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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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4
제7과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1)
로마서 8:5~8
읽을말씀 : 로마서 8:5~8 | 외울말씀 : 로마서 8:7 l 참고 말씀: 신명기 25:17~19
교육목표 :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매순간 진리의 생각을 채움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실상이 나타나게 만듭니다.
성경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고 3년 반의 가뭄 속에 비가 오게 했습니다(왕상 18장). 또한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강한 군대를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육신의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큰 장애물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막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1.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생각이란,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보고 듣고 배워 머릿속에 입력된 지식을 재생하여 떠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에는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이 있습니다.
육신이란, 우리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의미합니다. 미움, 혈기, 판단, 정죄, 시기, 교만 등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지요.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진리 가운데서 지식을 되살려 내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영의 생각은 진리의 생각이며 육신의 생각은 비진리의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에게 매우 무례히 행하거나 애매히 비난을 합니다. 이때 육신의 생각을 하는가, 영의 생각을 하는가에 따라 반응이 전혀 다릅니다. 비진리를 동원하여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몹시 불쾌하고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을 직접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혹 그러지는 않는다 해도 서운해하거나 마음이 요동하며 고통을 받습니다.
이와 달리 영의 생각, 진리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같은 상황일 때 진리의 마음이 반응합니다. 사랑, 이해, 용서, 화평, 섬김 등의 마음이 작용하지요. ‘저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 마음을 평안케 해 줘야겠다. 오해를 풀어 줘야겠다.’ 하며 진리의 마음으로 반응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어떻게 하면 상대와 화평을 이룰 수 있을지 그 방법론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면 성령이 주관하시는 대로 부드러운 낯빛과 온유한 음성으로 또한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말과 행함으로 나타내게 됩니다.
2. 영적인 믿음의 방해 요인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안에 비진리 곧 육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진리의 지식이 없고 진리의 지식만 있다면 육신의 생각이 동원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인 진리의 지식이 떠오를 때에는 영의 생각을 하지만 비진리의 지식이 떠오를 때에는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중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매우 다릅니다.
로마서 8장 5~8절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영의 생각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좇기 때문에 생명이 되고 마음을 평안케 합니다. 반면에 육신의 생각은 죄와 불의를 좇기에 평안이 아닌 근심과 고통이 따릅니다. 무엇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으로서 영계의 법칙을 설명하기 때문에 세상의 지식과 이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습니다.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 말씀이 이해되고 믿어지지만 육신의 생각이 있는 사람은 말씀이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믿지 못하며, 순종하지도 못합니다.
한 예로, 예수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하시고 “섬기라, 낮아지라” 하셨는데, 주고 섬기면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 순종하지 못하지요.
그런데 사람이 진리의 생각을 하려 해도 어떤 것이 진리이고 비진리인지 분별하지 못하므로 자기도 모르게 비진리의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들이 진리라고 알고 있는 지식 중에 진리가 아닌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책에는 부모의 원수를 갚는 일이 당연하며, 그렇지 않으면 비겁하다는 가치관이 깔려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이면 원수 갚는 일을 의로운 행동으로 여기게 되는데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결코 진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고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것이 진리이지요. 이러한 진리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라 해도 ‘용서해야겠다. 사랑해야겠다.’라는 진리의 생각, 영의 생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에 비진리의 지식을 지닌 사람은 “저 사람은 너무 악하기 때문에 도무지 사랑할 수 없다.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자기의 가치관을 가지고 변명하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이렇게 잘못된 지식, 비진리의 지식을 되살려 내는 것이 육신의 생각으로서 이는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여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3. 육신의 생각으로 불순종한 사울왕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말렉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 아말렉이 멸망할 수밖에 없을 만큼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쌓았기 때문입니다(신 25:17~19). 그들을 그대로 둔다면 이스라엘마저 우상 숭배와 같은 이방 풍속에 물들 위험이 있으므로 사전에 불씨를 없애야 했지요.
그러나 사울왕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면 좋겠다는 그럴 듯한 이유를 내세워 가축 중에 좋은 것은 살려서 가져옵니다. 아말렉 왕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왔지요. 사울왕이 불순종한 것은 욕심과 교만 가운데서 나온 육신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가축을 죽이기 아까웠고 아말렉 왕을 사로잡아 와서 백성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지요.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다 진멸하라 하신 이유는 사울보다 어리석거나 지혜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죄에 대한 보응으로서 그들을 멸하는 것이 합당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자기 생각 속에서 더 지혜롭고 좋아 보이는 쪽을 택했으니 이는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욕심과 교만으로 눈이 가려진 사울은 불순종을 하고도 회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악을 쌓아갑니다. 다윗이 백성에게 사랑을 받자 사울은 그를 시기하여 일평생 죽이러 쫓아다닙니다. 심지어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놉 땅에 사는 85명의 제사장들을 죽이고 성읍을 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한 일입니다. 결국 그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방인의 손에 죽지 않기 위해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오늘날도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명하실 때 현실을 보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럴 때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과 조건을 주관하여 그분의 뜻과 섭리를 이루시며 현실적으로는 큰 난관이 있다 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지요.
그러나 자신의 능력이나 형편이 안 된다는 등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순종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이란 우리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 )이다.
2.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안에 비진리 곧 ( )이 있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31~45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아말렉’
아말렉은 야곱의 형 에서의 손자다. 성경은 그의 후손인 아말렉인을 일컬어 아말렉이라고도 한다. 아말렉인들은 이스라엘과 늘 적대관계에 있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비겁하게 행렬에 쳐진 약한 자들을 따라가며 치기도 했다(신 25:17~19).
홍해를 가르고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백성을 쳤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이 끝난 후에 모세에게 아말렉을 이 땅에서 전멸시킬 것을 명하셨다(출 17:14).
이들이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쌓았고, 그대로 둔다면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와 이방 풍속에 물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교육목표 :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매순간 진리의 생각을 채움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실상이 나타나게 만듭니다.
성경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고 3년 반의 가뭄 속에 비가 오게 했습니다(왕상 18장). 또한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강한 군대를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육신의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큰 장애물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막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1.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생각이란,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보고 듣고 배워 머릿속에 입력된 지식을 재생하여 떠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에는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이 있습니다.
육신이란, 우리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의미합니다. 미움, 혈기, 판단, 정죄, 시기, 교만 등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지요.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진리 가운데서 지식을 되살려 내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영의 생각은 진리의 생각이며 육신의 생각은 비진리의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에게 매우 무례히 행하거나 애매히 비난을 합니다. 이때 육신의 생각을 하는가, 영의 생각을 하는가에 따라 반응이 전혀 다릅니다. 비진리를 동원하여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몹시 불쾌하고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을 직접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혹 그러지는 않는다 해도 서운해하거나 마음이 요동하며 고통을 받습니다.
이와 달리 영의 생각, 진리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같은 상황일 때 진리의 마음이 반응합니다. 사랑, 이해, 용서, 화평, 섬김 등의 마음이 작용하지요. ‘저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 마음을 평안케 해 줘야겠다. 오해를 풀어 줘야겠다.’ 하며 진리의 마음으로 반응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어떻게 하면 상대와 화평을 이룰 수 있을지 그 방법론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면 성령이 주관하시는 대로 부드러운 낯빛과 온유한 음성으로 또한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말과 행함으로 나타내게 됩니다.
2. 영적인 믿음의 방해 요인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안에 비진리 곧 육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진리의 지식이 없고 진리의 지식만 있다면 육신의 생각이 동원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인 진리의 지식이 떠오를 때에는 영의 생각을 하지만 비진리의 지식이 떠오를 때에는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중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매우 다릅니다.
로마서 8장 5~8절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영의 생각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좇기 때문에 생명이 되고 마음을 평안케 합니다. 반면에 육신의 생각은 죄와 불의를 좇기에 평안이 아닌 근심과 고통이 따릅니다. 무엇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으로서 영계의 법칙을 설명하기 때문에 세상의 지식과 이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습니다.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 말씀이 이해되고 믿어지지만 육신의 생각이 있는 사람은 말씀이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믿지 못하며, 순종하지도 못합니다.
한 예로, 예수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하시고 “섬기라, 낮아지라” 하셨는데, 주고 섬기면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 순종하지 못하지요.
그런데 사람이 진리의 생각을 하려 해도 어떤 것이 진리이고 비진리인지 분별하지 못하므로 자기도 모르게 비진리의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들이 진리라고 알고 있는 지식 중에 진리가 아닌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책에는 부모의 원수를 갚는 일이 당연하며, 그렇지 않으면 비겁하다는 가치관이 깔려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이면 원수 갚는 일을 의로운 행동으로 여기게 되는데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결코 진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고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것이 진리이지요. 이러한 진리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라 해도 ‘용서해야겠다. 사랑해야겠다.’라는 진리의 생각, 영의 생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에 비진리의 지식을 지닌 사람은 “저 사람은 너무 악하기 때문에 도무지 사랑할 수 없다.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자기의 가치관을 가지고 변명하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이렇게 잘못된 지식, 비진리의 지식을 되살려 내는 것이 육신의 생각으로서 이는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여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3. 육신의 생각으로 불순종한 사울왕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말렉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 아말렉이 멸망할 수밖에 없을 만큼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쌓았기 때문입니다(신 25:17~19). 그들을 그대로 둔다면 이스라엘마저 우상 숭배와 같은 이방 풍속에 물들 위험이 있으므로 사전에 불씨를 없애야 했지요.
그러나 사울왕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면 좋겠다는 그럴 듯한 이유를 내세워 가축 중에 좋은 것은 살려서 가져옵니다. 아말렉 왕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왔지요. 사울왕이 불순종한 것은 욕심과 교만 가운데서 나온 육신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가축을 죽이기 아까웠고 아말렉 왕을 사로잡아 와서 백성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지요.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다 진멸하라 하신 이유는 사울보다 어리석거나 지혜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죄에 대한 보응으로서 그들을 멸하는 것이 합당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자기 생각 속에서 더 지혜롭고 좋아 보이는 쪽을 택했으니 이는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욕심과 교만으로 눈이 가려진 사울은 불순종을 하고도 회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악을 쌓아갑니다. 다윗이 백성에게 사랑을 받자 사울은 그를 시기하여 일평생 죽이러 쫓아다닙니다. 심지어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놉 땅에 사는 85명의 제사장들을 죽이고 성읍을 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한 일입니다. 결국 그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방인의 손에 죽지 않기 위해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오늘날도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명하실 때 현실을 보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럴 때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과 조건을 주관하여 그분의 뜻과 섭리를 이루시며 현실적으로는 큰 난관이 있다 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지요.
그러나 자신의 능력이나 형편이 안 된다는 등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순종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이란 우리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 )이다.
2.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안에 비진리 곧 ( )이 있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31~45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아말렉’
아말렉은 야곱의 형 에서의 손자다. 성경은 그의 후손인 아말렉인을 일컬어 아말렉이라고도 한다. 아말렉인들은 이스라엘과 늘 적대관계에 있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비겁하게 행렬에 쳐진 약한 자들을 따라가며 치기도 했다(신 25:17~19).
홍해를 가르고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백성을 쳤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이 끝난 후에 모세에게 아말렉을 이 땅에서 전멸시킬 것을 명하셨다(출 17:14).
이들이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쌓았고, 그대로 둔다면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와 이방 풍속에 물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2020-02-07
제6과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 (2)
히브리서 11:1~3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1~3 | 외울말씀 : 고린도후서 10:5 ㅣ 참고 말씀: 로마서 10:17
교육목표 : 의심을 가져오는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고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보고 듣고 행함으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육적인 믿음이란 눈으로 보아 확인이 되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믿어지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유에서 유의 창조, 즉 있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이론에 맞는 것만 믿는 육적인 믿음은 진리 안에서 온전한 행함이 따를 수 없으므로 죽은 믿음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면 이와 반대되는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1. 참 믿음은 영적인 믿음
영적인 믿음은 육적인 믿음과 반대로 자신의 지식이나 생각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다 믿는 믿음입니다.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으며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변개하지 않는 믿음이지요. 또한 지식으로 아는 데 그치지 않고 행함을 통해 증거를 보이는 믿음으로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2절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라고 믿음을 정의합니다.
