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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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3-27
제13과꿈을 이루실 줄 믿음으로 (1)
창세기 37:5~9
읽을말씀 : 창세기 37:5~9 | 외울말씀 : 요한일서 5:18 l 참고 말씀: 마가복음 11:24
교육목표 :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굳건히 믿음을 지키며 성실히 꿈을 이루어 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신속하게 응답받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금식과 철야를 하면서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기도해도 당장 손에 잡히는 열매가 없거나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절망하며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녕 믿음으로 바라보고 구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요동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어떠하든지 변치 않는 진실한 마음으로 믿음을 지킬 때 마침내 응답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증손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열두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열한 번째인 요셉을 더 깊이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귀여움을 받고 자란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어린 나이에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 죄 없이 감옥에 갇혀 지내야 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도 요셉은 오직 믿음으로 행하였으며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와,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귀하게 자란 요셉이 하루아침에 노예 신세가 되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지요. 이러한 과정은 요셉이 자기적인 의와 틀을 철저히 깨뜨리고 변화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연단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연단 속에서도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는가?’ 하며 원망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가온 모든 상황을 잠잠히 받아들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돌아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습니다. 자신을 노예로 파는 형들을 보면서 ‘형들이 그동안 얼마나 나를 미워했으며, 왜 그렇게 미워하게 되었는지.’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내가 형들의 허물을 전하고 꿈 자랑을 할 때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까? 내 편에서는 옳다 생각했지만 형들 입장에서는 많이 힘들었겠구나.’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철저히 회개했지요.
또한 요셉은 모든 인생사가 하나님 손 안에 있음을 깊이 인식했기에 자신의 상황을 풀어 주실 분도 오직 하나님뿐임을 깨닫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요셉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함께하며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기 의가 남아 있었지만 늘 하나님 말씀을 청종했고 말씀대로 행하고자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비록 노예 신세라 해도 또한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고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니 평안할 수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커다란 악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들은 바를 명심하여 지켜 행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자기 의를 깨뜨리며 장차 하나님 섭리를 이루는 큰 그릇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내 어려움 가운데서도 오직 믿음으로 행한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2.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
첫째,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인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입니다. 더구나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그는 여러 형제 중에서 유달리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사랑했던지 그에게만 채색옷을 입혔고, 다른 아들들은 일하러 나갈 때도 자기 곁에 남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로 인해 형들은 불평하며 요셉을 미워하였습니다.
게다가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알리기까지 하니 더욱 감정이 상하였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옳지 않은 일을 그냥 넘기지 못하여 그런 것이지만 사랑이 아니었지요. 그뿐 아니라 요셉이 자기가 꾼 꿈을 말하는데, 그 또한 형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형제들이 밭에서 곡식을 묶는데 형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단을 향해 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창 37:7). 또 얼마 후에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합니다. 이 꿈들은 장차 요셉이 존귀하게 되어 부모와 형제들까지도 그를 높이게 되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형들이 보기에 그렇지 않아도 곱지 않은 동생이 갈수록 더 얄미운 말만 합니다. 물론 그의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꿈이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실제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더 지혜롭고 겸손했더라면 공연히 형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여 시기 나게 하지 않고 잠잠히 마음에 담아 두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주변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덕과 지혜가 부족하여 형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셉을 미워하던 형들은 마침내 그를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 버리고 맙니다. 물론 형들이 악하기 때문에 요셉을 팔아넘겼지만 그에게 자랑하는 마음이 없고 낮은 마음으로 형들을 섬겼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자신의 모습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자신의 건강이나 가정, 일터, 사업터 등에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이는 남의 탓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선하고 의롭게 산다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니 질병이 틈타거나 삶 가운데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생길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어떤 응답을 받기 원할 때는 먼저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거나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않았는지 돌아보며 미움, 시기, 간음, 판단 등 마음 안에 비진리가 있다면 회개하여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 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갔지만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시리라는 믿음과, 하나님이 주신 꿈대로 자신이 존귀한 자리에 이르게 되리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종으로 팔려간 곳은 애굽 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이었습니다. 주인은 요셉의 성실함과,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자기 온 집을 관리하는 가정 총무로 세웠습니다. 이로 인해 형편이 나아졌는가 했는데, 얼마 후에 요셉은 이전보다 더 비천한 자리로 떨어지고 맙니다.
주인의 아내가 그를 유혹했다가 거절당하자 오히려 자신을 희롱했다는 누명을 씌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요셉은 수치스러운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를 수용하는 깊은 감옥에 갇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때도 그는 낙심하지 않고 반드시 꿈을 이루어 주실 줄 믿으며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이처럼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대로 자신이 하나님께 구한 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어도 이미 받은 줄로 믿기 때문에 결코 낙심하지 않으며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그러니 때가 이르면 그 고백대로 반드시 응답과 축복을 받습니다. 진실하게 믿음을 내보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의 열매로 축복하십니다. 요셉과 같이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항상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 ) 때문이다.
②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 )하지 않는다.
2.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83~95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요셉이 범사에 형통할 수 있었던 이유’
만일 죄의 담으로 인해 오는 보응이나 마음에 큰 악이 있어서 빼내도록 허락하신 연단이라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신다. 철저히 홀로 연단을 받아야만 단단히 굳어진 악이 버려지고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연단의 과정도 힘들다. 그러기에 악이 많은 사람은 연단 중에도 악을 발함으로 더 큰 고통과 어려움을 자초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큰 악이 없었고, 연단 중에 악을 발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겸비함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니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연단 중에도 형통케 하셨다.
교육목표 :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음으로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굳건히 믿음을 지키며 성실히 꿈을 이루어 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어떤 사람은 신속하게 응답받는가 하면, 그렇지 못한 사람도 많습니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 소원을 이루기 위해 금식과 철야를 하면서 수개월 혹은 수년 동안 기도해도 당장 손에 잡히는 열매가 없거나 오히려 상황이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절망하며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녕 믿음으로 바라보고 구했다면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요동하지 않습니다. 눈앞에 보이는 현실이 어떠하든지 변치 않는 진실한 마음으로 믿음을 지킬 때 마침내 응답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증손자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야곱을 낳았으며, 야곱은 열두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중 열한 번째인 요셉을 더 깊이 사랑했습니다. 이렇게 아버지의 귀여움을 받고 자란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아 어린 나이에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려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 죄 없이 감옥에 갇혀 지내야 했지요. 이러한 상황에서도 요셉은 오직 믿음으로 행하였으며 하나님은 그의 믿음을 기뻐하시고 애굽의 총리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와,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1.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
아버지의 각별한 사랑을 받으며 귀하게 자란 요셉이 하루아침에 노예 신세가 되었습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지요. 이러한 과정은 요셉이 자기적인 의와 틀을 철저히 깨뜨리고 변화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축복의 연단이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의 차원으로 들어갈 수 있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요셉은 이러한 연단 속에서도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이 왔는가?’ 하며 원망 불평하거나 절망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가온 모든 상황을 잠잠히 받아들였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돌아보며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습니다. 자신을 노예로 파는 형들을 보면서 ‘형들이 그동안 얼마나 나를 미워했으며, 왜 그렇게 미워하게 되었는지.’ 뼛속 깊이 느꼈습니다. ‘내가 형들의 허물을 전하고 꿈 자랑을 할 때 얼마나 마음이 상했을까? 내 편에서는 옳다 생각했지만 형들 입장에서는 많이 힘들었겠구나.’ 이렇게 자신을 돌아보며 철저히 회개했지요.
또한 요셉은 모든 인생사가 하나님 손 안에 있음을 깊이 인식했기에 자신의 상황을 풀어 주실 분도 오직 하나님뿐임을 깨닫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요셉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었던 것은 자신과 함께하며 지키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기 의가 남아 있었지만 늘 하나님 말씀을 청종했고 말씀대로 행하고자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비록 노예 신세라 해도 또한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키고 인도하실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니 평안할 수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커다란 악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를 통해 하나님에 대해 배우고 들은 바를 명심하여 지켜 행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자기 의를 깨뜨리며 장차 하나님 섭리를 이루는 큰 그릇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침내 어려움 가운데서도 오직 믿음으로 행한 요셉을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
2.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깨달을 점
첫째,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부족함 때문입니다.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하는 아내인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입니다. 더구나 야곱이 노년에 얻은 아들이기 때문에 그는 여러 형제 중에서 유달리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야곱이 얼마나 사랑했던지 그에게만 채색옷을 입혔고, 다른 아들들은 일하러 나갈 때도 자기 곁에 남게 할 정도였습니다. 이로 인해 형들은 불평하며 요셉을 미워하였습니다.
게다가 요셉이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알리기까지 하니 더욱 감정이 상하였습니다. 요셉의 입장에서는 옳지 않은 일을 그냥 넘기지 못하여 그런 것이지만 사랑이 아니었지요. 그뿐 아니라 요셉이 자기가 꾼 꿈을 말하는데, 그 또한 형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형제들이 밭에서 곡식을 묶는데 형들의 곡식 단이 요셉의 단을 향해 절을 하더라는 것입니다(창 37:7). 또 얼마 후에는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다고 말합니다. 이 꿈들은 장차 요셉이 존귀하게 되어 부모와 형제들까지도 그를 높이게 되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형들이 보기에 그렇지 않아도 곱지 않은 동생이 갈수록 더 얄미운 말만 합니다. 물론 그의 꿈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꿈이었고, 오랜 세월이 지난 뒤 실제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더 지혜롭고 겸손했더라면 공연히 형들에게 꿈 이야기를 하여 시기 나게 하지 않고 잠잠히 마음에 담아 두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고 주변 사람의 마음을 살피는 덕과 지혜가 부족하여 형들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요셉을 미워하던 형들은 마침내 그를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 버리고 맙니다. 물론 형들이 악하기 때문에 요셉을 팔아넘겼지만 그에게 자랑하는 마음이 없고 낮은 마음으로 형들을 섬겼다면 그런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자신의 모습을 한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만일 자신의 건강이나 가정, 일터, 사업터 등에 어떤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이는 남의 탓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선하고 의롭게 산다면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니 질병이 틈타거나 삶 가운데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생길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어떤 응답을 받기 원할 때는 먼저 자신의 부족함이 무엇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십일조를 하지 않거나 주일을 온전히 지키지 않았는지 돌아보며 미움, 시기, 간음, 판단 등 마음 안에 비진리가 있다면 회개하여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 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낙심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갔지만 결코 낙심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도하시리라는 믿음과, 하나님이 주신 꿈대로 자신이 존귀한 자리에 이르게 되리라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종으로 팔려간 곳은 애굽 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이었습니다. 주인은 요셉의 성실함과, 그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자기 온 집을 관리하는 가정 총무로 세웠습니다. 이로 인해 형편이 나아졌는가 했는데, 얼마 후에 요셉은 이전보다 더 비천한 자리로 떨어지고 맙니다.
주인의 아내가 그를 유혹했다가 거절당하자 오히려 자신을 희롱했다는 누명을 씌웠기 때문입니다. 이제 요셉은 수치스러운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를 수용하는 깊은 감옥에 갇히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때도 그는 낙심하지 않고 반드시 꿈을 이루어 주실 줄 믿으며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이처럼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대로 자신이 하나님께 구한 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응답이 없어도 이미 받은 줄로 믿기 때문에 결코 낙심하지 않으며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그러니 때가 이르면 그 고백대로 반드시 응답과 축복을 받습니다. 진실하게 믿음을 내보이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의 열매로 축복하십니다. 요셉과 같이 변함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영광스런 천국에 들어가는 날까지 항상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셉의 삶과 신앙을 통해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① 사람이 고난받는 까닭은 대부분 자신의 ( ) 때문이다.
② 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 )하지 않는다.
2.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연단을 허락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83~95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요셉이 범사에 형통할 수 있었던 이유’
만일 죄의 담으로 인해 오는 보응이나 마음에 큰 악이 있어서 빼내도록 허락하신 연단이라면 하나님께서 외면하신다. 철저히 홀로 연단을 받아야만 단단히 굳어진 악이 버려지고 변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연히 연단의 과정도 힘들다. 그러기에 악이 많은 사람은 연단 중에도 악을 발함으로 더 큰 고통과 어려움을 자초하기도 한다.
그러나 요셉에게는 큰 악이 없었고, 연단 중에 악을 발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감사하며 겸비함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변함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대로 살아가니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연단 중에도 형통케 하셨다.
2020-03-20
제12과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2)
히브리서 11:6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6 | 외울말씀 : 요한일서 2:12~14 l 참고 말씀 / 마태복음 23:23
교육목표 : 변개함이 없는 중심과 행함으로 믿음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루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되게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결코 제자리걸음 하거나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성장하지 못하고 멈춰 있다면 부모가 얼마나 고통을 받겠습니까.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믿음이 계속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1. 성장하는 믿음
요한일서 2장 12~14절에는 믿음의 성장을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하였습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자녀, 아이, 청년, 아비라 하는 것은 사람의 연령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영적인 믿음의 분량을 나타냅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 믿음은 겨우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으로서 자녀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성령 받아 자녀의 믿음에 들어선 사람은 속히 성장하여 아이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의 믿음이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나아가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청년의 믿음, 그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진리로 행하는 아비의 믿음으로 계속해서 진보해 가야 합니다.
믿음은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신뢰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만큼 성장합니다. 말씀대로 살려는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지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말씀을 깨우치고자 노력하고 기도하며 순종해 나갈 때 믿음이 성장합니다.
물론 사람의 중심과 마음 밭에 따라 더딘 사람도 있고 빠른 사람도 있지만 노력해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영적인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영적인 것을 사모하지 않고 불같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성결되기 원합니다.” 하지만 마음의 악을 버리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고 진정한 결단이 없었다는 사실을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아직 믿음이 크지 않을 때는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다 해도 온전히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명심하고 지키기 위해 마음에 다지고 또 다지면서 불같이 기도해 나가면 반드시 변화됩니다.
2. 열매를 내는 믿음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은 숨겨진 수고와 헌신을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기억하시며 반드시 상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러한 상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으로 수고와 헌신을 해야 하며, 그 믿음은 열매를 통해 증명됩니다. 변개함 없는 중심과 행함으로 믿음이 성장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열매가 맺힙니다.
