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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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12-02
제48과육의 흔적을 변환시켜 성정대로 쓰임 받기까지
히 10:22
읽을말씀 : 히 10:22 | 외울말씀 : 벧후 1:4 ㅣ 참고 말씀: 살전 5:23
교육목표 : 육의 흔적을 완전히 변환시킨 후 자기만이 가진 성정의 특징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한다.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영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일단 깨끗한 마음 그릇이 준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그릇에 영의 내용물들을 채워 나가기 시작한 상태를 ‘결여’라 하고 그릇의 반쯤 넘어선 상태를 ‘부족’이라 합니다. 그릇에 영의 내용물을 완전히 채우면 ‘온 영’이라 하지요. 그런데 4단계 80%부터 5단계 50% 미만까지는 아직 곳곳에 빈 공간이 조금은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믿음의 5단계 50%를 넘어야 빈 공간까지도 완전히 채웠다 할 수 있습니다.
1. 육의 흔적을 변환시키는 과정
어떤 사람은 덕과 사랑이 넘치지만 기질적으로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지 않아 끊어야 할 때 정확히 끊지 못합니다. 베풀기는 즐겨하는데 기분에 따라 즉흥적인 사람도 있고, 성실하고 바른 모습이지만 다소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으로 들어오면 이런 성품이나 기질적인 면이 악의 모양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육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한 영의 마음과는 차이가 납니다.
육의 흔적 중에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영적으로 결여되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온 영의 사람이 되지요. 이것을 ‘육의 흔적의 변환’이라 합니다. 육의 흔적이 신의 성품 안에 녹아지면서 영적인 것으로 변한다는 의미로서 인성도 사람의 인성이 아닌 신의 성품에 속한 인성으로 바뀝니다.
가령, 소극적인 사람은 그의 소극적인 면이 섬세함으로 승화됩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면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승화되지요. 또한 사리 판단이 빠르고 꾀가 있는 사람은 지혜롭고 민첩하게 바뀝니다. 답답하고 무딘 사람이라도 그 장점을 살려 진중한 모습으로 변환되지요. 이처럼 육의 흔적을 변환시켜 나가는 과정은 믿음의 4단계부터 믿음의 5단계 50%를 넘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2. 결여를 채우는 육의 흔적의 변환 1단계
믿음의 4단계 50% 미만에서는 육의 흔적으로 인한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결여란 아예 없거나 조금밖에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랑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은 사랑의 분야에 결여가 생깁니다. 영으로 들어와 마음에 악은 없다 해도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일방적으로 보듬어 주고 용서만 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여기기도 하고, 반대로 일방적으로 질책하고 책망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하기도 하지요.
부모로부터 따뜻한 관심과 이해와 용서를 받고 때로는 잘못에 대해 책망과 체벌을 적절히 받으며 이것이 부모의 사랑임을 깨달은 사람은 단지 용서하고 품어 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책망하고 외면하는 것도 사랑임을 마음에서 깨닫게 됩니다. 반면에 무조건적인 이해와 사랑만 받으며 성장하거나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성장하게 되면 사랑의 결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상대를 보듬어야 할지, 책망하고 외면해야 할지, 용서하고 품어야 할지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성장하면서 생긴 사랑의 결여를 채워야 온전한 영의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영의 지식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 지식으로 쌓아 왔다고는 하나 자기 마음을 온전히 영으로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그것이 결여로 자리 잡은 경우입니다. 영의 깊이가 더할수록 말씀을 깨닫고 적용하는 차원이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그러나 영의 지식이 결여된 사람은 자기가 마음에 이룬 한계 안에서만 그 말씀을 적용하므로 때로는 원하는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선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이 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감정이 없고 마음이 요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선에 비하면 아직은 소극적인 수준의 선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선은 악한 상대에게 나쁜 감정이 없음은 물론, 선대하고 감동을 주어 그를 변화시키는 차원입니다. 나아가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차원이지요. 이러한 온전한 선에 비교해 볼 때 거리가 멀다 할 수 있으므로 ‘결여’라고 합니다.
비유를 들면, 규정 속도가 60km인 1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뒤에서 비상등을 켠 차가 급속도로 달려옵니다. 이때 온전한 선의 결여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교통법규를 준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뒤따라 오는 운전자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 차가 추월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될 때까지만이라도 조금 빨리 달려 주면 될 텐데, 교통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한계 안에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3. 부족을 채우는 육의 흔적의 변환 2단계
믿음의 4단계 50% 이상 80% 미만에서는 육의 흔적으로 인해 부족 현상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부족’이란 온 영의 차원과 비교할 때 아직은 부족하다는 의미로서, 아예 없거나 조금밖에 없는 ‘결여?와는 다릅니다. 그렇다면 온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해 채워야 할 분야는 무엇일까요?
먼저, 사랑의 부족을 채워야 합니다. 가령,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해 주기로 했을 때, 어느 선까지 해야 할지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되, 어떤 때는 선을 그어야 하고, 어떤 때는 도가 넘치도록 해 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똑같이 이해하고 품는다 해도 어떤 경우는 선을 그어 상대가 스스로 일어나게 하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넘치는 위로와 격려를 통해 상대가 힘을 얻고 변화되도록 해야 하지요. 따라서 더 깊이 있고, 섬세한 사랑의 차원을 깨달아 부족한 분야를 채워야 합니다.
다음으로, 영의 지식의 부족을 채워야 합니다. 똑같은 영의 지식이라도 마음을 얼마나 영으로 이뤘느냐에 따라 활용 범위와 방법이 달라집니다. 한 가지 영의 지식을 열 가지로 활용하고 적용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영의 지식이 부족하면 아직 대여섯 가지로밖에 활용하지 못하지요.
만일 어떤 여 성도가 이혼 문제로 상담을 요청했는데 무조건 ‘이혼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만 적용합니다. 물론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남편의 심한 핍박으로 인해 아내가 구원의 길에서 멀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경우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깊이 있게 깨달아 오직 성령의 감동 속에 영의 지식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더욱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선의 부족입니다. 가령, 규정 속도가 60km인 1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비상등을 켠 차가 급속도로 달려옵니다. 이때 온전한 선이 부족한 사람은 뒤차의 입장을 생각해 빨리 달릴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최대한 상대를 배려하지만 매번 그렇게 행하지는 못하지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결여에 해당되지만, 배려하되 항상 그런 것이 아니라면 부족입니다.
4. 육의 흔적의 변환을 통해 성정대로 쓰임 받기까지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육의 흔적이 변환되는 과정을 거쳐 믿음의 5단계에서 온전히 변환되면 그때부터는 ‘성정’ 즉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적인 면’이 신의 성품 안에서 아름답게 발휘됩니다. 전에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이 육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함을 이루는 데 장애물이 되었다면, 육의 흔적을 온전히 변환시킨 후부터는 그만의 특별한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80%부터 5단계 5% 미만은 아직 육의 흔적이 온전히 변환되어서 활용해 나가는 단계는 아닙니다. 육의 흔적이 나올 때도 있고, 변환되어 나올 때도 있어서 스스로 ‘내가 영인가, 온 영인가?’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4단계 80%부터는 온 영으로 인정해 주시며 그를 친히 주관하여 이끌어 가십니다.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등은 육의 흔적을 완전히 변환시킨 후, 자기만이 가진 성정의 특징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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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을 채워 보세요.
1. 육의 흔적 중에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영적으로 결여되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온 영의 사람이 된다. 이것을 ( )이라 한다.
2.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육의 흔적이 변환되는 과정을 거쳐 믿음의 5단계에서 온전히 변환되면 그때부터는 ( ) 즉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적인 면’이 신의 성품 안에서 아름답게 발휘된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41~24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육의 흔적을 변환시킨 뒤 성정대로 쓰임 받은 모세
모세는 자기 동족을 때리는 애굽 사람을 쳐 죽일 만큼 의분이 있고 급한 성품도 있었다. 하지만 변화된 후에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하다고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예전의 의분과 급한 성품이 백성을 향한 열정으로 바뀌었다.
뜨거운 성품이 있기에 온전히 변화된 후에는 수많은 백성을 마음 안에 다 담을 수 있는 큰 자가 되었다. 만약 모세가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한 성품이었다면, 백성들을 향한 열정으로 출애굽의 지도자 사명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교육목표 : 육의 흔적을 완전히 변환시킨 후 자기만이 가진 성정의 특징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 받는 일꾼이 되게 한다.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영의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일단 깨끗한 마음 그릇이 준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준비된 그릇에 영의 내용물들을 채워 나가기 시작한 상태를 ‘결여’라 하고 그릇의 반쯤 넘어선 상태를 ‘부족’이라 합니다. 그릇에 영의 내용물을 완전히 채우면 ‘온 영’이라 하지요. 그런데 4단계 80%부터 5단계 50% 미만까지는 아직 곳곳에 빈 공간이 조금은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믿음의 5단계 50%를 넘어야 빈 공간까지도 완전히 채웠다 할 수 있습니다.
1. 육의 흔적을 변환시키는 과정
어떤 사람은 덕과 사랑이 넘치지만 기질적으로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하지 않아 끊어야 할 때 정확히 끊지 못합니다. 베풀기는 즐겨하는데 기분에 따라 즉흥적인 사람도 있고, 성실하고 바른 모습이지만 다소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영으로 들어오면 이런 성품이나 기질적인 면이 악의 모양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육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한 영의 마음과는 차이가 납니다.
육의 흔적 중에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영적으로 결여되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온 영의 사람이 되지요. 이것을 ‘육의 흔적의 변환’이라 합니다. 육의 흔적이 신의 성품 안에 녹아지면서 영적인 것으로 변한다는 의미로서 인성도 사람의 인성이 아닌 신의 성품에 속한 인성으로 바뀝니다.
가령, 소극적인 사람은 그의 소극적인 면이 섬세함으로 승화됩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이라면 열정적이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승화되지요. 또한 사리 판단이 빠르고 꾀가 있는 사람은 지혜롭고 민첩하게 바뀝니다. 답답하고 무딘 사람이라도 그 장점을 살려 진중한 모습으로 변환되지요. 이처럼 육의 흔적을 변환시켜 나가는 과정은 믿음의 4단계부터 믿음의 5단계 50%를 넘을 때까지 계속됩니다.
2. 결여를 채우는 육의 흔적의 변환 1단계
믿음의 4단계 50% 미만에서는 육의 흔적으로 인한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결여란 아예 없거나 조금밖에 없는 상태를 말하는데 세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사랑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성장한 사람은 사랑의 분야에 결여가 생깁니다. 영으로 들어와 마음에 악은 없다 해도 사랑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일방적으로 보듬어 주고 용서만 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여기기도 하고, 반대로 일방적으로 질책하고 책망하면서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하기도 하지요.
부모로부터 따뜻한 관심과 이해와 용서를 받고 때로는 잘못에 대해 책망과 체벌을 적절히 받으며 이것이 부모의 사랑임을 깨달은 사람은 단지 용서하고 품어 주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라 책망하고 외면하는 것도 사랑임을 마음에서 깨닫게 됩니다. 반면에 무조건적인 이해와 사랑만 받으며 성장하거나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성장하게 되면 사랑의 결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 상대를 보듬어야 할지, 책망하고 외면해야 할지, 용서하고 품어야 할지를 분별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따라서 성장하면서 생긴 사랑의 결여를 채워야 온전한 영의 마음을 이룰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영의 지식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 지식으로 쌓아 왔다고는 하나 자기 마음을 온전히 영으로 이루지 못함으로 인해 그것이 결여로 자리 잡은 경우입니다. 영의 깊이가 더할수록 말씀을 깨닫고 적용하는 차원이 깊어지고 넓어집니다. 그러나 영의 지식이 결여된 사람은 자기가 마음에 이룬 한계 안에서만 그 말씀을 적용하므로 때로는 원하는 열매를 얻지 못합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선의 결여를 채워야 합니다. 이 단계는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 대해 감정이 없고 마음이 요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온전한 선에 비하면 아직은 소극적인 수준의 선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한 선은 악한 상대에게 나쁜 감정이 없음은 물론, 선대하고 감동을 주어 그를 변화시키는 차원입니다. 나아가 생명까지 줄 수 있는 차원이지요. 이러한 온전한 선에 비교해 볼 때 거리가 멀다 할 수 있으므로 ‘결여’라고 합니다.
비유를 들면, 규정 속도가 60km인 1차선 도로를 달리는데, 뒤에서 비상등을 켠 차가 급속도로 달려옵니다. 이때 온전한 선의 결여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교통법규를 준수해야 한다는 생각에 뒤따라 오는 운전자의 입장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 차가 추월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될 때까지만이라도 조금 빨리 달려 주면 될 텐데, 교통법규를 지켜야 한다는 한계 안에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3. 부족을 채우는 육의 흔적의 변환 2단계
믿음의 4단계 50% 이상 80% 미만에서는 육의 흔적으로 인해 부족 현상이 나타납니다. 여기서 ‘부족’이란 온 영의 차원과 비교할 때 아직은 부족하다는 의미로서, 아예 없거나 조금밖에 없는 ‘결여?와는 다릅니다. 그렇다면 온 영의 사람이 되기 위해 채워야 할 분야는 무엇일까요?
먼저, 사랑의 부족을 채워야 합니다. 가령,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해 주기로 했을 때, 어느 선까지 해야 할지 분별하지 못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해하고 용서하되, 어떤 때는 선을 그어야 하고, 어떤 때는 도가 넘치도록 해 줘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똑같이 이해하고 품는다 해도 어떤 경우는 선을 그어 상대가 스스로 일어나게 하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넘치는 위로와 격려를 통해 상대가 힘을 얻고 변화되도록 해야 하지요. 따라서 더 깊이 있고, 섬세한 사랑의 차원을 깨달아 부족한 분야를 채워야 합니다.
다음으로, 영의 지식의 부족을 채워야 합니다. 똑같은 영의 지식이라도 마음을 얼마나 영으로 이뤘느냐에 따라 활용 범위와 방법이 달라집니다. 한 가지 영의 지식을 열 가지로 활용하고 적용할 수 있다고 가정할 때, 영의 지식이 부족하면 아직 대여섯 가지로밖에 활용하지 못하지요.
