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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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1-13
제46과하나님께 감사
출애굽기 23:16
읽을말씀 : 출애굽기 23:16 | 외울말씀 : 시편 17:8 | 참고 말씀: 레위기 23:42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알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스럽고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될까요?
1.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의 계절을 맞아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이스라엘의 절기 중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지요.
수장절은 원래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추수하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확한 곡식을 저장한 후 추수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는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레위기 23장 34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지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23장 43절에는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감동적인 추수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수장절은 출애굽하여 40년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보호하심과,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2. 청교도들의 신앙과 추수감사절
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의 개척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도착한 그곳은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 첫 추수감사절을 지냈습니다.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지낸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
먼저, 이 세상의 수많은 질병, 사고, 재앙으로부터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질병이 있는데 그중에는 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지요.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도 심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 마약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와 명예, 권세도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살하기도 하지요.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병, 의학으로 밝힐 수 없는 병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셨습니다.
여 성도 한 분은 ‘양수과소증’으로 도저히 살릴 길 없었던 태아를 기도를 받고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양수가 거의 없는 태반 속에서 그 연약한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남았지요. 또 한 분은 급성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진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병원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던 중 통회자복을 한 후 기도를 받았는데 수술을 받지 않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재앙과 사고로부터도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지구는 대지진과 가뭄과 산불, 태풍,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지켜 주십니다. 혹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철저히 돌이키고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해결됩니다.
다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원한 천국 소망을 주시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소망이 온전해지도록 은혜와 감동을 주십니다.
전 세계 수많은 성도들이 『천국』 책자를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해졌습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저도 새 예루살렘 성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말씀한 대로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까지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로 양육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찬양이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알곡처럼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더욱 사랑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질병, 사고, 재앙을 만나지 않고 지킴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추수감사절을 맞아 늘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다해 감사드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진주문’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열두 개의 문이 있다. 문마다 큰 천사가 지키고 있어 성의 위엄과 권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참을 올려다볼 정도로 큰 아치형의 문 전체가 하나의 영롱한 진주로 되어 있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며 황금보석 손잡이가 달려 있으나 굳이 손으로 열지 않아도 저절로 열린다.
열두 진주문을 통과하려면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 내기까지 고통을 인내한 것처럼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여 승리했을 때 들어갈 수 있다.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알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스럽고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될까요?
1.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의 계절을 맞아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이스라엘의 절기 중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지요.
수장절은 원래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추수하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확한 곡식을 저장한 후 추수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는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레위기 23장 34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지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23장 43절에는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감동적인 추수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수장절은 출애굽하여 40년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보호하심과,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2. 청교도들의 신앙과 추수감사절
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의 개척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도착한 그곳은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 첫 추수감사절을 지냈습니다.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지낸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
먼저, 이 세상의 수많은 질병, 사고, 재앙으로부터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질병이 있는데 그중에는 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지요.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도 심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 마약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와 명예, 권세도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살하기도 하지요.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병, 의학으로 밝힐 수 없는 병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셨습니다.
여 성도 한 분은 ‘양수과소증’으로 도저히 살릴 길 없었던 태아를 기도를 받고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양수가 거의 없는 태반 속에서 그 연약한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남았지요. 또 한 분은 급성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진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병원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던 중 통회자복을 한 후 기도를 받았는데 수술을 받지 않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재앙과 사고로부터도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지구는 대지진과 가뭄과 산불, 태풍,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지켜 주십니다. 혹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철저히 돌이키고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해결됩니다.
다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원한 천국 소망을 주시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소망이 온전해지도록 은혜와 감동을 주십니다.
전 세계 수많은 성도들이 『천국』 책자를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해졌습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저도 새 예루살렘 성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말씀한 대로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까지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로 양육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찬양이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알곡처럼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더욱 사랑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질병, 사고, 재앙을 만나지 않고 지킴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추수감사절을 맞아 늘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다해 감사드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진주문’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열두 개의 문이 있다. 문마다 큰 천사가 지키고 있어 성의 위엄과 권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참을 올려다볼 정도로 큰 아치형의 문 전체가 하나의 영롱한 진주로 되어 있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며 황금보석 손잡이가 달려 있으나 굳이 손으로 열지 않아도 저절로 열린다.
열두 진주문을 통과하려면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 내기까지 고통을 인내한 것처럼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여 승리했을 때 들어갈 수 있다.
2020-11-06
제45과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야고보서 5:16~18
읽을말씀 : 야고보서 5:16~18 | 외울말씀 : 야고보서 5:14 | 참고 말씀: 히브리서 11:1
교육목표 : 주님을 닮은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의인이 되어 신속히 응답받으며 형통한 삶을 누리게 한다.
1. 병든 자를 일으키는 믿음의 기도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고난 중에 눈물로 기도한 적이 있는가 하면 응답을 받아 즐거워하며 찬송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약 5:13). 또한 병든 사람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거나(약 5:14)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믿음의 기도를 통해 응답받아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린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했습니다. 믿음은 크게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으로 분류된다 했는데 육적 믿음은 내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 믿는 것이므로 삶에 변화가 오지 않습니다. 반면 영적 믿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아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니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음과 기사와 표적을 체험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했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하셨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영적 믿음을 소유하여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여야 합니다. 즉 자신이 아는 것을 옳다 여기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 모든 생각과 이론은 다 깨뜨리고 진리를 좇아 행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만큼 영혼이 잘되고 영적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믿음에도 분량이 있어 사람마다 다릅니다(롬 12:3). 처음에 전도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을 때에는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이지만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행해 나가면 영적 믿음이 성장합니다. 영적 믿음이 커지는 만큼 표적도 따릅니다(막 16:17). 병든 자를 일으키는 기도는 이러한 영적 믿음의 기도여야 합니다. 중풍으로 고생하는 하인을 둔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말씀으로만 하셔도 병이 나으리라는 믿음을 가졌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곧바로 하인이 나았습니다(마 8:5~13).
또한 담대한 믿음으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하신 대로, 하나님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이와 함께 사랑으로 기도할 때에 더욱 크게 역사하십니다. 서로 죄를 고하고 병 낫기를 위하여 사랑으로 기도하면(약 5:16) 혹 죄를 범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용서하고 치료해 주십니다. 이처럼 영적 믿음과 영적 사랑의 기도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2. 역사하는 힘이 많은 의인의 간구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롬 5:12)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롬 3:23).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신 대로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께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이라면 죄에서 해방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비진리를 버리며 진리를 좇아 행함으로써 참된 의인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행함 있는 믿음을 소유하여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의인이라 인정하며 그의 간구에 응답해 주십니다.
누가복음 18장 2~8절에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이라도 억울한 사연을 지닌 과부가 끊임없이 간청하니 그의 청원을 들어주었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에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 18:7~8)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밤낮 부르짖어 기도하고 철야하며 금식하는 것 같은데 응답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의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 일에 충성한다고 다 의인은 아닙니다. 만일 교회에서는 열심을 내지만 집에서는 형제와 화목하지 않고 부모에게 불효한다면 어찌 응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주님을 닮아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기도를 올리기 때문에 신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하셨습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와 권능
우리의 영혼이 잘되어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좇아 구하게 하고 은사를 주십니다(고전 12:1~11). 은사란 하나님이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선물이며 그분의 사랑 안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역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합당한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므로 성령의 주관 속에 베풀어야 합니다. 또한 은사를 구하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 합당한 의인이 되도록 힘써야 하지요.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각각 하나님께 쓰이는 분야가 달랐습니다. 크게 능력을 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능력 행함은 없이 예언만 하거나 가르침만 베푼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믿음과 사랑을 갖출수록 큰 은사와 권능을 주셔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자기 동족을 학대하는 애굽인을 쳐 죽일 정도로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연단을 거치며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 되자 큰 권능을 받아 갖가지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며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되 그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습니다(약 5:17~18). 또한 그의 기도로 죽은 아이가 살아나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이같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정녕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하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갖가지 은사와 권능을 주어 큰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물론 우리가 처음부터 의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갓 구원을 받아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데에서 나아가 하나님 말씀을 들음으로써 죄를 깨닫고 비진리를 벗어 버리며 영혼이 잘되는 만큼 더욱 온전한 의인이 되어 갑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의 가운데 행하는 만큼 의인이 되는 것이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한 사도 바울과 같이 날마다 하나님 능력으로 변화되는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이제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혹시 하나님과 막힌 담이 있지 않은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인정하실 만한 의인이 되기 위하여 믿음으로 순종하고 사랑으로 희생하며, 의인의 간구를 올림으로 항상 형통한 삶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께 ( ) 칭함을 받는다.
2. ( )란 하나님이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선물이며 그분의 사랑 안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역사를 말한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91~10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엘리야의 기도’
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나타내고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시켜 바알 선지자들을 잡아 기손 시내에서 죽이게 한 엘리야는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아합왕에게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왕상 18:41) 말하고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엘리야는 응답받기 위해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되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기도했다.
사환에게 바다 편을 바라보게 하였고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무려 일곱 번을 기도하였으니 능히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가 되어 하늘로부터 비가 쏟아졌다.
교육목표 : 주님을 닮은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의인이 되어 신속히 응답받으며 형통한 삶을 누리게 한다.
1. 병든 자를 일으키는 믿음의 기도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고난 중에 눈물로 기도한 적이 있는가 하면 응답을 받아 즐거워하며 찬송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약 5:13). 또한 병든 사람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거나(약 5:14)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믿음의 기도를 통해 응답받아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린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했습니다. 믿음은 크게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으로 분류된다 했는데 육적 믿음은 내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 믿는 것이므로 삶에 변화가 오지 않습니다. 반면 영적 믿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아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니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음과 기사와 표적을 체험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했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하셨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영적 믿음을 소유하여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여야 합니다. 즉 자신이 아는 것을 옳다 여기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 모든 생각과 이론은 다 깨뜨리고 진리를 좇아 행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만큼 영혼이 잘되고 영적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믿음에도 분량이 있어 사람마다 다릅니다(롬 12:3). 처음에 전도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을 때에는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이지만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행해 나가면 영적 믿음이 성장합니다. 영적 믿음이 커지는 만큼 표적도 따릅니다(막 16:17). 병든 자를 일으키는 기도는 이러한 영적 믿음의 기도여야 합니다. 중풍으로 고생하는 하인을 둔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말씀으로만 하셔도 병이 나으리라는 믿음을 가졌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곧바로 하인이 나았습니다(마 8:5~13).
또한 담대한 믿음으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하신 대로, 하나님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이와 함께 사랑으로 기도할 때에 더욱 크게 역사하십니다. 서로 죄를 고하고 병 낫기를 위하여 사랑으로 기도하면(약 5:16) 혹 죄를 범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용서하고 치료해 주십니다. 이처럼 영적 믿음과 영적 사랑의 기도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2. 역사하는 힘이 많은 의인의 간구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롬 5:12)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롬 3:23).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신 대로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께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이라면 죄에서 해방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비진리를 버리며 진리를 좇아 행함으로써 참된 의인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행함 있는 믿음을 소유하여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의인이라 인정하며 그의 간구에 응답해 주십니다.