열심히 충성하는 것 같아도 정작 마음의 악을 버리지 않고 자기 생각과 열심 속에 행한다면 육적인 충성에 불과합니다. 이런 행함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며 열매가 조금 맺히다가도 익기 전에 떨어져 버립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의(義)’란 옳은 것을 좇는 것, 바로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하며, ‘인(仁)’이란 사랑과 덕을 가지고 자신의 삶 속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信)’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 곧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계명을 지킬 때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마음의 악을 버리고 계명을 지켜 행하며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의와 인과 신이란 마음의 악을 버려 거룩해지는 것을 의미하지요.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충성뿐 아니라 마음까지 거룩하게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원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마음의 악을 버리는 가운데 충성하는 것을 기뻐하시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충성에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열매가 맺히면 우리의 수고와 충성을 축복과 하늘의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면 이런 소망 가운데 감사함으로 열매를 낼 수 있습니다.
열심히 땀 흘려 청소하여 성전이 깨끗해졌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중한 열매를 낸 것입니다. 교통정리를 잘하여 차량 소통이 잘되고 성도들이 편안하게 길을 건너게 한 일도, 감동스런 찬양을 올려 성도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구원으로 인도한 것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영혼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어 알곡으로 만든 것도, 주일에 성도들이 행복하게 식사하도록 정성스럽게 준비한 일도 귀한 열매입니다.
그러니 ‘이런 열매는 누가 알아주지 않으며 너무 작아서 티도 안 난다. 나는 언제쯤 큰 열매를 낼까?’ 생각하며 낙심하거나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지금은 작은 열매에 불과하지만 감사하며 그 행함이 쌓이면 큰 열매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분야뿐 아니라 가정이나 직장, 학교 등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 사랑하는 가족,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 감사하며 매 순간 다가오는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며 열매를 낼 때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들로 풍성히 채워 주십니다.
때로는 열심히 충성하는데 당장 보이는 열매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도의 경우 열매를 따기까지 많은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쉬고 싶고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싶어도 마음을 접고 전도하러 나갑니다. 이렇게 자신을 희생하여 전도하러 나갔는데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험한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정성 다해 전도하고 많은 기도를 쌓았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한 영혼을 교회에 데리고 왔으나 알곡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갈 6:9). 다른 선한 영혼을 만나게 하여 헌신에 대한 열매를 맺게 하기도 하십니다. 전도할 능력과 영혼 사랑하는 마음을 더해 주셔서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도록 축복하기도 하시지요. 이렇게 맺어진 열매들이 있을 때 그동안 행한 수고와 노력이 하늘의 상급으로도 쌓입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 집에 이르러 보면 하나님의 사랑과 자상하심에 감격하여 한동안 눈물만 흘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행한 작은 일 하나까지도 전부 상으로 갚아 주신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해도 상이 되는데, 하나님을 위해 믿음으로 행한 것을 어찌 상으로 갚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설령 자신이 잊어버린 일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과연 내가 이런 상을 받을 만한 일을 했는가?’ 생각하고 의아해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이 땅에서 행한 장면을 보여 주실 수도 있습니다. 궂은일도 찬송을 부르며 기쁨으로 한 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섬기며 수고한 일, 교회와 양 떼, 성전 건축을 위해 눈물 뿌려 기도한 일 등 우리가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 기억하고 값진 상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러한 상급을 바라보며 변개함 없이 달려가되 이전보다 더한 믿음으로 성장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 풍성한 열매를 냄으로 이 땅에서 축복을 받음은 물론 천국에서 큰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자녀, 아이, 청년, 아비라 하는 것은 사람의 연령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영적인 ( )을 나타낸다.
2. ( )란 옳은 것을 좇는 것, 바로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3. ( )이란 사랑과 덕을 가지고 자신의 삶 속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4. ( )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 곧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계명을 지킬 때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83~95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분량’(요한일서 2:12~14)
◆ 자녀들의 믿음(믿음의 1단계)- 성령을 받아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
◆ 아이들의 믿음(믿음의 2단계)-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
◆ 청년들의 믿음(믿음의 3단계)-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
◆ 아비들의 믿음(믿음의 4, 5단계)-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믿음
교육목표 : 변개함이 없는 중심과 행함으로 믿음의 장성한 분량까지 이루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녀가 되게 한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결코 제자리걸음 하거나 뒤로 물러서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가 성장하지 못하고 멈춰 있다면 부모가 얼마나 고통을 받겠습니까.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의 믿음이 계속 성장하여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 온전한 사람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십니다.
1. 성장하는 믿음
요한일서 2장 12~14절에는 믿음의 성장을 사람의 성장 과정에 비유하였습니다.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자녀, 아이, 청년, 아비라 하는 것은 사람의 연령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영적인 믿음의 분량을 나타냅니다.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께서는 믿음을 선물로 주십니다. 이 믿음은 겨우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으로서 자녀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성령 받아 자녀의 믿음에 들어선 사람은 속히 성장하여 아이의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아이의 믿음이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나아가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청년의 믿음, 그리고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진리로 행하는 아비의 믿음으로 계속해서 진보해 가야 합니다.
믿음은 저절로 자라지 않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신뢰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만큼 성장합니다. 말씀대로 살려는 자신의 노력이 필요하지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면서 그 말씀을 깨우치고자 노력하고 기도하며 순종해 나갈 때 믿음이 성장합니다.
물론 사람의 중심과 마음 밭에 따라 더딘 사람도 있고 빠른 사람도 있지만 노력해 나가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영적인 믿음이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그만큼 영적인 것을 사모하지 않고 불같이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로는 “성결되기 원합니다.” 하지만 마음의 악을 버리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고 진정한 결단이 없었다는 사실을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아직 믿음이 크지 않을 때는 하나님 말씀을 깨닫는다 해도 온전히 행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명심하고 지키기 위해 마음에 다지고 또 다지면서 불같이 기도해 나가면 반드시 변화됩니다.
2. 열매를 내는 믿음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사람들은 숨겨진 수고와 헌신을 알아주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아무리 작은 것 하나라도 기억하시며 반드시 상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러한 상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으로 수고와 헌신을 해야 하며, 그 믿음은 열매를 통해 증명됩니다. 변개함 없는 중심과 행함으로 믿음이 성장해 나가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열매가 맺힙니다.
열심히 충성하는 것 같아도 정작 마음의 악을 버리지 않고 자기 생각과 열심 속에 행한다면 육적인 충성에 불과합니다. 이런 행함은 좋은 열매를 맺지 못하며 열매가 조금 맺히다가도 익기 전에 떨어져 버립니다.
마태복음 23장 23절에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의(義)’란 옳은 것을 좇는 것, 바로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하며, ‘인(仁)’이란 사랑과 덕을 가지고 자신의 삶 속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을 말합니다. ‘신(信)’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 곧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계명을 지킬 때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을 때 마음의 악을 버리고 계명을 지켜 행하며 신의 성품에 참예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의와 인과 신이란 마음의 악을 버려 거룩해지는 것을 의미하지요.
하나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나는 충성뿐 아니라 마음까지 거룩하게 변화되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을 원하십니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며 마음의 악을 버리는 가운데 충성하는 것을 기뻐하시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충성에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 열매가 맺히면 우리의 수고와 충성을 축복과 하늘의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면 이런 소망 가운데 감사함으로 열매를 낼 수 있습니다.
열심히 땀 흘려 청소하여 성전이 깨끗해졌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소중한 열매를 낸 것입니다. 교통정리를 잘하여 차량 소통이 잘되고 성도들이 편안하게 길을 건너게 한 일도, 감동스런 찬양을 올려 성도들의 마음 문을 열게 한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을 전도하여 구원으로 인도한 것도,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영혼들에게 믿음을 심어 주어 알곡으로 만든 것도, 주일에 성도들이 행복하게 식사하도록 정성스럽게 준비한 일도 귀한 열매입니다.
그러니 ‘이런 열매는 누가 알아주지 않으며 너무 작아서 티도 안 난다. 나는 언제쯤 큰 열매를 낼까?’ 생각하며 낙심하거나 실망해서는 안 됩니다. 비록 지금은 작은 열매에 불과하지만 감사하며 그 행함이 쌓이면 큰 열매가 됩니다.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분야뿐 아니라 가정이나 직장, 학교 등 모든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건강, 사랑하는 가족,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음에 감사하며 매 순간 다가오는 작은 것 하나라도 소중히 여기며 열매를 낼 때 하나님께서 더 좋은 것들로 풍성히 채워 주십니다.
때로는 열심히 충성하는데 당장 보이는 열매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전도의 경우 열매를 따기까지 많은 희생과 헌신이 필요합니다. 바쁜 시간을 쪼개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쉬고 싶고 개인적인 시간을 갖고 싶어도 마음을 접고 전도하러 나갑니다. 이렇게 자신을 희생하여 전도하러 나갔는데 문전박대를 당하거나 험한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정성 다해 전도하고 많은 기도를 쌓았는데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한 영혼을 교회에 데리고 왔으나 알곡으로 정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낙심하지 않고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열매를 맺게 하십니다(갈 6:9). 다른 선한 영혼을 만나게 하여 헌신에 대한 열매를 맺게 하기도 하십니다. 전도할 능력과 영혼 사랑하는 마음을 더해 주셔서 더 많은 영혼을 구원할 수 있도록 축복하기도 하시지요. 이렇게 맺어진 열매들이 있을 때 그동안 행한 수고와 노력이 하늘의 상급으로도 쌓입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 집에 이르러 보면 하나님의 사랑과 자상하심에 감격하여 한동안 눈물만 흘리게 됩니다. 하나님을 믿고 행한 작은 일 하나까지도 전부 상으로 갚아 주신 것을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소자에게 물 한 그릇을 대접해도 상이 되는데, 하나님을 위해 믿음으로 행한 것을 어찌 상으로 갚아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설령 자신이 잊어버린 일이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과연 내가 이런 상을 받을 만한 일을 했는가?’ 생각하고 의아해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이 땅에서 행한 장면을 보여 주실 수도 있습니다. 궂은일도 찬송을 부르며 기쁨으로 한 일,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발이 닳도록 섬기며 수고한 일, 교회와 양 떼, 성전 건축을 위해 눈물 뿌려 기도한 일 등 우리가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 기억하고 값진 상으로 갚아 주십니다.
이러한 상급을 바라보며 변개함 없이 달려가되 이전보다 더한 믿음으로 성장해야 하겠습니다. 또한 날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여 풍성한 열매를 냄으로 이 땅에서 축복을 받음은 물론 천국에서 큰 영광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자녀, 아이, 청년, 아비라 하는 것은 사람의 연령에 따른 분류가 아니라 영적인 ( )을 나타낸다.
2. ( )란 옳은 것을 좇는 것, 바로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3. ( )이란 사랑과 덕을 가지고 자신의 삶 속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을 말한다.
4. ( )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 곧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계명을 지킬 때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83~95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믿음의 분량’(요한일서 2:12~14)
◆ 자녀들의 믿음(믿음의 1단계)- 성령을 받아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
◆ 아이들의 믿음(믿음의 2단계)-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
◆ 청년들의 믿음(믿음의 3단계)-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
◆ 아비들의 믿음(믿음의 4, 5단계)-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믿음
2020-03-13
제11과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 ( 1 )
히브리서 11:6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6 | 외울말씀 : 야고보서 1:6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17:24~27
교육목표 :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변개함이 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구할 때 응답하시며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에 하늘의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믿음이 응답과 축복의 척도가 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보다는 ‘얼마나 참된 믿음으로 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똑같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해도 단지 자기 열심과 성실로써 하는 사람과 믿음을 가지고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는 사람은 그 열매가 다릅니다. 같은 충성을 해도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했느냐에 따라 하늘의 상급이 다르며, 이 땅에서 받는 응답과 축복도 다르지요.
1.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반석이란 뜻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주신 이름입니다. 그는 본래 야고보, 요한과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밤새 수고하였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고기잡는 일에 전문가였지만 자기의 생각과 이론을 앞세우지 않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가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바다로 나갔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지요.
마태복음 17장 24~27절에도 그가 예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성전세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화평을 위해 베드로에게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동원했다면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순종에 따른 축복을 체험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이루어야 할 일에는 꼭 베드로를 보내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맞은편 마을로 가서 매어 있는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 명하십니다. 그는 그때에도 아무 이의를 달지 않고 온전히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늘 순종하는 자세였기에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실 때에 잠시나마 물 위를 걷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순종하니 하나님께서는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모든 제자들이 자기를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예수님이 잡히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새벽 무렵 닭이 울자 그는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였지요.
그 후 갈릴리 바닷가로 돌아간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실수와 허물을 기억지 않고 그에게 많은 영혼을 구원할 귀한 사명을 주셨지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삼천 명이나 회개시키는 힘 있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며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걷고 뛰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그는 큰 권능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갔습니다.
베드로는 핍박 속에서도 요한과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세 번이나 투옥되었으며,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였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실수가 많았던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로, 초대교회의 용기 있는 지도자로 변화된 것은 진실한 회개와 순종의 행함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처럼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루며 열매를 맺으려면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요?