만일 어떤 여 성도가 이혼 문제로 상담을 요청했는데 무조건 ‘이혼하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만 적용합니다. 물론 이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지만 남편의 심한 핍박으로 인해 아내가 구원의 길에서 멀어질 수 있는 상황이라면 경우가 다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깊이 있게 깨달아 오직 성령의 감동 속에 영의 지식을 적재적소에 활용해야 더욱 능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온전한 선의 부족입니다. 가령, 규정 속도가 60km인 1차선 도로를 달리고 있는데 갑자기 뒤에서 비상등을 켠 차가 급속도로 달려옵니다. 이때 온전한 선이 부족한 사람은 뒤차의 입장을 생각해 빨리 달릴 때도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최대한 상대를 배려하지만 매번 그렇게 행하지는 못하지요.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못한다면 결여에 해당되지만, 배려하되 항상 그런 것이 아니라면 부족입니다.
4. 육의 흔적의 변환을 통해 성정대로 쓰임 받기까지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육의 흔적이 변환되는 과정을 거쳐 믿음의 5단계에서 온전히 변환되면 그때부터는 ‘성정’ 즉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적인 면’이 신의 성품 안에서 아름답게 발휘됩니다. 전에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이 육의 흔적으로 남아 온전함을 이루는 데 장애물이 되었다면, 육의 흔적을 온전히 변환시킨 후부터는 그만의 특별한 장점으로 활용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80%부터 5단계 5% 미만은 아직 육의 흔적이 온전히 변환되어서 활용해 나가는 단계는 아닙니다. 육의 흔적이 나올 때도 있고, 변환되어 나올 때도 있어서 스스로 ‘내가 영인가, 온 영인가?’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4단계 80%부터는 온 영으로 인정해 주시며 그를 친히 주관하여 이끌어 가십니다.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등은 육의 흔적을 완전히 변환시킨 후, 자기만이 가진 성정의 특징에 따라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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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을 채워 보세요.
1. 육의 흔적 중에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영적으로 결여되고 부족한 것은 채워야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온 영의 사람이 된다. 이것을 ( )이라 한다.
2.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 육의 흔적이 변환되는 과정을 거쳐 믿음의 5단계에서 온전히 변환되면 그때부터는 ( ) 즉 ‘각 사람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기질이나 성품적인 면’이 신의 성품 안에서 아름답게 발휘된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41~24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육의 흔적을 변환시킨 뒤 성정대로 쓰임 받은 모세
모세는 자기 동족을 때리는 애굽 사람을 쳐 죽일 만큼 의분이 있고 급한 성품도 있었다. 하지만 변화된 후에는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하다고 인정받았을 뿐 아니라 예전의 의분과 급한 성품이 백성을 향한 열정으로 바뀌었다.
뜨거운 성품이 있기에 온전히 변화된 후에는 수많은 백성을 마음 안에 다 담을 수 있는 큰 자가 되었다. 만약 모세가 소극적이고 우유부단한 성품이었다면, 백성들을 향한 열정으로 출애굽의 지도자 사명을 감당할 수 없었을 것이다.
2016-11-25
제47과선과 사랑을 채워 가는 믿음의 4단계
엡 4:13
읽을말씀 : 엡 4:13 | 외울말씀 : 빌 3:14 ㅣ 참고 말씀: 벧후 1:4~7
교육목표 : 불같은 기도로 자기를 깨뜨림으로 영의 정체기를 겪지 않고 신속히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온전한 영의 열매가 되게 한다.
믿음의 3단계는 마음의 악을 버려가는 단계이므로 악을 버린 만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힐 조짐을 보입니다.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열매가 100% 맺히면 온 영, 곧 믿음의 5단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서도 모든 열매가 얼마나 온전히 익었느냐에 따라 더 깊은 온 영의 차원에 이르러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밝히 깨닫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 믿음의 5단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100으로 나눈다면 1~10% 미만까지는 초입이라고 합니다. 10~20% 미만은 정체기, 20~50% 미만은 중엽, 50% 이상은 말엽이라 할 수 있지요.
1. 영의 열매가 온전치 않은 믿음의 4단계 초입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스스로 보기에 악은 다 버린 것 같지만 “내가 영으로 들어갔다.”라고 자신 있게 고백하기에는 조금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믿음의 3단계 말엽인지, 아니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왔는지 정확히 분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서 볼 때도 악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저 사람은 확실히 영의 사람이다.”라고 인정하기에는 주저할 수 있지요.
그러면 믿음의 4단계 초입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첫째, 열매가 온전치 못합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불순종하려는 마음이 없고, 항상 순종할 자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명심하여 그대로 행하고자 합니다. 그런데도 열매가 온전치 않은 것은, 마음에 맺힌 영의 열매가 온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온유하기는 한데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다든가, 충성은 하는데 화평의 열매가 온전치 못하기도 합니다. 또 사랑한다 해도 영적인 사랑이 온전히 맺힌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아직 영의 열매들이 마음에 온전히 맺힌 것이 아니므로 실제 보이는 열매 역시 온전치 못합니다. 부흥의 열매를 못 내기도 하고, 일 처리도 완벽하지 못하지요. 또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음에도 어느 선에서 멈춰 버립니다.
둘째, 마음에 악은 없지만 온전한 선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악한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주변 사람을 어렵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악을 행치는 않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선이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를 온전히 배려하지 못하거나 상대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해 주지 못합니다. 선하다 하지만 온전한 선이 아닌 것입니다. 또는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일이 지체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남에게는 비겁함이나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하지요. 악은 벗었지만 아직 마음에 진리가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으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온전한 선이 아닌 모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셋째, 육체의 결여가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 말엽에 있는 사람 중에도 육체의 결여 때문에 믿음 성장이 지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4단계 초입에 들어온 사람의 육체의 결여는 3단계 말엽의 결여와는 다릅니다. 악은 다 버렸으되 더 온전한 열매를 내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지요.
예를 들면, 성격적인 결여로 인해 나서야 할 때도 잠잠히 있는 경우, 성장 과정에서 생긴 결여로 인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 불편한 마음이나 감정은 없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섬겨 주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볼 때도 아직 온전하다 생각지 않을 수 있습니다.
2. 불같은 기도가 필요한 믿음의 4단계 정체기
믿음의 3단계에서 불같은 기도를 쌓았고 자기 의와 틀을 깨뜨리는 연단의 과정을 잘 겪었다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서 정체기 없이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빠르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10~20% 미만에 머물러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영의 정체기’라고 합니다.
비록 영의 초입에는 들어왔다 해도 더 이상 사모함을 갖지 못한 채 영의 세계를 뚫어 들어가지 않으면 결국 정체 현상을 겪게 됩니다.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같은 기도를 통해 ‘자기’가 온전히 깨어지고 없어야 합니다.
여기서 ‘자기’란, 영으로 들어오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육에 속한 자기’와는 다릅니다. 영으로 들어와서도 하나님의 뜻과 하나를 이루어 가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또 다른 자기’를 말합니다. 또한 영으로 들어오면 악이 나오지는 않지만 온전한 선의 마음, 온전한 영의 열매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도 채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때 불같이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을 발견할 수 없고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불같은 기도가 중요합니다.
3. 주님의 향이 나는 믿음의 4단계 중엽
이 단계에만 들어와도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많은 일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서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첫째, ‘육의 흔적’에 의한 육체의 결여가 조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육의 흔적이란, 성장하면서 습득한 여러 지식과 경험, 부모에게 전달받은 성품이나 기질 등이 영으로 들어가도 흔적처럼 남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나타나는 육체의 결여는 악의 모양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타고난 기 속에서 형성된 각 사람의 ‘성정’에 관한 분야이지요.
성정이란 간단히 말해 ‘타고난 본성?입니다. 어떤 이는 소극적이고 어떤 이는 적극적이며, 어떤 이는 무디고 어떤 이는 예민합니다. 이처럼 타고난 성정으로 인해 성격이나 행동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믿음의 4단계 50% 미만까지는 이렇게 성정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여를 다듬는 과정입니다.
둘째, 주님의 향이 납니다.
이때부터는 모든 것이 주의 교양으로 바뀌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 주님이 저렇게 하셨겠구나.” 하고 은혜를 받습니다. 이 차원에 들어오면 모든 분야에서 영의 열매가 무르익어 가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지 주님의 향을 내며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습니다.
셋째, 사랑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믿음의 4단계 20%를 넘어가면 영의 사랑이 점점 더 온전해집니다. 이와 더불어 덕까지 갖춰 많은 사람을 마음으로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사랑으로 바라봐 주고 품어 주니 그에게서 영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영의 사랑이 결국 수많은 영혼을 변화시키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힘이 되므로 풍성한 영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4.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가는 믿음의 4단계 말엽
믿음의 4단계 50% 이상이 되면 육체의 결여된 분야가 없고 이때는 자기가 얼마든지 누릴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기꺼이 포기합니다. 주님을 위해 생명까지 드릴 수 있고 하나님과 신뢰관계가 더욱 온전해집니다. 물론 모든 면이 온전해지려면 당연히 온 영의 차원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믿음의 4단계 50%만 넘어도 그만큼 온전함에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이 단계에서는 선과 사랑, 영의 지식을 조금만 더 채우면 믿음의 4단계 80%를 넘어 온 영의 차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영의 차원에서 깊이 들어올수록 1%를 채운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1% 채우는 것과,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 1% 채우는 것, 그리고 믿음의 4단계에서도 더 깊이 들어와 1%를 채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으로 깊이 들어올수록 더 깊고 세미한 분야까지 깨우쳐 변화되어야 비로소 1%가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4단계 80%부터 친히 연단하시며 믿음의 5단계 곧 온 영의 차원에 진입하여 믿음의 선진들처럼 성정대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야(벧후 1:4~7)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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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1. 믿음의 3단계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힐 조짐을 보인다.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 )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열매가 ( ) 맺히면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2. ( )이란, 성장하면서 습득한 여러 지식과 경험, 부모에게 전달받은 성품이나 기질 등이 영으로 들어가도 흔적처럼 남는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32~24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은?
온전한 빛의 차원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빛에 흡수되어도 좋을 만큼의 온전한 빛을 이루어 근본 하나님이 계신 4차원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근본 하나님이 계신 4차원의 공간은 빛 가운데 소리를 머금고 계신 공간으로서 온전한 참 빛을 이룬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들어갈 수 있다.
교육목표 : 불같은 기도로 자기를 깨뜨림으로 영의 정체기를 겪지 않고 신속히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 온전한 영의 열매가 되게 한다.
믿음의 3단계는 마음의 악을 버려가는 단계이므로 악을 버린 만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힐 조짐을 보입니다.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열매가 100% 맺히면 온 영, 곧 믿음의 5단계로 들어서게 됩니다.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서도 모든 열매가 얼마나 온전히 익었느냐에 따라 더 깊은 온 영의 차원에 이르러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밝히 깨닫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서 믿음의 5단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100으로 나눈다면 1~10% 미만까지는 초입이라고 합니다. 10~20% 미만은 정체기, 20~50% 미만은 중엽, 50% 이상은 말엽이라 할 수 있지요.
1. 영의 열매가 온전치 않은 믿음의 4단계 초입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스스로 보기에 악은 다 버린 것 같지만 “내가 영으로 들어갔다.”라고 자신 있게 고백하기에는 조금 부끄럽고 민망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믿음의 3단계 말엽인지, 아니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왔는지 정확히 분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주변에서 볼 때도 악한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저 사람은 확실히 영의 사람이다.”라고 인정하기에는 주저할 수 있지요.
그러면 믿음의 4단계 초입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첫째, 열매가 온전치 못합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불순종하려는 마음이 없고, 항상 순종할 자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달으면 명심하여 그대로 행하고자 합니다. 그런데도 열매가 온전치 않은 것은, 마음에 맺힌 영의 열매가 온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온유하기는 한데 절제의 열매가 부족하다든가, 충성은 하는데 화평의 열매가 온전치 못하기도 합니다. 또 사랑한다 해도 영적인 사랑이 온전히 맺힌 것은 아닙니다. 이처럼 아직 영의 열매들이 마음에 온전히 맺힌 것이 아니므로 실제 보이는 열매 역시 온전치 못합니다. 부흥의 열매를 못 내기도 하고, 일 처리도 완벽하지 못하지요. 또 더 큰 성과를 낼 수 있음에도 어느 선에서 멈춰 버립니다.
둘째, 마음에 악은 없지만 온전한 선이라 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는 악한 의도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 주변 사람을 어렵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악을 행치는 않지만 하나님 보시기에 선이 아닌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상대를 온전히 배려하지 못하거나 상대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해 주지 못합니다. 선하다 하지만 온전한 선이 아닌 것입니다. 또는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므로 결과적으로 일이 지체되기도 합니다. 그것이 남에게는 비겁함이나 우유부단한 모습으로 비쳐지기도 하지요. 악은 벗었지만 아직 마음에 진리가 온전히 채워지지 않았으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선’과는 완전히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온전한 선이 아닌 모습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셋째, 육체의 결여가 희미하게 남아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 말엽에 있는 사람 중에도 육체의 결여 때문에 믿음 성장이 지체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4단계 초입에 들어온 사람의 육체의 결여는 3단계 말엽의 결여와는 다릅니다. 악은 다 버렸으되 더 온전한 열매를 내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이지요.
예를 들면, 성격적인 결여로 인해 나서야 할 때도 잠잠히 있는 경우, 성장 과정에서 생긴 결여로 인해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공감하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 불편한 마음이나 감정은 없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서 섬겨 주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나 주변 사람이 볼 때도 아직 온전하다 생각지 않을 수 있습니다.
2. 불같은 기도가 필요한 믿음의 4단계 정체기
믿음의 3단계에서 불같은 기도를 쌓았고 자기 의와 틀을 깨뜨리는 연단의 과정을 잘 겪었다면 믿음의 4단계에 들어와서 정체기 없이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빠르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10~20% 미만에 머물러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영의 정체기’라고 합니다.
비록 영의 초입에는 들어왔다 해도 더 이상 사모함을 갖지 못한 채 영의 세계를 뚫어 들어가지 않으면 결국 정체 현상을 겪게 됩니다.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불같은 기도를 통해 ‘자기’가 온전히 깨어지고 없어야 합니다.
여기서 ‘자기’란, 영으로 들어오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육에 속한 자기’와는 다릅니다. 영으로 들어와서도 하나님의 뜻과 하나를 이루어 가기 위해 깨뜨려야 하는 ‘또 다른 자기’를 말합니다. 또한 영으로 들어오면 악이 나오지는 않지만 온전한 선의 마음, 온전한 영의 열매를 이루기 위해서는 아직도 채워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이때 불같이 기도하지 않으면 자신을 발견할 수 없고 영적인 성장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불같은 기도가 중요합니다.
3. 주님의 향이 나는 믿음의 4단계 중엽
이 단계에만 들어와도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받으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함께 많은 일을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단계에서는 어떤 특징이 있을까요?
