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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불경기와 상관없이 직장에서 인정과 사랑받는 비결을 아시나요? - 라영남 집사
출처
만민뉴스 제2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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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년 9월 26일 월요일
조회수: 14157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 3서 2절)
- 라영남 집사 / (주)제이월드 이사, 4대 16-1교구
1991년, 대학 졸업 후 수원에 있는 필립스 전자(주)에 입사하자 마자 아내 안정순 집사와 결혼,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신혼 초부터 병든 노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신혼 초부터 버거운 삶을 살던 중
아내는 노부모를 모셔야 하는 정신적인 부담에 힘들어 했고, 저도 그 틈바구니에서 스트레스만 날로 쌓여갔습니다. 이뿐 아니라 두 아들에게는 항상 크고 작은 사고나 질병이 따라 다녀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고, 저도 큰 교통사고를 내어 물질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등 그야말로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시 교회에는 나가고 있었지만 제 얼굴의 기쁨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고, 축 처진 두 어깨가 암담한 현실을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아내 또한 버거운 삶을 살았지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이곳 저곳 부흥성회를 찾아다니며 참 평안을 얻고자 했으나 영적인 갈급함은 채울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1997년 6월 초, 아내는 당시 다니던 교회 집사님을 통해 이재록 목사님의 간증수기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를 읽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모든 질병을 치료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세계적인 대교회로 성장시킨 이재록 목사님의 생생한 체험담과 생명력 넘치는 메시지는 아내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변화된 아내의 전도로 온가족이 등록하고
더구나 아내는 우연히 「만민중앙소식」지를 건네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의 주인공인 이재록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만민중앙교회의 신문이었습니다. 아내는 이러한 사실들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 곧바로만민중앙교회를 찾게 되었고, 그렇게 갈급해 있던 생명의 말씀을 듣고 교회에 등록하였습니다.
저는 변화된 아내의 모습에 놀라워하며 교회에 함께 가자는 아내의 인도로 거리는 멀었지만 설교 말씀과 성도들의 선한 모습에 은혜받고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이어 동서 백경준 집사님(1-3남선교회)과 작은 처형 안정숙 집사님(기도제물), 큰 처형 안정애 집사님(여선교회 부기관장)도 본교회에 등록하게 되었답니다. 할렐루야!
참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아
저는 본교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 희한한 능을 통해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과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임을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또한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서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목자임을 확신하게 되었지요.
1999년 5월, 모 방송국의 본교회 관련 왜곡 편파보도가 있었지만 가족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흔들림 없이 교회와 목자의 힘이 되고자 힘썼습니다. 그리고 저는 비록 작은 사명이라 할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충성되이 감당해 냈을 때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1999년 3월, 수원 지성전이 세워졌을 때 강대상, 전화기 등을 헌물하며 지성전의 초석이 되고자 지역장님을 힘껏 도왔습니다. 또한 회사 일을 마친 후 곧바로 지성전으로 달려가 다니엘 철야기도회 준비를 하는 것이 제일의 사명이요 행복이었지요. 당시는 인터넷으로 철야 기도회를 하던 때라 컴퓨터 설치 및 작동 등을 직접 하고 성전 청소 및 정리 정돈, 국수 봉사 등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했습니다.
불같이 기도하며 오직 섬김으로 행하니
그러던 중 2000년부터는 서울 본교회 근처에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마음의 주관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고 본교회 근처로 이사를 오니 마음껏 기도도 할 수 있고, 평소에 사모하던 성가대에 들어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음에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요.
2003년 어느 날, 당회장님께서 설교 중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월급받는 직장인이라도 십일조가 불어나는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십일조의 축복'을 2004년도에 이루어야 할 기도제목의 하나로 삼고 하나님께 믿음의 행함을 내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검소하게 생활하시는 당회장님의 모습에 은혜를 받고 저도 한 푼이라도 아껴 하나님께 드리기를 즐겨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2004년 2월 초부터 3월 초까지 「28일 특별 철야 기도회」가 개최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떠올려 주시며 거의 매일 통회자복의 은혜를 부어 주셨고 그 후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던 품질 보증팀은 고객 불만 처리 등 힘들고 귀찮아 하는 대외 업무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 직원들이 기피하는 부서입니다. 하지만 저는 고객들의 불만을 겸허하게 듣고 원인과 대책을 세워 고객들에게 설명하며 성실하게 대했습니다.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상대가 때때로 따지며 언성을 높인다 해도 오직 섬김으로 대했지요.
