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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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9-23
제38과신부 단장을 잘하자
마태복음 25:1~13
읽을말씀 : 마태복음 25:1~13 | 외울말씀 : 데살로니가전서 5:23 | 참고 말씀: 데살로니가전서 5:4
교육목표 :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의 자격에 대해 깨닫게 한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하시며 열 처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열 처녀는 하나님을 믿고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재림의 주님을 기다린다고 하면서도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못 한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은 성도가 있는가 하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준비를 잘한 성도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1. 열 처녀 비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가 있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습니다. 열 처녀는 모두 등을 들고 신랑을 기다렸지요.
밤은 깊어 가고 신랑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열 처녀 모두 졸며 자고 있을 때, 갑자기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열 처녀는 부랴부랴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등을 챙겨 불을 밝혔지요.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기에 등불이 꺼져갑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나눠 달라” 부탁하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합니다. 결국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사러 갔고, 그 사이에 신랑이 도착했지요.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돌아와 아무리 외쳐도 문은 열리지 않았고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무서운 말만 들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구원받을 기회가 내일도 있다.”며 깨어 있지 않고 신부 단장에 힘쓰지 않습니다. 신부 단장의 기회는 깨어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며 구원의 문은 한번 닫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은 기름이 떨어져도 느끼지 못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열 처녀 비유를 통해 항상 깨어 있어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온전히 신부 단장을 마치라고 당부하십니다. “…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하셨지요.
교회만 왔다 갔다 하고 세상과 짝하며 쾌락을 즐긴다면 신랑 되신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며 구원과도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주님의 신부 된 자격을 갖추려면
성경을 보면 주님을 신랑, 성도를 신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죄를 범한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이 땅에서 시작된 6천 년 인간 경작이 마쳐지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셔서 신부 단장에 힘쓴 성도들과 함께 7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9절을 보면 “… 어린양(곧 주님)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신랑 되신 주님의 혼인 잔치에 초청받아 들어간다는 것은 구원받아 영생을 얻었다는 뜻이니 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 땅에 남아 7년 대환난을 겪게 됩니다. 그러니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항상 깨어 있어 신부 단장에 힘쓰며 7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신랑 되신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신부의 자격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어떠한 시험 환난에도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브라함은 믿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온전히 순종하여 믿음의 행함을 증거로 내보였기 때문입니다. 즉 약속의 씨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어떤 육신의 생각도 동원하지 않고 온전한 순종의 행함을 보였지요.
다니엘의 세 친구는 어떻습니까?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굳게 지키니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금 신상을 만들어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절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겠다고 위협하였지요(단 3:15).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 앞에 절대 절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담대히 고백합니다. 결국 그들은 풀무 불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머리카락 하나 그슬리지 않도록 지켜 주셨기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명하며 크게 영광 돌렸지요.
둘째로,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흠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교양과 지식으로 겉을 거룩하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했습니다(삼상 16:7).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청결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했습니다. 더러운 죄악을 온전히 버려야 마음이 청결해지고 자기 몸과 주변도 청결히 합니다.
성경에서는 마음을 청결케 하는 것을 ‘두루마기를 빤다’고 표현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말씀하지요. 만일 옷에 오물이 묻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깨끗이 빨아서 입을 것입니다.
마음에 묻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물인 하나님 말씀으로 깨끗이 씻어 내야 하지요. 다투고 혈기 내던 사람은 혈기를 버려야 하고, 교만한 사람은 낮아지고 섬기며, 미움과 시기 질투가 있는 사람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청결해지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오히려 품게 됩니다.
셋째로, 기름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신부가 되려면 기름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은 기도와 성령 충만함을 뜻합니다. 기름이 있어야 등에 불을 밝힐 수 있듯이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영혼의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충만함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점차 세상과 타협하게 되고 죄악 가운데 살다가 결국에는 구원에도 이를 수 없지요. 만일 미련한 다섯 처녀가 깨어 있어 신랑이 더디 오는 것을 알았다면 기름을 넉넉히 준비해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주 안에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습니다(살전 5:4).
그러나 깨어 있지 않으면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으로 다 멸하기까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것과 같은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영적인 기름 준비는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믿음도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신부 단장을 잘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갖춰야 할 신부 자격은 무엇일까요?
① 어떠한 시험 환난에도 흔들림이 없는 ( )을 가져야 한다.
②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 )이 없어야 한다.
③ 기름 준비하고 ( ) 있어야 한다.
2.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신부가 되려면 기름을 잘 준비해야 한다.
이때 기름은 ( )와 ( ) 충만함을 뜻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어린양의 혼인 잔치’(계 19:9)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영혼들이 신부의 자격으로 7년 동안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하는 잔치를 가리킨다.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시면 구원받은 모든 영혼이 신부로서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한다.
이때 구원받은 자녀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7년 동안 공중에서 혼인 잔치를 베푸신다.
장차 백보좌 대심판을 통해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천국의 처소와 상급으로 갚아 주시는데, 그 전에 혼인 잔치를 베풀어 주님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교육목표 :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부의 자격에 대해 깨닫게 한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와 같다 하리니” 하시며 열 처녀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열 처녀는 하나님을 믿고 재림의 주님을 기다리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재림의 주님을 기다린다고 하면서도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못 한 미련한 다섯 처녀와 같은 성도가 있는가 하면, 슬기로운 다섯 처녀와 같이 준비를 잘한 성도도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1. 열 처녀 비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가 있었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가지지 아니하고, 슬기로운 처녀들은 그릇에 기름을 담아 등과 함께 가져갔습니다. 열 처녀는 모두 등을 들고 신랑을 기다렸지요.
밤은 깊어 가고 신랑은 나타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열 처녀 모두 졸며 자고 있을 때, 갑자기 “보라 신랑이로다 맞으러 나오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열 처녀는 부랴부랴 옷매무시를 가다듬고 등을 챙겨 불을 밝혔지요.
그런데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기에 등불이 꺼져갑니다. 슬기로운 처녀들에게 “기름을 좀 나눠 달라” 부탁하지만, 슬기로운 처녀들은 “우리와 너희의 쓰기에 다 부족할까 하노니 차라리 파는 자들에게 가서 너희 쓸 것을 사라”고 합니다. 결국 미련한 다섯 처녀는 기름을 사러 갔고, 그 사이에 신랑이 도착했지요.
슬기로운 다섯 처녀는 혼인 잔치에 들어가고 문은 닫혔습니다. 미련한 처녀들이 돌아와 아무리 외쳐도 문은 열리지 않았고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는 무서운 말만 들어야 했습니다.
이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구원받을 기회가 내일도 있다.”며 깨어 있지 않고 신부 단장에 힘쓰지 않습니다. 신부 단장의 기회는 깨어 있는 사람에게만 허용되며 구원의 문은 한번 닫히면 들어갈 수 없습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사람은 기름이 떨어져도 느끼지 못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열 처녀 비유를 통해 항상 깨어 있어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온전히 신부 단장을 마치라고 당부하십니다. “…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하셨지요.
교회만 왔다 갔다 하고 세상과 짝하며 쾌락을 즐긴다면 신랑 되신 주님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며 구원과도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2. 주님의 신부 된 자격을 갖추려면
성경을 보면 주님을 신랑, 성도를 신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죄를 범한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 이 땅에서 시작된 6천 년 인간 경작이 마쳐지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셔서 신부 단장에 힘쓴 성도들과 함께 7년 동안 혼인 잔치를 합니다.
요한계시록 19장 9절을 보면 “… 어린양(곧 주님)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했습니다. 신랑 되신 주님의 혼인 잔치에 초청받아 들어간다는 것은 구원받아 영생을 얻었다는 뜻이니 복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 땅에 남아 7년 대환난을 겪게 됩니다. 그러니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해 항상 깨어 있어 신부 단장에 힘쓰며 7년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면 신랑 되신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신부의 자격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어떠한 시험 환난에도 흔들림이 없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신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아브라함은 믿음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고, 온전히 순종하여 믿음의 행함을 증거로 내보였기 때문입니다. 즉 약속의 씨인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어떤 육신의 생각도 동원하지 않고 온전한 순종의 행함을 보였지요.
다니엘의 세 친구는 어떻습니까? 죽음 앞에서도 믿음을 굳게 지키니 하나님께서는 매우 기뻐하셨습니다. 느부갓네살왕은 금 신상을 만들어 다니엘의 세 친구에게 절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절하지 않으면 극렬히 타는 풀무 불에 던져 넣겠다고 위협하였지요(단 3:15).
그런데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 앞에 절대 절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서 능히 건져내시겠고 왕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의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담대히 고백합니다. 결국 그들은 풀무 불에 던져졌지만, 하나님께서 머리카락 하나 그슬리지 않도록 지켜 주셨기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명하며 크게 영광 돌렸지요.
둘째로,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흠이 없어야 합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교양과 지식으로 겉을 거룩하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했습니다(삼상 16:7).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무엇보다 청결한 마음을 원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8절에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했습니다. 더러운 죄악을 온전히 버려야 마음이 청결해지고 자기 몸과 주변도 청결히 합니다.
성경에서는 마음을 청결케 하는 것을 ‘두루마기를 빤다’고 표현합니다. 요한계시록 22장 14절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말씀하지요. 만일 옷에 오물이 묻었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깨끗이 빨아서 입을 것입니다.
마음에 묻은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물인 하나님 말씀으로 깨끗이 씻어 내야 하지요. 다투고 혈기 내던 사람은 혈기를 버려야 하고, 교만한 사람은 낮아지고 섬기며, 미움과 시기 질투가 있는 사람은 원수까지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청결해지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오히려 품게 됩니다.
셋째로, 기름 준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신부가 되려면 기름을 잘 준비해야 합니다. 기름은 기도와 성령 충만함을 뜻합니다. 기름이 있어야 등에 불을 밝힐 수 있듯이 불같이 기도하여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야 영혼의 빛을 밝힐 수 있습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어도 기도하지 않으면 충만함이 떨어지기 마련입니다. 점차 세상과 타협하게 되고 죄악 가운데 살다가 결국에는 구원에도 이를 수 없지요. 만일 미련한 다섯 처녀가 깨어 있어 신랑이 더디 오는 것을 알았다면 기름을 넉넉히 준비해 혼인 잔치에 들어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열 처녀 비유를 통해 주 안에서 항상 깨어 있어야 함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신랑 되신 주님께서 언제 다시 오실지 그날과 그 시는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주의 날이 도적같이 임하지 않습니다(살전 5:4).
그러나 깨어 있지 않으면 노아 시대에 홍수 심판으로 다 멸하기까지 사람들이 깨닫지 못한 것과 같은 어리석음에 빠질 수 있습니다.
영적인 기름 준비는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믿음도 스스로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신부 단장을 잘하여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는 복된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주님의 혼인 잔치에 들어가기 위해 갖춰야 할 신부 자격은 무엇일까요?
① 어떠한 시험 환난에도 흔들림이 없는 ( )을 가져야 한다.
② 마음을 청결하게 하여 ( )이 없어야 한다.
③ 기름 준비하고 ( ) 있어야 한다.
2. 슬기로운 다섯 처녀처럼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신부가 되려면 기름을 잘 준비해야 한다.
이때 기름은 ( )와 ( ) 충만함을 뜻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어린양의 혼인 잔치’(계 19:9)
주님께서 공중에 강림하실 때 구원받은 영혼들이 신부의 자격으로 7년 동안 신랑 되신 주님과 함께하는 잔치를 가리킨다.
주님께서 공중 강림하시면 구원받은 모든 영혼이 신부로서 신랑 되신 주님을 맞이한다.
이때 구원받은 자녀들을 위로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7년 동안 공중에서 혼인 잔치를 베푸신다.
장차 백보좌 대심판을 통해 이 땅에서 행한 대로 천국의 처소와 상급으로 갚아 주시는데, 그 전에 혼인 잔치를 베풀어 주님과 함께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하시는 것이다.
2022-09-16
제37과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마태복음 13:44
읽을말씀 : 마태복음 13:44 | 외울말씀 : 마태복음 5:3 | 참고 말씀: 마태복음 13:45
교육목표 :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은 천국을 소유하려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야 한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를 깨닫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려고 우리의 삶에 있을 수 있는 일들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에 담긴 영적 의미와 이를 통해 나타내기를 원하시는 천국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1.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
어느 마을에 품을 팔아 그날그날 살아가는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웃의 요청으로 밭에 품을 팔러 가게 되었습니다. 밭의 주인은 오랫동안 쓰지 않고 버려둔 황폐한 땅이 있는데 개간하여 과목이나 심어 볼까 한다는 것이었지요.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땅을 개간하던 농부는 갑자기 삽 끝에 이상한 물건이 닿는 것을 느꼈습니다. 계속해서 그곳을 파 보았더니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었습니다.
보화를 발견한 농부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내 손에 넣을 수 있을까?’ 궁리하였습니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바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별 쓸모가 없어서 버려진 밭이었기에 주인이 쉽게 팔 것 같았습니다. 농부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모든 소유를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2.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밭’은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며, ‘보화’는 천국을 가리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보화와 같은 천국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사람의 주인인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과, 영혼이 거할 장막인 육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만물의 영장으로 세워 하나님과 교통하며 만물을 다스릴 수 있게 하셨지요.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하자 저주가 임하여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이 소멸하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이 주인 구실을 못 하고 혼 속에 갇혀서 전혀 활동을 못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이 죽기 전에는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영이 죽은 후에는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고,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비진리를 행하며 살아가게 되었지요.
