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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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14
제33과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1)
잠언 8:13
읽을말씀 : 잠언 8:13 | 외울말씀 : 출애굽기 15:26 | 참고 말씀: 이사야 59:1~2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을 온전히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을 쌓아 나감으로 치료와 응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역사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또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에게 응답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면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소망을 얻을 수 있고 질병은 물론 가정, 자녀, 물질 등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으며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6장 24~26절을 보면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말라기 4장 2절을 보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답답한 외양간에 갇혀 있던 송아지가 풀려나면 얼마나 힘차게 뛰노는지요. 질병과 약함에 얽매인 사람들도 치료의 광선이 임하면 이처럼 얽매인 것이 풀어지고 강건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약함’이란 단순히 몸에 힘이 없고 쇠약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소아마비, 뇌성마비, 지체 장애와 같이 신체의 일부가 퇴화되거나 마비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약함과 각종 질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비춰 주시는 치료의 광선을 쐬면 깨끗이 치료됩니다.
그런데 치료의 광선을 받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바로 하나님 이름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잠언 8장 13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과 거만을 싫어하고 악한 행실을 미워하십니다.
따라서 선이신 하나님과 반대되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면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부부간에도 정말 사랑한다면 서로가 슬퍼할 일을 하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편을 택하여 기쁨과 평안을 주려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독생자를 화목 제물로 삼아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을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안다면 우리도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진실로 그러하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악을 철저히 미워합니다.
여러분이 예전에 누군가를 미워할 때 어떻게 대했습니까? 보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고, 가까이하기도 싫었을 것입니다. 그 미워하는 상대가 어디에 있다고 하면 그곳에 함께 있기도 싫어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악은 그 모양도 보기 싫어야 하고 가까이하기도 싫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바로 죄와 악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악은 원수 마귀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 사랑합니다. 경외합니다.” 하면서 여전히 악은 미워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머리로는 자신도 악을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악을 품고 있고, 악한 것을 보고 있으며, 악한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지요. 이것은 그 마음에서 진실로 악을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한다, 경외한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2.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자녀에게 무엇이나 다 해 주고 싶고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믿음의 자녀들이 잘되기 원하고 그들의 삶의 모든 분야에 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에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또한 잠언 8장 17절을 통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면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 놀라운 사랑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기쁘시게 하면 구하는 것마다 온전한 응답과 축복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행함이 필요할까요?
먼저, 죄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사랑 자체이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은 모두 우리를 위한 것으로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형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경외하는 모습입니다. 만일 자신에게 응답받을 문제가 있다면 더더욱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악으로 인해 시험에 들고 갖가지 문제가 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물질에 미혹을 받아 어려움을 당했다고 합시다. 내가 미혹받고 상대가 나를 속일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에게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어려움을 갖다준 상대를 미워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는 ‘욕심’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내 안에 욕심이나 사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요.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젠가 또다시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4~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발견하여 제거하는 것이 지혜로운 해결 방법입니다. 물질의 문제뿐 아니라 질병이나 연약함 등 모든 문제에는 근본 이유가 있습니다.
질병의 원인에 대하여 출애굽기 15장 26절을 보면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어떠한 질병에도 걸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만일 질병이 왔다면 하나님의 뜻에 위배하여 행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배한 것이 죄의 담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가로막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하여 지켜 주지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59장 1~2절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질병을 비롯한 모든 문제에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자신 사이를 가로막은 죄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마다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어떠한 행함이 필요한지 두 번째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 )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말씀했다.
2.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 )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하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01~11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교만한 사람’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섬김 받고 높아지려 하며 자기 유익과 명예를 위해 악을 쌓아간다. 또한 하나님을 무시하므로 말씀대로 행치 않는다. 잠언 16:5에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하셨다.
선인은 선인끼리 악인은 악인끼리 모이듯 교만한 사람은 악한 사람과 손을 잡는다. 교만을 회개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형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악을 온전히 버리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선을 쌓아 나감으로 치료와 응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이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역사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입니다. 또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사람에게 응답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을 만나면 어떤 어려움 가운데서도 소망을 얻을 수 있고 질병은 물론 가정, 자녀, 물질 등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받으며 풍성한 축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민수기 6장 24~26절을 보면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말라기 4장 2절을 보면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너희가 나가서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같이 뛰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답답한 외양간에 갇혀 있던 송아지가 풀려나면 얼마나 힘차게 뛰노는지요. 질병과 약함에 얽매인 사람들도 치료의 광선이 임하면 이처럼 얽매인 것이 풀어지고 강건케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약함’이란 단순히 몸에 힘이 없고 쇠약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소아마비, 뇌성마비, 지체 장애와 같이 신체의 일부가 퇴화되거나 마비된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약함과 각종 질병에 걸린 사람이라도 하나님께서 비춰 주시는 치료의 광선을 쐬면 깨끗이 치료됩니다.
그런데 치료의 광선을 받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붙습니다. 바로 하나님 이름을 경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잠언 8장 13절을 보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과 거만을 싫어하고 악한 행실을 미워하십니다.
따라서 선이신 하나님과 반대되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입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면 상대가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부부간에도 정말 사랑한다면 서로가 슬퍼할 일을 하지 않고 상대가 원하는 편을 택하여 기쁨과 평안을 주려 합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사랑을 베푸셨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독생자를 화목 제물로 삼아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지요.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사랑을 공급해 주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안다면 우리도 당연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해야 합니다. 진실로 그러하다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악을 철저히 미워합니다.
여러분이 예전에 누군가를 미워할 때 어떻게 대했습니까? 보기도 싫고, 말하기도 싫고, 가까이하기도 싫었을 것입니다. 그 미워하는 상대가 어디에 있다고 하면 그곳에 함께 있기도 싫어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악은 그 모양도 보기 싫어야 하고 가까이하기도 싫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바로 죄와 악이기 때문입니다. 죄와 악은 원수 마귀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하나님 사랑합니다. 경외합니다.” 하면서 여전히 악은 미워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머리로는 자신도 악을 미워하고 싫어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악을 품고 있고, 악한 것을 보고 있으며, 악한 말과 행동을 하기도 하지요. 이것은 그 마음에서 진실로 악을 미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그만큼 ‘하나님을 사랑한다, 경외한다’ 말할 수도 없습니다.
2.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자녀에게 무엇이나 다 해 주고 싶고 좋은 것을 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도 믿음의 자녀들이 잘되기 원하고 그들의 삶의 모든 분야에 복을 주기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11절에는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하셨습니다.
또한 잠언 8장 17절을 통해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면 능력의 하나님을 만나 놀라운 사랑을 입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간절히 찾으며 기쁘시게 하면 구하는 것마다 온전한 응답과 축복을 받아 마음껏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행함이 필요할까요?
먼저, 죄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며 사랑 자체이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씀은 모두 우리를 위한 것으로 그 말씀대로 순종하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형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명령에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서 마땅한 일입니다. 이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는 것이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고 경외하는 모습입니다. 만일 자신에게 응답받을 문제가 있다면 더더욱 악을 미워해야 합니다. 악으로 인해 시험에 들고 갖가지 문제가 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물질에 미혹을 받아 어려움을 당했다고 합시다. 내가 미혹받고 상대가 나를 속일 수 있었던 것은 나 자신에게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내게 어려움을 갖다준 상대를 미워할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있는 ‘욕심’을 미워해야 합니다. 그 사람으로 인해 내 안에 욕심이나 사심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여 버릴 수 있게 되었으니 오히려 감사해야 하지요.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언젠가 또다시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4~15절에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 발견하여 제거하는 것이 지혜로운 해결 방법입니다. 물질의 문제뿐 아니라 질병이나 연약함 등 모든 문제에는 근본 이유가 있습니다.
질병의 원인에 대하여 출애굽기 15장 26절을 보면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어떠한 질병에도 걸리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지켜 주십니다. 만일 질병이 왔다면 하나님의 뜻에 위배하여 행한 것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위배한 것이 죄의 담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를 가로막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부족하여 지켜 주지 못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 59장 1~2절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질병을 비롯한 모든 문제에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하나님과 자신 사이를 가로막은 죄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마다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어떠한 행함이 필요한지 두 번째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 )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말씀했다.
2.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 온전한 응답을 받으려면 먼저 ( )의 담을 허는 것이 중요하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01~11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교만한 사람’
교만한 사람은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의 지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섬김 받고 높아지려 하며 자기 유익과 명예를 위해 악을 쌓아간다. 또한 하나님을 무시하므로 말씀대로 행치 않는다. 잠언 16:5에 “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하리라” 하셨다.
선인은 선인끼리 악인은 악인끼리 모이듯 교만한 사람은 악한 사람과 손을 잡는다. 교만을 회개하고 겸손한 사람이 되어야 형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2020-08-07
제32과마음의 소원을 이루려면
시편 37:4
읽을말씀 : 시편 37:4 | 외울말씀 : 마태복음 7:21 | 참고 말씀: 히브리서 11:6
교육목표 :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으로 마음의 소원에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어찌 사랑하는 자녀의 간구에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8장 32절을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정녕 믿는다면 우리 삶 가운데 풍성한 축복을 누리며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마음 됨됨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기를 원합니다. 질병에 시달리다 의학의 한계에 부딪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이 넉넉하지만 자녀가 없어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터, 사업터에 문제가 있어 하나님을 찾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선한 양심을 좇아 찾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소원을 응답받아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도 응답받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응답받기를 포기하거나 아예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있는지, 아니면 반신반의하거나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왔는지 자신의 마음 됨됨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막연히 무신론을 신봉하거나 우상을 섬기기도 하고 물질, 권세 또는 자신을 믿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큰 시험 환난이 찾아오면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해 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다가 한계에 이르면 우상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낙심하여 자포자기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이는 믿음이 있어서 나온 경우가 아니므로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혹시나 하는 막연한 기대의 마음이 더 강하기 마련입니다. 인류 역사와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응답하시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약 1:6~8).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원한다면 의심과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모든 것을 응답받은 줄로 믿고 구해야 합니다(막 11:24). 그럴 때 능력의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푸시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2. 구원의 확신과 신앙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다니지만 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영적인 갈급함과 곤고함 때문에 방황하는 이도 있고 영적인 교만으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는데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수십 년간 신앙생활을 하며 충성 봉사했으나 정작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마음에 믿는 사람에게는 행함의 증거가 따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음을 믿기에 어찌하든 성경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생명 주신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기 원하며 자연히 죄를 버려 나갑니다. 또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과 형제를 내 몸같이 사랑합니다. 미워하며 시기하거나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희생하는 등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의 증거를 내보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거룩한 행함이 나올 수 있는 마음을 이루는 것, 곧 마음의 할례를 이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마음에 믿고 말씀대로 행하면서 입으로 주의 이름을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도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확신이 없다면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는 확신이 없다면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입술로는 믿는다 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는 사람에 대해 마태복음 7장 21절에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고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면 응답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설령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시 66:18).
따라서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여 회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변화되면 하나님께서는 직장, 건강, 물질, 대인관계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만일 부모가 자녀의 문제로 하나님을 찾았다면 하나님은 무엇이 원인인지 깨닫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알려 주시지요. 그 문제는 자녀 탓일 수도 있지만 부모로 인한 경우도 많기 때문에 진리에 비추어 자신에게 잘못된 점이 있으면 회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며 진리 안에서 양육한다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렇게 늘 자신의 신앙상태를 점검하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진리를 깨우치게 됩니다. 그런 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 때와는 달리 장성하면 부모의 마음을 알고 부모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진리를 알고 깨우치는 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시편 37편 4절을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 곧 영적인 기쁨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영적인 기쁨을 누림으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며(잠 8:17)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기뻐하며 의와 공평, 모든 선행과 중심에서 드린 예물 그리고 의로운 제사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십니다(시 51:19; 147:11; 잠 21:3). 그 밖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찬양과 기도, 예배와 예물과 선행 등 모든 행함이 믿음 가운데서 나와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만 있으면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으며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를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 구원의 확신과 ( )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셋째, 하나님을 ( ) 하는 행함을 나타내야 한다.
2.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거룩한 행함이 나올 수 있는 마음을 이루는 것, 곧 ( )를 이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마음에 믿고 말씀대로 행하면서 입으로 주의 이름을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른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01~11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마음 됨됨이’란?
사람이 얼마나 그 마음을 넓혀서 사용해 주느냐와 어떤 일을 시켰을 때 마음을 얼마큼 능력 있게 사용해 주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 일을 시켰을 때 시키지 않은 일까지도 알아서 해 놓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 됨됨이가 참으로 좋은 것이요, 그는 어디서나 충성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함으로 마음의 소원에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랑하지도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기까지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어찌 사랑하는 자녀의 간구에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로마서 8장 32절을 보면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 하시겠느뇨”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정녕 믿는다면 우리 삶 가운데 풍성한 축복을 누리며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마음 됨됨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이런저런 문제를 해결받고 응답받기를 원합니다. 질병에 시달리다 의학의 한계에 부딪혀 하나님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모든 것이 넉넉하지만 자녀가 없어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터, 사업터에 문제가 있어 하나님을 찾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선한 양심을 좇아 찾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소원을 응답받아 감사와 기쁨이 넘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간이 지나도 응답받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응답받기를 포기하거나 아예 하나님을 떠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해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믿고 있는지, 아니면 반신반의하거나 요행을 바라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왔는지 자신의 마음 됨됨이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전에는 막연히 무신론을 신봉하거나 우상을 섬기기도 하고 물질, 권세 또는 자신을 믿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큰 시험 환난이 찾아오면 어떻게든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해 보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다가 한계에 이르면 우상에게 의지하기도 하고 그래도 안 되면 낙심하여 자포자기하기도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이 종종 있습니다. 이는 믿음이 있어서 나온 경우가 아니므로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기보다는 혹시나 하는 막연한 기대의 마음이 더 강하기 마련입니다. 인류 역사와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의심하는 마음이 있으면 응답하시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약 1:6~8).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원한다면 의심과 요행을 바라는 마음을 버리고 모든 것을 응답받은 줄로 믿고 구해야 합니다(막 11:24). 그럴 때 능력의 하나님께서 사랑을 베푸시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2. 구원의 확신과 신앙상태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에는 다니지만 영적인 성장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영적인 갈급함과 곤고함 때문에 방황하는 이도 있고 영적인 교만으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는데 깨닫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수십 년간 신앙생활을 하며 충성 봉사했으나 정작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겠습니까?
