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TOTAL : 1473 PAGE : 18/105
2021-07-23
제30과믿음의 4단계(2)
요한삼서 1:2
읽을말씀 : 요한삼서 1:2 | 외울말씀 : 빌립보서 3:8 | 참고 말씀: 요한일서 3:21~22
교육목표 :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림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는 영의 사람이 되게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이 많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계명을 지켜 행하면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까지는 열심히 심은 대로,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넘치게 부어 주십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오면 마음의 죄성까지 버린 ‘영의 사람’이기에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1. 믿음의 4단계는 영혼이 잘된 단계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영과 혼과 육의 질서가 바로잡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난 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영이 주인으로서 혼과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상태이지요.
원래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지으셨습니다. 생령인 아담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 그리고 영의 지배를 받는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범죄하자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영이 죽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영이 소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영의 활동이 중지되었다는 뜻입니다. 영이 죽으니 영의 지배를 받던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혼’이란 두뇌의 기억 장치와 그 안에 담긴 모든 지식, 그리고 그것을 떠올리고 활용하는 모든 작용을 총칭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체험한 것을 기억하고 떠올려 활용하는 것이 다 혼의 작용이지요.
영이 주인 역할을 할 때는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진리의 지식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자 원수 마귀 사단이 혼을 통해 사람을 주관해 가니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의 마음은 비진리로 물들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은 혼과 육으로 지어진 짐승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전도서 3장 18절을 보면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시고, 그를 영접하는 자마다 죽었던 영이 살아나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며, 나아가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는 만큼 비진리는 벗어지고 마음이 진리로 채워집니다. 이것이 곧 성령으로 영을 낳는 것이며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우리 마음이 진리로 채워지면 하나님께서 처음 지으신 사람의 형상을 되찾게 되는데 바로 이 상태를 ‘영혼이 잘됐다’ 하는 것입니다.
2.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는 단계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린 상태이므로 영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 ‘영의 사람’이라 부릅니다. 영이 혼을 지배하면 말씀인 진리가 마음 전체를 사로잡으니 자기 생각이나 자기 뜻이 동원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을 온전히 주관하시니 시험 환난을 피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지킴을 받습니다.
영혼이 잘된 사람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시며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다’는 것은 질병 없이 몸이 건강한 것만이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가 잘되고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영의 사람은 범죄하지 않으므로 영적인 권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육적인 분야에서도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구하여 응답을 받습니다.
우선, 성령의 주관을 받으니 범사가 형통합니다. 믿음의 4단계는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차원이 아니라 마음 자체가 진리로 변화되었기에 저절로 진리의 행함이 나오는 단계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면 건강의 축복을 받습니다. 죄가 없기에 질병이나 연약함으로 고통받지 않습니다. 항상 성령의 불담으로 지킴 받으니 질병이 틈타지 않을 뿐 아니라 혹여 틈탔다 해도 기도하면 즉시 성령의 불로 태움 받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을 보면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5장 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뒤에 그에게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말씀하십니다. 죄로 인해 병이 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의 사람이 되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 치료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하신 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질의 축복도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축복을 주십니다. 따라서 영의 사람이 되기 전에도 믿음으로 심고 구할 때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곧 두 배 이상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영의 사람이 되면 하나를 심어도 30배 이상 거두며, 나아가 믿음의 5단계, 온 영의 사람이 되면 60배, 100배로도 거둡니다.
마태복음 13장 23절에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축복받을 만한 일이나 별다른 기술이나 재능이 없다 해도 영으로 들어가면 신명기 28장 약속의 말씀이 임하는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2~6)
이뿐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면 가정복음화가 이뤄집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면 그로 인해 그 가정까지 구원을 받습니다.
영으로 들어오는 만큼 영적인 권세가 따르므로 가족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전도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수 없고 상대도 그 선과 사랑에 더 쉽게 마음 문을 열게 됩니다.
영의 사람이 되면 범사에 섬기고 낮아지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씀씀이, 사소한 말 한마디와 행동도 아름답고 선하게 나타납니다. 착한 행실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주변을 감동시키고 하나님께서도 감동하심으로 범사에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하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 안에 알맞은 말을 써 보세요.
1.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 )과 ( )과 ( )의 질서가 바로잡히는 것을 말한다. 곧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난 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영이 주인으로서 혼과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상태이다.
2.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다는 것은, 질병 없이 몸이 건강한 것만이 아니라 ( ), ( ), ( )가 잘되고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영이란?
‘썩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이요, ‘영원하며 참된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이기도 하다(요 4:24).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생령으로 창조하셨다. 즉 거룩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속성 중 일부를 나눠 주신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범죄함으로 육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육으로 변질된 사람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교육목표 : 악은 모양이라도 벗어 버림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며 만사형통한 축복을 받는 영의 사람이 되게 한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약속하신 축복의 말씀이 많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계명을 지켜 행하면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까지는 열심히 심은 대로,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넘치게 부어 주십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에 들어오면 마음의 죄성까지 버린 ‘영의 사람’이기에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큰 축복의 문이 열리기 시작합니다. 요한삼서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말씀한 대로 이루어집니다.
1. 믿음의 4단계는 영혼이 잘된 단계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영과 혼과 육의 질서가 바로잡히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난 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영이 주인으로서 혼과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상태이지요.
원래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을 생령으로 지으셨습니다. 생령인 아담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 그리고 영의 지배를 받는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이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선악과를 먹음으로 범죄하자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영계의 법칙대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영이 죽었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영이 소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영의 활동이 중지되었다는 뜻입니다. 영이 죽으니 영의 지배를 받던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었습니다.
‘혼’이란 두뇌의 기억 장치와 그 안에 담긴 모든 지식, 그리고 그것을 떠올리고 활용하는 모든 작용을 총칭합니다. 사람이 살면서 체험한 것을 기억하고 떠올려 활용하는 것이 다 혼의 작용이지요.
영이 주인 역할을 할 때는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며 진리의 지식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영이 죽어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자 원수 마귀 사단이 혼을 통해 사람을 주관해 가니 세월이 흐를수록 사람의 마음은 비진리로 물들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불순종한 아담의 후손들은 혼과 육으로 지어진 짐승과 다름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전도서 3장 18절을 보면 “내가 심중에 이르기를 인생의 일에 대하여 하나님이 저희를 시험하시리니 저희로 자기가 짐승보다 다름이 없는 줄을 깨닫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노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여시고, 그를 영접하는 자마다 죽었던 영이 살아나도록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며, 나아가 성령의 역사에 순종하는 만큼 비진리는 벗어지고 마음이 진리로 채워집니다. 이것이 곧 성령으로 영을 낳는 것이며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입니다. 우리 마음이 진리로 채워지면 하나님께서 처음 지으신 사람의 형상을 되찾게 되는데 바로 이 상태를 ‘영혼이 잘됐다’ 하는 것입니다.
2.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는 단계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면 악은 모양이라도 버린 상태이므로 영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 ‘영의 사람’이라 부릅니다. 영이 혼을 지배하면 말씀인 진리가 마음 전체를 사로잡으니 자기 생각이나 자기 뜻이 동원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 마음을 온전히 주관하시니 시험 환난을 피할 수 있고, 어떤 상황에서도 지킴을 받습니다.
영혼이 잘된 사람은 오직 전지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순종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마음과 생각을 주관하시며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다’는 것은 질병 없이 몸이 건강한 것만이 아니라 가정, 일터, 사업터가 잘되고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을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영의 사람은 범죄하지 않으므로 영적인 권세가 있을 뿐만 아니라 육적인 분야에서도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구하여 응답을 받습니다.
우선, 성령의 주관을 받으니 범사가 형통합니다. 믿음의 4단계는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차원이 아니라 마음 자체가 진리로 변화되었기에 저절로 진리의 행함이 나오는 단계입니다.
뿐만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면 건강의 축복을 받습니다. 죄가 없기에 질병이나 연약함으로 고통받지 않습니다. 항상 성령의 불담으로 지킴 받으니 질병이 틈타지 않을 뿐 아니라 혹여 틈탔다 해도 기도하면 즉시 성령의 불로 태움 받습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을 보면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말씀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5장 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치료하신 뒤에 그에게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말씀하십니다. 죄로 인해 병이 오기 때문입니다.
또한 영의 사람이 되면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 치료되는 역사가 나타납니다.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약 5:16) 하신 대로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물질의 축복도 따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축복을 주십니다. 따라서 영의 사람이 되기 전에도 믿음으로 심고 구할 때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곧 두 배 이상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 영의 사람이 되면 하나를 심어도 30배 이상 거두며, 나아가 믿음의 5단계, 온 영의 사람이 되면 60배, 100배로도 거둡니다.
마태복음 13장 23절에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겉으로 보기에 축복받을 만한 일이나 별다른 기술이나 재능이 없다 해도 영으로 들어가면 신명기 28장 약속의 말씀이 임하는 것입니다.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미치리니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우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네 광주리와 떡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신 28:2~6)
이뿐 아니라 영의 사람이 되면 가정복음화가 이뤄집니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한 사람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면 그로 인해 그 가정까지 구원을 받습니다.
영으로 들어오는 만큼 영적인 권세가 따르므로 가족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전도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이 훼방할 수 없고 상대도 그 선과 사랑에 더 쉽게 마음 문을 열게 됩니다.
영의 사람이 되면 범사에 섬기고 낮아지며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씀씀이, 사소한 말 한마디와 행동도 아름답고 선하게 나타납니다. 착한 행실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주변을 감동시키고 하나님께서도 감동하심으로 범사에 응답과 축복으로 함께하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 안에 알맞은 말을 써 보세요.
1. 영혼이 잘된다는 것은, ( )과 ( )과 ( )의 질서가 바로잡히는 것을 말한다. 곧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함으로 죽었던 영이 살아난 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영이 주인으로서 혼과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상태이다.
2.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다는 것은, 질병 없이 몸이 건강한 것만이 아니라 ( ), ( ), ( )가 잘되고 모든 것이 형통한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영이란?
‘썩지 않고 변하지 않는 것’이요, ‘영원하며 참된 것’이다.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이기도 하다(요 4:24).
영이신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생령으로 창조하셨다. 즉 거룩하고 영원하신 하나님의 속성 중 일부를 나눠 주신 것이다.
그러나 아담은 범죄함으로 육으로 타락하고 말았다.
육으로 변질된 사람이 반드시 이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는 육의 사람에서 영의 사람으로 회복되는 것이다.
2021-07-16
제29과믿음의 4단계 (1)
요한복음 4:24
읽을말씀 : 요한복음 4:24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21 | 참고 말씀: 요한복음 14:15, 잠언 8:17
교육목표 : 주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부족함이 없는 영의 사람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목적지를 향해 계단을 오를 때에 한 계단, 한 계단 차례대로 밟아 올라가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단계를 거쳐 성장합니다. 마음의 악을 모두 버리고 내가 옳다는 착각, 육체의 결여, 교만까지 정리되면 믿음의 4단계에 진입합니다. 바로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영의 사람은 죄악을 벗어 버리고 거룩하게 변화된 사람을 말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악이 없기에 고난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맞는다 해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현실은 막막하다 해도 마음에서 기쁨과 평안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행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체가 즐겁지요. 이때부터 비로소 영이신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신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 할 수 있지요. 그러면 믿음의 4단계에 진입한 영의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1. 주님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4단계의 믿음에 이르면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는 깊이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물론 믿음의 3단계에서도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말씀했지요.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마음의 죄성까지 다 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것이 조금은 민망합니다. 반면에 성결되어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담대하게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고, 하나님도 그 고백을 기쁘게 받으시므로 위로부터 성령의 감동이 임하지요.
그래서 믿음의 4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 하나님, 주님!” 하고 부르기만 해도 진한 감동이 밀려와 금세 눈물이 흘러내리고 그 사랑이 변함없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대할 때도 마음이 다릅니다. 가령, 누군가 애매한 말로 자신을 모함한다고 합시다.
이때 3단계의 믿음에 있는 사람이라면 순간 ‘너무한다, 피하고 싶다.’는 서운함과 미움의 감정이 스치기도 합니다. 또 진리를 알기 때문에 “감사하자, 기뻐하자.” 하며 마음을 다스리지만 온전한 감사가 나오지는 않지요.
하지만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선 사람은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해도 마음에 요동이 없습니다. 상대가 밉다는 생각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고 스스로도 마음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로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을 통해 더욱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고, 상대가 범죄하지 않도록 기도하게 되지요.
이처럼 똑같은 상황이라 해도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선의 향, 사랑의 향이 다릅니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고 싶어 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면 모든 계명을 기쁨으로 지키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말씀한 대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내십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때 하나님 편에서도 그런 자녀들을 지극히 사랑하며 항상 만나 주십니다.
2. 대가를 바라지 않고 조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깨우침으로 사랑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에서는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뿐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사무치도록 느끼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요. 어떤 시험 환난에도 마음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가 우러나오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다 생명이 위태로워졌다.”고 근심하며 슬픔 가운데 기도한 것이 아니라, 평안하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지요.
다니엘 6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을 행할 뿐이기에 사나 죽으나 오직 감사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바울과 실라도 그러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매를 맞고 차꼬에 채인 채 깊은 감옥에 갇혔으나 원망 불평하지 않았고, 앞으로 어찌 될까 염려 근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감동 속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립니다. 이것이 믿음의 4단계의 모습이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 자녀의 모습입니다. 이 감동의 찬양이 울려 퍼질 때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벗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믿음의 4단계에 이르게 되면 무조건 하나님이 좋고 진리가 좋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불철주야 기도하고 충성하고 봉사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은혜만으로도 감사하여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까 궁구합니다.
3.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부귀영화도 아깝지 않고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빌립보서 3장 7~8절에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금세에 백배의 축복을 받고 내세에 영생의 축복을 받는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여기서 가족이나 집과 전토를 버린다는 것은 곧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영이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고 해서 가족들과의 관계를 끊고 도리를 하지 말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욱 가족들을 섬기며 가족의 일원으로서 온 집에 충성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이 그 섬김과 사랑에 감동받아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이끄는 것이 하나님 뜻이지요. 다만 가족이 하나님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범사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위로부터 진정한 행복이 임합니다. 또한 마음에 악이 없으니 선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며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을 줄 수 있지요.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처음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핍박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이 잘되어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오히려 핍박이 축복으로 바뀌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4단계의 특징입니다. ( ) 안을 채워 보세요.
① 주님을 ( ) 사랑한다.
② ( )를 바라지 않고 ( ) 없이 하나님을 사랑한다.
③ 모든 것을 버리고 ( )을 첫째로 사랑한다.
2. 빌립보서 3장 7~8절 말씀을 읽고 쓰고 외워 봅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믿음의 4단계 영혼에게 주어지는 천국 처소와 상급, 면류관
처소와 상급 : 믿음의 4단계를 이룬 사람은 천국 3천층에 들어간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집은 복층 건물로 정금과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집에서 주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영적인 향이 흘러나오므로 문패가 없어도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3천층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모든 시설을 소유할 수 있다.
면류관 :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다(계 2:10).
