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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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24
제4과나는 무익한 종이로소이다
누가복음 17:10
읽을말씀 : 누가복음 17:10 | 외울말씀 : 다니엘 12:3 ㅣ 참고 말씀: 누가복음 17:7~10
교육목표 : 나는 없고 오직 주님만 있는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많은 영혼을 전도하여 천국에서 영원한 영광과 존귀를 얻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때 어떠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를 주인과 종을 비유하여 알려 주셨습니다(눅 17:10). 바로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값없이 구원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주의 일에 힘쓰되 무엇보다 열심히 전도하여 주님의 핏값을 찾아 드려야 합니다.
1. 무익한 종의 마음
예수님께서는 본문에 앞서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말씀하셨습니다(눅 17:7~9).
종과 삯꾼은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삯꾼은 일한 것에 대해 삯을 받지만 종은 어떠한 사례도 받지 못합니다. 또 삯꾼은 삯을 받고 나면 주인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종은 주인이 자유를 주지 않으면 생명이 다하기까지 주인을 섬겨야 하지요.
그런데 영적으로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종입니다. 우리도 원래 죄인으로서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리고 생명까지 주시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셨지요. 이로써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종이 주인의 명을 받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그 뜻을 받들어 일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이미 너무도 큰 은혜와 사랑을 받았기에 주님의 종으로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즐겁고 감사할 뿐이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나라에 믿음 있는 일꾼이라면 일의 대가를 바라는 삯꾼의 마음을 가질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전도하는 것은
첫째,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전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많은 영혼을 전도하는 것도 기뻐하시지만,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을 이루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영으로 들어와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기를 바라시지요.
사도 바울이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도, 주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먼저는 자신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에 감사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니 이로 인해 오는 기쁨과 충만함으로 주님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었지요. 모진 고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전도했던 것도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면 말씀에 따라 변화가 되고, 마음이 뜨거워져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어둠을 물리치는 영적인 권세와 하늘의 지혜가 있다면 얼마나 쉽게 전도가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악을 온전히 버리고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인데 그렇게 되면 전도의 능력은 자연히 따릅니다. 자신이 변화되어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향을 발하고 감동을 주며 전도할 때 그 모습을 보고 영혼들이 변화되어 알곡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영의 마음으로 변화되어 전도하는 것이 바로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전도하는 것이며, 그렇게 전도된 열매가 온전한 열매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주님의 마음이 되어 성령의 음성을 들어서 전도해야 합니다.
종이 주인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인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내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어야 합니다. 주인이 “오늘은 밭을 갈아라.” 했는데 종이 그 주인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종일 양을 돌보았다고 합시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밭을 가는 일이 더 급한데 종은 그 마음을 알지 못하고 다른 일을 했으니, 비록 수고가 크다 해도 칭찬받을 수 없지요.
주인의 명령을 직접 듣지 못했다 해도 주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종이라면, ‘지금은 씨 뿌릴 때니 밭을 가는 일이 급하다.’고 스스로 마음에 주관받을 수 있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종이라면 일일이 지시받지 않아도 범사에 주인의 뜻에 합하게 일을 합니다. 나아가 주인이 명령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기 전에 헤아려서 순종할 수 있다면 참으로 주인을 기쁘게 하는 종이라 할 수 있지요.
이처럼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종이라면 항상 주인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를 귀 기울여 들으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충 듣고 명심도 못한다면 주인의 말에 불순종이 나오고 주인이 원하는 것을 해 낼 수도 없지요. 직장에서도 대충 듣고 상사가 원치 않는 대로 일을 해 놓는다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므로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주의 일을 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경청하며, 자신의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의 마음 곧 주님의 마음이 되어 어찌하든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 하지요. 영의 마음이 되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온 영의 마음이 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 속에서 떠오른 것을 가지고 “이것이 성령의 음성이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다.”라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팔복과 사랑장의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자신이 얼마나 영의 마음을 이루었는지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온전히 영의 마음이 돼야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는다 말할 수 있지요.
그러나 아직 영으로 들어가지 못한 믿음의 1, 2단계에 있다 해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조건 순종할 마음이고, 순종해 가는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들어 전도할 때 상대의 입장에 맞추어 말씀을 전함으로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습니다.
셋째, 오직 영혼을 사랑함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이 명한 대로 했다고 하여 사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는 이유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유익에 있으면 안 되지요. 죽어 가는 영혼들과 참 목자를 만나지 못해 방황하는 영혼들을 바라보니, 너무나 불쌍하고 애틋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므로, 어찌하든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전도할 때 주어지는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영혼을 구원할 때 소망 가운데 천국에서 주어질 상급을 바라보았습니다. 소망 가운데 상급을 바라보는 것과 많은 영혼을 구원함으로 인해서 내게 오는 유익을 바라보는 것은 다릅니다. 어떤 성과를 올리는 데 조급한 마음으로 전도에 임할 때는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이 동원되기도 합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가 되심을 전하여 상대로 하여금 믿고 구원받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오직 그 영혼이 구원받고 믿음의 반석에 서는 것으로 인해 기뻐하는 마음으로 전도해야 하지요.
그런데 이러한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지고 교회에 오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목적으로 교회에 오는 사람은 그 목적이 이뤄지지 않을 때는 더 이상 교회에 오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전도가 아니며, 그에 대한 상급도 하늘에 쌓이기 어렵지요. 그러므로 전도의 참된 목적을 알아 사랑의 마음으로 전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전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하나님을 ( ) 사랑하기 때문에 전도하는 것이다.
② 주님의 마음이 되어 ( )을 들어서 전도해야 한다.
③ 오직 ( )을 사랑함으로 전도하는 것이다.
2. 주의 나라에 믿음 있는 일꾼이라면 일의 대가를 바라는 ( )의 마음을 가질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우리는 ( )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2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음성은 어떻게 들려오는가?
① 성령께서 마음에 하나님 말씀을 떠올려 주신다.
- 성경 말씀이나 설교 때 들은 말씀이 떠오른다.
② 성령이 하나의 인격체로 마음에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해 주신다.
- 앞으로 될 일을 말씀해 주시거나 말할 바, 행할 바를 지시하신다.
교육목표 : 나는 없고 오직 주님만 있는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많은 영혼을 전도하여 천국에서 영원한 영광과 존귀를 얻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할 때 어떠한 마음으로 해야 하는지를 주인과 종을 비유하여 알려 주셨습니다(눅 17:10). 바로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값없이 구원의 은혜를 입은 우리는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주의 일에 힘쓰되 무엇보다 열심히 전도하여 주님의 핏값을 찾아 드려야 합니다.
1. 무익한 종의 마음
예수님께서는 본문에 앞서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말씀하셨습니다(눅 17:7~9).
종과 삯꾼은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삯꾼은 일한 것에 대해 삯을 받지만 종은 어떠한 사례도 받지 못합니다. 또 삯꾼은 삯을 받고 나면 주인과 아무런 상관이 없지만, 종은 주인이 자유를 주지 않으면 생명이 다하기까지 주인을 섬겨야 하지요.
그런데 영적으로 모든 사람은 누군가의 종입니다. 우리도 원래 죄인으로서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을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보혈을 흘리고 생명까지 주시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심으로 우리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셨지요. 이로써 우리의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가 되십니다.
종이 주인의 명을 받아 그대로 순종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로 믿고 영접한 사람은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그 뜻을 받들어 일을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이미 너무도 큰 은혜와 사랑을 받았기에 주님의 종으로 주의 일을 하는 것이 즐겁고 감사할 뿐이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도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의 나라에 믿음 있는 일꾼이라면 일의 대가를 바라는 삯꾼의 마음을 가질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전도하는 것은
첫째,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전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많은 영혼을 전도하는 것도 기뻐하시지만,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마음을 이루는 것을 더 기뻐하십니다. 무엇보다도 영으로 들어와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기를 바라시지요.
사도 바울이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도, 주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먼저는 자신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사명에 감사하여 자신을 변화시키니 이로 인해 오는 기쁨과 충만함으로 주님의 부활을 증거할 수 있었지요. 모진 고난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전도했던 것도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를 사랑하면 말씀에 따라 변화가 되고, 마음이 뜨거워져 전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어둠을 물리치는 영적인 권세와 하늘의 지혜가 있다면 얼마나 쉽게 전도가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악을 온전히 버리고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궁극적인 뜻인데 그렇게 되면 전도의 능력은 자연히 따릅니다. 자신이 변화되어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향을 발하고 감동을 주며 전도할 때 그 모습을 보고 영혼들이 변화되어 알곡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극히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영의 마음으로 변화되어 전도하는 것이 바로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전도하는 것이며, 그렇게 전도된 열매가 온전한 열매가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주님의 마음이 되어 성령의 음성을 들어서 전도해야 합니다.
종이 주인의 뜻을 받들어 순종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인이 무엇을 말씀하시는지, 내게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들어야 합니다. 주인이 “오늘은 밭을 갈아라.” 했는데 종이 그 주인의 음성을 듣지 못하고 종일 양을 돌보았다고 합시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밭을 가는 일이 더 급한데 종은 그 마음을 알지 못하고 다른 일을 했으니, 비록 수고가 크다 해도 칭찬받을 수 없지요.
주인의 명령을 직접 듣지 못했다 해도 주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종이라면, ‘지금은 씨 뿌릴 때니 밭을 가는 일이 급하다.’고 스스로 마음에 주관받을 수 있습니다. 주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종이라면 일일이 지시받지 않아도 범사에 주인의 뜻에 합하게 일을 합니다. 나아가 주인이 명령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명령하기 전에 헤아려서 순종할 수 있다면 참으로 주인을 기쁘게 하는 종이라 할 수 있지요.
이처럼 주인의 마음을 헤아리는 종이라면 항상 주인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를 귀 기울여 들으려 할 것입니다. 그런데 대충 듣고 명심도 못한다면 주인의 말에 불순종이 나오고 주인이 원하는 것을 해 낼 수도 없지요. 직장에서도 대충 듣고 상사가 원치 않는 대로 일을 해 놓는다면 하지 않는 것만 못합니다.
그러므로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주의 일을 하기 원하는 사람이라면 경청하며, 자신의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의 마음 곧 주님의 마음이 되어 어찌하든 성령의 음성을 들으려고 해야 하지요. 영의 마음이 되는 만큼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온 영의 마음이 되어야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각 속에서 떠오른 것을 가지고 “이것이 성령의 음성이고,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다.”라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팔복과 사랑장의 사랑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로 자신이 얼마나 영의 마음을 이루었는지를 점검할 수 있습니다. 온전히 영의 마음이 돼야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듣는다 말할 수 있지요.
그러나 아직 영으로 들어가지 못한 믿음의 1, 2단계에 있다 해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조건 순종할 마음이고, 순종해 가는 사람은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들어 전도할 때 상대의 입장에 맞추어 말씀을 전함으로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습니다.
셋째, 오직 영혼을 사랑함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이 명한 대로 했다고 하여 사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했습니다. 여러분이 전도하는 이유가 자신에게 돌아오는 유익에 있으면 안 되지요. 죽어 가는 영혼들과 참 목자를 만나지 못해 방황하는 영혼들을 바라보니, 너무나 불쌍하고 애틋한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므로, 어찌하든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으로 전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전도할 때 주어지는 하늘의 상급을 바라보지 말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도 영혼을 구원할 때 소망 가운데 천국에서 주어질 상급을 바라보았습니다. 소망 가운데 상급을 바라보는 것과 많은 영혼을 구원함으로 인해서 내게 오는 유익을 바라보는 것은 다릅니다. 어떤 성과를 올리는 데 조급한 마음으로 전도에 임할 때는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이 동원되기도 합니다. 전도는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가 되심을 전하여 상대로 하여금 믿고 구원받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오직 그 영혼이 구원받고 믿음의 반석에 서는 것으로 인해 기뻐하는 마음으로 전도해야 하지요.
그런데 이러한 목적이 아닌 다른 목적을 가지고 교회에 오도록 유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목적으로 교회에 오는 사람은 그 목적이 이뤄지지 않을 때는 더 이상 교회에 오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올바른 전도가 아니며, 그에 대한 상급도 하늘에 쌓이기 어렵지요. 그러므로 전도의 참된 목적을 알아 사랑의 마음으로 전도에 힘쓰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무익한 종의 마음으로 전도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하나님을 ( ) 사랑하기 때문에 전도하는 것이다.
② 주님의 마음이 되어 ( )을 들어서 전도해야 한다.
③ 오직 ( )을 사랑함으로 전도하는 것이다.
2. 주의 나라에 믿음 있는 일꾼이라면 일의 대가를 바라는 ( )의 마음을 가질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우리는 ( )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2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음성은 어떻게 들려오는가?
① 성령께서 마음에 하나님 말씀을 떠올려 주신다.
- 성경 말씀이나 설교 때 들은 말씀이 떠오른다.
② 성령이 하나의 인격체로 마음에 구체적인 내용을 말씀해 주신다.
- 앞으로 될 일을 말씀해 주시거나 말할 바, 행할 바를 지시하신다.
2020-01-17
제3과전도 (2) -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디모데후서 4:2
읽을말씀 : 디모데후서 4:2 | 외울말씀 : 고린도후서 2:15 l 참고 말씀: 야고보서 2:15~16
교육목표 : 사랑과 선의 지혜로 수많은 영혼을 전도하여 하늘에서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게 한다.
전도란 “구원의 도” 곧 지옥을 향해 가던 사람들을 천국에 가는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죄 사함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전도이지요. 전도할 때에 십자가의 도를 전하고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들을 보여 주며,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간증을 들려준다면 여러분의 전도가 더 쉽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전도 방법
디모데후서 4장 2절에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의 도인 십자가의 도를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전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제시해 드릴 전도 방법 중 할 수 있는 것부터 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복음이 담긴 전도지를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신문인 “만민뉴스”는 하나님의 말씀은 물론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간증도 실려 있어서 참 좋은 전도지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간증과 생명의 말씀과 뉴스들이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요.
성도님들 중에는 만민뉴스를 수백 부에서 수천 부씩 돌리는 분들과 주말이나 공휴일에 전철역이나 공원 등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전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집에 꽂아 놓거나 전철이나 공원 등지에서 전한 신문만 읽고도 은혜 받아 교회에 나온 분들이 많이 있지요.
지금 당장은 여러분이 돌린 신문을 누가 읽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해도 그 신문을 통해 분명 많은 영혼이 이 복음을 접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뿌린 전도지를 통해 열매가 맺히는 것을 체험한다면 그때의 기쁨은 참으로 클 것입니다. 훗날 천국에 가면 여러분이 돌린 전도지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고, 상급도 분명히 전도자인 여러분에게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열심히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에서는 전도한 사람들의 신발이 아주 빛이 납니다. 전도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더 빛이 나지요. 그래서 신발만 봐도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여 전도를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전도를 많이 한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브로치를 달아 주십니다. 그것은 천국에서 세세토록 영광이 되고 사람들은 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처럼 영혼 구원은 하나님 앞에 큰 기쁨과 상급이 됩니다.
혹여 지금까지 전도에 참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러면 이제 여러분의 집 주변에서부터 할 수 있는 만큼의 지역을 정해서 지속적으로 교회 신문을 전달해 보시기 바랍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만나기 쉽지 않은 친척이나 친구들에게는 우편으로 보내 줄 수도 있지요. 직접 전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돌린 신문을 보고 감동을 받아 등록했다면 결국 하늘나라에서는 여러분의 열매가 됩니다.
