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역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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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1-13
제2과구세주로서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요한복음 1:1~4
읽을말씀 : 요한복음 1:1~4 | 외울말씀 : 요한복음 3:16 | 참고 말씀: 빌립보서 2:6~8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 본체로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한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 성경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앞서 전하였고, 신약 성경은 이 땅에 오셔서 구약의 예언과 구속 사업을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근본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지요(요 1:2~3).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는다면 어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혹여라도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이나 위대한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인이 되려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왜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이신지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를 알기 위해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 예수님의 근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랑으로 시작된 태초의 비밀
요한복음 1장 1~3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태초는 사람의 시간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는 아득히 오래전 일입니다.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전, 그때는 우주가 하나였고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지구도, 푸른 하늘도, 별도, 사람도, 동물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지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광활한 우주의 주인으로 계셨습니다.
이처럼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형체가 없이 영롱한 빛으로 온 우주를 감싸고 그 안에 소리를 머금고 ‘말씀’으로 계셨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홀로 우주 공간을 다스리시던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엔가 ‘이 넓고도 오묘한 공간에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감동이 될까….’ 하시며 한 가지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으려는 계획이었지요. 마치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고 열심히 가꿔 열매를 거두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형상을 닮은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 ‘인간 경작’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래서 영롱한 빛과 웅장한 소리로 계시던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총감독으로서, 성자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구세주로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보혜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때가 이르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하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 능력이 담긴 생기를 불어넣어 하나님 마음을 닮은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지요. 그리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에덴동산을 창설해 첫 사람 아담을 이끌어 들이시고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금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곧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지요. 창세기 2장 16~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했습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하는 선악과를 먹으면 말씀에 불순종한 죄로 사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담에게 명하신 후 끝없이 넓은 에덴동산에 아담 한 사람만 있는 것이 좋지 못해 여자를 창조하시고 돕는 배필로 주셨지요. 첫 사람 아담은 아내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에서 많은 자녀를 낳으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간교한 뱀의 유혹을 받은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줍니다. 아담은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한 채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받아서 먹었지요(창 3:6). 이로써 그들은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 말씀대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더는 에덴동산에서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와 축복을 잃고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나 험난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죄성을 이어받아 영원한 사망인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계획하실 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면서 만세 전부터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성자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길로 가는 인류에게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온 세상과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있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지요. 그런데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 왜 초라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셔야 했을까요?
첫 사람 아담은 영과 혼과 육으로 지음 받아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한 후에는 ‘정녕 죽으리라’ 한 대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고 말았지요. 이로써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되었습니다.
이후 원수 마귀 사단의 주관 아래 아담의 후손들은 점점 정욕을 좇아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전 3:18). 이러한 인생들의 죄를 대속하고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지요.
요한복음 6장 51절에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양식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듯이 사람의 영도 영의 양식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말씀 자체이신(요 1:1, 14)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짐승과 같은 인류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게 태어나셨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가득했고, 수많은 천군 천사가 함께하며 구세주의 탄생을 기뻐했습니다. 그날 밤 들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은 천사에게서 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전해 듣고 찾아와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렸습니다(눅 2:8~20).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셨지만,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입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이 아니기에 원죄(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가 없으며 성장하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만 사셨기 때문에 자범죄(스스로 짓는 죄)도 없으셨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틈만 나면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준비하셨지요.
마침내 30세가 되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는 한편,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치료하셨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을 온전케 하셨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셨습니다. 또 물 위를 걸으며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는 등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 말씀의 권세와 능력에 놀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이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경계하셨지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음 주에 이어서 공부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 년)
2. 신앙인의 기본 책자 15페이지를 보고 다음 약자의 뜻을 써 보세요.
① A.D. (Anno Domini:)
② B.C. (Before Christ:)
3. 요한복음 3장 16절, 마태복음 16장 16절, 빌립보서 2장 6~8절을 찾아 함께 읽어보세요. 그리고 공통점은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태초(창세기) vs 태초(요한복음)
창세기 1장 1절에서의 ‘태초’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시점을 가리킨다. 반면에 요한복음 1장 1절에서의 ‘태초’는 창조 이전, 사람의 한계로 이해할 수 없는 아득히 오래전을 말하므로 이 두 말씀에서 나타내는 ‘태초’는 전혀 시점이 다르다.
교육목표 : 예수님께서는 근본 하나님 본체로서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분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한다.
성경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 성경은 구세주로 오신 예수님을 앞서 전하였고, 신약 성경은 이 땅에 오셔서 구약의 예언과 구속 사업을 성취한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근본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곧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깨우칠 수 있지요(요 1:2~3).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예수님의 근본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이심을 믿지 않는다면 어찌 구원받을 수 있겠습니까? 혹여라도 예수님을 세계 4대 성인이나 위대한 선지자 중에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참된 신앙인이 되려면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며, 왜 예수님만이 그리스도이신지 정확히 알고 믿어야 합니다. 이를 알기 위해 태초로 거슬러 올라가 예수님의 근본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사랑으로 시작된 태초의 비밀
요한복음 1장 1~3절에 보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태초는 사람의 시간 개념으로는 이해할 수도 없는 아득히 오래전 일입니다.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전, 그때는 우주가 하나였고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지구도, 푸른 하늘도, 별도, 사람도, 동물도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지요.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이 광활한 우주의 주인으로 계셨습니다.
이처럼 태초에 하나님께서는 어떤 형체가 없이 영롱한 빛으로 온 우주를 감싸고 그 안에 소리를 머금고 ‘말씀’으로 계셨습니다. 아주 오랜 세월 동안 홀로 우주 공간을 다스리시던 하나님께서는 어느 때엔가 ‘이 넓고도 오묘한 공간에서 서로의 마음을 알아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감동이 될까….’ 하시며 한 가지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바로 하나님과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를 얻으려는 계획이었지요. 마치 농부가 땅에 씨를 뿌리고 열심히 가꿔 열매를 거두기 위해 농사를 짓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형상을 닮은 참 자녀를 얻기 위해서 ‘인간 경작’을 계획하셨습니다.
그래서 영롱한 빛과 웅장한 소리로 계시던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해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기 시작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이라는 거대한 계획의 총감독으로서, 성자 하나님께서는 온 인류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구세주로서, 성령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을 천국으로 인도하는 보혜사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입니다.
때가 이르자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창 1:26) 하시며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 능력이 담긴 생기를 불어넣어 하나님 마음을 닮은 영적인 존재로 창조하셨지요. 그리고 아름답고 풍요로운 에덴동산을 창설해 첫 사람 아담을 이끌어 들이시고 만물의 영장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첫 사람 아담에게 금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 곧 선악과는 먹지 말라고 하셨지요. 창세기 2장 16~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했습니다.
이는 창조주 하나님의 주권을 상징하는 선악과를 먹으면 말씀에 불순종한 죄로 사망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아담에게 명하신 후 끝없이 넓은 에덴동산에 아담 한 사람만 있는 것이 좋지 못해 여자를 창조하시고 돕는 배필로 주셨지요. 첫 사람 아담은 아내 하와와 함께 에덴동산에서 많은 자녀를 낳으며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간교한 뱀의 유혹을 받은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인 아담에게도 줍니다. 아담은 하나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한 채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받아서 먹었지요(창 3:6). 이로써 그들은 ‘정녕 죽으리라’ 하신 하나님 말씀대로 영이 죽고 말았습니다. 영이신 하나님의 형상을 잃고 더는 에덴동산에서 살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께서 주신 권세와 축복을 잃고 에덴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나 험난한 인생을 살아야 했습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인 모든 사람도 죄성을 이어받아 영원한 사망인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었지요. 그래서 태초의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계획하실 때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시면서 만세 전부터 인간 구원의 길을 예비하셨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2.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성자 하나님께서는 사망의 길로 가는 인류에게 참 생명을 주시기 위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온 세상과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빛으로 오신 예수님입니다. 2천여 년 전,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베들레헴에 있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 구유에 누이셨지요. 그런데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이 왜 초라한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셔야 했을까요?
첫 사람 아담은 영과 혼과 육으로 지음 받아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한 후에는 ‘정녕 죽으리라’ 한 대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고 말았지요. 이로써 하나님과의 교통이 단절되었습니다.
이후 원수 마귀 사단의 주관 아래 아담의 후손들은 점점 정욕을 좇아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습니다(전 3:18). 이러한 인생들의 죄를 대속하고 구원하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짐승의 우리에서 태어나셨지요.
요한복음 6장 51절에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을 먹는다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마음에 양식 삼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람이 양식을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듯이 사람의 영도 영의 양식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말씀 자체이신(요 1:1, 14)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짐승과 같은 인류에게 생명의 양식이 되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눈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초라하게 태어나셨습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가득했고, 수많은 천군 천사가 함께하며 구세주의 탄생을 기뻐했습니다. 그날 밤 들에서 양 떼를 지키던 목자들은 천사에게서 구세주의 탄생 소식을 전해 듣고 찾아와 아기 예수님께 경배드렸습니다(눅 2:8~20).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태어나셨지만,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결합해 잉태되신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신 분입니다. 범죄한 아담의 후손이 아니기에 원죄(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죄)가 없으며 성장하면서도 하나님 말씀대로만 사셨기 때문에 자범죄(스스로 짓는 죄)도 없으셨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틈만 나면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며 구세주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준비하셨지요.
마침내 30세가 되자,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는 한편,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치료하셨습니다. 귀신 들린 사람을 온전케 하셨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오천 명 이상을 먹이셨습니다. 또 물 위를 걸으며 바람과 파도를 잔잔케 하는 등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행하셨습니다.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 말씀의 권세와 능력에 놀라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하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하루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 이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 앞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십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고 경계하셨지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음 주에 이어서 공부하겠습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지가 얼마나 되었을까요? ( 년)
2. 신앙인의 기본 책자 15페이지를 보고 다음 약자의 뜻을 써 보세요.
① A.D. (Anno Domini:)
② B.C. (Before Christ:)
3. 요한복음 3장 16절, 마태복음 16장 16절, 빌립보서 2장 6~8절을 찾아 함께 읽어보세요. 그리고 공통점은 무엇인지 찾아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태초(창세기) vs 태초(요한복음)
창세기 1장 1절에서의 ‘태초’는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시점을 가리킨다. 반면에 요한복음 1장 1절에서의 ‘태초’는 창조 이전, 사람의 한계로 이해할 수 없는 아득히 오래전을 말하므로 이 두 말씀에서 나타내는 ‘태초’는 전혀 시점이 다르다.
2023-01-06
제1과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사야 60:1
읽을말씀 : 이사야 60:1 | 외울말씀 : 이사야 60:1 | 참고 말씀: 요한일서 1:5; 에베소서 5:8
교육목표 :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에서 일어나 빛을 발하므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밤이 깊고 어둠이 짙어갈수록 사람들은 빛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그 가치는 더욱 커지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에서 수많은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빛은 그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영의 사람이 되어 더욱 찬란히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새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명령이요, 그들의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은 온통 절망과 어둠으로 가득했습니다. 온 나라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숭배하고 죄를 범하며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듣지 않고 계속 악에 악을 더해갔습니다.
더구나 앗수르를 비롯한 주변 국가의 위협이 도사리고 국력은 쇠퇴해질 대로 쇠퇴해졌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이 심판받을 것과 이스라엘에 다시 영광스러운 미래와 메시아의 도래를 약속하시며 본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날은 이사야 당시보다 더욱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러한 때 당당히 일어나 여호와의 영광의 빛을 만방에 비추는 사명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무엇으로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요 4:48). 곧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여 주어야 믿는다는 것이지요.
참된 진리가 없어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섭리와 뜻이 담긴 십자가의 도를 밝히 깨닫게 해 줄 생명의 말씀을 전하되, 따르는 기사와 표적,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확증해야 합니다. 따라서 값없이 구원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천국을 소망하는 거룩한 성도들이라면 자원하는 심령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이루려면
1)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둠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빛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했고, 요한복음 8장 12절에는 “…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빛의 근원인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고 권면하는 것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엡 5:9)을 좇아 행해야 하지요.
어둠에 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둠에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 진리의 빛이 비치면 무엇이 어둠이고 빛인지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 들어오면 들어오는 만큼 전에 행하던 죄들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요.
사람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에 이루었고, 악을 버려 성결되었느냐에 따라 빛을 비추는 힘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빛을 소유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당당히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둠의 세력과 싸우다가 그만 힘을 잃고 어둠에 묻혀 버리기도 하지요.
분명한 것은 빛이 임하면 임하는 만큼 어둠은 반드시 물러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사 흑암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그 빛 가운데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을 비추는 큰 빛으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생명의 빛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바로 내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넓게는 사회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으며, 마침내는 세계만방에 일어나 마음껏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2) 권능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권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는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어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셨으며(요 11장), 하나님의 권능을 받았던 사도 바울에게는 희한한 능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으며(행 19:12), 베드로 사도의 그림자만 스쳐도 병든 사람이 낫고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행 1:8). 이 말씀대로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뿐 아니라 빌립 집사나 스데반 집사와 같은 성도들도 권능을 베풀며 복음을 증거하는 곳곳마다 수많은 사람이 주께로 나아오도록 놀라운 역사를 나타냈습니다.
이처럼 주의 종이 아니라 성도라 해도 권능 받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권능 받기에 합당한 그릇을 갖추어야 합니다. 곧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주님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온전해야 하지요.
