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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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1
제44과들풀도 입히시거든
마태복음 6:26~33
읽을말씀 : 마태복음 6:26~33 | 외울말씀 : 마태복음 6:33 ㅣ 참고 말씀: 전도서 1:2~3
교육목표 :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함으로 세상의 헛된 삶을 살지 않고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이 세상에서 아무 염려,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재물이 많고 아무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질병이나 가족 간의 문제 등 이런저런 근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문제가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으므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이며,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삶의 분야
중국을 통일하여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진시황도 그 삶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불로장생할 수 있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불과 50세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지요. 이처럼 세상에서 고민하며 수고하고 힘써 무언가를 이루었다 해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헛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시며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말씀하시지요(마 6:25~27). 만일 염려해서 질병을 치료받을 수 있고,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다면 더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이 상할 뿐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세상의 부귀와 권세, 재물과 건강을 위해 근심하고 걱정하며 살아갑니까?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누리며 평안과 기쁨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염려하며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결국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일까요? 창세기 3장 17절 이하를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한 후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땀 흘려 일해야만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으며, 누구나 질병이나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습니까? 진시황과 같이 모든 것을 가진 듯한 사람이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눈물, 슬픔, 고통, 질병, 사망이 없는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2.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된 삶
솔로몬은 모든 부귀영화를 누린 왕입니다. 금이 넘쳐 나고 은은 돌같이 여길 정도였으며, 고급 목재인 백향목도 평지의 뽕나무같이 허다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예물을 가져오고 주변 국가에서 조공을 바쳤으니 그 권력과 명성은 어마어마했지요. 이런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그 입은 옷이 들꽃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9절에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말씀합니다. 들에 핀 꽃은 자신이 수고하지 않아도 저절로 아름답게 핍니다. 하나님께서 때에 따라 비를 내려 주시고 알맞은 햇볕과 온도를 주는 등 적절한 환경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떻습니까? 솔로몬이 그만한 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수고하고 노력해야 했겠습니까? 사람이 열매를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가야 합니까? 집 한 채를 짓기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수고와 물질이 필요한지요. 우리는 이처럼 무엇을 얻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하는데 들에 피는 꽃은 수고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자연히 피어납니다. 그러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든 것이 수고임을 깨닫고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기 원하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수고하여도 그 대가가 미미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더구나 많은 수고로 부귀영화를 누렸다 해도 죽음을 맞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니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린 솔로몬 왕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 1:2~3) 고백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분명히 느끼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명예나 권세, 부귀와 영화 등은 언젠가는 안개처럼 없어질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정녕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하여 참되고 영원한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까요?
3.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
들풀도 입히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먼저 구하라고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헛되지 않은 삶을 살며 영원한 복락을 누리려면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것도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이는 주님의 증인이 되어 내 부모 형제, 일가친척에게 전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직장이나 일터, 사업터에서도 복음을 전하며 나라와 민족, 세계 복음화를 위해 불같이 기도해야 할 것을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영혼을 구원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의식주 문제는 물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십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것,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여 순종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진리를 행하는 것, 자기 삶을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영혼이 잘되기 위하여 즉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가 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칩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게 되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어둠에서 나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것, 성령의 소욕을 좇아 진리대로 행하며 성결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어떤 성도는 “그동안 여러 사명을 맡아 하나님 일을 했는데, 이젠 성결되기 위해 잠시 사명을 맡지 않고 열심히 기도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는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만 구하겠다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병행해서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심을 낼 때 위로부터 힘과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의 의를 더욱 신속히 이루도록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2.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옷이 들에 핀 꽃보다도 못하다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39~15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기브온에서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려 전무후무한 지혜와 부와 영광까지 받았다. 왕이 된 지 4년이 되었을 때 성전을 건축하여 7년 만에 완공하였고, 13년에 걸쳐 자신의 왕궁을 건축하였다.
주변 국가들로부터 조공을 받을 만큼 국력을 신장시켰지만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이방 신전을 세우고 타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인해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함으로 세상의 헛된 삶을 살지 않고 영원한 복락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이 세상에서 아무 염려, 근심, 걱정 없이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재물이 많고 아무 부족할 것이 없어 보이는 사람도 질병이나 가족 간의 문제 등 이런저런 근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문제가 있다 해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면 능치 못할 일이 없으므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 가치 있는 삶은 무엇이며,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1.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삶의 분야
중국을 통일하여 온갖 부귀영화를 누린 진시황도 그 삶에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불로장생할 수 있는 불로초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알아보았지만 불과 50세 나이로 세상을 뜨고 말았지요. 이처럼 세상에서 고민하며 수고하고 힘써 무언가를 이루었다 해도 죽음 앞에서는 모두가 헛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하시며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말씀하시지요(마 6:25~27). 만일 염려해서 질병을 치료받을 수 있고, 응답과 축복을 받을 수 있다면 더 많이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염려하면 할수록 몸과 마음이 상할 뿐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세상의 부귀와 권세, 재물과 건강을 위해 근심하고 걱정하며 살아갑니까?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축복을 누리며 평안과 기쁨 가운데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은 염려하며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결국은 죽음을 맞이해야 하는 것일까요? 창세기 3장 17절 이하를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한 후 하나님의 저주가 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은 땀 흘려 일해야만 먹고 살 수 있게 되었으며, 누구나 질병이나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습니까? 진시황과 같이 모든 것을 가진 듯한 사람이라도 죽음을 피할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자녀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눈물, 슬픔, 고통, 질병, 사망이 없는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2. 해 아래서 수고한 모든 것이 헛된 삶
솔로몬은 모든 부귀영화를 누린 왕입니다. 금이 넘쳐 나고 은은 돌같이 여길 정도였으며, 고급 목재인 백향목도 평지의 뽕나무같이 허다했습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자 예물을 가져오고 주변 국가에서 조공을 바쳤으니 그 권력과 명성은 어마어마했지요. 이런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그 입은 옷이 들꽃의 아름다움과 비교할 수 없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9절에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말씀합니다. 들에 핀 꽃은 자신이 수고하지 않아도 저절로 아름답게 핍니다. 하나님께서 때에 따라 비를 내려 주시고 알맞은 햇볕과 온도를 주는 등 적절한 환경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어떻습니까? 솔로몬이 그만한 영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얼마나 수고하고 노력해야 했겠습니까? 사람이 열매를 얻기까지 얼마나 많은 손길이 가야 합니까? 집 한 채를 짓기 위해서도 얼마나 많은 수고와 물질이 필요한지요. 우리는 이처럼 무엇을 얻기 위해 많은 수고를 하는데 들에 피는 꽃은 수고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자연히 피어납니다. 그러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다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그 모든 것이 수고임을 깨닫고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맡기기 원하십니다. 사람이 아무리 수고하여도 그 대가가 미미한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더구나 많은 수고로 부귀영화를 누렸다 해도 죽음을 맞으면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니 얼마나 허무한 일입니까?
온갖 부귀영화를 다 누린 솔로몬 왕도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 1:2~3) 고백하였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지 분명히 느끼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의 명예나 권세, 부귀와 영화 등은 언젠가는 안개처럼 없어질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정녕 가치 있는 삶을 살기 위하여 참되고 영원한 것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까요?
3.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
들풀도 입히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먼저 구하라고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신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헛되지 않은 삶을 살며 영원한 복락을 누리려면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의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부탁하신 것도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것이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합니다. 이는 주님의 증인이 되어 내 부모 형제, 일가친척에게 전도해야 할 뿐만 아니라 직장이나 일터, 사업터에서도 복음을 전하며 나라와 민족, 세계 복음화를 위해 불같이 기도해야 할 것을 알려 주시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영혼을 구원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의식주 문제는 물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 주십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을 믿어드리는 것, 하나님 말씀에 귀 기울여 순종하는 것,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진리를 행하는 것, 자기 삶을 정직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영혼이 잘되기 위하여 즉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가 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칩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하여 알게 되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어둠에서 나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는 것, 성령의 소욕을 좇아 진리대로 행하며 성결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에게는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어떤 성도는 “그동안 여러 사명을 맡아 하나님 일을 했는데, 이젠 성결되기 위해 잠시 사명을 맡지 않고 열심히 기도만 했으면 좋겠습니다.”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는 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만 구하겠다는 뜻인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병행해서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열심을 낼 때 위로부터 힘과 능력을 주시고 하나님의 의를 더욱 신속히 이루도록 축복해 주시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말씀의 뜻은 무엇일까요?
2.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 입은 옷이 들에 핀 꽃보다도 못하다고 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39~15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다윗과 밧세바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다. 솔로몬은 왕이 된 후 기브온에서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려 전무후무한 지혜와 부와 영광까지 받았다. 왕이 된 지 4년이 되었을 때 성전을 건축하여 7년 만에 완공하였고, 13년에 걸쳐 자신의 왕궁을 건축하였다.
주변 국가들로부터 조공을 받을 만큼 국력을 신장시켰지만 이방 여인과 결혼하여 이방 신전을 세우고 타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우상숭배와 불순종으로 인해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분열되고 말았다.
2019-10-25
제43과주여 저를 도우소서
마태복음 15:24~28
읽을말씀 : 마태복음 15:24~28 | 외울말씀 : 로마서 1:17 ㅣ 참고 말씀: 사무엘상 21장
교육목표 :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고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는 물론 천국에서도 존귀히 여김을 받는 큰 자가 되게 한다.
자존심이란 ‘자기 몸을 굽히지 않고 스스로 높이는 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를 섬기며 사랑하기를 원하시지요. 그런데 자존심을 내세우다 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존심을 버리고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윗왕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겸손한 자였기에 이 땅에서는 물론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1. 자존심을 버림으로 생명을 건진 다윗
다윗이 아직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입니다. 그는 자기를 시기하여 죽이려는 사울왕을 피해 블레셋에 속한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갑니다(삼상 21장).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적국으로 다윗은 사울의 휘하에 있을 때에 블레셋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아기스의 신하들은 이를 왕에게 알립니다.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곤경에 처한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수염에 침을 흘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아기스는 다윗의 이런 행동을 보고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하며 쫓아내 버렸지요. 다윗은 자존심을 버리고 미친 척하여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블레셋으로부터 조공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만일 다윗이 자존심을 세우다 아기스의 손에 죽었다면 위대한 왕이 될 수 없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죽을망정 그렇게는 못하겠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존심이 가치가 있는지,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옳은지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겨 다닐 때 그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왕을 죽이는 악은 행치 않았지요. 도리어 자신을 죽은 개나 벼룩에 비유하며 사울을 죽일 의사가 없다고 하자 이에 악한 사울도 감동을 받았습니다(삼상 24장). 결국 연단이 끝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으로 높여 주셨고 그는 견고한 통일왕국을 건설하였습니다.
2. 자존심을 내세우다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사울과 시드기야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가 죄를 지적했을 때에 회개하기는커녕 백성 앞에서 자기의 자존심을 세워 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자신의 왕위를 폐하고 다윗을 왕으로 세운 사실을 알고는 다윗을 죽이려고 집요하게 쫓아다녔습니다. 그러다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지요.
남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어떠했습니까? 유다는 두 차례에 걸쳐 강대국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똑똑한 귀인들은 다 바벨론으로 잡혀 가고, 힘없는 백성만 유다에 남았지요. 이때 시드기야왕은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에게 소환을 당해 국정을 보고하고 조공을 바치고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야왕이 애굽 왕 바로와 비밀리에 동맹관계를 맺고 내통하다가 바벨론을 배반하게 되지요. 이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하지만 시드기야는 이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선지자를 감옥에 가둬 버립니다. 아무 힘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내세우다가 결국 바벨론에게 세 번째 침략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성은 바벨론에 무려 1년 7개월간 포위되어 성 안의 보급 물자들이 완전히 끊기고, 식량도 떨어져 사람들은 굶어 죽어갔습니다. 게다가 바벨론 군대가 성벽을 뚫고 들어와 시드기야와 군사들은 한밤중에 도망치다 결국 붙잡히고 맙니다.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은 불탔고 완전히 함락되어 버렸습니다.
바벨론 왕은 배반한 시드기야 목전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뽑아 버리지요. 그리고 포로로 끌고 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습니다. 시드기야왕은 자존심을 내세움으로 자신뿐 아니라, 나라가 망하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러니 자존심 때문에 자기를 낮추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자신을 망하게 하는 것인지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3. 겸비한 마음으로 응답받은 수로보니게 여인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지방에 가셨을 때입니다(마 15:21~28). 더러운 귀신 들린 딸을 둔 이방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였지요. 여인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며 큰소리로 고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의외의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즉 한 말씀도 하시지 않고 가만히 계시는 것이었지요. 여인이 계속하여 소리 지르자 제자들이 나서서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할 정도였지요.
그제야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공손히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청을 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며 이방 여인을 개에 비유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개 취급당했다고 자존심이 상해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서운함이나 자존심이 상한다는 마음 자체가 없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겸비한 마음으로 끝까지 예수님께 구하였지요.
이에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자 딸이 그때로부터 깨끗이 나았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기를 철저히 낮춤으로 믿음의 시험을 잘 통과하여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았습니다.
4. 의로운 중심에서 나오는 믿음의 고백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한 것은, 오로지 딸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억지로 분을 누르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계산하여 한 말이 아닙니다. 그 중심이 의롭고 겸비했기에 예수님이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셨을 때도 선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지요. 순간에 지혜를 짜내 “내가 이렇게 대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사야겠다.” 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있는 선과 겸손이 그대로 나왔을 뿐이지요.
우리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교만을 버리며, 마음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진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으며, 육의 마음을 온전히 버리고 영의 마음, 의로운 마음을 가져야 하지요. 그러면 어떤 문제든 응답받을 수 있고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 거칠 것이 없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 중심이 겸비하고 의로웠기 때문에 끝까지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중심이 되면 어떤 문제에 부딪힌다 해도 믿음의 행함이 나오므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게 됩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이고 그 신뢰에 변함이 없으며 또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을 믿고 예수님을 신뢰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어떤 행동과 말씀을 하셔도 요지부동하고 변함없는 마음으로 믿어 드렸습니다. 그러면 순종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예수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니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라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서운해하거나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그 말씀에 겸손히 긍정의 고백을 했지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말을 하였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의롭고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내보이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 안에 있는 자존심, 높아지고 섬김 받고자 하는 마음, 자랑하고 싶은 마음,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겸비한 마음을 소유하여 모든 것에 응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을 피해 블레셋에 속한 가드 왕에게 가서 어떠한 행동을 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2. 예수님이 수로보니게 여인을 개 취급하였을 때 여인은 어떠한 마음과 행함으로 예수님께 나왔을까요?