둘째로, 일정 지역이나 특정 대상을 목표로 집중적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단순히 전도지를 전달만 하였다면 이제는 문을 두드려서 그곳에 사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전도지를 전달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교회라고 하면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문전박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꼭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다닐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나, 이사 와서 어느 교회를 나갈지 정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면 금방 좋은 열매로 딸 수 있습니다.
설령 이렇게 준비된 영혼들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비록 문전박대하고 싫어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에 또 찾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서너 번, 어떤 분은 대여섯 번, 어떤 분은 1년, 2년, 3년 전도했을 때 마음문이 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도를 아주 잘하시는 분들도 때론 열 번, 스무 번 그 이상을 찾아가서야 열매를 딴 경우들이 있다고 간증합니다. 만일 스무 번째 방문으로 전도될 영혼을 열아홉 번째까지 해 보고 ‘이 사람은 도저히 안 되는구나!’ 하고 포기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지요?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변함없이 복음을 전하면 그 영혼은 반드시 전도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가가호호 방문하여 전도 대상자를 파악하고 집중적으로 전도하고자 할 때에 열매를 더 빨리 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는 구원의 도 곧 십자가의 도를 정확하게 심어 주며, 여기에 반드시 그 영혼을 위한 사랑의 중보 기도를 해 줘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하여 준 복음 곧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어떠한 죄인이라도 용서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이 그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일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의뢰하는 기도가 있어야 하지요.
나아가 여러분이 주님의 사랑이 참되고 진실한 것임을 보여 준다면 전도 대상자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전도의 열매를 앞당기는 비법이지요.
실제로 전도를 많이 하신 분들이 어떠한 사랑의 수고와 헌신으로 열매를 맺었는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전도를 잘하시는 분들은 처음에 어느 가정을 방문하면 짧은 시간 안에 그의 가족은 몇 명이고, 아이는 몇 명인지,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파악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에 방문할 때는 그 가정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준비해서 가지요. 이것이 선의 지혜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에는 아이에게 필요한 학용품이나 과자를 사 갑니다. 자기 자녀에게는 싼 것을 사 줘도 전도 대상자의 아이에게는 더 비싸고 좋은 것을 사 준다는 분도 있습니다. 그냥 내게 있는 것이나 내가 쓰고 남은 것을 나눠 주는 차원이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공급할 때 그 진심이 상대에게도 통하지요.
어떤 전도자는 맞벌이 부부를 전도하기 위해 정성스럽게 밑반찬을 준비해 주곤 했는데, 한번은 자녀들과 맛있게 식사하려고 찌개를 끓였다가 전도 대상자가 생각나서 냄비 채로 갖다 주었다고 합니다. 전도의 열정이 넘치니 식사를 할 때도 전도 대상자가 눈에 아른거려 이 같은 행함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전도자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그분의 자녀들보다 더한 사랑으로 섬긴다고 합니다. 무조건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정한 말벗이 되어 얘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팔다리를 시원하게 주물러 드리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도 알려 드리고 각종 질병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은 성도들의 간증도 열심히 전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새로 이사 오는 가정이 있으면 자기 일은 제쳐 두고 무조건 가서 도와줌으로 좋은 이웃이 되고 친분을 쌓습니다. 나아가 그 지역의 시장이나 공공기관, 아이들의 놀이터 등 좋은 정보도 알려 주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면서 전도를 하지요.
전도 대상자의 집안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애경사가 생기면 자기 일처럼 달려가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힘이 되어 주는 것도 필요하지요. 궂은일이 생겼을 때 앞장서서 도와주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면 상대가 더 고마움을 느끼고 감동을 받아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한 사람을 전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까지는 그만큼 수고와 헌신이 필요합니다. 한 영혼이 구원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어 하늘에서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전도란 ( )의 도 곧 사람들을 천국에 가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죄 사함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 )이다.
2. 전도를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는 하늘의 상급’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했다(단 12:3).
이 땅에서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들여 많은 사람을 전도하며
영혼 구원에 힘쓴 사람은 장차 천국에서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상급 중에서 전도 상이 가장 크다.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달아 주신 브로치를 보면,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지 알 수 있다.
천국에서는 많은 사람을 전도한 사람에게 경배를 하기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자신의 면류관이요, 영광과 자랑이 된다.
교육목표 : 사랑과 선의 지혜로 수많은 영혼을 전도하여 하늘에서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게 한다.
전도란 “구원의 도” 곧 지옥을 향해 가던 사람들을 천국에 가는 길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죄 사함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전도이지요. 전도할 때에 십자가의 도를 전하고 하나님의 살아 계신 증거들을 보여 주며,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간증을 들려준다면 여러분의 전도가 더 쉽게 받아들여질 것입니다.
전도 방법
디모데후서 4장 2절에는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의 도인 십자가의 도를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막상 전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제시해 드릴 전도 방법 중 할 수 있는 것부터 행해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복음이 담긴 전도지를 많은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 신문인 “만민뉴스”는 하나님의 말씀은 물론이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간증도 실려 있어서 참 좋은 전도지입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의 생생한 간증과 생명의 말씀과 뉴스들이 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지요.
성도님들 중에는 만민뉴스를 수백 부에서 수천 부씩 돌리는 분들과 주말이나 공휴일에 전철역이나 공원 등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서 전도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집에 꽂아 놓거나 전철이나 공원 등지에서 전한 신문만 읽고도 은혜 받아 교회에 나온 분들이 많이 있지요.
지금 당장은 여러분이 돌린 신문을 누가 읽고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알 수 없다 해도 그 신문을 통해 분명 많은 영혼이 이 복음을 접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뿌린 전도지를 통해 열매가 맺히는 것을 체험한다면 그때의 기쁨은 참으로 클 것입니다. 훗날 천국에 가면 여러분이 돌린 전도지를 통해 구원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있고, 상급도 분명히 전도자인 여러분에게 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열심히 전도하시기 바랍니다.
천국에서는 전도한 사람들의 신발이 아주 빛이 납니다. 전도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더 빛이 나지요. 그래서 신발만 봐도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여 전도를 많이 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전도를 많이 한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브로치를 달아 주십니다. 그것은 천국에서 세세토록 영광이 되고 사람들은 그에게 경의를 표합니다. 이처럼 영혼 구원은 하나님 앞에 큰 기쁨과 상급이 됩니다.
혹여 지금까지 전도에 참여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그러면 이제 여러분의 집 주변에서부터 할 수 있는 만큼의 지역을 정해서 지속적으로 교회 신문을 전달해 보시기 바랍니다. 멀리 떨어져 있어서 만나기 쉽지 않은 친척이나 친구들에게는 우편으로 보내 줄 수도 있지요. 직접 전도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여러분이 돌린 신문을 보고 감동을 받아 등록했다면 결국 하늘나라에서는 여러분의 열매가 됩니다.
둘째로, 일정 지역이나 특정 대상을 목표로 집중적으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단순히 전도지를 전달만 하였다면 이제는 문을 두드려서 그곳에 사는 사람과 인사를 나누고 전도지를 전달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교회라고 하면 무조건 싫어하는 사람도 있고 문전박대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요.
그런데 꼭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에 다닐까 말까 고민하고 있는 사람이나, 이사 와서 어느 교회를 나갈지 정하지 못한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난다면 금방 좋은 열매로 딸 수 있습니다.
설령 이렇게 준비된 영혼들을 만나지 못하더라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서는 안 됩니다. 비록 문전박대하고 싫어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에 또 찾아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서너 번, 어떤 분은 대여섯 번, 어떤 분은 1년, 2년, 3년 전도했을 때 마음문이 열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도를 아주 잘하시는 분들도 때론 열 번, 스무 번 그 이상을 찾아가서야 열매를 딴 경우들이 있다고 간증합니다. 만일 스무 번째 방문으로 전도될 영혼을 열아홉 번째까지 해 보고 ‘이 사람은 도저히 안 되는구나!’ 하고 포기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는지요? 그러므로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변함없이 복음을 전하면 그 영혼은 반드시 전도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처럼 가가호호 방문하여 전도 대상자를 파악하고 집중적으로 전도하고자 할 때에 열매를 더 빨리 딸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먼저는 구원의 도 곧 십자가의 도를 정확하게 심어 주며, 여기에 반드시 그 영혼을 위한 사랑의 중보 기도를 해 줘야 합니다. 여러분이 전하여 준 복음 곧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어떠한 죄인이라도 용서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크신 사랑이 그의 마음과 생각을 움직일 수 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의뢰하는 기도가 있어야 하지요.
나아가 여러분이 주님의 사랑이 참되고 진실한 것임을 보여 준다면 전도 대상자들은 마음의 문을 열고 복음을 받아들이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전도의 열매를 앞당기는 비법이지요.
실제로 전도를 많이 하신 분들이 어떠한 사랑의 수고와 헌신으로 열매를 맺었는지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전도를 잘하시는 분들은 처음에 어느 가정을 방문하면 짧은 시간 안에 그의 가족은 몇 명이고, 아이는 몇 명인지, 생활은 어떻게 하는지 등을 파악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다음에 방문할 때는 그 가정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을 준비해서 가지요. 이것이 선의 지혜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있는 가정에는 아이에게 필요한 학용품이나 과자를 사 갑니다. 자기 자녀에게는 싼 것을 사 줘도 전도 대상자의 아이에게는 더 비싸고 좋은 것을 사 준다는 분도 있습니다. 그냥 내게 있는 것이나 내가 쓰고 남은 것을 나눠 주는 차원이 아니라 진심으로 상대를 위하는 마음으로 사랑을 공급할 때 그 진심이 상대에게도 통하지요.
어떤 전도자는 맞벌이 부부를 전도하기 위해 정성스럽게 밑반찬을 준비해 주곤 했는데, 한번은 자녀들과 맛있게 식사하려고 찌개를 끓였다가 전도 대상자가 생각나서 냄비 채로 갖다 주었다고 합니다. 전도의 열정이 넘치니 식사를 할 때도 전도 대상자가 눈에 아른거려 이 같은 행함이 나온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전도자는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그분의 자녀들보다 더한 사랑으로 섬긴다고 합니다. 무조건 교회에 나오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정한 말벗이 되어 얘기를 들어주기도 하고 팔다리를 시원하게 주물러 드리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도 알려 드리고 각종 질병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치료받은 성도들의 간증도 열심히 전한다고 합니다.
또 어떤 분은 새로 이사 오는 가정이 있으면 자기 일은 제쳐 두고 무조건 가서 도와줌으로 좋은 이웃이 되고 친분을 쌓습니다. 나아가 그 지역의 시장이나 공공기관, 아이들의 놀이터 등 좋은 정보도 알려 주고 여러모로 도움을 주면서 전도를 하지요.
전도 대상자의 집안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특히 애경사가 생기면 자기 일처럼 달려가서 희생하고 헌신하며 힘이 되어 주는 것도 필요하지요. 궂은일이 생겼을 때 앞장서서 도와주고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한다면 상대가 더 고마움을 느끼고 감동을 받아 복음을 쉽게 받아들이게 됩니다.
한 사람을 전도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까지는 그만큼 수고와 헌신이 필요합니다. 한 영혼이 구원에 이르기까지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음으로 많은 열매를 맺어 하늘에서 큰 상급과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전도란 ( )의 도 곧 사람들을 천국에 가는 길로 인도하는 것이다.
죄로 인해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죄인들에게 죄 사함 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 ( )이다.
2. 전도를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는 하늘의 상급’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했다(단 12:3).
이 땅에서 자신의 시간과 물질을 들여 많은 사람을 전도하며
영혼 구원에 힘쓴 사람은 장차 천국에서 영광 가운데 거하게 된다.
하나님께서 천국에서 주시는 상급 중에서 전도 상이 가장 크다.
상 주시는 하나님께서 친히 달아 주신 브로치를 보면,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전도했는지 알 수 있다.
천국에서는 많은 사람을 전도한 사람에게 경배를 하기에,
구원받은 영혼들이 자신의 면류관이요, 영광과 자랑이 된다.
2020-01-10
제2과전도 ( 1 ) - 부득불 할 일임이라
고린도전서 9:16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9:16 | 외울말씀 : 다니엘 12:3 ㅣ 참고 말씀/ 누가복음 15:7
교육목표 : 주님의 지상명령을 따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함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내내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전도하셨습니다. 허름한 샌들을 신으시고 건조한 사막 기후의 이스라엘 곳곳을 걸어 다니셨기에, 발에는 늘 모래와 먼지가 묻어 있었고 때론 발이 붓기도 하셨지요. 그런데도 하나님께는 예수님의 발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발걸음을 옮기시는 곳마다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영혼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좋은 소식을 얼마나 전하고 계시는지요?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했습니다. “부득불(不得不) 할 일”이란 “아니할 수 없는 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뜻합니다.
그러면 전도가 왜 이처럼 부득불 해야 할 일일까요?
전도를 부득불 해야 하는 이유
첫째로, 전도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지극히 큰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명령이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만나실 때마다 제자들이 이제는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16절에 보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하셨지요.
사도행전 1장 8절에도 보면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증인으로서 전도를 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지상명령이요, 이 땅에 계실 때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언이며, 우리의 기본적인 사명입니다. 따라서 ‘나는 특별한 사명이 없는데요.’ 생각하는 분도 바로 전도의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께서 명하신 전도의 일을 중심에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행해 나간다면 반드시 성령께서 도와주십니다. “나는 말주변이 없어요. 내성적인 성품이라 낯선 사람에게 말을 붙이기 어려워요.”라고 하는 것은 타당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평범한 한 여성도님이 전도를 시작하게 된 간증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분은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후 전도가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는 중에 하루는 기도하다가 “네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라.”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에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이 있나 살펴보니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한 지식과 함께 꼼꼼한 뜨개질 솜씨와 정갈하게 만두 빚는 솜씨가 있는 것을 발견했지요. 그래서 우선 이웃집에 사는 아이들의 체형을 유심히 관찰하고는 뜨개질로 예쁜 조끼를 짜서 전도지와 함께 선물을 했습니다. 또 정성스레 빚은 만두를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날 때 전도지와 함께 이웃집에 건네주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건네며, “아줌마! 교회 다니시죠? 저 좀 교회에 데려가 주세요.” 했다는 것입니다. 다소 소극적인 전도 방법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이웃에게 여러분이 가진 것을 함께 나누며 다정하고 좋은 이웃이 될 때 전도도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우리 교회에서 전도를 잘하시는 분들의 간증입니다. 아무리 전도해도 잘 받아들이지 않거나, 교회 나가겠다고 약속해 놓고 차일피일 미루는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관심을 가지고 방문합니다. 그러다가 전도 대상자가 아플 때, 내 혈육과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권능의 손수건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 주면 질병이 치료되어 교회에 나오게 됐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여러분이 “전도하라” 하신 주님의 명령에 어찌하든 순종해 가신다면 반드시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그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맞는 전도의 방법을 알려 주시고, 질병이나 가정의 문제로 고통받는 이를 위한 여러분의 사랑의 중보 기도를 받으시고 전도 대상자가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인물 중에 악인에게 가서 멸망을 경고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으면서도 순종하지 않으므로 화를 입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요나입니다. 요나는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으나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하려 했습니다.