성경을 보면 권능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흠이 없고 온유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권능은 빛이신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가며 불같은 기도를 쌓아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능을 받아 온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눈으로 목격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만약 핍박이 두려워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하는 자들이 없다면 들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른 성도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 생명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여 가정과 직장 등을 복음화시켜야 합니다.
빛이 임하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듯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들을 선포할 때 이것이 빛이 되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다 깨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게 되지요.
이제는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생명 다해 복음을 증거하는 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서신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도 된 자신을 소개하며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비록 옥에 갇혀 매인 몸이 되었어도 편지로 성도들을 깨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결과, 성도들이 박해를 넉넉히 이겨내고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은 든든히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증인 된 우리도 어찌하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어느 곳에 있든지 ‘일어나 빛을 발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2.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② 권능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③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이사야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 없이 선포하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많이 하였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유다와 열방을 향해 가깝고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였다. 특히 유다의 정치, 도덕, 종교적인 부패상을 비판하면서 유다가 살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외치며,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의 약속을 전하였다.
교육목표 :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에서 일어나 빛을 발하므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밤이 깊고 어둠이 짙어갈수록 사람들은 빛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그 가치는 더욱 커지게 마련입니다. 마찬가지로 죄악으로 관영한 이 세상에서 수많은 영혼을 사망에서 생명으로,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빛은 그 가치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큽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빛이신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고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는 영의 사람이 되어 더욱 찬란히 그리스도의 빛을 발하는 새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사 60:1)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한 명령이요, 그들의 영광스러운 미래에 대한 선포입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이 말씀을 선포할 당시 이스라엘은 온통 절망과 어둠으로 가득했습니다. 온 나라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을 숭배하고 죄를 범하며 하나님을 떠나 타락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없이 회개의 기회를 주셨지만 듣지 않고 계속 악에 악을 더해갔습니다.
더구나 앗수르를 비롯한 주변 국가의 위협이 도사리고 국력은 쇠퇴해질 대로 쇠퇴해졌습니다. 이러한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주변 국가들이 심판받을 것과 이스라엘에 다시 영광스러운 미래와 메시아의 도래를 약속하시며 본문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오늘날은 이사야 당시보다 더욱 죄악이 관영하고 세상은 온통 어둠으로 덮여 있습니다. 이러한 때 당당히 일어나 여호와의 영광의 빛을 만방에 비추는 사명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이 강퍅해진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창조주 하나님을 무엇으로 증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말씀했습니다(요 4:48). 곧 사람이 행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 하나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일들을 보여 주어야 믿는다는 것이지요.
참된 진리가 없어 목말라하는 이들에게 구원의 섭리와 뜻이 담긴 십자가의 도를 밝히 깨닫게 해 줄 생명의 말씀을 전하되, 따르는 기사와 표적, 권능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확증해야 합니다. 따라서 값없이 구원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을 입고 천국을 소망하는 거룩한 성도들이라면 자원하는 심령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어 드려야 하겠습니다.
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을 이루려면
1) 스스로 빛 가운데 거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둠은 죄와 세상을 의미하며 빛은 하나님 자체, 곧 진리를 뜻합니다. 요한일서 1장 5절에 “…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했고, 요한복음 8장 12절에는 “…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바로 우리가 빛을 비추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빛의 근원인 하나님 안에 거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들을 향해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엡 5:8)고 권면하는 것처럼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엡 5:9)을 좇아 행해야 하지요.
어둠에 거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둠에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지만, 하나님 진리의 빛이 비치면 무엇이 어둠이고 빛인지 확연히 구분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 들어오면 들어오는 만큼 전에 행하던 죄들을 하나하나 벗어 버리고, 빛 가운데 행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게 되지요.
사람마다 하나님 말씀을 얼마나 마음에 이루었고, 악을 버려 성결되었느냐에 따라 빛을 비추는 힘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강한 빛을 소유하여 어둠을 물리치고 당당히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내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어둠의 세력과 싸우다가 그만 힘을 잃고 어둠에 묻혀 버리기도 하지요.
분명한 것은 빛이 임하면 임하는 만큼 어둠은 반드시 물러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온 세상을 비추는 빛이 되사 흑암의 권세를 완전히 깨뜨리시고 그 빛 가운데 생명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방을 비추는 큰 빛으로서 유럽과 아시아를 비롯한 많은 나라에 생명의 빛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행해야 할까요? 바로 내 가정이나 직장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더 넓게는 사회에서 어둠을 물리칠 수 있으며, 마침내는 세계만방에 일어나 마음껏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2) 권능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권능이란,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지만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행하는 믿음의 힘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어 나흘 된 나사로를 살리셨으며(요 11장), 하나님의 권능을 받았던 사도 바울에게는 희한한 능이 나타나서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갔으며(행 19:12), 베드로 사도의 그림자만 스쳐도 병든 사람이 낫고 귀신이 떠나갔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말씀하셨습니다(행 1:8). 이 말씀대로 초대교회 당시 사도들뿐 아니라 빌립 집사나 스데반 집사와 같은 성도들도 권능을 베풀며 복음을 증거하는 곳곳마다 수많은 사람이 주께로 나아오도록 놀라운 역사를 나타냈습니다.
이처럼 주의 종이 아니라 성도라 해도 권능 받아 빛을 발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권능 받기에 합당한 그릇을 갖추어야 합니다. 곧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주님의 마음을 닮아 하나님 앞에 거룩하고 온전해야 하지요.
성경을 보면 권능 받은 사람들은 한결같이 마음에 성결을 이루어 흠이 없고 온유하며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권능은 빛이신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아름다운 마음을 닮아가며 불같은 기도를 쌓아야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능을 받아 온 세상에 빛을 발할 수 있습니다.
3) 생명의 말씀과 하나님의 역사를 알리고 담대히 선포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눈으로 목격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이 만약 핍박이 두려워서 복음을 증거하지 않았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전하는 자들이 없다면 들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에 이른 성도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과 생명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여 가정과 직장 등을 복음화시켜야 합니다.
빛이 임하는 곳마다 어둠이 물러가듯 우리가 하나님의 확실한 증거들을 선포할 때 이것이 빛이 되어 악한 원수 마귀 사단의 진을 다 깨뜨리게 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을 어둠에서 빛으로 인도하게 되지요.
이제는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어 생명 다해 복음을 증거하는 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힘써야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서신을 통해서도 하나님의 사도 된 자신을 소개하며 담대히 복음을 증거하였습니다. 비록 옥에 갇혀 매인 몸이 되었어도 편지로 성도들을 깨우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결과, 성도들이 박해를 넉넉히 이겨내고 곳곳에 세워진 교회들은 든든히 성장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증인 된 우리도 어찌하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도에 힘써야 하겠습니다. 새해를 맞아 어느 곳에 있든지 ‘일어나 빛을 발하는 복된 성도’가 되어 죽어가는 영혼들을 구원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리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일어나라 빛을 발하라’는 말씀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2. 일어나 빛을 발하는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② 권능 받아 하나님의 역사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③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이사야 선지자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동시대에 활동했던 선지자이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 없이 선포하며, 메시아에 관한 예언을 많이 하였다. 그는 성전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아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선지자로 활동하였다. 유다와 열방을 향해 가깝고 먼 미래에 있을 일들을 예언하였다. 특히 유다의 정치, 도덕, 종교적인 부패상을 비판하면서 유다가 살길은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고 외치며, 유다를 향한 하나님의 징계와 회복의 약속을 전하였다.
2022-12-30
제52과의를 위해 핍박받은 사도 바울
고린도후서 11:23~27
읽을말씀 : 고린도후서 11:23~27 | 외울말씀 : 디모데후서 4:8 | 참고 말씀: 로마서 9:3
교육목표 : 이방인의 사도로서 세계 선교의 초석이 된 사도 바울을 통해 참믿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사도 바울은 한 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향은 날이 갈수록 더욱 진해졌지요.
주님의 마음을 닮아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로서 권능을 베풀며 이방인 선교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 주님을 만나 회심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던 그는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대단했습니다.
자기 의가 아주 강하여 자신이 가진 지식과 의로써 변론하며 지지 않으려는 성품이었기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고 전파하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모세와 율법을 무시하는 것 같아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지요.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느 날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서 빛이 바울을 둘러 비추더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울은 바울의 옛 이름입니다.
그 후 바울은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합니다.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가 안수하여 볼 수 있었지요. 그는 아나니아를 통해 앞으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기 위해 선택된 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결박하고 잔해하던 자였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후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삶으로 온전히 바뀌었습니다.
2. 숱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오직 감사했던 사도 바울
바울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자 자신이 마치 ‘죄인 중에 괴수’처럼 여겨졌습니다.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귀한 사명까지 주신 주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했지요. 복음을 전하면서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해도 바울은 주를 향한 마음이 변함없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어떠한 고난을 겪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처럼 사도 바울은 죽도록 충성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은 더욱 짙어질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감옥에 갇혔다 해도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앞의 푯대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겼지요. 또한 영혼을 구원하며 하늘에 많은 상급을 쌓을 뿐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은혜 갚을 기회를 주심에 마음 중심에서 감사했습니다.
혹여 여러분은 고난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어려움에 절망하고 낙심하지는 않았는지요?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고 모든 것을 드리기까지 헌신했는데 축복이 임하지 않을 때 슬퍼하지는 않았습니까? 스스로 실망하여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는지요? 어떠한 상황에 부닥칠지라도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마음 중심에서 감사하며 작은 사명이라도 귀히 여기며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3. 영혼 사랑이 승했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영혼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시면서도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하신 것처럼, 사도 바울도 모진 핍박과 고난을 겪으면서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기도했지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성도들이 진리 안에 살도록 눈물로 훈계하며 간구하였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서 9장 1~3절에 “…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했지요.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자기와 같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 중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지요.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누구보다 지옥의 참담함과 무서움을 잘 알면서도 이같이 담대히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생명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승했기 때문입니다.
4. 천국 소망으로 가득 찼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숱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장차 주님을 뵐 수 있다는 천국 소망으로 넘쳤습니다. 이 세상 무엇도 주님과는 비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주를 위해 헌신하였지요. 빌립보서 3장 7절 이하에는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했습니다.
또한 주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승리하였지요.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한 대로 천국 소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후 한 번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식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했고 순교에 이를 때도 감사뿐이었지요. 착잡한 마음이나 회한이 든 것이 아니었고,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해 경직된 심정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곧 뵐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했기에 천국 소망으로 기쁨과 감사가 넘쳤습니다.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감사했기에 연단을 통해 권능을 받고 대사도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사랑에 대한 은혜와 감사가 변치 않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죽도록 충성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으로 주님을 만나 이방인의 사도가 된 사람은 누구일까요?
2. 사도 바울이 말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누구를 가리킬까요?
3.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어떠한 고난을 겪었는지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을 읽으며 느껴 보시기를 바랍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바울 서신’이란?
바울에 의해 쓰인 편지들로 신약 성경 27권 중 14권이 이에 해당한다.
즉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가 있다.
특히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감옥에서 기록하였다하여 옥중서신이라고 한다.
교육목표 : 이방인의 사도로서 세계 선교의 초석이 된 사도 바울을 통해 참믿음이 무엇인지 깨닫게 한다.
사도 바울은 한 번 받은 주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심한 고난과 핍박을 받는다고 할지라도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의 향은 날이 갈수록 더욱 진해졌지요.
주님의 마음을 닮아 상대를 위해 자신의 생명도 기꺼이 내어줄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신약 시대 최고의 사도로서 권능을 베풀며 이방인 선교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마침내는 순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1. 주님을 만나 회심한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이었습니다. 독실한 유대교 신자였던 그는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대단했습니다.
자기 의가 아주 강하여 자신이 가진 지식과 의로써 변론하며 지지 않으려는 성품이었기에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며, 구세주라고 전파하는 사람들을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마치 모세와 율법을 무시하는 것 같아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였지요. 그러나 주님을 만난 후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어느 날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러 다메섹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로서 빛이 바울을 둘러 비추더니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울은 바울의 옛 이름입니다.
그 후 바울은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합니다. 주님의 제자 아나니아가 안수하여 볼 수 있었지요. 그는 아나니아를 통해 앞으로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기 위해 선택된 종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을 결박하고 잔해하던 자였는데 이제는 주 안에서 새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후 사도 바울은 유대인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삶으로 온전히 바뀌었습니다.
2. 숱한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오직 감사했던 사도 바울
바울은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게 되자 자신이 마치 ‘죄인 중에 괴수’처럼 여겨졌습니다. 자신의 모든 허물과 죄를 용서하시고 귀한 사명까지 주신 주님의 은혜에 너무 감사했지요. 복음을 전하면서 모진 핍박과 어려움을 당해도 바울은 주를 향한 마음이 변함없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을 보면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어떠한 고난을 겪었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 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처럼 사도 바울은 죽도록 충성하며 많은 고난을 받았지만, 주님을 향한 사랑은 더욱 짙어질 뿐이었습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낙심하거나 원망하지 않았고, 감옥에 갇혔다 해도 오히려 기뻐하고 감사하며 앞의 푯대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채찍질로 여겼지요. 또한 영혼을 구원하며 하늘에 많은 상급을 쌓을 뿐 아니라,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은혜 갚을 기회를 주심에 마음 중심에서 감사했습니다.
