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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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03
제27과아버지 하나님의 섭리 (맥추절)
요한복음 4:24
읽을말씀 : 요한복음 4:24 | 외울말씀 : 이사야 55:9 l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1:25
교육목표 : 하나님은 항상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나의 생각보다 높으신 분임을 믿고 순종함으로 형통한 삶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밀이나 보리를 거두어 첫 열매를 드리며 감사하던 절기입니다. 전반기 동안에도 영육 간에 열매를 맺게 하시고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반기에는 더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다윗의 일생을 통해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의 특징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의 특징
첫째,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마음이 선과 사랑 자체이심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일생 동안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듯이 하나님께서도 늘 자녀들에게 마음에 가득한 선과 사랑을 표현해 주십니다.
여러분 안에 넘치는 크고 작은 다양한 간증들이 바로 그 증거이지요. 물론 믿음이 어릴 때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특히 축복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연단이 닥쳐올 때 그러하지요.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헤아리는 사람은 그럴 때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나의 아버지이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던 소년 시절에 장차 왕이 될 사람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 후 다윗은 승승장구만 했을까요? 그 과정에서 다윗이 가장 먼저 직면한 현실은 반역자라는 누명을 쓰고 타국과 광야를 떠도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미친 척하기도 했고, 함께하는 무리를 위해 양식을 구하다가 나발 같은 무례한 이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블레셋으로부터 구해 주었던 그일라 거민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동고동락하던 부하들이 돌을 들어 자신을 쳐 죽이려 하는 기막힌 일도 당합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했을까요? 오히려 연단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수천 년이 지나도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아름다운 찬송 시들을 남겼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라는 시편 23편도 그중 하나이지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이처럼 감사하며 찬송하는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뭇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주변 나라들까지 조아리는 큰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기 원하시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입니다. 이 과정에는 연단이 따를 수도 있지만 이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갖게 하는 축복입니다. 그러니 치료받고 축복받고 형통할 때뿐 아니라 어려움을 겪을 때, 마음의 소원이 더디 이뤄지는 것처럼 보일 때도, 결국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들을 허락하셨을까?’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중심의 감사를 올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이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믿음의 행함입니다.
그럴 때 결국 다윗에게 승리를 주신 것처럼, 지난 만민의 역사 속에 늘 그러하셨듯이, 가뭄 끝에 비를 내려 주시고 큰비 끝에 맑은 하늘을 보여 주십니다. 죽은 나사로와 같이 전혀 가망 없어 보이는 사람도 살려 주시고 고쳐 주시며, 가난하여 텅 빈 가루통과 기름병도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또한 죄악을 속히 벗어 버려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습니다.
이사야 55장 9절에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는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혜로우심을 깨우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일을 이룰 때 육의 한계를 가진 사람은 A라는 한 길밖에 보지 못하지만,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A보다 탁월한 B, C, D라는 길까지 꿰뚫어 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겸손하게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각이나 뜻과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신다 해도 감사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이 길이 더 좋은데, 이 방법론이 더 맞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왜 아니라고 하시지?’ 하며 힘들어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한 예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다윗이 군인으로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시대가 성전을 짓기에 가장 좋은 때임을 알려 주셨지요. 이에 다윗은 서운해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성전을 봉헌할 수는 없었지만 성전에 필요한 재료를 정성껏 준비하고, 찬양대와 성전 봉사자 등의 조직과 제도를 미리 마련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였습니다. 전쟁을 치를 때도 전술에 능한 다윗이었지만 세세한 분야까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지중에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을 때는 깨우치는 대로 겸손하게 회개하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즉시 돌이켰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 나라가 부강해져 큰 영광을 누리게 된 후에도 겸비한 마음이 변하지 않아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시 25:5).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영육 간에 낮은 자리에 있을 때에는 대부분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음을 쉽게 인정합니다. 그런데 연륜이 쌓일수록, 점점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마음이 높아지고, 특히 가르치는 사람이나 지도자가 될수록 영적으로 어른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처럼 늘 하나님의 뜻을 여쭙기보다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하며 자신의 뜻을 앞세우기 쉽습니다.
이 제단은 사람의 뜻과 지혜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뤄졌지요. 하나님께서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시고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사람의 생각과 뜻에 맞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고 항상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야 범사에 감사하는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며 하나님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그 뜻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다윗과 솔로몬의 때에 이스라엘이 전성기를 이루게 하셨을까요? 바로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왕상 15:5)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죄를 철저히 회개한 후,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죄성까지 벗어 버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 땅에서 이름난 왕으로 세워 주셨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세세무궁토록 영광을 누리는 존귀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순종의 열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순종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응답과 축복이 임하고, 형통함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하신 말씀대로입니다(사 1:19).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아버지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것만 주시는 선하고 사랑이 많은 분, 다윗을 향해 많은 생각과 큰 뜻을 품으시고 친히 인도하시는 지혜롭고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늘 그분의 뜻대로 순종할 수밖에 없을 만큼 다윗이 너무나 사랑하는 분이셨지요.
그렇다면 다윗은 하나님께 어떤 존재였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을 통해 섭리를 이루셨으며 항상 사랑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이에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오히려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 드릴 만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찬양 시로 남긴 그 구구절절한 감사의 고백들이 여러분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① 하나님께서 가장 ( )을 주시는 분임을 믿는다.
② 하나님의 ( )이 나의 ( )보다 높으심을 믿는다.
③ 하나님의 ( )에 순종한다.
2.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 금주 과제
상반기 동안에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영육 간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어린아이’란
① 단순하다
-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순종한다.
② 순수하다.
- 마음에 악한 것, 더러운 것 등 불순물이 없고, 선악 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③ 교만하지 않다.
-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 소자 앞에서도 자신을 낮추고 섬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은 항상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나의 생각보다 높으신 분임을 믿고 순종함으로 형통한 삶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밀이나 보리를 거두어 첫 열매를 드리며 감사하던 절기입니다. 전반기 동안에도 영육 간에 열매를 맺게 하시고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반기에는 더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다윗의 일생을 통해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의 특징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의 특징
첫째,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마음이 선과 사랑 자체이심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일생 동안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듯이 하나님께서도 늘 자녀들에게 마음에 가득한 선과 사랑을 표현해 주십니다.
여러분 안에 넘치는 크고 작은 다양한 간증들이 바로 그 증거이지요. 물론 믿음이 어릴 때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특히 축복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연단이 닥쳐올 때 그러하지요.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헤아리는 사람은 그럴 때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나의 아버지이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던 소년 시절에 장차 왕이 될 사람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 후 다윗은 승승장구만 했을까요? 그 과정에서 다윗이 가장 먼저 직면한 현실은 반역자라는 누명을 쓰고 타국과 광야를 떠도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미친 척하기도 했고, 함께하는 무리를 위해 양식을 구하다가 나발 같은 무례한 이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블레셋으로부터 구해 주었던 그일라 거민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동고동락하던 부하들이 돌을 들어 자신을 쳐 죽이려 하는 기막힌 일도 당합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했을까요? 오히려 연단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수천 년이 지나도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아름다운 찬송 시들을 남겼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라는 시편 23편도 그중 하나이지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이처럼 감사하며 찬송하는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뭇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주변 나라들까지 조아리는 큰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기 원하시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입니다. 이 과정에는 연단이 따를 수도 있지만 이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갖게 하는 축복입니다. 그러니 치료받고 축복받고 형통할 때뿐 아니라 어려움을 겪을 때, 마음의 소원이 더디 이뤄지는 것처럼 보일 때도, 결국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들을 허락하셨을까?’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중심의 감사를 올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이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믿음의 행함입니다.
그럴 때 결국 다윗에게 승리를 주신 것처럼, 지난 만민의 역사 속에 늘 그러하셨듯이, 가뭄 끝에 비를 내려 주시고 큰비 끝에 맑은 하늘을 보여 주십니다. 죽은 나사로와 같이 전혀 가망 없어 보이는 사람도 살려 주시고 고쳐 주시며, 가난하여 텅 빈 가루통과 기름병도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또한 죄악을 속히 벗어 버려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습니다.
이사야 55장 9절에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는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혜로우심을 깨우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일을 이룰 때 육의 한계를 가진 사람은 A라는 한 길밖에 보지 못하지만,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A보다 탁월한 B, C, D라는 길까지 꿰뚫어 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겸손하게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각이나 뜻과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신다 해도 감사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이 길이 더 좋은데, 이 방법론이 더 맞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왜 아니라고 하시지?’ 하며 힘들어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한 예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다윗이 군인으로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시대가 성전을 짓기에 가장 좋은 때임을 알려 주셨지요. 이에 다윗은 서운해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성전을 봉헌할 수는 없었지만 성전에 필요한 재료를 정성껏 준비하고, 찬양대와 성전 봉사자 등의 조직과 제도를 미리 마련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였습니다. 전쟁을 치를 때도 전술에 능한 다윗이었지만 세세한 분야까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지중에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을 때는 깨우치는 대로 겸손하게 회개하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즉시 돌이켰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 나라가 부강해져 큰 영광을 누리게 된 후에도 겸비한 마음이 변하지 않아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시 25:5).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영육 간에 낮은 자리에 있을 때에는 대부분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음을 쉽게 인정합니다. 그런데 연륜이 쌓일수록, 점점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마음이 높아지고, 특히 가르치는 사람이나 지도자가 될수록 영적으로 어른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처럼 늘 하나님의 뜻을 여쭙기보다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하며 자신의 뜻을 앞세우기 쉽습니다.
이 제단은 사람의 뜻과 지혜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뤄졌지요. 하나님께서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시고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사람의 생각과 뜻에 맞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고 항상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야 범사에 감사하는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며 하나님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그 뜻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다윗과 솔로몬의 때에 이스라엘이 전성기를 이루게 하셨을까요? 바로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왕상 15:5)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죄를 철저히 회개한 후,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죄성까지 벗어 버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 땅에서 이름난 왕으로 세워 주셨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세세무궁토록 영광을 누리는 존귀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순종의 열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순종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응답과 축복이 임하고, 형통함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하신 말씀대로입니다(사 1:19).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아버지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것만 주시는 선하고 사랑이 많은 분, 다윗을 향해 많은 생각과 큰 뜻을 품으시고 친히 인도하시는 지혜롭고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늘 그분의 뜻대로 순종할 수밖에 없을 만큼 다윗이 너무나 사랑하는 분이셨지요.
그렇다면 다윗은 하나님께 어떤 존재였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을 통해 섭리를 이루셨으며 항상 사랑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이에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오히려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 드릴 만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찬양 시로 남긴 그 구구절절한 감사의 고백들이 여러분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① 하나님께서 가장 ( )을 주시는 분임을 믿는다.
② 하나님의 ( )이 나의 ( )보다 높으심을 믿는다.
③ 하나님의 ( )에 순종한다.
2.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 금주 과제
상반기 동안에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영육 간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어린아이’란
① 단순하다
-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순종한다.
② 순수하다.
- 마음에 악한 것, 더러운 것 등 불순물이 없고, 선악 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③ 교만하지 않다.
-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 소자 앞에서도 자신을 낮추고 섬긴다.
2020-06-26
제26과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과 일곱 영 (1)
요한계시록 5:6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5:6 | 외울말씀 : 야고보서 2:22 | 참고 말씀: 마태복음 21:22
교육목표 : 일곱 영이 측정하는 기준에 모두 통과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에 무조건 응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응답도 반드시 공의에 맞게 하십니다.
만약 공의의 법칙에 상관없이 모든 기도가 응답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혼란해지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경쟁 회사가 망하고 우리 회사만 잘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응답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욕심과 악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기도는 공의의 법칙에 맞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응답과 축복을 주심에 있어서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서 공의에 따라 역사해 가십니다.
1. 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공의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쉽게 응답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알아 합당하게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마음이 담겨 있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응답받을 수 있는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일곱 영입니다. 하나님 마음 안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는데 그중에 일곱 가지 측면에서 살피시는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영의 측정 결과에 따라 기도 응답의 여부를 결정하십니다. 여기서 일곱은 하나님의 영이 일곱 개라는 뜻이 아닙니다. 일곱은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말씀한 대로 하나님은 영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영 자체이신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한 것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조금의 실수나 착오도 없이 모든 것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감찰한다는 의미에서 일곱 영이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했습니다.
완전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며 항상 감찰하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일곱 영을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면 하나님 편에서 응답을 주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나 야채 등을 살 때에 저울에 무게를 달아서 그에 해당하는 값을 치러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받을 때도 일곱 영의 측정에 비춰서 응답받을 조건에 합당해야 합니다.
2.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그러면 일곱 영은 무엇을 측정해서 응답의 여부를 결정할까요? 일곱 영은 사람의 모든 마음과 생각, 행실 등을 한 치 오차도 없이 측정하는데 일곱 가지 분야가 있습니다.
첫째,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믿음대로 되라’ 했습니다. 진정 마음에 믿는 참 믿음, 영적인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반드시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믿는다 고백하며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지식으로만 담고 있는 육적인 믿음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믿는 것과 머리로 아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알고 믿는다 고백해도 정작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영적인 믿음으로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영적인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원한다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우리가 마음의 악을 버리며 기도할 때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오며 그 믿음대로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지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약 2:22). 즉 말씀대로 살지 않는 건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믿으며 장차 심판이 있을 것과,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를 진정 믿는다면 삶이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의 헛된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진리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될수록 믿음이 커지고 당연히 더 큰 믿음의 행함과 순종이 나옵니다. 일곱 영은 바로 이러한 것을 통해 ‘어느 정도 믿음이 있는가?’ 측정합니다.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는 것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분야의 측정 기준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과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에 대해 똑같은 응답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떠할까요?
