줄로 믿어야 합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하셨지요(막 11:24).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금식과 하늘 보좌를 울리는 기도를 통해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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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다가 큰 물고기에게 삼켜 3일 밤낮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통회자복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선지자는 누구일까요?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떠한 것일까요?
①
②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다
③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09~11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금식과 보호식’
금식기도는 어떤 목적을 갖고 아무 음식도 먹지 않고 물만 마시면서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간절히 구하는 것이다.
보호식은 금식이 끝난 후 빠진 기를 보충하고 약해진 몸이 정상적으로 회복되도록 먹는 음식을 말하며, 금식한 날짜만큼 보호식을 할 때 온전한 금식이 된다.
보호식 중에는 무리가 가거나 힘든 일은 피해야 한다. 식사는 미음이나 죽으로 하고, 반찬은 주로 채식을 하되 양념은 하지 않는다. 육류나 기름기 있는 음식, 맵거나 짜고 단 자극적인 음식, 화학조미료와 향신료는 피하는 것이 좋다.
보호식을 잘하면 붓지 않고 피부도 뽀얗게 살아나며 체중도 신속하게 회복된다.
2017-02-17
제7과모든 것에 화목하라
잠 16:7
읽을말씀 : 잠 16:7 | 외울말씀 : 히 12:14 l 참고 말씀: 마 5:9
교육목표 : 어느 누구와도 불화하지 않고 원수까지도 사랑함으로 모든 사람과 화목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모가 나면 이리저리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고 서로 고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부드럽고 온화한 사람은 남들과도 잘 어울리며 부딪히지 않고 화평하지요. 이런 사람과는 화목을 이루기가 쉬울 뿐만 아니라 자신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1. 화목의 중요성
사람들 사이에 종종 다툼이 일어나고 화목하지 못한 모습을 봅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 자기 생각이나 주장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하고 옳은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며,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만이 진리입니다(요 14:6).
사람이 태어나 진리로만 가르침 받고 진리 안에 산다면 주님의 마음을 닮아 모두와 화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나 스승, 이웃이나 친구들로부터 배웠고 그중에는 진리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정립한 이론이나 사고방식과 양심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화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빌 3:8) 고백한 것과 같이 자신이 옳다 여기는 것을 깨뜨리고 하나님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화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셨고,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하셨습니다. 즉 화평이 얼마나 중요하며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화목하지 못할 때의 고통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서로 섬기며 사랑하면 화목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 내 이론, 내 방식만이 옳다고 고집하면 화목할 수 없고 서로 고통을 받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75세 때에 자녀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10년이 넘도록 사라에게는 잉태의 소식이 없었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여종 하갈을 첩으로 주지요. 하갈이 잉태하자 여 주인 사라를 멸시합니다. 이에 사라가 아브라함을 원망하며 하갈을 학대하니 그녀는 도망가 버리지요.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 다시 돌아와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이스마엘이 태어난 지 14년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 마침내 아들 이삭을 낳았지요. 그런데 이삭이 태어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사라가 참지 못하고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하지요.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매우 근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말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하지요. 비록 약속의 아들은 아니지만 이스마엘을 떠나 보내야 하는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처럼 사라가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결과 이러한 많은 고통이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야곱의 아내 레아와 라헬의 경우입니다. 두 사람은 자매이지만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서로 투기하지요. 레아가 아들을 네 명이나 낳는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한 라헬은 자신의 여종을 야곱에게 첩으로 줍니다. 언니 레아도 지지 않고 자신의 여종을 첩으로 주지요.
이러한 관계가 그의 아들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야곱에게는 네 명의 아내에게서 얻은 열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소생으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게다가 요셉이 형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알리곤 하여 형들은 그가 눈엣가시였지요. 결국 이복 형들에 의해 요셉은 타국으로 팔려가고 맙니다. 야곱은 요셉을 잃고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화목하지 못하며 불행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진리 안에 살 때 누릴 수 있습니다.
3. 진정한 행복을 얻는 길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하셨으니 만일 사람과 화목하지 못해 고통받는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원수까지라도 화목하게 하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유다인으로서 바사(페르시아) 제국의 왕비가 된 에스더는 자기 민족이 몰살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사촌오빠 모르드개에게서 들었습니다. 아말렉 사람 하만의 간계로 모든 유다인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때 에스더는 자신의 지혜를 동원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수도인 수산 성에 사는 모든 유다인과 함께 삼 일 동안 물도 마시지 않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런 뒤 자기 민족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당시 그 나라에는 왕이 부르지 않을 때 그 앞에 나가면 죽게 되는 법이 있었습니다. 왕이 금홀(금으로 된 지팡이)을 내밀어야만 살 수 있었지요.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에스더는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왕 앞에 나간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주관하여 에스더가 매우 사랑스러워 보이게 하셨습니다.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며 여러 차례 소원을 말하라고 했지요(에 5:3~6, 7:2). 그러나 에스더는 하만의 계략을 즉시 폭로하지 않고 왕을 위한 잔치를 베풀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이러한 에스더의 모습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니 소원대로 민족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모든 기도와 간구에 응답받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이룰 수 있습니다.
4. 모든 것에 화목하여 축복을 받으려면
그러면 우리가 진리 안에서 화목의 중요성을 깨달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모든 것에 화목하여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솔로몬처럼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번제 곧 예배드리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순종해 나감으로 마음이 깨끗한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참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음으로 열심히 전도하며 선을 행하고 열심히 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행함 있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구제와 선행을 많이 함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는 고넬료와 다비다를 들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면서도 온 가족이 성령을 받았고, 다비다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행 9~10장).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루게 됩니다. 먼저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종들과 화목을 이루며, 믿음의 형제들과도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 자녀 간에, 부부간에, 형제간에, 이웃 간에, 친구 간에 그리고 직장 동료나 상사 사이 등 모든 사람과 화목해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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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공통으로 들어갈 단어를 써 보세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 )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 )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2. 사라와 하갈, 라헬과 레아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3. 여러분은 모든 사람과 화평하기 위해 어떤 수고와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99~10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만’은 어떤 인물일까?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로 아하수에로 왕의 대신이었다.
왕이 그의 지위를 높이자 왕의 모든 신복들이 꿇어 절하는데 유다 민족인 모르드개만 거부하자 이에 분을 품고 모르드개를 포함한 유다 민족을 멸절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에 에스더는 3일 금식을 하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가 하만의 음모가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다.
결국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던 나무에 하만과 그의 아들들이 달려 죽게 된다.
교육목표 : 어느 누구와도 불화하지 않고 원수까지도 사랑함으로 모든 사람과 화목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모가 나면 이리저리 많은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고 서로 고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부드럽고 온화한 사람은 남들과도 잘 어울리며 부딪히지 않고 화평하지요. 이런 사람과는 화목을 이루기가 쉬울 뿐만 아니라 자신도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1. 화목의 중요성
사람들 사이에 종종 다툼이 일어나고 화목하지 못한 모습을 봅니다. 그 이유는 대부분 자기 생각이나 주장이 옳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하고 옳은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며,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만이 진리입니다(요 14:6).
사람이 태어나 진리로만 가르침 받고 진리 안에 산다면 주님의 마음을 닮아 모두와 화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나 스승, 이웃이나 친구들로부터 배웠고 그중에는 진리가 아닌 것이 많습니다. 이러한 것을 바탕으로 정립한 이론이나 사고방식과 양심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화목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잘 분별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빌 3:8) 고백한 것과 같이 자신이 옳다 여기는 것을 깨뜨리고 하나님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화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하셨고,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하셨습니다. 즉 화평이 얼마나 중요하며 하나님께서 귀히 여기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2. 화목하지 못할 때의 고통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서로 섬기며 사랑하면 화목하게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 내 이론, 내 방식만이 옳다고 고집하면 화목할 수 없고 서로 고통을 받습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75세 때에 자녀를 주겠다고 약속하셨지만 10년이 넘도록 사라에게는 잉태의 소식이 없었습니다. 기다리다 못한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자기의 여종 하갈을 첩으로 주지요. 하갈이 잉태하자 여 주인 사라를 멸시합니다. 이에 사라가 아브라함을 원망하며 하갈을 학대하니 그녀는 도망가 버리지요. 하갈은 여호와의 사자를 만나 다시 돌아와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하나님이 약속하신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이스마엘이 태어난 지 14년 후에 이루어졌습니다.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 마침내 아들 이삭을 낳았지요. 그런데 이삭이 태어나자 또 다른 문제가 생겼습니다.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 본 사라가 참지 못하고 아브라함에게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쫓으라고 하지요. 이로 인해 아브라함은 매우 근심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라의 말대로 하갈과 이스마엘을 내보내라고 하지요. 비록 약속의 아들은 아니지만 이스마엘을 떠나 보내야 하는 아브라함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이처럼 사라가 하나님께서 자녀를 주실 때까지 기다리지 못하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 결과 이러한 많은 고통이 따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음으로 야곱의 아내 레아와 라헬의 경우입니다. 두 사람은 자매이지만 남편의 사랑을 얻기 위해 서로 투기하지요. 레아가 아들을 네 명이나 낳는 동안 아이를 낳지 못한 라헬은 자신의 여종을 야곱에게 첩으로 줍니다. 언니 레아도 지지 않고 자신의 여종을 첩으로 주지요.
이러한 관계가 그의 아들들에게까지 악영향을 미쳤습니다. 야곱에게는 네 명의 아내에게서 얻은 열두 명의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의 소생으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합니다. 게다가 요셉이 형들의 과실을 아버지에게 알리곤 하여 형들은 그가 눈엣가시였지요. 결국 이복 형들에 의해 요셉은 타국으로 팔려가고 맙니다. 야곱은 요셉을 잃고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화목하지 못하며 불행합니다. 진정한 행복은 진리 안에 살 때 누릴 수 있습니다.
3. 진정한 행복을 얻는 길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하셨으니 만일 사람과 화목하지 못해 고통받는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원수까지라도 화목하게 하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유다인으로서 바사(페르시아) 제국의 왕비가 된 에스더는 자기 민족이 몰살될 위기에 처했다는 소식을 사촌오빠 모르드개에게서 들었습니다. 아말렉 사람 하만의 간계로 모든 유다인이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때 에스더는 자신의 지혜를 동원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수도인 수산 성에 사는 모든 유다인과 함께 삼 일 동안 물도 마시지 않고 금식하며 하나님께 간구하였습니다. 그런 뒤 자기 민족을 구하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왕 앞에 나아갔습니다. 당시 그 나라에는 왕이 부르지 않을 때 그 앞에 나가면 죽게 되는 법이 있었습니다. 왕이 금홀(금으로 된 지팡이)을 내밀어야만 살 수 있었지요. 이런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에스더는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해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왕 앞에 나간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주관하여 에스더가 매우 사랑스러워 보이게 하셨습니다.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며 여러 차례 소원을 말하라고 했지요(에 5:3~6, 7:2). 그러나 에스더는 하만의 계략을 즉시 폭로하지 않고 왕을 위한 잔치를 베풀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이러한 에스더의 모습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을 주관하시니 소원대로 민족을 구원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모든 기도와 간구에 응답받고 마음의 소원까지도 이룰 수 있습니다.
4. 모든 것에 화목하여 축복을 받으려면
그러면 우리가 진리 안에서 화목의 중요성을 깨달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모든 것에 화목하여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는, 솔로몬처럼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번제 곧 예배드리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며 찬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순종해 나감으로 마음이 깨끗한 의인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참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믿음으로 열심히 전도하며 선을 행하고 열심히 덕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행함 있는 믿음을 기뻐하시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구제와 선행을 많이 함으로 축복을 받은 사람으로는 고넬료와 다비다를 들 수 있습니다. 고넬료는 이방인이면서도 온 가족이 성령을 받았고, 다비다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축복을 받았습니다(행 9~10장).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루게 됩니다. 먼저는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고, 다음으로 하나님의 종들과 화목을 이루며, 믿음의 형제들과도 화목을 이루어야 합니다. 또한 부모 자녀 간에, 부부간에, 형제간에, 이웃 간에, 친구 간에 그리고 직장 동료나 상사 사이 등 모든 사람과 화목해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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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공통으로 들어갈 단어를 써 보세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 )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히 12:14) “( )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2. 사라와 하갈, 라헬과 레아를 통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3. 여러분은 모든 사람과 화평하기 위해 어떤 수고와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99~10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만’은 어떤 인물일까?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로 아하수에로 왕의 대신이었다.
왕이 그의 지위를 높이자 왕의 모든 신복들이 꿇어 절하는데 유다 민족인 모르드개만 거부하자 이에 분을 품고 모르드개를 포함한 유다 민족을 멸절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이에 에스더는 3일 금식을 하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왕 앞에 나가 하만의 음모가 수포로 돌아가게 만든다.
결국 모르드개를 달아 죽이려던 나무에 하만과 그의 아들들이 달려 죽게 된다.