혹여 여러분은 고난이라고도 할 수 없는 작은 어려움에 절망하고 낙심하지는 않았는지요? 하나님 나라에 충성하고 모든 것을 드리기까지 헌신했는데 축복이 임하지 않을 때 슬퍼하지는 않았습니까? 스스로 실망하여 포기해 버리지는 않았는지요? 어떠한 상황에 부닥칠지라도 구원해 주신 주님의 은혜에 마음 중심에서 감사하며 작은 사명이라도 귀히 여기며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3. 영혼 사랑이 승했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영혼 사랑이 얼마나 컸던지 빌립보서 1장 8절에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고통당하시면서도 죄인들을 불쌍히 여기며 기도하신 것처럼, 사도 바울도 모진 핍박과 고난을 겪으면서 오직 교회와 성도들을 염려하며 기도했지요.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도록, 성도들이 진리 안에 살도록 눈물로 훈계하며 간구하였습니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뿐만 아니라 복음을 배척하고 핍박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로마서 9장 1~3절에 “…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고백했지요.
여기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자기와 같은 유대인들과 바리새인들로서 바울을 핍박하고 훼방했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유대인 중에는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마시지도 않겠다고 동맹한 자들도 있었지요.
그런데도 그는 자신이 구원받지 못할지언정 자신을 핍박하고 훼방하는 사람들이 구원받기를 원했습니다. 자신이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영혼들을 구원하고자 하는 마음이 간절했지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아 누구보다 지옥의 참담함과 무서움을 잘 알면서도 이같이 담대히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생명보다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승했기 때문입니다.
4. 천국 소망으로 가득 찼던 사도 바울
사도 바울은 숱한 고난과 핍박을 받으면서도 장차 주님을 뵐 수 있다는 천국 소망으로 넘쳤습니다. 이 세상 무엇도 주님과는 비할 수 없었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온전히 주를 위해 헌신하였지요. 빌립보서 3장 7절 이하에는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했습니다.
또한 주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에 생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을 변함없이 믿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어떠한 핍박이 오더라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승리하였지요. 디모데후서 4장 7~8절에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한 대로 천국 소망으로 가득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만난 후 한 번도 주님의 은혜에 감사한 마음이 변하지 않았고 주님에 대한 뜨거운 사랑이 식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 죽도록 충성했고 순교에 이를 때도 감사뿐이었지요. 착잡한 마음이나 회한이 든 것이 아니었고, 죽음의 두려움으로 인해 경직된 심정은 더더욱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님을 곧 뵐 수 있다는 기쁨으로 가슴이 벅찼습니다.
사도 바울은 참마음과 온전한 믿음을 소유했기에 천국 소망으로 기쁨과 감사가 넘쳤습니다. 자신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고 온전케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음 깊이 감사했기에 연단을 통해 권능을 받고 대사도로 수많은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사랑에 대한 은혜와 감사가 변치 않으며 천국 소망 가운데 죽도록 충성함으로 다시 오실 주님을 사모하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당대 최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율법에 정통한 바리새인으로 주님을 만나 이방인의 사도가 된 사람은 누구일까요?
2. 사도 바울이 말한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란 누구를 가리킬까요?
3.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하면서 어떠한 고난을 겪었는지 고린도후서 11장 23~27절을 읽으며 느껴 보시기를 바랍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바울 서신’이란?
바울에 의해 쓰인 편지들로 신약 성경 27권 중 14권이 이에 해당한다.
즉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가 있다.
특히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는 감옥에서 기록하였다하여 옥중서신이라고 한다.
2022-12-23
제51과포근한 사랑
누가복음 2:13~14
읽을말씀 : 누가복음 2:13~14 | 외울말씀 : 누가복음 2:14 | 참고 말씀: 요한복음 14:13~14, 요한일서 2:15
교육목표 : 성탄절을 앞두고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시고 인간 구원의 섭리를 이루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포근한 사랑에 대해 알아본다.
매섭고 차가운 바람이 불던 한겨울이 지나면 온 세상은 포근한 봄기운에 만물이 약동합니다. 죽은 것처럼 보였던 나무에서 새순이 돋고, 겨우내 꽁꽁 얼었던 흙을 뚫고 돋아난 새싹들이 따사로운 햇살에 생동감이 넘치지요.
죄악에 물들어 얼어붙은 우리 영혼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 성령님의 사랑이 임할 때 삶의 생기가 넘치고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따스하고 포근한 사랑을 마음 깊이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1. 아버지 하나님, 주님, 성령님의 포근한 사랑
성탄절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사 하늘 영광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부터가 이미 큰 희생을 치르신 것이지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빛의 공간에 계셨던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죄로 관영한 이 세상에 내려오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신 예수님께서는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인생들의 추함과 거짓과 더러움을 다 겪으시고, 종국에는 저주받은 자들이 달린 나무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속죄 제물이 되어 주셨지요. 이에 따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혀 죄도 흠도 없으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지 3일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러한 부활의 주님을 중심에서 믿으면 부활에 참여하여 이 땅에서 육의 생명이 다해도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무수한 천사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눅 2:14). 인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이지요. 구원과 영생은 결코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처절한 희생의 결과요,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들에게 구원뿐 아니라 많은 응답과 축복도 약속해 주셨습니다. 질병, 가난, 가정, 일터, 학교, 사업터 등 이런저런 문제로 고통받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지요.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에게 찾게 하시며 두드리면 열어 주십니다.
우리가 믿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시되, 사람으로서 불가능한 일을 믿음의 자녀들을 통해 이뤄 주심으로 영광 받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3~14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통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인생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영으로 변화되어야 진실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주관하는 원수 마귀 사단은 굶주린 이리처럼 성도들을 미혹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하시기 위해 성령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포근한 사랑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고 계십니다. 찬양과 기도 중에, 말씀을 대할 때 우리 마음을 감동케 하시고 천국 소망으로 넘치게 하시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 성령님의 포근한 사랑을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 사랑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하며, 이제는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참 자녀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2. 포근한 사랑에 보답하려면
1) 헛된 세상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마련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말씀한 대로 세상을 사랑하는 만큼 아버지의 사랑에서 멀어집니다.
죄를 지으면 두렵고 고통스럽지요. 그런데 또다시 세상을 바라보고 취해 나간다면 그보다 더한 고통이 뒤따를 수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골로새서 3장 2~3절에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말씀합니다. 세상의 죄악 가운데 살았던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생각지도, 바라보지도 않아야 하지요. 천국의 좋은 처소에 들어가기 위해 마음을 영으로, 선으로 채워 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말씀을 잘 듣고 마음에 새깁니다. 성경은 물론 생명의 말씀이 담긴 책자도 즐겨 읽으며 영의 양식을 쌓아 가지요. 또한 불같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고 성령의 도우심 속에 선으로, 영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면 세상의 정욕적인 것들이 시시해지고 그에 관한 재미도 못 느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편 103편 2~5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게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죄악을 사해 주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며,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여러분의 소원을 만족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사람으로서 얻을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던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포근한 사랑으로 채워 주셨지요.
이 사랑의 감동을 잊지 않으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예쁘고 고운 마음이 되면 그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함에 속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헌신하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요.
우리가 중심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향을 올려드리면 성령 충만해지고, 하는 일이 형통하며,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니 매일매일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을 많은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고나 질병으로, 배신과 사기를 당해 물질을 잃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지요.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죄에 있습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지요. 주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면 주님께서 포근한 사랑으로 안아 주실 텐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시지요. 그들이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체험해 간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따라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외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과 혀로만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 하지요.
복음을 전할 때 핍박받더라도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12절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사랑의 전달자가 되어 복음으로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과 주님, 성령님께 받은 사랑을 보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헛된 ( )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 ) 안 된다.
셋째, 하나님의 ( )을 많은 사람에게 ( ) 한다.
2. ‘12월 25일’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날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여러분에게 ‘12월 25일’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크리스마스와 예루살렘’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가 언제인지 정확한 날짜도 모르는 유대인들이 많다.
최근 들어 외국인이 많이 사는 텔아비브에서는 간혹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고 트리를 장식해 놓기도 한다.
안식일과 음식 정결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유대교인이 70%가 넘는 예루살렘에서는 이런 풍경이 아직은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교육목표 : 성탄절을 앞두고 이 땅에 예수님을 보내시고 인간 구원의 섭리를 이루신 삼위일체 하나님의 포근한 사랑에 대해 알아본다.
매섭고 차가운 바람이 불던 한겨울이 지나면 온 세상은 포근한 봄기운에 만물이 약동합니다. 죽은 것처럼 보였던 나무에서 새순이 돋고, 겨우내 꽁꽁 얼었던 흙을 뚫고 돋아난 새싹들이 따사로운 햇살에 생동감이 넘치지요.
죄악에 물들어 얼어붙은 우리 영혼도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 성령님의 사랑이 임할 때 삶의 생기가 넘치고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탄절을 맞아 삼위일체 하나님의 따스하고 포근한 사랑을 마음 깊이 느껴보시기를 바랍니다.
1. 아버지 하나님, 주님, 성령님의 포근한 사랑
성탄절은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사 하늘 영광 다 버리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부터가 이미 큰 희생을 치르신 것이지요.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빛의 공간에 계셨던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죄로 관영한 이 세상에 내려오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근본 하나이신 예수님께서는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인생들의 추함과 거짓과 더러움을 다 겪으시고, 종국에는 저주받은 자들이 달린 나무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며 속죄 제물이 되어 주셨지요. 이에 따라 누구든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전혀 죄도 흠도 없으셨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지 3일 만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이러한 부활의 주님을 중심에서 믿으면 부활에 참여하여 이 땅에서 육의 생명이 다해도 아름다운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을 때 무수한 천사가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라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눅 2:14). 인류 구원의 역사가 이루어지기 때문이지요. 구원과 영생은 결코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처절한 희생의 결과요, 사랑하는 아들을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성도들에게 구원뿐 아니라 많은 응답과 축복도 약속해 주셨습니다. 질병, 가난, 가정, 일터, 학교, 사업터 등 이런저런 문제로 고통받고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시지요. 구하는 자에게 주시고 찾는 자에게 찾게 하시며 두드리면 열어 주십니다.
우리가 믿고 구하는 것마다 응답해 주시되, 사람으로서 불가능한 일을 믿음의 자녀들을 통해 이뤄 주심으로 영광 받기를 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13~14절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통해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고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인생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믿고 영으로 변화되어야 진실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셔서 언제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을 주관하는 원수 마귀 사단은 굶주린 이리처럼 성도들을 미혹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고아처럼 버려두지 않으시고 영원한 천국까지 인도하시기 위해 성령님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포근한 사랑을 끊임없이 공급해 주고 계십니다. 찬양과 기도 중에, 말씀을 대할 때 우리 마음을 감동케 하시고 천국 소망으로 넘치게 하시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 성령님의 포근한 사랑을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그 사랑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하며, 이제는 그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참 자녀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2. 포근한 사랑에 보답하려면
1) 헛된 세상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면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기기 마련입니다. 요한일서 2장 15절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말씀한 대로 세상을 사랑하는 만큼 아버지의 사랑에서 멀어집니다.
죄를 지으면 두렵고 고통스럽지요. 그런데 또다시 세상을 바라보고 취해 나간다면 그보다 더한 고통이 뒤따를 수 있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골로새서 3장 2~3절에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말씀합니다. 세상의 죄악 가운데 살았던 옛사람은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세상을 생각지도, 바라보지도 않아야 하지요. 천국의 좋은 처소에 들어가기 위해 마음을 영으로, 선으로 채워 가야 하는 것입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며, 말씀을 잘 듣고 마음에 새깁니다. 성경은 물론 생명의 말씀이 담긴 책자도 즐겨 읽으며 영의 양식을 쌓아 가지요. 또한 불같이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받고 성령의 도우심 속에 선으로, 영으로 변화됩니다. 그러면 세상의 정욕적인 것들이 시시해지고 그에 관한 재미도 못 느끼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시편 103편 2~5절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저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네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게 하사 네 청춘으로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 말씀했습니다.
여러분의 모든 죄악을 사해 주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며, 생명을 파멸에서 구속하시고, 여러분의 소원을 만족게 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절대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사람으로서 얻을 수도, 가질 수도 없는 것입니다. 세상 무엇으로도 만족할 수 없었던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서는 포근한 사랑으로 채워 주셨지요.
이 사랑의 감동을 잊지 않으려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증거를 보여야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예쁘고 고운 마음이 되면 그것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함에 속합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헌신하고,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말하고, 행동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요.
우리가 중심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의 향을 올려드리면 성령 충만해지고, 하는 일이 형통하며,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십니다. 그러니 매일매일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사랑을 많은 사람에게 전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주님을 만나지 못하고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고나 질병으로, 배신과 사기를 당해 물질을 잃고 고통받는 사람들이 많지요.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죄에 있습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주님이라는 사실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지요. 주님을 믿고 죄를 회개하면 주님께서 포근한 사랑으로 안아 주실 텐데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길 원하십니다. 그래서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기를 바라시지요. 그들이 주님의 사랑을 느끼며 체험해 간다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습니까? 따라서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외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말과 혀로만 주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행함과 진실함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야 하지요.
복음을 전할 때 핍박받더라도 주님의 사랑으로 품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4장 12절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제는 하나님 사랑의 전달자가 되어 복음으로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인도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과 주님, 성령님께 받은 사랑을 보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헛된 ( )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둘째, 하나님의 사랑을 결코 ( ) 안 된다.