로마서 10장 10절에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했습니다. 마음에 믿는 사람에게는 행함의 증거가 따릅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죽으셨음을 믿기에 어찌하든 성경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생명 주신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기 원하며 자연히 죄를 버려 나갑니다. 또 말씀에 순종하여 이웃과 형제를 내 몸같이 사랑합니다. 미워하며 시기하거나 자기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섬기고 희생하는 등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의 증거를 내보입니다.
따라서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거룩한 행함이 나올 수 있는 마음을 이루는 것, 곧 마음의 할례를 이뤄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마음에 믿고 말씀대로 행하면서 입으로 주의 이름을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르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랫동안 교회에 다니면서도 자신이 구원을 받았는지 확신이 없다면 신앙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가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라는 확신이 없다면 하나님 뜻대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입술로는 믿는다 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치 않는 사람에 대해 마태복음 7장 21절에는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말씀하십니다.
구원의 확신이 없고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성립되지 않았다면 응답받을 수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설령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가 성립되었다 해도 하나님 보시기에 잘못된 것이 있으면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시 66:18).
따라서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과 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무엇인지를 발견하여 회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것을 회개하고 변화되면 하나님께서는 직장, 건강, 물질, 대인관계 등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만일 부모가 자녀의 문제로 하나님을 찾았다면 하나님은 무엇이 원인인지 깨닫도록 진리의 말씀으로 알려 주시지요. 그 문제는 자녀 탓일 수도 있지만 부모로 인한 경우도 많기 때문에 진리에 비추어 자신에게 잘못된 점이 있으면 회개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리고 자녀를 하나님께 맡기며 진리 안에서 양육한다면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이렇게 늘 자신의 신앙상태를 점검하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 뜻대로 행할 때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을 나타내야 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진리를 깨우치게 됩니다. 그런 만큼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어린아이 때와는 달리 장성하면 부모의 마음을 알고 부모를 기쁘게 하는 방법을 터득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도 진리를 알고 깨우치는 만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시편 37편 4절을 보면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말씀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 소원을 이루어 주시는 것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그분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기뻐하라는 것은 성령의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이 주시는 참된 기쁨, 곧 영적인 기쁨을 누리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영적인 기쁨을 누림으로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을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할 때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며(잠 8:17)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돌려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를 기뻐하며 의와 공평, 모든 선행과 중심에서 드린 예물 그리고 의로운 제사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십니다(시 51:19; 147:11; 잠 21:3). 그 밖에 열심히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을 높여 찬양하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우리의 찬양과 기도, 예배와 예물과 선행 등 모든 행함이 믿음 가운데서 나와야 하나님의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만 있으면 마음의 소원까지도 응답받으며 불가능한 일이 없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 )를 살펴보아야 한다.
둘째, 구원의 확신과 ( )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셋째, 하나님을 ( ) 하는 행함을 나타내야 한다.
2. 마음에 믿는다는 것은 거룩한 행함이 나올 수 있는 마음을 이루는 것, 곧 ( )를 이뤄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마음에 믿고 말씀대로 행하면서 입으로 주의 이름을 시인할 때 구원에 이른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101~11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마음 됨됨이’란?
사람이 얼마나 그 마음을 넓혀서 사용해 주느냐와 어떤 일을 시켰을 때 마음을 얼마큼 능력 있게 사용해 주느냐 하는 것이다. 어떤 한 가지 일을 시켰을 때 시키지 않은 일까지도 알아서 해 놓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마음 됨됨이가 참으로 좋은 것이요, 그는 어디서나 충성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2020-07-31
제31과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열왕기상 18:41~45
읽을말씀 : 열왕기상 18:41~45 | 외울말씀 : 요한복음 4:48 | 고 말씀: 열왕기하 2:11
교육목표 : 우상 숭배에 젖은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한 엘리야의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을 본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 엘리야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섬겨야 할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숭배하며 많은 악을 행했고, 아합왕 때에는 우상 숭배가 극에 달하였습니다. 이방 여인인 왕비 이세벨이 가져온 바알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가 만연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아합왕에게 전달하는 것이 엘리야의 첫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왕은 회개하고 돌이키기보다는 가뭄의 재앙을 선포한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기에 다시 아합왕에게 가라 명하셨을 때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무조건 순종하는 믿음을 기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사랑하며 그의 말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불의 응답을 받으며, 산 채로 들림 받기까지 했습니다(왕하 2:11). 엘리야는 표적이 따르는 믿음을 소유했기에 불의 응답을 받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였고 큰비가 내릴 것을 예언하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대로 아합왕 앞에 나아가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고 담대하게 가뭄을 예언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위협받을 줄 아신 하나님은 그를 그릿 시냇가에 숨게 하시고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공급하십니다.
그러나 가뭄이 심하여 얼마 있지 않아 그릿 시내까지 마르자,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르밧으로 보내셨습니다. 그곳에 한 과부를 예비하고 그녀에게 공궤받도록 하셨습니다. 가뭄으로 물은커녕 양식조차 구하기 어려운 때에 엘리야가 과부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며 양식을 달라고 하자,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비록 마지막 남은 귀한 양식이었지만 순종하는 행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그 집에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축복하셨습니다(왕상 17:14).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놀라운 일을 베푸십니다. 어느 날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숨이 끊어지자 엘리야의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에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처럼, 마음이 강퍅한 현세대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엘리야와 같은 ‘믿음과 순종, 간절한 부르짖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2. 간절한 기도로 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엘리야가 가뭄을 예언한 지 수년이 지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왕 앞에 나타난 것은 가뭄이 3년 6개월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을 때였습니다(눅 4:25).
당시 엘리야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아합왕은 그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려 이웃나라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는데도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여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왕에게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자신에게 나아오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3년 반 동안의 가뭄이 왕과 백성의 우상 숭배로 인한 재앙임을 알았기에 우상을 멸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자 그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으니 우상 숭배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담대히 행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방 선지자들 앞에 혈혈단신으로 선 엘리야는 ‘제물 위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선포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만이 불로 응답하실 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먼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고 합니다. 이에 바알의 선지자들이 송아지를 잡고 아침부터 저녁소제 드릴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응답하기를 구했으나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엘리야가 백성을 가까이 모으고 하나님 앞에 단을 쌓은 뒤 벌여 놓은 나무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7)
엘리야의 기도에는 자신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로지 여호와만이 살아 계신 하나님임을 증거하려는 일념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웠고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광경을 목도하고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고백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믿음으로 구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었기에 그런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만약 불의 응답이 오지 않았다면 엘리야는 아합왕과 거짓 선지자들이 보는 앞에서 죽임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했기에 자신을 잡으려는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엘리야의 믿음에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셔서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기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3년 반 동안이나 계속된 가뭄이라면 무엇보다 귀한 것이 물인데 그 물을 통 넷에 채워 세 번씩 제단에 부었습니다(왕상 18:33~34). 엘리야가 이렇게 믿음을 내보이며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린 것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고후 9:6~7).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대로 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증거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3. 큰비가 내리기까지 믿음으로 행한 엘리야
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선포했던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합왕에게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는데 이는 비를 내리리라 하신 하나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며 응답받기 위한 행함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였습니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는 것은 너무나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하니 배가 뒤틀리고 창자가 꼬이면서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으며 중심 다해 기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8장 42~44절에는 그가 사환에게 바다 편을 바라보게 하고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일곱 차례나 기도하였음을 말씀합니다. 이렇듯 간절한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며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닫힌 하늘을 열어 비를 오게 하는 기도이니 얼마나 힘과 뜻과 정성을 다했겠습니까.
엘리야는 불의 응답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비의 응답을 받을 때에도 입으로 미리 시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을 뿐인데도 왕에게 비에 막히지 않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라며 큰비가 올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였습니다(왕상 18:44).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역사하셔서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큰비가 내렸습니다. 이와 같이 엘리야를 통하여 불의 응답을 주시고 하늘문을 열어 단비를 주신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에도 응답하며 놀라운 복으로 채워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엘리야가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는 것은 너무나 간절하게 ( )하니 배가 뒤틀리고 창자가 꼬이면서 얼굴이 무릎사이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2. 엘리야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기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87~97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겸비한 마음으로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은 엘리야’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기 전 매우 유약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자신은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기에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었다.
겸비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주장하지 않았고,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지도 않았다. 또한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았기에 그가 있는 곳에는 화평이 깨어지는 일이 없었다.
이러한 모습이 육으로는 우유부단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영으로 변화된다면 큰 선지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되는 마음이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이런 마음의 선을 크게 사시고 연단을 통해 큰 선지자로 쓰셨다.
교육목표 : 우상 숭배에 젖은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한 엘리야의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순종을 본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한 엘리야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섬겨야 할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 대신 우상을 숭배하며 많은 악을 행했고, 아합왕 때에는 우상 숭배가 극에 달하였습니다. 이방 여인인 왕비 이세벨이 가져온 바알신을 섬기는 우상 숭배가 만연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으로 수년 동안 비가 내리지 않으리라는 말씀을 아합왕에게 전달하는 것이 엘리야의 첫 사명이었습니다.
그런데 아합왕은 회개하고 돌이키기보다는 가뭄의 재앙을 선포한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졌기에 다시 아합왕에게 가라 명하셨을 때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무조건 순종하는 믿음을 기쁘게 여기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지극히 사랑하며 그의 말을 보장해 주셨습니다. 죽은 사람을 살리고 불의 응답을 받으며, 산 채로 들림 받기까지 했습니다(왕하 2:11). 엘리야는 표적이 따르는 믿음을 소유했기에 불의 응답을 받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였고 큰비가 내릴 것을 예언하니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대로 아합왕 앞에 나아가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왕상 17:1)고 담대하게 가뭄을 예언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엘리야가 아합왕에게 위협받을 줄 아신 하나님은 그를 그릿 시냇가에 숨게 하시고 까마귀를 통해 떡과 고기를 공급하십니다.
그러나 가뭄이 심하여 얼마 있지 않아 그릿 시내까지 마르자, 하나님은 엘리야를 사르밧으로 보내셨습니다. 그곳에 한 과부를 예비하고 그녀에게 공궤받도록 하셨습니다. 가뭄으로 물은커녕 양식조차 구하기 어려운 때에 엘리야가 과부에게 하나님 말씀을 전하며 양식을 달라고 하자, 그녀는 주저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비록 마지막 남은 귀한 양식이었지만 순종하는 행함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가뭄이 끝나는 날까지 그 집에 양식이 떨어지지 않게 축복하셨습니다(왕상 17:14).
그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통해 사르밧 과부의 아들을 살리는 놀라운 일을 베푸십니다. 어느 날 과부의 아들이 병들어 숨이 끊어지자 엘리야의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4장 48절에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하신 것처럼, 마음이 강퍅한 현세대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기 위해서는 엘리야와 같은 ‘믿음과 순종, 간절한 부르짖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2. 간절한 기도로 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엘리야가 가뭄을 예언한 지 수년이 지나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왕 앞에 나타난 것은 가뭄이 3년 6개월 동안이나 계속되고 있을 때였습니다(눅 4:25).
당시 엘리야 때문에 비가 오지 않는다고 생각한 아합왕은 그를 잡아들이라는 명령을 내려 이웃나라까지 샅샅이 뒤졌으나 잡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생명을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는데도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여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그리고는 왕에게 바알 선지자 450인과 아세라 선지자 400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자신에게 나아오게 하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야는 3년 반 동안의 가뭄이 왕과 백성의 우상 숭배로 인한 재앙임을 알았기에 우상을 멸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고자 그들에게 도전장을 내민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으니 우상 숭배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담대히 행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방 선지자들 앞에 혈혈단신으로 선 엘리야는 ‘제물 위에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 선포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만이 불로 응답하실 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엘리야는 먼저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너희는 많으니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고 합니다. 이에 바알의 선지자들이 송아지를 잡고 아침부터 저녁소제 드릴 때까지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응답하기를 구했으나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엘리야가 백성을 가까이 모으고 하나님 앞에 단을 쌓은 뒤 벌여 놓은 나무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 시작합니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왕상 18:37)
엘리야의 기도에는 자신의 영광과 능력을 나타내고자 함이 아니라 오로지 여호와만이 살아 계신 하나님임을 증거하려는 일념이 나타나 있습니다. 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웠고 도랑의 물을 핥았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광경을 목도하고 엎드려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고백하며 회개하였습니다.
