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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대예배

제목
불의한 청지기  [눅 16:1-9]
설교자
당회장 이수진 목사
등록일
2024.06.16
오늘은 난해 구절 중의 하나인 ‘불의한 청지기’라는 비유의 말씀에 담긴 영적인 의미에 대해 전하겠습니다.

1.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 불의한 청지기

1절에 “…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했습니다. 여기서 ‘주인’은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을 뜻하며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 청지기’, 즉 ‘불의한 청지기’는 ‘삯꾼 목자’를 뜻합니다. 또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것은 ‘주님께서 맡겨주신 양 떼를 잘 양육하지 못함으로 그들을 믿음의 온전함 가운데로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는 의미이지요. 양 떼를 잃는 것은 물론이고요.
그러면 ‘삯꾼 목자’란 무엇일까요? 바로 삯, 곧 돈을 바라고 주의 종의 길을 가는 사람으로서 주의 종을 하나의 직업으로 여기는 사람입니다. 주의 종이 되면 섬김도 받고 돈도 잘 벌 수 있다고 잘못 판단해 주의 종이 된 사람이지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늘 말씀을 통해 ‘삯꾼 목자’에 관해 좀 더 포괄적인 의미로 말씀하십니다. 목회자로서, 주의 종으로서 주님께서 맡겨주신 양 떼들을 잘 양육하여 믿음 안으로 온전히 들어오도록 해야 함에도 그렇게 하지를 못하는 사람을 가리켜 ‘주인의 소유를 허비하는 청지기’라 말씀하시지요.
주의 종이라면 당연히 양 떼들을 잘 양육하여 끝까지 주님의 품으로 인도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헌신하지 않았을 때뿐만이 아니라 참믿음으로, 영으로 인도하지 않았을 때도 야단은 맞게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꼭 주의 종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꾼으로서 자신이 맡은 양 떼들이 파리해지고 은혜가 떨어져 충만하지 못하며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면, 이 역시 주인의 소유를 허비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자로서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여 하나님의 일이 지체되고 지장을 받는다면 이것도 주인의 소유를 허비하는 모습이지요.
결국 자신에게 주어진 직분이나 사명을 주님께서 주신 소중한 것으로 여기지 않고 삯꾼 목자와 마찬가지로 섬김받으려는 목적이나 명예나 권세를 바라보고 맡은 이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사람들을 가르치기는 하되 진정 영혼들의 영적인 성장을 도와주지는 못하고 그럴만한 능력도 없습니다.
바로 이처럼 주인의 소유를 허비하는 청지기에게 주인, 즉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2절에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하였지요. 이는 요한계시록 2장 5절에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하신 말씀과 같은 의미입니다.
처음에 아무리 열심 있고 충성했다 할지라도 어느새 그 처음 행위를 잃어버리고 이제는 그것을 회복하려 하지도, 또한 회개하려 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주님께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말씀하신 것과 마찬가지로 불의한 청지기를 향해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주인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한 이유

이러한 상황에서 청지기는 생각합니다. 3절에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했지요. 지금 자신의 모습을 회개하고 돌이키려 하기보다는 직분을 빼앗긴 후의 자신의 처지에 대해 먼저 염려하고 걱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방법이 4~7절입니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했지요.
불의한 청지기는 자신에게 진 빚도 아니고 주인에게 진 빚을 자기 임의대로 탕감해 주는 호의를 베풀어서 장차 자신이 청지기의 직무에서 쫓겨난 후에 이렇게 은혜 베푼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아 볼까 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이 이 사실을 알았을 때 그 청지기가 더욱 괘씸하게 여겨질 만한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이어지는 8절 전반절에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말씀합니다. 청지기가 한 일에 대해 책망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칭찬한 것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을까요?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이란 영적으로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못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한 채 여전히 죄의 짐을 지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청지기가 이들의 빚을 얼마씩 탕감해 주었다는 것은 비록 그들의 빚을 전부 탕감해 주지는 못했지만, 즉 온전한 구원에 이르게 하지는 못한 것이지요.
삯꾼 목자라 할지라도 양 떼들에게 구세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가르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때만이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구원의 도’만은 가르쳤다는 의미입니다. 들어서 아는 지식적인 믿음은 있기에 지식적으로는 구원의 도를 가르칠 수 있고 이것이 주님께서 보실 때, 마치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빚을 조금씩이나마 탕감해 주는 것과 같다는 말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신앙생활 하는 데 있어서 어떠한 인도자를 만나느냐’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인도자를 잘못 만나면 자칫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고, 반대로 인도자를 잘 만나면 천국 가는 길을 밝히 제시받음으로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떻게 해서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므로 비록 삯꾼 목자이지만 그가 양 떼들에게 구원의 도를 가르치는 일에 대해서만은 칭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온전한 칭찬이 될 수는 없습니다.
삯꾼 목자는 가르치기는 하지만 마음을 할례 하지도 않고 말씀대로 살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변화되어야 할 자신은 변화되지도 않고 영적인 차원에도 들어가지를 못하지요. 마치 예수님 당시에 제사장들과 바리새인, 서기관들이 외식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에 대해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한다” 말씀하셨지요(마 23:3). 마찬가지로 삯꾼 목자라 해도 구원의 도를 가르치는 그 행위만큼은 칭찬받을 만하고 그 말씀도 옳은 것이지만, 정작 중요한 ‘말씀에 따르는 행함’이 없으므로 온전한 칭찬이 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3.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이 세대의 아들들이 아닌 빛의 아들들