누가복음 18장 2~8절에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이라도 억울한 사연을 지닌 과부가 끊임없이 간청하니 그의 청원을 들어주었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에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 18:7~8)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밤낮 부르짖어 기도하고 철야하며 금식하는 것 같은데 응답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의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 일에 충성한다고 다 의인은 아닙니다. 만일 교회에서는 열심을 내지만 집에서는 형제와 화목하지 않고 부모에게 불효한다면 어찌 응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주님을 닮아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기도를 올리기 때문에 신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하셨습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와 권능
우리의 영혼이 잘되어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좇아 구하게 하고 은사를 주십니다(고전 12:1~11). 은사란 하나님이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선물이며 그분의 사랑 안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역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합당한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므로 성령의 주관 속에 베풀어야 합니다. 또한 은사를 구하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 합당한 의인이 되도록 힘써야 하지요.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각각 하나님께 쓰이는 분야가 달랐습니다. 크게 능력을 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능력 행함은 없이 예언만 하거나 가르침만 베푼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믿음과 사랑을 갖출수록 큰 은사와 권능을 주셔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자기 동족을 학대하는 애굽인을 쳐 죽일 정도로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연단을 거치며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 되자 큰 권능을 받아 갖가지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며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되 그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습니다(약 5:17~18). 또한 그의 기도로 죽은 아이가 살아나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이같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정녕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하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갖가지 은사와 권능을 주어 큰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물론 우리가 처음부터 의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갓 구원을 받아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데에서 나아가 하나님 말씀을 들음으로써 죄를 깨닫고 비진리를 벗어 버리며 영혼이 잘되는 만큼 더욱 온전한 의인이 되어 갑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의 가운데 행하는 만큼 의인이 되는 것이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한 사도 바울과 같이 날마다 하나님 능력으로 변화되는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이제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혹시 하나님과 막힌 담이 있지 않은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인정하실 만한 의인이 되기 위하여 믿음으로 순종하고 사랑으로 희생하며, 의인의 간구를 올림으로 항상 형통한 삶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께 ( ) 칭함을 받는다.
2. ( )란 하나님이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선물이며 그분의 사랑 안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역사를 말한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91~10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엘리야의 기도’
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나타내고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시켜 바알 선지자들을 잡아 기손 시내에서 죽이게 한 엘리야는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아합왕에게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왕상 18:41) 말하고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엘리야는 응답받기 위해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되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기도했다.
사환에게 바다 편을 바라보게 하였고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무려 일곱 번을 기도하였으니 능히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가 되어 하늘로부터 비가 쏟아졌다.
2020-10-30
제44과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2)
마태복음 26:40~41
읽을말씀 : 마태복음 26:40~41 | 외울말씀 : 골로새서 4:2 | 참고 말씀: 베드로전서 4:7
교육목표 :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아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버려 나가며 오직 하나님 뜻을 좇아 살아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때 함께 기도하려고 예수님을 따라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고 말지요. 이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0~41)라고 안타까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육신이 약하다’ 하신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는 단순히 몸이 약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어부들입니다. 더구나 그 당시에는 신체 건장한 젊은이들이었지요. 밤새 고기를 잡아도 끄떡없던 사람들이니 몇 시간 잠을 안 자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당부까지 하셨지요. 그런데도 제자들은 잠들어 버렸습니다. 이들은 단지 몸이 약해서 잠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해 잠든 것이지요.
이때 육신은 단순히 ‘살과 뼈로 이뤄진 사람의 몸’이 아니라 ‘죄성과 결합한 몸’을 가리킵니다. 죄성과 결합한 몸이 육을 좇고 죄를 짓고자 하는 속성이 바로 육신의 소욕이지요. 제자들은 마음으로는 기도하기 원했지만 잠자고 싶고 편히 쉬고 싶은 육신의 소욕이 더 강해서 졸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를 두고 육신이 약하다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좀 피곤해도 재미있게 놀 때는 피곤도 거뜬히 이기지 않습니까? 이처럼 피곤을 이김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피곤하다는 육적인 현상 자체가 아니라 ‘기도하기보다는 편히 쉬고 싶어 하는 마음 즉 육신의 소욕을 제압하느냐 제압당하느냐’입니다.
성경을 보면 육, 육신, 육신의 일, 육체의 일 등 비슷한 단어가 종종 나옵니다. 여기에 대한 영적인 뜻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육이란 영과 반대되는 썩고 변하는 것을 총칭합니다. 진리로 변화되기 전 인간이나 식물, 동물 등 세상 모든 만물을 다 포함합니다. 반면 영은 영원한 것이며 진리요, 참을 말합니다.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류는 유전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를 ‘원죄’라 하며, 자라면서 원수 마귀 사단의 뜻대로 비진리를 행하며 지어가는 죄를 ‘자범죄’라 합니다. 이렇게 원수 마귀 사단을 통해 들어온 죄성이 사람의 몸과 결합된 것을 ‘육신’이라 합니다.
로마서 8장 12~13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하신 말씀의 ‘육신’에는 바로 그러한 뜻이 있습니다. 육신의 일이란 육신이라는 죄성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으로 거짓, 시기, 질투, 미움 등 아직 행하지 않았으나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속성을 말합니다. 즉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가 육신의 일이며, 이러한 육신의 일을 행동으로 옮긴 것을 ‘육체의 일’(갈 5:19)이라 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한 것은 성령 받기 전의 일입니다. 성령 받은 후에는 이런 연약함을 찾아볼 수 없는 담대한 사도들로 180도 변했지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예수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 받기 전에는 막상 예수님이 잡히시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요.
하지만 성령을 받은 후 베드로는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갖가지 기사와 표적을 나타냈으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할 정도로 담대하였습니다. 이전의 연약함은 찾아볼 수 없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하고 권능 있는 사도로 변화되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보혈을 흘려 원수 마귀의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우리의 질고와 가난, 연약함까지 다 담당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을 갖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간다면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고 문제가 해결되며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도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간혹 잘못을 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육신이 약해서’라며 합리화하는 사람을 봅니다. 바로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버지에게 백만 원을 받은 아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아들이 돈을 주머니에 넣어 놓은 것을 잊은 채 밖에서 밥을 사먹지 못하고 굶고 있다면 아버지는 얼마나 답답해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육신이 약해서’라는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입으면 무엇이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밤 10시만 되면 잠을 자지 않고는 못 견디던 성도라도 기도하여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철야예배에 나와 한밤을 충만하게 하나님께 드리기도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영감이 밝아지고 마음에 기쁨이 임하며 피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몸이 가벼움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성령 시대에 사는 우리는 육신이 약하여 기도를 못한다거나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써 성령의 도움을 받아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버려 나가며 오직 하나님 뜻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
2. 깨어 기도할 때 받는 복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말씀하였습니다.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원수 마귀 사단은 우는 사자같이 하나님의 자녀를 미혹하여 어찌하든 하나님을 떠나게 하거나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무를 뽑고자 한다면 먼저 나무를 흔들어 볼 것입니다. 나무가 굵고 뿌리도 깊어서 도무지 뽑힐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포기하고 다른 나무를 골라 흔들겠지요. 그러나 그 나무가 흔들리며 뽑힐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한번 뽑아 보자.’ 하며 더욱 세게 흔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원수 마귀 사단이 우리를 유혹해 올 때 전혀 흔들리지 않으면 물러가지만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계속해서 시험을 가져와 어떻게든 넘어뜨리려 합니다.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분별하여 물리칠 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빛 가운데 나가기 위해서는 힘써 기도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뜻대로 모든 사역을 이루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기도의 힘 때문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40일 금식기도로 준비하셨으며 공생애 중에도 틈만 나면 기도하여 크신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셨습니다. 공생애를 마감하면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기 때문에 능히 십자가를 질 수 있었고 결국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 하시며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말씀합니다. 또한 예수님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마 6:13)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지요.
이와 같이 깨어 기도할 때 성령께서 옳은 길을 가도록 깨우쳐 주십니다. 그래서 죄와 싸워 버리는 만큼 영혼이 잘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기 때문에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또한 우리가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원수 마귀 사단이 범접하지 못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기도하여 성령의 도움을 받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하고 흠 없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류는 유전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를 ( )라 하며, 자라면서 원수 마귀 사단의 뜻대로 비진리를 행하며 지어가는 죄를 ( )라 한다. 이렇게 원수 마귀 사단을 통해 들어온 죄성이 사람의 몸과 결합된 것을 ( )이라 한다.
2. 성령을 받은 후 베드로는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79~87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단’과 ‘마귀’의 차이
사단과 마귀는 악한 영에 속한다.
사단은 루시퍼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며 실질적인 형태는 없다. 루시퍼가 가진 어둠의 능력을 그대로 담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생각과 마음을 갖게 한다. 마치 공중에 수없이 퍼져 있는 전파와 같이 어둠의 능력을 공중에 퍼뜨린다.
마귀는 루시퍼와 함께 타락한 천사 중 일부로, 검은 형상에 사람처럼 이목구비와 손발도 있다. 사단의 지시를 받아 수많은 귀신을 관리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죄를 짓게 한다. 생각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사단이라면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귀의 짓이다.
교육목표 :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아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버려 나가며 오직 하나님 뜻을 좇아 살아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때 함께 기도하려고 예수님을 따라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고 말지요. 이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0~41)라고 안타까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육신이 약하다’ 하신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는 단순히 몸이 약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어부들입니다. 더구나 그 당시에는 신체 건장한 젊은이들이었지요. 밤새 고기를 잡아도 끄떡없던 사람들이니 몇 시간 잠을 안 자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당부까지 하셨지요. 그런데도 제자들은 잠들어 버렸습니다. 이들은 단지 몸이 약해서 잠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해 잠든 것이지요.
이때 육신은 단순히 ‘살과 뼈로 이뤄진 사람의 몸’이 아니라 ‘죄성과 결합한 몸’을 가리킵니다. 죄성과 결합한 몸이 육을 좇고 죄를 짓고자 하는 속성이 바로 육신의 소욕이지요. 제자들은 마음으로는 기도하기 원했지만 잠자고 싶고 편히 쉬고 싶은 육신의 소욕이 더 강해서 졸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를 두고 육신이 약하다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좀 피곤해도 재미있게 놀 때는 피곤도 거뜬히 이기지 않습니까? 이처럼 피곤을 이김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피곤하다는 육적인 현상 자체가 아니라 ‘기도하기보다는 편히 쉬고 싶어 하는 마음 즉 육신의 소욕을 제압하느냐 제압당하느냐’입니다.
성경을 보면 육, 육신, 육신의 일, 육체의 일 등 비슷한 단어가 종종 나옵니다. 여기에 대한 영적인 뜻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육이란 영과 반대되는 썩고 변하는 것을 총칭합니다. 진리로 변화되기 전 인간이나 식물, 동물 등 세상 모든 만물을 다 포함합니다. 반면 영은 영원한 것이며 진리요, 참을 말합니다.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류는 유전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를 ‘원죄’라 하며, 자라면서 원수 마귀 사단의 뜻대로 비진리를 행하며 지어가는 죄를 ‘자범죄’라 합니다. 이렇게 원수 마귀 사단을 통해 들어온 죄성이 사람의 몸과 결합된 것을 ‘육신’이라 합니다.
로마서 8장 12~13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하신 말씀의 ‘육신’에는 바로 그러한 뜻이 있습니다. 육신의 일이란 육신이라는 죄성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으로 거짓, 시기, 질투, 미움 등 아직 행하지 않았으나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속성을 말합니다. 즉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가 육신의 일이며, 이러한 육신의 일을 행동으로 옮긴 것을 ‘육체의 일’(갈 5:19)이라 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한 것은 성령 받기 전의 일입니다. 성령 받은 후에는 이런 연약함을 찾아볼 수 없는 담대한 사도들로 180도 변했지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예수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 받기 전에는 막상 예수님이 잡히시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요.
하지만 성령을 받은 후 베드로는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갖가지 기사와 표적을 나타냈으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할 정도로 담대하였습니다. 이전의 연약함은 찾아볼 수 없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하고 권능 있는 사도로 변화되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보혈을 흘려 원수 마귀의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우리의 질고와 가난, 연약함까지 다 담당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을 갖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간다면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고 문제가 해결되며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도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간혹 잘못을 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육신이 약해서’라며 합리화하는 사람을 봅니다. 바로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버지에게 백만 원을 받은 아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아들이 돈을 주머니에 넣어 놓은 것을 잊은 채 밖에서 밥을 사먹지 못하고 굶고 있다면 아버지는 얼마나 답답해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육신이 약해서’라는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입으면 무엇이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밤 10시만 되면 잠을 자지 않고는 못 견디던 성도라도 기도하여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철야예배에 나와 한밤을 충만하게 하나님께 드리기도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영감이 밝아지고 마음에 기쁨이 임하며 피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몸이 가벼움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성령 시대에 사는 우리는 육신이 약하여 기도를 못한다거나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써 성령의 도움을 받아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버려 나가며 오직 하나님 뜻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
2. 깨어 기도할 때 받는 복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말씀하였습니다.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원수 마귀 사단은 우는 사자같이 하나님의 자녀를 미혹하여 어찌하든 하나님을 떠나게 하거나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무를 뽑고자 한다면 먼저 나무를 흔들어 볼 것입니다. 나무가 굵고 뿌리도 깊어서 도무지 뽑힐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포기하고 다른 나무를 골라 흔들겠지요. 그러나 그 나무가 흔들리며 뽑힐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한번 뽑아 보자.’ 하며 더욱 세게 흔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원수 마귀 사단이 우리를 유혹해 올 때 전혀 흔들리지 않으면 물러가지만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계속해서 시험을 가져와 어떻게든 넘어뜨리려 합니다.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분별하여 물리칠 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빛 가운데 나가기 위해서는 힘써 기도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뜻대로 모든 사역을 이루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기도의 힘 때문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40일 금식기도로 준비하셨으며 공생애 중에도 틈만 나면 기도하여 크신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셨습니다. 공생애를 마감하면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기 때문에 능히 십자가를 질 수 있었고 결국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 하시며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말씀합니다. 또한 예수님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마 6:13)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지요.