엘리야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믿음으로 구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었기에 그런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만약 불의 응답이 오지 않았다면 엘리야는 아합왕과 거짓 선지자들이 보는 앞에서 죽임당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신뢰했기에 자신을 잡으려는 사람들 앞에서 담대히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엘리야의 믿음에 하나님은 불로 응답하셔서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알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엘리야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기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3년 반 동안이나 계속된 가뭄이라면 무엇보다 귀한 것이 물인데 그 물을 통 넷에 채워 세 번씩 제단에 부었습니다(왕상 18:33~34). 엘리야가 이렇게 믿음을 내보이며 하나님께 가장 귀한 것을 드린 것은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고후 9:6~7).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대로 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증거를 나타내 주셨습니다.
3. 큰비가 내리기까지 믿음으로 행한 엘리야
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선포했던 엘리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아합왕에게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라고 전했습니다. 그리고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는데 이는 비를 내리리라 하신 하나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며 응답받기 위한 행함이었습니다.
엘리야는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였습니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는 것은 너무나 간절하게 부르짖어 기도하니 배가 뒤틀리고 창자가 꼬이면서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으며 중심 다해 기도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엘리야는 응답을 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열왕기상 18장 42~44절에는 그가 사환에게 바다 편을 바라보게 하고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일곱 차례나 기도하였음을 말씀합니다. 이렇듯 간절한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며 하나님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3년 반 동안이나 닫힌 하늘을 열어 비를 오게 하는 기도이니 얼마나 힘과 뜻과 정성을 다했겠습니까.
엘리야는 불의 응답을 받을 때와 마찬가지로 비의 응답을 받을 때에도 입으로 미리 시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났을 뿐인데도 왕에게 비에 막히지 않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라며 큰비가 올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였습니다(왕상 18:44). 하나님께서 그 믿음대로 역사하셔서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 하늘이 캄캄해지더니 큰비가 내렸습니다. 이와 같이 엘리야를 통하여 불의 응답을 주시고 하늘문을 열어 단비를 주신 하나님은 우리 마음의 소원에도 응답하며 놀라운 복으로 채워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엘리야가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했다는 것은 너무나 간절하게 ( )하니 배가 뒤틀리고 창자가 꼬이면서 얼굴이 무릎사이로 들어갔다는 뜻이다.
2. 엘리야가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하고 기도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87~97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겸비한 마음으로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은 엘리야’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기 전 매우 유약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자신은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기에 자신감이 없는 모습이었다.
겸비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주장하지 않았고, 자기 의견을 관철시키려 하지도 않았다. 또한 누구와도 부딪치지 않았기에 그가 있는 곳에는 화평이 깨어지는 일이 없었다.
이러한 모습이 육으로는 우유부단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영으로 변화된다면 큰 선지자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본 바탕이 되는 마음이었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이런 마음의 선을 크게 사시고 연단을 통해 큰 선지자로 쓰셨다.
2020-07-24
제30과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2)
사도행전 10:1~8
읽을말씀 : 사도행전 10:1~8 | 외울말씀 : 잠언 8:13 | 참고 말씀: 사도행전 9장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을 행하며 믿음으로 정성껏 심음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의식주 문제 등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니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의식주 문제로 고민한다면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염려, 근심, 걱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지요.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려면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예수님 앞에 나와 마음의 소원을 이룬 소경 거지 바디매오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지요. 그는 주변에서 잠잠하라 하는 말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더 큰 소리로 부르짖는 믿음의 행함을 내보임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과 축복을 주신 내용이 나옵니다. 고넬료는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 군대인 이달리야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 베드로가 머문 곳을 알려 주며, 그를 초청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도 환상과 성령의 음성으로써 고넬료의 초청을 허락하고 그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지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 보니, 그는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까지 모아 놓고 사모함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전하자 성령이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고넬료뿐만 아니라, 그의 일가와 함께한 친구들까지도 구원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넬료가 이렇게 축복받은 이유는 사도행전 10장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말씀한 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가 가족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으며 신뢰받는 가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온 가족이 그에게 순종하여 하나 될 수 있었고,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가족도 본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자녀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 줘도 그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자녀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본을 보였다면, 자녀도 이를 본받으며 자랐을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선과 진리, 사랑으로 자녀를 대한다면 자녀도 자연히 부모를 닮아갑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며, 그럴 때 자연히 자녀도 변화돼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과 사랑 가운데 행했기에 가족에게 인정받았고, 가족도 그를 따라 하나님을 경외한 것입니다.
또한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선이 가득한 사람은 말이나 행실에서 선이 나옵니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은 하지 않고, 편안함과 용기를 주는 말, 따뜻함을 주는 말,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이 나옵니다. 또한 착한 행실, 덕과 사랑을 끼치는 행실이 나옵니다.
고넬료는 그러했습니다. 그가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 했는데, 선함과 덕스러움이 ‘구제’라는 행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구제는 물질이 넉넉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영혼을 사랑하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22절에 보면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백부장이면서도 피지배국인 유대 백성을 많이 구제했기 때문에 유대 온 족속에게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 없는 구제는 진정한 구제라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물질로 구제해도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구제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했습니다. 고넬료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영혼들을 사랑함으로 구제했고, 이러한 그의 진심이 유대 백성에게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10장 4절을 보면, 그의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 앞에도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 했는데, 그래서 그는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범사에 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응답을 앞당기는 비결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볼 때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하는 것과 작은 것이라도 나누며 힘이 되어 주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상대가 어떤 것을 잘했을 때 마음으로만 함께 기뻐하는 것과 칭찬과 축하의 말을 하는 것도 다릅니다. 작은 선물 하나,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로 표현했을 때와 안했을 때 많은 차이가 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있는 선과 사랑을 좀 더 적극적인 말과 행실로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행함을 보고 기뻐하시며, 응답과 축복을 주실 수 있도록 부지런히 선을 쌓아야 하겠습니다.
셋째, 믿음으로 정성껏 심어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데 이는 영적으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 한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응답받고자 한다면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심어야 합니다. 큰 것을 받으려면 더 많이 심고 더 큰 정성을 내보여야 하지요. 기도로, 믿음의 행함으로 심고 봉사와 감사로 심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지혜와 능력, 시간을 들여 심어야 하며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하셨으니 마음을 담아 물질로도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심을 때 거두게 되는데, 기도와 찬송을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됩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하면 질병이 떠나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습니다.
또한 십일조와 감사 예물 등 물질로 열심히 드리면 물질의 축복이 임하여 마음껏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십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 말씀하셨으니(요 5:29) 성령을 좇아 선의 행함으로 심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9장에는 욥바에 사는 다비다라는 여제자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다비다는 믿음이 있을 뿐 아니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주님의 가르침대로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습니다. 이렇게 선행과 구제로 심은 다비다는 그 열매로써 자신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다비다가 병들어 죽자 평소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나서서 다시 살려 줄 것을 간절히 구하였고, 다비다의 행함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기도를 통해 다시 살려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모든 것을 공의와 사랑 가운데 이루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요소들을 온전히 벗어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온전히 버리며, 선으로 채우기를 힘써야 하지요. 또 믿음으로 구하고 정성으로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행함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건강, 물질, 명예 등 구하는 것마다 넘치도록 주시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항상 풍성한 축복과 응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한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 )을 행해야 한다.
셋째, ( )으로 정성껏 심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73~8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구제’
믿음의 형제가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말로만 안타까워하고 행함이 없다면 구제라 할 수 없다(약 2:15~16). 진정한 구제는 형제가 어려울 때 내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혹자는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도와줍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자녀가 굶고 있으면 가만히 있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형제에게 내 자녀와 같이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구제는 옳지 않다. 범죄하여 징계를 받아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제하거나, 게을러서 놀고 돈만 있으면 도박하고 술 마시는 사람을 구제한다면 죄를 짓게 도와주는 것과 같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구제는 축복이 막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올바른 구제를 해야 한다.
교육목표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을 행하며 믿음으로 정성껏 심음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하나님께서 의식주 문제 등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니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의식주 문제로 고민한다면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염려, 근심, 걱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우리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지요.
지난 시간에는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려면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마가복음 10장에 예수님 앞에 나와 마음의 소원을 이룬 소경 거지 바디매오를 예로 들어 설명하였지요. 그는 주변에서 잠잠하라 하는 말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더 큰 소리로 부르짖는 믿음의 행함을 내보임으로 치료를 받았습니다.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속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선을 행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고넬료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과 축복을 주신 내용이 나옵니다. 고넬료는 당시 이스라엘을 지배하던 로마 군대인 이달리야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넬료에게 천사를 보내 베드로가 머문 곳을 알려 주며, 그를 초청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도 환상과 성령의 음성으로써 고넬료의 초청을 허락하고 그 집에 가서 복음을 전하게 하셨지요.
베드로가 고넬료의 집에 가 보니, 그는 일가와 가까운 친구들까지 모아 놓고 사모함으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전하자 성령이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고넬료뿐만 아니라, 그의 일가와 함께한 친구들까지도 구원받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고넬료가 이렇게 축복받은 이유는 사도행전 10장 2절에 “그가 경건하여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하며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 하나님께 항상 기도하더니”라고 말씀한 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행함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는 것으로 보아 그가 가족에게 인정과 사랑을 받으며 신뢰받는 가장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온 가족이 그에게 순종하여 하나 될 수 있었고, 그가 하나님을 사랑하니 가족도 본받아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 것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자녀에게 구원의 길을 알려 줘도 그 길을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자녀만의 잘못이 아닙니다.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본을 보였다면, 자녀도 이를 본받으며 자랐을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에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선과 진리, 사랑으로 자녀를 대한다면 자녀도 자연히 부모를 닮아갑니다.
그러므로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며, 그럴 때 자연히 자녀도 변화돼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고넬료는 하나님을 경외하며 선과 사랑 가운데 행했기에 가족에게 인정받았고, 가족도 그를 따라 하나님을 경외한 것입니다.
또한 고넬료는 백성을 많이 구제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여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선이 가득한 사람은 말이나 행실에서 선이 나옵니다.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거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은 하지 않고, 편안함과 용기를 주는 말, 따뜻함을 주는 말, 생명으로 인도하는 진리의 말이 나옵니다. 또한 착한 행실, 덕과 사랑을 끼치는 행실이 나옵니다.
고넬료는 그러했습니다. 그가 백성을 많이 구제했다 했는데, 선함과 덕스러움이 ‘구제’라는 행실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구제는 물질이 넉넉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영혼을 사랑하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 22절에 보면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했습니다. 고넬료는 로마의 백부장이면서도 피지배국인 유대 백성을 많이 구제했기 때문에 유대 온 족속에게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사랑 없는 구제는 진정한 구제라 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많은 물질로 구제해도 자기 이름을 드러내기 위한 구제라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6장 3~4절에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했습니다. 고넬료는 자신을 드러내기 위함이 아니라 영혼들을 사랑함으로 구제했고, 이러한 그의 진심이 유대 백성에게 전달되었던 것입니다. 또한 사도행전 10장 4절을 보면, 그의 구제와 기도가 하나님 앞에도 상달되어 기억하신 바가 되었다 했는데, 그래서 그는 놀라운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처럼 범사에 선을 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는 것이 응답을 앞당기는 비결입니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볼 때 마음으로만 안타까워하는 것과 작은 것이라도 나누며 힘이 되어 주는 것은 매우 다릅니다. 상대가 어떤 것을 잘했을 때 마음으로만 함께 기뻐하는 것과 칭찬과 축하의 말을 하는 것도 다릅니다. 작은 선물 하나, 따뜻한 격려의 말 한마디로 표현했을 때와 안했을 때 많은 차이가 납니다. 그러므로 마음에 있는 선과 사랑을 좀 더 적극적인 말과 행실로 나타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런 행함을 보고 기뻐하시며, 응답과 축복을 주실 수 있도록 부지런히 선을 쌓아야 하겠습니다.
셋째, 믿음으로 정성껏 심어야 합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이 자연의 법칙인데 이는 영적으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심지 않고 거두려 한다면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응답받고자 한다면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심어야 합니다. 큰 것을 받으려면 더 많이 심고 더 큰 정성을 내보여야 하지요. 기도로, 믿음의 행함으로 심고 봉사와 감사로 심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지혜와 능력, 시간을 들여 심어야 하며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마 6:21) 하셨으니 마음을 담아 물질로도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심을 때 거두게 되는데, 기도와 찬송을 심으면 하늘로부터 능력이 임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혼이 잘됩니다. 열심히 충성 봉사하면 질병이 떠나고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습니다.
또한 십일조와 감사 예물 등 물질로 열심히 드리면 물질의 축복이 임하여 마음껏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사용할 수 있게 하십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행한 사람은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사람은 심판의 부활로 나온다 말씀하셨으니(요 5:29) 성령을 좇아 선의 행함으로 심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9장에는 욥바에 사는 다비다라는 여제자에 대한 기록이 나옵니다. 다비다는 믿음이 있을 뿐 아니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주님의 가르침대로 어렵고 불쌍한 사람들에게 따뜻한 도움의 손길을 베풀었습니다. 이렇게 선행과 구제로 심은 다비다는 그 열매로써 자신의 생명을 얻었습니다. 다비다가 병들어 죽자 평소 그녀의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 나서서 다시 살려 줄 것을 간절히 구하였고, 다비다의 행함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 베드로의 기도를 통해 다시 살려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시며, 모든 것을 공의와 사랑 가운데 이루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요소들을 온전히 벗어내야 합니다. 악을 미워하고 온전히 버리며, 선으로 채우기를 힘써야 하지요. 또 믿음으로 구하고 정성으로 심어야 합니다.