3. 나는 누구일까요?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했는데도 자존심을 내세우다 멸망당했습니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25~13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수로보니게’
팔레스타인 북부 수리아 지역의 베니게를 이르는 말이다.
수로보니게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는 수리아의 베니게란 뜻이다(막 7:26). 마태복음 15장 22절에는 수로보니게 여인이 가나안 여자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가나안이 베니게의 옛 이름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교육목표 :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고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는 물론 천국에서도 존귀히 여김을 받는 큰 자가 되게 한다.
자존심이란 ‘자기 몸을 굽히지 않고 스스로 높이는 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은 자존심을 버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상대를 섬기며 사랑하기를 원하시지요. 그런데 자존심을 내세우다 망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자존심을 버리고 존귀히 여김을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윗왕은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겸손한 자였기에 이 땅에서는 물론 천국에서도 큰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1. 자존심을 버림으로 생명을 건진 다윗
다윗이 아직 이스라엘의 왕이 되기 전입니다. 그는 자기를 시기하여 죽이려는 사울왕을 피해 블레셋에 속한 가드 왕 아기스에게로 갑니다(삼상 21장).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적국으로 다윗은 사울의 휘하에 있을 때에 블레셋 사람을 많이 죽였습니다. 이 사실을 아는 아기스의 신하들은 이를 왕에게 알립니다.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곤경에 처한 다윗은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미친 체하고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수염에 침을 흘리기까지 하였습니다.
아기스는 다윗의 이런 행동을 보고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하며 쫓아내 버렸지요. 다윗은 자존심을 버리고 미친 척하여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블레셋으로부터 조공을 받기까지 했습니다. 만일 다윗이 자존심을 세우다 아기스의 손에 죽었다면 위대한 왕이 될 수 없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자존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죽을망정 그렇게는 못하겠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자존심이 가치가 있는지,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 옳은지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사울왕에게 쫓겨 다닐 때 그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기름 부으신 왕을 죽이는 악은 행치 않았지요. 도리어 자신을 죽은 개나 벼룩에 비유하며 사울을 죽일 의사가 없다고 하자 이에 악한 사울도 감동을 받았습니다(삼상 24장). 결국 연단이 끝난 후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왕으로 높여 주셨고 그는 견고한 통일왕국을 건설하였습니다.
2. 자존심을 내세우다 비참한 결과를 맞이한 사울과 시드기야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가 죄를 지적했을 때에 회개하기는커녕 백성 앞에서 자기의 자존심을 세워 줄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자신의 왕위를 폐하고 다윗을 왕으로 세운 사실을 알고는 다윗을 죽이려고 집요하게 쫓아다녔습니다. 그러다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아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지요.
남유다 왕국의 마지막 왕 시드기야는 어떠했습니까? 유다는 두 차례에 걸쳐 강대국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였습니다. 반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똑똑한 귀인들은 다 바벨론으로 잡혀 가고, 힘없는 백성만 유다에 남았지요. 이때 시드기야왕은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에게 소환을 당해 국정을 보고하고 조공을 바치고 돌아온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야왕이 애굽 왕 바로와 비밀리에 동맹관계를 맺고 내통하다가 바벨론을 배반하게 되지요. 이에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전하지만 시드기야는 이것을 수치스럽게 여기며 선지자를 감옥에 가둬 버립니다. 아무 힘도 없으면서 자존심만 내세우다가 결국 바벨론에게 세 번째 침략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성은 바벨론에 무려 1년 7개월간 포위되어 성 안의 보급 물자들이 완전히 끊기고, 식량도 떨어져 사람들은 굶어 죽어갔습니다. 게다가 바벨론 군대가 성벽을 뚫고 들어와 시드기야와 군사들은 한밤중에 도망치다 결국 붙잡히고 맙니다.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은 불탔고 완전히 함락되어 버렸습니다.
바벨론 왕은 배반한 시드기야 목전에서 그의 아들들을 죽이고, 시드기야의 두 눈을 뽑아 버리지요. 그리고 포로로 끌고 가 죽는 날까지 옥에 가두었습니다. 시드기야왕은 자존심을 내세움으로 자신뿐 아니라, 나라가 망하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그러니 자존심 때문에 자기를 낮추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자신을 망하게 하는 것인지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3. 겸비한 마음으로 응답받은 수로보니게 여인
예수님께서 수로보니게 지방에 가셨을 때입니다(마 15:21~28). 더러운 귀신 들린 딸을 둔 이방 여인이 예수님께 나와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 주시기를 간구하였지요. 여인은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 하며 큰소리로 고쳐 달라고 하였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의외의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즉 한 말씀도 하시지 않고 가만히 계시는 것이었지요. 여인이 계속하여 소리 지르자 제자들이 나서서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 할 정도였지요.
그제야 예수님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여인은 예수님께 공손히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라고 간청을 하지요. 그런데 예수님은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며 이방 여인을 개에 비유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 같으면 개 취급당했다고 자존심이 상해 돌아가 버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서운함이나 자존심이 상한다는 마음 자체가 없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겸비한 마음으로 끝까지 예수님께 구하였지요.
이에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자 딸이 그때로부터 깨끗이 나았습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자기를 철저히 낮춤으로 믿음의 시험을 잘 통과하여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았습니다.
4. 의로운 중심에서 나오는 믿음의 고백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한 것은, 오로지 딸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억지로 분을 누르거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로 계산하여 한 말이 아닙니다. 그 중심이 의롭고 겸비했기에 예수님이 예상치 못한 말씀을 하셨을 때도 선한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지요. 순간에 지혜를 짜내 “내가 이렇게 대답해서 예수님의 마음을 사야겠다.” 한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있는 선과 겸손이 그대로 나왔을 뿐이지요.
우리도 하나님의 응답을 받으려면 교만을 버리며, 마음을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진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야 합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선으로 갚으며, 육의 마음을 온전히 버리고 영의 마음, 의로운 마음을 가져야 하지요. 그러면 어떤 문제든 응답받을 수 있고 믿음으로 행하는 모든 일에 거칠 것이 없습니다.
로마서 1장 17절에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는데 수로보니게 여인은 그 중심이 겸비하고 의로웠기 때문에 끝까지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중심이 되면 어떤 문제에 부딪힌다 해도 믿음의 행함이 나오므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게 됩니다. 믿음은 신뢰하는 것이고 그 신뢰에 변함이 없으며 또한 순종하는 것입니다.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그것을 믿고 예수님을 신뢰했습니다. 또 예수님께서 어떤 행동과 말씀을 하셔도 요지부동하고 변함없는 마음으로 믿어 드렸습니다. 그러면 순종은 어떻게 나타났습니까? 예수님께서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시니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라는 대답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신뢰하기 때문에 서운해하거나 자존심 상해하지 않고 그 말씀에 겸손히 긍정의 고백을 했지요. 그러면서 예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말을 하였기에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의롭고 겸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내보이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내 안에 있는 자존심, 높아지고 섬김 받고자 하는 마음, 자랑하고 싶은 마음,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겸비한 마음을 소유하여 모든 것에 응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윗이 자신을 죽이려는 사울왕을 피해 블레셋에 속한 가드 왕에게 가서 어떠한 행동을 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2. 예수님이 수로보니게 여인을 개 취급하였을 때 여인은 어떠한 마음과 행함으로 예수님께 나왔을까요?
3. 나는 누구일까요?
“남왕국 유다의 마지막 왕으로 예레미야 선지자가 바벨론에 항복하라는 하나님의 뜻을 전했는데도 자존심을 내세우다 멸망당했습니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25~13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수로보니게’
팔레스타인 북부 수리아 지역의 베니게를 이르는 말이다.
수로보니게는 로마의 지배 아래 있는 수리아의 베니게란 뜻이다(막 7:26). 마태복음 15장 22절에는 수로보니게 여인이 가나안 여자로 기록되었는데 이는 가나안이 베니게의 옛 이름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2019-10-18
제42과일천 번제의 정성
열왕기상 3:4~12
읽을말씀 : 열왕기상 3:4~12 | 외울말씀 : 고린도후서 9:7 l 참고 말씀 / 말라기 1:6~9
교육목표 : 솔로몬왕처럼 하나님께 지극한 정성을 내보임으로 마음의 소원에 응답받고 축복이 넘쳐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극한 정성에는 하늘도 감동한다는 뜻으로, 무엇이든 정성을 다한다면 뜻을 이루게 됨을 나타냅니다. 솔로몬왕은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림으로 전무후무한 지혜는 물론 부와 영광까지 받았습니다.
1. 일천 번제를 지극 정성으로 드린 솔로몬
솔로몬은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입니다. 아버지 다윗왕이 정치, 경제, 군사 등 전반적으로 기반을 닦아 놓았기 때문에 안정 속에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지요. 또한 솔로몬은 나단 선지자의 신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기에 힘썼습니다.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무엇보다 먼저 지극한 정성으로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제물로 가져온 짐승을 하나하나 각을 떠서 불태워 그 향기로 드리는 제사법으로 많은 수고와 정성이 필요하지요. 이는 가장 보편적인 제사법으로서 생명을 드리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규례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은 이처럼 하나님 앞에 온전한 희생과 헌신, 자발적인 봉사를 상징하는 번제를 일천 번이나 드렸습니다.
오늘날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모든 예배가 여기에 속합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려 인류를 구원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기 원하십니다. 따라서 예배드릴 때 기쁨 없이 피곤, 졸음, 잡념 속에서 드려서는 안 됩니다. 하늘의 소망 가운데 기쁨으로 충만하고 구원의 은혜와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중심으로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십니다.
예물을 드릴 때에도 얼마나 정성껏, 믿음으로, 사랑으로 드리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연보 궤에 헌금하는 것을 보고 칭찬하셨습니다(막 12장). 두 렙돈은 이스라엘의 가장 작은 화폐 단위인 동전 두 닢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과부에게는 그것이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중심을 보고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정성을 담아 즐거이 드릴 때 기뻐하며 축복하십니다. 솔로몬의 정성 다한 일천 번제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말씀하시니 그는 왕으로서 백성을 재판할 때에 선악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사사로이 명예나 부를 구하지 않는 것을 기뻐하시며, 솔로몬이 구한 지혜와 총명은 물론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까지도 겸하여 주셨습니다(왕상 3:13).
2. 정성된 마음으로 행했을 때 임하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성된 마음을 흠향하십니다. 아무리 겉으로는 완벽하다 해도 마음이 깃들지 않으면 받지 않으시지요. 주의 종이나 부모, 형제, 이웃, 동료 어느 누구를 섬길 때도 마음 다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시므로 정성된 마음으로 했는지 다 아시지요.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솔로몬의 중심과 마음씀씀이를 아셨기에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왕으로 즉위한 지 4년 만에 시작된 성전 건축은 완공하기까지 7년이 걸렸습니다. 성전은 매우 아름답고 정교하며 웅장하게 건축되었습니다.
돌을 뜨는 곳에서 아예 규격에 맞게 다듬어 성전에서 망치나 철 연장 소리가 일절 들리지 않게 했습니다. 성전 내부는 백향목 널판으로 벽에 입힌 후 정금으로 덧입혀 돌이 보이지 않게 하였고, 사면 벽에는 그룹들과 종려와 꽃 핀 형상을 정교하게 아로새겼습니다. 성전 앞에는 기둥 둘을 웅장하게 만들었는데 사슬로 기둥머리에 두르고 석류 일백 개를 달았습니다. 또 등대와 꽃, 등잔과 화 젓가락, 불집게와 주발, 숟가락과 불 옮기는 그릇 등 성전의 기구들을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솔로몬은 정성을 다해 건축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며, 기도하고 헌물을 드리거나 무엇을 하든지 정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축복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께 어떠한 마음으로 구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바로 솔로몬이 사사로이 자신의 부귀영화나 장수를 구하지 않고,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지혜를 구한 것처럼 하면 됩니다. 즉 자기 유익이 아닌 상대의 유익을 위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영혼들을 위해 구하면 기뻐하시고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풍족하게 채워 주십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수넴의 귀부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그 지방을 지날 때면 음식을 대접하고 쉴 수 있는 방을 마련해 드렸습니다. 여인의 섬김에 감동한 엘리사가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지만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아들이 없음을 알고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갖게 될 것을 말해 줍니다. 정성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니 구하지 않은 축복까지 받았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자기보다 백성의 유익을 먼저 생각한 것처럼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진리 곧 선을 행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3. 하나님 앞에 감동적인 정성을 보인 사람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치료받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갈 때 많은 금은과 귀한 의복을 정성껏 준비하여 갔습니다. 엘리사가 그것을 받지 않았지만 나아만의 정성과 순종이 있었기 때문에 치료받을 수 있었지요. 또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길손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마치 주를 섬기듯 대접했습니다. 그러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여 고대하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축복의 예언을 또다시 듣지요.
야곱은 자기를 미워하는 형 에서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형의 감정을 풀고자 했지요.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주관하여 화해할 수 있었지만 야곱의 정성 역시 형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이 자원하여 너도 나도 즐거이 예물을 드렸는데 어찌나 많이 드렸던지 그만 가져오도록 공포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백성의 정성이 그처럼 지극했던 것입니다.
삭개오의 정성과 사모함은 어떻습니까?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뵙고자 자신의 체면이나 지위 따위는 생각지 않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지요(눅 19장). 그의 사모함을 아신 예수님은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십니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감격에 찬 삭개오는 예수님께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하지요.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하시며 구원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며 지극한 정성과 사모함을 보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신약 시대 안나 선지자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 어머니 한나는 오랫동안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였을 때 눈물로 기도하여 사무엘을 얻었습니다. 또 그를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서원을 지킴으로써 더 많은 자녀를 얻었습니다. 엘리사는 끝까지 스승 엘리야를 붙좇는 정성을 보임으로 스승의 갑절의 영감을 받았지요.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지극한 정성을 내보임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풍족한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이 자기의 몸을 ( )로 드려 인류를 구원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 )로
드리기 원하신다.
