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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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9-11
제37과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1)
마태복음 7:7~11
읽을말씀 : 마태복음 7:7~11 | 외울말씀 : 마태복음 6:33 | 참고 말씀: 요한복음 15:16
교육목표 :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 주시는 하나님께 그의 뜻대로 구함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좋은 것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성경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많은 응답과 축복을 받은 믿음의 선진들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와 찬양,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며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 등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중에서 기도는 신앙생활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서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증표입니다. 또한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귀중한 통로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여러 가지로 사랑의 고백을 하기도 하고, 필요한 것을 구하듯이 우리도 기도로써 하나님과 대화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축복을 받을 수 있지요.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마치 우리 영혼의 호흡과 같아서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라면 당연히 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이 힘을 잃고 파리해집니다. 또 기도할 때라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가난하고 병들어 고통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지요. 그러나 우리가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받을 수 없습니다.
자녀가 온실 속의 화초같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의존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다방면으로 배우고 체험하여 건강한 인격과 지식을 갖춘 사람이 되길 바라겠지요.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적당한 신앙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열심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지혜롭고 부지런한 자녀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복을 누리기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응답하시겠다는 축복과 약속의 말씀입니다.
2. 구하라 주실 것이요
마태복음 7장 7절을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만민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구하여 축복된 삶을 영위하기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지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가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부모가 없지요. 또한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자녀에게는 항상 좋은 것을 주기 원할 것입니다(마 7:9~11). 하물며 사랑 자체가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찌 그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의 능력과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시편 105편 4절을 보면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창 2:4), 전지전능하시고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십니다(출 3:14).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며(요 1:1),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셨으니 하나님 말씀은 능력 자체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러한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주셔야 세상을 이기고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지요. 이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하신 대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믿음 역시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가질 수 있습니다. 지식적 믿음은 사람 편에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지만 마음 중심에서 믿어지는 영적 믿음은 하나님이 주셔야만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한다는 것은 곧 믿음 주시기를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상대의 얼굴을 모르고 그 사람을 안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려고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 낯을 피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던 사람이 이제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하며 그 음성 듣기를 구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얼굴을 보기 원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한 후 사람을 지으시고 그에게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시조인 아담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지음으로써 이러한 축복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하나님과 멀어지고 원수 마귀의 종이 되어 멸망의 길로 갔지요. 이러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하고 구원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면 ‘하나님이 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지’, ‘왜 말씀이 하나님이신지’ 등 성경 66권 말씀을 깨우쳐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영적인 뜻을 깨달아 마음에 양식 삼는 만큼 하나님을 닮아가고 주님을 닮아갑니다. 따라서 힘써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얼굴을 구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25~33).
그러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모두 죄로 인해 원수 마귀 사단에게 종노릇 하며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 받아 하나님 자녀로 거듭남으로써 하늘나라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만큼 죄로 인해 사망으로 가던 많은 사람이 구원받으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영혼 구원 곧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쳐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성결하기를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과 의, 빛 가운데 계신 분이므로 죄악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진리대로 행하며 성결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함으로 영혼이 잘된 사람에게는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요삼 2). 그래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명하시고 그리하면 그 위에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영계의 법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십니다. 즉 구해야 주시며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주시지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구함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시길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여호와와 능력을 구한다는 것은 ( ) 주시기를 구한다는 의미이다.
2. 하나님의 ( )을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3.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 ) 곧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이다.
4. 하나님의 ( )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쳐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살며 성결하기를 기도하라는 뜻이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11~2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해야 하는 이유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했다(히 9:27). 우리 인생은 단지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는 반드시 천국, 지옥의 두 갈래 길이 있다.
주님을 믿고 성령 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지만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영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를 널리 알려서 사람들이 그 증거를 보고라도 믿음을 가져 구원에 이르도록 힘써 전도해야 한다.
교육목표 : 우리에게 항상 좋은 것 주시는 하나님께 그의 뜻대로 구함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아 풍성한 삶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좋은 것 주시는 아버지 하나님
성경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많은 응답과 축복을 받은 믿음의 선진들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중심으로 드리는 예배와 찬양, 기도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을 섬기며 성전에서 봉사하는 것 등을 기쁘게 받으십니다.
그중에서 기도는 신앙생활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으로서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증표입니다. 또한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귀중한 통로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여러 가지로 사랑의 고백을 하기도 하고, 필요한 것을 구하듯이 우리도 기도로써 하나님과 대화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축복을 받을 수 있지요.
기도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마치 우리 영혼의 호흡과 같아서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라면 당연히 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우리의 영혼이 힘을 잃고 파리해집니다. 또 기도할 때라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고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를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가난하고 병들어 고통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오히려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시지요. 그러나 우리가 아무 노력도 하지 않는다면 받을 수 없습니다.
자녀가 온실 속의 화초같이 아무 노력도 하지 않고 의존적으로 성장하기를 원하는 부모는 없을 것입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다방면으로 배우고 체험하여 건강한 인격과 지식을 갖춘 사람이 되길 바라겠지요.
하나님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적당한 신앙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열심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지혜롭고 부지런한 자녀가 되어 하나님이 주시는 풍성한 복을 누리기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5장 16절에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니라” 하셨습니다. 우리가 열심히 구하고 찾고 두드릴 때 응답하시겠다는 축복과 약속의 말씀입니다.
2. 구하라 주실 것이요
마태복음 7장 7절을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세상 모든 만민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께 구하여 축복된 삶을 영위하기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지요. 하나님은 창조주이시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사람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을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 믿음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아무리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가 떡을 달라 하는데 돌을 주고, 생선을 달라 하는데 뱀을 줄 부모가 없지요. 또한 아무리 가난하다 해도 자녀에게는 항상 좋은 것을 주기 원할 것입니다(마 7:9~11). 하물며 사랑 자체가 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찌 그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께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첫째, 하나님의 능력과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시편 105편 4절을 보면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 만물의 창조주이시며(창 2:4), 전지전능하시고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십니다(출 3:14).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며(요 1:1), 천지 만물을 말씀으로 지으셨으니 하나님 말씀은 능력 자체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이러한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셔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주셔야 세상을 이기고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지요. 이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하신 대로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믿음 역시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가질 수 있습니다. 지식적 믿음은 사람 편에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지만 마음 중심에서 믿어지는 영적 믿음은 하나님이 주셔야만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한다는 것은 곧 믿음 주시기를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상대의 얼굴을 모르고 그 사람을 안다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바로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려고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 낯을 피하고 그분의 음성을 들으려고 하지 않던 사람이 이제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노력하며 그 음성 듣기를 구한다는 뜻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얼굴을 보기 원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한 후 사람을 지으시고 그에게 땅을 정복하며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그런데 인류의 시조인 아담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죄를 지음으로써 이러한 축복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게 되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그의 후손인 모든 인류는 하나님과 멀어지고 원수 마귀의 종이 되어 멸망의 길로 갔지요. 이러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하고 구원해 주십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으면 ‘하나님이 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지’, ‘왜 말씀이 하나님이신지’ 등 성경 66권 말씀을 깨우쳐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영적인 뜻을 깨달아 마음에 양식 삼는 만큼 하나님을 닮아가고 주님을 닮아갑니다. 따라서 힘써 기도하며 하나님의 능력과 얼굴을 구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둘째,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25~33).
그러면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모두 죄로 인해 원수 마귀 사단에게 종노릇 하며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 받아 하나님 자녀로 거듭남으로써 하늘나라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만큼 죄로 인해 사망으로 가던 많은 사람이 구원받으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따라서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영혼 구원 곧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도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너희가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쳐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성결하기를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선과 의, 빛 가운데 계신 분이므로 죄악을 가지고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고 그분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진리대로 행하며 성결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함으로 영혼이 잘된 사람에게는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요삼 2). 그래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명하시고 그리하면 그 위에 모든 것을 더하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신 분이기 때문에 영계의 법인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십니다. 즉 구해야 주시며 받을 만한 그릇이 되어야 주시지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구함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시길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여호와와 능력을 구한다는 것은 ( ) 주시기를 구한다는 의미이다.
2. 하나님의 ( )을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누구이신지 알려고 노력한다는 뜻이다.
3. 하나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 ) 곧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이다.
4. 하나님의 ( )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쳐 어둠에서 나와 빛 가운데 살며 성결하기를 기도하라는 뜻이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11~2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전도해야 하는 이유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했다(히 9:27). 우리 인생은 단지 죽음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는 반드시 천국, 지옥의 두 갈래 길이 있다.
주님을 믿고 성령 받은 사람은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지만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에 떨어져 영벌을 받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살아계신 증거를 널리 알려서 사람들이 그 증거를 보고라도 믿음을 가져 구원에 이르도록 힘써 전도해야 한다.
2020-09-04
제36과심고 거두는 축복의 비결 (2)
민수기 6:22~27
읽을말씀 : 민수기 6:22~27 | 외울말씀 : 고린도후서 9:6 | 참고 말씀: 시편 116:1~2
교육목표 : 마음 밭을 개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과 행함을 항상 내보임으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삶을 영위하게 한다.
마음 밭을 개간하여 30배, 60배, 100배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첫째, 마음의 할례를 해야 하고, 둘째로, 하나님 앞에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지난주에 이어 살펴보겠습니다.
셋째, 무엇이든지 욕심으로 구해서는 안 됩니다.
“부자가 되려면 재물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 자기를 좇아오게 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욕심에 눈이 멀어 재물에 집착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정도에서 벗어나 큰 손실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 안에서도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먼저 탐심부터 버려야 합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라 하셨고 하나님께서 매우 싫어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 유익을 구할지, 손해를 보더라도 진리를 따를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만일 탐심이 있으면 적당히 둘러대면서 진리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합니다. 탐심 때문에 신앙이 변질되기도 하지요. 수입이 적을 때는 십일조를 잘했는데 수입이 늘면 아까워 드리지 않는 일도 생깁니다.
우리가 물질의 축복을 구하는 이유는 자신이 더 많이 누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땅에 재물을 아무리 많이 쌓아 둬도 천국에 가면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구해야 하지요.
탐심으로 구하지 않으려면 내 것이 아닌 것은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탐심이 없다면 하나님께 구할 때도 조급하지 않고 공의에 맞게 성령의 주관을 받아 구합니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가 10만 원인데 “십일조 100만 원 드리게 기도해 주세요.” 합니다. 물론 앞으로 축복받아 그렇게 하겠다는 믿음은 좋지만 당장 그렇게 받을 수는 없습니다. 20만 원, 30만 원, 50만 원 단계를 밟아 올라가야 합니다. 단계를 무시하고 자기 생각과 조급함으로 하나님께 독촉하듯 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넷째, 항상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은 물론 세상 법도 준수하며 정직과 성실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수월하게 유익을 얻으려고 편법을 쓰고 남을 속이거나 진리를 벗어나면 세상에서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야곱은 삼촌의 양 떼를 지킬 때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추위와 더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가축들을 돌봤으며 심지어 도둑맞은 것이나 맹수에게 찢긴 것은 자기가 물어낼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남의 양 떼를 맡아 돌보면서도 성실하게 일했기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지요.
아무리 진리를 많이 알고 기도를 많이 한다 해도 정도를 걷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작은 일을 맡았을 때 충성하는 사람이라야 큰 것도 맡길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라야 하나님 앞에 진실하다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정직과 성실로 쌓아가지 않으면 비록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다 해도 축복을 자기 것으로 취할 수 없습니다.
다섯째, 부지런히 많이 심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했습니다. 아무리 넓은 땅을 가졌어도 심은 만큼만 거둘 수 있습니다. 좁은 면적에 뿌리고 드넓은 면적의 수확량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지런히 많이 심을 때라야 그 축복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만 원을 심고 두 배로 받았다고 합시다. 이때 직접 돈으로 주실 수도 있고 질병이나 재앙으로 인한 손실을 막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 원의 두 배 곧 2만 원 정도의 액수라면 하나님께서 주셨다 해도 그것을 실감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천만 원을 심었는데 두 배로 갚아 주셨다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액수가 크다 해서 ‘많이 심었다’ 할 수는 없습니다. 예물을 통해 하나님이 받고자 하시는 것은 마음의 향이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믿음과 행함에 변개함이 없어야 합니다.
농부가 많은 씨를 심고 몇 달 지났는데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해서 가꾸지 않거나 땅을 갈아엎어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동안 수고한 것이 허사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응답받기 위해서도 이것저것 기회가 될 때마다 부지런히 심되 심은 것은 반드시 축복으로 주실 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내가 이만큼 드렸으니까 축복해 주세요.” 하고 계산적으로 요청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축복을 주시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드릴 마음이지만, 하나님께서 축복을 약속하셨기에 영광 돌리고자 하는 믿음으로 구해야지요.