이렇게 행함으로 하나님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낸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건강, 물질, 명예 등 구하는 것마다 넘치도록 주시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신실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여 항상 풍성한 축복과 응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한다.
둘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 )을 행해야 한다.
셋째, ( )으로 정성껏 심어야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73~8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올바른 구제’
믿음의 형제가 가난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말로만 안타까워하고 행함이 없다면 구제라 할 수 없다(약 2:15~16). 진정한 구제는 형제가 어려울 때 내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이다. 혹자는 “가진 것이 없는데 어떻게 도와줍니까?” 하지만 아무리 생활이 어려워도 자녀가 굶고 있으면 가만히 있을 부모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형제에게 내 자녀와 같이 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무분별한 구제는 옳지 않다. 범죄하여 징계를 받아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을 구제하거나, 게을러서 놀고 돈만 있으면 도박하고 술 마시는 사람을 구제한다면 죄를 짓게 도와주는 것과 같다.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치 못한 구제는 축복이 막히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올바른 구제를 해야 한다.
2020-07-17
제29과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1)
요한일서 5:14~15
읽을말씀 : 요한일서 5:14~15 | 외울말씀 : 마태복음 6:33 | 참고 말씀: 야고보서 1:7~8
교육목표 :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함으로 가장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공중의 새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며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기르시니 아무 염려 없이 살아갑니다. 또 들의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니 철을 따라 아름답게 꽃을 피웁니다. 하물며 새나 백합화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사람을 어찌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며 자라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항상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하기 원하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사람의 능력과 한계를 뛰어넘어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전능자요, 창조주가 되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으며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1.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세상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흔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 안에서는 어떠한 문제가 있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지를 아시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실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5~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구하면 무엇이든지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결코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 믿음을 지닌 사람은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기에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지요.
그러므로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2.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하기에 앞서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원하는 대로 다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원수 마귀 사단에게 종노릇하며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 받아 하나님 자녀로 거듭남으로써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주님을 전하는 만큼 죄로 인해 사망으로 가던 많은 사람이 구원받으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따라서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 자녀가 되도록 전도하며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가까이 있는 형제, 부모, 일가친척을 전도할 뿐 아니라 직장이나 학교 등 어디에서나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만큼 하나님 나라는 왕성해지므로 힘써 기도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의 곧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의란 주님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고, 마태복음 5장 48절에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쳐 죄를 버리고 진리 가운데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성결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혹 어떤 사람은 “그동안 여러 사명을 맡아 하나님 일을 했으니, 이제는 잠시 쉬면서 성결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기도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지 않고 의만 구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의를 병행하여 구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영혼 구원하는 일에 열심을 낼 때 위로부터 힘과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도우십니다.
3.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의식주 문제 등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니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의식주 문제로 고민한다면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염려, 근심, 걱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면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마가복음 10장에는 예수님 앞에 나아와 마음의 소원을 이룬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나옵니다. 그의 가장 큰 소원은 눈을 떠서 세상을 보는 것이었지만 어떤 사람도 그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수님이 놀라운 표적과 기사를 행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각색 병든 자가 치료받고 귀신 들린 자도 온전케 된다는 것입니다. 절망 가운데 살던 바디매오는 자신도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이 생겼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주위에서 웅성거리는데, 예수님이 자기가 앉아 있는 길 가까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힘을 다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주변에서 잠잠하라 하는 말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더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을 내보이는 바디매오에게 예수님께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었지요. 이렇게 믿음으로 구할 때 문제가 해결되며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7~8절에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구하면 응답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성경에 많이 있지만 이를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구할 때만이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아무리 입술로 “믿습니다.” 고백해도 의심하면서 구하는 기도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두 마음을 품어 의심하는 자는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약 1:7~8). 두 마음이란 이랬다저랬다 하는 간사한 마음으로 참 믿음이라 할 수 없지요.
그러므로 끝까지 변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 참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면,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을 주시며 그 믿음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음 시간에 이어 살펴보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그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 )을 구원하는 것을 말한다.
2.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쳐 죄를 버리고 진리 가운데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 )되는 것이 하나님의 ( )를 이루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57~6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 하신 이유’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고 계신다. 그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먼저 구하라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신 이유는 헛되고 헛된 삶을 살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함으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다.
교육목표 : 항상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함으로 가장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공중의 새는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으며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않지만 하나님께서 기르시니 아무 염려 없이 살아갑니다. 또 들의 백합화는 수고도, 길쌈도 하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시니 철을 따라 아름답게 꽃을 피웁니다. 하물며 새나 백합화와는 비교할 수 없이 귀한 사람을 어찌 하나님께서 먹이고 입히며 자라게 하지 않으시겠습니까.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에게 항상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며 구하는 것마다 응답하기 원하십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사람의 능력과 한계를 뛰어넘어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전능자요, 창조주가 되십니다. 우리가 이러한 하나님을 만날 수만 있다면 모든 문제를 해결받으며 마음의 소원을 이룰 수 있습니다.
1. 내일 일을 염려하지 말라
세상에서는 아무 걱정 없이 사는 사람이 흔치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 안에서는 어떠한 문제가 있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이 있어야 할지를 아시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실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6장 25~34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구하면 무엇이든지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결코 염려하지 않을 것입니다. 참 믿음을 지닌 사람은 이미 응답받은 줄로 믿기에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지요.
그러므로 요한일서 5장 14~15절에 “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사람은 무엇이든지 응답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뜻대로 구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2.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마태복음 6장 33절에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계십니다. 우리가 필요한 것을 구하기에 앞서 그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원하는 대로 다 주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원수 마귀 사단에게 종노릇하며 죄로 인해 멸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 받아 하나님 자녀로 거듭남으로써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우리가 주님을 전하는 만큼 죄로 인해 사망으로 가던 많은 사람이 구원받으며 하나님 나라가 확장됩니다.
따라서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 자녀가 되도록 전도하며 민족복음화와 세계 선교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가까이 있는 형제, 부모, 일가친척을 전도할 뿐 아니라 직장이나 학교 등 어디에서나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만큼 하나님 나라는 왕성해지므로 힘써 기도하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의 의 곧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의란 주님을 닮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고, 마태복음 5장 48절에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하셨습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쳐 죄를 버리고 진리 가운데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성결되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혹 어떤 사람은 “그동안 여러 사명을 맡아 하나님 일을 했으니, 이제는 잠시 쉬면서 성결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기도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구하지 않고 의만 구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의를 병행하여 구하기 원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영혼 구원하는 일에 열심을 낼 때 위로부터 힘과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의를 이루게 도우십니다.
3.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따라서 먼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의식주 문제 등 모든 것을 책임져 주시니 아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일 의식주 문제로 고민한다면 믿음이 작기 때문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기 때문에 염려, 근심, 걱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면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는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마가복음 10장에는 예수님 앞에 나아와 마음의 소원을 이룬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나옵니다. 그의 가장 큰 소원은 눈을 떠서 세상을 보는 것이었지만 어떤 사람도 그 소원을 들어줄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예수님이 놀라운 표적과 기사를 행하신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오기만 하면 앉은뱅이가 일어나며 각색 병든 자가 치료받고 귀신 들린 자도 온전케 된다는 것입니다. 절망 가운데 살던 바디매오는 자신도 예수님을 만나기만 하면 눈을 뜰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이 생겼습니다.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주위에서 웅성거리는데, 예수님이 자기가 앉아 있는 길 가까이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힘을 다해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고 소리 질렀습니다. 주변에서 잠잠하라 하는 말에도 움츠러들지 않고 더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이처럼 믿음을 내보이는 바디매오에게 예수님께서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었지요. 이렇게 믿음으로 구할 때 문제가 해결되며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7장 7~8절에 보면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하셨습니다. 구하면 응답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성경에 많이 있지만 이를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림의 떡과 같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구할 때만이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아무리 입술로 “믿습니다.” 고백해도 의심하면서 구하는 기도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두 마음을 품어 의심하는 자는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약 1:7~8). 두 마음이란 이랬다저랬다 하는 간사한 마음으로 참 믿음이라 할 수 없지요.
그러므로 끝까지 변하지 않고 의심하지 않는 참 믿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좇아 행하면,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을 주시며 그 믿음대로 역사해 주십니다. 우리가 응답의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음 시간에 이어 살펴보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그의 나라 즉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 )을 구원하는 것을 말한다.
2.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쳐 죄를 버리고 진리 가운데 살며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 )되는 것이 하나님의 ( )를 이루는 것이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57~6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 하신 이유’
들풀도 입히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알고 계신다. 그래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약속하셨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을 먼저 구하라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라고 하신 이유는 헛되고 헛된 삶을 살고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 가치 있는 삶을 영위함으로 영원한 복락을 누리게 하시기 위함이다.
2020-07-10
제28과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과 일곱 영 (2)
요한계시록 5:6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5:6 | 외울말씀 : 빌립보서 4:6 | 참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5:17
교육목표 : 일곱 영이 측정하는 기준에 모두 통과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완전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며 항상 감찰하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세 번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셋째, 기도를 측정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합당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먼저, 습관을 좇아 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하신 대로, 매일 습관을 좇아 꾸준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늘 깨어 있어 시험에 들지 않으며 설령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해도 신속히 통과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상의 선지자들은 물론 예수님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아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의 뜻이나 유익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해야 하지요. 그리고 힘쓰고 애써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셨다 했습니다(눅 22:44).
뿐만 아니라 마음 중심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애쓰고 힘써 기도하는 것 같아 보여도 중심의 기도를 올리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응답될 수 없으니 정녕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일곱 영은 기도 한 가지를 측정함에 있어서도 단순히 기도를 하는지 안 하는지를 측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게 기도하는지를 정확히 측정하여 기도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넷째, 감사를 측정합니다.
기쁨과 함께 감사 역시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구원의 은혜만 생각해도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영혼이 주님의 은혜로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설령 감사의 조건이 없다 해도 감사해야 할 텐데, 신앙생활 하면서 믿음이 커짐에 따라 감사의 조건이 많아지니 날이 갈수록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원망과 불평이 나온다면 이는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당장 눈앞에는 어려움이 있다 해도 오직 하나님을 믿고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하신 말씀에 의지하여 항상 감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계명을 지키는지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십계명은 성경의 모든 계명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십계명을 지키고 있는지 일곱 영의 측정에 합격점을 받을 때 응답이 됩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한 대로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정말 사랑하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싶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계명을 즐거이 지킬 수 있습니다.
반면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믿음도 있다는 사람이 억지로나 남의 눈치를 보아 지킨다면 이는 사랑도 아니고 참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되 즐거운 마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충성을 측정합니다.
주의 종, 장로, 권사, 집사 등 각각의 직분에 합당하게 충성하는지를 측정합니다. 또한 기관장, 구역장, 그 외의 모든 사명자로서 맡은 바 사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충성하는지를 측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에만 충성한다 해서 온전한 충성이라 하지는 않습니다.
교회의 사명뿐 아니라 가정과 일터, 사업터 등 모든 곳에서 충성하는 것이 온전한 충성입니다. 남편, 아내, 자녀, 부모로서 각자 온 집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의 일과 세상 일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주의 일을 택해야 하지만, 그렇다 하여 세상 일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분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충성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충성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곧 악을 버리는 마음의 할례를 함께해 나가는 영적인 충성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자녀가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드리는 영적인 충성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사랑을 측정합니다.
사랑은 지금까지의 항목 전체를 온전하게 엮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하며, 우리가 이 땅에서 경작받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이 땅에 사람을 경작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기도하고 충성한다 해도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참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모든 것도 결국은 사랑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고 계명을 지키며 충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가장 먼저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것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맨 마지막으로 사랑을 측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명을 받아 열심히 충성하다가 도중에 마음에 안 맞는 일이 있다 해서 뜨거움이 식어 버린다면 사랑으로 행한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기도한다 하지만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시기 질투한다면 이 기도 역시 사랑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적인 사랑을 소유할 때라야 모든 것을 온전히 이루었다 할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신속하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응답 여부를 결정하는 일곱 영
우리가 기도하여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일곱 영이 측정할 때 합격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초신자인데도 기도하는 대로 척척 응답받습니다. 반면 믿음이 있고 더 충성하며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더딘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각자 믿음의 분량에 따라 원하시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초신자가 첫사랑이 뜨겁고 성령이 충만함으로 자기 믿음의 분량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충성하며 기쁨으로 달려갈 때는, 일곱 영의 측정 기준을 쉽게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믿음의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행하기 때문에 쉽게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크고 직분과 사명이 클수록 하나님 앞에 당연히 더 많은 것을 드려야 합니다. 일곱 영이 측정하는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맞게 행해야 하며, 그럴 때 믿음의 분량이 큰 만큼 더 크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믿음의 분량에서도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느냐에 따라 측정 기준이 달라집니다. 큰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는 그만큼 큰 믿음과 행함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은 충성하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며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크든 작든 응답받기 위해서는 일곱 영이 측정하는 각 분야를 점검하여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진리를 행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에 온전히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에서 시작된다. ( )이 있어야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고 계명을 지키며 충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가장 먼저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도 믿음이다. 그런데 믿음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것이 있을지라도 ( )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맨 마지막으로 사랑을 측정하는 것이다.