파격적인 승진은 물론 하나님의 방법대로 물질의 축복이 넘쳐
그러다 보니 한 달 평균 180여 건이던 불만 건수가 20여 건으로 대폭 감소하였습니다. 이를 지켜 보시던 상무님께서는 입사한 지 1년밖에 안된 저를 진급 심사 대상자로 추천해 주셔서 차장에서 부장으로 파격적인 승진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어 회화를 할 수 있는 저는 입사 초기부터 중국 지사에 출장을 자주 가게 되었는데 점점 중국 관련 출장 업무가 폭주하다 보니 온전한 주일성수 및 성가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났지요.
"아버지 하나님! 온전한 주일성수와 성가대 사명도 잘 감당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옵소서."
그러던 지난 7월 24일 주일 저녁예배시,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고자 전 성도가 그동안 온전치 못한 신앙생활과 교회와 목자의 힘이 되지 못함을 회개하는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그 때 저와 가족들은 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 마음을 찢는 회개예배를 드렸습니다.
다음 날, 평소 저의 업무능력과 성실함을 지켜보고 계시던 핸드폰 배터리팩 용 라벨 제조, 판매업체인 (주)제이월드 사장님으로부터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결국 이사직으로 스카웃되어 십일조 50만 원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제 마음의 소원대로 출장이 잦은 외근직이 아닌 내근직으로 온전한 주일성수와 성가대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다니던 회사 사장님께서는 저의 입장을 잘 이해해 주시고 회식자리까지 마련해 주시기도 했지요.
저의 중심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모함으로 선교헌금을 심는 등 믿음으로 행해 온 모든 것을 잊지 않으시고 갚아 주신 것입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리며 생명의 말씀으로 양육해 주시고 진액을 다해 기도해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
- 라영남 집사 / (주)제이월드 이사, 4대 16-1교구
1991년, 대학 졸업 후 수원에 있는 필립스 전자(주)에 입사하자 마자 아내 안정순 집사와 결혼,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신혼 초부터 병든 노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운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신혼 초부터 버거운 삶을 살던 중
아내는 노부모를 모셔야 하는 정신적인 부담에 힘들어 했고, 저도 그 틈바구니에서 스트레스만 날로 쌓여갔습니다. 이뿐 아니라 두 아들에게는 항상 크고 작은 사고나 질병이 따라 다녀 마음이 편할 날이 없었고, 저도 큰 교통사고를 내어 물질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등 그야말로 어려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당시 교회에는 나가고 있었지만 제 얼굴의 기쁨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고, 축 처진 두 어깨가 암담한 현실을 대변하는 듯했습니다. 아내 또한 버거운 삶을 살았지요. 그래서 저희 부부는 이곳 저곳 부흥성회를 찾아다니며 참 평안을 얻고자 했으나 영적인 갈급함은 채울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1997년 6월 초, 아내는 당시 다니던 교회 집사님을 통해 이재록 목사님의 간증수기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를 읽게 되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적적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 모든 질병을 치료받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세계적인 대교회로 성장시킨 이재록 목사님의 생생한 체험담과 생명력 넘치는 메시지는 아내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변화된 아내의 전도로 온가족이 등록하고
더구나 아내는 우연히 「만민중앙소식」지를 건네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의 주인공인 이재록 목사님께서 시무하시는 만민중앙교회의 신문이었습니다. 아내는 이러한 사실들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겨 곧바로만민중앙교회를 찾게 되었고, 그렇게 갈급해 있던 생명의 말씀을 듣고 교회에 등록하였습니다.
저는 변화된 아내의 모습에 놀라워하며 교회에 함께 가자는 아내의 인도로 거리는 멀었지만 설교 말씀과 성도들의 선한 모습에 은혜받고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이어 동서 백경준 집사님(1-3남선교회)과 작은 처형 안정숙 집사님(기도제물), 큰 처형 안정애 집사님(여선교회 부기관장)도 본교회에 등록하게 되었답니다. 할렐루야!
참 믿음을 소유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아
저는 본교회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기사와 표적, 희한한 능을 통해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과 예수님만이 우리의 구세주임을 확실히 믿게 되었습니다. 또한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서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목자임을 확신하게 되었지요.