어린아이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응답받기가 너무 어려워 아예 포기해 버릴 것입니다. 또한 장성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쉽게 응답받으므로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서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달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둘째,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의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건짐 받아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또 주님을 믿기 전에는 온갖 인생의 문제로 눈물, 슬픔, 고통에 싸여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았는데,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되니 당연히 기쁨이 넘칩니다.
물론 ‘나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말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상황이 바뀌면 사라질 수 있는 기쁨이라면 참 기쁨이 아닙니다. 자신의 유익과 마음에 맞을 때라야 나오는 조건적인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기쁨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가득하기에 마음 중심에서 항상 샘솟는 기쁨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자밥이 되면서도 기뻐하며 순교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쁨이야말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징표요,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향기가 됩니다. 또한 기쁨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으며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믿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믿음이 있다 하는 사람 중에도 영적인 기쁨을 잃은 경우가 있습니다. 겉모습은 웃지만,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느껴지지 않지요.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심이 사라지고 미지근한 신앙에 머무르거나, 성령의 소욕을 좇지 못하고 세상 것을 취하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을 만들면 영적인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해도 오랫동안 응답이 지체되는데, 일곱 영이 기쁨을 측정할 때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여 영적인 기쁨이 없다면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고 신속히 죄의 담을 헐어 버림으로 일곱 영의 측정에 합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2.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 )과 ( )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신다.
3. 일곱 영이 첫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39~5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소욕’이란
선으로 악을 이기며 빛 가운데 거하는 진리의 미음이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좇고자 하는 것이 성령의 소욕이다.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에 거하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 주시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행하도록 이끄신다. 곧 성령으로 영을 낳게 하는 것이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만큼 성령이 기뻐 하시므로 마음에 평안과 즐거움이 임한다. 반대로 육체의 소욕을 좇으면 성령께서 탄식하시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잃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할 힘도 점점 약해진다.
교육목표 : 일곱 영이 측정하는 기준에 모두 통과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에 무조건 응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응답도 반드시 공의에 맞게 하십니다.
만약 공의의 법칙에 상관없이 모든 기도가 응답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혼란해지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경쟁 회사가 망하고 우리 회사만 잘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응답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욕심과 악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기도는 공의의 법칙에 맞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응답과 축복을 주심에 있어서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서 공의에 따라 역사해 가십니다.
1. 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공의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쉽게 응답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알아 합당하게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마음이 담겨 있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응답받을 수 있는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일곱 영입니다. 하나님 마음 안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는데 그중에 일곱 가지 측면에서 살피시는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영의 측정 결과에 따라 기도 응답의 여부를 결정하십니다. 여기서 일곱은 하나님의 영이 일곱 개라는 뜻이 아닙니다. 일곱은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말씀한 대로 하나님은 영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영 자체이신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한 것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조금의 실수나 착오도 없이 모든 것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감찰한다는 의미에서 일곱 영이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했습니다.
완전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며 항상 감찰하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일곱 영을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면 하나님 편에서 응답을 주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나 야채 등을 살 때에 저울에 무게를 달아서 그에 해당하는 값을 치러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받을 때도 일곱 영의 측정에 비춰서 응답받을 조건에 합당해야 합니다.
2.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그러면 일곱 영은 무엇을 측정해서 응답의 여부를 결정할까요? 일곱 영은 사람의 모든 마음과 생각, 행실 등을 한 치 오차도 없이 측정하는데 일곱 가지 분야가 있습니다.
첫째,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믿음대로 되라’ 했습니다. 진정 마음에 믿는 참 믿음, 영적인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반드시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믿는다 고백하며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지식으로만 담고 있는 육적인 믿음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믿는 것과 머리로 아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알고 믿는다 고백해도 정작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영적인 믿음으로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영적인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원한다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우리가 마음의 악을 버리며 기도할 때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오며 그 믿음대로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지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약 2:22). 즉 말씀대로 살지 않는 건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믿으며 장차 심판이 있을 것과,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를 진정 믿는다면 삶이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의 헛된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진리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될수록 믿음이 커지고 당연히 더 큰 믿음의 행함과 순종이 나옵니다. 일곱 영은 바로 이러한 것을 통해 ‘어느 정도 믿음이 있는가?’ 측정합니다.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는 것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분야의 측정 기준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과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에 대해 똑같은 응답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떠할까요?
어린아이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응답받기가 너무 어려워 아예 포기해 버릴 것입니다. 또한 장성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쉽게 응답받으므로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서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달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둘째,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의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건짐 받아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또 주님을 믿기 전에는 온갖 인생의 문제로 눈물, 슬픔, 고통에 싸여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았는데,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되니 당연히 기쁨이 넘칩니다.
물론 ‘나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말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상황이 바뀌면 사라질 수 있는 기쁨이라면 참 기쁨이 아닙니다. 자신의 유익과 마음에 맞을 때라야 나오는 조건적인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기쁨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가득하기에 마음 중심에서 항상 샘솟는 기쁨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자밥이 되면서도 기뻐하며 순교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쁨이야말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징표요,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향기가 됩니다. 또한 기쁨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으며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믿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믿음이 있다 하는 사람 중에도 영적인 기쁨을 잃은 경우가 있습니다. 겉모습은 웃지만,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느껴지지 않지요.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심이 사라지고 미지근한 신앙에 머무르거나, 성령의 소욕을 좇지 못하고 세상 것을 취하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을 만들면 영적인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해도 오랫동안 응답이 지체되는데, 일곱 영이 기쁨을 측정할 때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여 영적인 기쁨이 없다면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고 신속히 죄의 담을 헐어 버림으로 일곱 영의 측정에 합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2.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 )과 ( )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신다.
3. 일곱 영이 첫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39~5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소욕’이란
선으로 악을 이기며 빛 가운데 거하는 진리의 미음이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좇고자 하는 것이 성령의 소욕이다.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에 거하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 주시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행하도록 이끄신다. 곧 성령으로 영을 낳게 하는 것이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만큼 성령이 기뻐 하시므로 마음에 평안과 즐거움이 임한다. 반대로 육체의 소욕을 좇으면 성령께서 탄식하시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잃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할 힘도 점점 약해진다.
2020-06-19
제25과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야고보서 1:6~8
읽을말씀 : 야고보서 1:6~8 | 외울말씀 : 예레미야 33:3 | 참고 말씀: 요한일서 3:21~22
교육목표 :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행함 있는 참 믿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응답을 받으려면 참 믿음으로 구해야
야고보서 1장 6~8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의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응답해 주실까?’ 하고 의심합니다. 이렇게 두 마음을 품으면 아무리 구해도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의심치 말고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참 믿음으로 구하고 있는지, 혹 두 마음을 품어 응답이 더딘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은 믿음으로 구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참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과, 지식적인 믿음 곧 육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서 진정 믿는 믿음입니다. 반면 지식적인 믿음이란 단지 하나님에 대해 듣고 아는 것을 말합니다.
지식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동안 말씀을 들어왔기에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잘 압니다. 그러나 마음 중심으로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세상에 의존합니다. 의심하는 사람, 곧 두 마음을 품는 사람은 바로 이런 지식적인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의 특징
참 믿음으로 구할 때와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할 때는 그 과정과 결과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과연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첫째,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참 믿음으로 구하면 응답될 것을 분명히 믿기 때문에, 설령 원치 않는 상황을 만난다 해도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습니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고 구하는 사람은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시험 환난이 오면 마음이 요동하지요.
예를 들어, 어린 자녀가 온몸에 고열이 나서 위급한 상황이라고 합시다. 이때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할 것입니다. 회개할 것을 찾아 회개하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했는데도 오히려 열이 더 펄펄 끓는다면 마음이 어떨까요? 참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다면 이런 상황이 되어도 마음이 요동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한 경우에는 ‘정말 괜찮아질까? 더 심해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나아가 ‘믿음으로 구했는데 왜 낫지 않을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마음을 품은 것 자체가 참 믿음이 아니었음을 말해 줍니다. ‘나는 이럴 때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둘째, 변개하지 않습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응답받을 때까지 변함없이 구합니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고 구하는 사람은 응답이 더디거나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대부분 변개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제목을 놓고 기도를 작정했다가 중간에 임의로 깨뜨립니다. 즉 기도제목을 바꾸거나 목표치를 낮추기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구하는 것을 즉시 응답받기 바라고 자신의 바람대로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 공의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하여 가장 합당한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응답받는 속도와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도 경우에 따라 다른 방법을 적용하셨습니다. 12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겉옷자락을 만지자 즉시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소경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습니다.
소경의 입장에서는 이런 방법이 자신이 기대한 바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물에 씻으니 눈이 밝아졌지요. 만약 치료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의심하거나 변개하여 돌아갔다면 치료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변개하지 않아야 한다 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끝까지 고집스럽게 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께 응답을 구할 때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기도하여 잘 분별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또 변함없이 구한다 해도 정욕을 위한 목적이라면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구하는 것을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 믿기에 힘쓰고 애써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도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8:38) 하고 큰소리로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쳐 주실 것을 확신했기에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지요. 이처럼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믿음이 얼마나 신실한지가 표현됩니다.
참 믿음으로 구하지 않는 사람은 해결받을 문제가 있거나 축복을 받고자 해도 힘써 부르짖지 않습니다. 응답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더욱 부르짖어야 하는데 오히려 힘이 빠져서 부르짖지 못합니다. 이는 응답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참 믿음을 이루려면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은 내가 원한다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만 합니다. 우리가 참 믿음을 이루는 데에는 일련의 과정이 따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참 믿음을 주실까요?
먼저, 하나님께만 구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해결해야 할 인생의 문제,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만 구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지요. 순간순간 의심이 들고 세상의 유혹이 와도 단호히 물리치고 변함없이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열심히 진리를 행해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말씀을 듣는 중에, 또는 기도 중에 깨달으면 그것을 열심히 행해야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원하는 만큼 신속히 응답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짜가 없으십니다.
육의 부모도 어린 자녀가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품에 안겨오면 아이가 사랑스럽고 마음이 흐뭇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자녀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기뻐하십니다. 공의의 법칙상 당장 응답해 주실 수는 없다고 해도 진리를 행하는 과정을 통해 영혼이 잘되게 하십니다. 바로 육신의 생각을 하나 둘 깨뜨리고 마음에서 비진리를 버릴 수 있게 도우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 곧 비진리의 생각이 있으면 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육신의 생각은 마음속에 있는 비진리로부터 나옵니다. 따라서 마음의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만큼 중심에서 믿어지는 참 믿음이 주어집니다. 원수 마귀 사단의 조종을 받지 않고 진리의 영인 성령의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면 마음에 담대함과 응답의 확신이 옵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라고 했으니, 항상 진리의 말씀대로 행하며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 )하는 것이다.
“하나님,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응답해 주실까?’ 하고 ( )한다.
2.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① 어떤 상황에서도 ( )이 평안하다.
② ( )하지 않는다.
③ 부르짖어 (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39~5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예레미야의 부르짖는 기도’
예레미야는 유다 왕 시드기야의 마음에 맞지 않는 예언을 했다 하여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된다. 당시 유다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피폐해져 매우 절망적인 상태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레미야가 순종하여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소망의 말씀을 주신다. 비밀한 말씀 곧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아무리 암담한 현실에 처해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응답을 받는다.
교육목표 :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행함 있는 참 믿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응답을 받으려면 참 믿음으로 구해야
야고보서 1장 6~8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의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응답해 주실까?’ 하고 의심합니다. 이렇게 두 마음을 품으면 아무리 구해도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의심치 말고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참 믿음으로 구하고 있는지, 혹 두 마음을 품어 응답이 더딘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은 믿음으로 구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참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과, 지식적인 믿음 곧 육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서 진정 믿는 믿음입니다. 반면 지식적인 믿음이란 단지 하나님에 대해 듣고 아는 것을 말합니다.
지식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동안 말씀을 들어왔기에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잘 압니다. 그러나 마음 중심으로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세상에 의존합니다. 의심하는 사람, 곧 두 마음을 품는 사람은 바로 이런 지식적인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의 특징
참 믿음으로 구할 때와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할 때는 그 과정과 결과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과연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첫째,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참 믿음으로 구하면 응답될 것을 분명히 믿기 때문에, 설령 원치 않는 상황을 만난다 해도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습니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고 구하는 사람은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시험 환난이 오면 마음이 요동하지요.
예를 들어, 어린 자녀가 온몸에 고열이 나서 위급한 상황이라고 합시다. 이때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할 것입니다. 회개할 것을 찾아 회개하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했는데도 오히려 열이 더 펄펄 끓는다면 마음이 어떨까요? 참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다면 이런 상황이 되어도 마음이 요동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한 경우에는 ‘정말 괜찮아질까? 더 심해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나아가 ‘믿음으로 구했는데 왜 낫지 않을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마음을 품은 것 자체가 참 믿음이 아니었음을 말해 줍니다. ‘나는 이럴 때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둘째, 변개하지 않습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응답받을 때까지 변함없이 구합니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고 구하는 사람은 응답이 더디거나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대부분 변개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제목을 놓고 기도를 작정했다가 중간에 임의로 깨뜨립니다. 즉 기도제목을 바꾸거나 목표치를 낮추기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구하는 것을 즉시 응답받기 바라고 자신의 바람대로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 공의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하여 가장 합당한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응답받는 속도와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도 경우에 따라 다른 방법을 적용하셨습니다. 12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겉옷자락을 만지자 즉시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소경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습니다.