첫째, ‘육의 흔적’에 의한 육체의 결여가 조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육의 흔적이란, 성장하면서 습득한 여러 지식과 경험, 부모에게 전달받은 성품이나 기질 등이 영으로 들어가도 흔적처럼 남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나타나는 육체의 결여는 악의 모양에서 비롯된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 타고난 기 속에서 형성된 각 사람의 ‘성정’에 관한 분야이지요.
성정이란 간단히 말해 ‘타고난 본성?입니다. 어떤 이는 소극적이고 어떤 이는 적극적이며, 어떤 이는 무디고 어떤 이는 예민합니다. 이처럼 타고난 성정으로 인해 성격이나 행동 등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믿음의 4단계 50% 미만까지는 이렇게 성정으로 인해 나타나는 결여를 다듬는 과정입니다.
둘째, 주님의 향이 납니다.
이때부터는 모든 것이 주의 교양으로 바뀌게 됩니다. 많은 사람이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 주님이 저렇게 하셨겠구나.” 하고 은혜를 받습니다. 이 차원에 들어오면 모든 분야에서 영의 열매가 무르익어 가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나 누구를 만나든지 주님의 향을 내며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습니다.
셋째, 사랑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믿음의 4단계 20%를 넘어가면 영의 사랑이 점점 더 온전해집니다. 이와 더불어 덕까지 갖춰 많은 사람을 마음으로 품을 수 있게 됩니다. 아무리 악한 사람도 사랑으로 바라봐 주고 품어 주니 그에게서 영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영의 사랑이 결국 수많은 영혼을 변화시키고 천국으로 인도하는 힘이 되므로 풍성한 영의 열매가 맺히기 시작합니다.
4. 영의 열매가 온전해져 가는 믿음의 4단계 말엽
믿음의 4단계 50% 이상이 되면 육체의 결여된 분야가 없고 이때는 자기가 얼마든지 누릴 수 있고 할 수 있는 것조차도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기꺼이 포기합니다. 주님을 위해 생명까지 드릴 수 있고 하나님과 신뢰관계가 더욱 온전해집니다. 물론 모든 면이 온전해지려면 당연히 온 영의 차원으로 들어가야 하지만 믿음의 4단계 50%만 넘어도 그만큼 온전함에 가깝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니 이 단계에서는 선과 사랑, 영의 지식을 조금만 더 채우면 믿음의 4단계 80%를 넘어 온 영의 차원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영의 차원에서 깊이 들어올수록 1%를 채운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1% 채우는 것과, 믿음의 4단계 초입에서 1% 채우는 것, 그리고 믿음의 4단계에서도 더 깊이 들어와 1%를 채우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영으로 깊이 들어올수록 더 깊고 세미한 분야까지 깨우쳐 변화되어야 비로소 1%가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4단계 80%부터 친히 연단하시며 믿음의 5단계 곧 온 영의 차원에 진입하여 믿음의 선진들처럼 성정대로 쓰임 받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어야(벧후 1:4~7) 위대한 믿음의 선진들처럼 하나님의 섭리를 온전히 이룰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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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넣어 보세요.
1. 믿음의 3단계는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맺힐 조짐을 보인다. 나아가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가 ( )를 드러내기 시작하고, 열매가 ( ) 맺히면 믿음의 5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2. ( )이란, 성장하면서 습득한 여러 지식과 경험, 부모에게 전달받은 성품이나 기질 등이 영으로 들어가도 흔적처럼 남는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32~24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은?
온전한 빛의 차원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빛에 흡수되어도 좋을 만큼의 온전한 빛을 이루어 근본 하나님이 계신 4차원의 공간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는 것을 말한다.
근본 하나님이 계신 4차원의 공간은 빛 가운데 소리를 머금고 계신 공간으로서 온전한 참 빛을 이룬 극히 일부의 사람만이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들어갈 수 있다.
2016-11-18
제46과하나님께 감사
출 23:16
읽을말씀 : 출 23:16 | 외울말씀 : 시 17:8 l 참고 말씀: 레 23:42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알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스럽고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될까요?
1.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의 계절을 맞아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절기 중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장절은 원래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추수할 수 있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확한 곡식을 저장한 후 ‘추수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는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레위기 23장 34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지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23장 42~43절에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감동적인 추수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수장절은 출애굽하여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심과,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2. 청교도들의 신앙과 추수감사절
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의 개척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도착한 그곳은 혹독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지요.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 첫 추수감사절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지낸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
먼저, 이 세상의 수많은 질병, 사고, 재앙으로부터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명명된 병만 해도 약 1억 2천 2백만 개가 넘습니다. 이중에는 세상 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도 심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 마약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와 명예, 권세도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살하기도 하지요.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병, 의학으로 밝힐 수 없는 병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셨습니다.
여 성도 한 분은 ‘양수 과소증’으로 도저히 살릴 길 없었던 태아를 기도를 받고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양수가 거의 없는 태반 속에서 그 연약한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남았지요. 또 한 분은 급성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진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병원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던 중 통회자복을 한 후 기도를 받았는데 수술을 받지 않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재앙과 사고로부터도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지구는 대지진과 가뭄과 산불, 태풍,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지켜 주십니다.
혹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철저히 돌이키고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해결됩니다. 시편 17편 8절에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다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원한 천국 소망을 주시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소망이 온전해지도록 은혜와 감동을 주십니다.
전 세계 수많은 성도들이 『천국』 책자를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해졌습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저도 새 예루살렘 성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말씀한 대로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까지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로 양육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찬양이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알곡처럼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더욱 사랑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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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어떻게 하면 질병, 사고, 재앙을 만나지 않고 지킴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3. 올 한 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감사의 조건들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추수감사절을 맞아 늘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다해
감사드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진주문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열두 개의 문이 있다. 문마다 큰 천사가 지키고 있어 성의 위엄과 권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참을 올려다볼 정도로 큰 아치형의 문 전체가 하나의 영롱한 진주로 되어 있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며 황금보석 손잡이가 달려 있으나 굳이 손으로 열지 않아도 저절로 열린다.
열두 진주문을 통과하려면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 내기까지 고통을 인내한 것처럼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여 승리했을 때 들어갈 수 있다.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알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스럽고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될까요?
1.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의 계절을 맞아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면, 이스라엘의 절기 중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장절은 원래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추수할 수 있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확한 곡식을 저장한 후 ‘추수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는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레위기 23장 34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지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23장 42~43절에 “너희는 칠 일 동안 초막에 거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감동적인 추수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을 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수장절은 출애굽하여 40년 동안 광야생활을 한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심과,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2. 청교도들의 신앙과 추수감사절
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의 개척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도착한 그곳은 혹독한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지요.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 첫 추수감사절을 가졌습니다.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지낸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
먼저, 이 세상의 수많은 질병, 사고, 재앙으로부터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명명된 병만 해도 약 1억 2천 2백만 개가 넘습니다. 이중에는 세상 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도 심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 마약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와 명예, 권세도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살하기도 하지요.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병, 의학으로 밝힐 수 없는 병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셨습니다.
여 성도 한 분은 ‘양수 과소증’으로 도저히 살릴 길 없었던 태아를 기도를 받고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양수가 거의 없는 태반 속에서 그 연약한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남았지요. 또 한 분은 급성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진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병원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던 중 통회자복을 한 후 기도를 받았는데 수술을 받지 않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재앙과 사고로부터도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지구는 대지진과 가뭄과 산불, 태풍,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지켜 주십니다.
혹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철저히 돌이키고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해결됩니다. 시편 17편 8절에 “나를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주의 날개 그늘 아래 감추사”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안전하게 지켜 주십니다.
다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원한 천국 소망을 주시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소망이 온전해지도록 은혜와 감동을 주십니다.
전 세계 수많은 성도들이 『천국』 책자를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해졌습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저도 새 예루살렘 성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말씀한 대로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까지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로 양육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찬양이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알곡처럼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더욱 사랑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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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어떻게 하면 질병, 사고, 재앙을 만나지 않고 지킴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3. 올 한 해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감사의 조건들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추수감사절을 맞아 늘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다해
감사드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진주문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열두 개의 문이 있다. 문마다 큰 천사가 지키고 있어 성의 위엄과 권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참을 올려다볼 정도로 큰 아치형의 문 전체가 하나의 영롱한 진주로 되어 있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며 황금보석 손잡이가 달려 있으나 굳이 손으로 열지 않아도 저절로 열린다.
열두 진주문을 통과하려면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 내기까지 고통을 인내한 것처럼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여 승리했을 때 들어갈 수 있다.
2016-11-11
제45과영혼이 잘되어 만사형통한 믿음의 4단계
요 1:2
읽을말씀 : 요 1:2 | 외울말씀 : 빌 3:8 l 참고 말씀: 요일 3:21~22
교육목표 :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림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는 영의 사람이 되게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이 많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계명을 지켜 행하면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까지는 열심히 심은 대로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넘치게 부어 주십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오면 마음의 죄성까지 버린 ‘영의 사람’이기에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영혼이 잘되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지요.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1.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영과 혼과 육의 질서가 바로잡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난 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영이 주인으로서 혼과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상태이지요.
원래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지으셨습니다. 생령인 아담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 그리고 영의 지배를 받는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범죄하자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영이 죽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영이 소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영의 활동이 중지되었다는 뜻입니다. 영이 죽으니 영의 지배를 받던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혼’이란 두뇌의 기억 장치와 그 안에 담긴 모든 지식, 그리고 그것을 떠올리고 활용하는 모든 작용을 총칭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체험한 것을 기억하고 떠올려 활용하는 것이 다 혼의 작용이지요.
영이 주인 역할을 할 때는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진리의 지식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자 원수 마귀 사단이 혼을 통해 사람을 주관해 가니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의 마음은 비진리로 물들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은 혼과 육으로 지어진 짐승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전도서 3장 18절에 보면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시고, 그를 영접하는 자마다 죽었던 영이 살아나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며, 나아가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는 만큼 마음에 비진리는 벗어지고 진리로 채워집니다. 이것이 곧 성령으로 영을 낳는 것이며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우리 마음이 진리로 채워지면 하나님께서 처음 지으신 사람의 형상을 되찾게 되는데 바로 이 상태를 ‘영혼이 잘됐다? 하는 것입니다.
2.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큰 영광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린 상태이므로 영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 ‘영의 사람?이라 부릅니다. 영이 혼을 지배하면 말씀인 진리가 마음 전체를 사로잡으니 자기 생각이나 자기 뜻이 동원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을 온전히 주관하시니 시험 환난을 피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지킴을 받습니다.
영혼이 잘된 사람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시며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다?는 것은 질병 없이 몸이 건강한 것만이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가 잘되고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영의 사람은 범죄하지 않으므로 영적인 권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육적인 분야에서도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구하여 응답을 받습니다.
우선, 성령의 주관을 받으니 범사가 형통합니다. 믿음의 4단계는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차원이 아니라 마음 자체가 진리로 변화되었기에 저절로 진리의 행함이 나오는 단계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면 건강의 축복을 받습니다. 죄가 없기에 질병이나 연약함으로 고통받지 않습니다. 항상 성령의 불담으로 지킴 받으니 질병이 틈타지 않을 뿐 아니라 혹여 틈탔다 해도 기도하면 즉시 성령의 불로 태움 받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보면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뒤에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말씀하십니다. 죄로 인해 병이 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 치료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하신 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질의 축복도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축복을 주십니다. 따라서 영의 사람이 되기 전에도 믿음으로 심고 구할 때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곧 두 배 이상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영의 사람이 되면 하나를 심어도 30배, 60배 이상 거두며, 나아가 믿음의 5단계, 온 영의 사람이 되면 60배, 100배로도 거둡니다.
마태복음 13장 23절에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축복받을 만한 일이나 별다른 기술이나 재능이 없다 해도 영으로 들어가면 신명기 28장 약속의 말씀이 임하는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2~6)
이뿐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면 가정복음화가 이뤄집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면 그로 인해 그 가정까지 구원을 받습니다.
영으로 들어오는 만큼 영적인 권세가 따르므로 가족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전도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수 없고 상대도 그 선과 사랑에 더 쉽게 마음 문을 열게 됩니다.
영의 사람이 되면 범사에 섬기고 낮아지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씀씀이, 사소한 말 한마디와 행동도 아름답고 선하게 나타납니다. 착한 행실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주변을 감동시키고 하나님께서도 감동하심으로 범사에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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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세요.
1. ( )는 것은, 영과 혼과 육의 질서가 바로잡히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난 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영이 주인으로서 혼과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상태이다.
2. ( )는 것은 질병 없이 몸이 건강한 것만이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가 잘되고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23~23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영이란?
‘썩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이요, ‘영원하며 참된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이시라’ 하는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이처럼 거룩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속성 중 일부를 나눠 주셨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은 생령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아담은 범죄함으로 육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육으로 변질된 사람에게 있어 반드시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교육목표 :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림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는 영의 사람이 되게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이 많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계명을 지켜 행하면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까지는 열심히 심은 대로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넘치게 부어 주십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오면 마음의 죄성까지 버린 ‘영의 사람’이기에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영혼이 잘되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지요.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1.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영과 혼과 육의 질서가 바로잡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난 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영이 주인으로서 혼과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상태이지요.
원래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지으셨습니다. 생령인 아담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 그리고 영의 지배를 받는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범죄하자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영이 죽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영이 소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영의 활동이 중지되었다는 뜻입니다. 영이 죽으니 영의 지배를 받던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혼’이란 두뇌의 기억 장치와 그 안에 담긴 모든 지식, 그리고 그것을 떠올리고 활용하는 모든 작용을 총칭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체험한 것을 기억하고 떠올려 활용하는 것이 다 혼의 작용이지요.
영이 주인 역할을 할 때는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진리의 지식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자 원수 마귀 사단이 혼을 통해 사람을 주관해 가니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의 마음은 비진리로 물들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은 혼과 육으로 지어진 짐승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전도서 3장 18절에 보면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시고, 그를 영접하는 자마다 죽었던 영이 살아나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며, 나아가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는 만큼 마음에 비진리는 벗어지고 진리로 채워집니다. 이것이 곧 성령으로 영을 낳는 것이며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우리 마음이 진리로 채워지면 하나님께서 처음 지으신 사람의 형상을 되찾게 되는데 바로 이 상태를 ‘영혼이 잘됐다? 하는 것입니다.
