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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제목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 (3)  [고후 10:18]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6.10.18
오직 주님께 옳다 인정을 받고 칭찬받는 “대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가 되기 위해

1. 어떤 문제에 부딪혔을 때 화를 내거나 다투거나 불편해하고 문제 삼아서는 안 됩니다.
2. 마음에 서운함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3. 조금 기쁜 일을 만나거나 지적을 받는다 해서 마음이 동요돼서는 안 됩니다.


지난 시간 말씀드린 세 번째 말씀을 이어 전하겠습니다.
큰 인물이 될 사람의 그릇됨은 조금 기쁜 일을 만나거나 조금 슬픈 일이 있다 해서, 사소한 일로 마음이 동요되지 않습니다. 그릇이 클수록 큰 어려움과 문제 앞에서도 차분하며 담대하기에 큰일을 할 수 있지요. 더욱이 믿음이 있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이 없다면 세상에서 당하는 모함이나 어려움도 기쁨으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성경 상에 하나님의 사람으로 인정하신 인물들을 보면 죽음이 앞에 있을지라도 그 마음이 동요되지 않고 평안한 모습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찬미하였고, 순교하면서도 남겨진 양 떼를 생각하고, 또 스스로를 돌아볼 때 주님과 하나님이 보시기에 부족함이 없었는가? 점검하는 겸비한 모습이셨습니다.
칭찬을 받으면 크게 기뻐하고, 조그마한 지적을 받거나 무슨 소리를 들으면 기가 죽어서 가라앉아 버리는 것은 소인배의 모습임을 알아야 합니다. 금방 기뻐했다가 상황이 바뀌니 힘들어하며 이내 충만함을 잃는 것, 이는 변개함이요 작은 마음이지요. 작은 주전자의 물은 금방 끓고 금방 식지만, 큰 주전자에 많은 물은 끓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도 쉽게 식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큰 그릇과 작은 그릇의 차이이지요.
또한 소인배일수록 자기를 드러냅니다. 지식이나 권세를 가지고도 겸손하여 삼가 절제하면서 꼭 필요한 대로 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자기가 아는 것, 가진 것을 절제하지 못하여 말하고 싶은 대로 말하고 자랑하므로 일을 어렵게 만드는 사람도 있지요.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죄 없이 죽임당하시는 십자가의 섭리를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면 원수 마귀가 이를 듣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의 길이 열릴 수 없지요.
성경 상에도 다니엘같이 총명한 사람은 학문과 지위, 권세가 승할지라도 그것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분야에 필요적절하게 사용하였습니다. 모함당할지라도 자신의 권세나 힘을 가지고 상대를 누르거나 다투지 않았지요. 다니엘 6장 4절에 “이에 총리들과 방백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소할 틈을 얻고자 하였으나 능히 아무 틈, 아무 허물을 얻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한 것입니다.
다니엘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죽음의 자리로 몰 때도 왕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않았지요.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 뜻대로만 묵묵히 행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칭찬받는 길로만 행했지요.
신약의 백부장과 고넬료, 구약의 보아스 같은 사람들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선을 행함으로 많은 사람에게 덕을 끼쳤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도 칭찬받으며 사랑과 축복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큰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호되게 지적을 받았다 해도 의기소침하거나 침체하지 않는 모습이지요. 꼭 지적받는 것만이 아닙니다. 열심히 일했는데도 열매가 적거나, 능력이 부족하다 생각될 때도 있습니다. 이때도 힘을 잃고 기쁨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모습도 작은 그릇이요 고쳐야 할 마음입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면 변화되고, 이제 열심히 하여 열매 내리라 다짐하고 노력하면 됩니다. 하지만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천국 소망이 부족하면 낙심하고 힘들어하며 사명을 놓거나 일하기 싫어하지요. 사람 사이에서도 조그만 일에 삐치고 힘들어하고 뒤로 물러서는 사람과 함께 일하면 참으로 힘듭니다. 그러니 우리는 쉽게 낙심하고 지쳐버리는 작은 마음을 버려야겠습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대인의 마음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요동함이 없는 큰마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4. 자기가 지키는 것을 상대가 지키지 못한다 하여 지적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진리를 지키는데 상대는 그렇지 못하니 지적하고 나무라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런 모습은 내가 그 사람 위에 서서 재판장이 되어 있는 것이지요. 상대가 하지 못하니 지적한다면 이는 ‘나는 하고 있고 당신보다 낫다’ 하는 마음이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어떤 경우라도 다른 사람을 심판할 권세를 받은 사람은 없으니, 상대가 물어오는 경우가 아니라면 지적해서는 안 되지요. 다만 사명자로서 가르치고 권면해 주어야 할 때 잘 설명하여 상대가 스스로 깨닫도록 할 따름이지 나무라거나 책망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상대가 중심에서 지적받기를 사모할 때 부득불 지적할 수 있으나 그때도 ‘선한 마음으로 상대에게 깨우침이 되고자 설명하는 것인가?’ 항상 돌아보아야 하지요. 지키지 못하는 상대에 대해 불편하고 답답한 마음이 있다면 아무리 조용히 설명한다 해도 이는 지적이 됩니다. 그러니 듣는 상대가 아프고 힘들지요.
내 마음을 다 알지 못하니 정말 사랑으로 권면하는지, 지적하고 가르치려는 자세인지 분별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때는 여러분의 감정을 잘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 마음에 상대에 대해 불편하거나 답답함이 있는지, 상대의 실수와 잘못을 주변 사람에게 전하고 있다면 이는 감정이 있는 것이지요. 또 나는 사랑으로 권면했는데 상대가 받지 않으면 목소리가 커지고 짜증스러워진다면 아직 사랑이 부족한 것입니다. 권면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며 상대를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더 낫지요.
꼭 말로 지적하고 책망하지 않아도 상대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자기가 아는 것으로 상대를 판단하거나 정죄하는 것도 심판하고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상대에게 문제가 생겨도 그 마음 중심을 알지 못하니, 옳다 그르다 평가하는 것이 잘못된 것이지요. 이는 판단이 됩니다. 예를 들어 질병에 걸린 성도를 보았을 때 예전에 그 성도의 잘못된 모습이 떠오르며 ‘그것 때문에 병이 왔지’ 생각하는 것도 판단이 됩니다.
야고보서 4장 11절에 “형제들아 피차에 비방하지 말라 형제를 비방하는 자나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곧 율법을 비방하고 율법을 판단하는 것이라 네가 만일 율법을 판단하면 율법의 준행자가 아니요 재판자로다” 머리 된 일꾼일수록 이런 일이 많이 있습니다. 상대를 보며 “이렇게 하면 빨리 변화될 수 있는데, 그렇게 하면 안 되는데” 가르치거나 답답해하지는 않는지요?
믿음이 좋으면 더 겸손하고 더 낮아지고 섬겨야 합니다. 오히려 선생이 되고 높아져서 지적하고 “왜 이렇게 하지 않느냐, 저렇게 하지 않느냐. 질서를 어긴다.” 한다면 교만하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누구에게도 상대를 지적하거나 티를 잡는 일이 허락되어 있지 않고, 남의 티가 보이고 지적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철저히 부서지고 빼내야 합니다.
자신은 지키고 있으니 지적하는 것이 정당하다 생각하지만, 막상 상대에게 지적했을 때 받지 못하면 사이가 나빠지고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대개 이런 데서 의를 이루지 못하고 화평을 이루지 못하지요. 지적을 받는 사람이 진리의 사람이라면 아무 잡음이 없겠지만 비진리, 감정이 남아 있는 만큼 서운해하니 부딪히고 힘들게 됩니다.

