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응답서비스

언론보도

제목
[이재록목사의 잠언강해-32]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본문: 잠언 8:12]
출처
크리스챤 신문
날짜
2011년 6월 3일 금요일
조회수: 3663
뉴스▲ 선한 지혜로 명철을 주소 삼아 행군한 다윗/ 일러스트 김동호


1. 주소가 정확해야 올바로 배달될 수 있어

잠언 8장 12절에 "나 지혜는 명철로 주소를 삼으며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하였습니다. 여기서 나는 솔로몬이 아니라 지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께 속한 것 중에 지혜를 독립적으로 떼어 놓고 나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명철은 길을 밝히 아는 것으로 방법론을 환히 꿰뚫고 있기에 공식과 같습니다. 그러면 명철로 주소를 삼는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오늘날에는 도로망이나 우편체계가 발달되어 있어 주소대로 정확하게 배달됩니다. 그런데 예전에는 컴퓨터도 없었고 우편체계가 발달되지 않았기에 서신이 잘못 배달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엉뚱한 곳에 배달되거나 도중에 누락되어 없어지는 경우도 있었지요. 서신이 잘못 배달될 경우 문제가 크게 생기고 사람의 운명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어떤 여인은 전쟁에 나간 아들의 사망 통지서를 받은 후 망연자실하여 상심을 이기지 못한 채 병을 얻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죽은 줄로만 알았던 이 아들이 살아 있음을 확인한 부대에서 이 소식을 담은 서신을 다시 집에 보냈지만 주소가 잘못 기재되었던지 어머니에게 전달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 여인은 시름시름 앓다가 아들이 군복무를 마치기 전에 죽고 말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주소가 잘못 기재되거나 우체부의 실수로 엉뚱한 곳에 배달되었을 때 사람의 운명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소식을 기다리다가 절망하여 자살한 경우도 있습니다. 서신을 보낼 때에는 주소가 정확한 것이 중요합니다. 주소가 정확한 만큼 올바로 전달될 수 있기 때문에 소통이 되고 목적한 바가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지혜는 이러한 명철로 주소를 삼기 때문에 모든 일에 정확하고 온전하며 안전할 수 있습니다.


2. 악한 지혜에서 나온 사울의 궤계가 명철이 되니

지혜는 악한 지혜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사울을 꼽을 수 있습니다. 사울은 다윗이 자신보다 백성들에게 칭찬을 받자 방백들과 군사를 동원하여서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자신이 왕이니 백성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야하며 왕위를 보존하기 위해서는 다윗을 죽여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혜였던 것입니다.

다윗을 어떻게 죽일 것이냐 하는 사울의 방법론이 명철이 되었기에 여러 궤계를 동원하였습니다. 단창을 던져 다윗을 죽이려고 했으며, 딸 미갈을 주겠다는 미끼로 블레셋 사람의 양피 일백 개를 가져오게 했습니다. 일백 개의 양피를 가져 오려면 일백 사람을 죽여야 했기에 블레셋 사람의 손에 죽게 만들고자한 계책이었습니다.

사자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죽이고자한 적도 있었습니다. 이런 여러 악한 방법이 사울에게서 나온 명철이었습니다. 명철로 주소를 삼는다는 것은 그것을 펼쳐 나가고 행군해 나가는 것이 곧 주소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나온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었기에 결국 대패하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육의 사람의 지혜이며 명철입니다.

사람이 자기 방법이나 생각으로 지혜와 명철을 삼게 되면 실패하는 일이 많이 생깁니다. 일례로 사업을 할 때 계획을 세우고 여러 방법을 동원하여 이것으로 주소를 삼아 보지만 상대가 나보다 더 나은 지혜나 경험, 자본, 방법 등을 가지고 나오면 패하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나온 지혜는 만사형통입니다. 원수 마귀가 방해해도 하나님이 물리쳐 주시고 성취할 수 있도록 역사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행군한 것은 마귀가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선한 사람의 지혜는 어떤 방법론이 나올까요? 선한 지혜는 하나님의 진리와 선과 공의에서 나옵니다. 선한 지혜를 받으면 명철이 보입니다. 만일 사울왕이 선한 지혜를 받았다면 어떤 생각과 행함이 나왔겠습니까?

"다윗이 생명을 다해 나라와 백성을 구했으며 나를 구했으니 참으로 아름다운 신하로구나. 그가 백성들의 사랑을 많이 받으니 내 마음이 기쁘고 흐뭇하다. 내가 다윗의 공을 어떻게 갚을 수 있을까. 저를 더욱 높여 백성들의 사랑을 더 많이 받게 해 주고 명예와 권세와 부귀를 누리게 해야겠구나."