2. 축복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어떠한 마음으로 구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13~12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솔로몬 성전
솔로몬왕이 온갖 귀한 자재들과 황금 보석을 드려 지은 아름다운
성전이다. 이 성전을 봉헌할 때 그 안에는 영광의 구름이 가득했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물을 살라 그 향을 받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에 나오는 이들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라도
믿음으로 나오기만 한다면 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리라 약속하셨다.
그러나 B.C. 586년 남유다가 멸망할 때 파괴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율법을 어기고 죄악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 가운데서 떠나셨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떠나신 결과
성전도 훼파된 것이다.
교육목표 : 솔로몬왕처럼 하나님께 지극한 정성을 내보임으로 마음의 소원에 응답받고 축복이 넘쳐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지극한 정성에는 하늘도 감동한다는 뜻으로, 무엇이든 정성을 다한다면 뜻을 이루게 됨을 나타냅니다. 솔로몬왕은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림으로 전무후무한 지혜는 물론 부와 영광까지 받았습니다.
1. 일천 번제를 지극 정성으로 드린 솔로몬
솔로몬은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한 왕입니다. 아버지 다윗왕이 정치, 경제, 군사 등 전반적으로 기반을 닦아 놓았기 때문에 안정 속에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지요. 또한 솔로몬은 나단 선지자의 신앙 교육을 받으며 성장하였기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부친 다윗의 법도를 행하기에 힘썼습니다.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무엇보다 먼저 지극한 정성으로 하나님 앞에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제물로 가져온 짐승을 하나하나 각을 떠서 불태워 그 향기로 드리는 제사법으로 많은 수고와 정성이 필요하지요. 이는 가장 보편적인 제사법으로서 생명을 드리며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규례를 지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솔로몬은 이처럼 하나님 앞에 온전한 희생과 헌신, 자발적인 봉사를 상징하는 번제를 일천 번이나 드렸습니다.
오늘날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모든 예배가 여기에 속합니다. 예수님이 자기의 몸을 희생 제물로 드려 인류를 구원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기 원하십니다. 따라서 예배드릴 때 기쁨 없이 피곤, 졸음, 잡념 속에서 드려서는 안 됩니다. 하늘의 소망 가운데 기쁨으로 충만하고 구원의 은혜와 주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중심으로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십니다.
예물을 드릴 때에도 얼마나 정성껏, 믿음으로, 사랑으로 드리느냐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고후 9:7)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을 연보 궤에 헌금하는 것을 보고 칭찬하셨습니다(막 12장). 두 렙돈은 이스라엘의 가장 작은 화폐 단위인 동전 두 닢에 불과했습니다. 하지만 과부에게는 그것이 생활비 전부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여인의 중심을 보고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정성을 담아 즐거이 드릴 때 기뻐하며 축복하십니다. 솔로몬의 정성 다한 일천 번제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말씀하시니 그는 왕으로서 백성을 재판할 때에 선악을 바르게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사사로이 명예나 부를 구하지 않는 것을 기뻐하시며, 솔로몬이 구한 지혜와 총명은 물론 구하지 않은 부와 영광까지도 겸하여 주셨습니다(왕상 3:13).
2. 정성된 마음으로 행했을 때 임하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정성된 마음을 흠향하십니다. 아무리 겉으로는 완벽하다 해도 마음이 깃들지 않으면 받지 않으시지요. 주의 종이나 부모, 형제, 이웃, 동료 어느 누구를 섬길 때도 마음 다해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시므로 정성된 마음으로 했는지 다 아시지요.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섬기는 마음으로 자기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솔로몬의 중심과 마음씀씀이를 아셨기에 성전을 건축하게 하셨습니다. 솔로몬이 왕으로 즉위한 지 4년 만에 시작된 성전 건축은 완공하기까지 7년이 걸렸습니다. 성전은 매우 아름답고 정교하며 웅장하게 건축되었습니다.
돌을 뜨는 곳에서 아예 규격에 맞게 다듬어 성전에서 망치나 철 연장 소리가 일절 들리지 않게 했습니다. 성전 내부는 백향목 널판으로 벽에 입힌 후 정금으로 덧입혀 돌이 보이지 않게 하였고, 사면 벽에는 그룹들과 종려와 꽃 핀 형상을 정교하게 아로새겼습니다. 성전 앞에는 기둥 둘을 웅장하게 만들었는데 사슬로 기둥머리에 두르고 석류 일백 개를 달았습니다. 또 등대와 꽃, 등잔과 화 젓가락, 불집게와 주발, 숟가락과 불 옮기는 그릇 등 성전의 기구들을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솔로몬은 정성을 다해 건축했습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며, 기도하고 헌물을 드리거나 무엇을 하든지 정성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축복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께 어떠한 마음으로 구해야 하나님께서 기뻐하실까요? 바로 솔로몬이 사사로이 자신의 부귀영화나 장수를 구하지 않고, 백성을 다스리기 위해 지혜를 구한 것처럼 하면 됩니다. 즉 자기 유익이 아닌 상대의 유익을 위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영혼들을 위해 구하면 기뻐하시고 구하지 않은 것까지도 풍족하게 채워 주십니다.
열왕기하 4장에 보면 수넴의 귀부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그 지방을 지날 때면 음식을 대접하고 쉴 수 있는 방을 마련해 드렸습니다. 여인의 섬김에 감동한 엘리사가 무엇이 필요한지 물었지만 아무것도 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한 일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는 여인에게 아들이 없음을 알고 내년 이맘때에 아들을 갖게 될 것을 말해 줍니다. 정성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니 구하지 않은 축복까지 받았던 것입니다. 솔로몬이 자기보다 백성의 유익을 먼저 생각한 것처럼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진리 곧 선을 행할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3. 하나님 앞에 감동적인 정성을 보인 사람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치료받기 위해 엘리사를 찾아갈 때 많은 금은과 귀한 의복을 정성껏 준비하여 갔습니다. 엘리사가 그것을 받지 않았지만 나아만의 정성과 순종이 있었기 때문에 치료받을 수 있었지요. 또 아브라함은 지나가는 길손도 소홀히 하지 않았고 마치 주를 섬기듯 대접했습니다. 그러다가 부지중에 천사를 대접하여 고대하던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축복의 예언을 또다시 듣지요.
야곱은 자기를 미워하는 형 에서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최선을 다해 예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래서 형의 감정을 풀고자 했지요. 하나님께서 에서의 마음을 주관하여 화해할 수 있었지만 야곱의 정성 역시 형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을 만큼 감동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서 성막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백성이 자원하여 너도 나도 즐거이 예물을 드렸는데 어찌나 많이 드렸던지 그만 가져오도록 공포할 정도였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백성의 정성이 그처럼 지극했던 것입니다.
삭개오의 정성과 사모함은 어떻습니까? 키가 작은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 뵙고자 자신의 체면이나 지위 따위는 생각지 않고 뽕나무 위로 올라갔지요(눅 19장). 그의 사모함을 아신 예수님은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십니다. 삭개오는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예수님을 영접합니다. 감격에 찬 삭개오는 예수님께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하지요.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하시며 구원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며 지극한 정성과 사모함을 보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신약 시대 안나 선지자는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사무엘 선지자 어머니 한나는 오랫동안 아이를 잉태하지 못하였을 때 눈물로 기도하여 사무엘을 얻었습니다. 또 그를 하나님께 드리겠다는 서원을 지킴으로써 더 많은 자녀를 얻었습니다. 엘리사는 끝까지 스승 엘리야를 붙좇는 정성을 보임으로 스승의 갑절의 영감을 받았지요.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지극한 정성을 내보임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풍족한 삶을 누리시길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이 자기의 몸을 ( )로 드려 인류를 구원하신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 )로
드리기 원하신다.
2. 축복 주고자 하시는 하나님께 우리가 어떠한 마음으로 구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13~12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솔로몬 성전
솔로몬왕이 온갖 귀한 자재들과 황금 보석을 드려 지은 아름다운
성전이다. 이 성전을 봉헌할 때 그 안에는 영광의 구름이 가득했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하늘에서 불을 내려 제물을 살라 그 향을 받으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성전에 나오는 이들마다,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이라도
믿음으로 나오기만 한다면 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으리라 약속하셨다.
그러나 B.C. 586년 남유다가 멸망할 때 파괴되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율법을 어기고 죄악을 행하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 가운데서 떠나셨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범죄로 인해 하나님께서 떠나신 결과
성전도 훼파된 것이다.
2019-10-11
제41과율법을 행하는 자
로마서 2:13
읽을말씀 : 로마서 2:13 | 외울말씀 : 야고보서 2:22 ㅣ 참고 말씀 / 요한일서 1:5~7, 마태복음 7:21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심비에 새기고 지켜 행함으로 진정한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한다.
자녀를 낳아 길러 보면 부모의 모습을 닮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외모만이 아니라 성격이나 걸음걸이, 습관까지 꼭 닮기도 하지요. 만일 부모가 조급한 성격이라면 자녀도 조급하기 쉽고, 폭력적이라면 그 성향을 물려받기도 합니다. 또 부모가 유난히 시기 질투가 많으면 자녀도 그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타고난 성격은 사람마다 다르며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도덕적인 가르침이나 성현의 교훈을 통해 마음을 쉽게 변화시킬 수 있다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밝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 따라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기질, 죄의 속성까지도 버려야 합니다.
1. 저마다 다르게 타고난 마음 중심
조선 시대 폭군 연산군의 어머니는 지나치게 질투심이 강했습니다. 그 영향을 받아 연산군도 시기심이 많고 포악할 뿐 아니라,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며 온갖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왕족으로 태어나 훌륭한 스승의 교육을 받았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성에다 악을 쌓아가니 마음 중심이 악해져 갔지요.
사람의 마음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성과 자신이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통해 형성이 됩니다. 이러한 마음이 굳혀진 것이 중심이지요. 사람은 마음 중심에 따라 선을 추구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비록 태어날 때 좋지 않은 기질을 물려받았어도 변화되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만나 성결을 이루기 위해 믿음으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말씀대로 행하면, 결국에는 좋은 중심이 만들어지게 되지요.
연산군과 달리 다니엘의 세 친구는 선한 중심을 가졌기에 이방 나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서도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으로 금하신 가증한 음식은 먹지 않았고,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결코 우상에 절하지 않는 곧은 신앙을 가졌지요.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니 이방 나라에서도 중책을 맡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 마음의 의를 이루어야 진정한 의인
어떤 사람은 “죄를 버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버리고 의인이 되어야 할 것을 무수히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죄를 다 벗어 버리고 마음 중심을 온전히 진리로 일구어야 참된 의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연단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를 온전케 하십니다. 이러한 연단을 통과해야 값진 열매로 나올 수 있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원래 자기 의가 매우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민족 히브리 사람을 애굽 사람이 치는 것을 보고 주위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모래에 감추었지요. 그 후 40년의 연단을 통해 철저히 자기 의가 깨어지면서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그릇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했습니다. 악한 백성을 대신하여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져도 좋으니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기를 간구할 정도로 온유하고 사랑이 넘쳐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지요(출 32:32).
이처럼 진정한 의인은 단순히 말씀을 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마음 중심에 있는 악을 빼냄으로 마음의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즉 율법을 들어서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진정한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려면 두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첫째는 진리의 말씀을 앎으로 순종하는 단계입니다. 즉 “기도하라” 했으니 기도하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했으니 지키는 것입니다. 둘째는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온전히 이루어 행하는 단계입니다. 곧 온전한 행함의 단계이지요.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쁨으로 할 때 온전한 행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온전한 행함에 따르는 축복
우리가 온전한 행함의 단계로 들어가려면 먼저는 하나님 말씀에 “하지 말라” 하신 것은 하지 않고, “버리라” 하신 것은 버려야 합니다. 즉 “미워하지 말라, 시기 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죄를 버리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대로 하지 않고 버리면 옥토 같은 마음이 됩니다.
더불어 하나님 말씀을 심어야 합니다. 즉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열심히 행하면 믿음이 성장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지요. 즉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임합니다.
우리가 교통법규를 잘 지키면 법의 제재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수 없으므로 시험 환난과 질병이 떠나며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 주시니 어려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혹여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율법을 지켰을지라도 마음의 악이 버려지는 만큼 차츰 기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영혼이 잘되어 주님의 마음을 닮는 것이며,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면 스스로 자신을 책망할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 구하는 것을 응답받을 수 있지요. 질병이나 가정의 화목, 가정 복음화를 비롯한 그 어떤 문제라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4.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믿음
야고보서 2장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참으로 믿는다면 행함이 따르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어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똑같이 듣는 데도 사람마다 믿음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 사람의 마음 중심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얼마나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는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면서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거짓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시니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을 믿는다 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만 다니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사람이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의인이기 때문입니다(롬 2:13).
그래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했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짝을 이루어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서 믿는 사람은 당연히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마음에 믿고 행하면서 입술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신앙이요,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그러니 율법을 온전히 행하는 자가 되어 구원은 물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된 의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진정한 의인은 단순히 말씀을 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통해 ( )을 발견하고 마음 중심에 있는 악을 빼냄으로 마음의 ( )를 이뤄야 한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똑같이 듣는 데도 사람마다 믿음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03~11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네 가지 마음밭’(마태복음 13장)
1. 길가밭: 단단히 굳은 밭으로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전혀 믿음을 갖지 못하는 마음밭을 말한다.
2. 돌밭: 돌멩이가 있어 싹이 나도 잘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
믿음의 확신이 없고 시험 환난이 오면 넘어져 버린다.
3. 가시떨기밭: 가시떨기로 인해 싹이 잘 자라지 못하는 밭이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한다 해도 탐욕과 재리의 유혹, 세상의 염려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한다.
4. 좋은 밭: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를 거두는 밭이다.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기에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순종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심비에 새기고 지켜 행함으로 진정한 의인이 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게 한다.