응답이 더디다 해서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응답이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 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으로 쌓아왔다면 끝까지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기로 정한 것은 반드시 지키고, 드리고자 한 것을 자기 유익에 따라 바꾸거나 서원한 것을 어기는 일도 없어야 하지요(레 27장 ; 시 15:4).
일곱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에 심어야 합니다.
주식으로 이윤을 남기려면 수익성이 좋은 종목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부실한 종목에 투자했다가는 원금조차 보존하기 어렵습니다. 영적으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곳에 심으면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구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니 축복받는 길입니다. 그런데 범죄하여 하나님께 징계받는 사람을 구제한다면 함께 연단을 받습니다. 그가 계속 죄를 짓도록 돕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히 악을 행한 니느웨에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 요나에게 가서 그의 멸망을 경고하라 하셨습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의 적국인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바랐기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항해 도중 요나 때문에 폭풍이 왔는데, 이를 알고도 사람들은 요나를 돕다가 큰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요나를 바다에 던지니 풍랑이 그쳤습니다(욘 1:1~15).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에 바르게 심어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덟째, 하나님 나라에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충성한다는 것은 변함없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뜻도 됩니다. 영적으로 참된 충성을 하는 사람은 몸으로만 봉사하지 않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쉬지 않고 불같이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다가 축복을 받아 사업터에 일이 많아지니 사명에 대해 소홀해집니다. 신앙이 점점 변질되어 가지요. 은혜가 식고 기도를 하지 않는 등 세상과 타협해 갑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불법을 행하다가 하나님이 외면하시므로 사업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병까지 얻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진리대로 행하여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외적인 충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악을 버리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해야지요. 나아가 가정이나 직장, 교회 등 자신이 속한 모든 곳에서 충성되어야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편 116편 1~2절에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인생의 여러 문제로 고통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응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무엇이나 응답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지요. 우리가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응답받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건강, 재물, 명예 등 그 밖의 어떤 소원이든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진리 안에 살며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여 모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며 삶 가운데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또한 영혼이 잘되는 복을 받아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참 자녀가 되어 장차 새 예루살렘 성에서 큰 영광과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먼저 ( )부터 버려야 한다. ( )은 우상 숭배라 하셨고 하나님께서 매우 싫어하신다.
2. 하나님 나라에 ( )한다는 것은 변함없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영적으로 참된 ( )을 하는 사람은 몸으로만 봉사하지 않는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쉬지 않고 불같이 기도한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11~2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마음의 향이 담긴 예물’
예물을 통해 하나님께서 받고자 하시는 것은 마음의 향이다.
마가복음 12장에 나오는 과부는 두 렙돈을 연보궤에 넣었다.
이는 당시 가장 작은 화폐 단위인 동전 두 닢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칭찬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많은 소유 중에 일부를 드렸지만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의 향이 담긴 예물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예물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한 것이다.
교육목표 : 마음 밭을 개간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과 행함을 항상 내보임으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삶을 영위하게 한다.
마음 밭을 개간하여 30배, 60배, 100배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첫째, 마음의 할례를 해야 하고, 둘째로, 하나님 앞에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지난주에 이어 살펴보겠습니다.
셋째, 무엇이든지 욕심으로 구해서는 안 됩니다.
“부자가 되려면 재물을 좇아가는 것이 아니라 재물이 자기를 좇아오게 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욕심에 눈이 멀어 재물에 집착하면 판단력이 흐려지고 정도에서 벗어나 큰 손실을 입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앙 안에서도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먼저 탐심부터 버려야 합니다. ‘탐심은 우상 숭배’라 하셨고 하나님께서 매우 싫어하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 유익을 구할지, 손해를 보더라도 진리를 따를지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만일 탐심이 있으면 적당히 둘러대면서 진리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합니다. 탐심 때문에 신앙이 변질되기도 하지요. 수입이 적을 때는 십일조를 잘했는데 수입이 늘면 아까워 드리지 않는 일도 생깁니다.
우리가 물질의 축복을 구하는 이유는 자신이 더 많이 누리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이 땅에 재물을 아무리 많이 쌓아 둬도 천국에 가면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구해야 하지요.
탐심으로 구하지 않으려면 내 것이 아닌 것은 바라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마음에 탐심이 없다면 하나님께 구할 때도 조급하지 않고 공의에 맞게 성령의 주관을 받아 구합니다. 어떤 사람은 십일조가 10만 원인데 “십일조 100만 원 드리게 기도해 주세요.” 합니다. 물론 앞으로 축복받아 그렇게 하겠다는 믿음은 좋지만 당장 그렇게 받을 수는 없습니다. 20만 원, 30만 원, 50만 원 단계를 밟아 올라가야 합니다. 단계를 무시하고 자기 생각과 조급함으로 하나님께 독촉하듯 구하는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넷째, 항상 정도를 걸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법은 물론 세상 법도 준수하며 정직과 성실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수월하게 유익을 얻으려고 편법을 쓰고 남을 속이거나 진리를 벗어나면 세상에서도 성공하기 어렵습니다.
야곱은 삼촌의 양 떼를 지킬 때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추위와 더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눈 붙일 겨를도 없이 가축들을 돌봤으며 심지어 도둑맞은 것이나 맹수에게 찢긴 것은 자기가 물어낼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남의 양 떼를 맡아 돌보면서도 성실하게 일했기에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지요.
아무리 진리를 많이 알고 기도를 많이 한다 해도 정도를 걷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수 없습니다. 작은 일을 맡았을 때 충성하는 사람이라야 큰 것도 맡길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람 앞에서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이라야 하나님 앞에 진실하다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정직과 성실로 쌓아가지 않으면 비록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신다 해도 축복을 자기 것으로 취할 수 없습니다.
다섯째, 부지런히 많이 심어야 합니다.
고린도후서 9장 6절에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했습니다. 아무리 넓은 땅을 가졌어도 심은 만큼만 거둘 수 있습니다. 좁은 면적에 뿌리고 드넓은 면적의 수확량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지런히 많이 심을 때라야 그 축복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만 원을 심고 두 배로 받았다고 합시다. 이때 직접 돈으로 주실 수도 있고 질병이나 재앙으로 인한 손실을 막아 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 원의 두 배 곧 2만 원 정도의 액수라면 하나님께서 주셨다 해도 그것을 실감하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천만 원을 심었는데 두 배로 갚아 주셨다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단순히 액수가 크다 해서 ‘많이 심었다’ 할 수는 없습니다. 예물을 통해 하나님이 받고자 하시는 것은 마음의 향이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믿음과 행함에 변개함이 없어야 합니다.
농부가 많은 씨를 심고 몇 달 지났는데 열매가 보이지 않는다 해서 가꾸지 않거나 땅을 갈아엎어 버린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동안 수고한 것이 허사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응답받기 위해서도 이것저것 기회가 될 때마다 부지런히 심되 심은 것은 반드시 축복으로 주실 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갚아 주십니다. “내가 이만큼 드렸으니까 축복해 주세요.” 하고 계산적으로 요청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축복을 주시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드릴 마음이지만, 하나님께서 축복을 약속하셨기에 영광 돌리고자 하는 믿음으로 구해야지요.
응답이 더디다 해서 원망하고 불평한다면 응답이 더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 심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으로 쌓아왔다면 끝까지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드리기로 정한 것은 반드시 지키고, 드리고자 한 것을 자기 유익에 따라 바꾸거나 서원한 것을 어기는 일도 없어야 하지요(레 27장 ; 시 15:4).
일곱째,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에 심어야 합니다.
주식으로 이윤을 남기려면 수익성이 좋은 종목에 투자를 해야 합니다. 부실한 종목에 투자했다가는 원금조차 보존하기 어렵습니다. 영적으로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곳에 심으면 축복받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구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니 축복받는 길입니다. 그런데 범죄하여 하나님께 징계받는 사람을 구제한다면 함께 연단을 받습니다. 그가 계속 죄를 짓도록 돕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히 악을 행한 니느웨에 회개할 기회를 주기 위해 요나에게 가서 그의 멸망을 경고하라 하셨습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의 적국인 니느웨가 멸망하기를 바랐기에 불순종하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탔습니다. 항해 도중 요나 때문에 폭풍이 왔는데, 이를 알고도 사람들은 요나를 돕다가 큰 어려움을 겪었고, 결국 요나를 바다에 던지니 풍랑이 그쳤습니다(욘 1:1~15). 따라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에 바르게 심어야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여덟째, 하나님 나라에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충성한다는 것은 변함없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뜻도 됩니다. 영적으로 참된 충성을 하는 사람은 몸으로만 봉사하지 않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쉬지 않고 불같이 기도합니다.
어떤 사람은 열심히 사명을 감당하다가 축복을 받아 사업터에 일이 많아지니 사명에 대해 소홀해집니다. 신앙이 점점 변질되어 가지요. 은혜가 식고 기도를 하지 않는 등 세상과 타협해 갑니다.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불법을 행하다가 하나님이 외면하시므로 사업이 한순간에 무너지고 병까지 얻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진리대로 행하여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외적인 충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악을 버리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명을 감당해야지요. 나아가 가정이나 직장, 교회 등 자신이 속한 모든 곳에서 충성되어야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시편 116편 1~2절에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저를 사랑하는도다 그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응답하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가 인생의 여러 문제로 고통받을 때 하나님께서는 어찌하든 응답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무엇이나 응답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지요. 우리가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응답받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건강, 재물, 명예 등 그 밖의 어떤 소원이든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진리 안에 살며 하나님을 감동시켜 드리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여 모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으며 삶 가운데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기를 바랍니다. 또한 영혼이 잘되는 복을 받아 하나님의 마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참 자녀가 되어 장차 새 예루살렘 성에서 큰 영광과 행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물질의 축복을 받으려면 먼저 ( )부터 버려야 한다. ( )은 우상 숭배라 하셨고 하나님께서 매우 싫어하신다.
2. 하나님 나라에 ( )한다는 것은 변함없이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뜻도 된다. 영적으로 참된 ( )을 하는 사람은 몸으로만 봉사하지 않는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쉬지 않고 불같이 기도한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11~2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마음의 향이 담긴 예물’
예물을 통해 하나님께서 받고자 하시는 것은 마음의 향이다.
마가복음 12장에 나오는 과부는 두 렙돈을 연보궤에 넣었다.
이는 당시 가장 작은 화폐 단위인 동전 두 닢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칭찬하셨다. 다른 사람들은 많은 소유 중에 일부를 드렸지만 과부는 생활비 전부를 드렸기 때문이다.
그런 마음의 향이 담긴 예물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예물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한 것이다.
2020-08-28
제35과심고 거두는 축복의 비결 (1)
민수기 6:22~27
읽을말씀 : 민수기 6:22~27 | 외울말씀 : 말라기 3:10 | 참고 말씀: 마태복음 13:3~23
교육목표 : 마음 밭을 개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심고 가꾸며,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함으로 풍성한 축복을 받게 한다.
우리 마음을 변화시켜서 옥토로 만드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마음을 빛으로, 의와 선으로, 진리로 변화시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야 하지요. 이렇게 마음을 부지런히 개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심을 때 축복과 응답으로 거둡니다. 그러면 응답받는 과정을 심고 거두는 자연의 법칙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1. 응답과 축복의 기본 원리
첫째, 마음 밭을 개간해야 합니다.
농사 지을 때 아무리 좋은 씨를 많이 뿌린다 해도 토질이 나쁘면 수확이 좋지 못합니다. 기왕이면 좋은 밭, 옥토에 씨를 뿌려야 풍성하게 수확할 수 있지요. 영적으로 축복받기 위해 씨를 뿌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밭은 영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뜻합니다. 많은 씨를 뿌리고 열심히 가꾼다 해도 마음 밭이 좋지 않으면 기대만큼 좋은 수확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먼저는 마음 밭을 개간해야 하는데, 이는 죄와 악을 벗어 버리고 성결된 깨끗한 마음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곧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욕심을 버리라, 미워하지 말라, 판단하지 말라” 등 성경에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마음 밭을 개간하는 것입니다.
둘째, 씨를 심어야 합니다.
