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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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24
제12과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
예레미야 33:3
읽을말씀 : 예레미야 33:3 | 외울말씀 : 예레미야 33:3 | 참고 말씀: 히브리서 11:6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을 잘 숙지하여 중심 바쳐 불같이 기도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신 모습을 통해 마음을 집중하는 기도는 자세에서부터 비롯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도하는 자세만 봐도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엘리야는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로 힘쓰고 애써 기도함으로 3년 반 동안 오지 않던 비를 내리게 하였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기도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중심 바쳐 기도해야 합니다
중심으로 하는 기도는 마음과 뜻, 힘과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세 또한 바른 모습으로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지요. 꼭 오랜 시간 기도한다고 해서 중심의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짧은 시간을 하더라도 집중하여 충만하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중심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고 내 기도에 귀 기울이고 계심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데 졸거나 중언부언할 수가 없지요. 또 기도할 때 무엇보다도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주관 아래 하나님 마음을 깊이 이해하며 기도하기에 힘써야 하지요. 뿐만 아니라 억지가 아닌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할 때 중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중심의 기도는 진심이 하나님께 그대로 전달됩니다. 사랑 자체이시며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중심을 다해 믿음으로 구한다면 어찌 응답하시지 않겠는지요? 그러므로 기도할 때 중심 기도를 드리며,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2.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결코 조용히 기도하지 않으셨지요.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는 부르짖어 기도할 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않고 중심 바쳐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 6장 6절을 인용하여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시는데 부르짖어 기도할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하지요.
성경 어디에도 골방에 들어가 기도했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동산이나 빈 들에서 기도하셨지요(눅 6:12 ; 막 1:35). 베드로는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였고(행 10:9), 사도 바울은 기도처를 찾아 기도하였습니다(행 16:13).
따라서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말씀의 참뜻은 중심 기도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 외부와 차단되기 때문에 조용하고 집중하여 기도할 수 있지요. 이는 다시 말해 우리의 모든 생각과 잡념, 세상의 근심 걱정을 버리고 마음 중심을 모아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부르짖는 기도를 하지 않고 조용히 묵상 기도를 하면 중심 바쳐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밤에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다 보면 피곤이 밀려와 졸음으로 빠지기 쉽고, 세상 근심 걱정, 잡념과 싸우다가 지쳐 잠들기도 하지요.
공중 권세 잡은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뚫고 하늘 보좌에 상달되는 기도를 하려면 간절한 중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 충만하고 시험 환난이 물러가는 등 크고 작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3.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십니다. 차츰 주일 성수와 기도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 믿음이 자라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각 사람의 믿음대로 응답하십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믿음을 보시고 더 큰 응답으로 함께하시며 합력해 선을 이루어 주시지요.
우리가 힘써 기도를 쌓아가면 하늘에서 오는 능력을 받아 죄악을 더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말씀대로 행함으로 주님을 닮아가는 만큼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되지요. 이렇게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한 믿음을 갖는 데에는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산 믿음은 행함이 따르는 영적 믿음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믿음을 갖고자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실천하며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믿어지는 산 믿음, 영적 믿음을 주시지요.
이처럼 자신의 노력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믿음이 합치될 때 즉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응답의 확신이 불일 듯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믿음이며, 그러한 능력 있는 믿음이 임하면 이미 응답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말씀한 것처럼(막 11:24),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하여 믿고 구하는 것을 다 받는 복된 사람(마 21:22)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일에 목적이 분명하면 일을 더욱 힘있게 추진하며 더 빨리 성취할 수 있습니다. 반면 목적이 불분명하면 일의 방향을 잡지 못합니다. 조그마한 어려움이 와도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 잊어버리고 주저앉고 말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도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일 3:21~22).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할 때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하다면 더욱 간절함과 인내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책망할 것이 없는 우리 중심을 보시고 넘치도록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5.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나의 기도가 응답되고 하늘나라에 상급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기도하는 것이 피곤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구할 수 있지요.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면 자신보다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기도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요, 섬기는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기도도 어떠한 마음을 품고 하느냐에 따라 다른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교회와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올리는 것이 진실한 사랑의 기도입니다. 즉 영적인 사랑이 임하여 하나님 뜻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주인 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예를 들어,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할 때 주님의 몸 된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집을 짓는 것보다 더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간구합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땅과 재정, 일꾼과 기술력 등 성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조목조목 간절히 구하게 되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를 입었으니 주님을 닮은 선과 사랑을 마음에 이뤄 항상 아름다운 기도의 향을 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에 대해 써 보세요.
첫째,
둘째,
셋째,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넷째,
다섯째,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한다.
2.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한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영적인 믿음’이란?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는 믿음으로, 자신이 배운 지식이나 생각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다 믿고 한 번 믿은 것은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변개하지 않고 믿는 믿음이다. 또한 알고 있는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증거를 보이는 믿음이다.
교육목표 :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을 잘 숙지하여 중심 바쳐 불같이 기도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예수님께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기도하신 모습을 통해 마음을 집중하는 기도는 자세에서부터 비롯됨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의 기도하는 자세만 봐도 얼마나 간절히 기도하는지 짐작할 수 있지요. 엘리야는 얼굴이 무릎 사이로 들어갈 정도로 힘쓰고 애써 기도함으로 3년 반 동안 오지 않던 비를 내리게 하였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원하시는 기도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오늘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중심 바쳐 기도해야 합니다
중심으로 하는 기도는 마음과 뜻, 힘과 정성을 다한다는 의미입니다. 자세 또한 바른 모습으로 마음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지요. 꼭 오랜 시간 기도한다고 해서 중심의 기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짧은 시간을 하더라도 집중하여 충만하게 기도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중심으로 기도할 수 있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고 내 기도에 귀 기울이고 계심을 믿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데 졸거나 중언부언할 수가 없지요. 또 기도할 때 무엇보다도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성령의 주관 아래 하나님 마음을 깊이 이해하며 기도하기에 힘써야 하지요. 뿐만 아니라 억지가 아닌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할 때 중심의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중심의 기도는 진심이 하나님께 그대로 전달됩니다. 사랑 자체이시며 좋은 것을 아낌없이 주기 원하시는 하나님 앞에 중심을 다해 믿음으로 구한다면 어찌 응답하시지 않겠는지요? 그러므로 기도할 때 중심 기도를 드리며, 능치 못하심이 없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 합니다.
2.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에도 불구하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도록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셨습니다. 결코 조용히 기도하지 않으셨지요. 부르짖어 기도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는 부르짖어 기도할 때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않고 중심 바쳐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마태복음 6장 6절을 인용하여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합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내가 무엇이 필요한지 다 아시는데 부르짖어 기도할 필요가 있겠느냐?”라고 하지요.
성경 어디에도 골방에 들어가 기도했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동산이나 빈 들에서 기도하셨지요(눅 6:12 ; 막 1:35). 베드로는 지붕에 올라가 기도하였고(행 10:9), 사도 바울은 기도처를 찾아 기도하였습니다(행 16:13).
따라서 골방에 들어가 기도하라는 말씀의 참뜻은 중심 기도를 하라는 의미입니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으면 외부와 차단되기 때문에 조용하고 집중하여 기도할 수 있지요. 이는 다시 말해 우리의 모든 생각과 잡념, 세상의 근심 걱정을 버리고 마음 중심을 모아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만약 부르짖는 기도를 하지 않고 조용히 묵상 기도를 하면 중심 바쳐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밤에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다 보면 피곤이 밀려와 졸음으로 빠지기 쉽고, 세상 근심 걱정, 잡념과 싸우다가 지쳐 잠들기도 하지요.
공중 권세 잡은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뚫고 하늘 보좌에 상달되는 기도를 하려면 간절한 중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령 충만하고 시험 환난이 물러가는 등 크고 작은 문제가 해결될 수 있습니다.
3.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마음 문을 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성령이 임하여 하나님의 자녀로 인치십니다. 차츰 주일 성수와 기도 생활을 하면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면 믿음이 자라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 각 사람의 믿음대로 응답하십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믿음으로 기도하면 그 믿음을 보시고 더 큰 응답으로 함께하시며 합력해 선을 이루어 주시지요.
우리가 힘써 기도를 쌓아가면 하늘에서 오는 능력을 받아 죄악을 더 쉽게 버릴 수 있습니다. 나아가 말씀대로 행함으로 주님을 닮아가는 만큼 넘치는 축복을 받게 되지요. 이렇게 응답과 축복을 받기 위한 믿음을 갖는 데에는 자신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산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산 믿음은 행함이 따르는 영적 믿음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믿음을 갖고자 열심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해 실천하며 기도해 나가면 하나님께서 마음에 믿어지는 산 믿음, 영적 믿음을 주시지요.
이처럼 자신의 노력과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적 믿음이 합치될 때 즉시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기도할 때 응답의 확신이 불일 듯 오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 믿음이며, 그러한 능력 있는 믿음이 임하면 이미 응답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조금도 의심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말씀한 것처럼(막 11:24), 마음에 확신이 올 때까지 기도하여 믿고 구하는 것을 다 받는 복된 사람(마 21:22)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4. 목적 있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어떤 일에 목적이 분명하면 일을 더욱 힘있게 추진하며 더 빨리 성취할 수 있습니다. 반면 목적이 불분명하면 일의 방향을 잡지 못합니다. 조그마한 어려움이 와도 왜 그 일을 시작했는지 잊어버리고 주저앉고 말지요.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할 때도 명확한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담대하면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받는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일 3:21~22). 우리가 하나님 앞에 구할 때 얻고자 하는 목적이 분명하다면 더욱 간절함과 인내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의 필요를 아시는 하나님께서 책망할 것이 없는 우리 중심을 보시고 넘치도록 채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5.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말씀했습니다. 나의 기도가 응답되고 하늘나라에 상급이 된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기도하는 것이 피곤하거나 어렵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이에게 생명을 주기 위해 간절히 기도하신 것처럼, 우리도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구할 수 있지요.
우리가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하면 자신보다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기도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것이요, 섬기는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기도도 어떠한 마음을 품고 하느냐에 따라 다른 역사가 나타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심령으로, 교회와 목자와 영혼들을 위해 올리는 것이 진실한 사랑의 기도입니다. 즉 영적인 사랑이 임하여 하나님 뜻을 깨닫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주인 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하지요. 예를 들어,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할 때 주님의 몸 된 성전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집을 짓는 것보다 더 마음과 정성을 다해 간구합니다. 성전 건축에 필요한 땅과 재정, 일꾼과 기술력 등 성전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모든 것을 조목조목 간절히 구하게 되지요.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모든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구원의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은혜를 입었으니 주님을 닮은 선과 사랑을 마음에 이뤄 항상 아름다운 기도의 향을 올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의 요령에 대해 써 보세요.
첫째,
둘째,
셋째, 믿음을 갖고 기도해야 한다.
넷째,
다섯째, 사랑의 기도를 해야 한다.
2.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기도한다는 말씀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영적인 믿음’이란?
무에서 유의 창조를 믿는 믿음으로, 자신이 배운 지식이나 생각에 맞지 않아도 하나님 말씀이라면 다 믿고 한 번 믿은 것은 현실과 조건에 상관없이 변개하지 않고 믿는 믿음이다. 또한 알고 있는 지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행함으로 증거를 보이는 믿음이다.
2023-03-17
제11과올바른 기도의 순서
마태복음 6:31~33
읽을말씀 : 마태복음 6:31~33 | 외울말씀 : 마태복음 6:33 | 참고 말씀: 시편 66:18, 마태복음 6:26~28
교육목표 : 올바른 기도의 순서를 알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기도를 올려드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천사가 기도의 향을 금 그릇에 받아 갑니다. 이 그릇은 바닥이 넓고 속이 깊지 않은 모양이며, 크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각자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믿음의 분량이 크냐에 따라 기도 향의 굵기와 농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폭포수처럼 굵은 향으로 올라가고 어떤 사람은 가느다랗게 올라갑니다.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중심으로 기도하면 향이 굵고 진하여 그만큼 채워지는 속도도 빠르니 응답도 신속합니다. 반면 마음에 악이 있는 사람의 기도는 향이 가늘기 때문에 응답이 더디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을만하신 선한 기도의 향을 끊임없이 올려드려야 합니다. 과연 올바른 기도의 순서는 무엇이며 어떻게 기도해야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을까요?
1. 회개기도, 원수 마귀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
우리가 기도할 때 먼저 회개기도, 원수 마귀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를 해야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단 몇 분이라도 합하지 못한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며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죄를 가지고 기도하면 그 향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하루를 돌아보면서 혹여 누구에게 혈기는 내지 않았는지, 거짓말하거나 수군거리지는 않았는지, 하나님 뜻에 합당치 않은 생각이나 행실은 없었는지 돌아보아 회개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기도를 방해하는 원수 마귀 사단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원수 마귀 사단아, 물러가라! 하늘 공중 권세 잡은 악의 영들과 그의 사자들아 물러가라! 아버지 하나님, 천군 천사와 성령의 불 담으로 지키시며 주님의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지요.
그 뒤 감사기도를 합니다. 하루 지켜 주신 것, 좋은 일 주신 것, 궂은일 당했을 때도 피할 길 주시고 합력해 선을 이뤄 주신 것 등 감사의 조건을 찾아 기도를 올리지요. 이렇게 회개기도, 원수 마귀 사단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를 한 후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해야 더 신속히 하나님 앞에 상달됩니다.
2.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
마태복음 6장 31~33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곧 자신의 의식주나 가족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의식주는 물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마음의 소원도 신속히 응답해 주시지요.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는 무엇일까요?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확장하기 위한 기도를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천국과 지옥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기도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의 대표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나가는 목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 선지자가 있었기에 출애굽 할 수 있었고, 여호수아가 있었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를 치리하며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목자가 매우 중요하므로 마음 중심으로 목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어야 성도가 모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전 터와 건축에 필요한 재정은 물론 주변 환경과 법적인 절차 등 제반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도합니다.