2. 변개함이 없는 믿음
변개함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처음과 나중이 똑같다는 말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보다 믿음이 커지고 더 온전해질 때라야 변개함이 없다 할 수 있지요. 많은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행복해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풀 한 포기, 작은 돌 하나도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여깁니다. 늘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하는가 하면 만나는 이마다 자신이 아는 하나님과 천국에 대해 전합니다. 변개하지 않는 믿음으로 이렇게 계속 달려간다면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또는 이런저런 연단을 겪다 보니 믿음이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 가졌던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위한 충성과 열정도 식어집니다. 오히려 세상에 마음을 두고 세월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개함에 대해 ‘누가 이래서, 상황이 저래서’ 등 외적인 데 원인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원인은 바로 자기 안에 있으며 이는 내 안에 그만큼 진리가 임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곧 진실하지 않다는 말로서 이런 사람은 자기 유익을 좇아 수시로 변개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계약을 맺었는데 얼마 후에 더 큰 유익이 되는 제안이 왔습니다. 이때 망설임 없이 그 편을 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알기 때문에 선뜻 바꾸지는 않아도 변개하는 속성이 있으므로 ‘이럴까 저럴까’ 계속 갈등을 합니다. 그러다 결국 더 유익이 되는 쪽으로 변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야 하나님 나라에 더 유익이니까, 이렇게 하면 모두에게 더 좋으니까’라는 이유를 대면서 합리화합니다. 물론 처음에 정한 것을 바꿈으로써 더 유익이 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 보기에 유익이 되고 좋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설령 불이익을 당할 것이 불 보듯 분명하다 해도 한번 정한 마음을 변개치 않고 지키는 사람을 기뻐하며 합력하여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변개함은 여러 분야에서 드러납니다. “더 기도해야지, 더 공부해야지” 하며 마음에 결심했던 일이라도 얼마나 신실하게 지켰는지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것쯤이야’ 하며 변개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 하나에서부터 마음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기대하는 만큼 열매가 나오지 않으면 낙심하는 마음도 변개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말씀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변개함이 없는 정한 마음을 가져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변개함이 없는 마음은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데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서 악의 모양이 드러나면 충만함을 잃고 낙심합니다. 입으로는 ‘자신을 발견하여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변화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지만 막상 악이 발견되면 힘을 잃습니다. 성결한 마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악이 발견될 때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것을 버리기 위해 변함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릴 수 있습니다. 결국 변개함이라는 속성을 버리는 만큼 신속히 진리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려면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변개하려는 속성을 뿌리째 뽑아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굳게 지키고, 변개함을 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변함없는 믿음으로 날이 갈수록 더 뜨겁게 노력해 갈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기뻐하시고 신속히 변개함을 버릴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 )이 없는 정한 마음을 가져야 응답받을 수 있다. 변개함이 없는 마음은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데에 도 매우 중요하다.
2. 성결한 마음을 이루려면 자신의 악이 발견될 때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것을 버리기 위해 ( )없이 ( )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65~79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변개하는 주된 원인’
사람들이 한번 정한 일이나 처음 가졌던 마음을 변개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자신의 유익에 따라 이랬다저랬다하는 간사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물질이나 더 큰 권세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변개한다. 간사함으로 인해 작게는 약속 시간을 어기는 일에서 크게는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일까지 있다.
자기 유익에 따라 작은 약속을 어기는 것을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지만 작은 것을 내주다 보면 그것이 큰 것으로 자랄 수도 있기에 변개함의 속성을 온전히 버려야 한다.
교육목표 :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변개함이 없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으로 구할 때 응답하시며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에 하늘의 상급으로 갚아 주십니다. 믿음이 응답과 축복의 척도가 되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가’보다는 ‘얼마나 참된 믿음으로 하는가’가 더 중요합니다.
똑같이 하나님의 일을 한다 해도 단지 자기 열심과 성실로써 하는 사람과 믿음을 가지고 중심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는 사람은 그 열매가 다릅니다. 같은 충성을 해도 얼마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으로 했느냐에 따라 하늘의 상급이 다르며, 이 땅에서 받는 응답과 축복도 다르지요.
1.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
반석이란 뜻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주신 이름입니다. 그는 본래 야고보, 요한과 함께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였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5장을 보면 밤새 수고하였지만 아무것도 잡지 못한 베드로에게 예수님께서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고기잡는 일에 전문가였지만 자기의 생각과 이론을 앞세우지 않고 예수님 말씀에 순종했습니다. 그가 말씀에 의지하여 다시 바다로 나갔을 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지요.
마태복음 17장 24~27절에도 그가 예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성전세를 받으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화평을 위해 베드로에게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가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동원했다면 그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순종에 따른 축복을 체험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이루어야 할 일에는 꼭 베드로를 보내셨습니다. 마태복음 21장 1~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맞은편 마을로 가서 매어 있는 나귀와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 명하십니다. 그는 그때에도 아무 이의를 달지 않고 온전히순종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며 그 능력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베드로는 늘 순종하는 자세였기에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어오실 때에 잠시나마 물 위를 걷기도 하였습니다. 그가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순종하니 하나님께서는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앞두고 모든 제자들이 자기를 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렇지 않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셨습니다. 그 말씀대로 예수님이 잡히시자 베드로는 세 번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였습니다. 새벽 무렵 닭이 울자 그는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 심히 통곡하며 회개하였지요.
그 후 갈릴리 바닷가로 돌아간 베드로에게 부활하신 주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주님은 베드로의 실수와 허물을 기억지 않고 그에게 많은 영혼을 구원할 귀한 사명을 주셨지요.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성령을 받은 베드로는 삼천 명이나 회개시키는 힘 있는 설교를 하였습니다. 앉은뱅이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며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걷고 뛰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그는 큰 권능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갔습니다.
베드로는 핍박 속에서도 요한과 함께 복음을 전하다가 세 번이나 투옥되었으며,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였습니다. 성격이 급하고 실수가 많았던 시몬 베드로가 예수님의 수제자로, 초대교회의 용기 있는 지도자로 변화된 것은 진실한 회개와 순종의 행함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처럼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하나님의 일을 크게 이루며 열매를 맺으려면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요?
2. 변개함이 없는 믿음
변개함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처음과 나중이 똑같다는 말이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보다 믿음이 커지고 더 온전해질 때라야 변개함이 없다 할 수 있지요. 많은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으면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사랑을 받았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행복해합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풀 한 포기, 작은 돌 하나도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여깁니다. 늘 기쁨과 감사의 찬송을 하는가 하면 만나는 이마다 자신이 아는 하나님과 천국에 대해 전합니다. 변개하지 않는 믿음으로 이렇게 계속 달려간다면 하나님의 큰 은혜와 사랑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또는 이런저런 연단을 겪다 보니 믿음이 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처음에 가졌던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고 하나님을 위한 충성과 열정도 식어집니다. 오히려 세상에 마음을 두고 세월을 보내기도 합니다.
이러한 변개함에 대해 ‘누가 이래서, 상황이 저래서’ 등 외적인 데 원인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원인은 바로 자기 안에 있으며 이는 내 안에 그만큼 진리가 임하지 않았다는 증거입니다. 곧 진실하지 않다는 말로서 이런 사람은 자기 유익을 좇아 수시로 변개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계약을 맺었는데 얼마 후에 더 큰 유익이 되는 제안이 왔습니다. 이때 망설임 없이 그 편을 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진리를 알기 때문에 선뜻 바꾸지는 않아도 변개하는 속성이 있으므로 ‘이럴까 저럴까’ 계속 갈등을 합니다. 그러다 결국 더 유익이 되는 쪽으로 변개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이렇게 해야 하나님 나라에 더 유익이니까, 이렇게 하면 모두에게 더 좋으니까’라는 이유를 대면서 합리화합니다. 물론 처음에 정한 것을 바꿈으로써 더 유익이 되고 더 많은 사람에게 좋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 보기에 유익이 되고 좋을 뿐입니다. 하나님은 설령 불이익을 당할 것이 불 보듯 분명하다 해도 한번 정한 마음을 변개치 않고 지키는 사람을 기뻐하며 합력하여 더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변개함은 여러 분야에서 드러납니다. “더 기도해야지, 더 공부해야지” 하며 마음에 결심했던 일이라도 얼마나 신실하게 지켰는지 자신을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것쯤이야’ 하며 변개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 하나에서부터 마음을 지켜 나가야 합니다. 기대하는 만큼 열매가 나오지 않으면 낙심하는 마음도 변개함이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8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말씀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변개함이 없는 정한 마음을 가져야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변개함이 없는 마음은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데에도 매우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에게서 악의 모양이 드러나면 충만함을 잃고 낙심합니다. 입으로는 ‘자신을 발견하여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변화되기를 원한다’고 기도하지만 막상 악이 발견되면 힘을 잃습니다. 성결한 마음을 이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악이 발견될 때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것을 버리기 위해 변함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릴 수 있습니다. 결국 변개함이라는 속성을 버리는 만큼 신속히 진리의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려면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변개하려는 속성을 뿌리째 뽑아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마음을 굳게 지키고, 변개함을 버리기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변함없는 믿음으로 날이 갈수록 더 뜨겁게 노력해 갈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기뻐하시고 신속히 변개함을 버릴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어떤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말고 ( )이 없는 정한 마음을 가져야 응답받을 수 있다. 변개함이 없는 마음은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데에 도 매우 중요하다.
2. 성결한 마음을 이루려면 자신의 악이 발견될 때 기뻐하고 감사하며 그것을 버리기 위해 ( )없이 ( )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65~79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변개하는 주된 원인’
사람들이 한번 정한 일이나 처음 가졌던 마음을 변개하는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자신의 유익에 따라 이랬다저랬다하는 간사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물질이나 더 큰 권세를 얻기 위해,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변개한다. 간사함으로 인해 작게는 약속 시간을 어기는 일에서 크게는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일까지 있다.
자기 유익에 따라 작은 약속을 어기는 것을 그냥 지나쳐 버릴 수도 있지만 작은 것을 내주다 보면 그것이 큰 것으로 자랄 수도 있기에 변개함의 속성을 온전히 버려야 한다.
2020-03-06
제10과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2)
마가복음 9:14~29
읽을말씀 : 마가복음 9:14~29 | 외울말씀 : 마가복음 11:24 l 참고 말씀: 예레미야 33:3
교육목표 : 중심에서 믿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긍정적인 고백과 부르짖는 기도를 함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은 보배와 같아서 참 믿음을 소유하면 빛을 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임을 믿는다면 어떠한 난관에 부딪힌다 해도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설령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지키시고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받고 문제를 해결받는 데에 꼭 필요한 과정을 마가복음 9장 14~29절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는 과정
첫째, 긍정적인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귀신 들린 아들 때문에 심한 고통을 받아왔던 아버지는 영적인 믿음이 없이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자 즉시 “내가 믿나이다” 하며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물론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으로 고백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분이라는 소문을 들어 머리로 알고 있는 믿음을 고백한 것에 불과합니다. 비록 그에게 영적인 믿음은 없었지만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의 촉진제가 되어 응답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고백은 매우 중요합니다. 진정한 믿음의 고백은 설령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이미 이루어진 줄로 믿고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또 믿음의 고백을 한 사람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기 편에서도 끊임없이 기도하며 행하기 때문에 결국 믿음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당회장님께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긍정적인 사고와 믿음의 고백으로 승리하셨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 당회장님은 ‘좋다, 나쁘다, 기쁘다, 슬프다, 쉽다, 어렵다’ 등 긍정적인 말들과 부정적인 말들을 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아무래도 긍정적인 일보다는 부정적인 일들이 더 많이 다가오기 때문에 부정적인 말이 대부분이었지요.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후 성경 말씀을 통해 부정적인 사고나 고백이 얼마나 무익하고 허망하며, 모든 일이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역사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상 주 안에서 긍정적인 말만 하였으며, 그 입술의 고백대로 하나님께서 보장하시고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례로, 신학교 4학년 때 교회 개척을 준비할 무렵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개척하여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러운지 아느냐?”며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중심에서 믿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인도하실 것이고 축복받아 부흥하여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하였지요. 혹여 누가 부정적인 말을 해도 그 말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긍정적인 마음과 생각으로 기도하며 믿음의 고백을 했더니 과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놀라운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며 전 세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 주셨지요. 이처럼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십니다.
둘째,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갈망하며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앞서 “믿나이다” 고백했지만 중심에서 믿지는 않았기에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지식적인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아는 만큼 스스로 가질 수 있지만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만큼 마음의 성결을 이루게 되며,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마음에 믿어지는 참 믿음을 주십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 예수님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의 진실된 성품, 마음을 다한 간구와 행함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믿어지는 믿음을 주십니다. 이렇게 영적인 믿음이 주어지니 그 믿음대로 응답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며 아이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소리 지르며 나갔지요(막 9:25~27).
셋째,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의 선지자들도, 예수님도, 신약의 사도들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만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오고 응답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금 기도하다가 응답이 오지 않는다 해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했듯이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야 하지요.
이러한 믿음을 가지면 설령 응답이 좀 더디 온다 해도 실망하지 않으며 응답될 때까지 변함없는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과 정성을 보고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부르짖었기에 응답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는 데서 그치는 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중심에서 믿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고 긍정적인 고백과 부르짖는 기도를 할 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불치병이나 가정, 직장, 사업터의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게 해결해 주십니다. 단,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적인 믿음을 갖고 나올 때라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선진들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수없이 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성경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삶 속에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성도들 중에는 암, 결핵, 중풍, 뇌성마비, 디스크, 관절염, 백혈병 등 불치, 난치병으로 죽음을 기다리다 믿음으로 깨끗이 치료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온전케 되고 소아마비나 교통사고 등으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기도받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걷고 뛰었습니다.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이 기도받은 즉시 화기가 물러가고, 빠른 시간 내에 흉터 없이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뇌출혈이나 연탄가스 중독 등으로 의식이 없고 몸이 굳은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깨어나고 후유증 없이 온전해졌습니다. 5년, 10년, 20년 동안 잉태하지 못했던 사람이 기도받고 잉태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 외에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온전해져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은 단지 치료의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니 즉시 멈추었습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쬘 때 구름이 몰려와 가려 주고, 태풍이 물러가는 등 천기까지도 움직였습니다. 하계수련회 때는 전국이 태풍이나 장마로 큰 피해를 입어도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내리지 않았지요. 그런가 하면 일반적으로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 무지개를 맑은 하늘에서 수없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 성경이 참임을 보이심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참 믿음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불가능이 없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삶 속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항상 체험하여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받고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 고백이 있어야 한다.
② 영적인 ( )을 소유해야 한다.
③ ( ) 기도가 있어야 한다.
2.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에게 영적 믿음은 없었지만 ( ) 입술의 고백이 마음에 믿어지는 ( )의 촉진제가 되어 응답으로 이어졌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65~79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긍정적인 입술의 말’
긍정적인 입술의 말은 삶을 변화시킨다. 사람의 뇌에 있는 언어 중추신경은 우리 몸의 모든 신경을 지배한다고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는 점점 약해지고 있어.”라는 말을 하면 언어 중추신경의 작용으로 다른 몸의 신경조직들도 약해지도록 조절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말은 몸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격 형성 등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인격이 변화되고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교육목표 : 중심에서 믿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긍정적인 고백과 부르짖는 기도를 함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은 보배와 같아서 참 믿음을 소유하면 빛을 발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분임을 믿는다면 어떠한 난관에 부딪힌다 해도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설령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지키시고 형통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받고 문제를 해결받는 데에 꼭 필요한 과정을 마가복음 9장 14~29절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1.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는 과정
첫째, 긍정적인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귀신 들린 아들 때문에 심한 고통을 받아왔던 아버지는 영적인 믿음이 없이 예수님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자 즉시 “내가 믿나이다” 하며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물론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으로 고백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는 분이라는 소문을 들어 머리로 알고 있는 믿음을 고백한 것에 불과합니다. 비록 그에게 영적인 믿음은 없었지만 긍정적인 입술의 고백이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의 촉진제가 되어 응답으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긍정적인 고백은 매우 중요합니다. 진정한 믿음의 고백은 설령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았다 해도 이미 이루어진 줄로 믿고 하는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대로 이루어 주십니다. 또 믿음의 고백을 한 사람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기 편에서도 끊임없이 기도하며 행하기 때문에 결국 믿음대로 이루어집니다.