영의 눈으로 바라보니 실제 상이 생겨나고, 눈에 보이지 않으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니 실제 증거가 나타납니다. 육적인 믿음, 지식적인 믿음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나타나 보이는 것입니다. 많은 선진들이 믿음으로써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응답받았습니다. 또한 보지 못하는 것을 눈에 보이는 증거로 받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지팡이를 내밀어 홍해를 갈랐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지팡이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자, 밤새도록 큰 동풍이 불었습니다. 큰 바람 가운데 바다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서 건넜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여리고성을 7일 동안 돌고 외쳐 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견고한 성이 백성의 외침으로 무너진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훈련을 받은 출애굽 2세대들은 여호수아의 명대로 성을 돌고 외쳤습니다. 과연 성벽이 무너져내려 성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으며 행함이 따르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믿음이요, 영적인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으면 건강, 가정, 일터, 사업터의 문제를 해결받음은 물론,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도 기도하여 응답받습니다. 나아가 아름답고 영화로운 천국을 소유하여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육적인 믿음은 자신이 아는 만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믿음은 사람이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말씀한 대로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분량만큼 가질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마음대로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많은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이웃을 미워하여 “저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응답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마음과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만 응답이 따르는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첫째, 의심을 가져오는 생각과 이론을 모두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을 갖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요소는 바로 비진리에서 비롯된 생각과 이론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각종 기사와 표적을 의심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도 믿지 못하지요. 이런 의심은 사람의 지식이나 이론으로부터 나오며 원수 마귀 사단이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이론이란 어떤 지식을 바탕으로 사물의 이치나 현상 등에 대해 정립해 놓은 논리 체계입니다. 이는 사람이 세운 것이므로 모두가 진리는 아닙니다. 그러니 한 가지 현상에 대해 여러 이론이 있기도 하고 예전에는 옳다 하던 내용이 시간이 지나면 그르다 하는 일도 생깁니다.
이처럼 이론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며 그 안에는 진리도 있지만 하나님 말씀에 상반되는 비진리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비진리의 생각을 고집하거나 성경 말씀에 반대되는 이론에 집착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어렵고 말씀에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말씀한 대로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생각과 이론을 깨뜨려야 합니다. 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이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면 철저히 무로 돌리라는 의미입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진리이기에 그에 맞지 않을 때는 무조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불같이 기도하여 하나님께 능력을 받으면 의심을 가져오는 생각, 잘못된 지식이나 이론을 깨뜨려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 말씀이 받아들여지고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 말씀을 보고 들으며 가르침 받아 열심히 행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모르면 말씀대로 행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가르침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지식으로만 쌓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교만해질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지식으로 담아 놓은 말씀이 마음 안에 영적인 믿음으로 채워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나 스포츠 선수가 되고자 할 때 이론서를 반복하여 읽기만 한다 해서 가능할까요? 이론을 공부한 후 실제로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배운다 해도 정작 그 말씀대로 행치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는 데 그치지 않고 행함을 통해 마음을 진리로 채워 나갈 때라야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마음을 진리로 채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버리라 하신 미움, 다툼, 시기, 간음 등 비진리를 버리고, 섬기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등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 안에 진리로 채워 나가면 자연히 비진리는 빠져 나갑니다. 이로써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만큼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오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로 즉시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게 잘못한 사람이라도 어찌하든 이해하고 사랑하려 하지만 마음에 여전히 미움과 감정이 있습니다. 또 간음을 버리기 원하지만 막상 마음에 드는 이성을 보면 동요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불같이 기도하여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중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구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해 나가면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실제로 축복을 체험합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마음의 소원도 응답받지요. 이런 체험이 쌓이면 더 큰 일도 순종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믿음도 더 커집니다.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불가능한 일을 명하셔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무엇이나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므로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며 행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믿음은 육적인 믿음과 반대로 자신의 ( )이나 ( )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다 믿는 믿음이다.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으며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 )하지 않는 믿음이다.
2. 우리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의심을 가져오는 ( )과 ( )을 모두 깨뜨려 버려야 한다.
② ( )을 보고 들으며 가르침 받아 열심히 행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31~45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여호수아’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이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군대 지휘관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고 모세의 수종자로 함께 시내산에 올라갔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 중 한 사람으로 악평하는 10명의 정탐꾼과는 달리 갈렙과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임을 확신에 찬 믿음으로 고백하였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다. 가나안 땅을 12지파에게 분배하였고, 110세에 죽어 자신이 기업으로 받은 땅 딤낫세라에 장사되었다(수 24:29~30).
교육목표 : 의심을 가져오는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고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보고 듣고 행함으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육적인 믿음이란 눈으로 보아 확인이 되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믿어지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유에서 유의 창조, 즉 있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이론에 맞는 것만 믿는 육적인 믿음은 진리 안에서 온전한 행함이 따를 수 없으므로 죽은 믿음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면 이와 반대되는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1. 참 믿음은 영적인 믿음
영적인 믿음은 육적인 믿음과 반대로 자신의 지식이나 생각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다 믿는 믿음입니다.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으며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변개하지 않는 믿음이지요. 또한 지식으로 아는 데 그치지 않고 행함을 통해 증거를 보이는 믿음으로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2절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라고 믿음을 정의합니다.
영의 눈으로 바라보니 실제 상이 생겨나고, 눈에 보이지 않으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니 실제 증거가 나타납니다. 육적인 믿음, 지식적인 믿음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나타나 보이는 것입니다. 많은 선진들이 믿음으로써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응답받았습니다. 또한 보지 못하는 것을 눈에 보이는 증거로 받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지팡이를 내밀어 홍해를 갈랐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지팡이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자, 밤새도록 큰 동풍이 불었습니다. 큰 바람 가운데 바다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서 건넜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여리고성을 7일 동안 돌고 외쳐 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견고한 성이 백성의 외침으로 무너진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훈련을 받은 출애굽 2세대들은 여호수아의 명대로 성을 돌고 외쳤습니다. 과연 성벽이 무너져내려 성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으며 행함이 따르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믿음이요, 영적인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으면 건강, 가정, 일터, 사업터의 문제를 해결받음은 물론,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도 기도하여 응답받습니다. 나아가 아름답고 영화로운 천국을 소유하여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육적인 믿음은 자신이 아는 만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믿음은 사람이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말씀한 대로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분량만큼 가질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마음대로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많은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이웃을 미워하여 “저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응답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마음과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만 응답이 따르는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첫째, 의심을 가져오는 생각과 이론을 모두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을 갖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요소는 바로 비진리에서 비롯된 생각과 이론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각종 기사와 표적을 의심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도 믿지 못하지요. 이런 의심은 사람의 지식이나 이론으로부터 나오며 원수 마귀 사단이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이론이란 어떤 지식을 바탕으로 사물의 이치나 현상 등에 대해 정립해 놓은 논리 체계입니다. 이는 사람이 세운 것이므로 모두가 진리는 아닙니다. 그러니 한 가지 현상에 대해 여러 이론이 있기도 하고 예전에는 옳다 하던 내용이 시간이 지나면 그르다 하는 일도 생깁니다.
이처럼 이론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며 그 안에는 진리도 있지만 하나님 말씀에 상반되는 비진리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비진리의 생각을 고집하거나 성경 말씀에 반대되는 이론에 집착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어렵고 말씀에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말씀한 대로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생각과 이론을 깨뜨려야 합니다. 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이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면 철저히 무로 돌리라는 의미입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진리이기에 그에 맞지 않을 때는 무조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불같이 기도하여 하나님께 능력을 받으면 의심을 가져오는 생각, 잘못된 지식이나 이론을 깨뜨려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 말씀이 받아들여지고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 말씀을 보고 들으며 가르침 받아 열심히 행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모르면 말씀대로 행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가르침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지식으로만 쌓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교만해질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지식으로 담아 놓은 말씀이 마음 안에 영적인 믿음으로 채워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나 스포츠 선수가 되고자 할 때 이론서를 반복하여 읽기만 한다 해서 가능할까요? 이론을 공부한 후 실제로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배운다 해도 정작 그 말씀대로 행치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는 데 그치지 않고 행함을 통해 마음을 진리로 채워 나갈 때라야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마음을 진리로 채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버리라 하신 미움, 다툼, 시기, 간음 등 비진리를 버리고, 섬기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등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 안에 진리로 채워 나가면 자연히 비진리는 빠져 나갑니다. 이로써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만큼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오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로 즉시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게 잘못한 사람이라도 어찌하든 이해하고 사랑하려 하지만 마음에 여전히 미움과 감정이 있습니다. 또 간음을 버리기 원하지만 막상 마음에 드는 이성을 보면 동요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불같이 기도하여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중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구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해 나가면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실제로 축복을 체험합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마음의 소원도 응답받지요. 이런 체험이 쌓이면 더 큰 일도 순종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믿음도 더 커집니다.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불가능한 일을 명하셔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무엇이나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므로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며 행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믿음은 육적인 믿음과 반대로 자신의 ( )이나 ( )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다 믿는 믿음이다.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으며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 )하지 않는 믿음이다.
2. 우리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의심을 가져오는 ( )과 ( )을 모두 깨뜨려 버려야 한다.
② ( )을 보고 들으며 가르침 받아 열심히 행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31~45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여호수아’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이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군대 지휘관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고 모세의 수종자로 함께 시내산에 올라갔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 중 한 사람으로 악평하는 10명의 정탐꾼과는 달리 갈렙과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임을 확신에 찬 믿음으로 고백하였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다. 가나안 땅을 12지파에게 분배하였고, 110세에 죽어 자신이 기업으로 받은 땅 딤낫세라에 장사되었다(수 24:29~30).
2020-01-31
제5과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 (1)
히브리서 11:3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3 | 외울말씀 : 야고보서 1:6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21:22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가정, 일터, 사업터의 어떠한 문제라 할지라도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은 신앙생활의 기초입니다. 믿음이 있어야만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 된 권세를 받게 되지요. 믿음이 성장하여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만 하면 부와 명예, 권세와 건강 등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믿음만 있으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기에 믿음을 보배 중의 보배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1. 위대한 믿음의 힘
믿음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받는 일’도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지요.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의인이란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주님을 영접하고 진리인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의인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데, 믿음이 있어야 의인이 될 수 있지요(갈 2:16).
의식주 문제도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십니다.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시는데 하나님의 자녀야 어찌 먹이고 입히시지 않겠습니까(마 6:30).
질병이나 장애도 믿음으로 해결됩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구하여 응답받았습니다. 눈을 뜨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던 그는 예수님께서 각색 병자를 치료하고 갖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소문을 듣고 선한 마음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뵙기를 간절히 소망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근처에 지나가시자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불러 치료해 주셨습니다.
자연현상도 믿음으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아합왕 시대에 이스라엘에 우상숭배가 만연하여 하나님의 진노로 3년 반 동안 극심한 가뭄이 들었지요. 이때 엘리야는 비의 응답을 받기 위해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였던지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과연 엘리야의 믿음의 기도대로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해지고 큰비가 내렸습니다(왕상 18:45).
이처럼 믿음의 힘은 대단합니다. 믿음의 역사는 성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하신 대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오늘날에도 똑같이 나타나지요. 바디매오처럼 선한 마음과 믿음의 행함을 내보이면 질병만이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 등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가지면 기사와 표적, 권능도 나타낼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습니다(마 21:22).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고 구한 것은 다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만일 “믿습니다.” 하며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자신의 믿음이 참 믿음인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2. 육적인 믿음
믿음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육적인 믿음과 하나님께서 인정하며 응답하시는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육적인 믿음이란, 눈으로 확인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이론과 일치해야만 믿는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로 책상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거나 직접 본 적이 있는 경우, 누군가 “이 책상은 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면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또 반드시 재료가 있어야만 무엇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이지요. 그래서 육적인 믿음을 지식적인 믿음 또는 이성적인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은 부모, 형제, 이웃을 통하여 또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뇌세포의 기억 장치에 저장하여 필요할 때에 활용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입력된 지식이 모두 진리는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영원토록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사람들이 배우고 입력한 지식 중에는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뀜에 따라 변하는 비진리가 많습니다. 또한 시대마다 나라마다 진리의 기준이 다르며, 상황에 따라 그 활용 한도가 정해져 있는 지식도 있지요. 옳다고 여기던 이론도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비진리가 진리인 양 사용되어도 모른 채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우면 그것이 진리인 줄 압니다. 또 유(有)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만 배우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성경은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천지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또 사람의 지식과 이론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수많은 기사와 표적, 권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와 달이 운행을 멈춘 사건(수 10:12~13)이나 범람하던 강물이 멈춘 일(수 3:15~16)이 그 예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눈먼 사람을 보게 하며, 죽은 사람을 살리신 내용도 이에 해당합니다. 육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사실들이 자신의 지식과 이론에 맞지 않으므로 믿지 못합니다.