셋째, 목자를 도와 사역하는 주의 종, 장로, 권사, 일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양 떼를 갈무리하는 목사, 전도사 등 주의 종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장로와 권사, 그리고 교회 직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넷째, 교회 부흥 발전을 위해 수고하는 일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구의 지역장, 조장, 구역장, 각 선교회의 회장, 조장, 기관장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지요.
다섯째, 국내 지교회가 있는 경우는 지교회 담임 교역자와 성도들을 위해, 세계 선교를 위해서는 해외 선교사와 주의 종,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문서 선교와 방송 선교 등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요. 그다음에 부모, 형제, 일가친척, 직장, 일터 복음화를 위해, 민족 복음화,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만큼 하나님 나라는 왕성해지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사람은 교회와 목자를 위해, 영혼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합니다. 나아가 ‘어찌하면 더 충성하고 봉사할까?’ 하며 정성 다해 예물을 드리는 등 축복의 씨앗을 믿음으로 심습니다.
3. 하나님의 의를 위한 기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가 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치게 됩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며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 잘되기 위해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거룩하고 온전한 자녀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마 5:48 ; 벧전 1:16 ; 살전 5:23 ; 요삼 1:2). 그런데 어떤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 곧 영혼 구원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자기 영혼의 변화, 곧 하나님의 의만 구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힘쓸 때 힘과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의도 더 빨리 이룰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며 더 많은 영혼을 섬기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러니 주님의 마음을 닮기 위해 더욱 기도에 힘쓰게 되고, 결국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4.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의식주 문제를 먼저 염려한다면 이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마태복음 6장 26~28절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자라게 하십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자녀의 기도에 어찌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 가정, 일터, 물질 등 생활에 필요한 분야를 기도하면 됩니다. 이러한 순종의 행함을 보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의식주는 물론 모든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 앞에 올바른 기도의 순서를 나열해 보세요.
첫째,
둘째,
셋째,
넷째,
2.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써 보세요.
3. 마태복음 6장 33절을 암송하여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마음의 기도 & 영의 기도
마음의 기도란 우리의 일상 언어로 마음의 소원을 구하는 기도를 말한다. 반면 영의 기도란 우리 영이 성령의 주관을 따라 하는 기도로서 방언 기도도 여기에 속한다.
고린도전서 14장 14~15절에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 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말씀한 대로 방언으로만 기도하면 마음의 소원은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마음의 기도와 함께 영의 기도를 병행해야 한다.
교육목표 : 올바른 기도의 순서를 알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는 기도를 올려드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 앞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천사가 기도의 향을 금 그릇에 받아 갑니다. 이 그릇은 바닥이 넓고 속이 깊지 않은 모양이며, 크기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각자가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을 닮고 믿음의 분량이 크냐에 따라 기도 향의 굵기와 농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폭포수처럼 굵은 향으로 올라가고 어떤 사람은 가느다랗게 올라갑니다.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중심으로 기도하면 향이 굵고 진하여 그만큼 채워지는 속도도 빠르니 응답도 신속합니다. 반면 마음에 악이 있는 사람의 기도는 향이 가늘기 때문에 응답이 더디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받을만하신 선한 기도의 향을 끊임없이 올려드려야 합니다. 과연 올바른 기도의 순서는 무엇이며 어떻게 기도해야 신속히 응답받을 수 있을까요?
1. 회개기도, 원수 마귀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
우리가 기도할 때 먼저 회개기도, 원수 마귀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를 해야 하나님 앞에 상달되는 기도를 할 수 있습니다. 단 몇 분이라도 합하지 못한 모습이 있는지 돌아보며 회개함으로 하나님과 막힌 죄의 담을 헐어야 합니다. 죄를 가지고 기도하면 그 향이 하나님 앞에 상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편 66편 18절에 “내가 내 마음에 죄악을 품으면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리라” 말씀한 대로이지요. 하루를 돌아보면서 혹여 누구에게 혈기는 내지 않았는지, 거짓말하거나 수군거리지는 않았는지, 하나님 뜻에 합당치 않은 생각이나 행실은 없었는지 돌아보아 회개해야 합니다.
그다음에 기도를 방해하는 원수 마귀 사단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원수 마귀 사단아, 물러가라! 하늘 공중 권세 잡은 악의 영들과 그의 사자들아 물러가라! 아버지 하나님, 천군 천사와 성령의 불 담으로 지키시며 주님의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하지요.
그 뒤 감사기도를 합니다. 하루 지켜 주신 것, 좋은 일 주신 것, 궂은일 당했을 때도 피할 길 주시고 합력해 선을 이뤄 주신 것 등 감사의 조건을 찾아 기도를 올리지요. 이렇게 회개기도, 원수 마귀 사단 물리치는 기도, 감사기도를 한 후에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해야 더 신속히 하나님 앞에 상달됩니다.
2.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기도
마태복음 6장 31~33절에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말씀했습니다. 이는 곧 자신의 의식주나 가족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의식주는 물론 우리의 필요를 채워 주시고 마음의 소원도 신속히 응답해 주시지요.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는 무엇일까요? 영혼 구원을 위한 기도, 즉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전도해 하나님 나라를 이루고 확장하기 위한 기도를 말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천국과 지옥을 알지 못한 채 죽어가는 많은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통로 역할을 합니다. 따라서 교회의 모든 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기도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첫째, 교회의 대표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나가는 목자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 선지자가 있었기에 출애굽 할 수 있었고, 여호수아가 있었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교회를 치리하며 성도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목자가 매우 중요하므로 마음 중심으로 목자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 성전 건축을 위해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이 있어야 성도가 모이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가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성전 터와 건축에 필요한 재정은 물론 주변 환경과 법적인 절차 등 제반 사항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도합니다.
셋째, 목자를 도와 사역하는 주의 종, 장로, 권사, 일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양 떼를 갈무리하는 목사, 전도사 등 주의 종을 위해 먼저 기도하고 장로와 권사, 그리고 교회 직원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넷째, 교회 부흥 발전을 위해 수고하는 일꾼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교구의 지역장, 조장, 구역장, 각 선교회의 회장, 조장, 기관장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지요.
다섯째, 국내 지교회가 있는 경우는 지교회 담임 교역자와 성도들을 위해, 세계 선교를 위해서는 해외 선교사와 주의 종, 성도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문서 선교와 방송 선교 등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요. 그다음에 부모, 형제, 일가친척, 직장, 일터 복음화를 위해, 민족 복음화, 세계 복음화를 위해 기도합니다. 많은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만큼 하나님 나라는 왕성해지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는 사람은 교회와 목자를 위해, 영혼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합니다. 나아가 ‘어찌하면 더 충성하고 봉사할까?’ 하며 정성 다해 예물을 드리는 등 축복의 씨앗을 믿음으로 심습니다.
3. 하나님의 의를 위한 기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 자녀가 되면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 말씀을 듣고 깨우치게 됩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 깨닫게 되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나님 말씀대로 지켜 행하는 사람이 되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아가며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이 잘되기 위해 기도한다는 의미입니다.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거룩하고 온전한 자녀가 되라고 말씀하십니다(마 5:48 ; 벧전 1:16 ; 살전 5:23 ; 요삼 1:2). 그런데 어떤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 곧 영혼 구원을 위한 사명을 감당하지 않고 자기 영혼의 변화, 곧 하나님의 의만 구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영혼 구원을 위해 힘쓸 때 힘과 능력을 주셔서 하나님의 의도 더 빨리 이룰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며 더 많은 영혼을 섬기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게 되지요. 그러니 주님의 마음을 닮기 위해 더욱 기도에 힘쓰게 되고, 결국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는 것입니다.
4.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면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의식주 문제를 먼저 염려한다면 이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증거입니다.
마태복음 6장 26~28절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말씀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공중의 새를 기르시고 들의 백합화도 자라게 하십니다. 하물며 사랑하는 자녀의 기도에 어찌 응답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 후에 가정, 일터, 물질 등 생활에 필요한 분야를 기도하면 됩니다. 이러한 순종의 행함을 보시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의식주는 물론 모든 인생의 문제를 책임져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 앞에 올바른 기도의 순서를 나열해 보세요.
첫째,
둘째,
셋째,
넷째,
2.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는 말씀의 의미를 써 보세요.
3. 마태복음 6장 33절을 암송하여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마음의 기도 & 영의 기도
마음의 기도란 우리의 일상 언어로 마음의 소원을 구하는 기도를 말한다. 반면 영의 기도란 우리 영이 성령의 주관을 따라 하는 기도로서 방언 기도도 여기에 속한다.
고린도전서 14장 14~15절에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 하리라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말씀한 대로 방언으로만 기도하면 마음의 소원은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마음의 기도와 함께 영의 기도를 병행해야 한다.
2023-03-10
제10과최고의 기도 모델, 예수님
누가복음 22:39~44
읽을말씀 : 누가복음 22:39~44 | 외울말씀 : 누가복음 22:44 | 참고 말씀: 예레미야 33:3; 데살로니가전서 5:17
교육목표 : 최고의 기도 모델이신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의 향을 드림으로 응답과 축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는 학교나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부모와 조곤조곤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또 무엇이 필요하면 자녀로서 당당하게 요구하며 부모에게 스스럼없이 사랑의 표현을 하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깊은 사랑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친히 기도에 대해 가르치시고 본을 보여 주셨지요. 기도는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응답의 열쇠이며 축복의 통로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요령은 무엇일까요?
1.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주기도문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 곧 주기도문이 나옵니다. 이는 자녀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이지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주기도문을 묵상하며 고백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주기도문 도입 부분을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 받는 대상이 나옵니다. 우리가 편지를 쓸 때 “사랑하는 OOO에게”라고 쓰는 것과 같지요.
그다음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합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 나라가 선하신 뜻 가운데 이뤄지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에 앞서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라는 것이지요.
그 후에 자신과 이웃을 위한 기도로 이어집니다. 즉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였지요. 이때 비로소 자신의 필요한 것을 구하고, 주변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해 기도하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며 하나님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영광 돌리지요. 이처럼 주기도문에는 기도하는 요령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2. 최고의 기도 모델,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밝히 아셨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올리며 모든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기도로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며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실 수 있었을까요?
1)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건강을 유지하려면 규칙적인 식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자주 식사를 거르거나 불규칙한 식생활을 하면 위장 기능이 저하되어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규칙적인 식사를 통해 에너지원을 얻듯이 우리가 습관을 좇아 기도해야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힘을 지속해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이기고 원수 마귀 사단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지요.
만일 습관을 좇아 기도하지 않으면 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충만함을 잃고 마음이 곤고해지며 자칫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죄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항상 쉬지 말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살전 5:17). 쉬지 않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다가올 시험을 물리쳐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시험이 온다 해도 영적 힘이 축적되어 있으면 사단에 미혹되지 않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면 매우 좋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주심에 감사하고, 자기 전에 하루를 지켜 주심에 감사기도를 드린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얼마나 사랑스럽겠는지요?
2)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나 윗사람 앞에서 무엇을 구할 때 바른 몸가짐으로 공손히 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는 어떻겠습니까? 결코 흐트러진 자세로 구할 수 없지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겸손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행 20:36)이나 스데반 집사(행 7:60) 등 믿음의 선진들도 마찬가지이지요.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능력을 신뢰한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물론 무릎을 꿇기 힘든 상황도 있습니다. 그때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겸손한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좋지요. 처음에는 힘들 수 있지만 5분, 10분 시간을 늘려 가다 보면 나중에는 한 시간, 두 시간도 거뜬히 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 뜻에 합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하나님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대로 구합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헌금을 많이 하겠습니다.” 아니면 실컷 자기 마음대로 기도해 놓고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하지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도 응답이 오지 않으면 원망 불평하고 낙심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왜 사업이 번창하지 않습니까? 신속히 물질의 축복을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더구나 욕심과 사심을 갖고 기도한다면 응답받을 수 없지요. 바로 하나님 뜻에 합한 기도, 선한 기도를 올려 드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맡겨드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기에, 어떤 결과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4)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했습니다. 당시 겟세마네 동산은 기온이 낮아 땀이 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었다는 데에서 얼마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기도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않고 중심으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이 충만하고 원수 마귀 사단의 세력이 물러가지요. 그러니 응답은 물론 하나님께서 크고 비밀스러운 일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교회는 성령이 역사하여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며 큰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조용히 묵상 기도하는 것이 마치 경건하고 거룩한 것인 양 가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조용히 묵상 기도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예배 전에 와서 기도하거나 밤늦게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용히 할 때도 있지요.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땀 흘려 중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은혜와 능력을 주시며 응답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적어 보세요.
첫째,
둘째,
셋째,
넷째,
2. 누가복음 22장 44절을 적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스데반 집사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이다.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교회 안에서의 구제 사역을 맡은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뽑혔으며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
스데반이 유대 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하자 그들은 마음에 찔려 돌로 쳐 그를 죽였다. 스데반은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고백하며 그 영혼이 떠났다.
교육목표 : 최고의 기도 모델이신 예수님을 닮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의 향을 드림으로 응답과 축복받는 성도가 되게 한다.
부모를 사랑하는 자녀는 학교나 직장에서 있었던 일들을 부모와 조곤조곤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웁니다. 또 무엇이 필요하면 자녀로서 당당하게 요구하며 부모에게 스스럼없이 사랑의 표현을 하지요. 이처럼 하나님의 자녀들이 아버지 하나님과 사랑의 대화를 나누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영이신 하나님께서도 사랑하는 자녀와 대화를 주고받으며 깊은 사랑 나누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친히 기도에 대해 가르치시고 본을 보여 주셨지요. 기도는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주신 응답의 열쇠이며 축복의 통로입니다. 과연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의 요령은 무엇일까요?