2017-02-10
제6과심령이 감각되지 아니하였느냐
왕하 5:23~27
읽을말씀 : 왕하 5:23~27 | 외울말씀 : 전 12:14 ㅣ 참고 말씀: 왕하 6:8~12
교육목표 :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아시는 하나님 앞에 거짓됨 없이 정직하게 행함으로 하나님께 신뢰를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사전에 ‘감각되다’라는 것은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해 바깥의 어떤 자극이 느껴지는 것이라 말합니다. 영적으로도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사는 사람일수록 세상의 죄악을 보면 심령이 감각(感覺)되어 애통하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책망할 것이 없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심령이 감각되지 않아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그랬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온 나아만 장군
이스라엘과 인접한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은 부귀와 명예, 권세가 있었지만 커다란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문둥병에 걸린 것입니다.
어느 날 그는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아 온 여자 아이에게서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면 문둥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로서 스승을 끝까지 붙좇아 갑절의 영감을 얻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나아만은 포로로 잡아온 아이의 말이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나아만은 아람 왕의 허락을 받아 은 열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값비싼 의복 열 벌을 준비해 이스라엘로 떠났습니다.
드디어 나아만은 엘리사의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사환이 나오더니 엘리사의 말씀이라며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면 깨끗이 회복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아만은 기가 막혔습니다. 먼 곳에서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왔건만 나와 보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 말만 전하니 자존심이 무척 상했지요.
더구나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니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람에는 요단강보다 더 좋은 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아만은 너무 분하였습니다. 잔뜩 부푼 기대가 일시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비참한 심경으로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그에게 종들이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지요.
이에 나아만은 돌이켜 순종합니다. 종들의 말에도 귀 기울이는 그의 겸손과 선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아만은 요단강에 몸을 잠갔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 일곱 번 몸을 잠갔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문둥병으로 흉측했던 피부가 어린아이 살같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요단강은 영적으로 구원을, 물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즉 말씀으로 깨끗이 씻고, 온전히 진리 가운데 살면 어떠한 병이라도 치료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 일곱은 완전수이므로 일곱 번 씻는 것은 완전하게 씻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문둥병을 치료받은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찾아가 준비해 온 예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끝내 받지 않습니다.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린 나아만은 이제부터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고백한 후 떠납니다.
2. 엘리사를 속이다가 문둥병에 걸린 사환 게하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나아만이 가져 온 예물이 너무 탐이 났습니다. 그래서 뒤쫓아가 엘리사가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달라고 했다며 거짓말을 합니다. 이에 나아만이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자 자기 집에 감추어 두었지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네가 어디서 오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는 “종이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시치미를 떼지요.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感覺)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는 무서운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사는 게하시의 범죄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회개할 수 있도록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게하시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지요. 이처럼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게하시는 문둥병이 들어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게하시는 아무도 자기의 행동을 모르리라 여겼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심령을 감각시켜 알려 주시니 게하시가 행한 일을 훤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3.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
가인이 아무도 몰래 동생 아벨을 쳐 죽였을 때에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창 4장). 그래서 가인에게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하셨을 때에 사라가 속으로 웃은 것도 다 아셨습니다(창 18장). 당시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경수도 이미 끊어진 뒤였기에 어찌 그런 일이 있을까 생각하고 웃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 일도 다 아십니다(시 121:4).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께서도 어느 곳에서 누가 무슨 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47절을 보면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처음 보고도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하며 칭찬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중풍 환자를 고치실 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신 말씀을 듣고 서기관들이 속으로 분에 넘친다고 생각하였습니다(마 9장). 그때 예수님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품은 생각까지도 다 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역시 보통 사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을 밝히 알았습니다. 하나님과 늘 교통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보여 주신 것입니다. 엘리사는 가만히 앉아서도 아람 왕이 그 심복들과 비밀리에 어떤 작전을 의논하는지 알았습니다(왕하 6:8~12). 당시 이스라엘과 아람은 전쟁이 잦았는데 이스라엘 왕에게 그 작전을 전해 줌으로 그때마다 방비할 수 있었습니다. 아람 왕은 자기 측근 중에 이스라엘의 첩자가 있는 줄 생각하고 번민할 정도였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하였는데(행 5장), 막상 돈을 쥐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 얼마를 감추고 전부인 양 가져왔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한 일이지만 베드로는 알았고, 하나님을 속이려 한 아나니아를 엄히 책망하자 그 자리에서 혼이 떠나 죽었지요. 이를 알지 못하고 똑같이 거짓말을 한 삽비라 역시 죽게 됩니다. 아무리 은밀히 행한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이들에 대해 성경에 기록하신 것도 성령과 주의 종을 속이면 그만큼 화가 미침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4. 정직한 마음으로 순종해야 응답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과연 가르침대로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잘 드리는지, 믿음으로 행하는지, 기도하고 순종하는지 등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잘 드리고 기도도 잘하니 신앙이 좋은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속일 수 없습니다. 부모 형제나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하지요.
하나님을 속이는 것에는 거짓말뿐 아니라 과장하고 보태는 것과 도적질도 포함됩니다. 또한 십일조, 감사예물 등을 마음에 작정하고 하지 않는 것, 기도하는 척하는 것, 중심으로 행하지 않는 것, 기도하라는 성령의 주관에 순종하지 않는 것, 금식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것, 그 밖에도 많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속이거나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두렵게 느껴집니다.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정직한 길로 갈 수 있고, 온전한 모습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연단받을 때에는 두렵고 어려운 것 같지만 값진 연단의 시기가 있기에 결국 응답받는 형통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부모가 책망하거나 바른길로 이끄는 것이 사랑이듯이, 연단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범사에 정직한 길로 행하여 결코 하나님을 속이는 일은 없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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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신의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바치고자 했는데 왜 혼이 떠나 죽게 되었을까요?
2.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사환 게하시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왜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었을까요?
3.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문둥병을 치료받을 수 있었을까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85~9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들은 부부로서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초대교회 신자이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 자발적으로 교회에 드렸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 역시 자신의 소유를 팔아 교회에 바친다고 했지만 마음이 변질되어 돈의 일부를 감추고 마치 전액인 것처럼 사도 베드로를 속인다.
이는 하나님께 거짓말한 것이요, 성령을 속인 것이기에 결국 혼이 떠나 죽고 만다.
교육목표 : 모든 것을 감찰하시고 아시는 하나님 앞에 거짓됨 없이 정직하게 행함으로 하나님께 신뢰를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사전에 ‘감각되다’라는 것은 눈, 코, 귀, 혀, 살갗을 통해 바깥의 어떤 자극이 느껴지는 것이라 말합니다. 영적으로도 죄를 짓지 않고 선하게 사는 사람일수록 세상의 죄악을 보면 심령이 감각(感覺)되어 애통하게 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책망할 것이 없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심령이 감각되지 않아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그랬습니다.
1.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온 나아만 장군
이스라엘과 인접한 아람 나라의 나아만 장군은 부귀와 명예, 권세가 있었지만 커다란 고민이 있었습니다. 바로 문둥병에 걸린 것입니다.
어느 날 그는 이스라엘에서 사로잡아 온 여자 아이에게서 엘리사 선지자에게 가면 문둥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제자로서 스승을 끝까지 붙좇아 갑절의 영감을 얻은 하나님의 종입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나아만은 포로로 잡아온 아이의 말이라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고 믿었습니다. 나아만은 아람 왕의 허락을 받아 은 열 달란트와 금 육천 개와 값비싼 의복 열 벌을 준비해 이스라엘로 떠났습니다.
드디어 나아만은 엘리사의 집 앞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사환이 나오더니 엘리사의 말씀이라며 “요단강에 가서 일곱 번 씻으면 깨끗이 회복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나아만은 기가 막혔습니다. 먼 곳에서 정성껏 예물을 준비하여 왔건만 나와 보지도 않고 사환을 시켜 말만 전하니 자존심이 무척 상했지요.
더구나 대단해 보이지도 않는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니 할 말을 잃었습니다. 아람에는 요단강보다 더 좋은 강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여기까지 생각하니 나아만은 너무 분하였습니다. 잔뜩 부푼 기대가 일시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비참한 심경으로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그에게 종들이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당신을 명하여 큰일을 행하라 하였더면 행치 아니하였으리이까 하물며 당신에게 이르기를 씻어 깨끗하게 하라 함이리이까” 하지요.
이에 나아만은 돌이켜 순종합니다. 종들의 말에도 귀 기울이는 그의 겸손과 선을 엿볼 수 있습니다. 나아만은 요단강에 몸을 잠갔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 일곱 번 몸을 잠갔는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문둥병으로 흉측했던 피부가 어린아이 살같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요단강은 영적으로 구원을, 물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즉 말씀으로 깨끗이 씻고, 온전히 진리 가운데 살면 어떠한 병이라도 치료된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 일곱은 완전수이므로 일곱 번 씻는 것은 완전하게 씻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문둥병을 치료받은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찾아가 준비해 온 예물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끝내 받지 않습니다. 거듭 감사의 인사를 드린 나아만은 이제부터 하나님만 섬기겠다고 고백한 후 떠납니다.
2. 엘리사를 속이다가 문둥병에 걸린 사환 게하시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는 나아만이 가져 온 예물이 너무 탐이 났습니다. 그래서 뒤쫓아가 엘리사가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달라고 했다며 거짓말을 합니다. 이에 나아만이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자 자기 집에 감추어 두었지요.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네가 어디서 오느냐”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는 “종이 아무 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라고 시치미를 떼지요.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그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을 때에 내 심령이 감각(感覺)되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냐 그러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는 무서운 말을 합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사는 게하시의 범죄를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회개할 수 있도록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게하시는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했지요. 이처럼 회개하지 않고 계속해서 죄를 지으면 하나님의 저주가 임할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게하시는 문둥병이 들어 비참한 신세가 되고 말았지요. 게하시는 아무도 자기의 행동을 모르리라 여겼지만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심령을 감각시켜 알려 주시니 게하시가 행한 일을 훤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3. 모든 것을 보시고 아시는 하나님
가인이 아무도 몰래 동생 아벨을 쳐 죽였을 때에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셨습니다(창 4장). 그래서 가인에게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약속하셨을 때에 사라가 속으로 웃은 것도 다 아셨습니다(창 18장). 당시 사라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경수도 이미 끊어진 뒤였기에 어찌 그런 일이 있을까 생각하고 웃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 일도 다 아십니다(시 121:4).
하나님과 하나이신 예수님께서도 어느 곳에서 누가 무슨 말,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아셨습니다. 요한복음 1장 47절을 보면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처음 보고도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하며 칭찬하셨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중풍 환자를 고치실 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신 말씀을 듣고 서기관들이 속으로 분에 넘친다고 생각하였습니다(마 9장). 그때 예수님은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 말씀하십니다. 마음에 품은 생각까지도 다 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들 역시 보통 사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을 밝히 알았습니다. 하나님과 늘 교통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필요에 따라 보여 주신 것입니다. 엘리사는 가만히 앉아서도 아람 왕이 그 심복들과 비밀리에 어떤 작전을 의논하는지 알았습니다(왕하 6:8~12). 당시 이스라엘과 아람은 전쟁이 잦았는데 이스라엘 왕에게 그 작전을 전해 줌으로 그때마다 방비할 수 있었습니다. 아람 왕은 자기 측근 중에 이스라엘의 첩자가 있는 줄 생각하고 번민할 정도였습니다.
베드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하였는데(행 5장), 막상 돈을 쥐니 아까운 생각이 들어 얼마를 감추고 전부인 양 가져왔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한 일이지만 베드로는 알았고, 하나님을 속이려 한 아나니아를 엄히 책망하자 그 자리에서 혼이 떠나 죽었지요. 이를 알지 못하고 똑같이 거짓말을 한 삽비라 역시 죽게 됩니다. 아무리 은밀히 행한다 해도 하나님 앞에서는 숨길 수 없습니다. 이들에 대해 성경에 기록하신 것도 성령과 주의 종을 속이면 그만큼 화가 미침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4. 정직한 마음으로 순종해야 응답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과연 가르침대로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잘 드리는지, 믿음으로 행하는지, 기도하고 순종하는지 등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십일조와 감사예물을 잘 드리고 기도도 잘하니 신앙이 좋은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마음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속일 수 없습니다. 부모 형제나 사람 사이에서도 서로 속이는 일이 없어야 하지요.
하나님을 속이는 것에는 거짓말뿐 아니라 과장하고 보태는 것과 도적질도 포함됩니다. 또한 십일조, 감사예물 등을 마음에 작정하고 하지 않는 것, 기도하는 척하는 것, 중심으로 행하지 않는 것, 기도하라는 성령의 주관에 순종하지 않는 것, 금식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것, 그 밖에도 많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속이거나 죄를 지으면 하나님이 두렵게 느껴집니다. 이런 마음이 있기 때문에 정직한 길로 갈 수 있고, 온전한 모습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연단받을 때에는 두렵고 어려운 것 같지만 값진 연단의 시기가 있기에 결국 응답받는 형통한 길로 가는 것입니다. 마치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갈 때 부모가 책망하거나 바른길로 이끄는 것이 사랑이듯이, 연단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범사에 정직한 길로 행하여 결코 하나님을 속이는 일은 없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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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자신의 소유를 팔아 하나님께 바치고자 했는데 왜 혼이 떠나 죽게 되었을까요?