씨를 심는다는 것은 “사랑하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섬기라, 안식일을 지키라” 등 성경에 무엇무엇을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대로 씨를 심되, 한 번만 심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심어야 합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도 철을 따라 씨를 뿌리듯이 영적으로도 천국에 갈 때까지 뿌리고 거두는 작업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셋째, 인내로 가꾸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심기만 하고 가꾸지 않으면 추수 때 거둘 것이 별로 없습니다. 영적으로 가꾸는 것이란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찬송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워야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찬송과 기도로 성령 충만함을 얻어야 새 힘을 받아 밭을 옥토로 개간하며 열심히 심고 가꿀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 역시 영적으로 가꾸는 작업입니다. 이것이 곧 믿음입니다. 이 땅에서도 추수할 소망이 가득한 농부는 기쁘고 행복하게 일을 합니다. 흥얼흥얼 노래하면서 거두기까지 부지런히 가꿉니다. 우리도 천국 소망 가운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틈타지 못하고 천국까지 힘차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넷째, 꽃이 피고 열매를 거두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꽃이 피면 향기가 나듯이 우리 마음에도 영적인 꽃이 피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마음이 점점 하나님을 닮아가니 주변 사람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심은 것에 꽃이 피면 마침내 열매가 맺힙니다. 성령의 열매, 팔복의 열매, 사랑장의 열매, 빛의 열매 등 영적인 열매들이 맺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 밭을 개간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심고 가꾸는 것이 영육 간에 모든 응답과 축복을 거두는 기본 원리이자 핵심입니다. 마음 밭을 얼마나 옥토로 개간하여 씨를 많이 심고 가꾸었느냐에 따라 거두는 정도가 다릅니다. 2배로 거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30배, 60배, 100배로 거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2. 30배, 60배, 100배로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비결
첫째, 무엇보다 마음의 할례를 해야 합니다.
이는 마음 밭을 개간하여 옥토를 만들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열매로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으로 심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성결된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지요. 따라서 마음을 할례하여 죄악을 벗어 버릴수록 영적인 믿음이 커지므로 축복도 더 크게 받을 수 있습니다.
요한삼서 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했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곧 마음밭을 옥토로 개간하는 만큼 육적으로도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아 나간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영혼이 잘되는 것이 응답과 축복을 받는 길이므로 먼저 마음을 할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의 할례란 마음에 있는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것, 곧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길가밭, 돌밭, 가시 떨기밭을 옥토로 개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길가밭은 영적으로 단단한 마음, 즉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밭을 개간하려면 교만, 자존심, 고집, 거짓 등 마음의 악을 버리고 자기가 옳다는 의와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
돌밭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깨닫고 은혜도 받지만 시험이나 환난, 핍박을 만나면 이내 넘어지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은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비진리,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골라내면 됩니다. 가시 떨기밭은 말씀을 들으면 믿고 행하기는 하지만 온전하게 행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 염려와 재물, 명예, 권세 등에 대한 탐심을 버리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이처럼 마음 밭을 개간하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비진리를 발견하여 버려 나가는 만큼 마음 밭이 개간되어 옥토로 변합니다. 악이 없고 선한 마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진리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로 변화되어 기름진 옥토를 준비하고 거기에 씨를 심으면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주일 성수는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인정한다는 의미로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최소한의 행함입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면 원수 마귀 사단이 시험 환난을 준다 해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씨를 뿌려도 폭풍과 가뭄 같은 재앙을 만나 결국 수확할 수 없습니다.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사업 특성상 주말에 일감이 많이 들어오므로 주일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말씀을 통해 잘못을 깨닫고 ‘주일에 생기는 일감은 내 것이 아니다’ 하고 주일을 지키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생각도 못했던 일감들을 보내 주셔서 주중에 더 큰 수입을 얻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십일조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는 행함입니다. 천하 만물이 창조주 하나님께 속해 있고 우리의 모든 축복도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증거입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셨습니다(말 3:10).
또 십일조는 다음 해를 위해 구분해 놓는 종자와 같습니다. 농부는 추수한 곡식 중에서 제일 좋은 알곡으로 종자를 골라 놓습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다고 종자를 남겨 두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가장 먼저 구별해 드려야 합니다. 쓰고 남는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 십일조로 드릴 예물을 구제 등 다른 헌금으로 드렸다면 여전히 십일조를 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주일 성수나 십일조는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구원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매우 중요한 분야이지요.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며 축복을 구한다 해도 주일 성수하지 않거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수 없습니다.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믿음으로 구할 때라야 하나님께서도 축복과 응답을 주실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어떻게 심고 가꿔야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둘 수 있을까요?
2. 씨를 ( ) 것은 ‘사랑하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섬기라, 안식일을 지키라’ 등 성경에 무엇무엇을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 )하는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17~13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십일조’란
자신이 얻은 수입 전체 중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땀 흘려 수고하여 얻은 소산의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다. 가령, 농부가 소출을 내었어도 내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은, 종자는 물론 비와 바람과 햇빛을 주시고 자라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은 물론 근본적으로 생명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결국은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므로 이를 인정하는 의미에서 수입 전체 중에서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바로 십일조이다.
교육목표 : 마음 밭을 개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심고 가꾸며,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함으로 풍성한 축복을 받게 한다.
우리 마음을 변화시켜서 옥토로 만드는 것이 신앙생활의 핵심입니다. 마음을 빛으로, 의와 선으로, 진리로 변화시켜 하나님의 형상을 닮아야 하지요. 이렇게 마음을 부지런히 개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심을 때 축복과 응답으로 거둡니다. 그러면 응답받는 과정을 심고 거두는 자연의 법칙에 적용해 보겠습니다.
1. 응답과 축복의 기본 원리
첫째, 마음 밭을 개간해야 합니다.
농사 지을 때 아무리 좋은 씨를 많이 뿌린다 해도 토질이 나쁘면 수확이 좋지 못합니다. 기왕이면 좋은 밭, 옥토에 씨를 뿌려야 풍성하게 수확할 수 있지요. 영적으로 축복받기 위해 씨를 뿌릴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밭은 영적으로 우리의 마음을 뜻합니다. 많은 씨를 뿌리고 열심히 가꾼다 해도 마음 밭이 좋지 않으면 기대만큼 좋은 수확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먼저는 마음 밭을 개간해야 하는데, 이는 죄와 악을 벗어 버리고 성결된 깨끗한 마음을 이루는 것을 말합니다. 곧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욕심을 버리라, 미워하지 말라, 판단하지 말라” 등 성경에 ‘하지 말라, 버리라’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마음 밭을 개간하는 것입니다.
둘째, 씨를 심어야 합니다.
씨를 심는다는 것은 “사랑하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섬기라, 안식일을 지키라” 등 성경에 무엇무엇을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말씀대로 씨를 심되, 한 번만 심고 마는 것이 아니라 계속 심어야 합니다. 농부가 농사를 지을 때도 철을 따라 씨를 뿌리듯이 영적으로도 천국에 갈 때까지 뿌리고 거두는 작업이 계속되어야 합니다.
셋째, 인내로 가꾸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심기만 하고 가꾸지 않으면 추수 때 거둘 것이 별로 없습니다. 영적으로 가꾸는 것이란 예배드리고 기도하며 찬송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워야 믿음이 성장할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찬송과 기도로 성령 충만함을 얻어야 새 힘을 받아 밭을 옥토로 개간하며 열심히 심고 가꿀 수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 역시 영적으로 가꾸는 작업입니다. 이것이 곧 믿음입니다. 이 땅에서도 추수할 소망이 가득한 농부는 기쁘고 행복하게 일을 합니다. 흥얼흥얼 노래하면서 거두기까지 부지런히 가꿉니다. 우리도 천국 소망 가운데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틈타지 못하고 천국까지 힘차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넷째, 꽃이 피고 열매를 거두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꽃이 피면 향기가 나듯이 우리 마음에도 영적인 꽃이 피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납니다. 마음이 점점 하나님을 닮아가니 주변 사람이 그리스도의 향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심은 것에 꽃이 피면 마침내 열매가 맺힙니다. 성령의 열매, 팔복의 열매, 사랑장의 열매, 빛의 열매 등 영적인 열매들이 맺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 밭을 개간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심고 가꾸는 것이 영육 간에 모든 응답과 축복을 거두는 기본 원리이자 핵심입니다. 마음 밭을 얼마나 옥토로 개간하여 씨를 많이 심고 가꾸었느냐에 따라 거두는 정도가 다릅니다. 2배로 거두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30배, 60배, 100배로 거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2. 30배, 60배, 100배로 풍성한 열매를 거두는 비결
첫째, 무엇보다 마음의 할례를 해야 합니다.
이는 마음 밭을 개간하여 옥토를 만들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심든지 열매로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으로 심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믿음은 성결된 만큼 하나님께서 주시지요. 따라서 마음을 할례하여 죄악을 벗어 버릴수록 영적인 믿음이 커지므로 축복도 더 크게 받을 수 있습니다.
요한삼서 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했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곧 마음밭을 옥토로 개간하는 만큼 육적으로도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아 나간다는 말씀입니다. 이처럼 영혼이 잘되는 것이 응답과 축복을 받는 길이므로 먼저 마음을 할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의 할례란 마음에 있는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것, 곧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길가밭, 돌밭, 가시 떨기밭을 옥토로 개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길가밭은 영적으로 단단한 마음, 즉 하나님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믿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밭을 개간하려면 교만, 자존심, 고집, 거짓 등 마음의 악을 버리고 자기가 옳다는 의와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
돌밭은 하나님 말씀을 들으면 깨닫고 은혜도 받지만 시험이나 환난, 핍박을 만나면 이내 넘어지는 마음입니다. 이런 마음은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비진리,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골라내면 됩니다. 가시 떨기밭은 말씀을 들으면 믿고 행하기는 하지만 온전하게 행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이런 사람은 세상 염려와 재물, 명예, 권세 등에 대한 탐심을 버리면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이처럼 마음 밭을 개간하는 작업이 시작됩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비진리를 발견하여 버려 나가는 만큼 마음 밭이 개간되어 옥토로 변합니다. 악이 없고 선한 마음,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진리의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진리로 변화되어 기름진 옥토를 준비하고 거기에 씨를 심으면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둘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 앞에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해야 합니다.
주일 성수는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곧 우리 영혼이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인정한다는 의미로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최소한의 행함입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는 사람이라면 원수 마귀 사단이 시험 환난을 준다 해도 하나님께서 지켜 주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씨를 뿌려도 폭풍과 가뭄 같은 재앙을 만나 결국 수확할 수 없습니다.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성도는 사업 특성상 주말에 일감이 많이 들어오므로 주일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러다가 말씀을 통해 잘못을 깨닫고 ‘주일에 생기는 일감은 내 것이 아니다’ 하고 주일을 지키기로 결단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생각도 못했던 일감들을 보내 주셔서 주중에 더 큰 수입을 얻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다음으로, 십일조를 하는 것은 하나님의 물적 주권을 인정하는 행함입니다. 천하 만물이 창조주 하나님께 속해 있고 우리의 모든 축복도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는 증거입니다.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셨습니다(말 3:10).
또 십일조는 다음 해를 위해 구분해 놓는 종자와 같습니다. 농부는 추수한 곡식 중에서 제일 좋은 알곡으로 종자를 골라 놓습니다. 당장 먹을 것이 없다고 종자를 남겨 두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자녀라면 십일조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가장 먼저 구별해 드려야 합니다. 쓰고 남는 것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또 십일조로 드릴 예물을 구제 등 다른 헌금으로 드렸다면 여전히 십일조를 하지 않은 것이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주일 성수나 십일조는 기본 중에 기본입니다. 구원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매우 중요한 분야이지요. 아무리 열심히 기도하며 축복을 구한다 해도 주일 성수하지 않거나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수 없습니다. 주일 성수와 십일조를 통해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믿음으로 구할 때라야 하나님께서도 축복과 응답을 주실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어떻게 심고 가꿔야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거둘 수 있을까요?
2. 씨를 ( ) 것은 ‘사랑하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섬기라, 안식일을 지키라’ 등 성경에 무엇무엇을 ‘하라, 지키라’ 하신 대로 ( )하는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17~13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십일조’란
자신이 얻은 수입 전체 중에서 십분의 일을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하여 드리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땀 흘려 수고하여 얻은 소산의 전부가 하나님의 것이다. 가령, 농부가 소출을 내었어도 내 것이라 할 수 없는 것은, 종자는 물론 비와 바람과 햇빛을 주시고 자라게 하신 이도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할 수 있는 능력은 물론 근본적으로 생명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에 결국은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이렇게 모든 것이 하나님 것이므로 이를 인정하는 의미에서 수입 전체 중에서 십분의 일을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바로 십일조이다.