1.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 주기도문
마태복음 6장과 누가복음 11장에는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기도, 곧 주기도문이 나옵니다. 이는 자녀로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데 꼭 필요한 내용이지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하나님을 생각하면서 주기도문을 묵상하며 고백하면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를 체계적으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에는 어떤 내용이 담겨 있을까요? 주기도문 도입 부분을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라고 기도 받는 대상이 나옵니다. 우리가 편지를 쓸 때 “사랑하는 OOO에게”라고 쓰는 것과 같지요.
그다음에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합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높이며, 하나님 나라가 선하신 뜻 가운데 이뤄지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필요를 구하기에 앞서 하나님 나라를 먼저 구하라는 것이지요.
그 후에 자신과 이웃을 위한 기도로 이어집니다. 즉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하였지요. 이때 비로소 자신의 필요한 것을 구하고, 주변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기 위해 기도하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하며 하나님께 사랑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영광 돌리지요. 이처럼 주기도문에는 기도하는 요령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가 무엇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2. 최고의 기도 모델,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신데도 기도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보다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밝히 아셨기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기도를 올리며 모든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39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전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내용이 나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어떠한 기도로 고난의 십자가를 지시며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실 수 있었을까요?
1) 습관을 좇아 기도하셨습니다
건강을 유지하려면 규칙적인 식사가 매우 중요합니다. 자주 식사를 거르거나 불규칙한 식생활을 하면 위장 기능이 저하되어 건강을 해칠 수 있습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규칙적인 식사를 통해 에너지원을 얻듯이 우리가 습관을 좇아 기도해야 하나님으로부터 영적인 힘을 지속해 공급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이기고 원수 마귀 사단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지요.
만일 습관을 좇아 기도하지 않으면 늘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공급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충만함을 잃고 마음이 곤고해지며 자칫 마음을 지키지 못하여 죄의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녀들이 항상 쉬지 말고 기도하기를 원하십니다(살전 5:17). 쉬지 않고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다가올 시험을 물리쳐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설령 시험이 온다 해도 영적 힘이 축적되어 있으면 사단에 미혹되지 않고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면 매우 좋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를 주심에 감사하고, 자기 전에 하루를 지켜 주심에 감사기도를 드린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실 때 얼마나 사랑스럽겠는지요?
2) 무릎을 꿇고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나 윗사람 앞에서 무엇을 구할 때 바른 몸가짐으로 공손히 구하게 됩니다. 그런데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는 어떻겠습니까? 결코 흐트러진 자세로 구할 수 없지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도 겸손한 자세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행 20:36)이나 스데반 집사(행 7:60) 등 믿음의 선진들도 마찬가지이지요.
하나님 앞에 무릎 꿇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능력을 신뢰한다는 표시이기도 합니다. 물론 무릎을 꿇기 힘든 상황도 있습니다. 그때는 몸가짐을 단정히 하고 겸손한 자세로 기도해야 합니다. 하지만 할 수만 있다면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것이 좋지요. 처음에는 힘들 수 있지만 5분, 10분 시간을 늘려 가다 보면 나중에는 한 시간, 두 시간도 거뜬히 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 뜻에 합한 기도를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 하나님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자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대로 구합니다. 가령,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시면 헌금을 많이 하겠습니다.” 아니면 실컷 자기 마음대로 기도해 놓고 “그대로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하지요.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도 응답이 오지 않으면 원망 불평하고 낙심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하나님, 열심히 신앙생활 하는데 왜 사업이 번창하지 않습니까? 신속히 물질의 축복을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더구나 욕심과 사심을 갖고 기도한다면 응답받을 수 없지요. 바로 하나님 뜻에 합한 기도, 선한 기도를 올려 드려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맡겨드리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 항상 좋은 것을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믿기에, 어떤 결과에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4) 힘쓰고 애써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 22장 44절에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 했습니다. 당시 겟세마네 동산은 기온이 낮아 땀이 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땀방울이 핏방울같이 되었다는 데에서 얼마나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기도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는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라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부르짖는 기도가 중요한 이유는 잡념이나 피곤, 졸음이 틈타지 않고 중심으로 기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령이 충만하고 원수 마귀 사단의 세력이 물러가지요. 그러니 응답은 물론 하나님께서 크고 비밀스러운 일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큰 핍박 속에서도 부르짖어 기도하여 성령 충만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부르짖어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교회는 성령이 역사하여 기사와 표적이 나타나며 큰 부흥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조용히 묵상 기도하는 것이 마치 경건하고 거룩한 것인 양 가르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조용히 묵상 기도를 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예배 전에 와서 기도하거나 밤늦게 이웃에게 피해를 주지 않도록 조용히 할 때도 있지요.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땀 흘려 중심으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 은혜와 능력을 주시며 응답으로 축복해 주십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기도하셨는지 적어 보세요.
첫째,
둘째,
셋째,
넷째,
2. 누가복음 22장 44절을 적어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스데반 집사
초대교회 최초의 순교자이다. 그는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으로 교회 안에서의 구제 사역을 맡은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으로 뽑혔으며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했다.
스데반이 유대 지도자들의 잘못을 지적하자 그들은 마음에 찔려 돌로 쳐 그를 죽였다. 스데반은 죽어가면서도 무릎을 꿇고 크게 불러 가로되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라고 고백하며 그 영혼이 떠났다.
2023-03-03
제9과성령을 받은 증거
사도행전 19:1~7
읽을말씀 : 사도행전 19:1~7 | 외울말씀 : 고린도후서 1:22 | 참고 말씀: 사도행전 2:38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음으로 변화된 증거들이 성도들의 삶 속에서 무수히 나타나게 한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말씀했습니다. 곧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예수가 구세주이심을 믿으면 죄 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지요.
성령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비록 똑같이 예배 자리에 앉아 있어도 성령 받은 사람의 찬양과 기도, 예배만 받으시지요. 그러면 우리가 성령 받은 증거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죄 사함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또한 죽었던 영이 살아났으니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하나님의 뜻을 깨우치게 되지요. 즉 하나님의 계명들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주신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고 하나님 뜻을 알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고 나면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듣고 보므로 하나님 뜻을 깨우쳐 영적인 양식을 삼게 되지요.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했듯이,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2. 하나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고 싶어집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 사랑을 알면 알수록 중심에서 감사하며 하나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독생자 예수님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시켜 주셨습니다(롬 5:8).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즐겨 순종하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순종을 기뻐 받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고 해도 믿음이 연약하여 순종하고자 하지만 불순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기 전에 만들어진 자기 생각이나 이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려는 마음만은 기뻐하십니다. 이런 경우 불같이 기도하여 자기 생각이나 이론을 깨뜨림으로 영적인 성장과 더불어 순종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3. 깨끗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성령을 받아 거듭난 사람은 성령이 마음 안에 거하시므로 죄를 싫어하고 악을 미워합니다. 선 가운데, 빛 가운데 거하려고 노력하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는 만큼 원수 마귀가 만지지 못하도록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란 무엇일까요? 요한일서 3장 4절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말씀했습니다.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하나님 나라에도 영계의 법이 있습니다. 바로 영원히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게 행하면 이는 불법을 행한 것입니다. 이러한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실 수 없습니다.
죄는 크게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일이란 시기, 질투, 미움, 음욕 등 아직 죄를 직접 행하지는 않았지만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속성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육신의 일을 행함으로 나타낼 때 육체의 일이 됩니다(갈 5:19~21).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직접 행함으로 나타내는 육체의 일뿐 아니라, 잠재하고 있는 육신의 일도 모두 죄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성령의 주관을 받지 못하므로 육체의 소욕을 따라갑니다. 그러니 죄의 열매, 악의 열매를 맺게 되지요. 하지만 거듭난 사람들은 성령의 소욕을 좇으므로 불법을 행할 때, 성령의 탄식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행하기에 더욱 힘씀으로 성결된 깨끗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4. 신앙의 형제들을 깊이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들이 한 형제임을 알아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의 몸 된 교회와 목자와 형제들을 사랑하며 섬기지요.
5.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게 됩니다. 그럴 때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되지요.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천국을 소망하며, 죄와 불법과 불의를 낳게 만드는 세상과 짝하지 않습니다. 어찌하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갈까 더욱 궁구해 나갑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했습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진리로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갑니다.
6.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랫동안 해도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초신자라 해도 성령을 받으면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니 믿음이 생기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넘쳐 나지요.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들이 나타남을 보고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니 성령 받은 증거가 따릅니다.
7.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생깁니다
요한일서 5장 15절에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했습니다. 성령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되심을 알기에 자녀로서 당연히 아버지께 구하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 형제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지요. 구원의 확신 속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구합니다.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넘치도록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8.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신 하나님 뜻을 깨닫게 되면 그때부터는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갑니다. 거짓말하던 사람이 거짓말하지 않고, 화평치 못했던 사람이 화평하며,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등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오지요. 어찌하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리의 도를 좇아 원하시는 삶으로 변화되는 성령 받은 증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우리가 성령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증거를 써 보세요.
①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②
③
④
⑤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며 살아간다.
⑥
⑦
⑧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간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순종’의 네 가지 유형
첫째, 징계가 두려워 명령에 억지로 순종하는 유형
둘째, 자기 육의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만 순종하는 유형
(자기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한다)
셋째, 무조건 순종하는 유형(자기 의사 없이 무조건 “아멘” 한다)
넷째, 명령하는 의도를 마음으로 깨달아 기꺼이 순종하는 유형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온전히 순종한다)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받음으로 변화된 증거들이 성도들의 삶 속에서 무수히 나타나게 한다.
사도행전 2장 38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말씀했습니다. 곧 누구든지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회개하며 예수가 구세주이심을 믿으면 죄 사함을 얻어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지요.
성령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혀 다릅니다. 비록 똑같이 예배 자리에 앉아 있어도 성령 받은 사람의 찬양과 기도, 예배만 받으시지요. 그러면 우리가 성령 받은 증거는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요?
1.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죄 사함을 주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또한 죽었던 영이 살아났으니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을 이루며 하나님의 뜻을 깨우치게 되지요. 즉 하나님의 계명들은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을 위하여 주신 것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인간의 이성으로 하나님 말씀을 읽고 듣기 때문에 이해하기 힘들고 하나님 뜻을 알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고 나면 성령의 감동함 가운데 듣고 보므로 하나님 뜻을 깨우쳐 영적인 양식을 삼게 되지요. 요한일서 5장 3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했듯이,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2. 하나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고 싶어집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된 사람들은 모든 죄를 대속해 주신 그 크신 사랑에 감사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하나님 사랑을 알면 알수록 중심에서 감사하며 하나님 말씀에 즐겁게 순종하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인 되었을 때 독생자 예수님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십자가에 내어 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시켜 주셨습니다(롬 5:8).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즐겨 순종하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순종을 기뻐 받으시고 하나님의 사랑을 입게 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을 받았다고 해도 믿음이 연약하여 순종하고자 하지만 불순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알기 전에 만들어진 자기 생각이나 이론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도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려는 마음만은 기뻐하십니다. 이런 경우 불같이 기도하여 자기 생각이나 이론을 깨뜨림으로 영적인 성장과 더불어 순종할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3. 깨끗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성령을 받아 거듭난 사람은 성령이 마음 안에 거하시므로 죄를 싫어하고 악을 미워합니다. 선 가운데, 빛 가운데 거하려고 노력하지요. 그래서 요한일서 5장 18절에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범죄치 아니하는 줄을 우리가 아노라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죄가 없는 만큼 원수 마귀가 만지지 못하도록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죄란 무엇일까요? 요한일서 3장 4절에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말씀했습니다. 나라에도 법이 있듯이 하나님 나라에도 영계의 법이 있습니다. 바로 영원히 변함없는 하나님의 말씀 곧 진리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되게 행하면 이는 불법을 행한 것입니다. 이러한 죄를 범하면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실 수 없습니다.
죄는 크게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육신의 일이란 시기, 질투, 미움, 음욕 등 아직 죄를 직접 행하지는 않았지만 행함으로 유발될 수 있는 속성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육신의 일을 행함으로 나타낼 때 육체의 일이 됩니다(갈 5:19~21). 사람의 마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직접 행함으로 나타내는 육체의 일뿐 아니라, 잠재하고 있는 육신의 일도 모두 죄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 5:22)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기 전에는 성령의 주관을 받지 못하므로 육체의 소욕을 따라갑니다. 그러니 죄의 열매, 악의 열매를 맺게 되지요. 하지만 거듭난 사람들은 성령의 소욕을 좇으므로 불법을 행할 때, 성령의 탄식하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그래서 진리를 행하기에 더욱 힘씀으로 성결된 깨끗한 삶을 살고자 합니다.
4. 신앙의 형제들을 깊이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을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은 하나님께로서 난 사람들이 한 형제임을 알아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에 주님의 몸 된 교회와 목자와 형제들을 사랑하며 섬기지요.
5.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며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게 됩니다. 그럴 때 영적인 믿음을 소유하게 되지요.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천국을 소망하며, 죄와 불법과 불의를 낳게 만드는 세상과 짝하지 않습니다. 어찌하면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갈까 더욱 궁구해 나갑니다.
요한일서 5장 4절에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했습니다. 성령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진리로 세상을 이기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세상을 넉넉히 이기며 살아갑니다.
6.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오랫동안 해도 성령을 받지 않은 사람은 구원의 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초신자라 해도 성령을 받으면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하니 믿음이 생기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넘쳐 나지요.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증거들이 나타남을 보고 구원의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니 성령 받은 증거가 따릅니다.