1999년 5월, 모 방송국의 본교회 관련 왜곡 편파보도가 있었지만 가족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흔들림 없이 교회와 목자의 힘이 되고자 힘썼습니다. 그리고 저는 비록 작은 사명이라 할지라도 소홀히 여기지 않고 충성되이 감당해 냈을 때 축복이 임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지요.
1999년 3월, 수원 지성전이 세워졌을 때 강대상, 전화기 등을 헌물하며 지성전의 초석이 되고자 지역장님을 힘껏 도왔습니다. 또한 회사 일을 마친 후 곧바로 지성전으로 달려가 다니엘 철야기도회 준비를 하는 것이 제일의 사명이요 행복이었지요. 당시는 인터넷으로 철야 기도회를 하던 때라 컴퓨터 설치 및 작동 등을 직접 하고 성전 청소 및 정리 정돈, 국수 봉사 등도 기쁨과 감사함으로 했습니다.
불같이 기도하며 오직 섬김으로 행하니
그러던 중 2000년부터는 서울 본교회 근처에서 신앙생활을 해야겠다는 마음의 주관이 왔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로 직장을 옮기게 되었고 본교회 근처로 이사를 오니 마음껏 기도도 할 수 있고, 평소에 사모하던 성가대에 들어가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음에 얼마나 기쁘고 행복했는지요.
2003년 어느 날, 당회장님께서 설교 중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때 월급받는 직장인이라도 십일조가 불어나는 축복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십일조의 축복'을 2004년도에 이루어야 할 기도제목의 하나로 삼고 하나님께 믿음의 행함을 내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평소 검소하게 생활하시는 당회장님의 모습에 은혜를 받고 저도 한 푼이라도 아껴 하나님께 드리기를 즐겨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2004년 2월 초부터 3월 초까지 「28일 특별 철야 기도회」가 개최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살지 못한 것을 떠올려 주시며 거의 매일 통회자복의 은혜를 부어 주셨고 그 후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던 품질 보증팀은 고객 불만 처리 등 힘들고 귀찮아 하는 대외 업무가 많기 때문에 대부분 직원들이 기피하는 부서입니다. 하지만 저는 고객들의 불만을 겸허하게 듣고 원인과 대책을 세워 고객들에게 설명하며 성실하게 대했습니다. 항상 밝은 미소를 잃지 않으며 상대가 때때로 따지며 언성을 높인다 해도 오직 섬김으로 대했지요.
파격적인 승진은 물론 하나님의 방법대로 물질의 축복이 넘쳐
그러다 보니 한 달 평균 180여 건이던 불만 건수가 20여 건으로 대폭 감소하였습니다. 이를 지켜 보시던 상무님께서는 입사한 지 1년밖에 안된 저를 진급 심사 대상자로 추천해 주셔서 차장에서 부장으로 파격적인 승진의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어 회화를 할 수 있는 저는 입사 초기부터 중국 지사에 출장을 자주 가게 되었는데 점점 중국 관련 출장 업무가 폭주하다 보니 온전한 주일성수 및 성가대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생겨났지요.
"아버지 하나님! 온전한 주일성수와 성가대 사명도 잘 감당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옵소서."
그러던 지난 7월 24일 주일 저녁예배시, 하나님께서 축복을 주시고자 전 성도가 그동안 온전치 못한 신앙생활과 교회와 목자의 힘이 되지 못함을 회개하는 예배가 드려졌습니다. 그 때 저와 가족들은 예물을 정성껏 준비하여 마음을 찢는 회개예배를 드렸습니다.
다음 날, 평소 저의 업무능력과 성실함을 지켜보고 계시던 핸드폰 배터리팩 용 라벨 제조, 판매업체인 (주)제이월드 사장님으로부터 제의가 들어왔습니다. 결국 이사직으로 스카웃되어 십일조 50만 원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제 마음의 소원대로 출장이 잦은 외근직이 아닌 내근직으로 온전한 주일성수와 성가대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다니던 회사 사장님께서는 저의 입장을 잘 이해해 주시고 회식자리까지 마련해 주시기도 했지요.
저의 중심을 다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사모함으로 선교헌금을 심는 등 믿음으로 행해 온 모든 것을 잊지 않으시고 갚아 주신 것입니다.
모든 감사와 영광을 아버지 하나님께 돌리며 생명의 말씀으로 양육해 주시고 진액을 다해 기도해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