이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화목제물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가 없으셨기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지요. 이로써 죄에서 해방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죽은 영이 살아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죽은 영이 살아나야 영이 사람의 주인으로서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혼과 육을 다스릴 수 있지요. 또한 사람의 본분을 행하며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죽었던 영이 살아난 것은 곧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것이요, 우리 마음속에 천국이 임한 것이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보화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였다는 것은
농부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 우리 마음속에 천국이 있음을 깨닫고 기쁨이 넘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천국이 있다 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죽은 영이 살아난 후 얼마나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자신의 마음을 진리로 변화시키느냐에 따라 더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농부가 ‘보화를 발견한 후 숨겨 두었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람의 죽은 영이 살아나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은 생겨나지만, 아직 능력이 주어지지 않아 행함 있는 믿음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농부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다고 해서 즉시 캐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가재도구를 팔아 돈을 장만해야 그 밭을 살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천국과 지옥이 있음과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가는지도 알아가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는 즉시 행함이 따르지는 못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모든 비진리의 마음을 팔아 버리고, 진리의 마음을 소유하기 위해 죄를 버리는 만큼 감추어진 보화를 캐내어 천국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열심히 하나님을 의뢰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 진리대로 행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4.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소유하려면
농부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죽은 영이 살아나 주인 역할을 하려면 비진리의 혼을 다 깨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죽었던 영이 살아나 마음에 천국이 있음을 깨달았으면 사단의 주관을 받던 비진리의 생각을 모두 깨뜨리고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천국을 소유하려면 주인 된 영이 마음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혼이 깨어지고 영이 살아나는 만큼 마음속에 천국이 임하는 것이요, 영혼이 잘되어 위로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육체의 일과 육신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의 소유를 판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혼을 깨뜨리는 작업이요, 하나님 말씀에 합당치 못한 육체의 일과 육신의 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모든 것을 버려 나간다는 뜻입니다.
육체의 일이란 마음속의 악이 행함으로 나타난 것을 말하고, 육신의 일이란 아직 행함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언제든지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마음속의 모든 죄성을 말하지요.
철저히 혼을 깨뜨리고 죄악을 버려 나가다 보면 성령의 소욕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의 사람이 되어 세상의 빛이 됩니다. 또한 신의 성품에 참예하며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되지요(벧후 1:4).
이처럼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야 주님께서 계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소유하려면 값을 주고 사야 하듯이 천국이 담긴 밭을 사려면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시간과 물질을 드려 헌신하며 자신의 소유를 드릴 때 비로소 천국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말씀하셨습니다(마 5:3).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악을 버리고 마음을 비웠다는 것이요, 자기 마음의 소유를 다 팔았다는 것이며, 이럴 때 보화를 캐내어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은 영이 살아나 천국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혹여 천국을 소유하는 데 방해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데 거침돌이 되는 것이 있다면 신속히 뽑아 버리고 가장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3.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생명의 씨’란?
생령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이 땅에 왔을 때는 생기가 흔적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것은 작은 씨앗과 같은 형태로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포핵 안에 남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씨다.
하나님께서는 태아가 잉태된 후 6개월째 되었을 때 영 안에 생명의 씨를 담아 태아의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포핵 안에 심어 주신다.
사람에게 생명의 씨가 있기에 하나님을 찾고자 하며 천국을 그리워한다.
생명의 씨가 싹이 튼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통회자복한 후 성령으로 거듭나 죽은 영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교육목표 :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은 천국을 소유하려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야 한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를 깨닫게 한다.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비밀을 깨닫게 하시려고 우리의 삶에 있을 수 있는 일들을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13장 44절에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말씀에 담긴 영적 의미와 이를 통해 나타내기를 원하시는 천국의 비밀은 무엇일까요?
1.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농부
어느 마을에 품을 팔아 그날그날 살아가는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이웃의 요청으로 밭에 품을 팔러 가게 되었습니다. 밭의 주인은 오랫동안 쓰지 않고 버려둔 황폐한 땅이 있는데 개간하여 과목이나 심어 볼까 한다는 것이었지요.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땅을 개간하던 농부는 갑자기 삽 끝에 이상한 물건이 닿는 것을 느꼈습니다. 계속해서 그곳을 파 보았더니 엄청난 보물이 묻혀 있었습니다.
보화를 발견한 농부는 ‘어떻게 하면 그것을 내 손에 넣을 수 있을까?’ 궁리하였습니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데 바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는 것이었습니다. 별 쓸모가 없어서 버려진 밭이었기에 주인이 쉽게 팔 것 같았습니다. 농부는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모든 소유를 팔기 시작하였습니다.
2.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예수님께서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하셨는데, 여기서 ‘밭’은 사람의 마음을 의미하며, ‘보화’는 천국을 가리킵니다. 사람의 마음속에 보화와 같은 천국이 감추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창조하실 때 사람의 주인인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과, 영혼이 거할 장막인 육으로 지으셨습니다. 그리고 만물의 영장으로 세워 하나님과 교통하며 만물을 다스릴 수 있게 하셨지요. 하지만 사람이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는 죄를 범하자 저주가 임하여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 죽었다’는 것은 영이 소멸하였다는 뜻이 아닙니다. 영이 주인 구실을 못 하고 혼 속에 갇혀서 전혀 활동을 못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영이 죽기 전에는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영이 죽은 후에는 하나님과 교통이 끊어지고,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여 비진리를 행하며 살아가게 되었지요.
이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화목제물로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가 없으셨기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지요. 이로써 죄에서 해방되고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고 죽은 영이 살아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죽은 영이 살아나야 영이 사람의 주인으로서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혼과 육을 다스릴 수 있지요. 또한 사람의 본분을 행하며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죽었던 영이 살아난 것은 곧 밭에 감추어진 보화를 발견한 것이요, 우리 마음속에 천국이 임한 것이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3. 보화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였다는 것은
농부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받으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 우리 마음속에 천국이 있음을 깨닫고 기쁨이 넘친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마음속에 천국이 있다 해서 그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죽은 영이 살아난 후 얼마나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자신의 마음을 진리로 변화시키느냐에 따라 더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농부가 ‘보화를 발견한 후 숨겨 두었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사람의 죽은 영이 살아나 하나님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은 생겨나지만, 아직 능력이 주어지지 않아 행함 있는 믿음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농부가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했다고 해서 즉시 캐낼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가재도구를 팔아 돈을 장만해야 그 밭을 살 수 있지요.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여 천국과 지옥이 있음과 어떻게 해야 천국에 가는지도 알아가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는 즉시 행함이 따르지는 못합니다.
우리 마음 안에 있는 모든 비진리의 마음을 팔아 버리고, 진리의 마음을 소유하기 위해 죄를 버리는 만큼 감추어진 보화를 캐내어 천국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을 받기 위해서는 열심히 하나님을 의뢰하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 진리대로 행해야 합니다.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4.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소유하려면
농부가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죽은 영이 살아나 주인 역할을 하려면 비진리의 혼을 다 깨뜨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곧 죽었던 영이 살아나 마음에 천국이 있음을 깨달았으면 사단의 주관을 받던 비진리의 생각을 모두 깨뜨리고 믿음으로 천국을 소유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천국을 소유하려면 주인 된 영이 마음을 지배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혼이 깨어지고 영이 살아나는 만큼 마음속에 천국이 임하는 것이요, 영혼이 잘되어 위로부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는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천국을 소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육체의 일과 육신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의 소유를 판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혼을 깨뜨리는 작업이요, 하나님 말씀에 합당치 못한 육체의 일과 육신의 일, 하나님보다 더 사랑했던 모든 것을 버려 나간다는 뜻입니다.
육체의 일이란 마음속의 악이 행함으로 나타난 것을 말하고, 육신의 일이란 아직 행함으로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언제든지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마음속의 모든 죄성을 말하지요.
철저히 혼을 깨뜨리고 죄악을 버려 나가다 보면 성령의 소욕을 좇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고, 영의 사람이 되어 세상의 빛이 됩니다. 또한 신의 성품에 참예하며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게 되지요(벧후 1:4).
이처럼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야 주님께서 계신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의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소유하려면 값을 주고 사야 하듯이 천국이 담긴 밭을 사려면 천국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시간과 물질을 드려 헌신하며 자신의 소유를 드릴 때 비로소 천국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말씀하셨습니다(마 5:3).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악을 버리고 마음을 비웠다는 것이요, 자기 마음의 소유를 다 팔았다는 것이며, 이럴 때 보화를 캐내어 천국을 소유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죽은 영이 살아나 천국의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혹여 천국을 소유하는 데 방해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데 거침돌이 되는 것이 있다면 신속히 뽑아 버리고 가장 아름다운 천국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기뻐하였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3.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생명의 씨’란?
생령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한 후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이 땅에 왔을 때는 생기가 흔적 정도밖에 남지 않은 상태였다.
그것은 작은 씨앗과 같은 형태로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포핵 안에 남게 되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씨다.
하나님께서는 태아가 잉태된 후 6개월째 되었을 때 영 안에 생명의 씨를 담아 태아의 몸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세포핵 안에 심어 주신다.
사람에게 생명의 씨가 있기에 하나님을 찾고자 하며 천국을 그리워한다.
생명의 씨가 싹이 튼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해 통회자복한 후 성령으로 거듭나 죽은 영이 살아나는 것을 말한다.
2022-09-10
제0과< 추석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
로마서 12:18
읽을말씀 : 로마서 12:18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수고하여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지요.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308장 ---------------------- 다 같이
1.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 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 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2. 추수할 것 많은 때에 일꾼 심히 적으니
열심 있는 일꾼들을 주여 보내 주소서
3. 먼동 틀 때 일어나서 일찍 들에 나아가
황혼 때가 되기까지 추수하게 하소서
4. 거둬 들인 모든 알곡 천국 창고 들인 후
주가 베풀 잔치 자리 우리 참여하겠네
후렴
무르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는데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아멘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로마서 12:18 ------------------- 인도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설 교 --------------------- 화목한 가정 --------------------- 설교자
2. 설교 예문
어느 노부부가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지요. 식사 때가 되어 할아버지에게 상은 차려 주었지만 한쪽에 앉아 말없이 바느질만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전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내가 침묵하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지요. 그러다가 순간 묘안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옷장을 열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또 여기저기 서랍을 뒤지는 것이었지요.
할머니는 처음에는 못 본 척하다가 남편이 옷장 속의 옷이며 서랍 안의 물건들까지 다 꺼내 놓으니 왜 그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뭘 찾는데 그래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지 뭐야. 이제야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구려.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이제 화 풀어요.” 하며 사과를 했습니다.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었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이내 마음이 풀어져 “제가 잘못했어요.” 하며 다시 웃음꽃이 피어났지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다투지 않고 화평을 이루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이란, 비록 내가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맞춰 줄 수 있고, 내 믿음이 크다 하더라도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는 마음이며,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을 수 있고,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거나 상대의 단점을 보지 않음으로 어느 누구와도 걸리지 않는 마음이지요.
그러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되 생명까지 줄 수 있어야 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 것, 내 입장, 내 스타일 등을 고집하는 자아가 없어야 모든 사람과 화평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면 무례히 행치 않고 자신을 드러내 자랑하지 않습니다. 중심에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한쪽으로 편벽되지도 않지요.
둘째로, 자기 의와 틀을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품과 자란 환경이 다릅니다. 교육받은 내용도, 믿음의 분량도 다르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고 좋고 나쁨의 기준도 다릅니다. A라는 사람은 옳다고 생각해도 B는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서로 자기 입장만 주장해서는 화평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내 입장, 내 기준에 맞추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섬길 때라야 화평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평을 이루는 과정에서 깨우쳐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 편에서는 감정도 없고 화평한데 상대가 화평을 깬다.”고 한다면, 정말 상대 탓인가 하는 점입니다. 고의는 아니지만, 내 편에서 화평을 깨는 원인 제공을 해 놓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지중에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럴 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나는 상대에게 감정이 없다.” 고집한다면 결국 화평이 이뤄질 수가 없지요.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봐도 내가 화평을 좇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화평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가장 사랑이 넘치고 화목해야 할 곳입니다. 모두가 조금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해 준다면 상하고 얽혔던 감정도 쉽게 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섬기고 희생함으로 화평을 이루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고,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도 가정이나 학교, 직장이나 사업터, 일터에서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올해도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더욱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 풍성한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신라 시대부터 내려온 추석은 우리나라 대명절 중 하나로 손꼽힙니다. 추석은 음력 8월 15일로 ‘한가위’라고도 부르지요. 여기서 ‘한’은 크다라는 의미이고, ‘가위’는 가운데라는 뜻으로, 8월의 한가운데에 있는 큰 날을 뜻합니다.
이 무렵에는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가을로 접어들어, 오곡이 무르익고 온갖 과일이 풍성합니다. 추석이 되면 일 년 동안 수고하여 거둬들인 햇곡식과 햇과일로 이웃과 서로 나누며 즐겁게 하루를 지냈습니다. 그래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이 있지요.