2020-08-21
제34과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2)
잠언 8:13
읽을말씀 : 잠언 8:13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1:6 | 참고 말씀: 야고보서 2:22
교육목표 :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죄의 담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헐고 선을 쌓아 나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면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 놀라운 사랑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기쁘시게 하면 구하는 것마다 온전한 응답과 축복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죄의 담을 헐어야 한다 했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계속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죄의 담을 헐고 선을 쌓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어떠한 질병에도 걸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만일 질병이 왔다면 하나님의 뜻에 위배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배한 것이 죄의 담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가로막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하여 지켜 주지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질병을 비롯한 모든 문제에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자신과의 사이를 가로막은 죄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죄의 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것,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것, 욕심으로 기도한 것, 미워하고 시기하며 판단 정죄한 것 등 하나님께서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말씀에 어긋나게 행한 모든 것이 죄의 담이 됩니다.
이를 찾아 회개하여 죄의 담을 헐 때 비로소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행함과 선의 행함을 쌓아간다면 신속하게 온전한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했고, 야고보서 2장 22절에는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 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라, 용서하라, 섬기라, 사랑하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빛 가운데 행하라” 하셨으니 그 말씀대로 행합니다. 선으로 보고 듣고, 선으로 말하고 행하는 등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선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과 선의 행함을 기뻐하며 신속히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진리를 듣고 깨우쳐 믿음을 성장시키며 그에 맞는 선한 행함을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하셔서 어찌하든 좋은 것으로 주기 원하십니다.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합당한 행함을 보이면 즉시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초신자라 해도 단번에 응답받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도 체험하고 신앙의 경륜도 있는 사람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행함을 원하십니다. 예전보다 더 선하고 큰 믿음을 내보이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 편에서는 예전과 똑같이 행하거나 그보다 못하면서 ‘기도해도 응답이 안 온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당장 응답받거나 문제를 해결받고 질병을 치료받는 데만 목적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당장의 응답은 부수적인 열매일 뿐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말씀대로 살아서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 되면 당연히 구하는 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따라서 사람 편에서도 자신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과 같은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당장의 응답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응답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조급하거나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이 자신을 영으로, 곧 진리로 변화시키는 축복의 시간임을 알아 감사하며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2. 죄의 담을 헌 뒤 다시 쌓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응답받기에만 급급해하는 것을 봅니다. 응답이 더디면 실망하고 낙심하며, 심지어는 원망하고 불평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말을 한 자체가 또다시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을 높여서 응답의 시점은 더 멀어지게 됩니다.
그 후 다시 회개하고 믿음으로 예물을 심고 봉사하며 기도를 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쌓기는 하지만 이미 쌓은 죄의 담을 헐기에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죄의 담을 남김 없이 헐어야 합니다. 그런데 조금 헐었다가 다시 쌓기를 반복하니 응답받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10센티미터가 쌓였다고 합시다. 그 상태에서 기도하고 금식하며 회개함으로 5센티미터를 헐었습니다. 그러면 5센티미터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계속 죄의 담을 헐어서 제로(0)가 되어야 온전한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담이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열심히 기도하고 금식도 했으니 이제 응답받으리라 기대합니다. 담이 남아 있기 때문에 공의의 잣대로 재면 아직은 응답받을 때가 아니지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응답이 안 오면 서운해하고 감사치 못하며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아직 남아 있는 담 위에 또다시 담을 쌓게 되니 응답받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응답받기 위해서는 죄의 담을 헐었다가 다시 쌓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노력한 것만 생각하고 말과 행함으로 쌓은 죄의 담은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믿음으로 행했는데도 응답이 안 된다, 더디다’ 생각하며 실망하고 낙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보실 때에 마음이 어떠시겠는지요?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의 변화입니다. 그러니 신실하신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고 영혼이 잘되기 위해, 곧 진리로 변화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말씀을 선으로 생각하며 오래 참아야 응답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열심히 믿음으로 행하고, 선으로 쌓은 것을 깎아 버리지 않으니 응답의 시간이 앞당겨집니다.
질병의 치료만이 아니라 가정의 화평이나 복음화, 물질의 축복 등 범사가 그렇습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형통케 됩니다(요삼 1:2). 마음을 영으로, 진리로 일굴수록 더 큰 축복과 응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어도 지금 자신의 모습이 예전과 비슷하다면 영적인 성장이 제자리라는 증거입니다. 그런 경우 신속히 비진리를 버리고 영으로, 진리로 채워 나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영을 사모하여 진리를 취하고 육 곧 비진리를 버린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계속 육을 취해 나갑니다. 영으로 채운 분량보다 더 많은 분량의 육을 취하기도 합니다. 육을 버리는 것보다 취하는 것이 쉽기 때문에 자신은 조금 취했다 생각하지만 실은 많은 분량이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이때 자신은 ‘영은 많이 취했고 육은 조금 취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는 육의 마음이 영의 마음보다 크거나 제자리걸음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왜 열심히 기도해도 육이 안 버려질까?’ 생각하고 낙심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육을 철저히 끊습니다. 육은 썩어지고 냄새나는 것임을 알아 취하려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영을 사모하고 취해 나가니 신속히 마음이 영으로 채워집니다. 이렇게 영으로만 정진하는 사람은 응답도 축복도 바로 임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모든 것을 공의와 사랑 가운데 이루십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요소들을 온전히 벗어내고 다시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온전히 버리며 선으로 채우기에 힘써야 합니다.
이렇게 행함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을 주십니다. 건강, 물질, 명예 등 구하는 것마다 넘치게 주십니다. 혹여 응답이 더딘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선으로 더 쌓을 시간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항상 온전한 응답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죄의 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하여 지켜 주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질병을 비롯한 모든 문제에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자신과의 사이를 가로막은 ( )을 허는 것이 중요하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17~13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영과 육’
영이란?
죽거나 썩지 않고 변함이 없는 것, 영원한 것으로 생명이요, 진리 자체를 의미한다.
육이란?
시간이 흐르면 썩고 변질되며 결국 없어지는 것, 추하고 더러운 것의 총칭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과의 사이를 가로막는 죄의 담이 무엇인지를 깨달아 헐고 선을 쌓아 나감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면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 놀라운 사랑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기쁘시게 하면 구하는 것마다 온전한 응답과 축복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죄의 담을 헐어야 한다 했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계속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죄의 담을 헐고 선을 쌓아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어떠한 질병에도 걸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만일 질병이 왔다면 하나님의 뜻에 위배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배한 것이 죄의 담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가로막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하여 지켜 주지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질병을 비롯한 모든 문제에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자신과의 사이를 가로막은 죄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죄의 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하나님을 믿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은 것, 이웃을 사랑하지 못한 것, 욕심으로 기도한 것, 미워하고 시기하며 판단 정죄한 것 등 하나님께서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말씀에 어긋나게 행한 모든 것이 죄의 담이 됩니다.
이를 찾아 회개하여 죄의 담을 헐 때 비로소 응답이 오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의 행함과 선의 행함을 쌓아간다면 신속하게 온전한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있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했고, 야고보서 2장 22절에는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 했습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라, 용서하라, 섬기라, 사랑하라,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빛 가운데 행하라” 하셨으니 그 말씀대로 행합니다. 선으로 보고 듣고, 선으로 말하고 행하는 등 삶 속에서 최선을 다해 선을 쌓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믿음과 선의 행함을 기뻐하며 신속히 응답하십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진리를 듣고 깨우쳐 믿음을 성장시키며 그에 맞는 선한 행함을 나타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롭고 자비하셔서 어찌하든 좋은 것으로 주기 원하십니다.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서 합당한 행함을 보이면 즉시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초신자라 해도 단번에 응답받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은혜도 체험하고 신앙의 경륜도 있는 사람에게는 더 높은 수준의 행함을 원하십니다. 예전보다 더 선하고 큰 믿음을 내보이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 편에서는 예전과 똑같이 행하거나 그보다 못하면서 ‘기도해도 응답이 안 온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당장 응답받거나 문제를 해결받고 질병을 치료받는 데만 목적을 두는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은 그것이 아닙니다. 당장의 응답은 부수적인 열매일 뿐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말씀대로 살아서 믿음이 성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이 되면 당연히 구하는 대로 응답해 주십니다.
따라서 사람 편에서도 자신의 문제에 대해 하나님과 같은 시각을 가져야 합니다. 당장의 응답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합니다. 그러면 응답이 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조급하거나 불안하지 않습니다. 그 시간이 자신을 영으로, 곧 진리로 변화시키는 축복의 시간임을 알아 감사하며 보낼 수 있는 것입니다.
2. 죄의 담을 헌 뒤 다시 쌓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응답받기에만 급급해하는 것을 봅니다. 응답이 더디면 실망하고 낙심하며, 심지어는 원망하고 불평하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이러한 말을 한 자체가 또다시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을 높여서 응답의 시점은 더 멀어지게 됩니다.
그 후 다시 회개하고 믿음으로 예물을 심고 봉사하며 기도를 합니다. 이렇게 믿음으로 쌓기는 하지만 이미 쌓은 죄의 담을 헐기에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죄의 담을 남김 없이 헐어야 합니다. 그런데 조금 헐었다가 다시 쌓기를 반복하니 응답받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10센티미터가 쌓였다고 합시다. 그 상태에서 기도하고 금식하며 회개함으로 5센티미터를 헐었습니다. 그러면 5센티미터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계속 죄의 담을 헐어서 제로(0)가 되어야 온전한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담이 남았는데도 불구하고 그동안 열심히 기도하고 금식도 했으니 이제 응답받으리라 기대합니다. 담이 남아 있기 때문에 공의의 잣대로 재면 아직은 응답받을 때가 아니지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응답이 안 오면 서운해하고 감사치 못하며 불평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아직 남아 있는 담 위에 또다시 담을 쌓게 되니 응답받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따라서 응답받기 위해서는 죄의 담을 헐었다가 다시 쌓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노력한 것만 생각하고 말과 행함으로 쌓은 죄의 담은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믿음으로 행했는데도 응답이 안 된다, 더디다’ 생각하며 실망하고 낙심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보실 때에 마음이 어떠시겠는지요? 정말 중요한 것은 내 영혼의 변화입니다. 그러니 신실하신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고 영혼이 잘되기 위해, 곧 진리로 변화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말씀을 선으로 생각하며 오래 참아야 응답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열심히 믿음으로 행하고, 선으로 쌓은 것을 깎아 버리지 않으니 응답의 시간이 앞당겨집니다.
질병의 치료만이 아니라 가정의 화평이나 복음화, 물질의 축복 등 범사가 그렇습니다. 영혼이 잘되면 범사가 잘되고 형통케 됩니다(요삼 1:2). 마음을 영으로, 진리로 일굴수록 더 큰 축복과 응답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어도 지금 자신의 모습이 예전과 비슷하다면 영적인 성장이 제자리라는 증거입니다. 그런 경우 신속히 비진리를 버리고 영으로, 진리로 채워 나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영을 사모하여 진리를 취하고 육 곧 비진리를 버린다고 하면서 다른 한편으론 계속 육을 취해 나갑니다. 영으로 채운 분량보다 더 많은 분량의 육을 취하기도 합니다. 육을 버리는 것보다 취하는 것이 쉽기 때문에 자신은 조금 취했다 생각하지만 실은 많은 분량이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이때 자신은 ‘영은 많이 취했고 육은 조금 취했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볼 때는 육의 마음이 영의 마음보다 크거나 제자리걸음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는 왜 열심히 기도해도 육이 안 버려질까?’ 생각하고 낙심합니다.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육을 철저히 끊습니다. 육은 썩어지고 냄새나는 것임을 알아 취하려 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영을 사모하고 취해 나가니 신속히 마음이 영으로 채워집니다. 이렇게 영으로만 정진하는 사람은 응답도 축복도 바로 임합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모든 것을 공의와 사랑 가운데 이루십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요소들을 온전히 벗어내고 다시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온전히 버리며 선으로 채우기에 힘써야 합니다.
이렇게 행함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을 주십니다. 건강, 물질, 명예 등 구하는 것마다 넘치게 주십니다. 혹여 응답이 더딘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으로, 선으로 더 쌓을 시간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항상 온전한 응답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죄의 담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2.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하여 지켜 주지 못하시는 것이 아니다. 질병을 비롯한 모든 문제에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자신과의 사이를 가로막은 ( )을 허는 것이 중요하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17~13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영과 육’
영이란?
죽거나 썩지 않고 변함이 없는 것, 영원한 것으로 생명이요, 진리 자체를 의미한다.
육이란?
시간이 흐르면 썩고 변질되며 결국 없어지는 것, 추하고 더러운 것의 총칭이다.