자녀를 낳아 길러 보면 부모의 모습을 닮은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외모만이 아니라 성격이나 걸음걸이, 습관까지 꼭 닮기도 하지요. 만일 부모가 조급한 성격이라면 자녀도 조급하기 쉽고, 폭력적이라면 그 성향을 물려받기도 합니다. 또 부모가 유난히 시기 질투가 많으면 자녀도 그런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타고난 성격은 사람마다 다르며 쉽게 고쳐지지 않습니다. 도덕적인 가르침이나 성현의 교훈을 통해 마음을 쉽게 변화시킬 수 있다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밝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되어야 하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지요. 따라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변화되기 위해서는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타고난 기질, 죄의 속성까지도 버려야 합니다.
1. 저마다 다르게 타고난 마음 중심
조선 시대 폭군 연산군의 어머니는 지나치게 질투심이 강했습니다. 그 영향을 받아 연산군도 시기심이 많고 포악할 뿐 아니라, 술과 여자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며 온갖 악행을 일삼았습니다. 왕족으로 태어나 훌륭한 스승의 교육을 받았지만,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성에다 악을 쌓아가니 마음 중심이 악해져 갔지요.
사람의 마음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성과 자신이 성장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통해 형성이 됩니다. 이러한 마음이 굳혀진 것이 중심이지요. 사람은 마음 중심에 따라 선을 추구하는 정도가 달라집니다. 비록 태어날 때 좋지 않은 기질을 물려받았어도 변화되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온전케 하시는 주님을 만나 성결을 이루기 위해 믿음으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말씀대로 행하면, 결국에는 좋은 중심이 만들어지게 되지요.
연산군과 달리 다니엘의 세 친구는 선한 중심을 가졌기에 이방 나라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서도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며 섬겼습니다. 하나님이 율법으로 금하신 가증한 음식은 먹지 않았고,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결코 우상에 절하지 않는 곧은 신앙을 가졌지요.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니 이방 나라에서도 중책을 맡으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2. 마음의 의를 이루어야 진정한 의인
어떤 사람은 “죄를 버리는 것이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를 버리고 의인이 되어야 할 것을 무수히 말씀하십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할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죄를 다 벗어 버리고 마음 중심을 온전히 진리로 일구어야 참된 의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는 연단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를 온전케 하십니다. 이러한 연단을 통과해야 값진 열매로 나올 수 있고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원래 자기 의가 매우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자기 민족 히브리 사람을 애굽 사람이 치는 것을 보고 주위에 사람이 없는 틈을 타서애굽 사람을 쳐 죽이고 모래에 감추었지요. 그 후 40년의 연단을 통해 철저히 자기 의가 깨어지면서 하나님께서 쓰실 수 있는 그릇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민수기 12장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했습니다. 악한 백성을 대신하여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져도 좋으니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기를 간구할 정도로 온유하고 사랑이 넘쳐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지요(출 32:32).
이처럼 진정한 의인은 단순히 말씀을 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마음 중심에 있는 악을 빼냄으로 마음의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즉 율법을 들어서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행하는 자가 되어야 진정한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가 되려면 두 가지 단계를 거쳐야 합니다. 첫째는 진리의 말씀을 앎으로 순종하는 단계입니다. 즉 “기도하라” 했으니 기도하고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했으니 지키는 것입니다. 둘째는 진리의 말씀을 마음에 온전히 이루어 행하는 단계입니다. 곧 온전한 행함의 단계이지요. 의무적으로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쁨으로 할 때 온전한 행함이라 할 수 있습니다.
3. 온전한 행함에 따르는 축복
우리가 온전한 행함의 단계로 들어가려면 먼저는 하나님 말씀에 “하지 말라” 하신 것은 하지 않고, “버리라” 하신 것은 버려야 합니다. 즉 “미워하지 말라, 시기 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죄를 버리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말씀대로 하지 않고 버리면 옥토 같은 마음이 됩니다.
더불어 하나님 말씀을 심어야 합니다. 즉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열심히 행하면 믿음이 성장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지요. 즉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원수도 사랑하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이 임합니다.
우리가 교통법규를 잘 지키면 법의 제재를 받지 않을 뿐 아니라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수 없으므로 시험 환난과 질병이 떠나며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 주시니 어려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혹여 처음에는 의무감으로 율법을 지켰을지라도 마음의 악이 버려지는 만큼 차츰 기쁨으로 순종하게 됩니다. 이것이 곧 영혼이 잘되어 주님의 마음을 닮는 것이며,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면 스스로 자신을 책망할 것이 없으므로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 구하는 것을 응답받을 수 있지요. 질병이나 가정의 화목, 가정 복음화를 비롯한 그 어떤 문제라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4. 행함으로 온전케 되는 믿음
야고보서 2장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참으로 믿는다면 행함이 따르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어 무엇이나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말씀을 똑같이 듣는 데도 사람마다 믿음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각 사람의 마음 중심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듣고 얼마나 행하느냐, 행하지 않느냐의 차이입니다. 율법을 행하는 자는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면서 말씀대로 행하지 않는다면 거짓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빛 가운데 계시니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해야 하나님을 믿는다 할 수 있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만 다니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사람이 의인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는 사람이 의인이기 때문입니다(롬 2:13).
그래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 했고,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이 함께 짝을 이루어야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온전한 뜻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서 믿는 사람은 당연히 행함이 따르기 때문에 마음에 믿고 행하면서 입술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신앙이요,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입니다. 그러니 율법을 온전히 행하는 자가 되어 구원은 물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참된 의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진정한 의인은 단순히 말씀을 듣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말씀을 통해 ( )을 발견하고 마음 중심에 있는 악을 빼냄으로 마음의 ( )를 이뤄야 한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똑같이 듣는 데도 사람마다 믿음이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03~112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네 가지 마음밭’(마태복음 13장)
1. 길가밭: 단단히 굳은 밭으로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전혀 믿음을 갖지 못하는 마음밭을 말한다.
2. 돌밭: 돌멩이가 있어 싹이 나도 잘 자라지 못하는 밭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식적으로는 알지만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
믿음의 확신이 없고 시험 환난이 오면 넘어져 버린다.
3. 가시떨기밭: 가시떨기로 인해 싹이 잘 자라지 못하는 밭이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행한다 해도 탐욕과 재리의 유혹, 세상의 염려로 인해 열매를 맺지 못한다.
4. 좋은 밭: 씨를 뿌리면 30배, 60배, 100배를 거두는 밭이다.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기에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무조건 순종한다.
2019-10-04
제40과욥의 행사
욥기 1:1~5
읽을말씀 : 욥기 1:1~5 | 외울말씀 : 욥기 23:10 ㅣ 참고 말씀: 욥기 29:8~17, 31:16~32
교육목표 : 욥처럼 진정한 의인이 되기 위해 본성 속의 악을 발견하여 벗어 버림으로 영육 간에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실수나 잘못이 드러나면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십니다.
다이아몬드가 원석일 때에는 가치가 적은 돌에 불과하지만 갈고 다듬으면 찬란한 빛을 내는 보석이 되듯이 마찬가지로 우리도 연단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인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인이 되어 축복받을 수 있는지 욥의 신앙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동방에서 가장 큰 자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욥 1:3)라 할 만큼 재물이 많았지요. 양이 칠천, 약대가 삼천, 소가 오백 겨리, 암나귀가 오백 마리 있었습니다. 한 겨리는 두 마리를 의미하니 소만 해도 천 마리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양과 약대는 그보다 몇 곱절 많았으니 엄청난 재산을 가진 거부였지요.
하나님께서는 욥을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하셨습니다. ‘큰 자’란 사람마다 관점이 달라서 재물이 많고 바르게 쓸 줄 아는 사람, 혹은 지식이 많으며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하거나 사랑과 덕이 많아 존경받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존경할 만하다고 인정하는 큰 자는 단지 눈에 드러난 업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 자로 여길 수 있는 마음씀이나 됨됨이가 좋아서 존경할 만한 기본 조건을 갖춘 사람을 말하지요. 마음 됨됨이가 좋은 사람은 시킨 일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많은 것을 포용력 있게 잘 감당합니다.
두루 살필 수 있는 넓은 마음과 얼마나 정성을 다하느냐에 따라 마음 그릇의 크고 작은 정도에 차이가 납니다. 모든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이루는 것이 마음 됨됨이를 좋게 하는 길입니다.
욥은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며 큰 자로서 마음 씀씀이가 고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모든 지혜와 지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고 그들과 함께 즐거워하였습니다. 풍부한 재물을 사람들에게 후히 베풀며 도왔으니 참으로 큰 자라 할 수 있지요.
그 밖에도 욥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마시며 행해도 욥만은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잔칫날이 지나면 아침에 일어나 아들들을 부르고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혹시 그들이 잔치 중에 실수하여 죄를 지었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욥을 하나님은 순전하다 여기셨습니다. 더구나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모든 것, 곧 모든 자녀와 재산을 다 거두어 가셨어도 감사하였습니다.
2. 연단을 통해 온전한 의인이 된 욥
욥은 자녀와 재물을 다 잃는 엄청난 일을 당했어도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욥에게 계속하여 시험 환난이 다가왔습니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심해 재 가운데 앉아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는 비참한 모습으로 변했지요. 그의 아내는 위로는커녕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비웃으며 저주하지만 욥은 입술로도 범죄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순전한 욥도 통과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는 의롭고 진실했으며 참되게 하나님을 경외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내게 이런 고통을 주고 멸시받게 하시는가?” 했지요.
하나님께서 욥에게 진정 원하셨던 것은 변함없이 진실하며 악이 없는 온전한 마음이었습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 진실한지, 하나님을 끝까지 믿는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는지 보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욥은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도 감사했지만 시련이 계속되자 마침내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자 깊이 감춰진 악이 드러났지요.
마침내 욥은 태어났을 때의 자연 환경을 원망하고 자신을 낳아 준 부모를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욥 27:2)라며 하나님까지 원망하지요. 결국 자기는 의인이고 하나님은 의롭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좋은 중심을 가진 욥이 한 가지만 더하면 당대 의인 중에 의인이 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을 아셨습니다. 행함으로는 누구보다 온전했던 그가 마음 깊이 있는 악의 모양까지도 발견하여 벗어 버리면 진정한 의인으로 나올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단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고 그것을 통해 성결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끄셨지요.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참된 의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욥과 같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 해서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그런 시험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음 그릇을 보시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고전 10:13).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욥은 능히 시험을 감당할 줄 아시기에 허락하신 것입니다. 결국 욥은 자신도 몰랐던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악을 발견하여 버리고 참된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험을 통과하여 좋은 그릇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3. 진실한 사람을 찾아 축복하시는 하나님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진실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존귀한 사람으로 높이시고 영화로운 관을 씌워 주시지요. 욥처럼 의로운 사람이 되어 자기의 행사를 돌아보아 항상 하나님 앞에 흠과 티가 없이 깨끗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행사란 ‘습관을 좇아 행하는 행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걷든지 무엇을 계획하거나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의인을 원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욥처럼 어려운 일에 부딪혔다면 끝까지 하나님 앞에 원망하지 않고 의롭게 행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감사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 해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진실한 신앙을 갖기 원하시지요. 이러한 참된 의인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결국 욥은 악의 모양까지도 벗어 버린 온전한 의인으로서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 깊은 영적 단계로 들어가 예전보다 갑절이나 축복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갑절의 축복을 받으면 얼마 되지 않지만, 재벌 총수가 갑절의 축복을 받는다면 어마어마하지요. 연단을 받기 전에도 욥은 동방에서 제일가는 거부였으니 그 갑절이면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합당한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이러한 축복을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에 문제가 있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평, 원망, 탄식, 슬픔, 염려 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악의 모양들을 버리는 일입니다. 죄악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 진정 의로운 마음이 되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오고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흠도 티도 없는 영의 마음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신속하게 응답과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순전하고 정직하며 악에서 떠난 진정한 의인이 되어 살아 계신 하나님을 항상 만나고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감사할 수 있는 ( ) 사람을 찾으신다.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 해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진실한 신앙을 갖기 원하신다.
2. 욥은 ( )의 모양까지도 벗어 버린 온전한 의인으로서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 깊은 영적 단계로 들어가 예전보다 갑절이나 축복을 받았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85~9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정직한 사람이란?
정직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마음이 바르고 곧음을 말한다. 영적인 의미는 타인을 속이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을 뜻한다.
자신과 약속한 것일지라도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신다.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사람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나쁜 일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교육목표 : 욥처럼 진정한 의인이 되기 위해 본성 속의 악을 발견하여 벗어 버림으로 영육 간에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실수나 잘못이 드러나면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럴 수도 있지.”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온전하니 너희도 온전하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십니다.
다이아몬드가 원석일 때에는 가치가 적은 돌에 불과하지만 갈고 다듬으면 찬란한 빛을 내는 보석이 되듯이 마찬가지로 우리도 연단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의인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의인이 되어 축복받을 수 있는지 욥의 신앙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동방에서 가장 큰 자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욥 1:3)라 할 만큼 재물이 많았지요. 양이 칠천, 약대가 삼천, 소가 오백 겨리, 암나귀가 오백 마리 있었습니다. 한 겨리는 두 마리를 의미하니 소만 해도 천 마리가 있었다는 말입니다. 양과 약대는 그보다 몇 곱절 많았으니 엄청난 재산을 가진 거부였지요.
하나님께서는 욥을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하셨습니다. ‘큰 자’란 사람마다 관점이 달라서 재물이 많고 바르게 쓸 줄 아는 사람, 혹은 지식이 많으며 잘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하거나 사랑과 덕이 많아 존경받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이 존경할 만하다고 인정하는 큰 자는 단지 눈에 드러난 업적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큰 자로 여길 수 있는 마음씀이나 됨됨이가 좋아서 존경할 만한 기본 조건을 갖춘 사람을 말하지요. 마음 됨됨이가 좋은 사람은 시킨 일뿐만 아니라 그 이상의 많은 것을 포용력 있게 잘 감당합니다.
두루 살필 수 있는 넓은 마음과 얼마나 정성을 다하느냐에 따라 마음 그릇의 크고 작은 정도에 차이가 납니다. 모든 분야에 열정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을 이루는 것이 마음 됨됨이를 좋게 하는 길입니다.