교육목표 : 주님을 지극히 사랑함으로 범사에 하나님의 인도를 받으며 부족함이 없는 영의 사람의 축복을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목적지를 향해 계단을 오를 때에 한 계단, 한 계단 차례대로 밟아 올라가는 것처럼, 우리의 믿음도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단계를 거쳐 성장합니다. 마음의 악을 모두 버리고 내가 옳다는 착각, 육체의 결여, 교만까지 정리되면 믿음의 4단계에 진입합니다. 바로 ‘영의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영의 사람은 죄악을 벗어 버리고 거룩하게 변화된 사람을 말합니다. 이 단계에 이르면 악이 없기에 고난을 당하고 죽을 고비를 맞는다 해도 힘들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범사에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히 믿기 때문에 현실은 막막하다 해도 마음에서 기쁨과 평안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행복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체가 즐겁지요. 이때부터 비로소 영이신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라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경작하신 목적을 어느 정도 이루었다 할 수 있지요. 그러면 믿음의 4단계에 진입한 영의 사람은 어떠한 특징이 있을까요?
1. 주님을 지극히 사랑합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과 뜻과 힘과 목숨을 다해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4단계의 믿음에 이르면 하나님과 주님을 사랑하는 깊이가 이전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물론 믿음의 3단계에서도 계명을 지키기 때문에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5절에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말씀했지요. 하지만 이 단계에서는 마음의 죄성까지 다 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주님, 사랑해요.”라고 고백하는 것이 조금은 민망합니다. 반면에 성결되어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담대하게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고, 하나님도 그 고백을 기쁘게 받으시므로 위로부터 성령의 감동이 임하지요.
그래서 믿음의 4단계에 있는 사람들은 “아버지 하나님, 주님!” 하고 부르기만 해도 진한 감동이 밀려와 금세 눈물이 흘러내리고 그 사랑이 변함없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대할 때도 마음이 다릅니다. 가령, 누군가 애매한 말로 자신을 모함한다고 합시다.
이때 3단계의 믿음에 있는 사람이라면 순간 ‘너무한다, 피하고 싶다.’는 서운함과 미움의 감정이 스치기도 합니다. 또 진리를 알기 때문에 “감사하자, 기뻐하자.” 하며 마음을 다스리지만 온전한 감사가 나오지는 않지요.
하지만 믿음의 4단계에 들어선 사람은 어떤 억울한 일을 당한다 해도 마음에 요동이 없습니다. 상대가 밉다는 생각 자체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았고 스스로도 마음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에 그런 일로 감사와 기쁨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런 상황을 통해 더욱 자신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찾고, 상대가 범죄하지 않도록 기도하게 되지요.
이처럼 똑같은 상황이라 해도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선의 향, 사랑의 향이 다릅니다.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면 상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해 주고 싶어 합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면 모든 계명을 기쁨으로 지키게 됩니다. 요한복음 14장 21절에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말씀한 대로 주님을 사랑한다는 증거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주님께서 함께하시며 사랑하는 증거를 나타내십니다. 잠언 8장 17절에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하신 말씀처럼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때 하나님 편에서도 그런 자녀들을 지극히 사랑하며 항상 만나 주십니다.
2. 대가를 바라지 않고 조건 없이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깨우침으로 사랑하려고 애씁니다. 그런데 믿음의 4단계에서는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을 지극히 사랑할 뿐 아니라, 아무런 조건 없이 사랑합니다. 어떤 대가를 바라고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사무치도록 느끼므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요. 어떤 시험 환난에도 마음 중심에서 기쁨과 감사가 우러나오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변하지 않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사자 굴에 던져질 줄 알면서도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지키려다 생명이 위태로워졌다.”고 근심하며 슬픔 가운데 기도한 것이 아니라, 평안하게 감사의 기도를 올렸지요.
다니엘 6장 10절에 보면 “다니엘이 이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그 방의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열린 창에서 전에 행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을 행할 뿐이기에 사나 죽으나 오직 감사만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바울과 실라도 그러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많은 매를 맞고 차꼬에 채인 채 깊은 감옥에 갇혔으나 원망 불평하지 않았고, 앞으로 어찌 될까 염려 근심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성령의 감동 속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올립니다. 이것이 믿음의 4단계의 모습이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참 자녀의 모습입니다. 이 감동의 찬양이 울려 퍼질 때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리고 차꼬가 벗어지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지요.
믿음의 4단계에 이르게 되면 무조건 하나님이 좋고 진리가 좋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와 의를 위해 불철주야 기도하고 충성하고 봉사하면서도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께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은혜만으로도 감사하여 그 은혜를 무엇으로 갚을까 궁구합니다.
3.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부귀영화도 아깝지 않고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을 더 사랑합니다. 빌립보서 3장 7~8절에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금세에 백배의 축복을 받고 내세에 영생의 축복을 받는다고 알려 주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
여기서 가족이나 집과 전토를 버린다는 것은 곧 이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영이신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한다고 해서 가족들과의 관계를 끊고 도리를 하지 말라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믿지 않는 사람들보다 더욱 가족들을 섬기며 가족의 일원으로서 온 집에 충성해야 합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가족들이 그 섬김과 사랑에 감동받아 주님을 영접하여 구원에 이르도록 이끄는 것이 하나님 뜻이지요. 다만 가족이 하나님보다 앞설 수는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범사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니 부족함이 없습니다. 위로부터 진정한 행복이 임합니다. 또한 마음에 악이 없으니 선으로 모든 사람을 섬기며 영원히 변치 않는 영적인 사랑을 줄 수 있지요.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처음에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족이나 친구들로부터 핍박이 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혼이 잘되어 믿음의 4단계에 이르면 오히려 핍박이 축복으로 바뀌며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게 됩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4단계의 특징입니다. ( ) 안을 채워 보세요.
① 주님을 ( ) 사랑한다.
② ( )를 바라지 않고 ( ) 없이 하나님을 사랑한다.
③ 모든 것을 버리고 ( )을 첫째로 사랑한다.
2. 빌립보서 3장 7~8절 말씀을 읽고 쓰고 외워 봅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믿음의 4단계 영혼에게 주어지는 천국 처소와 상급, 면류관
처소와 상급 : 믿음의 4단계를 이룬 사람은 천국 3천층에 들어간다.
이들에게 주어지는 집은 복층 건물로 정금과 보석으로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집에서 주인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 독특한 영적인 향이 흘러나오므로 문패가 없어도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3천층에서는 본인이 원하는 모든 시설을 소유할 수 있다.
면류관 : 생명의 면류관이 주어진다(계 2:10).
2021-07-09
제28과믿음의 4단계에 신속히 들어가려면
데살로니가전서 5:21~22
읽을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21~22 | 외울말씀 : 잠언 18:12 | 참고 말씀: 로마서 12:3
교육목표 : 자신이 옳다고 하는 착각과 육체의 결여와 교만을 온전히 벗어 버림으로 신속히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반석을 넘어선 사람은 일부러 악을 행하거나 하나님 뜻을 거스르려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거나, 쉽게 버리지 못하는 육의 분야들이 남아 있어 믿음 성장의 정체를 겪기도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죄성까지 벗어버리고 신속히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자신이 옳다는 착각을 버리고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
믿음의 반석을 지나 4단계에 가까워지면 겉으로 볼 때는 특별히 지적할 만한악의 모양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기도를 쉬거나 눈에 띌 만한 비진리를 행치 않지요. 하나님 말씀에 드러나게 불순종하거나 사명 감당을 힘들어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말씀에 걸릴 만한 요소가 쉽게 발견되지 않으니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여기며 이 정도면 나도 믿음의 4단계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온전하지 못한 모습이 많습니다. 자신은 순종한다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불순종하는 것도 있고, ‘선’이 아닌 모습도 있습니다. 순간순간 비진리의 생각이 동원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자기 생각에는 옳은 것처럼 보이기에 무엇이 잘못인지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악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보기에 더 옳아 보이는 것이 남아 있어 ‘자기’를 고집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기가 옳다고 고집하는 것을 ‘자기 의’라고 합니다.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은 상대에게도 자기 뜻을 따르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틀이란,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단단하게 굳은 것을 말합니다. 틀이 강한 사람은 자신이 진리라 생각하는 것만 고집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이고 답답하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자기 의와 틀이 강한 사람은 믿음이 여려 열심 내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왜충성하지 않느냐, 왜 기도하지 않느냐!” 지적하고 책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면서자신은 당연히 가르칠 것을 가르쳤고 옳은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책망을 들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낙심하면 “왜 기쁨과 감사로 받지 못하느냐?”며 또다시지적하지요. 진리에 비추어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에 자기의 권면을 받지 못하는 상대에게 전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아는 진리가 옳다고만 생각하므로 자신의 방법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고 선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의와 틀’을 믿음의 3단계에서 집중적으로 깨뜨려야 4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틀은 자기가 볼 때 분명히 옳다고 여기는 것이므로 무엇이 잘못인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진리로 만든 의와 틀은 말씀에 비추어 보아도 틀리지 않기 때문에 깨닫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착각’을 하지요. 더 큰 문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일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겠지.’ 한다면 여전히 착각 속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자기 의와 틀을 버리려면 간절하고 겸비한 마음으로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둘째, 오랜 습관처럼 굳어진 ‘육체의 결여’를 깨닫고 채워야 합니다.
육체의 결여란, 사람이 성장하면서 거쳐야 할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함으로인해 보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를 통틀어 일컫습니다. 육체의 결여는 범위도 넓고 형태도 다양합니다. 가벼운 육체의 결여도 있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로 이어질 만큼 심각한 육체의 결여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4단계에가까운 경우라면 이런 종류의 결여는 이미 정리되었을 것입니다. 다만 몸가짐이나 태도, 말투나 자세 등에서 여러 가지 육체의 결여가 나타나는데 이런 것들이 4단계의 믿음으로 들어가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이러한 육체의 결여는 단지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불편함과 어려움을 주고, 사람들에게 덕과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육체의 결여로 인해상대에게 무례를 범하거나 실족시키는 일이 발생하며, 하나님의 일을 더 아름답게 이루는 데 지장을 초래하지요. 오랫동안 습관처럼 굳어져서 스스로 잘 깨닫지 못하고, 알아도 바로잡기 쉽지 않은 육체의 결여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문을 ‘쾅!’ 하고 닫거나, 방을 나갈 때 으레 문을 열어놓고 나갑니다. 식사할 때 ‘쩝쩝’ 소리를 내거나 음식을 흘리면서 먹습니다. 발소리가 요란하거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거북할 만큼 이상한 걸음걸이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단체생활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을 먼저 섬긴다거나 배려하는 행함이부족합니다. 물건을 쓴 후 제자리에 두지 않고 아무 데나 두며 어디를 가든 늘어지르고 정리를 하지 않지요. 약속을 수시로 어기거나 습관처럼 늦습니다.
이 외에도 상대의 말에 경청하지 않는 태도나, 윗사람이 말하는데 딴청하는것, 상대의 말을 중도에 끊고 자기 할 말만 하거나, 상대에게 양보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경우 등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부러 악을 행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라온 환경 속에 늘 ‘자기 위주’로 살았기 때문에자기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는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육체의 결여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먼저, ‘지식의 결여’로 생깁니다. 자라면서 당연히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못한 까닭이지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도리나 예절에 대한 지식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의 한계 안에서 자기 것만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지식의 결여에서 나오는 모습입니다. 지식 자체가 없으니 행함으로도 결여된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경우는 결여된 지식을 하나하나 배우며 행하면 됩니다.
다음으로, ‘행함의 결여’로 인해 생깁니다. 듣고 배웠지만 행하지 않은 결과이지요. 주변 정리정돈을 잘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게을러서 미루거나치우지 않고 지저분하게 살다 보면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 버립니다. 듣고 배웠는데도 자기 편한 대로 살아온 것들이 쌓여 결국 육체의 결여를 낳는 것입니다.
끝으로, ‘타고난 기’로 인해 결여가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부정적인사고로 인해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더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부모님과 사이가 서먹서먹하고 어색하며 제대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버지 하나님과도 이런 모습이라면 더 깊은 관계로 뚫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처럼 육체의 결여는 다양한 원인으로 생길 수 있습니다. 육체의 결여는 마음이나 행함의 결여로 작용할 수도 있고, 생각이나 사고의 결여로 작용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이러한 것이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 속에서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셋째, 판단 정죄하는 일이 없도록 영적인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상대보다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는 육적인 교만도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이 단계에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영적인 교만입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지요. 자신이 아는 하나님 말씀과 지식을 기준으로 ‘이것이 옳다’생각하는 것이 자칫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말씀을 잘 알고 교회 일을 처리해 나가는 노하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일이든 개인의 일이든 얼마든지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영적인 교만에서 오는 것으로 자칫 판단 정죄를 낳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나름대로 열심히 충성하며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한다 하지만, 지식에 비해 행함이 따르지 못하므로 여러 부족한 모습이 나오기도 합니다. 자기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열심히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소극적이며 희생과 헌신하기보다는 회피하고자 하지요. 이는 질서 가운데 순종하는 것이 아니므로 교만에서 나오는 모습입니다.
잠언 18장 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 가까울수록 깊은 악의 뿌리를 거의 뽑아 버렸기에 교만이 큰 악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뿌리가 남아 있으면 다시자랄 수 있으므로 온전히 뽑아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질서에 온전히 순종하고 자기가 아는 것으로 쉽게 분별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겸손과 섬김, 희생과 배려의 마음을 이루어야 하지요.
이처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미세한 비진리의 분야까지 발견해서 온전히 버려야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자신에게 육체의 결여가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봅시다.
1. 음식이 맛있다고 쩝쩝 소리를 내면서 먹지는 않는가?
2. 바쁘다고 설거지를 하지 않고 쌓아 두지는 않는가?
3. 평소 정리정돈을 잘하지 않아 주변이 지저분하지는 않는가?
4. 상대의 말에 경청하지 않고 자기 용건만 말하지는 않는가?
5. 자녀나 아랫사람에게 질책하거나 가르치는 말투를 사용하지 않는가?
6. 규모없이 생활하며 수중에 있는 대로 돈을 쓰지는 않는가?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사랑이 부족해 영으로 들어가지 못한 경우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온 사람은 자기 지식과 경험 등이 옳다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눈물을 흘려 줄 수 있는 사랑이 부족하다. 따라서 영으로 들어가려면 오랜 세월 자기를 만들어 온 것과 반대로 심어 나가야 한다.
열심히 자기를 낮추고 섬기며, 주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며 채워야 한다. 그래야 상대를 영적인 사랑으로 대할 수 있으며, 상대의 마음과 입장, 아픔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다.
교육목표 : 자신이 옳다고 하는 착각과 육체의 결여와 교만을 온전히 벗어 버림으로 신속히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반석을 넘어선 사람은 일부러 악을 행하거나 하나님 뜻을 거스르려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스스로 깨닫지 못하거나, 쉽게 버리지 못하는 육의 분야들이 남아 있어 믿음 성장의 정체를 겪기도 합니다. 그러면 마음의 죄성까지 벗어버리고 신속히 믿음의 4단계에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자신이 옳다는 착각을 버리고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합니다.