7.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이 생깁니다
요한일서 5장 15절에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했습니다. 성령 받아 하나님 자녀가 되면 하나님이 내 아버지 되심을 알기에 자녀로서 당연히 아버지께 구하고 응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그러니 형제를 사랑하고 계명을 지키지요. 구원의 확신 속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뜻대로 구합니다. 언제든지 필요에 따라 넘치도록 응답해 주신다는 것을 성령이 깨닫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8.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가게 됩니다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사랑해 주신 하나님 뜻을 깨닫게 되면 그때부터는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갑니다. 거짓말하던 사람이 거짓말하지 않고, 화평치 못했던 사람이 화평하며, 사랑하지 못했던 사람이 사랑하며 살아가는 등 어둠에서 빛 가운데로 나오지요. 어찌하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리의 도를 좇아 원하시는 삶으로 변화되는 성령 받은 증거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우리가 성령을 받았을 때 나타나는 증거를 써 보세요.
① 계명들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②
③
④
⑤ 세상을 믿음으로 이기며 살아간다.
⑥
⑦
⑧ 하나님 제일주의로 살아간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순종’의 네 가지 유형
첫째, 징계가 두려워 명령에 억지로 순종하는 유형
둘째, 자기 육의 능력 안에서 할 수 있다고 판단될 때만 순종하는 유형
(자기 생각에 맞을 때만 순종한다)
셋째, 무조건 순종하는 유형(자기 의사 없이 무조건 “아멘” 한다)
넷째, 명령하는 의도를 마음으로 깨달아 기꺼이 순종하는 유형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순종할 수 없는 일도 온전히 순종한다)
2023-02-24
제8과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
요한복음 3:3~8
읽을말씀 : 요한복음 3:3~8 | 외울말씀 : 요한복음 3:5 | 참고 말씀: 로마서 8:26
교육목표 :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통해 천국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간혹 사람 중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의 길을 가다가 다시 구습을 좇아 세상을 사랑하며 죄를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이 탄식하시니 마음이 곤고해지지요. 이렇게 성령이 깨우쳐 주실 때 돌이키지 않으면 성령의 음성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결국에는 성령이 소멸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라고 경계하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결코 성령을 소멸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1. 영적인 거듭남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유대인 지도자가 나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으며,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라고 호되게 책망하셨지요(눅 11:39~43). 겉모습은 거룩한 체하나 실상 속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해 마치 회칠한 무덤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위치였음에도 예수님께서 전파하시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하며 죽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그들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이라 여겼지요. 그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유대 최고 회의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 의원으로, 육적으로는 남부러운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진리에 대해 갈급함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2절에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말하지요.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율법에 정통하고 가르치는 위치에 있어도 영적으로 무지한 그를 깨우쳐 주고자 하셨지요. 진리에 갈급한 그의 중심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영적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라고 여쭙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답변하셨습니다(요 3:5~8).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영적인 거듭남입니다. 비진리 가운데 살던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변화되어 진리 가운데 사는 것을 말하지요. 거짓말 잘하던 사람이 진실한 사람으로, 혈기와 미움이 많던 사람이 온유한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간혹 불치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 치료받으면 그 은혜에 감사하여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금방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은 아니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죽은 영을 살리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두셨는데,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는 영적인 거듭남은 사실 육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사건입니다. 육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며, 우리 몸 안에 담겨 있는 영혼이 진짜 주인이므로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진정한 거듭남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은 썩어 없어지지만, 영혼은 불멸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은 천국에 들어가지만 거듭나지 않은 영혼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나 영적인 거듭남을 통해 내세인 천국에서 영원토록 사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2. 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
우리 마음에 성령이 임하여 죽은 영이 살아나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순간부터 구원의 자격을 얻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자격을 변함없이 유지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요. 이를 위해서는 물, 곧 하나님 말씀이 필요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있는 추하고 더러운 죄악을 씻어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무엇이 죄이고 악이며, 버려야 할 것인지를 깨달아 버려 나갈 때 진리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물이 있어도 씻지 않으면 깨끗해질 수 없듯이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지켜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에 “하지 말라, 버리라” 한 대로 미움, 시기, 질투, 판단, 정죄 등 비진리를 버리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더불어 “하라, 지키라” 한 대로 사랑하고 섬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 나가면 마음 안에 진리가 채워지지요. 이렇게 비진리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인 진리로 채워가는 것이 곧 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3.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
그러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나야 할 뿐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을 받을 때라야 죽은 영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내주하시며 죽은 영을 살리고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진리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지 않으면 죽은 영이 살아나지 않을뿐더러 하나님 말씀에 담긴 영적인 뜻을 깨우칠 수도 없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심어지거나 믿음이 되지 않으니 행할 수 있는 능력도 따르지 않지요.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안다 해도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힘이 오지 않으니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성령이 도와주셔야 영적 깨달음이 오고 마음에서 믿어지며, 기도할 때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와서 말씀대로 살 수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 말씀과 성령이 연합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여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으로 변화되어 참마음을 이루는 만큼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며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히 10:22).
에베소서 4장 13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하지요. 말씀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행함이 따라야 함을 뜻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온전히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이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니고데모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다.
② 예수님을 본 순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신 줄 알았다.
③ 예수님을 배척하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담대히 예수님을 변호하였다.
④ 유대 최고 회의 기관인‘산헤드린 공회’ 의원이었다.
2. 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3.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산헤드린 공회’란?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로 구성된 유대 최고 회의 기관이다.
주로 백성들의 종교 생활과 일상생활에 관해 재판하였으며, 벌금형이나 태형을 선고하고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공회의 권한이 막강했다.
교육목표 :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를 통해 천국에 들어가려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간혹 사람 중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믿음의 길을 가다가 다시 구습을 좇아 세상을 사랑하며 죄를 짓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마음 안에 계신 성령이 탄식하시니 마음이 곤고해지지요. 이렇게 성령이 깨우쳐 주실 때 돌이키지 않으면 성령의 음성은 갈수록 희미해지고 결국에는 성령이 소멸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9절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라고 경계하신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 위해서는 결코 성령을 소멸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물과 성령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요?
1. 영적인 거듭남
요한복음 3장에 보면 니고데모라는 유대인 지도자가 나옵니다. 그는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메시아가 오실 것을 믿으며, 나름대로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자부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인즉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라고 호되게 책망하셨지요(눅 11:39~43). 겉모습은 거룩한 체하나 실상 속마음은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해 마치 회칠한 무덤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하나님 말씀을 가르치는 위치였음에도 예수님께서 전파하시는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배척하며 죽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그들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 하나님에게서 오신 분이라 여겼지요. 그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해 한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유대 최고 회의 기관인 ‘산헤드린 공회’ 의원으로, 육적으로는 남부러운 것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진리에 대해 갈급함이 있었기에 예수님을 찾아왔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2절에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의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라고 말하지요.
그런 니고데모에게 예수님께서는 거듭남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율법에 정통하고 가르치는 위치에 있어도 영적으로 무지한 그를 깨우쳐 주고자 하셨지요. 진리에 갈급한 그의 중심을 아시는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영적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한 니고데모는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라고 여쭙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답변하셨습니다(요 3:5~8).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영적인 거듭남입니다. 비진리 가운데 살던 사람이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변화되어 진리 가운데 사는 것을 말하지요. 거짓말 잘하던 사람이 진실한 사람으로, 혈기와 미움이 많던 사람이 온유한 사람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간혹 불치병으로 죽을 수밖에 없던 사람이 하나님을 만나 치료받으면 그 은혜에 감사하여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금방 영적으로 거듭나는 것은 아니지요.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죽은 영을 살리고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두셨는데, 그 길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는 영적인 거듭남은 사실 육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보다 훨씬 더 놀라운 사건입니다. 육은 한낱 껍데기에 불과하며, 우리 몸 안에 담겨 있는 영혼이 진짜 주인이므로 영혼이 새롭게 태어나는 것이 진정한 거듭남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육은 썩어 없어지지만, 영혼은 불멸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영혼은 천국에 들어가지만 거듭나지 않은 영혼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누구나 영적인 거듭남을 통해 내세인 천국에서 영원토록 사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2. 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
우리 마음에 성령이 임하여 죽은 영이 살아나고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는 순간부터 구원의 자격을 얻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자격을 변함없이 유지해야 온전한 구원에 이르지요. 이를 위해서는 물, 곧 하나님 말씀이 필요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23절에 “너희가 거듭난 것이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말씀했습니다.
물로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있는 추하고 더러운 죄악을 씻어낸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무엇이 죄이고 악이며, 버려야 할 것인지를 깨달아 버려 나갈 때 진리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습니다.
물이 있어도 씻지 않으면 깨끗해질 수 없듯이 하나님 말씀을 알아도 지켜 행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성경에 “하지 말라, 버리라” 한 대로 미움, 시기, 질투, 판단, 정죄 등 비진리를 버리면 마음이 깨끗해집니다.
더불어 “하라, 지키라” 한 대로 사랑하고 섬기며 상대의 유익을 구해 나가면 마음 안에 진리가 채워지지요. 이렇게 비진리를 버리고 하나님 말씀인 진리로 채워가는 것이 곧 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3.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
그러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물, 곧 하나님 말씀으로 거듭나야 할 뿐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성령을 받을 때라야 죽은 영이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성령은 우리 마음에 내주하시며 죽은 영을 살리고 우리가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도우심을 통해 하나님 말씀을 지켜 행함으로 진리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을 바로 성령으로 거듭난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지 않으면 죽은 영이 살아나지 않을뿐더러 하나님 말씀에 담긴 영적인 뜻을 깨우칠 수도 없습니다. 말씀이 마음에 심어지거나 믿음이 되지 않으니 행할 수 있는 능력도 따르지 않지요. 아무리 하나님 말씀을 많이 안다 해도 그 말씀대로 지켜 행할 힘이 오지 않으니 구원받을 수도 없습니다. 성령이 도와주셔야 영적 깨달음이 오고 마음에서 믿어지며, 기도할 때 행할 수 있는 능력이 와서 말씀대로 살 수 있지요.
이처럼 하나님 말씀과 성령이 연합하여 우리를 거듭나게 하여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으로 변화되어 참마음을 이루는 만큼 위로부터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을 주시며 응답과 축복을 주십니다(히 10:22).
에베소서 4장 13절에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말씀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야 하지요. 말씀을 머리로만 아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행함이 따라야 함을 뜻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온전히 말씀대로 행하여 믿음이 장성한 그리스도의 분량에 이르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니고데모에 대한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다.
② 예수님을 본 순간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세주이신 줄 알았다.
③ 예수님을 배척하는 바리새인들 앞에서 담대히 예수님을 변호하였다.
④ 유대 최고 회의 기관인‘산헤드린 공회’ 의원이었다.
2. 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3. 성령으로 거듭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산헤드린 공회’란?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로 구성된 유대 최고 회의 기관이다.
주로 백성들의 종교 생활과 일상생활에 관해 재판하였으며, 벌금형이나 태형을 선고하고 경찰권을 행사할 수 있을 만큼 공회의 권한이 막강했다.
2023-02-17
제7과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
로마서 10:13~15
읽을말씀 : 로마서 10:13~15 | 외울말씀 : 로마서 12:3 | 참고 말씀: 요한일서 2:12~14
교육목표 : 예수님만이 구세주의 자격 조건에 합당한 분임을 깨달아 구원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무조건 교회에 다닌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통회자복한 후 성령을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 나와 통회자복하기 전까지 곧 성령 받기 전까지의 과정을 ‘구원받을 믿음’이라 하고, 죄를 통회자복하고 성령을 받은 상태를 ‘구원받은 믿음’이라 하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가려면, 단순히 교회만 출석하는 교인이 아니라 ‘구원받은 믿음’을 소유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인 ‘구원받을 믿음’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23장 39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 좌우편에 십자가 처형을 당한 두 행악자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편 강도가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라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편 강도가 예수님을 힐난하는 강도를 꾸짖으며 주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지요.
즉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지요. 그에게 구원받아 낙원에 이를 것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주어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선포한 것입니다.
간혹 ‘회개한 강도처럼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편 강도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이미 ‘구원받을 믿음’이 있었기에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다른 편 강도가 예수님을 조롱할 때 그를 책망하며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 처형을 받는 것이라고 역설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편 강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이미 마음에 인정하였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민망했겠습니까.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향해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며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한 편 강도가 십자가 처형을 당하지 않고 생명이 연장되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결코 이전처럼 흉악한 죄를 지으며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한 편 강도의 고백을 들으시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구원에 이를 것을 확증해 주셨지요.
그렇다면 구원에 이른 강도가 예수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전에 갖고 있었던 ‘구원받을 믿음’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이는 아직 구원의 확신이 온전히 들지 않지만, 열심히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는 믿음입니다. 누구든지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구원받을 믿음’에서 ‘구원받은 믿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도 필요하지요. 곧 믿음을 갖고자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와 구원의 확신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구원받을 믿음에서 구원받은 믿음으로 바뀌려면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 무엇이 죄인지 깨달아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려고 간절히 찾고 노력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요.
이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시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나’ 때문이라고 믿으니 “나는 죄인 중의 죄인이었다.”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번복하여 죄를 짓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능력을 주시지요.
이처럼 통회자복을 하기까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믿음이 ‘구원받을 믿음’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면 성령이 임하시고 마음이 시원해지면서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죄의 짐을 내려놓으니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고 기쁨이 샘솟지요. 비로소 ‘구원받은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2. 구원의 확신이 있는 ‘구원받은 믿음’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그것은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때부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원수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 자녀로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시험 환난과 고통 속에 의지할 곳 없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영접하고 나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천국 소망 가운데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지요.
