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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선교회

제목
하나님의 선 여선교회 헌신예배 [요일 1:5]
설교자
강사 이재록 원로목사
등록일
2011.04.17
2011년 여선교회 헌신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축복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립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이 예배를 준비하신 모든 헌신자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개척 이후로 우리 여선교회는 교회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 오셨습니다. 영혼들을 돌아보고 교회 행사에 봉사하며,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해 시간과 물질과 여러분의 삶을 다 드리며 열심히 충성해 오셨지요. 무엇보다도 간절히 영을 사모하여 달려왔고요.

그런데 많은 성도님들이 영을 사모한다 하지만 실제 영으로 들어가는 속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속히 영으로 들어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느 정도 성장하다가 영의 문턱에 걸려 계속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사람도 있지요.

나름대로 선을 이루고자 기도하고 노력했지만 하나님께 선하다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많은 말씀을 들어서 선에 대해 잘 알기 때문에 스스로 선을 이루었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선하지 않은 마음이 들어도 얼른 덮어 버리고 ‘나는 그런 마음이 아니야’ 하면서 스스로를 속이기도 하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귀로 듣고 지식으로 머리에만 담아 놓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으로, 행함으로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어둠이 조금도 없는 빛이신 것처럼 여러분 안에도 어둠을 용납하지 말고 온전한 빛 가운데 거해야 하지요.

이 시간 세 가지 질문을 통해 여러분은 얼마나 선한 마음을 이루었는지 얼마나 하나님을 닮아 빛 가운데 거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선을 이루기 위해 점검해 볼 것은
첫째로 “나는 주는 것에 익숙한가? 받는 것에 익숙한가?” 하는 질문입니다.

사도행전 20장 35절 후반절에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이런 말씀을 많이 들어서 알기는 해도 막상 실생활 속에서는 주려고는 하지 않고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많지요.

여기서 ‘주는 것’, ‘받는 것’은 물질만이 아니라 시간이나 노력 등이 필요한 모든 진리의 행함을 다 포함합니다. 자신은 진리를 행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들은 진리대로 섬기고 양보하기를 기대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제가 구제를 할 때도 보면 구제받는 분들의 마음은 참으로 제각각입니다. 어떤 분들은 구제를 받았을 때 변함없이 감사의 고백과 행함을 보입니다. 그 은혜를 갚기 원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신앙생활 할 뿐 아니라 자신도 구제하는 사람이 되지요.

반면 어떤 분들은 구제받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하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자신이 어려운 사람을 돕지는 않습니다. ‘나는 누구를 도와줄 형편이 아니라’ 하고 지나쳐 버리는 것입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큰 교회니까 구제를 많이 하는 것도 당연하지’ 혹은 ‘가난한 성도가 없게 구제하신다고 당회장님께서 말씀을 하셨으니까 그 약속을 지키시는 것이 당연하지’ 이러면서 마땅한 일처럼 받아들이지요.

구제가 선한 일인 줄은 알지만, 또 남들에게는 그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정작 자신은 행하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제받았을 때 그 은혜에 감사하여 열심히 충성∙봉사하다가 이내 변질되는 모습을 봅니다. 교회 안에서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이 생기면 은혜 갚고자 하던 마음까지 사라져 버리는 것입니다.

심지어 저에게까지 서운해하는 사람도 있지요. “생명의 말씀에 감사합니다. 권능으로 치료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구제까지 해 주시니 더더욱 감사합니다.” 이렇게 눈물로 고백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뭔가 자기 유익에 맞지 않으니 그 은혜가 순간에 사라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나름대로 정당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자신의 악을 깨닫지를 못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재정적인 분야만 아니라 시간이나 몸으로 섬기는 분야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회의가 있을 때 어떤 사람은 먼저 와서 장소도 살피고 모임이 잘 진행될 수 있게 준비도 합니다. ‘내가 무엇을 준비할까? 내가 어떻게 더 섬길까?’ 이런 마음이지요.