1. 추석 감사예배 순서
우리나라의 추석처럼 성경에도 풍성한 수확물로 인해 행복, 기쁨, 감사가 넘치는 초막절(추수감사절)이 나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와 풍성한 소출을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드린 절기이지요. 추석을 맞이하여, 한 해 동안도 지키시며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예배드리겠습니다.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308장 ---------------------- 다 같이
1. 넓은 들에 익은 곡식 황금 물결 뒤치며
어디든지 태양 빛에 향기 진동하도다
2. 추수할 것 많은 때에 일꾼 심히 적으니
열심 있는 일꾼들을 주여 보내 주소서
3. 먼동 틀 때 일어나서 일찍 들에 나아가
황혼 때가 되기까지 추수하게 하소서
4. 거둬 들인 모든 알곡 천국 창고 들인 후
주가 베풀 잔치 자리 우리 참여하겠네
후렴
무르익은 저 곡식은 낫을 기다리는데
기회 지나가기 전에 어서 추수합시다 아멘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로마서 12:18 ------------------- 인도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설 교 --------------------- 화목한 가정 --------------------- 설교자
2. 설교 예문
어느 노부부가 사소한 문제로 부부싸움을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고 말을 하지 않았지요. 식사 때가 되어 할아버지에게 상은 차려 주었지만 한쪽에 앉아 말없이 바느질만 하고 있었습니다.
할아버지는 예전처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아내가 침묵하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으니 답답할 노릇이었지요. 그러다가 순간 묘안이 하나 떠올랐습니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옷장을 열고 무엇인가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또 여기저기 서랍을 뒤지는 것이었지요.
할머니는 처음에는 못 본 척하다가 남편이 옷장 속의 옷이며 서랍 안의 물건들까지 다 꺼내 놓으니 왜 그러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도대체 뭘 찾는데 그래요?”
그러자 할아버지는 빙그레 웃으며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지 뭐야. 이제야 당신의 목소리를 찾았구려. 여보 내가 잘못했어요. 이제 화 풀어요.” 하며 사과를 했습니다.
감정이 상해 입을 다물었던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말 한 마디에 이내 마음이 풀어져 “제가 잘못했어요.” 하며 다시 웃음꽃이 피어났지요.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다투지 않고 화평을 이루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18절에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화평이란, 비록 내가 옳다 하더라도 상대에게 맞춰 줄 수 있고, 내 믿음이 크다 하더라도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곧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 있는 마음이며, 모든 사람의 유익을 좇을 수 있고,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또한 자신을 드러내거나 상대의 단점을 보지 않음으로 어느 누구와도 걸리지 않는 마음이지요.
그러면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자기를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상대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되 생명까지 줄 수 있어야 하지요. “나는 날마다 죽노라” 했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내 것, 내 입장, 내 스타일 등을 고집하는 자아가 없어야 모든 사람과 화평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면 무례히 행치 않고 자신을 드러내 자랑하지 않습니다. 중심에서 나를 낮추고 상대를 높이며 한쪽으로 편벽되지도 않지요.
둘째로, 자기 의와 틀을 주장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람마다 타고난 성품과 자란 환경이 다릅니다. 교육받은 내용도, 믿음의 분량도 다르지요. 그래서 사람마다 옳고 그름의 기준이 다르고 좋고 나쁨의 기준도 다릅니다. A라는 사람은 옳다고 생각해도 B는 옳지 않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요. 서로 자기 입장만 주장해서는 화평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내 입장, 내 기준에 맞추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며 섬길 때라야 화평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화평을 이루는 과정에서 깨우쳐 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내 편에서는 감정도 없고 화평한데 상대가 화평을 깬다.”고 한다면, 정말 상대 탓인가 하는 점입니다. 고의는 아니지만, 내 편에서 화평을 깨는 원인 제공을 해 놓고도 깨닫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부지중에 상대를 배려하지 못하고 지혜롭지 못한 말이나 행동으로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럴 때 자기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나는 상대에게 감정이 없다.” 고집한다면 결국 화평이 이뤄질 수가 없지요.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될 수도 없습니다. 상대의 입장에서 봐도 내가 화평을 좇는 사람으로 보이는지 분별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화평을 이루었다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정’이라는 울타리는 가장 사랑이 넘치고 화목해야 할 곳입니다. 모두가 조금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를 배려해 준다면 상하고 얽혔던 감정도 쉽게 풀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주장하지 말고 상대의 입장에서 섬기고 희생함으로 화평을 이루어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추석이 되면 하나님을 믿는 가정은 풍성한 수확을 주심에 감사하며 온 가족이 하나님 앞에 감사예배를 드립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정은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데 이것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돌아가신 조상의 영혼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어 세상을 떠나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의 영혼은 구원을 얻어 천국으로 가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우리 조상들도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의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인정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낸 것도 사후 세계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정 사후 세계를 인정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람이 만든 우상을 섬긴다거나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께 감사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축복받는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수많은 사고, 질병, 재앙으로부터 지켜 주시고 한량없는 은혜를 베푸시며 참된 평강으로 인도하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 앞에 늘 감사의 고백을 드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지난 한 해 동안도 가정이나 학교, 직장이나 사업터, 일터에서 지켜 주시고 은혜 주시며 평강으로 인도하신 하나님, 올해도 풍성한 수확으로 축복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의 박수를 올려드립니다.
하나님의 축복받은 가정으로서 더욱 하나님 뜻대로 살면서 형제간에 화목하고, 자녀는 부모님께 효도하며 이웃을 사랑함으로 이 땅에서 풍성한 복을 받을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한 영광 가운데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2022-09-09
제36과천국 잔치에 초청받은 사람들
누가복음 14:16~24
읽을말씀 : 누가복음 14:16~24 | 외울말씀 : 갈라디아서 3:13 | 참고 말씀: 누가복음 4:18~19, 6:24~26
교육목표 : 주님께서 배설하신 천국 잔치에 들어가 참 평안과 기쁨, 영생 복락을 누리게 한다.
옛날부터 회갑이나 결혼 등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사랑을 주고받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초청받은 사람은 예의를 갖추고 참석해 함께 기쁨을 나누고 진수성찬을 먹으며 축하해 주었지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도 큰 잔치를 배설하시며 사랑하는 자녀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아름다운 천국을 예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어 영광의 천국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1. 천국 잔치 비유
누가복음 14장에는 천국 잔치 비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몇 월 며칠에 큰 잔치를 베풀고자 하오니 오셔서 행복하게 즐기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초청장을 많은 사람에게 보냈습니다. 마침내 잔칫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초청받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못 간다는 것입니다. 이유인즉슨 밭을 샀으니 가봐야 한다, 소 다섯 겨리를 시험하러 가야 한다, 장가들어서 못 가겠다는 것이었지요(눅 14:16~20).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정성스럽게 큰 잔치를 배설한 주인은 초청한 사람들이 못 온다고 하자 크게 노합니다. 그리고 종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하지요. 그렇게 했는데도 자리가 있다고 하자 주인은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 하리라” 합니다(눅 14:21~24).
예수님께서는 천국 잔치 비유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셨을까요? 여기서 잔치를 베푼 ‘주인’은 주님을 의미하고, 잔치를 베푼 ‘장소’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훌륭한 연회장으로 만드시고 생명의 말씀으로 진수성찬을 베푸신 다음에 주의 종들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으로서 진수성찬을 맛있게 먹는 것과 같습니다. 천국 잔치 비유는 주님의 초청에 응하여 잔치에 참석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은 천국을 소유할 수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
2. 주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
이스라엘에서는 보통 잔칫날이 되기 오래전에 사람들에게 초청 의사를 밝힌 후 잔칫날이 되면 다시 종을 보내 전에 청했던 손님들을 데려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밭을 사거나 결혼하는 일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얼마든지 초청을 거절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지요. 그런데 이들은 주인이 준비를 다 한 후에야 참석할 수 없다는 통보를 해 온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상의 지위와 명예, 물질과 안락 등으로 배부른 사람들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주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이미 세상의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로와 진리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지요. 그러니 천국을 소유하거나 영생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눅 6:24~26).
우리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부러워하거나 이에 매이지 말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 주님께서 초청하시는 천국 잔치에 기쁘게 응해야 하겠습니다.
3. 천국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주님의 초청에 응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소경, 저는 사람 등 주로 소외되고 버림받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고 도리어 복된 사람들이지요.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인생의 비극을 맛보고 사람의 나약함과 한계를 철저히 깨달은 이들입니다.
물론 선한 양심 가운데 사람의 도리를 좇아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로 심령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나오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때 부요한 사람보다는 그들에게 전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가 잘 나와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해하는 사람, 마음이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케 하는 사람, 의를 행하다가 핍박받는 사람입니다. 이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해야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4. 천국 잔치에 많은 사람을 초청하신 이유
주인은 종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했습니다(눅 14장). 이처럼 주님께서 많은 사람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가난한 사람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벗이라 불리며 부요했던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에게 주셔서 영적 승리뿐 아니라 물질의 축복도 누리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에 순종하면 가난으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포로 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죄의 노예가 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는 어떤 사람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말씀하셨지요. 주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죄에서 깨끗게 하실 수 있으며, 우리의 영혼을 생명으로 풍성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주님으로 인해 우리가 천국 잔치에 참석해 진리로 자유 함을 얻는 것입니다.
셋째로,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죽으면 참혹한 지옥으로 끌려가 끝없는 고통을 받습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하지요. 천국 잔치는 영적으로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여 천국을 바라보게 해줍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영접하고 천국 잔치에 참여하면 부활의 소망과 천국 소망이 생기며 영생을 얻습니다.
넷째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의 해’란 이스라엘에서 50년마다 지키는 희년 곧 노예로 팔려 간 가족이나 친지 혹은 빚으로 넘어갔던 땅 등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는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돼 은혜의 시대가 됐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하게 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모든 권세를 되찾을 수 있지요. 주님께서는 전 세계 만민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많은 사람이 천국 잔치에 참석할 수 있도록 더욱 힘써 전해야 하겠습니다.
교육목표 : 주님께서 배설하신 천국 잔치에 들어가 참 평안과 기쁨, 영생 복락을 누리게 한다.
옛날부터 회갑이나 결혼 등 집안에 경사스러운 일이 생기면 사랑을 주고받은 사람들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습니다. 초청받은 사람은 예의를 갖추고 참석해 함께 기쁨을 나누고 진수성찬을 먹으며 축하해 주었지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도 큰 잔치를 배설하시며 사랑하는 자녀들을 부르고 계십니다. 아름다운 천국을 예비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사람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어 영광의 천국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1. 천국 잔치 비유
누가복음 14장에는 천국 잔치 비유의 말씀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이 “몇 월 며칠에 큰 잔치를 베풀고자 하오니 오셔서 행복하게 즐기시기를 바랍니다.”라는 초청장을 많은 사람에게 보냈습니다. 마침내 잔칫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초청받은 사람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못 간다는 것입니다. 이유인즉슨 밭을 샀으니 가봐야 한다, 소 다섯 겨리를 시험하러 가야 한다, 장가들어서 못 가겠다는 것이었지요(눅 14:16~20).
막대한 비용을 들여 정성스럽게 큰 잔치를 배설한 주인은 초청한 사람들이 못 온다고 하자 크게 노합니다. 그리고 종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고 하지요. 그렇게 했는데도 자리가 있다고 하자 주인은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 하리라” 합니다(눅 14:21~24).
예수님께서는 천국 잔치 비유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고자 하셨을까요? 여기서 잔치를 베푼 ‘주인’은 주님을 의미하고, 잔치를 베푼 ‘장소’는 교회를 가리킵니다. 주님께서는 교회를 훌륭한 연회장으로 만드시고 생명의 말씀으로 진수성찬을 베푸신 다음에 주의 종들을 통해 세상 사람들을 초청하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에 참석하는 것은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으로서 진수성찬을 맛있게 먹는 것과 같습니다. 천국 잔치 비유는 주님의 초청에 응하여 잔치에 참석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있지만,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은 천국을 소유할 수 없다는 교훈을 줍니다.
2. 주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
이스라엘에서는 보통 잔칫날이 되기 오래전에 사람들에게 초청 의사를 밝힌 후 잔칫날이 되면 다시 종을 보내 전에 청했던 손님들을 데려오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밭을 사거나 결혼하는 일은 갑작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얼마든지 초청을 거절할 수 있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지요. 그런데 이들은 주인이 준비를 다 한 후에야 참석할 수 없다는 통보를 해 온 것입니다.
오늘날도 세상의 지위와 명예, 물질과 안락 등으로 배부른 사람들 곧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찬 사람들은 주님의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이미 세상의 것으로 만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위로와 진리의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지요. 그러니 천국을 소유하거나 영생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눅 6:24~26).
우리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부러워하거나 이에 매이지 말고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되어 주님께서 초청하시는 천국 잔치에 기쁘게 응해야 하겠습니다.
3. 천국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
주님의 초청에 응한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소경, 저는 사람 등 주로 소외되고 버림받아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조금도 부끄럽지 않고 도리어 복된 사람들이지요.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경우, 인생의 비극을 맛보고 사람의 나약함과 한계를 철저히 깨달은 이들입니다.
물론 선한 양심 가운데 사람의 도리를 좇아 하나님을 찾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주로 심령이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나오기 때문에 복음을 전할 때 부요한 사람보다는 그들에게 전하는 것이 더 쉽습니다.