셋째, 하나님의 ( )을 많은 사람에게 ( ) 한다.
2. ‘12월 25일’은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날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여러분에게 ‘12월 25일’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크리스마스와 예루살렘’
예루살렘에는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하는 크리스마스가 언제인지 정확한 날짜도 모르는 유대인들이 많다.
최근 들어 외국인이 많이 사는 텔아비브에서는 간혹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리고 트리를 장식해 놓기도 한다.
안식일과 음식 정결법을 철저하게 지키는 유대교인이 70%가 넘는 예루살렘에서는 이런 풍경이 아직은 먼 나라 얘기일 뿐이다.
2022-12-16
제50과온 집에 충성한 모세
민수기 12:3, 7
읽을말씀 : 민수기 12:3, 7 | 외울말씀 : 민수기 12:7 | 참고 말씀: 출애굽기 32:32
교육목표 :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처럼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하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모세는 애굽에서 노예로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끌어낸 출애굽의 지도자입니다. 그는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불평을 일삼고 원망하는 백성들을 아비의 심정으로 늘 마음에 품고 놓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백성이기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만 모세는 이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습니다.
1. 모세의 출생과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백성이 거한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 먹을 양식이 떨어지자 야곱과 그의 일가족은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거기는 야곱의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어 양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고센 땅에서 목축업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주 당시 70명에 불과했던 야곱의 혈속은 갈수록 번성해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애굽 총리 요셉과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죽고 요셉을 모르는 사람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은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 두렵건 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부리며 학대하지요(출 1:9~10).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더욱 번성하니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태어나는 남자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모세는 이런 암울한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석 달간 모세를 숨겨 키우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웁니다. 그때 마침 목욕하러 나온 공주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 아이를 데려다가 양자로 삼지요. 하나님 은혜로 모세의 친어머니가 유모로 추천되고, 공주는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며 키우게 합니다.
이로써 모세는 어린 시절 친어머니에게 히브리 민족과 하나님에 대해 배웠고, 애굽 왕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 한편에는 친어머니에게서 들은 하나님과 애굽에서 고통받는 자기 민족에 대한 연민이 떠나지 않았지요.
2. 광야에서 40년 연단의 세월을 보낸 모세
어느 날 모세는 애굽 사람이 자기 민족인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의분이 일어나 그를 쳐 죽이고 맙니다. 그런데 다음 날 히브리 사람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모세가 잘못한 사람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며 말리지요. 그러자 그가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하므로 애굽인을 죽인 것이 탄로 납니다. 이에 바로 왕이 모세를 죽이려고 찾습니다.
만일 모세가 자기 안위만 생각했다면 동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도 자신에게 해가 미칠까 봐 모르는 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민족인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히 11:25).
결국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그곳 미디안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양 무리를 치며 삽니다. 왕자의 자존심이나 자신감도 사라지고 평범한 양치기의 생활에 적응해 갔지요. 이러한 광야 생활이 적응되니 마음의 연단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은 가진 자 같았으나 막상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졌지요. 광야에서 양을 치며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닫습니다.
자기 의분에 못 이겨 사람을 쳐 죽였던 모세가 이처럼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적으로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있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니라 철저히 낮아진 모세를 원하셨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이스라엘 자손의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온전히 비운 모세를 불러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고 큰 사명을 주십니다.
3.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한 모세
온유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합니다. 자기 생각과 교양에 맞지 않아도 품어 주지요. 믿음이 연약하고 악을 발하는 사람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변화될 것을 바라며 기다려 줍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장정만 해도 60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 땅으로 가는 40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시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도 원망하였지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죄를 범함으로 마침내 멸망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모세의 온유함이 얼마나 승했는지 성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 산에 올라가서 더디 내려오자 이스라엘 백성이 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서 신으로 섬기며 방탕하게 먹고 마시며 뛰놉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던지 백성들을 진멸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모세는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간절한 중보 기도를 올리지요(출 32:31~32).
모세는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질지라도, 즉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린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담보로 멸망할 위기에 처한 백성을 구해 달라고 했지요. 결국 모세의 공의를 뛰어넘는 사랑의 간구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십니다. 이처럼 모세는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으로 그들을 품었습니다.
4. 온 집에 충성한 모세
‘충성’이란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은 물론이요, 맡은 직무 이상을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온 집에 충성’이란 자기가 속한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 학교, 일터, 사업터 등 주어진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과 정성, 시간과 물질까지도 아끼지 않고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5절에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자신을 낮추어 맡은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당시 모세의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모세를 원망하고 대드는 백성들을 이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백성의 지도자가 되면 그만큼 져야 할 짐도 많고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모세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난관을 뚫어 나갔습니다.
아비와 같은 마음으로 백성들을 품었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백성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이끌어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끌어낸 날부터 생명이 다하기까지 모세는 단 한 순간도 편히 지낸 적이 없었지요. 백성들로 인해 흘린 눈물과 그들을 위해 올렸던 애통의 기도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 백성들을 저버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도해 주시라’고 늘 간구했던 것입니다.
혹여 ‘사명이 무겁고 힘들다. 놓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모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끌어낼 때부터 생명이 다할 때까지 충성하고서도 열매가 적다며 민망히 여겼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사함으로 잘 감당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스라엘 백성을 끌어낸 출애굽의 지도자는 누구일까요?
2. 하나님께서는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닌, 어떤 모습을 원하셨나요?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방탕하게 먹고 마셨을 때 진멸하고자 하십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께 올린 기도는 무엇인가요?
4. 히브리서 3장 5절에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 )으로 충성하였고” 말씀합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모세의 선’
1.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받는 것을 택했다.
2. 연단 중에도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에 중심에서 감사했다.
3.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했다.
4. 온 집에 충성했다.
교육목표 :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처럼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고 온 집에 충성하는 영적 장수가 되게 한다.
모세는 애굽에서 노예로 학대받는 이스라엘 백성을 끌어낸 출애굽의 지도자입니다. 그는 조금만 어려움이 와도 불평을 일삼고 원망하는 백성들을 아비의 심정으로 늘 마음에 품고 놓지 않았습니다.
믿음이 없는 백성이기에 한시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지만 모세는 이들을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습니다.
1. 모세의 출생과 시대적 배경
이스라엘 백성이 거한 가나안 땅에 기근이 심해 먹을 양식이 떨어지자 야곱과 그의 일가족은 애굽으로 이주하게 됩니다. 거기는 야곱의 아들 요셉이 총리로 있어 양식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애굽의 고센 땅에서 목축업을 하며 살았습니다. 이주 당시 70명에 불과했던 야곱의 혈속은 갈수록 번성해 갔습니다.
세월이 흘러 애굽 총리 요셉과 그 시대 사람들이 다 죽고 요셉을 모르는 사람이 왕위에 올랐습니다. 왕은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 두렵건 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며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 부리며 학대하지요(출 1:9~10). 그런데도 이스라엘이 더욱 번성하니 바로 왕은 이스라엘 백성 중에 태어나는 남자아이는 모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모세는 이런 암울한 시대에 태어났습니다. 그의 부모는 석 달간 모세를 숨겨 키우지만 더 이상 숨길 수 없게 되자 갈대 상자에 넣어 강물에 띄웁니다. 그때 마침 목욕하러 나온 공주가 그 상자를 발견하고, 아이를 데려다가 양자로 삼지요. 하나님 은혜로 모세의 친어머니가 유모로 추천되고, 공주는 아이를 데려다가 젖을 먹이며 키우게 합니다.
이로써 모세는 어린 시절 친어머니에게 히브리 민족과 하나님에 대해 배웠고, 애굽 왕궁에서 공주의 아들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 한편에는 친어머니에게서 들은 하나님과 애굽에서 고통받는 자기 민족에 대한 연민이 떠나지 않았지요.
2. 광야에서 40년 연단의 세월을 보낸 모세
어느 날 모세는 애굽 사람이 자기 민족인 히브리 사람을 때리는 것을 보고 의분이 일어나 그를 쳐 죽이고 맙니다. 그런데 다음 날 히브리 사람끼리 싸우는 것을 보고 모세가 잘못한 사람에게 “네가 어찌하여 동포를 치느냐” 하며 말리지요. 그러자 그가 “네가 애굽 사람을 죽임같이 나도 죽이려느냐” 하므로 애굽인을 죽인 것이 탄로 납니다. 이에 바로 왕이 모세를 죽이려고 찾습니다.
만일 모세가 자기 안위만 생각했다면 동족이 고통당하는 것을 보고도 자신에게 해가 미칠까 봐 모르는 체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기 민족인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는 것을 더 좋아했습니다(히 11:25).
결국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가서 그곳 미디안 제사장의 딸과 결혼하여 양 무리를 치며 삽니다. 왕자의 자존심이나 자신감도 사라지고 평범한 양치기의 생활에 적응해 갔지요. 이러한 광야 생활이 적응되니 마음의 연단이 찾아왔습니다. 자신은 가진 자 같았으나 막상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니 인생의 허무함이 느껴졌지요. 광야에서 양을 치며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내면서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철저히 깨닫습니다.
자기 의분에 못 이겨 사람을 쳐 죽였던 모세가 이처럼 낮아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연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육적으로 보면 모세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데 있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는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니라 철저히 낮아진 모세를 원하셨습니다.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이스라엘 자손의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출애굽기 3장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온전히 비운 모세를 불러 출애굽의 지도자로 세우고 큰 사명을 주십니다.
3.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한 모세
온유한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누구와도 걸리지 않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합니다. 자기 생각과 교양에 맞지 않아도 품어 주지요. 믿음이 연약하고 악을 발하는 사람도 외면하지 않고 끝까지 변화될 것을 바라며 기다려 줍니다.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는 장정만 해도 60만 명에 이르는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 땅으로 가는 40년 동안 많은 어려움을 겪습니다.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함께하시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을 보면서도 원망하였지요. 그러다가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죄를 범함으로 마침내 멸망할 위기에 처합니다. 이때 모세의 온유함이 얼마나 승했는지 성경에 잘 나와 있습니다.
출애굽기 32장을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시내 산에 올라가서 더디 내려오자 이스라엘 백성이 송아지 형상의 우상을 만들어서 신으로 섬기며 방탕하게 먹고 마시며 뛰놉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얼마나 진노하셨던지 백성들을 진멸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때 모세는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라고 간절한 중보 기도를 올리지요(출 32:31~32).
모세는 생명책에서 자기 이름이 지워질지라도, 즉 지옥에 떨어질지라도 백성들을 구원해 달라고 하나님께 매달린 것입니다. 자기 생명을 담보로 멸망할 위기에 처한 백성을 구해 달라고 했지요. 결국 모세의 공의를 뛰어넘는 사랑의 간구에 하나님께서는 뜻을 돌이키십니다. 이처럼 모세는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는 자들이라 할지라도 생명을 줄 수 있는 최고의 선으로 그들을 품었습니다.
4. 온 집에 충성한 모세
‘충성’이란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함은 물론이요, 맡은 직무 이상을 넉넉히 감당해 내는 것을 말합니다. 나아가 ‘온 집에 충성’이란 자기가 속한 교회뿐만 아니라 가정, 학교, 일터, 사업터 등 주어진 모든 분야에서 충성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온 집에 충성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과 정성, 시간과 물질까지도 아끼지 않고 기꺼이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히브리서 3장 5절에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했습니다. 모세가 얼마나 자신을 낮추어 맡은 사명을 온전히 감당했는지를 알 수 있지요.
당시 모세의 사명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금만 어려움이 오면 모세를 원망하고 대드는 백성들을 이끈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요.
백성의 지도자가 되면 그만큼 져야 할 짐도 많고 심리적으로 압박감이 크게 다가옵니다. 하지만 모세는 책임을 회피하거나 사명을 포기하지 않았고, 어떠한 어려움이 와도 하나님을 믿음으로 난관을 뚫어 나갔습니다.
아비와 같은 마음으로 백성들을 품었고, 그들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백성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이끌어 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끌어낸 날부터 생명이 다하기까지 모세는 단 한 순간도 편히 지낸 적이 없었지요. 백성들로 인해 흘린 눈물과 그들을 위해 올렸던 애통의 기도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 백성들을 저버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인도해 주시라’고 늘 간구했던 것입니다.
혹여 ‘사명이 무겁고 힘들다. 놓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면 모세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끌어낼 때부터 생명이 다할 때까지 충성하고서도 열매가 적다며 민망히 여겼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사함으로 잘 감당하여 풍성한 열매를 거두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이스라엘 백성을 끌어낸 출애굽의 지도자는 누구일까요?
2. 하나님께서는 왕자로서 당당한 모세가 아닌, 어떤 모습을 원하셨나요?
3.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기며 방탕하게 먹고 마셨을 때 진멸하고자 하십니다. 이때 모세가 하나님께 올린 기도는 무엇인가요?
4. 히브리서 3장 5절에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 )으로 충성하였고” 말씀합니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모세의 선’
1.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과 고난받는 것을 택했다.
2. 연단 중에도 하나님을 믿으며 모든 것에 중심에서 감사했다.
3.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했다.
4. 온 집에 충성했다.
2022-12-09
제49과성령의 열매를 맺자
갈라디아서 5:16~26
읽을말씀 : 갈라디아서 5:16~26 | 외울말씀 : 갈라디아서 5:22~23 | 참고 말씀: 히브리서 12:14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열매가 무엇인지 알아 풍성히 맺을 수 있도록 돕는다.