2.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아 하나님께 큰 영광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린 상태이므로 영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 ‘영의 사람?이라 부릅니다. 영이 혼을 지배하면 말씀인 진리가 마음 전체를 사로잡으니 자기 생각이나 자기 뜻이 동원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을 온전히 주관하시니 시험 환난을 피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지킴을 받습니다.
영혼이 잘된 사람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시며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다?는 것은 질병 없이 몸이 건강한 것만이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가 잘되고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영의 사람은 범죄하지 않으므로 영적인 권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육적인 분야에서도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구하여 응답을 받습니다.
우선, 성령의 주관을 받으니 범사가 형통합니다. 믿음의 4단계는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차원이 아니라 마음 자체가 진리로 변화되었기에 저절로 진리의 행함이 나오는 단계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면 건강의 축복을 받습니다. 죄가 없기에 질병이나 연약함으로 고통받지 않습니다. 항상 성령의 불담으로 지킴 받으니 질병이 틈타지 않을 뿐 아니라 혹여 틈탔다 해도 기도하면 즉시 성령의 불로 태움 받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보면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요한복음 5장 1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뒤에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말씀하십니다. 죄로 인해 병이 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 치료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하신 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질의 축복도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축복을 주십니다. 따라서 영의 사람이 되기 전에도 믿음으로 심고 구할 때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곧 두 배 이상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영의 사람이 되면 하나를 심어도 30배, 60배 이상 거두며, 나아가 믿음의 5단계, 온 영의 사람이 되면 60배, 100배로도 거둡니다.
마태복음 13장 23절에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축복받을 만한 일이나 별다른 기술이나 재능이 없다 해도 영으로 들어가면 신명기 28장 약속의 말씀이 임하는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2~6)
이뿐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면 가정복음화가 이뤄집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면 그로 인해 그 가정까지 구원을 받습니다.
영으로 들어오는 만큼 영적인 권세가 따르므로 가족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전도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수 없고 상대도 그 선과 사랑에 더 쉽게 마음 문을 열게 됩니다.
영의 사람이 되면 범사에 섬기고 낮아지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씀씀이, 사소한 말 한마디와 행동도 아름답고 선하게 나타납니다. 착한 행실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주변을 감동시키고 하나님께서도 감동하심으로 범사에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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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세요.
1. ( )는 것은, 영과 혼과 육의 질서가 바로잡히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난 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영이 주인으로서 혼과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상태이다.
2. ( )는 것은 질병 없이 몸이 건강한 것만이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가 잘되고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23~23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영이란?
‘썩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이요, ‘영원하며 참된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이기도 하다. 그래서 ‘하나님은 영이시라’ 하는 것이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이처럼 거룩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속성 중 일부를 나눠 주셨다. 그래서 첫 사람 아담은 생령으로 창조되었다.
그러나 아담은 범죄함으로 육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이렇게 육으로 변질된 사람에게 있어 반드시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2016-11-04
제44과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의 4단계
요 4:24
읽을말씀 : 요 4:24 | 외울말씀 : 요 5:3 l 참고 말씀: 요 14:15
교육목표 : 주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부족함이 없는 영의 사람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목적지를 향해 계단을 오를 때에 한 계단, 한 계단 차례대로 밟아 올라가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단계를 거쳐 성장합니다. 마음의 악을 모두 버리고 내가 옳다는 착각, 육체의 결여, 교만까지 정리되면 믿음의 4단계에 진입합니다. 바로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영의 사람은 죄악을 벗어 버리고 거룩하게 변화된 사람을 말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악이 없기에 고난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맞는다 해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현실은 막막하다 해도 마음에서 기쁨과 평안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행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체가 즐겁지요.
이때부터 비로소 영이신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신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 할 수 있지요. 그러면 믿음의 4단계에 진입한 영의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1. 주님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4단계의 믿음에 이르면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는 깊이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물론 믿음의 3단계에서도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말씀했지요.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마음의 죄성까지 다 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것이 조금은 민망합니다. 반면에 성결되어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담대하게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고, 하나님도 그 고백을 기뻐 받으시므로 위로부터 성령의 감동이 임하지요.
그래서 믿음의 4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 하나님, 주님!” 하고 부르기만 해도 진한 감동이 밀려와 금세 눈물이 흘러내리고 그 사랑이 변함없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대할 때도 마음이 다릅니다. 만약 누군가 애매한 말로 자신을 모함한다고 합시다.
이때 3단계의 믿음에 있는 사람이라면 순간 ‘너무한다, 피하고 싶다.’는 서운함과 미움의 감정이 스치기도 합니다. 또 진리를 알기 때문에 “감사하자, 기뻐하자.” 하며 마음을 다스리지만 온전한 감사가 나오지는 않지요.
하지만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선 사람은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해도 마음에 요동이 없습니다. 상대가 밉다는 생각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고 스스로도 마음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로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을 통해 더욱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고, 상대가 범죄하지 않도록 기도하게 되지요.
이처럼 똑같은 상황이라 해도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선의 향, 사랑의 향이 다릅니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고 싶어 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면 모든 계명을 기쁨으로 지키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한 대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내십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때 하나님 편에서도 그런 자녀들을 지극히 사랑하며 항상 만나 주십니다.
2. 대가를 바라지 않고 조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깨우침으로 사랑하려고 애씁니다. 반면, 믿음의 4단계에서는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뿐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사무치도록 느끼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요. 어떤 시험 환난에도 마음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가 우러나오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다 생명이 위태로워졌다.”고 근심하며 슬픔 가운데 기도한 것이 아니라, 평안하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지요.
다니엘 6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을 행할 뿐이기에 사나 죽으나 오직 감사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바울과 실라도 그러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매를 맞고 차꼬에 채인 채 깊은 감옥에 갇혔으나 원망 불평하지 않았고, 앞으로 어찌 될까 염려 근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감동 속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립니다. 이것이 믿음의 4단계의 모습이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 자녀의 모습입니다. 이 감동의 찬양이 울려 퍼질 때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벗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믿음의 4단계에 이르게 되면 무조건 하나님이 좋고 진리가 좋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불철주야 기도하고 충성하고 봉사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은혜만으로도 감사하여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까 궁구하게 됩니다.
3.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부귀영화도 아깝지 않고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빌립보서 3장 7~8절에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금세에 백배의 축복을 받고 내세에 영생의 축복을 받는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여기서 가족이나 집과 전토를 버린다는 것은 곧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영이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고 해서 가족들과의 관계를 끊고 도리를 하지 말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욱 가족들을 섬기며 가족의 일원으로서 온 집에 충성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이 그 섬김과 사랑에 감동받아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이끄는 것이 하나님 뜻이지요. 다만 가족이 하나님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범사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위로부터 진정한 행복이 임합니다. 또한 마음에 악이 없으니 선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며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을 줄 수 있지요(고전 13:4~7).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처음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핍박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이 잘되어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오히려 핍박이 축복으로 바뀌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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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4단계의 특징입니다. ( ) 안을 채워 보세요.
① 주님을 ( ) 사랑한다.
② ( )를 바라지 않고 ( ) 없이 하나님을 사랑한다.
③ 모든 것을 버리고 ( )을 첫째로 사랑한다.
2. 여러분에게 다니엘 선지자나 사도 바울과 같은 시험이 왔다면 어떠한 믿음의 행함을 내보이시겠습니까?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17~22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4단계에 주어지는 천국 처소와 면류관
처 소 : 믿음의 4단계가 들어가는 3천층의 집은 주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영적인 향이 흘러나오므로 문패가 없어도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집은 복층 건물로 정금과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3천층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모든 시설을 소유할 수 있다.
면류관 :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다(계 2:10).
교육목표 : 주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부족함이 없는 영의 사람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목적지를 향해 계단을 오를 때에 한 계단, 한 계단 차례대로 밟아 올라가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단계를 거쳐 성장합니다. 마음의 악을 모두 버리고 내가 옳다는 착각, 육체의 결여, 교만까지 정리되면 믿음의 4단계에 진입합니다. 바로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영의 사람은 죄악을 벗어 버리고 거룩하게 변화된 사람을 말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악이 없기에 고난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맞는다 해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현실은 막막하다 해도 마음에서 기쁨과 평안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행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체가 즐겁지요.
이때부터 비로소 영이신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신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 할 수 있지요. 그러면 믿음의 4단계에 진입한 영의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1. 주님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4단계의 믿음에 이르면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는 깊이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물론 믿음의 3단계에서도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말씀했지요.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마음의 죄성까지 다 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것이 조금은 민망합니다. 반면에 성결되어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담대하게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고, 하나님도 그 고백을 기뻐 받으시므로 위로부터 성령의 감동이 임하지요.
그래서 믿음의 4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 하나님, 주님!” 하고 부르기만 해도 진한 감동이 밀려와 금세 눈물이 흘러내리고 그 사랑이 변함없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대할 때도 마음이 다릅니다. 만약 누군가 애매한 말로 자신을 모함한다고 합시다.
이때 3단계의 믿음에 있는 사람이라면 순간 ‘너무한다, 피하고 싶다.’는 서운함과 미움의 감정이 스치기도 합니다. 또 진리를 알기 때문에 “감사하자, 기뻐하자.” 하며 마음을 다스리지만 온전한 감사가 나오지는 않지요.
하지만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선 사람은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해도 마음에 요동이 없습니다. 상대가 밉다는 생각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고 스스로도 마음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로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을 통해 더욱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고, 상대가 범죄하지 않도록 기도하게 되지요.
이처럼 똑같은 상황이라 해도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선의 향, 사랑의 향이 다릅니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고 싶어 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면 모든 계명을 기쁨으로 지키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한 대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내십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때 하나님 편에서도 그런 자녀들을 지극히 사랑하며 항상 만나 주십니다.
2. 대가를 바라지 않고 조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깨우침으로 사랑하려고 애씁니다. 반면, 믿음의 4단계에서는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뿐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사무치도록 느끼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요. 어떤 시험 환난에도 마음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가 우러나오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다 생명이 위태로워졌다.”고 근심하며 슬픔 가운데 기도한 것이 아니라, 평안하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지요.
다니엘 6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을 행할 뿐이기에 사나 죽으나 오직 감사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바울과 실라도 그러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매를 맞고 차꼬에 채인 채 깊은 감옥에 갇혔으나 원망 불평하지 않았고, 앞으로 어찌 될까 염려 근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감동 속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립니다. 이것이 믿음의 4단계의 모습이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 자녀의 모습입니다. 이 감동의 찬양이 울려 퍼질 때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벗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믿음의 4단계에 이르게 되면 무조건 하나님이 좋고 진리가 좋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불철주야 기도하고 충성하고 봉사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은혜만으로도 감사하여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까 궁구하게 됩니다.
3.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부귀영화도 아깝지 않고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빌립보서 3장 7~8절에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금세에 백배의 축복을 받고 내세에 영생의 축복을 받는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여기서 가족이나 집과 전토를 버린다는 것은 곧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영이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고 해서 가족들과의 관계를 끊고 도리를 하지 말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욱 가족들을 섬기며 가족의 일원으로서 온 집에 충성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이 그 섬김과 사랑에 감동받아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이끄는 것이 하나님 뜻이지요. 다만 가족이 하나님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범사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위로부터 진정한 행복이 임합니다. 또한 마음에 악이 없으니 선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며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을 줄 수 있지요(고전 13:4~7).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처음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핍박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이 잘되어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오히려 핍박이 축복으로 바뀌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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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4단계의 특징입니다. ( ) 안을 채워 보세요.
① 주님을 ( ) 사랑한다.
② ( )를 바라지 않고 ( ) 없이 하나님을 사랑한다.
③ 모든 것을 버리고 ( )을 첫째로 사랑한다.
2. 여러분에게 다니엘 선지자나 사도 바울과 같은 시험이 왔다면 어떠한 믿음의 행함을 내보이시겠습니까?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17~22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4단계에 주어지는 천국 처소와 면류관
처 소 : 믿음의 4단계가 들어가는 3천층의 집은 주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영적인 향이 흘러나오므로 문패가 없어도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집은 복층 건물로 정금과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3천층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모든 시설을 소유할 수 있다.
면류관 :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다(계 2:10).
2016-10-28
제43과믿음의 4단계에 신속히 들어가려면
살전 5:21~22
읽을말씀 : 살전 5:21~22 | 외울말씀 : 마 5:37 l 참고 말씀: 잠언 18:12
교육목표 : 자신이 옳다고 하는 착각과 육체의 결여와 교만을 온전히 벗어 버림으로 악이 없는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반석을 넘어선 사람은 일부러 악을 행하거나 하나님 뜻을 거스르려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거나, 쉽게 버리지 못하는 육의 분야들이 남아 있어 믿음 성장의 정체를 겪기도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죄성까지 벗어 버리고 신속히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자신이 옳다는 착각을 버리고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믿음의 반석을 지나 4단계에 가까워지면 겉으로 볼 때는 특별히 지적할 만한 악의 모양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기도를 쉬거나 눈에 띌 만한 비진리를 행치 않지요. 하나님 말씀에 드러나게 불순종하거나 사명 감당을 힘들어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말씀에 걸릴 만한 요소가 쉽게 발견되지 않으니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여기며 이 정도면 나도 믿음의 4단계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온전하지 못한 모습이 많습니다. 자신은 순종한다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불순종하는 것도 있고, ‘선’이 아닌 모습도 있습니다. 순간순간 비진리의 생각이 동원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자기 생각에는 옳은 것처럼 보이기에 무엇이 잘못인지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악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보기에 더 옳아 보이는 것이 남아 있어 ‘자기’를 고집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기가 옳다고 고집하는 것을 ‘자기 의’라고 합니다.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은 상대에게도 자기 뜻을 따르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또 틀이란,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단단하게 굳은 것을 말합니다. 틀이 강한 사람은 자신이 진리라 생각하는 것만 고집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이고 답답하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자기 의와 틀이 강한 사람은 믿음이 여려 열심 내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왜 충성하지 않느냐, 왜 기도하지 않느냐!” 지적하고 책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당연히 가르칠 것을 가르쳤고 옳은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책망을 들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낙심하면 “왜 기쁨과 감사로 받지 못하느냐?”며 또다시 지적하지요. 진리에 비추어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에 자기의 권면을 받지 못하는 상대에게 전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아는 진리가 옳다고만 생각하므로 자신의 방법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고 선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의와 틀’을 믿음의 3단계에서 집중적으로 깨뜨려야 4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틀은 자기가 볼 때 분명히 옳다고 여기는 것이므로 무엇이 잘못인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진리로 만든 의와 틀은 말씀에 비추어 보아도 틀리지 않기 때문에 깨닫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착각’을 하지요. 더 큰 문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일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겠지.’ 한다면 여전히 착각 속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자기 의와 틀을 버리려면 간절하고 겸비한 마음으로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2. 오랜 습관처럼 굳어진 ‘육체의 결여’를 깨닫고 채워야
육체의 결여란, 사람이 성장하면서 거쳐야 할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함으로 인해 보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를 통틀어 일컫습니다. 육체의 결여는 범위도 넓고 형태도 다양합니다. 가벼운 육체의 결여도 있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로 이어질 만큼 심각한 육체의 결여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4단계에 가까운 경우라면 이런 종류의 결여는 이미 정리되었을 것입니다. 다만 몸가짐이나 태도, 말투나 자세 등에서 여러 가지 육체의 결여가 나타나는데 이런 것들이 4단계의 믿음으로 들어가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이러한 육체의 결여는 단지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불편함과 어려움을 주고, 사람들에게 덕과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육체의 결여로 인해 상대에게 무례를 범하거나 실족시키는 일이 발생하며, 하나님의 일을 더 아름답게 이루는 데 지장을 초래하지요. 오랫동안 습관처럼 굳어져서 스스로 잘 깨닫지 못하고, 알아도 바로잡기 쉽지 않은 육체의 결여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문을 ‘쾅!’ 하고 닫거나, 방을 나갈 때 으레 문을 열어놓고 나갑니다. 식사할 때 ‘쩝쩝’ 소리를 내거나 음식을 흘리면서 먹습니다. 발소리가 요란하거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거북할 만큼 이상한 걸음걸이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단체생활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을 먼저 섬긴다거나 배려하는 행함이 부족합니다. 물건을 쓴 후 제자리에 두지 않고 아무 데나 두며 어디를 가든 늘 어지르고 정리를 하지 않지요. 약속을 수시로 어기거나 습관처럼 늦습니다.