이와 같이 깨어 기도할 때 성령께서 옳은 길을 가도록 깨우쳐 주십니다. 그래서 죄와 싸워 버리는 만큼 영혼이 잘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기 때문에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또한 우리가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원수 마귀 사단이 범접하지 못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기도하여 성령의 도움을 받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하고 흠 없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류는 유전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를 ( )라 하며, 자라면서 원수 마귀 사단의 뜻대로 비진리를 행하며 지어가는 죄를 ( )라 한다. 이렇게 원수 마귀 사단을 통해 들어온 죄성이 사람의 몸과 결합된 것을 ( )이라 한다.
2. 성령을 받은 후 베드로는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79~87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단’과 ‘마귀’의 차이
사단과 마귀는 악한 영에 속한다.
사단은 루시퍼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며 실질적인 형태는 없다. 루시퍼가 가진 어둠의 능력을 그대로 담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생각과 마음을 갖게 한다. 마치 공중에 수없이 퍼져 있는 전파와 같이 어둠의 능력을 공중에 퍼뜨린다.
마귀는 루시퍼와 함께 타락한 천사 중 일부로, 검은 형상에 사람처럼 이목구비와 손발도 있다. 사단의 지시를 받아 수많은 귀신을 관리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죄를 짓게 한다. 생각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사단이라면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귀의 짓이다.
2020-10-23
제43과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1)
마태복음 26:40~41
읽을말씀 : 마태복음 26:40~41 | 외울말씀 : 야고보서 1:15 | 참고 말씀: 빌립보서 4:12
교육목표 : 늘 깨어 기도함으로 시험에 들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1. 깨어 기도해야 하는 이유
예수님은 몸소 기도의 본을 보이시면서 늘 깨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십자가를 질 때가 임박함을 아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함께 간 제자들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여 그만 잠들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수제자 베드로에게 안타깝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 26:40~41)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사건은 영적으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입니다. 하지만 아직 믿음이 적은 제자들에게는 이기기 힘든 시험이 될 수도 있었지요. 이를 염려하시고 깨어 기도하라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당시의 제자들만 아니라 바로 주님을 따르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성도들도 하루하루 원수 마귀 사단과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지요. 늘 깨어 기도해야만 시험에 들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기 쉽지요.
그렇다고 해서 ‘시험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 속에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간혹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1장 13~15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시험은 사람이 자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29장 11~12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들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자녀들이 어떤 재앙도 만나지 않고 오직 평안과 소망 가운데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평안을 얻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늘 깨어 기도하는 신앙생활을 하면 시험에 들지 않으며 불가능이 가능케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사람이 호흡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듯이 성령 받은 하나님 자녀는 영이 살기 위해 반드시 영의 호흡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시며, 기도를 쉬는 것도 죄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은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죽었던 영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을 때에 살아나는데 이때의 영적 상태는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 같아서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으면 영이 자라 힘 있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때에는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없듯이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압니다.
아이들은 곧잘 누가 숨을 쉬지 않고 오래 견디나 시합을 하곤 합니다. 먼저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숨을 잔뜩 들이마신 다음 ‘시작’ 하면 숨 쉬기를 멈춥니다. 처음 한동안에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해지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견디지 못하고 숨을 내쉽니다. 호흡하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자녀가 영의 호흡인 기도를 중단하면 처음에는 그다지 못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답답하고 곤고해집니다. 그 원인을 깨달아 즉시 회개하고 기도해 나가면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임하니 다시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계속 쉬면 마음이 더욱 곤고해지며, 중단한 시일이 오랠수록 다시 기도하거나 충만한 신앙생활을 회복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숨을 쉬듯 습관을 좇아 하는 사람에게는 기도가 힘든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대로 응답과 축복을 받으며 하늘의 소망이 생기기 때문에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넘칩니다.
2. 왜 기도하지 않을 때 시험에 들까?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살아 있는 영, 즉 생령이 되게 하여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불순종하여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이 끊겼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된 사람을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니 점점 죄악으로 물들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만세 전에 구원의 섭리를 계획하시고 때가 되자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를 회개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하십니다.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며 세상을 이기도록 이끄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우리가 성령의 도움으로 성령 충만하려면 반드시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밝히 음성을 들려 주고 우리에게 시험이 올 것을 알려 대비케 하십니다. 또한 피할 길을 주시며 시험이 와도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요.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뜻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으므로 세상의 욕심을 좇아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의 가운데 살아가므로 시험 환난이 찾아오고 갖가지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고 죄를 짓는 만큼 사단이 송사하므로 시험에 빠지며 보호받지 못합니다.
야고보서 1장 14~15절을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였습니다.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기도하지 않으므로 하나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어떠한 형편에 처해도 자족하기를 원하십니다. 빌립보서 4장 11~12절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자족하지 못하고 욕심이 잉태되어 죄를 범하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시험 환난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시험을 받으면서도 마치 하나님이 시험 환난을 주신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니 시험을 이길 수도,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라’(고후 10:5) 했고,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6~7)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배우고 입력시켜 놓은 자신의 이론과 지식이 진리에 비추어 옳지 않은 것이라면 과감히 깨뜨려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며 진리에 순종하려면 무엇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사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징계하시고, 회개하여 돌이키도록 시험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때 자신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한 것이 있는지 회개하고 기쁨과 감사로 기도하면 그 믿음을 보고 응답해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성도들은 하루하루 원수 마귀 사단과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다. 늘 깨어 ( )해야만 ( )에 들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2. 기도할 때 ( )께서 밝히 음성을 들려주고 우리에게 시험이 올 것을 알려 ( )케 하신다. 또한 피할 길을 주시며 시험이 와도 (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63~7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론’이란
지식을 바탕으로 경험이나 사고, 학습 등을 통해 스스로 정립시켜 놓은 논리를 말한다. 이론은 각 사람의 체험과 생각, 시대에 따라 달라지므로 변론을 낳으며 진리인 하나님 말씀과는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교육목표 : 늘 깨어 기도함으로 시험에 들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1. 깨어 기도해야 하는 이유
예수님은 몸소 기도의 본을 보이시면서 늘 깨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십자가를 질 때가 임박함을 아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함께 간 제자들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여 그만 잠들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수제자 베드로에게 안타깝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 26:40~41)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사건은 영적으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입니다. 하지만 아직 믿음이 적은 제자들에게는 이기기 힘든 시험이 될 수도 있었지요. 이를 염려하시고 깨어 기도하라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당시의 제자들만 아니라 바로 주님을 따르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성도들도 하루하루 원수 마귀 사단과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지요. 늘 깨어 기도해야만 시험에 들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기 쉽지요.
그렇다고 해서 ‘시험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 속에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간혹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1장 13~15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시험은 사람이 자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29장 11~12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들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자녀들이 어떤 재앙도 만나지 않고 오직 평안과 소망 가운데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평안을 얻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늘 깨어 기도하는 신앙생활을 하면 시험에 들지 않으며 불가능이 가능케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사람이 호흡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듯이 성령 받은 하나님 자녀는 영이 살기 위해 반드시 영의 호흡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시며, 기도를 쉬는 것도 죄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은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죽었던 영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을 때에 살아나는데 이때의 영적 상태는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 같아서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으면 영이 자라 힘 있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때에는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없듯이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압니다.
아이들은 곧잘 누가 숨을 쉬지 않고 오래 견디나 시합을 하곤 합니다. 먼저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숨을 잔뜩 들이마신 다음 ‘시작’ 하면 숨 쉬기를 멈춥니다. 처음 한동안에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해지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견디지 못하고 숨을 내쉽니다. 호흡하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자녀가 영의 호흡인 기도를 중단하면 처음에는 그다지 못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답답하고 곤고해집니다. 그 원인을 깨달아 즉시 회개하고 기도해 나가면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임하니 다시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계속 쉬면 마음이 더욱 곤고해지며, 중단한 시일이 오랠수록 다시 기도하거나 충만한 신앙생활을 회복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숨을 쉬듯 습관을 좇아 하는 사람에게는 기도가 힘든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대로 응답과 축복을 받으며 하늘의 소망이 생기기 때문에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넘칩니다.
2. 왜 기도하지 않을 때 시험에 들까?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살아 있는 영, 즉 생령이 되게 하여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불순종하여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이 끊겼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된 사람을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니 점점 죄악으로 물들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만세 전에 구원의 섭리를 계획하시고 때가 되자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를 회개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하십니다.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며 세상을 이기도록 이끄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우리가 성령의 도움으로 성령 충만하려면 반드시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밝히 음성을 들려 주고 우리에게 시험이 올 것을 알려 대비케 하십니다. 또한 피할 길을 주시며 시험이 와도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요.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뜻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으므로 세상의 욕심을 좇아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의 가운데 살아가므로 시험 환난이 찾아오고 갖가지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고 죄를 짓는 만큼 사단이 송사하므로 시험에 빠지며 보호받지 못합니다.
야고보서 1장 14~15절을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였습니다.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기도하지 않으므로 하나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어떠한 형편에 처해도 자족하기를 원하십니다. 빌립보서 4장 11~12절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자족하지 못하고 욕심이 잉태되어 죄를 범하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시험 환난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시험을 받으면서도 마치 하나님이 시험 환난을 주신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니 시험을 이길 수도,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라’(고후 10:5) 했고,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6~7)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배우고 입력시켜 놓은 자신의 이론과 지식이 진리에 비추어 옳지 않은 것이라면 과감히 깨뜨려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며 진리에 순종하려면 무엇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사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징계하시고, 회개하여 돌이키도록 시험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때 자신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한 것이 있는지 회개하고 기쁨과 감사로 기도하면 그 믿음을 보고 응답해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성도들은 하루하루 원수 마귀 사단과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다. 늘 깨어 ( )해야만 ( )에 들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2. 기도할 때 ( )께서 밝히 음성을 들려주고 우리에게 시험이 올 것을 알려 ( )케 하신다. 또한 피할 길을 주시며 시험이 와도 (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63~7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론’이란
지식을 바탕으로 경험이나 사고, 학습 등을 통해 스스로 정립시켜 놓은 논리를 말한다. 이론은 각 사람의 체험과 생각, 시대에 따라 달라지므로 변론을 낳으며 진리인 하나님 말씀과는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2020-10-16
제42과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 (2)
누가복음 22:39~44
읽을말씀 : 누가복음 22:39~44 | 외울말씀 : 예레미야 33:3 | 참고 말씀: 사도행전 7:59~60
교육목표 :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자세와 중심을 본받아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응답받아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 요령 중 첫째로, 중심 바쳐 기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중심 기도란 마음과 뜻 그리고 힘과 정성을 다하는 기도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지난주에 이어 살펴보겠습니다.
둘째,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던 모습에서 부르짖어 기도하셨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조용히 기도하셨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지요.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기도하라 하시며 응답을 약속하신 이유는, 부르짖어 기도할 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않고 중심 바쳐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용히 묵상 기도하는 것이 경건하고 거룩한 것인 줄 알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예배 전에 미리 와서 기도하거나 밤에 집에서 기도할 때에는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용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부르짖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기도입니다.