마태복음 5장을 보면 어떤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가 잘 나와 있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 애통해하는 사람, 마음이 온유한 사람,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사람, 마음이 청결한 사람, 화평케 하는 사람, 의를 행하다가 핍박받는 사람입니다. 이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해야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4. 천국 잔치에 많은 사람을 초청하신 이유
주인은 종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소경들과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 길과 산울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했습니다(눅 14장). 이처럼 주님께서 많은 사람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가난한 사람에게 복된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 13~14절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벗이라 불리며 부요했던 아브라함의 복을 우리에게 주셔서 영적 승리뿐 아니라 물질의 축복도 누리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말씀에 순종하면 가난으로부터 해방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포로 된 사람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죄의 노예가 되어 헤어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는 어떤 사람도 대신 해결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만이 우리를 죄에서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 말씀하셨지요. 주님의 보혈만이 우리를 죄에서 깨끗게 하실 수 있으며, 우리의 영혼을 생명으로 풍성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주님으로 인해 우리가 천국 잔치에 참석해 진리로 자유 함을 얻는 것입니다.
셋째로,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이 주님을 영접하지 않고 죽으면 참혹한 지옥으로 끌려가 끝없는 고통을 받습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은 것만 못하지요. 천국 잔치는 영적으로 눈먼 사람의 눈을 뜨게 하여 천국을 바라보게 해줍니다. 누구든지 주님을 영접하고 천국 잔치에 참여하면 부활의 소망과 천국 소망이 생기며 영생을 얻습니다.
넷째로,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기 위해서입니다.
‘은혜의 해’란 이스라엘에서 50년마다 지키는 희년 곧 노예로 팔려 간 가족이나 친지 혹은 빚으로 넘어갔던 땅 등 잃었던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는 때를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셨다가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 주심으로 복음이 전 세계에 전파돼 은혜의 시대가 됐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회복하게 됩니다. 첫 사람 아담이 원수 마귀에게 넘겨준 모든 권세를 되찾을 수 있지요. 주님께서는 전 세계 만민을 천국 잔치에 초청하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많은 사람이 천국 잔치에 참석할 수 있도록 더욱 힘써 전해야 하겠습니다.
2022-09-02
제35과영원한 것을 위하여
전도서 1:1~3
읽을말씀 : 전도서 1:1~3 | 외울말씀 : 전도서 12:13 | 참고 말씀: 열왕기상 9:4~9
교육목표 :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킴으로 사람의 본분을 행하여 영원한 천국을 얻게 한다.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 전무후무한 지혜를 받아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면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번영을 누렸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며 주변 나라들로부터 조공 받을 정도로 부강했고, 백성들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년에 여호와의 율법을 어기고, 이방 여인들이 가지고 온 각종 우상을 숭배하며 산당까지 지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솔로몬의 아들 대(代)에 가서는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1.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축복받은 솔로몬 왕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백성들과 함께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으로 일천 번이나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쁘셨던지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말씀하십니다.
과연 솔로몬 왕은 무엇을 구했을까요? 그는 자기 장수나 부귀영화를 구한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왕으로서 수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며 그에게 지혜는 물론 부귀영화까지 보너스로 주십니다.
열왕기상 4장 29∼30절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말씀한 대로 많은 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찾아왔습니다.
이러한 지혜와 막강한 국력을 기반으로 솔로몬 왕은 주변 지역을 정복해 가고 7년에 걸쳐 하나님의 성전을 완공합니다. 이를 매우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다시 나타나 약속하시지요.
열왕기상 9장 4∼5절에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대로 만일 그가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않고 우상숭배를 하면 이스라엘 나라에서 끊어 버리며,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 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왕상 9:6~7).
2.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고 죄를 범한 솔로몬 왕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엄청난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닌 강대국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통일 왕국을 다스리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지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아버지 다윗의 믿음에서 떠나 죄를 범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들에게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을 말씀하셨지만(신 17장), 솔로몬은 후비와 빈장만 해도 무려 1천 명을 두지요(왕상 11장).
솔로몬 왕은 많은 이방 여인을 사랑했기에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따라 섬겼으며 심지어 국고를 털어 곳곳에 이방 신당들을 세우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 다른 신들을 섬겼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십니다.
열왕기상 11장 11절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했지요.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을 외면하시자 사방에서 적들이 쳐들어왔고, 결국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 왕은 자기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고, 자기 마음에 즐거운 것이라면 다 취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마음을 채워 주지 못했지요.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이었지만 하나님을 떠나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에 “마음껏 세상 쾌락을 누려 보았더니 이 세상이 참으로 살 만하더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 곧 인생의 모든 수고가 헛될 뿐이라.” 고백하였지요. 영혼의 만족은 물질이나 권세, 세상 정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해와 같이 빛나던 솔로몬 왕도 하나님 말씀을 떠나니 인생이 허무해졌습니다. 강물이 끊임없이 흘러도 바다를 채울 수 없듯이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았지요. 사람이 아무리 많은 것을 취하며 자기 마음을 채우려 해도 소용없고, 평생 수고하여 공로를 쌓아도 종국에는 죽음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혜가 있고 학식이 높으며 명성을 날린 사람도 그 이름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악인이나 선인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결국에는 죽습니다. 평생을 수고하며 쌓은 것도 죽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 버리면 더 이상 누릴 수 없으니 헛될 뿐입니다. 그러니 인생이 마치 안개와 같고 그림자와 같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3. 헛된 것을 버리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려면
이처럼 헛된 것을 체험한 솔로몬 왕은 말년에 이르러서야 인생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깨우치고 철저히 회개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기록한 전도서 12장 13~14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교훈하였지요.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려면 사람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은 크게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곧 사람의 본분을 지키고 헛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세상 사람은 영원한 하늘의 것을 목표 삼지 않고, 변질하고 소멸하는 이 땅의 정욕과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에 그 삶이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여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사람은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에 썩지 않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 안에서 수고하며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을 하늘의 영원한 것으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사랑하여 향락과 물질과 명예에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위하여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통해 물질, 세상 위주의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 깨우쳐 주셨습니다(눅 12장).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해지자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시지요. 즉 생명을 거둔다면 부자가 쌓아 둔 재물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2장 33절에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교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간과 노력, 지혜와 정성, 모든 관심을 이 땅의 헛되고 헛된 것에 두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가장 가치 있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힘차게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셨을 때 솔로몬은 무엇을 구했을까요?
2. 솔로몬이 믿음에서 떠나 죄를 범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3. 전도서 12장 13절 말씀을 외워 봅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 )하고 그 ( )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 )이니라”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들에게 명하신 말씀(신 17:16~19)
1. 말[馬]을 많이 두지 말고, 말을 많이 얻으려고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라.
2. 아내를 많이 두어 마음이 미혹되지 않게 하라.
3. 은금을 자신을 위하여 많이 쌓아 두지 말라.
4. 율법서를 평생 옆에 두어 읽고 지켜 행하라.
교육목표 :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킴으로 사람의 본분을 행하여 영원한 천국을 얻게 한다.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은 하나님께 전무후무한 지혜를 받아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등 모든 면에서 이스라엘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번영을 누렸습니다. 막강한 군사력을 보유하며 주변 나라들로부터 조공 받을 정도로 부강했고, 백성들은 바닷가의 모래같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말년에 여호와의 율법을 어기고, 이방 여인들이 가지고 온 각종 우상을 숭배하며 산당까지 지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여 솔로몬의 아들 대(代)에 가서는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1.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리고 축복받은 솔로몬 왕
다윗을 이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백성들과 함께 기브온 산당에서 하나님께 일천 번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으로 일천 번이나 번제를 드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쁘셨던지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말씀하십니다.
과연 솔로몬 왕은 무엇을 구했을까요? 그는 자기 장수나 부귀영화를 구한 것이 아니라, 한 나라의 왕으로서 수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는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크게 기뻐하시며 그에게 지혜는 물론 부귀영화까지 보너스로 주십니다.
열왕기상 4장 29∼30절에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같이 하시니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말씀한 대로 많은 왕이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러 찾아왔습니다.
이러한 지혜와 막강한 국력을 기반으로 솔로몬 왕은 주변 지역을 정복해 가고 7년에 걸쳐 하나님의 성전을 완공합니다. 이를 매우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다시 나타나 약속하시지요.
열왕기상 9장 4∼5절에 “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 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 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대로 만일 그가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않고 우상숭배를 하면 이스라엘 나라에서 끊어 버리며,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 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지요(왕상 9:6~7).
2.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고 죄를 범한 솔로몬 왕
솔로몬은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4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엄청난 경제력과 군사력을 지닌 강대국으로 성장시켰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통일 왕국을 다스리며 온갖 부귀영화를 누렸지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아버지 다윗의 믿음에서 떠나 죄를 범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들에게 아내를 많이 두지 말 것을 말씀하셨지만(신 17장), 솔로몬은 후비와 빈장만 해도 무려 1천 명을 두지요(왕상 11장).
솔로몬 왕은 많은 이방 여인을 사랑했기에 그들이 섬기는 우상을 따라 섬겼으며 심지어 국고를 털어 곳곳에 이방 신당들을 세우는 일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 다른 신들을 섬겼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십니다.
열왕기상 11장 11절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했지요. 하나님께서 솔로몬 왕을 외면하시자 사방에서 적들이 쳐들어왔고, 결국 그의 아들 르호보암 때에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 왕은 자기 눈이 원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고, 자기 마음에 즐거운 것이라면 다 취했습니다. 그러나 그 무엇도 마음을 채워 주지 못했지요. 최고의 부귀영화를 누린 솔로몬이었지만 하나님을 떠나니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전도서에 “마음껏 세상 쾌락을 누려 보았더니 이 세상이 참으로 살 만하더라.”고 한 것이 아니라,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것 곧 인생의 모든 수고가 헛될 뿐이라.” 고백하였지요. 영혼의 만족은 물질이나 권세, 세상 정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해와 같이 빛나던 솔로몬 왕도 하나님 말씀을 떠나니 인생이 허무해졌습니다. 강물이 끊임없이 흘러도 바다를 채울 수 없듯이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않았지요. 사람이 아무리 많은 것을 취하며 자기 마음을 채우려 해도 소용없고, 평생 수고하여 공로를 쌓아도 종국에는 죽음뿐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혜가 있고 학식이 높으며 명성을 날린 사람도 그 이름이 영원하지 않습니다. 악인이나 선인이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결국에는 죽습니다. 평생을 수고하며 쌓은 것도 죽어서 한 줌 흙으로 돌아가 버리면 더 이상 누릴 수 없으니 헛될 뿐입니다. 그러니 인생이 마치 안개와 같고 그림자와 같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3. 헛된 것을 버리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려면
이처럼 헛된 것을 체험한 솔로몬 왕은 말년에 이르러서야 인생의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깊이 깨우치고 철저히 회개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기록한 전도서 12장 13~14절에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교훈하였지요.
영원한 천국을 소유하려면 사람의 본분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명령은 크게 ‘하라, 하지 말라, 버리라, 지키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이 곧 사람의 본분을 지키고 헛되지 않은 삶을 사는 것이라 할 수 있지요.
세상 사람은 영원한 하늘의 것을 목표 삼지 않고, 변질하고 소멸하는 이 땅의 정욕과 자신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에 그 삶이 헛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여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사람은 부활의 영광에 동참할 소망이 있습니다. 이러한 소망을 가지고 이 땅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기에 썩지 않고 영원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주 안에서 수고하며 믿음으로 행한 모든 것을 하늘의 영원한 것으로 갚아 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을 사랑하여 향락과 물질과 명예에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을 위하여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지혜로운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통해 물질, 세상 위주의 삶이 얼마나 허무한지 깨우쳐 주셨습니다(눅 12장).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해지자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합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시지요. 즉 생명을 거둔다면 부자가 쌓아 둔 재물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누가복음 12장 33절에는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교훈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시간과 노력, 지혜와 정성, 모든 관심을 이 땅의 헛되고 헛된 것에 두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가장 가치 있고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힘차게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하셨을 때 솔로몬은 무엇을 구했을까요?
2. 솔로몬이 믿음에서 떠나 죄를 범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요?
3. 전도서 12장 13절 말씀을 외워 봅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 )하고 그 ( )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 )이니라”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들에게 명하신 말씀(신 17:16~19)
1. 말[馬]을 많이 두지 말고, 말을 많이 얻으려고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말라.
2. 아내를 많이 두어 마음이 미혹되지 않게 하라.
3. 은금을 자신을 위하여 많이 쌓아 두지 말라.
4. 율법서를 평생 옆에 두어 읽고 지켜 행하라.
2022-08-26
제34과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열왕기상 18:38~39
읽을말씀 : 열왕기상 18:38~39 | 외울말씀 : 열왕기상 18:39 | 참고 말씀: 에스겔 36:37
교육목표 :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한 엘리야의 순종과 믿음의 행함을 본받게 한다.