이렇게 선 속에서 지혜가 나오는 것입니다. 만일 사울 왕이 이런 행함으로 나왔다면 하나님의 사랑과 백성들의 사랑을 받고 왕위도 보전하였을 것입니다. 또 신하들의 존경도 받았을 것입니다. 다윗 역시 자기 생명을 다해 사울 왕을 더욱 섬기지 않았겠습니까? 이렇게 선한 지혜와 악한 지혜가 다르고 명철이 다릅니다. 하지만 악한 사람들은 사울의 지혜를 따릅니다. 선한 지혜는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3. 선한 지혜 속에 명철을 주소를 삼아 행군한 다윗

다윗의 지혜는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 선과 사랑이었기에 자기 도리를 잃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방법론, 즉 명철은 어떠하였습니까? 사울을 용서했으며 죽일 수가 있었지만 죽이지 않았습니다. 선한 행함으로 주소를 삼아 행군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선을 좇는 사람들은 길이 보이기에 방황할 일이 없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다윗이라면 어떻게 행동하였겠습니까? 죄를 지은 것도 없고 잘못이 없으며 나라를 위해서 목숨 바쳐 충성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왕이 고맙다는 인사는커녕 죽이려고 합니다. 왕을 피해 다니면서 굶주려야 하고 미친 사람 흉내를 내야할 경우도 있고 다른 나라로 피신을 가기도 했습니다.

잠자리도 없고 먹을 것도 구걸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차기 왕이 될 사람으로 기름부음을 받았고 백성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랑을 잃은 사울 왕이 자신을 죽이고자 추격해 오던 중 다윗이 숨어 있던 굴 속에 들어와 잠이 들었습니다.

드디어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입니다. 잠에 빠져 있는 사울 왕을 죽이면 자신은 백성의 환영을 받으며 왕이 될 것입니다. 만일 다윗에게 악한 지혜가 왔다면 쫓겨 다니는 신세도 면하고 빨리 왕이 되고자 사울을 죽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고 가만히 사울의 옷자락을 베었습니다. 아무리 사울이 악하고 버림을 받았어도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었으므로 죽이고 살리는 것은 하나님의 소관이었기에 마음대로 죽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선의 지혜입니다. 이렇게 선한 지혜 속에서 나온 명철로 주소를 삼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4.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나니

본문 12절에는 지혜가 지식과 근신을 찾아 얻는다고 말씀합니다. 지식은 근신과 함께 합니다. 다윗은 선한 지혜가 와서 명철로 주소를 삼다 보니 지식을 얻었습니다. 과연 어떤 지식을 얻었을까요? 선한 행함으로 나간 결과 하나님의 섭리와 뜻을 깨우치고 방법론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능력이 되니 근신하게 되었습니다. 자신이 다음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고 백성들이 사울보다 자신을 높여 주었다고 경거망동하지 않고 근신하면서 자기 때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길은 망하지 않고 온전하게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뜻을 이루게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왕으로 세우실 때까지 자신의 방법을 동원하지 않았고 오직 근신했습니다. "나를 죽이려고 쫓아온 못된 사울이 잠을 자고 있구나. 드디어 하나님이 사울을 죽이라고 기회를 주셨다."

오늘날 이렇게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은 불법을 좇아 기회를 주시지 않습니다. 선과 공의를 좇아 합력하여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크고 작은 어떤 일을 이루고자 할 때 이와 같이 명철로 주소를 삼아 지식을 얻어야 합니다.

지식을 얻으면 이것이 경험이 되고 능력이 됨으로 근신하게 됩니다. 잠언 13장 3절에 "입을 지키는 자는 그 생명을 보전하나 입술을 크게 벌리는 자에게는 멸망이 오느니라" 하였습니다. 여러분도 명철로 주소를 얻되 지식을 얻어 근신해야 온전할 수 있습니다. 어떤 목회자는 열심히 기도하면서 사역한 결과 세계적인 교회가 되었습니다.

지혜가 있었기에 명철로 주소를 삼으면서 사역을 했지만 지식과 근신이 부족하여 사람들로부터 욕을 먹고 문제가 생겨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지식과 근신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지식은 한낱 피상적인 지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명철로 주소를 삼은 뒤에 풍부한 경험을 통해 알곡으로 기름지게 다져져 양식된 방법을 의미합니다.

세상에는 유명한 격언이나 일화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명언은 참된 지식이 아니며 생명이 없기에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반면에 하나님 앞에서 명철로 주소를 삼아 이루어진 지식은 경험에 의해 온전한 것이기 때문에 사람을 근신하게 하며 온전케합니다.

2011년 06월 03일 (금) 16:12:45 이재록목사sion7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