믿음의 반석을 지나 4단계에 가까워지면 겉으로 볼 때는 특별히 지적할 만한악의 모양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기도를 쉬거나 눈에 띌 만한 비진리를 행치 않지요. 하나님 말씀에 드러나게 불순종하거나 사명 감당을 힘들어하지도 않습니다. 이처럼 말씀에 걸릴 만한 요소가 쉽게 발견되지 않으니 스스로 잘하고 있다고 여기며 이 정도면 나도 믿음의 4단계라고 생각할 수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온전하지 못한 모습이 많습니다. 자신은 순종한다 생각하지만 하나님이 보실 때는 불순종하는 것도 있고, ‘선’이 아닌 모습도 있습니다. 순간순간 비진리의 생각이 동원되기도 하지요. 그러나 자기 생각에는 옳은 것처럼 보이기에 무엇이 잘못인지 발견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착각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악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자기 보기에 더 옳아 보이는 것이 남아 있어 ‘자기’를 고집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자기가 옳다고 고집하는 것을 ‘자기 의’라고 합니다.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은 상대에게도 자기 뜻을 따르도록 강요하기도 합니다.
틀이란, 자기가 옳다는 생각이 단단하게 굳은 것을 말합니다. 틀이 강한 사람은 자신이 진리라 생각하는 것만 고집하기 때문에 자기중심적이고 답답하다는 말을 듣기도 합니다.
자기 의와 틀이 강한 사람은 믿음이 여려 열심 내지 못하는 사람을 보면 “왜충성하지 않느냐, 왜 기도하지 않느냐!” 지적하고 책망하기 쉽습니다. 그러면서자신은 당연히 가르칠 것을 가르쳤고 옳은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책망을 들은 사람이 힘들어하고 낙심하면 “왜 기쁨과 감사로 받지 못하느냐?”며 또다시지적하지요. 진리에 비추어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에 자기의 권면을 받지 못하는 상대에게 전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아는 진리가 옳다고만 생각하므로 자신의 방법이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지 않고 선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기 의와 틀’을 믿음의 3단계에서 집중적으로 깨뜨려야 4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틀은 자기가 볼 때 분명히 옳다고 여기는 것이므로 무엇이 잘못인지를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더욱이 진리로 만든 의와 틀은 말씀에 비추어 보아도 틀리지 않기 때문에 깨닫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착각’을 하지요. 더 큰 문제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만일 ‘나에게 해당되는 말씀이 아니겠지.’ 한다면 여전히 착각 속에 머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자신이 깨닫지 못하는 자기 의와 틀을 버리려면 간절하고 겸비한 마음으로 자신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둘째, 오랜 습관처럼 굳어진 ‘육체의 결여’를 깨닫고 채워야 합니다.
육체의 결여란, 사람이 성장하면서 거쳐야 할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함으로인해 보편적으로 갖춰야 할 능력이 부족한 상태를 통틀어 일컫습니다. 육체의 결여는 범위도 넓고 형태도 다양합니다. 가벼운 육체의 결여도 있지만 사망에 이르는 죄로 이어질 만큼 심각한 육체의 결여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4단계에가까운 경우라면 이런 종류의 결여는 이미 정리되었을 것입니다. 다만 몸가짐이나 태도, 말투나 자세 등에서 여러 가지 육체의 결여가 나타나는데 이런 것들이 4단계의 믿음으로 들어가는 데 장애물이 됩니다.
이러한 육체의 결여는 단지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불편함과 어려움을 주고, 사람들에게 덕과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육체의 결여로 인해상대에게 무례를 범하거나 실족시키는 일이 발생하며, 하나님의 일을 더 아름답게 이루는 데 지장을 초래하지요. 오랫동안 습관처럼 굳어져서 스스로 잘 깨닫지 못하고, 알아도 바로잡기 쉽지 않은 육체의 결여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문을 ‘쾅!’ 하고 닫거나, 방을 나갈 때 으레 문을 열어놓고 나갑니다. 식사할 때 ‘쩝쩝’ 소리를 내거나 음식을 흘리면서 먹습니다. 발소리가 요란하거나 다른 사람이 보기에 거북할 만큼 이상한 걸음걸이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단체생활을 할 때도 다른 사람을 먼저 섬긴다거나 배려하는 행함이부족합니다. 물건을 쓴 후 제자리에 두지 않고 아무 데나 두며 어디를 가든 늘어지르고 정리를 하지 않지요. 약속을 수시로 어기거나 습관처럼 늦습니다.
이 외에도 상대의 말에 경청하지 않는 태도나, 윗사람이 말하는데 딴청하는것, 상대의 말을 중도에 끊고 자기 할 말만 하거나, 상대에게 양보하지 않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해 주지 못하는 경우 등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일부러 악을 행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지만 자라온 환경 속에 늘 ‘자기 위주’로 살았기 때문에자기 입장에서 말하고 행동하는데도 깨닫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육체의 결여는 왜 생기는 것일까요? 먼저, ‘지식의 결여’로 생깁니다. 자라면서 당연히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못한 까닭이지요. 가정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거나 도리나 예절에 대한 지식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자기가 아는 지식의 한계 안에서 자기 것만 최고라고 주장하는 것 역시 지식의 결여에서 나오는 모습입니다. 지식 자체가 없으니 행함으로도 결여된 모습이 나옵니다. 이런 경우는 결여된 지식을 하나하나 배우며 행하면 됩니다.
다음으로, ‘행함의 결여’로 인해 생깁니다. 듣고 배웠지만 행하지 않은 결과이지요. 주변 정리정돈을 잘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런데도 게을러서 미루거나치우지 않고 지저분하게 살다 보면 어느새 습관처럼 굳어 버립니다. 듣고 배웠는데도 자기 편한 대로 살아온 것들이 쌓여 결국 육체의 결여를 낳는 것입니다.
끝으로, ‘타고난 기’로 인해 결여가 생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령, 부정적인사고로 인해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더 다가가지 못하는 것이지요. 부모님과 사이가 서먹서먹하고 어색하며 제대로 의사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있는데, 아버지 하나님과도 이런 모습이라면 더 깊은 관계로 뚫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처럼 육체의 결여는 다양한 원인으로 생길 수 있습니다. 육체의 결여는 마음이나 행함의 결여로 작용할 수도 있고, 생각이나 사고의 결여로 작용할 수도 있지요. 그리고 이러한 것이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 속에서 갖가지 문제를 일으키게 됩니다.
셋째, 판단 정죄하는 일이 없도록 영적인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상대보다 자신을 우월하게 여기는 육적인 교만도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이 단계에서 더 문제가 되는 것은 영적인 교만입니다.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지요. 자신이 아는 하나님 말씀과 지식을 기준으로 ‘이것이 옳다’생각하는 것이 자칫 교만이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 말씀을 잘 알고 교회 일을 처리해 나가는 노하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 일이든 개인의 일이든 얼마든지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는 영적인 교만에서 오는 것으로 자칫 판단 정죄를 낳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나름대로 열심히 충성하며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한다 하지만, 지식에 비해 행함이 따르지 못하므로 여러 부족한 모습이 나오기도 합니다. 자기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열심히 하지만, 하고 싶지 않은 일에는 소극적이며 희생과 헌신하기보다는 회피하고자 하지요. 이는 질서 가운데 순종하는 것이 아니므로 교만에서 나오는 모습입니다.
잠언 18장 12절에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했습니다. 믿음의 4단계에 가까울수록 깊은 악의 뿌리를 거의 뽑아 버렸기에 교만이 큰 악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뿌리가 남아 있으면 다시자랄 수 있으므로 온전히 뽑아내야 합니다. 그러려면 질서에 온전히 순종하고 자기가 아는 것으로 쉽게 분별하려 해서도 안 됩니다. 겸손과 섬김, 희생과 배려의 마음을 이루어야 하지요.
이처럼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미세한 비진리의 분야까지 발견해서 온전히 버려야 주님을 지극히 사랑하는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자신에게 육체의 결여가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봅시다.
1. 음식이 맛있다고 쩝쩝 소리를 내면서 먹지는 않는가?
2. 바쁘다고 설거지를 하지 않고 쌓아 두지는 않는가?
3. 평소 정리정돈을 잘하지 않아 주변이 지저분하지는 않는가?
4. 상대의 말에 경청하지 않고 자기 용건만 말하지는 않는가?
5. 자녀나 아랫사람에게 질책하거나 가르치는 말투를 사용하지 않는가?
6. 규모없이 생활하며 수중에 있는 대로 돈을 쓰지는 않는가?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사랑이 부족해 영으로 들어가지 못한 경우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온 사람은 자기 지식과 경험 등이 옳다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긍휼히 여기며 눈물을 흘려 줄 수 있는 사랑이 부족하다. 따라서 영으로 들어가려면 오랜 세월 자기를 만들어 온 것과 반대로 심어 나가야 한다.
열심히 자기를 낮추고 섬기며, 주님과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으로 느끼며 채워야 한다. 그래야 상대를 영적인 사랑으로 대할 수 있으며, 상대의 마음과 입장, 아픔도 이해하고 품을 수 있다.
2021-07-02
제27과신실하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민수기 23:19
읽을말씀 : 민수기 23:19 | 외울말씀 : 출애굽기 23:16 | 참고 말씀: 갈라디아서 6:9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약속하신 축복을 풍성하게 거두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일 년 중 곡물의 첫 수확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출 23:16). 이스라엘에서는 맥추절이 되면 처음 수확한 곡식과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이웃과 함께 음식을 먹고 춤을 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요. 오늘날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각자의 삶 속에서 수고하여 거둔 영육 간의 열매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면 됩니다. 맥추절을 맞아 상반기 동안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반기에는 더욱 풍성한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말씀을 100%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고 현실과는 동떨어진일이라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믿는 영적 믿음이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결코 불가능이란 것이 없으며 한 번 이루리라 하시면 변개치 않고 반드시 이루시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주셔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 때부터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장차 세계를 이루고, 천하 만민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대성전을 이룰 것이라” 하시며 앞일에 대한 말씀을 주실 때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믿었기에 오늘날 무수한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며 세계를 이루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현실과 상관없이 온전히 믿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과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만민의 성도님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수없이 보고 들으며 체험하였습니다. 따라서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말씀을 온전히 믿을 뿐 아니라 성결의 복음으로 세계를 이루며 가나안성전과 대성전을 이루는 주역이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을 소망하며 힘차게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이뤄 주신다는 믿음으로 범사에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뢰하면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둘째,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영적 믿음은 행함의 증거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출애굽 당시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홍해를 갈랐어도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지 않았다면 애굽 군대에 사로잡혔을것이고, 요단 강물이 멈췄어도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지 않았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아무리 축복의 약속을 주셨어도 우리 편에서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내지 않으면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성경에 기록해주셨지요. 즉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순종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만일 갈증이 나도 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을 마셔도갈증이 해소된다는 것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편한 일이 있으면 혈기를 내고 감정을 품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비진리와 타협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죄악을 벗고 충성하는 행함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66권을 통해 무수한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성령을 물 붓듯이 부으시며 급속한 영의 흐름 속에 신속하게 성결을 이룰 수 있도록 넘치는 축복으로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축복의 약속을 믿는다면 마냥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구해야 하지요(겔 36:37).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서 불같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행해야 할지 방법론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는 식언치 않고 후회가 없으며 한 치 오차 없이 그 섭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전 세계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많은 주의 종과 일꾼을 양성해왔습니다. 문서와 방송 선교를 위해 투자하는 등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그대로 될 것을 믿었기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만약 “여력이 되면 준비하겠다.” 하며 손을 놓고 있거나,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지금처럼 세계를 이루지 못했을것입니다. 요단강이 멈추는 것은 하나님 능력에 달려 있지만, 믿음으로 강을 밟고 건너는 행함은 사람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믿고 행함으로 온전히 나타내 보여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인내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고 행함으로 심은 것은 반드시 거두게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끝까지 인내하며 변함없이 행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어떻게 행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견고한 여리고성 주변을 믿음으로 돌게 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하루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돈 후 큰소리로 외치라 하셨지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금성철벽 같은 여리고성을 돈다고 해서 무너질 리도 없고, 더구나 성 안에서 먼저 공격을 해 올 수도 있습니다. 무방비 상태로 성 주변을 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명하신 대로 순종하였고, 마침내 여리고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야곱이 환도뼈가 위골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자를 놓지 않은 것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변함없이 믿음으로 행함을 나타내야 심은 대로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믿고 기도하며 행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이뤄지지 않으면더 이상 구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때론 상황이 더 어려워져 기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 때 낙심하고 원망합니다. 지금까지 행함으로 쌓아온것을 부정적인 말로 무너뜨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중도에 변질되어 포기하면 그전까지 아무리 열심히 심었어도 열매로 거둘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 후 변함없이 축복의 언약을 믿고 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해마다 부흥하고 발전하도록 이끄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 가운데서 완전히 죽는 것 같은 상황도 있었지만 오직 감사와 기쁨으로극복했지요. 연단을 믿음과 진실함으로 이겨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전보다 더한 축복을 주셨고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곧바로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을 점령했을 때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처럼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열매를거두기까지 인내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여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민수기 23장 19절을 읽고 쓰고 외워 봅시다.
2. 하반기에 더욱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넣으세요.
첫째, ( )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둘째, 행함으로 ( )을 온전케 해야 합니다.
셋째, 열매를 거두기까지 ( )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 )을 내보여야 합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맥추절의 유래
밭에 뿌린 밀의 첫 수확을 감사하여 지키는 맥추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다.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한다. 칠칠절이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이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맥추절은 맥추감사절로 구별하여 지키고 있다.
교육목표 : 맥추절의 유래와 영적인 의미를 알아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약속하신 축복을 풍성하게 거두는 성도가 되게 한다.
맥추절은 일 년 중 곡물의 첫 수확을 기념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절기입니다(출 23:16). 이스라엘에서는 맥추절이 되면 처음 수확한 곡식과 짐승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이웃과 함께 음식을 먹고 춤을 추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요. 오늘날은 직접 농사를 짓지 않는 경우가 많으므로 각자의 삶 속에서 수고하여 거둔 영육 간의 열매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영광을 돌리면 됩니다. 맥추절을 맞아 상반기 동안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하반기에는 더욱 풍성한 열매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은 말씀을 100%신뢰하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생각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고 현실과는 동떨어진일이라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절대적으로 믿는 영적 믿음이지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 역사와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입니다. 결코 불가능이란 것이 없으며 한 번 이루리라 하시면 변개치 않고 반드시 이루시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주셔도 온전히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 때부터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했습니다. “장차 세계를 이루고, 천하 만민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대성전을 이룰 것이라” 하시며 앞일에 대한 말씀을 주실 때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히 믿었기에 오늘날 무수한 권능의 역사를 체험하며 세계를 이루는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현실과 상관없이 온전히 믿을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응답과 축복으로 갚아 주십니다.
만민의 성도님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증거를 수없이 보고 들으며 체험하였습니다. 따라서 성경 66권에 기록된 하나님말씀을 온전히 믿을 뿐 아니라 성결의 복음으로 세계를 이루며 가나안성전과 대성전을 이루는 주역이 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을 소망하며 힘차게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이뤄 주신다는 믿음으로 범사에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의뢰하면 능히 이룰 수 있습니다.