교회 역사상 가장 큰 권능과 부흥이 일어난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교회는 성령이 역사하여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며 큰 부흥이 일어납니다.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그만큼 간절한 중심으로 소리 높여 간구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기도를 통하여 성령이 충만하고 방해하는 원수 마귀 사단의 세력이 물러가므로 응답을 받고 나아가 신령한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까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59~60) 하며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성령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 될 수 있으며 성령이 행하시는 권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또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명령이며 땀을 흘려야 소산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므로 땀 흘려 부르짖어 기도해야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데 굳이 부르짖어 구해야 하는가?” 또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하였는데 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느냐?” 반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도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했다는 대목은 없습니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말씀의 참뜻은 중심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 보십시오. 골방과 같이 은밀하고 조용한 곳에서 문을 닫아 버린다면 세상 사람과의 대화나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음으로써 외부와 차단되듯 기도할 때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잡념, 세상 근심 걱정을 끊어버리고 마음 중심을 모아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길에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큰소리로 기도하자 예수님은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많이 하는 것을 자랑하려는 마음으로 하지 말고 오직 우리 중심과 모든 형편을 아시며, 구하는 바를 다 주실 수 있는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만 마음과 중심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십니다. 차츰 주일성수와 기도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 믿음이 자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각 사람의 믿음대로 응답하십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서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믿음을 보고 더 큰 응답으로 함께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렇게 기도를 쌓아가면 하늘에서 오는 능력을 받아 죄와 싸워 버림으로 주님 모습을 닮아가고 주님의 뜻을 밝히 알아 그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됩니다. 그러한 믿음에 이르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 하신 말씀이 온전히 임합니다.
믿음을 갖는 데에는 자기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산 믿음은 행함이 따르는 영적 믿음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믿음을 갖고자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하며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믿어지는 산 믿음, 영적 믿음을 주십니다.
이처럼 자신의 노력과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믿음이 합치되어 능력 있는 믿음이 될 때 즉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응답의 확신이 불일 듯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영적 믿음이며 그러한 능력 있는 믿음이 임하면 이미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막 11:24) 하신 말씀처럼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하여 믿고 구하는 것을 다 받는 복된 사람(마 21:22)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넷째,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일에 목적이 분명하면 일을 더욱 힘있게 추진하며 더 빨리 성취합니다. 반면, 목적이 불분명하면 일의 방향을 잡지 못하므로 조그마한 어려움이 와도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 회의하며 주저앉아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심을 때에도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일 3:21~22).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하다면 더욱 간절함과 인내로 기도할 수 있으며,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책망할 것이 없는 우리 중심을 보고 넘치도록 채워 주십니다.
다섯째,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하신 말씀대로 나의 기도가 응답되고 하늘나라의 상급이 됨을 믿는다면 기도하는 것이 피곤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하면 간절한 기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소유하면 자신보다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기도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요, 섬기는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기도도 어떠한 마음을 품고 하느냐에 따라 다른 역사가 나타납니다. 단지 습관을 좇아 한다면, 겉으로는 사랑의 기도 같으나 실제로는 아닌 것입니다. 정녕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교회와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올려 드리는 것이 진실한 사랑의 기도입니다. 즉 마음에 온전히 영적 사랑이 임하여 하나님 뜻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주인 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예를 들어,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할 때 주님의 몸 된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집을 짓는 것보다 더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간구합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땅과 재정, 일꾼과 기술력 등 성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조목조목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영혼들을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 상대에 대한 영적 사랑이 있다면, 상대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여기며 그에게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지요. 섬기는 목자를 위해 기도할 때에도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 원하는 목자의 간절한 마음, 영혼들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기를 바라는 목자의 애타는 마음을 느끼고 헤아리는 만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사랑의 기도가 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을 말해 보세요.
① 중심 바쳐 기도해야 한다.
② ( ) 기도해야 한다.
③ ( )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④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한다
⑤ ( )의 기도를 해야 한다.
2.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말씀의 참뜻은 ( )를 하라는 것이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63~7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모세의 부르짖는 기도’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믿음으로 홍해가 갈라져 마른땅으로 건너는 체험을 하고도 수르 광야를 지날 때 물을 얻지 못하자 모세를 크게 원망하였다. 이에 모세가 부르짖어 기도하니 쓴 물이 단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민수기 12장에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종 모세를 비방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문둥병에 걸린 사건이 나온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주옵소서” 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다.
교육목표 :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자세와 중심을 본받아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응답받아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
지난 시간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 요령 중 첫째로, 중심 바쳐 기도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중심 기도란 마음과 뜻 그리고 힘과 정성을 다하는 기도를 의미하는 것이지요. 지난주에 이어 살펴보겠습니다.
둘째,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기도하실 때에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던 모습에서 부르짖어 기도하셨음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조용히 기도하셨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지요.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기도하라 하시며 응답을 약속하신 이유는, 부르짖어 기도할 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않고 중심 바쳐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조용히 묵상 기도하는 것이 경건하고 거룩한 것인 줄 알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예배 전에 미리 와서 기도하거나 밤에 집에서 기도할 때에는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용히 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부르짖어 하는 것이 하나님의 원하시는 기도입니다.
교회 역사상 가장 큰 권능과 부흥이 일어난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교회는 성령이 역사하여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며 큰 부흥이 일어납니다.
부르짖어 기도한다는 것은 하나님께 그만큼 간절한 중심으로 소리 높여 간구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기도를 통하여 성령이 충만하고 방해하는 원수 마귀 사단의 세력이 물러가므로 응답을 받고 나아가 신령한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순교하면서까지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59~60) 하며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부르짖어 기도할 때 성령 충만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이 될 수 있으며 성령이 행하시는 권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또한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 명령이며 땀을 흘려야 소산을 얻는 것이 하나님의 법칙이므로 땀 흘려 부르짖어 기도해야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은 구하기 전에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데 굳이 부르짖어 구해야 하는가?” 또는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 하였는데 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하느냐?” 반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도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했다는 대목은 없습니다.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말씀의 참뜻은 중심 기도를 하라는 것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 보십시오. 골방과 같이 은밀하고 조용한 곳에서 문을 닫아 버린다면 세상 사람과의 대화나 외부와의 접촉이 차단되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음으로써 외부와 차단되듯 기도할 때에는 우리의 모든 생각과 잡념, 세상 근심 걱정을 끊어버리고 마음 중심을 모아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바리새인과 제사장들이 길에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큰소리로 기도하자 예수님은 그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신다는 뜻으로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기도 많이 하는 것을 자랑하려는 마음으로 하지 말고 오직 우리 중심과 모든 형편을 아시며, 구하는 바를 다 주실 수 있는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만 마음과 중심을 다해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십니다. 차츰 주일성수와 기도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 믿음이 자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각 사람의 믿음대로 응답하십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서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믿음을 보고 더 큰 응답으로 함께하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렇게 기도를 쌓아가면 하늘에서 오는 능력을 받아 죄와 싸워 버림으로 주님 모습을 닮아가고 주님의 뜻을 밝히 알아 그 뜻에 순종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됩니다. 그러한 믿음에 이르면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막 16:17~18) 하신 말씀이 온전히 임합니다.
믿음을 갖는 데에는 자기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산 믿음은 행함이 따르는 영적 믿음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믿음을 갖고자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 실천하며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믿어지는 산 믿음, 영적 믿음을 주십니다.
이처럼 자신의 노력과 하나님이 주시는 영적 믿음이 합치되어 능력 있는 믿음이 될 때 즉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에 응답의 확신이 불일 듯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영적 믿음이며 그러한 능력 있는 믿음이 임하면 이미 응답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막 11:24) 하신 말씀처럼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하여 믿고 구하는 것을 다 받는 복된 사람(마 21:22)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넷째,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일에 목적이 분명하면 일을 더욱 힘있게 추진하며 더 빨리 성취합니다. 반면, 목적이 불분명하면 일의 방향을 잡지 못하므로 조그마한 어려움이 와도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 회의하며 주저앉아 버리고 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를 심을 때에도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일 3:21~22).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할 때에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하다면 더욱 간절함과 인내로 기도할 수 있으며,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책망할 것이 없는 우리 중심을 보고 넘치도록 채워 주십니다.
다섯째,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하신 말씀대로 나의 기도가 응답되고 하늘나라의 상급이 됨을 믿는다면 기도하는 것이 피곤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구하면 간절한 기도를 올릴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소유하면 자신보다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의 기도는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요, 섬기는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기도도 어떠한 마음을 품고 하느냐에 따라 다른 역사가 나타납니다. 단지 습관을 좇아 한다면, 겉으로는 사랑의 기도 같으나 실제로는 아닌 것입니다. 정녕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교회와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올려 드리는 것이 진실한 사랑의 기도입니다. 즉 마음에 온전히 영적 사랑이 임하여 하나님 뜻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주인 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예를 들어,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할 때 주님의 몸 된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집을 짓는 것보다 더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간구합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땅과 재정, 일꾼과 기술력 등 성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조목조목 간절히 구하는 것입니다.
영혼들을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정 상대에 대한 영적 사랑이 있다면, 상대의 문제를 나의 문제로 여기며 그에게 필요한 것을 구할 수 있지요. 섬기는 목자를 위해 기도할 때에도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 원하는 목자의 간절한 마음, 영혼들이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기를 바라는 목자의 애타는 마음을 느끼고 헤아리는 만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사랑의 기도가 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을 말해 보세요.
① 중심 바쳐 기도해야 한다.
② ( ) 기도해야 한다.
③ ( )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④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한다
⑤ ( )의 기도를 해야 한다.
2.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말씀의 참뜻은 ( )를 하라는 것이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63~7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모세의 부르짖는 기도’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의 믿음으로 홍해가 갈라져 마른땅으로 건너는 체험을 하고도 수르 광야를 지날 때 물을 얻지 못하자 모세를 크게 원망하였다. 이에 모세가 부르짖어 기도하니 쓴 물이 단물로 변하는 역사가 일어났다. 민수기 12장에는 모세의 누이 미리암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종 모세를 비방하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문둥병에 걸린 사건이 나온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이여 원컨대 그를 고쳐주옵소서” 하고 부르짖어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고쳐 주셨다.
2020-10-09
제41과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 (1)
누가복음 22:39~44
읽을말씀 : 누가복음 22:39~44 | 외울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17 | 참고 말씀: 열왕기상 18:42
교육목표 :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자세와 중심을 본받아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응답받아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기도의 본을 보여 주신 예수님
누가복음 22장 39∼44절에는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기도하는 자세와 중심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알려 줍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하셨기에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질 수 있었으며,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또 어떻게 하나님의 사자가 도울 정도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를 드리셨을까요?
1)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하나님 뜻을 알려 주시며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마 7:7)이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당연한데 사람들은 흔히 기도하고 싶을 때나 해결할 문제가 있을 때에만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셨고,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으며,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습관을 좇아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규칙적으로 식사를 할 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자주 식사를 거르거나 불규칙적인 식생활을 계속하면 위장이 상하여 점차 몸이 쇠약해집니다. 기도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영적인 힘을 공급받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세상을 이기고 원수 마귀 사단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공급하지요. 따라서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여 육적인 힘을 공급받듯이 습관을 좇아 기도함으로써 영적인 힘이 끊이지 않고 공급되도록 해야 합니다.
반면에 습관을 좇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공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충만함을 잃어버리고 마음이 곤고해지며 결국 마음을 지킬 수 없으므로 죄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서든 쉬지 않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다가올 시험을 물리쳐 주시고, 설령 시험이 온다 해도 축적된 영적인 힘이 있으므로 사단에게 미혹되지 않고 승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본받아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특히 일과를 시작하기 전 먼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구하는 새벽기도나 일과를 마친 후 지키고 보호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밤 기도는 하나님이 매우 기뻐하시므로 큰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무릎을 꿇으면 중심이 바로 서게 됩니다. 또한 상대를 경외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니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당연히 무릎 꿇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겸손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으며 솔로몬왕도(왕상 8:54), 사도 바울도(행 20:36), 스데반 집사도(행 7:60)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부모나, 이 세상의 권세 있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구할 때에도 행여 실수하지 않을까 삼가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구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어찌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자세로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능력을 신뢰한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니 기도할 때에는 당연히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물론 성전 의자에 앉아 하는 경우와 같이 무릎을 꿇기 힘든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그냥 의자에 앉아서 해도 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무릎을 꿇고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무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무릎 꿇고 기도하는 노력을 하면서 시간을 늘려 가면 나중에는 1~2시간 무릎 꿇고 해도 힘들지 않습니다.