소경의 입장에서는 이런 방법이 자신이 기대한 바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물에 씻으니 눈이 밝아졌지요. 만약 치료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의심하거나 변개하여 돌아갔다면 치료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변개하지 않아야 한다 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끝까지 고집스럽게 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께 응답을 구할 때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기도하여 잘 분별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또 변함없이 구한다 해도 정욕을 위한 목적이라면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구하는 것을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 믿기에 힘쓰고 애써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도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8:38) 하고 큰소리로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쳐 주실 것을 확신했기에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지요. 이처럼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믿음이 얼마나 신실한지가 표현됩니다.
참 믿음으로 구하지 않는 사람은 해결받을 문제가 있거나 축복을 받고자 해도 힘써 부르짖지 않습니다. 응답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더욱 부르짖어야 하는데 오히려 힘이 빠져서 부르짖지 못합니다. 이는 응답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참 믿음을 이루려면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은 내가 원한다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만 합니다. 우리가 참 믿음을 이루는 데에는 일련의 과정이 따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참 믿음을 주실까요?
먼저, 하나님께만 구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해결해야 할 인생의 문제,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만 구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지요. 순간순간 의심이 들고 세상의 유혹이 와도 단호히 물리치고 변함없이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열심히 진리를 행해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말씀을 듣는 중에, 또는 기도 중에 깨달으면 그것을 열심히 행해야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원하는 만큼 신속히 응답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짜가 없으십니다.
육의 부모도 어린 자녀가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품에 안겨오면 아이가 사랑스럽고 마음이 흐뭇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자녀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기뻐하십니다. 공의의 법칙상 당장 응답해 주실 수는 없다고 해도 진리를 행하는 과정을 통해 영혼이 잘되게 하십니다. 바로 육신의 생각을 하나 둘 깨뜨리고 마음에서 비진리를 버릴 수 있게 도우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 곧 비진리의 생각이 있으면 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육신의 생각은 마음속에 있는 비진리로부터 나옵니다. 따라서 마음의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만큼 중심에서 믿어지는 참 믿음이 주어집니다. 원수 마귀 사단의 조종을 받지 않고 진리의 영인 성령의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면 마음에 담대함과 응답의 확신이 옵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라고 했으니, 항상 진리의 말씀대로 행하며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 )하는 것이다.
“하나님,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응답해 주실까?’ 하고 ( )한다.
2.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① 어떤 상황에서도 ( )이 평안하다.
② ( )하지 않는다.
③ 부르짖어 (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39~5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예레미야의 부르짖는 기도’
예레미야는 유다 왕 시드기야의 마음에 맞지 않는 예언을 했다 하여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된다. 당시 유다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피폐해져 매우 절망적인 상태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레미야가 순종하여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소망의 말씀을 주신다. 비밀한 말씀 곧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아무리 암담한 현실에 처해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응답을 받는다.
2020-06-12
제24과어떻게 해야 응답을 받는가 (2)
요한일서 3:18~22
읽을말씀 : 요한일서 3:18~22 | 외울말씀 : 시편 66:18 | 참고 말씀: 마가복음 11:24
교육목표 :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를 잘 깨달아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대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믿고 기도하며 말씀대로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은 축복과 응답으로 함께하십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며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왜 그런 것일까요?
1.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첫째, 죄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였고, 이사야 59장 1~2절에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 죄악이 있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기도를 차단하므로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구할 때라야 응답을 받게 됩니다.
둘째, 형제와 불목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 했고, 마태복음 18장 35절에는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죄지은 형제를 중심에서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도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해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고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부나 부모 형제간에, 혹은 이웃 간에 다툼이나 불화가 있다면 먼저 화해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욕심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기도에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약 4:2~3). 비유를 들어,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자녀가 필요한 것을 말하면 부모는 기쁘게 사 줍니다. 그런데 평소에 행실이 나쁘고 순종하지 않는 자녀가 용돈을 달라 하면 혹여 나쁜 길로 갈까 염려하여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넷째, 우상 숭배자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형태가 없는 신을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십니다(출 20:3~5). 그럼에도 우상을 숭배하여 사망의 길로 간다면 가정, 일터, 사업터 등이 잘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를 위해 기도해도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상 숭배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물질이나 건강 등 육적인 것보다 먼저 그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섯째, 의심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는 하지만 응답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치 않아야 응답받을 수 있다’ 했으니 의심하는 사람은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기쁘게 받으십니다(히 11:6).
성경을 보면 믿음을 내보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고, 비록 이방인이라 해도 큰 믿음을 내보이면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예수님의 제자라 할지라도 믿음이 적으면 책망을 받았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셨으니 의심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나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라 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여섯째, 계명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을 보면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받습니다(요일 3:21~22).
반대로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사람에게 응답하시면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치 않을 뿐 아니라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기도에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일곱째, 믿음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으니 심지 않고는 거둘 수 없습니다. 기도로 심으면 영혼이 잘되고 물질로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봉사로 심으면 건강해지는 등 무엇이나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응답을 받으려면 믿음으로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응답받을 문제나 감사의 조건이 없을 때에도 부지런히 심습니다. 구원해 주신 은혜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넘치도록 축복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더구나 응답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더욱 정성스럽게 심어야 합니다. 혹여 하나님 앞에 심지 않고 응답받기를 바랐다면 이를 회개하고 기쁨과 감사로 심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영적으로는 갓 태어난 아기와 같으므로 하나님께서 쉽게 응답해 주십니다. 아직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하는 때이니 하나님 말씀대로 조금만 행해도 우는 아기에게 젖을 주듯이 금방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차츰 진리를 들어 알고 깨우침으로 갓난아기의 때가 지나면 진리를 깨달은 만큼 행함이 따를 때에 응답하십니다. 영적으로 갓난아기 때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죄를 지으며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응답받을 수 없으며, 이때부터는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어 나가는 만큼 응답을 받게 됩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였으나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큰 시험이 오자 마음의 악이 드러나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뒤에는 철저히 회개하고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므로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혔으나 회개하며 감사 기도를 드리니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명하여 그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습니다(욘 2:1~10). 마찬가지로 우리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으며 믿음으로 부르짖어 간구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시험 환난이 떠납니다. 질병이 사라지고 자녀, 물질, 직장의 문제 등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며 축복이 임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에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줄꼬’ 하며 또다시 주실 축복을 준비하십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주었을 때 감사해 하며 부모를 기쁘게 하면 마음이 흡족하여 다음에 또 주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 중심에서 회개하고 진리 안에 살며,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여 풍성한 응답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 )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2. 형제와 ( )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3. ( )으로 기도하기 때문이다.
4. ( )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이다.
5. ( )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6. ( )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7. ( )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25~3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 의미의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꼭 불상이나 제사상 앞에 절을 해야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기의 욕심을 좇아 부모나 남편, 아내, 자녀, 물질 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바로 이들이 영적 우상이며, 자기 자신을 최고로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된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를 잘 깨달아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대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믿고 기도하며 말씀대로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은 축복과 응답으로 함께하십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며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왜 그런 것일까요?
1.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첫째, 죄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였고, 이사야 59장 1~2절에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 죄악이 있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기도를 차단하므로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구할 때라야 응답을 받게 됩니다.
둘째, 형제와 불목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 했고, 마태복음 18장 35절에는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죄지은 형제를 중심에서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도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해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고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부나 부모 형제간에, 혹은 이웃 간에 다툼이나 불화가 있다면 먼저 화해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욕심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기도에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약 4:2~3). 비유를 들어,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자녀가 필요한 것을 말하면 부모는 기쁘게 사 줍니다. 그런데 평소에 행실이 나쁘고 순종하지 않는 자녀가 용돈을 달라 하면 혹여 나쁜 길로 갈까 염려하여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넷째, 우상 숭배자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형태가 없는 신을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십니다(출 20:3~5). 그럼에도 우상을 숭배하여 사망의 길로 간다면 가정, 일터, 사업터 등이 잘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를 위해 기도해도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상 숭배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물질이나 건강 등 육적인 것보다 먼저 그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섯째, 의심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는 하지만 응답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치 않아야 응답받을 수 있다’ 했으니 의심하는 사람은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기쁘게 받으십니다(히 11:6).
성경을 보면 믿음을 내보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고, 비록 이방인이라 해도 큰 믿음을 내보이면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예수님의 제자라 할지라도 믿음이 적으면 책망을 받았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셨으니 의심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나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라 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여섯째, 계명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을 보면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받습니다(요일 3:21~22).
반대로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사람에게 응답하시면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치 않을 뿐 아니라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기도에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일곱째, 믿음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으니 심지 않고는 거둘 수 없습니다. 기도로 심으면 영혼이 잘되고 물질로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봉사로 심으면 건강해지는 등 무엇이나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응답을 받으려면 믿음으로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응답받을 문제나 감사의 조건이 없을 때에도 부지런히 심습니다. 구원해 주신 은혜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넘치도록 축복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더구나 응답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더욱 정성스럽게 심어야 합니다. 혹여 하나님 앞에 심지 않고 응답받기를 바랐다면 이를 회개하고 기쁨과 감사로 심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영적으로는 갓 태어난 아기와 같으므로 하나님께서 쉽게 응답해 주십니다. 아직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하는 때이니 하나님 말씀대로 조금만 행해도 우는 아기에게 젖을 주듯이 금방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차츰 진리를 들어 알고 깨우침으로 갓난아기의 때가 지나면 진리를 깨달은 만큼 행함이 따를 때에 응답하십니다. 영적으로 갓난아기 때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죄를 지으며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응답받을 수 없으며, 이때부터는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어 나가는 만큼 응답을 받게 됩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였으나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큰 시험이 오자 마음의 악이 드러나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뒤에는 철저히 회개하고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므로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혔으나 회개하며 감사 기도를 드리니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명하여 그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습니다(욘 2:1~10). 마찬가지로 우리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으며 믿음으로 부르짖어 간구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시험 환난이 떠납니다. 질병이 사라지고 자녀, 물질, 직장의 문제 등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며 축복이 임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에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줄꼬’ 하며 또다시 주실 축복을 준비하십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주었을 때 감사해 하며 부모를 기쁘게 하면 마음이 흡족하여 다음에 또 주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 중심에서 회개하고 진리 안에 살며,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여 풍성한 응답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 )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2. 형제와 ( )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3. ( )으로 기도하기 때문이다.
4. ( )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이다.
5. ( )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6. ( )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7. ( )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25~3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 의미의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꼭 불상이나 제사상 앞에 절을 해야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기의 욕심을 좇아 부모나 남편, 아내, 자녀, 물질 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바로 이들이 영적 우상이며, 자기 자신을 최고로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된다.
2020-06-05
제23과어떻게 해야 응답을 받는가 (1)
요한일서 3:18~22
읽을말씀 : 요한일서 3:18~22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5:7 l 참고 말씀: 요한복음 14:13
교육목표 :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전히 믿음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도 아들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거나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 뜻대로 무엇을 구할 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자녀들의 기도와 간구에 응답하기를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신속한 응답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아버지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죄악에 빠져 지옥으로 달음박질해 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셨지요.
요한일서 4장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자녀는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것은 우리를 향한 끝이 없는 사랑의 극치였습니다. 예수님 역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생명을 주시는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아끼지 않는 생명 다한 사랑을 주셨지요. 이처럼 크신 사랑을 우리는 받았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어둠의 일들을 모두 벗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혹여 어머니가 젖먹이를 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잊지 않으시며 어떤 부모보다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육의 부모는 자녀에게 어려운 문제나 고민이 있으면 함께 고민하며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자 힘씁니다. 또한 자녀가 질병에 걸렸다면 아무리 많은 돈이 든다 해도 아끼지 않고 고쳐 주고자 하지요. 하물며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영혼들이 온갖 질병과 재앙으로 고통당하며 혹은 원수 마귀 사단의 조롱거리가 될 때 안타까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므로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나 하실 수 있으며 또한 해 주기를 기뻐하시지요.
마태복음 7장 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질병이나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받을 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당하는 것 이상으로 아픔과 슬픔을 겪으시며 한시라도 빨리 응답해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영위하며 성결을 이루어 모든 기도와 간구에 신속하게 응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 믿음으로 구하여 응답받은 가나안 여인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큰 기쁨 중의 하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는 사람은 소원을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합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곧 믿음과 진리 가운데 구하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에 살면서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응답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는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은 장면이 나옵니다. 흉악한 귀신 들린 딸로 인해 고통받던 여인이 즉시 응답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가나안 여인은 그분을 만나 뵙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그 지방을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딸을 치료해 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지 않으셨습니다. 여인은 절하며 다시 “주여 저를 도우소서” 하고 간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며 거절하십니다. 여인의 믿음을 시험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말에 몹시 낙심하거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낙심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겸비한 마음으로 믿음을 내보인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고백을 하니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자 즉시 딸에게서 귀신이 나가 온전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응답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끝까지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우리의 간구와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셨고, 요한복음 14장 13절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와 간구에 응답받으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며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계산적이고 인색한 마음을 버려야 하지요. 계산적이고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물질적인 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모든 면에서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산적인 면이 강한 사람들은 하나를 받았으면 하나를 주고, 하나를 주었으면 하나를 받으려 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만한 보답이 오지 않으면 서운해하지요.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만큼 심고 노력했으니 하나님도 이러이러한 은혜를 주셔야 한다고 기대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은혜가 임한다고 느끼지 못하면 마음이 상하고 곤고해집니다. 물론 받은바 은혜는 마땅히 갚아야 하며 하나님 앞에 무엇을 심을 때도 상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 갚음의 마음이나 상 주심을 바라보는 믿음과는 달리 준 만큼 받지 못할 것 같으면 줄 수 없는 계산적인 마음은 믿음이 아니지요.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범죄하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들이라 해도 회개하기만 하면 무조건 용서하고 또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도 사랑하는 제자들이나 구원받을 사람들만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해서도 죽으셨으며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고 중보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감히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벅차며 우리 모든 소유와 생명까지도 아깝지 않은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내가 이만큼 충성했는데 왜 나한테는 이만큼 은혜가 입혀지지 않는가?’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과 감사 속에 ‘어찌하면 더 드릴까?’ 하며, 받은 은혜를 항상 기억함으로 감사와 찬송이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넉넉하고 풍성한 사랑으로 다 드릴 수 있는 마음이 되면, 그만큼 영적인 믿음을 얻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흉악한 귀신 들린 딸로 인해 고통받던 여인이 즉시 응답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 )대로 구했기 때문이다.