2020-08-14
제33과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1)
잠언 8:13
읽을말씀 : 잠언 8:13 | 외울말씀 : 출애굽기 15:26 | 참고 말씀: 이사야 59:1~2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을 온전히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을 쌓아 나감으로 치료와 응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역사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또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에게 응답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면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소망을 얻을 수 있고 질병은 물론 가정, 자녀, 물질 등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으며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6장 24~26절을 보면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말라기 4장 2절을 보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답답한 외양간에 갇혀 있던 송아지가 풀려나면 얼마나 힘차게 뛰노는지요. 질병과 약함에 얽매인 사람들도 치료의 광선이 임하면 이처럼 얽매인 것이 풀어지고 강건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약함’이란 단순히 몸에 힘이 없고 쇠약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소아마비, 뇌성마비, 지체 장애와 같이 신체의 일부가 퇴화되거나 마비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약함과 각종 질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비춰 주시는 치료의 광선을 쐬면 깨끗이 치료됩니다.
그런데 치료의 광선을 받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바로 하나님 이름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잠언 8장 13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과 거만을 싫어하고 악한 행실을 미워하십니다.
따라서 선이신 하나님과 반대되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면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부부간에도 정말 사랑한다면 서로가 슬퍼할 일을 하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편을 택하여 기쁨과 평안을 주려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독생자를 화목 제물로 삼아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을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안다면 우리도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진실로 그러하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악을 철저히 미워합니다.
여러분이 예전에 누군가를 미워할 때 어떻게 대했습니까? 보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고, 가까이하기도 싫었을 것입니다. 그 미워하는 상대가 어디에 있다고 하면 그곳에 함께 있기도 싫어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악은 그 모양도 보기 싫어야 하고 가까이하기도 싫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바로 죄와 악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악은 원수 마귀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 사랑합니다. 경외합니다.” 하면서 여전히 악은 미워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머리로는 자신도 악을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악을 품고 있고, 악한 것을 보고 있으며, 악한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지요. 이것은 그 마음에서 진실로 악을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한다, 경외한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2.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자녀에게 무엇이나 다 해 주고 싶고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믿음의 자녀들이 잘되기 원하고 그들의 삶의 모든 분야에 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에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또한 잠언 8장 17절을 통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면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 놀라운 사랑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기쁘시게 하면 구하는 것마다 온전한 응답과 축복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행함이 필요할까요?
먼저, 죄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사랑 자체이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은 모두 우리를 위한 것으로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형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경외하는 모습입니다. 만일 자신에게 응답받을 문제가 있다면 더더욱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악으로 인해 시험에 들고 갖가지 문제가 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물질에 미혹을 받아 어려움을 당했다고 합시다. 내가 미혹받고 상대가 나를 속일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에게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어려움을 갖다준 상대를 미워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는 ‘욕심’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내 안에 욕심이나 사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요.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젠가 또다시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4~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발견하여 제거하는 것이 지혜로운 해결 방법입니다. 물질의 문제뿐 아니라 질병이나 연약함 등 모든 문제에는 근본 이유가 있습니다.
질병의 원인에 대하여 출애굽기 15장 26절을 보면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어떠한 질병에도 걸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만일 질병이 왔다면 하나님의 뜻에 위배하여 행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배한 것이 죄의 담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가로막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하여 지켜 주지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59장 1~2절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질병을 비롯한 모든 문제에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자신 사이를 가로막은 죄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마다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어떠한 행함이 필요한지 두 번째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 )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말씀했다.
2.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 )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하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01~11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교만한 사람’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섬김 받고 높아지려 하며 자기 유익과 명예를 위해 악을 쌓아간다. 또한 하나님을 무시하므로 말씀대로 행치 않는다. 잠언 16:5에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하셨다.
선인은 선인끼리 악인은 악인끼리 모이듯 교만한 사람은 악한 사람과 손을 잡는다. 교만을 회개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형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을 온전히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을 쌓아 나감으로 치료와 응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역사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또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에게 응답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면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소망을 얻을 수 있고 질병은 물론 가정, 자녀, 물질 등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으며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6장 24~26절을 보면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말라기 4장 2절을 보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답답한 외양간에 갇혀 있던 송아지가 풀려나면 얼마나 힘차게 뛰노는지요. 질병과 약함에 얽매인 사람들도 치료의 광선이 임하면 이처럼 얽매인 것이 풀어지고 강건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약함’이란 단순히 몸에 힘이 없고 쇠약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소아마비, 뇌성마비, 지체 장애와 같이 신체의 일부가 퇴화되거나 마비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약함과 각종 질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비춰 주시는 치료의 광선을 쐬면 깨끗이 치료됩니다.
그런데 치료의 광선을 받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바로 하나님 이름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잠언 8장 13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과 거만을 싫어하고 악한 행실을 미워하십니다.
따라서 선이신 하나님과 반대되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면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부부간에도 정말 사랑한다면 서로가 슬퍼할 일을 하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편을 택하여 기쁨과 평안을 주려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독생자를 화목 제물로 삼아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을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안다면 우리도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진실로 그러하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악을 철저히 미워합니다.
여러분이 예전에 누군가를 미워할 때 어떻게 대했습니까? 보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고, 가까이하기도 싫었을 것입니다. 그 미워하는 상대가 어디에 있다고 하면 그곳에 함께 있기도 싫어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악은 그 모양도 보기 싫어야 하고 가까이하기도 싫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바로 죄와 악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악은 원수 마귀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 사랑합니다. 경외합니다.” 하면서 여전히 악은 미워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머리로는 자신도 악을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악을 품고 있고, 악한 것을 보고 있으며, 악한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지요. 이것은 그 마음에서 진실로 악을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한다, 경외한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2.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자녀에게 무엇이나 다 해 주고 싶고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믿음의 자녀들이 잘되기 원하고 그들의 삶의 모든 분야에 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에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또한 잠언 8장 17절을 통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면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 놀라운 사랑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기쁘시게 하면 구하는 것마다 온전한 응답과 축복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행함이 필요할까요?
먼저, 죄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사랑 자체이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은 모두 우리를 위한 것으로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형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경외하는 모습입니다. 만일 자신에게 응답받을 문제가 있다면 더더욱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악으로 인해 시험에 들고 갖가지 문제가 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물질에 미혹을 받아 어려움을 당했다고 합시다. 내가 미혹받고 상대가 나를 속일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에게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어려움을 갖다준 상대를 미워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는 ‘욕심’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내 안에 욕심이나 사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요.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젠가 또다시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4~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발견하여 제거하는 것이 지혜로운 해결 방법입니다. 물질의 문제뿐 아니라 질병이나 연약함 등 모든 문제에는 근본 이유가 있습니다.
질병의 원인에 대하여 출애굽기 15장 26절을 보면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어떠한 질병에도 걸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만일 질병이 왔다면 하나님의 뜻에 위배하여 행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배한 것이 죄의 담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가로막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하여 지켜 주지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59장 1~2절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질병을 비롯한 모든 문제에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자신 사이를 가로막은 죄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마다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어떠한 행함이 필요한지 두 번째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 )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말씀했다.
2.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 )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하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01~11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교만한 사람’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섬김 받고 높아지려 하며 자기 유익과 명예를 위해 악을 쌓아간다. 또한 하나님을 무시하므로 말씀대로 행치 않는다. 잠언 16:5에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하셨다.
선인은 선인끼리 악인은 악인끼리 모이듯 교만한 사람은 악한 사람과 손을 잡는다. 교만을 회개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형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2020-08-07
제32과마음의 소원을 이루려면
시편 37:4
읽을말씀 : 시편 37:4 | 외울말씀 : 마태복음 7:21 | 참고 말씀: 히브리서 11:6
교육목표 :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으로 마음의 소원에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어찌 사랑하는 자녀의 간구에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8장 32절을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정녕 믿는다면 우리 삶 가운데 풍성한 축복을 누리며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마음 됨됨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기를 원합니다. 질병에 시달리다 의학의 한계에 부딪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이 넉넉하지만 자녀가 없어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터, 사업터에 문제가 있어 하나님을 찾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선한 양심을 좇아 찾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소원을 응답받아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도 응답받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응답받기를 포기하거나 아예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있는지, 아니면 반신반의하거나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왔는지 자신의 마음 됨됨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막연히 무신론을 신봉하거나 우상을 섬기기도 하고 물질, 권세 또는 자신을 믿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큰 시험 환난이 찾아오면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해 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다가 한계에 이르면 우상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낙심하여 자포자기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이는 믿음이 있어서 나온 경우가 아니므로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혹시나 하는 막연한 기대의 마음이 더 강하기 마련입니다. 인류 역사와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응답하시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약 1:6~8).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원한다면 의심과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모든 것을 응답받은 줄로 믿고 구해야 합니다(막 11:24). 그럴 때 능력의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푸시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2. 구원의 확신과 신앙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다니지만 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영적인 갈급함과 곤고함 때문에 방황하는 이도 있고 영적인 교만으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는데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수십 년간 신앙생활을 하며 충성 봉사했으나 정작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마음에 믿는 사람에게는 행함의 증거가 따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음을 믿기에 어찌하든 성경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생명 주신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기 원하며 자연히 죄를 버려 나갑니다. 또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과 형제를 내 몸같이 사랑합니다. 미워하며 시기하거나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희생하는 등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의 증거를 내보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거룩한 행함이 나올 수 있는 마음을 이루는 것, 곧 마음의 할례를 이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마음에 믿고 말씀대로 행하면서 입으로 주의 이름을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도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확신이 없다면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는 확신이 없다면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입술로는 믿는다 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는 사람에 대해 마태복음 7장 21절에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고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면 응답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설령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시 66:18).
따라서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여 회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변화되면 하나님께서는 직장, 건강, 물질, 대인관계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만일 부모가 자녀의 문제로 하나님을 찾았다면 하나님은 무엇이 원인인지 깨닫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알려 주시지요. 그 문제는 자녀 탓일 수도 있지만 부모로 인한 경우도 많기 때문에 진리에 비추어 자신에게 잘못된 점이 있으면 회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며 진리 안에서 양육한다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렇게 늘 자신의 신앙상태를 점검하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진리를 깨우치게 됩니다. 그런 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 때와는 달리 장성하면 부모의 마음을 알고 부모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진리를 알고 깨우치는 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시편 37편 4절을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 곧 영적인 기쁨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영적인 기쁨을 누림으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며(잠 8:17)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기뻐하며 의와 공평, 모든 선행과 중심에서 드린 예물 그리고 의로운 제사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십니다(시 51:19; 147:11; 잠 21:3). 그 밖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찬양과 기도, 예배와 예물과 선행 등 모든 행함이 믿음 가운데서 나와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만 있으면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으며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를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 구원의 확신과 ( )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셋째, 하나님을 ( ) 하는 행함을 나타내야 한다.
2.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거룩한 행함이 나올 수 있는 마음을 이루는 것, 곧 ( )를 이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마음에 믿고 말씀대로 행하면서 입으로 주의 이름을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른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01~11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마음 됨됨이’란?
사람이 얼마나 그 마음을 넓혀서 사용해 주느냐와 어떤 일을 시켰을 때 마음을 얼마큼 능력 있게 사용해 주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 일을 시켰을 때 시키지 않은 일까지도 알아서 해 놓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 됨됨이가 참으로 좋은 것이요, 그는 어디서나 충성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으로 마음의 소원에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어찌 사랑하는 자녀의 간구에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8장 32절을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정녕 믿는다면 우리 삶 가운데 풍성한 축복을 누리며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마음 됨됨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기를 원합니다. 질병에 시달리다 의학의 한계에 부딪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이 넉넉하지만 자녀가 없어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터, 사업터에 문제가 있어 하나님을 찾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선한 양심을 좇아 찾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소원을 응답받아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도 응답받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응답받기를 포기하거나 아예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있는지, 아니면 반신반의하거나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왔는지 자신의 마음 됨됨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막연히 무신론을 신봉하거나 우상을 섬기기도 하고 물질, 권세 또는 자신을 믿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큰 시험 환난이 찾아오면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해 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다가 한계에 이르면 우상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낙심하여 자포자기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이는 믿음이 있어서 나온 경우가 아니므로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혹시나 하는 막연한 기대의 마음이 더 강하기 마련입니다. 인류 역사와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응답하시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약 1:6~8).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원한다면 의심과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모든 것을 응답받은 줄로 믿고 구해야 합니다(막 11:24). 그럴 때 능력의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푸시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2. 구원의 확신과 신앙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다니지만 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영적인 갈급함과 곤고함 때문에 방황하는 이도 있고 영적인 교만으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는데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수십 년간 신앙생활을 하며 충성 봉사했으나 정작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마음에 믿는 사람에게는 행함의 증거가 따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음을 믿기에 어찌하든 성경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생명 주신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기 원하며 자연히 죄를 버려 나갑니다. 또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과 형제를 내 몸같이 사랑합니다. 미워하며 시기하거나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희생하는 등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의 증거를 내보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거룩한 행함이 나올 수 있는 마음을 이루는 것, 곧 마음의 할례를 이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마음에 믿고 말씀대로 행하면서 입으로 주의 이름을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도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확신이 없다면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는 확신이 없다면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입술로는 믿는다 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는 사람에 대해 마태복음 7장 21절에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고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면 응답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설령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시 66:18).
