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TOTAL : 1473 PAGE : 31/105
2019-02-15
제7과와 보라
요한복음 1:45~49
읽을말씀 : 요한복음 1:45~49 | 외울말씀 : 고린도전서 1:17 ㅣ 참고 말씀: 디모데후서 4:2
교육목표 : 온 천하보다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전도에 힘씀으로 하늘에서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게 한다.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권능을 받아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유언이요,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행 1:8).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간곡한 뜻인 줄 알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까?’ 하며 전도를 어려운 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도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구원코자 하는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전도할 마음만 있으면 ‘와 보라’고 담대히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거나 인간의 지혜와 방법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전도가 힘든 것이지, 믿음이 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불타는 사람이라면 전도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1. 빌립이 전도한 나다나엘
요한복음 1장 45절을 보면 예수님을 만난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말합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앞으로 오실 메시아 곧 이스라엘의 왕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예수님을 만난 후 나다나엘에게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한 것입니다.
이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는데 이는 좋지 않은 의미로 질문한 것이 아닙니다. 나다나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는 사람이 감히 우러러볼 수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평소에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대하게 오실 메시아를 사모하고 있는데 바로 그분이 목수인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 하니 자신이 아는 지식과 상식에는 맞지 않아서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자 빌립은 질문하는 친구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말합니다. 자기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직접 그분을 찾아와서 들어 보라는 것이지요. 우리도 전도할 때 “와 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 전달하는 사람이 얼마큼 신뢰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그 말만 듣고도 상대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마음이 선한 사람이라면 “와 보라”고 할 때에 그 전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요동하게 됩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으로부터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말을 들었지만 선하기 때문에 친히 들어 보고자 예수님 앞에 나왔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하며 칭찬하셨지요. ‘참 이스라엘 사람’이란 믿는다고 하면서 입술로만 “주여 주여”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참된 믿음의 사람을 말합니다.
이에 나다나엘이 너무 놀라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하고 여쭙자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고 답하십니다.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것을 예수님께서 친히 눈으로 보셨다는 뜻이 아니라 보지 않으셨어도 이미 알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나다나엘은 자기를 처음 만났는데도 밝히 아시는 예수님께 이내 순복했습니다. 자기 중심을 아시고 더구나 자신을 직접 보신 것이 아니라,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이미 자신을 알아본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이 마음에 와 닿았지요. 그러니 감동함을 입어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중심의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빌립이 전도할 때에 “와 보라”고 권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빌립은 고대하던 메시아를 만난 기쁜 소식을 혼자만 간직할 수 없었지요.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 역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도,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고 사자밥이 되며 칼에 목 베임을 당해도 복음 전하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지요. 우리도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전도의 세 가지 유형
1)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넘치는 은혜와 뜨거움 속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고전 1:17).
전도는 말의 지혜나 능함에 있지 않고 성령의 충만함과 그 능력을 힘입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말에는 능치 못해도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 전도하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고 지속적인 전도의 열심 가운데 하나하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너무나 감사하여 만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뜨겁게 전하니 성령의 역사를 받아 결국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것입니다.
2)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 소망 가운데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불타는 마음으로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잘 정립되어 있지 않아 조리있게 전하지는 못하지만, 전도에 열심과 영혼을 사랑함이 눈물나도록 헌신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정에 못 이겨 점점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사랑하며, 아래로는 영혼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씀에 입각해서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자기 영혼에 참된 쉼을 줄 수 있는 주님을 만나 생명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나니 많은 영혼을 구원함으로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소망하여 나름대로 말씀을 정립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즉 말씀에 입각하여 분명한 뜻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니 영혼들이 그 말씀에 이끌리어 교회를 찾게 되지요.
이처럼 열정적으로 전도하며 무시로 영혼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은 하나님의 즐거움이요, 교회의 보배이며 성도들의 소중한 본보기가 됩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복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아 더욱 전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 행하고 심은 것이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가 되어 축복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면 천국의 축복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1) 천국의 처소 :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얼마나 영혼이 잘되었는가에 따라 천국의 처소가 달라집니다. 얼마나 죄를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렸느냐에 따라서 천국의 처소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2) 천국 집 : 얼마나 많은 영혼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했고, 하나님 앞에 각종 예물을 심었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에 따라서 천국 집이 지어집니다. 영원한 천국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시지만, 오직 한 가지 우리 손으로 지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각 사람이 영원히 거할 천국 집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영혼 구원과 각종 예물이 재료가 되어 천국 집의 크기가 결정되고 우리 마음에 맞춰 아름답게 건축되지요.
3) 천국의 상급 :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이 모두 천국의 상급으로 주어집니다. 몸에 장식품이나 천국 집의 장식들로 아름답게 꾸며지지요.
이처럼 장차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실 축복이 예비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우리가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는 것과, 영혼을 사랑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성전 건축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기뻐하시는지 알 수 있지요.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전도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얼마나 영혼이 잘되었는가에 따라 ( )가 달라진다.
2.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원했고 하나님 앞에 각종 예물을 심었느냐에 따라 ( )이 지어진다.
3.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이 ( )으로 주어진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는 하늘의 상급’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이 땅에서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들여 많은 사람을 전도하며 영혼 구원에 힘쓴 사람은 장차 천국에서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상급 중에서 전도 상이 가장 크다.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달아 주신 브로치를 보면,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지 알 수 있다.
천국에서는 많은 사람을 전도한 사람에게 경배를 드리기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자신의 면류관이요, 영광과 자랑이 되는 것이다.
교육목표 : 온 천하보다 한 영혼을 귀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전도에 힘씀으로 하늘에서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게 한다.
성령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권능을 받아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유언이요, 지상 최대의 명령입니다(행 1:8). 어떤 사람들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간곡한 뜻인 줄 알지만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영혼을 구원할 수 있을까?’ 하며 전도를 어려운 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전도는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과 구원코자 하는 열정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지요. 전도할 마음만 있으면 ‘와 보라’고 담대히 외칠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거나 인간의 지혜와 방법대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에게 전도가 힘든 것이지, 믿음이 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불타는 사람이라면 전도가 결코 어렵지 않습니다.
1. 빌립이 전도한 나다나엘
요한복음 1장 45절을 보면 예수님을 만난 빌립이 친구 나다나엘을 찾아가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말합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여러 선지자들을 통해 앞으로 오실 메시아 곧 이스라엘의 왕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예수님을 만난 후 나다나엘에게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메시아를 만났다고 전한 것입니다.
이에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하는데 이는 좋지 않은 의미로 질문한 것이 아닙니다. 나다나엘은 우리를 구원하러 오실 메시아는 사람이 감히 우러러볼 수도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평소에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위대하게 오실 메시아를 사모하고 있는데 바로 그분이 목수인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라 하니 자신이 아는 지식과 상식에는 맞지 않아서 질문한 것입니다.
그러자 빌립은 질문하는 친구 나다나엘에게 “와 보라”고 말합니다. 자기 말을 믿지 못하겠거든 직접 그분을 찾아와서 들어 보라는 것이지요. 우리도 전도할 때 “와 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에 전달하는 사람이 얼마큼 신뢰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냐에 따라 그 말만 듣고도 상대는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또 마음이 선한 사람이라면 “와 보라”고 할 때에 그 전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요동하게 됩니다.
나다나엘은 빌립으로부터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말을 들었지만 선하기 때문에 친히 들어 보고자 예수님 앞에 나왔지요. 그러자 예수님은 그를 가리켜 “보라 이는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하며 칭찬하셨지요. ‘참 이스라엘 사람’이란 믿는다고 하면서 입술로만 “주여 주여” 부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참된 믿음의 사람을 말합니다.
이에 나다나엘이 너무 놀라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하고 여쭙자 예수님께서는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에 보았노라”라고 답하십니다. 그가 무화과나무 아래 있었던 것을 예수님께서 친히 눈으로 보셨다는 뜻이 아니라 보지 않으셨어도 이미 알고 계셨다는 의미입니다.
나다나엘은 자기를 처음 만났는데도 밝히 아시는 예수님께 이내 순복했습니다. 자기 중심을 아시고 더구나 자신을 직접 보신 것이 아니라, 무화과나무 아래 있을 때 이미 자신을 알아본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이 마음에 와 닿았지요. 그러니 감동함을 입어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라고 중심의 고백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빌립이 전도할 때에 “와 보라”고 권유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빌립은 고대하던 메시아를 만난 기쁜 소식을 혼자만 간직할 수 없었지요. 복음의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 역시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혀도, 십자가에 거꾸로 달리고 사자밥이 되며 칼에 목 베임을 당해도 복음 전하는 것을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지요. 우리도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살펴보겠습니다.
2. 전도의 세 가지 유형
1)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넘치는 은혜와 뜨거움 속에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주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케 하려 하심이니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했습니다(고전 1:17).
전도는 말의 지혜나 능함에 있지 않고 성령의 충만함과 그 능력을 힘입어야 열매를 맺습니다. 말에는 능치 못해도 성령의 충만함을 힘입어 전도하니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되고 지속적인 전도의 열심 가운데 하나하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죽을 수밖에 없었고, 버림받을 수밖에 없었던 자신을 구원해 주신 하나님이 너무나 감사하여 만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뜨겁게 전하니 성령의 역사를 받아 결국 교회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는 것입니다.
2)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그 소망 가운데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불타는 마음으로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잘 정립되어 있지 않아 조리있게 전하지는 못하지만, 전도에 열심과 영혼을 사랑함이 눈물나도록 헌신적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 정에 못 이겨 점점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3)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을 사랑하며, 아래로는 영혼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말씀에 입각해서 전도하는 경우입니다
자기 영혼에 참된 쉼을 줄 수 있는 주님을 만나 생명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나니 많은 영혼을 구원함으로 주님의 기쁨이 되기를 소망하여 나름대로 말씀을 정립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합니다. 즉 말씀에 입각하여 분명한 뜻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니 영혼들이 그 말씀에 이끌리어 교회를 찾게 되지요.
이처럼 열정적으로 전도하며 무시로 영혼 구원을 위해 헌신하는 분들은 하나님의 즐거움이요, 교회의 보배이며 성도들의 소중한 본보기가 됩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주실 복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아 더욱 전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축복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셔서 모든 것을 감찰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자녀들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고,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십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에 가면 이 땅에서 행하고 심은 것이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가 되어 축복으로 주어집니다. 그러면 천국의 축복은 어떻게 주어지는 것일까요?
1) 천국의 처소 :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얼마나 영혼이 잘되었는가에 따라 천국의 처소가 달라집니다. 얼마나 죄를 버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렸느냐에 따라서 천국의 처소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2) 천국 집 : 얼마나 많은 영혼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했고, 하나님 앞에 각종 예물을 심었느냐에 따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그에 따라서 천국 집이 지어집니다. 영원한 천국의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예비하시지만, 오직 한 가지 우리 손으로 지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각 사람이 영원히 거할 천국 집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행한 영혼 구원과 각종 예물이 재료가 되어 천국 집의 크기가 결정되고 우리 마음에 맞춰 아름답게 건축되지요.
3) 천국의 상급 : 이 땅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이 모두 천국의 상급으로 주어집니다. 몸에 장식품이나 천국 집의 장식들로 아름답게 꾸며지지요.
이처럼 장차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주실 축복이 예비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얼마나 우리가 영의 사람, 온 영의 사람이 되는 것과, 영혼을 사랑하여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며, 성전 건축을 위해 헌신하는 것을 기뻐하시는지 알 수 있지요.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전도의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얼마나 영혼이 잘되었는가에 따라 ( )가 달라진다.
2. 우리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구원했고 하나님 앞에 각종 예물을 심었느냐에 따라 ( )이 지어진다.
3. 이 땅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린 것이 ( )으로 주어진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는 하늘의 상급’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
이 땅에서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들여 많은 사람을 전도하며 영혼 구원에 힘쓴 사람은 장차 천국에서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상급 중에서 전도 상이 가장 크다.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달아 주신 브로치를 보면,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지 알 수 있다.
천국에서는 많은 사람을 전도한 사람에게 경배를 드리기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자신의 면류관이요, 영광과 자랑이 되는 것이다.
2019-02-08
제6과전도(3) 복음을 전파하는 방법
디모데후서 4:2~5
읽을말씀 : 디모데후서 4:2~5 | 외울말씀 : 디모데후서 4:2 ㅣ 참고 말씀: 디모데후서 1:8
교육목표 :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한 대로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깨달아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한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8장에 나오는 로마의 감옥에서 풀려난 후, 네로 황제 치하에서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이때 순교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기록한 서신이 바로 에베소 교회를 치리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로서 디모데후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으로 낳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치 유언과 같은 마지막 당부를 합니다.
