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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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12-25
제52과주님은 누구의 구주이신가
마태복음 2:1~12
읽을말씀 : 마태복음 2:1~12 | 외울말씀 : 누가복음 2:14 | 참고 말씀: 마태복음 1:21
교육목표 :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세 가지 예물인 황금, 유향, 몰약에 담긴 영적 의미를 알아본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입니다.
1.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지금부터 약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지요.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초라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정욕대로 살아가는 짐승과 다름없게 된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지요(전 3:18).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지요. 죄를 범한 아담의 후손은 점점 죄로 물들어 갔고 결국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사람의 본분을 벗어나서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을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고, 이들의 참된 양식이 되기 위해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던 것입니다(눅 2:7).
또한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태어나신 것은 인류의 가난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함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를 범하여 저주를 받음으로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요한 자로서 우리를 부요케 하시고자 가난한 길을 가신 것입니다(고후 8:9).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은 사람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왔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선민은 아니었지만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며 선한 양심을 좇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아기 예수님께 찾아가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마 2:11).
육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왕궁도, 호화로운 저택도 아니고 짐승들이 사는 마구간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려 보면 그곳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하늘의 선지자들과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육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영으로 보고 느꼈기에 영의 행함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광 돌렸지요. 안나 선지자는 과부 된 지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육신의 생각 속에서 구세주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영으로 깨어 있어 성령의 지시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줍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이들은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지 못했습니다.
3. 세 가지 예물에 담긴 영적 의미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이 세 가지 예물에는 어떠한 영적 의미가 있을까요?
1) 마음을 의미하는 황금
황금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합니다. 또한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마 6:21).
따라서 황금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곧 마음을 드린다는 의미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명 그 이상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요. 이처럼 우리가 가진 전부를 드리는 일, 할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우며 황금을 예물로 드리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 황금을 드린 것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장차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향기를 의미하는 유향
유향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하지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착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모습이 바로 주님 앞에 유향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함은 물론 중심을 감찰하시며 무엇보다 마음의 향기를 흠향하십니다.
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림과 같이 마음의 할례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중심이요, 생명이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중심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범사가 형통하며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도 받습니다(요삼 1:2).
3)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하는 몰약
몰약은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부패를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하는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변함없이 생명까지도 주님께 바칠 수 있는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번 주님을 만나 자신의 생애를 주님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다면 은혜받은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변함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함없는 마음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악의 모양이 남아 있으면 자신의 유익을 좇아 변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먼저 나의 전부를 드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되 마음의 할례를 통해 그 속의 비진리를 모두 벗어 버리고 진리로 채워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다면 이것이 곧 주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몰약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값진 선물을 받은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께 우리의 마음인 황금과, 그리스도의 향기인 유향과, 변함없는 믿음인 몰약을 선물로 드림으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하며 영적으로는 우리의 ( )을 의미한다.
2. ( )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준다. 영적으로는 ( )를 상징한다.
3. ( )은 부패를 막아주는 방부제 역할을 하며, ( )을 의미한다.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것이다.
● 금주 과제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베들레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이다.
베들레헴은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으로 다윗왕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삼상 16:1, 눅 2:4).
미가 5장 2절을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예언되어 있다.
교육목표 :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세 가지 예물인 황금, 유향, 몰약에 담긴 영적 의미를 알아본다.
성탄절은 온 인류의 구세주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심에 감사하여 지키는 절기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으로 갈 수밖에 없는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탄생은 하나님께는 영광이요, 온 인류에게는 큰 축복입니다.
1. 구유에 누이신 예수님
지금부터 약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늘 영광을 버리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마태복음 1장 21절에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신 대로,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동정녀 마리아의 몸을 빌려 성령으로 잉태되어 태어나셨지요.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호화로운 곳에서 태어나신 것이 아니라 초라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정욕대로 살아가는 짐승과 다름없게 된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지요(전 3:18).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 흙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빚으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 넣어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만물의 영장으로서 살아가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되었지요. 죄를 범한 아담의 후손은 점점 죄로 물들어 갔고 결국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마침내 사람의 본분을 벗어나서 짐승만도 못한 사람들을 대속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고, 이들의 참된 양식이 되기 위해 짐승의 먹이를 담는 그릇인 구유에 누이셨던 것입니다(눅 2:7).
또한 예수님께서 가난하게 태어나신 것은 인류의 가난을 대신 담당하시기 위함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죄를 범하여 저주를 받음으로 그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가난과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었지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부요한 자로서 우리를 부요케 하시고자 가난한 길을 가신 것입니다(고후 8:9).
2.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은 사람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기 위해 동방에서부터 별을 따라 베들레헴까지 왔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선민은 아니었지만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며 선한 양심을 좇아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아기 예수님께 찾아가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습니다(마 2:11).
육적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왕궁도, 호화로운 저택도 아니고 짐승들이 사는 마구간입니다. 그러나 영안이 열려 보면 그곳에는 영광의 빛이 가득하고 하늘의 선지자들과 수많은 천군 천사들이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동방박사들은 아기 예수님을 육으로 본 것이 아니라 영으로 보고 느꼈기에 영의 행함으로 나왔던 것입니다.
또한 누가복음 2장을 보면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던 시므온은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는데, 성전에서 아기 예수님을 알아보고 영광 돌렸지요. 안나 선지자는 과부 된 지 84년 동안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하더니 아기 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보았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육신의 생각 속에서 구세주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영으로 깨어 있어 성령의 지시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런가 하면 밤에 밖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다윗의 동네에 구주가 나신 것을 알려 줍니다. 양 치는 목자들은 당시 사회적으로 가장 낮은 계층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었으나 마음이 겸손했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많이 알고 가르치는 바리새인, 율법학자, 서기관들이 있었지만 정작 이들은 구세주로 오시는 예수님의 탄생을 계시받지 못했습니다.
3. 세 가지 예물에 담긴 영적 의미
동방박사들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 온 인류를 대표하여 이 땅에서 가장 귀히 여기는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드렸습니다. 동방박사들이 드린 이 세 가지 예물에는 어떠한 영적 의미가 있을까요?
1) 마음을 의미하는 황금
황금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합니다. 또한 “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는 말씀처럼 우리의 마음을 의미하기도 합니다(마 6:21).
따라서 황금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곧 마음을 드린다는 의미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리는 것을 뜻합니다. 기본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그치지 않고 자신의 생명 그 이상을 드릴 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지요. 이처럼 우리가 가진 전부를 드리는 일, 할 수 없는 중에도 하나님을 먼저 섬기는 마음이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우며 황금을 예물로 드리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 황금을 드린 것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들에게 황금보석으로 지어진 아름다운 천국을 선물로 주십니다. 누구든지 믿음으로 구원받아 마음에 천국이 임하고 장차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도록 축복하신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의 향기를 의미하는 유향
유향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줍니다. 영적으로는 그리스도의 향기를 상징하지요.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착한 행실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모습이 바로 주님 앞에 유향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근본 마음이 깨끗하고 아름답게 변화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유향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더럽고 냄새나는 모든 죄악의 문제를 대속하시고 성결에 이르도록 인도하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15장 11절에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얼마나 사람의 마음이 더럽고 악취가 나는지 말씀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 행함은 물론 중심을 감찰하시며 무엇보다 마음의 향기를 흠향하십니다.
따라서 유향을 예물로 드림과 같이 마음의 할례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사람은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는 중심이요, 생명이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중심입니다. 이런 사람은 영혼이 잘되는 축복을 받아 범사가 형통하며 영육 간에 강건한 축복도 받습니다(요삼 1:2).
3)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하는 몰약
몰약은 변함없는 믿음을 의미합니다. 부패를 막아 주는 방부제 역할을 하는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변함없이 생명까지도 주님께 바칠 수 있는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한번 주님을 만나 자신의 생애를 주님을 위해 살기로 다짐했다면 은혜받은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평생을 두고 변함없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변함없는 마음이 되려면 무엇보다 먼저 악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합니다. 악의 모양이 남아 있으면 자신의 유익을 좇아 변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먼저 나의 전부를 드릴 수 있는 마음이 필요하되 마음의 할례를 통해 그 속의 비진리를 모두 벗어 버리고 진리로 채워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더불어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마음으로 주님께 자신을 온전히 드린다면 이것이 곧 주님께 드리는 최고의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몰약을 예물로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성령을 선물로 주심으로 죽은 영이 살아나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체의 몸으로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값진 선물을 받은 우리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께 우리의 마음인 황금과, 그리스도의 향기인 유향과, 변함없는 믿음인 몰약을 선물로 드림으로 뜨거운 사랑을 고백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은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보석 중의 하나로 부귀와 재물을 상징하며 영적으로는 우리의 ( )을 의미한다.
2. ( )은 향기로운 냄새를 풍기며 악취를 제거해 준다. 영적으로는 ( )를 상징한다.
3. ( )은 부패를 막아주는 방부제 역할을 하며, ( )을 의미한다. 몰약을 예물로 드린다는 것은 영적으로 썩지 아니할 것을 드린다는 것이다.
● 금주 과제
한 해를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베들레헴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곳이다.
베들레헴은 풍요로움을 의미하는 곳으로 다윗왕의 출생지이기도 하다(삼상 16:1, 눅 2:4).
미가 5장 2절을 보면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고 예언되어 있다.
2020-12-18
제51과준비된 자
디모데후서 2:20~21
읽을말씀 : 디모데후서 2:20~21 | 외울말씀 : 디모데후서 2:21 | 참고 말씀: 에베소서 6:12, 고린도전서 4:20
교육목표 : 말씀과 기도로 그릇을 잘 준비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귀히 쓰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에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했습니다. 이처럼 그릇의 종류도 많고 크기도 다양한 데 주인은 어떤 것을 골라 쓰겠습니까?
일단 용도에 맞아야 하고 주인의 손에 잘 맞는 그릇이면 좋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주인의 손에 맞고 용도에 맞아도 깨끗하지 않으면 쓸 수가 없습니다.
이런 조건들은 영적으로도 동일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준비된 그릇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 받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준비된 그릇이란?
영적으로 용도에 맞는 그릇이 된다는 것은 각 분야에서 쓰임 받기 합당한 자질을 갖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의 종이면 주의 종, 교사면 교사, 찬양 사역자면 찬양 사역자의 자질을 갖춰야 합니다. 기술직이라면, 더 나은 기술들을 쌓아가며 하나님의 나라에 잘 적용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어떤 사명이든지 가장 기본적으로는 영적인 자질을 먼저 갖춰야 합니다. 곧 말씀을 무장하고 기도를 쌓아야 하지요.
다음으로, 주인의 손에 맞는다는 것은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달란트가 뛰어나고 능력이 있어도 순종하지 않으면 쓰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동으로 가는 것인데 자기 뜻대로 서쪽으로 간다면 하나님의 일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준비된 그릇의 가장 중요한 자격은 깨끗한 그릇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그릇이란,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된 사람을 말합니다. 물론 기왕이면 많이 담아지는 큰 그릇이 좋고, 귀한 금그릇이 좋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하고 큰 그릇이라도 씻지 않아 더럽다면 쓸 수가 없습니다. 성결되어 깨끗한 그릇이 되는 만큼 사명 감당할 능력도 더 받을 수 있고, 순종도 더 온전히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하였고,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ㅇㅣ루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 마귀 사단과의 영적인 전쟁이므로 영적인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힘과 능력은 죄를 버리고 성결된 만큼 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성결되어 영적인 힘이 있는 일꾼들을 항상 찾으십니다.
2. 성결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더딘 이유
성결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이뤄야 할 본분입니다. 특히 직분을 맡은 일꾼이라면 성결에 대한 사모함이 더욱 간절하지요. 그런데 사람마다 나름대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노력한다 했는데 더디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막연하게 성결되고 싶을 뿐, 낱낱이 자신을 해부하여 죄를 버리는 작업은 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결되게 해 주세요, 죄 버리게 해 주세요, 선한 마음을 주세요.” 하면서 막연하게 기도한다면 변화가 늦습니다. 어떤 죄가 있고 어떤 악한 마음이 있는지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입술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내 안에 육의 속성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싫게 여겨져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비슷한 상황이 와도 절대로 같은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늘 근신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하나하나 버려 나가면 한 달, 두 달 지날수록 모습이 달라집니다. 어떤 경우는 구체적으로 발견한 것에서 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발견해서 버리기로 했으면 끝을 보아야 하는데, 버리는 작업을 어느 정도 하다가 맙니다.
어떤 계기로 모르고 있던 자신의 비진리를 발견한 것도 큰 은혜입니다. 더 나아가 왜 그런 비진리가 자기 안에 심어졌는지 성령께서 과거를 떠올려 주시며 깨닫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영적인 깨우침이 올 때나 또 그것을 회개할 때는 성령이 충만해집니다. 마치 그 순간에 다 버리고 변화된 것 같지요.
그러나 한 번 회개했다고 버려진 것은 아닙니다. 잡초를 제거할 때 뿌리를 남겨두면 금방 다시 자랍니다. 죄성도 발견하여 한 번 회개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다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근본의 죄성까지 뽑아야 하지요. 다 뽑아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자신을 점검하며 기도해 나가야 합니다. 발견되는 것이 너무 많다면 그중에 큰 뿌리부터 먼저 뽑아야 합니다. 큰 뿌리가 뽑힐 때 많은 잔뿌리도 함께 뽑혀나가지요. 자기 안에 가장 크고 버리기 어려운 것 몇 가지만 집중적으로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쉽게 버려나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없으면 점차 신앙이 정체되기 쉽습니다. 늘 준비하려고만 할 뿐, 막상 준비된 자로서 세워질 수 없습니다.
둘째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는 자신에게 어떤 비진리가 있는지 잘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진리의 마음을 진리로 포장하여 스스로도 속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의 의와 틀을 깨지 못하므로 자신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잘한 것만 생각하고 잘못한 것은 덮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일꾼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뜨거운 열정으로 어떤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화평을 깨는 일이 생겼지요. 내 고집과 자기주장이 상대에게 부딪힐 원인을 제공한 것입니다. 이럴 때도 자기 틀과 의가 있으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랬으니까, 내가 화평을 깨려고 한 것이 아니니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화평을 깨지 않으려는 마음이라면, 자기가 더 옳다고 해도 상대의 마음에 맞춰 줍니다. 때론 자신이 손해를 본다 해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 해도 상대가 말하는 것을 들어주지요. 더구나 윗사람이 지시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죄를 지으라는 명령이라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비진리가 아니고 죄가 아니라면” 먼저 상대의 입장을 배려해 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더 옳기 때문에 상대를 무시하는 것은 결국 “화평을 깨도 좋다”는 마음입니다. 또한 내가 너무나 이것이 하고 싶기 때문에 윗사람이 “그러지 말라” 해도 여전히 자기 원하는 대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히려 윗사람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화평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화평을 떠나서 기본적인 질서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변명만 합니다. “내가 화평을 깨려고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정말 화평하고 싶지만 상대에게 맞춰 줄 수는 없다” 합니다.