따라서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여 회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변화되면 하나님께서는 직장, 건강, 물질, 대인관계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만일 부모가 자녀의 문제로 하나님을 찾았다면 하나님은 무엇이 원인인지 깨닫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알려 주시지요. 그 문제는 자녀 탓일 수도 있지만 부모로 인한 경우도 많기 때문에 진리에 비추어 자신에게 잘못된 점이 있으면 회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며 진리 안에서 양육한다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렇게 늘 자신의 신앙상태를 점검하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진리를 깨우치게 됩니다. 그런 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 때와는 달리 장성하면 부모의 마음을 알고 부모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진리를 알고 깨우치는 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시편 37편 4절을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 곧 영적인 기쁨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영적인 기쁨을 누림으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며(잠 8:17)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기뻐하며 의와 공평, 모든 선행과 중심에서 드린 예물 그리고 의로운 제사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십니다(시 51:19; 147:11; 잠 21:3). 그 밖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찬양과 기도, 예배와 예물과 선행 등 모든 행함이 믿음 가운데서 나와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만 있으면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으며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를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 구원의 확신과 ( )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셋째, 하나님을 ( ) 하는 행함을 나타내야 한다.
2.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거룩한 행함이 나올 수 있는 마음을 이루는 것, 곧 ( )를 이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마음에 믿고 말씀대로 행하면서 입으로 주의 이름을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른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01~11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마음 됨됨이’란?
사람이 얼마나 그 마음을 넓혀서 사용해 주느냐와 어떤 일을 시켰을 때 마음을 얼마큼 능력 있게 사용해 주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 일을 시켰을 때 시키지 않은 일까지도 알아서 해 놓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 됨됨이가 참으로 좋은 것이요, 그는 어디서나 충성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2020-07-31
제31과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열왕기상 18:41~45
읽을말씀 : 열왕기상 18:41~45 | 외울말씀 : 요한복음 4:48 | 고 말씀: 열왕기하 2:11
교육목표 : 우상 숭배에 젖은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한 엘리야의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을 본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 엘리야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섬겨야 할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숭배하며 많은 악을 행했고, 아합왕 때에는 우상 숭배가 극에 달하였습니다. 이방 여인인 왕비 이세벨이 가져온 바알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가 만연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아합왕에게 전달하는 것이 엘리야의 첫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왕은 회개하고 돌이키기보다는 가뭄의 재앙을 선포한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기에 다시 아합왕에게 가라 명하셨을 때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무조건 순종하는 믿음을 기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사랑하며 그의 말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불의 응답을 받으며, 산 채로 들림 받기까지 했습니다(왕하 2:11). 엘리야는 표적이 따르는 믿음을 소유했기에 불의 응답을 받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였고 큰비가 내릴 것을 예언하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대로 아합왕 앞에 나아가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고 담대하게 가뭄을 예언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위협받을 줄 아신 하나님은 그를 그릿 시냇가에 숨게 하시고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공급하십니다.
그러나 가뭄이 심하여 얼마 있지 않아 그릿 시내까지 마르자,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르밧으로 보내셨습니다. 그곳에 한 과부를 예비하고 그녀에게 공궤받도록 하셨습니다. 가뭄으로 물은커녕 양식조차 구하기 어려운 때에 엘리야가 과부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며 양식을 달라고 하자,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비록 마지막 남은 귀한 양식이었지만 순종하는 행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그 집에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축복하셨습니다(왕상 17:14).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놀라운 일을 베푸십니다. 어느 날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숨이 끊어지자 엘리야의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에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처럼, 마음이 강퍅한 현세대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엘리야와 같은 ‘믿음과 순종, 간절한 부르짖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2. 간절한 기도로 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엘리야가 가뭄을 예언한 지 수년이 지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왕 앞에 나타난 것은 가뭄이 3년 6개월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을 때였습니다(눅 4:25).
당시 엘리야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아합왕은 그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려 이웃나라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는데도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여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왕에게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자신에게 나아오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3년 반 동안의 가뭄이 왕과 백성의 우상 숭배로 인한 재앙임을 알았기에 우상을 멸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자 그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으니 우상 숭배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담대히 행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방 선지자들 앞에 혈혈단신으로 선 엘리야는 ‘제물 위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선포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만이 불로 응답하실 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먼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고 합니다. 이에 바알의 선지자들이 송아지를 잡고 아침부터 저녁소제 드릴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응답하기를 구했으나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엘리야가 백성을 가까이 모으고 하나님 앞에 단을 쌓은 뒤 벌여 놓은 나무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7)
엘리야의 기도에는 자신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로지 여호와만이 살아 계신 하나님임을 증거하려는 일념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웠고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광경을 목도하고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고백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믿음으로 구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었기에 그런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만약 불의 응답이 오지 않았다면 엘리야는 아합왕과 거짓 선지자들이 보는 앞에서 죽임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했기에 자신을 잡으려는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엘리야의 믿음에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셔서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기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3년 반 동안이나 계속된 가뭄이라면 무엇보다 귀한 것이 물인데 그 물을 통 넷에 채워 세 번씩 제단에 부었습니다(왕상 18:33~34). 엘리야가 이렇게 믿음을 내보이며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린 것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고후 9:6~7).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대로 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증거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3. 큰비가 내리기까지 믿음으로 행한 엘리야
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선포했던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합왕에게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는데 이는 비를 내리리라 하신 하나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며 응답받기 위한 행함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였습니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는 것은 너무나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하니 배가 뒤틀리고 창자가 꼬이면서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으며 중심 다해 기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8장 42~44절에는 그가 사환에게 바다 편을 바라보게 하고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일곱 차례나 기도하였음을 말씀합니다. 이렇듯 간절한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며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닫힌 하늘을 열어 비를 오게 하는 기도이니 얼마나 힘과 뜻과 정성을 다했겠습니까.
엘리야는 불의 응답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비의 응답을 받을 때에도 입으로 미리 시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을 뿐인데도 왕에게 비에 막히지 않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라며 큰비가 올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였습니다(왕상 18:44).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역사하셔서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큰비가 내렸습니다. 이와 같이 엘리야를 통하여 불의 응답을 주시고 하늘문을 열어 단비를 주신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에도 응답하며 놀라운 복으로 채워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엘리야가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는 것은 너무나 간절하게 ( )하니 배가 뒤틀리고 창자가 꼬이면서 얼굴이 무릎사이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2. 엘리야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기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87~97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겸비한 마음으로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은 엘리야’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기 전 매우 유약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자신은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기에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었다.
겸비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주장하지 않았고,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지도 않았다. 또한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았기에 그가 있는 곳에는 화평이 깨어지는 일이 없었다.
이러한 모습이 육으로는 우유부단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영으로 변화된다면 큰 선지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되는 마음이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이런 마음의 선을 크게 사시고 연단을 통해 큰 선지자로 쓰셨다.
교육목표 : 우상 숭배에 젖은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한 엘리야의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을 본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 엘리야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섬겨야 할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숭배하며 많은 악을 행했고, 아합왕 때에는 우상 숭배가 극에 달하였습니다. 이방 여인인 왕비 이세벨이 가져온 바알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가 만연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아합왕에게 전달하는 것이 엘리야의 첫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왕은 회개하고 돌이키기보다는 가뭄의 재앙을 선포한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기에 다시 아합왕에게 가라 명하셨을 때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무조건 순종하는 믿음을 기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사랑하며 그의 말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불의 응답을 받으며, 산 채로 들림 받기까지 했습니다(왕하 2:11). 엘리야는 표적이 따르는 믿음을 소유했기에 불의 응답을 받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였고 큰비가 내릴 것을 예언하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대로 아합왕 앞에 나아가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고 담대하게 가뭄을 예언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위협받을 줄 아신 하나님은 그를 그릿 시냇가에 숨게 하시고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공급하십니다.
그러나 가뭄이 심하여 얼마 있지 않아 그릿 시내까지 마르자,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르밧으로 보내셨습니다. 그곳에 한 과부를 예비하고 그녀에게 공궤받도록 하셨습니다. 가뭄으로 물은커녕 양식조차 구하기 어려운 때에 엘리야가 과부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며 양식을 달라고 하자,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비록 마지막 남은 귀한 양식이었지만 순종하는 행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그 집에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축복하셨습니다(왕상 17:14).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놀라운 일을 베푸십니다. 어느 날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숨이 끊어지자 엘리야의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에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처럼, 마음이 강퍅한 현세대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엘리야와 같은 ‘믿음과 순종, 간절한 부르짖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2. 간절한 기도로 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엘리야가 가뭄을 예언한 지 수년이 지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왕 앞에 나타난 것은 가뭄이 3년 6개월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을 때였습니다(눅 4:25).
당시 엘리야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아합왕은 그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려 이웃나라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는데도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여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왕에게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자신에게 나아오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3년 반 동안의 가뭄이 왕과 백성의 우상 숭배로 인한 재앙임을 알았기에 우상을 멸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자 그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으니 우상 숭배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담대히 행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방 선지자들 앞에 혈혈단신으로 선 엘리야는 ‘제물 위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선포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만이 불로 응답하실 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먼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고 합니다. 이에 바알의 선지자들이 송아지를 잡고 아침부터 저녁소제 드릴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응답하기를 구했으나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엘리야가 백성을 가까이 모으고 하나님 앞에 단을 쌓은 뒤 벌여 놓은 나무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7)
엘리야의 기도에는 자신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로지 여호와만이 살아 계신 하나님임을 증거하려는 일념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웠고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광경을 목도하고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고백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믿음으로 구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었기에 그런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만약 불의 응답이 오지 않았다면 엘리야는 아합왕과 거짓 선지자들이 보는 앞에서 죽임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했기에 자신을 잡으려는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엘리야의 믿음에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셔서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기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3년 반 동안이나 계속된 가뭄이라면 무엇보다 귀한 것이 물인데 그 물을 통 넷에 채워 세 번씩 제단에 부었습니다(왕상 18:33~34). 엘리야가 이렇게 믿음을 내보이며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린 것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고후 9:6~7).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대로 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증거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3. 큰비가 내리기까지 믿음으로 행한 엘리야
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선포했던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합왕에게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는데 이는 비를 내리리라 하신 하나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며 응답받기 위한 행함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였습니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는 것은 너무나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하니 배가 뒤틀리고 창자가 꼬이면서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으며 중심 다해 기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8장 42~44절에는 그가 사환에게 바다 편을 바라보게 하고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일곱 차례나 기도하였음을 말씀합니다. 이렇듯 간절한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며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닫힌 하늘을 열어 비를 오게 하는 기도이니 얼마나 힘과 뜻과 정성을 다했겠습니까.
엘리야는 불의 응답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비의 응답을 받을 때에도 입으로 미리 시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을 뿐인데도 왕에게 비에 막히지 않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라며 큰비가 올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였습니다(왕상 18:44).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역사하셔서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큰비가 내렸습니다. 이와 같이 엘리야를 통하여 불의 응답을 주시고 하늘문을 열어 단비를 주신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에도 응답하며 놀라운 복으로 채워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엘리야가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는 것은 너무나 간절하게 ( )하니 배가 뒤틀리고 창자가 꼬이면서 얼굴이 무릎사이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2. 엘리야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기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87~97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겸비한 마음으로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은 엘리야’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기 전 매우 유약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자신은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기에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었다.
겸비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주장하지 않았고,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지도 않았다. 또한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았기에 그가 있는 곳에는 화평이 깨어지는 일이 없었다.
이러한 모습이 육으로는 우유부단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영으로 변화된다면 큰 선지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되는 마음이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이런 마음의 선을 크게 사시고 연단을 통해 큰 선지자로 쓰셨다.