변개하는 믿음 역시 육적인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하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기도한 내용이 신속히 이뤄지지 않으면 점차 의심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하며 은혜가 떨어지지요. 과거에 자신이 응답받았던 체험이나 주위 사람들이 응답받은 간증에 대하여도 우연히 일어났던 일로 여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의지하지 못하고 세상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변개하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기에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따라서 변개하지 않고 끝까지 믿고 구하되 이미 받은 줄로 믿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행함이 없는 믿음도 육적인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에서 유의 창조도 믿고 성경 66권과 하나님의 역사를 다 믿는다고 말하지만 정작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과연 마음으로 믿는지, 머리로만 아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 말씀은 머리로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따릅니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말씀대로 행할 수 없지요.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하셨는데, 육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 말씀을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현실에 직면하면 행할 수 없습니다. 당장 생활비가 부족하다 싶으면 십일조를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심는 데에 인색합니다. 머리로는 알아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도 하지만 막상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지요. 애매히 고난을 당하면 어떻게든 따지고 변론하고자 합니다. 당한 만큼 갚아 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해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죽은 믿음으로는 응답이나 축복을 받지 못함은 물론 구원조차 받을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는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했지요.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 즉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어야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 해도 행함이 없는 육적인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아 반드시 행함 있는 믿음으로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 ) 믿음과 하나님께서 인정하며 응답하시는 참 믿음 곧 ( ) 믿음이 있다.
2. ( ) 믿음이란 눈으로 확인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이론과 일치해야만 믿는 믿음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2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손꼽히는 아합왕 시대에
활동한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엘리야는 헛된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로 가득 차 있는 백성을
회개시키고자 홀로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하늘에서
불을 끌어내림으로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확증시켜 주었다.
또한 간절한 기도로 3년 반 동안 가물었던 이스라엘 땅에 큰비를
내리게 했고, 죽은 아이를 살리며, 죽지 않고 산 채로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가정, 일터, 사업터의 어떠한 문제라 할지라도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은 신앙생활의 기초입니다. 믿음이 있어야만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 된 권세를 받게 되지요. 믿음이 성장하여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만 하면 부와 명예, 권세와 건강 등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믿음만 있으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기에 믿음을 보배 중의 보배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1. 위대한 믿음의 힘
믿음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받는 일’도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지요.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의인이란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주님을 영접하고 진리인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의인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데, 믿음이 있어야 의인이 될 수 있지요(갈 2:16).
의식주 문제도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십니다.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시는데 하나님의 자녀야 어찌 먹이고 입히시지 않겠습니까(마 6:30).
질병이나 장애도 믿음으로 해결됩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구하여 응답받았습니다. 눈을 뜨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던 그는 예수님께서 각색 병자를 치료하고 갖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소문을 듣고 선한 마음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뵙기를 간절히 소망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근처에 지나가시자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불러 치료해 주셨습니다.
자연현상도 믿음으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아합왕 시대에 이스라엘에 우상숭배가 만연하여 하나님의 진노로 3년 반 동안 극심한 가뭄이 들었지요. 이때 엘리야는 비의 응답을 받기 위해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였던지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과연 엘리야의 믿음의 기도대로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해지고 큰비가 내렸습니다(왕상 18:45).
이처럼 믿음의 힘은 대단합니다. 믿음의 역사는 성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하신 대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오늘날에도 똑같이 나타나지요. 바디매오처럼 선한 마음과 믿음의 행함을 내보이면 질병만이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 등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가지면 기사와 표적, 권능도 나타낼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습니다(마 21:22).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고 구한 것은 다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만일 “믿습니다.” 하며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자신의 믿음이 참 믿음인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2. 육적인 믿음
믿음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육적인 믿음과 하나님께서 인정하며 응답하시는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육적인 믿음이란, 눈으로 확인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이론과 일치해야만 믿는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로 책상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거나 직접 본 적이 있는 경우, 누군가 “이 책상은 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면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또 반드시 재료가 있어야만 무엇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이지요. 그래서 육적인 믿음을 지식적인 믿음 또는 이성적인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은 부모, 형제, 이웃을 통하여 또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뇌세포의 기억 장치에 저장하여 필요할 때에 활용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입력된 지식이 모두 진리는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영원토록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사람들이 배우고 입력한 지식 중에는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뀜에 따라 변하는 비진리가 많습니다. 또한 시대마다 나라마다 진리의 기준이 다르며, 상황에 따라 그 활용 한도가 정해져 있는 지식도 있지요. 옳다고 여기던 이론도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비진리가 진리인 양 사용되어도 모른 채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우면 그것이 진리인 줄 압니다. 또 유(有)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만 배우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성경은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천지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또 사람의 지식과 이론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수많은 기사와 표적, 권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와 달이 운행을 멈춘 사건(수 10:12~13)이나 범람하던 강물이 멈춘 일(수 3:15~16)이 그 예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눈먼 사람을 보게 하며, 죽은 사람을 살리신 내용도 이에 해당합니다. 육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사실들이 자신의 지식과 이론에 맞지 않으므로 믿지 못합니다.
변개하는 믿음 역시 육적인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하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기도한 내용이 신속히 이뤄지지 않으면 점차 의심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하며 은혜가 떨어지지요. 과거에 자신이 응답받았던 체험이나 주위 사람들이 응답받은 간증에 대하여도 우연히 일어났던 일로 여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의지하지 못하고 세상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변개하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기에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따라서 변개하지 않고 끝까지 믿고 구하되 이미 받은 줄로 믿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행함이 없는 믿음도 육적인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에서 유의 창조도 믿고 성경 66권과 하나님의 역사를 다 믿는다고 말하지만 정작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과연 마음으로 믿는지, 머리로만 아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 말씀은 머리로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따릅니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말씀대로 행할 수 없지요.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하셨는데, 육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 말씀을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현실에 직면하면 행할 수 없습니다. 당장 생활비가 부족하다 싶으면 십일조를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심는 데에 인색합니다. 머리로는 알아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도 하지만 막상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지요. 애매히 고난을 당하면 어떻게든 따지고 변론하고자 합니다. 당한 만큼 갚아 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해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죽은 믿음으로는 응답이나 축복을 받지 못함은 물론 구원조차 받을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는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했지요.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 즉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어야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 해도 행함이 없는 육적인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아 반드시 행함 있는 믿음으로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 ) 믿음과 하나님께서 인정하며 응답하시는 참 믿음 곧 ( ) 믿음이 있다.
2. ( ) 믿음이란 눈으로 확인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이론과 일치해야만 믿는 믿음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2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손꼽히는 아합왕 시대에
활동한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엘리야는 헛된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로 가득 차 있는 백성을
회개시키고자 홀로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하늘에서
불을 끌어내림으로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확증시켜 주었다.
또한 간절한 기도로 3년 반 동안 가물었던 이스라엘 땅에 큰비를
내리게 했고, 죽은 아이를 살리며, 죽지 않고 산 채로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2020-01-25
제0과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게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이날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2020년 대망의 새해에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지난 한 해도 지키시고 풍성한 것들로 채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주 안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늘 지키시고 축복하시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278장 ---------------------- 다 같이
1.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 자매 한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네
내 주 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 내 몸같이
환난 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2. 사랑하는 주님 앞에 온갖 충성 다바쳐서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만 힘써 섬기네
우리 주님 거룩한 손 제자들의 발을 씻어
남 섬기는 종의 도를 몸소 행해 보이셨네
3. 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한 몸같이 친밀하고 마음조차 하나 되어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잠언 16:7 ------------------------ 인도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설 교 -------------------모든 것에 화목하라 ----------------- 설교자
2. 설교 예문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모가 나면 이리저리 많은 사람과 부딪치게 되고 서로 고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둥글둥글한 사람은 많은 사람과 잘 어울리며 화평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서로 대하기도 좋고 마음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므로 화목을 이루기가 쉽습니다.
우리 교회 어느 성도 가정은 주님을 믿기 전에는 서로 화목하려고 해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각자 자기 생각과 욕심, 자기의 삶, 자기 방식 등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가정이 믿음 안에서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정이 복음화되었고, 가족 모임 때에 진리의 대화가 오가고 어둠이 물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 유익을 구하고, 서로 낮아지며, 이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모이고 대화하니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요. 또한 만나면 하나님 말씀으로 대화하고, 찬양하며, 문제가 생기면 서로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원하고 부모와 형제간에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것에 화목할 때 기도의 응답이 오고 좋은 일들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라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 힘쓰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불화나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이요, 진리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친히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어려서는 부모나 학교의 여러 스승을 통해 배워서 자기 나름대로의 지식과 생각, 이론을 정립하게 됩니다. 성장하면서는 여러 사람이 자기 주관에 맞추어 쓴 책자들을 읽고 감동받아서 그 작가의 사상을 머릿속에 입력시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환경과 각색의 사람들을 통해 온갖 지식이나 이론을 받아들였으니 사람마다 지혜와 지식, 사고방식과 양심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모두가 똑같다고 하면 전부가 일치되어 화목을 이룰 텐데 서로 다르기 때문에 화목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하나님 말씀으로 분별하여 진리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니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룹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생각과 이론이 옳다고 여기며 살아가게 되므로 고통이 끊이지 않지요.
우리가 화목의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친히 원수까지라도 화목하게 하시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먼저는,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예배드리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며 말씀대로 살아야 하나님 사랑과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순종해 나감으로 마음이 성결한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참된 의인이 되는 것이므로 진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하셨으니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열심히 전도하고 선을 행하며 덕을 베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중에는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움과 가정의 화목과 건강, 마음의 소원을 조상에게 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제사를 지내는 것이지요.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그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 다해 차례를 지냅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두 갈래로 나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반면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지요. 우리 조상들은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었기에 신을 찾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참 신으로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어떤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새해에는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심으로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게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이날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2020년 대망의 새해에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지난 한 해도 지키시고 풍성한 것들로 채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주 안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늘 지키시고 축복하시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278장 ---------------------- 다 같이
1.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 자매 한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네
내 주 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 내 몸같이
환난 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2. 사랑하는 주님 앞에 온갖 충성 다바쳐서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만 힘써 섬기네
우리 주님 거룩한 손 제자들의 발을 씻어
남 섬기는 종의 도를 몸소 행해 보이셨네
3. 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한 몸같이 친밀하고 마음조차 하나 되어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잠언 16:7 ------------------------ 인도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설 교 -------------------모든 것에 화목하라 ----------------- 설교자
2. 설교 예문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모가 나면 이리저리 많은 사람과 부딪치게 되고 서로 고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둥글둥글한 사람은 많은 사람과 잘 어울리며 화평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서로 대하기도 좋고 마음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므로 화목을 이루기가 쉽습니다.
우리 교회 어느 성도 가정은 주님을 믿기 전에는 서로 화목하려고 해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각자 자기 생각과 욕심, 자기의 삶, 자기 방식 등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가정이 믿음 안에서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정이 복음화되었고, 가족 모임 때에 진리의 대화가 오가고 어둠이 물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 유익을 구하고, 서로 낮아지며, 이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모이고 대화하니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요. 또한 만나면 하나님 말씀으로 대화하고, 찬양하며, 문제가 생기면 서로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원하고 부모와 형제간에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것에 화목할 때 기도의 응답이 오고 좋은 일들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라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 힘쓰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불화나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이요, 진리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친히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어려서는 부모나 학교의 여러 스승을 통해 배워서 자기 나름대로의 지식과 생각, 이론을 정립하게 됩니다. 성장하면서는 여러 사람이 자기 주관에 맞추어 쓴 책자들을 읽고 감동받아서 그 작가의 사상을 머릿속에 입력시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환경과 각색의 사람들을 통해 온갖 지식이나 이론을 받아들였으니 사람마다 지혜와 지식, 사고방식과 양심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모두가 똑같다고 하면 전부가 일치되어 화목을 이룰 텐데 서로 다르기 때문에 화목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하나님 말씀으로 분별하여 진리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니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룹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생각과 이론이 옳다고 여기며 살아가게 되므로 고통이 끊이지 않지요.