이 외에도 상대의 말에 경청하지 않는 태도나, 윗사람이 말하는데 딴청하는 것, 상대의 말을 중도에 끊고 자기 할 말만 하거나, 상대에게 양보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경우 등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부러 악을 행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라온 환경 속에 늘 ‘자기 위주’로 살았기 때문에 자기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는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육체의 결여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먼저, ‘지식의 결여’로 생깁니다. 자라면서 당연히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못한 까닭이지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도리나 예절에 대한 지식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의 한계 안에서 자기 것만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지식의 결여에서 나오는 모습입니다. 지식 자체가 없으니 행함으로도 결여된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경우는 결여된 모습을 찾아 그에 대한 지식을 하나하나 배우며 행하면 됩니다.
다음으로, ‘행함의 결여’로 인해 생깁니다. 듣고 배웠지만 행하지 않은 결과이지요. 주변 정리정돈을 잘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게을러서 미루거나 치우지 않고 지저분하게 살다 보면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 버립니다. 듣고 배웠는데도 자기 편한 대로 살아온 것들이 쌓여 결국 육체의 결여를 낳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타고난 기’로 인해 결여가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부정적인 사고로 인해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더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부모님과 사이가 서먹서먹하고 어색하며 제대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버지 하나님과도 이런 모습이라면 더 깊은 관계로 뚫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육체의 결여는 다양한 원인으로 생길 수 있습니다. 육체의 결여는 마음이나 행함의 결여로 작용할 수도 있고, 생각이나 사고의 결여로 작용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이러한 것이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 속에서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믿음의 4단계로 들어가려면 이러한 육체의 결여는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3. 판단 정죄하는 일이 없도록 영적인 ‘교만’을 버려야
상대보다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는 육적인 교만도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이 단계에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영적인 교만입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지요. 자신이 아는 하나님 말씀과 지식을 기준으로 ‘이것이 옳다.? 생각하는 것이 자칫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말씀을 잘 알고 교회 일을 처리해 나가는 노하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일이든 개인의 일이든 얼마든지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영적인 교만에서 오는 것으로 자칫 판단 정죄를 낳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나름대로 열심히 충성하며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한다 하지만, 지식에 비해 행함이 따르지 못하므로 여러 부족한 모습이 나오기도 합니다. 자기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열심히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소극적이며 희생과 헌신하기보다는 회피하고자 하지요. 이는 질서 가운데 순종하는 것이 아니므로 교만에서 나오는 모습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잠 18:12) 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 가까울수록 깊은 악의 뿌리를 거의 뽑아 버렸기에 교만이 큰 악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뿌리가 남아 있으면 다시 자랄 수 있으므로 온전히 뽑아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질서에 온전히 순종하고 자기가 아는 것으로 쉽게 분별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겸손과 섬김, 희생과 배려의 마음을 이루어야 하지요. 이처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미세한 비진리의 분야까지 발견해서 온전히 버려야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평가 및 적용하기
혹여 아래와 같은 육체의 결여가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 ) 음식이 맛있다고 쩝쩝 소리를 내면서 먹지는 않는가?
( ) 바쁘다고 설거지를 하지 않고 쌓아 두지는 않는가?
( ) 평소 정리정돈을 잘하지 않아 주변이 지저분하지는 않는가?
( ) 상대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자기 용건만 말하지는 않는가?
( ) 자녀나 아랫사람에게 질책하거나 가르치는 말투를 사용하는가?
( ) 규모없이 생활하며 수중에 있는 대로 돈을 쓰지는 않는가?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10~21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랑이 부족해 영으로 들어가지 못한 경우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기중심적으로 살면서 자신을 만들어 온 사람은 주 안에 들어와서도 자기적인 것이 강하게 남아 있다. 자기 지식과 경험 등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옳다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눈물을 흘려 줄 수 있는 사랑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으로 들어가려면 오랜 세월 동안 자기를 만들어온 것과는 반대로 심어 나가야 한다. 열심히 자기를 낮추고 섬기며, 주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며 채워야 한다. 그래야 진정 마음에서 상대를 영적인 사랑으로 대할 수 있게 되며, 상대의 마음과 입장, 아픔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다.
교육목표 : 자신이 옳다고 하는 착각과 육체의 결여와 교만을 온전히 벗어 버림으로 악이 없는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반석을 넘어선 사람은 일부러 악을 행하거나 하나님 뜻을 거스르려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거나, 쉽게 버리지 못하는 육의 분야들이 남아 있어 믿음 성장의 정체를 겪기도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죄성까지 벗어 버리고 신속히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자신이 옳다는 착각을 버리고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믿음의 반석을 지나 4단계에 가까워지면 겉으로 볼 때는 특별히 지적할 만한 악의 모양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기도를 쉬거나 눈에 띌 만한 비진리를 행치 않지요. 하나님 말씀에 드러나게 불순종하거나 사명 감당을 힘들어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말씀에 걸릴 만한 요소가 쉽게 발견되지 않으니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여기며 이 정도면 나도 믿음의 4단계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온전하지 못한 모습이 많습니다. 자신은 순종한다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불순종하는 것도 있고, ‘선’이 아닌 모습도 있습니다. 순간순간 비진리의 생각이 동원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자기 생각에는 옳은 것처럼 보이기에 무엇이 잘못인지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악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보기에 더 옳아 보이는 것이 남아 있어 ‘자기’를 고집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기가 옳다고 고집하는 것을 ‘자기 의’라고 합니다.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은 상대에게도 자기 뜻을 따르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또 틀이란,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단단하게 굳은 것을 말합니다. 틀이 강한 사람은 자신이 진리라 생각하는 것만 고집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이고 답답하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자기 의와 틀이 강한 사람은 믿음이 여려 열심 내지 못하는 사람을 보고 “왜 충성하지 않느냐, 왜 기도하지 않느냐!” 지적하고 책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당연히 가르칠 것을 가르쳤고 옳은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책망을 들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낙심하면 “왜 기쁨과 감사로 받지 못하느냐?”며 또다시 지적하지요. 진리에 비추어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에 자기의 권면을 받지 못하는 상대에게 전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아는 진리가 옳다고만 생각하므로 자신의 방법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고 선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의와 틀’을 믿음의 3단계에서 집중적으로 깨뜨려야 4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틀은 자기가 볼 때 분명히 옳다고 여기는 것이므로 무엇이 잘못인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진리로 만든 의와 틀은 말씀에 비추어 보아도 틀리지 않기 때문에 깨닫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착각’을 하지요. 더 큰 문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일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겠지.’ 한다면 여전히 착각 속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자기 의와 틀을 버리려면 간절하고 겸비한 마음으로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2. 오랜 습관처럼 굳어진 ‘육체의 결여’를 깨닫고 채워야
육체의 결여란, 사람이 성장하면서 거쳐야 할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함으로 인해 보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를 통틀어 일컫습니다. 육체의 결여는 범위도 넓고 형태도 다양합니다. 가벼운 육체의 결여도 있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로 이어질 만큼 심각한 육체의 결여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4단계에 가까운 경우라면 이런 종류의 결여는 이미 정리되었을 것입니다. 다만 몸가짐이나 태도, 말투나 자세 등에서 여러 가지 육체의 결여가 나타나는데 이런 것들이 4단계의 믿음으로 들어가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이러한 육체의 결여는 단지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불편함과 어려움을 주고, 사람들에게 덕과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육체의 결여로 인해 상대에게 무례를 범하거나 실족시키는 일이 발생하며, 하나님의 일을 더 아름답게 이루는 데 지장을 초래하지요. 오랫동안 습관처럼 굳어져서 스스로 잘 깨닫지 못하고, 알아도 바로잡기 쉽지 않은 육체의 결여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문을 ‘쾅!’ 하고 닫거나, 방을 나갈 때 으레 문을 열어놓고 나갑니다. 식사할 때 ‘쩝쩝’ 소리를 내거나 음식을 흘리면서 먹습니다. 발소리가 요란하거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거북할 만큼 이상한 걸음걸이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단체생활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을 먼저 섬긴다거나 배려하는 행함이 부족합니다. 물건을 쓴 후 제자리에 두지 않고 아무 데나 두며 어디를 가든 늘 어지르고 정리를 하지 않지요. 약속을 수시로 어기거나 습관처럼 늦습니다.
이 외에도 상대의 말에 경청하지 않는 태도나, 윗사람이 말하는데 딴청하는 것, 상대의 말을 중도에 끊고 자기 할 말만 하거나, 상대에게 양보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경우 등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부러 악을 행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라온 환경 속에 늘 ‘자기 위주’로 살았기 때문에 자기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는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육체의 결여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먼저, ‘지식의 결여’로 생깁니다. 자라면서 당연히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못한 까닭이지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도리나 예절에 대한 지식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의 한계 안에서 자기 것만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지식의 결여에서 나오는 모습입니다. 지식 자체가 없으니 행함으로도 결여된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경우는 결여된 모습을 찾아 그에 대한 지식을 하나하나 배우며 행하면 됩니다.
다음으로, ‘행함의 결여’로 인해 생깁니다. 듣고 배웠지만 행하지 않은 결과이지요. 주변 정리정돈을 잘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게을러서 미루거나 치우지 않고 지저분하게 살다 보면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 버립니다. 듣고 배웠는데도 자기 편한 대로 살아온 것들이 쌓여 결국 육체의 결여를 낳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타고난 기’로 인해 결여가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부정적인 사고로 인해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더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부모님과 사이가 서먹서먹하고 어색하며 제대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버지 하나님과도 이런 모습이라면 더 깊은 관계로 뚫어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이처럼 육체의 결여는 다양한 원인으로 생길 수 있습니다. 육체의 결여는 마음이나 행함의 결여로 작용할 수도 있고, 생각이나 사고의 결여로 작용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이러한 것이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 속에서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믿음의 4단계로 들어가려면 이러한 육체의 결여는 반드시 없애야 합니다.
3. 판단 정죄하는 일이 없도록 영적인 ‘교만’을 버려야
상대보다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는 육적인 교만도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이 단계에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영적인 교만입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지요. 자신이 아는 하나님 말씀과 지식을 기준으로 ‘이것이 옳다.? 생각하는 것이 자칫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말씀을 잘 알고 교회 일을 처리해 나가는 노하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일이든 개인의 일이든 얼마든지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영적인 교만에서 오는 것으로 자칫 판단 정죄를 낳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나름대로 열심히 충성하며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한다 하지만, 지식에 비해 행함이 따르지 못하므로 여러 부족한 모습이 나오기도 합니다. 자기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열심히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소극적이며 희생과 헌신하기보다는 회피하고자 하지요. 이는 질서 가운데 순종하는 것이 아니므로 교만에서 나오는 모습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잠 18:12) 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 가까울수록 깊은 악의 뿌리를 거의 뽑아 버렸기에 교만이 큰 악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뿌리가 남아 있으면 다시 자랄 수 있으므로 온전히 뽑아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질서에 온전히 순종하고 자기가 아는 것으로 쉽게 분별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겸손과 섬김, 희생과 배려의 마음을 이루어야 하지요. 이처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미세한 비진리의 분야까지 발견해서 온전히 버려야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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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혹여 아래와 같은 육체의 결여가 있지는 않은지 자신을 점검해 봅시다.
( ) 음식이 맛있다고 쩝쩝 소리를 내면서 먹지는 않는가?
( ) 바쁘다고 설거지를 하지 않고 쌓아 두지는 않는가?
( ) 평소 정리정돈을 잘하지 않아 주변이 지저분하지는 않는가?
( ) 상대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자기 용건만 말하지는 않는가?
( ) 자녀나 아랫사람에게 질책하거나 가르치는 말투를 사용하는가?
( ) 규모없이 생활하며 수중에 있는 대로 돈을 쓰지는 않는가?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10~21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랑이 부족해 영으로 들어가지 못한 경우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기중심적으로 살면서 자신을 만들어 온 사람은 주 안에 들어와서도 자기적인 것이 강하게 남아 있다. 자기 지식과 경험 등으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이 옳다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눈물을 흘려 줄 수 있는 사랑이 부족한 것이다.
그러므로 영으로 들어가려면 오랜 세월 동안 자기를 만들어온 것과는 반대로 심어 나가야 한다. 열심히 자기를 낮추고 섬기며, 주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며 채워야 한다. 그래야 진정 마음에서 상대를 영적인 사랑으로 대할 수 있게 되며, 상대의 마음과 입장, 아픔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다.
2016-10-21
제42과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 버려야 할 9가지
요일 2:15
읽을말씀 : 요일 2:15 | 외울말씀 : 마 5:28 l 참고 말씀: 약 4:11~12
교육목표 :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소유하여 범사에 승리해 나가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육신의 일, 즉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도 웬만한 것은 다 버린 상태이므로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견고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 버려야 하는 악은 무엇일까요?