그러지 못하고 남들이 다 모여 있는데 자신은 늦게 왔거나 더 섬기지 못했을 때는 심히 민망해합니다.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명심해서 다음에는 꼭 섬기는 사람이 되지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습관적으로 늦습니다. 지각은 하지 않는다 해도 남들이 다 준비해 놓고 여러 사람이 다 모이고 나서야 들어오지요. ‘어차피 준비가 아직 안 돼 있을 텐데, 시간 맞춰 가봤자 다 안 모였을 텐데 굳이 내가 먼저 가서 기다릴 필요가 없지’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늘 남들이 먼저 와서 섬겨 주고, 기다려 주고, 자신은 받기만 하는 습관이 들어 있는 것이지요. 이렇게 사소한 일상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을 섬기지 못하면서 어찌 영적인 선을 사모한다 말하겠습니까?

한편, 어떤 사람은 구제도 열심히 하고 선물 주기도 즐거워합니다. 굳이 하지 않아도 될 일까지 찾아서 주변 사람들을 섬기지요. 그런데 이렇게 하는데도 하나님 앞에서는 선하다고 인정받지 못합니다. 이는 대가를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질적인 대가를 바라지는 않는다 해도 섬김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받고 싶어 하거나, 그만큼 상대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는 등 나름대로 기대하는 바가 있지요. 그것을 얻지 못하면 불편해합니다. 서운해하고 상처를 받기도 하지요.

내가 이렇게 좋은 것을 주었는데, 이렇게까지 마음을 쓰고 배려해 주었는데 당연히 고맙게 받아야지 인사도 하지 않네? 저 사람은 도리도 모르는 사람이다. 교만하고 무례하다 이렇게 판단하기도 하지요. 다음부터는 그 사람은 섬기지 않고요. 그러면서도 자신은 상대를 섬기고 선을 행한다고만 생각합니다.

영의 마음은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고 상대의 마음을 편히 해 주는 마음입니다. 상대가 뭘 원하는지는 관심이 없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에게 해 주면서 고맙다는 말을 듣기 원하는 마음이 아닙니다.

또 영의 마음은 내가 한 번 섬겨 주었으니 이제 할 바를 다했다 하는 것이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한 번 은혜를 주시고 성령 충만함을 주시면 다음에는 안 주시는 것이 아니지요. 가장 좋은 것을 주고, 또 주고, 또 주십니다.

이런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처럼 여러분도 받기보다는 주기를 즐겨하시기를 바랍니다. 대가를 바라지 않고 주고 또 줄 수 있는, 섬기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선을 이루기 위해 점검해 볼 것은
둘째로 “내 자신의 유익만 구하는가? 아니면 상대의 마음을 이해하고 상대의 입장이 되어 주는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할 때는 선한 것을 구합니다. “아버지, 내가 오른뺨을 맞는다 해도 아무 감정 없이 왼뺨도 대어 주기 원합니다. 속옷을 구하면 겉옷까지 기쁨으로 줄 수 있고 5리를 가자 하면 10리까지 동행하기 원합니다.” 이렇게 기도하지요. 그런데 막상 현실적인 상황에서는 자기 입장과 자기 유익을 구합니다. 상대의 행동이 내 유익에 맞지 않으면 상대를 이해하거나 용납할 수가 없지요.

예를 들어 여러 일꾼들이 성전에 나와서 한나절 동안 봉사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중에 한 사람이 개인적인 일이 생겨서 두 시간 정도 일찍 돌아가게 되었지요. 그럴 때 함께 일하는 사람이 선한 마음이라면 먼저 가는 사람에 대해서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니 전혀 불편함이 없습니다. 다만 그 사람이 없는 만큼 자신이 더 열심히 해서 순조롭게 일을 진행하려고 하지요.

반면 육에 속한 사람은 생각이 분주합니다. ‘자기만 바쁜 것 아니고 나도 바쁜데 오늘 일하는 것은 미리 약속한 것인데 저분은 꼭 지금 나가야 하나?’ 하지요. 심지어 ‘얌체 같다, 양심도 없다’ 하고 판단∙정죄도 합니다.