욥은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에게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며 큰 자로서 마음 씀씀이가 고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자신의 모든 지혜와 지식으로 많은 사람에게 깨달음을 주고 그들과 함께 즐거워하였습니다. 풍부한 재물을 사람들에게 후히 베풀며 도왔으니 참으로 큰 자라 할 수 있지요.
그 밖에도 욥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여러 모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녀들은 아무 생각 없이 먹고 마시며 행해도 욥만은 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잔칫날이 지나면 아침에 일어나 아들들을 부르고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습니다. 혹시 그들이 잔치 중에 실수하여 죄를 지었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욥을 하나님은 순전하다 여기셨습니다. 더구나 욥은 하나님께서 자기의 모든 것, 곧 모든 자녀와 재산을 다 거두어 가셨어도 감사하였습니다.
2. 연단을 통해 온전한 의인이 된 욥
욥은 자녀와 재물을 다 잃는 엄청난 일을 당했어도 어리석게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욥에게 계속하여 시험 환난이 다가왔습니다.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악창이 심해 재 가운데 앉아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는 비참한 모습으로 변했지요. 그의 아내는 위로는커녕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순전을 굳게 지키느뇨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비웃으며 저주하지만 욥은 입술로도 범죄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순전한 욥도 통과하지 못한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는 의롭고 진실했으며 참되게 하나님을 경외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내게 이런 고통을 주고 멸시받게 하시는가?” 했지요.
하나님께서 욥에게 진정 원하셨던 것은 변함없이 진실하며 악이 없는 온전한 마음이었습니다. 욥이 하나님 앞에 진실한지, 하나님을 끝까지 믿는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변하지 않는지 보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욥은 모든 재산과 자녀를 잃고도 감사했지만 시련이 계속되자 마침내 하나님께 대한 신뢰가 무너져 내리기 시작합니다. 더 이상 인내할 수 없는 한계에 부딪히자 깊이 감춰진 악이 드러났지요.
마침내 욥은 태어났을 때의 자연 환경을 원망하고 자신을 낳아 준 부모를 원망하다가 나중에는 “나의 의를 빼앗으신 하나님, 나의 영혼을 괴롭게 하신 전능자”(욥 27:2)라며 하나님까지 원망하지요. 결국 자기는 의인이고 하나님은 의롭지 않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좋은 중심을 가진 욥이 한 가지만 더하면 당대 의인 중에 의인이 되는 데 부족함이 없을 것을 아셨습니다. 행함으로는 누구보다 온전했던 그가 마음 깊이 있는 악의 모양까지도 발견하여 벗어 버리면 진정한 의인으로 나올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단이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고 그것을 통해 성결된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이끄셨지요.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참된 의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욥과 같은 시험을 통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렇다 해서 염려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그런 시험을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마음 그릇을 보시고 감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시기 때문입니다(고전 10:13).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욥은 능히 시험을 감당할 줄 아시기에 허락하신 것입니다. 결국 욥은 자신도 몰랐던 마음속 깊이 숨겨져 있던 악을 발견하여 버리고 참된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시험을 통과하여 좋은 그릇이 되자 하나님께서는 예전과 비교할 수 없는 더 큰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3. 진실한 사람을 찾아 축복하시는 하나님
진리 자체이신 하나님께서는 진실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런 사람을 발견하면 존귀한 사람으로 높이시고 영화로운 관을 씌워 주시지요. 욥처럼 의로운 사람이 되어 자기의 행사를 돌아보아 항상 하나님 앞에 흠과 티가 없이 깨끗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행사란 ‘습관을 좇아 행하는 행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을 걷든지 무엇을 계획하거나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 온전한 의인을 원하시고 축복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욥처럼 어려운 일에 부딪혔다면 끝까지 하나님 앞에 원망하지 않고 의롭게 행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감사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 해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진실한 신앙을 갖기 원하시지요. 이러한 참된 의인을 만들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결국 욥은 악의 모양까지도 벗어 버린 온전한 의인으로서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 깊은 영적 단계로 들어가 예전보다 갑절이나 축복을 받았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갑절의 축복을 받으면 얼마 되지 않지만, 재벌 총수가 갑절의 축복을 받는다면 어마어마하지요. 연단을 받기 전에도 욥은 동방에서 제일가는 거부였으니 그 갑절이면 엄청난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합당한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한 마음만 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이러한 축복을 받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 편에 문제가 있기 때문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불평, 원망, 탄식, 슬픔, 염려 등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악의 모양들을 버리는 일입니다. 죄악을 모두 버리고 하나님께서 보실 때 진정 의로운 마음이 되면 말할 수 없는 기쁨이 오고 놀라운 하나님의 축복이 임합니다. 흠도 티도 없는 영의 마음으로 기도하면 그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되어 신속하게 응답과 축복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순전하고 정직하며 악에서 떠난 진정한 의인이 되어 살아 계신 하나님을 항상 만나고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이 와도 끝까지 감사할 수 있는 ( ) 사람을 찾으신다. 자기의 모든 것, 심지어 목숨을 잃는다 해도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진실한 신앙을 갖기 원하신다.
2. 욥은 ( )의 모양까지도 벗어 버린 온전한 의인으로서 어떤 상황에도 하나님을 백 퍼센트 신뢰할 수 있는 깊은 영적 단계로 들어가 예전보다 갑절이나 축복을 받았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85~9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정직한 사람이란?
정직의 사전적 의미는 거짓이나 꾸밈이 없이 마음이 바르고 곧음을 말한다. 영적인 의미는 타인을 속이지 않는 것뿐만 아니라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을 뜻한다.
자신과 약속한 것일지라도 그 약속을 지키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인정하신다. 자신의 마음을 속이지 않는 사람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거나 나쁜 일을 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2019-09-27
제39과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
마태복음 5:10~12
읽을말씀 : 마태복음 5:10~12 | 외울말씀 : 마태복음 5:10 ㅣ 참고 말씀: 디모데후서 3:12
교육목표 :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승리하여 하늘의 상급과 영광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핍박이란 ‘상대를 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원수 마귀 사단은 어찌하든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핍박하지요.
이러한 핍박이 없으면 신앙생활을 더 잘할 것 같지만 오히려 신앙이 나태해지고 미지근해질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아도 믿음의 선진들이 의를 위해 핍박받고 순교할 때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지요.
1.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기까지
로마제국의 역사를 보면, 수많은 성도가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원형극장에서 사자 밥이 되었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이 덤벼들어도 믿음 있는 성도들은 천국 소망 가운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찬양하며 죽어갔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찬송하며 죽어갈까? 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기에 죽음도 불사하고 믿음을 지키는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차츰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마침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하기에 이릅니다.
이처럼 의를 위해 핍박을 받아 성도들이 사자 밥이 되는 피 흘림이 있었기에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전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교자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천국에서 큰 상으로 갚아 주시며 빛나는 영광 가운데 거하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2. 신앙생활을 하면서 핍박받는 경우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적당히 신앙생활 하면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지켜 술을 마시지 않고 주일을 지키며 진리대로 행하니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핍박을 통해 자신의 신앙이 점검되고 더욱 견고해지기 때문에 진리 가운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핍박을 받는 것일까요?
첫째로, 하나님 일을 이루어갈 때 시기 질투로 인해 핍박이 오기도 합니다.
누가 잘되는 것을 보면 시기가 일어나 왜곡하여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거나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직접 확인해 보지도 않은 채 ‘정말 그런가?’ 하며 동조하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지요.
예전에 우리 교회도 크게 부흥하니까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거짓 소문을 퍼뜨리며 훼방하였습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몹시 핍박을 받았지만, 조금도 미워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끝까지 의를 지키고 선 가운데 행하며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선한 방법으로 해결하시며 오히려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44절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으니 믿음의 형제끼리 시기하고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를 미워하고 감정을 품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힘들게 할 뿐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마음에 평안이 임하고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허락하신 핍박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십니다. 가령 지혜가 부족한 사람을 더 지혜롭게 하기 위해 핍박을 허락하시기도 하지요. 핍박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한 꾀를 동원하여 잘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정도를 좇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는 불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선한 지혜를 주심으로 세상의 악한 지혜를 이기고 더 크게 영광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런가 하면 큰 그릇을 만들어 축복을 주시기 위해 핍박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적장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왕의 시기 질투로 인해 곳곳으로 고달프게 피해 다니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지요.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울왕을 피해 다녔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큰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지요.
이 외에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어 핍박을 허락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있었습니다. 이때 사도 외에는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곳곳으로 피해 흩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널리 전파된 것을 볼 수 있지요.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당했지만 그곳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이루며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뜻에 따라 허락하신 핍박을 잘 받으면 더 훌륭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크게 펼치는 것을 봅니다.
셋째로,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집안 살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식사 준비도 적당히 한다면 가족이 싫어할 것입니다. 또 직장에 다니면서 교회 일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회사 일은 소홀히 한다면 직장 상사나 동료가 좋아하지 않지요. 교회 다니면서도 덕이 되지 않고 손가락질만 받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핍박을 자초하고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않고 지혜롭지 못하여 핍박받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하겠습니다.
3. 핍박을 이기고 축복을 받으려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핍박받는 사람은 왜 핍박을 받는지 깨우쳐서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의 잘못으로 핍박이 왔다면 당연히 부족한 부분을 고쳐 나가야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는데도 핍박이 온다면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한 다음에는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핍박을 받아 불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대로 행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악으로 대항하지 않고 끝까지 선으로 대할 때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지요. 악을 버리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핍박을 받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진리 가운데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자신을 심히 핍박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기도하며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하고 용서하셨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지요(눅 23:34). 우리도 선 가운데 용서하며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자기 감정에 치우쳐 악을 악으로 갚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핍박받는 일이 없도록 자기의 본분을 다하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핍박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통과하여 하늘의 상급과 영광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만일 자신의 ( )으로 핍박이 왔다면 당연히 부족한 부분을 고쳐나가야 핍박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 )를 위하여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는데도 핍박이 온다면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된다.
2.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핍박을 받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77~8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폴리갑’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자 사도 요한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폴리갑은 한 번만 주님을 부인하고 황제를 주라 고백하면 살려 주겠다는 로마 관리의 말에 “내 평생 동안 주님이 나를 한 번도 부인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찌 주님을 부인하겠습니까?” 하며 단호히 거절했다.
결국 그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가 되심을 고백함으로 화형당했다.
그러나 타오르는 불꽃도 그의 주를 향한 믿음을 빼앗지 못했다.
교육목표 : 의를 위해 받는 핍박을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승리하여 하늘의 상급과 영광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핍박이란 ‘상대를 괴롭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생을 얻고 천국에 들어가기 때문에 원수 마귀 사단은 어찌하든 믿음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며 핍박하지요.
이러한 핍박이 없으면 신앙생활을 더 잘할 것 같지만 오히려 신앙이 나태해지고 미지근해질 수 있습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아도 믿음의 선진들이 의를 위해 핍박받고 순교할 때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이 전파되었지요.
1.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기까지
로마제국의 역사를 보면, 수많은 성도가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원형극장에서 사자 밥이 되었습니다. 굶주린 사자들이 덤벼들어도 믿음 있는 성도들은 천국 소망 가운데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찬양하며 죽어갔습니다.
로마 시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두려움 없이 찬송하며 죽어갈까? 그들이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기에 죽음도 불사하고 믿음을 지키는가?’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면서 차츰 기독교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마침내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기독교를 공인하기에 이릅니다.
이처럼 의를 위해 핍박을 받아 성도들이 사자 밥이 되는 피 흘림이 있었기에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로마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었고 전 세계로 복음이 전파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순교자들의 피가 헛되지 않도록 천국에서 큰 상으로 갚아 주시며 빛나는 영광 가운데 거하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2. 신앙생활을 하면서 핍박받는 경우들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만일 우리가 적당히 신앙생활 하면 핍박을 받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을 지켜 술을 마시지 않고 주일을 지키며 진리대로 행하니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이러한 핍박을 통해 자신의 신앙이 점검되고 더욱 견고해지기 때문에 진리 가운데 믿음으로 승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 핍박을 받는 것일까요?
첫째로, 하나님 일을 이루어갈 때 시기 질투로 인해 핍박이 오기도 합니다.
누가 잘되는 것을 보면 시기가 일어나 왜곡하여 잘못된 소문을 퍼뜨리거나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 소문을 듣고 직접 확인해 보지도 않은 채 ‘정말 그런가?’ 하며 동조하고 수군거리는 사람도 있지요.
예전에 우리 교회도 크게 부흥하니까 시기 질투하는 사람들이 거짓 소문을 퍼뜨리며 훼방하였습니다.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몹시 핍박을 받았지만, 조금도 미워하지 않고 그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끝까지 의를 지키고 선 가운데 행하며 믿음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겨드렸더니 하나님께서는 선한 방법으로 해결하시며 오히려 축복으로 갚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태복음 5장 44절에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으니 믿음의 형제끼리 시기하고 미워해서는 안 됩니다. 상대를 미워하고 감정을 품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힘들게 할 뿐입니다.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다면 마음에 평안이 임하고 진리 안에서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의 뜻 가운데 허락하신 핍박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십니다. 가령 지혜가 부족한 사람을 더 지혜롭게 하기 위해 핍박을 허락하시기도 하지요. 핍박을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터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악한 꾀를 동원하여 잘되는 것 같아도 결국은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반면에 정도를 좇는 사람들은 그 순간에는 불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선한 지혜를 주심으로 세상의 악한 지혜를 이기고 더 크게 영광 돌리는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런가 하면 큰 그릇을 만들어 축복을 주시기 위해 핍박을 허락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윗은 블레셋 적장 골리앗을 쓰러뜨리고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사울왕의 시기 질투로 인해 곳곳으로 고달프게 피해 다니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지요.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사울왕을 피해 다녔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을 큰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었지요.
이 외에도 하나님의 특별하신 뜻이 있어 핍박을 허락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예루살렘에 큰 핍박이 있었습니다. 이때 사도 외에는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유대와 사마리아 곳곳으로 피해 흩어졌습니다. 이로 인해 복음이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이르기까지 널리 전파된 것을 볼 수 있지요.
사도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당했지만 그곳에서 하나님과 깊은 교통을 이루며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뜻에 따라 허락하신 핍박을 잘 받으면 더 훌륭한 그릇이 되어 하나님의 뜻을 크게 펼치는 것을 봅니다.
