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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제목
사람이 다스려야 할 몸의 행실 (11) 입 (2) [롬 8:12-13]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5.04.13
지난 시간에 이어서 버려야 할 무익한 말에 대해 살펴보고 또한 우리 입술에 항상 있어야 할 유익한 말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버려야 할, 무익한 말

무익한 말 중에는 농담이나 유행어, 비속어가 있습니다. ‘농담’은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이며, 부풀리거나 과장된 말, 이치에 맞지 않은 말, 허탄한 말도 모두 무익한 말입니다. 농담을 많이 하는 사람은 가벼워 보이고 신뢰가 가지 않으므로 비밀을 나누거나 중요한 일을 맡기기 어렵습니다. 또한 이런 말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는 어울리지 않지요.
유행어, 비속어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 안에는 세상 풍조가 담겨 있기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세상에 물들게 됩니다. 악의가 담겨 있지 않은 유행어나 비속어라도 아름다운 주님을 닮길 원하는 성도님들이라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무익한 말 중 마지막으로 욕설이 있습니다. 요즘은 어린 학생들뿐만 아니라 성인들까지도 심각한 언어폭력에 시달리기에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악성댓글로 공인뿐만 아니라 일반인들도 심각한 피해를 입고 심지어 자살하는 경우도 있지요.
마태복음 5장 22절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라가’라는 말은 텅 빈, 무가치한, 우둔한, 멍청이라는 뜻이며, ‘미련한 놈’이라는 히브리어의 의미에는 도덕적인 배신, 반란, 악이라는 뜻이 포함된 ‘추악한 놈’, ‘인격적으로 천박한 상태’를 표현하는 말입니다. 이런 욕설은 상대방에게 엄청난 상처를 남기지만, 무심코 습관적으로 뜻도 모르면서 욕을 하고 있지요. 어떤 욕이든 그 의미는 저주에 가까운, 상처를 주는 말임을 알아, 절대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야고보서 3장 10-11절에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 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치 아니 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물과 쓴물을 내겠느뇨” 말씀합니다. 그러니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응답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마태복음 12장 36절에는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말씀하셨습니다. 무익한 말을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심판을 받기 때문이지요. 무익한 말을 했을지라도 중심으로 회개한 것은 하나님께서도 기억하지 않으십니다. 어떤 말을 내느냐에 따라 그 말의 열매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 경솔하게 말하지 않음은 물론 한마디라도 무익한 말은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2. 긍정적이고 유익한 말