자신이 그 사실을 알리면 니느웨 백성들은 죄악에서 돌이켜 회개할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돌이켜 그들을 멸하시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요나는 적국인 니느웨가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 것이 싫었습니다. 물론 두려움도 있었지요. 임의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도망가던 요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시스로 가던 배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납니다. 이때 이 재앙이 누구 때문인지 제비를 뽑았는데 바로 요나가 뽑혀 바다에 던져지게 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기 위해 큰 물고기를 예비하여 그를 삼키게 하십니다.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 3일 동안 있으면서 철저히 회개하자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 내지요.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물론이요, 왕과 대신들까지도 금식하며 회개했고, 심지어는 짐승들까지도 금식을 시켰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에게 내리려 했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신다고 해도 중심에서 통회자복하고 돌이킨다면 하나님은 살려 주시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욘 4:11).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아끼십니다. 어찌하든 전도해서 그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지요. 그러니 전도하는 자의 발이 복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비록 죄악 중에 살아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시지, 그대로 사망에 이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여러분이 그 역할을 감당해 주기를 바라시지요.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듣든 듣지 않든, 나아가 핍박을 한다고 해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죗값으로 인해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음으로 그가 지옥에 가게 된다면 여러분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영혼 구원이 얼마나 큰 상급이며, 하나님께서 이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다니엘 12장 3절에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하셨지요.
또 누가복음 15장 7절에는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했습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여 주님 품에 안길 때 하늘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언제 어디에서 대형 참사가 있을 것을 안다고 합시다. 이때 여러분의 가족이나 아는 사람이 바로 그날 그곳에 가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말리지 않겠는지요? 아무리 상대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 하며 믿지 않고 세상 말로 “재수 없는 소리를 한다.”며 기분 나빠해도 그를 사랑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나는 일단 알려 줬으니 당신이 죽어도 나는 책임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여러분의 가족, 친척, 친구, 동료, 이웃이 내일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전도가 왜 부득불 해야 할 일일까요?
①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지극히 큰 ( )이기 때문이다.
② 만일 ( )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기 때문이다.
2.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으나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화를 당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를 왜 해야만 할까?’
지옥을 향해 가는 영혼들이 전도를 통해 천국의 길로 인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9:27에“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했다. 즉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으면 천국과 지옥 두 갈래가 있고 반드시 심판이 있다.
주님을 믿고 성령 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반면, 주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져 영벌을 받게 되니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한다.
교육목표 : 주님의 지상명령을 따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함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에 이르게 한다.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내내 이 마을 저 마을 다니면서 전도하셨습니다. 허름한 샌들을 신으시고 건조한 사막 기후의 이스라엘 곳곳을 걸어 다니셨기에, 발에는 늘 모래와 먼지가 묻어 있었고 때론 발이 붓기도 하셨지요. 그런데도 하나님께는 예수님의 발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보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발걸음을 옮기시는 곳마다 생명을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영혼들을 구원으로 인도하는 좋은 소식을 얼마나 전하고 계시는지요? 고린도전서 9장 16절에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했습니다. “부득불(不得不) 할 일”이란 “아니할 수 없는 일, 반드시 해야 하는 일,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을 뜻합니다.
그러면 전도가 왜 이처럼 부득불 해야 할 일일까요?
전도를 부득불 해야 하는 이유
첫째로, 전도는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지극히 큰 명령이기 때문입니다.
명령이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만나실 때마다 제자들이 이제는 주님의 증인이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 15~16절에 보면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하셨지요.
사도행전 1장 8절에도 보면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증인으로서 전도를 하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지상명령이요, 이 땅에 계실 때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언이며, 우리의 기본적인 사명입니다. 따라서 ‘나는 특별한 사명이 없는데요.’ 생각하는 분도 바로 전도의 사명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주님께서 명하신 전도의 일을 중심에서 순종하는 마음으로 행해 나간다면 반드시 성령께서 도와주십니다. “나는 말주변이 없어요. 내성적인 성품이라 낯선 사람에게 말을 붙이기 어려워요.”라고 하는 것은 타당한 이유가 되지 않습니다.
평범한 한 여성도님이 전도를 시작하게 된 간증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분은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은 후 전도가 하나님의 뜻임을 알게 되었지요. 그러나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주저하는 중에 하루는 기도하다가 “네가 가진 것을 나누어 주라.”는 성령의 음성을 들었다고 합니다.
이에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이 있나 살펴보니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고상한 지식과 함께 꼼꼼한 뜨개질 솜씨와 정갈하게 만두 빚는 솜씨가 있는 것을 발견했지요. 그래서 우선 이웃집에 사는 아이들의 체형을 유심히 관찰하고는 뜨개질로 예쁜 조끼를 짜서 전도지와 함께 선물을 했습니다. 또 정성스레 빚은 만두를 쪄서 김이 모락모락 날 때 전도지와 함께 이웃집에 건네주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이웃집 아주머니가 먼저 말을 건네며, “아줌마! 교회 다니시죠? 저 좀 교회에 데려가 주세요.” 했다는 것입니다. 다소 소극적인 전도 방법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이웃에게 여러분이 가진 것을 함께 나누며 다정하고 좋은 이웃이 될 때 전도도 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우리 교회에서 전도를 잘하시는 분들의 간증입니다. 아무리 전도해도 잘 받아들이지 않거나, 교회 나가겠다고 약속해 놓고 차일피일 미루는 사람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관심을 가지고 방문합니다. 그러다가 전도 대상자가 아플 때, 내 혈육과 같은 사랑의 마음으로 권능의 손수건을 얹고 간절히 기도해 주면 질병이 치료되어 교회에 나오게 됐다는 것이지요.
이처럼 여러분이 “전도하라” 하신 주님의 명령에 어찌하든 순종해 가신다면 반드시 성령께서 도와주셔서 그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각 사람에게 맞는 전도의 방법을 알려 주시고, 질병이나 가정의 문제로 고통받는 이를 위한 여러분의 사랑의 중보 기도를 받으시고 전도 대상자가 하나님을 체험하도록 도와주시는 것입니다.
둘째로,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인물 중에 악인에게 가서 멸망을 경고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으면서도 순종하지 않으므로 화를 입은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요나입니다. 요나는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으나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하려 했습니다.
자신이 그 사실을 알리면 니느웨 백성들은 죄악에서 돌이켜 회개할 것이고,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돌이켜 그들을 멸하시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지요. 요나는 적국인 니느웨가 하나님의 구원을 얻는 것이 싫었습니다. 물론 두려움도 있었지요. 임의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도망가던 요나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다시스로 가던 배가 바다에서 폭풍을 만납니다. 이때 이 재앙이 누구 때문인지 제비를 뽑았는데 바로 요나가 뽑혀 바다에 던져지게 되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기 위해 큰 물고기를 예비하여 그를 삼키게 하십니다.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 3일 동안 있으면서 철저히 회개하자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 내지요. 요나는 니느웨로 가서 하나님의 뜻을 전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물론이요, 왕과 대신들까지도 금식하며 회개했고, 심지어는 짐승들까지도 금식을 시켰지요.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뜻을 돌이키시고, 그들에게 내리려 했던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신다고 해도 중심에서 통회자복하고 돌이킨다면 하나님은 살려 주시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욘 4:11).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아끼십니다. 어찌하든 전도해서 그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지요. 그러니 전도하는 자의 발이 복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비록 죄악 중에 살아간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여 구원받기를 원하시지, 그대로 사망에 이르기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여러분이 그 역할을 감당해 주기를 바라시지요.
그리스도인들은 사람들이 듣든 듣지 않든, 나아가 핍박을 한다고 해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복음을 전해도 믿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죗값으로 인해 결국은 사망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전도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음으로 그가 지옥에 가게 된다면 여러분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영혼 구원이 얼마나 큰 상급이며, 하나님께서 이를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잘 나와 있습니다. 다니엘 12장 3절에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하셨지요.
또 누가복음 15장 7절에는 “이와 같이 죄인 하나가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을 인하여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했습니다. 죄인 하나가 회개하여 주님 품에 안길 때 하늘에서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사람들이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알아야 할 것입니다.
가령, 여러분이 언제 어디에서 대형 참사가 있을 것을 안다고 합시다. 이때 여러분의 가족이나 아는 사람이 바로 그날 그곳에 가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말리지 않겠는지요? 아무리 상대가 “설마 그럴 리가 있겠느냐?” 하며 믿지 않고 세상 말로 “재수 없는 소리를 한다.”며 기분 나빠해도 그를 사랑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가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나는 일단 알려 줬으니 당신이 죽어도 나는 책임 없다.”고 할 수는 없지요. 여러분의 가족, 친척, 친구, 동료, 이웃이 내일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으로 인도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전도가 왜 부득불 해야 할 일일까요?
①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지극히 큰 ( )이기 때문이다.
② 만일 ( )을 전하지 않으면 화가 있기 때문이다.
2. 니느웨의 멸망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명을 받았으나 불순종하여 다시스로 도망가다가 화를 당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를 왜 해야만 할까?’
지옥을 향해 가는 영혼들이 전도를 통해 천국의 길로 인도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9:27에“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했다. 즉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죽으면 천국과 지옥 두 갈래가 있고 반드시 심판이 있다.
주님을 믿고 성령 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반면, 주님을 믿지 않은 사람들은 지옥에 떨어져 영벌을 받게 되니 힘써 복음을 전해야 한다.
2020-01-03
제1과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사야 60:1
읽을말씀 : 이사야 60:1 | 외울말씀 : 이사야 60:1 ㅣ 참고 말씀: 요한일서 1:5
교육목표 : 어둠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고 있는 이때에 일어나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만방에 드러내는 성도가 되게 한다.
밤이 깊고 어둠이 짙어갈수록 사람들은 빛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므로 그 가치는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죄로 관영하여 날로 어두워져 가는 이 세대 속에서 비추는 그리스도의 빛은, 수많은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고 있으니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더욱 그리스도의 빛을 발함으로 세상의 길잡이와 같은 역할을 잘 감당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사 60:1).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명령이요, 그들의 영광스런 미래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은 온통 절망과 어둠으로 가득했습니다. 온 나라가 우상 숭배 등의 종교적 범죄와 더불어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약한 자를 억압하는 풍조가 만연했지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회개를 권고하셨지만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악을 행하자 마침내는 그들을 바벨론의 손에 붙이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아름답던 예루살렘 성전은 훼파되고, 백성들은 이방인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포로생활의 고달픔도 고통스러웠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 자신들에게서 떠나갔다는 절망감에 더욱 괴로웠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영광스러운 미래와 메시아의 도래를 약속하시며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날은 이사야 당시보다 더욱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러한 때 당당히 일어나 여호와의 영광의 빛을 만방에 비추는 사명이 바로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복음을 증거하고 있지만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으로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를 눈에 보이는 증거로 나타내 줘야 하지요. 또 인간의 지식과 사상이 혼합된 것이 아닌 오직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즉 인간 경작의 섭리와 뜻이 담긴 십자가의 도를 밝히 깨닫게 해 줄 생명의 말씀이 절실히 필요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복음으로 세계를 온전히 이루는 사명을,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 즉 성결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된 성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합당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때로는 훈련하시고 여러 모양으로 연단해 오셨지요. 더욱이 연단을 통과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명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본 제단을 향한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 만방에 드러날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이루려면
1)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둠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빛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빛의 근원 되신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고 권면한 것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좇아 행해야 하지요. 어둠에 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둠에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지만, 진리의 빛이 비추이면 무엇이 어둠이고 빛인지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 들어오는 만큼 전에 행하던 죄들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요.
각 사람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에 이루었고, 악을 버려 성결되었느냐에 따라 빛을 비추는 힘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빛을 소유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당당히 하나님의 역사들을 나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둠의 세력과 싸우다가 그만 힘을 잃고 어둠에 묻혀 버리기도 하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빛이 임하는 만큼 어둠은 반드시 물러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셔서 흑암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고 그 빛 가운데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을 비추는 큰 빛으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생명의 빛을 전파했지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바로 내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넓게는 사회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으며, 마침내는 세계 만방에 일어나 마음껏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2)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행 1:8).
이 말씀대로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뿐 아니라, 빌립과 스데반 집사와 같은 성도들이 권능을 베풀며 복음을 증거하는 곳곳마다 유대인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방인들이 주께로 나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지요.
이와 같이 주의 종이 아니라 해도, 성령을 받은 여러분들도 권능을 받아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에 합당한 그릇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지요. 곧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흠이 없을 때라야 권능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만일 세상으로부터 좇아온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께 권능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교만해져서 오히려 쓰임 받고 버려지게 될 뿐입니다.
성경을 보면 권능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흠이 없고 온유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권능은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 불같은 기도를 쌓아야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받아 온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만약 핍박이 두려워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본 제단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권능의 역사와 혼, 영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는 생명의 말씀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나가서 담대히 전해야 할 것입니다.
빛이 임하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들을 선포할 때 이것이 빛이 되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다 깨뜨리게 됩니다. 나아가 수많은 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게 되지요. 그러니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생명 다해 복음 증거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갔습니다(사 6:8).
사도 바울은 모든 서신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 된 나 바울이라” 자신을 소개하며 담대히 복음을 증거해 나갔지요. 비록 매인 몸이 되어 편지로밖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없었지만 이를 통해 성도들은 힘을 얻어 박해를 이겨내고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은 든든히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올 한 해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본 제단을 통해 찬란하게 비추며,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를 기다리며 뜨겁게 달려나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 )를 발해야 한다.
② ( )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③ 생명의 ( )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2. 영적으로 ( )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 )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사야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는 하나님 말씀을 두려움없이 선포하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많이 하였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로 활동하였고 유다와 열방을 향해 가깝고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였다.
특히 정치, 도덕, 종교적인 부패상을 비판하면서 살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외치며,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의 약속을 전하였다.
교육목표 : 어둠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고 있는 이때에 일어나 빛을 발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만방에 드러내는 성도가 되게 한다.
밤이 깊고 어둠이 짙어갈수록 사람들은 빛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므로 그 가치는 더욱 커지기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죄로 관영하여 날로 어두워져 가는 이 세대 속에서 비추는 그리스도의 빛은, 수많은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고 있으니 그 가치는 이루 말할 수 없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더욱 그리스도의 빛을 발함으로 세상의 길잡이와 같은 역할을 잘 감당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사 60:1).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명령이요, 그들의 영광스런 미래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은 온통 절망과 어둠으로 가득했습니다. 온 나라가 우상 숭배 등의 종교적 범죄와 더불어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하고 도덕적으로 타락하여, 약한 자를 억압하는 풍조가 만연했지요.
물론 하나님께서는 수없이 회개를 권고하셨지만 이를 무시하고 계속해서 악을 행하자 마침내는 그들을 바벨론의 손에 붙이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 아름답던 예루살렘 성전은 훼파되고, 백성들은 이방인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며 7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포로생활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포로생활의 고달픔도 고통스러웠지만 하나님의 영광이 이제 자신들에게서 떠나갔다는 절망감에 더욱 괴로웠을 것입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다시금 영광스러운 미래와 메시아의 도래를 약속하시며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오늘날은 이사야 당시보다 더욱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러한 때 당당히 일어나 여호와의 영광의 빛을 만방에 비추는 사명이 바로 우리 모두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들이 복음을 증거하고 있지만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들에게 과연 무엇으로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할 수 있을까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를 눈에 보이는 증거로 나타내 줘야 하지요. 또 인간의 지식과 사상이 혼합된 것이 아닌 오직 순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즉 인간 경작의 섭리와 뜻이 담긴 십자가의 도를 밝히 깨닫게 해 줄 생명의 말씀이 절실히 필요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복음으로 세계를 온전히 이루는 사명을, 은혜와 성령이 충만하고 하나님의 권능이 나타나는 교회 즉 성결의 말씀으로 거룩하게 된 성도들에게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합당한 그릇으로 만들기 위해 때로는 훈련하시고 여러 모양으로 연단해 오셨지요. 더욱이 연단을 통과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명하신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본 제단을 향한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하나님의 계획하심 속에 만방에 드러날 때가 가까웠기 때문입니다.