1. 분노, 짜증과 같은 혈기
혈기란 분노와 같은 악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말합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면 욕설이나 폭행 등 거친 말과 행동이 나오지요. 믿음의 반석에서는 마음에서 ‘욱!’ 하거나 부글부글 끓는 것도 거의 없어야 합니다.
만약 혈기를 참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거나 짜증 섞인 말과 감정이 담긴 말을 툭툭 내뱉는다면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멀지요. 더욱이 혈기가 얼굴에 분명히 드러나고 말이나 행동에서 확연히 느껴지는데도 스스로 반석에 섰다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혈기를 내고도 ‘상대를 깨우쳐 주기 위함’이며 ‘의분이 난 것’이라고 이유를 대거나 변명한다면 이 또한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2. 불편함, 서운함 등 나쁜 감정
감정이란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으로서 혈기보다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이 감정으로부터 여러 가지 육신의 일들이 파생돼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편함과 서운함이지요. 누군가가 자신에게 안 좋은 말을 하거나 지적 또는 책망할 때, 자신을 섬겨 주지 않거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 해 주지 않을 때 불편함이 생깁니다. 또한 남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자기가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애매히 오해를 받을 때 서운함이 생깁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어느 정도 무익한 종의 마음(눅 17:7~10)이 되어 서운함이나 불편한 감정이 스스로 느낄 만큼 올라오지는 않습니다. 간혹 착각 속에 ‘나는 그런 감정들이 없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처럼 자신을 속이면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없습니다.
3. 미움, 시기, 질투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에서 계속 상대를 미워한다면 이는 거듭 살인하는 것과 같으며(요일 3:15)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멉니다. 시기, 질투 역시 현저한 육체의 일(갈 5:19~21)이므로 반드시 버려야 할 악입니다.
만일 누군가 칭찬받을 때 ‘저 사람에게는 저런 부족한 모습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시기가 있는 것입니다. 상대와 비교하여 낙심하거나 자격지심을 갖는다면 이 역시 시기 질투로 인한 현상입니다. 시기 질투가 없다면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잘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인정과 칭찬을 받는다 해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미움, 시기, 질투를 가지고 있으면서 믿음의 반석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4. 거짓, 속이는 마음
자기 유익을 위해 속이거나 거짓말을 지어낸다면 믿음의 반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공을 드러내고자 허위로 실적을 보태고, 불리한 내용을 축소하거나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은 거짓과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현실을 덮는 데 급급하여 거짓말하고 속인다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당장은 속여서 넘어갔다 해도 결국 시험 환난으로 오고 나중에는 더 큰 일도 속이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속이려는 마음, 거짓말하거나 숨기려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있습니다.
5. 헤아림과 비방, 판단 정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100%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나 지식 또는 자기 보기에 선과 의를 기준으로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지요. 따라서 함부로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하는 것은 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약 4:11~12). 판단을 하면 대부분 수군거림과 헤아림, 비방과 정죄가 따릅니다. 특히 ‘분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안 좋은 말을 퍼뜨리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이렇게 남의 이야기나 소문, 혹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 정죄하는 사람은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6. 변개함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육의 대표적인 특징인 변개함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더욱이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꾸는 사람이라면 변개함의 속성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순교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순교의 믿음’이란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변개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 수시로 변개하며 하나님과의 약속도 어기는 사람이 어떻게 죽음의 위협 앞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7. 간음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버려야 할 것이 바로 간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7~28). 이성을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거나 생각으로 하는 간음도 없어야 반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란한 행위만 죄로 여길 뿐 음란한 생각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꼭 음란한 생각은 아니라 해도 이성을 보면서 ‘몸매 좋다.?거나 ‘잘생겼다.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간음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음란한 행위는 물론, 마음이나 생각으로 짓는 간음의 근본 뿌리까지 온전히 빼내야 합니다.
8. 욕심과 탐심, 사사로운 마음
욕심과 탐심은 물질, 명예, 권세, 외모 등 다양한 분야로 표출되어 나옵니다. 사심은 정과 욕심을 좇아 개인적인 유익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욕심, 사심, 탐심이 드러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물질과 관련된 경우입니다.
욕심이나 탐심이 있어 돈을 사랑하면 결국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딤전 6:10). 사심 역시 물질과 관련되면 온갖 부정과 부패의 원인이 되지요. 사심이 있으면 개인적인 유익,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유익을 먼저 챙깁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이러한 욕심, 탐심, 사심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9.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마음
배신은 변개함과도 관련이 있지만 간사한 마음과 크게 관련이 있습니다. 또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교만 등 여러 가지 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배신’이라는 악을 낳게 됩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함께했던 사람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 상대와 약속해 놓고 그 기대를 저버리는 것도 배신입니다. 더욱이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이를 저버리고 배신한다면 더 큰 악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이러한 배신의 마음을 근본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아홉 가지 기준에 비추어 걸릴 만한 것이 없다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으니 악을 버리고 믿음의 반석에 설 뿐 아니라 더 깊은 영의 차원으로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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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쓰세요.
1.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육의 대표적인 특징 ( )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꾼다면 ( )의 속성이 많다는 증거이다.
2. ( )이란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으로 혈기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 ( )으로부터 여러 가지 육신의 일들이 파생돼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편함과 서운함이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02~20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
가룟 유다는 사사로운 이익과 욕심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힘 있는 위치에 오르시면 자신도 그 곁에서 덕을 보려는 속셈이었다. 돈궤도 자기가 맡았고 때때로 물질을 임의로 빼돌리기도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점점 자기 기대와는 다른 길로 가시자 은 삼십에 팔아넘기고 만다. 가룟 유다의 최후에 대해 사도행전 1:18에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기록돼 있다.
사리사욕 때문에 예수님을 배신한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보여 준다.
교육목표 :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믿음을 소유하여 범사에 승리해 나가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육신의 일, 즉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도 웬만한 것은 다 버린 상태이므로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견고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 버려야 하는 악은 무엇일까요?
1. 분노, 짜증과 같은 혈기
혈기란 분노와 같은 악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말합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면 욕설이나 폭행 등 거친 말과 행동이 나오지요. 믿음의 반석에서는 마음에서 ‘욱!’ 하거나 부글부글 끓는 것도 거의 없어야 합니다.
만약 혈기를 참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거나 짜증 섞인 말과 감정이 담긴 말을 툭툭 내뱉는다면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멀지요. 더욱이 혈기가 얼굴에 분명히 드러나고 말이나 행동에서 확연히 느껴지는데도 스스로 반석에 섰다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혈기를 내고도 ‘상대를 깨우쳐 주기 위함’이며 ‘의분이 난 것’이라고 이유를 대거나 변명한다면 이 또한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2. 불편함, 서운함 등 나쁜 감정
감정이란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으로서 혈기보다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이 감정으로부터 여러 가지 육신의 일들이 파생돼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편함과 서운함이지요. 누군가가 자신에게 안 좋은 말을 하거나 지적 또는 책망할 때, 자신을 섬겨 주지 않거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 해 주지 않을 때 불편함이 생깁니다. 또한 남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자기가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애매히 오해를 받을 때 서운함이 생깁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어느 정도 무익한 종의 마음(눅 17:7~10)이 되어 서운함이나 불편한 감정이 스스로 느낄 만큼 올라오지는 않습니다. 간혹 착각 속에 ‘나는 그런 감정들이 없다.’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처럼 자신을 속이면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없습니다.
3. 미움, 시기, 질투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에서 계속 상대를 미워한다면 이는 거듭 살인하는 것과 같으며(요일 3:15)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멉니다. 시기, 질투 역시 현저한 육체의 일(갈 5:19~21)이므로 반드시 버려야 할 악입니다.
만일 누군가 칭찬받을 때 ‘저 사람에게는 저런 부족한 모습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시기가 있는 것입니다. 상대와 비교하여 낙심하거나 자격지심을 갖는다면 이 역시 시기 질투로 인한 현상입니다. 시기 질투가 없다면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잘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인정과 칭찬을 받는다 해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미움, 시기, 질투를 가지고 있으면서 믿음의 반석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4. 거짓, 속이는 마음
자기 유익을 위해 속이거나 거짓말을 지어낸다면 믿음의 반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공을 드러내고자 허위로 실적을 보태고, 불리한 내용을 축소하거나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은 거짓과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현실을 덮는 데 급급하여 거짓말하고 속인다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당장은 속여서 넘어갔다 해도 결국 시험 환난으로 오고 나중에는 더 큰 일도 속이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속이려는 마음, 거짓말하거나 숨기려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있습니다.
5. 헤아림과 비방, 판단 정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100%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나 지식 또는 자기 보기에 선과 의를 기준으로 판단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지요. 따라서 함부로 다른 사람을 판단, 정죄하는 것은 교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약 4:11~12). 판단을 하면 대부분 수군거림과 헤아림, 비방과 정죄가 따릅니다. 특히 ‘분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안 좋은 말을 퍼뜨리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이렇게 남의 이야기나 소문, 혹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 정죄하는 사람은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6. 변개함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육의 대표적인 특징인 변개함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더욱이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꾸는 사람이라면 변개함의 속성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순교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순교의 믿음’이란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변개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 수시로 변개하며 하나님과의 약속도 어기는 사람이 어떻게 죽음의 위협 앞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7. 간음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버려야 할 것이 바로 간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7~28). 이성을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거나 생각으로 하는 간음도 없어야 반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란한 행위만 죄로 여길 뿐 음란한 생각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꼭 음란한 생각은 아니라 해도 이성을 보면서 ‘몸매 좋다.?거나 ‘잘생겼다.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간음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음란한 행위는 물론, 마음이나 생각으로 짓는 간음의 근본 뿌리까지 온전히 빼내야 합니다.
8. 욕심과 탐심, 사사로운 마음
욕심과 탐심은 물질, 명예, 권세, 외모 등 다양한 분야로 표출되어 나옵니다. 사심은 정과 욕심을 좇아 개인적인 유익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욕심, 사심, 탐심이 드러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물질과 관련된 경우입니다.
욕심이나 탐심이 있어 돈을 사랑하면 결국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딤전 6:10). 사심 역시 물질과 관련되면 온갖 부정과 부패의 원인이 되지요. 사심이 있으면 개인적인 유익,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유익을 먼저 챙깁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이러한 욕심, 탐심, 사심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9.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마음
배신은 변개함과도 관련이 있지만 간사한 마음과 크게 관련이 있습니다. 또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교만 등 여러 가지 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배신’이라는 악을 낳게 됩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함께했던 사람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 상대와 약속해 놓고 그 기대를 저버리는 것도 배신입니다. 더욱이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이를 저버리고 배신한다면 더 큰 악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이러한 배신의 마음을 근본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아홉 가지 기준에 비추어 걸릴 만한 것이 없다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으니 악을 버리고 믿음의 반석에 설 뿐 아니라 더 깊은 영의 차원으로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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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쓰세요.
1.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육의 대표적인 특징 ( )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꾼다면 ( )의 속성이 많다는 증거이다.
2. ( )이란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으로 혈기 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 ( )으로부터 여러 가지 육신의 일들이 파생돼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편함과 서운함이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202~209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
가룟 유다는 사사로운 이익과 욕심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육적으로 힘 있는 위치에 오르시면 자신도 그 곁에서 덕을 보려는 속셈이었다. 돈궤도 자기가 맡았고 때때로 물질을 임의로 빼돌리기도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점점 자기 기대와는 다른 길로 가시자 은 삼십에 팔아넘기고 만다. 가룟 유다의 최후에 대해 사도행전 1:18에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기록돼 있다.
사리사욕 때문에 예수님을 배신한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보여 준다.
2016-10-14
제41과믿음의 3단계 초입과 반석의 차이
마 7:24~25
읽을말씀 : 마 7:24~25 | 외울말씀 : 히 12:4 l 참고 말씀: 계 3:15~1
교육목표 : 죄와의 싸움에서 멈추지 않고 죄성을 벗어 버림으로 믿음의 3단계에서 정체하지 않고 신속히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갈 수 있게 한다.
믿음의 1, 2단계를 지나 3단계가 되면 하나님 말씀에 담긴 뜻을 깨달아 가기 때문에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믿음의 3단계 초입에서는 가벼운 육체의 일(행함으로 짓는 죄)이 간혹 나올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 초입을 지나 믿음의 반석에 서면 육체의 일은 물론, 육신의 일(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도 웬만한 것은 버린 상태입니다. 과연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1. 죄를 싸워 버리기 시작하는 ‘믿음의 3단계 초입?
자발적으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왔다 해도 처음에는 마음에 갈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은 하지만, 마음에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선을 좇으려는 진리의 생각과, 악을 좇으려는 비진리의 생각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 초입이라면 어려움을 만날 때 ‘너무 힘들다.’라는 비진리 생각 때문에 성령 충만함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3단계에서도 중반을 넘어서게 되면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친다 해도 이내 생각을 바꾸어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가령, 직장 동료가 번번이 자신의 일을 떠넘기려 한다고 합시다. 이때 믿음의 2단계에 있는 사람은 상대의 행동에 기분이 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감정을 삭이고 섬기려고 노력해 봅니다. 그러다가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나? 본때를 보여 줘야지.’라는 생각에 결국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거나 따지기도 합니다.
반면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불편한 심정이지만 따지거나 짜증을 내지는 않습니다. 다만 3단계 초입에서는 불편한 생각을 진리의 생각으로 바꾸기까지 마음을 다스리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반석을 지나면 순간적으로는 불편한 생각이 스칠 수 있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고 상대를 배려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3단계 초입에서 반석으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가복음 9장 29절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셨으니 무엇보다 불같은 기도와 금식을 통해 죄를 버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있습니다.
2.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믿음의 반석?
같은 믿음의 단계 안에서도 저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각 믿음의 단계를 100으로 나누어 분량을 측정한다면 10%, 20%, 30% …, 이렇게 올라갑니다. 결국 100%가 되면 그다음 단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마 7:24~25). 반석은 넓고 평평한 큰 돌로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고전 10:4). 믿음의 반석에 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단계를 말합니다.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와 믿음의 반석에 서면 신앙생활이 힘든 것이 아니라 신이 납니다. 시험 환난이 오더라도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 뜻에 순종하고 변함없이 기도함으로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지요.