이는 진실한 태도가 아닙니다. 물론 머리로는 화평을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기 위해서는 화평을 깨도 할 수 없다”라는 마음입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혀로만 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나는 화평하려고 했다”고 스스로를 좋게만 생각하므로 신속하게 성결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6장 8절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성결된 사람을 찾고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은혜를 사모하고, 불같은 기도를 통해 발견된 모든 비진리의 뿌리까지 뽑아냄으로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준비된 그릇이란 어떤 그릇을 의미할까요?
1. ( )에 맞는 그릇이다. 이는 각 분야에서 쓰임 받기 ( )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2. 주인의 손에 맞는 그릇 곧 ( )하는 그릇이다.
3. 준비된 그릇의 가장 중요한 자격은 ( ) 그릇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금주 과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의 향 올리기.
● 알고 넘어갑시다!
그릇의 크기와 재질
그릇의 재질은 사람의 중심과 연관되며, 그릇의 크기는 진리에 속한 것을 얼마나 많이 담을 수 있는지와 상관이 있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 얼마나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정해진다.
그릇은 타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노력으로 변화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그릇의 재질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일구는 것이 더 수월하므로 믿음의 성장이 빠르다.
그러나 타고난 그릇이 작거나 재질이 좋지 않다 해도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 성결을 이루어 곧 깨끗한 그릇이 되어 주인에게 쓰임 받을 수 있고, 또 마음 씀을 넓히고 그릇을 키워 더 큰 일들을 감당해 갈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아 비진리를 버리고 진리로 채우는 만큼 그릇의 재질도 바뀔 수 있다.
교육목표 : 말씀과 기도로 그릇을 잘 준비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귀히 쓰임 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디모데후서 2장 20절에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했습니다. 이처럼 그릇의 종류도 많고 크기도 다양한 데 주인은 어떤 것을 골라 쓰겠습니까?
일단 용도에 맞아야 하고 주인의 손에 잘 맞는 그릇이면 좋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주인의 손에 맞고 용도에 맞아도 깨끗하지 않으면 쓸 수가 없습니다.
이런 조건들은 영적으로도 동일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준비된 그릇이 되어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 받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준비된 그릇이란?
영적으로 용도에 맞는 그릇이 된다는 것은 각 분야에서 쓰임 받기 합당한 자질을 갖춰야 한다는 말입니다. 주의 종이면 주의 종, 교사면 교사, 찬양 사역자면 찬양 사역자의 자질을 갖춰야 합니다. 기술직이라면, 더 나은 기술들을 쌓아가며 하나님의 나라에 잘 적용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어떤 사명이든지 가장 기본적으로는 영적인 자질을 먼저 갖춰야 합니다. 곧 말씀을 무장하고 기도를 쌓아야 하지요.
다음으로, 주인의 손에 맞는다는 것은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무리 달란트가 뛰어나고 능력이 있어도 순종하지 않으면 쓰임 받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동으로 가는 것인데 자기 뜻대로 서쪽으로 간다면 하나님의 일이 이뤄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준비된 그릇의 가장 중요한 자격은 깨끗한 그릇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깨끗한 그릇이란, 마음의 악을 버리고 성결된 사람을 말합니다. 물론 기왕이면 많이 담아지는 큰 그릇이 좋고, 귀한 금그릇이 좋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귀하고 큰 그릇이라도 씻지 않아 더럽다면 쓸 수가 없습니다. 성결되어 깨끗한 그릇이 되는 만큼 사명 감당할 능력도 더 받을 수 있고, 순종도 더 온전히 할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6장 12절에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하였고, 고린도전서 4장 20절에는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의 능력과 지혜로 ㅇㅣ루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 마귀 사단과의 영적인 전쟁이므로 영적인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영적인 힘과 능력은 죄를 버리고 성결된 만큼 임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성결되어 영적인 힘이 있는 일꾼들을 항상 찾으십니다.
2. 성결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지만 더딘 이유
성결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히 이뤄야 할 본분입니다. 특히 직분을 맡은 일꾼이라면 성결에 대한 사모함이 더욱 간절하지요. 그런데 사람마다 나름대로 기도하고 금식하며 노력한다 했는데 더디 이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구체적이고 지속적으로 노력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막연하게 성결되고 싶을 뿐, 낱낱이 자신을 해부하여 죄를 버리는 작업은 하지 않은 것입니다. “성결되게 해 주세요, 죄 버리게 해 주세요, 선한 마음을 주세요.” 하면서 막연하게 기도한다면 변화가 늦습니다. 어떤 죄가 있고 어떤 악한 마음이 있는지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습관적으로 입술로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찢으며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내 안에 육의 속성이 있다는 것이 너무나 싫게 여겨져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번에는 비슷한 상황이 와도 절대로 같은 잘못을 하지 않기 위해 늘 근신하고 절제해야 합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하나하나 버려 나가면 한 달, 두 달 지날수록 모습이 달라집니다. 어떤 경우는 구체적으로 발견한 것에서 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발견해서 버리기로 했으면 끝을 보아야 하는데, 버리는 작업을 어느 정도 하다가 맙니다.
어떤 계기로 모르고 있던 자신의 비진리를 발견한 것도 큰 은혜입니다. 더 나아가 왜 그런 비진리가 자기 안에 심어졌는지 성령께서 과거를 떠올려 주시며 깨닫게 하실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영적인 깨우침이 올 때나 또 그것을 회개할 때는 성령이 충만해집니다. 마치 그 순간에 다 버리고 변화된 것 같지요.
그러나 한 번 회개했다고 버려진 것은 아닙니다. 잡초를 제거할 때 뿌리를 남겨두면 금방 다시 자랍니다. 죄성도 발견하여 한 번 회개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다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근본의 죄성까지 뽑아야 하지요. 다 뽑아냈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자신을 점검하며 기도해 나가야 합니다. 발견되는 것이 너무 많다면 그중에 큰 뿌리부터 먼저 뽑아야 합니다. 큰 뿌리가 뽑힐 때 많은 잔뿌리도 함께 뽑혀나가지요. 자기 안에 가장 크고 버리기 어려운 것 몇 가지만 집중적으로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나머지는 쉽게 버려나갈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구체적이고 지속적인 노력이 없으면 점차 신앙이 정체되기 쉽습니다. 늘 준비하려고만 할 뿐, 막상 준비된 자로서 세워질 수 없습니다.
둘째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는 자신에게 어떤 비진리가 있는지 잘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비진리의 마음을 진리로 포장하여 스스로도 속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기의 의와 틀을 깨지 못하므로 자신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잘한 것만 생각하고 잘못한 것은 덮고 넘어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 일꾼이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뜨거운 열정으로 어떤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고 화평을 깨는 일이 생겼지요. 내 고집과 자기주장이 상대에게 부딪힐 원인을 제공한 것입니다. 이럴 때도 자기 틀과 의가 있으면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그랬으니까, 내가 화평을 깨려고 한 것이 아니니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화평을 깨지 않으려는 마음이라면, 자기가 더 옳다고 해도 상대의 마음에 맞춰 줍니다. 때론 자신이 손해를 본다 해도,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 해도 상대가 말하는 것을 들어주지요. 더구나 윗사람이 지시하는 것이라면 당연히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죄를 지으라는 명령이라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비진리가 아니고 죄가 아니라면” 먼저 상대의 입장을 배려해 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더 옳기 때문에 상대를 무시하는 것은 결국 “화평을 깨도 좋다”는 마음입니다. 또한 내가 너무나 이것이 하고 싶기 때문에 윗사람이 “그러지 말라” 해도 여전히 자기 원하는 대로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히려 윗사람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화평을 이루고자 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화평을 떠나서 기본적인 질서조차 지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을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여전히 변명만 합니다. “내가 화평을 깨려고 한 것이 아니다”, “나는 정말 화평하고 싶지만 상대에게 맞춰 줄 수는 없다” 합니다.
이는 진실한 태도가 아닙니다. 물론 머리로는 화평을 원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내가 원하는 대로 하기 위해서는 화평을 깨도 할 수 없다”라는 마음입니다. 행함과 진실함으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말과 혀로만 원하는 것이지요. 그런데도 “나는 화평하려고 했다”고 스스로를 좋게만 생각하므로 신속하게 성결을 이루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사야 6장 8절에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을 이루기 위해 성결된 사람을 찾고 찾으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발견할 수 있는 은혜를 사모하고, 불같은 기도를 통해 발견된 모든 비진리의 뿌리까지 뽑아냄으로 하나님 나라에 귀히 쓰임 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준비된 그릇이란 어떤 그릇을 의미할까요?
1. ( )에 맞는 그릇이다. 이는 각 분야에서 쓰임 받기 ( )을 갖춘 사람을 말한다
2. 주인의 손에 맞는 그릇 곧 ( )하는 그릇이다.
3. 준비된 그릇의 가장 중요한 자격은 ( ) 그릇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금주 과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감사의 향 올리기.
● 알고 넘어갑시다!
그릇의 크기와 재질
그릇의 재질은 사람의 중심과 연관되며, 그릇의 크기는 진리에 속한 것을 얼마나 많이 담을 수 있는지와 상관이 있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 얼마나 더 큰 일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정해진다.
그릇은 타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노력으로 변화될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그릇의 재질이 좋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일구는 것이 더 수월하므로 믿음의 성장이 빠르다.
그러나 타고난 그릇이 작거나 재질이 좋지 않다 해도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될 수 있다. 성결을 이루어 곧 깨끗한 그릇이 되어 주인에게 쓰임 받을 수 있고, 또 마음 씀을 넓히고 그릇을 키워 더 큰 일들을 감당해 갈 수 있다.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아 비진리를 버리고 진리로 채우는 만큼 그릇의 재질도 바뀔 수 있다.
2020-12-11
제50과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누가복음 18:1~8
읽을말씀 : 누가복음 18:1~8 | 외울말씀 : 누가복음 18:1 | 참고 말씀: 마태복음 7:7~8, 갈라디아서 6:9
교육목표 :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하며 낙망치 않고 기도하여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 자녀라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떠한 것인지 배우고 그 요령을 좇아 응답의 열매를 딸 때까지 인내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습관을 좇아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으며 응답이 더뎌도 낙망치 않고 더욱 뜨겁게 간구합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어떤 도시에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는데 한 과부가 찾아와 원한을 풀어 달라 하였습니다. 이 재판관은 뇌물을 바랐지만 과부는 너무 가난하여 그것을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과부가 자주 찾아가 간청하였더니 얼마 동안 들어주지 않던 재판관이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과부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찾아와 간청할 것을 생각하니 의롭지 못한 재판관일지라도 과부의 소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응답의 비결을 깨닫게 하고자 이 비유를 들고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눅 18:7) 말씀하셨습니다. 즉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청원을 들어주는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찌 그 자녀들이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더욱이 어떤 문제에 응답받고자 작정하여 금식하고 철야하며 부르짖어 기도한다면 어찌 신속히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시편 50편 15절에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했습니다. 우리 기도에 응답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이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고 할까요? 하나님은 분명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 하셨으니 기도에 응답이 없을 리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거나, 기도 양이 부족해서, 또는 아직 때가 아니므로 응답이 오지 않은 것뿐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하는 까닭은 인내하며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성령이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도록 회개의 은혜를 주어 응답받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도의 양이 차서 받을 만한 때가 되었을 때에 응답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면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낙망치 말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 항상 기도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충만함도 잃게 되니 하나님과의 교통이 점점 끊어져 결국 성령이 소멸될 수 있습니다. 마치 자주 대하는 사람과는 대화가 잘 통하고 마음이 잘 맞는 것처럼, 항상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할 때 하나님 뜻을 깨우쳐 그 뜻대로 살게 되니 구원에 이르고 영생을 얻습니다. 또한 기도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을 대적하여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어둠의 세력, 곧 악의 영들에게 대한 것이기 때문에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엡 6:12). 그럴 때 하나님 능력과 권세에 힘입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뜻을 좇아 항상 기도함으로써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빈 들이나 산, 어디에 계시든지 기도했고 새벽이나 밤중, 어느 때든지 기도하셨습니다. 믿음의 선진들도 항상 기도하여 하나님 뜻대로 행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삼상 12:23) 하고 격려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이므로 기도 쉬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쉬면 육신의 생각이 틈타고 하나님 뜻을 좇지 못하므로 어려운 문제가 닥치거나 형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멀리하는 요인이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하고,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가 생겼을 때만 기도하지 말고 습관을 좇아 항상 기도함으로써 범사에 형통함을 입어야 하겠습니다.
3.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니 항상 기도하되 낙심치 않으면 때가 이르러 거둡니다. 만약 농부가 씨앗을 심고 조급해하며 땅을 파헤친다거나, 싹이 났어도 정성껏 가꾸며 기다리지 않는다면 열매를 거둘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도 역시 응답받기까지 정성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조국의 장래를 이상 중에 보고 세 이레, 즉 21일 동안 슬퍼하며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첫날 듣고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이 응답을 가져오는 천사를 방해하였으므로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다니엘에게 올 수 있었고 그는 천사가 깨닫게 해 주므로 그때서야 하나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단 10:12~14).
다니엘은 이상을 보고 근심하여 힘이 없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여 마침내 응답받았습니다. 이같이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울 자를 보내 응답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에게 응답을 가져온 천사도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문제를 놓고 기도하십니까? 다니엘처럼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를 하시는지요? 그는 자기가 본 이상을 깨달으려고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여 좋은 떡을 먹지 않고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않으며 기름을 바르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겸비한 자세로 작정하여 기도하니 하나님은 첫날부터 듣고 응답하신 것입니다(단 10:1~12).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기도를 듣고 첫날에 응답하셨으나 그에게 응답이 오기까지는 21일이 걸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하루 이틀 기도해 보고 응답이 없다며 쉽게 낙심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믿음이 적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 기도를 듣고 분명히 응답하시는 분임을 믿고 인내하며 기도하는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에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는 분이십니다(렘 5:24). 그러므로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 만약 응답이 없다고 낙망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므로 응답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참으로 믿음이 있다면 현실을 보지 않고 항상 기도하며 결코 낙망치 않을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며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기도에 응답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5장 7~8절에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하신 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믿음과 인내로써 간구하여 항상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우리가 항상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기도하지 않으면 ( )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다.
2.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할 때 ( )을 깨우쳐 그 뜻대로 살 수 있다.
3. 기도할 때 ( )을 대적하여 이길 수 있다.
4. ( ) 않고 기도하면 때가 이르러 반드시 응답을 받는다.
● 금주 과제
책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129~139페이지까지 읽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인내와 강청하는 기도로 응답받은 사람들
① 야곱 -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던 야곱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 하며 간절하게 기도하니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허락하셨다.
② 수로보니게 여인 -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소리 질러 간구했는데 예수님은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녀가 또다시 절하며 간청해도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며 응답하시지 않았다.
그래도 이 여인이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 15:27) 하며 강청하니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을 칭찬하며 응답을 주셨다.