우리가 화목의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친히 원수까지라도 화목하게 하시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먼저는,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예배드리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며 말씀대로 살아야 하나님 사랑과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순종해 나감으로 마음이 성결한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참된 의인이 되는 것이므로 진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하셨으니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열심히 전도하고 선을 행하며 덕을 베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중에는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움과 가정의 화목과 건강, 마음의 소원을 조상에게 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제사를 지내는 것이지요.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그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 다해 차례를 지냅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두 갈래로 나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반면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지요. 우리 조상들은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었기에 신을 찾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참 신으로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어떤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새해에는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심으로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20-01-24
제4과나는 무익한 종이로소이다
누가복음 17:10
읽을말씀 : 누가복음 17:10 | 외울말씀 : 다니엘 12:3 ㅣ 참고 말씀: 누가복음 17:7~10
교육목표 : 나는 없고 오직 주님만 있는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많은 영혼을 전도하여 천국에서 영원한 영광과 존귀를 얻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때 어떠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를 주인과 종을 비유하여 알려 주셨습니다(눅 17:10). 바로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값없이 구원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주의 일에 힘쓰되 무엇보다 열심히 전도하여 주님의 핏값을 찾아 드려야 합니다.
1. 무익한 종의 마음
예수님께서는 본문에 앞서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말씀하셨습니다(눅 17:7~9).
종과 삯꾼은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삯꾼은 일한 것에 대해 삯을 받지만 종은 어떠한 사례도 받지 못합니다. 또 삯꾼은 삯을 받고 나면 주인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종은 주인이 자유를 주지 않으면 생명이 다하기까지 주인을 섬겨야 하지요.
그런데 영적으로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종입니다. 우리도 원래 죄인으로서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리고 생명까지 주시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셨지요. 이로써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종이 주인의 명을 받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그 뜻을 받들어 일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이미 너무도 큰 은혜와 사랑을 받았기에 주님의 종으로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즐겁고 감사할 뿐이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나라에 믿음 있는 일꾼이라면 일의 대가를 바라는 삯꾼의 마음을 가질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전도하는 것은
첫째,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전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많은 영혼을 전도하는 것도 기뻐하시지만,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을 이루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영으로 들어와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기를 바라시지요.
사도 바울이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도, 주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먼저는 자신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에 감사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니 이로 인해 오는 기쁨과 충만함으로 주님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었지요. 모진 고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전도했던 것도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면 말씀에 따라 변화가 되고, 마음이 뜨거워져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어둠을 물리치는 영적인 권세와 하늘의 지혜가 있다면 얼마나 쉽게 전도가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악을 온전히 버리고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인데 그렇게 되면 전도의 능력은 자연히 따릅니다. 자신이 변화되어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향을 발하고 감동을 주며 전도할 때 그 모습을 보고 영혼들이 변화되어 알곡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영의 마음으로 변화되어 전도하는 것이 바로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전도하는 것이며, 그렇게 전도된 열매가 온전한 열매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주님의 마음이 되어 성령의 음성을 들어서 전도해야 합니다.
종이 주인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인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내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어야 합니다. 주인이 “오늘은 밭을 갈아라.” 했는데 종이 그 주인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종일 양을 돌보았다고 합시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밭을 가는 일이 더 급한데 종은 그 마음을 알지 못하고 다른 일을 했으니, 비록 수고가 크다 해도 칭찬받을 수 없지요.
주인의 명령을 직접 듣지 못했다 해도 주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종이라면, ‘지금은 씨 뿌릴 때니 밭을 가는 일이 급하다.’고 스스로 마음에 주관받을 수 있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종이라면 일일이 지시받지 않아도 범사에 주인의 뜻에 합하게 일을 합니다. 나아가 주인이 명령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기 전에 헤아려서 순종할 수 있다면 참으로 주인을 기쁘게 하는 종이라 할 수 있지요.
이처럼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종이라면 항상 주인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를 귀 기울여 들으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충 듣고 명심도 못한다면 주인의 말에 불순종이 나오고 주인이 원하는 것을 해 낼 수도 없지요. 직장에서도 대충 듣고 상사가 원치 않는 대로 일을 해 놓는다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므로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주의 일을 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경청하며, 자신의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의 마음 곧 주님의 마음이 되어 어찌하든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 하지요. 영의 마음이 되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온 영의 마음이 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 속에서 떠오른 것을 가지고 “이것이 성령의 음성이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다.”라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팔복과 사랑장의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자신이 얼마나 영의 마음을 이루었는지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온전히 영의 마음이 돼야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는다 말할 수 있지요.
그러나 아직 영으로 들어가지 못한 믿음의 1, 2단계에 있다 해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조건 순종할 마음이고, 순종해 가는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들어 전도할 때 상대의 입장에 맞추어 말씀을 전함으로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습니다.
셋째, 오직 영혼을 사랑함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이 명한 대로 했다고 하여 사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는 이유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유익에 있으면 안 되지요. 죽어 가는 영혼들과 참 목자를 만나지 못해 방황하는 영혼들을 바라보니, 너무나 불쌍하고 애틋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므로, 어찌하든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전도할 때 주어지는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영혼을 구원할 때 소망 가운데 천국에서 주어질 상급을 바라보았습니다. 소망 가운데 상급을 바라보는 것과 많은 영혼을 구원함으로 인해서 내게 오는 유익을 바라보는 것은 다릅니다. 어떤 성과를 올리는 데 조급한 마음으로 전도에 임할 때는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이 동원되기도 합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가 되심을 전하여 상대로 하여금 믿고 구원받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오직 그 영혼이 구원받고 믿음의 반석에 서는 것으로 인해 기뻐하는 마음으로 전도해야 하지요.
그런데 이러한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지고 교회에 오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목적으로 교회에 오는 사람은 그 목적이 이뤄지지 않을 때는 더 이상 교회에 오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전도가 아니며, 그에 대한 상급도 하늘에 쌓이기 어렵지요. 그러므로 전도의 참된 목적을 알아 사랑의 마음으로 전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전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하나님을 ( ) 사랑하기 때문에 전도하는 것이다.
② 주님의 마음이 되어 ( )을 들어서 전도해야 한다.
③ 오직 ( )을 사랑함으로 전도하는 것이다.
2. 주의 나라에 믿음 있는 일꾼이라면 일의 대가를 바라는 ( )의 마음을 가질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우리는 ( )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2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음성은 어떻게 들려오는가?
① 성령께서 마음에 하나님 말씀을 떠올려 주신다.
- 성경 말씀이나 설교 때 들은 말씀이 떠오른다.
② 성령이 하나의 인격체로 마음에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해 주신다.
- 앞으로 될 일을 말씀해 주시거나 말할 바, 행할 바를 지시하신다.
교육목표 : 나는 없고 오직 주님만 있는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많은 영혼을 전도하여 천국에서 영원한 영광과 존귀를 얻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때 어떠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를 주인과 종을 비유하여 알려 주셨습니다(눅 17:10). 바로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값없이 구원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주의 일에 힘쓰되 무엇보다 열심히 전도하여 주님의 핏값을 찾아 드려야 합니다.
1. 무익한 종의 마음
예수님께서는 본문에 앞서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말씀하셨습니다(눅 17:7~9).
종과 삯꾼은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삯꾼은 일한 것에 대해 삯을 받지만 종은 어떠한 사례도 받지 못합니다. 또 삯꾼은 삯을 받고 나면 주인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종은 주인이 자유를 주지 않으면 생명이 다하기까지 주인을 섬겨야 하지요.
그런데 영적으로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종입니다. 우리도 원래 죄인으로서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리고 생명까지 주시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셨지요. 이로써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종이 주인의 명을 받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그 뜻을 받들어 일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이미 너무도 큰 은혜와 사랑을 받았기에 주님의 종으로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즐겁고 감사할 뿐이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나라에 믿음 있는 일꾼이라면 일의 대가를 바라는 삯꾼의 마음을 가질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전도하는 것은
첫째,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전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많은 영혼을 전도하는 것도 기뻐하시지만,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을 이루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영으로 들어와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기를 바라시지요.
사도 바울이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도, 주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먼저는 자신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에 감사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니 이로 인해 오는 기쁨과 충만함으로 주님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었지요. 모진 고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전도했던 것도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면 말씀에 따라 변화가 되고, 마음이 뜨거워져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어둠을 물리치는 영적인 권세와 하늘의 지혜가 있다면 얼마나 쉽게 전도가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악을 온전히 버리고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인데 그렇게 되면 전도의 능력은 자연히 따릅니다. 자신이 변화되어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향을 발하고 감동을 주며 전도할 때 그 모습을 보고 영혼들이 변화되어 알곡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영의 마음으로 변화되어 전도하는 것이 바로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전도하는 것이며, 그렇게 전도된 열매가 온전한 열매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주님의 마음이 되어 성령의 음성을 들어서 전도해야 합니다.
종이 주인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인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내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어야 합니다. 주인이 “오늘은 밭을 갈아라.” 했는데 종이 그 주인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종일 양을 돌보았다고 합시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밭을 가는 일이 더 급한데 종은 그 마음을 알지 못하고 다른 일을 했으니, 비록 수고가 크다 해도 칭찬받을 수 없지요.
주인의 명령을 직접 듣지 못했다 해도 주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종이라면, ‘지금은 씨 뿌릴 때니 밭을 가는 일이 급하다.’고 스스로 마음에 주관받을 수 있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종이라면 일일이 지시받지 않아도 범사에 주인의 뜻에 합하게 일을 합니다. 나아가 주인이 명령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기 전에 헤아려서 순종할 수 있다면 참으로 주인을 기쁘게 하는 종이라 할 수 있지요.
이처럼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종이라면 항상 주인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를 귀 기울여 들으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충 듣고 명심도 못한다면 주인의 말에 불순종이 나오고 주인이 원하는 것을 해 낼 수도 없지요. 직장에서도 대충 듣고 상사가 원치 않는 대로 일을 해 놓는다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므로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주의 일을 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경청하며, 자신의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의 마음 곧 주님의 마음이 되어 어찌하든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 하지요. 영의 마음이 되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온 영의 마음이 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 속에서 떠오른 것을 가지고 “이것이 성령의 음성이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다.”라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팔복과 사랑장의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자신이 얼마나 영의 마음을 이루었는지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온전히 영의 마음이 돼야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는다 말할 수 있지요.
그러나 아직 영으로 들어가지 못한 믿음의 1, 2단계에 있다 해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조건 순종할 마음이고, 순종해 가는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들어 전도할 때 상대의 입장에 맞추어 말씀을 전함으로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습니다.
셋째, 오직 영혼을 사랑함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이 명한 대로 했다고 하여 사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는 이유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유익에 있으면 안 되지요. 죽어 가는 영혼들과 참 목자를 만나지 못해 방황하는 영혼들을 바라보니, 너무나 불쌍하고 애틋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므로, 어찌하든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전도할 때 주어지는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영혼을 구원할 때 소망 가운데 천국에서 주어질 상급을 바라보았습니다. 소망 가운데 상급을 바라보는 것과 많은 영혼을 구원함으로 인해서 내게 오는 유익을 바라보는 것은 다릅니다. 어떤 성과를 올리는 데 조급한 마음으로 전도에 임할 때는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이 동원되기도 합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가 되심을 전하여 상대로 하여금 믿고 구원받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오직 그 영혼이 구원받고 믿음의 반석에 서는 것으로 인해 기뻐하는 마음으로 전도해야 하지요.
그런데 이러한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지고 교회에 오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목적으로 교회에 오는 사람은 그 목적이 이뤄지지 않을 때는 더 이상 교회에 오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전도가 아니며, 그에 대한 상급도 하늘에 쌓이기 어렵지요. 그러므로 전도의 참된 목적을 알아 사랑의 마음으로 전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전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하나님을 ( ) 사랑하기 때문에 전도하는 것이다.
② 주님의 마음이 되어 ( )을 들어서 전도해야 한다.
③ 오직 ( )을 사랑함으로 전도하는 것이다.
2. 주의 나라에 믿음 있는 일꾼이라면 일의 대가를 바라는 ( )의 마음을 가질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우리는 ( )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2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음성은 어떻게 들려오는가?
① 성령께서 마음에 하나님 말씀을 떠올려 주신다.
- 성경 말씀이나 설교 때 들은 말씀이 떠오른다.
② 성령이 하나의 인격체로 마음에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해 주신다.
- 앞으로 될 일을 말씀해 주시거나 말할 바, 행할 바를 지시하신다.