이스라엘 역사상 악한 왕으로 손꼽히는 아합은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맞아들였습니다. 시돈 왕은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이기도 했는데, 그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였으니 이스라엘이 타락의 길로 빠져드는 것은 시간문제였지요. 아합은 백성들을 하나님에게서 등 돌리게 만들고 이방 신들을 섬기게 하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이스라엘의 죄악이 극에 달한 시대에 맞춰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나타내며,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할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십니다. 그가 바로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1. 오직 믿음으로 순종한 엘리야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기 전에는 매우 유약한 성품이었습니다. 항상 자신은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자신감 없는 모습이었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주장하거나 화평을 깨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가 한 시대의 큰 선지자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유약한 성품이 영적으로 담대한 성품으로 변화되어야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당시 아합왕은 온 나라를 우상의 소굴로 만들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아합왕에게 보내어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을 전하게 하십니다. 이에 엘리야는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아합왕에게 전합니다(왕상 17:1).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숨을 곳을 지정해 주십니다. 악한 아합왕이 가뭄의 저주를 선포한 엘리야를 죽이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숨게 하시고 까마귀를 통해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릿 시내가 마르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시돈에 있는 사르밧 과부에게 보내십니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떡 한 조각을 공궤 받고 가뭄이 끝날 때까지 양식이 끊이지 않는 축복을 내려 주었고,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2. 갈멜산에서 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엘리야의 예언대로 3년 반 동안 극심한 가뭄이 이스라엘 전역을 덮쳤습니다. 아합왕은 가뭄의 원인이 우상숭배임을 깨달아 회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엘리야를 잡아서 죽이고자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때도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아합 앞에 나아갑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보자마자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하며 소리칩니다. 이에 엘리야는 두려움 없이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하지요. 즉 3년 반의 가뭄은 왕과 백성의 우상숭배로 인한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합에게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합니다. 엘리야는 이들과 대결할 때 살아 계신 하나님만이 불로 응답하실 것을 굳건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고 외쳤지요.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에게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알만이 하늘에서 불을 내리며 비, 바람, 폭풍을 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수백 명이 큰소리로 바알을 부르며 칼과 창으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어 피를 흘리면서까지 응답해 달라고 외쳤지만, 오정이 지나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아무 소리도, 응답도 없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엘리야는 먼저 여호와의 무너진 단을 수축합니다. 그런 다음 번제물 위에 많은 물을 붓게 하지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음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믿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3년 반 동안 계속된 가뭄 중에 무엇보다 귀한 것은 물입니다. 그 물을 통 넷에 담아 세 번씩이나 제단에 부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고 행한 대로 거두게 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불살랐을 때 누구도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바알은 한낱 생명 없는 우상에 불과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역력히 보여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엘리야가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부르짖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웠고 도랑의 물까지 다 핥았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백성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고백하며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인정하였지요.
엘리야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 없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기에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도 담대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큰비가 내리기까지 오직 믿음으로 행한 엘리야
불의 응답으로 참 신이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철저히 회개시킨 엘리야는 거짓 선지자들을 하나도 도망치지 못하게 하여 기손 시내에서 다 죽입니다(왕상 18:40).
그리고 아합왕에게 가서 오직 믿음으로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고백한 후, 다시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지요. 이는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믿음의 행함이었습니다.
갈멜산 정상에 오른 엘리야는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던지 창자가 꼬이고 배가 뒤틀려 허리가 구부러지면서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였지요. 엘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사환에게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사환이 올라가 보고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자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하지요. 바다 편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사환에게 일곱 차례나 바라보게 했습니다.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며 하나님을 감동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3년 반 동안 닫힌 하늘을 열어 비를 오게 하는 기도이니 얼마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했겠습니까.
엘리야는 응답받을 때까지 오직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어도 사람 편에서 구해야 한다는 영계의 법칙을 알았기 때문입니다(겔 36:37).
또한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 믿음의 행함과 함께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끌어내렸습니다. 작은 구름만 일어났을 뿐 아직 비가 내리지도 않는데 사환에게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말하지요. 그러자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고 큰비가 내렸습니다.
우리도 엘리야처럼 하나님께 응답받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내보여야 합니다. 기쁨으로 예배드리고 정성껏 예물도 준비해 드려야 하지요. 또한 의심 없이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되 입술로 시인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는 못 이루실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할 때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의 고백을 하며, 응답받을 때까지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스라엘에 3년 반 동안 가뭄이 든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2. 엘리야 선지자는 왜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했을까요?
3. 엘리야 선지자는 3년 반 동안 닫힌 하늘 문을 열어 비를 오게 하기 위해 어떠한 기도를 올렸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아합왕’은 어떤 인물일까?
아합은 북이스라엘 왕조 가운데 가장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바알을 숭배하는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의 단을 쌓고 섬기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였다. 결국 우상숭배로 인해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가뭄과 기근이 임했다.
또한 왕비 이세벨의 계략으로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는 등 수많은 악을 행한다.
마침내 그는 아람과의 전쟁에서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죽어, 그 피를 개들이 핥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다.
교육목표 :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한 엘리야의 순종과 믿음의 행함을 본받게 한다.
이스라엘 역사상 악한 왕으로 손꼽히는 아합은 시돈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왕비로 맞아들였습니다. 시돈 왕은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이기도 했는데, 그의 딸을 왕비로 맞아들였으니 이스라엘이 타락의 길로 빠져드는 것은 시간문제였지요. 아합은 백성들을 하나님에게서 등 돌리게 만들고 이방 신들을 섬기게 하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이스라엘의 죄악이 극에 달한 시대에 맞춰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나타내며, 우상숭배에 빠진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할 하나님의 사람을 보내십니다. 그가 바로 엘리야 선지자입니다.
1. 오직 믿음으로 순종한 엘리야
엘리야는 하나님의 능력이 입혀지기 전에는 매우 유약한 성품이었습니다. 항상 자신은 부족하고 내세울 것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자신감 없는 모습이었지요. 어떤 상황에서도 자기를 주장하거나 화평을 깨는 일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그가 한 시대의 큰 선지자로 쓰임 받기 위해서는 유약한 성품이 영적으로 담대한 성품으로 변화되어야 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허락하셨습니다.
당시 아합왕은 온 나라를 우상의 소굴로 만들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아합왕에게 보내어 무서운 심판이 임할 것을 전하게 하십니다. 이에 엘리야는 “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아합왕에게 전합니다(왕상 17:1).
그런 다음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숨을 곳을 지정해 주십니다. 악한 아합왕이 가뭄의 저주를 선포한 엘리야를 죽이려고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그릿 시냇가에 숨게 하시고 까마귀를 통해 아침 저녁으로 떡과 고기를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릿 시내가 마르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를 시돈에 있는 사르밧 과부에게 보내십니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떡 한 조각을 공궤 받고 가뭄이 끝날 때까지 양식이 끊이지 않는 축복을 내려 주었고,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기도 했습니다.
2. 갈멜산에서 불의 응답을 받은 엘리야
엘리야의 예언대로 3년 반 동안 극심한 가뭄이 이스라엘 전역을 덮쳤습니다. 아합왕은 가뭄의 원인이 우상숭배임을 깨달아 회개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엘리야를 잡아서 죽이고자 혈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때도 엘리야는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아합 앞에 나아갑니다.
아합은 엘리야를 보자마자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하며 소리칩니다. 이에 엘리야는 두려움 없이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하지요. 즉 3년 반의 가뭄은 왕과 백성의 우상숭배로 인한 재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합에게 “바알의 선지자 사백오십 인과 아세라의 선지자 사백 인을 갈멜산으로 모아 내게로 나오게 하소서” 합니다. 엘리야는 이들과 대결할 때 살아 계신 하나님만이 불로 응답하실 것을 굳건히 믿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불로 응답하는 신 그가 하나님이니라”고 외쳤지요.
엘리야는 바알 선지자들에게 “먼저 한 송아지를 택하여 잡고 너희 신의 이름을 부르라 그러나 불을 놓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바알만이 하늘에서 불을 내리며 비, 바람, 폭풍을 일으킨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수백 명이 큰소리로 바알을 부르며 칼과 창으로 자기 몸에 상처를 내어 피를 흘리면서까지 응답해 달라고 외쳤지만, 오정이 지나 저녁 소제 드릴 때까지 아무 소리도, 응답도 없었습니다.
이를 지켜본 엘리야는 먼저 여호와의 무너진 단을 수축합니다. 그런 다음 번제물 위에 많은 물을 붓게 하지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직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음을 누구도 의심하지 않고 믿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3년 반 동안 계속된 가뭄 중에 무엇보다 귀한 것은 물입니다. 그 물을 통 넷에 담아 세 번씩이나 제단에 부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심고 행한 대로 거두게 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불살랐을 때 누구도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지 못하게 하기 위함이었지요. 바알은 한낱 생명 없는 우상에 불과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역력히 보여 주고자 했던 것입니다.
마침내 엘리야가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옵소서 … 이 백성으로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저희의 마음으로 돌이키게 하시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라고 부르짖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웠고 도랑의 물까지 다 핥았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백성들은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고백하며 하나님만이 참 신임을 인정하였지요.
엘리야는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 없이 하나님을 믿고 신뢰했기에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앞에서도 담대히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큰비가 내리기까지 오직 믿음으로 행한 엘리야
불의 응답으로 참 신이신 하나님을 증거하고,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철저히 회개시킨 엘리야는 거짓 선지자들을 하나도 도망치지 못하게 하여 기손 시내에서 다 죽입니다(왕상 18:40).
그리고 아합왕에게 가서 오직 믿음으로 “큰비의 소리가 있나이다” 고백한 후, 다시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지요. 이는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한 믿음의 행함이었습니다.
갈멜산 정상에 오른 엘리야는 땅에 무릎을 꿇고 엎드려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얼마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했던지 창자가 꼬이고 배가 뒤틀려 허리가 구부러지면서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였지요. 엘리야는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을 때까지 쉬지 않고 간구했습니다.
그리고 사환에게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고 합니다. 사환이 올라가 보고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자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고 하지요. 바다 편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사환에게 일곱 차례나 바라보게 했습니다.
엘리야의 간절한 기도는 하늘 보좌를 움직이며 하나님을 감동하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3년 반 동안 닫힌 하늘을 열어 비를 오게 하는 기도이니 얼마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했겠습니까.
엘리야는 응답받을 때까지 오직 믿음으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겠다고 약속하셨어도 사람 편에서 구해야 한다는 영계의 법칙을 알았기 때문입니다(겔 36:37).
또한 엘리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에 믿음의 행함과 함께 믿음의 고백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끌어내렸습니다. 작은 구름만 일어났을 뿐 아직 비가 내리지도 않는데 사환에게 “올라가 아합에게 고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말하지요. 그러자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고 큰비가 내렸습니다.
우리도 엘리야처럼 하나님께 응답받고 마음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내보여야 합니다. 기쁨으로 예배드리고 정성껏 예물도 준비해 드려야 하지요. 또한 의심 없이 끝까지 믿음으로 구하되 입술로 시인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는 못 이루실 일이 없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할 때 어떠한 문제라도 해결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믿음의 고백을 하며, 응답받을 때까지 간절히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스라엘에 3년 반 동안 가뭄이 든 원인은 무엇이었을까요?
2. 엘리야 선지자는 왜 번제물 위에 물을 붓게 했을까요?
3. 엘리야 선지자는 3년 반 동안 닫힌 하늘 문을 열어 비를 오게 하기 위해 어떠한 기도를 올렸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아합왕’은 어떤 인물일까?
아합은 북이스라엘 왕조 가운데 가장 악명을 떨친 인물이다.
바알을 숭배하는 이세벨과 결혼하여 바알의 단을 쌓고 섬기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하나님의 노를 격발하였다. 결국 우상숭배로 인해 이스라엘에 3년 6개월 동안 가뭄과 기근이 임했다.
또한 왕비 이세벨의 계략으로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는 등 수많은 악을 행한다.
마침내 그는 아람과의 전쟁에서 한 병사가 우연히 쏜 화살에 죽어, 그 피를 개들이 핥는 비참한 종말을 맞이했다.
2022-08-19
제33과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마가복음 9:21~29
읽을말씀 : 마가복음 9:21~29 | 외울말씀 : 마가복음 9:23 | 참고 말씀: 에스겔 36:37
교육목표 :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깨닫게 한다.
질병이나 자녀, 가정, 직장, 학교, 물질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인생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플까요? 더구나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만난다면 절망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 열쇠는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능치 못할 일이 전혀 없으신 하나님께 믿음을 내보인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1.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마가복음 9장에 보면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을 둔 아비가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께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간구하지요. 여기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한 것은 믿음의 고백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것은 하실 수 있고, 어떤 것은 못 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믿음 없이 요행을 바라고 나왔다는 것을 나타내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며 그의 믿음 없음을 깨우쳐 주십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지요.
그렇다면 그 아비는 왜 “내가 믿나이다” 고백하고는 또다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구한 것일까요? 만일 그가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을 소유했다면 굳이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간청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자신의 믿음이 지식적인 믿음 곧 육적인 믿음임을 인정하는 모습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며,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는 등 놀라운 역사를 베푸시는 분임은 소문을 통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머리로 아는 육적인 믿음이었기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육적인 믿음으로는 응답받을 수 없지만, 영적인 믿음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아비는 예수님께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가 겸비한 자세로 영적인 믿음을 구하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막 9:25)고 명하시니 그 즉시 귀신은 나갔습니다.
2.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한 조건
첫째로, 긍정적인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머리로는 믿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믿나이다”라고 긍정적인 고백을 했지요. 하지만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없었기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진실하게 간구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응답받으려면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마음에 온전히 믿어지지 않으면 솔직하게 영적인 믿음을 달라고 간구해야 하지요. 하나님께 구한 후 당장 눈앞에 드러난 것이 없다고 해도 부정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하늘에서 응답이 오다가도 공중에서 흩어지고 맙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기 때문에 응답받을 수 없지요. 따라서 부정적인 말이나 믿음 없는 말은 삼가야 합니다.