셋째로,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받는 핍박이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 일을 한다고 하면서 집안 살림을 제대로 하지 않고 식사 준비도 적당히 한다면 가족이 싫어할 것입니다. 또 직장에 다니면서 교회 일은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회사 일은 소홀히 한다면 직장 상사나 동료가 좋아하지 않지요. 교회 다니면서도 덕이 되지 않고 손가락질만 받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핍박을 자초하고 하나님 영광을 가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본분을 다하지 않고 지혜롭지 못하여 핍박받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하겠습니다.
3. 핍박을 이기고 축복을 받으려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핍박받는 사람은 왜 핍박을 받는지 깨우쳐서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만일 자신의 잘못으로 핍박이 왔다면 당연히 부족한 부분을 고쳐 나가야 핍박을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를 위하여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는데도 핍박이 온다면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한 다음에는 세상과 구별되게 살아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가족이나 친척에게 핍박을 받아 불화할 수도 있습니다. 이때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진리대로 행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악으로 대항하지 않고 끝까지 선으로 대할 때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지요. 악을 버리고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어둠이 물러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핍박을 받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것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진리 가운데 화평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자신을 심히 핍박하는 사람이 있을지라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기도하며 축복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하고 용서하셨습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을 위하여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셨지요(눅 23:34). 우리도 선 가운데 용서하며 핍박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자기 감정에 치우쳐 악을 악으로 갚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10~12절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핍박받는 일이 없도록 자기의 본분을 다하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핍박은 기쁨과 감사함으로 통과하여 하늘의 상급과 영광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만일 자신의 ( )으로 핍박이 왔다면 당연히 부족한 부분을 고쳐나가야 핍박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 )를 위하여 기도하고 금식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는데도 핍박이 온다면 기뻐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면 된다.
2.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과정에서 핍박을 받는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77~8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폴리갑’
서머나 교회의 감독이자 사도 요한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폴리갑은 한 번만 주님을 부인하고 황제를 주라 고백하면 살려 주겠다는 로마 관리의 말에 “내 평생 동안 주님이 나를 한 번도 부인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찌 주님을 부인하겠습니까?” 하며 단호히 거절했다.
결국 그는 예수 그리스도만이 주가 되심을 고백함으로 화형당했다.
그러나 타오르는 불꽃도 그의 주를 향한 믿음을 빼앗지 못했다.
2019-09-20
제38과당세에 완전한 자
창세기 6:5~12
읽을말씀 : 창세기 6:5~12 | 외울말씀 : 창세기 6:5 ㅣ 참고 말씀: 베드로전서 2:1~2
교육목표 : 의인 노아처럼 믿음으로 세상의 헛된 욕심과 모든 죄악을 버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성경을 보면 노아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좋을 대로 살며 우상을 숭배하며 방탕한 삶으로 심히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며 사람의 가치와 본분을 잃어버렸지요.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심판하셨고 당세에 완전한 자라 인정받은 노아와 그 가족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과연 의인 노아는 어떠한 사람이었을까요?
1. 당세에 완전한 의인 노아
창세기 6장 5~6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했습니다. 이는 모든 혈육 있는 사람의 행위가 패괴하고 강포가 가득하였기 때문이지요. 패괴하다는 것은 부숴지고 무너짐 즉 타락한 것을 말하고, 강포는 완강하고 포악한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도 패괴한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의 패괴와 강포가 한계를 넘어서면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시며 심판하십니다. 노아 때는 이 세상을 물로, 아브라함 때는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셨지요. 앞으로는 백보좌 심판을 통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알곡은 천국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지옥불에 던지게 됩니다.
노아 때 심판을 면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세에 의인 노아와 가족뿐이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하신 말씀대로(창 6:9) 노아는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았습니다. 그 때문에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도 지킴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노아가 의로운 삶의 본을 보였기에 그의 가족들도 심판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노아에게 속해 있었다는 사실이 심판을 면한 가장 큰 이유이지만 그들 역시 노아의 말에 순종하며 하나님 뜻을 좇아 살고자 했습니다. 아무리 노아의 가족이라 해도 노아가 전하는 진리를 따르지 않고 세상을 사랑했다면 구원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떤 사람이 노아와 같은 의인일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해 보일 수 있으나 진실하게 법을 준수하고 정직하게 살며 모든 삶에 성실한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들은 이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방탕하게 살지 않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어 천국을 소유하였기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내를 내 몸과 같이, 남편을 그리스도와 같이 섬기며, 주 안에서 자녀를 잘 양육하고 자녀로서 부모를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의인이 되면 결국 노아와 같이 당세에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위해,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여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설령 어려움을 당했다 해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피할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2. 의인을 지키며 구원하시는 하나님
야곱의 아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범사에 형통하였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에서도 형통했지요. 오히려 합력해 선을 이룸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실라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깊은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큰 지진을 일으켜 감옥 문을 여시고 착고도 풀어 주셨습니다.
이방인 고넬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제에 힘쓰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니 그와 가족까지 구원해 주셨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에게 동일하게 환상을 보여 주고 성령의 역사로 서로 만나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령을 받아 구원에 이르도록 축복해 주셨지요. 하나님은 이렇게 의로운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포하고 패괴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 모든 계획이 얼마나 악합니까?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결코 지어서는 안 될 죄들을 짓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만들지요. 세상 풍조를 버리지 않으면 죄악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피 흘리신 것도 죄인 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고 의롭게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죄악이 가득 차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해도 우리는 믿음으로 의인이 되어 구원은 물론 영원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려면
1)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에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했습니다. 신령한 젖이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배우지 않고 깨닫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며 귀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선에 속하고 악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선에 속하려면 그와 반대되는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악독한 것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바른 소리를 듣고 마음에 담아 심비에 새기고 믿음으로 행해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2) 각종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는 온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고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썩어지지만, 하나님 말씀만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이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의 떡을 떼며, 구제하고 서로 돌아보아 고아와 과부를 살피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3~4절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즉 외모를 단장하려 하지 말고 속사람을 단장하라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9~10절에도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했고, 디모데전서 6장 8절에도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먹는 것, 입는 것, 꾸미는 것, 모든 것이 흠이 되지 않을 정도이면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각종 현란한 것들이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고, 탐심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에 물들게 하여 사망의 길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3)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말씀합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온전하신 것처럼 마음의 죄악을 버리고 거룩하고 온전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습니다(벧전 1:16).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하고 온전하면 하나님 성품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데 성령의 열매가 맺힌 정도에 따라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는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믿음으로 세상의 헛된 욕심과 모든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의인이 되어 세세토록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도 노아가 지킴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2.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②
③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65~7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노아의 방주’(창세기 6:14~16)
노아의 방주는 길이 150미터, 폭 25미터, 높이 15미터 정도의 거대한 규모로 지금으로부터 44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대로 설계되었기에 노아의 여덟 식구와 수많은 종류의 동물이 40일간의 홍수를 견뎌내고 일 년 이상 방주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방주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은 구원을 의미한다.
교육목표 : 의인 노아처럼 믿음으로 세상의 헛된 욕심과 모든 죄악을 버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성경을 보면 노아 시대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좋을 대로 살며 우상을 숭배하며 방탕한 삶으로 심히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정반대의 삶을 살며 사람의 가치와 본분을 잃어버렸지요.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심판하셨고 당세에 완전한 자라 인정받은 노아와 그 가족만이 살아남았습니다. 과연 의인 노아는 어떠한 사람이었을까요?
1. 당세에 완전한 의인 노아
창세기 6장 5~6절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했습니다. 이는 모든 혈육 있는 사람의 행위가 패괴하고 강포가 가득하였기 때문이지요. 패괴하다는 것은 부숴지고 무너짐 즉 타락한 것을 말하고, 강포는 완강하고 포악한 것을 뜻합니다.
오늘날도 패괴한 일들이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세상의 패괴와 강포가 한계를 넘어서면 하나님께서는 한탄하시며 심판하십니다. 노아 때는 이 세상을 물로, 아브라함 때는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셨지요. 앞으로는 백보좌 심판을 통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 알곡은 천국에 들이시고, 쭉정이는 지옥불에 던지게 됩니다.
노아 때 심판을 면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당세에 의인 노아와 가족뿐이었습니다.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하신 말씀대로(창 6:9) 노아는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물들지 않고 꿋꿋이 하나님을 향한 마음을 지키며 진리 안에 살았습니다. 그 때문에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도 지킴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한편 노아가 의로운 삶의 본을 보였기에 그의 가족들도 심판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노아에게 속해 있었다는 사실이 심판을 면한 가장 큰 이유이지만 그들 역시 노아의 말에 순종하며 하나님 뜻을 좇아 살고자 했습니다. 아무리 노아의 가족이라 해도 노아가 전하는 진리를 따르지 않고 세상을 사랑했다면 구원의 은혜를 입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어떤 사람이 노아와 같은 의인일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해 보일 수 있으나 진실하게 법을 준수하고 정직하게 살며 모든 삶에 성실한 사람들이 여기에 속합니다. 이들은 이 세상의 즐거움을 위해 방탕하게 살지 않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어 천국을 소유하였기에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아내를 내 몸과 같이, 남편을 그리스도와 같이 섬기며, 주 안에서 자녀를 잘 양육하고 자녀로서 부모를 공경하며 이웃을 사랑합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의인이 되면 결국 노아와 같이 당세에 완전한 의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위해, 구원의 방주를 예비하여 어려움을 당하지 않게 하십니다. 설령 어려움을 당했다 해도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피할 길을 열어 주시는 것입니다.
2. 의인을 지키며 구원하시는 하나님
야곱의 아들 요셉은 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범사에 형통하였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지만 그곳에서도 형통했지요. 오히려 합력해 선을 이룸으로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이 실라와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깊은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하나님께서는 큰 지진을 일으켜 감옥 문을 여시고 착고도 풀어 주셨습니다.
이방인 고넬료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제에 힘쓰고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니 그와 가족까지 구원해 주셨습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에게 동일하게 환상을 보여 주고 성령의 역사로 서로 만나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성령을 받아 구원에 이르도록 축복해 주셨지요. 하나님은 이렇게 의로운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푸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오늘날도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을 정도로 강포하고 패괴한 세대가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과 생각, 모든 계획이 얼마나 악합니까?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결코 지어서는 안 될 죄들을 짓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만들지요. 세상 풍조를 버리지 않으면 죄악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믿음으로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피 흘리신 것도 죄인 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고 의롭게 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죄악이 가득 차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수밖에 없는 세상이 되었다 해도 우리는 믿음으로 의인이 되어 구원은 물론 영원한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려면
1) 신령한 젖을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1~2절에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했습니다. 신령한 젖이란 하나님 말씀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고 배우지 않고 깨닫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사모하며 귀 기울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선에 속하고 악은 버리라’는 것입니다. 선에 속하려면 그와 반대되는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악독한 것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바른 소리를 듣고 마음에 담아 심비에 새기고 믿음으로 행해야만 승리할 수 있습니다.
2) 각종 세상의 유혹에 물들지 않는 온전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모든 고운 것도 아름다운 것도 썩어지지만, 하나님 말씀만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초대 교회 성도들과 같이 모이기를 힘쓰고 사랑의 떡을 떼며, 구제하고 서로 돌아보아 고아와 과부를 살피며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3~4절에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즉 외모를 단장하려 하지 말고 속사람을 단장하라는 말씀입니다.
디모데전서 2장 9~10절에도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이것이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들에게 마땅한 것이니라” 했고, 디모데전서 6장 8절에도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먹는 것, 입는 것, 꾸미는 것, 모든 것이 흠이 되지 않을 정도이면 자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의 각종 현란한 것들이 세상을 사랑하게 만들고, 탐심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에 물들게 하여 사망의 길로 이끌어가기 때문입니다.
3)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말씀합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고 온전하신 것처럼 마음의 죄악을 버리고 거룩하고 온전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습니다(벧전 1:16).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하고 온전하면 하나님 성품과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게 됩니다. 그러면 성령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데 성령의 열매가 맺힌 정도에 따라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는지 분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신령한 젖을 사모하여 믿음으로 세상의 헛된 욕심과 모든 죄악을 버리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의인이 되어 세세토록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온 세상을 물로 쓸어버리는 무서운 심판 가운데서도 노아가 지킴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2. 당세에 완전한 자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②
③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65~76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노아의 방주’(창세기 6:14~16)
노아의 방주는 길이 150미터, 폭 25미터, 높이 15미터 정도의 거대한 규모로 지금으로부터 4400여 년 전에 만들어졌다.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대로 설계되었기에 노아의 여덟 식구와 수많은 종류의 동물이 40일간의 홍수를 견뎌내고 일 년 이상 방주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여기서 방주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뜻하며 방주 안에 들어가는 것은 구원을 의미한다.
2019-09-13
제37과요동하지 말라
사사기 9:7~15
읽을말씀 : 사사기 9:7~15 | 외울말씀 : 잠언 4:27 ㅣ 참고 말씀: 에베소서 6:5~7
교육목표 : 참된 의인이 되기 위해 영적으로 요동치 않고 자기 분수와 위치를 지키며 맡은 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약방의 감초는 뿌리에 단맛이 있어서 다른 한약재와 달리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단맛이 비위를 돕고 다른 약재의 작용을 부드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감초라도 환자의 증상에 따라 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감초는 체내에 염분과 수분을 축적시켜서 고혈압이나 심장병에는 좋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한약재 중에도 들어가야 할 곳과 들어가서는 안 될 곳이 있습니다. 들어가야 할 곳에 들어가면 좋은 결과를 얻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부작용이나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1. 요동하지 않은 나무들과 가시나무 비유
사사기 9장에는 기드온의 아들 요담이 세겜 사람들을 향해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가시나무의 비유를 들어 외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배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미디안 족속에게 7년간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고 3백 명의 군사로 수많은 미디안 사람들을 물리쳐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에게 자신들을 다스려 줄 것을 요청하지만 그는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삿 8:23) 하며 거절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죽은 뒤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왕이 되려는 욕심으로 음모를 꾸몄습니다.