2020-01-17
제3과전도 (2)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디모데후서 4:2
읽을말씀 : 디모데후서 4:2 | 외울말씀 : 고린도후서 2:15 l 참고 말씀: 야고보서 2:15~16
교육목표 : 사랑과 선의 지혜로 수많은 영혼을 전도하여 하늘에서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게 한다.
전도란 “구원의 도” 곧 지옥을 향해 가던 사람들을 천국에 가는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죄 사함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전도이지요. 전도할 때에 십자가의 도를 전하고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들을 보여 주며,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간증을 들려준다면 여러분의 전도가 더 쉽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전도 방법
디모데후서 4장 2절에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의 도인 십자가의 도를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전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제시해 드릴 전도 방법 중 할 수 있는 것부터 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복음이 담긴 전도지를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신문인 “만민뉴스”는 하나님의 말씀은 물론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간증도 실려 있어서 참 좋은 전도지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간증과 생명의 말씀과 뉴스들이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요.
성도님들 중에는 만민뉴스를 수백 부에서 수천 부씩 돌리는 분들과 주말이나 공휴일에 전철역이나 공원 등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전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집에 꽂아 놓거나 전철이나 공원 등지에서 전한 신문만 읽고도 은혜 받아 교회에 나온 분들이 많이 있지요.
지금 당장은 여러분이 돌린 신문을 누가 읽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해도 그 신문을 통해 분명 많은 영혼이 이 복음을 접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뿌린 전도지를 통해 열매가 맺히는 것을 체험한다면 그때의 기쁨은 참으로 클 것입니다. 훗날 천국에 가면 여러분이 돌린 전도지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고, 상급도 분명히 전도자인 여러분에게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열심히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에서는 전도한 사람들의 신발이 아주 빛이 납니다. 전도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더 빛이 나지요. 그래서 신발만 봐도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여 전도를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전도를 많이 한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브로치를 달아 주십니다. 그것은 천국에서 세세토록 영광이 되고 사람들은 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처럼 영혼 구원은 하나님 앞에 큰 기쁨과 상급이 됩니다.
혹여 지금까지 전도에 참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러면 이제 여러분의 집 주변에서부터 할 수 있는 만큼의 지역을 정해서 지속적으로 교회 신문을 전달해 보시기 바랍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만나기 쉽지 않은 친척이나 친구들에게는 우편으로 보내 줄 수도 있지요. 직접 전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돌린 신문을 보고 감동을 받아 등록했다면 결국 하늘나라에서는 여러분의 열매가 됩니다.
둘째로, 일정 지역이나 특정 대상을 목표로 집중적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단순히 전도지를 전달만 하였다면 이제는 문을 두드려서 그곳에 사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전도지를 전달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교회라고 하면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문전박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꼭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다닐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나, 이사 와서 어느 교회를 나갈지 정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면 금방 좋은 열매로 딸 수 있습니다.
설령 이렇게 준비된 영혼들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비록 문전박대하고 싫어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에 또 찾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서너 번, 어떤 분은 대여섯 번, 어떤 분은 1년, 2년, 3년 전도했을 때 마음문이 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도를 아주 잘하시는 분들도 때론 열 번, 스무 번 그 이상을 찾아가서야 열매를 딴 경우들이 있다고 간증합니다. 만일 스무 번째 방문으로 전도될 영혼을 열아홉 번째까지 해 보고 ‘이 사람은 도저히 안 되는구나!’ 하고 포기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지요?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변함없이 복음을 전하면 그 영혼은 반드시 전도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가가호호 방문하여 전도 대상자를 파악하고 집중적으로 전도하고자 할 때에 열매를 더 빨리 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는 구원의 도 곧 십자가의 도를 정확하게 심어 주며, 여기에 반드시 그 영혼을 위한 사랑의 중보 기도를 해 줘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하여 준 복음 곧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어떠한 죄인이라도 용서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이 그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일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의뢰하는 기도가 있어야 하지요.
나아가 여러분이 주님의 사랑이 참되고 진실한 것임을 보여 준다면 전도 대상자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전도의 열매를 앞당기는 비법이지요.
실제로 전도를 많이 하신 분들이 어떠한 사랑의 수고와 헌신으로 열매를 맺었는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전도를 잘하시는 분들은 처음에 어느 가정을 방문하면 짧은 시간 안에 그의 가족은 몇 명이고, 아이는 몇 명인지,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파악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에 방문할 때는 그 가정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준비해서 가지요. 이것이 선의 지혜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에는 아이에게 필요한 학용품이나 과자를 사 갑니다. 자기 자녀에게는 싼 것을 사 줘도 전도 대상자의 아이에게는 더 비싸고 좋은 것을 사 준다는 분도 있습니다. 그냥 내게 있는 것이나 내가 쓰고 남은 것을 나눠 주는 차원이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공급할 때 그 진심이 상대에게도 통하지요.
어떤 전도자는 맞벌이 부부를 전도하기 위해 정성스럽게 밑반찬을 준비해 주곤 했는데, 한번은 자녀들과 맛있게 식사하려고 찌개를 끓였다가 전도 대상자가 생각나서 냄비 채로 갖다 주었다고 합니다. 전도의 열정이 넘치니 식사를 할 때도 전도 대상자가 눈에 아른거려 이 같은 행함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전도자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그분의 자녀들보다 더한 사랑으로 섬긴다고 합니다. 무조건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정한 말벗이 되어 얘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팔다리를 시원하게 주물러 드리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도 알려 드리고 각종 질병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은 성도들의 간증도 열심히 전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새로 이사 오는 가정이 있으면 자기 일은 제쳐 두고 무조건 가서 도와줌으로 좋은 이웃이 되고 친분을 쌓습니다. 나아가 그 지역의 시장이나 공공기관, 아이들의 놀이터 등 좋은 정보도 알려 주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면서 전도를 하지요.
전도 대상자의 집안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애경사가 생기면 자기 일처럼 달려가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힘이 되어 주는 것도 필요하지요. 궂은일이 생겼을 때 앞장서서 도와주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면 상대가 더 고마움을 느끼고 감동을 받아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한 사람을 전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까지는 그만큼 수고와 헌신이 필요합니다. 한 영혼이 구원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어 하늘에서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전도란 ( )의 도 곧 사람들을 천국에 가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죄 사함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 )이다.
2. 전도를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는 하늘의 상급’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했다(단 12:3).
이 땅에서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들여 많은 사람을 전도하며
영혼 구원에 힘쓴 사람은 장차 천국에서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상급 중에서 전도 상이 가장 크다.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달아 주신 브로치를 보면,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지 알 수 있다.
천국에서는 많은 사람을 전도한 사람에게 경배를 하기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자신의 면류관이요, 영광과 자랑이 된다.
교육목표 : 사랑과 선의 지혜로 수많은 영혼을 전도하여 하늘에서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게 한다.
전도란 “구원의 도” 곧 지옥을 향해 가던 사람들을 천국에 가는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죄 사함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전도이지요. 전도할 때에 십자가의 도를 전하고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들을 보여 주며,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간증을 들려준다면 여러분의 전도가 더 쉽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전도 방법
디모데후서 4장 2절에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의 도인 십자가의 도를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전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제시해 드릴 전도 방법 중 할 수 있는 것부터 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복음이 담긴 전도지를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신문인 “만민뉴스”는 하나님의 말씀은 물론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간증도 실려 있어서 참 좋은 전도지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간증과 생명의 말씀과 뉴스들이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요.
성도님들 중에는 만민뉴스를 수백 부에서 수천 부씩 돌리는 분들과 주말이나 공휴일에 전철역이나 공원 등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전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집에 꽂아 놓거나 전철이나 공원 등지에서 전한 신문만 읽고도 은혜 받아 교회에 나온 분들이 많이 있지요.
지금 당장은 여러분이 돌린 신문을 누가 읽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해도 그 신문을 통해 분명 많은 영혼이 이 복음을 접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뿌린 전도지를 통해 열매가 맺히는 것을 체험한다면 그때의 기쁨은 참으로 클 것입니다. 훗날 천국에 가면 여러분이 돌린 전도지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고, 상급도 분명히 전도자인 여러분에게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열심히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에서는 전도한 사람들의 신발이 아주 빛이 납니다. 전도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더 빛이 나지요. 그래서 신발만 봐도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여 전도를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전도를 많이 한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브로치를 달아 주십니다. 그것은 천국에서 세세토록 영광이 되고 사람들은 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처럼 영혼 구원은 하나님 앞에 큰 기쁨과 상급이 됩니다.
혹여 지금까지 전도에 참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러면 이제 여러분의 집 주변에서부터 할 수 있는 만큼의 지역을 정해서 지속적으로 교회 신문을 전달해 보시기 바랍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만나기 쉽지 않은 친척이나 친구들에게는 우편으로 보내 줄 수도 있지요. 직접 전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돌린 신문을 보고 감동을 받아 등록했다면 결국 하늘나라에서는 여러분의 열매가 됩니다.
둘째로, 일정 지역이나 특정 대상을 목표로 집중적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단순히 전도지를 전달만 하였다면 이제는 문을 두드려서 그곳에 사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전도지를 전달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교회라고 하면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문전박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꼭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다닐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나, 이사 와서 어느 교회를 나갈지 정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면 금방 좋은 열매로 딸 수 있습니다.
설령 이렇게 준비된 영혼들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비록 문전박대하고 싫어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에 또 찾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서너 번, 어떤 분은 대여섯 번, 어떤 분은 1년, 2년, 3년 전도했을 때 마음문이 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도를 아주 잘하시는 분들도 때론 열 번, 스무 번 그 이상을 찾아가서야 열매를 딴 경우들이 있다고 간증합니다. 만일 스무 번째 방문으로 전도될 영혼을 열아홉 번째까지 해 보고 ‘이 사람은 도저히 안 되는구나!’ 하고 포기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지요?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변함없이 복음을 전하면 그 영혼은 반드시 전도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가가호호 방문하여 전도 대상자를 파악하고 집중적으로 전도하고자 할 때에 열매를 더 빨리 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는 구원의 도 곧 십자가의 도를 정확하게 심어 주며, 여기에 반드시 그 영혼을 위한 사랑의 중보 기도를 해 줘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하여 준 복음 곧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어떠한 죄인이라도 용서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이 그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일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의뢰하는 기도가 있어야 하지요.
나아가 여러분이 주님의 사랑이 참되고 진실한 것임을 보여 준다면 전도 대상자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전도의 열매를 앞당기는 비법이지요.
실제로 전도를 많이 하신 분들이 어떠한 사랑의 수고와 헌신으로 열매를 맺었는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전도를 잘하시는 분들은 처음에 어느 가정을 방문하면 짧은 시간 안에 그의 가족은 몇 명이고, 아이는 몇 명인지,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파악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에 방문할 때는 그 가정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준비해서 가지요. 이것이 선의 지혜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에는 아이에게 필요한 학용품이나 과자를 사 갑니다. 자기 자녀에게는 싼 것을 사 줘도 전도 대상자의 아이에게는 더 비싸고 좋은 것을 사 준다는 분도 있습니다. 그냥 내게 있는 것이나 내가 쓰고 남은 것을 나눠 주는 차원이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공급할 때 그 진심이 상대에게도 통하지요.
어떤 전도자는 맞벌이 부부를 전도하기 위해 정성스럽게 밑반찬을 준비해 주곤 했는데, 한번은 자녀들과 맛있게 식사하려고 찌개를 끓였다가 전도 대상자가 생각나서 냄비 채로 갖다 주었다고 합니다. 전도의 열정이 넘치니 식사를 할 때도 전도 대상자가 눈에 아른거려 이 같은 행함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전도자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그분의 자녀들보다 더한 사랑으로 섬긴다고 합니다. 무조건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정한 말벗이 되어 얘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팔다리를 시원하게 주물러 드리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도 알려 드리고 각종 질병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은 성도들의 간증도 열심히 전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새로 이사 오는 가정이 있으면 자기 일은 제쳐 두고 무조건 가서 도와줌으로 좋은 이웃이 되고 친분을 쌓습니다. 나아가 그 지역의 시장이나 공공기관, 아이들의 놀이터 등 좋은 정보도 알려 주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면서 전도를 하지요.
전도 대상자의 집안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애경사가 생기면 자기 일처럼 달려가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힘이 되어 주는 것도 필요하지요. 궂은일이 생겼을 때 앞장서서 도와주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면 상대가 더 고마움을 느끼고 감동을 받아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한 사람을 전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까지는 그만큼 수고와 헌신이 필요합니다. 한 영혼이 구원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어 하늘에서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전도란 ( )의 도 곧 사람들을 천국에 가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죄 사함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 )이다.