이어지는 8절 후반절에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말씀합니다. 이는 실제로 이 세대의 아들들이 빛의 아들들보다 지혜로워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앞서 나름대로 자기 지혜를 동원하였던 불의한 청지기의 행동을 볼 때 ‘자기 시대’, 즉 이 어두움의 세상에서는 그것을 지혜로운 것처럼 생각한다는 뜻입니다.
‘빛의 아들들’이란 ‘어떠한 상황에서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말씀에 따라 그 뜻대로 행하고 가르치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경 66권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가르치기에 그 믿음대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봅니다. 치료의 역사가 나타나고 성경에 기록된 기사와 표적 등 권능의 역사가 따르지요. 또한 성경에 기록된 영적인 현상들이 나타납니다.
이처럼 성경에 기록된 일들이 수천 년 전에만 있었던 일이 아니라 지금도 동일하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증거함으로 양 떼들이 확실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신앙생활 해 나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더욱 말씀 안에, 빛 가운데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오늘날 이러한 주의 종들에 대해 오히려 ‘신비주의’라 하며 심지어 ‘이단’이라고까지 하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이 세대의 아들들’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이들은 비록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치고 기독교의 기본적인 구원의 도는 가지고 있지만, 상황에 따라 하나님 편에서 옳은 것을 택하기보다는 주변을 의식하고 사람들을 의식하여 결국 세상과 타협하고 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가르친다고 하지만 인간의 지식에 맞는 한도 내에서 자기 믿음만큼만 가르치지요.
그러니 하나님 역사를 온전히 베풀 수도 없고 혹여 양 떼 중에 자신이 체험하지 못하는 영적인 것을 체험하면 오히려 그것을 막고 ‘쉬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증거함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을 만큼만 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그들과 손을 잡지요. 그런데 이 세대의 사람들이 볼 때는 이러한 모습이 환경과 여건에 맞게 잘 적응해 가는 지혜로운 모습으로 보인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고 하나님 권능의 역사를 나타내는 사람은 뭔가 좀 이상하고 미련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지요.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는 세상이 무서워서 하나님 역사를 피하고 세상과 타협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 아닙니다. 설령 신비주의나 이단이라는 말을 듣는다고 할지라도 결코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이들을 지혜롭다고 하시지요(마 10:28). 이렇게 하나님의 인정받을 만한 참된 종은 양 떼들에게 구원의 도를 가르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온전한 믿음 가운데로 들어오게 이끌어 줍니다. 또한 하나님 역사를 끌어낼 수 있는 종이지요. 그래서 이러한 종이 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마음을 할례하고 영으로 변화되며 행함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종이 진정 지혜로워서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있는 종입니다.


4.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의 의미

9절에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했습니다. 이는 ‘비록 불의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돌이킬 수 있도록 길을 열어 주고 변화시켜 온전한 믿음 안에 들어오게 했을 때 장차 천국에 이르러서 여러분을 영접한다’는 뜻입니다.
진리로 볼 때 옳지 못하고 아직 육에 거하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그들을 끊고 믿음이 없다 하며 손가락질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품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지요. 예수님께서도 가룟 유다를 끝까지 참아주시고 긍휼히 여기셨으며, 모세 또한 출애굽 한 백성들이 불평하고 원망할지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고 그들을 위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생명을 걸고 간구했습니다.
이처럼 그들의 믿음이 부족하고 하나님의 뜻을 거슬려 나간다 해도, 사랑으로 권면하고 기도해 주며 인내로 바라봐 주었을 때 그들이 변화되고 장차 천국에 이르러서는 여러분을 영접하고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맞는 사람만 골라서 사랑하고 사귀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에서 볼 때, 때로는 내 마음 같지 않고 나와 맞지 않는 분야가 있다 해도, 또한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은 것이 있다 해도, 어찌하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이끌어 주어야 하지요. 그러기 위해 끝까지 참아주고 사랑해 주며, 한 영혼을 천하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주님의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주인 소유를 늘려갈 수 있는 충성된 청지기요, 주님 마음을 닮은 선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의 칭찬과 기쁨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24-06-13 오후 3:25:49 Posted
2025-09-21 오전 11:50:3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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