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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속의 인물 - 인도도 최초의 전도자 사도 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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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짜
2005년 1월 17일 월요일
조회수: 8321
인도도 최초의 전도자 사도 도마
인도 전도 여행에 대한 전승 문헌 기록들
1. 첫 번째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의 큰 권능을 받은 사도들은 비상한 열심을 품고 세계로 향하는 전도사업을 수행하기로 작정하였다. 이때 도마는 인도로 가도록 배당되었다. 사도 도마는 인도로 가는 전도의 사명이 너무나 험하고 힘에 벅참을 느껴 몸이 약하다는 구실로 회피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날 밤에 꿈속에 예수님께서 나타나 "도마야 두려워 말라. 나의 축복이 너를 지켜 줄 것이다. 너는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그는 선뜻 인도행을 결심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인도로부터 압바네스(Abbanes)라는 상인이 예루살렘에 내방하여 건축공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는 인도 지방의 곤다포러스(Gondaphorus) 왕의 사절이었는데 도마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압바네스를 만나게 되었다. 도마는 그와 함께 인도에 건너가게 되었으며 곧 왕에게 소개되어 궁전을 크게 짓는 공사의 부탁을 받았다.
2. 두 번째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사도 도마가 A.D. 52년에 남인도의 서해안 마라바르(Marabbal)에 도착하여 전도하게 되었는데 그의 설교를 들은 많은 주민들이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여 그 지방 일대에 7개의 교회가 세워졌다.
그 후 그는 마이라풀(Mailapur)을 찾아가 그곳에서도 왕과 많은 주민들에게 전도하여 주께로 인도하는 일에 성공하였다는 내용이다 (John Stewart;Nestorian missionary Enterprise, pp. 128-129). 사도 도마는 용기를 얻어 중국에까지 원정하여 칸바릭(Khanbalig)에서 전도했으며 얼마 후 마이라풀로 돌아왔다. 그러나 지방의 일부 이교도 원주민들은 다른 종교를 전하는 도마를 극히 미워하여 사도 도마는 그들의 창에 찔려 목숨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Hough; History of Christianity in India, vol., I, 2) 이러한 그의 순교의 연대는 A.D.72년으로 보고 있으며 그 지방 마이라풀에 장사 지냈다.
St.Thomas Mount의 도마 순교 기념교회의 내부
앞쪽에 있는 사도 도마가 사용했다고 여겨지는돌십자가(가운데)와 성화(우측) 그리고 도마의 뼈조각(좌측의 십자가 중앙에 놓여져 있음)
3. 문헌에 나타난 교회 사가들의 견해
도로테우스(bishop Dorotheus)는 '사도 도마는 빨리아인, 메데인, 페르시아인, 루만인, 박크르라인, 마기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후 인도의 카라미나 (Caramina)에서 순교하였다'고 말하였다.
5세기 말의 제롬(St. Jerome)은 '하나님의 아들의 보호는 도마와 함께하여 인도에도 머물렀고 베드로와 함께 로마에도, 바울과 함께 이탈리아에도, 디도와 함께 그레데에도, 안드레와 함께 아가이아에도 머물렀고 그밖의 모든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곳곳에 언제나 함께 머물러 계시었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시리아 교회 사가인 바 헤브라에우스(Bar Hebraeus)는 '주의 승천 후 2년 만에 사도 도마가 동방으로 즉 인도와 그밖의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갔다'라고 기술하였다.
그렇지만 도마는 건축비로 받은 돈을 불쌍한 과부와 고아를 구제하는 일에 다 써 버리고 말았다. 며칠 후에 왕이 건축 현장에 나와 보니 공사의 흔적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대노한 왕은 도마를 체포하여 사형에 처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러나 그때 마침 왕의 동생이 급사하는 불상사가 일어나 처형은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왕의 동생은 그 영혼이 하늘에 올라가는 기이한 현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는 찬란한 궁전은 도마가 지은 집이라고 천사가 말해 주었다. 그후 왕의 동생은 소생하였으며 하늘에서 본 모든 광경을 형인 왕에게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 말을 듣고 크게 감동을 받은 왕은 도마를 놓아 주었고 그의 전도를 받아들여 개종하였으며 또 그의 신하들이 모두 신자가 되었다 (The Acts of Thomas in the AutiNicene Fathers).