그런 생각을 속에만 담아 두는 것이 아니라 상대를 찌르는 말을 하기도 하고요. 혹은 이런 계산적인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저가 빠진 두 시간 만큼 내가 더 일했으니 다음에 내가 봉사할 일이 있을 때는 저에게 부탁해야겠다.’ 하는 것이지요. 이런 마음이라면 봉사한다고는 하지만 그 봉사가 하나님 앞에 영적인 향으로 올려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면 선을 사모하며 기도해 왔는데도 왜 여전히 이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을까요? 선의 말씀을 마음에 이루지 않고 머리에 지식으로만 담아 두었기 때문입니다. 선의 기준을 자신에게 적용하지 않고 상대에게만 적용하는 것이지요.

진리는 상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인데 저 사람은 일꾼인데도 자기 유익을 구하네, 하나님의 일이 개인적인 일보다 우선인데 저 사람은 믿음이 있다 하면서 개인적인 일을 더 앞세우네. 이렇게 진리에 빗대어 생각하니 선하고 의로운 생각이라고 착각하지요. 뿐만 아니라, 상대와는 달리 자신은 바쁘지만 시간을 내서 희생∙봉사 하고 있으니 선을 행하고 있다, 선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만약 이런 사람이 자신이 먼저 가야 하는 상황이라면 어떨까요? 내가 먼저 가니 민망하다고만 생각할까요? 상대가 불편해할 때 미안하게 생각할까요? 이런 때는 또 자기 나름대로의 입장이 있습니다.

안 그래도 내가 먼저 자리를 비워서 민망한데 저분은 꼭 나에게 불편한 내색을 해야 하나? 내가 바쁜데도 시간 되는 만큼은 열심히 했으니 상대가 선하다면 내가 이렇게라도 나와 주니 고맙다고 할 텐데, 진리를 안다는 사람이 어떻게 저럴까? 자기가 일을 좀 더 한다 해도 어차피 다 자기 상급인데 감사하면 되지 않나?” 이러면서 기분이 상할 수도 있지요. 여전히 자신이 옳다고만 생각하는 것입니다.

내 입장만 생각하고 내 유익만 생각하면 영적인 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선한 사람은 범사에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합니다. 나에게 더 쉽고 좋은 길을 택하지 않고 상대를 평안하게 해 주는 길, 하나님의 나라에 영광 돌리는 길을 찾습니다. 범사에 상대의 유익을 구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여러분이 다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하나님의 선을 이루기 위해 점검해 볼 것은
셋째로 “질서 속에서 내가 얼마나 잘 섬기고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이는 교만에 대한 분야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정작 자기는 윗사람을 대할 때 마음으로 잘 섬기지 않고 질서를 좇아 순종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질서상 아랫사람들이 자신을 섬겨 주지 않은 것 같으면 질서를 어긴다고 심히 불편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부회장이라고 가정해 보지요. 자기 안에 교만이 있으면 직분상 아래의 일꾼들이 자신을 섬겨 주지 않을 때 너무나 마음이 불편해합니다.

‘우리 총무님은 선교회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회장님에게는 잘 보고하면서 왜 부회장인 나에게는 잘 보고하지 않는가? 이 업무는 원래 내가 맡아서 해 왔는데 올해는 왜 나에게 의견을 묻지도 않고 다른 사람이 하고 있나? 일꾼들이 이렇게 부회장을 무시하고 질서를 어기는데 우리 회장님은 왜 이들은 그냥 두시나?’

이러면서 사소한 일 하나하나에서도 불편한 마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정작 자신은 질서에 따라 섬기지 않습니다. 윗사람이 어떤 일을 지시해도 자신의 마음에 맞지 않는 일을 시키면 이런저런 생각 속에 불편해하지요.

이렇게 윗사람에 대해서는 섬기지 못하면서 아랫사람들이 자신을 섬겨 주지 않으면 질서를 어긴다며 불편해하는 그런 경우들도 종종 보지요.

물론 조직에는 질서라는 것이 있고 위와 아래의 서열에 따라 각자 해야 할 바는 해야 합니다. 또 아랫사람이 질서를 어길 때 윗사람이 무조건 이해하고 품는 것도 영적인 선은 아니지요.