교육목표 :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을 믿음으로 끝까지 인내하며 낙망치 않고 기도하여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 자녀라면 당연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는 어떠한 것인지 배우고 그 요령을 좇아 응답의 열매를 딸 때까지 인내하며 간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기도의 중요성을 알고 습관을 좇아 항상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 쉬는 죄를 범치 않으며 응답이 더뎌도 낙망치 않고 더욱 뜨겁게 간구합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어떤 도시에 불의한 재판관이 있었는데 한 과부가 찾아와 원한을 풀어 달라 하였습니다. 이 재판관은 뇌물을 바랐지만 과부는 너무 가난하여 그것을 준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도 과부가 자주 찾아가 간청하였더니 얼마 동안 들어주지 않던 재판관이 생각을 바꾸었습니다. 과부가 결코 포기하지 않고 찾아와 간청할 것을 생각하니 의롭지 못한 재판관일지라도 과부의 소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응답의 비결을 깨닫게 하고자 이 비유를 들고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눅 18:7) 말씀하셨습니다. 즉 불의한 재판관도 과부의 청원을 들어주는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찌 그 자녀들이 부르짖는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더욱이 어떤 문제에 응답받고자 작정하여 금식하고 철야하며 부르짖어 기도한다면 어찌 신속히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시편 50편 15절에는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했습니다. 우리 기도에 응답함으로써 하나님께 영광 돌리도록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이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고 할까요? 하나님은 분명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 7:7~8) 하셨으니 기도에 응답이 없을 리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거나, 기도 양이 부족해서, 또는 아직 때가 아니므로 응답이 오지 않은 것뿐입니다.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하는 까닭은 인내하며 믿음으로 기도할 때에 성령이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도록 회개의 은혜를 주어 응답받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도의 양이 차서 받을 만한 때가 되었을 때에 응답으로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때가 이르면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을 믿고 낙망치 말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 항상 기도해야 하는 이유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성령의 도움을 받을 수 없고 충만함도 잃게 되니 하나님과의 교통이 점점 끊어져 결국 성령이 소멸될 수 있습니다. 마치 자주 대하는 사람과는 대화가 잘 통하고 마음이 잘 맞는 것처럼, 항상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할 때 하나님 뜻을 깨우쳐 그 뜻대로 살게 되니 구원에 이르고 영생을 얻습니다. 또한 기도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을 대적하여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싸움은 어둠의 세력, 곧 악의 영들에게 대한 것이기 때문에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엡 6:12). 그럴 때 하나님 능력과 권세에 힘입어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뜻을 좇아 항상 기도함으로써 기도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빈 들이나 산, 어디에 계시든지 기도했고 새벽이나 밤중, 어느 때든지 기도하셨습니다. 믿음의 선진들도 항상 기도하여 하나님 뜻대로 행했습니다.
사무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도로 너희를 가르칠 것인즉”(삼상 12:23) 하고 격려합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며 명령이므로 기도 쉬는 것은 죄라는 것입니다. 기도를 쉬면 육신의 생각이 틈타고 하나님 뜻을 좇지 못하므로 어려운 문제가 닥치거나 형통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시험에 들거나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지어 하나님을 멀리하는 요인이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7절에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하고,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문제가 생겼을 때만 기도하지 말고 습관을 좇아 항상 기도함으로써 범사에 형통함을 입어야 하겠습니다.
3.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니 항상 기도하되 낙심치 않으면 때가 이르러 거둡니다. 만약 농부가 씨앗을 심고 조급해하며 땅을 파헤친다거나, 싹이 났어도 정성껏 가꾸며 기다리지 않는다면 열매를 거둘 수 없을 것입니다.
기도 역시 응답받기까지 정성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조국의 장래를 이상 중에 보고 세 이레, 즉 21일 동안 슬퍼하며 기도하자 하나님께서는 첫날 듣고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이 응답을 가져오는 천사를 방해하였으므로 마지막 날이 되어서야 다니엘에게 올 수 있었고 그는 천사가 깨닫게 해 주므로 그때서야 하나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단 10:12~14).
다니엘은 이상을 보고 근심하여 힘이 없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여 마침내 응답받았습니다. 이같이 믿음으로 인내하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도울 자를 보내 응답받을 수 있도록 인도하십니다. 그러므로 다니엘에게 응답을 가져온 천사도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문제를 놓고 기도하십니까? 다니엘처럼 하나님께 상달되는 기도를 하시는지요? 그는 자기가 본 이상을 깨달으려고 하나님 앞에 스스로 겸비케 하여 좋은 떡을 먹지 않고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넣지 않으며 기름을 바르지 않고 기도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겸비한 자세로 작정하여 기도하니 하나님은 첫날부터 듣고 응답하신 것입니다(단 10:1~12). 하나님께서 다니엘의 기도를 듣고 첫날에 응답하셨으나 그에게 응답이 오기까지는 21일이 걸렸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어떤 문제가 있을 때 하루 이틀 기도해 보고 응답이 없다며 쉽게 낙심합니다. 그것은 그만큼 믿음이 적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 기도를 듣고 분명히 응답하시는 분임을 믿고 인내하며 기도하는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때에 따라 주시며 우리를 위하여 추수 기한을 정하는 분이십니다(렘 5:24). 그러므로 마가복음 11장 24절에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히 11:1). 만약 응답이 없다고 낙망한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니므로 응답받을 생각을 말아야 합니다. 참으로 믿음이 있다면 현실을 보지 않고 항상 기도하며 결코 낙망치 않을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게 하며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께서 분명히 기도에 응답하심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야고보서 5장 7~8절에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하신 대로 전능하신 하나님께 믿음과 인내로써 간구하여 항상 응답받으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우리가 항상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1. 기도하지 않으면 ( )의 도우심을 받을 수 없다.
2.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할 때 ( )을 깨우쳐 그 뜻대로 살 수 있다.
3. 기도할 때 ( )을 대적하여 이길 수 있다.
4. ( ) 않고 기도하면 때가 이르러 반드시 응답을 받는다.
● 금주 과제
책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129~139페이지까지 읽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인내와 강청하는 기도로 응답받은 사람들
① 야곱 - 얍복강에서 천사와 씨름하던 야곱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 하며 간절하게 기도하니 하나님께서는 축복을 허락하셨다.
② 수로보니게 여인 - 귀신 들린 딸을 둔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소리 질러 간구했는데 예수님은 한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녀가 또다시 절하며 간청해도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며 응답하시지 않았다.
그래도 이 여인이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마 15:27) 하며 강청하니 마침내 예수님께서는 그 믿음을 칭찬하며 응답을 주셨다.
2020-12-04
제49과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기도 (2)
이사야 58:6~9
읽을말씀 : 이사야 58:6~9 | 외울말씀 : 이사야 58:6 | 참고 말씀: 이사야 58:3~5
교육목표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과 올바른 보호식을 함으로 마음의 소원에 신속히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 이어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금식기도를 기뻐하시는지와, 올바른 보호식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려면
다섯째, 하나님과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만약 집안에 귀신 들린 사람이 있다면 온 가족이 사랑으로 하나 되어 금식한 후에 능력자를 청하여 예배드리고 물리치면 즉시 귀신이 나갑니다. 그런데 이때에도 먼저 가족이 우상을 섬긴 것이나 사랑으로 하나 되지 못한 것 등 하나님 앞에 담이 되었던 것을 철저히 돌이킨 뒤에 한마음으로 금식해야 합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금식을 할 때에도 질병에 걸리기까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은 이유를 알아서 회개하고 금식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 외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도 먼저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금식해야 합니다. 어떤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담이 된 것이 있다면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하여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그런 뒤에 기도하고 금식할 때라야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기 위해 기도할 때에도 자신의 악함을 철저히 통회자복하면서 어떻게든 진리로 변화하려는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형제와 걸려 불편함과 미움을 이기지 못하면서 금식을 한다면 이런 것은 회개 금식도 될 수 없습니다. 회개 금식은 자신의 목숨을 드려서라도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는 겸비한 행함인데 마음에 악을 품고 한다는 자체가 이미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먼저 자신의 악함을 철저히 회개하고 온전히 마음의 악을 벗어 버리기 위해 기도해야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임하여 마음에서부터 미움이나 감정을 버릴 수 있습니다.
여섯째, 불같은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금식을 하니 힘들어서 기도를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금식하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금식하면서 올려드리는 간절한 기도의 향입니다. 즉 곡기를 끊고 생명을 다해 드리는 중심의 기도 향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식하는 동안에는 할 수 있으면 말씀과 기도에 몰두해야 하며 평소보다 더 많이, 더 불같이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더구나 장기 금식을 할 때에는 금식에 들어가기 전에도 충분히 기도를 쌓아 준비할 뿐만 아니라 금식 중에는 하루에 적어도 다섯 시간 이상 부르짖어 불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라면 장기간 곡기를 끊을 때 몸이 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금식할 때에는 기도를 통해 강건함과 능력을 받습니다. 이때 기도의 내용은 육적인 제목이나 개인적인 소원이 위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선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또한 교회와 목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지요.
일곱째,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근신해야 합니다.
이사야 58장 3~5절에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금식을 한다면서 오락을 즐기거나 사람들과 다투고 싸우며 해를 가한다면 하나님이 무엇이라 하시겠습니까.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고 말을 주고받다 보면 무익한 말이나 악한 말이 나오고 농담도 나옵니다. 금식 중에 주변 사람과 다투어 마음이 상하고 혈기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될 수 없습니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며,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여 그 은혜를 구하는 지극히 겸비한 행함입니다. 그런 만큼 마음과 뜻과 힘, 정성 다해 하나님 뜻 가운데 행하며 정녕 하나님께서 감동하실 금식을 드려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단기 금식을 할 때에는 일상적인 집안 일이나 직장 일을 병행합니다. 온 집에 충성해야 하니 그렇게 하지만 장기 금식일 때에는 그럴 수 없습니다. 장기 금식하는 동안에는 몸에 무리가 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세상 것을 접하지 않고 온전히 기도와 말씀에 전력하며 근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근신하고 절제하면서 금식할 뿐 아니라 첫날부터 마치는 날까지 마음에 요동 없이 오직 진리 안에 서서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바라고 믿어야 합니다.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입히며 또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않는 금식, 곧 형제에게 선을 행하는 가운데 드리는 금식이라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사 58:7).
여덟째, 금식이 끝난 후 보호식까지 잘 마쳐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금식을 하면 몸이 상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붙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믿음으로 금식한다 해도 사람이 할 수 있는 도리는 해야 합니다. 금식을 하고 그 날짜만큼 보호식을 할 때 온전한 금식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절제의 능력이 생길 뿐 아니라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더욱 강건하며 영이 맑아집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건강하여 소화가 잘되니 굳이 보호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보호식을 온전히 할 때 하나님께서는 위가 연약한 사람이라도 튼튼하게 하고 사소한 질병도 그 기간에 치료해 주십니다. 아무리 금식을 잘했어도 보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만큼 기가 빠지거나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보호식 중에는 몸을 무리하게 움직이거나 힘든 일을 피해야 합니다. 혹 금식한 뒤에 시험이 찾아올 수도 있으므로 금식할 때 미리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식을 기뻐 받으셨을 때에는 보호식도 잘할 수 있도록 주관하십니다.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은 먹지 않도록,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 나는 일이 없도록 절제력을 주십니다. 이렇게 절제하여 아름답게 드리는 보호식까지도 온전한 금식에 포함됩니다.
2. 올바른 보호식을 하려면
보호식을 할 때 과식하면 얼굴이 붓고 위에 부담이 되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보통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하지만 미음이나 죽으로 보호식을 할 때에는 한 컵 정도의 적은 양으로 네 번에 나누어 먹는 것이 좋습니다. 육류, 계란, 빵, 음료수, 기름기가 많은 음식, 매운 것, 짠 것, 단 것, 신 것 등 자극적인 음식이나 화학조미료, 향신료는 피하고 가급적 채식을 하는 것이 좋지요.
3일 금식을 한 뒤에는 처음부터 묽은 죽을 먹어도 되지만 장기 금식을 한 후에는 위장이 아기와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더 주의해야 합니다. 이틀 정도는 거의 물처럼 묽은 미음을 하루에 네 차례 정도 마셔야 하며, 과일은 사과 한쪽 정도 즙을 내서 마시되 하루 네 차례 정도로 그쳐야 합니다. 그리고 3∼4일이 지나면서부터는 미음을 조금씩 진하게 끓여 마시고, 점점 쌀가루나 익은 호박을 넣은 묽은 죽이나 콩나물 죽 등으로 이어 가며 양도 조금씩 늘려 갑니다.
반찬은 육류는 피하고 화학조미료를 넣지 말아야 하며, 굳이 고기를 먹고 싶다면 생선류를 조금 먹되 간은 싱겁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고춧잎이나 들깻잎, 무 잎, 배춧잎과 같은 야채에 멸치를 넣어 끓인 것이 좋고, 특히 들깨를 갈아 껍질을 벗겨 내고 쌀죽에 섞어 끓여 먹으면 기가 빨리 회복되고 건강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절제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보호식을 하면 붓지도 않고 피부색도 뽀얗게 살아나며 체중도 신속하게 회복됩니다. 이처럼 금식에 이어 보호식까지 잘 마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금식이 되어 신속한 응답을 체험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과의 ( )을 헐어야 한다.
2. 불같은 ( )가 있어야 한다.
3.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 )해야 한다.
4. 금식이 끝난 후 ( )까지 잘 마쳐야 한다.
● 금주 과제
책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129~13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치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금식 기도와 보호식
① 금식 기도란, 음식물을 먹지 않으며 기도하는 것,
즉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는 것을 말한다.
② 보호식이란, 금식 이후에 일반식을 하기 전까지 음식을 절제하여
섭취하는 식사를 말한다.
금식 기도의 종류
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한 금식
② 어떤 질병이나 문제가 있어서 이를 해결받기 위한 금식
③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금식
④ 죄악을 신속하게 벗어버리기 위한 금식
⑤ 능력 받아 영광 돌리기 위한 금식
⑥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금식
교육목표 :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과 올바른 보호식을 함으로 마음의 소원에 신속히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지난 시간에 이어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금식기도를 기뻐하시는지와, 올바른 보호식에 관해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려면
다섯째, 하나님과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만약 집안에 귀신 들린 사람이 있다면 온 가족이 사랑으로 하나 되어 금식한 후에 능력자를 청하여 예배드리고 물리치면 즉시 귀신이 나갑니다. 그런데 이때에도 먼저 가족이 우상을 섬긴 것이나 사랑으로 하나 되지 못한 것 등 하나님 앞에 담이 되었던 것을 철저히 돌이킨 뒤에 한마음으로 금식해야 합니다.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금식을 할 때에도 질병에 걸리기까지 하나님께서 지켜 주시지 않은 이유를 알아서 회개하고 금식에 들어가야 합니다.
이 외의 축복을 받기 위해서도 먼저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고 금식해야 합니다. 어떤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담이 된 것이 있다면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하여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그런 뒤에 기도하고 금식할 때라야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기 위해 기도할 때에도 자신의 악함을 철저히 통회자복하면서 어떻게든 진리로 변화하려는 행함이 따라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형제와 걸려 불편함과 미움을 이기지 못하면서 금식을 한다면 이런 것은 회개 금식도 될 수 없습니다. 회개 금식은 자신의 목숨을 드려서라도 하나님 앞에 용서를 구하는 겸비한 행함인데 마음에 악을 품고 한다는 자체가 이미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따라서 먼저 자신의 악함을 철저히 회개하고 온전히 마음의 악을 벗어 버리기 위해 기도해야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임하여 마음에서부터 미움이나 감정을 버릴 수 있습니다.