열매란 밭에 씨를 심어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을 피운 후 맺는 결과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의 마음 밭에 성령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아름다운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적 성장을 통해 맺어가는 아홉 가지 열매를 말합니다.
1. 사랑의 열매
사랑에는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육적인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언젠가는 변질하는 사랑입니다. 반면 영적인 사랑은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는 사랑이지요.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보다 차원이 높습니다. 예수님처럼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 나를 미워하는 원수를 위해 생명까지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2. 희락의 열매
희락은 문자 그대로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희락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인 희락이 마음에 맺히면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한 대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바로 영적인 희락입니다.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주님의 보혈로 구원받아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으니 항상 희락이 넘치는 것입니다.
3. 화평의 열매
화평이란 내가 옳아도 상대에게 맞춰 주고,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이 있고, 모든 사람의 유익을 쫓으며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부부간에, 형제간에, 부모 자녀 간에, 이웃 간에는 물론 그 외의 모든 사람과도 화평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애매하게 나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사람들과도 화평을 이뤄야 하지요. 화평이 깨지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고 원수 마귀 사단에 송사 거리만 내줄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아무리 충성하고 좋은 결과를 냈다 해도 화평이 깨지면 칭찬받을 수 없지요. 그러므로 성결되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4. 오래 참음의 열매
대부분 사람은 참기는 하지만 육적으로 인내합니다. 심히 감정 상할 일이 생기면 참느라고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기도 하고, 식음을 전폐하며 끙끙 앓다가 노이로제나 우울증 같은 병을 얻기도 하지요. 그러나 영적인 참음은 악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참는 것입니다. 힘든 일도 소망 중에 감사함으로 이겨 내며, 어떤 일을 당해도 요동하지 않고 애매하게 비난받아도 ‘오해가 있나 보다.’ 하며 어찌하든 상대의 마음을 풀어 주고자 하지요.
영적인 오래 참음에는 먼저 ‘마음을 개조하기 위한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마음에 악이 많을수록 오래 참기가 어렵고, 성결을 이루는 만큼 더 쉬어지지요. 다음으로는 ‘사람 사이의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상대가 내 생각과 성격에 맞지 않더라도 항상 선으로 이해하고 참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대한 오래 참음’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 응답받기까지 오래 참는 것을 말합니다.
5. 자비의 열매
자비의 영적인 의미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또 사람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용서하는 마음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자비의 마음으로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자비는 진정한 용서, 곧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젖먹이를 대하듯 모든 사람을 넉넉하게 품고 포용할 수 있습니다.
설령 어떤 사람에게 큰 허물이 있다고 해도, 혹은 중한 죄를 지은 것이 드러났다고 해도 판단 정죄하기보다 긍휼의 마음이 앞섭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고 상대를 이해해 주며 그를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6. 양선의 열매
양선은 영적으로는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선을 추구하는 마음만 간절하다고 양선의 열매를 맺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선을 간절히 사모하는 그 마음이 행하므로 드러나야 열매가 맺혔다 할 수 있지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낸다’고 한 것처럼 진정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외적으로도 선이 배어 나옵니다(마 12:35). 향수를 뿌린 사람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듯이 양선을 이룬 사람에게도 그리스도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7. 충성의 열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충성과는 차이가 납니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 행위만으로 충성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 어떤 특정한 분야에만 생명 다하기까지 열정을 쏟는다고 해서 온전한 충성이라고 하지도 않지요. 바로 영적인 충성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충성이란 꾸준히 마음의 할례를 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끊임없이 마음의 두루마기를 빠는 일로 즉 비진리, 악, 불의, 불법 등 모든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 죽도록 충성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육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열심히 일하고 충성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 66권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뤄 드린다는 의미이지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마음의 죄악을 벗어 버리는 영적인 충성이 병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8. 온유의 열매
영적인 온유함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德)이 겸한 것을 말합니다. 덕이 있으면 항상 유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반듯하게 치리해야 할 때는 위엄을 가지고 치리할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의 마음은 솜털같이 포근하지요. 푹신한 솜털에 돌을 던지거나 바늘로 찔러도, 솜털은 소리 없이 감쌉니다.
이처럼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대한다고 해도 온유한 사람의 마음에는 걸림이 없습니다. 곧 상대로 인해 혈기를 내지 않으며 서운해하지도 않지요. 또 상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않으며 그를 이해하고 감싸 줍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깃들이며 그에게서 쉼을 얻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마 5:5). 이 세상이 아닌 천국에서의 넓은 땅을 받지요. 이 땅에서 자기 안에 깃들였던 모든 영혼을 초청하여 함께할 만큼 큰 처소를 상급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9. 절제의 열매
절제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이 온전해지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시작은 사랑이지만 마지막은 절제입니다.
절제는 다른 열매에 비해 특성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적당하게 조절하여 안정되게 하고 단단하게 지탱해 주지요. 절제의 열매가 있어야 모든 열매가 온전해지기에 가장 마지막에 언급하신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한다.
2. ( )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다.
3. ( )은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이다.
4. ( )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이 겸한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절제의 열매’가 맺힐 때 나타나는 증거
1. 항상 질서를 좇아 행한다.
2. 진리를 행할 때 대상과 시기, 장소를 고려할 줄 안다.
3. 조급해하지 않고 침착하며 일의 전후를 분별하여 대응한다.
교육목표 :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령의 열매가 무엇인지 알아 풍성히 맺을 수 있도록 돕는다.
열매란 밭에 씨를 심어 싹이 나고 자라서 꽃을 피운 후 맺는 결과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의 마음 밭에 성령을 선물로 주신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아름다운 열매 맺기를 원하십니다. ‘성령의 열매’는 성령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영적 성장을 통해 맺어가는 아홉 가지 열매를 말합니다.
1. 사랑의 열매
사랑에는 육적인 사랑과 영적인 사랑이 있습니다. 육적인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 언젠가는 변질하는 사랑입니다. 반면 영적인 사랑은 상대의 유익을 구하며 어떤 상황에서도 변함이 없는 사랑이지요.
고린도전서 13장 4~7절에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했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서 5장에 나오는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오는 사랑보다 차원이 높습니다. 예수님처럼 자기 생명까지 줄 수 있는 희생이 포함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열매를 맺으면 나를 미워하는 원수를 위해 생명까지도 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2. 희락의 열매
희락은 문자 그대로 기쁨과 즐거움입니다. 그런데 영적인 희락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성령의 열매인 희락이 마음에 맺히면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말씀한 대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바로 영적인 희락입니다.
영원히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었던 우리가 주님의 보혈로 구원받아 행복과 기쁨이 넘치는 천국에 갈 수 있게 되었으니 항상 희락이 넘치는 것입니다.
3. 화평의 열매
화평이란 내가 옳아도 상대에게 맞춰 주고, 믿음이 작은 사람의 마음에 여유를 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진리 안에서 이것도 저것도 가한 융통성이 있고, 모든 사람의 유익을 쫓으며 편벽되이 치우치지 않는 마음입니다.
부부간에, 형제간에, 부모 자녀 간에, 이웃 간에는 물론 그 외의 모든 사람과도 화평해야 합니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뿐 아니라 애매하게 나를 미워하고 괴롭히는 사람들과도 화평을 이뤄야 하지요. 화평이 깨지는 곳에는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수 없고 원수 마귀 사단에 송사 거리만 내줄 뿐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아무리 충성하고 좋은 결과를 냈다 해도 화평이 깨지면 칭찬받을 수 없지요. 그러므로 성결되어 모든 사람과 화평을 이루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4. 오래 참음의 열매
대부분 사람은 참기는 하지만 육적으로 인내합니다. 심히 감정 상할 일이 생기면 참느라고 이를 악물고 부들부들 떨기도 하고, 식음을 전폐하며 끙끙 앓다가 노이로제나 우울증 같은 병을 얻기도 하지요. 그러나 영적인 참음은 악으로 참는 것이 아니라 선으로 참는 것입니다. 힘든 일도 소망 중에 감사함으로 이겨 내며, 어떤 일을 당해도 요동하지 않고 애매하게 비난받아도 ‘오해가 있나 보다.’ 하며 어찌하든 상대의 마음을 풀어 주고자 하지요.
영적인 오래 참음에는 먼저 ‘마음을 개조하기 위한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마음에 악이 많을수록 오래 참기가 어렵고, 성결을 이루는 만큼 더 쉬어지지요. 다음으로는 ‘사람 사이의 오래 참음’이 있습니다. 상대가 내 생각과 성격에 맞지 않더라도 항상 선으로 이해하고 참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대한 오래 참음’이 있는데, 이는 하나님께 응답받기까지 오래 참는 것을 말합니다.
5. 자비의 열매
자비의 영적인 의미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또 사람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용서하는 마음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자비의 마음으로 인생들을 긍휼히 여기십니다.
자비는 진정한 용서, 곧 원수까지라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젖먹이를 대하듯 모든 사람을 넉넉하게 품고 포용할 수 있습니다.
설령 어떤 사람에게 큰 허물이 있다고 해도, 혹은 중한 죄를 지은 것이 드러났다고 해도 판단 정죄하기보다 긍휼의 마음이 앞섭니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않고 상대를 이해해 주며 그를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6. 양선의 열매
양선은 영적으로는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입니다. 그런데 선을 추구하는 마음만 간절하다고 양선의 열매를 맺혔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선을 간절히 사모하는 그 마음이 행하므로 드러나야 열매가 맺혔다 할 수 있지요.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낸다’고 한 것처럼 진정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외적으로도 선이 배어 나옵니다(마 12:35). 향수를 뿌린 사람에게서 좋은 향기가 나듯이 양선을 이룬 사람에게도 그리스도 향기가 나는 것입니다.
7. 충성의 열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은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충성과는 차이가 납니다. 맡은 일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그 행위만으로 충성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 어떤 특정한 분야에만 생명 다하기까지 열정을 쏟는다고 해서 온전한 충성이라고 하지도 않지요. 바로 영적인 충성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충성이란 꾸준히 마음의 할례를 하는 작업을 말합니다. 끊임없이 마음의 두루마기를 빠는 일로 즉 비진리, 악, 불의, 불법 등 모든 죄를 버리고 성결되어 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 10절에 “… 죽도록 충성하라…” 했습니다.
여기서 ‘죽도록 충성한다’는 것은 단순히 육의 목숨을 다하기까지 열심히 일하고 충성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 66권에 담긴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 다해 이뤄 드린다는 의미이지요.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충성을 하려면 반드시 마음의 죄악을 벗어 버리는 영적인 충성이 병행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8. 온유의 열매
영적인 온유함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德)이 겸한 것을 말합니다. 덕이 있으면 항상 유순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반듯하게 치리해야 할 때는 위엄을 가지고 치리할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의 마음은 솜털같이 포근하지요. 푹신한 솜털에 돌을 던지거나 바늘로 찔러도, 솜털은 소리 없이 감쌉니다.
이처럼 상대가 자신을 어떻게 대한다고 해도 온유한 사람의 마음에는 걸림이 없습니다. 곧 상대로 인해 혈기를 내지 않으며 서운해하지도 않지요. 또 상대의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지도 않으며 그를 이해하고 감싸 줍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깃들이며 그에게서 쉼을 얻는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은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마 5:5). 이 세상이 아닌 천국에서의 넓은 땅을 받지요. 이 땅에서 자기 안에 깃들였던 모든 영혼을 초청하여 함께할 만큼 큰 처소를 상급으로 받게 되는 것입니다.
9. 절제의 열매
절제는 다른 성령의 열매들이 온전해지도록 조절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의 시작은 사랑이지만 마지막은 절제입니다.
절제는 다른 열매에 비해 특성이 두드러지지 않지만 매우 중요합니다. 모든 것을 적당하게 조절하여 안정되게 하고 단단하게 지탱해 주지요. 절제의 열매가 있어야 모든 열매가 온전해지기에 가장 마지막에 언급하신 것입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은 단순히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과 조건 속에서도 항상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말한다.
2. ( )는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고 용서할 수 없는 사람도 진리 안에서 능히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이다.
3. ( )은 성령 안에서 선을 추구하는 마음, 곧 진리 안에서 선을 좇아 행하는 마음이다.
4. ( )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품에 덕이 겸한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절제의 열매’가 맺힐 때 나타나는 증거
1. 항상 질서를 좇아 행한다.
2. 진리를 행할 때 대상과 시기, 장소를 고려할 줄 안다.
3. 조급해하지 않고 침착하며 일의 전후를 분별하여 대응한다.
2022-12-02
제48과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요한복음 21:15~17
읽을말씀 : 요한복음 21:15~17 | 외울말씀 : 요한복음 6:53 | 참고 말씀: 요한복음 1:29
교육목표 : 주님께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당부하신 대로 영혼 구원에 힘쓰는 일꾼이 되게 한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고향 갈릴리로 돌아온 일곱 제자는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하자 함께 따라나섭니다.
제자들은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하십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자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지요. 그날 디베랴 바닷가에서 주님과 함께 맞는 아침은 여느 때보다 행복했습니다.