3) 하나님 뜻에 합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 하나님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뜻을 알기 때문에 자기 유익을 좇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기도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구하기 때문에 정작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제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앞으로 이렇게 하겠습니다.” 한다든지, 아니면 실컷 자기 마음대로 기도해 놓고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도 응답이 오지 않으면 원망 불평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믿음의 기도라 할 수 없고, 욕심으로 구하는 것이니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약 4:2~3). 그러므로 응답받으려면 하나님 앞에 맡겨드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맡기는 기도란,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자녀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 되심을 믿기에 어떤 결과가 온다 해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맡기는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
4)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을 보면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하여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셨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유월절 즈음의 밤 날씨는 추위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얼마나 힘쓰고 애써 부르짖으며 간절히 기도하셨으면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겠습니까?
왜 이렇게 힘쓰고 애써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까요? 창세기 3장 17절에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저주를 받기 이전에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으로 풍족하게 살았으나, 불순종하여 죄가 들어오니 하나님과 교통이 끊기고 땀 흘려 수고해야만 소산을 먹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얻는 것도 이처럼 땀 흘리는 수고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힘으로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께 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부르짖어 기도함으로써 많은 수고와 땀을 흘려야 얻을 수 있습니다. 열매를 얻으려면 땀 흘리는 수고와 노력이 있어야 하고 예수님께서도 친히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으니 우리도 그러한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모습을 통하여 마음을 집중하는 기도는 자세에서부터 비롯됨을 알았습니다. 기도하는 자세를 보면 어떠한 중심으로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2.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
1) 중심을 바쳐 기도해야 합니다
중심의 기도란 마음과 뜻, 그리고 힘과 정성을 다하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바른 자세로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지요. 꼭 오랜 시간 한다 해서 중심의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짧은 시간을 하더라도 집중해서 충만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중심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녀를 바라보고 그 기도에 귀 기울이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중심에서 기도가 나오지요.
먼저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내 편에 필요한 것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관 아래 하나님 마음을 깊이 이해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억지가 아닌 즐거운 마음으로 할 때 중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중심의 기도는 진심이 하나님께 그대로 전달됩니다. 사랑 자체이며 모든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중심을 다해 믿음으로 구한다면 어찌 응답하시지 않겠는지요? 그러므로 항상 중심의 기도를 하여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 능력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하셨기에 하나님의 사자가 도울 정도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를 드리셨을까요?
① ( )을 좇아 기도하셨다.
② ( )을 꿇고 기도하셨다.
③ 하나님 ( )에 합한 기도를 하셨다.
④ ( ) 애써 기도하셨다.
2. ( )의 기도란 마음과 뜻 그리고 힘과 정성을 다하는 기도를 의미한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43~5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엘리야의 중심의 기도’
불의 응답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회개시킨 엘리야는 땅에 꿇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왕상 18:42)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3년 반 동안 타는 가뭄 끝에 큰비를 내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기도하다 보니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을 받아 저절로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간 것이다. 이러한 간절한 중심의 기도라야 하나님을 감동시켜 응답받고 크게 영광 돌릴 수 있다.
교육목표 :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자세와 중심을 본받아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응답받아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기도의 본을 보여 주신 예수님
누가복음 22장 39∼44절에는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시기 위하여 십자가를 지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는 모습이 기록돼 있습니다. 이는 우리에게 기도하는 자세와 중심이 어떠해야 하는지 잘 알려 줍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하셨기에 그 무거운 십자가를 질 수 있었으며,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길 수 있었을까요? 또 어떻게 하나님의 사자가 도울 정도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를 드리셨을까요?
1)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고 하나님 뜻을 알려 주시며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마 7:7)이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며 구하는 것이 당연한데 사람들은 흔히 기도하고 싶을 때나 해결할 문제가 있을 때에만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습관을 좇아 감람산에 가서 기도하셨고, 다니엘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하루에 세 번씩 기도했으며, 예수님의 제자 베드로와 요한도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했습니다.
이처럼 습관을 좇아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가 규칙적으로 식사를 할 때 건강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자주 식사를 거르거나 불규칙적인 식생활을 계속하면 위장이 상하여 점차 몸이 쇠약해집니다. 기도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영적인 힘을 공급받을 수 있게 해 줍니다. 세상을 이기고 원수 마귀 사단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공급하지요. 따라서 규칙적으로 식사를 하여 육적인 힘을 공급받듯이 습관을 좇아 기도함으로써 영적인 힘이 끊이지 않고 공급되도록 해야 합니다.
반면에 습관을 좇아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공급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충만함을 잃어버리고 마음이 곤고해지며 결국 마음을 지킬 수 없으므로 죄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됩니다. 우리가 어떠한 환경에서든 쉬지 않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다가올 시험을 물리쳐 주시고, 설령 시험이 온다 해도 축적된 영적인 힘이 있으므로 사단에게 미혹되지 않고 승리의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본받아 시간을 정해 놓고 매일 기도하는 습관을 들여야 하겠습니다. 특히 일과를 시작하기 전 먼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며 구하는 새벽기도나 일과를 마친 후 지키고 보호해 주신 은혜에 감사하는 밤 기도는 하나님이 매우 기뻐하시므로 큰 능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2)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무릎을 꿇으면 중심이 바로 서게 됩니다. 또한 상대를 경외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니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는 당연히 무릎 꿇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도 겸손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으며 솔로몬왕도(왕상 8:54), 사도 바울도(행 20:36), 스데반 집사도(행 7:60)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부모나, 이 세상의 권세 있는 누군가에게 무엇을 구할 때에도 행여 실수하지 않을까 삼가는데 하물며 하나님께 구한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어찌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자세로 기도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능력을 신뢰한다는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니 기도할 때에는 당연히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물론 성전 의자에 앉아 하는 경우와 같이 무릎을 꿇기 힘든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에는 그냥 의자에 앉아서 해도 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무릎을 꿇고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무리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무릎 꿇고 기도하는 노력을 하면서 시간을 늘려 가면 나중에는 1~2시간 무릎 꿇고 해도 힘들지 않습니다.
3) 하나님 뜻에 합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기 전 하나님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통하여 모든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 뜻을 알기 때문에 자기 유익을 좇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도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이 기도한다고 하지만 자신의 뜻대로 구하기 때문에 정작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제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앞으로 이렇게 하겠습니다.” 한다든지, 아니면 실컷 자기 마음대로 기도해 놓고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하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도 응답이 오지 않으면 원망 불평합니다.
이러한 기도는 믿음의 기도라 할 수 없고, 욕심으로 구하는 것이니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약 4:2~3). 그러므로 응답받으려면 하나님 앞에 맡겨드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맡기는 기도란,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고 자녀에게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의 아버지 되심을 믿기에 어떤 결과가 온다 해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 맡기는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가십니다.
4)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을 보면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하여 예수님께서 얼마나 간절하게 기도하셨는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유월절 즈음의 밤 날씨는 추위가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런데도 얼마나 힘쓰고 애써 부르짖으며 간절히 기도하셨으면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겠습니까?
왜 이렇게 힘쓰고 애써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까요? 창세기 3장 17절에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하였습니다. 이 말씀은 인간이 저주를 받기 이전에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모든 것으로 풍족하게 살았으나, 불순종하여 죄가 들어오니 하나님과 교통이 끊기고 땀 흘려 수고해야만 소산을 먹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세상에서 얻는 것도 이처럼 땀 흘리는 수고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 힘으로 불가능한 것을 하나님께 구한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당연히 부르짖어 기도함으로써 많은 수고와 땀을 흘려야 얻을 수 있습니다. 열매를 얻으려면 땀 흘리는 수고와 노력이 있어야 하고 예수님께서도 친히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으니 우리도 그러한 기도를 올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신 모습을 통하여 마음을 집중하는 기도는 자세에서부터 비롯됨을 알았습니다. 기도하는 자세를 보면 어떠한 중심으로 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2.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
1) 중심을 바쳐 기도해야 합니다
중심의 기도란 마음과 뜻, 그리고 힘과 정성을 다하는 기도를 의미합니다. 바른 자세로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지요. 꼭 오랜 시간 한다 해서 중심의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짧은 시간을 하더라도 집중해서 충만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중심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녀를 바라보고 그 기도에 귀 기울이고 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러면 중심에서 기도가 나오지요.
먼저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감사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내 편에 필요한 것만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주관 아래 하나님 마음을 깊이 이해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억지가 아닌 즐거운 마음으로 할 때 중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중심의 기도는 진심이 하나님께 그대로 전달됩니다. 사랑 자체이며 모든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중심을 다해 믿음으로 구한다면 어찌 응답하시지 않겠는지요? 그러므로 항상 중심의 기도를 하여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 능력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은 어떻게 기도하셨기에 하나님의 사자가 도울 정도로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를 드리셨을까요?
① ( )을 좇아 기도하셨다.
② ( )을 꿇고 기도하셨다.
③ 하나님 ( )에 합한 기도를 하셨다.
④ ( ) 애써 기도하셨다.
2. ( )의 기도란 마음과 뜻 그리고 힘과 정성을 다하는 기도를 의미한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43~5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엘리야의 중심의 기도’
불의 응답으로 이스라엘 민족을 회개시킨 엘리야는 땅에 꿇어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왕상 18:42) 간절히 기도함으로써 3년 반 동안 타는 가뭄 끝에 큰비를 내리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끌어 냈다.
혼신의 힘을 다해 기도하다 보니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을 받아 저절로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간 것이다. 이러한 간절한 중심의 기도라야 하나님을 감동시켜 응답받고 크게 영광 돌릴 수 있다.
2020-10-02
제40과믿고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2)
민수기 6:22~27
읽을말씀 : 민수기 6:22~27 | 외울말씀 : 민수기 23:19 | 참고 말씀: 갈라디아서 6:9
교육목표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믿음으로 간구하여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가난, 질병과 연약함 등 인생의 모든 짐을 대신 져 주셨습니다. 모든 불행의 근원인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생명까지 내어 주셨지요. 이처럼 오직 영혼들을 위해 사신 주님의 은혜로 우리는 천국 소망 가운데 참 평안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주신 평안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분이 계신지요? 살아가면서 어떤 시험 환난을 만났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신앙을 잘 점검해서 그 원인을 발견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참 평안을 누리도록 이미 모든 조건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시험 환난도 만나지 않고 주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려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겔 36장 3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시며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루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으니까 이제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을지라도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공의입니다.
1. 믿음으로 바라보고 포기하지 말아야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고 응답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바라보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다가 포기하는 이유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에 그것을 뛰어 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계가 있는 사람의 생각으로 볼 때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만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장애물이 장애물로 보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한계를 짓지도 않기에 불가능이라는 것도 포기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의 기본 자세이지요.
예를 들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갈 때 전혀 장애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땅에 살던 왕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대치하고 있었지요. 기브온에서는 다섯 나라 연합군과 싸워야 했으나 여호수아는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아무 두려움 없이 나아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진멸했습니다.
또한 가나안 땅의 동 서편과 북방을 취할 때에도 그곳의 연합한 이방 군대와 싸워야 했지요. 그 적군의 수가 얼마나 많았던지 여호수아 11장 4절에는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와 같다고 했으니 얼마나 연합군의 힘이 강했는지 알 수 있지요. 여호수아가 만일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했다면 두려움으로 인해 낙심하며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만 바라보는 여호수아에게는 오직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만이 있을 뿐이었지요. 그러니 결과는 항상 하나님께서 책임지셔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할 수 있었습니다.