1. 복음 전파에 힘쓸 것을 강조한 사도 바울
디모데후서 4장 2절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전도자가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도의 할 일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전도인의 일을 하며 직무를 다하는 것임을 거듭 강조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예나 지금이나 복음을 전파하려 할 때는 원수 마귀가 갖가지 궤계로 방해하며, 죄악이 관영할수록 그 방법은 더욱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말을 들었듯이, 때로는 이방인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고난과 핍박이 더할수록 복음은 더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초대교회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목 베임을 당하고 사자 밥이 되는 등 순교를 당하기까지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했기에 오늘날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1장 7~8절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도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전도에는 꼭 이것만이 정도라고 할 수 있는 특별한 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영혼들을 대하면서 하나하나 체험해 가는 것이 자신만의 비결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방법을 모방하여 시작하지만 차츰 자신만의 방법이 터득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도의 능력을 받기 원한다면 먼저는 전도를 잘하는 분들을 따라다니며 열심히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요.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하는구나.” 하면서 배우고 익힌 후에 스스로 해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담대함과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다고 항상 배운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안 될 때도 결코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며 도전하다 보면 나름대로 방법이 생기고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할 때 어떤 사람의 말은 믿는 반면, 어떤 사람의 말은 흘려 넘기고 믿지 않기도 합니다. 평소에 농담이나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복음을 전파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신뢰를 쌓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복음을 전할 때는 마음의 문을 열고 믿으려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직후나 초신자 때는 복음을 전파하기에 더욱 쉽고 좋은 시기입니다. 직접 하나님을 만났고 또 초신자라 해도 은혜받고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함이 생기며 누구에게든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뜨거워지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전도하는 사람들 중에는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초신자 때 전도하기 쉬운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의 삶이 크게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수심이 가득했던 사람의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악한 말을 내던 입술이 선하고 아름답게 변하며, 섬기는 모습이 되는 등 매사에 성령의 충만함이 넘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변 사람들이 변화된 모습을 느끼고 있을 때 “당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행복하고 축복된 삶을 살 수 있어요.”라고 권면하면 상대의 마음이 끌리고 마음 문도 쉽게 열려 전도할 수 있지요.
그렇다고 누구나 초신자 때가 전도하기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신앙이 성장할수록 성경 말씀을 깨닫고 하늘로부터 지혜를 얻어 말씀의 권세도 커지며 상대에게 필요한 내용 또한 정확하게 성령의 주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초신자 때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을 전도할 때 무조건 “하나님만이 참 신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복을 받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생명의 지식이 부족함으로 인해서, 또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밝히 알지 못함으로 인해 서로 변론이 되어질 수 있지요.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은 만큼 상대의 잘못된 생각을 깨뜨릴 수 있고, 믿음과 생명을 심어 주어 전도할 수 있으니 초신자 때보다도 훨씬 전도하기가 수월해지는 것입니다.
3. 복음 전도자들의 실제적인 사례
그러면 실제로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는 분들은 어떻게 전도하는 것일까요? 한 분은 본 교회에 와서 후두염을 치료받고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자신을 만나 주신 하나님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출근길에는 집집마다 만민뉴스를 돌렸고, 퇴근길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 전했지요.
토요일 하루를 전도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린 것은 물론, 결혼 후에도 집집마다 방문하며 전도하기에 힘썼으며 임신한 몸으로도 부침개를 들고 다니면서 쉬지 않고 전도를 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아이를 업은 채 전도하면서 옷이 없는 사람에게는 옷을 사 주고, 물질이 없는 사람에게는 물질로 구제했지요.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여 수차례 전도상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는 물질로도 축복해 주셨고 지금은 교구장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본 교회로 인도받아 생명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나서 이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도에 힘쓰기 시작하셨지요. 특히 전도를 잘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여 지혜를 받아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에 관한 자료를 스크랩하여 전도에 활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찌하든 자신의 시간을 아껴서 하루에 100 가정, 많게는 200 가정씩 방문하며 전도에 힘쓴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주변에 소외된 청소년들과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찾아가서 열심히 물질로도 섬기니 그들 중에서도 많은 영혼을 전도할 수 있었지요.
다른 한 분은 참으로 바쁜 직업을 가졌지만, 시간을 쪼개어 오직 영혼 구원에 앞장섰습니다. 토요일, 휴일에는 시간만 있으면 성도들을 모아 노방전도를 하며, 직장이나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지요.
이처럼 전도에 힘쓰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기의 유익을 희생하고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먼 곳에서 상(喪)이 나도 찾아가 위로해 주고, 생일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는 꼭 기억해서 챙겨 주지요. 정성을 들이면서 전도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교회에 잘 정착하여 알곡이 된다고 합니다.
타 교회에도 생명 다해 전도에 힘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수년 동안 질병으로 앓아 누워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몸을 닦아 주고 아이들을 보살펴 주며 청소나 빨래를 해 주면서 전도하는 분, 선물로 가져간 과일 바구니가 내던져지고 몇 차례 물벼락을 맞는 문전박대에도 불구하고 전도의 열매를 거둔 분, 수십 번이라도 방문하고 수년이 걸려도 포기하지 않아 결국 성공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아파트 한 단지를 목표로 전도하는 분, 노인정의 노인들을 상대로 전도하는 분 등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대상을 목표로 전도하고 있지만, 모두 영혼 구원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아 사도 바울처럼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실감하여 열심히 전도하며 풍성한 열매를 거둠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너는 ( )을 전파하라 ( )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2. 여러분은 복음 전파를 위해 얼마나 힘쓰고 계신가요?
3. 자신의 구원받은 기쁨과 전도의 열매를 간증해 봅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디모데’ (뜻: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
루스드라 출신으로,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기도 하다.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신실한 믿음을 지닌 외조모와 어머니로부터 성경을 배우며 성장했다.
사도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중 루스드라를 방문했을 때 디모데는 주님을 영접했고, 동역자가 되어 2차 전도 여행을 함께했다.
디모데는 아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등지에서 사역을 하며 사도 바울의 신임을 받는 신실한 목회자였다.
전승에 따르면, 바울의 순교 이후 에베소 감독으로 지내다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교육목표 :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당부한 대로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깨달아 자신을 희생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한다.
사도 바울은 사도행전 28장에 나오는 로마의 감옥에서 풀려난 후, 네로 황제 치하에서 다시 체포되었습니다. 이때 순교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기록한 서신이 바로 에베소 교회를 치리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보낸 두 번째 편지로서 디모데후서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으로 낳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치 유언과 같은 마지막 당부를 합니다.
1. 복음 전파에 힘쓸 것을 강조한 사도 바울
디모데후서 4장 2절 이하를 보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강조함과 동시에 전도자가 아무리 열심히 복음을 전해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도의 할 일은 고난을 받으면서도 전도인의 일을 하며 직무를 다하는 것임을 거듭 강조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예나 지금이나 복음을 전파하려 할 때는 원수 마귀가 갖가지 궤계로 방해하며, 죄악이 관영할수록 그 방법은 더욱 교묘해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사도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는 말을 들었듯이, 때로는 이방인이 아닌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들로부터 핍박을 받는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고난과 핍박이 더할수록 복음은 더 널리 전파되었습니다. 초대교회나 기독교 역사를 보면 목 베임을 당하고 사자 밥이 되는 등 순교를 당하기까지 전도인의 사명을 감당했기에 오늘날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후서 1장 7~8절에도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좇아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권면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으로 전도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전도에는 꼭 이것만이 정도라고 할 수 있는 특별한 길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영혼들을 대하면서 하나하나 체험해 가는 것이 자신만의 비결이 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의 방법을 모방하여 시작하지만 차츰 자신만의 방법이 터득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전도의 능력을 받기 원한다면 먼저는 전도를 잘하는 분들을 따라다니며 열심히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지요.
“이럴 때는 이렇게 하고 저럴 때는 저렇게 하는구나.” 하면서 배우고 익힌 후에 스스로 해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담대함과 자신감이 생기게 됩니다. 그렇다고 항상 배운 대로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안 될 때도 결코 낙심하지 말고 기도하며 도전하다 보면 나름대로 방법이 생기고 길이 보이는 것입니다.
복음을 전파할 때 어떤 사람의 말은 믿는 반면, 어떤 사람의 말은 흘려 넘기고 믿지 않기도 합니다. 평소에 농담이나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이었다면 복음을 전파해도 믿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에 신뢰를 쌓아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복음을 전할 때는 마음의 문을 열고 믿으려 합니다.
더욱이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직후나 초신자 때는 복음을 전파하기에 더욱 쉽고 좋은 시기입니다. 직접 하나님을 만났고 또 초신자라 해도 은혜받고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함이 생기며 누구에게든 기쁜 소식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뜨거워지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전도하는 사람들 중에는 교회에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사람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초신자 때 전도하기 쉬운 이유 중의 하나는 자신의 삶이 크게 변화되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수심이 가득했던 사람의 얼굴에 기쁨이 넘치고, 악한 말을 내던 입술이 선하고 아름답게 변하며, 섬기는 모습이 되는 등 매사에 성령의 충만함이 넘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주변 사람들이 변화된 모습을 느끼고 있을 때 “당신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행복하고 축복된 삶을 살 수 있어요.”라고 권면하면 상대의 마음이 끌리고 마음 문도 쉽게 열려 전도할 수 있지요.
그렇다고 누구나 초신자 때가 전도하기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신앙이 성장할수록 성경 말씀을 깨닫고 하늘로부터 지혜를 얻어 말씀의 권세도 커지며 상대에게 필요한 내용 또한 정확하게 성령의 주관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초신자 때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을 전도할 때 무조건 “하나님만이 참 신입니다. 하나님을 믿어야 복을 받습니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생명의 지식이 부족함으로 인해서, 또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밝히 알지 못함으로 인해 서로 변론이 되어질 수 있지요.
그러나 믿음이 성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 삼은 만큼 상대의 잘못된 생각을 깨뜨릴 수 있고, 믿음과 생명을 심어 주어 전도할 수 있으니 초신자 때보다도 훨씬 전도하기가 수월해지는 것입니다.
3. 복음 전도자들의 실제적인 사례
그러면 실제로 많은 전도의 열매를 맺는 분들은 어떻게 전도하는 것일까요? 한 분은 본 교회에 와서 후두염을 치료받고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자신을 만나 주신 하나님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출근길에는 집집마다 만민뉴스를 돌렸고, 퇴근길에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을 일부러 찾아가 전했지요.
토요일 하루를 전도하기 위해 하나님께 드린 것은 물론, 결혼 후에도 집집마다 방문하며 전도하기에 힘썼으며 임신한 몸으로도 부침개를 들고 다니면서 쉬지 않고 전도를 했습니다. 아이를 낳은 후에는 아이를 업은 채 전도하면서 옷이 없는 사람에게는 옷을 사 주고, 물질이 없는 사람에게는 물질로 구제했지요.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을 전도하여 수차례 전도상을 받았으며, 하나님께서는 물질로도 축복해 주셨고 지금은 교구장으로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본 교회로 인도받아 생명의 말씀에 은혜를 받고 나서 이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전도에 힘쓰기 시작하셨지요. 특히 전도를 잘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여 지혜를 받아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에 관한 자료를 스크랩하여 전도에 활용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찌하든 자신의 시간을 아껴서 하루에 100 가정, 많게는 200 가정씩 방문하며 전도에 힘쓴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주변에 소외된 청소년들과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도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찾아가서 열심히 물질로도 섬기니 그들 중에서도 많은 영혼을 전도할 수 있었지요.
다른 한 분은 참으로 바쁜 직업을 가졌지만, 시간을 쪼개어 오직 영혼 구원에 앞장섰습니다. 토요일, 휴일에는 시간만 있으면 성도들을 모아 노방전도를 하며, 직장이나 길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했지요.
이처럼 전도에 힘쓰기 위해서는 그만큼 자기의 유익을 희생하고 정성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아무리 먼 곳에서 상(喪)이 나도 찾아가 위로해 주고, 생일이나 축하할 일이 있을 때는 꼭 기억해서 챙겨 주지요. 정성을 들이면서 전도한 사람들은 대부분이 교회에 잘 정착하여 알곡이 된다고 합니다.
타 교회에도 생명 다해 전도에 힘쓰는 분들이 많습니다. 수년 동안 질병으로 앓아 누워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몸을 닦아 주고 아이들을 보살펴 주며 청소나 빨래를 해 주면서 전도하는 분, 선물로 가져간 과일 바구니가 내던져지고 몇 차례 물벼락을 맞는 문전박대에도 불구하고 전도의 열매를 거둔 분, 수십 번이라도 방문하고 수년이 걸려도 포기하지 않아 결국 성공하는 분도 있습니다.