여섯째, 불같은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금식을 하니 힘들어서 기도를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은 금식하는 행위 자체가 아니라 금식하면서 올려드리는 간절한 기도의 향입니다. 즉 곡기를 끊고 생명을 다해 드리는 중심의 기도 향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금식하는 동안에는 할 수 있으면 말씀과 기도에 몰두해야 하며 평소보다 더 많이, 더 불같이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더구나 장기 금식을 할 때에는 금식에 들어가기 전에도 충분히 기도를 쌓아 준비할 뿐만 아니라 금식 중에는 하루에 적어도 다섯 시간 이상 부르짖어 불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세상 사람이라면 장기간 곡기를 끊을 때 몸이 상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하나님의 자녀가 금식할 때에는 기도를 통해 강건함과 능력을 받습니다. 이때 기도의 내용은 육적인 제목이나 개인적인 소원이 위주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우선적으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또한 교회와 목자를 위해 기도해야 하지요.
일곱째,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근신해야 합니다.
이사야 58장 3~5절에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너희의 오늘 금식하는 것은 너희 목소리로 상달케 하려 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람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금식을 한다면서 오락을 즐기거나 사람들과 다투고 싸우며 해를 가한다면 하나님이 무엇이라 하시겠습니까.
세상일에 관심을 가지고 말을 주고받다 보면 무익한 말이나 악한 말이 나오고 농담도 나옵니다. 금식 중에 주변 사람과 다투어 마음이 상하고 혈기를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이 될 수 없습니다. 금식은 하나님 앞에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며,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의지하여 그 은혜를 구하는 지극히 겸비한 행함입니다. 그런 만큼 마음과 뜻과 힘, 정성 다해 하나님 뜻 가운데 행하며 정녕 하나님께서 감동하실 금식을 드려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단기 금식을 할 때에는 일상적인 집안 일이나 직장 일을 병행합니다. 온 집에 충성해야 하니 그렇게 하지만 장기 금식일 때에는 그럴 수 없습니다. 장기 금식하는 동안에는 몸에 무리가 되는 일을 해서는 안 되며, 세상 것을 접하지 않고 온전히 기도와 말씀에 전력하며 근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근신하고 절제하면서 금식할 뿐 아니라 첫날부터 마치는 날까지 마음에 요동 없이 오직 진리 안에 서서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바라고 믿어야 합니다.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입히며 또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않는 금식, 곧 형제에게 선을 행하는 가운데 드리는 금식이라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사 58:7).
여덟째, 금식이 끝난 후 보호식까지 잘 마쳐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금식을 하면 몸이 상하지 않도록 하나님이 붙들어 주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믿음으로 금식한다 해도 사람이 할 수 있는 도리는 해야 합니다. 금식을 하고 그 날짜만큼 보호식을 할 때 온전한 금식을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절제의 능력이 생길 뿐 아니라 몸에 무리가 가지 않고 더욱 강건하며 영이 맑아집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건강하여 소화가 잘되니 굳이 보호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보호식을 온전히 할 때 하나님께서는 위가 연약한 사람이라도 튼튼하게 하고 사소한 질병도 그 기간에 치료해 주십니다. 아무리 금식을 잘했어도 보호식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그만큼 기가 빠지거나 부작용이 생길 수 있습니다.
보호식 중에는 몸을 무리하게 움직이거나 힘든 일을 피해야 합니다. 혹 금식한 뒤에 시험이 찾아올 수도 있으므로 금식할 때 미리 기도로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께서 금식을 기뻐 받으셨을 때에는 보호식도 잘할 수 있도록 주관하십니다.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은 먹지 않도록,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어서 탈이 나는 일이 없도록 절제력을 주십니다. 이렇게 절제하여 아름답게 드리는 보호식까지도 온전한 금식에 포함됩니다.
2. 올바른 보호식을 하려면
보호식을 할 때 과식하면 얼굴이 붓고 위에 부담이 되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보통 하루에 세 번 식사를 하지만 미음이나 죽으로 보호식을 할 때에는 한 컵 정도의 적은 양으로 네 번에 나누어 먹는 것이 좋습니다. 육류, 계란, 빵, 음료수, 기름기가 많은 음식, 매운 것, 짠 것, 단 것, 신 것 등 자극적인 음식이나 화학조미료, 향신료는 피하고 가급적 채식을 하는 것이 좋지요.
3일 금식을 한 뒤에는 처음부터 묽은 죽을 먹어도 되지만 장기 금식을 한 후에는 위장이 아기와 같은 상태이기 때문에 더 주의해야 합니다. 이틀 정도는 거의 물처럼 묽은 미음을 하루에 네 차례 정도 마셔야 하며, 과일은 사과 한쪽 정도 즙을 내서 마시되 하루 네 차례 정도로 그쳐야 합니다. 그리고 3∼4일이 지나면서부터는 미음을 조금씩 진하게 끓여 마시고, 점점 쌀가루나 익은 호박을 넣은 묽은 죽이나 콩나물 죽 등으로 이어 가며 양도 조금씩 늘려 갑니다.
반찬은 육류는 피하고 화학조미료를 넣지 말아야 하며, 굳이 고기를 먹고 싶다면 생선류를 조금 먹되 간은 싱겁게 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고춧잎이나 들깻잎, 무 잎, 배춧잎과 같은 야채에 멸치를 넣어 끓인 것이 좋고, 특히 들깨를 갈아 껍질을 벗겨 내고 쌀죽에 섞어 끓여 먹으면 기가 빨리 회복되고 건강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절제하는 가운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보호식을 하면 붓지도 않고 피부색도 뽀얗게 살아나며 체중도 신속하게 회복됩니다. 이처럼 금식에 이어 보호식까지 잘 마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온전한 금식이 되어 신속한 응답을 체험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하나님과의 ( )을 헐어야 한다.
2. 불같은 ( )가 있어야 한다.
3.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며 ( )해야 한다.
4. 금식이 끝난 후 ( )까지 잘 마쳐야 한다.
● 금주 과제
책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129~139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치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금식 기도와 보호식
① 금식 기도란, 음식물을 먹지 않으며 기도하는 것,
즉 자신의 생명을 걸고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는 것을 말한다.
② 보호식이란, 금식 이후에 일반식을 하기 전까지 음식을 절제하여
섭취하는 식사를 말한다.
금식 기도의 종류
① 마음의 소원을 응답받기 위한 금식
② 어떤 질병이나 문제가 있어서 이를 해결받기 위한 금식
③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금식
④ 죄악을 신속하게 벗어버리기 위한 금식
⑤ 능력 받아 영광 돌리기 위한 금식
⑥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금식
2020-11-27
제48과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기도 (1)
이사야 58:6~9
읽을말씀 : 이사야 58:6~9 | 외울말씀 : 이사야 58:6 | 참고 말씀: 야고보서 4:2~3, 고린도전서 14:1
교육목표 : 금식의 위력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금식기도를 함으로 마음의 소원에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 작정하여 기도하거나 철야기도를 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금식한다 해서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 앞에 금식을 하고도 응답이 없고 여전히 문제가 있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내 편에서는 금식을 했다고 하지만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금식기도를 기뻐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금식기도의 위력
성경을 보면 금식기도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40일 금식은 십자가 고난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는 길을 예비하였고, 모세의 40일 금식은 십계명을 받아 내리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에스더는 3일간의 금식기도를 통해 민족 전체가 멸망할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고 오히려 대적을 멸함으로써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렸습니다. 그 밖에도 죄를 범하여 멸망할 위기에서 금식을 통해 용서받기도 하는 등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인 만큼 그냥 기도하는 것보다 더 신속하게 응답을 이끌어낼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약속하셨는데 곡기를 끊으면서까지 간절히 구하는 자녀의 기도에 어찌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따라서 질병 치료를 위해 금식했다면 반드시 치료의 응답이 와야 하고, 시험 환난 때문에 금식했다면 그것이 물러가야 합니다. 축복이나 권능을 놓고 금식했다면 축복이 임하고 권능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하지요.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려면
첫째, 금식하는 기간이 목적에 맞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40일, 21일, 3일 금식 등이 나오는데 그에 합당한 금식의 제목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40일 금식은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하는 것이며, 개인의 유익이나 사업터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경우, 구세주로서 큰 사명을 이루기 위해 40일 금식을 하셨습니다. 또한 모세가 한 금식은 하나님 백성을 위해 십계명을 받아 내리는 큰 사명을 위한 것이었지요.
에스더의 경우, 자기 민족이 멸절될 위기에 처했으니 장기 금식을 해야 될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민족과 더불어 단 3일을 금식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응답받을 문제가 있을 때에도 그저 불같이 기도하는 것만으로 족한 경우가 있고, 3일만 금식하거나 길어야 7일 정도면 족함을 알아야 합니다.
회개하기 위해 금식을 할 때에도 분별을 잘해야 합니다. 회개하여 돌이키면 족한 경우가 있고 금식을 해서라도 자신을 복종시켜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기도를 쉬었다 해서 10일이나 21일을 회개 금식 한다면 합당치 않습니다. 앞으로 쉬지 않고 기도하면 되지 장기 금식을 할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육체의 일을 행한 경우라면 먼저 철저히 통회자복을 한 뒤에 회개 금식을 해야 합니다(갈 5:19~21).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로 인한 담이 가로막고 있으면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음에 여전히 죄를 품고 금식하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3일을 금식해도 회개하여 완전히 돌이켰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그러나 21일 금식을 해도 돌이키려는 마음 없이 금식만 했다면 받지 않으십니다.
둘째, 금식하는 시기도 중요합니다.
특히 장기 금식은 반드시 성령이 주관하시는 때를 좇아서 해야 합니다. 주의 종이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큰일을 이루고자 권능을 사모하는 사람 중에는 장기 금식을 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심에 따라 구하거나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아무리 40일, 그 이상을 드린다 해도 권능을 끌어내릴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절을 보면 은사를 구할 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가운데서 구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하물며 권능을 받으려면 합당한 그릇을 준비한 다음에 구해야 합니다. 마음에 악이 없도록 성결한 다음에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때를 좇아서 장기 금식을 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 깨끗한 그릇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뜨거움과 열심으로 금식을 작정한 것이라면 공의의 법칙에 맞지 않으므로 응답을 주실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마음에 사모함이 있다 해도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 그릇을 준비하는 기도와 금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릇이 준비되었을 때에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대로 순종하여 금식하면 응답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셋째, 장기 금식을 할 때에는 반드시 질서를 좇아야 합니다.
장기 금식은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니 목적과 기간, 그리고 시기가 과연 하나님 앞에 합당한지 점검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받아서 정한 것이라면 목자도 동일한 주관을 받을 것이니 기꺼이 금식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이며, 그럴 때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금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자와 상담해야 하고 또한 교회 측에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장기 금식 기간에는 말씀과 기도에 몰두해야 하므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양 떼를 관리하는 하나님의 종이 교회 측에 상의도 없이 임의로 장기 금식을 결정해 버린다면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이지요.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한다 해도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육의 질서를 좇아 행해야 합니다. 몸도 쉬어야 할 때에는 쉬고 과식이나 폭식 등을 삼가야 하듯이 금식도 절제 없이 무리하게 할 때에는 몸을 상하게 하므로 지혜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장기 금식의 경우, 마음에 주관이 왔다 해도 먼저 건강을 잘 관리하여 충분히 준비된 상황에서, 또 영적으로도 기도를 잘 쌓은 기반 위에서 금식에 들어가야 합니다.
금식은 육의 생명의 근원이 되는 곡기를 끊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을 걸고 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더구나 장기 금식은 실제로 생명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반드시 성령의 주관 가운데 해야 하며, 또 성령의 주관을 받았다 해도 신중히, 하나님 앞에 준비된 자세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영육 간에 합당한 질서를 좇아서 드릴 때라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온전한 금식이 됩니다.
넷째, 진리에 합당한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했으니, 비진리의 마음으로 금식한다면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물질의 축복을 구할 때에도 믿음이 아니라 욕심으로 구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금식해도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물질의 축복 분야도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에 따라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심을 때에 응답받는 것입니다. 또 크게 심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먼저 영적 축복을 주기 원하므로 때를 기다리시지요.
영적으로 여러 은사를 구한다 해도 먼저 마음에 깨끗한 그릇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영안이 열리기 위해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의 세계를 사모하며 마음을 정결케 하고 기도해야지, 마음의 할례는 하지 않으면서 욕심으로 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능력을 받기 위해 금식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중심으로 불같이 기도하며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는 오히려 해를 입는 경우가 있습니다. 금식으로 인해 몸이 상하기도 하고 오히려 금식 후에 교만해져서 사단의 역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식기도 할 때에는 먼저 자신의 욕심으로 구하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목으로 금식하며 바른 마음으로 구하는 것인지를 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금식하는 기간이 ( )에 맞아야 한다.
2. 금식하는 ( )도 중요하다.
3. 장기 금식을 할 때에는 반드시 ( )를 좇아야 한다.
4. 금식 기도는 ( )에 합당한 목적으로 해야 한다.
● 금주 과제
책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117~12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치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에스더의 금식 기도’
바사 제국의 왕후였던 에스더는 하만이 유다 민족을 멸절시키려 하는 위기 앞에서 잠잠히 있으면 평안할 수 있음에도, 살아도 죽어도 자기 민족과 함께하리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3일을 금식하고 담대히 왕에게 나아갔다(에 5장).
당시 바사 제국의 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왕이 부르기 전에 그 앞에 나아가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만 왕이 그를 위해 금홀을 내밀면 살 수 있었다.
에스더가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걸고 금식기도를 하니,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유다 민족을 멸절의 위기에서 구하시고 원수들을 심판하시는 대반전의 역사가 일어났다.
교육목표 : 금식의 위력을 깨달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금식기도를 함으로 마음의 소원에 응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간절한 소원이 있을 때 작정하여 기도하거나 철야기도를 하고, 금식하며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무조건 금식한다 해서 응답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 앞에 금식을 하고도 응답이 없고 여전히 문제가 있다면 분명히 이유가 있습니다. 내 편에서는 금식을 했다고 하지만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과연 어떤 금식기도를 기뻐하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 금식기도의 위력
성경을 보면 금식기도의 위력은 참으로 대단함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40일 금식은 십자가 고난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는 길을 예비하였고, 모세의 40일 금식은 십계명을 받아 내리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에스더는 3일간의 금식기도를 통해 민족 전체가 멸망할 위기에서 벗어나게 했고 오히려 대적을 멸함으로써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렸습니다. 그 밖에도 죄를 범하여 멸망할 위기에서 금식을 통해 용서받기도 하는 등 목숨을 걸고 하는 것인 만큼 그냥 기도하는 것보다 더 신속하게 응답을 이끌어낼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 “구하라 주실 것이요” 약속하셨는데 곡기를 끊으면서까지 간절히 구하는 자녀의 기도에 어찌 응답하지 않으시겠습니까. 따라서 질병 치료를 위해 금식했다면 반드시 치료의 응답이 와야 하고, 시험 환난 때문에 금식했다면 그것이 물러가야 합니다. 축복이나 권능을 놓고 금식했다면 축복이 임하고 권능을 나타낼 수 있어야 하지요.