2.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민수기 23장 19절을 보면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말씀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면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신실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무슨 씨앗을 심느냐에 따라 열매가 달라지듯이 믿음 안에서도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응답의 열매가 다릅니다. 기도를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되어 갑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하면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고, 십일조와 감사예물 등 물질로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믿고 구하지만 아직 응답이 없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셨어도 아직 응답받을 만한 그릇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에 열매를 거둘 줄 믿지만 즉시 수확하지는 못합니다. 종자마다 열매 맺는 기간이 달라서 참외나 수박은 1년이 채 안 되어 수확할 수 있지만, 사과나 배, 인삼 등은 수년이 지나야 비로소 열매 맺습니다. 오랜 시간 인내한 만큼 수확의 기쁨도 크게 마련이지요.
이같이 우리가 응답받는 데에도 심고 인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업을 하든, 직장 생활을 하든 혹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서든 모든 것에 기한이 있고 때가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가장 적절한 때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어떤 학생이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기도했다고 합시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했다면 때가 이르러 분명히 응답하십니다. 기도했다 하여 즉시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응답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시키고 그 후에 응답해 주십니다.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기도한 대로 잡념 없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십니다. 열심히 행하는 만큼 형통한 길로 인도하여 서울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하시지요.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이 왜 오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치료되는지,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닫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발견하여 회개함으로써 질병의 원인을 해결해야 합니다. 미움으로 인해 병이 왔다면 미움을 버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어야 하며, 과식 때문에 병이 왔다면 절제할 수 있는 힘을 받아 과식하는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믿음을 주시고 응답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시킨 뒤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업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경우에도 다를 바 없습니다. 사업을 통해 축복받기를 기도했다면 하나님께서는 먼저 축복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도록 연단하십니다. 지혜와 능력을 주어 사업 능력을 발휘하게 하시고 사업이 확장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고 도움의 손길을 통해 거래처도 늘어가게 하시지요. 그리하여 때가 이르면 기도한 대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이같이 심고 가꾸는 과정을 거쳐 영혼이 잘되게 하고 연단하여 받을 만한 그릇이 되면 무엇이든 구하는 바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에 맞추어 조급해하지 말고 의심하지도 말아야 하지요. 오직 하나님 생각에 맞추어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으며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계의 법칙을 좇아 공의 가운데 응답하시는 분이며 그의 자녀가 믿음으로 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신 것입니다(히 11:6).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을 매우 기뻐하고 사랑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을 보면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에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며 빛 가운데 살았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에녹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 땅에서 300년간이나 동행하다가 일찍 곁에 두고자 수명이 다하기 전에 하늘로 옮기셨지요. 하나님께서 그처럼 사랑한 에녹에게 이 땅에서도 얼마나 넘치도록 부어 주셨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여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장애물이 ( )로 보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한계를 짓지도 않기에 불가능이라는 것도 포기라는 것도 없다.
이것이 ( )을 가진 사람의 기본 자세이다.
2. 많은 사람이 믿고 구하지만 아직 응답이 없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43~5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여호수아’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로 본명은 호세아이며, 모세의 후계자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가기 앞서 열두 명의 대표자들을 보내어 40일간 가나안 땅 곳곳을 정탐하게 하셨다. 열두 명의 정탐꾼 중 열 명은 모두 부정적인 보고를 했으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의지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이로 인해 출애굽 1세대가 광야에서 다 멸망한 상황에서도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음 세대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았다.
출애굽 후 광야생활 동안 모세를 수종하여 붙좇았으며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 출애굽 2세대를 이끌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지휘했다.
교육목표 :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믿음으로 간구하여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시는 동안 가난, 질병과 연약함 등 인생의 모든 짐을 대신 져 주셨습니다. 모든 불행의 근원인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생명까지 내어 주셨지요. 이처럼 오직 영혼들을 위해 사신 주님의 은혜로 우리는 천국 소망 가운데 참 평안을 누리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주신 평안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분이 계신지요? 살아가면서 어떤 시험 환난을 만났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자신의 신앙을 잘 점검해서 그 원인을 발견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참 평안을 누리도록 이미 모든 조건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우리가 어떤 시험 환난도 만나지 않고 주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려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에스겔 36장 3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회복을 약속하시며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하셨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렇게 이루어 주겠다고 약속하셨으니까 이제 구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 주셨을지라도 응답받을 때까지 기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공의입니다.
1. 믿음으로 바라보고 포기하지 말아야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고 응답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믿음으로 바라보고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하다가 포기하는 이유는 장애물을 만났을 때에 그것을 뛰어 넘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계가 있는 사람의 생각으로 볼 때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만나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장애물이 장애물로 보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한계를 짓지도 않기에 불가능이라는 것도 포기라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의 기본 자세이지요.
예를 들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갈 때 전혀 장애물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 땅에 살던 왕들이 연합하여 이스라엘과 싸우기 위해 대치하고 있었지요. 기브온에서는 다섯 나라 연합군과 싸워야 했으나 여호수아는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아무 두려움 없이 나아가 한 사람도 남김없이 진멸했습니다.
또한 가나안 땅의 동 서편과 북방을 취할 때에도 그곳의 연합한 이방 군대와 싸워야 했지요. 그 적군의 수가 얼마나 많았던지 여호수아 11장 4절에는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라고 기록돼 있습니다.
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와 같다고 했으니 얼마나 연합군의 힘이 강했는지 알 수 있지요. 여호수아가 만일 하나님을 믿음으로 바라보지 못했다면 두려움으로 인해 낙심하며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만 바라보는 여호수아에게는 오직 함께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과 말씀에 순종하는 행함만이 있을 뿐이었지요. 그러니 결과는 항상 하나님께서 책임지셔서 승리에 승리를 거듭할 수 있었습니다.
2.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민수기 23장 19절을 보면 “하나님은 인생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 말씀하신 바를 행치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치 않으시랴” 말씀했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을 믿고 조금도 의심치 않는다면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고 신실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분입니다. 무슨 씨앗을 심느냐에 따라 열매가 달라지듯이 믿음 안에서도 무엇을 심느냐에 따라 응답의 열매가 다릅니다. 기도를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되어 갑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하면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고, 십일조와 감사예물 등 물질로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믿고 구하지만 아직 응답이 없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응답하시지 않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셨어도 아직 응답받을 만한 그릇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리는 것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릴 때에 열매를 거둘 줄 믿지만 즉시 수확하지는 못합니다. 종자마다 열매 맺는 기간이 달라서 참외나 수박은 1년이 채 안 되어 수확할 수 있지만, 사과나 배, 인삼 등은 수년이 지나야 비로소 열매 맺습니다. 오랜 시간 인내한 만큼 수확의 기쁨도 크게 마련이지요.
이같이 우리가 응답받는 데에도 심고 인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사업을 하든, 직장 생활을 하든 혹은 하나님의 일을 이루어 나가는 과정에서든 모든 것에 기한이 있고 때가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가장 적절한 때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어떤 학생이 “서울대학교에 들어가게 해 주세요.” 기도했다고 합시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기도했다면 때가 이르러 분명히 응답하십니다. 기도했다 하여 즉시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응답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시키고 그 후에 응답해 주십니다. 열심히 공부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시고 기도한 대로 잡념 없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게 하십니다. 열심히 행하는 만큼 형통한 길로 인도하여 서울대학교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하시지요.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병이 왜 오는 것이며, 어떻게 해야 치료되는지, 하나님 말씀을 통해 깨닫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발견하여 회개함으로써 질병의 원인을 해결해야 합니다. 미움으로 인해 병이 왔다면 미움을 버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꾸어야 하며, 과식 때문에 병이 왔다면 절제할 수 있는 힘을 받아 과식하는 습관을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믿음을 주시고 응답받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시킨 뒤 응답하시기 때문입니다.
사업 문제를 놓고 기도하는 경우에도 다를 바 없습니다. 사업을 통해 축복받기를 기도했다면 하나님께서는 먼저 축복받을 수 있는 그릇이 되도록 연단하십니다. 지혜와 능력을 주어 사업 능력을 발휘하게 하시고 사업이 확장될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하고 도움의 손길을 통해 거래처도 늘어가게 하시지요. 그리하여 때가 이르면 기도한 대로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이같이 심고 가꾸는 과정을 거쳐 영혼이 잘되게 하고 연단하여 받을 만한 그릇이 되면 무엇이든 구하는 바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생각에 맞추어 조급해하지 말고 의심하지도 말아야 하지요. 오직 하나님 생각에 맞추어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으며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영계의 법칙을 좇아 공의 가운데 응답하시는 분이며 그의 자녀가 믿음으로 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신 것입니다(히 11:6).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사람을 매우 기뻐하고 사랑하십니다.
히브리서 11장 5절을 보면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에녹은 하나님을 온전히 믿었기에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며 빛 가운데 살았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에녹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이 땅에서 300년간이나 동행하다가 일찍 곁에 두고자 수명이 다하기 전에 하늘로 옮기셨지요. 하나님께서 그처럼 사랑한 에녹에게 이 땅에서도 얼마나 넘치도록 부어 주셨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소유하여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 돌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으로 바라보는 사람은 장애물이 ( )로 보이지 않고 자신의 생각으로 인해 한계를 짓지도 않기에 불가능이라는 것도 포기라는 것도 없다.
이것이 ( )을 가진 사람의 기본 자세이다.
2. 많은 사람이 믿고 구하지만 아직 응답이 없다고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43~5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여호수아’
에브라임 지파 눈의 아들로 본명은 호세아이며, 모세의 후계자이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가기 앞서 열두 명의 대표자들을 보내어 40일간 가나안 땅 곳곳을 정탐하게 하셨다. 열두 명의 정탐꾼 중 열 명은 모두 부정적인 보고를 했으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의지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고백했다.
이로 인해 출애굽 1세대가 광야에서 다 멸망한 상황에서도 여호수아와 갈렙은 다음 세대와 함께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축복을 받았다.
출애굽 후 광야생활 동안 모세를 수종하여 붙좇았으며 모세의 후계자가 되어 출애굽 2세대를 이끌고 가나안 정복 전쟁을 지휘했다.
2020-10-01
제0과추석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로마서 12:18
읽을말씀 : 로마서 12:18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지요.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한가위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308장 ---------------------- 다 같이
1.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 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 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2. 추수할 것 많은 때에 일꾼 심히 적으니
열심 있는 일꾼들을 주여 보내 주소서
3. 먼동 틀 때 일어나서 일찍 들에 나아가
황혼 때가 되기까지 추수하게 하소서
4. 거둬 들인 모든 알곡 천국 창고 들인 후
주가 베풀 잔치 자리 우리 참여하겠네
후렴
무르 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는데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아멘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로마서 12:18 -------------------- 인도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설 교 --------------------- 화목한 가정 --------------------- 설교자
2. 설교 예문
갓 시집 와서 살림이 아주 서투른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직장에 다니랴, 살림하랴 하루하루가 벅찼습니다. 특히 맛있게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런데도 그녀가 버겁다, 힘들다 하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믿어 주시고 부족한 부분도 어여쁘게 바라봐 주시는 시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진밥을 해 놓으면 “얘, 아가야, 나이 많은 사람은 진밥이 좋단다.” 하며 잘했다고 하십니다. 된밥을 할 때면 “아가야! 진밥도 좋지만 때로는 된밥도 먹기가 좋단다.” 하며 잘했다고 하십니다.
또 어느 날은 밥 속에 돌이 들어 있었는데도 며느리 모르게 휴지에 싸서 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돌이 있다며 며느리를 구박하거나 민망하게 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나중에 쌀에 돌이 있는 것 같다며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며느리는 매사에 자신을 먼저 생각해 주고 배려해 주시는 시아버지의 사랑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서로 섬기고 배려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말씀합니다.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훨씬 낫다는 뜻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말씀했습니다. 화평이란, 비록 내가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맞춰 줄 수 있고, 내 믿음이 크다 하더라도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는 마음이며,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을 수 있고,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거나 상대의 단점을 보지 않음으로 어느 누구와도 걸리지 않는 마음이지요.