이 외에도 아파트 한 단지를 목표로 전도하는 분, 노인정의 노인들을 상대로 전도하는 분 등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다양한 대상을 목표로 전도하고 있지만, 모두 영혼 구원이라는 한 가지 목적을 위해 헌신하는 것입니다.
새해를 맞아 사도 바울처럼 복음 전파의 중요성을 실감하여 열심히 전도하며 풍성한 열매를 거둠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너는 ( )을 전파하라 ( )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2. 여러분은 복음 전파를 위해 얼마나 힘쓰고 계신가요?
3. 자신의 구원받은 기쁨과 전도의 열매를 간증해 봅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디모데’ (뜻: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
루스드라 출신으로, 사도 바울이 믿음으로 낳은 아들이기도 하다.
디모데는 헬라인 아버지와 유대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신실한 믿음을 지닌 외조모와 어머니로부터 성경을 배우며 성장했다.
사도 바울이 1차 전도 여행 중 루스드라를 방문했을 때 디모데는 주님을 영접했고, 동역자가 되어 2차 전도 여행을 함께했다.
디모데는 아덴, 데살로니가, 고린도, 에베소 등지에서 사역을 하며 사도 바울의 신임을 받는 신실한 목회자였다.
전승에 따르면, 바울의 순교 이후 에베소 감독으로 지내다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기독교 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2019-02-05
제0과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게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이날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해의 머리’라는 의미가 있지요. 지난 한 해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욱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주 안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늘 지키시고 축복하시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하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458장 ----------------------- 다 같이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 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후렴 -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고린도후서 5:17~19 ---------------- 인도자
설 교 ------------------------ 화 목 ------------------------ 설교자
2. 설교 예문
가정에 싸움과 다툼이 없고 사랑이 넘친다면 항상 웃음꽃이 만발할 것입니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행복한 가정의 예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깜짝 놀라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신랑은 “내가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해 밥이 탔다.”며 자기 잘못이라고 하였지요. 이러한 남편의 위로를 들은 아내는 감격해서 더 눈물이 났습니다.
마침 부엌을 지나가던 시아버지께서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지요. 자초지종을 들으신 후 “내가 장작을 굵게 패지 못하고, 잘게 패서 화력이 너무 세니까 밥이 탔다.”며 자기 탓이라고 하였습니다. 시어머니께서도 “내가 늙어 밥 냄새를 못 맡아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서 며느리를 감싸 주었습니다.
가족 중 누구 하나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남의 탓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돌아보며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상대방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지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보다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서로 화목하는 것입니다. 가훈으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써 놓은 집도 볼 수 있는데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기 때문입니다.
삶의 지혜가 기록된 잠언 17장 1절에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육선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는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훨씬 낫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늘 화목을 이룰 수 있을까요?
먼저,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 불로 번지면 많은 재산을 잃고 사람이 다치고 죽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이 화근(禍根)이 되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5~6절에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싸움으로 번지게 만듭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요. 그러니 그 사람이 가는 곳은 늘 분쟁이 일어나고 화평이 깨지기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말할 자유는 있지만 그 말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인생의 큰 해를 입기도 하고,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습니다.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듯이, 우리가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 했으니 새해를 맞아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하고 쓸데없는 농담이나 험담은 삼가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격려하는 말, 자존감을 높여 주는 힘이 되는 말을 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 속에서 늘 상대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쳐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겨야 합니다.
만일 무조건 남편이 자기에게 맞춰 주길 바라고, 자신이 남편에게 행한 만큼 돌려 받지 못하면 서운해하고 삐치는 아내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남편의 자존심이 강하여 아내를 품지 못하고 자기 의견만 강하게 내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부부간에도 서로 섬기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을 구한다면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섬김’이란 겸손하게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고,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은 온전히 녹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합니다. 또한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힘이 될까?’를 생각합니다.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의 공통점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 내 것, 자존심, 내 고집, 나 보기에 의로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 34절을 통해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나를 주장하지 않고 삼가 입술의 말을 주의하여 오직 덕을 세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고 섬긴다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룰 뿐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삼가 듣고 순종하며 모든 명령을 그대로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축복을 주실까요? 신명기 28장 1~14절에 나오는 대로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며, 모든 복이 임하게 하실 뿐 아니라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도록 만사형통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반면에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기며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는 일마다 꼬이고 형통하지 않은 것을 봅니다. 안 될 것은 당연히 안 되고, 잘될 수 있는 일도 안 되는 것이지요.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신 28:15~68).
그래서 출애굽기 20장 4~6절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 마음의 소원을 막연히 신에게 빌었습니다.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 차례를 지내기도 했지요.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신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들어갑니다. 비록 우리 조상들은 천국과 지옥은 밝히 알지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기에 신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보내 주신 하나님 만이 참 신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믿고 순종함으로 더욱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게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이날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운 해의 머리’라는 의미가 있지요. 지난 한 해도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새해를 맞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더욱 넘쳐나기를 소망합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주 안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늘 지키시고 축복하시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사랑으로 함께하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458장 ----------------------- 다 같이
1. 주의 친절한 팔에 안기세 우리 맘이 평안하리니
항상 기쁘고 복이 되겠네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2. 날이 갈수록 주의 사랑이 두루 광명하게 비치고
천성 가는 길 편히 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3. 주의 보좌로 나아갈 때에 기뻐 찬미 소리 외치고
겁과 두려움 없어지리니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후렴 - 주의 팔에 그 크신 팔에 안기세
주의 팔에 영원하신 팔에 안기세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고린도후서 5:17~19 ---------------- 인도자
설 교 ------------------------ 화 목 ------------------------ 설교자
2. 설교 예문
가정에 싸움과 다툼이 없고 사랑이 넘친다면 항상 웃음꽃이 만발할 것입니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행복한 가정의 예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시집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새색시가 부엌에서 울고 있었습니다. 신랑이 깜짝 놀라 “왜 우느냐?”고 물었더니 밥을 태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신랑은 “내가 물을 조금밖에 길어오지 못해 밥이 탔다.”며 자기 잘못이라고 하였지요. 이러한 남편의 위로를 들은 아내는 감격해서 더 눈물이 났습니다.
마침 부엌을 지나가던 시아버지께서 이 광경을 보고 이유를 물었지요. 자초지종을 들으신 후 “내가 장작을 굵게 패지 못하고, 잘게 패서 화력이 너무 세니까 밥이 탔다.”며 자기 탓이라고 하였습니다. 시어머니께서도 “내가 늙어 밥 냄새를 못 맡아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하면서 며느리를 감싸 주었습니다.
가족 중 누구 하나 상대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거나 남의 탓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자기를 돌아보며 ‘내가 좀 더 잘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하며 상대방을 격려하고 위로해 주었지요.
행복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서로 섬기고 사랑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보다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서로 화목하는 것입니다. 가훈으로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 써 놓은 집도 볼 수 있는데 가정이 화목하면 모든 일이 잘 풀리기 때문입니다.
삶의 지혜가 기록된 잠언 17장 1절에는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했습니다. 육선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는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훨씬 낫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과 늘 화목을 이룰 수 있을까요?
먼저, 입의 말을 조심해야 합니다.
작은 불씨가 화근이 되어 큰 불로 번지면 많은 재산을 잃고 사람이 다치고 죽기까지 합니다. 이처럼 우리의 말이 화근(禍根)이 되어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까지 큰 손해를 입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3장 5~6절에 “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보라 어떻게 작은 불이 어떻게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혀는 우리 지체 중에서 온몸을 더럽히고 생의 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깨고 싸움으로 번지게 만듭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고 툭툭 내뱉는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고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요. 그러니 그 사람이 가는 곳은 늘 분쟁이 일어나고 화평이 깨지기 마련입니다.
누구든지 말할 자유는 있지만 그 말이 선하냐 악하냐에 따라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너무나 다르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은 말 한마디 잘못해서 인생의 큰 해를 입기도 하고, 상대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기도 합니다. 반면 말 한마디로 천 냥 빚도 갚을 수 있습니다. 쏟아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듯이, 우리가 한 번 뱉은 말은 다시 주워 담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후 5:17) 했으니 새해를 맞아 말 한마디도 신중하게 하고 쓸데없는 농담이나 험담은 삼가야 하겠습니다.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격려하는 말, 자존감을 높여 주는 힘이 되는 말을 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9절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하셨습니다. 이처럼 자신의 삶 속에서 늘 상대에게 힘과 용기를 실어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많은 사람에게 은혜를 끼쳐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며 섬겨야 합니다.
만일 무조건 남편이 자기에게 맞춰 주길 바라고, 자신이 남편에게 행한 만큼 돌려 받지 못하면 서운해하고 삐치는 아내가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남편의 자존심이 강하여 아내를 품지 못하고 자기 의견만 강하게 내세운다면 어떻게 될까요?
부부간에도 서로 섬기지 못하고 자신의 유익을 구한다면 다툼이 그치지 않습니다. ‘섬김’이란 겸손하게 자신을 희생하여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그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주는 것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자녀를 사랑하고, 소금이 맛을 내기 위해 자신은 온전히 녹아지는 것과 같습니다.
섬기는 사람은 항상 자신보다 상대의 입장을 먼저 고려합니다. 또한 상대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힘이 될까?’를 생각합니다. 이렇게 상대를 배려하고 섬기는 사람의 공통점은 근본적으로 ‘나’라는 것이 없습니다. ‘나, 내 것, 자존심, 내 고집, 나 보기에 의로움’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3장 34절을 통해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나를 주장하지 않고 삼가 입술의 말을 주의하여 오직 덕을 세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고 섬긴다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룰 뿐 아니라 사랑으로 하나 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삼가 듣고 순종하며 모든 명령을 그대로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축복을 주실까요? 신명기 28장 1~14절에 나오는 대로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며, 모든 복이 임하게 하실 뿐 아니라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도록 만사형통한 삶으로 인도해 주십니다.
반면에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기며 계명들을 지키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하는 일마다 꼬이고 형통하지 않은 것을 봅니다. 안 될 것은 당연히 안 되고, 잘될 수 있는 일도 안 되는 것이지요.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신 28:15~68).
그래서 출애굽기 20장 4~6절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 마음의 소원을 막연히 신에게 빌었습니다.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을 다해 차례를 지내기도 했지요.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신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들어갑니다. 비록 우리 조상들은 천국과 지옥은 밝히 알지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기에 신을 찾았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화목제물로 보내 주신 하나님 만이 참 신이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십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믿고 순종함으로 더욱 화목한 가정을 이루고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19-02-01
제5과전도(2) 하나님의 지혜
고린도전서 1:21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1:21 | 외울말씀 : 고린도전서 4:20 ㅣ 참고 말씀: 사도행전 1:8
교육목표 : 전도라는 수단을 통해 사망으로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여 참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의 순간이 몇 차례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를 통해, 어떤 사람은 직업을 통해, 어떤 사람은 학교나 전공 선택에 따라 그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처럼 선택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1.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지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복된 소식, 곧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바로 전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니 오히려 미련하게 생각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도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곧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사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어찌하든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상대가 어떻게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라는 수단을 통해 지금까지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고, 지금도 인도하고 계십니다.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자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대상자를 선택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기도하여 성령의 주관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주관받기보다 처음으로 전도해야 할 경우 누구를 전도 대상자로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요?
1) 가까운 가족, 일가친척, 친한 친구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행 1:8).
복음 전파의 첫 번째 대상인 예루살렘은 영적으로 내가 속한 가정, 학교, 직장, 일터 등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가장 가깝게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을 우선 전도 대상자로 삼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깝기 때문에 더 전도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사랑이 있으면 가까운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2) 마음이 선한 사람들
마음 중심이 선한 사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면서 복음을 전할 때 쉽게 감동을 받아 교회에 나오고 싶어 합니다. 마음 속으로는 교회에 가고 싶은데, 누군가 이끌어 주지 않아서 가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마음이 선한 사람뿐 아니라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받아야 합니다.