2. 기도와 간구에 응답받으려면 하나님의 ( )을 마음 깊이 느끼며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 )이고 인색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1~2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구원의 길이 되신 주님’
예수님께서 혹독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신 것은 오로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나무에 달려 피를 흘려야만 죄가 속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도록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도 이런 고난의 길을 기쁨으로 가셨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다.
교육목표 : 독생자까지도 아끼지 않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온전히 믿음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도 아들이 떡을 달라는데 돌을 주거나 생선을 달라는데 뱀을 주지는 않습니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 뜻대로 무엇을 구할 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습니까? 오늘은 자녀들의 기도와 간구에 응답하기를 기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과 신속한 응답의 역사를 체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
아버지 하나님은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죄악에 빠져 지옥으로 달음박질해 가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셨지요.
요한일서 4장 9절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죄인들을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신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부모에게 자녀는 자신의 생명보다 소중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내어주신 것은 우리를 향한 끝이 없는 사랑의 극치였습니다. 예수님 역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생명을 주시는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도 아끼지 않는 생명 다한 사랑을 주셨지요. 이처럼 크신 사랑을 우리는 받았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어둠의 일들을 모두 벗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셨습니다. 혹여 어머니가 젖먹이를 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을 잊지 않으시며 어떤 부모보다도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육의 부모는 자녀에게 어려운 문제나 고민이 있으면 함께 고민하며 할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해결해 주고자 힘씁니다. 또한 자녀가 질병에 걸렸다면 아무리 많은 돈이 든다 해도 아끼지 않고 고쳐 주고자 하지요. 하물며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어떠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영혼들이 온갖 질병과 재앙으로 고통당하며 혹은 원수 마귀 사단의 조롱거리가 될 때 안타까워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므로 자녀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나 하실 수 있으며 또한 해 주기를 기뻐하시지요.
마태복음 7장 11절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질병이나 여러 가지 문제로 고통받을 때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당하는 것 이상으로 아픔과 슬픔을 겪으시며 한시라도 빨리 응답해 주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더욱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영위하며 성결을 이루어 모든 기도와 간구에 신속하게 응답받으시기를 바랍니다.
2. 믿음으로 구하여 응답받은 가나안 여인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큰 기쁨 중의 하나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셔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믿는 사람은 소원을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합니다.
요한일서 5장 14절에 보면 우리가 하나님 뜻대로, 곧 믿음과 진리 가운데 구하면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음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세상에 살면서 담대할 수 있는 것은 이처럼 하나님께서 응답을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5장에는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 앞에 나아와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은 장면이 나옵니다. 흉악한 귀신 들린 딸로 인해 고통받던 여인이 즉시 응답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은 가나안 여인은 그분을 만나 뵙기를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그러던 중 마침내 그 지방을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예수님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딸을 치료해 주실 것을 구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한 말씀도 대답지 않으셨습니다. 여인은 절하며 다시 “주여 저를 도우소서” 하고 간청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며 거절하십니다. 여인의 믿음을 시험한 것입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말에 몹시 낙심하거나 자존심이 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인은 낙심하지 않고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겸비한 마음으로 믿음을 내보인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의 고백을 하니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자 즉시 딸에게서 귀신이 나가 온전케 되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응답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끝까지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3.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하나님께서는 성경 곳곳에 우리의 간구와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절에는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하셨고, 요한복음 14장 13절에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와 간구에 응답받으려면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느끼며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계산적이고 인색한 마음을 버려야 하지요. 계산적이고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물질적인 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는 모든 면에서 인색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계산적인 면이 강한 사람들은 하나를 받았으면 하나를 주고, 하나를 주었으면 하나를 받으려 합니다. 상대가 나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보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만한 보답이 오지 않으면 서운해하지요.
하나님 앞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이만큼 심고 노력했으니 하나님도 이러이러한 은혜를 주셔야 한다고 기대하며, 자신의 생각대로 은혜가 임한다고 느끼지 못하면 마음이 상하고 곤고해집니다. 물론 받은바 은혜는 마땅히 갚아야 하며 하나님 앞에 무엇을 심을 때도 상 주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은혜 갚음의 마음이나 상 주심을 바라보는 믿음과는 달리 준 만큼 받지 못할 것 같으면 줄 수 없는 계산적인 마음은 믿음이 아니지요.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범죄하여 마음을 아프게 하는 자녀들이라 해도 회개하기만 하면 무조건 용서하고 또 용서해 주십니다. 예수님도 사랑하는 제자들이나 구원받을 사람들만 위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을 위해서도 죽으셨으며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하고 중보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감히 그 깊이를 알 수 없고 크기를 헤아릴 수 없는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니 그 사랑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벅차며 우리 모든 소유와 생명까지도 아깝지 않은 것이지요.
이런 사람은 ‘내가 이만큼 충성했는데 왜 나한테는 이만큼 은혜가 입혀지지 않는가?’ 하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동과 감사 속에 ‘어찌하면 더 드릴까?’ 하며, 받은 은혜를 항상 기억함으로 감사와 찬송이 그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넉넉하고 풍성한 사랑으로 다 드릴 수 있는 마음이 되면, 그만큼 영적인 믿음을 얻고 하나님의 권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흉악한 귀신 들린 딸로 인해 고통받던 여인이 즉시 응답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 )대로 구했기 때문이다.
2. 기도와 간구에 응답받으려면 하나님의 ( )을 마음 깊이 느끼며 진실하게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하나님 앞에서 ( )이고 인색한 마음을 버려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1~2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구원의 길이 되신 주님’
예수님께서 혹독한 십자가 처형을 받으신 것은 오로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함이었다. 나무에 달려 피를 흘려야만 죄가 속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을 나무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리도록 허락하실 수밖에 없었다. 예수님도 이런 고난의 길을 기쁨으로 가셨기에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렸다.
2020-05-29
제22과성령
요한복음 14:26
읽을말씀 : 요한복음 14:2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26 l 참고 말씀: 요한복음 14:16~18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영의 세계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성령을 항상 의지함으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신 이유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령강림주일은 바로 이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함께하시며 성령을 보내 주겠다 약속하셨습니다(요 14:16~17).
또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약속하셨지요(요 14:18). 이는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영접하신다는 의미이며, 주님과 하나이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이 약속은 예수님과 하나이신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이 고백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그를 잊지 않으셨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아담과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이끌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다 때가 되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셔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헐어 주셨습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회복하여 인생들과 다시 함께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고 하늘로 돌아가시자, 이번에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가는 길은 열어 주셨지만, 우리가 스스로 그 길을 끝까지 잘 가기에는 역부족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도우실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 사랑을 다시 한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렇듯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그 자체’입니다.
2. 성령이 하시는 일
1)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비진리이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해야 성결을 이룰 수 있고, 죽도록 충성하여 새 예루살렘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기 때문에 악에 물이 들기 쉽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둠의 세상에 살아가면서 육을 벗는 것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을 끊고 육을 벗어 버리기 원해도 스스로는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면 능히 세상을 끊고 육을 벗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을 이기도록 어떻게 도우실까요?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 것을 취하면 마음에 경종을 울려 주십니다. 먼저, 말씀으로 책망하시며 썩어 없어질 육의 것, 사망에 이르는 죄 등을 분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마음 안에서 탄식하심으로 곤고함을 주시지요. 그래서 성도들은 세상을 취하다가도 성령의 탄식을 느끼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자체를 뿌리 뽑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세상 것을 어찌하든 버리기 위해 기도하면, 더욱 간절히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의 능력을 주십니다. 불같이 기도하면 성령의 충만함이 입혀져서 세상 것을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자 노력하는 자녀들을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끊어라’, ‘버려라’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 살 때의 기쁨을 맛보게 하심으로써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하십니다.
예를 들어, 세상 오락을 끊고자 노력하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물질, 건강의 축복 등 눈에 보이는 축복은 물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십니다. 어떤 유혹이 올 때 진한 사랑의 눈빛으로 항상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 하나님을 떠올리면, 성령의 역사 가운데 ‘내가 이렇게 세상을 취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실 텐데, 마음을 지켜야지.’ 하며 물리칠 힘이 오지요. 이처럼 자상하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세상을 이기며 행복하게 살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저 멀리 천국 보좌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항상 내 곁에 계시는 나의 아버지, 우리의 영혼과 육을 지으신 영과 육의 아버지이십니다(고후 6:18). 다만 아담의 범죄 이후 인생들이 원수 마귀 사단의 자녀가 되면서 하나님과 멀어짐으로 이것을 실감할 수 없었던 것뿐입니다. 이러한 사실 곧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깨우쳐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롬 8:14~16). 그런데 그동안 원수 마귀 사단의 자녀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았으니 처음에는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어색합니다. 하지만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하던 구습을 벗고 하나님을 닮은 만큼, 어색함이 사라지고 친밀해집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자녀 사이가 친밀해지도록 이끄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하셨다면, 성령님은 그 관계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십니다.
쉽게 말해, 성령님은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한 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끊임없이 깨우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통달하시므로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함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깨달아 행하는 만큼, 하나님을 닮은 자녀로 변화되지요. 그러면 내 안에서 늘 나와 함께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영의 세계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눈에 보이는 이 육의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알려 주십니다. 기사와 표적, 희한한 능, 기이한 일 등은 모두 성령의 권능으로 나타나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육의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이와 같은 일들을 행하심으로, 성령님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천사들과 믿음의 선진들이 거하는 영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지요. 이처럼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 자체이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 자체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사도들도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표적을 함께 나타내셨습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천국의 존재를 믿을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육의 세상에서 육을 입고 사는 사람들도 영의 세계를 본 듯, 만진 듯 느낄 수 있지요.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더욱 놀랍게 펼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 13:13) 하셨듯이, 복음을 들어도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가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는 옛날보다 이러한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영혼들이라도 영의 눈을 떠서, 영의 세계를 보고 믿게 하시려고 성령의 역사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가 확실히 믿어진다면 천국을 소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 제단에 “영의 공간”을 느낄 수 있는 성령의 역사를 무수히 보여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영의 세계를 확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의 세계에는 차원이 다른 여러 공간이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의 감동 속에 주신 말씀을 통해, 천국은 단일한 공간이 아니라 여러 처소로 구분되었다는 것도 알게 하셨습니다. 이는 자녀들이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여 더 큰 영광과 권세를 누리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여 세상의 비진리를 온전히 버리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을 부지런히 침노해 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어떠한 일을 하실까요?
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 )을 부어 주신다.
② 하나님의 ( )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신다.
③ ( )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2.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을 이기도록 어떻게 도우실까요?
● 금주 과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충만히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보혜사 성령을 더욱 사랑하고 의지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보혜사 성령’
보혜사(保惠師)란 성도를 보호하고 돕는 분을 지칭한다.
성령은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맺은 복음의 열매들 곧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처음으로 임했다. 약 120명쯤 되는 성도들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보혜사 성령이 오셨다.
성령이 임한 후 성도들은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고 초대교회에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복음을 활발하게 전했기 때문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영의 세계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신 성령을 항상 의지함으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하나님께서 성령을 보내신 이유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성도들에게 성령이 임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령강림주일은 바로 이 사건을 기념하는 주일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함께하시며 성령을 보내 주겠다 약속하셨습니다(요 14:16~17).
또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약속하셨지요(요 14:18). 이는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를 천국으로 영접하신다는 의미이며, 주님과 하나이신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와 함께하시겠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나아가 이 약속은 예수님과 하나이신 하나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이 고백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범죄하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그를 잊지 않으셨고, 이런저런 방법으로 아담과 모든 인생들이 하나님의 뜻대로 살도록 이끌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다 때가 되자,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셔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을 헐어 주셨습니다.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회복하여 인생들과 다시 함께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시고 하늘로 돌아가시자, 이번에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가는 길은 열어 주셨지만, 우리가 스스로 그 길을 끝까지 잘 가기에는 역부족임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보내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표현하셨던 것처럼, 우리를 도우실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 사랑을 다시 한번 보여 주신 것입니다. 이렇듯 성령은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 그 자체’입니다.
2. 성령이 하시는 일
1)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부어 주십니다
요한일서 2장 15~16절에 보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했습니다.
세상의 것들은 비진리이기 때문에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려야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 하나님을 사랑해야 성결을 이룰 수 있고, 죽도록 충성하여 새 예루살렘에 갈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는 것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에 살기 때문에 악에 물이 들기 쉽고, 유혹에 빠지기 쉬운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어둠의 세상에 살아가면서 육을 벗는 것은 쉽지만은 않습니다. 아무리 세상을 끊고 육을 벗어 버리기 원해도 스스로는 할 수 없지요. 하지만 성령님의 도움을 받으면 능히 세상을 끊고 육을 벗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을 이기도록 어떻게 도우실까요?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 것을 취하면 마음에 경종을 울려 주십니다. 먼저, 말씀으로 책망하시며 썩어 없어질 육의 것, 사망에 이르는 죄 등을 분별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자녀들의 마음 안에서 탄식하심으로 곤고함을 주시지요. 그래서 성도들은 세상을 취하다가도 성령의 탄식을 느끼고 돌이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님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 자체를 뿌리 뽑을 수 있도록 힘을 주십니다. 세상 것을 어찌하든 버리기 위해 기도하면, 더욱 간절히 기도할 수 있도록 기도의 능력을 주십니다. 불같이 기도하면 성령의 충만함이 입혀져서 세상 것을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성령님은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고자 노력하는 자녀들을 위로해 주시고 격려해 주십니다. 우리에게 ‘끊어라’, ‘버려라’ 가르쳐 주실 뿐만 아니라, 성령 안에 살 때의 기쁨을 맛보게 하심으로써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하십니다.