둘째, 행함으로 믿음을 온전케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영적 믿음은 행함의 증거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야고보서 2장 22절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출애굽 당시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홍해를 갈랐어도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지 않았다면 애굽 군대에 사로잡혔을것이고, 요단 강물이 멈췄어도 이스라엘 백성이 건너지 않았다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아무리 축복의 약속을 주셨어도 우리 편에서 행함으로 믿음을 나타내지 않으면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축복을 누릴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성경에 기록해주셨지요. 즉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 말씀하신 대로 우리가 순종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요한일서 3장 21~22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만일 갈증이 나도 물을 마시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물을 마셔도갈증이 해소된다는 것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불편한 일이 있으면 혈기를 내고 감정을 품습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비진리와 타협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죄악을 벗고 충성하는 행함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66권을 통해 무수한 축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성령을 물 붓듯이 부으시며 급속한 영의 흐름 속에 신속하게 성결을 이룰 수 있도록 넘치는 축복으로 함께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축복의 약속을 믿는다면 마냥 기다리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구해야 하지요(겔 36:37).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서 불같이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행해야 할지 방법론을 알려 주십니다.
우리는 식언치 않고 후회가 없으며 한 치 오차 없이 그 섭리를 이루시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전 세계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많은 주의 종과 일꾼을 양성해왔습니다. 문서와 방송 선교를 위해 투자하는 등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그대로 될 것을 믿었기에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만약 “여력이 되면 준비하겠다.” 하며 손을 놓고 있거나, “하나님께서 이루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 기다리고만 있었다면 지금처럼 세계를 이루지 못했을것입니다. 요단강이 멈추는 것은 하나님 능력에 달려 있지만, 믿음으로 강을 밟고 건너는 행함은 사람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믿고 행함으로 온전히 나타내 보여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인내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여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고 행함으로 심은 것은 반드시 거두게 하십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끝까지 인내하며 변함없이 행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스라엘 백성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 어떻게 행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견고한 여리고성 주변을 믿음으로 돌게 하셨습니다. 엿새 동안은 하루 한 바퀴씩 돌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일곱 바퀴를 돈 후 큰소리로 외치라 하셨지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면 금성철벽 같은 여리고성을 돈다고 해서 무너질 리도 없고, 더구나 성 안에서 먼저 공격을 해 올 수도 있습니다. 무방비 상태로 성 주변을 돈다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지요.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믿었기에 명하신 대로 순종하였고, 마침내 여리고성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습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을 보면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했습니다. 야곱이 환도뼈가 위골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사자를 놓지 않은 것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변함없이 믿음으로 행함을 나타내야 심은 대로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믿고 기도하며 행했는데 시간이 지나도 이뤄지지 않으면더 이상 구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때론 상황이 더 어려워져 기도한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처럼 보일 때 낙심하고 원망합니다. 지금까지 행함으로 쌓아온것을 부정적인 말로 무너뜨리기도 하지요. 이렇게 중도에 변질되어 포기하면 그전까지 아무리 열심히 심었어도 열매로 거둘 수 없습니다.
우리 교회는 개척 후 변함없이 축복의 언약을 믿고 행하는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해마다 부흥하고 발전하도록 이끄셨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연단 가운데서 완전히 죽는 것 같은 상황도 있었지만 오직 감사와 기쁨으로극복했지요. 연단을 믿음과 진실함으로 이겨낼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전보다 더한 축복을 주셨고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을 곧바로 정복한 것이 아닙니다. 믿음으로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 여리고성을 점령했을 때 가나안 땅을 정복해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처럼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열매를거두기까지 인내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행함을 내보여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민수기 23장 19절을 읽고 쓰고 외워 봅시다.
2. 하반기에 더욱 풍성한 열매를 거두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 ) 안에 알맞은 답을 써 넣으세요.
첫째, ( )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야 합니다.
둘째, 행함으로 ( )을 온전케 해야 합니다.
셋째, 열매를 거두기까지 ( )하며 변함없는 믿음과 ( )을 내보여야 합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맥추절의 유래
밭에 뿌린 밀의 첫 수확을 감사하여 지키는 맥추절은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농경 축하제라 할 수 있다.
칠칠절(七七節) 또는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한다. 칠칠절이란 유월절 이후 첫 번째 안식일로부터 7주 만에 돌아오는 절기였기 때문에 생긴 이름이고, 오순절이란 동일한 기간을 날수로 계산하면 50일이 되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에서는 오순절은 성령강림절로 지키고, 맥추절은 맥추감사절로 구별하여 지키고 있다.
2021-06-25
제26과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로마서 12:3
읽을말씀 : 로마서 12:3 | 외울말씀 : 요한일서 3:15, 마태복음 5:28 | 참고 말씀: 야고보서 4:11~12
교육목표 : 믿음의 반석에 들어갈 수 있는 아홉 가지 기준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육신의 일, 즉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도 웬만한 것은 다 버린 상태이므로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견고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 버려야 하는 악은 무엇일까요?
1. 분노, 짜증과 같은 혈기
혈기란 분노와 같은 악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말합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면 욕설이나 폭행 등 거친 말과 행동이 나오지요. 믿음의 반석에서는 마음에서 ‘욱!’ 하거나 부글부글 끓는 것도 거의 없어야 합니다.
만약 혈기를 참기 위해 안절부절못하거나 짜증 섞인 말과 감정이 담긴 말을 툭툭 내뱉는다면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멀지요. 더욱이 혈기가 얼굴에 분명히 드러나고 말이나 행동에서 확연히 느껴지는데도 스스로 반석에 섰다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혈기를 내고도 ‘상대를 깨우쳐 주기 위함’이며 ‘의분이 난 것’이라고 이유를 대거나 변명한다면 이 또한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2. 불편함, 서운함 등 나쁜 감정
감정이란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으로서 혈기보다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이 감정으로부터 여러 가지 육신의 일들이 파생돼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편함과 서운함이지요. 누군가가 자신에게 안 좋은 말을 하거나 지적 또는 책망할 때, 자신을 섬겨 주지 않거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 해 주지 않을 때 불편함이 생깁니다. 또한 남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자기가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애매히 오해를 받을 때 서운함이 생깁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어느 정도 무익한 종의 마음이 되어 서운함이나 불편한 감정이 스스로 느낄 만큼 올라오지는 않습니다. 혹여 착각 속에 ‘나는 그런 감정들이 없다’ 할 수 있는데 이처럼 자신을 속이면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없습니다.
3. 미움, 시기, 질투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에서 계속 상대를 미워한다면 이는 거듭 살인하는 것과 같으며(요일 3:15)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멉니다. 시기 질투 역시 현저한 육체의 일(갈 5:19~21)이므로 반드시 버려야 할 악입니다.
만일 누군가 칭찬받을 때 ‘저 사람에게는 저런 부족한 모습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시기가 있는 것입니다. 상대와 비교하여 낙심하거나 자격지심을 갖는다면 이 역시 시기 질투로 인한 현상입니다. 시기 질투가 없다면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잘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인정과 칭찬을 받는다 해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미움, 시기, 질투를 가지고 있으면서 믿음의 반석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4. 거짓, 속이는 마음
자기 유익을 위해 속이거나 거짓말을 지어낸다면 믿음의 반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공을 드러내고자 허위로 실적을 보태고, 불리한 내용을 축소하거나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은 거짓과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현실을 덮는 데 급급하여 거짓말하고 속인다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당장은 속여서 넘어갔다 해도 결국 시험 환난으로 오고 나중에는 더 큰 일도 속이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속이려는 마음, 거짓말하거나 숨기려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있습니다.
5. 헤아림과 비방, 판단 정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100%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나 지식 또는 자기 보기에 선과 의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지요. 사람을 함부로 판단, 정죄하는 것은 교만에서 비롯됩니다(약 4:11~12). 판단을 하면 대부분 수군거림과 헤아림, 비방과 정죄가 따릅니다. 특히 ‘분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안 좋은 말을 퍼뜨리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남의 이야기나 소문을 듣고, 혹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 정죄하는 사람은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6. 변개함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육의 대표적인 특징인 변개함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더욱이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꾸는 사람이라면 변개함의 속성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순교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순교의 믿음’이란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변개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 수시로 변개하며 하나님과의 약속도 어기는 사람이 어떻게 죽음의 위협 앞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7. 간음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버려야 할 것이 바로 간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7~28). 이성을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거나 생각으로 하는 간음도 없어야 반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란한 행위만 죄로 여길 뿐 음란한 생각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꼭 음란한 생각은 아니라 해도 이성을 보면서 ‘몸매 좋다.’거나 ‘잘생겼다.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간음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음란한 행위는 물론, 마음이나 생각으로 짓는 간음의 근본 뿌리까지 온전히 빼내야 합니다.
8. 욕심과 탐심, 사사로운 마음
욕심과 탐심은 물질, 명예, 권세, 외모 등 다양한 분야로 표출되어 나옵니다. 사심은 정과 욕심을 좇아 개인적인 유익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욕심, 사심, 탐심이 드러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물질과 관련된 경우입니다.
욕심이나 탐심이 있어 돈을 사랑하면 결국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딤전 6:10). 사심 역시 물질과 관련되면 온갖 부정과 부패의 원인이 되지요. 사심이 있으면 개인적인 유익,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유익을 먼저 챙깁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이러한 욕심, 탐심, 사심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9.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마음
배신은 변개함과도 관련이 있지만 간사한 마음과 크게 관련이 있습니다. 또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교만 등 여러 가지 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배신’이라는 악을 낳게 됩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함께했던 사람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 상대와 약속해 놓고 그 기대를 저버리는 것도 배신입니다. 더욱이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이를 저버리고 배신한다면 더 큰 악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이러한 배신의 마음을 근본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아홉 가지 기준에 비추어 걸릴 만한 것이 없다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신속히 믿음의 반석에 설 뿐 아니라 더 깊은 영의 차원으로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 안에 알맞은 말을 쓰세요.
1.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육의 대표적인 특징 ( )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꾼다면 ( )의 속성이 많다는 증거이다.
2. ( )이란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으로 혈기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 ( )으로부터 여러 가지 육신의 일들이 파생돼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편함과 서운함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
가룟 유다는 사사로운 이익과 욕심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힘 있는 위치에 오르시면 자신도 덕을 보려는 속셈이었다.
돈궤를 맡으면서 물질을 임의로 빼돌리기도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점점 자기 기대와는 다른 길로 가시자 은 삼십에 팔아넘기고 만다.
가룟 유다의 최후에 대해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행 1:18) 기록돼 있다. 사리사욕 때문에 배신한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보여준다.
교육목표 : 믿음의 반석에 들어갈 수 있는 아홉 가지 기준을 통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육신의 일, 즉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도 웬만한 것은 다 버린 상태이므로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말합니다. 믿음이 견고하여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해 나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 버려야 하는 악은 무엇일까요?
1. 분노, 짜증과 같은 혈기
혈기란 분노와 같은 악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말합니다. 혈기를 참지 못하면 욕설이나 폭행 등 거친 말과 행동이 나오지요. 믿음의 반석에서는 마음에서 ‘욱!’ 하거나 부글부글 끓는 것도 거의 없어야 합니다.
만약 혈기를 참기 위해 안절부절못하거나 짜증 섞인 말과 감정이 담긴 말을 툭툭 내뱉는다면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멀지요. 더욱이 혈기가 얼굴에 분명히 드러나고 말이나 행동에서 확연히 느껴지는데도 스스로 반석에 섰다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혈기를 내고도 ‘상대를 깨우쳐 주기 위함’이며 ‘의분이 난 것’이라고 이유를 대거나 변명한다면 이 또한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2. 불편함, 서운함 등 나쁜 감정
감정이란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으로서 혈기보다 포괄적인 개념입니다. 이 감정으로부터 여러 가지 육신의 일들이 파생돼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편함과 서운함이지요. 누군가가 자신에게 안 좋은 말을 하거나 지적 또는 책망할 때, 자신을 섬겨 주지 않거나 자신이 원하는 만큼 해 주지 않을 때 불편함이 생깁니다. 또한 남이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거나 자기가 일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지 않을 때, 애매히 오해를 받을 때 서운함이 생깁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어느 정도 무익한 종의 마음이 되어 서운함이나 불편한 감정이 스스로 느낄 만큼 올라오지는 않습니다. 혹여 착각 속에 ‘나는 그런 감정들이 없다’ 할 수 있는데 이처럼 자신을 속이면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없습니다.
3. 미움, 시기, 질투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도 마음에서 계속 상대를 미워한다면 이는 거듭 살인하는 것과 같으며(요일 3:15) 믿음의 반석과는 거리가 멉니다. 시기 질투 역시 현저한 육체의 일(갈 5:19~21)이므로 반드시 버려야 할 악입니다.
만일 누군가 칭찬받을 때 ‘저 사람에게는 저런 부족한 모습이 있는데….’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면 시기가 있는 것입니다. 상대와 비교하여 낙심하거나 자격지심을 갖는다면 이 역시 시기 질투로 인한 현상입니다. 시기 질투가 없다면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상대가 나보다 더 잘하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으며 인정과 칭찬을 받는다 해도 진심으로 기뻐하는 것입니다. 미움, 시기, 질투를 가지고 있으면서 믿음의 반석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4. 거짓, 속이는 마음
자기 유익을 위해 속이거나 거짓말을 지어낸다면 믿음의 반석이라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의 공을 드러내고자 허위로 실적을 보태고, 불리한 내용을 축소하거나 은근슬쩍 넘어가는 것은 거짓과 속이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눈앞의 현실을 덮는 데 급급하여 거짓말하고 속인다면 하나님을 의식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당장은 속여서 넘어갔다 해도 결국 시험 환난으로 오고 나중에는 더 큰 일도 속이는 사람이 됩니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속이려는 마음, 거짓말하거나 숨기려는 마음 자체가 없어야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있습니다.
5. 헤아림과 비방, 판단 정죄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100%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생각이나 지식 또는 자기 보기에 선과 의를 기준으로 판단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만이 모든 것을 아시지요. 사람을 함부로 판단, 정죄하는 것은 교만에서 비롯됩니다(약 4:11~12). 판단을 하면 대부분 수군거림과 헤아림, 비방과 정죄가 따릅니다. 특히 ‘분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하거나 안 좋은 말을 퍼뜨리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남의 이야기나 소문을 듣고, 혹은 겉모습만 보고 판단 정죄하는 사람은 믿음의 반석과 거리가 멉니다.
6. 변개함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육의 대표적인 특징인 변개함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더욱이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꾸는 사람이라면 변개함의 속성이 많다는 증거입니다. 믿음의 반석이라면 순교의 믿음에 해당합니다. ‘순교의 믿음’이란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고 변개하지 않는 믿음입니다. 그런데 일상생활 속에서 수시로 변개하며 하나님과의 약속도 어기는 사람이 어떻게 죽음의 위협 앞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7. 간음
믿음의 반석에 서기 위해서 우선적으로 버려야 할 것이 바로 간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5:27~28). 이성을 보고 마음에 음욕을 품거나 생각으로 하는 간음도 없어야 반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음란한 행위만 죄로 여길 뿐 음란한 생각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꼭 음란한 생각은 아니라 해도 이성을 보면서 ‘몸매 좋다.’거나 ‘잘생겼다. 사귀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간음의 속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따라서 음란한 행위는 물론, 마음이나 생각으로 짓는 간음의 근본 뿌리까지 온전히 빼내야 합니다.