1.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침 식사를 한 후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는 시몬 베드로에게 질문한 것이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선 모든 사람, 곧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주의 종들과 일꾼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지요.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을 모르셔서 세 번씩이나 물으신 것이 아니지요. 어떤 사람은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경고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결코 주님께서는 이미 회개하고 돌이킨 일로 찌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는 베드로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그 마음에 열정이 어떠했는지 잘 아셨지만 스스로 고백하게 함으로써 온전히 마음에 각인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주님께서 물으실 때 어떻게 고백할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이 있는 만큼 주님의 마음에 맞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많은 연단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세 번 물으실 때 본문과 같이 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 그는 주님께서 왜 자신에게 이같이 질문하셨는지를 깨우치고, 그때 자신이 어떻게 답했는지를 떠올리며 사도의 길을 충만하게 달려갔지요. 주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돌보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힘쓰다가 기쁨으로 순교의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2. 내 어린양을 먹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신 첫 번째 질문에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어린양을 먹이라” 말씀하시지요.
여기서 어린양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혹자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양이라고 표현하셨으니 어린양은 초신자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이지요.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린양은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표현했지요. 레위기에는 어린양을 제물로 드리는 장면이 곳곳에 나옵니다. 어린양은 영적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화목제물로 오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2장 1~11절에도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어린양을 취하여 불에 구워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6장 51~5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하셨습니다.
바로 어린양인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만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입니다(요 1:14). 따라서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 삼고 그것을 지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신 것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진리인 성경 66권의 말씀을 먹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지요.
3. 내 양을 치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다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이때도 베드로는 동일하게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도하며 죄를 싸워 버리고 계명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꾼이 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내 양을 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양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베드로전서 5장 2~3절에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말씀합니다. 즉 양이란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러므로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라는 뜻입니다. 맡은 양 떼에게 꼴을 잘 먹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밝히 알고 믿음이 성장하도록 해 주며, 또 시험 환난을 피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알려 주고 기도해 주는 것을 의미하지요.
당시에는 교회 건물이나 양 떼가 없었으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해 교회를 세우고 양 떼를 만들어 갔습니다. 오늘날은 교회를 세워 양 무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면서 정성껏 갈무리하는 경우가 많지요.
주의 종뿐 아니라 장로, 집사, 교사 등 직분을 받아 양 무리를 치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함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넘어진 양 떼를 일으켜 주고 치료해 주는 등 바른길로 인도해 줘야 합니다. 이렇게 열심과 의욕을 가지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최선을 다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곧 양을 치는 것입니다.
4. 내 양을 먹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똑같은 질문에 근심하여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지요.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 하고 부탁하십니다.
베드로가 근심한 것은 어떤 악한 마음이나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중심에서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 중에는 믿음이 잘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 한 사람도 많습니다. 변화가 더디고 시험에 드는 사람도 있지요. 이런 사람들을 더 큰 사랑과 섬김으로 돌보는 것이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병들고 상한 양을 치료하여 건강하게 하고, 길 잃은 양을 바른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지요. 진리 안에 바로 서지 못하고 당을 지으며 시기 질투하는 등 목자를 시험하는 양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 생명의 양식을 먹임으로 순한 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양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하늘로부터 임하여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 후,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부탁하심으로 그 중요성을 명심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더욱 믿음과 순종, 겸손과 섬김으로 주어진 사명을 능력 있게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말씀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진리인 성경 66권의 말씀을 먹이라는 의미이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다.
2. ( )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라는 뜻이다.
3. ( )는 말씀은, 변화가 더디고 시험에 드는 사람, 병들고 상한 영혼들을 더 큰 사랑과 섬김으로 돌보는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 믿음의 고백을 한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그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며 천국 열쇠를 주셨다(마 16:19).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생명 다해 주님을 증거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다.
교육목표 : 주님께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당부하신 대로 영혼 구원에 힘쓰는 일꾼이 되게 한다.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가 부활하신 주님을 뵙고 고향 갈릴리로 돌아온 일곱 제자는 마땅히 할 일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하자 함께 따라나섭니다.
제자들은 밤새 그물을 던졌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나타나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하십니다.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자 그물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지요. 그날 디베랴 바닷가에서 주님과 함께 맞는 아침은 여느 때보다 행복했습니다.
1.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아침 식사를 한 후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이는 시몬 베드로에게 질문한 것이지만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믿음의 반석 위에 선 모든 사람, 곧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주의 종들과 일꾼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이지요.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을 모르셔서 세 번씩이나 물으신 것이 아니지요. 어떤 사람은 베드로가 주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경고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결코 주님께서는 이미 회개하고 돌이킨 일로 찌르시는 분이 아닙니다. 이는 베드로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그 마음에 열정이 어떠했는지 잘 아셨지만 스스로 고백하게 함으로써 온전히 마음에 각인되게 하신 것입니다.
여러분이라면 주님께서 물으실 때 어떻게 고백할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생각이 있는 만큼 주님의 마음에 맞는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베드로는 이미 많은 연단을 받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세 번 물으실 때 본문과 같이 답을 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 그는 주님께서 왜 자신에게 이같이 질문하셨는지를 깨우치고, 그때 자신이 어떻게 답했는지를 떠올리며 사도의 길을 충만하게 달려갔지요. 주님의 마음, 하나님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돌보며 구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힘쓰다가 기쁨으로 순교의 자리에까지 이르렀습니다.
2. 내 어린양을 먹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신 첫 번째 질문에 베드로는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어린양을 먹이라” 말씀하시지요.
여기서 어린양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혹자는 하나님께서 성도를 양이라고 표현하셨으니 어린양은 초신자를 의미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해석했기 때문이지요.
성경을 자세히 살펴보면 어린양은 예수님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가리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표현했지요. 레위기에는 어린양을 제물로 드리는 장면이 곳곳에 나옵니다. 어린양은 영적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화목제물로 오시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출애굽기 12장 1~11절에도 ‘흠 없고 일 년 된 수컷으로 어린양을 취하여 불에 구워 먹으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6장 51~5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하셨습니다.
바로 어린양인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셔야만 구원받아 영생을 얻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분’입니다(요 1:14). 따라서 예수님의 살을 먹고 예수님의 피를 마신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잘 양식 삼고 그것을 지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론적으로,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신 것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진리인 성경 66권의 말씀을 먹이라는 의미입니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지요.
3. 내 양을 치라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다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이때도 베드로는 동일하게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지요. 그러자 이번에는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치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여 기도하며 죄를 싸워 버리고 계명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달려가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일꾼이 됩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내 양을 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양은 누구를 의미하는 것일까요? 베드로전서 5장 2~3절에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말씀합니다. 즉 양이란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를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지요.
그러므로 “내 양을 치라”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라는 뜻입니다. 맡은 양 떼에게 꼴을 잘 먹여서 예수 그리스도를 더 밝히 알고 믿음이 성장하도록 해 주며, 또 시험 환난을 피할 수 있도록 말씀으로 알려 주고 기도해 주는 것을 의미하지요.
당시에는 교회 건물이나 양 떼가 없었으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해 교회를 세우고 양 떼를 만들어 갔습니다. 오늘날은 교회를 세워 양 무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하면서 정성껏 갈무리하는 경우가 많지요.
주의 종뿐 아니라 장로, 집사, 교사 등 직분을 받아 양 무리를 치는 사람들도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함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넘어진 양 떼를 일으켜 주고 치료해 주는 등 바른길로 인도해 줘야 합니다. 이렇게 열심과 의욕을 가지고 성령 충만한 가운데 최선을 다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곧 양을 치는 것입니다.
4. 내 양을 먹이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세 번째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십니다.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똑같은 질문에 근심하여 “주여 모든 것을 아시오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을 주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하지요. 그러자 주님께서는 “내 양을 먹이라” 하고 부탁하십니다.
베드로가 근심한 것은 어떤 악한 마음이나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신이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했고, 중심에서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지만, 자신의 부족함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여기서 “내 양을 먹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 중에는 믿음이 잘 성장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그렇지 못 한 사람도 많습니다. 변화가 더디고 시험에 드는 사람도 있지요. 이런 사람들을 더 큰 사랑과 섬김으로 돌보는 것이 양을 먹이는 것입니다.
병들고 상한 양을 치료하여 건강하게 하고, 길 잃은 양을 바른길로 인도해 주는 것이지요. 진리 안에 바로 서지 못하고 당을 지으며 시기 질투하는 등 목자를 시험하는 양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힘입어 생명의 양식을 먹임으로 순한 양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면 양을 먹일 수 있는 능력이 하늘로부터 임하여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세 번에 걸쳐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신 후, “내 어린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부탁하심으로 그 중요성을 명심하게 하셨습니다. 베드로처럼 주님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며 더욱 믿음과 순종, 겸손과 섬김으로 주어진 사명을 능력 있게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 )는 말씀은, 주님의 살과 피 곧 진리인 성경 66권의 말씀을 먹이라는 의미이다. 바로 복음을 전하라는 뜻이다.
2. ( )는 말씀은, 성도들을 열심히 심방하고 말씀을 가르쳐 주며 기도하여 진리 가운데 인도해 주라는 뜻이다.
3. ( )는 말씀은, 변화가 더디고 시험에 드는 사람, 병들고 상한 영혼들을 더 큰 사랑과 섬김으로 돌보는 것을 말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천국 열쇠를 받은 베드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을 때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고 믿음의 고백을 한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고 그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이며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며 천국 열쇠를 주셨다(마 16:19). 베드로는 성령을 받고 권능을 받아 생명 다해 주님을 증거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한다.
2022-11-25
제47과죽어지는 밀알이 되자
요한복음 12:24~26
읽을말씀 : 요한복음 12:24~26 | 외울말씀 : 요한복음 12:24 | 참고 말씀: 히브리서 12:2
교육목표 : 예수님처럼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에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한 알의 밀이 죽어 열매 맺는 과정을 보면, 씨앗은 싹이 나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죽어 모든 부분을 양분으로 내어줍니다. 비록 형체는 없어져도 새 생명체를 탄생시켜 많은 열매를 맺지요. 반면 씨앗이 죽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1. 죽어지는 밀알이 되신 예수님
요한복음 12장 24절에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한 알의 밀’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죽어지는 한 알의 밀이 되셨을까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 없이 피조물에 의해 수치와 모욕과 고초를 받으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며, 가시관을 쓰시고 온갖 조롱을 받으셨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부끄러움을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결국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나무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돌아가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지요. 그리하여 누구든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사망의 길로 가는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말하지요.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예수님처럼 어떠한 고난을 겪는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철저히 죽는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1)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 학교,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들으며 지식을 쌓아갑니다. 그 쌓은 지식과 교양으로 자아를 형성해 가지요. 그런데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죄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이는 그동안 자아를 형성했던 것들이 대부분 진리에 위배되므로 부딪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때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며 자기를 부인해야 자아가 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생각과 이론을 철저히 깨뜨려야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고후 10:5). 그래서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해야 버릴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히 12:4).
죄는 대충 회개한다고 벗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같이 기도하며 죄를 버리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세례를 내려 죄성을 태우기도 하시고,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지요. 또한 내주하시는 성령이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며 버릴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한 알의 밀이 죽을 때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되고 껍질도 썩어 없어집니다. 이처럼 우리가 죽어지는 밀알이 되려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진리로 바뀌고 자아라는 틀 자체도 없어야 합니다. 성장하면서 진리가 아닌 것들로 만들어진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2) 가정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만일 남편이 주님을 믿지 않고 아내만 믿는 가정이라면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며, 진리 안에서 순종하고 섬기며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죽어지는 밀알이 되면 남편이 변화를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남편만 주님을 믿는 가정이라 해도 마찬가지이지요.
가족 복음화를 온전히 이루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가정이 되려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먼저 죽어져야 합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기 때문에 본이 되지 못하면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교회 다니더니 착해졌다. 부지런해졌다.” 등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죽어지려면 자신의 구습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구습이란 하나님을 믿기 전 옛사람일 때 자기 몸에 밴 좋지 않은 습관을 말합니다.
자라온 환경 속에서 욕이 일상의 말이 되었거나 혈기가 많아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손찌검을 하는 것, 또 방이 지저분해도 치우지 않고 방치해 두는 것 등입니다. 이런 나쁜 구습들을 버리고 성실히 본이 되어 가족을 섬긴다면 가족 복음화는 물론 항상 웃음꽃이 피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성도는 혈육으로 맺어진 형제보다 더 가까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살아갈 가족입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성도의 허물을 들추며 남에게 전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은 상대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기 의로움으로 상대를 지적하고, 상대로 인해 피해를 보면 불편해하고 용서하기가 어렵지요.
자신이 얼마나 죽었는지는 화평의 분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틀을 고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화평하기가 어렵습니다. 틀이라는 것은 딱딱하여 부딪히면 소리가 나니 화평이 깨지기 마련이지요. 만일 김 집사와는 잘 지내는 데 최 집사와는 불편하다면 화평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 한 사람과도 화평을 이룰 수 있어야 하지요.
교회 직분의 상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질서를 따라 순종과 섬김으로 화평을 좇았는지, 소속된 곳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죽어지는 밀알과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당부하셨지요(행 1:8). 주님의 증인이 되어 복음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할 때 하나님 나라가 크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투자해야 합니다. 많은 사랑의 수고가 따르지요.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그들이 은혜를 받고 빛이신 하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전도된 영혼을 갈무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헌신과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많은 영혼이 영적 성장을 이루며 교회가 부흥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우친 사람은 이 사랑에 빚진 심정으로 전도하며 영혼 갈무리하는 일을 수고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고도 기뻐하며 자원함으로 헌신하지요.