이처럼 성령 받은 후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는 믿음을 ‘구원받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구원받을 믿음이 하나님 자녀가 되려고 노력해 통회자복을 하기 전까지의 믿음이라면, 구원받은 믿음은 통회자복한 후에 성령 받아 하나님 말씀을 행해 나가는 믿음이지요. 즉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분하는 기준은 ‘성령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받은 믿음’이 주어지면 세상을 좇아 살아왔던 잘못된 구습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어집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에 감사하여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와 말씀을 지켜 행하게 되지요.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은 즉시 술과 담배를 끊기도 하고 설교 말씀을 통해 배우는 대로 기쁨으로 순종해 나갑니다. 처음에는 겨자씨만 한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해 나가면서 어떤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나무처럼 큰 믿음으로 성장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자녀가 태어나면 아이, 청년의 과정을 거쳐 아비가 되듯이 믿음도 점점 성장해 갑니다. 갓 태어난 자녀와 같이 믿음이 작다고 해도 성장 과정을 거치면 청년을 지나 아비와 같은 큰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의 믿음은 이제 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 받은 단계를 말합니다. 자녀들의 믿음이 자라면 아이들의 믿음이 되지요. 아이들의 믿음이란,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믿음입니다. 즉 부모에 대해 깊이까지는 모르고 일부분 조금 아는 단계이지요. 그러니 진리를 알고 체험하지만, 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있고 행치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믿음이 자라면 청년의 믿음이 됩니다.
청년의 믿음이란, 완전히 성숙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말씀이 마음에 임해 있으므로 능히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깨뜨리고 승리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천국에 소망을 두며,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어떤 시험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을 힘이 있지요. 쉬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며 시험을 거뜬하게 이겨냅니다.
청년의 믿음이 자라면 아비의 믿음이 됩니다. 이는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믿음’ 곧 근본 하나님을 아는 믿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아이의 믿음에서 아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자녀를 낳아 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하듯이, 아비의 믿음이 되어야 비로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것, 근본까지도 알 수 있지요.
아비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본이 되고 겸손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포용하며,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림이 없이 진리 안에 온전히 서게 됩니다. 덕과 사랑을 갖추고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숙한 믿음이기에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분하여 설명해 보세요.
구원받을 믿음:
구원받은 믿음: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자녀들의 믿음(믿음의 1단계) : 성령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이다.
② 아이들의 믿음(믿음의 2단계) :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이다.
③ 청년들의 믿음(믿음의 3단계) :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이다.
④ 아비들의 믿음(믿음의 반석 이상)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낙원
간신히 구원받은 믿음을 지닌 영혼들이 들어가는 처소이다.
하나님 보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하나님 영광의 빛이 약하며 천국의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한다.
낙원의 가장자리는 백보좌 대심판 때까지 천국의 대기 장소로 활용된다.
온 영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영혼들을 제외하고 창세 이래 구원받은 무수한 영혼이 낙원의 가장자리에 머물고 있다.
교육목표 : 예수님만이 구세주의 자격 조건에 합당한 분임을 깨달아 구원의 기쁨을 마음껏 누리는 성도가 되게 한다.
우리가 무조건 교회에 다닌다고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통회자복한 후 성령을 받아야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에 나와 통회자복하기 전까지 곧 성령 받기 전까지의 과정을 ‘구원받을 믿음’이라 하고, 죄를 통회자복하고 성령을 받은 상태를 ‘구원받은 믿음’이라 하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천국에 가려면, 단순히 교회만 출석하는 교인이 아니라 ‘구원받은 믿음’을 소유해 하나님 말씀대로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인 ‘구원받을 믿음’
예수님께서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의 일입니다. 누가복음 23장 39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 좌우편에 십자가 처형을 당한 두 행악자가 있었습니다. 그때 한 편 강도가 예수님을 향하여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라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러자 다른 편 강도가 예수님을 힐난하는 강도를 꾸짖으며 주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지요.
즉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한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셨지요. 그에게 구원받아 낙원에 이를 것을 약속해 주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죄 사함을 주어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메시아, 곧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사실을 선포한 것입니다.
간혹 ‘회개한 강도처럼 내 마음대로 살다가 죽기 직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한 편 강도는 십자가에 달리기 전에 이미 ‘구원받을 믿음’이 있었기에 구원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다른 편 강도가 예수님을 조롱할 때 그를 책망하며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도 없이 십자가 처형을 받는 것이라고 역설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한 편 강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이미 마음에 인정하였습니다. 그 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리시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기도하시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민망했겠습니까. 그래서 십자가에 달려 극심한 고통을 받으면서도 예수님을 향해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하며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절히 호소하였던 것입니다.
만일 한 편 강도가 십자가 처형을 당하지 않고 생명이 연장되었다면 어떻게 살았을까요? 결코 이전처럼 흉악한 죄를 지으며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한 편 강도의 고백을 들으시고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라고 구원에 이를 것을 확증해 주셨지요.
그렇다면 구원에 이른 강도가 예수님께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기 전에 갖고 있었던 ‘구원받을 믿음’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이는 아직 구원의 확신이 온전히 들지 않지만, 열심히 구원을 향해 가는 과정에 있는 믿음입니다. 누구든지 구원의 확신을 가지려면 ‘구원받을 믿음’에서 ‘구원받은 믿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노력도 필요하지요. 곧 믿음을 갖고자 노력할 때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할 수 있는 은혜와 구원의 확신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이 구원받을 믿음에서 구원받은 믿음으로 바뀌려면 열심히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 무엇이 죄인지 깨달아집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만나려고 간절히 찾고 노력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지요.
이전에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큰 죄인지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철저히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시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 바로 ‘나’ 때문이라고 믿으니 “나는 죄인 중의 죄인이었다.”는 고백이 저절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니 번복하여 죄를 짓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위로부터 능력을 주시지요.
이처럼 통회자복을 하기까지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믿음이 ‘구원받을 믿음’입니다. 진정한 회개가 이루어지면 성령이 임하시고 마음이 시원해지면서 구원의 확신이 생깁니다. 누구도 해결할 수 없었던 죄의 짐을 내려놓으니 몸과 마음이 날아갈 듯 가볍고 기쁨이 샘솟지요. 비로소 ‘구원받은 믿음’이 생긴 것입니다.
2. 구원의 확신이 있는 ‘구원받은 믿음’
우리가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되면 그것은 구원의 시작입니다. 그때부터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원의 완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은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원수 마귀의 종에서 하나님 자녀로 신분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시험 환난과 고통 속에 의지할 곳 없이 살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을 영접하고 나서는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며 천국 소망 가운데 기쁘고 행복하게 살아가지요.
이처럼 성령 받은 후 구원의 확신 가운데 하나님 자녀로 살아가는 믿음을 ‘구원받은 믿음’이라고 합니다. 구원받을 믿음이 하나님 자녀가 되려고 노력해 통회자복을 하기 전까지의 믿음이라면, 구원받은 믿음은 통회자복한 후에 성령 받아 하나님 말씀을 행해 나가는 믿음이지요. 즉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분하는 기준은 ‘성령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구원받은 믿음’이 주어지면 세상을 좇아 살아왔던 잘못된 구습을 버리고 하나님 말씀대로 살고 싶어집니다. 억지로가 아니라 하나님 사랑에 감사하여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와 말씀을 지켜 행하게 되지요.
어떤 사람은 성령을 받은 즉시 술과 담배를 끊기도 하고 설교 말씀을 통해 배우는 대로 기쁨으로 순종해 나갑니다. 처음에는 겨자씨만 한 믿음에서 출발하지만, 하나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해 나가면서 어떤 비바람에도 끄떡없는 나무처럼 큰 믿음으로 성장하여 풍성한 열매를 맺습니다.
자녀가 태어나면 아이, 청년의 과정을 거쳐 아비가 되듯이 믿음도 점점 성장해 갑니다. 갓 태어난 자녀와 같이 믿음이 작다고 해도 성장 과정을 거치면 청년을 지나 아비와 같은 큰 믿음이 될 수 있습니다.
자녀들의 믿음은 이제 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 받은 단계를 말합니다. 자녀들의 믿음이 자라면 아이들의 믿음이 되지요. 아이들의 믿음이란,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믿음입니다. 즉 부모에 대해 깊이까지는 모르고 일부분 조금 아는 단계이지요. 그러니 진리를 알고 체험하지만, 말씀대로 행하는 것도 있고 행치 못하는 것도 있습니다. 아이들의 믿음이 자라면 청년의 믿음이 됩니다.
청년의 믿음이란, 완전히 성숙하지는 않았다고 해도 말씀이 마음에 임해 있으므로 능히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를 깨뜨리고 승리하는 단계를 말합니다. 말씀 위에 굳게 서서 천국에 소망을 두며, 세상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어떤 시험을 만나도 요동하지 않을 힘이 있지요. 쉬지 않고 기도하는 가운데 오히려 감사하고 찬송하며 시험을 거뜬하게 이겨냅니다.
청년의 믿음이 자라면 아비의 믿음이 됩니다. 이는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믿음’ 곧 근본 하나님을 아는 믿음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아이의 믿음에서 아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자녀를 낳아 봐야 부모의 마음을 안다’고 하듯이, 아비의 믿음이 되어야 비로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알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깊은 것, 근본까지도 알 수 있지요.
아비의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모든 사람의 본이 되고 겸손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라도 포용하며, 좌우로 치우치거나 흔들림이 없이 진리 안에 온전히 서게 됩니다. 덕과 사랑을 갖추고 성령의 열매를 풍성히 맺는 성숙한 믿음이기에 천국에서 해와 같이 빛나는 자리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구원받을 믿음과 구원받은 믿음을 구분하여 설명해 보세요.
구원받을 믿음:
구원받은 믿음:
2.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자녀들의 믿음(믿음의 1단계) : 성령을 받고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이다.
② 아이들의 믿음(믿음의 2단계) : 말씀대로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이다.
③ 청년들의 믿음(믿음의 3단계) :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이다.
④ 아비들의 믿음(믿음의 반석 이상)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낙원
간신히 구원받은 믿음을 지닌 영혼들이 들어가는 처소이다.
하나님 보좌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으로 하나님 영광의 빛이 약하며 천국의 처소 중 가장 낮은 단계에 속한다.
낙원의 가장자리는 백보좌 대심판 때까지 천국의 대기 장소로 활용된다.
온 영을 이루어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는 영혼들을 제외하고 창세 이래 구원받은 무수한 영혼이 낙원의 가장자리에 머물고 있다.
2023-02-10
제6과구원의 징표인 하나님의 선물, 성령
고린도후서 1:21~22
읽을말씀 : 고린도후서 1:21~22 | 외울말씀 : 사도행전 2:38 | 참고 말씀: 요한복음 14:16~17, 15:26
교육목표 : 구원의 징표이자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받아 자기 삶 속에서 항상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범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그를 잊지 않으셨고, 인생들이 하나님 뜻 가운데 살도록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주셨지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회복해 인생들과 다시 함께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가는 길을 열어 주셨지만, 인생들이 그 길을 끝까지 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보혜사(保惠師)’란 성도를 보호하고 돕는 ‘성령’을 지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려주신 것처럼,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 사랑을 다시 한번 확증시켜 주셨습니다.
1.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
사도행전 1장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곧 보혜사 성령(요 14:26, 15:26)을 기다리라고 하셨지요(행 1:4~5). 또한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라 하셨습니다(행 1:8).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곳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했던 곳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곳이기도 하지요. 주님께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목격한 500여 명 중에서 120명이 그곳에 모여 성령 세례를 받고자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도행전 2장 1~4절에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사도와 성도들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 불같은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그들은 성령으로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 나라 방언을 했는데 그 소리가 굉장했습니다.
오순절을 맞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경건한 유대인들과 개종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다 놀라 기이히 여겼지요. 모든 사람이 놀라고 당황하여 “이것이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하고 서로 말하는데 어떤 이들은 “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사도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선포합니다. 이 사람들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대로(욜 2:28), 하나님의 영을 그들에게 부어 주신 까닭임을 전했지요. 또한 구약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음을 외쳤습니다. 이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의 수가 무려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39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말씀한 대로이지요.
이를 계기로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졌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는 물론 안디옥이라는 곳에도 교회가 생겨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이 시작되었으며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할 크리스천이 생겨났습니다.
사도행전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1~12장까지는 사도 베드로를 중심으로, 13~28장까지는 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셨는지에 대한 성령의 역사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도 바울은 로마제국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철저히 회개한 후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이방인 선교에 힘썼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칼로 목 베임을 당하는 그 순간까지 그는 아시아와 유럽에 많은 교회를 세우며 14권의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할 때의 일이 나옵니다. 당시 소아시아에 위치한 에베소는 아시아 선교의 전초기지가 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들렀을 때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묻자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대답합니다. 이에 사도 바울이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재차 질문하자 제자들이 “요한의 세례로라”라고 대답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세례 요한의 물세례는 받았지만 성령이 무엇인지, 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하는지조차 몰랐지요. 오늘날도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세례는 받았지만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물세례는 교회에 다니며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히 받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 세례는 내가 받고 싶다고 해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마음 중심에서 예수가 정녕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을 때 죄 사함의 은혜와 함께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물세례와 성령 세례를 받는 시점이 다릅니다.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와 물세례를 받은 후에 성령 세례를 받을 수도 있으며, 물세례를 받기 전에 성령 세례를 먼저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3. 구원의 징표인 하나님의 선물, 성령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로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징표인 성령을 받아야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고전 2:10). 우리 마음 안에 거하시면서 마치 가정교사처럼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지요. 엔진이 있어야 자동차가 움직이는 것처럼, 성령은 우리가 천국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최상의 엔진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전에 자기 죽음과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며,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도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17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시고,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죄 가운데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 안에 의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 받기 이전에 구습을 좇아 살던 죄악 된 모습을 버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진리를 좇아 행할 수 있게 하시지요.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빛 가운데 행하며 온전한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보혜사(保惠師)’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2. ( ) 안에 알맞은 답을 쓰시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 )이다.