그렇다면 당회장님께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 긍정적인 사고와 믿음의 고백으로 승리하셨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하나님을 믿기 전 당회장님은 ‘좋다, 나쁘다, 기쁘다, 슬프다, 쉽다, 어렵다’ 등 긍정적인 말들과 부정적인 말들을 하며 살았습니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아무래도 긍정적인 일보다는 부정적인 일들이 더 많이 다가오기 때문에 부정적인 말이 대부분이었지요.
그러나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난 후 성경 말씀을 통해 부정적인 사고나 고백이 얼마나 무익하고 허망하며, 모든 일이 입술로 시인하는 대로 역사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교회를 개척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항상 주 안에서 긍정적인 말만 하였으며, 그 입술의 고백대로 하나님께서 보장하시고 이루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례로, 신학교 4학년 때 교회 개척을 준비할 무렵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를 개척하여 이룬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생스러운지 아느냐?”며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중심에서 믿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형통하게 인도하실 것이고 축복받아 부흥하여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하였지요. 혹여 누가 부정적인 말을 해도 그 말이 조금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긍정적인 마음과 생각으로 기도하며 믿음의 고백을 했더니 과연 하나님께서는 놀랍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놀라운 기사와 표적으로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며 전 세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해 주셨지요. 이처럼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이 있을 때 그 믿음대로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십니다.
둘째,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갈망하며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막 9:24)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앞서 “믿나이다” 고백했지만 중심에서 믿지는 않았기에 믿음 없음을 도와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지식적인 믿음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아는 만큼 스스로 가질 수 있지만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 순종하는 만큼 마음의 성결을 이루게 되며,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마음에 믿어지는 참 믿음을 주십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 예수님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했습니다.
그의 진실된 성품, 마음을 다한 간구와 행함을 보신 예수님께서는 믿어지는 믿음을 주십니다. 이렇게 영적인 믿음이 주어지니 그 믿음대로 응답받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으며 아이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소리 지르며 나갔지요(막 9:25~27).
셋째,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렘 33:3) 약속하셨습니다. 성경을 보면 구약의 선지자들도, 예수님도, 신약의 사도들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문제를 해결받았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있어야만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오고 응답받을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응답이 올 때까지 기도를 계속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조금 기도하다가 응답이 오지 않는다 해서 포기하면 안 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말씀했듯이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야 하지요.
이러한 믿음을 가지면 설령 응답이 좀 더디 온다 해도 실망하지 않으며 응답될 때까지 변함없는 믿음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과 정성을 보고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부르짖었기에 응답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는 데서 그치는 지식적인 믿음이 아니라 중심에서 믿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고 긍정적인 고백과 부르짖는 기도를 할 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2.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불가능한 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불치병이나 가정, 직장, 사업터의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완벽하게 해결해 주십니다. 단,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영적인 믿음을 갖고 나올 때라야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선진들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놀라운 일들을 수없이 행했습니다. 그런데 이는 성경 속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역사는 우리 삶 속에 끊임없이 나타납니다.
성도들 중에는 암, 결핵, 중풍, 뇌성마비, 디스크, 관절염, 백혈병 등 불치, 난치병으로 죽음을 기다리다 믿음으로 깨끗이 치료받은 경우가 많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이 온전케 되고 소아마비나 교통사고 등으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기도받고 그 자리에서 일어나 걷고 뛰었습니다.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이 기도받은 즉시 화기가 물러가고, 빠른 시간 내에 흉터 없이 깨끗하게 치료되었습니다. 뇌출혈이나 연탄가스 중독 등으로 의식이 없고 몸이 굳은 사람들이 기도받은 즉시 깨어나고 후유증 없이 온전해졌습니다. 5년, 10년, 20년 동안 잉태하지 못했던 사람이 기도받고 잉태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많습니다. 이 외에도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며 말하지 못하던 사람들이 온전해져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권능은 단지 치료의 역사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기도하니 즉시 멈추었습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쬘 때 구름이 몰려와 가려 주고, 태풍이 물러가는 등 천기까지도 움직였습니다. 하계수련회 때는 전국이 태풍이나 장마로 큰 피해를 입어도 수련회 장소만은 비가 내리지 않았지요. 그런가 하면 일반적으로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 무지개를 맑은 하늘에서 수없이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역사를 통해 성경이 참임을 보이심으로 성도들로 하여금 참 믿음을 갖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불가능이 없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음으로 삶 속에서 하나님의 권능을 항상 체험하여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믿음으로 응답받고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 고백이 있어야 한다.
② 영적인 ( )을 소유해야 한다.
③ ( ) 기도가 있어야 한다.
2.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에게 영적 믿음은 없었지만 ( ) 입술의 고백이 마음에 믿어지는 ( )의 촉진제가 되어 응답으로 이어졌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65~79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긍정적인 입술의 말’
긍정적인 입술의 말은 삶을 변화시킨다. 사람의 뇌에 있는 언어 중추신경은 우리 몸의 모든 신경을 지배한다고 한다.
가령, 어떤 사람이 “나는 점점 약해지고 있어.”라는 말을 하면 언어 중추신경의 작용으로 다른 몸의 신경조직들도 약해지도록 조절된다는 것이다.
긍정적인 말은 몸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격 형성 등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입으로 시인하는 대로 인격이 변화되고 삶의 방향이 바뀌기도 한다.
2020-02-28
제9과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1)
마가복음 9:23~27
읽을말씀 : 마가복음 9:23~27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21 l 참고 말씀: 요한일서 5:3
교육목표 :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 위한 초석이요, 최소한의 행함인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인생의 어떠한 문제라도 응답받을 수 있게 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기쁘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슬프고 마음 아픈 일, 주변으로부터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막막한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불치, 난치병으로 고통받거나 사업터, 일터의 문제로 한 가닥 희망조차 없어 보일 때도 있지요.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도 자녀 문제, 부부간의 갈등 등 말 못할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문제 앞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형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해야
본문을 보면 한 아버지가 아들의 문제로 예수님께 나와 단번에 문제를 해결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다가 내려오셨을 때였습니다. 한 남자가 아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지요.
그 아들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심한 발작을 하고 땅에 넘어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귀신에 들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간질까지 하는 상황이었지요. 한번 발작이 일어나면 불과 물에 넘어져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이런 아들로 인해 아비는 항상 불안과 근심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지요. “예수라는 분이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고 소경의 눈도 뜨게 하며,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귀신을 내쫓아 주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문은 이 아비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능력 있는 분이라면 내 아들을 고쳐 줄 수 있을지도 몰라.’ 하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지요. 아비는 예수님께 “귀신이 저를(아이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때 그가 “하실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라고 말한 것은 온전한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것은 하실 수 있고, 어떤 것은 하실 수 없는 분이 아니라 무엇이든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믿음 없이 요행을 바라고 나왔음을 보여 주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를 깨우쳐 주기 위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비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이의 아버지는 왜 “내가 믿나이다” 해 놓고는 바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했을까요? 정말 믿는다면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처음에 “내가 믿나이다” 한 것은 육적인 믿음으로 자신이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 놀라운 역사를 베푸는 분임을 들었지요. 이렇게 들어서 알고 있는 지식적인 믿음으로 “믿는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아니었기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막상 아들의 문제를 응답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이 자신에게 없음을 깨닫고,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라고 간구했지요. 이처럼 겸비한 자세로 간구하자 예수님께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명하시자 즉시 귀신이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은 자기 지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면 다 믿으며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는 영적인 믿음입니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점은 응답에 대한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는다 해서 무조건 입술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항상 긍정적인 고백을 하며 응답받을 믿음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위로부터 주십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믿음으로 응답받으려면
첫째, 하나님과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둠이 조금도 없는 빛 자체이십니다. 죄는 빛과 반대되는 어둠입니다. 행함으로 짓는 죄뿐 아니라 생각이나 마음으로 짓는 모든 죄도 어둠에 속합니다. 빛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둠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1~2)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으면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응답받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하여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어둠인 죄를 버리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하지요. 죄를 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노력할 때 성령께서 도와주시고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므로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 다 뽑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죄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집니다. 자연히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살게 되며, 마음에서 어둠이 사라지는 만큼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옵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뜻을 좇는 것이 당연합니다.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 지혜와 물질 등 자신이 가진 것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게 됩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해도 하나님의 뜻이면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합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그의 계명 곧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과 함께해 주십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는 믿어지는 믿음이 주어지고 “네 믿음대로 되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셋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말씀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여호와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자기 유익에 맞는 일이 생겼을 때 육적인 감정 속에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누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도 그 기쁨을 돌려 주심으로 참된 기쁨이 임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대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행과 중심에서 드린 예물을 기뻐하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시지요. 그 밖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할 때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이 위로부터 주어집니다. 물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모든 분야에 충성해 나갈 때라야 온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좀 부족하다 해도 자신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께서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십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면 마음의 소원이나 어떤 문제라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혹여 하나님과 죄의 담이 있다면 속히 헐어 버리고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과 빛 가운데 행함으로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이의 아버지는 왜 “내가 믿나이다” 해 놓고는 바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했을까요?
2.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과 ( )이 없어야 한다.
② 하나님의 ( )을 좇아야 한다.
③ 하나님을 ( ) 해 드려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49~6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의 힘
① 긍정적인 말은 삶을 변화시킨다.
② 긍정적인 고백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③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교육목표 :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 위한 초석이요, 최소한의 행함인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으로 인생의 어떠한 문제라도 응답받을 수 있게 한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기쁘고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슬프고 마음 아픈 일, 주변으로부터 아무 도움도 받을 수 없는 막막한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불치, 난치병으로 고통받거나 사업터, 일터의 문제로 한 가닥 희망조차 없어 보일 때도 있지요.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도 자녀 문제, 부부간의 갈등 등 말 못할 문제로 고민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러한 인생의 문제 앞에서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며 형통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해야
본문을 보면 한 아버지가 아들의 문제로 예수님께 나와 단번에 문제를 해결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세 제자를 데리고 변화산에 오르셨다가 내려오셨을 때였습니다. 한 남자가 아들을 예수님 앞으로 데려왔지요.
그 아들은 예수님을 보자마자 심한 발작을 하고 땅에 넘어져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귀신에 들려 말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며, 간질까지 하는 상황이었지요. 한번 발작이 일어나면 불과 물에 넘어져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습니다. 이런 아들로 인해 아비는 항상 불안과 근심 속에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지요. “예수라는 분이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고 소경의 눈도 뜨게 하며, 벙어리도 말하게 한다. 귀신을 내쫓아 주고, 심지어 죽은 사람도 살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소문은 이 아비에게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능력 있는 분이라면 내 아들을 고쳐 줄 수 있을지도 몰라.’ 하며 아들을 데리고 예수님을 찾아왔지요. 아비는 예수님께 “귀신이 저를(아이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라고 간청하였습니다. 이때 그가 “하실 수 있거든 도와주소서”라고 말한 것은 온전한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것은 하실 수 있고, 어떤 것은 하실 수 없는 분이 아니라 무엇이든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믿음 없이 요행을 바라고 나왔음을 보여 주지요. 예수님께서는 이를 깨우쳐 주기 위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비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아이의 아버지는 왜 “내가 믿나이다” 해 놓고는 바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했을까요? 정말 믿는다면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처음에 “내가 믿나이다” 한 것은 육적인 믿음으로 자신이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며 소경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자를 살리는 등 놀라운 역사를 베푸는 분임을 들었지요. 이렇게 들어서 알고 있는 지식적인 믿음으로 “믿는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아니었기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청했던 것입니다.
막상 아들의 문제를 응답받을 수 있는 영적인 믿음이 자신에게 없음을 깨닫고,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을 주시라고 간구했지요. 이처럼 겸비한 자세로 간구하자 예수님께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명하시자 즉시 귀신이 나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은 자기 지식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면 다 믿으며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는 영적인 믿음입니다. 그런데 유의해야 할 점은 응답에 대한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는다 해서 무조건 입술로 부정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항상 긍정적인 고백을 하며 응답받을 믿음이 올 때까지 기도해야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위로부터 주십니다.
그렇다면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믿음으로 응답받으려면
첫째, 하나님과 죄의 담이 없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은 어둠이 조금도 없는 빛 자체이십니다. 죄는 빛과 반대되는 어둠입니다. 행함으로 짓는 죄뿐 아니라 생각이나 마음으로 짓는 모든 죄도 어둠에 속합니다. 빛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둠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1~2)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으면 기도해도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응답받기 위해서는 먼저 회개하여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이와 함께 어둠인 죄를 버리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하지요. 죄를 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하며 노력할 때 성령께서 도와주시고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을 주시므로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 다 뽑아 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하면 죄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 싫어집니다. 자연히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살게 되며, 마음에서 어둠이 사라지는 만큼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옵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의 뜻을 좇는 것이 당연합니다. 몸과 마음과 뜻과 정성, 지혜와 물질 등 자신이 가진 것을 다하여 하나님의 뜻을 좇게 됩니다.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것이라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힘든 일이라 해도 하나님의 뜻이면 기쁨과 감사함으로 순종합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는 그의 계명 곧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기쁨으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과 함께해 주십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는 믿어지는 믿음이 주어지고 “네 믿음대로 되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셋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말씀했습니다. 여호와를 기뻐한다는 것은 여호와로 인해서 기뻐하고 즐거워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기쁨은 자기 유익에 맞는 일이 생겼을 때 육적인 감정 속에서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누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러한 기쁨을 누릴 수 있을까요?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됩니다. 그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도 그 기쁨을 돌려 주심으로 참된 기쁨이 임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대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선행과 중심에서 드린 예물을 기뻐하십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고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시지요. 그 밖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할 때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믿음이 위로부터 주어집니다. 물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모든 분야에 충성해 나갈 때라야 온전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은 좀 부족하다 해도 자신의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그 순간만큼은 하나님께서 무엇이나 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십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면 마음의 소원이나 어떤 문제라도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혹여 하나님과 죄의 담이 있다면 속히 헐어 버리고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과 빛 가운데 행함으로 어떤 문제라 할지라도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이의 아버지는 왜 “내가 믿나이다” 해 놓고는 바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했을까요?