2.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사환 게하시가 자신을 속이고 있는 줄 번연히 알면서도 왜 “네가 어디서 오느냐”라고 물었을까요?
3. 나아만 장군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문둥병을 치료받을 수 있었을까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85~9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들은 부부로서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초대교회 신자이다.
당시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소유를 팔아 자발적으로 교회에 드렸다.
그런데 아나니아와 삽비라 역시 자신의 소유를 팔아 교회에 바친다고 했지만 마음이 변질되어 돈의 일부를 감추고 마치 전액인 것처럼 사도 베드로를 속인다.
이는 하나님께 거짓말한 것이요, 성령을 속인 것이기에 결국 혼이 떠나 죽고 만다.
2017-02-03
제5과용서하는 마음
겔 18:21~24
읽을말씀 : 겔 18:21~24 | 외울말씀 : 마 5:23~24 ㅣ 참고 말씀: 시 103:12
교육목표 : 자신을 미워하고 해를 끼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원수 맺지 않고 넉넉히 용서하며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평소에 자신을 힘들게 하고 해를 끼치는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떤 마음이 드는지요? “잘됐다!”며 시원해 하시는지요? 선한 사람은 악을 행한 것도 불쌍한데 어려움까지 당한 것에 마음 아파하며 그가 속히 돌이키길 바랍니다. 하물며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멸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담겨 있습니다. 악인을 멸하실 수밖에 없는 공의와 끊임없이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 어찌하든 용서하시려는 사랑의 하나님
창세기 18~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심히 극에 달한 도시였습니다.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멸하시지 않고 마지막 최후까지 살릴 수 있는 증거를 찾고자 천사들을 보내 살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일을 미리 알려 주십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 마음을 잘 알았던 아브라함은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라고 여쭙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의인 오십을 찾으면 용서하시겠다고 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포기하지 않고 의인 45인, 40인, 30인, 20인, 10인이 있다면 용서해 주시겠냐고 계속 여쭙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돔 성에는 의인 열 명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살피러 온 천사들에게까지 해를 가하려 했지요.
이처럼 그들의 죄가 돌이킬 수 없는 한계에 달했기에 하나님께서 그 성을 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으로 인해 염려할 것을 아시고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시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을 멸하실 것이라는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긴 사위들은 소돔 성에 남아 있다가 죽었고,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돌아보았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기회를 주어 살리고자 하시지만 돌이키지 않고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죄악이 가득 차서 돌이킬 수 없으니 멸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진멸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역시 오래도록 참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사백 년 동안이나 참으셨지요(창 15:13~16). 그런데도 그들은 돌이키지 않고 더 악을 쌓아갔습니다. 마침내 죄악이 가득 차서 돌이킬 가능성이 없으니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이라 할지라도 돌이키면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에스겔 18장 21~22절에 잘 나타나 있지요.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말씀합니다.
그러면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을 남김없이 진멸하도록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행위를 따라 우상을 섬기고 사술을 행하며 음란하고 패역한 것을 본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에서도 여리고 성에 살았던 라합과 그 친족은 구원해 주셨습니다.
라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놀라운 일들을 전해 듣고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였으며,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 주는 선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수 2장).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고 용서하실 뿐 아니라, 의로운 사람은 멸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시며, 비록 이방인이라 해도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만나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시지요.
3. 악인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어떠한 사랑과 용서를 베푸셨습니까?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국 앗수르의 수도였는데, 얼마나 부패했던지 그들의 악행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였지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로 멸하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자 요나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요나는 자신의 조국을 괴롭히는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바랐기에 순종하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갑니다. 그러다가 대풍을 만나 파선할 위기에 놓이자 선원들이 누구 때문인지 알기 위해 제비를 뽑습니다. 결국 요나가 뽑혔고 그는 바다에 던져져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요나는 불순종을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용서하시고 물고기를 주관하여 육지에 토해 내게 하십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칩니다. 이는 그들의 죄악이 너무 커서 도저히 용서가 불가능한 상태임을 뜻합니다. 그러자 니느웨 백성은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금식하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들이 돌이켜 회개하니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며 멸하지 않으셨지요. 이처럼 악인이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십니다.
4.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죄과를 옮기시는 하나님
어떤 이는 “왜 저런 악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벌을 내리시지 않을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 달라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 원하십니다(딤전 2:4). 우리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까닭에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다윗도 큰 죄를 범하고 나서 깨달은 즉시 회개하니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도 우상 숭배와 악을 행하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회개하였더니 다시 왕위를 회복시켜 주셨지요.
시편 103편 12절에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면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신다’ 했습니다. 무조건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시지요. 사람들은 상대의 허물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죄를 미워할 뿐, 사람을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지요. 누구든지 죄에서 돌이키면 의인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양 일백 마리를 가진 목자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을 때까지 두루 찾아다니지요. 애타게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얼마나 기쁜지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함께 즐기자”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이러하기에 누가복음 15장 7절에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니 자녀 된 우리도 원수 맺는 일이나 미움 등 좋지 않은 감정을 버리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화목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23~24절에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돌이킨 후 예물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축복하시지요.
내 생각에 맞지 않는 일이나 애매한 일을 당하여 원수 맺거나 미워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허물이나 죄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셨으니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 하나님께서도 나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화목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도 아끼지 않는 사랑을 베푸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입었기에 모두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화목해야 합니다. 그러니 자신을 돌아보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서로 용서하며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이 넘쳐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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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과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여러분을 미워하고 괴롭히며 힘들게 하는 사람에 대해 중심에서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겠는지요?
3. 요나는 조국을 짓밟는 니느웨가 망했으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회개시켜 구원에 이르도록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일을 명하셨을 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77~8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니느웨’란?
앗수르 제국의 수도이다. 대규모의 성읍으로, 걸어서 한바퀴 도는 데 3일이나 걸리며, 30m가 넘는 높은 성벽에 둘러싸인 요새였다. 앗수르 사람들은 건축술, 호전적인 태도, 군사력과 악독하기로 유명했다. 특히 포로에게 잔인하기로 악명 높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의, 무절제, 우상 숭배, 잔인한 폭력성 등을 묵인하지 않고 심판하려 하시는데 그에 앞서 요나를 보내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다. 이에 그들이 돌이킴으로 구원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교육목표 : 자신을 미워하고 해를 끼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원수 맺지 않고 넉넉히 용서하며 사랑으로 품을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평소에 자신을 힘들게 하고 해를 끼치는 사람이 어려움을 당할 때 어떤 마음이 드는지요? “잘됐다!”며 시원해 하시는지요? 선한 사람은 악을 행한 것도 불쌍한데 어려움까지 당한 것에 마음 아파하며 그가 속히 돌이키길 바랍니다. 하물며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떠하시겠습니까?
그런데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멸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가 담겨 있습니다. 악인을 멸하실 수밖에 없는 공의와 끊임없이 용서하시고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1. 어찌하든 용서하시려는 사랑의 하나님
창세기 18~19장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이 심히 극에 달한 도시였습니다.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 멸하시지 않고 마지막 최후까지 살릴 수 있는 증거를 찾고자 천사들을 보내 살피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이 일을 미리 알려 주십니다.
누구보다도 하나님 마음을 잘 알았던 아브라함은 “그 성중에 의인 오십이 있을지라도 주께서 그곳을 멸하시고 그 오십 의인을 위하여 용서치 아니하시리이까”라고 여쭙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의인 오십을 찾으면 용서하시겠다고 합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포기하지 않고 의인 45인, 40인, 30인, 20인, 10인이 있다면 용서해 주시겠냐고 계속 여쭙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소돔 성에는 의인 열 명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살피러 온 천사들에게까지 해를 가하려 했지요.
이처럼 그들의 죄가 돌이킬 수 없는 한계에 달했기에 하나님께서 그 성을 멸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조카 롯으로 인해 염려할 것을 아시고 그의 가족들을 구원하시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성을 멸하실 것이라는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긴 사위들은 소돔 성에 남아 있다가 죽었고, 천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돌아보았던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기회를 주어 살리고자 하시지만 돌이키지 않고 더 이상 용서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르면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2. 죄악이 가득 차서 돌이킬 수 없으니 멸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사는 아모리 족속을 진멸하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 역시 오래도록 참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사백 년 동안이나 참으셨지요(창 15:13~16). 그런데도 그들은 돌이키지 않고 더 악을 쌓아갔습니다. 마침내 죄악이 가득 차서 돌이킬 가능성이 없으니 그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인이라 할지라도 돌이키면 죄를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에스겔 18장 21~22절에 잘 나타나 있지요. “악인이 만일 그 행한 모든 죄에서 돌이켜 떠나 내 모든 율례를 지키고 법과 의를 행하면 정녕 살고 죽지 아니할 것이라 그 범죄한 것이 하나도 기억함이 되지 아니하리니” 말씀합니다.
그러면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을 남김없이 진멸하도록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의 행위를 따라 우상을 섬기고 사술을 행하며 음란하고 패역한 것을 본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가운데에서도 여리고 성에 살았던 라합과 그 친족은 구원해 주셨습니다.
라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베푸신 놀라운 일들을 전해 듣고 하나님을 믿고 경외하였으며, 이스라엘 정탐꾼을 숨겨 주는 선을 베풀었기 때문입니다(수 2장).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고 용서하실 뿐 아니라, 의로운 사람은 멸하시지 않는 분입니다. 사랑과 공의로 다스리시며, 비록 이방인이라 해도 선을 행하며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만나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 주시지요.
3. 악인이라도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니느웨에 어떠한 사랑과 용서를 베푸셨습니까? 니느웨는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적국 앗수르의 수도였는데, 얼마나 부패했던지 그들의 악행이 하나님 앞에 상달될 정도였지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로 멸하지 않고 회개할 기회를 주시고자 요나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요나는 자신의 조국을 괴롭히는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바랐기에 순종하지 않고 다시스로 도망갑니다. 그러다가 대풍을 만나 파선할 위기에 놓이자 선원들이 누구 때문인지 알기 위해 제비를 뽑습니다. 결국 요나가 뽑혔고 그는 바다에 던져져 큰 물고기 뱃속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요나는 불순종을 회개하며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요나를 용서하시고 물고기를 주관하여 육지에 토해 내게 하십니다. 결국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칩니다. 이는 그들의 죄악이 너무 커서 도저히 용서가 불가능한 상태임을 뜻합니다. 그러자 니느웨 백성은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고 금식하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들이 돌이켜 회개하니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며 멸하지 않으셨지요. 이처럼 악인이라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십니다.
4.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죄과를 옮기시는 하나님
어떤 이는 “왜 저런 악한 사람에게 하나님은 벌을 내리시지 않을까?”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사람과 달라서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 원하십니다(딤전 2:4). 우리도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 까닭에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다윗도 큰 죄를 범하고 나서 깨달은 즉시 회개하니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도 우상 숭배와 악을 행하다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을 때에 하나님 앞에 겸비하게 회개하였더니 다시 왕위를 회복시켜 주셨지요.
시편 103편 12절에 언약을 지키고 그 법도를 기억하여 행하면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신다’ 했습니다. 무조건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돌이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그렇게 하시지요. 사람들은 상대의 허물을 두고두고 기억하며 말하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든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기억하지도 않으십니다. 죄를 미워할 뿐, 사람을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지요. 누구든지 죄에서 돌이키면 의인으로 인정해 주십니다.
누가복음 15장에는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양 일백 마리를 가진 목자가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을 때까지 두루 찾아다니지요. 애타게 양을 찾는 목자의 심정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목자는 잃어버린 양을 찾았을 때 얼마나 기쁜지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함께 즐기자” 말합니다.
하나님의 마음도 이러하기에 누가복음 15장 7절에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니 자녀 된 우리도 원수 맺는 일이나 미움 등 좋지 않은 감정을 버리고,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화목할 때 하나님의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 23~24절에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했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돌이킨 후 예물을 드려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축복하시지요.
내 생각에 맞지 않는 일이나 애매한 일을 당하여 원수 맺거나 미워하는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허물이나 죄를 용서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 용서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하셨으니 형제의 죄를 용서해야 하나님께서도 나의 죄를 용서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라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화목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 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도 아끼지 않는 사랑을 베푸시고 모든 죄를 용서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은혜를 입었기에 모두를 사랑하고 용서하며 화목해야 합니다. 그러니 자신을 돌아보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서로 용서하며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이 넘쳐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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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아모리 족속과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하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여러분을 미워하고 괴롭히며 힘들게 하는 사람에 대해 중심에서 용서하며 사랑할 수 있겠는지요?