둘째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영적인 믿음을 갈망하며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우선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다면 신속히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대로 열심히 행하면서 영적인 믿음을 주시라고 간구해야 하지요. 지식적으로 아는 육적인 믿음은 스스로 가질 수 있지만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은 오직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응답받을 때까지 부르짖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께 부르짖어 구하였기에 마침내 응답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어 주겠다고 하셨어도 우리 편에서는 끝까지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36장 37절에 “…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해 놓고 아무 응답이 없다고 중도에 포기해 버립니다. 의심 없이 끝까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영적인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루실 수 있습니다.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이나 자녀, 학교, 직장, 사업터 어떤 문제도 완벽하게 해결해 주십니다. 그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선진들이 사람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수없이 행합니다. 홍해를 갈라 사람들을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고, 태양을 중천에 머물게 하거나 하늘에서 불을 끌어 내리는가 하면, 먹지 못할 쓴물을 먹을 수 있는 단물로 바꾸고, 반석을 치니 물이 솟아났지요.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각종 질병을 치료하였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믿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기사와 표적은 성경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권능의 역사가 멈추지 않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각종 암, 결핵, 중풍, 뇌성마비, 디스크, 관절염, 백혈병, 에이즈 등 불치, 난치병으로 소망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믿음으로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들이 온전케 되었고 소아마비, 각종 사고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기도 받고 그 자리에서 걷고 뛰었지요.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이 기도 받은 즉시 화기가 물러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흉터 없이 깨끗해졌습니다. 뇌출혈이나 급체, 연탄가스 중독으로 의식이 없고 경직된 사람들이 기도 받은 즉시 깨어나고, 호흡이 끊긴 사람이 기도 받고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5년, 10년, 20년 동안 잉태하지 못했던 사람이 기도 받고 잉태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많습니다. 볼 수 없었던 사람이 보고, 듣지 못하던 사람이 들으며, 말하지 못하던 사람이 말하였지요.
하나님의 권능은 치료의 역사로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즉시 멈추고, 구름이 몰려와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며, 태풍이 물러가는 등 천기까지도 움직였습니다.
하계수련회 때 전국이 태풍이나 장마로 큰 피해를 보아도 수련회 장소는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무지개는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데 맑은 하늘에서 수없이 보았고, 잠자리 떼가 해 주변에서 눈송이처럼 쏟아져 내려와 모기와 해충을 잡아먹고 성도들 몸에 앉아 즐겁게 해 주었지요.
이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영의 공간을 열어 기사와 표적, 권능을 나타내시며 성경이 참임을 믿을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사람의 생각과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요. 그러므로 보배 중의 보배인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 어떤 문제라도 해결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① ( ) 고백이 있어야 한다.
② 영적인 ( )을 소유해야 한다.
③ 응답받을 때까지 부르짖음의 ( )가 있어야 한다.
2. 보배 중의 보배요,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문제라 할지라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무엇일까요?
3. 귀신 들린 아이의 아비는 예수님께 “내가 믿나이다” 고백해 놓고 왜 또다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구했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육적인 믿음’이란?
눈으로 봐서 확인되고, 자신이 아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될 때라야 믿는 믿음을 말한다.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으로서 지식적인 믿음 또는 이성적인 믿음이라 한다.
교육목표 :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으면 능치 못할 일이 없음을 깨닫게 한다.
질병이나 자녀, 가정, 직장, 학교, 물질 등의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다면 인생이 얼마나 힘들고 고달플까요? 더구나 사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일을 만난다면 절망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이러한 인생의 문제들을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 열쇠는 바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능치 못할 일이 전혀 없으신 하나님께 믿음을 내보인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1.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마가복음 9장에 보면 벙어리 귀신 들린 아들을 둔 아비가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께 “귀신이 저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간구하지요. 여기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한 것은 믿음의 고백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것은 하실 수 있고, 어떤 것은 못 하시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가 믿음 없이 요행을 바라고 나왔다는 것을 나타내지요.
이에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며 그의 믿음 없음을 깨우쳐 주십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지요.
그렇다면 그 아비는 왜 “내가 믿나이다” 고백하고는 또다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구한 것일까요? 만일 그가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 곧 영적인 믿음을 소유했다면 굳이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간청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는 자신의 믿음이 지식적인 믿음 곧 육적인 믿음임을 인정하는 모습입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서 귀신을 쫓아내고, 소경의 눈을 뜨게 하며, 귀머거리를 듣게 하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는 등 놀라운 역사를 베푸시는 분임은 소문을 통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단지 머리로 아는 육적인 믿음이었기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육적인 믿음으로는 응답받을 수 없지만, 영적인 믿음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대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이의 아비는 예수님께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이처럼 그가 겸비한 자세로 영적인 믿음을 구하는 것을 보신 예수님께서 “벙어리 되고 귀먹은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막 9:25)고 명하시니 그 즉시 귀신은 나갔습니다.
2.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한 조건
첫째로, 긍정적인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서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각색 병든 사람들을 치료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머리로는 믿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믿나이다”라고 긍정적인 고백을 했지요. 하지만 마음에 믿어지는 믿음이 없었기에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진실하게 간구했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응답받으려면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마음에 온전히 믿어지지 않으면 솔직하게 영적인 믿음을 달라고 간구해야 하지요. 하나님께 구한 후 당장 눈앞에 드러난 것이 없다고 해도 부정적인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부정적인 말을 하면 하늘에서 응답이 오다가도 공중에서 흩어지고 맙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하기 때문에 응답받을 수 없지요. 따라서 부정적인 말이나 믿음 없는 말은 삼가야 합니다.
둘째로,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야 합니다.
귀신 들린 아이의 아버지는 영적인 믿음을 갈망하며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영적인 믿음을 소유할 수 있을까요?
우선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이 있다면 신속히 허물어야 합니다. 그리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 말씀대로 열심히 행하면서 영적인 믿음을 주시라고 간구해야 하지요. 지식적으로 아는 육적인 믿음은 스스로 가질 수 있지만 마음에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은 오직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응답받을 때까지 부르짖음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아이의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예수님께 부르짖어 구하였기에 마침내 응답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이루어 주겠다고 하셨어도 우리 편에서는 끝까지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36장 37절에 “…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와 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해 놓고 아무 응답이 없다고 중도에 포기해 버립니다. 의심 없이 끝까지 부르짖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응답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3.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영적인 믿음은 보배 중의 보배요,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열쇠입니다. 사람의 힘과 능력으로는 전혀 불가능한 일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이루실 수 있습니다. 의학으로 치료할 수 없는 불치병이나 자녀, 학교, 직장, 사업터 어떤 문제도 완벽하게 해결해 주십니다. 그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 9:23) 하신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믿음의 선진들이 사람으로서는 행할 수 없는 놀라운 일을 수없이 행합니다. 홍해를 갈라 사람들을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고, 태양을 중천에 머물게 하거나 하늘에서 불을 끌어 내리는가 하면, 먹지 못할 쓴물을 먹을 수 있는 단물로 바꾸고, 반석을 치니 물이 솟아났지요. 죽은 사람을 살리고 각종 질병을 치료하였습니다.
이처럼 영적인 믿음으로 인해 나타나는 기사와 표적은 성경 속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날에도 초대교회와 같은 교회와 하나님의 사람들을 통해 권능의 역사가 멈추지 않고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각종 암, 결핵, 중풍, 뇌성마비, 디스크, 관절염, 백혈병, 에이즈 등 불치, 난치병으로 소망 없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믿음으로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들이 온전케 되었고 소아마비, 각종 사고로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했던 사람들도 기도 받고 그 자리에서 걷고 뛰었지요.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이 기도 받은 즉시 화기가 물러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흉터 없이 깨끗해졌습니다. 뇌출혈이나 급체, 연탄가스 중독으로 의식이 없고 경직된 사람들이 기도 받은 즉시 깨어나고, 호흡이 끊긴 사람이 기도 받고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5년, 10년, 20년 동안 잉태하지 못했던 사람이 기도 받고 잉태하여 건강한 아이를 낳은 경우도 많습니다. 볼 수 없었던 사람이 보고, 듣지 못하던 사람이 들으며, 말하지 못하던 사람이 말하였지요.
하나님의 권능은 치료의 역사로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억수같이 쏟아지던 비가 즉시 멈추고, 구름이 몰려와 뜨거운 햇볕을 가려 주며, 태풍이 물러가는 등 천기까지도 움직였습니다.
하계수련회 때 전국이 태풍이나 장마로 큰 피해를 보아도 수련회 장소는 비가 내리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으로 무지개는 비 온 뒤에나 볼 수 있는데 맑은 하늘에서 수없이 보았고, 잠자리 떼가 해 주변에서 눈송이처럼 쏟아져 내려와 모기와 해충을 잡아먹고 성도들 몸에 앉아 즐겁게 해 주었지요.
이처럼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는 영의 공간을 열어 기사와 표적, 권능을 나타내시며 성경이 참임을 믿을 수 있게 해 주십니다. 사람의 생각과 지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지금도 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지요. 그러므로 보배 중의 보배인 영적인 믿음을 소유해 어떤 문제라도 해결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응답을 받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요?
① ( ) 고백이 있어야 한다.
② 영적인 ( )을 소유해야 한다.
③ 응답받을 때까지 부르짖음의 ( )가 있어야 한다.
2. 보배 중의 보배요, 도저히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문제라 할지라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는 무엇일까요?
3. 귀신 들린 아이의 아비는 예수님께 “내가 믿나이다” 고백해 놓고 왜 또다시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간구했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육적인 믿음’이란?
눈으로 봐서 확인되고, 자신이 아는 상식이나 지식과 일치될 때라야 믿는 믿음을 말한다.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으로서 지식적인 믿음 또는 이성적인 믿음이라 한다.
2022-08-12
제32과어떻게 해야 응답받는가?
요한일서 3:21~22
읽을말씀 : 요한일서 3:21~22 | 외울말씀 : 요한일서 3:22 | 참고 말씀: 마가복음 11:24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가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와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는 비결을 알려 준다.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귀신 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간청하여 문제를 해결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어떠한 믿음의 행함을 내보였기에 신속히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었을까요?
1. 겸비함으로 끝까지 믿음을 내보인 가나안 여인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악귀를 물리치며, 질병을 치료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귀신 들린 딸을 능히 고쳐 주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예수님께서 어디 계신다는 소문을 들은 이 여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아가 큰소리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다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지요. 이에 여인은 예수님께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 하고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말씀하시지요. 이는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해 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일 여인이 믿음이 없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내가 개 취급당했다.’며 몹시 자존심이 상하여 떠나버리거나 ‘나는 응답받을 수 없나 보다.’ 하고 낙심해 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끝까지 믿음을 내보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여인의 딸이 즉시 치료되었지요. 이처럼 여인이 응답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철저히 낮추는 겸비함으로 변함없이 끝까지 믿음을 내보였기 때문입니다.
2.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약속하셨지요. 그런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고, 기도하는데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죄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방해하므로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구할 때라야 기도의 응답이 임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형제와 불목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35절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했습니다. 내가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내 죄를 용서하시지 않으니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부부, 부모, 형제, 동료 간에 불화했다면 먼저 화해해야 합니다.
셋째로, 욕심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을 구할 경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또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영혼 구원하는 데 사용하려는 목적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므로 그 믿음대로 응답받습니다.
그러나 오락을 위해서나 이웃과의 경쟁 심리 등 악의로 구한다면 그것은 욕심이요, 악한 기도이므로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넷째로, 의심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는 “…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했지요.
현실적으로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다섯째로, 계명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 14: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킬 때라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받지요(요일 3:21∼22). 그러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기에 기도의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여섯째로, 믿음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를 심으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이 임하고, 물질을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또한 봉사를 심으면 강건한 축복이 임하는 등 심은 대로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응답받으려면 믿음으로 부지런히 심어야 합니다.
3. 신속히 하나님께 응답받으려면
첫째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그대로 지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때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일에 목적이 분명하면 추진력이 있고 빠르게 성취할 수 있습니다. 반면 목적 없이 일하면 시간을 허비하고 흐지부지되기 쉽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목적이 분명하면 중언부언 기도하지 않습니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더욱 간절히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되지요. 이를 통해 응답을 체험하면서 더욱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 되고 믿음도 성장합니다.
셋째로,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 없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해서도 용서와 사랑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망의 길로 가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며 간절히 기도하셨지요. 이러한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값없이 구원의 은총을 입었기에 영혼들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섬기는 목자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요. 그저 타성에 젖어 기도한다면 사랑의 기도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교회와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올리는 기도가 진실한 사랑의 기도입니다.
가령,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할 때 내 집을 짓는 것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건축에 필요한 땅과 재정, 설계와 법적인 절차, 일꾼과 기술, 날씨 등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기도하지요. 또 주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주관하여 방해받지 않고 모든 것이 형통하도록 기도하며, 성전이 완공될 때까지 마음에서 놓지 않습니다.
영혼들을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문제를 내 것으로 여기며 그들의 마음이 되어 기도합니다. 섬기는 목자를 위해 기도할 때도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과 영혼들이 진리 안에 살기를 바라는 목자의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나는 과연 어떠한 기도를 하고 있는지, 형식적으로 기도하지는 않는지 점검하여 사랑과 믿음의 기도를 올림으로써 늘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신속히 응답받으려면 어떠한 기도를 올려야 할까요?
2.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 )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② 형제와 불목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③ ( )으로 기도하기 때문이다.
④ 의심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⑤ ( )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⑥ 믿음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가나안 여인’ (마 15장)
가나안은 ‘낮은 땅’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의 옛 이름이며 가나안 원주민이 살던 땅을 가리킨다.
