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시험 환난도 만나지 않고 주님께서 주시는 참 평안을 누리려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왜 기도해야 하는지를 깨달아 마음 중심으로 기도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래서 항상 참 평안을 누리시고 축복의 간증으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기도의 본을 보이시며 참 평안을 주신 예수님
예수님은 몸소 기도의 본을 보이시면서 늘 깨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십자가를 질 때가 임박함을 아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는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기까지 간절히 기도하셨지요. 그러나 함께 간 제자들은 잠들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은 수제자 베드로에게 안타깝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말씀합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붙잡혀 십자가에 못 박히시는 사건은 영적으로는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한 섭리입니다. 하지만 믿음이 적은 제자들에게는 이기기 힘든 시험이 될 수도 있었지요. 이를 염려하시고 깨어 기도하라 하신 것입니다. 이는 당시 제자들만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모든 성도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주님을 따라 십자가의 길을 걷는 성도들도 하루하루 원수 마귀 사단과 영적인 싸움을 하지요. 늘 깨어 기도해야 시험에 들지 않고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기 쉽지요. 그렇다고 해서 시험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 속에 기도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간혹 "하나님께서 시험을 주셨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야고보서 1:13~15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시험은 사람이 자초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29:11~12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 하는 생각이라 너희는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들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즉 자녀들이 재앙 만나지 않고 평안과 소망 가운데 살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2. 기도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기 쉬운 이유
첫째, 성령의 주관을 받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업을 하다가 큰 어려움을 겪는 성도들을 종종 봅니다. 이런 경우 기도해서 주관을 받기보다 자기 욕심에 이끌려 일을 추진한 경우가 많지요. 가령 시의 적절하지 않은 계약을 하거나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함으로써 어려움을 자초합니다. 그러나 기도하여 성령의 주관대로 모든 일을 추진하면 형통합니다.
요한복음 16:13 후반절에 예수님께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성령은 성도들을 진리 곧 하나님 말씀대로 살도록 인도하십니다.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면 시험거리 자체를 만들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원수 마귀 사단이 송사할 빌미가 없지요.
만약 어떤 실수나 외부 요소로 인해 시험이 온다 해도 성령은 시험이 올 것을 미리 알려 주셔서 대비케 하십니다. 피할 길을 주시지요. 그런데 간혹 어떤 분들은 말씀대로 행했는데도 어려움이 왔다고 합니다. 과연 말씀대로 행했는데도 시험이 왔을까요? 스스로는 진리 말씀대로 행했다고 자부해도 자신의 의와 틀이 있는 상태에서는 진리를 백 퍼센트 분별하기가 어렵습니다.
의란 간단히 말해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것이며 그 의가 단단히 굳은 것이 틀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식이 많은 사람이었고 자기 의가 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영접한 뒤로는 자신의 의가 대부분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음을 절실히 체험하고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고린도후서 10:5에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이렇게 자신의 생각과 이론이 있는 한은 성령의 주관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정확히 알려면 항상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주관을 정확하게 받아야 합니다. 또한 동시에 불같이 기도하여 자기 의와 틀을 깨뜨려 나가야 하지요. 더구나 신앙의 연륜이 쌓이고 말씀 지식이 많이 쌓이면 진리 안에서 또 다른 틀을 만들기도 합니다. 명백한 비진리는 아니지만 온전한 진리는 아닌 진리의 틀을 갖게 됩니다. 이런 것은 불같이 기도하여야만 발견할 수 있고 깨뜨릴 수 있습니다.
둘째, 성령의 소욕을 좇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진리를 알고 성령의 주관을 받는다고 해서 그대로 행하는 것은 아닙니다. 영적인 힘이 있어야만 성령의 소욕을 좇아 하나님의 뜻을 행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랫동안 신앙생활한 성도가 갑자기 교회에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이 성도가 주일도 잘 지키고, 십일조도 하는 모습을 보고 믿음이 좋구나 하고 생각했다가 놀라기도 하지요. 이런 성도들의 경우 기도 생활을 아예 하지 않거나 장기간 기도를 쉰 경우가 많습니다. 기도를 잘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가정이나 일터에 어떤 어려움이 오니 그만 낙심하고 맙니다. 그러면 항상 기뻐하고 감사해야 함을 알지만 영적인 힘이 오지 않으니 행하지는 못합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방법을 찾아가지요.
또한 늘 깨어 기도하지 않는 경우 세상의 유혹이 올 때 뿌리치지 못합니다. 예전처럼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좇아 육의 것을 취해 나가지요. 다시 구습을 좇아 살아갑니다. 이처럼 육체의 소욕을 좇고자 하는 마음 곧 내 몸에 밴 구습이나 육의 속성을 자기 의지로 벗어 버리기는 어렵습니다. 위로부터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 성령의 도우심을 입어야지만 마음을 지배하고 다스릴 수가 있습니다. 마음 깊은 곳의 죄성까지 뽑아내고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참 아들, 딸로 변화될 수 있지요. 늘 깨어 기도할 때 바로 이런 은혜와 능력, 성령의 감동을 항상 입을 수가 있고 항상 성령의 소욕을 좇을 수가 있습니다.