예를 들어, 세상 오락을 끊고자 노력하면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물질, 건강의 축복 등 눈에 보이는 축복은 물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주십니다. 어떤 유혹이 올 때 진한 사랑의 눈빛으로 항상 나를 바라보는 아버지 하나님을 떠올리면, 성령의 역사 가운데 ‘내가 이렇게 세상을 취하면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실 텐데, 마음을 지켜야지.’ 하며 물리칠 힘이 오지요. 이처럼 자상하신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세상을 이기며 행복하게 살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저 멀리 천국 보좌에만 계신 분이 아니라 항상 내 곁에 계시는 나의 아버지, 우리의 영혼과 육을 지으신 영과 육의 아버지이십니다(고후 6:18). 다만 아담의 범죄 이후 인생들이 원수 마귀 사단의 자녀가 되면서 하나님과 멀어짐으로 이것을 실감할 수 없었던 것뿐입니다. 이러한 사실 곧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심을 깨우쳐 주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됩니다(롬 8:14~16). 그런데 그동안 원수 마귀 사단의 자녀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았으니 처음에는 아버지라 부르는 것이 어색합니다. 하지만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하던 구습을 벗고 하나님을 닮은 만큼, 어색함이 사라지고 친밀해집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자녀 사이가 친밀해지도록 이끄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다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하셨다면, 성령님은 그 관계를 회복시키는 역할을 하십니다.
쉽게 말해, 성령님은 성도들이 주님을 영접한 후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말씀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의 마음에 대해 끊임없이 깨우쳐 주십니다. 하나님의 깊은 마음까지 통달하시므로 그 누구보다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아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감동함으로 기록된 성경 말씀을 깨달아 행하는 만큼, 하나님을 닮은 자녀로 변화되지요. 그러면 내 안에서 늘 나와 함께하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느낄 수 있습니다.
3) 영의 세계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역사하십니다
성령님은 눈에 보이는 이 육의 세계가 전부가 아님을 알려 주십니다. 기사와 표적, 희한한 능, 기이한 일 등은 모두 성령의 권능으로 나타나는 일들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육의 공간에서는 불가능한 이와 같은 일들을 행하심으로, 성령님은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천사들과 믿음의 선진들이 거하는 영의 공간이 있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지요. 이처럼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 자체이면서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 자체입니다.
예수님도, 제자들과 사도들도 복음을 전할 때 성령의 능력으로 표적을 함께 나타내셨습니다. 이를 보고 사람들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과 천국의 존재를 믿을 수 있었습니다. 성령의 역사를 통해, 육의 세상에서 육을 입고 사는 사람들도 영의 세계를 본 듯, 만진 듯 느낄 수 있지요.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더욱 놀랍게 펼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 “저희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마 13:13) 하셨듯이, 복음을 들어도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지 못하는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가 있습니다.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는 옛날보다 이러한 영적인 소경과 귀머거리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영혼들이라도 영의 눈을 떠서, 영의 세계를 보고 믿게 하시려고 성령의 역사를 보이시는 것입니다. 영의 세계가 확실히 믿어진다면 천국을 소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 제단에 “영의 공간”을 느낄 수 있는 성령의 역사를 무수히 보여 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영의 세계를 확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영의 세계에는 차원이 다른 여러 공간이 있음을 알게 하셨습니다. 또한 성령의 감동 속에 주신 말씀을 통해, 천국은 단일한 공간이 아니라 여러 처소로 구분되었다는 것도 알게 하셨습니다. 이는 자녀들이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하여 더 큰 영광과 권세를 누리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크신 사랑입니다.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기억하여 세상의 비진리를 온전히 버리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을 부지런히 침노해 가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령은 우리에게 오셔서 어떠한 일을 하실까요?
① 세상을 이길 수 있는 ( )을 부어 주신다.
② 하나님의 ( )을 깨달을 수 있도록 이끄신다.
③ ( )를 밝히 알 수 있도록 역사하신다.
2. 성령님은 우리가 세상을 이기도록 어떻게 도우실까요?
● 금주 과제
이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충만히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이끄시는 보혜사 성령을 더욱 사랑하고 의지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보혜사 성령’
보혜사(保惠師)란 성도를 보호하고 돕는 분을 지칭한다.
성령은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 맺은 복음의 열매들 곧 제자들과 성도들에게 처음으로 임했다. 약 120명쯤 되는 성도들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할 때 보혜사 성령이 오셨다.
성령이 임한 후 성도들은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었고 초대교회에 폭발적인 부흥이 일어났다.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사도들과 성도들이 복음을 활발하게 전했기 때문이다.
2020-05-22
제21과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2)
히브리서 10:22
읽을말씀 : 히브리서 10:22 | 외울말씀 : 마가복음 16:17~18 l 참고 말씀: 야고보서 4:11~12
교육목표 : 하나님 말씀으로 양심의 악을 깨달아 벗어 버리고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우선 자신이 얼마나 계명들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을 뿌리째 뽑아 버렸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나무의 큰 뿌리를 뽑으면 잔뿌리까지 뽑히듯이, 9가지 대표적인 죄성을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이 뽑혀 나오지요.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참마음을 이루기 위해 버려야 할 9가지 대표적인 죄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④ 거짓과 속이는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공을 드러내고자 없는 일을 있는 것처럼 보고하기도 하고 실적을 보태어 보고하기도 합니다. 또는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줄이거나 없는 것처럼 보고하지요. 이는 거짓과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꾸중을 듣더라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더구나 교회와 목자를 속인다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당장은 속아 넘어갔다 해도 결국 시험 환난으로 오고, 나중에는 더 큰 일도 속이게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속이려 하고 거짓말하거나 숨기려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합니다.
⑤ 판단입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지식 또는 자기 보기에 선과 의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사람의 겉으로 보이는 행위는 같아도 각 사람마다 중심은 다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므로 판단 정죄는 교만임을 알아야 합니다(약 4:11~12). 더욱이 판단하면 대부분 수군거림과 헤아림, 비방과 정죄가 따릅니다. 상대 앞에서는 잘 대해 준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에 대해 안 좋은 말을 전하거나 비방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중적인 모습이지요.
특히 ‘분별한다’는 명목으로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안 좋은 말을 퍼뜨리는 일도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거나 남의 이야기나 소문만 듣고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큰 악의 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⑥ 변개함입니다.
한 번 정한 일은 변개함 없이 지키는 것이 진리입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더욱이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꾸는 사람이라면, 변개함의 속성이 많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도 마음에 정하고 입으로 낸 것은 그대로 지키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⑦ 간음입니다.
간음은 하나님께서 너무나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요즘은 선정적인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정숙하고 깨끗한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정욕을 자극하면서 아름답다고 여기는 세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환경에 접할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감찰하며 순간 스치는 생각이나 눈빛 하나에 담긴 마음도 아십니다. 마음과 행실에 부끄러운 모습이 없어야 하지요.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하셨으니 이성을 대할 때 깨끗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⑧ 욕심, 사심, 탐심입니다.
여기에는 물질, 명예, 권세에 대한 욕심도 포함됩니다. 자존심, 인정받으려는 마음, 자기를 고집하고 내 것과 내 가족을 더 중요시하는 사사로운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심과 욕심으로 인해 많은 악이 나옵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속이고, 원하는 대로 채우지 못하면 미움, 시기, 살인, 분냄이 나오지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했습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취하려는 마음이나 남의 것이 내 것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은 없는지, 하나님 나라보다 내 유익을 앞세우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⑨ 배신입니다.
배신은 변개함이나 간사한 마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교만 등 여러 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배신’이라는 악을 낳게 됩니다.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이를 저버리고 배신한다면 더 큰 악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을 배신한 사람과 반대로 하나님의 사람과 끝까지 함께한 사람이 각각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 잘 나옵니다. 한 예로, 다윗이 연단받는 중에도 그와 끝까지 함께한 사람이 받은 축복과, 그를 배신하고 떠난 사람의 비참한 결말이 잘 기록되어 있지요. 이러한 성경적인 교훈이 아니라도 배신은 너무나 추한 행위임을 알아 근본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양심의 악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했습니다. 자신의 악을 발견해서 버리는 만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둘째로, 몸을 맑은 물로 씻어야 합니다
몸을 맑은 물로 씻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물은 하나님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버리라’ 하시면 버리고 ‘하지 말라’ 하시면 하지 않으며, ‘지키라’ 하시면 지키고 ‘하라’ 하시면 하는 것이 바로 맑은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 씻는 것입니다.
몸을 맑은 물로 씻기 위해서는 이런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미움, 음욕, 탐심, 거짓, 시기, 혈기 등 자신에게 있는 악을 깨달아 부지런히 버려야 합니다. 다투고 혈기 내던 사람은 혈기를 버리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사심과 욕심 가운데 높아지고 섬김 받으려는 사람은 낮아지고 섬기며, 미움과 시기 질투가 있는 사람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그런데 죄를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것은 사람의 힘과 의지로만 되는 일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말씀했습니다(딤전 4:5). 따라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자 힘쓰고 애쓰며, 동시에 불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진리를 좇아 나갈 때 마음에 있는 죄성이 버려지고 그 행위가 거룩해집니다.
양파를 벗기고 벗겨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지만 계속 벗기면 결국 다 벗겨집니다. 마찬가지로 계속 악을 버리고 진리를 행해 나가면 결국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온전케 하시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불같은 기도의 향을 올리며 말씀대로 행해 나가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했을 때 어떠한 축복이 임할까요?
능치 못할 일이 없고 무엇이나 응답받습니다.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고 가정, 일터, 사업터는 물론 주변에서 함께하는 사람까지 복을 받습니다(신 28:2~6). 따르는 표적으로 성경이 참임을 증거하며 많은 영혼을 구원하게 됩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뱀을 집으며 각색 질병을 치료하는 등 표적을 통해 하나님 말씀이 참임을 확증하여 무수한 사람을 구원하게 되지요(막 16:17~20).
뿐만 아니라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합니다(요일 5:18). 질병이 틈타지 않으며, 영적인 권세가 있기에 어떤 어둠의 세력도 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만한 죄악이 없으니 시험이나 환난을 가져다줄 수 없지요.
성령의 주관을 정확히 받으며 그에 온전히 순종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므로(고전 2:10)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만사가 형통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인정과 사랑을 받는 위치에 오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귀한 축복은 천국의 가장 영화로운 처소인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집에서 수많은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며 영화로운 삶을 누립니다. 항상 각종 연회가 열리며 새롭고 행복한 일로 가득한 그곳에서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영원히 살아가지요.
그러므로 신속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받으며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참마음을 이루기 위해 버려야 할 대표적인 죄성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① 혈기 ② 감정 ③ 미움, 시기, 질투 ④ ( )
⑤ ( ) ⑥ 변개함 ⑦ 간음 ⑧ 욕심, 사심, 탐심 ⑨ 배신
2.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먼저 ( )의 악을 깨달아 철저히 버려야 한다. 다음으로는 몸을 ( )로 씻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1~2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 ‘뱀을 집는다’는 의미
뱀은 영적인 의미로 ‘원수 마귀 사단’을 의미한다.
믿는 자가 ‘뱀을 집는다’는 것은 교회 안에 발생하는 ‘사단의 회’를 영적으로 훼파하는 것을 말한다(계 2:9).
예를 들어, 두 사람 이상이 모여 불평, 불만의 말을 내고 판단, 정죄, 이간질로 문제를 일으키는 등, 교회 안에서 분리하여 당을 짓는 것이 사단의 회다. 교회 안에 이러한 사단의 회가 생기면 사랑이 식어 버리며 하나님의 역사가 끊어진다. 5단계의 믿음에 이른 사람은 이러한 사단의 회를 꿰뚫어 보고 말씀의 권세로 깨뜨릴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 말씀으로 양심의 악을 깨달아 벗어 버리고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의 주인공이 되게 한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우선 자신이 얼마나 계명들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을 뿌리째 뽑아 버렸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나무의 큰 뿌리를 뽑으면 잔뿌리까지 뽑히듯이, 9가지 대표적인 죄성을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이 뽑혀 나오지요.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참마음을 이루기 위해 버려야 할 9가지 대표적인 죄성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④ 거짓과 속이는 마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공을 드러내고자 없는 일을 있는 것처럼 보고하기도 하고 실적을 보태어 보고하기도 합니다. 또는 자신에게 불리한 일은 줄이거나 없는 것처럼 보고하지요. 이는 거짓과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꾸중을 듣더라도 솔직하게 고백하는 것이 진실입니다. 더구나 교회와 목자를 속인다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당장은 속아 넘어갔다 해도 결국 시험 환난으로 오고, 나중에는 더 큰 일도 속이게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일도 속이려 하고 거짓말하거나 숨기려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합니다.
⑤ 판단입니다.
사람은 자기 생각이나 지식 또는 자기 보기에 선과 의를 기준으로 판단합니다. 사람의 겉으로 보이는 행위는 같아도 각 사람마다 중심은 다릅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므로 판단 정죄는 교만임을 알아야 합니다(약 4:11~12). 더욱이 판단하면 대부분 수군거림과 헤아림, 비방과 정죄가 따릅니다. 상대 앞에서는 잘 대해 준다 해도 다른 사람에게는 그에 대해 안 좋은 말을 전하거나 비방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중적인 모습이지요.
