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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의 소식

제목
하나님의 사랑을 실어 나르는 복음의 메신저가 되고파 - 전동표 집사
출처
만민뉴스 제294호 PDF
날짜
2005년 7월 12일 화요일
조회수: 14171
뉴스 전동표 집사 (전국제 트랜스 대표/ 원주 만민교회 남선교회 회장)

무의미한 삶을 살다가 주님을 영접한 후 영적인 갈급함이 생겨나

1986년, 아내 우미녀 집사와 결혼한 저는 신혼의 단꿈에 젖은 것도 잠깐이었습니다. 원주에서 화물 트럭 운전기사를 하던 제가 술과 도박 등으로 가정을 소홀히 하면서 아내와 사사건건 다투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이혼은 면했지만 신뢰와 애정도 없는 무의미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지요.
1991년, 미군부대 해외 포장이사업에 종사하던 저는 경기도 오산으로 발령받게 되었는데 그곳에는 교회에 다니는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마음이 곤고했던 저는 자연스럽게 그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하게 되었고 저희 부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면서 점차 가정이 안정을 찾아 갔습니다.
얼마 후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기 시작했습니다. 무언가 말씀에 궁금한 것이 많아지면서 영적 갈급함이 생겨나 기도원 집회나 부흥성회를 찾아다니게 되었지만 제 심령의 갈급함을 채워 주지는 못했습니다.

만민중앙교회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하여 깊은 영의 세계를 맛보기 시작하니

그러던 1997년 초, 평소 알고 지내던 조명자 집사님의 권유로 만민중앙교회 금요철야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본당에 들어섰을 때 마치 천국에 온 기분이었습니다. 수많은 성도들이 성전에 모여 밝고 충만하게 찬양하는 모습을 보며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동함이 물밀듯 밀려왔지요. 또한 증거되는 말씀을 들으면서 이제껏 참으로 어리석은 삶을 살아왔다는 깨우침을 받았습니다.
그 후 저는 '십자가의 도', '영혼육', '믿음의 분량' 등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설교 테이프를 구입해 들으며 깊은 영의 세계를 맛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진실하신 분이구나! 어떻게 이런 말씀을 증거하실 수 있지?' 하며 저도 모르게 당회장님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평택에 살면서도 예배가 사모되고 한 번이라도 더 당회장님을 만나 뵙고 싶어서 가능하면 서울에 올라와 예배를 드리려고 힘썼습니다.

고향인 강원도에도 성결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길이 열리고

그 당시 개인으로 차량을 구입하여 이삿짐 센터를 하고 있던 저희에게 조명자 집사님은 제 고향인 평창 근처 원주로 사업터를 옮겨 만민중앙교회 원주 지교회 개척을 준비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하셨습니다.
그분은 평소 강원도 지역 영혼들에게 어떻게 해야 성결의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를 늘 기도해 왔는데 저희 부부를 곁에서 지켜보면서 함께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히셨다고 합니다. 저희 부부는 영혼 사랑에 감동을 받으며 무언가 주님의 은혜를 갚고자 그분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지요. 더욱이 제게는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의 생명의 말씀을 접할 수 있는 큰 축복이니 조금도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부부는 먼저 원주에 거주할 집을 놓고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아내의 꿈을 통해 미리 얻을 집을 보여 주셨습니다. 나중에 그곳에 가 보니 임대가 되지 않아 3개월간 비어 있던 크고 좋은 집이 예비되어 있었지요. 또한 신기하게도 전세금도 저희가 준비한 금액과 딱 맞게 이사할 수 있었습니다.
1997년 가을부터 저희 가족은 원주에 살면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만민중앙교회의 예배와 기도회, 모든 행사나 모임, 교육 등에 참석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지교회 개척을 위해 하나하나 준비해 나갔습니다.

원주만민교회 개척예배를 드려 교회와 목자의 힘이 되고자 힘쓰니

드디어 1999년 5월 2일, 어린이를 포함하여 8명이 모여 원주만민교회 개척예배를 드렸습니다. 그 때 조명자 집사님과 저희 부부, 그리고 성도님들은 얼마나 감격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꿈만 같던 일이 현실로 다가오니 제가 몸 안에 있는지 몸 밖에 있는지 모를 정도로 성령이 충만했습니다.
다음 날, 「이재록 목사 2주연속 특별부흥성회」가 열렸는데, 인터넷을 통해 성도님들과 함께 성회에 참석하였습니다. 원주 지역에서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저희 부부는 얼마나 행복했는지요.
그런데 성회 기간 중에 예기치 않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5월 11일, 모 방송의 본교회에 대한 왜곡 편파 보도로 전국이 떠들썩하였던 것입니다. 그 상황에서도 성도님들은 부흥성회가 마쳐질 때까지 당당하게 동네 문 앞에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 홍보 현수막을 내걸고 교회와 목자를 알리기에 힘썼습니다. 동요하기는커녕 오히려 부흥성회를 지키고 어떻게든 힘이 되고자 애쓰는 성도들의 모습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얼마 후 원주만민교회에도 동시 화상예배를 통해 본교회와 동일하게 주일예배와 금요철야예배를 드림으로 직접 당회장님의 얼굴을 뵙고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게 되어 얼마나 기쁘고 감사했는지요.
그동안 여러 가지 시험이나 어려움도 있었지만 당회장님의 사랑과 관심, 사랑의 기도로 잘 극복할 수 있었으며,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일꾼들을 하나하나 보내 주셔서 지교회의 면모를 하나하나 갖추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영혼이 잘되는 축복과 함께 가정과 사업터에도 축복의 문이 활짝 열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행함을 보시고 축복의 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삿짐 센터를 운영하다 보면 대부분 일요일에 이사하기 때문에 주일 성수하기가 쉽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믿음대로 역사해 주셨습니다. 주일에는 주문을 받지 않는다고 고객들에게 전하면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오히려 믿음이 가는 이삿짐 센터라며 이사 날짜를 평일로 변경해 주문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뿐 아닙니다. 모든 일을 정도를 좇아 행했더니 십일조도 나날이 늘어 갔습니다. 고객에게 무리한 이사 비용을 요구하지 않고 가능하면 고객의 입장에 맞추어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해 주며 내 집처럼 이삿짐을 깔끔하고 안전하게 정리해 주었더니 소문에 소문을 더하여 주문이 쇄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20~30만 원 드리던 십일조가 많을 때는 300만 원까지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의 소원을 놓고 당회장님께 기도를 받는 꿈을 꾸게 되었는데 그 후 적은 돈으로 35평 아파트를 구입하게 되었습니다.
이삿짐 센터를 하다 보면 가끔씩 예상치 못한 위험한 순간들이 발생하기 때문에 매일 아침 믿음으로 당회장님의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를 받았더니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사고로 인해 다치는 일이 없도록 지켜 주셨습니다.
이처럼 정도를 좇아 선으로 행하니 사업터에 축복이 임할 뿐 아니라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는 것을 체험하고 있습니다. 아내는 12년 동안 고통받던 양손과 양 발의 습진과 허리 요통, 먼지알레르기, 만성피로증세도 당회장님의 기도를 받고 깨끗이 치료받았습니다.
친히 인도하시고 축복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생명의 말씀으로 인도해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