3)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해져 있을 때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강해 보이는 사람도 막상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의지할 곳을 찾습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가난해진 사람들을 찾아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복음을 전할 때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4) 교회에 다니다가 시험 환난으로 다시 세상을 좇은 사람들
예전에 신앙생활을 했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지 못하여 길 잃은 양처럼 방황하는 이들이 다시 주님의 사랑 안에 깃들일 수 있도록 인도해 줘야 합니다. 마음이 강퍅해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도 순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으니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3. 복음을 전하는 구체적인 방법
1) 사랑과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듣고 배운 사랑과 희생과 헌신을 실제 행할 수 있는 길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고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이 없다면 한 영혼도 구원의 길로 이끌 수 없습니다. 전도하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아무리 마음 문을 굳게 닫은 사람이라 해도 관심을 가지고 진실된 사랑을 실천하며 희생하고 헌신하면 결국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전도를 많이 하는 분들은 무언가 나눠 주기를 좋아해서 자신보다 주변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행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니 상대가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리고 상대의 집안일에 관심을 갖고 애경사가 생기면 자기 일처럼 달려가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힘이 되어 줍니다. 특히 궂은일에 앞장서서 도와주면 고마움을 느끼고 감동을 받아 복음을 전할 때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한 병상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위안이 되어 주고 돌봐 주는 것도 전도의 좋은 방법입니다.
2) 간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각종 문제로 인해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의 역사로 해결받은 사례들을 간증해 줄 때 관심을 보일 수 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표적과 희한한 능과 기이한 일들을 적극 활용하면 많은 사람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체험한 간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른 사람의 간증보다 직접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것을 전할 때 사실을 입증시키기가 쉬워 더욱 효과적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큰 사람은 자기 자신이 전도의 도구이니 만큼 더 열심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3) 성령의 역사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능력이 따른다면 자연히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됩니다.
우리가 전도 대상자를 찾아가서 기도해 줄 때 문제가 해결되고 질병이 치료된다면 이보다 더욱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이 따르지 않는다 해도 성령의 역사를 받으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전도 대상자를 위해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전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셔서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켜 마음 문을 열어 주십니다. 또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담대함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불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역사를 널리 알리고 소문을 많이 내야 합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많이 뿌려야 추수 때 많은 열매를 거두듯이 전도할 때도 소문을 많이 내야 합니다. 즉 전도지나 간증 책자로 노방전도를 하거나 가두 방문하는 경우가 있지요. 비록 전도지 한 장을 건네주었을 뿐인데 나중에 그 전도지를 보고 은혜를 받아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분들은 때가 되면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망의 길로 가는 수많은 영혼들이 전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더욱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즉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사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어찌하든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가는 것이다.
2. 전도 대상자를 선택한 후에는 어떠한 방법으로 전도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권능’이란?
권세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한다.
마태복음 10장 1절에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하셨다.
여기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고 쫓아낼 수 있는 힘은 권세에서 비롯되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힘은 능력의 역사다.
그러므로 권세와 능력을 받아야 권능을 나타낼 수 있다.
권능을 받으려면 온 영의 마음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수한 기도를 쌓아야 한다.
교육목표 : 전도라는 수단을 통해 사망으로 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여 참 생명과 평안을 누리게 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에게는 커다란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선택의 순간이 몇 차례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사람은 배우자를 통해, 어떤 사람은 직업을 통해, 어떤 사람은 학교나 전공 선택에 따라 그 삶이 완전히 달라지는 경우도 있지요. 이처럼 선택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 삶에 가장 중요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1.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지혜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인간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러한 복된 소식, 곧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바로 전도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는 말을 하면 좀처럼 받아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도하니 오히려 미련하게 생각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선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전도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곧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사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어찌하든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가는 것입니다. 이처럼 상대가 어떻게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고전 1:21)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라는 수단을 통해 지금까지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셨고, 지금도 인도하고 계십니다.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받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하려는 하나님의 사랑이요, 지혜이기 때문입니다.
2.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대상자
우리가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대상자를 선택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기도하여 성령의 주관을 받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주관받기보다 처음으로 전도해야 할 경우 누구를 전도 대상자로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요?
1) 가까운 가족, 일가친척, 친한 친구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행 1:8).
복음 전파의 첫 번째 대상인 예루살렘은 영적으로 내가 속한 가정, 학교, 직장, 일터 등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가장 가깝게 일상적으로 접하는 사람을 우선 전도 대상자로 삼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가깝기 때문에 더 전도하기가 어렵다고 하는데, 이는 자신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자신의 삶이 변화되고 사랑이 있으면 가까운 사람을 전도하는 것이 가장 쉽습니다.
2) 마음이 선한 사람들
마음 중심이 선한 사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면서 복음을 전할 때 쉽게 감동을 받아 교회에 나오고 싶어 합니다. 마음 속으로는 교회에 가고 싶은데, 누군가 이끌어 주지 않아서 가지 못했다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따라서 내가 보기에 마음이 선한 사람뿐 아니라 중심을 아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여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도록 인도받아야 합니다.
3)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마음이 가난해져 있을 때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아무리 겉으로 강해 보이는 사람도 막상 어려운 일에 부딪히면 의지할 곳을 찾습니다. 따라서 여러 가지 일로 마음이 가난해진 사람들을 찾아가 사랑과 관심을 가지고 꾸준히 복음을 전할 때 마음의 문을 열게 됩니다.
4) 교회에 다니다가 시험 환난으로 다시 세상을 좇은 사람들
예전에 신앙생활을 했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을 뜨겁게 만나지 못하여 길 잃은 양처럼 방황하는 이들이 다시 주님의 사랑 안에 깃들일 수 있도록 인도해 줘야 합니다. 마음이 강퍅해 아무리 복음을 전해도 듣지 않는 사람들도 순간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있으니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전도해야 하겠습니다.
3. 복음을 전하는 구체적인 방법
1) 사랑과 희생과 헌신이 있어야 합니다
전도는 하나님 말씀을 통해 듣고 배운 사랑과 희생과 헌신을 실제 행할 수 있는 길입니다. 사랑의 마음이 없고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마음이 없다면 한 영혼도 구원의 길로 이끌 수 없습니다. 전도하다 보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아무리 마음 문을 굳게 닫은 사람이라 해도 관심을 가지고 진실된 사랑을 실천하며 희생하고 헌신하면 결국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입니다.
전도를 많이 하는 분들은 무언가 나눠 주기를 좋아해서 자신보다 주변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행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니 상대가 마음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지요. 그리고 상대의 집안일에 관심을 갖고 애경사가 생기면 자기 일처럼 달려가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힘이 되어 줍니다. 특히 궂은일에 앞장서서 도와주면 고마움을 느끼고 감동을 받아 복음을 전할 때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또한 병상에 있는 사람을 찾아가서 위안이 되어 주고 돌봐 주는 것도 전도의 좋은 방법입니다.
2) 간증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각종 문제로 인해 걱정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하나님의 역사로 해결받은 사례들을 간증해 줄 때 관심을 보일 수 있습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표적과 희한한 능과 기이한 일들을 적극 활용하면 많은 사람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체험한 간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도 좋습니다. 다른 사람의 간증보다 직접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한 것을 전할 때 사실을 입증시키기가 쉬워 더욱 효과적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큰 사람은 자기 자신이 전도의 도구이니 만큼 더 열심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할 수 있습니다.
3) 성령의 역사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고전 4:20)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능력이 따른다면 자연히 하나님의 나라는 확장됩니다.
우리가 전도 대상자를 찾아가서 기도해 줄 때 문제가 해결되고 질병이 치료된다면 이보다 더욱 효과적인 방법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이 따르지 않는다 해도 성령의 역사를 받으면 전도할 수 있습니다. 전도 대상자를 위해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으면, 전도할 때 성령이 역사하셔서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켜 마음 문을 열어 주십니다. 또한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함께해 주신다는 담대함도 주십니다. 그러므로 전도할 때는 성령의 역사를 받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반드시 불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역사를 널리 알리고 소문을 많이 내야 합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많이 뿌려야 추수 때 많은 열매를 거두듯이 전도할 때도 소문을 많이 내야 합니다. 즉 전도지나 간증 책자로 노방전도를 하거나 가두 방문하는 경우가 있지요. 비록 전도지 한 장을 건네주었을 뿐인데 나중에 그 전도지를 보고 은혜를 받아 교회에 찾아오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열심히 복음을 전하는 분들은 때가 되면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사망의 길로 가는 수많은 영혼들이 전도를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 더욱 복음 전파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선택, 즉 영원한 생명이냐 영원한 사망이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사람에게 어찌하든 영원한 생명을 선택할 수 있도록 인도해 가는 것이다.
2. 전도 대상자를 선택한 후에는 어떠한 방법으로 전도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권능’이란?
권세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말한다.
마태복음 10장 1절에 “예수께서 그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하셨다.
여기서 더러운 귀신을 제어하고 쫓아낼 수 있는 힘은 권세에서 비롯되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는 힘은 능력의 역사다.
그러므로 권세와 능력을 받아야 권능을 나타낼 수 있다.
권능을 받으려면 온 영의 마음을 이루고,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위해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수한 기도를 쌓아야 한다.
2019-01-25
제4과전도(1) 복음을 전하는 사명
사도행전 20:24
읽을말씀 : 사도행전 20:24 | 외울말씀 : 로마서 10:10 ㅣ 참고 말씀: 로마서 1:14
교육목표 :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생명을 구원하는 전도에 더욱 힘써 주님의 목마름을 시원케 해 드리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사도행전 8장 이하를 보면 주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사울이라는 청년이 주님을 만나 회개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복음 전하는 사명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나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백했지요.
이처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순교하기까지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을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죽도록 충성한 것입니다.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해야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롬 10:9~10). 하지만 전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당신은 죄인이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라고 말한다면 상대가 마음 문을 닫아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생각을 깨뜨려 줘야 합니다. 우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설명하면서 하나님 한 분만이 참 신이시며,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 줘야 하지요.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게 만든 후에 내세 즉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설명해 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가 있으며 죄인은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말해 줘야 하지요. 천국과 지옥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적당히 살다 끝나면 그만이지.” 하며 전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분명히 믿을 수 있도록 알려 준 후에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참혹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부활 승천하신 것, 때가 이르면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것 등을 전하면 되지요. 이처럼 무엇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알았으면 실제로 복음을 전하면 되는데 막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이요, 주님을 닮은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차원의 신앙생활이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더 넓은 차원의 신앙생활이 바로 전도입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구원받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전도하며 충성하는 것이 온전한 신앙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사도 바울처럼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
1) 전도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요,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위험에 빠져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을 보았다면, 최선을 다해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구원에 대해 알지 못하여 지옥 불로 들어가고 있다면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라도 구원해 주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여 구원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전도는 영원한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건져내는 일이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어떤 형태로든 복음을 들었기에 구원의 은혜를 받아 영원한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으니 전도는 매우 중요하며 전 성도가 함께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로마서 1장 14~1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하나님께 구원이라고 하는 큰 은혜를 입어 복음에 대해 빚진 자임을 깨닫는다면 사도 바울처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죗값으로 인해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의 사명을 게을리하므로 구원받을 수 있는 영혼이 지옥으로 간다면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기억하여(롬 10:13~14) 사도 바울처럼 불붙는 심정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당연한 모습입니다.
2) 주님의 지상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을 보면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명령이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인 일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는 승천을 앞두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주님의 지상 명령이요, 마지막으로 남기신 주님의 유언으로서 모든 하나님 자녀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6~18절을 통해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혹여 여러분 중에 시간이 없거나 직분이 많아서 전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가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시며 때로는 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식사할 겨를도 없으셨지만 기회만 있으면 전도에 힘쓰셨습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을 닮기 원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한다면 사도 바울처럼 생명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3)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간 경작의 섭리와 구속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섭리 곧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범죄함으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점차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때가 이르매 성자 하나님께서는 인간 구속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의 삯으로 인해 사망으로 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인류 구속의 섭리를 이루신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인생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곧 ‘십자가의 도’이지요(고전 1:18).
이러한 십자가의 도를 널리 전파하여 인간 경작의 섭리와 구속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릴레이 경주의 마지막 주자와 같이 마지막 때 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뛰어 주느냐에 따라 인간 경작의 마무리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도’에 담긴 비밀을 모든 사람이 알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더 나아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 줄 귀한 일꾼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듯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심히 가까운 때에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는 귀한 도구로 부름받았음을 깨달아 사도 바울처럼 생명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전도를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전도는 ( )을 구하는 일이요,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 )이기 때문이다.
② 주님의 ( )이기 때문이다.
③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 )의 섭리와 ( )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 )을 깨뜨려 줘야 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인간 경작’이란?
원래 경작이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를 통해 열매를 얻는 과정이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사람을 경작하시는 수고를 통해 참 자녀라는 열매를 얻고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번째 씨를 심으셨고, 지금까지 무수한 사람을 경작해 오고 계신다.
따라서 이 땅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 역사를 주관하는 과정을 농사 경작에 비유한 표현이다.
교육목표 :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생명을 구원하는 전도에 더욱 힘써 주님의 목마름을 시원케 해 드리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사도행전 8장 이하를 보면 주님을 믿는 자들을 핍박했던 사울이라는 청년이 주님을 만나 회개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복음 전하는 사명을 어떻게 감당했는지 나옵니다. 사도행전 20장 24절에는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고백했지요.