2.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일곱 가지를 말해 보시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57~6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마음의 기도 & 영의 기도’
마음의 기도란, 우리의 일상 언어로 소원을 구하는 기도이다.
영의 기도란, 우리 영이 성령의 주관을 따라 하는 기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방언 기도를 영의 기도라 한다.
방언 기도는 우리 영이 영적으로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이다.
방언 기도를 많이 하면 영혼이 잘될 뿐 아니라 시험 환난을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방언 기도만으로는 마음의 소원을 열매 맺을 수 없으므로 마음의 기도도 필요하다. 따라서 마음의 기도와 방언 기도를 병행해야 한다.
교육목표 : 일곱 영이 측정하는 기준에 모두 통과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완전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며 항상 감찰하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세 번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셋째, 기도를 측정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합당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기도는 먼저, 습관을 좇아 하는 것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살전 5:17) 하신 대로, 매일 습관을 좇아 꾸준하게 해야 합니다. 그럴 때 늘 깨어 있어 시험에 들지 않으며 설령 어떤 어려움이 온다 해도 신속히 통과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무릎을 꿇고 기도해야 합니다. 성경상의 선지자들은 물론 예수님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앞에, 우리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구하면서 겸비하게 무릎을 꿇고 아뢰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자기의 뜻이나 유익을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좇아 해야 하지요. 그리고 힘쓰고 애써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나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던지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셨다 했습니다(눅 22:44).
뿐만 아니라 마음 중심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중심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애쓰고 힘써 기도하는 것 같아 보여도 중심의 기도를 올리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리고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의심하면서 하는 기도는 응답될 수 없으니 정녕 하나님께서 응답하심을 믿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처럼 일곱 영은 기도 한 가지를 측정함에 있어서도 단순히 기도를 하는지 안 하는지를 측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에 맞게 기도하는지를 정확히 측정하여 기도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를 내립니다.
넷째, 감사를 측정합니다.
기쁨과 함께 감사 역시 하나님의 자녀 된 증거로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중심에서 감사의 고백이 나옵니다. 구원의 은혜만 생각해도 감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받을 영혼이 주님의 은혜로 천국에 가게 되었으니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라면 설령 감사의 조건이 없다 해도 감사해야 할 텐데, 신앙생활 하면서 믿음이 커짐에 따라 감사의 조건이 많아지니 날이 갈수록 감사가 넘치게 됩니다.
그런데 감사할 일이 있을 때만 감사하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는 원망과 불평이 나온다면 이는 믿음 있는 사람의 모습과는 거리가 멉니다. 당장 눈앞에는 어려움이 있다 해도 오직 하나님을 믿고 감사의 기도를 드릴 때, 그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하신 말씀에 의지하여 항상 감사의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다섯째, 계명을 지키는지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무엇을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하신 말씀이 많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십계명은 성경의 모든 계명을 함축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십계명을 지키고 있는지 일곱 영의 측정에 합격점을 받을 때 응답이 됩니다.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한 대로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증거입니다. 정말 사랑하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고 싶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계명을 즐거이 지킬 수 있습니다.
반면 신앙생활을 오래 하고 믿음도 있다는 사람이 억지로나 남의 눈치를 보아 지킨다면 이는 사랑도 아니고 참으로 계명을 지키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사랑하여 계명을 지키되 즐거운 마음으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충성을 측정합니다.
주의 종, 장로, 권사, 집사 등 각각의 직분에 합당하게 충성하는지를 측정합니다. 또한 기관장, 구역장, 그 외의 모든 사명자로서 맡은 바 사명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며 충성하는지를 측정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에만 충성한다 해서 온전한 충성이라 하지는 않습니다.
교회의 사명뿐 아니라 가정과 일터, 사업터 등 모든 곳에서 충성하는 것이 온전한 충성입니다. 남편, 아내, 자녀, 부모로서 각자 온 집에 충성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주의 일과 세상 일 중 하나만 택해야 한다면 당연히 주의 일을 택해야 하지만, 그렇다 하여 세상 일은 소홀히 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어느 한 편에 치우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모든 분야에 충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충성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영적인 충성을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곧 악을 버리는 마음의 할례를 함께해 나가는 영적인 충성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정녕 하나님을 닮은 거룩한 자녀가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마음으로 드리는 영적인 충성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일곱째, 사랑을 측정합니다.
사랑은 지금까지의 항목 전체를 온전하게 엮는 띠와 같은 역할을 하며, 우리가 이 땅에서 경작받는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이 땅에 사람을 경작하시는 이유는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아무리 기도하고 충성한다 해도 하나님과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참된 의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 기뻐하며 감사하고 계명을 지키며 하나님 앞에 충성하는 모든 것도 결국은 사랑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에서 시작됩니다. 믿음이 있어야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고 계명을 지키며 충성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가장 먼저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도 믿음입니다. 그런데 믿음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것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맨 마지막으로 사랑을 측정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명을 받아 열심히 충성하다가 도중에 마음에 안 맞는 일이 있다 해서 뜨거움이 식어 버린다면 사랑으로 행한 것이 아닙니다. 열심히 기도한다 하지만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며 시기 질투한다면 이 기도 역시 사랑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영적인 사랑을 소유할 때라야 모든 것을 온전히 이루었다 할 수 있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함으로 신속하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응답 여부를 결정하는 일곱 영
우리가 기도하여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일곱 영이 측정할 때 합격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초신자인데도 기도하는 대로 척척 응답받습니다. 반면 믿음이 있고 더 충성하며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더딘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각자 믿음의 분량에 따라 원하시는 수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초신자가 첫사랑이 뜨겁고 성령이 충만함으로 자기 믿음의 분량보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충성하며 기쁨으로 달려갈 때는, 일곱 영의 측정 기준을 쉽게 충족시킬 수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믿음의 단계에서 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행하기 때문에 쉽게 응답을 받습니다.
우리가 믿음이 크고 직분과 사명이 클수록 하나님 앞에 당연히 더 많은 것을 드려야 합니다. 일곱 영이 측정하는 모든 분야에서 자신의 믿음의 분량에 맞게 행해야 하며, 그럴 때 믿음의 분량이 큰 만큼 더 크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같은 믿음의 분량에서도 어떤 문제를 놓고 기도하느냐에 따라 측정 기준이 달라집니다. 큰 문제를 놓고 기도할 때는 그만큼 큰 믿음과 행함을 보여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은 충성하는데도 응답을 받지 못한다”며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크든 작든 응답받기 위해서는 일곱 영이 측정하는 각 분야를 점검하여 부족한 것을 채워야 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더 뜨거운 마음으로 진리를 행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준에 온전히 이르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의 신앙생활은 믿음에서 시작된다. ( )이 있어야 기뻐하고 감사하며 기도할 수 있고 계명을 지키며 충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가장 먼저 일곱 영이 측정하는 것도 믿음이다. 그런데 믿음을 비롯하여 다른 모든 것이 있을지라도 ( )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맨 마지막으로 사랑을 측정하는 것이다.
2.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일곱 가지를 말해 보시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57~6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마음의 기도 & 영의 기도’
마음의 기도란, 우리의 일상 언어로 소원을 구하는 기도이다.
영의 기도란, 우리 영이 성령의 주관을 따라 하는 기도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방언 기도를 영의 기도라 한다.
방언 기도는 우리 영이 영적으로 필요한 것을 구하는 기도이다.
방언 기도를 많이 하면 영혼이 잘될 뿐 아니라 시험 환난을 막아낼 수 있다. 하지만 방언 기도만으로는 마음의 소원을 열매 맺을 수 없으므로 마음의 기도도 필요하다. 따라서 마음의 기도와 방언 기도를 병행해야 한다.
2020-07-03
제27과아버지 하나님의 섭리 (맥추절)
요한복음 4:24
읽을말씀 : 요한복음 4:24 | 외울말씀 : 이사야 55:9 l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1:25
교육목표 : 하나님은 항상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나의 생각보다 높으신 분임을 믿고 순종함으로 형통한 삶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밀이나 보리를 거두어 첫 열매를 드리며 감사하던 절기입니다. 전반기 동안에도 영육 간에 열매를 맺게 하시고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반기에는 더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다윗의 일생을 통해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의 특징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의 특징
첫째,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마음이 선과 사랑 자체이심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일생 동안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듯이 하나님께서도 늘 자녀들에게 마음에 가득한 선과 사랑을 표현해 주십니다.
여러분 안에 넘치는 크고 작은 다양한 간증들이 바로 그 증거이지요. 물론 믿음이 어릴 때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특히 축복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연단이 닥쳐올 때 그러하지요.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헤아리는 사람은 그럴 때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나의 아버지이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던 소년 시절에 장차 왕이 될 사람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 후 다윗은 승승장구만 했을까요? 그 과정에서 다윗이 가장 먼저 직면한 현실은 반역자라는 누명을 쓰고 타국과 광야를 떠도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미친 척하기도 했고, 함께하는 무리를 위해 양식을 구하다가 나발 같은 무례한 이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블레셋으로부터 구해 주었던 그일라 거민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동고동락하던 부하들이 돌을 들어 자신을 쳐 죽이려 하는 기막힌 일도 당합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했을까요? 오히려 연단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수천 년이 지나도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아름다운 찬송 시들을 남겼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라는 시편 23편도 그중 하나이지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이처럼 감사하며 찬송하는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뭇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주변 나라들까지 조아리는 큰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기 원하시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입니다. 이 과정에는 연단이 따를 수도 있지만 이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갖게 하는 축복입니다. 그러니 치료받고 축복받고 형통할 때뿐 아니라 어려움을 겪을 때, 마음의 소원이 더디 이뤄지는 것처럼 보일 때도, 결국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들을 허락하셨을까?’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중심의 감사를 올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이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믿음의 행함입니다.
그럴 때 결국 다윗에게 승리를 주신 것처럼, 지난 만민의 역사 속에 늘 그러하셨듯이, 가뭄 끝에 비를 내려 주시고 큰비 끝에 맑은 하늘을 보여 주십니다. 죽은 나사로와 같이 전혀 가망 없어 보이는 사람도 살려 주시고 고쳐 주시며, 가난하여 텅 빈 가루통과 기름병도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또한 죄악을 속히 벗어 버려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습니다.
이사야 55장 9절에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는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혜로우심을 깨우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일을 이룰 때 육의 한계를 가진 사람은 A라는 한 길밖에 보지 못하지만,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A보다 탁월한 B, C, D라는 길까지 꿰뚫어 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겸손하게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각이나 뜻과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신다 해도 감사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이 길이 더 좋은데, 이 방법론이 더 맞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왜 아니라고 하시지?’ 하며 힘들어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한 예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다윗이 군인으로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시대가 성전을 짓기에 가장 좋은 때임을 알려 주셨지요. 이에 다윗은 서운해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성전을 봉헌할 수는 없었지만 성전에 필요한 재료를 정성껏 준비하고, 찬양대와 성전 봉사자 등의 조직과 제도를 미리 마련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였습니다. 전쟁을 치를 때도 전술에 능한 다윗이었지만 세세한 분야까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지중에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을 때는 깨우치는 대로 겸손하게 회개하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즉시 돌이켰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 나라가 부강해져 큰 영광을 누리게 된 후에도 겸비한 마음이 변하지 않아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시 25:5).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영육 간에 낮은 자리에 있을 때에는 대부분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음을 쉽게 인정합니다. 그런데 연륜이 쌓일수록, 점점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마음이 높아지고, 특히 가르치는 사람이나 지도자가 될수록 영적으로 어른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처럼 늘 하나님의 뜻을 여쭙기보다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하며 자신의 뜻을 앞세우기 쉽습니다.
이 제단은 사람의 뜻과 지혜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뤄졌지요. 하나님께서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시고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사람의 생각과 뜻에 맞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고 항상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야 범사에 감사하는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며 하나님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그 뜻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다윗과 솔로몬의 때에 이스라엘이 전성기를 이루게 하셨을까요? 바로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왕상 15:5)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죄를 철저히 회개한 후,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죄성까지 벗어 버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 땅에서 이름난 왕으로 세워 주셨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세세무궁토록 영광을 누리는 존귀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순종의 열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순종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응답과 축복이 임하고, 형통함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하신 말씀대로입니다(사 1:19).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아버지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것만 주시는 선하고 사랑이 많은 분, 다윗을 향해 많은 생각과 큰 뜻을 품으시고 친히 인도하시는 지혜롭고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늘 그분의 뜻대로 순종할 수밖에 없을 만큼 다윗이 너무나 사랑하는 분이셨지요.
그렇다면 다윗은 하나님께 어떤 존재였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을 통해 섭리를 이루셨으며 항상 사랑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이에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오히려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 드릴 만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찬양 시로 남긴 그 구구절절한 감사의 고백들이 여러분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① 하나님께서 가장 ( )을 주시는 분임을 믿는다.
② 하나님의 ( )이 나의 ( )보다 높으심을 믿는다.
③ 하나님의 ( )에 순종한다.
2.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 금주 과제
상반기 동안에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영육 간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어린아이’란
① 단순하다
-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순종한다.
② 순수하다.
- 마음에 악한 것, 더러운 것 등 불순물이 없고, 선악 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③ 교만하지 않다.