우리 마음 안에 거하시면서 마치 ( )처럼 우리에게 ( )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다.
3. 성령에 관한 성경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요한복음 14:16 ② 고린도후서 5:17
③ 요한복음 14:26 ④ 요한복음 15:26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로마 시민권’이란?
재산, 직업, 신앙, 사상 등의 자유가 보장되는 로마 시민의 여러 권리를 말한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붙잡혀 채찍질 당하게 되었을 때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혀 위기를 모면했다.
로마 시민권자는 정당한 재판 청구권 및 무참한 형벌에서 보호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로마 시민권은 부모에 의해 세습되기도 하고, 돈으로 살 수도 있었다(행 22:28).
교육목표 : 구원의 징표이자 하나님의 선물인 성령을 받아 자기 삶 속에서 항상 성령의 역사를 체험하는 성도가 되게 한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이 불순종의 죄를 범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후에도 그를 잊지 않으셨고, 인생들이 하나님 뜻 가운데 살도록 이끄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어 예수님을 화목제물로 보내주셨지요. 아버지와 자녀의 관계를 회복해 인생들과 다시 함께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고 돌아가심으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하게 하시고,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 승천하신 후에는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을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에 가는 길을 열어 주셨지만, 인생들이 그 길을 끝까지 가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보혜사(保惠師)’란 성도를 보호하고 돕는 ‘성령’을 지칭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려주신 것처럼, 성령을 보내심으로 그 사랑을 다시 한번 확증시켜 주셨습니다.
1.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
사도행전 1장을 보면 부활하신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분부하신 말씀이 나옵니다.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 곧 보혜사 성령(요 14:26, 15:26)을 기다리라고 하셨지요(행 1:4~5). 또한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주님의 증인이 되라 하셨습니다(행 1:8).
제자들은 그 말씀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을 떠나지 않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했습니다. 그곳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전에 최후의 만찬을 했던 곳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곳이기도 하지요. 주님께서 승천하시는 모습을 목격한 500여 명 중에서 120명이 그곳에 모여 성령 세례를 받고자 간절히 사모했습니다.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사도행전 2장 1~4절에 보면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했습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사도와 성도들은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성령, 불같은 성령 세례를 받았습니다. 성령 충만함을 받은 그들은 성령으로 말하게 하심을 따라 각 나라 방언을 했는데 그 소리가 굉장했습니다.
오순절을 맞아 세계 곳곳에 흩어져 있던 경건한 유대인들과 개종한 이방인들이 예루살렘에 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다 놀라 기이히 여겼지요. 모든 사람이 놀라고 당황하여 “이것이 도대체 어찌 된 일이냐” 하고 서로 말하는데 어떤 이들은 “저희가 새 술에 취하였다”고 조롱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사도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선포합니다. 이 사람들은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요엘 선지자를 통해 예언하신 대로(욜 2:28), 하나님의 영을 그들에게 부어 주신 까닭임을 전했지요. 또한 구약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음을 외쳤습니다. 이날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의 수가 무려 삼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8~39절에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말씀한 대로이지요.
이를 계기로 예루살렘에 교회가 세워졌고, 온 유대와 사마리아는 물론 안디옥이라는 곳에도 교회가 생겨 사도 바울의 전도 여행이 시작되었으며 세계 곳곳에 복음을 전할 크리스천이 생겨났습니다.
사도행전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한 책입니다. 1~12장까지는 사도 베드로를 중심으로, 13~28장까지는 사도 바울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셨는지에 대한 성령의 역사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2.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사도 바울은 로마제국 시민권을 가진 유대인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데 앞장섰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 철저히 회개한 후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이방인 선교에 힘썼습니다.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칼로 목 베임을 당하는 그 순간까지 그는 아시아와 유럽에 많은 교회를 세우며 14권의 성경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9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을 할 때의 일이 나옵니다. 당시 소아시아에 위치한 에베소는 아시아 선교의 전초기지가 될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에 들렀을 때 어떤 제자들을 만나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묻자 “아니라 우리는 성령이 있음도 듣지 못하였노라” 대답합니다. 이에 사도 바울이 “그러면 너희가 무슨 세례를 받았느냐”고 재차 질문하자 제자들이 “요한의 세례로라”라고 대답합니다.
에베소 교인들은 세례 요한의 물세례는 받았지만 성령이 무엇인지, 왜 성령 세례를 받아야 하는지조차 몰랐지요. 오늘날도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세례는 받았지만 성령 세례를 받지 못한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물세례는 교회에 다니며 어느 정도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자연히 받게 됩니다. 하지만 성령 세례는 내가 받고 싶다고 해서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아 회개하고 마음 중심에서 예수가 정녕 구세주라는 사실을 믿을 때 죄 사함의 은혜와 함께 성령을 선물로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물세례와 성령 세례를 받는 시점이 다릅니다. 복음을 듣고 교회에 나와 물세례를 받은 후에 성령 세례를 받을 수도 있으며, 물세례를 받기 전에 성령 세례를 먼저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너희가 믿을 때에 성령을 받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3. 구원의 징표인 하나님의 선물, 성령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하늘나라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됩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증거로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징표인 성령을 받아야 주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고전 2:10). 우리 마음 안에 거하시면서 마치 가정교사처럼 우리에게 진리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지요. 엔진이 있어야 자동차가 움직이는 것처럼, 성령은 우리가 천국을 향해 끊임없이 달려가게 하는 원동력이 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최상의 엔진 상태를 유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처형을 당하시기 전에 자기 죽음과 부활에 대해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며, ‘보혜사 성령’에 대해서도 알려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장 16~17절을 보면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문을 열어 놓으시고, 온전한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보혜사 성령을 선물로 주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죄 가운데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 안에 의롭게 살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성령 받기 이전에 구습을 좇아 살던 죄악 된 모습을 버리고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진리를 좇아 행할 수 있게 하시지요.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성령을 선물로 받아야 빛 가운데 행하며 온전한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보혜사(保惠師)’란 누구를 가리키는 것일까요?
2. ( ) 안에 알맞은 답을 쓰시오.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는 ( )이다.
우리 마음 안에 거하시면서 마치 ( )처럼 우리에게 ( )를 가르쳐 주시는 분이다.
3. 성령에 관한 성경 구절이 아닌 것을 고르시오.
① 요한복음 14:16 ② 고린도후서 5:17
③ 요한복음 14:26 ④ 요한복음 15:26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로마 시민권’이란?
재산, 직업, 신앙, 사상 등의 자유가 보장되는 로마 시민의 여러 권리를 말한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붙잡혀 채찍질 당하게 되었을 때 로마 시민권자임을 밝혀 위기를 모면했다.
로마 시민권자는 정당한 재판 청구권 및 무참한 형벌에서 보호받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 로마 시민권은 부모에 의해 세습되기도 하고, 돈으로 살 수도 있었다(행 22:28).
2023-02-03
제5과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빌립보서 2:11
읽을말씀 : 빌립보서 2:11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4:6 | 참고 말씀: 사도행전 3:6, 16:18 ; 에베소서 5:20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영적 권세를 알아 구원은 물론, 응답과 축복받아 성도들이 능력 있는 삶을 영위하게 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 응답과 축복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어떤 이들은 습관을 좇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기도 합니다.
과연 기도는 어떻게 마무리하는 것이 옳을까요? 혹여 “뭐 그런 것까지 신경 쓰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고, 그 권세가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1. 유일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성경은 예수님께서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알려 줍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했고, 사도행전 4장 12절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말씀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든 인류는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말씀대로 영원히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데, 이를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신 것은 언제일까요?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무덤에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을 때 비로소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구세주의 의미가 담긴 그리스도를 덧붙여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야 합니다(빌 2:6~11).
성경을 보면 이러한 영적 의미를 알았던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은 기도하거나 말씀을 전할 때 예수님이라 하지 않고 ‘주’나 ‘그리스도’를 덧붙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는 ‘예수 그리스도’에 그치지 않고 더욱 강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즐겨 썼습니다.
에베소서 5장 20절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했고, 로마서 7장 25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했지요.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 곳곳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이 많습니다.
2.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과 원수 마귀 사단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찌하든지 믿음의 사람들이 범죄하도록 미혹하며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지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말씀했습니다.
이러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 권세와 능력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기 전의 호칭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호칭에는 우리를 구속하신 피의 의미와 함께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구세주로서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은 두려워 떨 수밖에 없고,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적 의미를 깨우치지 못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점과 구원의 섭리를 정확하게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을 뿐 아니라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를 바로 알아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따르는 권세
사도행전 3장 6절 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곧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자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어 뛰고 걸으며 하나님을 찬미했지요.
사도행전 16장 18절에도 보면 사도 바울이 귀신 들린 사람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야만 하는지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만일 도둑이 옆에 있는데도 경찰이 그를 몰라본다면 도둑은 두려워하지 않고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도둑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잡힐 것이 분명하니 경찰을 무서워하며 재빨리 도망치거나 숨어 버릴 것입니다.
원수 마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정확히 구원의 섭리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막연히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 것은 그 권세가 전혀 달라집니다. 자신의 의로는 불가능한 일도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가능함을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기에 담대하고 능력 있는 기도가 되지요.
여러분이 기도로 악한 영을 물리칠 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원수 마귀 사단의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음을 알고, 승리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두려워 떨며 물러갑니다. 이런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심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혹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종종 어떤 분들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나사렛’을 넣은 이유는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자랐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나사렛이란 이름을 넣을 필요가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됩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역사 되지 않는 경우
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오래 하며 여러 직분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간다면 영적인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기도를 해도 시험 환난이 떠나지 않지요. 마치 더러운 것에 벌레가 모여드는 것과 같이 원수 마귀 사단이 계속 역사하며 괴롭히는 것입니다.
반면 비록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면 그 아이에게는 영적인 힘이 따르게 됩니다. 그 아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면 원수 마귀가 순종하여 떠나지요. 누구든지 정녕 진리 안에 살면서 거룩한 마음과 행실을 이룰 때는 자기 삶에서 어둠이 물러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인정받는 사람이라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악을 버리지 않으면 영적인 권세가 따르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고 악이 없는 성결한 사람만이 영적인 권세가 따르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요. 성결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마다 놀라운 응답과 축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비로소 구세주가 되셨다.
②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예수’가 아니라‘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③‘예수’의 이름은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한 자라는 뜻이다.
④ 죄 가운데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면 하나님의 역사가 따르지 않는다.
2. 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가 아니라“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나사렛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까지 사셨던 남부 갈릴리에 있는 마을이다. 동정녀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수태 고지를 받았고(눅 1:26~33)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곳은 요셉의 본적지인 베들레헴이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과 함께 헤롯왕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에서 자라셨고(눅 2:39~51), 30세쯤 나사렛을 떠나셨다.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영적 권세를 알아 구원은 물론, 응답과 축복받아 성도들이 능력 있는 삶을 영위하게 한다.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기도를 통해 응답과 축복의 역사를 체험합니다. 그런데 기도할 때 어떤 이들은 습관을 좇아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기도 합니다.
과연 기도는 어떻게 마무리하는 것이 옳을까요? 혹여 “뭐 그런 것까지 신경 쓰느냐?” 할 수도 있겠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는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고, 그 권세가 엄청나기 때문입니다.
1. 유일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
성경은 예수님께서 유일한 구세주이심을 알려 줍니다.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말씀했고, 사도행전 4장 12절에는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말씀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든 인류는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말씀대로 영원히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구원받아 천국에 갈 수 있는데, 이를 해결하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돌아가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써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고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구세주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신 것은 언제일까요?
나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무덤에 장사 된 지 사흘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을 때 비로소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구세주의 의미가 담긴 그리스도를 덧붙여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야 합니다(빌 2:6~11).
성경을 보면 이러한 영적 의미를 알았던 예수님의 제자들과 사도들은 기도하거나 말씀을 전할 때 예수님이라 하지 않고 ‘주’나 ‘그리스도’를 덧붙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경우는 ‘예수 그리스도’에 그치지 않고 더욱 강조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을 즐겨 썼습니다.
에베소서 5장 20절에 보면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했고, 로마서 7장 25절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했지요.
갈라디아서 6장 14절에는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외에도 성경 곳곳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표현이 많습니다.
2.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담긴 의미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영의 세계에서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과 원수 마귀 사단 사이에 치열한 싸움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은 어찌하든지 믿음의 사람들이 범죄하도록 미혹하며 우는 사자같이 삼킬 자를 두루 찾고 있지요. 그래서 베드로전서 5장 8절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말씀했습니다.
이러한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에 담긴 의미를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은, 그 권세와 능력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깨우쳐야 합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구원의 섭리를 완성하기 전의 호칭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라는 호칭에는 우리를 구속하신 피의 의미와 함께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신 구세주로서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원수 마귀 사단은 두려워 떨 수밖에 없고,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해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응답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적 의미를 깨우치지 못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우리는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점과 구원의 섭리를 정확하게 깨달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을 뿐 아니라 ‘예수’와 ‘예수 그리스도’의 차이를 바로 알아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영위하시기를 바랍니다.
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 따르는 권세
사도행전 3장 6절 이하를 보면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 주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곧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자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어 뛰고 걸으며 하나님을 찬미했지요.
사도행전 16장 18절에도 보면 사도 바울이 귀신 들린 사람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에게서 나오라 하니 귀신이 즉시 나오니라” 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할 때 놀라운 역사가 나타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야만 하는지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보겠습니다. 만일 도둑이 옆에 있는데도 경찰이 그를 몰라본다면 도둑은 두려워하지 않고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경찰이 자신의 정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도둑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잡힐 것이 분명하니 경찰을 무서워하며 재빨리 도망치거나 숨어 버릴 것입니다.