이처럼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순교하기까지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요? 자신을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죽도록 충성한 것입니다.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잘 감당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해야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목적은 한 영혼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롬 10:9~10). 하지만 전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당신은 죄인이니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갑니다.”라고 말한다면 상대가 마음 문을 닫아 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생각을 깨뜨려 줘야 합니다. 우선 창조주 하나님에 대해 설명하면서 하나님 한 분만이 참 신이시며,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고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려 줘야 하지요.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게 만든 후에 내세 즉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설명해 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죄가 있으며 죄인은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말해 줘야 하지요. 천국과 지옥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적당히 살다 끝나면 그만이지.” 하며 전도를 받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분명히 믿을 수 있도록 알려 준 후에 죄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셔서 참혹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것,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으로 부활 승천하신 것, 때가 이르면 재림하셔서 심판하실 것 등을 전하면 되지요. 이처럼 무엇을 어떻게 전해야 하는지 알았으면 실제로 복음을 전하면 되는데 막상 복음을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이요, 주님을 닮은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차원의 신앙생활이며, 다른 사람들에 대한 더 넓은 차원의 신앙생활이 바로 전도입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도 구원받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전도하며 충성하는 것이 온전한 신앙생활이라 할 수 있습니다.
2. 사도 바울처럼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이유
1) 전도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요,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위험에 빠져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사람을 보았다면, 최선을 다해 구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하물며 우리 주변의 사람들이 구원에 대해 알지 못하여 지옥 불로 들어가고 있다면 자신의 생명을 걸고서라도 구원해 주거나 주변에 도움을 청하여 구원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전도는 영원한 사망으로 가는 영혼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건져내는 일이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값진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어떤 형태로든 복음을 들었기에 구원의 은혜를 받아 영원한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고 있으니 전도는 매우 중요하며 전 성도가 함께 감당해야 할 일입니다.
로마서 1장 14~15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하나님께 구원이라고 하는 큰 은혜를 입어 복음에 대해 빚진 자임을 깨닫는다면 사도 바울처럼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죗값으로 인해 멸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전도의 사명을 게을리하므로 구원받을 수 있는 영혼이 지옥으로 간다면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음을 기억하여(롬 10:13~14) 사도 바울처럼 불붙는 심정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이렇게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바로 구원의 은혜에 빚진 자로서 당연한 모습입니다.
2) 주님의 지상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16장 15절을 보면 십자가의 사랑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명령이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적인 일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을 말합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는 승천을 앞두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이처럼 복음을 전하는 것은 주님의 지상 명령이요, 마지막으로 남기신 주님의 유언으로서 모든 하나님 자녀에게 주어진 사명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9장 16~18절을 통해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 하며 땅끝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
혹여 여러분 중에 시간이 없거나 직분이 많아서 전도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신가요? 성경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수많은 사람들을 대하시며 때로는 잠도 주무시지 못하고 식사할 겨를도 없으셨지만 기회만 있으면 전도에 힘쓰셨습니다. 그러니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을 닮기 원하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고자 한다면 사도 바울처럼 생명을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3)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인간 경작의 섭리와 구속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섭리 곧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셨지만, 오랜 세월이 지난 후 범죄함으로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점차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때가 이르매 성자 하나님께서는 인간 구속의 사역을 이루시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의 삯으로 인해 사망으로 가는 것을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인류 구속의 섭리를 이루신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인생의 모든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누구든지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만세 전에 감추어진 비밀 곧 ‘십자가의 도’이지요(고전 1:18).
이러한 십자가의 도를 널리 전파하여 인간 경작의 섭리와 구속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지금 우리의 역할이 매우 중요합니다. 릴레이 경주의 마지막 주자와 같이 마지막 때 살고 있는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뛰어 주느냐에 따라 인간 경작의 마무리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도’에 담긴 비밀을 모든 사람이 알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가정과 직장에서, 더 나아가 땅끝까지 이르러 복음 전파의 사명을 감당해 줄 귀한 일꾼을 간절히 찾고 계십니다. 시대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이 있듯이 주님께서 다시 오실 날이 심히 가까운 때에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마지막 인간 경작의 섭리를 이루는 귀한 도구로 부름받았음을 깨달아 사도 바울처럼 생명 다해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전도를 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전도는 ( )을 구하는 일이요, 우리도 구원의 은혜에 ( )이기 때문이다.
② 주님의 ( )이기 때문이다.
③ 전도를 통해 하나님의 ( )의 섭리와 ( )의 사역을 아름답게 마무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 상대가 마음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전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 )을 깨뜨려 줘야 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인간 경작’이란?
원래 경작이란 농부가 씨를 뿌리고 가꾸는 수고를 통해 열매를 얻는 과정이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사람을 경작하시는 수고를 통해 참 자녀라는 열매를 얻고자 아담과 하와라는 첫 번째 씨를 심으셨고, 지금까지 무수한 사람을 경작해 오고 계신다.
따라서 이 땅에 사람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심판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 역사를 주관하는 과정을 농사 경작에 비유한 표현이다.
2019-01-18
제3과해산하는 수고와 기쁨
요한복음 16:20~22
읽을말씀 : 요한복음 16:20~22 | 외울말씀 : 갈라디아서 4:19 ㅣ 참고 말씀: 이사야 66:9
교육목표 : 인류를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생명을 낳는 복된 일에 동참하여 수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게 한다.
요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자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은 근심으로 가득하였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하시며 제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시자 제자들은 울며 애통했지만 세상은 기뻐하였습니다. 즉 빛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시니 어두움이 좋아한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자 제자들은 근심이 변하여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1. 엄청난 해산의 수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로하신 후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요 16:21) 하시며 해산의 수고와 기쁨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여자가 잉태하면 열달이 지나야 해산하게 됩니다. 임산부는 그 열달 동안 몸가짐이나 음식물에 주의해야 하고 입덧을 하는 등 평소보다 자유롭지 못하고 수고로움을 겪게 됩니다. 마침내 해산할 때는 큰 고통을 겪으며 아기를 낳지만, 아기가 태어나면 해산의 기쁨과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흠뻑 빠져 모든 해산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며 믿음의 후사를 얻기 위해 엄청난 해산의 고통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을 다 버리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인류를 위해 짐승의 우리에 태어나셨으며, 인류의 가난을 대속하시기 위해 일생 동안 가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모든 질병과 연약함을 대속해 주시고자 채찍에 맞아 피 흘려 주셨고, 우리의 생각으로 짓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셨지요.
우리의 손과 발로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 양손과 발에 못박히셨습니다. 모든 불의와 불법을 대속하기 위해 온갖 멸시 천대와 핍박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해산의 수고가 엄청났기에 죄인 된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는 생명의 길이 열리게 되었지요. 그래서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행 20:28).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핏값을 주시며 희생하신 대가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교회는 건물 즉 예배당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에는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엄청난 해산의 수고를 하신 것은 오늘날 주 안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곧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우리를 낳기 위함이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2. 영적인 자녀를 낳기 위한 해산의 수고와 기쁨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각색 병든 자를치료하며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하셨지요. 우리도 영혼 구원을 위해 해산의 수고에 동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도 대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매일같이 그를 위해 기도하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며 금식기도나 철야기도도 하지요. 나를 반겨 주지 않아도 사랑을 가지고 웃는 얼굴로 찾아가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해산의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태어난 아기를 보면 모든 고통을 잊듯이 우리가 전도한 영혼이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으면 낳을수록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이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늘에 상급으로 쌓이는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이가 만삭이 되어 태어나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전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도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영혼은 빨리 적응하고 은혜도 받으며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청하여 억지로 등록한 경우는 제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어렵지요.
그러면 영적으로 만삭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교회에 등록하기 전에 신앙생활에 필요한 지식들을 알 수 있도록 전도자가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님, 천국과 지옥 등에 대해 알려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전도받은 사람이 신앙생활에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과 여러 간증을 듣고 ‘나도 교회에 가고 싶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고 성령을 받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태어난 성도들은 설교자를 통해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고 신앙이 쑥쑥 자라 가며 열매도 잘 맺게 됩니다.
그러나 만삭이 되어 태어난 아이라도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듯이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성도라 할지라도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일꾼들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젖 먹는 신자에서 밥 먹는 신자가 되고, 굳건한 믿음으로 영적인 자녀를 낳을 수 있기까지 수고하고 애쓰며 돌봐야 합니다. 즉 직분을 받아 스스로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까지 도와주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며 부모의 심정이 되어 사랑으로 보살펴 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해산의 수고를 기뻐 받으시고 이 땅에서의 축복은 물론 하늘나라에서 귀한 상급으로 넘치도록 갚아 주십니다(단 12:3).
또한 이사야 66장 9절 후반절에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전도의 능력을 주시며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해산의 기쁨도 주십니다.
3. 권능 받은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부흥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시기에 부활 승천하셨고,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후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은 주님의 제자들은 더 이상 근심과 두려움에 싸인 나약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을 확신 가운데 담대히 전파했으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지요. 이에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죄 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았지요.
심지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에 삼천 명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나 초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고,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사도들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자기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지요.
그리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집에서는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이에 성도들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고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도록 큰 부흥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행 2:46~47).
사도 바울이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고백한 대로, 여러분도 생명을 낳는 복된 일에 동참하여 하늘의 상급을 쌓으며 해산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도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며 ( )를 얻기 위해 엄청난 해산의 고통을 맛보셔야 했다.
2. 만삭이 되어 태어난 아이라도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듯이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성도라 할지라도 ( )에 서기까지는 ( )들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
젖 먹는 신자 : 믿음의 성장 과정 중 갓난아기나 어린아이와 같은 시기, 곧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신자를 비유적으로 일컫는다
(고전 3:1~2).
밥 먹는 신자 : 믿음의 성장 과정 중 청년과 같은 시기, 곧 믿음의 3단계에 해당하는 신자를 일컫는다(고전 3:1~2).
이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말씀에 따라 행할 수 있다.
교육목표 : 인류를 위해 해산의 수고를 하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생명을 낳는 복된 일에 동참하여 수많은 영혼을 천국으로 인도하게 한다.
요한복음 16장을 보면, 예수님은 모든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날 밤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떠날 것을 말씀합니다. 그러자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은 근심으로 가득하였지요.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수님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곡하고 애통하리니 세상이 기뻐하리라 너희는 근심하겠으나 너희 근심이 도리어 기쁨이 되리라” 하시며 제자들에게 위로와 소망을 주십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시자 제자들은 울며 애통했지만 세상은 기뻐하였습니다. 즉 빛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시니 어두움이 좋아한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부활하시자 제자들은 근심이 변하여 큰 기쁨이 되었습니다.
1. 엄청난 해산의 수고,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로하신 후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요 16:21) 하시며 해산의 수고와 기쁨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 주셨습니다.
여자가 잉태하면 열달이 지나야 해산하게 됩니다. 임산부는 그 열달 동안 몸가짐이나 음식물에 주의해야 하고 입덧을 하는 등 평소보다 자유롭지 못하고 수고로움을 겪게 됩니다. 마침내 해산할 때는 큰 고통을 겪으며 아기를 낳지만, 아기가 태어나면 해산의 기쁨과 아이의 사랑스러운 모습에 흠뻑 빠져 모든 해산의 고통을 잊어버리게 되지요.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며 믿음의 후사를 얻기 위해 엄청난 해산의 고통을 맛보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늘 영광을 다 버리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는 인류를 위해 짐승의 우리에 태어나셨으며, 인류의 가난을 대속하시기 위해 일생 동안 가난의 길을 가셨습니다. 모든 질병과 연약함을 대속해 주시고자 채찍에 맞아 피 흘려 주셨고, 우리의 생각으로 짓는 죄를 대속하기 위해 머리에 가시 면류관을 쓰셨지요.