-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 소자 앞에서도 자신을 낮추고 섬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은 항상 나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고 나의 생각보다 높으신 분임을 믿고 순종함으로 형통한 삶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밀이나 보리를 거두어 첫 열매를 드리며 감사하던 절기입니다. 전반기 동안에도 영육 간에 열매를 맺게 하시고 우리를 눈동자같이 지켜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반기에는 더 풍성한 열매를 맺으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을 맞아 다윗의 일생을 통해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의 특징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의 특징
첫째,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마음이 선과 사랑 자체이심을 믿는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일생 동안에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사랑을 표현하듯이 하나님께서도 늘 자녀들에게 마음에 가득한 선과 사랑을 표현해 주십니다.
여러분 안에 넘치는 크고 작은 다양한 간증들이 바로 그 증거이지요. 물론 믿음이 어릴 때는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특히 축복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연단이 닥쳐올 때 그러하지요. 하나님의 선과 사랑을 헤아리는 사람은 그럴 때도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나의 아버지이심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던 소년 시절에 장차 왕이 될 사람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그 후 다윗은 승승장구만 했을까요? 그 과정에서 다윗이 가장 먼저 직면한 현실은 반역자라는 누명을 쓰고 타국과 광야를 떠도는 것이었습니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미친 척하기도 했고, 함께하는 무리를 위해 양식을 구하다가 나발 같은 무례한 이에게 심한 모욕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블레셋으로부터 구해 주었던 그일라 거민들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동고동락하던 부하들이 돌을 들어 자신을 쳐 죽이려 하는 기막힌 일도 당합니다.
이때 다윗은 하나님을 원망했을까요? 오히려 연단의 세월을 보내는 동안 수천 년이 지나도록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아름다운 찬송 시들을 남겼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라는 시편 23편도 그중 하나이지요. 어떤 상황에 처하든지 이처럼 감사하며 찬송하는 다윗을 하나님께서는 뭇 백성들의 사랑을 받으며 주변 나라들까지 조아리는 큰 왕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기 원하시는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입니다. 이 과정에는 연단이 따를 수도 있지만 이는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갖게 하는 축복입니다. 그러니 치료받고 축복받고 형통할 때뿐 아니라 어려움을 겪을 때, 마음의 소원이 더디 이뤄지는 것처럼 보일 때도, 결국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불평하고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사랑 자체이신 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들을 허락하셨을까?’ 하며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고자 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중심의 감사를 올려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이신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믿음의 행함입니다.
그럴 때 결국 다윗에게 승리를 주신 것처럼, 지난 만민의 역사 속에 늘 그러하셨듯이, 가뭄 끝에 비를 내려 주시고 큰비 끝에 맑은 하늘을 보여 주십니다. 죽은 나사로와 같이 전혀 가망 없어 보이는 사람도 살려 주시고 고쳐 주시며, 가난하여 텅 빈 가루통과 기름병도 풍성하게 채워 주십니다. 또한 죄악을 속히 벗어 버려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둘째,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습니다.
이사야 55장 9절에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말씀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장 25절에는 “하나님의 미련한 것이 사람보다 지혜 있고 …” 하셨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지혜로우심을 깨우쳐 주시는 말씀입니다.
어떤 일을 이룰 때 육의 한계를 가진 사람은 A라는 한 길밖에 보지 못하지만,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A보다 탁월한 B, C, D라는 길까지 꿰뚫어 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겸손하게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각이나 뜻과 다른 방향으로 인도하신다 해도 감사합니다. ‘내가 보기에는 이 길이 더 좋은데, 이 방법론이 더 맞는 것 같은데, 하나님께서는 왜 아니라고 하시지?’ 하며 힘들어하거나 불평하지 않습니다.
한 예로 다윗은 하나님을 위해 성전을 지어 드리고 싶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다윗이 군인으로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많은 피를 흘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시대가 성전을 짓기에 가장 좋은 때임을 알려 주셨지요. 이에 다윗은 서운해하거나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비록 성전을 봉헌할 수는 없었지만 성전에 필요한 재료를 정성껏 준비하고, 찬양대와 성전 봉사자 등의 조직과 제도를 미리 마련했습니다.
또한 다윗은 영적으로 어린아이였습니다. 전쟁을 치를 때도 전술에 능한 다윗이었지만 세세한 분야까지 하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지중에 하나님의 뜻을 거슬렀을 때는 깨우치는 대로 겸손하게 회개하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즉시 돌이켰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 나라가 부강해져 큰 영광을 누리게 된 후에도 겸비한 마음이 변하지 않아 항상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시 25:5).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영육 간에 낮은 자리에 있을 때에는 대부분 자신의 뜻이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음을 쉽게 인정합니다. 그런데 연륜이 쌓일수록, 점점 높은 지위에 오를수록 마음이 높아지고, 특히 가르치는 사람이나 지도자가 될수록 영적으로 어른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윗처럼 늘 하나님의 뜻을 여쭙기보다는 ‘내가 하나님의 뜻을 어느 정도 안다.’고 하며 자신의 뜻을 앞세우기 쉽습니다.
이 제단은 사람의 뜻과 지혜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뤄졌지요. 하나님께서 저를 주의 종으로 부르시고 교회를 개척할 때부터 사람의 생각과 뜻에 맞는 일은 거의 없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고 항상 하나님 말씀에 귀를 기울이기 바랍니다.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야 범사에 감사하는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며 하나님의 생각이 자신의 생각보다 높으심을 믿기에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면 그 뜻대로 순종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다윗과 솔로몬의 때에 이스라엘이 전성기를 이루게 하셨을까요? 바로 “다윗이 헷 사람 우리아의 일 외에는 평생에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고 자기에게 명하신 모든 일을 어기지 아니하였음이라”(왕상 15:5)라는 말씀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밧세바를 취하고 그 남편 우리아를 죽게 한 죄를 철저히 회개한 후, 하나님의 징계를 통해 죄성까지 벗어 버렸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이 땅에서 이름난 왕으로 세워 주셨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세세무궁토록 영광을 누리는 존귀한 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순종의 열매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순종해 보신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을 때 응답과 축복이 임하고, 형통함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하신 말씀대로입니다(사 1:19).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아버지 하나님은 언제나 가장 좋은 것만 주시는 선하고 사랑이 많은 분, 다윗을 향해 많은 생각과 큰 뜻을 품으시고 친히 인도하시는 지혜롭고 위대한 분이셨습니다. 늘 그분의 뜻대로 순종할 수밖에 없을 만큼 다윗이 너무나 사랑하는 분이셨지요.
그렇다면 다윗은 하나님께 어떤 존재였을까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다윗을 통해 섭리를 이루셨으며 항상 사랑을 표현해 주셨습니다. 이에 다윗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오히려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 드릴 만큼 감사가 넘치는 삶을 살았습니다. 찬양 시로 남긴 그 구구절절한 감사의 고백들이 여러분 모두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① 하나님께서 가장 ( )을 주시는 분임을 믿는다.
② 하나님의 ( )이 나의 ( )보다 높으심을 믿는다.
③ 하나님의 ( )에 순종한다.
2. 다윗의 일생에 있어서 하나님은 어떤 분이셨을까요?
● 금주 과제
상반기 동안에도 지키시고 보호하시며 영육 간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더욱 감사하는 한 주간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인 어린아이’란
① 단순하다
-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순종한다.
② 순수하다.
- 마음에 악한 것, 더러운 것 등 불순물이 없고, 선악 간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③ 교만하지 않다.
- 하나님 앞에서는 물론 소자 앞에서도 자신을 낮추고 섬긴다.
2020-06-26
제26과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과 일곱 영 (1)
요한계시록 5:6
읽을말씀 : 요한계시록 5:6 | 외울말씀 : 야고보서 2:22 | 참고 말씀: 마태복음 21:22
교육목표 : 일곱 영이 측정하는 기준에 모두 통과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에 무조건 응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응답도 반드시 공의에 맞게 하십니다.
만약 공의의 법칙에 상관없이 모든 기도가 응답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혼란해지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경쟁 회사가 망하고 우리 회사만 잘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응답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욕심과 악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기도는 공의의 법칙에 맞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응답과 축복을 주심에 있어서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서 공의에 따라 역사해 가십니다.
1. 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공의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쉽게 응답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알아 합당하게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마음이 담겨 있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응답받을 수 있는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일곱 영입니다. 하나님 마음 안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는데 그중에 일곱 가지 측면에서 살피시는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영의 측정 결과에 따라 기도 응답의 여부를 결정하십니다. 여기서 일곱은 하나님의 영이 일곱 개라는 뜻이 아닙니다. 일곱은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말씀한 대로 하나님은 영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영 자체이신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한 것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조금의 실수나 착오도 없이 모든 것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감찰한다는 의미에서 일곱 영이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했습니다.
완전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며 항상 감찰하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일곱 영을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면 하나님 편에서 응답을 주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나 야채 등을 살 때에 저울에 무게를 달아서 그에 해당하는 값을 치러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받을 때도 일곱 영의 측정에 비춰서 응답받을 조건에 합당해야 합니다.
2.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그러면 일곱 영은 무엇을 측정해서 응답의 여부를 결정할까요? 일곱 영은 사람의 모든 마음과 생각, 행실 등을 한 치 오차도 없이 측정하는데 일곱 가지 분야가 있습니다.
첫째,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믿음대로 되라’ 했습니다. 진정 마음에 믿는 참 믿음, 영적인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반드시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믿는다 고백하며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지식으로만 담고 있는 육적인 믿음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믿는 것과 머리로 아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알고 믿는다 고백해도 정작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영적인 믿음으로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영적인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원한다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우리가 마음의 악을 버리며 기도할 때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오며 그 믿음대로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지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약 2:22). 즉 말씀대로 살지 않는 건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믿으며 장차 심판이 있을 것과,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를 진정 믿는다면 삶이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의 헛된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진리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될수록 믿음이 커지고 당연히 더 큰 믿음의 행함과 순종이 나옵니다. 일곱 영은 바로 이러한 것을 통해 ‘어느 정도 믿음이 있는가?’ 측정합니다.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는 것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분야의 측정 기준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과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에 대해 똑같은 응답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떠할까요?
어린아이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응답받기가 너무 어려워 아예 포기해 버릴 것입니다. 또한 장성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쉽게 응답받으므로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서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달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둘째,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의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건짐 받아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또 주님을 믿기 전에는 온갖 인생의 문제로 눈물, 슬픔, 고통에 싸여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았는데,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되니 당연히 기쁨이 넘칩니다.
물론 ‘나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말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상황이 바뀌면 사라질 수 있는 기쁨이라면 참 기쁨이 아닙니다. 자신의 유익과 마음에 맞을 때라야 나오는 조건적인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기쁨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가득하기에 마음 중심에서 항상 샘솟는 기쁨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자밥이 되면서도 기뻐하며 순교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쁨이야말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징표요,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향기가 됩니다. 또한 기쁨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으며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믿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믿음이 있다 하는 사람 중에도 영적인 기쁨을 잃은 경우가 있습니다. 겉모습은 웃지만,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느껴지지 않지요.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심이 사라지고 미지근한 신앙에 머무르거나, 성령의 소욕을 좇지 못하고 세상 것을 취하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을 만들면 영적인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해도 오랫동안 응답이 지체되는데, 일곱 영이 기쁨을 측정할 때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여 영적인 기쁨이 없다면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고 신속히 죄의 담을 헐어 버림으로 일곱 영의 측정에 합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2.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 )과 ( )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신다.
3. 일곱 영이 첫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39~5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소욕’이란
선으로 악을 이기며 빛 가운데 거하는 진리의 미음이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좇고자 하는 것이 성령의 소욕이다.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에 거하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 주시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행하도록 이끄신다. 곧 성령으로 영을 낳게 하는 것이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만큼 성령이 기뻐 하시므로 마음에 평안과 즐거움이 임한다. 반대로 육체의 소욕을 좇으면 성령께서 탄식하시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잃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할 힘도 점점 약해진다.
교육목표 : 일곱 영이 측정하는 기준에 모두 통과함으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의 자녀에게는 믿음으로 기도하여 응답받을 수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21장 22절에 “너희가 기도할 때에 무엇이든지 믿고 구하는 것은 다 받으리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하여 하나님께서 모든 기도에 무조건 응답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인 동시에 공의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응답도 반드시 공의에 맞게 하십니다.
만약 공의의 법칙에 상관없이 모든 기도가 응답된다면 세상이 얼마나 혼란해지겠습니까? 어떤 사람이 “경쟁 회사가 망하고 우리 회사만 잘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는데 응답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렇게 욕심과 악한 마음으로 하는 기도, 자기 유익만을 구하는 기도는 공의의 법칙에 맞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응답과 축복을 주심에 있어서 반드시 영계의 법칙에 맞춰서 공의에 따라 역사해 가십니다.
1. 응답에 대한 영계의 법칙
우리가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공의의 법칙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가 부모의 마음을 알아야 쉽게 응답받을 수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공의를 알아 합당하게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 마음이 담겨 있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응답받을 수 있는지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일곱 영입니다. 하나님 마음 안에는 여러 가지 속성이 있는데 그중에 일곱 가지 측면에서 살피시는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영의 측정 결과에 따라 기도 응답의 여부를 결정하십니다. 여기서 일곱은 하나님의 영이 일곱 개라는 뜻이 아닙니다. 일곱은 영적으로 완전하다는 의미입니다.