2.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과 ( )이 없어야 한다.
② 하나님의 ( )을 좇아야 한다.
③ 하나님을 ( ) 해 드려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49~6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의 힘
① 긍정적인 말은 삶을 변화시킨다.
② 긍정적인 고백 속에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③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 속에 하나님이 함께하신다.
2020-02-21
제8과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2)
로마서 8:5~8
읽을말씀 : 로마서 8:5~8 | 외울말씀 : 고린도전서 2:10 ㅣ 참고 말씀/ 이사야 55:8~9
교육목표 :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매 순간 진리의 생각을 채움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한다.
영적인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것을 명하실 때 순종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리라고 약속하셨다 해도 사람 편에서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불순종한다면 약속의 열매를 얻을 수가 없지요. 비진리의 지식이 있는 만큼 사단의 역사를 받아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며 그런 만큼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1. 영적인 믿음과 순종의 관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떠나라 명하시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주셨으면 그대로 믿고 하나님의 인도를 좇아가면 됩니다. 믿으면 순종할 수 있고 그럴 때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1세대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불순종했습니다. 원망 불평하며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대적하여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지요. 반면 어려서부터 말씀으로 양육받은 이스라엘 2세대는 육신의 생각을 하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요단강을 밟으라, 여리고성을 돌라’ 할 때도 그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으며 마침내 하나님 말씀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영적인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육신의 생각을 온전히 버린 사람이라야 하나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중심에서 순복하며 말씀을 보장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한 나라에 여러 왕자가 있는데 그중에 맏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 것이 관례라고 합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막내 왕자는 아직 어리지만 훌륭한 왕의 자질을 타고났기에 그가 새 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 맏아들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아버지를 신뢰하지 않고 존중하지도 않는다면 그 말씀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혹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왕위를 양보한다 해도 한편으로는 불편함과 서운함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진정 아버지를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아버지가 한 판단을 믿어 드리며 기꺼이 왕위를 양보할 것입니다. 또한 어찌하든 막내의 부족함을 채워 주어 그가 훌륭한 왕이 되도록 돕겠지요. 아버지를 신뢰하며 사랑하기에 ‘어떻게 하면 온전히 순종하여 그 말씀을 보장하여 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떠오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명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순종할 수 없는 이유를 먼저 떠올리게 되고 설령 순종한다 해도 그저 겉모양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육신의 생각을 버린 사람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명하시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방법론까지 깨우쳐 온전한 순종의 열매를 내놓을 수 있지요. 이처럼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믿음이 오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며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육신의 생각을 버리려면
첫째, 모든 죄와 악을 버리고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싫다. 밉다. 서럽다. 힘들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육신의 생각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생각이 떠오를 때에 ‘아니야,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어!’ 하고 거기서 멈춰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신만 더 힘들어집니다. 그러니 그 생각을 진전시키지 않고 일단 멈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처음에 떠올랐던 육신의 생각의 뿌리를 파악해야 합니다. ‘싫다. 밉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내 안에 아직 ‘미움’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무시하는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면 자존심이나 교만이 있는 것이므로 이렇게 뿌리에 해당하는 악을 발견하여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악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 말씀을 부지런히 마음에 양식 삼고 행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 안에 있는 미움, 혈기, 시기, 판단, 정죄, 교만 등의 비진리를 빼내고 선, 사랑, 섬김, 화평 등의 진리로 채워가야 하지요. 물론 이 과정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미워하던 사람이 ‘원수도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고 합시다. 이 말씀을 듣고 알았다 해서 곧바로 미움이 버려지고 진리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원수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만 한다 해서 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미움이라는 비진리를 빼내기 위해서는 먼저 비진리 가운데 살았던 예전 모습을 버리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악함을 철저히 뉘우치고 결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굳은 각오와 노력이 있어야 하지요. 그러면서 기도하고 금식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으면 미움이라는 속성이 뽑아지고 대신 사랑이 채워집니다. 그 밖에도 여러 진리의 지식을 배워 마음을 진리로 채워 가는 만큼 미움, 다툼, 시기, 교만, 혈기, 간음 등 각종 비진리가 버려집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로 최선을 다해 순종하는 만큼 비진리가 신속히 버려지며, 비진리를 온전히 벗어 버린 사람에게는 육신의 생각이 전혀 동원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오직 영의 생각만 하며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좇아 순종하므로 항상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둘째, 자신의 생각을 매 순간 진리의 생각으로 채워 나가야 합니다.
사람을 대하거나 어떤 일을 보고 들을 때에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며 판단, 정죄하지 말고 항상 진리로 대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말을 듣거나 사람을 대할 때 내가 선과 사랑, 진실함으로 대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변화될 수 있지요.
만일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책망을 들었다면 어떤 생각을 합니까? 내가 잘못하여 책망받았다면 당연히 감사함으로 받고 즉시 돌이켜야 하지요. 애매히 책망을 받았다 해도 하나님은 모든 일을 아시니 상대에게 서운해하거나 감정을 품을 이유가 없습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며 하나님 앞에 맡기면 혹여 오해가 있었다 해도 풀어지고 어떤 해를 입었다 해도 축복으로 바뀔 것이니 마음이 평안하고 기쁩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이 있는 사람은 책망을 들은 그 자체로 심히 마음이 요동하고 고통을 받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에 낙심하여 기운을 잃기도 하고 책망한 상대에게 감정을 품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이런 비진리의 생각이 있다면 즉시 영의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긍정적인 생각만 함으로 육신의 생각이 내 안에 발붙일 곳이 없도록 해야 하지요. 이처럼 매 순간 진리의 생각으로만 자신을 채워 나가면 육신의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만 하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통달하시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려 주십니다(고전 2:10). 그러니 성령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누가 먼저 주를 믿고, 누가 더 말씀을 많이 알며 직분이 높은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악을 벗고 성결되며 영의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척도가 됩니다.
이사야 55장 8~9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했습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데 방해되는 육신의 생각을 온전히 버림으로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모든 소원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며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모든 죄와 악을 버리고 ( )이 되어야 한다.
② 자신의 생각을 매 순간 ( )의 생각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
2.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 )이 오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49~6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 받은 증거’
①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② 하나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고 싶어진다.
③ 깨끗한 삶을 살고자 한다.
④ 믿음의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⑤ 세상을 믿음으로 이겨 나간다.
⑥ 구원의 확신이 생긴다.
⑦ 기도에 대한 응답의 확신이 생긴다.
⑧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간다.
교육목표 :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매 순간 진리의 생각을 채움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한다.
영적인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것을 명하실 때 순종할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리라고 약속하셨다 해도 사람 편에서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 불순종한다면 약속의 열매를 얻을 수가 없지요. 비진리의 지식이 있는 만큼 사단의 역사를 받아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며 그런 만큼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1. 영적인 믿음과 순종의 관계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떠나라 명하시며,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겠다 약속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을 주셨으면 그대로 믿고 하나님의 인도를 좇아가면 됩니다. 믿으면 순종할 수 있고 그럴 때 말씀대로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출애굽한 이스라엘 1세대는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불순종했습니다. 원망 불평하며 하나님의 사람 모세를 대적하여 결국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였지요. 반면 어려서부터 말씀으로 양육받은 이스라엘 2세대는 육신의 생각을 하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하였습니다. ‘요단강을 밟으라, 여리고성을 돌라’ 할 때도 그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으며 마침내 하나님 말씀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고 영적인 믿음으로 순종하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육신의 생각을 온전히 버린 사람이라야 하나님 명령에 그대로 순종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중심에서 순복하며 말씀을 보장해 드릴 수 있습니다.
한 나라에 여러 왕자가 있는데 그중에 맏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 것이 관례라고 합시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가 “막내 왕자는 아직 어리지만 훌륭한 왕의 자질을 타고났기에 그가 새 왕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이 맏아들이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만약 아버지를 신뢰하지 않고 존중하지도 않는다면 그 말씀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혹여 아버지의 뜻에 따라 왕위를 양보한다 해도 한편으로는 불편함과 서운함이 있을 수 있지요. 그러나 진정 아버지를 사랑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한다면 아버지가 한 판단을 믿어 드리며 기꺼이 왕위를 양보할 것입니다. 또한 어찌하든 막내의 부족함을 채워 주어 그가 훌륭한 왕이 되도록 돕겠지요. 아버지를 신뢰하며 사랑하기에 ‘어떻게 하면 온전히 순종하여 그 말씀을 보장하여 드릴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떠오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때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명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순종할 수 없는 이유를 먼저 떠올리게 되고 설령 순종한다 해도 그저 겉모양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육신의 생각을 버린 사람은 성령의 역사 가운데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명하시는 이유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릴 수 있는 방법론까지 깨우쳐 온전한 순종의 열매를 내놓을 수 있지요. 이처럼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믿음이 오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며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육신의 생각을 버리려면
첫째, 모든 죄와 악을 버리고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 ‘싫다. 밉다. 서럽다. 힘들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육신의 생각에 해당합니다. 이러한 생각이 떠오를 때에 ‘아니야, 내 생각이 틀릴 수 있어!’ 하고 거기서 멈춰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을 하면 할수록 자신만 더 힘들어집니다. 그러니 그 생각을 진전시키지 않고 일단 멈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처음에 떠올랐던 육신의 생각의 뿌리를 파악해야 합니다. ‘싫다. 밉다.’는 생각이 떠올랐다면 내 안에 아직 ‘미움’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또한 무시하는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다면 자존심이나 교만이 있는 것이므로 이렇게 뿌리에 해당하는 악을 발견하여 버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악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 말씀을 부지런히 마음에 양식 삼고 행해야 합니다. 자기 마음 안에 있는 미움, 혈기, 시기, 판단, 정죄, 교만 등의 비진리를 빼내고 선, 사랑, 섬김, 화평 등의 진리로 채워가야 하지요. 물론 이 과정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를 미워하던 사람이 ‘원수도 사랑하라’는 하나님 말씀을 들었다고 합시다. 이 말씀을 듣고 알았다 해서 곧바로 미움이 버려지고 진리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또 원수를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만 한다 해서 행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미움이라는 비진리를 빼내기 위해서는 먼저 비진리 가운데 살았던 예전 모습을 버리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악함을 철저히 뉘우치고 결코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않으리라는 굳은 각오와 노력이 있어야 하지요. 그러면서 기도하고 금식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으면 미움이라는 속성이 뽑아지고 대신 사랑이 채워집니다. 그 밖에도 여러 진리의 지식을 배워 마음을 진리로 채워 가는 만큼 미움, 다툼, 시기, 교만, 혈기, 간음 등 각종 비진리가 버려집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로 최선을 다해 순종하는 만큼 비진리가 신속히 버려지며, 비진리를 온전히 벗어 버린 사람에게는 육신의 생각이 전혀 동원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오직 영의 생각만 하며 성령의 음성과 주관을 좇아 순종하므로 항상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됩니다.
둘째, 자신의 생각을 매 순간 진리의 생각으로 채워 나가야 합니다.
사람을 대하거나 어떤 일을 보고 들을 때에 자기 입장에서 생각하며 판단, 정죄하지 말고 항상 진리로 대응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어떤 말을 듣거나 사람을 대할 때 내가 선과 사랑, 진실함으로 대했는지 끊임없이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변화될 수 있지요.
만일 여러분이 누군가에게 책망을 들었다면 어떤 생각을 합니까? 내가 잘못하여 책망받았다면 당연히 감사함으로 받고 즉시 돌이켜야 하지요. 애매히 책망을 받았다 해도 하나님은 모든 일을 아시니 상대에게 서운해하거나 감정을 품을 이유가 없습니다. 감사함으로 받으며 하나님 앞에 맡기면 혹여 오해가 있었다 해도 풀어지고 어떤 해를 입었다 해도 축복으로 바뀔 것이니 마음이 평안하고 기쁩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이 있는 사람은 책망을 들은 그 자체로 심히 마음이 요동하고 고통을 받습니다. 자신의 부족함에 낙심하여 기운을 잃기도 하고 책망한 상대에게 감정을 품기도 합니다. 자신에게 이런 비진리의 생각이 있다면 즉시 영의 생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긍정적인 생각만 함으로 육신의 생각이 내 안에 발붙일 곳이 없도록 해야 하지요. 이처럼 매 순간 진리의 생각으로만 자신을 채워 나가면 육신의 생각이 사라지고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영의 생각만 하면 성령의 음성을 밝히 들을 수 있습니다. 성령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통달하시며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려 주십니다(고전 2:10). 그러니 성령의 음성을 잘 듣고 순종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을 마음껏 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누가 먼저 주를 믿고, 누가 더 말씀을 많이 알며 직분이 높은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얼마나 악을 벗고 성결되며 영의 사람이 되었는가’ 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척도가 됩니다.
이사야 55장 8~9절에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했습니다.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는 데 방해되는 육신의 생각을 온전히 버림으로 마음에 기쁨과 평안을 누리며 모든 소원을 이루어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며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하는 육신의 생각을 버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모든 죄와 악을 버리고 ( )이 되어야 한다.
② 자신의 생각을 매 순간 ( )의 생각으로 채워 나가야 한다.
2. 우리가 육신의 생각을 버릴 때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 )이 오고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49~61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 받은 증거’
①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② 하나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고 싶어진다.
③ 깨끗한 삶을 살고자 한다.
④ 믿음의 형제를 진정으로 사랑하게 된다.
⑤ 세상을 믿음으로 이겨 나간다.
⑥ 구원의 확신이 생긴다.
⑦ 기도에 대한 응답의 확신이 생긴다.
⑧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간다.
2020-02-14
제7과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1)
로마서 8:5~8
읽을말씀 : 로마서 8:5~8 | 외울말씀 : 로마서 8:7 l 참고 말씀: 신명기 25:17~19
교육목표 :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매순간 진리의 생각을 채움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실상이 나타나게 만듭니다.