로마서 8장 17절에 “…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죽어짐으로 사망으로 가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주님의 피 값을 찾아드리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복음 12장 24절에 ‘한 알의 밀’은 누구를 의미할까요?
2.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가 죽어야 한다.
② 가정에서 죽어져야 한다.
③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한다.
④ ( )를 위해 죽어져야 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옛사람, 새사람’(골 3:9 ; 엡 4:24)
‘옛사람’이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고 주 안에서 거듭나지 않아 비진리 가운데 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반면 ‘새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옛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엡 4:23~24).
교육목표 : 예수님처럼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며 해와 같이 빛나는 영광에 이르는 복된 성도가 되게 한다.
한 알의 밀이 죽어 열매 맺는 과정을 보면, 씨앗은 싹이 나고 뿌리를 내리기 위해 죽어 모든 부분을 양분으로 내어줍니다. 비록 형체는 없어져도 새 생명체를 탄생시켜 많은 열매를 맺지요. 반면 씨앗이 죽지 않으면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은 영계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1. 죽어지는 밀알이 되신 예수님
요한복음 12장 24절에 “…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한 알의 밀’은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구세주가 되신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죽어지는 한 알의 밀이 되셨을까요? 창조주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 없이 피조물에 의해 수치와 모욕과 고초를 받으셨습니다.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며, 가시관을 쓰시고 온갖 조롱을 받으셨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부끄러움을 전혀 개의치 않으셨습니다. 결국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나무 십자가에 달려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돌아가셨다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지요. 그리하여 누구든지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구원받아 천국에서 영생 복락을 누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또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저는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말씀했습니다.
여기서 ‘그 앞에 있는 즐거움’이란 사망의 길로 가는 죄인들을 구원할 수 있다는 사랑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다는 기쁨을 의미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어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가 될 수 있다는 즐거움을 말하지요.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예수님처럼 어떠한 고난을 겪는다 해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며 철저히 죽는다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2.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1) 자아가 죽어야 합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부모, 형제, 학교, 친구, 이웃 등 다양한 환경을 통해 보고 들으며 지식을 쌓아갑니다. 그 쌓은 지식과 교양으로 자아를 형성해 가지요. 그런데 주님을 영접하여 하나님 말씀을 듣고 배우면서 죄와의 싸움이 시작됩니다. 이는 그동안 자아를 형성했던 것들이 대부분 진리에 위배되므로 부딪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때 ‘내 생각과 이론보다 하나님 말씀이 옳습니다.’ 하며 자기를 부인해야 자아가 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위배되는 생각과 이론을 철저히 깨뜨려야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고후 10:5). 그래서 죄와 싸우되 피 흘리기까지 대항해야 버릴 수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히 12:4).
죄는 대충 회개한다고 벗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같이 기도하며 죄를 버리기 위해 피 흘리기까지 싸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성령의 불세례를 내려 죄성을 태우기도 하시고, 죄를 버릴 수 있는 능력을 주시지요. 또한 내주하시는 성령이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시며 버릴 수 있게 도와주십니다.
한 알의 밀이 죽을 때 그 속의 내용물이 양분으로 공급되고 껍질도 썩어 없어집니다. 이처럼 우리가 죽어지는 밀알이 되려면 자아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 진리로 바뀌고 자아라는 틀 자체도 없어야 합니다. 성장하면서 진리가 아닌 것들로 만들어진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야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2) 가정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만일 남편이 주님을 믿지 않고 아내만 믿는 가정이라면 아내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남편이 구원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며, 진리 안에서 순종하고 섬기며 사랑해야 할 것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죽어지는 밀알이 되면 남편이 변화를 받아 구원에 이를 수 있습니다. 남편만 주님을 믿는 가정이라 해도 마찬가지이지요.
가족 복음화를 온전히 이루고 사랑으로 하나 되는 가정이 되려면 믿음이 있는 사람이 먼저 죽어져야 합니다.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서 모든 것을 지켜보기 때문에 본이 되지 못하면 열매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교회 다니더니 착해졌다. 부지런해졌다.” 등 인정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가정에서 죽어지려면 자신의 구습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구습이란 하나님을 믿기 전 옛사람일 때 자기 몸에 밴 좋지 않은 습관을 말합니다.
자라온 환경 속에서 욕이 일상의 말이 되었거나 혈기가 많아 작은 일에도 쉽게 화를 내고 손찌검을 하는 것, 또 방이 지저분해도 치우지 않고 방치해 두는 것 등입니다. 이런 나쁜 구습들을 버리고 성실히 본이 되어 가족을 섬긴다면 가족 복음화는 물론 항상 웃음꽃이 피는 화목한 가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3)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합니다
성도는 혈육으로 맺어진 형제보다 더 가까운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에서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영원히 함께 살아갈 가족입니다. 그러니 교회 안에서 성도의 허물을 들추며 남에게 전하는 것은 합당치 않습니다.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자기’가 살아 있는 사람은 상대의 허물을 용납하지 못합니다. 자기 의로움으로 상대를 지적하고, 상대로 인해 피해를 보면 불편해하고 용서하기가 어렵지요.
자신이 얼마나 죽었는지는 화평의 분야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의와 틀을 고집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과 화평하기가 어렵습니다. 틀이라는 것은 딱딱하여 부딪히면 소리가 나니 화평이 깨지기 마련이지요. 만일 김 집사와는 잘 지내는 데 최 집사와는 불편하다면 화평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에게 잘해 주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렇지 못 한 사람과도 화평을 이룰 수 있어야 하지요.
교회 직분의 상하 관계 속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질서를 따라 순종과 섬김으로 화평을 좇았는지, 소속된 곳에서 사랑으로 하나 되었는지 점검해 봐야 합니다. 죽어지는 밀알과 같은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화평을 이룰 수 있습니다.
4)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도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당부하셨지요(행 1:8). 주님의 증인이 되어 복음으로 많은 사람을 구원할 때 하나님 나라가 크게 이루어집니다.
우리가 한 사람을 전도하기 위해서도 많은 시간과 물질과 정성을 투자해야 합니다. 많은 사랑의 수고가 따르지요.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그들이 은혜를 받고 빛이신 하나님을 찾기 때문입니다.
전도된 영혼을 갈무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헌신과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않을 때 많은 영혼이 영적 성장을 이루며 교회가 부흥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우친 사람은 이 사랑에 빚진 심정으로 전도하며 영혼 갈무리하는 일을 수고롭게 여기지 않습니다. 자신의 것을 다 내어주고도 기뻐하며 자원함으로 헌신하지요.
로마서 8장 17절에 “…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말씀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 나라를 위해 희생하고 죽어짐으로 사망으로 가는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여 주님의 피 값을 찾아드리는 자녀가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요한복음 12장 24절에 ‘한 알의 밀’은 누구를 의미할까요?
2. 죽어지는 밀알이 되어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 )가 죽어야 한다.
② 가정에서 죽어져야 한다.
③ 교회 안에서 죽어져야 한다.
④ ( )를 위해 죽어져야 한다.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옛사람, 새사람’(골 3:9 ; 엡 4:24)
‘옛사람’이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고 주 안에서 거듭나지 않아 비진리 가운데 행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반면 ‘새사람’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새롭게 태어난 사람을 말한다.
옛사람이 거듭나기 위해서는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어야 한다(엡 4:23~24).
2022-11-18
제46과하나님께 감사
출애굽기 23:16
읽을말씀 : 출애굽기 23:16 | 외울말씀 : 시편 17:8 | 참고 말씀: 레위기 23:42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알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낼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면 감동스럽고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1.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의 계절을 맞아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이스라엘의 절기 중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지요.
수장절은 원래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추수하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확한 곡식을 저장한 후 추수 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는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레위기 23장 34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지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40년 광야 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43절에는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풍성하게 수확하여 감동적인 추수 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 생활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수장절은 출애굽 하여 40년 광야 생활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보호하심과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제사를 지내는 절기입니다.
2. 청교도들의 신앙과 추수감사절
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의 개척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지요. 도착한 그곳은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실패하고 말았지요.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의 첫 추수감사절을 지냈습니다.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지낸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절대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웠지요. 그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
먼저, 이 세상의 수많은 질병과 사고, 재앙으로부터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질병이 있는데 그중에는 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지요.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도 심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 마약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와 명예, 권세가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살하기도 하지요.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병, 의학으로 밝힐 수 없는 병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여성도 한 분은 ‘양수과소증’으로 도저히 살릴 길 없었던 태아를 기도 받고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양수가 거의 없는 태반 속에서 그 연약한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남았지요. 또 한 분은 급성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진전되어 위급한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던 중 통회자복을 하고 기도를 받으므로 수술하지 않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만나 주시지요.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재앙과 사고로부터도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지구는 대지진과 가뭄, 산불과 태풍,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 소식이 끊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지켜 주시지요. 혹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철저히 돌이키고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해결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원한 천국 소망을 주시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소망이 온전해지도록 은혜와 감동을 주신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전 세계 수많은 성도가 『천국』 책을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해졌습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저도 새 예루살렘 성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말씀한 대로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까지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로 양육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찬양이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알곡처럼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더욱 사랑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질병, 사고, 재앙을 만나지 않고 지킴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진주 문’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열두 개의 문이 있다. 문마다 큰 천사가 지키고 있어 성의 위엄과 권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참을 올려다볼 정도로 큰 아치형의 문 전체가 하나의 영롱한 진주로 되어 있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며 황금보석 손잡이가 달려 있으나 굳이 손으로 열지 않아도 저절로 열린다.
열두 진주 문을 통과하려면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내기까지 고통을 인내한 것처럼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여 승리했을 때 들어갈 수 있다.
교육목표 :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알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감사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알곡 성도가 되게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40년 광야 생활을 마치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풍성한 소산으로 하나님께 제사를 지낼 때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우리도 광야 같은 이 세상에서 주님을 만나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을 받으며,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갈 수 있다면 감동스럽고 하나님께도 큰 기쁨이 될 것입니다.
1. 추수감사절의 유래
추수의 계절을 맞아 영육 간에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리는 추수감사절의 유래를 살펴보겠습니다.
추수감사절은 이스라엘의 절기 중 수장절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23장 16절에 “…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年終 그해 마지막)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말씀하지요.
수장절은 원래 곡식을 자라게 하시고 추수하도록 도우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절기입니다. 수확한 곡식을 저장한 후 추수 감사제를 드림으로 한 해의 농사를 종결하였지요. 성경에는 수장절을 초막절 혹은 장막절이라고도 불렀습니다.
레위기 23장 34절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 월 십오 일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칠 일 동안 지킬 것이라” 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수장절이 되면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7일간 지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이 40년 광야 생활을 하면서 초막을 짓고 산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입니다.
43절에는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말씀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면 풍성하게 수확하여 감동적인 추수 감사제를 드리면서, 애굽에서 나와 광야 생활했던 고난의 때를 잊지 말고 기념하도록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수장절은 출애굽 하여 40년 광야 생활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보호하심과 모든 추수를 완료한 것에 대한 감사로 제사를 지내는 절기입니다.
2. 청교도들의 신앙과 추수감사절
오늘날 세계적인 강국인 미국의 개척 역사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청교도들의 눈물과 감사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청교도들은 신앙의 자유를 찾아 위험을 무릅쓰고 신대륙을 향해 떠났습니다. 험난한 항해 끝에 마침내 미국 동부 플리머스 해안에 상륙했지요. 도착한 그곳은 혹독하게 추운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식량 부족으로 영양실조와 전염병에 걸려 수십 명이 목숨을 잃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가지고 온 보리와 밀은 신대륙의 기후 조건과 맞지 않아 농사도 실패하고 말았지요. 극심한 추위와 배고픔, 원주민들의 위협과 앞날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해 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 결과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적극적으로 그들을 도와주었지요. 인디언 추장 사모세트는 몇 가지 씨앗을 주면서 재배 기술까지 알려 주었습니다. 그의 도움으로 옥수수, 호박, 감자 등 햇곡식을 추수할 수 있었습니다.
마침내 청교도들은 귀한 열매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감자, 옥수수, 호박으로 만든 팬케이크를 굽고 칠면조 고기를 요리했지요. 인디언들을 초대해 함께 먹으며 신대륙에서의 첫 추수감사절을 지냈습니다.
이렇게 추수감사절을 지낸 청교도들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절대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럴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고, 나아가 교회와 학교를 세웠지요. 그들은 믿음이 있었기에 고통을 기쁨으로,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어 나감으로 마침내는 강대국 미국을 건설하였습니다.
3. 추수감사절을 맞아 하나님께 감사할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크신 섭리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성도들은 추수감사절을 맞아 무엇에 감사해야 할까요?
먼저, 이 세상의 수많은 질병과 사고, 재앙으로부터 사랑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불꽃 같은 눈동자로 지키시며 보호해 주신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질병이 있는데 그중에는 의학으로 완치할 수 없는 불치, 난치병이 수두룩합니다. 신종, 변종 질병도 끊임없이 출현하고 있지요. 정신적인 병, 마음의 병도 심각합니다. 수많은 사람이 자살로 이어지는 우울증을 앓고 알코올, 마약의 노예로 살아갑니다. 그래서 부와 명예, 권세가 있고 겉보기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자살하기도 하지요. 이 외에도 우리가 모르는 병, 의학으로 밝힐 수 없는 병도 수없이 많습니다.