우리 주님은 상대가 지적받을 수 있는 사람이건, 받을 수 없는 사람이건 지적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무리 진리를 잘 지켰어도 그것으로 남을 지적하는 마음은 섬김의 마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서 2장 3절에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하신 대로 상대가 나보다 낫다고 여긴다면 어찌 흠이 보이고 티가 보이며 지적하려 하겠습니까. 내가 먼저 존중해 주고, 높여준다면 어찌 잘못되고 허물 된 것을 보려 할까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부족한 것이 보여도 마음에 담아두지는 않을 것입니다. 진리는, 영은 섬기는 것이요, 섬긴다는 것은 상대방을 존중하는 마음입니다.
만약 상대의 티가 보인다면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3-5절에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더구나 상대의 약점을 들춘다거나 부족한 것을 다른 이에게 전하는 것은 큰 악이지요. 잠언 17장 9절에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 하셨습니다. 마음에 사랑과 섬김이 있다면 어찌하든 상대의 좋은 점만 보려 하고, 좋은 점만 말하려 할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다투지도 아니하시고 들레지도 아니하시며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시고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으셨습니다. 말이나 생각에서도 남을 무시하거나 업신여기는 일이 없으셨고 추호도 남의 마음에 상처 입히지 않으셨으며 인격을 존중해 주셨지요.
가룟 유다라 할지라도 그의 잘못을 잘 알고 계셨지만, 제자들 앞에서 지적하거나 따돌리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깨달을 수 있도록은 말씀하셨지요. 항상 안타까운 마음으로 변화되기를 기다려 주셨습니다.
주님처럼 먼저 상대를 존중하고 중심에서 섬길 때, 아랫사람도 마음에서 우러나와 윗사람을 섬기게 됩니다. 항상 상대의 선한 것만 보고 자기를 낮추면서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고 겸손히 섬기는 사람이, 주님 앞에 옳다 인정함을 받는 사람임을 명심해야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선과 사랑으로 채우면 큰 그릇이 되어 오직 주님 앞에 칭찬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주님께 칭찬받으면 그 자체가 큰 축복이지요. 간구하고 기도하는 것에 응답받지 못할 것이 없습니다. 시편 37편 4절에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저가 네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 주시리로다” 말씀합니다. 또 주님께 칭찬받을 만한 사람을 들어 사용하시고 높여주시지요. 섬김과 순종, 선과 사랑으로 행하신 주님을 하나님께서 높여주신 것과 같습니다.
빌립보서 2장 9-11절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 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성도님들도 주님과 같이 순종과 섬김, 사랑으로 행하여 오직 주님 앞에 칭찬받는 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대인이 되어 악한 사람도 넉넉히 품고 어떤 상황에도 힘들어하거나 지치지 않고 믿음으로 행군한다면 어두움, 원수 마귀 사단이 물러가고 구원의 역사가 활발하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주님과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 큰마음을 이루어 어둠을 밝히는 귀한 일꾼이 되어 주님과 하나님께 사랑과 칭찬만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2026-10-15 오후 4:38:59 Posted
2026-10-23 오전 10:16:30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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