성경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고 3년 반의 가뭄 속에 비가 오게 했습니다(왕상 18장). 또한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강한 군대를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육신의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큰 장애물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막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1.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생각이란,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보고 듣고 배워 머릿속에 입력된 지식을 재생하여 떠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에는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이 있습니다.
육신이란, 우리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의미합니다. 미움, 혈기, 판단, 정죄, 시기, 교만 등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지요.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진리 가운데서 지식을 되살려 내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영의 생각은 진리의 생각이며 육신의 생각은 비진리의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에게 매우 무례히 행하거나 애매히 비난을 합니다. 이때 육신의 생각을 하는가, 영의 생각을 하는가에 따라 반응이 전혀 다릅니다. 비진리를 동원하여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몹시 불쾌하고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을 직접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혹 그러지는 않는다 해도 서운해하거나 마음이 요동하며 고통을 받습니다.
이와 달리 영의 생각, 진리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같은 상황일 때 진리의 마음이 반응합니다. 사랑, 이해, 용서, 화평, 섬김 등의 마음이 작용하지요. ‘저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 마음을 평안케 해 줘야겠다. 오해를 풀어 줘야겠다.’ 하며 진리의 마음으로 반응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어떻게 하면 상대와 화평을 이룰 수 있을지 그 방법론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면 성령이 주관하시는 대로 부드러운 낯빛과 온유한 음성으로 또한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말과 행함으로 나타내게 됩니다.
2. 영적인 믿음의 방해 요인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안에 비진리 곧 육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진리의 지식이 없고 진리의 지식만 있다면 육신의 생각이 동원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인 진리의 지식이 떠오를 때에는 영의 생각을 하지만 비진리의 지식이 떠오를 때에는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중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매우 다릅니다.
로마서 8장 5~8절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영의 생각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좇기 때문에 생명이 되고 마음을 평안케 합니다. 반면에 육신의 생각은 죄와 불의를 좇기에 평안이 아닌 근심과 고통이 따릅니다. 무엇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으로서 영계의 법칙을 설명하기 때문에 세상의 지식과 이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습니다.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 말씀이 이해되고 믿어지지만 육신의 생각이 있는 사람은 말씀이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믿지 못하며, 순종하지도 못합니다.
한 예로, 예수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하시고 “섬기라, 낮아지라” 하셨는데, 주고 섬기면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 순종하지 못하지요.
그런데 사람이 진리의 생각을 하려 해도 어떤 것이 진리이고 비진리인지 분별하지 못하므로 자기도 모르게 비진리의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들이 진리라고 알고 있는 지식 중에 진리가 아닌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책에는 부모의 원수를 갚는 일이 당연하며, 그렇지 않으면 비겁하다는 가치관이 깔려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이면 원수 갚는 일을 의로운 행동으로 여기게 되는데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결코 진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고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것이 진리이지요. 이러한 진리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라 해도 ‘용서해야겠다. 사랑해야겠다.’라는 진리의 생각, 영의 생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에 비진리의 지식을 지닌 사람은 “저 사람은 너무 악하기 때문에 도무지 사랑할 수 없다.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자기의 가치관을 가지고 변명하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이렇게 잘못된 지식, 비진리의 지식을 되살려 내는 것이 육신의 생각으로서 이는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여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3. 육신의 생각으로 불순종한 사울왕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말렉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 아말렉이 멸망할 수밖에 없을 만큼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쌓았기 때문입니다(신 25:17~19). 그들을 그대로 둔다면 이스라엘마저 우상 숭배와 같은 이방 풍속에 물들 위험이 있으므로 사전에 불씨를 없애야 했지요.
그러나 사울왕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면 좋겠다는 그럴 듯한 이유를 내세워 가축 중에 좋은 것은 살려서 가져옵니다. 아말렉 왕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왔지요. 사울왕이 불순종한 것은 욕심과 교만 가운데서 나온 육신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가축을 죽이기 아까웠고 아말렉 왕을 사로잡아 와서 백성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지요.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다 진멸하라 하신 이유는 사울보다 어리석거나 지혜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죄에 대한 보응으로서 그들을 멸하는 것이 합당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자기 생각 속에서 더 지혜롭고 좋아 보이는 쪽을 택했으니 이는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욕심과 교만으로 눈이 가려진 사울은 불순종을 하고도 회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악을 쌓아갑니다. 다윗이 백성에게 사랑을 받자 사울은 그를 시기하여 일평생 죽이러 쫓아다닙니다. 심지어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놉 땅에 사는 85명의 제사장들을 죽이고 성읍을 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한 일입니다. 결국 그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방인의 손에 죽지 않기 위해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오늘날도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명하실 때 현실을 보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럴 때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과 조건을 주관하여 그분의 뜻과 섭리를 이루시며 현실적으로는 큰 난관이 있다 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지요.
그러나 자신의 능력이나 형편이 안 된다는 등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순종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이란 우리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 )이다.
2.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안에 비진리 곧 ( )이 있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31~45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아말렉’
아말렉은 야곱의 형 에서의 손자다. 성경은 그의 후손인 아말렉인을 일컬어 아말렉이라고도 한다. 아말렉인들은 이스라엘과 늘 적대관계에 있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비겁하게 행렬에 쳐진 약한 자들을 따라가며 치기도 했다(신 25:17~19).
홍해를 가르고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백성을 쳤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이 끝난 후에 모세에게 아말렉을 이 땅에서 전멸시킬 것을 명하셨다(출 17:14).
이들이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쌓았고, 그대로 둔다면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와 이방 풍속에 물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교육목표 :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매순간 진리의 생각을 채움으로 성령의 음성을 듣게 한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며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영적인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은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가능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없는 데서 실상이 나타나게 만듭니다.
성경을 보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고 3년 반의 가뭄 속에 비가 오게 했습니다(왕상 18장). 또한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강한 군대를 물리치기도 했습니다. 이런 영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육신의 생각이 없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하는 큰 장애물로서 하나님의 역사를 막아 하나님과 원수가 되기 때문입니다.
1.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생각이란, 우리가 태어나서부터 보고 듣고 배워 머릿속에 입력된 지식을 재생하여 떠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생각에는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이 있습니다.
육신이란, 우리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의미합니다. 미움, 혈기, 판단, 정죄, 시기, 교만 등 아직 겉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나 언젠가는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비진리의 속성이지요.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육신의 생각입니다.
이와 대조적으로 영의 생각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진리 가운데서 지식을 되살려 내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영의 생각은 진리의 생각이며 육신의 생각은 비진리의 생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자신에게 매우 무례히 행하거나 애매히 비난을 합니다. 이때 육신의 생각을 하는가, 영의 생각을 하는가에 따라 반응이 전혀 다릅니다. 비진리를 동원하여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몹시 불쾌하고 자존심이 상합니다. 그래서 불편한 마음을 직접 말로 표현하기도 하고 혹 그러지는 않는다 해도 서운해하거나 마음이 요동하며 고통을 받습니다.
이와 달리 영의 생각, 진리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같은 상황일 때 진리의 마음이 반응합니다. 사랑, 이해, 용서, 화평, 섬김 등의 마음이 작용하지요. ‘저 사람과 부딪치지 않고 마음을 평안케 해 줘야겠다. 오해를 풀어 줘야겠다.’ 하며 진리의 마음으로 반응합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성령께서 어떻게 하면 상대와 화평을 이룰 수 있을지 그 방법론을 알려 주십니다. 그러면 성령이 주관하시는 대로 부드러운 낯빛과 온유한 음성으로 또한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말과 행함으로 나타내게 됩니다.
2. 영적인 믿음의 방해 요인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안에 비진리 곧 육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진리의 지식이 없고 진리의 지식만 있다면 육신의 생각이 동원될 수 없습니다. 사람에게 하나님 말씀인 진리의 지식이 떠오를 때에는 영의 생각을 하지만 비진리의 지식이 떠오를 때에는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중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매우 다릅니다.
로마서 8장 5~8절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영의 생각은 천국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뜻을 좇기 때문에 생명이 되고 마음을 평안케 합니다. 반면에 육신의 생각은 죄와 불의를 좇기에 평안이 아닌 근심과 고통이 따릅니다. 무엇보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으로서 영계의 법칙을 설명하기 때문에 세상의 지식과 이론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많습니다.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러한 하나님 말씀이 이해되고 믿어지지만 육신의 생각이 있는 사람은 말씀이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면 믿지 못하며, 순종하지도 못합니다.
한 예로, 예수님께서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 하시고 “섬기라, 낮아지라” 하셨는데, 주고 섬기면 나만 손해 보는 것 같아 순종하지 못하지요.
그런데 사람이 진리의 생각을 하려 해도 어떤 것이 진리이고 비진리인지 분별하지 못하므로 자기도 모르게 비진리의 생각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람들이 진리라고 알고 있는 지식 중에 진리가 아닌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책에는 부모의 원수를 갚는 일이 당연하며, 그렇지 않으면 비겁하다는 가치관이 깔려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생각을 받아들이면 원수 갚는 일을 의로운 행동으로 여기게 되는데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보면 결코 진리가 아닙니다.
오히려 원수를 사랑하고 일흔 번에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는 것이 진리이지요. 이러한 진리의 지식을 가진 사람은 아무리 자기를 괴롭히는 사람이라 해도 ‘용서해야겠다. 사랑해야겠다.’라는 진리의 생각, 영의 생각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반면에 비진리의 지식을 지닌 사람은 “저 사람은 너무 악하기 때문에 도무지 사랑할 수 없다. 미워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자기의 가치관을 가지고 변명하며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합니다. 이렇게 잘못된 지식, 비진리의 지식을 되살려 내는 것이 육신의 생각으로서 이는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여 순종하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3. 육신의 생각으로 불순종한 사울왕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은 육신의 생각으로 하나님과 원수 된 대표적인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아말렉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라 명하셨습니다. 아말렉이 멸망할 수밖에 없을 만큼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쌓았기 때문입니다(신 25:17~19). 그들을 그대로 둔다면 이스라엘마저 우상 숭배와 같은 이방 풍속에 물들 위험이 있으므로 사전에 불씨를 없애야 했지요.
그러나 사울왕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리면 좋겠다는 그럴 듯한 이유를 내세워 가축 중에 좋은 것은 살려서 가져옵니다. 아말렉 왕도 죽이지 않고 사로잡아 왔지요. 사울왕이 불순종한 것은 욕심과 교만 가운데서 나온 육신의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좋은 가축을 죽이기 아까웠고 아말렉 왕을 사로잡아 와서 백성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지요.
하나님께서 아말렉을 다 진멸하라 하신 이유는 사울보다 어리석거나 지혜가 없어서가 아닙니다. 죄에 대한 보응으로서 그들을 멸하는 것이 합당했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자기 생각 속에서 더 지혜롭고 좋아 보이는 쪽을 택했으니 이는 자신이 하나님보다 더 낫다고 주장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처럼 욕심과 교만으로 눈이 가려진 사울은 불순종을 하고도 회개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계속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악을 쌓아갑니다. 다윗이 백성에게 사랑을 받자 사울은 그를 시기하여 일평생 죽이러 쫓아다닙니다. 심지어 다윗을 도와주었다는 이유로 놉 땅에 사는 85명의 제사장들을 죽이고 성읍을 진멸하다시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적한 일입니다. 결국 그는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전세가 불리해지자 이방인의 손에 죽지 않기 위해 자기 칼 위에 엎드러져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오늘날도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일을 명하실 때 현실을 보지 않고 믿음으로 순종하기를 바라십니다. 그럴 때 반드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상황과 조건을 주관하여 그분의 뜻과 섭리를 이루시며 현실적으로는 큰 난관이 있다 해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지요.
그러나 자신의 능력이나 형편이 안 된다는 등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순종하지 못한다면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이란 우리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이런 육신을 바탕으로 어떤 생각을 하면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악한 생각이 나오는데 이것이 바로 ( )이다.
2.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마음 안에 비진리 곧 ( )이 있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31~45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아말렉’
아말렉은 야곱의 형 에서의 손자다. 성경은 그의 후손인 아말렉인을 일컬어 아말렉이라고도 한다. 아말렉인들은 이스라엘과 늘 적대관계에 있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너 르비딤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비겁하게 행렬에 쳐진 약한 자들을 따라가며 치기도 했다(신 25:17~19).
홍해를 가르고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백성을 쳤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은 까닭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이 끝난 후에 모세에게 아말렉을 이 땅에서 전멸시킬 것을 명하셨다(출 17:14).
이들이 하나님 앞에 많은 죄를 쌓았고, 그대로 둔다면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와 이방 풍속에 물들 위험이 있기 때문이었다.
2020-02-07
제6과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 (2)
히브리서 11:1~3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1~3 | 외울말씀 : 고린도후서 10:5 ㅣ 참고 말씀: 로마서 10:17
교육목표 : 의심을 가져오는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고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보고 듣고 행함으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육적인 믿음이란 눈으로 보아 확인이 되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믿어지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유에서 유의 창조, 즉 있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이론에 맞는 것만 믿는 육적인 믿음은 진리 안에서 온전한 행함이 따를 수 없으므로 죽은 믿음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면 이와 반대되는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1. 참 믿음은 영적인 믿음
영적인 믿음은 육적인 믿음과 반대로 자신의 지식이나 생각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다 믿는 믿음입니다.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으며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변개하지 않는 믿음이지요. 또한 지식으로 아는 데 그치지 않고 행함을 통해 증거를 보이는 믿음으로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2절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라고 믿음을 정의합니다.