18세기의 동방문헌 편집자인 앗세마너스(Joseph Simonius Assemanus)는 도마를 '인도 지방의 최초 전도자'라고 언급하였다. 1521년 마이라풀의 도마 교회당 부조의 고분에서 백골과 함께 철제 화살촉과 점토제의 병이 나왔는데 이 백골이야말로 도마의 유해라고 강조하고 있다. 15년 그곳에서 또 동제의 창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에 새겨져 있는 날자를 풀이한 즉, 인도의 왕이 도마의 교회당 건립을 위하여 대지를 희사하였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1547년에는 도마의 산에서 석비가 발굴되었는데 이 비석의 중앙에는 십자가가 조각되어 있었고 그 위에 비둘기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 좌우에는 페레비 (Pehlievi)어의 문장이 있어 그것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메시아와 높으신 하나님과 성령을 믿는 사람은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의 은혜로 죄의 용서를 받을 것이다"
인도 전도 여행에 대한 전승 문헌 기록들
1. 첫 번째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오순절에 성령의 큰 권능을 받은 사도들은 비상한 열심을 품고 세계로 향하는 전도사업을 수행하기로 작정하였다. 이때 도마는 인도로 가도록 배당되었다. 사도 도마는 인도로 가는 전도의 사명이 너무나 험하고 힘에 벅참을 느껴 몸이 약하다는 구실로 회피하려고 하였다. 그런데 그날 밤에 꿈속에 예수님께서 나타나 "도마야 두려워 말라. 나의 축복이 너를 지켜 줄 것이다. 너는 인도에 가서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도 그는 선뜻 인도행을 결심하지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인도로부터 압바네스(Abbanes)라는 상인이 예루살렘에 내방하여 건축공을 물색하고 있었다. 그는 인도 지방의 곤다포러스(Gondaphorus) 왕의 사절이었는데 도마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압바네스를 만나게 되었다. 도마는 그와 함께 인도에 건너가게 되었으며 곧 왕에게 소개되어 궁전을 크게 짓는 공사의 부탁을 받았다.
2. 두 번째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
사도 도마가 A.D. 52년에 남인도의 서해안 마라바르(Marabbal)에 도착하여 전도하게 되었는데 그의 설교를 들은 많은 주민들이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여 그 지방 일대에 7개의 교회가 세워졌다.
그 후 그는 마이라풀(Mailapur)을 찾아가 그곳에서도 왕과 많은 주민들에게 전도하여 주께로 인도하는 일에 성공하였다는 내용이다 (John Stewart;Nestorian missionary Enterprise, pp. 128-129). 사도 도마는 용기를 얻어 중국에까지 원정하여 칸바릭(Khanbalig)에서 전도했으며 얼마 후 마이라풀로 돌아왔다. 그러나 지방의 일부 이교도 원주민들은 다른 종교를 전하는 도마를 극히 미워하여 사도 도마는 그들의 창에 찔려 목숨을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Hough; History of Christianity in India, vol., I, 2) 이러한 그의 순교의 연대는 A.D.72년으로 보고 있으며 그 지방 마이라풀에 장사 지냈다.
St.Thomas Mount의 도마 순교 기념교회의 내부
앞쪽에 있는 사도 도마가 사용했다고 여겨지는돌십자가(가운데)와 성화(우측) 그리고 도마의 뼈조각(좌측의 십자가 중앙에 놓여져 있음)
3. 문헌에 나타난 교회 사가들의 견해
도로테우스(bishop Dorotheus)는 '사도 도마는 빨리아인, 메데인, 페르시아인, 루만인, 박크르라인, 마기인들에게 복음을 전한 후 인도의 카라미나 (Caramina)에서 순교하였다'고 말하였다.
5세기 말의 제롬(St. Jerome)은 '하나님의 아들의 보호는 도마와 함께하여 인도에도 머물렀고 베드로와 함께 로마에도, 바울과 함께 이탈리아에도, 디도와 함께 그레데에도, 안드레와 함께 아가이아에도 머물렀고 그밖의 모든 사도들이 복음을 전하는 곳곳에 언제나 함께 머물러 계시었다'라고 말하였다. 또한 시리아 교회 사가인 바 헤브라에우스(Bar Hebraeus)는 '주의 승천 후 2년 만에 사도 도마가 동방으로 즉 인도와 그밖의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갔다'라고 기술하였다.
그렇지만 도마는 건축비로 받은 돈을 불쌍한 과부와 고아를 구제하는 일에 다 써 버리고 말았다. 며칠 후에 왕이 건축 현장에 나와 보니 공사의 흔적이 보이지 아니하였다. 대노한 왕은 도마를 체포하여 사형에 처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그러나 그때 마침 왕의 동생이 급사하는 불상사가 일어나 처형은 연기될 수밖에 없었다. 왕의 동생은 그 영혼이 하늘에 올라가는 기이한 현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곳에 있는 찬란한 궁전은 도마가 지은 집이라고 천사가 말해 주었다. 그후 왕의 동생은 소생하였으며 하늘에서 본 모든 광경을 형인 왕에게 자세히 설명하였다. 이 말을 듣고 크게 감동을 받은 왕은 도마를 놓아 주었고 그의 전도를 받아들여 개종하였으며 또 그의 신하들이 모두 신자가 되었다 (The Acts of Thomas in the AutiNicene Fathers).
18세기의 동방문헌 편집자인 앗세마너스(Joseph Simonius Assemanus)는 도마를 '인도 지방의 최초 전도자'라고 언급하였다. 1521년 마이라풀의 도마 교회당 부조의 고분에서 백골과 함께 철제 화살촉과 점토제의 병이 나왔는데 이 백골이야말로 도마의 유해라고 강조하고 있다. 15년 그곳에서 또 동제의 창이 발견되었는데 거기에 새겨져 있는 날자를 풀이한 즉, 인도의 왕이 도마의 교회당 건립을 위하여 대지를 희사하였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었다.
1547년에는 도마의 산에서 석비가 발굴되었는데 이 비석의 중앙에는 십자가가 조각되어 있었고 그 위에 비둘기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그 좌우에는 페레비 (Pehlievi)어의 문장이 있어 그것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메시아와 높으신 하나님과 성령을 믿는 사람은 십자가에 달리신 구주의 은혜로 죄의 용서를 받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