아비멜렉은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세겜 사람들을 회유하여 자금을 마련한 후 그 돈으로 불량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다음 아버지의 집으로 찾아가 자신의 이복형제 칠십 명을 한꺼번에 몰살하였습니다. 다행히 기드온의 막내아들 요담만은 몰래 숨어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을 등에 업고 왕이 되자,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요담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세겜 남쪽에 있는 그리심산 꼭대기로 올라가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와 가시나무를 비유하여 세겜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나무들이 그들의 왕을 뽑으려고 할 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요동하지 않고 전부 왕이 되는 것을 사양하였지만, 아무 쓸모없는 가시나무만 자기 분수도 모른 채 교만하여 왕이 되고자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곧 기드온과 그의 아들들은 백성의 요청에도 왕위를 탐내지 않았지만 오히려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악한 방법으로 왕이 된 것을 비유한 것이지요.
물론 이 일 때문에 하나님의 보응이 임하여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세겜 사람들은 도리어 아비멜렉의 손에 진멸되었고, 아비멜렉 역시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머리를 맞아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데 이에서 벗어나니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2. 각자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
모든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일과 도리가 있습니다. 도리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길을 말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섬기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나이 어린 사람은 웃어른을 공경하는 등 사람이 지켜야 할 바른길을 갈 때 도리를 좇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해야 할 도리가 있고 남편 혹은 아내로서의 도리가 있습니다.
또한 주의 종으로서 도리가 있고, 양 떼로서의 도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의 종이라면 성도들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전히 진리 안에 살도록 깨우쳐 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범사에 천국 소망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양 떼 편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변화되어 의롭고 정결한 사람이 되며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이 도리이지요.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진리 안에서 바르게 양육하고, 자녀 역시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도리인 것입니다(엡 6장).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머리로 섬기고 가정을 돌아보며, 남편은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고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같이 해야 하지요(엡 5장).
하나님께서는 상하 관계 도리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먼저 아랫사람에 대해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엡 6:5~7).
그리고 윗사람에 대해서는 골로새서 4장 1절에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으며, 참된 의인이 되려면 자신의 도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3. 요동하지 않는 신앙생활
자신의 위치와 도리를 지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하지만 교회 모든 조직내에서 꼭 필요한 사항입니다. 몸의 지체 중에 어떤 것은 소중하고 어떤 것은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의 사명을 소중히 여기며 주어진 일에 충성할 때 모든 일을 화평 가운데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한 몸을 이루는 소중한 지체들입니다. 그러니 서로 쓸데없다하거나 다른 지체를 마음 아프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며 혹여 상대에게 허물이 있다 해도 사랑으로 덮어 주고 누가 칭찬을 받으면 함께 기뻐하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누가 아파하면 기도와 금식으로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감람나무는 자기를 왕으로 삼으려 해도 그 자리를 사양하며 전혀 요동치 않습니다. 무화과나무도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였고, 포도나무 역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면서 왕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분수를 모르는 가시나무만큼은 왕이 되라는 요청에 요동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자신을 알고 본분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분야가 다 소중합니다. 다만 그 분야에서 어떻게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느냐가 중요하며 행한 대로 상급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요동하지 않고 자기 위치를 잘 지킴으로 모든 것이 아름답고 온전하게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4. 기타 요동하지 말아야 할 분야들
첫째,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반석에 서면 어떤 시험 환난이 오더라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곧장 그 길을 갈 수 있고, 원수 마귀 사단의 유혹을 받지 않고 항상 승리할 수 있습니다.
둘째, 기도할 때에도 요동하지 말고 습관을 좇아 해야 합니다. 충만하고 기쁠 때에는 기도하고, 피곤하고 졸리면 기도를 쉰다거나 평안할 때는 기도하지 않다가 시험 환난이 오면 그때서야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되 응답을 받기 위해서도 요동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약 1:6~8).
셋째, 사랑하는 데에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번 사랑했으면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으니 우리도 요동하거나 변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중심에서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행함의 열매가 나옵니다.
넷째, 충성과 봉사하는 데에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결코 요동하지 않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사자 굴이나 풀무 불에 던져진다 해도 진리를 지켰지요. 우리도 성결한 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갖기까지 요동하지 말고 사명 감당을 잘하며 열심히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요동하여 자기 형제를 죽이고 악한 방법으로 왕위에 오른 아비멜렉을 요담은 무엇에 비유하였을까요?
2.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요동하지 말아야 할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55~6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기드온’
이스라엘의 다섯 번째 사사이다.
바알제단을 뒤엎고 아세라상을 찍어 버린 계기로 여룹바알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전쟁을 위해 용사를 모집하자 3만 2천 명이 자원하게 된다. 이때 기드온은 물을 손으로 떠서 핥아먹는 3백 명만 선발하여 전쟁에 나간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적진에서 한 미디안 군사가 그 동료에게 꿈 이야기하는 것을 엿듣게 함으로 승리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주셨다. 마침내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단 3백 명으로 13만 5천 명을 물리쳐 대승하였고,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교육목표 : 참된 의인이 되기 위해 영적으로 요동치 않고 자기 분수와 위치를 지키며 맡은 바 사명을 잘 감당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약방의 감초는 뿌리에 단맛이 있어서 다른 한약재와 달리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단맛이 비위를 돕고 다른 약재의 작용을 부드럽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감초라도 환자의 증상에 따라 금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즉 감초는 체내에 염분과 수분을 축적시켜서 고혈압이나 심장병에는 좋지 않다고 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한약재 중에도 들어가야 할 곳과 들어가서는 안 될 곳이 있습니다. 들어가야 할 곳에 들어가면 좋은 결과를 얻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부작용이나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1. 요동하지 않은 나무들과 가시나무 비유
사사기 9장에는 기드온의 아들 요담이 세겜 사람들을 향해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 가시나무의 비유를 들어 외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배경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범죄하여 미디안 족속에게 7년간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사사로 세우시고 3백 명의 군사로 수많은 미디안 사람들을 물리쳐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에게 자신들을 다스려 줄 것을 요청하지만 그는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삿 8:23) 하며 거절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이 죽은 뒤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왕이 되려는 욕심으로 음모를 꾸몄습니다.
아비멜렉은 자기 어머니의 고향인 세겜 사람들을 회유하여 자금을 마련한 후 그 돈으로 불량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그다음 아버지의 집으로 찾아가 자신의 이복형제 칠십 명을 한꺼번에 몰살하였습니다. 다행히 기드온의 막내아들 요담만은 몰래 숨어 화를 면할 수 있었습니다. 결국 아비멜렉이 세겜 사람들을 등에 업고 왕이 되자,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요담은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세겜 남쪽에 있는 그리심산 꼭대기로 올라가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와 가시나무를 비유하여 세겜 사람들에게 외칩니다. 나무들이 그들의 왕을 뽑으려고 할 때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포도나무는 요동하지 않고 전부 왕이 되는 것을 사양하였지만, 아무 쓸모없는 가시나무만 자기 분수도 모른 채 교만하여 왕이 되고자 했다는 내용입니다. 이는 곧 기드온과 그의 아들들은 백성의 요청에도 왕위를 탐내지 않았지만 오히려 첩의 아들인 아비멜렉이 악한 방법으로 왕이 된 것을 비유한 것이지요.
물론 이 일 때문에 하나님의 보응이 임하여 아비멜렉을 왕으로 세운 세겜 사람들은 도리어 아비멜렉의 손에 진멸되었고, 아비멜렉 역시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머리를 맞아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저마다 자신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데 이에서 벗어나니 불행한 결과를 초래한 것입니다.
2. 각자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
모든 사람은 자기 위치에서 해야 할 일과 도리가 있습니다. 도리란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바른길을 말합니다. 자녀는 부모를 섬기고 형제간에 우애하며 나이 어린 사람은 웃어른을 공경하는 등 사람이 지켜야 할 바른길을 갈 때 도리를 좇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부모로서 해야 할 도리가 있고 남편 혹은 아내로서의 도리가 있습니다.
또한 주의 종으로서 도리가 있고, 양 떼로서의 도리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주의 종이라면 성도들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전히 진리 안에 살도록 깨우쳐 주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범사에 천국 소망 가운데 승리하는 삶을 살도록 이끌어야 합니다. 양 떼 편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함으로 변화되어 의롭고 정결한 사람이 되며 온 집에 충성하는 것이 도리이지요.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진리 안에서 바르게 양육하고, 자녀 역시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성경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도리인 것입니다(엡 6장).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내는 남편을 머리로 섬기고 가정을 돌아보며, 남편은 가장으로서 가정을 지키고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같이 해야 하지요(엡 5장).
하나님께서는 상하 관계 도리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습니다. 먼저 아랫사람에 대해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하셨습니다(엡 6:5~7).
그리고 윗사람에 대해서는 골로새서 4장 1절에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지켜야 할 도리가 있으며, 참된 의인이 되려면 자신의 도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3. 요동하지 않는 신앙생활
자신의 위치와 도리를 지키는 것은 사회적으로도 중요하지만 교회 모든 조직내에서 꼭 필요한 사항입니다. 몸의 지체 중에 어떤 것은 소중하고 어떤 것은 소중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자기의 사명을 소중히 여기며 주어진 일에 충성할 때 모든 일을 화평 가운데 이루어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한 몸을 이루는 소중한 지체들입니다. 그러니 서로 쓸데없다하거나 다른 지체를 마음 아프게 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그런 일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야 하며 혹여 상대에게 허물이 있다 해도 사랑으로 덮어 주고 누가 칭찬을 받으면 함께 기뻐하고 격려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누가 아파하면 기도와 금식으로 도와주어야 할 것입니다.
본문을 보면 감람나무는 자기를 왕으로 삼으려 해도 그 자리를 사양하며 전혀 요동치 않습니다. 무화과나무도 “나의 단 것, 나의 아름다운 실과를 내가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였고, 포도나무 역시 “하나님과 사람을 기쁘게 하는 나의 새 술을 어찌 버리고 가서 나무들 위에 요동하리요” 하면서 왕이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나 분수를 모르는 가시나무만큼은 왕이 되라는 요청에 요동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자신을 알고 본분을 지키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일인지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분야가 다 소중합니다. 다만 그 분야에서 어떻게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느냐가 중요하며 행한 대로 상급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요동하지 않고 자기 위치를 잘 지킴으로 모든 것이 아름답고 온전하게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4. 기타 요동하지 말아야 할 분야들
첫째,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의 반석에 서면 어떤 시험 환난이 오더라도 좌우로 치우치지 않습니다. 믿음이 흔들리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이라면 곧장 그 길을 갈 수 있고, 원수 마귀 사단의 유혹을 받지 않고 항상 승리할 수 있습니다.
둘째, 기도할 때에도 요동하지 말고 습관을 좇아 해야 합니다. 충만하고 기쁠 때에는 기도하고, 피곤하고 졸리면 기도를 쉰다거나 평안할 때는 기도하지 않다가 시험 환난이 오면 그때서야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되 응답을 받기 위해서도 요동하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약 1:6~8).
셋째, 사랑하는 데에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한번 사랑했으면 변함없이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시기까지 우리에게 사랑을 주셨으니 우리도 요동하거나 변하지 말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중심에서 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반드시 행함의 열매가 나옵니다.
넷째, 충성과 봉사하는 데에도 요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결코 요동하지 않습니다.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사자 굴이나 풀무 불에 던져진다 해도 진리를 지켰지요. 우리도 성결한 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갖기까지 요동하지 말고 사명 감당을 잘하며 열심히 달려가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자기 위치를 망각하고 요동하여 자기 형제를 죽이고 악한 방법으로 왕위에 오른 아비멜렉을 요담은 무엇에 비유하였을까요?
2.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요동하지 말아야 할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55~64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기드온’
이스라엘의 다섯 번째 사사이다.
바알제단을 뒤엎고 아세라상을 찍어 버린 계기로 여룹바알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기드온이 미디안과 전쟁을 위해 용사를 모집하자 3만 2천 명이 자원하게 된다. 이때 기드온은 물을 손으로 떠서 핥아먹는 3백 명만 선발하여 전쟁에 나간다.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적진에서 한 미디안 군사가 그 동료에게 꿈 이야기하는 것을 엿듣게 함으로 승리에 대한 확신과 용기를 주셨다. 마침내 기드온은 미디안과의 전쟁에서 단 3백 명으로 13만 5천 명을 물리쳐 대승하였고, 40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2019-09-12
제0과추석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가을에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지요.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나라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드린 절기이지요.
한가위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308장 ---------------------- 다 같이
1.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 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 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2. 추수할 것 많은 때에 일꾼 심히 적으니
열심 있는 일꾼들을 주여 보내 주소서
3. 먼동 틀 때 일어나서 일찍 들에 나아가
황혼 때가 되기까지 추수하게 하소서
4. 거둬들인 모든 알곡 천국 창고 들인 후
주가 베풀 잔치 자리 우리 참여하겠네
후렴
무르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는데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아멘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로마서 12:18 -------------------- 인도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설 교 --------------------- 화목한 가정 -------------------- 설교자
2. 설교 예문
어느 노부부가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감정이 상해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지요. 식사 때가 되어 할아버지에게 상은 차려 주었지만 한쪽에 앉아 말없이 바느질만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전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내가 침묵하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지요. 그러다가 묘안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옷장을 열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또 여기저기 서랍을 뒤지면서 무엇인가를 찾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처음에는 못 본 척 했습니다. 그런데 옷장 속의 옷들과 서랍 안의 물건들까지 다 꺼내 놓으니 왜 그러는지 궁금해져 “도대체 뭘 찾는데 그래요?” 하고 퉁명스레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지 뭐야. 이제야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구려.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이제 화 풀어요.” 하며 사과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이내 마음이 풀어져 “제가 잘못했어요.” 하며 다시 웃음꽃이 피어났지요.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말씀했습니다. 화평이란, 비록 내가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맞춰 줄 수 있고, 내 믿음이 크다 하더라도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는 마음이며,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을 수 있고,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거나 상대의 단점을 보지 않음으로 어느 누구와도 걸리지 않는 마음이지요. 그러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두와 화평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되 생명까지 줄 수 있어야 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던 사도 바울처럼 내 것, 내 입장, 내 스타일 등을 고집하는 자아가 없어야 모든 사람과 화평할 수 있습니다.
