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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민의 소식

제목
공황장애(恐慌障碍)로 인한 죽음의 문턱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 변민자 권찰
출처
날짜
1999년 9월 12일 일요일
조회수: 9218
뉴스저는 전남 함평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나 가정 형편상 일찍 직업전선에 뛰어들어 객지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밀려오는 외로움과 함께 힘들고 무료한 생활 속에서 빨리 가정을 꾸리고 아기자기한 삶을 살고 싶었습니다.

신혼생활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25세가 되던 해인 1986년, 안정된 삶을 위해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결혼을 하고 나니 문제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남편의 무뚝뚝한 성격과 저의 소심하고 내성적인 성격은 마치 물과 기름 같아서 시간이 흐를수록 거대한 담으로 다가왔고, 행복한 신혼의 꿈은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습니다.
과묵한 성격의 남편이 왜 그리 어렵고 어색한지 자연스런 대화는 물론이요, 심지어 텔레비전을 볼 때에도 남편의 뒤에서 보아야 할 정도였습니다.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다른 방에 혼자 있는 날이 많았구요. 이러한 저를 대하는 남편도 힘들어져 애정은 점점 식어만 갔고, 서로가 힘들고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어 이혼을 하고 싶었지만 그 때는 이미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로 인해 심한 두통과 우울증, 불면증에 시달렸으며 이렇게 살다가는 제 풀에 죽을 것만 같았고, 다만 죽지 못해 생명을 이어가는 생활이었습니다.

공황장애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으나

그러던 1996년 8월 어느 날, 갑자기 제 머릿속은 잔뜩 부풀어오른 풍선과 같이 곧 터져버릴 듯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암 환자의 고통도 이보다는 못할 것이라고 여길 정도였으니까요. 그 때 '아, 내가 죽는구나' 싶어 저는 남편에게 유언을 남기고 119 구조대를 불러 충북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진단 결과, 난생 처음 들어 보는 '공황장애'(恐慌障碍, Panic Disorder : 심한 공포와 놀람이 호흡곤란, 빈맥 등 여러 기관에 걸친 신체 증상과 더불어 발작적으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증상)라는 병명이 나왔고, 이 질병은 우울증이 악화되어 생기는 증상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후로도 한밤중에 응급실로 실려 가는 날이 빈번해졌고, 계속되는 치료제 주사로 인해 피골이 상접한 병자의 모습이 역력하였으며, 그 동안 죽을 고비 또한 몇 차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잃으면 그대로 세상을 떠날 것 같아 정신력으로 버텨 냈습니다.
그러던 그 해 어느 날, 갑자기 얼굴을 제외한 온몸에 마비가 오기 시작하더니 마치 쌀가마니를 가슴에 얹어 놓은 듯이 무겁고 답답했습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던 저는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도 잘 모른 채 다급한 상황에서 순간적으로 "하나님, 잘못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살려 주세요." 하고 외쳤습니다. 그랬더니 갑자기 온몸이 따뜻해지면서 마비가 풀리는 것이 아닙니까. 결혼 후부터 동네 교회에 나간 적이 있어 저도 모르게 하나님을 찾게 된 것이지요.

청주만민교회에 인도받아 뉴스2년 전, 만민중앙교회에 다니는 동생으로부터 여러 차례 본교회의 지교회인 청주만민교회에 나가 보라는 권유를 받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마다 저는 "지금은 그냥 이대로 살고 싶다"며 전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올해 초, 몸은 더욱 악화되어 약을 먹어도 전혀 듣지 않고 오히려 약물 중독으로 인한 합병증까지 생겨났습니다. 금방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은 호흡곤란 증세와 얼굴을 제외한 전신의 마비 증세까지 생기게 되었던 것이지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편안할 것 같았습니다. 아무도 제 마음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었고, 이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홀로 겪으면서 모든 희망을 포기한 채 죽을 날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시 저에게 건강과 웃음이 찾아온다는 것은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금년 5월, 상상하지 못했던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제 7회 이재록 목사 2주연속 특별 부흥성회」를 앞둔 5월 어느 날, 무안만민교회에 다니는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언니, 이번 부흥성회만이라도 꼭 참석해 줘. 소원이야."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무안만민교회에 다니는 동생 변경자 집사 부부와 본교회 편집국에 근무하고 있는 변현자 자매가 저를 위해 금식하며 사랑의 간구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동생들의 권유로 저는 청주만민교회를 찾게 되었습니다.

화상예배를 통해 통회자복을 하니

부흥성회 기간 중에 열린 「환자를 위한 특별 집회」 첫 날 첫 시간, 그 때의 감격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빈혈증세가 나타나고 속이 울렁거리며 얼굴은 백지장같이 창백해져 곧 쓰러질 것 같아 유아실로 옮겨 화상(畵像)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마치신 강사 이재록 목사님의 전체를 위한 환자기도를 받는데 온몸이 뜨거워지면서 치료의 확신이 왔습니다. 그리고 박영화 집사님의 도움을 받아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를 하는데, 내성적인 저에게서 어떻게 그런 부르짖음이 나올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기하기만 합니다.
큰 소리로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서 기도를 하다보니 제 얼굴은 온통 눈물과 콧물로 뒤범벅이 되었습니다. "저를 만나 주셨지만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것을 용서해 주세요." "앞으로 변치 않고 하나님만 붙들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라고 통회자복을 하니 제 몸은 날아갈 듯이 가벼워졌고 시원해졌습니다.
그 당시 무안에 있는 동생이 저를 위해 화상을 통해 환자기도를 받는 순간 통회자복이 나오면서 치료의 확신을 얻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저를 대신한 동생의 통회자복을 통해 은혜를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날부터 신비한 체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집회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막 열고 들어서는데 집 안 공기가 예전과는 전혀 달랐고 신비로운 기운이 집 안에 가득했습니다. 저는 마치 소녀가 된 듯이 나비처럼 춤을 추며 집 안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천국에 가면 이런 느낌이겠구나'할 정도였습니다. 욕실에 들어가서 거울을 보니 깡마르고 핏기 없는 병자의 얼굴은 어디로 가고 제 얼굴이 너무나 예뻐 보였습니다. 그 때의 행복을 어떻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는지요.

공황장애와 각색 질병을 치료해 주신 하나님

그 날 밤,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또 한 번의 놀라운 체험을 주셨습니다. 몸이 서서히 마비되면서 기도를 시키시더니 온몸이 마비된 후 다시 한쪽 다리부터 서서히 풀어 주셨습니다. 중간 중간에 찬양도 하게 하셨고 밤새 기도를 시키셨습니다. 아기가 엄마의 말하는 것을 따라 말하는 것처럼 밤새도록 땀으로 목욕하면서 기도를 했습니다. 그 후 마음에 기쁨과 평안이 임하면서 우울증, 불면증, 두통, 전신마비 등 공황장애 증세가 말끔히 사라졌습니다. 할렐루야!
둘째 주간에는 서울 본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면서 당회장님께 간증을 했더니 친히 안수하여 기도해 주셨습니다. 그 후 저도 모르게 자궁염증, 치질, 빈혈, 약한 치아까지도 깨끗이 치료되었습니다. 사망의 골짜기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하나님께 모든 감사와 영광을 돌리며 사랑으로 기도해 주신 당회장 이재록 목사님께도 무한 감사드립니다.