마가복음 7장 26절에는 가나안 여인에 대해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했다. ‘수로보니게’는 팔레스타인 북부 수리아 지역 ‘베니게’의 옛 이름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자녀가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와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는 비결을 알려 준다.
마태복음 15장에 보면 귀신 들린 딸을 둔 가나안 여인이 예수님께 간청하여 문제를 해결 받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 여인은 어떠한 믿음의 행함을 내보였기에 신속히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었을까요?
1. 겸비함으로 끝까지 믿음을 내보인 가나안 여인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악귀를 물리치며, 질병을 치료하신다는 소문을 듣고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예수님이라면 귀신 들린 딸을 능히 고쳐 주실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예수님께서 어디 계신다는 소문을 들은 이 여인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아가 큰소리로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 들렸나이다”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시다가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지요. 이에 여인은 예수님께 절하며 “주여 저를 도우소서” 하고 간청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말씀하시지요. 이는 여인의 믿음을 테스트해 보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일 여인이 믿음이 없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내가 개 취급당했다.’며 몹시 자존심이 상하여 떠나버리거나 ‘나는 응답받을 수 없나 보다.’ 하고 낙심해 버릴 것입니다.
하지만 여인은 “주여 옳소이다 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며 철저히 자신을 낮추고 끝까지 믿음을 내보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여자야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여인의 딸이 즉시 치료되었지요. 이처럼 여인이 응답받을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을 철저히 낮추는 겸비함으로 변함없이 끝까지 믿음을 내보였기 때문입니다.
2.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의 기도에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약속하셨지요. 그런데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고, 기도하는데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죄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했습니다. 사람의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방해하므로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구할 때라야 기도의 응답이 임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형제와 불목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8장 35절에 “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했습니다. 내가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도 내 죄를 용서하시지 않으니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부부, 부모, 형제, 동료 간에 불화했다면 먼저 화해해야 합니다.
셋째로, 욕심으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물질을 구할 경우,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또는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영혼 구원하는 데 사용하려는 목적이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므로 그 믿음대로 응답받습니다.
그러나 오락을 위해서나 이웃과의 경쟁 심리 등 악의로 구한다면 그것은 욕심이요, 악한 기도이므로 응답받을 수가 없습니다.
넷째로, 의심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1장 6∼7절에 “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이런 사람은 무엇이든지 주께 얻기를 생각하지 말라” 말씀합니다. 마가복음 11장 24절에는 “…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했지요.
현실적으로 아무리 불가능해 보여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조금도 의심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기뻐하시고 응답해 주십니다.
다섯째로, 계명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요 14: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명을 지킬 때라야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 사랑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면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것을 받지요(요일 3:21∼22). 그러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기에 기도의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여섯째로, 믿음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갈라디아서 6장 7절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를 심으면 영혼이 잘되는 축복이 임하고, 물질을 심으면 물질의 축복을 받습니다. 또한 봉사를 심으면 강건한 축복이 임하는 등 심은 대로 거둘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응답받으려면 믿음으로 부지런히 심어야 합니다.
3. 신속히 하나님께 응답받으려면
첫째로, 믿음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의 문을 열고 하나님 말씀을 믿고 순종하여 그대로 지켜 행할 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영적인 믿음을 주십니다. 이러한 영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할 때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일에 목적이 분명하면 추진력이 있고 빠르게 성취할 수 있습니다. 반면 목적 없이 일하면 시간을 허비하고 흐지부지되기 쉽습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도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목적이 분명하면 중언부언 기도하지 않습니다. 목표한 바를 이루기 위해 더욱 간절히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되지요. 이를 통해 응답을 체험하면서 더욱 하나님께 맡기는 삶이 되고 믿음도 성장합니다.
셋째로,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 없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을 위해서도 용서와 사랑의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사망의 길로 가는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며 간절히 기도하셨지요. 이러한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값없이 구원의 은총을 입었기에 영혼들을 위해 사랑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섬기는 목자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요. 그저 타성에 젖어 기도한다면 사랑의 기도라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교회와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올리는 기도가 진실한 사랑의 기도입니다.
가령,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할 때 내 집을 짓는 것보다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건축에 필요한 땅과 재정, 설계와 법적인 절차, 일꾼과 기술, 날씨 등 조목조목 구체적으로 기도하지요. 또 주변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주관하여 방해받지 않고 모든 것이 형통하도록 기도하며, 성전이 완공될 때까지 마음에서 놓지 않습니다.
영혼들을 위한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의 문제를 내 것으로 여기며 그들의 마음이 되어 기도합니다. 섬기는 목자를 위해 기도할 때도 주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를 원하는 간절한 마음과 영혼들이 진리 안에 살기를 바라는 목자의 애타는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나는 과연 어떠한 기도를 하고 있는지, 형식적으로 기도하지는 않는지 점검하여 사랑과 믿음의 기도를 올림으로써 늘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우리가 신속히 응답받으려면 어떠한 기도를 올려야 할까요?
2.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① ( )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② 형제와 불목한 상태에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③ ( )으로 기도하기 때문이다.
④ 의심하면서 기도하기 때문이다.
⑤ ( )을 지키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⑥ 믿음으로 심지 않고 기도하기 때문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가나안 여인’ (마 15장)
가나안은 ‘낮은 땅’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의 옛 이름이며 가나안 원주민이 살던 땅을 가리킨다.
마가복음 7장 26절에는 가나안 여인에 대해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했다. ‘수로보니게’는 팔레스타인 북부 수리아 지역 ‘베니게’의 옛 이름이다.
2022-08-05
제31과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
마태복음 7:7~11
읽을말씀 : 마태복음 7:7~11 | 외울말씀 : 마태복음 7:11 | 참고 말씀: 요한삼서 1:4
교육목표 :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지 깨닫게 한다.
부모는 사랑스러운 자녀가 무엇을 구할 때 당연히 그것을 들어주고자 합니다. 하물며 전지전능하시고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시되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1.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한 말씀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받기를 원하는 주님 사랑의 마음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능력과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시편 105편 4절에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구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는 반드시 믿음 곧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30분 기도하는 것도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1시간, 2시간도 충만히 기도할 수 있지요.
세상 사람들이 술, 담배를 끊으려면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단번에 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며 세상을 이기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원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려고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 예배에 참석하며 ‘하나님께서 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지’, ‘왜 말씀이 하나님이신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뜻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영혼 구원 곧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성결하기를 기도하라는 의미이지요. 우리가 죄를 버리고 진리대로 행하며 성결을 이루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 영혼이 잘된 사람은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요삼 1:2).
셋째로, 일꾼이 되기 위해, 사명 감당을 위해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한 뒤에는 일꾼이 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일꾼 된 사람은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간구해야 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일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했습니다. 세상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 승진하여 더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주 안에서도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 더 큰 사명이 주어지고 많은 상급을 받게 됩니다. 천국에서 받는 상급은 이 땅에서 받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영화로우므로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되기 위해 간절히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이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의식주에 관한 것 등 육적인 것을 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의식주, 일터, 사업터, 건강 등 육적인 분야도 하나님께 응답받아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데 넉넉히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사정 잘 아시니까 주시겠지.’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구해도 주시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말씀한 대로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기 때문입니다. 자칫 욕심이 잉태하고 죄를 지어 사망의 길로 갈 수도 있는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찌 응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2.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찾으라고 당부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음 받은 생령(살아 있는 영)이었습니다. 악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통하며 에덴동산에서 풍족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신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지음으로 결국 죽게 되었지요. 여기서 죽음이란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죽음을 뜻합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습니다(살전 5:23).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니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고 말았지요. 아담의 영이 죽지 않았을 때는 생령으로서 하나님과 교통했는데, 영이 죽자 더 이상 교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를 범한 아담과 그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은 영이 죽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말았지요. 그리고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대로 정욕적이고 헛된 것들을 추구하며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전 3:18).
이처럼 사람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죄악 가운데 살던 우리가 사람답게 살려면 죽은 영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야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지요. 죽은 영이 살아나려면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 안에 오셔서 죽은 영을 살리고 어둠의 일들을 버리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로써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진리대로 행해 나가는 것이 곧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이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3.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전도자나 여러 방법을 통해 또는 천하 만물에 담긴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느끼게 해 주심으로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해 주셨지요.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 문을 두드릴 차례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 “… 문을 두드리라…” 하셨는데 이는 ‘하늘 문’ 곧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 문을 어떻게 두드려야 할까요? 하나님의 마음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곧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삼서 1장 4절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했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면 부모는 무엇이든 주고 싶어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진리 곧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며 응답과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중심에서 통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날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고 변화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요. 그래서 시편 34편 1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구하고 찾고 두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 늘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능력을 구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 )을 구한다는 의미다.
2. 죄를 범한 아담과 그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은 ( )이 죽어 하나님의 ( )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3. 하나님의 마음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곧 하나님 말씀대로 ( ) 것을 말한다.
4.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찾으라고 당부하신 것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사람’이란?
사람의 겉모습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근본인 영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으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의미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해서 무엇을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하는지 깨닫게 한다.
부모는 사랑스러운 자녀가 무엇을 구할 때 당연히 그것을 들어주고자 합니다. 하물며 전지전능하시고 사랑 자체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시되 가장 좋은 것을 주기 원하십니다.
1.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마태복음 7장 7절에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한 말씀에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 축복받기를 원하는 주님 사랑의 마음이 듬뿍 담겨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능력과 얼굴을 구해야 합니다.
시편 105편 4절에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구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구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데에는 반드시 믿음 곧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30분 기도하는 것도 어렵지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1시간, 2시간도 충만히 기도할 수 있지요.
세상 사람들이 술, 담배를 끊으려면 힘들지만,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단번에 끊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며 세상을 이기는 것도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하나님의 얼굴을 보기 원한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려고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주님을 영접한 후 예배에 참석하며 ‘하나님께서 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지’, ‘왜 말씀이 하나님이신지’ 성경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뜻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영혼 구원 곧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하라는 뜻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 성결하기를 기도하라는 의미이지요. 우리가 죄를 버리고 진리대로 행하며 성결을 이루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 영혼이 잘된 사람은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합니다(요삼 1:2).
셋째로, 일꾼이 되기 위해, 사명 감당을 위해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한 뒤에는 일꾼이 되기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일꾼 된 사람은 사명을 잘 감당하기 위해 간구해야 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며 일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했습니다. 세상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들어갈 수 있고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 승진하여 더 좋은 대우를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주 안에서도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면 하나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아 더 큰 사명이 주어지고 많은 상급을 받게 됩니다. 천국에서 받는 상급은 이 땅에서 받는 것과 비교할 수 없이 영화로우므로 하나님의 귀한 일꾼이 되기 위해 간절히 구하시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일용할 양식을 구해야 합니다.
이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의식주에 관한 것 등 육적인 것을 구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의식주, 일터, 사업터, 건강 등 육적인 분야도 하나님께 응답받아야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데 넉넉히 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 사정 잘 아시니까 주시겠지.’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무리 구해도 주시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약 4:3) 말씀한 대로 정욕으로 쓰려고 구하기 때문입니다. 자칫 욕심이 잉태하고 죄를 지어 사망의 길로 갈 수도 있는데 사랑의 하나님께서 어찌 응답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2.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기에 찾으라고 당부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첫 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음 받은 생령(살아 있는 영)이었습니다. 악이 전혀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교통하며 에덴동산에서 풍족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하신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지음으로 결국 죽게 되었지요. 여기서 죽음이란 단순히 호흡이 끊어지는 육체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의 죽음을 뜻합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영과 영의 지배를 받는 혼, 그리고 영과 혼의 장막인 육으로 창조되었습니다(살전 5:23).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니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고 말았지요. 아담의 영이 죽지 않았을 때는 생령으로서 하나님과 교통했는데, 영이 죽자 더 이상 교통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죄를 범한 아담과 그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은 영이 죽어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말았지요. 그리고 원수 마귀 사단이 주관하는 대로 정욕적이고 헛된 것들을 추구하며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가게 되었습니다(전 3:18).
이처럼 사람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죄악 가운데 살던 우리가 사람답게 살려면 죽은 영이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야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할 수 있지요. 죽은 영이 살아나려면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합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 안에 오셔서 죽은 영을 살리고 어둠의 일들을 버리도록 도와주십니다. 이로써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진리대로 행해 나가는 것이 곧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과정이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3.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합니다.
주님께서는 먼저 우리의 마음을 두드려 주셨습니다. 전도자나 여러 방법을 통해 또는 천하 만물에 담긴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느끼게 해 주심으로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을 영접하게 해 주셨지요. 이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마음 문을 두드릴 차례입니다.
마태복음 7장 7절에 “… 문을 두드리라…” 하셨는데 이는 ‘하늘 문’ 곧 ‘하나님의 마음을 두드리라’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 문을 어떻게 두드려야 할까요? 하나님의 마음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곧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삼서 1장 4절에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도다” 했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즐겁게 해 드리면 부모는 무엇이든 주고 싶어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진리 곧 하나님 말씀대로 행할 때 하나님께서 매우 기뻐하시며 응답과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마음 문을 열 수 있는 것은 중심에서 통회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난날의 잘못을 철저히 회개하고 변화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요. 그래서 시편 34편 18절에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중심에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기록된 대로 구하고 찾고 두드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 늘 응답과 축복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능력을 구한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 )을 구한다는 의미다.