특히 ‘분별한다’는 명목으로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안 좋은 말을 퍼뜨리는 일도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의 외모를 보고 판단하거나 남의 이야기나 소문만 듣고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 안에 큰 악의 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⑥ 변개함입니다.
한 번 정한 일은 변개함 없이 지키는 것이 진리입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더욱이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꾸는 사람이라면, 변개함의 속성이 많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무리 작은 일도 마음에 정하고 입으로 낸 것은 그대로 지키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⑦ 간음입니다.
간음은 하나님께서 너무나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요즘은 선정적인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정숙하고 깨끗한 삶을 추구하기보다는 정욕을 자극하면서 아름답다고 여기는 세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런 환경에 접할 때 어떤 마음이 듭니까?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감찰하며 순간 스치는 생각이나 눈빛 하나에 담긴 마음도 아십니다. 마음과 행실에 부끄러운 모습이 없어야 하지요.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하셨으니 이성을 대할 때 깨끗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⑧ 욕심, 사심, 탐심입니다.
여기에는 물질, 명예, 권세에 대한 욕심도 포함됩니다. 자존심, 인정받으려는 마음, 자기를 고집하고 내 것과 내 가족을 더 중요시하는 사사로운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심과 욕심으로 인해 많은 악이 나옵니다. 욕심을 채우기 위해 남을 속이고, 원하는 대로 채우지 못하면 미움, 시기, 살인, 분냄이 나오지요.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했습니다.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취하려는 마음이나 남의 것이 내 것이 되면 좋겠다는 마음은 없는지, 하나님 나라보다 내 유익을 앞세우지는 않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⑨ 배신입니다.
배신은 변개함이나 간사한 마음과 관련이 있습니다. 또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교만 등 여러 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배신’이라는 악을 낳게 됩니다.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이를 저버리고 배신한다면 더 큰 악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을 배신한 사람과 반대로 하나님의 사람과 끝까지 함께한 사람이 각각 어떤 결말에 이르는지 잘 나옵니다. 한 예로, 다윗이 연단받는 중에도 그와 끝까지 함께한 사람이 받은 축복과, 그를 배신하고 떠난 사람의 비참한 결말이 잘 기록되어 있지요. 이러한 성경적인 교훈이 아니라도 배신은 너무나 추한 행위임을 알아 근본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야 합니다.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양심의 악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했습니다. 자신의 악을 발견해서 버리는 만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둘째로, 몸을 맑은 물로 씻어야 합니다
몸을 맑은 물로 씻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물은 하나님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버리라’ 하시면 버리고 ‘하지 말라’ 하시면 하지 않으며, ‘지키라’ 하시면 지키고 ‘하라’ 하시면 하는 것이 바로 맑은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 씻는 것입니다.
몸을 맑은 물로 씻기 위해서는 이런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미움, 음욕, 탐심, 거짓, 시기, 혈기 등 자신에게 있는 악을 깨달아 부지런히 버려야 합니다. 다투고 혈기 내던 사람은 혈기를 버리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해야 합니다. 사심과 욕심 가운데 높아지고 섬김 받으려는 사람은 낮아지고 섬기며, 미움과 시기 질투가 있는 사람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하지요.
그런데 죄를 버리고 진리로 변화되는 것은 사람의 힘과 의지로만 되는 일이 아니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말씀했습니다(딤전 4:5). 따라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고자 힘쓰고 애쓰며, 동시에 불같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포기하지 않고 계속하여 진리를 좇아 나갈 때 마음에 있는 죄성이 버려지고 그 행위가 거룩해집니다.
양파를 벗기고 벗겨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지만 계속 벗기면 결국 다 벗겨집니다. 마찬가지로 계속 악을 버리고 진리를 행해 나가면 결국은 변화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온전케 하시리라는 소망을 가지고 불같은 기도의 향을 올리며 말씀대로 행해 나가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했을 때 어떠한 축복이 임할까요?
능치 못할 일이 없고 무엇이나 응답받습니다.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고 가정, 일터, 사업터는 물론 주변에서 함께하는 사람까지 복을 받습니다(신 28:2~6). 따르는 표적으로 성경이 참임을 증거하며 많은 영혼을 구원하게 됩니다. 귀신을 쫓아내고 뱀을 집으며 각색 질병을 치료하는 등 표적을 통해 하나님 말씀이 참임을 확증하여 무수한 사람을 구원하게 되지요(막 16:17~20).
뿐만 아니라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합니다(요일 5:18). 질병이 틈타지 않으며, 영적인 권세가 있기에 어떤 어둠의 세력도 해를 가할 수 없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만한 죄악이 없으니 시험이나 환난을 가져다줄 수 없지요.
성령의 주관을 정확히 받으며 그에 온전히 순종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므로(고전 2:10)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만사가 형통합니다. 어디를 가든지 인정과 사랑을 받는 위치에 오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귀한 축복은 천국의 가장 영화로운 처소인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집에서 수많은 천사들의 시중을 받으며 영화로운 삶을 누립니다. 항상 각종 연회가 열리며 새롭고 행복한 일로 가득한 그곳에서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으며 영원히 살아가지요.
그러므로 신속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넘치게 받으며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참마음을 이루기 위해 버려야 할 대표적인 죄성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① 혈기 ② 감정 ③ 미움, 시기, 질투 ④ ( )
⑤ ( ) ⑥ 변개함 ⑦ 간음 ⑧ 욕심, 사심, 탐심 ⑨ 배신
2.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먼저 ( )의 악을 깨달아 철저히 버려야 한다. 다음으로는 몸을 ( )로 씻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1~2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 - ‘뱀을 집는다’는 의미
뱀은 영적인 의미로 ‘원수 마귀 사단’을 의미한다.
믿는 자가 ‘뱀을 집는다’는 것은 교회 안에 발생하는 ‘사단의 회’를 영적으로 훼파하는 것을 말한다(계 2:9).
예를 들어, 두 사람 이상이 모여 불평, 불만의 말을 내고 판단, 정죄, 이간질로 문제를 일으키는 등, 교회 안에서 분리하여 당을 짓는 것이 사단의 회다. 교회 안에 이러한 사단의 회가 생기면 사랑이 식어 버리며 하나님의 역사가 끊어진다. 5단계의 믿음에 이른 사람은 이러한 사단의 회를 꿰뚫어 보고 말씀의 권세로 깨뜨릴 수 있다.
2020-05-15
제20과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1)
히브리서 10:22
읽을말씀 : 히브리서 10:22 | 외울말씀 : 요한일서 3:15 l 참고 말씀: 마태복음 5:39~41
교육목표 : 아홉 가지의 대표적인 죄성을 벗어 버림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마음 곧 거짓이 없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이란
참마음이란 거짓이 없는 진실된 마음, 선과 빛의 마음이며 하나님을 닮은 영의 마음입니다. 악이나 거짓이 없고 간사하지 않으며 변개하거나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아름다운 마음이지요. 비진리와 악이 조금도 없고 선, 사랑, 섬김, 화평 등 진리로 채워진 마음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성령의 역사 속에 자신의 악을 깨닫게 됩니다. 맑은 물인 하나님 말씀으로 마음을 씻어 악을 버리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만큼, 곧 참마음을 이루는 만큼 온전한 믿음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온전한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지켜 행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으로서 완전한 영의 믿음이며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계속하여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행해 나가면 마음뿐 아니라 생활 속에도 진리가 온전히 임하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이 되면 주어진 사명을 넘치게 감당하며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기꺼이 버릴 수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권능을 행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의가 아주 강한 사람으로 철저한 유대교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영웅, 곧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나사렛이라는 촌 동네 목수의 아들 예수를 메시아라고 추종하는 데에 분노하였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여겼기에 그토록 기독교인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 바울은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부와 명예, 지식 등 자신의 삶 속에서 누리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 곧 영원히 변치 않는 천국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오직 복음 전파에 생명을 다했습니다.
그가 순교하기까지의 삶은 줄곧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발이 닳도록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지만 한 번도 힘들다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생각했으며 자신과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영광의 도구로 쓰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고 아무리 곤란한 상황에 처해도 결코 낙심하지 않았고 깊은 감옥이나 파선의 위험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앞을 향해 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기고, 많은 상급을 쌓게 하시며 주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였습니다.
마침내 순교의 자리에 이를 때는 너무도 뵙고 싶던 주님을 곧 뵐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 앞에 긴장하기 마련이지만 사도 바울은 소망으로 가득하여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그가 이처럼 어떠한 고난을 받아도, 심지어 생명을 잃는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곱고 선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에게 큰 권능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무수한 질병과 연약함을 치료하였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치료되고 악귀가 나갔습니다. 삼 층 누각에서 떨어져 죽은 청년 유두고를 살리기도 했고 맹렬한 독을 가진 독사에 물리고도 죽지 않자 사람들이 신이라 여길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큰 권능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많은 교회를 세워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초석을 쌓았습니다. 이로 인해 장차로마가 복음화되었고 아시아와 유럽에도 복음이 전파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람이 구원받았습니다.
2.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만큼 하나님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은 단번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처럼 믿음의 성장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심의 악을 깨달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계명들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을 뿌리째 뽑아 버렸는지 점검해 봐야 하지요. 나무의 큰 뿌리를 뽑으면 잔뿌리까지 뽑히듯이, 9가지 대표적인 죄성을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이 뽑혀져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버려야 할 대표적인 9가지 죄성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① 혈기입니다.
혈기란 분노와 같은 악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면 욕설이나 폭행 등 거친 말과 행동이 나옵니다. 이렇게 행함이나 말로 쏟아내는 혈기는 당연히 버려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마음에 혈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거나 이를 참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혈기를 내고도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상대를 깨우쳐 주기 위해 그런 것이다, 의분이다.”라고 변명합니다. 진정 참마음을 이루기 원한다면 자신의 모습에 대해 솔직해야 합니다. 혈기를 참지 못해 겉으로 드러내기까지 하면서 ‘나는 아니다.’라고 덮는다면 어떻게 버릴 수 있겠습니까? 평소 자기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이나 감정이 담긴 말을 툭툭 던지는 모습은 없는지 꼼꼼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② 감정(憾情)입니다.
감정은 혈기보다 더 넓은 개념입니다.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이 감정이지요. 대표적으로 불편함과 서운함을 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안 좋은 말을 하거나 지적 또는 책망을 했을 때, 자신을 섬겨 주지 않거나 내가 원하는 만큼 상대가 해 주지 않을 때 불편함이 생깁니다. 또 남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애매히 오해받을 때 서운함이 생깁니다.
마태복음 5장 39~41절에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7장 7~10절에는 무익한 종의 마음에 대해 나옵니다. 넘치게 수고하고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고백하는 마음이지요. 이러한 마음이 되면 상대가 자기 마음에 맞춰 주지 않거나 원하는 대로 섬겨 주지 않는다 해서 불편해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③ 미움, 시기, 질투입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말씀한 대로 미움은 큰 악이며 죄입니다. 설령 겉으로 드러내어 미워하지는 않는다 해도 마음에서 계속 미워한다면 이는 거듭 살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기, 질투 역시 반드시 버려야 할 악입니다.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했습니다(잠 14:30).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사랑받고 인정받으면 마음이 어떠하십니까?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선한 마음입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나머지 6가지 대표적인 죄성에 대해서는 다음 과에서 다루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대표적인 죄성들을 온전히 벗어 버림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이란 거짓이 없는 진실된 마음, 선과 빛의 마음이며 하나님을 닮은 영의 마음이다.
2. ( )이란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지켜 행하는 믿음이다.
3. ( )은 혈기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불편함과 ( )을 들 수 있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33~14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양심’이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판단 기준이다.
이는 타고난 근본 마음과 각자의 성장 환경이나 배움 속에서 나름대로 ‘이것이 옳다’라고 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사람마다 다르며 대부분 진리와 비진리가 혼합되어 있다.
교육목표 : 아홉 가지의 대표적인 죄성을 벗어 버림으로 선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마음 곧 거짓이 없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이란
참마음이란 거짓이 없는 진실된 마음, 선과 빛의 마음이며 하나님을 닮은 영의 마음입니다. 악이나 거짓이 없고 간사하지 않으며 변개하거나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아름다운 마음이지요. 비진리와 악이 조금도 없고 선, 사랑, 섬김, 화평 등 진리로 채워진 마음입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했습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성령의 역사 속에 자신의 악을 깨닫게 됩니다. 맑은 물인 하나님 말씀으로 마음을 씻어 악을 버리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아가는 만큼, 곧 참마음을 이루는 만큼 온전한 믿음이 주어집니다.
그러면 온전한 믿음이란 무엇일까요?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지켜 행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믿음으로서 완전한 영의 믿음이며 그리스도의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계속하여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행해 나가면 마음뿐 아니라 생활 속에도 진리가 온전히 임하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이 되면 주어진 사명을 넘치게 감당하며 하나님을 위해 생명을 기꺼이 버릴 수 있습니다.
온전한 믿음으로 권능을 행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의가 아주 강한 사람으로 철저한 유대교인이었습니다. 당시 유대교는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는 영웅, 곧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많은 사람이 나사렛이라는 촌 동네 목수의 아들 예수를 메시아라고 추종하는 데에 분노하였습니다. 그것을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로 여겼기에 그토록 기독교인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난 이후 바울은 완전히 변화된 삶을 살아갑니다. 부와 명예, 지식 등 자신의 삶 속에서 누리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겼습니다. 가장 가치 있는 것 곧 영원히 변치 않는 천국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오직 복음 전파에 생명을 다했습니다.
