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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이재록목사의 잠언강해-37] 지혜가 그 집을 짓고 [본문 : 잠언 9:1 - 6]
출처
크리스챤 신문
날짜
2011년 7월 14일 목요일
조회수: 3174
뉴스▲ 지혜로 집을 지은 룻/ 일러스트 김동호


1. 최상의 재료를 사용하여 성전 건축한 솔로몬

9장 1절에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에게 집은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집은 사람이 거처하는 주택뿐 아니라 인격적인 집을 말합니다. 사람은 지혜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인격도 그만큼 다듬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곱 기둥을 다듬는다는 것은 단지 일곱 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일곱이란 숫자는 특별한 의미는 없지요.

솔로몬이 성전이나 궁궐을 건축할 때 두 개, 혹은 일곱 개 등 각 처소마다 필요한 만큼 기둥을 세웠습니다. 전의 낭실 앞에는 놋기둥을 세웠는데 우편 기둥을 야긴이라 하였고 좌편 기둥은 보아스라고 했지요. 원래 기둥은 그 집의 버팀대요, 자랑과 위엄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궁궐은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큰 기둥들만 세웁니다. 그만큼 기둥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에게는 하나님이 주신 전무후무한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는 성전을 짓고 기둥을 세울 때 당시 최상의 재목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가 성전을 지을 때 최상의 좋은 것으로 건축하기를 원하십니다.

천지만물이 다 하나님의 것이니 아버지 집을 최고로 아름답게 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의 마음과 뜻을 알았던 솔로몬은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최상의 재료를 사용하였고, 이스라엘에서 구할 수 없는 것은 이웃 나라에서 수입하여 건축했습니다. 만인이 와서 경배하고 기도하고 예배를 드리며 영생의 길로 가는 성전인 만큼 최상의 재료를 사용했던 것입니다.

레바논에서 백향목과 잣나무 재목을 운반해 왔습니다. 시돈 사람들이 와서 벌목하였으니 최고의 전문가들을 초청한 것입니다. 이방 두로에서 온 히람은 놋쇠를 만드는 일에 최고의 기술자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과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고 했을 때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참으로 미련한 일이었지요.

그러나 이를 통해 믿음의 조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바로 영원한 줄기의 집을 세웠던 것입니다. 믿음의 집이요 생명의 집이었습니다. 또한 야곱의 인생을 살펴보면 그의 삶 속에 인내하는 지혜가 있었습니다. 그의 삶뿐 아니라 하나님께 끝까지 인내하는 지혜가 있었기에 이스라엘이라는 칭함을 받았습니다.

철저히 깨어져 악을 버렸을 때 열두 지파의 머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면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하는 과정을 통해 사망에서 영생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지혜가 있는 사람은 믿음으로 자신의 집을 세웁니다. 목표한 바를 이루어 영광돌리는 것입니다.


2. 방법을 제시하는 지혜

그러면 9장 2절에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라는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 말씀은 피상적으로 보면 먹고 마시고 취하는 방탕한 모습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솔로몬 왕이 다른 나라 왕들과 만나야 할 때에 연회가 필요했습니다. 나라를 치리하기 위해서는 상벌을 가리는 것이 필요하기에 벌을 줄 자에게는 벌을 내렸지만 상 줄자에게는 연회를 베풀어 즐겁게 나누었습니다.

당시에 이스라엘은 포도주를 마실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물이 귀할뿐 아니라 기후가 건조하고 덥습니다. 물보다는 포도주가 갈증 해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지역적인 특수성도 있습니다. 당시 포도주는 오늘날처럼 화학 약품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과실주였습니다.

또한 음식이나 조미료가 오늘날과 같이 다양하지 않았기에 짐승의 고기와 떡 반죽을 구워 대접할 뿐이었습니다. 그나마 상류층에서 포도주를 가지고 이것저것 섞어서 음식의 맛을 냈습니다. 어떤 고기는 양념할 때 술을 조금 넣으면 한결 부드러워지고 맛이 좋아집니다. 이렇게 술을 맛을 내기 위해 조금 사용하는 것은 유익한 일이지만 사람들이 취하고 방탕해졌기에 하나님이 금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영적으로 깨달아야할 것은 어떤 것일까요? 지혜는 이렇게 모든 면에서 잘 배합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합력해서 좋은 것을 이루어 낼 수가 있고 사람에게 즐거움을 선사합니다.