2. 죄를 범한 아담과 그의 혈통을 이어받은 모든 사람은 ( )이 죽어 하나님의 ( )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3. 하나님의 마음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곧 하나님 말씀대로 ( ) 것을 말한다.
4.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찾으라고 당부하신 것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사람’이란?
사람의 겉모습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것이 아니라 사람의 근본인 영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으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만들어졌다는 의미이다.
2022-07-29
제30과참마음과 온전한 믿음
히브리서 10:22
읽을말씀 : 히브리서 10:22 | 외울말씀 : 히브리서 10:22 | 참고 말씀: 마태복음 5:28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방법을 알려 준다.
사람들은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자신이 얼마나 악한지 모릅니다. ‘나는 죄짓지 않고 산다, 나름대로 선하게 산다.’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을 조명하면 양심의 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합니다.
‘참마음’이란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는 깨끗하고 진실한 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믿음’은 참마음을 이루었을 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말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양심의 악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의 악을 발견해 버리는 만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참마음을 이루려면
1) 양심의 악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양심의 악을 깨달으려면 욕심과 사심, 간음과 정욕, 변개하는 마음 등 몇 가지 분야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죄의 큰 뿌리를 뽑아내면 그 잔뿌리까지 뽑히는 것처럼 욕심과 사심, 간음과 정욕, 변개함을 벗어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을 버릴 수 있습니다.
먼저, 욕심과 사심에 관한 분야를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는 물질, 명예, 권세에 대한 욕심도 포함됩니다. 자존심, 자신이 높임 받고 인정받으려는 마음, 자기를 고집하고 내 것과 내 가족을 더 중요시하는 사사로운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과 사심으로 인해 파생되는 악이 얼마나 많습니까? 욕심을 채우려다 남을 속이게 되고, 원하는 대로 욕심을 채우지 못하면 시기, 질투, 미움, 살인, 분냄, 다툼이 나오지요.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합니다.
혹여 나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힘써 노력하지도 않고 취하려 하거나 하나님 나라보다 내 유익을 앞세우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간음과 정욕에 대한 분야입니다.
간음은 하나님께서 너무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요즘은 광고나 화보를 통해 민망할 정도로 몸을 드러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TV나 인터넷도 선정적인 것들을 부추기므로 미성년자나 학생들이 좋지 않은 영향을 많이 받지요.
이처럼 사람의 정욕을 자극하면서 죄를 범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마태복음 5장 28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정욕의 근본 뿌리까지 버려야 합니다. 간음의 속성이 있으면 언젠가는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시므로 순간 스치는 생각이나 눈빛에 담긴 마음도 아십니다. 믿음의 3단계만 되어도 행위적인 간음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죄성까지도 온전히 버려야 깨끗하다고 할 수 있지요. 디모데전서 5장 2절에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이성을 대할 때 어떤 정욕도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변개하는 마음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투기하여 죽이려고 집요하게 추적했습니다. 아무 죄 없이 쫓겨 다니던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왕을 해칠 마음이 없다.”며 감동적인 고백을 합니다. 사울은 그 말을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지요(삼상 24:19).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변개하여 미움과 시기가 불일 듯 일어나 또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선한 것에 감동을 받았지만, 마음을 지키지는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육의 사람은 변개함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충만할 때는 “이제 육이 무익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으로 들어가기로 결단했습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얼마 후 결단했던 것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 “작정해서 기도한다, 금식한다.”고 약속해 놓고도 지키지 않습니다. 뜨거운 마음에 서원하고서도 시간이 지나면 ‘내가 왜 그런 서원을 했나.’ 고민하지요.
이런 변개함의 속성은 다 악에서 나옵니다. 자기 마음 안에 있는 악이 요동하므로 선을 이루기를 원하는 마음을 지키지 못하지요. 변개하는 마음이 있으면 성결을 이루는 데도 많은 지장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며 육을 좇으려는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므로 영으로 속히 들어갈 수 없지요.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마음에 정하고 입술로 낸 것은 지키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2) 몸을 맑은 물로 씻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몸을 맑은 물로 씻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자신의 악을 벗어 버리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에 “버리라” 하면 버리고, “하지 말라” 하면 하지 않고, “지키라” 하면 지키고, “하라” 하면 하는 것이 곧 맑은 물로 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의 분량이 성장하는 과정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은 후에는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양심의 악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자신을 씻어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한 것처럼 날마다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의 악을 씻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부모를 통해 유전된 원죄와 자라면서 듣고 보고 배우고, 입력된 죄악들로 ‘나’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후에는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나’는 날마다 죽고 내 안에 주님만 계시도록 진리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두가 몸을 맑은 물로 씻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면서도 “사람이 성결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요.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이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지 죄의 속성 자체를 벗을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거룩하고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벧전 1:16 ; 마 5:48). 그러니 우리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기 위해 죄의 속성을 버려야 합니다. 육이 얼마나 헛된지를 중심에서 깨우쳐야 배설물처럼 버릴 수 있습니다. 천국의 소망 가운데 부지런히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고 또 씻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참마음을 신속히 이루시기 바랍니다.
2.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려면
‘온전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는 만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닙니다. 간절히 사모함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양심의 악을 하나하나 발견해야 합니다. 또 발견하고 깨우쳤으면 불같이 기도하며, 명심하여 근신함으로 자기를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열심히 힘쓰고 애써 어느 정도 악을 버린 것 같은데, 또다시 악의 모습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양파를 벗기고 벗겨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다 벗겨지듯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악을 버려 나가면 성결에 이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악을 발견할 때마다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을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는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양심의 악을 깨달아 악의 뿌리를 온전히 뽑을 때까지 영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결코 늦춰서는 안 됩니다.
주야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불같이 기도함으로 깨끗하고 진실한 참마음을 이루어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은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는 깨끗하고 진실한 마음을 말한다.
2. ( )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말한다. 즉 참마음을 이루었을 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의미한다.
3. 몸을 맑은 ( )로 씻는 것은 곧 하나님의 ( )대로 행하여 자신의 ( )을 벗어 버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양심’이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판단 기준’이다.
이는 타고난 근본 마음과 각자의 성장 환경이나 배움 속에서 나름대로 ‘이것이 옳다’라고 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사람마다 다르며 대부분 진리와 비진리가 혼합되어 있다.
교육목표 : 하나님의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도록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루는 방법을 알려 준다.
사람들은 죄악이 관영한 세상 속에 살아가면서 자신이 얼마나 악한지 모릅니다. ‘나는 죄짓지 않고 산다, 나름대로 선하게 산다.’는 사람도 있지만,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을 조명하면 양심의 악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0장 22절에 “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말씀합니다.
‘참마음’이란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는 깨끗하고 진실한 마음을 말합니다. 그리고 ‘온전한 믿음’은 참마음을 이루었을 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말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기 위해서는 양심의 악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자신의 악을 발견해 버리는 만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1. 참마음을 이루려면
1) 양심의 악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통해 양심의 악을 깨달으려면 욕심과 사심, 간음과 정욕, 변개하는 마음 등 몇 가지 분야만 살펴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죄의 큰 뿌리를 뽑아내면 그 잔뿌리까지 뽑히는 것처럼 욕심과 사심, 간음과 정욕, 변개함을 벗어 버리면 이와 연결된 많은 죄성을 버릴 수 있습니다.
먼저, 욕심과 사심에 관한 분야를 살펴보겠습니다.
여기에는 물질, 명예, 권세에 대한 욕심도 포함됩니다. 자존심, 자신이 높임 받고 인정받으려는 마음, 자기를 고집하고 내 것과 내 가족을 더 중요시하는 사사로운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욕심과 사심으로 인해 파생되는 악이 얼마나 많습니까? 욕심을 채우려다 남을 속이게 되고, 원하는 대로 욕심을 채우지 못하면 시기, 질투, 미움, 살인, 분냄, 다툼이 나오지요. 그래서 야고보서 1장 15절에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합니다.
혹여 나는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힘써 노력하지도 않고 취하려 하거나 하나님 나라보다 내 유익을 앞세우지는 않았는지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음으로, 간음과 정욕에 대한 분야입니다.
간음은 하나님께서 너무 싫어하시는 죄입니다. 요즘은 광고나 화보를 통해 민망할 정도로 몸을 드러낸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TV나 인터넷도 선정적인 것들을 부추기므로 미성년자나 학생들이 좋지 않은 영향을 많이 받지요.
이처럼 사람의 정욕을 자극하면서 죄를 범하게 만드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마태복음 5장 28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했습니다.
그러므로 정욕의 근본 뿌리까지 버려야 합니다. 간음의 속성이 있으면 언젠가는 죄를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감찰하시므로 순간 스치는 생각이나 눈빛에 담긴 마음도 아십니다. 믿음의 3단계만 되어도 행위적인 간음은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의 죄성까지도 온전히 버려야 깨끗하다고 할 수 있지요. 디모데전서 5장 2절에 “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를 일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이성을 대할 때 어떤 정욕도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변개하는 마음입니다.
사울 왕은 다윗을 투기하여 죽이려고 집요하게 추적했습니다. 아무 죄 없이 쫓겨 다니던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는 상황에서도 “왕을 해칠 마음이 없다.”며 감동적인 고백을 합니다. 사울은 그 말을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여호와께서 네게 선으로 갚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지요(삼상 24:19).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변개하여 미움과 시기가 불일 듯 일어나 또다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선한 것에 감동을 받았지만, 마음을 지키지는 못한 것입니다.
이처럼 육의 사람은 변개함이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그래서 충만할 때는 “이제 육이 무익한 것을 깨달았습니다. 영으로 들어가기로 결단했습니다.”라고 고백하지만 얼마 후 결단했던 것이 흐려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 하나님 앞에 “작정해서 기도한다, 금식한다.”고 약속해 놓고도 지키지 않습니다. 뜨거운 마음에 서원하고서도 시간이 지나면 ‘내가 왜 그런 서원을 했나.’ 고민하지요.
이런 변개함의 속성은 다 악에서 나옵니다. 자기 마음 안에 있는 악이 요동하므로 선을 이루기를 원하는 마음을 지키지 못하지요. 변개하는 마음이 있으면 성결을 이루는 데도 많은 지장을 받습니다.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며 육을 좇으려는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므로 영으로 속히 들어갈 수 없지요.
잠언 4장 23절에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했습니다. 따라서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마음에 정하고 입술로 낸 것은 지키는 습관을 들이시기 바랍니다.
2) 몸을 맑은 물로 씻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10장 22절에 ‘몸을 맑은 물로 씻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자신의 악을 벗어 버리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영적으로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말씀에 “버리라” 하면 버리고, “하지 말라” 하면 하지 않고, “지키라” 하면 지키고, “하라” 하면 하는 것이 곧 맑은 물로 씻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믿음의 분량이 성장하는 과정은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은 후에는 온전한 믿음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양심의 악을 깨닫고 하나님 말씀대로 행함으로 자신을 씻어 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고백한 것처럼 날마다 하나님 말씀으로 자신의 악을 씻어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을 영접하기 전에는 부모를 통해 유전된 원죄와 자라면서 듣고 보고 배우고, 입력된 죄악들로 ‘나’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후에는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나’는 날마다 죽고 내 안에 주님만 계시도록 진리로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해서 모두가 몸을 맑은 물로 씻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면서도 “사람이 성결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요. “믿음으로 의롭다 칭함을 받는 것이고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노력할 뿐이지 죄의 속성 자체를 벗을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거룩하고 온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벧전 1:16 ; 마 5:48). 그러니 우리는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기 위해 죄의 속성을 버려야 합니다. 육이 얼마나 헛된지를 중심에서 깨우쳐야 배설물처럼 버릴 수 있습니다. 천국의 소망 가운데 부지런히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고 또 씻어서 깨끗하고 아름다운 참마음을 신속히 이루시기 바랍니다.
2.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려면
‘온전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입니다. 우리가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는 만큼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하루아침에 되는 일은 아닙니다. 간절히 사모함으로 하나님 말씀을 듣고 양심의 악을 하나하나 발견해야 합니다. 또 발견하고 깨우쳤으면 불같이 기도하며, 명심하여 근신함으로 자기를 변화시켜 나가야 합니다. 열심히 힘쓰고 애써 어느 정도 악을 버린 것 같은데, 또다시 악의 모습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그럴지라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양파를 벗기고 벗겨도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지만 결국에는 다 벗겨지듯이, 포기하지 않고 계속 악을 버려 나가면 성결에 이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악을 발견할 때마다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결을 향해 한 걸음 더 가까이 가는 과정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양심의 악을 깨달아 악의 뿌리를 온전히 뽑을 때까지 영으로 들어가는 발걸음을 결코 늦춰서는 안 됩니다.
주야로 하나님 말씀을 묵상하며 불같이 기도함으로 깨끗하고 진실한 참마음을 이루어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전한 믿음을 소유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은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는 깨끗하고 진실한 마음을 말한다.
2. ( )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헤아려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을 말한다. 즉 참마음을 이루었을 때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주시는 영적인 믿음을 의미한다.
3. 몸을 맑은 ( )로 씻는 것은 곧 하나님의 ( )대로 행하여 자신의 ( )을 벗어 버리는 과정을 의미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양심’이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선과 악을 구분하는 판단 기준’이다.
이는 타고난 근본 마음과 각자의 성장 환경이나 배움 속에서 나름대로 ‘이것이 옳다’라고 기준을 만들어 놓은 것이기에 사람마다 다르며 대부분 진리와 비진리가 혼합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