원수 마귀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정확히 구원의 섭리를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과 막연히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는 것은 그 권세가 전혀 달라집니다. 자신의 의로는 불가능한 일도 구세주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가능함을 믿고 믿음으로 기도하기에 담대하고 능력 있는 기도가 되지요.
여러분이 기도로 악한 영을 물리칠 때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미 원수 마귀 사단의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음을 알고, 승리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명하면 원수 마귀 사단이 두려워 떨며 물러갑니다. 이런 사실을 반드시 기억하심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혹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종종 어떤 분들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나사렛’을 넣은 이유는 예수님께서 나사렛에서 자랐기 때문에 붙여진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는 나사렛이란 이름을 넣을 필요가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됩니다.
4.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해도 역사 되지 않는 경우
아무리 하나님을 믿고 신앙생활을 오래 하며 여러 직분이 있다고 해도 여전히 죄 가운데 살아간다면 영적인 힘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는 기도를 해도 시험 환난이 떠나지 않지요. 마치 더러운 것에 벌레가 모여드는 것과 같이 원수 마귀 사단이 계속 역사하며 괴롭히는 것입니다.
반면 비록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대로 살면 그 아이에게는 영적인 힘이 따르게 됩니다. 그 아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물리치면 원수 마귀가 순종하여 떠나지요. 누구든지 정녕 진리 안에 살면서 거룩한 마음과 행실을 이룰 때는 자기 삶에서 어둠이 물러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해 줄 때도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인정받는 사람이라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악을 버리지 않으면 영적인 권세가 따르지 않습니다. 주님을 믿고 악이 없는 성결한 사람만이 영적인 권세가 따르며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지요. 성결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마다 놀라운 응답과 축복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다음 설명 중 틀린 것을 고르시오.
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심으로 비로소 구세주가 되셨다.
② 주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예수’가 아니라‘예수 그리스도’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
③‘예수’의 이름은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한 자라는 뜻이다.
④ 죄 가운데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원수 마귀 사단을 물리치면 하나님의 역사가 따르지 않는다.
2. 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가 아니라“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라고 해야 할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나사렛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까지 사셨던 남부 갈릴리에 있는 마을이다. 동정녀 마리아는 나사렛에서 수태 고지를 받았고(눅 1:26~33) 아기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곳은 요셉의 본적지인 베들레헴이었다.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 예수님과 함께 헤롯왕을 피해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나사렛으로 돌아왔다. 이후 예수님께서는 나사렛에서 자라셨고(눅 2:39~51), 30세쯤 나사렛을 떠나셨다.
2023-01-27
제4과예수님만이 구세주가 되신 이유
레위기 25:23~25
읽을말씀 : 레위기 25:23~25 | 외울말씀 : 사도행전 4:12 | 참고 말씀: 고린도전서 15:21
교육목표 : 오직 예수님만이 구세주의 자격 조건을 갖추신 분임을 알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참된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한다.
오늘날은 종교 다원주의 영향으로 모든 종교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에 오르는 길은 달라도 정상은 같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말씀한 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세주의 자격을 갖춘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일까요?
1.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
세상에도 법이 있듯이 영의 세계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망으로 가는 것도,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는 것도 영계의 법칙에 의한 것이지요.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한 후 인류가 사망으로 가게 된 것도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영계의 법칙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망이라는 형벌에서 놓여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영계의 법칙에 따라야 합니다.
영계의 법칙에는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죄를 속량할 수 있는 법도 있습니다.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가 죄를 지은 사람 대신 그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죄의 대가는 아무나 치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영계의 법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은 토지 무르기 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토지 무르기 법이란 이스라엘의 토지 거래에 관한 법입니다. 레위기 25장 23~25절에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말씀합니다.
근본적으로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대로 팔 수 없었습니다. 만약 가난하여 토지를 팔게 될 경우, 언제든지 근족이 대신 토지의 값을 지불하면 반드시 그 땅을 돌려주도록 하셨지요. 이러한 토지를 무르는 법칙 안에 인류가 구원받을 길이 제시되어 있는데 과연 무엇일까요?
2. 죄를 대속할 수 있는 구세주의 자격 조건
하나님의 소유인 토지를 팔고 사는 법은 근본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과 직접 관계되는 영계의 법칙입니다(창 3:19, 23). 이스라엘의 모든 토지가 하나님의 소유인 것처럼 아담과 그의 권세 또한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영영히 팔 수가 없지요.
비록 아담이 범죄하여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어 모든 권세를 넘겨주었다 해도 장차 토지 무르기의 법칙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나타나면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토지 무르기 법칙에 근거하여 예수님만이 구세주가 되시는 네 가지 조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사람이어야 합니다.
토지를 팔았을 때 근족이 되찾아 올 수 있듯이(레 25:25), 죗값으로 원수 마귀 사단에게 팔린 사람을 대속할 이도 반드시 아담의 근족이어야 합니다. 아담의 근족이라는 것은 아담과 같이 영과 혼과 육을 가진 존재, 곧 사람을 말하지요. 천사나 짐승은 우리 사람의 죗값을 대속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1절에도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말씀한 대로,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해 죄가 들어왔으니 죄를 대신 져 줄 수 있는 존재도 반드시 아담과 같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했고,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했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살과 뼈를 가진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성장 과정을 거치셨고, 배고픔과 목마름, 기쁨과 슬픔을 느끼셨지요. 또한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피를 흘리고 고통도 느끼셨습니다. 바로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증거입니다.
둘째,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사람은 이미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외모와 성격뿐 아니라 죄성까지 물려받습니다. 젖먹이에게서도 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엄마가 다른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라도 하면 이내 그 아이를 엄마 품에서 밀쳐내려 합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앙!’ 하고 울음을 터트리지요. 아무도 아이에게 미움이나 시기, 질투를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렇게 타고난 죄성을 ‘원죄’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담의 후손으로 오신다면 필연적으로 부모로부터 죄성을 타고날 수밖에 없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남녀의 결합으로 잉태된 사람은 모두 조상으로부터 원죄를 물려받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입니다.
셋째,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혀간 동료를 구해내려면 힘이 있어야 하듯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도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사람들을 구원할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이자 능력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다스리기 위해서는 원죄뿐 아니라 자범죄도 없어야 합니다. 원죄는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죄성을 말하고, 자범죄란 사람이 태어난 후 성장하면서 스스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원죄와 자범죄가 있기 때문에 인류를 구원할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께서는 원죄가 없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사셨기에 자범죄도 없습니다. 이로써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조건에 모두 부합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살면서 크고 작은 죄를 짓습니다. 설령 행함으로는 죄를 짓지 않는다 해도 마음으로 미워하거나 시기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죄라 여기십니다(마 5:28 ; 요일 3:15). 그러니 죄 없다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넷째,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가령 동생이 빚으로 고통받으며 산다고 합시다. 그의 형은 동생의 빚을 갚아 줄 능력이 있는 재벌입니다. 하지만 형에게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만일 사랑이 없으셨다면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흉악한 죄인처럼 정죄 받고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는 엄청난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죄인 된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니 참으로 큰 사랑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요한일서 2장 2절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한 대로이지요.
보통 사람이라면 “왜 아무 죄가 없는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합니까?”라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 처형을 기꺼이 받으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죄를 대속하려면 네 가지 조건을 다 갖추어야 하는데 예수님 외에 다른 분이 있을까요? 인류 역사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이 구세주 되심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죄인 된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2. 사도행전 4장 12절을 암송해 써 보세요.
3. 예수님만이 구세주가 되시는 자격 조건 네 가지를 써 보세요.
첫째, ( )
둘째, ( )
셋째, ( )
넷째, ( )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흙으로 창조된 사람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했고, 23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말씀했다. 이처럼 흙은 영적으로 사람을 의미하므로 토지 무르기 법칙 안에는 인간 구원의 길이 담겨 있다.
교육목표 : 오직 예수님만이 구세주의 자격 조건을 갖추신 분임을 알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참된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한다.
오늘날은 종교 다원주의 영향으로 모든 종교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산에 오르는 길은 달라도 정상은 같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말씀한 대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여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 외에는 구세주의 자격을 갖춘 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시는 것일까요?
1.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영계의 법칙
세상에도 법이 있듯이 영의 세계에도 법칙이 있습니다. 사람이 사망으로 가는 것도,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르는 것도 영계의 법칙에 의한 것이지요. 첫 사람 아담이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의 죄를 범한 후 인류가 사망으로 가게 된 것도 “죄의 삯은 사망”(롬 6:23)이라는 영계의 법칙 때문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망이라는 형벌에서 놓여 구원받을 수 있는 것도 영계의 법칙에 따라야 합니다.
영계의 법칙에는 죄인에게 벌을 가하는 법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죄를 속량할 수 있는 법도 있습니다.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가 죄를 지은 사람 대신 그 값을 치러야 합니다. 그런데 죄의 대가는 아무나 치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영계의 법에 합당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방법은 토지 무르기 법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토지 무르기 법이란 이스라엘의 토지 거래에 관한 법입니다. 레위기 25장 23~25절에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그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말씀합니다.
근본적으로 모든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마음대로 팔 수 없었습니다. 만약 가난하여 토지를 팔게 될 경우, 언제든지 근족이 대신 토지의 값을 지불하면 반드시 그 땅을 돌려주도록 하셨지요. 이러한 토지를 무르는 법칙 안에 인류가 구원받을 길이 제시되어 있는데 과연 무엇일까요?
2. 죄를 대속할 수 있는 구세주의 자격 조건
하나님의 소유인 토지를 팔고 사는 법은 근본 흙으로 지음 받은 사람과 직접 관계되는 영계의 법칙입니다(창 3:19, 23). 이스라엘의 모든 토지가 하나님의 소유인 것처럼 아담과 그의 권세 또한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영영히 팔 수가 없지요.
비록 아담이 범죄하여 원수 마귀 사단의 종이 되어 모든 권세를 넘겨주었다 해도 장차 토지 무르기의 법칙에 합당한 자격을 갖춘 사람이 나타나면 다시 돌려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토지 무르기 법칙에 근거하여 예수님만이 구세주가 되시는 네 가지 조건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사람이어야 합니다.
토지를 팔았을 때 근족이 되찾아 올 수 있듯이(레 25:25), 죗값으로 원수 마귀 사단에게 팔린 사람을 대속할 이도 반드시 아담의 근족이어야 합니다. 아담의 근족이라는 것은 아담과 같이 영과 혼과 육을 가진 존재, 곧 사람을 말하지요. 천사나 짐승은 우리 사람의 죗값을 대속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21절에도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말씀한 대로,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해 죄가 들어왔으니 죄를 대신 져 줄 수 있는 존재도 반드시 아담과 같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육신을 입고 사람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에 대해 요한복음 1장 14절에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했고, 요한복음 1장 1절에는 “…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했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께서 살과 뼈를 가진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 성장 과정을 거치셨고, 배고픔과 목마름, 기쁨과 슬픔을 느끼셨지요. 또한 채찍에 맞고 십자가에 달리실 때는 피를 흘리고 고통도 느끼셨습니다. 바로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증거입니다.
둘째, 아담의 후예가 아니어야 합니다.
사람은 이미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외모와 성격뿐 아니라 죄성까지 물려받습니다. 젖먹이에게서도 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엄마가 다른 아이에게 젖을 물리기라도 하면 이내 그 아이를 엄마 품에서 밀쳐내려 합니다.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앙!’ 하고 울음을 터트리지요. 아무도 아이에게 미움이나 시기, 질투를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도 말입니다. 이렇게 타고난 죄성을 ‘원죄’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아담의 후손으로 오신다면 필연적으로 부모로부터 죄성을 타고날 수밖에 없습니다. 죄가 있는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해 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예수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남녀의 결합으로 잉태된 사람은 모두 조상으로부터 원죄를 물려받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잉태되신 것입니다.
셋째,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전쟁터에서 포로로 잡혀간 동료를 구해내려면 힘이 있어야 하듯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도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사람들을 구원할 힘이 있어야 합니다. 영의 세계에서는 죄가 없는 것이 힘이자 능력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을 이기고 다스리기 위해서는 원죄뿐 아니라 자범죄도 없어야 합니다. 원죄는 아담으로부터 내려온 죄성을 말하고, 자범죄란 사람이 태어난 후 성장하면서 스스로 짓는 죄를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원죄와 자범죄가 있기 때문에 인류를 구원할 힘이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으로 잉태되신 예수님께서는 원죄가 없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사셨기에 자범죄도 없습니다. 이로써 사람의 죄를 대속할 수 있는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조건에 모두 부합하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살면서 크고 작은 죄를 짓습니다. 설령 행함으로는 죄를 짓지 않는다 해도 마음으로 미워하거나 시기하지요. 하나님께서는 이것도 죄라 여기십니다(마 5:28 ; 요일 3:15). 그러니 죄 없다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입니다.
넷째, 목숨까지도 줄 수 있는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가령 동생이 빚으로 고통받으며 산다고 합시다. 그의 형은 동생의 빚을 갚아 줄 능력이 있는 재벌입니다. 하지만 형에게 동생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면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만일 사랑이 없으셨다면 인류의 죄를 대속해 주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흉악한 죄인처럼 정죄 받고 온갖 조롱과 멸시를 받으며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하는 엄청난 희생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면서도 죄인 된 인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으니 참으로 큰 사랑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조금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요한일서 2장 2절에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한 대로이지요.
보통 사람이라면 “왜 아무 죄가 없는 내가 십자가에 달려 죽어야 합니까?”라고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십자가 처형을 기꺼이 받으셨습니다.