2020-07-24
제30과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2)
사도행전 10:1~8
읽을말씀 : 사도행전 10:1~8 | 외울말씀 : 잠언 8:13 | 참고 말씀: 사도행전 9장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을 행하며 믿음으로 정성껏 심음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의식주 문제 등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니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의식주 문제로 고민한다면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염려, 근심, 걱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지요.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려면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예수님 앞에 나와 마음의 소원을 이룬 소경 거지 바디매오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지요. 그는 주변에서 잠잠하라 하는 말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더 큰 소리로 부르짖는 믿음의 행함을 내보임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과 축복을 주신 내용이 나옵니다. 고넬료는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 군대인 이달리야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 베드로가 머문 곳을 알려 주며, 그를 초청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도 환상과 성령의 음성으로써 고넬료의 초청을 허락하고 그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지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 보니, 그는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까지 모아 놓고 사모함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전하자 성령이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고넬료뿐만 아니라, 그의 일가와 함께한 친구들까지도 구원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넬료가 이렇게 축복받은 이유는 사도행전 10장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말씀한 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가 가족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으며 신뢰받는 가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온 가족이 그에게 순종하여 하나 될 수 있었고,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가족도 본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자녀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 줘도 그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자녀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본을 보였다면, 자녀도 이를 본받으며 자랐을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선과 진리, 사랑으로 자녀를 대한다면 자녀도 자연히 부모를 닮아갑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며, 그럴 때 자연히 자녀도 변화돼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과 사랑 가운데 행했기에 가족에게 인정받았고, 가족도 그를 따라 하나님을 경외한 것입니다.
또한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선이 가득한 사람은 말이나 행실에서 선이 나옵니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은 하지 않고, 편안함과 용기를 주는 말, 따뜻함을 주는 말,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이 나옵니다. 또한 착한 행실, 덕과 사랑을 끼치는 행실이 나옵니다.
고넬료는 그러했습니다. 그가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 했는데, 선함과 덕스러움이 ‘구제’라는 행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구제는 물질이 넉넉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영혼을 사랑하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22절에 보면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백부장이면서도 피지배국인 유대 백성을 많이 구제했기 때문에 유대 온 족속에게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 없는 구제는 진정한 구제라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물질로 구제해도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구제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했습니다. 고넬료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영혼들을 사랑함으로 구제했고, 이러한 그의 진심이 유대 백성에게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10장 4절을 보면, 그의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 앞에도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 했는데, 그래서 그는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범사에 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응답을 앞당기는 비결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볼 때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하는 것과 작은 것이라도 나누며 힘이 되어 주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상대가 어떤 것을 잘했을 때 마음으로만 함께 기뻐하는 것과 칭찬과 축하의 말을 하는 것도 다릅니다. 작은 선물 하나,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로 표현했을 때와 안했을 때 많은 차이가 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있는 선과 사랑을 좀 더 적극적인 말과 행실로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행함을 보고 기뻐하시며, 응답과 축복을 주실 수 있도록 부지런히 선을 쌓아야 하겠습니다.
셋째, 믿음으로 정성껏 심어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데 이는 영적으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 한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응답받고자 한다면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심어야 합니다. 큰 것을 받으려면 더 많이 심고 더 큰 정성을 내보여야 하지요. 기도로, 믿음의 행함으로 심고 봉사와 감사로 심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지혜와 능력, 시간을 들여 심어야 하며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하셨으니 마음을 담아 물질로도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심을 때 거두게 되는데, 기도와 찬송을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됩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하면 질병이 떠나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습니다.
또한 십일조와 감사 예물 등 물질로 열심히 드리면 물질의 축복이 임하여 마음껏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십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 말씀하셨으니(요 5:29) 성령을 좇아 선의 행함으로 심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9장에는 욥바에 사는 다비다라는 여제자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다비다는 믿음이 있을 뿐 아니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주님의 가르침대로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습니다. 이렇게 선행과 구제로 심은 다비다는 그 열매로써 자신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다비다가 병들어 죽자 평소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나서서 다시 살려 줄 것을 간절히 구하였고, 다비다의 행함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기도를 통해 다시 살려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모든 것을 공의와 사랑 가운데 이루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요소들을 온전히 벗어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온전히 버리며, 선으로 채우기를 힘써야 하지요. 또 믿음으로 구하고 정성으로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행함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건강, 물질, 명예 등 구하는 것마다 넘치도록 주시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항상 풍성한 축복과 응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한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 )을 행해야 한다.
셋째, ( )으로 정성껏 심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73~8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구제’
믿음의 형제가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말로만 안타까워하고 행함이 없다면 구제라 할 수 없다(약 2:15~16). 진정한 구제는 형제가 어려울 때 내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혹자는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도와줍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자녀가 굶고 있으면 가만히 있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형제에게 내 자녀와 같이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구제는 옳지 않다. 범죄하여 징계를 받아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제하거나, 게을러서 놀고 돈만 있으면 도박하고 술 마시는 사람을 구제한다면 죄를 짓게 도와주는 것과 같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구제는 축복이 막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올바른 구제를 해야 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을 행하며 믿음으로 정성껏 심음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의식주 문제 등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니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의식주 문제로 고민한다면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염려, 근심, 걱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지요.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려면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예수님 앞에 나와 마음의 소원을 이룬 소경 거지 바디매오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지요. 그는 주변에서 잠잠하라 하는 말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더 큰 소리로 부르짖는 믿음의 행함을 내보임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과 축복을 주신 내용이 나옵니다. 고넬료는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 군대인 이달리야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 베드로가 머문 곳을 알려 주며, 그를 초청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도 환상과 성령의 음성으로써 고넬료의 초청을 허락하고 그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지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 보니, 그는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까지 모아 놓고 사모함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전하자 성령이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고넬료뿐만 아니라, 그의 일가와 함께한 친구들까지도 구원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넬료가 이렇게 축복받은 이유는 사도행전 10장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말씀한 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가 가족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으며 신뢰받는 가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온 가족이 그에게 순종하여 하나 될 수 있었고,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가족도 본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자녀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 줘도 그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자녀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본을 보였다면, 자녀도 이를 본받으며 자랐을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선과 진리, 사랑으로 자녀를 대한다면 자녀도 자연히 부모를 닮아갑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며, 그럴 때 자연히 자녀도 변화돼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과 사랑 가운데 행했기에 가족에게 인정받았고, 가족도 그를 따라 하나님을 경외한 것입니다.
또한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선이 가득한 사람은 말이나 행실에서 선이 나옵니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은 하지 않고, 편안함과 용기를 주는 말, 따뜻함을 주는 말,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이 나옵니다. 또한 착한 행실, 덕과 사랑을 끼치는 행실이 나옵니다.
고넬료는 그러했습니다. 그가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 했는데, 선함과 덕스러움이 ‘구제’라는 행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구제는 물질이 넉넉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영혼을 사랑하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22절에 보면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백부장이면서도 피지배국인 유대 백성을 많이 구제했기 때문에 유대 온 족속에게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 없는 구제는 진정한 구제라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물질로 구제해도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구제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했습니다. 고넬료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영혼들을 사랑함으로 구제했고, 이러한 그의 진심이 유대 백성에게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10장 4절을 보면, 그의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 앞에도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 했는데, 그래서 그는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범사에 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응답을 앞당기는 비결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볼 때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하는 것과 작은 것이라도 나누며 힘이 되어 주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상대가 어떤 것을 잘했을 때 마음으로만 함께 기뻐하는 것과 칭찬과 축하의 말을 하는 것도 다릅니다. 작은 선물 하나,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로 표현했을 때와 안했을 때 많은 차이가 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있는 선과 사랑을 좀 더 적극적인 말과 행실로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행함을 보고 기뻐하시며, 응답과 축복을 주실 수 있도록 부지런히 선을 쌓아야 하겠습니다.
셋째, 믿음으로 정성껏 심어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데 이는 영적으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 한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응답받고자 한다면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심어야 합니다. 큰 것을 받으려면 더 많이 심고 더 큰 정성을 내보여야 하지요. 기도로, 믿음의 행함으로 심고 봉사와 감사로 심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지혜와 능력, 시간을 들여 심어야 하며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하셨으니 마음을 담아 물질로도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심을 때 거두게 되는데, 기도와 찬송을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됩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하면 질병이 떠나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습니다.
또한 십일조와 감사 예물 등 물질로 열심히 드리면 물질의 축복이 임하여 마음껏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십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 말씀하셨으니(요 5:29) 성령을 좇아 선의 행함으로 심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9장에는 욥바에 사는 다비다라는 여제자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다비다는 믿음이 있을 뿐 아니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주님의 가르침대로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습니다. 이렇게 선행과 구제로 심은 다비다는 그 열매로써 자신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다비다가 병들어 죽자 평소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나서서 다시 살려 줄 것을 간절히 구하였고, 다비다의 행함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기도를 통해 다시 살려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모든 것을 공의와 사랑 가운데 이루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요소들을 온전히 벗어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온전히 버리며, 선으로 채우기를 힘써야 하지요. 또 믿음으로 구하고 정성으로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행함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건강, 물질, 명예 등 구하는 것마다 넘치도록 주시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항상 풍성한 축복과 응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한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 )을 행해야 한다.
셋째, ( )으로 정성껏 심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73~8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구제’
믿음의 형제가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말로만 안타까워하고 행함이 없다면 구제라 할 수 없다(약 2:15~16). 진정한 구제는 형제가 어려울 때 내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혹자는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도와줍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자녀가 굶고 있으면 가만히 있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형제에게 내 자녀와 같이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구제는 옳지 않다. 범죄하여 징계를 받아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제하거나, 게을러서 놀고 돈만 있으면 도박하고 술 마시는 사람을 구제한다면 죄를 짓게 도와주는 것과 같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구제는 축복이 막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올바른 구제를 해야 한다.
2020-07-17
제29과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1)
요한일서 5:14~15
읽을말씀 : 요한일서 5:14~15 | 외울말씀 : 마태복음 6:33 | 참고 말씀: 야고보서 1:7~8
교육목표 :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함으로 가장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공중의 새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며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기르시니 아무 염려 없이 살아갑니다. 또 들의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니 철을 따라 아름답게 꽃을 피웁니다. 하물며 새나 백합화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사람을 어찌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며 자라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항상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하기 원하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사람의 능력과 한계를 뛰어넘어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전능자요, 창조주가 되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으며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1.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세상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흔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 안에서는 어떠한 문제가 있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지를 아시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실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5~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구하면 무엇이든지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결코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 믿음을 지닌 사람은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기에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지요.
그러므로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2.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하기에 앞서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원하는 대로 다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원수 마귀 사단에게 종노릇하며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 받아 하나님 자녀로 거듭남으로써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주님을 전하는 만큼 죄로 인해 사망으로 가던 많은 사람이 구원받으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따라서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 자녀가 되도록 전도하며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가까이 있는 형제, 부모, 일가친척을 전도할 뿐 아니라 직장이나 학교 등 어디에서나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만큼 하나님 나라는 왕성해지므로 힘써 기도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의 곧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의란 주님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고, 마태복음 5장 48절에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쳐 죄를 버리고 진리 가운데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성결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혹 어떤 사람은 “그동안 여러 사명을 맡아 하나님 일을 했으니, 이제는 잠시 쉬면서 성결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기도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지 않고 의만 구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의를 병행하여 구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영혼 구원하는 일에 열심을 낼 때 위로부터 힘과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도우십니다.
3.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의식주 문제 등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니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의식주 문제로 고민한다면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염려, 근심, 걱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면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마가복음 10장에는 예수님 앞에 나아와 마음의 소원을 이룬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나옵니다. 그의 가장 큰 소원은 눈을 떠서 세상을 보는 것이었지만 어떤 사람도 그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수님이 놀라운 표적과 기사를 행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각색 병든 자가 치료받고 귀신 들린 자도 온전케 된다는 것입니다. 절망 가운데 살던 바디매오는 자신도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이 생겼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주위에서 웅성거리는데, 예수님이 자기가 앉아 있는 길 가까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힘을 다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주변에서 잠잠하라 하는 말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더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을 내보이는 바디매오에게 예수님께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었지요. 이렇게 믿음으로 구할 때 문제가 해결되며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7~8절에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구하면 응답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성경에 많이 있지만 이를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구할 때만이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아무리 입술로 “믿습니다.” 고백해도 의심하면서 구하는 기도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두 마음을 품어 의심하는 자는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약 1:7~8). 두 마음이란 이랬다저랬다 하는 간사한 마음으로 참 믿음이라 할 수 없지요.
그러므로 끝까지 변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 참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면,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을 주시며 그 믿음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음 시간에 이어 살펴보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그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 )을 구원하는 것을 말한다.
2.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쳐 죄를 버리고 진리 가운데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 )되는 것이 하나님의 ( )를 이루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57~6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 하신 이유’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고 계신다. 그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먼저 구하라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신 이유는 헛되고 헛된 삶을 살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함으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다.
교육목표 :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함으로 가장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공중의 새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며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기르시니 아무 염려 없이 살아갑니다. 또 들의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니 철을 따라 아름답게 꽃을 피웁니다. 하물며 새나 백합화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사람을 어찌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며 자라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항상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하기 원하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사람의 능력과 한계를 뛰어넘어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전능자요, 창조주가 되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으며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1.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세상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흔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 안에서는 어떠한 문제가 있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지를 아시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실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5~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구하면 무엇이든지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결코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 믿음을 지닌 사람은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기에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지요.