8. 욕심과 탐심, 사사로운 마음
욕심과 탐심은 물질, 명예, 권세, 외모 등 다양한 분야로 표출되어 나옵니다. 사심은 정과 욕심을 좇아 개인적인 유익을 구하는 마음입니다. 욕심, 사심, 탐심이 드러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물질과 관련된 경우입니다.
욕심이나 탐심이 있어 돈을 사랑하면 결국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멀어집니다(딤전 6:10). 사심 역시 물질과 관련되면 온갖 부정과 부패의 원인이 되지요. 사심이 있으면 개인적인 유익, 자신과 관련된 사람들의 유익을 먼저 챙깁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이러한 욕심, 탐심, 사심을 반드시 버려야 합니다.
9. 은혜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마음
배신은 변개함과도 관련이 있지만 간사한 마음과 크게 관련이 있습니다. 또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 교만 등 여러 가지 악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배신’이라는 악을 낳게 됩니다. 자기 유익을 위해 함께했던 사람에게서 등을 돌리는 것, 상대와 약속해 놓고 그 기대를 저버리는 것도 배신입니다. 더욱이 큰 은혜를 받은 사람이 이를 저버리고 배신한다면 더 큰 악입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이러한 배신의 마음을 근본 뿌리까지 철저히 뽑아야 합니다.
이제까지 살펴본 아홉 가지 기준에 비추어 걸릴 만한 것이 없다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죽음의 위협과 두려움 앞에서도 주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범사에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신속히 믿음의 반석에 설 뿐 아니라 더 깊은 영의 차원으로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 안에 알맞은 말을 쓰세요.
1. 믿음의 반석에 서려면 육의 대표적인 특징 ( )을 반드시 버려야 한다.
자신과의 약속은 물론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쉽게 변경하고, 하나님 앞에 약속한 것도 수시로 바꾼다면 ( )의 속성이 많다는 증거이다.
2. ( )이란 마음 안에 있는 다양한 비진리가 느낌과 함께 올라오는 것으로 혈기보다 포괄적인 개념이다. 이 ( )으로부터 여러 가지 육신의 일들이 파생돼 나오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불편함과 서운함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
가룟 유다는 사사로운 이익과 욕심을 위해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께서 힘 있는 위치에 오르시면 자신도 덕을 보려는 속셈이었다.
돈궤를 맡으면서 물질을 임의로 빼돌리기도 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점점 자기 기대와는 다른 길로 가시자 은 삼십에 팔아넘기고 만다.
가룟 유다의 최후에 대해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행 1:18) 기록돼 있다. 사리사욕 때문에 배신한 결과가 얼마나 비참한지 보여준다.
2021-06-18
제25과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
마태복음 7:24~25
읽을말씀 : 마태복음 7:24~25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2:4 | 참고 말씀: 요한계시록 3:15~16, 마가복음 9:29
교육목표 :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에 섰을 때 신앙생활의 차이에 대해 알아본 후, 더욱 신속히 믿음의 성장을 이룰 수 있게 한다.
믿음의 1, 2단계를 지나 3단계가 되면 하나님 말씀에 담긴 뜻을 깨달아 가기 때문에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믿음의 3단계 초입에서는 가벼운 육체의 일(행함으로 짓는 죄)이 간혹 나올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 초입을 지나 믿음의 반석에 서면 육체의 일은 물론, 육신의 일(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도 웬만한 것은 버린 상태입니다.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죄를 싸워 버리기 시작하는 ‘믿음의 3단계 초입’
자발적으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왔다 해도 처음에는 마음에 갈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은 하지만, 마음에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선을 좇으려는 진리의 생각과, 악을 좇으려는 비진리의 생각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 초입이라면 어려움을 만날 때 ‘너무 힘들다.’라는 비진리 생각 때문에 성령 충만함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3단계에서도 중반을 넘어서면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친다 해도 이내 생각을 바꾸어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가령, 직장 동료가 번번이 자신의 일을 떠넘기려 한다고 합시다. 이때 믿음의 2단계에 있는 사람은 상대의 행동에 기분이 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감정을 삭이고 섬기려고 노력해 봅니다. 그러다가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나? 본때를 보여 줘야지.’라는 생각에 결국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거나 따지기도 합니다.
반면,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불편한 심정이지만 따지거나 짜증을 내지는 않습니다. 다만 3단계 초입에서는 불편한 생각을 진리의 생각으로 바꾸기까지 마음을 다스리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반석을 지나면 순간적으로는 불편한 생각이 스칠 수 있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고 상대를 배려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3단계 초입에서 반석으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가복음 9장 29절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셨으니 무엇보다 불같은 기도와 금식을 통해 죄를 버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있습니다.
2.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믿음의 반석’
같은 믿음의 단계 안에서도 저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각 믿음의 단계를 100으로 나누어 분량을 측정한다면 10%, 20%, 30% … 이렇게 올라갑니다. 결국 100%가 되면 그다음 단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마 7:24~25). 반석은 넓고 평평한 큰 돌로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고전 10:4). 믿음의 반석에 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음을 말합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신앙생활이 힘든 것이 아니라 신이 납니다. 시험 환난이 오더라도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 뜻에 순종하고 변함없이 기도함으로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지요.
믿음의 3단계 70~80%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비진리의 생각이 나오지 않고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면 마침내 악이 없는 4단계의 믿음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여 연륜이 쌓이면 장로, 권사 혹은 구역장이나 기관장 등 여러 직분을 받습니다. 이러한 직분자라면 적어도 믿음의 3단계는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2단계에 머물러 자기 신앙도 바로 세우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영혼을 진리로 이끌어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말씀을 들었는데도 여전히 2단계의 믿음에 있다면 하나님 앞에 참으로 민망한 일이지요. 세월이 지나도 노력하지 않으면 여전히 2단계에 머물다가 믿음의 1단계로 퇴보하기도 하며, 그러다 자칫하면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5~16절에는 이를 경계하여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면 토하여 내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직분을 맡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믿음의 3단계에는 들어와야 합니다. 또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1, 2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살펴서 그들도 3단계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죄와 싸우느라 지쳐 교회에서 직분 받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러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하신 말씀대로, 자신의 죄를 버려갈 뿐 아니라 믿음이 여린 영혼들을 돌아볼 때 주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달아 믿음이 쑥쑥 성장할 수 있습니다.
3.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믿음의 3단계는 육체의 일은 이미 버렸기에 본격적으로 육신의 일을 벗기 위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러다 믿음의 반석을 지나 더 성장하면, 육신의 일까지 대부분 버렸기에 비진리의 생각이 순간 스친다 해도 이내 진리로 바꾸고 범사에 순종하며 진리의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마음 먹기에 따라 믿음의 3단계로 들어가는 것은 신속히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3단계에서 4단계로 진입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립니다. 마치 나무가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새들이 깃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려면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하는데,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짧은 기간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미워하지 말라,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에 담긴 뜻을 깨닫기에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해하며 품어 주려고 하지만 마음에는 아직 미움이라는 죄성이 남아 있지요. 또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대로 늘 기뻐하고 감사하기 위해 노력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지만 마음에서 불평이나 낙심, 서운함의 뿌리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에 죄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게으름이나 우유부단한 성품 때문에 결단력 있게 벗어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에서 오래 지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 버리는 노력, 곧 마음의 할례를 멈췄기 때문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마음에 죄성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죄와 악이 있는지 발견하지 못하니 여전히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오랫동안 정체되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볼 때는 딱히 죄를 짓는 것 같지 않고 말씀대로 사는데 마음에 기쁨이 없고 답답합니다. 성령 충만함이 떨어지고 곤고함을 느끼지요. 따라서 죄와의 싸움을 멈추지 말고 신속히 죄성을 버려야 믿음의 4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하신 대로 작은 죄악이라도 발견하면 어찌하든 버리고자 금식하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다섯 번, 열 번 그 이상 도전해 보십시오. 부단히 금식하고 기도함으로 노력하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성까지 버릴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3~24절에는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말씀합니다. 거울을 보아 머리카락이 흐트러졌으면 빗고, 더러운 것이 묻었으면 씻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비진리 모습을 발견했다면 그냥 두지 말고 그때그때 진리로 변화시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 안에 알맞은 말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세요.
1.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 )에 섰다고 할 수 있다.
반석은 영적으로 ( )를 의미한다. 믿음의 반석에 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음을 말한다.
2. 믿음의 3단계 ( )%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비진리의 생각이 나오지 않고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면 마침내 악이 없는‘믿음의 (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미지근한 신앙이란?
미지근한 신앙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면서도 뜨거워지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미지근한 신앙으로는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자신의 모습을 깨우치지 못한다.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니 삶의 변화 역시 없다.
미지근한 상태에 머물러서 계속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차가운 신앙이 되고 만다.
교육목표 :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에 섰을 때 신앙생활의 차이에 대해 알아본 후, 더욱 신속히 믿음의 성장을 이룰 수 있게 한다.
믿음의 1, 2단계를 지나 3단계가 되면 하나님 말씀에 담긴 뜻을 깨달아 가기 때문에 억지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행하게 됩니다. 그런데 믿음의 3단계 초입에서는 가벼운 육체의 일(행함으로 짓는 죄)이 간혹 나올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 초입을 지나 믿음의 반석에 서면 육체의 일은 물론, 육신의 일(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도 웬만한 것은 버린 상태입니다.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죄를 싸워 버리기 시작하는 ‘믿음의 3단계 초입’
자발적으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왔다 해도 처음에는 마음에 갈등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순종은 하지만, 마음에 죄성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는 선을 좇으려는 진리의 생각과, 악을 좇으려는 비진리의 생각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 초입이라면 어려움을 만날 때 ‘너무 힘들다.’라는 비진리 생각 때문에 성령 충만함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3단계에서도 중반을 넘어서면 순간적으로 ‘힘들다.’는 생각이 스친다 해도 이내 생각을 바꾸어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습니다.
가령, 직장 동료가 번번이 자신의 일을 떠넘기려 한다고 합시다. 이때 믿음의 2단계에 있는 사람은 상대의 행동에 기분이 상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때문에 억지로라도 감정을 삭이고 섬기려고 노력해 봅니다. 그러다가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나? 본때를 보여 줘야지.’라는 생각에 결국 참지 못하고 짜증을 내거나 따지기도 합니다.
반면,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불편한 심정이지만 따지거나 짜증을 내지는 않습니다. 다만 3단계 초입에서는 불편한 생각을 진리의 생각으로 바꾸기까지 마음을 다스리는 데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믿음의 반석을 지나면 순간적으로는 불편한 생각이 스칠 수 있지만 이내 생각을 바꾸고 상대를 배려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3단계 초입에서 반석으로 성장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가복음 9장 29절에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셨으니 무엇보다 불같은 기도와 금식을 통해 죄를 버리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성령의 도우심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믿음의 반석에 설 수 있습니다.
2.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는 ‘믿음의 반석’
같은 믿음의 단계 안에서도 저마다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각 믿음의 단계를 100으로 나누어 분량을 측정한다면 10%, 20%, 30% … 이렇게 올라갑니다. 결국 100%가 되면 그다음 단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믿음의 반석’에 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마 7:24~25). 반석은 넓고 평평한 큰 돌로 영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고전 10:4). 믿음의 반석에 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음을 말합니다.
믿음의 반석에 서면 신앙생활이 힘든 것이 아니라 신이 납니다. 시험 환난이 오더라도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리지 않습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며 하나님 뜻에 순종하고 변함없이 기도함으로 마음의 평안을 잃지 않지요.
믿음의 3단계 70~80%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비진리의 생각이 나오지 않고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면 마침내 악이 없는 4단계의 믿음으로 들어선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하여 연륜이 쌓이면 장로, 권사 혹은 구역장이나 기관장 등 여러 직분을 받습니다. 이러한 직분자라면 적어도 믿음의 3단계는 되어야 합니다. 믿음의 2단계에 머물러 자기 신앙도 바로 세우지 못하는 사람이 다른 영혼을 진리로 이끌어 주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 많은 말씀을 들었는데도 여전히 2단계의 믿음에 있다면 하나님 앞에 참으로 민망한 일이지요. 세월이 지나도 노력하지 않으면 여전히 2단계에 머물다가 믿음의 1단계로 퇴보하기도 하며, 그러다 자칫하면 구원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5~16절에는 이를 경계하여 ‘미지근한 신앙생활을 하면 토하여 내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 직분을 맡은 사람이라면 당연히 믿음의 3단계에는 들어와야 합니다. 또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사람은 1, 2단계에 있는 사람들을 부지런히 살펴서 그들도 3단계에 들어올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죄와 싸우느라 지쳐 교회에서 직분 받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러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하신 말씀대로, 자신의 죄를 버려갈 뿐 아니라 믿음이 여린 영혼들을 돌아볼 때 주님의 마음을 더 깊이 깨달아 믿음이 쑥쑥 성장할 수 있습니다.
3.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려야
믿음의 3단계는 육체의 일은 이미 버렸기에 본격적으로 육신의 일을 벗기 위한 싸움이 시작됩니다. 그러다 믿음의 반석을 지나 더 성장하면, 육신의 일까지 대부분 버렸기에 비진리의 생각이 순간 스친다 해도 이내 진리로 바꾸고 범사에 순종하며 진리의 자유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자신이 마음 먹기에 따라 믿음의 3단계로 들어가는 것은 신속히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믿음의 3단계에서 4단계로 진입하기까지는 좀 더 시간이 걸립니다. 마치 나무가 자라 꽃이 피고 열매를 맺으며, 새들이 깃들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 66권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려면 말씀을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야 하는데, 온전히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짧은 기간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령, ‘미워하지 말라,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말씀에 담긴 뜻을 깨닫기에 자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어도 이해하며 품어 주려고 하지만 마음에는 아직 미움이라는 죄성이 남아 있지요. 또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대로 늘 기뻐하고 감사하기 위해 노력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지만 마음에서 불평이나 낙심, 서운함의 뿌리가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자신의 마음에 죄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게으름이나 우유부단한 성품 때문에 결단력 있게 벗어 버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에서 오래 지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마음에 있는 죄성까지 버리는 노력, 곧 마음의 할례를 멈췄기 때문입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마음에 죄성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경우입니다. 자신에게 어떤 죄와 악이 있는지 발견하지 못하니 여전히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 오랫동안 정체되면 여러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자신이 볼 때는 딱히 죄를 짓는 것 같지 않고 말씀대로 사는데 마음에 기쁨이 없고 답답합니다. 성령 충만함이 떨어지고 곤고함을 느끼지요. 따라서 죄와의 싸움을 멈추지 말고 신속히 죄성을 버려야 믿음의 4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디모데전서 4장 5절에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하신 대로 작은 죄악이라도 발견하면 어찌하든 버리고자 금식하고 기도하며 노력해야 하지요. 한 번으로 안 되면 두 번, 세 번, 다섯 번, 열 번 그 이상 도전해 보십시오. 부단히 금식하고 기도함으로 노력하다 보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성까지 버릴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23~24절에는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말씀합니다. 거울을 보아 머리카락이 흐트러졌으면 빗고, 더러운 것이 묻었으면 씻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의 거울을 통해 자신의 비진리 모습을 발견했다면 그냥 두지 말고 그때그때 진리로 변화시키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 안에 알맞은 말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세요.