우리의 손과 발로 짓는 모든 죄를 대속하기 위해 양손과 발에 못박히셨습니다. 모든 불의와 불법을 대속하기 위해 온갖 멸시 천대와 핍박을 받으며 십자가를 지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해산의 수고가 엄청났기에 죄인 된 인류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는 생명의 길이 열리게 되었지요. 그래서 교회를 가리켜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행 20:28).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종의 형체를 입고 이 땅에 오셔서 핏값을 주시며 희생하신 대가로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여기서 교회는 건물 즉 예배당만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장 2절에는 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엄청난 해산의 수고를 하신 것은 오늘날 주 안에서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 곧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우리를 낳기 위함이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2. 영적인 자녀를 낳기 위한 해산의 수고와 기쁨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믿음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자신의 생명을 아낌없이 주셨습니다. 천국 복음을 전파하고 각색 병든 자를치료하며 아무 죄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하셨지요. 우리도 영혼 구원을 위해 해산의 수고에 동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전도 대상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 영혼을 교회로 인도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매일같이 그를 위해 기도하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며 금식기도나 철야기도도 하지요. 나를 반겨 주지 않아도 사랑을 가지고 웃는 얼굴로 찾아가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러나 해산의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태어난 아기를 보면 모든 고통을 잊듯이 우리가 전도한 영혼이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영적인 자녀를 많이 낳으면 낳을수록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이 되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늘에 상급으로 쌓이는 축복을 받습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아이가 만삭이 되어 태어나는 것이 정상인 것처럼 전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으로도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영혼은 빨리 적응하고 은혜도 받으며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청하여 억지로 등록한 경우는 제대로 신앙생활 하는 것이 어렵지요.
그러면 영적으로 만삭이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교회에 등록하기 전에 신앙생활에 필요한 지식들을 알 수 있도록 전도자가 살아 계신 창조주 하나님과 구세주 예수님, 천국과 지옥 등에 대해 알려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전도받은 사람이 신앙생활에 필요한 하나님의 말씀과 여러 간증을 듣고 ‘나도 교회에 가고 싶다. 천국에 가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교회에 와서 설교를 듣고 성령을 받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태어난 성도들은 설교자를 통해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고 신앙이 쑥쑥 자라 가며 열매도 잘 맺게 됩니다.
그러나 만삭이 되어 태어난 아이라도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듯이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성도라 할지라도 믿음의 반석에 서기까지는 일꾼들의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젖 먹는 신자에서 밥 먹는 신자가 되고, 굳건한 믿음으로 영적인 자녀를 낳을 수 있기까지 수고하고 애쓰며 돌봐야 합니다. 즉 직분을 받아 스스로 하나님 앞에 충성할 때까지 도와주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우리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히 여기며 부모의 심정이 되어 사랑으로 보살펴 줄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는 해산의 수고를 기뻐 받으시고 이 땅에서의 축복은 물론 하늘나라에서 귀한 상급으로 넘치도록 갚아 주십니다(단 12:3).
또한 이사야 66장 9절 후반절에 “나는 해산케 하는 자인즉 어찌 태를 닫겠느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전도의 능력을 주시며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해산의 기쁨도 주십니다.
3. 권능 받은 사도들과 초대교회의 부흥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은 아무런 죄가 없으시기에 부활 승천하셨고, 오순절에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후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은 주님의 제자들은 더 이상 근심과 두려움에 싸인 나약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부활 승천하신 주님을 확신 가운데 담대히 전파했으며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았지요. 이에 많은 사람들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으며 죄 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았지요.
심지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하루에 삼천 명이 주께로 돌아오는 역사가 나타나 초대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는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힘썼고, 세상 사람들이 두려워할 정도로 사도들을 통해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은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자기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었지요.
그리하여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며 집에서는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고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이에 성도들은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았고 주님께서는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하도록 큰 부흥으로 축복해 주셨습니다(행 2:46~47).
사도 바울이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살전 2:19~20) 고백한 대로, 여러분도 생명을 낳는 복된 일에 동참하여 하늘의 상급을 쌓으며 해산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도 참혹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겪으며 ( )를 얻기 위해 엄청난 해산의 고통을 맛보셔야 했다.
2. 만삭이 되어 태어난 아이라도 부모의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하듯이 영적으로 만삭이 되어 교회에 등록한 성도라 할지라도 ( )에 서기까지는 ( )들의 보살핌이 필요하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
젖 먹는 신자 : 믿음의 성장 과정 중 갓난아기나 어린아이와 같은 시기, 곧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신자를 비유적으로 일컫는다
(고전 3:1~2).
밥 먹는 신자 : 믿음의 성장 과정 중 청년과 같은 시기, 곧 믿음의 3단계에 해당하는 신자를 일컫는다(고전 3:1~2).
이때는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말씀에 따라 행할 수 있다.
2019-01-11
제2과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자
사도행전 1:8
읽을말씀 : 사도행전 1:8 | 외울말씀 : 사도행전 16:31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3:12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 담대히 복음을 전함으로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하고 동시에 전도를 받고 있습니다. 저희 제단에도 전도받아 믿음을 갖게 되고 교회의 소중한 일꾼이 되어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요.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본이 되고 있으니 전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 열매는 또한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 복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삶의 궁극적인 목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한 사람만의 행복을 위해 먹고 입고 마시며 살아갑니다. 아니면 자기 가족을 위해 먹고 입고 마시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반면에 자기 자신을 희생하며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살아가는 삶은 참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고 이 사회에 사랑의 불을 밝히는 촉매제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큰 집을 사서 아름답게 꾸미는 것에 두어야 할까요? 아니면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것에 두어야 할까요?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일, 즉 복음을 전하며 전도하는 일에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과도 같이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 곧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지요. 단순히 우리만 구원에 이를 것이 아니라 가족과 일가친척, 이웃까지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전도에 힘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전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맡겨 준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 영혼 구원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2. 전도의 중요성
만일 여러분을 전도한 사람이 없었다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천국을 소망하며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만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요, 몇 사람만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신 것도 아닙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빛이 되어 주셨고, 참된 소망이 되어 주셨으며 값없이 보혈의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했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고 그 결과 천국, 지옥의 두 갈래로 나뉘어집니다. 주님을 믿고 성령 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고, 주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영벌을 받는 것은 정해진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누가복음 16장에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예가 나옵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을 경외했기에 죽은 후에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에 속한 윗음부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에 죽은 후에 지옥에 속한 아랫음부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습니다. 부자는 그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요.
지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참혹한 곳입니다. 지옥 설교를 통해 알려 드린 대로 아랫음부에서 고통 받는 한 영혼의 고백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끌려 다니며 심히도 많이 끌려 다니며 내가 뛰어도 뛰어도 끝이 없나이다. 냄새나고 싫은 곳에서 나의 껍질이 벗겨지고 피 흘릴 때 벌레들이 나와서 살을 먹는데 벌레를 피하고자 내가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려도 여전히 그 자리임이니이다. 계속 달리고 달려도 여전히 와서 나를 물어뜯나이다. 내 살을 뜯어먹나이다. 내 피를 빨아먹나이다. 내가 두렵고 떨리나이다. 어찌 하오리이까 …
내가 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잠시 이 시름을 잊고자 기절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며, 내가 이 시름을 잊고자 잠시 눈을 감아 보아도 그 앞이 환하여 쉼을 갖지 못하나이다. 눈을 뜨면 끝없이 망망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하여 형벌을 피하여서 달리고 달려도 그 자리일 따름이니 어찌하나이까! 이를 어찌하나이까! 나와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정녕 나와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우리가 어찌 사랑스러운 자녀, 소중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일가친척, 이웃을 그곳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자신처럼 아랫음부에 떨어져 형벌 받는 영혼이 없게 해 달라고 호소하는 이 영혼의 소리가 들린다면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며 믿음과 사랑으로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옥에서 영원토록 형벌 받는 것을 즐거워하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아무리 죄악으로 물들어 있다 해도 회개하여 천국에 이르기를 고대하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신 주님께서는 승천을 앞두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시며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3. 알곡과 쭉정이
마태복음 3장 12절을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했고, 마태복음 7장 17~18절에는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알곡이 되지 못하고 나쁜 열매를 맺는 못된 나무가 되면 백보좌 대심판 때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을 말씀합니다. 알곡과 쭉정이는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갈라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 되어 가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피시며 호리(몹시 적은 분량을 이르는 말)라도 남김없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심판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알곡 성도, 좋은 나무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되 잎사귀가 무성한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지옥은 무섭고 고통스러우며 두려운 곳이지만, 천국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천국의 아름다움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 17절에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했고, 21장 6절에는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는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천국에 대한 영원한 약속의 말씀을 주시며 알곡 성도, 좋은 나무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알곡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요, 영적인 사랑이 있고 복음의 씨앗을 심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랑이 있으니 가정과 직장에서 복음을 전하며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고자 힘쓰는 것이지요. 좋은 나무란 자신이 있는 곳곳에서 아름다운 진리의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땅에서도 영혼이 잘되는 만큼 범사가 형통하며 천국에서도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알곡 성도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전도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 영생을 알고 참된 사람의 본분을 되찾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도는 주님의 핏값을 찾아드리며 주님의 목마름을 채워 드리는 값진 일이기 때문에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으로 ( )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영적인 사랑이 있고 복음의 씨앗을 심는 사람을 말한다.
2. ( )란 있는 모든 곳에서 아름다운 진리의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생명나무에 달마다 과실을 맺는다는 의미(계 22:2)’
생명수 강가 좌우에는 아름드리 생명나무들이 쭉 늘어섰는데 한 그루에 열두 가지 실과가 한꺼번에 맺히는 것이 아니라 열두 종류의 생명나무가 각기 다른 열매를 맺는다.
생명나무가 달마다 실과를 맺는다는 것은 생명나무가 달마다 번갈아가며 과실을 맺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열두 종류의 실과가 달마다 늘 맺혀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생명나무에는 과실이 항상 맺혀 있고 누군가 과실을 따면 그 자리에서 다시 생겨난다. 천국에는 각종 과일 나무가 있는데 열두 종류의 생명나무에서 나는 과일을 ‘생명 과일’이라고 한다.
열두 가지 생명 과일은 각각의 빛, 크기, 모양과 맛이 다르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 담대히 복음을 전함으로 전도의 열매를 풍성히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하고 동시에 전도를 받고 있습니다. 저희 제단에도 전도받아 믿음을 갖게 되고 교회의 소중한 일꾼이 되어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분들이 많이 계시지요.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의 본이 되고 있으니 전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며 그 열매는 또한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누군가 복된 소식을 전하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삶의 궁극적인 목적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한 사람만의 행복을 위해 먹고 입고 마시며 살아갑니다. 아니면 자기 가족을 위해 먹고 입고 마시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반면에 자기 자신을 희생하며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살아가는 삶은 참으로 모든 사람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고 이 사회에 사랑의 불을 밝히는 촉매제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큰 집을 사서 아름답게 꾸미는 것에 두어야 할까요? 아니면 안정된 직장을 구하는 것에 두어야 할까요?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일, 즉 복음을 전하며 전도하는 일에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과도 같이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는 것이 곧 우리 삶의 궁극적인 목적이라 할 수 있지요. 단순히 우리만 구원에 이를 것이 아니라 가족과 일가친척, 이웃까지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전도에 힘써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전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자신에게 맡겨 준 하나님의 일에 최선을 다함으로 영혼 구원에 동참해야 할 것입니다.
2. 전도의 중요성
만일 여러분을 전도한 사람이 없었다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천국을 소망하며 나아갈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서는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만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요, 몇 사람만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의 십자가를 지신 것도 아닙니다.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에게 빛이 되어 주셨고, 참된 소망이 되어 주셨으며 값없이 보혈의 피를 흘려 주셨습니다.
히브리서 9장 27절에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했습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고 그 결과 천국, 지옥의 두 갈래로 나뉘어집니다. 주님을 믿고 성령 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고, 주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영벌을 받는 것은 정해진 사실입니다.
이에 대해 누가복음 16장에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예가 나옵니다. 나사로는 하나님을 경외했기에 죽은 후에 천사들에게 받들려 천국에 속한 윗음부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부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기에 죽은 후에 지옥에 속한 아랫음부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받습니다. 부자는 그 고통이 얼마나 컸던지 나사로의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서 자기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부탁하지요.
지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만큼 참혹한 곳입니다. 지옥 설교를 통해 알려 드린 대로 아랫음부에서 고통 받는 한 영혼의 고백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내가 끌려 다니며 심히도 많이 끌려 다니며 내가 뛰어도 뛰어도 끝이 없나이다. 냄새나고 싫은 곳에서 나의 껍질이 벗겨지고 피 흘릴 때 벌레들이 나와서 살을 먹는데 벌레를 피하고자 내가 달리고 달리고, 달리고 달려도 여전히 그 자리임이니이다. 계속 달리고 달려도 여전히 와서 나를 물어뜯나이다. 내 살을 뜯어먹나이다. 내 피를 빨아먹나이다. 내가 두렵고 떨리나이다. 어찌 하오리이까 …
내가 이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잠시 이 시름을 잊고자 기절하고 싶어도 할 수 없으며, 내가 이 시름을 잊고자 잠시 눈을 감아 보아도 그 앞이 환하여 쉼을 갖지 못하나이다. 눈을 뜨면 끝없이 망망하고 아무것도 보이지 아니하여 형벌을 피하여서 달리고 달려도 그 자리일 따름이니 어찌하나이까! 이를 어찌하나이까! 나와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정녕 나와 같은 자가 없게 하소서.”