1) 은혜를 끼치고 덕을 세우는 선한 진리의 말 - 모세와 스데반
모세 선지자는 민수기 12장 3절에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하나님을 향해 원망과 불순종이 더해만 갔지요. 특별히 경계하신 우상을 만들고 섬기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을 다 멸하시겠다 하십니다.
이때 모세는 그들의 죄를 사해 주시라고 기도하며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사랑의 기도를 올렸습니다. 출애굽기 32장 32절에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하는 감동의 기도를 올리지요.
모세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가르침을 거역하고 범죄 한 백성들을 대신해서 용서를 구하되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중보하는 아름다운 마음과 입을 지닌 것입니다. 이 기도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함은 물론 악한 이를 위해 생명까지도 줄 수 있는 모세 선지자의 사랑의 마음을 나타내 보였지요.
스데반 집사 역시 미움이나 시기, 질투 등의 악이라곤 조금도 없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옳은 말,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데 오히려 스데반에게 돌을 던지는 무리들을 향해서도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하는 사랑의 간구가 즉시 나왔던 것입니다.
진정 마음에 선과 사랑이 있어 아름다운 말을 내는 사람은 상황에 따라 선택하여 내는 것이 아니라 자동적으로 나옵니다. 상황에 따라 선택하여 낸다는 것은 어떤 때는 선한 말을 하고, 싫은 사람에게는 선하지 않은 말이 나오는 것 또는 몇 번은 선한 말을 내다가도 불편한 상황이 반복되면 선하지 않은 말이 나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자동적으로 선한 말을 내는 사람은 어느 누구에게나 고운 말을 냅니다. 내게 해를 입히고 악한 사람에게도 선한 말을 하며, 때론 상대를 변화시키기 위해 엄히 대할 수도 있으나 그로 인해 결국 상대가 변화되는 선한 입이지요. 그 안에 악이 없고 사랑이 가득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들이 이러한 마음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입만 조심해서 될 것이 아니라 누가복음 6장 45절에 마음에 가득한 것이 입으로 나온다 했으니, 마음에 악은 깨끗이 비우고 진리와 선을 가득 채워야 합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3장 1절에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된다는 말씀처럼, 아름답고 고운 말, 위로하고 칭찬하는 말을 해도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2)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
부정적인 말은 하면 할수록 일이 잘 안되고 어려워지지만, 긍정적인 말과 믿음의 고백은 안 되던 일도 잘되게 하지요. 긍정적인 믿음의 고백의 중요성이 민수기 13-14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축복의 땅 가나안을 침노하기 위해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런데 정탐하고 돌아온 사람 중 열 명은 가나안 거민을 두려워하여 부정적인 보고를 하지요. 민수기 13장 28-29절에 “그러나 그 땅 거민은 강하고 성읍은 견고하고 심히 클 뿐 아니라 거기서 아낙 자손을 보았으며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하더이다” 말하니 백성들이 혼란에 빠집니다.
이때 갈렙은 백성들을 향해 믿음의 고백을 합니다. 하지만 부정적인 말을 한 열 정탐꾼은 이에 질 새라 말합니다. 민수기 13장 31-33절에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합니다.
이로 인해 백성들은 절망하며 탄식과 원망을 쏟아내지요. 민수기 14장 1-4절에 “온 회중이 소리를 높여 부르짖으며 밤새도록 백성이 곡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며 온 회중이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망하게 하려 하는고 우리 처자가 사로잡히리니 애굽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지 아니하랴 이에 서로 말하되 우리가 한 장관을 세우고 애굽으로 돌아가자” 말합니다.
민수기 14장 6-9절에 “그 땅을 탐지한 자 중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그 옷을 찢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 일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오직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 밥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 말라”
같은 땅을 보고, 너무도 다른 말을 합니다.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지요. 믿음이 없는 부정적인 말은 현실을 보고 육신의 생각을 동원합니다. 그들에게는 안전하게 출애굽 시키고 홍해를 건너게 하신 전지전능한 하나님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부정적인 말만 합니다.
하지만 믿음으로 긍정적인 고백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다시 말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호와를 거역하지 말라”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 밥이라. 우리가 올라가 취하자”
이렇게 믿음과 육신의 생각은 너무도 큰 차이가 납니다. 고백의 차이뿐 아니라 결과의 차이도 어마어마했지요. 할 수 있다 했던 여호수아 갈렙은 가나안 땅에 들어갔지만, 이 둘을 제외한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죽고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 말씀은 지금 우리의 삶, 천국 가는 여정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위대하신 하나님, 나를 위해 중보하시는 주님을 믿고 나아가면 우리의 변화도, 새 예루살렘도 응답도 치료도 넉넉히 이룰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을 보고 주변과 환경에 영향을 받아 부정적인 고백을 하면 믿음과 성령 충만함도 잃어버리지요. 아무리 현실의 문제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부정적인 고백으로 백성들까지 멸망으로 몰고 간 열 정탐꾼처럼 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열 정탐꾼의 영향을 받은 백성들도 되지 마십시오. “안 될 것 같습니다.”, “어려워 보입니다.”, “아무래도 힘들 것 같은데요.” 이런 부정적인 말을 하지 말아야지요. 우리가 입으로 낸 말은 사단이 올무를 잡습니다. “안 된다. 힘들다. 못한다.”라는 부정적인 말을 내니 사단 마귀는 더 어렵고 힘든 생각과 상황으로 만들어 가지요. 내가 입으로 내었기에 그 말대로 되게 만드는 것입니다.
“잘됩니다.”, “할 수 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습니다.” 이런 긍정적인 말, 믿음의 고백으로 마음과 주변 환경을 바꿀 수 있어야겠습니다. 우리 성도님들은 오직 긍정적인 말, 믿음의 고백을 한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응답과 축복을 받아 가시길 바랍니다.
이 외, 유익한 말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말씀드리겠습니다.


2025-04-10 오전 11:30:50 Posted
2025-09-01 오후 1:22:4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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