그가 순교하기까지의 삶은 줄곧 시련의 연속이었습니다. 발이 닳도록 주의 복음을 전하다가 말로 다할 수 없는 고난을 당했지만 한 번도 힘들다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고난 속에서도 오직 주님의 영광만을 생각했으며 자신과 같은 죄인을 구원하여 영광의 도구로 쓰신 하나님께 감사드렸습니다.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하고 아무리 곤란한 상황에 처해도 결코 낙심하지 않았고 깊은 감옥이나 파선의 위험도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앞을 향해 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기고, 많은 상급을 쌓게 하시며 주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였습니다.
마침내 순교의 자리에 이를 때는 너무도 뵙고 싶던 주님을 곧 뵐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차올랐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죽음 앞에 긴장하기 마련이지만 사도 바울은 소망으로 가득하여 감사가 넘쳐났습니다. 그가 이처럼 어떠한 고난을 받아도, 심지어 생명을 잃는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곱고 선한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그에게 큰 권능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무수한 질병과 연약함을 치료하였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이 치료되고 악귀가 나갔습니다. 삼 층 누각에서 떨어져 죽은 청년 유두고를 살리기도 했고 맹렬한 독을 가진 독사에 물리고도 죽지 않자 사람들이 신이라 여길 정도였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큰 권능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많은 교회를 세워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초석을 쌓았습니다. 이로 인해 장차로마가 복음화되었고 아시아와 유럽에도 복음이 전파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사람이 구원받았습니다.
2.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어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만큼 하나님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런데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은 단번에 주어지지 않습니다. 어린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것처럼 믿음의 성장 과정을 거쳐야만 합니다.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양심의 악을 깨달아 철저히 버려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계명들을 지켜 행하며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악을 뿌리째 뽑아 버렸는지 점검해 봐야 하지요. 나무의 큰 뿌리를 뽑으면 잔뿌리까지 뽑히듯이, 9가지 대표적인 죄성을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이 뽑혀져 나옵니다.
그러면 우리가 버려야 할 대표적인 9가지 죄성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① 혈기입니다.
혈기란 분노와 같은 악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면 욕설이나 폭행 등 거친 말과 행동이 나옵니다. 이렇게 행함이나 말로 쏟아내는 혈기는 당연히 버려야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해도 마음에 혈기가 부글부글 끓어오르거나 이를 참기 위해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이 있어서도 안 됩니다.
어떤 사람은 혈기를 내고도 “화를 낸 것이 아니라 상대를 깨우쳐 주기 위해 그런 것이다, 의분이다.”라고 변명합니다. 진정 참마음을 이루기 원한다면 자신의 모습에 대해 솔직해야 합니다. 혈기를 참지 못해 겉으로 드러내기까지 하면서 ‘나는 아니다.’라고 덮는다면 어떻게 버릴 수 있겠습니까? 평소 자기도 모르게 짜증 섞인 말이나 감정이 담긴 말을 툭툭 던지는 모습은 없는지 꼼꼼히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② 감정(憾情)입니다.
감정은 혈기보다 더 넓은 개념입니다.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이 감정이지요. 대표적으로 불편함과 서운함을 들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안 좋은 말을 하거나 지적 또는 책망을 했을 때, 자신을 섬겨 주지 않거나 내가 원하는 만큼 상대가 해 주지 않을 때 불편함이 생깁니다. 또 남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애매히 오해받을 때 서운함이 생깁니다.
마태복음 5장 39~41절에는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대며 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 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 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 리를 동행하고” 말씀합니다. 누가복음 17장 7~10절에는 무익한 종의 마음에 대해 나옵니다. 넘치게 수고하고도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고백하는 마음이지요. 이러한 마음이 되면 상대가 자기 마음에 맞춰 주지 않거나 원하는 대로 섬겨 주지 않는다 해서 불편해하거나 서운해하지 않습니다.
③ 미움, 시기, 질투입니다.
요한일서 3장 15절에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말씀한 대로 미움은 큰 악이며 죄입니다. 설령 겉으로 드러내어 미워하지는 않는다 해도 마음에서 계속 미워한다면 이는 거듭 살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시기, 질투 역시 반드시 버려야 할 악입니다. “시기는 뼈의 썩음이니라” 했습니다(잠 14:30). 다른 사람이 자신보다 더 사랑받고 인정받으면 마음이 어떠하십니까? 진리와 함께 기뻐하는 것이 선한 마음입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인정받고 칭찬받는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나머지 6가지 대표적인 죄성에 대해서는 다음 과에서 다루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대표적인 죄성들을 온전히 벗어 버림으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이란 거짓이 없는 진실된 마음, 선과 빛의 마음이며 하나님을 닮은 영의 마음이다.
2. ( )이란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고 지켜 행하는 믿음이다.
3. ( )은 혈기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불편함과 ( )을 들 수 있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33~14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양심’이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판단 기준이다.
이는 타고난 근본 마음과 각자의 성장 환경이나 배움 속에서 나름대로 ‘이것이 옳다’라고 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사람마다 다르며 대부분 진리와 비진리가 혼합되어 있다.
2020-05-08
제19과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 (2)
창세기 13:8~9
읽을말씀 : 창세기 13:8~9 | 외울말씀 : 창세기 13:9 l 참고 말씀: 시편 37:11
교육목표 : 모든 사람과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함으로 항상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기며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오직 “예”만 있었고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아 하나님께 사랑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1.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은 아브라함
① 목자들 간에 다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 조카 롯도 함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둘의 소유가 불어나 물과 목초지가 부족하자 더는 동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들 간에 다툼이 일어났지요. 이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 말합니다. 삼촌으로서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선택권을 조카에게 양보하였지요.
롯이 자기 보기에 좋은 땅을 택하여 떠났는데도 아브라함은 서운함이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중심에서 상대를 섬김으로 소자에게도 자신이 누릴 권리를 내줄 수 있었고, 더 달라 해도 기꺼이 줄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윗사람이면서도 화평을 좇기 위하여 조카 롯에게 기쁨으로 양보하고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이는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영적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② 아비멜렉의 종들이 우물을 늑탈했을 때
그랄 왕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자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자신이 알았으면 막았을 텐데 모르는 사이에 생긴 일이니 너그러이 넘어가 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마음을 풀어 주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를 책망한 것은 다툼이나 분쟁을 일으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잘못은 지적하되 결과적으로는 화평하기를 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니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자 이내 먼저 손을 내밀어 화평을 이루어 가지요. 오히려 피해를 입은 자신 편에서 양과 소를 아비멜렉에게 주고 우물로 인해 다시금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둘 사이에 언약의 증거를 삼았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늘 화평하기 원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려는 넓은 마음이었습니다. 온유함으로 주변 사람을 품어 풍부한 화평 가운데 자신의 기반을 다져 나갔지요(시 37:11).
③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을 때와 사라의 매장지를 구입할 때
아브라함은 소돔 땅에 살던 조카 롯이 전쟁 중에 사로잡혀 갔을 때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인을 거느리고 쫓아가서 적들을 쳐부수고 빼앗겼던 재물과 사람들을 모두 찾아왔습니다(창 14:12~16).
이러한 활약은 롯이 속한 소돔 왕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고 왕은 감사의 뜻으로 아브라함에게 전리품을 취하도록 권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며, 소돔 왕의 은인으로서 전리품을 얼마든지 취할 수도 있지만 사사로운 유익을 취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창 14:23).
또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구할 때에는 헷 족속이 장사할 굴을 거저 주겠다고 해도 굳이 그에 해당하는 값을 치렀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것은 받지 않는 정직과 성실한 마음을 보여 줍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화평함뿐만 아니라 거룩함을 좇아 행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은 그였기에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할 때 따르는 축복
①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 된 아브라함
히브리서 11장 17~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순종을 기뻐하시고 그에게 넘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벗이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게 하시고 물질의 축복과 자녀의 복과 건강, 장수의 복도 누리게 하셨지요.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애지중지하는 외아들을 번제로 드리라 하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을 진정 믿는다면 내 생각과 맞지 않아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한 분이시니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종을 내보일 때 상상치 못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거나 자기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만 “예” 할 수 있다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 순종한다면 온전한 순종이 나올 수 없지요.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낮아지고 섬기라” 등등 하나님 말씀은 사람의 생각과 다른 것이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영적인 믿음을 가질 때라야 말씀대로 순종하여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② 세계선교를 창대히 이루어가는 본 제단
당회장님은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오직 믿음으로 행하여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1982년 7월 25일, 어린이를 포함하여 13명이 10평 남짓한 성전에서 개척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세계선교를 창대히 이루며 만민 위에 뛰어난 교회가 되리라는 축복의 말씀을 주셨지요.
당회장님은 이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매 순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 뜻을 좇았습니다. 최선을 다해 선교와 구제에 힘쓰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하시든지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은 모든 일들을 실상으로 나타내 주셨습니다.
지난 2000년부터 해외 연합대성회를 통해 전 세계를 성결의 복음과 권능으로 깨우게 하셨습니다. 우간다, 일본, 파키스탄, 케냐, 인도, 러시아, 독일, 미국 등에서 대형 집회를 개최했습니다. 수만, 수십만, 수백만의 인파가 운집했지요.
기독교를 엄격히 금지하는 국가에서도 담대히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수많은 영혼이 치유받고 귀신이 나가며 우상이 깨어지고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성령의 불은 마침내 이스라엘로 향했습니다. 3년간의 이스라엘 사역을 통해 극정통 유대인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 크고 작은 규모의 권능의 손수건 집회(행 19:11~12)가 열려 성결의 복음과 권능으로써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세계 기독방송 네트워크(GCN), 세계 기독의사 네트워크(WCDN), 만민국제신학교(MIS) 등을 통해 세계선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많은 책자를 발간하고, 각국어로 번역하여 우리가 직접 찾아가지 못한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성결의 복음과 권능의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베풀어집니다.
혹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막상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염려, 근심, 걱정에 싸이지는 않습니까? 참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며 기쁨과 감사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함으로 항상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브라함은 윗사람이면서도 ( )을 좇기 위하여 조카 롯에게 기쁨으로 양보하고 자신을 희생했다. 이는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영적인 ( )이 있었기 때문이다.
2.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 )을 믿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온전히 ( )할 수 있었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33~149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아브라함의 선’
1. 관용과 양순한 마음이었다.
관용과 양순은 마음이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임하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에서 나온다.
2. 사심이 없고 정직하며 성실했다.
3. 하나님을 믿음으로 온전한 순종의 행함을 보였다.
교육목표 : 모든 사람과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함으로 항상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기며 하나님을 사랑했기에 오직 “예”만 있었고 온전한 순종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과 더불어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아 하나님께 사랑과 인정을 받았습니다.
1.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은 아브라함
① 목자들 간에 다툼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실 때 조카 롯도 함께 복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둘의 소유가 불어나 물과 목초지가 부족하자 더는 동거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의 목자와 롯의 목자들 간에 다툼이 일어났지요. 이때 아브라함이 롯에게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9) 말합니다. 삼촌으로서 얼마든지 취할 수 있는 선택권을 조카에게 양보하였지요.
롯이 자기 보기에 좋은 땅을 택하여 떠났는데도 아브라함은 서운함이나 감정을 품지 않았습니다. 중심에서 상대를 섬김으로 소자에게도 자신이 누릴 권리를 내줄 수 있었고, 더 달라 해도 기꺼이 줄 수 있는 마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윗사람이면서도 화평을 좇기 위하여 조카 롯에게 기쁨으로 양보하고 자신을 희생했습니다. 이는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영적인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② 아비멜렉의 종들이 우물을 늑탈했을 때
그랄 왕 아비멜렉의 종들이 아브라함의 우물을 늑탈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아브라함이 아비멜렉을 책망하자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자신이 알았으면 막았을 텐데 모르는 사이에 생긴 일이니 너그러이 넘어가 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아비멜렉의 마음을 풀어 주고자 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를 책망한 것은 다툼이나 분쟁을 일으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잘못은 지적하되 결과적으로는 화평하기를 원하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러니 상대가 잘못을 인정하자 이내 먼저 손을 내밀어 화평을 이루어 가지요. 오히려 피해를 입은 자신 편에서 양과 소를 아비멜렉에게 주고 우물로 인해 다시금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둘 사이에 언약의 증거를 삼았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늘 화평하기 원하고 상대의 유익을 구해 주려는 넓은 마음이었습니다. 온유함으로 주변 사람을 품어 풍부한 화평 가운데 자신의 기반을 다져 나갔지요(시 37:11).
③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을 때와 사라의 매장지를 구입할 때
아브라함은 소돔 땅에 살던 조카 롯이 전쟁 중에 사로잡혀 갔을 때 집에서 길리고 연습한 자 318인을 거느리고 쫓아가서 적들을 쳐부수고 빼앗겼던 재물과 사람들을 모두 찾아왔습니다(창 14:12~16).
이러한 활약은 롯이 속한 소돔 왕에게 승리를 안겨 주었고 왕은 감사의 뜻으로 아브라함에게 전리품을 취하도록 권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주역이며, 소돔 왕의 은인으로서 전리품을 얼마든지 취할 수도 있지만 사사로운 유익을 취하려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창 14:23).
또 아내 사라의 매장지를 구할 때에는 헷 족속이 장사할 굴을 거저 주겠다고 해도 굳이 그에 해당하는 값을 치렀습니다. 정당하지 않은 것은 받지 않는 정직과 성실한 마음을 보여 줍니다. 이와 같이 아브라함은 화평함뿐만 아니라 거룩함을 좇아 행했습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합니다. 이렇게 거룩함과 화평함을 좇은 그였기에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할 때 따르는 축복
① 믿음의 조상이요, 하나님의 벗이 된 아브라함
히브리서 11장 17~19절을 보면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드렸으니 저는 약속을 받은 자로되 그 독생자를 드렸느니라 저에게 이미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라 칭할 자는 이삭으로 말미암으리라 하셨으니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했습니다.