믿음의 3단계 70~80%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비진리의 생각이 나오지 않고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면 마침내 악이 없는 4단계의 믿음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여 연륜이 쌓이면 장로, 권사 혹은 구역장이나 기관장 등 여러 직분을 받습니다. 이러한 직분자라면 적어도 믿음의 3단계는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2단계에 머물러 자기 신앙도 바로 세우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영혼을 진리로 이끌어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말씀을 들었는데도 여전히 2단계의 믿음에 있다면 하나님 앞에 참으로 민망한 일이지요. 세월이 지나도 노력하지 않으면 여전히 2단계에 머물다가 믿음의 1단계로 퇴보하기도 하며, 그러다 자칫하면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5~16절에는 이를 경계하여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면 토하여 내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직분을 맡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믿음의 3단계에는 들어와야 합니다. 또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1, 2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살피고 돌아보아 그들도 3단계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죄와 싸우느라 지쳐 교회에서 직분 받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러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하신 말씀대로, 자신의 죄를 버려갈 뿐 아니라 믿음이 여린 영혼들을 돌아볼 때 주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달아 믿음이 쑥쑥 성장할 수 있습니다.
3.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믿음의 3단계는 육체의 일은 이미 버렸기에 본격적으로 육신의 일을 벗기 위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러다 믿음의 반석을 지나 더 성장하면, 육신의 일까지 대부분 버렸기에 비진리의 생각이 순간 스친다 해도 이내 진리로 바꾸고 범사에 순종하며 진리의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마음 먹기에 따라 믿음의 3단계로 들어가는 것은 신속히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3단계에서 4단계로 진입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립니다. 마치 나무가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새들이 깃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려면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하는데,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짧은 기간에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령, ‘미워하지 말라,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담긴 뜻을 깨닫기에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해하며 품어 주려고 하지만 마음에는 아직 미움이라는 죄성이 남아 있지요. 또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대로 늘 기뻐하고 감사하기 위해 노력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지만 마음에서 불평이나 낙심, 서운함의 뿌리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에 죄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게으름이나 우유부단한 성품 때문에 결단력 있게 벗어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에서 오래 지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 버리는 노력, 곧 마음의 할례를 멈췄기 때문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마음에 죄성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죄와 악이 있는지 발견하지 못하니 여전히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오랫동안 정체되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볼 때는 딱히 죄를 짓는 것 같지 않고 말씀대로 사는데 마음에 기쁨이 없고 답답합니다. 성령 충만함이 떨어지고 곤고함을 느끼지요. 따라서 죄와의 싸움을 멈추지 말고 신속히 죄성을 버려야 믿음의 4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하신 대로 작은 죄악이라도 발견하면 어찌하든 버리고자 금식하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다섯 번, 열 번 그 이상 도전해 보십시오. 부단히 금식하고 기도함으로 노력하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성까지 버릴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3~24절에는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말씀합니다. 거울을 보아 머리카락이 흐트러졌으면 빗고 더러운 것이 묻었으면 씻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비진리 모습을 발견했다면 그냥 두지 말고 그때그때 진리로 변화시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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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세요.
1.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다. 반석은 넓고 평평한 큰 돌로 영적으로는 ( )를 의미한다. 믿음의 반석에 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단계를 말한다.
2. 3단계 ( ~ )%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비진리의 생각이 나오지 않고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면 마침내 악이 없는 ( )의 믿음으로 들어선 것이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94~20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미지근한 신앙이란?
미지근한 신앙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면서도 뜨거워지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미지근한 신앙으로는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자신의 모습을 깨우치지 못한다.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니 삶의 변화 역시 없다. 미지근한 상태에 머물러만 있고 계속해서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결국 차가운 신앙이 되고 만다.
교육목표 : 죄와의 싸움에서 멈추지 않고 죄성을 벗어 버림으로 믿음의 3단계에서 정체하지 않고 신속히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갈 수 있게 한다.
믿음의 1, 2단계를 지나 3단계가 되면 하나님 말씀에 담긴 뜻을 깨달아 가기 때문에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믿음의 3단계 초입에서는 가벼운 육체의 일(행함으로 짓는 죄)이 간혹 나올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 초입을 지나 믿음의 반석에 서면 육체의 일은 물론, 육신의 일(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도 웬만한 것은 버린 상태입니다. 과연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1. 죄를 싸워 버리기 시작하는 ‘믿음의 3단계 초입?
자발적으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왔다 해도 처음에는 마음에 갈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은 하지만, 마음에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선을 좇으려는 진리의 생각과, 악을 좇으려는 비진리의 생각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 초입이라면 어려움을 만날 때 ‘너무 힘들다.’라는 비진리 생각 때문에 성령 충만함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3단계에서도 중반을 넘어서게 되면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친다 해도 이내 생각을 바꾸어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가령, 직장 동료가 번번이 자신의 일을 떠넘기려 한다고 합시다. 이때 믿음의 2단계에 있는 사람은 상대의 행동에 기분이 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감정을 삭이고 섬기려고 노력해 봅니다. 그러다가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나? 본때를 보여 줘야지.’라는 생각에 결국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거나 따지기도 합니다.
반면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불편한 심정이지만 따지거나 짜증을 내지는 않습니다. 다만 3단계 초입에서는 불편한 생각을 진리의 생각으로 바꾸기까지 마음을 다스리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반석을 지나면 순간적으로는 불편한 생각이 스칠 수 있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고 상대를 배려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3단계 초입에서 반석으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가복음 9장 29절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셨으니 무엇보다 불같은 기도와 금식을 통해 죄를 버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있습니다.
2.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믿음의 반석?
같은 믿음의 단계 안에서도 저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각 믿음의 단계를 100으로 나누어 분량을 측정한다면 10%, 20%, 30% …, 이렇게 올라갑니다. 결국 100%가 되면 그다음 단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마 7:24~25). 반석은 넓고 평평한 큰 돌로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고전 10:4). 믿음의 반석에 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단계를 말합니다.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와 믿음의 반석에 서면 신앙생활이 힘든 것이 아니라 신이 납니다. 시험 환난이 오더라도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 뜻에 순종하고 변함없이 기도함으로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지요.
믿음의 3단계 70~80%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비진리의 생각이 나오지 않고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면 마침내 악이 없는 4단계의 믿음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하여 연륜이 쌓이면 장로, 권사 혹은 구역장이나 기관장 등 여러 직분을 받습니다. 이러한 직분자라면 적어도 믿음의 3단계는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2단계에 머물러 자기 신앙도 바로 세우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영혼을 진리로 이끌어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말씀을 들었는데도 여전히 2단계의 믿음에 있다면 하나님 앞에 참으로 민망한 일이지요. 세월이 지나도 노력하지 않으면 여전히 2단계에 머물다가 믿음의 1단계로 퇴보하기도 하며, 그러다 자칫하면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5~16절에는 이를 경계하여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면 토하여 내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직분을 맡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믿음의 3단계에는 들어와야 합니다. 또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1, 2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살피고 돌아보아 그들도 3단계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죄와 싸우느라 지쳐 교회에서 직분 받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러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하신 말씀대로, 자신의 죄를 버려갈 뿐 아니라 믿음이 여린 영혼들을 돌아볼 때 주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달아 믿음이 쑥쑥 성장할 수 있습니다.
3.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믿음의 3단계는 육체의 일은 이미 버렸기에 본격적으로 육신의 일을 벗기 위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러다 믿음의 반석을 지나 더 성장하면, 육신의 일까지 대부분 버렸기에 비진리의 생각이 순간 스친다 해도 이내 진리로 바꾸고 범사에 순종하며 진리의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마음 먹기에 따라 믿음의 3단계로 들어가는 것은 신속히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3단계에서 4단계로 진입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립니다. 마치 나무가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새들이 깃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려면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하는데,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짧은 기간에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령, ‘미워하지 말라,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에 담긴 뜻을 깨닫기에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해하며 품어 주려고 하지만 마음에는 아직 미움이라는 죄성이 남아 있지요. 또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대로 늘 기뻐하고 감사하기 위해 노력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지만 마음에서 불평이나 낙심, 서운함의 뿌리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에 죄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게으름이나 우유부단한 성품 때문에 결단력 있게 벗어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에서 오래 지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 버리는 노력, 곧 마음의 할례를 멈췄기 때문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마음에 죄성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죄와 악이 있는지 발견하지 못하니 여전히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오랫동안 정체되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볼 때는 딱히 죄를 짓는 것 같지 않고 말씀대로 사는데 마음에 기쁨이 없고 답답합니다. 성령 충만함이 떨어지고 곤고함을 느끼지요. 따라서 죄와의 싸움을 멈추지 말고 신속히 죄성을 버려야 믿음의 4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하신 대로 작은 죄악이라도 발견하면 어찌하든 버리고자 금식하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다섯 번, 열 번 그 이상 도전해 보십시오. 부단히 금식하고 기도함으로 노력하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성까지 버릴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3~24절에는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말씀합니다. 거울을 보아 머리카락이 흐트러졌으면 빗고 더러운 것이 묻었으면 씻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비진리 모습을 발견했다면 그냥 두지 말고 그때그때 진리로 변화시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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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세요.
1.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다. 반석은 넓고 평평한 큰 돌로 영적으로는 ( )를 의미한다. 믿음의 반석에 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단계를 말한다.
2. 3단계 ( ~ )%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비진리의 생각이 나오지 않고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면 마침내 악이 없는 ( )의 믿음으로 들어선 것이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94~20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미지근한 신앙이란?
미지근한 신앙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면서도 뜨거워지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미지근한 신앙으로는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자신의 모습을 깨우치지 못한다.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니 삶의 변화 역시 없다. 미지근한 상태에 머물러만 있고 계속해서 돌이키지 않는 사람은 결국 차가운 신앙이 되고 만다.
2016-10-07
제40과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살전 5:16~18
읽을말씀 : 살전 5:16~18 | 외울말씀 : 마 7:24 l 참고 말씀 : 말 3:8~9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마음 중심에서 기쁨으로 행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2단계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라 했습니다.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지킬 때도 있고 지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걷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잘 걷는 것처럼, 말씀대로 행하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점점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니 자연스럽게 말씀대로 행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를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또 하나님 말씀이니 의무감으로 행하는 것과 왜 행해야 하는지를 깨달아 마음에서 우러나와 순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요. 믿음의 3단계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 말씀을 억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고 질병이 떠나게 하시며, 물질의 축복도 주신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합시다. 이러한 말씀을 아는 것만으로는 행함이 온전히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온전히 마음에 믿어지기 전까지는 지킬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요.
그러나 어찌하든 행하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어느 순간 왜 이 말씀을 주셨는지 하나님 사랑이 깨달아지면서 마음에서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타협하지 않고 온전한 주일을 지키며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믿는다는 것과, 육의 세계를 포함하여 광대한 영의 세계의 주인이심을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 그래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한 주 동안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지켜 주시고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또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물적 주권 곧 우리 눈에 보이는 천하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시니 생명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셨으므로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수입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중 십 분의 일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자유롭게 쓰도록 허락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진정 마음 중심에서 깨달으면 도리어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엄청난 죄임을 깨닫기 때문이지요. 또한 그동안 행하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을 깨달아 행하면 하나님께서 지키고 보호하시며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려면
아기가 태어나 성장할 때 음식을 섭취하는 것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보고 듣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지식이 쌓이고 지혜가 생겨야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주 안에서 성장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알고 있는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씀이 마음에 깨우쳐지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차원을 넘어 참된 의미를 깨달아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이 따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마음에 깨달음이 오지 않으면 머리로 아는 지식에 불과하기 때문에 순종이 따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 들어간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이니 억지로라도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조건이나 환경이 어려워지면 이내 불평하며 감사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3단계에서는 어떨까요? 잠시 염려 근심이 찾아왔다 해도 이내 마음과 생각을 바꿉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빛의 행함입니다. 그러니 감사하고 기뻐할 때 그 영적인 빛으로 인해 시험 환난이 떠나고 축복이 임합니다. 이런 사실을 체험할 때 하나님께서 왜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하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믿음의 2단계처럼 마지못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발적인 행함이 나오는데 이것이 믿음의 3단계의 행함입니다.
3.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증거들
이처럼 믿음이 성장하여 3단계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마음으로 깨달아지기 때문에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더 이상 짐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증거들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해서 힘이 든다든가 싫다든가 하지 않습니다.
또한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압니다. 천국과 지옥, 내세가 있는 것도 알고 믿습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의 삶을 알고 믿기 때문에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이 버거운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마치 일상생활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안정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앙생활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주일을 깜박 잊어버리고 어겼습니다.” 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믿음의 3단계부터는 눈에 크게 드러나는 비진리는 대부분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 육체의 일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육신의 일을 버려 나가는 시기입니다.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하며, 육신의 일이란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술 담배를 한다거나, 내 생각과 맞지 않을 때 화를 내며 말다툼을 하거나 몸싸움을 하는 것 등은 육체의 일입니다. 이러한 행함이 자주 나온다면 아직 믿음의 2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이러한 육체의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 말씀대로 행한다 해서 무조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는 없습니다. 가령, 주일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도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가에 따라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눈치 보이고 주일을 어기면 재앙을 당할까 두려워서 교회에 나오거나, 예배 시간 내내 졸음과 잡념 속에 드린다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분량은 한두 가지 외적인 행함만 보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믿으며 행하는지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깨달아 행함으로 나타내는 시기가 믿음의 3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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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써 보세요.
1.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면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니 자연스럽게 말씀대로 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를 ( )이라고 말한다.
2. 믿음의 3단계부터는 눈에 크게 드러나는 비진리는 대부분 정리가 되었기에 육체의 일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 )을 버려 나가는 시기이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87~19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3단계 처소와 면류관
처소 _ 믿음의 3단계는 2천층에 들어가며 독립된 개인 주택이 주어진다.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답다. 2천층에서는 주인이 가장 원하는 것으로 집에 딸린 부속시설 한가지씩 주어지게 된다. 또 집마다 문패가 있고, 천국 글씨로 집주인의 이름과 섬기던 교회 이름이 새겨진다.
면류관 _ 영광의 면류관이 각 사람에게 주어진다(벧전 5:4).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마음 중심에서 기쁨으로 행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2단계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라 했습니다.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지킬 때도 있고 지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걷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잘 걷는 것처럼, 말씀대로 행하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점점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니 자연스럽게 말씀대로 행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를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이라고 말합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또 하나님 말씀이니 의무감으로 행하는 것과 왜 행해야 하는지를 깨달아 마음에서 우러나와 순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요. 믿음의 3단계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 말씀을 억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고 질병이 떠나게 하시며, 물질의 축복도 주신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합시다. 이러한 말씀을 아는 것만으로는 행함이 온전히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온전히 마음에 믿어지기 전까지는 지킬 때도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지요.