그러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두와 화평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되 생명까지 줄 수 있어야 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던 사도 바울처럼 내 것, 내 입장, 내 스타일 등을 고집하는 자아가 없어야 모든 사람과 화평할 수 있습니다. 화평을 이루면 무례히 행치 않고 자신을 드러내 자랑하지 않습니다. 중심에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한쪽으로 편벽되지도 않지요.
둘째, 자기 의와 틀을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품과 자란 환경이 다릅니다. 교육받은 내용도 믿음의 분량도 다르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고 좋고 나쁨의 기준도 다릅니다. A는 옳다고 해도 B는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서로 자기 입장만 주장해서는 화평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내 입장, 내 기준에 맞추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섬길 때라야 화평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평을 이루는 과정에서 깨우쳐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 편에서는 감정도 없고 화평한데 상대가 나와 화평을 깬다.” 할 때 정말 상대 탓인가 하는 점입니다. 고의는 아닌데 내가 화평을 깨는 원인 제공을 해 놓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부지중에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럴 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나는 상대에게 감정이 없다.” 고집한다면 결국 화평이 이뤄질 수가 없지요.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봐도 내가 화평을 좇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화평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 화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가장 사랑이 넘치고 화목해야 할 곳이지요. 모두가 조금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해 준다면 상하고 얽혔던 감정도 쉽게 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섬기고 희생함으로 화평을 이루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고,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기른 곡식을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지요.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한가위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308장 ---------------------- 다 같이
1.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 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 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2. 추수할 것 많은 때에 일꾼 심히 적으니
열심 있는 일꾼들을 주여 보내 주소서
3. 먼동 틀 때 일어나서 일찍 들에 나아가
황혼 때가 되기까지 추수하게 하소서
4. 거둬 들인 모든 알곡 천국 창고 들인 후
주가 베풀 잔치 자리 우리 참여하겠네
후렴
무르 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는데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아멘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로마서 12:18 -------------------- 인도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설 교 --------------------- 화목한 가정 --------------------- 설교자
2. 설교 예문
갓 시집 와서 살림이 아주 서투른 며느리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직장에 다니랴, 살림하랴 하루하루가 벅찼습니다. 특히 맛있게 밥을 짓고, 반찬을 만드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요. 그런데도 그녀가 버겁다, 힘들다 하지 않고 즐겁게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믿어 주시고 부족한 부분도 어여쁘게 바라봐 주시는 시아버지 때문이었습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진밥을 해 놓으면 “얘, 아가야, 나이 많은 사람은 진밥이 좋단다.” 하며 잘했다고 하십니다. 된밥을 할 때면 “아가야! 진밥도 좋지만 때로는 된밥도 먹기가 좋단다.” 하며 잘했다고 하십니다.
또 어느 날은 밥 속에 돌이 들어 있었는데도 며느리 모르게 휴지에 싸서 버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식사를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돌이 있다며 며느리를 구박하거나 민망하게 하지 않았지요. 그리고 나중에 쌀에 돌이 있는 것 같다며 살펴보라고 했습니다. 며느리는 매사에 자신을 먼저 생각해 주고 배려해 주시는 시아버지의 사랑에 감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사랑은 서로 섬기고 배려할 때 아름답게 피어나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1절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말씀합니다. 곧 고기로 만든 음식이 가득한 부유한 집에서 살며 다투는 것보다 떡 한 조각밖에 없는 가난한 집에서 살더라도 화목한 것이 훨씬 낫다는 뜻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말씀했습니다. 화평이란, 비록 내가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맞춰 줄 수 있고, 내 믿음이 크다 하더라도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는 마음이며,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을 수 있고,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거나 상대의 단점을 보지 않음으로 어느 누구와도 걸리지 않는 마음이지요.
그러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두와 화평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되 생명까지 줄 수 있어야 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던 사도 바울처럼 내 것, 내 입장, 내 스타일 등을 고집하는 자아가 없어야 모든 사람과 화평할 수 있습니다. 화평을 이루면 무례히 행치 않고 자신을 드러내 자랑하지 않습니다. 중심에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한쪽으로 편벽되지도 않지요.
둘째, 자기 의와 틀을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품과 자란 환경이 다릅니다. 교육받은 내용도 믿음의 분량도 다르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고 좋고 나쁨의 기준도 다릅니다. A는 옳다고 해도 B는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서로 자기 입장만 주장해서는 화평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내 입장, 내 기준에 맞추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섬길 때라야 화평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평을 이루는 과정에서 깨우쳐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 편에서는 감정도 없고 화평한데 상대가 나와 화평을 깬다.” 할 때 정말 상대 탓인가 하는 점입니다. 고의는 아닌데 내가 화평을 깨는 원인 제공을 해 놓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부지중에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럴 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나는 상대에게 감정이 없다.” 고집한다면 결국 화평이 이뤄질 수가 없지요.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봐도 내가 화평을 좇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화평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서로 화목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가장 사랑이 넘치고 화목해야 할 곳이지요. 모두가 조금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해 준다면 상하고 얽혔던 감정도 쉽게 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섬기고 희생함으로 화평을 이루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과 과일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사실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을 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고,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도 풍성한 복을 받을 뿐만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20-09-25
제39과믿고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1)
마가복음 11:23~24
읽을말씀 : 마가복음 11:23~24 | 외울말씀 : 요한일서 3:21~22 | 참고 말씀: 야고보서 1:6~8
교육목표 :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믿음으로 간구하여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위대한 믿음의 힘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다음 날 아침에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까지 마른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않으면 무화과나무에 일어난 일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대답하셨습니다(마 21:21~22). 믿음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여 그것으로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8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하셨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어떤 문제라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도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기도하고 구하는 것에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려면 먹을 것, 입을 것 등 필요한 것이 많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호흡입니다. 호흡을 해야 생명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거듭 태어난 하나님 자녀에게도 필요한 것이 많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영이신 하나님과의 대화로서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구하여 응답받는 방법이므로 기도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전능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응답의 여부가 달라집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하나님은 요한계시록 1장 8절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셨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창 1:1~31),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놓인 홍해를 가르고 건너게 하셨습니다(출 14:21~29). 또 이스라엘 백성이 칠 일 동안 여리고성을 돌고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그 견고한 성벽을 순식간에 무너뜨리셨으며(수 6:1~21), 아모리 사람들과 싸우던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간구하니 해와 달도 멈추게 하셨습니다(수 10:12~14).
신약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자를 살리고 갖가지 병든 자를 치료하셨으며(요 11:17~44 ; 마 4:23~24),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하셨습니다(요 9:6~11). 원수 마귀와 귀신의 세력을 말씀으로 물리치셨으며(막 5:1~20),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해도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남게 하셨습니다(막 6:34~44). 뿐만 아니라 풍랑을 잠잠케 함으로써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친히 증거하셨습니다(막 4:35~39). 우리는 이렇게 전능하시며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9~11절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듯이 사랑의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여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주셨는데 무엇인들 주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을 얻고 평화를 누리며 나음을 입었습니다(사 53:5~6). 이처럼 살아 역사하시는 전능자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사람이라면 어떤 시험 환난을 만나더라도 감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것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믿음에 기뻐하며 믿음대로 응답하고 살아 계신 증거를 나타내 주십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게 하여 그 뜻과 섭리를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을 만나 주시며 기사와 표적을 베풀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전능하심을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지 만물만 보고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으며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3.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믿음에는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이 있는데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은 영적 믿음입니다. 육적 믿음은 사람의 지식이나 생각과 일치할 때만 믿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영적 믿음은 사람의 지식이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믿음을 말합니다. 바로 마음에 확신이 오고 응답이 되는 믿음이지요.
야고보서 1장 6~8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의심은 인간의 지식이나 생각, 이론에서 나오며 원수 마귀 사단이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마음은 정함이 없는 간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자녀가 아버지를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겠습니까. 의심하는 것은 비진리인 육신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므로(롬 8:7) 모든 이론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라 하셨습니다(고후 10:5).
우리 믿음이 영적 믿음으로 변화되어 조금도 의심치 않으면 하나님은 무엇이든 구하는 대로 응답하십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여호수아가 요단강의 흐름을 멎게 하며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음으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막 11:23) 하며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치 않으면 그대로 됩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남산더러 들리어 인천 앞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믿음으로 기도하면 응답을 받을까요? 만일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큰 혼란이 야기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영적 믿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응답되지 않지요.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 믿음이 없으면 처음에는 이룰 줄 믿고 기도했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의심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한다면 하나님 뜻에 어긋나게 구했거나 하나님 말씀을 의심한 자신의 허물 때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그 뜻에 어긋나게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뜻에 합하게 기도한다면 무엇이든 구하는 바에 응답받을 수 있으므로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응답을 받으려면 믿음으로 행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 곧 영적 믿음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면 의심이 사라지고 온전히 믿어지는 영적 믿음이 오므로 무엇이든 구하는 바를 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거듭 태어난 하나님 자녀에게도 필요한 것이 많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 )이다. ( )는 영이신 하나님과의 대화로서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이다.
2. ( )은 사람의 지식이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믿음을 말한다.
바로 마음에 확신이 오고 응답이 되는 믿음이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27~3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육신의 생각’
진리에 위배되는 비진리의 생각을 말한다.
마음에 육신이 있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공중에 흩뿌려 놓은 어둠의 전파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 그 통로가 되는 것이 바로 생각이다.
교육목표 :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심하지 않고 온전히 믿음으로 간구하여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위대한 믿음의 힘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게 “이제부터 영원토록 네게 열매가 맺지 못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다음 날 아침에 그 무화과나무가 뿌리까지 마른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겨 “무화과나무가 어찌하여 곧 말랐나이까” 하고 여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않으면 무화과나무에 일어난 일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대답하셨습니다(마 21:21~22). 믿음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여 그것으로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5장 7~8절에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하셨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이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에 그 말씀을 믿고 순종할 때 어떤 문제라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7장 20절에도 “너희가 만일 믿음이 한 겨자씨만큼만 있으면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기라 하여도 옮길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기도하고 구하는 것에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2.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어야
사람이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려면 먹을 것, 입을 것 등 필요한 것이 많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호흡입니다. 호흡을 해야 생명이 유지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거듭 태어난 하나님 자녀에게도 필요한 것이 많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영이신 하나님과의 대화로서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구하여 응답받는 방법이므로 기도할 때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전능자 하나님에 대한 믿음입니다. 얼마나 하나님을 믿고 기도하느냐, 그렇지 않으냐에 따라 응답의 여부가 달라집니다. 과연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하나님은 요한계시록 1장 8절에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셨습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으며(창 1:1~31), 출애굽하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놓인 홍해를 가르고 건너게 하셨습니다(출 14:21~29). 또 이스라엘 백성이 칠 일 동안 여리고성을 돌고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그 견고한 성벽을 순식간에 무너뜨리셨으며(수 6:1~21), 아모리 사람들과 싸우던 여호수아가 여호와께 간구하니 해와 달도 멈추게 하셨습니다(수 10:12~14).
신약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님을 통하여 죽은 자를 살리고 갖가지 병든 자를 치료하셨으며(요 11:17~44 ; 마 4:23~24),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고 앉은뱅이를 일어나 걷게 하셨습니다(요 9:6~11). 원수 마귀와 귀신의 세력을 말씀으로 물리치셨으며(막 5:1~20),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남자만 해도 오천 명이 넘는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남게 하셨습니다(막 6:34~44). 뿐만 아니라 풍랑을 잠잠케 함으로써 우주 만물을 다스리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친히 증거하셨습니다(막 4:35~39). 우리는 이렇게 전능하시며 우리에게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7장 9~11절에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듯이 사랑의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여 독생자도 아끼지 않고 주셨는데 무엇인들 주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사망에서 생명을 얻고 평화를 누리며 나음을 입었습니다(사 53:5~6). 이처럼 살아 역사하시는 전능자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는 사람이라면 어떤 시험 환난을 만나더라도 감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모든 것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며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믿음에 기뻐하며 믿음대로 응답하고 살아 계신 증거를 나타내 주십니다.