공중 권세 잡은 악의 영들은 생각을 통해 끊임없이 마음의 비진리를 충동질하며 부추기지요. 어찌하든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려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5:8~9에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는 말씀대로이지요. 이때 늘 기도하여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미혹을 단호히 물리칩니다. 그러나 기도를 하지 않는 사람은 마음이 요동합니다. 미혹할 때 흔들리지 않으면 물러가지만 조금이라도 흔들리면 계속해서 시험을 줍니다. 의심을 주어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나태함과 방탕함을 좇게 하여 신앙생활에 열심내지 못하게 합니다. 세상으로 향하여 죄를 짓게 하지요. 이런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에 빠지지 않고 또 단호히 물리치려면 반드시 기도해야 합니다.
3.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려면
그런데 어떤 분들은 기도해야 하는 것은 알지만 하루 종일 일하고 나면 너무 피곤해서 기도하기가 어렵다고 말합니다. "우리 예수님도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말씀하시지 않았습니까? 사람은 본래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고 기도하지 않는 것을 합리화하기도 하지요. 그러나 이는 말씀을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여기서 육신이 약하다는 것은 단순히 몸이 약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은 잔뼈가 굵은 어부들입니다. 더구나 그 당시에는 신체 건장한 젊은이들이었지요. 밤새 고기를 잡아도 끄떡없던 사람들이니 몇 시간 잠을 안자는 것은 문제가 안 됩니다. 더구나 사랑하는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고 당부까지 하셨지요. 그런데도 제자들은 잠들어 버렸습니다. 이들은 단지 몸이 약해서 잠에 빠진 것이 아닙니다.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해 잠든 것이지요.
이때 육신은 단순히 살과 뼈로 이뤄진 사람의 몸이 아니라 죄성과 결합한 몸을 가리킵니다. 죄성과 결합한 몸이 육을 좇고자 하고 죄를 짓고자 하는 속성이 바로 육신의 소욕이지요. 제자들은 마음으로는 기도하기 원했지만 잠자고 싶고 편히 쉬고 싶은 육신의 소욕이 더 강해서 졸음을 이기지 못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좀 피곤해도 재미있게 놀 때는 피곤도 거뜬히 이기지 않습니까? 이처럼 피곤을 이김에 있어서 결정적인 것은 피곤하다는 육적인 현상 자체가 아니라 기도하기보다는 편히 쉬고 싶어 하는 마음 즉 육신의 소욕을 제압하느냐 제압당하느냐입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이 육신의 소욕을 이기지 못한 이유는 성령받기 전이었기 때문입니다. 성령받고 난 후에는 이런 연약함을 찾아볼 수 없는 담대한 사도들로 180도 변했지요. 베드로는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예수님께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받기 전에는 막상 예수님이 잡히시자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지요. 그러나 성령받은 후에는 생명의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담대히 갖가지 표적을 나타내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순교하는 마지막 순간에는 십자가를 거꾸로 지겠다고 자원할 정도로 담대했지요. 그러니 나는 연약해서 또는 피곤해서 기도할 수 없습니다. 하시는 분이 있다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심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믿음의 힘을 보여 주셨습니다. 이런 주님을 믿으면 우리에게도 불가능이 가능해집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대속해 주셨습니다. 하늘로 돌아가시면서는 우리를 도우실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 주셨지요. 이런 사실을 진정 믿는다면 어찌 기도하지 못하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요.
설령 몸이 연약하다 해도 기도할 마음만 있다면 강건함을 구해서라도 기도할 것입니다.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교회와 목자, 형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한다면 능히 피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성령님께서 도와주십니다. 성령의 충만함, 감동을 입으면 피곤하지 않고 졸리지 않습니다. 불같이 기도해서 성령 충만을 입으면 영감이 밝아지고 마음에 기쁨이 가득 차서 몸이 가벼워지기 때문입니다. 믿음대로 되는 것이 영계의 법칙입니다. 성령받은 성도가 "육신이 약해서 못합니다." 하고 자꾸 고백하면 입술의 고백대로 항상 연약할 수밖에 없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물고기를 물 밖에 건져 놓으면 결국 죽고 맙니다. 호흡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의 영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영혼은 기도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영접하는 순간, 죄로 인해 죽었던 우리의 영이 살아났습니다. 다시금 죄에 가담하여 생명을 잃는 일이 없으려면 반드시 영적인 능력을 공급받아야만 하지요. 늘 깨어 기도함으로 성령의 감동, 감화, 교통 속에 살아야 합니다.
이처럼 영혼이 잘되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따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항상 지켜 주십니다. 여러분도 늘 깨어 기도하심으로 세상을 이기고 사명을 잘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새 예루살렘에 꼭 들어가 아버지 하나님, 주님의 얼굴을 뵈며 행복하게 대화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9-10-05 오후 11:24:16 Posted
2018-04-19 오후 2:48:46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