이처럼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온전히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순종을 기뻐하시고 그에게 넘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고 하나님의 벗이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사람들에게 사랑과 존경을 받게 하시고 물질의 축복과 자녀의 복과 건강, 장수의 복도 누리게 하셨지요.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애지중지하는 외아들을 번제로 드리라 하신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을 진정 믿는다면 내 생각과 맞지 않아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능력이 무한한 분이시니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종을 내보일 때 상상치 못할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하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거나 자기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만 “예” 할 수 있다면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내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 순종한다면 온전한 순종이 나올 수 없지요. “원수를 사랑하라,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 낮아지고 섬기라” 등등 하나님 말씀은 사람의 생각과 다른 것이 많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 영적인 믿음을 가질 때라야 말씀대로 순종하여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② 세계선교를 창대히 이루어가는 본 제단
당회장님은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하나님 앞에 오직 믿음으로 행하여 놀라운 축복을 받았습니다. 1982년 7월 25일, 어린이를 포함하여 13명이 10평 남짓한 성전에서 개척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하나님께서는 세계선교를 창대히 이루며 만민 위에 뛰어난 교회가 되리라는 축복의 말씀을 주셨지요.
당회장님은 이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매 순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그 뜻을 좇았습니다. 최선을 다해 선교와 구제에 힘쓰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하시든지 오직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은 모든 일들을 실상으로 나타내 주셨습니다.
지난 2000년부터 해외 연합대성회를 통해 전 세계를 성결의 복음과 권능으로 깨우게 하셨습니다. 우간다, 일본, 파키스탄, 케냐, 인도, 러시아, 독일, 미국 등에서 대형 집회를 개최했습니다. 수만, 수십만, 수백만의 인파가 운집했지요.
기독교를 엄격히 금지하는 국가에서도 담대히 창조주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습니다. 성령의 권능으로 수많은 영혼이 치유받고 귀신이 나가며 우상이 깨어지고 개종하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 성령의 불은 마침내 이스라엘로 향했습니다. 3년간의 이스라엘 사역을 통해 극정통 유대인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었습니다.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 크고 작은 규모의 권능의 손수건 집회(행 19:11~12)가 열려 성결의 복음과 권능으로써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고 있습니다.
그 밖에도 세계 기독방송 네트워크(GCN), 세계 기독의사 네트워크(WCDN), 만민국제신학교(MIS) 등을 통해 세계선교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더불어 많은 책자를 발간하고, 각국어로 번역하여 우리가 직접 찾아가지 못한 전 세계 구석구석까지 성결의 복음과 권능의 역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축복은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베풀어집니다.
혹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 막상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염려, 근심, 걱정에 싸이지는 않습니까? 참 믿음이 있다면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모든 것을 그분께 맡기며 기쁨과 감사로 순종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과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며,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함으로 항상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브라함은 윗사람이면서도 ( )을 좇기 위하여 조카 롯에게 기쁨으로 양보하고 자신을 희생했다. 이는 자기 유익을 구치 아니하는 영적인 ( )이 있었기 때문이다.
2.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의 ( )을 믿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에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온전히 ( )할 수 있었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33~149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아브라함의 선’
1. 관용과 양순한 마음이었다.
관용과 양순은 마음이 진리로 변화되는 만큼 임하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마음에서 나온다.
2. 사심이 없고 정직하며 성실했다.
3. 하나님을 믿음으로 온전한 순종의 행함을 보였다.
2020-05-01
제18과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 (1)
창세기 22:11~14
읽을말씀 : 창세기 22:11~14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1:19 ㅣ 참고 말씀: 창세기 12:1~2
교육목표 : 나의 생각이 앞서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오직 예만 함으로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이레’란 히브리어로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앞서 행하고 준비하며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의미하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던 것은 그만큼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첫째로 섬겼으며 하나님 말씀을 귀히 여겨 즉시 순종하는 중심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기며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미리 준비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긴 아브라함
1)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말씀하셨습니다(창 12:1~2).
이에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합니다. 당시의 상황에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나도 아브라함처럼 순종할 수 있습니다.” 고백할지 모르나 막상 그러한 상황이 되면 순종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에도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물며 모든 삶의 터전과 경제적인 기반, 그리고 가족들과의 관계까지 다 뒤로하고 목적지도 모른 채 무작정 떠나는 것이 가능할까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첫째로 여겼기 때문에 즉시 하나님의 뜻을 좇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좇아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그 땅에 기근이 심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창 12:10). 그때 그는 아내에게 그의 누이라 말하게 합니다. 애굽 사람이 아내 사라를 취하기 위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였으니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말의 동기가 자기 나름의 지혜를 동원하여 위기를 피해 보려는 생각이었다는 점입니다. 과연 그 지혜대로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 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아내를 애굽 왕 바로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아내를 빼앗긴 아브라함은 번민에 싸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의뢰하였습니다. 항상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되었지만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러한 연단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즉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오자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셨습니다. 애굽 왕과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지요. 그러니 아내를 되찾아 순간에 문제가 해결되고 애굽에 들어갈 때보다 더 많은 소유를 얻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애굽 왕이 사라를 취하려고 아브라함을 후대하여 주었던 양과 소, 노비, 암수 나귀와 약대까지 가지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순종할 마음이 없어서 받는 연단은 어려움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순종해 가는 과정 속에서 사람의 생각 때문에 받는 연단은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연단을 통해 더 온전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2) 이스마엘을 내보내라 했을 때
아브라함이 첩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이 본처인 사라에게서 난 아들 이삭을 희롱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라는 즉시 이스마엘을 내쫓도록 아브라함에게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이스마엘을 똑같이 사랑했기에 그 말에 깊이 근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주인은 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세를 갖고 있었는데, 하갈은 사라에게 속한 여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사라를 잘 타이르고 이해시켜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 머물게 하는 것이 더 선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혀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겼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골육의 정을 생각하면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순종하니 하나님의 섭리가 이삭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2. 순종을 넘어선 순복의 행함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아브라함은 연단을 통해 오직 “예”만 있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명하십니다. 번제란 짐승을 제단 위에 올려 전부 불태워 그 냄새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약 시대 제사법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백 세에 얻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니 참으로 순종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하신 대로 아브라함은 잠시 망설이거나 고민하지도 않고 즉시 순종했습니다(창 22:3).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기에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 해도 순종의 행함이 나왔지요.
어떤 사람은 아브라함이 마지못해 이삭을 바친 것처럼 말합니다. 그가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사흘 길을 가면서 고민하며 괴로워했다고 하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결코 슬퍼하거나 번민하지 않았습니다. 삼 일 길을 갈 때도 얼굴에 수심이 차거나 이삭을 보면서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2장 9~10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했습니다.
그 순간에도 그는 육적인 정에 이끌려 마음이 요동하거나 ‘내 아들을 어떻게 죽일꼬!’ 하며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생각을 동원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러한 순종은 어디서 나올 수 있었을까요? 바로 죽은 자 가운데서 능히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입니다(히 11:17~19).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잡으려는 순간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셨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의 마음과 행함을 아름다운 향으로 받으신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번제할 어린 양을 미리 준비하시고 이삭에게 손대지 못하게 하셨지요. 아브라함은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으며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고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축복하셨습니다(창 22:12~18).
이처럼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예”만 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해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 ) 여겼기 때문에 즉시 하나님의 뜻을 좇았다.
2.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 )만 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5~12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복종, 순종, 순복의 차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자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순종이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행함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함은 같아 보여도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차원이 달라진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거나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복종’이라면 ‘순종’이란 설령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사랑하기 때문에 100% 따르는 것이다. 나아가 ‘순복’이란 왜 그 일을 명하는지 의중을 헤아려 그 이상으로 이뤄 드리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친 사건은 순종 이상의 차원이었다.
하나님이 명하시니 의무감에서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마음 중심으로 온전히 순복한 것이다.
교육목표 : 나의 생각이 앞서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오직 예만 함으로 여호와 이레의 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여호와 이레’란 히브리어로 ‘미리 준비하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앞서 행하고 준비하며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하나님을 의미하지요. 아브라함이 하나님과 교통하며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았던 것은 그만큼 그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첫째로 섬겼으며 하나님 말씀을 귀히 여겨 즉시 순종하는 중심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기며 하나님의 뜻이라면 무엇이든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럴 때 미리 준비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긴 아브라함
1)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말씀하셨습니다(창 12:1~2).
이에 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합니다. 당시의 상황에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나도 아브라함처럼 순종할 수 있습니다.” 고백할지 모르나 막상 그러한 상황이 되면 순종할 사람이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에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하신 말씀에도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물며 모든 삶의 터전과 경제적인 기반, 그리고 가족들과의 관계까지 다 뒤로하고 목적지도 모른 채 무작정 떠나는 것이 가능할까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이라면 결코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첫째로 여겼기 때문에 즉시 하나님의 뜻을 좇았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말씀을 좇아 하란을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갔는데 그 땅에 기근이 심하여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창 12:10). 그때 그는 아내에게 그의 누이라 말하게 합니다. 애굽 사람이 아내 사라를 취하기 위해 자신을 죽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사라는 아브라함의 이복 누이였으니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그 말의 동기가 자기 나름의 지혜를 동원하여 위기를 피해 보려는 생각이었다는 점입니다. 과연 그 지혜대로 아브라함은 아내를 누이라 하여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아내를 애굽 왕 바로에게 빼앗기고 맙니다.
아내를 빼앗긴 아브라함은 번민에 싸입니다. 그는 자신의 지혜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 깨닫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의뢰하였습니다. 항상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되었지만 아직 하나님을 온전히 의뢰하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러한 연단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즉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오자 하나님께서 친히 간섭하셨습니다. 애굽 왕과 그 집에 큰 재앙을 내리셨지요. 그러니 아내를 되찾아 순간에 문제가 해결되고 애굽에 들어갈 때보다 더 많은 소유를 얻어 나올 수 있었습니다. 애굽 왕이 사라를 취하려고 아브라함을 후대하여 주었던 양과 소, 노비, 암수 나귀와 약대까지 가지고 나오게 된 것입니다.
순종할 마음이 없어서 받는 연단은 어려움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지만, 순종해 가는 과정 속에서 사람의 생각 때문에 받는 연단은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을 이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이런 연단을 통해 더 온전한 믿음을 가졌습니다.
2) 이스마엘을 내보내라 했을 때
아브라함이 첩 하갈을 통해 낳은 이스마엘이 본처인 사라에게서 난 아들 이삭을 희롱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사라는 즉시 이스마엘을 내쫓도록 아브라함에게 요구합니다.
아브라함은 이삭과 이스마엘을 똑같이 사랑했기에 그 말에 깊이 근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사라의 말대로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명하신 데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당시 주인은 종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세를 갖고 있었는데, 하갈은 사라에게 속한 여종이었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사라를 잘 타이르고 이해시켜서 하갈과 이스마엘을 집에 머물게 하는 것이 더 선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전혀 생각을 동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첫째로 여겼기에 아침 일찍 일어나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골육의 정을 생각하면 순종할 수 없는 일이지만, 그가 순종하니 하나님의 섭리가 이삭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스마엘도 한 민족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2. 순종을 넘어선 순복의 행함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했을 때
아브라함은 연단을 통해 오직 “예”만 있는 믿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명하십니다. 번제란 짐승을 제단 위에 올려 전부 불태워 그 냄새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구약 시대 제사법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백 세에 얻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사랑하는 아들입니다. 그런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니 참으로 순종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그 아들 이삭을 데리고 번제에 쓸 나무를 쪼개어 가지고 떠나 하나님의 자기에게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더니” 하신 대로 아브라함은 잠시 망설이거나 고민하지도 않고 즉시 순종했습니다(창 22:3).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했기에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일이라 해도 순종의 행함이 나왔지요.
어떤 사람은 아브라함이 마지못해 이삭을 바친 것처럼 말합니다. 그가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사흘 길을 가면서 고민하며 괴로워했다고 하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결코 슬퍼하거나 번민하지 않았습니다. 삼 일 길을 갈 때도 얼굴에 수심이 차거나 이삭을 보면서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22장 9~10절에 보면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했습니다.
그 순간에도 그는 육적인 정에 이끌려 마음이 요동하거나 ‘내 아들을 어떻게 죽일꼬!’ 하며 슬퍼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생각을 동원하지도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였습니다.
이러한 순종은 어디서 나올 수 있었을까요? 바로 죽은 자 가운데서 능히 다시 살리실 수 있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입니다(히 11:17~19). 아브라함이 칼을 들어 이삭을 잡으려는 순간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부르셨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의 마음과 행함을 아름다운 향으로 받으신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어 그를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번제할 어린 양을 미리 준비하시고 이삭에게 손대지 못하게 하셨지요. 아브라함은 수풀에 걸려 있는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으며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시고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고 축복하셨습니다(창 22:12~18).
이처럼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예”만 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자기의 생각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해야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 ) 여겼기 때문에 즉시 하나님의 뜻을 좇았다.
2. 여호와 이레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 )만 할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5~12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복종, 순종, 순복의 차이’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자 복의 근원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순종이다. 죽은 자도 살리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행함을 나타냈기 때문이다. 그런데 행함은 같아 보여도 그 사람의 마음에 따라 차원이 달라진다.
누가 시켜서 억지로 하거나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복종’이라면 ‘순종’이란 설령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도 사랑하기 때문에 100% 따르는 것이다. 나아가 ‘순복’이란 왜 그 일을 명하는지 의중을 헤아려 그 이상으로 이뤄 드리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친 사건은 순종 이상의 차원이었다.
하나님이 명하시니 의무감에서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고 마음 중심으로 온전히 순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