2.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려면
첫째, 금식하는 기간이 목적에 맞아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40일, 21일, 3일 금식 등이 나오는데 그에 합당한 금식의 제목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40일 금식은 하나님의 큰 뜻을 이루기 위해 하는 것이며, 개인의 유익이나 사업터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경우, 구세주로서 큰 사명을 이루기 위해 40일 금식을 하셨습니다. 또한 모세가 한 금식은 하나님 백성을 위해 십계명을 받아 내리는 큰 사명을 위한 것이었지요.
에스더의 경우, 자기 민족이 멸절될 위기에 처했으니 장기 금식을 해야 될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민족과 더불어 단 3일을 금식했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응답받을 문제가 있을 때에도 그저 불같이 기도하는 것만으로 족한 경우가 있고, 3일만 금식하거나 길어야 7일 정도면 족함을 알아야 합니다.
회개하기 위해 금식을 할 때에도 분별을 잘해야 합니다. 회개하여 돌이키면 족한 경우가 있고 금식을 해서라도 자신을 복종시켜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일 기도를 쉬었다 해서 10일이나 21일을 회개 금식 한다면 합당치 않습니다. 앞으로 쉬지 않고 기도하면 되지 장기 금식을 할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육체의 일을 행한 경우라면 먼저 철저히 통회자복을 한 뒤에 회개 금식을 해야 합니다(갈 5:19~21).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로 인한 담이 가로막고 있으면 기도를 해도 하나님께 상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마음에 여전히 죄를 품고 금식하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이 없습니다. 3일을 금식해도 회개하여 완전히 돌이켰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십니다. 그러나 21일 금식을 해도 돌이키려는 마음 없이 금식만 했다면 받지 않으십니다.
둘째, 금식하는 시기도 중요합니다.
특히 장기 금식은 반드시 성령이 주관하시는 때를 좇아서 해야 합니다. 주의 종이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큰일을 이루고자 권능을 사모하는 사람 중에는 장기 금식을 하려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욕심에 따라 구하거나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라면 아무리 40일, 그 이상을 드린다 해도 권능을 끌어내릴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4장 1절을 보면 은사를 구할 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 가운데서 구해야 함을 말씀합니다. 하물며 권능을 받으려면 합당한 그릇을 준비한 다음에 구해야 합니다. 마음에 악이 없도록 성결한 다음에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때를 좇아서 장기 금식을 해야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아직 깨끗한 그릇이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단순히 뜨거움과 열심으로 금식을 작정한 것이라면 공의의 법칙에 맞지 않으므로 응답을 주실 수 없습니다. 아무리 마음에 사모함이 있다 해도 먼저 자신을 돌아보아 그릇을 준비하는 기도와 금식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그릇이 준비되었을 때에 성령께서 주관하시는 대로 순종하여 금식하면 응답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셋째, 장기 금식을 할 때에는 반드시 질서를 좇아야 합니다.
장기 금식은 생명을 걸고 하는 것이니 목적과 기간, 그리고 시기가 과연 하나님 앞에 합당한지 점검해야 합니다. 성령의 역사를 받아서 정한 것이라면 목자도 동일한 주관을 받을 것이니 기꺼이 금식을 위해 기도해 줄 것이며, 그럴 때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 속에서 하나님이 보장하시는 금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목자와 상담해야 하고 또한 교회 측에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장기 금식 기간에는 말씀과 기도에 몰두해야 하므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일 양 떼를 관리하는 하나님의 종이 교회 측에 상의도 없이 임의로 장기 금식을 결정해 버린다면 이치에 맞지 않은 일이지요.
우리가 하나님 일을 한다 해도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육의 질서를 좇아 행해야 합니다. 몸도 쉬어야 할 때에는 쉬고 과식이나 폭식 등을 삼가야 하듯이 금식도 절제 없이 무리하게 할 때에는 몸을 상하게 하므로 지혜롭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장기 금식의 경우, 마음에 주관이 왔다 해도 먼저 건강을 잘 관리하여 충분히 준비된 상황에서, 또 영적으로도 기도를 잘 쌓은 기반 위에서 금식에 들어가야 합니다.
금식은 육의 생명의 근원이 되는 곡기를 끊는 것이기 때문에 생명을 걸고 한다는 의미가 있으며, 더구나 장기 금식은 실제로 생명을 걸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 만큼 반드시 성령의 주관 가운데 해야 하며, 또 성령의 주관을 받았다 해도 신중히, 하나님 앞에 준비된 자세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렇게 영육 간에 합당한 질서를 좇아서 드릴 때라야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온전한 금식이 됩니다.
넷째, 진리에 합당한 목적으로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장 2~3절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했으니, 비진리의 마음으로 금식한다면 응답을 받을 수 없습니다.
물질의 축복을 구할 때에도 믿음이 아니라 욕심으로 구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금식해도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물질의 축복 분야도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에 따라 하나님 앞에 믿음으로 심을 때에 응답받는 것입니다. 또 크게 심는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먼저 영적 축복을 주기 원하므로 때를 기다리시지요.
영적으로 여러 은사를 구한다 해도 먼저 마음에 깨끗한 그릇을 준비하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구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영안이 열리기 위해 기도할 때에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의 세계를 사모하며 마음을 정결케 하고 기도해야지, 마음의 할례는 하지 않으면서 욕심으로 구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능력을 받기 위해 금식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할례를 하면서 오직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한 중심으로 불같이 기도하며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할 때에는 오히려 해를 입는 경우가 있습니다. 금식으로 인해 몸이 상하기도 하고 오히려 금식 후에 교만해져서 사단의 역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금식기도 할 때에는 먼저 자신의 욕심으로 구하는 것은 아닌지, 하나님 앞에 합당한 제목으로 금식하며 바른 마음으로 구하는 것인지를 잘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살펴보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1. 금식하는 기간이 ( )에 맞아야 한다.
2. 금식하는 ( )도 중요하다.
3. 장기 금식을 할 때에는 반드시 ( )를 좇아야 한다.
4. 금식 기도는 ( )에 합당한 목적으로 해야 한다.
● 금주 과제
책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117~12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치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에스더의 금식 기도’
바사 제국의 왕후였던 에스더는 하만이 유다 민족을 멸절시키려 하는 위기 앞에서 잠잠히 있으면 평안할 수 있음에도, 살아도 죽어도 자기 민족과 함께하리라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3일을 금식하고 담대히 왕에게 나아갔다(에 5장).
당시 바사 제국의 법에 따르면, 누구든지 왕이 부르기 전에 그 앞에 나아가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었다. 다만 왕이 그를 위해 금홀을 내밀면 살 수 있었다.
에스더가 하나님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생명을 걸고 금식기도를 하니, 하나님께서 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셨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께서 유다 민족을 멸절의 위기에서 구하시고 원수들을 심판하시는 대반전의 역사가 일어났다.
2020-11-20
제47과합심기도의 위력
마태복음 18:19~20
읽을말씀 : 마태복음 18:19~20 | 외울말씀 : 마태복음 18:19 | 참고 말씀: 사도행전 12:5
교육목표 : 성령과 한마음이 되어 기도함으로 합심기도의 위력을 체험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합심기도의 영적 의미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두 사람’이란 꼭 두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각 사람이 기도할 때에 성령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지요(유 1:20).
그렇다면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이며 하나님과 동일한 마음과 뜻을 가지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진리를 행하면 기뻐하며 죄 가운데 행하면 애통해하시는 등 독립적인 인성을 가지셨지요. 이러한 성령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 안에 계십니다.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성령의 마음이 하나 되어, 곧 두 마음이 합하여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합심기도를 드릴 때라야 주님이 우리 기도에 함께하시며 신속히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의 기도를 하려면 성령의 마음을 알아서 성령이 원하시는 기도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이 영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영으로 변화되는 만큼, 곧 세상에서 입력된 비진리와 죄악이 없어진 만큼 성령께서 우리를 밝히 주관하고 음성을 들려 줌으로써 그 뜻을 알게 하십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을 받아 순종해 나갈 때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을 입으며 우리 마음과 성령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할 때에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거나 욕심을 따라 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는 소원에 따라, 또 하나님 방법대로 이룰 수 있도록 진리로 기도하지요. 이렇게 기도할 때에 이것이 영적 의미의 합심기도이며, 그 기도의 위력과 역사하는 힘이 큰 것입니다.
2. 합심기도 방법
하나님께서 합심기도를 기뻐하고 속히 응답하며 크게 역사하시는 까닭은 한마음이 되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내가 한마음이 되어 기도한다면 엘리야처럼 불의 응답을 받으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마음껏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어떤 일을 계획하고 의논할 때에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고 의견이 분분하다면 그 일은 이미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혼자든 둘이든 또는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할 때에 성령과 마음이 하나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응답받는 데 중요한 관건입니다.
그러니 합심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과 충만을 받아 기도해야 합니다(엡 6:18).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을 지녔으므로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며(고전 2:10) 하나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는 분입니다(롬 8:27). 그러므로 성령께서 마음을 주관하는 대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였거나 꾸준한 기도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을 기도하고자 해도 억지로 생각을 짜내며 힘들어하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생각 속에서 임의대로 하는 기도는 생각의 기도, 혼의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하면 성령의 충만함도 없고, 쉽게 잡념이 틈타거나 피곤해져 졸음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기도할 수 없고, 중언부언하며 기도 후에는 자신이 무슨 기도를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도에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어도 여전히 혼의 기도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고 불평하거나 낙망하는 까닭은 혼의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외면한다는 것은 아니며, 듣고 계시지만 응답하실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성령의 감동함을 받지 못하니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생각의 기도라도 열심히 부르짖을 때 기도 문이 열리고, 능력을 받아 영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예 기도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혼의 기도라도 하나님이 듣고 계시며, 때가 되어 기도 문이 열리면 성령과 연합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하게 되고 예전에 쌓아놓은 것까지 모두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말씀합니다. 성령을 받은 무리가 합심하여 기도할 때에 주님은 각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여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고 한마음으로 연합하도록 인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가 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함께 기도하여도 한마음 한뜻이 되어 사랑으로 기도할 수 있지요.
그러나 각 사람이 마음을 모으지 않는다면 목표를 정해 놓고 한다 해도 중심을 다한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기도할 때에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면 사회자는 찬송을 충만히 부르게 하고 회개케 하여 성령으로 하나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하나 되어 기도하면 성령이 충만하고 마음에 기쁨이 임하며 응답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옵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영으로 기도하면 조금도 피곤치 않고 졸음이나 잡념도 틈타지 못하며 믿음과 기쁨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도가 주님이 함께하시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입니다.
3. 합심기도의 위력
헤롯(헤롯 아그립바 1세)의 기독교 박해로 열두 사도 중 가장 먼저 야고보가 칼에 목을 베이고 베드로는 옥에 갇혔을 때의 일입니다.
사도행전 12장 5절에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이 베드로를 위해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구출하셨습니다.
헤롯이 베드로를 잡아내려 하던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군사 틈에서 쇠사슬에 매여 잠들었고 파수꾼들은 문 밖에서 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베드로를 얽어 맨 쇠사슬이 벗겨지고 굳게 잠긴 쇠문이 저절로 열려 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행 12:1~10).
베드로가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집에 이를 때까지 그곳에서는 여러 사람이 모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이 기적의 역사는 합심기도의 위력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옥에 갇힌 사도 베드로를 위해 교회가 한 일은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한 것뿐이었습니다.
이처럼 교회에 어려움이 있을 때, 성도들에게 아픔이 있을 때에 사람의 생각을 동원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줄 믿고 마음 모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합심기도를 기쁘게 받고 응답하십니다. 더욱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합심으로 기도할 때에 얼마나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물론 기도하는 사람의 수만 많다고 해서 합심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 같은 성령의 주관을 받으며 동일한 목적을 갖고 열심으로 기도에 동참해야 합니다. 한자리에 모여 있어도 중언부언하고 잡념과 졸음 속에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수 없지요. 합심기도란 말 그대로 마음을 모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모으기 위한 구심점은 바로 성령이며, 모든 사람이 성령의 주관에 따라 하나 되어 기도할 때라야 참된 합심기도가 됩니다.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합하여 성령 충만함으로써 영의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체험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받고 마음껏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는 곳에 힘써 함께하여 합심기도의 위력을 체험하며 기도의 능력을 받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귀한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 )의 마음이 하나 되어, 곧 두 마음이 합하여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성령을 받은 무리가 합심하여 기도할 때에 ( )은 각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여 ( )으로 하나 되게 하고 한마음으로 연합하도록 인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가 되도록 하신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105~12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치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합심기도의 위력’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을 비롯하여 120명이 합심하여 기도에 힘썼는데, 오순절날 모두가 성령을 받고 불같은 성령의 역사를 받아 각 나라 말로 방언을 하였다(행 2:1~4).
또한 이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 제자의 수가 삼천 명이나 되었으며(행 2:41) 사도들을 통해 갖가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 믿는 자의 수가 점점 더해졌고 성도들 삶이 변화되었다(행 2:43~47).
이같이 합심기도를 통해 말씀을 전하는 능력이 임하고, 눈먼 사람이나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고 갖가지 질병을 치료하며, 귀신을 내쫓음으로써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다.
교육목표 : 성령과 한마음이 되어 기도함으로 합심기도의 위력을 체험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합심기도의 영적 의미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저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두 사람’이란 꼭 두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며, 영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각 사람이 기도할 때에 성령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뜻이지요(유 1:20).
그렇다면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성령은 삼위일체 하나님의 한 분이며 하나님과 동일한 마음과 뜻을 가지셨습니다. 또한 우리가 진리를 행하면 기뻐하며 죄 가운데 행하면 애통해하시는 등 독립적인 인성을 가지셨지요. 이러한 성령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의 마음 안에 계십니다.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성령의 마음이 하나 되어, 곧 두 마음이 합하여 기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합심기도를 드릴 때라야 주님이 우리 기도에 함께하시며 신속히 응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능력의 기도를 하려면 성령의 마음을 알아서 성령이 원하시는 기도를 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이 영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이 영으로 변화되는 만큼, 곧 세상에서 입력된 비진리와 죄악이 없어진 만큼 성령께서 우리를 밝히 주관하고 음성을 들려 줌으로써 그 뜻을 알게 하십니다. 이렇게 성령의 음성을 듣고 주관을 받아 순종해 나갈 때 성령의 감동 감화 충만함을 입으며 우리 마음과 성령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기도할 때에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거나 욕심을 따라 구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는 소원에 따라, 또 하나님 방법대로 이룰 수 있도록 진리로 기도하지요. 이렇게 기도할 때에 이것이 영적 의미의 합심기도이며, 그 기도의 위력과 역사하는 힘이 큰 것입니다.
2. 합심기도 방법
하나님께서 합심기도를 기뻐하고 속히 응답하며 크게 역사하시는 까닭은 한마음이 되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과 내가 한마음이 되어 기도한다면 엘리야처럼 불의 응답을 받으며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마음껏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두 사람 이상이 모여 어떤 일을 계획하고 의논할 때에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고 의견이 분분하다면 그 일은 이미 시작부터 잘못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혼자든 둘이든 또는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할 때에 성령과 마음이 하나 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는 응답받는 데 중요한 관건입니다.