그러나 어찌하든 행하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어느 순간 왜 이 말씀을 주셨는지 하나님 사랑이 깨달아지면서 마음에서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타협하지 않고 온전한 주일을 지키며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믿는다는 것과, 육의 세계를 포함하여 광대한 영의 세계의 주인이심을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 그래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한 주 동안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지켜 주시고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또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물적 주권 곧 우리 눈에 보이는 천하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시니 생명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셨으므로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수입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중 십 분의 일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자유롭게 쓰도록 허락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진정 마음 중심에서 깨달으면 도리어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엄청난 죄임을 깨닫기 때문이지요. 또한 그동안 행하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을 깨달아 행하면 하나님께서 지키고 보호하시며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려면
아기가 태어나 성장할 때 음식을 섭취하는 것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보고 듣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지식이 쌓이고 지혜가 생겨야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주 안에서 성장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알고 있는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씀이 마음에 깨우쳐지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차원을 넘어 참된 의미를 깨달아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이 따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마음에 깨달음이 오지 않으면 머리로 아는 지식에 불과하기 때문에 순종이 따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 들어간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이니 억지로라도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조건이나 환경이 어려워지면 이내 불평하며 감사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3단계에서는 어떨까요? 잠시 염려 근심이 찾아왔다 해도 이내 마음과 생각을 바꿉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빛의 행함입니다. 그러니 감사하고 기뻐할 때 그 영적인 빛으로 인해 시험 환난이 떠나고 축복이 임합니다. 이런 사실을 체험할 때 하나님께서 왜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하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믿음의 2단계처럼 마지못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발적인 행함이 나오는데 이것이 믿음의 3단계의 행함입니다.
3.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증거들
이처럼 믿음이 성장하여 3단계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이 마음으로 깨달아지기 때문에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더 이상 짐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증거들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고 해서 힘이 든다든가 싫다든가 하지 않습니다.
또한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압니다. 천국과 지옥, 내세가 있는 것도 알고 믿습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의 삶을 알고 믿기 때문에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이 버거운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마치 일상생활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안정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앙생활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주일을 깜박 잊어버리고 어겼습니다.” 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믿음의 3단계부터는 눈에 크게 드러나는 비진리는 대부분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 육체의 일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육신의 일을 버려 나가는 시기입니다.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하며, 육신의 일이란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술 담배를 한다거나, 내 생각과 맞지 않을 때 화를 내며 말다툼을 하거나 몸싸움을 하는 것 등은 육체의 일입니다. 이러한 행함이 자주 나온다면 아직 믿음의 2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이러한 육체의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 말씀대로 행한다 해서 무조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는 없습니다. 가령, 주일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도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가에 따라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눈치 보이고 주일을 어기면 재앙을 당할까 두려워서 교회에 나오거나, 예배 시간 내내 졸음과 잡념 속에 드린다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분량은 한두 가지 외적인 행함만 보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믿으며 행하는지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깨달아 행함으로 나타내는 시기가 믿음의 3단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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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가 및 적용하기
( ) 안에 알맞은 말을 써 보세요.
1.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많았다면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니 자연스럽게 말씀대로 행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를 ( )이라고 말한다.
2. 믿음의 3단계부터는 눈에 크게 드러나는 비진리는 대부분 정리가 되었기에 육체의 일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 )을 버려 나가는 시기이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87~19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3단계 처소와 면류관
처소 _ 믿음의 3단계는 2천층에 들어가며 독립된 개인 주택이 주어진다.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답다. 2천층에서는 주인이 가장 원하는 것으로 집에 딸린 부속시설 한가지씩 주어지게 된다. 또 집마다 문패가 있고, 천국 글씨로 집주인의 이름과 섬기던 교회 이름이 새겨진다.
면류관 _ 영광의 면류관이 각 사람에게 주어진다(벧전 5:4).
2016-09-30
제39과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
고전 3:1~2
읽을말씀 : 고전 3:1~2 | 외울말씀 : 잠 3:11 l 참고 말씀: 히 12:6~8
교육목표 : 말씀을 스스로 행할 수 있는 밥 먹는 신자가 되어 열심히 마음에 할례하여 성결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에는 분량이 있어서 성장 과정에 따라 자녀들의 믿음, 아이들의 믿음, 청년들의 믿음, 아비들의 믿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기가 태어나면 젖을 먹다가 성장하면서 밥을 먹는 것처럼,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의 믿음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까요?
1. 믿음의 1, 2단계는 ‘젖 먹는 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고 천국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믿음의 1단계입니다. 하나님과 자녀 관계가 성립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요. 하지만 이제 막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기에 영적으로는 갓난아기와 같은 상태입니다. 이때는 아직 진리가 무엇이며 비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죄를 지어도 죄인 줄 깨닫지 못합니다. 갓난아기가 발가벗고 있어도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지요.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어 진리로 분별할 수 없으니 설령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크게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마치 아기가 기어다니다가 물그릇을 엎거나 깨어도 야단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부모나 가족들 편에서 그릇을 치우지 않고 주의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고 여기지요.
믿음이 성장하여 2단계가 되면 성령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들은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죄를 지을 때는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게 되고 곤고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직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말씀을 들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마음에 비진리가 많으므로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처럼 아직은 연약한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을 ‘젖 먹는 신자’라고 합니다. 아무리 중한 사명과 직분을 받았다 해도 여전히 말씀대로 행치 못하고 비진리 가운데 살아간다면 그는 믿음의 2단계요, 어린아이의 신앙에 불과합니다. 주의 종이나 장로, 권사라 해도, 구역장이나 교사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직분이 무엇인지, 신앙생활한 지 오래되었는지, 성경 말씀을 많이 알아서 잘 가르칠 수 있는지, 이런 것을 보고 “믿음이 크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여 행하는지, 얼마나 진리 가운데 거하는지를 보시지요.
2. 젖 먹는 신자를 양육하는 방법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 해서 무조건 징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 이해하고 인도해 가시지요.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아직 믿음이 연약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이듯이 부드럽게 권면하며 하나하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만일 젖 먹이에게 젖을 먹이지 않고 밥을 먹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에 소화불량에 걸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젖 먹는 신자를 갈무리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조건 하나님 말씀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지혜롭게 권면해야 합니다.
아직 술 담배를 하는 사람에게 “술, 담배를 끊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하면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술 담배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면 자연히 버릴 수 있으니 하나님께 기도하세요.”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가게 문을 여는 사람에게는 “주일을 온전히 지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6일만 일해도 주일에 얻는 수입보다 더 큰 수입으로 축복하시는 것을 체험할 거예요.”라고 믿음을 심어 주면서 부드럽게 권면해 주면 좋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신자를 양육할 때는 죄를 지으면 징계하시는 두려움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할 수 있다.’며 힘과 능력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느낄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3. 믿음의 3단계는 ‘밥 먹는 신자’
믿음이 성장하여 말씀을 이해하고, 스스로 행할 수 있다면 ‘밥 먹는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믿음의 3단계에 해당합니다.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힘쓰면, 하나님께서 시험 환난으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의 2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야 부모의 마음이 흐뭇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면 말씀과 기도를 통해 부지런히 믿음을 성장시켜 나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여전히 1, 2단계에 해당하는 삶을 산다면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따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믿음이 성장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지요.
어린 자녀가 성장하면 균형 잡힌 식사를 통해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밥을 먹지 않고 젖만 찾는다면 아무래도 건강에 지장이 있지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어찌하든 젖을 떼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행치 않으면 영적으로 파리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처참한 십자가에 내어주셨는데, 자녀들이 오랜 세월 믿음의 성장이 멈춰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안타깝지만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12장 6~8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그러니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2단계 행함을 내보이고 있다면 하나님의 응답이나 축복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기 때문에 세상 방법을 동원하거나 시험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혹여 죄를 지었는데도 징계가 없다면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계속 범죄함으로 성령이 완전히 소멸되면 하나님 자녀라고 할 수 없기에 사생자요, 다시금 원수 마귀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기 때문에 징계마저도 오지 않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에게 사로잡혀 종노릇을 하며 죄를 짓다가 결국 지옥에 갈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나는 죄를 지어도 징계가 없으니 완전히 버림받았구나!” 자포자기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 중심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하며 죄 사함 받을 때까지 간절히 매달려야 합니다. 한편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증거임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으로 대충 하는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통회자복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은혜를 구하면 눈물, 콧물과 함께 마음을 찢는 회개가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헐어져 마음이 가벼워지고 성령 충만함이 임하여 다시금 믿음의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아직도 젖 먹는 신자에 머물러 있다면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밥 먹는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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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에 알맞은 말을 써 보세요.
1. 믿음의 2단계가 되면 죄를 지을 때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게 되고 곤고함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말씀을 들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마음에 비진리가 많으므로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진다.
이처럼 아직은 연약한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을 ( )라 한다.
2. 믿음이 성장하여 말씀을 이해하고 스스로 행할 수 있다면 ( )라 할 수 있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81~18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2단계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면?
신앙생활한 지 얼마 안 된 성도라면 2단계의 믿음 안에서도 노력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며 나름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한 지 오래되었고 직분도 있으면서 믿음의 2단계에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 앞에 계속 담을 쌓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의 할례하여 신속히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81~18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교육목표 : 말씀을 스스로 행할 수 있는 밥 먹는 신자가 되어 열심히 마음에 할례하여 성결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에는 분량이 있어서 성장 과정에 따라 자녀들의 믿음, 아이들의 믿음, 청년들의 믿음, 아비들의 믿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기가 태어나면 젖을 먹다가 성장하면서 밥을 먹는 것처럼,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의 믿음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볼까요?
1. 믿음의 1, 2단계는 ‘젖 먹는 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고 천국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믿음의 1단계입니다. 하나님과 자녀 관계가 성립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요. 하지만 이제 막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기에 영적으로는 갓난아기와 같은 상태입니다. 이때는 아직 진리가 무엇이며 비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죄를 지어도 죄인 줄 깨닫지 못합니다. 갓난아기가 발가벗고 있어도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지요.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어 진리로 분별할 수 없으니 설령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크게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마치 아기가 기어다니다가 물그릇을 엎거나 깨어도 야단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부모나 가족들 편에서 그릇을 치우지 않고 주의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고 여기지요.
믿음이 성장하여 2단계가 되면 성령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들은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죄를 지을 때는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게 되고 곤고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직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말씀을 들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마음에 비진리가 많으므로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처럼 아직은 연약한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을 ‘젖 먹는 신자’라고 합니다. 아무리 중한 사명과 직분을 받았다 해도 여전히 말씀대로 행치 못하고 비진리 가운데 살아간다면 그는 믿음의 2단계요, 어린아이의 신앙에 불과합니다. 주의 종이나 장로, 권사라 해도, 구역장이나 교사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직분이 무엇인지, 신앙생활한 지 오래되었는지, 성경 말씀을 많이 알아서 잘 가르칠 수 있는지, 이런 것을 보고 “믿음이 크다”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여 행하는지, 얼마나 진리 가운데 거하는지를 보시지요.
2. 젖 먹는 신자를 양육하는 방법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한다 해서 무조건 징계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 이해하고 인도해 가시지요.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아직 믿음이 연약해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이듯이 부드럽게 권면하며 하나하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만일 젖 먹이에게 젖을 먹이지 않고 밥을 먹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에 소화불량에 걸릴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젖 먹는 신자를 갈무리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조건 하나님 말씀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지혜롭게 권면해야 합니다.
아직 술 담배를 하는 사람에게 “술, 담배를 끊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하면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술 담배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면 자연히 버릴 수 있으니 하나님께 기도하세요.”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가게 문을 여는 사람에게는 “주일을 온전히 지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6일만 일해도 주일에 얻는 수입보다 더 큰 수입으로 축복하시는 것을 체험할 거예요.”라고 믿음을 심어 주면서 부드럽게 권면해 주면 좋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신자를 양육할 때는 죄를 지으면 징계하시는 두려움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할 수 있다.’며 힘과 능력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느낄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3. 믿음의 3단계는 ‘밥 먹는 신자’
믿음이 성장하여 말씀을 이해하고, 스스로 행할 수 있다면 ‘밥 먹는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믿음의 3단계에 해당합니다.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힘쓰면, 하나님께서 시험 환난으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의 2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야 부모의 마음이 흐뭇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면 말씀과 기도를 통해 부지런히 믿음을 성장시켜 나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여전히 1, 2단계에 해당하는 삶을 산다면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따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믿음이 성장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지요.
어린 자녀가 성장하면 균형 잡힌 식사를 통해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밥을 먹지 않고 젖만 찾는다면 아무래도 건강에 지장이 있지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어찌하든 젖을 떼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행치 않으면 영적으로 파리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처참한 십자가에 내어주셨는데, 자녀들이 오랜 세월 믿음의 성장이 멈춰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안타깝지만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12장 6~8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그러니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2단계 행함을 내보이고 있다면 하나님의 응답이나 축복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기 때문에 세상 방법을 동원하거나 시험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혹여 죄를 지었는데도 징계가 없다면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계속 범죄함으로 성령이 완전히 소멸되면 하나님 자녀라고 할 수 없기에 사생자요, 다시금 원수 마귀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기 때문에 징계마저도 오지 않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에게 사로잡혀 종노릇을 하며 죄를 짓다가 결국 지옥에 갈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나는 죄를 지어도 징계가 없으니 완전히 버림받았구나!” 자포자기 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 중심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하며 죄 사함 받을 때까지 간절히 매달려야 합니다. 한편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증거임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으로 대충 하는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통회자복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은혜를 구하면 눈물, 콧물과 함께 마음을 찢는 회개가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헐어져 마음이 가벼워지고 성령 충만함이 임하여 다시금 믿음의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아직도 젖 먹는 신자에 머물러 있다면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밥 먹는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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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믿음의 2단계가 되면 죄를 지을 때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게 되고 곤고함을 느낀다. 그러나 아직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말씀을 들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마음에 비진리가 많으므로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진다.
이처럼 아직은 연약한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을 ( )라 한다.
2. 믿음이 성장하여 말씀을 이해하고 스스로 행할 수 있다면 ( )라 할 수 있다.
* 금주 과제
<감추었던 만나 1> 책자 181~18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2단계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다면?
신앙생활한 지 얼마 안 된 성도라면 2단계의 믿음 안에서도 노력하는 만큼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며 나름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입을 수 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한 지 오래되었고 직분도 있으면서 믿음의 2단계에 머물러 있다면 하나님 앞에 계속 담을 쌓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의 할례하여 신속히 믿음의 성장을 이루어야 한다.
금주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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