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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재록목사의 잠언강해-24]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은 [잠 6:16-19]
출처
크리스챤 신문
날짜
2011년 3월 25일 금요일
조회수: 3730
본문: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과 거짓된 혀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악한 계교를 꾀하는 마음과 빨리 악으로 달려가는 발과 거짓을 말하는 망령된 증인과 및 형제 사이를 이간하는 자니라"(잠 6:16-19)

뉴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교만 일러스트 ㅣ 김동호


만일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을 내가 갖고 있다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가 없으며 기도해도 응답이 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해도 거짓말이 되는 것이지요.

본문에서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이 육칠 가지라고 한 것은 여섯, 일곱가지만 있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 이보다 더 많지만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지요. 일례로 부모가 자녀를 진리로 비춰보면 고쳐야할 것이 대부분입니다. 그렇다고 일일이 지적하면 자녀는 죄의 짐에 눌려 자신을 구속하는 틀 속에 갇힐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녀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것은 그대로 두고 지켜보는 것이 좋습니다. 다만 기본적인 악이나 하나님 뜻에 크게 어긋난 죄가 있을 경우 꼬집어 말해줄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기서 육칠 가지 만 사례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1. 교만한 눈

교만해지면 마음이 높아져 상대를 우습게 봅니다. 사람에게 악의 모양이 있는 만큼 교만해집니다. 사울 왕은 얼마나 교만한 눈을 가졌겠습니까? 구약 에스더를 보면 왕비 와스디가 교만하여 왕에게 순종하지 않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와스디의 눈이 얼마나 교만했을지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TV나 영화에서 사극을 보면 왕조 시대 여인들이 투기할 때 얼마나 교만한 눈을 하고 있습니까? 왕의 은총을 많이 받는 여인일수록 눈을 치켜뜨며 교만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사회적인 지식이나 권세나 명예가 있다고 해서 가난하거나 권세가 없는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고 상대를 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부유하고 명예나 권세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 사랑을 받거나 인정받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6장을 보면 부자는 지옥에 떨어졌어도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거지 나사로는 구원을 받았지 않습니까? 하나님 말씀대로 나보다 못한 사람을 더 높여주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눈을 갖기 원하실까요?

흔히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눈은 선한 마음 속에 나오는 선한 눈빛입니다. 아기의 눈빛이 얼마나 선합니까? 아기는 아직 악이 무엇인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어린이라도 악을 행하면 눈빛이 흐려집니다.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눈빛에 악함이 나타납니다.

반면에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눈빛이 맑고 깨끗하며 선함이 느껴집니다. 하나님의 자녀라면 선한 마음과 선한 눈빛을 갖고 있어야하겠습니다. 사람이 마음이 높아져 상대를 무시하거나, 시기하고 미워할 때, 혈기를 낼 때, 내 생각에 맞지 않으니 판단하고 정죄하거나 헤아릴 때 교만한 눈이 됩니다. 교만한 눈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신다고 했습니다. 판단하고 정죄하는 교만한 눈이 아니라 선 속에서 사랑의 눈을 떠야 하겠습니다.


2. 거짓된 혀

성경에는 거짓말하는 경우를 곳곳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계교를 꾸미고 거짓말을 했으며, 들릴라는 삼손을 거짓말로 호리면서 비밀을 알아냈습니다. 원수 마귀 사단에게 사주를 받아 거짓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왕상 22장).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 26장) 했지만 막상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당시 베드로는 거짓말을 할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육의 마음은 변할 수 있기에 마음을 지키지 못하니 거짓말을 한 결과가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 안에 비진리가 남아 있는 한 우리는 자신을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 결심하고 고백한 말도 내일 지킨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처음에 주님을 영접하고 성령을 받고 나니 은혜가 충만합니다. 이제는 변함없이 하나님만 사랑하겠다고 고백한 사람도 몇 달이 안 가서 은혜가 떨어지고 마음이 변해 하나님을 떠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비진리인 육을 벗어버리는 만큼 진실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통해 육의 마음을 영의 마음으로 온전히 바꾸었을 때 그 사람의 고백이 참된 것입니다. 영의 사람은 거짓말을 하면 양심이 괴로워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거짓말을 할 수가 없지요. 육의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양심의 고통을 받지 않습니다.