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이루려면
1)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둠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빛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빛의 근원 되신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고 권면한 것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좇아 행해야 하지요. 어둠에 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둠에 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지만, 진리의 빛이 비추이면 무엇이 어둠이고 빛인지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 들어오는 만큼 전에 행하던 죄들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요.
각 사람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에 이루었고, 악을 버려 성결되었느냐에 따라 빛을 비추는 힘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빛을 소유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당당히 하나님의 역사들을 나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둠의 세력과 싸우다가 그만 힘을 잃고 어둠에 묻혀 버리기도 하지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빛이 임하는 만큼 어둠은 반드시 물러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셔서 흑암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고 그 빛 가운데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을 비추는 큰 빛으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생명의 빛을 전파했지요.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바로 내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넓게는 사회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으며, 마침내는 세계 만방에 일어나 마음껏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2)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행 1:8).
이 말씀대로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뿐 아니라, 빌립과 스데반 집사와 같은 성도들이 권능을 베풀며 복음을 증거하는 곳곳마다 유대인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이방인들이 주께로 나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지요.
이와 같이 주의 종이 아니라 해도, 성령을 받은 여러분들도 권능을 받아 빛을 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에 합당한 그릇을 갖추는 것이 우선이지요. 곧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흠이 없을 때라야 권능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만일 세상으로부터 좇아온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남아 있는 상태에서 하나님께 권능을 받는다면 그 사람은 교만해져서 오히려 쓰임 받고 버려지게 될 뿐입니다.
성경을 보면 권능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흠이 없고 온유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권능은 빛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 불같은 기도를 쌓아야 하나님이 주시는 권능을 받아 온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목격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만약 핍박이 두려워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은 본 제단을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권능의 역사와 혼, 영 및 관절 골수를 찔러 쪼개는 생명의 말씀을 보고 들었습니다. 그러니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나가서 담대히 전해야 할 것입니다.
빛이 임하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들을 선포할 때 이것이 빛이 되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다 깨뜨리게 됩니다. 나아가 수많은 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게 되지요. 그러니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생명 다해 복음 증거자의 사명을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갔습니다(사 6:8).
사도 바울은 모든 서신에서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 된 나 바울이라” 자신을 소개하며 담대히 복음을 증거해 나갔지요. 비록 매인 몸이 되어 편지로밖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없었지만 이를 통해 성도들은 힘을 얻어 박해를 이겨내고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은 든든히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올 한 해도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본 제단을 통해 찬란하게 비추며, 하나님의 뜻이 온전히 이루어질 때를 기다리며 뜨겁게 달려나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일어나 빛을 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 )를 발해야 한다.
② ( )을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③ 생명의 ( )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한다.
2. 영적으로 ( )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 )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사야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는 하나님 말씀을 두려움없이 선포하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많이 하였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로 활동하였고 유다와 열방을 향해 가깝고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였다.
특히 정치, 도덕, 종교적인 부패상을 비판하면서 살 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외치며,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의 약속을 전하였다.
2019-12-27
제52과지극히 충성된 자
누가복음 16:10
읽을말씀 : 누가복음 16:10 | 외울말씀 : 누가복음 16:10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25장
교육목표 : 작은 사명이라 할지라도 귀히 여기며 충성함으로 주님께 지극히 충성된 자라 칭찬받을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어떤 주인이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만큼 자금을 주었습니다. 그중에 한 종은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열심히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의 이윤을 더 남겼고, 또 한 종은 두 달란트를 받아서 두 달란트의 이윤을 남겼습니다(마 25장). 주인은 두 사람에게 잘하였다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하지요.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사명 하나라도 귀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작은 사명이라 할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사명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사명 감당을 잘하면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서 당장 맡은 일은 소홀히 하면서 더 큰 사명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인정받고 사람 앞에 드러나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람은 충성하는 자체보다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내기 어렵고 큰 일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하신 대로, 작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큰 사명도 맡기실 수 있습니다.
창세기 37~4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 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 족속이 한 민족으로 성장하기까지 애굽에 들어가 거할 길을 여십니다. 먼저 요셉이 강대국 애굽에 들어가서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어린 요셉을 총리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애굽 시위대장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서 미천한 일부터 시작하게 하셨지요. 점차 주인의 신망을 얻게 되니 모든 살림을 주관하는 자리에 세우시고 다음에는 왕의 감옥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곳은 일반 죄수가 아닌 고위층이 범죄했을 때 수감되는 감옥이었지요. 요셉은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넓은 안목과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13년을 보내고서야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될 수 있었지요.
요셉은 타고난 성실함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통해 그 모든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시위대장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 자신의 직무를 대충했다면 그는 종으로서 자신의 일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무리 미천한 일이라도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 이상의 일을 해냄으로 주인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더 높은 직분을 맡게 된 후에도 사심과 들렘이 없었으며, ‘어찌하면 주인에게 유익을 줄까?’ 하는 마음으로 온 집안을 최선을 다해 돌아보았지요.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충성을 다하였기에 결국 나라 전체를 맡아서도 잘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사명을 귀히 여기는 사람은 ‘어찌하면 이를 잘 감당할까?’ 하는 마음으로 온갖 노력을 합니다. 영혼들이 시험 환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쳐 주고 싶고, 믿음을 갖지 못하는 영혼들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잘되지 않을 때 한계를 느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서 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때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상대를 섬기는 것 같아도 원하는 열매를 낼 수 없습니다.
육적인 사랑을 베푼다 해서 영혼들이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관을 좇아 행할 때라야 영혼들이 새 힘을 얻어 충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심방하면 변화되지 않으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심방하면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이, 정확하게 영혼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은혜 받고 마음 문을 열게 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자신의 방법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이 생기면 자연히 겸비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매달리게 되지요. 따라서 사명 감당을 잘하는 것은 곧 영혼이 잘되는 축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다 보면 무엇보다 자신이 성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요. 성결되어 능력 받아 열매를 내고자 하는 소망이 있으면 짜증이나 감정,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모습 등 악의 모양이라도 민감하게 깨달으며 버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그릇을 만들어 가는 만큼 더 큰 능력을 받게 되고 많은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고백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심장으로 맡겨진 양 떼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니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피곤함과 험한 파도와 높은 산, 광야의 모든 위험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주의 복음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어떤 수모도, 뼈가 부서질 정도로 매를 맞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도 감내하였지요.
사도 바울의 모든 희생은 자신을 사랑하여 피 흘리신 주님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모든 영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했던 것입니다(롬 9:3).
이처럼 주어진 사명을 소중히 여겨 온전히 감당하고자 기도하면서 성결되는 만큼 영혼을 위해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신 주님의 마음이 임하게 됩니다. 또한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 만큼 삶 전체를 영혼들을 위해 내어주는 심정을 깨닫게 되지요.
그러므로 영혼들을 갈무리하는 사명을 맡은 일꾼도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품을 때 열심히 심방하게 될 뿐 아니라, 무시로 그들의 형편을 떠올리며 기도하게 됩니다. 혹여 뾰족한 말로 찌르고 부딪혀 오는 양 떼라 할지라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지요. 소중한 주님의 양 떼이니 그들 모두 자신의 소중한 기업으로 여겨져 사랑이 갈 뿐입니다. 아기가 짜증을 내어도 어머니는 좋은 것을 주듯이, 갈무리하는 영혼을 편케 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섬겨 주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어찌하면 그 영혼이 잘될 수 있을까?’ 하여 영육 간에 희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영혼들이 범죄하여 시험 환난을 당할 때면 자신이 더 애통하며 부르짖어 기도하게 됩니다. 맡은 양 떼의 문제를 위해 늘 기도해 주고 양 떼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간구하며, 내 자녀나 가족 이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으로 열심히 영혼을 갈무리하며 섬기다 보면 진실을 느끼고 감사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부모가 되면 부모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신이 양 떼를 갈무리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목자의 마음을 느끼며 더욱 주님께도 하나님께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을 품고 사랑을 주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더 많은 영혼들을 보내 주시고 부흥에 부흥을 더하여 더 큰 사명을 맡게 되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사명 감당을 잘하여 주님께 “지극히 충성된 자”라고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 ) 하나라도 귀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
② ( )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야 한다.
③ ( )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2. 요셉은 아무리 미천한 일도 ( )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 이상의 일을 해냄으로 주인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도 바울의 선’
① 한번 받은바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변개치 않았다.
②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 생명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었다.
③ 큰 권능과 깊은 계시를 받았다 해도 영광을 온전히 주님께만 돌렸다.
교육목표 : 작은 사명이라 할지라도 귀히 여기며 충성함으로 주님께 지극히 충성된 자라 칭찬받을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어떤 주인이 종들에게 각자의 능력만큼 자금을 주었습니다. 그중에 한 종은 다섯 달란트를 받아서 열심히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의 이윤을 더 남겼고, 또 한 종은 두 달란트를 받아서 두 달란트의 이윤을 남겼습니다(마 25장). 주인은 두 사람에게 잘하였다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을 하지요.
이처럼 사명이 크든 작든 자신의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러면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사명 하나라도 귀중히 여길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작은 사명이라 할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하나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사명도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지옥에 갈 수밖에 없는 나를 구원해 주신 것만도 감사한데 사명 감당을 잘하면 천국에서 영광스런 상급까지 주시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교회 안에서 당장 맡은 일은 소홀히 하면서 더 큰 사명을 주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원하는 마음이 아니라 자신이 인정받고 사람 앞에 드러나고자 하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람은 충성하는 자체보다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에 더 가치를 두기 때문에 좋은 열매를 내기 어렵고 큰 일을 맡길 수가 없습니다.
누가복음 16장 10절에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하신 대로, 작은 사명을 잘 감당하는 사람이라야 하나님께서 큰 사명도 맡기실 수 있습니다.
창세기 37~4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요셉 한 사람을 통해 이스라엘 족속이 한 민족으로 성장하기까지 애굽에 들어가 거할 길을 여십니다. 먼저 요셉이 강대국 애굽에 들어가서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의 자리에 오르게 하셨는데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어린 요셉을 총리로 세우신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애굽 시위대장의 집에 종으로 들어가서 미천한 일부터 시작하게 하셨지요. 점차 주인의 신망을 얻게 되니 모든 살림을 주관하는 자리에 세우시고 다음에는 왕의 감옥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곳은 일반 죄수가 아닌 고위층이 범죄했을 때 수감되는 감옥이었지요. 요셉은 그곳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나라를 다스릴 수 있는 넓은 안목과 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13년을 보내고서야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될 수 있었지요.
요셉은 타고난 성실함과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통해 그 모든 연단의 과정을 잘 통과할 수 있었습니다. 만약 요셉이 시위대장의 집에 종으로 팔려갔을 때 자신의 직무를 대충했다면 그는 종으로서 자신의 일생을 마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아무리 미천한 일이라도 주인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 이상의 일을 해냄으로 주인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요셉은 더 높은 직분을 맡게 된 후에도 사심과 들렘이 없었으며, ‘어찌하면 주인에게 유익을 줄까?’ 하는 마음으로 온 집안을 최선을 다해 돌아보았지요. 작은 일에서부터 큰 일까지 충성을 다하였기에 결국 나라 전체를 맡아서도 잘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사명을 귀히 여기는 사람은 ‘어찌하면 이를 잘 감당할까?’ 하는 마음으로 온갖 노력을 합니다. 영혼들이 시험 환난을 당하는 것을 보면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쳐 주고 싶고, 믿음을 갖지 못하는 영혼들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갖도록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요.
그러나 아무리 애쓰고 힘써도 자신의 능력만으로는 잘되지 않을 때 한계를 느낍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받아서 영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지 못할 때는 열심히 최선을 다해 충성하고 상대를 섬기는 것 같아도 원하는 열매를 낼 수 없습니다.
육적인 사랑을 베푼다 해서 영혼들이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관을 좇아 행할 때라야 영혼들이 새 힘을 얻어 충만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과 방법으로 심방하면 변화되지 않으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심방하면 마치 가려운 곳을 긁어 주듯이, 정확하게 영혼들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고 은혜 받고 마음 문을 열게 할 수도 있지요.
그러니 자신의 방법과 능력에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는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는 간절한 소망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소망이 생기면 자연히 겸비한 마음이 되어 기도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매달리게 되지요. 따라서 사명 감당을 잘하는 것은 곧 영혼이 잘되는 축복의 길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명을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며 기도하다 보면 무엇보다 자신이 성결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게 되지요. 성결되어 능력 받아 열매를 내고자 하는 소망이 있으면 짜증이나 감정,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모습 등 악의 모양이라도 민감하게 깨달으며 버려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한 그릇을 만들어 가는 만큼 더 큰 능력을 받게 되고 많은 열매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지극히 충성된 자라는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3.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빌 1:8) 고백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주님의 심장으로 맡겨진 양 떼를 염려했습니다. 그러니 영혼 구원을 위해서라면 굶주림과 목마름, 추위와 더위, 피곤함과 험한 파도와 높은 산, 광야의 모든 위험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주의 복음으로 인해 겪어야 하는 어떤 수모도, 뼈가 부서질 정도로 매를 맞고 심지어 죽음의 위협까지도 감내하였지요.
사도 바울의 모든 희생은 자신을 사랑하여 피 흘리신 주님을 위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피 값으로 사신 모든 영혼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했던 것입니다(롬 9:3).
이처럼 주어진 사명을 소중히 여겨 온전히 감당하고자 기도하면서 성결되는 만큼 영혼을 위해 자신의 생명도 아끼지 않으신 주님의 마음이 임하게 됩니다. 또한 영혼들에 대한 사랑이 자라는 만큼 삶 전체를 영혼들을 위해 내어주는 심정을 깨닫게 되지요.
그러므로 영혼들을 갈무리하는 사명을 맡은 일꾼도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품을 때 열심히 심방하게 될 뿐 아니라, 무시로 그들의 형편을 떠올리며 기도하게 됩니다. 혹여 뾰족한 말로 찌르고 부딪혀 오는 양 떼라 할지라도 불편한 마음이 들지 않지요. 소중한 주님의 양 떼이니 그들 모두 자신의 소중한 기업으로 여겨져 사랑이 갈 뿐입니다. 아기가 짜증을 내어도 어머니는 좋은 것을 주듯이, 갈무리하는 영혼을 편케 할 수만 있다면 무조건 섬겨 주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게 되지요.
뿐만 아니라 ‘어찌하면 그 영혼이 잘될 수 있을까?’ 하여 영육 간에 희생하는 것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영혼들이 범죄하여 시험 환난을 당할 때면 자신이 더 애통하며 부르짖어 기도하게 됩니다. 맡은 양 떼의 문제를 위해 늘 기도해 주고 양 떼의 믿음이 성장할 수 있도록 간구하며, 내 자녀나 가족 이상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지요.
이러한 사랑으로 열심히 영혼을 갈무리하며 섬기다 보면 진실을 느끼고 감사하게 됩니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부모가 되면 부모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게 됩니다. 이처럼 자신이 양 떼를 갈무리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목자의 마음을 느끼며 더욱 주님께도 하나님께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의 심장으로 영혼을 품고 사랑을 주면 반드시 열매를 맺습니다. 많은 영혼을 품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기에 하나님께서 더 많은 영혼들을 보내 주시고 부흥에 부흥을 더하여 더 큰 사명을 맡게 되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사명 감당을 잘하여 주님께 “지극히 충성된 자”라고 인정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께서 주신 작은 ( ) 하나라도 귀히 여길 수 있어야 한다.
② ( )은 모든 모양이라도 벗어 버려야 한다.