3. 요나는 조국을 짓밟는 니느웨가 망했으면 좋겠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회개시켜 구원에 이르도록 메시지를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일을 명하셨을 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77~8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니느웨’란?
앗수르 제국의 수도이다. 대규모의 성읍으로, 걸어서 한바퀴 도는 데 3일이나 걸리며, 30m가 넘는 높은 성벽에 둘러싸인 요새였다. 앗수르 사람들은 건축술, 호전적인 태도, 군사력과 악독하기로 유명했다. 특히 포로에게 잔인하기로 악명 높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불의, 무절제, 우상 숭배, 잔인한 폭력성 등을 묵인하지 않고 심판하려 하시는데 그에 앞서 요나를 보내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를 전하게 하셨다. 이에 그들이 돌이킴으로 구원의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2017-01-28
제0과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설교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게 있어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설 명절을 맞아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기대하며 우리를 낳으시고 양육하신 조상의 믿음과 교훈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새해에도 늘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실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신앙고백 ______________________ 사도신경 ______________________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__________________________ 305장 ________________________ 다 같이
1.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2.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 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3.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 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후렴 _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기 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___________________ 야고보서 3:17~18 ___________________ 인도자
설 교 ________________________ 화목한 가정 _____________________ 설교자
2. 설교 예문
아버지가 밖에서 큰일을 이루어 명성을 얻는다 해도 자녀들이 다투고 미워하여 가정이 평안치 못하다면 아버지의 마음은 심히도 아플 것입니다. 자녀들의 입장에서도 그처럼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이라 스스로 말하기가 부끄럽지요.
그런데 아버지가 밖에서 큰일을 이루는 동안 형과 누나는 부모님의 마음으로 동생들을 돌봐주고, 동생들은 부모님께 하듯 형, 누나의 말에 순종하며 서로 화목하게 지낸다면, 아버지도 마음이 놓이며 더욱 힘 있게 일할 수 있지요. 또한 아버지의 명성과 영예를 자녀들도 기쁜 맘으로 함께 누릴 것입니다. 이처럼 서로서로 위해 주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무엇보다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입의 말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한마디의 말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불이 나면 많은 재산이 손실되고 인명 피해를 보기도 합니다. 또는 드넓은 산지의 수많은 수목이 짧은 시간에 잿더미로 변해 버리기도 하지요. 성경에서는 혀의 말이 이러한 화근이 될 수 있기에 조심할 것을 경계합니다.
야고보서 3장 5~6절에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하셨지요.
이처럼 입술로 낸 말로 인해서 얼마나 화평이 깨지기 쉬운지 알아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가족, 부부간, 자녀 간에도 그렇고, 직장, 일터에서 동료 간이나 부하 상사 간에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서운함으로 인해 낸 말이나 자기 생각에 맞지 않을 때에 내뱉는 불평의 말 안에는 악한 감정이 섞여 있지요. 우리가 서운함이나 불평불만을 마음에 가지고만 있는 것과 그 감정을 입술의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낸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를 들면, 여러분이 검은색 잉크병을 호주머니 속에 가지고 있는 것과 뚜껑을 열고 뿌리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병마개를 열고 뿌리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검은색 잉크가 튀게 됩니다. 서운한 말이나 불평불만의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그것을 입술로 내었을 때는 자신은 물론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게 되지요.
그래도 마음이 선한 경우는, 말한 사람도 ‘말하지 말걸.’ 하고 후회하거나 듣는 사람도 ‘저 사람의 입장을 더 살펴 주지 못했구나.’ 하며 마음 한편에 아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입술로 한 번 낸 말도 주워 담을 수 없지요.
이처럼 양쪽 모두 선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을 살펴 준다면 그나마 화평이 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하지 않은 마음으로 말을 내고 또 그 말을 들은 사람들도 선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의 생각이 다르다 하여 불평불만의 말을 내었는데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그 말을 들었을 때 서로 말을 맞추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별 생각 없이 어떤 사람이 하는 비진리의 말과 수군거림을 듣고 거기에 한두 마디 동조를 했다고 합시다. 물론 자신은 악한 마음에서 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자기도 모르는 악이 마음 안에 있을 수 있고 이것이 연합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면 발동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삼가 입술의 말을 조심하되 선한 것만 보고 들으며 말하시기 바랍니다. 악한 말은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말고 하지도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말씀하셨습니다(엡 4:29). 악한 말은 은혜를 끼칠 수도 없고 상대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2) 서로가 서로를 섬겨 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섬겨 줄 때 화목하며 웃음꽃이 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화평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보다는 자기 유익을 먼저 구하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사랑은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인데, 내가 원하는 만큼 받지 못하면 불평이 나오고 시시비비가 잦아지다 보면 결국에는 사랑에 금이 가고 말지요.
화평이 깨지는 또 다른 이유를 살펴보면, 상대의 의견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의를 강하게 내세우고 상대를 포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섬김의 마음이 된다면 화평이 깨어질 리가 없습니다. ‘섬김’이란 단지 겸손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에게 유익을 주며, 상대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하여 돌볼 때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듯이,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서 자신은 형체를 잃을지언정 온전히 녹아지듯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온전히 버리는 것이 바로 섬김이지요. 그래서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구해 줍니다. ‘저 사람을 위해 무엇을 도와줄까?’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했습니다(마 23:11). 중심에서 섬기는 자가 되면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참으로 상대를 섬기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내 것, 내 스타일, 내 욕심, 내 가족, 나 보기에 의로움, 내 고집 이런 것들을 다 버려야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배려하고 섬길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섬겨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섬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불편한 일들을 볼 때 마음에 담아 놓게 되고 언젠가는 변질되는 열매로 드러나기도 하지요. ‘마음에는 안 들지만 진리니까 섬겨 줘야지, 기분은 나쁘지만 참아 줘야지.’가 아니라 중심에서 섬기는 행함이 우러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라야 누구와도 화평할 수 있지요.
새해에는 온 가족이 주 안에서 덕스러운 말로 상대방에게 힘을 실어 주고, 마음 중심에서 섬김으로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어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기 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 같이
주기도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게 있어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설 명절을 맞아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기대하며 우리를 낳으시고 양육하신 조상의 믿음과 교훈을 기리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새해에도 늘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실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예배를 드리겠습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신앙고백 ______________________ 사도신경 ______________________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__________________________ 305장 ________________________ 다 같이
1. 사철에 봄바람 불어 잇고 하나님 아버지 모셨으니
믿음의 반석도 든든하다 우리 집 즐거운 동산이라
2. 어버이 우리를 고이시고 동기들 사랑에 뭉쳐 있고
기쁨과 설움도 같이하니 한간의 초가도 천국이라
3. 아침과 저녁에 수고하여 다 같이 일하는 온 식구가
한 상에 둘러서 먹고 마셔 여기가 우리의 낙원이라
후렴 _ 고마워라 임마누엘 예수만 섬기는 우리 집
고마워라 임마누엘 복되고 즐거운 하루하루
기 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___________________ 야고보서 3:17~18 ___________________ 인도자
설 교 ________________________ 화목한 가정 _____________________ 설교자
2. 설교 예문
아버지가 밖에서 큰일을 이루어 명성을 얻는다 해도 자녀들이 다투고 미워하여 가정이 평안치 못하다면 아버지의 마음은 심히도 아플 것입니다. 자녀들의 입장에서도 그처럼 훌륭한 아버지의 아들이라 스스로 말하기가 부끄럽지요.
그런데 아버지가 밖에서 큰일을 이루는 동안 형과 누나는 부모님의 마음으로 동생들을 돌봐주고, 동생들은 부모님께 하듯 형, 누나의 말에 순종하며 서로 화목하게 지낸다면, 아버지도 마음이 놓이며 더욱 힘 있게 일할 수 있지요. 또한 아버지의 명성과 영예를 자녀들도 기쁜 맘으로 함께 누릴 것입니다. 이처럼 서로서로 위해 주고 마음을 나눌 수 있는 화목한 가정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무엇보다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가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입의 말을 조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도 있듯이 한마디의 말이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불이 나면 많은 재산이 손실되고 인명 피해를 보기도 합니다. 또는 드넓은 산지의 수많은 수목이 짧은 시간에 잿더미로 변해 버리기도 하지요. 성경에서는 혀의 말이 이러한 화근이 될 수 있기에 조심할 것을 경계합니다.
야고보서 3장 5~6절에 “이와 같이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하셨지요.
이처럼 입술로 낸 말로 인해서 얼마나 화평이 깨지기 쉬운지 알아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가족, 부부간, 자녀 간에도 그렇고, 직장, 일터에서 동료 간이나 부하 상사 간에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서운함으로 인해 낸 말이나 자기 생각에 맞지 않을 때에 내뱉는 불평의 말 안에는 악한 감정이 섞여 있지요. 우리가 서운함이나 불평불만을 마음에 가지고만 있는 것과 그 감정을 입술의 말이나 행동으로 나타낸 것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비유를 들면, 여러분이 검은색 잉크병을 호주머니 속에 가지고 있는 것과 뚜껑을 열고 뿌리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병마개를 열고 뿌리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검은색 잉크가 튀게 됩니다. 서운한 말이나 불평불만의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그것을 입술로 내었을 때는 자신은 물론 그 말을 듣는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게 되지요.
그래도 마음이 선한 경우는, 말한 사람도 ‘말하지 말걸.’ 하고 후회하거나 듣는 사람도 ‘저 사람의 입장을 더 살펴 주지 못했구나.’ 하며 마음 한편에 아픔을 느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후회해도 이미 쏟아진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는 것처럼 입술로 한 번 낸 말도 주워 담을 수 없지요.
이처럼 양쪽 모두 선한 마음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상대방을 살펴 준다면 그나마 화평이 깨어지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선하지 않은 마음으로 말을 내고 또 그 말을 들은 사람들도 선하지 않은 경우입니다. 어떤 일을 할 때 자신의 생각이 다르다 하여 불평불만의 말을 내었는데 그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그 말을 들었을 때 서로 말을 맞추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별 생각 없이 어떤 사람이 하는 비진리의 말과 수군거림을 듣고 거기에 한두 마디 동조를 했다고 합시다. 물론 자신은 악한 마음에서 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지만, 자기도 모르는 악이 마음 안에 있을 수 있고 이것이 연합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면 발동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삼가 입술의 말을 조심하되 선한 것만 보고 들으며 말하시기 바랍니다. 악한 말은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말고 하지도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말씀하셨습니다(엡 4:29). 악한 말은 은혜를 끼칠 수도 없고 상대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2) 서로가 서로를 섬겨 주어야 합니다
가정에서 서로가 서로를 섬겨 줄 때 화목하며 웃음꽃이 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화평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보다는 자기 유익을 먼저 구하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사랑은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인데, 내가 원하는 만큼 받지 못하면 불평이 나오고 시시비비가 잦아지다 보면 결국에는 사랑에 금이 가고 말지요.
화평이 깨지는 또 다른 이유를 살펴보면, 상대의 의견을 이해하려고 하기보다는 자신의 의를 강하게 내세우고 상대를 포용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섬김의 마음이 된다면 화평이 깨어질 리가 없습니다. ‘섬김’이란 단지 겸손할 뿐만 아니라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에게 유익을 주며, 상대의 필요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녀를 사랑하여 돌볼 때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듯이,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서 자신은 형체를 잃을지언정 온전히 녹아지듯이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자기를 온전히 버리는 것이 바로 섬김이지요. 그래서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를 먼저 생각하고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구해 줍니다. ‘저 사람을 위해 무엇을 도와줄까?’ 하는 생각으로 스스로 종의 멍에를 메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중에 큰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했습니다(마 23:11). 중심에서 섬기는 자가 되면 큰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참으로 상대를 섬기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어야 합니다. 내 것, 내 스타일, 내 욕심, 내 가족, 나 보기에 의로움, 내 고집 이런 것들을 다 버려야 어떤 상황에서도 상대를 배려하고 섬길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자신이 섬겨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섬길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 마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면, 불편한 일들을 볼 때 마음에 담아 놓게 되고 언젠가는 변질되는 열매로 드러나기도 하지요. ‘마음에는 안 들지만 진리니까 섬겨 줘야지, 기분은 나쁘지만 참아 줘야지.’가 아니라 중심에서 섬기는 행함이 우러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라야 누구와도 화평할 수 있지요.
새해에는 온 가족이 주 안에서 덕스러운 말로 상대방에게 힘을 실어 주고, 마음 중심에서 섬김으로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어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기 도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 같이
주기도문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17-01-27
제4과악행에서 돌이키라
렘 25:1~5
읽을말씀 : 렘 25:1~5 | 외울말씀 : 살전 5:22 ㅣ 참고 말씀: 갈 5:19~21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행에서 떠나 오직 진리대로 행하여 응답과 축복을 받는 주인공이 되게 한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이 평안할 때에는 하나님 섬기기를 게을리하다가, 어려움이 닥치면 다시 하나님 찾기를 반복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른길로 이끄시기 위해 선지자들을 보내 악행에서 돌이키도록 일깨워 주셨습니다.