2. 전도를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는 하늘의 상급’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했다(단 12:3).
이 땅에서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들여 많은 사람을 전도하며
영혼 구원에 힘쓴 사람은 장차 천국에서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상급 중에서 전도 상이 가장 크다.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달아 주신 브로치를 보면,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지 알 수 있다.
천국에서는 많은 사람을 전도한 사람에게 경배를 하기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자신의 면류관이요, 영광과 자랑이 된다.
2020-01-10
제2과전도 ( 1 ) - 부득불 할 일임이라
고린도전서 9:16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9:16 | 외울말씀 : 다니엘 12:3 ㅣ 참고 말씀/ 누가복음 15:7
교육목표 : 주님의 지상명령을 따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함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내내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전도하셨습니다. 허름한 샌들을 신으시고 건조한 사막 기후의 이스라엘 곳곳을 걸어 다니셨기에, 발에는 늘 모래와 먼지가 묻어 있었고 때론 발이 붓기도 하셨지요. 그런데도 하나님께는 예수님의 발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발걸음을 옮기시는 곳마다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영혼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좋은 소식을 얼마나 전하고 계시는지요?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했습니다. “부득불(不得不) 할 일”이란 “아니할 수 없는 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뜻합니다.
그러면 전도가 왜 이처럼 부득불 해야 할 일일까요?
전도를 부득불 해야 하는 이유
첫째로, 전도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지극히 큰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명령이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만나실 때마다 제자들이 이제는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16절에 보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하셨지요.
사도행전 1장 8절에도 보면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증인으로서 전도를 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지상명령이요, 이 땅에 계실 때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언이며, 우리의 기본적인 사명입니다. 따라서 ‘나는 특별한 사명이 없는데요.’ 생각하는 분도 바로 전도의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께서 명하신 전도의 일을 중심에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행해 나간다면 반드시 성령께서 도와주십니다. “나는 말주변이 없어요. 내성적인 성품이라 낯선 사람에게 말을 붙이기 어려워요.”라고 하는 것은 타당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평범한 한 여성도님이 전도를 시작하게 된 간증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분은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후 전도가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는 중에 하루는 기도하다가 “네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라.”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에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이 있나 살펴보니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한 지식과 함께 꼼꼼한 뜨개질 솜씨와 정갈하게 만두 빚는 솜씨가 있는 것을 발견했지요. 그래서 우선 이웃집에 사는 아이들의 체형을 유심히 관찰하고는 뜨개질로 예쁜 조끼를 짜서 전도지와 함께 선물을 했습니다. 또 정성스레 빚은 만두를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날 때 전도지와 함께 이웃집에 건네주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건네며, “아줌마! 교회 다니시죠? 저 좀 교회에 데려가 주세요.” 했다는 것입니다. 다소 소극적인 전도 방법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이웃에게 여러분이 가진 것을 함께 나누며 다정하고 좋은 이웃이 될 때 전도도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우리 교회에서 전도를 잘하시는 분들의 간증입니다. 아무리 전도해도 잘 받아들이지 않거나, 교회 나가겠다고 약속해 놓고 차일피일 미루는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관심을 가지고 방문합니다. 그러다가 전도 대상자가 아플 때, 내 혈육과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권능의 손수건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 주면 질병이 치료되어 교회에 나오게 됐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여러분이 “전도하라” 하신 주님의 명령에 어찌하든 순종해 가신다면 반드시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그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맞는 전도의 방법을 알려 주시고, 질병이나 가정의 문제로 고통받는 이를 위한 여러분의 사랑의 중보 기도를 받으시고 전도 대상자가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인물 중에 악인에게 가서 멸망을 경고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으면서도 순종하지 않으므로 화를 입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요나입니다. 요나는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으나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하려 했습니다.
자신이 그 사실을 알리면 니느웨 백성들은 죄악에서 돌이켜 회개할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돌이켜 그들을 멸하시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요나는 적국인 니느웨가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 것이 싫었습니다. 물론 두려움도 있었지요. 임의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도망가던 요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시스로 가던 배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납니다. 이때 이 재앙이 누구 때문인지 제비를 뽑았는데 바로 요나가 뽑혀 바다에 던져지게 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기 위해 큰 물고기를 예비하여 그를 삼키게 하십니다.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 3일 동안 있으면서 철저히 회개하자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 내지요.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물론이요, 왕과 대신들까지도 금식하며 회개했고, 심지어는 짐승들까지도 금식을 시켰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에게 내리려 했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신다고 해도 중심에서 통회자복하고 돌이킨다면 하나님은 살려 주시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욘 4:11).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아끼십니다. 어찌하든 전도해서 그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지요. 그러니 전도하는 자의 발이 복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비록 죄악 중에 살아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시지, 그대로 사망에 이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여러분이 그 역할을 감당해 주기를 바라시지요.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듣든 듣지 않든, 나아가 핍박을 한다고 해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죗값으로 인해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음으로 그가 지옥에 가게 된다면 여러분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영혼 구원이 얼마나 큰 상급이며, 하나님께서 이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다니엘 12장 3절에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하셨지요.
또 누가복음 15장 7절에는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했습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여 주님 품에 안길 때 하늘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언제 어디에서 대형 참사가 있을 것을 안다고 합시다. 이때 여러분의 가족이나 아는 사람이 바로 그날 그곳에 가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말리지 않겠는지요? 아무리 상대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 하며 믿지 않고 세상 말로 “재수 없는 소리를 한다.”며 기분 나빠해도 그를 사랑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나는 일단 알려 줬으니 당신이 죽어도 나는 책임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여러분의 가족, 친척, 친구, 동료, 이웃이 내일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전도가 왜 부득불 해야 할 일일까요?
①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지극히 큰 ( )이기 때문이다.
② 만일 ( )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기 때문이다.
2.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으나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화를 당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를 왜 해야만 할까?’
지옥을 향해 가는 영혼들이 전도를 통해 천국의 길로 인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9:27에“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했다. 즉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으면 천국과 지옥 두 갈래가 있고 반드시 심판이 있다.
주님을 믿고 성령 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반면, 주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져 영벌을 받게 되니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한다.
교육목표 : 주님의 지상명령을 따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함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내내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전도하셨습니다. 허름한 샌들을 신으시고 건조한 사막 기후의 이스라엘 곳곳을 걸어 다니셨기에, 발에는 늘 모래와 먼지가 묻어 있었고 때론 발이 붓기도 하셨지요. 그런데도 하나님께는 예수님의 발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발걸음을 옮기시는 곳마다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영혼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좋은 소식을 얼마나 전하고 계시는지요?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했습니다. “부득불(不得不) 할 일”이란 “아니할 수 없는 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뜻합니다.
그러면 전도가 왜 이처럼 부득불 해야 할 일일까요?
전도를 부득불 해야 하는 이유
첫째로, 전도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지극히 큰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명령이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만나실 때마다 제자들이 이제는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16절에 보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하셨지요.
사도행전 1장 8절에도 보면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증인으로서 전도를 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지상명령이요, 이 땅에 계실 때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언이며, 우리의 기본적인 사명입니다. 따라서 ‘나는 특별한 사명이 없는데요.’ 생각하는 분도 바로 전도의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께서 명하신 전도의 일을 중심에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행해 나간다면 반드시 성령께서 도와주십니다. “나는 말주변이 없어요. 내성적인 성품이라 낯선 사람에게 말을 붙이기 어려워요.”라고 하는 것은 타당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평범한 한 여성도님이 전도를 시작하게 된 간증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분은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후 전도가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는 중에 하루는 기도하다가 “네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라.”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에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이 있나 살펴보니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한 지식과 함께 꼼꼼한 뜨개질 솜씨와 정갈하게 만두 빚는 솜씨가 있는 것을 발견했지요. 그래서 우선 이웃집에 사는 아이들의 체형을 유심히 관찰하고는 뜨개질로 예쁜 조끼를 짜서 전도지와 함께 선물을 했습니다. 또 정성스레 빚은 만두를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날 때 전도지와 함께 이웃집에 건네주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건네며, “아줌마! 교회 다니시죠? 저 좀 교회에 데려가 주세요.” 했다는 것입니다. 다소 소극적인 전도 방법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이웃에게 여러분이 가진 것을 함께 나누며 다정하고 좋은 이웃이 될 때 전도도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우리 교회에서 전도를 잘하시는 분들의 간증입니다. 아무리 전도해도 잘 받아들이지 않거나, 교회 나가겠다고 약속해 놓고 차일피일 미루는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관심을 가지고 방문합니다. 그러다가 전도 대상자가 아플 때, 내 혈육과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권능의 손수건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 주면 질병이 치료되어 교회에 나오게 됐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여러분이 “전도하라” 하신 주님의 명령에 어찌하든 순종해 가신다면 반드시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그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맞는 전도의 방법을 알려 주시고, 질병이나 가정의 문제로 고통받는 이를 위한 여러분의 사랑의 중보 기도를 받으시고 전도 대상자가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인물 중에 악인에게 가서 멸망을 경고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으면서도 순종하지 않으므로 화를 입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요나입니다. 요나는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으나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하려 했습니다.
자신이 그 사실을 알리면 니느웨 백성들은 죄악에서 돌이켜 회개할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돌이켜 그들을 멸하시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요나는 적국인 니느웨가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 것이 싫었습니다. 물론 두려움도 있었지요. 임의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도망가던 요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시스로 가던 배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납니다. 이때 이 재앙이 누구 때문인지 제비를 뽑았는데 바로 요나가 뽑혀 바다에 던져지게 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기 위해 큰 물고기를 예비하여 그를 삼키게 하십니다.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 3일 동안 있으면서 철저히 회개하자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 내지요.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물론이요, 왕과 대신들까지도 금식하며 회개했고, 심지어는 짐승들까지도 금식을 시켰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에게 내리려 했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신다고 해도 중심에서 통회자복하고 돌이킨다면 하나님은 살려 주시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욘 4:11).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아끼십니다. 어찌하든 전도해서 그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지요. 그러니 전도하는 자의 발이 복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비록 죄악 중에 살아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시지, 그대로 사망에 이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여러분이 그 역할을 감당해 주기를 바라시지요.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듣든 듣지 않든, 나아가 핍박을 한다고 해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죗값으로 인해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음으로 그가 지옥에 가게 된다면 여러분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영혼 구원이 얼마나 큰 상급이며, 하나님께서 이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다니엘 12장 3절에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하셨지요.
또 누가복음 15장 7절에는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했습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여 주님 품에 안길 때 하늘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언제 어디에서 대형 참사가 있을 것을 안다고 합시다. 이때 여러분의 가족이나 아는 사람이 바로 그날 그곳에 가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말리지 않겠는지요? 아무리 상대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 하며 믿지 않고 세상 말로 “재수 없는 소리를 한다.”며 기분 나빠해도 그를 사랑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나는 일단 알려 줬으니 당신이 죽어도 나는 책임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여러분의 가족, 친척, 친구, 동료, 이웃이 내일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전도가 왜 부득불 해야 할 일일까요?
①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지극히 큰 ( )이기 때문이다.
② 만일 ( )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기 때문이다.
2.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으나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화를 당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를 왜 해야만 할까?’
지옥을 향해 가는 영혼들이 전도를 통해 천국의 길로 인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9:27에“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했다. 즉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으면 천국과 지옥 두 갈래가 있고 반드시 심판이 있다.
주님을 믿고 성령 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반면, 주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져 영벌을 받게 되니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한다.
2020-01-03
제1과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사야 60:1
읽을말씀 : 이사야 60:1 | 외울말씀 : 이사야 60:1 ㅣ 참고 말씀: 요한일서 1:5
교육목표 : 어둠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고 있는 이때에 일어나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만방에 드러내는 성도가 되게 한다.