그래서 상을 갖춘다는 것은 바로 방법론에 해당합니다. 구약에 나오는 룻은 어떤 지혜를 선택했을 까요? 시집이 망하니까 자신도 가족의 한 일원으로 같이 망하고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아버지가 죽고 자기 남편과 형제마저 죽었기에 집 안에는 부양할 남자도, 자식도 없었습니다. 아무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상황에서 시어머니인 나오미는 며느리들에게 모국인 모압 땅에 남아 있으라고 강권합니다.

이때 큰 며느리인 오르바는 시어머니를 떠나갔습니다. 그런데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를 좇았습니다. 이는 헌신하는 지혜였고 시어머니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지혜였으며, 사랑과 순종과 섬김의 지혜였습니다. 바로 선의 지혜였지요. 물론 룻이 자신의 선택이 올바른 지혜 속에 나왔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단지 선한 마음 속에 도리를 좇아 섬기고 본분을 다하며 옳은 일을 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보실 때에는 바로 지혜였습니다. 어둠에 속한 마귀의 자녀가 볼 때에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이었지요. 룻은 자신에게 유익한지, 무익한지를 따진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선을 좇았습니다. 룻이 겸비한 모습으로 선한 방법을 택해 나갔더니 하나님께서 감동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길을 열어 주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결과가 된 것입니다.

시어머니와 함께 모압을 떠나 이스라엘로 돌아온 룻은 보아스 밭에서 보리와 밀 이삭을 주우며 시어머니를 봉양했습니다. 나오미는 보아스가 근족으로 기업을 무를 수 있었기에 며느리인 룻에게 방법을 가르쳐 줍니다. 이에 룻이 시어머니의 지시대로 순종하니 보아스를 만나 복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보아스와 결혼한 룻이 아들 오벳을 낳았는데 바로 다윗의 아비인 이새의 아비였습니다(룻 4:17).

룻이 다윗의 조상이 되는 엄청난 축복도 받았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셨으니 룻이 그의 집을 세운 것이지요. 이렇게 지혜는 선을 좇아 행하는 것이지만 각각 방법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하나님께 나와 말씀의 떡을 떼고 영생수를 마실 때

9장 3-5절에 "그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말씀합니다. 세 절 말씀이 한 문맥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솔로몬은 왜 이런 비유를 든 것일까요? 포도주를 혼합하는 이유는 조화를 이루어 맛을 내고 향을 내기 위함입니다. 원래의 맛에다 새로운 것을 더해 즐거움을 더하고자 한 것이지요. 앞 절에서 지혜는 이와 같이 그 일들을 세우고, 방법론을 가르쳐줍니다.

이 말씀의 영적인 의미는 사람이 살아가다 보면 질병뿐 아니라 일터나 경제적인 문제,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자녀가 탈선하는 등 갖가지 문제를 만나게 됩니다. 이때 슬퍼하고 고통스러워만 할 것이 아니라 솔로몬 왕이 계집종을 보내어 사람들을 초청하여 먹고 마시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부르시는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름에 순종하여 교회에 나오는 사람은 말씀을 통해 지혜를 배우게 됩니다. 지혜가 집을 세우고 일곱 기둥을 다듬으며 방법을 제시하고 있는 것처럼 지혜를 배우면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지혜를 배우는 것입니까? 나아만 장군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선지자에게 나오니 문둥병을 치료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며 사랑하는 그분의 종이 지혜를 가르쳐 주었을 때 순종하자 문제가 해결된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진리가 기뻐하라, 기도하라, 감사하라,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라, 모이기에 힘쓰라 등 가르쳤으니 그대로 실천하면 됩니다. 이렇게 순종할 때 어떤 문제든지 응답받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문제를 갖고 있습니까? 흉악한 귀신 들린 딸을 둔 어미도 하나님 앞에 나와 선과 겸손함으로 붙좇았더니 문제 해결을 받았습니다. 이 보다 더 큰 문제일지라도 하나님 말씀에 순종할 때 응답받을 수 있습니다.

끝으로 6절에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말씀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볼 때 예수 믿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어리석게 보입니다. 하나님을 믿을 바에는 차라리 내 주먹을 믿으라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 앞에 인간은 참으로 보잘 것 없는 존재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습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부처가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밖에 우리를 구원해 줄 이가 없는 것입니다.

2011년 07월 14일 (목) 12:05:04 이재록목사sion7000@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