그러므로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2.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하기에 앞서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원하는 대로 다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원수 마귀 사단에게 종노릇하며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 받아 하나님 자녀로 거듭남으로써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주님을 전하는 만큼 죄로 인해 사망으로 가던 많은 사람이 구원받으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따라서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 자녀가 되도록 전도하며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가까이 있는 형제, 부모, 일가친척을 전도할 뿐 아니라 직장이나 학교 등 어디에서나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만큼 하나님 나라는 왕성해지므로 힘써 기도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의 곧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의란 주님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고, 마태복음 5장 48절에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쳐 죄를 버리고 진리 가운데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성결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혹 어떤 사람은 “그동안 여러 사명을 맡아 하나님 일을 했으니, 이제는 잠시 쉬면서 성결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기도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지 않고 의만 구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의를 병행하여 구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영혼 구원하는 일에 열심을 낼 때 위로부터 힘과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도우십니다.
3.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의식주 문제 등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니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의식주 문제로 고민한다면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염려, 근심, 걱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면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마가복음 10장에는 예수님 앞에 나아와 마음의 소원을 이룬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나옵니다. 그의 가장 큰 소원은 눈을 떠서 세상을 보는 것이었지만 어떤 사람도 그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수님이 놀라운 표적과 기사를 행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각색 병든 자가 치료받고 귀신 들린 자도 온전케 된다는 것입니다. 절망 가운데 살던 바디매오는 자신도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이 생겼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주위에서 웅성거리는데, 예수님이 자기가 앉아 있는 길 가까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힘을 다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주변에서 잠잠하라 하는 말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더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을 내보이는 바디매오에게 예수님께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었지요. 이렇게 믿음으로 구할 때 문제가 해결되며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7~8절에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구하면 응답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성경에 많이 있지만 이를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구할 때만이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아무리 입술로 “믿습니다.” 고백해도 의심하면서 구하는 기도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두 마음을 품어 의심하는 자는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약 1:7~8). 두 마음이란 이랬다저랬다 하는 간사한 마음으로 참 믿음이라 할 수 없지요.
그러므로 끝까지 변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 참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면,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을 주시며 그 믿음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음 시간에 이어 살펴보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그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 )을 구원하는 것을 말한다.
2.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쳐 죄를 버리고 진리 가운데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 )되는 것이 하나님의 ( )를 이루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57~6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 하신 이유’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고 계신다. 그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먼저 구하라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신 이유는 헛되고 헛된 삶을 살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함으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다.
2020-07-10
제28과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과 일곱 영 (2)
요한계시록 5:6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5:6 | 외울말씀 : 빌립보서 4:6 | 참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5:17
교육목표 : 일곱 영이 측정하는 기준에 모두 통과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완전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며 항상 감찰하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세 번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셋째, 기도를 측정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합당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먼저, 습관을 좇아 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하신 대로, 매일 습관을 좇아 꾸준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늘 깨어 있어 시험에 들지 않으며 설령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해도 신속히 통과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상의 선지자들은 물론 예수님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아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의 뜻이나 유익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해야 하지요. 그리고 힘쓰고 애써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셨다 했습니다(눅 22:44).
뿐만 아니라 마음 중심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애쓰고 힘써 기도하는 것 같아 보여도 중심의 기도를 올리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응답될 수 없으니 정녕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일곱 영은 기도 한 가지를 측정함에 있어서도 단순히 기도를 하는지 안 하는지를 측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게 기도하는지를 정확히 측정하여 기도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넷째, 감사를 측정합니다.
기쁨과 함께 감사 역시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구원의 은혜만 생각해도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영혼이 주님의 은혜로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설령 감사의 조건이 없다 해도 감사해야 할 텐데, 신앙생활 하면서 믿음이 커짐에 따라 감사의 조건이 많아지니 날이 갈수록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원망과 불평이 나온다면 이는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당장 눈앞에는 어려움이 있다 해도 오직 하나님을 믿고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하신 말씀에 의지하여 항상 감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계명을 지키는지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십계명은 성경의 모든 계명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십계명을 지키고 있는지 일곱 영의 측정에 합격점을 받을 때 응답이 됩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한 대로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정말 사랑하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싶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계명을 즐거이 지킬 수 있습니다.
반면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믿음도 있다는 사람이 억지로나 남의 눈치를 보아 지킨다면 이는 사랑도 아니고 참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되 즐거운 마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충성을 측정합니다.
주의 종, 장로, 권사, 집사 등 각각의 직분에 합당하게 충성하는지를 측정합니다. 또한 기관장, 구역장, 그 외의 모든 사명자로서 맡은 바 사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충성하는지를 측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에만 충성한다 해서 온전한 충성이라 하지는 않습니다.
교회의 사명뿐 아니라 가정과 일터, 사업터 등 모든 곳에서 충성하는 것이 온전한 충성입니다. 남편, 아내, 자녀, 부모로서 각자 온 집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의 일과 세상 일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주의 일을 택해야 하지만, 그렇다 하여 세상 일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분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충성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충성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곧 악을 버리는 마음의 할례를 함께해 나가는 영적인 충성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자녀가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드리는 영적인 충성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사랑을 측정합니다.
사랑은 지금까지의 항목 전체를 온전하게 엮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하며, 우리가 이 땅에서 경작받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이 땅에 사람을 경작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기도하고 충성한다 해도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참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모든 것도 결국은 사랑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고 계명을 지키며 충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가장 먼저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것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맨 마지막으로 사랑을 측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명을 받아 열심히 충성하다가 도중에 마음에 안 맞는 일이 있다 해서 뜨거움이 식어 버린다면 사랑으로 행한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기도한다 하지만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시기 질투한다면 이 기도 역시 사랑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적인 사랑을 소유할 때라야 모든 것을 온전히 이루었다 할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신속하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응답 여부를 결정하는 일곱 영
우리가 기도하여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일곱 영이 측정할 때 합격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초신자인데도 기도하는 대로 척척 응답받습니다. 반면 믿음이 있고 더 충성하며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더딘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각자 믿음의 분량에 따라 원하시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초신자가 첫사랑이 뜨겁고 성령이 충만함으로 자기 믿음의 분량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충성하며 기쁨으로 달려갈 때는, 일곱 영의 측정 기준을 쉽게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믿음의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행하기 때문에 쉽게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크고 직분과 사명이 클수록 하나님 앞에 당연히 더 많은 것을 드려야 합니다. 일곱 영이 측정하는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맞게 행해야 하며, 그럴 때 믿음의 분량이 큰 만큼 더 크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믿음의 분량에서도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느냐에 따라 측정 기준이 달라집니다. 큰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는 그만큼 큰 믿음과 행함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은 충성하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며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크든 작든 응답받기 위해서는 일곱 영이 측정하는 각 분야를 점검하여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진리를 행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에 온전히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에서 시작된다. ( )이 있어야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고 계명을 지키며 충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가장 먼저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도 믿음이다. 그런데 믿음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것이 있을지라도 ( )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맨 마지막으로 사랑을 측정하는 것이다.
2.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일곱 가지를 말해 보시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57~6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마음의 기도 & 영의 기도’
마음의 기도란, 우리의 일상 언어로 소원을 구하는 기도이다.
영의 기도란, 우리 영이 성령의 주관을 따라 하는 기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방언 기도를 영의 기도라 한다.
방언 기도는 우리 영이 영적으로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이다.
방언 기도를 많이 하면 영혼이 잘될 뿐 아니라 시험 환난을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방언 기도만으로는 마음의 소원을 열매 맺을 수 없으므로 마음의 기도도 필요하다. 따라서 마음의 기도와 방언 기도를 병행해야 한다.
교육목표 : 일곱 영이 측정하는 기준에 모두 통과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완전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며 항상 감찰하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세 번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셋째, 기도를 측정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합당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먼저, 습관을 좇아 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하신 대로, 매일 습관을 좇아 꾸준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늘 깨어 있어 시험에 들지 않으며 설령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해도 신속히 통과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상의 선지자들은 물론 예수님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아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의 뜻이나 유익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해야 하지요. 그리고 힘쓰고 애써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셨다 했습니다(눅 22:44).
뿐만 아니라 마음 중심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애쓰고 힘써 기도하는 것 같아 보여도 중심의 기도를 올리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응답될 수 없으니 정녕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일곱 영은 기도 한 가지를 측정함에 있어서도 단순히 기도를 하는지 안 하는지를 측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게 기도하는지를 정확히 측정하여 기도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넷째, 감사를 측정합니다.
기쁨과 함께 감사 역시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구원의 은혜만 생각해도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영혼이 주님의 은혜로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설령 감사의 조건이 없다 해도 감사해야 할 텐데, 신앙생활 하면서 믿음이 커짐에 따라 감사의 조건이 많아지니 날이 갈수록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원망과 불평이 나온다면 이는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당장 눈앞에는 어려움이 있다 해도 오직 하나님을 믿고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하신 말씀에 의지하여 항상 감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계명을 지키는지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십계명은 성경의 모든 계명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십계명을 지키고 있는지 일곱 영의 측정에 합격점을 받을 때 응답이 됩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한 대로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정말 사랑하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싶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계명을 즐거이 지킬 수 있습니다.
반면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믿음도 있다는 사람이 억지로나 남의 눈치를 보아 지킨다면 이는 사랑도 아니고 참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되 즐거운 마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충성을 측정합니다.
주의 종, 장로, 권사, 집사 등 각각의 직분에 합당하게 충성하는지를 측정합니다. 또한 기관장, 구역장, 그 외의 모든 사명자로서 맡은 바 사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충성하는지를 측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에만 충성한다 해서 온전한 충성이라 하지는 않습니다.
교회의 사명뿐 아니라 가정과 일터, 사업터 등 모든 곳에서 충성하는 것이 온전한 충성입니다. 남편, 아내, 자녀, 부모로서 각자 온 집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의 일과 세상 일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주의 일을 택해야 하지만, 그렇다 하여 세상 일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분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충성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충성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곧 악을 버리는 마음의 할례를 함께해 나가는 영적인 충성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자녀가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드리는 영적인 충성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사랑을 측정합니다.
사랑은 지금까지의 항목 전체를 온전하게 엮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하며, 우리가 이 땅에서 경작받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이 땅에 사람을 경작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기도하고 충성한다 해도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참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모든 것도 결국은 사랑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고 계명을 지키며 충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가장 먼저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것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맨 마지막으로 사랑을 측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명을 받아 열심히 충성하다가 도중에 마음에 안 맞는 일이 있다 해서 뜨거움이 식어 버린다면 사랑으로 행한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기도한다 하지만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시기 질투한다면 이 기도 역시 사랑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적인 사랑을 소유할 때라야 모든 것을 온전히 이루었다 할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신속하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응답 여부를 결정하는 일곱 영
우리가 기도하여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일곱 영이 측정할 때 합격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초신자인데도 기도하는 대로 척척 응답받습니다. 반면 믿음이 있고 더 충성하며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더딘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각자 믿음의 분량에 따라 원하시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초신자가 첫사랑이 뜨겁고 성령이 충만함으로 자기 믿음의 분량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충성하며 기쁨으로 달려갈 때는, 일곱 영의 측정 기준을 쉽게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믿음의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행하기 때문에 쉽게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크고 직분과 사명이 클수록 하나님 앞에 당연히 더 많은 것을 드려야 합니다. 일곱 영이 측정하는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맞게 행해야 하며, 그럴 때 믿음의 분량이 큰 만큼 더 크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믿음의 분량에서도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느냐에 따라 측정 기준이 달라집니다. 큰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는 그만큼 큰 믿음과 행함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은 충성하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며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크든 작든 응답받기 위해서는 일곱 영이 측정하는 각 분야를 점검하여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진리를 행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에 온전히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에서 시작된다. ( )이 있어야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고 계명을 지키며 충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가장 먼저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도 믿음이다. 그런데 믿음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것이 있을지라도 ( )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맨 마지막으로 사랑을 측정하는 것이다.
2.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일곱 가지를 말해 보시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57~6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마음의 기도 & 영의 기도’
마음의 기도란, 우리의 일상 언어로 소원을 구하는 기도이다.
영의 기도란, 우리 영이 성령의 주관을 따라 하는 기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방언 기도를 영의 기도라 한다.
방언 기도는 우리 영이 영적으로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이다.
방언 기도를 많이 하면 영혼이 잘될 뿐 아니라 시험 환난을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방언 기도만으로는 마음의 소원을 열매 맺을 수 없으므로 마음의 기도도 필요하다. 따라서 마음의 기도와 방언 기도를 병행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