또 본의 아니게 거짓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얀 거짓말이라고도 하는데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서, 혹은 올바른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하는 거짓말입니다. 여리고성에 살던 기생 라합이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준 사례가 여기에 해당합니다(수 2:4-5).

라합이 지혜롭게 거짓말을 해서 정탐꾼을 쫓는 사람들이 속아 넘어갔는데 이는 하나님 뜻에 의한 것이기에 죄가 되지 않습니다. 또 출애굽 당시에 히브리 산파가 아기를 살리기 위해 거짓말을 한 것도 하나님 보시기에 죄가 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얀 거짓말은 해도 좋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지혜롭게 피하셨거나 입을 다물었지 하얀 거짓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3.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경우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가인은 동생 아벨을 시기하여 살인했습니다. 악인은 선이나 의를 본받으려 하지 않고 시기하고 죽입니다. 사울왕은 백성들이 다윗을 더 인정하고 사랑하니 죽이고자 했습니다. 자신의 악함으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결국 가인은 떠돌며 유리하는 자가 되었고 사울은 버림을 받았습니다.

다윗은 충신 우리아를 죽이는 죄를 지었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인 밧세바를 취하고 이 일을 은폐하기 위해 처음에는 선한 방법을 도모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았지요. 그래서 다윗은 죄가 없는 우리아를 죽였고 이로 인해 많은 연단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의로운 사람이었던 우리아를 왜 지켜주지 않았는지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윗왕은 밧세바와 동침한 후 잉태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이 일을 무마하기 위해 전쟁터에 있던 우리아를 불렀습니다. 왕이 우리아에게 전쟁터 소식을 묻고 오늘 밤에는 집에 가서 쉬라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아가 집에 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잤습니다.

다윗이 우리아를 불러 집에 가서 쉬지 않은 이유를 묻자 그는 언약궤와 전쟁터에 있는 군사들을 생각하여 집에 가서 먹고 마시며 처와 같이 잘 수가 없다고 답변했습니다. 다음날도 우리아가 집에 가지 않자 다윗은 요압에게 편지를 썼고 결국 우리아는 전쟁 터에서 죽었습니다(삼하 11:1-17).

만일 우리아가 다윗 왕의 명령에 순종했다면 죽음을 피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아의 행동은 사람 보기에 의로운 행동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아니었지요. 결국 자기 의 속에 질서에 순종하지 않았기에 지킴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생활 속에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것은 어떤 경우일까요? 여러분은 주변에 있는 사람이 칭찬받는 것을 볼 때 시기심이 일어납니까? 시기 질투가 일어난다면 상대의 장점보다는 단점을 먼저 본 것이 아닌지 돌아보기 바랍니다. 단점을 먼저 생각하니 서로 수군거리거나 비방하게 되지요. 이것이 바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것에 해당합니다.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함께 기뻐하고 본받으려고 하는 마음을 갖지요.

아주 오래전 이야기입니다마는 제가 섬기는 교회에서 설교 중에 어떤 성도를 칭찬한 적이 있습니다. 그분이 비록 거짓말을 잘하고 비진리가 많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좋은 면도 있어서 교회에 많은 유익을 가져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흥, 저 사람은 거짓말도 잘하는데 목사님이 잘 알지도 못하고 칭찬을 하다니..." 하며 여러 명의 성도가 시험에 들어 교회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행히 부교역자가 심방을 가서 깨우쳐 주니 회개하고 다시 교회에 나온 경우도 있었습니다.

상대의 장점을 칭찬하면 좋은 것인데 왜 시기심을 발동시켜야 합니까? 이런 마음이 있다면 바로 내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과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2011년 03월 25일 (금) 16:37:07 이재록 목사sion7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