1. 악행에서 돌이키기 원하시는 하나님
남유다 왕국 말기 요시야 왕 때부터 활동한 예레미야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며 율법을 무시해 온 백성을 향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백성은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했지요. 당시 북이스라엘 왕국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후였습니다. 그런데 남유다 왕국마저 그 악행 때문에 망하게 되었으니 예레미야가 이를 안타까워하며 악행에서 돌이켜야 할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왕국에 진노하신 것은 바로 간음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으로 간음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외에도 남유다 백성은 갖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23년간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라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렘 38:4~6).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말씀대로 행치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이나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데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하셨으니 악행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2. 우리가 왜 악행에서 돌이켜야 하는가?
우리는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집에서는 가족과 일가친척,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 직장에서는 상사와 동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유익을 주며 행복하게 살기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13~16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하시고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셨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서로에게 요구되는 사항이 있는데,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누군가 고통받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매일 술에 만취하여 귀가한다면 가족이 얼마나 고통받겠습니까? 학교에서 학생이 늘 소란을 피우며 수업을 방해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직장에서도 동료 간에 감정이나 불편한 마음이 있다면 서로 힘들고 업무 능률도 떨어질 것입니다. 더구나 법에 저촉받을 만큼 큰 죄에 해당하는 도둑질이나 사기 행각, 간음, 살인, 폭행 등은 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줍니다.
주 안에서도 크고 작은 죄가 많습니다. 그중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는 악행이 있는데, 바로 육체의 일입니다(갈 5:19~21). 이 외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쉽게 짓는 죄에는 시기, 비방, 판단, 정죄, 미움, 간음, 거짓 등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도 쉽게 짓는 죄 중의 하나입니다(삼상 12:23). 하나님께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 깨어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죄를 상세하게 열거하는 것은 죄를 짓지 않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혹 죄를 지었다 해도 돌이키기 원하시는 것이지요.
만일 이러한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이런저런 고통과 연단, 시험 환난이 따릅니다. 그리고 현저한 육체의 일 곧 음행과 호색, 우상 숭배, 분쟁, 방탕함 등의 죄를 계속 지어 나가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한 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처럼 악행에서 돌이키지 않아 온갖 재앙을 겪은 대표적인 사람이 애굽의 바로 왕입니다.
3. 온갖 재앙을 겪은 애굽 왕 바로를 통해서 얻는 교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심으로 모세를 그들의 구원자로 보내십니다. 즉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모세와 아론은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이적을 보여 주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내셨음을 알려 줍니다(출 7:9~10). 그래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이 깨닫고 돌이킬 수 있도록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립니다. 애굽의 하수 물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으로 시작하여 개구리 재앙, 이의 재앙, 파리 떼의 재앙, 악질의 재앙, 독종의 재앙, 우박의 재앙, 메뚜기 재앙, 흑암의 재앙, 장자의 재앙으로 생명까지 거두어 가는 열 재앙을 당하였지요.
바로 왕은 열 번째 재앙을 당한 후에야 출애굽을 허락하지만 이내 마음이 변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바로 왕의 마음이 또 변할 것을 다 아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급히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두셨습니다. 온 애굽 사람들도 이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서 떠나가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스라엘 자손이 다 떠나니 바로는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부랴부랴 병거를 타고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 결과 홍해를 건너던 애굽 군대는 병거와 함께 모두 수장되고 말았지요.
만일 바로 왕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곧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주었더라면 화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 재앙으로 고통받지도, 사랑하는 아들과 많은 생축, 재물과 병사를 잃지도 않았겠지요.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깨우쳐야 할까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에 순종하면 축복이요,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키라 하실 때에 금방 돌이키면 손실이 적지만 시간을 끄는 만큼 많은 손실을 입습니다.
4. 악행에서 돌이킬 때 임하는 축복
여기서 돌이킨다는 것은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했다면 다시는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였다면 즉시 돌이키되 완전히 돌이켜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 하셨는데 서쪽으로 갔다면 완전히 돌이켜 동쪽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 용서를 베풀며 응답해 주십니다.
열왕기하 20장에 나오는 히스기야 왕은 처음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교만해졌습니다. 결국 이사야 선지자에게서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하나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병으로 죽게 되자 그는 죄에서 돌이키고 통회자복하며 기도했습니다(왕하 20:3).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습니다. 지난날 그가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시고 기도를 들으셨지요.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하되, 죄에서 철저히 돌이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야겠습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녀들이 모두 죽고 많은 재물이 사라졌을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 악창이 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원망 불평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하나님’이라고까지 합니다(욥 27:2). 그럴 때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 나타나 잘못을 하나하나 지적하십니다. 이에 욥이 자신의 잘못과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악을 깨닫고 중심으로 회개하니 하나님께서는 이전보다 갑절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작심삼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이 마음 안에 계시기 때문에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면 온전히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한 번 약속한 것은 변개하지 않고 지켜 행해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악행이 발견되면 즉시 돌이킬 때 응답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언제 불러가실지, 주님께서 언제 강림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니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영과 혼과 몸을 흠 없게 보전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악에서 돌이켜 오직 진리로 행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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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범죄한 유다 백성에게 23년간이나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라고 호소한 눈물의 선지자는 누구일까요? ( )
2. 죽을병이 들었을 때 낯을 벽으로 향하여 여호와께 눈물로 통회자복하며 기도한 후에 15년이나 생명을 연장받은 왕은 누구일까요? ( )
3.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악행에 대해 써 보세요(갈 5:19~21).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61~7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애굽의 술객들은 어떻게 물을 피로 변하게 했을까?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첫 번째 재앙은 피의 재앙이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지팡이를 들어 하수를 치니 순식간에 물이 피로 변했다. 그런데 애굽의 술객들도 물이 피로 변하게 하니 바로가 모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다.
애굽 궁중의 술객들은 갖가지 재주를 부리며 왕을 즐겁게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술법을 통해 벼슬길에 올랐으며 조상 대대로 이어온 가업이기 때문에 재질을 타고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들은 악한 영들과 접하였고 교묘한 눈속임과 자신들이 터득한 기법을 활용하여 물이 피로 변하게 했다. 물론 애굽 전역의 하수를 피로 변하게 한 모세와 달리 그들은 일부만을 피로 변하게 했을 뿐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행에서 떠나 오직 진리대로 행하여 응답과 축복을 받는 주인공이 되게 한다.
이스라엘 역사를 살펴보면 그들이 평안할 때에는 하나님 섬기기를 게을리하다가, 어려움이 닥치면 다시 하나님 찾기를 반복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른길로 이끄시기 위해 선지자들을 보내 악행에서 돌이키도록 일깨워 주셨습니다.
1. 악행에서 돌이키기 원하시는 하나님
남유다 왕국 말기 요시야 왕 때부터 활동한 예레미야는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오랫동안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섬기며 율법을 무시해 온 백성을 향해 죄를 회개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하고 백성은 포로로 잡혀갈 것을 예언했지요. 당시 북이스라엘 왕국은 이미 앗수르에 의해 멸망한 후였습니다. 그런데 남유다 왕국마저 그 악행 때문에 망하게 되었으니 예레미야가 이를 안타까워하며 악행에서 돌이켜야 할 것을 선포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왕국에 진노하신 것은 바로 간음 때문이었습니다. 영적으로 간음은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이 외에도 남유다 백성은 갖가지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23년간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라 했지만 그들은 오히려 예레미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렘 38:4~6).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 중에도 말씀대로 행치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경이나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 수 있는데도 말씀대로 행하지 않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하셨으니 악행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2. 우리가 왜 악행에서 돌이켜야 하는가?
우리는 많은 사람과 더불어 살아갑니다. 집에서는 가족과 일가친척,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친구들, 직장에서는 상사와 동료들과 함께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서로 유익을 주며 행복하게 살기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13~16절에 ‘너희는 세상의 소금과 빛’이라 하시고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하셨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서로에게 요구되는 사항이 있는데, 그것을 지키지 않으면 누군가 고통받는 사람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매일 술에 만취하여 귀가한다면 가족이 얼마나 고통받겠습니까? 학교에서 학생이 늘 소란을 피우며 수업을 방해한다면 다른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직장에서도 동료 간에 감정이나 불편한 마음이 있다면 서로 힘들고 업무 능률도 떨어질 것입니다. 더구나 법에 저촉받을 만큼 큰 죄에 해당하는 도둑질이나 사기 행각, 간음, 살인, 폭행 등은 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줍니다.
주 안에서도 크고 작은 죄가 많습니다. 그중 하나님 앞에 큰 죄가 되는 악행이 있는데, 바로 육체의 일입니다(갈 5:19~21). 이 외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쉽게 짓는 죄에는 시기, 비방, 판단, 정죄, 미움, 간음, 거짓 등이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것도 쉽게 짓는 죄 중의 하나입니다(삼상 12:23). 하나님께서는 “쉬지 말고 기도하라, 깨어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죄를 상세하게 열거하는 것은 죄를 짓지 않기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혹 죄를 지었다 해도 돌이키기 원하시는 것이지요.
만일 이러한 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이런저런 고통과 연단, 시험 환난이 따릅니다. 그리고 현저한 육체의 일 곧 음행과 호색, 우상 숭배, 분쟁, 방탕함 등의 죄를 계속 지어 나가면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한 대로 구원받지 못합니다. 이처럼 악행에서 돌이키지 않아 온갖 재앙을 겪은 대표적인 사람이 애굽의 바로 왕입니다.
3. 온갖 재앙을 겪은 애굽 왕 바로를 통해서 얻는 교훈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백성들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심으로 모세를 그들의 구원자로 보내십니다. 즉 모세를 지도자로 세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해 주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모세와 아론은 바로 왕에게 하나님의 이적을 보여 주며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보내셨음을 알려 줍니다(출 7:9~10). 그래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므로 하나님께서는 바로 왕이 깨닫고 돌이킬 수 있도록 애굽에 열 재앙을 내립니다. 애굽의 하수 물이 피가 되게 하는 재앙으로 시작하여 개구리 재앙, 이의 재앙, 파리 떼의 재앙, 악질의 재앙, 독종의 재앙, 우박의 재앙, 메뚜기 재앙, 흑암의 재앙, 장자의 재앙으로 생명까지 거두어 가는 열 재앙을 당하였지요.
바로 왕은 열 번째 재앙을 당한 후에야 출애굽을 허락하지만 이내 마음이 변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바로 왕의 마음이 또 변할 것을 다 아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급히 출발할 수 있도록 준비시켜 두셨습니다. 온 애굽 사람들도 이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어서 떠나가 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이스라엘 자손이 다 떠나니 바로는 또다시 마음이 바뀌어 부랴부랴 병거를 타고 이스라엘 백성의 뒤를 쫓아갔습니다. 그 결과 홍해를 건너던 애굽 군대는 병거와 함께 모두 수장되고 말았지요.
만일 바로 왕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곧바로 이스라엘 백성을 놓아 주었더라면 화를 당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여러 재앙으로 고통받지도, 사랑하는 아들과 많은 생축, 재물과 병사를 잃지도 않았겠지요.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깨우쳐야 할까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에 순종하면 축복이요, 그렇지 않으면 재앙이 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이키라 하실 때에 금방 돌이키면 손실이 적지만 시간을 끄는 만큼 많은 손실을 입습니다.
4. 악행에서 돌이킬 때 임하는 축복
여기서 돌이킨다는 것은 잘못을 뉘우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기로 결심했다면 다시는 그 잘못을 반복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범죄하였다면 즉시 돌이키되 완전히 돌이켜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동쪽으로 가라 하셨는데 서쪽으로 갔다면 완전히 돌이켜 동쪽으로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긍휼, 용서를 베풀며 응답해 주십니다.
열왕기하 20장에 나오는 히스기야 왕은 처음에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교만해졌습니다. 결국 이사야 선지자에게서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는 하나님 말씀을 듣게 됩니다. 병으로 죽게 되자 그는 죄에서 돌이키고 통회자복하며 기도했습니다(왕하 20:3).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15년이나 연장해 주셨습니다. 지난날 그가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시고 기도를 들으셨지요.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선을 행하되, 죄에서 철저히 돌이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우쳐야겠습니다.