③ ( )의 심장으로 영혼들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2. 요셉은 아무리 미천한 일도 ( )의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고, 책임 이상의 일을 해냄으로 주인으로부터 온전한 신뢰를 받을 수 있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도 바울의 선’
① 한번 받은바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변개치 않았다.
② 자신을 핍박하는 자들을 위해서 생명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었다.
③ 큰 권능과 깊은 계시를 받았다 해도 영광을 온전히 주님께만 돌렸다.
2019-12-20
제51과주님은 누구의 구주이신가
마태복음 2:1~12
읽을말씀 : 마태복음 2:1~12 | 외울말씀 : 누가복음 2:14 l 참고 말씀: 마태복음 1:21
교육목표 : 황금, 유향, 몰약에 담긴 영적 의미를 깨달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입니다.
1.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지요.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나신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정욕대로 살아가는 짐승과 다름없게 된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지요(전 3:18).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지요. 범죄한 아담의 후손은 점점 죄로 물들어 갔고 결국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사람의 본분을 벗어나서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을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고, 이들의 참된 양식이 되기 위해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던 것입니다(눅 2:7).
또한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태어나신 것은 인류의 가난을 대속하시기 위함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여 저주를 받음으로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요한 자로서 우리를 부요케 하고자 가난한 길을 가신 것입니다(고후 8:9).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은 사람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선민은 아니었지만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며 선한 양심을 좇아 살았기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찾아가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마 2:11).
육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호화로운 왕궁도, 저택도 아닌 짐승들이 사는 마구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려 보면 그곳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하늘의 선지자들과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육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영으로 보고 느꼈기에 영의 행함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광 돌렸지요. ‘안나’ 선지자 역시 과부 된 지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육신의 생각 속에서 구세주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영으로 깨어 있어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줍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이들은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지 못했습니다.
3. 세 가지 예물에 담긴 영적 의미
1) 마음을 의미하는 황금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이 세 가지 예물에는 어떠한 영적 의미가 있을까요?
황금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합니다. 또한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마 6:21).
따라서 황금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마음을 드린다는 것이며, 곧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명 그 이상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요. 이처럼 우리가 가진 전부를 드리는 일, 할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우며 황금을 예물로 드리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 황금을 드린 것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장차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향기를 의미하는 유향
유향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하지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착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모습이 바로 주님 앞에 유향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함은 물론 중심을 감찰하시며 무엇보다 마음의 향기를 흠향하십니다.
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림과 같이 마음의 할례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중심이요, 생명이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중심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범사가 형통하며 영육 간에 강건합니다(요삼 1:2).
3)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하는 몰약
몰약은 부패를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즉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변함없이 생명까지도 주님께 바칠 수 있는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번 주님을 만나 자신의 생애를 주님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다면 은혜받은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변함없이 그렇게 해야 하지요. 이런 변함없는 마음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악의 모양이 남아 있으면 자신의 유익을 좇아 변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먼저 나의 전부를 드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되 마음의 할례를 통해 그 속의 비진리를 모두 벗어 버리고 진리로 채워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다면 이것이 곧 주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몰약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값진 선물을 받은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께 우리의 마음인 황금과, 그리스도의 향기인 유향과, 변함없는 믿음인 몰약을 선물로 드림으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하며 영적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의미한다.
2. ( )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준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한다.
3. ( )은 부패를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한다.
영적으로는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한다.
* 금주 과제
온 인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생신을 축하드리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사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베들레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이다. 베들레헴은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으로 다윗왕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삼상 16:1, 눅 2:4).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하며 메시아의 탄생지를 예언하였다. 이 말씀대로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이 이곳에 탄생하심으로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미 5:2).
교육목표 : 황금, 유향, 몰약에 담긴 영적 의미를 깨달아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사랑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입니다.
1.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지요.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나신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정욕대로 살아가는 짐승과 다름없게 된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지요(전 3:18).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지요. 범죄한 아담의 후손은 점점 죄로 물들어 갔고 결국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사람의 본분을 벗어나서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을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고, 이들의 참된 양식이 되기 위해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던 것입니다(눅 2:7).
또한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태어나신 것은 인류의 가난을 대속하시기 위함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여 저주를 받음으로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요한 자로서 우리를 부요케 하고자 가난한 길을 가신 것입니다(고후 8:9).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은 사람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선민은 아니었지만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며 선한 양심을 좇아 살았기에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께 찾아가 경배하고 보배합을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마 2:11).
육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호화로운 왕궁도, 저택도 아닌 짐승들이 사는 마구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려 보면 그곳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하늘의 선지자들과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육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영으로 보고 느꼈기에 영의 행함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광 돌렸지요. ‘안나’ 선지자 역시 과부 된 지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육신의 생각 속에서 구세주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영으로 깨어 있어 성령의 지시하심을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줍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이들은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지 못했습니다.
3. 세 가지 예물에 담긴 영적 의미
1) 마음을 의미하는 황금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이 세 가지 예물에는 어떠한 영적 의미가 있을까요?
황금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합니다. 또한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마 6:21).
따라서 황금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마음을 드린다는 것이며, 곧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명 그 이상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요. 이처럼 우리가 가진 전부를 드리는 일, 할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우며 황금을 예물로 드리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 황금을 드린 것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장차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향기를 의미하는 유향
유향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하지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착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모습이 바로 주님 앞에 유향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함은 물론 중심을 감찰하시며 무엇보다 마음의 향기를 흠향하십니다.
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림과 같이 마음의 할례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중심이요, 생명이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중심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범사가 형통하며 영육 간에 강건합니다(요삼 1:2).
3)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하는 몰약
몰약은 부패를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합니다.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즉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변함없이 생명까지도 주님께 바칠 수 있는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번 주님을 만나 자신의 생애를 주님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다면 은혜받은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변함없이 그렇게 해야 하지요. 이런 변함없는 마음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악의 모양이 남아 있으면 자신의 유익을 좇아 변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먼저 나의 전부를 드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되 마음의 할례를 통해 그 속의 비진리를 모두 벗어 버리고 진리로 채워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다면 이것이 곧 주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몰약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값진 선물을 받은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께 우리의 마음인 황금과, 그리스도의 향기인 유향과, 변함없는 믿음인 몰약을 선물로 드림으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하며 영적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의미한다.
2. ( )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준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한다.
3. ( )은 부패를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한다.
영적으로는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한다.
* 금주 과제
온 인류를 구원해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생신을 축하드리며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감사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베들레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이다. 베들레헴은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으로 다윗왕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삼상 16:1, 눅 2:4).
미가 선지자는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 하며 메시아의 탄생지를 예언하였다. 이 말씀대로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이 이곳에 탄생하심으로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미 5:2).
2019-12-13
제50과여호와의 묵시와 정한 때
하박국 2:2~4
읽을말씀 : 하박국 2:2~4 | 외울말씀 : 아모스 3:7 l 참고 말씀: 마태복음 24장
교육목표 : 죄악으로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악에 물들지 않고 선을 행하며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의인이 되게 한다.
하박국은 주전 600년을 전후하여 활동한 남유다 선지자입니다. 남유다는 요시야왕 시대가 끝나고 여호아하스왕을 거쳐 여호야김의 통치 시대로 오면서 불의와 유혈로 가득 찹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를 탄식하며 하나님께 아룁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합 1:2~4)
1. 하박국 선지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묵시
하나님은 남유다의 모든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실상은 모든 것이 하나님 섭리와 통치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국 유다의 죄악을 탄식하는 하박국을 하나님께서는 열국 가운데 일어나는 세계사의 현장을 바라보도록 이끄십니다. 그리고는 유다를 심판하기 위해 앞으로 갈대아인을 일으킬 것을 알려 주십니다(합 1:5~11). 갈대아인이란 바벨론 사람을 말합니다. 당시 바벨론 사람들은 사나웠고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알려 주신 예언이 성취되어 주전 600년경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하여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갔고, 주전 586년에는 급기야 유다를 멸망시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해 유다를 심판하겠다고 하신 예언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역사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의 죄악과 강포가 하나님의 선민 유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훨씬 컸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먼저 심판하지 않고 남유다를 심판하는 도구로 그들을 사용하시는지를 물었습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합 1:13)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하박국에게 묵시로 임하였는데 그 내용이 바로 본문입니다. 때가 이르면 악인은 반드시 멸망할 것과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는 분임을 분명히 알려 주신 것입니다(전 12:14).
믿음이 있으면 겸손히 회개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므로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37편 38~40절에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결국은 끊어질 것이나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 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 말씀했지요. 또한 잠언 24장 16절에도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말씀했습니다.
2. 심판의 정한 때가 되면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그 죄의 삯은 사망이며 심판에 이릅니다. 죄악이 관영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데 우리는 심판의 정한 때가 오면 속히 이루어짐을 알아야 합니다.
하박국 2장 3절에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하신 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명하셨습니다. 달려가면서도 읽어야 하는 정도이니 얼마나 급박한 상황인지 알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때에도 그랬지요. 동틀 때부터 천사가 롯을 재촉하였습니다. 롯이 지체하자 천사들이 아예 롯과 그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으로 이끌어냈습니다.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을 면하라고 말합니다. 하도 재촉하니 롯은 몸을 피할 만한 곳에 이르기도 전에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소알’이라는 가까운 성으로 도망하게 해 달라고 천사에게 청합니다. 결국 롯이 도망하여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고 하늘에서 곧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렸습니다.
이처럼 소돔과 고모라 심판도 정한 때가 되자 급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 대로 죄악 된 성에서 그나마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 힘쓴 롯의 가족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지켜 주셨지요. 하나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없고, 심판의 때가 되면 지체치 않고 이뤄집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마지막 때의 환난도 속히 진행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정한 때가 있음을 미리 알려 주고 피할 수 있도록 사랑을 베푸십니다. 진정 믿음이 있고 의인 된 하나님의 자녀는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환난을 당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3.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오늘날은 악이 관영할 뿐만 아니라 악으로 물들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마지막 때가 다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12절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하셨고, 14절에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불법이 성하며 사랑이 식었습니까? 또한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지요.
다니엘 12장 4절에는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했습니다. 요즈음 국가 간에도 얼마나 빨리 왕래합니까? 지구촌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통신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세계는 일일 생활권이 되었습니다. 또 급격히 발달하는 지식과 정보로 과학 문명은 이미 최고조에 달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2~33절에는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했습니다. 여기에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곧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말합니다.
서기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나라가 멸망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다시 나라를 찾아 독립하는 것을 보거든 주님께서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하셨으니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가 가까움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셨으니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때가 악하여 심판의 때가 지체치 않고 응할 것을 알아 세월을 아낌은 물론 어둠의 일 즉 비진리, 죄를 열심히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인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하여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하지요(롬 13:11~14).
그렇지 않고 세상을 돌아본다면 롯의 아내처럼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판을 피하여 소돔성에서 나온 롯의 아내는 “뒤돌아보지 말고 도망하라”는 천사의 말을 따르지 않고 불과 유황이 쏟아지는 소돔을 뒤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결과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묵시를 하박국 선지자에게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고 계십니다. 아모스 3장 7절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했고, 히브리서 13장 8절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며 세상의 악에 물들지 않고 선을 행함으로써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구원은 물론 큰 상급을 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유다를 어느 나라를 통해 심판하셨을까요?
2. 무화과나무는 ( )을 상징하며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 )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바벨론’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발전한 바벨론은 B.C. 612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공격해 대승을 거둔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은 B.C.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이집트까지 이기고 고대 근동의 확실한 주인이 된다.
그 해 남유다를 침략하여 다니엘과 세 친구를 포함한 사회 지도층 일부를 포로로 잡아간다. 이것이 1차 바벨론 포로 정책이다.
이어 B.C. 598년경 여호야긴왕과 에스겔과 기술자 등 1만여 명의 고급 인력을 포로로 잡아가는데 이것이 2차 바벨론 포로 정책이다.
바벨론은 B.C. 586년 예루살렘을 초토화시키고 비천한 자들 소수만 남겨 두고 모조리 잡아감으로 3차 바벨론 포로 정책을 실시했다.
고대 근동의 패권을 잡았던 무서운 바벨론이었지만 B.C. 539년경 바사의 고레스에 의해 멸망하여 가장 수명이 짧은 제국으로 기록되고 있다.
교육목표 : 죄악으로 관영한 세상 속에서도 악에 물들지 않고 선을 행하며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는 의인이 되게 한다.
하박국은 주전 600년을 전후하여 활동한 남유다 선지자입니다. 남유다는 요시야왕 시대가 끝나고 여호아하스왕을 거쳐 여호야김의 통치 시대로 오면서 불의와 유혈로 가득 찹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를 탄식하며 하나님께 아룁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를 인하여 외쳐도 주께서 구원치 아니하시나이다 어찌하여 나로 간악을 보게 하시며 패역을 목도하게 하시나이까 대저 겁탈과 강포가 내 앞에 있고 변론과 분쟁이 일어났나이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공의가 아주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을 에워쌌으므로 공의가 굽게 행함이니이다”(합 1:2~4)
1. 하박국 선지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묵시
하나님은 남유다의 모든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실상은 모든 것이 하나님 섭리와 통치 아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조국 유다의 죄악을 탄식하는 하박국을 하나님께서는 열국 가운데 일어나는 세계사의 현장을 바라보도록 이끄십니다. 그리고는 유다를 심판하기 위해 앞으로 갈대아인을 일으킬 것을 알려 주십니다(합 1:5~11). 갈대아인이란 바벨론 사람을 말합니다. 당시 바벨론 사람들은 사나웠고 영토 확장에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하박국에게 알려 주신 예언이 성취되어 주전 600년경 바벨론이 유다를 침공하여 많은 사람을 포로로 잡아갔고, 주전 586년에는 급기야 유다를 멸망시킵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통해 유다를 심판하겠다고 하신 예언을 성취하신 것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의 역사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바벨론의 죄악과 강포가 하나님의 선민 유다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훨씬 컸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왜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먼저 심판하지 않고 남유다를 심판하는 도구로 그들을 사용하시는지를 물었습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참아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참아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궤휼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되 잠잠하시나이까”(합 1:13)
이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하박국에게 묵시로 임하였는데 그 내용이 바로 본문입니다. 때가 이르면 악인은 반드시 멸망할 것과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는 분임을 분명히 알려 주신 것입니다(전 12:14).
믿음이 있으면 겸손히 회개하고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므로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하더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 37편 38~40절에 “범죄자들은 함께 멸망하리니 악인의 결국은 끊어질 것이나 의인의 구원은 여호와께 있으니 그는 환난 때에 저희 산성이시로다 여호와께서 저희를 도와 건지시되 악인에게서 건져 구원하심은 그를 의지한 연고로다” 말씀했지요. 또한 잠언 24장 16절에도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인하여 엎드러지느니라” 말씀했습니다.
2. 심판의 정한 때가 되면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그 죄의 삯은 사망이며 심판에 이릅니다. 죄악이 관영하면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데 우리는 심판의 정한 때가 오면 속히 이루어짐을 알아야 합니다.
하박국 2장 3절에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정녕 응하리라” 하신 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박국에게 “너는 이 묵시를 기록하여 판에 명백히 새기되 달려가면서도 읽을 수 있게 하라” 명하셨습니다. 달려가면서도 읽어야 하는 정도이니 얼마나 급박한 상황인지 알 수 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킬 때에도 그랬지요. 동틀 때부터 천사가 롯을 재촉하였습니다. 롯이 지체하자 천사들이 아예 롯과 그 아내와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으로 이끌어냈습니다. 뒤를 돌아보거나 들에 머무르지 말고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을 면하라고 말합니다. 하도 재촉하니 롯은 몸을 피할 만한 곳에 이르기도 전에 재앙을 만나 죽을까 하는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소알’이라는 가까운 성으로 도망하게 해 달라고 천사에게 청합니다. 결국 롯이 도망하여 소알에 들어갈 때에 해가 돋았고 하늘에서 곧 유황과 불이 비같이 내렸습니다.