그러니 합심기도를 하는 사람들은 성령의 감동과 충만을 받아 기도해야 합니다(엡 6:18). 성령은 하나님의 마음을 지녔으므로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며(고전 2:10) 하나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는 분입니다(롬 8:27). 그러므로 성령께서 마음을 주관하는 대로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응답하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십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였거나 꾸준한 기도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은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이 힘들고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한 시간을 기도하고자 해도 억지로 생각을 짜내며 힘들어하고 시간이 빨리 지나가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생각 속에서 임의대로 하는 기도는 생각의 기도, 혼의 기도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하면 성령의 충만함도 없고, 쉽게 잡념이 틈타거나 피곤해져 졸음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 기도할 수 없고, 중언부언하며 기도 후에는 자신이 무슨 기도를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기도에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수 없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어도 여전히 혼의 기도를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고 불평하거나 낙망하는 까닭은 혼의 기도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그들의 기도를 외면한다는 것은 아니며, 듣고 계시지만 응답하실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사람은 ‘나는 성령의 감동함을 받지 못하니 기도할 필요가 없는 것일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생각의 기도라도 열심히 부르짖을 때 기도 문이 열리고, 능력을 받아 영의 기도를 하게 됩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아예 기도 문이 열리지 않습니다. 혼의 기도라도 하나님이 듣고 계시며, 때가 되어 기도 문이 열리면 성령과 연합하여 성령의 감동으로 기도하게 되고 예전에 쌓아놓은 것까지 모두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8장 20절에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말씀합니다. 성령을 받은 무리가 합심하여 기도할 때에 주님은 각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여 성령으로 하나 되게 하고 한마음으로 연합하도록 인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가 되도록 하십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이 함께 기도하여도 한마음 한뜻이 되어 사랑으로 기도할 수 있지요.
그러나 각 사람이 마음을 모으지 않는다면 목표를 정해 놓고 한다 해도 중심을 다한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여러 사람이 함께 기도할 때에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 않는다면 사회자는 찬송을 충만히 부르게 하고 회개케 하여 성령으로 하나 되도록 해야 합니다. 성령으로 하나 되어 기도하면 성령이 충만하고 마음에 기쁨이 임하며 응답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옵니다. 성령이 충만하여 영으로 기도하면 조금도 피곤치 않고 졸음이나 잡념도 틈타지 못하며 믿음과 기쁨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기도가 주님이 함께하시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입니다.
3. 합심기도의 위력
헤롯(헤롯 아그립바 1세)의 기독교 박해로 열두 사도 중 가장 먼저 야고보가 칼에 목을 베이고 베드로는 옥에 갇혔을 때의 일입니다.
사도행전 12장 5절에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도들이 베드로를 위해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 베드로를 구출하셨습니다.
헤롯이 베드로를 잡아내려 하던 전날 밤 베드로는 두 군사 틈에서 쇠사슬에 매여 잠들었고 파수꾼들은 문 밖에서 옥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베드로를 얽어 맨 쇠사슬이 벗겨지고 굳게 잠긴 쇠문이 저절로 열려 옥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행 12:1~10).
베드로가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집에 이를 때까지 그곳에서는 여러 사람이 모여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놀라운 이 기적의 역사는 합심기도의 위력으로 일어난 것입니다. 옥에 갇힌 사도 베드로를 위해 교회가 한 일은 합심하여 간절히 기도한 것뿐이었습니다.
이처럼 교회에 어려움이 있을 때, 성도들에게 아픔이 있을 때에 사람의 생각을 동원하거나 근심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 줄 믿고 마음 모아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합심기도를 기쁘게 받고 응답하십니다. 더욱이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하여 합심으로 기도할 때에 얼마나 기쁘게 받으시겠습니까.
물론 기도하는 사람의 수만 많다고 해서 합심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 같은 성령의 주관을 받으며 동일한 목적을 갖고 열심으로 기도에 동참해야 합니다. 한자리에 모여 있어도 중언부언하고 잡념과 졸음 속에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수 없지요. 합심기도란 말 그대로 마음을 모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모으기 위한 구심점은 바로 성령이며, 모든 사람이 성령의 주관에 따라 하나 되어 기도할 때라야 참된 합심기도가 됩니다.
여러 사람이 마음을 합하여 성령 충만함으로써 영의 기도를 하면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체험합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받고 마음껏 하나님 나라를 확장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는 곳에 힘써 함께하여 합심기도의 위력을 체험하며 기도의 능력을 받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는 귀한 일꾼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성령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과 ( )의 마음이 하나 되어, 곧 두 마음이 합하여 기도하는 것을 의미한다.
2. 성령을 받은 무리가 합심하여 기도할 때에 ( )은 각 사람의 마음을 주관하여 ( )으로 하나 되게 하고 한마음으로 연합하도록 인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기도가 되도록 하신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105~12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치기.
● 알고 넘어갑시다!
‘합심기도의 위력’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을 비롯하여 120명이 합심하여 기도에 힘썼는데, 오순절날 모두가 성령을 받고 불같은 성령의 역사를 받아 각 나라 말로 방언을 하였다(행 2:1~4).
또한 이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 제자의 수가 삼천 명이나 되었으며(행 2:41) 사도들을 통해 갖가지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 믿는 자의 수가 점점 더해졌고 성도들 삶이 변화되었다(행 2:43~47).
이같이 합심기도를 통해 말씀을 전하는 능력이 임하고, 눈먼 사람이나 걷지 못하는 사람을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고 갖가지 질병을 치료하며, 귀신을 내쫓음으로써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릴 수 있다.
2020-11-13
제46과하나님께 감사
출애굽기 23:16
읽을말씀 : 출애굽기 23:16 | 외울말씀 : 시편 17:8 | 참고 말씀: 레위기 23:42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알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스럽고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될까요?
1.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의 계절을 맞아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이스라엘의 절기 중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지요.
수장절은 원래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추수하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확한 곡식을 저장한 후 추수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는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레위기 23장 34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지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23장 43절에는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감동적인 추수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수장절은 출애굽하여 40년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보호하심과,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2. 청교도들의 신앙과 추수감사절
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의 개척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도착한 그곳은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 첫 추수감사절을 지냈습니다.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지낸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
먼저, 이 세상의 수많은 질병, 사고, 재앙으로부터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질병이 있는데 그중에는 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지요.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도 심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 마약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와 명예, 권세도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살하기도 하지요.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병, 의학으로 밝힐 수 없는 병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셨습니다.
여 성도 한 분은 ‘양수과소증’으로 도저히 살릴 길 없었던 태아를 기도를 받고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양수가 거의 없는 태반 속에서 그 연약한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남았지요. 또 한 분은 급성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진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병원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던 중 통회자복을 한 후 기도를 받았는데 수술을 받지 않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재앙과 사고로부터도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지구는 대지진과 가뭄과 산불, 태풍,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지켜 주십니다. 혹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철저히 돌이키고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해결됩니다.
다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원한 천국 소망을 주시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소망이 온전해지도록 은혜와 감동을 주십니다.
전 세계 수많은 성도들이 『천국』 책자를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해졌습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저도 새 예루살렘 성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말씀한 대로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까지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로 양육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찬양이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알곡처럼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더욱 사랑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질병, 사고, 재앙을 만나지 않고 지킴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추수감사절을 맞아 늘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다해 감사드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진주문’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열두 개의 문이 있다. 문마다 큰 천사가 지키고 있어 성의 위엄과 권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참을 올려다볼 정도로 큰 아치형의 문 전체가 하나의 영롱한 진주로 되어 있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며 황금보석 손잡이가 달려 있으나 굳이 손으로 열지 않아도 저절로 열린다.
열두 진주문을 통과하려면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 내기까지 고통을 인내한 것처럼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여 승리했을 때 들어갈 수 있다.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알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면 얼마나 감동스럽고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될까요?
1.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의 계절을 맞아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이스라엘의 절기 중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지요.
수장절은 원래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추수하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확한 곡식을 저장한 후 추수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는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레위기 23장 34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지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40년 광야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레위기 23장 43절에는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풍성한 수확을 거두어 감동적인 추수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생활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도록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수장절은 출애굽하여 40년 광야생활 동안 하나님께서 보호하심과,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절기입니다.
2. 청교도들의 신앙과 추수감사절
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의 개척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습니다. 도착한 그곳은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지요.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 첫 추수감사절을 지냈습니다.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지낸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결코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웠습니다. 청교도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
먼저, 이 세상의 수많은 질병, 사고, 재앙으로부터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질병이 있는데 그중에는 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지요.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도 심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 마약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와 명예, 권세도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살하기도 하지요.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병, 의학으로 밝힐 수 없는 병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셨습니다.
여 성도 한 분은 ‘양수과소증’으로 도저히 살릴 길 없었던 태아를 기도를 받고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양수가 거의 없는 태반 속에서 그 연약한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남았지요. 또 한 분은 급성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진전되어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병원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던 중 통회자복을 한 후 기도를 받았는데 수술을 받지 않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만나 주십니다.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재앙과 사고로부터도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지구는 대지진과 가뭄과 산불, 태풍,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 소식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지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지켜 주십니다. 혹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철저히 돌이키고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해결됩니다.
다음으로,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원한 천국 소망을 주시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소망이 온전해지도록 은혜와 감동을 주십니다.
전 세계 수많은 성도들이 『천국』 책자를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해졌습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저도 새 예루살렘 성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말씀한 대로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까지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로 양육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찬양이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알곡처럼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더욱 사랑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질병, 사고, 재앙을 만나지 않고 지킴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추수감사절을 맞아 늘 우리를 지키고 보호하시며 축복해 주신 하나님께 마음 다해 감사드리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 알고 넘어갑시다!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진주문’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열두 개의 문이 있다. 문마다 큰 천사가 지키고 있어 성의 위엄과 권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참을 올려다볼 정도로 큰 아치형의 문 전체가 하나의 영롱한 진주로 되어 있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며 황금보석 손잡이가 달려 있으나 굳이 손으로 열지 않아도 저절로 열린다.
열두 진주문을 통과하려면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 내기까지 고통을 인내한 것처럼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여 승리했을 때 들어갈 수 있다.
2020-11-06
제45과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야고보서 5:16~18
읽을말씀 : 야고보서 5:16~18 | 외울말씀 : 야고보서 5:14 | 참고 말씀: 히브리서 11:1
교육목표 : 주님을 닮은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의인이 되어 신속히 응답받으며 형통한 삶을 누리게 한다.
1. 병든 자를 일으키는 믿음의 기도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고난 중에 눈물로 기도한 적이 있는가 하면 응답을 받아 즐거워하며 찬송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약 5:13). 또한 병든 사람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거나(약 5:14)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믿음의 기도를 통해 응답받아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린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했습니다. 믿음은 크게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으로 분류된다 했는데 육적 믿음은 내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 믿는 것이므로 삶에 변화가 오지 않습니다. 반면 영적 믿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아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니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음과 기사와 표적을 체험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했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하셨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영적 믿음을 소유하여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여야 합니다. 즉 자신이 아는 것을 옳다 여기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 모든 생각과 이론은 다 깨뜨리고 진리를 좇아 행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만큼 영혼이 잘되고 영적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믿음에도 분량이 있어 사람마다 다릅니다(롬 12:3). 처음에 전도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을 때에는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이지만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행해 나가면 영적 믿음이 성장합니다. 영적 믿음이 커지는 만큼 표적도 따릅니다(막 16:17). 병든 자를 일으키는 기도는 이러한 영적 믿음의 기도여야 합니다. 중풍으로 고생하는 하인을 둔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말씀으로만 하셔도 병이 나으리라는 믿음을 가졌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곧바로 하인이 나았습니다(마 8:5~13).
또한 담대한 믿음으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하신 대로, 하나님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이와 함께 사랑으로 기도할 때에 더욱 크게 역사하십니다. 서로 죄를 고하고 병 낫기를 위하여 사랑으로 기도하면(약 5:16) 혹 죄를 범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용서하고 치료해 주십니다. 이처럼 영적 믿음과 영적 사랑의 기도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2. 역사하는 힘이 많은 의인의 간구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롬 5:12)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롬 3:23).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신 대로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께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이라면 죄에서 해방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비진리를 버리며 진리를 좇아 행함으로써 참된 의인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행함 있는 믿음을 소유하여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의인이라 인정하며 그의 간구에 응답해 주십니다.
누가복음 18장 2~8절에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이라도 억울한 사연을 지닌 과부가 끊임없이 간청하니 그의 청원을 들어주었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에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 18:7~8)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밤낮 부르짖어 기도하고 철야하며 금식하는 것 같은데 응답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의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 일에 충성한다고 다 의인은 아닙니다. 만일 교회에서는 열심을 내지만 집에서는 형제와 화목하지 않고 부모에게 불효한다면 어찌 응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주님을 닮아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기도를 올리기 때문에 신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하셨습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와 권능
우리의 영혼이 잘되어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좇아 구하게 하고 은사를 주십니다(고전 12:1~11). 은사란 하나님이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선물이며 그분의 사랑 안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역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합당한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므로 성령의 주관 속에 베풀어야 합니다. 또한 은사를 구하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 합당한 의인이 되도록 힘써야 하지요.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각각 하나님께 쓰이는 분야가 달랐습니다. 크게 능력을 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능력 행함은 없이 예언만 하거나 가르침만 베푼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믿음과 사랑을 갖출수록 큰 은사와 권능을 주셔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자기 동족을 학대하는 애굽인을 쳐 죽일 정도로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연단을 거치며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 되자 큰 권능을 받아 갖가지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며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되 그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습니다(약 5:17~18). 또한 그의 기도로 죽은 아이가 살아나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이같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정녕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하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갖가지 은사와 권능을 주어 큰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물론 우리가 처음부터 의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갓 구원을 받아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데에서 나아가 하나님 말씀을 들음으로써 죄를 깨닫고 비진리를 벗어 버리며 영혼이 잘되는 만큼 더욱 온전한 의인이 되어 갑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의 가운데 행하는 만큼 의인이 되는 것이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한 사도 바울과 같이 날마다 하나님 능력으로 변화되는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이제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혹시 하나님과 막힌 담이 있지 않은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인정하실 만한 의인이 되기 위하여 믿음으로 순종하고 사랑으로 희생하며, 의인의 간구를 올림으로 항상 형통한 삶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께 ( ) 칭함을 받는다.
2. ( )란 하나님이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선물이며 그분의 사랑 안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역사를 말한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91~10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엘리야의 기도’
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나타내고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시켜 바알 선지자들을 잡아 기손 시내에서 죽이게 한 엘리야는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아합왕에게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왕상 18:41) 말하고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엘리야는 응답받기 위해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되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기도했다.
사환에게 바다 편을 바라보게 하였고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무려 일곱 번을 기도하였으니 능히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가 되어 하늘로부터 비가 쏟아졌다.
교육목표 : 주님을 닮은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 뜻대로 행하는 의인이 되어 신속히 응답받으며 형통한 삶을 누리게 한다.