욥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자녀들이 모두 죽고 많은 재물이 사라졌을 때에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감사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몸에 악창이 나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원망 불평이 나왔습니다. 심지어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하나님’이라고까지 합니다(욥 27:2). 그럴 때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 나타나 잘못을 하나하나 지적하십니다. 이에 욥이 자신의 잘못과 마음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악을 깨닫고 중심으로 회개하니 하나님께서는 이전보다 갑절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작심삼일인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성령이 마음 안에 계시기 때문에 기도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면 온전히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한 번 약속한 것은 변개하지 않고 지켜 행해야 합니다. 나아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자신의 악행이 발견되면 즉시 돌이킬 때 응답이 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영혼을 언제 불러가실지, 주님께서 언제 강림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니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영과 혼과 몸을 흠 없게 보전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깊이 새기고 악에서 돌이켜 오직 진리로 행할 수 있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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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범죄한 유다 백성에게 23년간이나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돌이키라고 호소한 눈물의 선지자는 누구일까요? ( )
2. 죽을병이 들었을 때 낯을 벽으로 향하여 여호와께 눈물로 통회자복하며 기도한 후에 15년이나 생명을 연장받은 왕은 누구일까요? ( )
3.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는 악행에 대해 써 보세요(갈 5:19~21).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61~7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애굽의 술객들은 어떻게 물을 피로 변하게 했을까?
하나님께서 애굽에 내린 첫 번째 재앙은 피의 재앙이다.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께서 명하신 대로 지팡이를 들어 하수를 치니 순식간에 물이 피로 변했다. 그런데 애굽의 술객들도 물이 피로 변하게 하니 바로가 모세의 요청을 들어주지 않는다.
애굽 궁중의 술객들은 갖가지 재주를 부리며 왕을 즐겁게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술법을 통해 벼슬길에 올랐으며 조상 대대로 이어온 가업이기 때문에 재질을 타고날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그들은 악한 영들과 접하였고 교묘한 눈속임과 자신들이 터득한 기법을 활용하여 물이 피로 변하게 했다. 물론 애굽 전역의 하수를 피로 변하게 한 모세와 달리 그들은 일부만을 피로 변하게 했을 뿐이다.
2017-01-20
제3과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되리라
롬 10:10
읽을말씀 : 롬 10:10 | 외울말씀 : 롬 10:10 ㅣ 참고 말씀: 민 13:31~33, 14:7~9
교육목표 : 부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아닌 믿음의 긍정적인 고백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긍정적인 고백을 하며 하나님 역사를 입으로 시인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입술의 고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고백으로 항상 승리의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의 중요성
어떤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수록 더욱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중에도 긍정적인 자세로 어려움을 이기고 성공하는 경우를 봅니다. 물론 입술로 긍정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요. 최선을 다하는 노력과 인내,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먼저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중에 열 사람은 가나안 거민을 두려워하여 그 땅을 악평하며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 14:7~9)
이러한 믿음의 고백, 긍정의 고백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보고를 한 열 명의 정탐꾼과 그들의 말을 듣고 불평한 당시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어떤 일을 만날 때에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백부장의 믿음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는 자기 하인의 중풍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갸륵한 마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라가 하인을 고쳐 주시려 했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 8:8~9)
백부장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 8:10) 하며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과연 백부장이 시인한 대로 하인의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은 어떤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까?
여인은 딸에게 들린 귀신을 쫓아 주시라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뜻밖에도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말씀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개 취급을 당했으니 모멸감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그렇지 않았지요.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겸비한 고백으로 은혜를 구했습니다.
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 반드시 응답받고자 하는 마음과 변함없는 믿음이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어떠한 말씀에도 오해하지 않고 변개하지 않는 선한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여인의 선과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집에 돌아가 보니 딸이 침대에 누워 있는데 귀신이 나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믿음대로 즉시 응답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구할 때 반드시 응답받습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에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2. 입술로 매를 자청한 사람과 복을 받은 사람
성경에 보면 입술로 매를 자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지만 결과는 그 입술로 시인한 대로 되었습니다. 장자의 모든 축복권이 동생 야곱에게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열왕기하 6~7장에도 비슷한 일이 나옵니다.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오래 포위해서 공격하므로 성 안에는 먹을 것이 없어 자식까지 잡아먹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밀가루와 보리가 헐값에 팔리리라” 예언하지만 왕의 심복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망령된 말을 하지요. 그러자 엘리사는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합니다.
다음 날 장관은 성문을 지키고 있다가 아람 군대의 진을 노략하러 가던 백성에게 밟혀 죽고 맙니다. 선지자의 말을 부정하므로 저주를 받았지요. 이처럼 말 한마디에 하나님 역사가 따르기도 하고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가 따르기도 합니다.
반면 역대하 20장을 보면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오자 여호사밧 왕은 온 백성과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자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가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왕은 백성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격려하지요. 또한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혀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왕의 긍정적인 고백과 믿음의 행함을 보시고 싸우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게 역사하셨습니다.
3.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응답받으려면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입으로 시인하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마음에 믿지 않고 의심하면서 “믿습니다.”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무조건 입으로 시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에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하여 비진리를 버리며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요. 그래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 뜻을 좇아 말씀대로 행하니 하나님께서 그가 입술로 시인할 때 응답하십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열심히 하나님 앞에 심고 구제하며 예배와 각종 모임에 참석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은커녕 어려운 일만 닥치니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원망 불평했다면 왜 그런 모습이 나온 것일까요? 그가 정말로 하나님을 마음에 믿었다면 마음이 바뀌지 않고 끝까지 인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믿은 것이 아니라 단지 입술로 시인한 것이니 때가 지나자 본심이 드러난 것이지요.
따라서 똑같이 충성하고 심었어도 누구는 응답받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입술의 고백대로 응답받습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은 입술로 고백했다 해도 그것이 참이 아니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의 악이 드러납니다.
야고보서 3장 11절에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라고 말씀합니다. “믿습니다.” 해 놓고 다음에 부정하는 쓴물을 낸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내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인한 대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혹여 힘들고 어려울 때, 시험 환난이 닥쳤을 때에 원망 불평하는 말, 하나님 혹은 주의 종, 형제를 서운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답게 단물만 내는 거룩한 입술이 되어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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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의 고백을 써 보세요(민 14:7~9).
2.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올 때 여호사밧 왕이 백성에게 한 믿음의 고백을 써 보세요(대하 20:20).
3. 귀신 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했을 때 개 취급을 당했음에도 겸손히 끝까지 믿음의 고백을 한 수로보니게 여인의 고백을 써 보세요(막 7:28).
4.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롬 10:10)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49~6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입술의 단물이란?
영적으로 진리의 말, 영혼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힘을 주는 말, 믿음의 고백 혹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간증을 말한다. 사람의 말은 그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단물만 내는 입술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선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씀하고 있다.
교육목표 : 부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아닌 믿음의 긍정적인 고백으로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려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긍정적인 고백을 하며 하나님 역사를 입으로 시인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고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입술의 고백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고백으로 항상 승리의 삶을 영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의 중요성
어떤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일수록 더욱 긍정적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중에도 긍정적인 자세로 어려움을 이기고 성공하는 경우를 봅니다. 물론 입술로 긍정만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니지요. 최선을 다하는 노력과 인내, 지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믿음의 고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전, 먼저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냈습니다. 그중에 열 사람은 가나안 거민을 두려워하여 그 땅을 악평하며 부정적인 보고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긍정적인 대답을 합니다.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민 14:7~9)
이러한 믿음의 고백, 긍정의 고백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부정적인 보고를 한 열 명의 정탐꾼과 그들의 말을 듣고 불평한 당시 20세 이상의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어떤 일을 만날 때에 여호수아와 갈렙 같은 믿음의 고백이 필요합니다.
마태복음 8장을 보면 백부장의 믿음의 고백이 나옵니다. 그는 자기 하인의 중풍을 고치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의 갸륵한 마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그를 따라가 하인을 고쳐 주시려 했습니다. 그러자 백부장은 놀라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주여 내 집에 들어오심을 나는 감당치 못하겠사오니 다만 말씀으로만 하옵소서 그러면 내 하인이 낫겠삽나이다 나도 남의 수하에 있는 사람이요 내 아래도 군사가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내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마 8:8~9)
백부장의 고백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마 8:10) 하며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과연 백부장이 시인한 대로 하인의 병이 깨끗이 나았습니다.
마가복음 7장에 나오는 수로보니게 여인은 어떤 믿음의 고백을 했습니까?
여인은 딸에게 들린 귀신을 쫓아 주시라고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간구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뜻밖에도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말씀합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개 취급을 당했으니 모멸감으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그렇지 않았지요.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겸비한 고백으로 은혜를 구했습니다.
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 반드시 응답받고자 하는 마음과 변함없는 믿음이 얼마나 감동적입니까? 어떠한 말씀에도 오해하지 않고 변개하지 않는 선한 마음이 참 아름답습니다. 여인의 선과 믿음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집에 돌아가 보니 딸이 침대에 누워 있는데 귀신이 나가 정상으로 돌아와 있었습니다. 믿음대로 즉시 응답받은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더라도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구할 때 반드시 응답받습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에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2. 입술로 매를 자청한 사람과 복을 받은 사람
성경에 보면 입술로 매를 자청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복을 받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삭의 아들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 그릇에 팔았습니다. 그는 대수롭지 않게 한 말이었지만 결과는 그 입술로 시인한 대로 되었습니다. 장자의 모든 축복권이 동생 야곱에게 넘어가고 만 것입니다.
열왕기하 6~7장에도 비슷한 일이 나옵니다.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오래 포위해서 공격하므로 성 안에는 먹을 것이 없어 자식까지 잡아먹는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밀가루와 보리가 헐값에 팔리리라” 예언하지만 왕의 심복 장관이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망령된 말을 하지요. 그러자 엘리사는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합니다.
다음 날 장관은 성문을 지키고 있다가 아람 군대의 진을 노략하러 가던 백성에게 밟혀 죽고 맙니다. 선지자의 말을 부정하므로 저주를 받았지요. 이처럼 말 한마디에 하나님 역사가 따르기도 하고 원수 마귀 사단의 역사가 따르기도 합니다.
반면 역대하 20장을 보면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오자 여호사밧 왕은 온 백성과 함께 금식하며 하나님의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자 선지자를 통해 여호와가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합니다. 왕은 백성에게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격려하지요. 또한 찬양하는 사람들에게 거룩한 예복을 입혀 군대 앞에서 행하며 여호와를 찬송하게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는 왕의 긍정적인 고백과 믿음의 행함을 보시고 싸우지 않고도 승리할 수 있게 역사하셨습니다.
3.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응답받으려면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누구든지 입으로 시인하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마음에 믿지 않고 의심하면서 “믿습니다.” 한다고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머리로 아는 것을 무조건 입으로 시인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마음에 의심 없이 믿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말씀대로 행하여 비진리를 버리며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옵니다.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며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지요. 그래서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사람은 그 뜻을 좇아 말씀대로 행하니 하나님께서 그가 입술로 시인할 때 응답하십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열심히 하나님 앞에 심고 구제하며 예배와 각종 모임에 참석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은커녕 어려운 일만 닥치니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원망 불평했다면 왜 그런 모습이 나온 것일까요? 그가 정말로 하나님을 마음에 믿었다면 마음이 바뀌지 않고 끝까지 인내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믿은 것이 아니라 단지 입술로 시인한 것이니 때가 지나자 본심이 드러난 것이지요.
따라서 똑같이 충성하고 심었어도 누구는 응답받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이유를 알아야 합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입술의 고백대로 응답받습니다. 믿지 못하는 사람은 입술로 고백했다 해도 그것이 참이 아니기 때문에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며 시간이 지나면 그 마음의 악이 드러납니다.
야고보서 3장 11절에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라고 말씀합니다. “믿습니다.” 해 놓고 다음에 부정하는 쓴물을 낸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러나 인내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믿어드리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시인한 대로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혹여 힘들고 어려울 때, 시험 환난이 닥쳤을 때에 원망 불평하는 말, 하나님 혹은 주의 종, 형제를 서운케 하는 말은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답게 단물만 내는 거룩한 입술이 되어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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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의 고백을 써 보세요(민 14:7~9).
2. 모압과 암몬이 연합하여 남유다 왕국을 치러 올 때 여호사밧 왕이 백성에게 한 믿음의 고백을 써 보세요(대하 20:20).
3. 귀신 들린 딸을 치료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구했을 때 개 취급을 당했음에도 겸손히 끝까지 믿음의 고백을 한 수로보니게 여인의 고백을 써 보세요(막 7:28).
4.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롬 10:10)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49~6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입술의 단물이란?
영적으로 진리의 말, 영혼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힘을 주는 말, 믿음의 고백 혹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간증을 말한다. 사람의 말은 그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단물만 내는 입술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선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마태복음 12장 35절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씀하고 있다.
2017-01-13
제2과응답의 하나님
시 78:12~29
읽을말씀 : 시 78:12~29 | 외울말씀 : 마 7:7 l 참고 말씀: 삼상 1:11, 마 1:19
교육목표 : 아름답고 선한 마음을 이루어 믿음으로 순종하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행복한 삶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시행해 주기 원하십니다. 성도 중에는 하나님께 구하여 무엇이나 응답받아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간혹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실까? 천국과 지옥이 있을까? 혹 없다면 교회에 다니는 것이 손해인데….’ 하고 의심하므로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 반드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찾으면 누구나 만나게 될 것입니다.