요한복음 4장 24절에 “하나님은 영이시니” 말씀한 대로 하나님은 영 자체이십니다. 따라서 영 자체이신 하나님 마음을 일곱 영이라 한 것은 완전하신 하나님의 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한 조금의 실수나 착오도 없이 모든 것을 정확하고 완벽하게 감찰한다는 의미에서 일곱 영이라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에 “내가 또 보니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사이에 어린 양이 섰는데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 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했습니다.
완전한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온 땅의 모든 사람을 두루 살피며 항상 감찰하시는데 이때 하나님의 마음인 일곱 영을 보내십니다.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마음과 행실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
일곱 영을 이해하기 쉽게 비유하면 하나님 편에서 응답을 주기 위해 측정하시는 저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기나 야채 등을 살 때에 저울에 무게를 달아서 그에 해당하는 값을 치러야 하듯이 우리가 하나님께 응답받을 때도 일곱 영의 측정에 비춰서 응답받을 조건에 합당해야 합니다.
2. 일곱 영이 측정하는 요소
그러면 일곱 영은 무엇을 측정해서 응답의 여부를 결정할까요? 일곱 영은 사람의 모든 마음과 생각, 행실 등을 한 치 오차도 없이 측정하는데 일곱 가지 분야가 있습니다.
첫째, 믿음을 측정합니다.
성경에는 ‘믿음대로 되라’ 했습니다. 진정 마음에 믿는 참 믿음, 영적인 믿음으로 기도했다면 반드시 실상으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믿는다 고백하며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영적인 믿음의 고백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머리에 지식으로만 담고 있는 육적인 믿음의 차원에 머물러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믿는 것과 머리로 아는 것은 전혀 다릅니다. 아무리 많은 말씀을 알고 믿는다 고백해도 정작 마음으로 믿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영적인 믿음으로 인정하시지 않습니다.
영적인 믿음이란 눈에 보이지 않고 사람의 생각이나 지식에 맞지 않아도 마음에서 의심 없이 믿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가 창조되는 것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원한다 해서 마음대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는 만큼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우리가 마음의 악을 버리며 기도할 때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이 오며 그 믿음대로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믿음에는 반드시 행함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게 되지요.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약 2:22). 즉 말씀대로 살지 않는 건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믿음은 신앙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소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고 그 아들 예수께서 우리의 구세주 되심을 믿으며 장차 심판이 있을 것과,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믿는 것입니다. 이를 진정 믿는다면 삶이 변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땅의 헛된 것에 소망을 두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믿음의 선한 싸움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며 진리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될수록 믿음이 커지고 당연히 더 큰 믿음의 행함과 순종이 나옵니다. 일곱 영은 바로 이러한 것을 통해 ‘어느 정도 믿음이 있는가?’ 측정합니다. 믿음을 가장 먼저 측정하는 것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다른 분야의 측정 기준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과 장성한 분량의 믿음을 가진 사람에 대해 똑같은 응답의 기준을 적용한다면 어떠할까요?
어린아이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응답받기가 너무 어려워 아예 포기해 버릴 것입니다. 또한 장성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쉽게 응답받으므로 더 깊은 영의 단계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서 일곱 영이 측정하는 응답의 기준을 달리 정해 놓으셨습니다.
둘째, 기쁨을 측정합니다.
기쁨은 구원받은 하나님 자녀의 대표적인 증거입니다. 영원한 사망인 지옥에서 건짐 받아 천국에 가게 되었는데, 그 기쁨을 무엇과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또 주님을 믿기 전에는 온갖 인생의 문제로 눈물, 슬픔, 고통에 싸여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았는데, 구원받아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천국 소망 가운데 살아가게 되니 당연히 기쁨이 넘칩니다.
물론 ‘나는 하나님을 믿기 전에도 기뻐하며 살았습니다’ 말할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뻐할 만한 일이 있을 때만 기뻐하고 상황이 바뀌면 사라질 수 있는 기쁨이라면 참 기쁨이 아닙니다. 자신의 유익과 마음에 맞을 때라야 나오는 조건적인 기쁨도 마찬가지입니다.
주 안에서 누리는 영적인 기쁨은 상황과 조건에 상관없이 항상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을 얻었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가득하기에 마음 중심에서 항상 샘솟는 기쁨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사자밥이 되면서도 기뻐하며 순교할 수 있었던 것처럼, 기쁨이야말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된 징표요, 그리스도인을 구별하는 향기가 됩니다. 또한 기쁨은 믿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있으며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믿기에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쁨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간혹 믿음이 있다 하는 사람 중에도 영적인 기쁨을 잃은 경우가 있습니다. 겉모습은 웃지만,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이 느껴지지 않지요. 하나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열심이 사라지고 미지근한 신앙에 머무르거나, 성령의 소욕을 좇지 못하고 세상 것을 취하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을 만들면 영적인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런 사람은 기도해도 오랫동안 응답이 지체되는데, 일곱 영이 기쁨을 측정할 때 합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혹여 영적인 기쁨이 없다면 자신을 돌아보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회복하고 신속히 죄의 담을 헐어 버림으로 일곱 영의 측정에 합격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마음과 응답의 기준을 제시해 주는 것은 무엇일까요?
2. 일곱 영을 통해 모든 사람의 ( )과 ( )을 살피심으로, 합당한 사람에게 응답과 축복을 주신다.
3. 일곱 영이 첫 번째로 측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39~5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성령의 소욕’이란
선으로 악을 이기며 빛 가운데 거하는 진리의 미음이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좇고자 하는 것이 성령의 소욕이다.
성령은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에 거하시며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알려 주시고, 육체의 소욕을 좇아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 행하도록 이끄신다. 곧 성령으로 영을 낳게 하는 것이다.
성령의 소욕을 좇아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만큼 성령이 기뻐 하시므로 마음에 평안과 즐거움이 임한다. 반대로 육체의 소욕을 좇으면 성령께서 탄식하시므로 성령의 충만함을 잃게 되고 성령의 소욕을 좇아 행할 힘도 점점 약해진다.
2020-06-19
제25과두 마음을 품지 말아야
야고보서 1:6~8
읽을말씀 : 야고보서 1:6~8 | 외울말씀 : 예레미야 33:3 | 참고 말씀: 요한일서 3:21~22
교육목표 :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행함 있는 참 믿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응답을 받으려면 참 믿음으로 구해야
야고보서 1장 6~8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의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응답해 주실까?’ 하고 의심합니다. 이렇게 두 마음을 품으면 아무리 구해도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의심치 말고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참 믿음으로 구하고 있는지, 혹 두 마음을 품어 응답이 더딘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은 믿음으로 구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참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과, 지식적인 믿음 곧 육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서 진정 믿는 믿음입니다. 반면 지식적인 믿음이란 단지 하나님에 대해 듣고 아는 것을 말합니다.
지식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동안 말씀을 들어왔기에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잘 압니다. 그러나 마음 중심으로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세상에 의존합니다. 의심하는 사람, 곧 두 마음을 품는 사람은 바로 이런 지식적인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의 특징
참 믿음으로 구할 때와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할 때는 그 과정과 결과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과연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첫째,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참 믿음으로 구하면 응답될 것을 분명히 믿기 때문에, 설령 원치 않는 상황을 만난다 해도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습니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고 구하는 사람은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시험 환난이 오면 마음이 요동하지요.
예를 들어, 어린 자녀가 온몸에 고열이 나서 위급한 상황이라고 합시다. 이때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할 것입니다. 회개할 것을 찾아 회개하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했는데도 오히려 열이 더 펄펄 끓는다면 마음이 어떨까요? 참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다면 이런 상황이 되어도 마음이 요동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한 경우에는 ‘정말 괜찮아질까? 더 심해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나아가 ‘믿음으로 구했는데 왜 낫지 않을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마음을 품은 것 자체가 참 믿음이 아니었음을 말해 줍니다. ‘나는 이럴 때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둘째, 변개하지 않습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응답받을 때까지 변함없이 구합니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고 구하는 사람은 응답이 더디거나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대부분 변개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제목을 놓고 기도를 작정했다가 중간에 임의로 깨뜨립니다. 즉 기도제목을 바꾸거나 목표치를 낮추기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구하는 것을 즉시 응답받기 바라고 자신의 바람대로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 공의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하여 가장 합당한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응답받는 속도와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도 경우에 따라 다른 방법을 적용하셨습니다. 12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겉옷자락을 만지자 즉시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소경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습니다.
소경의 입장에서는 이런 방법이 자신이 기대한 바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물에 씻으니 눈이 밝아졌지요. 만약 치료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의심하거나 변개하여 돌아갔다면 치료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변개하지 않아야 한다 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끝까지 고집스럽게 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께 응답을 구할 때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기도하여 잘 분별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또 변함없이 구한다 해도 정욕을 위한 목적이라면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구하는 것을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 믿기에 힘쓰고 애써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도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8:38) 하고 큰소리로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쳐 주실 것을 확신했기에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지요. 이처럼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믿음이 얼마나 신실한지가 표현됩니다.
참 믿음으로 구하지 않는 사람은 해결받을 문제가 있거나 축복을 받고자 해도 힘써 부르짖지 않습니다. 응답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더욱 부르짖어야 하는데 오히려 힘이 빠져서 부르짖지 못합니다. 이는 응답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참 믿음을 이루려면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은 내가 원한다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만 합니다. 우리가 참 믿음을 이루는 데에는 일련의 과정이 따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참 믿음을 주실까요?
먼저, 하나님께만 구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해결해야 할 인생의 문제,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만 구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지요. 순간순간 의심이 들고 세상의 유혹이 와도 단호히 물리치고 변함없이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열심히 진리를 행해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말씀을 듣는 중에, 또는 기도 중에 깨달으면 그것을 열심히 행해야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원하는 만큼 신속히 응답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짜가 없으십니다.
육의 부모도 어린 자녀가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품에 안겨오면 아이가 사랑스럽고 마음이 흐뭇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자녀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기뻐하십니다. 공의의 법칙상 당장 응답해 주실 수는 없다고 해도 진리를 행하는 과정을 통해 영혼이 잘되게 하십니다. 바로 육신의 생각을 하나 둘 깨뜨리고 마음에서 비진리를 버릴 수 있게 도우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 곧 비진리의 생각이 있으면 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육신의 생각은 마음속에 있는 비진리로부터 나옵니다. 따라서 마음의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만큼 중심에서 믿어지는 참 믿음이 주어집니다. 원수 마귀 사단의 조종을 받지 않고 진리의 영인 성령의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면 마음에 담대함과 응답의 확신이 옵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라고 했으니, 항상 진리의 말씀대로 행하며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 )하는 것이다.
“하나님,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응답해 주실까?’ 하고 ( )한다.
2.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① 어떤 상황에서도 ( )이 평안하다.
② ( )하지 않는다.
③ 부르짖어 (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39~5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예레미야의 부르짖는 기도’
예레미야는 유다 왕 시드기야의 마음에 맞지 않는 예언을 했다 하여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된다. 당시 유다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피폐해져 매우 절망적인 상태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레미야가 순종하여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소망의 말씀을 주신다. 비밀한 말씀 곧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아무리 암담한 현실에 처해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응답을 받는다.
교육목표 : 두 마음을 품지 않고 행함 있는 참 믿음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무엇이든지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응답을 받으려면 참 믿음으로 구해야
야고보서 1장 6~8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했습니다.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의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응답해 주실까?’ 하고 의심합니다. 이렇게 두 마음을 품으면 아무리 구해도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실 것을 의심치 말고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참 믿음으로 구하고 있는지, 혹 두 마음을 품어 응답이 더딘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자신은 믿음으로 구했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 보시기에는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 ‘참 믿음’입니다. 믿음에는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과, 지식적인 믿음 곧 육적인 믿음이 있습니다. 참 믿음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 중심에서 진정 믿는 믿음입니다. 반면 지식적인 믿음이란 단지 하나님에 대해 듣고 아는 것을 말합니다.
지식적인 믿음을 가진 사람은 그동안 말씀을 들어왔기에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잘 압니다. 그러나 마음 중심으로 믿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못하고 세상에 의존합니다. 의심하는 사람, 곧 두 마음을 품는 사람은 바로 이런 지식적인 믿음을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의 특징
참 믿음으로 구할 때와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할 때는 그 과정과 결과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과연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첫째, 어떤 상황에서도 마음이 평안합니다.
참 믿음으로 구하면 응답될 것을 분명히 믿기 때문에, 설령 원치 않는 상황을 만난다 해도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습니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고 구하는 사람은 마음이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시험 환난이 오면 마음이 요동하지요.
예를 들어, 어린 자녀가 온몸에 고열이 나서 위급한 상황이라고 합시다. 이때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의지하고자 할 것입니다. 회개할 것을 찾아 회개하고 금식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을 의지했는데도 오히려 열이 더 펄펄 끓는다면 마음이 어떨까요? 참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다면 이런 상황이 되어도 마음이 요동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지식적인 믿음으로 구한 경우에는 ‘정말 괜찮아질까? 더 심해지면 어쩌나?’ 하는 염려로 불안하고 초조합니다. 나아가 ‘믿음으로 구했는데 왜 낫지 않을까?’ 하고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바로 이런 마음을 품은 것 자체가 참 믿음이 아니었음을 말해 줍니다. ‘나는 이럴 때 과연 어떤 모습일까?’ 자신의 마음을 잘 살피시기 바랍니다.
둘째, 변개하지 않습니다.