1. 병든 자를 일으키는 믿음의 기도
지나온 삶을 돌아보면 고난 중에 눈물로 기도한 적이 있는가 하면 응답을 받아 즐거워하며 찬송할 때도 있었을 것입니다(약 5:13). 또한 병든 사람을 위해 합심하여 기도하거나(약 5:14)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을 믿음의 기도를 통해 응답받아 하나님께 크게 영광 돌린 적도 있었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 했습니다. 믿음은 크게 육적 믿음과 영적 믿음으로 분류된다 했는데 육적 믿음은 내 생각과 이론에 맞아야 믿는 것이므로 삶에 변화가 오지 않습니다. 반면 영적 믿음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생각과 이론에 맞지 않아도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을 그대로 믿습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믿으니 삶에 변화가 일어나고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음과 기사와 표적을 체험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했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 하셨습니다.
과연 어떻게 해야 영적 믿음을 소유하여 크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을까요? 고린도후서 10장 5절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여야 합니다. 즉 자신이 아는 것을 옳다 여기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어긋난 모든 생각과 이론은 다 깨뜨리고 진리를 좇아 행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육신의 생각을 깨뜨리고 비진리를 벗어 버리는 만큼 영혼이 잘되고 영적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믿음에도 분량이 있어 사람마다 다릅니다(롬 12:3). 처음에 전도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였을 때에는 겨자씨만 한 작은 믿음이지만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기도하며 행해 나가면 영적 믿음이 성장합니다. 영적 믿음이 커지는 만큼 표적도 따릅니다(막 16:17). 병든 자를 일으키는 기도는 이러한 영적 믿음의 기도여야 합니다. 중풍으로 고생하는 하인을 둔 백부장은 예수님께서 말씀으로만 하셔도 병이 나으리라는 믿음을 가졌기에 예수님이 말씀하시자 곧바로 하인이 나았습니다(마 8:5~13).
또한 담대한 믿음으로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기도할 때에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하신 대로, 하나님은 좌우로 치우치지 않는 굳건한 믿음을 기뻐하십니다. 이와 함께 사랑으로 기도할 때에 더욱 크게 역사하십니다. 서로 죄를 고하고 병 낫기를 위하여 사랑으로 기도하면(약 5:16) 혹 죄를 범했다 해도 하나님께서 용서하고 치료해 주십니다. 이처럼 영적 믿음과 영적 사랑의 기도는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끌어내릴 수 있습니다.
2. 역사하는 힘이 많은 의인의 간구
첫 사람 아담의 불순종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롬 5:12)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롬 3:23).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길을 예비하셨습니다.
로마서 3장 24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하신 대로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께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사람이라면 죄에서 해방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비진리를 버리며 진리를 좇아 행함으로써 참된 의인이 되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같이 행함 있는 믿음을 소유하여 말씀대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의인이라 인정하며 그의 간구에 응답해 주십니다.
누가복음 18장 2~8절에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가 나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불의한 재판관이라도 억울한 사연을 지닌 과부가 끊임없이 간청하니 그의 청원을 들어주었다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에서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눅 18:7~8) 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변을 보면 밤낮 부르짖어 기도하고 철야하며 금식하는 것 같은데 응답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인정하실 만한 의인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고 하나님 일에 충성한다고 다 의인은 아닙니다. 만일 교회에서는 열심을 내지만 집에서는 형제와 화목하지 않고 부모에게 불효한다면 어찌 응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주님을 닮아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기도를 올리기 때문에 신속히 응답해 주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하셨습니다.
3. 하나님이 주시는 은사와 권능
우리의 영혼이 잘되어 하나님이 사용할 수 있는 그릇이 되면 하나님께서 성령을 좇아 구하게 하고 은사를 주십니다(고전 12:1~11). 은사란 하나님이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선물이며 그분의 사랑 안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역사를 말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고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합당한 사람에게 은사를 주시므로 성령의 주관 속에 베풀어야 합니다. 또한 은사를 구하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 합당한 의인이 되도록 힘써야 하지요.
믿음의 선진들을 보면 각각 하나님께 쓰이는 분야가 달랐습니다. 크게 능력을 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능력 행함은 없이 예언만 하거나 가르침만 베푼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믿음과 사랑을 갖출수록 큰 은사와 권능을 주셔서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셨습니다.
모세는 애굽의 왕자로 있을 때 자기 동족을 학대하는 애굽인을 쳐 죽일 정도로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런데 많은 연단을 거치며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 되자 큰 권능을 받아 갖가지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며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되 그가 비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하니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않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습니다(약 5:17~18). 또한 그의 기도로 죽은 아이가 살아나고 하늘에서 불이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이같이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큽니다. 정녕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자신을 희생하며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갖가지 은사와 권능을 주어 큰 영광을 돌리게 합니다. 물론 우리가 처음부터 의인이 된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믿음으로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갓 구원을 받아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데에서 나아가 하나님 말씀을 들음으로써 죄를 깨닫고 비진리를 벗어 버리며 영혼이 잘되는 만큼 더욱 온전한 의인이 되어 갑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의 가운데 행하는 만큼 의인이 되는 것이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한 사도 바울과 같이 날마다 하나님 능력으로 변화되는 삶을 영위해야 합니다. 이제까지의 삶을 돌아보며 혹시 하나님과 막힌 담이 있지 않은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인정하실 만한 의인이 되기 위하여 믿음으로 순종하고 사랑으로 희생하며, 의인의 간구를 올림으로 항상 형통한 삶을 누려야 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께 ( ) 칭함을 받는다.
2. ( )란 하나님이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선물이며 그분의 사랑 안에 이루어지는 특별한 역사를 말한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91~101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엘리야의 기도’
불의 응답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나타내고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을 회개시켜 바알 선지자들을 잡아 기손 시내에서 죽이게 한 엘리야는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왕상 18:1)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아합왕에게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왕상 18:41) 말하고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갔다.
엘리야는 응답받기 위해 얼굴이 무릎 사이에 들어갈 정도로 간절히 기도하되 하나님께로부터 응답을 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기도했다.
사환에게 바다 편을 바라보게 하였고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무려 일곱 번을 기도하였으니 능히 하나님을 감동시키고 하늘 보좌를 움직이는 기도가 되어 하늘로부터 비가 쏟아졌다.
2020-10-30
제44과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2)
마태복음 26:40~41
읽을말씀 : 마태복음 26:40~41 | 외울말씀 : 골로새서 4:2 | 참고 말씀: 베드로전서 4:7
교육목표 :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아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버려 나가며 오직 하나님 뜻을 좇아 살아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때 함께 기도하려고 예수님을 따라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고 말지요. 이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0~41)라고 안타까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육신이 약하다’ 하신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는 단순히 몸이 약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어부들입니다. 더구나 그 당시에는 신체 건장한 젊은이들이었지요. 밤새 고기를 잡아도 끄떡없던 사람들이니 몇 시간 잠을 안 자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당부까지 하셨지요. 그런데도 제자들은 잠들어 버렸습니다. 이들은 단지 몸이 약해서 잠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해 잠든 것이지요.
이때 육신은 단순히 ‘살과 뼈로 이뤄진 사람의 몸’이 아니라 ‘죄성과 결합한 몸’을 가리킵니다. 죄성과 결합한 몸이 육을 좇고 죄를 짓고자 하는 속성이 바로 육신의 소욕이지요. 제자들은 마음으로는 기도하기 원했지만 잠자고 싶고 편히 쉬고 싶은 육신의 소욕이 더 강해서 졸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를 두고 육신이 약하다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좀 피곤해도 재미있게 놀 때는 피곤도 거뜬히 이기지 않습니까? 이처럼 피곤을 이김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피곤하다는 육적인 현상 자체가 아니라 ‘기도하기보다는 편히 쉬고 싶어 하는 마음 즉 육신의 소욕을 제압하느냐 제압당하느냐’입니다.
성경을 보면 육, 육신, 육신의 일, 육체의 일 등 비슷한 단어가 종종 나옵니다. 여기에 대한 영적인 뜻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육이란 영과 반대되는 썩고 변하는 것을 총칭합니다. 진리로 변화되기 전 인간이나 식물, 동물 등 세상 모든 만물을 다 포함합니다. 반면 영은 영원한 것이며 진리요, 참을 말합니다.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류는 유전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를 ‘원죄’라 하며, 자라면서 원수 마귀 사단의 뜻대로 비진리를 행하며 지어가는 죄를 ‘자범죄’라 합니다. 이렇게 원수 마귀 사단을 통해 들어온 죄성이 사람의 몸과 결합된 것을 ‘육신’이라 합니다.
로마서 8장 12~13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하신 말씀의 ‘육신’에는 바로 그러한 뜻이 있습니다. 육신의 일이란 육신이라는 죄성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으로 거짓, 시기, 질투, 미움 등 아직 행하지 않았으나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속성을 말합니다. 즉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가 육신의 일이며, 이러한 육신의 일을 행동으로 옮긴 것을 ‘육체의 일’(갈 5:19)이라 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한 것은 성령 받기 전의 일입니다. 성령 받은 후에는 이런 연약함을 찾아볼 수 없는 담대한 사도들로 180도 변했지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예수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 받기 전에는 막상 예수님이 잡히시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요.
하지만 성령을 받은 후 베드로는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갖가지 기사와 표적을 나타냈으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할 정도로 담대하였습니다. 이전의 연약함은 찾아볼 수 없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하고 권능 있는 사도로 변화되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보혈을 흘려 원수 마귀의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우리의 질고와 가난, 연약함까지 다 담당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을 갖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간다면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고 문제가 해결되며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도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간혹 잘못을 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육신이 약해서’라며 합리화하는 사람을 봅니다. 바로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버지에게 백만 원을 받은 아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아들이 돈을 주머니에 넣어 놓은 것을 잊은 채 밖에서 밥을 사먹지 못하고 굶고 있다면 아버지는 얼마나 답답해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육신이 약해서’라는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입으면 무엇이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밤 10시만 되면 잠을 자지 않고는 못 견디던 성도라도 기도하여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철야예배에 나와 한밤을 충만하게 하나님께 드리기도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영감이 밝아지고 마음에 기쁨이 임하며 피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몸이 가벼움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성령 시대에 사는 우리는 육신이 약하여 기도를 못한다거나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써 성령의 도움을 받아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버려 나가며 오직 하나님 뜻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
2. 깨어 기도할 때 받는 복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말씀하였습니다.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원수 마귀 사단은 우는 사자같이 하나님의 자녀를 미혹하여 어찌하든 하나님을 떠나게 하거나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무를 뽑고자 한다면 먼저 나무를 흔들어 볼 것입니다. 나무가 굵고 뿌리도 깊어서 도무지 뽑힐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포기하고 다른 나무를 골라 흔들겠지요. 그러나 그 나무가 흔들리며 뽑힐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한번 뽑아 보자.’ 하며 더욱 세게 흔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원수 마귀 사단이 우리를 유혹해 올 때 전혀 흔들리지 않으면 물러가지만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계속해서 시험을 가져와 어떻게든 넘어뜨리려 합니다.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분별하여 물리칠 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빛 가운데 나가기 위해서는 힘써 기도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뜻대로 모든 사역을 이루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기도의 힘 때문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40일 금식기도로 준비하셨으며 공생애 중에도 틈만 나면 기도하여 크신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셨습니다. 공생애를 마감하면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기 때문에 능히 십자가를 질 수 있었고 결국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 하시며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말씀합니다. 또한 예수님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마 6:13)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지요.
이와 같이 깨어 기도할 때 성령께서 옳은 길을 가도록 깨우쳐 주십니다. 그래서 죄와 싸워 버리는 만큼 영혼이 잘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기 때문에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또한 우리가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원수 마귀 사단이 범접하지 못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기도하여 성령의 도움을 받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하고 흠 없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류는 유전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를 ( )라 하며, 자라면서 원수 마귀 사단의 뜻대로 비진리를 행하며 지어가는 죄를 ( )라 한다. 이렇게 원수 마귀 사단을 통해 들어온 죄성이 사람의 몸과 결합된 것을 ( )이라 한다.
2. 성령을 받은 후 베드로는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79~87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단’과 ‘마귀’의 차이
사단과 마귀는 악한 영에 속한다.
사단은 루시퍼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며 실질적인 형태는 없다. 루시퍼가 가진 어둠의 능력을 그대로 담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생각과 마음을 갖게 한다. 마치 공중에 수없이 퍼져 있는 전파와 같이 어둠의 능력을 공중에 퍼뜨린다.
마귀는 루시퍼와 함께 타락한 천사 중 일부로, 검은 형상에 사람처럼 이목구비와 손발도 있다. 사단의 지시를 받아 수많은 귀신을 관리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죄를 짓게 한다. 생각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사단이라면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귀의 짓이다.
교육목표 :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도움을 받아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버려 나가며 오직 하나님 뜻을 좇아 살아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1.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셨습니다. 이때 함께 기도하려고 예수님을 따라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고 잠들고 말지요. 이에 예수님께서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0~41)라고 안타까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육신이 약하다’ 하신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는 단순히 몸이 약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고기잡이로 잔뼈가 굵은 어부들입니다. 더구나 그 당시에는 신체 건장한 젊은이들이었지요. 밤새 고기를 잡아도 끄떡없던 사람들이니 몇 시간 잠을 안 자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당부까지 하셨지요. 그런데도 제자들은 잠들어 버렸습니다. 이들은 단지 몸이 약해서 잠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해 잠든 것이지요.
이때 육신은 단순히 ‘살과 뼈로 이뤄진 사람의 몸’이 아니라 ‘죄성과 결합한 몸’을 가리킵니다. 죄성과 결합한 몸이 육을 좇고 죄를 짓고자 하는 속성이 바로 육신의 소욕이지요. 제자들은 마음으로는 기도하기 원했지만 잠자고 싶고 편히 쉬고 싶은 육신의 소욕이 더 강해서 졸음을 이기지 못했습니다. 이를 두고 육신이 약하다 하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좀 피곤해도 재미있게 놀 때는 피곤도 거뜬히 이기지 않습니까? 이처럼 피곤을 이김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피곤하다는 육적인 현상 자체가 아니라 ‘기도하기보다는 편히 쉬고 싶어 하는 마음 즉 육신의 소욕을 제압하느냐 제압당하느냐’입니다.
성경을 보면 육, 육신, 육신의 일, 육체의 일 등 비슷한 단어가 종종 나옵니다. 여기에 대한 영적인 뜻을 잠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육이란 영과 반대되는 썩고 변하는 것을 총칭합니다. 진리로 변화되기 전 인간이나 식물, 동물 등 세상 모든 만물을 다 포함합니다. 반면 영은 영원한 것이며 진리요, 참을 말합니다.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류는 유전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를 ‘원죄’라 하며, 자라면서 원수 마귀 사단의 뜻대로 비진리를 행하며 지어가는 죄를 ‘자범죄’라 합니다. 이렇게 원수 마귀 사단을 통해 들어온 죄성이 사람의 몸과 결합된 것을 ‘육신’이라 합니다.