1.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성경을 보면 한나가 잉태하지 못하여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사무엘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이미 경수가 끊어졌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니 이삭을 낳을 수 있었지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아무리 잉태할 수 없는 상태라 해도 아이를 출산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엘리사 선지자가 살려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지요(요 11장). 또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기도 하셨습니다. 시체를 향해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자 일어나 앉고 말하였지요(눅 7장).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러한 역사를 베풀었습니다. 바울은 삼층 누각에 걸터앉아 설교를 듣다 졸음을 이기지 못해 떨어져 죽은 유두고라는 청년을 살렸지요. 베드로는 다비다라는 여인을 기도로 살렸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그 당시뿐 아니라, 지금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받는 하나님의 종이나 믿음의 사람을 통해 역사하고 계십니다.
2.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나타내기 위해 선택된 민족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애굽(이집트)에서 약 400년간 노예생활을 합니다. 이때 심한 고역으로 탄식하며 부르짖는 백성들의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지요(출 2:23).
그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세워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축복과 구원의 땅으로 인도해 가셨습니다.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늘을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민 14:14).
그런데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때 모세가 반석을 치니 물이 강같이 흘렀지요. 하지만 백성들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계속 하나님께 불평하고 범죄합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시 78:19~20) 하였지요.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믿음이 온전치 않음을 아시기에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를 비같이 내려 40여 년간이나 먹이셨습니다. 또한 수많은 메추라기 떼를 이스라엘 백성의 거처에 보내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시 78:23~29).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많은 기사와 표적을 베푸셨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 여정은 우리가 죄 가운데 살던 생활에서 벗어나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믿음의 생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우리 삶 속에서 만나 주시고 응답하며 천국에까지 인도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약속하셨으니 우리는 얼마든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응답은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가?
아브라함은 변함없는 믿음으로 응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도 살리시는 전지전능한 분임을 믿었기에 어떤 것을 요구하시더라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의심하고 원망 불평합니다. 이처럼 두 마음을 품으면 응답받을 수 없지만(약 1:6~8)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응답받기 위해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로 들어갈 만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왕상 18:42). 이를 통해 3년 반 동안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던 땅에 큰 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한 사람에게 임합니다. 고넬료는 이달리야대 백부장으로 이방인입니다. 그는 경건하여 온 가족과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습니다(행 10:2). 이러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니 베드로를 보내 그와 그 자리에 참석한 고넬료의 일가친척, 친구까지도 모두 성령을 받고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정성껏 드림으로 축복과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셨지요. 이때 솔로몬은 부귀영화가 아닌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지혜는 물론 구하지 않은 부귀영화까지 주셨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오늘날의 예배를 의미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때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소년 다윗은 어떠하였습니까?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 군대와 대치할 때에 블레셋에는 골리앗이라는 큰 용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40일간이나 아침 저녁으로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였지만 아무도 그와 싸우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를 목도한 다윗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물매로 돌을 던졌는데 정확히 그의 이마에 박혀 엎드러지고 말았지요. 결국 이스라엘이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다윗처럼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합한 중심이 되면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행 13:22).
4. 하나님을 신속히 만나는 사람들의 중심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동침한 적도 없는데 마리아의 배가 불러옵니다. 물론 마리아는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했지만 요셉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사랑하는 여인을 죽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므로 이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지요(마 1:19). 상대의 허물을 알리거나 해를 끼치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런 착하고 의로운 마음이었기 때문에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했지요.
한편 마리아는 어떤 마음입니까?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했지요. 이때 마리아는 자신의 처지와 어려움을 생각지 않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고백하며 그대로 믿고 순종하였습니다(눅 1장).
세례 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눅 1:6). 제사장이었던 사가랴와 아내 엘리사벳은 늙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그들에게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가진 세례 요한을 잉태하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어떤 마음과 중심으로 나아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하나님을 만나면 다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사람에게 분명히 만나 주시므로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복을 받고 형통한 길로 항상 인도받아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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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인물을 찾아 써 보세요.
1.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며 항상 기도하였고, 베드로를 통해 일가친척, 친구까지 성령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 )
2. 정혼한 여인이 동침한 적이 없는데 배가 불러왔을 때 허물을 알리려 하거나 해를 끼치려는 마음이 전혀 없이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 )
3.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31~4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만나’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던 도중, 광야에서 먹을 음식이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신 양식이다.
작고 둥글며 희고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았다(민 11:7).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아 과자를 만들어 먹었는데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다(출 16:31).
교육목표 : 아름답고 선한 마음을 이루어 믿음으로 순종하며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아 행복한 삶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로 시행해 주기 원하십니다. 성도 중에는 하나님께 구하여 무엇이나 응답받아 행복한 삶을 누리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간혹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실까? 천국과 지옥이 있을까? 혹 없다면 교회에 다니는 것이 손해인데….’ 하고 의심하므로 응답받지 못하는 경우를 봅니다. 의심하지 않고 믿으면 반드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할 수 있습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찾으면 누구나 만나게 될 것입니다.
1.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성경을 보면 한나가 잉태하지 못하여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사무엘을 낳을 수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이미 경수가 끊어졌지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니 이삭을 낳을 수 있었지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아무리 잉태할 수 없는 상태라 해도 아이를 출산할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엘리사 선지자가 살려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가 나는 나사로를 살리셨지요(요 11장). 또한 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기도 하셨습니다. 시체를 향해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자 일어나 앉고 말하였지요(눅 7장).
사도들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러한 역사를 베풀었습니다. 바울은 삼층 누각에 걸터앉아 설교를 듣다 졸음을 이기지 못해 떨어져 죽은 유두고라는 청년을 살렸지요. 베드로는 다비다라는 여인을 기도로 살렸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는 그 당시뿐 아니라, 지금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사랑받는 하나님의 종이나 믿음의 사람을 통해 역사하고 계십니다.
2. 만나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나타내기 위해 선택된 민족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애굽(이집트)에서 약 400년간 노예생활을 합니다. 이때 심한 고역으로 탄식하며 부르짖는 백성들의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지요(출 2:23).
그들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세워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축복과 구원의 땅으로 인도해 가셨습니다. 홍해를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시며,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그늘을 주시고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민 14:14).
그런데 백성들은 마실 물이 없다고 모세를 원망합니다. 그때 모세가 반석을 치니 물이 강같이 흘렀지요. 하지만 백성들은 어려움을 만날 때마다 계속 하나님께 불평하고 범죄합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능히 식탁을 준비하시랴 저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매 시내가 넘쳤거니와 또 능히 떡을 주시며 그 백성을 위하여 고기를 예비하시랴”(시 78:19~20) 하였지요.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의 믿음이 온전치 않음을 아시기에 어떻게 역사하십니까? 하늘 문을 여시고 만나를 비같이 내려 40여 년간이나 먹이셨습니다. 또한 수많은 메추라기 떼를 이스라엘 백성의 거처에 보내 배불리 먹게 하셨습니다(시 78:23~29).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많은 기사와 표적을 베푸셨지요.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이 여정은 우리가 죄 가운데 살던 생활에서 벗어나 천국에 들어가기까지 믿음의 생활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역사하신 것처럼 우리 삶 속에서 만나 주시고 응답하며 천국에까지 인도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약속하셨으니 우리는 얼마든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응답은 어떤 사람에게 임하는가?
아브라함은 변함없는 믿음으로 응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도 살리시는 전지전능한 분임을 믿었기에 어떤 것을 요구하시더라도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 생각에 맞지 않으면 의심하고 원망 불평합니다. 이처럼 두 마음을 품으면 응답받을 수 없지만(약 1:6~8) 어떠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응답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응답받기 위해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 얼굴을 무릎 사이로 들어갈 만큼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왕상 18:42). 이를 통해 3년 반 동안 한 방울의 비도 내리지 않던 땅에 큰 비가 내리게 되었습니다.
또한 고넬료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을 행한 사람에게 임합니다. 고넬료는 이달리야대 백부장으로 이방인입니다. 그는 경건하여 온 가족과 함께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였습니다(행 10:2). 이러한 고넬료의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께 상달되니 베드로를 보내 그와 그 자리에 참석한 고넬료의 일가친척, 친구까지도 모두 성령을 받고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정성껏 드림으로 축복과 응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니 솔로몬의 꿈에 하나님께서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셨지요. 이때 솔로몬은 부귀영화가 아닌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지혜를 구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지혜는 물론 구하지 않은 부귀영화까지 주셨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오늘날의 예배를 의미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릴 때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소년 다윗은 어떠하였습니까? 이스라엘 군대가 블레셋 군대와 대치할 때에 블레셋에는 골리앗이라는 큰 용사가 있었습니다. 그가 40일간이나 아침 저녁으로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하였지만 아무도 그와 싸우려고 나서지 않았습니다.
이를 목도한 다윗은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에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물매로 돌을 던졌는데 정확히 그의 이마에 박혀 엎드러지고 말았지요. 결국 이스라엘이 큰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다윗처럼 담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가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합한 중심이 되면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행 13:22).
4. 하나님을 신속히 만나는 사람들의 중심
요셉은 마리아와 정혼한 사이입니다. 그런데 동침한 적도 없는데 마리아의 배가 불러옵니다. 물론 마리아는 예수님을 성령으로 잉태했지만 요셉은 이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당시 구약의 율법에 의하면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사랑하는 여인을 죽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므로 이를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 끊고자 했지요(마 1:19). 상대의 허물을 알리거나 해를 끼치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런 착하고 의로운 마음이었기 때문에 주의 사자가 꿈에 나타나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 말라 저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했지요.
한편 마리아는 어떤 마음입니까?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 저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이라 일컬을 것이요” 했지요. 이때 마리아는 자신의 처지와 어려움을 생각지 않고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고백하며 그대로 믿고 순종하였습니다(눅 1장).
세례 요한의 부모인 사가랴와 엘리사벳도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눅 1:6). 제사장이었던 사가랴와 아내 엘리사벳은 늙도록 자녀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그들에게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사명을 가진 세례 요한을 잉태하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여러분은 이제 어떤 마음과 중심으로 나아가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지 알았을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하나님을 만나면 다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사람에게 분명히 만나 주시므로 그분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복을 받고 형통한 길로 항상 인도받아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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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인물을 찾아 써 보세요.
1. 하나님을 경외하고 백성을 많이 구제하며 항상 기도하였고, 베드로를 통해 일가친척, 친구까지 성령을 받고 구원에 이르게 되었다. ( )
2. 정혼한 여인이 동침한 적이 없는데 배가 불러왔을 때 허물을 알리려 하거나 해를 끼치려는 마음이 전혀 없이 가만히 끊고자 하였다. ( )
3.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는 여정이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31~4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만나’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으로 가던 도중, 광야에서 먹을 음식이 없을 때에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주신 양식이다.
작고 둥글며 희고 깟씨와 같고 모양은 진주와 같았다(민 11:7).
맷돌에 갈거나 절구에 찧기도 하고 가마에 삶아 과자를 만들어 먹었는데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다(출 16:31).
2017-01-06
제1과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고전 15:31
읽을말씀 : 고전 15:31 | 외울말씀 : 고후 5:17 l 참고 말씀: 삼상 15:22
교육목표 : 새해를 맞이하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며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은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우리의 신앙이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성장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새로워져야만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지요.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하며 신속히 온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진리의 사람으로 새로워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아무리 충성한다 해도 사심이 있으면 상대를 힘들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낼 수가 없지요.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습니다. 일꾼이라면 육의 정과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특히 주의 종이라면 내 부모나 자녀, 육의 가족보다 맡은 양 떼들을 더 귀히 여겨야 하지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으려면 탐심은 물론이고 자존심이나 교만도 버려야 하고, 명예욕, 권세욕도 버려야 합니다.
나를 잘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누구를 대한다 해도 태도와 안색이 달라져서도 안 되지요.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도 버려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사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핑계가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려고 일을 하면서도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했다.” 하지요.
가령, 성도들에게 이러 이러한 용도로 예물을 모으자 하거나 야외로 나가 어떤 모임을 갖자고 합니다. 굳이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이런 일을 추진했다.” 하며 자신을 드러내려고 굳이 일을 벌이지요. 어떤 행사를 치를 때도 성도들의 입장과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진행합니다.