영의 눈으로 바라보니 실제 상이 생겨나고, 눈에 보이지 않으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니 실제 증거가 나타납니다. 육적인 믿음, 지식적인 믿음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나타나 보이는 것입니다. 많은 선진들이 믿음으로써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응답받았습니다. 또한 보지 못하는 것을 눈에 보이는 증거로 받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지팡이를 내밀어 홍해를 갈랐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지팡이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자, 밤새도록 큰 동풍이 불었습니다. 큰 바람 가운데 바다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서 건넜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여리고성을 7일 동안 돌고 외쳐 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견고한 성이 백성의 외침으로 무너진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훈련을 받은 출애굽 2세대들은 여호수아의 명대로 성을 돌고 외쳤습니다. 과연 성벽이 무너져내려 성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으며 행함이 따르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믿음이요, 영적인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으면 건강, 가정, 일터, 사업터의 문제를 해결받음은 물론,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도 기도하여 응답받습니다. 나아가 아름답고 영화로운 천국을 소유하여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육적인 믿음은 자신이 아는 만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믿음은 사람이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말씀한 대로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분량만큼 가질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마음대로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많은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이웃을 미워하여 “저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응답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마음과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만 응답이 따르는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첫째, 의심을 가져오는 생각과 이론을 모두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을 갖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요소는 바로 비진리에서 비롯된 생각과 이론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각종 기사와 표적을 의심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도 믿지 못하지요. 이런 의심은 사람의 지식이나 이론으로부터 나오며 원수 마귀 사단이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이론이란 어떤 지식을 바탕으로 사물의 이치나 현상 등에 대해 정립해 놓은 논리 체계입니다. 이는 사람이 세운 것이므로 모두가 진리는 아닙니다. 그러니 한 가지 현상에 대해 여러 이론이 있기도 하고 예전에는 옳다 하던 내용이 시간이 지나면 그르다 하는 일도 생깁니다.
이처럼 이론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며 그 안에는 진리도 있지만 하나님 말씀에 상반되는 비진리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비진리의 생각을 고집하거나 성경 말씀에 반대되는 이론에 집착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어렵고 말씀에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말씀한 대로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생각과 이론을 깨뜨려야 합니다. 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이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면 철저히 무로 돌리라는 의미입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진리이기에 그에 맞지 않을 때는 무조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불같이 기도하여 하나님께 능력을 받으면 의심을 가져오는 생각, 잘못된 지식이나 이론을 깨뜨려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 말씀이 받아들여지고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 말씀을 보고 들으며 가르침 받아 열심히 행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모르면 말씀대로 행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가르침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지식으로만 쌓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교만해질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지식으로 담아 놓은 말씀이 마음 안에 영적인 믿음으로 채워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나 스포츠 선수가 되고자 할 때 이론서를 반복하여 읽기만 한다 해서 가능할까요? 이론을 공부한 후 실제로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배운다 해도 정작 그 말씀대로 행치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는 데 그치지 않고 행함을 통해 마음을 진리로 채워 나갈 때라야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마음을 진리로 채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버리라 하신 미움, 다툼, 시기, 간음 등 비진리를 버리고, 섬기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등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 안에 진리로 채워 나가면 자연히 비진리는 빠져 나갑니다. 이로써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만큼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오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로 즉시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게 잘못한 사람이라도 어찌하든 이해하고 사랑하려 하지만 마음에 여전히 미움과 감정이 있습니다. 또 간음을 버리기 원하지만 막상 마음에 드는 이성을 보면 동요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불같이 기도하여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중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구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해 나가면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실제로 축복을 체험합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마음의 소원도 응답받지요. 이런 체험이 쌓이면 더 큰 일도 순종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믿음도 더 커집니다.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불가능한 일을 명하셔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무엇이나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므로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며 행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믿음은 육적인 믿음과 반대로 자신의 ( )이나 ( )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다 믿는 믿음이다.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으며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 )하지 않는 믿음이다.
2. 우리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의심을 가져오는 ( )과 ( )을 모두 깨뜨려 버려야 한다.
② ( )을 보고 들으며 가르침 받아 열심히 행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31~45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여호수아’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이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군대 지휘관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고 모세의 수종자로 함께 시내산에 올라갔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 중 한 사람으로 악평하는 10명의 정탐꾼과는 달리 갈렙과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임을 확신에 찬 믿음으로 고백하였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다. 가나안 땅을 12지파에게 분배하였고, 110세에 죽어 자신이 기업으로 받은 땅 딤낫세라에 장사되었다(수 24:29~30).
교육목표 : 의심을 가져오는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고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보고 듣고 행함으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육적인 믿음이란 눈으로 보아 확인이 되고 내가 알고 있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되기 때문에 믿어지는 믿음입니다. 이것은 유에서 유의 창조, 즉 있는 것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이론에 맞는 것만 믿는 육적인 믿음은 진리 안에서 온전한 행함이 따를 수 없으므로 죽은 믿음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러면 이와 반대되는 영적인 믿음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1. 참 믿음은 영적인 믿음
영적인 믿음은 육적인 믿음과 반대로 자신의 지식이나 생각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다 믿는 믿음입니다.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으며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변개하지 않는 믿음이지요. 또한 지식으로 아는 데 그치지 않고 행함을 통해 증거를 보이는 믿음으로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2절에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라고 믿음을 정의합니다.
영의 눈으로 바라보니 실제 상이 생겨나고, 눈에 보이지 않으나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니 실제 증거가 나타납니다. 육적인 믿음, 지식적인 믿음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실제로 나타나 보이는 것입니다. 많은 선진들이 믿음으로써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응답받았습니다. 또한 보지 못하는 것을 눈에 보이는 증거로 받아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는 하나님 말씀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지팡이를 내밀어 홍해를 갈랐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지팡이 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자, 밤새도록 큰 동풍이 불었습니다. 큰 바람 가운데 바다가 갈라지고 이스라엘 백성은 바다 한가운데로 걸어서 건넜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여리고성을 7일 동안 돌고 외쳐 성벽을 무너뜨렸습니다. 견고한 성이 백성의 외침으로 무너진다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 일입니다. 하지만 믿음의 훈련을 받은 출애굽 2세대들은 여호수아의 명대로 성을 돌고 외쳤습니다. 과연 성벽이 무너져내려 성을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믿으며 행함이 따르는 것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믿음이요, 영적인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으면 건강, 가정, 일터, 사업터의 문제를 해결받음은 물론,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도 기도하여 응답받습니다. 나아가 아름답고 영화로운 천국을 소유하여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육적인 믿음은 자신이 아는 만큼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인 믿음은 사람이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12장 3절에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말씀한 대로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 나눠 주신 분량만큼 가질 수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마음대로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많은 문제가 생길 것입니다. 이웃을 미워하여 “저 사람이 교통사고를 당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응답이 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합당한 마음과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만 응답이 따르는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2.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려면
첫째, 의심을 가져오는 생각과 이론을 모두 깨뜨려 버려야 합니다.
영적인 믿음을 갖는 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요소는 바로 비진리에서 비롯된 생각과 이론입니다. 어떤 사람은 성경에 기록된 각종 기사와 표적을 의심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사실도 믿지 못하지요. 이런 의심은 사람의 지식이나 이론으로부터 나오며 원수 마귀 사단이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이론이란 어떤 지식을 바탕으로 사물의 이치나 현상 등에 대해 정립해 놓은 논리 체계입니다. 이는 사람이 세운 것이므로 모두가 진리는 아닙니다. 그러니 한 가지 현상에 대해 여러 이론이 있기도 하고 예전에는 옳다 하던 내용이 시간이 지나면 그르다 하는 일도 생깁니다.
이처럼 이론은 시대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며 그 안에는 진리도 있지만 하나님 말씀에 상반되는 비진리도 많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는 비진리의 생각을 고집하거나 성경 말씀에 반대되는 이론에 집착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믿기 어렵고 말씀에 순종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말씀한 대로 영적인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생각과 이론을 깨뜨려야 합니다. 이는 자신의 생각이나 이론이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면 철저히 무로 돌리라는 의미입니다. 오직 하나님 말씀만이 진리이기에 그에 맞지 않을 때는 무조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불같이 기도하여 하나님께 능력을 받으면 의심을 가져오는 생각, 잘못된 지식이나 이론을 깨뜨려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 말씀이 받아들여지고 영적인 믿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 말씀을 보고 들으며 가르침 받아 열심히 행해야 합니다.
로마서 10장 17절에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모르면 말씀대로 행할 수 없으므로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가르침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지식으로만 쌓고 행하지 않는 사람은 오히려 교만해질 수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지식으로 담아 놓은 말씀이 마음 안에 영적인 믿음으로 채워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훌륭한 피아니스트나 스포츠 선수가 되고자 할 때 이론서를 반복하여 읽기만 한다 해서 가능할까요? 이론을 공부한 후 실제로 끊임없는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많이 읽고 배운다 해도 정작 그 말씀대로 행치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는 데 그치지 않고 행함을 통해 마음을 진리로 채워 나갈 때라야 하나님께서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마음을 진리로 채운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버리라 하신 미움, 다툼, 시기, 간음 등 비진리를 버리고, 섬기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원수까지라도 사랑하는 등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 안에 진리로 채워 나가면 자연히 비진리는 빠져 나갑니다. 이로써 주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만큼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오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 말씀을 듣는 대로 즉시 순종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게 잘못한 사람이라도 어찌하든 이해하고 사랑하려 하지만 마음에 여전히 미움과 감정이 있습니다. 또 간음을 버리기 원하지만 막상 마음에 드는 이성을 보면 동요하기도 합니다.
이런 경우 불같이 기도하여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중심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구해 나가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순종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말씀대로 순종하여 행해 나가면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실제로 축복을 체험합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마음의 소원도 응답받지요. 이런 체험이 쌓이면 더 큰 일도 순종할 수 있고 그로 인해 믿음도 더 커집니다. 장성한 믿음의 분량에 이르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불가능한 일을 명하셔도 순종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무엇이나 구하는 대로 응답받으므로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며 행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영적인 믿음은 육적인 믿음과 반대로 자신의 ( )이나 ( )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다 믿는 믿음이다.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으며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 )하지 않는 믿음이다.
2. 우리가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의심을 가져오는 ( )과 ( )을 모두 깨뜨려 버려야 한다.
② ( )을 보고 들으며 가르침 받아 열심히 행해야 한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31~45 페이지
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여호수아’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이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군대 지휘관으로 혁혁한 공을 세웠고 모세의 수종자로 함께 시내산에 올라갔다.
가나안 땅을 정탐한 12명 중 한 사람으로 악평하는 10명의 정탐꾼과는 달리 갈렙과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임을 확신에 찬 믿음으로 고백하였다.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어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였다. 가나안 땅을 12지파에게 분배하였고, 110세에 죽어 자신이 기업으로 받은 땅 딤낫세라에 장사되었다(수 24:29~30).
2020-01-31
제5과육적인 믿음과 영적인 믿음 (1)
히브리서 11:3
읽을말씀 : 히브리서 11:3 | 외울말씀 : 야고보서 1:6 ㅣ 참고 말씀: 마태복음 21:22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가정, 일터, 사업터의 어떠한 문제라 할지라도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은 신앙생활의 기초입니다. 믿음이 있어야만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 된 권세를 받게 되지요. 믿음이 성장하여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만 하면 부와 명예, 권세와 건강 등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믿음만 있으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기에 믿음을 보배 중의 보배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1. 위대한 믿음의 힘
믿음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받는 일’도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지요.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의인이란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주님을 영접하고 진리인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의인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데, 믿음이 있어야 의인이 될 수 있지요(갈 2:16).
의식주 문제도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십니다.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시는데 하나님의 자녀야 어찌 먹이고 입히시지 않겠습니까(마 6:30).
질병이나 장애도 믿음으로 해결됩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구하여 응답받았습니다. 눈을 뜨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던 그는 예수님께서 각색 병자를 치료하고 갖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소문을 듣고 선한 마음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뵙기를 간절히 소망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근처에 지나가시자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불러 치료해 주셨습니다.
자연현상도 믿음으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아합왕 시대에 이스라엘에 우상숭배가 만연하여 하나님의 진노로 3년 반 동안 극심한 가뭄이 들었지요. 이때 엘리야는 비의 응답을 받기 위해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였던지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과연 엘리야의 믿음의 기도대로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해지고 큰비가 내렸습니다(왕상 18:45).
이처럼 믿음의 힘은 대단합니다. 믿음의 역사는 성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하신 대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오늘날에도 똑같이 나타나지요. 바디매오처럼 선한 마음과 믿음의 행함을 내보이면 질병만이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 등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가지면 기사와 표적, 권능도 나타낼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습니다(마 21:22).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고 구한 것은 다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만일 “믿습니다.” 하며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자신의 믿음이 참 믿음인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2. 육적인 믿음
믿음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육적인 믿음과 하나님께서 인정하며 응답하시는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육적인 믿음이란, 눈으로 확인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이론과 일치해야만 믿는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로 책상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거나 직접 본 적이 있는 경우, 누군가 “이 책상은 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면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또 반드시 재료가 있어야만 무엇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이지요. 그래서 육적인 믿음을 지식적인 믿음 또는 이성적인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은 부모, 형제, 이웃을 통하여 또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뇌세포의 기억 장치에 저장하여 필요할 때에 활용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입력된 지식이 모두 진리는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영원토록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사람들이 배우고 입력한 지식 중에는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뀜에 따라 변하는 비진리가 많습니다. 또한 시대마다 나라마다 진리의 기준이 다르며, 상황에 따라 그 활용 한도가 정해져 있는 지식도 있지요. 옳다고 여기던 이론도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비진리가 진리인 양 사용되어도 모른 채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우면 그것이 진리인 줄 압니다. 또 유(有)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만 배우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성경은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천지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또 사람의 지식과 이론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수많은 기사와 표적, 권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와 달이 운행을 멈춘 사건(수 10:12~13)이나 범람하던 강물이 멈춘 일(수 3:15~16)이 그 예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눈먼 사람을 보게 하며, 죽은 사람을 살리신 내용도 이에 해당합니다. 육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사실들이 자신의 지식과 이론에 맞지 않으므로 믿지 못합니다.
변개하는 믿음 역시 육적인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하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기도한 내용이 신속히 이뤄지지 않으면 점차 의심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하며 은혜가 떨어지지요. 과거에 자신이 응답받았던 체험이나 주위 사람들이 응답받은 간증에 대하여도 우연히 일어났던 일로 여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의지하지 못하고 세상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변개하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기에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따라서 변개하지 않고 끝까지 믿고 구하되 이미 받은 줄로 믿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행함이 없는 믿음도 육적인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에서 유의 창조도 믿고 성경 66권과 하나님의 역사를 다 믿는다고 말하지만 정작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과연 마음으로 믿는지, 머리로만 아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 말씀은 머리로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따릅니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말씀대로 행할 수 없지요.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하셨는데, 육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 말씀을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현실에 직면하면 행할 수 없습니다. 당장 생활비가 부족하다 싶으면 십일조를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심는 데에 인색합니다. 머리로는 알아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도 하지만 막상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지요. 애매히 고난을 당하면 어떻게든 따지고 변론하고자 합니다. 당한 만큼 갚아 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해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죽은 믿음으로는 응답이나 축복을 받지 못함은 물론 구원조차 받을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는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했지요.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 즉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어야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 해도 행함이 없는 육적인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아 반드시 행함 있는 믿음으로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 ) 믿음과 하나님께서 인정하며 응답하시는 참 믿음 곧 ( ) 믿음이 있다.