우리가 어찌 사랑스러운 자녀, 소중한 남편과 아내, 그리고 일가친척, 이웃을 그곳에 보낼 수 있겠습니까. 자신처럼 아랫음부에 떨어져 형벌 받는 영혼이 없게 해 달라고 호소하는 이 영혼의 소리가 들린다면 우리는 믿지 않는 자들을 위해 금식하고 기도하며 믿음과 사랑으로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옥에서 영원토록 형벌 받는 것을 즐거워하는 분이 결코 아니십니다. 아무리 죄악으로 물들어 있다 해도 회개하여 천국에 이르기를 고대하는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신 주님께서는 승천을 앞두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시며 주님의 증인이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3. 알곡과 쭉정이
마태복음 3장 12절을 보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했고, 마태복음 7장 17~18절에는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 알곡이 되지 못하고 나쁜 열매를 맺는 못된 나무가 되면 백보좌 대심판 때 지옥 불에 떨어질 것을 말씀합니다. 알곡과 쭉정이는 믿지 않는 사람들 가운데 갈라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노라 하는 사람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이 검이 되어 가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살피시며 호리(몹시 적은 분량을 이르는 말)라도 남김없이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심판자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알곡 성도, 좋은 나무가 되어 아름다운 열매를 맺되 잎사귀가 무성한 탐스러운 열매를 맺어야 하겠습니다. 지옥은 무섭고 고통스러우며 두려운 곳이지만, 천국은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곳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보면 천국의 아름다움이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7장 17절에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했고, 21장 6절에는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장 1~2절에는 “저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서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달마다 그 실과를 맺히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소성하기 위하여 있더라” 했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자녀들에게 아름다운 천국에 대한 영원한 약속의 말씀을 주시며 알곡 성도, 좋은 나무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알곡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요, 영적인 사랑이 있고 복음의 씨앗을 심는 사람입니다. 영적인 사랑이 있으니 가정과 직장에서 복음을 전하며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고자 힘쓰는 것이지요. 좋은 나무란 자신이 있는 곳곳에서 아름다운 진리의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땅에서도 영혼이 잘되는 만큼 범사가 형통하며 천국에서도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 알곡 성도가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특히 전도에 힘써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을 믿지 않던 사람이 영생을 알고 참된 사람의 본분을 되찾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전도는 주님의 핏값을 찾아드리며 주님의 목마름을 채워 드리는 값진 일이기 때문에 풍성한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으로 ( )이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영적인 사랑이 있고 복음의 씨앗을 심는 사람을 말한다.
2. ( )란 있는 모든 곳에서 아름다운 진리의 열매를 맺고 그리스도의 빛과 향기를 발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생명나무에 달마다 과실을 맺는다는 의미(계 22:2)’
생명수 강가 좌우에는 아름드리 생명나무들이 쭉 늘어섰는데 한 그루에 열두 가지 실과가 한꺼번에 맺히는 것이 아니라 열두 종류의 생명나무가 각기 다른 열매를 맺는다.
생명나무가 달마다 실과를 맺는다는 것은 생명나무가 달마다 번갈아가며 과실을 맺는다는 의미가 아니라 열두 종류의 실과가 달마다 늘 맺혀 있음을 표현한 것이다.
생명나무에는 과실이 항상 맺혀 있고 누군가 과실을 따면 그 자리에서 다시 생겨난다. 천국에는 각종 과일 나무가 있는데 열두 종류의 생명나무에서 나는 과일을 ‘생명 과일’이라고 한다.
열두 가지 생명 과일은 각각의 빛, 크기, 모양과 맛이 다르다.
2019-01-04
제1과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사야 60:1
읽을말씀 : 이사야 60:1 | 외울말씀 : 이사야 60:1 ㅣ 참고 말씀: 요한일서 1:5, 에베소서 5:8
교육목표 : 어두움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고 있는 마지막 때에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만방에 드러내는 성도가 되게 한다.
밤이 깊고 어둠이 짙어 갈수록 사람들은 빛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그 가치가 더욱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으로 관영한 마지막 때에 수많은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는 주님을 믿는 만민의 성도들은 더욱 빛을 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말씀했습니다(사 60:1).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명령이요, 그들의 영광스런 미래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은 온통 절망과 어둠으로 가득했습니다. 온 나라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숭배하고 범죄하며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듣지 않고 계속 악에 악을 더해 갔습니다. 더구나 주변 국가의 위협이 도사리고 국력은 쇠퇴해질 대로 쇠퇴해졌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이 심판을 받을 것과 선민 이스라엘에게 다시 영광스러운 미래와 메시아의 도래를 약속하시며 본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만민의 성도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날은 이사야 당시보다 더욱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덮여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에게 여호와의 영광의 빛을 만방에 비추는 사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전 세계 수많은 교회에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으로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4장 48절에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한 대로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즉 따르는 기사와 표적,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확실히 증거해 줘야 하지요. 또한 교회에 다닌다 해도 진리가 없어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섭리와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십자가의 도를 밝히 깨달을 수 있도록 생명의 말씀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계 선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려면 전 성도가 당당히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하겠습니다.
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이루려면
1)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둠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빛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셨고, 요한복음 8장 12절에는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빛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권면한 것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좇아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엡 5:8~9).
어둠에 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둠에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지만, 빛이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진리의 빛을 비추시면 무엇이 어둠이고, 빛인지를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 안에 들어오는 만큼 예전에 행하던 죄들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요.
각 사람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에 이루었고, 악을 버려 성결되었느냐에 따라 빛을 비추는 힘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빛을 소유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당당히 하나님의 역사들을 나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둠의 세력과 싸우다가 그만 힘을 잃고 어둠에 묻혀 버리기도 하지요. 분명한 것은 진리의 빛이 임하는 만큼 비진리의 어둠은 반드시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사 흑암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그 빛 가운데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을 비추는 큰 빛으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생명의 빛을 전파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내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넓게는 사회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으며, 마침내는 세계 만방에 일어나 마음껏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2)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권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는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죽어 무덤에 장사된 나사로를 살리셨으며(요 11장), 하나님의 권능을 받았던 사도 바울에게는 희한한 능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습니다(행 19:12).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십 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행 1:8~9). 그리하여 초대교회 사도들은 물론, 빌립 집사나 스데반 집사와 같은 성도들도 권능을 베풀며 복음을 증거하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이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이라 해도 권능을 받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그릇을 갖추어야 합니다. 곧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주님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온전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권능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흠이 없고 온유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권능은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가며 불같은 기도를 쌓아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능을 받아 온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친히 목도한 초대교회 성도들이 만약 핍박이 두려워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하는 자들이 없다면 들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만민의 주의 종과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친히 보았고, 혼과 영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는 생명의 말씀을 친히 들었으니 이제는 일어나 빛을 발하며 담대히 전해야 하겠습니다.
빛이 임하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듯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들을 선포할 때 이것이 빛이 되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가정과 직장, 학교와 일터에서 생명 다해 복음을 전하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서신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도 된 자신을 소개하며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비록 옥에 갇혀 매인 몸이 되었어도 편지로 성도들을 깨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결과, 믿음으로 환난과 핍박을 넉넉히 이겨 냄으로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도 든든히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어느 곳에 있든지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 )를 발해야 한다.
② ( )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③ 생명의 ( )과 하나님의 ( )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2. 영적으로 ( )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 )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사야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 없이 선포하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많이 하였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유다와 열방을 향해 가깝고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였다.
특히 유다의 정치, 도덕, 종교적인 부패상을 비판하면서 유다가 살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외치며,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의 약속을 전하였다.
교육목표 : 어두움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고 있는 마지막 때에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만방에 드러내는 성도가 되게 한다.
밤이 깊고 어둠이 짙어 갈수록 사람들은 빛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그 가치가 더욱 커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으로 관영한 마지막 때에 수많은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는 주님을 믿는 만민의 성도들은 더욱 빛을 발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말씀했습니다(사 60:1).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명령이요, 그들의 영광스런 미래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은 온통 절망과 어둠으로 가득했습니다. 온 나라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숭배하고 범죄하며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듣지 않고 계속 악에 악을 더해 갔습니다. 더구나 주변 국가의 위협이 도사리고 국력은 쇠퇴해질 대로 쇠퇴해졌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이 심판을 받을 것과 선민 이스라엘에게 다시 영광스러운 미래와 메시아의 도래를 약속하시며 본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만민의 성도들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날은 이사야 당시보다 더욱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덮여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에게 여호와의 영광의 빛을 만방에 비추는 사명이 주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지금은 전 세계 수많은 교회에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으로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고,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4장 48절에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한 대로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즉 따르는 기사와 표적,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확실히 증거해 줘야 하지요. 또한 교회에 다닌다 해도 진리가 없어 목말라 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섭리와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십자가의 도를 밝히 깨달을 수 있도록 생명의 말씀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세계 선교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려면 전 성도가 당당히 일어나 빛을 발해야 하겠습니다.
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이루려면
1)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둠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빛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셨고, 요한복음 8장 12절에는 예수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고 말씀했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빛의 근원이 되신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권면한 것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좇아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엡 5:8~9).
어둠에 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둠에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지만, 빛이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진리의 빛을 비추시면 무엇이 어둠이고, 빛인지를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주 안에 들어오는 만큼 예전에 행하던 죄들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요.
각 사람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에 이루었고, 악을 버려 성결되었느냐에 따라 빛을 비추는 힘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빛을 소유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당당히 하나님의 역사들을 나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둠의 세력과 싸우다가 그만 힘을 잃고 어둠에 묻혀 버리기도 하지요. 분명한 것은 진리의 빛이 임하는 만큼 비진리의 어둠은 반드시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사 흑암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그 빛 가운데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을 비추는 큰 빛으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생명의 빛을 전파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내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넓게는 사회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으며, 마침내는 세계 만방에 일어나 마음껏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2)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서 권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는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는 죽어 무덤에 장사된 나사로를 살리셨으며(요 11장), 하나님의 권능을 받았던 사도 바울에게는 희한한 능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습니다(행 19:12).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사십 일 동안 이 땅에 계시다가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후 승천하셨습니다(행 1:8~9). 그리하여 초대교회 사도들은 물론, 빌립 집사나 스데반 집사와 같은 성도들도 권능을 베풀며 복음을 증거하는 곳마다 수많은 사람이 구원받는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이라 해도 권능을 받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한 그릇을 갖추어야 합니다. 곧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주님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온전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권능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흠이 없고 온유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권능은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가며 불같은 기도를 쌓아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능을 받아 온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친히 목도한 초대교회 성도들이 만약 핍박이 두려워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하는 자들이 없다면 들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만민의 주의 종과 성도 여러분은 하나님의 권능의 역사를 친히 보았고, 혼과 영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는 생명의 말씀을 친히 들었으니 이제는 일어나 빛을 발하며 담대히 전해야 하겠습니다.
빛이 임하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듯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들을 선포할 때 이것이 빛이 되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깨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가정과 직장, 학교와 일터에서 생명 다해 복음을 전하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서신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도 된 자신을 소개하며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비록 옥에 갇혀 매인 몸이 되었어도 편지로 성도들을 깨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결과, 믿음으로 환난과 핍박을 넉넉히 이겨 냄으로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도 든든히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도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주님의 증인이 되기 위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어느 곳에 있든지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죽어 가는 영혼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마음껏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 )를 발해야 한다.
② ( )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③ 생명의 ( )과 하나님의 ( )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2. 영적으로 ( )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 )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사야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 없이 선포하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많이 하였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유다와 열방을 향해 가깝고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였다.
특히 유다의 정치, 도덕, 종교적인 부패상을 비판하면서 유다가 살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외치며,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의 약속을 전하였다.
2018-12-28
제52과의를 위해 핍박받은 바울
고린도후서 11:23~27
읽을말씀 : 고린도후서 11:23~27 | 외울말씀 : 디모데후서 4:8 ㅣ 참고 말씀: 로마서 9:3
교육목표 : 이방인의 사도로서 세계 선교의 초석이 된 사도 바울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참 믿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사도 바울은 한 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향은 날이 갈수록 더욱 진해졌지요. 주님의 마음을 닮아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로서 권능을 베풀며 이방인 선교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 주님을 만나 회심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던 그는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대단했습니다.
자기 의가 아주 강하여 자신이 가진 지식과 의로써 변론하며 지지 않으려는 성품이었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고 전파하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했지요. 마치 모세와 율법을 무시하는 것 같아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느 날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서 빛이 바울을 둘러 비추더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시지요. 사울은 바울의 옛 이름입니다.