로마서 8장 12~13절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하신 말씀의 ‘육신’에는 바로 그러한 뜻이 있습니다. 육신의 일이란 육신이라는 죄성을 낱낱이 분류해 놓은 것으로 거짓, 시기, 질투, 미움 등 아직 행하지 않았으나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속성을 말합니다. 즉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가 육신의 일이며, 이러한 육신의 일을 행동으로 옮긴 것을 ‘육체의 일’(갈 5:19)이라 합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한 것은 성령 받기 전의 일입니다. 성령 받은 후에는 이런 연약함을 찾아볼 수 없는 담대한 사도들로 180도 변했지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예수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 받기 전에는 막상 예수님이 잡히시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요.
하지만 성령을 받은 후 베드로는 어떻게 변화되었습니까?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갖가지 기사와 표적을 나타냈으며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할 정도로 담대하였습니다. 이전의 연약함은 찾아볼 수 없으며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담대하고 권능 있는 사도로 변화되었지요.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보혈을 흘려 원수 마귀의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우리의 질고와 가난, 연약함까지 다 담당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을 갖고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간다면 영육 간에 강건함을 입고 문제가 해결되며 사람으로서는 불가능한 일도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간혹 잘못을 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육신이 약해서’라며 합리화하는 사람을 봅니다. 바로 진리를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버지에게 백만 원을 받은 아들이 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 아들이 돈을 주머니에 넣어 놓은 것을 잊은 채 밖에서 밥을 사먹지 못하고 굶고 있다면 아버지는 얼마나 답답해하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성령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육신이 약해서’라는 말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입으면 무엇이나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밤 10시만 되면 잠을 자지 않고는 못 견디던 성도라도 기도하여 성령의 도움을 받으면 철야예배에 나와 한밤을 충만하게 하나님께 드리기도 합니다. 성령이 충만하면 영감이 밝아지고 마음에 기쁨이 임하며 피곤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몸이 가벼움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성령 시대에 사는 우리는 육신이 약하여 기도를 못한다거나 죄를 지어서는 안 됩니다.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써 성령의 도움을 받아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버려 나가며 오직 하나님 뜻을 좇아 살아가야 합니다.
2. 깨어 기도할 때 받는 복
베드로전서 5장 8~9절에 보면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말씀하였습니다. 공중 권세를 잡고 있는 원수 마귀 사단은 우는 사자같이 하나님의 자녀를 미혹하여 어찌하든 하나님을 떠나게 하거나 믿음을 갖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나무를 뽑고자 한다면 먼저 나무를 흔들어 볼 것입니다. 나무가 굵고 뿌리도 깊어서 도무지 뽑힐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포기하고 다른 나무를 골라 흔들겠지요. 그러나 그 나무가 흔들리며 뽑힐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한번 뽑아 보자.’ 하며 더욱 세게 흔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원수 마귀 사단이 우리를 유혹해 올 때 전혀 흔들리지 않으면 물러가지만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계속해서 시험을 가져와 어떻게든 넘어뜨리려 합니다. 이러한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분별하여 물리칠 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여 빛 가운데 나가기 위해서는 힘써 기도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힘과 능력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뜻대로 모든 사역을 이루실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기도의 힘 때문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는 40일 금식기도로 준비하셨으며 공생애 중에도 틈만 나면 기도하여 크신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셨습니다. 공생애를 마감하면서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기 때문에 능히 십자가를 질 수 있었고 결국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골 4:2) 하시며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벧전 4:7) 말씀합니다. 또한 예수님도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마 6:13)라고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지요.
이와 같이 깨어 기도할 때 성령께서 옳은 길을 가도록 깨우쳐 주십니다. 그래서 죄와 싸워 버리는 만큼 영혼이 잘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기 때문에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또한 우리가 깨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면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말씀하신 것처럼 원수 마귀 사단이 범접하지 못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3절에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 기도하여 성령의 도움을 받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림으로써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하고 흠 없는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그래서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마음껏 누리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아담의 불순종 이후 모든 인류는 유전적으로 죄성을 가지고 태어나는데 이를 ( )라 하며, 자라면서 원수 마귀 사단의 뜻대로 비진리를 행하며 지어가는 죄를 ( )라 한다. 이렇게 원수 마귀 사단을 통해 들어온 죄성이 사람의 몸과 결합된 것을 ( )이라 한다.
2. 성령을 받은 후 베드로는 어떻게 변화되었을까요?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79~87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사단’과 ‘마귀’의 차이
사단과 마귀는 악한 영에 속한다.
사단은 루시퍼의 마음이라 할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을 통해 역사하며 실질적인 형태는 없다. 루시퍼가 가진 어둠의 능력을 그대로 담고 있어 사람들로 하여금 악한 생각과 마음을 갖게 한다. 마치 공중에 수없이 퍼져 있는 전파와 같이 어둠의 능력을 공중에 퍼뜨린다.
마귀는 루시퍼와 함께 타락한 천사 중 일부로, 검은 형상에 사람처럼 이목구비와 손발도 있다. 사단의 지시를 받아 수많은 귀신을 관리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온갖 죄를 짓게 한다. 생각으로 죄를 짓게 하는 것이 사단이라면 비진리의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것은 마귀의 짓이다.
2020-10-23
제43과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1)
마태복음 26:40~41
읽을말씀 : 마태복음 26:40~41 | 외울말씀 : 야고보서 1:15 | 참고 말씀: 빌립보서 4:12
교육목표 : 늘 깨어 기도함으로 시험에 들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1. 깨어 기도해야 하는 이유
예수님은 몸소 기도의 본을 보이시면서 늘 깨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십자가를 질 때가 임박함을 아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함께 간 제자들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여 그만 잠들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수제자 베드로에게 안타깝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 26:40~41)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사건은 영적으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입니다. 하지만 아직 믿음이 적은 제자들에게는 이기기 힘든 시험이 될 수도 있었지요. 이를 염려하시고 깨어 기도하라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당시의 제자들만 아니라 바로 주님을 따르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성도들도 하루하루 원수 마귀 사단과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지요. 늘 깨어 기도해야만 시험에 들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기 쉽지요.
그렇다고 해서 ‘시험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 속에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간혹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1장 13~15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시험은 사람이 자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29장 11~12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들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자녀들이 어떤 재앙도 만나지 않고 오직 평안과 소망 가운데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평안을 얻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늘 깨어 기도하는 신앙생활을 하면 시험에 들지 않으며 불가능이 가능케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사람이 호흡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듯이 성령 받은 하나님 자녀는 영이 살기 위해 반드시 영의 호흡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시며, 기도를 쉬는 것도 죄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은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죽었던 영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을 때에 살아나는데 이때의 영적 상태는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 같아서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으면 영이 자라 힘 있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때에는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없듯이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압니다.
아이들은 곧잘 누가 숨을 쉬지 않고 오래 견디나 시합을 하곤 합니다. 먼저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숨을 잔뜩 들이마신 다음 ‘시작’ 하면 숨 쉬기를 멈춥니다. 처음 한동안에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해지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견디지 못하고 숨을 내쉽니다. 호흡하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자녀가 영의 호흡인 기도를 중단하면 처음에는 그다지 못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답답하고 곤고해집니다. 그 원인을 깨달아 즉시 회개하고 기도해 나가면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임하니 다시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계속 쉬면 마음이 더욱 곤고해지며, 중단한 시일이 오랠수록 다시 기도하거나 충만한 신앙생활을 회복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숨을 쉬듯 습관을 좇아 하는 사람에게는 기도가 힘든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대로 응답과 축복을 받으며 하늘의 소망이 생기기 때문에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넘칩니다.
2. 왜 기도하지 않을 때 시험에 들까?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살아 있는 영, 즉 생령이 되게 하여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불순종하여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이 끊겼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된 사람을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니 점점 죄악으로 물들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만세 전에 구원의 섭리를 계획하시고 때가 되자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를 회개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하십니다.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며 세상을 이기도록 이끄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우리가 성령의 도움으로 성령 충만하려면 반드시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밝히 음성을 들려 주고 우리에게 시험이 올 것을 알려 대비케 하십니다. 또한 피할 길을 주시며 시험이 와도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요.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뜻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으므로 세상의 욕심을 좇아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의 가운데 살아가므로 시험 환난이 찾아오고 갖가지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고 죄를 짓는 만큼 사단이 송사하므로 시험에 빠지며 보호받지 못합니다.
야고보서 1장 14~15절을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였습니다.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기도하지 않으므로 하나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어떠한 형편에 처해도 자족하기를 원하십니다. 빌립보서 4장 11~12절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자족하지 못하고 욕심이 잉태되어 죄를 범하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시험 환난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시험을 받으면서도 마치 하나님이 시험 환난을 주신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니 시험을 이길 수도,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라’(고후 10:5) 했고,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6~7)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배우고 입력시켜 놓은 자신의 이론과 지식이 진리에 비추어 옳지 않은 것이라면 과감히 깨뜨려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며 진리에 순종하려면 무엇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사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징계하시고, 회개하여 돌이키도록 시험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때 자신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한 것이 있는지 회개하고 기쁨과 감사로 기도하면 그 믿음을 보고 응답해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성도들은 하루하루 원수 마귀 사단과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다. 늘 깨어 ( )해야만 ( )에 들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2. 기도할 때 ( )께서 밝히 음성을 들려주고 우리에게 시험이 올 것을 알려 ( )케 하신다. 또한 피할 길을 주시며 시험이 와도 (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63~7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론’이란
지식을 바탕으로 경험이나 사고, 학습 등을 통해 스스로 정립시켜 놓은 논리를 말한다. 이론은 각 사람의 체험과 생각, 시대에 따라 달라지므로 변론을 낳으며 진리인 하나님 말씀과는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
교육목표 : 늘 깨어 기도함으로 시험에 들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1. 깨어 기도해야 하는 이유
예수님은 몸소 기도의 본을 보이시면서 늘 깨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십자가를 질 때가 임박함을 아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는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함께 간 제자들은 피곤을 이기지 못하여 그만 잠들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수제자 베드로에게 안타깝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마 26:40~41)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사건은 영적으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입니다. 하지만 아직 믿음이 적은 제자들에게는 이기기 힘든 시험이 될 수도 있었지요. 이를 염려하시고 깨어 기도하라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당시의 제자들만 아니라 바로 주님을 따르는 모든 성도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성도들도 하루하루 원수 마귀 사단과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지요. 늘 깨어 기도해야만 시험에 들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기 쉽지요.
그렇다고 해서 ‘시험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 속에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간혹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1장 13~15절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시험은 사람이 자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29장 11~12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들을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즉 자녀들이 어떤 재앙도 만나지 않고 오직 평안과 소망 가운데 살기를 바라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평안을 얻고 소망 가운데 살아가려면 기도해야 합니다. 늘 깨어 기도하는 신앙생활을 하면 시험에 들지 않으며 불가능이 가능케 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사람이 호흡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듯이 성령 받은 하나님 자녀는 영이 살기 위해 반드시 영의 호흡인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 하시며, 기도를 쉬는 것도 죄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처음 교회에 나온 사람은 기도하는 것이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아담의 원죄로 인하여 죽었던 영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을 때에 살아나는데 이때의 영적 상태는 마치 갓 태어난 어린아이 같아서 기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기도하며 하나님 말씀을 양식 삼으면 영이 자라 힘 있는 기도를 하게 됩니다. 이때에는 숨을 쉬지 않고 살 수 없듯이 기도하지 않고는 살 수 없음을 압니다.
아이들은 곧잘 누가 숨을 쉬지 않고 오래 견디나 시합을 하곤 합니다. 먼저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숨을 잔뜩 들이마신 다음 ‘시작’ 하면 숨 쉬기를 멈춥니다. 처음 한동안에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답답해지고 얼굴이 빨개지면서 견디지 못하고 숨을 내쉽니다. 호흡하지 않고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자녀가 영의 호흡인 기도를 중단하면 처음에는 그다지 못 느끼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답답하고 곤고해집니다. 그 원인을 깨달아 즉시 회개하고 기도해 나가면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이 임하니 다시 충만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지요. 그러나 계속 쉬면 마음이 더욱 곤고해지며, 중단한 시일이 오랠수록 다시 기도하거나 충만한 신앙생활을 회복하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숨을 쉬듯 습관을 좇아 하는 사람에게는 기도가 힘든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는 대로 응답과 축복을 받으며 하늘의 소망이 생기기 때문에 마음에 평안과 기쁨이 넘칩니다.
2. 왜 기도하지 않을 때 시험에 들까?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지으시고 살아 있는 영, 즉 생령이 되게 하여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살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불순종하여 영이 죽으니 하나님과 교통이 끊겼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교통할 수 없게 된 사람을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니 점점 죄악으로 물들어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은 만세 전에 구원의 섭리를 계획하시고 때가 되자 모든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바로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줌으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신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를 회개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시고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보혜사 성령은 하나님의 영으로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하십니다. 연약한 우리를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며 세상을 이기도록 이끄십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이지요.
우리가 성령의 도움으로 성령 충만하려면 반드시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 성령께서 밝히 음성을 들려 주고 우리에게 시험이 올 것을 알려 대비케 하십니다. 또한 피할 길을 주시며 시험이 와도 승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지요.
그러나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 뜻을 제대로 분별할 수 없으므로 세상의 욕심을 좇아 살아가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의 가운데 살아가므로 시험 환난이 찾아오고 갖가지 어려움에 부딪힙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지 않고 죄를 짓는 만큼 사단이 송사하므로 시험에 빠지며 보호받지 못합니다.
야고보서 1장 14~15절을 보면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하였습니다.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기도하지 않으므로 하나님 뜻을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 욕심에 이끌려 미혹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어떠한 형편에 처해도 자족하기를 원하십니다. 빌립보서 4장 11~12절에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말씀했습니다. 그런데 자족하지 못하고 욕심이 잉태되어 죄를 범하므로 원수 마귀 사단이 시험 환난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시험을 받으면서도 마치 하나님이 시험 환난을 주신 것처럼 말하기도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니 시험을 이길 수도, 합력하여 선을 이룰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라’(고후 10:5) 했고,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6~7)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 배우고 입력시켜 놓은 자신의 이론과 지식이 진리에 비추어 옳지 않은 것이라면 과감히 깨뜨려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이론을 깨뜨리며 진리에 순종하려면 무엇보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가 사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징계하시고, 회개하여 돌이키도록 시험을 허락하실 때가 있습니다. 이때 자신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한 것이 있는지 회개하고 기쁨과 감사로 기도하면 그 믿음을 보고 응답해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성도들은 하루하루 원수 마귀 사단과 영적인 싸움을 하고 있다. 늘 깨어 ( )해야만 ( )에 들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
2. 기도할 때 ( )께서 밝히 음성을 들려주고 우리에게 시험이 올 것을 알려 ( )케 하신다. 또한 피할 길을 주시며 시험이 와도 (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 금주 과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책자 63~75페이지까지 읽고 밑줄 쳐오기.
● 알고 넘어갑시다!
‘이론’이란
지식을 바탕으로 경험이나 사고, 학습 등을 통해 스스로 정립시켜 놓은 논리를 말한다. 이론은 각 사람의 체험과 생각, 시대에 따라 달라지므로 변론을 낳으며 진리인 하나님 말씀과는 상반되는 경우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