이처럼 소돔과 고모라 심판도 정한 때가 되자 급속도로 진행되었습니다. 그러나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신 대로 죄악 된 성에서 그나마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 힘쓴 롯의 가족은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지켜 주셨지요. 하나님 말씀은 일점일획도 변함없고, 심판의 때가 되면 지체치 않고 이뤄집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마지막 때의 환난도 속히 진행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정한 때가 있음을 미리 알려 주고 피할 수 있도록 사랑을 베푸십니다. 진정 믿음이 있고 의인 된 하나님의 자녀는 깨어 기도하고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환난을 당하지 않도록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3.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오늘날은 악이 관영할 뿐만 아니라 악으로 물들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마지막 때가 다 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24장 12절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하셨고, 14절에는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하셨습니다. 오늘날 얼마나 불법이 성하며 사랑이 식었습니까? 또한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지요.
다니엘 12장 4절에는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했습니다. 요즈음 국가 간에도 얼마나 빨리 왕래합니까? 지구촌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통신과 교통수단의 발달로 세계는 일일 생활권이 되었습니다. 또 급격히 발달하는 지식과 정보로 과학 문명은 이미 최고조에 달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장 32~33절에는 무화과나무의 비유가 나옵니다.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했습니다. 여기에서 무화과나무는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곧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독립을 말합니다.
서기 70년에 로마의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나라가 멸망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동서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다시 나라를 찾아 독립하는 것을 보거든 주님께서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하셨으니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가 가까움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하셨으니 오직 믿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때가 악하여 심판의 때가 지체치 않고 응할 것을 알아 세월을 아낌은 물론 어둠의 일 즉 비진리, 죄를 열심히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인 하나님 말씀으로 무장하여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하지요(롬 13:11~14).
그렇지 않고 세상을 돌아본다면 롯의 아내처럼 멸망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심판을 피하여 소돔성에서 나온 롯의 아내는 “뒤돌아보지 말고 도망하라”는 천사의 말을 따르지 않고 불과 유황이 쏟아지는 소돔을 뒤돌아보다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결과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묵시를 하박국 선지자에게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주고 계십니다. 아모스 3장 7절에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했고, 히브리서 13장 8절에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키며 세상의 악에 물들지 않고 선을 행함으로써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구원은 물론 큰 상급을 받을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는 죄악이 관영한 유다를 어느 나라를 통해 심판하셨을까요?
2. 무화과나무는 ( )을 상징하며 무화과나무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낸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 )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주보 설교 요약과 구역공과 읽고 밑줄 쳐 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바벨론’
유프라테스강을 중심으로 발전한 바벨론은 B.C. 612년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를 공격해 대승을 거둔다. 바벨론 느부갓네살왕은 B.C. 605년 갈그미스 전투에서 이집트까지 이기고 고대 근동의 확실한 주인이 된다.
그 해 남유다를 침략하여 다니엘과 세 친구를 포함한 사회 지도층 일부를 포로로 잡아간다. 이것이 1차 바벨론 포로 정책이다.
이어 B.C. 598년경 여호야긴왕과 에스겔과 기술자 등 1만여 명의 고급 인력을 포로로 잡아가는데 이것이 2차 바벨론 포로 정책이다.
바벨론은 B.C. 586년 예루살렘을 초토화시키고 비천한 자들 소수만 남겨 두고 모조리 잡아감으로 3차 바벨론 포로 정책을 실시했다.
고대 근동의 패권을 잡았던 무서운 바벨론이었지만 B.C. 539년경 바사의 고레스에 의해 멸망하여 가장 수명이 짧은 제국으로 기록되고 있다.
2019-12-06
제49과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누가복음 8:43~48
읽을말씀 : 누가복음 8:43~48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1:6 l 참고 말씀/ 룻기 1장, 창세기 50장
교육목표 : 혈루증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고 치료받은 것처럼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감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게 한다.
마음이 선하고 의로운 사람은 좋지 않은 소문을 들었을 때 같이 동조하거나 악을 행치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아 경계하는 계기로 삼지요. 또한 선하고 좋은 소식을 들으면 의심하지 않고 그것을 마음에 담아 귀감으로 삼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의인은 이런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1.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나온 혈루증 여인
본문에 나오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어떠한 믿음을 지녔기에 치료받을 수 있었을까요?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분을 만나기만 하면 병을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픈 몸을 이끌고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있었지요.
혈루증은 습관성 자궁 출혈로 계속하여 피가 나오는 병입니다. 그런 생활을 1, 2년도 아닌 열두 해나 계속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심신도 허약해졌겠습니까? 이 의원 저 의원을 찾아다니며 좋다는 약을 다 써 보았지만 돈만 허비하고 병은 더 중해졌습니다. 오랜 병으로 주위 사람들에게조차 외면당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여인은 세상을 원망하며 탄식과 고통 가운데 좌절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마음에 희망이 샘솟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만나면 죽은 사람도 살아나고 문둥병, 중풍 등 갖가지 병든 사람이 치료된다는 것입니다. 또 귀신 들렸던 사람이 온전케 되며 눈먼 사람이 눈을 뜨고 듣지 못하던 사람이 들으며 말 못하는 사람이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은 마치 오랜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난 것처럼 여인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여인은 중심이 선하기 때문에 소문을 있는 그대로 믿었고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계신 곳에 도착했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 말씀을 사모하여 모여든 사람, 치료받고자 온 사람 등 어찌나 에워싼 무리가 많던지 예수님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여인은 사람들을 헤치고 예수님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저분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으리라.’는 마음으로 애써 손을 뻗어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그 순간 혈루 근원이 마르고 정상으로 회복되었지요. 여인은 마음이 선하고 의로웠기 때문에 예수님의 소문을 믿고 그 앞에 나아왔고, 옷자락만 만지고도 나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비참하게 살아온 여인은 믿음으로 새 삶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2. 의인은 어떠한 중심으로 살아가는가
그렇다면 의인은 어떠한 중심을 가진 사람일까요? 바로 룻이나 요셉과 같은 마음입니다. 먼저 룻을 살펴보겠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남편을 따라 두 아들과 함께 기근이 든 유다 베들레헴에서 모압 지방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엘리멜렉이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후 두 아들 역시 죽고 말지요.
나오미는 과부가 된 두 며느리를 데리고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다가 며느리들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홀로 된 며느리들이 불쌍하여 새 출발하라 한 것이지요. 이에 큰며느리 오르바는 울면서 나오미 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둘째 며느리 룻은 죽는 일 외에는 결코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 고백하고 홀로 된 시어머니를 끝까지 붙좇으며 봉양하였습니다. 이처럼 변함없이 자녀 된 도리를 다한 룻은 성읍의 유력자인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고, 다윗의 증조모로서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룻에게서 무엇을 깨우칠 수 있을까요? 어떤 유익이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선한 도리를 좇는 그 자체를 기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룻은 중심이 의롭기 때문에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않고 선을 행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룻의 그러한 중심을 기뻐하여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유익을 좇지 않고 큰 손해를 본다 해도 선한 길을 택하는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 영광 돌려 나갑니다.
다음으로,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지극한 사랑을 받다가 이복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13년 만에 애굽 총리가 되었지요. 그리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양식이 없어 어려움을 겪을 때 아버지와 형들을 애굽으로 인도하여 풍족한 삶을 누리게 하였습니다.
이복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이 혹여 보복은 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예전에 그에게 행한 죄 때문이었습니다. 형들은 용서를 구하고 요셉 앞에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라고 고백하지요. 이에 요셉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며 형들을 위로하였습니다(창 50:19~21).
만일 여러분이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요셉처럼 행할 수 있겠는지요? 요셉은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형들은 자신들이 악하니 요셉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지 않을까 판단하고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선인과 악인의 마음씀이 다릅니다.
요셉의 형들이 선하고 의로웠다면 그러한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았겠지만, 설령 실수로 범죄했다 해도 겸허히 아우 앞에 무릎을 꿇고 죄의 대가를 달게 받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혹시 나를 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입니다.
3. 의인은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가는가
의로운 마음과 중심을 지닌 사람은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갈까요?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았던 여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혈루증이 있으면 부정하게 여기고 접촉조차 피했지요(레 15:25). 따라서 여인은 누구 앞에 나서거나 감히 얼굴을 대하고 말하기조차 민망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참으로 존귀한 분이니 그분 앞에 서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분의 옷자락에만 손을 대어도 낫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여인처럼 자기를 낮추는 마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무엇이든 응답을 받습니다. 배움이 부족하다든가 가난하다, 못났다 하는 자기 나름대로의 이유로 하나님 앞에 구하기도 민망하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다 내려놓고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구하면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예물을 드릴 때에도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진정 마음을 담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중심을 아시고 기뻐 받으십니다. 무슨 일이든지 마음 중심이 중요하지, 부족해서 혹은 나약해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그 자체가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가 치료받은 것처럼 우리도 그런 믿음을 소유하면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축복받을 만한 중심만 되면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있든지 찾아내어 축복해 주시지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목동 다윗을 찾아내어 왕으로 삼으셨고, 보잘것없고 아무 희망이 없는 룻이었지만 그 중심이 선하고 의로우니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복을 주셨습니다. 또 에스더처럼 피지배국의 사람이라 해도 일국의 왕후로 만들어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고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며 의로운 사람에게 넘치는 축복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응답받을 수 있는 중심, 선하고 겸비한 중심을 이루어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의 ( )을 듣고 그분을 만나기만 하면 병을 치료받을 수 있다는 ( )이 있었다. 그래서 아픈 몸을 이끌고 예수님 앞에 나와 응답받을 수 있었다.
2. 우리가 룻에게서 깨우칠 수 있는 것은 어떤 유익이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선한 ( )를 좇는 그 자체를 기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91~20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룻의 선’
① 자신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음은 물론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도리를 좇는 길을 선택했다.
② 억지로 도리를 좇은 것이 아니라 성실과 진심으로 변함없이 행했다.
* 훗날 그의 자손을 통해 다윗과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복을 받았고, 천국에서도 존귀한 여인으로 영광스런 자리에 이르렀다.
교육목표 : 혈루증 여인이 믿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지고 치료받은 것처럼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감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게 한다.
마음이 선하고 의로운 사람은 좋지 않은 소문을 들었을 때 같이 동조하거나 악을 행치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아 경계하는 계기로 삼지요. 또한 선하고 좋은 소식을 들으면 의심하지 않고 그것을 마음에 담아 귀감으로 삼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의인은 이런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1.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나온 혈루증 여인
본문에 나오는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어떠한 믿음을 지녔기에 치료받을 수 있었을까요? 여인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그분을 만나기만 하면 병을 치료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픈 몸을 이끌고 예수님 앞에 나올 수 있었지요.
혈루증은 습관성 자궁 출혈로 계속하여 피가 나오는 병입니다. 그런 생활을 1, 2년도 아닌 열두 해나 계속했으니 얼마나 고통스럽고 심신도 허약해졌겠습니까? 이 의원 저 의원을 찾아다니며 좋다는 약을 다 써 보았지만 돈만 허비하고 병은 더 중해졌습니다. 오랜 병으로 주위 사람들에게조차 외면당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여인은 세상을 원망하며 탄식과 고통 가운데 좌절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인생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인은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고 마음에 희망이 샘솟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만나면 죽은 사람도 살아나고 문둥병, 중풍 등 갖가지 병든 사람이 치료된다는 것입니다. 또 귀신 들렸던 사람이 온전케 되며 눈먼 사람이 눈을 뜨고 듣지 못하던 사람이 들으며 말 못하는 사람이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은 마치 오랜 가뭄 끝에 단비를 만난 것처럼 여인에게 희망을 안겨 주었습니다. 여인은 중심이 선하기 때문에 소문을 있는 그대로 믿었고 예수님을 찾아 나섰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이 계신 곳에 도착했지만 소문을 듣고 찾아온 사람, 말씀을 사모하여 모여든 사람, 치료받고자 온 사람 등 어찌나 에워싼 무리가 많던지 예수님은 보이지도 않았습니다. 여인은 사람들을 헤치고 예수님 가까이 다가갔습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사모했기 때문입니다. ‘저분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으리라.’는 마음으로 애써 손을 뻗어 옷자락에 손을 댔습니다. 그 순간 혈루 근원이 마르고 정상으로 회복되었지요. 여인은 마음이 선하고 의로웠기 때문에 예수님의 소문을 믿고 그 앞에 나아왔고, 옷자락만 만지고도 나을 수 있었습니다. 참으로 비참하게 살아온 여인은 믿음으로 새 삶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2. 의인은 어떠한 중심으로 살아가는가
그렇다면 의인은 어떠한 중심을 가진 사람일까요? 바로 룻이나 요셉과 같은 마음입니다. 먼저 룻을 살펴보겠습니다. 룻의 시어머니 나오미는 남편을 따라 두 아들과 함께 기근이 든 유다 베들레헴에서 모압 지방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 엘리멜렉이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이후 두 아들 역시 죽고 말지요.
나오미는 과부가 된 두 며느리를 데리고 다시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다가 며느리들에게 친정으로 돌아가라고 합니다. 홀로 된 며느리들이 불쌍하여 새 출발하라 한 것이지요. 이에 큰며느리 오르바는 울면서 나오미 곁을 떠났습니다.
하지만 둘째 며느리 룻은 죽는 일 외에는 결코 시어머니를 떠나지 않겠다 고백하고 홀로 된 시어머니를 끝까지 붙좇으며 봉양하였습니다. 이처럼 변함없이 자녀 된 도리를 다한 룻은 성읍의 유력자인 보아스의 아내가 되었고, 다윗의 증조모로서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룻에게서 무엇을 깨우칠 수 있을까요? 어떤 유익이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선한 도리를 좇는 그 자체를 기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룻은 중심이 의롭기 때문에 자신의 유익을 구치 않고 선을 행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룻의 그러한 중심을 기뻐하여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자신의 유익을 좇지 않고 큰 손해를 본다 해도 선한 길을 택하는 믿음의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아 영광 돌려 나갑니다.
다음으로,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지극한 사랑을 받다가 이복형들의 시기로 애굽에 노예로 팔려갔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13년 만에 애굽 총리가 되었지요. 그리고 가나안 땅에 기근이 들어 양식이 없어 어려움을 겪을 때 아버지와 형들을 애굽으로 인도하여 풍족한 삶을 누리게 하였습니다.
이복형들은 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이 혹여 보복은 하지 않을까 두려웠습니다. 예전에 그에게 행한 죄 때문이었습니다. 형들은 용서를 구하고 요셉 앞에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이니이다”라고 고백하지요. 이에 요셉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며 형들을 위로하였습니다(창 50:19~21).
만일 여러분이 똑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요셉처럼 행할 수 있겠는지요? 요셉은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형들은 자신들이 악하니 요셉에게도 그런 마음이 있지 않을까 판단하고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렇게 선인과 악인의 마음씀이 다릅니다.
요셉의 형들이 선하고 의로웠다면 그러한 악행을 저지르지도 않았겠지만, 설령 실수로 범죄했다 해도 겸허히 아우 앞에 무릎을 꿇고 죄의 대가를 달게 받으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혹시 나를 해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던 것입니다.