밤이 깊고 어둠이 짙어갈수록 사람들은 빛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므로 그 가치는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죄로 관영하여 날로 어두워져 가는 이 세대 속에서 비추는 그리스도의 빛은, 수많은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고 있으니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더욱 그리스도의 빛을 발함으로 세상의 길잡이와 같은 역할을 잘 감당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사 60:1).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명령이요, 그들의 영광스런 미래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은 온통 절망과 어둠으로 가득했습니다. 온 나라가 우상 숭배 등의 종교적 범죄와 더불어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약한 자를 억압하는 풍조가 만연했지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회개를 권고하셨지만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악을 행하자 마침내는 그들을 바벨론의 손에 붙이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아름답던 예루살렘 성전은 훼파되고, 백성들은 이방인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포로생활의 고달픔도 고통스러웠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 자신들에게서 떠나갔다는 절망감에 더욱 괴로웠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영광스러운 미래와 메시아의 도래를 약속하시며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날은 이사야 당시보다 더욱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러한 때 당당히 일어나 여호와의 영광의 빛을 만방에 비추는 사명이 바로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복음을 증거하고 있지만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으로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를 눈에 보이는 증거로 나타내 줘야 하지요. 또 인간의 지식과 사상이 혼합된 것이 아닌 오직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즉 인간 경작의 섭리와 뜻이 담긴 십자가의 도를 밝히 깨닫게 해 줄 생명의 말씀이 절실히 필요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복음으로 세계를 온전히 이루는 사명을,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 즉 성결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된 성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합당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때로는 훈련하시고 여러 모양으로 연단해 오셨지요. 더욱이 연단을 통과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명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본 제단을 향한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 만방에 드러날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이루려면
1)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둠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빛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빛의 근원 되신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고 권면한 것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좇아 행해야 하지요. 어둠에 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둠에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지만, 진리의 빛이 비추이면 무엇이 어둠이고 빛인지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 들어오는 만큼 전에 행하던 죄들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요.
각 사람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에 이루었고, 악을 버려 성결되었느냐에 따라 빛을 비추는 힘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빛을 소유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당당히 하나님의 역사들을 나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둠의 세력과 싸우다가 그만 힘을 잃고 어둠에 묻혀 버리기도 하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빛이 임하는 만큼 어둠은 반드시 물러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셔서 흑암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고 그 빛 가운데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을 비추는 큰 빛으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생명의 빛을 전파했지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바로 내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넓게는 사회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으며, 마침내는 세계 만방에 일어나 마음껏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2)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행 1:8).
이 말씀대로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뿐 아니라, 빌립과 스데반 집사와 같은 성도들이 권능을 베풀며 복음을 증거하는 곳곳마다 유대인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방인들이 주께로 나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지요.
이와 같이 주의 종이 아니라 해도, 성령을 받은 여러분들도 권능을 받아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에 합당한 그릇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지요. 곧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흠이 없을 때라야 권능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만일 세상으로부터 좇아온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께 권능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교만해져서 오히려 쓰임 받고 버려지게 될 뿐입니다.
성경을 보면 권능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흠이 없고 온유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권능은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 불같은 기도를 쌓아야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받아 온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만약 핍박이 두려워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본 제단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권능의 역사와 혼, 영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는 생명의 말씀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나가서 담대히 전해야 할 것입니다.
빛이 임하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들을 선포할 때 이것이 빛이 되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다 깨뜨리게 됩니다. 나아가 수많은 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게 되지요. 그러니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생명 다해 복음 증거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갔습니다(사 6:8).
사도 바울은 모든 서신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 된 나 바울이라” 자신을 소개하며 담대히 복음을 증거해 나갔지요. 비록 매인 몸이 되어 편지로밖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없었지만 이를 통해 성도들은 힘을 얻어 박해를 이겨내고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은 든든히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올 한 해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본 제단을 통해 찬란하게 비추며,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를 기다리며 뜨겁게 달려나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 )를 발해야 한다.
② ( )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③ 생명의 ( )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2. 영적으로 ( )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 )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사야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는 하나님 말씀을 두려움없이 선포하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많이 하였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로 활동하였고 유다와 열방을 향해 가깝고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였다.
특히 정치, 도덕, 종교적인 부패상을 비판하면서 살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외치며,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의 약속을 전하였다.
교육목표 : 어둠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고 있는 이때에 일어나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만방에 드러내는 성도가 되게 한다.
밤이 깊고 어둠이 짙어갈수록 사람들은 빛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므로 그 가치는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죄로 관영하여 날로 어두워져 가는 이 세대 속에서 비추는 그리스도의 빛은, 수많은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고 있으니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더욱 그리스도의 빛을 발함으로 세상의 길잡이와 같은 역할을 잘 감당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사 60:1).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명령이요, 그들의 영광스런 미래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은 온통 절망과 어둠으로 가득했습니다. 온 나라가 우상 숭배 등의 종교적 범죄와 더불어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약한 자를 억압하는 풍조가 만연했지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회개를 권고하셨지만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악을 행하자 마침내는 그들을 바벨론의 손에 붙이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아름답던 예루살렘 성전은 훼파되고, 백성들은 이방인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포로생활의 고달픔도 고통스러웠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 자신들에게서 떠나갔다는 절망감에 더욱 괴로웠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영광스러운 미래와 메시아의 도래를 약속하시며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날은 이사야 당시보다 더욱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러한 때 당당히 일어나 여호와의 영광의 빛을 만방에 비추는 사명이 바로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복음을 증거하고 있지만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으로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를 눈에 보이는 증거로 나타내 줘야 하지요. 또 인간의 지식과 사상이 혼합된 것이 아닌 오직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즉 인간 경작의 섭리와 뜻이 담긴 십자가의 도를 밝히 깨닫게 해 줄 생명의 말씀이 절실히 필요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복음으로 세계를 온전히 이루는 사명을,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 즉 성결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된 성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합당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때로는 훈련하시고 여러 모양으로 연단해 오셨지요. 더욱이 연단을 통과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명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본 제단을 향한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 만방에 드러날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이루려면
1)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둠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빛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빛의 근원 되신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고 권면한 것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좇아 행해야 하지요. 어둠에 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둠에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지만, 진리의 빛이 비추이면 무엇이 어둠이고 빛인지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 들어오는 만큼 전에 행하던 죄들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요.
각 사람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에 이루었고, 악을 버려 성결되었느냐에 따라 빛을 비추는 힘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빛을 소유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당당히 하나님의 역사들을 나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둠의 세력과 싸우다가 그만 힘을 잃고 어둠에 묻혀 버리기도 하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빛이 임하는 만큼 어둠은 반드시 물러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셔서 흑암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고 그 빛 가운데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을 비추는 큰 빛으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생명의 빛을 전파했지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바로 내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넓게는 사회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으며, 마침내는 세계 만방에 일어나 마음껏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2)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행 1:8).
이 말씀대로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뿐 아니라, 빌립과 스데반 집사와 같은 성도들이 권능을 베풀며 복음을 증거하는 곳곳마다 유대인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방인들이 주께로 나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지요.
이와 같이 주의 종이 아니라 해도, 성령을 받은 여러분들도 권능을 받아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에 합당한 그릇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지요. 곧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흠이 없을 때라야 권능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만일 세상으로부터 좇아온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께 권능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교만해져서 오히려 쓰임 받고 버려지게 될 뿐입니다.
성경을 보면 권능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흠이 없고 온유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권능은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 불같은 기도를 쌓아야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받아 온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만약 핍박이 두려워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본 제단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권능의 역사와 혼, 영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는 생명의 말씀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나가서 담대히 전해야 할 것입니다.
빛이 임하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들을 선포할 때 이것이 빛이 되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다 깨뜨리게 됩니다. 나아가 수많은 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게 되지요. 그러니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생명 다해 복음 증거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갔습니다(사 6:8).
사도 바울은 모든 서신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 된 나 바울이라” 자신을 소개하며 담대히 복음을 증거해 나갔지요. 비록 매인 몸이 되어 편지로밖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없었지만 이를 통해 성도들은 힘을 얻어 박해를 이겨내고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은 든든히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올 한 해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본 제단을 통해 찬란하게 비추며,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를 기다리며 뜨겁게 달려나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 )를 발해야 한다.
② ( )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③ 생명의 ( )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2. 영적으로 ( )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 )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사야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는 하나님 말씀을 두려움없이 선포하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많이 하였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로 활동하였고 유다와 열방을 향해 가깝고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였다.
특히 정치, 도덕, 종교적인 부패상을 비판하면서 살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외치며,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의 약속을 전하였다.
2019-12-27
제52과지극히 충성된 자
누가복음 16:10
읽을말씀 : 누가복음 16:10 | 외울말씀 : 누가복음 16:10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25장
교육목표 : 작은 사명이라 할지라도 귀히 여기며 충성함으로 주님께 지극히 충성된 자라 칭찬받을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어떤 주인이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만큼 자금을 주었습니다. 그중에 한 종은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열심히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의 이윤을 더 남겼고, 또 한 종은 두 달란트를 받아서 두 달란트의 이윤을 남겼습니다(마 25장). 주인은 두 사람에게 잘하였다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하지요.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사명 하나라도 귀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작은 사명이라 할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사명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사명 감당을 잘하면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서 당장 맡은 일은 소홀히 하면서 더 큰 사명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인정받고 사람 앞에 드러나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람은 충성하는 자체보다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내기 어렵고 큰 일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하신 대로, 작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큰 사명도 맡기실 수 있습니다.
창세기 37~4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 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 족속이 한 민족으로 성장하기까지 애굽에 들어가 거할 길을 여십니다. 먼저 요셉이 강대국 애굽에 들어가서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어린 요셉을 총리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애굽 시위대장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서 미천한 일부터 시작하게 하셨지요. 점차 주인의 신망을 얻게 되니 모든 살림을 주관하는 자리에 세우시고 다음에는 왕의 감옥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곳은 일반 죄수가 아닌 고위층이 범죄했을 때 수감되는 감옥이었지요. 요셉은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넓은 안목과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13년을 보내고서야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될 수 있었지요.
요셉은 타고난 성실함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통해 그 모든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시위대장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 자신의 직무를 대충했다면 그는 종으로서 자신의 일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무리 미천한 일이라도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 이상의 일을 해냄으로 주인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더 높은 직분을 맡게 된 후에도 사심과 들렘이 없었으며, ‘어찌하면 주인에게 유익을 줄까?’ 하는 마음으로 온 집안을 최선을 다해 돌아보았지요.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충성을 다하였기에 결국 나라 전체를 맡아서도 잘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사명을 귀히 여기는 사람은 ‘어찌하면 이를 잘 감당할까?’ 하는 마음으로 온갖 노력을 합니다. 영혼들이 시험 환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쳐 주고 싶고, 믿음을 갖지 못하는 영혼들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잘되지 않을 때 한계를 느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서 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때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상대를 섬기는 것 같아도 원하는 열매를 낼 수 없습니다.
육적인 사랑을 베푼다 해서 영혼들이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관을 좇아 행할 때라야 영혼들이 새 힘을 얻어 충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심방하면 변화되지 않으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심방하면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이, 정확하게 영혼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은혜 받고 마음 문을 열게 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자신의 방법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이 생기면 자연히 겸비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매달리게 되지요. 따라서 사명 감당을 잘하는 것은 곧 영혼이 잘되는 축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다 보면 무엇보다 자신이 성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요. 성결되어 능력 받아 열매를 내고자 하는 소망이 있으면 짜증이나 감정,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모습 등 악의 모양이라도 민감하게 깨달으며 버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그릇을 만들어 가는 만큼 더 큰 능력을 받게 되고 많은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고백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심장으로 맡겨진 양 떼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니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피곤함과 험한 파도와 높은 산, 광야의 모든 위험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주의 복음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어떤 수모도, 뼈가 부서질 정도로 매를 맞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도 감내하였지요.
사도 바울의 모든 희생은 자신을 사랑하여 피 흘리신 주님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모든 영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했던 것입니다(롬 9:3).
이처럼 주어진 사명을 소중히 여겨 온전히 감당하고자 기도하면서 성결되는 만큼 영혼을 위해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신 주님의 마음이 임하게 됩니다. 또한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 만큼 삶 전체를 영혼들을 위해 내어주는 심정을 깨닫게 되지요.