그 후 바울은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합니다.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가 안수한 다음에야 볼 수 있었지요. 그는 아나니아를 통해 앞으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기 위해 선택된 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고 잔해하던 자였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삶으로 온전히 바뀌었지요.
2. 숱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오직 감사했던 사도 바울
바울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자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처럼 여겨졌습니다.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귀한 사명까지 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했지요. 그러니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해도 주를 향한 마음이 변함없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이처럼 사도 바울은 죽도록 충성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은 더욱 짙어질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감옥에 갇혔다 해도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앞의 푯대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겼지요. 또한 영혼을 구원하며 하늘에 많은 상급을 쌓을 뿐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마음 중심에서 감사했습니다.
혹여 여러분은 고난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어려움에도 이내 절망하고 낙심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고 모든 것을 드리기까지 헌신했는데 원하는 대로 축복이 임하지 않았을 때 슬퍼하지는 않았는지요? 또 스스로 실망하여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육신의 생각으로 많은 분야에서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는지요? 사도 바울처럼 어떠한 상황에 처했다 할지라도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중심에서 감사하며 작은 사명이라도 귀히 여기며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3. 영혼 사랑이 승했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영혼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시면서도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하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도 숱한 핍박과 고난을 당하면서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기도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성도들이 진리 안에 살도록 눈물로 훈계하며 간구하였지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서 9장 3절에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했지요.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자기와 같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 중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했지요.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며 자신이 지옥에 떨어져도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누구보다 지옥의 참담함과 무서움을 잘 알면서도 담대히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생명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승했기 때문입니다.
4. 천국 소망으로 가득 찼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숱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장차 주님을 뵈올 수 있다는 천국 소망으로 넘쳐났습니다. 이 세상 무엇도 주님과는 비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주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 7절 이하에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고백했지요.
사도 바울은 주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하신 대로 오직 천국 소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후 한 번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식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고 종국에는 순교에 이를 때도 오직 감사뿐이었습니다. ‘내 생애가 이렇게 마감되는구나!’ 하고 착잡한 마음이나 회한이 든 것이 아니었고,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한 경직된 심정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도 보고 싶었던 주님을 이제 곧 뵈올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했기에 천국 소망으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감사했기에 연단을 통해 권능의 대사도로 나와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였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사가 변치 않고 천국 소망 가운데 죽도록 충성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크게 확장시켜 나가는 영적 장수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신약 시대 최고의 권능의 사도로 이방인 선교에 앞장서며 수많은 영혼을 구원했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2. 사도 바울이 말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누구를 가리킬까요?
3.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어떠한 고난을 당했는지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을 읽으면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한 해 동안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크신 사랑과 은혜로 축복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마음껏 감사의 고백을 올려 드리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바울 서신’이란?
바울에 의해 쓰인 편지들로 신약 성경 27권 중 14권이 이에 해당한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가 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감옥에서 기록하였다 하여 옥중서신이라 한다.
교육목표 : 이방인의 사도로서 세계 선교의 초석이 된 사도 바울의 희생과 헌신을 통해 참 믿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사도 바울은 한 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 할지라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향은 날이 갈수록 더욱 진해졌지요. 주님의 마음을 닮아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로서 권능을 베풀며 이방인 선교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 주님을 만나 회심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 중에 히브리인이요,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던 그는 하나님께 대한 마음이 대단했습니다.
자기 의가 아주 강하여 자신이 가진 지식과 의로써 변론하며 지지 않으려는 성품이었기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고 전파하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했지요. 마치 모세와 율법을 무시하는 것 같아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느 날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서 빛이 바울을 둘러 비추더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시지요. 사울은 바울의 옛 이름입니다.
그 후 바울은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합니다.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가 안수한 다음에야 볼 수 있었지요. 그는 아나니아를 통해 앞으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기 위해 선택된 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에는 그리스도인들을 결박하고 잔해하던 자였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삶으로 온전히 바뀌었지요.
2. 숱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오직 감사했던 사도 바울
바울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자 자신이 죄인 중에 괴수처럼 여겨졌습니다.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귀한 사명까지 주신 주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했지요. 그러니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해도 주를 향한 마음이 변함없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이처럼 사도 바울은 죽도록 충성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은 더욱 짙어질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감옥에 갇혔다 해도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앞의 푯대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겼지요. 또한 영혼을 구원하며 하늘에 많은 상급을 쌓을 뿐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마음 중심에서 감사했습니다.
혹여 여러분은 고난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어려움에도 이내 절망하고 낙심하지는 않습니까?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고 모든 것을 드리기까지 헌신했는데 원하는 대로 축복이 임하지 않았을 때 슬퍼하지는 않았는지요? 또 스스로 실망하여 ‘나는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인가 보다.’ 하는 육신의 생각으로 많은 분야에서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는지요? 사도 바울처럼 어떠한 상황에 처했다 할지라도 나를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중심에서 감사하며 작은 사명이라도 귀히 여기며 충성하시기 바랍니다.
3. 영혼 사랑이 승했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영혼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시면서도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하셨던 것처럼, 사도 바울도 숱한 핍박과 고난을 당하면서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기도했습니다.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성도들이 진리 안에 살도록 눈물로 훈계하며 간구하였지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서 9장 3절에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했지요.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자기와 같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 중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했지요.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하며 자신이 지옥에 떨어져도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누구보다 지옥의 참담함과 무서움을 잘 알면서도 담대히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생명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승했기 때문입니다.
4. 천국 소망으로 가득 찼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숱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장차 주님을 뵈올 수 있다는 천국 소망으로 넘쳐났습니다. 이 세상 무엇도 주님과는 비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주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 7절 이하에는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라고 고백했지요.
사도 바울은 주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승리하였습니다.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하신 대로 오직 천국 소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후 한 번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식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하고 종국에는 순교에 이를 때도 오직 감사뿐이었습니다. ‘내 생애가 이렇게 마감되는구나!’ 하고 착잡한 마음이나 회한이 든 것이 아니었고,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한 경직된 심정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너무도 보고 싶었던 주님을 이제 곧 뵈올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했기에 천국 소망으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감사했기에 연단을 통해 권능의 대사도로 나와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였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사가 변치 않고 천국 소망 가운데 죽도록 충성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크게 확장시켜 나가는 영적 장수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신약 시대 최고의 권능의 사도로 이방인 선교에 앞장서며 수많은 영혼을 구원했던 사람은 누구일까요?
2. 사도 바울이 말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누구를 가리킬까요?
3.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어떠한 고난을 당했는지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을 읽으면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 금주 과제
한 해 동안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크신 사랑과 은혜로 축복하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마음껏 감사의 고백을 올려 드리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바울 서신’이란?
바울에 의해 쓰인 편지들로 신약 성경 27권 중 14권이 이에 해당한다.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가 있다.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감옥에서 기록하였다 하여 옥중서신이라 한다.
2018-12-21
제51과주님은 누구의 구주이신가
마태복음 2:1~12
읽을말씀 : 마태복음 2:1~12 | 외울말씀 : 누가복음 2:14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1:21
교육목표 :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세 가지 예물인 황금, 유향, 몰약에 담긴 영적 의미를 알아본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입니다.
1.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지금부터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지요.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정욕대로 살아가는 짐승과 다름없게 된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지요(전 3:18).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지요. 범죄한 아담의 후손은 점점 죄로 물들어 갔고 결국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사람의 본분을 벗어나서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을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고, 이들의 참된 양식이 되기 위해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던 것입니다(눅 2:7).
또한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태어나신 것은 인류의 가난을 대속하시기 위함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여 저주를 받음으로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요한 자로서 우리를 부요케 하시고자 가난한 길을 가신 것입니다(고후 8:9).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장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선민은 아니었지만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며 선한 양심을 좇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찾아가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마 2:11).
사실 육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왕궁도, 호화로운 저택도 아니고 짐승들이 사는 마구간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려 보면 그곳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하늘의 선지자들과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육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영으로 보고 느꼈기에 영의 행함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광 돌렸지요. ‘안나’ 선지자 역시 과부 된 지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육신의 생각 속에서 구세주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영으로 깨어 있어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줍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이들은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지 못했습니다.
3. 세 가지 예물에 담긴 영적 의미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이 세 가지 예물에는 어떠한 영적인 의미가 있을까요?
1) 마음을 의미하는 황금
황금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합니다. 또한 황금은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마 6:21).
따라서 황금을 예물로 드린다는 말은 마음을 드린다는 의미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명 그 이상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요. 이처럼 우리가 가진 전부를 드리는 일, 할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우며 황금을 예물로 드리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 황금을 드린 것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장차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향기를 의미하는 유향
유향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하지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착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모습이 바로 주님 앞에 유향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함은 물론 중심을 감찰하시며 무엇보다 마음의 향기를 흠향하십니다.
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림과 같이 마음의 할례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중심이요, 생명이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중심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범사가 형통하며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도 받습니다(요삼 1:2).
3)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하는 몰약
몰약은 부패를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즉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변함없이 생명까지도 주님께 바칠 수 있는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 번 주님을 만나 자신의 생애를 주님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다면 은혜받은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변함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함없는 마음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악의 모양이 남아 있으면 자신의 유익을 좇아 변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먼저 나의 전부를 드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되 마음의 할례를 통해 그 속의 비진리를 모두 벗어 버리고 진리로 채워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다면 이것이 곧 주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몰약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값진 선물을 받은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께 우리의 마음인 황금과, 그리스도의 향기인 유향과, 변함없는 믿음인 몰약을 선물로 드림으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하며 영적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의미한다.
2. ( )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준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한다.
3. ( )은 부패를 막아주는 방부제 역할을 한다.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것이다.
즉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08~21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베들레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이다. 베들레헴은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으로 다윗왕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삼상 16:1, 눅 2:4).
미가서 5장 2절을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예언되어 있다.
교육목표 :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세 가지 예물인 황금, 유향, 몰약에 담긴 영적 의미를 알아본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입니다.
1.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지금부터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지요.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정욕대로 살아가는 짐승과 다름없게 된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지요(전 3:18).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지요. 범죄한 아담의 후손은 점점 죄로 물들어 갔고 결국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사람의 본분을 벗어나서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을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고, 이들의 참된 양식이 되기 위해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던 것입니다(눅 2:7).
또한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태어나신 것은 인류의 가난을 대속하시기 위함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여 저주를 받음으로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요한 자로서 우리를 부요케 하시고자 가난한 길을 가신 것입니다(고후 8:9).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은 사람들
마태복음 2장에 나오는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선민은 아니었지만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며 선한 양심을 좇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찾아가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마 2:11).
사실 육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왕궁도, 호화로운 저택도 아니고 짐승들이 사는 마구간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려 보면 그곳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하늘의 선지자들과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육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영으로 보고 느꼈기에 영의 행함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광 돌렸지요. ‘안나’ 선지자 역시 과부 된 지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육신의 생각 속에서 구세주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영으로 깨어 있어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줍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이들은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 받지 못했습니다.
3. 세 가지 예물에 담긴 영적 의미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이 세 가지 예물에는 어떠한 영적인 의미가 있을까요?
1) 마음을 의미하는 황금
황금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합니다. 또한 황금은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마 6:21).
따라서 황금을 예물로 드린다는 말은 마음을 드린다는 의미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명 그 이상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요. 이처럼 우리가 가진 전부를 드리는 일, 할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우며 황금을 예물로 드리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 황금을 드린 것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장차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향기를 의미하는 유향
유향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하지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착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모습이 바로 주님 앞에 유향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함은 물론 중심을 감찰하시며 무엇보다 마음의 향기를 흠향하십니다.
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림과 같이 마음의 할례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중심이요, 생명이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중심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범사가 형통하며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도 받습니다(요삼 1:2).
3)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하는 몰약
몰약은 부패를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즉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변함없이 생명까지도 주님께 바칠 수 있는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 번 주님을 만나 자신의 생애를 주님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다면 은혜받은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변함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함없는 마음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악의 모양이 남아 있으면 자신의 유익을 좇아 변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먼저 나의 전부를 드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되 마음의 할례를 통해 그 속의 비진리를 모두 벗어 버리고 진리로 채워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다면 이것이 곧 주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몰약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값진 선물을 받은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께 우리의 마음인 황금과, 그리스도의 향기인 유향과, 변함없는 믿음인 몰약을 선물로 드림으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하며 영적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의미한다.
2. ( )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준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한다.
3. ( )은 부패를 막아주는 방부제 역할을 한다.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것이다.
즉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한다.
* 금주 과제
<엿새 동안의 만나(하)> 책자 208~215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베들레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이다. 베들레헴은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으로 다윗왕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삼상 16:1, 눅 2:4).
미가서 5장 2절을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예언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