이처럼 질병 많은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늘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여성도 한 분은 ‘양수과소증’으로 도저히 살릴 길 없었던 태아를 기도 받고 무사히 출산했습니다. 양수가 거의 없는 태반 속에서 그 연약한 생명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살아남았지요. 또 한 분은 급성 맹장염이 복막염으로 진전되어 위급한 상황에 부닥쳤습니다. 그런데 병원에 누워서 수술을 기다리던 중 통회자복을 하고 기도를 받으므로 수술하지 않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간절히 찾으면 만나 주시지요. 질병뿐만 아니라 각종 재앙과 사고로부터도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날이 갈수록 지구는 대지진과 가뭄, 산불과 태풍, 폭우, 폭설 등 자연재해 소식이 끊기지 않습니다. 이렇게 위험천만한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능히 지켜 주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께서는 누구나 지켜 주시지요. 혹 하나님 말씀 안에 거하지 못해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도 철저히 돌이키고 믿음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의지하면 해결됩니다.
다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영원한 천국 소망을 주시되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한 소망이 온전해지도록 은혜와 감동을 주신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합니다.
전 세계 수많은 성도가 『천국』 책을 읽고 “이 책이 제 삶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천국을 막연하게만 생각했는데 이제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천국 소망이 더해지니 신앙생활이 행복해졌습니다.”라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이분들의 한결같은 소원은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 예루살렘 성에 가는 것이지요. 이제는 “저도 새 예루살렘 성에 갈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24절에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 말씀한 대로 자신의 힘으로는 갈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새 예루살렘 성까지 이끄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천국을 만드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시며 마지막 때에 성령의 역사 속에 하나님의 참 자녀로 양육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주신 찬양이 있습니다.
“진주문 지나 새 예루살렘 들어와 보니 지난 일들 내 눈앞에 스쳐 지나가네” 이 찬양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이런 은혜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올리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많은 축복과 은혜를 부어 주셨습니다. 알곡처럼 우리의 영혼이 잘되게 하시고 이 험한 세상 속에서도 지켜 주시며 의의 길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추수감사절을 맞아 좋으신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더욱 사랑함으로 새 예루살렘 성의 주인공이 되시기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수장절을 지키라고 명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2. 우리가 어떻게 하면 질병, 사고, 재앙을 만나지 않고 지킴 받으며 살 수 있을까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새 예루살렘 성의 열두 진주 문’
새 예루살렘 성의 성곽에는 동서남북에 각각 세 개씩 열두 개의 문이 있다. 문마다 큰 천사가 지키고 있어 성의 위엄과 권세를 한눈에 느낄 수 있다.
가까이에서 보면 한참을 올려다볼 정도로 큰 아치형의 문 전체가 하나의 영롱한 진주로 되어 있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며 황금보석 손잡이가 달려 있으나 굳이 손으로 열지 않아도 저절로 열린다.
열두 진주 문을 통과하려면 정금과 같은 믿음을 가져야 한다.
조개가 진주를 만들어내기까지 고통을 인내한 것처럼 믿음의 연단을 잘 통과하여 승리했을 때 들어갈 수 있다.
2022-11-11
제45과사람의 본분을 찾자
전도서 12:13~14
읽을말씀 : 전도서 12:13~14 | 외울말씀 : 전도서 12:13 | 참고 말씀: 베드로전서 1:16
교육목표 :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거룩하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우리가 삶의 목표와 방향을 어디에 두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삶의 목표를 영원한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의 성공과 부귀영화에 두는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마저 무시해 버리기도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망각한 채 육신의 정욕을 좇아 무절제하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람의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사람의 본분이란
창세기 1장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도록 역사하셨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명령도 지키지 않으면서 살아갑니다. 이처럼 사람의 본분을 망각한 채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웠으며 거짓 없이 진실하고 깨끗하며 온전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면서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렸지요.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생령 아담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죄의 삯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으니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게 되었지요(롬 6:23).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 정욕을 좇아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은 죄악이 더욱 관영함으로 인륜 도덕이 땅에 떨어져 부모 자녀 간에도 사랑을 찾아보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지요.
이처럼 죄를 범한 아담과 그의 후손은 모두 죄인이 되었기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내어주셨지요.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죽은 영이 살아나 사람의 본분을 되찾으며 영생할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본분이란 무엇일까요?
전도서 12장 13절에 “…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했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가 있는데 바로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지요.
이어지는 14절에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했고, 전도서 1장 2~3절에는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고 헛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정욕을 쫓아 이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되지요.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방법
1) 하나님을 밝히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밝히 안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 경작하시는지, 어떻게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지 등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바로 알고 깨달아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드넓은 우주 공간에 홀로 계셨던 근본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셨습니다. 로봇처럼 순종 잘하는 천사가 많이 있었지만 자유 의지 가운데 순종하는 참 자녀를 원하셨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오랜 세월에 걸쳐 무수한 사람을 경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려면 많은 수고가 따르지만,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훌륭하게 장성하면 큰 기쁨이 되기 때문에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의 악함을 아시지만, 즐거이 경작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자유 의지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참 자녀로 나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므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되었지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기를 받아 여러 가지 죄성을 타고납니다. 성장 과정 중에도 진리와 맞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들으며 배우는 만큼 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알고, 창조주 하나님과 원수 마귀도 알며,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과 불의가 얼마나 추하다는 것을 깨달아 불같이 기도하여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밝히 알아가야 사람의 본분인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자기 자신을 개간해 나가야 합니다
농부가 많은 열매를 거두려면 묵은 땅을 기경하며 씨를 뿌린 후에는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 주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 밭도 개간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옥토가 되어 사람의 본분을 지킬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인간 경작의 섭리를 알았다면, 비진리의 마음을 진리의 마음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라야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며 읽는 대로 깨달아지고 행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한 대로 악을 미워하고 죄를 버리며 자신의 마음 밭을 열심히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는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했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했습니다. 그러니 마음 밭을 개간하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성령의 열매와 영적인 사랑, 팔복 등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3) 자기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지키려면 맡은 일을 잘 감당할 뿐만 아니라 자기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요.
예를 들어 부모는 부모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자녀는 자녀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학생은 본분인 공부를 잘해야 하고, 군인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지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기관장, 성가대, 교사, 구역장, 조장, 지역장 등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해야 자기 본분을 다했다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충성 봉사해야 하지요. 교회에서 모이기를 힘쓰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마음 다해 찬송하는 것,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은 신앙인의 기본입니다.
혹여 영적인 사명을 감당한다는 이유로 육적인 사명을 소홀히 하거나 육적인 사명 때문에 주 안에서 감당해야 할 영적인 사명을 게을리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각 분야에서 자신이 맡은 모든 일을 지혜롭고 충실하게 감당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여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사람의 본분을 다하는 참 자녀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람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을 밝히 ( ) 사람이 되어야 한다.
② 자기 자신을 ( )해 나가야 한다.
③ 자기 삶에 ( )해야 한다.
2. 사람의 본분이란 무엇일까요? 전도서 12장 13절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에덴동산’이란?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쫓겨나기 전까지 오랜 세월 동안 자손을 낳으며 살았던 곳이다.
생령 아담은 에덴동산과 지구를 다스리고 지배하며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들이 있는 곳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다.
하지만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는데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결국 두 사람 모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교육목표 : 사람의 본분이 무엇인지 깨달아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거룩하신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되게 한다.
우리가 삶의 목표와 방향을 어디에 두는가는 매우 중요합니다. 삶의 목표를 영원한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의 성공과 부귀영화에 두는 사람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기본적인 윤리와 도덕마저 무시해 버리기도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망각한 채 육신의 정욕을 좇아 무절제하게 살아가는 것이지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사람의 본분을 다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1. 사람의 본분이란
창세기 1장을 보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고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영이신 하나님과 교통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을 정복하고 만물을 다스리도록 역사하셨지요.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그 명령도 지키지 않으면서 살아갑니다. 이처럼 사람의 본분을 망각한 채 짐승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원래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과 하와는 사랑스럽고 아름다웠으며 거짓 없이 진실하고 깨끗하며 온전하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된 삶을 살면서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렸지요. 하지만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생령 아담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죄의 삯으로 사람의 주인인 영이 죽으니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지게 되었지요(롬 6:23). 혼이 사람의 주인이 되어 정욕을 좇아 짐승과 다를 바 없이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은 죄악이 더욱 관영함으로 인륜 도덕이 땅에 떨어져 부모 자녀 간에도 사랑을 찾아보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지요.
이처럼 죄를 범한 아담과 그의 후손은 모두 죄인이 되었기에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우리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내어주셨지요.
그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죄 사함을 받고 죽은 영이 살아나 사람의 본분을 되찾으며 영생할 수 있도록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의 본분이란 무엇일까요?
전도서 12장 13절에 “…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했습니다. 피조물인 사람으로서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가 있는데 바로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키는 것이지요.
이어지는 14절에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했고, 전도서 1장 2~3절에는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헛되고 헛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정욕을 쫓아 이 세상의 헛된 것에 마음을 빼앗겨서는 안 되지요. 영원한 천국을 소망하며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사람의 본분을 지키는 방법
1) 하나님을 밝히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밝히 안다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아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사람을 창조하시고 이 땅에 경작하시는지, 어떻게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지 등 하나님의 섭리에 대해 바로 알고 깨달아야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
태초에 드넓은 우주 공간에 홀로 계셨던 근본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을 원하셨습니다. 로봇처럼 순종 잘하는 천사가 많이 있었지만 자유 의지 가운데 순종하는 참 자녀를 원하셨지요.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시고 오랜 세월에 걸쳐 무수한 사람을 경작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낳아 기르려면 많은 수고가 따르지만, 사랑을 주고받으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고 훌륭하게 장성하면 큰 기쁨이 되기 때문에 수고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사람의 악함을 아시지만, 즐거이 경작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자유 의지 가운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기쁘시게 하는 참 자녀로 나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 자녀를 얻기 위해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시고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셨습니다. 그리고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인류를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나무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셨지요.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므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얻게 되었지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부모의 기를 받아 여러 가지 죄성을 타고납니다. 성장 과정 중에도 진리와 맞지 않는 것들을 보고 들으며 배우는 만큼 악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성령을 선물로 받으면 말씀과 기도로 거룩한 하나님의 참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천국과 지옥을 알고, 창조주 하나님과 원수 마귀도 알며, 죄의 삯이 사망이라는 것과 불의가 얼마나 추하다는 것을 깨달아 불같이 기도하여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밝히 알아가야 사람의 본분인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켜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2) 자기 자신을 개간해 나가야 합니다
농부가 많은 열매를 거두려면 묵은 땅을 기경하며 씨를 뿌린 후에는 거름을 주고 잡초를 뽑아 주는 등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마음 밭도 개간하는 작업이 있어야 하나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옥토가 되어 사람의 본분을 지킬 수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만나고 인간 경작의 섭리를 알았다면, 비진리의 마음을 진리의 마음으로 바꾸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그럴 때라야 하나님 말씀을 듣고 보며 읽는 대로 깨달아지고 행함으로 성령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잠언 8장 13절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한 대로 악을 미워하고 죄를 버리며 자신의 마음 밭을 열심히 개간하여 옥토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6절에는 “…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했고, 데살로니가전서 5장 22절에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했습니다. 그러니 마음 밭을 개간하고 오직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성령의 열매와 영적인 사랑, 팔복 등의 열매를 맺어야 할 것입니다.
3) 자기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사람의 본분을 지키려면 맡은 일을 잘 감당할 뿐만 아니라 자기 삶에 충실해야 합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야 하지요.
예를 들어 부모는 부모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자녀는 자녀로서 해야 할 도리를 다해야 합니다. 학생은 본분인 공부를 잘해야 하고, 군인은 국방의 의무를 이행해야 하지요. 하나님의 일을 하는 데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서 기관장, 성가대, 교사, 구역장, 조장, 지역장 등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해야 자기 본분을 다했다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으로 영혼을 사랑하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충성 봉사해야 하지요. 교회에서 모이기를 힘쓰며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마음 다해 찬송하는 것,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는 생활은 신앙인의 기본입니다.
혹여 영적인 사명을 감당한다는 이유로 육적인 사명을 소홀히 하거나 육적인 사명 때문에 주 안에서 감당해야 할 영적인 사명을 게을리하는 일은 없어야 하겠습니다. 각 분야에서 자신이 맡은 모든 일을 지혜롭고 충실하게 감당할 수 있어야 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을 경외하여 죄를 피 흘리기까지 싸워 버리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림으로 사람의 본분을 다하는 참 자녀로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 평가 및 적용하기
1. 사람의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① 하나님을 밝히 ( ) 사람이 되어야 한다.
② 자기 자신을 ( )해 나가야 한다.
③ 자기 삶에 ( )해야 한다.
2. 사람의 본분이란 무엇일까요? 전도서 12장 13절을 써 보세요.
● 금주 과제
<지난주 설교 요약, 구역공과> 읽고 복습하기.
● 알고 넘어갑시다!
◈ ‘에덴동산’이란?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고 쫓겨나기 전까지 오랜 세월 동안 자손을 낳으며 살았던 곳이다.
생령 아담은 에덴동산과 지구를 다스리고 지배하며 아름답고 풍성한 열매들이 있는 곳에서 부족함 없이 살았다.
하지만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는데 하와가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 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결국 두 사람 모두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