참 믿음이 있는 사람은 응답받을 때까지 변함없이 구합니다. 반면에 두 마음을 품고 구하는 사람은 응답이 더디거나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으면 대부분 변개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제목을 놓고 기도를 작정했다가 중간에 임의로 깨뜨립니다. 즉 기도제목을 바꾸거나 목표치를 낮추기도 하는데 이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구하는 것을 즉시 응답받기 바라고 자신의 바람대로 이뤄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 공의 등 여러 조건을 고려하여 가장 합당한 때에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해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응답받는 속도와 방법이 다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치실 때도 경우에 따라 다른 방법을 적용하셨습니다. 12년간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예수님의 겉옷자락을 만지자 즉시 병이 나았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소경은 달랐습니다.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셨습니다.
소경의 입장에서는 이런 방법이 자신이 기대한 바와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에 순종하여 실로암 물에 씻으니 눈이 밝아졌지요. 만약 치료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고 의심하거나 변개하여 돌아갔다면 치료받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물론 변개하지 않아야 한다 해서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을 끝까지 고집스럽게 구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하나님께 응답을 구할 때는 어떤 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기도하여 잘 분별하는 지혜도 필요합니다. 또 변함없이 구한다 해도 정욕을 위한 목적이라면 응답이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셋째,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구하는 것을 반드시 응답해 주실 줄 믿기에 힘쓰고 애써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도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는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눅 18:38) 하고 큰소리로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고쳐 주실 것을 확신했기에 주변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았지요. 이처럼 부르짖는 기도를 통해 믿음이 얼마나 신실한지가 표현됩니다.
참 믿음으로 구하지 않는 사람은 해결받을 문제가 있거나 축복을 받고자 해도 힘써 부르짖지 않습니다. 응답의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더욱 부르짖어야 하는데 오히려 힘이 빠져서 부르짖지 못합니다. 이는 응답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두 마음을 품지 않고 참 믿음을 이루려면
참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은 내가 원한다 해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만 합니다. 우리가 참 믿음을 이루는 데에는 일련의 과정이 따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참 믿음을 주실까요?
먼저, 하나님께만 구하겠다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해결해야 할 인생의 문제, 마음의 소원이 있을 때 필요한 모든 것을 오직 하나님께만 구하겠다는 의지가 있어야 하지요. 순간순간 의심이 들고 세상의 유혹이 와도 단호히 물리치고 변함없이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님의 인도를 따라 열심히 진리를 행해 나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지 말씀을 듣는 중에, 또는 기도 중에 깨달으면 그것을 열심히 행해야 합니다. 물론 그럼에도 원하는 만큼 신속히 응답이 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공짜가 없으십니다.
육의 부모도 어린 자녀가 부모를 전적으로 의지하며 품에 안겨오면 아이가 사랑스럽고 마음이 흐뭇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도 자녀들이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면 기뻐하십니다. 공의의 법칙상 당장 응답해 주실 수는 없다고 해도 진리를 행하는 과정을 통해 영혼이 잘되게 하십니다. 바로 육신의 생각을 하나 둘 깨뜨리고 마음에서 비진리를 버릴 수 있게 도우시는 것입니다.
육신의 생각 곧 비진리의 생각이 있으면 참 믿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이 육신의 생각은 마음속에 있는 비진리로부터 나옵니다. 따라서 마음의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만큼 중심에서 믿어지는 참 믿음이 주어집니다. 원수 마귀 사단의 조종을 받지 않고 진리의 영인 성령의 음성을 듣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들어 나가면 마음에 담대함과 응답의 확신이 옵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라고 했으니, 항상 진리의 말씀대로 행하며 모든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함으로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두 마음을 품는다는 것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 ( )하는 것이다.
“하나님, 응답하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응답해 주실까?’ 하고 ( )한다.
2. 참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무엇일까요?
① 어떤 상황에서도 ( )이 평안하다.
② ( )하지 않는다.
③ 부르짖어 ( )한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39~53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예레미야의 부르짖는 기도’
예레미야는 유다 왕 시드기야의 마음에 맞지 않는 예언을 했다 하여 시위대 뜰에 갇히게 된다. 당시 유다는 바벨론의 침략으로 피폐해져 매우 절망적인 상태였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예레미야가 순종하여 부르짖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소망의 말씀을 주신다. 비밀한 말씀 곧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예루살렘이 회복될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믿음으로 구하는 사람은 아무리 암담한 현실에 처해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응답을 받는다.
2020-06-12
제24과어떻게 해야 응답을 받는가 (2)
요한일서 3:18~22
읽을말씀 : 요한일서 3:18~22 | 외울말씀 : 시편 66:18 | 참고 말씀: 마가복음 11:24
교육목표 :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를 잘 깨달아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대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믿고 기도하며 말씀대로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은 축복과 응답으로 함께하십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며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왜 그런 것일까요?
1.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첫째, 죄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였고, 이사야 59장 1~2절에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 죄악이 있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기도를 차단하므로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구할 때라야 응답을 받게 됩니다.
둘째, 형제와 불목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 했고, 마태복음 18장 35절에는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죄지은 형제를 중심에서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도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해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고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부나 부모 형제간에, 혹은 이웃 간에 다툼이나 불화가 있다면 먼저 화해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욕심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기도에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약 4:2~3). 비유를 들어,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자녀가 필요한 것을 말하면 부모는 기쁘게 사 줍니다. 그런데 평소에 행실이 나쁘고 순종하지 않는 자녀가 용돈을 달라 하면 혹여 나쁜 길로 갈까 염려하여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넷째, 우상 숭배자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형태가 없는 신을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십니다(출 20:3~5). 그럼에도 우상을 숭배하여 사망의 길로 간다면 가정, 일터, 사업터 등이 잘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를 위해 기도해도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상 숭배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물질이나 건강 등 육적인 것보다 먼저 그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섯째, 의심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는 하지만 응답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치 않아야 응답받을 수 있다’ 했으니 의심하는 사람은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기쁘게 받으십니다(히 11:6).
성경을 보면 믿음을 내보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고, 비록 이방인이라 해도 큰 믿음을 내보이면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예수님의 제자라 할지라도 믿음이 적으면 책망을 받았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셨으니 의심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나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라 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여섯째, 계명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을 보면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받습니다(요일 3:21~22).
반대로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사람에게 응답하시면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치 않을 뿐 아니라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기도에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일곱째, 믿음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으니 심지 않고는 거둘 수 없습니다. 기도로 심으면 영혼이 잘되고 물질로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봉사로 심으면 건강해지는 등 무엇이나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응답을 받으려면 믿음으로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응답받을 문제나 감사의 조건이 없을 때에도 부지런히 심습니다. 구원해 주신 은혜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넘치도록 축복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더구나 응답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더욱 정성스럽게 심어야 합니다. 혹여 하나님 앞에 심지 않고 응답받기를 바랐다면 이를 회개하고 기쁨과 감사로 심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영적으로는 갓 태어난 아기와 같으므로 하나님께서 쉽게 응답해 주십니다. 아직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하는 때이니 하나님 말씀대로 조금만 행해도 우는 아기에게 젖을 주듯이 금방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차츰 진리를 들어 알고 깨우침으로 갓난아기의 때가 지나면 진리를 깨달은 만큼 행함이 따를 때에 응답하십니다. 영적으로 갓난아기 때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죄를 지으며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응답받을 수 없으며, 이때부터는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어 나가는 만큼 응답을 받게 됩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였으나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큰 시험이 오자 마음의 악이 드러나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뒤에는 철저히 회개하고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므로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혔으나 회개하며 감사 기도를 드리니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명하여 그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습니다(욘 2:1~10). 마찬가지로 우리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으며 믿음으로 부르짖어 간구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시험 환난이 떠납니다. 질병이 사라지고 자녀, 물질, 직장의 문제 등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며 축복이 임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에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줄꼬’ 하며 또다시 주실 축복을 준비하십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주었을 때 감사해 하며 부모를 기쁘게 하면 마음이 흡족하여 다음에 또 주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 중심에서 회개하고 진리 안에 살며,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여 풍성한 응답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 )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2. 형제와 ( )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3. ( )으로 기도하기 때문이다.
4. ( )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이다.
5. ( )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6. ( )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7. ( )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25~3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 의미의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꼭 불상이나 제사상 앞에 절을 해야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기의 욕심을 좇아 부모나 남편, 아내, 자녀, 물질 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바로 이들이 영적 우상이며, 자기 자신을 최고로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된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를 잘 깨달아 무엇이든지 기도하는 대로 응답과 축복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좇아 믿고 기도하며 말씀대로 지켜 행할 때 하나님은 축복과 응답으로 함께하십니다. 그런데 나름대로 신앙생활을 하며 기도하는데도 응답이 없다면 왜 그런 것일까요?
1.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첫째, 죄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하였고, 이사야 59장 1~2절에는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하였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에 죄악이 있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기도를 차단하므로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구할 때라야 응답을 받게 됩니다.
둘째, 형제와 불목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마 6:12) 했고, 마태복음 18장 35절에는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죄지은 형제를 중심에서 용서하지 않으면 자신도 하나님께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기도해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고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부부나 부모 형제간에, 혹은 이웃 간에 다툼이나 불화가 있다면 먼저 화해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셋째, 욕심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아닌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는 기도에는 응답하시지 않습니다(약 4:2~3). 비유를 들어, 착하고 공부도 잘하는 자녀가 필요한 것을 말하면 부모는 기쁘게 사 줍니다. 그런데 평소에 행실이 나쁘고 순종하지 않는 자녀가 용돈을 달라 하면 혹여 나쁜 길로 갈까 염려하여 주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넷째, 우상 숭배자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우상 숭배란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거나 형태가 없는 신을 형상으로 만들어 섬기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십니다(출 20:3~5). 그럼에도 우상을 숭배하여 사망의 길로 간다면 가정, 일터, 사업터 등이 잘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에 그를 위해 기도해도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상 숭배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물질이나 건강 등 육적인 것보다 먼저 그의 영혼 구원을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다섯째, 의심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는 하지만 응답에 대한 믿음이 없습니다. 그런데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치 않아야 응답받을 수 있다’ 했으니 의심하는 사람은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을 기쁘게 받으십니다(히 11:6).
성경을 보면 믿음을 내보인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응답하셨고, 비록 이방인이라 해도 큰 믿음을 내보이면 하나님의 인정과 사랑을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령 예수님의 제자라 할지라도 믿음이 적으면 책망을 받았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셨으니 의심하지 말고 오직 믿음으로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질병이나 사람이 해결할 수 없는 어떤 문제라 해도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십니다.
여섯째, 계명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을 보면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그런 사람이 하나님과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받습니다(요일 3:21~22).
반대로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만일 이런 사람에게 응답하시면 하나님의 공의에 합당치 않을 뿐 아니라 계명을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말씀하셨으니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기도에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일곱째, 믿음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했으니 심지 않고는 거둘 수 없습니다. 기도로 심으면 영혼이 잘되고 물질로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봉사로 심으면 건강해지는 등 무엇이나 심은 대로 거두기 때문에 응답을 받으려면 믿음으로 열심히 심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응답받을 문제나 감사의 조건이 없을 때에도 부지런히 심습니다. 구원해 주신 은혜만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은 항상 넘치도록 축복을 받으며 살아갑니다. 더구나 응답받아야 할 것이 있다면 더욱 정성스럽게 심어야 합니다. 혹여 하나님 앞에 심지 않고 응답받기를 바랐다면 이를 회개하고 기쁨과 감사로 심어야 합니다.
2.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기도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영적으로는 갓 태어난 아기와 같으므로 하나님께서 쉽게 응답해 주십니다. 아직 진리를 온전히 알지 못하는 때이니 하나님 말씀대로 조금만 행해도 우는 아기에게 젖을 주듯이 금방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차츰 진리를 들어 알고 깨우침으로 갓난아기의 때가 지나면 진리를 깨달은 만큼 행함이 따를 때에 응답하십니다. 영적으로 갓난아기 때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죄를 지으며 말씀대로 살지 않는다면 응답받을 수 없으며, 이때부터는 악을 버리고 성결을 이루어 나가는 만큼 응답을 받게 됩니다.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였으나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큰 시험이 오자 마음의 악이 드러나 하나님을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만난 뒤에는 철저히 회개하고 변화되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믿음을 소유하므로 갑절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큰 물고기 뱃속에 갇혔으나 회개하며 감사 기도를 드리니 하나님께서 물고기를 명하여 그를 육지에 토하게 하셨습니다(욘 2:1~10). 마찬가지로 우리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좇으며 믿음으로 부르짖어 간구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시험 환난이 떠납니다. 질병이 사라지고 자녀, 물질, 직장의 문제 등 인생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며 축복이 임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됩니다.
우리가 기도에 응답을 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줄꼬’ 하며 또다시 주실 축복을 준비하십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무엇을 주었을 때 감사해 하며 부모를 기쁘게 하면 마음이 흡족하여 다음에 또 주고자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자신을 돌아보아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음 중심에서 회개하고 진리 안에 살며,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여 풍성한 응답과 축복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 )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2. 형제와 ( )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3. ( )으로 기도하기 때문이다.
4. ( )를 위해 기도하기 때문이다.
5. ( )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6. ( )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7. ( )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책자 25~3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영적 의미의 ‘우상’이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모든 것’을 의미한다.
꼭 불상이나 제사상 앞에 절을 해야만 우상을 섬기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자기의 욕심을 좇아 부모나 남편, 아내, 자녀, 물질 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면 바로 이들이 영적 우상이며, 자기 자신을 최고로 알고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이 우상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