2. ( ) 믿음이란 눈으로 확인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이론과 일치해야만 믿는 믿음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2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손꼽히는 아합왕 시대에
활동한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엘리야는 헛된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로 가득 차 있는 백성을
회개시키고자 홀로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하늘에서
불을 끌어내림으로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확증시켜 주었다.
또한 간절한 기도로 3년 반 동안 가물었던 이스라엘 땅에 큰비를
내리게 했고, 죽은 아이를 살리며, 죽지 않고 산 채로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여 가정, 일터, 사업터의 어떠한 문제라 할지라도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은 신앙생활의 기초입니다. 믿음이 있어야만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녀 된 권세를 받게 되지요. 믿음이 성장하여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만 하면 부와 명예, 권세와 건강 등 모든 것을 누릴 수 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 할지라도 믿음만 있으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기에 믿음을 보배 중의 보배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1. 위대한 믿음의 힘
믿음의 힘은 참으로 위대합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구원받는 일’도 믿음이 있어야 가능하지요. 로마서 1장 17절에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했습니다. 여기서 의인이란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신 주님을 영접하고 진리인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의인이 되어야만 하나님의 자녀로서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데, 믿음이 있어야 의인이 될 수 있지요(갈 2:16).
의식주 문제도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께서 다 해결해 주십니다.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하나님이 입히시는데 하나님의 자녀야 어찌 먹이고 입히시지 않겠습니까(마 6:30).
질병이나 장애도 믿음으로 해결됩니다. 마가복음 10장에 나오는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믿음으로 예수님께 구하여 응답받았습니다. 눈을 뜨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던 그는 예수님께서 각색 병자를 치료하고 갖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신다는 소문을 듣고 선한 마음으로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 뵙기를 간절히 소망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예수님께서 근처에 지나가시자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이 꾸짖어 “잠잠하라”고 해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 크게 소리 질렀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를 불러 치료해 주셨습니다.
자연현상도 믿음으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아합왕 시대에 이스라엘에 우상숭배가 만연하여 하나님의 진노로 3년 반 동안 극심한 가뭄이 들었지요. 이때 엘리야는 비의 응답을 받기 위해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였던지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과연 엘리야의 믿음의 기도대로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해지고 큰비가 내렸습니다(왕상 18:45).
이처럼 믿음의 힘은 대단합니다. 믿음의 역사는 성경에만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히 13:8) 하신 대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통해 오늘날에도 똑같이 나타나지요. 바디매오처럼 선한 마음과 믿음의 행함을 내보이면 질병만이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 등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을 가지면 기사와 표적, 권능도 나타낼 수 있지요.
예수님께서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습니다(마 21:22).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고 구한 것은 다 응답을 받아야 합니다. 만일 “믿습니다.” 하며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자신의 믿음이 참 믿음인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2. 육적인 믿음
믿음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육적인 믿음과 하나님께서 인정하며 응답하시는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육적인 믿음이란, 눈으로 확인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이론과 일치해야만 믿는 믿음입니다.
예를 들어, 나무로 책상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고 있거나 직접 본 적이 있는 경우, 누군가 “이 책상은 나무로 만들었다.”고 하면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또 반드시 재료가 있어야만 무엇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이지요. 그래서 육적인 믿음을 지식적인 믿음 또는 이성적인 믿음이라고도 합니다.
사람은 부모, 형제, 이웃을 통하여 또는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뇌세포의 기억 장치에 저장하여 필요할 때에 활용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이렇게 입력된 지식이 모두 진리는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만이 영원토록 변함없는 진리입니다.
사람들이 배우고 입력한 지식 중에는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바뀜에 따라 변하는 비진리가 많습니다. 또한 시대마다 나라마다 진리의 기준이 다르며, 상황에 따라 그 활용 한도가 정해져 있는 지식도 있지요. 옳다고 여기던 이론도 시대에 따라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비진리가 진리인 양 사용되어도 모른 채 살아갑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진화론을 배우면 그것이 진리인 줄 압니다. 또 유(有)에서 유(有)를 만드는 것만 배우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무(無)의 상태에서 유(有)를 만들어내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성경은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하나님 말씀으로 천지 만물이 창조되었다고 합니다. 또 사람의 지식과 이론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수많은 기사와 표적, 권능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해와 달이 운행을 멈춘 사건(수 10:12~13)이나 범람하던 강물이 멈춘 일(수 3:15~16)이 그 예입니다. 예수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들고 눈먼 사람을 보게 하며, 죽은 사람을 살리신 내용도 이에 해당합니다. 육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러한 사실들이 자신의 지식과 이론에 맞지 않으므로 믿지 못합니다.
변개하는 믿음 역시 육적인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믿음으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예배하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지만 기도한 내용이 신속히 이뤄지지 않으면 점차 의심합니다. ‘정말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 하며 은혜가 떨어지지요. 과거에 자신이 응답받았던 체험이나 주위 사람들이 응답받은 간증에 대하여도 우연히 일어났던 일로 여깁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의지하지 못하고 세상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합니다. 이처럼 변개하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기에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따라서 변개하지 않고 끝까지 믿고 구하되 이미 받은 줄로 믿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행함이 없는 믿음도 육적인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무에서 유의 창조도 믿고 성경 66권과 하나님의 역사를 다 믿는다고 말하지만 정작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과연 마음으로 믿는지, 머리로만 아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는 것과 믿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 말씀은 머리로 아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말씀대로 순종하는 행함이 따릅니다. 머리로만 아는 지식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말씀대로 행할 수 없지요.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신다’ 하셨는데, 육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 말씀을 머리로는 알지만 막상 현실에 직면하면 행할 수 없습니다. 당장 생활비가 부족하다 싶으면 십일조를 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예물을 심는 데에 인색합니다. 머리로는 알아서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기도 하지만 막상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지요. 애매히 고난을 당하면 어떻게든 따지고 변론하고자 합니다. 당한 만큼 갚아 주려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처럼 행함이 없는 믿음에 대해 야고보서 2장 26절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죽은 믿음으로는 응답이나 축복을 받지 못함은 물론 구원조차 받을 수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는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말씀했지요. 빛 가운데 행하는 사람, 즉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어야 예수님의 피로 모든 죄를 사함 받고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오래 했다 해도 행함이 없는 육적인 믿음은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알아 반드시 행함 있는 믿음으로 변화되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에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 ) 믿음과 하나님께서 인정하며 응답하시는 참 믿음 곧 ( ) 믿음이 있다.
2. ( ) 믿음이란 눈으로 확인되고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이론과 일치해야만 믿는 믿음이다.
* 금주 과제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책자 11~27 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악한 왕으로 손꼽히는 아합왕 시대에
활동한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엘리야는 헛된 우상인 바알과 아세라로 가득 차 있는 백성을
회개시키고자 홀로 850명의 이방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하늘에서
불을 끌어내림으로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확증시켜 주었다.
또한 간절한 기도로 3년 반 동안 가물었던 이스라엘 땅에 큰비를
내리게 했고, 죽은 아이를 살리며, 죽지 않고 산 채로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한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이다.
2020-01-25
제0과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읽을말씀 :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게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이날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2020년 대망의 새해에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지난 한 해도 지키시고 풍성한 것들로 채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주 안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늘 지키시고 축복하시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278장 ---------------------- 다 같이
1.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 자매 한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네
내 주 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 내 몸같이
환난 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2. 사랑하는 주님 앞에 온갖 충성 다바쳐서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만 힘써 섬기네
우리 주님 거룩한 손 제자들의 발을 씻어
남 섬기는 종의 도를 몸소 행해 보이셨네
3. 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한 몸같이 친밀하고 마음조차 하나 되어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잠언 16:7 ------------------------ 인도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설 교 -------------------모든 것에 화목하라 ----------------- 설교자
2. 설교 예문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모가 나면 이리저리 많은 사람과 부딪치게 되고 서로 고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둥글둥글한 사람은 많은 사람과 잘 어울리며 화평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서로 대하기도 좋고 마음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므로 화목을 이루기가 쉽습니다.
우리 교회 어느 성도 가정은 주님을 믿기 전에는 서로 화목하려고 해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각자 자기 생각과 욕심, 자기의 삶, 자기 방식 등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가정이 믿음 안에서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정이 복음화되었고, 가족 모임 때에 진리의 대화가 오가고 어둠이 물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 유익을 구하고, 서로 낮아지며, 이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모이고 대화하니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요. 또한 만나면 하나님 말씀으로 대화하고, 찬양하며, 문제가 생기면 서로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원하고 부모와 형제간에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것에 화목할 때 기도의 응답이 오고 좋은 일들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라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 힘쓰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불화나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이요, 진리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친히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어려서는 부모나 학교의 여러 스승을 통해 배워서 자기 나름대로의 지식과 생각, 이론을 정립하게 됩니다. 성장하면서는 여러 사람이 자기 주관에 맞추어 쓴 책자들을 읽고 감동받아서 그 작가의 사상을 머릿속에 입력시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환경과 각색의 사람들을 통해 온갖 지식이나 이론을 받아들였으니 사람마다 지혜와 지식, 사고방식과 양심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모두가 똑같다고 하면 전부가 일치되어 화목을 이룰 텐데 서로 다르기 때문에 화목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하나님 말씀으로 분별하여 진리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니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룹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생각과 이론이 옳다고 여기며 살아가게 되므로 고통이 끊이지 않지요.
우리가 화목의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친히 원수까지라도 화목하게 하시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먼저는,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예배드리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며 말씀대로 살아야 하나님 사랑과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순종해 나감으로 마음이 성결한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참된 의인이 되는 것이므로 진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하셨으니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열심히 전도하고 선을 행하며 덕을 베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중에는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움과 가정의 화목과 건강, 마음의 소원을 조상에게 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제사를 지내는 것이지요.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그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 다해 차례를 지냅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두 갈래로 나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반면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지요. 우리 조상들은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었기에 신을 찾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참 신으로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어떤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새해에는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심으로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게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이날은 ‘묵은해를 떨쳐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 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2020년 대망의 새해에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지난 한 해도 지키시고 풍성한 것들로 채워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주 안에서 사랑하는 자녀들을 늘 지키시고 축복하시며, 새해에도 풍성한 은혜와 축복으로 함께해 주실 아버지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278장 ---------------------- 다 같이
1.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 자매 한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네
내 주 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 내 몸같이
환난 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2. 사랑하는 주님 앞에 온갖 충성 다바쳐서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만 힘써 섬기네
우리 주님 거룩한 손 제자들의 발을 씻어
남 섬기는 종의 도를 몸소 행해 보이셨네
3. 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한 몸같이 친밀하고 마음조차 하나 되어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잠언 16:7 ------------------------ 인도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설 교 -------------------모든 것에 화목하라 ----------------- 설교자
2. 설교 예문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성격이 모가 나면 이리저리 많은 사람과 부딪치게 되고 서로 고통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둥글둥글한 사람은 많은 사람과 잘 어울리며 화평한 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과는 서로 대하기도 좋고 마음도 편안함을 느낄 수 있으므로 화목을 이루기가 쉽습니다.
우리 교회 어느 성도 가정은 주님을 믿기 전에는 서로 화목하려고 해도 그렇지 못했습니다. 각자 자기 생각과 욕심, 자기의 삶, 자기 방식 등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가정이 믿음 안에서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정이 복음화되었고, 가족 모임 때에 진리의 대화가 오가고 어둠이 물러가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상대 유익을 구하고, 서로 낮아지며, 이해와 용서의 마음으로 모이고 대화하니 예전 모습은 찾아볼 수 없게 되었지요. 또한 만나면 하나님 말씀으로 대화하고, 찬양하며, 문제가 생기면 서로를 위해 금식하며 기도해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원하고 부모와 형제간에 화목하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것에 화목할 때 기도의 응답이 오고 좋은 일들이 임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자녀라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기 위해 힘쓰며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면 불화나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이요, 진리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친히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어려서는 부모나 학교의 여러 스승을 통해 배워서 자기 나름대로의 지식과 생각, 이론을 정립하게 됩니다. 성장하면서는 여러 사람이 자기 주관에 맞추어 쓴 책자들을 읽고 감동받아서 그 작가의 사상을 머릿속에 입력시키기도 합니다.
이처럼 다양한 환경과 각색의 사람들을 통해 온갖 지식이나 이론을 받아들였으니 사람마다 지혜와 지식, 사고방식과 양심이 다를 수밖에 없지요. 모두가 똑같다고 하면 전부가 일치되어 화목을 이룰 텐데 서로 다르기 때문에 화목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하나님 말씀으로 분별하여 진리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진리의 사람으로 변화되면 서로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니 모든 것에 화목을 이룹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생각과 이론이 옳다고 여기며 살아가게 되므로 고통이 끊이지 않지요.
우리가 화목의 축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잠언 16장 7절에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로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친히 원수까지라도 화목하게 하시고 모든 문제들을 해결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면 먼저는, 하나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예배드리기를 즐겨해야 합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 듣는 것을 즐거워하며 열심히 예배에 참석하고 기도하며 말씀대로 살아야 하나님 사랑과 기도의 응답을 받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법도를 좇아 순종해 나감으로 마음이 성결한 진리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참된 의인이 되는 것이므로 진리에 순종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하셨으니 믿음으로 행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열심히 전도하고 선을 행하며 덕을 베풀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며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 중에는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움과 가정의 화목과 건강, 마음의 소원을 조상에게 비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제사를 지내는 것이지요. 마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그 음식을 흠향하는 것처럼 정성 다해 차례를 지냅니다.
하지만 사람의 목숨이 다하여 영혼이 떠나면 다시 이 세상으로 올 수 없습니다. 그러니 제사를 지내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두 갈래로 나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는 반면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지요. 우리 조상들은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었기에 신을 찾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참 신으로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어떤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새해에는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심으로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