천지 만물을 지으시고 인간을 창조한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기록하게 하여 그 뜻과 섭리를 나타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는 사람을 만나 주시며 기사와 표적을 베풀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전능하심을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게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지 만물만 보고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으며 기도하는 것마다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습니다.
3.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아야
믿음에는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이 있는데 응답받을 수 있는 믿음은 영적 믿음입니다. 육적 믿음은 사람의 지식이나 생각과 일치할 때만 믿는 것을 말합니다. 반대로 영적 믿음은 사람의 지식이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믿음을 말합니다. 바로 마음에 확신이 오고 응답이 되는 믿음이지요.
야고보서 1장 6~8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라고 하셨습니다.
의심은 인간의 지식이나 생각, 이론에서 나오며 원수 마귀 사단이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의심하는 마음은 정함이 없는 간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 자녀가 아버지를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면 부모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자녀인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지 못하고 의심한다면 얼마나 안타까워하시겠습니까. 의심하는 것은 비진리인 육신의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므로(롬 8:7) 모든 이론을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라 하셨습니다(고후 10:5).
우리 믿음이 영적 믿음으로 변화되어 조금도 의심치 않으면 하나님은 무엇이든 구하는 대로 응답하십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여호수아가 요단강의 흐름을 멎게 하며 여리고성을 무너뜨릴 수 있었던 것은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음으로 행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막 11:23) 하며 믿음으로 구하고 의심치 않으면 그대로 됩니다.
그런데 서울에 있는 남산더러 들리어 인천 앞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믿음으로 기도하면 응답을 받을까요? 만일 이러한 일이 일어난다면 큰 혼란이 야기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께서 영적 믿음을 주시지 않습니다. 그러니 응답되지 않지요.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 믿음이 없으면 처음에는 이룰 줄 믿고 기도했어도 시간이 지나면서 의심이 생깁니다. 그러므로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한다면 하나님 뜻에 어긋나게 구했거나 하나님 말씀을 의심한 자신의 허물 때문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은 그 뜻에 어긋나게 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뜻에 합하게 기도한다면 무엇이든 구하는 바에 응답받을 수 있으므로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응답을 받으려면 믿음으로 행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믿음, 곧 영적 믿음을 받아야 합니다. 모든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면 의심이 사라지고 온전히 믿어지는 영적 믿음이 오므로 무엇이든 구하는 바를 받을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거듭 태어난 하나님 자녀에게도 필요한 것이 많지만 가장 기본적인 것은 ( )이다. ( )는 영이신 하나님과의 대화로서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이다.
2. ( )은 사람의 지식이나 생각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믿음을 말한다.
바로 마음에 확신이 오고 응답이 되는 믿음이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27~3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육신의 생각’
진리에 위배되는 비진리의 생각을 말한다.
마음에 육신이 있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공중에 흩뿌려 놓은 어둠의 전파를 받아들이게 된다.
이때 그 통로가 되는 것이 바로 생각이다.
2020-09-18
제38과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2)
마태복음 7:7~11
읽을말씀 : 마태복음 7:7~11 | 외울말씀 : 전도서 3:18 | 참고 말씀: 요한계시록 2:10
교육목표 :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고 찾고 두드림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구하라 주실 것이요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물며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얼마나 좋은 것으로 주고자 하시겠습니까.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하셨는데 우리가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 것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능력과 얼굴을 구해야 한다, 둘째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 했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계속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셋째, 일꾼 된 자로서 사명 감당을 위해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며(히 11:6), 각 사람에게 일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계 22:12).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했습니다.
세상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 진급이 되며 더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면 더 큰 사명이 주어지고 많은 상급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받는 상급은 이 땅에서 받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영화로운 것이므로 각자 위치에서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직분이 없는 사람은 일꾼이 되기 위해 구해야 하고 직분을 맡은 사람은 자기 일을 잘 감당하며 더 큰 직분을 바라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권찰은 집사, 집사는 장로가 되기 위해 기도하고 구역장은 조장, 조장은 지역장이 되기 위해 또는 그 이상이 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장로나 집사라는 직분 자체를 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직분과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고 넘치도록 수고하여 더 크게 쓰이기를 사모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이 있는 사람은 맡은 일을 잘 감당하되 더 큰 일을 맡겨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도록 충성하며,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넷째,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풍성하고 건강한 삶을 누릴 뿐 아니라 모든 일에 형통한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가난과 질병을 대신 담당하기 위해 친히 가난한 길을 가셨고 채찍에 맞으셨기 때문입니다(『십자가의 도』 참조).
우리가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한 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십니다(마 6:33). 즉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한 다음, 필요한 먹을 것, 입을 것, 사업터, 일터의 축복, 가족의 건강 등을 위해 기도하면 약속하신 대로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해야지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면 응답하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욕심으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2. 찾으라 찾을 것이요
마태복음 7장 7절을 보면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찾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을 때 어디에 있는지 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하나님께서는 찾으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음 받은 생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에덴동산에서 풍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마음껏 누리며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았지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아담은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말씀하셨는데 이를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것입니다. 이렇게 불순종의 죄를 지음으로 아담에게 죄의 삯인 사망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죽음이란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이 아닌 영의 죽음을 뜻합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습니다(살전 5:23). 그런데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음으로 아담은 더 이상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범죄한 아담은 물론 그의 후손들도 영이 죽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대로 정욕적이고 헛된 것들을 추구하며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전 3:18).
그러므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면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며 사람의 본분을 행해야(전 12:13)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죽은 영을 살릴 수 있는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 안에 오셔서 죽은 영을 살리고 진리와 의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깨우쳐 마음에 양식 삼고 기도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이요,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 과정입니다.
3.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장 7절을 보면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엇을 두드리라고 하신 것일까요? 문을 두드리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했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 문을 두드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 문을 두드릴 차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리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을 말합니다.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말씀을 순종해 나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요한삼서 4절에는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죄를 회개하고 겸비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또한 마음에 양식 삼은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고 하나님의 마음 문을 열심히 두드려야 하지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에 풍성하게 응답하십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림의 상호관계는 씨 뿌림의 비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씨를 심었으면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 주고 비료도 주어야 합니다. 바로 이 씨 뿌리는 작업이 구하는 것이요, 열매를 맺도록 가꾸는 작업이 찾는 것이요, 열매가 잘 자라서 먹게 되는 것이 바로 두드리는 작업이지요.
곧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과정은 분리되어 따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인 것이며 이렇게 구하고 찾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릴 때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하신 만큼 응답을 받습니다.
마가복음 4장 8절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부지런히 구하고 찾고 두드림으로 항상 응답받는 것은 물론,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영적인 사랑과 팔복,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면 ( )이 다시 살아나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 )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2. 문을 두드리라는 것은 바로 ( )을 두드리라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리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 )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27~3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충성’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다. 여기서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육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열심히 일하고 충성한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 66권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뤄 드린다는 뜻이다.
가장 먼저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나가는 충성이 있어야 한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했던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육을 철저히 죽이고 성결되는 것이 바로 영적인 충성이다.
교육목표 : 마음의 성결을 이루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고 찾고 두드림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구하라 주실 것이요
악한 부모라 할지라도 자녀에게는 좋은 것을 주고자 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하물며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은 자녀들에게 얼마나 좋은 것으로 주고자 하시겠습니까.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 하셨는데 우리가 구하는 것마다 응답을 받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 것일까요?
첫째는 하나님의 능력과 얼굴을 구해야 한다, 둘째는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한다 했습니다. 지난주에 이어 계속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셋째, 일꾼 된 자로서 사명 감당을 위해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분이며(히 11:6), 각 사람에게 일한 대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계 22:12).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했습니다.
세상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 진급이 되며 더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사명을 열심히 감당하면 더 큰 사명이 주어지고 많은 상급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받는 상급은 이 땅에서 받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영화로운 것이므로 각자 위치에서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의 일꾼이 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직분이 없는 사람은 일꾼이 되기 위해 구해야 하고 직분을 맡은 사람은 자기 일을 잘 감당하며 더 큰 직분을 바라보고 기도해야 합니다. 권찰은 집사, 집사는 장로가 되기 위해 기도하고 구역장은 조장, 조장은 지역장이 되기 위해 또는 그 이상이 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장로나 집사라는 직분 자체를 구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직분과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고 넘치도록 수고하여 더 크게 쓰이기를 사모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직분이 있는 사람은 맡은 일을 잘 감당하되 더 큰 일을 맡겨도 넉넉히 감당할 수 있도록 충성하며, 하나님 앞에 설 때에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고 칭찬받을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넷째,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풍성하고 건강한 삶을 누릴 뿐 아니라 모든 일에 형통한 것이 당연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가난과 질병을 대신 담당하기 위해 친히 가난한 길을 가셨고 채찍에 맞으셨기 때문입니다(『십자가의 도』 참조).
우리가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한 후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구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더해 주십니다(마 6:33). 즉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한 다음, 필요한 먹을 것, 입을 것, 사업터, 일터의 축복, 가족의 건강 등을 위해 기도하면 약속하신 대로 모든 것을 채워 주십니다.
이때 유의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해야지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면 응답하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욕심으로 하는 기도는 하나님과 상관이 없기 때문입니다.
2. 찾으라 찾을 것이요
마태복음 7장 7절을 보면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찾는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잃어버렸을 때 어디에 있는지 살피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하나님께서는 찾으라고 하시는 것일까요?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음 받은 생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에덴동산에서 풍족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마음껏 누리며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았지요.
그런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아담은 사단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말씀하셨는데 이를 어기고 선악과를 먹은 것입니다. 이렇게 불순종의 죄를 지음으로 아담에게 죄의 삯인 사망이 이르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죽음이란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이 아닌 영의 죽음을 뜻합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습니다(살전 5:23). 그런데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음으로 아담은 더 이상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로써 범죄한 아담은 물론 그의 후손들도 영이 죽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대로 정욕적이고 헛된 것들을 추구하며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전 3:18).
그러므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면 죽은 영이 다시 살아나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곧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하며 사람의 본분을 행해야(전 12:13)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죽은 영을 살릴 수 있는 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선물로 받습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 안에 오셔서 죽은 영을 살리고 진리와 의 가운데로 인도하십니다.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하나님 말씀을 열심히 듣고 깨우쳐 마음에 양식 삼고 기도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죽었던 영이 살아나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이요,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찾는 과정입니다.
3. 두드리라 열릴 것이니
마태복음 7장 7절을 보면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엇을 두드리라고 하신 것일까요? 문을 두드리라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리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했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 문을 두드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 문을 두드리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 문을 두드릴 차례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리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을 말합니다. 성경에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말씀을 순종해 나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요한삼서 4절에는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죄를 회개하고 겸비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또한 마음에 양식 삼은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고 하나님의 마음 문을 열심히 두드려야 하지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하는 것에 풍성하게 응답하십니다.
구하고 찾고 두드림의 상호관계는 씨 뿌림의 비유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씨를 심었으면 좋은 열매를 얻기 위해 물도 주고 잡초도 뽑아 주고 비료도 주어야 합니다. 바로 이 씨 뿌리는 작업이 구하는 것이요, 열매를 맺도록 가꾸는 작업이 찾는 것이요, 열매가 잘 자라서 먹게 되는 것이 바로 두드리는 작업이지요.
곧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과정은 분리되어 따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정인 것이며 이렇게 구하고 찾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릴 때 하나님의 마음에 흡족하신 만큼 응답을 받습니다.
마가복음 4장 8절에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자라 무성하여 결실하였으니 삼십 배와 육십 배와 백배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부지런히 구하고 찾고 두드림으로 항상 응답받는 것은 물론,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영적인 사랑과 팔복,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려면 ( )이 다시 살아나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 )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2. 문을 두드리라는 것은 바로 ( )을 두드리라는 것이다.
3.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리라는 것은 하나님 말씀대로 ( )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27~3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충성’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하셨다. 여기서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육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열심히 일하고 충성한다는 뜻이 아니다. 성경 66권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뤄 드린다는 뜻이다.
가장 먼저는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나가는 충성이 있어야 한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백했던 사도 바울처럼 자신의 육을 철저히 죽이고 성결되는 것이 바로 영적인 충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