1. 믿음의 3단계에서 60% 이상이 되면 ( )에 섰다고 할 수 있다.
반석은 영적으로 ( )를 의미한다. 믿음의 반석에 섰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곧 진리 안에 굳건하게 서 있음을 말한다.
2. 믿음의 3단계 ( )%가 되면 반석에 온전히 선 것이고, 나아가 어떤 상황에서도 비진리의 생각이 나오지 않고 선을 좇으며 온전히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게 되면 마침내 악이 없는‘믿음의 ( )단계’로 들어선 것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미지근한 신앙이란?
미지근한 신앙은 ‘성령을 받아 하나님이 계심을 알고 천국과 지옥이 있음을 알면서도 뜨거워지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
미지근한 신앙으로는 성령의 음성 주관 인도를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자신의 모습을 깨우치지 못한다.
마음의 할례를 하지 않으니 삶의 변화 역시 없다.
미지근한 상태에 머물러서 계속 돌이키지 않으면 결국 차가운 신앙이 되고 만다.
2021-06-11
제24과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읽을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16~18 | 외울말씀 : 마태복음 7:24 | 참고 말씀: 말라기 3:8~9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마음 중심에서 기쁨으로 행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2단계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라 했습니다.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지킬 때도 있고 지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걷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잘 걷는 것처럼, 말씀대로 행하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점점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니 자연스럽게 말씀대로 행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를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또 하나님 말씀이니 의무감으로 행하는 것과 왜 행해야 하는지를 깨달아 마음에서 우러나와 순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요.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 말씀을 억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고 질병이 떠나게 하시며, 물질의 축복도 주신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합시다. 이러한 말씀을 아는 것만으로는 행함이 온전히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온전히 마음에 믿어지기 전까지는 지킬 때도 있고 지키지 못할 때도 있지요.
그러나 어찌하든 행하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어느 순간 왜 이 말씀을 주셨는지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지면서 마음에서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타협하지 않고 온전한 주일을 지키며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믿는다는 것과, 육의 세계를 포함하여 광대한 영의 세계의 주인이심을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 그래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한 주 동안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지켜 주시고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또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물적 주권 곧 우리 눈에 보이는 천하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시니 생명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셨으므로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수입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중 십 분의 일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자유롭게 쓰도록 허락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진정 마음 중심에서 깨달으면 도리어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엄청난 죄임을 깨닫기 때문이지요. 또한 그동안 행하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을 깨달아 행하면 하나님께서 지키고 보호하시며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려면
아기가 태어나 성장할 때 음식을 섭취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보고 듣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지식이 쌓이고 지혜가 생겨야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주 안에서 성장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알고 있는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씀이 마음에 깨우쳐지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차원을 넘어 참된 의미를 깨달아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이 따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마음에 깨달음이 오지 않으면 머리로 아는 지식에 불과하기 때문에 순종이 따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 들어간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이니 억지로라도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조건이나 환경이 어려워지면 이내 불평하며 감사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3단계에서는 어떨까요? 잠시 염려 근심이 찾아왔다 해도 이내 마음과 생각을 바꿉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빛의 행함입니다. 그러니 감사하고 기뻐할 때 그 영적인 빛으로 인해 시험 환난이 떠나고 축복이 임합니다. 이런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서 왜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하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믿음의 2단계처럼 마지못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발적인 행함이 나오는데 이것이 믿음의 3단계의 행함입니다.
3.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증거들
이처럼 믿음이 성장하여 3단계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마음으로 깨달아지기 때문에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더 이상 짐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증거들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힘이 든다든가 싫다든가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또한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압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도 알고 믿습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의 삶을 알고 믿기 때문에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이 버거운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마치 일상생활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안정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앙생활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주일을 깜박 잊어버리고 어겼습니다.” 하는 일은 없지요.
믿음의 3단계부터는 눈에 크게 드러나는 비진리는 대부분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 육체의 일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육신의 일을 버려 나가는 시기입니다.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하며, 육신의 일이란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술 담배를 한다거나, 내 생각과 맞지 않을 때 화를 내며 말다툼을 하거나 몸싸움을 하는 것 등은 육체의 일입니다. 이러한 행함이 자주 나온다면 아직 믿음의 2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이러한 육체의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 말씀대로 행한다 해서 무조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는 없습니다. 가령, 주일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도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가에 따라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눈치 보이고 주일을 어기면 재앙을 당할까 두려워서 교회에 나오거나, 예배 시간 내내 졸음과 잡념 속에 드린다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분량은 한두 가지 외적인 행함만 보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믿으며 행하는지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깨달아 행함으로 나타내는 시기가 믿음의 3단계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3단계에 해당되는 것 두 개를 고르시오.
① 성결을 이룬 단계이다.
② 하나님 말씀을 중심에서 깨달아 순종하는 단계이다.
③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든 단계이다.
④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단계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아는 단계에서 신앙생활 할 때와 깨닫고
신앙생활 할 때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믿음의 3단계 영혼에게 주어지는 천국 처소와 상급, 면류관
- 처소와 상급 :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사람은 천국 2천층에 들어가며 독립된 개인 주택이 주어진다.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답다.
정금과 각색 보석들로 만들어진 수영장, 아름다운 호수, 무도회장, 산책길 등 각종 시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 가지가 상급으로 주어진다.
- 면류관 :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진다(벧전 5:4).
교육목표 : 하나님의 말씀을 억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마음 중심에서 기쁨으로 행할 수 있는 성도가 되게 한다.
믿음의 2단계는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단계라 했습니다.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지킬 때도 있고 지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걷다가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기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잘 걷는 것처럼, 말씀대로 행하려고 계속 노력하다 보면 점점 믿음이 성장하게 됩니다.
믿음의 2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행하지 못하는 것이 많습니다. 하지만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니 자연스럽게 말씀대로 행할 수 있지요. 그러므로 믿음의 3단계를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이라고 합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의 차이
하나님 말씀을 아는 것과 깨닫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또 하나님 말씀이니 의무감으로 행하는 것과 왜 행해야 하는지를 깨달아 마음에서 우러나와 순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지요.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 말씀을 억지로 지켜 행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기 때문에 마음에서 우러나와 행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가령, 온전한 주일 성수와 십일조 생활을 하면 하나님께서 시험 환난을 물리쳐 주고 질병이 떠나게 하시며, 물질의 축복도 주신다는 말씀을 들었다고 합시다. 이러한 말씀을 아는 것만으로는 행함이 온전히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가 보다.’ 하고 지키려고 노력하지만 온전히 마음에 믿어지기 전까지는 지킬 때도 있고 지키지 못할 때도 있지요.
그러나 어찌하든 행하려고 노력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어느 순간 왜 이 말씀을 주셨는지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지면서 마음에서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아무리 어려운 일이 생겨도 타협하지 않고 온전한 주일을 지키며 십일조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는 것은 하나님의 영적 주권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심을 믿는다는 것과, 육의 세계를 포함하여 광대한 영의 세계의 주인이심을 인정한다는 뜻이 담겨 있지요. 그래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 하나님께서는 한 주 동안 각종 재난과 사고로부터 지켜 주시고 영혼이 잘되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또한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물적 주권 곧 우리 눈에 보이는 천하 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해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의 창조주이시니 생명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요, 우리가 수고하고 노력할 수 있는 능력도 하나님께서 주셨으므로 결국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모든 수입이 하나님의 것이지만 그중 십 분의 일만 하나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우리가 자유롭게 쓰도록 허락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말라기 3장 8~9절에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했습니다.
이러한 말씀을 진정 마음 중심에서 깨달으면 도리어 십일조를 드리지 않는 것이 더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는 엄청난 죄임을 깨닫기 때문이지요. 또한 그동안 행하지 못한 것을 철저히 회개하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을 깨달아 행하면 하나님께서 지키고 보호하시며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부어 주시는 축복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2. 믿음의 3단계에 들어가려면
아기가 태어나 성장할 때 음식을 섭취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보고 듣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지식이 쌓이고 지혜가 생겨야 어엿한 사회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주 안에서 성장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말씀을 깨우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하면서 알고 있는 말씀을 행하려고 노력할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말씀이 마음에 깨우쳐지고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아는 차원을 넘어 참된 의미를 깨달아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순종이 따를 수 있습니다. 반면에 마음에 깨달음이 오지 않으면 머리로 아는 지식에 불과하기 때문에 순종이 따르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의 2단계에 들어간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이니 억지로라도 기뻐하고 기도하며 감사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조건이나 환경이 어려워지면 이내 불평하며 감사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믿음의 3단계에서는 어떨까요? 잠시 염려 근심이 찾아왔다 해도 이내 마음과 생각을 바꿉니다.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빛의 행함입니다. 그러니 감사하고 기뻐할 때 그 영적인 빛으로 인해 시험 환난이 떠나고 축복이 임합니다. 이런 체험을 통해 하나님께서 왜 기뻐하고 감사하라고 하셨는지 깨닫게 됩니다. 믿음의 2단계처럼 마지못해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자발적인 행함이 나오는데 이것이 믿음의 3단계의 행함입니다.
3.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증거들
이처럼 믿음이 성장하여 3단계에 이르게 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습니다. 말씀이 마음으로 깨달아지기 때문에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더 이상 짐스럽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3단계에 들어온 증거들 중에 하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힘이 든다든가 싫다든가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또한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압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는 것도 알고 믿습니다.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의 삶을 알고 믿기 때문에 더 좋은 천국을 침노해 갈 수 있습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이 버거운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아갑니다. 마치 일상생활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안정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앙생활이 몸에 배어 있기 때문에 “주일을 깜박 잊어버리고 어겼습니다.” 하는 일은 없지요.
믿음의 3단계부터는 눈에 크게 드러나는 비진리는 대부분 정리가 되었기 때문에 육체의 일은 거의 나오지 않으며, 육신의 일을 버려 나가는 시기입니다. 육체의 일이란 행함으로 짓는 죄를 말하며, 육신의 일이란 마음과 생각으로 짓는 죄를 뜻합니다.
예를 들어, 술 담배를 한다거나, 내 생각과 맞지 않을 때 화를 내며 말다툼을 하거나 몸싸움을 하는 것 등은 육체의 일입니다. 이러한 행함이 자주 나온다면 아직 믿음의 2단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이러한 육체의 일을 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 말씀대로 행한다 해서 무조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는 없습니다. 가령, 주일을 잘 지키는 사람이라도 어떤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는가에 따라 믿음의 분량이 다릅니다. 다른 사람에게 눈치 보이고 주일을 어기면 재앙을 당할까 두려워서 교회에 나오거나, 예배 시간 내내 졸음과 잡념 속에 드린다면 믿음의 3단계라 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분량은 한두 가지 외적인 행함만 보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믿으며 행하는지 종합적으로 평가해야 분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마음으로 깨달아 행함으로 나타내는 시기가 믿음의 3단계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믿음의 3단계 초입과 믿음의 반석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믿음의 3단계에 해당되는 것 두 개를 고르시오.
① 성결을 이룬 단계이다.
② 하나님 말씀을 중심에서 깨달아 순종하는 단계이다.
③ 신앙생활 중 가장 힘든 단계이다.
④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단계이다.
2. 하나님의 말씀을 단순히 아는 단계에서 신앙생활 할 때와 깨닫고
신앙생활 할 때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믿음의 3단계 영혼에게 주어지는 천국 처소와 상급, 면류관
- 처소와 상급 :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사람은 천국 2천층에 들어가며 독립된 개인 주택이 주어진다.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답다.
정금과 각색 보석들로 만들어진 수영장, 아름다운 호수, 무도회장, 산책길 등 각종 시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한 가지가 상급으로 주어진다.
- 면류관 :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진다(벧전 5:4).
2021-06-04
제23과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
고린도전서 3:1~3
읽을말씀 : 고린도전서 3:1~3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2:6 | 참고 말씀: 히브리서 12:6~7
교육목표 :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의 차이를 알아보고, 말씀을 스스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믿음에는 분량이 있어서 성장 과정에 따라 자녀들의 믿음, 아이들의 믿음, 청년들의 믿음, 아비들의 믿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기가 성장하면서 젖을 먹다가 밥을 먹는 것처럼,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의 믿음의 분량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의 1, 2단계는 젖 먹는 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고 천국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믿음의 1단계입니다. 하나님과 자녀 관계가 성립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요. 하지만 이제 막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기에 영적으로는 갓난아기와 같은 상태입니다. 이때는 아직 진리가 무엇이며 비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죄를 지어도 죄인 줄 깨닫지 못합니다. 갓난아기가 발가벗고 있어도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지요.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어 진리로 분별할 수 없으니 설령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크게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마치 아기가 기어다니다가 물그릇을 엎거나 깨어도 야단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부모나 가족들 편에서 그릇을 치우지 않고 주의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고 여기지요.
믿음이 성장하여 2단계가 되면 성령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들은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죄를 지을 때는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고 곤고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직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말씀을 들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마음에 비진리가 많으므로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처럼 아직은 믿음이 연약한 1, 2단계에 있는 사람을 ‘젖 먹는 신자’라고 합니다. 아무리 중한 사명과 직분을 받았다 해도 여전히 말씀대로 행치 못하고 비진리 가운데 살아간다면 그는 어린아이의 신앙에 불과합니다. 주의 종이나 장로, 권사라 해도, 구역장이나 교사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직분이나 신앙의 연륜, 말씀의 지식, 가르치는 능력 등으로 믿음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여 행하는지, 얼마나 진리 가운데 거하는지를 보시지요.
2. 젖 먹는 신자를 양육하는 방법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 이해하고 인도해 가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이듯이 부드럽게 권면하며 하나하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만일 젖먹이에게 젖을 먹이지 않고 밥을 먹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 소화불량에 걸리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젖 먹는 신자를 갈무리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조건 하나님 말씀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지혜롭게 권면해야 합니다.
아직 술 담배를 하는 사람에게 “술, 담배를 끊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라고 말하면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술 담배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면 자연히 버릴 수 있으니 하나님께 기도하세요.”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가게 문을 여는 사람에게는 “주일을 온전히 지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6일만 일해도 7일간 얻는 수입보다 더 크게 축복하시는 것을 체험할 거예요.”라고 믿음을 심어 주면서 부드럽게 권면해 주면 좋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신자를 양육할 때는 죄를 지으면 징계하시는 두려움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할 수 있다’며 힘과 능력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느낄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3. 믿음의 3단계는 밥 먹는 신자
믿음이 성장하여 말씀을 이해하고, 스스로 행할 수 있다면 ‘밥 먹는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믿음의 3단계에 해당합니다.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힘쓰면, 하나님께서 시험 환난으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의 2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야 부모의 마음이 흐뭇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면 말씀과 기도를 통해 부지런히 믿음을 성장시켜 나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여전히 1, 2단계에 해당하는 삶을 산다면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따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믿음이 성장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지요.