화평을 이루면 무례히 행치 않고 자신을 드러내 자랑하지 않습니다. 중심에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한쪽으로 편벽되지도 않지요.
둘째로, 자기 의와 틀을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품과 자란 환경이 다릅니다. 교육받은 내용도 믿음의 분량도 다르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고 좋고 나쁨의 기준도 다릅니다. A는 옳다고 해도 B는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서로 자기 입장만 주장해서는 화평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내 입장, 내 기준에 맞추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섬길 때라야 화평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평을 이루는 과정에서 깨우쳐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 편에서는 감정도 없고 화평한데 상대가 나와 화평을 깬다.” 할 때 정말 상대의 탓인가 하는 점입니다. 고의는 아닌데 내가 화평을 깨는 원인 제공을 해 놓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지중에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럴 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나는 상대에게 감정이 없다.”며 고집한다면 결국 화평이 이뤄질 수가 없고,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봐도 내가 화평을 좇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화평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 화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가장 사랑이 넘치고 화목해야 할 곳이지요. 모두가 조금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해 준다면 상하고 얽혔던 감정도 쉽게 풀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를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섬기고 희생함으로 주 안에서 화평을 이루어 행복한 가정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고,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가정, 학교, 직장, 사업터, 일터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올해도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가을에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들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일 년 열두 달 365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지요.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나라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드린 절기이지요.
한가위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308장 ---------------------- 다 같이
1.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 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 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2. 추수할 것 많은 때에 일꾼 심히 적으니
열심 있는 일꾼들을 주여 보내 주소서
3. 먼동 틀 때 일어나서 일찍 들에 나아가
황혼 때가 되기까지 추수하게 하소서
4. 거둬들인 모든 알곡 천국 창고 들인 후
주가 베풀 잔치 자리 우리 참여하겠네
후렴
무르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는데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아멘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로마서 12:18 -------------------- 인도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설 교 --------------------- 화목한 가정 -------------------- 설교자
2. 설교 예문
어느 노부부가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감정이 상해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지요. 식사 때가 되어 할아버지에게 상은 차려 주었지만 한쪽에 앉아 말없이 바느질만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전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내가 침묵하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지요. 그러다가 묘안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옷장을 열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또 여기저기 서랍을 뒤지면서 무엇인가를 찾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처음에는 못 본 척 했습니다. 그런데 옷장 속의 옷들과 서랍 안의 물건들까지 다 꺼내 놓으니 왜 그러는지 궁금해져 “도대체 뭘 찾는데 그래요?” 하고 퉁명스레 묻는 것입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빙그레 웃으며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지 뭐야. 이제야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구려.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이제 화 풀어요.” 하며 사과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이내 마음이 풀어져 “제가 잘못했어요.” 하며 다시 웃음꽃이 피어났지요.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말씀했습니다. 화평이란, 비록 내가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맞춰 줄 수 있고, 내 믿음이 크다 하더라도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는 마음이며,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을 수 있고,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거나 상대의 단점을 보지 않음으로 어느 누구와도 걸리지 않는 마음이지요. 그러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두와 화평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되 생명까지 줄 수 있어야 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던 사도 바울처럼 내 것, 내 입장, 내 스타일 등을 고집하는 자아가 없어야 모든 사람과 화평할 수 있습니다.
화평을 이루면 무례히 행치 않고 자신을 드러내 자랑하지 않습니다. 중심에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한쪽으로 편벽되지도 않지요.
둘째로, 자기 의와 틀을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품과 자란 환경이 다릅니다. 교육받은 내용도 믿음의 분량도 다르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고 좋고 나쁨의 기준도 다릅니다. A는 옳다고 해도 B는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서로 자기 입장만 주장해서는 화평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내 입장, 내 기준에 맞추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섬길 때라야 화평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평을 이루는 과정에서 깨우쳐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 편에서는 감정도 없고 화평한데 상대가 나와 화평을 깬다.” 할 때 정말 상대의 탓인가 하는 점입니다. 고의는 아닌데 내가 화평을 깨는 원인 제공을 해 놓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지중에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럴 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나는 상대에게 감정이 없다.”며 고집한다면 결국 화평이 이뤄질 수가 없고,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봐도 내가 화평을 좇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화평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 화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가장 사랑이 넘치고 화목해야 할 곳이지요. 모두가 조금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해 준다면 상하고 얽혔던 감정도 쉽게 풀어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나를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섬기고 희생함으로 주 안에서 화평을 이루어 행복한 가정을 만드시기 바랍니다.
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고,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가정, 학교, 직장, 사업터, 일터를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셨을 뿐만 아니라, 올해도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19-09-06
제36과순종
사무엘상 15:22~23
읽을말씀 : 사무엘상 15:22~23 | 외울말씀 : 사무엘상 15:22 ㅣ 참고 말씀: 로마서 10:10
교육목표 : 믿음을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깨뜨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기쁨으로 순종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리는 힘이 바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은 마지못해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 명령을 기쁨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온전히 순종하는 차원이 되면 사람 생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행하게 되고 어떠한 환경도 초월하게 됩니다. 참된 의인은 이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1. 순종은 의인이 되기 위한 관문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사람이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의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마음을 할례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버리라’, ‘하지 말라’ 말씀하신 것은 버리고 하지 않으며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을 지켜 행하니 마음의 죄악을 버리고 의에 이르는 것이지요. 즉 성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으로 믿는 사람이 입술로 시인할 때 그것이 참이 되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로마서 2장 13절에도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했습니다.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할 때라야 의인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미워하지 말라’ 하셨으니 미움을 버리고, ‘시기하지 말라’ 하셨으니 시기하지 않으며,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원수도 사랑하며 하나님 말씀을 행함으로 순종하는 만큼 의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으로 믿어 순종이 온전히 이루어질수록 참된 의인의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2. 질서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할 때 축복
세상에는 주종 관계나 조직 사회와 같이 순종이 잘 이루어져야 할 분야가 많습니다. 질서 안에서 얼마나 순종이 잘 되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부모는 자녀를 주 안에서 올바르고 지혜롭게 잘 자라도록 가르쳐야 하고, 자녀는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여 빗나가지 않아야 하지요. 자녀가 부모님 말씀도 듣지 않고 늘 사고만 친다면 그 가정은 불행과 슬픔, 다툼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자녀가 주 안에서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사회에서도 귀히 쓰임을 받는다면 부모는 더할 나위없이 기쁠 것입니다.
사제지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의 입장에서는 제자가 깍듯이 스승을 존중하며 배운 것을 바로 깨우치고, 잘 양식 삼아 활용하며 타의 모범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회사 사장 역시 잘 순종하며, 성실하고 진실하며 지혜로워서 회사 발전에 기여하는 유능한 직원을 좋아하지요. 이처럼 질서를 좇아 순종할 때 모든 것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데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비진리를 좇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 나가는 모습을 보실 때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기 생명보다 귀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였을 때,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기쁘게 순종하는 아브라함이 무척 사랑스러우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의로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3.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
반면 사울왕처럼 불순종을 거듭하여 하나님께 싫어버린 바 된 사람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을 보면 그는 자기 생각 가운데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도 불순종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아말렉의 아각 왕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왔고, 기름진 양과 소는 남기고 가치 없고 천한 것만 멸하였습니다.
이러한 불순종으로 인해 사울왕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 받아 왕위가 다윗에게 넘어가고 말지요.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 하며 사울왕을 엄히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상 15:22).
그러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자기의 생각 때문에 순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입력된 지식과는 반대되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낮아져라 그러면 높아진다, 죽어져라 그러면 산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어 줘라 등의 말씀들을 보면 우리 생각과는 너무나 맞지 않지요.
이러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즉 내가 속한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마음도 맞춰 주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자신의 생각에 맞추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행하는 것이 바로 순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4. 순종하는 의인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길을 떠나려 하는데 갑자기 집안에 큰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아이구, 내 집에 문제가 생겼으니 어떻게 가나?’ 하고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 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작정했으니 가자.’ 하고 순종하면 그 뒷일은 하나님께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을 버리고 순종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룰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자기 생각이 앞서게 되면 불순종이 나올뿐더러 부부나 가족,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의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넓은 하나님 마음을 어찌 맞출 수가 있겠습니까. 로마서 8장 7~8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 자체이지만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이므로 순종치 않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오직 순종함으로 의인이 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지요. 사르밧 과부의 경우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가뭄이 매우 심하여 한 번 먹을 양식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그것으로 자기를 위해 떡 한 조각을 만들어 오라고 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면서 약속하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합니다(왕상 17:14).
엘리야의 요청은 보통 사람이 순종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르밧 과부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엘리야가 약속한 대로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양식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순종의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적인 생각을 깨뜨리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참된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시기 바랍니다.
교육목표 : 믿음을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철저히 깨뜨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기쁨으로 순종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순종하는 사람을 기뻐하시고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끌어내리는 힘이 바로 순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은 마지못해 억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그 명령을 기쁨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온전히 순종하는 차원이 되면 사람 생각으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도 행하게 되고 어떠한 환경도 초월하게 됩니다. 참된 의인은 이처럼 하나님 보시기에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1. 순종은 의인이 되기 위한 관문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른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사람이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 의에 이르지 못합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마음을 할례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갑니다. ‘버리라’, ‘하지 말라’ 말씀하신 것은 버리고 하지 않으며 ‘하라’, ‘지키라’ 하신 말씀들을 지켜 행하니 마음의 죄악을 버리고 의에 이르는 것이지요. 즉 성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으로 믿는 사람이 입술로 시인할 때 그것이 참이 되어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로마서 2장 13절에도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했습니다.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할 때라야 의인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미워하지 말라’ 하셨으니 미움을 버리고, ‘시기하지 말라’ 하셨으니 시기하지 않으며,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으니 원수도 사랑하며 하나님 말씀을 행함으로 순종하는 만큼 의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마음으로 믿어 순종이 온전히 이루어질수록 참된 의인의 자격을 갖추는 것입니다.
2. 질서 안에서 하나님께 순종할 때 축복
세상에는 주종 관계나 조직 사회와 같이 순종이 잘 이루어져야 할 분야가 많습니다. 질서 안에서 얼마나 순종이 잘 되느냐에 따라 결과도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행복한 가정을 이루려면 부모는 자녀를 주 안에서 올바르고 지혜롭게 잘 자라도록 가르쳐야 하고, 자녀는 부모님 말씀에 순종하여 빗나가지 않아야 하지요. 자녀가 부모님 말씀도 듣지 않고 늘 사고만 친다면 그 가정은 불행과 슬픔, 다툼이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자녀가 주 안에서 부모님의 말씀을 순종하여 사회에서도 귀히 쓰임을 받는다면 부모는 더할 나위없이 기쁠 것입니다.
사제지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스승의 입장에서는 제자가 깍듯이 스승을 존중하며 배운 것을 바로 깨우치고, 잘 양식 삼아 활용하며 타의 모범이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회사 사장 역시 잘 순종하며, 성실하고 진실하며 지혜로워서 회사 발전에 기여하는 유능한 직원을 좋아하지요. 이처럼 질서를 좇아 순종할 때 모든 것이 아름답게 이루어지는데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비진리를 좇지 않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 나가는 모습을 보실 때 얼마나 사랑스럽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기 생명보다 귀한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였을 때,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기쁘게 순종하는 아브라함이 무척 사랑스러우셨을 것입니다. 이러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의로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며 믿음의 조상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
3.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
반면 사울왕처럼 불순종을 거듭하여 하나님께 싫어버린 바 된 사람도 있습니다. 사무엘상 15장을 보면 그는 자기 생각 가운데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도 불순종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아말렉을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아말렉의 아각 왕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왔고, 기름진 양과 소는 남기고 가치 없고 천한 것만 멸하였습니다.
이러한 불순종으로 인해 사울왕은 결국 하나님께 버림 받아 왕위가 다윗에게 넘어가고 말지요. 그래서 사무엘 선지자가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 하며 사울왕을 엄히 책망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삼상 15:22).
그러면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사람이 자기의 생각 때문에 순종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을 보면 우리에게 입력된 지식과는 반대되는 것이 참으로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낮아져라 그러면 높아진다, 죽어져라 그러면 산다, 오른뺨을 때리면 왼뺨도 대어 줘라 등의 말씀들을 보면 우리 생각과는 너무나 맞지 않지요.
이러한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지 못하면 하나님의 마음에 맞추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에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합니다. 즉 내가 속한 가정이나 직장, 교회에서 눈에 보이는 사람의 마음도 맞춰 주지 못하고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찌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겠느냐는 뜻입니다.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 자신의 생각에 맞추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맞추어 행하는 것이 바로 순종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우쳐야 하겠습니다.
4. 순종하는 의인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길을 떠나려 하는데 갑자기 집안에 큰일이 생겼습니다. 그때 ‘아이구, 내 집에 문제가 생겼으니 어떻게 가나?’ 하고 자기 생각을 동원하여 가지 않는다면 하나님 일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나 ‘내가 하나님 앞에 작정했으니 가자.’ 하고 순종하면 그 뒷일은 하나님께서 합력해서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처럼 자기 생각을 버리고 순종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룰 수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점은 자기 생각이 앞서게 되면 불순종이 나올뿐더러 부부나 가족,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맞출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의 마음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크고 넓은 하나님 마음을 어찌 맞출 수가 있겠습니까. 로마서 8장 7~8절에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 자체이지만 공의 가운데 역사하시는 분이므로 순종치 않는 사람에게는 역사하실 수 없습니다. 오직 순종함으로 의인이 되는 만큼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형통하게 인도해 주시지요. 사르밧 과부의 경우만 보더라도 잘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가뭄이 매우 심하여 한 번 먹을 양식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가 그것으로 자기를 위해 떡 한 조각을 만들어 오라고 하는 것이었지요. 그러면서 약속하기를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나 여호와가 비를 지면에 내리는 날까지 그 통의 가루는 다하지 아니하고 그 병의 기름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합니다(왕상 17:14).
엘리야의 요청은 보통 사람이 순종하기에는 매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르밧 과부는 그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요? 엘리야가 약속한 대로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양식 걱정 없이 평안하게 살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순종의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인간적인 생각을 깨뜨리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참된 의인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