이처럼 사람의 죄를 대속하려면 네 가지 조건을 다 갖추어야 하는데 예수님 외에 다른 분이 있을까요? 인류 역사상 예수님 한 분뿐입니다. 그러므로 오직 예수님만이 구세주 되심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구원의 축복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죄인 된 인류가 구원받을 수 있는 영계의 법칙은 무엇일까요?
2. 사도행전 4장 12절을 암송해 써 보세요.
3. 예수님만이 구세주가 되시는 자격 조건 네 가지를 써 보세요.
첫째, ( )
둘째, ( )
셋째, ( )
넷째, ( )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흙으로 창조된 사람
창세기 3장 19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했고, 23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말씀했다. 이처럼 흙은 영적으로 사람을 의미하므로 토지 무르기 법칙 안에는 인간 구원의 길이 담겨 있다.
2023-01-22
제0과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와 예문
로마서 12:20~21
읽을말씀 : 로마서 12:20~21 | 외울말씀 :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설날은 ‘묵은해를 떨쳐 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설날은 ‘묵은해를 떨쳐 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2023년, 새해에도 늘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실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예배드리시겠습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278장 ---------------------- 다 같이
1.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자매 한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네
내 주 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 내 몸같이
환난 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설날은 ‘묵은해를 떨쳐 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2023년, 새해에도 늘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실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예배드리시겠습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278장 ---------------------- 다 같이
1.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자매 한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네
내 주 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 내 몸같이
환난 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2. 사랑하는 주님 앞에 온갖 충성 다 바쳐서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만 힘써 섬기네
우리 주님 거룩한 손 제자들의 발을 씻어
남 섬기는 종의 도를 몸소 행해 보이셨네
3. 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한 몸같이 친밀하고 마음조차 하나 되어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로마서 12:20~21 -------------------- 인도자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설 교 ------------------- 선으로 악을 이기자 ----------------- 설교자
2. 설교 예문
옛날에 아주 성격이 고약한 시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아무리 일을 잘해도 칭찬은커녕 “이건 왜 이렇게 못했냐? 저건 왜 이렇게 해 놨냐?” 하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것이었지요. 그러니 며느리는 급기야 시어머니 목소리만 들어도, 얼굴만 봐도 숨이 막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참다못해 며느리는 동네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어르신을 찾아갔습니다.
“어르신! 시어머님이 빨리 죽는 방법 좀 알려 주세요.” 어르신은 “방법이 있긴 하지만 몹시 어려운데 할 수 있겠나?” 하고 물었습니다. 할 수 있다는 며느리에게 노인은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가?” 물었지요. “인절미입니다.”라고 답하자 노인은 “앞으로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인절미를 그날그날 만들어서 어머니께 극진히 대접해 드리게. 단, 조건이 있네. 한 달 동안 절대로 어머니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되네.”라고 당부하였습니다.
평소에 하던 일은 물론 떡까지 해서 드려야 하니 얼마나 몸이 곤하겠습니까? 그런데도 며느리는 시어머니 마음이 불편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고 섬겼습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했지만, 날이 갈수록 마음을 실어서 하게 되었습니다. 혹여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는지, 필요한 건 없으신지, 뭘 더 해 드려야 어머니가 편하실는지, 온종일 어머니께 어떻게 하면 더 잘해 드릴까.’ 궁리하였지요.
시어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따끈따끈하고 맛있는 인절미를 정성껏 바치는 며느리의 행함에 마음 문이 열리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며느리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고 침이 마르도록 동네 사람들에게 칭찬하였지요.
한 달이 끝나갈 무렵 이 방법을 알려 준 노인이 찾아왔습니다. 노인은 “이제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은 조짐이 좀 보이는가?”라고 물었지요. 그러자 며느리는 자기 죄를 뉘우치고 “어르신,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면 절대 안 돼요. 저한테 얼마나 잘해 주시는데요. 세상에 저 같은 며느리 없다고 아껴 주세요. 우리 어머니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20~21절에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말씀했습니다. 위의 며느리는 진리를 알아서 변화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었지요. 처음부터 어찌하든 마음을 담아서 하려고 노력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선을 행하다 보니 중심에서 우러나오게 되었고, 결국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고 진정 사랑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게 먼저 선을 행해 보라고 하면 “왜 맨날 나만 손해 봐야 합니까? 왜 나만 희생해야 하나요? 왜 나만 져 줘야 합니까?” 반문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내가 손해 보는 것 같고, 희생하는 것 같고, 나만 져 주는 것 같아 억울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행전 20장 35절에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결국에는 이기는 비결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단지 착해서 져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를 변화시키고 살려내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것이 바로 선의 힘입니다. 진정 마음 중심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무리 손해 보고 희생해도 내가 손해 본다, 희생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살리고 더 힘이 되어 줄까만 생각합니다.
우리가 내 성격, 내 취향, 내 마음에 맞는 편안한 사람들과만 지낼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나와 정반대의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고,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며 힘들게 하는 사람들과도 함께해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직장, 학교, 교회 등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 안에서는 내가 싫다고 멀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니 자주 부딪히고 걸리는 사람을 통과하기 위해, 그 사람의 집안 애경사와 생일을 챙기고, 때때로 선물도 사 주며, 식사도 함께하는 등 마음을 맞추고자 노력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상대에게 무언가 더 주고 섬기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선을 행위적으로만 쌓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선한 마음을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다시 말해, 내가 선을 행하는 그 행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 상대를 섬기는 마음, 상대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나로 인해 평안하고 행복을 느껴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에는 향기가 있어서 아무리 작은 선의 행함이라도 향이 있지만, 아무리 깊고 큰 선이라도 그것이 이론에만 머무르면 향이 나지 않습니다. 선은 생각하고 연구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마음 안에서부터 나오지요. 또한 선은 쌓으면 쌓을수록 더 커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작은 선이 쌓이다 보면 다음에 더 큰 선이 나오고, 그렇게 쌓이다 보면 더 깊은 선이 나오게 되지요.
그러므로 작은 선부터 차곡차곡 쌓아가심으로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넉넉하고 포근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과 마음의 소원을 막연히 신에게 빌었습니다. 또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제사를 지내기도 했지요.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므로 이는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두 갈래로 나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지요. 우리 조상들은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었기에 신을 찾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신 참 신으로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어떤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새해에는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심으로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교육목표 :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설날은 ‘묵은해를 떨쳐 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설날은 ‘묵은해를 떨쳐 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2023년, 새해에도 늘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실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예배드리시겠습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278장 ---------------------- 다 같이
1.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자매 한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네
내 주 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 내 몸같이
환난 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설날은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음력을 사용하는 아시아권 나라들에 일 년 중 가장 큰 명절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음력으로 1월 1일인 설날은 ‘묵은해를 떨쳐 버리고 새로 맞이하는 한해의 첫머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지요.
2023년, 새해에도 늘 지키시고 인도하시며 풍성한 은혜로 채워 주실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함께 예배드리시겠습니다.
1. 설 명절 감사예배 순서
신앙고백 -------------------- 사도신경 -------------------- 다 같이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찬 송 ------------------------- 278장 ---------------------- 다 같이
1.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자매 한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네
내 주 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 내 몸같이
환난 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2. 사랑하는 주님 앞에 온갖 충성 다 바쳐서
괴로우나 즐거우나 주님만 힘써 섬기네
우리 주님 거룩한 손 제자들의 발을 씻어
남 섬기는 종의 도를 몸소 행해 보이셨네
3. 사랑하는 주님 예수 같은 주로 섬기나니
한 피 받아 한 몸 이룬 형제여 친구들이여
한 몸같이 친밀하고 마음조차 하나 되어
우리 주님 크신 뜻을 지성으로 준행하세
기 도 ------------------------------------------------ 가족 중에서
성경봉독 ---------------- 로마서 12:20~21 -------------------- 인도자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설 교 ------------------- 선으로 악을 이기자 ----------------- 설교자
2. 설교 예문
옛날에 아주 성격이 고약한 시어머니가 있었습니다. 며느리가 아무리 일을 잘해도 칭찬은커녕 “이건 왜 이렇게 못했냐? 저건 왜 이렇게 해 놨냐?” 하며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것이었지요. 그러니 며느리는 급기야 시어머니 목소리만 들어도, 얼굴만 봐도 숨이 막힐 지경이 되었습니다. 참다못해 며느리는 동네에서 가장 지혜롭다는 어르신을 찾아갔습니다.
“어르신! 시어머님이 빨리 죽는 방법 좀 알려 주세요.” 어르신은 “방법이 있긴 하지만 몹시 어려운데 할 수 있겠나?” 하고 물었습니다. 할 수 있다는 며느리에게 노인은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가?” 물었지요. “인절미입니다.”라고 답하자 노인은 “앞으로 한 달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인절미를 그날그날 만들어서 어머니께 극진히 대접해 드리게. 단, 조건이 있네. 한 달 동안 절대로 어머니의 마음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되네.”라고 당부하였습니다.
평소에 하던 일은 물론 떡까지 해서 드려야 하니 얼마나 몸이 곤하겠습니까? 그런데도 며느리는 시어머니 마음이 불편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마음을 다잡고 섬겼습니다. 처음에는 억지로 했지만, 날이 갈수록 마음을 실어서 하게 되었습니다. 혹여 ‘어디 불편하신 데는 없는지, 필요한 건 없으신지, 뭘 더 해 드려야 어머니가 편하실는지, 온종일 어머니께 어떻게 하면 더 잘해 드릴까.’ 궁리하였지요.
시어머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따끈따끈하고 맛있는 인절미를 정성껏 바치는 며느리의 행함에 마음 문이 열리고 감동이 되었습니다. 며느리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고 침이 마르도록 동네 사람들에게 칭찬하였지요.
한 달이 끝나갈 무렵 이 방법을 알려 준 노인이 찾아왔습니다. 노인은 “이제 시어머니가 돌아가실 것 같은 조짐이 좀 보이는가?”라고 물었지요. 그러자 며느리는 자기 죄를 뉘우치고 “어르신, 우리 어머니 돌아가시면 절대 안 돼요. 저한테 얼마나 잘해 주시는데요. 세상에 저 같은 며느리 없다고 아껴 주세요. 우리 어머니 오래오래 사셔야 해요.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며 눈물을 흘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로마서 12장 20~21절에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말씀했습니다. 위의 며느리는 진리를 알아서 변화되려고 노력한 것이 아니었지요. 처음부터 어찌하든 마음을 담아서 하려고 노력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꾸준히 선을 행하다 보니 중심에서 우러나오게 되었고, 결국 시어머니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고 진정 사랑하는 관계가 되었습니다.
어떤 사람은 나에게 악으로 나오는 상대에게 먼저 선을 행해 보라고 하면 “왜 맨날 나만 손해 봐야 합니까? 왜 나만 희생해야 하나요? 왜 나만 져 줘야 합니까?” 반문합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내가 손해 보는 것 같고, 희생하는 것 같고, 나만 져 주는 것 같아 억울하다고 느낄 수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도행전 20장 35절에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말씀하셨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결국에는 이기는 비결입니다. 선이라는 것은 단지 착해서 져 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상대를 변화시키고 살려내는 엄청난 위력을 가진 것이 바로 선의 힘입니다. 진정 마음 중심에서 선을 행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무리 손해 보고 희생해도 내가 손해 본다, 희생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상대를 살리고 더 힘이 되어 줄까만 생각합니다.
우리가 내 성격, 내 취향, 내 마음에 맞는 편안한 사람들과만 지낼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나와 정반대의 사람들과 만나기도 하고,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며 힘들게 하는 사람들과도 함께해야만 할 때도 있습니다. 직장, 학교, 교회 등 자신이 속해 있는 단체 안에서는 내가 싫다고 멀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러니 자주 부딪히고 걸리는 사람을 통과하기 위해, 그 사람의 집안 애경사와 생일을 챙기고, 때때로 선물도 사 주며, 식사도 함께하는 등 마음을 맞추고자 노력하기도 합니다. 이처럼 상대에게 무언가 더 주고 섬기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선을 행위적으로만 쌓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선한 마음을 만들어 가는 것이 더 중요하지요. 다시 말해, 내가 선을 행하는 그 행위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상대의 유익을 구하는 마음, 상대를 섬기는 마음, 상대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을 이루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이 나로 인해 평안하고 행복을 느껴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선을 이루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선에는 향기가 있어서 아무리 작은 선의 행함이라도 향이 있지만, 아무리 깊고 큰 선이라도 그것이 이론에만 머무르면 향이 나지 않습니다. 선은 생각하고 연구해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마음 안에서부터 나오지요. 또한 선은 쌓으면 쌓을수록 더 커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작은 선이 쌓이다 보면 다음에 더 큰 선이 나오고, 그렇게 쌓이다 보면 더 깊은 선이 나오게 되지요.
그러므로 작은 선부터 차곡차곡 쌓아가심으로 많은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넉넉하고 포근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조상들은 설날이 되면 새해의 풍요로운 수확과 가족의 건강과 마음의 소원을 막연히 신에게 빌었습니다. 또 음식을 차려 놓고 조상에게 절하며 제사를 지내기도 했지요. 그러나 돌아가신 조상이 와서 그 제사를 받는 것이 아니므로 이는 아무런 의미 없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죽으면 두 갈래로 나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사람은 구원받아 천국에 들어가지만, 하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지요. 우리 조상들은 비록 천국과 지옥에 대해 밝히 알지는 못했지만 사후 세계가 있음을 믿었기에 신을 찾고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아 계신 참 신으로서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간절히 찾을 때 만나 주시고, 어떤 사고나 재앙 가운데서도 지키시고 보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이처럼 좋으신 하나님을 새해에는 마음 중심에서 믿고 의지하심으로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기 도 ------------------------------------------------------ 다 같이
주기도문 -------------------------------------------------- 다 같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