어린아이가 성장하면 균형 잡힌 식사를 통해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밥을 먹지 않고 젖만 찾는다면 아무래도 건강에 지장이 있지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어찌하든 젖을 떼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행치 않으면 영적으로 파리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처참한 십자가에 내어주셨는데, 자녀들이 오랜 세월 믿음의 성장이 멈춰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안타깝지만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12장 6~8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그러니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2단계 행함을 보이고 있다면 하나님의 응답이나 축복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기 때문에 세상 방법을 동원하거나 시험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혹여 죄를 지었는데도 징계가 없다면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계속 범죄함으로 성령이 완전히 소멸되면 하나님 자녀라고 할 수 없기에 사생자요, 다시금 원수 마귀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기 때문에 징계마저도 오지 않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에게 사로잡혀 종노릇을 하며 죄를 짓다가 결국 지옥에 갈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나는 죄를 지어도 징계가 없으니 완전히 버림받았구나!” 자포자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 중심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하며 용서받을 때까지 간절히 매달려야 합니다. 한편 죄를 지어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증거임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으로 대충 하는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통회자복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은혜를 구하면 눈물, 콧물과 함께 마음을 찢는 회개가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헐어져 마음이 가벼워지고 성령 충만함이 임하여 다시금 믿음의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아직도 젖 먹는 신자에 머물러 있다면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밥 먹는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으세요.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이듯 부드럽게 권면하며 말씀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어야 하는 사람을 ( ) 신자라 하며, 믿음이 성장하여 스스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을 ( ) 신자라 한다.
2.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는 각각 믿음의 몇 단계에 해당할까요?
젖 먹는 신자 - ( ) 밥 먹는 신자 - ( )
3. 믿음의 1단계와 2단계의 차이점을 말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생명책
하나님 보좌 앞에 있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계 3:5).
푸른빛이 감도는 밝은 흰빛을 띤 책으로, 백보좌 대심판 때 하나의 증거자료가 된다(계 20:15).
책 안에는 ‘누가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거듭났다 해도 다시 사망의 길로 가면 구원과 상관이 없어지며 생명책에서 지워진다(시 69:28 ; 계 3:5).
교육목표 :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의 차이를 알아보고, 말씀을 스스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게 한다.
믿음에는 분량이 있어서 성장 과정에 따라 자녀들의 믿음, 아이들의 믿음, 청년들의 믿음, 아비들의 믿음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한 아기가 성장하면서 젖을 먹다가 밥을 먹는 것처럼,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의 믿음의 분량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겠습니다.
1. 믿음의 1, 2단계는 젖 먹는 신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고 천국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믿음의 1단계입니다. 하나님과 자녀 관계가 성립되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요. 하지만 이제 막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기에 영적으로는 갓난아기와 같은 상태입니다. 이때는 아직 진리가 무엇이며 비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죄를 지어도 죄인 줄 깨닫지 못합니다. 갓난아기가 발가벗고 있어도 부끄러움이나 수치를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지요.
이 단계에서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어 진리로 분별할 수 없으니 설령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 크게 책망하시지 않습니다. 마치 아기가 기어다니다가 물그릇을 엎거나 깨어도 야단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오히려 부모나 가족들 편에서 그릇을 치우지 않고 주의하지 못한 것이 잘못이라고 여기지요.
믿음이 성장하여 2단계가 되면 성령 충만함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사모하며, 들은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합니다. 죄를 지을 때는 성령의 탄식 소리를 듣고 곤고함을 느낍니다. 그러나 아직은 어린아이와 같아서 말씀을 들어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뿐 아니라 행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마음에 비진리가 많으므로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집니다.
이처럼 아직은 믿음이 연약한 1, 2단계에 있는 사람을 ‘젖 먹는 신자’라고 합니다. 아무리 중한 사명과 직분을 받았다 해도 여전히 말씀대로 행치 못하고 비진리 가운데 살아간다면 그는 어린아이의 신앙에 불과합니다. 주의 종이나 장로, 권사라 해도, 구역장이나 교사라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직분이나 신앙의 연륜, 말씀의 지식, 가르치는 능력 등으로 믿음을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순종하여 행하는지, 얼마나 진리 가운데 거하는지를 보시지요.
2. 젖 먹는 신자를 양육하는 방법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믿음의 분량에 맞추어 이해하고 인도해 가십니다. 고린도전서 3장 1~2절에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하나님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이듯이 부드럽게 권면하며 하나하나 이끌어 주어야 합니다.
만일 젖먹이에게 젖을 먹이지 않고 밥을 먹인다면 어떻게 될까요? 당장 소화불량에 걸리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젖 먹는 신자를 갈무리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무조건 하나님 말씀을 지키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의 분량에 따라 지혜롭게 권면해야 합니다.
아직 술 담배를 하는 사람에게 “술, 담배를 끊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십니다.”라고 말하면 교회에 나오기를 꺼려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술 담배도 하나님께서 도와주시면 쉽게 끊을 수 있습니다. 믿음이 성장하면 자연히 버릴 수 있으니 하나님께 기도하세요.”라고 가르쳐야 합니다.
또한 주일 오전 예배만 드리고 가게 문을 여는 사람에게는 “주일을 온전히 지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6일만 일해도 7일간 얻는 수입보다 더 크게 축복하시는 것을 체험할 거예요.”라고 믿음을 심어 주면서 부드럽게 권면해 주면 좋습니다.
이처럼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신자를 양육할 때는 죄를 지으면 징계하시는 두려움의 하나님으로 받아들이게 해서는 안 됩니다. ‘할 수 있다’며 힘과 능력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느낄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3. 믿음의 3단계는 밥 먹는 신자
믿음이 성장하여 말씀을 이해하고, 스스로 행할 수 있다면 ‘밥 먹는 신자’라 할 수 있습니다. 이는 믿음의 3단계에 해당합니다. 믿음의 1, 2단계에 있는 사람이 나름대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자 힘쓰면, 하나님께서 시험 환난으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믿음의 2단계에 계속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어린아이가 무럭무럭 자라야 부모의 마음이 흐뭇한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났다면 말씀과 기도를 통해 부지런히 믿음을 성장시켜 나가야 하나님이 기뻐하십니다.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여전히 1, 2단계에 해당하는 삶을 산다면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므로 하나님의 징계가 따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 믿음이 성장하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지요.
어린아이가 성장하면 균형 잡힌 식사를 통해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해야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도 밥을 먹지 않고 젖만 찾는다면 아무래도 건강에 지장이 있지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한다면 어찌하든 젖을 떼고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 말씀을 알면서도 행치 않으면 영적으로 파리해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간섭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고자 독생자 예수님을 처참한 십자가에 내어주셨는데, 자녀들이 오랜 세월 믿음의 성장이 멈춰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안타깝지만 사단의 송사를 허락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히브리서 12장 6~8절에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하신 대로입니다.
그러니 믿음의 3단계에 있어야 할 사람이 2단계 행함을 보이고 있다면 하나님의 응답이나 축복은 기대할 수 없습니다. 문제가 생겨도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기 때문에 세상 방법을 동원하거나 시험 환난을 당하기도 합니다.
혹여 죄를 지었는데도 징계가 없다면 자신을 점검해야 합니다. 계속 범죄함으로 성령이 완전히 소멸되면 하나님 자녀라고 할 수 없기에 사생자요, 다시금 원수 마귀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기 때문에 징계마저도 오지 않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에게 사로잡혀 종노릇을 하며 죄를 짓다가 결국 지옥에 갈 수밖에 없지요.
그렇다고 해서 “나는 죄를 지어도 징계가 없으니 완전히 버림받았구나!” 자포자기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마음 중심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철저히 회개하며 용서받을 때까지 간절히 매달려야 합니다. 한편 죄를 지어 하나님의 징계가 임했다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증거임을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으로 대충 하는 회개가 아니라, 마음을 찢는 통회자복이 나와야 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은혜를 구하면 눈물, 콧물과 함께 마음을 찢는 회개가 나옵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헐어져 마음이 가벼워지고 성령 충만함이 임하여 다시금 믿음의 성장을 이룰 수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이 아직도 젖 먹는 신자에 머물러 있다면 부지런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밥 먹는 신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 안에 알맞은 답을 넣으세요.
어린아이에게 젖을 먹이듯 부드럽게 권면하며 말씀을 하나하나 가르쳐 주어야 하는 사람을 ( ) 신자라 하며, 믿음이 성장하여 스스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사람을 ( ) 신자라 한다.
2. 젖 먹는 신자와 밥 먹는 신자는 각각 믿음의 몇 단계에 해당할까요?
젖 먹는 신자 - ( ) 밥 먹는 신자 - ( )
3. 믿음의 1단계와 2단계의 차이점을 말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생명책
하나님 보좌 앞에 있는, 구원받은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계 3:5).
푸른빛이 감도는 밝은 흰빛을 띤 책으로, 백보좌 대심판 때 하나의 증거자료가 된다(계 20:15).
책 안에는 ‘누가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거듭났다 해도 다시 사망의 길로 가면 구원과 상관이 없어지며 생명책에서 지워진다(시 69:28 ; 계 3:5).
2021-05-28
제22과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
로마서 7:22~24
읽을말씀 : 로마서 7:22~24 | 외울말씀 : 신명기 10:13 | 참고 말씀: 요한복음 14:27
교육목표 : 세상적인 것을 온전히 끊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감으로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고 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구원의 기쁨으로 충만해지는데 여기서부터 믿음의 1단계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며 주님을 믿는다 하지만 이전의 구습이 계속됩니다. 술, 담배를 끊지 못한 경우도 있고, 혈기 내고 험한 말을 하기도 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도 하는 등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 없는 모습입니다.
믿음의 1단계에 속한 사람은 죄를 지어도 마음에 곤고함이나 성령의 탄식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비진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점차 믿음이 성장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결국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로 접어듭니다.
1.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
믿음의 2단계부터는 하나님 말씀을 배워서 알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진리는 이것이 아닌데 ….” 하며 곤고함을 느낍니다.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이 탄식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해 나가면서 진리대로 행할 때도 있지만 죄와의 싸움에 져서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셨기에 그 말씀대로 지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집안이나 직장에 무슨 일이 있으면 온전히 주일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려고는 하지만 바쁜 일들이 생기면 기도를 쉬기도 합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다가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합니다. 주변 사람과 화평을 좇다가도 자기 뜻에 맞지 않거나 상대가 건드리면 참지 못하여 혈기 내고 다투기도 하지요.
이때에도 절대 낙심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은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못한다 해도 계속 노력해 가면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고 은혜를 주시며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 차츰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변화되어 갑니다. 전에는 열 번 범죄했던 사람이 아홉 번, 여덟 번, 점점 줄어서 두 번, 한 번이 되고 결국 범죄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이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시기
믿음의 2단계에서는 신앙생활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알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배웠지만, 여전히 세상이 좋고 비진리를 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대등하여 팽팽히 싸울 때는 신앙생활이 가장 힘들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심해지면 마음이 곤고해지고 충만함이 떨어져서 신앙생활을 등한시하거나 아예 믿음을 저버리고 세상으로 향하기도 합니다.
로마서 7장 21~24절을 보면, 선과 악이 내 안에서 싸울 때 신앙생활이 얼마나 힘든지가 잘 나옵니다.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죄를 버리는 것이 힘들다는 이유로 죄를 지적하지 않는 교회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주일에 매매를 해도,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책망하지 않는 교회를 좋다고 여기지요. 그러나 신앙생활이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거룩한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버리지 않고 교회만 왔다갔다 한다면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요.
믿음의 1단계에서 2단계가 되었다면 당연히 3단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편한 대로 신앙생활 하며 오히려 믿음이 퇴보한다면 원수 마귀 사단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습니다.
그나마 겨자씨만 한 믿음까지 빼앗기 위해 자꾸 비진리의 생각을 불어넣습니다. 어찌하든 은혜를 저버리고 세상을 취하도록 주변 환경을 통해 미혹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둘 저버리고 성령의 충만함도 식은 채, 교회만 왔다갔다 한다면 결국 성령이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말씀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는 “성령을 소멸치 말며” 말씀했지요. 그러니 죄를 버리는 것이 힘들게 느껴진다 해도 그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이 길만이 축복의 길, 천국 가는 길이기에 원수 마귀와 싸워 이기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야 하는 것이지요.
비유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누군가가 어마어마한 보물들을 숨겨 놓고 그곳까지 꼬박 한 달을 걸어가기만 하면 그 보물을 다 가질 수 있다고 말해 줍니다. 이 말을 확실히 믿는다면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해도 불평하지 않고 기쁨으로 걸어서 갈 것입니다. 어찌하든 더 빨리 가고자 하겠지요.
중간쯤 가다가 “아이구! 나는 많이 걸어서 너무 힘드니까 되돌아가야겠다.”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천국을 소망한다면 결코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3.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십수 년간 교회에서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던 성도님이 갑자기 소천한 적이 있습니다. 이분의 경우, 사명을 감당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다투며 하나님 말씀에도 불순종한 것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개인 사업을 하면서 정도를 걷지 못하고 여러 사람과 돈 문제로 얽혀 그대로 두면 더는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자칫 믿음이 퇴보하여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를 수 있었지요.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그나마 구원받을 수 있을 때 영혼을 부르신 것입니다. 겉으로는 열심을 내며 충성했지만 정작 마음의 할례 곧 죄악을 버리기 위해 힘쓰지 않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이분은 믿음의 2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밭에서 일하는 소가 주인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면 힘들지 않습니다. 자꾸 다른 곳으로 가려 할 때 주인이 고삐를 잡아당기니 힘들 수밖에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신 10:13) “미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당부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신앙생활이 쉬울 텐데, 여전히 나를 고집하며 하지 말라는 것을 하니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주 안에서 참된 평안이 임하는 것을 체험하며 마음에 염려 근심 걱정이 떠나지요.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갈 때 천국을 소유하는 기쁨을 누리며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쌓는 데 그치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더욱 큰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 안에 알맞은 말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세요.
1. ( )에 속한 사람은 죄를 지어도 마음에 곤고함이나 성령의 탄식을 잘 느끼지 못한다. 진리가 무엇인지, 비진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점차 믿음이 성장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결국 행하려고 노력하는 ( )로 접어든다.
2. 신앙생활이란 ( )를 버리고 성결되어 거룩한 하나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 )를 버리지 않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한다면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그칠 수밖에 없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믿음의 2단계 영혼에게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
처소 : 천국 1천층에 들어가며 이 땅의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에 비유할 수 있는 형태의 집을 소유한다.
집 외에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 대신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넓은 정원이나 골프장, 수영장, 운동시설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 수종하는 천사는 없지만, 필요한 장소마다 천사들이 시설을 관리하며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준다.
면류관 :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받는다(고전 9:25).