그러므로 영혼들을 갈무리하는 사명을 맡은 일꾼도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품을 때 열심히 심방하게 될 뿐 아니라, 무시로 그들의 형편을 떠올리며 기도하게 됩니다. 혹여 뾰족한 말로 찌르고 부딪혀 오는 양 떼라 할지라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지요. 소중한 주님의 양 떼이니 그들 모두 자신의 소중한 기업으로 여겨져 사랑이 갈 뿐입니다. 아기가 짜증을 내어도 어머니는 좋은 것을 주듯이, 갈무리하는 영혼을 편케 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섬겨 주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어찌하면 그 영혼이 잘될 수 있을까?’ 하여 영육 간에 희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영혼들이 범죄하여 시험 환난을 당할 때면 자신이 더 애통하며 부르짖어 기도하게 됩니다. 맡은 양 떼의 문제를 위해 늘 기도해 주고 양 떼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간구하며, 내 자녀나 가족 이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으로 열심히 영혼을 갈무리하며 섬기다 보면 진실을 느끼고 감사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부모가 되면 부모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신이 양 떼를 갈무리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목자의 마음을 느끼며 더욱 주님께도 하나님께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을 품고 사랑을 주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더 많은 영혼들을 보내 주시고 부흥에 부흥을 더하여 더 큰 사명을 맡게 되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사명 감당을 잘하여 주님께 “지극히 충성된 자”라고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 ) 하나라도 귀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
② ( )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야 한다.
③ ( )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2. 요셉은 아무리 미천한 일도 ( )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 이상의 일을 해냄으로 주인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도 바울의 선’
① 한번 받은바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변개치 않았다.
②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 생명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었다.
③ 큰 권능과 깊은 계시를 받았다 해도 영광을 온전히 주님께만 돌렸다.
교육목표 : 작은 사명이라 할지라도 귀히 여기며 충성함으로 주님께 지극히 충성된 자라 칭찬받을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어떤 주인이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만큼 자금을 주었습니다. 그중에 한 종은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열심히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의 이윤을 더 남겼고, 또 한 종은 두 달란트를 받아서 두 달란트의 이윤을 남겼습니다(마 25장). 주인은 두 사람에게 잘하였다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하지요.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사명 하나라도 귀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작은 사명이라 할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사명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사명 감당을 잘하면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서 당장 맡은 일은 소홀히 하면서 더 큰 사명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인정받고 사람 앞에 드러나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람은 충성하는 자체보다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내기 어렵고 큰 일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하신 대로, 작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큰 사명도 맡기실 수 있습니다.
창세기 37~4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 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 족속이 한 민족으로 성장하기까지 애굽에 들어가 거할 길을 여십니다. 먼저 요셉이 강대국 애굽에 들어가서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어린 요셉을 총리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애굽 시위대장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서 미천한 일부터 시작하게 하셨지요. 점차 주인의 신망을 얻게 되니 모든 살림을 주관하는 자리에 세우시고 다음에는 왕의 감옥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곳은 일반 죄수가 아닌 고위층이 범죄했을 때 수감되는 감옥이었지요. 요셉은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넓은 안목과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13년을 보내고서야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될 수 있었지요.
요셉은 타고난 성실함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통해 그 모든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시위대장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 자신의 직무를 대충했다면 그는 종으로서 자신의 일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무리 미천한 일이라도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 이상의 일을 해냄으로 주인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더 높은 직분을 맡게 된 후에도 사심과 들렘이 없었으며, ‘어찌하면 주인에게 유익을 줄까?’ 하는 마음으로 온 집안을 최선을 다해 돌아보았지요.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충성을 다하였기에 결국 나라 전체를 맡아서도 잘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사명을 귀히 여기는 사람은 ‘어찌하면 이를 잘 감당할까?’ 하는 마음으로 온갖 노력을 합니다. 영혼들이 시험 환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쳐 주고 싶고, 믿음을 갖지 못하는 영혼들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잘되지 않을 때 한계를 느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서 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때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상대를 섬기는 것 같아도 원하는 열매를 낼 수 없습니다.
육적인 사랑을 베푼다 해서 영혼들이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관을 좇아 행할 때라야 영혼들이 새 힘을 얻어 충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심방하면 변화되지 않으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심방하면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이, 정확하게 영혼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은혜 받고 마음 문을 열게 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자신의 방법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이 생기면 자연히 겸비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매달리게 되지요. 따라서 사명 감당을 잘하는 것은 곧 영혼이 잘되는 축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다 보면 무엇보다 자신이 성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요. 성결되어 능력 받아 열매를 내고자 하는 소망이 있으면 짜증이나 감정,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모습 등 악의 모양이라도 민감하게 깨달으며 버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그릇을 만들어 가는 만큼 더 큰 능력을 받게 되고 많은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고백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심장으로 맡겨진 양 떼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니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피곤함과 험한 파도와 높은 산, 광야의 모든 위험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주의 복음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어떤 수모도, 뼈가 부서질 정도로 매를 맞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도 감내하였지요.
사도 바울의 모든 희생은 자신을 사랑하여 피 흘리신 주님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모든 영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했던 것입니다(롬 9:3).
이처럼 주어진 사명을 소중히 여겨 온전히 감당하고자 기도하면서 성결되는 만큼 영혼을 위해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신 주님의 마음이 임하게 됩니다. 또한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 만큼 삶 전체를 영혼들을 위해 내어주는 심정을 깨닫게 되지요.
그러므로 영혼들을 갈무리하는 사명을 맡은 일꾼도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품을 때 열심히 심방하게 될 뿐 아니라, 무시로 그들의 형편을 떠올리며 기도하게 됩니다. 혹여 뾰족한 말로 찌르고 부딪혀 오는 양 떼라 할지라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지요. 소중한 주님의 양 떼이니 그들 모두 자신의 소중한 기업으로 여겨져 사랑이 갈 뿐입니다. 아기가 짜증을 내어도 어머니는 좋은 것을 주듯이, 갈무리하는 영혼을 편케 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섬겨 주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어찌하면 그 영혼이 잘될 수 있을까?’ 하여 영육 간에 희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영혼들이 범죄하여 시험 환난을 당할 때면 자신이 더 애통하며 부르짖어 기도하게 됩니다. 맡은 양 떼의 문제를 위해 늘 기도해 주고 양 떼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간구하며, 내 자녀나 가족 이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으로 열심히 영혼을 갈무리하며 섬기다 보면 진실을 느끼고 감사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부모가 되면 부모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신이 양 떼를 갈무리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목자의 마음을 느끼며 더욱 주님께도 하나님께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을 품고 사랑을 주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더 많은 영혼들을 보내 주시고 부흥에 부흥을 더하여 더 큰 사명을 맡게 되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사명 감당을 잘하여 주님께 “지극히 충성된 자”라고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 ) 하나라도 귀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
② ( )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야 한다.
③ ( )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2. 요셉은 아무리 미천한 일도 ( )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 이상의 일을 해냄으로 주인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도 바울의 선’
① 한번 받은바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변개치 않았다.
②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 생명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었다.
③ 큰 권능과 깊은 계시를 받았다 해도 영광을 온전히 주님께만 돌렸다.
2019-12-20
제51과주님은 누구의 구주이신가
마태복음 2:1~12
읽을말씀 : 마태복음 2:1~12 | 외울말씀 : 누가복음 2:14 l 참고 말씀: 마태복음 1:21
교육목표 : 황금, 유향, 몰약에 담긴 영적 의미를 깨달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입니다.
1.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지요.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나신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정욕대로 살아가는 짐승과 다름없게 된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지요(전 3:18).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지요. 범죄한 아담의 후손은 점점 죄로 물들어 갔고 결국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사람의 본분을 벗어나서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을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고, 이들의 참된 양식이 되기 위해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던 것입니다(눅 2:7).
또한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태어나신 것은 인류의 가난을 대속하시기 위함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여 저주를 받음으로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요한 자로서 우리를 부요케 하고자 가난한 길을 가신 것입니다(고후 8:9).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은 사람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선민은 아니었지만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며 선한 양심을 좇아 살았기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찾아가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마 2:11).
육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호화로운 왕궁도, 저택도 아닌 짐승들이 사는 마구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려 보면 그곳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하늘의 선지자들과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육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영으로 보고 느꼈기에 영의 행함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광 돌렸지요. ‘안나’ 선지자 역시 과부 된 지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육신의 생각 속에서 구세주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영으로 깨어 있어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줍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이들은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지 못했습니다.
3. 세 가지 예물에 담긴 영적 의미
1) 마음을 의미하는 황금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이 세 가지 예물에는 어떠한 영적 의미가 있을까요?
황금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합니다. 또한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마 6:21).
따라서 황금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마음을 드린다는 것이며, 곧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명 그 이상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요. 이처럼 우리가 가진 전부를 드리는 일, 할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우며 황금을 예물로 드리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 황금을 드린 것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장차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향기를 의미하는 유향
유향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하지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착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모습이 바로 주님 앞에 유향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함은 물론 중심을 감찰하시며 무엇보다 마음의 향기를 흠향하십니다.
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림과 같이 마음의 할례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중심이요, 생명이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중심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범사가 형통하며 영육 간에 강건합니다(요삼 1:2).
3)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하는 몰약
몰약은 부패를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즉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변함없이 생명까지도 주님께 바칠 수 있는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번 주님을 만나 자신의 생애를 주님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다면 은혜받은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변함없이 그렇게 해야 하지요. 이런 변함없는 마음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악의 모양이 남아 있으면 자신의 유익을 좇아 변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먼저 나의 전부를 드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되 마음의 할례를 통해 그 속의 비진리를 모두 벗어 버리고 진리로 채워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다면 이것이 곧 주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몰약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값진 선물을 받은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께 우리의 마음인 황금과, 그리스도의 향기인 유향과, 변함없는 믿음인 몰약을 선물로 드림으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하며 영적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의미한다.
2. ( )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준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한다.
3. ( )은 부패를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한다.
영적으로는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한다.
* 금주 과제
온 인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생신을 축하드리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사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베들레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이다. 베들레헴은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으로 다윗왕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삼상 16:1, 눅 2:4).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하며 메시아의 탄생지를 예언하였다. 이 말씀대로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이 이곳에 탄생하심으로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미 5:2).
교육목표 : 황금, 유향, 몰약에 담긴 영적 의미를 깨달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입니다.
1.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지요.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나신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정욕대로 살아가는 짐승과 다름없게 된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지요(전 3:18).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지요. 범죄한 아담의 후손은 점점 죄로 물들어 갔고 결국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사람의 본분을 벗어나서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을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고, 이들의 참된 양식이 되기 위해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던 것입니다(눅 2:7).
또한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태어나신 것은 인류의 가난을 대속하시기 위함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여 저주를 받음으로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요한 자로서 우리를 부요케 하고자 가난한 길을 가신 것입니다(고후 8:9).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은 사람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선민은 아니었지만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며 선한 양심을 좇아 살았기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찾아가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마 2:11).
육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호화로운 왕궁도, 저택도 아닌 짐승들이 사는 마구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려 보면 그곳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하늘의 선지자들과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육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영으로 보고 느꼈기에 영의 행함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광 돌렸지요. ‘안나’ 선지자 역시 과부 된 지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육신의 생각 속에서 구세주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영으로 깨어 있어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줍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이들은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지 못했습니다.
3. 세 가지 예물에 담긴 영적 의미
1) 마음을 의미하는 황금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이 세 가지 예물에는 어떠한 영적 의미가 있을까요?
황금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합니다. 또한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마 6:21).
따라서 황금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마음을 드린다는 것이며, 곧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명 그 이상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요. 이처럼 우리가 가진 전부를 드리는 일, 할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우며 황금을 예물로 드리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 황금을 드린 것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장차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향기를 의미하는 유향
유향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하지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착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모습이 바로 주님 앞에 유향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함은 물론 중심을 감찰하시며 무엇보다 마음의 향기를 흠향하십니다.
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림과 같이 마음의 할례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중심이요, 생명이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중심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범사가 형통하며 영육 간에 강건합니다(요삼 1:2).
3)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하는 몰약
몰약은 부패를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즉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변함없이 생명까지도 주님께 바칠 수 있는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번 주님을 만나 자신의 생애를 주님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다면 은혜받은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변함없이 그렇게 해야 하지요. 이런 변함없는 마음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악의 모양이 남아 있으면 자신의 유익을 좇아 변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먼저 나의 전부를 드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되 마음의 할례를 통해 그 속의 비진리를 모두 벗어 버리고 진리로 채워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다면 이것이 곧 주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몰약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값진 선물을 받은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께 우리의 마음인 황금과, 그리스도의 향기인 유향과, 변함없는 믿음인 몰약을 선물로 드림으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하며 영적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의미한다.
2. ( )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준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한다.
3. ( )은 부패를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한다.
영적으로는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한다.
* 금주 과제
온 인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생신을 축하드리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사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베들레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이다. 베들레헴은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으로 다윗왕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삼상 16:1, 눅 2:4).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하며 메시아의 탄생지를 예언하였다. 이 말씀대로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이 이곳에 탄생하심으로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미 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