이럴 때는 구성원들의 마음이 하나 되기 쉽지 않고 그 열매도 육의 열매가 나옵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고집하면서 자기 사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혹여 나는 어떤 일을 하거나 말 한마디 속에도 ‘주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내 의욕이 앞서고 내 공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은 아닌지, 섬김 받으려는 마음은 아닌지, 내 유익을 취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니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날마다 자신을 면밀히 점검하여 정결하게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2.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영의 일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 세상 것을 바라보고 천국을 소망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말로는 영을 사모한다 하면서 그 마음과 생각이 육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 시선이 육의 것을 향하지요. 이런 사람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런데 의외로 나름대로 믿음 있다, 일꾼이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충성한다 하는 사람들 중에 중한 육체의 일을 범하는 것을 봅니다. 이들도 처음부터 중한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큰 죄는 아니니까.” 하면서 작은 육의 것들을 허용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되었지요. 마음과 생각에 육을 허용하는 만큼 성령 충만함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육을 허용했기 때문에 처음 받은 은혜가 떨어졌고, 첫사랑을 잃어버렸으며 기도하는 게 싫어졌고, 예배드리는 것이 해이해진 것입니다. 자꾸 세상 것만 추구하게 되고,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게 되었지요. 그러니 하나님과의 사이에 담이 쌓이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귀가 둔해지고, 죄를 경계하는 마음이 무뎌져서 결국은 사망에 이르는 큰 죄까지 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만나 첫사랑의 뜨거움을 체험했을 때는 온 마음과 생각을 영의 일들로 채웠을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으려면 전에 취하던 작은 육의 일들도 하나하나 끊고, 여가 시간에도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이런 열정이 식어서는 안 됩니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워올수록 더 열정이 뜨거워져야지, 결코 제자리걸음 한다든가 식어서는 안 되지요.
우리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항상 생각하고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영의 일들입니다. “어찌하면 말씀을 더 무장할까, 어찌하면 더 기도할까, 어찌하면 속히 변화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까, 어찌하면 영혼들에게 생명을 주고 충만함을 줄까.” 이런 영의 일들만 생각해야 합니다.
길을 가면서도, 잠들기 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을 변화시키고 믿음의 형제들에게 은혜를 끼칠 생각을 해야지요. 영의 일들만 생각하며 영의 것으로 마음을 채워 나가면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습니다. 동행하시며 보장하시는 주님을 늘 체험하기에 허전함이나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습니다. 어찌하든 변화되어 성결을 이루고 사명 감당 잘하여 많은 열매를 낼까 힘쓰는 것이지요.
3.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처럼 저도 가장 소중한 것을 주께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은 쉽게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순종하는 일꾼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입장이 되면 온갖 육신의 생각들을 동원하는 것이지요. “아니, 이삭을 통해 후손을 번성케 하신다 하셨는데, 이제는 그 언약의 말씀을 번복하시는가?” 이런저런 육신의 생각 속에 충만함이 떨어지기도 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원망과 서운한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자기 의와 틀과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하는 것은 순종한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그대로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심도, 육신의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순종하겠다고 결심해도 육이 있으면 불순종이 나옵니다. 충분히 순종할 수 있는 일조차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고 이유를 대면서 불순종하지요. 그러니 자기 한계 속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령 “영의 일만 생각하라.” 하면 그 순간에는 “아멘” 하고 “영의 일만 생각하게 하소서.”라고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구습대로 육신의 생각을 하면서도 차단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 속에 빠져들어 육을 취해 가는데도 깨우치지 못하지요. 들은 말씀은 있고 기도한 것이 있어서 마음에 찔림은 되지만 “이것쯤이야 큰 죄는 아니니까.” 하며 넘어가 버립니다.
이처럼 죄에 대해 단호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면 신앙이 정체되거나 퇴보하며 정진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육체의 결여가 있어도 채울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도 없지요.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가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가장 빠른 길은 진리에 즉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유와 핑계를 대지 않고 진리대로만 행하면 됩니다. 이렇게 순종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도우심 속에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한걸음, 한걸음 인도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성공하려면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고 인내로 자신을 다스려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성공의 길을 아무리 알아도 게으름과 정욕을 좇아 사는 사람들은 그 길로 갈 수가 없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종종 극적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봅니다.
방탕하여 구제불능의 삶을 살던 사람이 큰 위험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에는 하루아침에 변화되어 반듯하고 성실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공부를 전혀 안 하고 놀기만 하던 학생이 어떤 일로 충격을 받아 밤낮으로 공부해서 우등생이 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을 보면 주변에서 “전혀 딴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완전히 달려졌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사심을 버리고 영의 일만 생각하며 온전한 순종을 이룸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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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날마다 새로워져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죄에 대해 단호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면 신앙이 정체되거나 퇴보하며 정진해 나갈 수 없다. 영으로 들어가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가장 빠른 길은 진리에 즉시 ( )하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7~3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순종의 유형
1. 명령에 억지로 순종하는 경우
2. 자기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만 순종하는 경우
지시나 명령이 자기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하고 맞지 않을 때는 불순종한다.
3. 무조건 순종하는 경우
자신이 할 수 있나 없나, 자기 생각에 맞나 틀리나를 따지지 않고 자기 의사없이 무조건 아멘 한다.
4. 명령하시는 의도를 마음으로 깨달아 기꺼이 순종하는 경우
순종할 때 이루어질 일의 결과도 대략 마음에 그려지고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온전히 순종한다.
교육목표 : 새해를 맞이하여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며 날마다 새롭게 변화되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은 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곧 우리의 신앙이 정체되거나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성장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날마다 새로워져야만 우리 삶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지요.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하며 신속히 온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어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였습니다. 우리도 날마다 진리의 사람으로 새로워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사심이 없어야 합니다
아무리 충성한다 해도 사심이 있으면 상대를 힘들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낼 수가 없지요.
갈라디아서 5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했습니다. 일꾼이라면 육의 정과 욕심이 없어야 합니다. 특히 주의 종이라면 내 부모나 자녀, 육의 가족보다 맡은 양 떼들을 더 귀히 여겨야 하지요.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으려면 탐심은 물론이고 자존심이나 교만도 버려야 하고, 명예욕, 권세욕도 버려야 합니다.
나를 잘 섬기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이든 누구를 대한다 해도 태도와 안색이 달라져서도 안 되지요. 인정과 칭찬을 받으려는 마음도 버려야 합니다. 말씀을 들으면서도 사심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나름대로 자신을 정당화시키는 핑계가 있습니다. 자신을 드러내려고 일을 하면서도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했다.” 하지요.
가령, 성도들에게 이러 이러한 용도로 예물을 모으자 하거나 야외로 나가 어떤 모임을 갖자고 합니다. 굳이 이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내가 이런 일을 추진했다.” 하며 자신을 드러내려고 굳이 일을 벌이지요. 어떤 행사를 치를 때도 성도들의 입장과 의견을 고려하지 않고 자기 보기에 좋은 대로 진행합니다.
이럴 때는 구성원들의 마음이 하나 되기 쉽지 않고 그 열매도 육의 열매가 나옵니다. 그런데도 자신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고집하면서 자기 사심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혹여 나는 어떤 일을 하거나 말 한마디 속에도 ‘주님의 뜻을 구하기보다는 내 의욕이 앞서고 내 공로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은 아닌지, 섬김 받으려는 마음은 아닌지, 내 유익을 취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니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이렇게 날마다 자신을 면밀히 점검하여 정결하게 만들어 가야 하겠습니다.
2.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영의 일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한다 하면서 세상 것을 바라보고 천국을 소망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말로는 영을 사모한다 하면서 그 마음과 생각이 육으로 가득 차 있어서 그 시선이 육의 것을 향하지요. 이런 사람은 얼마나 불쌍합니까?
그런데 의외로 나름대로 믿음 있다, 일꾼이다, 기도하고 예배하고 충성한다 하는 사람들 중에 중한 육체의 일을 범하는 것을 봅니다. 이들도 처음부터 중한 죄를 지은 것은 아닙니다. “큰 죄는 아니니까.” 하면서 작은 육의 것들을 허용하는 데서 문제가 시작되었지요. 마음과 생각에 육을 허용하는 만큼 성령 충만함은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육을 허용했기 때문에 처음 받은 은혜가 떨어졌고, 첫사랑을 잃어버렸으며 기도하는 게 싫어졌고, 예배드리는 것이 해이해진 것입니다. 자꾸 세상 것만 추구하게 되고, 세상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게 되었지요. 그러니 하나님과의 사이에 담이 쌓이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귀가 둔해지고, 죄를 경계하는 마음이 무뎌져서 결국은 사망에 이르는 큰 죄까지 범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주님을 만나 첫사랑의 뜨거움을 체험했을 때는 온 마음과 생각을 영의 일들로 채웠을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으려면 전에 취하던 작은 육의 일들도 하나하나 끊고, 여가 시간에도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며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이런 열정이 식어서는 안 됩니다. 세월이 갈수록 우리 주님 오실 때가 가까워올수록 더 열정이 뜨거워져야지, 결코 제자리걸음 한다든가 식어서는 안 되지요.
우리가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항상 생각하고 마음에 두어야 할 것은 영의 일들입니다. “어찌하면 말씀을 더 무장할까, 어찌하면 더 기도할까, 어찌하면 속히 변화되어 아버지 하나님께 기쁨을 드릴까, 어찌하면 영혼들에게 생명을 주고 충만함을 줄까.” 이런 영의 일들만 생각해야 합니다.
길을 가면서도, 잠들기 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떠올리며 자신을 변화시키고 믿음의 형제들에게 은혜를 끼칠 생각을 해야지요. 영의 일들만 생각하며 영의 것으로 마음을 채워 나가면 성령의 충만함을 잃지 않습니다. 동행하시며 보장하시는 주님을 늘 체험하기에 허전함이나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습니다. 어찌하든 변화되어 성결을 이루고 사명 감당 잘하여 많은 열매를 낼까 힘쓰는 것이지요.
3. 날마다 새로워지려면 순종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사무엘상 15장 22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것처럼 저도 가장 소중한 것을 주께 드릴 수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도 하나님께서 명하시면 순종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은 쉽게 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순종하는 일꾼을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브라함과 같은 입장이 되면 온갖 육신의 생각들을 동원하는 것이지요. “아니, 이삭을 통해 후손을 번성케 하신다 하셨는데, 이제는 그 언약의 말씀을 번복하시는가?” 이런저런 육신의 생각 속에 충만함이 떨어지기도 하고, 심지어 하나님께 원망과 서운한 마음을 품기도 합니다.
자기 의와 틀과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하는 것은 순종한다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주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그대로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심도, 육신의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순종하겠다고 결심해도 육이 있으면 불순종이 나옵니다. 충분히 순종할 수 있는 일조차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고 이유를 대면서 불순종하지요. 그러니 자기 한계 속에서 순종하는 것입니다.
가령 “영의 일만 생각하라.” 하면 그 순간에는 “아멘” 하고 “영의 일만 생각하게 하소서.”라고 기도도 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자기 구습대로 육신의 생각을 하면서도 차단하지 않습니다. 자기 생각 속에 빠져들어 육을 취해 가는데도 깨우치지 못하지요. 들은 말씀은 있고 기도한 것이 있어서 마음에 찔림은 되지만 “이것쯤이야 큰 죄는 아니니까.” 하며 넘어가 버립니다.
이처럼 죄에 대해 단호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면 신앙이 정체되거나 퇴보하며 정진해 나갈 수가 없습니다. 육체의 결여가 있어도 채울 수가 없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을 수도 없지요. 여러분이 영으로 들어가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가장 빠른 길은 진리에 즉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유와 핑계를 대지 않고 진리대로만 행하면 됩니다. 이렇게 순종해 나갈 때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도우심 속에 주님의 손을 붙잡고 한걸음, 한걸음 인도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성공하려면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 하고 인내로 자신을 다스려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성공의 길을 아무리 알아도 게으름과 정욕을 좇아 사는 사람들은 그 길로 갈 수가 없지요. 그런데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종종 극적으로 변화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봅니다.
방탕하여 구제불능의 삶을 살던 사람이 큰 위험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후에는 하루아침에 변화되어 반듯하고 성실한 삶을 살기도 합니다. 공부를 전혀 안 하고 놀기만 하던 학생이 어떤 일로 충격을 받아 밤낮으로 공부해서 우등생이 되기도 하지요. 이런 사람을 보면 주변에서 “전혀 딴사람이 되었다. 사람이 완전히 달려졌다.”고 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사심을 버리고 영의 일만 생각하며 온전한 순종을 이룸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 나타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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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날마다 새로워져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죄에 대해 단호하지 못하고 우유부단하면 신앙이 정체되거나 퇴보하며 정진해 나갈 수 없다. 영으로 들어가고 성령의 음성을 듣는 가장 빠른 길은 진리에 즉시 ( )하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내가 시행하리니> 책자 17~3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순종의 유형
1. 명령에 억지로 순종하는 경우
2. 자기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만 순종하는 경우
지시나 명령이 자기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하고 맞지 않을 때는 불순종한다.
3. 무조건 순종하는 경우
자신이 할 수 있나 없나, 자기 생각에 맞나 틀리나를 따지지 않고 자기 의사없이 무조건 아멘 한다.
4. 명령하시는 의도를 마음으로 깨달아 기꺼이 순종하는 경우
순종할 때 이루어질 일의 결과도 대략 마음에 그려지고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온전히 순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