교육목표 : 세상적인 것을 온전히 끊어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 감으로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고 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구원의 기쁨으로 충만해지는데 여기서부터 믿음의 1단계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교회에 다니며 주님을 믿는다 하지만 이전의 구습이 계속됩니다. 술, 담배를 끊지 못한 경우도 있고, 혈기 내고 험한 말을 하기도 하며, 자기 유익을 구하기 위해 거짓말도 하는 등 세상 사람들과 별 차이 없는 모습입니다.
믿음의 1단계에 속한 사람은 죄를 지어도 마음에 곤고함이나 성령의 탄식을 잘 느끼지 못합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비진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점차 믿음이 성장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결국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로 접어듭니다.
1.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
믿음의 2단계부터는 하나님 말씀을 배워서 알기 때문에 죄를 지으면 “내가 이러면 안 되는데, 진리는 이것이 아닌데 ….” 하며 곤고함을 느낍니다.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이 탄식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해 나가면서 진리대로 행할 때도 있지만 죄와의 싸움에 져서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 하셨기에 그 말씀대로 지키려고 노력은 하지만 집안이나 직장에 무슨 일이 있으면 온전히 주일을 지키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쉬지 않고 기도하려고는 하지만 바쁜 일들이 생기면 기도를 쉬기도 합니다.
또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다가도 어려운 일이 닥치면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합니다. 주변 사람과 화평을 좇다가도 자기 뜻에 맞지 않거나 상대가 건드리면 참지 못하여 혈기 내고 다투기도 하지요.
이때에도 절대 낙심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아직은 말씀대로 온전히 행하지 못한다 해도 계속 노력해 가면 하나님께서 그 모습을 보고 은혜를 주시며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열심히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 차츰 죄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여 변화되어 갑니다. 전에는 열 번 범죄했던 사람이 아홉 번, 여덟 번, 점점 줄어서 두 번, 한 번이 되고 결국 범죄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 신앙생활이 가장 힘들게 느껴지는 시기
믿음의 2단계에서는 신앙생활이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하나님 말씀을 알고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배웠지만, 여전히 세상이 좋고 비진리를 행하고 싶은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진리의 마음과 비진리의 마음이 대등하여 팽팽히 싸울 때는 신앙생활이 가장 힘들게 느껴집니다. 여기서 심해지면 마음이 곤고해지고 충만함이 떨어져서 신앙생활을 등한시하거나 아예 믿음을 저버리고 세상으로 향하기도 합니다.
로마서 7장 21~24절을 보면, 선과 악이 내 안에서 싸울 때 신앙생활이 얼마나 힘든지가 잘 나옵니다.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자는 죄를 버리는 것이 힘들다는 이유로 죄를 지적하지 않는 교회를 선호하기도 합니다. 주일에 매매를 해도, 십일조를 하지 않아도 책망하지 않는 교회를 좋다고 여기지요. 그러나 신앙생활이란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거룩한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를 버리지 않고 교회만 왔다갔다 한다면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세상 사람과 다를 바가 없지요.
믿음의 1단계에서 2단계가 되었다면 당연히 3단계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런데 자기 편한 대로 신앙생활 하며 오히려 믿음이 퇴보한다면 원수 마귀 사단이 가만히 놔둘 리가 없습니다.
그나마 겨자씨만 한 믿음까지 빼앗기 위해 자꾸 비진리의 생각을 불어넣습니다. 어찌하든 은혜를 저버리고 세상을 취하도록 주변 환경을 통해 미혹합니다. 만일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둘 저버리고 성령의 충만함도 식은 채, 교회만 왔다갔다 한다면 결국 성령이 소멸될 수도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말씀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는 “성령을 소멸치 말며” 말씀했지요. 그러니 죄를 버리는 것이 힘들게 느껴진다 해도 그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합니다. 이 길만이 축복의 길, 천국 가는 길이기에 원수 마귀와 싸워 이기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해야 하는 것이지요.
비유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누군가가 어마어마한 보물들을 숨겨 놓고 그곳까지 꼬박 한 달을 걸어가기만 하면 그 보물을 다 가질 수 있다고 말해 줍니다. 이 말을 확실히 믿는다면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해도 불평하지 않고 기쁨으로 걸어서 갈 것입니다. 어찌하든 더 빨리 가고자 하겠지요.
중간쯤 가다가 “아이구! 나는 많이 걸어서 너무 힘드니까 되돌아가야겠다.” 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천국을 소망한다면 결코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습니다.
3.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십수 년간 교회에서 중요한 사명을 감당하던 성도님이 갑자기 소천한 적이 있습니다. 이분의 경우, 사명을 감당하면서 주변 사람들과 다투며 하나님 말씀에도 불순종한 것이 많았습니다. 게다가 개인 사업을 하면서 정도를 걷지 못하고 여러 사람과 돈 문제로 얽혀 그대로 두면 더는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자칫 믿음이 퇴보하여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에까지 이를 수 있었지요.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그나마 구원받을 수 있을 때 영혼을 부르신 것입니다. 겉으로는 열심을 내며 충성했지만 정작 마음의 할례 곧 죄악을 버리기 위해 힘쓰지 않았기 때문에 안타깝게도 이분은 믿음의 2단계에 머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면 신앙생활이 힘들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내 뜻대로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가령, 밭에서 일하는 소가 주인이 이끄는 대로 순순히 따라가면 힘들지 않습니다. 자꾸 다른 곳으로 가려 할 때 주인이 고삐를 잡아당기니 힘들 수밖에 없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행복을 위해(신 10:13) “미워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당부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신앙생활이 쉬울 텐데, 여전히 나를 고집하며 하지 말라는 것을 하니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 13~14절에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들은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에 순종하는 만큼 주 안에서 참된 평안이 임하는 것을 체험하며 마음에 염려 근심 걱정이 떠나지요.
요한복음 14장 27절에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을 갈 때 천국을 소유하는 기쁨을 누리며 행복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말씀을 지식으로 쌓는 데 그치지 말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기 위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며 더욱 큰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 ( ) 안에 알맞은 말을 본문에서 찾아 써 보세요.
1. ( )에 속한 사람은 죄를 지어도 마음에 곤고함이나 성령의 탄식을 잘 느끼지 못한다. 진리가 무엇인지, 비진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점차 믿음이 성장하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는 마음이 생기고, 결국 행하려고 노력하는 ( )로 접어든다.
2. 신앙생활이란 ( )를 버리고 성결되어 거룩한 하나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 )를 버리지 않고 교회만 왔다 갔다 한다면 형식적인 신앙생활에 그칠 수밖에 없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믿음의 2단계 영혼에게 주어지는 천국의 처소와 면류관
처소 : 천국 1천층에 들어가며 이 땅의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에 비유할 수 있는 형태의 집을 소유한다.
집 외에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시설이 없다. 대신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넓은 정원이나 골프장, 수영장, 운동시설 등이 있다.
개인적으로 수종하는 천사는 없지만, 필요한 장소마다 천사들이 시설을 관리하며 불편함이 없도록 도와준다.
면류관 :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받는다(고전 9:25).
2021-05-21
제21과성령 강림과 초대교회
사도행전 2:1~4
읽을말씀 : 사도행전 2:1~4 | 외울말씀 : 사도행전 2:38 | 참고 말씀: 사도행전 2:37~47
교육목표 : 초대교회처럼 모이기에 힘쓰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불같이 기도하여 오직 말씀대로 행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많은 사람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승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셨는데,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1. 성령 강림과 성령의 역사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120여 명의 제자들과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썼습니다. 오순절날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행 2:1∼4).
이것이 성령 강림의 시초로서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욜 2:28∼29). 그리하여 성령 받은 사람들은 각종 방언 말함은 물론, 성령의 역사로 예언도 하고 환상도 보며 각양 은사를 받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어 갑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주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아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마침내 예루살렘에 교회가 형성되었고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 뜻대로 행하였습니다.
오늘날은 부활절 이후 50일이 되는 날, 곧 오순절을 성령 강림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를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행 2:38).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은 물론,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2. 교회의 형성과 초대교회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기사와 표적을 행하니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에 성도들의 모임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바로 교회의 시초이며 이를 초대교회라고 합니다.
초대교회는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목도한 제자들이 기도에 힘쓰며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치리했기 때문에 교회 역사상 가장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행전 2장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성도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도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했으니 초대교회를 본받아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킴은 물론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새벽예배 등 각종 예배 및 기도회에 참석하며 성전에 모이기 힘쓰는 성도들을 사랑하십니다. 성전에 모이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경배드릴 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배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기도함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성도들이 서로 교제하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 교제했는데 주 안에서 곧 믿음의 형제들과 간증 및 체험을 나누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므로 더욱 믿음이 견고해졌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힘썼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응답의 열쇠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살전 5:17). 또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하셨습니다(벧전 4:7). 기도하지 않으면 세상과 죄악을 이길 힘이 없으므로 진리 안에 온전히 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초대교회와 같이 살아 계신 하나님과 기도로써 영적 교통을 하면 하늘로부터 능력을 받습니다. 나아가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진리 안에 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이 성장하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며 항상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니 질병이 틈타지 않고 늘 강건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며 항상 기뻐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47절을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었습니다. 또한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하셨습니다(마 22:37∼40).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말씀대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했지요.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사람은 멸망의 길로 가게 되었지만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눈물, 고통, 슬픔, 질병, 사망이 없는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진정 믿는다면 오늘날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전도에 힘쓰며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3절에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요, 이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뜻대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전도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므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지요(행 2:47).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다섯째로,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 43절을 보면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강퍅해져 기사와 표적을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에(요 4:48) 예수님께서도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임을 확증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 중심에서 믿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기에 하나님께서는 기사와 표적을 통하여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여 확실한 믿음을 갖고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모이기에 힘쓰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서로 교제하고 불같이 기도하여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또한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 날마다 구원받는 수가 더함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오늘날도 모든 교회는 초대교회를 본받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무수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자 힘써야 할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초대교회 특징을 말해 보세요.
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 )를 힘썼다.
② 서로 교제하며 ( )하기를 전혀 힘썼다.
③ 서로 사랑하며 항상 ( )했다.
④ ( )에 힘썼다.
⑤ 기사와 ( )이 많이 나타났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기사’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천기를 움직이는 것으로 주로 기상 현상과 관계된다. 구름을 움직이고 비를 오게 하거나 멎게 하는 것, 천체를 움직이는 것 등이 이에 속한다.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역사를 말한다. 즉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의 역사이다.
교육목표 : 초대교회처럼 모이기에 힘쓰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불같이 기도하여 오직 말씀대로 행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40일 동안 제자들과 많은 사람에게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승천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 하셨는데,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1. 성령 강림과 성령의 역사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신 이후 120여 명의 제자들과 성도들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에 힘썼습니다. 오순절날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하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행 2:1∼4).
이것이 성령 강림의 시초로서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욜 2:28∼29). 그리하여 성령 받은 사람들은 각종 방언 말함은 물론, 성령의 역사로 예언도 하고 환상도 보며 각양 은사를 받아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이루어 갑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주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아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하였습니다. 마침내 예루살렘에 교회가 형성되었고 성도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에 따라 하나님 뜻대로 행하였습니다.
오늘날은 부활절 이후 50일이 되는 날, 곧 오순절을 성령 강림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죄를 회개하면 성령을 선물로 주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행 2:38).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와 축복은 물론, 권능을 받아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될 수 있습니다.
2. 교회의 형성과 초대교회
예수님께로부터 직접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담대히 복음을 전하며 기사와 표적을 행하니 구원받는 사람이 날마다 더해졌습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에 성도들의 모임이 생겨났는데 이것이 바로 교회의 시초이며 이를 초대교회라고 합니다.
초대교회는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목도한 제자들이 기도에 힘쓰며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치리했기 때문에 교회 역사상 가장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교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도행전 2장을 중심으로 예루살렘에 세워진 초대교회의 특징을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성도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장 46절을 보면 초대교회 성도들은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썼다고 했습니다. 히브리서 10장 25절에도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했으니 초대교회를 본받아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에 더욱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주일을 거룩하게 지킴은 물론 수요예배, 금요철야예배, 새벽예배 등 각종 예배 및 기도회에 참석하며 성전에 모이기 힘쓰는 성도들을 사랑하십니다. 성전에 모이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경배드릴 뿐 아니라, 하나님 말씀을 배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기도함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성도들이 서로 교제하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썼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서로 교제했는데 주 안에서 곧 믿음의 형제들과 간증 및 체험을 나누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므로 더욱 믿음이 견고해졌습니다.
그리고 기도에 힘썼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며 응답의 열쇠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말씀하셨습니다(살전 5:17). 또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하셨습니다(벧전 4:7). 기도하지 않으면 세상과 죄악을 이길 힘이 없으므로 진리 안에 온전히 거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초대교회와 같이 살아 계신 하나님과 기도로써 영적 교통을 하면 하늘로부터 능력을 받습니다. 나아가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진리 안에 살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음이 성장하고 하늘나라에 소망을 두며 항상 기뻐할 수 있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니 질병이 틈타지 않고 늘 강건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며 항상 기뻐했습니다.
사도행전 2장 44∼47절을 보면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 나눠주었습니다. 또한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했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하셨습니다(마 22:37∼40).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말씀대로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자기의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고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않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했지요.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은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미했습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모든 사람은 멸망의 길로 가게 되었지만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눈물, 고통, 슬픔, 질병, 사망이 없는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진정 믿는다면 오늘날도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어떠한 상황에서도 항상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미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전도에 힘쓰며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했습니다. 로마서 10장 13절에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했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는 것이요, 이를 위하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뜻대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며 전도하기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므로 주께서 구원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셨지요(행 2:47).
우리도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사람이 되어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며 사람들의 칭찬을 받고 전도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다섯째로,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 43절을 보면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났다고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이 강퍅해져 기사와 표적을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기 때문에(요 4:48) 예수님께서도 기사와 표적을 나타내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참임을 확증시켜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직접 체험하지 않고 중심에서 믿는 믿음을 갖는다는 것은 쉽지 않기에 하나님께서는 기사와 표적을 통하여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하여 확실한 믿음을 갖고 구원에 이르게 하십니다.
이처럼 초대교회는 모이기에 힘쓰며 성령의 충만함을 입고 서로 교제하고 불같이 기도하여 오직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했습니다. 또한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 날마다 구원받는 수가 더함으로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렸습니다.
따라서 오늘날도 모든 교회는 초대교회를 본받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며 무수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자 힘써야 할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초대교회 특징을 말해 보세요.
①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 )를 힘썼다.
② 서로 교제하며 ( )하기를 전혀 힘썼다.
③ 서로 사랑하며 항상 ( )했다.
④ ( )에 힘썼다.
⑤ 기사와 ( )이 많이 나타났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기사’란?
하나님의 역사 가운데 천기를 움직이는 것으로 주로 기상 현상과 관계된다. 구름을 움직이고 비를 오게 하거나 멎게 하는 것, 천체를 움직이는 것 등이 이에 속한다.
‘표적’이란?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역사를 말한다. 즉 소경이 눈을 뜨고 벙어리가 말하며 들리지 않던 귀가 들리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등의 역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