3. 의인은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가는가
의로운 마음과 중심을 지닌 사람은 어떻게 믿음으로 살아갈까요? 12년 동안 혈루증으로 고통받았던 여인은 주변 사람들에게 버림받을 수밖에 없는 상태였습니다. 당시 사회에서는 혈루증이 있으면 부정하게 여기고 접촉조차 피했지요(레 15:25). 따라서 여인은 누구 앞에 나서거나 감히 얼굴을 대하고 말하기조차 민망했을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참으로 존귀한 분이니 그분 앞에 서는 것은 더욱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그분의 옷자락에만 손을 대어도 낫겠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이 여인처럼 자기를 낮추는 마음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면 무엇이든 응답을 받습니다. 배움이 부족하다든가 가난하다, 못났다 하는 자기 나름대로의 이유로 하나님 앞에 구하기도 민망하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부족함을 다 내려놓고 겸비한 자세로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구하면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예물을 드릴 때에도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진정 마음을 담아 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중심을 아시고 기뻐 받으십니다. 무슨 일이든지 마음 중심이 중요하지, 부족해서 혹은 나약해서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행하는 그 자체가 귀하고 아름다운 것입니다.
혈루증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만 만져도 나을 수 있다는 믿음으로 나가 치료받은 것처럼 우리도 그런 믿음을 소유하면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축복받을 만한 중심만 되면 하나님께서는 어디에 있든지 찾아내어 축복해 주시지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목동 다윗을 찾아내어 왕으로 삼으셨고, 보잘것없고 아무 희망이 없는 룻이었지만 그 중심이 선하고 의로우니 예수님의 계보에 오르는 복을 주셨습니다. 또 에스더처럼 피지배국의 사람이라 해도 일국의 왕후로 만들어 주셨지요.
하나님께서는 외모를 보지 않고 마음 중심을 감찰하시며 의로운 사람에게 넘치는 축복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응답받을 수 있는 중심, 선하고 겸비한 중심을 이루어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혈루증 여인은 예수님의 ( )을 듣고 그분을 만나기만 하면 병을 치료받을 수 있다는 ( )이 있었다. 그래서 아픈 몸을 이끌고 예수님 앞에 나와 응답받을 수 있었다.
2. 우리가 룻에게서 깨우칠 수 있는 것은 어떤 유익이 돌아오지 않는다 해도 선한 ( )를 좇는 그 자체를 기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91~203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룻의 선’
① 자신에게는 아무런 유익이 되지 않음은 물론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도리를 좇는 길을 선택했다.
② 억지로 도리를 좇은 것이 아니라 성실과 진심으로 변함없이 행했다.
* 훗날 그의 자손을 통해 다윗과 그리스도가 탄생하는 복을 받았고, 천국에서도 존귀한 여인으로 영광스런 자리에 이르렀다.
2019-11-29
제48과믿음을 지켰으니
디모데후서 4:7~8
읽을말씀 : 디모데후서 4:7~8 | 외울말씀 : 디모데후서 4:7 ㅣ 참고 말씀: 히브리서 11:6
교육목표 : 믿음을 지킴으로 세상과 타협하거나 자기의 유익을 좇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승리의 삶을 살게 한다.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고, 응답받아 축복된 삶을 영위하며 소망 가운데 헌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작아 세상과 타협하거나 자기의 유익을 위해 불법을 행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하지요.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1. 성령 받기 전과 후의 베드로의 믿음
베드로는 성령 받기 전에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하실 때에 베드로는 당당히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고백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잡히시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믿음을 이미 알고 계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지요. 하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였던 베드로와 제자들은 피곤을 이기지 못해 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으니 결국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령 받기 전에는 믿음을 지키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달라졌습니다.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으니 생명 다해 복음을 전파하였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기까지 믿음을 지키는 수제자가 되었지요.
2. 믿음을 굳게 지킨 선진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고, 당대 최고의 교법사 가말리엘의 제자로 수학하였습니다. 독실한 유대교도로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현장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에는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수없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며 여러 번 죽을 뻔하였지만 결코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지요. 천국 소망이 있었기에 죽도록 충성하였으며 마지막 순교의 순간까지 변함없이 일생을 복음 전파에 바쳤습니다. 그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담대히 고백하였지요(딤후 4:7~8).
그러면 다니엘은 어떠했을까요? 다니엘은 바사 제국 총리가 됐을 때 시기하는 무리의 궤계로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을 알고 그들은 왕으로 하여금 한 달 동안 왕 외에 사람이나 신 앞에 무엇을 구하는 사람은 사자 굴에 던져 넣는 금령을 반포하게 하였지요. 이를 알면서도 다니엘은 습관을 좇아 하루에 세 차례씩 기도하였고 결국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하지만 천사가 사자의 입을 봉함으로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천하에 나타냈습니다. 다니엘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기도를 쉬지 않을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자신을 지켰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앞일에 대해 밝히 알려 주시며 높여 주셨지요.
다니엘의 세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왕이 세운 금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로한 왕이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한 풀무 불에 던지려 할 때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다니엘 3장 17~18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단호하게 거절하지요.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풀무불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풀무 불에 던져졌지만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살아나왔습니다. 이같이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와도 믿음을 굳게 지켰다는 증거가 따라야 합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과감히 비진리를 끊고,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습니다. 설령 핍박을 받는다 해도 하늘의 상을 바라보며 기뻐하지요. 만일 주를 위해 핍박을 받고 죽임 당한다면 천국에서 그 영광을 누릴 것이니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3. 믿음을 저버린 사람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선진들과 달리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믿음을 저버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해 궤계를 꾸민 이세벨에게 매수당한 두 거짓 증인이 그랬습니다. 그들의 모함으로 무죄한 나봇이 돌에 맞아 죽어야 했지요. 믿음을 굳게 지킨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유익을 위해 거짓을 행치 않습니다. 어떤 목숨의 위협 앞에서도 진실을 왜곡하지 않지요.
열왕기상 22장에 나오는 시드기야와 400명쯤 되는 거짓 선지자들도 거짓 예언을 하며 믿음을 저버립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은 아람 나라에 빼앗겼던 길르앗 라못을 되찾기 위해 남유다 여호사밧왕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에 여호사밧은 먼저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 선지자들에게 들어 보자고 제안하지요. 그래서 아합왕이 400명쯤 되는 거짓 선지자에게 물었을 때 그들은 일제히 전쟁에서 승리를 예언합니다. 그중 시드기야는 철뿔까지 만들어 흔들며 승리를 장담하지요.
반면 하나님의 선지자 미가야는 이스라엘이 아람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지며, 아합왕은 죽으리라고 예언합니다. 이에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뺨을 치며 승리를 호언하지요. 아합은 미가야를 투옥시키고 여호사밧 연합군과 함께 아람과 전쟁하러 나갑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시드기야와 사백 인의 선지자들의 예언이 거짓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아합왕이 맞아 전사하였고 개들이 그 피를 핥았지요. 믿음을 저버리고 거짓으로 예언한 선지자들의 말이 결코 맞을 리가 없음을 증명해 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동역자 데마 역시 믿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전도 여행에 동참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파한 그는 바울의 1차 투옥 때까지만 해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재차 투옥되자 그를 버리고 고향인 데살로니가로 돌아가 버렸지요. 바울과 함께 고난당하기보다 세상의 부와 명예가 더 좋았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그가 세상을 사랑하여 떠났다고 기록합니다(딤후 4:10).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의 마음을 진리로 잘 지켜야 합니다.
여호수아 당시 아간도 믿음을 지키지 못함으로 범죄했습니다. 여리고성 함락 후 아간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몰래 탐나는 물건을 감추어 둠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말지요.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그 행한 일을 고하라고 하자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라고 합니다(수 7:21). 아간의 범죄로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어이없이 패하였고, 범죄한 아간은 온 가족과 함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우리는 좌우로 치우치거나 자기 유익을 좇아 하나님 뜻을 거역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지요. 여러분은 믿음을 굳게 지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림으로 하늘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서 바울이 투옥되자 세상을 사랑하여 떠난 사람은 누구일까요?
2. 복음을 전하다가 여러 번 죽을 뻔하며 고난을 받았지만 결코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던 신약 시대 권능의 사도는 누구일까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79~19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데마’
데마는 사도 바울 일행과 함께 전도 여행에 동참한 사람이었다.
바울이 골로새서나 빌레몬서에서 멀리 떨어진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할 때 ‘데마’의 이름이 언급된 것을 볼 수 있다.
골로새서 4장 14절에 보면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이 이 글을 기록할 때는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 갇혀 있을 때였다. 그만큼 데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울의 곁을 지키며 함께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훗날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배신하고 떠나갔다(딤후 4:10). 한때는 바울의 고난에 함께한 그였는데 세월이 지나고 바울이 다시 감옥에 갇히자 결국 변질되어 믿음을 잃고 배신하기에 이르렀다.
교육목표 : 믿음을 지킴으로 세상과 타협하거나 자기의 유익을 좇지 않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승리의 삶을 살게 한다.
믿음을 지킨다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고, 응답받아 축복된 삶을 영위하며 소망 가운데 헌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작아 세상과 타협하거나 자기의 유익을 위해 불법을 행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하지요. 기도와 금식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자신의 마음을 지키고 믿음으로 승리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1. 성령 받기 전과 후의 베드로의 믿음
베드로는 성령 받기 전에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하실 때에 베드로는 당당히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언제든지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고백하지요. 그러나 예수님께서 잡히시자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이러한 베드로의 믿음을 이미 알고 계셨기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고난을 당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셨지요. 하지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였던 베드로와 제자들은 피곤을 이기지 못해 잠을 자고 말았습니다. 기도를 하지 않으니 결국 믿음을 지키지 못하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령 받기 전에는 믿음을 지키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달라졌습니다.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으니 생명 다해 복음을 전파하였고 마침내는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기까지 믿음을 지키는 수제자가 되었지요.
2. 믿음을 굳게 지킨 선진들
사도 바울은 주님을 만나기 전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고, 당대 최고의 교법사 가말리엘의 제자로 수학하였습니다. 독실한 유대교도로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고,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현장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에는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이방인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수없이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며 여러 번 죽을 뻔하였지만 결코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지요. 천국 소망이 있었기에 죽도록 충성하였으며 마지막 순교의 순간까지 변함없이 일생을 복음 전파에 바쳤습니다. 그는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담대히 고백하였지요(딤후 4:7~8).
그러면 다니엘은 어떠했을까요? 다니엘은 바사 제국 총리가 됐을 때 시기하는 무리의 궤계로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다니엘이 하루에 세 번씩 예루살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을 알고 그들은 왕으로 하여금 한 달 동안 왕 외에 사람이나 신 앞에 무엇을 구하는 사람은 사자 굴에 던져 넣는 금령을 반포하게 하였지요. 이를 알면서도 다니엘은 습관을 좇아 하루에 세 차례씩 기도하였고 결국 사자 굴에 던져졌습니다.
하지만 천사가 사자의 입을 봉함으로 털끝 하나 다치지 않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천하에 나타냈습니다. 다니엘은 생명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기도를 쉬지 않을 만큼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음으로 자신을 지켰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시고 앞일에 대해 밝히 알려 주시며 높여 주셨지요.
다니엘의 세 친구도 마찬가지입니다. 왕이 세운 금신상 앞에 절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로한 왕이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한 풀무 불에 던지려 할 때 믿음을 굳게 지켰습니다.
다니엘 3장 17~18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라고 단호하게 거절하지요.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풀무불도 무서워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풀무 불에 던져졌지만 머리털 하나 그슬리지 않고 살아나왔습니다. 이같이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는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않음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렸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와도 믿음을 굳게 지켰다는 증거가 따라야 합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면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과감히 비진리를 끊고,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올 수 있습니다. 설령 핍박을 받는다 해도 하늘의 상을 바라보며 기뻐하지요. 만일 주를 위해 핍박을 받고 죽임 당한다면 천국에서 그 영광을 누릴 것이니 참으로 복된 일입니다.
3. 믿음을 저버린 사람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선진들과 달리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믿음을 저버린 사람들도 있습니다.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기 위해 궤계를 꾸민 이세벨에게 매수당한 두 거짓 증인이 그랬습니다. 그들의 모함으로 무죄한 나봇이 돌에 맞아 죽어야 했지요. 믿음을 굳게 지킨 사람들은 결코 자신의 유익을 위해 거짓을 행치 않습니다. 어떤 목숨의 위협 앞에서도 진실을 왜곡하지 않지요.
열왕기상 22장에 나오는 시드기야와 400명쯤 되는 거짓 선지자들도 거짓 예언을 하며 믿음을 저버립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은 아람 나라에 빼앗겼던 길르앗 라못을 되찾기 위해 남유다 여호사밧왕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에 여호사밧은 먼저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 선지자들에게 들어 보자고 제안하지요. 그래서 아합왕이 400명쯤 되는 거짓 선지자에게 물었을 때 그들은 일제히 전쟁에서 승리를 예언합니다. 그중 시드기야는 철뿔까지 만들어 흔들며 승리를 장담하지요.
반면 하나님의 선지자 미가야는 이스라엘이 아람과의 전쟁에서 패하여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지며, 아합왕은 죽으리라고 예언합니다. 이에 시드기야가 미가야의 뺨을 치며 승리를 호언하지요. 아합은 미가야를 투옥시키고 여호사밧 연합군과 함께 아람과 전쟁하러 나갑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시드기야와 사백 인의 선지자들의 예언이 거짓이라는 것이 여실히 드러났습니다.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아합왕이 맞아 전사하였고 개들이 그 피를 핥았지요. 믿음을 저버리고 거짓으로 예언한 선지자들의 말이 결코 맞을 리가 없음을 증명해 준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동역자 데마 역시 믿음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바울의 전도 여행에 동참하여 열심히 복음을 전파한 그는 바울의 1차 투옥 때까지만 해도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재차 투옥되자 그를 버리고 고향인 데살로니가로 돌아가 버렸지요. 바울과 함께 고난당하기보다 세상의 부와 명예가 더 좋았던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그가 세상을 사랑하여 떠났다고 기록합니다(딤후 4:10).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기의 마음을 진리로 잘 지켜야 합니다.
여호수아 당시 아간도 믿음을 지키지 못함으로 범죄했습니다. 여리고성 함락 후 아간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몰래 탐나는 물건을 감추어 둠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사고 말지요.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그 행한 일을 고하라고 하자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라고 합니다(수 7:21). 아간의 범죄로 이스라엘은 아이성 전투에서 어이없이 패하였고, 범죄한 아간은 온 가족과 함께 돌에 맞아 죽었습니다.
우리는 좌우로 치우치거나 자기 유익을 좇아 하나님 뜻을 거역하는 일은 없어야겠습니다.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어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하지요. 여러분은 믿음을 굳게 지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림으로 하늘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도 바울의 동역자로서 바울이 투옥되자 세상을 사랑하여 떠난 사람은 누구일까요?
2. 복음을 전하다가 여러 번 죽을 뻔하며 고난을 받았지만 결코 믿음이 흔들리지 않았던 신약 시대 권능의 사도는 누구일까요?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79~190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데마’
데마는 사도 바울 일행과 함께 전도 여행에 동참한 사람이었다.
바울이 골로새서나 빌레몬서에서 멀리 떨어진 성도들에게 문안 인사를 할 때 ‘데마’의 이름이 언급된 것을 볼 수 있다.
골로새서 4장 14절에 보면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와 또 데마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라고 기록되어 있다. 바울이 이 글을 기록할 때는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 갇혀 있을 때였다. 그만큼 데마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바울의 곁을 지키며 함께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훗날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배신하고 떠나갔다(딤후 4:10). 한때는 바울의 고난에 함께한 그였는데 세월이 지나고 바울이 다시 감옥에 갇히자 결국 변질되어 믿음을 잃고 배신하기에 이르렀다.