상황에 따라 이해하고 품어야 할 때도 있고 때로는 조직의 질서가 잘 지켜지도록 온유함으로 바로잡아 줄 수도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교만으로 질서를 주장하는지, 아니면 영적인 선에서 질서를 좇고자 하는지 이것을 구별하는 기준은 결국 자신의 마음입니다.

상대를 누르고 내가 머리 되려는 마음, 섬김 받고 인정받으려는 자존심, 이런 마음이 없어야 매사를 진리로 분별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쪽을 택할 수 있지요.
질서가 흐트러지지 않도록 진리로 바로잡아 줘야 하는 상황인지, 아니면 아랫사람들이 좀 부족해도 내 편에서 이해하고 품어야 하는 상황인지, 평안한 마음으로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질서에 따라 윗사람을 대할 때도 윗분이 주관 받은 것이니 그대로 순종해야 하는 일인지, 아니면 아랫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윗분에게 건의해야 할 일인지 그런 것을 지혜롭게 분별할 수 있고요.

마태복음 20장에 보면 포도원 주인과 품꾼들의 비유가 나옵니다. 포도원의 주인이 아침 일찍 나가서 일자리를 구하는 품꾼을 고용합니다. 주인이 낮 12시가 되어 장터에 나가 보니 아직도 일거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지요. 일을 구하지 못했으니 하루를 공치게 되고 생계를 염려해야 할 상황입니다. 주인은 그들도 데려다가 일하게 합니다.

또 오후 세 시에도, 다섯 시에도 나가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사람들을 보고는 그들도 데려와서 일을 주지요. 곧 저녁이 되고 품삯을 받을 때가 되어서 오후 다섯 시에 온 사람들부터 돈을 받습니다. 그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는데도 주인은 하루 일당인 한 데나리온을 다 주었지요. 그 전에 온 사람들이 이를 보고 자신들은 그보다 더 받을 줄로 생각했지만 주인은 모두 똑같이 한 데나리온을 주었습니다.

이때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말했을까요?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일꾼들은 마음이 상해서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만 일하였거늘 저희를 종일 수고와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합니다. 이 일꾼들의 말이 맞습니까?

만약 선에 대해 지식적으로만 아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말이 맞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주인의 처사가 공의롭지 않다. 당연히 더 많이 일한 사람이 더 받아야지, 먼저 온 사람들은 손해를 본 것이 아닌가?” 이렇게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마음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선을 마음에 이루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주인님, 오늘 하루 일자리를 주시고 약속한 대로 품삯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더구나 늦게 온 저들은 하루를 허탕칠 수도 있고 그러면 그 가족들이 굶을 수도 있는데 주인님은 저들이 조금만 일했는데도 하루 품삯을 다 주시니 참으로 선하고 너그러우십니다.
제 마음에 심히 감동이 되고 마치 제가 그 은혜를 받은 것처럼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인님의 선하심을 보고 축복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렇게 감사의 말을 하면서 은혜와 감동 속에 집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여러분 안에도 하나님의 선이 임해 있다면 중심에서 이런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오늘 말씀을 명심하고 또 명심하여 마음에 온전히 이루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받기보다 주기 원하며, 범사에 상대의 입장에서 상대의 유익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질서 속에 섬기며 낮아지시기를 바랍니다. 온갖 꽃들이 만발한 정원에 들어가면 꽃향기에 흠뻑 젖어들게 되지요. 이런 꽃향기보다 더 아름다운 선한 향, 아버지의 향으로 온 교회를 가득 채우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면 천국이 따로 없지요. 여러분이 있는 그곳이 바로 천국입니다. 주변 사람들도 여러분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지요. 하나님께서는 또 얼마나 기뻐하시겠는지요? 오늘 이후로 여러분의 선한 향이 온 세상에 가득하고, 장차는 새 예루살렘 성 안에 가득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11-04-18 오후 10:20:15 Posted
2011-04-21 오후 1:52:3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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