2019-11-22
제47과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마가복음 2:1~5
읽을말씀 : 마가복음 2:1~5 | 외울말씀 : 출애굽기 15:26 l 참고 말씀: 마태복음 8:13
교육목표 : 하나님 앞에 진실한 행함으로 믿음의 받침대를 세워 어떠한 질병이나 문제라 할지라도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로부터 존경받는 의인은 의로운 행함과 내면에서 우러나는 선의 향기로 많은 사람에게 진한 감동과 삶에 아름다운 영향을 끼칩니다. 반대로 악인은 두고두고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아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요.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을 보아도 알 수 있고, 성경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의인과 악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신명기 34장 8절 이하를 보면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죽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슬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맟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 모세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가 잘 나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더라” 했지요.
이와 반면 악인의 죽음은 어떠합니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무수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아돌프 히틀러는 전쟁이 불리해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전쟁의 종식을 의미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환호했겠습니까.
성경에도 이와 같은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시돈 왕의 딸 이세벨입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에게로 시집온 그녀는 왕과 백성들을 우상숭배로 물들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며 온갖 악을 행했습니다. 한 번은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갖지 못해 고민할 때에 거짓 증인을 세우고 성의 유력한 사람을 매수하여 무죄한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악행을 거듭한 이세벨은 신하들의 손에 의해 창밖으로 던져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의 시체를 개들이 먹으므로 장사조차 지낼 수 없었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도 없었지요. 이처럼 악인에게 힘이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는 듯하지만 결국 힘이 사라지면 모두가 등을 돌리고 떠나 버립니다.
2. 진실한 행함으로 믿음의 받침대를 세운 중풍병자와 친구들
본문에 보면 가버나움에 살고 있던 한 중풍병자는 병이 중해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일 수조차 없는 불쌍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귀신을 쫓아낼 뿐만 아니라 각색 병든 사람을 치료해 준다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그는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그러한 소문을 그대로 믿고 마음에 새기며 예수님께서 계신 곳을 알면 꼭 가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중풍병자는 자신이 그렇게 사모하던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그의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예수님의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 앞으로 자기를 인도해 달라는 중풍병자의 간곡한 소원을 들어 주었습니다.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갔는데 정작 가서 보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예수님이 계신 집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들것에 실린 중풍병자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결국 그들은 누구보다도 예수님 가까이로 나아가게 되었지요. 그러자 이들의 믿음과 정성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을 깨끗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간절한 중심으로 예수님께 나아가기를 사모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행함을 보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집까지 도착은 했으나 도저히 용신할 수 없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으니 거기에서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붕까지 뜯어내고 예수님 앞에 중풍병자를 내려놓았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을 소유하였는지요.
그들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요, 이 중풍병자를 어떻게 하든 예수님 앞에 데려가야 되겠다고 하는 깊은 우정과 사랑이 있었던 것입니다. 친구가 어떤 문제를 당했을 때에 그를 살리려고 애쓰는 아름다운 중심을 지니고 있었지요. 사람들 중에는 그 행함에 따라 잘 죽었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음을 슬퍼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살리려 했던 것은 그만큼 이 중풍병자가 그들에게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의인
예수님께서 나인성으로 가실 때에 장례 행렬이 성에서 나왔습니다. 성 안에 사는 어느 과부의 외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염없이 통곡하는 과부를 불쌍히 여기고 청년을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눅 7:11~16). 어려운 여건에서 기른 사랑스러운 독자를 잃었으니 과부의 참담함과 슬픔이 어떠했겠습니까? 여인은 아들을 다시 살려 준다면 자신의 생명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여인은 생명 다해 충성하며 변함없이 붙좇을 중심임을 아시기에 예수님께서 소원을 들어 주신 것입니다.
욥바에 사는 여제자 다비다는 어떠하였습니까? 그가 죽자 생전에 그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룻다에 있는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 지체 말고 올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니 모든 과부가 그 곁에 서서 울며 다비다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 지어 준 옷가지를 다 내보였습니다. 자신의 안락을 누리지 않고 많은 사람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다비다의 행함에 감동을 받은 베드로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행 9:36~40).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은혜를 베푸셨을까요? 여인의 행함이 참으로 아름답고 은혜로웠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기독교인이 심히 핍박받던 시기입니다. 그런데도 다비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을 돕는 큰 믿음의 행함을 나타냈습니다.
이처럼 의인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네 친구가 중풍병자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준 것처럼 모든 사람이 그를 위해 의를 나타내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깨우쳐야 하겠습니까?
첫째, 의인에게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얻는 후덕함이 있다는 점입니다.
욥에게는 많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비록 변론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친구들은 욥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같이 염려하며 권면하였습니다. 그들이 그만큼 욥에게 입은 은혜가 있고 그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이 욥을 위한다면서 그를 깨우치려 한 것이 사람의 생각이고 자기 보기에 의였기 때문에 변론이 일어났지만 처음부터 그런 동기를 가지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의인인지 아닌지 스스로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인이라면 많은 사람이 존경하고 사랑하며 따를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믿음의 형제들이, 가정에서는 가족이, 일가친척과 이웃이 따릅니다. 의인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면 사랑과 존경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축복해 주십니다.
둘째, 의인에게는 믿음의 행함이 있다는 점입니다.
마음이 선하고 의로운 사람은 친구가 죽어가거나 어려움에 처할 때에 믿음으로 구제하고 도우며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합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도 이런저런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믿음으로 친구를 살릴 방법을 강구하였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어떤 한계에 머물러 있지 않았지요.
이처럼 믿음의 행함을 내보일 때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과 정성을 보고 분명히 역사하여 불가능한 것까지라도 가능케 하십니다.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시니 오직 믿음으로 행하는 의인이 되어 항상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예로부터 존경받는 의인은 의로운 행함과 내면에서 우러나는 선의 향기로 많은 사람에게 진한 감동과 삶에 아름다운 영향을 끼칩니다. 반대로 악인은 두고두고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아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요.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을 보아도 알 수 있고, 성경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네 친구가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왔지만 도저히 용신할 수 없자 어떠한 행함을 내보였을까요?
2. 의인의 특징 두 가지를 써 보세요.
① 의인에게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얻는 ( )이 있다.
② 의인에게는 믿음의 ( )이 있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65~17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세벨’
시돈 왕의 딸이었던 이세벨은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결혼하면서 시돈의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 신을 이스라엘에 들여와 왕은 물론 신하와 백성까지도 우상숭배에 물들게 했다. 이에 북이스라엘은 공의의 심판에 따라 삼 년 반이나 계속된 가뭄과 이방 민족의 침략으로 큰 어려움을 당해야 했다.
이세벨은 요한계시록 두아디라교회에 보낸 서신에도 등장한다.
마치 하나님과 교통하는 선지자인 양 교묘한 말로 성도들을 미혹하여 우상숭배, 곧 영적 음행에 빠지게 한 ‘자칭 선지자’의 표상으로 그 이름이 거론되었다.
교육목표 : 하나님 앞에 진실한 행함으로 믿음의 받침대를 세워 어떠한 질병이나 문제라 할지라도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로부터 존경받는 의인은 의로운 행함과 내면에서 우러나는 선의 향기로 많은 사람에게 진한 감동과 삶에 아름다운 영향을 끼칩니다. 반대로 악인은 두고두고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아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요.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을 보아도 알 수 있고, 성경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의인과 악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
신명기 34장 8절 이하를 보면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죽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슬퍼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평지에서 애곡하는 기한이 맟도록 모세를 위하여 삼십 일을 애곡하니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어 모세가 어떠한 사람이었는지가 잘 나옵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여호와께서 그를 애굽 땅에 보내사 바로와 그 모든 신하와 그 온 땅에 모든 이적과 기사와 모든 큰 권능과 위엄을 행하게 하시매 온 이스라엘 목전에서 그것을 행한 자더라” 했지요.
이와 반면 악인의 죽음은 어떠합니까?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켜 무수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아돌프 히틀러는 전쟁이 불리해지자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전쟁의 종식을 의미했으니 얼마나 많은 사람이 환호했겠습니까.
성경에도 이와 같은 인물이 있습니다. 바로 시돈 왕의 딸 이세벨입니다. 북이스라엘 아합왕에게로 시집온 그녀는 왕과 백성들을 우상숭배로 물들게 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이며 온갖 악을 행했습니다. 한 번은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갖지 못해 고민할 때에 거짓 증인을 세우고 성의 유력한 사람을 매수하여 무죄한 사람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악행을 거듭한 이세벨은 신하들의 손에 의해 창밖으로 던져지는 비참한 최후를 맞았습니다. 그의 시체를 개들이 먹으므로 장사조차 지낼 수 없었고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도 없었지요. 이처럼 악인에게 힘이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가까이 오는 듯하지만 결국 힘이 사라지면 모두가 등을 돌리고 떠나 버립니다.
2. 진실한 행함으로 믿음의 받침대를 세운 중풍병자와 친구들
본문에 보면 가버나움에 살고 있던 한 중풍병자는 병이 중해 자리에서 일어나 움직일 수조차 없는 불쌍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며 귀신을 쫓아낼 뿐만 아니라 각색 병든 사람을 치료해 준다는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귀가 솔깃해졌습니다.
그는 마음이 선했기 때문에 그러한 소문을 그대로 믿고 마음에 새기며 예수님께서 계신 곳을 알면 꼭 가서 만나고 싶다는 소망을 가지게 되었지요. 그러던 중, 중풍병자는 자신이 그렇게 사모하던 예수님께서 가버나움에 오셨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도와줄 수 있는 친구들을 찾았습니다. 다행히 그의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돕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고, 예수님의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기에 예수님 앞으로 자기를 인도해 달라는 중풍병자의 간곡한 소원을 들어 주었습니다.
친구들은 중풍병자를 들것에 실어 예수님께서 계신 곳으로 나아갔는데 정작 가서 보니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어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예수님이 계신 집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들것에 실린 중풍병자 친구를 예수님 앞으로 달아 내렸습니다. 결국 그들은 누구보다도 예수님 가까이로 나아가게 되었지요. 그러자 이들의 믿음과 정성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중풍병을 깨끗이 치료해 주셨습니다.
이러한 장면을 통해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간절한 중심으로 예수님께 나아가기를 사모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의 행함을 보면 얼마나 착한 사람들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집까지 도착은 했으나 도저히 용신할 수 없고 예수님 앞으로 나아갈 길이 없으니 거기에서 포기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붕까지 뜯어내고 예수님 앞에 중풍병자를 내려놓았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마음을 소유하였는지요.
그들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요, 이 중풍병자를 어떻게 하든 예수님 앞에 데려가야 되겠다고 하는 깊은 우정과 사랑이 있었던 것입니다. 친구가 어떤 문제를 당했을 때에 그를 살리려고 애쓰는 아름다운 중심을 지니고 있었지요. 사람들 중에는 그 행함에 따라 잘 죽었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음을 슬퍼하는 그런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친구들이 중풍병자를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살리려 했던 것은 그만큼 이 중풍병자가 그들에게 중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의인
예수님께서 나인성으로 가실 때에 장례 행렬이 성에서 나왔습니다. 성 안에 사는 어느 과부의 외아들이 죽은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염없이 통곡하는 과부를 불쌍히 여기고 청년을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눅 7:11~16). 어려운 여건에서 기른 사랑스러운 독자를 잃었으니 과부의 참담함과 슬픔이 어떠했겠습니까? 여인은 아들을 다시 살려 준다면 자신의 생명이라도 주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여인은 생명 다해 충성하며 변함없이 붙좇을 중심임을 아시기에 예수님께서 소원을 들어 주신 것입니다.
욥바에 사는 여제자 다비다는 어떠하였습니까? 그가 죽자 생전에 그에게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룻다에 있는 베드로에게 사람을 보내 지체 말고 올 것을 간청하였습니다. 베드로가 도착하니 모든 과부가 그 곁에 서서 울며 다비다가 저희와 함께 있을 때 지어 준 옷가지를 다 내보였습니다. 자신의 안락을 누리지 않고 많은 사람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다비다의 행함에 감동을 받은 베드로가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행 9:36~40).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은혜를 베푸셨을까요? 여인의 행함이 참으로 아름답고 은혜로웠기 때문입니다. 당시는 기독교인이 심히 핍박받던 시기입니다. 그런데도 다비다는 믿음이 있었기에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인들을 돕는 큰 믿음의 행함을 나타냈습니다.
이처럼 의인은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고 존귀히 여김을 받습니다. 네 친구가 중풍병자의 부탁을 기꺼이 들어준 것처럼 모든 사람이 그를 위해 의를 나타내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해 무엇을 깨우쳐야 하겠습니까?
첫째, 의인에게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얻는 후덕함이 있다는 점입니다.
욥에게는 많은 친구가 있었습니다. 비록 변론으로 끝나고 말았지만 친구들은 욥이 곤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와 같이 염려하며 권면하였습니다. 그들이 그만큼 욥에게 입은 은혜가 있고 그를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들이 욥을 위한다면서 그를 깨우치려 한 것이 사람의 생각이고 자기 보기에 의였기 때문에 변론이 일어났지만 처음부터 그런 동기를 가지고 했던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자신이 의인인지 아닌지 스스로 분별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인이라면 많은 사람이 존경하고 사랑하며 따를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믿음의 형제들이, 가정에서는 가족이, 일가친척과 이웃이 따릅니다. 의인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면 사랑과 존경을 받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축복해 주십니다.
둘째, 의인에게는 믿음의 행함이 있다는 점입니다.
마음이 선하고 의로운 사람은 친구가 죽어가거나 어려움에 처할 때에 믿음으로 구제하고 도우며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합니다. 중풍병자의 친구들도 이런저런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믿음으로 친구를 살릴 방법을 강구하였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어떤 한계에 머물러 있지 않았지요.
이처럼 믿음의 행함을 내보일 때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과 정성을 보고 분명히 역사하여 불가능한 것까지라도 가능케 하십니다.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라고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역사하시니 오직 믿음으로 행하는 의인이 되어 항상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예로부터 존경받는 의인은 의로운 행함과 내면에서 우러나는 선의 향기로 많은 사람에게 진한 감동과 삶에 아름다운 영향을 끼칩니다. 반대로 악인은 두고두고 부끄러운 이름으로 남아 뭇사람의 입에 오르내리지요. 이는 우리나라의 역사적 인물을 보아도 알 수 있고, 성경에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네 친구가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님이 계신 곳까지 왔지만 도저히 용신할 수 없자 어떠한 행함을 내보였을까요?
2. 의인의 특징 두 가지를 써 보세요.
① 의인에게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얻는 ( )이 있다.
② 의인에게는 믿음의 ( )이 있다.
* 금주 과제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책자 165~178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세벨’
시돈 왕의 딸이었던 이세벨은 북이스라엘 아합왕과 결혼하면서 시돈의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 신을 이스라엘에 들여와 왕은 물론 신하와 백성까지도 우상숭배에 물들게 했다. 이에 북이스라엘은 공의의 심판에 따라 삼 년 반이나 계속된 가뭄과 이방 민족의 침략으로 큰 어려움을 당해야 했다.
이세벨은 요한계시록 두아디라교회에 보낸 서신에도 등장한다.
마치 하나님과 교통하는 선지자인 양 교묘한 말로 성도들을 미혹하여 우상숭배, 곧 영적 음행에 빠지게 한 ‘자칭 선지자’의 표상으로 그 이름이 거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